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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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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    [쉼터] - 뇌의 10 댓글:  조회:4047  추천:0  2017-02-10
뇌가 건강해지는 10가지 전략 "뇌를 알면 놀면서도 1등 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공부혁명을 출간한 김대식 박사다. 김박사는 MIT에서 두뇌인지와 관련해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미네소타 의과대학 신경과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김박사는 독일 다름스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이후로 뇌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뇌 전문가다. 카이스트의 이수영 교수는 이번 그의 뇌에 대한 책 출간과 관련해 "공부잘하는 법을 이야기 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김대식 박사가 말하는 방법은 과학적 발견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대식 교수가 말하는 효율적인 뇌 만들기는 어떤 것일까.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10가지 전략을 발췌, 소개한다. 01. 연결시켜 기억하라  정보를 얻고 저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조합이다.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좋게 하려면 배우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주면 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이름을 외울 때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장소, 그 장소에서 들었던 음악 소리 등과 연결시켜보는 것이다. 새정보와 이미 알고 있던 정보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겨 또다른 정보가 생겨나게 된다. 02. 양손을 사용하라  뇌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오른쪽 뇌와 왼쪽 뇌로 나눠져 있다. 신체로부터 전달되는 대부분의 정보가 오른쪽과 왼쪽으로 서로 교차돼 전달된다. 왼손이나 왼쪽다리에서 온 정보는 오른쪽 뇌로, 오른쪽 손에서 온 정보는 반대로 가는 식이다. 양손을 사용한다면 뇌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글씨를 쓸 때 오른손을 사용하더라도 칫솔질은 왼 손으로 하는 거다.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속에서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한쪽 뇌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03. 잠자기 직전에 공부하라  꿈은 아직까지 그 본질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동물 실험은 꿈이 우리가 전에 경험하거나 배운 것이나 남겨 둔 문제들을 다시 기억하는 과정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잠자기 전, 꿈꾸기 전에 외운 것이 더 잘 기억되는 이유다. 04. 외우지 말고 이해하라  인간의 뇌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 진화해왔다.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작용하도록 돼 있다. 뇌는 그래서 단순히 암기한 것보다는 이해한 것에 대해 특히 잘 기억한다. 뭔가를 배운다면 이것을 왜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지 뇌에게 잘 "설명"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05. 오래 사귈수록 나쁜게 TV다  텔레비전을 오래 시청하면 뇌에 좋지 않다. 텔레비전은 한꺼번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줘 뇌가 그 정보를 스스로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텔레비전을 오랫동안 보게 되면 뇌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 뇌가 새로운 정보를 능동적으로 얻고 처리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2~3 동안만이라도 텔레비전을 켜지 말고 생활하보라.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겠지만, 얼마 지나면 전과는 다르게 머리가 맑아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06. 일상적인것에 반대하라  우리의 뇌는 변화를 즐긴다. 틀에 박힌 것은 싫어한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뇌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뇌는 일상적이고 변화가 없는 정보는 소음처럼 여기고 기억하지 않는다. 가령 여러 권의 책을동시에 읽는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 첫번째 책을 30분 동안 읽다가 이어서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교과서를 읽다가 시집이나 재미있는 잡지를 읽어본다. 이렇게 하면 뇌가 집중력을 잃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07. 여행하라  여행은 뇌를 재충전하고 깨어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국적인 곳을 여행할 수록 풍부한 자극을 경험하게 돼 더욱 좋다. 여행은 뇌의 환경이 결정되는 12세 전후가 지나기 전에 할 수록 좋다. 새로운 장소나 다양한 인종, 이국적인 음식들을 접하면 뇌의 활동에 도움이 된다. 08. 새로운 것을 먹어라  늘 먹던 음식보다 한번도 먹지 못했던 음식, 예를 들어 인도나 태국음식 등에 도전해보자.  새로운 음식은 뇌에 새로운 자극을 줘 일상생활에 지쳐 있는 머릿속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09. 도전하고 배워라  뇌는 도전을 즐긴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거나 글을 써보거나 모형비행기를 조립하는 것 무엇이라도 좋다. 10. 남들 따라 하지 말라  뇌는 도전을 좋아하는 동시에 다른 것을 잘 따라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뇌가 배우고 기억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 하는 뇌의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앞으로 20~30년 동안 무슨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할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정말로 하고 싶은 그 일을 하라. 즐기면서 하는 일은 보상도 따른다.    
996    인류, 글 , 책, 그리고 삶의 가로세로... 댓글:  조회:3947  추천:0  2017-02-10
2017.02.09 03:10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인류는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약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긴 문장을 구현하기 시작했다는 이론이 현재로선 정설이다. 글의 발명은 왜 중요한 것일까? 말과 달리 글은 영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토판에 새겨진 수메르인들의 쐐기문자. 그들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남겼을까? 시작은 실망스러웠다. 첫 문자는 대부분 대출 기록과 세금 정산을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얼마 뒤 대단한 발견을 하나 한다. 바로 글을 통해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글의 등장은 한 순간과 장소에 묶여 살던 인간에게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2005년 12월 '대영박물관 대구전'이 열리고 있는 계명대 성서캠퍼스 행소(行素)박물관 1층 ‘고대 이집트관’에 있는 기원전 900∼800년쯤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어진 ‘돌로 만든 기념비’. 높이가 38㎝에 너비 22.7㎝로, 우리나라 비석보다는 조금 작다. 평평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석에는 고인(故人)의 명복을 비는 내용의 축문이 쐐기문자로 적혀있고, 아버지와 아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조선일보 DB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오늘날 같은 형태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고대 중국인들은 죽간을 사용했고, 그리스·로마인들 역시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식을 선호했다. 사실 단순한 이야기를 기록하기엔 두루마리가 나쁘지 않다. 어차피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고, 연속적으로 읽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원후 1~2세기 종교 서적이 등장하며 문제가 생겼다. 성인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글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풀고, 감고, 다시 풀어야 하는 두루마리는 매우 불편한 매체였다. 코덱스(codex)라는 오늘날 사본 형식 책이 답이었다. 정사각형 파피루스를 접어 만들다 보니 고대 코덱스 책 역시 대부분 정사각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가로세로 비율이 다른 책을 쓰게 된 것일까? 기원후 5세기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나서였다. 로마제국과 함께 지중해 무역 역시 몰락해 유럽에서 더 이상 이집트 파피루스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 하지 않는가? 파피루스가 사라진 유럽에선 동물 가죽을 사용한 양피지 책이 등장한다. 하지만 소, 양, 염소의 몸은 정사각형이 아닌, 한쪽으로 긴 모습이다. 결국 말린 가죽을 접어 만든 양피지 사본, 그리고 오늘날 책과 신문 역시 가로와 세로 비율이 달라지게 됐다. ⓒ 조선일보 /김대식
995    1대간, 2정간, 3정맥의 백두대간 호랑이 품다... 댓글:  조회:6611  추천:0  2017-02-10
​ 백두대간/ 백두산 "호랑이"   호랑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두산호랑이. 조선범, 한국호랑이 등  고양이과에 속합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2744m) 에서 일어나  금강산(1638m), 설악산(1708m), 태백산(1567m), 소백산(1421m) 속리산(1508m) 덕유산(1604m) 지리산(1915m) 에서 마치니   약 1400km에  이릅니다. 백두대간은 1대간(大幹)  2정간(正幹) 3정맥(正脈) 이뤄 졌습니다.   그과정에  서식하는  "호랑이와 상상의 동물  청룡" 좌청룡 우백호라  했든가요? 사방을 방위하는 방위신 풍수지리에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    청룡은 본사람은 없는것 같고 , 백두대간을 타고 경관 좋은 바위계곡에 물이 깊고 흐르는 곳에 용추가  많으며. 모두 승천한 흔적들을 설명하고 있답니다.   다음 그림사진은 좌청룡 우백호입니다.         " 좌청룡 우백호"   황룡은 주로  임금이나 황제를 지칭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입는 옷은 황룡무늬가 새겨진 곤룡포라고 했든가요?   왕의 곤룡포에는 황룡이 새겨져 있고,   장군의 관복에는 호랑이 즉 " 대호 "가 새겨져 있습니다. 풍수지리를  논할 때 백두대간의 13정맥(正脈)에서  내려온 산소터 집터를 잡을 때, 좌청룡 우백호를 꼭 보지요,         일제강점기 지질구조에 기인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분수계를   중심으로  산은 단절고립된 봉우리도 보지 않고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  국토의 뿌리로 해 흐름을 갖고  이어지는 맥세(脈勢)로  이해하는 전형적 산지 인식체계(고려사, 세종실리지) 라네요.   백두대간,  정간,정맥은  18세기 이익의 "성효사설"  이중환의"택리지" 등에 나타나기 시작해 산경표 에서  정립 됐답니다.   다음은 백두대간  백두산(2744m)천지부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1915m) 천왕봉에  걸쳐 살고 있는   " 호랑이 "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중국 길림일보에 실린" 호랑이 " 사진입니다. 인삼밭 주변에  나타난것을 주민이 발견하고 스마트폰 으로 찍은 실제사진이래요   개를 4마리나 먹어 치웠다는 것인데 농경지개발 등  아마 생태계파괴로 먹이가 줄어 들어 민가에 내려온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많든 호랑이들이  일제 강점기때 몇천마리 사살되어 호피 표피로 나가고 지금은 한반도에 호랑이를 본사람들이 없어 몇마리나 있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어릴때  " 호랑이젓 "을   먹고 자랐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 금화굴은  견훤왕의 탄생설이 있는 곳이며 매년 문경시에서 견훤왕 향사를 지낸답니다.   문경시  농암에도 견훤산성 견훤궁터, 용마를 얻은 말바위 등 견훤에 대한  사적지가 많으며  " 왕건" KBS드라마 촬영장 연개소문,김선달 등 사극 영화 촬영장이 있습니다.   호랑이 별명을 쓰는 탈랜트도 있지요 1박2일에  강호동이 있고,  런닝맨 김종국, 원피스도 있고요.   호랑이는 사방신 가운데 서쪽방위를 담당하고 있답니다. 또한  십이지상 중에 세번째라네요?       호랑이가 나오는 영화는 "대호" 가 있고   50만 포로가 끌려 갔든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최종병기활" 에서도 호랑이가 나오지요 류승룡이 출연하든가요?         호랑이는 한반도 민화속에  종종 등장하고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번 등장 할 정도로  호랑이가 많았답니다.   17세기 인구의 증가로  화전민이  많이 생기고   농지개간과정에서  호랑이 표범 사냥을 장려시켜  잡는자에게는 상을 주었답니다.   아래 사진은  까치와 호랑이  민화네요  ? 호랑이와 곳감 이야기 아시죠?        조선시대 땐   한호갑사를 설치도 했고,  호피, 표피, 공납제를 실시하여  호랑이 숫자를 줄일려고 조정에선 힘썼답니다.   호랑이  그림사진입니다, ​   백두대간을  연결되는 이름난 산신령은  모두가 호랑이를 지칭하고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함께 한 백발의 산신령 그림이  모셔저 있습니다.   문경에도 오정산밑에 호계(虎溪)리가 있고 사찰산신각, 새재 조령산신각에도 호랑이와 백발산신령이 그림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백두산천지를 배경으로  서서 돌아보는   " 백두산호랑이"의  위용 그림사진,         호랑이사진 및 그림은 길림일보 등 "호랑이"에서 찍은것입니다.   [출처] 백두대간/ " 호랑이 "|작성자 김봉기 문경기자    
백두산호랑이 ‘금강이’ 폐사, 대전 오월드 책임론 5년 동안 만성신부전 확인 못해, 관리부실 대두 김재중 기자2017.02.08 17:54:46   ▲경북 봉화군으로 옮겨 온 백두산 호랑이 모습. 산림청 제공   대전 오월드에서 5년간 관리했던 백두산 호랑이가 폐사 직후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책임론이 불거질 전망이다. 8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대전 오월드에서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송됐던 11살 백두산 호랑이 ‘금강이’가 지난 3일 폐사했다. 그런데 1차 부검결과, 금강이가 만성신부전을 앓아 온 것으로 확인돼 ‘오월드’측의 관리부실이 제기되고 있다.   대전 오월드 측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월드 관계자는 “금강이가 떠날 때까지 건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금강이가 건강상 이상증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산림청은 금강이의 폐사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3주 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는 금강이가 경북 봉화까지 장시간 이동하고 새로운 환경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폐사에 이른 것으로 산림청은 추정하고 있다. 산림청은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폐사한 ‘금강이’와 경기도 포천에 있던 ‘두만이’를 옮겨 왔다. 자연 서식지와 유사한 ‘호랑이 숲’을 조성하겠다는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백두산 호랑이를 폐사시키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
993    [ "부고" ] - "금강이"야! "금강이"야!... 운명을 달리하다... 댓글:  조회:3740  추천:0  2017-02-10
-한국의 범- 백두산호랑이(Korea Tiger/虎狼)     백두대간으로 주거를 옮긴 백두산호랑이 금강이가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안타까움을 금할길이 없다. 대전오월드에 자주가는편 이라 금강이 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가 잘 알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다. 금강이는 다른동물원 호랑이와 다르게 뱃살이 없이 날씬하고 키도 크고 털색도 진하고 아름다워서 내가 항상 갈때마다 칭찬을 해 주었는데...       지난달 25일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이송된 11 살배기 백두산 호랑이 ‘금강이’가 이송 9일 만인 지난 3일 오후 4시 20분 폐사했다는 뉴우스.   수의사 들이 1차로 부검을 한 결과 금강이 의 사인은 만성신부전증 으로 밝혀 졌으며, 오래전 부터 병을 앓았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금강이가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가운데 대전에서 경북봉화 까지 250㎞를 5시간에 걸쳐 이동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돼 폐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목원은 현재 폐사한 금강이의 조직을 떼어내 정밀검사를 벌이고 있으며, 결과는 2∼3주 후 나올 예정이다. 오월드 측은 금강이가 만성신부전증 에 걸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외견상 별 이상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산림청은 예민하기로 유명한 호랑이를 다른 시설로 이송하기 위해 무진동 항온항습 차량에서 수의사와 사육사들이 보살피는 가운데 시속 70여㎞의 속도로 조심스럽게 이동 했다고 하는데... 1시간마다 15분씩 휴식을 취하며 신중하게 이송작전을 펼쳤지만 질병으로 쇠약했던 금강이 는 결국 장거리 이동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금강이 와 함께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옮겨온 15 살배기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는 매우 건강한 상태다. 산림청 관계자는 “두만이 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4월에 1마리든 2마리든 암컷 백두산 호랑이를 당초 계획대로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강이 와 두만이 모두 한·중 산림협력회의를 통해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은 것으로, 산림청은 안정과 적응 훈련을 거친 뒤 관람객에게 공개할 예정이었다. 산림청은 오는 4월 서울대공원에서 암컷 백두산 호랑이 2마리를 추가로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옮겨와 번식을 유도할 계획이었지만 금강이의 폐사로 차질이 예상된다.   한편 국내에서 발견된 마지막 백두산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로 알려졌으며 백두산 호랑이가 한반도 남쪽 숲에 방사되는 것은 100여년 만이다.   대형고양이류 로서 힘과 용감성 체구에 있어 호랑이에 버금가는 것으로는 단 하나 사자(獅子)가 있을 뿐이지만 평균 체구에서 호랑이가 앞선다.   호랑이는 현재는 러시아 극동지방 에서 중국·인도·동남아시아 의 일부 지역에 걸쳐 조금씩 분포 알려졌다.   호랑이 의 크기와 특징적인 털색 줄무늬는 서식지역과 아종에 따라서 차이가 확연 하다고 하는데...   남부지방(인도벵골)의 호랑이는 우리나라 백두산 호랑이 보다 체구가 작고 털색이 더 밝다고... 벵골호랑이(Bengal tiger)와 동남아시아의 섬에 살고 있는 호랑이들은 선명한 불그레한 황갈색 바탕에 몸을 가로지르는 검은색에 가까운 줄무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복부와 다리의 안쪽, 뺨, 양 눈 위의 큰 반점은 흰색이다. 이에 비해 몸집이 매우 크고 그 수가 매우 적은 만주 북부와 러시아 의 시베리아호랑이 는 털이 길고 부드럽지만 색이 엷다.  백두산 호랑이 종중 흑백색의 호랑이도 가끔씩 보고되고 있으며 순백의 백호(白虎)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호랑이는 갈기가 없지만 늙은 수컷은 뺨 위의 털이 다소 길고 쫙 펼쳐져 있다. 수컷은 암컷보다 체구가 큰데 어깨높이는 약 1m이상 이고, 두동장은 2.2m 이상 되며 꼬리길이는 약 1m이다. 뱅골 호랑이의 평균 몸무게는 약 160~230kg 정도인데 한국 호랑이 최대몸무게는 약 350kg 이상 더큰 개체 가 있을 것으로 본다. 호랑이는 풀밭·늪지대·숲에 서식하며 사원이나 궁전처럼 폐허가 된 건물에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힘이 대단히 세고 보통 단독생활을 하는데 헤엄을 잘 치고 목욕을 즐기는 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호랑이는 나무 위로 기어오를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주로 밤에 사냥하며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사냥해 먹고 사는데 사슴· 멧돼지 와 조류 등도 가리지 않고 사냥 한다. 사냥 에서 몸체가 큰 포유동물은 대충 피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덩치큰 코끼리와 물소를 사냥 했다는 기록도 있다. 때때로 인가(人家)에서 소(牛)를 공격하기도 하는것이 사실 이다.  늙거나 불구인 호랑이 또는 새끼가 있는 암컷은 사람이 손쉬운 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공격 하기도 한적이 있어서 많은 사람 들에 소탕(掃蕩) 의 대상이 되기도 해서 현재 멸종위기를 초래한것 같다     한국산 호랑이는 시베리아호랑이(Panthera tigris altaica)로 분류되며 세계적으로 불과 몇백개체 내외가 잔존하고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에서는 1921년 경상북도 경주의 대덕산에서 1마리가 발견된 후 더 이상의 포획기록이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호랑이 를 시베리아호랑이 로부터 구분시키기도 한다.     -露傘以善勝之-     지난달 25일 백두대간으로 옮겨진 직후의 사진 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건강해 보였다고 한다.     대전에서 건강하게 삶을 살았던 금강이의 모습이다. 몸매가 날씬하고 피부에 탄력이 있어서 너무나 아름답고 건강해 보였는데... 안타깝습니다.     금강이가 ㅇㅣ런모습 이였는데...       고양이과 동물중에 이렇게 아름답고 거대한 동물은 없다.     참으로 늠늠하지 아니한가?     금강이의 사진이 많치않아서 야생의 백두산 호랑이와 같은종인 시베리아 범 사진을 퍼온 것이다.     호랑이의 수염이 너무나 아름답지 아니한가.?     아무리 보아도 백두산 호랑이는 멋지다.     우리나라 야생 에서는 볼수가 없는 호랑이(범)     이런 아름다운 동물을 보존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결실맺기는 바란다.     우리 선조님들은 호랑이를 영물로 산신령의 호위무사로 섬겼다고 한다.     용맹성 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권투선수 타이슨은 집에서 호랑이를 키웠다고 하던데...     백두산 호랑이는 이렇게 배가 뚱뚱하지가 않고 날씬하면서 키는 더 커 보인다.     감히 호랑이에게 대적할 짐승은 없다.     어떻게 보면 유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물원의 호랑이는 많이 불쌍해 보인다.     어찌하다 사람에 잡혀서 같혀사는 신세가 되었느냐~?     지금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이 야생성을 잃었다고 하더라...     호랑이 너 참 잘생겼다 산에서 이런넘을 만난다면 정말 정신을 잃을만 하지않은가?     나는 누구야~! 하는것 같다. ㅎㅎㅎ  
992    [록색문학평화주의者]백두산호랑이 "금강이"를 인젠 못본다... 댓글:  조회:5326  추천:0  2017-02-10
산림청이 백두산 호랑이를 국내 숲에 방사한다는 계획에 따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이송한 수컷 호랑이 2마리 중 1마리가 병으로 폐사했다. 7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이송된 11살배기 백두산 호랑이 '금강이'가 9일 만인 지난 3일 오후 4시 20분께 폐사했다.   수의사들이 1차로 부검을 한 결과 금강이의 사인은 만성신부전증으로 밝혀졌으며, 오래전부터 병을 앓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수목원은 현재 폐사한 금강이의 조직을 떼어내 정밀검사를 벌이고 있으며, 결과는 2∼3주 후 나올 예정이다. 오월드 측은 금강이가 만성신부전증에 걸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외견상 별 이상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수의사들은 금강이가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가운데 대전에서 경북 봉화까지 250㎞를 5시간에 걸쳐 이동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돼 폐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산림청은 예민하기로 유명한 호랑이를 다른 시설로 이송하기 위해 무진동 항온항습 차량에서 수의사와 사육사들이 보살피는 가운데 시속 70여㎞의 속도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1시간마다 15분씩 휴식을 취하며 신중하게 이송작전을 펼쳤지만 질병으로 쇠약했던 금강이는 결국 장거리 이동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금강이와 함께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옮겨온 15살배기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는 매우 건강한 상태다. 산림청은 오는 4월께 서울대공원에서 암컷 백두산 호랑이 2마리를 추가로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옮겨와 번식을 유도할 계획이었지만 금강이의 폐사로 차질이 예상된다. 산림청 관계자는 "두만이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4월에 1마리든 2마리든 암컷 백두산 호랑이를 당초 계획대로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마리 호랑이 모두 한·중 산림협력회의를 통해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은 것으로, 산림청은 안정과 적응 훈련을 거친 뒤 관람객에게 공개할 예정이었다. /연합뉴스 ========================   (좌) 연합뉴스, (우) KBS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최근 백두산 호랑이를 더 잘 보전하겠다며 대전에서 백두대간 내 방사장으로 옮겨졌던 호랑이 한 마리가 이송된 지 9일 만에 폐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7일 KBS 9시뉴스는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주된 백두산 호랑이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1994년 백두산 호랑이 '금강이'는 한중 정상회담의 후속조처로 2011년 중국에서 선물 받았다.   이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지내던 11살난 금강이는 지난달 25일 250km, 5시간 거리 정도 떨어진 경북 봉화 백두대간으로 이송됐다.   더욱 좋은 환경에서 보전하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KBS 9시 뉴스   하지만 금강이는 먹이를 보고도 냄새만 맡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더니, 결국 이주 9일째인 지난 3일 폐사했다.   검사 결과 금강이는 신부전증으로 이미 신장 기능이 모두 망가져있었다는 1차 소견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2주 전부터 병을 앓고 있던 금강이가 이송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극을 받으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추정했다.   6년간 금강이를 돌봤던 동물원 측은 "평사 상태 관찰하고 했는데 이상이 없었다"며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놨다.   이로써 중국에서 들여온 확실한 혈통의 백두산 호랑이는 이제 1마리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     백두산 호랑이를 더 잘 보존하겠다며 최근 대전에서 백두대간 내 방사장으로 옮겼던 호랑이 한 마리가 이송 아흐레 만에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호랑이에게 만성 신부전증이 있었는데, 이를 모르고 무리하게 옮긴 것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유동엽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1994년 한중 정상회담의 후속 조처로 2011년 중국에서 선물한 백두산 호랑이 금강이.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지내던 금강이가 백두대간 이주를 앞두고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문진호(사육사) : "지금 꼬리 빳빳하게 들고 있는 거 봐요. 화가 많이 났어요." 이주 당일, 마취된 금강이가 이동용 상자로 옮겨집니다. 대전에서 경북 봉화 백두대간 수목원까지는 250km, 5시간여를 달려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금강이는 먹이를 보고도 냄새만 맡을 뿐,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주 9일째인 지난 3일, 결국 폐사했습니다. 신부전증으로 신장 기능이 모두 망가졌다는 1차 소견이 나왔습니다. 6년간 금강이를 돌봤던 동물원 측에선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습니다. 대전 동물원 관계자(음성변조) : "사료 먹는 거라든지 상태 관찰하고 하는데 이상 없었어요." 전문가들은 이주 전부터 병을 앓고 있던 금강이가 이송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자극으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용구(서울동물원 진료 총괄 수의사) : "계속 진행성으로 망가져 가고 있는데 겉으로는 별다른 증상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가, 아마도 이동하고 관련해서..."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두대간 품으로 돌아간 금강이. 그러나 힘든 이주 끝에 9일 만에 폐사하면서 중국에서 들여온 확실한 혈통의 백두산 호랑이는 이제 1마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 대전에서 경북 봉화 동물원으로 옮긴 지 열흘 만에 숨진 백두산 호랑이 '금강' (울산=국제뉴스) 박운보 기자 = 중국에서 들여온 백두산 호랑이가 '국내 동물원에서 수목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숨진 것과 관련,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중국이 한중산림협력회의를 통해 한국에 기증한 호랑이 '금강'(11살)이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위치한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송된 지 10일 만인 지난 3일 숨졌다.   '금강'과 함께 이송된 또다른 백두산 출생으로 알려진 '두만'은 현재까지 별다른 이상 없이 간이 방사장에서 적응하고 있다. 부검을 맡은 경북대 수의대 측은 만성 신부전증으로 신장 기능이 손상돼 요독증과 폐렴 등 합병증으로 폐사했다는 1차 소견을 피력했다. 이 호랑이는 수목원에 도착한 이후 먹이를 보고도 냄새만 맡고 먹지 않는 등 이상징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대 수의대 관계자는 "아주 예민한 호랑이의 특성상 마취와 이송과정 등 스트레스로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질 수도 있지만, 정확한 폐사 원인은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이와 관련, 울산 울주군에 있는 생태교육 민간 단체인 영남알프스학교는 "멀쩡하던 호랑이가 어느 날 돌연사한 이유를 수긍하기 어렵다"며 "호랑이를 옮기기 위해 과다한 마취나 약물 중독 등 다른 사인은 없었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알프스학교는 이 호랑이가 백두산 출생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영남알프스학교 노양주 교장(전 학성초 교장)은 "폐사된 호랑이는 중국 호림원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백두산 호랑이라고 주장할 때는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산림청은 백두산 호랑이로 주장할만한 과학적인 근거를 내놓질 못하고 있다. 국내 학자들과 보호단체에서는 백두산 호랑이에 대한 동의를 않고 있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제적인 혈통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생포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 충분한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며 "이러한 정통성을 충족하지 못하면 야심차게 추진 중인 백두산 호랑이 복원 사업도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두산호랑이 ‘금강’의 이번 죽음을 계기로 금강 일가족이 모두 병사(病死)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금강 호랑이부부는 지난 2011년 중국에서 열린 국가임업국 간 산림협력회의에서 백두산호랑이 종 보전 노력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면서 국내에 들어왔다. 이 호랑이부부는 2005년과 2004년생으로 금강송을 뜻하는 ‘금강’(수컷)과 ‘금송’(암컷)으로 각각 이름 붙여져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지냈다. 2012년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암컷 새끼호랑이는 전 국민 공모를 통해 ‘아름답고 복스러운 호랑이’라는 의미의 ‘미호’(美虎)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이들 호랑이 가족의 단란했던 시간은 지난 2015년 7월 어미인 '금송'이 위궤양과 자궁 폐혈증으로 숨지면서 끝이 났다. 지난해 9월에는 아빠 금강과 함께 지내던 미호마저 가슴 종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 아빠 금강까지 1년여 시간을 두고 차례로 자연으로 돌아갔다. 한편 지난해 반구대암각화 인근에서 ‘반구대 범굴’을 발견한 영남알프스학교(이사장 배성동)는 중국·러시아·일본 등을 탐방하며 백두산 호랑이 연구와 조사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991    [록색문학평화주의者]동북호랑이 왈; ㅡ내 친구가 죽어다니... 댓글:  조회:5298  추천:0  2017-02-10
100자평 더보기 2017.02.10 03:10   영하 10도를 오르내린 지난달 말, 시베리아호랑이입니다. 너무 추워 관람객은 뜸했지만 시베리아호랑이는 추울수록 야성이 살아나는지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얼어붙은 벤치에 누워 유유자적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온 백두산호랑이가 지난 3일 경북 봉화 수목원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병이 있는 걸 모르고 장거리 이송해 악화됐다는데 안타깝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 김용 . 경기 안산시
990    [이런저런] - 돈, 파지재가루가 되다... 댓글:  조회:3430  추천:0  2017-02-10
육류를 훈제하려다 화재 발생... 꿍쳐둔 7만7천여원은? [ 2017년 02월 10일 08시 31분 ]       아까워라. 집지으려고 아글타글 모은 돈 7만7700원이 불에 타 재가 되다니... 지난 2월 2일 저녁 사천성 의빈시 흥문현(兴文县麒麟苗族乡光辉村)의 한 특곤가정에서는 음력 초엿새날 ,소금에 절인 육류를 훈제하려다가 화재가 발생, 이번 화재로 아껴먹으면서 간신히 모은 돈 7만여원 중 그 일부가 한순간에 파지재가루가 돼버렸다.  불에 타다남은 돈을 바라보는 온집식구들은 망연자실했다. 현지은행의 직원들은 근 4시간의 정리작업을 거쳐 겨우 4만2천원의 지페를 '구출'해내 특곤농호의 금액손실을 최소화했다. /환구넷 @===손상권 인민페 바꿔주는 처리표준===@                     
989    [이것이 알고싶다] - 돈은 어떻게 제작되나?... 댓글:  조회:3808  추천:0  2017-02-10
배속의 아이도 손내민다는 그 돈... 어떻게 제작되나? [ 2017년 02월 10일 08시 14분 ]           중국의 화폐인 위안화(인민페) 지폐는 목화 섬유로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지폐는 ‘돈’이 아니고 하나의 ‘상품’이다. 이른 새벽 청두(成都)시 원장(溫江)구에 위치한 청두조폐유한공사(成都印鈔有限公司)의 정문이 천천히 열린다. 현금을 실은 차량들이 천천히 줄지어 나와 도시로 향한다. 청두조폐유한공사에서 이런 풍경은 매주 있는 일이다. 51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조폐공사는 현재 중국에서 지폐 인쇄, 지폐용 용지 생산, 동전 생산, 금•은 제련 등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이다. 매일 아침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수천 명의 직원들이 회사로 출근을 한다. 그들은 인쇄, 전문 용지 생산, 금•은 제련, 귀금속 가공 등 자신이 맡은 바 구역으로 이동해 남들이 보기에 아주 특별한 일을 책임지고 있다. 화서도시보(華西都市報)의 한 기자가 조폐공사에 들어가 하얀 종이 한 장이 어떻게 중국을 대표하는 위안화가 되는지 자세히 취재했다. 지폐용 종이 작업, 1개월 소요 청두조폐유한공사의 정문에는 소총을 휴대한 무장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다. 관련 서류를 미리 작성했기 때문에 본 기자는 조폐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장에는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지폐 인쇄 작업, 종이 건조, 검사 등 작업이 이루어진다. 한 장의 흰색 종이가 지폐가 되기 위해서는 1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지폐 생산 첫 번째 단계인 오프셋 인쇄는 평판인쇄 중 하나이다. 오프셋 인쇄기에 종이를 넣고 인쇄를 시작한다. 인민대회당 만인대례당(萬人大禮堂)의 돔형 지붕, 고대 청동기 무늬 등 다양한 모양의 평판이 존재한다. 위안화는 찍어내고자 하는 부분을 파내서 인쇄하는 요판 인쇄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위조방지를 위해 현재 전 세계 모든 화폐에 적용되는 인쇄 수단이다. 지폐용 용지는 목화 섬유로 제조 일반 종이는 목질(木質), 초질(草質) 섬유로 만들어지는 것에 반해 지폐용 용지는 목화 섬유 혹은 아마 섬유로 만들어진다. 지폐용 용지는 펄프 반죽과 종이 제조 이 두 개의 단계로 나뉜다. 한 직원은 “모든 종이에는 워터마크가 새겨져 있어 빛을 이용해 보면 그 형상이 뚜렷하게 보인다”라고 말했다. 워터마크는 후기 단계에서 새기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만들 때 종이 표면이 아닌 종이 사이에 이미 새겨진다. 뛰어난 위조방지 기술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위안화는 거의 2005년판 제5차 발행 지폐이다. 모든 지폐에는 20여 종의 위조방지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그중 100위안권과 50위안권에 가장 많은 기술이 적용됐다. 현재 ‘운전면허증, 각종 증서, 보증서, 모 회사의 화장품, 모 주류 회사의 마크’ 등 유명 브랜드의 위조방지 마크는 위안화 위조방지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출처: 화서도시보/인민망 역
