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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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수필]인생3부곡 (허룡석) 댓글:  조회:2295  추천:99  2011-02-08
수필시리즈 인생 3부곡    허룡석1. 인생은 널뛰기 2. 인생은 뽈차기 3. 인생은 소용돌이   1.    인생은 널뛰기   널뛰기는 우리 민족 녀성들의 대표적인 전통적 민속놀이의 하나로서 고려 시대부터 전해내려온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널뛰기는 주로 정초에 진행되다가 후에는 5월 단오절이나 8월 한가위날 등 큰 명절에 행해지기도 하였다. 널뛰기놀이는 새해의 복을 빌고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적 의미도 깃들어있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 민간에 전해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널뛰기는 옛날 유교사회의 도덕적 구속으로 말미암아 출입을 마음대로 할수 없었던 처녀들과 나젊은 녀인들이 제한된 공간내에서나마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담장곁에 널빤지를 놓고 뛰면서 밖을 내다볼수 있게 만들어진 놀이라고도 한다. 그녀들은 구실을 대여 자주 널뛰기를 하면서 담장밖의 세상풍경을 만끽하기도 하고 오고가는 사내들을 훔쳐보기도 하였다. 또 다른 속설로는 옛날에 감옥에 갇힌 남편의 안부가 몹시 궁금하여 안해가 감옥에 면허를 갔으나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널뛰기를 생각해내고 다른 죄인의 안해와 공모하여 널뛰기를 하면서 담장너머 옥안에 갇힌 그리운 남편의 얼굴을 엇갈아 엿보았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다. 명절이면 곱게 단장하고 울긋불긋한 고운 옷을 입은 처녀들과 나젊은 색시들이 치마자락과 옷고름을 날리며 하늘공중에 솟는 모습은 우리 민족 녀성들한테서만 볼수 있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널뛰기는 점차 하나의 놀이로 되여 승부를 가르기도 했다. 한쪽이 널을 힘껏 굴러서 상대편의 발이 널빤지에서 떨어지면 떨어진 쪽이 지게 된다. 널빤지를 받침위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널빤지 가운데 한사람 혹은 두사람이 올라 앉기도 한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널뛰기는 우리 민족 전통적 체육종목의 하나로 되였다. 서로 경쟁하기 위한 한가지 체육종목으로 된이상 이전의 방식대로 그저 솟기만 해서는 안되였다. 기교가 높아야 했고 사람들에게 멋진 동작을 보여주어야 했다. 널뛰기동작이 그만큼 다양해졌고 기교도 훨씬 높아졌다. 두다리를 곧추펴고 뛰는것을 <곧추뛰기>라 하고 두 다리를 앞뒤로 벌려뛰는것을 <가위발뛰기>라고 한다. 그리고 기교높게 몸을 솟구치며 한바퀴 도는것을 <데사리>라 하고 두다리를 앞으로 내뻗치면서 상체를 앞으로 굽히는 <중등꺾기>와 함께 한바퀴 도는 어려운 동작을 하기도 한다. 높이 뛰며 어려운 동작을 할수록 점수를 높이 딸 확률이 높으며 우승할 기회도 많아진다. 따라서 그만큼 위험도 뒤따른다. 높이 뛰고 기교가 높을수록 상할 확률도 그만큼 높기때문이다. 거기에다 널빤지를 고정시키느라고 가운데 앉혀놓은 사람이 상대방과 짜고들어 엉덩이를 삐쭉하는 날에는 우승은 고사하고 몸의 평형을 잃어 널빤지에서 떨어져 크게 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떨어져 상해도 자기의 불찰로 상했는가 하지 누가 작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일생을 부지런히 뛰며 살아야 하는 인생도 널뛰기와 마찬가지라는 리치를 터득하게 된것같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여나 걸음마를 탈 때부터 생존을 위하여(지난날에는 듣기 좋게 혁명을 위해서라고 했음) 각가지 인생의 널뛰기를 배우게 된다. 비록 뛰는 <장소>와 <기교>는 서로 다를수 있지만 삶을 위한 목적만은 동일한것이다. 우리가 인생이란 널뛰기를 배우기 시작해서부터 퇴직할 때까지 전반생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쉼없이 뛰다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칠대로 지치게 된다. 인생의 널뛰기는 민속놀이 널뛰기처럼 즐겁게 마음편히 웃음을 담고 뛰는것이 아니라 늘 신경을 도사리고 대방을 쳐다보며 초긴장상태에서 뛰여야 한다. 능력사회, 자기과시 시대라고 일컸는 개혁개방이후의 인생의 널뛰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신경을 도사리고 열심히 뛰여야 했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능력을 과시해야 하는 인생의 널뛰기는 자기와 가정을 위한 널뛰기이며 장차 더 발전하고 더 영예로운 터전을 닦기 위한 발판으로 되고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널뛰기도 늘 남보다 높이 뛰기에 힘써야 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있는 힘껏 높이 뛰여 시시각각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하고 지나가는 나그네 <뉘집으로 들어가는지>도 눈박아 보아야 한다. 그뿐인가. <정부 울안도 살펴보아야 하고> 상사의 <집안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높이 뛸수록 <이런 정경>이 더 잘 보인다. 혹 높이 뛰여도 이런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뛰거나 <정보>를 알면서도 <행동>이 따라 가지 못하면 “개 바위에 갔다왔다”거나 “소경이 헛막대질 했다”는 평을 듣기 싶상이다. 기교도 높아 <멋진 동작>도 보여주어야 한다. <곧추뛰기>와 <가위발뛰기>쯤은 누구나 다 할줄 아는 보편화한 동작으로서 <심판원>의 눈에 들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몸을 돌리는 <데사리>동작도 하며 <돈지갑을 떨어뜨려야> 하고 상체를 앞으로 굽히는 <중등꺾기>와 함께 둬바퀴 도는 어려운 동작도 하면서 상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수 있다는 <모험적 동작>도 서슴치 말아야 한다. 이처럼 <높이 뛰는데다 멋진 동작>을 곁들이지 않으면 일생동안 널뛰기를 해도 헛뛴것으로 밖에 안된다. 이젠 <심판원>의 눈도 훨씬 높아져 어지간한 <동작>으로는 높은 점수를 따기 어렵고 <더 높은 대회>에 뽑혀나가기 어렵다. 지난날처럼 인생의 널뛰기를 열심히 하면 <멋진 동작>을 하지 않아도 <심판원>이 알아서 봐주겠지 하는 시대는 지나간것 같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널뛰기 기교>만 열심히 하고 앞질러나가야 하는 <정치>를 하지 않아 <큰 대회>에 뽑혀나가지 못한 불쌍한 <선수>가 어디 한둘뿐인가? 거기에다 평형을 잡으라고 가운데 앉혀놓은 사람마저 어느 어른의 <지령>에 따라 기회를 보아 <엉뎅이>를 삐쭉하면 정신없이 널뛰기에 열중하던 사람은 삽시에 균형을 잃고 <널판지>에서  허망 떨어져 <다리를 분지르고> <뇌진탕>에 걸려 <대회장>에서 들려나가게 된다. 그래도 정직하고 순진한 사람은 자기의 기교가 모자라서, 자기의 부주의로 떨어져 상했는가 하여 자기가슴만 쥐여박는다. 우리 민족의 독특한 민속놀이인 널뛰기는 시장경제의 충격속에서 점차 그 위상과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널뛰기를 연구하는 사람도 가물에 씨나듯 하고 선수들도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가슴아픈 일이다. 이대로 가다는 언젠가는 영영 자취를 감출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널뛰기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경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인생의 널뛰기를 연구하는 <과학가>도 갈수록 많아지고 거기에 참여할려는 <선수>들은 갈수록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인생의 널뛰기를 하면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좌절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다. 사람들도 점점 총명해져 시대에 적응하자면 당전에는 어떻게 뛰여야 인생의 널뛰기를 잘 할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옛날에 널뛰기에 관하여 <널뛰기를 하면 그해에 발바닥에 가시 들지 않는다.> <처녀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었다. 당면에는 시대에 맞는 인생널뛰기의 격언도 나와야 할것 같다. <남다른 널뛰기를 할줄 모르면 성공은 꿈도 꾸지 마라.> <젊어서 널뛰기의 멋진 기교를 배우지 않으면 일생을 헛뛴다.>고. 2.인생은 뽈차기  축구는 기원 7∼6세기 무렵 고대 희랍시대에 행한 에피스키로스라는 공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형식의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대 우리 나라에서는 이보다 먼저 축구형식의 공놀이가 행해졌다는 설도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축구경기는 217년 영국에서 로마군의 공격을 막아낸것을 기념하는 축제의 일환으로 행해졌으며 1175년에 이르러 축구경기가 연례행사로 열렸다. 그후 축구는 점차 세계적으로 보급되여 여러가지 체육항목중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열광적인 체육항목으로 발전하였다. 하기에 축구때문에 죽고사는 일이 푸슬하며 축구때문에 생기는 기문도 허다하다. 지어 축구로 인한 전쟁이 발발되기도 하였다.  열광적인만큼 경쟁도 심하다. 축구는 코치, 감독, 선수들의 종합자질로 이뤄지는 집단행사로서 어느 한 부분에 구멍이 생겨도 안된다.  그중에서도 선수들의 압력과 부담이 가장 크다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코치나 감독의 전략과 전술이 나중에는 선수들의 기량을 통해 축구장에서 관철되고 발휘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도의 전략과 전술이 아무리 뛰여나도 그것이 잘 발휘되지 못하고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감독도 입이 막히게 되는것이다. 축구운동은 결과를 보지 과정을 보지 않는다. 여기에는 근본 공로는 없어도 수고는 했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축구란 어떻게 찼던 비기면 그래도 체면이 서고 지면 입이 광주리구멍이라도 할 말을 잃게 된다. 이기면 감독은 우산으로 범을 쏘아 잡았다고 망발해도 모두 진리가 된다. 선수들은 량날개, 공격수, 하프, 수비 등 어느 위치에 있든 경기 결속되기 전까지는 열심히 뛰여야 한다. 하지만 망아지처럼 헛뛰기만 해서도 안된다. 위치를 보며 뛰여야 하고 기전술에 따라 뛰여야 한다. 체력때문에 잘 뛰지 못하거나 그 어떤 불만이 있어 짤 뛰지 않아도 감독의 눈에 걸려 교체되기 십상이다. 그러면 주력이 후보로 전락되여 찬밥신세가 될수도 있다. 더 엄중하면 아예 도태될수도 있다. 전반전에 꼴이 나는 비률은 30% 정도밖에 안된다지만 누구나 그 꼴도 넣으려고 전반전부터 정신없이 뛰여야 한다. 하지만 꼴을 넣는 선수는 필경 개별적이다. 다른 선수들은 꼴을 넣을 선수를 위해 열심히 <들러리>로 되여야 한다. 선수들이 열심히 뛰여도 안된다. 심판도 공정해야 한다. 심판원이 상대편에 기울러져 다른 한편에게는 태클(背后铲球)이 아닌것도 태클로 판정하고 꼴을 넣은것도 오프사이드(越位)로 판정하고 무효로 한다면 선수들로서는 어쩔수 없는것이다. 상대편에는 코너킥이 아닌것을 코너킥으로 판정해주거나 페널티킥이  아닌것을 페널트킥으로 불어준다면 한쪽편은 어깨 처지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거기에 불복하여 언행이 곱지 않으면 경하면 엘로우카드(黄牌),중하면 레드카드   (红牌)를 받고 축출당하기 십상이다. 공평하지 못한 경기는 자기만 열심히 뽈을 차서 되는것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공정성을 말아먹는 축구도박까지 끼여든다면 경기가 시작도 되기전에  승부는 이미 가려져 있는것이다. 거기에 불복하는 선수는 쫓겨나야 하고 순종하는 선수는 살아남을뿐만 아니라 굉장한 경제적 혜택까지 받게 되는것이다. 한생을 열심히 뛰여야 하는 개개인의 인생도 뽈차기와 비슷한 리치인것 같다. 혁명화시대에는 사람들은 재직에 있을 때의 사업을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가정도 자식도 심지어 자기몸마저 돌보지 않으며 사업할수록 그것을 혁명적으로 생각하였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조직에서도 또 그렇게 할것을  요구하였다. 하다보니 사람마다 남에게 뒤지지 않고 넣기 힘든 <꼴>을 넣을려고 정신없이 뛰여야 했다. 열심히 뛰느라면 <감독>이나 <심판원>이 제대로 알아봐주겠지 하고 조직을 믿고 상급을 믿었다. 그때는 금전에 물젖지 않은 <감독>이나 <심판원>이 다수였기에 <판정>이 기본적으로 공정하였다고 할수있었다. 하지만 경제발전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는것이 사람들의 느낌이다. 적지 않은 경우에 금전이 <감독>이나 <심판원>의 의지를 좌우하게 되였다. 돈을 먹이지 않으면 <심판원>이 <태클>이 아닌것도 <태클>이라 판정하고    <페널티킥>이 아닌것도 <페널티킥>이라 <검은 호르래기>를 불며 <꼴>을 먹게 하기도 한다. 열심히 뛰면 <감독>이나 <심판원>이 공정히 봐주겠지 하는 성실하고 천진한 생각을 가지고 <뽈>을 차다보면 크게 랑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불만이나 의견을 제기하면 <감독>이나 <심판원>을 우습게 본다고 <레드카드>를 내들고 축출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정치도박>까지 끼여들면 열심히 뛰던 사람의 인생도 처참한 끝장을 보게 된다. <정치도박>도 <축구도박>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운명을 사전에 이미 결정해 놓는다. <정치도박>을 따르고 순종하면 살아남고 큰 혜택을 보지만 <개판>이라고 불복하면 죽어야 한다. 그래도 <지도>나  <심판원>은 영원히 정확하고 <선수>만 명성이 납작해진다. 그렇게 울분에 <운동장>에 쓰러져도 관중들은 그 <운동원>이 <체력>이 딸리고 재간이 모자라 쓰러졌겠지 하고 <가라지 선수>라고 침까지 내뱉기도 한다. 인생의 <전반전>에 이렇게 복잡다단한 <뽈>을 차다보면 <후반>에 남는것은 스트레스 아니면 여기저기 튀여나는 병밖에 없게 된다.  인생의 <전반전>에 가정을 잊고 자식을 잊고 자기를 잊으며 열심히 뛰던 <선수>들일수록 스트레스도 더 많이 쌓이고 신체정황도 더 안좋다. 평생을 뛰다보면 사업중에서 남들이 인정할만한 <꼴>을 넣는 <선수>도 개별적이다. 대다수는 <들러리>로 뛰여다녔을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반전>에 고생한것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불평이다. 퇴직한 후이면 지난날의 고생을 달갑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왜 전반전에 꼴도 넣지 못하고 가정도 돌보지 못하며 그렇게 죽을둥살둥 모르게 뛰였던가”하는 후회를 할뿐이다. <선수>들에 대한 <감독>의 요구는 그젯날에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적지 않은 <신인선수>들은 <로선수>들의 이런 교훈을 섭취해서인지 <전반전>에도 지난날의 로세대들처럼 <목숨바쳐 뛰지 않고> 눈치를 보아가며 <열심히 뛰는 척> 한다. 동시에 물밑으로는 자기와 가정의 <후반>을 위하여 금자탑을 쌓아가기도 한다. 단지 그렇다는것을 내색하지 않고 승인하지 않을뿐이다. 오늘의 시대에는 인생의 <뽈>을 차는 <전술>과 <기량>이 이전보다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것이 <선수>들과 <관중>들의 평가이다. 적지 않은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를 <높이> 받들면서 <뽈>은 자기 차고 싶은대로 차고있다. 적지 않은 <감독>들 또한 <선수>들이 제멋대로 <뽈>을 차도 <정치>를 잘하는 <선수>는 본체만체할 뿐만아니라 <주력>의 위치에 기용하기도 한다. 중국의 축구가 왜 1억에서 한명의 선수도 뽑지 못하여 세계컵경기에 나가지 못하는가? 그것은 공평한 경쟁기제가 도입되지 못하기 때문이라 보고있다. 공화국이 창립된지도 60여년이 되여가는데 왜 부정부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가? 그것도 공평한 경쟁체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보고있다. 개혁개방의 시대에, 경쟁이 갈수록 치렬한 시대에 장차 인생의 <뽈>을 여하이 차야 할것인가는 매 <선수>들에게 남겨진 과제이기도 하다.   3.인생은 소용돌이   사전에서는 소용돌이를 강에서 바닥이 패여 물이 돌아 흐르는 현상 또는 그런 곳으로 해석되여 있다. 바다에서는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조석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대규모 회전해류로 설명된다. 물리적으로는 류체안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는 부분으로 해석되고 미술적으로는 한 점을 중심으로 하나의 선이 둘레를 돌면서 뻗어나가는 모양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누구나 강과 바다에서 크고작은 소용돌이를 본 기억이 있을것이다. 나도 어려서 개구쟁이친구들과 강과 하천에서 수영하며 소용돌이를 숱해 보았다. 더우기 커서 려객선을 타고 장강삼협을 오르내리면서 장강의 괴물아구리같은 소용돌이를 보고 가슴이 섬찍한적도 있다. 소용돌이 아구리가 보통 몇메터씩은 되였고 큰것은 10여메터나 되였다. 밑으로 내리빠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어떤 소용돌이는 중심이 우물처럼 깊숙히 패여있었다. 강이 크고 물이 많을수록 소용돌이도 더 컸고 빨힘도 더 센것 같았다. 그러한 소용돌이는 어지간한 배도 삼켜버릴것 같았다. 강에서 물장난 칠 때에는 늘 소용돌이를 조심해야 했다. 소용돌이에 잘못 걸려들면 목숨을 잃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소용돌이는 겉으로 환히 보이기에 소용돌이에 빠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부주의로 소용돌이에 빠져죽은 사람도 없지는 않다. 한번은 아버지와 아들이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여나문살되는 아들이 부주의로 소용돌이에 감겨들게 되였다. 그걸 본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려고 다가갔다가 그만 둘다 소용돌이에 감겨들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힘이 약한 아들은 살아나고 힘이 센 아버지가 죽은것이다. 알고보면 원인은 간단했다. 아버지는 자기힘을 믿고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려고 버둥대다 귀중한 시간을 놓쳐 죽게 되였고 아들은 힘이 약하여 물이 빨아들이는대로 밑으로 빠져 나가 사람들에게 구원된것이였다. 사람이 숨을 죽이고 참을수 있는 시간이 보통 1분좌우란다. 아버지는 우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다 이 귀중한 시간을 놓쳐버렸던것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물의 빨힘에 끌려들어간 힘이 약한 아들은 살아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이겨보겠다고 악을 쓴 힘센 아버지는 죽고말았다. 하기에 소용돌이에 빠지면 밑으로 빠져야지 절대 우로 솟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험있는 로인들이 귀뜸하기도 한다. (어느 문인들 모임에서 이 리치를 이야기 하였더니 한 문인이 내 먼저 신문에 써먹어 버렸다.) 사람이 살다보면 우리 주위에도 인공적인 소용돌이가 수두룩함을 느끼게 된다. 그 중에는 정치소용돌이, 경제소용돌이, 생활소용돌이 등 벼라별 소용돌이들이 다 있어 그 종류가 자연 소용들이를 훤씬 초월한다. 우리의 인생은 이런 소용돌이의 포위속에서 간난신고를 겪으며 걸음걸음 나가야 한다. 자연적 소용돌이는 환히 보이기에 좀만 주의를 돌리면 얼마든지 피해갈수 있느나 인생의 소용돌이는 늘 음페되여 정직한 사람들 눈에는 잘 보여지지 않는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또는 출세 영달을 위하여 남을 모함하고 제거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며 또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는것이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마디로 내가 남보다 잘 되여야지 남이 나보다 잘 되는것을 보아주지 못하는것이다. 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자기의 옳바른 행동만 믿고 상대방도 그렇게 해줄것이라고 락관했다가는 크게 판단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단위에서 두 경쟁자가 국장의 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하였다. 그중의 한 경쟁자는 다른 경쟁자를 청하여 술을 함께 마시면서 <우리는 동사자이자 친구이니 앞으로 누가 국장이 되든 서로 지지하면서 사이좋게 잘 지내자.>고 하였다. 마음좋은 다른 경쟁자는 자기마음과 같다며 기꺼이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그들은 친형제나 된듯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첫번째 경쟁자는 두번째 경쟁자에게 호텔에 가 안마나 하자며 호텔방을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자기 친신을 시켜 두번째 경쟁자방에 매음녀를 들여보내고 경찰에 신고하게 하였다. 술에 취해 영문도 모르고 한침대에서 매음녀와 함께 붙잡힌 두번째 경쟁자는 입이 열개라도 해석할 방법이 없게 되였다. 그는 벌금하였을 뿐만아니라 명성이 납작해져 국장은 고사하고 고향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였다. 첫번째 경쟁자는 아무런 저애도 없이 국장자리에 올라 큰소리치며 국장질 해먹었다.  <정치>도 어찌 잘 하는지 몇해만에 성으로 올라갔다. 남을 자기 마음처럼 믿은 두번째 경쟁자는 자기를 말아먹은 그런 소용돌이를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에게 <흉금>을 터놓던 <친구>일줄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런 엉큼한 자들이 언제까지 조직과 백성을 속이고 제안속 채우며 관청바닥에서 활보할지 걱정만 쌓여진다. 정치소용돌이도 크면 크게 삼키고 작으면 작게 삼킨다. 력사가 보여주다싶이 중앙의 큰 정치소용돌이는 국가주석, 총서기도, 정치국 위원, 원수도 닥치는대로 삼킬수 있고 지방의 작은 정치소용돌이는 과장, 국장, 현장도 거뜬히 삼킬수 있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어떤 원인에서든 크고작은 정치소용돌이에 말려들었을 때 그 소용돌이에서 솟아나오겠다고 안깐힘을 쓰며 용을 쓴 <용감한> 사람들은 모두 죽어갔다. 해방전의 혁명대오내의 정치소용돌이는 그만두고라도 해방후의 정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죽어간 영웅들이 적었단말인가. <반우파>때도 그랬고 <대약진> 때도 그랬고 <려산회의>때도 그랬다. <3년재해>때에도 그랬고 <문화혁명>때도 그랬다. 돌아가는 정치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안깐힘을 써봤대야 헛수고임을 안 <총명한> 사람들은 “나는 죽었소” 하고 빨아들이는 그대로 빨려들어갔다. 이런 사람들도 감옥에서 농장에서 수십번, 수백번씩 검토서를 쓰고 인간대우를 받지 못하며 갖은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목숨은 보존할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있었기에 그후 정치소용돌이가 사라지고 기후가 알맞을 때 신기루마냥 다시  나타나 명예를 찾고 복직하고 나중에는 더 높은 벼슬을 하여 지방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일을 하기도 했다. <용감하게 악을 쓰며 총칼을 맞받아 싸우던 영웅>들은 비록 죽은후에 명예가 회복되고 추도곡이 처량하게 울리고 사람들의 애탄을 자아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갔다. 다만 <어느어느 시기에 모모 충신이 있었다>는 력사적 호명만 남겼을뿐이다. 변화다단한 정치풍운속에서 어느쪽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인지 사람들에게 깊은 사색을 던져준다. 가장 좋기는 그 어떤 소용돌이에도 말려들지 않는것이 행운이지만 그것은 개인의사에 따라 돌아가는것만이 아니였다. 나무는 평온히 서있으려 하는데 난데없는 광풍이 몰아치면 그에 따라 함께 몸부림치지 않을수 없고 허리가 잘리거나 밑뿌리채 뽑혀지는 비운을 겪지 않을수 없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자면 이러한 가지가지 인공적 소용돌이를 피해가야 하지만 자기 주위에 입을 벌리고 있는 크고작은 소용돌이를 모두 무사히 건너뛴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직한 사람들은 자기맘만큼 남을 믿기에 우로는 허허 웃으나 밑으로는 자기를 빨아들이는 그런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는것을 알지 못한다. 아무런 방비도 없다가 언젠가 자기가 그런 소용돌이에 빠져봐야 남을 너무 믿었다고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것이다. 생태균형파괴와 온난화의 기후관계로 강과 호수가 뚜렷이 줄어들면서 자연의 소용돌이는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하지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인간관계가 갈수록 복잡해지며 사회기후의 <온난화>를 강조할수록 인공적 소용돌이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소용돌이는 전문 성실하고 어진 <얼빤한> 사람만 휘감아간다. <얼빤한>사람도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에 생기는 소용돌이에 신경을 도사려야 할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소용돌이에, 장사를 하는 사람은 경제소용돌이에, 즐거운 삶을 꾸려가려는 사람들은 생활소용돌이에 신경을 도사려야 할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따르고 원칙을 견지한다 하여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경우에는 되려 생뚱같은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남들보다 더 처참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어떤 리유던 평생을 크고작은 인생 소용돌이를 용케 비껴간 사람은 승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패자인것 같다.  <장백산> 2010년 제6기  
36    [단편]장기들의 반란 (허룡석) 댓글:  조회:1441  추천:96  2011-02-02
[단편소설] 장기(内脏)들의 반란 허룡석   1 “나는 뇌장이다. 위장, 간장, 취장 등 5장6부는 주의하여 들으라, 오늘 저녁에도 주인님께서 술초대에 나가시게 된다. 무슨 개발상인가 하는 부자가 청한다는데 또 벼락술을 마실것 같다. 각 부서에서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주인님이 마시는 술과 음식물을 잘 받아들여 실수없이 해독하고 분해하도록 하라. 들었는가?” “예ㅡ. 알겠습니다.” 5장6부들은 무거운 어조로 대꾸했다. 그런데 간장이 볼부은 소리를 했다. “여보시우. 뇌장님. 오른저녁 초대를 미루면 안되겠습니까? 저도 술을 해독할 시간을 가져야지 날마다 끼니마다 이렇게 도수높은 술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려오면 젠들 어떻게 삐쳐내겠습니까? 생체원리대로라면 저두 한번 술해독을 한후에는 3,4일간 휴식해야 하는건데…” “그건 나도 방법이 없다. 우린 주인님만 믿고 사는 장기들이니 그저 주인님의 처사를 따를 뿐이다. 주인님이 어떠한 일들 하시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주인님을 보호하고 편하게 해드리는것뿐이다. 그러니 군소리들 말고 맡은바 준비들이나 잘해두라.” “예…” 간장은 풀이 죽어 두덜거렸다. “주인님도 너무 하셔. 당신 몸두 좀 돌보셔야지 남들이 청하는데는 다 가서 술을 죽도록 마시니 나만 피곤하잖아.” 곁에 있던 위장이 그 말을 받았다. “누가 아니래. 당신만 피곤한게 아니라 나두 죽을 지경이라네. 자네는 물같은 술을 해독하느라 고생이라지만 나는 굳고 무른 음식물들을 모두 제시간에 소화시켜야 하니 내 고충 누가 알겠나. 그것두 주인님은 고기요, 갈비요, 발쪽이요 하는 굳은 음식만 즐겨드시니 내 힘이 곱절 더 들어야 할게 아닌가. 그냥 이렇게 가다간 언젠가는 나두 피곤해 쓰러질것 같아.” “우리 주인 잘못만난것 아닌가? 술 적게 마시거나 안 마시는 주인 만났다면 우리두 덜 고생할건데?” “하긴 그래. 하지만 주인님도 일반 과원으로 계실 때에는 되려 우리가 썰썰해서 주인님이 어데가 고기점라도 실컷 자셨으면 하지 않았나…” “그땐 그랬지. 그러던것이 과장이 되고 부국장, 국장이 되고 부시장이 된후부터 우리가 써야 할 부하가 날따라 초과되여 늘 부담을 느꼈지…” “인간세상이란 그런가 봐. 모두가 제 리익을 위해서 서로 청해가고 청해오니 사실 주인님두 얼마나 바쁘시겠어.” “안 가시면 되잖아?” “어떻게 안 가셔? 웃어른이 부를 때는 만사를 제쳐놓구 가야 하구 아래 사람이 청할 때는 바쁜척 하면서 마지 못해 가는척 하시지. 웃어른이 권할 때는 잘보이기 위해 래일은 죽어두 오늘은 마셔야 하구 아래 사람이 권할 때는 아니아니 하면서도 흥에 겨워 즐거워서 정신없이 마시구. 또 그런 자리에 가야 돈인지 그림딱진지 하는것두 뭉테기루 생기지 않아. 우리 보기엔 숱한 때가 더덕더덕한 종이쪼박을 주인님은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그것두 빨간 종이쪼박보다 퍼런 종이쪼박 더 좋아하시잖아. 이래저래 그저 죽어나는건 그런 종이쪼박두 쓸줄 모르는 우리 5장6부 형제들뿐이지 후…” “그러게. 우리야 어쩌겠어, 뇌장님 말씀마따나 우린 주인님께 붙어사는 장기들이니 주인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할수 밖에…” “하지만 주인님도 우리 장기들을 믿고 사신다는걸 아셔야 할텐데…우리 장기들중 어느 하나가 잘못돼두 주인님두 인간들이 쩍 하문 말하는 뭐 칼인지 맑슨지 하는 사람 보러 가셔야 할테니…” 지구급시인 변강시 부시장 장개국은 오늘 저녁에도 이 지방에서 이름있는 개발상인 고숭래의 초청을 받아 이 시의 유일한 5성급호텔인 <성달호텔>에 가게 되였다. 그는 또한 이 지방에서 이름난 전국 <5.1메달> 획득자이고 성로력모범이며 지구 우수공산당원이기도 하다. 변강시에서 시정건설을 책임진 부시장인 장개국은 이 시의 실권파 인물로서 그의 말 한마디면 몇백만, 몇천만원이 왔다갔다 한다. 하기에 많은 기업인과 개발상들이 종지눈이 되여 그의 희노애락을 살피며 주위에서 맴돈다. 터치는 돈보라의 대권을 쥐고 있는 그는 화장실에 갈 때에도 대지네밭의 씨암탉마냥 꿋꿋이 어깨를 살구며 다닌다. 하지만 능력있는 사람 잘난 이 없고 잘난 사람 돈 잘 버는 이 없다더니 그의 생김새만 보면 그런 실력파라는 믿음이 도무지 가지 않는다. 얼굴은 꼭마치 시골집 뒤뜨락에서 장독사이를 비집고 자란 되호박처럼 균형이 억망이여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가 이 시의 모모한 부시장이라는것이 마치 벌거벗고 칼을 찬듯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했다. 이마는 조롱박처럼 불쑥 삐여져나왔고 볼은 홀쪽하니 들어갔으며 가느다란 목은 속에 참대를 꽂아놓았는지 피줄인가 힘줄인가 유표하게 튀여져나와 있었다. 얼굴형태가 마치 어깨우에 조롱박을 꺼꾸로 세워놓은듯 했다. 하여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시장님, 시장님.”하고 개여올리지만 허리만 펴면 뒤에서 그를 <장조롱박>이라고 조롱했다. 생김새는 지도간부들치고 우아하게 생기지 못했지만 그는 우아하게 생긴 국장들보다 더 우아하게 받들려다니며 초대에 초대가 이어졌다. 어제 저녁에도 ㅋ국에서 온 외국상인의 초청을 받아 술을 적지 않게 마셔 아직도 알딸딸한 <장조롱박>였지만 지방의 부자들이 청할 때면 언제나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지방부자들이 외국상인들보다 훨씬 더 손이 크게 놀고 기분에 맞게 청하기 때문이였다. 외상들이 청할 때면 공식적으로 청하며 술대접이나 할뿐 아무 먹을알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귀찮은 요구는 거지발싸개보다 더 길었다. <장조롱박>은 투자도 많이 하지 않은 외상들이 청할 때면 개배때기라도 찰수 없어 그저 공식적으로 응부할뿐 지방 부자들이 청할 때처럼은 즐겁지가 않았다. 오늘 저녁에도 변강시에서 이름난 개발상인 고숭래가 자기 회사 판공실 직원들인지 뭔지 하는 미녀들까지 데려다 배동시킨다니 <장조롱박>은 벌써부터 마음이 조롱조롱 들떠있었다.  벤츠표 승용차가 호텔앞에 이르러 칙 멈춰서자 <장조롱박>은 유표한 <조롱박>부터 내밀며 차에서 점잖게 내렸다. 그리고는 카리스마있게 손을 저어 200여만원 되는 고급승용차를 보냈다. 적어도 10년은 물에 엎어놓았는지 퍼질대로 퍼진듯한 절구통같은 몸집에 옷가지들을 대수 걸쳐놓은것 같은 고숭래가 미인 둘을 데리고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급급히 마중하였다. “장시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렇게 사무 바쁘신데도 모처럼 찾아주셔 대단히 영광입니다” 고숭래는 실팍한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두손으로 <장조롱박>의 손을 공손히 잡았다. 그리고는 미니스카트를 입은 성감이 톡톡 튀여나는 미인 둘을 <장조롱박> 앞으로 내세웠다. “이 분은 내가 늘 말하던 우리 변강시에서도 실력가이신 장부시장님이시야. 이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회사가 오늘처럼 발전할수가 없었어. 그러니 오늘저녁 최선을 다해 잘 받들어모셔야 해.” “녜. 알겠어요. 잘 받들어 모실게요.” 미인 둘은 함박꽃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두손을 공손히 모아쥐고 얌전히 허리굽혀 인사했다. 허리를 굽히니 아래로 깊숙히 패인 깜장 패션속에서 하얗고 탐스러운 젖무덤들이 터질듯말듯 바람을 불어넣은 고무풍선마냥 쌍쌍이 드리워져있었다. 미니스카트는 어찌나 짧은지 허리를 굽히니 뒤쪽으로는 손가락 한개 너비만큼한 빠알간 미니팬티가 환히 드러났다. “장시장님, 이 미녀들은 저희 회사 판공실 직원들입니다.” 그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다 체격까지 미끈하게 쭉 빠지고 성숙미가 자르르 흐르는 30대초반의 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는 저의 판공실주임 애나입니다. 오늘저녁 시장님의 모든 초대는 애나주임이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어요.” 애나는 애교다분한 눈길로 <장조롱박>을 쳐다보고는 허리를 곱삭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정쩡해졌다. 개발상들이 요란스레 떠받들고 무서워하는 그 신비한 우상이 바로 이 조롱박같이 생긴 사람이란 말인가? 그녀는 “어마나. 보다보다 별 우습게 생겨먹은 간부 다 보네.” 하는 생각이 들며 저도 모르게 캐드득 웃음이 나왔다. <장조롱박>을 보는 순간 그녀는 이런 신비한 우상이 꾸며지고 만들어지는 단순한 리치와 비밀을 깨달은듯 했다. 하기야 뚜꺼비같은 사람도 벼슬자리에 앉혀놓으면 못생겨 보일 사람 어디 있을가. <장조롱박>은 그 미녀의 아래위를 뜯어보았다. 올록볼록 곡선미가 두드러지고 보동보동한 몸매, 닭알모양의 갸름한 얼굴, 반달같이 휘우듬한 눈섭, 웃는듯 마는듯 애교가 찰찰 넘치는 한쌍의 눈이 가을하늘이 비낀 맑은 호수물마냥 그윽했다. 어찌나 이쁘고 성감있게 안겨오는지 부국장, 국장, 부시장으로 15년간 관청바닥에서 뒹굴어오며 이 시가지에서 노는 계집이란 계집은 거의 다 찍어서 맛을 본 <장조롱박>이였지만 이런 봉은 처음 손에 쥐여보는듯 했다. 그녀의 뛰여난 자색과 초연한 몸가짐이 녀인들의 루주냄내로 진동하는 <장조롱박>의 목에서 벌써부터 겨불내가 일게 하였다. “어허, 고경리가 판공실에 언제부터 이런 미녀들을 감춰두고 있었는가?” <장조롱박>은 유혹스러운 미녀들의 성감적인 몸매에서 눈을 떼며 파워있는 간부답게 어험어험 건가래를 떼였다. “초빙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자, 올라 가시지요. 잘 모셔드려.” 미녀 둘이 량켠에서 <장조롱박>의 팔을 잡고 허리를 비비꼬며 층계를 올라갔다. 보동보동하고 새하얀 기둥허벅지까지 다 드러낸 미니스카드가 풍만한 엉덩이를 가릴듯 말듯 몸의 률동에 따라  달싹인다. 그 스카드바람을 맞으며 고승래가 허둥대며 그뒤를 바싹 쫓아올라갔다. 호화롭게 장식한 3층 <아미청>앞에 이르자 고승래가 앞에 나서며 몽통한 팔에 달린 밥주걱같은 손을 펴드렸다. “자, 여기로 들어가시지요.” <장조롱박>이 들어가보니 안에는 녹나무로 만든 둥근 고급식탁만 있을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시치미를 뗐다. “아직 올 사람들이 다 안왔는가?” 애나가 제꺽 그 말을 받아 금방 쥐잡아먹고 온듯한 빨간 입을 나풀거렸다. “아니, 우리 넷뿐이예요. 사람이 많으면 분주하기나 하지요. 자, 이쪽에 앉으세요.” 애나는 <장조롱박>을 안쪽에 모시고 자기가 그 옆에 사뿐 앉았다. 절구통같은 고승래가 맞은켠에 뚜꺼비처럼 들어앉고 얌전을 빼는 미인 하나가 그 옆에 붙어앉았다. 고승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커다란 가방안에서 책묶음같은것을 들었다 놓으며 장<조롱박>을 흘끔 쳐다보았다. “연구생학력을 가지신 장시장님께서 책보시기 즐겨하시는줄 알고 제가 어제 서점에 갔던 걸음에 근간에 나온 좋은 책 몇권 골라왔습니다. 시간 나실 때 종종 번져보시지요” <장조롱박>은 그 <책묶음>이 무엇인지를 다 짐작하고 있었으나 짐짓 모르는척 하였다. <장조롱박>은 사업하는 한편 모 중점대학 경제학부 연구생공부까지 했다며 찬란한 연구생학력까지 버젓이 가지고있었다. “뭘 그런 념려까지 다 하나. 책은 나절루두 잘 사보는데.” 고승래가 규례를 타파하고 술마시기전에 <책묶음>을 자기에게 보여주는것은 술맛을 돋구고 자기를 하루밤새에 삶아놓자는 심사임을 <장조롱박>은 인츰 알아차렸다. 료리들이 련달아 들어왔다. 제비집, 웅장, 전복, 상어지느러미 등 모두가 값이 엄청 나가는 고급료리들이였다. 일개 백성들은 평생을 살아도 눈요기초차 할수 없는 산해진미였다. <장조롱박>도 남들이 받들어 모시는 지구급시의 부시장을 5년째 하면서 숱한 술대접을 받아보았지만 고급료리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오르는 초대는 많지 않았던이였다. <책묶음>을 보여주고 미녀들을 붙여주고 고급료리를 무더기로 올리는것을 보아 저 자식 자기한테 큰 부탁이 있음을 <장조롱박>은 속으로 짐작했다. 저 자식두 개발구 동쪽켠의 그 땅을 욕심내는건가? 