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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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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송시월 시모음 2 댓글:  조회:392  추천:0  2020-05-19
송시월 시모음 2   출처 http://blog.daum.net/siiwoell   비명      창 밖은 지금 회오리가 일고 은행나무    수천의 노랑나비를 허공에다 풀어놓고 있다   날개를 걸고 팔랑팔랑 흔드는 놈, 등 떠민 놈, 납작 껴안고   공중회전을 하다가 함께 떨어지는 놈, 패거리로    껄렁껄렁 몰려다니며 밟고 밟힌다     유리창 밖의 낙엽 하나   두 손으로 감싸든 잔에 날아드는 든다, 나비    비스듬히 기우는 날개   치켜 뜬 좁쌀 만한 눈의   들릴 듯 말 듯 파르르 떠는 나비,   (이모, 나 "살고 싶어"   원자력병원에 새로운 암치료기가 들어 왔대)   창 밖은 우수수 "살고 싶어"가 쏟아진다     청계천에 비명 노오란 조각, 조각조각 떠내려가고 있다   광인      길가 느티나무 밑    녹슨 철벤치에 앉은 까치집머리 중년의 한 남자    그 옆 한 쪽 귀떨어진 채 졸고 있는 쇼핑백 하나    그 앞엔 배가 홀쪽 누워 있는 깡통 하나     남자가 툭툭 깡통을 찬다    갑자기 회오리바람 인다    까치집머리 찌그러져 엉키고     "명퇴 세상 깡똥 세상"    달리는 버스를 향해 빌딩을 향해 삿대질하고 소리치는 남자    밀고 밀리는 나뭇잎 틈새    빌딩 한 쪽이 사내 쪽으로 조금씩 기운다   그 빌딩 등에 입 쩍 벌리고 있는 초이레 칼날 달      사내의 머리 위로 흐르는 고압전선이 부르릉 떤다     중복 날       -언어의 감옥 8               잠자리들 공중으로 치솟아 수십 겹의 포물선     얼크러졌다 풀렸다 하는 중복 날       웨이브머리에 잠자리날개핀을 꽂은     키 큰 여자     수박을 안고 줄장미 몇 송이 피어 있는     담장길을 돌아      서른 살 통굽 소리 똑똑 찍고 간다     그녀 왼쪽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줄무늬 푸른 대문의 담장을     장미 넝쿨이 넘쳐 내리고 있다       꼬리가 반원으로 휜 담장 위의 잠자리     하트?     한 낮, 암컷의 머리에다 꽂고 비행을 한다     호흡이 잘 맞아 싱싱 흐른다     씩 웃으며 대문을 들어서는 우체부 아저씨      싱싱하게 햇살 몇 송이 핀다   아차산           - 언어의 감옥 7                     휙 휙 스치는 언어의 푸로펠라          길목마다 터지는 4월의 햇볕탄          와와 치솟는 색색의 문장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           이 꽃 저 꽃 음소를 빠는 윙윙 소리              백운대를 향해 45°바윗길 오르는 리듬들          아차, 미끄러진다    눈을 쓸다가            흰옷, 눈이 내린다     북풍에 조각조각 떨어진다     명주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회색허공을 가만가만 내딛다가. 두 손으로 거머쥐다가.     무명저고리 어머니가     아버지와 부딪힐 듯 부딪힐 듯     아버지 위로 어머니가 쌓이고 어머니 위로 아버지가 쌓인다     내 비질에     은발을 날리며 어머니가 쓸린다     흰 수염의 아버지가 쓸린다     눈이 그치고     겹겹 쌓인 눈의 고요 속에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어머니의 바느질 시침 소리, 아버지의 붓끝 스치는 소리,     "이제 그만 잡시다" 호롱불 부는 소리     몸이 시린 나뭇가지, 얼굴과 얼굴들 모두 지워지고     높고 낮음, 길고 짧은 밋밋한 선들 사이     나는 티끌 만한 검은 점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호랑나비           4월의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골목에서 벚꽃이 뻥튀기처럼 뻥 핀다. 벚꽃  사이 햇살 속에서 튀어나온 호랑나비, 묻힐 말 듯 꽃 속을 난다. 내  동공 안  으로 푸른 하늘의 배경을 확 당기자, 꽃술을 밀며 들어가는 나비! 내 눈썹에  와  간질간질 닿는다. 나비가  떤다. 내가  떤다. 떨리는 두 팔이 가벼워지고  나도  나폴거려  본다. 이때, 일방통행길에  포크레인이 지나가고  생태공원  호랑나비의 환영, 드르르르 뭉개진다.   입술에 걸린다          비 100mm 쏟아낸 청계천 먼 하늘을    빨대로 쭈―욱 빨자    물 젖은 별이 입술에 걸린다    은하수를 휘저어 다니던 피라미 떼가 와서 걸린다      주말 새벽 2시     가물가물 선잠 휘저어오르는  피라미떼들     가로등 불빛 엷게 들어서는 유리창을 때린다     아침 장교동과 수하동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유리창 때리는 철거반의 쇠망치 소리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골프채 인쇄기기    붉은 딱지를 붙이고 질질 끌려나온다    보관소를 향해 100m 쯤 늘어서 가는 이사짐차들    우리 집 옆으로 펜스가 쳐진다         청계천의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    저음의 으르렁 소리를 내며 재빨리 꼬리 감춘다    파아란 통유리문 때리고 나서      구름 사이로 미끄러지는 빗방울들      하늘의 사타구니에서 쏟아지는 햇살    내 속눈썹 가닥가닥에 걸려 파들거리는   제2 한강교       1      제2 한강교를 여자가 걸어간다    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한강철교가, 달리는 차들이 흐물흐물 안개가 된다    여자가 안개를 딛고 사박사박 걸어간다    여자의 오른쪽 다리가 지워진다    왼쪽 다리가 지워진다    두 팔로 허우적 허우적 몸통을 끌고 간다    두 팔이 한꺼번에 지워진다    가슴으로 안개를 밀고 간다    여자가 완전히 지워진다    12월 32일의 안개가 여자 속을 걸어간다       2    붉은 런닝에 맨발의 가로수들    아침해를 이고 차선을 달린다    노랑머리 날리며 은행나무가 달린다    붉은 머리칼 떨구며 단풍나무가 달려온다    어깨 스치며 토막울음 우우우......    이른 출근길의 자동차들 꽁무니에    부싯돌이 쉴새없이 그싯고    더러는 꽁무니에 아침노을을 매달고    빨간 스카프를 두른 한강교    노을노을 앰블런스가 지나가고    토막울음소리 우우우......   여승의 합장 보살보살    이사 온 첫날 아침  남으로 난 원형의 통유리에 붉은 장미가 핀다  맞은편 용천사 기와지붕이 미끈한 버선코를 세운다  장마비 앞산에 초록초록 내리고  4층의 나를 올려다보는 여승의 합장 보살보살 내리고  (이번 토요일 오전 10시 올림픽 경기장 평화공원 호수 가에서  시화전)  핸드폰에 문자멧세지 뜬다                    산까치 한 마리 날아간다, 밖으로 열린 창틀  쌍무지개 걸어 놓은 산등성이   백지              맞은편 숲이 나를 받아쓰고 있다 4층 베란다 하늘색 유리탁자 앞에 앉아 데리다 192페이지 “기원에 대한 꿈: ‘문자의 교훈’을 펼쳐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떡거리다 하는 내 얼굴을 정면의 아카시아나무가 잎을 팔락거리며 받아쓰고 있다 허공에다 상형의 소문자로 쓰고 있다 띄어쓰기나 행갈이도 없이 빽빽하게 쓰고 몇 번을 덮어씌우고 하다가 계란형의 중앙에다 눈. 코, 입, 귀 구멍을 내고 구멍만큼의 하늘을 넣는다 그 하늘이 뭐야뭐야 새울음을 운다 내가 기지개를 켜자 우우우 일어서며 옆의 물푸레나무가 대문자로 내 팔을 받아쓰고 키를 받아쓴다 내가 물푸레나무만큼 키가 커지고 몸통이 커지며 바람에 두 팔이 흔들리자 문자들이 뒤집히며 일그러져 날려간 백지             내가 나를 읽을 수가 없다       딸아이의 집.1       그녀 생일날 딸아이가 내 배꼽의 벨을 누르고 들어간다. 앞이 환해지며 딱딱한 허공이 말랑말랑 따뜻해진다. 앞으로 옆으로 그 옆으로 뒤로 그 뒤로 촘촘히 꽂혀 있는 책들, 앞쪽 밑에서 다섯째 줄 중간쯤에 내 동인지 디지털리즘 3호 표지의 D자가 나를 향해 바짝 귀를 세운다 오랜만에 빨간 귓부리를 만지니 따뜻하다. 허공이 탁자 위에다 두툼한 책을 펼쳐 놓고 있는 우측으로 옥매트가 깔려 있고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가지들 사이 낯익은 밤색벨트가 원피스의 허리를 팽팽하게 조이고 있는 그 앞 가스레인지 위에선 압력밥솥이 밭은 숨을 내뿜으며 딸랑딸랑 나를 부르고 있다. 소파에 앉아 리모콘의 파워키를 누르자 딸아이가 튀어나오고 2007년 1월 1일 0시 종을 울리며 보신각이 뜬다.   