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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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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천장을 뚫고 하늘의 높이를 재보는것...
2016년 06월 21일 21시 15분  조회:4500  추천:0  작성자: 죽림

[10강] 언어의 특성 


강사/나 호열 

시라고 하는 것은 낮은 현실의 천장을 뚫고 그것을 통하여 하늘의 높이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이며, 사방을 둘러싼 어둠의 장벽을 뚫고 외부와 내통할 수 있는 숨길을 내는 일이며, 아스팔트로 뒤덮힌 지상의 각질 같은 두께를 뚫고 대지의 깊이와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이며, 냉동인간처럼 굳어진 우리의 몸에 생명의 기운을 뜨겁게 불어넣는 일이다. 

『몽상의 시학』중에서 인용 (정효구, 민음사, 1998년) 

사이버 시창작 교실의 가족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습작시들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몇 분은 일상의 틈을 쪼개어,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상의 작은 부분에 감성의 촉수를 들이대고 시로써 표현해 보려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마음 든든합니다. 12주부터 15주 사이에 진행될 작품실기 시간에는 매우 풍성한 상차림이 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간단하게 요약을 해 봅시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시의 역할이랄까, 효용이라 할까 
하여튼 시인의 입장이거나 시를 읽는 독자의 입장이거나를 막론하고 
총체적으로 시를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현실의 천장을 뚫고 하늘의 높이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2) 어둠의 장벽을 뚫고 외부와 내통할 수 있는 숨길을 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지상의 각질같은 두께를 뚫고 대지의 깊이와 온기를 느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4) 우리의 몸에 생명의 기운을 뜨겁게 불어넣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시를 쓰는(읽는) 행위는 理想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현대의 인간은 그 이전의 인간보다 더욱 경제동물화 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고..... 사실 돈 없이 어떻게 생활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꿈은 부자가 되겠다, 출세를 하겠다하는 현실적인 요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인 것, 말하자면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등등 무형의 정신적 가치를 꿈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외부와 내통할 수 있는 숨길을 낸다는 것은 개인지향이 아니라 어울림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만물의 영장으로 인간이 군림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단순한 군집생활이 아니라 위계와 질서를 갖추고서 나만을 위하는 삶이 아닌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함임을 아는 利他的 삶에 무게를 둔다는 것입니다. 

3) 대지의 깊이와 온기를 느끼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相爭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相生의 관계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는 인간의 역사를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라고 정의하였고, 지금까지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자연을 약탈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의 의식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구 소련시절 중앙 아시아의 아랄호 주변은 거대한 목화 재배지로 관개를 위하여 아랄호의 물을 마구 끌어다 썼습니다. 몇 십 년이 지나자 아랄호의 면적은 1/3로 줄어들었고 목화 재배지는 사막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의 보복이 시작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돗물을 불신합니다. 그 맑던 팔당호 물이 3급수로 전락한 것 잘 아시지요. 그래서 우리는 생수를 사다 먹지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우리들 자신들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상 쓰는 샴푸, 한 번 머리 감을 때마다 정화를 위해서는 수 톤의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합니다. 물가에 골프장, 호텔, 음식점 마구 지어놓고, 거기서 놀고 마시고 그 오수를 우리가 마셔야할 그 물에다 마구 버립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노자가 말한 無爲自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 즉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무위는 '하?않음'이지요. '억지로 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것' 자연의 일부인 나. 영어권에서는 nature를 자연으로 번역하고 (인간의)본성으로도 해석하지요. 동양의 사유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發明으로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동양세계에서는 숨어져 있던 이치의 發見으로 이해되는 것, 오늘날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화약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 중에 하나입니다. 서양사람들에게는 발명의 의미이지만 동양(중국)의 사고에서는 화약의 이치를 발견한 것에 불과 합니다. 우리가 배를 만든 것도 가벼운 것이 물에 뜨는 이치를 발견한 것 뿐이라는 것이지요. 

4)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인간은 명령어를 집어넣고 디지털 계산에 의해 출력이 되는 기계가 아니라 자연의 숨결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하고 반응하는 '몸'을, 그 '몸'에서 탄생하는 '정신'을 가진 존재입니다. 대체적으로 정신을 고차원적인 것으로 그리고 우리의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몸'과 '정신'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몸은 more life를 지향하지요? 정신은 more than life 즉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지향합니다. 단순히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보다 가치있게 사는 것 그것이 생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올바르게 시를 이해하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자, 여기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시를 한 편 읽어 볼까요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 
최 승 호 

1. 
-시화호의 아름다운 처녀시절을 떠올리며 술 한잔 마시고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황량한 밤이다. 누군가 죽은 딸 곁에서 울고 있다.- 
2. 
시화호에선 시체 냄새가 난다. 몇 년을 더 썩어야 악취가 사라질지 이 거대한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3.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다 어느 바닷가를 지날 때였다. 마을 사람들이 짐을 꾸려 마을을 떠나고 있었다. 달마가 물었다 「왜들 떠나시오?」마을 사람들이 대답했다. 「악취 때문에 떠납니다」달마가 보니 바다 속에서 대총이라는 큰 이무기가 썩고 있었다. 달마는 해안에 육신을 벗어놓고 바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몸, 해안에 벗어놓았던 몸이 사라진 걸 알고는 당황한다. 달마는 결국 자신의 육신을 찾지 못한다. 대신 누군가가 바닷가에 벗어놓은 얼굴 흉측한 육체, 그걸 뒤집어쓰고 중국으로 건너간다. 
4. 
시화호에선 악취가 난다. 관료들에게서도 악취가 난다. 구역질, 두통, 발열, 숨막힘, 마을 사람들은 떠났다. 개펄은 거대한 조개무덤으로 변해 버렸다. 쩍 벌어진 조개껍질 위로 허옇게 소금바람이 분다. 갯지렁이들도 떠났다. 도요새들은 항로를 바꾸었다. 
5. 
무력감에서도 악취는 난다. 산 송장들, 시화호 바닥에 누워 공장 폐수와 부패한 관료들의 숙변을 먹는 산 송장들, 이것은 그로테스크한 나라의 풍경인가, 시화호라는 거대한 변기를 만드느라 엄청난 돈을 배설했다. 
달마는 시화호에 오지 않는다. 시화호에 달이 뜬다.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 누가 죽은 시화호를 딸처럼 부둥켜 안고 먼 바다로 걸어나가며 울겠는가. 
6. 
나는 무력한 사람이다. 절망의 벙어리, 그래도 세금은 낸다. 세금으로 시화호를 죽였다. 살인청부자? 
7. 
내가 시화호의 살인청부자였다. 나를 처형해다오. 달 뜨는 시화호에 십자가를 세우고 거기 나를 못 박아다오. 아니면 눈 푸른 달마를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리게 하든지. 

