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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옥타비오파스 시론

시 /옥타비오 파스
2018년 10월 31일 21시 29분  조회:1328  추천:0  작성자: 강려
  /옥타비오 파스 
 
너는 말없이, 은밀하게 온다.
와서는 분노와 행복을 일깨우고
이 무서운 고뇌를 불러일으킨다.
만지는 대로 불을 붙이고
사물마다 어두운 목마름을 심는다.
 
세상은 물러나고, 불 속에 집어넣은 쇠붙이처럼
허물어져 녹는다.
허물어진 나의 형체 사이에서 나는
홀로, 벌거숭이로, 껍질이 벗겨진 채 일어선다.
내가 선 곳은 침묵의 크막한 바위 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대를 향한
외로운 투사다.
 
불타는 진실이여,
너는 나를 어디로 밀어붙이는가?
나는 너의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너의 그 철없는 질문도
뭐하러 이 소득없는 전쟁을 벌인 것이냐?
인간은 너를 포용할만한 존재가 못 된다.
너의 목마름은 또 다른 목마름으로 배가 찰 뿐,
너의 불길은 모든 입술을 태울 뿐
너의 정신은 아무 형태로든 살기를 거부한다.
모든 형태를 불타오르게만 할 뿐,
너는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내 존재의 이름모를 중심에서
병대처럼, 밀물처럼 올라온다.
너는 점점 커지고 너의 목마름은 나를 질식시킨다
너는 폭군처럼 너의 열광의 칼 끝에
항복하지 않는 모든 무리를 추방한다.
그리고 마침내 너 혼자 나를 점령한다.
이름도 없는 너, 분노의 실체여,
지하의 목마름, 그 광기여,
 
너의 유령들이 내 가슴을 친다,
내 감촉을 일깨우고
내 이마를 얼리고
내 눈을 띄운다.
 
세상을 감지하며 너를 만진다
너, 만질 수 없는 실체여,
내 영혼과 내 육체의 조화여.
나는 내가 싸우는 싸움을 바라보며
땅의 결혼식을 본다.
 
상반된 이미지들이 내 눈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그같은 이미지들에
다른, 더 깊은 이미지들이 앞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불타는 더듬거림,
더욱 숨겨진, 더욱 짙은 물길이 앞의 물길을 흩트린다.
이 젖은 어둠의 싸움 속에 삶도 죽음도
고요도 움직임도 모두 하나다.
 
계속하라, 승리자여,
내가 존재하기 위해, 오직 그것만을 위해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입, 나의 혀도
오직 너의 존재를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너의 은밀한 음절들, 만질 수 없는
횡포한 말은
내 영혼의 실체다.
 
너는 오직 하나의 꿈.
하지만 세상은 네 속에서 꿈꾼다.
그리고 말 없는 세상은 너의 말로 입을 연다.
너의 가슴을 만지면서 나는
삶의 지평의 기류를 더듬고
어두운 피는
사랑에 취한 잔인한 입과 세상을 묶는다.
너의 입은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려는 욕망으로
파괴하는 것을 다시 살 욕망으로
항상 똑같은 비정한 세상과 결탁한다.
세상은 어떤 형태로든 머물지 않고
스스로 창조한 어느 것 위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기에.
 
외로운 사람아, 나를 데려가 다오,
꿈 속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나의 어머니가 되어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일깨워주고
내 너의 꿈을 꿈꾸게 하라,
내 눈을 올리브유로 적시어
내 너를 찾음으로 하여 나를 찾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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