지금 개발상들이 그 땅이 욕심나 저마다 느침을 한발씩이나 흘리며 어떻게 하면 자기손에 후무려 넣을가고 고심하고 있는터였다. 손안에 있는 권력으로 그 땅을 누구한테 주느냐는 <장조롱박>에게 있어서 수양딸을 며느리로 삶는것처럼 손쉬운 일이였다. 또한 리속으로 따져도 누구에게 주든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였다. 그저 떡함지 큰쪽에 떡을 던져주면 그만이였다. 임기가 바싹 쫓아오는 때에 뒤가 어찌 될지 모르니 사전에 그 땅을 처리해버리려는것이 <장조롱박>의 안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청에서 구을대로 굴러온 <장조롱박>은 이런 초대는 례상사라는듯 미녀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대연자약하게 앉아있었다. 애나는 시중들려는 복무원아가씨에게 작은 잔들을 들려 내보내고 자기가 <장조롱박>앞의 맥주고뿌에 모태주를 꾸룩꾸룩 넘쳐나게 부었다. 고승래의 고뿌와 그 옆의 미녀의 고뿌에도 골똑골똑 부었다. 자기 고뿌에는 절반을 부었다.  그걸 보고 뇌장이 놀라 부르짖었다. “난 뇌장이다. 각 부서에서 주의하라. 비상상황이다. 지금 주인님이 처음부터 모태주를 큰고뿌로 들이마실 작정이다.  5장6부는 만부하를 기하고 대기하라.” 5장6부들은 끔쩍 놀랐다. 전에는 그래도 처음에는 작은 잔으로 마시다 흥이 나면 큰잔으로 바꾸었는데 오늘저녁은 처음부터 큰고뿌라니. 주인님께서 우리 장기들을 염병에 걸려 쓰러뜨릴 잡도리신가? 주인님이 제발 미녀들의 간살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는데 고승래는 오늘저녁 모든 초대권리를 과연 애나에게 맡겼는지 애나가 첫 고뿌를 들고 일어섰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시에서 명성이 하늘같으신 장시장님을 만나뵙게 되여 아주 영광을 느낍니다. 제가 먼저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초면이라 저는 장시장님의 길고 짜름을 잘 모르고 시장님도 저의 깊고 옅음을 잘 모르시니 이렇게 합시다. 제가 절반쯤 벌릴터니 시장님은 다 들어가 주세요 (因为初次见面, 我不知领导的长短,领导也不知我的深浅。这样吧,我半开,领导全进。” 그리고는 <장조롱박>의 고뿌아래에 대고 짤랑 소리나게 치더니 자그마한 빨간 입을 벌리고 자기가 먼저 꼴깍꼴깍 굽을 냈다. 이것은 또 무슨 권주법인가? 여태껏 미녀들의 술을 숱해 받아마셨어도 이렇게 말속에 화끈한 불씨를 심어가며 쌍층 의미로 술을 권하는 미녀는 보지 못하였다. 이 계집은 여간내기가 아닌것 같았다. 오늘저녁 술뒤끝에 맛있게 삶아먹고 지져먹을만한 계집이였다. <장조롱박>에게는 이런 톡톡튀는 계집이 더 흡인력이 있었다. “그래, 나두 초면이라 애나의 깊고옅음을 잘 모르지만 애나가 이미 반쯤 벌렸으니 내가 힘써 다 들어가지.” <장조롱박>은 이렇게 우스개로 말을 받으며 큰고뿌를 입에 대고 꿀꺽꿀꺽 단숨에 다 들이켰다. “잘한다. 잘한다.” 모두들 좋다고 박수를 쳐댔다. “아이고 시장님. 정말 주량이 대단하시네. 시장님이 단꺼번에 다 들어오시니 제가 다 시원해나네요.” 애나가 <장조롱박>의 얼굴에 키스를 해대며 쫑알거렸다. <장조롱박>은 벌써 흥분했는지 전에없이 이번에는 자기가 친히 술병을 찾아 집어들었다. 그는 애나의 고뿌에 술을 부으려다 고승래네가 헤 웃으며 박수만 치는것을 보고 눈을 치떴다. “우리만 마시게 하구 자네는 안 마실 작정인가?” 고승래는 그제야 제 정신이 든듯 급급히 고뿌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곁의 미녀에게 눈짓하며 황소 뜨물 켜는듯한 소리를 내며 삽시간에 고뿌를 비웠다. 곁의 미녀도 고뿌를 사뿐 들고 고개를 개웃하며 쪼르륵 굽을 냈다. 고승래와 미녀는 빈잔을 <장조롱박>앞에 꺼꾸로 내들었다. “음, 그래야지 이번에는 내가 친히 부을거야. ” <장조롱박>은 애나의 고뿌에 술을 넘쳐나게 부었다. 애나의 두 눈이 올롱해졌다. 고승래와 그 곁 미녀의 고뿌에도 가득 채웠다. 고승래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친히 술을 따르는 <장조롱박>을 놀랍게 쳐다보았다. 자기네 개발상들 가운에서는 염라대왕으로 불리며 받아마시기만 하고 언제 술 한번 부은적이 없던 저 사람이 미녀들 앞에서는 저렇게 육초먹은 강아지노릇을 할 때도 있는가? 보아하니 저 염라대왕에게 자갈을 물려 휘여잡을수 있는 사람은 미녀들밖에 없을것 같았다. 오늘 성감이 톡톡 튀는 <육탄>을 면바로 준비한것 같았다. 제 죽을줄 모르고 <과녁>이 지금 저절로 그 <육탄>쪽으로 활개치며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고승래는 웃음주머니가 흔들흔들했다. “자, 이번에는 내가 권하지. 나도 이젠 애나의 깊고옅음을 알았구 애나두 나의 길고 짧음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애나두 다 벌리구 나두 승승장구로 들어갈거야. 어때?” “그럼 저야 좋지요.” 애나는 허리를 비비꼬며 일어섰다. “자, 애나 먼저 들지.” “녜? 제가 먼저 들어요?” “아하, 애나가 먼저 벌려야 내가 들어갈거 아닌가?” “녜ㅡ, 알았어요.” 애나는 고뿌를 들고 이번에는 입을 벌리고 마시는것이 아니라 고뿌를 오른쪽 입귀에 대더니 발정난 암쥐의 신호인양 <찌르르ㅡ찍ㅡ찍”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단숨에 술을 다 마셔버렸다. 저런, 정말 보통년이 아니군. <장조롱박>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탄복해마지 않았다. 맞은켠에 앉은 두 사람이 잘한다고 응원하며 박수를 쳐댔다. “이번엔 내가 해버리지.” <장조롱박>은 <조롱박>을 뒤로 젖히더니 고뿌를 <조롱박아구리>와 둬뼘 높이 되게 들고는 <아구리>를 짝 벌리고 조롱박에 술을 붓듯 술을 그대로 쏟아넣었다. 술은 꾸르륵 소리와 함께 한방울도 랑비없이 단꺼번에 다 들어갔다. 역시 술판의 로장이였다. “얼씨구ㅡ절씨구.” 맞은켠의 두 사람이 또 박수를 쳐대며 잘한다고 침방울을 튕겼다. <장조롱박>이 벌써 흐릿한 눈길로 애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잘 들어가지?” “정말 잘 들어가네요. 우리 시장님이 들어가는데는 선수인가 보네요?” 애나는 이렇게 쫑알거리며 <장조롱박>의 가느다란 목을 꼭 끌어안았다. 저걸 어쩌나? 가느다란 목이 금방 뚝 부러져 <조롱박>이 굴러떨어질가봐 곁에서 보는 사람이 다 아찔해 났다. <장조롱박>도 체면이고 체신이고 다 버리고 애나의 허리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만지며 키스를 해댔다. 꿩이 묏구렁이 보면 날지 못한다더니 아릿다운 미녀를 곁에 두고 있으니 밤을 새울 잡도리였다. 술좌석이란 예로부터 남녀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 서로 통하는것이 있고 보면 량반이요 쌍놈이요 하는 가면은 저절로 벗어지고 남자와 녀자의 몸뚱아리만 남는것이다. 거기에다 더 열이 오르고 흥이 나면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고 술상이 기생집 오입상이 되는것이다. <장조롱박>도 아무런 조미료없이 날것대로 먹어도 비리지 않을것 같은 미녀를 곁에 두고 보니 우사모를 벗어 구석에 처박은지 오랬다. 뒤이어 고승래가 권하고 그 곁에 앉은 미녀가 잇달아 권하다보니 모두가 얼근하여 남녀구별이 없이 안고 만지고 키스하고 한덩어리 두덩어리 되여버렸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다보니 세상이 녹두알만해져 이런 즐거움이 따로 없었다. 예로부터 차물이 풍류를 이어주고 술이 색을 맺어준다더니 남녀간의 눈빛에서 전기가 오가고 그러다 언젠가 고압전기가 찡찡 통하기는 시간 문제였다. 처녀총각이 함께 일하면 힘드는줄 모르고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더니 그들이 음탕한 눈길을 주고 받으며 탕개를 풀어놓고 먹고 마실수록 <장조롱박>의 장기들은 정상적 질서가 파괴되여 온통 혼란에 빠졌다. “52도 모태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니 이거 난리가 아니야ㅣ 어이, 간장 술해독을 좀 다그치라구. 나만 바쁘지 않나.” “나두 지금 죽을 지경이라구. 어제 술두 채 해독하지 못했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어이 위장, 알콜을 급급히 나한테 밀어버리지 말구 위장에서 좀 더 지체시켜 주게” “나야 처리해야 할게 어디 알콜뿐인가. 보라구 오늘은 웅장이요. 전복이요 제비집이요 하며 전탕 소화시키기 어려운 물건짝들만 쓸어들어 오지 않나. 나두 눈코 뜰새 없다구. 위액두 몇곱절 방출해야 하니 정신이 없네. 해정이나 빨리 되게 콩나물국이나, 조개국이나. 추어탕이라두 좀 드실것이지, 오이라두 괜찮겠는데 나원…어이 간장, 소화를 돕게 담즙을 좀 더 내보내라구 담낭을 재촉하게…그리구 취장, 어이 취장.” “녜. 듣고 있습니다.” “자네두 인슐린을 좀 부지런히 소장에 공급해서 내가 내려보내는 음식물들을 빨리  분해시키도록 하게.” “녜. 그러잖아두 화장실에 갈 사이두 없이 제가 해야 할 직책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위장, 간장, 취장은 서로 찧고쪼으며 분주히 제 직책을 다 하느라 복새판을 벌렸다. 이젠 하루이틀도 아니고 장장 15년간이나 날마다 이처럼 초긴장상태에서 작업하다 보니 장기들도 이젠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나는 뇌장이다. 주의하라. 주인과 손님들이 이미 세병을 다 마셔버리고 네병째 올라왔다. 위장, 간장, 취장 아직도 받아당할만한가?” “아이고 뇌장님 좀 주인님께 신호를 보내 술을 절제하게 해주십쇼. 이젠 정말 받아당하기 어렵습니다. 위액분비가 따라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 위장이 얼굴이 창백해서 아우성을 쳤다. “뇌장님, 저도 늘 초부하로 일하게 되면 얼마 삐칠것 같지 못합니다. 그러잖아도 지금 분해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습니다. 제가 하루에 분해할수 있는 알콜 최대량은 80그람인데 날마다 이렇게 500그람, 800그람씩 들어오니 제가 어찌 받아당하겠습니까.  제발 저희들 살펴도 좀 봐 주십시요.” 간장도 얼굴이 빨개서 하소연했다. “그리구 저의 임무는 질병을 방비하고 사악한 세균들과 싸우며 주인님의 건강을 지켜드려야 하는데 날마다 알콜해독에 정력을 팔다보면 어느 구석에서 무슨 사달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간장은 너무 안타까와 울상을 했다. “당신들의 고초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로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주인이 술에 취해 감각이 무뎌지면 내 신호도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까 올 때에 내가 신호를 드리니 오늘은 적게 마셔야지 하던 분이 지금 미녀들의 간살에 넘어가 이미 자아공제능력을 잃어버렸다. 우린 그저 최선을 다해 받아당하는 수밖에 없다. 주의하라. 지금 미녀가 또 고뿌에 술을 따른다…” 위장과 간장은 다투다가도 또 술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자기들이 지휘할수 있는 부문들에 경보를 울려주며 초긴장을 했다. 이때 난데없이 식도가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뇌장님, 주인님더러 또 술을 드시기전에 랭수도 좀 마시라 하십시요 술만 마셔대니 식도에 불이 붙을 지경입니다요…” “자네같은 식도야 무슨 바쁠게 있다구 소리 지르는가. 술과 음식이 그저 지나가면 그뿐이겠는데…” 위장이 비꼬았다. “모르는 소리는 하지두 마시우. 술이 위장에 이르기전에 20% 알콜은 내가 흡수합니다요.. 내가 모르는척 그저 넘겨버리면 형님네는 더 큰 고생을 해야 될겁니다…” “식도두 알콜을 흡수한다는 소리는 듣다 처음인데…하여간 수고하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모두 함께 난리를 겪구있군…” “뇌장님 나는 페장입니다. 주인님이 술마시며 말씀이라도 좀 많이 하시게 하십시요. 이젠 입을 꾹 다물구 술만 드시니 알콜해독이 어려워집니다…” “저건 또 누구 소리야? 자기두 알콜해독을 한다잖아?” 간장이 위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페장이라잖아? 그런데 어떻게 자기두 알콜해독을 한다구 저 야단이지?” 위장이 모를 소리라는듯 페장에게 소리쳤다. “어이 페장, 호흡을 책임진 당신이 무슨 바쁜 일이 있다구 우리와 함께 덩달아 고아대는건가?” “주인님이 말씀을 좀 많이 하셔야 알콜해독이 빨라져 자네들 부담이 덜어질게 아닌가? 자네들만 알콜해독을 한다구 생각지 말게. 나두 호흡으로 20% 알콜해독은 한다구. 그래서 인간들이 어떤 치는 말로 술을 깬다지 않나?” “뭐? 당신두 알콜해독을 한다구? 그러면 우리는 진짜 한 전호속의 전우들이군. 하여간 수고들 하네.” 그뒤로 술이 계속 쏟아져내려오는 통에 장기들은 더는 찧고 쫗고 할 사이가 없이 주물럭거리고 분비물을 내뿜으며 맡은바 직무에 충성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남녀 넷이서 모태주 네병을 마시고 나니 모두 녹초가 되였다. 그중에서도 <장조롱박>이 흥에 겨워 부어주는 술을 번번이 다 받아마시다보니 누구보다도 많이 마셨다. 아직도 정신이 꽤나 똘똘한 고승래가 애나에게 말했다. “시…시장님을 10…10층에 있는1085방에 모시구 올라가.” 애나도 술에 많이 취했는지 얼굴이 해쓱하여 혀꼬부라진 소리를 해댔다. “자…장시장님…아니…조…조롱박님..호호호…” <장조롱박>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해골머리가 아픈 술군처럼 게슴츠레한 갈고리눈으로 애나를 쳐다보았다. 애나는 급히 제 빨간입을 가리고는 <장조롱박>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시…시장님. 저…하구 가…같이 호텔방에 가자요…오늘밤 제…제가 잘…잘  모실테니까…” “그래? 조…좋지…가쟈…” <장조롱박>은 애나 어깨우에 흔들흔들하는 <조롱박>을 얹고 그녀의 갸냘픈 몸에 실리다싶이 하며 <아미청>을 나섰다. 그런 와중에도 애나는 <책묶음>을 넣은 가방을 들고있는 고승래를 치켜보며 쫑알거렸다. “경리님, 보…보수는 마…말씀한대로 주…줘야 해요…아니문 내 그저…쫄딱 …내…내가 무덤처럼…이…입이 무거운 계…계집인가는 하…하지 마세요…아… 알았지요?...” “창…창기는 어쩔수 없는 창기로구나…그…그래 념려마…내…내가 다…말한대루 해준다니까…” 그네들은 비칠거리며 쌍쌍이 제 방을 찾아갔다. “5장6부 주의하라. 지금 주인님이 호텔방으로 가시고있다. 아마 또 마지막 행사를 치를것 같다. 1호.. 1호. 들었는가? 1호. 왜 대답이 없는가?...” 고리타분한 냄새로 숨막히는 팬티속에서 사타구니사이에 머리를 구겨박고 정신없이 졸고있던 1호가 련속 울려오는 신호에 겨우 입을 열었다. “예…1호…1호입니다…아이고고…” “1호., 난 뇌장이다. 왜 목소리가 굴내먹은 암코양이 소린가?” “아…아이구 뇌…뇌장님. 저…저두 수…술에 취해 지금 막 조…졸구 있었습니다요…” 잠을 채 깨지 못한 1호는 하품을 짝짝 하며 입에 밤알을 문듯 얼버무려댔다. “1호. 그게 무슨 꼴인가. 정신을 차리라. 주인님이 지금 호텔방으로 가구 계신다. 아마 상례대로 방에 들어가시면 당신을 호출할것 같다…” 그 소리에 1호는 끔쩍 놀라 술을 절반은 깼다. “아이구…뇌장님…그…그건 안…안됩니다…저…전 지금 술에 취해 소금에 절은 가지꼴인데 어떻게 그 힘든 체력로동을…그…일을… 하겠습니까… 안딥니다… 제발…주인님께서 이…일찌감치 …푸…푹… 쉬게…하십시유…” “우리는 주인님이 무슨 일을 하시던 따르는수밖에 없다. 그저 즐겁게 해드리고 건강을 열심히 챙겨드릴뿐이다. 아무때든 주인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언제나 뛰쳐나가 자기를 희생하면서라도 주인님께 충성을 다 하는것이다. 그러니 군소리 말고 충분히 준비하며 대기하고 있으라.” 뇌장은 사무적으로 딱딱히 명령할뿐 아래 장기들의 사정을 보지 않았다. 사실 또 볼수도 없었다. 1호는 더 뭐라고 변명할수도 없었다. 주인에게 붙은 장기로서 그저 운명에 맡길수밖에 없었다. 1호는 다급히 기지개를 켜며 정신을 좀 춰볼가해도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고개를 쳐들수조차 없었다. 아하, 이렇게 초절이된 몸을 가지구 어떻게 주인님 명령을 따르지? <장조롱박>은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비칠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휘청휘청 소변을 보고 나와 안쪽호주머니를 들추더니 파란 알약 하나를 꺼내 <조롱박>을 뒤로 젖히고 물과 함께 꿀떡 넘겼다. 그것을 보고 뇌장이 놀라 소리쳤다. “1호. 1호. 주의하라. 방금 주인님께서 비아그라를 드셨다.” “뭐라구요? 비아그라를 드셨어요? 아이구 오늘 밤 난 또 죽었구나…” 1호가 사색이 되여 소리질렀다. “주인님께서 비아그라를 드셨더라두 1호가 잘 절제하고 조절하여 주인님의 정기가 크게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안됩니다. 뇌장님. 주인님이 그 약을 드시면 저도 자신을 공제못합니다. 내래는 나가 죽더라도 그 시각만은 무너져내린 텐넬이래도 뚫고 용맹히 돌진하게 됩니다. 그러면 기를 크게 상하게 되는데 저뿐만 아니라 5장6부 형제들도 모두 해를 입게 됩니다. 아이구. 주인님은 언제나 순간적 쾌락을 위해 늘 이렇게 우리를 못살게  구시니…” 비아그라는 무진장한 힘을 발휘했다. 침대위의 흰 살과 검은 살이 한데 엉켜 두 룡이 구름 사이에서 번득이는듯, 두 물고기가 물 가운데서 희롱하는듯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는가 하면 저만치에 굴러갔다가 다시 본래 자리로 뒹굴어와 하늘과 땅을 뒤바꾸기도 했다. 그 서슬에 침대도 즐거운듯 함께 요동쳤다. 그날 밤 1호는 주인님의 우렁찬 돌격나팔소리에 따라 비아그라의 힘으로 련속 두번이나 <적진>에 뛰여들어 격렬한  육박전을 거치고도 서리발치는 날창을 비껴든채  주인의 즐거운 비명소리속에서 영용히 쓰러졌다. 그사이 여태껏 말이 없던 심장이 펌프질에 박차를 가하며 혈액공급을 하다 못해 부르튼 소리를 내질렀다. “이보게 뇌장…당신은 왜 그렇게 그저 순종할줄 밖에 모르는가? 주인님이 술뒤끝에 이렇게 격렬히 전투하시다 갑자기 발동이 멈추거나 동맥이 터져 배우에서 돌연사를 해도 난 모른다구. 평소에는 일분에 5000그람 피를 내뿜는데 지금은 1만 5000그람씩 내뿜어도 따라가기 힘드니…” 신장도 악이 났는지 고함 질러댔다. “어이 뇌장, 당신두 좀 주인님 잘 보필하라구. 하루건너 이렇게 혼백을 빼면 저같은 눔은 기가 빠져 죽느다는걸 뻔히 알면서두 보구만 있는거야?…어이쿠, 나 죽는다.…” 그까짓 장기들이야 뭐라고 불만을 토로하든 비아그라덕분에 흥분을 만끽한 <장조롱박>은 녹초가 되여 코를 드렁드렁 골아댔다. 폭풍취우의 세례를 겪을대로 겪은 애나는 두들겨맞은 부엉이꼴이 되고 곤죽이 될대로 된 자기몸을 겨우 가누며 나지막히 욕설을 해댔다. “흥…취해…다 주…죽은척 하더니 뽀…뽈만 보면 저…정신 추는 마라도나네…이…이 두상이…무…무슨 약을 먹고왔나? 쳇…그…그래두 이…인제 마라떠우푸됐지…제 되우?...히히… ” 그는 옷을 주어입더니 고승래가 들여다놓은 <책묶음>이 든 가방을 보더니 정신없이 코를 골아대는 <장조롱박>을 할끔 훔쳐보았다. 엿가락처럼 녹작지근해져 침대에 파묻힌 <장조롱박>은 나무칼로 사타구니의 <1호>를 베여가도 알것 같지 못했다. “흥, 이…이런 채…책은…나도 보…보기 좋아한단 마..말이야…” 애나는 자기 물건이기나 한듯 묵직한 <책>가방을 추스려 들고 호텔방을 살그머니 빠져나갔다. 드렁드렁 코를 골아대던 <장조롱박>은 몸이 불편한지 수시로 몸을 뒤척거렸다. 이젠 쉰고개를 넘어선 나이에 욕심은 한량없어 정신없이 꽃을 딸적만은 즐거웠겠지만 따고 싶을대로 딴 뒤에는 그에 따르는 증세는 어떻게 대처하랴. “이보게 위장, 위장, 이거 큰 일 났다구…” 피곤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밤새워 부지런히 알콜해독을 하던 간장이 갑자기 소리질렀다. 온밤 위액을 분비하며 숱해 쏟아져내리는 음식물을 분해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위장은 연신 울려오는 옆집 신호에 잠꼬대하듯 대꾸했다. “이…이 밤중에 또 웬일인가?” “여보게 위장 야단났네. 내 몸 웃단에서 무시무시한 암세포를 발견했다네…” 위장은 그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뭐라구? 암세포? 그게 확실한가?” “틀림없네. 너무 아프고 불편해 자세히 살펴보니 콩알만큼한 종기들이 여기저기서 눈을 부릅뜨고 도사리고 있는데 암세포들 같다니까. “왜 그렇게 크고 많을 때까지 여지껏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장장 15년간이나 날마다 알콜해독하는데 정력을 팔다보니 언제 살펴볼 겨를이나 있었는가. 그리구 나두 이젠 멱역력이 팍팍 떨어져 사실 간악한 세균들의 진공에 저항할 힘도 없다네…” “안되겠군, 그것이 정말 암세포라면 당신이나 내나 다 죽고만다니까. 우리가 죽으면 주인님두 끝장이시지. 옆집에 불이 나면 우리 집이라구 무사하겠나. 나두 어느 구석에 문제 생기지 않았나 잘 검사해 봐야겠군. 그런데 이보게 간장, 우리 빨리 장기들을 동원해 토하고 쏘게 들볶아대여 주인님을 좀 혼쌀 내주자구. 그래야 정신차리구 빨리 병원에 갈게 아니겠는가.” “뇌장님께 알려야 하지 않겠나?” “그만두게, 보아하니 뇌장님이라는것두 믿을게 못돼. 우리두 그의 말만 듣다가 이꼴이 된게 아닌가. 그러니 이번엔 우리끼리 아예 반란을 일으켜보자구.” “음, 알았어. 사실 뇌장님두 주인님께 바른 소리 한마디 못하는 무골충이야. 이젠 우리끼리 하자구.” 간장, 위장, 취장은 최악의 상황을 위해 저축해두었던 위액, 담즙, 인슐린을 한꺼번에 내쏘며 배속에서 대반란을 일으켰다. 곤드레만드레 취한데다 기운까지 싹 뺐던 <장조롱박>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더니 갑자기 누운 자리에서 웩웩 토하기 시작했다. 뒤로는 엿물같은것이 쭐쭐 나갔다. 그통에 기진맥진해 겨우 잠이 들었던 뇌장도 소스라쳐 깨여났다. “5장6부, 어떻게 된 일인가? 왜 주인님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셔?” “당신 몰라서 묻는가? 이게 다 우리가 당신 령도를 잘 받은 결과 아니겠는가. 우리가 죽어나니 주인님이 바빠하시는거지.” 간장, 위장이 동시에 맞받아쳤다. 뇌장은 이상한 낌새를 챘다. 여태껏 장기들이 자기한테 저처럼 불손한 말투로 올리받힌적이 없었는데 이건 뭔가? 반란인가? “그래두 자네들 최선을 다해야 할게 아닌가. 아이구, 골통이야. 내 머리는 왜 이렇게 빠개지는것 같지?...” 뇌장은 갑자기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속이 볶이우는지 한참 뒹굴던 <장조롱박>은 문께로 기여가 문을 마구 두드려댔다. 모두가 단잠이 든 괴괴한 한밤중이라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보안일군과 복무원들이 소리를 따라 달려왔다.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오물에 범벅이 된채 인사불성이 되여가는 부시장 <장조롱박>을 보고 기겁하여 120에 긴급구조를 요청했다. 10여분후 구조일군들이 담가를 들고 달려와 <장조롱박>을 들어내려갔다. 구조차는 장송곡을 부르듯 <애고ㅡ애고> 소리를 지르며 기름이 바짝 마른 등잔의 스러지는 불꽃처럼 겨우 가물거리고 있는 <장조롱박>을 싣고 급급히 지구병원으로 달려갔다… … 일년후, 소식이 끊긴듯 하던 뇌장한테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왔다. “5장6부는 주의하여 들으라. 전국<5.1메달> 수상자이시고 성로력모범이시고 우수공산당원이신 주인님께서 자기몸도 돌보지 않으며 혁명하신 결과 그 공적을 인정받으셔 대리시장으로 승진하셨다. 이 기꺼운 경사를 맞아 각 부서에서도 존경하는 우리 주인님을 더 잘 모시도록 만부하를 걸어야 할것이다.” 그 소식에 장기들이 오구작작 떠들었다. “뭐? 주인님께서 더 승진하셨다구? 어이쿠, 요사이 기력이 좀 회복될가 하니 고생이 또 시작이구나.” 위장이 머리를 뱅뱅 내둘렀다. “인간들은 참 이상해. 왜 먹구 놀구 가지기를 좋아하시는 주인님같은 분들을 자꾸 승진시킬가?” 반쪽밖에 남지 않은 간장이 리해되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다 인간들이 말하는 정치를 잘 한다는거겠지.” 페장이 한마디 했다. “정치라는건 뭔데?” 취장이 두눈이 휘둥그래 물었다. “나두 잘은 모르지만 하여간 갖은 방법으루 웃어른들을 즐겁고 기쁘게 해드리는거래.” “웃어른들이 즐거우면 뭐래? 우리들이 다 죽게 됐는데.” 뇌장과는 달리 주인님의 승진에 장기들은 모두 풀이 죽어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빌었다. “주인님, 권력이란 코끼리도 때려잡는 신선몽둥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너무 련련하지 마시구 자기몸이나 좀 돌보시지유…우리들한테두 좀 살길을 주시구…우리 장기들중 어느 하나가 죽어도 주인님은 끝장입니다…”   <장백산> 2010년 제6기    
35    [수필]<공사당원>에서 벗어나다 댓글:  조회:1790  추천:70  2011-01-26
               <공사당원>에서 벗어나다                                허룡석     대대 공청단서기로 일하면서 <연변일보>와 <연변인민방송국>의 골간통신원으로 활약하던 나는 1973년 가을에 행운스럽게 연변일보사 골간통신원강습반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때 부지런히 기사를 쓰고 괜찮게 쓴다는 전 주 각 분야에서 온 9명 골간통신원이 강습반에 참가했다. 그중 조선족이 4명이였는데 내가 제일 나어린 통신원이였다. 나는 연변일보사에서 두달 남짓한 동안 <기자>견습을 하면서 지구를 다스린다는 <위대한> 농민들보다도 그들을 보도하고 선전하는 기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훨씬 우월함을 심심히 느끼게 되였다. 또한 연길에 와 난생 처음 연변가무단의 화려한 무대공연을 보게 되였으며 이밥을 먹으나 단조로운 농촌생활보다 강냉이국수를 먹으나 차원높은 도시문화생활이 더 부러워졌다. 나는 가는곳마다 환대를 받는 기자사업을 아주 흠모하고 애착하게 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 기자로 일해보고 싶어졌다. 농촌에서 태여나 농촌에서 자랐지만 혁명의 요람이 결코 농촌만이 아님을 깊이 터득하게 된 계기가 되였다. 도시에서 보고 들은것으로 어섯눈이 떠졌는지 나는 어느 때보다도 농촌을 떠나려는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해 강습반이 거의 끝나갈무렵 하루는 내가 편집부에서 편집일을 배우고 있는데 대대당지부에서 일보사에 전화를 걸어와 나를 찾았다. 공사에서 입당조직담화를 한다고 통지왔으니 오늘 저녁차로 집에 돌아오란다. 대대당지부에서 나를 그해 입당대상으로 삼고 이미 공사에 명단을 올려보낸줄 알고 있는지라 나는 청가를 맞고 그날 저녁으로 뻐스를 타고 집으로 나갔다. 이튿날 오전 공사당위의 조직위원이 내려와 대대사무실 독칸에서 나와 조용히 조직담화를 했다. 그는 당원의 의무며 당의 분투목표며 입당목적이며를 까근히 물었다. 나는 처음 하는 조직담화라 아주 긴장했지만 그래도 별로 막힘이 없이 묻는대로 술술 대답할수 있었다. 조직위원도 아주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당규약>내용과 기타 당의 리론지식에 대해 몇가지 묻고는 장차 영원히 농촌에 뿌리밖고 새농촌을 건설할 사상준비가 되여 있느냐는 관건적 질문을 했다. 나는 다른 질문에는 그런대로 막힘없이 대답했으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마음속 말을 솔직히 그대로 했다. 연변일보사에 가 학습하면서 장차 기자로 될 꿈을 키웠는지라 영원히 농촌에 뿌리밖으란 말이 어쩐지 내키지 않게 들려왔던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농촌에서 혁명하다가 혁명의 수요라면 조국의 어디든지 가서 계속 혁명할 사상준비가 되여있다고 했다. 그 말에 조직위원의 얼굴에서 대뜸 웃음기가 사라졌다.    “농촌사람이 농촌에서 혁명할 생각은 안하고 가긴 어딜 간단말이오?”    “전국은 한 장기판이라고 늘 말하지 않습니까? 전국의 어디에 가 혁명하든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마찬가진가 말이오. 사람마다 자기가 사는곳에서 열심히 혁명하면 중국혁명도 세계혁명도 그만큼 잘될게 아니겠소? 동무처럼 모두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한다면 이곳 혁명은 누가 하겠소? 그런 사람을 공산당원이라 할수 있겠소?”    “제가 입당하려는것이 중국공산당원이지 어디 우리 공사 당원입니까? 중국 공산당원이라면 중국의 어디에서든 혁명할수 있지 않습니까? 왜 꼭 우리 공사에서 일해야 혁명하는것이고 다른곳에 가면 혁명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이 동무 한다는 소리가 점점 말이 아니군. 크게 말하면 중국공산당원이지만 우리 공사에서 입당하면 우리 공사 당원과 마찬가지란 말이오. 그런 사상을 가지고 어떻게 입당한단 말이오? 이 동무  나가 좀 돌아다니더니 비둘기사상만 배워왔구만. 수천수만 도시청년들도 농촌 집체호에 내려와 영원히 농촌에 뿌리박고 혁명하겠다고 하는데 농촌사람이 농촌을 떠나겠다니. 정말 말이 아니군.>    조직위원이 화를 내자 나는 그만 아차 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당시에 농촌에 안착하지 않고 도시로 올라가려는 사상을 날아가는 비둘기에 비하여 <비둘기사상> 이라 하였다. 당시 지식청년들 입당의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가 영원히 농촌에 뿌리밖고 혁명할 사상준비가 되여있느냐 하는것이였다. 만일 비둘기사상이 있다는 락인이 찍히면 입당할수도 제발될수도 없었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속심을 터놓은 통에 조직담화가 맹랑하게 끝났다.    그날밤 나는 이리궁싯 저리궁싯하며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었다. 낮에 한 조직담화를 곰곰히 생각해볼수록 후회막급이였다. 남들처럼 마음에 없는 소리라도 영원히 농촌에 뿌리밖고 새농촌건설에 청춘을 다 바치겠다고 할것이지 하필이면 자기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아 조직위원을 화나게  할게 뭐람? 공사당위에서 입당문제를 토론할 때에 만일 조직위원이 나의 실적여부와 관계없이 아무촌의 아무개는 비둘기사상이 농후해서 몇해 더 고험해봐야 하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끝이 날것이 아닌가. 이건 일생문제를 결정하는 관건적 조직담화였는데. 그렇다고 래일 찾아가서 잘못했다하고 다시 이야기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후회해도 이젠 엎지른 물이라 주어담을수도 없었다. 에잇. 될대로 되라는 배심으로 나는 이튿날 일찍 연변일보사로 돌아갔다. 내가 조직담화하러 갔다온줄 아는 기자선생님들이 어찌 되였는가, 희망이 있는가고 관심조로 물었으나 나는 맥빠진 소리로 별 희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들 그 말을 겸손한 말로 받아들일뿐이였다. 영원히 끝나지 말았으면 하는 강습반의 아쉬운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다. 어느듯 우리는 <기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강습을 마친 나는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이 부풀다가도 실패된 조직담화를 생각하면 저도모르게 어깨가 처지군 하였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당지부에서는 조직담화에 대하여 일반언구도 내비치지 않자 나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아마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것 같았다.    1974년 1월중순의 어느날 대대당지부서기가 나를 찾았다. 내가 대대사무실로 가니 로지부서기가 나의 입당이 비준되여 내려왔다는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결과라 나는 혹시 롱담이 아닐가고 지부서기의 기색을 살폈다. 그러나 그의 엄숙한 기색을 보고 나는 그것이 실말임을 믿게 되였다. 나는 심장이 쿵쿵 밖으로 튀여나올듯 하였다.  로지부서기가 여사여사하게 계속 노력하라고 적지 않게 고무격려의 말을 해주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그저 고개만 끄떡끄떡 하였다. 내가 조직의 요구에 어긋나게 그렇게 <엉뚱한 소리>를 했는데도 어떻게 입당이 비준되였을가? 조직위원이 당위토론회에서 나의 <험담>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것은 나의 머리속에서 오래도록 맴돌던 수수께끼였다. 후에 내가 공사에 올라가 조직위원과 함께 사업할 때에도 나는 그걸 감히 물어보지 못했었다. 몇년후 내가 대학에 간후 첫 여름방학에 집에 왔다가 마을길에서 우연히 나와 조직담화를 했던 공사의 조직위원을 만나게 되였다. 알고보니 내가 대학에 간후 그가 우리 마을에 집을 잡고 이사왔다. 우리 마을이 공사마을과 가까와 그때 일부 공사간부들이 집값이 싼 우리 마을에 와 자리잡기도 했다. 조직위원은 대학생을 만나 반갑다며 자기집에 가 한잔 하자며 기어코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술상에 마주 앉아 그때에야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의문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조직담화할 때 내가 그렇게 엉뚱한 소리를 해 비준이 안될줄로 알고 몹시 후회했는데 어떻게 비준이 되였는가고 물었다. 조직위원이 시무룩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 자기가 겉으로는 나를 비판했으나 속으로는 이눔이 그래도 배짱이 있어 속심말을 한다고 느꼈다는것이다. 자기가 여러해 조직위원을 하면서 많은 하향, 귀향지식청년들과 조직담화를 해 보았지만 모두가 입에 발린 듣기 좋은 <원칙말>을 하는데 너처럼 <원칙에 어긋나는> 속심말을 하는눔은 처음 보았단다. 짧은 기간이나마 신문사에 가 보고 들어서인지 남들과 뭔가 다르더라는것이였다. 말로는 모두가 영원히 농촌에 뿌리박고 혁명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입당시켜놓으면 서로 농촌을 떠나가지 못해 안달이였다. 그럴바에는 정직하게 속심말을 하는 청년을 입당시키편이 났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당위회의때에 나와의 조직담화를 아주 우수하게 회보했다는것이다. 나는  그말을 듣고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인생의 관건적 시각에 내가 귀인을 만난것이였다. 만일 그때 입당하지 못하고 몇년 더 고험을 받았더면 나의 인생행로는 완전히 바뀌여졌을것이다. 나는 찰찰 넘쳐나는 술잔을 공손히 받쳐올리며 나의 심정을 그처럼 리해해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그후에도 나는 인생길에서 적지 않은 귀인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은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일생동안 귀인만 만날수는 없는것이다. 그후의 사업가운데서 고지식한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이면 아무리 상급지도자가 뭐래도 자기주장을 밝히며 잘 관철하지도 집행하지도 않아 “령도말을 듣지 않는다”느니 “사람이 보기와는 달리 고집불통”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더러 남들이 겪지 않는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사람의 타고난 천성은 목에 칼이 들어온대도 고치기 어려운가 본다.     입당한지 얼마 안되여 당령이 토끼꼬리만큼밖에 안되는 내가 어떻게 되여 대대당지부의  한결같은 추천과 공사당위의 비준을 거쳐 대대당지부서기로 되였다. 대대당지부서기들중 나이가 가장 어린 나는 일년후에는 공사에 올라가 공청단서기로 사업하게 되였다. 하지만 나는 나의 꿈을 실현하려고 해마다 대학에 갈려고 제기하였으나 공사당위에서 비준하지 않았다. 내막을 아는 간부가 가만히 알려준데 의하면 내가 후계자양성명단에 들어 조직에서 놓지 않는단다.   이듬해 겨울에 나는 한 생산대에 공작조로 내려가 징구량임무를 완수하던중 발목이 절골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성이 강해서인지 그 무슨 오기에서인지 나는 쌍지팽이를 짚고 그 다리를 끌고 계속 출근하며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탓이였는지 발목뼈가 잘 잇기지 않아 오래도록 그냥 절룩거리며 다녔다. 그해에도 나는 대학에 가겠다고 제기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 현에서 정식간부편제지표가 내려왔다. 나는 공사에 올라온지 2년이 되지만 아직 정식편제에 넘지 못한 림시간부였다. 이 지표는 몇년에 한번씩 내려오는 지표였는데 쉽게 차례지지 않는 <철밥통>지표였다. 공사당위에서는 이번 지표를 나한테 줄려하는데 만일 대학신청을 고집하면 이 지표를 다른 사람한테 돌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니 대학신청을 했다가 대학에도 못가고 지표도 잃을 가능성이 있으니 나더러 신중하게 고려하란다. 나한테는 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리궁싯 저리궁싯하던 나는 계속 대학신청을 하기로 작심했다. 어느 <떡>이나 다 차지할수는 없었다. 정식간부 편제지표는 후에라도 가질수 있지만 대학갈 기회는 많지 않으므로 령도눈에 잘못보이더라도 한번 더 부딪쳐 보고 싶었다. 내가 다리를 상해 절룩거리며 다니는데다 해마다 대학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것이 그냥 붙잡아두기도 안되였던지 공사당위에서는 내가 대학에 가는것을 끝내 동의하였다. 하여 나는 중앙민족학원에 가 공부하고 돌아와 내가 그처럼 하고 싶어했던 기자생활을 할수 있게 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간부로 제발되여 <혁명>의 수요로 계속 농촌에서 사업하던 동료들이거나 후에 제발된 후배들의 처지는 모두가 불행했다. 중점간부양성대상으로 지목되여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각 공사와 진에서 부서기, 부사장, 부진장으로 사업하며 새농촌건설에 청춘을 바쳐가던 지식청년들이 <4인무리>가 꺼꾸러진후 <4인무리>가 양성한 로케트식 간부로 지목되여 80년대초에 모두 면직되였다. 면직된후에는 나이가 넘어 대학시험에도 참가할수 없었고 도시에 들어오려 해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사업에서 좌절을 당하다보니 혼인이 불행해진 사람도 한둘이 아니였다. 한때 지식청년들의 우수한 대표들이 영원히 농촌에 뿌리밖고 새농촌을 건설해야 한다는 당의 말을 들었다가 생각밖으로 력사의 희생품으로 되고말았다. 남보다 우수했던 그들이 만일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대학으로 갔더라면 그들의 앞길은 휘황했을것이며 그들의 인생행로는 다시 씌여졌을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념원을 접고 혁명의 수요에 복종한것이 <죄>가 되여 력사의 무대에서 밀려나게 되였다. 사람들의 자유와 선택을 제멋대로 유린하고 희롱하던 그러한 독재적력사는 재연되지 말아야 할것이다. 광활한 천지에는 할 일도 많았지만 거기에는 또한 숱한 지식청년들의 애환도 묻혀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는 행운아였다. 2010년 <농가> 제 3기  
34    [수필] 범의 똥을 사러가다 (허룡석) 댓글:  조회:2156  추천:127  2011-01-20