(멀리 보이는 산이 장고봉(張鼓峰)이다.)   솔직히 산은 훈춘(琿春)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산이었다. 누구라도 산의 이름이 하필이면 악기 장고(長鼓)에서 유래했는지 이유가 궁금할 법 했다. "장고봉사건기념관" 유총지(劉叢志) 관장이 한마디로 우리 일행의 궁금증을 확 풀어주었다. "예전에는 남쪽 비탈이 가파르다고 해서 '칼산'으로 불렸는데요, 산기슭의 물 웅덩이가 장고 모양과 흡사하다고 해서 장고봉이라고 불렀대요. 후에 같은 중국어 발음 베풀 장(张)으로 바뀌어 장고봉(張鼓峰)이 되었지요." 사실상 장고봉은 악기 이름이 아니더라도 유명세를 탈 만 했다. 국경의 산이기 때문이다. 두만강의 하류에는 러시아와 중국, 조선이 서로 이웃처럼 맞닿고 있다. 아래쪽의 조선과 위쪽의 러시아 사이에 중국 땅이 마치 띠 모양으로 끼워 강 출해구까지 이어진다. 바로 이 띠 모양의 지대에 장고봉이 위치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 장고봉 정상을 지나고 있다. "러시아 민요 '카츄사'가 바로 이곳 장고봉을 배경으로 탄생했다고 해요. 지난 세기 50년대 중국을 뜨겁게 달구고 그후 여러 세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던 바로 그 노래 말입니다." 억지라도 이런 억지가 있나, 조선족의 악기 장고에서 러시아의 민요를 뽑아냈다는 격이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창은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유총지 관장의 말은 맺고 끊듯 단호했다. "카츄사" 가사 탄생설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1938년, 이곳에서 '장고봉사건'이 일어났는데요, 소련군(소비에트 연방)이 승리를 거두자 소련의 유명한 시인 미하일 이사코프스키가 전투에 참가한 원동 군인들을 칭송하기 위해 '카츄사'를 작사했지요. 훗날 이 가사에 곡을 붙이면서 노래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유총지 관장의 말대로 장고봉사건을 배경으로 했으니 장고봉은 노래 "카츄사"의 탄생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총지 관장은 흥얼거리 듯 노래를 불렀다. 보아하니 "카츄사"는 그에게 "장고봉사건기념관"처럼 익숙한 듯 했다. "사과꽃 배꽃 아름답게 피고 강위에는 안개 흐르네. 카츄샤는 강기슭에 나왔네 높고 험한 강기슭으로 …" 목가(牧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래였다. 기실 "카츄샤"에는 피로 얼룩진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다. (러시아 민요 "카츄사"가사가 장고봉을 배경으로 탄생했다고 한다./자료사진:유총지 제공)     장고봉에서 벌어진 소-일 무력충돌 장고봉은 훈춘시(琿春市) 경신진((敬信鎭) 방천촌(防川村)에서 북쪽으로 1.5㎞ 상거한다. "장고봉"이라는 멋진 이름이 있으니 망정이지 상대고도가 150m 정도의 보잘 것 없는 야산이다. 그런데 이 야산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숨어있었다. 1886년 러시아와 청나라가 체결한 "훈춘협정"의 번역문이 그 발단으로 되었다. 중국문에는 국경선이 두만강 기슭의 하산(哈桑) 호수의 서쪽으로 통과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러시아문에는 국경이 하산 호수의 서쪽, 장고봉의 정상을 지나는 것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9.18"사변 후, 일본군이 동북지역을 강점하면서 장고봉을 둘러싼 일본군과 소련군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소련과 일본의 국경경비대가 이곳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쌍방은 서로 장고봉 정상부분을 점령하지 않고 무주공산의 형태로 방치했다. 1938년 7월 12일, 소련군이 장고봉 정상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발견되었고, 이틀 후 일본군은 마츠시마(松島) 오장(伍長) 등 3명을 파견해 소련군의 군사시설과 병력배치를 정탐한다. 이때 소련군은 마츠시마 오장을 사살하며 일본군은 이를 구실로 소련 측에 장고봉 일대에서 철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요구는 소련군에 거부를 당한다. (장고봉사건 중의 소련군/자료사진:유총지 제공) 7월 29일, 일본군이 두 개의 소분대를 출동해 장고봉 이북 2㎞ 떨어진 사초봉(沙草峰)에 진지를 잡았던 소련군 소분대를 격퇴한다. 이틀 후 일본군은 재차 야간습격으로 장고봉과 사초봉을 점령하며 이에 소련군은 보병 32사와 40사, 기계화 제2여단에 소속된 탱크대대로 반격을 개시했다. 소련군은 당시 가장 선진적인 중형 폭격기 TB3을 선후로 200여차 동원하는 등 기계화한 장비로 무장한 부대를 동원했다. 9일, 소련군이 장고봉 부분진지를 점령하며 일본군은 이런 진지를 되찾으려고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장고봉은 고지쟁탈로 선후로 주인을 네 번이나 바뀌는 것이다. "장고봉사건기념관" 유총지 관장은 지난 10년간 줄곧 장고봉사건에 대한 역사자료를 수집, 정리해왔다. 장고봉전투 상황에 대한 그의 지식은 웬만한 전문가를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일본군은 한 개 사단의 7000명을 동원하고 소련군은 두개 사단 1만 5000명 정도의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쌍방 사상자가 도합 6000명이었는데 일본군은 1,440명, 소련군은 4,071명에 달했습니다." 결국 8월 10일, 소련 모스크바에서 정전 합의가 이뤄진다. (장고봉사건 결속후,소련군은 원동군구사령부가 소재한 하바롭스크에서 승리열병식을 거행했다./자료사진:유총지 제공)   연변대학 민족역사연구소 소장 김춘선(金春善) 교수는 장고봉사건을 이듬해인 1939년 중국-몽골 변경지역에서 발생한 노문한(諾門罕) 사건과 연관시켜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문한 사건에서 소련군은 또 한 번 기계화 장비로 무장된 부대를 동원해 일본군을 전승한다. "(장고봉전투는) 소련과 일본의 자존심의 대결이지만 사전에 군사력을 탐지하는 그런 성격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소 전쟁이 시작된 후 나치 독일이 일본에게 소련을 군사공격을 해달라고 수차 요구합니다. 그런데 왜 공격하지 않았냐? 하나는 중국의 인민전쟁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고 또 하나는 장고봉사건과 노문한사건, 이 두 번의 격전에서 소련홍군의 강대함과 기계화 부대의 전투력을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김춘선 교수는 장고봉사건이 발생한 시기를 주의깊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937년 '7.7'사변이 발발한후 일본은 중국 대륙침략을 본격화 했습니다. 1938년 좌우로 보면 주요한 일본군이 이미 중국에 투입돼 무한(武漢)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던 시기입니다. 무한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조선에 있던 일본군 두개 사단인 19사단, 20사단까지 총 동원되었습니다. 일본이 중국 대륙침략을 본격화 했다는 것입니다. " 김춘선교수는 중국 인민전쟁의 정세 역시 일본의 "북진"계획에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을 펴고 있었다. (유총지 관장이 장고봉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고봉 사건은 궁극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진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유총지 관장은 그의 일가견을 이렇게 피력한다. "가령 '장고봉전투가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다면 (일본군이) 직접 소련을 진공하고 나치독일과 손잡고 동서 두 갈래로 소련을 진공할 경우 소련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본이 남쪽으로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며 원폭으로 세계대전의 결속을 빨리는 일이 없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할 수 있지요." "장고봉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면서 전투에 참가한 원동 군인들을 찬양한 노래 "카츄사"는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한다. 어찌됐거나 사업가인 유총지가 훈춘 방천을 선택한 원인은 애초에는 "카츄사"와 십만 팔천리나 떨어져 있었다. 적어도 그의 출생지인 길림(吉林)에서 훈춘에 이르는 천리 길 만큼은 떨어져 있었다. (장고봉 산자락에 자리잡은 "장고봉사건기념관")   장고봉 산자락에서 "카츄사"를 찾는 사람 "처음에는 장고봉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어요. 1992년 훈춘 개발과 개방의 붐을 타고 방천에 와서 투자하게 됐어요. 이곳에 음식점이나 여관을 꾸리면 돈을 벌 것 같았습니다." 그때 유총지가 "산장"을 꾸리려고 행장을 푼 자리가 바로 장고봉 산기슭이었다. 이때 유총지는 마을의 노인들로부터 귀가 솔깃한 옛말을 듣는다. 오래전 "큰 코빼기"의 소련군과 "난쟁이" 일본군이 이곳에서 싸운 적이 있으며, 이 전투는 "모택동저작"에도 수록된 큰 사건이라는 것. 날이 지나고 달이 갈수록 장고봉사건에 대한 유총지의 관심은 하나 둘 늘어갔다. "가끔 산에서 포탄과 탄피 같은 유물이 발견됐지요. 촌민들이 별것 아니라고 여기고 파철로 파는 경우도 많았어요. 어느 해인가는 촌민이 포탄을 잘못 건드려 폭발한 사건도 발생했지요. 가끔 맥주병도 발견됐는데 병에는 '대일본맥주주식회사제조' 등 글자가 있었습니다. 이는 선명한 역사적 견증이지요. 역사증거물이 이렇게 손실되면 재생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유총지는 해마다 몇 번씩 일부러 산에 올라가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내막을 알게 된 촌민들이 발견한 유물을 유총지에게 갖다 주었다. 유총지는 또 돈을 주고 촌민들로부터 문물을 사들였다. 2005년에 이르러 유총지가 수집한 문물은 무려 100여점을 넘었다. 2005년 8월 15일, 세계 반파시즘 승리 60주년에 즈음하여 "산장"에는 산장 이름이 아닌 "장고봉사건기념관"이라는 현판이 걸렸고, 유총지는 산장을 운영하던 사업가에서 기념관을 운영하는 관장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현재 "장고봉사건기념관"에는 150여 종의 문물과 문헌자료 20여권이 있다. 부지 400 여 ㎡의 기념관에서는 장고봉전투와 관련된 일본어의 간행물과 화첩, 신문들도 적지 않게 진열되어있다. (기념관에 진렬된 장고봉사건 관련 문물)   지난 10년간 유총지는 기념관에 선후로 인민폐 100여만원을 투자했다. 많은 대출을 받았고 또 친지들의 돈을 빌리다 못해 아내의 금팔찌까지 처분했다. 호주머니가 텅텅 비어 어느 해 설에는 밥상에 고기 한 점 올리지 못했다. 생활비를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주식인 쌀과 밀가루를 가격을 따져 선택했다. 마을버스 표 값이 모자라 버스를 집 부근에 대기시킨 후 집에 뛰어가서 표 값을 치른 경우가 한두 번 아니었다고 한다. "특별히 신념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기념관을 세웠으니 문을 닫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 세대에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 사람들이 할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총지가 유일하게 위안을 얻는 것은 바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장고봉사건기념관"을 찾아 그 단락의 역사를 알려 하는 것이었다. 설립 초반에는 한 주에 한 명 꼴로 찾아오던 기념관이 현재는 연간 4만 명의 관객이 찾는다. "장고봉사건기념관"은 현재 길림성애국주의교양기지, 길림성국방교육시험기지로 명명되었다.   장고봉전투 기념비,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곳이 바로 장고봉전투에서 전사한 소련 군인들의 유해가 묻힌 곳입니다. 2004년에 사초봉에서 광케이블공사를 하다가 소련군의 유해와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철갑모 4개와 삽 2자루, 방독마스크 조각과 군인증 등이었지요. 기념관에 진열하다가 2013년 기념관 뒷 뜰에 기념비를 세우고 소련군의 유해를 안치했습니다." "인류여, 전쟁으로부터 영원히 멀어지기를!"라는 글발이 새겨진 기념비는 그렇게 장고봉 산기슭에 자리잡게 되었다.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것이다. (소련군의 유해가 안치된 기념비에"인류여,전쟁에서 영원히 멀어지기를!"라는 글발이 새겨 있다.)   (유총지 관장이 기념비가 서게 된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장고봉 산기슭에서 발견된 건 소련군의 유해만 아니었다. 2003년 경, 장고봉의 중국측 땅에서 당시 소련군이 폐기한 탱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계부품은 다 뽑아가고 껍데기만 남았는데, 도합 7대나 되었다. 그때 이 탱크를 소장하지 못한 것은 유총지의 지울 수 없는 유감으로 남아있다. "촌민들이 파철로 팔았는데 그때 저로서는 도저히 돈을 구해 사들일 수 없었어요. 그대로 파철이 되는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역사 문물이 파철로 영영 사라졌지요.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옵니다. 개인의 유감뿐만 아니라 역사의 유감이라고 생각해요." (기념관 부근에 세운 조각상이 이곳에서 일어났던 장고봉사건을 연상시키고 있다.)   유감은 그뿐만 아니었다. 장고봉에는 아직 알려지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유총지는 그때 그 당시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과 문물이 점점 줄고 있다고 말하면서 연신 한숨을 쉬었다. 유총지는 전시관의 색이 하얗게 바랜 흑백사진 속의 한 여자아이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분은 이름이 황옥정인데요, 장고봉 산기슭에서 쭉 살아왔고, 장고봉사건을 직접 겪었던 사람이지요. 올해 3월 돌아가셨어요. 이제 마을에는 장고봉사건에 대해 기억할만한 어른들이 없습니다." 70여년 세월이 흐른 후 "장고봉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다행히 "장고봉사건기념관"에 일말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항일전쟁승리 및 세계반파시즘전쟁 승리 70주년에 즈음하여 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유총지 관장은 연신 들이닥치는 인파를 접대하면서 "장고봉사건"의 해설에 입술이 부르틀 지경이라고 한다. 그래도 "장고봉사건"을 관심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서 늘 기쁜 심정이라고 한다. 와중에 유총지 관장은 하나의 작은 바람이 있다고 속심을 터놓는다. "큰 꿈은 없습니다만, 가능하다면 기념관 규모를 좀 더 크게 늘렸으면 해요. 민족역사의 교육에 대한 중시를 한층 더 높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30, 40명 되는 17, 18세 학생들 속에 '중-러 북경조약'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역사교육이 따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금세 귓가에 노래 "카츄사"가 다시 울릴 듯 했다. 실제로 장고봉에서 탄생한 이 노래는 70년 전의 그 이야기를 재생하는 음악으로 되고 있었다. (글:중국국제방송국 강옥)  
987    [고향문단소식] - 화룡 출신 김준 "쑥의 향기" 퍼뜨리다... 댓글:  조회:3386  추천:0  2017-02-09
      김준의 시집 《쑥의 향기》 출간     래원:연변일보 날짜  2017-1-12                 김준의 시집 《쑥의 향기》가 연변대학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시집 《쑥의 향기》는 제1부 쑥의 향기, 제2부 작은 풀의 애원, 제3부 고향샘, 제4부 뒤돌아봐주렴, 제5부 륙십고개 주막에서 등 5부로 나누어 도합 101수의 시를 담아냈다.         시인 김준은 1951년 화룡현 출신으로 동북공학원을 졸업한뒤 다년간 기업공정기술사업에 몰두해왔다. 1970년에 문단에 데뷔했고 2011년 정년퇴직후 다시 필을 들고 시창작을 새롭게 시작해 지금까지 80여수의 시를 발표했다.         저자는 출간기념식에서 “고이 간직한 젊음의 꿈과 다양한 인생체험이 나에게 보귀한 문학에네지를 축적하게 했다. 이제 몇년 더 탐색하고 첫시집을 펼쳤으면 좋으련만 완미에 대한 추구는 끝없는 종점이기에 자신의 미타한 점을 알고도 《쑥의 향기》를  펼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평론가 최삼룡은 책을 두고 “이 101수의 시들은 그 주제사상이 뚜렷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창조체의 령감의 불꽃이 튕기고 있다. 시인의 인생이 녹아들어 있으며 남다른 자연과의 교감이 보이고 보람찬 인생과 아름다운 꿈에 대한 열렬한 추구가 깃들어있다.”고 평가했다.       /장향월 기자   
986    [쉼터] - 도난당한 유니폼 모두 복제품, 다행이네ㅠ... 댓글:  조회:3686  추천:0  2017-02-08
기념품 전시된 모교 도둑 침입     미국프로농구(NBA)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은퇴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38)의 고등학교에 전시된 기념품이 도난당했다. 미국의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7일(한국시각) 필라델피아 인근 로워 메리언 고교의 체육관에 설치된 '코비 전시장'에 도둑이 침입했다고 보도했다. 도둑은 전시장의 자물쇠를 파손한 뒤 브라이언트의 고교 시절 유니폼과 브라이언트가 사인한 농구화, 고교 시절 우승 트로피 등을 훔쳐갔다. 도난당한 기념품들의 가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학교 측은 브라이언트의 유니폼은 복제품이라고 밝혔다. 지난 1996년 고교 졸업 후 NBA로 직행한 브라이언트는 20시즌 동안 LA 레이커스에서 뛰면서 그는 정규리그 1천345 경기에 출전해 평균 25점, 5.2리바운드, 4.7어시스트의 성적을 남겼다. 국가대표로도 활약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합뉴스
985    [쉼터] - 스포츠와 유니폼과 경제학... 댓글:  조회:5006  추천:0  2017-02-08
  [조금 옛이야기이지만...]   레알 마드리드에 공식 입단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4)의 유니폼이 출시되자 마자 두 시간만에 2000벌이 팔려 나갔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은 7일(한국시간) 8만여명의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호날두 입단식을 치른 뒤 등번호 9번과 호날두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 판매에 돌입했다. 골닷컴은 스페인의 스포츠전문지 아스(AS)를 인용, "호날두의 유니폼이 2시간만에 2000벌 팔려나갔다. 경기장 앞에 진을 치고 있던 팬들은 유니폼 숍이 열리자마자 몰려들어 정신없이 유니폼을 사갔다"며 "1시간동안 도난당한 유니폼만해도 300벌이나 된다"고 전했다.   이어 레알 마드리드의 일반 유니폼은 85유로(약 15만원)-(원가 약 5000원에서 6000원사이)에 판매하지만 , 호날두의 유니폼은 96유로(약 17만원)의 고가로 내놨음에도 상종가를 쳤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지난달 호날두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Golden Goose)'라면서 크리스마스 전까지 호날두의 새 유니폼이 100만벌 이상 팔려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17만원 상당의 유니폼이 100만벌 팔리면 1700억원으로 호날두 이적료(1650억원)를 불과 6개월만에 넘어선다. 2003년 3500만파운드(약 665억원)의 이적료로 맨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데이비드 베컴은 단 6개월만에 100만벌의 유니폼을 판매한 바 있다. 반면 한 때 '원더 보이'로 불리며 최고의 흥행카드였던 오언은 굴욕을 당하고 있다. 영국의 대중일간지 더 선은 맨유 메가스토어 직원의 말을 인용해  "아직 오언의 등번호가 확정되지 않아 오언 유니폼을 요청하는 팬들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등번호가 확정되어도 유니폼이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보도했다.   맨유 팬들은 '천상의 라이벌' 리버풀 출신의 오언의 영입에 대해 냉소적이다. 더선의 기사 제목은 '호날두 80000, 오언 0'. 입단식 때 8만여명의 팬들을 불러모은.. 호날두와 단 한 명도 유니폼을 원하지 않는 오언의 처지를 비교했다.   ...비록 몇년전 이야기 이지만.. 우리도 스타에 거는 기대를 거의 50%이상으로 차지하고 있으니.. 스타가 차지하는 경제적인 의미는 거의 무한가치 이상인것 같다~!!!  ^^       //////////////////////////덤으로 더 보기+++=   웨인 루니 ‘내 유니폼, 트로피…’ ...도둑 맞아...   [헤럴드 생생뉴스 2006-07-24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더니. 부상과 퇴장으로 2006 독일 월드컵을 망친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가 이번엔 도둑을 맞았다. 머시사이드 경찰당국에 따르면 잉글랜드 웨스터 더비 샌드필드 파크에 있는 루니의 집에 22일(현지시간) 도둑이 침입해 루니의 2006 독일월드컵 유니폼과 2002년 BBC가 수여한 영플레이어상 트로피를 훔쳐갔다고 밝혔다. 이밖에 보석류와 FA컵 결승에서 입었던 유니폼도 함께 사라졌다. 경찰은 술집이나 인터넷상에서 이 도난 품목을 발견할 경우 신고해 줄 것을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경찰 대변인은 도난품들이 한눈에 식별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하기 때문에 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루니는 지난 4월 첼시와의 경기 도중 발등 골절을 당해 월드컵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강도높은 치료와 재활을 거쳐 조별 리그에 출전했다. 그러나 단 한골도 넣지못하며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인 데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는 퇴장을 당하며 팀의 탈락을 벤치에서 지켜봐야했다. /김성진 기자 - `헤럴드 생생뉴스`  [출처] 웨인 루니 ‘내 유니폼, 트로피…’ 도둑맞아 |작성자 고구마  
984    [쉼터] -스포츠스타 유니폼 도적당하다...팔다...소장품 되다... 댓글:  조회:5565  추천:0  2017-02-08
['수퍼볼 우승' 브래디 유니폼 사라져 경찰 초비상… '홈런왕' 베이브 루스 옷은 50억에 팔리기도] - NFL 최고 드라마 이끈 그의 옷 수십억 치솟을 상상 이상의 가치 텍사스 6만 경찰에 총동원령… 보안관까지 나서 범인 수색작전   7일, 미국 텍사스 6만 경찰에 초비상령이 떨어졌다. 전날 열린 NFL(미 프로풋볼) 결승전인 '수퍼볼'에서 팀의 역전 우승을 이끈 쿼터백 톰 브래디(40·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유니폼이 도난당한 탓이다. 라커룸에서 우승 축하 파티를 즐기고 있었는데, 누군가 유니폼을 슬쩍 들고 간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매체들은 밝혔다. 대대적인 범인 수색 작전이 펼쳐졌으며, 경찰뿐 아니라 보안관들까지도 추가로 동원될 예정이다. 고작 유니폼 한 벌 때문에 왜 이런 사달이 벌어졌을까. 도난당한 유니폼의 가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브래디는 팰컨스를 상대로 25점 차를 뒤집는 '인생 경기'를 했고, 역대 최다인 4번째 수퍼볼 MVP로 선정됐다. 올해 마흔인 브래디로선 마지막 MVP 수상일 수도 있다. 여기에다 최다 전진 패싱 야드(466야드), 최다 패스 시도(62번), 최다 패스 성공(43회) 등의 신기록을 줄줄이 세웠다.   이미지 크게보기톰 브래디가 바로 이‘수퍼볼 유니폼’을 도난당했다. 도둑을 잡기 위해 텍사스 경찰이 총동원됐다. 극적인 승리를 이끈 브래디의 유니폼 가치가 얼마까지 올라갈지 지금으로선 짐작하기 어렵다. /AP연합뉴스 일반 스포츠 상품 매장에서 파는 브래디 유니폼의 가격은 120달러(약 14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브래디가 이날 실제로 입은 유니폼이라면,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뛴다. 타임지는 "기존 NFL 유니폼 중 최고 낙찰액은 고(故) 조니 유니타스(볼티모어 콜츠)의 유니폼으로 11만8230달러(1억3500만원)였는데, 브래디 유니폼이 경매에 나온다면 낙찰액은 이를 훌쩍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스포츠 관련 상품 전문 매체인 스포츠컬렉터스데일리는 "브래디의 유니폼 가격이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를 넘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전망했다. 브래디 유니폼의 가치를 그 이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 선수들의 대기록과 함께한 유니폼은 가치가 수십억원까지 치솟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니폼은 미국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1920년에 입었던 유니폼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라이벌 팀인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첫해에 입은 이 유니폼은 2012년 경매에서 441만5658달러(약 50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통산 714개의 홈런을 때린 루스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야구선수다. 둘째로 비싼 유니폼은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스타 폴 헨더슨이 1972년 구소련과의 친선 경기에서 승리할 때 입은 캐나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이다. 캐나다의 한 부동산 재벌이 2010년 경매에서 127만5707달러(약 14억6000만원)를 내고 샀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 소속으로 뛴 마지막 정규 경기(1998년) 유니폼은 2억원이었다. 댄 패트릭 텍사스주 부지사는 "브래디의 이번 경기 유니폼은 NFL 사상 최고의 소장품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옷이 텍사스에서 도난당했다고 역사에 기록돼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도둑을 겨냥해 "텍사스 보안관들이 당신의 뒤를 쫓고 있다"고 경고했다. 당사자인 브래디는 "소장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다. 나중에 (온라인 중고 거래사이트인) 이베이에 나오지 않겠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 프로농구(NBA)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수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38)의 고등학교 시절 유니폼도 도난당했다. 출처; 조선일보/ 윤형준 기자 ================================ 6일(한국시간) 휴스턴 NRG스타디움에서 열린 제51회 슈퍼볼에서 애틀란타 팰컨스를 상대로 팀의 25점차 역전극을 이끈 톰 브래디(40ㆍ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트로피를 치켜들고 환호하고 있다. 브래디는 우승 축하 파티를 즐기다 라커룸에 보관했던 경기 유니폼을 분실했다. NFL 공식트위터   제51회 슈퍼볼 MVP 톰 브래디(40ㆍ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경기 직후 분실한 유니폼 수색에 텍사스주 전체가 발 벗고 나섰다. 6일(이하 한국시간) 텍사스주 휴스턴 NRG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제51회 슈퍼볼에서 쿼터백으로 출전해 팀의 25점차 대역전극을 이끈 톰 브래디는 우승 축하 파티를 즐기다 라커룸 가방에 넣어두었던 유니폼 상의를 도둑맞았다. 유니폼을 분실한 브래디는 “아주 멋진 기념품인데 잃어버려서 안타깝다”면서도 “유니폼이 곧 (온라인 중고매매사이트)이베이에 올라오면 내게도 꼭 알려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슈퍼볼 개최지였던 텍사스주는 불명예를 씻고 싶어했다. 텍사스주의 부지사 댄 패트릭은 7일 “어젯밤 휴스턴에서 열린 슈퍼볼의 성공은 우리 주 전체의 승리였다.   이 축제를 망치는 어떤 짓도 용납 못한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유니폼 수색 작전’에 착수했다. 유니폼 찾기에는 휴스턴 경찰 당국뿐만 아니라 텍사스 보안관실까지 동원될 예정이다. 미국 ESPN은 패트릭 부지사가 유니폼 도난 사건의 수사를 위해 휴스턴 경찰당국과 협력할 것을 텍사스 보안관실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부지사는 “톰 브래디의 유니폼은 위대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유니폼을 가져간 사람이 누구든지 반드시 반납해야 할 것”이라며 “텍사스 보안관들이 추적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휴스턴 경찰당국은 NFL 보안부서와 도난 사건과 관련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경매업체의 대표 켄 골딘은 브래디가 슈퍼볼 경기에서 입었던 유니폼 상의가 50만 달러(약 5억7,000만원)를 호가한다고 설명했다. NFL 공식트위터   패트릭 부지사는 브래디의 경기 유니폼이 “NFL 역대 최고의 소장품이 될 것”이라 고 설명했다. 실제 매매가격도 6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경매업체 ‘골딘 옥션스’의 대표 켄 골딘은 뉴욕포스트에 유니폼 상의만 50만 달러(약 5억7,0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유니폼을 되찾더라도 톰 브래디가 극적인 우승 순간에 입었던 진짜 유니폼임을 증명할 수 없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훔친 유니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현재 공개적으로 매매하기 힘들 것”이라며 “일단 변호사를 고용해 유니폼을 돌려주고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유니폼 도둑에게 법적인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NFL이 도난 당한 브래디의 유니폼을 공개 수배하는 트위터를 올렸다. NFL 공식트위터   브래디가 유니폼을 분실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년 전 시애틀 시호크스와 맞붙어 28-24로 승리한 제49회 슈퍼볼에서도 유니폼 상의를 잃어버렸다. 한편 톰 브래디는 이번 슈퍼볼 우승으로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개인 통산 5번째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차지하며 역대 최다 우승 쿼터백으로 올라섰고, 통산 4번째 슈퍼볼 MVP에 이름을 올렸다. //정우진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 4년) ========================= 애틀랜타 팰컨스를 꺾고 팀에 통산 5번째 우승을 안긴 브래디는 경기 종료 후 유니폼을 벗어놓고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지만 유니폼은 사라졌다. 정신없는 축제의 현장에서 누군가 브래디의 유니폼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브래디로서도 큰 의미를 갖는 유니폼이다. 팀의 5번째 우승과 자신의 4번째 슈퍼볼 MVP를 동시에 이룬 경기에서 착용한 유니폼이기 때문이다. 브래디의 슈퍼볼 MVP 4회 수상은 NFL 선수 최초다. 브래디의 배포와 유머는 MVP답게 남달랐다. 야후스포츠에 따르면 유니폼을 잃어버린 브래디는 "유니폼이 이베이에 매물로 올라오면 내게 알려달라"고 웃었다. 하지만 브래디의 유니폼 찾기는 브래디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야후스포츠에 따르면 텍사스 주 부지사인 댄 패트릭은 텍사스주 보안관들에게 휴스턴 경찰을 도와 브래디의 유니폼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패트릭 부지사는 "텍사스는 풋볼과 손님 접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브래디의 유니폼은 역사적인 가치가 있고 NFL 역사상 가장 가치있는 수집품으로서 명예의 전당으로 향할 것이다"며 "나는 텍사스 사람이고 텍사스 카우보이스 팬이지만 휴스턴에서 열린 슈퍼볼의 성공에 오점을 남기길 원하지 않는다. 유니폼을 가져간 사람이 누구든 다시 가져와야 할 것이다. 텍사스 보안관들이 찾아낼 것이다"고 말했다. 텍사스 보안관까지 나선 브래디 유니폼 수색작전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주목된다. 한편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Texas Rangers, 텍사스 보안관과 영문 동일) 구단은 패트릭 부지사의 '브래디 유니폼 수색령'을 남다른 유머로 받아내 웃음을 선사했다. 텍사스 구단은 트위터를 통해 "유니폼 수색 명령이 떨어졌다. 애드리안 벨트레를 수사반장으로 임명하라. 그러면 도둑이 자수할 것이다"고 언급했다.(자료사진=톰 브래디) [뉴스엔 안형준    기자] 사진=/이매진스
983    [쉼터] - 수수께끼 100 댓글:  조회:3032  추천:0  2017-02-08
어려운 수수께끼 100가지 모음     1.개미네집 주소는? 허리도 가늘군 만지면 부러지리.   2.타이타닉의 구명보트에는 몇 명이 탈수 있을까? 9명(구명보트)   3.서울시민 모두가 동시에 외치면 무슨 말이 될까? 천만의 말씀(서울시민 천만명)   4.금은 금인데 도둑 고양이에게 가장어울리는 금은? 야금야금   5.고기 먹을때마다 따라오는 개는? 이쑤시개   6.별중에 가장슬픈 별은? 이별   7.진짜 새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참새   8.붉은길에 동전 하나가 떨어져 있다. 그 동전의 이름은? 홍길동전   9.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는? 철들 때   10.A젖소와 B젖소가 싸움을 했는데 싸움에서 B 젖소가 이겼다.왜 그랬을까?   A젖소는 "에이 졌소"이고 B젖소는 "삐 졌소?"   11.이혼이란? 이제 자유로운 혼자   12.고인돌이란? 고릴라가 인간을 돌맹이 취급하던 시대   13.엉성하다란? 엉덩이가 풍성하다   14.절세미녀란? 절에 세들어 사는 미친 여자   15.눈치코치란? 눈 때리고 코 때리고   16.오리지날이란? 오리도 지날하면 날수 있다   17.요조숙녀란? 요강에 조용히 앉아있는 숙녀   18.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디일까요? 열바다   19.세상에서 가장 추운 바다는 어디일까요? 썰렁해!   20.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집은? 똥~집!   21.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집은? 닭똥집   22.보내기 싫으면? 가위나 바위를 낸다.   23.땅투기군과 인신매매자를 7자로 줄이면? 땅팔자 사람팔자.   24.도둑이 도둑질하러 가는 걸음걸이를 4자로 줄이면? 털레털레   25.식인종이 밥투정 할때 하는 말은? 에이, 살맛 안나~   26.임꺽정이 타고 다니는 차가 무엇일까? 으라차차차!   27.양초각에 양초가 꽉 차있을때 세자로 줄이면? 초 만원   28.씨름 선수들이 죽 늘어서 있다'를 세자로 줄이면? 장사진   29.서로 진짜라고 우기는 신은? 옥신 각신   30.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집은? 시집   31.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집은? 계집   32.재밌는 곳은 어딜까? 냉장고에 잼 있다.   33.개가 사람을 가르친다’를 4자로 줄이면? 개인지도   34.소가 웃는 소리'를 세글자로 하면? 우하하!   35.이심전심이란? 이순자가 심심하면 전두환도 심심하다.   36.황당무계이란? 노란 당근이 무게가 더 나간다.   37.천고마비이란? 하늘에 고약한 짓을 하면 온 몸이 마비된다.   38.착한자식이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성실한 사람.   39.호로자식이란? 러시아를 좋아하는 사람.   40.미친자식이란? 미국과 친하려는 사람.   41.중학생과 고등학생이 타는 차는? 중고차   42.왕이 넘어지면 뭐가될까? 킹콩   43.초등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동네는? 방학동   44.스타들이 싸우는 모습을 뭐라구 할까? 스타워즈   45.라면은 라면인데 달콤한 라면은? 그대와 함께라면   46.겨울에 많이 쓰는 끈은? 따끈따끈   47.토끼들이 젤 잘하는것은 무엇일까? 토끼기(도망치기)   48.길가에서 죽은 사람을 무엇이라 하는가? 도사   49.진짜 문제 투성이인 것은? 시험지   50.세 사람만 탈 수 있는 차는? 인삼차   51.폭력배가 많은 나라? 칠레   52.굶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헝가리   53.경찰서가 가장 많이 불타는 나라는? 불란서   54.노총각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은? 색시감   55.먹고 살기 위해 하는 내기? 모내기   56.아무리 예뻐도 미녀라고 못하는 이 사람은? 미남   57.사람이 일생동안 가장 많이 하는 소리는? 숨소리   58.가장 알찬 사업은? 알(계란)장사   59.눈이 녹으면 뭐가 될까? 눈물   60.가장 더러운 강은? 요강   61.귀는 귀인데 못 듣는 귀는? 뼈다귀   62.말은 말인데 타지 못하는 말은? 거짓말   63.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비는? 수제비   64.세상에서 제일 큰 코는? 멕시코   65.수학을 한글자로 줄이면? 솩   66.세상에서 가장 빠른 닭은? 후다닥   67.세상에서 가장 야한 닭은? 홀닥   68.가슴의 무게는? 4근(두근 두근)   69.간장은 간장인데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간장은? 애간장   70.감은 감인데 먹지 못하는 감은? 영감,옷감,대감,상감   71.병아리가 제일 잘 먹는 약은? 삐약   72.개중에 가장 아름다운 개는? 무지개   73.걱정이 많은 사람이 오르는 산은? 태산   74.공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은? 성공   75.다리중 아무도 보지 못한 다리는? 헛다리   76.누구나 즐겁게 웃으며 읽는 글은? 싱글 벙글   77.눈은 눈인데 보지 못하는 눈은? 티눈, 쌀눈   78.다 자랐는데도 계속 자라라고 하는 것은? 자라   79.닭은 닭인데 먹지 못하는 닭은? 까닭   80.떡 중에 가장 빨리 먹는 떡은? 헐레벌떡   81.똥은 똥인데 다른 곳으로 튀는 똥은? 불똥   82.똥의 성은? 응가   83.먹고 살기 위하여 누구나 한가지씩 배워야 하는 술은? 기술   84.목수도 고칠 수 없는 집은? 고집   85.묵은 묵인데 먹지 못하는 묵은? 침묵   86.문은 문인데 닫지 못하는 문은? 소문   87.물고기 중에서 가장 학벌이 좋은 물고기는? 고등어   88.물은 물인데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물은? 괴물   90.물은 물인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물은? 선물   91.바가지는 바가지인데 쓰지 못하는 바가지는? 해골바가지 92.바닷가에서는 해도 되는 욕은? 해수욕 93.발이 두개 달린 소는? 이발소 94.배울 것 다 배워도여전히 배우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배우 95.벌레 중 가장 빠른 벌레는? 바퀴벌레(바퀴가 있으니까) 96.별중에 가장 슬픈 별은? 이별 97.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거리는? 걱정거리 98.사람이 즐겨 먹는 피는? 커피 99.사람이 즐겨 먹는 제비는? 수제비 100.아홉명의 자식을 세자로 줄이면? 아이구  
982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뜯어보면 한 사람이 죽는다?..." 댓글:  조회:6155  추천:0  2017-02-08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에서 채록된 설화. /집필자: 박순호 [채록/수집 상황] 1989년 6월 당시 57세의 최운택에게서 채록된 「정월 대보름 오곡밥의 유래」 설화는 2000년에 간행된 『군산 시사』에 기록되어 있다. (주:전라도 사투리로 된 글)  [내용] 그전 고구려 시대 때 어느 왕이 참, 이 농촌에 시찰을, 지금으로 말허자먼 시찰이나 한가집니다. 나와서 신하를 멫을 데리고 참 어느 어느 산골짝을 가는디, 가그매깐치[까막까치]가 꽉꽉 그 가는 질 앞으서 울고 있다 이거여. 하, 그런게 그 왕이 있다가, “멈춰라. 이거 질이, 질 앞으 신작로 앞으 가서 가그매[까마귀]가 울고 있으니 묘헌 일이다. 멈춰라.” 그런게 신하들이 딱 뭐 멈추고 본게, 왕이 동서 남방을 죽 훌트리 보니 아무 거시기도 없고 저 서행쪽으로 연못이 있는디. 연못이라는 것, 둠벙이나 한가집니다. 못이 있는디 못에서 사람 하나가 빠져 가지고 모가지만 들어갔다 나왔다. 그 이렇게 허드라 이거여. 왕이 치다본게. 근게 그 임금이 있다가 신하를 부름서 “너 저그 좀 갔다 와봐라. 저 연못에 가면, 느덜 눈에는 안 뵈냐? 내는 뵌 게 사람 빠졌으니 금방 죽는다. 올라갔다 앉았다 헌게 어서 가봐라. 가서 그 사람을 구해라.” 신하가 참 그 말을 듣고서나 바로 그 못 가에 갔어요. 갔더니 아니나다를까 사람이 빠져 가지고 모가지만 폭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이짓을 허드라 이거여. 그런게 신하가 인자 벗을 여가도 없고 사람이 죽게 생겼은게 그냥 옷 입은 그대로 막 그 못가를 들어갔시요. 그 사람을 구헐, 들어가 본게 인자 모가지가 쏙 빠지고 손만 이러고 있어요 손만. 그 손이가 편지 한 장을 들고 있드라 이거요. 그서 인자 꼭 잡고 손을 잡고 이렇게 끄시내[끌어내]볼란게[보려니까] 손도 없어지고 사람도 없어지고 편지만 자기 주먹으로 쥐어 있드라 이거요. 그려서 이상허다 허고 그 부근을 훑어봤더니 사람은 시체가 없어요. 아까 빠진 사람, 모가지 내놓다 들어간 사람이 그서 그냥 와서나 임금에게 고(告)허기를, “가 봤더니 사람은 읎고, 편지 들고 이렇게 있습니다. 그서 찾아봤더니 읎고 그서 건지든 못허고 그서 이렇게 편지만 갖고 왔시요.” 그맀어. 그서 왕기다, 인자 임금기다 딱허니 그 편지를 전해본게 임금이 있다가 읽어본게 ‘뜯어보면 두 사램이 죽고 안 뜯으면 한 사램이 죽는다.’ 이 겉봉으가 써 놨다. 이거여. 뜯으면 두 사람이 죽어요, 안 뜯으면 한 사램이 죽고, 헌게 그 임금님이 참 묘허거든, 근게. “야, 내가 이 농촌 이런 거시기를 살피로 왔더니 오늘 일수가 나쁘고 되로 대궐로 돌아가자.” 그 신하를 데리고 감서, 인저 데리고 간 신하를 데리고 도로 대궐로 들어갔어요. 들어가서나 즉시 이 좌의정 우의정 다 불러가지고 인자 회의를, 회를 혔답니다. 회를 혔는디, “내가 아무디 아무디를 갈라고 힜더니 가그매간치가 있어서 이런이런 꼴이 있으니 이 편지를 받었는디 다 해석혀서 내 놔라.” 그맀어. 근게 우의정이나 좌의정이나 다 한 패는, “뜯어보면 두 사램이 죽고 안 뜯어보면 한 사램이 죽은게 사람 목숨이 귀헌게 뜯어볼 것이 읎이 한 사람만 죽입시다.” 그맀어 그 정승들이, 또 정승들 한 사람은, “그나지나 뜯어 봅시다. 한 사람을 더 죽이더라도 목숨이 귀허지만 뜯어 봅시다.” 그 정승들이 있다가 서로 이러쿵 저러쿵 허네, 그 수도 등등허고 뜯어 보자커니 안뜯어 보자는 숫자가 동등혀요. 근게 임금이 있다가, “야, 내가 결정헐 테니 나 허잔 대로 혀라.” 그맀어. 임금님이 결정을 뭐라고 내렸나먼, “이걸 뜯어보얀다.” 그서 그걸 그 자리서 뜯어 봤어요. 뜯어 봤더니 오늘 저녁으, 지금은 시간적으로 인자 시간 있은게, 밤 한 시랄지 두 시랄지 그런 자시네 뭐 축시네 뭐 인시네 아니요? 지금 시간으로 바서 한 두어 시나 됐든 겝디다. 근게 자시나 되지. 그런데 인자 임금님이 칼 잘 쓰는 무사, 무사면은 칼 잘 쓰는 사람을 무사라고 혀요. 〔조사자 : 예, 그렇죠〕무사를 막 대궐인게 앞뒤로 한 이십명 막 순시히 놓고서나 그 두 시쯤인게 자시나 될, 될 것이며, 그 시간에 무사를 불러가지고, “농문을 열어 봐라.” 그맀어. 근게 농문을 딱 허니 열은게 머리 빡빡 깍은 중이 나오더라 이거여. 그 중을 내다가, “너 무신 이유로 이 내방에 와서, 이게가 어느 방이가니…” 임금님 말씀이, “이게 어느 방에, 니가 내 방으 내 농 속에 들어 있냐?” 그렇게 물었어. 그놈 보고, 물으먼 그냥 묻겄어? 인자 주리를 틀트지. 근게 이뇜이. “예, 죽기를 작정헌 몸입니다.” “어찌서 죽기를 니가 작정헌 몸이냐?” “예….” 임금님이 나이가 많았던게 벼. 그러고 임금쯤 되먼 각시가 여럿이 많이 있을 거여. 작은이가 되았던가 근게, 이 임금님이 그 각시 보고, 후딱 말허자먼 뭐라고 허딘가? 대비 마마라고 허던가? 근디, “대비 마마가 나를 청을 혔습니다.” 그맀어. “그서 대비 마마의 청을 안 들어도 죽고, 내가 그 청을 안 들어도 죽고 청을 들어도 죽을지는 알고 있습니다.” “멫 달이나 됐냐?” 근게, “석 달 됐다.” 고, 그렇게 말을 허드래요. 근게, “응, 그렇겄다.” 그러고서나 인자 그놈을 집어내고서나 목을 빌 판여. 근디 인자 후딱 말허자먼 임금님 각시까지 둘이 목을 비여. 목을 딱 허니 막 비어 버렸어. 인자 물어 볼 만큼 물어보고 중도 목비고 임금님 각시도 목을 비고 딱 비었어. 그런게 그 핀지 내용이 뜯어봤은게 중허고 임금님 각시허고 죽었어. 말허자먼, 근게 뜯어봐서 중허고 각시하고 죽고 안 뜯어 보면 그 중이 칼을 품고 농속에 숨어서 그날 저녁은 쥑이기를 약속했어 왕을, 그 나라 왕을 죽이기로 약속을 혔당게. 그래가지고 인자 안 뜯어 보먼 그날 임금님이 죽어. 그날 저녁으 뜯어봤은게 살고, 그런게 ‘하, 이게 참 내 운명이 참 하늘이 돌봤구나!’ 물팍[무르팍]을 탁 침서 신하들 보고 “여봐라 오늘 날, 날짜가 메친 날이냐?” 그랐어. “예 정월 보름날입니다.” “어, 정월 보름날이냐? 그러먼 가그매 간치가 나를 살렸으니 오곡을 혀서 막 사방으다 뿌려라. 오곡밥을 혀서….” 아, 보름달 오곡밥 안 혀 먹어요? 오곡밥을 혀서 사방에다 막 질이고 문 앞이고 다 뿌려라. 그렇게 백성기다 통보를 혀라 그맀어. 그려서 ‘보름달 오곡밥을 먹는 것이 원인이 거기가 있다.’ 소리를 내가 들었시요.
