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경칠령감의 문화유산
Author:관리자 Date:7/16/2013
(철령) 박병대
청명이 지났건만 꽃샘추위는 옷틈새를 파고든다. 경칠령감은 습관대로 대문밖을 나와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집집의 담벽에는 회가루로 쓴 아라비아수자가 눈을 부릅뜨고 주민들의 철거동정을 살피고있었다.
“이젠 며칠 안남았는데 우짜노? 후유뿠?집에 돌아와 정원에서 동향으로 놓인 창고를 멍하니 바라보던 경칠령감의 입에서 애꿎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아저씨 안녕하십니까?”
인기척에 흠칫 놀라 철창문밖을 내다보던 경칠령감의 흐릿한 눈에 뜻밖의 반가운 얼굴이 비끼였다.
“정식이, 자넨 오늘 무신 바람이 불어 여길 왔노?”
“아저씨를 만나뵈려고요.”
“치운데 얼른 집안에 들어가자. 그새 집은 다 편안하재?”
경칠령감은 이웃에 살던 친구의 아들이자 30년전에 마을의 첫 대학생이 되여 지금 도회지에서 사업하는 정식이와 인사말을 나누다가 궁금증이 동해 말머리를 돌렸다.
“공직에 매인 자네가 이 먼데를 일부러 올리는 만무허구.”
“기실 저는 아저씨댁 대물림보밸 보러 왔습니다.”
“대물림보배라? 옛 연장말이재? 젊은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걸 볼라고 일부러 왔다? 참 기특하군그려. 말이 난김에 먼저 광을 돌아보고올가?”
경칠령감을 따라 창고안에 들어간 정식이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두간짜리 넓고 정결한 벽돌창고안은 마치도 작은 박물관을 련상할만큼 벼라별 옛날 공구가 질서정연하게 배렬되여있지 않은가?
“아저씨, 저기 저건 뭔가요?”
호기심어린 정식이의 손길을 따라 눈길을 옮기던 경칠령감이 대답했다.
“그건 내 할머니께서 실 타는데 쓰시던 물레라는 연장일세.”
“아저씨의 할머니라? 그럼 백년도 넘은 고물이네요?”
“아마 그럴게지. 할머니께서 쓰시던 저 베틀도 그렇구.” 눈이 동그래진 정식이의 물음에 경칠령감은 심드렁한 대답이다.
“아저씨, 이 많은 고물을 수십년간 건사하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셨지요?”
“그게사 조상께 효도하는 맘으로 내 좋아서 한건데 고생이랄게야 있나? 하루 한번씩 들여다보면 세월을 거슬러올라 조상을 뵈는것 같아 가슴이 후련커든. 시장켔는데 이젠 방에 들어가세.”
옛날 손망이며 절구, 다듬이돌, 디딜방아, 떡판, 지게, 멍석, 콩기름등잔, 인두 등 벼라별 고물에 정신을 팔던 정식이는 주인이 두어번 재촉해서야 아쉬운듯 밖을 나왔다.
이윽고 정결히 차린 밥상이 올라왔다.
“미리 기별이나 할거지. 돌연습격하문 우짜락꼬? 채마밭도 못심어 달랑 김치에 두부뿐이랑께. 그 소주는 두고 막걸릴 들게. 집에서 담근건데 도시에선 아마 별밀걸세.”
경칠령감은 정식이가 내놓은 술병을 밀어버리고 컵에 막걸리를 부으면서 물었다.
“춘부장은 무탈하고 잘 기시제?”
“병은 없으신데 종일 ‘옥살이’에 몸살나겠다며 자주 짜증내시네요.”
“와 앙그렇겠노? 후유?지지고 볶고해도 다 함께 모여 살 때가 질 좋았지.”
“이젠 아저씨도 할수 없이 떠나야겠네요?”
“글쎄, 우리 손으로 세운 동네니께 정이 깊어 남들 다 떠나도 끝까지 버티다가 여게 뼈를 묻을라캤는데 맘대로 대야 말이재? 고속철이 토지 절반 훌떡 삼키고 마을뒤에 역전까지 생겨 시가지로 된닥카잖나? 농사도 못짓는 여기서 무신 재미로 살겠노?”
“이사자리는 봐뒀습니까?”