범의 똥을 사러가다                                              허룡석        연길공원을 시민들한테 개방하면서부터 나는 오후 휴식시간이면 단위와 가까운 공원에 가 종종 산책을 하군 한다. 그때마다 그젯날의 범의 굴이였던 (지금의 곰의 굴) 낮다란 단층집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감회어린 눈길로 그곳을 한참동안 응시한다. 그러면 그 자리에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18세 애젊은 나이에 눈보라를 무릅쓰고 추위에 떨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수십년전의 나를 련상해본다. 올해 따라 경인년 범해여서인지 범의 똥을 사러왔던 그 감회가 여느 때보다 깊다. 1969년 정월이라 기억된다. 그때의 겨울은 왜 그리도 춥던지. 산과 들에는 숱한 눈이 내려 군데군데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칼날같은 서북풍이 갈기를 세우며 살을 도려내듯 사정없이 불어쳤다. 서북풍의 광란에 시달려 부근의 전선대에서 앵앵 울부짖는 처량한 몸부림소리가 집안에서도 똑똑히 들려왔다. 삼라만상이 추위에 움츠러들어 기를 펴지 못하는 몹시 추운 날씨라 우리 남매들은 그날도 집안에 들이박혀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추운 날씨에도 갑자기 밖에서 “허유사 계시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주간에서 새끼를 꼬시던 아버지가 “예”하며 일어나 웃방으로 들어가셔 방문을 열었다. 마을의 아버지친구 몇분이 마실을 오신것이였다. 추운 겨울이라 별일 없을 때면 마을의 가까운 아버지친구분들이 종종 놀러오시기도 하고 아버지도 드문히 놀러나가시기도 했다. 간혹 술생각이 나면 10전 20전씩 모아 나를 심부름시키며 술추렴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모여앉아 한담하시기도 했다. 잠시후 방안에서 아버지친구분들의 한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한분이 문득 “이렇게 찬 날씨에 허유사치질은 괜찮으시우?” 하는 문안소리가 들려왔다. “뭐? 울 아버지 치질로 앓고 계시는가?” 나는 속으로 저으기 놀랐다. 나는 여태 그런줄 감감 모르고 있었다. “뭐 그냥 그렇치유, 날씨가 차지니 더 불편해지는구만…” “그럼 병원에라두 가보셔얍지.” “대대위생소에 갔대야 별 약두 없구.” “그럼 공사나 용정 큰 병원에 가보십지.” “뭐 고만한 병에 큰 병원까지야…” 아버지의 병과 상관되는 이야기라 나는 은근히 귀를 강구었다. 이때 다른 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질에는 범의 똥이 밀방이라던데…” “예? 범의 똥을 어떻게 쓰는건데?” “말리운 가루를 화로에 뿌려 태우면서 그 연기를 쏘이면 인차 낫는다구는 하더구만…” “말이사 쉽지만 그 귀한 범의 똥을 어데가 구하겠수?” “글쎄, 지금은 범잡았다는 소리두 없구 하오만…” 잠시 침묵이 흐르는듯 하더니 다른 한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자니 연길공원에 범이 있다던데 혹 거기가면 구할수 있지 않을가?” “그렇구먼, 거길 가면 구할수 있을것 같구먼.” “그런데 이 추운 날에 범이라구 굴속에 박혀있지 않구 밖에 나와 있겠수?” “차차 날씨나 떨어진후에 가보면 어떻겠는지” 아버지친구분들의 이야기는 점차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두었다. 나는 지난해 가을에 초중을 졸업하고 마을에 돌아오다보니 아버지가 그간 치질로 고생하시는줄 여지껏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도 언제 한번 우리 앞에서 불편하다는 내색을 내신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 친구분들도 알고 있는 일을 아들인 내가 모르다니. 나는 몹시 자책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모시고 룡정이나 연길의 큰 병원에 가 병보일 형편도 못되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큰 병원으로 갈수 있을 때도 아니였고 여러가지 약들이 흔할 때도 아니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밀방으로 쓰인다는 범의 똥을 구해오는 일이였다. 그것이 얼마나 과학적 근거있는 밀방인지는 모르겠지만 약도 마음대로 써보기 어려운 때에 그것으로라도 아버지의 원을 꺼드리고 싶었다. 나는 연길공원에 가 범의 똥을 구해오기로 작심했다. 언젠가 한번 방학에 연길에서 마을친구집에 놀러왔던 애들을 따라 연길에 갔다가 공원에 가 범을 구경한적이 있었다. 혹 돈이라도 받을가봐 나의 재정밑천인 돈 2원을 준비했다. 이튿날에도 눈보라는 멈출줄 몰랐다. 나는 마을 친구네 집으로 놀러나가는척 하면서 공사마을로 향했다. 연길로 한번밖에 통하지 않는 뻐스가  혹 눈보라때문에 오지 않으면 어쩔가 걱정했는데 좀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뻐스가 왔다. 나는 숱한 사람들과 함께 비비대기치며 겨우 뻐스에 끼여올랐다. 명태드름을 박아실은듯한 뻐스는 눈길을 톱으며 한시간남아 달려서야 연길에 도착했다. 나는 점심먹을 념도 하지 않고 곧추 공원으로 갔다. 연길공원에서도 눈보라가 창살에 찔린 맹수같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하늘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무섭게 밀려다니는 눈보라에 겁을 집어먹은듯 공원안의 소소리 솟은 나무들도 사정없이 몸부림치며 쏴쏴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보라가 살판치니 공원에 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눈조차 뜨기 어려워 팔소매로 눈보라를 막으며 범의 굴을 찾아갔다. 다행이도 범을 가둬넣은 낮다란 단층집의 철문도 기승부리는 눈보라에 열렸다닫혔다하며 요동치고 있었다. 단층집안의 좁다란 복도에 들어가 철창안으로 범의 굴을 들여다 보니 언제 눈것인지 고맙게도 범의 똥 한무지 얼어붙은것이 보이지 않겠는가. 나는 날듯이 기뻤다. “오늘 헛걸음은 하지 않게 되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숨이 활 나왔다. 하지만 사양원이 와서 저 똥을 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번밖에 없는 집으로 가는 오후 뻐스시간을 놓치지 말게 사양원이 빨리 와줬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으나 사양원은 어데가 있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범이 드나드는 단층집복도에 서있자니 사나운 범이 나올가봐 은근히 겁이 났다. 전에 사람들과 함께 범구경을 할 때는 무서운줄 몰랐는데 그안에 혼자 서있자니 저으기 오싹해났다. 밖에 나오니 칼바람이 옷속을 파고 들어 솜옷을 아무리 여며도 소용없었다. 솜신(왕바신)을 신은 발까지 시려들어  동동 굴러봐도 추위를 막을수 없었다. 별수없이 또다시 단층집복도에 들어가 바람을 피하지 않을수 없었다. 찬바람이 불어치지 않을 뿐 얼대로 언 단층집안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들어가고 나가기를 여러번 반복했으나 사양원은 여전히 나타나 주지를 않았다. 지금 같으면 사양원실에나 사무실에라도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할수도 있었겠지만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순진하기만 하던 그때에는 그래도 되는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아무리 춥고 늦어도 범똥이 있는 곳에서 그냥 그렇게 기다려야만 하는줄로 알았다. 시계도 차지 못한 그때에 해를 쳐다보며 어림짐작으로 시간을 가늠하는수밖에 없었다. 뻐스시간이 다 지나간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조바심이 났다. 그렇다고 그 귀한 범의 똥을 보고 자리를 뜰수도 없었다. 래일 다시 오느라면 저 범의 똥이 없어질수도 있지 않는가. 그럼 또 헛걸음치게 될판이였다.  해도 추운게 싫은지 누더기솜이불같은 구름속에 숨어들어 희뿌옇게 륜곽이나 겨우 드러내고 걱정스레 나를 내려다 보는것 같았다. 추위에 떠는 해가 서쪽에 뉘엿해질 때에 사양원이 나타났다. 늦기는 했지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단층집에 들어서던 사양원이 어둑스레한 안에서 서성대는 나를 보더니 흠짓 놀라했다. 이 추운날에 무슨 정신빠진놈이 범구경을 와있나 해서였으리라.   “저 안에 있는 범의 똥을 좀 팔겠습둥?” 내가 겨우 입을 열었더니 사양원은 의아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범의 똥을 팔라구? 그걸 사서 뭘하는데?” “울 아버지 약에 쓰자꾸 그래꾸마.” “범똥을 약에 쓴다? 무슨 병에 쓰는건데?” “치질에 쓴다는데 말리워 그 연기를 쏘이문 즉페랍더구마.” 나는 범의 똥을 꼭 팔아줍시사하는 뜻에서 나의 말을 보태기도 했다. 내가 이 추운곳에서 몇시간이나 자기를 기다린줄 알고 사양원은 두눈이 휘둥그래했다. “청년은 어디서 왔소?” “저 모산너머 동성서 왔습꾸마.” 사양원은 자물쇠를 열고 철창안으로 들어가 범이 드나드는 철문을 닫더니 삽으로 범의 똥을 끄기 시작했다. 그런데 범의 똥이 얼마나 단단히 얼어붙었는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련속 삽질을 할수록 부스러기 범똥들이 사처로 튕겨나갔다. 나는 그것이 몹시 아까왔다. 저것두 아버지 약으로 될건데… 드디여 범똥이 떨어져나갔다. 사양원은 어데서 마분지같은걸 얻어다 범의 똥을 싸주었다. 그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주위에 떨어진 부스러기들도 쓸어모아 나\\에게 넘겨주었다. “얼마를 받겠습둥?...” 나는 범의 똥을 넘겨받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올때 뻐스비를 30전 내고 갈때 뻐스비로 30전 남기자고 보니 나머지 돈이 모자랄가봐 조마조마했다. 사양원은 나를 쳐다보며 퍼그나 부드럽게 말했다. “이 추운 날에 아버지약에 쓰겠다구 범똥 얻으러 온걸보니 큰 효자구만. 돈은 무슨. 그냥 가지구 가오.. 날두 저문데.”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 갚는다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원망이 금방 사라졌다. “감사하꾸마.” 나는 꾸뻑 인사하고는 그 걸음으로 뻐스부로 달려갔다. 이젠 뻐스시간이 다 지난줄 알면서도 행여나 해서였다. 하지만 뻐스부안은 횡뎅그렁했다. 동성으로 가는 뻐스는 벌써 한시간전에 떠나고 없었다. 나는 다리맥이 풀려 걸상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젠 눈보라를 무릅쓰고 30리길을 걸어가야 했다. 연길에 친척이라군 없다보니 자고 갈 집도 없었다. 밤에 모아산을 넘기 싫어 이 대합실에서 하루밤 보낼가고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도 말이 아니였다. 떠나올 때 제시간에 돌아올수 있겠거니 하여 집식구들과 말도 없이 떠나왔었다. 해가 지기전에 떠나야 했다. 나는 하루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범의 똥을 겨드랑이에 끼고 길을 떠났다. 잰걸음으로 모아산 기슭에 닿으니 벌써 해가 꼴깍 넘어갔다. 해가 떨어지니 날씨도 더욱 추워졌다. 바람도 더욱 기승을 부렸다. 하늘을 덮었던 누더기솜이불같던 구름도 어디로 밀려갔는지 하늘은 개여있었다. 검푸른 하늘가에 드문드문 얼어붙은듯한 별들이 얼음쪼각마냥 깜빡깜빡 차거운 눈짓을 해왔다. 서북풍은 길량켠 나무숲을 휩쓸며 눈보라를 휘말아 올렸다가는 목덜미에 눈가루를 쓸어넣군 했다. 비록 낡은 솜옷을 입고 털모자를 썼으나 그것으로 대소한간의 추위를 막기는 어림도 없었다. 이렇게 가다는 중도에서 얼어죽을것 같았다. 나는 길가에서 나무가지에 걸려 춤추는 비닐끈을 하나 주어 허리를 질끈 동이고 범의 똥을 품속에 넣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 숨이 차면 걷고 걷다가는 또 달렸다. 그때는 모아산에도 가끔씩 범이 출몰하고 어느 으슥한 곳에서 강도가 도끼를 쥐고 뛰쳐나온다는 무서운 소문이 파다할 때였다. 나는 문득 범이 범의 똥 냄새를 맡고 쫓아오면 어쩔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며 온 몸에 소름끼치고 머리카락이 쭈볏이 일어서는듯 했다. 그렇다고 겨우 얻은 범의 똥을 내던질수도 없었다. 나는 얼결에 길가에서 돌덩이 하나를 주어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정신없이 내뛰였다. 어쩌다 나타나는 트럭의 헤트라이트가 그렇게 반가울수 없었다. 그 불빛이 잠시나마 산속의 어둠을 몰아주고 무서움을 쫓아버려주었다. 혹 마음좋은 운전수를 만날수 있을가 하여 룡정방향으로 가는 트럭을 보면 손도 들어보았으나 누구도 무인지경에서 사람을 태워주려 하지 않았다. 그때는 쏘련특무들이 중국에 많이 들어왔다고 낯선 사람만 보면 다시 한번 더 쳐다보라고 할 때라 산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것을 더 무서워했다. 트럭이 휙 지나가면 나는 그 바람에 말려들듯 트럭뒤를 따라 한참 달리기도 했다. 춥고 무서우니 맥이 드는줄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달리며 모아산을 넘어서서 세전이벌에 들어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평야라 눈보라는 몸을 가누기 어렵게 산속보다 더 세차게 불어쳤지만 무서움은 그래도 사라졌다. 그 추운날에도 정신없이 뛰며 오다보니 온 몸이 물자루가 되고 녹초가 돼버렸다. 나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온돌턱에 물앉았다. 옴 몸이 눈투성이되여 집안에 들어선 나를 보고 온집 식구들이 깜짝 놀라했다. “너 어디 갔다 인제야 오는거냐?” “ 연길에…이게 범의 똥이꾸마…” 나는 품속에서 맥없이 종이꾸러미를 꺼내놓았다. “뭐? 범의 똥? 범의 똥은 얻어다 뭐하게?” 어머니가 의아쩍어했다. 이때 아버지가 놀라워 하셨다. “너 어제 방에서 우리가 하는 애길 엿들은 모양이구나? 그래 그 똥 얻으려 이 칩은날에 연길공원에 갔다왔단 말이냐?” 그제야 온 집식구들은 내가 아버지 약에 쓸 범의 똥을 얻으려 말도 없이 연길공원에 갔다온줄 알게 되였다. “야, 기차다. 그럼 뻐스라도 타고 올게지. 이 밤중에 쯧쯧쯧…” “뻐스를 놓쳐버려서…” “밥두 못먹었겠구나…” 나는 차려주는 저녁밥도 마다하고 가마목에 기여가 그대로 드러누웠다. 하루종일 굶었지만 그보다도 팽팽하게 틀어져있던 탕개를 활 놓으니 사지가 물러나는듯 하여 몸을 움직이기 더 힘겨웠다. “얼마나 맥이 빠졌으문 밥두 안먹구 들어눕기부터 하냐…” 어머니는 쯧쯧쯧 혀를 차며 두터운 이불을 내다 덮어주었다. 따뜻한 온돌에 누우니 맥이 다 빠져버린 몸이 그대로 녹아내내리는듯 했다. 얼마 안되여 나는 저도모르게 혼곤히 꿈나라에 빠져버렸다.     2010년 <연변녀성> 제5기      
33    송아지가죽으로 설을 쇠다 댓글:  조회:2468  추천:105  2010-12-28
송아지가죽으로 설을 쇠다허룡석내가 아홉살나던 해에 수천만이 굶어죽으며 온 세상을 놀래운 우리 나라 3년재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맞띄우게 되였다. 그 시기에 전국 인민들은 어데라없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부종병에 시달리다 하루가 멀다하게 죽어나갔다. 세전이벌에서 벼농사를 짓는 우리 마을도 례외가 아니였다.그때 국가배급을 타는 도시사람들보다도 농사를 짓는 농촌사람들의 량식고생이 훨씬 더 심했다 한다. 굶어죽은 사람들도 거의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였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해마다 지은 곡식을 모두 징구량으로 바쳤는지 인민공사 공공식당에는 먹을 량식이 없었다. 사람들은 일년사시절 공공식당에서 주는 하루 세끼 멀건 푸대죽으로 끼니를 에웠다. 그러다보니 피골이 상접한 어른이고 아이고 모여앉기만 하면 먹을 소리뿐이였다. 오죽하면 누군가 자기 허벅다리 고기라도 베여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가 우월한 사회주의제도를 모욕했다고 비판까지 받았겠는가.그래도 상급에서 방법이 많았다. 간부들은 대식품으로 모자라는 식량을 보태라고 가지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에 따라 각 생산대 식당에서는 콩깍대를 가루내여 전분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피나무껍질을 벗겨 <송이떡>을 빚어먹기도 했다. 돈화인가 안도인가 먼 산에 가서 초탄을 (그때는 꼬지깨똥이라고 불렀다.) 캐다가 그것을 물에 불궈 우려먹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먹으면 어른이고 아이고 뒤를 보지 못해 고생들이였다. 며칠씩 뒤를 보지 못하면 비누물을 풀어먹이기도 하고 바르기도 하다가 그것도 안되면 꼬챙이로 돌덩이같은 뒤를 파내야 했다. 어떤 때는 뒤가 피투성이 되여 앉기조차 어려웠다. 배고파 초탄이라도 먹지 않을수도 없고 먹은 뒤에는 뒤가 막혀 죽을 고생이였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온몸이 퉁퉁 붓기여 손가락으로 쿡 누르면 헛살이 우물처럼 패웠다. 년세많고 기력이 떨어진 로인들이 사흘이 멀다하게 세상을 떴다. 림종을 앞둔 로인들의 소원이란 죽기전에 입쌀죽 한종지 먹어보는것이였지만 그 소박한 소원도 만족시킬 방법이 없었다. 겨울이 오니 먹을것이 더욱 모자랐다. 소학교에 다니던 우리 철모르기 애들은 학교 갔다오면 먼저하는 역사가 식당앞에 무져놓은 콩깍대무지를 옮기는것이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콩깍대무지를 옮기면 그 밑에서 떨어진 콩알 얼마라도 주어먹을수 있었다. 처음 몇번은 콩알 한두줌씩이라도 주어 나눠 먹을수 있었지만 너무 자주 옮기니 나중에는 여나문알씩밖에 주어먹지 못했다. 숱한 힘을 빼고 콩알 몇알 주어먹는것이 한없이 밑지는 일이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콩알을 냠냠 주어먹는것이 마냥 즐거웠다. 주어먹은 뒤끝이면 천진하게도 서로 쳐다보며 “너는 몇알 줏어먹었니?” 라고 묻군 하였다.모든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사신과 싸우고 있을 때에도 무정한 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설이 오니 골치아파난것이 생산대간부들이였다. 설에마저 어찌 사원들한테 푸대죽과 대식품을 먹이랴는 걱정에서였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래동안 굶주림에 뼈가 앙상하고 사흘이 멀다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때에 뭔가 생활 개선이라도 할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때 생산대간부들이 련며칠 회의를 열고 전문 식당의 생활개선문제를 둘러싸고 토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래도 뾰죽햔 수를 찾지 못했단다. 집체에서 기르는 빼빼마른 소나 돼지를 마음대로 잡을수도 없었다. 누가 제맘대로 집체물건을 다쳤다간 집체생산을 파괴하는 반혁명감투를 쓰기 십상이였다. 모두들 방도가 나지 않아 애궂은 담배만 뻑뻑 피우고 있을 때에 창고보관원이 들어와 언젠가 생산대창고에서 송아지가죽 한장을 본듯하다는 희소식을 알렸다. 그 소리에 생산대간부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고양이도 없어 못잡아먹을 세월에  이보다 더 기쁜소식이 없었다. 생산대간부들은 우르르 창고에 쓸어나가 창고안을 훌떡 뒤집었다. 그들은 어느 잡동사니밑에서 언제 처박아둔것인지 끝내 송아지가죽 한장을 끄집어냈다. 그런데 그 송아지가죽도 흉년세월에 무사치 못했다. 배고픈 쥐들이 송아지가죽가운데를 커다란 구멍이 펑 뚫리게 파먹었던것이다. 원래 크지 않은 송아지가죽인데다 <총명한> 쥐들까지 먼저 추렴하다보니 남은것이 얼마 안되였다. 생산대 300여명 인구가 함께 생활개선하기는 어림도 없었다. 생산대장은 맥없이 “어쩌겠소. 요것뿐이니 로인들만 대접시키기오”라고 했단다. 그말에 다들 찬동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도 없기보다는 나았다. 년세많고 저항력이 약한 로인들이 사원들과 함께 굶주림에 허덕이다보니 밤을 자고나면 로인들의 자리가 비여있었다. 50여호되는 생산대에 로인들이 몇분 남지 않았다.송아지가죽으로 로인들께 설을 쇠여드린다는 장엄한 결정이 선포되자 로인들은 기쁨으로 들끓었고 다른 사람들은 맹랑하다는듯 입만 쩝쩝 다시였다.설전날에 송아지가죽을 삶게 되였다. 숱한 사람들이 식사하는 식당에서 송아지 가죽을 삶으면 불편하기에 식당뒤집마당에 커다란 중국식가마를 걸어놓고 송아지 가죽을 삶게 되였다. 벼짚으로 송아지가죽을 그을리는 냄새가 어찌나 구수한지 어른 아이할것없이 멀건 푸대죽을 한 사발씩 떠주는 식당으로 가지 않고 뒤집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가마를 둘러서서 닭알침만 꿀꺽꿀꺽 삼켰다. 나도 다섯살우인 둘째누나의 손을 잡고 그속에 끼워 서서 연신 입술을 감빨았다. 그을린 가죽을 칼로 썩썩 긁어 손가락너비만큼씩 베여 가마에 넣으니 가죽끓는 냄새 또한 기막히게 구수했다. 그 냄새가 오래동안 고기라군 구경도 못한 사람들의 목젖을 어찌나 심하게 자극하는지 보는 사람마다 련속 방아를 찧지 않을수 없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목안이 근질거려 기침까지 콜록콜록 깇어댔다.실은 로인들을 자시라고 했지만 로인들마다 손자손녀생각에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소고기>라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던가부다. 로인들은 집안에 들어가 국물이나 훌훌 마시고는 자기한테 차례진 손가락만큼한 삶은 소가죽을 한두개씩 들고나와 자기 손자손녀들 손에 쥐여주었다. 그것을 받아쥔 애들은 날듯이 기뻐하며 맛갈스러운 소가죽을 정신없이 빨아댔다. 한꺼번에 먹는것이 아까와서 자랑스레 빨기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나에게는 그것나마 차례지지 않았다. 삶은 송아지가죽을 걸탐스레 빨아대는 애들을 부럽게 바라보다못해 나는 누나를 쳐다보며 졸랐다.“누나, 나두 저걸 먹어볼래…”“글쎄 없는걸 어찌겠니…”“저 애걸 좀 빌려달라해, 나두 빨아보게…”“그 애것두 하나밖에 없는데…”먹을것이 귀하니 인정마저 박해져 누구 하나 나에게 가죽  끄트러기마저 쥐여주는 사람이 없었다.나는 누나손을 뿌리치고 달려가 그을린 소가죽을 칼로 긁던 자리에 쪼크리고 앉았다. 소가죽에서 긁혀나온 검댕이를 손가락으로 묻혀 혀끝에 대여보니 그것도 찝질한게 꽤나 고소했다. 나는 검댕이를 쥐여 마구 입에 쑤셔넣었다. 갑자기 큰 발가락이 삐죽히 나온 자그마한 솜신 두짝이 나의 시야에 안겨왔다. 고개를 쳐들고 보니 새초롬한 얼굴을 한 누나가 나의 앞에 오똑 서있었다. “헤헤, 누나 이것두 맛있어…” 나는 계면쩍게 웃었다. 검댕이로 어룽어룽해진 나의 자그마한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던 누나는 나를 와락 일쿼세우더니 나의 손을 끌고 쮕쥉 집쪽으로 내뛰였다.“누나, 검댕이 아직두 있는데…”“누가 그따위걸 주어먹으래…’내가 끌려가면서 쳐다보니 발가우릿하게 언 누나의 눈에서는 두줄기의 눈물이 쭈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나의 눈물을 보니 웬지 나도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후 내가 어른이 되고 애아버지가 된후에도 누나는 명절때 집안식구들이 모여앉으면 그때 그 일을 께내면서 자주 눈물을 짓군 했다.“그때 소가죽을 얻어먹지 못해 검댕이를 주어먹던 오래비가 얼마나 불쌍하구 기막히던지…”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부르짖으며 사람잡이만 하던 <계급투쟁>과 <혁명>이란 무시무시한 낱말이 사라지고 개혁개방의 옳바른 시책으로 지금은 세월이 많이 달라졌다. 이젠 먹을것이 흔해빠져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안먹고 밥을 적게 먹고 건강식을 찾으며 다이어트를 한다. 림종을 앞둔 로인들이 죽기전에 입쌀죽 한그릇 먹어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는 일이 더는 없게 되였다. 전국 인민들을 전례없던 굶주림이란 도탄속에 몰아넣었던 그런 력사는 재연되지 말아야 할것이다. 가난은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니까. 2010년 <연변녀성>제2기
32    《중국말이사 마다매 쥑여줬지》 댓글:  조회:2307  추천:135  2010-12-27
《중국말이사 마다매 쥑여줬지》허룡석일전에 고향에 살고있는 사촌형님의 생신이여서 모아산너머 고향마을에 다녀온적이 있다. 사촌형님은 나보다 6살이나 이상으로서 이젠 60중반에 이르렀다. 사촌이라도 친형제가 따로 없는 나로서는 그분을 친형님으로 받들어 모시고있다. 하여 해마다 그의 생신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다녀오군 했다.올해 형님의 생신날은 마침 국경절연휴일 기간이여서 여유있게 다녀왔다. 생신날에 형님은 집에다 양 한마리 잡아엎었다. 전에는 룡정이나 연길에 가 고기와 남새를 사다 반찬을 갖추느라 했으나 올해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아들며느리는 한국에 일하러 나간지 몇해가 되였고 형수님은 손녀공부때문에 연길에 들어와 집을 잡고있다보니 고향집은 형님 혼자서 지키고 있는 쓸쓸한 형편이였다. 이젠 시내에 다녀올 사람도 없어 편하게 양 한마리 사서 잡은것이란다. 그것도 근년에 마을에 이사온 두 한족이 무상으로 잡아주겠다고 자진하여 나서 그렇게 됐단다. 아마 한족들이 외딴곳에 이사와서 본고장 토배기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팔걷고 나선 모양이였다. 고향에서도 많은 젊은이들과 처녀들, 젊은 아낙네들이 거의다 외국이나 대도시로 돈벌이가는통에 마을집들이 많이 비고 밭이 묵어나게 되여 외지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30%가량 된단다. 그것도 한족들이 대부분이여서 청일색 조선족 마을이 점차 한족마을로 변해가고 있었다.양잡은 수고비를 받지 않겠다니 형님은 미안하여 그 두 한족도 술상에 앉히게 되였다. 그러다보니 전에없이 형님의 생신술상에서도 한어가 더러 오가게 되였다. 그런데 그 한어란 조선말식 한어여서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두 한족은 알아듣는지 <어. 어>하며 자주 고개를 끄떡이였다.<한족들이 많아지면 형님네 한어수준이 많이 늘겠소.> 내가 서글프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는다는게 뭐야, 이젠 혀가 다 굳어져서 우리두 조선말을 하는지 중국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두 이 동네 중국말이사 마다매(큰어머니, 즉 우리 어머니) 쥑여줬지.>형님이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한자리에 앉아있던 형님과 자별난 친구간인 동네집 형님 한분이 그 말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생전에 우리 어머니와 아주 가깝게 지내던 분이였다. <그때 너 엄마 독보조 선전위원하면서 정말 중국말은 쥑여줬지 뭐.>라고 했다. 그 말에 모두들 전에 일들이 생각나는지 하하하 웃어주었다.어머니의 창조적인 <교수급>한어수준은 시내사람들에 비할바는 못되였지만 그래도 마을사람들은 알아주었다. 세전이벌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마을은 세개 생산대가 함께 자리잡은  150여호 되는 큰 동네였다. 그때는 각 생산대에 한족집 한두호씩 밖에 없어 청일색 조선족 마을이라 할수 있었다. 게다가 그 한족들이 조선말을 잘했기에 조선족들은 한어를 할 기회가 없었다. 당시 마을 어른들 가운데는 한어라면 <니디워디>도 번질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개혁개방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한집에서는 큰아들이 남방에 일하러 갔다가 한족처녀를 데리고 왔는데 떠나갈 때에 시어머니될 분이 손을 저으며 <짜이잰>을 한다는것이 애들이 서로 욕할 때 쓰는 <차우니마>를 불러 한족처녀가 기절해 번져질번 했겠는가.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의 한어가 제법이였다. 그때 그 큰 마을에 방아가 두집밖에 없었다. 앞마을쪽에는 우리 집에 있었고 뒤마을쪽에는 박씨성을 가진 집에 있었다. 먹을것이 변변치 못한 세월에 방아쓸 일이 많았다. 마을사람들은 떡가루, 고추가루를 내거나 벼이삭, 돌피이삭 찧을 일이 있으면 우리집부터 찾아 오다보니 방아가 한가할 사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대대에 속하지만 본고장토배기인 우리 집과 면목을 잘 아는 다리아래 한족 녀인들까지 찾아오다보니 방아공이에 불이 일 지경이였다. 그러다보니 우리 마을에서 어머니가 한족들과 접촉할 기회가 가장 많았다. 그덕이였는지 <니디워디>도 모르시던 어머니의 한어가 날따라 늘어갔다. 한족을 만나면 <츠판라?> (吃饭了?)하고 인사할줄도 아셨고 한족들이 방아찧으러 오면 <니디 바에(방아) 당장?>하시기도 했다. 그러다도 방아가 고장나 쓸수없을 때 하시는 한어가 더 가관이였다. <오널 투당탕 바에살괘 홰라(坏了), 니디 못당장. 취바.> 하면 한족들도 그 말을 알아듣는지 <홰라? 찐탠 못당장?>라고 서운해하며 돌아서기도 했다. 그래도 드살짝이 센 어떤 한족아낙네는 방아가 고장났다는것이 못미더운지 기어코 방아간에 가보고서야 돌아서군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불쾌해서 <에구 이년덜이 내 못당장이라문 못당장인가 할게지 니디 제누깔루 캔캔러바(看看了吧), 쩬디(真的) 못당장바?> 하시면 한족들은 <쩐디 못당장, 쩐디 못당장.>하며 미안해 했다. 이렇게 <바에 당장, 못당장>이 어머니의 첫번째 <어록>이 되여 어머니가 안계실 때면 우리도 방아찧으러 오는 한족들과 곧장 써먹군 하였다. 한족들도 그 말에 익숙해져 그렇게 말해야 알아들었다.<문화대혁명>시기였다. 9차당대회가 열리기전에 우리 마을에서 실제행동으로 9차당대회를 맞이한다며 모주석을 노래하고 공산당을 노래하는 주제로 문예공연 경색을 벌리게 되였다. 대대 각 생산대에서 모두 모택동사상문예선전대가 나와야 하는건 물론 로인독보조에서도 절목을 내놓아야 했다. 하루 저녁은 내가 생산대선전대에서의 문예공연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독보조로인들이 그때까지도 우리 집에서 노래연습을 하고있었다. 아마 우리 어머니가 독보조 선전위원이여서인지 로인들이 자주 우리 집에 모이군 했던것같다. 내가 방에 앉아 얼결에 로인들이 한어로 하는 노래를 들을라니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다시 곰곰히 들어보니 그만 속이 섬찍해났다. 이대로 공연을 나갔다는 큰일 날 일이였다. 내가 방문을 벌컥 열고 정주간을 내다보니 로인들이 두줄로 서서 두손을 량쪽으로 점잖게 흔들며 <댔다뗐다 우리 딸이 엉치따, 했소뺐소 부리…> 하며 아주 엄숙하게 노래부르고 있었다. <당의 은정 영원히 잊을수 없다네>(党的恩情永不忘)란 노래를 한어로 부른다는것이 발음이 억망이였던것이다.내가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하여 정주간에 대고 소리질렀다.<어마이네 지금 무슨 반동노래를 부르구 있슴둥?>그러자 노래소리가 뚝 그쳤다.사촌형님친구의 어머니가 나를 흘겨보며 화를 벌컥  내셨다.<에구, 제 무슨 말을 그리 무섭게 하오? 저두 선전대라는게 이 노래두 모르오?><모르는게 아니라 발음이 틀려두 형편없어 그래꾸마. 그게 탠따띠따지 (天大地大) 어디 댔다뗐답둥? 그리구 뿌루 당더 언칭따지(不如党的恩情大) 어디 우리 딸이 엉치 땁둥? 허썬하이썬이지(河深海深)어디 했소뺐소둥? ...”<무스게라우? 우리 그렇게 불렀다구? 에구 이걸 어째…?>키를 맞춰 줄섰던 로인들이 금시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네들은 제가끔 나동그라져 온돌바닥을 두드리며 웃어 번져졌다.<우린 잘 부르느라는게 어쩜 듣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듣긴다우?><에구구, 노래를 잘 하자다 반혁메 될번했구만…>그때는 계급투쟁로선이 살판쳐 무슨 끄트라기라도 잡지 못해 감투를 씌우지 못하는 세월이라 남녀로소 모두가 신경이 팽팽해있을 때였다.<조선말루 하십지 왜 안되는 한족말루 하느라 그랩둥?><야, 우리라구 무슨 하기 좋아 그래겠소. 두가지 말루 하면 점수를 더준대서 그래지. 조선말루는 잘하는게 중국말이 아이돼 이렇게 자꾸 연습하재이우.>사실 그랬다. 공작대에서는 한 절목을 조선어로만 하면 5점을 주고 한어로까지 하면 10점을 준단다. 조선족마을인데도 한어로도 하라고 점수로 자극했었다. 집체호로 내려온 한족 지식청년들과 공작대에 한족들이 더러 있기때문이란다.<이것두 저네 엄마 대대학습반에 가 배워다 우리게 배와준게우>알고보니 우리 어머니가 독보조 선전위원인데다 한어도 그중 잘한다고 로인들의 추천을 받아 대대에서 꾸리는 학습반에 다녀오셨던것이였다.<거보우, 못가겠다는걸 노친네 기어이 가라던게 …> 어머니가 별명하셨다. 이분들이 울 엄마 반혁명만들 일이 있나. 내가 울 엄마를 위해서라도 로인들의 한어발음을 바로잡아주어야 했다. 그래서 련 사흘간 늦은 저녁이면 로인들의 노래연습을 도왔다. 하여 독보조의 중창은 대대문예경연에서10점을 맞은데다 표양까지 받아 로인들이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발음이 억망인 그대로 나가 불렀더면 어떻게 되였겠는가.  <댔다뗐다 우리 딸이 엉치따>가 어머니의 두번째 <어록>이 되여 마을사람들의 사사로운 모임에서 웃음을 자아올리는 펌프가 되였다.이듬해 가을철에 어머니가 터밭 바자굽에 심어키운 말린 박과 호박,해바라기 등을 이고지고 룡정에 가 장을 보게 되였다. 장본 돈으로 어머니는 량식보탬을 하려고 수수쌀 20여근 사가지고 돌아오셨다. 뻐스비 20전이 아까와 어머니는 15리길을 걸어 오셨다. 내가 뻐스를 타고 오실것이지 이 무거운 짐을 이고 어떻게 오셨는가고 나무람하자 어머니는 <오다 군대 둘이 도와줘서 별로 힘 안들었다.>고 하셨다. 알고보니 태평촌에서부터 해방군전사 두명을 만나 어머니의 짐을 빼앗다싶이 해서 엇갈아 마을앞까지 메고 왔단다. 그때는 해방군들이 뢰봉, 왕걸, 맥현득 등 영웅인물들을 따라 배우며 다투어 인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할 때라 해방군전사를 만난것이 다행이였다. 먼길에 가벼운 짐 없다고10리길을 엇갈아 수수자루를 메고오다보니 아마 전사들도 꽤나 힘들어했나보다. 그래서 어머니가 보기 미안하여 당시에 가장 류행되는 모주석 어록으로 그들을 고무해줬단다.<사둔제신, 비파시샘, 배추만남, 지깡치 쌍리> (下定决心,不怕牺牲,排除万难,去争取胜利)라고 하셨단다. 그 말씀에 우리 남매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번져졌다.우리가 눈물을 닦으며 웃다말고 <그래 그 군대 그 말을 알아듣습던둥?>라고 하니 어머니는 정색하셔서 <알아들었길래 뭐라구 말하며 쎄쎄,쎄쎄하지>라고 하셨다.아마 그 전사들도 말보다는 절주를 알아듣고 당시에 류행되는 모주석어록인줄 안것같았다. 그리고 두 전사는 조선족말로 그 어록을 그렇게 말하나 여겼을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사둔제신>이 어머니의 창조적인 세번째 <어록>이 되여 마을 사람들의 술좌석에서도 맛있는 안주가 되여 술맛을 돋구군 하였다.… …술이 몇순배 돌자 두 한족은 더는 못마시겠다고 손사래질 했다. 내가 술 한잔 부어주며 말했다.<니먼 씽쿠라, 둬허지뻬이,허부료예(你们辛苦了,多喝几杯,喝不了也)사둔제신, 비파시샘, 배추만남, 지깡치 쌍리.> 술좌석에 앉았던 형님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하하 웃음보를 터뜨렸다.<너두 마다매닮아 중국말 잘 하는구나.> 형님은 숨도 바로 쉬지 못하였다. 두 한족은 영문을 몰라 벙벙해하였다. 내가 한어로 해석해서야 술기운이 올라 얼굴이 지지벌개난 두 한족은 헤헤 웃으며 술잔을 들어 굽을 냈다.웃음 뒤끝에는 마음이 서글퍼졌다. 고향마을이 날따라 황페해져간다. 마을사람들이 갈수록 적어진다. 그대신 한족호가 늘어간다. 한족이 많아지니  사람들의 한어수준이 늘게 되였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일인지, 마음은 허전하기만 했다. 한어를 잘하지 못해도 그처럼 소박하고 성실하게 오붓이 모여 살아가던 그때가 그리워났다.창조성적 농촌<교수급> 한어수준을 가지셨던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신지도 이젠 근 20년철이 된다. 나는 속으로 묵묵히 물었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서도 한어로 노래를 부르십니까?> 2009년 <연변녀성>  제12기 
31    그녀는 시대의 영웅이였다 댓글:  조회:3840  추천:131  2010-12-24