981    [쉼터] - 정월대보름의 유래 댓글:  조회:5133  추천:0  2017-02-08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의 정의◐   음력 1월 15일로 가장 많은 세시풍속이 전하는 명절의 하나.    정월대보름은 보통 대보름이라하며, 상원(上元)이라고도한다. 상원은 도가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의 하나로 삼원이란 상원(1월 15일), 중원(7월 15일), 하원(10월 15일)을 말한다. 대보름은 연중 가장 먼저 만월이 되는 날로서 많은 세시풍속이 전한다. 또 농업이나 어업등 생업과 긴밀한 연관이 있어서 농촌에서는 갖가지놀이와 행사, 그리고 방액등이 이 날을 전후로 행하여진다. ◐정월대보름의 의미◐ 정월은 한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년을 점쳐 보는 달이다. 력서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날'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동안 이루어야 할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 쳐 보는 달인 것입니다. 정월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음양사상에 의하면 태양을 양(陽)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 되고, 이에반하여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됩니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 여신, 대지로 표상 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으로서 출산력을 가집니다. 이와 같이 정월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합니다. ◐정월대보름의 유래◐ 정월의 절일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습니다. 태고적 풍습은  정월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조선후기에 간행된 '동국시세기'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습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한 편 중국에서는 한나라때부터 정월대보름을 8대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답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명월(小明月)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답니다. 정월 대보름 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우리 조상들은 달이 초승달에서 점점 커져  보름에 만월이 되고, 다시 작아지는 것을  곡식과 연관지어 씨를 뿌리고 자라서 여물고,  다시 씨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달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였고,  농사를 시작하는 첫달이  가득차는 정월 보름을 대명절로 여기며 한해의 풍년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980    연변축구의 한획을 그은 최은택교수님의 기념비를 세워야... 댓글:  조회:5574  추천:0  2017-02-08
'진정한 스승의 풍모' 최은택, 그는 어떤 분이였던가 (ZOGLO) 2017년2월8일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감동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그만큼의 력사적인 사건과 잊지 못할 장면도 기억 한가득 쌓여가고 있다. 올 2월 5일은 연변에서 감독이란 호칭 대신 교수로 추앙받으며 연변축구에 한획을 크게 그으신 최은택교수님의 작고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연변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들이 더욱 분발해지길 바란다. 부디 이 글로라도 진정한 스승의 풍모가 항상 느껴졌던 교수님을 기념하고 비록 몸은 우리와 리별했지만 그가 우리 연변에 남긴 정신을 기리고 싶은 마음이다. 편집자 “그런 식으로 뽈 차려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지으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을것이면 논밭 갈고 부모께 효도라도 하라” 1997년 정신력이 흐트러진 연변선수들에게 내렸던 그의 불호령은 지금까지도 연변선수들의 투지를 불태우는 명언으로 전해지고있다. 연변과의 만남은 우연이였다. 최교수는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다가1997년, 1998년을 안식년으로 보냈다. 이때 팔꿈치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수소문하다가 중국쪽에 한방 치료를 잘하는 곳이 있다는 말에 연변으로 향했다. 당시 최교수를 안내한 한양대 학생 추명은 조선족이였고 최교수는 연변에서 축구계 인사들을 만날수 있었다. 연변대학은 최교수에게 1년 동안 겸임교수를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성적이 좋지 않았던 연변오동팀의 지휘봉을 잡아달라고 간청했다. 최교수는 연변대학의 요청은 흔쾌히 수락했지만 감독부임을 두고는 고심했다. 1986년 포항제철팀 지휘봉을 놓은후 10년 동안 축구현장을 떠나 있었다. 게다가 연변팀의 성적과 환경은 좋지 않았다. 최교수가 직접 관찰한 연변오동팀의 상태도 실망스러웠다. 담배와 술을 상시적으로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최교수는 지난 2000년 7월 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정확히 밝혔다. 그는 자신의 조건을 수용하면 지휘봉을 잡겠다고 했다. “팀을 맡기려면 내가 하자는대로 해야 한다. 2부로 떨어지더라도 성적을 두고 시비하지 말라. 선수 기용이나 관리에 대해서도 일절 간섭하지 말라.”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자 최교수는 1997 시즌을 앞두고 연변오동팀 감독이 된다.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담배와 술을 가까이하던 주축 선수들을 모두 내쫓았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선수들을 모두 쫓아냈다. 그러고는 18∼19세의 어린 선수 30명을 모아 기초훈련부터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야단이 났다. 쓸만한 선수들은 다 내보내고 어린애들을 데리고 무슨 프로축구를 하겠다는거냐고.” 연변은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전권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런 급격한 개혁을 할것이라 예상한이는 없었다. 최교수는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였다. 청소년대표 시절에 최교수를 만났던 허정무 한국 프로축구련맹 부총재는 최교수를 이렇게 기억한다. “좋은 분이셨지만 선수들은 굉장히 무서워했다. 성격이 칼 같은 분이였다. 철학이 분명했고 고집도 있었다. 아마 한국 축구인가운데 처음으로 독일류학을 하신것으로 알고있다. 선진적인 훈련방법을 한국에 도입하기도 했다. 무서웠지만 내게는 잘해주셨다. 힘들어 하는 선수들을 보듬어 줄줄 아는 분이였다.” 개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교수는 연변에 프로축구선수라는 개념을 알린 선구자다. 당시 연변오동팀은 경기 출전 여부에 상관없이 20명의 선수에게 경기수당을 똑같이 나눠줬다. 최교수는 경기에 뛰는 선수에게만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하며 경쟁에 불을 당겼고 훈련을 게을리하면 팀에서 내쫓겠다고 엄포를 놨다. 선수들이 꾸물거리면 불호령을 내렸다. 최교수 아래서 연변팀은 조금씩 강해졌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좋지 않았던 연변팀은 수비적인 경기를 해왔는데 경기 양상도 확실히 바뀌였다. 최교수는 많이 뛰는 축구로 상대팀을 압박했고 공을 빼앗으면 많은 인원을 공격진으로 일시에 올려보내는 전술로 재미를 봤다. 한 상대팀 감독은 최교수의 연변팀과 상대하는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연변팀과 경기하면 마치 미친개랑 싸움하는것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뛰여다니고 그림자처럼 붙는다. 전혀 당해낼 방법이 없다.” 연변팀은 강해졌다. 젊은 선수들은 경기를 거듭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어떤 상대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았다. 결국 1997 시즌을 4위로 마무리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열광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최교수를 명예(영예)시민으로 추대했다. 최교수는 소리를 질러 연변을 바꾼게 아니다. 최교수는 선생님의 마음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갔고 선수들은 최교수의 진심을 느꼈다. 최교수는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연변오동팀은 월급을 거부하는 최교수에게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급했다. 일반 시민들의 기준으로 보면 큰 돈이였지만 외국감독이 생활하기에는 작은 돈이였다. 최교수는 이 돈마저 거의 선수들에게 소비돈으로 줬다. 한 선수가 지갑을 잃어버리자 자신의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내줬고 외국인선수에게는 국제통화료를 계산하라며 돈을 줬다. 독일 국적의 당시 중국 국가대표팀 슬라프나감독이 “정말 월급을 받지 않느냐?”라고 묻자 최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난 도우러 온것이지 돈을 위해 온게 아니다.” 최교수는 시즌을 치르다가 쓰러진적이 있다. 석가장으로 원정을 떠나다가 공항에서 갑자기 중풍증세를 보인것이다. 최교수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석가장 원정을 떠났다. 결국 석가장에서 선수들의 강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최교수는 경기 당일 다시 그라운드에 나타나 감독석에 앉았다. 선수들은 감동했다. 당시 로장이였던 황경량은 이렇게 말했다. “최감독의 모든 행동은 모두 우리를 위한것이다. 월급도 받지 않으면서 림시로 도와주러 온 사람이 이러하신데 우리가 무슨 리유로 열심히 뛰지 않을수 있겠는가!”  최교수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지난 1998년 연변은 연변오동팀과 최교수의 발자취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었다.  당시 한 조선족아이는 누구를 가장 존경하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최은택교수님”이라고 답했다. 최은택교수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축구선수가 되기전에 인간이 되라”는 만인이 공감하는 리념을 중국에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연변축구팀의 선수들에게 최은택교수는 감독이 아니라 아버지였고 인생의 스승이였다. 연변팀 코치나 선수들 모두 감독님이라고 부른것이 아니라 학장님, 교수님으로 존칭하였다. 연변팀의 이런 가족같은 분위기는 타팀 선수나 다른 지역 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였고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있다.     중국에 대서특필된 부고     연변과 아쉽게 리별했지만 최교수와 연변의 인연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최교수는 2000년 길림성의 한 출판사에서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후에도 연변과 중국 전역에서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교육하는데 도움을 줬다. 여러 도시의 축구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강의했고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연변에 들려 도움을 줬다. 최교수는 2005년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강의했고 이것이 마지막 연변 방문이 됐다. 2007년 2월 5일, 최교수가 지병인 페암으로 작고하자 그의 별세에 중국  등 주요 언론이 특집기사를 마련해 최교수를 추모했다. 연변뿐만 아니라 중국의 많은 이들이 최교수의 죽음을 안타까와했다. “최교수님, 천국에 계신 당신을 너무나 뵙고 싶습니다. 영원히 당신같은 진정한 호인(好人)을 잊지 못할것입니다.”... 최교수가 연변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학생이였던 부모가 현재  박태하감독에 열광하는 자신들의 아이에게 혹시 이렇게 말하지 않을가? “박감독 전에 연변에는 ‘큰별’ 최교수님이 계셨다”고.       조선족의 자존심 세운 사람     지난 2015년 10월 24일, 박태하감독이 이끄는 연변장백산팀은 갑급리그(2부리그) 우승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경기장 분위기는 극적이였다. 지난 시즌 꼴찌였던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였다. 조선족축구팀이 우승을 차지한것은 50년만이였다. “연변인민의 영웅 박태하 THANKYOU”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프랑카드가 본부석 맞은편으로 올라갔다. “어 저건 누구지? ” 박태하감독과 하태균과 같은 “공신”들을 응원하는 프랑카드가운데 낯선듯 낯익은 프랑카드가 보였다. 고 최은택감독, 아니 최은택교수를 기리는 프랑카드였다. 최교수가 이끈 연변팀은 1997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갑A(1부리그) 4위를 차지했다. 이는 연변팀이 프로리그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최교수님이 여기 계셨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연변팀 서포터 박미화씨는 박감독에 열광하면서도 최교수를 떠올렸다. 연변이 최교수를 기억하고 기리는것은 성적때문이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렬악한 상황에 있었던 연변을 일으켰고 조선족의 자존심을 세운 이가 바로 최교수이다.   /연변일보 본면 글· 기획 리영수 리병천 기자
979    [고향소식] - "동방의 제1촌"에서 3국의 닭울음소리 듣다... 댓글:  조회:3786  추천:0  2017-02-07
닭 울음소리에 3국이 깨여나는 곶 자리 방천마을 ZOGLO) 2017년2월6일  2017년 정유년 닭띠해를 맞으면서 “계명천하” “계명동방”과 같은 닭울음소리에 관한 낱말들이 뜨고있는 가운데 “닭 울음소리에 3국이 깨여난다”는 속설을 갖고있는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이야기들이 새삼스러워진다. 방천은 지리적으로 우리 나라 최동단에 위치한 "동방의 제1촌"이다.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과 잇닿아있고 장고봉을 사이두고 로씨야와 린접해있으며 두만강이 바다로 나가는 곶자리에 위치해있는 방천마을은 예로부터 중대한 국경사건이 발발한 곳이며 또한 오늘날 우리 나라 “1벨트 1로드” 세계화전략의 중요한 문호의 하나로 세인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바로 이 마을이 우리 조선족들이 손수 개척하고 지켜온 삶의 보금자리인것이다. “토자비”에 출해권을 묻다 19세기 50년대로부터 쪽박 차고 두만강을 건너온 우리 조상들은 버들이 빼곡이 들어선 이곳에 조심스레 괴나리 보짐을 풀고 화전밭을 일구기 시작하였다. 하싼호일때에 살던 박리근(朴利根)로인의 조부가 1860년에 방천에 왔을 때 방천에는 이미 10여세대 조선인 간민들이 살고있었다고 했다. 일밭에서 돌아온 김만혁서기 방천촌의 력사를 들려준다 버드나무가 많아 방축을 이루고있는 이고장을 사람들은 우리말 그대로 《버들방천》이라고 불렀다. 후날 지명을 올리면서 《방천》이라고 하였고 또 조선과 로씨야사이에 끼여있는 좁은 《목》이라는 뜻으로 항(项)자를 붙혀 《방천항》(防川项)이라고도 불렀다. 하여 《동삼성정략》에는 《방천항》으로 등록되여있다. 력사적기재에 의하면 방천은 워낙 수당시기 “일본도 해상비단의 길”로 소문높은 고장이였다. 당나라 시기 경제문화, 민속종교는 이곳을 통해 일본에 전해졌고 중일 두나라간의 경제문화교류와 인민들간의 우의가 이 통로를 통해 촉진되였다. 16세기후로부터 짜리로씨야가 흑룡강지역까지 침입해 들어왔고 1860년 제2차아편전쟁시기에는 또 청정부를 강박하여 불평등 “중로애훈조약” 과 “중로북경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우쑤리강동쪽 광범한 지역을 훈춘관할구에서 떼여갔다. 이리하여 중국은 연해지역을 잃게 됨과 동시에 출해구(出海口)를 잃었으며 다만 바다를 바라보는 “망해구”(望海区)로 되고말았다. 1861년 청정부는 흠차대신을 보내여 짜리로씨야와 국경담판을 하고 두만강어구에서 20화리(华里, 1화리 500메터) 되는 곳에 중-로국경 “토자비”(土字牌)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짜리로씨야의 끝없는 탐욕으로 토자비는 암암리에 두만강어구에서 46화리 되는 사초봉지대로 옮겨지게 된다. 조국의 령토를 되찾고 주권을 지켜낸 오대징장군조각상 1885년 조정에서는 또 흠차대신 오대징을 파견하여 짜리로씨야와 다시 국경을 담판하게 된다. 1886년 7월 오대징은 유력한 근거로 “토자비”를 다시 원자리에 옮기게 하였으며 너비 600메터, 총면적 10평방키로메터에 달하는 령토를 다시 찾아냄으로써 일본해와 15키로메터 거리를 확보하고 동시에 두만강출해권을 쟁취하였던것이다. 20세기초에 이르러 또 일본제국주의는 조선반도를 강점한후 중국에 대한 마수를 뻗치면서 악명높은 “훈춘사건”을 조작하여 훈춘일대를 비롯한 간도지역에 대한 《대토벌》을 감행하였다. 1920년 이른바 “경신년대토벌”로 하여 3만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무참히 학살되였고 훈춘, 경신, 방천 등지는 페허나 다름없게 되였다. 거주민들은 로씨야 연해주거나 중국 내지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뒤 10년도 넘은 세월속에 마을 사람들은 다시 정든 고장으로 돌아와 사초봉늪가며 골짜기에 66세대가 자리잡게 되였을 무렵, 1938년 7월말, 일본침략자들은 쏘련을 공략하고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심으로 장고봉(张鼓峰) 사건을 일으켰다. 중국땅에서 쏘련군과 일본침략군과의 격전이 벌어지면서 방천마을은 또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장고봉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일본군은 이 지역을 금지구역으로 정하고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쫓아냈으며 두만강하구에 수뢰를 묻어놓고 훈춘에서 바다로 나드는 배길을 끊어버렸다. 근 한세기를 두고 방천사람들이 피땀으로 개척한 방천땅은 또 하루 아침에 일본군 《군영》으로 되고 말았으며 이때로부터 중국은 출해권을 완전히 잃게 되였다. 세계명가 “카츄샤”의 탄생지 방천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고장이다. 해마다 4, 5월이 되면 이 고장의 산기슭에는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여나고 동해로 흘러드는 두만강하류에는 바다로부터 안개가 자오록이 몰려오며 이색적인 풍경을 이룬다. 《장고봉사건》이 일어나기 4개월전 구쏘련의 저명한 시인 이사꼽쓰끼는 방천일대를 돌아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매혹되여 《흰배꽃이 산기슭에 피여날 때, 강우엔 몽롱한 안개 서리네》라고 하며 《까츄샤》가사를 지어냈다. 구쏘련의 작곡가 브란체르(勃兰切尔)가 이 가사에 곡을 달고 민요 녀가수 리쟈•루스란노바(丽基雅•鲁斯兰诺娃)가 노래를 불렀다. 초기엔 별로 인기를 몰랐던 이 노래는 몇년 뒤 쏘독전쟁이 발발하면서 급속하게 인기를 누리게 되였고 단연 세계명곡으로 부상하게 된다. 당시 구쏘련의 신형무기로 위력을 과시했던 로케트속사포도 이 노래의 류행에 힘입어 《까츄샤》로 명명될 정도였으니 “카츄샤”노래의 인기도를 가늠할수 있는것이다. 연변 방천일대에서 지어진 《까츄샤》노래는 지금도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외국가요의 하나로 되여있다. 전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0돐을 맞는 나날 로씨야인들이 열창하고있는 “카츄샤”노래는 중국인들 마음속에 크나큰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는 방천과 관련된 하나의 자랑으로 영원히 방천력사의 한페지를 기록하고있다. 국경의 “산 토자비” 《8.15》광복을 맞은 방천사람들은 1947년 봄, 전쟁으로 파괴되였던 마을을 다시 수건하고 드디여 방천땅에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였다. 그러나 1950년 조선전쟁이 일어나면서 쏘련, 조선간의 철도운수선이 지척에 있는 관계로 방천마을은 또 위험구간으로 지목되였다. 정부에서는 방천마을사람들의 인신안전을 위해 내지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하였던것이다. 그때로부터 마을이 비게 되면서 방천지역은 또 쏘련변방군의 말훈련장으로 되였다. 방천은 우리 나라 령토였지만 쏘련군의 삼엄한 통제로 마음대로 나들수조차 없었다. 당시 중국과 쏘련간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관계로 교섭이 매우 어려웠던것이다. 방천으로 들어가는 좁다란 길마저 홍수에 밀려 없어졌으며 방천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수로를 통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방천땅은 쏘련국경안에 있는 중국의 령토로 됨 셈이였다. 1963년경 상급 해당 부문에서는 연변군분구에 소속된 변방퇀에 한개 패를 파견하여 방천에 주둔시킬것을 령하였다. 따라서 방천에 거주할 이민조직사업을 가동하였다. 하지만 방천은 륙상교통이 두절되여있어 생활보장이 없고 자녀교육이 또 큰 문제로 되였으므로 그 누구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1965년 7월 경신공사 금당대대 당지부 부서기 강태원이 변방부대 관병들과 함께 고향땅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선줄을 끌었다. 공산당원 강태원이 인솔한 열여섯세대가 쪽배를 타고 물길을 헤가르며 방천으로 돌아왔다. 그속에는 방천의 개척자이며 토배기인 박리근로인도 들어있었다. 그 이듬해 방천에는 28세대가 모여 오붓한 동네를 이루었으며 16헥타르의 논을 풀고 65헥타르 되는 한전밭을 일구었다. 그때 방천농민들의 일체 생활물자는 부대의 순라정으로 운송해왔고 문화수준이 높은 2명전사가 주둔부대에 파견되여와 문화생활을 이끌어주었다. 방천농민들의 집은 몽땅 나라에서 무상으로 져주었고 공구량도 모두 면제해주었다. 방천마을사람들은 각급 해당 부문과의 협동으로 두만강기슭에 제방뚝을 수축하고 방천과 경신사이의 도로를 수건하여 방천으로부터 내지로 통하는 륙상교통을 열어갔다. 로씨야 땅이 될 번했던 방천땅을 도로 찾아 살기 좋은 고장으로 건설해낸 방천사람들이야 말로 조국의 신성한 령토를 지켜낸 “산 토자비”가 아닐수 없으며 중화국경력사에 귀중한 한페지를 기록한 “장군”들인것이다. 오성붉은기를 휘날리며 조국의 동단을 지키고있는 방천마을 “동방의 제1촌”으로 장고봉을 병풍삼아 오붓하게 줄어지어 들어앉은 방천촌 50여세대의 조선족농가들은 멀리에서도 그 정갈함이 안겨오고 방천촌사무실상공에 휘날리는 오성붉은기는 저으기 인심을 격동시키고있다. 1991년 1월, 전임 중공중앙 총서기 강택민동지께서 방천을 시찰하며 “바다로 나가자”(出海)는 제자를 쓰는 장면의 사진이 방천촌사무실벽에 정히 걸려있다. 방천마을 사람들은 나라의 문호를 굳건히 지키고 잘 건설할 사명을 짊어지고있었던것이다. 지금쯤《방천풍경구》는 연변의 제1관광명소로, 국가급 4A풍경구로 되였고 방천촌은 2016년 “중국의 아름다운 레저향촌”으로 선정되였다. 《방천풍경구》에는 조국의 령토를 되찾고 주권을 바로세운 오대징장군 조각상이며 《토자비》, 장고봉전투유적지기념관 및 두만강출해를 상징하는 두만강나루터, 내지에서는 보기 드문 금사막 공원, 1억 3천 500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두만강련꽃기지,조선족민속촌 및 새로 건설한 룡호각 등으로 경관대를 이루고있다. 해마다 새해를 맞는 이맘 때면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여기 룡호각 전망대에 올라 중국, 조선, 로씨야 3국이 함께 펼치는 불꽃놀이를 한눈에 흔상하며 희망찬 새해의 첫 해돋이를 맞고있다. 전국 여러 민족은 물론 말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지구촌 여러 나라 관광객들도 이곳 “동방의 제1촌”에 모여들고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훈춘으로 개통되면서 한해에 20여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방천을 찾는다. 방천촌에서는 그들을 맞이하여 조선족특색을 갖춘 민박집만 해도 17채나 건설하였다. 또한 상급으로부터 1000만원 정책보조금을 유치하여 방천조선민속레저오락장과 투우경기장, 그네, 씨름경기장, 널뛰기 등 각종 민속행사시설도 마련하였다. 방천마을의 관광수입만해도 인구당 5000여원, 사초봉늪과 두만강에서 잡아내는 물고기수입만해도 한해에 인구당 1만5000원을 웃돌고있다. 방천촌의 《코기러기》 김만혁서기는 력래로 갖은 시련을 이겨낸 방천은 오늘날 “바다로”, 세계로 나아가는 “1벨트 1로드”전략의 전초에서 명실상부한 “동방의 제1촌”으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힘차게 노를 저어갈것이라 의지를 밝혔다. / 김원범 김청수 /길림신문
978    [시문학소사전] - "페미니즘"란?... "페미니스트"란?... 댓글:  조회:6885  추천:0  2017-02-05
페미니즘, 여성주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연속 기획: 여성주의 여성 ·여성성 역사[보이기] 여성주의 사조[보이기] 개념[보이기] 이론[보이기] 나라별 여성주의[보이기]   v • d • e • h   여성주의 여성주의(女性主義) 또는 페미니즘(영어: feminism /ˈfɛməˌnɪzəm/)은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다.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여성운동가 혹은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였다.[1] [2]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종족, 능력, 성적 지향, 지리적 위치, 국적 혹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들을 의미한다. '남성 반대'가 아니라 '비차별과 성평등'을 옹호한다.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3] [4] [5] [6] 여성주의는 여성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성주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여성주의'에 의하면 여성의 사회 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이고, 이에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 기회와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종속 상황은 사라진다고 설명한다.[6] 여성주의는 다양한 사회 이론과 정치적 움직임 그리고 도덕철학을 포함한다. 사회 운동으로서 여성주의는 인간에 대한 차별의 일환인 성 차별을 종식시키고, 소외된 '여성의 권리와 이익 그리고 관심사'를 대중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에 집중한다.[7]   목차   [숨기기]  1개요 2기원 2.1한국의 여성주의 2.1.1자유여성주의 2.1.2사회여성주의 2.1.3기독교 여성주의 2.1.4급진여성주의 2.1.5무정부주의 2.1.6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2.1.7문화주의 2.1.8분리주의자와 레즈비언 2.1.9흑인 페미니스트 2.1.10다민족주의 2.1.11탈식민지 2.1.12 제 3 세계 2.1.13관점 2.1.14자유 의지론자 2.1.15뉴 에이지 페미니즘 2.1.16포스트 구조 2.1.17 포스트 모던 2.1.18프랑스 2.1.19환경 2.1.20트랜스 페미니즘 3여타 사회운동과의 관계 3.1다른 사회 운동 조류와의 혼합 4전 세계적 수치 5읽을 거리 6영화 7참고 문헌 8함께 보기 9참조 10외부 고리   개요[편집] 학계의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불평등과 여성의 사회적 인식·지위를 기술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 중 퀴어 이론의 분파에 속하는 이들은 젠더와 심지어 성(sex)마저도 사회적 환상이라고 주장하며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하여 사회 관계를 이해하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 몇몇 여성주의 학자들은 모든 형태의 위계 질서, 기업과 정부, 그리고 모든 형태의 단체에 존재하는 질서가 탈중앙화되고 극단적인 민주주의 체제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그 어떠한 조직이라도 집중화되어 있다면 이는 남근중심적(androcentric) 가족 구조에 기반한 것이며 개혁하고 교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리하여 여성주의 학자들은 여성주의의 본질을 성과 젠더에 국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8] [9] [10] [11] 여성주의 정치적 활동가들은 주로 재생산 권리(낙태를 결정할 권리, 낙태에 대한 법적 제한의 제거, 피임에 대한 접근), 가정폭력, 임산부 휴가(maternity leave), 여성에 대한 동등한 임금, 성추행, 차별과 성폭력 등에 관심을 가졌다. 여성주의자들이 연구하는 분야는 가부장제, 편견, 성적 대상화와 억압 등이 있다.[12] 1960년대와 1970년대 여성주의와 여성주의 이론의 주축은 스스로 모든 여성의 대표라 여기는 서양 백인 중산층 여성의 문제만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다양한 제3세계 등의 여성주의 사상가들은 '여성'이 균질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그룹이라는 전제를 문제시하였다. 새로운 조류를 타고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출현하였으며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젠더·섹슈얼리티와 타 사회 정체성들, 이를테면 인종이나 계급의 교차점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여성주의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으로 나아갔고, 사회적 계급과 인종, 문화와 종교에 기반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이에 여성주의는 문화적으로 지역화되었으며, 해당 사회의 여성에게 중요한 문제를 대하고(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 선발 자본주의 경제의 유리천장 현상), 특정 현상들(이를테면 강간, 근친상간, 모성)이 보편적인 이슈인지를 토론하였다. 2006년 현재, 수많은 여성주의 정당이 존재한다.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여성보다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낮은 남성들도 증가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상대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던 남성들은 더 이상 남성이라는 사실만으로 여성보다 우위에 설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들은 열등감에 빠지게 되고 이것이 여성을 향한 범죄로 이어져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이런 종류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여성주의의 과제로 여겨졌다.[13] [14] [15] [16] [17] 기원[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여성주의의 역사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철학과 운동으로서의 여성주의는 계몽 시대의 매리 워틀리 몬태규(Mary Wortley Montagu)나 콩도르세 후작 등의, 여성의 교육을 촉구하는 사상가들에게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785년 네덜란드 공화국의 남부 도시 미델베르흐(Middleburg)에서 여성을 위한 과학 협회가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이 기간 동안 과학 등을 다루는 여성 잡지들이 대중화 되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여러 권리에 대한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년)은 여성주의적 첫 저서 중 하나이다. 19세기 여성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기 시작함에 따라 여성주의는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하였다. 여성주의 운동은 특히 19세기 사회 개혁 운동(초기 사회주의 운동)에 근거하였다.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 푸리에는 1837년 féminisme라는 단어를 도입하였다. 그는 이미 1808년 여성의 권리 신장이 모든 사회 진보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869년 밀은 "하나의 성이 타 성에게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 이는 인류 발전에 크나큰 장애가 되고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려 여성의 대상화를 저술하였다. 여성주의적인 조직의 첫 움직임은 1848년 뉴욕 주의 Senecca Falls에서 열린 첫 여성 권리 컨벤션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여성들의 권리 신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917년의 러시아 10월 혁명은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의 러시아 혁명 정부는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완전히 동등한 정치권을 주었으며, 가사노동 이외의 사회 활동도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도 마련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한 남성들을 대신하여 국내 산업노동의 큰 비중을 차지한 것 역시 여성들의 권리신장에 크게 기여한 요소이다. 사회적 편견이 남성의 전업주부화를 막고 있기에 여성의 사회 진출운동과 더불러 남성의 가정 진출 운동도 필요하다. 남성을 괴롭히며 성적인 쾌감을 얻는 펨돔 ( femdom ) 과 페미니즘 ( feminism) 이 혼동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둘은 따로 분리되어 생각되어야 한다. 여성운동가들이 양성 평등을 넘어서 여성에게만 유리한 제도를 만들려고 한다며 페미니즘을 가진 여성은 펨돔이 대부분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어 왔으나 정신의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의 결과로서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양성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부라는 부서가 있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 한국의 여성주의[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여성주의입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1920년대부터 등장하였다. 이들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기독교 페미니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중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결혼 제도, 정조론을 비판하였는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결혼의 자유, 연애의 자유, 성적 자유를 주장한 반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정이나 순결에서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행정부에 여성부 혹은 여성가족부가 포함된 것은, 대한민국에 젠더폭력이 존재하고 대한민국의 성평등 지수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국인 상황 속에서 성 차별 상황을 보정하고 성평등을 지향하고자 하는 취지이다.[18] [19] [20] [21] [22] [23] [24] 자유여성주의[편집]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여성주의[25]의 계파로,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이성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성들이 이성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줄 법률적,교육적 개혁캠페인을 강조하였다. 한국에서는 대표적 자유여성주의자로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박인덕 등이 있었다. 이들은 자유 연애, 정조 문제 철폐, 섹슈얼리티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들은 모성 보다 여성의 정체성, 섹슈얼리티를 중요하게 여겼다. 나혜석은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떡 먹고 싶을 때 떡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선언하였다.[25] 모성애에 대해서는 사회와 국가가 강요하는 관습이며 모성애를 갖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였다. 나혜석 등은 영과 육체가 하나가 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이 된다고 주장하였고, 김일엽은 연애, 결혼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신뢰만 저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정조라고 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순결과 정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사랑, 자유로운 연애를 주장하였다. 사회여성주의[편집]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는 여성주의의[25]계파다. 허정숙, 주세죽, 정칠성 등이었다. 이들은 "계급이 있는 한 참된 연애는 없다."고 주장하여 반봉건 계급투쟁에 훨씬 더 무게를 실었다. 이들은 여성 그 자체 보다는 민족과 계급을 앞세웠다. 여성이 해방되려면 계급해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25] 모성애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았지만 콜론타이의 견해를 수용, 국가와 사회가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고, 가사노동을 분담하여 여성을 가정에서 해방시키자는 것이 주 견해였다. 그리고 계급해방이 되려면 민족 해방부터 이룩해야 된다고 보았다. 이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순결과 정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사랑, 자유로운 연애를 주장했다. 그러나 남자, 여자가 평등한 관계여야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단순히 성적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을 내세웠다면 이들은 봉건 제도와 도덕관에 저항하는 뜻에서 자유 연애를 외쳤다. 이들은 자유 연애를 여성 해방으로 간주하였다. 기독교 여성주의[편집] 기독교 계열 여성운동가로는 김활란, 황신덕 등이 있었다.[25] 기독교 계몽 운동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가부장적인 기독교 윤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25] 일부 일처제를 강조하고 순결을 강조한 기독교는 축첩 제도라는 봉건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유교적 가부장제의 정절론, 모성론과는 뜻을 같이 하였다.[25] 급진여성주의[편집] 급진 여성주의는 가부장제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구조로 보고, 남성주의가 여성을 억압한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초기 미국의 급진 여성주의자 파이어스톤은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억압의 근원을 신체적 성차에 두었는데[26], 가부장제는 초역사적인 것이며 가장 근원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가족의 형식에서는 그 대안을 찾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므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은 분리주의를 채택하여 가부장제로부터 철수하여야 하며, 남성과는 무관한 여성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27]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성, 출산, 육아와 같은 여성의 신체적 능력을 찬양하고, 이러한 사적인 문제들을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가 하면, 이성애를 평등한 관계로 변화시키는 노력의 일환으로 레즈비어니즘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기도 한다. 무정부주의[편집] 무정부주의는 무정부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한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가부장제를 비자발적 위계주의의 징후로 간주한다. 무정부주의자들은 투쟁에 대항하는 투쟁은 계급 투쟁과 무정부주의 투쟁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믿는다. 본질적으로, 철학은 무정부주의 투쟁을 무정부주의 투쟁의 필요성과 그 반대의 투쟁의 필수 요소로 본다. L.. Susan Brown이 말하듯, "무정부주의는 모든 권력의 관계에 반대하는 정치 철학이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페미니스트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는 EmmaGoldman, Federica, Voltairine, Maria Cleyre, 마리아 Lacerda, 마리아 파슨스 등이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 Federación Anarquista(“Ibérica”)와 Mujeres는 무정부 주의자들과 반체제 인사들을 옹호하기 위해 조직된 무정부주의 페미니스트와 연계되어 있다. 현대 미술관에는 Germaine 그릴, 수잔 브라운, 그리고 eco-feminist Starhawk가 포함되어 있다. 현대의 anarcha-feminist 그룹에는 볼리비아의 Mujeres Creando, Radical Cheerleaders, 스페인의 anarcha-feminist Eskalera, 그리고 연례 La Rivolta Karakola가 포함되어 있다. 보스턴 회의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편집] 여성 해방 운동가들은 여성들의 억압과 억압, 노동 착취에 대한 억압을 마르크스 주의자들에게 연결시켜 준다. 여권 신장 운동가들은 직장과 가정 양쪽 모두에서 불평등한 지위가 여성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주의자들은 여성들이 여성들을 착취하는 가부장제로 여성들을 착취하는 가부장제, 가정 주부, 보육원, 그리고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개별적인 기준보다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변화에 그들의 에너지를 집중시킨다. 그들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집단들에 영향을 미치는 여성들의 억압의 일환으로 여성들의 억압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집단들과 함께 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르크스는 학급의 억압이 성 차별을 극복할 때 사라질 것이라고 느꼈다. 이것은 마르크스 주의자 페미니즘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와 많은 급진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사회주의 당원들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고전적 마르크스 주의자들과 8월 8일의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성 차별과 계급 착취 사이의 강력한 설명에 집중한다. 몇몇 다른 사회주의 여성들에게, 성 차별의 관점은 순진하고 많은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이 성별 현상으로부터 성별 현상을 분리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기고자들은 이 전통적인 마르크스 주의자들을 억압하는 것 외에 성별 억압에 대해 주로 침묵을 지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생각을 비판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Clara Zetkin와 엘리노어 Marx는 남성들의 demonization에 반대하였고, 가능한 한 많은 불평등한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혁명을 지지했다. 그들의 움직임이 이미 여성 평등의 가장 급진적인 요구 사항을 가지고 있었을 때,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포함한, Clara Zetkin와 알렉산드라 Kollontai counterposed는 그것들을 결합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페미니즘에 대항하는 것을 반대한다. 문화주의[편집] 여성적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성을 경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본성을 경시하는 "여성 본성"이나 "여성성"의 이념이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를 강조하지만, 심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으로 건설되는 것을 고려한다. 그것의 비평가들은 그것이 여성과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견해 차이에 바탕을 두고 있고, 독립성과 제도를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스트들을 정치에서 은퇴 생활로 후퇴시키도록 이끌었다. 그런 비평가인 앨리스 윌리엄스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대명사인 '급진적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소개하기 위해 1975년에 '문화적 페미니즘'을 도입했다. 분리주의자와 레즈비언[편집] 분리주의자의 페미니즘은 이성애자들 간의 관계를 지지하지 않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한 형태이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그러므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남녀 평등주의자들의 지지자들은 남녀 간의 성적 차이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남성들이 페미니스트 운동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선의의 남성들도 남성들을 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마릴린 맨슨은 분리 주의자들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남성들, 기관들, 역할들, 그리고 남성들이 지배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구별하고 흑인 페미니스트[편집] 흑인 페미니즘은 성 차별, 계급 차별, 인종 차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남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남녀 차별을 극복하는 페미니즘의 형태는 인종 차별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인종 차별을 통해 차별할 수 있다. National Black Organization은 1973년에 Florynce Kennedy, 마가렛 슬론, 그리고 도리스 라이트에 의해 설립되었다. "세기의 어떠한 다른 조직들도 성 차별과 인종 차별에 대한 정면 공격을 시작했다." NBFO는 또한 1974년에 설립된 Boston-based 단체의 설립을 계기로 보스톤에서 중요한 활동적인 행동 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Combahee 단체의 설립을 유도하는 데 일조했다. 지난 십년 동안, 아직도 25세기 중반의 흑인 페미니즘을 위한 청사진을 제공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여성 해방 운동가인 바바라 스미스의 페미니즘의 정의는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정치적 이론이자 관행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흑인 여성들, 노동자 계급 여성들, 가난한 여성들, 육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 레즈비언 여성들, 여성들, 그리고 백인 여성들의 백인 여성들. Combahee River집단은 1974년에 흑인 여성들이 인종 차별 철폐, 성 차별 철폐, 계급 차별 철폐를 요구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자유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진화된 이론 중 하나는 앨리스 워커의 모험이었다. 백인 여성들에 의해 특별히 백인 여성들이 주도하는 초기 페미니스트 운동은 백인 중산층의 움직임이었고 대체로 인종 차별 주의와 무정부주의에 기반을 둔 억압을 무시하고 있었다. 앨리스 워커와 다른 인종 차별 주의자들은 흑인 여성들이 백인 여성들로부터 다른 인종 차별적인 억압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안젤라 데이비스는 인종, 성별, 인종, 그리고 등급(1981)에서 인종, 성별, 계급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논쟁을 벌인 첫번째 사람들 중 한명이다. 저명한 페미니스트인 Kimberle Crenshaw는 1980년대 후반에 anti-discrimination 법의 일환으로 work 법의 일환으로 intersectionality의 이름을 late의 한 부분으로 제시했다.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 다민족주의[편집] 다민족주의 페미니즘( women of color of)은 여성의 삶과 여성의 삶에 대한 삶과 경험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 이론은 1990년대에 등장했고, Maxine Baca Zinn 박사가 이끄는 Chicana feminist Dill 박사와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 여성과 흑인 여성의 사회학 전문가인 Bonnie Thornton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종종 무시당한 채 무시당하긴 했지만, Multiracial Feminists는 백인 페미니스트들과 동시에 결성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페미니스트 열풍이 불기 시작하는 동안, 다민족주의 페미니스트는 칼라와 백인 여성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일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만의 공간 밖에서도 그들 스스로를 꾸몄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페미니즘은 여성의 다양성과 차이점을 단순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여성들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 특히 성별의 사회적 건설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식민지[편집] 식민주의 페미니즘은 때로는 제 3 세계 페미니즘이라고도 불리는데 식민지주의에 대해 부분적으로 논의한다. 식민지주의는 이주, 노예제, 억압, 저항, 표현, 차이, 인종, 성별, 장소 및 제국주의의 영향력 있는 담론에 대한 반응을 포함한다 유럽." 포스트 식민주의 페미니즘은 인종주의, 민족 문제, 그리고 식민지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효과에 오래 지속되며, 백인이 아닌 비 서구 여성의 고유 한성에 관한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최근 식민지화 된 국가들과 가부장제 내의 여성들 사이의 유사점을 본다. 식민지주의와 식민지주의 페미니즘은 모두 "지배적 인 문화와의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하위 집단의 관점"을 취한다. 서양 여성 주의자들은 동양주의의 한 적용 하에서 여성의 문제를 보편화하여 사회 계급과 종족 정체성을 배제하고 동성애 공포증을 강화하며 비 백인 비 서구 여성의 활동과 목소리를 무시한다. 탈 식민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급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찬드라 탈 페드 모한 티 (Candra Talpade Mohanty)와 같은 일부 사람들은 민족 중심주의에 대한 서구 페미니즘에 비판적이다. 안젤라 데이비스 (Angela Davis)와 앨리스 워커 (Alice Walker) 같은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이 견해를 공유합니다. 서양의 관점에 대한 또 다른 평론가는 Sarojini Sahoo입니다. 포스트 식민주의 페미니스트는 서구 여권론 사상의 보편화 경향과 주류 식민지 사상의 성 문제에 대한 관심 부족에 대응 한 페미니스트로 묘사 될 수 있다. 식민주의는 성별 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민지 세력은 종종 식민지 지역에 서구의 규범을 강요했다. 포스트 식민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식민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은 문화는 종종 매우 다르며 그렇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40 년대와 50 년대에 유엔이 결성 된 이후, 과거의 식민지는 서구에 의해 "사회적 진보"로 여겨졌습니다. 그 이후 개발 도상국 여성의 지위는 유엔과 같은 기구에 의해 감시되었다. 여성에 의해 받아 들여지는 전통적 관행과 역할 (때로는 서양 표준에 의해 불쾌한 것으로 여겨짐)은 식민지 억압에 대항하는 반란의 한 형태로 간주 될 수 있다. 이러한 압제는 식민지 문화의 영광을 가져올 수 있다. 식민지 이전의 문화는 권력 계층화의 전통을 가진 문화에서 젠더 라인을 따라 가면 성 차별에 대한 문제를 받아들이거나 거절 할 수 있다. 탈 식민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오늘날 서구 식민 통치자들에 의해 부과 된 것보다는 사회의 그들의 문화적 모델 안에서 성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투쟁한다. 포스트 식민주의 페미니즘은 초 민족적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자는 흑인 페미니즘과 겹치고 긴밀하게 얽혀있다. 둘 다 인종주의에 반응하고 자신의 문화와 서구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남성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제 3 세계[편집] 제 3 세계 페미니즘은 소위 제 3 세계 국가에서 페미니즘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의 견해를 얻은 페미니스트에 의해 개발 된 페미니즘 이론의 집단으로 묘사되어왔다. 제 3 세계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운동에 종사했지만 Chandra Talpade Mohanty와 Sarojini Sahoo는 그것이 민족 중심 주의적이며 서드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제 3 세계 국가에서 온 여성의 독특한 경험이나 제 3 세계 국가 고유의 페미니즘. 모 항티 (Mohanty)에 따르면 제 3 세계의 여성들은 서구 페미니즘이 여성에 대한 내부 이해를 "내부 인종 차별주의, 계급주의 및 동성애 공포증"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담화는 아프리카 페미니즘과 탈 식민주의 페미니즘과 강하게 관련되어있다. 그것의 발달은 또한 흑인 페미니즘, 여성주의, "Africana womanism", "motherism", "Stiwanism", "negofeminism", chicana 페미니즘 및 "femalism"와 관련있다. 