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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돈 30원
2013년 12월 29일 09시 45분  조회:2077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단편소설            부조돈 20원
                     박병대
새벽녘에 살짝 뿌린 백탕같은 싸락눈은 해살을 받아 유난히도 눈부시다.
 아홉시 뻐스를 타고 현성에 와 내린 리어머니는 중심거리로 발을 옮겼다. 마침 공일날이라 대통로에는 여느때보다 행인들이 많았다. 리어머니는 밀물같은 사람들속에 끼여 길남켠에 새로 선 4층짜리 백화상점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상을 받다가 뒤마을 영실이 할머니한테서 현성중학교에 있는 김선생이 오늘 딸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던것이다. 리할머니는 무슨 물건을 사서 잔치에 부조할가 머리를 짜며 붐비는 사람들속에 끼여 상점아래층을 한바퀴 돌았다. 맞은켠에서 웬 청년이 백옥바탕에 빨간 매화꽃이 그려져있는 장식용사기병과 한쌍의 원앙이 호수에서 헤염치는 우모화를 들고 걸어오고있었다. 아마 그도 뉘 집 잔치에 가는것 같았다.
(저까짓거야 빛좋은 개살구지. 살림살이에 무슨 도움이 된다구. 잔치부조에는 아무래도 옷감이 기중 낫지.)
리어머니는 층층대손잡이를 잡고 의복을 파는 2층으로 올라갔다. 진렬대앞에 걸려있는 각양각색의 복장은 그야말로 그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기껏해야 옥양목이나 사봤고 늘그막에 들어서도 나일론, 데트론밖에 더 만져보지 못한 그였다. 이 몇해동안은 이름모를 새천이 얼마나 나왔는지 어느것이나 다 새롭고 신기해보였지만 시체를 따르는 젊은이들이 어떤것을 더 좋아할지 몰라 매대앞에 서서 망설이고있었다. 량태머리를 드리운 판매원처녀는 고객들이 많이 모여선 곳에서 물건을 내보이느라 바삐 서둘렀다. 판매원이 돌아서기를 기다리는데 창문밖에서 구급차 한대가 지나가는것이 얼핏 보였다. 리어머니는 어쩐지 가슴이 섬찍했다.
(참, 걔 병이 더해지진 않았겠나?)
애 아비 걱정은 말고 잔치구경만 하고 오라면서 며느리가 5원짜리 지페 넉장을 손에 쥐여주긴 하였지만 정작 그 돈을 부조에 다 쓰려 하니 가슴이 아려났다. 이 돈은 며느리가 제 남편 몸조리하는데 보내려고 이웃에서 빌려온것임을 그는 잘 알고있다. 작년에 기와집을 짓느라고 뭉치돈은 다 썼고 분배결산도 아직 못했는데 애 애비가 갑자기 중독성리질에 걸려 현립병원에 입원하고보니 요즘은 돈이 퍽 딸렸다. 며느리는 용처돈을 벌겠다고 짬짬이 가마니를 짜고있는데 이 늙은이는 짜놓은 가마니도 꿰매지 않고 돈까먹으러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는 매대앞에서 어정거리다가 판매원처녀가 다가오자 앞에 걸린 옷 한가지를 가리키며 보자고 했다. 노랑바탕에 연분홍꽃무늬가 돋친 저고리가 퍽 맘에 들었다. 아버지의 몸매를 따서 후리후리하고 어머니를 닮아 곱살스런 영란이가 그 옷을 입으면 한결 아릿다울것 같았다. 판매원처녀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그 저고리를 내려다주면서 값은 18원95전이라 했다.
(에이구나, 물건이 좋으니 값도 비싸구나.)
리어머니는 뽀얗게 서리내린 머리를 벅벅 긁으며 호 한숨을 쉬였다. 왔던김에 병원에도 들려보고싶었지만 이 옷을 사고나면 사과 몇근 살 돈도 모자랄것 같았다. 그렇다고 저켠에 있는 눅거리옷을 사자니 또 맘에 들지 않았다.
(부조시세도 하늘 높은줄 아는지 꾸역꾸역 오르기만 한는데 괜히 저런걸 사갔다가 남의 말밥에 오르면 도로 망신이야.)
수수대같은 앙상한 손으로 옷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눈앞에는 병원침대에 누워 신음할 아들의 백지장 같은 얼굴이 얼른거렸다.
<<에이구, 내사 몰따. 병원부터 가보자.>>
리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저고리를 판매원에게 돌려주고 맥없이 층층대를 내려왔다. 그러나 정작 상점문을 나서려니 발이 떼여지지 않았다.
