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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2013년 12월 29일 09시 41분  조회:1329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미니소설]        후    회
                     철령    박병대
 
  아침해가 동산마루에 서너발 올라 찬란한 빛을 뿜는다. 아침산보를 마친 순보령감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아파트에 돌아와 대문을 여는데 1층창문에서 녀인의 째지는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아부지, 너무해요.이제 또 맘대로 일을 쳤다간 나도 가만 있지 않을거예요."
  "장병에 효자가 없다지만 아비가 병석에  누운지 이제 몇달이 되였다고 자랑에 쉬쓸던 딸년이 지 아비한테 마구 <기관총> 을 쏴대나 후--" 순보령감은 남의 일 같지 않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2층에 들어가 텔레비죤을 켰다. 그런데 아래층 녀인의 앙살이 고막을 마구 짓뭉개 드라마의 내용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 탕탕탕"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누가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문을 부셔지게 두드린담?" 순보령감은 짜증이 났으나 마지못해  일어나 출입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아래층 허풍령감의 딸 미분이가 설익은 오얏상을 해가지고 서있었다.
  "아니, 자네가 오늘 어인 일로 우리집엘 왔나?"
  "이거 돌려주려구요."  40대의 녀인은 손에 든 휴대폰을 불쑥 내밀었다.
  "그건 내가 자네 부친 쓰라고 준긴데..."
  "아니, 필요없어요. 우리집에도 있어요. 아저씨, 이제부턴 남의 집일에 헛신경 끄라구요." 녀인은 비양쪼로 얼음장같은 말 한마디 내뱉고 홱 돌아서더니 비맞은 중이 념불하듯 무어라고 비양거리며 층층대를 씽씽 내려갔다.
  순보령감은 가는귀가 먹어 미분이가 뭐라 하는지 똑똑히 듣지는 못했지만 자기를 욕한다고 짐작했다.
  "뭐, 나더러 남의 집일에 헛신경 끄라고? 그래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머리에 쇠똥도 안벗은 계집애가 훈계하는거지?" 순보령감은 생각하면 할수록 밸이 꼬여 허연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기실 순보령감과 허풍령감사이에 깊은 교분은 없었다. 제작년에 미분이가 자식 공부시킨다며 학교 근처에 있는 이 아파트 1층을 임대했는데.몇해전에 상처한 허풍령감은 아들이 출국하자 딸한테 의탁하러 왔었다. 무르익은 대추같은 얼굴에 땅딸보인 그는 븥임성이 좋고 사람을 잘 웃겨 순보령감은 그와 종종 만나 한담을 하며 고독을 풀었다.
  그런데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는것이 풍운변화라더니 그리도 건장해보이던 허풍령감은 작년 가을 친구댁에 갔다가 중풍에 걸려 침대신세를 지고있었다. 순보령감은 병석에서 지옥살이하는 친구가 얼마나 고적할가 안타까워서 종종 아래층에 내려가 문병하고 환자의 말동무로 되여주었다.
  며칠전 순보령감이 허풍령감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따르릉,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가 왔네, 에익, 요너무 다리가 쬐끔만 말 들어도 일나겠는데...김형이 대신 받아보소. ...."
  "그래도 되겠능교?" 남의 전화를 대신 받기가 무엇해서 잠시 머뭇거리던 순보령감은 허풍령감이 어서 받으라고 손짓하자 객실에 놓인 수화기를 들고 물었다
  "여보세요?"
  대방은 낯선 목소리를 듣자 전화가 잘못 걸린줄 알았던지 송화기를 덜컥 놓는것이였다
  "소우지(手机)가 있으문 이런 낭패가 없을긴데  "
  "허형이 전에 씨던 소우지는 우쨌능교?"
  "글쎄..." 허풍령감은 반쪽이 된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바르며 대답을 피했다.
  "울집에 노는 소우지 하나 있는데 허형이 두고 쓰이소."
  "아니, 그래도 되겠능겨?"
  허풍령감이 사양하는 말을 하나 무척 반기는 기색이 력력했다.
  다음날 순보령감은 아들이 출국할 때 두고간 휴대폰을 찾아 충전하고 료금카드까지 하나 사넣어 허풍령감한테 가져갔다.
  "이거 참, 내가 김형 신세를 너무 집니다요. 요긴할 때 잘쓰겠니더." 허풍령감은 휴대폰을 이불밑에 슬쩍 밀어넣었다. 누가 볼가봐 감추는것 같았다...
  "오늘 허풍령감이 딸 몰래 전활 걸다가 들통난게로구나 고까짓 손톱만한 일각꼬 삼이웃 시끄럽게 난동을 피워? 에익, 몰상식한 계집같으니라구."
  좋은 일하고 인사받기는 커녕 무안만 당한 순보령감은 허풍령감이 가련하기 그지없었으나 미분이의 올빼미상을 볼 생각을 하면 몸에 소름이 끼쳐 병문안을 자제하였다.
  초여름이 찾아오자 순보령감 내외는 새집구경도 하고 관광도 할 겸 꼭 놀러오라는 작은 아들네의 청에 못이겨 남방에 가서 태산 황산이며 항주, 소주, 계림산수 등 좋다는 명승지를 두루 구경하고 초가을에 집에 돌아왔다. 그날 저녁 김로인은 허풍령감이 심한 치매에 걸려 제 딸도 못알아보고 자꾸 헛소리만 친다는 말을 들었다.
  "참 불쌍한 늙은이로구나. 허풍령감이 그 꼴이 된건 자식농사 잘못한 탓이지. 하기사 친구를 못돌본 나도 과실도 적잖구나!" 그는 미분이의 꼴이 보기 싫어 친구의 병문안을 안한 자신의 옹졸한 처사를 후회하였다.그는 미분이가 귀를 틀어막고 행악을 부리든 말든 그녀앞에서
  "자네는 병석에 누운 아비한테 약만 사주면 자식도릴 다 한줄 아나? 너의 아비한테 고독이 얼매나 무서운 병인지 글캐 모르나? 아들놈 용돈 조금 덜주고 가슴이 타 재가 쌓인 자네 아비가 친구들하고 통화하게 하면 죄가 되나? 자네가 고런 고약한 심보 쓰다 아비가 더 큰 병이 걸리면 워짤락고 그러나?" 하고 대성질호하며 정신이 부쩍들게 일깨워주지 못한것이 몹시 한스러웠다.
                       2011.5
                              {기원컵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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