딸아이의 집 3         ―윈드서핑   한 시인이 붉은 바다를 입고 지하도를 걸어간다 등짝의 물고기들 아가미를 벌린 채 물살을 차고 튀어 오른다 바다가 뛰어간다 그 뒤로 딸아이가 뛰어간다  붉은 파도가 밀려가고 지하도를 들었다 놓았다 상점의 배들이 기우뚱 덜덜덜 진동이 인다 천정으로 튀어 올라 가로등 눈을 켠 물고기들 환히 비추는 붉은 바다   윈드서핑 저녁 8시 15분의 시침과 분침 사이로 미끄러져나간다   화분에서 자라는 새                               오월 창가 화분에 해가 뜬다      내리쬐는 C32˚의 초록 햇살 쪼아 먹고     찰랑이는 머릿결 초록바람 쪼아 먹고     간지럽게 파고드는 겨드랑이의 초록그늘 쪼아 먹고     느티나무의 초록 지저귐 왼 종일 쪼아 먹고     화분에 달이 뜬다     동맥 정맥 청계천 꿈틀꿈틀 흐르는 사이로     실핏줄 달의 골목 몇 바퀴 휘감아 도는 사이로                 버들치 한 마리, 흐르는 물살에 뒷걸음질 치다가     거슬러 오르다가 허기진 저물 녘     굴러오는 어둠 몇 알 깨트려먹고     별꽃을 먹고 달꽃을 먹고     물밑 모래알에 비스듬히 엎드려 잠이 든다         화분에 발이 빠진 채 깃털 하나 둘     빠져 날리는 새 한 마리   쥐의 공화국   우리집 천정은 쥐의 공화국, 대선 박두 인 듯 마른 쥐오즘자국이 선거벽보처럼 어지럽게 나붙어 있다 발자국 소리 쿵당거리며 새 시대 지도자의 첫째 조건인 말 바꾸기의 빠른 순발력테스트를 마라톤 경기로 대신 한다는 안내 방송이 벽지를 찢으며 내 귓속으로 오물처럼 흘러든다   마라톤이 시작된다. 42,195Km의 지정된 난코스를 돌아 황영조의 지구력과 살라자르의 스피드로 선두 골인하는 기호 3번, 1번, 4번...... 이때 기호 2번이 검은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본부석으로 뛰어나온다. ‘여러분 희디흰 메가톤급 비리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호 3번이 어제의 밝음을 틈타 표 당 1톤씩의 어둠으로 수 천 표를 매수했으며 그 표들이 이 자리에 세몰이로 동원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공화국을 탈색시킬 치욕적인 표백제입니다 지도자의 바탕은 순진 무구 검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저의 얼굴을, 저의 말을, 새카만 비로도의 이 진실 위에 현명한 한 표를 얹어 주십시오 금세 유세장은 투석전이 벌어지고 창이란 창은 모조리 깨져 어둠이 봇물처럼 빠져나간다.  저마다  검은 공화국의 유리창을 갈아 끼울 지도자는 반드시 “나”이어야 한다고 디데이 전날, 쥐들이 사방에다 쥐덫을 놓는다.     경칩날       아침 수도꼭지를 열자 햇살이 콸콸콸 쏟아진다 진달래화분의 팥알만한 꽃망울들 아침 노을 글썽글썽 유두가 가렵다 바람이 스치자 초경의 숨결 파르르 쏟아진다   지하도에서 밀려나와 리라초등학교 쪽으로 피어가는 노오란 책가방을 멘 아이들 명동 역 3번 출구 노릇노릇... 햇살이 쓸고 간다   남산 입구 박새가 톡톡 내가 움찔움찔 두어 발짝 물러서면 등 뒤 수령 460년 은행나무 잎눈들 검은 벽을 뚫고 개굴개굴 기어나온다   웰빙 상상을 사다   쑥고개 시장 노릇노릇 진도 봄동 한 근 1000원 뿌리 통통 살 오른 강원도 산 노지냉이 한 근 3000원 (금요포럼, 한국관광공사 3층 지리실) William James의 재생적 상상의 티각태각 토론 500g 유리창에 비치는 생산적 상상의 햇살 500g 각각 5000원      주방에다 장바구니를 풀어 놓자 봄동에서 초인종이 울린다 진도아리랑 한 가락이 아라리 쓰라리 신림동 고개를 넘어오고 또 노지냉이에서 정선아리랑 한 가락이 내 시에 리듬을  깐다 금요포럼 “웰빙 상상을 사다”내시 행간 행간에에다 이월의 유채꽃 무더기무더기 피워 놓고 노오란 햇살이 렌즈를 들이민다 자! 꼰디발로 키를 맞추고 원산지 표시를 보이세요 티각, 리듬을 약간 출렁거리세요 태각, 앞자크 반쯤만 내려 보세요 티각NG, 화난 얼굴이네요 여기서는 홀랑 벗어도 흉보지 않습니다 미소를 지으세요 태각,  티각태각 상상을  빠져나온다 된장국에다 햇살을 풀어 밥말아 먹는다   패션쇼    쥐색 버버리에 삐뚜름히 이마를 가린 베이지색 베레모  정오의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거울 속 시계 속으로 들어가 다리를 약간 벌려고 몸을  살짝 틀어  포즈를 잡는다  반쯤 열린 창으로 들어와 사푼 다가서는  신세대 패션 붉은 꽃무늬햇살  옆구리에다 두 손을 얹고 둘이서  재깍재깍 돌면서 좌로 우로 포즈를 바꾼다  이때, 공지머리에 투명 개량한복의 앙드레김바람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중얼 끼어든다 세이서 2열 종으로 1열 횡으로 옷깃 스치며 걷다가 휙 돌아서서 나를 중심으로 나란히 선다 모자를 벗는 그들이 닮은골이다 순간, 내 오른발이 미끄러지고 뚝 떨어져 깨지는 안경알, 앞단추를 풀어헤치고 무료하게 걸려 있다 거울 속에 휴일 몇, 옷을 벗고 사라진다 유리창을 지나는 해가 입술을 바짝대고 키스마크를 찍는다  
99    송시월 시모음 1 댓글:  조회:263  추천:0  2020-05-19
송시월 시모음 1   출처 http://blog.daum.net/siiwoell     애기풀새                     옥상 구석  빈 분에 돋는 풀을 뽑다가  멈칫  손끝에 찌르르~ 전해오는 떨림,       어! 이건 초록 새다.  새 잎의 날개 활짝 펴  종종종 발레를 하는 풀,  내 손등       을 간지럼 태우는 풀, 흙에서 막 깨어 난 풀에게"애기풀새야"하고 부르면 이       슬눈으로 나와 눈맞춤을 한다.  어느새  내 눈이 투명해져 보이는 것마다 참       맑 다. 이때 포르르 날아 내리는 한 무리 참새 떼, 무어라무어라 재재거림에       내 입술이 간지럽다.                *나의 시 쓰기/‘사물과 내가 하나되어’-송시월           탈관념의 창작시론인“꽃의 문답법”을 읽었다. 그 이후, 나의 관심은    생명 탐구쪽으로 기울어졌고, 탈관념의 실험을 하는 시류의 아방가르드    대열에 끼어들게  되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  이면에는 늘 두려움과    회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선/악을 구분짓는 원죄론(이원론)에 있던 내    가, 사물의 본질은 하나라는 동양적 인식(일원론)에 이르기 까지는 무려    5년 이란 시간이 걸렸다. 암벽 깨기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다. 이제야 어    떤 사물의 상처를 보면 내 몸이 떨리고 아파옴을 느낀다.        4년 전 시류 동인은  아방가르디스트  오남구 시인의 실험에 동참하여     "디지털리즘"  선언한다. 동인의 한 사람인  나는 이후  아날로그시대의    수사학적  말하가(telling)가 아닌 디지털시대의 '보여주기(Showing)'의    시  쓰기를  실험한다. 어떤 사물과의 ‘눈맞춤(靜觀)’을 하고, 직관한    생명의  절편(Unit)을 카메라로  찍듯(접사하거나 염사하여) 언어로 묘사    하는  기법이다. 이때 사물들이 저희끼리 동화되고 때로는 트러블을 일으    키기도  하면서 공명하여  울림을  일으키어  내가  할말을 대신해 준다.     (다만 시는 언어를 통해 태어나는 특성  때문에  내가 쓰는 언어는 지시    적 기능만으로 제한된다) 이것이 내가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디지털적    시 쓰기인, 보여주기이며  생명탐구의 한방법인데, 나의 확장된  인식이    디지털 카메라의  기법을 통해 시로 태어난다고 하겠다.   계곡 물 속의 풍경     -언어의 감옥 1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물 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쏟아져 나온 햇살올챙이들 바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다. 바위가 갸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들 물속 어른거리는 개버들 가지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에 뜬 하얗게 굽은 낮달을 살랄살랑 지나간다.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관념의 예수.   남산의 동쪽   수녀님 지금 뭐하세요? 잡풀을 뽑지요 잡풀이란 뭐지요? 죄없는 풀인데 사람의 말 아닌가요? 내 투명한 언어에 찔려 산책로 계단을 총총히 내려서는 그녀, 바람에 날리는 풀머리 어수선하게 엉킨다 남산의 동쪽 고만고만하게 누워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신 초록 뿌리 잘린 명아주 토끼풀 뱀딸기 까시랑풀 몇 밤 자고나니 거뜬히 기지개 켠다 이슬눈 투명하게 굴리며 낯설면서 낯설지 않게 고화질화면으로 푸르게 어우러진 내 아이들 풀 풀 풀   12시간의 성장   --언어의 감옥 4       낮 10시에 흔드는 시계 알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초사흘 노른자위에 심장의 실핏줄이 돋고 또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오소소 돋아나는 솜털 또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온몸이 가렵고 눈자위에 별이 뜬다.   물상들이 또록또록 반짝인다. 