이 시를 읽어보니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시화호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워낙 많아서 어린 학생들이라도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시화호에 대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내용일지 염두에 두시고 다음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A. 
경기도 시흥시와 화성군 및 안산시에 걸쳐 있는 시화호 간척사업은 60년대부터 그 가능성이 검토되다가 87년 6월부터 사업이 시작되어 94년 1월 물막이 공사가 완료됐다. 그러나 발전과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5 천억 원이 투입된 시화호 방조제 사업의 결과 남은 것은 「썩은 물이 넘실대는 죽은 호수」뿐이다. 주변환경은 돌이킬 수 없도록 망가졌고 현지 주민들은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같이 대규모 개발사업에 의한 물리적 환경변화가 현지 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변화의 물질적, 상징적 의미를 「거대한 사기극」의 개념으로 인식한 「시화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어느 누구도 일부러 현지주민들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이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불편을 안겨주려 의도한 바 없지만 결과적으로 주민들은 「사기꾼 없는 사기극」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화호 사업 이전 전적으로 바다에 의존해 살아온 이들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대체 생계를 찾는데 실패했으며 자신감과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 지역은 바다가 막힌 후 갯벌이 마르면서 소금이 하얗게 드러났고, 바람이 불면 미세한 먼지와 함께 소금이 날려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였다. 생활의 터전이던 바다를 잃은 대신 새로운 삶을 기대하면서 융자를 얻어 심어 논 포도나무들은 말라비틀어지고 빚만 남았다. 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체는 깨어지고 염분으로 인한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이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결정되고 시행된 사업 대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직접적인 피해자이면서도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채 소외되고 있는 시화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이 책의 저자들은 「환경의 파괴는 바로 인간의 삶과 미래에 대한 파괴행위」임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개발을 위한 대규모 토목공사들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환경변화와 함께 주변환경이 심하게 오염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지 주민들은 국가적 필요와 공익성을 내세운 사업 시행자들의 강압적 태도나 법률적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금전으로 환산될 수 없는 상징적, 문화적 변화나 정신적 피해, 미래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이를 이해하고 안정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 

- 1999년 6월 12(금) 조선일보 

B. 
< 시화호> 태어나선 안될 호수였다. 

시화 담수호가 결국은 '사망선고'를 받게 됐다. 농림부가 시화호 남쪽 간척 농경지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우정호로부터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을 확정함으로써 담수호로서의 기능이 포기된 것이다. 1천 8백만 평 규모로 조성될 도시와 공단지역의 용수(하루 90만T)는 한강으로부터 공급할 것이라는 수자원공사의 설명이고 보면, 시화호의 용도는 사실상 사라졌다. 
정부의 담수화 포기는 어떤 방법으로도 시화호의 오염을 막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정부는 시화호의 오염이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된 후 96년 7월 4천 5백억 원을 수질개선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 뒤 정부는 안산시 하수처리장의 용량을 늘리고 ,시화공단 종말처리장의 방류수를 먼 바다로 뽑아내는 등의 대책을 시행해 왔다. 그럼에도 수질은 계속 악화돼 97년 6월 화학적 산소 요구량 22.8ppm을 기록했다. 결국 수자원공사는 97년 7월부터 바닷물을 집어넣기 시작했고 지금은 해수화가 완료됐다. 
시화호 수질개선 관련 용역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한양대 신응배 교수는 "담수호로 유지하면서 수질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해다. 정부는 4천5백억 원의 투자를 밝혔지만 적어도 1조원 이상이 소요되리라는 의견이다. 특히 축산폐수의 처리가 어렵다는 신교수의 설명이다. 

정부는 시화호 건설계획을 세우면서 호숫물 위로 유람선이 떠다니는 수도권 서남방의 대형 유원지를 조성하겠다고 큰 소리 쳤었다. 87년 4월 29일 시화개발사업 착공식 때 찍은 당시 사진에는 이규호 건설부 장관과 김용래 경기도 지사 등이 장미빛 구상을 내놓고 박수를 치는 장면이 잡혀 있다. 
하지만 96년 7월 수질대책을 내놓으면서 환경부장관이던 정종택씨는 "태어나서는 안 될 호수였다" 고 얘기했다. 공업도시들을 끼고 있는 수도권 소하천 최하류의 물을 가둬놓고 이걸 용수로 공급하겠다는 계획 자체가 무모했다는 것이다. 시화호로 흘러드는 반월천 동화천 안산천 
등 7개 소하천의 유량을 합해 봐야 연간 3억 7천만 톤이다. 

