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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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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늘 등뒤에서 울고지고...
2016년 10월 01일 17시 36분  조회:4670  추천:0  작성자: 죽림


 

감태준의 시는 외면적으로 단순한 구성원리를 갖고 있다. 대립되는 가치를 지니는 두 방향 사이에 그의 일상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적 구조는 초기시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시행을 통하여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와 도시, 믿음과 싸움의
두 배경 사이에서 
― [길] 부분

중기시인 [鐘路別曲]의 부제 '이상과 현실'이나 [떠돌이새 7]의 "하늘과 땅"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것은 감태준의 시세계를 내내 지배하는 양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로 변주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미루나무 숲에서
솔숲에서, 내 절로
푸르게 누워 하늘을 보던 때
상쾌한 새소리가 내 귀를 울리던 때
그땐 내 생각에도
맑은 냇물 소리가 들렸으나 
어리석고 무기력한 머리
금이 간 내 목소리
― [鐘路別曲] 부분

과거시제를 나타내는 관형사형 전성어미 '―던'이 품고 있는 앞의 여섯 행은 숲과 푸른 하늘 그리고 맑은 냇물처럼 이상을 보여주는 반면, 시에서 누락된 '지금은'으로 시작될 현재시제의 나머지 두 행은 부정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단조로운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이런 이항대립의 구조는 그러나 이미지의 변주와 시적 진술의 혼합을 통하여 그 위험을 잘 넘어선다. 감태준의 시의 매력은 거기에서 나온다. 마치 늘 같은 수평선의 바다가 색을 바꾸고 몸을 뒤틀어 한없는 변화의 그림을 그리듯이.
그의 존재의 근원은 바다다. 1947년 마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바다는 그에게 세계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감태준의 바다는 보통 바다 이미지가 갖게 마련인 바다―양수―자궁―모성―여자의 의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시세계에 여성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여성 이미지인 '달'에 이어져 있는 초기시의 어머니가 그러하고,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 [思母曲] 전문

중기시의 시인의 "아내와 딸([떠돌이새 7])"들이 그러하며, 다시 "또 볼 부비신다 우리 어머니/돌아가신 지 이십년도 더 지났는데"([너무 작은 이슬 8])처럼 '우리 어머니'란 부제를 달고 있는 시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그 외에 蘭이나 영희 등의 인물로도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미 초기에서부터 그 바다는 결국 남성들의 바다이다. 60년대적 난해시의 영향이 조금은 남아 있는 다음과 같은 시에서 그것은 뚜렷해진다.

기억의 해변에는 
꼬리 긴 초침의 행렬,
거기 숨은 나를 캐는
형성의 설익은 동작에서도
꽃게만 가려내는 어린날의 착한 혼들,
잃어버린 이마여

어머니의 긴긴 모래밭에서
우리가 완전한 平和를 짓고 있을 때,
나의 신선한 눈동자를 
달려온 햇살들은 증명하고,
해일은 늘 아득한 곳에서 돌아섰다

들여다보면 
고요한 영혼의 안팎
목마가 살아 있는 과거 속으로
오색 나의 깃발은 뛰쳐가고
한줌의 순수,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버리면서 
그때 나는 사나이들의 고독을 보았다.
― [來歷] 부분

유년의 순수에 바닷가 모래밭의 흔적처럼 어머니의 모습이 남아 있다 해도 결국 그가 만나게 되는 것은 사나이들의 우수를 지울 수 없는 바다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아 시인이 아주 어릴 적에 그의 장형(長兄)이 그 바다에 빠져죽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니는 바다 가까이도 가지 마/큰형 봐라, 바다에 빠지면/못살아나는 기라"([우리 사는 세상]).