중천을 한참 비켜서서 초록 눈금을 먹는 시계 알 초록~ 초록~ 가려움을 쪼다가 미운털이 박히다가 골골골 알을 짓다가 꼬끼오 운다.     구토    ―언어의 감옥 2       2004년 3월 전화기가 구토를 한다     따르릉 폭설을 토한다   따르릉 실크바람을 토하고 오후 3시의 햇살을 토한다   따르릉 진달래를 토하고 하얀 목련을 토한다     엇물린 신호음, 뚜탄 뚜핵 뚜탄 뚜핵......     청계천이 30년 묵은 검은 가래 토하는 소리     물웅덩이  ㅡ자화상     비 그친 후, 물웅덩이  붉은 하늘 한 조각 하늘 속의 물구나무선 반쪽의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와 육교 한 토막, 그 틈새에 납짝 끼인 나 한 조각 언뜻 멧새가 휙 일렁이며 간다   푸른진통  ―언어의 감옥 3               물음표에서 싹이 튼다 모니터에 뜬 비안개 자욱한 쌍우물의 언저리 어느 밤 유성이 떨구어 논 살 비듬?  혹은 월식의 발자국? 초음파로도 판독이 유보된 꺼뭇꺼뭇한 ?들 ?가 낳은 ?의 새끼들 ??? 오늘 봄비에 젖은 애무덤 같은 저것들 푸른 진통 싹!!  쑥잎과 냉이 순이 싹트고 있다      내 유방을 만지면 아직은 얼얼한 강물소리 바람 소리 손바닥에 쑥내음 냉이향이 불그스레 묻어난다 (유방암 조직검사~ 요?)   엘빈의 커피잔         동숭동의 빗소리를 놓고 산목*과 마주 앉으면 커피 잔에 봄비가 내린다. 플라타너스 새싹들에, 노 시인의 두 눈에 이제 막 돌아온  가시내 봄비 티스푼으로 건져 올리면 비 멎은 허공에 물먹은 달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한 잔 앨빈의 커피와 내 뇌신경이 말똥거리는 밤 창 밖 풀라타너스의 그림자들 유령처럼 서성인다. 저놈의 벽시계는 눈금을 쩍쩍 미끄러뜨리고 가습기는 아라리 쓰라리 봄을 희뿌옇게 뱉어내고            * 山木: 함동선 시인의 호    사각 ―점1     사각 방 속의 나, 보이는 것 모두 사각이다. 사각 벽, 벽면의  거울 액자, 그 밑의 책상, 책상위의 모 니터, 모니터 옆 책장, 책장에 꽂 인 책, 그 옆으로 창문 문밖의 하 늘, 하늘을 이고 선 빌딩, 빌딩에 매달린 간판, 간판 속의 흔들리는 글자들, 사각사각 사각으로  숨쉬 고 사각의 나 모서리가 말을 한다      모리와 모서리가 부딪는 공간, 유리알 하늘을 쳐다본다. 청옥빛 쨍그랑 깨지며 콕 찌르는 햇살 투명한 초록 눈물 주룩 흐른다.   유명산                 내 앞에 걸어가는 다리가 미끈     쭉쭉 곧은 소나무들,      안개로 짠 하얀 실크드레스를 걷어올리고 있다     한 발짝 옮기며 한 꺼풀     또 한 발짝 옮기며 또 한 꺼풀     불그스레 드러나는 열일곱 살결     소나무 사이로 누드를 팔랑거리는 파스텔 톤의 나비     순백한 하늘을 배경으로       고도를 높이자     떨리는 순결이 찌-익 긁힌다     노오란 날개 팔랑거리며 순음 하는 왕오색나비들     칡넝쿨에 앉으면 초록 나비     망초꽃에 앉으면 하얀 나비       입춘무렵              몸 트는 나무 가지에       마른 풀잎에       반짝 띄우는 문자 멧세지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         눈이 푸른 휘파람새 한 마리       느닷없이 한참을 기우뚱이는       내 머리 위로       휘이익― 푸른 선율을 그으며 날아간다              온 몸이 간지럽다   얼굴 x           -  언어의 감옥5          하늘의     해 ,달, 별, 천둥 번개, 구름, 비, 노을, 어둠     사람의     그림자, 눈물, 웃음, 언어        땅의     나무, 풀, 꽃, 나비, 강물, 불꽃, 바위     얼굴 x이다         심심한 삼복의 한낮     선풍기 앞에 오면 내 얼굴의 기호들이 조각조각 날린다   좌표에서 달리는 지하철      ―점5             시간이 달리고 있는 X좌표의 지하철에    오전10시 30분 볼펜 Y가 입실한다.    철거덕 문 닫히는 소리    서로의 숨소리 팽팽하게 밀고 당기며 내 눈빛 속으로    빨려드는 이력들.      나는 먹물의 사기범, 너는 이념의 신호등 앞에 서성이는 경계인, 그는 산업    스파이, 초범인 듯 털보송이 노랑머리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을지로 3가  에서 고속터미널까지 초록숨소리를 토하고 출감한다      X좌표의 국립도서관 3층 자료실에 볼펜 Y가 다시 입실하면    청옥 빛 바람 섬뜩 차다.    책갈피 속 시의 맥박 차근차근 짚다가    파닥거리는 리듬을 복사해 출구를 나서면    내려서는 계단이 기우뚱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초록생명  Y는 0,1번 Digit   눈부시게 깨어나는 수면공간      ―점. 2                           장출혈 앓는 새벽 4시 45분      머리 위에 수술중이란 표지판이      혈액의 팩처럼 매달려 있다      부슬부슬 어둠이 떨어져 모르스부호로 찍히고      새벽녘의 눈뜨는 공간      반짝이는 상형의 악기들,        가야금자리  갈루버자리  탄부르자리 거문고자리 오보에자리      구슬리자리  클라이버자리 심벌즈자리 수르나이자리 쳄발로자리      라이베스자리  단소자리 가물란자리 마우피스자리 바이올린자리      색소폰자리 파이프오르간자리 클라리넷자리 기타자리 사론자리의          굴러가는 숱한 겨울의 바퀴들, 장엄한 오케스트라      아다지오 알레그로로 안단테로 때로는 프레스토 모데라토로      그믐밤 하늘을 구르는 선명한 선율,      공간 한 귀퉁이가 부서진다   12월 32일, 안개               제2 한강교를 여자가 걸어간다      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한강철교가 달리는 차들이 흐물흐물 안개가 된다      여자가 안개를 딛고 사박사박 걸어간다      여자의 오른쪽 다리가 지워진다      왼쪽 다리가 지워진다      두 팔로 허우적허우적 몸통을 끌고 간다      두 팔이 한꺼번에 지워진다       가슴으로 안개를 밀고 간다       여자가 완전히 지워진다        12월 32일의 안개가 여자 속을 걸어간다   청사과   지하철 1호선 청량리 역 청사과빛 둥근 하늘이 승강기 틈으로 굴러 떨어진다 진동음 철거덕철거덕 지긋이 눈을 감은 순간, 내 입에서 주르륵 신물이 흐른다 눈을 뜬다 철로의 틈바구니 파문처럼 번지는 푸르고 시큼한 저 하늘의 입자들 부셔진 하늘이 역내에 온통 널려있다 나는 2번 출구로 빠져나온다 ` 청사과빛 초가을 하늘에 피라미드형으로 쌓인 노점의 과일가계, 내가 볼륨 2개를 빼내자 와르르 무너지는 오후 3시의 하늘   초록 매미   초록 매미 맹∼ 맹∼ 맹∼ 맹∼ 찌르르르∼운다 치과( 구강외과 치주과) 진료실 하얀 차단 막 위의 한상진 의사 “마취합니다, 아∼ 좀더 크게 아∼ 따끔거릴 거예요” 진초록 마취제가 왼쪽 아랫잇몸을 찌르르 흐른다 매미울음의 큐렛에 시큼 들렸다 놓았다 하는 내 이빨들  윗니 어금니가 덩달아 운다  눈, 코, 입, 전신의 구멍들이 운다  "끝났습니다 양치하세요" 이빨모서리에 찔린 비릿한 피울음 몇 번이고 헹궈낸다   붉은 치통을 쏟는 오후 3시 내 머리 위를 몇 발짝 비켜 느티나무에 기대선 푸른 신호등이 찌르르 운다      *큐렛: 잇몸 치료기   어느 휴일의 NG      잘 익은 백도 맛 같은 길, 부암동「머리하는 날」을 기웃거리다가 얄팍한 지갑을 만지작거리다가 불룩한 아랫배, 150억+알파의 덩치를 상상하다가 NG, 북한산을 축지법으로 한 바퀴 돌아 시청 앞 광장, 인공기의 불춤에 한숨 몇 바가지 끼얹다가 NG, 인사동「된장 예술의 집」에서 어느 시인과  된장 비빔밥을 먹다가  NG, 된장찌개! 토종인 내가 아주 맛지게 재창작해 새로운 된장 예술의 간판을 내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NG, 어느새 총동원된 내 안의 악기들, 뚝딱와글벅적썰고볶고지글뭉글끓이고지지고...... 된장 예술의 새로운 디지털 기법, 한참실험 중이다.   배가 아프다, NG   비구름이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린 비구름이, 절룩절룩 예장동 산 5번지 6호 와룡묘 풍경 소리에 잠깐 귀 기울인 비구름이, 비염 앓는 산까치의 기침 소리를 밟고 산책로 108 벚꽃 계단에서 헛발을 내딛는 비구름이, 교통방송국 안테나를 훌쩍 휘어잡다 도미노 피자가계로 넘어진 배고픈 비구름이,"물은 미래의 행복" 산업자원부 에너지 광고판의 "물" 이란 글자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비구름이, 벽보 속 장서희의 촛불을 들고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는 비구름이, 폭격 맞은 이라크 어느 소녀의 귀 비구름이, 텅 빈 내 방의 유리창에 살며시 귀를 댄다. 비구름이   마라토너          전국을 완주해 온 봄비!  남산의 보호수    서2-7, 400년 은행나무 594㎝  서2-6, 450년 느티나무 637㎝  가슴둘레를 파랗게 문질러 놓고     숨소리 고르게 을지로 1가  지금 막 내 앞을 지나는 중이다  봄비를 마라토너들이 추격 중이다  뒤이어 플래카드를 든  맨몸의 가로수들이 달린다   플래카드 속 붉은 글자들도 달린다   ‘강국의 중심 ADSL 한 수위’   ‘정상의 물 山水’       가로수 연두 빛으로 빗는다, 봄비!  