여기에 저수용량 1억 8천만 톤의 방조제를 쌓아놓고 보니 물이 거의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오염도가 급속히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무리한 계획이 강행된 것은 환경을 도외시한 개발 일변도의 정책 마인드 때문이었다. 시화호 방조제 사업은 80년대 초반 중동 건설붐이 퇴조한 후 국내로 되돌아온 유휴 건설인력과 장비를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고려에서 입안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더구나 시화개발사업에 대한 환경평가 협의가 환경당국에 접수(87년 10월)된 것은 착공(87년 4월)후 여섯 달이 지난 다음이었다. 애당초 환경 문제는 안중에 없었다는 증거다. 또한 환경당국은 하수처리장 방류수를 먼 바다로 빼내기 전에는 방조제를 막지 말라고 협의조건을 달았지만, 수자원 공사는 이를 무시하고 94년 1월 둑을 막아버렸다. 

- 1999년 11월 27일 조선일보 

C. 
경기 안산시 사동 시화호 북쪽 간석지에 서식하는 갯지렁이가 대량 폐사돼 한국수자원공사가 원인 조사에 나섰다. 22일 <희망을 주는 시화호 만들기> 위원장 최종인씨는 "시화호 상류에 대한 생태조사를 벌이던 중 갯지렁이가 갯벌에 대량 폐사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폐사된 갯지렁이들은 폐사된 지 3∼4일이 지난 듯 흰색으로 탈색되어 바다위에 떠다니고 있으며, 일부는 갯벌에 묻혀 악취를 풍기고 있다. 죽은 갯지렁이들은 한국해양연구소 앞에서부터 목내동 반월 열병합발전소, 시화공단 입구에 이르는 간석지 7.5㎞ 구간에 걸쳐 있다. 

- 1999년 6월 23일 조선일보 

D. 
시화호에서 3천 여 년 전에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굴껍질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안산지역 환경운동가 최종인(45)씨에 의해 지난 7월 처음 발견된 이 굴껍질은 한국해양연구소와 여수대학교의 공동분석 결과 3천 여년 전 서식했던 것으로 12일 판명됐다. 
이 굴껍질은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굴껍질과 같은 타원형이며, 긴 쪽의 길이가 25㎝로 보통 굴껍질의 10 배 가량 된다. 여수대 이영규 교수는 "탄소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확인한 결과 3015∼3253년 전에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이 굴은 하천과 바다가 접하는 갯벌지역에서 자라는 참굴의 일종으로 국내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굴껍질을 발견한 최씨는 "안산시 대부동 방아머리와 탄도 중간 지점에서 탐사작업을 벌이다 무릎 깊이의 물에 잠긴 갯벌에서 찾아냈다"며 "갯벌 속에 상당량이 묻혀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화호에서는 지난해 9월 공룡알 화석지가 발견되는 등 우리나라 자연상태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1999년 11월 12일 , 조선일보 

* 1, 2, 3, 4, A, B, C, D는 편의상 필자가 임의로 붙여놓은 것임. 

최승호 시인의 시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를 읽기 전에 신문기사 A,B,C,D를 먼저 읽는 것이 순서인데.... 좋습니다. 신문기사를 보면 시에 나타난 내용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신문, 잡지,TV의 기사, 오락 프로그램 등등에는 무수한 정보가 있습니다. 저도 시화호에 대한 위의 글들을 인터넷 신문 검색을 통해서 찾았습니다. 시화호에 대한 정보는 누구나 이렇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보를 가지고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로 써야할 이유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를 쓰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사회적인 문제라든지, 개인적인 문제라든지 그 어느 것을 가리지 않고 시로 써 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집니다. 문제화하는 것이지요. 이런 상상을 한 번 해 봅시다. 위의 기사들을 시인은 빠트리지 않고 다 읽습니다. 읽고보니 슬슬 시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옮긴다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한다는 것이 아니지요. 사실을 정서를 지닌 다른 그 무엇으로 묘사한다는 것이지요. 어폐가 있을지 몰라도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감동적이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의 내면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현상에 대해 시인은 반성 작용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꽃은 아름답다'라는 정보를 "꽃이 왜 아름다워야 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성찰의 단계로 끌어가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기사를 요약해 봅시다. 

A : 시화호는 환경을 파괴하고 개발 위주의 정책을 무리하게 시행함으로써 그 지역에 터전을 둔 주민들의 생활을 황폐화시켰다 
<문제> 내가 그곳에 터전을 둔 사람이라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B : 시화호는 정치인들의 책략에 의해서 천문학적인 세금을 낭비하고 실패가 예견된 사업이었다. 그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 문제> 국민의 세금을 사리사욕에 채우고 지도자라고 으시대었던 정치인들에 대해서 분노를 느낀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단죄할 수 있을까? 

C : 시화호는 완전 오염된, 갯지렁이도 살 수 없는 호수가 되어버렸다. 오,폐수를 방류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오,페수시설을 할 수 없다. 내가 공장을 가동하는 운영자이거나, 축산업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D : 시화호 지역은 옛날부터 민물과 바다물이 만나는 지역으로서 생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공룡도 살았었다. 
< 문제> 그 옛날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원래의 자연상태의 시화호 - 그곳에 살던 각종 생물들, 사람들 - 정책입안자들 - 사화호 공사로 부를 축적한(부정부패) 사람들 - 오,폐수를 버리는 사람들 - 망가진 자연 - 시화호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 - 시화호가 어찌 되었던 무관심한 사람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는 사람입니까? 아마도 두, 세개의 항목에 다 걸치게 될 것입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모순...... 작년인가요? 모 공영방송에서 영월 동강지역을 집중취재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사실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총괄한 PD가 저의 친구여서 더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주 흥미로웠지요.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남한강에는 홍수를 조절할 수 있는 댐이 충주댐 하나 밖에 없어서 큰 비가 내리면 아주 난처해지지요, 충주댐 수문을 열자니 서울지역이 범람하고, 수문을 닫자니 충주지역의 농경지가 아수라장이 되고. 그래서 아예 상류지역에 댐을 만들자. 이렇게 생각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영월지역은 석회암 지역이라 수많은 동굴이 있고..... 오히려 물이 오염되고, 수몰지역이 생기고, 이런저런 이유로 지역의 갈등 (주로 경제적 이익에 관한 다툼이지만)은 증폭되고 말았지요. 
서울 강남의 모 치과의사께서 사비를 털어 영월 동강 지역에 사람들을 데리고 갔지요. '자, 봐라, 얼마나 아름다운 환경이냐, 자연생태계의 보고! 댐 만들면 이게 다 무너지고 결국 우리 생활도 파괴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동강의 비경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래프팅 한다고 사람들이 몰려가서 시끌벅석...... 마시고 버리고, 누구 탓을 해야 할까요? 