바다가 나를 데리고 가는 날이
자주 왔다, 물결 위에 
물결치는 달빛바다
마산 앞바다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소리,
형을 따라 시내구경을 한 날 밤에는 
바다에 빠져 죽은 열 살짜리
큰형도 우리 둥지를 찾아왔다
― [떠돌이새 5] 부분

그게 사실이라면 바다는 형의 죽음과 아버지의 눈물이 얼룩진 자리다. 거기에 덧붙여 갯벌이 드넓어 여성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서해안과 달리, 시인의 바다는 갯벌의 이용도가 높지 않은 남해의 바다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바다는 남자들의 세계이다.

이 바다엔 봄도 먼 길을 돌아서 온다
나아갈 무슨 돛배도 없는 개펄에서
봄은 이미 죽었고, 죽은 땅에서 
시퍼렇게 눈만 남은 사나이들은 
천길 어둠을 퍼올리고
봄은 허덕이며 꿈꾼다 물결 잔잔한 바다
― [썰물 다음] 부분

그 바다를 그러나 시인은 떠났다. 도시로 온 것이다. 그런데 그의 도시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는 능동적인 선택, 다른 하나는 수동적 귀착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를 따라간 서울에는 능동적 선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을 '떠돌이새' 연작을 예고하는 [철새]와 같은 작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보자"
(중략)

"조심해라 얘야"
앞에 가던 아버지가 발을 헛딛었다
발 헛딛은 자리
서울이었다
― [철새] 부분

하지만 그러한 능동적 선택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접두사 '헛―'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때 서울은 "흘러온 서울"이다. 그래서 이제 삶의 터가 된 서울에 시인은 수동적으로 밀려왔다고 말한다.

눈보라치던 날
시간의 희고 검은 손들이 나를 밀어붙일 때,
잔물결처럼 내가 밀려온 도시
미움과 사랑의 商街에서
나는 늘 내 이름을 찾아다녔다
― [첫번째 鄕愁] 부분

그를 밀어내 것은 "미친 바람"이다. "바람이 뛴다/문득 도시로 돌아서는 길목에/칼날 센 바람은 나부낀다"([길]). 이처럼 바람이 아리게 칼날처럼 불어대는 도시는 믿음의 장소가 아니라 싸움의 장소이다. 믿음이 없기에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내가 어디 있습니까?"([내게 묻는 말])라는 의문은 그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에게 ""웃지 않는 서울"은 능동적 선택의 대상이기보다는, 차라리 수동적 귀착지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결론적으로 감태준의 시의 근원 또한 유년의 잃어버린 고향으로서의 바다다.
하지만 그의 시세계의 매력은 고향을 그리는 망향가(望鄕歌)로서의 낭만주의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다가 여성이미지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의 차원에서 감태준의 시적 개성을 이룬다. 대신에 그는 추억과 현실의 대립을 성찰한다. 잃어버린 고향 바다의 푸른 하늘을 그리면서도 눈을 땅에서 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다, 내 눈은
땅에서 떠나지 못했다
― [떠돌이새 7] 부분

여기에서 그의 '이야기 시' 혹은 김현에 의해 '연극적 공간'이라 이름 붙여진 어떤 특성이 나온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 고향과 서울 등의 이항 대립을 손쉽게 해소하지 않고, 그것이 부딪치는 다양한 긴장의 공간을 포착하려는 정신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상과 
현실, 너와 나
생각과
행동, 비행동
날아다니는 것은 무엇이며
굴러다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왜 이럴까, 갑자기 
왜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상해졌어, 앞이 안 보여
정전이에요.
정전이라고는 생각 안 돼
새가 먼저 손을 내밀어
둥지를 더듬어 찾는다, 체온을 잃었군요
어서 불 있는 데를 찾아야겠어요.
― [鐘路別曲] 부분

시적 화자가 복수가 되어, 그들 사이의 대화가 나타나기도 하고, 이들의 진술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형식은 우리 시사에서 특이한 것이다. 추억의 공간을 불러오려는 낭만적 서정시가 하나의 서사시로 바뀌는 질적 변용을 가능케 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특성은 단순히 장시(長詩)적 길이를 갖는 특정한 작품 속에서 만의 현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감태준의 시를 상호 조응하는 하나의 전체적 이야기로 읽으려는 시도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첫시집 {몸 바뀐 사람들}의 결미를 장식하는 [귀향]의 마지막 몇 구절은 두 번째 시집 {마음이 불어가는 쪽}의 '떠돌이새' 연작을 예고한다. 

