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화(Graffitti)란 가장 소외된 곳에서 파괴적인 그리고 사회제도의 규제에 대한 영웅적인 도전행위로서 단순히 문화 파괴행위(Vandalism)으로만 간주 되었었다. 즉, 낙서를 통한 자가존재를 밖으로 드러내는 절박한 자기표현과 자아증명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71년 처음 등장한 'Taki 183'이 지하철 내부에 수없이 쓰여지자 시민들은 그 낙서에 익숙해지고 '뉴욕'지에서 조롱하듯한 취지에서이었지만 어쨌든 'Spin'이란 낙서를 최고 디자인으로 선정 발표하고 이어 낙서 그룹들간의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75년도 거리의 낙서화를 모은 최초의 전시회가 '아티스트 스페이스'에서 열렸다. 그후 81년 '뉴욕/뉴 웨이브' 전시부터 확고한 위치를 갖게되며 언더그라운드 영화배우들이 이스트 빌리지에 'Fun'갤러리를 열어 마침내, 83년 뉴욕 시드니 제니스 갤러리에서 후기 낙서화라는 전시회로써 고급예술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Writer’, ‘Burner’로 칭하고 사이 톰블리, 프랭크 스텔라, 장 뒤뷔페, 잭슨폴록, 그리고 멀리 피카소와 뒤샹에 이어 그들이 실험하지 못한 '대 사회적인 시도'를 성공하게 된 것이다.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iat, 1960∼1988)는 브루클린 태생의 아이티섬의 스페인계 화가이다. 그는17세기에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을 하였지만, 현재 낙서화가로 같이 활동하는 모든 인재들 중에 가장 혜성같은 스타이다. 1980년 여름에 '타임즈 광장 전람회'의 전시 참가로 비평가의 호의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 전시 직후에 바스키아는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방법을 개척해 나갔다. 그래서 곧 그의 드로잉은 거리의 산뜻한 그래픽 이상의 어떤 것-실제로 그것은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에게 한정된 것 같아 보였다-을 드러내 보였다. 색채를 먹인 바스키아의 미술은 거대하고 평면화된 아프리카의 가면같은 얼굴을 가진 도식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그러한 인물들은 단어와 문구, 화살표와 눈금, 왕관과 활기차게 살아 숨쉬고 있는 배경과 대비된다. 폴케와 살르의 해체주의적인 미술과 마찬가지로 통일성이 다양한 기호, 상징들간의 어떤 논리적인 관계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약 그러한 통일성이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매우 많은 상충된 요소들이 방출되는 보편화되어 있는 떨림속에, 그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가진 설득력 있는 거칠음 속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드로잉과 색채, 구도를 운용하는 그의 개성적인 양식을 차치하고라도 바스키아의 뛰어난 재능은 원시주의와 세련됨, 즉흥성과 제어력, 기지와 야만성 같은 상충된 힘들의 균형을 잡아내는 어떤 선천적이며 배워서 터득할 수 없는 그런 감각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바스키아는 기존의 회화개념을 초월한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하여 표현성을 확장하고 화가의 관심을 내면적인 측면에서 더욱더 자서전적이며 나아가 자신의 부분인 환경과 사회, 정치로까지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의 업적은 회화의 권위와 그로 인한 무거운 짐을 벗겨주었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수하고 고귀한 순결함의 솔직한 아름다움은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오고 자신의 환경에 대해 받아들이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희망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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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는 미술전시회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감성을 물려받은 바스키아는 예술가의 꿈을 품고 가출. 뉴욕의 거리를 전전하며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낙서화가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다.
친구 베니의 소개로 화랑의 전기공사를 돕게 된 바스키아는 인기 예술가 밀로를 만나게 되고 이 자리에서 밀로와 같은 인기 예술가가 되리라고 마음 먹는다. 또한 그날 밤 바스키아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미술계의 거물 앤디 워홀과 미술계의 대표적 화랑상인인 브루노 비숍 벨거를 우연히 만나 자신이 그린 포스트 카드를 파는데 성공함으로써 공식화단으로 진입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다.
한 파티에서 바스키아의 그림을 본 미술평론가 르네는 그의 그림에서 천재적 자질을 발견하고 그를 유명한 아티스트로 키워줄 것을 약속하고, 그의 약속대로 바스키아는 뉴욕 뉴 웨이브 전시회에 참가하게 된다. 때마침 바스키아의 그림을 본 화랑업자 브루노 비숍벨거는 바스키아에게 전속계약을 제의하고 바스키아는 자기를 키워준 르네와의 관계로 인해 고민하나 결국은 부르노의 제안을 받아들여 워홀과도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바스키아의 독특하고도 예술성있는 작품세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고 첫 개인전을 갖는 등 바스키아는 유명화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고, 인기가 높아질수록 바스키아의 마음은 쓸쓸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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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 ( Jean Michel Basquiat - 1960~1988 )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ㅎㅎ
바스키아입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젊은 현대미술작가입니다.
팝 아트 미술 계열의 천재로 검은 피카소라고 찬사 받으며
낙서와 같은 하위 문화를 예술로 끌어 올린 점은
키스 해링과도 비슷한 부분입니다.