그때, 빌딩 사이 반짝  물구나무선 햇살에  마라토너들이 추격하고 사라진다   일몰, 4분간             #1         오후 5시 47분이 해를 떨어뜨린다         서산의 이마에 폭삭 깨지며 번지는 핏물, 내 얼굴을  만지자         손바닥이 붉게 젖는다           #2         오후 5시 48분이 빈 논 귀퉁이에다 모닥불을 지피고  있다          젊은 허수아비들 논둑을 서성이며 매운 기침을 하고          낱알을 쪼던 참새 떼 어디론가 재재재 이동중이다           #3          산꼭대기에서 오후 5시 49분이 어스름을 걸치고         성큼 내려선다         길들이 아슴아슴 지워져간다                 #4        오후 6시가 가로등에 일제히 불 알을 켠다        스카이 모텔도 층층 긴 불 알을 켠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4분간, 눈떴다 감았다 용두휴게소 가등 아래         쫄깃한 우동발을 후르르 삼킨 나, 아직도 배가 고프다      겨울 화단        -  점,3        고만고만한 새내기, 화초들  신축 SK빌딩은 겨울 화단이다   정문 옆 맨 첫줄 수호초, 상록패랭이, 송악, 꽃양배추, 원출무늬사사, 왜란, 헬레부로스, 줄 바꿔 늦개미취, 무늬쑥부쟁이, 지피말발도리, 홍매자나무, 또 줄 바꿔 노랑조팝, 삼색조팝, 관중, 맹문동 끼리끼리 이름표를 달고 갓 입사한 듯 어깨 쭉쭉 펴거나 조금은 움추리고 서 있다. 감전주의보 표지판을 살짝 비켜 이름표(원추리 옥잠화)만 덩그머니 서있는 빈자리에 추운 내 아이의 그림자 서성이고 그 사이사이 경력의 소나무들 굵은 대지팡이로 빨갛고 노오란 성탄의 별자리 둥굴게 띄우고 있는 12월     화초들 층,층 놓여 23층이 된다      1.5평의 내 방, 화병에 꽂힌 입술 마른 황색 장미 한 잎 두 잎 지고       맹인 부부       - 점4       검은 잎과 붉은 잎들 구르는 소리   그 소리가 남산 산책로에 간다.   그 뒤로 맹인 둘이 똑똑 점을 찍고 가고   그 뒤로, 그 뒤로 독똑똑......     가던 길 멈춰선 맨 앞의 맹인 부부   盲人보호철책에 기대선다.   그들 머리 위, 개나리 12월의 꽃송이 몇 점 피어 있다.   무어라 소곤거리다가 고개를 치켜들고   뒤따르던 맹인들도 한 방향으로 서서 웃는다.   이때, 산까치 한 마리 깍깍깍 날아가고   조지훈 시비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맹인들이 찍고 가는 소리    똑, 똑, 똑   배추를 절이며                  쓴 소리의 왕소금을 뿌린다       조간신문 행간의 갈피마다 뿌린다       배추포기의 꼭 다문 속잎에도 누우렇게 헤벌어진 겉잎에도       켜켜이 뿌린다       간밤의 열대야와 한낮의 복더위도 끌어다 눕혀 뿌린다       병풍 서풍 비리비리억풍의 날개도 싹뚝 잘라 설설 뿌린다       구름 안개 어둠 계절풍 걸신들 듯 퍼먹어 네 탓, 내 탓,       빨치산 친일파 국민의 이름으로 어쩌고저쩌고 설사하듯       게워내는 입술에도,        얼쑤절쑤 귀거리인지 코거리인지 법이란 놈의       곱사춤의 등줄기에도 쓴 소리의 왕소금을 뿌린다       물 한 바가지 끼얹는다            저 연노오란 속 배기 한 잎       내 텃밭에 남겨 두기로 한다     bill, 빌빌거리다       쉴새없이 날아드는 bill,빌, 청구서들     카드결제청구서 건강보험고지서 국민연금 전화요금     전기료 오물세 수도료 신문대금 할부금 소득세     빌의 숫자들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 빌빌거리다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한 생이 가고         가을이 내게 청구서를 보내온다     문틈으로 햇살의 종이쪽지를 들이밀다가     바람이 활짝 창문을 열어제치다가     아예 빚쟁이처럼 안방까지 퍼질러앉는다     가을 내내 빌빌거리는 내게 더덕더덕 붙여오는     붉거나 노오란 낙엽 딱지들, 나는 전신 차압되었다     이제 몸도 마음도 내 뜻대로 어찌할 수 없는,     1400g의 뇌가 온갖 청구서의 무게에 빌빌거리다     머지않아 부도처리될 것이다     풀처럼 꽃처럼 bill,빌,         이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소리   비양도 태몽        사람들은 이 섬을 비양도라 불렀다.      산봉우리 하나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촉새네가 방정맞게 "산이 날아온다 " 외치자, 중국 쪽에서 날아 오던 그 봉우리가 제주 앞 바다로 다이빙하 듯 뛰어 내렸다. 그 후 닷새 동안이나 코피를 쏟고 나서 주저 주저앉은 섬, 그 후 비양도는 보름달이 뜨면 가끔 시인의 "말의 오두막집"* 뜰로 불려갔다.        내 시가 추락하는 비양도. 하늘, 바람, 파도, 새의 노래, 나무, 꽃, 나비 의 춤 이런 것들로 그득하다. 숨소리와 날개가 늘 푸른 비양도, 푸른 날개 반쯤 접고 엎드린 저 섬이 언제 또 훌쩍 날아가 여의도쯤에다 코피나 쏟지 않을는지, 밤낮 없이 꽃과 새와 나무들 노래와 춤으로 꿈틀거리는 넝마살이               *윤석산 시인의 시집 제목         구토        - 언어의 감옥2           2004년 3월 전화기가 구토를 한다     따르릉 폭설을 토한다     따르릉 실크바람을 토하고 오후 3시의 햇살을 토한다     따르릉 진달래를 토하고 하얀 목련을 토한다     엇물린 신호음, 뚜탄 뚜핵 뚜탄 뚜핵....         청계천이 30년 묵은 검은 가래 토하는 소리   월식      나는 늘 자전의 바퀴만 굴렸다. 북극의 해를 찾아가면 해는 이미 남극에 가 있고 남극으로 가면  해는 북극으로 간 뒤였다. 해도 달도 없는 월식의 밤, 빗장 닫아걸고 천둥 같은  빗쟁이의 전화벨  소리도 재워놓고, 하늘의 별자리를 따라다녔다. 0.3초, 그 혼돈의 눈빛으로 오리온좌의 왼쪽 붉은  베델규스가 되다가  오른쪽의 푸른 리켈이 되다가, 아래의 푸르스름한 시리우스가  되기도 했다.  이때마다 나를 에워싼 구름, 비, 안개, 침묵까지도   푸르거나 붉게 익어갔다. 자유 평화 사랑 꿈  이런 말들이 머루빛으로 익은 지상의 밤 "엄마"하고 부르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잘 익은 머루알이였다. 나는 머루빛 밥을 짖고 때로는 친구를 만나 머루빛 눈이 내리는 길에  서 머루빛 시를 이야기했다.    지금은 시큼하게  어둠이 발효된 부엉이 날개가 꺾인 새벽 2시 좀생이별을보는  순간, 어둠이  초생달 하나를 반쯤 토해내고 있다.   12월 그리고 통증                벽의 달력에서 쏟아져 나오는 숫자의 파리떼, 탈옥하는 죄수들이다. 윙윙거리며 닥치는 대로 입술을 들이민다. 나를 빤다. 숨소리를 빨고 눈빛을 빨고 살을 빨고 말랑한 것들은 모두 빤다. (이건 분명 대 재앙이야) 나는 유방을 자궁을 뇌를 손으로 움켜쥐며 필사적으로 쫓는다. 엎치락뒤치락 옥 매트 위에서 굴러 떨어진다. 꿈이였다. 벽에 걸려 반쯤 찢어진 채 파르르 입술 떨고 있는 12월, 노을 빛 창이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들, 그 반짝임 아래로 한 여인이 겁먹은 12월 통증이 지나가고 있다.   장미꽃 해부도                     - 슬픈 중심                    장미꽃에도 선율의 수평선이 있다        일렁일렁 나의        감각들 일렬 횡대로 걸어가고 있다        황홀하고 두려운        장미꽃,        머리위로 새털구름 몇 가닥 흘러간다        한창 뻐꾹뻐꾹 초음파의 울음소리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발목을 타고 오르는         반짝이는 소름의 찰거머리들        내 몸은 푸른 가시가 돋는다        고감도영상, 자궁의 저 아름다운 장미꽃        가시밭에 너무 활짝 피어            슬픈 중심             어지럽다        꽃술 몇 개 간당간당 매달려        충혈된 눈자위 빙그르르    아침 여섯시는 백지다              백지에 반짝 나는 것들     새벽바다 풍랑 위를 유유히 걷는 한 사나이의 뒷모습이     반짝 날고     萬古長空에  一朝風月이     반짝 날고                        불 속의 거미집에서 차를 달이는 고기의 등이*     반짝 날고     임오군란의 와중 피신하는 민비의 "살아야 돼" 절규가     반짝 날고     노오란 은행잎이, 가을바람의 비질이     반짝 날고       환하게 눈을 켠 아침 여섯시는 백지다.     권태로운 밥상 위 잡탕의 언어들, 비빔밥그릇에 비가 내린다.   호랑나비       4월의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골목에서 벚꽃이 뻥튀기처럼 뻥 핀다. 벚꽃 사이 햇살 속에서 튀어나온 호랑나비 묻힐 듯 말 듯 꽃 속을 난다. 내 동공 안으로 푸른 하늘의 배경을 확 당기자, 꽃술을 밀며 들어가는 나비! 내 눈썹에 와 간질간질 닿는다. 나비가 떤다. 내가 떤다. 떨리는 두 팔이 가벼워지고 나도 나폴거려 본다. 이때, 일방통행 길에 포크레인이 지나가고  생태공원 호랑나비의 환영, 드르르르 뭉개진다.        