끝없이 몰리고 풀리는 행렬 속으로, 너는 이제 기적소리에도 가볍게 떠밀리고, 떠밀리는 너의 등에서, 아니, 너의 물결 소리가 들리는 머리 위 공간에서, 나는 그때 새들의 고향을 얼핏 보았다.
― [귀향] 부분

이야기만의 조응이 아니라 이미지로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바다를 끼욱거리며 자유롭게 날던 새인 "바다를 나온 갈매기"는 도시로 밀려오자 "작은 새"가 된다. 첫시집에서의 바다/도시의 대립은 두 번째 시집에서는 작은 새/큰 짐승의 대립으로 변주된다.

철 믿고 손 내민 참나무 새순이 얼어 있다
작은 새 한 마리, 또 한 마리
참나무 가지 위에 둥지를 틀다 말고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죽지에 부리를 묻은 채……

어디서 큰 짐승이 울고 있다
― [어디서 큰 짐승이 울고 있다] 전문

큰 짐승으로 의인화 된 도시는 역시 '철새'나 '떠돌이새'로 의인화된 시적 화자의 지위가 상당히 불안한 것임을 잘 암시하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이 새는 언제나 떨어지거나 처박히고 쫓기며, 그래서 마음속으로 들어갈 대상을 고대하는 혼자인 새이다.

몸과 마음이 언 새들이 허공에서 돌이 되어 떨어지는 것을 나는 더 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 당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 [희망병원에서] 부분

그의 두 번째 시집은 이처럼 떨어지는 새가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는 희망을 품기까지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의, 그러니까 두 번째 시집 이후의 시들에서는 이전보다 비관적 정조가 누그러지고 담담하게 생을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움직임이 나타난다. 물론 아직까지 세상과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작은 존재이긴 하지만 말이다. '투신'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작품은 그것의 한 예다.

어디로 갈까?
두 분 질끈 감고 
냇물에 뛰어든 이슬 한 방울
간밤에는 냇물 따라
달빛 희미한 서초동 계곡을 어지럽게 헤맸으니
저 흰 물보라 속
폭포를 단숨에 뛰어내려
바다로 갈까?

등에 진 하루를 잠시 부려놓는 즐거움
흐르는 즐거움
달아나는 즐거움

등뒤에서 푸른 풀잎이 부르고 
아내와 아이들이 부르고
함께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던 이슬들이 부르지만
오늘은 폭포 밑
개포동 허공에 
온몸을 던진다
― [너무 작은 이슬 5] 전문

물론 이슬은 바다의 한 부분이다. "골짜기를 뛰어내려/도도히/바다로 달려가는/이슬 한 방울"([인식의 한때 2]전문). 바다에 흘러들면서 통시에 바다로부터 올라온다. 그러니 육지로 올라온 바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냇가가 되기도 하고, 잠시 허공 중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슬은 이리저리 구른다. 그래서 도시적 일상의 속박을 깨는 자유를 의미하지만, 그 이전에 우선 구르기 위해서라도 현실과 밀착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풀잎이든 땅이든 이슬은 자신이 머물 곳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감태준의 상상력이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맑은 이상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받아들이는 일이 곧 성찰의 시작이다. 성찰은 반성을 낳고. 반성이 있는 한 또한 현실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현실에의 몸담음과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그는 동시에 밀고 나왔다. 나는 이것을 현실적 낭만주의란 역설로 부르고 싶다. 이슬의 이미지는 이런 역설로 그가 가 닿은 성숙한 개성이다. 
이상의 시적 여정을 통해 감태준은 우리 현대사의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 새로운 유이민(流移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의 시대적 진실을 노래했다. 그것도 단순히 고발로서의 저항이나, 사실주의적 관찰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변화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린 존재들의 내적·외적 진실을 시의 공간으로 불러내 여러 가지 음으로 구조화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거기에다 그의 시는 단순한 이야기만도, 그렇다고 현란한 이미지를 지향하지도 않으면서도, 싫증나지 않는 변화의 색채를 띤다. 연극적 공간이나 이야기 시와는 또 다른 차원의 예가 다음 시에서와 같은 음성학적 감각이다. 