시를 쓰는 마음은 반성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화호을 놓고 여러분은 무엇을 반성하겠습니까? 무엇을 시로 옮기시겠습니까? 
<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는 프롤로그(서언)을 포함하여 7 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말할 때 單刀直入的으로, 요약해서, 간단하게 이런 등등의 말을 하게 됩니다. 서론, 본론, 결론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절대로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합시다. 옛날 우리 한국 영화는 30분 정도 보면 그 결말이 뻔해서 

재미가 없었지요.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적인 내용, 사람들은 '에이, 시시해, 재미없어' 그랬지요. 전 번 시간에 임보 시인이 '시는 우선 재미있고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고 한 그 내용을 기억하시지요. 시도 처음부터 무겁게 나가거나 내용이 뻔하면 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시를 오래 쓰다 보면 시의 서두와 결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흡인하는 능력, 독자의 상상력을 뒤집고 뛰어넘는 재치, 이런 것들이 시인들에게 매우 필요합니다. 
<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의 내용은 인용한 A, B, C, D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시화호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카피하는 형식으로는 시로서의 의미를 찾기 힘듭니다. 

프롤로그를 봅시다. 

1) 시화호의 아름다운 처녀시절을 떠올리며 술 한 잔 마시고 베란다 밖을 내다 본다. 황량한 밤이다. 2) 누군가 3) 죽은 딸 곁에서 울고 있다. 

시인은 파괴되지 않은 자연, 순리대로 생명을 나누는 그 시절을 아름다운 처녀시절이라고 묘사합니다. 시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기법은 묘사입니다. 언어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지시기능, 정보기능 등등 6 가지의 기능이 있다고 했지요. 다른 측면에서는 언어를 과학적 언어(숫자, 수학공식)와 정서언어로 구분하기도 한다는 것, 기억하시지요? 정확한 표현(묘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합니다. 나의 주관이 개입될 때, 언어는 매우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합니다. 지시적이기도 하고 정보 전달기능이기도 하고 ...... 

시인은 시화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서 프롤로그로 암시를 줍니다. 2)의 누군가라는 표현은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의 죽은 딸은 무엇입니까? 바로 시화호입니다. 2)는 1)과 연결 시켜 볼 때 내가 죽은 딸 곁에서 운다라고 해야 될 것 같은데 시인은 누군가라고 우는 대상을 확정시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내가 운다라고 하면 왜 내가 우는 까닭을 계속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시를 마칠 때까지 내내 그런 부담을 지울 수도 없고 읽는 독자도 그런 관념에 빠지기 쉽습니다. 누군가라고 표현하면 그 범위는 매우 불확실하면서도 한 둘이 아닌 여러 사람이라는 그래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서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절묘한 시적 장치입니다. 

1 연은 시화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생명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죽어버린 그 무엇들, 시체냄새는 물질이 썩는 것일 수도, 잃어버린 양심이 썩는 소리일 수도 있고, 문명 자체가 썩는 냄새일 수도 있습니다. '몇 년을 더 썩어야 악취가 사라질지'라는 표현을 잘 생각 해봅시다. 완전히 썩으면 냄새가 사라진다라는 생각은 매우 시적인 발상입니다. 

2 연은 달마가 등장합니다. 장면의 전환이지요. 달마는 누구입니까?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석가모니가 입멸한 후 그 도통을 이어받은 달마는 37대 쯤 되지요? 달마는 동쪽으로 갑니다. 물론 동쪽은 중국이지요. 몇 년 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뜻은?' 이런 영화도 있었지요. 저도 철학공부 시간에 우스개 소리로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왜 달마는 동쪽으로 갔게? 학생들은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왜일까?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중국이 동쪽에 있기 때문에. 달마는 불교가 더 이상 펼쳐질 수 없는 인도를 떠나 해로를 통하여 중국에 상륙합니다. 달마는 중국 선불교의 시조가 되지요, 禪佛敎는 直指人心 즉 사람의 마음속에 모든 진리가 담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에 敎外別傳 : 경전공부를 좋아하지 않지요. 불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고, 기원하고 그런 것을 거부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궁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이심전심의 불법을 주장하지요. 어째든 역사상의 달마는 매우 신비화된 존재입니다. 2 연에 나타난 달마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잠깐 미루어 놓읍시다. 믿거나 말거나 달마가 행한 일들이 사실적으로 2연에 전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시인은 하나의 우화를 통하여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우회적으로, 자 이 이야기는 나의 주관이 아니라 어디에 근거가 있는,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야 라고 심리적으로 독자를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도의 시적 장치이지요. <누군가가 바닷가에 얼굴 흉측한 육체, 그걸 뒤집어쓰고>는 상징이 깊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욱체를 벗어놓는다는 행위는 무엇입니까? 淨化한다는 것? 희생한다는 것? 
얼굴 흉측하다는 것은 敎化의 실패라고 보아야 할까요? 