애기풀새        옥상 구석 빈 분에 돋는 풀을 뽑다가 멈칫 손끝에 찌르르~ 전해오는 떨림, 어! 이건 초록 새다. 새 잎의 날개 활짝 펴 종종종 발레를 하는 풀, 내 손등을 간지럼 태우는 풀, 흙에서 막 깨어 난 풀에게 "애기풀새야" 하고 부르면 이슬눈으로 나와 눈맞춤을 한다  어느새 내 눈이 투명해져 보이는 것마다 참 맑다. 이때 포르르 날아 내리는 한 무리 참새 떼, 무어라무어라 재재거림에 내 입술이 간지럽다.   겨울 새벽 풍경                    샛별 몇 개 깜박거리는 새벽의             TV 뉴스 화면,            쓰나미가 지나간 몰디브의 바다, 12월 31일 여진의 해일이 일고            막막하게 떠도는 산호초의 섬 몇 개            32일을 표류하고 있다            을지로 1가 ㄷ자로 둘러싼 고층빌딩들 드문드문 뜬 사각의 눈으로            쌍방통행의 빈 길을 내려다본다             하얀 파카를 입은 핸드폰 하나 무어무어라 암호의 그림자를            흘리며 뛰어가고            눈이 침침한 가등이 블랙커피를 마시고            1.5평 어스름의 방 안, 점 하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계곡 물속의 풍경 ―언어의 감옥 1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물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햇살올챙이들 쏟아져 나와  바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다. 바위가 갸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들, 물속 어른거리는 개버들가지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에 뜬 하얗게 굽은 낮달을 살랑살랑 지나간다.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 관념의 예수.   아침 찻잔       오후 여섯시 30분   30층 옥상 위로 굴러온 달   둥둥둥 바람에 울리는 황금 북소리, 배가 고푸다    저녁 11시   내 머리 위에서   노오랗게 쏟아지는 오랜지향기, 새콤달큼 배가 부르다   새벽 3시   남산 타워 뒤쪽   구절초 언덕길 넘어가는 만취한 그림자 하나    비틀비틀 공복의 헛기침을 한다     아침 찻잔에 반쯤 떠오른 달, 구절초 향이 아리다   새벽          새벽 3시       별똥별 하나 검은 하늘에 사선의 빛줄기를 긋는다         술을 마시고 방금 들어온 작은애가       냉장고에서 별을 꺼내고       별 하나 귤처럼 달콤하게 삼키고       이내 코를 고는 새벽종소리       촛불을 든 아이들       고요한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지나가고       밤새 빛을 찾아 헤매다가 언 2003년 여의도의 겨울 철새 몇 마리       푸드득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고       눈이 내리고       건너편 박도순 산부인과 분만실 신생아의 울음소리         누군가가 별과 연결된 퓨즈를 끼운다    앨빈의 커피잔         동숭동의 빗소리를 놓고 산목*과 마주 앉으면   커피 잔에 봄비가 내린다.   플라타너스 새싹들에, 노 시인의 눈에 이제 막 돌아온   가시내 봄비   티스푼으로 건져 올리면 비 멎은 허공에 물먹은 달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한 잔 앨빈의 커피와 내가 말똥거리는 밤   창 밖 풀라타너스의 그림자들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다   저놈의 벽시계는 눈금을 쩍쩍 미끄러뜨리고   가습기는 아라리 쓰라리 봄을 희뿌옇게 뱉어내고          * 山木: 함동선 시인의 호    영하 16도 아리랑                   아침  수도꼭지가 헛돈다            동쪽 능선의 벨브가 열리며 햇살이 영하 16도를         끓인다         청량고추바람을 다져 넣고 얼어붙은 가계부와         “핵”이란 붉은 글자와 갱년기의 요도괄역근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낡은 처마 끝 극좌와 극 우측의 고드름도 따 넣는다            햇살이 내 두뇌의 열 두 신경 줄 현을 탄다         수도꼭지가 요실금처럼 오줌을 찔끔거리고         유리창이 눈물을 흘린다         북한강 남한강이 쩍쩍 엇갈려 부셔진다         반 박자 빠르게 혹은 반 박자 느리게           아라리 쓰라리 아리랑을 엇모리로 편곡중이다     風,楓,풍자에 대하여                    風자에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여름과 가을 사이, 삐꺽이는 소리가 난다       매미들의 토막울음 소리       내 손바닥 허물 벗는 소리       며칠 전 제대한 아이가 긴장과 이완의 골에서 흔들리는 소리          여름과 가을, 그 사잇길로 태풍이 몇 차례를 지날 때 발부리에 채이는 감나무 밑의 풋감처럼, 설  익어 뱉어진 내 언어들도 지금쯤 누군가의 발 밑에서 나뒹굴거나 으깨지고 있을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한다고, 혀와 입술이 밀고 당기며 삐그덕 소리를 낸다.            楓자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무들 초록빛깔 벗는 소리       제 몸 다 태워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불길 번져       하늘 끝 타는 소리       風,楓,풍!       획과 획을 통과하는 소리 소리들    4 월 은 갈 지(之)자 다       4월의산은之자다      붉은갈지(之)노오란갈지(之)초록갈지(之)연보라빛갈(之)      앞서거니뒤서거니어깨동무를하거나바람의요람을타거나      하늘하늘공중곡예를하거나      갈지(之자사이로갈지(之)갈(之)새울음이날고      갈지(之)갈지(之)산딸기가열리고      계곡의물이흐른다      색색의배낭들이색색의모자들이      무지개빛갈지(之)자사이로갈지(之갈지(之)      걸어오고걸어온다      4월의산은갈지(之자다    유명산               내 앞에 걸어가는 다리가 미끈           쭉쭉 곧은 소나무들,            안개로 짠 하얀 실크드레스를 걷어올리고 있다           한 발짝 옮기며 한 꺼풀           또 한 발짝 옮기며 또 한 꺼풀           불그스레 드러나는 열일곱 살결           소나무 사이로 누드를 팔랑거리는 파스텔톤의 나비           순백한 하늘을 배경으로             고도를 높이자           떨리는 순결이 찌-익 긁힌다           노오란 날개 팔랑거리며 순음 하는 왕오색나비들           칡넝쿨에 앉으면 초록 나비           망초꽃에 앉으면 하얀 나비   산부인과 수술대 위의 칸나꽃                              칸나꽃이 아프다.     빌딩의 그늘이 짓밟고 간 칸나꽃     48도의 고열이 오르고     신음, 신음     꽃잎이 쏟아진다. 하혈인 듯,         (섬광 한 줄기, 이슬 한 방울 흐른다.)          마침내 햇빛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 누운 칸나꽃, 87 마이크로미터의 미세먼지 속을 걸어 온 여름날, 나의 혈압은 머리끝에 곤두서고 심장은 100m 경주하듯 뛴다. 산소의 테놀민으로 혈압을 꿇어앉히고 부분 마취를 시킨 후 꽃받이에 돋아난 중금속의 근종!! 빛살의 칼날이 지나간다.       자웅동화의 길을 막던 울퉁불퉁 부스럼들 다 도려낸 칸나꽃,     꽃술 열어 깔(色)이 싱싱하다.     햇살보다 더 붉은 페르몬 향, 환하게 흐른다.   파아란 휴일        징검다리 휴일이 건너가고 있다.      풍덩 풍덩 휴일의 울안으로 뛰어드는      꽃과 나무와 새      라일락 쩔쭉 자목련 싸리꽃 은행나무 느티나무      손사래치는 잎새들 사이로      참새 두 마리가 포르르 날고      창문 간유리 하늘이 성큼 배경으로 선다          유리창을 닦다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휴일에 지는 꽃잎의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파아란 창의 이 여유!)      휴일의 강 징검다리 디딤돌 휘돌아      소용돌이로 피어나는 4월의 꽃들   4월의 부호들                     1       황사바람에 날리는 벚꽃잎들       안약 히아레인 눈물방울에 젖은 붉은 눈동자,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2      눈을 감으면 고흥 반도 내 유년의 방죽      지평선을 날으는 갈매기의 날개가 가렵고 썰물의 갯벌을 기는      꽃게의 빨간 발이 가렵다.      튀는 망둥어의 꼬리가 가렵다.               3      한 치쯤 자란 고만고만한 모싹들이 서로의 등을 긁는      교동면 상황리 논바닥이 천연기념물 205호      저어새의 질척한 울음소리를 긁는다.      