그녀는 시대의 영웅이였다 ㅡ<산골의 녀수재> 황순옥을 추모하여                                           허룡석   시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이 시대를 이끌어 가던 세월, 우리 연길현 동성공사(지금의 룡정시 동성용진)에는 전국과 성, 주에 이름을 떨친 선진인물들이 많이 출현하였다. 전국로력모범 김시룡, 전국3.8붉은기수 리옥금, 귀향지식청년 본보기 려근택, 전국청년기준병 림관동, 성로력모범 박봉금, 주10대청년기준병 마옥순 등 이외에도 적지 않은 선진인물들이 있었다. 모주석저작 학습기준병으로 전국에 이름을 떨친 <산골의 녀수재> 황순옥도 그 시대가 낳은 영웅이였다. 또한 이 시대의 영웅이 연변은 물론 길림성 나아가서는 전국의 모주석저작을 학습활용하는 열조를 힘있게 추진해나감에 있어 간과할수 없는 기여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력사의 흐름과 더불어 시대의 영웅들도 점차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져가게 되였다. 40대이상이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황순옥도 룡정시광영원에서 만년을 조용히 보내다 고혈압, 심장병 등 질환으로 지난해에 84세를 일기로 세상떴다. 한시대의 영웅도 하나의 평범한 별찌가 되여 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지난날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이 영웅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될것이다. 그의 타계 한돐을 맞으며 나는 우리의 자랑으로 존경해왔던 그녀를 고개숙여 추모한다. 1 1924년 11월 7일 연길현 동성용 베틀골에서 태여난 황순옥은 일곱살때 주보중과 함께 혁명하던 아버지 황기범을 잃었고 22살 꽃나이에 해방을 맞았다. 렬사인 아버지의 혁명의지를 이어받으려는 불타는 의욕으로 그는 1946년에 민주대동맹에 참가하여 부녀위원으로 활약했다. 1948년에는 토지개혁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1954년부터는 당학습적극분자로 활약하면서 당조직에서 맡겨준 여러가지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였다. 그는 첫사람으로 야학교에 다니며 목마른 사람 물마시듯 부지런히 글을 배웠다.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어린애를 가진 가정주부가 낮에는 고된 농사일하고 밤이면 10리나 떨어진 야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는 야학교와 조남기 등 공작대에서 가르치는 모주석저작들을 학습하면서 점차 혁명의 도리를 깨치게 되였다. 그는 모주석의 말씀이야말로 혁명의 진리라는 리치를 터득하고 모주석의 말씀대로 실제에 련계시켜 활용해야겠다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문맹에서 벗어나 책을 줄줄 읽을수 있게 되자 그는 앞장서 생산로동에 참가하는 한편 짬짬이 시간을 타서 <모택동선집>을 탐독하였다. 그는 모주석저작 단행본을 학습하다가  <모택동선집>이 출판되자 1956년부터 제1ㅡ4권을 통독하기 시작하였다. <신민주주의론> 같은 단행본은 50번좌우씩 읽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 등 <로3편>은 백여번씩 반복적으로 읽어 한글자도 틀림없이 전부 암송할수 있었다. 이밖에도 그는 많은 맑스ㅡ레닌의 저작을 읽었으며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신문을 애독하며 국제국내형세를 료해하였다. 1963년 9월의 어느날, 주당정 직속기관간부들이 연변로동자문화궁에 모여 한 40대의 농촌부녀가 하는 모주석저작학습보고를 듣게 되였다. 발언고 한장 없이도 체계가 잡히고 론리가 째인 보고를 장장 세시간반동안이나 얼음에 표주박 밀듯 하는 그녀를 보고 간부들은 찬탄을 금할수 없었다. 그녀는 모주석저작중의 그처럼 많은 인명, 지명, 년대를 하나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었으며 모주석저작 몇권 몇페지에 무슨 단락의 글이 쓰여있다는것도 자기가 낳은 아이 이름 부르듯 익숙히 알고있었다. 이 보고를 계기로 중공연변주위에서는 전 주에서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는 새로운 고조를 일으키도록 동원하였다. <연변일보>에서는 <한폭의 붉은기> 라는 장편기사와 함께 <황순옥동무의 고심히 학습하는 정신을 학습하자.>는 사설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되여 황순옥이란 이름없던 농촌부녀가 모주석저작을 통달했다는 소문이 한입두입 퍼져나가 그녀의 학습경험을 듣겠다는 요청이 빗발치듯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직접 찾아오기도 하였다. 그후 황순옥은 주내 여러 대학교와 사범학교, 국가기관, 군중단체들에 가서 보고를 하였다. 그의 보고는 가는 곳마다 청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황순옥은 연변에서 대중적인 모주석저작학습열조를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학습을 견지하면서도 부녀대장, 정치대장사업을 맡아하면서 1960년 9월에 입당하였으며 60년대, 70년대에는 주부련회 부주임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해에 황순옥은 길림성부련회의 초청으로 장춘에 가 보고하게 되였다. 중앙에서도 녀기자 2명을 파견해보냈다. 대회에서 그가 조선말로 말하면 번역으로 따라간 분이 한어로  번역하였지만 듣는 사람들은 발언고 한장 없이 록음기마냥 줄줄 내리엮는 한 시골녀인의 류창한 저작학습보고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 길림성 당위서기였던 오덕은 격동되여 황순옥의 손을 꼭 잡아주며 우리 성에서 나타난 <산골의 녀수재>라고 높이 치하하였다.  <길림일보>에서는 황순옥의 사적과 그의 보고를 대서특필했다. 이에 앞서 1963년 <3.8절>에는 당시 국방과학위원회 주임이였던 엽검영의 초청에 의해 북경에 가서 보고를 하게 되였다. 보고를 알아듣기 쉽고 조리정연하게 어찌나 잘하는지 황순옥은 중국군사과학원, 중국인민해방군총후근부, 중공중앙당학교, 중앙민족학원, 북경시부련회, 중앙인민방송국 등 부문을 돌아다니며 7차례 보고를 하였다. 많은 중앙간부들이 그의 보고를 듣고 연변의 시골에 저처럼 훌륭한 조선족 모주석저작학습기준병이 있다는데 혀를 차지 않을수 없었다. <인민일보>와 기타 중앙의 보도매체들에서 <산골의 녀수재> 황순옥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황순옥은 돌아오는 길에 또 심양군구, 연변군분구 등 부문들에 들려 모주석저작학습 경험소개를 하였다. 모주석저작학습에서 큰 성과를 올린 그에게는 많은 영광이 뒤따랐다. 황순옥은 선후로 현, 주, 성, 나아가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되였으며 현, 주, 성 당대표대회 대표 및 위원으로 당선되였다. 그는 또 여러차례 현, 주, 성의 모주석저작 학습열성분자대표대회에 출석하였고 북경에 가 6번이나 모주석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녔다. 황순옥의 이름은 장강남북에 울러퍼졌다. 1966년에 황순옥은 전국소수민족참관의 일원으로 북경에 가 국경관례에 참가하였으며 전국각지를 순회방문하였다. 그는 서안에서 서안사변시기 장개석이 피신했던 돌바위도 보았고 팔로군판사처도 돌아보았다. 그는 대경을 참관하였고 남니만에도 가 보았으며 조국의 발전하는 모습을 자기의 눈으로 체험하였다. 그 과정에 그는 녀영웅 류호란의 어머니와 장사덕의 어머니를 만나 따뜻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주석이 연안에서 만나보았던 미국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과도 만날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황순옥도 <문화대혁명>때 곤경을 면치 못하였다. 촌의 반란파들이 그를 붙잡아다 대대사무실에 가두어놓고 주덕해의 죄장을 적발하라고 핍박했다. 그가 도리를 따지니 반란파들은 그에게 <보황파>, <외국간첩>, <가짜전형>이란 감투를 씌우고 날마다 비판, 투쟁했다. 그래도 그는 혁명절개를 굽히지 않고 꿋꿋이 뻗혀나갔다.   2    1964년 가을철이였던것 같다. 우리가 연길현제11중학교(지금의 동성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여서였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기쁜소식을 전해왔다. 오후에 전교사생들이 북경에 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전국모주석저작 학습기준병 황순옥을 연도환영하러 간다는것있다. 우리는 와하고 환성을 올렸다. 그때 벌써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황순옥은 우리 마음속의 본보기였다. 농촌부녀인 그가 어떻게 되여 모주석저작학습을 그렇게 잘했을수가 있었을가. 원래부터 남다른 총명과 재질을 타고 났을가. 후에야 그가 남다른 노력을 많이 들였다는 말을 듣고 우리도 신변의 영웅처럼 학습에 노력하여 장차 나라의 기둥감이 되리라 다짐하던 터였다. 그런데 황순옥이 우리 공사에 있다는것만 알았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우리 심목중의 황순옥은 영화배우마냥 인물체격이 뛰여난 녀성이였다. 그때에는 영웅이라 하면 빠진데 없이 모든것이 훌륭했고 계급의 적이라 하면 옳은것 하나 없이 부정적 선전할 때라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잘라고 멋진 배우는 정면역을 하고 못생기고 쬐쬐한 배우는 반면역만 하지 않는가.    오후에 우리는 반급별로 줄을 지어 룡정과 연길로 통하는 큰길로 나갔다. 우리는 뻐스역에서부터 공사청사입구까지 길 량켠에 쭉 늘어섰다. 우리는 황순옥이 뻐스를 타고 오는가 천진하게 생각했는데 뜻밖에 까만 승용차를 타고 왔었다. 그때는 농촌에서 승용차를 보기 드문 때라 우리 공사 영웅이 승용차를 타고오니 우리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나왔으며 황순옥을 더더욱 우러르게 되였다. 환영대오가 길 량켠에 늘어선것을 보고 승용차는 환영대오의 첫 어구에서 멈춰섰다. 그러자 까마반드르르한 차문이 열리더니 흰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받쳐입은 녀인 한분이 사뿐 내렸다. 뒤이어 검은 제복을 입은 간부같은 분이 몇분 내렸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쳐댔다. 대기하고 있던 공사간부들이 다가가 황순옥에게 꽃다발을 안겨드렸다. 황순옥은 한손으로 꽃다발을 안고 한손을 저어 사의를 표하며 우리가 서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더 잘 보겠노라고 가느다란 목을 빼들며 죽어라고 박수를 쳤다. 그런데 이게 뭔가. 우리 앞으로 지나가는 황순옥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가. 영웅이라는게 작달막한 키에 생김새는 우리 농촌어머니들과 다른바 없었다. 옆의 한 녀학생도 박수치다말고 눈이 올롱해서 <음마, 딸곰보네.>라고 했다. 선생님 한분이 그 말을 들었는지 대뜸 눈을 부라렸다. 우리 눈에 비쳐진 황순옥이란 영웅의 형상이 너무 수수하다는 인상이였다. 우리가 영화에서 자주 보아오던 마음속의 영웅인물형상과는 많이 틀렸다. 우리는 저으기 실망했다. 영웅도 별랗게 생기지 않았구나. 그런데 어떻게 영웅이 됐지. 보지 않기보다 못했다. 보지나 않았더면 황순옥은 영원이 우리 마음속에 강설금의 영화배우같은 우상으로 남아있었을것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가 너무나 유치하고 천진했었다. 그렇게 황순옥을 본것이 처음이였다. 그때로부터 꼭 10년이 지난후인 1974년 가을부터 내가 공사에 올라가 공청단위서기 사업을 하면서 황순옥이와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공사간부들이 하향갔다가도 올라오면 모여앉아 학습토론을 하거나 대비판회의를 하군 하였다. 그때면 공사당위 위원이였던 황순옥과 김시룡도 자주 회의에 참가하군 했다. 그런데 김시룡과 황순옥이 마주 앉으면 두분이 종종 웃음을 머금고 언쟁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분은 실천가이고 한분은 리론가여서 그런지 견해가 같지 않을 때가  있는것 같았다. 김시룡은 “농사군은 뭐니뭐니해도 알맥을 들이고 진땀을 흘려야지 말만하면 농사가 저절로 되느냐.”고 했다. 그러면 황순옥은 “농사군이라도 밭고랑을 타고 세계를 내다보는 정신이 있어야 하며 수레를 끌어도 방향을 잘 보지 않으면 수레가 구렁창에 빠진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웃으며 “두분의 말씀이 모두 옳다.”고 화해시키기도 했다. 그때 나는 연변일보사의 골간통신원으로 활약하면서 이들의 사적과 대비판하는 내용들을 신문과 방송에 적지 않게 발표했다. 그때는 7.1절이면 공사에서 해마다 공사직속기관 당원간부와 각 대대 당원간부들이 참가하는 당원대회를 열고 선진당조직과 우수공산당원을 표창하군 하였다. 그럴때면 공사당위에서는 당위서기의 당사업총화연설과 함께 전국에 이름을 떨친 우리 공사의 자랑인 김시룡이나 황순옥중 한분을 내세워 연설하게 하는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좀 골치아픈 일들이 생기군 했다. 연설을 못하겠다는 실천가인 김시룡을 억지로 내세워 보고를 하게 하면 거푸 10분도 되나마나 하여 끝내므로 시간배치상 큰 구멍이 생겼다. 리론가인 황순옥을 내세워 연설을 시키면 발언고 한장 없이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줄연설을 하여 점심때를 훨씬 넘기군 했다. 하여 공사당위에서 황순옥에게 연설을 시킬 때면 <절대 한시간을 넘기지 맙소>하는 부탁을 곱씹어야 했다. 그러면 황순옥은 <알았습꾸마>하면서도 정작 연설을 할라치면 그걸 다 까먹고 늘 시간초과를 했다. 그러면 사회자가 자주 나가 귀뜸해서야 보고가 마무리될수 있었다. 아무리 잘하는 보고라도 때시걱을 넘기면 모두가 짜증나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황순옥의 꾸준한 학습정신과 남다른 총기와 기억력에 감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3 1977년, <4인무리>가 타도되고 화국봉이 당중앙사업을 주관하면서 중앙에서는 <모택동선집> 제5권을 출판하게 되였다. 그때 연변에서 로농병대표들이 초청을 받고 북경에 들어와 조문으로 번역되여 나온 제5권을 심열하게 되였다. 모주석저작학습기준병인 황순옥도 농민대표의 신분으로 북경에 들어와 우의빈관에 자리잡고 있었다. 북경에서 공부하던 나는 그 소식을 듣고 하학후에 우의빈관으로 찾아갔다. 황순옥은 나를 보더니만 너무 반가와 “에구, 탄서기구만.” 하며 두손을 잡아주었다. 나도 북경에서 황순옥을 만나니 아주 반가왔다. 내가 “아주머니가 이런 중대한 임무를 맡고 북경에 오셨으니 얼마나 큰 영광인가.”고 하니 황순옥은 환히 웃으면서 “글을 다루는게야 쫜쟈(전문가)들이 할 일이지 내같은 촌노친이 뭘 알겠소..” 라고 했다. 황순옥은 말씀은 이렇게 해도 아주 책임적으로 매편 문장들을 까근히 한글자 한글자 읽어보면서 리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리해하기 쉽게 번역하도록 의견을 제기하였다고 했다.   우리는 공사에서 함께 사업하던 때를 회억하기도 하고 내가 떠나온후의 인사변동과 돌아가는 형편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북경에 온후의 학습정황을 말씀드리기도 하고 내가 보고 들은 북경의 정황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황순옥은 갑자기 “그렇지, 그걸 탄서기한테 보여야지. 좋은겐지.”하더니 옷장을 뒤지는것이였다. 잠시후에 그는 목에 두르는 수건 하나를 찾아내여 나에게 보여주며 “북경에 왔던김에 며느리한테 주자구 산건데 고운지 모르겠단데.”라고 했다. 수건은 당시에 전국적으로 류행되던 쥐면 한줌밖에 안되는 메린스수건이였다. 연분홍색을 띤 얄포름한 수건은 내가 보기에도 예뻐보였다. 내가 북경에 온후 한창 류행되는 이런 메린스수건과 포물신을 사달라는 고향사람들의 신부름을 꽤나 했기에 처녀들과 아줌마들이 당시 어떤 색상을 좋아하는지를 좀 알고 있었다. 내가 “아주 잘 골랐습니다. 정말 곱습니다.” 했더니 황순옥은 환히 웃으면서 “북경에서 공부하는 탄서기 곱다문 곱겠지. 시름을 놨단데.” 라고 했다. 그의 둘째며느리는 연변의 이름난 한 가수의 언니였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언니가 목소리나 인물이나 동생보다 훨씬 나아 워낙 언니가 가수로 되야야 하는데 어떻게 되여 동생이 되였다고 했다.  황순옥이 저작학습기준병이 되여 밖으로 많이 나다니다보니 애들을 키우고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남편의 몫으로 많이 남게 되였다. 둘째며느리를 삶은 후에는 며느리가 가정일을 많이 돌봐야 했다. 그것이 미안스러워 북경에 왔던 걸음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챙겨주고싶어한것 같았다. 그때는 그렇게 만나보고 학교로 돌아왔다. 북경에 있는 주인으로서 고향손님에게 북경료리 한 접시라도 사드렸어야 했으나 그때는 나도 5전이 없어 뻐스에 갇혀 곤경을 치르던 때라 생각대로 되지 못했다. 썩후에 황순옥을 만나 그때 식사대접도 못해드려 정말 미안했다고 하자 황순옥은 “그때 공부하는 학생한테  무슨 돈이 있었겠소.”라고 웃어넘겼다.  1989년 봄, 내가 연변일보사 사회생활부에서 사업할 때 연길에서 황순옥을 취재한적 있었다. 황순옥이 둘째아들을 따라 연길에 올라와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국에 이름난 모주석저작학습기준병으로서 <문화대혁명>이 전격 부정되고 개혁개방시책으로 시장경제에로  전환되고 있는 때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가 해서였다. 나는 아들집의 전화번호를 알아가지고 집을 찾아갔다. 집은 신흥가에 있었는데 황순옥은 없고 유치원을 꾸린다는 며느리와 아들이 있었다. 둘째아들은 나의 웃학년생으로서 잘아는 사이였다. 황순옥은 시내에 들어온후 별로 할 일이 없어 자주 산으로 달래캐러 다닌다고 했다. 그날 오전에도 달래캐러 가고 없었다. 내가 그의 아들과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노라니 아닌게 아니라 황순옥이 점심전에 달래주머니를 들고 들어왔다. 비록 시내에 들어와 산다하지만 농촌아낙네의 시골티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가 인사를 올리자 그녀는 “탄서기가 기자로 있는다더니 잘 지내느냐?”며 아주 반색했다. 우리는 무람없이 이야기끈을 풀었다. 나돌아다니는 자기때문에 집안팍일 돌보며 고생하던 남편이 1973년에 별세하고 맏아들이 암으로 돌아가고 막내딸도 불행히 죽다보니 줄곧 농촌에서 혼자지내다가 둘째아들을 따라 이렇게 연길에 와 살게 되였단다. 그간 저작학습을 그냥 하는가고 물으니 황순옥은 예전과 다름없이 모주석저작과 맑스 ㅡ레닌의 저작 내용을 술술 이야기했다.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에 대하여 물으니 그는 개혁개방이 좋기는 한데 사람들이 너무 돈만 돈이라 하고 사회치안이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혁명성이 내려가는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변해가고 있는것 같은데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고 했다. 현실이 저작학습내용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으니 오랜 저작학습기준병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나는 그를 취재했던 글을 그대로 연변일보에 발표했다.   연길에 와 아들네와 함께 살던 황순옥은 그후 피치못할 사연으로 자기가 살던 고향에 돌아가 다시 혼자살게 되였다. 장기간 농촌사업에서 당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온 황순옥이 농촌에서 고독히 지낸다는것을 알고 주부련회에서 렬사의 자녀인 그더러 영예원에 가서 만년을 보내라고 알선하였다. 룡정시당위와 시정부의 관심으로 황순옥은 1995년 3월부터 룡정시영예원에 들어와 만년을 즐겁게 보내게 되였다. 2005년 11월초, 연변일보사에서 사업하던 나는 룡정시에 갔다가 당시 룡정시당위에서 사업하고 있던 윤영일부서기의 안내로 모처럼 영예원에 가 황순옥을 찾아뵈였다. 황순옥은 나를 보자 너무 반가와 “탄서기가 왔느냐.”며 나를 마구 끌어안았다. 나도 어머니를 만나는 마음으로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때 이미 80고개를 올라선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세였고 얼굴에는 흘러간 세월의 년륜이런듯 굵다란 주름이 얼기설기 했다. 그는 많이 로문해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아주 밝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눈굽이 젖어올랐다. 황순옥은 나의 손을 잡고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의 침실을 돌아보고 생활형편을 알아보기도 했다. 영예원 박금철 원장이 황순옥이 영예원에서 보내는 상황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학습에 고질이 된 그는 날마다 뜨락에 나가 우편배달부를 기다려서는 남먼저 신문을 받아보고서야 시름을 놓았다. 저녁이면 텔레비뉴스도 빠짐없이 시청하였다. 그러다보니 영예원로인들속에서 황순옥은 국제국내정세를 제일 잘 알고있는 <정치가>, <박사>로 되였다. 우리는 기준병의 본색을 잃지 않고있는 로영웅을 모시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떠나오면서 나의 마음이라며 용돈봉투를 드렸더니 황순옥은 영예원에서 뭐나 다 해주어 돈이 필요없다며 극구 사절하였다. 옆에서 윤영일부서기와 박금철 원장이 남도 아니고 할머니를 잘 알고 한고향인 허사장의 성의이니 어서 받으라고 간권해서야 그는 마지 못해 돈을 받으며 눈굽을 훔쳤다. 나는 작별하며 황순옥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박금철원장에게 우리의 로영웅을 잘 보살펴드릴것을 부탁하였다. 황순옥은 뜨락에까지 내려와 떠나가는 나에게 오래도록 손을 저어주었다. 나는 그 걸음에 윤영일부서기와 함께 우리 공사 또 다른 한분의 영웅인 리옥금의 집에 찾아가 반갑게 위문하고 용돈을 드렸다.   그렇게 만난것이 마지막 상봉으로 되였다. 그후에는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더는 그를 찾아뵙지 못하였다. 그것이 나의 마음속에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되였다. 그가 세상을 뜰 때에도 내가 출장가고 없다보니 나는 그의 추도회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올해 6월 그가 세상뜬지 한돐이 되는 때에 나는 또다시 룡정시영예원을 찾았다. 박금철원장이 황순옥이 세상뜰 때의 상황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의 추도회는 주부련회와 룡정시당위 및 시정부의 관심과 배려로 원만히 치러졌다. 나는 황순옥이 나를 바래주었던 영예원뜨락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 두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묵묵히 기원했다.   <황순옥어머니, 평생을 학습하시느라 너무 고달피 보내셨습니다. 천당에서는 제발 편히 쉬십시오.>   2009년 <연변녀성> 제8기             
30    [칼럼] 능력과 덕성이 구비돼야 (허룡석) 댓글:  조회:1316  추천:65  2010-11-29
       능력과 덕성이 겸비되여야                                          허룡석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는 일찍 2000여년전에 세인들에게 “능력보다 중요한것이 덕성”이라는 명언을 남긴적이 있다. 이는 지난날보다 문명이 훨씬 발달한 오늘에 와서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중한 조언으로 된다. 복잡다단한 인류력사를 돌이켜보면 서로 죽이고 죽는 그 기나긴 란세속에서 내노라 하는 영웅들의 흥망이 끊임없이 겹쳐졌었다. 어떤 이는 성공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서 좌절했고 어떤 이는 승리하고 성공을 거두었으나 성공뒤끝에 좌절하기도 하였다또 어떤 이는 성공하고 그 승리의 과일을 오래도록 지켜가기도 했다. 영웅들의 실패와 성공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느라면 그들이 승리하고 살아남을수 있는 조건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소로 집약할수 있겠다. 첫째는 능력(能)이고 둘째는 덕성(德)이고 셋째는 운(运)이라는것이다. 승리하고 성공하자면 능력이 결여해도 안되고 덕성이 모자라도 안되며 운이 따르지 않아도 안되였다. 혼잡한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살아남기 위하여 갖춰야 할 첫번째 조건은 능력이다능력이란 지혜와 용기를 갖추는 일이다. 지혜란 선견책을 말한다. 남보다 언제나 조금이라도 먼저 앞날을 예측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울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쉽게 좌절되지 않는다. 용기는 결단력을 말한다. 반드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에 정확히, 과단히 결단을 내릴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하지만 무조건 앞으로 전진만 하는 용기는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승산도 없이 제멋대로 부딪치며 분별없이 날뛰는 용기는 “필부의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남다른 능력이 있다고 해도 덕성이 갖춰져있지 않다면 일시적으로 승리하고 성공하고 강성해질수는 있어도 오래 계속되지는 못했다. 력대 왕조의 흥망성쇠는 물론 수많은 인물들의 사실들이 이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덕성은 사업과 성공과 생존의 터전이다. 덕성이란 첫째는 관용이고 둘째는 겸허이며 셋째는 동정심이다. 이 세가지를 갖춘것을 마음가짐이라 한다. 덕성은 이처럼 착한 마음에 깃들어있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인것이다. 《삼국연의》에 나오는 류비는 병법도 모르고 싸울줄도 모르는 위인이였다. 그는 많은 싸움에서 대패하여 도망치고 겨우 목숨을 건지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란세의 물결속에서 조조와 대항할수 있었으며 만년에 촉이라는 땅에 기반을 구축하는데 성공할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그의 부하들이 힘껏 싸워준 덕이였다. 제갈공명 등 내노라 하는 재주를 갖고있는 부하들이 능력이 뛰여나지 못한 류비에게 그처럼 목숨다해 충성을 바친 리유는 무엇이였겠는가? 그것이 바로 류비가 갖춘 덕성이라고 후세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능력과 덕성의 존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회생활과 경쟁시대에 있어서도 “지혜와 용기”, “관용, 겸허와 동정심” 그리고 “운”은 빼놓을수 없는 관건요소라 하겠다. 우리 중국조선족문단을 살펴보아도 나이와 상관없이 능력과 덕성을 함께 갖춘, 우러러보이는 존경스러운 문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문인들이 없는것도 아니다. 흔히 능력 있다고 자처하는 문인들이 덕성이 모자라 말밥에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 능력이 있으나 덕성이 모자라는 문인은 남의 장점으로 그의 단점을 덮어주는 관용이 없으며 남을 존중하고 긍정하는 겸허함이 모자란다. 문학창작이 “자기”를 주장하는 작업이라고 하지만 문학으로 아니면 사람으로 “남”을 낮추어본다. 덕성을 갖춘 문인은 언제 어디서나 한걸음 더 물러서고 고개를 한치 더 숙이며 허리를 한각도 더 굽히며 목소리도 한톤 더 낮춘다. 그리고 언제나 남을 존중하고 긍정하고 보듬어주며 따라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를 취한다. “남의 리유”를 리해하거나 리해하려고 한다. 전직작가제를 취소한 지금 재직에 있는 문인들의 문학창작은 과외로 하는 부업이지 주업이 아니다. 흔히 본단위에서 중용되고 본직업에 충성하는 사람일수록 과외로 하는 문단사업에서도 겸허하고 아량있으며 문제를 객관적으로 전면적으로 본다. 항간에서 있는 말이지만 현재 경쟁사회에서 능력과 덕성에 따라 사람들은 “5품”으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덕성이 높고 능력이 뛰여난 사람을 정품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다투어 빼앗아가는 인재이다. 이러한 인재가 많을수록 회사는 발전하고 사회는 번영해진다. 덕성도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을 합격품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도 밝고 제 앞에 차례지는 일도 능히 감당할수 있으므로 구조조정에서도 도태될 념려는 없다  덕성은 있으나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불합격품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은 보듬어주며 여러모로 양성시켜 능력을 키워주어 합격품으로 만드는것이 요긴하다. 덕성이 없으나 능력 있는 사람은 위험품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야심이 크고 음험하기에 조직에서도 중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중용되지 못할수록 불만이 넘쳐 기회만 있으면 사단을 일으킬수 있는 불씨이므로 늘 상하의 경계대상에 속한다. 덕성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은 페품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은 말단에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시키기도 어려우므로 누구도 기용하려 하지 않는다. 설사 부당한 경로를 통해 기용됐다 하더라도 수시로 맨먼저 도태될 대상이다. 이 “5품”표준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마다 자기를 비춰볼수 있는 하나의 인간거울이라 할수 있겠다. 물론 문학이거나 문단은 자기의 특성이 있겠지만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 여러 문인들이 과외로 활약하는 조선족문단도 겸허한 덕성을 갖춘 사람이 많을수록  문단이 안정되고 평화로와지며 문인관계가 부드러워지고 화목해지는것이다. 자기밖에 없는듯 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판을 치려 할 때에는 문단은 불안정해지고 살기가 서려지며 문인관계가 버성겨지는것이다. 편제를 가진것도 아니요 로임받는것도 아닌, 회원으로 있는 문단에서 문인들은 누구나 차분한 환경속에서 창작하고 편하게 교류하기를 원하지 본의 아니게 그 어떤 시비에 말려들어 본단위에서보다 더 피곤하고 불편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문인들은 허심탄회한 문학적 대화를 바라며 부동한 견해와 관점을 부담없이 학술적으로 교류할수 있는 “백화제방”을 바란다. 또 한해가 시작되였다. 희망으로 벅차는 새해에 연변작가협회 회원이라면 칭호에 걸맞게 누구나 자기보다도 남을 위하는 마음가짐으로 처처에서 한걸음 더 물러서고 고개를 한치 더 숙이고 허리를 한각도 더 굽히며 목소리를 한톤 더 낮추는 겸허한 자세를 갖추고 서로가 마음 편한 조화로운 문단을 구축하기 위해 보다 노력을 기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문인이라면 능력과 덕성면에서 말 그대로 사람들이 우러러 볼수 있는 떳떳한 사회 정신문명의 기사임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연변문학> 2010년 제1호에    
29    \"문화가 노래하는\"시기 도래해야 (허룡석) 댓글:  조회:1204  추천:56  2010-11-23
<문화가 노래하는> 시기 도래해야                                              허룡석 일전에 주정부에서는 새중국 창립 60주년을 맞이하고 자치주창립 60주년에 대비해 자금을 들여 <전국에 울려퍼질수 있는 노래>응모를 시작하였다. 이는 많은 문학예술인들의 흥분을 자아냈다. 자치주창립 50주년이후 정부에서 자금을 들여 하는 이러한 응모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세기 60ㅡ70년대에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붉은 태양 변강을 비추네> 등 연변의 노래들이 장강남북의 가는 곳마다에 즐거운 멜로디로 널리 울려퍼졌었다. 전국 어디에 가나 40대 이상분들은 지금도 이 노래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시대적, 력사적 배경이 없은것은 아니나 우리 민족은 이로하여 커다란 자랑으로 여겼고 중화민족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부심을 느꼈었다. 또한 이것이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이 연변을 알고 조선족을 료해함에 있어 마멸할수 없는 역할을 한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혁개방 30년을 돌이켜보면 많은 지방에서 전국에 울려퍼지는 우수한 노래들이 숱해 나왔지만 그에 비견되는 연변의 노래는 거의 없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전국문단을 감동시킬만한 문학작품도 거의 없었다. 전국의 앞장에 서던 많은 체육종목들도 내리막길을 걷게 되였고 조선족의 많은 전통적 체육종목들과 전통적 문화재들도 퇴보하였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연변도 개혁개방 30년래 정치경제 등 여러 면에서 많은 거족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왜 문학예술, 체육분야에서는 뚜렸한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으며 갈수록 많은 지방, 많은 민족에 뒤지고 있는가. 이는 심사숙고해 보지 않을수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간 실시해온 <문화가 무대로, 경제가 노래하는> (文化搭台,经济唱戏)시책과 무관하지 않다. 이 시책을 내올 때에는 하루 빨리 가난한 면모를 개변시키고 경제적 발전을 가속화하여 인민들의 생활이 부유한 수준에 이르기 위함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화가 <밑거름>이 되는것은 경제란 <거목>을 키우기 위한것이였다. 이로하여 어떤 사람들은 문화를 경제발전의 부속물로만 보면서 경제발전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무대>로 삼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안된다고 인정하거나 <돈만 쓰는> 경제발전의 부담거리라고 여길 때에는 아무런 주저없이 제멋대로 짓밟아도 되는 변연적물질로  오인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눈앞의 리익과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신경을 쓸뿐 주기가 오래고 성과가 늦게 나타나는 문화발전은 홀시하고 있으며 문화에 잠재되여 있는 거대하고 심오한 역할은 더욱 알지 못한다. 문화는 경제발전의 <홍보물>이긴 하지만 결코 부속물이 아니며 경제보다 한등급 낮은 차원은 더욱 아니다. 사회의식형태구성에서 경제와 문화는 완전히 평등한것이며 서로 떨어질수 없는 <혈연>관계인것이다. 문화는 경제와 동등한 발전권과 발전공간을 가지고있다. 하지만 문화는 흔히 장관의지와 권력의 심미관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고 수난을 겪고 대가 끊기는 엄중한 후과가 초래된다. 선진문화는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령혼이며 인민들이 단결진보할수 있는 주요한 정신적 기둥이다. 문화의 대발전, 대번영을 추진하는것은 사회의 활력을 격발시키는 수요이며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풍부히 하고 사람들의 정신적경계를 새로운 높이에로 끌어올리는 도경이다. 문화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것은 정신적 물질뿐만 아니라 또한 국내외 경쟁력을 높힐수 있는 한 나라, 한 민족의 연성력(软实力)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를 대폭 부축하고 문화적 브랜드를 창출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부단히 높임으로써 사람들이 경제적 혜택과 문화적 향수를 함께 받게 하여야 하며 사회의식형태구조가 조화롭게 발전하도록 해야 할것이다. 문화가 무한정 경제의 <무대>로 <부속물>로 될수는 없다. 경제가 일정한 발전을 가져오면 문화에 대한 보상이 따라 가야 한다. 문화는 이미 이러한 보상을 받을 력사적 단계에 들어섰으며 경제는 문화에 보상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젠 많은 지방들에서 <문화가 무대로, 경제가 노래하는> (文化搭台, 经济唱戏) 시책을 <경제가 무대로, 문화가 노래하는> (经济搭台,文化唱戏)결책으로 돌려놓고있으며 많은 구체적 문제들을 시달해 가고있다. 우리도 하루빨리 지난날의 시책을 이렇게 돌려놓음으로써 문화가 경제의 부속물이라는 사람들의 머리속에 깊이 뿌리박힌 낡은 관념은 돌려세워야 하며 문화는 여유가 있으면 돌보고 여유가 없으면 돌보지 않는다는 관념을 돌려세워야 할것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이러한 시책의 위치바꿈으로 사람들이 문화를 숭배하고 문화를 열애하고 문화를 존경하는 사회풍조를 형성함으로써 문화를 소강(小康)발전의 중요한 벗으로 삼으며 경제의 현대화발전을 추진하는 적극적인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국제적으로도 한 나라, 한 민족의 발달정도를 가늠할 때에  경제력보다 문명정도를 먼저 내세운다. 주정부에서 이번에 자금을 들여 우수노래 공모활동을 벌리는것은 <문화가 노래하는> 시책의 하나로 보아지며 제창할만한것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우리는 민족문화, 지역문화, 공익문화의 창신과 발전을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정부적 차원에서 <문화가 노래할수 있는> 계기가 더욱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화시대> 2009년 제3호에  
28    욕심을 버리면 마음 편해진다 (허룡석) 댓글:  조회:1479  추천:57  2010-11-05
욕심을 버리면 마음 편해진다 허룡석        이런 우화가 있다. 자신의 목소리에 불만을 품고있던 공작새가 신을 찾아와 자신의 불행을 호소했다. “신이여, 당신은 저의 불행을 아십니까? 신께서 받은 내 목소리는 모든 동물이 싫어합니다. 그러나 보잘것 없는 새인 꾀꼬리에게는 그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주어 가는 곳마다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세요.” 신은 듣고나서 어처구니없거니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만족을 모르는 이 불평쟁이 공작새야. 너는 은혜를 모르는 망칙한 새로구나. 꾀꼬리의 목소리가 부럽더란 말이냐? 네가 날개를 활짝 펴고 걸어가면 너의 호화로운 꼬리는 마치 보석상자같이 보이지 않느냐? 너보다 더 아름다운 깃을 가지고 있는 새가 어데 있으며 너보다 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새가 어데 있느냐?” “어떠한 짐승이라도 모든것을 다 가질수는 없느니라. 그것이 신의 뜻이다. 타조는 몸이 크고 매는 날씬하고 수리개는 용감하며 까마귀는 앞일을 미리 알고 있게 한것이니라. 제비는 긴 날개로 빨리 날게 됨을 자랑으로 알고 오리는 물속에 들어갈수 있는것을 고맙게 여긴다. 공작새야, 불평하지 마라. 너의 좋은 점을 고마워하지 않고 계속 불평을 부린다면 너의 날개를 모두 뽑아버려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새로 만들어버리겠다.” 공작새는 부끄러워 아무말도 못했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쉐익스피어가 말한바와 같이 “신은 우리에게 얼마간의 결점을 주어 인간에 그치게 했다.” 우리는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욕심은 끝이 없다.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주어질 요구를 해야지 신에게 주어질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은 정치가로, 어떤 사람은 경제학가로, 어떤 사람은 예술가로, 어떤 사람은 문학가로 활약하며 살아가도록 <신>이 인간 각자에게 재주를 나누어준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신>이 준 <재주>에 만족하지 않고 날마다 새날이 밝아오면 금세 탐욕스러운 동물이 되여버려 <신>이 골치 아파한단다. 벼슬을 하는 사람은 능력 여하를 불문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고 장사군은 별 재간없이 더 많은 돈을 벌려하며 문인은 더 높은 직함에 끝없는 영예를 가지려한다. 경쟁이 갈수록 치렬해지고 있는 사회에서 직장에서 이러한 <욕심>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공작새처럼 가장 아름다운 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꾀꼬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마저 빼앗아 가지려는것은 탐욕에 지나지 않는다. 적당한 만족을 가졌으면 거기에 만족해야 할것이나 자기가 이미 가진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썩고 좀먹고 녹아지고 결국은 차례지지도 않을 탐욕에 마음을 쏟는것은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다. 희망과 노력과 탐욕은 원칙적으로 구별되는것이다. 희망을 안고 노력하는것은 진보하고 발전하기 위한것이나 탐욕은 도에 넘치는 욕심을 채우려는것으로 나중에는 자기를 망치고 남까지 해치게 된다. 인간에게는 내가 말할것이 내가 들어야 할것보다 많고 중요하다고 여기며 내가 가져야 할것이 반드시 남보다 더 많고 좋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심리가 있다. 하기에 자기판단이 비뚤어지고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 한정없는 탐욕에 빠지다보면  욕총을 등에 지고 다니게 되고 지어 <털이 다 뽑혀 제일 추한 새>가 될수 있다. (<도라지> 2009년 제6호에) 