<<어머니, 우리가 김선생님 신세를 여간 졌나요? 그 은공은 갚지 못하더라도 가서 부조갚음은 하셔야지요.>>
그의 귀전에는 돈을 쥐여주며 하던 며느리의 목소리가 챙챙하게 울려오는듯 했다. 하긴 정말 그렇기도 하다. 김선생의 신세를 어이 말로나 돈으로 갚을수가 있단말인가? 제 일만 일이라고 김선생이 무남독녀 영란이를 시집보내는데도 모르쇠를 놓아서야 될 일인가? 김선생은 제쳐놓고라도 남들이 날 인정머리도 없는 늙은 맹꽁이라 할게다.
리어머니의 머리속에는 김선생과 한이웃에 살던 때의 일들이 환영같이 스쳐 지나갔다.
1968년 여름에 있은 일이다. 토지개혁때부터 촌장,지부서기를 맡아하던 령감이 반란파들의 몽둥이찜질에 어혈이 들어 고생하다가 <<주자파>>모자도 벗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을 때 현성중학교에서 사업하다가 <<반동권위>>니 뭐니 하는 모자를 덮어쓰고 이 마을에 쫓겨왔던 김선생은 자신의 처지가 딱해서 상가집에 오지는 못했지만 장례에 보태쓰라고 남몰래 돈 15원을 보내왔었다. 돈보다도 뜨거운 마음을 받아안고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일만은 지금까지도 머리속에 생생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반생동안 교편을 잡고 지나온 김선생은 시골에서의 고된 로동에 무척 지쳤지만 밤이면 예나 다름없이 등불밑에서 수학문제풀이에 골똘했었다. 리어머니는 아는것이 많은 죄로 그렇게 혼이 나고도 그냥 공부에 몰두하는 그가 갸엾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세상사란 그렇게도 변화무상할줄을…
<<4인무리>>가 꺼꾸러지고 새로운 대학생모집제도가 나오자 김선생은 10년이나 젊어진 사람같이 활기를 띠고 정신이 분발하였다. 워낙 입이 무거워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고작해야 빙긋 웃어보이면 그만이던 그는 마치도 직업적본능이 발작한듯 승학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에게 지식의 샘물을 대여주었다. 낮에는 들에 나가 일을 하고도 밤이면 젊은이들을 자기집에 데려가서는 삼태성이 기우는것도 모르고 이악스레 복습지도를 해주었다. 그 덕에 대대손손 농군밖에 없던 리어머니의 가정에도 어엿한 대학생이 나오게 되였다. 리어머니가 너무도 기뻐서 막내아들이 대학교로 가기전날 저녁에 술 두병과 과일 몇근을 사가지고 사례하러 김선생을 찾아갔었다.
<<어머님, 이게 웬 일입니까? 제야 의례 할 일을 조금 했을뿐인데요.>>
김선생은 과일가방을 한사코 받지 않았다.
지식분자정책이 락착되면서 김선생네가 현성으로 돌아갈 때 어머니는 외동아들을 먼먼 타향에 보내는것 같이 서운하여 동구밖까지 바래주면서 시골에 자주자주 놀러 와달라고 당부했었다. 김선생도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집구경도 할겸 놀러 오시라고 했는데 리어머니는 딴 때는 몰라도 영란이 잔치때는 죽잖은 담엔 꼭 가마고 대답했던것이다. 세월은 빠르기도 하여 김선생과 헤여진지도 어언간 3년이 지났건만 리어머니는 김선생댁을 단 한번밖에 들려보지 못했었다.
그는 깊은 자책감에 사로잡혀 다시 상점안으로 들어갔다. 점심때가 다가오니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은 한결 더 많아졌다. 2층까지 겨우 비집고 올라오긴 했어도 매대앞을 철통같이 둘러싼 사람들 틈은 도저히 뚫고들어갈수가 없었다. 발돋움을 하고 목을 빼보았으나 자그마한 그의 키로는 판매원의 얼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야속하게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이러다간 잔치구경도 제때에 못할것 같았다.
<<에이고, 그냥 가자. 지금은 돈부조도 한다던데… 가서 정황을 봐서 15원쯤 내놓던지? 김선생이 뭐 부조가 많고적은걸 따질라구?>>
상점문을 나선 리어머니는 중학교교원사택을 향해 총총걸음을 놓았다.
리어머니가 김선생네 뜨락에 와보니 예상밖으로 잔치날의 흥성이는 기분은 볼수 없었다. 문앞에 자전거 몇대가 서있을뿐 드나드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오늘은 잔치날이 아닌가베? 시가지 잔치는 그저 이렇나? 손님들은 하마 돌아갔나?)
집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김선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잖았고 행주치마를 두른 사모님만 김서린 정지에서 젖은 손으로 그를 맞아줄뿐이였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시골손님들이 한방 둘러앉아서 방금 점심상을 받는것이였다.