관점[편집] 1980 년대 이후, 페미니즘은 여성주의가 여성의 불평등 경험이 인종주의, 동성애 공포증, 계급주의 및 식민지화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 해왔다. 1980 년대 후반과 1990 년대에, 포스트 모던 페미니스트들은 성역 할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고, 문화와 역사에 걸쳐 여성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유 의지론자[편집] "스탠포드 철학 백과 사전에 따르면,"고전주의 자유주의자 또는 자유주의 여성주의는 강압적 인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자유를 인정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자기 소유주로서의 지위 때문에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 libertarian feminism의 이론, 또는 libertarian 이데올로기와 연결된 페미니즘의 종류에 몇 가지 범주가 있습니다. 아나 카 페미니즘은 근대주의적 자유주의 주의자 자유주의보다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구현 한 페미니스트와 무정부주의 신념을 결합한다. 최근 웬디 맥 엘로이 (Wendy McElroy)는 페미니즘과 무정부주의 자본주의 또는 현대의 파룬궁 론자 자유주의를 결합한 "ifeminism"이나 "개인주의적 페미니즘"이라고 명명 한 입장을 정의했으며 친 자본주의와 반 국가주의적 입장은 여성을 위한 동등한 권리와 권한 부여에 중점을 둔다.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자 - 페미니즘은 미국에 기반을 둔 개인 주의적 무정부주의 운동에서 성장했다. 개인주의적 페미니즘은 전형적으로 웬디 맥 엘로이 (Wendy McElroy)와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 (Christina Hoff Sommers)와 같은 작가들이 정치적 성의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페미니즘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개인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McElroy와 같은 일부 개인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정부가 가부장제와 같은 강압적 인 계층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몸으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반대하지만,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역할은 단순히 모든 사람들이 여성들은 강제적 인 간섭에 대한 권리가 존중됩니다. 소머스는 스탠포드 철학 백과 사전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에 의해 "사회적으로 보수적 인 여성 주의자"로 묘사됩니다. 비평가들은 그녀를 반 페미니즘이라고 불렀다. 뉴 에이지 페미니즘[편집] 뉴 에이지 페미니즘은 21 세기에 두 번째 및 세 번째 파동 페미니즘에 대한 연속성과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여성의 전통에 대한 정의에 도전하고 민족의 요소, 소녀의 힘, 개인주의 페미니즘, 섹스 플러스와 포스트 모더니즘을 포함하여 시대의 변화를 포용한다. " 뉴 에이지 페미니즘에서 여성 (또는 남성)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여성적"으로 정의 된 자질을 품고 있지만 여전히 직장에서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차별 여성 (및 "여성"남성)과 싸우고 있으며, 21 세기 사회의 다른 면. 이 운동은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포용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가치를 심각하게 저평가하는"문화에 대응합니다. 둘째 및 셋째 파도 페미니스트와는 달리 뉴 에이지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대우 받도록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수용 할지라도 그러한 차이점을 형평성으로 다루는 반면에도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여성 생물학 (신체적, 호르몬 적, 심리적)을 부정하지 않으며, 여전히 억압을 정당화하지 못하게 하면서 수용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와의 생물학적으로 영향을 받는 차이점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지원하고 문화적으로 "여성"으로 정의 된 - 변덕스럽고 관절 적이며 부드럽고 조용한 - 특성을 받아들입니다. 어떤 종류의 친 페미니즘 이데올로기와도 관련이 있다. " 뉴 에이지 페미니스트들은 자녀를 갖거나 결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택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뉴 에이지 페미니스트는 직업과 가족 모두에 큰 기쁨이 있음을 알고 있으며, 둘 다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낍니다. 이 페미니스트는 특별한 대우 또는 순수하게 동등한 대우를 찾지 않습니다. 그녀는 공평한 대우, 직장에서의 존중, 평등 한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녀는 일하는 여성들이 임신을 하고, 출산 휴가를 취하고, 공개적으로 간호사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동시에, 남성 여성들만큼 돈을 받는다. 그 사이에, 그녀는 걸음 걸이, 성 노동자, 배꼽 및 폴 댄서, # 자유로운 니플 캠페인, 반 (反) 희롱 및 반대자 희생 운동에 대한지지를 제공합니다. 그녀는 성적 착취를 비난하지만 여성의 (또는 누구의) 자신의 "여성"성에 의해 탐구되고 권한을 부여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싫어하지 않으며, 많은 뉴 에이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으로 확인되거나 남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합의에 따라 수행되는 한 기사와 성적 지배와 같은 특정 남성 관행을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뉴 에이지 페미니스트의 사례로는 레이디 가가 (Lady Gaga)와 비욘세 (Beyoncé) 포스트 구조[편집] 프랑스 페미니즘이라고도 불리는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즘은 정신 분석, 언어학, 정치 이론 (맑스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이론), 인종 이론, 문학 이론 및 여성 주의자 관심사에 대한 다른 지적 흐름을 포함한 다양한 인식론적 운동의 통찰력을 사용한다. 많은 포스트 구조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차이가 가부장적 지배와의 투쟁에서 여성이 소유 한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이며, 페미니스트 운동을 평등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평등이 여전히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 과다한 선택권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성적 또는 가부장적 인 관점  포스트 모던[편집] 함부르크 대학교 강의에서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 포스트 모던주의 페미니즘은 포스트 모던과 포스트 구조주의 이론을 통합 한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접근법이다.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는 성 (sex)뿐만 아니라 성 (sex)도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1990 년 저서 「성기 문제」에서 그녀는 Simone de Beauvoir, Michel Foucault 및 Jacques Lacan의 작품을 비평하고 비평합니다. 버틀러 (Butler)는 생물학적 섹스와 사회적으로 성별 된 성별 사이의 이전 페미니즘에 의해 이끌어 낸 구별을 비판합니다. 그녀는 성 / 젠더 구별이 본질주의에 대한 충분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버틀러의 경우 "여성"은 계급, 민족, 성 및 다른 정체성에 의해 복잡하게 얽힌 논쟁의 여지가 있는 범주입니다. 그녀는 성 (gender)이 수행 적이라고 말합니다. 이 주장은 여성의 종속에 대한 단일 원인이 없고 그 문제를 다루는 단일 접근법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사이보그 선언에서 Donna Haraway는 페미니즘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 특히 친화력보다는 정체성에 대한 강조를 비판합니다. 그녀는 이원론과 전통적인 성, 페미니즘, 정치의 한계를 뛰어 넘는 포스트 모던 페미니즘을 건설하기 위해 사이보그의 은유를 사용합니다. Haraway의 사이보그는 Oedipal 서사와 창세기와 같은 기독교인 신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그녀는 "사이보그는 이번에는 오이디언 프로젝트 없이는 유기적 인 가정의 모델에 대한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에덴 동산을 인식하지 못했고, 진흙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먼지로 돌아갈 꿈도 꾸지 않았다. " 포스트 모던주의 페미니즘 사상에서 중요한 지부는 현대의 정신 분석적 페미니즘에서 출현했다. 다른 포스트 모던 페미니스트 작품은 틀에 박힌 성역 할을 강조하며, 원래의 신념을 패러디로 묘사한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것에 대해서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역사는 무시되고 지나치게 과거의 신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근대 페미니즘 이론은 독점적으로는 아니지만 주로 서구 중산층 학계와 관련이 있다고 광범위하게 비판 받았다. 포스트 모더니스트 페미니스트 인 Mary Joe Frug은 주류 페미니즘이 인종과 계급과 관련된 문제에 너무 집중하지 않고 부주의 하다는 것을 비판했다. 프랑스[편집] 1970 년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글쓰기'로 해석되는 '에리트레아 페 미니 틴'의 개념으로 페미니즘에 접근했다. Hélène Cixous는 글쓰기와 철학은 철학적이며, Luce Irigaray와 같은 다른 여권주의자들과 함께 "몸에서 글쓰기"가 파괴적인 운동으로 강조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정신 분석 학자이자 철학자 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Julia Kristeva)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에 영향을 미쳤다. 1980 년대 이후로, 예술가이자 정신 분석가 인 Bracha Ettinger의 작품은 문학 비평, 미술사 및 영화 이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Bracha Ettinger는 그녀가 행렬이라는 이름의 여성 - 모성 차원을 고안했으며, 그녀는 그것을 포함시킬 인간 대상의 정의뿐만 아니라 "매트릭스 형"공간, 대상 및 시선 (예술에서) 및 정신 분석과 윤리학의 분야에서 행렬 적 여성 차원의 중요성. 그러나 학자 엘리자베스 라이트 (Elizabeth Wright)가 지적했듯이, "이들 프랑스 페미니스트들 중 어느 누구도 영국계 (Anglophone) 세계에 나타난 것처럼 페미니즘 운동에 동조하지 않는다." 환경[편집] Ecofeminism는 페미니즘과 생태학을 연결합니다.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환경에 대한 지배를 가져 오는 동일한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여성의 지배를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토지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서양의 가부장제 제도는 여성의 억압과 자연 환경의 파괴에 책임이 있다고 여겨진다.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땅을 통제하고 따라서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상황에서, Ecofeminists는 자신의 이익, 성공 및 즐거움을 위해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 착취당하는 여성을 고려합니다. 따라서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과 환경이 모두 지배 경쟁에서 수동적 인 졸로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생태주의자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오히려 무력감으로 보이기 때문에 뚜렷하게 이점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cofeminism는 여성의 착취와 지배를 환경의 착취와 지배와 연결시킨다. ecofeminists는 사회적 및 생태 학적 불의를 고치는 방법으로 여성들이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족을 위해 의존하는 토지의 파괴를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된다 ecofeminism는 가부장적 서구 사회에 의해 억압의 자신의 공유 역사에서 오는 여성과 자연 사이의 연결이 있음을 주장한다. 반다나 시바 (Vandana Shiva)는 여성들은 일상 생활에서 무시당한 일상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환경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자연과 협력하여 부를 창출하고 번식하는 생계형 경제 여성들은 자연의 과정에 대한 전체론적이고 생태 학적으로 지식을 가진 전문가이다. 그러나 사회적 혜택과 생계 유지에 중점을 둔 이러한 대안적인 방식의 지식은 자본주의적인 환원 주의적 패러다임은 자연의 상호 연관성이나 여성의 삶과 일과 지식이 부의 창출과 연결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를 인식하지 못한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생태 학자 인 자넷 비얼 (Janet Biehl)은 여성과 자연 사이의 신비적 인 연관성에 너무 집중하고 여성의 실제 환경에는 충분하지 않은 생태주의를 비판했다. 트랜스 페미니즘[편집] 트랜스 페미니즘 (또는 트랜스 페미니즘)은 로버트 힐 (Robert Hill)에 의해 정의 된 것처럼, "여성주의 담론에 트랜스 젠더 담화를 적용하고 여성 담론을 트랜스 젠더 담론에 적용하는 것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페미니즘의 범주"이다. 힐 차관보는 트랜스 페미니즘이 주류 페미니즘의 통합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문맥에서 트랜스 페미니즘을 트랜스 젠더 및 트랜스 섹슈얼 (transsexual)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고에 적용 할 수 있는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합니다. Transfeminism에는 다양성, 신체 이미지, 억압, 우스 오기 니즘, 여성 대행사를 포함한 다른 제 3의 여성주의 여권 론의 주요 주제가 많이 포함됩니다. 그것은 페미니즘과 트랜스 우려를 병합에 대해 단지 아니라, 종종 페미니스트 분석과 더 넓게 트랜스 여성과 트랜스 사람을 직면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을 적용합니다. [표창장은 필요로 했다] 트랜스 페미니즘은 또한 세 번째의 관점에서 두 번째 물결 페미니즘의 중요한 분석을 포함 웨이브. 운동의 초기 목소리에는 케이트 보른 슈타인 (Kate Bornstein)과 샌디 스톤 (Sandy Stone)이있다. 그의 에세이 인 The Empire Strikes Back은 Janice Raymond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21 세기에는 수잔 스트라이커 (Susan Stryker)와 줄리아 세라노 (Julia Serano)가 트랜스젠더 여성 분야에서 일해 왔습니다. 여타 사회운동과의 관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정치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여성주의자들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어디든지 정의가 위협받으면 모든 곳에서 정의가 위협받게 된다"는 표현을 몸소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주의자들이 여성해방 운동 뿐만 아니라, 시민 권리 운동과 게이 권리 운동, 장애인 권리 운동 등을 지지한다. 이러한 여성주의의 면모는 세계 여성의 날(매년 3월 8일)의 성립 과정에서 잘 볼 수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이 국제적인 사회혁명의 흐름 가운데서 생겨났던 것처럼, 현재의 여성주의 운동도 세계적인 사회운동과 더불어 그 주장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다른 사회 운동 조류와의 혼합[편집] 2004년 11월 국회에 선출된 여성 비율 (백분율) 르완다 49.0 스웨덴 45.3 남아프리카 공화국 42.0 나미비아 42.0 덴마크 38.0 핀란드 37.5 노르웨이 36.4 네덜란드 35.0 독일 32.8 아이슬란드 30.2 뉴질랜드 28.3 오스트리아 27.5 캐나다 21.1 중국 20.2 영국(하원) 17.8 모리셔스 17.0 미국 15.0 일본 7.1 아래의 링크들은 모두 영문 위키백과 링크들이다. 마르크시스트 여성주의: 자본주의 체제 혁명을 여성 해방의 핵심 방법으로 여김. 에코페미니즘: 환경 파괴와 여성 억압의 연관성을 중요시. 탈식민주의 여성주의: 기존 여성주의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라 비판하며, 흑인, 제3 세계 여성들의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 아나키아 페미니즘: 무정부주의 운동과 여성 운동이 함께한 형태. 레즈비언 페미니즘: 성 다양성에 대한 옹호.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전 세계적 수치[편집] 다음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와 관련한 통계의 일부이다. 《유엔 인류 발전 2004년 보고서》: 〈28장, 젠더와 노동 부담 그리고 시간 배당〉에 의하면 무임금과 임금직 가사 노동을 감안할 경우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개발도상국의 농촌 지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약 20%를 더 일하였는데 이는 일당 98분에 해당한다. OECD 가입 국가들의 경우 여성은 5%를 더 일하며 이는 18분에 해당한다. 여성은 세계의 주요 입법 기관에서 소수를 차지한다. 1985년 핀란드 국회의 여성 비율은 32%에 도달해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현재 스웨덴은 45%로 가장 높은 수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오직 14%만이다. 세계 평균은 겨우 9%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Welsh Assembly Government는 전원 여성이다. 읽을 거리[편집]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 김명남 역.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창비. 2016년. ISBN 9788936472795 마사 C. 누스바움 저. 강동혁 역. 《혐오에서 인류애로》. 뿌리와이파이. 2016년. ISBN 9788964620656 로빈 월쇼 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역.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일다. 2015년. ISBN 9788996510079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박은정 역.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문학동네. 2015년. ISBN 9788954637954 리베카 솔닛 저. 김명남 역.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창작과비평. 2015년. ISBN 9788936472634 윤보라 외 저.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현실문화. 2015년. ISBN 9788965641704 댄 새비지 저. 박혜원 역. 《올 어바웃 섹스》. 책읽는수요일. 2015년. ISBN 9788962609578 오사 게렌발 저. 강희진 역. 《7층》. 우리나비. 2014년. ISBN 9791195352425 코델리아 파인 저. 이지윤 역. 《젠더, 만들어진 성》. 휴먼사이언스. 2014년. ISBN 9788958627111 브누아트 그루 저. 백선희 역.《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마음산책. 2014년. ISBN 9788960902022 스테퍼니 스탈 저. 고빛샘 역. 《빨래하는 페미니즘》. 민음사. 2014년. ISBN 9788937488399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저. 손영미 역. 《여권의 옹호》. 연암서가. 2014년. ISBN 9788994054599 다니엘 버그너 저. 김학영 역. 《욕망하는 여자》. 메디치미디어. 2013년. ISBN 9788994612867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13년. ISBN 9788991799806 우에노 지즈코 저. 나일등 역.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은행나무. 2012년. ISBN 9788956606217 낸시 홈스트롬 저. 유강은 역.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메이데이. 2012년. ISBN 9788991402621 엄기호 등.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 2011년. ISBN 9788957075517 벨 훅스 저. 윤은진 역. 《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으로》. 모티브북. 2010년. ISBN 9788991195394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이희영 역. 《제2의 성》. 동서문화사. 2009년. ISBN 9788949705385 알리스 슈바르처 저. 모명숙 역. 《사랑받지 않을 용기》. 미래인. 2008년. ISBN 9788983944955 주디스 버틀러 저.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 문학동네. 2008년. ISBN 9788954607360 버지니아 울프 저. 이미애 역.《자기만의 방》. 민음사. 2006년. ISBN 89-374-6130-7 전인권 저. 《남자의 탄생》. 푸른숲. 2003년. ISBN 9788971843772 정희진 등. 《성폭력을 다시 쓴다》. 한울아카데미. 2003년. ISBN 9788946031890 벨 훅스 저. 박정애 역. 《행복한 페미니즘》. 큰나. 2002년. ISBN 9788989580614 최정무, 일레인 김 저. 박은미 역. 《위험한 여성》. 삼인. 2001년. ISBN 9788987519555 정희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또하나의문화. 2001년. ISBN 9788985635479 여성신문사편집부. 《이야기 여성사 1》. 여성신문사. 2000년. ISBN 978-89-85554-46-6 여성신문사편집부. 《이야기 여성사 2》. 여성신문사. 2000년. ISBN 978-89-85554-47-3
977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자주 보면 좋을 법한 명언 100 댓글:  조회:4155  추천:0  2017-02-05
힘이 되는 100가지 명언 모음  세상 사는데 도움이 되는 명언들= *힘이 되는 명언 *용기를 주는 명언 *위로가 되는 명언...  좋은 명언 글귀 모음 100가지   ...자주 보면 좋을듯... ------------------------------------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키케로    산다는것 그것은 치열한 전투이다. -로망로랑    하루에 3시간을 걸으면 7년 후에 지구를 한바퀴 돌 수 있다.  -사무엘존슨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수 있다면 행복할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진정으로 웃으려면 고통을 참아야하며 , 나아가 고통을 즐길 줄 알아야 해 -찰리 채플린   직업에서 행복을 찾아라. 아니면 행복이 무엇인지 절대 모를 것이다 -엘버트 허버드   신은 용기있는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켄러      행복의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하게 된다  - 헬렌켈러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 로버트 엘리엇     단순하게 살아라. 현대인은 쓸데없는 절차와 일 때문에 얼마나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가?   -이드리스 샤흐     먼저 자신을 비웃어라. 다른 사람이 당신을 비웃기 전에    - 엘사 맥스웰      먼저핀꽃은 먼저진다  남보다 먼저 공을 세우려고 조급히 서둘것이 아니다    - 채근담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절대 어제를 후회하지 마라 . 인생은 오늘의 나 안에 있고 내일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L.론허바드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제임스 오펜하임     너무 소심하고 까다롭게 자신의 행동을 고민하지 말라 .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 더많이 실험할수록 더나아진다    - 랄프 왈도 에머슨     한번의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마라  -F.스콧 핏제랄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로버트 엘리엇     절대 어제를 후회하지 마라. 인생은 오늘의  내 안에 있고 내일은 스스로 만드는것이다.    -L론허바드      계단을 밟아야 계단 위에 올라설수 있다, -터키속담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앙드레 말로     좋은 성과를 얻으려면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차고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테     행복은 습관이다,그것을 몸에 지니라 -허버드       성공의 비결은 단 한 가지, 잘할 수 있는 일에 광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 톰 모나건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찰스다윈       평생 살 것처럼 꿈을 꾸어라.그리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 제임스 딘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 네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행동은 네 습관이된다 .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 간디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뚜렷이 구분하라 . 시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매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유용하게 활용하라. 그러면 젋은 날은 유쾌함으로 가득찰것이고 늙어서도 후회할 일이    적어질것이며 비록 가난할 때라도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수있다    - 루이사 메이올콧       절대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라. 당신 자신에게 기회를 주어라. 스스로가 형편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래봐야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 목표를 높이 세워라.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 마이크 맥라렌       1퍼센트의 가능성, 그것이 나의 길이다.   -나폴레옹       그대 자신의 영혼을 탐구하라.   다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대 혼자의 힘으로 하라.   그대의 여정에 다른 이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 이 길은 그대만의 길이요,    그대 혼자 가야할 길임을 명심하라.    비록 다른 이들과 함께 걸을 수는 있으나 다른 그 어느 누구도    그대가 선택한 길을 대신 가줄 수 없음을 알라.   -인디언 속담        고통이 남기고 간 뒤를 보라! 고난이 지나면 반드시 기쁨이 스며든다. -괴테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법정스님 -버리고 떠나기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 -괴테      화려한 일을 추구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재능이며,    자신의 행동에 쏟아 붓는 사랑의 정도이다. -머더 테레사     마음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실천하여야 한다.   -이소룡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일에 더 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안창호       나이가 60이다 70이다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늙었다 젊었다 할 수 없다.    늙고 젊은 것은 그 사람의 신념이 늙었느냐 젊었느냐 하는데 있다.   -맥아더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한다면 우리들은 우리자신에 깜짝 놀랄 것이다.    -에디슨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법정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행복은 결코 많고 큰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 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법정스님 - 홀로사는 즐거움 에서        물러나서 조용하게 구하면 배울 수 있는 스승은 많다.    사람은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모두 스승으로서    배울 것이 많은 법이다.    -맹자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 -괴테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것은 절대로 물리학이나 윤리학의 문제가 아니다.   -아인슈타인       해야 할 것을 하라. 모든 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동시에 특히 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톨스토이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괴테        화가 날 때는 100까지 세라. 최악일 때는 욕설을 퍼부어라. -마크 트웨인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이 잃은 것이고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많이 잃은 것이며   용기를 잃은 사람은 모든것을 잃은 것이다   -세르반테스        돈이란 바닷물과도 같다. 그것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    -쇼펜하우어        이룰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수 없는 적과 싸우며   이룰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잡을수 없는 저 하늘의 별도 잡자    -세르반테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헬렌 켈러       고난의 시기에 동요하지 않는 것, 이것은 진정 칭찬받을 만한 뛰어난 인물의 증거다.    -베토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 생떽쥐베리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진정한 부자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진실로 가난한 사람이다.   -솔론       성공해서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알랭     곧 위에 비교하면 족하지 못하나,아래에 비교하면 남음이 있다.   -명심보감       그대의 하루 하루를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 호라티우스        자신을 내보여라. 그러면 재능이 드러날 것이다.    - 발타사르 그라시안      자신의 본성이 어떤것이든 그에 충실하라 . 자신이 가진 재능의 끈을 놓아 버리지 마라. 본성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 성공할것이다 -시드니 스미스        당신이 할수 있다고 믿든 할수 없다고 믿든 믿는 대로 될것이다.- 헨리 포드        단순하게 살라. 쓸데없는 절차와 일 때문에 얼마나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가?    이드리스 샤흐       당신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그사실을 잊지마라 . 지금까지 당신이 만들어온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당신이 있는것이다 .    - 바바라 홀       지금이야 말로 일할때다. 지금이야말로 싸울때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때다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수있는가- 토마스 아켐피스       모든것들에는 나름의 경이로움과 심지어 어둠과 침묵이 있고 , 내가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나는 그속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헬렌켈러        작은 기회로 부터 종종 위대한 업적이 시작된다    -데모스테네스        인생이란 학교에는 불행 이란 훌륭한 스승이 있다. 그 스승 때문에 우리는 더욱 단련되   는 것이다. -프리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 헨렌켈러        도저히 손댈 수가 없는 곤란에 부딪혔다면 과감하게 그 속으로 뛰어들라 .    그리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가능해진다.       용기있는 자로 살아라.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용기 있는 가슴으로 불행에 맞서라. -키케로     최고에 도달하려면 최저에서 시작하라.   -P.시루스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 나폴레옹       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내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메이벨 뉴컴버     한 번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마라.   -F.스콧 핏제랄드     인간의 삶 전체는 단지 한 순간에 불과하다 . 인생을 즐기자 - 플루타르코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 -셸리      일하여 얻으라 . 그러면 운명의 바퀴를 붙들어 잡은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당신의 행복은 무엇이 당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 낸시 설리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오직 나 자신뿐이다.   -오손 웰스-       먹고 싶은것을 다 먹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 . 인생을 경계선 없이 살면 기쁨이 덜하다 .    먹고싶은대로 다 먹을 수있다면 먹고싶은 것을 먹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나 - 톰행크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 나딘 스테어        절대 어제를 후회하지 마라 . 인생은 오늘의 나 안에 있고 내일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L.론허바드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엇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벤스타인     가난은 가난하다고 느끼는 곳에 존재한다 .- 에머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슬픈 날에 참고 견디라 .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것 모든건 하염없이 사라지나가 버리고 그리움이    되리니 - 푸쉬킨      문제점을 찾지 말고 해결책을 찾으라 - 헨리포드      우선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를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고 해야 할일을 하라 -에픽토테스     되찾을 수 없는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한다.   -루소      인생에 뜻을 세우는데 있어 늦은 때라곤 없다 - 볼드윈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최후의 성공을 거둘 때까지 밀고 나가자.   - 헨리포드      네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베토벤        우리는 두려움의 홍수에 버티기 위해서 끊임없이    용기의 둑을 쌓아야 한다.    -마틴 루터 킹        직접 눈으로 본 일도 오히려 참인지 아닌지    염려스러운데 더구나 등뒤에서 남이 말하는    것이야 어찌 이것을 깊이 믿을 수 있으랴?   -명심보감-     이미끝나버린 일을 후회하기 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못한 것을 후회하라   - 탈무드       실패는 잊어라 그러나 그것이 준 교훈은    절대 잊으면 안된다   -하버트 개서]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수도 다시 소생시킬수도 있다    -소포클레스       성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고장입니다   당신은 계단을 이용해야만 합니다    한계단 한계단씩 - 조 지라드        길을 잃는 다는 것은 곧 길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 동아프리카속담        삶을 사는 데는 단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여기는방식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덤으로 더 보기= ♣ 짧은 명언 모음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 괴테  화가 날 때는 100까지 세라.  최악일 때는 욕설을 퍼부어라.  - 마크 트웨인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이 잃은 것이고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이 잃은 것이며 용기를 잃은 사람은 모든것을 잃은 것이다 - 세르반테스  돈이란 바닷물과도 같다.  그것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  - 쇼펜하우어  이룰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수 없는 적과 싸우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잡을수 없는 저 하늘의 별도 잡자  - 세르반테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 헬렌 켈러 고난의 시기에 동요하지 않는 것,  이것은 진정 칭찬받을 만한 뛰어난 인물의 증거다.  - 베토벤  가령 1%의 희망이 없을지라도 필사의 일념으로 도전하는 자에게는 희망의 돌파구가 열린다 - 이케대 다이사쿠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 헬렌 켈러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진정한 부자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진실로 가난한 사람이다. - 솔론 성공해서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 알랭 작심삼일이라 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실천해 나가면 목표에 도달할수 있다. - 이케다 다이사쿠 그대의 하루 하루를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 호라티우스  자신을 내보여라.  그러면 재능이 드러날 것이다.  - 발타사르 그라시안 자신의 본성이 어떤것이든 그에 충실하라.  자신이 가진 재능의 끈을 놓아 버리지 마라.  본성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 성공할것이다  - 시드니 스미스  당신이 할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믿는 대로 될것이다. - 헨리 포드  단순하게 살라.  쓸데없는 절차와 일 때문에  얼마나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가?  - 이드리스 샤흐 당신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사실을 잊지마라 .  지금까지 당신이 만들어온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당신이 있는것이다. - 바바라 홀 지금이야 말로 일할때다.  지금이야말로 싸울때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때다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수있는가 - 토마스 아켐피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나약한 자신을 단련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나가자! - 이케다 다이사쿠 모든것들에는 나름의 경이로움과 심지어 어둠과 침묵이 있고 ,  내가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나는 그속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헬렌켈러     
976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말(語)" 명언모음 댓글:  조회:4151  추천:0  2017-02-05
가장 곤란한 것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알랭 격언이나 명언이라고 하는 것은 잘 이해할 수 없어도 놀랄 정도로 쓸모 있는 것이다.-푸시킨 경쟁심이나 허영심이 없이 다만 고요하고 조용한 감정의 교류만이 있는 대화는 가장 행복한 대화이다.-릴케 만일 말마다 귀를 기쁘게 해주고 일마다 마음을 즐겁게 한다면 그야말로 생명을 그대로 극약에 빠뜨리는 소치이니라. -채근담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다. ♣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 ♣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말라. ♣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 ♣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라. ♣ 화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 (올리버 웬들 홈스 - Oliver Wendell Holmes, Jr.)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탈무드 ○말로하는 사랑은 쉽게 외면할 수 있으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은 저항할 수가 없다.-무니햄 ♠ 질병은 입을 좇아 들어가고 화근은 입을 좇아 나온다.-태평어람 ♠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 한다는 것은 별개이다.-소포클레스 ♠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E.리스 ♠ 나의 언어(말)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비트겐슈타인 ● 내 뱉는 말은 상대방의 가슴속에 수 십 년 동안 화살처럼 꽂혀있다.-롱펠로우 ●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모로코속담 ●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 하는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이다.-미드라쉬 ↓아래는 남해안의 외도 풍경이랍니다. ● 남에게, 또 남의 일에 대해서 말을 삼가라.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다.-필딩 ●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숴버릴 수 있다-위클리프 ♧ 시간을 잘 맞춘 침묵은 말보다 더 좋은 웅변이다.-엠.티피 ♧ 어떠한 충고일지라도 길게 말하지 말라.-호라티우스 ♧ 훌륭한 유머는 사교계에서의 가장 훌륭한 의상이다.-세귀리 ♧ 리더의 제1조건은 화술이다(speech)이다.-제임스벤더 ◆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사아디.고레스틴 ♡ 마음에 품고 있는 말을 해 버리면 무거웠던 가슴도 가벼워진다.-쉴러 ♡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솔론 ♥ 말은 사상의 옷이다.-S.존슨 ♥ 나의 무한의 나라는 사고(思考)다. 그리고 나의 날개 있는 도구는 말이다.-쉴러 ♥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인류가 사용한 가장 효력 있는 약이다.-키프리 ♥ 말은 인간의 사상을 장식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페리콜 ♥ 말은 웅변의 재능과 함께 신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선물이다.-노아, 웹스터 ★거칠고 독살스러운 말은 그 근거가 약한 것을 시사(示唆)한다.-위고 ☆ 놓아 버린 말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호라티우스 ☆ 사람은 누구나 그가 하는 말에 의해서 그 자신을 비판한다. 원하든 않든 간에 말 한 마디가 남 앞에 자기의 초상을 그려 놓는 셈이다.-에머슨 ★ 말 한 마디가 세계를 지배한다.-쿠크 ★ 말수가 적으면 좋다.-오스틴 ★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기쁨은 더 많아진다.-톨스토이 ★ 말 수가 적고 친절한 것은 여성의 가장 좋은 장식이다.-톨스토이 ★ 사람이 깊은 지혜를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는 말은 더욱 더 단순하게 되는 것이다.-톨스토이 ★ 짧은 말에 오히려 많은 지혜가 감추어져 있다.-소포클레스 ☆ 말은 날개를 가지지만, 생각하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는다.-엘이어트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잡초로 가득 찬 정원과 같다.-하우얼 ● 인간이 두개의 귀와 한 개의 혀를 가진 것은 남의 말을 좀 더 잘 듣고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함이다-제돈 ●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라.-탈무드 ● 때는 흘러 없어지지만, 한번 뱉은 말은 영구히 남는다.-톨스토이- ○ 말이 쉬운 것은 결국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맹자 ○ 군자는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공자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노자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볼 수 없다.-장자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엄있는 말로도 설득하지 못한다.-안톤 체호프     =================덤으로 더 보기- 근면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얻을 것이 없다. - (호라티우스)  언젠가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듯 친구를 대하라! -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  단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해서 무조건 감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상처를 덮는 붕대가 아니다. - (휴 엘리어트)  인생은 본래 녹록지 않다 하지만 멍청한 사람에게는 더욱 녹록지 않다. - (존 웨인)  창의성이란 억제 안된 아이의 에너지가 정반대이자 적이라 할 수 있는 그것  즉 성인의 억제된 지능에 주어진 질서의식과 기적처럼 만나는 것이다. - (노먼 포도레츠)  창의성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것을 존재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렇게 신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 (미셸 쉬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능력과 탁월함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을 행복으로 정의했다. - (존 케네디)  탁월하다는 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탁월해지기 위해 이를 발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아이들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불멸이다. - (해브록 엘리스)  참된 스승은 제자들이 자신의 개인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방어한다. - (에이모스 브론슨 올코트)  인생이란 진지하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  나는 과거 속에 사는 편인데 내 생애 대부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허브 캐언)   ================== 1.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 에센 바흐  2.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 F. 실러  3. 짧은 인생은 시간낭비에 의해 더욱 짧아진다.  - S. 존슨  4.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활동이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일 함이다.  - 괴테  5.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그리고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 롱펠로  6.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면 그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하루를 유익하게 보낸 사람은 하루의 보물을 파낸 것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냄은 내 몸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7. 계획이란 미래에 관한 현재의 결정이다.  - 드래커  8. 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 베이컨  9. 시간이 덜어주거나  부드럽게 해주지 않는 슬픔이란 하나도 없다.  - 키케로  10.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갖는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많은 대가를 얻는다.  - 알렉산드리아 피네  11.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시간은 인생을 구성한 재료니까.  똑같이 출발하였는데, 세월이 지난 뒤에 보면  어떤 사람은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의 거리는 좀처럼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잘 이용했느냐  이용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냈느냐에 달려 있다.  - 벤자민 프랭클린  12. 그대의 하루 하루를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 호라티우스  13.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 있고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  - 소포클레스  14.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 라는 변명이다.  - 에디슨  15. 사람은 금전을 시간보다 중히 여기지만,  그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은 금전으론 살 수 없다.  - 유태격언  16. 시간을 최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늘 불평하는데 일인자이다.  - 라 브뤼에르  17. 삼십 분이란 티끌과 같은 시간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 동안이라도 티끌과 같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 괴테  18.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다.  이 자본을 잘 이용한 사람에겐 승리가 있다.  - 아뷰난드  19.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산다.  - J. 하비스  20. 시간의 참된 가치를 알라.  그것을 붙잡아라. 억류하라.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즐겨라.  게을리 하지 말며, 해이 해지지 말며,  우물거리지 말라.  오늘 하루 이 시간은 당신의 것이다. 하루를 착한 행위로 장식하라.  - 루즈벨트  21. 오늘의 식사는 내일로 미루지 않으면서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 많다.  - C. 힐티  22. 우리는 일 년 후면 다 잊어버릴 슬픔을 간직하느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있습니다.  소심하게 굴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 카네기  23.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뚜렷이 구분하라.  시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매 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유용하게 활용하라.  그러면 젊은 날은 유쾌함으로 가득 찰 것이고  늙어서도 후회할 일이 적어질 것이며  비록 가난할 때라도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 루이사 메이 올콧  24. 전력을 다해서 시간에 대항하라.  - 톨스토이  25. 지나가는 시간이란 잃어버린 시간이며,  게으름과 무기력한 시간이며,  몇 번이고 맹세를 해도 지키지 못하는 시간이며,  때때로 이사를 하고 끊임없이 돈을 구하는데 분주한 시간이다.  - J.P. 샤르트르  26. 하루의 가장 달콤한 순간은 새벽에 있다.  - 윌콕스  27. 희망과 근심, 공포와 불안 가운데  그대 앞에 빛나고 있는 하루 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은 그대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것이다.  - 호레스   
975    커피를 연료로 자동차가 못달리다?... 달린다!... 댓글:  조회:5612  추천:0  2017-02-03
영국에서 커피를 연료로 쓰는 자동차를 개발했습니다. 《비비씨》텔레비죤의 대중과학프로 전문가들이 1988년산 《폴스 와겐 씨로코》승용차를 개조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승용차는 영어의 《카(자동차)》라는 단어와 이딸리아어의 《카뿌치노》라는 단어를 합쳐 《카뿌치노》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짐칸에 있는 용기에서 커피가 끓어져 생기는 일산화탄소가 기관에로 넘어가 연소된다고 합니다. 1키로메터를 움직이는데 5키로그람의 《연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까운 앞날에 자동차는 시험적으로 런던에서 만체스터로 운행하여 발명품전시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연료의 가격에 따라 350 키로메터를 달리는데 1천 – 2천유로가 들것으로 보고있습니다. 가는 길에 50 – 70 키로메터당 한번씩 커피를 보충하고 려과기를 청소해야 한다고 합니다. 목적지까지 가는데 20시간이상 걸리지 않을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발명을 하게 된 목적은 공업적방법으로 생산된 원유만이 아니라 커피와 호두껍질, 톱밥, 유기오물도 리용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출처=SPUTNIK 한국어방송]: https://kr.sputniknews.com/korean.ruvr.ru/2010/03/08/7405580/