등량만에서 산지 직송되어온 염포탕집 냄비 속      오돌토돌 낙지의 발이 내 눈을 긁는다.        떠도는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위 염             오전 11시10분   화살표(→)를 날린다   서울→신촌→수색→화전→강매→행신→능곡→고산→백마   →일산→탄현→운정→금촌→원릉→파주→문산→임진강→   도라산역에 꽂힌 통일호.            정 지!   라이트 꺼!   시동  꺼!   실내등 켜!   운전병 하차!   창문 내려!       전망대에서 침침한 내 눈빛의 화살을(→) 날린다.  한낮의 어둠을 뚫고 원경 12KM 밖  내 스승의 고향 개성의 등에 얹힌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흰 머리칼 날리는 안개, 어머니    거푸거푸 신트림이 넘어온다.  오래 동안 잠복해온 그리움의 헬리코박토파이로리.     흐름을 위하여                            거시기가 흐른다        계곡의 노을 빛 물줄기        보름달밤 이슈타르*의 붉은 눈물        꽃나무 흔들어 깨우는 봄비        내 어머니의어머니의 장독대 옆 금줄 너머의 붉은 바람         거시기의 증후군       두근거리는 꽃술에다 달빛 솔솔 뿌리면       한층 깊어지는 이 우울       커피, 초코렛, 설탕, 소금, 술은 금줄 너머에 둔다        여기저기서 거시기꽃 피고 지는 소리             나는 500번쯤 꽃 둘레 돌아 나왔어도 그 꽃을 모른다      거시기를 따라 오늘도 빛이 오고      어둠이 오고          *고대 바빌로니아의 여신   약 손            한 마음 신경정신과          거울을 막 빠져나온 휘청거리는 해          신당동 지하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내 중추의 열두 계단까지 미끄러진다          정전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 파랗게 흐르는 지하도가           김밥처럼 또르르 말린다          명치끝에 걸린 영하 7도의 어둠          찌릿찌릿 뒷골로 치솟아 오른다          어지럽고 메스껍다          이때, 어느 출구인지 부스럭 뛰어내려 내 등          까실까실 쓰러 내리는 마른 플라타나스잎들          어머니의 약손          (어릴 적 횟배 앓아 온방을 뒹굴 때 어머니의 손이          사알살 문지르면 거짓말처럼 금방 일어나 뛰어 놀곤 했다)          내 안에 맺힌 구멍이 뚫리고            일만 삼천 샛길들이 환하게 일어선다   안경점 앞에서        명동입구 밝은 세상 통 유리 안의  툭툭 튀어나온 눈알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바짝 다가서자  수 백 개의 안경알 속으로 내 눈빛이 빨려 들어간다   검게 불그죽죽하게 혹은 투명하게  순간, 내 몸에 촘촘히 뜨는 마른눈들  떴다 감았다 뻑뻑하다    말아 쥔 신문을 펼친다  “이라크 테러집단에 인질로 잡힌 김 XX씨 살해됨”이란  활자의 지렁이들 토막토막 꿈틀거린다  이때, 검은 새 한 마리 긴- 선을 그으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고  갑자기 캄캄해지는 사위  지팡이하나가 내 발등을 툭툭 치며 지나가고  붉은 장미꽃안경알이 밟혀 깨진다    내가 안경을 벗자 흐릿하게 공중을 기어오르다 낙상하는  빌딩의 개미떼들   노을이 뒤척인다                    저녁노을 뒤척이는 소리     아래층 사오정씨 매일 출근을 한다. 오늘은 북한산 내일은 관악산에서 퇴근한 그는 한 필쯤의 노을 오려다 서른 다섯 새카맣고 큰 눈을 뜬 아내의 목에 스카프처럼 걸어 준다. 그의 귀에는 밤새 스카프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이태백의 내 아이, 담뱃불 타 들어가 듯 물드는 단풍, 당단풍잎 한 장이 밤새 잔기침을 하며 대문을 들락거리고 창틀엔 스무 하루 새벽노을이 걸린다    아침, 사오정씨 8차선 도로를 한 절룩절룩 무단 휭단하고 있다   나팔꽃                하나,둘,셋!   눈 질끈 감고 나팔꽃줄기를 뽑는다   휘청 엎어지는 서녘하늘        10월과 11월   까실까실 담당에 붙은 나팔꽃 줄기    씨방 몇 개 매달고 말라가는 신경줄   가위질 한다   부슬부슬 떨어지는 갈색 각질, 바스락 끊긴 리듬,   종량제 쓰레기봉투 속으로 눕힌다   내 발 밑에서 노을 부스러지는 소리     철새 한 무리 하늘 저-켠으로 검은 줄기를 놓는다     더듬이     구석구석 더듬어도 잠이 없는 밤 유리창 안으로 굴러든 한가위 보름달이 나를 꼬드겨 일으킨다   달과 손잡고 종로통을 밤새 걸으며 뒤적거려도 이상도 구보씨도 만나지 못하고 다방 제비나 다옥정 7번지는 흔적조차 없다   시장통이나 들판을 아무리 헤매어도 내가 영원히 회귀할 곳은 마땅치 않다   팽목항에 가서 잠수를 할까 한산섬에 가 이순신과 수루에 앉아 시나 한 수 지어볼까 아니면 평양에 가서 김정은과 맥주나 한잔하며 “핵장난감놀이는 싱거워졌으니 나와 함께 유라시아 철도놀이를 하는 게 어때“ 하며 등이나 슬슬 긁어줄까   신경증의 프로이트는 밤잠을 설치면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되었다는데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별을 주물럭거려 소용돌이치는 자기만의 별, 불후의 걸작을 만들었는데 조을증 환자 다윈은 밤마다 잠과 싸우며 적자생존의 원리를 터득했다는데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정신분열증의 밤은 만유인력과 상대성원리의 태반이 되었다는데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내가 둥근 문하나 찾아 밤새 더듬은 달이 희뿌옇게 빛을 死産하고 있다     모기     낯선 행성의 배를 탄 별난 밤 파랑 치는 이명을 긁는다 충혈 된 눈에 떠오르는 별, 꼬리를 잇는 별별 생각들   고, 군, 산, 열도를 탄다   구름처럼 떠다니며 색색을 탄주하는 칸칸의 섬들 랑거한스섬*을 잃어버린 낭구갈매기가 끼룩낭구 끼룩낭구 따라오다가 M선생님이 하이퍼하는 ‘새우깡’이란 언어를 받아먹고 하이퍼 하이퍼 활강을 한다   바다에 떨어진 새우깡 몇 개 기웃뚱이는 꼬임의 경계가 두렵고 불안한 나 하늘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낮달을 향해 손바닥 마주쳐 공포탄을 쏜다   폭발하는 팔레스타인 하늘 내 눈에 총총총 박혀오는 검은 포도알 눈들 비실거리는 내게서 무얼 먹겠다고 글썽이며 파고드는지   이흥도 역을 지나 아직 장자도역인데 가자지구도역엔 언제쯤 닿을까   바람에 날리는 초조한 내 사유의 불랙박스, 바람이 해체한다   공룡알을 품은 나금재 통통마디 공작초 함초밭이 질펀하게 노을을 싸고 있다   1869년 췌장에서 특수한 세포집단을 발견한 랑거 한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 랑거한스섬이라고 명명하다 인슐린이 만들어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때였지만 후에 영국의 샤피-사퍼(1850년-1935)는 당분대사에 필요한 물질이 랑거한스섬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여 섬을 뜻하는 라틴어insula를 따서 인슐린이란 이름을 붙였다     해안선       유리컵에 두 개의 노을빛 해안선이 그려진다   하늘을 수장시키고 하늘을 건져 올리는 한 여름의 짜디짠 해안선, 제부도 조력발전소 타는 내 입술적시며 달의 주기는 밀려왔다 밀려가고 깊고 깊은 바다의 육감들 왜 이렇게 내 젖은 맥박을 느려뜨리고 있는지   사소한 일렁임이 사소하지 않게 출렁이는 파키스탄의 15살 소녀 말랄라 “한 자루의 펜이 세계를 바꾼다”는 속 깊은 속삭임이 노벨평화상이란 봄꽃을 전 지구에 피워가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부딪혀 유속을 빠르게도 하고 느리게도 하면서 새로운 예술 사조를 모색 중이라고 마를린 먼로의 붉은 입술로 사방 연속무늬를 끊임없이 그리고 있는 피카소   바다의 속 깊은 속도전은 이론이 아닌 사건이라고 써놓은 해안선에다 석양의 물너울이 나를 새롭게 편집하고 있다   나는 입술 밖에 있는가 입술 안에 있는가     polyandry*       잠시 經의 갑옷을 벗고 맨몸으로 제게 와 주세요 딱 하룻밤씩만 두 분에게서 쌍둥이를 낳고 싶어요   부처와는 ‘남북’과 ‘자비’를 예수님과는 ‘동서’와 ‘사랑’을 낳아 넷이서 뒤통수 맛 대면 멋진 입체파 그림이 될거예요   나와 싫으시면 두 분이 동성애를 하시든가 그도 싫으시면 상의 하셔서 한분이 성기수술을 하시는 건 어때요 ‘돈오 점수’나 ‘구원’ 둘은 꼭 낳아야겠으니까요 ‘해탈’과 ‘부활’ 도 상의해보시고요   예수님을 팔고 있는 유럽이 돈돈돈 돈타령인데도 왜 멸망하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나라는 너무 더워 돈도 녹아내려 점수는커녕 돈오도 못할 것 같네요   예보도 없이 오리알만한 우박이 내 머리통을 치네요   요즘 낌새로 보아 사람들끼리 놔두면 원숭이로 퇴화되거나 씨가 마를까 두려워요   그도 저도 싫으시면 ‘종말’이란 화두 삐라처럼 뿌려 놓고 세상을 아예 폭파시켜 버리든가요   오늘은 동서남북하늘이 유난히도 고운 생리혈 철철 흘리고 있네요   * 1처 다부제(폴리앤드리)     싸리꽃     슬로시티 슬로시티   잠이 간간하게 마른 내가 밤새 증도와 신의도를 어슬렁거렸다   목이 말라 염수가 덜 빠진 짜디짠 별을 먹었다   내 몸에 피어나는 하얀 싸리꽃 짜초름한 향기에 시나브로 절여지는 나   딱딱해져가는 내 안에서 총동원되어 드레박질 하는 세포들   0.9%의 나트륨을 유지키 위해 포타슘언어를 낳기 위해 지금 이순간도 반투막 밖으로 짜디짠 관념의 외액, 싸리꽃 피워내는 소리   너무 오래 절은 나를 맹물에 울궈 세탁기에 넣고 탈수 버튼을 누른다     시문학 10월호 게제