동산 솔숲에서는 잘 들린다
산의 소리
돌의 소리
별들의 소리, 한자리에 서서
밤늦도록 서서 어깨를 비벼주는
나무들의 수런거림, 수수수
바람들의 소리
― [우리 사는 세상] 부분

이 첫 번째 연에서 자음 'ㅅ'은 한 행도 거르지 않으며 가볍고도 경쾌한 음가(音價)로 "바퀴 없이도 한순간에 가고 오는" 추억의 세계를 호출한다. 그런 감각은 쉼표의 사용이나, 예기치 않은 행갈이, 혹은 어구의 반복을 통하여 증폭된다. 그것이 이항대립의 단조로울 수도 있는 시적 구조에 융통성의 출구를 만든다. 사나이들의 세계인 바다의 변주가 거칠거나 메마르지 않는 것도 이러한 부드러움 때문이다. 이슬은 그러한 부드러운 세계의 상징이다. 그러나 부드럽다고 여성적인 것은 아니다. 이슬은 모성의 달보다는 부성(父性)의 해를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감태준의 '마음 가는 곳'은 이슬의 부드러움이 사내들의 것임을 넌지시 암시한다. 

산을 끌고 산밑 마을로 바쁘게 뛰어내려가는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다 지치면 도로 강남 네거리 검은 아스팔트 위로 둥둥 떠내려오지만 벌거숭이 내 마음 가는 곳 언제나 때묻지 않은 이슬들이 영롱히 아침해를 껴안고 반짝이는 곳.
― [너무 작은 이슬 3] 전문

그렇게 해서 이슬이 된 사내 혹은 남성적 이슬은 구르는 힘으로 "바람의 심장"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을 껴안으며 굴러가는 미적 반항인 것이다. 떠돌이새의 굴러다님이 수동적인 떠밀림이라면, 이제 이슬의 구름은 능동적인 껴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계속 굴러가며 메마른 도시적 일상의 비판이라는 미학적 실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간'이란 주제thema를 살피면 알 수 있다. 
시간은 초기시부터 계속해서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주제였다. 

나의 등뒤에서
두려운 이빨을 번득이며
시시각각
죽은 뇌를 씹고 오는 초침,
― [길] 부분

생각하면, 시간은 늘 얼굴을 가린 채
내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한번 잘못 들어선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 [사람의 집] 부분

내가 만일 
바람을 한 손에 쥔다면,
달리는 차들의 꽁무니에 매달려 지나가는
시간을 붙들어 세운다면,
한 손에 
큰 숲을 들고 와 푸른 천지를 만든다면,
내가 만일 내가 만일 
미친 바람의 덜미를 붙들어
하수구에 쓸어넣어 버린다면……
― [鐘路別曲] 부분

그러나 나는 
언제나 늦는다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하고
공중 높이 떠오르지만, 그건 언제나 몽상이고
거꾸로 처박히는 내 곁을
시간은 어김없이 지나간다
빌어먹을, 행복하게 사시우?
― [鐘路別曲] 부분

시인에게 시간은 미친 바람과 등가(等價)이며, 불길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어둠처럼 비관적인 운명이었다. 이러한 시간은 19세기 낭만주의 혹은 상징주의의 비관적 세계관의 반영인데, 그것의 단적인 예를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악의 꽃}에 실린 열 번째 시 [원수(怨讐)]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오 괴로워라! 오 괴로워라! 시간은 생을 먹어치우고,
우리의 심장을 갉는 그 정체불명의 원수는 
우리가 흘리는 피로 자라나 강건해지는구나!
― [원수] 부분

그것은 모든 현대적 병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감태준의 시간은 이러한 보들레르적 시간의 연장선에 있다. 60년대 서양의 난해시 전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없었던 시인은 그러나 차츰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한다. 초기시에 나타나는 시간의 생경한 이미지가 점차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과 같은 시적 진술에 이르면 영향의 흔적은 지워지고 이미 시간은 시인 자신의 것이 되어 있다.