3 연은 시화호 악취의 근원을 파고들어 갑니다. 악취의 근원이 관료들이라고 적시하면서 시화호의 황폐로 인한 결과를 보여 줍니다. 

4 연은 어찌할 수 없는 시화호의 부패에 대해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되돌아 보면서 2 연에서 등장한 달마조차도 오지 않는 비극적 상황, 교화할 수 없는 나락의 상태, 절망의 상태를 처연하게 읊게 됩니다. 

5 연은 드디어 시화호를 오염시킨 주역이 자신이라는 반성에 이르게 됩니다. 앞 연에서 무력감에서도 악취가 난다고 했지요? 나는 무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악취가 납니다.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시화호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도 살인청부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프롤로그에서 누군가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자리를 위해서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세금을 내는 우리 모두.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도 생색을 내고 배불리는 것은 위정자들, 그런 위정자들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없는 사람들 그 모두가 살인청부자이고, 악취가 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일에서 결코 국외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연은 그러므로 처형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당당하게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처연함. 눈 푸른 달마는 무엇입니까? 사실적으로 인도인인 달마는 눈이 푸를 수도 있겠지만 이 시에서 표현된 눈 푸른 달마는 한국외적인 것, 서양적인 것, 현대문명을 일으켜 세운 서양의 시스템, 과학, 이런 것들을 총칭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에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신문기사를 스크랩 해 드린 것도 시에서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한 번 생각 해보고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사실적 정보를 어떻게 시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하는 것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시는 반성의 힘을 키워준다고 믿습니다. 중국의 철학자들은 先知後行할 것이냐, 아니면 知行合一할 것이냐에 대해서 많은 논쟁을 해 왔습니다. F.Bacon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것은 선지후행의 계열에서는 내용이겠지만 저는 '아는 만큼 행동해야 한다' 쪽에 서고 싶은 사람입니다. 시인은 지사일수도 선각자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로 표현되는 자기반성이 없는 시인은 시를 써야하는 존재이유를 찾기 힘든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혼을 불사르지 못하는 예술가는 그 생명이 짧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언어의 특성이었습니다. 강의의 의도는 여러분들에게 시는 언어를 도구로 한다는 것을 우선 말씀 드리고 나서 시에서 씌여지는 언어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比喩法 등 수사학적인 내용을 기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유법에 대한 강의는 실제 작품토론 시간에 게재할 것이니 기다려 주세요) 
시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가 지닌 특성을 먼저 알아 두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시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의 시에서 여러분들이 잘 모르는 단어가 몇 개나 있었습니까? 시에서 표현되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은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연유합니다. 멋있는 것, 시적인 어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배열, 조합에 의해서 아름다움이 생성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고가 깊어지면, 언어의 사용 또한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겠지요, 그런 수련 기간이 경과하면 아마 여러분은 몰라보게 아름다워지고 시적인 상태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는 지시적인 기능을 대단히 강조하고, 사전적 의미로 해석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는 일상적인 언어를 구사하되, 상투적인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시는 정확히 현실을 인식하고 관찰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란 그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상식적인 내용으로 전락할 수 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당신은 정말 시적이야'라고 말합니다. 詩的이라는 것은 그 자체에 어떤 美의 형태를 갖추고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그 무엇에 대한 관점이 확립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단어는 그 의미망이 매우 넓습니다. 그리고 하나 이상의 단어가 서로서로 결합할 때 그 의미망은 크게 증폭합니다.
한 권의 시집을 여러 사람이 읽고 나서 어느 작품이 좋으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각양각색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환경과 자신의 시각에서 시를 해석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작품은 그 편차가 매우 큽니다. 
언어는 그 하나마다 內包와 外延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개념이 지시하는 사물을 적용시킬 수 있는 범위'를 말하는 것이며 내포란 '한 사물이 함유하고 있는 속성의 집합'입니다. 언어의 조합과 배열이란 이렇게 우리가 관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내포와 외연을 틀을 조화시키거나 깨트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망을 경험하게 하는 喚起의 장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어트Eliot는 '시는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매우 숙고해 보아야할 내용입니다. 새로운 의미망은 처음 '아! 이것을 시로 써 보아야 하겠다'라고 자신을 환기하는 동시에 어떤 사태에 대한 복사가 아니라 재해석하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시에서 쓴 언어가 보편적 일상언어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해서 피해야할 어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공간, 소리, 문자, 가로, 세로 등등의 단어'는 내포와 외연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이 시로 드러날 때에는 매우 모호한 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모호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뒤죽박죽 되어서 분간이 가지 않는 상태가 아니겠어요? 시의 특성은 曖昧性이다라고 한다면 그 애매성은 다양한 내포와 외연의 결합으로 다각적으로 해석 가능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리움, 슬픔, 외로움' 이런 단어들은 시에서 항용 사용되는 것이지만 시에서 정작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그리움의 상태, 외로움, 슬픔의 상태를 표현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정서를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한용운 시인의 ' 님의 침묵'이 훌륭한 시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님'이 상징하는 바의 의미폭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어느 사람에게는 한 편의 연애시로 읽힐 수도 있겠고, 또 어느 사람에게는 구도의 의미로, 또 어느 사람에게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라고 廣義로 해석할 수 있는 그 다양성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강조점 : 

1.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관습적 표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2. 詩語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3. 하나의 언어는 그 하나마다 지닌 의미가 있다 (배열, 조화: 바둑에서의 무궁한 포석처럼 언어의 무수한 포석을 생각하라
4. 시는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묘사를 통하여 미적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읽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사물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 이가림 시인의 시인데 시 제목은 여러분에게 숙제로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물에 관한 이미지를 통해서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의 감정을 토로한 수작입니다. 


