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소설 진할머니의 명절
박병대
흩어졌던 가족들이.한자리에 모여 천륜지락을 즐기는 재미에 사람들은 명절을 손꼽아기다린다.명절을 맞는 진할머니의 마음도 례외가 아니다. 5.1련휴가 다가오자 그녀는 산에 가 고사리며 고추대, 딱주싹 등 산나물을 캐오고 들에 나가 싱싱한 미나리며 민들레를 캐다놓고 도시에 사는 아들며느리가 손주녀석을 데려고오면 실컨 먹이고 한보따리 듬뿍 싸주려고 서둘렀다.
할머니는 기차를 타면 한시간,뻐스를 갈아타 반시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사는지라 4월 30일 해질무렵이면 반가운 자손들이 꿈결같이 집에 들이닥치것 같아 찰떡도 치고 쑥떡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해가 서산마루에 꼴각 넘어가고 막차가 지나갔는데도 애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기차가 연착을 했나 아이문 무슨 딴일이 생겼나?) 할머니는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마당앞에서 서성거렸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힘차게 귀전을 때렸다.
"갑자기 무슨 전화야?"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방안으로 달려들어간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급히 물었다.
"여보세요?"
"엄마, 나야.낼 우리 희망이가 서탑서점에 친구들하고 책사러 간다면서 함께 가자고 졸라서 오늘은 못내려가겠어. 낼 저녁에 갈께,응."
"그래? 알았다." 할머니는 맥없이 수화기를 덜컥 놓아버렸다.(하필이면 5.1절에 책사러 갈게 뭐람?공일날이 쌔빠잤는데두...)서운함을 금할수 없는 그녀의 쪼글망태얼굴은한결 오그라졌다.(무슨 일이 글케 바쁜데 설에 피뜩 들리고는 이날이때까지 낯짝 한번 보이지 않노?) 그녀는 뒤늦게 본 열살나는 귀염둥이 손주녀석이 사뭇차게 그리웠다.
이튿날 오후 네시에 진할머니는 일찌감치 네식구가 먹을 저녁밥을 지었다. 손주놈이 먼길을 오면 밥부터 찾을것이 분명하였다.
해질무렵에 전화벨이 성가시게 귀청을 때렸다.
"엄마, 낼 내 중학교 딱친구가 결혼 열두돌잔칠한데. 낼 오후에 일찌감치 갈께."
오래만에 오는 애들한테 식은밥을 먹일수 없어서 새밥을 가득 지어놓은 진할머니는 식은 밥을 처리할 걱정이 태산같았다.(친구가 이 에미보다 중한가보지?그까짓 새끼가 뭐락꼬?) 옥생각이 윽 치밀었지만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아들의 심중을 얼마간 알것 같아서 "그래."하고 김빠진 대답을 하였다.
이튿날 저녁 아들은 고주망태가 되여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와 니 혼자 왔노?"
"희망인 낼 학원 가니께 지 엄마도 못오게 됐어.애들 공부경쟁이 얼매나 심한지 하루만 빠져도 못따라가니께 말이야."
(공부땜에 못왔다는데 머라카노? 이 할미가 언제 손주놈 잘되는걸 싫다했나?) 진할머니는 아들내외의 처사가 어쩐지 얄밉기만 했다.
"할매 만든 채가 제일이야."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입이 미여지게 밥을 넣고 요물요물 씹던 손주놈의 복스런 얼굴이 자꾸 눈에 어른거렸다.
어머니의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방우에 누워 잠에 곯아떨어진 아들놈은 천둥같이 코를 곯며 꿈세상을 헤매다가. 이튿날 아침, 해가 너덧발이 올라서야 기지개를 켜고 비시시 일어나 아침밥을 먹더니 밥상을 물리기바쁘게 친구집에 볼일이 있다며 씽하니 나가버렸다.해가 서쪽하늘로 기울 때야 낯이 홍당무우가 된 아들이 집에 돌아오더니 들가방을 열었다.
"엄마, 나 가야겠어.회사에 일이 밀려서..이거 보졘핀(保健品)이야. 매일 두알씩 먹고 건강챙겨."
"누가 그딴걸 사오락켄나?"
진할머니는 어미의 마음을 꼬물만큼도 헤아릴줄 모르는 아들의 소행에 밸이 불끈 치밀어올랐지만 간신히 참고 내색하지 않았다.아들며느리,손주놈과 한번이라도 웃음꽃을 피우며 지옥같은 고독을 잠시 헤여나려고 명절을 눈빠지게 기다렸는데 와서 어미와 한시간도 함께 있지 않고 불쑥 떠나려는 아들이 무척 야속하였다. 그녀는는 산나물과 떡을 싼 보자기를 이고 아들을 따라 동구밖으로 나갔다.
"그럼,엄마 잘있어."
말 한마디를 던지고 아들은 뻐스에 올라갔다.
(내가 이랄락꼬 그렇게 그다렸노?) 진할머니의 찡그린 눈가로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아들을 바래주고 오니껴?.손주는 안왔나보지?"
이웃마을에 시집간 딸네집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동갑내기할미가 그녀를 보고 인사쪼로 물었다.
"아니,다 왔댔는데 우리 희망이는 학원에 간다고 지 에미하고 아침일찍 먼저 갔다니께." 진할머니는 명절에 자식들과 오붓하게 모이지 못한것이 크게 낯깎인듯하여 급히 얼버무리며 어줍게 웃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쓰디쓴 눈물이눈시울을 적시여 마을친구들을 만나는게 범같이 두려워 집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20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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