27    조선족문학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허룡석) 댓글:  조회:1299  추천:58  2010-11-01
조선족문학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허룡석      다재다난한 와중에도 여러모로 성과가 주렁졌던 무자년 쥐해는 어느덧 서서히 지나가고   새희망을 안겨주는 기축년 소해가 성큼 다가왔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 민족문학이 걸어온 길 되돌아보니 가슴 뿌듯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감돌아치는 서글픔도 어찌할수 없다. 우리 민족 문학창작이 량적으로는 적다고 할수 없지만 돌파작이나 수준작은 그렇게 많다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중국주류문단에서 인정받을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수 없다. 지난 몇년간 중국작가협회의 년도총화보고를 보면 장족, 위글족, 몽골족 등 주요 소수민족들과 묘족, 투쟈족, 이족 등 기타 소수민족작가들도 해마다 중국주류문단에서 인정받을만한 돌파작을 내놓고 있으나 전국 55개 소수민족중 문화가 가장 발달한 민족의 하나로 공인받는 우리 조선족의 문학작품은 언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나는 처음으로 제9차 전국소수민족문학작품<준마상>평의위원으로 평의에 참가하면서 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준마상평의에 전국 각지에서 도합 320부의 문학작품을 추천하였는데 초심을 거쳐 105부를 선정하여 총심에 넘겨왔다. 중국소수민족문학작품 최고상의 권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난날 무더기로 상을 주던 작법을 고쳐 8차때부터는 수상작 수를 대폭 줄였으며 이미 수상한 작자에게는 원칙상 다시 수상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번기에도 105부 문학작품중 (그중 소수민족모어작품이 32부) 40부를 수상작으로 뽑기로 되여있었다. 40부중 인구 10만이하 소수민족문학작품 창작을 고무하기 위하여 5부 명액을 남기고 사천지진재해지구와 서장지진재해지구 소수민족작품을 배려하기 위하여 각각 1부씩 명액을 남기기로 하였다. 남은 33부 명액중 소수민족모어작품 수상비례를 40%로 하고 소수민족중문작품 수상비례를 60%로 하였다. 하여 수상할수 있는 소수민족모어작품비례는 13부밖에 안되였다. 반복적인 토론과 온양을 거쳐 위글족, 하사크족, 장족, 몽골족, 조선족 등 모어창작을 위주로 하는 다섯개 소수민족이 두부씩 <고루 나누고> 나머지 세부는 기타 민족을 돌보았다. 하여 우리 민족 문학작품은 두부밖에 수상할수 없게 되였다. (지구급이 성급과 꼭 같이 수상한것은 적은 수가 아니였다.) 하지만 모어창작을 위주로 하는 기타 소수민족들은 중문으로 창작한 작품들도 수상할수 있어 다른 민족은 나중에 모두가 수상작품이 4ㅡ5부씩 되였다. 유일하게 우리 민족만이 중문으로 추천된 작품이 없어 <밎지고>만것이였다. 한 평의위원은 롱담으로 나에게 <문화수준이 높은 조선족이 자존심이 강해서 모어창작만 고집하는것이 아니냐>고 했다. 연변경내에 중문으로 창작할수 있는 조선족작가들이 거의 없는것은 력사적으로 봐야 할것이다. 새중국이 창건되여서부터 중앙에서는 문화가 뒤떨어진 <락후한> 주요 소수민족들의 문화수준을 높이고저 수도 북경과 기타 대도시들에 소수민족반을 설치하고 소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락후한> 소수민족의 학생들을 대량 양성하였다. 그렇게 양성받은 학생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작가로 되여 막힘없이 중문으로 창작할수 있게 된것이다. 하지만 력래로 교육을 중시하는 <선진적> 조선족은 그때에도 문화교육이 발전한 민족으로 인정되여 자기민족 학생을 얼마든지 자기로 양성할수 있다는 취지하에 조선족학생들은 거의 모두 당지에서 소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조선어문을 주로 배우다보니 중문수준이 대도시에서 중문을 배운 다른 소수민족 학생들을 따라가기 어렵게 되였다. 하여 실질상에서 조선족은 다른 민족에 비해 중문이 <락후한>민족이 되였다. 조선족작가들중 남영전이나 김인순 등 연변밖에서 성장한 부분적 작가들만이 중문창작이 거침없을뿐이다. 지나간 력사는 한꺼번에 개변할수 없는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 조치를 대여 조선족작가들이 우수한 문학작품을 창작하도록 고무격려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번역사업이 뒤따라가 우수한 민족문학작품을 제때에 번역하여 중국주류문단에 접궤시키는것이다. 동시에 중문으로 창작할수 있는 작가를 발견하고 양성하여 우리 문단에도 중문으로 막힘없이 문학창작을 할수 있는 작가가 일정한 비례를 차지할수 있도록 하는것이다. 궤테는 문학창작을 함에 있어서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것이다>고 감회깊게 말했으며 로신도 <지방색채를 띤것이 오히려 세계적인것으로 될수 있다>고 피력하였다. 우리는 민족적인것을 버릴수 없으며 농후한 지방색채도 버릴수 없다. 민족적인것과 지방색채를 버리면 우리 민족문학의 존재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민족적인것과 지방적색채를 여러가지 언어문자로 창작표달하는것은 아주 필요한것이다. 80년대초에 전국단편소설문학상을 수상한 림원춘의 <몽당치마>작품도 중문으로 번역되였기에 중국주류문단의 중시를 받게 되였고 전국상을 받게 되였으며 중국문학사에 한페지를 기록하게 된것이다. 우리는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으로서 중국주류문단에서도 당당히 자기의 위치를 찾아야 하며 자기의 립지를 굳혀야 하는것이다. 자기민족의 부족점을 아는 민족이 부단한 발전을 가져올수 있는것이다. 자기만족에 도취되고 외고집만 부린다면 발전하키는커녕 퇴보할수밖에 없는것이다.   우리는 소수민족이라 하여 <돌봐주는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기의 탄탄한 실력으로 소수민족<준마상>뿐만 아니라 중국문단의 최고상인 <모순문학상>과 <로신문학상>에도 도전하여야 할것이다. 우리 민족문학을 발전시키자면 작가협회와 작가들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정부의 관심과 지지를 밑바탕으로 해야 한다. 시장경제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수한 민족문학창작을 고무격려하자 해도 자금이 필요하며 번역사업이 뒤따라 가자해도 돈이 들어야 하는것이다. 정부의 충족한 자금지원이 없이 해해년년 문단의 동냥질로 민족문학을 춰세운다는것은 하늘에 막대겨눔이다. 동냥하자해도 내밀 쪽박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로만 지지한다는것은 그림속의 떡으로 요기하라고 고무하는격이며 투자가 없이 성과만 기대하는것은 굶어 쓰러질 말한테 채찍을 안기는격으로밖에 될수없다. 새해에는 상하가 보다 합심노력하여 민족문학의 새 진로를 개척해보려는 소박한 마음에서 선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관심하고 질호하던 문제를 다시 한번 되풀이해보는것이다. (2009년 연변문학 제1호)
26    화분가꾸기와 민족문화키우기 (허룡석) 댓글:  조회:2987  추천:60  2010-10-25
화분가꾸기와 민족문화키우기허룡석나는 화분가꿀줄도 잘 모르면서 그저 취미로 집에 화분 여나문 통을 키우고있다. 물은 그래도 명심하여 주는편이지만 철철이 제때에 주어야 할 비료는 빼먹을 때가 많다. 그래도 맨물이라도 제때에 주기만 하면 싱싱하게 자라는것이 고맙기만 하다. 란초, 군자란, 방울꽃 등 관엽식물류는 닷새좌우에 한번정도 물을 주면 되였고  선인장, 알로에, 철죽나무 등 관목식물류는 열흘좌우에 한번정도 물을 주면 되였다. 그런데 한번은 공무로 출국했다가 돌아와 보니 집안에 놓아둔 모든 화분이 시들고 말라있었다. 그간 안해마저 출장가다보니 오래동안 사람손이 닿지 않아 화분들이 가냘프게 죽어가며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모든 화분들에 물을 담뿍 주며 불쌍한 화분들이 어젯날의 생기를 되찾을수 있기를 바랬다. 이튿날에 보니 생명력이 강한 선인장, 알로에, 철죽나무  등은 물기를 담뿍 먹고 그젯날의 생기를 되찾았으나 국화, 란초, 방울꽃 등  생명력이 약한 화분들은 회생의 한계를 초월했는지 그냥 꼴기를 추지 못하고있었다. 이튿날, 사흗날에도 물을 담뿍 주었으나 그상이 장상이였고 안타깝게 더 말라만 갔다. 별수 없이 뿌리를 파보았더니 웬걸, 뿌리가 이미 말라있었다. 그러기에 아무리 물을 주어도 쓸모없었지. 여러해 키운 정다웁던 화분들이 한번의 실수로 말라버린것이 아쉬웠지만 뿌리채로 뽑아버리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혹 일이 바빠 제때에 물을 주지 못해 얼마간 시들었을 때에도 인차 발견하고 제때에 물을 주면 아무런 불평없이 금방 싱싱해지며 반주그레 웃음짓는것 같던 화분들이 뿌리가 마르니 아무리 물을 주어도 소용없었다. 아니, 물이 아니라   뜨문히 보약삼아 주던  뜨물이나 우유를 줘도 죽은 아이 자지 만지기였다. 그저 갈증에 애처롭게 죽어간 그것들을 제때에 <구급>해 주지 못한것이 후회될뿐이였다. 나는 말라버린 화분의 뿌리를 안타까이 살펴보다 문득 화분가꾸기가 민족문화키우기와 같은 도리 아닐가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되였다.개혁개방이후 시장화의 충격으로 우리의 민족문화는 장기간 새로운 뼈아픈 진통에 모대기였다. 지난 한시기 이곳에서는 인구가 적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변강 소수민족지구의 특정을 념두에 두지 않고 인구가 많고 경제가 발달한 대도시의 시장화의 모식을 그대로 옮겨와 개혁한답시고 우리 민족의 신문출판, 문화예술을 모두 시장에로 내몰아 력차의 정치운동중에서 어렵게 지켜내고 키워낸 우리의 민족문화가 또다시 시장경제의 폭풍취우속에서 허둥대고 시달리게 만들었다. 공익성을 띤 많은 민족문화사업단위에서 로임을 제대로 내줄수 없었고 출판인쇄비용을 해결할수 없었으며 남들은 식은죽 먹기로 분에 넘치게 하는  복리대우같은건 화려한 그림의 떡 보기였다. 재직인원이나 리퇴직인원이나 새우껍질같은 로임봉투를 받아들고 모두가 망연자실하였다. 경제적지위가 떨어지니 사회적지위마저 납작해져 지난날 대학생들의 이마도 땡땡 튕겨가며 받아들이던 민족문화사업단위에서 이젠 굽썩굽썩해도 오는 인재를 찾기 어려웠고 제발제발해도 가는 인재를 잡아둘수 없었다. 비단옷으로 몸을 가리기는 고사하고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발버둥칠수밖에 없었다. 한 로시인은 어느 좌담회에서 탄식하며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40여년전에 공무원들의 평균 로임이 40원좌우일 때 신문이나 잡지에 시 한수 발표되면 원고료 10원을 받아 국수 33그릇 살수 있었다.(그때 국수 한그릇에 30전이였음) 그런데 지금 시 한수 발표되면 많아야 원고료 30-50원밖에 받지 못하는데 국수 서너그릇밖에 살수 없다.(지금 보통국수 한그릇에 12원임) 국수값은 40배 올랐지만 원고료는 겨우 서너배 오른셈이다. 뼈를 갈아내는듯한 작가들의 로동이 이처럼 존중받지 못하고서야 어찌 민족문화가 발전할수 있겠는가. 그저 지나치는 말로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였다’. 결손기업이 제품을 생산할수록 결손액이 늘어나는것처럼 지금의 작가들도 창작을 많이 할수록 <결손액>이 늘어나는 형편이다. 전직작가가 없는 지금 작가들이 본직업에 종사하면서 남들이 다 노는 명절과 휴가일을 리용하여 <열달잉태로 배아프게>낳은 창작품을 책으로 만들려면 원고료를 받지 못할뿐만아니라 도리여 자기의 반년좌우 로임을 떼내여 출판비를 해결해야 하니 부자가 아닌이상 누가 이런 밎지는 장사를 많이 하려 하겠는가. 작가들의 원고료가 낮고 책을 출판하기 어려운 문제만이 아니다. 민족문화사업을 이끌어나가야 할 민족문화사업단위들의 사업비용도  뿌리마른 나무 자라기다. 규모가 크고 관할 범위가 넓은 어느 한 민족문화사업단위의 일년 행정사업비용이 30여년전의 3만원이 지금도 그 3만원이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달아 오른 지금에 그 돈으로는 일상 판공비용도 안되는데 정상적인 민족문화행사를 벌린다는것은 꿈에 황제보기이다. 혹 꼭 해야 할 민족문화행사를 벌리려면 체면이고 존엄이고 다 버리고 가는곳마다 구걸하며 거지행색을 해야 한다. 경제는 해마다 몰라보게 발전하고 재정수입도 해마다 대폭도로 늘어난다는데 왜 민족문화사업에 대한 투자는 한푼도 늘어날줄 모르는가고 민족문화일군들은 몹시 안타까워했다. (물론 경제건설재투자와 민생문제 등에 돈쓸 일이 많겠지만)우리의 민족문화는 1997년에 시장화로 내몰려서부터 이젠 장장 10년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의 민족문화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다른 형제민족지구에서 해마다 투자를  늘여 자기의 민족문화를 춰세우고 발전시킬 때에 우리 이곳에서는 민족문화의 <젖>을 뗀다고 야단이였다. 그로하여 객관적여건으로 근본 시장화운영을 할수 없는 공익성을 띤 많은 민족문화란 <화분>은 <물>을 제때에 먹지 못하여 시들대로 시들었고 지어 일부 전통적인 민족문화란 <화분>은 <뿌리>까지 말라들어 만구할래야 만구할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전에는 많은 전통적인 민족문화가 다른 형제민족들보다 훨씬 앞서갔으나 지금은 많은 민족문화가 뒤떨어졌거나 뒤떨어져가고 있다.  가슴 아파도 어지간히 아픈 일이 아니다. 그러잖아도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날로 많은 조선족들이 대도시로 외국으로 떼를 지어 나가고 갈수록 많은 조선족학교들의 문이 닫겨지고 고유했던 민족문화진지들이 하나하나 소실되여 가고 있을 때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도 민족문화를 언제까지 지켜낼지 모를 일인데 워낙 요기밖에 되지 않던 <젖>마저 뗀답시고 사정없이 시장화에로 채찍질하며 시장은 눈물을 모르니 죽고사는가는 너절로 알아서 하라 했으니 기막힌 노릇이 아닐수 없었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민족문화가 총체적으로 발전했느냐, 답보했느냐, 퇴보했느냐를 두고 각자의 서있는 위치에 따라 평가도 각의하다. 하지만 실천속에서 달고 쓴맛을 볼대로 본 민족문화단위와 인민대중의 평가가 진실한 평가가 아닐가 생각된다. 문화는 일종 민족의 령혼이며 혈맥이기도 하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문화는 한 나라, 한 민족을 진흥시키는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되고 있으며 또한 경제사회의 전면발전을 추동하고 인류사회의 진보와 문명을 추진하는 정신적지주이며 동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지난해 많은 국가급 전문가들이 연변에 모여와 연변의 경제발전전망을 진맥할 때에 거의 모두가 연변이 경제발전을 가속화하자면 전국에 둘도 없는 특색있는 조선족문화를 춰세우는것으로 경제건설을 이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것도 바로 이 도리가 아닌가싶다. 문화적정신이 일단 인민대중에게 장악되면 무궁무진한 생산력으로 물질적 힘으로 전환될수 있으며 경쟁력을 높이고 흡인력을 증강하며 응집력을 형성하고 키울수 있다. 문화가 메마르면 정신적지주가 결여하게 되며 호주머니에 돈이 가득 차있어도 국민의 자질이 높아질수 없으며 세계적문명과 접궤될수 없는것이다. 경제발전과 문화발전을 대립시키는것은 무지몽매한 사유이다. 몽매한 사유는 무지한 결책을 낳게 한다. 시장경제시대에 들어선후 민족문화부문을 돈만 허비하는 쓸모없는 부문으로 간주하거나 민족문화발전을 위한 투자를 경제발전을 저애하는 부담으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회문명발전과 10만 8천라나 떨어진 너무나 어리석은 사유가 아닐수 없다 문화발전을 홀시하는 민족은 영원히 남에게  없신받기 마련이며 문화발전을 중시하지 않는 나라는 영원히 락후해질수 밖에 없는것이다.17차당대회에서 호금도총서기는 사회주의 문화건설의 새로운 고조를 일으키며 전 민족의 문화창조활력을 격발시켜 인민들의 기본적문화권익이 보장받도록 할것을 호소하였다. 이는 중앙에서 경제발전건설과 더불어 문화발전건설에도 크낙큰 중시를 돌리고 있음을 표징하며 이는 또한 전국의 소수민족문화사업발전에도 새롭고 더욱 높은 요구를 제기한것으로 된다. 이에 발맞춰 중앙 여러 해당부문에서는 공동으로 공익성을 띤 소수민족신문출판사업은  정부적차원에서 보호하고 부축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민심을 고무하는 정책을 륙속 제정하고 시달하고있다. 이는 그야말로 설중송탄이요 가물의 단비가 아닐수 없다.얼마전에 주당위와 주정부에서도 50여년래 처음으로 전 주 민족문화사업회의를 성대히 거행하고 민족문화사업을 좋게 신속히 발전시킬데 관한 방침과 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지난날 생존을 위한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던 우리의 민족문화를 보다 좋고 빠르게 발전시킬수 있는 절호의 환경과 기회로 됨은 의심할바 없다. 우리는 또 하나의 문화의 새 봄을 맞아 조화로운 문화환경을 적극 구축하며 부단히 개혁하고 창신하며 우리 민족문화의 새로운 발전의 서막을 열어가야 할것이다.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한 중앙과 지방의 훌륭한 정책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동심협력하여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의 민족문화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발전력사를 창조하게 되리라는것을 믿어마지 않는다.(2008년 연변문학 제3기)  
25    병치료와 <경제병> (허룡석) 댓글:  조회:1348  추천:40  2010-10-22
병치료와 <경제병>                                                            허룡석              사람이 살다보면 한생을 앓지 않고 건강히 제 명을 다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크고작은 병에 시달려 고통을 겪으며 고비고비를 넘기게 된다. 하기에 사람들은 가시아비 제사를 미루어도  병치료는 절대 미루어서는  안된다는 도리쯤은 다 알고 있다. 미루면 중해지는것이 병이요, 중해지면 잃게 되는것이 둘도 없는 목숨이기때문이다. 전국시대에 편작이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제환공을 보고 “대왕님의 살결에 병이 있사오니 치료하지 않으면 중해질가 보나이다.”라고 아뢰였다. 그러나 제환공은 “허튼 소리, 과인은 병이 없노라.”며 외면하였다. 그후 편작은 여러차례 제환공을 보고 “대왕님의 병이 살속에 들어가고 위장에까지 미쳤나이다.”며 아뢰였으나 제환공은 되려 “자네 할 일 없으면 돌아가 코구멍이나 후비게.” 라며 되려 편작을 비웃었다. 그후 제환공은 병이 아주 중해져 자리에서 일어날수 없을 때에야 비로서 사람을 보내여 편작을 청해오게 했다. 편작은 제환공의 병세를 살펴보고 이렇게 말했다. “병이 살결에 있을 때에는 찜질하거나 고약을 붙이면 되옵고 병이 살속에 있을 때에는 침구를 하면 되나이다. 병이 위장에 미쳤다해도 초약을 달여 자시면 늦지 않사오나 병이 골수에 미치면 명이 경각에 달렸사오니 별 방도가 없나이다. 지금 대왕님의 병이 골수에 이르렀기에 신도 감히 치료해드리지 못하겠나이다.” 제환공은 후회막급이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평소에 편작의 호의를 마이동풍으로 여겼던 제환공은 얼마 안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결함과 오유를 시정함에 있어서도 병치료하는 리치와 다를바 없지 않겠는가. 지금 일부 크고작은 어른들이 경제범죄란 어마어마한 <병>에 걸려 앓고있다. 그 <병세>는 서로 각이하나 제때에 치료하지 않으면 모두 <병>이 <골수>에까지 미칠 위험을 가지고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른들은 거의 모두 자기 <병>을 감추며 아주 <건강>한척 한다. 또한 그 누가 자기가 <앓고 있다>는것을 <발견>해 낼가봐 밤낮으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다도 어느 날엔가 그 누가 엄중한 <경제병>에 걸려 갑자기 <입원>했소 하거나 <구급할 희망이 없소.>할 때에야 그 <환자>가 평소에는 아주 <건강>한척 하며 남보고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충고를 주던 어른임을 알게 된다. <환자>는 <병원>에 <입원>하여 <주사>도 맞고 <침구>도 해서야 눈물, 코물 쥐여짜며 여태껏 숨겨온 자기의 <병>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의 <병>까지 고발하며 립공속죄하여 하루 빨리 <퇴원>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쉽게 <퇴원>시킬 <병>이 아니기에 더 큰 <병원>에 옮겨지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꼬리를 잡혀 강압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과인은 병이 없노라.”고 완강히 뻗대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어른들도 더러 있어 <의사>들이 골치 아파하기도 한다. <환자>라면 <의사>에게 자기의 <병세>를 숨김없이 터놓고 <곪기는 곳>을 솔직히 교대하는것이 자기를 구할수 있는 좋은 기회일것이다. 하여 <의사>들의 옳바른 <진단>을 듣고 <의사>들과 함께 <병세>를 분석하고 <병>근원을 찾노라면 옳은 <치료>대책을 대는데 리로울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병>이 <살결>에 있을 때부터 일찍 손써 <찜질>하거나 <고약>을 붙이면서 그다지 힘들지 않게  <병>을 잘 치료할수 있게 될것이다. 가령 <병>이 <살속>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침구>를 하면 제때에 <치료>할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만일 <병>을 속이고 이런 <치료>마저 회피하려 한다면 <병>이 <위장>에까지 미쳐 <초약>을 달여먹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것이다. 그런대로 <초약>이라도 부지런히 달여먹으면 <병>을 돌려세울수 있으니 목숨을 잃을 걱정까지는 없겠지만 의연히 <병>을 덮어감추며 <과인은 병이 없노라.>고 뻗댄다면 나중에 <병>은 <골수>에까지 미쳐 명이 경각에 이르게 될것인즉 이때는 <편작>이나 <화타>도 어찌할 방도가 없게 되는것이다. 그때는 후회로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여뜯어도 행차뒤 나팔인것이다 체면이나 위엄때문에 있는 <병>도 없다고 감추고 뻗대던 제환공같은 <환자>들이 지금은 없거나 적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변문학>2010년 제7호 
24    [잡문] 쥐와 <인간쥐> (허룡석) 댓글:  조회:1405  추천:41  2010-09-29
잡문 쥐와 <인간쥐>                                           허룡석        타고난 천성일가? 만사람이면 만사람 모두 저주하고 때려죽일 놈이라고 질책하는 쥐란 놈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해를 끼치기에 이골이 튼 놈임에 틀림없다. 쥐란 놈은 비록 털가진 <가족>의 미물이기는 하나 음식물을 훔쳐먹고 세간을 쏠아대는데로부터 담벽에 구멍뚫고 제방뚝을 무너뜨리기까지 못하는짓이 없다. 지어 온 몸에 병균을 달고 다니며 무서운 전염병을 퍼뜨리기도 하니 인류에게 있어서 그 위해가 작다고 할수 없는것이다. 하기에 사람들이 쥐란 놈을 보기만 하면 때려잡아야 한다고 본능적인 책임감으로 생각하는것도 천만지당한 리치 아니겠는가. 인류에게 주는 쥐의 피해를 생각하며 쥐란 놈을 저주하던차 우리 주변에서 백성들의 <음식물>을 훔쳐먹고 나라의 <가구>를 쏠며 제 안속만 채우며 <부정기풍>이란 <전염병>을 퍼뜨리다가 나중에는 쇠고랑이를 차는 <량반>들이 만민이 이를 갈며 저주하는 쥐란 놈과 무슨 다를바가 있을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회상의 이런 <인간쥐>들은 백성이 준 권력으로 나라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도모하는것이 아니라 향략을 추구하고 례물을 주고 받으며 권력으로 사리를 도모하면서 <사회주의 담벽>을 파헤치고 있는것이다. 이런 <인간쥐>들은 당의 형상에 먹칠하고 사회기풍을 어지럽히고 있을뿐만 아니라 개혁개방과 경제건설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이런 <인간쥐>들이 끼치는 위해가 어찌 자연계 미물의 위해보다 작다고 하랴. 훔치고 쏠고 병균울 퍼뜨리는것은 쥐란 놈의 타고난 천성이라 할제 <인간쥐>야 이런 천성을 타고나지 않은줄로 아는데 어이하여 이런 <량반>들은 하라는 사람짓은 안하고 만민이 저주하는 <인간쥐>로 된단 말인가. 그것도 당원이요, 간부요, 선진이요, 모범이요 하는 온갖 면사포까지 곱게 쓰고. 유심히 살펴보면 이런 <인간쥐>들은 거개가 약은 꾀로 리익을 노리며 약삭바르게 달라붙는 자들이라 좋은 벼슬자리가 나지면 주염나무에 도깨비 꼬이듯하고 공가와 남의 <음식물>은 제멋대로 훔쳐먹고 칼퀴질해먹고는 파리삼킨 두꺼비 두눈 껍적이며 시치미떼듯 한다. 나라에서는 이런 고약한 <인간쥐>들을 잡아내기 위하여 <쥐약>도 뿌리고 <창애>도 놓아 적지 않은 <인간쥐>들을 잡애내기도 했으나 <실천>속에서 <면역력>이 높아진 적잖은 <인간쥐>들은 요리조리 묘하게 빠져나가면서 아직도 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구석구석에서 계속 <전염병>을 퍼뜨리고있다. <부정기풍>이란 이 <전염병>을 송두리채 뽑지 못함은 아직도 곳곳에 <인간쥐>들이 번식하고 거처할수 있는 보금자리가 마련되여 있기 때문이다.  길목을 지켜선 <고양이>들이 자기의 성스러운 직책을 충실히 감당한다면 어디라고 <쥐>들이 송곳이를 박을 자리가 있겠는가. 하나 유감스러운것은 겉보기엔 위엄있으나 일부 <쥐> 안잡는 <고양이>들이 아직도 길목에 번듯이 서있다는것이다. 이런 <고양이>들은 네가 낟알 훔쳐먹으면 몇알 훔쳐먹겠느냐고 방심해서인지 날카로운 발톱을 움츠러뜨리고 코를 골아대는가 하면 <쥐>한테서 고린내나는 <고기붙이> 몇점 받아먹은 어떤 <고양이>들은 고약한 <쥐>들이 <음식물>을 제멋대로 훔쳐먹어도 못본척, <가구>를 쏠아대도 남산쳐다보는척 한다. 그러다가도 우에서 <길목>을 잘 지키라고 호령을 하면 무슨 배심에서인지 <쥐>란 놈이 나오기도전에 아츠럽게 <야웅>소리를 내서는 <쥐>들이 사전에 살길을 찾아 도망치게 하거나 보금자리에 들어가 꼼짝말고 있으라 귀뜸하기도 한다. 지어 어떤 <고양이>는 낮이면 <고양이>인척 하다가도 밤이면 <쥐>와 한동아리로 되여 쏠고 훔치고 구멍을 뚫어대니 고약한 짓들만 저질러대는 <쥐>들이 어찌 기고만장하지 않겠는가. 어쩐 영문인지 <눈뜨기>전이나 <새끼쥐>때에 잡아내야 할 <인간쥐>들의 잠복기가 점점 길어져 클대로 큰 뒤에야, 지랄할대로 지랄한뒤에야 겨우겨우 잡아라내는 경우가 많다. 어떤 <쥐>는 10년만에 잡히고 어떤 <쥐>는 20년만에 잡히기도 한다. 어떤 <쥐>는 아직도 교묘한 위장을 하고 구석구석에서 발편잠을 자고있다. <인간쥐>들의 잠복기가 길어질수록 관계망이 넓어지고 공고해져 사출해내기 더 어렵게 되고 <전염>되는 범위도 더 커지게 된다. 뿐만아니라 파먹히는 나라의 <음식물>도 훨씬 더 많아지게 되고 쏠아대는 <가구> 구멍도 갈수록 커지게 된다. 사람마다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쥐를 때려잡는것을 본능적 책임감으로 생각하듯 자연쥐보다 사회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주는 <인간쥐>를 잡는것도 자기의 천직으로 생각한다면 제아무리 교활하고 간악한 놈일지라도 어디라고 숨을 곳이 있으며 대가 끊어지지 않고 견뎌내겠는가.   <연변문학> 2010년 7월호    
23    [단편] 검토서 (허룡석) 댓글:  조회:1235  추천:67  2010-09-26
소설검토서매진   퇴근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갑자기 “똑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울려왔다.   “들어오시오.”시규률검사위원회 서기 오준철은 고개도 들지 않고 습관적으로 소리쳤다.문이 열리더니 가방을 든 중년사나이와 젊은이가 들어왔다.“저, 오서기시지요?”“네. 그렇습니다.”“저희들은 인민일보 기자들입니다. 시선전부에서 이미 련락을 한줄로 알고 있습니다만...”“아, 예. 련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두분은 인민일보에서 오신 기자분들 이시겠구만요?”“그렇습니다.”오준철은 제꺽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들과 일일이 악수했다.“예. 이렇게 먼 변강지구까지 찾아오시느라 수고 많습니다. 반갑습니다. 자, 여기 앉으시지요.”오준철은 자리를 권하며 친히 차를 타드렸다.“자, 차를 드시지요.”“예, 고맙습니다.”두 기자는 차잔을 받아놓고는 각각 명함장을 건네였다.오준철은 공손히 명함장을 받고는 자기 명함장도 건네였다. 규률검사위원회 간부들은 사업수요로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명함장을 건네지 않지만 중앙에서 내려온 기자들은 례외였다.두 기자는 차 한모금씩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선전부 차부장께서 이미 말씀드렸겠지만 이번에 저희들은 이 시에 렴정건설에 관한 취재를 하러 왔습니다. 성당위에 들렸더니 성당위 염부서기는 이 ㅁ시를 소개하더군요. 전 성적으로 이 시의 렴정건설사업이 앞장서 나간다더군요. 오서기께서 잘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뭘요, 별로 한것이 없습니다. 우리 시에 12개 현, 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ㅂ현의 렴정건설이 가장 잘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먼저 그 현의 사적을 취재해 보시지요”“그렇습니까? 그럼 래일로 먼저 그 현에 내려가 볼가요?”“내려갈 필요없습니다. 거리가 먼데다 요새 길까지 파헤쳐서 길이 말이 아니거든요. 지금 통지해서 그 현의 주요령도들이 래일 여기에 올라오게 하지요. 여기에서 그분들의 소개도 듣고 제가 종합적으로 소개해드리면 될거 아니겠습니까.”“그럼 그렇게 할가요?”오준철은 판공실에 전화를 걸었다.“강주임이요? 뭐? 나갔다구? 누구요? 쇼리라구? 나 오준철이요. 급한 통지가 있으니 나한테 오오”잠시후 안경을 건 나젊은 청년이 자그마한 수첩과 필을 들고 오준철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는 올해 공무원시험에 합격되여 규률검사위원회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중점대학 연구생이였다.“강주임은 나갔다구?”“예, 아마 시조직부에 일이 있다며 나간것 같습니다.”“그럼 동무가 책임지고 통지하오. 지금 퇴근하기전에 ㅂ현규률검사위원회 곽서기한테 전화해서 모든 일을 제쳐놓고 래일 아침 일찍 현당위의 구병진서기, 민소생부서기, 강남철현장 등 주요 령도들을 모시고 시규률검사위원회로 올라 오라고 하오. 무슨 일이냐구 묻거든 아주 중요한 일인데 시규률검사위원회에 오면 안다고만 하오.”“녜. 알겠습니다.”쇼리는 그대로 받아적었다. 쇼리는 판공실에 돌아가자 즉시로 ㅂ현규률검사 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오준철의 뜻을 그대로 전했다.이튿날 오전 두 기자와 오준철이 사무실에서 이제나저제나 점심때까지 기다렸으나 ㅂ현 령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ㅂ현규률검사위원회에 몇번 련락하게 했으나 련락도 되지 않았다. 아마 길이 나빠 늦어지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오준철은 두 기자에게 참 미안하게 되였다고 사과했다. 오후 두시에 인민일보 두 기자가 약속대로 또다시 오준철의 사무실에 와 ㅂ현의 주요 령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저녁때가 다 되도록 역시 감감무소식이였다. 오준철은 신경질을 부리며 또다시 판공실에 전화를 걸어 웬 영문인가를 알아보라 하였다. 그런데 몇번 전화를 걸어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차가 고장이라도 생긴  모양인가..“미안합니다. 그분들이 아마 아직도 길에 있는가 봅니다. 길을 수리하다보니 길이 말이 아니여서…”오준철은 기자들에게 량해를 구했다.“글쎄요. 길이 그렇다니 별수 없군요. 좀 더 기다려보지요.”기자들은 신문을 펼쳐들고 읽던 그대로 공손히 대답했다.그런데 한참후에 판공실의 강주임이 황급히 오준철의 사무실에 들어섰다.“오서기, 큰 일…큰 일 났습니다…”“뭐요? 무슨 일인데? 혹시 ㅂ현간부들이 오다가 길에서 교통사고라도 난게 아니오?”“아, 아닙니다…”강주임은 낯선 손님들이 있는것을 보고 다급히 오준철한테 다가와 귀가에 입을 대고 뭔가 소곤거렸다.“뭐…뭐라구?...”오준철의 얼굴은 갑자기 사색이 되였다. 벌려진 입은 닫혀질줄 몰랐다. “잠간…잠간 실례하겠습니다…”오준철은 강주임을 끌고 다른칸으로 건너갔다.강주임의 회보를 듣는 오철준은 기가 딱 막혔다. 어찌 이럴수가 있단말인가?생각밖으로 어제 시규률검사위원회의 긴급통지를 받은 ㅂ현의 정계에 오늘 대지진이 일어났던것이다. 현당위의 구병진서기는 시규률위원회에서 갑자기 부른다는 소리에 너무 놀라 심장병이 발작하여 병원에 입원하여 구급중이고 얼굴이 사색이 된 민소생부서기는 아침 일찍 돈꾸러미와 저금통장을 들고 현검찰원에 가 자수하였단다. 강남철현장은 밑빠진 항아리마냥 밤낮 돈만 달라며 징징거리던 나젊은 정부가 자기를 고자질한줄로 알고 정부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려다 사람들에게 발각되여 병원으로 실려갔단다. 어디 그뿐인가. 우에서 일이 생기니 아래에서도 잇달아 사달이 났다. 토지국장이 층집에서 뛰여내려 자살하고 교통국장은 현규률검사위원회에 찾아와 자수하였다. 공안국장이 실종되고 위생국장이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죽기전에 회개서까지  써놓고 돈을 준 사람들의 이름까지 길다랗게 써놓았었다. 펀펀하던 현당위와 현정부가 하루밤새에 풍비박산났다. 아직도 그 여파는 아래에까지 계속 뻗쳐 예상밖의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고 있었다.“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오준철은 단가마우의 개미마냥 왔다갔다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이제 중앙의 큰 신문에 우리 시 렴정건설사적이 아니라 부패전형이 보도되게 되였구만…”오준철은 갑자기 몸을 돌려 강주임을 손가락질하며 버럭 화를 냈다.“어제 당신이 판공실에 있었더라두 어찌 이런 일이 생길수 있었겠소. 이게 다 새로 들어온 그 쇼리때문에 일어난 일들이 아니겠소? 그가 똑똑히 통지했더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단말이요. 쇼리더러 당장 심각한 검토서를 써 바치게 하시오.”오준철은 어제 위엄을 부리느라고 자기가 똑똑히 교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인줄을 뻔이 알면서도 책임을 아래에 밀었다. 상급지도자는 영원히 정확한 로선의 화신이여야 했던것이다.강주임의 준절한 비판을 받고 자기가 임직하자마자 큰 일을 저질렀다는것을 안 쇼리는 부들부들 떨며 그날저녁 밤을 새워가며 심각한 검토서를 써바쳤다.“…이 모든것은 사상적으로 제가 맑스 레닌주의 모택동사상과 등소평리론 및 과학발전관을 잘 학습하지 못하여 조직에서 맡겨준 임무를 당성높이에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업적으로는 경험이 없는데다 저의 사업책임심이 강하지 못하고 사업방법이 간단한 원인으로 발생된 일로서 다년간 인민들을 위해 수없이 훌륭한 일을 했던 많은 당과 정부의 간부들을 해쳤으며 사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이번 일에서 교훈을 참답게 섭취하고 사업책임감을 높이며 일마다 지도동지들의 지시를 명확히 소화하고 관철하여 다시는 이와 류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업경험이 없는 저에게 조직에서 엄숙한 처분을 주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2    [단편] \"전자뇌만세!\" (허룡석) 댓글:  조회:1473  추천:59  2010-09-07