    ▲ 호박벌. /예천곤충연구소 제공   【경북 예천】 예천곤충연구소가 운영하는 예천군호박벌특화센터의 호박벌 완성봉군 및 우량 여왕벌 보급량이 크게 증가하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예천군호박벌특화센터는 지난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지역곤충자원산업화지원센터 공모사업으로 건립됐으며, 해마다 호박벌 완성봉군 3천여통과 여왕벌 3만마리를 과수 및 시설채소 재배농가와 전국 호박벌 생산업체 10여 곳에 공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호박벌특화센터의 시설현대화에 따른 생산능력 확대와 채종포, 체리류, 노지자두 등 새로운 작물 및 시설하우스 재배면적 확대로 예년보다 35% 이상 보급량이 증가했다. 이는 신설 호박벌 생산기업체가 여왕벌 양성기술의 부족으로 여왕벌을 공급받아 완성봉군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우수한 예천군 호박벌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호박벌은 이상기온과 환경오염, 자연 상태의 꿀벌 집단폐사, 시설원예작물 재배면적 증가 등으로 화분매개곤충으로서의 중요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 예천군호박벌특화센터가 생산한 호박벌 완성봉군과 우량 여왕벌을 전국에 공급하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좁은 공간에 적응을 잘해 토마토, 가지, 애호박, 참외, 딸기 등 시설원예작물 수정에 매우 효과적이고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등 과수에서도 탁월한 수정 능력이 입증된 것.  그 외에도 호박벌 방사는 결실률 30% 향상, 기형과 및 공동과 25% 감소, 수확량을 20% 이상 증대 등의 효과를 발생시켜 고령화된 농촌 일손부족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최효열 곤충연구담당은 “1997년부터 시작한 화분매개곤충사업이 호박벌특화센터 건립으로 전국에 호박벌을 보급하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며 “향후 생태교란에 문제가 없는 토종호박벌 인공증식기술과 우량여왕벌 개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예천군은 2월 초부터 과수 및 시설원예작물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화분매개곤충 주문신청을 받고 있다. 3월부터는 화분매개곤충 방사요령과 화분매개곤충 보호를 위한 방제력 교육을, 4월 말에는 사과꽃의 개화기에 맞춰 전국 사과주산지 농가에 호박벌을 집중 보급할 계획이다.  /정안진기자   분류 절지동물 > 곤충강 > 벌목 > 꿀벌과 원산지 아시아 (대한민국,중국,일본) 크기 약 1.2cm ~ 2.3cm 학명 Bombus ignitus 요약 세계 여러 곳에 분포하지만 온대지방에 가장 흔하다. 둥지를 만드는 뒤영벌과 기생성인 떡벌의 2속이 있다. 한국에는 뒤영벌 16종과 떡벌 5종이 분포한다.  호박벌은 털이 나 있으며 몸길이가 평균 1.5~2.5㎝이다. 검은 체색에 황색이나 오렌지색의 넓은 띠무늬가 있다. 뒤영벌은 조직적인 군집생활을 하는데, 각 둥지마다 여왕벌·수펄·일벌이 있다. 떡벌은 일벌 계급이 없으며, 뒤영벌 둥지로 들어가 거기에 산란하면 뒤영벌의 일벌이 떡벌의 알을 돌본다. 떡벌과 뒤영벌은 매우 닮았다.  뒤영벌의 여왕은 겨울 동안 동면을 한 후 둥지에 산란하는데, 처음에 나온 새끼들은 보통 4~8마리의 일벌이 된다. 이른 가을 여왕벌은 산란을 중지하고 이 군집은 점차 사멸한다. 다음 계절의 여왕벌은 후기에 낳은 알들로부터 발달한다.   호박벌 세계 여러 곳에 분포하지만 온대지방에 가장 흔하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과 인도의 저지대에는 살지 않으며, 비록 원산지는 아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이입되어 여러 꽃피는식물의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분류학적으로 보면 둥지를 만드는 뒤영벌(Bombus)과 기생성인 떡벌(Psithyrus)의 2속(屬)이 있는데, 경우에 따라 어떤 종(種)들은 제3의 속인 봄비아스속(Bombias)에 소속되고 있다. 한국에는 뒤영벌 16종과 떡벌 5종이 분포한다. 호박벌은 튼튼하게 생겼고 털이 나 있으며 몸길이가 평균 1.5~2.5㎝이다. 검은 체색에 황색이나 오렌지색의 넓은 띠들이 있으며 흔히 지상에, 일반적으로 새나 생쥐의 버려진 둥지에 둥지를 튼다. 뒤영벌은 사회성 벌로서 조직적 군집생활을 하는데 각 둥지마다 여왕벌과 수펄, 그리고 일벌이 있다. 떡벌은 일벌 계급이 없는데, 뒤영벌 둥지로 들어가 거기에 산란하면 뒤영벌의 일벌이 떡벌의 알을 돌본다. 떡벌과 떡벌이 기생하는 뒤영벌은 매우 닮았다. 영국산 프시티루스 베스탈리스(P. vestalis)는 때로 뒤영벌의 여왕벌을 침으로 찔러 죽이는데, 그렇게 되면 뒤영벌의 유충이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어 일벌은 기생하는 떡벌의 유충에만 신경쓰게 된다. 뒤영벌의 여왕은 겨울 동안 동면을 한 후 둥지에 산란하는데, 첫번째 배의 새끼들은 일반적으로 4~8마리의 일벌로 발달한다. 이 일벌들은 성충이 된 후 바로 여왕벌로부터 꽃가루를 구하고 둥지를 돌볼 임무를 받는다. 얼마 동안은 일벌들만 산출되며, 군집은 50~600개체가 될 때까지 성장한다. 늦은 여름 대집단의 일벌이 풍부한 먹이를 가져오며 수펄들과 새로운 여왕벌들이 생겨난다. 여왕벌이 낳은 미수정란으로부터 수펄이 발생하는 경우(처녀생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수펄은 일벌이 낳은 알로부터 부화해 나온다. 이른 가을 여왕벌은 산란을 중지하고, 이 군집은 여왕벌을 포함해 점차 사멸한다. 이 기간 동안 어떤 나방과 딱정벌레의 유충은 둥지에 남아 있는 뒤영벌의 알과 유충을 잡아먹는다. 다음 계절의 여왕벌들은 그 계절의 후기에 낳은 알들로부터 발달하며, 장차의 여왕벌들은 완전히 성장하면 둥지를 떠나, 교미하고 겨울 동안 동면을 할 안전한 장소를 찾는다. 각 여왕벌들은 그뒤 이듬해 봄에 새로운 둥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   벌 벌은 벌목에 딸린 곤충 가운데 개미과를 뺀 곤충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곤충 가운데 가장 큰 무리로, 전 세계에 약 10만 종이나 있고, 우리 나라에만도 900종이 있다. 벌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몸길이가 1mm도 안 되는 것부터 7cm가 넘는 것도 있다. 몸은 머리 · 가슴 · 배의 3부분으로 되고, 가슴에 2쌍의 투명한 날개와 3쌍의 다리가 있다. 앞날개는 길고 뒷날개는 짧으며, 날개의 맥은 종류에 따라 다르다. 뒷날개와 앞날개가 연결되어 1장의 날개처럼 펴고 날아다닌다. 머리는 둥글며 1쌍의 겹눈과 3개의 홑눈이 있다. 입틀은 먹이를 물어 핥고 빨아먹는 데 알맞게 생겼다. 가슴과 배 사이가 같은 너비를 이루는 종류도 있으나, 가슴과 배 사이가 가늘어져 가는 허리(배자루라 함)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암컷의 배 끝에는 알을 낳는 관인 산란관이 있는데, 이 산란관은 독침으로 쓰이기도 한다.  벌은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순서로 완전탈바꿈을 한다. 꿀벌 · 말벌 · 쌍살벌 따위는 배의 마디에서 나오는 밀랍으로 정육각형 모양의 집을 짓고, 많은 수가 모여서 사회 생활을 한다. 그러나 대개의 벌은 단독 생활을 한다. 벌은 꽃가루를 옮겨 주거나 해충의 천적으로, 유익한 곤충이다. 또한 벌의 먹이인 꿀은 사람에게도 좋은 약이 된다. 전세계에 약 10만 종, 우리 나라에는 900여 종이 있다. ▶ 벌의 생김새 벌의 생김새 수벌 여왕벌 일벌 여왕벌로 하여금 새끼를 낳게 한다. 하루에 약 2,000개의 알을 낳는다. 먹이를 모으고, 집을 지으며, 적을 물리치는 따위의 일을 한다. 벌집의 모습 말총벌 쌍살벌 장수말벌 여왕벌과 일벌 애벌레 벌집 토종벌통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집 분봉. 여왕벌은 봄이 되면 수벌과 일벌을 데리고 이사를 간다. 벌통 입구에 몰려 있는 벌 떼들 =================================== 랑만의 도시 빠리, 로상방뇨 친환경 소변기로 해법 모색 (ZOGLO) 2017년2월 6일 빠리의 친환경 로상방뇨 방지 소변기 '위리트로투아(Uritrottoir)' 사랑과 랑만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달리 로상방뇨 문제로 골치를 썩여온 프랑스의 수도 빠리가 이색적인 해법을 찾았다. 세련된 외관에 친환경기능까지 갖춘 소변기를 거리 곳곳에 설치해 로상방뇨에 따른 악취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의 미관도 개선한다는 발상이다. 4일 르피가로의 자매지인 피가로스코프에 따르면 빠리시는 최근 베르시와 17구 지역에 친환경 소변모음통인 '위리트로투아'의 시범모델을 설치했다. 프랑스의 산업디자인기업 '팔타지'가 제작한 현대적인 느낌의 이 소변기는 물을 사용할 필요없이 톱밥, 목재조각 등으로 구성된 통에 소변을 모은다.  소변기의 웃부분에는 꽃 등 식물을 재배할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했으며 심지어 소변을 모아 퇴비를 만들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소변에 포함된 질소성분과 짚더미의 탄소성분이 결합해 비료가 되는것이다. 이 소변기는 또한 락서방지 기능이 있는 페인트로 겉면을 칠했고 오줌이 가득 모이면 원격으로 제어되는 컴퓨터에 통보돼 시정부의 청사에서 빠리 외곽으로 소변을 수거해 퇴비를 만든다. '위키트로투아'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소변기(urinal)와 보행로(trottoir)를 합성한것으로서 대형 모델은 최대 600명의 소변을 모을수 있다고 한다.  빠리는 랑만적인 이미지와 달리 로상방뇨 문제로 골치를 썩여왔다. 빠리의 지하철역이나 도심에서 소변으로 인한 악취는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복병'이다. 급기야 빠리시는 지난해 가을 로상방뇨와 애완동물의 배설물 투기 등 거리의 반(反)문화적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전문 단속반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아직 시범설치단계에 불과하지만 비싼 가격(대당 인민페 3만원 상당)에도 '위리트로투아'는 인기몰이를 하고있다고 한다. 사진설명: 친환경 소변기의 원리[프랑스 디자인기업 팔타지 홈페이지 캡처] 스위스의 로잔과 영국의 런던 등 곳에서도 주문이 쇄도하고있다고 한다. 아직은 거리에서 '볼일이 급한' 남성들만 이 소변기를 리용할수 있다는것은 단점이다. 외신/연변일보 뉴미디어부 편집    
973    [록색문학평화주의者]-100여년만에 백두산호랑이 반도에 오다 댓글:  조회:5234  추천:0  2017-02-02
  ▲ 호랑이여 영원하라 한반도에 서식했던 백두산호랑이는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뒤 한반도 남쪽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진은 한 남성이 사냥된 호랑이 사체를 앞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 산림청 관련사진보기 한국엔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동물원 철창 안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권태롭고 기운빠진 커다란 고양이 말고, 깊은 숲에 살며 온 생명을 호령하는 진짜 호랑이가 이 땅엔 살지 않는다. 온갖 중요한 상징물에 호랑이 모양을 넣기를 즐기는 이 나라 사람들이 호랑이를 대체 어떻게 대했길래 국토의 70%가 산림이라는 이 나라에 그 많던 호랑이가 한 마리도 남지 않은 것일까? 지난 26일 주목받는 뉴스 하나가 있었다. 산림청이 중국이 기증한 백두산 호랑이 2마리를 방사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산림청은 두만과 금강이란 이름의 수컷 호랑이 두 마리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안 호랑이 숲에 옮겼다고 밝혔는데, 이들은 이곳에서 적응훈련을 받은 뒤 방사돼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반도에서 멸종된 백두산 호랑이를 되살리겠다는 프로젝트로 수목원엔 국내 최대규모의 호랑이방사장(4만8000m²)이 꾸려져 최대 10마리까지 호랑이를 수용할 수 있다. 산림청은 올 상반기 중 과천 서울대공원 등에서 암컷 두 마리를 포함해 호랑이 세 마리를 더 들여올 계획이다. 백두산 호랑이가 한반도 남쪽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건 지난 1921년의 일이다.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목격된 뒤 단 한 마리의 호랑이도 발견된 바 없다. 한국은 공식적인 호랑이 멸종국가로 분류된다.   100여년 전 산마다 득시글 거렸다는 호랑이가 멸종된 건 인간이 호랑이와의 공존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호랑이 가죽과 이빨, 뼈 등을 얻기 위해 수렵을 적극 허용했던 정책적인 문제도 없지 않다. 산중의 왕으로 한반도를 호령했다는 호랑이의 멸종에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은 과연 없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호랑이 되살리기 프로젝트 ▲ 호랑이여 영원하라 책 표지 ⓒ 글항아리 관련사진보기 책 는 세계 곳곳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와 그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소개한 책이다. '호랑이여 영원하라Tigers Forever'는 대형 고양잇과 전문가로 꼽히는 앨런 라비노비츠를 중심으로 호랑이 보호를 위해 싸우는 각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멸종위기종 보호사업이다. 기업과 국가, 환경보호 단체 등이 폭넓게 참여, 호랑이의 개체수 증가와 인간과의 공존 등 당면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 걸쳐 조직화된 전 세계 최대범위의 멸종위기종 보존사업으로 손꼽힌다. 책은 이 사업을 널리 소개하고 동참을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1994년부터 사진가로 활동해온 스티브 윈터와 보도사진가로 이름 높은 샤론 가이너프가 미얀마,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는 전 지역을 오가며 호랑이 서식과 보호사업 실태를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책에는 오직 인간과 호랑이의 공존을 위해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쏟아부은 각계 인사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겼다. 독자는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 밀렵조직과 총격전을 벌이고 정부, 때로는 반군과의 협상까지 마다 않는 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인류가 호랑이라는 종을 멸종시키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전세는 여전히 열세다. 앨런 라비노비츠에 따르면 "경기 종료(호랑이 멸종)는 얼마 남지 않았고, 승산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종료 휘슬이 불리기 전까지 전 세계 모든 활동가들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 손에 들기 벅찬 두꺼운 사진집인 이 책을 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아 두고 지난 몇 달에 걸쳐 조금씩 읽었다. 어느 날은 보호구역 대원들이 호랑이를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밀렵꾼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또 어느 날은 운동가들이 반군 지도자와 목숨을 건 협상에 나서며, 다른 어느 날은 환경운동 지도자들이 부패 공무원과 사업체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법정에 서기도 한다. 호랑이를 제 땅에 살게 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읽어나가는 게 단지 도덕적으로 바람직함을 넘어 재미 있고 흥미로우며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바깥에 전하고자 나는 이 글을 썼다. 한국이 호랑이 멸종위기를 불러온 주요 국가였다니... ▲ 호랑이여 영원하라 인도네시아 잠비에 있는 동물원에 살던 호랑이 '실라'가 살해되고 이틀 뒤, 8살 소녀 다라 아리스타가 실라가 살던 우리 앞에서 실라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실라를 죽인 범인은 대가로 100달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 스티브 윈터 관련사진보기 책을 읽으며 처음 놀란 건 한국이 등장한 대목에서였다. 당연히 호랑이가 살았던 나라로, 혹은 호랑이 보호사업이 진행될 나라로 언급될 줄 알았으나 이 나라의 첫 등장은 그보다 훨씬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책에 따르면 한국은 1970년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6톤이 넘는 호랑이 관련 물품을 여러 경로로 수입했다. 밀렵된 호랑이뼈가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만 3.7톤의 뼈가 수입된 것으로 기술됐는데 이는 호랑이 500마리의 뼈를 모은 양이다. 호랑이뼈는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공인되지 않은 한약품으로 널리 거래된다. 중국에선 여전히 거래가 활발하고 이는 호랑이 보호사업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여기에 부자들이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구입하는 호랑이 가죽도 밀거래시장에서 공공연히 거래되는데 운동가들은 밀거래 시장을 파악하고 고발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쏟는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모든 나라에선 호랑이를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호랑이 밀렵조직의 대립이 일상화돼 있는데 상당수 국가에서 밀렵조직과의 무력충돌이 빚어지곤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단연 인도네시아 타만 림보 동물원에서 벌어진 '실라의 죽음' 사건이다. 타만 림보 동물원은 금요일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관리 직원이 토요일 아침에 다시 출근하는데, 그사이에 침입 사건이 발생하곤 했다. 동물원에 침입한 자는 관람객에게 사랑받던 18년 된 암컷 수마트라호랑이 실라Sheila에게 진정제가 든 고기를 먹여 약에 취하게 했다. 그런 다음 실라의 배를 가르고 내장만 남겨둔 채 나머지를 모두 가지고 사라졌다. 나는 동물원에 침입해서 호랑이를 밀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 밀렵꾼은 버스를 타고 실라의 신체 각 부위를 옮기던 중 체포되었고, 실라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실라를 죽인 대가는 고작 100달러였다. -169, 170p 호랑이의 멸종을 막기 위해선 보호구역을 24시간 순찰하는 보호대를 유지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여전히 호랑이 가죽과 뼈를 원하는 시장이 있기에 이와 같은 보호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밀렵은 다시 성행한다.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케린치 세블랏 국립공원은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지난 2000년 설립된 특수경비대는 2012년까지 12년 동안 밀렵조직과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지난 12년 동안 산림 감시대 '호랑이 팀'은 작은 동물용 올가미 4590개와 호랑이용 올가미 139개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밀림에서 제거했다. 케린치 세블랏 국립공원 내 호랑이 수는 2006년 136~144마리 정도에서 현재 166마리로 늘어났다. 그러나 호랑이 팀은 규모가 아주 작다. 비무장 산림 감시원이 24시간 쉬지 않고 밀렵의 위험에 맞서 약1만3700제곱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공원 전역을 순찰하고 있다. -189, 190p 호랑이 보호는 밀렵과의 전쟁 ▲ 호랑이여 영원하라 2011년 1월 인도 찬드라푸르 인근에서 호랑이 가죽을 매매하려다 체포된 밀렵꾼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 요법'에 널리 쓰이는 호랑이 뼈와 눈알, 수염, 생식기, 이빨 등이 밀거래되는 금액은 연간 최고 500만 달러에 이른다. ⓒ 스티브 윈터 관련사진보기 상당수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보호자들은 열세에 처해 있다. 태국 후아이카캥 보호구역이 대표적이다. 존경받는 원로 야생동물학자 세웁 나카사티엔은 이 지역 활동가와 산림부의 요청으로 보호구역 총책임자로 인명됐으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총책임자로 임명된 직후 세웁은 공원 전역을 유린하는 밀렵꾼을 추적한 끝에 그 배후에 군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 경찰이 보호구역 내 벌목에 불법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다. 그는 국영TV 채널을 통해 이를 보도하게 했고 이후 살해위협에 시달렸다. 세웁에게는 자금과 인력, 뒤를 봐줄 고위층 인사의 지원이 턱없이 모자랐다.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는 밀림이 점점 사라지고 자신이 사랑하던 동물이 계속 죽어가는 현실을 보며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1990년 9월 1일, 한밤중에 세웁이 살던 오두막에서 총성이 울렸다. 세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1p 밀렵꾼과 부패관료들의 위협이 전부가 아니다. 다른 많은 환경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호랑이를 보호하려는 운동가들도 정부와 기업 등으로부터 고소고발에 시달린다. 환경보호운동가들과 함께 쿠드레무크 철광산 회사 폐업 판결을 얻어낸 후, 산제이 구비는 해당 회사를 지원해주던 산림부 관리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고소를 당했다. 이런 식으로 환경보호운동가를 괴롭히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9년이 지나서야 송사는 대부분 해결되었다. -271p 반면 밀렵꾼에 대한 처벌은 가볍기 짝이 없다. 인도야생동물보호협회에 따르면 1974년부터 2010년까지 적발한 호랑이 관련 범죄 885건 가운데 유죄선고를 받은 사건은 16건, 입건된 피의자는 41명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밀렵행위로 검거된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다. 밀거래를 진두지휘하는 조직 두목은 안전한 곳에서 아랫사람을 조종해 밀렵하고 거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검거돼도 가벼운 처벌만을 받고 범죄수익도 환수되지 않는다. 인도 최악의 밀렵조직 두목 산사르 찬드가 대표적 사례다. 산사르 찬드는 인도 야생동물 거래량의 반을 장악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인도 최악의 밀렵꾼'이라고 불릴 정도다. 산사르 찬드는 16세에 처음 체포되었다. 현재 나이는 55세로 야생동물 관련 재판 기록만 57건이며, 그가 이끄는 밀렵조직원은 사리스카 밀렵에도 관련되어 있었다. 2006년 인도 중앙 수사국에서 심문을 받고 산사르는 네팔과 티베트에 있는 거래처 4곳에 호랑이 470마리를 팔아넘겼다고 자백했다. 산사르는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 계좌조차 없는데도 2010년에는 델리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을 비롯해 부동산 45군데를 소유하고 있었다. -275p 약자를 위해 싸우는 다른 많은 전선과 마찬가지로 호랑이 보호 운동가들이 처한 현실 역시 녹록치 않다. 법은 멀리 있고 자주 부당하게 적용되며 정의는 흐릿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생태학자 리드 노스의 다음과 같은 말이 호랑이여 영원하라 사업에 참여한 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환경보호운동가, 생물학자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경제학자, 개발업자, 산업주의자, 벌목 회사 간부, 축산업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목소리만 커질 겁니다. 이들 중 누가 생물의 다양성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호랑이는 지난 100년 전 아시아 지역에 10만마리 정도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야생상태에서 살고 있는 호랑이는 3900마리 정도다. 호랑이여 영원하라 사업은 향후 10년 간 개체수를 5000마리 이상 증가시키는 걸 목적하고 있다. 이 책 는 이 사업을 알리고 후원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분류 척추동물 > 포유강 > 식육목 > 고양이과 > 표범속 원산지 아시아 먹이 영양, 공작, 원숭이, 도마뱀, 멧돼지, 사슴, 거북이 크기 약 1.86m ~ 4m 무게 약 100kg ~ 300kg 학명 Panthera tigris 식성 육식 임신기간 약 105~113일 멸종위기등급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 국가적색목록 지역절멸(RE) 요약 고양이과의 포유류. 주로 단독생활을 하는데, 힘이 세고 헤엄을 잘 친다. 주로 밤에 사냥하며, 사슴, 멧돼지 등을 주로 먹는다.     펼치기 대형고양이류(great cat)로서 힘과 포악성에 있어 이 동물에 버금가는 것으로는 유일하게 사자가 있을 뿐이다. 호랑이는 유라시아 북부에서 기원하여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는 소련의 극동지방에서 중국·인도·동남아시아의 일부 지역에 걸쳐 분포한다. 호랑이는 일반적으로 약 7~8아종(亞種)으로 분류된다. 이중에서 파리호랑이와 카스피호랑이(Caspian tiger)는 멸종된 것으로 믿어지며, 자바·수마트라·시베리아·인도산 아종들은 〈적색자료목록 Red Data Book〉에 멸종위기종으로 기재되어 있다. 호랑이의 크기와 특징적인 털색, 줄무늬는 서식지역과 아종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남부지방의 호랑이는 북부지방의 호랑이보다 체구가 작고, 털색이 더 밝다. 벵골호랑이(Bengal tiger)와 동남아시아의 섬에 살고 있는 호랑이들은 선명한 불그레한 황갈색 바탕에 몸을 가로지르는 검은색에 가까운 줄무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복부와 다리의 안쪽, 뺨, 양 눈 위의 큰 반점은 흰색이다. 이에 비해 몸집이 매우 크고, 그 수가 아주 드문 중국 북부와 소련의 시베리아호랑이는 털이 길고 부드럽지만 색이 엷다. 흑백색의 호랑이도 약간 있으며, 순백의 호랑이도 1마리 보고된 바 있다. 호랑이는 갈기가 없지만, 늙은 수컷은 뺨 위의 털이 다소 길고 쫙 펼쳐져 있다. 수컷은 암컷보다 체구가 큰데, 어깨높이는 약 1m이고, 두동장은 약 2.2m이며, 꼬리길이는 약 1m이다. 몸무게는 약 160~230kg인데 최대몸무게는 약 290kg이다. 호랑이는 풀밭·늪지대·숲에 서식하며, 사원이나 궁전처럼 폐허가 된 건물에 자주 나타난다. 힘이 세고 보통 단독생활을 하는데, 헤엄을 잘 치고 목욕을 즐기는 것 같다. 쫓기면 나무 위로 기어오른다. 주로 밤에 사냥하며,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먹고 사는데, 사슴·멧돼지·공작류 등을 주로 먹는다. 건강하고 몸체가 큰 포유동물은 일반적으로 피하지만, 코끼리와 물소의 성체를 공격했다는 기록도 있다. 때때로 인가에서 소를 공격하기도 한다. 늙거나 불구인 호랑이, 또는 새끼가 있는 암컷은 인간이 손쉬운 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잡아먹기도 한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1년 중 아무 때나 새끼를 낳을 수 있지만 추운 지방에서는 봄에 새끼를 낳는다. 임신기간은 평균 113일이고, 한배에 보통 2~3마리를 낳는다. 줄무늬가 있는 새끼호랑이는 2세까지 어미와 같이 지내는데, 이때쯤이면 거의 성체가 되어서 자기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암컷은 새끼가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임신하지 않는다. 호랑이의 평균수명은 약 11년이다. 동물원 같은 특별한 조건하에서 가끔 사자와 교배되는데 이러한 교배 결과 나온 자식을 아비가 호랑이일 때는 타이곤(tigon), 사자일 때는 라이거(liger)라고 부른다. 호랑이는 많은 민간전승의 이야기와 미신의 대상이 되어왔고 가죽을 얻기 위해서 또는 오락으로 사냥되어왔다. 분포지역 내의 일부 지방에서는 호랑이의 여러 부분들을 치료약·보호제·최음제 등의 용도로 매우 귀중하게 사용하고 있다. 호랑이 및 다른 대형 고양이류는 흔히 표범속(豹─屬 Panthera)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때때로 다른 동물에도 'tiger'라는 영어 이름이 붙어, 구름표범을 'clouded tiger', 퓨마를 'deer tiger', 검치호(sabretoothed cat)를 'sabre-toothed tiger'라고도 쓴다. 한국산 호랑이는 시베리아호랑이(Panthera tigris altaica)로서 〈적색자료목록〉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불과 100개체 내외가 잔존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1921년 경상북도 경주의 대덕산에서 1마리가 발견된 후, 더이상의 포획기록이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호랑이를 시베리아호랑이로부터 구분시키기도 한다. =================         ▲ 임순남 회장은 2004년부터 매년 3월 1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호랑이 영정을 들고 1인 시위를 나섰다. 사진 = 임순남 회장 제공  ▲ 호랑이여 영원하라 야생상태의 호랑이를 안전하게 찍기 위한 카메라트랩을 설치하는 고양잇과 전문가 앨런 라비노비츠
산림청, 100여년 만에 백두대간 품으로 돌아온 ‘백두산호랑이’  - 산림청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에 호랑이 두 마리 첫 이송 -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멸종위기종 ‘백두산호랑이’가 국립백두대간수목원(경북 봉화 위치) 호랑이 숲에 안착했다. 백두산호랑이가 한반도 남쪽 숲에 방사되는 것은 100여 년 만으로, 안정과 적응 훈련을 거친 뒤 국민에 공개될 전망이다.      ※ 한국에서 발견된 마지막 백두산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로 알려져 있다. 산림청(청장 신원섭)은 백두산호랑이 수컷 2마리가 25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안전하게 이송됐다고 26일 밝혔다. 주인공은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의 ‘두만(15살)’이와 대전 오월드에 있던 ‘금강(11살)’이로 25일 경북 봉화로 각각 옮겨졌다. 두 마리 모두 한중 산림협력회의를 통해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은 호랑이다.    예민하기로 유명한 호랑이를 다른 시설로 이송하는 작업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날 오전 수의사와 사육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진동 항온항습 차량에 오른 두만이와 금강이는 시속 70여km의 속도로 조심스럽게 이동됐다. 1시간마다 15분씩 휴식을 취하며 고속도로를 달린 끝에  이날 오후 늦게서야 백두대간수목원에 도착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이송이 의미 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사라졌던 ‘백두산호랑이’를 백두대간 숲에 첫 방사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산림청은 향후 유전형질이 우수한 호랑이 십여 마리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호랑이 숲’은 국내에서 호랑이를 전시하는 가장 넓은 곳(4.8ha)으로 자연 서식지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으로 만들어졌다. 아직 조성이 진행 중인 상태로, 조성이 완료되면 기존 동물원 우리에 갇힌 호랑이* 대신 숲 속에서 뛰노는 백두산호랑이를 만나볼 수 있다.    ※ 현재 국내에는 50여 마리의 백두산호랑이가 전국 동물원에 사육 중이다. 이를 위해 국립수목원은 국내 최고 수준의 진료와 사육환경을 갖추고 24시간 관리체제로 호랑이를 관리하고 보존할 계획이다.   또한,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호랑이 숲 내에서만 방사하고 탈출할 수 없도록 안전펜스를 설치했다.  한편, 호랑이 숲이 있는 산림청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아시아 최대 규모로(면적 5179ha) 조성됐다. 전시·연구·휴양 기능이 복합된 새로운 개념의 수목원으로, 작년 9월 임시 개관했으며 운영 상태 점검 후 올해 정식 개장될 예정이다. 한반도 산림자원을 지키는 대한민국 대표 수목원으로서 백두산호랑이를 방사할 호랑이 숲을 비롯해 세계 최초의 산림종자 영구 저장시설인 시드볼트(Seed Vault), 기후변화지표식물원, 고산식물 연구동, 야생화 언덕 등을 갖추고 있다.             * 백두산호랑이는? ‘백두산호랑이’는 ‘한국호랑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마트라 호랑이, 인도벵골호랑이, 말레이호랑이, 아모이남중국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시베리아(백두산)호랑이 등 여섯 종류의 호랑이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우리 한반도에 살고 있는 백두산호랑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열대지방에 살고 있다. 백두산호랑이는 열대지방 호랑이와 다르다. 우선 몸무게가 최대 300kg 이상으로 열대지방 호랑이에 비해 30% 이상 크며 활동영역 또한 인도의 벵골호랑이가 20㎢지만 백두산호랑이는 1,300㎢로 약 70배나 넓다. 3개도 4개 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 국립공원의 면적이 472㎢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넓은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0년 서울대 이항 교수팀 연구에 의하면 한반도 호랑이의 유전자와 현존하는 시베리아호랑이의 DNA 염기서열이 100% 일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시베리아호랑이가 우리나라 백두산호랑이라는 얘기다. 백두산호랑이는 남한에서 사라졌을 뿐 멸종된 것은 아니다.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먹잇감 감소, 밀렵으로 멸종위기에 있지만 아직 450마리 정도의 백두산호랑이가 연해주를 중심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 접경에 살고 있다. 이 호랑이가 한반도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호랑이는 수컷이 1,300㎢, 암컷은 400㎢에 달하는 행동반경을 가지고 있다. 부모를 떠나면 영역개척을 위해 400㎞씩 이동하기도 한다. 그들에겐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연변에서 백두산까지는 200㎞. 머지않아 이 호랑이들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 올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농업신문=박지현 기자)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멸종위기 종 ‘백두산호랑이’가 안착했다. 한반도 남쪽 숲에 방사된 것은 100여 년 만이다.   산림청(청장 신원섭)은 최근 백두산호랑이 수컷 2마리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안전하게 이송했다고 최근 밝혔다.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의 ‘두만(15살)’이와 대전 오월드에 있던 ‘금강(11살)’이다. 두 마리 모두 한중 산림협력회의를 통해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은 호랑이다.   이번 이송은 한반도에서 사라졌던 ‘백두산호랑이’를 백두대간 숲에 첫 방사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송된 호랑이 숲은 4.8ha 면적으로 국내 호랑이를 전시하는 곳 중 가장 넓다.   산림청은 호랑이들의 안정과 적응 훈련을 거친 뒤 국민에 공개하고 향후 유전형질이 우수한 호랑이 10여 마리를 추가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면적 5179ha 아시아 최대 규모 수목원으로 자연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으로 만들어져 작년 9월 임시 개관돼 올해 운영 상태 점검 후 정식 개장될 예정이다. =============================== [포천 '두만이', 대전 '금강이' 봉화 호랑이숲으로 특급 이송]  - 6개월 준비한 '007 작전' "호랑이는 매우 예민한 동물" 無진동 항온항습 트럭에 실어 최고 시속 70㎞로 '안전 운행' 하반기 개장 '백두대간 호랑이숲' 4만8000㎡… 5.5m 펜스 설치 4월엔 암컷도 옮겨 번식 추진   지난 25일 오전 9시쯤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 장정 10여 명이 모였다. 1급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를 경북 봉화군에 있는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이미지 크게보기백두산 호랑이가 100년 만에 백두대간의 품으로 돌아왔다. 백두산 호랑이 ‘금강이’와 ‘두만이’가 25일 경북 봉화 춘양면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훈련을 거쳐 올 하반기쯤 관람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은 대전 오월드에 위탁 중이던 ‘금강이’. /산림청 금강송으로 특수 제작한 대형 상자를 사육장 출입구에 붙여 두만이를 유도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육사가 "두만아" 하고 불러도, 사육장 반대편에서 망치로 철책을 두드려도 꿈쩍하지 않았다. 황근연 연구사는 "두만이가 이사 간다는 걸 알아차리고 싫다고 버틴 건지, 두 시간 가까이 씨름하다 결국 마취제를 투여해 겨우 상자로 옮겼다"고 했다.   상자는 동물 수송에 쓰는 특수 차량인 무(無)진동 항온 항습 트럭에 실렸다. 두만이가 마취에서 깨어난 뒤 출발한 트럭은 5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에 도착했다. 이날 산림청은 두만이뿐 아니라 대전 오월드에 살던 '금강이'도 이곳으로 옮겼다. 두 수컷 호랑이는 올 하반기 개장을 앞두고 있는 국내 최대 호랑이 전시장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4.8㏊·약 1만4500평)에 방사할 예정이다. 산림청은 "백두산 호랑이를 백두대간 숲에 방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마지막 백두산 호랑이 이후 100년 만에 백두산 호랑이가 백두대간에 돌아온 것"이라고 밝혔다. ◇호랑이 '절대 안정' 위해 운행 1시간에 15분씩 휴식 이날 백두산 호랑이 수송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됐다. 준비 기간만 6개월이었다. 매우 예민한 동물인 호랑이를 옮기기 위해 무진동 항온 항습 차량과 지게차 등을 준비한 것은 물론 수의사·사육사를 포함한 인력 20여 명을 수송에 투입했다. 호랑이를 태운 트럭들은 최단 거리가 아닌 평지 위주 직선 경로를 택했다. 고속도로에서도 최고 시속 70㎞대를 유지하며 달렸다.   무엇보다 휴식은 필수였다. 운행 1시간마다 휴게소나 졸음 쉼터 등에 정차했다. 휴게소에서도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 호랑이가 낯선 사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산림청 안진수 과장은 "수송 작전이 주목받아 호랑이가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외부엔 수송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포천~봉화, 대전~봉화 각각 수송 시간만 5시간이 걸렸는데,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다"고 했다. ◇오는 4월 암컷도 옮겨 번식 추진… 숲에서 뛰노는 호랑이 관람   96년 전 마지막 백두산 호랑이 - 96년 전인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포획된 백두산 호랑이의 모습. 이 호랑이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지막 백두산 호랑이로 알려져 있다. /산림청 '한국 호랑이'라고 하는 백두산호랑이는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잇감이 줄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현재 약 450마리 정도가 연해주를 중심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 접경에 살고 있다. 두만이와 금강이는 각각 2005년과 2011년에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았다. 현재 전국 동물원에서 백두산 호랑이 5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산림청은 올 4월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암컷 호랑이 한 마리를 봉화로 이송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두만이·금강이와 이 호랑이를 통해 백두산 호랑이 번식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 유전 형질이 우수한 호랑이 10여 마리도 더 들여올 계획이다. 언덕, 개울이 있어 자연 상태 서식지와 비슷한 호랑이 숲 조성이 완료되고 두만이와 금강이의 안정·적응 훈련까지 끝나면 올 하반기부터 관람이 가능할 전망이다. 관람객들은 5.5m 높이 안전 울타리 밖에서 좁은 우리가 아니라 숲에서 뛰노는 백두산 호랑이를 관람할 수 있다. 산림청은 국내 최고 수준의 진료·사육 환경을 갖추고 24시간 체제로 호랑이를 관리, 보존할 계획이다. 또 이번 호랑이 숲 조성을 통해 작년 9월 임시 개관한 아시아 최대 규모(5179㏊) 수목원인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을 세계적 수목원으로 키울 방침이다.   /ⓒ 조선일보 안준용 기자
97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에서 보내는 시간을 잘 리용하기 댓글:  조회:4325  추천:0  2017-02-02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은 핵 전쟁이나 범 지구적 기후 온난화, 질병의 대유행 등을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위기를 모면한다면 우리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푸른 행성, 지구에 사는 우리는 우주에 도사린 위험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지구에서의 삶이 안전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고에너지 태양 폭풍(플레어), 소행성 충돌, 태양의 팽창, 감마선 폭발, 초신성 폭발, 방랑 별의 접근 같은 우주 재난으로 인류가 멸종하거나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영국 데일리메일이 분석한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만약 태양 폭풍이 지구에 몰아친다면, 전기나 난방, 에어컨, GPS, 인터넷 등이 마비될 것이다. 음식과 의약품은 상해서 버려야 한다.   ▲고에너지 태양 폭풍=우리의 태양은 생각하는 것 만큼 평온하지 않다. 태양은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어 낸다. 자기장은 지구보다 간 혹 몇 배나 큰 흑점에서 만들어진다. 태양은 또한 태양풍으로 불리는 전자, 양성자 등 하전 입자와 방사선을 내뿜는다. 만약 지구 자기장에 태양풍이 잡히면 남극과 북극의 아름다운 오로라를 만든다. 하지만 더욱 강해지면, 전파 통신을 방해하고 전기 공급을 끊게 한다. 기록된 가장 강력한 태양 폭풍은 1859년 9월 1~2일 발생한 캐링턴 이벤트로 불리는 사건이다. 이날 태양 폭풍으로 인해 전기 기구가 영향을 받았으며, 2만 5,000㎞의 전신망이 마비됐다. 비슷한 수준의 사건은 인류가 사는 동안 몇 번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또 다시 캐링턴 이벤트와 유사하거나 그보다 강한 태양 폭풍을 만난다면 크게 고통받을 것이다. 전기가 끊기고, 난방과 에어컨, GPS나 인터넷도 못쓰게 될 것이다. 미 국립과학원(NAS)은 캐링턴 이벤트 같은 태양 폭풍이 지금 발생할 경우 피해 규모가 1~2조 달러에 달하고, 이를 복구하는 데 4~1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GPS 등 전자 장비 의존도가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 지구와 충돌 위험이 있는 바위들이 태양계에 꽤 많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소행성 충돌로 엄청난 쓰나미와 화재, 다른 자연 재해가 발생해 인류를 멸종시킬수 있다.   ▲소행성 충돌=우리는 공룡을 멸망시킨 것으로 생각되는 소행성 충돌이 인류에게 미칠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 지구와 충돌 위험이 있는 바위들이 태양 주위를 꽤 많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1월 25일 지구와 달 사이를 지나친 스쿨버스 만한 소행성이 통과 일주일 전에 발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4~14m 크기의 소행성이 시속 2만6,700㎞의 속도로 지구로부터 26만 660㎞ 떨어진 곳을 지나갔다. 크기가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지난 2013년 떨어진 소행성만했다. 당시 첼랴빈스크는 건물 유리가 깨지면서 1,200명이 다쳤다. 우리는 충돌할 수도 있는 작은 소행성을 막는 방법을 생각하고 고안하는 단계를 시작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소행성에 우주선을 추돌시켜 궤도를 바꿀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테스트를 진행한다. AIDA(소행성 충돌&굴절 측정·Asteroid Impact & Deflection Assessment)라고 불리는 이 계획의 목적은 지구 근처로 접근하는 위험한 소행성에 우주선을 충돌시켜 궤도 변경 능력을 시험하려는 것이다. 현재 계획 중인 표적은 소행성인 디디모스(Didymos) 궤도를 도는 작은 소행성인 디디문(Didymoon)이다. 디디모스는 직경이 750m짜리인 소행성이며 디디문은 직경은 160m에 불과하다. 디디문은 디디모스를 1.1㎞ 거리를 두고 12시간 주기로 돌고 있다. 오는 2020년 ESA가 우주선 AIM을 발사하면 2022년 5월 디디모스에 도착하게 된다. AIM은 소행성 사이의 위치 관계를 조사하게 된다. 관측이 끝나면 2022년 10월 NASA의 우주선인 DART가 도착해 디디문에 충돌하게 된다. 이 때 AIM은 디디문과 충돌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나 물질을 분석하고, 궤도의 모든 변화를 추적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더 큰 소행성에는 속수무책이다. 소행성이 항상 지구를 파괴하고,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지는 않지만, 거대한 쓰나미나 화재, 그리고 자연 재해를 일으켜 인류를 멸종 시킬 수 있다. 태양은 나이가 들면서 온도가 내려가고 덩치가 수백배 커진다. 결과적으로 지구는 거대하게 팽창하며 죽어가는 별의 바깥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며, 영원히 녹아 버릴 것이다.   ▲태양의 팽창=우리는 태양이 77억2,000만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이 때가 되면 태양은 바깥쪽 대기를 방출해서 행성 모양 성운을 만들 것이다. 이후 태양은 백색 왜성으로 남는다. 하지만 인류는 이 마지막 단계를 보지 못할 것이다. 태양이 나이가 들면 온도가 내려가면서 덩치는 커지게 된다. 지금보다 수백 배는 커지면서 적색 거성이 될 것이다. 거성으로 탈바꿈하면서 태양계 역시 변할 것이다. 거성이 되면 수성과 금성을 삼키게 된다. 하지만 태양계 세 번째 행성인 지구는 이 시점까지는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안다. 태양이 커지고 밝아지면서, 강한 태양풍으로 인해 지구 생명체를 멸종될 것이란 점이다. 결과적으로 지구는 거대하게 팽창하며 죽어가는 별의 바깥층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며, 녹아 버릴 것이다. 감마선 폭발로 우리 지구의 오존층이 훼손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생명체가 태양의 가혹한 자외선에 노출되게 된다.   ▲감마선 폭발=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 방출을 감마선 폭발이라고 불리는데, 쌍성계나 초신성에서 만들어진다. 태양의 수십 배나 되는 별이 일생을 마쳤을 때나 블랙홀끼리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 감마선 폭발이다. 감마선 폭발은 매우 강력한데, 이는 불과 몇 초에서 몇 분만 지속 되는 좁은 빔에 에너지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구의 오존층이 손상을 입고, 태양의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오존층에 의해 대부분의 감마선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다. 하지만 감마선 폭발은 훨씬 강력하다. 감마선 폭발은 수백만 광년 내에 위치한 모든 별의 에너지를 하나의 레이저 빔으로 모은 것과 같다. 꽤 먼 곳에서 일어나는 감마선 폭발이라도 지구 생명체를 끝낼 수 있다. 만약 수천 광년 떨어진 곳에서 감마선 폭발이 일어난다면, 파도가 태양계를 휩쓰는 것처럼 우리를 덮치게 되는데, 우리의 오존층은 이를 막아낼 만큼 튼튼하지 않다. 감마선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를 강타할 때까지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다. 때문에 이미 때가 늦어, 대부분의 생명체가 죽을 것이다. 2004년 미국 캔자스대 연구팀은 4억4,000만 년 전 당시 생물 종의 3분의 2가 갑작스럽게 멸종한 원인을 감마선 폭발이 지구를 강타해 오존층을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자들은 WR-104라는 삼중성계 별을 발견했다. WR-104는 5,200~7,500광년 떨어져 있지만, 안전할 만큼 충분히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폭발이 언제 일어날지 를 추측할 뿐이다. 다행한 점은, 폭발이 일어났을 때 빔이 우리를 비켜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초신성이 우리의 오존층에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최소 50광년 이내의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추정한다.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특별히 신경쓸 별은 없다. 1054년 초신성 폭발 잔여물로 구성된 게자리 성운 사진.   ▲초신성 폭발=초신성(Supernova)은 신성(nova)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내뿜는, 별의 폭발을 칭한다. 빛나는 현상이 마치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기에 신성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수명이 다한 별이 폭발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것이다. 어두워질 때까지 수 주 또는 수 개월에 걸쳐 한 개 은하 전체에 필적하는 밝기로 빛난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초신성은 태양이 평생에 걸쳐 발산할 것으로 추측되는 에너지 만큼의 광선을 내뿜는다. 우리 은하계에서는 100년간 평균 한두번 씩 초신성 폭발이 발생했다. 초신성 폭발은 우리 은하의 조밀한 중심부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우리는 은하 중심에서 끝까지 거리의 3분의 2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안에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가. 초신성은 별의 중심부에서 변화가 발생했을 때 만들어진다. 첫 번째 초신성 사례는 쌍성계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의 탄소·산소로 이뤄진 백색 왜성이 이웃한 별에서 물질을 뺏어 올 때 만들어진다. 마침내 백색 왜성이 너무 많은 물질을 얻어 폭발하게 된다. 또 하나의 초신성은 하나의 별이 생명이 끝날 때 발생한다. 핵분열을 일으킬 연료가 떨어지게 되면, 그 중심부로 무거운 물질이 스며든다. 결국 중력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중심부가 너무 무거워지면서 핵이 붕괴한다. 이로 인해 또 다른 대폭발이 일어난다. 가장 가까운 적색 거성인 베텔기우스가 생명이 거의 다해간다. 오리온 별자리에 위치한 베텔기우스는 460~650광년 떨어져 있다. 베텔기우스의 초신성 폭발은 오늘이나 아니면 백 만년 후에라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 천문학자들은 초신성이 우리의 오존층을 파괴하려면 50광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때문에 베텔기우스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떠돌이 별이 은하를 통과하면서 태양과 가까워 지면, 혜성의 거점으로 알려진 오르트 구름(Oort cloud)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거대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올수 있게 된다.   ▲떠돌이 별의 접근=한편, 방랑하는 떠돌이별이 우리 은하를 통과하면서 태양과 너무 가까워지면 오르트 구름(Oort cloud)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르트 구름은 얼음과 암석 등 천체로 이루어진 혜성 구름으로, 태양계를 껍질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떠돌이 별의 영향을 받아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향해 날아올 수 있다.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 관측소 자료에 따르면, 수소핵 융합을 하는 떠돌이 별인 글리제 710이 태양계로 근접해 천체들이 모여 있는 오르트 구름을 교란시킴으로써 혜성들이 대거 지구 쪽을 향해 쏟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 단 하나의 혜성이라도 지구와 충돌한다면 지구 종말에 이르는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글리제 710은 뱀자리의 꼬리 부분에 있는 오렌지색 왜성으로, 겉보기 등급은 9.66이며, 질량은 태양의 0.6배이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글리제 710 이 오르트 구름에 도착하는 것은 135만 년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글리제 710은 현재 지구로부터 64광년 거리에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암울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갈 필요는 없다. 이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어떤 일들이다. 우리 인생이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지구에서 보내는 시간을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특히 지구가 인류를 유지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의 시나리오는 모두 파괴 가능한 것을 얘기하지만, 모든 경우에 그들은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밤하늘을 보고 무엇이 우리를 죽게 만들지를 생각하지 말고, 우주의 깊이의 경이로움, 그리고 우주의 숭고함에 감탄해야 한다. /문병도기자       