“그럼, 불도젤로 밀 때 쫓겨갈수야 없잖나? 먼 시교에 아빠트를 사놨다만…”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훌쩍 떠나시지요.”
“이부자리에 그릇뿐이문 당장이라도 뜨겠네만 저것땜에 안죽(아직) 이라고 있잖나? 후뿠?경칠령감은 벽돌창고를 가리키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아저씨, 마침 잘 됐네요. 성에서 조선족민속관을 꾸렸습니다. 우리 민족의 력사며 전통문화예술 그리고 풍속사진이며 해설자료까지 구전한데 전시관에 실물이 턱없이 모자라서 아직 개관을 못하고 아저씨의 도움을 빌러왔습니다. 아저씨, 이젠 건사하기도 어려울텐데 고물을 우리 민속관에 파세요. 값은 후히 드릴테니깐요.”
“머여? 자네가 날 조상 욕뵈는 불효자로 만들락카나?”
불에 덴듯 흠칫 놀라는 경칠령감의 밭고랑같은 주름살을 보며 자신의 실언을 깨달은 정식이가 급히 변명했다.
“아저씨, 제 말은 그뜻이 아닙니다. 기실 아저씨댁 고물이 바로 우리 민족의 보귀한 유산이 아닙니까? 우리는 조상들이 겪어온 눈물겨운 력사와 민족의 미풍량속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백의민족의 얼을 자손만대 길이 전하려고 민속관을 꾸렸습니다. 아저씨, 보귀한 문화유산을 혼자만 보시지 말고 민족의 문화사업에 빛을 내게 하십시오.”
“나더러 손을 빌리자면 손을 내고 돈이 수요되면 기꺼이 허리춤을 풀겠네만 연장만은 못내놓는당께… 큰돈을 들여 고물을 수집하면 팔려는 사람이 더러 나올게니 그리 알고 돌아가게.”
다 잡은 토끼를 놓칠순 없다고 생각하고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던 정식이가 애원하듯 졸랐다.
“저는 옛날 물건을 오늘까지 지켜오신 어른이 아저씨뿐이란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아저씨 도움없이 우리 민속관은 영영 개관도 못할 처지예요. 팔지 않으시려면 임대라도 해주세요.”
“자네는 내가 돈에 눈이 먼줄 아나? 연장이란 내돌리면 마사지기 마련이니 어쩔수 없네.”
“아저씨, 그런 걱정은 붙들어매십시오. 보물을 저희들께 맡기면 신주같이 고이 모시겠습니다. 이걸 보세요.”
정식이가 새로 선 민속관의 외경이며 내부시설을 찍은 선전용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려움을 호소하자 경칠령감은 마음이 다소 동했는지 강경한 말투가 얼마간 누그러들었다.
“내가 자네 빈말을 어떻게 믿겠나? 보증서라도 쓸텐가?”
“예, 쓰고말구요. 하나가 못쓰게 되면 열개 값을 물겠습니다.”
“그게 참말인가? 참… 자네 성화에 내 두손 들었네. 값은 고하간에 팔고나면 남의것이라 발언권도 없을게니 자네 안면을 봐서 임대해줄수밖에 없구나.”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임대료는 얼마로 정하겠습니까?”
“기왕 내놓는바엔 임대료는 무신 임대료야? 무상임대하겠네. 내 한 3년 자네들 거동을 단단히 지켜보고 믿음이 가면 아예 속시원히 증정하겠네. 자네 내 뜻을 알만한가?”
“아저씨, 그게 정말입니까? 아저씨의 참뜻을 이제야 알듯합니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슴배인 보귀한 문화유산은 어느 개인의 힘으론 지켜내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이 보귀한 문화유산을 조상같이 모시고 친자식같이 사랑하겠습니다.”
“나도 내만 죽고나면 고물을 지켜내지 못할걸 알고 몇날며칠 속을 썪였네. 나는 자네가 찾아올줄 알고 기다리면서 자네 성심을 알고팠네. 하하하…”
이튿날 창고안을 가득 채웠던 유산은 큰 트럭에 실려 영원한 빛을 뿜을 보금자리로 찾아갔고 경칠령감네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소재지 근방에 새로 건설하는 조선족집단촌으로 이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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