<<아이구 형님 이제 오능기요?>>
색술잔을 들던 영실이 할머니가 리어머니를 끌어당겨 곁에 앉히였다.
손님들은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다가는 서로서로 권해가며 술을 마셨다.그러나 리어머니는 난생처음으로 온지라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았다. 방문옆에 놓인 탁상우에는 손님들이 가져온 례물이 여간 많잖았다. 어떤 물건은 상점에서 보지도 못했던것이였다.
(하기사 30년동안 글을 배워준분이니 은혜진 제자가 어이 한둘이겠나?>>
리어머니는 례물더미에 눈을 팔며 저가락을 쥔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탁상우에는 꽃주전자와 목긴 술잔을 올려놓은 차관, 고압가마며 비닐박막자루안에 넣은 옷들이 키돋움하고있는가 하면 한쪽에는 입쌀을 담은 큼직한 자루도 몇개나 서있었다. 속구구를 해보니 어느게나 20원어치는 잘될것 같았다.
(그런데 저건 왜 남 눈에 띄이는데 놓았능고?)
자기도 버젓한 물건을 들고왔더면 그런 생각이 없으련만 남들이 다 보는데서 맨손으로 들어와 앉고보니 참말 얼굴을 들수 없었다. 정말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시골사람들은 손님이 가져오는 부조는 사양하는척하다가는 슬쩍 농안에 넣어두고 남몰래 아무아무게한테 무엇을 받았다고 부조기에 적어놓는다. 그리고 다음번 그집 잔치에는 받았던 부조가치에 해당한 선물을 사가기도 하고 돈이 마를때는 남한테 받았던 부조물에서 마땅한것을 골라가기도 한다. 시골에서 8~9년 지낸 사람이니 그만한 처사는 할줄 알터인데 오늘 와보니 정말 코막고 답답할 일이였다.
(저건 남한테 자랑하자는겐가? 하기사 부조를 많이 받았다는건 이전에 남한테 그만한 부조를 했다는것이기도 하고 또 그만한 지위나 인덕이 있다는것이기도 하겠지만… .)
그것도 그뿐만이 아니였다. 누가 언제 적어놓았는지 가져온 례물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까지 쓴 종이조박이 끼여있지 않는가? 아무리 신식잔치를 한다기로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싶었다. 이거야말로 선물을 가져온 사람들끼리 서로 누가 더 많이 가져왔나 비기며 시샘하게 하고 빈손으로 온 사람의 낯에단 화로불을 들씌우는게 아니고 뭔가? 그러고보니 이전에 태산같이 우러르던 김선생에 대한 믿음에 저도 몰래 금이 가는것이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정말 측량할수가 없었다. 금전에 흑사심이란 말이  있더니 도회지로 돌아가 겨우 3년에 그 직심이던 사람도 다 변했구나! 리어머니는 남몰래 쯧쯧 혀를 찼다.
누군가 밥술을 들면서 옆에 앉은 늙은이에게 부조더미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소곤거린다.  리어머니는 그들이 자기를 두고 말하는가싶어 귀를 강구었다.
<<좀 있다가 우리 둘은 뒤보러 간다 하고 슬쩍 빠지기요. 아까 그 사람 꼴이 나면 어쩌겠능기요?>>
떠들썩하는 말소리, 웃음소리,수저가락 오가는 소리에 뒤의 말은 똑똑히 들을수 없었지만 분명히 부조를 두고 하는 말이여서 그는 정수리를 얻어맞은것 같이 머리가 띵하였다. 탁상우에 놓여있는 선물더니는 자꾸 그의 눈길을 끌었고 남들도 저 늙은이는 도대체 뭘 들고왔나 하고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는것만 같아 평소에 보기 드믄 풋남새, 고기반찬도 입안에서 뱅글뱅글 돌며 목안으로 좀체 넘어가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큰 모멸감을 느꼈다.
(그까짓거 가져왔다구들 우줄렁거리지 말아. 나도 가져온 돈 다 내놓으면 그뿐이다.)
슬그머니 속다짐을 하고나니 마음은 다소 안정디는것 같았다. 글나 허전한 기분은 머리속을 맴돌이치며 좀체로 떠나지 않앗다.
벽시계가 땡 하고 한점을 쳤다. 돌아보니 오후 한시였다. 두시차를 타고 집에 가지 않겠느냐고 영실이 할머니한테 물었더니 그는 좀 더 앉아있다가 근방에 사는 딸네 집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럼 나는 먼저 가겠니더.>>
리어머니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오다나니 아거 안됐니더.>>
문밖에 나온 리어머니는 돈을 싼 종이봉지를 따라나온 사모님의 앞에 내밀었다.