언제부터 
1) 잉겅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 속에 2)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구나 
3)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 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 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4) 어지러운 충만이기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5)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6)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 주소서 

이 시도 특별하게 어렵거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1)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은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직유법은 A는 B처럼(같이)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요. 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직유법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직유법을 많이 쓰는 시인들이 거의 없지요. 1)의 잉겅불과 그리움의 결합, 잉걸불이 어떤 불인지 잘 모르는 분들도 바짝 마른 잎들이 바작바작 소리를 내며 타는 모습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겠지요. 잉걸불은 정감이 있는 순수한 우리말이지요. 여러분들은 象徵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 보셔야 합니다. 

언어는 약속이지요.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서로 약속을 하므로서 지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지요. 사회가 발전해 나가면서 새로운 의미가 늘어나게 되고 하나의 단어는 점차적으로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의미로 분화해 나갑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상징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무엇이다' 라고 정의하는 순간 그 사람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심상(이미지)을 생성시킨 것으로 볼 수 있는 겁니다. 

다음을 볼까요.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이글거린다. 불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그리움이 이글거린다는 이미지는 근접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요 3) 영혼의 가마솥이라는 표현도 재미있지요. 시를 공부하는 여러분은 이와같은 'A는 B이다'의 형식을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영혼과 가마솥이라는 두 단어, 영혼은 추상적이지요. 가마솥은 현존하는 물질입니다. 추상적인 것을 물질화(구상화)하는 연습이 시를 잘 쓰는 한 방법입니다. 4) 어지러운 충만, 또한 쉽게 얻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어지럽다와 충만의 결합 어지럽다라는 동작과 충만이라는 추상이 결합되는 상태는 어떤 상태가 될까요 얼마나 절실하게 가득찼길래 어지러운 상태에 이르게 되겠습니까? 6) 홍보석의 슬픔, 홍보석은 이 시가 스케치하고 있는 어떤 사물의 색깔인데 그것을 홍보석이라고 비유하고 슬픔을 연결시켜 놓아 확연하 

게 어떤 슬픔인지 알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막연하게나마 어떤 무드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어요? 슬픔의 빛깔화, 붉은 슬픔? 5)는 아픔의 상태를 드러내기 위하여 찾아낸 문구입니다. 지구가 깨지는 소리...... 우리가 살고 있는 전제조건은 이 지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가 없으면 우리는 그 존재성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런 지구가 깨진다? 지구가 깨지면 60억이 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지구가 깨지는 소리는 그 어떤 아픔보다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 그 소리가 어떤 소리냐고 묻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시를 쓰는 재미가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표현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시간이 있으시면 책방에 들러 상징어사전을 한 권 구입하십시오. 물, 불, 눈, 밤, 말.......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무수한 말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알아둔다는 것은 여러분의 상상력을 한껏 키워주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또 여유가 있으시다면 시어사전도 한 권 구입하십시오. 우리가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결곱고 살겨운 우리말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아마도 여러분들은 놀라실 것입니다. 

<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와 위의 시를 읽으면서 저는 치밀한 구성력에 눈길을 둡니다. 좋은 시일수록 잘 짜여진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을 품어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삭이면서 마치 카펫트를 짜듯이 한 올 한 올 짜 올려 한 폭의 아름답고 포근한 양탄자를 만들어 내는 것, 더 이상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상태까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 내는 것. 독자는 한 조각 한 조각의 풍경을 맞추어나가는 행위를 통하여 마지막으로 한 폭의 큰 풍경화를 보게 됩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성급하게 나의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안으로 감추려고 해 보십시오. 그렇게 해도 언어행위는 드러나는 것 입니다. 

여러분들께 현대시인에 대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답을 해 주셨는데 안도현, 기형도, 도종환, 정호승, 장석남, 나희덕, 최영미, 김정란, 등의 시인을 거명해 주셨습니다. 
이 다음 주에는 먼저 안도현 시인의 시집 <그리운 여우>을 다루고, 그 다음에는 도종환 시인의 <부드러운 직선>을, 마지막으로는 최영미 시인의 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시집을 구해서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
강의록이 늦어지고 있는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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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잇사 작품 (1763~1827) / 시인 최윤희

 

 

 

 

 

고바야시 잇사 小林一茶 (1763~1827)

 

 

 

 