오늘 저녁에는 기차를 타고 
기차 가는 데까지 한번 가볼까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와
빌딩숲길을 함참 구르다 보면 어느새
인간시계가 되어 
어제하고 똑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을

복도를 지나 다니는 발자국 소리
엘리베이터 문 여닫히는 소리 뜸해지고
째깍째깍, 초침 뛰어가는 소리
마침내 심장을 울리기 시작하는
아침 8시 30분에 커피 한 잔
정오에 백반 일인분
오후 여섯시에 석간신문, 그리고 일곱시에
거의 다 풀어진 눈에 태엽을 감으며
지하계단을 걸어올라가는 자

네온사인들이 불안하게 떨고 있는
강남대로를 지나
양재 네거리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루한 얼굴을 하고 줄지어 선 가로등
그 밑에 맺혀 있는 메마른 눈물 하나
길을 잃고 싶어도
발길이 먼저 길을 찾아 걷고 있는 것을
오늘 저녁에는 시계바늘을 세워놓고
밤 끝까지 한번 가볼까

심장에 귀기울이면
여전히 초침 뛰어가는 소리
― [너무 작은 이슬 4] 전문

초침은 여전히 제 속도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나 시인은 이미 그 시간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 그 자유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흐름을 수락한 데서 오는 자유이다. 흐름과 함께 가면 그것은 더 이상 구속이 아니다. 거기에서 시계바늘을 세워놓고 끝까지 한번 가볼까, 하는 대결 의지가 싹튼다. 물론 그것은 너무 작은 시작이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성숙은 '작은 새'의 예에서도 확인된다. '바다를 나온 갈매기'와 작은 새의 이미지 변화는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에서 또한 볼 수 있다. 여기서 거대한 바다새 알바트로스는 땅 위에서는 그저 볼품없는 초라한 지위로 추락한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 삼아
쓰라린 심연의 생을 지치는 배를 
뒤쫓는 알바트로스, 항해의 무심한 동반자인
거대한 바다새를 붙든다.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이 창공의 왕자들은 얼마나 어색하고 창피스러운지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그들 곁에 내버려둔다.
― [알바트로스] 부분

그러나 바다―갈매기―작은 새―이슬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시적 변용은 감태준의 상상력 안에서 이미 보들레르적 이미지의 영향이 완전히 용해되어 그 자신의 것이 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특별히 예외적인 존재라 생각하는 우월감도 없어, 이슬은 흔한 것이라 말한다. 그 평범함의 인식이 당당히 우리 현실과 맞설 힘을 갖는 것이다. "내 발붙일 곳/풀향기 풋풋한 풀밭이 아니면 어때/바람에 날려/청계천 고가도로 위에 떨어진다 해도/마음에 간직한 풀잎/푸르고 푸르니/돌밭이면 어때 // 이슬 흔한 세상/온몸에 먼지 쓰고, 말죽거리/보도블록 위에 혼자 서 있어도/누구 한 사람 발걸음 멈추지 않던 것을//이제 눈감지 않고/가서 부딪쳐보리라"([너무 작은 이슬 6]). 이슬은 눈감지 않는다. 세상 속으로 굴러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이슬이 들어가는 곳은 그러나 숲이다. 그것은 도시를 벗어난 도피와 은둔의 공간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의 숲이다. 이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인 것이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 아래 거대한 에너지가 있듯이 담담하고 밋밋해 보이기까지 하는 감태준의 세계에는 이런 힘이 숨겨져 있다.