<<어머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사모님은 불에 덴 사람같이 흠칫 놀라며 손을 뒤로 가져갔다.
<<약소하지만 받아놓으소.>>
리어머니는 사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돈봉지를 그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려 하였다. 그러나 사모님은 생글생글 웃기만 할 뿐 받을념을 하지 않았다.
(남이 가온 부조는  한상 받아놓고 내한테는 우짤락고 이러능교?)
괘씸한 생각이 밸을 꼬자 그는 그만 리지를 잃고 버럭 성을 내고말았다.
<<왜 사람을 이리 깔보능기요? 내 돈은 뭐 돈이 아닝기요?>>
가져온 돈이 적어보여 그러는지, 아무래도 받을걸 가지고 거듭거듭 사양하는 꼴이 아니꼬왔던것이다. 말해놓고보니 후회도 좀 되였으나 이미 쏟아놓은 물이라 어쩌는수가 없없다.
<<김선생도 이젠 곧 돌아올거얘요. 오셨던김에 만나보고 하루 쉬여가세요.>>
돈봉지를 한손에 쥐고 홍시가 된 사모님이 만류했으나 그는 집안일이 바쁘다며 그의 손을 뿌리치고 부랴부랴 나오고말았다. 가로수우에 앉은 참새 한마리가 짹짹 울더니 포르르 날아갔다. 참새는  마치도 눈녹은 길우에서 타박타박 걸어가는 그를 조롱하는듯했다. 자다가 생긴 병 같던 부조근심을 털어버리고나니 마음은 한결 후련했으나 워낙 용을 썼던탓인지 두 다리는 나른했다.
아들한테 보내려고 빌려온 돈을 대접도 받지 못한 잔치에 빛없이 밀어넣고 돌아온 리어머니는 며칠동안 기분없는 나날을 보내였다. 그러던 어느날, 리어머니는 뜻밖에 편지 한통과 20원짜리 돈표를 받았다.
<<어데서 온게냐?>>
며느리에게 물어보니 김선생이 부친게라고 하였다. 내라는 돈보다 받는 돈이 반가와야 하련만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세상에 받은 부조를 되돌리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이 7순이 돼가도록 보도듣도 못한 일이였다. 도대체 우리한테 무슨 유감이 있어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짚히는데란 없었다. 무형의 모욕이 온몸을 칭칭 감았다.
(진작 이럴줄 알았더면 가지도 않았을걸.)
불안에 싸여 봉투를 떼고보니 편지속에는 팥알같은 글자가 빼곡이 들어차있었다.
 
    어머니::
  그간 안녕하십니까? 추운 겨울에 어머님께서 우리 집 잔치에 찾아와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모처럼 어려운 걸음을 하신 어머님을 괴롭혀서 미안합니다. 공일날이라 집에서 손님접대를 하려던것이 그만 한 학생이 앓는바람에 병원에 갔다오고보니 어머님도 못뵈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아마 오늘 제가 받았던 부조돈을 되돌린다고 무척 노여워하시겠지요?
기실 우리는 이번에 잔치는 벌리지 않고 간단히 례만 갖추어 넘기려 했습니다. 그래서 외지에는 누구한테도 결혼날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잔치기별을 해가지고 마을어른들께 의외의 걱정, 경제부담을 더해주기 싫어서였습니다.
 이번에 저는 부조감이나 부조돈을 들고야 잔치집에 간다는 옛습관에 얽매여 돈이 없이는 맘에 있는곳에도 못가는 사람들의 딱한 사정도 보아왔고 잔치에 부조를 많이 하고 적게 하는것으로 인격을 저울질하는 나쁜 기풍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외동딸을 시집보내지만 잔치는 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돈이 없거나 돈쓰기가 아까와 그런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이 기회에 잔치를 크게 벌리기 경쟁을 하는 이들에게 도전을 걸려 했습니다. 때문에 그 누구의 부조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일로 하여 적잖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것을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손끔만큼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조만간에 모두들 저의 심정을 헤아려줄것입니다….
받은 부조물에는 가져온 분들의 이름을 적어서 문옆에 놔뒀다가 손님들이 돌아갈 때 돌려줬습니다. 그 당시 미처 돌리지 못한것은 우편으로 부쳤습니다…
 
<<아, 워래는 그런걸 가지고 괜히 그랬구나! 글쎄 우리 김선생이 변할수야 없구말구!>>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며느리도, 그곁에서 귀를 강구고 듣던 시어머니도 목구멍에서 뜨거운것이 울컥 솟아오르는것을 느꼈다..
                               1981.12 초고
                                1982.5 수개 (새마을 1982.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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