97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물건들 댓글:  조회:6921  추천:0  2017-02-01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 가운데 (그물코)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달라이 라마의 테스트, 즉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황폐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을 통과한 7가지 물건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7가지 물건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와는 달리, 웅장하지도 않고 고색창연하지도 않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놀라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물건들이다.             지구를 살리는 첫 번째 불가사의 : 자전거 자전거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자전거는 지금까지 발명된 교통수단 가운데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다. 같은 거리를 간다고 했을 때, 자전거를 탄 사람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보다 에너지를 적게 소비한다. 오히려 걷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3배나 더 에너지를 소비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내쉬는 숨은 비를 산성화시키지 않고, 일산화탄소나 먼지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자전거는 화석연료가 아닌 탄수화물을 연료로 사용하니까. 또한 자전거는 교통 혼잡을 일으키지도 않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로를 닦고 포장할 필요도 없다.   만약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미국인들처럼 자동차를 소유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마 지구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으로 질식할 것이다. 그뿐인가? 많은 나라들이 자동차에 필요한 도로와 주차공간을 마련하느라 재정은 파탄 나고, 세계의 식량 생산은 큰 위협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미국만큼 자동차를 위한 포장도로를 건설하려면 경작지의 40%를 도로로 바꾸어야 한다. 한 마디로 자전거는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 경제적이고, 건강에 좋으며,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자전거야말로 자동차가 일으키는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구를 살리는 두 번째 불가사의 : 콘돔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1억 번의 성관계가 이루어지고, 35만 명의 사람들이 성병에 전염되며, 100만 명의 여성들이 임신을 하는데, 그 중 절반은 원하지 않는 임신이다. 1세기 전에 발명된 콘돔은 20세기 말 인류가 직면한 성병과 임신, 그리고 인구 폭발을 동시에 막아주는 위대한 발명품이다.   콘돔은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가운데 유일하게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다. 하지만 콘돔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자연산 고무 라텍스는 합성고무와는 달리 생태적인 피해가 훨씬 적고, 콘돔 한 개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고무의 양도 아주 적다. 자동차 바퀴 하나에 들어가는 고무로 1100개의 콘돔을 만들 수 있다.         지구를 살리는 세 번째 불가사의 : 천장 선풍기 미국에서 에어컨이 차지하는 전기 소비량은 전체 전기 소비량의 6분의 1. 전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것이지만, 전기 소켓에서 흘러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가 산성비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고, 연어를 멸종시키며, 핵폐기물과 그 밖의 여러 가지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에어컨 한 대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가 필요하지만, 선풍기는 중형 에어컨에 들어가는 전기의 10분의 1만 갖고도 피부의 수분을 증발시켜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방안의 공기를 순환시켜 방을 시원하게 만든다.         지구를 살리는 네 번째 불가사의 : 빨랫줄, 또는 건조대   요즘은 많은 아파트 단지와 단독 주택 단지에서 주택의 재산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빨래줄 사용을 금기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점점 더 많은 가정에서 트럼 세탁기를 애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 세탁기는 일반 세탁기보다 전기가 훨씬 많이 든다. 반면 빨래 줄은 태양과 바람만 있으면 저절로 빨래가 마른다. 빨래 줄에 말린 옷은 냄새가 좋고, 정전기를 일으키지 않으며, 옷이 덜 상한다. 게다가 태양빛에 빨래를 말리는 것은 세탁기 통 안에서 전기로 말리는 것보다 살균력이 좋다.           지구를 살리는 다섯 번째 불가사의 : 타이국수(태국 쌀국수) 타이국수를 이 목록에 넣은 것은, 주재료가 쌀과 채소이기 때문이다. 타이국수는 영양가가 풍부하고, 지방질이 적으며, 육식 위주의 식단에 비해 환경적인 부작용이 적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육식 국가로, 한 사람이 일 년에 120킬로그램 정도의 고기를 먹는다. 북미에서 축산은 가장 심각한 수질 오염원이며, 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부분이다. 또한 토양 침식의 중요한 원인이자, 습지와 초원이 사라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가축은 곡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의 국토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에서 자라는 풀과 곡식이 가축의 먹이가 되고 있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사료가 7킬로그램, 돼지고기는 5킬로그램, 닭고기는 3킬로그램의 사료가 필요하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가축 수는 사람 수보다 3배나 많으며, 미국에 있는 70억 마리의 닭, 칠면조, 소, 그리고 돼지들이 하루에 배설하는 분뇨는 400만 톤이나 된다. 이는 미국인 전체가 쏟아내는 양보다 130배나 더 많다. 우리가 선택한 음식은 나의 건강은 물론 우리가 사는 지구의 건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지구를 살리는 여섯 번째 불가사의 : 무당벌레 프랑스 사람들은 무당벌레를 ‘하느님이 주신 좋은 생물’, 또는 ‘성모마리아의 암소’라고 부르고, 독일인들은 ‘성모마리아의 딱정벌레’라고 부른다. 왜냐고? 중세 유럽 때 포도농사를 짓던 농사꾼들이 진딧물 때문에 농사를 망치게 되자, 신에게 도움을 구하며 기도를 했단다. 그러자 기적처럼 딱정벌레들이 나타나더니 진딧물을 모두 잡아먹었고, 이에 기뻐한 농부들이 딱정벌레를 향해 "동정녀 마리아(Our Lady)”라고 외치기 시작했단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흙은 결코 오물 덩어리가 아니다. 흙은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흙에 사는 생물체는 1헥타르 면적의 경작지에서 일 년에 1톤의 새로운 흙을 만들어 낸다. 흙에 사는 곰팡이, 세균, 그리고 여러 가지 동물은 흙을 생산하고, 식물이 흙에서 흡수하는 영양분을 만들어 낸다. 살충제는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해충뿐 아니라, 꽃가루를 운반하고, 쓰레기를 분해하고, 흙을 만들어 내는 이로운 생명체들도 함께 죽인다. 40년 전 레이첼 카슨은 이라는 책에서 살충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살충제로 인해 새들이 죽으면, 봄이 와도 더 이상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하나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무당벌레 |   분류 딱정벌레목(Coleoptera) > 무당벌레과(Coccinellidae) 크기 성충의 몸 길이 5~8mm 학명 Harmonia axyridis PaIlas 식성 잡식 분포지역 한반도, 일본, 중국, 시베리아 목차 특징 생태 특징 딱지날개의 무늬(반문)는 별종으로 생각될 정도로 개체변이가 심하다. 대체로 2문형(二紋型), 4문형(四紋型), 반문형(斑紋型), 홍문형(洪紋型)의 네 가지로 크게 나눈다. 이들 무늬 발현의 구조는 멘델의 유전 법칙으로 설명되어, 학교에서 전 실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생태 성충은 모두 진딧물의 천적이고, 유충도 진딧물을 먹는 육식성이다. 암컷은 알 20~50개 정도를 합쳐서 잎 뒤에 말끔히 늘어놓듯이 낳아 붙인다. 봄에는 1주일쯤 되면 유충이 난화하나, 한 무더기의 알에서 유충이 일제히 난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빨리 나오는 유충이 아직 난화되지 않은 알을 먹어치우는 수가 있다. 이것은 유충이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기 위한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동료를 먹는 공식은 먹이인 진딧물이 부족할 때 일어나기 쉽다. 알만이 아니라, 유충끼리나 유충과 번데기, 성충 사이에서도 일어나기도 하는데,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먹어 주는 익충이나 이러한 잔혹한 면도 있다. 무당벌레는 가을의 마지막 바람이 없는 따뜻한 날에 무리를 지어 날아, 희게 보이는 바위나 건물에 수천 마리가 모여 집단으로 월동을 한다. 그 곳은 전망이나 햇빛이 좋은 장소로서, 매년 같은 장소에 집단이 형성된다.         4/18 무당벌레 경기 역곡(1996년 9월 15일)     4/20 무당벌레의 우화 과정     지구를 살리는 일곱 번째 불가사의 : 공공도서관 북미의 한 도서관은 일 년에 평균 10만 권의 책을 빌려주고, 5000권 정도의 책을 구입한다. 도서관 하나를 지으면 일 년에 50만 톤의 종이가 절약되고,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50만 톤의 온실 가스 배출을 막을 수 있다. 한마디로 도서관이 생태계가 파괴되고 오염됨으로써 수많은 생물 종이 멸종하는 것을 도서관이 막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공공도서관은 가장 민주적인 제도이다. 공공도서관은 무료이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많은 시민들에게 보다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 지역에서 잘 운영되고 있는 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구실도 한다. 지구의 유한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필요한 것은 빌려 쓰고, 중고품을 구입하며, 고장 난 것은 가급적 버리지 않고 고쳐 쓰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거론할 때, 가장 벽에 부딪히는 것은 작은 실천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성과만을 가져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가 원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는 우리의 뒷마당, 즉 빨래 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설거지할 때 제발 세제를 많이 쓰지 말자. 세상의 모든 것은 돌고 돈다. 우리가 마구 풀어쓴 세제 역시 돌고 돌아, 결국엔 나와 내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조인스 출처 :인연스토리 /////////////////////////////////////////   분류 절지동물 > 곤충강 > 딱정벌레목 > 무당벌레과 원산지 아시아 (중국,대한민국) 서식지 산이나 들 먹이 진딧물 크기 약 0.7cm ~ 1cm 학명 Harmonia axyridis 식성 육식 천적 고치벌 요약 딱정벌레목 무당벌레과를 이루며 널리 분포하는 5,000여 종(種)의 곤충. ladybug라고도 함.   무당벌레 'ladybird beetle'이라는 영어이름은 중세시대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바치며 '성모 마리아의 딱정벌레'(beetle of Our Lady)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길이는 보통 8~10㎜이고 작고 둥근 공의 반쪽처럼 생겼다. 다리가 짧고 체색이 밝으며, 흑색이나 황색 또는 적색 반점이 있다. 코키넬라 노벰노타타는 하나의 공동반점이 있으며 각 딱지날개[翅鞘]에 4개의 검은 반점이 있다. 한 생활사에 약 4주가 걸리므로 여름 한철 동안 여러 세대를 볼 수 있다. 유충은 길고 홀쭉하며 몸이 연하고, 보통 회색 바탕에 청색·녹색·적색·검은색 반점이 있다. 다른 곤충이나 곤충의 알을 먹고 사는 유충은 4성장기(齡)를 거친 다음 어떤 물체에 부착하여 마지막 유충의 피부에서 용화된다. 흔히 여러 종류가 같은 장소에서 함께 동면한다. 무당벌레 무리는 진딧물·깍지벌레·응애류 따위의 해충을 구제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한 예로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북아메리카 서부에 도입된 베달리아무당벌레는 과수를 크게 위협한 이세리아깍지벌레의 방지에 한몫했고, 어떤 종은 유충과 성충이 모두 중요한 진딧물 포식종(捕食種)이다. 대부분의 무당벌레와 유충이 육식성(肉食性)이지만 일부 종류, 예를 들어 보레알리스무당벌레와 멕시코콩무당벌레 종류는 식물을 먹기 때문에 큰 피해를 준다. "무당벌레야 무당벌레야 집에서 멀리 도망쳐라. 너의 집에 불이 났다. 너의 새끼들이 방황한다"라는 서양 아이들에게 친숙한 운문은 영국에서 홉을 수확한 후 밭에 불을 놓아 청소를 함으로써 수많은 무당벌레가 죽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한편 서양의 민간요법에서 무당벌레는 산통·홍역·치통등의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 [질문]  "무당벌레"의 이름은 왜 "무당"벌레인가요? [답변]   무당벌레의 유래에 대하여 여러 기록들을 찾아보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지 못하였다.    다만 왜 무당벌레라고 하는 지에 대하여 추정은 할 수 있습니다.  "무당"과 '벌레"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을 할 수 있으며 다른 동물을 찾아 보아도  "무당개구리"와 "무당거미"를 들 수 있습니다.   무당개구리를 뒤집어 보면 배의 흰 바탕에 붉은 무늬가 현란하게 나있어서 무당벌레요와 비숫한 무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당거미"도 온몸에 노랑색과 검정색의 띠무늬가 교대로 배열되어 있어서 무당개구리와 같이 화려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으로 볼때에 무당벌레의 화려한 등딱지의 무늬는 굿판에 나온 무당의 옷을 연상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추정을 할 수 있으며  "무당개구리", "무당거미", 등도 같은 이치라고 판단합니다.   축복의줄기 /////////////////////////////////////////////   는 점이 7개 익충종, 일반 무당벨레의 점의 개수는 0~28개. 13점, 28점 무당벨레는 해충종... 대부분의 무당벌레와 무당벌레의 애벌레는 농작물에 해로운 진딧물, 진드기를 잡아먹는 아주 이로운 곤충이다. 그러나 곡식을 갉아먹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종류도 있다.  대부분의 무당벌레들은 해로운 진딧물이 있는 농작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종은 오로지 한 가지 진딧물 만을 고집스럽게 잡아먹기도 하며 또 다른 종은 진드기만을 잡아먹기도 한다.  특히 칠성무당벌레의 식성은 대단하여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진딧물을 먹어치운다. 또한 그의 애벌레들도 하루에 약 50마리의 진딧물을 먹으며 자란다. 만약 진딧물이 부족하면 무당벌레는 닥치는 대로 빈대좀의 알과 어른벌레, 진드기, 작은 곤충, 꽃가루와 꿀마저 먹어치운다.      함께해봐 //////////////////////////////   @@ 무당벌레도 익충과 해충으로 나뉩니다.   해충인 무당벌레는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 열석점긴다리무당벌레 등이 있습니다. 그중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가 흔하게 발생되는 해충종 입니다.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 - Daum 백과사전딱지날개에 있는 28개의 흑색 무늬의 크기는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보다는 작다. 성충, 유충은 가지과의 식물을 먹는 초식성이다. 아직 한반도의 중북부 지방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마법의정원 ///////////////////// 칠성무당벌레     분류 딱정벌레목(Coleoptera) > 무당벌레과(Coccinellidae) 크기 성충의 몸 길이 5.0~8.6mm 학명 Coccinella septempunctata Linnaeus 식성 잡식 분포지역 한반도, 제주도, 일본 등 유라시아 대륙의 전역, 아프리카 북부 목차 특징 생태 특징 홍색 딱지날개에 7개의 흑색 점무늬가 있다. 생태 일반적으로는 성충으로 월동하나, 제주도(남부 지방)에서는 1월에도 성충과 1령부터 5령까지의 발육 단계 상태인 유충을 볼 수 있다. 겨울에 성충만이 보이는 지역에서는 적설 지대를 제외하면 일기가 좋은 따뜻한 날에는 풀숲의 양지에서 볕쬐기를 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 겨울 동안의 활발하지 못한 상태는 저온에 의한 활동 억제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의 휴면은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름에는 함경도 지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름잠을 잔다. 여름잠을 자는 지역에서는 6~8월 상순에 걸쳐서 칠성무당벌레의 성충이 참억새의 뿌리 등에 수십 마리씩 집단을 만든다. 난소의 발육이 억제되기 때문에 짝짓기, 산란도 하지 않고 호흡량이 아주 두드러지게 저하되어 휴면 상태를 나타낸다.         이전 이미지 보기다음 이미지 보기 1/7 칠성무당벌레의 우화 과정
96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기... 댓글:  조회:3999  추천:0  2017-02-01
바야흐로 흙과 물과 바람과 빛과 그림자의 기운이 온 생명을 깨우는 계절입니다. 어떤 야생동물에게 이 계절은 짝짓기를 하여 번식을 하는 매우 민감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산과 들, 강과 바다로 나들이 가기 좋은 계절이지요.  국민소득 2만불 시대, 지난 2007년 한 해 한국 사람들이 국내관광 14조5000억, 해외관광 12조2000억원을 지출 했다고 합니다. 생산과 소비가 있는 곳에 사회적, 생태적 책임이 뒤 따르는 법입니다. 5일제 근무가 확산되면서 이동하여 여가를 즐기려는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으로 회색 빛 도시를 떠나는 나의 여행이 야생동물 친구들에게는 참혹한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 저편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듯이 우리의 움직임이 가깝고 혹은 먼 곳의 벗들과 그 삶의 터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생동물 친구들이 전해 온 가슴아픈 사연들을 들어볼까요?   러시아 캼차카 반도에 살고 있는 '갈색 곰'입니다.   외지 관광객들과 밀렵꾼들에게 매년 1000마리 이상의 곰이 오락용으로 희생되는데, 이때문에 캄챠카 갈색 곰의 수는 반으로 급감했답니다. 희생된 곰의 털, 가죽과 웅담 등 부위는 밀수되거나 일부 허가를 받고 수출되고 있어요. 한국의 보신문화 때문에 중국, 베트남, 한국에서 수천 마리의 곰이 웅담채취 용으로 사육되고 있다지요? 내 친구 캐나다 물범은 모피 때문에, 아프리카 아시아 코끼리는 가죽과 상아 때문에 죽음을 무릎쓰면서 매일 매일 공포 속에 살아 간다고 하더군요. 한 벌의 모피를 만드는데 얼마나 끔찍한 희생이 뒤따르는지 아세요? 12-15마리 삵, 10-15마리 늑대 또는 코요테, 15-20마리 여우, 60-80마리 밍크, 27-30마리 너구리, 10-12마리 비버, 60-100마리 다람쥐가 죽어간다구요.  동물원에서 쇼를 하고 있는 '돌고래'에요.  내 고향 바다를 떠나와 이 곳에서 사람들을 위해 동물원에서 매일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해서 하고 있어요.  매 순간이 고난의 연속이에요. 이 곳은 내가 살던 바다와 너무나 다른 상막한 콘크리트 수영장이거든요. 물맛도 고향의 물맛이 아니에요. 태국에서 쇼를 하는 제 친구 코끼리도 요즘 공연을 너무해서 몸살이 났다고 하더군요. 쇠사슬에 묶여서 온 몸에 상처투성이랍니다. 우리를 돈으로 사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 같은 고통도 없을 것 아니겠어요?     고속도로 근처에서 살고 있는 '고라니'에요.  질주하는 자동차가 넘치고, 많은 도로가 건설되면서 가족과 삵, 하늘다람쥐, 소쩍새 등 수 많은 친구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교통수단인 자동차와 비행기의 화석연료사용이 많아져서 지구의 온도는 높아지고 북극의 곰과 남극의 펭귄도 살 곳이 없어진다지요?   낙동강 상류 여울의 돌덩어리 사이에 살고 있는 '흰수마자'라고 합니다.  한국 낙동강에서만 살고 있어서 학명에도 낙동이 들어간답니다. 최근에 낙동강에서 한강까지 산줄기 물줄기를 갈기 갈기 찢어서 수로를 만든다고 합니다. 수로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운하가 생긴다면 지구별과 영원히 이별할지 모릅니다. 마실 물에 배를 띄운다는데 여러분은 동의하세요?        설악산에 살고 있는 산양입니다.  서식지 안팎에서 사람들이 내는 소음, 향기, 빛 때문에 정신병원에 가야 할 지경입니다.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서식지를 파괴하여 개발하여 살 곳이 없는데, 국립공원의 서식지 마저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생긴 등산로, 케이블카, 도로 등 각종 인공시설물 때문에 정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몇 년전에 울진 삼척지역의 한 친구는 도로, 송전탑, 광산, 임도 등 각종 도로를 통해서 들어온 밀렵꾼이 놓은 올무에 처참하게 죽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새 부부는 사람들이 산에서 고함을 치고, 시끄러운 라디오, 휴대전화를 켜고 다니는 바람에 몇 해째 아기가 없어요.   참, 휴대전화와 컴퓨터의 부품의 코팅재료로 사용되는 콜탄의 채광 때문에 콩코의 고릴라 서식지가 파괴되어 내 친구 고릴라의 수가 반 수로 감소한 사실도 알고 계신가요? 북한산에 살고 있는 다람쥐에요.  참나무 열매, 밤, 도토리, 호두를 먹고 사는데 산에 오는 사람들이 열매를 가지고 가서 열매를 먹고 사는 야생동물들은 배가 고파요. 국립공원의 열매를 공원 밖으로 가져가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산에서 버려진 쓰레기 속에 농약성분이 들어간 과일껍질을 먹고 이웃 친구 직박구리는 병이 났어요.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입니다. 천성산에 고속철도 공사가 재개되면서 이제 어디로 이사를 가야하나 걱정입니다. 지난 해 산에 온 사람들이 저를 손으로 만져서 몸에 화상을 입고 죽을 뻔했어요.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하면 멸종위기 야생동물식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 중 85%가 서식지 감소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특히, 도로건설로 인한 서식지 파편화는 2차, 3차 광산, 송전선로, 관광지 등의 개발로 이어져서 야생동물은 살 곳을 잃습니다. 이처럼 도시 생활의 욕구와 편리함과 윤택함을 위해서 야생동물과 그 서식지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도시의 에너지 수요때문에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핵발전소가 생기고, 송전선로가 건설되며, 광산이 생깁니다. 더 빠르고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자동차는 급증하고 도로가 무분별하게 생겨나며 이로 인한 야생동물 교통사고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도시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생활이 야생동식물과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과 생태계의 아픔은 무책임한 도시문화의 어두운 얼굴입니다. 야생동물 보호, 회색빛 도시를 떠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만 할 수 있는 실천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여기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야생동물과 그 터전을 생각하는 녹색여가 실천하기  - 행동하기 전에 나의 움직임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세요. - 먹고 입고 쓰고 전에 내가 쓰고 있는 물건과 서비스가 어떻게 와서 어떻게 세상으로 되돌아가는지 생각해 보세요. - 여행지와 그 길에서 만나게 될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를 미리 공부해 보세요. 여행지에서 만난 야생동식물의 흔적을 기록하고 지도로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살고 있는 지역의 야생동식물의 흔적을 관찰하고 생태지도를 만들어 보세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지킬 수 있습니다. -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세요. - 개인컵과 도시락, 손수건을 준비하세요. -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지 말고 작은 단위로 나누어 움직이세요. - 산과 강과 바다에 가서 동식물과 그 서식지를 방해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 두세요. - 야생동식물은 소리, 빛, 향기에 민감하답니다. 자연에서 쓰레기, 향기, 빛, 소리 등의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 여행할 때 동식물을 이용한 상품과 서비스를 사지 마세요. 예컨대, 동물과 사진찍기, 동물의 공연이나 쇼보기, 희귀식물 곤충, 동물을 이용한 장신구, 동물타기, 동물원 가기 등.   - 지역경제와 생태문화를 존중하세요. - 자동차와 비행기 이용을 줄이고, 더 많이 걷거나 더 자주 자전거를 타세요.   -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대안에너지운동에 동참해주세요. - 덜 쓰고, 다시 쓰고, 나눠 쓰세요. - 작은 것을 사랑하세요.   - 꼭 필요해서 소비해야 한다면 환경과 인권을 고려한 방법으로 만든 지역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세요. 구입하기 전에 물건이 어느 곳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꼭 확인하세요.  - 야생동식물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활동에 적극 동참해주세요.  (항의 메일쓰기&전화하기; 캠페인 참여하기; 환경&동물 단체 후원하기; 관련 정보 모니터링하여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함께 행동하기)    그림/ 엄정애 녹색연합회원 글/ 최은애 녹색연합 시민참여국 
968    [이런저런] - "매 팔자 상팔자" (2) 댓글:  조회:4032  추천:0  2017-02-01
[쿠키뉴스=원미연 콘텐츠에디터]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점령한 매 80마리가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출처=Reddit]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에 ‘렌수(lensoo)’라는 사용자가 공유한 사진이 화제인데요. 어느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을 촬영한 이 사진에는 아주 기묘한 장면이 담겨 있는데요. 좌석을 차지하고 앉은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80마리의 매이기 때문입니다. ‘렌수’는 사진과 함께 "기장인 친구가 이 사진을 나에게 보내줬다. 사우디 왕자가 80마리 매를 위한 티켓을 샀다."고 설명을 덧붙였는데요. 어떤 누리꾼은 4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며, 비행기에 탑승한 매의 사진을 함께 올리기도 했습니다.   [출처=imgur] 일부 누리꾼들은 사진 합성이나 조작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중동에서 매를 비행기 좌석에 태우는 일은 그리 드문 풍경이 아닌데요.   카타르 항공사의 경우 이코노미석에 최대 6마리의 매를 태울 수 있으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해외여행을 위한 매 여권을 별도로 발급하기도 합니다. [출처=유튜브 Prof. Dr. Sc. Norman Ali Bassam Ali Taher Khalaf] * 매 여권? 매 여권은 10년에 약 3만 부가 발행된다는데요. 비용은 한화로 15만 원 정도가 들며, 3년간 유효합니다. 이렇게 매 전용 여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사냥에 동승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밀수를 방지하는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가 여객기를 타는 호강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돈 많은 아랍 왕자들의 취미 생활 덕분인데요. 아랍 부유층은 매나 독수리를 훈련시켜 사냥에 이용하는 아랍 전통 사냥법, 팔콘리(falconry)를 즐긴다고 합니다. 아랍 왕자들에게 매를 위한 비행기 티켓은 버스 승차권 구입하는 느낌쯤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랍에는 이런 속담이 맞을 것 같네요. ‘매 팔자가 상팔자’... /[출처=유튜브]
967    [이런저런] - 매가 비행기를 타다... 그것도 80마리씩이나... 댓글:  조회:5499  추천:0  2017-02-01
비행기 좌석에 매 80마리가 앉아 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중동의 한 왕족이 자신이 기르는 매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이코노미 좌석 80석을 구매한 것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온라인 소셜뉴스 사이트 레딧에 매 80마리가 비행기 좌석 한 자리씩을 차지한 모습이 올라왔다.  사진을 올린 사람은 해당 비행기 승무원의 친구로 “사우디의 한 왕자가 매들을 위해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드도 이 소식을 전하며 중동 지역에서는 매를 비행기 좌석에 태우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한 네티즌은 “카타르 항공은 이코노미 좌석에 최대 6마리의 매만 허용하고 있으니 그 항공사는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매 80 마리를 태운 사우디 왕자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근 다른 걸프 국가의 사막 지대에서 매 사냥 훈련을 하기 위해, 매의 여권을 발급받고 비행기 표를 샀다고 한다.  사우디·아랍에미리트·카타르 등 일부 걸프 국가는 매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매 여권'을 공식적으로 발급해주고 있다. 비행 당일 매 80마리는 기내에서 날지 못하도록 목에 끈을 맸으며 눈가리개를 썼다고 항공사 관계자는 전했다.  매에게 발행된 여권 중동 지역에서 매 사냥은 수백만달러 상금이 걸린 대회가 매년 열릴 정도로 인기다. 아랍의 부호들은 한 마리에 수십만달러 상당의 '명품 매'를 여럿 소유하고 있다. 두바이는 사막 유목민의 전통인 매 사냥을 보존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매 전문 병원'을 지었으며 매 사냥 대회도 후원하고 있다. [연관기사] ☞ 비행기 탑승 매 80마리 “우리도 표 샀어요”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매 사냥 매는 시력이 사람의 8배에 달한다고 한다. 힘차게 날다가 300km가 넘는 속도로 먹이감을 채가는 모습은 박진감이 넘친다. 매는 주로 꿩, 뱀, 비둘기 등을 잡아 먹고 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매의 특성을 이용해 매 사냥(falconry)이 예부터 성행했다고 한다.  황해도 안악군 ‘안악 1호’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매 사냥 장면이 등장한다. 대전 박정오 응사의 매 사냥 시연 장면 매사냥은 고려 시대 때 크게 유행해 고려의 충렬왕 때부터는 매사육과 매사냥을 전담하는 관청인 응방이 생겨나 조선조 숙종 때까지 이어졌다.  이 후 매사냥은 일반 백성들도 즐길 수 있는 오락으로 발전했지만 해방 이후 매사냥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마 매사냥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전북 진안이다.  진안은 전승의 방법이나 사냥법, 도구 제작 등의 기능 전승이 다른 지역보다 우수하다. 진안군 백운면 일대는 날짐승이 많고 고원지대라 눈이 많이 내리면 매의 먹이가 되는 꿩이 마을 가까이 몰려와 예부터 매사냥이 성행했었다.  사냥을 위해 매를 기르고 부리는 사람을 응사(매부리)라고 한다. 우리나라 매 사냥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으로는 전북 진안의 박정오 응사와 대전의 박용순 응사가 꼽힌다. 박정오 응사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0호이고, 박용순 응사는 대전무형 문화재 8호다.  대전 박정오 응사 이런 전통을 인정받아 우리나라의 ‘매사냥’은 2010년 케냐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벨기에·프랑스·몽골 등 11개국과 함께 공동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몽골에서는 매를 이용한 여우 사냥이 인기라고 한다. 윤창희 기자
966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공연 관람할 때 댓글:  조회:3941  추천:0  2017-01-31
  [어린이 매너교실] = 공연 관람할 때 음악회,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을 보러 갈 때가 있지요? 이런 공연은 영화와 달리 배우나 연주자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소통하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와는 조금 다른 매너가 필요하답니다. 영화와 다르게 판소리와 사물놀이, 연극처럼 관객과 배우가 서로 소통하는 공연을 볼 때는 적절한 추임새와 웃음, 박수가 공연 전체의 분위기를 살려준답니다. 배우와 주변 관객의 흥을 돋우는 매너라고 할 수 있죠.   ▲ /그림=정서용   하지만 오케스트라나 관현악 공연, 무용이나 발레 공연에서는 공연 도중 박수를 치거나 큰 소리를 내면 공연의 흐름이 끊어질 수 있으니 조용히 공연을 보는 게 올바른 매너랍니다. 공연이나 연주가 끝난 뒤 큰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지요. 공연을 보러 갈 때에는 시작 시각보다 20~30분 전 미리 공연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아요. 유명한 공연에는 사람이 많이 몰려 제시간에 공연장에 도착해도 제때 착석하지 못해 공연 분위기를 흐릴 수 있기 때문이죠. 영화관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공연 시작 전에는 스마트폰은 꺼두거나 무음 모드로 바꿔 놓는 것도 잊지 마세요.   김희아 서울율현초 교장 |
965    성벽 돌에 키스를 하면 달변가가 된다?... 글쎄ㅠ!... 댓글:  조회:5679  추천:0  2017-01-31
  ▲  블라니성의 모습 ⓒ 김현지 관련사진보기 사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코크의 여행지는 잉글리쉬 마켓도세인트 앤 성당도 아니다. 바로 유네스코세계 문화 유산 중 하나인 블라니성(Blarney Castle)이란 곳이다. 이곳은 코크의 중심지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승용차로 약 15분 가량을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처음 설립될 당시인 10세기에는 나무로 지어졌으나 12세기 무렵에 다시 돌로 재건이되었다. 현존하는 탑은 아일랜드의 권위있는 가문 중 하나였던 먼스터(Munster)의 맥카시왕(DermotMcCathy King)이 세운 것으로 1446년 무렵에 세워졌다. 이 성이 오늘날까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성 꼭대기에 있는 블라니 스톤(Blarney Stone) 때문일 것이다. 태초의 자연이 그대로 숨쉬고있는 정원 옆에는육안으로 봐도 오래되어보이는 다소 허름한블라니성이 보인다. 백 개가 넘는 가파른계단을 올라가면 얼마나많은 사람의 입술이다였을지 가늠하기도 힘든, 눈으로 봐도 닳고 닳아 보이는 흉벽을만날 수 있다. 육안으로 봐서는 그다지특별히 보이지 않는 저 흉벽에 아슬아슬하게거꾸로 매달려 입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는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돌에 키스해 달변가가 되고 싶은 모두의 마음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여행지 중 하나로 뽑혔다는 블라니 스톤에 왜 그토록 입을 맞추려고할까? 바로 오래 전부터 이 돌에 키스를 하면 달변가가 된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니 스톤(BlarneyStone)에 키스를 하면 달변가가 된다는 전설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블라니성을 지은 맥카시왕은 원래 법조인으로 한 재판에서 승소를 하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내용은 재판장으로 가는 날 아침에 이 돌에 키스를 하는 것이었단다. 아무리 요상한 기도의 응답이라도 일단 재판에 이기는 것이 중요했던 맥카시왕은 이 돌에 키스를 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의 유창한 달변으로 재판에서 이길 수 있었단다. 또 다른 이야기는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왕(Robertthe Bruce)이 백너번(Bannockburn)전투를 할 때 맥카시왕은 4천명이나 되는 군사를 지원해주었다. 그 보답으로 로버트왕은 자신이 즉위했을 때 앉았던 돌을 선물로 주어 블라니성을 지을 때 그 돌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후에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인 윈스터 처칠(Winston Churchill)도 저 돌에 입을 맞추면서 이곳은 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  눈으로 보기에도 닳아보이는 블라니스톤의 모습 ⓒ 김현지 관련사진보기 ▲  블라니스톤에 혼자서는 키스를 할 수 없다. 상시 대기중이신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야 저 돌에 입을 맞출 수 있다. ⓒ 김현지 관련사진보기 사실 저 돌에 키스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섭다. 우선 키스를 하려면 바닥에 누워야하고, 누운 채로 두 개의 봉을 잡으면 상체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가 된다. 그리곤 고개를 한껏 젖혀야 입술이 돌에 닿을 수 있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자세라 상시 대기중인 아저씨가 있고 옆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아저씨도 있다. 요상한 자세로 키스를 해보는 것이 여행지에서나 가질 수 있는 추억이긴 하지만 너무 기계적으로 여행자들을 대하는 도우미 아저씨들의 태도 때문일까? 키스 한 번 하는 데도 돈을 내야 한다는 인심이 야박해서일까? 지나치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버린 블라니캐슬은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지만 한편으로는 아일랜드 특유의 푸근한 인심이 사라져 버린곳인 것 같아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왔다.  아이리쉬 전통음악과 춤을 볼 수 있는 공연 '전통의 리듬' ▲  Pulses of Tradition의 대표사진   관련사진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코크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단연코 아이리쉬 전통 음악과 탭 댄스 공연인 Pulses of Tradition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전통의 리듬, 맥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공연은 해마다 여름(6월~9월)이면 코크시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공연의 구성은 아이리쉬 전통북인 보드란(Bodhran), 아이리쉬 전통 피리인 틴 휘슬(tinwhistle), 키보드, 바이올린, 기타 등의 악기를 6~7명의 뮤지션이 연주하고 그 연주에 맞추어 6~7명의 무용수들이 음악에 따라 탭 댄스를 추는 형식이다. 일반적으로 처음 코크를 여행하면 코크 시내를 구경하고 유명한 성이나 성당을 찍은 후 코브(Cobh)항으로 가는 코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명동이나 인사동이 서울 사람들에게는 이색적인 장소가 아닌 것처럼 비교적 코크를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우리에게도 그런 관광지는 그다지 매력적인 여행 코스가 아니었다. 코크 주변의 나름 유명한 곳을 다 둘러본 우리 가족은 남은 시간을 그냥 숙소에서 쉬다 갈것인가, 아니면 시티센터를 한 번 더 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멋진 도시에서 더 멋진 무언가를 경험하고 싶었으나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관광지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찰나에 남편은 우연치 않게 유명 여행 리뷰사이트에서 코크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트에서 당당히1위를 차지하고 있던 여행상품은 우리가 보았던 잉글리쉬 마켓도, 세인트 앤 성당도, 블라니 성당도 아니었다. 바로 '전통의 리듬(Pulsesof Tradition)'이란 2시간짜리 공연이었다. 아일랜드로 이사올 때부터 남편은 아이리쉬 음악(특히 아일랜드 전통 바이올린 연주)과 탭 댄스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일랜드에 왔으면 아이리쉬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음악과 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고 그런 갈증을 단번에 해소시켜 줄만한 공연이 바로 Pulses of Tradition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먹고 놀기만 하는 소비성 강한 여행에서 아이리쉬들의 실제 음악을 이해하는 교감적 여행을 한껏 충족시킬 수 있는 공연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우리에겐 어디로 튈지 모르는 4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민폐일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나는 오후 공연을, 남편은 저녁 공연을 선택했다. 함께 공연의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여유있게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의 신분을 잠깐 내려놓기로 하였다. 공연은 코크 중심가에 있는 작은 문화센터에서 이루어졌는데 사용하지 않는 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는지 공연장 내부는 열악한 편이었다. 의자는 교회의 긴 의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관중석은 경사가 지지않아 뒷자석에 앉으면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뭔가 2% 부족한 마음을 가진 채 공연장 앞부분에 자리를 맡았고 어떤 공연을 보게 될지 내심 기대를 하며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여행지에서의 깊이 있는 교감 공연이 시작되자 어두웠던 무대의 조명은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고 긴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공연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반 공연장도 아닌, 음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공연장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천사처럼 신비로웠고 오묘했다. 이윽고 연주자들이 있는 곳에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했고 공연의 열기는 점차 뜨거워져 갔다.  새로운 음악세계를 경험해서일까? 한국으로 따지자면 아일랜드 국악공연을 보는 것이나 다름 없었는데 나는 어느새 아이리쉬 음악과 춤에 푹 빠져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보드란북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보드, 기타 등의 악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니! 공연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앙코르를 수차례 외쳐대던 것도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크란 여행지에서 이렇게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실로 감격스러웠다. 어쩌면 눈에 보여지고 사진기의 화면 속에 들어있는 코크의 아름다움보다 보이지 않지만 내 귓가에 맴도는 음악소리와 내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나를 이 도시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964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엘리베이터 타고 내릴 때" 댓글:  조회:3805  추천:0  2017-01-31
  [어린이 매너교실] = 엘리베이터 타고 내릴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에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와 마찬가지로 내리는 사람이 먼저 내리고 난 후에 타는 것이 기본적인 매너입니다. 그러니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는 내리는 사람을 배려해 문 앞에서 조금 떨어져 기다리는 것이 좋겠죠?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많다면 높은 층에 내리는 사람은 안쪽에 서고 낮은 층에서 내리는 사람은 문과 가까운 쪽에 타는 게 좋습니다. 반대로 서 있으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마다 서로 몸이 부딪쳐 번거로울 거예요.   ▲ /그림=정서용   본인이 내릴 층이 아닌데 문 앞에 서 있을 때에는 가능한 옆쪽으로 비켜서거나 잠깐 내렸다가 타는 것이 매너입니다. 반대로 본인이 내려야 하는 층인데 다른 사람들이 앞을 막고 있다면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양해를 구한 뒤 앞에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내리는 게 좋아요. 아무 말 없이 다른 사람을 밀치며 문 앞으로 나오면 몸이 밀린 사람은 불쾌하겠죠? 밀폐된 공간인 엘리베이터에 여러 사람이 있을 때에는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올 때에는 소매로 얼굴을 가려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겠죠? 엘리베이터 문이 막 닫히려는 순간 열림 버튼을 누르고 간신히 타게 되었다면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가볍게 인사하며 목례를 하는 것이 기다려준 사람에 대한 작은 매너입니다.   김희아 서울율현초 교장 |
963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문 잡아주기" 댓글:  조회:5453  추천:0  2017-01-31
  [어린이 매너교실] = 문 잡아주기   학교나 병원, 상가나 식당 등에서 손으로 밀거나 당기면 저절로 닫히는 여닫이문을 자주 볼 수 있지요? 여닫이문을 이용하다 보면 앞사람이 밀고 나간 문의 반동으로 뒷사람이 문에 부딪힐 뻔한 일들이 종종 있답니다. 특히 힘이 약한 어르신이나 움직임이 불편한 임신부가 이런 문에 부딪히면 크게 다칠 위험이 있어요. ▲ 그림=정서용   그래서 여닫이문을 통과할 때 바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는 매너가 필요하답니다. 여닫이문을 열고 나간 다음, 문을 잡은 손을 놓기 전 바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요. 만약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면 1초 정도 문을 잡아주는 아주 간단한 매너지요. 앞사람이 여닫이문을 잡아주고 있다면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문을 잡은 뒤 간단한 눈인사나 목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좋아요. 이런 매너를 지키는 사람이 최근에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닫이문을 휙 열고 그냥 지나가버리는 사람도 여전히 많답니다. 여닫이문이 너무 크고 무거우면 어린이들은 이런 매너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학교에서 미닫이문을 이용할 때만이라도 뒤에 따라오는 친구를 위해 문 잡아주기 매너를 실천해보는 게 어떨까요?   김희아 서울율현초 교장 |
96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우주인 우주선에서 방귀를 뀌다... 댓글:  조회:4781  추천:0  2017-01-31