단편소설                      \"전자뇌만세!\"                                        허룡석   1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전화벨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회의를 사회하던 시당위서기 조희문은 사무상우에 놓여있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는 널직한 자기사무실에서 주관 부서기, 부시장들과 발전개혁위원회, 계획경제위원회, 건설국, 토지관리국, 도시전망규획국 등 부문의 국장과 주임들이 참석한 련석회의를 열고 올해 도시개조건설 전망계획을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여보시오, 나 희문입니다.” “희문동무요? 나 성에 곽민우요. 그간 잘 있었소?” “어이쿠, 성위 곽서기시라구요? 그간 무사하셨습니까? 참 오랜만입니다.” 성당위의 곽서기라는 소리에 희문이는 앉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성에서 오는 전화라니 회의참가자들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였다. “무사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났겠소?” 요사이 우에 어른들도 모두 신경이 민감해졌는가. 지금 간부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래사람들이 “건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면 “내가 언제 앓는합데?” 하며 불쾌해했고 “그간 무사하셨습니까?” 하면 “내가 무슨 문제라두 생겼답데?”라며 성내는것이 보통이였다. 희문이는 실언한줄 알고 제꺽 말투를 바꾸었다. “네, 그게 아니라 유쾌히 잘 지우시는가 해서요.” “그럼 유쾌히 잘 있지. 당신두 잘 지우구 있는거겠지?” “저야 뭘 곽서기한테 비하면 아무것두 아니지요. 그런데 무슨 지시가 있습니까?” “이번에 성당위의 결정에 의해 성에서 동무네 시에 렴정건설조사조를 파견하게 되는데 동무가 많이 협력해야 하겠소.” “녜? 성에서 렴정건설조사조가 내려온다구요?” 회의참가자들은 눈이 휘둥그래서 서로 쳐다보았다. 우리 시에 무슨 일이 생긴건가? 왜 성에서 갑자기 렴정건설조사조를 내려보낸다는거지? 그러잖아도 요즘에는 사처에서 부패간부들이 하나둘 잡혀나오며 간부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때라 조사조란 소리만 들어도 간부들의 말초신경이 꼿꼿해나는 판이였다. “그렇소. 이번 검사조는 사람이 검사하는것이 아니라 기계가 검사하는거요.” “녜? 사람이 검사하지 않구 기계가 검사한다구요?” 희문이는 갑자기 얼떨떨해졌다. 설마 롱담을 하는건 아니겠지? 회의참가자들도 어리벙벙해났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사람이 검사하지 않고 기계가 검사한다니. 간부대오 렴정건설 수십년에 듣다 첫소리였다. “이 기계는 전자뇌라구 하는데 중앙연구기관에서 20년공력을 들여 연구해 낸것이데 10만여차의 림상실험을 거쳐 정확도가 거의 100%에 도달하는 첨단과학 연구성과라오..” “전자뇌라구 한다구요? 정확도가 거의 100%에 달한다구요?” 회의참가자들은 들을수록 신경이 곤두서 물 마시던 사람들은 고뿌를 내려놓았고 담배피우던 사람들은 담배불이 손가락사이로 거의 타들어가는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전자뇌로 각급 간부들의 당성과 사상성을 검측하여 우수, 합격, 불합격으로 등급을 나누게 되는데 앞으로 간부를 사용하고 등용하는데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게 될것이오.” “간부들의 당성과 사상성을 검측하게 된다구요?” 회의참가자들은 또다시 서로 쳐다보았다. 당성과 사상성도 기계로 검측한다구? 이건 들을수록 심산이네. 일이 보통일 같지 않았다. “그리구…곁에 사람이 없소?” “예, 지금 회의중인데요…” “그럼 곁에 사람들을 잠시 내보내주오.” 희문이는 수화기를 내려 한손으로 막으며 여러 사람들께 말했다. “성에 곽서기한테서 오는 전화구만. 모두들 잠시 옆칸에 나가주시오.” 회의참가자들은 자기들이 들어서 안되는 것이라면 어지간한 비밀이 아니겠다고 예측하며 모두들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그냥 앉아있으면 귀동냥이라도 할수 있을건데. ‘녜, 사람들이 다 나갔습니다…” “그리구 이건 절대 비밀인데 동무만 알고있소. 우리가 간부들한테 공개적으로 말할 때에는 당성과 사상성을 검측한다구 말하구 실제상에서는 간부들의 렴정정황을 검측하는것이요. 다시 말하면 부패행위가 있나없나 하는것이요. 더 구체적으루 말하면 아래사람들한테서 얼마를 받아먹었냐, 웃사람들한테 얼마나 회뢰했냐, 애인은 있냐없냐, 몇이냐 하는것 등이요…” “녜? 그런것까지도 다 검측해냅니까?” “물론이지. 하지만 기계만 믿어서는 안되지. 그 수치에 따라 세밀한 조사가 뒤따라야 하는거요. 하지만 조사는 아주 쉽게 진행될거요. 부패행위가 있으면 구체 수자와 때와 장소, 사람이름과 전화, 핸드폰 번호까지 다 나오게 되니깐…” “녜? 그렇게까지 상세히요?...” “이건 한 간부의 전도와 운명에 관계되는 일인데 이런 과학성이 없으면 이처럼 중대한 일에 기계를 사용할수 있겠소? 우리는 과학을 믿어야 하는거요.” “녜, 알겠습니다.” 희문이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굳어지며 전화를 다른 손에 바꿔쥐였다. “성당위조직부 부부장 초효화가 성당위의 파견을 받구 전자뇌를 다루는 과학일군들과 함게 내려가게 될거요. 래일아침 비행기편으로 도착할거요. 동무네 변강시는 전 성적으로 렴정건설이 가장 잘 된 지구이기에 성에서 시점으로 하는거요. 이제 초효화를 만나게 되면 그가 구체적인것을 이야기할거요. 그럼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소. 그리구 한가지 특히 강조할것은 그 전자뇌가 전 성에 한대밖에 내려오지 않았다는거요. 그러니 절대 기계에 차실이 없도록 사용과 보관에 중시를 돌려야 하겠소, 알겠소?” “녜. 알겠습니다. 녜녜, 그럼 안녕히.” 희문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사지에 대못을  박아놓은듯 의자에 앉아 움직일줄 몰랐다. 세상에 이런 검측법도 다 있단말인가? 과학이 발전되니 못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거짓말탐지기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전자뇐지 뭔지 하는 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 아닌가. 그런데 다른 나라에도 아직 부패행위를 검측하는 이런 기계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이건 우리 나라 과학수준이 이면에서 다른 나라를 앞질러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희문이는  형연할수 없는 복잡한 사색에 잠겼다. 집정당의 렴정건설에서 오래동안 간부들의 자각에 맡기고 행정교육식으로도 안되니 이젠 이런 과학적인 방법을  쓰는건가. 전자뇐지 뭔지 하는게가 정말 그렇게 령통하다면 이제 우리 시에 얼마나 큰 풍파를 몰아올것인가. 시장경제시대에 털어서 먼지 안난다고 장담할수 있는 간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지금 군중들은 과장이상 간부들을 아무나 잡아넣고 후에 판결해도 억울한 눔 하나도 없다고 질책하고 있지 않는가. 보아하니 이는 중앙으로부터 내려온 지시같았다. 당내의 부정부패를 척결할데 관한 중앙의 결심은 갈수록 커가고 조치도 갈수록 과학적이 되고있지 않는가. 아무튼 상급의 지시니깐 집행하는수밖에.    희문이는 비서더러 옆칸에 가 기다리고있는 간부들을 자기칸에 불러오게 하였다. 건너온 간부들은 모두 희문이를 쳐다보며 그의 얼굴에서 성위의 비밀지시 내용을 얼마간이라도 읽으려하는 눈치였다. 희문이는 그런 눈치를 모르는척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 원래하던 회의를 계속했다. 하지만 간부들은 제사에는 뒤전이고 제밥에만 마음이 가 있듯 희문이가 말말간에라도 성위에서 내려온 지시정신을 얼마라도 내비치기를 기다리는 눈치들이였다. 하지만 희문이는 회의가 끝난뒤에도 성위의 지시정신에 대해서는 일반언구도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간부들의 의혹은 더욱 커갔고 마음은 어쩐지 알짝지근해났다. 그들은 밝지 못한 희문이의 얼굴에서 이제 뭔가 자기네 시에서 심상치 않을 일들이 발생하리라는 예감이 뇌리를 쳤다. 2     이튿날아침 희문이는 규례를 타파하고 자기가 친히 판공실주임 오장규를 데리고 공항에 나가 렴정건설조사조 일행을 맞아왔다. 일행은 5명이였는데 성조직부간부가 3명이였고 중앙에서 파견해 내려보냈다는 과학기술일군 2명이였다. 희문이는 그들을 홍영호텔에 자리를 잡게 하였다. 원래는 변강시에 하나밖에 없는 5성급호텔인 국제호텔에 예약해놓았으나 조사조를 책임지고 내려온 성당위조직부 부부장 초효화가 렴정건설조사조가 그처럼 호화로운 호텔에 들수 없다며 기어코 자리를 옮기자하여 별수없이 3성급호텔인 홍영호텔로 옮겨왔던것이였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희문이와 초효화는 호텔의 커피숍 단칸방에서 마주 앉았다. 사무실에 가면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이목이 번다하다며 초효화가 커피숍에서 조용히 만나자고 제의해왔던것이다.    “어제 곽서기께서 이미 전화를 하셨다니 정황은 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녜, 대체적인 정황은 알구있습니다만…”    “이번 렴정건설조사는 중앙의 통일적 포치에 따라 각 성에서 시점적으로 실행하는것입니다. 성당위에서는 모든면에서 앞장서 나가고 있는 변강시를 시점으로 잡았습니다. 그러니 조서기께서 적극 배합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기는 오전내로 시당위 상무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성위 정신을 전달하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시급간부들의 검측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각 지구와 시의 제1책임자들은 후에 성에 올라가 통일적으로 검측하게 될것입니다. 래일 오전에는 처급간부들의 검측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생각밖으로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 하지만 희문이는 그런 내색을 낼수 없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런데 검사는 어떻게 하는건지…” “녜, 검측기는 모자형으로 된 전자뇌인데 머리에 씌워서 10분이면 검측이 끝나게 됩니다. 전자뇌는 사람들 대뇌기억세포에 저장된 사실과 수치를 뽑아내여 종합하는건데 우리가 요구하는대로 조절할수 있습니다. 검측정확도가 아주 높습니다. 검측결과는 절대 비밀이여야 합니다. 그리구 곽서기께서 이미 말씀하셨다니 공개적으로 공포할 때에는 당성과 사상성을 검측한다는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기타의 내용을 알아서는 절대 안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전내로 시당위상무위원회확대회의를 하도록 하지요.” 그날 오전 10시에 시당위상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시당위상무위원회 긴급 확대회의가 열리였다. 시당위, 시인대회, 시정부, 시정협, 시규률검사위원회 등 다섯개 부문의 정, 부책임자 20여명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시급간부 6명이 출장갔거나 출국하고 없었다. 관례대로라면 시당위상무위원회 확대회의를 하려면 며칠전에 미리 통지하는것이 규례인데 오늘은 출근하기전에 통지하여 오전내로 하지 않는가. 전에 긴급히 한다는 성급간부 후선인선정투표를 할 때도 이렇게는 하지 않았는데, 무슨 큰 일이 생겼는가. 갑자기 불려온 시급간부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탐문하였다. 그러나 회의내용을 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앙의 무슨 긴급지시라도 있는가? 간부들은 무슨 중대한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시당위서기 조희문이가 엄숙한 얼굴로 회의내용을 공포하고 성당위조직부 부부장 초효화가 성당위의 정신을 전달하였다. 그는 중앙의 지시정신에 쫓아 성에서 조직한 이번 당성, 사상성조사의 중요한 의의와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 간부들이 이번 검사를 정확히 대하며 잘 배합해줄것을 요구하였다. 들어보니 큰일 같기도 하고 또 그런것 같지 않기도 했다. 당성과 사상성을 검사하는 일은 당내에서 밥먹듯 하는 일인데 다르다면 이번에는 기계로 검사한다는것이 전과는 좀 다를뿐이였다. 긴장되였던 간부들은 저으기 마음이 풀렸다. 그들은 자기들의 당성과 사상성에 대해서는 수십년전부터 자부하고 있는 터였다. 별일이 아니라는듯 어떤 간부들은 긴장을 풀며 다시 롱지거리를 하기도 했다. 회의는 한시간도 안되여 끝났다. 오후 두시부터는 검측이 시작되였다. 검측은 회의실 옆칸 휴식실에서 진행되였는데 한사람, 한사람씩 들어갔다가 10분쯤이 되면 나왔다. 처음 검측을 마친 간부가 나오자 모두들 욱 모여들며 어떻게 검측하던가고 물었다. 머리에다 모자같은 전자뇌라는걸 씌우는데 스위치를 넣으면 그저 좀 웅하는 전기소리가 들릴뿐 다른 감각은 없더라고 했다. 그리고는 검측하는 사람이 컴퓨터로 조작하는데 무슨 내용을 검측하는지 본인은 알바없으며 결과도 아직은 모른다고 했다. 검측을 마친 간부들은  그대로 돌아갈수 있었다. 검측을 기다리는 간부들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그래도 두근거려지는 마음을 달래려는듯 태연한척 롱담을 하며 있다가 자기차례가 돌아오면 말없이 검측실로 들어가군 하였다. 희문이는 간부들의 검측이 끝날 때까지 초효화부부장을 배동하여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어야 했다. 검측은 거의 다섯시간이나 걸려 저녁 일곱시에야 끝났다. 반시간가량 지나자 조직부 부부장이 검측결과들을 들고 나왔다. 그는 성에서 급한 전화가 와 자기를 찾는다며  희문이에게 검측자료를 넘겨주고는 호텔로 돌아갔다. 희문이는 손이 가는대로 종이장들을 뒤적이였다. 찍혀나온 검측결과를 훑어보던 희문이의 두눈은 점점 커갔다. 그의 손은 점차 떨리기 시작하였다. 이게…이게 과연 사실이란 말인가, 전자뇌의 검측을 확실히 믿을수 있는건가? 그는 종이 한장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시규률검사위원회 서기 리만규의 검사결과였다. 그는 97차에 거쳐 도합 3478만원을 수뢰했다고 집계되여 있었다. 한번에 제일 많이 수뢰한 금액이 500만원에 달했다. 수뢰한 금액밑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돈을 어떻게 주었다는것이 똑똑히 밝혀져있었으며 회뢰한 사람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핸드폰번호가 낱낱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거래하고 있는 정부는 8명으로 나와있는데 녀인들의 이름, 년령, 직업, 전화번호, 핸드폰번호가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제일 나어린 녀인은 18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녀인들한테 언제, 어디서 어느 녀인에게 돈을 얼마 주었다는 액수도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그중 6명 녀인에게 집을 사주었고 2명 녀인에게 승용차를 사주었다.  녀인들에게도 모두 돈을 주었는데 제일 많이 받은 녀인이 57만원에 꼬리달렸다. 리만규가 10년래 녀인들에게 쓴 돈이 도합 876만원으로 집계되여있었다. 그 아래에는 리만규가 상급 지도자들에게 회뢰한 금액 600만도 적혀 있었는데 조희문에게 100만원을 회뢰했다는 조목도 있었다. 희문이는 화뜰 놀랐다. 전자뇌검사가 정말 이렇게 정확할수 있단 말인가. 희문이의 이마에는 어느듯 땀방울이 뾰족뾰족 돋아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다음 장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시당위부서기 석기성의 것이였다. 그는 25차에 거쳐 도합 632만원으로 수뢰하였다고 집계되여있었다. 선전부장으로 있다가 부서기로 된지 3년밖에 안되여 받은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에게도 장기적으로 거래하는 정부 5명으로 나와 있었는데 녀인들에게 준 돈이 도합 92만으로 집계되여 있었다. 회뢰했다는 란에는 6명에게 50만원을 주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깎쟁이같은 눔이 받아먹기만 하고 상급지도자에게는 요것밖에  회뢰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거기에 자기에게도 20만원을 주었다고 적혀있었다. 시급 지도간부들의 검사정황을 한장한장 번져보니 백지마냥 깨끗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올라온지 얼마 안되는 선전부장과 부시장 등 몇몇은 아직 수뢰했다는것은 없고 상급간부들에게 회뢰했다는 수자만 적혀있었다. 생각밖으로 시정건설을 책임진 부시장 장덕진은 수뢰액이 4600만원에 달했다. 자기에게 주었다는 200만원도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수뢰금액이 천만원이상에 달하는 간부가 5명이나 되였고 500만이상도 일곱명이 되였다. 제일 적다는것이 정협부주석 왕수산이 받았다는 5만원이였다. 그것도 11번에 거쳐 받은것이였다. 돈을 준 사람들의 명단을 보니 가도주임도 있었고 개체공상호도 있었고 소학교교원도 있었다. 아마 자그마한 일들을 부탁하고는 인사치례로 받은것 같았다. 사람이 째째하기는, 모기다리에서 피를 뽑은것이였다. 이사람은 받아먹은것이 적어서 평소에 자기처럼 깨끗한 간부는 없다며 늘 불만을 터뜨리고 삐뚜렁소리만 해왔는가. 다음으로는 16만원을 받았다는 시인대 부주임 관두성이였다. 그도 스물한번에 거쳐 받았는데 시간을 보니 거의 문교위생을 관할하는 부시장으로 있을때 받은것이였다. 희문이는 더 이상 보고있을 경황이 없었다. 그는 쏘파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두 눈을 감았다. 자기에게 얼마를 주었다는 금액과 언제 주었다는 시간, 누가 주었다는 명단만 보아도 전자뇌의 검사는 완전히 정확하였다. 출장간 6명은 이번 검측에서 빠졌지만 그들이라구 모두 깨끗하겠는가. 세상에 눈작은 량반은 있어도 입 작은 량반은 없다더니 어떻게 하나같이 이처럼 제배를 채워왔단 말인가. 임금님이라는게 제아무리 똑똑해서 천하를 돗자리 말듯한다구 우쭐렁거려도 아래것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 않을수 없다더니 이렇게 남의것을 숱해 받아먹구서야 아래사람들의 장단에 춤을 추지 않을수 있겠는가. 지방에서는 모두 위풍이 당당하기를 룡꼬리에 범이 앉은것 같지만 이렇게 알고보면 비단보에 싼 개똥들이 아닌가. 희문이는 저도모르게 후 한숨을 내쉬였다. 이제 자기가 5년간 령도해온 변강시에서 세상을 놀래울 대지진이 일어날것만 같은 예감이 그를 엄습해왔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러한 검측결과를 성에서 내려온 초효화가 자기에게 보여주는것은 왜서일가? 자기는 아직 보지 못했다는데 정말 보지 않았을가. 정말 성에서 긴급전화가 왔을가, 다른 한부를 성에다 보낸것은 아닐가, 희문이의 생각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누구의 검측결과에나 금액, 시간, 장소., 이름, 전화번호, 핸드폰번호들이 똑똑히 적혀있는데 해당부문에서 조사확인하기는 식은죽 먹기였다. 이대로 가만두었다는 전 성의 모범지구에서 조만간 성위를 놀래우고 중앙을 놀래울 부패사건이 터져나오고야 말것이였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무슨 방법이든 대야 했다. 희문이는 검사결과들을 추스려모아 공문가방에 넣고는 급급히 사무실을 나섰다. 3    집에 들어서니 깔끔하게 생긴 안해 옥화가 예전같이 살틀히 마중했다. 그는 남편의 공문가방을 받아쥐며 물었다.    <오늘은 전화도 없이 왜 이렇게 늦어졌어요? 저녁식사는 하셨나요?>    <안먹었소.. 먹고싶지 않소.>    옥화는 희문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랍게 물었다.    <어디 불편한가요? 얼굴색이 말이 아니네요?>    <아무것두 아니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억척같이 변함없던 희문이의 얼굴이 저도모르게 많이 흐려져 있었던것이였다. 희문이는 무뚝뚝하게 말하며 그대로 객실로 들어갔다. 옥화가 따라 들어오는것을 그는 조용히 있고싶다며 밀막아 내보냈다. 그는 쏘파에 엉덩이를 싣자마자 다짜고짜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녀인의 사글한 전화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나 조희문인데 리서기를 바꿔주시오.>    <녜, 조서기시군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그분이 아직 집에 안들어오셨는데요.>    <그래요? 알았습니다.>    젠장, 또 어데가 술판에 붙어있는건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두 모르구, 희문이는 한마디 욕설을 내뱉으며 리만규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핸드폰이 한참이나 들어가는데도 받지 않는다. 희문이는 핸드폰번호를 다시 련속 눌렀다. 한참 지나서야 핸드폰을 받는 건방진 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시오, 나 리만규요, 누구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거요? 나 희문이요>    그러자 대방에서는 금방 말투를 바꾸며 공손해졌다.    <아예, 조서기시군요, 이 밤에 무슨 일에, 전화를 다 하시구, >    <말투를 들어보니 술을 마셨구만, 당신 지금 어데 있소?>    <예, 지금 국제호텔에서 손님들과 식사하고 있는중입니다…>    <식사구뭐구 집어치우구 지금 당장 나한테루 오시오.>    <예? 지금이요? 지금 식사가 한창인데…래일가면 안되겠습니까?>    <당신 정신있소? 래일이라는게 뭐요? 당신머리에 어떤 벼락이 내리칠지두 모르구 지금 펄쩍히 들어앉아 밥먹구 술 마시구 있단말이오?>    <예? 무슨 말씀을…그럼 무슨 일이라두…>    <오늘 전자뇌검측을 한걸 잊었소? 당신 운명과 관계되는 큰일이니 지금 당장 나한테로 오시오.>    희문이는 화김에 대방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수화기를 활 놓아버렸다.    리만규는 이미 끊겨진 핸드폰을 든채 멍하니 앉아있다가 뭔가 제정신이 펄쩍 드는듯 했다. 그는 부랴부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이서기님, 왜 갑자기 이렇게 일어나십니까?...”    변강시에서 명성이 뜨르르한 흠신부동산개발회사 동사장 류신축이 올빼미눈을 커다랗게 뜨며 리만규를 쳐다보았다. 그의 수하 몇사람도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 리만규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미안하오. 급한 일이생겨서…내가 먼저 일어나야 하겠소…”    “술이 이제 한창인데 그렇게 일어나시면…”    “당신들끼리 식사하오…후에 다시 보기오…”    리만규는 류신축네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며 옷걸이에서 자기 웃옷을 벗겨들고 급급히 나갔다. 류신축은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이젠 리만규와 허물없는 사이가 되여 자주 모여앉아 이렇게 술을 마시지만 급한 일이 있다며 중도에서 저렇게 자리를 차고 일어나 나가기는 처음이였던것이였다. 그러니 리만규가 즐겨가군 하던 2차, 3차도 수포로 돌아가는것이였다. 더우기 오늘저녁은 리만규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 모처럼 청해모신건데, 인사돈도 준비해놓고…    호텔연회청에서 빠져나온 리만규는 그길로 자기의 승용차를 몰고 희문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누구세요?”하는 녀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녜, 리만규입니다…”    현관에 들어선 리만규는 술냄새를 풍기며 옥화에게 대충 알은체하고는 곧추 희문이가 있다는 객실로 들어갔다.    희문이가 아니꼬운 눈길로 리만규를 쏘아보았다. 이젠 함께 사업한지도 여러해가 되지만 희문이가 자기에서 저런 쌀쌀한 눈길을 보내기는 처음이였다. 리만규는 뭔가 아주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조서기, 무슨 급한 일이라두…” “저기 앉아 이걸 좀 보란 말이오…” 희문이는 종이 한장 넘겨주며 쏘파를 가리켰다. 무심히 종이장을 들여다보던 리만규의 눈은 화등잔만해졌고 종이장을 쳐든 두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리만규는 꺽꺽거리며 말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다. “어떻소? 그게 다 사실이오?” 희문이는 담배를 길게 한모금 빨아들였다가 후 내뿜으며 리만규에게 쌀쌀한 눈길을 던졌다. “이거…이거…” 리만규는 꺽꺽거릴뿐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이거, 이거만 하지 말구 제대로 말해보오. 만일 그 검측이 잘못된것이라면 떳떳이 말해보란 말이오. 그럼 나두 시름놓구 상급당조직에서 마음대로 조사해보라구 배짱을 부릴게오. 잘못한게 없으면 밤중에 귀신이 문을 두드려도 무서울것 없다지 않소?” “안됩니다. 그건 안됩니다…어떻게 이렇게 정확히…조서기 방법을 대야 합니다. 이대루 가만 놔두면 우린 다 당하구 맙니다…” 리만규의 얼굴에는 어느듯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혔다. 술기운에 불깃불깃하던 유들유들한 얼굴은 어느듯 피기가 다 빠진듯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평소에 하급들 앞에서 어험어험 위엄있게 문건전달을 하고 손을 힘있게 내저으며 청산류수마냥 연설할 때의 그런 당당함과 도고함은 꼬물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희문이는 리만규의 락태한 꼬락서니를 아니꼽게 쏘아보며 음성을 높였다. “전문 당내의 렴정건설을 틀어쥐고 간부들의 부정부패를 감독하고 방지하고 사출한다는 당신이 어떻게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제배를 불릴수 있단 말이오? 전에두 당신에 대한 반영을 못들은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구린내나는 구정물통일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규률검사위원회서기인 당신은 누구보담도 청렴해야 할 사람이지만 부패하자면 또 누구보담도 먼저 부패할수 있는 위치요. 간부들이 얻어먹은것이 들통나면 먼저 당신부터 찾아 사정해야겠으니.  일이 이젠 이 지경이 됐으니 난들 어쩌란 말이오?” 리만규를 한참 닦아세우던 희문이는 갑자기 자기도 그에 비해 별로 나은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위선의 허울을 쓰고 이 세상을 활보하는 저런 <거룩한> 인간들이 지금 오죽이나 많은가. “저도 이런 날이 올가봐 마음졸이며 요행을 바랐는데 그 전자뇐지 사자뇐지 한게가 이렇게 정확히 집어낼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아무리 한다하는 사람이 조사해서는 이렇게 밑바닥까지 환히 들춰내지 못합니다. 시장경제시기에 털면 먼지안날 간부 어데 있습니까. 그저 털려나오는 눔이 재수없을뿐이지요. 그러니 그 전자뇐지 뭔지 한거를 저대로 두어서는 안됩니다. 조서기 방법을 대야 합니다…” 리만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안타깝게 희문이를 쳐다보았다. 그의 가련한 꼬락서니를 보고 희문이도 많이 누그러졌다. 이는 그 한 사람의 일만이 아니였던 것이다. 의리는 바위처럼 무겁고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지 않는가. 희문이와 조수들간의 관계는 한치 걸러 두치만 되여도 피가 맹물로 되여버리는 그런 서푼짜리 인척관계가 아니라 한넝쿨에 얽힌 심복지우관계였다. “이만하구 돌아가 보오.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가 당신두 잘 생각해 보오.” “그럼 조서기만 믿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변강시의 간부들을 살려야 합니다…” 리만규는 후둘후둘 떨리는 몸을 겨우 가늠하며 희문이에게 호소했다. 희문이는 어서 가보라는듯 말없이 손을 내저었다. 리만규가 떠나간후에도 희문이는 머리를 집고앉아 뭔가 생각하다가 다시 송수화기를 들었다. 밤이 짙어가고 있지만 자기수하 간부들의 전도와 운명이 엇갈릴수 있는 관건적인 이 밤을 희문이는 발편잠을 잘수 없었다. 하지만 대방의 핸드폰에서는 매정한 뚜뚜 소리만 들려올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원래 어지간히 짜증이 나있는데다 대방에서 전화까지 받지 않자 희문이는 그만 질탕관에 두부 끓듯 화가 꼭두까지 치밀어올랐다. 이 시각 셋째정부의 집에가 침대우에서 한창 나젊은 녀인과 함께 뒹굴며 재미를 보고있던 시당위부서기 석기성은 련속 울려오는 핸드폰소리에 흥이 깨져 화를 벌컥 내며 품에 안긴 정부가 애교스레 넘겨주는 핸드폰을 넘겨받았다. “제길할, 누군데 이 밤중에 재수없이  줄전화를 걸어오는거요?” 거만하게 화를 내며 전화를 받던 석기성은 대방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화뜰 놀라며 퍼러낏낏하던 배추잎이 대번에 삶은 시래기꼴이 되였다. 그는 품에 안겨 자기목을 끌어안고 핸드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정부를 한켠에 밀쳐버렸다. “예, 예… 조서기시군요…곧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예, 예…” 자기앞에서 언제나 큰소리로 남을 욕하고 훈계만 하던 사람이 오늘은 얼마나 높은 사람이 전화왔길래 저처럼 절절매는지 한켠에 밀려난 정부는 실 한오리 가리지 않은채 두눈이 올롱해서 기성이를 쳐다보았다. 기성이는 소 궁둥이에 폭죽이라도 터친듯 침대에서 화들짝 뛰여내리더니 부랴부랴 옷을 주어있었다. 급하니 두 다리가 한 바지가랭이안에 들어가 침대에 힌들 나번저지기도 했다. 그는 버둥거리며 일어나 다시 가랭이를 바로꿰고 급급히 바지를 춰올렸다. 정부는 전에없이 허둥대는 기성이를 놀랍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알몸으로 침대에서 내려 기성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애교스레 쫑알거렸다. “이렇게 가면 난 어쩜다? 가지 않으면 안됨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슴까?” “까불지마, 급한 일이 있어 가봐야겠다. 래일 또 올게…” 기성이는 번대머리를 가리느라 쓰고다니던 모자를 집어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저 영감도 무서운 사람이 따로 있나? 꼭 마치 불난 집 사람같이 허둥대네…” 정부는 청춘미가 흘러넘치게 탱탱한 자기의 두 젖무덤을 거머쥔채 서서 기성이 빠져나간 문을 바라보며 알수 없다는듯 쫑알거렸다. 허둥지둥 희문이의 객실에 들어선 기성이는 웃음기라곤 없는 희문이의 딱딱한 얼굴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급한 일이라니 무슨 일이신지…” “이 밤중에 전화두 제때에 받지 않구 어디로 쏘다니는거요? 혹시 정부집에 가 뒹굴다온건 아니오?” 기성이는 정곡을 찌르는 희문이의 난데없는 소리에 그만 가슴이 철렁했으나 극력 웃음을 지어보였다. “조서기두 무슨 롱담을 그렇게…계집들이 달려들어두 이젠 피해다닐 나인데…” “말은 잘하는군. 내가 롱담하나 이걸 보오.” 희문이는 기성이를 아니꼽게 쏘아보며 종이장을 내밀었다. 기성이는 의아쩍게 종이장을 받아쥐였다. 종이장을 훑어보던 그의 두눈은 점점 사자눈이 되였다. “이거…이거 어떻게 된겁니까?...” “이것이 오후에 전자뇌가 검측해낸 검사결과요.. 모두가 사실과 틀리는거 아니오?” 희문이는 경멸하는 눈길로 창백해지는 기성이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어떻게 이럴수가…” “거기에 나온 수뢰금액과 정부를 숨겨두고 있다는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면 떳떳이 말해보오. 그러면 나도 상급에서 마음대로 조사하라구 배짱을 부릴테니.” “아니…아니… 안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기로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러면 그것이 모두 사실이란 말이오? 그럼 나도 어쩔수가 없구만.” “안됩니다. 이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대로 가만놔두면 저뿐만 아니라 우리 변강시 간부들이 다 죽어나게 됩니다. 빨리 무슨 방법이든 대야 합니다…” “낸들 무슨 방법이 있겠소. 우리 모두가 고스란히 자백하는 수밖에 무슨 방법이 더 있겠소. 자백해도 검측결과가 나온후에 한것이니 법적으루 관대처분을 받기는 틀릴거구…” “우린 운명을 같이 한 한 전호속의 전우입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무슨 당성과 사상성을 검측한다더니 이건…그눔의 전자뇐지 떡대가린지 마사버리든지 고장이라두 나게 하던지 해야 하는건데…” “그게 당성과 사상성을 검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소. 겉으로는 당성이 강한체하구 뒤로는 제안속이나 챙기는 사람들을 당에서 가만놔두겠소? 먼저 돌아가 잘 생각해 보오…”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고 날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르짖으며 백성들에게 보여준 저따위 간부들의 아름다운 선행과 신비한 기적들이 사실은 모두가 <상두복색>처럼 위선과 거짓에 불과했단 말인가? 장례때 상여의 꾸밈새를 좀 보라. 눈이 부시게 울긋불긋 비단치장으로 환하지만 정작 관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면 썩어서 냄새나는 송장이 들어있지 않는가. 사람들이 날마다 찾아가 경건히 기도하는 사당에 배향된 위풍이 당당한 불상의 거룩한 모습도 실상은 흙으로 빚어만든것이 아닌가. 희문이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털어댔다. “아직 아무런 해결책두 없는데 제가 불안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돌아안가면 여기서 자기라두 하겠다는거요? 있어봤대야 무슨 뾰죽한 해결책이 있겠소. 콩밥먹으러 들어가기전에 가서 잠이나 실컷 자두오.” “무슨 말씀 그렇게…저희들이 다 콩밥을 먹게 되면 조서기님두 무사하겠습니까. 지금 조서기밖에 방법을 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조서기만 믿구 가겠습니다… 아무튼 꼭 방법을 대야 합니다…” 억철이는 맥없이 손을 내저었다. 기성이는 얼마나 혼비백산했던지 나가면서 문틀에 이마를 쾅 쪼아버렸다. 그통에 우사모가 벗겨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뒤로 휘청하던 그는 바삐 모자를 주어들고 나갔다. 그꼴을 보고서도 희문이는 웃음이 나가지 않았다. 기성이가 나가자 옥화가 문을 밀고 조심스레 들어섰다. “무슨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 아닌가요?...” “당신 상관할 일이 아니오. 들어가 자기나 하오.” “일이 너무 심상치 않아서 그래요, 이 밤중에 서기들이 황황히 드나드는것도 그렇고 얼굴표정들이 모두 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더러 엿들었는데…” “뭐요? 당신 엿들었다구?...” “이렇게 큰 일인데 저라구 맘 편하겠어요? 전자뇐지 뭔지 한게가 그렇게 정확히 문제를 집어내면 이곳 간부들이 다 죽어나는게 아니겠어요. 석보랑 순보랑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구 큰 생원, 작은 생원두…” 석보란 재정국 국장으로 있는 옥화의 큰 동생이고 순보란 세무국장으로 있는 작은 동생이였다. 큰 생원이라는 희만이는 희문의 큰 동생으로서 감찰국 국장이고 작은 생원이라는 희수는 희문이의 작은 동생으로서 건설국 국장이였다. 옥화의 걱정이 무리는 아니였다. 이대로 가만놔두면 부귀영화를 누려오던 희문이의 형제들과 옥화네 형제들도 모두 봉변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다. 그러게 되면 자기네 가문에 망신살이 뻗치는건 물론 가문의 형상이 하루밤사이에 무너지고 억망이 될것이였다. 희문이는 맥이 빠진 소리로 옥화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들한테 전화를 걸어 래일 이른 아침으로 모두 일거리를 만들어 멀리 출장가라구 하오 왜냐구 묻거들랑 그저 내가 그렇게 하라더라구 하오, 하지만 나한테 절대 전화질 하지 말라구 하오” “그렇게만 해서 되겠어요?..장구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눈이 내릴 때보다 눈이 녹을 때가 더 춥다는데….” 옥화는 근심이 가득 서린 눈길로 얼굴이 전에없이 굳어진 희문이를 쳐다보며 자리를 뜰념을 하지 않았다. “래일 오전에 현처급간부들이 전자뇌검측을 하는데 먼저 빠지구 보는게 상수요. 그러면서 방법을 대봐야지. 아직까지는 나두 뾰죽한 수가 없소.” “방법을 잘 생각해 보세요. 아니면 변강시에 그리구 우리 가문에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겠네요.” 옥화는 활량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조용히 객실을 빠져나갔다. 옥화가 나간후 희문이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주위의 모든것이 하나도 달라진것이 없는데 바야흐로 그 모든것이 달라지려 하지 않는가. 그처럼 손에 익고 눈에 익고 귀에 익은 모든것이 한순간에 손설고 눈설고 귀에 설은것으로 되여버리려 한다.  꿀벌은 몸안에 꿀만 가지고 있는것이 아니라 꼬리의 침과 독도 가지고 있다. 만약 사람의 마음속에 지옥과 극락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희문의 마음속에는 지옥의 기름가마가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만약 사람의 마음속에 선과 악이 함께 깃들어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희문이의 마음속에서는 지금 악의 도가니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관건적인 시각에는 아무리 심복지우라도 믿을것이 못된다. 지금은 류호란처럼 작두에 선뜻 목을 들이밀 눔 없고 강설금처럼 참대바늘이 손톱밑에 박혀도 절개를 지킬 눔 없다. 매란 놈이 주인에게 꿩을 잡아주고 싶어서 잡아주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전자뇌의 출현은 간부들에게 있어 역병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였다. 이제 자칫 늦게 손쓰다는 사회에서 벼라별 망칙스러운 험담과 숨은 비밀이 흉측한 뚜꺼비마냥 뛰쳐나올 판이니 다년간 알심들여 꾸미고 다듬고 만들어놓은 자기의 체면과 영예와 형상이 한순간에 우박맞은 소똥무지가 되여버릴것이였다.  희문이는 주저없이 공안국 국장 요희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국장이요? 나 희문이요. 밤중에 찾아 안됐구만. “예, 조서기님, 무슨말씀을 그렇게…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희문이는 소리를 죽여가며 뭔가 수화기에 대고 한참 이야기를 하였다. 약 10분후 수화기를 내려놓는 희문이의 얼굴에서는 알수 없는 한가닥 미소가 비껴지나갔다. 4      이튿날 오전 어제오후 시당위와 시정부판공실의 통지를 받은 당정 각 부문 현처급간부들이 회의실에 줄레줄레 모여들었다. 그들은 서로 만나자마자 회의 내용이 궁금한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뭔가 수근거리고 있었다.      희문이가 성당위조직부부장네와 함께 회의실에 들어서니 모두들 자리를 바로잡고 앉아 희문이네를 쳐다보았다. 희문이가 자기자리를 찾아 회의실을 휘ㅡ 둘러보니 온 사람은 와야 할 사람의 절반이 되나마나 했다. 조직부, 감찰국, 재정국, 인사국, 건설국, 교통국, 토지국, 도시전망규획국, 발전개혁위원회, 경제위원회, 교육국, 공안국, 상무국, 개발구위원회 등 권세있고 돈있는 부문의 책임자들은 거의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인대의 몇몇 부서, 정협의 몇몇 부서, 선전부, 통전부, 기관당위, 부련회, 공청단위, 당사연구실, 사회과학련합회, 문련, 작가협회, 과학기술협회, 장애자협회, 귀국화교협회, 공상련합회 등 실세가 없고 돈비라리만 하는 부문의 책임자들이 모여앉아 자기를 말똥히 쳐다보고 있었다. 희문이의 입가에서는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아직 간부들이 채 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먼저 시작할가요?”       희문이는 곁에 앉은 초효화의 의견을 물었다. 초효화는 아직 많은 자리가 비여있는것이 썩 내키지 않아 회의장을 휘ㅡ 둘러보고 또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별수 없다는듯 희문에게 고개를 끄떡여보였다.       “조용하시오, 그럼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합시다. 먼저 성당위에서 내려오신 지도자분들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이번 사상검사를 위하여 성에서 모처럼 내려오신 성당위조직부 부부장 초효화동지입니다. 열렬한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회의실에서는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초효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보냈다. “이분은 성당위조직부 간부1처 처장 왕문신동지입니다.” 왕문신처장이 일어나 인사하였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드문히 울렸다. “   “오늘 회의는 우리 변강시 현처급간부들의 당성과 사상성을 검증하는 회의입니다. 이번 검증은 이전과 달리 중앙과학연구부문에서 내려보낸 전자뇌로 검증하게 됩니다…”      “뭐라구? 전자뇌라는게 뭐야?...”      “기계로 당성을 검측한다구?...”      “듣다듣다 별소리 다 듣네…”      회의실에서는 갑자기 수근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조용하시오, 조용하시오. 전자뇌라는건 과학적 의기인데 그것을 머리에 쓰워 10분가량 지나면 한 간부의 당성과 사상성의 수치를 아주 정확히 밝혀냅니다. 그럼 이번 검증의 중요성에 대하여 성당위조직부에서 오신 초부부장께서 말씀이 있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합시다.”     