벼룩 네게도 분명 밤은 길겠지 외로울거야
이상하다 꽃그늘 아래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여위 개구리 가지 마다 잇사가 여기 있다
연잎 위에서 이 세상의 이슬은 일그러지네
나의 별은 어디서 노숙하는가 은하수
죽은 어머니 바다를 볼 적마다 볼 적마다
옷 갈아입어도 여행길에는 같은 이가 따라나서네
자식이 있구나 다리 위의 걸인도 부르는 반딧불이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빌고 발로도 빈다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 낀 손톱 냉이풀 앞에서도 부끄러워라
사람이 물으면 이슬비라고 답하라 동의하는가
내 옷소매를 풀잎이라 여기니 기어오르는 반딧불이
무엇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나 마타리꽃은
쇠못 같은 앙상한 팔다리 가을 찬 바람
저녁 제비여 나에게는 내일도 갈 곳 없어라
새끼 참새야 저리 비켜 저리 비켜 말님 지나가신다
나무 아래 나비와 머무는 것도 전생의 인연
고향에는 부처 얼굴을 한 달팽이들
사람도 한 명 파리도 한 마리다 넓은 방 안에
쌀 주는 것도 죄짓는 일이구나 싸우는 닭들
이 세상은 나비도 아침부터 분주하구나
돌아눕고 싶으니 자리 좀 비켜 줘 귀뚜라미
재주 없으니 죄지은 것도 없다 한겨울 칩거
잠이 든 나비 들불의 연기가 뒤덮을 때까지
봄날 저녁 물 있는 곳에는 남아 있는 빛
무를 뽑아서 무로 길을 가르쳐 주네
눈 녹은 온 마을에 가득한 아이들
사람이 오면 개구리로 변해라 물 속 참외야
모 심는 여자 자식 우는 쪽으로 모가 굽는다
젊었을 때는 벼룩 물린 자국도 예뻤겠지
이슬방울 함부로 밟지 마라 귀뚜라미여
휘파람새는 왕 앞에 나와서도 같은 목소리
평등하게 새해의 눈비 맞는 작은 집
고아인 나는 빛나지도 못하는 반딧불이
혼자라고 숙박부에 적는 추운 겨울밤
몸에 따라다닌다 전에 살던 사람의 추위까지도
나는 외출하니 맘 놓고 사랑을 나눠 오두막 파리
사립문 위에 자물쇠 대신 얹은 달팽이 하나
나팔꽃으로 지붕을 새로 엮은 오두막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저녁의 벚꽃 오늘도 또 옛날이 되어 버렸네
좋은 눈으로 봐도 추운 기색이다
초겨울 바람 길어서 날 저무는 거리의 악사
주무시는 모습 파리 쫓아 드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고향 땅이여 닿는 것 스치는 것 가시나무꽃
달과 꽃이여 마흔아홉 해 동안 헛걸음이라
고요함이여 호수 밑바닥 구름의 봉우리
이곳이 바로 마지막 거처인가 눈이 다섯 자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 아닌가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첫 반딧불이 왜 되돌아가니 나야 나
가을바람 속 꺾고 싶어 하던 붉은 꽃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다만 있으면 이대로 있을 뿐 눈은 내라고
극락세계에 가지 않은 축복 올해의 술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종잡을 수 없음
아름다워라 찢어진 문틈으로 보이는 은하수
죽으면 나의 날을 울어 줘 뻐꾸기
구석구석 내리는 새해 비를 맞는 작은 짐이며
새해도 길 떠난 그대로인 넝마주의구나
집 없이 에도의 새해를 맞이하도다
또 올해도 현세는 춥구나 초가집
흙벽으로부터 비스듬히 비치는 새해 아침 햇빛이여
신춘이여 연기가 나는 것도 겉모양
올해부터 고스란히 돈을 벌겠다 사바 놀이
붓글씨 쓰고 받을 밀감 보면서 정원 첫 붓글씨여
우는 고양이에게 빨간 눈을 하고 공놀이인가
한결같이 성대의 큰 연 작은 연이구나
축복으로 눈도 내리는 정월 보름 불태우기
도망가려고 할 때구나 물로 축복받는 오십된 신랑
물든 나막신 진흙으로부터 봄이 왔구나
정원이여 매화 대신 큰 눈보라
사람은 무사 왜 죠닌이 되어 오나
무사여 휘파람새마저 사용하는구나
흰 이슬에 첨벙 내딛는 까마귀인가
수레에 짓눌려 시든 제비꽃
무슨 벚꽃인지 금전 세상이 되었도다
나와 놀자꾸나 어미 없는 참새
학의 새끼의 천년도 하루는 줄었구나
곡물 가격 자꾸 떨어지는 더위이구나
하룻밤 넘긴 두부 불빛에 우는 모기여
새벽녁이여 희미한 안개가 밥상을 덮네
시원한 바람이 구불구불 돌아서 왔도다
가을밤이여 장지문 구멍이 피리를 부네
덧없는 세상은 덧없는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월화여 사십구년의 허송 세월
고향은 파리마저 사람을 찌르는구나
고요함이여 호수 바닥에 산봉우리 구름
걸으면서 우산 말리는 두견새
가을바람에 걸어서 달아나는 반딧불이
좁긴 하지만 뛰는 연습이라도 내 집의 벼룩
번뇌의 세상 아무리 벚꽃이 피었다 한들
이슬이 지네 추한 이 세상에는 볼일 없다고
이슬의 세상 이슬 속에서도 다툼이 있네
홀로인 것은 나의 별이겠지 은하수 속에
두 말할 필요 없이 뻐꾸기는 울보 스님
원숭이도 자식을 업고 가리켜 보이는 반딧불이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의 편안함이여 시원함이여
저무는 날이 그리도 반가운가 풀벌레 소리
휘파람새가 흙 묻은 발을 닦는 매화꽃
갈퀴덩굴에서 저런 작은 나비가 태어나다니
달고 짜다면 필시 나의 이슬 남의 이슬
옆방에서 새는 불빛으로 밥 먹는 밤의 추위여
어린 은어는 서쪽으로 지는 꽃잎은 동쪽으로
야윈 국화도 비틀비틀거리며 꽃을 피웠네
수레에 눌려 짓뭉개어져 버린 제비꽃이여