우주인 식단    우주인 한 사람이 우주에서 1년 간 머무는 데는 물, 공기, 식품이 적어도 12t이나 필요하다. 3명의 승무원이 왕복 2년 걸리는 화성여행에 나선다면 무려 72t을 싣고 가야 한다. 로켓으로 화물 1㎏을 쏘아  올리는 데 수백만 원이 드는 우주여행에 트럭 수십 대 분량의 물과 통조림 따위를 싣고 5600만㎞ 이상 떨어진 화성까지 날아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우주인들은 지구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재활용을 철저히 한다. 지금 우주에 떠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도 승무원들은 오줌을 걸러낸 다음 증류해 식수로 마신다. 샤워나 세수한 물도 여러 번 걸러 수질검사를 통과하면 식수통에 붓는다. 우주선의 동력원인 연료전지를 가동하면 부산물로 물이 나오는데. 이것도 식수로 쓴다. 필요한 물의 대부분은 이렇게 조달한다. 물은 마실 뿐 아니라 전기분해해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만드는 데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주인들의 배설물은 어떻게 할까. 진공 건조해 모아두었다가 지구로 가져온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화성처럼 장거리 여행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모든 물질의 재활용과 재사용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고형 배설물에서 수분을 빼내고 나머지 찌꺼기로 식물을 길러 식량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주선 농장’이다. 미래 우주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종 기계와 장치가 들어있는 칸보다 태양전지로 햇빛을 비추는 인공농장이 더 많을 것이다. 이 농장은 식량생산뿐 아니라 탄산가스와 미량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산소를 만들어내는 기능도 한다. 최고의 과학기술을 동원한 장거리 우주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텃밭에서도 적용되는 원리라는 사실은 놀랍다. 사실 지구는 직경이 1만 2000㎞인 거대한 우주선 아닌가. 이 ‘우주선 지구호’가 제대로 운항하기 위한 최고의 매뉴얼은 바로 자연이다. 자연 흉내 내기는 어린 과학도들만의 호기심은 아니다. 어른들도 한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로. 미국의 백만장자인 에드워드 배스는 작은 지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미국 애리조나 주 남부 오라클의 사막지대에 1만 2000㎡의 거대한 유리온실을 만들었다. ‘생물권 2’라 이름 지어진(생물권 1은 지구이므로) 이 인공지구 속에는 지구의 축소판인 바다, 습지, 열대우림, 사막, 초원, 농경지 등을 만들었다. 염소, 원숭이, 지렁이, 벌새 등 3800여 종의 각종 동·식물과 함께 우주복 비슷한 단복을 입은 자원 참가자 남녀 4명씩 8명은 외부와 차단된 이 인공지구에서 1991년부터 2년간 지냈다. 마치 어항 속 버들치처럼. 만일 이들의 실험이 성공적이어서 온실 내부의 공기와 영양분 순환이 잘 이뤄져 외부의 지원 없이 생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달이나 화성에 비슷한 인간 거주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2년 뒤 실험은 일단 끝났지만 자급자족 생태계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무참히 실패했다. 새와 동물, 곤충들은 번성하기는커녕 대부분 죽어버렸다. 바퀴벌레와 개미들이 ‘생물권’을 점령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2억 달러가 들어간 이 시설이 8명의 대원이 숨쉬기에 충분한 산소조차 공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애초 약속과 달리 외부에서 산소를 긴급 투입해야 했다. 마치 어항의 기포발생기처럼 말이다. ---- 화성 탐사는 왕복 5년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우주인들의 식량이다. 우주인들이 먹는 식량은 1인당 하루 3.8파운드(약 1.7kg)다. 5년치는 자그마치 7,000파운드(약 3,178kg). 몇 명이 화성 왕복선에 승선할 지는 아직 모르지만 엄청난 양의 식량이 필요해 비좁은 우주선에 실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리고 질문을 받아들이는 깊이에 따라 아주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만약 질문을 받은 사람이 우주선을 설계하는 기술자이거나 혹은 그 우주선에 탈 우주인이라면 질문을 받는 즉시 아마 다음과 같이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루 600리터의 산소와 2.5 리터의 물, 3,000kcal의 식량 그리고 300mmHg 이상의 기압과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약간 무미건조하긴 하지만 그의 대답은 사실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우주 환경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위에 열거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산소와 물, 그리고 식량이 필요한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일정 크기 이상의 기압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사람을 그대로 우주 공간에 내 놓으면 어떻게 될까? 기압이 0에 가까운 우주 공간에서는 사람의 체온에서도 물이 끓는다. 때문에, 우주에 나가는 즉시 온몸의 체액이 끓어서 증발해 버린다. 평지보다 압력이 낮은 산 위에서 밥을 하면, 물이 낮은 온도에서 끓어 버리기 때문에 밥이 잘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우주선 내부에 불이 난다거나 하는 위급 상황에서 우주선 내부와 진공 상태인 우주를 연결하는 장치를 열어서 공기를 모두 빼 버린다고 하더라도 최후의 보루인 우주복의 내부는 항상 300mmHg 이상의 압력을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또한, 이산화탄소 제거 장치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이유도 재미있다. 만약 밀폐된 우주선 내부에 산소 공급이 차단되면 어떻게 될까?  산소가 공급되지 않더라도 우주선 내부 공기 중에 포함된 산소를 가지고 3명의 우주인이 3시간가량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1시간 30분가량이 지나면 우주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이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버린다고 한다. 산소공급보다 이산화탄소 제거가 더 시급한 문제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지상 382km 상공의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고 있는 우주인들에겐 ‘식욕’이란 남의 나라 얘기다. 낯선 우주에서 우리 몸은 환경에 맞도록 변화한다. 지상과 달리 중력이 거의 ‘0’인 우주에서는 허리 아래쪽에 몰려 있던 혈액과 세포액이 허리 위로 올라온다. 코와 목이 부어 향과 맛을 느끼는 신경이 무뎌진다. 평형감각을 잃어버려 생기는 우주비행멀미도 식욕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  위와 아래 구분이 없는 무중력 환경에서는 눈, 세반고리관, 관절 등 우리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감각기관과 이를 관장하는 뇌 사이에 일대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맛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음식 문제로 인한 우주인들의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정기영(대령·내과전문의) 공군항공우주의료원장은 “오랫동안 우주에서 생활하고 돌아온 우주인들이 밝힌 가장 큰 애로는 바로 음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우주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식만 통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무는 우주인들도 하루 세 끼를 먹는다. 이들이 먹는 우주식은 수분 함량과 가공 방식에 따라 크게 6종류로 나뉜다. 대부분 건조시킨 맛없는 쇠고기와 과일, 야채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우주식은 정말 맛없다’는 20세기 우주비행사들의 푸념은 이제 옛말이다. 우주 음식이 우주인의 영양보충뿐만 아니라 지루한 우주 생활에 활력을 주는 요소로 인정받으면서 지구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의 음식이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다. ISS 우주인의 식단은 러시아 우주음식이 절반, 그리고 미국식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 우주 비행을 하기 몇 달 전 우주인은 150여 가지의 우주음식을 미리 맛보고 채점을 한다. 의학 전문가는 이 중 80여 종을 선택해 약 2주(16일)마다 바뀌는 개별 식단을 짠다.  러시아 우주식은 정부 주도로 만들기 때문에 우주인에게 꼭 필요한 전통음식이 주를 차지한다. 보르시치(빨간 순무가 든 수프)나 트보로크(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음식)가 대표적인 예다. 이 밖에도 통조림에 든 생선이나 고기도 맛볼 수 있다. 음식에 기름기가 많아 한국인의 입에는 다소 맞지 않는다는 평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상업화에 눈을 돌렸다. 다국적 식품회사에 우주음식 개발을 맡겨 일반인도 구입해 맛을 볼 수 있다. 치킨 콘소메와 버섯크림 수프, 치즈와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 과일 칵테일, 달걀 스크램블 등 지금까지 200가지가 넘는 식단이 개발됐다. 떨어진 입맛 자극할 한국 우주식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13일 김치, 밥, 고추장, 된장국 등 한국의 전통 식품 10종을 러시아 의생물학연구소(IBMP)로부터 우주식품 최종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주인들은 적어도 하루에 2,800 ㎉ 내에서 자신이 먹을 우주 음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답니다. 개개인의 키와 몸무게에 따라 칼로리는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식단 구성은 탄수화물 50%, 지방 30%, 단백질 15% 정도로 유지된답니다.  첨가제, 각종 소스 : 케첩, 머스터드, 마요네즈, 타코 소스, 고춧가루 등은 파우치 형태의 봉지에 각각 담겨져 있어요. 단, 후춧가루는 오일에, 소금은 물이 섞인 형태로 폴리에틸렌 병에 담아져서 나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춧가루나 소금 가루가 우주선 기내에 마구 날라 다녀 기계 속으로 들어가 고장을 일으키는 등의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에요.  자연 형태의 식품 : 생과일이나 야채 외에도 땅콩, 쿠키 등이 여기에 속해요. 봉지를 가위로 잘라서 먹기만 하면 오케이! 열안정화 식품 : 열안정화 식품은 해로운 미생물이나 효소를 죽이기 위해 열처리한 것을 말해요. 알루미늄 캔, 플라스틱 컵, 레토르트 봉지 등 여러 형태를 지니죠. 참치나 연어와 같은 대부분의 생선과 과일들은 캔 형태로 열처리되고, 생선, 고기 등 메인 요리 사이에 먹는 앙뜨레류 음식은 레토르트 봉지 형태로 열처리되어 있어요. 캔은 당겨서 열어 먹고, 레토르트 식품은 열로 봉지를 데운 다음, 가위로 봉지를 열어  안에 든 음식을 먹게 되어 있어요. 요즘은 물을 가해 먹는 수화 식품보다는 열안정화 식품이 증가하는 추세예요. 우주선에서는 물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수화 식품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어요. 수화 식품 : 젤리 형태. 우주 식량이 든 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오븐에 넣은 효과가 나서 쉽게 데워져요. 포장지 윗부분을 가위나 나이프로 자를 수 있게 되어 있고, 안의 내용물을 포크나 스푼으로 먹을 수 있지요.  음료수 : 커피, 차, 오렌지 주스, 과일 펀치, 레모네이드 등이 있으며 가루 형태로 제공돼요. 음료수 포장은 호일 라미네이트로 만들어지는데, 음료수가 든 포장지 안에 물을 넣고 흔들어 빨대를 넣고 마시도록 되어 있죠. 또 사진처럼 음료수 통에 담겨 있기도 해요. 방사선 처리 식품 : 열안정화 식품과 다른 점은 해로운 미생물이나 포자를 죽이기 위해 열이 아닌 방사선 처리를 한 것! 그렇다면 왜 방사선 처리까지 해 가며 우주 식량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미생물들을 박멸하는 것일까요? 그건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들은 우주선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주에서는 신체의 면역 기능이 떨어져 지구에서와 같이 병에 대항해 잘 싸울 수 없어요. 실험 결과 실제로 박테리아는 우주에서 더 빨리 성장한답니다. 게다가 우주선은 비좁기 때문에 우주인들끼리 가까이 있죠. 그러다 보면 우주인들끼리 병균 감염도 더 쉽게 되겠죠?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한답니다. 만일 우주 식량을 먹고 탈이 나거나, 나쁜 병균으로부터 감염돼 병이 나면, 치료해 줄 시설이나 의료진이 없으니까요.   우주 식량에서 꼭 체크해야 하는 영양소 철 : 우주인들은 하루에 지구인보다 철분을 10 ㎎ 정도 더 적게 섭취해야 해요. 우주 식량으로부터 공급되는 철은 새 적혈구 세포로 가게 되는데, 무중력 상태에서는 적혈구 생산량이 많지 않아 철도 그만큼 필요치 않지요. 우주인의 몸에 철이 많으면 철은 몸에 고스란히 저장돼, 오히려 건강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칼슘 : 칼슘은 뼈를 만들고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해요. 우주에서는 무중력 상태에서 붕붕 떠 다니기 때문에 신체가 느끼기에 뼈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칼슘 사용을 중지하지요, 그래서 뼈가 약해지는 거예요. 지구로 돌아와 뼈 손상을 회복시키는 데는 무려 2년이나 걸린답니다.  나트륨과 비타민 D : 이 두 성분은 뼈에 영향을 끼쳐요. 너무 많은 나트륨을 먹으면 뼈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우주 식량에는 나트륨 함량이 제한되어 있어요. 나트륨이 주성분인 소금은 식품의 보존 기간을 늘려 주기는 하지만 소금 양을 줄여야 해요. 또, 장기간 우주에 머물게 되면 비타민이 부족하게 되는데, 특히 우주에선 햇빛의 양이 부족해 비타민 D가 결핍되기 쉬워요. 인체는 햇빛을 받아 스스로 비타민 D를 생산하지만, 우주선에서는 햇빛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음식으로 비타민 D를 보충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우주 식량에는 비타민 D가 풍부한 요구르트 치즈 같은 유제품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요.  이소연 지금까지 개발된 우주식은 150여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우주인들이 맛을 보고 고른 80여종으로 개별 식단이 짜여진다. 이씨는 “무중력 환경에서 먹는 우주식은 열려 있는 그릇에 넣어 둘 수 없어 완전히 닫혀 있는 비닐 팩이나 튜브, 캔 등 특수용기에 담겨 있다.”고 전했다. 혹시 음식 찌꺼기 하나라도 공중에 떠다니다 작동하는 기계에 들어가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우주식은 일반 음식과 달리, 칼륨 이온과 칼슘 이온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이씨는 “우주에서 장기간 머물면 뼛속의 칼슘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 뼈가 약해지기 때문”이라면서 “우주인은 칼슘 함량이 높은 우주식을 섭취하고 날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함으로써 칼슘 손실을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무중력 환경에서는 지상과 달리 혈액이 하체보다 상대적으로 상체에 많이 쏠리기 때문에 특수한 속옷까지 착용한다. 이씨는 “입맛을 잃기 쉬운 우주에서 ‘매콤하고 감칠맛나는’ 한국 김치가 우주인의 입맛을 되찾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 음식이 우주식으로 만들어지면 우주인들에게 인기메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냉장고, 냉동고가 없다! 우주선에는 부족한 공간, 무게 제한, 한정된 전력 사용량 때문에 냉장고, 냉동고를 실을 수 없어요. 그래서 모든 우주 식량은 실온에서 몇 달간밖에 저장할 수 없어요. 우주에서는 냉동, 냉장 식품이 없기 때문에 우주인들은 우주화물선이 막 가져온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며칠 동안만 먹을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상온에서 유통이 가능한 우주 식량을 먹지요.  *정수기가 없다! 우주선에는 지구에서부터 실어온 정수기 물은 없어요. 우주선에선 태양열 전지판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부산물로 깨끗한 물을 얻지요. 이 기계가 바로 워터 디스펜서(�물 분배기)! 우주인들은 식사 시간이면 냉동 건조된 우주 식량에 물을 부어 먹어요. 워터 디스펜서는 음식이나 음료수에 온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단 냉수는 안 나온답니다.  *의자가 없다! 우주인들은 의자에 앉지 않고, 허벅지를 식탁 아래에 붙일 수 있도록 벨크로 테이프와 스프링을 허벅지에 부착시키고 식사를 해요. 그래서 마치 앉아 있는 것처럼 자세를 잡지요 *개수대나 조리대가 없다! 우주선에서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설거지를 하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우주 식량 포장은 일인용, 일회용으로 되어 있어요. 음식이 남을 경우 보관할 수 있는 장치나 공간이 전혀 없으며, 무중력 상태에서의 물의 처리도 어렵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주선 주방에는 개수대가 없어요. 우주선에서는 물 사용이 번거로워, 물로 헹구지 않는 치약과 샴푸를 사용하고, 샤워시의 튀는 물방울의 진공 집수 처리, 대소변의 진공 처리 등으로 최소량의 물을 사용하고 있답니다. 또한 대류 오븐으로는 80℃ 정도까지만 열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우주 식량은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완전 조리 식품들이에요. 그래서 조리대도 필요 없지요. 덕분에 우주선 안은 항상 깔끔하답니다. *전자레인지가 없다! 우주선 주방에는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 대류 오븐이 있을 뿐이에요. 이것은 마치 헤어드라이어기와 같이 뜨거운 열만 공급해 줘요. 대류 오븐으로는 우주 식량을 데울 수만 있을 뿐, 최고 온도가 80℃ 이상 올라가지 않아, 물을 끓이는 것은 불가능하죠. 따라서 우주선에서는 음식 조리가 안 돼요.   --- 1965년 3월 25일, 울피스 델리카트슨의 소고기 샌드위치가 우주로 발사 되었다. 샌드위치를 만든 울피의 특별한 지점은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멀지 않은 플로리다의 코코아 해변에 위치해 있었다. 우주 비행사 윌리 시라는 포장된 샌드위치를 들고 케네디 우주 센터로 다시 차를 몰았다. 그는 우주비행사 존 영이 제미니 3호 캡슐에 샌드위치를 몰래 갖고 탑승하게 해서, 동료 승무원 거스 그리섬을 놀려줄 작정이었다. 다섯 시간으로 예정된 비행이 시작된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영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작전은 예상과 달리 시시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리섬: 그건 어디서 났나? 영: 내가 갖고 왔지. 맛이 어떤지 한번 먹어보자고. 냄새가 좋군, 안그래? 그리섬: 그래, 그런데 샌드위치가 흩어지고 있네, 주머니에 넣어야 겠어. 영: 그냥, 가져오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리섬: 알겠어. 이 ‘소고기 샌드위치 사건’은 그해 말에 열린 의회 예산 청문회에서 NASA를 비판해오던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다. 1965년 7월 12일 미국 의회 의사록에 의하면, 상원의원 모스는 50억 달러의 NASA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는 감축안을 추진하면서 존 영이 섭취량과 배출량을 너무나도 신중하게 측정했던 제미니 과학 프로그램 전체를 ‘우롱했다’ 고 비난했다. 또 다른 의원은 NASA의 행정관 제임스 웨브에게 우주비행사 두 명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관리할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영은 공식적인 징계를 받았다. 밀반입된 샌드위치는 ‘건조된(한입 크기의)소고기 샌드위치’의 공식 제조 요건을 열여섯 가지나 위반했다. 제조 요건은 여섯 쪽에 달하며, 십계명에서나 사용했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구절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결코 습하거나 젖은 부분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음식물의 겉 부분은 절대로 떨어져 나가거나 벗겨지면 아니 될 것이다.’ 와 같이 말이다. 더욱이 밀반입된 샌드위치는 결함 조항 102번 ‘낯선 냄새, 예를 들어 고약한 냄새’ 와 결함 조항 151번 ‘뼈, 껍데기 혹은 단단한 힘줄이 보이는’ 음식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주캡슐에서 먹을 음식은 울피스 델리카트슨의 샌드위치와는 정반대여야만 한다. 우선 무게가 가벼워야 한다. NASA가 우주로 500그램을 더 발사할 때마다, 궤도로 올리는 데까지 수천 달러의 추가 연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크기가 작아야만 한다. 제미니 3호 우주캡슐은 스포츠카의 내부보다도 좁았다. 이와 같은 음식물 크기와 무게의 엄격한 제한 때문에 우주 식품 공학자들은 가장 작은 부피의 음식 속에 가장 높은 영양과 에너지를 넣은 ‘칼로리 밀도’ 에 열중했다. (극지 탐험가들도 유사한 제약들과 칼로리 밀도 문제에 직면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정부 연구 예산 탓에 많은 양의 버터를 챙겨 간다) 심지어 베이컨도 유압 프레스로 짜서 더 작게 만든다.(그리곤 ‘사간 베이컨’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른다) 압축 음식은 공간을 덜 차지할 뿐만 아니라 부서질 가능성도 적다. 우주선 엔지니어에게 음식물 부스러기는 관리 대상 이상의 문제다. 지구 상에서라면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청소부가 올 때까지 그냥 무시하거나 마루 틈에 껴둘 수 있겠지만, 무중력상태에서 부스러기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둥둥 떠다닌다. 부스러기는 제어반 뒤를 떠다니거나 눈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섬이 소고기 샌드위치가 부서지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호주머니에 넣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올피스 샌드위치와 달리, 주사위 모양 샌드위치는 한 입에 넣을 수 있다. 토스트 한 조각을 한 입에 통째로 먹을 수 있다면 부스러기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빵을 주사위 모양으로 만들어 굽는다면, 우리도 영과 그리섬이 우주여행 때 먹었던 방식 그대로의 토스트를 맛볼 수 있다. 우주 식품 공학자들은 안전을 기하기 위해 부스러기에까지 식용 코팅을 입혔다. (‘코팅을 잔뜩 입힌 토스트 조각들을 딱딱해질 때 까지 얼려라…..’ 조리법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공군과 육군, 기업이 섞여 있는 항공 우주 급식 팀은 주사위 모양의 음식을 완벽하게 코팅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 기술 보고서는 골디락스식 조리법 개발을 간략하게 설명하낟. 조리법 5는 너무 끈적거렸다. 조리법 8은 진공에서 부서졌다. 그러나 조리법 11(녹인 돼지기름, 우유 단백질, 크녹스 젤라틴, 옥수수 녹말, 자당)은 매우 적절한 조합이었다. 물론 그것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지만. “맛대가리도 없으면서 코팅이 입천장에 들러붙어요.” 짐 로벨이 제미니 7호 비행 동안 지상 우주비행 관제 센터에게 불평한 내용이다. 무게가 3.1 그램도 나가지 않고 ‘45센티미터 높이에서 딱딱한 바닥으로 떨어뜨려도 부서지지 않는 코팅된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과, 이것을 몇 주에 걸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면서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머큐리와 제미니 프로그램의 임무들은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기간이 짧은 편이었다. 하루나 일주일은 그저 아무거나 먹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NASA는 달 임무 기간의 목표를 최대 2주로 정했다. 그렇다면 NASA는 여러 궁금중을 미리 풀어야만 했다. 돼지기름 조각과 옥수수 전분을 일정하게 먹은 사람의 소화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실험 주방에서 심사숙고해 만든 음식을 먹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는가? 그리고 더 비극적으로는 과연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음식들을 먹고 싶어 하는가? 이런 종류의 음식이 우주비행사들의 사기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등을 말이다. 1960년대 전반에 걸쳐 NASA는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기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큰돈을 지불했다. 우주 식품 연구 개발 계약서들은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의 항공 우주 의학 연구소에 그리고 이후에는 브룩스 공군기지의 항공 우주 의학대학교에 보내졌다. 미 육군 네이틱 연구소는 제조 요건 초안을 작성했고, 기업들은 조리를 했으며, 항공 우주 의학 연구소와 항공 우주 의학대학교는 지상 실험을 맡았다. 이들 모두는 자원 팀원들이 최대 72일간 가상 우주비행을 위해 머물게 될 가상 우주선실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음식은 우주복과 위생 식이요법, 그리고 다양한 선실 대기들(다행이 70퍼센트의 헬륨을 포함해서)과 함께 실험했다. 영양사는 하루 세 차례, 실험 음식을 가상 우주선실 안에 갖다 둔다. 신병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온갖 형태의 가공식품과 엄격한 심사를 거친 우주 항공 식품을 먹고 살아남았다. 음식들은 주사위 모양이나 원기둥 모양이기도 했고, 걸쭉하거나 가루 형태거나 스틱 형태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변화를 가하면 ‘원상태로 복귀가 가능한 음식’ 도 있었다. 영양사들은 안으로 들어간 음식의 무게를 재고, 계량하고, 분석했으며, 다시 밖으로 나온 것에 대해서도 똑 같은 일을 했다. 키스 스미스 중위는 소고기 스튜와 초코릿 푸딩이 포함된 항공 우주 식품의 영양 평가서에 ‘대변 샘플들은 (•••) 균질화한 뒤 냉동 건조시켰고 두 번 분석했다.’ 라고 썼다. 우리는 스미스 중령이 사용한 용기가 새지 않았기를 바라야 한다. 이 시기에 두 남자를 찍은 사진이 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서 수술복을 입고 다양한 바이털사인을 측정하는 모니터가 달리 허리띠를 매고 있다. 한 젊은 남자는 마치 2층 다리미판 처럼 보이는 좁고 가는 2층 침대 아래 칸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의 왼손엔 아주 작은 케이크 같은 것이 들려 있고, 무릎 위 비닐봉지에는 주사위 모양의 음식들이 4층 이상으로 쌓여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저녁 식사다. 코에는 관이 꽂혀 있다. 그의 룸메이트는 슈퍼맨의 클라크 켄트를 연상시키는 검은 안경테를 끼고,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쓴 채 콘솔 앞에 앉아 있다. 1965년에는 미래 지향저으로 보였을 콘솔이지만, 이제는 구닥다리로 보일 뿐이다. 사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우주 식품 직원, 1965~1969’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아마도 제목을 적은 사람은 ‘미니 샌드위치들이 심장박동수와 호흡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는 모습’ 정도의 정보성을 띈 제목을 짓고 싶지만, 그런 표현을 썼다가는 공군의 위엄에 손상을 입힐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영양사 메이 오하라와 씁쓸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이등병들이 항공 우주 의학대학교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 해치를 닫기 전까지를 찍은 ‘실험 이전’의 사진들이다. 오하라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군 영양사다운 외모, 즉 과체중도 저체중도 아닌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공군 신병들의 심장박동수와 산소 흡수량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지는 않다. 오하라는 유능한 영양사였다. 군 통신사 기사는, 그녀가 ‘3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같이’ 다양한 우주 식품의 수용 가능성에 대해 걱정한다고 전한바 있다. 그녀 홀로 이성적인 의견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사위 모양의 음식들이 시큰둥한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은 열성적으로 끈질기게 음식을 압착시켰다. 그들은 입안에서 침으로 10초 동안 적셔 원상 복귀시켜야 하는 건조식품이 일주일간 비행을 하는 군의 사기 또한 적실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임무가 계속되면서, 주사위 모양의 샌드위치 ‘일상적으로 되돌아오는 음식 중 하나’ 였다고 은퇴한 NASA 식품 과학자 찰스 벌랜드는 말한다.(음식들이 몸 밖으로 역류되었다는 게 아니라, 착륙 후까지 우주선에 그대로 실려 있었다는 뜻인 것 같다) 나는 주중 오후에 점심을 먹은 직후, 텍사스에 있는 오하라 메이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이제 70대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먹었는지 물었다. 전직 영양사답게 마치 식당의 메뉴를 말하는 듯했다. “구운 소고기 치즈 샌드위치와 포도 그리고 화채를 먹었어요.” 나는 메이에게 항공 우주 의학대학교의 실험 참가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연구실을 떠나거나, 한밤중에 햄버거를 사 먹으러 나갔다가 우주선실 밖으로 추방된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모두 아주 협조적이었어요.” 메이는 대답했다. 우선 실험 참가자들은 기초 훈련을 면제받았다. 한 달 동안 음식 씹는 것 말고는 다른 육체적 노동이 없다는 점은 실험 참가자들의 마음을 확실히 움직였다. 게다가 자원한 대가로 그들은 공군 임무 배정 선택권을 가질 수 있었다. 항공 우주 의학 연구소 모의 실험실의 자원자들은 인근에 위치한 데이튼 대학교의 대학원생들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돈을 받으며 실험에 임했기에 혹은 데이튼 대학교가 가톨릭 학교였기에, 참가자들의 행실이 대체로 좋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찬 예배를 드리지 모하는 것이 이따금 문제가 되었다. 어떤 자원자는 어찌나 흥분했던지 과학자들이 조항을 깨고 신부를 불러왔을 정도였다. 신부는 폐쇄회로 TV와 마이크를 이용해서 성찬 예배를 드렸다. 음식을 내주는 창구엔 소량의 포도주와 영성체용 과자가 놓였다. 아마도 과거의 감칠맛만은 성찬에 못지않게 좋았을 것이다. 어떤 실험 음식은 주사위 모양 음식보다 훨씬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밀크셰이크였어요. 그리고 다음 날에도 아침, 점심, 저녁 밀크셰이크였죠.” 항공 우주 의학 연구소 우주선실 모의실험실을 책임졌던 장교 존 브라운의 말이다. 1~9까지 등급으로 평가했을 때, 30일 동안 이 같은 식단을 먹었던 자원자들은 음식에 평균적으로 3(적당히 싫다)을 주었다. 브라운은 내게 3은 아마도 1(매우 싫다)을 의미했을 거라고 귀띔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설문지에 질문지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써놓았던 거죠.” 어떤 실험 참가자는 자신과 동료 자원자들이 공급받은 음식을 선실 바닥으로 던져버리곤 했다고 브라운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밀크셰이크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자그마치 스무 가지의 다른 상용 유동식품 조리법을 평가했다. 공군 기술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는데 식용 종이의 바람직한 특징, 즉 ‘맛없고, 유연하고, 끈끈함’ 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바로 이것이 우주 식품 개발자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편 항공 우주 의학대학교에서는 노먼 하이델보가 자신이 고안한 유동식품을 실험하고 있었다. 공군 보도 자료는 그것을 ‘에그노그식단’이라 불렀다. 메이 오하라는 그것을 ‘가루로 된 인슈어 음료’라고 표현했다. “그건 정말로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 아니였어요.” 그녀는 평소와 다른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이델보가 만든 유동식품이 정말 맛이 없었나 보다. 비록 영양학이 독특한 혈통을 가진 미각 사디스트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기엔 다른 힘들도 작용했다. 때는 1960년대 였다. 미국인들은 문명의 편리함과 그것을 있게 한 우주 시대의 기술에 도취되어 있었다. 여성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있었고, 요리하고 살림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스틱 형태나 주머니에 든 음식은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시간을 절약해주는 반가운 선물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변화 덕에 항공 우주 의학 연구소에서 가장 인기 없던 유동식품이 제품으로 출시되어 오랜 시간 사랑받는 네슬레의 ‘카네이션 인스턴트 브렉퍼스트’ 같은 제품이 되기도 했다. 스틱 형태의 우주 식품도 처음엔 군의 실패작이었다. 공군이 ‘고공 급실을 위한 스틱형 식품’ 이라고 불렀던 이것은, 원래 여압복 헬멧의 틈새로 쑤셔 넣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다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딱딱하게 만들 수 없었어요.” 오하라가 말했다. 이후 필스버리 사가 스틱형 식품을 다시 상용화했다. 벌랜드는 필스버리 식품이 이따금 간식으로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발사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영양 보충 스틱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느 누구도 속지 않을 캐러멜 스틱이 올라가기도 한다. 스틱형 식품과 아침 식사 대용 음료를 만든 식품 회사들조차 미국의 일반 가정에서 이것들만 먹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왠지 극단적인 영양학자들이 NASA의 견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커피를 ‘탄소 화합물’ 이라고 불렀으며, ‘음식 토핑 전략’ 에 대한 교재를 집필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1964년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영양학 교수 네빈 스크림쇼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을 가치 있고 도전적인 일들로 채우는 사람들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의욕을 북돋워주는 음식, 그중에서도 입속에 넣고 씹어야 하는 음식의 섭취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스크림쇼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실험 참가자들이 두 달간 저녁식사로 유동식품을 먹었으나,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는 점을 증거로 내세웠다. 제미니의 우주비행사들은 주사위 모양 음식보다 더 끔찍한 음식을 먹을 운명을 간신히 모면했다. NASA의 에드워드 미셸은 같은 장소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제미니 프로그램에 유동식품이 공식 식단으로 지정되길 희망합니다, (•••) 비행 전과 비행 중, 그리고 비행 후 2주에 걸쳐 이 음식을 사용할 것입니다.” 스크림쇼의 말은 옳지 않았다. 사람은 ‘반드시 입속에 넣고 씹을 음식을 필요로 한다.’ 우주비행사에게 유동식품을 먹게 하면, 그들은 고형식품을 갈망할 것이다. 아침 한 끼만 머큐리 시대의 튜브 음식을 먹었는데도 그랬다. 우주비행사들은 더 이상 튜브 음식을 먹지 않지만, 군 조종사들은 임무 수행 중 샌드위치를 벗겨 먹을 시간이 없을 때 튜브 음식을 먹는다. 네이틱에 위치한 미 육군 전투 급식 부서의 공학자이자 붙임성 좋은 성격의 바키 러버리지는 조리 기술과 방법이 머큐리 시대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러버리지는 나를 네이틱으로 초대했다. (“댄 내트레스가 21세기형 아침식사로 튜브형 애플파이를 만들고 있어요.”)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네이틱을 방문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친절하게도 샘플 한 박스를 보내주었다. 그건 꼭 내 의붓딸 릴리의 유화물감처럼 보였다. 튜브형 음식을 먹는 것은 독특한 불안감을 유발한다.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두 개의 우수한 통제 시스템인 시각과 후각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벌랜드는 우주비행사가 튜브형 음식을 싫어하는 까닭은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것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해주었다. 또한, 음식의 질감 혹은 식품 기술 용어로는 ‘입에 닿는 느낌’ 이 불안감을 배가 시킨다. 라벨에 ‘슬러피조’ 라고 쓰여 있다면, 사람들은 ‘슬러피 조’ 샌드위치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네이틱의 튜브 음식에는 다진 고기의 특징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것은 퓌레다. 찰스 벌랜드의 말대로, 모든 튜브 음식은 ‘튜브 입구 때문에 질감의 제한이 있는 탓에’ 그럴 수 밖에 없다. 최초의 우주 식품은 사실상 유아용 이유식이었다. 그러나 유아라도 숟가락을 이용한다. 머큐리 호 우주비행사들은 알루미늄 구멍을 마치 젖을 먹듯 빨아 먹어야 했다. 전혀 영웅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밝혀진 대로, 이 방식을 피하기가 어려운 것만도 아니었다. 메이 오하라는 숟가락과 펼친 용기도 음식이 ‘들러붙는 성질만 있다면’ 무중력상태에서도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한다. 만약 음식이 충분히 두툼하고 축축하기만 하면, 표면장력은 음식이 떨어져 나가거나 떠 다니는 것을 막을 것이다. 슬러피 조는 흡사, 얼린 엘칠라다 소스 같은 맛이 났다. 누군가가 분명히 당황한 나머지 라벨에 그저 ‘채식주의자용’ 이라고만 적어 놓은, 네이틱의 채식주의자용 요리도 약간 매운 맛이 나는 토마토 퓌레엿다. 머큐리 호의 우주비행사가 된다는 것은 구멍가게 소스 진열 통로에 갖힌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존 글렌의 역사적인 사과소스 튜브와 조리법이 동일한 네이틱의 사과 소스는 제법 맛이 괜찮았다. 아마도 그건 친숙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보통은 사과 소스가 당연히 퓌레처럼 만들어질 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초기 우주 식품의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생소함이었다. 춥고, 비좁고, 삭막하기까지 한 깡통을 타고 우주를 질주하고 있을 때는 뭔가 편안하고 친근한 것을 갈구하게 마련이다. 우주 식품으로 대중은 신기한 음식을 맛보는 기쁨을 얻었지만, 우주비행사들은 그런 신기함을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경험해야 했다. 우주비행사들 사이에서는 때때로 저녁 식사와 함께 음료수를 마시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맥주는 비행 금지 품목이다. 중력이 없다면 탄산 거품이 표면으로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거품이 부글부글 생길 뿐이죠.” 벌랜드가 말한다. 그는 코카콜라가 무중력 자판기를 개발하는 데 45만 달러를 들였지만 생물학적 문제에 직면해 실패했다고 말했다. 거품이 위장의 윗부분으로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우주비행사들이 계속해서 트림을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액체 스프레이 때문에 트림이 나오기도 했죠.” 벌랜드가 덧붙인다. 벌랜드는 스카이랩에서의 식사에 와인을 곁들여보려고 노력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포도주 양조학자들은 그에게 와인 대신 셰리주를 고려해보라고 조언했다. 셰리주는 생산 과정에서 가열하므로 보관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와인계에서 셰리주는 저온 살균된 오렌지 주스로 통한다. 유리병은 안전상의 이유로 우주선 탑재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폴 메이슨 크림 셰리라는 셰리주를 비닐 주머니에 담아 푸딩 캔 소에 넣어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조치는 와인이 아닌 크림 셰리라는 것으로 이미 줄어든 매력에, 더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우주여행을 하는 여느 새로운 기술이 그랬듯, 셰리 캔 역시 무중력 실험을 위해 포물선 비행이 이루어졌다. 비록 포장은 잘 되었지만, 그날 탑승한 어느 누구도 그 제품을 마시고 싶어 하지 않았다. 셰리주의 진한 냄새는 금방 선실 안을 가득 채워 포물선 비행 시 으레 일어나는 메스꺼움을 더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캔을 따자마자, 사람들이 구토 주머니를 움켜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벌랜드는 이렇게 회상한다. 이러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벌랜드는 폴 메이슨 크림 셰리주 몇 상자를 구매하는 청구 주문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셰리주가 포장에 들어가기 직전, 누군가가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술을 먹지 않는 납세자들의 항의 편지가 NASA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결국 NASA는 캔에 든 크림 셰리주를 포장하고, 청구하고, 실험하느라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썻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 전체를 엎었다. 설령 이것이 비행에 성공했다고 해도, 스카이랩의 셰리주는 정부가 병역 의무를 위해서 식량으로 보급한 최초의 알코올음료는 아니었다. 영국 해군의 경우 1970년까지 럼주가 배급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1802~1832년까지 미국의 군 식량에는 하루 치 식량의 소고기와 빵과 함께 럼, 브랜디, 혹은 위스키 두 잔 정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100끼니마다 비누와 700그램의 양초가 지급되었다. 양초는 조명으로 혹은 물물교환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아주 깔끔한 사람이라면 초를 녹여 소고기 샌드위치 표면을 코팅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초기 우주 식품의 비인간성이 전적으로 영양학자의 탓은 아니었다. 찰스 벌랜드는 유동식품 보급자 노면 하이델보의 이름 뒤에 붙는 ‘USAF VC’라는 약자를 지적하여 내가 간과했던 무언가를 환기시켜 주었다. 하이델보는 공군 수의사 단체의 소속이었던 것이다. 우주비행사의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229쪽짜리 안내서인 항공 우주 급식용 음시의 제조 요건의 편집자 중 한 명인 로버트 플렌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식품 과학자 중에는 군 수의사가 많았어요.” 벌랜드가 말해주었다. 에어로비 원숭이 발사와 스태프 대령이 감속 슬레드를 연구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시 공군은 실험용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따라서 수의사들도 존재했다. 여기서 ‘수의사’라는 말이 부족하다면, ‘우주생리학을 지원하는 수의사’라고 풀어 쓸 수도 있겠다. 1962년, ‘미 공군 수의사는 못 할 게 없다!” 라는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책무에 ‘식품을 실험하고 제조하는 것’ 도 포함되었다. 섭취 대상은 처음에는 동물, 종국에는 우주비행사들로까지 확대되었다. 우주 승무원에게는 나쁜 소식이었다. 연구용 동물이나 가축의 급식을 담당하는 수의사들은 세 가지 주제에 관심이 있었다. 바로 비용 절약, 사용의 편의성, 건강 문제 발생 예방이다. 원숭이나 소가 그들이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가의 여부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이런 까닭에 버터스카치 유동식품과 압축된 콘플레이크, 주사위 모양 땅콩 크림을 수의사들에게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수의사들은 말했어요. ‘동물에게 먹이를 줄 때는, 그저 먹이 주머니를 잘 섞어 내용물을 꺼내주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동물은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요. 하지만 우주비행사에게는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죠?’ 라고요.” 때때로 수의사들은 그렇게 했다. 노먼 하이델보가 1967년에 제출한 기술 보고서. 알 모양 식품의 소량 제조법이 그 증거다. 하이델보는 우주비행사 음식을 만들었다! 이 음식에 중량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 두 가지는, 커피메이트 ‘분말 크림’과 포도당/엿당이었다. 이는 알 모양 식품이 ‘매우 맛있다’는 수의사들의 주장에 의문이 들게 한다. 이번에도 맛은 수의사들의 최우선 관심사가 아니었다. 최우선 관심사는 중량과 부피였다. 하이델보는 이러한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을 골랐다. 대략 606세제곱센티미터의 정육면체 음식으로 대략2,600킬로칼로리, 즉 2,600만 칼로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칼로리 밀도는 충분할 것이다. 1964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양계학과 교수인 새뮤얼 렙콥스키가 제안한 방법을 읽어본다면 하이델보의 공간 절약 방법이 극단적으로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렙콥스키는 자신이 미치광이 같은 말을 지껄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만약 살찐 우주비행사를 찾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20킬로그램의 지방을 가진 뚱뚱한 우주비행사는 (•••) 18만 4,000칼로리의 비축 열량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라면 90일 동안 매일 2,900칼로리 이상을 스스로 제공할 것이다. 이 말인즉슨, 식량을 전혀 싣지 않고 발사했을 때 절약할 수 있는 로켓의 연료를 생각해보라!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우주비행사들을 쫄쫄 굶긴다면 앞서 밝힌 NASA의 또 다른 걱정인 ‘오물 관리’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배설물 주머니를 사용하는 거은 대단히 불쾌했을 뿐만 아니라, 최종 산물의 지독한 냄새는 귀중한 선실을 가득 채웠다. 벌랜드는 말한다. “우주비행사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 알약만 먹고 싶어 했어요. 그들은 언제나 그 이야기를 했지요.” 식품 과학자들은 이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우주비행사들의 대비책은 끼니를 거르는 것이었다. 음식 주머니 안에 먹을 게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배고픔을 견디게 해줬다. 짐 로벨과 프랭크 보먼은 제미니 7호 캡슐에 14일 동안 갇혀 잇었다. 단식은 더 이상 실행 가능한 오물 관리 전략이 아니었다. (“프랭크는 9일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고 버텼던 것 같아요.” 짐 로벨은 NASA의 육성 기록에서 이렇게 남겼다. 그 시점에서 프랭크 보먼이 말했다. “짐 로벨은 NASA의 육성기록에서 이렇게 남겼다. 그 시점에서 프랭크 보먼이 말했다. “짐, 이제 그것도 끝이야. 난 볼일을 봐야겠어.” 로벨이 대답했다. “프랭크, 좀 참아 봐. 이제 여기서 지낼 날도 5일밖에 남지 않았어!”) NASA의 새로운 임무는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설물이 적은’ 음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머큐리와 제미니 같은 단기 임무를 수행하는 비행에서는 장운동이 별로 없었다.’ 라고 보먼은 회고록에 적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가상 우주비행사들에게로 돌아가 보자. ‘실험 음식과 가상 우주 상황이 인체의 배설물 성질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제목의 기술 보고서 AMRL 66-147은, 항공 우주 의학 연구소 모의실험실에서 로벨과 보먼의 대역을 맡은 네 남자의 고통스러운 14일을 상세히 상술한다. 최초로 실험된 음식들은 모두 주사위 모양으로 만들어진 악명 높은 음식이었다. 미니 샌드위치,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고기, 아주 작은 디저트가 바로 그 음식들이다. 너무 작다 보니 마치 인형들이 주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사위 모양 음식은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주범이었다. 음식 표면에 입혀지는 코팅은 돼지기름 대신 야자유로 바뀌었다. 야자유는 거의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장을 통과했다. 이는 젊은 이등병에게, 우리에게는 생소한 지방변증을 일으켰다. (지방변증이란 대변에 물기가 많은 설사와 달리, 기름기가 많은 것을 뜻한다.) 샌안토니오 지역 신문인 의 기사를 인용하면, 지방변증은 ‘궤도를 도는 우주선에서의 능률적인 임무 수행을 방해하는 위장 효과들’ 을 발생시켰다. 리포터는 말을 삼가고 있었지만, 기술 보고서는 그것을 똑똑히 설명했다. 기름기가 많은 대변은 냄새가 지독할뿐더러 지저분하다. 공식적인 표현은 ‘죽같이 흐물거리지만 액체는 아닌 것’ 인데, 실험 참가자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배설물을 조사하고 점수를 매겨야 했기 때문에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보고서는 변실금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기꺼이 할 수 있다. 만약 올레스트라나 주사위 모양 우주 음식의 코팅제 때문에 똥에 기름기가 생겼다면 일부는 밖으로 새어 나올지도 모른다. 한 벌의 속옷으로 2주간 우주비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항문에서 새어 나온 똥이 전혀 반갑지 않을 것이다. 또한 유동식품 가운데 하나인 ‘42일간의 밀크셰이크’ 도 실험되었다. 유동식품은 ‘배설물 방출 빈도’ 뿐만 아니라 오줌을 누게 될 거라고 예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음료 안에 녹아 있는 섬유소 때문에 배변 양이 엄청났으며, 눈에 띄게 늘 때도, 심지어 두 배 이상이 되기도 했다. 얄궃게도 우주비행사의 ‘배설물’을 최소화하고 싶었다면, 정확히 그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인 스테이크를 먹였어야 했다.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은 지구 상의 어느 것보다도 소화율이 가장 높다. 고기는 잘게 자를수록 소화 흡수도 더 잘 된다. 배출할 게 거의 없을 정도까지 말이다. “최고급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의 경우 소화율이 거의 90퍼센트에 달해요.”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의 동물 영양 과학 교수인 조지 파히는 지방은 94퍼센트까지 소화될 수 있으며, 등심 스테이크 300그램에서는 이제스타가 단3그램밖에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고의 식품은 달걀이다. 1964년에 열린 ‘우주에서의 영양 및 오물 문제’ 학회의 토론자였던 프란츠 잉겔핑거는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완숙된 달걀만큼 완전히 소화되고 흡수되는 음식은 없다.’ 라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NASA의 전통, 발사일 아침 식사로 스테이크와 달걀을 제공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우주비행사 입장에서는 복장을 완전히 갖취 입은 채 여덟 시간, 혹은 그 이상을 드러누워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륙 전 아침 식사로 시리얼을 먹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소련 항공 우주국은 이륙 전 우주비행사들에게 스테이크와 달걀을 주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에게 관장제 1리터를 주었다) 배설물 전문가 파히는 애완동물 식품 산업의 고문을 맡고 있다. NASA가 함께 일해야만 하는 동물 과학 전문가는 공군의 수의사가 아니라 바로 이들이다. 애완동물 식품 제조자의 최우선적 관심사 두가지는 맛과 ‘배설물의 특질’이다. 즉, 그들은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거실 카펫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도 주인들은 애완동물이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한다. 나는 이것 또한 NASA의 목적과 같다고 생각한다. 파히가 뜻밖에 농담을 하며 말했다. “다음으로 신경 쓰는 것은 배설물의 굳기에요. 딱딱한 배설물이 나와야 해요. 그래야 집어서 처분하기가 쉬우니까요. 제미니와 아폴로호 우주비행사들의 질척한 배설물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이 아니랍니다.” 또한 애완동물 식품 제조자들은 ‘배설물 방출 빈도’를 낮춘다는 초기 우주 식품 과학자들의 목적도 공유한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개는 고장 두 번의 외출 기회를 갖는다. 주인이 일터로 떠나기 전인 아침 한 번과, 저녁에 한 번 정도다. 파히는 말한다. “개들은 여덟 시간 동안 배설을 참고 있을 수 있어야만 해요.” 이런 상황은 개나 발사대에 선 우주비행사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우주비행사들도 배설 주머니와 맞닥뜨리기 전 가능한 오랫동안 배설을 참고 싶을 것이다. 방출 빈도를 줄이는 다른 방법은 온화한 성격의 우주비행사를 선발하는 것일 수도 잇다. 활동적인 개는 신진대사도 빠르다. 음식이 몸속을 빨리 통과하므로 완전히 소화될 기회가 없다. 사냥개는 천성적으로 흥분하기 쉬워서 배설물이 질척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느 순간에라도 먹잇감을 찾아 뛰어나가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여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음식이란 덜 씹을수록 소화되지 않은 채 통과하는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파히라면 초기 우주비행사들에게 어떤 음식을 제공했을까? 그는 탄수화물인 쌀을 추천했다. 쌀은 모든 탄수화물 중에 가장 찌꺼기가 적다. (이 때문에 애완동물 식품 제조 회사인 퓨리나에서는 ‘양고기와 감자’가 아닌 ‘양고기와 쌀’을 만든다) 또한 파히는 우주비행사 식단에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넣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배설양도 많게 하거니와 방출 빈도도 잦게 만든다. 그렇다고 찌꺼기나 섬유소가 전혀 없는 가공식품만 먹인다면 변비에 걸릴 것이다. 변비는 비행 길이에 따라 이상적일 수도 있겠다. ‘단기 비행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오물 처리 문제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해답은 우주비행사들을 변비에 걸리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프란츠 잉겔핑거는 이렇게 적었다. 소고기 샌드위치 사건이 있고 12년 뒤, 우주비행사 존 영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뉴스 방송에서 그의 고용주를 다시 한 번 당황시켰다. 영은 아폴로 16호의 동료 승무원 찰리 듀크와 함께 달 착륙선 오리온에 앉아 있었다. 그건 우주로 나가 암석들을 수집한 다음 날이었다. 무선으로 지상 우주비행 관제 센터에 보고하는 동안, 영이 불쑥 말했다. “내가 또 방귀를 뀌었어, 또 뀌었다고, 찰리, 그들이 무슨 음식을 준건지 모르겠어. (•••) 아무래도 위 속에 신게 들어 있는 것 같아.” 칼륨 부족으로 승무원들이 심장 부정맥 증상을 보였던 아폴로 15호의 선례에 따라, NASA는 칼륨이 첨가된 오렌지 주스와 자몽 주스, 그 밖에 감귤류 주스를 메뉴에 넣은 상태였다. 영은 계속해서 방귀를 뀌었다. 임무 필기록에 그 모든 내용이 실려있다. “내 말은, 지난 20년 동안 이렇게 많은 오렌지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거야. 한 가지 장담하지. 남은 12일 동안은 이걸 절대로 다시는 먹지 않겠어. 그들이 만약 내 아침 식사에 칼륨을 넣겠다고 하면, 다 토해버릴 거야. 나도 오렌지를 이따금씩 먹는 건 좋아해. 정말이야. 하지만 내가 만약 오렌지들 속에 파묻히게 된다면 정말 돌아버리고 말거야.” 잠시 뒤, 지상 우주비행 관제 센터가 영에게 훨씬 더 난감한 말을 전해왔다. 캡컴(지상 기지의 우주선 교신 담당자): 오리온, 휴스턴이다. 영 : 네. 캡컴 : 알겠네. 마이크가 계속 켜져 있었어. 영 : 앗. 이게 얼마나 오랫동안 켜져 있었던 거죠? 캡컴: 자네가 투덜거리는 내내 켜져 있었네.  이번에 화가 난 것은 의회가 아니었다. 영의 발언이 언론을 강타 한 후, 플로리다 주지사는 플로리다 주의 주요 농작물을 변호하는 성명서를 냈다. 찰리 듀크는 회고록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문제의 원인이 우리의 오렌지 주스라는 게 아니다. 그것은 플로리다에서 나지 않는 인공 대체물이다. 사실, 문제의 원인은 오렌지 주스가 아니라 칼륨이었다. 1964년에 열린 ‘우주에서의 영양 및 오물 문제’ 학회에 참가한 또 다른 토론자인 미국 농무부 위장 내 가스 연구자 에드윈 머피의 말을 인용하자면, 오렌지 주스는 ‘위장에 가스를 차게 하는 정도’가 낮다. 머피는 실험 참가자 직장에 도관을 연결해 가스가 측량 장치 안으로 들어가도록 설치한 후 ‘실험용 콩 식사’ 를 그들에게 제공하며 연구한 결과를 보고했다. 그는 개인차에 관심이 있었다. 위장 내 가스의 총 부피뿐만 아니라 가스 성분 함량 차이까지 말이다. 장에서 기생하는 박테리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구 절반은 스스로 메탄을 생산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우주비행사로서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메탄이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메탄은 냄새가 없다) 인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공익기업에서 ‘천연가스’라고 판매하는 것이 바로 메탄이다) 머피는 NASA의 우주비행사 선발 위원회에 이런 독특한 제안을 했다. 폭발성이 있는 메탄이나 수소를 거의 혹은 전혀 만들지 않는 사람중에서 우주비행사를 뽑을 수 있다. 그리고 황화수소나 다른 악취나는 가스 성분들을 아주 적게 생산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발할 수도 있다. (•••) 더욱이 우주비행사는 같은 중량의 음식이라도 가스가 차는 정도가 개개인별로 다르기 때문에, 장에 탈이 나지 않고 가스도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된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다. 머피는 연구 중에 이상적인 우주비행사 후보를 만난 적이 있다. 추가 연구를 위해 특별히 관심을 두었던 실험 참가자가 있었다. 그 실험 참가자는 100그램의 건조된 콩을 섭취하고도 가스를 전혀 만들지 않았다. 이는 가스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간(콩을 섭취하고 5~6시간 뒤) 동안 시간당 한 컵에서 거의 세 컵 분량의 가스가 통과하는 평균적인 장과는 전혀 달랐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상위 그룹은 콜라 두 캔 정도의 방귀를 만들어낸다. 창문도 열 수 없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말이다. NASA는 체질적으로 가스가 차지 않는 사람을 모집하는 대신 소화기관을 멸균시켜 ‘가스를 만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머피는 향균제를 복약한 어떤 실험 참가자가 악명 높은 콩 음식을 머은 후 가스 배출량이 50퍼센트 미만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NASA가 실제로 택한 이성적인 방법은 그저 가스를 많이 만드는 음식을 피하는 것이었다. 아폴로 시대 전반에 걸쳐 콩과 배추, 꼬마 양배추, 브로콜리는 금지 품목이었다. “콩은 우주왕복선 때까지 사용되지 않았지요.”라고 찰스 벌랜드는 말한다. 콩이 식단에 등장한 것을 환영한 사람들이 있는데, 맛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특히 승무원 전원이 남성으로 이루어진 비행일 때 무중력 방귀는 아주 인기 잇는 오락거리였다. 나는 우주비행사들이 방귀를 마치 로켓 추진체처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로저 크라우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간 갑판을 향해 자신의 몸을 발사시킨다’는 얘기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지만 미심쩍어했다. 그는 이메일을 통해 ‘가스의 배출량과 속도는 사람 무게에 비해 아주 작아요.’ 라고 말했다. 따라서 방귀가 80킬로그램이 나가는 우주비행사를 가속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크라우치는 내뿜어진 공기는 어떤 방향으로도 우주비행사를 추진시키지 못하며, 허파는 약 6리터의 공기를 품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머피 박사에게 배운 것처럼, 많아야 음료수 세 캔 정도의 가스뿐인 방귀와 달리 말이다. 보통 사람의 방귀라면 말이다. ‘나의 유전자는 소화 부산물을 배출하는 뛰어난 능력을 나에게 주었어요.’ 크라우치는 이렇게 썻다. ‘그래서 이걸 시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정말로 크고 빠르게 배출된 방귀라 생각했는데도 내 몸은 별로 움직이지 않았아요.’ 크라우치는 자신의 실험이 ‘가스가 팬티를 통과할 때 일어나는 작용 반작용’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닌가 추측했다. 실망스럽게도 그의 두번의 비행은 모두 혼성 팀이었으므로, 크라우치는 ‘발가벗고’ 다시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로 가서 다른 우주비행사들의 정보를 수소문해보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도 비밀을 털어놓지 않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우주 식품은 더욱 정성스럽고 좀 더 정상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국제 우주정거장에는 많은 저장실이 있어서 음식이 더 이상 압축되거나 건조될 필요가 없다. 요리들은 비닐 주머니에 밀봉시켜 열처리한 다음, 서류 가방처럼 생긴 작은 장치 속에서 재 가열한다. 찰스 벌랜드는 2010년 ‘우주비행상의 요리책’ 이라는 훌륭한 책을 출간했다. 만약 주방에 ‘내셔널 스타치 앤드 케미컬사의 150가지 필링’ 과 ‘이템 푸드사의 캐러멜이 첨가된 마늘 수프 #99-404’ 가 있다면 최첨단 우주왕복선 시대의 여든다섯 가지 요리와 반찬을 신속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화성 임무의 경우, 상황이 또다시 야릇해질 수도 있다.