회의실에서는 박수소리가 시원치 않게 울려왔다.  초효화는 당중앙의 지시정신과 결합하여 당내의 부정부패를 제거하며 간부들의 당성과 사상성을 높여 렴정건설을 보다 가일층 강화할데 대하여 피력하고 나서 이번 전자뇌의 과학적 검증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간부들마다 이번 검증을 정확히 대하며 잘 배합해줄것을 요구하였다. 회의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듯 조용했다. 간부들은 들을수록 어리뻥뻥 해났는지 초효화를 쳐다보며 도정신해 귀를 기울이였다. 정신전달이 끝나자 간부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 자기 검측차례를 기다렸다. 모두들 처음에는 좀 긴장해하는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며 점차 탕개가 풀렸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담배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 지나도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희문이와 초효화는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다 그들은 서로 좀 더 기다려 보자는듯 침묵을 했다. 간부들도 앉아 있기 갑갑한지 화장실에 드나들기도 하고 복도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한담하기도 했다. 이윽고 전자뇌를 다루는 한 기술일군이 회의실에 들어오더니 곧추  초효화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뭔가 소곤거렸다. 초효화의 얼굴은 금시 굳어졌다. 그는 기술일군에게 뭔가 지시하고는 희문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자뇌가 무슨 고장이 생겼는지 작동이 잘 안된답니다. 다그쳐 수리하라고 했으니 좀 더 기다리지요.” “그래요? 그럼 좀 더 기다려 보지요. 첨단기계니 인차 수리되겠지요..” 희문이는 태연하게 말하며 담배를 꼬나물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가자 간부들이 짜증나했다. 할 일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시간랑비를 시키느랴고 끼리끼리 두덜거리기도 했다. 희문이는 그러는 간부들을 여유있게 바라보며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한시간가량 지난후 아까 들어왔던 기술일군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회의실에 들어왔다. 그는 또 뭔가 초효화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초효화는 이번에는 화를 벌컥 내며 그 기술일군을 닦아세웠다. 그 기술일군은 차렷자세로 서서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초효화도 자기들을 지켜보는 간부들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어조를 바꾸며 뭐라고 부드럽게 말해 기술일군을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희문이를 돌아보며 어색한 웃음을 띄웠다. “지금도 고장원인을 찾지 못해서 전자뇌가 작동이 안된다는군요 아직도 언제 수리될지 모르겠다니 미안한대루 모인 간부들을 우선 돌려보냅시다.  수리가 되면 다시 통지하도록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래요? 어제까지도 잘 돌아가던 기계가 어떻게 돼 고장이 났지. 이 사람들 모두 바쁜 사람들이니 먼저 돌려보내도록 하지요.” 희문이는 판공실주임을 시켜 복도에 나가 담배피우며 한담하는 간부들을 모두 불러들이게 했다.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자 희문이가 회의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들 조용하시오. 원래는 오전중으로 여러분들의 검측을 마치려 했는데 전자뇌가 자그마한 고장이 생겨 시간이 지체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니 먼저 돌아갔다가 이제 정황을 보아 다시 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산.” 간부들은 공연한 시간을 랑비했다는듯 회의실을 나가면서 저가끔 낮은 소리로 두덜거렸다. “전자뇐지 뭔지 한걸루 검사한다구 사람을 얼구더니 이게 무슨꼴이람.” “그렇게 선진적인 과학연구성과라는게 왜 이 모양이야? 적어두 고장같은건 나지 말아야지” “사람을 웃기네. 전자뇐지 뭔지를 가지구 당성이구 사상성이구 검측한다니 나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구.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두 기계로 사람사상 검측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희문이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두덜거리며 나가는 간부들을 쓸어보았다. 많은 간부들은 전자뇌의 고장이 자기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어떤 종지부를 찍어 놓고있는지를 감감 모르고 있었다. 간부들이 밖으로 나오니 뜻밖에도 회의실문어구에 숫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간부들이 몰려나오는것을 보더니 어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구호를 웨쳤다. “전자뇌만세!” “전자뇌경례!” “전자뇌 잘한다!” 아마 간부들이 전자뇌검측을 받는다는 소문을 어디서 얻어듣고 시민들이 몰켜온것 같았다. 어떤 간부들이 부패에 걸려나올지 궁금했던 모양이였다. 근심에 쌓여 저쪽켠에 몰켜있던 녀인들이 자기들 남편을 보더니 우르르 쓸어나와 제가끔 제 남편을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 “전자뇐지 뭔지 하는 검사를 받는다더니 어떻게 되였어요?” “당신은 아무 일도 없는거지요?” 전자뇌가 고장나 검측을 받지 못했다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큰 시름을 놨네.”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는데…차라리 잘 되였어요.” “그게 무슨 뚱단지같은 기곈지 콱 박살이나 날감.” 저쪽에 몰려있던 시민들은 전자뇌가 고장나 간부들이 검측을 받지 못했다는 소리에 저마다 실망해하는 눈치였다. “처녀가 애를 낳두 할 말이 있다더니 또 발뺌을 하게 됐군.” “재수좋은 나그내 길 떠나문 오던 눈도 그친다더니 시름놓구 그냥 배를 채우게 됐군.” “크고작은 간부들이 서로 감싸는 세월에 간부들이 무더기로 잡혀나오기를 바라는 우리가 우둔하지. 자. 가기오ㅡ” 그후 며칠이 지나도록 간부들은 전자뇌로 당성과 사상성을 검측한다는 통지를 다시 받지 못하였다. 듣자니 전자뇌의 고장이 계속 제거되지 않아 내려왔던 사람들이 어깨처져 도로 성에 올라갔다는 소문이였다. 그로하여 내막을 알고있는 많은 간부들이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하지만 당내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중앙의 결심이 갈수록 커가고 있는 형편에서 이후 또 어떤 방법으로 당내의 렴정건설을 틀어쥐고 간부들의 부정부패를 들춰내려 할지 모를 일이였다. 우선 급한 고비는 용하게 지나쳤다하지만 뒤가 켕기는 간부들은 언제까지든 발편잠을 잘수 없었다. 사람이 하는 검사는 인정사정이 있지만 기계로 하는 검사는 곧은 자대여서 그것이 더 무서운 존재였다. 많은 간부들은 전자뇐지 사자뇐지 하는것이 영원히 작동되지 않기를 바랐다. 2009년 <도라지> 제6기   
21    [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7) 댓글:  조회:1297  추천:40  2010-08-23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7후에 들을라니 현행반혁명딱지를 쓰고 이사간 성철형은 새로운 고장에서 로동개조로  마을의 인분수레를 몰았단다. 현행반혁명분자이다보니 누가 그와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없었고 영호네들처럼 그와 <맛있는 일>을 이야기해 달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노래를 곧잘 부른다는것조차 알지 못하였다. 그저 말없이 수걱수걱 인분수레만 몰던 성철형이 하루는 불붙는 생산대 건조실에 뛰여 들었다가 건조실이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그대로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가  불끄러 들어갔다 죽었다하고 어떤 사람은 개처럼 몰리며 사는것이 귀찮아 자살하려고 뛰여들었다 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당사자가 이미 죽었는지라 주검을 붙잡고 불에 뛰여든 리유를 쪼질수도 없는 일이였다. 다만 살아있을 때 당과 수령을 모욕하고 해방군을 모독한 현행반혁명분자였다는 정치적분석으로 자살로 결론이 되였다고 했다. 새고장에 이사와 낯선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머리를 수그리고 수걱수걱 일만 하던 불쌍한 아들이 갑자기 불에 타죽자 고모는 그만 실신하여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들이름을 불러댔단다. 고모는 웬일인지 낮과 밤이 따로없이 성철형이 남기고 간 초롱을 들고다니며 길가에서도 아들 나또래되는 젊은이만 보면 성철이라고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아 마을젊은이들은 행색이 말이 아닌 고모가 보이면 멀리찍이 피해다녔단다. 그러한 소문을 듣고 아버지가 고모를 우리 집에 모셔오려 그 마을로 찾아갔으나 현행반혁명가족을 다시 변방지구로 돌려보낼수 없다며 그 마을 공작대에서 동의하지 않아 헛물만 켜고 돌아왔다. 고모는 너무 들고다녀 종이가 너덜너덜 떨어진 초롱을 들고 그렇게 떠돌며 헤매다 어느 날인가 큰길가에서 목재를 가득 실은 자동차에 치워 저세상사람이 되였다 한다. 그 소식도 썩 후에야 듣게 되여 우리는 고모의 후사에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불쌍한 고모도 초롱을 든채 그렇게 아들만나러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성철형도 죽고 고모도 죽자 임신한지 몇달되는 형수는 의지가지 없이 외홀로 지내다 언제부터인지 가근방에 이름있는 <오십전짜리>가 되여버렸단다. 그 정치돌출세월에도 형수의 반주그레한 얼굴과 하얀 살결에 반한 음특한 남정들이 늙은이고 젊은이고 한족이고 조선족이고간에 성에 굶주린 인간들이면 오십전을 찔러주고 아무곳에서나 <맛있는 일>을 벌리군 했단다. 임자없이 음달에 외로이 서있던 가냘픈 들꽃이 무자비한 우박들에 무참히 짓이겨졌다. 마을에서는 반혁명가정의 화냥년이 이사와서 마을기풍을 흐리운다고 그 마을에서 쫓아냈다고 하는데 그후에는 누구도 형수의 행처를 알지 못한단다. 친정집에서 데려갔다는 사람도 있고 이곳저곳 떠돌다 죽었다는 사람도 있었다.성철형네 <현행반혁명가정>이 타고장에 이사가 하나 둘 죽어갈 때에 계급각성이 높고 투쟁성이 강한 한조장은 현에 소환되여 조직부 부부장으로 승진하였고 당과 조직의 지시라면 무조건 관철집행하며 자산계급인성론에 얽매이지 않는 반란파 마만철이는 립신대대의 새로운 당지부서기가 되였다. 세월은 세월대로 흘러가고 혁명은 혁명대로 계속되였다. 하지만 산이 울면 들이 웃고 들이 울면 산이 웃는다더니 드디여 나라를 말아먹던 문화대혁명이 끝났다. 웃던 사람들이 울고 울던 사람들이 웃게 되였다. 계급투쟁학설로 사람잡이만 하던 혁명이라는 낫말이 퇴색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나는 첫 대학입시에 합격이 되여 북경명문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졸업후에는 북경에서 여러 기관을 전전하며 공직자로 근무해왔다. 성철형과 고모 그리고 형수가 억울하게 죽은지 수십년이 지났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나는 거짓이라고는 모르는 팔부 성철형이 공작대가 그렇게 족쳐댈 때에도 왜 그 노래를 죽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버텼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있다. 장백산 2009년 6기  
20    [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6) 댓글:  조회:1397  추천:46  2010-08-18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6전해 3월에 중쏘변경인 우쑤리강에 있는 진보도에서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해겨울에 중앙으로부터 전국인민들이 일떠나 방공굴을 깊이 파고 량식을 널리 저장하며 전쟁에 대처할 준비를 잘하라는 중요한 지시가 내려왔다. 지시에는 또한 정치적으로 믿음직하고 군사적으로 튼튼한 변방을 건설하기 위하여 변강지구에 있는 5류분자들을 모두100리밖의 안전지대로 전이시키라는 내용도 망라되여 있었다. 중앙의 지시가 시골마을까지 전해내려올 때는 이듬해 초봄이였다. 립신대대는 중쏘변경에서 6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립신대대의 <계급의 적>들도 전이범위에 들게 되였다. 제2생산대의 부농성분을 가진 두집을 말할것도 없이 이사가게 되였고 새로운 시기 현행반혁명분자 성철형도 말밥에 들게 되였다. 성철형의 이사여부를 두고 현공작대와 대대 토배기간부들 사이에 전에 없던 모순이 생겼다 한다. 계급각성이 높은 공작대 간부들은 성철형의 문제를 새로운 시기 엄중한 정치문제로 보고 현행반혁명분자인 성철형도 반드시 이사보내야 한다고 모를 박았다. 성철형의 사정을 잘아는 대대간부들은 성철형의 문제는 자산계급적인 생활부패 문제로서 남겨두고 교육해도 되지 않느냐 하는것이였다. 대대토론회에서 원래는 공작대의 말이라면 입안의 혀처럼 노긋노긋하던 당지부서기 덕만이네가 성철형의 문제를 둘러싸고는 생뚱같이 반기를 들고 나오는지라 한조장은 질탕관에 두부장 끓듯 화를 벌컥 냈다한다. <그런 현행반혁명분자를 왜 보내지 말아야 한단 말입니까? 그 자식이 팔부라는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그게 진짠지 가짠지 누가 똑똑히 알수 있습니까? ><거야 온 마을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 아니우? 저 나이를 먹도록 여태 눈 먼 중이 갈밭에 들어선듯 어디가 어딘지, 뭐가 뭔지를 가리지 못하는 그런 얼빤한 사람이 노래 한번 잘못 불렀다구 복벽을 꿈꾸는 계급의 원쑤라 취급하면 계급의 적이란게 모두 저런 바보들인가구 사람들이 웃지 않겠수? 그만큼 투쟁해서 사람이 인젠 제앞 발명도 바로 못하는 멍청이로 되였는데 이사까지 보내면 사원들이 너무한다 하지 않겠수?>성철형의 사정을 잘 알고있는 김덕만이와 대대 다른 간부들도 팔부 성철형을 두둔했단다.<제가 조사해 보았는데 그날저녁 그 자가 부른 노래가 원래 상급에서 부르지 못하게 엄금되여 있는 ××수정주의 나라 노래일뿐만 아니라 원래 수정주의가사에 또 더 악독하게 가사를 바꾸어 당과 수령을 공격하구 해방군을 모독했는데 이래도 죄가 작단 말입니까?>한조장은 계급투쟁에 관계되는 무산계급원칙문제에서는 추호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단다.<조사에 밝혀지다싶이 가사도 그 사람이 지어낸게 아니라 식별능력이 없어 그저 죽은 애비가 배워준걸 그대루 부른게 아니우?>< 그러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식별능력이 없는 바보를 계속 변방지구에 남겨 두었다가 계급의 적들이나 침략자들의 감언리설에 넘어가 또다시 나쁜짓을 할 때에는 혁명사업에 주는 손실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때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습니까?>그 말에는 덕만이도 할 말이 없었단다. 아무 식별능력이 없는 팔부가 계급의 적에게 리용되지 않는다고 누구도 담보할수는 없었던것이다. 전번에 불렀다는 그 노래도 식별능력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그것도 공작대와 대대간부들이 모두 눈이 퍼래 앉아있는 장소에서 재미있는 노래로 간주하고 아무 꺼리낌없이 흥이 나게 부른것이 아닌가. 그런 노래는 그런 장소에서 불러서는 절대 안된다는것을 어지간한 누뇌를 가진 사람은 모두 알수있는 일이였다. 더우기 날마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을 밝혀내고 숨어있는 계급의 적을 모조리 깡그리 붙잡아 낸다며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는 살벌한 정치형세하에서 그런 노래는 누가 돈을 주며 부르라 해도 부를 상머저리가 더는 없을것이였다. <그런 머절싸한 자식을 이 기회에 이사보내야 합꾸마. 한조장의 말씀마따나 쏘련수정주의가 쳐들어와 성철이보구 비밀을 대라면 그 자식 고도소이 불어댈게 아니미까?>민병련장 마만철이가 덕만이 눈치를 슬슬 보며 한조장에게 발라맞추었다 했다.<에끼, 이 사람, 성철이한테 무슨 수정주의가 요구하는 비밀이 있다구 그래?>덕만이가 한 마을에 살면서도 인정사정이 없이 너불대는 만철이를 쏘아보며 면박을 주었단다.<어째 그 자식이 아는 비밀이 없다구 그래미까? 그 자식이 적어두 한조장이구 지부서기구 민병련장이구 우리 마을 간부들을 다 알지 않습미까?>덕만이는 어처구니 없는지 만철이를 쏘아만 볼뿐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아무리 세월이 이렇기로 저 자식 부자집 소 바꾸듯 저렇게 쉽게 상전을 바꾸어 섬길셈인가며 한탄을 했단다.결국 성철형도 이사가는 5류분자명단에 들게 되였다. 이사가는 날 마을 사람들은 계급계선문제때문에 두 부농은 바래지 못하고 그래도 불쌍한 성철형은 나와 바래주었다. 년로한 고모도 짐을 꿍져가지고 이사가는 수레를 따라 나섰다. 자기가 따라가 곁에서 보살펴주지 않으면 험악한 딱지를 쓰고 가는 성철형네가 외딴 고장에 가 어떻게 살아 갈지 망연하였던것이다. 수레는 아버지가 몰았다. 공사에서 파견해보낸 두 민병이 보총을 메고나서 이사가는것을 감독하였다. 공작대에서는 한마을 민병들은 서로 면목을 알기에 인정사정에 끌려 임무집행을 제대로 할수 없다며 공사무장부에 요청하여 다른 마을 기간민병을 파견해보내게 했다. 성철형네 이사짐이래야 가마 두짝과 낡은 이불, 궤짝과 독 몇개가 전부였다. 고모네 이사짐까지 다 실었대야 수레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수레에는 최신지시가 나올 때마다 들고 나가던 초롱도 실려있었다. 아버지가 그까짓걸 갖고 가 뭐하느냐며 한쪽에 팽개쳤으나 성철형이 그걸 두고가서는 안된다며 다시 수레에 실었던것이다. 눈이 갓 내린 초봄 날싸라 아직도 찬바람이 기승을 부렸지만 영호네 젊은 또래들과 이웃들이 모두 나왔다. 성철형이 그 노래를 부르도록 귀뜸해줬던 죄책감에서인지 아니면 륜기간의 끊을수 없는 정때문이였는지 나도 아끼며 쓰던 하나밖에 없는 목수건을 풀어 성철형의 목에 둘러주었다. 성철형은 나를 물끄럼히 바다보더니 나의 가슴에 주먹 한매 안겨주며 싱긋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서글픔이 가득했다. 나는 그처럼 꺼리고 멀리하던 성철형의 허리를 처음으로 와락 끌어안았다. 갑자기 목이 꺽 메여오르며 눈앞이 흐려졌다. 마을아낙네들도 찹쌀 한되 혹은 닭알 몇개씩 들고나와서는 눈굽을 찍으며 작별하는 고모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네들은 서로가 잘 살지는 못해도 그 사이 든 정을 못이겨 새고장에  이사가서 몸 성히 잘 있으라고 위로하며 함께 눈굽을 찍었다. 영호는 온 마을에 하나밖에 없어 감춰두며 놀던 트럼프를, 그것도 꽃맞추기밖에 모르는 성철형이 못내 갖고싶어 몇번이나 달라는것을 아까와 주지 않던 네귀가 다 떨어져나간 트펌프를 감독민병들의 눈을 피해가며 성철이의 저고리주머니에 슬며시 밀어넣어 주었다. 평소 성철이와 놀아주며 <맛있는 일>을  꼬지꼬지 캐여 물으며 웃어주던 인섭이, 종국이 등 젊은또래 친구들이 성철형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었다. <형님 잘가오, 갔다  놀라오오…><나는 이사가기 싫은데. 나는 우리 동네 좋쓰꾸마…>성철형은 고모부가 세상뜬뒤 자기를 아들처럼 생각해주던 영호아버지의 옷섶에 얼굴을 비비며 슬프게 울었다. 비록 꺼리낄것 없는 빈농이라지만 노래 한곡 잘못 불러 현행반혁명으로 몰려 이사가는 성철형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서인지 영호아버지는 그저 성철형의 잔등을 다독여주며 물기어린 두눈을 슴뻑이였다. 정치라는게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뭐가 뭔지를 분별못하는 팔부도 현에서 내려온 공작대의 결정이라니 더 떼질을 쓰지 못하고 이렇게 정치행사때에 쓰는 초롱까지 가지고 이사가는것이 아닌가. 여러번 투쟁맞더니 아마 팔부의 골수에도 정치란 락인이 무섭게 찍혔나부다.고모와 성철형과는 달리 이사간다니 세상모르고 즐거워하는것이 형수였다. 이사가면 자기 친정집과 가까와지는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애들처럼 이사간다니 덮어놓고 마음이 들떴는지 헐렁한 꽃부리 저고리에 흰색바탕에 때가 들어 검스레한 털실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형수는 이사가는 수레를 빙빙 에돌며 정성스레 춤을 추었다. 그녀는 수레를 앞질러나가며 춤을 추다도 다시 수레있는데로 되돌아오며 춤을 추기도 하였다.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네 …>자기네의 앞길에 어떤 액운이 닥칠지도 모르고 분수없이 춤을 추어대는 형수를 보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은 더구나 쓰려했다. 그 꼴을 보고 눈굽이 젖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저렇게 분수없는것들을 무슨 현행반혁명이라고 이사를 보낸단 말인가. 때묻은 곳에서 그냥 살게 할거지. 이사를 감독하는 민병들이 빨리 수레를 몰라고 재촉했다. 두 부농집 이사수레는 떠난지 이슥했던것이다. 민병 둘이 그쪽으로 따라갔다.<이랴.>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수레를 몰아나갔다. 눈굽이 젖은 성철형과 고모가 마을사람들에게 손을 저어 작별하고는 수레옆에서 말없이 걸었다. 형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춤을 추며 수레를 따랐다. 그 뒤로는 총을 멘 두 민병이 따라섰다. 마을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성철형네를 바래였다. 팔간집 문앞을 지날 때 보니 임신하여 배가 뚱뚱한 팔간집새각시가 정주문앞에 서서 이사가는 성철형네를 물끄럼이 바라보는데 손이 자주 눈가로 올라가고 있었다. 성철형한페 쫓겨다니던 때를 다 잊었는가. 우사칸마당 한켠에서는 성철형에게 화근이 된 그 노래를 배워주며 잔치집에 가서만 부르라고 신신당부하던 문백이가 서있었다. 오늘은 웬 일인지 <예술가>로 자처하며 종래로 쓰지 않던 개털모자를 쓰고나와 백양나무밑에서 서성거렸다. 성철형네 이사수레가 나타나자 문백이는 성철형한테 다가왔다. 그는 솜옷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 한웅큼 꺼내여 성철형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탕이였다. 그것도 당시에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얻기 힘든 <백토끼>표 우유사탕이였다. 그리고는 말없이 자기가 쓰고나온 개털모자를 벗어 성철형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그는 고모에게도 허리굽혀 인사하고는 한켠에 물러섰다. 영문을 알수 없는 고모는 의아쩍게 문백이를 쳐다보았다. 사탕을 받아쥔 성철형은 뒤돌아서 문백이를 힐긋 바라보고는 말없이 수레를 따라갔다. 형수는 맛있는 사탕을 보더니 성철형의 손에서 사탕을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종이를 발라서는 성철형과 고모, 아버지 그리고 나의 입에 밀어넣어 주었다. 두 민병의 입에도 넣어주려 했으나 두 민병은 형수를 탁 밀쳐버렸다. 형수는 두 민병을 아니꼽게 흘겨보고는 그 사탕을 자기입에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깡충깡충 까치뜀을 하며 수레를 따라갔다. 날이 매섭게 추웠다. 눈보라가 일었다. 봄바람은 첩이 죽은 귀신이라더니 송곳같은 바람이 이사가는 사람들한테 벌을 주려는듯 겹저고리안으로 기를 쓰고 파고 들었다. 새 곳을 바라고 떠나가는 수레바퀴밑에서는 눈을 깔고 지나가는 소리가 <아리랑> 노래소리마냥 빠드득빠드득 애처로이 울려나왔다. 나는 아무리 멀어도 성철형네를 이사가는 마을까지 바래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 동생들을 돌보라는 통에 동구밖까지 바래고는 멈춰섰다. 마을로 들어오며 보니 문백이는 그때까지도 번들거리는 맨머리로 눈보라 날리는 백양나무밑에 그린듯이 서있었다. 멀리 동구밖으로 사라져가는 성철형네 이사수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문백이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여있었다.장백산 2009년 6기
19    [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5) 댓글:  조회:1687  추천:42  2010-08-16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5   탈곡이 끝나자 생산대에서는 년말결산준비를 서둘렀다. 농촌마을치고는 그래도 한해농사를 다 짓고 결산을 지을 때가 가장 흥성흥성하고 즐거울 때였다. 인민공사화후 집체 양돈장의 성한 돼지는 마음대로 잡지 못하게 돼있으므로 생산대에서는 년말결산을 앞두고 이젠 새끼를 여러배 낳아 배가죽이 땅에 닿을것 같은 늙은 암퇘지를 죽을 병에 걸렸다고 대대와 공사에 보고를 올려 공사수의소의 비준을 받고 잡아엎었다. 농촌에서는 대체로 일년에 두번 고기맛을 볼수 있었다. 한번은 추석때에 병들거나 늙은 소를 잡아 집집이 인구에 따라 고루 나누었고 다음은 년말결산때였다. 원래는 설에도 고기끈이라도 있어야 했으나 그때는 생산대 집체의 소나 돼지를 잡아야 할 명분이 서지 않았다. 추석에나 년말결산때에는 공사 수의소에서도 도살보고만 올리면 모르는척 도장을 팡팡 찍어주었으나 설에는 다른것도 먹을것이 있다며 도무지 비준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월급쟁이 가정들에서는  공소합작사에 가 표에 따라 배급주는 고기를 사다 맛볼수 있었지만 고기표도 차례지지 않는 많은 농호들에서는 이웃집에서 바람에 풍겨오는 고기끓이는 냄새만 맡아야 했다. 농호들에서는 설이면 집집마다 나름대로 찰떡을 치기도 하고 송편을 빚기도 하고 시루떡을 안치기도 하면서 고기없는 구멍을 메우기도 했다.    결산은 해마다 우사칸과 붙여지은 생산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올해에도 농사는 평년이여서 한공에 72전씩 돌아갔다. 수전지구에서는 그래도 한공에 1원이 넘어가야 농사가 괜찮게 지었다고 할수 있었다. 올해에도 별 희망이 없을줄 알면서도 그래도 행여나 하여 지팽이라도 짚고 걸을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 회의실에 모여들어 집집의 분배결산에 귀를 강구군 하였다. 평소 정치사상학습때면 이핑게 저핑게 회의실은 모가 빠져버린 논판마냥 펀했으나 이때는 옆벽이 터져나갈듯 사람들이 들어찼다. 정작 분배를 하고 보니 예상했던 바와같이 현금을 쥐여보지 못하는 집들이 다수였다. 한해 농사를 헛지은것이였다. 많은 집의 빚이 지난해보다 훨씬 늘어났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해마다 현이나 공사간부들이 내려와 대챈지 배챈지를 따라 배운다고 봄부터 고아쳐도 웬일인지 농사는 그 상이 장상이였다. 술장사 십년에 깨진 주전자만 남는다더니 사원들은 농사를 지을수록 번한 날을 보기는 고사하고 갈수록 깊은 빚구렁에 빠져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왕래가 없고 식구가 단촐한데다 성철형이 억척스레 일한덕에 성철형은 현금 100원을 받아쥐게 되였다. 마을치고도 가장 많이 분배받은 몇집중의 하나였다. 60이 넘은 고모도 겨우 혼자벌이는 되였다. 혼자 벌어 혼자 먹는 집체호군들도 하향한 첫해여서인지 절반 넘게 돈을 쥐여보지 못했다. 쥐였다해도 몇십원이 고작이였다. 성철형은 난생처음 그렇게 많은 돈을 쥐여보는지라 5원짜리 스무장을 번져도 보고 뒤져도 보고 전등불빛에 비춰도 보면서 어떻게 건사해야 할지를 몰라했다. 그는 돈을 갈라서 호주머니마다 쑤셔넣었다. 식구많은 우리 집은 빚만 300원이 더 늘어났다.    현금분배를 끝내고 늙은 암퇘지고기에 배추와 무우를 듬뿍듬뿍 썰어넣고 만든   상등료리가 오른 술자리까지 파하자 상례대로 오락판이 벌어졌다. 오락판이 벌어지기전에 공작대 한조장의 인솔하에 모두들 일어서서 모주석초상앞에서 모주석어록책을 내저으며 오락전회보를 하였다. 아무리 호주머니가 밸이 나오게 뒤져도 미처 어록책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은 대신 공수책을 내들었고 공수책도 없는 사람은 손바닥을 내저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모두 한조장뒤에 가섰다. 술이 거나하여 몸을 가누기 바빠하는 남정네들은 그네타듯 앞으로 휘청 뒤로 휘청하면서도 똑바로 서느라고 곁사람을 붙잡기도 하고 벽을 짚고 서기도 했다. 회보가 끝난후에는 함께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하네>를 중이 념불외우듯 불렀다. 술취한 사람들은 아직도 질긴 늙은 암퇘지고기를 씹고있는지 뭐라고 중얼중얼 입으로만 뭉갤뿐 가사 한마디 제대로 내뱉지 못하였다. 오늘저녁만 해도 이것이 벌써 세번째 회보였다. 년말총화를 시작하기전에 한번, 술상이 벌어지기전에 한번, 오락판이 시작되기전에 한번이였다. 그래도 사원들은 찍소리없이 공작대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 주었다. 엄숙한 정치행사가 끝나자 웃음이 피여나는 자유오락으로 넘어갔다. 분배돈을 탄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돈잎이라도 쥐여보니 기뻐서 낡은 소가죽북이 구멍 뚫리도록 팡팡 쳐대며 노래 불렀다. 더 깊은 빚구럭에 빠진 사람들은 속이 타서인지 쌀함박물에 엎어놓은 바가지가 박살나도록 떵떵 두드리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울분을 토하는건지 노래부르는건지 분간할수 없었다. 일년에 어쩌다 한번 시름놓고 마시는 술이라 사원 남녀 모두가 늙은 암퇘지고기를 안주로 술에 취하여 얼근했다. 하지만 대대간부와 현공작대까지 와서 앉아있는 자리라 그렇게 망태기를 캐는 사람은 없었다. 다년간의 정치교육이 은을 내는 모양이였다. 이럴 때면 재간이 있으나 없으나 모두가 양기를 돋궈 장끼를 피우군 하였다.온 마을의 둘도 없는 <예술가>인 문백이가 누군가의 등에 밀려 바이올린을 들고 온돌에 올라섰다. 그가 허리 굽혀 인사하는데 때이르게 벗어진 이마가 100촉짜리 전등에 반사되여 50촉은 돼보였다. 갑자기 전등 하나가 더 걸린듯 했다. 그는 예술가답게 다리를 벌리고 바이올린을 어깨에 척 올려놓더니 유명한 본보기극 <백모녀>중의 <붉은 댕기 드려주네>와 <북풍이 불어오네>를 재치있게 연주하였다. 처량한 바이올린 소리가 회의실을 감돌며 울러퍼졌다. 가슴을 훑어내리는듯한 바이올린소리는 오락판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몰아갔다. 그 곡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사원들은 어쩐지 자기들도 피와 땀으로 지은 한해농사의 과일을 황세인에게 빼앗겨 빚구렁에 빠진 양백로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일시나마 모든것을 잊고 술기운에 부풀었던 흥이 저절로 깨져버렸던것이였다. 솜씨있는 바이올린연주가 끝나도 누구 하나 재청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공작대원 몇이 파리를 쫓듯 건성건성 박수를 몇번 쳐줄뿐이였다. 문백이는 어깨가 처져 온돌에서 내려갔다.<공작대 한조장이 노래 부르는게 어떻습니까?>공작대원 왕염이 한어로 소리쳤다. 간부 몇이 박수를 쳤다. <한, 하조재 하는게 조, 좇겠소…>누군가 취했는지 혀꼬부랑소리를 하여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했다.한조장이 어색해하며 일어섰다.<그럼 한해동안 혁명적 농사를 지으시느라 수고하신 빈하중농 여러분들을 위하여 한곡 부릅시다. 에, 양반시를 하겠습니다.>한조장이 어험어험 건가래를 떼더니 본보기극 <홍등기>중의 지하공작자 리옥화가 부른 <붉은등 앞길을 밝게 비추네>를 불렀다. 한조장이 아무리 목을 외로 탈며 영화에서 나오는 리옥화처럼 부르느라 목에 피대를 세우며 모양새를 썼으나 조선족이 경극을 부르니 어쩐지 시아비 무당옷을 입고 굿을 하듯 여간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대로 한조장이 한자나 빼들었던 목을 낮추며 끝을 맺으니 공작대원과 대대간부 몇이 박수를 쳐댔다. 사원 몇도 인사치례로 슬쩍슬쩍 따라 쳤다.<야, 리옥화못지 않게 잘 부르시네, 재청입니다. 재청.> 공작대원 김억만이 머리우로 박수를 치며 재청을 요구했다.한조장은 손을 내저으며 사양하는척하다 섰던김에 한곡 더 불렀다. 이번에는 본보기극 <위호산을 지혜롭게 탈취>중의 영웅 양자영이 부른 <범을 때려잡고 산으로 들어가다.>였다. 한조장은 흥이 나 손을 내저으며 본보기극노래를 정성껏 부르는데 어느 구석에서는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원들도 별 흥취가 없는듯 구석구석에서 잡담들을 벌려놓았다. 한조장이 두번째 노래를 끝냈을 때에는 공작대원외에 박수치는 사람도 별반없었다. 사원들이 별반응이 없자 한조장은 속으로 예술세포라군 없는 미욱한 촌놈들이라고 비웃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속을 빡빡 긁어내리는듯한 <예술가> 문백의 바리올린소리와 옆집 개한테 놀라 꽥꽥거리는 게사니소리같은 한조장의 본보기극노래에 한창 끓어오르려던 죽가마가  랭수벼락을 맞은듯 오락판이 식어가며 한참이나 랭랭한 기운이 감돌았다.이때 봉당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저 노래 잘 부르는 성철이를 시켜보라구.><그래그래, 맞다. 분배돈까지 탔겠다 왜 노래 안부르겠냐.><그래, 그만 성철이를 잊었구나. 성철이 이리 나오라구. 어서.>사원들에게 있어서 성철형은 말그대로 나막신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몰랐다. 마른 날에는 퇴마루밑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가도 진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꺼내신고 진창길을 돌아다니는 격이라 할가. 평소에는 어수룩한 성철형의 존재를 거의 잊고 있다도 오락판이 벌어질 때면 그래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였다. 젊은 또래들과 한상에 앉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늙은 암퇘지고기를 안주로 술을 얼근히 마신 성철형은 사람들한테 등을 밀리워 온돌 한가운데 나가 섰다. 전등불밑에 서니 얼굴이 지지벌건것이 꼭 경극배우같았다. 그렇잖아도 성철형이 <씨불란것들, 너들만 놀거야.>하며 은근히 목이 글질거려 하던 판에 자기더러 노래부르라니 가려운데를 긁어주듯 차라리 잘 되였다. 그런데 정작 노래 부르자고 나서고 보니 합당한 노래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였다.< 저, 새 노래 없는데, 낡은 노래 불러두 일없습둥?><안된다. 네가 하던 낡은 노래는 많이 들었다. 새걸루 해라.><맞다맞아, 년말총결인데 새걸루 해야지. 그새 새 노래를 못배웠냐? > 성철형은 뭔가 생각안나는듯 머리만 긁적이였다.<그 모내기철에 배운 새 노래가 있지 않소? >내가 보다못해 소리쳤다.그제야 성철형도 문득 모내기철에 문백이한테서 배워둔 새 노래가 생각난 모양이였다. 그간 마을에 잔치집이 없어서 배워만 두고 한번도 써먹지 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던것이였다. 일년에 한번씩 하는 이런 년말결산은 사원들집의 잔치때보다 더 굉장한지라 잔치때만 부르라던 노래를 여기에서 불러도 괜찮을것 같아 내가 한마디 귀뜸했던것이였다. 새 노래가 생각나는지 성철형이 신심이 나 하는것 같았다. <아, 새 노래 있습다. 그럼 <비판받은 두 동무> 노래 부름다 예? 박ㅡ수.> 얼근한 성철형이 이렇게 소리치며 자기가 먼저 박수를 짝짝 쳐댔다.<허, 그 자식 장가들더니 양기도 꽤 늘었다. 그래 박ㅡ수.><제목두 이상하다. 왜 하필이면 비판받은 두 동무야. 아무러면 불러봐.>사원들은 아마 비판이란 소리만 들어도 기가 질리는 모양이였다.떠들썩하는 소리에 구석쪽에 앉아 끄떡끄떡 졸던 사람들도 깨여나 덩달아 박수를 쳐댔다. 성철형과 놀아주던 젊은 또래들도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박수치며 응원하였다.성철형이 새 노래를 부르겠다니 바이올린연주를 다 끝내고  우리 곁에 앉아 처녀들과 시시닥거리고있던 문백이가 안전부절해 하는것 같았다. 잔치집에서만 부르라던 그 노래를 성철형이 이 자리에서 부르는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 해서였을가. 그렇다고 나가서 그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할수 있는 자리도  아니였다. 그래도 문백이의 얼굴에는 멍청한 사람이 반년전에 배워준 노래가사를 지금도 기억하구 있을가 하는 안도의 빛이 서려있었다.  그런데 성철형이 정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문백이는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성철형이 노래가사를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것이다. 남몰래 살짝빠져 캄캄한 밤에주재소 총세자루 뺏아왔건만규률을 위반했다 비판만 받고총을 멜 어깨에 새가 앉았네총이 없는 어깨에 새가 앉았네 성철형의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만장으로 박수를 쳐댔다.<야, 잘한다. 제법이다. 재ㅡ청.><어쩜 노래를 저리 잘하오? 문공단에서 왔다가 울구 가겠소.><사람만 저렇채이문 현문공단이 아니라 연변가무단에라두 갔겠소.>사원들은 성철형의 기대밖으로 환성을 올렸다. 본보기극 노래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오다 오래동안 들어보지 못하던 귀맛당기는 자기말노래를 들으니 귀가 설을 쇠는 기분이였다. 사원들의 박수소리에 성철형은  우쭐 사기나 했다. 여태껏 사람들이 자기때문에 이처럼 열광하는것을 처음 보았던것이다. 건성건성이나마 공작대 한조장이랑 민병련장 만철이까지도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지 않는가.<그럼 2절 부르겠습다.><그래, 잘한다. 마저 불러라. 박ㅡ수.>사원들은 또다시 회의실이 떠나갈듯 박수를 쳐댔다. 오락판 분위기가 문백이 바이올린 켤 때와 한조장이 본보기극노래를 부를 때와는 딴판이였다. 예술세포가 없다는 사원들이 성철형의 노래에 반해버렸다. 고모도 사람들이 성철형을 칭찬하는 소리를 반갑게 들으며 눈굽을 찍고 있었다. 성철형이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줄 고모도 새삼스레 다시 알게 된 모양이였다. 타고난 천성인지 목소리는 고모부를 닮은것이 분명했다. <고모부는 그 좋은 목청을 가지고도 형때문에 오래동안 즐겁게 노래부르지 못하다 저세상으로 갔다는데 고모부 대신 형이나 노래를 실컷 불러 고모부 원을 꺼드리오.> 나는 속으로 성철형을 응원했다.성철형은 흥이나서 2절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자기발휘가 더 잘되는지 어물쩍하게 군인마냥 총을 척 메는 시늉도 하고 팔을 내저으며 씩씩하게 행진하는 동작도 곁들이면서 1절보다 더욱 성수나게 부르는게 아닌가. 과연 보통수준이 아니였다. 