약물 중독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로 유명하죠~흑..
천재, 특히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인물들은 후대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뭔가 신비하고 또 멋지게도 느껴지죠,,
그 죽음의 이면이 비극적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스키아의 작품도 은근 인기가 많습니다.
낙서같기도 하고 단순한 바스키아의 작품들 역시
타투 소재로도 매력있는데요~
바스키아의 왕관은 바스키아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번씩
본 적이 있을만큼 익숙하고 친숙한 대상입니다.
바스키아가 서명 대신 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심플하지만 강한 이미지의 바스키아의 왕관은
블랙워크로, 컬러워크 가리지 않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매력적인 타투 소재입니다~
어찌보면 단순한 낙서타투같지만
사실은 미술에 대한 이해와 바스키아라는 작가에 대한
동경 등이 담긴 간지 타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음...그냥 다 필요 없고
디자인이 멋져서 타투로 한다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ㅎㅎ
검색해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바스키아의 왕관으로
타투한 모습들인데요~
이 공룡녀석도 일부 거드는 작품입니다 ㅎ
역시 왕관은 빠지지 않네요~
바스키아의 공룡은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패션타투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미니미니하게 작게도 가능한 소재입니다.
무제( skull )
얼굴같기도 하고 해골같기도 한 바스키아의 작품입니다.
이렇게 복잡다난한 작품을 타투로 새긴 모습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분들이 선호 할 것 같지는 않은 타투작품인데요~
타투와 미술의 경계가 거의 다 허물어진 요즈음엔
정말 타투로 표현하지 못할 미술 작품은
없다고 보입니다.
지극한 팬이라서 아예 바스키아의 포트레이트를
타투로 새긴 모습도 보이네요 ㅎㅎㅎ
그래도 바스키아의 작품으로 타투를 한다면
역시 역시
왕관만한 소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뭐 사실 타투가 아니라도 팝아트 장르의 작품들은
하다 못해 팬시 제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말이죠~
아무래도 회화적인 느낌보다는 디자인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대충 그린 왕관 미니타투로 보이지만
사실은 천재의 작품을 새겼다고나 할까요ㅎㅎ
생각해보면 낙서랑 미술 작품이랑 종이 한장 차이인걸까
싶기도 합니다.
시대를 잘만나거나? 이끌어줄 귀인을 만난다거나?
운이 좋아서 당대에 천재로 평가 받든
혹은 사후에 천재로 평가 받든?
생각해 보면 어렵습니다 ㅎㅎㅎ
요즈음은 이지워크라고 불리는 간결한 타투들도
엄청 인기가 많은 걸 보면
(그 안엔 깊은 감각이 내재된 경우도 많습니다)
시대도 중요하고 그 시대의 수요도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타투의 장르가 다양해지고
미술과 경계가 없어지는 점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이번 포스팅도 무척이나 겉핥기 식의
내용이었지만 바스키아의 작품으로
타투를 생각해 보는 분들에겐 조금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단하게나마 미술작품이
타투로 새겨지는 예를 몇가지 올려보고 있는데요~
다음엔 에곤 쉴레가 어떨까 생각만인 생각을 해보며
이번 포스팅을 마칩니다 ㅎㅎㅎ
/홍대타투[잉크앤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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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Michel Basquiat
(1960 ~ 1988)
낙서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
"열일곱살 때부터 나는 내가 스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나는 내 모든 영웅들 찰리파커, 지미핸드릭스 등을 생각하곤 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유명해졌는가를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를 검은 피카소라고 불렀다.
파블로 피카소의 추구하는 어린 아이의 순수성이
바스키아의 작품 속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만큼..그의 그림은 영향력이 어마어마 했다는 것!
앤디워홀과 함께 손을 잡고!
1970년 대 후반 미술계를 쥐어잡고 흔들어 놓은! 장 미쉘 바스키아!
그를 미술계의 스타로 만들어준 사람은!
앤디워홀이었다!
그의 재능을 먼저 알아본 앤디워홀..
고수가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 처럼..
바스키아는 앤디워홀의 발돋음을 통해 미술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의 그림들의 특징은 어린아이가 막 낙서를 한 것 같은 드로잉과 색채기법이다.
기법이라고 말하기도 그런 낙서로 칠해진 그림이다.
그의 작품에는 상징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가장 많이 등장한 상징적인 소재는 흑인 혈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자신이 전통 흑인 혈통이기에~
또한~
그의 작품에서 '왕관'이 등장한다.
그의 왕관은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수여하는 존경과 찬미의 상징인 동시에~
권위! 소유권! 진품!
자신의 인장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긴 하지만
바스키아의 그림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담겨있다.
그 순수함은 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그 무엇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더 나아가 타인을 아름다워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자신의 순수함을 소중하게 아름답게 가꾸고 유지시켜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의 느낌있는 작품들을 잠시 감상해보세요~
전 그의 낙서 처럼 그려진 작품을 좋아한답니다.
우선 어둡고 난장판이고 복잡미묘하기도하고 어떨 땐 무섭기도한 그의 그림 속에
'한 어린 아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느낌있는 낙서 같은 패인팅~
여러분들은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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