96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화성에 간 우주인 먹거리 = 감자 댓글:  조회:5554  추천:0  2017-01-31
  미 항공우주국(NASA)과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민간우주회사 '스페이스X' 등 미국 과 유럽에서는 화성에 갈 우주선과 발사체를 개발하는데 열중하고 있어요.  이르면 2030 년 무렵 인간이 화성에 갈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성에 간 우주인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요?  지구에서 가져간 식량도 몇 년이 지나면 동이 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매번 지구에서 식량을 가져다 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 (NASA)은 화성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 작물을 찾고 있어요 . 그첫째 후보는 바로 감자랍니다.  영화 '마션(The Martian)'에서도 화성에 혼자 남은 우주비행사가 감자농사를 짓지요.  여러 채소·곡물 중에 왜 감자가 첫째  후보로 뽑힌걸까요? 화성기지국 ◇페루에서 시작된 '화성판 감자 농사,  감자가 화성에 갈 농작물로 꼽힌 이유는  다른 농작물에 비해 생존력이 아주 뛰어나고 영양분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감자는 지구상 의 모든 기후에 잘 적응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는 특징이 있어  밀이나 벼 같은곡물 보다 농사짓기도 더 쉬워요.  주성분은 탄수화물이지만 단백질, 비타민C, 철, 아연 같은 여러 영양소가 풍부하게ㅈ들어가 있답니다. 감자는 농사 효율도 아주 좋아요.  같은 양의 물을 주었을 때 감자는 밀보다 2.4배, 쌀 보다 2.8배의 에너지를 인간에게 줄 수 있답니다.  물과 산소가 귀한 우주에서 키우기에 가장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  화성에서 재배할 농작물로 꼽혀  화성 환경과 비슷한 실험실 조성해  키우기 적합한 감자 품종 연구 중  김밥.토르티야부터 커피까지  우주 식량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최초의 우주 농작물, 상추  감자보다 먼저 우주에서 재배된 농작물이 있어요.  바로 상추입니다.  지난 2015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인들이 상추를 재배하는데 성공 하였어요.  우주에서 처음 재배될 농작물로 상추가 꼽힌 이유는 생장 기간이 짧고 재배가 쉬운 특징 때문이죠.  우주인들은 수경 재배 방식으로 우주선 안에서 상추를 키워 수확한 뒤 냉동 건조해 지구로 보냈어요.  우주에서 재배한 상추를 검사한 결과 사람이 먹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답니다.  현재 지구에서 가져가는 우주 식량은 유통기한이 3년 정도예요.  화성 이주를 위해 3년보다 더 긴 시간 우주에서 생활하려면 우주에서 상추나 감자 등을 재배해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 과 비영리연구단체 국제감자센터(CIP)는 페루 리마에서  화성에서 재배할 수 있는 감자 품종을 연구하고 있어요. 화성의 토양. 대기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실험실을 만들고,  여러 감자를 기르며 화성에서 키우기 적합한 품종을 찾고 있어요. 화성은 농사를 짓기엔 정말 험악한 곳이에요. 토양은 암석 부스러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구의 토양과 달리 식물이 자라는 걸 돕는 미생물이나 영양무릴이 전혀 없어요. 화성 대기의 96%는 이산화탄소로 되어 있고 산소는 거의 없어요. 화성의 지표묜은 방사능선에 노출되고 있어요. 연구팀은 이런 험난한 환경에서 농사 시설을 갖추었을 때  가장 수확이 잘 되는 감자를 찾고 있어요.  그래서 실험실의 환경도 화성과 비슷하게 꾸렸답니다.   감자를 키우는 흙은 페루 남부에 있는 팜파스 사막에서 가져왔어요.  팜파스 사막은 1년에 비가 1㎜밖에 내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건조해  물이 화성처럼 붉은 갈색을 띱니다.  실험실 안의 대기 환경도 화성과 아주 비슷하게 조성되어 있어요.  실험실에서는 약 100개 품종의 감자가 재배될 예정입니다.  국제 감자센터에ㅈ등록된 4500개의 감자 품종중 화성에서 생존할 만한 품종을 걸러낸  거에요. 이중 40개의 품종은 안데스 산맥처럼 암석이 많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나머지 60개는 바이러스에 아주 강하거나 수분이 거의 없는 지역,  소금기 있는 땅에서도 잘 자랄수 있게 유전자가 조작된 품종이고요. ◇우주 식량의 발전사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게 되면서 우주선 만큼 우주 식량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인간이 더 먼 우주로 나아가 오랫동안 머물 수 있으니까요.  미항공우주국이 감자 연구에 나선 것도 화성에 정착한 우주인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지금은 우주선에서 농작물을 재배해 먹기도 하지만  1960년대 우주인들은 치약처럼 짜 먹는 튜브형 식품을 먹었어요.  1950년 ∼ 60년대 우주식량 우주 공간은 중력이 없어 지구처럼 음식을 요리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안타깝게도 튜브형 식품은 종류도 다양하지도 않았고 맛도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부터 우주선에서 냉동냉장이 가능해지면서 냉동 건조한 음식을 데워 먹는 방식이 가능해졌어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식탁에서 떠먹을 수도 있게 되었고요.  이 후 우주 식량은 대부분 냉동 건조된 상태로 오래 보관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져요.  포장지 한쪽에 따뜻한 물을 넣고 주물러 데워 먹지요.  1970년대 우주식량 2010년 이후에는 우주에서 김밥이나 토르 티야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방사선을 이용해 음식을 가열해 먹을 정도로 우주 식량이  전했답니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무중력 상태에서 작동하는 커피머신 'ISSE 레소' 가 설치돼  우주인들도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0년 우주식량 출처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배준용 기자 [출처] 화성의 우주인 식탁, 식량 메뉴는 삶은 감자|작성자 janeuh            화성 식량의 첫째 후보 감자  뛰어난 생존력 *지구상의 모든 기후에 적응 *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농사에 유리 ​풍부한 영양분과 높은 효율 *탄수화물뿐 아니라 단백질, 비타민C,철, 아연 등이 풍부 *같은 양의 물을 주었을 때, 밀의 2.4배, 쌀의 2.8배의 에너지 제공   페루에서 시작된 '화성판 감자 농사' ​ 미 항공우주국(NASA), 페루 리마에 화성과 비슷한 환경의 감자 농장 조성 *페루 팜파스 사막에서 가져온 흙 *이산화탄소가 대부분인 화성의 대기 환경과 비슷하게 실험실 대기 환경 조성 ​ 국제감자센터(CIP)에 등록된 4500개 감자 품종 중 100여개 선정 ​ ​*안데스 산맥 등  암석이 많고 건조한 곳에서 잘 자라는 40개 품종 *수분 없는 지역, 소금기 있는 땅에서 자랄 수 있게 유전자 조작된 60개 품종 ​ 미 항공우주국과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민간 우주회사 '스페이스X' 등 미국과 유럽에서는 화성에 갈 우주선과 발사체를 개발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르면 2030년 무렵 인간이 화성에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화성에 간  우주인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  지구에서 가져간 식량도 몇년이 지나면  동이 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매번 지구에서 식량을 가져다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은 화성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작물을 찾고 있다. 그 첫째 후보는  바로 감자,  영화 '마션(The Martian)'에서도  화성에 혼자 남은  우주비행사가  감자 농사를 짓는다.  여러 채소 .곡물 중에 왜 감자가 첫째 후보로 꼽힌 것일까?  ​ 페루에서 시작된 '화성판 감자 농사' ​' 감자가 화성에 갈  농작물로 꼽힌 이유는  다른 농작물에 비해 생존력이 아주 뛰어나고 양양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감자는 지구 상의 모든 기후에 잘 적응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징이 있어  밀이나 벼 같은 곡물보다  농사짓기도 더 쉽다. 주성분은 탄수화물이지만  단백질, 비타민C, 철, 아연 같은 여러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감자는 농사 효율도 아주 좋다. 같은 양의 물을 주었을 때  감자는 밀보다 2.4배, 쌀의 2.8배의  에너지를 인간에게 줄 수 있다. 물과 산소가 귀한  우주에서 키우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 NASA와  비영리연구단체 국제감자센터(CIP)는 페루 리마에서 화성에서 재배할 수 있는  감자 품종을 연구하고 있다.  화성의 토양 .대기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실험실을 만들고,  여러 감자를 기르며 화성에 키우기 적합한 품종을 찾고 있다. ​ 화성은 농사를 짓기엔  정말 험악한 곳이다. 토양은 암석 부스러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구의 토양과 달리  식물이 자라는 걸 돕는  미생물이나 영양물질이 전혀 없다.  화성 대기의 96%는  이산화탄소로 되어 있고  산소는 거의 없다. 화성의 지표면은 방사능선에 노출되어 있고... 연구팀은 이런 험난한 환경에  농사 시설을 갖추었을 때  가장 수확이 잘되는 감자를 찾고 있다.  그래서 실험실의 환경도  화성과 비슷하게 꾸렸다. 감자를 키우는 흙은 페루 남부에 있는  팜파스 사막에서 가져왔다.  팜파스 사막은 1년에  비가 1mm밖에 내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건조해 흙이 화성처럼  붉은 갈색을 띤다. 실험실 안의 대기  환경도 화성과  아주 비슷하게 조성되어 있다. ​ 실험실에서는  약 100개 품종의 감자가  재배될 예정이다. 국제감자센터에 등록된 4500개의 감자 품종 중  화성에서 생존할 만한  품종들을 골라낸 것이다. 이중 40개 품종은 안 데스 산맥 등처럼  암석이 많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나머지  60개는 바이러스에 아주 강하거나  수분이 거의 없는 지역, 소금기 있는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게 유전자가 조작된 품종이다. ​  우주식량의 발전사 ​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게 되면서 우주선만큼 우주 식량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인간이 더 먼 우주로 나아가 오랫동안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미 항공우주국이  감자 연구에 나선 것도  화성에 정착한 우주인이 지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우주선에서 농작물을 재배해 먹기도 하지만  1960년대 우주인들은  치약처럼 짜 먹는  튜브형 식품을 먹었다. 우주 공간은 중력이 없어  지구처럼 음식을 요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튜브형 식품은  종류도 다양하지도 않았고  맛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우주선에서 냉동. 냉장이 가능해지면서 냉동 건조한 음식을 데워 먹는 방식이 가능해졌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식탁에서 떠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이후 우주 식량은  대부분 냉동 건조된 상태로  오래 보관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포장지 한쪽에 따뜻한 물을 넣고 주물러 데워 먹는다. ​ 2010년 이후에는 우주에서 김밥이나 토르티야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방사선을 이용해 음식을 가열해  먹을 정도로 우주 식량이 발전했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무중력 상태에서  작동되는  커피머신 'ISS프레소'가 설치돼 우주인들도  식사 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박태진 칼럼니스트 글 참조 ​ ​   ​   ​ ~~~~~~~~~~~~~~~~~~~~~~~~~~~~~~~~~~~~~~~~~~~~~~~~   최초의 우주 농작물, 상추   감자보다 먼저 우주에서 재배된 농작물이 있다. 바로 상추. 지난 2015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인들이 상추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에서 처음 재배될 농작물로 상추가 꼽힌 이유는  생장 기간이 짧고 재배가 쉬운 특징 때문이다.  우주인들은 수경 재배 방식으로  우주선 안에서 상추를 키워 수확한 뒤 냉동 건조해 지구로 보냈다. 우주에서 재배한 상추를  검사한 결과 사람이 먹어도 아 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지구에서  가져가는 우주 식량은  유통기한이 3년정도이다. 더 긴 시간 우주에서 생활하려면  우주에서 상추나 감자등을  재배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   “한식 우주식품,               화성탐사 우주인도 먹는다” 성남--(뉴스와이어) 2010년 03월 24일 -- 한국식품연구원(원장 이무하) 산업진흥연구본부 김성수 박사팀은 3월 15일 러시아연방우주청 산하 생의학연구소(IBMP)로부터 한식 우주식품 10종에 대한 미생물시험 결과 모두 우주식품의 인증기준에 적합 판정 결과를 통보 받았다고 밝혔다.  새롭게 개발된 한식 우주식품 10종은 볶음김치, 분말고추장, 불고기, 잡채, 비빔밥, 호박죽, 식혜, 녹차, 홍삼차, 카레 제품이다. 이 제품들은 유럽 우주인들의 입맛에 알맞게 매운 맛, 짠맛 등을 일부 조정하였으며, 장기간의 유통기한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고온고압 멸균처리하거나, 수분 함량을 5%이하가 되도록 냉동건조 혹은 분말화 처리하였다. 포장방법은 공기와 습기 및 빛의 차단성이 우수한 포장재로 2중 진공포장 한 것이 특징이다.  식품연은 이미 지난 2008년 4월 IBMP로 부터 한식 6종을 우주식품으로 인증 받아 한국 최초 우주인(이소연)의 식단에 제공해 우주식품으로서의 우수성과 적합성을 평가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연구개발 경험을 토대로 식품연은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화성 유인우주비행 모의실험 “Mars-500”에서 520일간의 장기 우주여행에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와 유럽 우주인 6명의 식단에 새롭게 개발한 한식 우주식품 10종을 제공하고 그 적합성을 시험할 계획이다.  한국의 전통한식으로 개발된 우주식품은 화성탐사 270일 후 귀환 비행할 때 120일 동안 메뉴에 반영되어 우주인들에게 섭취될 예정으로, 예비 선발된 러시아와 유럽우주인 11명에게 취식시험 및 관능평가를 실시한 결과 10종 모두 기호도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아직 고추장과 볶음김치의 매운 맛에 적응이 되지 않은 우주인들이 있지만 이러한 자극적인 맛은 장기간의 우주여행에서 입맛을 잃기 쉬운 우주인들에게 입맛을 돋우어 주는 좋은 식품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한식의 우주식품 개발은 우리 전통식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식의 세계화와 우리식품의 수출촉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식품연구원은 원천기술 개발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선진 기술을 축적하고 나아가 향후 우리나라 장기우주개발계획의 식품분야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군인 및 국가재난 대비용 비상식량과 스포츠레저용 편의식품의 기술개발에도 관련 기반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다.  지금도 우주개발경쟁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 각국들은 자국의 전통식품들을 우주식품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 나라의 현재까지 개발된 우주식품은 대략 미국 200종, 러시아 130종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유럽 등의 국가에서 70여종으로 총 400여종의 식품이 개발되었으며 최근 한국우주식품 14종이 인증을 받았다. 이번 화성탐사에서 새롭게 우주식품으로 사용되는 10여종을 더한다면 총 420여종에 이르는 우주식품이 개발된 셈이다.  한국 우주식품 특징  (1)볶음김치(Fried Kimchi, hot water, 75ml, 5분, 15g, 45 kcal)  김치와 각종 부재료 및 조미료를 배합하여 식용유와 함께 볶아 생김치의 발효취와 자극적인 맛을 감소시켰으며, 장기간의 저장을 위해 냉동 건조한 제품으로 냉, 온수에 쉽게 용해된다. 매운 맛을 감소시키고 약간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으로 김치 고유의 맛을 부드럽게 변화시켜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제조한 제품으로 밥과 같이 섭취할 경우 가장 잘 어울리는 제품이다.  (2)고추장(Gochujang, Hot Pepper Paste, hot water, 15g, 200 kcal)  고추장은 현대식 방법으로 제조된 고추장을 우주식품의 미생물 인증기준에 적합하도록 가열살균 처리하였다. 장기저장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냉동건조 후 분말화하여 진공포장하였다. 토마토 소스 등을 배합하여 매운맛과 짠맛을 감소시키고 단맛을 증가시킨 부드러운 향미로 우리나라 젊은 층의 기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제조하였다.  (3)홍삼차(Red Ginseng Tea, hot water, 100ml, 5분, 8g, 20 kcal)  홍삼차는 6년근 홍삼을 추출하여 분말화한 제품으로 냉, 온수에 쉽게 용해되어 음용하기에 좋으며 홍삼의 유효성분이 그대로 함유되어 건강에 매우 유익한 茶음료이다. 우주공간에서 면역력이 저하되기 쉬운 우주인들에게 면역력을 증강시켜 줄 수 있는 건강차이다. 외국인들도 즐겨 음용할 수 있도록 적정량의 감미료를 첨가하여 강한 쓴맛을 감소시켰다.  (4)녹차(Green Tea, hot water, 100ml, 5분, 1.2g, 4.8 kcal)  청정지역 전남보성군에서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녹차나무 새싹을 채취하여 정선한 후 위생적인 현대시설과 기계장비로 제조된 최상품질의 세작녹차 제품이다. 일인용 포장중량으로 티백형태로 포장하여 우주식품용 포장지에 넣어서 진공 포장하였다. 녹차의 카데킨을 비롯한 다양한 폴리페놀화합물들은 항산화성이 매우 강한 성분들로서 우주인들의 건강에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茶음료로 사용될 수 있다.  (5)불고기(Bulgogi, Beef stew, hot water, 70ml, 5분, 20g, 95 kcal)  얇고, 작게 세절한 쇠고기를 각종 야채, 향신료 등의 재료와 같이 불고기로 조리한 후 신속히 냉동 건조하여 진공 포장하였다. 온수를 적당량 붇고 저어서 5분 후에 복원되면 섭취한다. 고유의 불고기 맛이 살아있으며 우주인의 기호와 영양에 적합하다.  (6)잡채(Japchae, Noodles with Sautéed Vegetables, hot water, 70ml, 10분, 16g, 70 kcal)  당면에 각종 채소류, 육류 및 향신료를 가하여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리된 잡채를 바로 냉동 건조하여 진공 포장한 제품이다. 온수를 적당량 가하여 10분간 수화, 복원시킨 후 섭취한다. 잡채 고유의 맛이 살아 있으며 우주인의 간식으로 매우 적당한 식품이다.  (7)비빔밥(Bibimbap, Rice Mixed with Vegetables and Beef, hot water, 85ml, 10분, 30g, 128 kcal)  밥을 냉동 건조하여 저장기간과 복원력을 향상시켰으며, 여기에 조리한 각종 나물과 양념에 같이 조리된 고추장을 냉동 건조하여 배합한 후 진공 포장하였다. 온수를 적당량 가한 후 10분 동안 복원, 비벼서 취식한다. 고유의 비빔밥 맛이 살아 있으며, 장기 저장이 가능하고 우주인들의 입맛을 돋워준다. 또 각종 채소류를 섭취할 수 있어서 우주인의 건강과 변비예방 등에도 매우 좋은 즉석 조리식품이다.  (8)카레(Curry & Potato Soup, Electric Heating, 10분, 200g, 226 kcal)  강황 등 향신료를 사용해 야채나 고기 등으로 맛을 낸 아시아 요리의 하나이다. 우주인의 기호와 영양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육류와 감자를 충분히 첨가하여 제조된 한끼 식사용 제품이다. 고온고압에서 완전 살균 처리한 제품으로 저장유통기한이 2년 이상 되는 레토르트 파우치에 포장된 제품이다. 끓는 물에 10분간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9)호박죽(Pumpkin Porridge, hot water, 50ml, 10분, 10g, 40 kcal)  호박을 무르도록 푹 삶아 으깨어 찹쌀가루를 넣고 끓인 죽이다. 카로틴이 풍부하고 비타민 B와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다. 위염·위궤양·설사 등 소화기관에 이로운 식품으로 겨울철에 보양식으로도 좋다. 늙은 호박·찹쌀가루·설탕·소금·콩 또는 팥을 활용 조리하여 냉동 건조한 제품으로 온수에 잘 용해되는 것이 특징이다.  (10)식혜(Sikhye, Rice Punch, cold water, 100ml, 2분, 20g, 80 kcal )  찹쌀을 쪄서 엿기름물을 붓고 삭힌 다음 밥알은 냉수에 헹구어 건져 놓고, 그 물에 설탕과 생강을 넣고 끓여 식힌 다음 밥알을 띄워 만든 한국 고유의 음료이다. 우주식품에 적합하도록 농축한 식혜를 포도당과 같이 배합하여 과립화 한 후 건조한 분말제품으로 냉수에 쉽게 용해될 수 있도록 제조하여 진공포장하였다. 한국식품연구원 개요 한국식품연구원은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식기반의 식품분야 산업원천기술 개발을 위하여 대사기능, 기능소재, 식품발효 연구를 수행하며, 농림수산업과 식품산업의 동반 발전을 위한 식품의 안전유통, 전통식품의 세계화, 식량자원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 전략목표 달성에 필요한 공공기반기술 구축을 위하여 다양한 산업지원체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구원은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창조선도형 기술개발을 통해 글로벌 연구 경쟁력을 확보하고 BT, IT, NT, ET, CT 등과의 융합기술을 개발하여 국가 식품산업의 미래를 개척함으로서 국내외 첨단식품과학기술의 선도기관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식품연구원 =========================     ▲ 개별식품별 관능평가 결과 5점 만점에 녹차 4.5, 홍삼차 4.9, 불고기 3.9, 비빔밥 4.7, 볶음김치 4.3, 고추장 4.5, 호박죽 3.5, 카레감자수프(오뚜기식품 제조) 4.6, 식혜 4.7, 잡채 4.9점으로 평가되어 전체적으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식품연구원(원장 윤석후)은 김성수 박사팀이 개발한 한식 우주식품 10종이 러시아연방우주청 산하 생의학연구소(IBMP)로부터 우주식품의 인증기준에 적합하고 관능평가 결과도 매우 우수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식 우주식품은 2009년부터 시작해 2년여에 걸친 유인 화성탐사 모의시험(Mars 500 Project)에서 미생물 적합성 및 장기저장성, 우주인 취식시험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  특히 화성탐사 우주인 3명이 귀환 비행할 때 120일 동안 7일 주기의 메뉴에 반영됐으며 취식시험 및 관능평가 결과 10종 모두 기호도에서 평균 4.4 이상(5점 만점)의 점수를 기록해 한식이 세계 우주인들의 입맛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우수한 식품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한국의 전통식품으로 개발된 우주식품은 볶음김치, 분말고추장, 불고기, 잡채, 비빔밥, 호박죽, 식혜, 녹차, 홍삼차, 카레 제품이다. 이 제품들은 유럽 우주인들의 입맛에 알맞게 매운 맛, 짠맛 등을 일부 조정했다.  또 장기간의 유통기한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온고압 멸균처리하거나 수분 함량을 5%이하가 되도록 냉동건조, 분말 처리 후 공기와 습기, 빛의 차단성이 우수한 포장재로 2중 진공포장을 한 것이 특징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고추장과 볶음김치의 자극적인 매운 맛은 장기간의 우주여행에서 입맛을 잃기 쉬운 우주인들에게 입맛을 돋우어 주는 좋은 우주식품이 될 것이며, 홍삼차나 녹차는 우주인의 건강에 매우 좋은 식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향후 우주식품분야의 원천기술 개발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향후 우리나라 장기우주개발계획의 식품분야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우주식품 기반 기술을 응용하여 군 및 국가재난 대비용 비상식량과 스포츠레저용 편의식품으로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 @@우주생활= 우주비행사는 우주선을 조종하는 ‘비행 우주비행사’와 과학실험을 맡는‘임무 전문가 우주비행사’로 나뉜다. 이들은 까다로운 선발조건과 혹독한 훈련을 거친 뒤 비로소 우주로 향하게 된다. 우주선은 초기보다 지내기에 훨씬 좋아졌다. 풀코스 식사를 비롯한 100여가지의 메뉴가 준비된다. 요즘 인기 있는 즉석국은 우주식을 응용한 것이다. 우주에서는 체력소모가 더 많아 영양보충이 중요하다. 특히 식사 때 음식물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음식물은 식탁에 고정시킨다. 배설물은 공기를 이용해 방출한다. 목욕시설도 있으며, 무중력이라 몸에 가해지는 압박이 없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산소는 물을 전기분해해 공급된다.우주인이 우주선 밖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우주복을 착용해야 한다. 우주복에는 0.3기압 정도의 압력이 유지되고,100% 산소가 공급된다. 또 극고온과 극저온에 견딜 수 있도록 특수처리돼 있으며, 체온상승 등을 막기 위해 냉각수가 흐른다.      [출처] 火星에 간 宇宙人 식탁에 오를 메뉴는 삶은 감자?|작성자 mik681002  
960    [쉼터] - "손은 인체의 축소판" 댓글:  조회:3829  추천:0  2017-01-29
유사시 응급처치엔 수지침 활용해보세요 (ZOGLO) 2017년1월25일 09시50분   장거리 운전으로 뒷목덜미가 아프고 피로할 때(왼쪽)와 과식으로 인한 급체 및 소화불량으로 배가 아플 때 압박 자극을 가하는 수지침 자리. 고려수지침학회 제공 설 연휴에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안전사고다. 전을 부치다 불에 데거나, 혹은 고향 나들이 때 잠깐 딴 생각을 하다 자동차 접촉사고로 명절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장거리 운전에 따른 피로 누적과 과식으로 인한 급체 및 소화불량증, 상한 명절음식 섭취에 따른 식중독도 경계해야 한다. 유태우 고려수지침학회 회장은 23일 “병의원과 약국도 대부분 문을 닫고 쉬는 설 연휴 중 이런 복병을 만나면 당황하기 쉽다. 이럴 때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수지침(手指鍼)을 알아두면 응급처치 및 위기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지침이란 ‘손은 인체의 축소판’이란 가설 아래 체내 오장육부와 상응하는 혈(穴)자리를 압박, 자극하는 방법으로 각종 신체이상증상을 다스리는 민간 대체의학요법의 일종이다. 특침봉은 금속을 침처럼 뾰족하게 만든 것으로, 손에 분포한 오장육부 상응점을 압박, 자극할 때 쓰인다. 특침봉을 미리 구하지 못했을 때는 끝이 뾰족한 이쑤시개나 볼펜으로 대신해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장거리운전으로 피로할 때 인체 내 해열·진통·소염 작용을 촉진하는 신경계 상응점(I38, H6, J7, G13)을 수시로 자극해준다. 피로 예방 및 회복에 도움이 된다. 손 그림 속 M10지점은 어깨부위 상응점이다. 어깨 부위가 뻐근할 때 10∼20초간 꼭꼭 누르기를 반복하면 편안해진다. B24지점은 뒷목덜미 상응점으로 뒷목이 뻐근할 때 압박자극을 가하면 된다. 급체 또는 소화가 안 될 때 가운데 손가락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손바닥 중심부의 위장 상응점을 특침봉 또는 이쑤시개로 약간 아프다 싶을 정도로 10∼20초씩 10∼20분간 눌러준다. 만약 평소에도 자주 소화불량증으로 고통을 겪는다면 틈날 때마다 이 부위를 가볍게 수시로, 압박 자극해주면 소화촉진효과를 볼 수 있다. /외신 ==========================덤으로 알아보기+++ .   1위, 잭슨 폴록(1912~1956)의 , 1948년작 1, 800억원   (1. No. 5, 1948 by Jackson Pollock - $150.6 million)   잭슨 폴록은 2자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추상표현주의를 이끌었던 미국 미술계의 슈퍼스타였습니다. ’액션 페인팅’이라 불리는 크고 정력적인 폴록의 작품들은 그를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자의 자리에 올려놨습니다. 내적인 정신성의 표출뿐만 아니라 엉클어진 실타래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폴록의 드리핑 회화는 현대 회화의 방향을 급속도로 변화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작품, 그의 행동 자체가 미국 미술로 대변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폴록. 하지만 천재의 삶은 짧았고 1956년 음주사고로 즉사합니다.   .   2위, 윌렘 드 쿠닝(1904~1997)의 , 1953년작 1780억원   (2. Woman III by Willem de Kooning - $147.9 million)   이 작품은 쿠닝이 1951년부터 1953년 사이에 작업한 6부작 중 중심테마 작품입니다. 쿠닝 역시 잭슨 폴록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회화로 일컬어지는 추상표현주의에서 ’액션 페인팅’ 계열의 선구자였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쿠닝은 뉴욕을 이주한 후 1940년대 내내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그룹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했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리즈는 피카소의 과 비교되면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모습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자유롭고 격렬한 붓질에 의해 형태가 해체되고 침범되었지만 형태를 암시하는 흔적들도 엿보입니다. 여인의 인체를 연상시키는 형상들과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형태와 공간, 색채 등이 한 화면 위에서 만나고 있다고 평가 받는 작품입니다.   .   3위,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 1907년작 1720억원   ( 3.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by Gustav Klimt - $144.2 million)   관능적인 여성 그림으로 유명한 클림트, 그의 미술은 세기말과 완벽하게 어울렸습니다. 작품 속에 탐미주의와 쾌락예찬에 빠진 빈의 상류층 사회의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에로틱하게 표현한 클림트는, 섬세한 기교와 화려한 장식, 상징으로 가득 찬 작품을 창조했습니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빈의 부유한 은행가 모리츠의 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의 초상화를 당시 빈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던 클림트에게 의뢰를 했죠. 클림트는 바우어의 신분과 재력을 상징하기 위해 작품의 재료로 금은박을 입혀 정교하게 장식하여 3년 여에 걸쳐 완성합니다. 그녀는 클림트와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나눈   여성으로도 유명한데요,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의 주인공도 그녀랍니다.   .   4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1660억원   (4. Portrait of Dr. Gachet by Vincent van Gogh - $138.4 million)   고흐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작품들 중 하나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파리를 시작으로 전 유럽을 돌아 뉴욕에 도착 그리고 일본까지 긴 여행을 합니다. 그림 주인도 13명이나 바뀌었다고 합니다. 1897년 당시 이 그림의 가격은 고작 58달러. 하지만 1990년 8.250만 달러에 낙찰되어 전 세계인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당시의 경매는 예술 시장의 황금기를 알리는 동시에 일본의 엄청난 경제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구매자인 로에이 사이또는 이 작품을 엄청난 보안 속에 도쿄로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기온과 습도가 완벽하게 조절되는 특수 전시실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   5위, 르누아르(1841~1919)의 물랭 드 라 갈레트 1570억원   (5. Bal du moulin de la Galette by Pierre-Auguste Renoir - $131 million)   우리 이름으로는 '물랑 드 갈레트의 무도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파리인들의 일상을 담은 풍속화 기능을 하며, 사실적인 화풍이 한층 도드라져 보이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반짝이는 햇빛 아래 노천 카페의 분주한 정경을 담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햇빛을 받으며 즐겁게 춤추는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교묘한 소용돌이 구도 속에 배치 시킴으로써, 경쾌한 왈츠의 리듬이 화면 곳곳에 울립니다.   .   6위,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 1905년작 1430억원   (6. Garçon à la pipe by Pablo Picasso - $119 million)   이 작품은 피카소가 전성기 때인 장미 시대 그린 명작으로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답고 강한 필치를 느낄 수 있는 그림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화관을 쓴 소년이 그려진 이 빛나는 유화는 2004년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고흐의 아성을 무너뜨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구입자인 존 훼이 휘트너는 19세기에 늘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아름다운 명화들로 저택을 꾸몄다고 하네요.   .   7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1210억원++추가 예상   (7. Portrait of Joseph Roulin by Vincent van Gogh - $100.9++ million)   아를 체류시절 유일한 친구로 귀를 자른 반 고흐를 돌봐주었던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화.    
959    [그것이 알고싶다] - 영화는 어느 때부터 태여났나?... 댓글:  조회:4981  추천:0  2017-01-27
요약 1894년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를 시작으로 영사기들이 등장했으며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현재와 같은 형식의 영화인 시네마토그래프를 공개하자 에디슨은 무성영화의 표준으로 확대 발전시켰다. 이후 뤼미에르 형제가 카메라·영사기·인화기를 일괄한 시네마토그래프를 개발함으로써 영화의 상영이 가능해졌다. 다양한 기술의 발달로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극장이 커짐에 따라 오디오 증폭기로 음향을 키워야 했고 필름식 음향장치를 개발함으로써 소리문제를 해결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층식 발색법을 활용한 대형영화 제작도 쉬워졌다. 현대 영화계는 텔레비전에 빼앗긴 관객을 유혹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영화계는 그 대안으로 대형영화 시네라마와 입체영화 3D를 개발 시험하고 있다. 목차 접기 개요 사진 소리 색채 와이드 스크린(대형화면) 개요 1894년 4월 14일 영화는 어느 발명가의 이론과학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토머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그것이다. 이것은 1명씩 동전을 넣고 보는 '들여다보는 영화'였는데 약 15초 동안 실물과 똑같이 움직이는 사람과 물체의 필름을 구경할 수 있었다. 1895년말에 런던·파리·뉴욕에서 각종 영사기가 완성되었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루이·오귀스트)는 파리에서 시네마토그래프를 공개했다. 이것이 현재와 같은 형식의 최초의 영화였다. 곧이어 에디슨이 발명한 비타스코프가 1896년 4월 23일 뉴욕에서 공개되었다. 그해에는 미국 및 각국에서 여러 가지 영사기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흑백의 그림자로써 살아 있는 움직임을 재현시켜 보이는 신기한 구경거리에 대하여 갑자기 높아진 대중의 강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거의 75년에 걸친 국제적 규모의 연구·실험·발명의 성과가 축적된 것이었다. 운동중인 물체의 광학적 특징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영국의 피터 마크 로제로부터 시작되어 존 허셀, 마이클 패어리 등에게 영향을 주어 여러 가지 실험·연구를 촉진했다. 유럽에서는, 벨기에의 조제프 앙투안 플라토, 오스트리아의 지몬 리터 폰 슈탐퍼 등이 운동의 위상을 나타내는 일련의 그림을 보는 방법을 개발했다. 또 1853년 오스트리아의 폰 우하티우스는 원반과 환동의 그림을 결합해서 스크린 위에 애니메이션을 영사했다. 플라토와 슈탐퍼의 연구는 조이트로프의 발명에 공헌했다. 이것은 회전하는 원통 틈새로 들여다보면 속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이다. 에밀 레노가 발명한 같은 원리에 의한 프락시노스코프는 더욱 정교한 것이었다. 그는 계속 이 기계를 개량했고, 1892년에는 파리에서 테아트르 옵티크('시각 극장')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그림을 공개했다. 이것은 운동하는 모습을 묘사한 수백 개의 그림을 연결해 15~20분 길이로 편집한 이야기 필름이었다. 1900년까지 레노는 이러한 움직이는 그림을 공개했는데, 진짜 영화와의 경쟁에는 이기지 못하고 흥행을 중지했다. 사진 영국에서 로제가 시각적 성질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을 무렵, 프랑스에서는 실용적인 사진기술의 연구가 진전되고 있었다. 1822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조잡하지만 연속성 있는 사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루이 다게르의 협력을 얻어, 1839년에 다게레오타이프(은판사진)라고 불리는 실용적인 사진술을 개발했다. 또 그해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탈벗은 근대 사진술의 기초가 된 네거와 포지티브에 의한 인화법을 개발했다. 1860년 미국의 콜먼 셀러스는 처음으로 사진을 조이트로프의 원리와 결합시키는 데 성공, 이듬해 키네마토스코프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따냈다. 이 방법을 응용하여 1870년에 헨리 레노 헤일은 파즈마트로프의 영사를 1,600명의 관객에게 공개했다. 1872년 영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는 기사 존 D. 아이잭스와 공동으로 셔터가 장착된 12대(후에 24대)의 카메라로 이루어진 1벌의 장치를 고안하여 질주하는 말의 움직임을 분석한 사진을 찍었다. 그후 셔터 장치가 개량되어, 1877년에는 동작이 빠른 피사체도 촬영할 수 있게 되어 노광(露光) 속도 1/2,000초라는 단시간에까지 이르렀다. 영화 발전상의 다음 단계는 고속의 속사 사진이 가능한 단일 카메라의 개발이었다(모션 픽쳐 카메라). 프랑스의 에티엔 쥘마레가 1882년에 발명한 '사진총'이야말로 이 분야에서 성공한 최초의 것이었다. 사진총이란 라이플 총 모양으로 윤동(輪胴)에 인화지판을 끼우고 방아쇠를 당겨 연속적으로 노출시키는 장치였다. 그후 10년간 그는 조수 조르주 도메니노와 함께 일련의 실용 카메라의 개발을 계속하여, 1888년 크로노포토그래프를 발명, 이에 의해 매초 60매의 사진 촬영이 가능해졌다. 1885~95년 10년 동안에 전세계의 발명가들은 사진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일에 주의를 돌렸다. 영국의 윌리엄 프리스 그린을 비롯한 몇 사람은 1890년을 전후해 촬영기·영사기 등의 특허를 땄지만, 상업적 성공은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에디슨은 조수 윌리엄 케네디 로리 딕슨과 함께 띠 모양의 사진 필름 등의 실험 고안에 힘썼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딕슨은 조지 이스트먼이 1889년에 제조하기 시작했던 질화면(窒化綿)을 기초로 한 사진용 필름을 채용하여 1890년에 키네토그래프를 개발했다. 그후 에디슨이 그것을 다시 키네토스코프로 발전시켰다. 이것은 대체로 높이 122cm, 너비 61cm 크기의 기계로 필름은 내부의 확대경과 광원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이며, 회전 셔터에 의해 화면이 순간적으로 보이게 되어 있다. 필름의 길이는 50피트가 한도이고, 화상은 매초 48컷의 속도로 들여다보이는 구멍의 앞을 지나가는데, 1회 상영 시간은 13초가량이었다(프레임). 화면수는 뒤에 매초 16컷으로 줄었지만 이것이 무성영화 시대의 표준이 되었다(토키의 경우는 매초 24컷). 필름의 너비(35㎜)나 화면의 형상, 필름을 보내는 스프로킷(필름 구멍과 맞물려 필름을 움직이게 하는 원형의 톱니바퀴) 등도 대형 화면이나 대형 필름이 출현하는 1952년까지는 표준이었다. 키네토스코프는 실험실에 방치된 채 있었는데, 1894년 4월 14일 처음으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그것을 공개하는 축음기관이 개관했다. 가을에는 몇 대가 외국으로 수출되었다. 이윽고 유럽에서도 영화는 최종 발전단계를 맞이 했다. 에디슨의 발명이 계기가 되어 영국에서는 로버트 W. 폴이 포터블 카메라를 고안했고, 독일에서는 스크라다노프스키 형제가 비오스코프를 개발했다. 프랑스에서는 뤼미에르 형제가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와 레노의 테아트르 옵티크의 투영화상을 결합시켜서 그것을 영사하는 시네마토그래프를 고안하여 1895년 2월 13일 특허를 받았다(오귀스트 뤼미에르, 루이 뤼미에르). 이것은 카메라·영사기·인화기를 일괄한 것이었다. 시네마토그래프는 1895년 12월 28일 그랑 카페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화의 탄생이었다. 이것은 즉시 유럽으로 퍼졌고, 이듬해에는 미국에까지 침투하여 에디슨의 경쟁 상대가 되자 에디슨 자신도 다른 발명가에 대한 대항 때문에 키네토스코프 영사기의 개발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드빌 레섬, W.K.L. 딕슨, 잔 릴로이, 유진 로스트 등도 각기 독자적인 카메라와 영사기를 발표했고, 1895년 토머스 아멧이 현대 영사기의 원리를 고안했다. 이것은 연속되는 영상을 정지시키고, 그동안은 영상이 움직이고 있을 때보다도 많은 광선을 받을 수 있는 몰타 십자형의 화면전송장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다 필름에 구멍을 내어 필름이 영사기 속을 통과할 때의 부담을 경감시켰다는 점에서 에디슨이나 뤼미에르의 영사기와는 달랐다(아멧 루프). 이것이 후에 비타스코프로 알려지게 되었다. 1896년 에디슨의 영사기로 공개된 것은 이 아멧의 기계장치이다. 초기 영화는 미국·유럽 모두 50피트의 필름을 사용했고, 상영시간은 1분이 채 안 되었다. 모든 발명에 전기의 응용을 생각하고 있었던 에디슨은 거의 피아노만한 전지로 움직이는 카메라인 키네토그래프를 제작했고, 이것을 수용하기 위해 '죄수 호송차'라고 일컬어졌던 세계 최초의 스튜디오를 세웠다. 이것은 타르 칠을 한 종이를 바른 조그마한 스튜디오로, 거기에서 연예·서커스 같은 구경거리와 뉴욕의 인기있는 연극 따위가 상연되었다. 한편 유럽인은 비교적 가볍고 기동성있는 수동식 카메라에 만족했으며 어디로든 가볍게 떠나 무엇이든지 촬영했다. 따라서 초기 영화는 행진이나 열차의 도착, 도시의 군중 등 현장감이 강조되었다(기록영화). 이 특징은 영화의 특성과도 잘 어울려서 에디슨도 그뒤를 따랐다. 연예장의 구경거리의 하나로 등장한 영화는 영사기의 능력에 맞추어 필름의 길이는 1,000피트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 연예나 구경거리 1편의 상연시간과 같았으며, 이 길이가 현재 1권(305m)의 기준이 되었다(릴).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단순한 움직임의 신기함만으로는 싫증을 내게 되었기 때문에 제작자는 보다 야심적이고 이색적인 소재를 찾게 되었다. 최초로 이야기를 가진 영화(스토리 영화)가 상영된 것은 1897년 호라만이 전문 배우와 본격적인 세트를 사용하여 제작한 3권짜리 수난극일 것이다. 파리에서는 조르주 멜리에스가 카메라 트릭을 주로 한 연작을 제작했다. 그는 환상적인 상상력을 구사하여 도처에서 인기를 얻었다. 영국에서는 1900년 직후 이른바 '브라이튼파'의 활약이 활발해져 즉각 창조적인 영화 제작에 진출했다. 그러나 스토리 영화의 진정한 탄생은 1903년 에디슨 회사의 에드윈 S. 포터가 감독한 〈대열차 강도 The Great Train Robbery〉로 시작된다. 고작 8분 정도의 1권짜리였지만, 거기에는 현대의 편집기술의 싹이 보였고, 그 급속한 인기상승에 의해 여기에 니클오디언(5센트 극장)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대열차강도〉는 영화의 예술·산업의 2분야에 있어서 진정한 출발점이 되었다. 소리 영화 초기부터 발명가는 영사에 소리를 접합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에디슨은 처음부터 카메라는 축음기를 위해 제작한 부수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레온 고몽이 1900년 이전에 콩스탕 코크랑이나 사라 베르나르 등의 명배우가 출연하는 단편 토키 영화 연작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영상에 축음기의 음성을 일치시키려고 한 것이다. 또 이것은 많은 발명가들이 생각했던 바였는데, 에디슨도 1권짜리 토키를 몇 편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로스트가 필름에 직접 녹음하는 방법으로 특허를 내고 전시했다. 1912년경 영화 흥행은 니클오디언의 단계를 끝냈다. 극장이 커짐에 따라 토키 영화는 소리의 증폭 문제에 직면했다. 그러나 로스트의 기계나 초기의 축음기로는 홀 구석구석까지 퍼질 만한 충분한 음량을 낼 수는 없었다. 이 결함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리 디 포리스트가 개발한 셀레늄 진공관을 사용한 오디오 증폭기에 의해 해결되었다(진공관 검파기). 제1차 세계대전 후 필름에 소리를 옮기는 방법이 개발된 데서부터 문제는 해결되었고, 거기에서 뒷날의 폭스 무비턴이 생겨났다(포노필름). 한편 바이타폰을 사용한 디스크식 부분 토키인 〈돈 주앙 Don Juan〉이 1926년에 워너브러더스사에 의해 발표되었고, 이듬해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에 의해 영화계는 일약 토키 시대로 돌입, 얼마 후 디스크식 음향장치는 필름식 음향장치로 대체되었다. 1930~52년은 기술혁신시대로 일컬어지지만 영화의 음성기술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1952년 시네라마의 등장은 스피커를 스크린 뒤로부터 해방시켰고, 해저드 리브스가 개발한 7채널 방식에 의해 보다 충실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1953년에 등장한 시네마스코프에는 경제적 이유로 퍼스펙트 A. 사운드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색채 채색되어 움직이는 화상에 대한 탐구도 영화시대 이전부터 시도되고 있었다. 20세기초까지는 필름의 화면마다 손으로 채색을 했는데, 프랑스의 파테사는 1905~30년경 반자동으로 인쇄해넣는 방식(형치법[stencil system])을 채택하고 있었다(스텐실). 1906년 영국에서 찰스 어번, G. 앨버터 스미스가 2색법의 키네마컬러의 특허를 땄는데 촬영과 영사 때 렌즈 앞에 빨강과 녹색의 회전 필터를 붙여 그것을 통해 발색시키는(필름 속도는 1초에 32컷)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색채는 매우 불완전했다. 1915년 허버트 캘머스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연구 팀에 의해 개발된 테크니컬러(선명한 색채)는 3색분해법에 의한 컬러 사진 재판법의 첫걸음이 되었다. 그리고 월트 디즈니의 〈숲속의 아침〉(1932)은 그 방법에 의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거기에 루벤 마물리언의 〈베키 샤프 Becky Sharp〉(1935)는 예술적인 최초의 장편 컬러 영화로서 주목을 받았다. 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1939)의 흥행 성공으로 컬러 영화 시대의 도래가 확실해졌다. 테크니컬러에 이어 다층식 발색법에 의한 미국의 코닥컬러, 독일의 아그파컬러, 이탈리아의 퍼라니아컬러가 실용화되었다. 다층식 발색법은 촬영이 간단하기 때문에 이스트먼 코닥과 안스코 계통은 표준형일 뿐만 아니라 대형영화의 제작도 용이하게 했다. 와이드 스크린(대형화면) 1947년에 최전성기를 누렸던 미국의 영화 산업도 1948년말경부터 관객을 텔레비전에 빼앗기자 영화계는 그 타개책으로 1952년 대형영화 시네라마와 입체영화 3D(three dimensions picture)를 개발했다(영화관, 영사막). 3D 영화는 관객이 색안경을 껴야 했으므로 흥행에 실패했고, 오래지 않아 사라졌지만, 3벌의 필름을 이어 합친 만곡된 대화면과 6개의 사운드 트랙으로 완전한 입체음향을 재현시킨 시네라마는 그 입체적인 박진감으로 인기를 끌었다. 더구나 1952년에는 20세기폭스사의 대형영화 시네마스코프도 발표되었다. 이것은 세로 대 가로의 비가 1 대 2.3의 스크린으로 3개의 입체음향장치를 가졌으며, 제1회 작품 〈성의(聖衣) The Robe〉(1953)의 대성공 이후, 순식간에 미국은 물론 유럽·아시아에까지 보급되었다. 얼마 후 시네라마와 시네마스코프와 같은 효과를 노린 비스타비전에 기타의 여러 방식이 서양 여러 나라에 등장했다. 또한 〈오클라호마! Oklahoma!〉(1955)는 70㎜ 필름을 사용한 토드 AO(Todd-AO) 방식의 첫작품이었다. 그리하여 1890년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 이래 표준이었던 35㎜로부터 영화용 필름의 크기는 대폭적으로 바뀌었다. 이어 테크니컬러가 개발한 테크니라마를 비롯하여 갖가지 대형화면이 등장했으나, 모두가 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비스타비전(1954), 토드 AO 등의 원리를 기초로 한 것들이었다.
958    [그것이 알고싶다] - "지구종말시계=운명의 날 시계"란?... 댓글:  조회:5593  추천:0  2017-01-27
12시가 되면 지구가 종말하는 시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계바늘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죠.     핵전쟁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시계로 알려져 있다. 운명의 날 시계라고도 한다.   〈불리틴〉은 1947년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 참여했던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시카고대학의 과학자들이 만들어 격월로 발행하는 잡지이다. 〈불리틴〉의 운영이사회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사라지는 시점이 시계의 자정을 나타내는 시계를 만들어 잡지의 표지에 실었다. 그리고 잡지를 발행할 때마다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핵실험이나 핵무기 보유국들의 동향과 감축 상황을 면밀히 살펴 분침을 조정한다.   처음에 지구종말시계는 자정의 7분 전에서 출발했다가 1953년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 2분 전으로 자정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다. 1991년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상에 서명하고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당시에는 17분 전까지 조정되어 가장 안전한 때였다. 그러나 1995년 시계는 14분 전으로 조정되었고, 1998년 6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 감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면서 다시 9분 전으로 조정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연구를 좀 더하고 대비 방법 등도 생각하여야겠죠? 하지만 그건 그 때 되어봐야 아는 것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너무 신경쓰시다가 정신적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니까요^^   운명의 날 시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는 미국의 원폭계획 추진 핵 과학자그룹을 중심으로 한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핵위협을 경고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으로 고안한 시계이다. 2016년 1월 26일 자정 3분 전으로 유지한 것이 마지막이다.   목차   [숨기기]  1시각 변화         시각 변화[편집] 1947년: 23시 53분 - 최초 발표 1949년: 23시 57분 - 소비에트 연방이 핵실험에 성공 1953년: 23시 58분 - 미국과 소련이 수소 폭탄 실험에 성공 1960년: 23시 53분 - 핵무기의 위험에 대한 과학적 협조 및 대중의 이해 증진 및 "대량보복"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들에 의해 변경 (미국-소련간 충돌 방지 협의, 국제 지구물리학계의 공조, 퍼그워시(Pugwash) 회의 등 과학자들의 행동 등) 1963년: 23시 48분 -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체결 1968년: 23시 53분 - 프랑스와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 중동, 인도차이나, 아프리카에서 전쟁이 격화됨 1969년: 23시 50분 - 미국 상원이 핵 확산 금지 조약을 비준 1972년: 23시 48분 -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SALT I과 ABM 조약을 체결 1974년: 23시 51분 - SALT I에 이은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군축교섭은 난항. 인도가 최초의 ‘평화적 핵폭발’에 성공 1980년: 23시 53분 -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교섭은 정체, 국가주의적인 지역 분쟁과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증대되고 남북문제가 의논되게 되다 1981년: 23시 56분 - 군비 경쟁 시대로. 아프가니스탄, 폴란드, 남아프리카의 인권 억압이 문제되다 1984년: 23시 57분 -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간 군비 경쟁이 격화 1988년: 23시 54분 -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중거리 핵전력 전폐 조약을 체결했음. 1990년: 23시 50분 - 동유럽의 민주화, 냉전 종결 1991년: 23시 43분 -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전략적 무기 감축 조약을 체결했음. 1995년: 23시 46분 - 글로벌 군사 지출은 냉전 수준에서 계속, 무기와 brainpower의 이후 소련의 핵 확산에 대한 우려. 1998년: 23시 51분 - 인도와 파키스탄이 연이어 핵병기 보유를 선언했음. 2002년: 23시 53분 - 미국이 ABM 조약 탈퇴 선언, 테러리스트에 의한 대량파괴병기 사용의 염려가 높아짐 2007년: 23시 55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실험과 이란의 핵개발 야욕 [1] 2010년: 23시 54분 - 핵 무기와 기후 변화에 대해 보다 희망적인 상황이 되어가고 있음 [2] 2012년: 23시 55분 - 핵무기 감축 노력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기후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음.[3] 2015년: 23시 57분 - 통제되지 않는 기후 변화와 전 세계적인 핵무기 현대화가 인류에 분명한 위협을 줄 것. [4] 2016년: 23시 57분 - 이란 핵협상이 타결됐지만 미-중,미-러 갈등이 위험을 야기하고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주목해야할것.또한 파리 기후변화 합의는 나름의 성과를 냈지만 기후변화 추세를 변화시키기엔 부족.[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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