노래소리만 들어서는 사람이 반편이라는 느낌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남몰래 빠져가는 그 사람에게영문도 모르면서 곤봉을 주고보초근무 잘못섰다 비판만 받고 곤봉 없는 어깨에 새가 앉았네곤봉 멜 어깨에 새가 앉았네 성철형이 거수경례까지 붙이며 2절을 끝내자 온 회의실이 그대로 박수가 되여 우뢰소리마냥 터져나왔다.<이거 우리 마을에서 가수 나오는거 아니여?><그러게, 쟤가 저렇게 잘 부르는줄 여태껏 몰랐단데.><그러게 사람은 뭐나 시켜봐야 한다이.><저 자식 장가가더니 노래두 더 잘 하네?><그냥 양반시노래만 듣다가 우리 노래를 들으니 흥이 막 절루 난다디.>사원들이 중구난방 떠들어댔다. 성철형은 사원들의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 끓어번지는것을 보고 손을 힘있게 쳐들었다.<그럼 제3절 하겠습다. 3절이 젤 재밌슴다.> 사기나니 말도 꺽꺽거리지 않는다.<뭐, 3절까지 있냐? 저 자식 그 긴 가사 어떻게 다 기억하구 있나?><그래, 하던바에 마저 다 해라.><저 자식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가비 벗어지는줄 모르네.>성철형이 이번에는 흐물넙적 괴상스러운 동작을 하며 목청을 가다듬어 3절을 불러내려갔다. 남몰래 살짝빠져 강변에 나가서로좋아 홀딱벗고 그일을 했네일끝에 피곤하여 잠들었는데털이 없는 ××에 새가 앉았네털이 없는⊙⊙에 새가 앉았네 뜻밖에도 제곬으로 꼿꼿이 흐르던 성철형의 노래가 갑자기 왜지밭으로 나가며 엉뚱하게 끝을 맺자 노래소리에 도취되였던 사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포복요절하였다. 회의실은 화약창고가 폭발하듯 웃음이 터져나왔다. 영호삼촌은 웃다못해 웃는지 우는지 천정을 쳐다보며 숨이 넘어가는듯 헉헉 하기만 했다. 인섭이 형은 뚜꺼비처럼 온돌에 엎드린채 허리를  펄떡펄떡하며 입으로 침이 질질 나가는줄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철수엄마는 정신나간 사람마냥 엉덩이를 들썩이며 곁에 앉은 선녀엄마의 허벅다리를 북 두드리듯 두드려댔다. 그토록 얌전한 집체호처녀들인 인숙이며 복순이네도 입을 싸쥔채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털어대다 서로의 잔등을 마구 두드려댔다. 영호와 인섭이네는 한손으로 자기무릎을 떡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웃다못해 솟아나는 눈물을 이리저리 씻어내고 있었다. 온 회의실은 암소 영각하는듯한 소리로부터 벙어리 발등 앓는듯한 소리까지 별라별 기괴한 소리가 다 흘러나왔다. 정신이 돌아버리게 웃느라고 온몸의 탕개가 풀리고 허파에 찬 공기가 빠질 구멍을 찾아 떠돌다 구멍을 면바로 찾았는지 여기저기에서 방귀뀌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남녀가 구별되게 주책없이 쓸어나오는 방귀소리가 사람들의 숨막히는 웃음에 더욱 콩기름을 쳐주어 많은 사람들이 한쪽 옆구리를 잡은채 벽에 기대앉아 당나귀 새끼낳는 소리를 하며 웃음을 달래려 애썼다. 그통에 벽 전체가 웃는듯 부르르 떨렸다. 이 몇년간 마을 사원들이 이렇게 마음놓고 배꼽이 튀여나오게 웃어보기는 처음이였다. 여태껏 우에서 하라는대로 아무리 씹어도 잘 소화되지 않는 늙은 암퇘지고기같이 질긴 혁명적 리론만 씹고 씹었지 이렇듯 허리부러질 웃음거리가 생겨보기도 처음이였다. 웃음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오래동안 웃음에 굶주렸던 사람들이 너나없이 눈물코물 쥐여짜며 오장륙부가 뒤탈리도록 웃어주었다. 어떤 이는 웃다못해 방귀가 아니라 배가 펄떡이는 절주에 따라 오줌이 다 찔찔 나갔다.<조용들 하시오. 조용들 하시요.>갑자기 벼락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원들은 웃음을 거두지 못한채 머리를 쳐들었다. 한조장이 노기를 띤채 온돌 한복판에 서있었다. <조용들 하시오.. 이게 어디 웃을 일입니까? 여러분들의 무산계급적각성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사원들은 퍼러딩딩한 한조장의 얼굴과 노기띤 목소리에서 이젠 정말 더 웃어서는 안되겠다는것을 감촉하고 웃음을 끊느라고 애를 썼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달리던 차를 갑자기 급정거하려는것처럼 아무리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관성에 의해 아츠런 소리를 내며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듯 마음껏 웃어주던 웃음도 당금 끊으려니 온몸의 크고작은 신경과 관통되였는지 쉽게 끊어지지를 않았다.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키들푸들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새로운 시기 현행반혁명분자가 그따위 반혁명소리를 내지르는데 웃음이 나옵니까? 그간 그렇게 학습하고 토론하며 키운 무산계급각성을 다 어데 내동댕이쳤습니까? 왜 공산당원도 마찬가집니까? 당성은 어데로 갔습니까?>뭐라구? 현행반혁명분자의 반혁명소리라구? 이게 무슨 소린가? 한조장의 그말에 온 회의실은 삽시간에 동지섣달의 내물처럼 하얗게 얼어붙었다. 금방 성철이가 반혁명소리를 내쳤는가? 그런데두 우리가 웃었단 말인가? 반혁명소리에 웃었다면 우리도 반혁명이란 말인가?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는 세월에 반혁명이란 딱지만 쓰면 사람축에도 짐승축에도 못가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건데? 이건 꼭대기로부터 불꾸러미가 쏟아져 내릴 징조가 아닌가. 그제야 사원들은 문제의 엄중성을 직감하고 정신들을 차렸다.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던 웃음도 반혁명이라는 초풍할 소리에 구중천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웃음도 반혁명이라는 딱지를 쓸가봐 혼비백산한 모양이다. 갑자기 눈물구멍도 막히고 방귀구멍도 막히고 오줌구멍도 막혔다. 회의실은 금시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듯 했다. 얼근해있던 사원들도 술이 깨였다. 성철형에게 그 노래를 배워준 문백이는 끝내 큰 일을 저질렀다고 지례 겁을 집어 먹었는지 무릎을 덜덜 떨어대고 있었다.웃음으로 끓던 오락판은 살기가 서리는 비판회로 번져졌다. 일이 우습게 되였다. 남이 배워준 노래를 멋도 모르고 불렀다가 결국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더니 팔부 성철형이 <예술가> 문백이 눈 물똥에 펄쩍 주저앉은 꼴이 되였다. 성철형에게는 왜 소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를 박는 일만 생기는가. 공연히 어느 나라 가극에서 나오는 노래 <비판받은 두 동무>를 불렀다가 되려 자기가 비판받는 동무꼴이 되였다. 그때까지만도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 노래하던 자리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성철형은 멋도 모르게 회의실 한가운데로  끌려나왔다.<말해, 너 그 노래를 부른 목적이 뭐야? 털이 없는 ××에 새가 앉았다는게 뭐야? 당의 9차대회를 빗대구 욕한거지?><야야, 똑바로 말해, 털이 없는 ⊙⊙에 새가 앉았다는건 또 뭐야? 모주석어록 학습에 대항하여 쌍소리루 불만을 토한거지?> <너 군대노래를 하는척 하면서 그따위 쌍소리로 무산계급독재를 수호하는 위대한 인민해방군을 모독한거지?><금방 한 그 반혁명소리를 누구한테서 배운거야? 뒤에서 너를 조정하는 계급의 적을 바른대로 대라.>한조장을 비롯한 공작대원 몇이 얼뻥뻥해 서있는 성철형을 련속 족쳐댔다. 성철형은 그때까지도 뭐가 뭔지를 몰라했다. 금방까지만도 숫한 사람들이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고 웃어주며 그렇게 칭찬하던게 왜 갑자기 자기 잘못이라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였기 때문이리라. 성철형은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우리가 앉아있는 젊은 또래켠만 바라보며 쭈물쭈물했다. 뭔가 구원을 바라는것 같았다. 우리는 안타까이 성철형을 쳐다만 볼뿐 도움줄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문백이가 고개를 쳐들었다가 성철형과 눈길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사타구니에 틀어박았다. 그러는 문백이를 성철형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학질에라도 걸린듯 부들부들 떨어대는 문백이를 아니꼽게 쏘아보았다.<임마, 바른대로 못대겠니? 대라, 누구한테서 배웠니?> 공작대가 그냥 족쳐댄다.사원들이 긴장해서 모두 성철형의 입만 쳐다보았다. 성철형의 입이 터져나오는 날에는 노래를 배워준 사람도 이 시각부터 대뜸 천길나락으로 굴러떨어지게 되는 판이였다. 모두들 속이 한줌만해졌다. 성철형의 눈길이 스쳐지나갈 때에 문백이의 때이르게 벗겨진 번대머리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났다. 금방 사형판결을 들은 죄수같았다. 성철형은 종래로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부실이라 그가 누구한테서 배웠다고 한마디만 하면 사람들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을것이였다.<우, 울 아부지 배, 배와 줬쓰꾸마…>뜻밖에도 성철형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불쑥 튀여나왔다. 그말에 문백이는 자기귀를 의심했다. 우리들도 잘못듣지 않았나 하여 귀를 강구었다. <뭐야? 임마, 다시 한번 말해봐라.><우 ,울 아, 아부진데서 배, 배왔다는데는 어째, 씨베…>죽은 자기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사원들도 믿지 못하겠다는듯 의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정직하고 성실한 성철이아버지가 그따위 노래를 배워줄 사람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필연코 다른 사람한테서 배웠을것이였다. 그렇다면 저 팔부도 공작대의 화난 꼴을 보고 다른 사람한테서 배웠다고 하면 그 사람도 잡혀나와 욕을 먹고 비판받을가봐 저랠가? 그렇지만 그건 스스로 화약지고 불속에 뛰여드는것이고 눈먼 말을 타고 벼랑으로 가는게 아닌가. 아니면 뭔가 말못할 사연이 있어서인가? 아무튼 그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였다. 사원들은 그처럼 성실한 성철형이 난생처음 거짓말을 하는것을 보았다.<뭐야? 죽은 너애비한테서 배웠다구? 이 자식 엉뚱하게 거짓말을 다 하네?>민병련장 만철이가 벌떡 일어나 성철이의 뒤통수를 눈알이 튀여나오게 철싹 쥐여박으며 을러메였다. 자기도 멋모르고 따라 웃은 잘못을 공작대앞에서 미봉하려는듯 한조장을 할끔 쳐다보고는 성철이를 욱다질렀다. <야 임마, 누가 그따위 허튼 소리를 믿을줄 아냐? 니 애비 죽은지 몇해야? 야 이 팔부야, 바른대루 못대겠냐?>성철형은 얼결에 한대 호되게 얻어맞고나니 워들렁 똥밸이 도졌는지 만철이를 지릅떠보더니 고래고래 소리질렀다.<에, 씨불란 쌍간나새끼, 니 때리개? 못믿겠으면 니 울 아부지가 물어봐라…씨베…> 술까지 얼근히 마시고보니 무서운게 없나보다.<계급의 적>들을 다스리기에 이골이 난 만철이도 제앞 발명도 바로 못하는 팔부 성철형의 신경질적 대항이 너무나 뜻밖이였는지 한동안 얼뻥뻥해 서있더니 잠시후에야 제정신이 들었는지 웃옷을 활활 벗어내쳤다. 강아지도 골목에 들면 범을 문다고 어수룩한 성철형한테 만철이가 한입 단단히 물렸다. 당당한 반란파 두목으로서 숱한 사람들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해보기는 처음이였다. <뭐야, 개자식. 반혁명새끼 무슨 악다구니질이야. 너 팔부새끼 오늘 죽어봐라…>만철이는 덫에 치인 메돼지마냥 펄펄 날뛰며 가죽혁띠를 뽑아들 잡도리였다.<씨불란기, 처 처라, 주, 죽에라…> 성철형이 뜨개소마냥 머리로 떡판같은 만철이의 가슴을 들이박았다.<이, 이 새끼 미, 미쳤재이야?...>뜻밖에 얼얼하게 가슴을 떠박힌 만철이가 몸을 가누지 못하며 꺽꺽거렸다. 화가 꼭두까지 치밀어 얼굴이 지지벌개진 만철이가 어느새 포물선을 그으며 가죽혁띠를 뽑아들었다. 당금 흉악한 표범과 끈질긴 뜨개소와의 피비린 싸움이 벌어질판이였다. 한조장이 벌떡 일어서며 가죽혁띠를 미친듯이 휘두르려는 만철이를 제지시켰다. 당금이라도 성철형을 쳐죽일듯 날뛰던 만철이가 씩씩거리며 마지못해 한켠에 비켜섰다. 그사이 너무 놀란탓인지 멍해 앉아있는것 같던 고모가 황망히 뛰쳐나갔다. 노여워 퍼러딩딩한 공작대 한조장을 보고 고모는 성철형이 큰 일을 저질렀다는것을 직감했던것이다. 고모는 이 마을에서 한마디가 만마디를 당하는 한조장앞에 나서 부실한 자기 아들이 모르구 한 일이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절하고 뺨맞는 일 없다지 않는가. 하건만 이건 철두철미한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이라고 점을 찍은 한조장네의 노기를 가실수 없었다. 한조장은 고모를 알은체도 하지 않고 사원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했다. <9차당대회의 위대한 정신을 관철하며 전국의 가는 곳마다 붉은기가 휘날리고 모주석어록 노래소리가 방방곳곳에 우렁찰 때에 우리 이곳에서 이런 반혁명 허튼소리가 뛰쳐나오고 그것에 미혹되여 많은 사람들이 웃어준다는것은 전국에 둘도 없는 반혁명사건입니다. 노래한다는 명의를 빌어 쌍소리로 9차당대회를 빗대고 욕하고 모주석저작학습에 대항하고 인민해방군을 모독하는것은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이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래일부터 이 자리에서 저녁마다 비판회를 열고 새로운 시기 현행반혁명분자를 성토하며 그 여독을 깨끗이 숙청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계급각오를 상실하고 멋대가리없이 웃은 사람들도 무산계급 립장의 높이에 서서 자기를 검토하고 반성하여야 하겠습니다. 특히 당성을 잃고 비당원들과 함께 웃어준 빈하중농당원들은 심각한 검토서를 써서 바치돠 령혼심처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저녁 이곳에서 발생된 반혁명사건을 공사와 현에 회보하여 상급의 지시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돌아가 잘 생각해 보십시요.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해산.>말을 마친 한조장은 공작대원들과 만철이네와 함께 사원들 속을 헤집으며 맨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공작대가 나간후에도 사원들은 얼이 빠진듯 한참이나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백이는 허리부러진 노루마냥 머리를 사타구니에 틀어박고 뒤더수기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있었다. 분촌을 가리지 못하는 팔부한테 그 노래를 배워준것을 후회해서인지 아니면 사나이답게 뛰쳐나가 자기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자책감에서인지 그는 못박힌듯 그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도 성철형에게 그 노래를 귀뜸해준것을 몹시 후회하였다. 문백이가 성철형에게 배워줬다는 새 노래가 이따위 내용일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그때 나를 듣지도 못하게 쫓아버렸구나. 괘씸한 문백이, 어디서나 사달만 치는구나. 그렇지만 문백이가 성철형에게 그 노래를 배워줬다고 고자질할 용기는 없었다. 고자질했대야 성철형의 죄가 줄어들지 못할뿐더러 죄인만 하나 더 늘어날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성철형이 부른 노래와 같이 <비판받는 두 동무>꼴이 될것이 아닌가.몽둥이 행패질에 어깨쭉지 부러진 닭들마냥 사원들은 공작대의 뒤를 따라 꼴기없이 회의실을 나섰다. 오장륙부 뒤탈리도록 정신없이 웃었다가 또 준비없이 정수리에 갑자기 된매를 맞고보니 뭐가뭔지 조상들 묘지속에 들어가 꿈을 꾸고나온듯 모든것이 아리숭해만 하는것 같았다. 나는 고모,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온돌에 퍼더버리고 앉아 서럽게 우는 성철형을 구슬리며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속으로 성철형을 욕하고 나무랐다. 팔부는 어쩔수 없는가봐, 배운 노래가 그따위 내용이면 그 장소에서 부를게 뭐람? 하지만 형은 정치고 김치고 가리지 못하는 반편인데 모르고 헛소리를 해도 반혁명이 되는건가? 공작대에서 너무 하는게 아닌가? 아마 사원들도 모두가 성철형을 욕하며 많은것을 생각할것이였다. 그 자식 그 엉뚱한 노래는 어디에서 배웠을가고. 아버지한테서 배웠다는건 허튼소릴테고. 그런데 그 자식 왜 그런 허튼소리를 하지? 정말 계급의 적이 뒤에서 조정하는걸가? 이 마을에 계급의 적이란게 부농 두집뿐인데 그들은 이젠 너무 투쟁맞아 삶은 시래기꼴이 아닌가. 공작대에서는 기어코 그 뒤를 파내려 할것이니 이거 뒤숭숭해서 어떻게 살겠나?  하여튼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 되는 세월에 엉뚱한 불똥이 자기한테 튀지 않게 조심하는게 상수라고 생각하고 있을것이였다.그날밤 립신마을의 당원이고 비당원이고 이날 벌어진 일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리뒤척 저리뒤척 헌 요에 기름떡을 구으며 한잠도 바로 자지 못했을것이다.  재수없을라니 이게 모두 잘 씹혀지지도 않는 늙은 암퇘지고기를 먹은탓이라고 나무람할지도 몰랐다. 그러다도 성철형이 부르던 노래를 되새기면 또다시 웃음세포가 살아나 웃음이 터져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마 이렇게 사람을 웃기려고 문백이가 잔치집에 가서만 부르라고 신신당부한게 아니겠는가.(계속)장백산 2009년 6기
18    [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4) 댓글:  조회:1647  추천:59  2010-08-13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4 성철형네는 결혼후 세간났다. 아버지가 리대장네 창고를 맡아놓고는 고모보고 저애들을 세간내우라고 할 때 고모는 펄쩍 뛰였다. 모자라는 저것들이 어떻게 자비살이를 하느냐는것이였다. 아버지는 저들끼리 살고싶은대로 살게 내버려두는것이 서로 편할거라고 재삼 권고해서야 고모는 생각을 달리했다. 무엇보다도 고모가 마음에 걸리는것은 성철형네들이 낮이고 밤이고 같이 있기만 하면 시도때도 없이 사랑짓을 벌리는것이였다. 그통에 고모한테도 여러번이나 들켰었다. 그때면 고모는 조용히 문을 닫고 피해가군 하였다. 자기와 함께 있으면 아무리 부끄러움을 모르는 저것들이라 하지만  얼마나 불편해 할가 싶었던것이다. 고모는 아버지한테 부탁하여 리대장네 창고에 온돌을 놓고 성철형네를 세간나게 했다. 쌀도 푼푼이 보냈고 가장기물들도 두루 갖춰주었다. 세간나는 날에도 형수 곱단이는 저들끼리 사는게 좋은지 사발짝들을 담은 쌀함박을 머리에 이고 애들처럼 까치뜀을 뛰며 가다가 쌀함박을 땅에 떨궈 사발짝들을 박살내기도 했다. 헌 초신짝도 짝이 맞는지 세간내운후 성철형네는 그런대로 별 말썽없이 살았다. 성철형은 결혼후 더욱 성수나게 일했다. 나와서는 똥땀을 흘리며 일하다도 집에 가면 모자라기는 해도 반주그레한 형수가 있는것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 모양이였다. 그래서 성철형은 아무리 일해도 힘든줄 몰라했고 얼굴에 마냥 웃음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때에도 쥐잡을줄 모르는 고양이 가마목에서 밤낮 잠만 자듯 고이 앉아 놀며 받쳐주는 밥을 먹고자란  형수는 생산대일에는 손도 대려하지 않았다. 성철형이 일하러 나간뒤면 고모가 자주 건너가서는 가마목일은 이러이러하게, 옷견지를 빨고 깁는 일들은 여사여사하게 하라고 가르쳐주었으나 형수는 치매온 할머니마냥 돌아앉으면 까먹군 하였다. 형수도 잊지 않는 일이 한가지 있었으니 그것인즉 바로 군입질이였다. 한달에 입쌀을 인구당 두근씩밖에 배급받지 못하는 시내 아낙네들이 일요일이면 옥수수국수와 밀가루, 지방에서는 타래떡이라 부르는 꽈배기 같은것들을 이고와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며 입쌀을 바꾸어 가군 하였다. 많은 집들에서는 먹고 싶어도 푼푼치 못한 쌀을 랑비할세라 못들은척 하였다. 어떤 집에서는 애들의 성화에 못이겨 조그만치씩 바꿔서 맛을 보이고는 다시는 바꿔먹자는 소리를 입밖에 내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형수는 풀방구리에 쥐 나들듯 한번도 빠지지 않는 단골이였다. 형수는 옥수수국수에는 뒤전이였으나 꽈배기에는 악돌이였다. 밖에서 <타래떡 바꿉소.>하는 소리만 들려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바가지에 입쌀을 푹푹 퍼담아 나가서는 타래떡을 한꾸레미씩 바꿔들이군 하였다. 그러다보니 성철형네는 세간난 첫해부터 벌써 쌀이 모자라 생산대의 보조를 받군 하였다. 생산대에서는 성한 사람도 아껴먹어야 겨우 보리고개를 넘기는 세월에 세간살이를 할줄 모르는 반편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고 여겼던지 그냥 보조대상에 넣어주었다. 그 보조래야 통옥수가 아니면 옥수수가루였다. 그걸로는 꽈배기를 바꾸지 못하는줄 아는지라 형수는 시어머니라고 믿고 그래는지 꺼리낌없이 고모네 집에 와서 입쌀을 퍼내가군 하였다. 고모가 <자꾸 쌀을 퍼내 타래떡을 바꾸지 말라>고 그렇게 타일러도 막무가내였다. 그럴때는 형수도 무슨 궁리가 도는지 자기가 먹고싶어 그래는게 아니라 <성철동무가 밥보다 타래떡을 더 잘먹는다>고 돌려부치는데야 고모도 손을 들고 말았다. 시어머니 집의 입쌀도 거덜이나면 형수도 륜기라는것을 아는지 그 다음에는 우리 집에 와서 입쌀을 구걸하기도 하였다. 그것도 한두번이지 외삼촌댁은 시어머니가 아니였다. 어머니는 형수가 바가지를 들고 온다하면 아예 문을 닫아걸고 멀리찍히 피해버리군 하였다. 우리 집도 애들이 다섯이나 되니 아무리 친척간이라 해도 마냥 쌀을 푹푹 퍼줄 형편이 못되였던것이다. 그러면 별수없이 형수네는 옥수수가루를 돼지죽처럼 끓여 대수 에때우군 하였다. 그렇게 끼니를 에우네마네 하면서도 성철형이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러 다니는걸 보면 과연 힘꼴이나 쓰는 꼬리없는 황소였다. 바보스러운 사람은 머리가 잘 돌지 못하는 대신 힘이 솟구치는 구멍이라도 있는것일가.성철형은 자기또래들한테 가면 반편이라고 몰리우고 외면당하기가 일쑤였다. 그게 싫은지 성철형은 일할 때나 휴식할 때나 나와 영호며 인섭이네가 있는  아래또래 젊은이들과 섭쓸리기 좋아했다. 그래도 영호또래들한테 와야 담배 한대라도 얻어 피울수 있었고 재수좋을 때면 볶은 콩 한줌이라도 얻어먹을수 있었다. 그보다도 영호네 또래들이 형님, 형님하며 추어올리는것을 더 흐뭇해 하는것 같았다. 젊은 또래들밖에는 자기를 형님이라 부르며 사람대접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성철형도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성철형이 형수와 밤에 하는 <맛있는 일>을 곧이곧대로 그들에게 들려줘야 했다. 영화도 자주 못보고 별 볼책도 없는 시기에 성철형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상없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부쩍 동하는 일이였다. 잔치날에 사랑의 맛을 볼대로 본 형수가 이튿날에도 상사구렁이 감기듯 감겨들며 잔치날에 먹던 맛있는걸 또 먹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성철형이 <쩨, 안딘다. 울 엄마 그러는게 맛있는건 뒀다 설에 먹으라 했다. 찰떡보다 더 맛있는 그걸 어떻게 날마다 먹자구 이래냐.> 했더니 형수가 정색해서 <설이 언제 올지두 모르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림까.> 하면서 성철형의 아래것을 마구 주물러대니 성철형의 그것이 범을 때려잡을 무송의 몽치처럼 빳빳이 일어섰단다. 자기도 설까지 참을것 같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엄마 모를 때에 먹고싶을 때면 아무때나 먹자 하고 시작한것이 거의 밤마다 맛있는걸 먹어댄다는것이였다. 성철형이 젊은 또래들한테 얼리워 거의 날마다 밤에 한다는 그따위 <사업회보>를 하는것이 낯이 뜨거워 내가 <그따위 시시한 소리는 좀 작작하면 안되오?>하고  죽질러주면 성철형은 정색해서 <야네 이렇게 드, 듣기 싶어하는거 어, 어찌겠니?>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멍청한데는 정말 약이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젊은 또래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키득키득 웃음도 나오고 가슴속에 무언가 이상야릇한 감정이 굽이치며 행복할 미래를 동경하며 사람 살아갈 재미를 느끼기는것 같기도 했다. 이젠 몇해째나 거의 날마다 견지해온 어록학습이요 감상발표요, 밭머리 비판회요 하는것들은 겉으로 말을 못할뿐이지 모두가 이젠 신물이 나도록 싫어하는 노릇이였다. 그러잖아도 이젠 모두 스무살을 벗어나는 젊은이들이라 은근히  탱탱히 부풀어오른 처녀들의 앞가슴과 풍만한 엉뎅이를 훔쳐보며 공연히 납뜨는 그눔을 바지호주머니에서 비틀어 잡고다니는 때라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고 공청단이나 민병련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재미나는 이야기들은 오직 성철형한테서만 들을수 있었던것이다. 정신이 똘똘하다는 사람들은 바른 소리를 안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안하는데 왜 모자라고 부실하다는 성철형이 있는대로 말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해줘야 하는지. 아무튼 그들에게 있어서 성철형은 싱숭생숭한 남녀간의 비밀을 전수해주는 계몽선생이라 할수 있었다. 비록 철리적인 리론은 없지만 사실 그대로라도 그들에게는 큰 만족이였다. 더구나 밭머리 쉼 시간도 길지 않은데 사실 그대로 말하는것이 오히려 더 실감났다. 나도 겉으로는 성철형을 죽질러주면서도 정작 성철형이 그 <맛있는 일>을 구수하게 이야기할라치면 저도모르게 귀가 그쪽으로 돌아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말로는 아니아니 하면서도 귀는 왜 자꾸 그쪽으로 뻗어가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성철형은 생산대에서는 쟁반안의 록두알이지만 젊은 또래들속에서는 제법 자루속의 무우였다. 젊은 또래들은 언제부터인지 성철형을 떨어질수 없는 친구로 간주하게 되였다. 그들은 밭머리쉼때 비판회나 학습회 같은것이 없으면 성철형을 가만가만 손짓하여 언덕뒤로 불러가서는 담배한대 권하며 어제저녁 성철형이 한 <맛있는 일>들을 말하도록 유도해나가군 하였다. 어리무던한 성철형은 담배 한대에 넘어가 어제저녁 형수와 하던 일을 묻는대로 처음부터 거짓없이 털어놓군 하였다. 어떤 때에는 더 짜릿하게 들으려고 익살꾸러기들이 아래위 세절까지 캐고 물으면 성철형은 글을 기르치는 선생마냥 정색해서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어찌나 생동하게 말해주는지 젊은 또래들은 자기가 장가간듯 발버둥치며 웃어번져졌다. 젊은 또래들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안달이라는것을 안후부터는 성철형도 곧장 배짱을  부리군 하였다. 인젠 담배 한대나 볶은 콩 한줌에 만족하지 않고 구운 고구마나 삶은 감자 혹은 구운 미꾸라지 등 더 맛있는것을 주어야 젊은치들의 간청에 응해주군 하였다. 젊은 또래들은 서로 엇바꾸어가며 성철형의 그만큼한 요구는 얼마든지 들어줄수 있었다. 자기들이 멍청한 성철형을 꼬여 <자산계급의 색정적이고 퇴페적인 것>을 재미나게 듣는다는걸 공작대나 간부들이 알면 큰 일 나기에 그들은 청중범위를 확대하지 않고 되도록 처음부터 듣던 몇 사람들로 고정하였다. 물론 나어린 나는 자기네 또래축에는 들지 못하나 성철형의 동생이라는데서 묵인되였다. 발전하고 바라오르기를 좋아하는 어느 눔이 끼여들었다가 자기네를 발판으로 고자질이라도 하면 자기들이 당장 비판받는것은 둘째치고라도 락후분자감투를 쓰게 되면 시집오려는 처녀들이 없을가봐 더 걱정이였다. 정치가 판을 치는 세월에 락후분자는 처녀들이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러면 성철형의 재미나고 싱숭생숭한 남녀간의 이야기는 실천도 못해보고 그저 귀구멍만 간지럽히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때의 먼 옛날이야기로 밖에 남지 않을것이였다. 세월만큼 철을 아는 어르신이 없다더니 어느듯 모내기철이 어김없이 또다시 찾아왔다. 이젠 모내기를 시작한지 보름도 넘었지만 모내기를 한 논은 절반도 되나마나 했다. 드바쁜 모내기철에는 부지깽이도 날뛴다고 했지만 해마다 모내기철이라 해도 일하는 사람보다 노는 사람이 더 많아 일축이 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개바람 일구며 씽씽 달아다니다도 모내기철이 돌아오면 전염병에 걸렸는지 모두가 고양이 불 앓는 소리를 내며 아프다는 핑게다. 그러다도 추석에 어쩌다 소를 잡거나 돼지를 엎어놓는 년말결산때면 말똥구리에 딱정벌레 모이듯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믈그믈 쓸어나오는지 모를 일이였다. 힘깨나 쓰고 꾀를 부릴줄 모르는 성철형에게는 해마다 모내기철이면 제일 힘든 모지게를 지는 일이 차려졌다. 그래도 그는 별 불만이 없이 시키는대로 수걱수걱 일만 잘하였다. 성철형은 힘도 좋아 남들은 한번에 벼모 오십단도 지기 어려워 하는 모짐을 그만은 백단도 어렵지 않게 지고 씽씽 달아다녔다. 그래도 대채평공을 할 때면 여느때와 다름없이 손을 높이 쳐들며 시원스레 팔부를 자보하였다. 그러면 기공원이 또 그대로 받아 <팔부.>하면서 모내기철의 최고공수인 18부를 적어넣군 하였다. 성철형이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는것을 누구나 다 빤이 보는 일이라 최고공수를 주지 않으면 다른 사원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성철형이 올해는 웬 영문인지 지게를 지고 가다도 씰씰 번져지기가 일쑤였다. 사람들은 뒤에서 저자식 장가를 가더니 벌써 진이 다 빠졌는 모양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오전휴식시간이 되자 성철형은 영호네들이 모여앉은 곳으로 찾아와 지게를 벗어내치더니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형님이 올해는 어찌된 판이요? 언제나 힘이 나서 펄펄 날던 형님이 아까두 보니깐 논두렁에서 힌들 나자빠지더구만.><형님이 밤마다 아즈마이를 너무 못살게 굴어 그렇채이요? 하하하.>성철형은 맥없이 기여일어나며 말했다.<야, 너네 우리 안까이새끼보구 날 좀 밥 많이 주라 해라.><양? 아즈마이 밥을 잘 안주오?><말두 마라, 우리 안까이새끼 다 타래떡 바꿔먹구 쌀이 없다.><양? 그래 오늘 아침에는 형님이 뭘 잡숫구 나왔소?><아무것두 못먹었다. 그저 물 한바가지 먹구 왔다.>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황소눈을 껌뻑이는 성철형의 두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이렇게 고된 일에 아침을 굶고 나오다니, 그럼 이 며칠째 성철형이 거의 굶다싶이 하면서 지게를 진게 아닌가. 모내기철에는 아무리 힘꼴을 쓰는 황소라도 하루만 굶겨도 논판에 쓰러지는 판인데, 하기에 생산대에서는 푼푼하지 못해도 밭갈이철과 모내기철에는  소들한테 찰떡을 쳐먹이고 콩을 마대채 삶아먹이지 않는가. 성철형이 측은해났다. 나는 성철형이 이렇게 굶고 일하러 다니는줄 여지껏 감감 모르고있었다. 성철형의 말에는 꼬물만한 거짓도 없음을 나뿐만아니라 젊은 또래들도 잘 알고 있었다. 소같이 일하는 성철형이 이 며칠째 밥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는 소리에 모두들 가슴이 찡해났다. 여물 안먹고 잘 닫는 말 어데 있는가. 아무리 모자라는 아들이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제에미 손에서 밥을 받아먹을 때와 제입밖에 모르는 부실한 녀편네손에서 밥을 받아먹는것이 판판 다른가보다.영호며 인섭이네들은 자기들이 쉴참에 간식으로 먹자고 꺼내놓았던  누룽지며 삶은 감자며 구운 고구마며 볶은 콩들을 모두 성철형에게 안겨 주었다. 성철형은 먹을것을 보더니 콩여물을 만난 굶은 소마냥 아무런 사양도 없이 덥썩덥썩 쥐여먹기 시작하였다. 량손잡이로 소경이 볼새없이 먹어주는 꼴을 보니 완전히 사흘 굶은 거지였다. 성철형이 불쌍했다. 일은 제일 고되게 하면서 먹기는 아마 온 생산대에서 제일 못먹는것 같았다. 장가를 들면 좋기만 한것이 아니구나. 얼빤한 각시를 얻으면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저꼴이 된다는 섬찍한 생각에 다들 말없이 성철형이 게걸스레 먹는 꼴을 지켜보았다. 삼동서 김 한장 먹듯 어느사이 성철형은 다섯사람의 간식을 훌떡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는 배부른 황소 방귀뀌듯 트림을 껄껄 걸직이 해댔다. <야 이젠 사, 살것  같다. 근데 너네는 어, 어째 아이먹니?><형님이 다 잡솼는데 우린 뭘 먹겠소?><야 참, 그, 그랬구나. 야, 아이 됐다 응.><괜찮소, 형님이 잡숫는걸 보니 굶기는 굶었구만, 요새는 맥이 없어서 밤에 아즈마이하구 그  맛있는 일두 잘 못하겠소 양?><야, 말두 말라, 씨불란거, 너네 이것봐라.>성철형은 팔소매를 높이 걷어 올리고 구멍이 숭숭한 옷을 들어 잔등을 보여주었다.<이게 뭐이요? 어째 어디나 이렇게 시퍼렇게 이물었소?>성철형은 옷을 내리며 말했다. <씨불란게, 이게 다 우, 우리 안까이새끼 꼬 꼬집어떼서 이렇다.><양, 아즈마이 어째 이렇게 꼬집어뗐소?><씨불란게, 맛있는거 못해 주니까 바, 발과이나서 이렇게 꼬, 꼬집어뗐지.><양?>젊은 또래들은 놀라 입을 하 벌린채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해달라는걸 못해줘도 저렇게 꼬집히우는가?모내기철에 잡아들면서 힘든 일을 하는 성철형을 잘 먹여줘야 했으나 해와 달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모르는 형수는 그렇게 해야 하는줄 알바 없었다. 또 잘 먹여줄 쌀도 없었다. 겨울과 봄 내내 쌀과 꽈배기를 바꿔먹다보니 모내기철이 되기 전에 쌀독이 밑바닥이 드러났다. 그런줄 알고 고모가 모내기철에 먹으라고 우리 집에서 입쌀 한자루 가져다주었으나 형수는 그 쌀로도 꽈배기와 과자를 바꿔먹어버렸다. 뭣처럼 먹고는 자고 깨나서는 또 먹고하다 보니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그대로 꼿꼿이 살아나 밤마다 그 <맛있는 일>을 해 달라고 칭얼대지만 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며 하루종일 지게를 지는 성철형은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꼬꾸라졌다. 형수의 성화에 못이겨 어떤 때는 억지로 그 일을 치르다보면 중도에서 하차하기가 일수였다. 그러면 한창 몸이 달아오른 형수는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는다고 악이 바쳐 성철형의 팔이고 허벅다리고 잔등이고 마구 허비고 꼬집고 물어놓군 하였다. 그렇게 온 밤 발광하고는 새벽녘에야 잠이 드는데  일하러 갈 사람한테 아침밥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그리하여 성철형은 아침에 일하러 가기 전이면 여기저기 들춰보았으나 뺑덕어미 세간살이라 고양이에게 죽 쑤어줄것 없었고 새앙쥐 볼가심할것 없었다. 성철형은 별수없이 랭수 한바가지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일밭으로 나갔다 그래도 다행한것은 점심때면 생산대에서 점심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점심밥을 해서 밭머리까지 날라오기에 점심은 배불리 먹을수 있었다. 하여 날마다 열시쯤 되면 성철형은 벼모를 나르면서도 여물을 기다리는 황소마냥 그냥 마을쪽을 바라보며 점심밥이 어서 오기를 학수고대하군 하였다. 성철형이 굶어서 일하러 다니는줄 안후 나는 아버지께 말하여 우리도 모자라는 쌀이지만 더러 갈라내여 고모네 집에 보내주게 하였다. 아침과 저녁은 성철형이 고모네 집에서 밥을 먹고 일하러 다니게 하였다. 점심은 생산대에서 해주는지라 걱정할것 없었다. 전에는 성철형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것도 창피하다고 늘 남과 어울려 먹었지만 그후부터 나는 성철형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은근히 성철형을 챙겨주었다. 그게 좋은지 성철형은 볼이 메여지게 밥을 먹다도 자주 나를 쳐다보며 헤헤 웃군 하였다.그날도 나와 성철형이 점심밥을 배불리 먹고 누워서 따뜻한 볕쪼임을 하며 쉬고있는데 풍각쟁이 문백이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린채 슬금슬금 우리한테로 다가왔다. 문백이는 자기는 체질이 약해 힘든 일은 못한다며 해마다 모내기철이면 처녀들과 함께 모를 꼽는 기술로동을 하고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예술가>인 문백은 올해 대운이 텄다. 공작대의 <예술적>인정을 받아 모내기철의 <붉은 선동원>이 되였던것이다. 그는 오전 오후 각각 한번씩 논밭머리에서 노래도 부르고 바이올린을 켜기도 하면서 모내기하는 사원들을 고무추동하기도 했다. 그 대가로 문백이는 하루에 남보다 10부씩 더 챙기였다. 남들은 날마다 <변소>를 하늘로 쳐들고 꺼꾸로 박히다싶이 하며 힘들게 공수를  버는데 문백이는 모내기를 하다도 허리아플가 하면 쉼삼아 풍각쟁이질 하였다. 그러고도 공수를 더 따먹는것이 아니꼬와 사원들은 뒤에서 이마벗어진 덕에 공짜가 잘 생기는 <불쪽이 아홉>인 놈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점심을 배터지게 먹고 식곤이 몰려와 해볕을 쪼이며 끄덕끄덕 졸고있는 성철형의 머리맡에 와 문백이 소리쳤다.<야, 팔부, 너 자냐?>그 소리에  성철형은 눈을 거슴츠레 뜨고 쳐다보더니  비스듬이 일어나 앉았다.<어, 어째 그, 그램둥?><임마, 그간 니 새 노래를 배운게 있니?> <예? 어,없스꾸마…>사실 누나들이 모두 시집간후에는 그한테 노래를 배워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성철형도 오래동안 사람들앞에서 노래를 불러보지 못한 터였다. <너 재미있는 노래를 배워 보재이캔니?><예? 영 재미있습둥?><임마, 재밋재이문 왜 너보구 배우라 하겠니.>노래에 남다른 취미가 있는지라 성철형은 <붉은 선동원>이 주동적으로 찾아와 노래를 배워주겠다니 몹시 마음이 동해했다. 곁에 누웠던 나도 호기심에 끌려 일어나 앉는데 문백이는 <너는 저쪽에 비껴라>며 쫓는것이 아닌가. 씨, 사람을 알기는, 무슨 개떡같은 노래를 배워주겠기에 듣지도 못하게 하는건가. 나는 문백이를 아니꼽게 쏘아보며 화김에 저쪽에 가 벌렁 드러누웠다. 문백이는 손으로 박자를 쳐가며 성철형에게 뭐라고 소곤소곤 노래를 배워주는것 같았다. 성철형도  재미나는지 모이를 쫏는 닭마냥 고개를 꺼떡꺼떡하며 정색해서  노래를 배우고있었다. 일할 시간이 거의 되자 노래도 다 배웠는지 문백이가 재삼 당부하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아까두 말한거 알았지? 너 이 노래를 배워서 아무데서나 부르면 안된다. 꼭 잔치집에서만 불러야 한다?> <와늘 사람 알기는, 어전 몇번이나 말함둥?> 성철형이 제쪽에서 큰 소리다. 쳇, 무슨 신비한 노래를 배워주었기에 저렇게 꼼꼼이 당부까지 한단 말인가. 그게 다 소귀에 경 읽기지.성철형은 금방 배운 노래의 가사와 곡을 잊을가봐서인지 일할 때에도 휴식할 때에도 시도 때도 없이 혼자서 시벌시벌했다. 그러자 모르는 사람들은 저 자식 결혼후에 어째 전보다 더 멍청해지지 않았나고 여기기까지 했다. 노래련습을 하느라고 그러냐고 내가 넌짓이 물어도 성철형은 눈을 찡긋할뿐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계속)장백산 2009년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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