98    당시선집, 신석정 역. 댓글:  조회:439  추천:0  2020-02-09
당시선집, 신석정 역. 序 文   詩文學에 從事한 지 40여년이 넘도록 내 머리맡에서 唐詩가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 詩는 바로 내 마음의 고향이요, 내 詩의 요람이었다. 俗情에 끌려 마음이 흐릴 때에도 마치 탕자가 고향에 돌아오는 심정으로 찾아가는 곳은 바로 唐詩의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눈에 익은 고향 산천의 옛 얼굴과 귀에 익은 고향 산천의 물소리처럼 마음의 회복을 찾게 되는 것은 唐詩의 가락이었으니, 길어내도 길어내도 끝이 없는 지하수처럼 詩心은 그 때마다 새로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唐詩를 애독하는 동안에 우리 말로 옮겨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게 되어 손을 대게 된 것은 20여년전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다. 李 白의 자유 분망한 가락이나 杜 甫의 침통 무비한 절규를 옮겨 놓기에는 나의 재간은 너무 서투르고 모자람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그 시심의 한 자락이나마 전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당시의 드높은 산맥에서도 詩仙이라 일컫는 李 白과 詩聖이라고 불리우는 杜 甫의 두 巨岳과 더불어 陶淵明을 비롯한 唐代 詩人외에도 몇몇 詩人을 덧 붙였음을 밝혀둔다. 1971년 12월 比斯伐 艸舍에서 辛 夕 汀   이 백 李 白 (701-762) 盛唐의 詩人. 字는 太白, 號는 靑蓮 또 스스로 酒仙翁이라했다. 中宗 長安 元年(701, 신라 효소왕 10년) 사천성에서 났다. 10살에 벌써 詩書에 통하고 百家書를 탐독했다. 고향에서 소년시대를 보내고, 뒤에 각지로 방랑, 襄州 漢水로부터 洞庭湖로, 다시 長江으로 내려가 金陵을 거쳐 楊州로 가 호방한 생활을 하고, 35살때에는 太原에 놀고, 산동성 任城에서 孔巢文․韓 準․裵 政․張淑明․陶 沔등과 만나, 이른바 竹溪六逸의 교유를 맺고, 742년 42살 때 翰林院에 들어갔다. 시와 술로 명성이 높았으나, 결국 술이 원인이 되어 744년에 실각, 陳留에 이르러 道士가 되고, 8578년에 江南에서 玄宗의 아들 永王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옥에 갇혔다가 이듬해 夜郞에 유배되어 가다가 도중에서 풀렸다. 代宗이 즉위하자 拾遺에 배명, 11월에 當塗에서 62살로 죽었다. 李 白은 自然兒였다. 喜悲哀歡을 그대로 노래에 옮겨, 그의 작품은 한껏 자유분방하여 天衣無縫의 神品이라고 하거니와, 당시 그와 아울러 일컬은 杜 甫가 새로운 詩風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李 白은 漢魏 六朝이래의 詩風을 集大成했다. 모랄에 민감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인 杜 甫와는 달리, 현실을 떠난 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당나라 문화의 爛熟期에 生을 받아, 그 퇴폐적 기풍에 젖은데다가 불우했기 때문에 술과 여자에 憂愁를 잊으려 했다. 詩文集 30권이 있다.     峨山月歌 峨眉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夜發淸溪向三峽 思君不見下渝州 아미산월가 가을 밤 아미산에 반달이 걸려 평강 깊은 물에 흘러가는구나 청계를 밤에 나서 삼협으로 가는 길에 너도 못 본 채 유주로 내려간다.     靜夜思 牀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야곡 침실로 스며드는 달 그리매 어찌 보면 서리가 내린 듯도 하이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는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노라.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故人西辭黃鶴樓 煙花三月下揚州 孤帆遠影碧空盡 唯見長江天際流 호연에게 그댄 이 황학루를 그대로 두고 삼월사 말고 양주로 떠나는가 먼돛 그리매 하늘 가에 숨으면 강물만 굽이굽이 흘러가는 것을......   獨座敬亭山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閒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경정산 뭇새 멀리 사라지고 구름만 한가히 떠가는구나 바라봐도 바라봐도 지치지 않는 건 경정산이 있어서 그렇지 뭐.......     子夜吳歌 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 자야의 부르는 노래 장안에 조각달 멀리 비치는데 다드미 소리 자지러게 들려와 가을 바람 불어도 끝이 없는데 옥관에 달리는 마음 설렌다 임이여 오소라 돌아오소라 원정은 어느때 끝이 나는가.     山中與幽人對酌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君且去 明朝有意抱琴來 대 작 둘이서 잔 드는 사이 소리 없이 산꽃이 피어 한잔 한잔 들자거니 다시 한잔 먹자거니 난 위한채 자고파 그댄 돌아가도 좋으리 낼아침 오고프면 부디 거문고 안고 오시라.   友人會宿 滌蕩千古愁 留連百壺飮 良宵宣且談 皓月未能寢 醉來臥空山 天地郞衾枕 그대와 더불어 천고에 쌓인 한을 풀어 한없이 마시는 술에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 밤은 깊어 밝은 달에 잠도 멀리 가는데 취한채 빈산에 쓰러지니 천지는 하냥 이부자린듯하구나.   烏夜啼 黃雲城邊烏欲棲 歸飛啞啞枝上啼 機中織錦秦川女 碧紗如煙隔窓語 停梭悵然憶遠人 獨宿空房淚如雨 오야제 해설피 구름은 성가에 떠도는데 가마귀는 자꾸만 울어 예고 베틀에 진천아가씨 오늘도 베를 짜네 푸른 창창 새에 두고 혼자 속삭여 물레북 손에 든채 멀리 떠난 그대 생각하며 홀로 새는 방에 비보다 눈물이 더 쏟아져......     送友人 靑山橫北郭 白水遶東城 此地一爲別 孤蓬萬里征 浮雲遊子意 落日故人情 揮手自玆去 蕭蕭斑馬鳴 그대를 보내며 푸른산 북녘 성곽을 둘렀는데 강물은 굽이 굽이 성을 돌아가는구나 예서 그대 한번 보내고 보면 외로이 떠나리 먼 만리길 길손은 뜬구름에 뜬구름에 닮아 지는핸 서글픈 그대의 심정이리 손을 내저으며 이제 떠나거니 울어예는 말소리 더욱 섧구나     月下獨酌 其一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 聖賢旣已飮 何必求神仙 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 俱得醉中趣 勿謂醒者傳 월하독작 1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으면 어찌 하늘에 주성이 있으며 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 어찌 주천이 있으리요 천지가 하냥 즐기었거늘 애주를 어찌 부끄러워하리 청주는 이미 성인에 비하고 탁주는 또한 현인에 비하였으니 성현도 이미 마시었던 것을 헛되이 신선을 구하오리 석잔에 대도에 통하고 한말에 자연에 합하거니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깨인 이에게 이르지 마소라.     月下獨酌 其二 花下一壺酒 獨酌無相親 擧盃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凌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월하독작 2 꽃 아래 한독 술을 놓고 홀로 안아서 마시노라 잔들자 이윽고 달이 떠올라 그림자 따라 세 사람일세 달이 술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만 나를 따라 다녀도 달과 그림자 데불고서 함께 즐기는 이 기쁨이여 내 노래하면 달도 거니는 듯 내 춤을 추면 그림자도 따라라 깨이면 함께 즐기는 것을 취하면 모두 흔적이 없이 길이 이 정을 서로 맺아 오늘날 은하에서 또 만나리.     淸平調詞 三首 一.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二. 一枝濃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粧 三. 名花傾國兩相歡 常得君王帶笑看 解釋春風無限恨 沈香亭北倚欄干 청평조사 1. 