어느 靑山에서 오셨습니까?
바다로 가다가 당신을 보고 그만
바다로 가는 길을 잊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서 계신 허리우드 극장 앞이 
소나무 숲입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을
이슬 한 방울
황홀하나 두려운 얼굴로 걸어갑니다

곧 저녁이 오고 어두워지겠지만
누가 뒤에서 등을 미는 것 같이 
정신없이 걸어갑니다
― [너무 작은 이슬 1] 전문

거기에는 육중한 나무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작은 이슬과 거목의 결합, 이것이 감태준의 상상세계의 힘이다. 여기까지 오면, 이 이슬은 "한 마리 심약한 새의 방황과/시야에서 물살 짓는 사나이들의 우수"를 벗어 던진, 원목을 실어 나르던 강물과 바다, 그리고 유년의 원목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러니 이제 그 나무와 물의, 소리와 냄새에 취해볼 차례다.

잃어버린 시간의 썰물을 타고
눈을 감으면,
유년의 주위에는 뗏목을 짜는
원목이 쿵쿵 원정처럼 건너온다.
― [길] 부분

*박철화(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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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필 무렵 
―이순주(1957∼ )

겨울 지나 한층 부드러워진 바람의 붓질,
대지는 화선지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며 선이 굵고 힘찬 
획이 그어졌다
바람이 운필의 속도를 조절하여 농담을 이룬 자리
쑥을 뜯던 당신 흰 옷자락이 흔들렸다
그때필법이능란하여비백(飛白)을만들어낸바람,
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망울들을 매만졌다
툭툭 산벚나무의 꽃망울들이 터지곤 했다
당신 얼굴 주름살이 웃자
망울진 꽃망울들은 다투어 벙글었다
당신이 쑥대궁을 자를 때마다
묵향처럼 쑥 내음 피어올랐다
우리가 산기슭에서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는 동안
정겨운 수묵화 한 폭 살아났다
이제 그만 내려가요 어머니,
대답 대신 당신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배가 불룩한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가지런한 틀니 드러내며 내게 봄을 건네준 그 해
당신은 먼 길을 떠나시고
시시때때 꺼내보는
내 안에 소장된 수묵화 필 무렵


이 시가 실린 이순주 시집 ‘목련미용실’에는 어머니를 그리는 시가 여럿이다. ‘기차가 미끄러져 간다 칸칸마다 아이들 코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냉장고 소리 어머니 해수 기침 소리를 싣고//돋보기안경 너머 기차가 달려가고 있다 애벌레처럼 밤 가운데 몸을 말고 앉아 어머니가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한 땀 한 땀 박히는 일정한 걸음의 음보, 어둠을 밀어내며 기차가 달려가고 있다 한밤의 뻐꾸기 울음 두 번, 기차가 두 시를 지나가고 있다.’(시 ‘푸른 방’에서) 

화자는 기억하는 것이다. 올망졸망 어린 자식들을 지키느라 밤새워 재봉틀을 돌리던 젊은 어머니의 푸른 방, 푸른 밤을. 형제들 중 홀로 깨어, 그러나 기척 없이 누워서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를 들을 때 느꼈던 안도감이며 걱정이며 어떤 서러움을. 

세월이 흘러 그 어머니 연배가 된 화자가 얼굴에 주름살 가득하고 틀니를 한 노인이 된 어머니와 보낸 어느 봄날이 ‘정겨운 수묵화 한 폭’으로 그려져 있다. 말수가 적고, 드문드문 건네는 말도 나직하고 부드러우실 화자의 어머니. 삶이 그다지 상냥하지 않았으련만 기품을 잃지 않은 노인은 대개 ‘일하는 사람’이더라. 자기 인생을 자기 힘으로 꾸려온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삶을 살아도 당당하고, 그 당당함은 인생을 담담히,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묵향처럼 쑥 내음 피어오르는’ 산기슭에서 모녀가 봄날을 나누는 풍경이 맑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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