달팽이야 봐, 봐, 너의 그림자를
오늘도 장구벌레 내일도 또한
쓸모없는 이 몸도 초대하네 모내기 새참
여름 매미의 울음은 이 세상에 주는 선물
사이좋구나 다시 태어난다면 들판의 나비
가엾어라 나를 따라오는 나비
달팽이 그 몸 그대로 자고 일어나고
달팽이 부처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이 들었네
오늘부터는 우리나라 기러기다 편히 자거라
노천탕에서 사람들 머리 세는 어린 나비
사람이 있으면 파리가 있고 부처가 있다
나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는 개구리여라
불안하게 빗속을 나는 봄날의 나비
덧없는 세상 저런 작은 새조차 둥지를 짓네
구석의 거미 걱정 마 대청소는 안 할 테니까
귀뚜라미도 따라서 들어오는 한겨울 칩거
나도 너처럼 늙을까 가을의 나비
그런 목소리라면 춤도 한번 추어 봐 개구리야
좀 거들어서 이 좀 잡아 줘 어린 참새야
백어 우르르 태어나는 아련함이여
한쪽 구석의 그을린 인형 한 쌍의 부부
한마음으로 피려고 하지 않는 문 앞의 매화
내 집의 벼룩 가엾어라 어느새 수척해지네
그 돌 위험해 머리를 부딪겠어 반딧불이야
휘파람새 오줌을 누면서도 경전을 외네
커다란 불상 콧구멍에서 제비 날아 나온다
모기는 내가 귀머거리인 줄 아나 자꾸 또 오네
젊었을 때는 소문날 정도로 사랑받았지 늙은 벚나무
이 세상은 풀벌레까지도 잘 우는 놈 못 우는 놈
불평을 말할 상대는 벽뿐 저무는 가을
쓸쓸함이여 어느 쪽을 향해도 제비꽃
자벌레까지 자로 재고 있다 내 단칸방 기둥을
봄은 오는데 마흔세 해 동안을 남의 밥이라
얌전하게 빈집 잘 지키고 있어 귀뚜라미야
나와, 반딧불이 방문을 잠글 거야 어서 나와, 반딧불이
아침에 내리는 비 어느새 곁에 있는 달팽이
달팽이 천천히 올라라 후지산
풀벌레 운다 어제는 못 보았던 바람벽 구멍
그네를 타네 벚꽃을 한 가지를 손에 쥐고서
이러나저러나 말하는 것도 잠시뿐 눈사람
나비가 안다 나의 몸도 먼지 같은 것
재 속의 불 살 나이 줄어듦도 저리하겠지
좋게 보려고 해도 역시 추운 그림자
달팽이 나와 함께 살자 첫 겨울비
살아남은 나에게 걸리는 풀잎의 이슬
다만 살아 있을 뿐이어라 나와 이 양귀비꽃
마음으로부터 고향에 눈이 내리네
음력 정월 매화 대신 날리는 큰 눈보라
나비 날아가네 마치 이 세상에 바랄 것 없다는 듯
첫 반딧불이 휙 하고 벗어나는 손바람
휴지에 싸여 있어도 빛나는 반딧불이
반딧불이 이리 와 반딧불이 이리 와 혼자 마시는 술
우는 풀벌레 너에게도 어머니가 있니 아버지가 있니
이슬의 세상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하지만
울지 마 풀벌레 헤어지는 사랑은 별에도 있어
휴지를 깔고 앉는데 제비꽃
눈이 녹는다 어제는 못 보았던 '집 세놓음' 팻말
흩날리는 눈 반쯤 섞여 내린다 봄비
극락세계가 가까워져 오지만 몸은 춥구나
불을 끄러 때맞춰 왔구나 나방이
외로운 무덤 언제나 함께 있는 굴뚝새
이 모기 여인의 방 불빛을 보고 몸을 불살랐구나
뛰어라 벼룩 이왕이면 연꽃 위에서
술잔에 떨어진 벼룩 어서 헤엄을 쳐 헤엄을 쳐
번개에 휘청거리며 다리를 건넜어라
내 오두막은 풀들도 여름이면 여위어 가네
오는 반딧불이 내 오두막이라고 깔보는 건가
산 위의 달 꽃 도둑에게 빛을 내려 주시네
비 내리는데 어딘가로 향하는 달팽이
저녁달 아래 허리까지 옷 벗은 달팽이여라
이 달팽이는 못었을 먹고 사나 가을 저물녘
도망쳐 와서 한숨을 쉬는 거니 첫 반딧불이
날뛰는 벼룩 내 손에 걸려들어 부처 되어라
내가 죽으면 무덤을 지켜 주게 귀뚜라미여
쓸모없는 풀 너도 높아져 가고 해도 높아지고
흔들리면서 봄이 사라져 가네 들판의 풀들
오고 또 와도 서툰 꾀꼬리 우는 집 담장
뛰는 솜씨가 서툰 요 벼룩 귀여움은 한 수 위
나의 가을 달은 흠 없는 달 그렇지만
지는 억새꽃 점점 추워하는 게 눈에 보이네
그럴 가치도 없는 세상 도처에 벚꽃이 피었네
늙은 몸은 허무가 길어도 눈물이 나네
나팔꽃이여 사람의 얼굴에는 결점이 있다
이슬의 세상 이슬을 노래하는 여름 매미
오는 사람이 길을 내 주네 대문 앞의 눈
울지 마 풀벌레 때가 되면 세상이 나아질 거야
저녁의 벚꽃 놀이 집이 있는 사람들은 바삐 돌아가네
무슨 일로 그리 심사숙고하나 달팽이
내 집에서는 휘파람만 불어도 모기가 달려오네
위를 향하고 떨어지며 우네 가을 매미

 

 

 

 

고바야시 잇사 전후(1769~1938)의 작품

 

 

사쿠라이 바이시쓰  桜井梅室  (1769~1852)

 

 

그러고 보니 저 달이 울었는가 두견새

 

 

 

이치하라 다요조 市原多代女  (1776~1865)

 

 

가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모두 봄바람 부는 둑길
너무 오래 살아 나도 춥구나 겨울 파리여
마침내 가는 길 어디인가 꽃구름
무릎 끌어안고 말 없는 두 사람 달 밝은 밤

 

 

 

오키타 소지  沖田総司  (1844~1868)

 

 

움직이지 않으면 어둠으로 멀어지는 꽃과 물이여

 

 

 

나이토 메이세쓰  内藤鳴雪  (1847~1926)

 

 

이른 아침 떠나는 말 머리의 은하수
첫 매와가 땅바닥 기어가는 아침의 습기

 

 

 

무라카미 기조  村上鬼城  (1865~1938)

 

 

여름풀 위에 고치를 만들고 죽는 풀벌레
정신줄 놓으면 죽을 수도 있는 무더위여라
추운 봄 부딪치며 걷는 장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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