발길에 끄는 치마자락은 구름을 생각한다 얼굴은 꽃을 닮아 더 어여쁘구나 봄 바람 살며시 난간을 스치는데 이슬도 꽃처럼 짙어 곱더라 군옥산 산머리에 못 만날양이면 요대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거닐 때라도 만나보리......     2. 다만 네가 농염한게 흡사 향그러운 이슬 같아라 무산에 비 머금은 구름만 떠돌아 홀로 애 끊노니 한궁에 누가 널 닯았더냐 비연...그댄 물찬 제비처럼 되려 가련하구나.     3. 꽃도 너도 나는 좋더라 임은 항상 그댈 보고 웃거니 봄바람엔 그지 없는 원한도 풀리는 침향정 난간을 오고 가고 하리라.     怨 情 美人捲珠簾 深坐嚬蛾眉 但見淚痕濕 不知心恨誰   소 곡 발 걷고 앉은 여인 눈썹을 찡그리고 눈시울 젖은 흔적 누구를 원망하여.......   對酒問月 靑天有月來幾時 我今停盃一問之 人攀明月不可得 月行却與人相隨 皎如飛鏡臨丹闕 綠烟滅盡淸輝發 但見宵從海上來 寧知曉向雲間沒 白兎搗藥秋復春 姮娥細栖與誰隣 今人不見古時月 今月曾經照古人 古人今人若流水 共看明月皆如此 惟願當歌對酒時 月光長照金樽裏   잔들어 달에게 묻는 노래 저하늘에 달이 있어 몇 해나 지냈는가 지금 나는 잔 놓고 물어 보노라   사람은 달을 잡을 길 바이 없어도 달은 언제나 우리를 따라 오거니   거울처럼 밝은 빛이 선궁에 다달아 푸른 연기 헤치고 밝게 빛나네   밤따라 바다 위에 고이 왔다가 새벽엔 구름 새로 침몰하누나   봄에도 가을 옥토끼 약을 찧고 선녀는 외로이 누구와 사는가     옛 달을 바라본 이 지금 없어도 달은 천추나 두고두고 비치었으니   인생은 예나 지금 물처럼 흘러도 언제나 달은 떠서 바라봤으니   원하거니 노래 부르고 잔 들 때마다 달빛이여 나의 잔에 길이 쉬어 가라.     蘇臺覽古 舊苑荒臺楊柳新 菱歌淸唱付勝春 只今唯有西江月 曾照吳王宮裏人   소대에서 옛 동산에 버들잎 파릇파릇한데 봄 들어 부는 노래 더욱 서러라 강 위엔 초승달 더욱 밝구나 지난날 옛 궁에 비치던 달이.....     自 遺 對酒不覺瞑 落花盈我衣 醉起步溪月 鳥還人亦稀 황혼 술잔 기울이니 해지는 줄을 몰라 어쩌자고 꽃은 떨어져 옷깃을 덮는가 거나히 취한채 달을 밟고 가노니 새는 깃을 찾고 인적은 끊쳐.......     斷章 昔日芙蓉花 今成斷腸草 단장 옛날의 부용 꽃 인젠 단장초로구나...(妾薄命의 한구절)     早發白帝城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 벡제성을 떠나 아침에 백제성 구름 새를 떠나 강릉 천리 길을 하루에 돌아 왔다 강 기슭에 원숭이 자꾸 울어 예는데 배는 이미 첩첩이 쌓인 산을 돌아......     客中行 蘭陵美酒鬱金香 玉碗盛來琥珀光 但使主人能醉客 不知何處是他鄕 여중 (旅中) 난릉의 술은 바로 울금향이로구나 크나큰 옥배에 넘쳐 호박 같이 빛난다 다만 주인으로 하여금 손을 취케하라 어디가 타향인 줄도 알지 못하게......     春夜洛城聞笛 誰家玉笛暗飛聲 散入春風滿洛城 此夜曲中聞折柳 何人不起故園情 봄 밤 어둔 밤 옥피리 소리 들려 온다 봄 바람에 흩어져 낙양에 가득하여라 이 밤사 말고 절류곡 들려 오거니 뉘라서 고향을 생각하지 않으리.     與史郞中欽聽黃鶴樓上吹笛 一爲遷客去長沙 西望長安不見家 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     장안을 떠나면서 한번 쫓긴 몸 되어 장사로 간다 서녘 하늘 아래 먼 장안엔 나의 집도 묻히고 황학루엔 누가부는 옥피리 소린가 강성 오월 달엔 매화꽃도 지는 것을......     山中答俗人 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산에서 내게 묻길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웃음으로 대답하니 마음도 한가하이 복사꽃 흘러흘러 멀리 자는 곳 거기 또한 딴 세상이 있나보아......     三五七言 秋風淸 秋月明 落葉聚還散 寒鴉栖復驚 相思相見知何日 此日此夜難爲情 가을밤 가을 바람 맑아 달이 더 밝다 낙엽은 모였다 또 다시 흩어지고 놀란 까마귀 깃을 감돈다 못 잊어 그리는 정 언제나 펴 볼거나 이날 이밤사 말고 더욱 마음 졸이어.     백낙천 白 樂天(772-846) 이름은 居易, 樂天은 字다. 號는 香山, 섬서성 太原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詩를 지었다. 28살 때 進士에 급제, 秘書省 校書郞.翰林學士.左拾遺를 거쳐 810년에 京北部에 전임했다. 이듬해 어머니를 여의고 814년 중앙으로 들어갔으나 그 이듬해 참소를 당해 江州의 司馬로 좌천되었다가 이내 풀려 서울로 송환되어 太子贊善大夫가 되고, 822년 杭州刺使로 전출, 西湖에 이른바 白堤를 쌓고, 825년 蘇州刺使, 827년 秘書監을 지내고, 다시 河南尹.太子太傅.馮翊縣侯를 역임, 刑部尙書로 致仕했다. 만년에는 洛陽에서 香山의 중들과 교유, 그래서 號를 香山이라 한 것이다. 또 스스로 醉吟先生이라 일컬었다. 武宗 會昌 6년(846,신라 문성왕 8년) 8월에 죽었다. 그는 젊을 때부터 정치적 포부가 있어, 시를 짓는 데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사회 비판을 행했으나, 그의 주장이 용납되어지지 않자, 거문고와 술로 나날을 보내고, 시도 한적한 경지를 주로하는 소극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本領은 역시 사회 풍자에 있어, 그 방면의 걸작이 많다. 10首도 가혹한 세금으로 피폐해가는 농촌이며, 상하 빈부의 차가 심함을 노래한 것이다. 이와같이 그의 시풍은 쉽고 명쾌하여, 그의 친구 元 鎭과 함께 라 일컬었으며, 세상에 널리 애송되었다. 저서로 詩 3,800여 首 등이 수록된 71권이 있다.     琵琶行 潯陽江頭夜送客 楓葉萩花秋瑟瑟 主人下馬客在船 擧酒欲飮無管絃 醉不成歡慘將別 別時茫茫江浸月 忽聞水土瑟琶聲 主人忘歸客不發 尋聲闇問彈者誰 瑟琶聲停欲語遲 移船相近邀相見 添酒回鐙重開宴 千呼萬喚始出來 猶抱琵琶半遮面 轉軸撥絃三兩聲 未成曲調先有情 絃絃掩抑聲聲思 似訴生平不得志 低眉信手續續彈 說盡心中無限事 輕攏慢撚抹復挑 初爲霓裳後六么 大絃嘈嘈如急雨 小絃切切如私語 嘈嘈切切錯雜彈 大珠小珠落玉盤 閒關鶯語花底滑 幽咽流泉水下灘 水泉冷澁絃凝絶 凝絶不通聲漸歇 別有幽愁闇恨生 此時無聲勝有聖 銀甁乍破水漿迸 鐵騎突出刀槍鳴 曲終收撥當心畵 回絃一聲如裂帛 東船西舫悄無言 唯見江心秋月白 沈吟放撥揷絃中 整頓衣裳起斂容 自言本是京城女 家在蝦蟆陵下住 十三學得琵琶成 名屬敎坊第一部 曲罷常敎善才服 妝成每被秋娘妒 五陵年少爭纏頭 一曲紅綃不知數 鈿頭銀篦擊節碎 血色羅裙飜酒汚 今年歡笑復明年 秋月春風等閑度 弟走從軍阿姨死 暮去朝來顔色故 門前冷落車馬稀 老大嫁作商人婦 商人重利輕別離 前月浮梁買茶去 去來江口守空船 繞船明月江水寒 夜深忽夢少年事 夢啼妝淚紅欄干 我聞琵琶已歎息 又聞此語重喞喞 同是天涯淪落人 相逢何必曾相識 我從去年辭帝京 謫去臥病潯陽城 潯陽之僻無音樂 終歲不聞絲竹聲 佳近湓城地低濕 黃蘆苦竹繞宅生 其間旦暮聞何物 杜鵑啼血猿哀聲 春江花朝秋月夜 往往取酒還獨傾 豈無山歌與村笛 嘔啞嘲哳難如聽 今夜聞君琵琶語 如聽仙樂耳暫明 莫辭更坐彈一曲 爲君翻作琵琶行 感我此言良久立 郤坐促絃絃轉急 凄凄不是向前聲 滿座重聞皆掩泣 座中泣下誰最多 江州司馬靑衫濕 비파행 심양강 저문 날에 손을 보낼제 갈꽃 단풍잎에 갈 바람 불어 주인은 말을 내리고 손은 배에 올라 잔 들자니 피리도 거문고도 없어라 하염없이 잔 놓고 떠나려 할제 아득한 강물에 달이 적시어 문득 비파 소리 물을 타고 들려 와 주인도 손도 갈길을 잊었구나 비파 소리 따라서 타는 이 물어보니 소리는 끊쳤어도 미처 대답이 없어 배 저어 가까이 따라가 대고 등불 돌려 술을 다시 갖추어 놓고 천만번 부르니 겨우 나오는데 비파 안은채 수집어 고개를 숙여 줄 골라 두어 소리 투겨 보는데 제 가락 아니지만 어딘지 끌려 줄줄이 타는 소리 소리마다 생각이라 평생에 못 이룬 뜻 하소하는 듯하구나 머리 수그린채 비파를 손에 맡겨 덧없는 심사를 쏟아 놓는 듯 지긋이 눌렀다간 되쳐 투기니 예상 뒤이어 육요를 타누나 큰 줄을 쏟아지는 소낙비라면 작은 줄은 속삭이는 말소리 같아 큰 줄 작은 줄이 어울어지는 소린 큰 구슬 작은 구슬 옥반에 구는 소리 꽃 아래 주고 받는 꾀꼬리 소릴런가 흐느끼며 여울물을 돌아가는 시냇물 소리 높고 낮던 소리가 그 어디 엉기어 막힌채 이슥히 소리가 죽어 깊은 한 소스라쳐 일어나는데 되려 없는 소리가 한결 좋아라 은병이 깨져 쏟아지는 물 소리 철기가 뒤끓어 창칼 쓰는 소리 한 곡조 끝내고 줄을 투기니 네 줄이 한데 합쳐 비단 째는 소리 여기 저기 배에선 숨소리조차 없고 가을달만 희구나 강위에 희구나 흥 그리며 발목을 줄사이에 꽂고 옷깃을 여미며 고이 일어나서 스스로 하는 말이 서울 사는 계집으로 고향은 하막릉 아래이었노라고 열세살에 비파를 처음 배워 교방에 있었노라 이르드고 줄 골라 소리 내면 칭찬하는 소리 단장하고 나오면 추랑도 시새웠어 오릉에 사는 귀공자 서로 시새워 내 한 곡 끝나면 비단도 선사했다오 흥겨워 은비녀 비치개로 장단도 치고 술 엎질러 비단 치마 적셔도 봤소 해마다 이러여니 즐거이 보내며 가을달 봄바람을 그저 보냈소 아우는 수자리로 수양어머닌 저승으로 세월이 가고 오고 나도 또한 늙었고 문전엔 찾아 오던 말도 드물고 장사치의 아내가 되고 말았소 사랑보다 이끝에 밝은 장사친 지난달 차 사러 간 뒤 소식이 없고 강 가에 오가며 빈 배를 지키노라면 뱃전을 감도는 달빛 차게 빛나고 이슥한 밤 꿈꾸는 내 지난 청춘이며 흐느껴 우는 꿈에 눈시울도 뜨겁구나 내 듣노니 비파 소리 탄식일레라 중얼대는 그 소린 더욱 설어라 모두다 천애에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만나서 알게 되었으리 지난 해 서울을 떠나온 이후 귀양살이 심양에 누운 몸이라 궁벽한 고장이라 풍류도 없어 해가 다하도록 한 곡조도 못 들었지 더더구나 나 사는 곳 습기가 많아 집을 싸고 갈과 대 우거졌지 왼종일 이곳에서 무슨 소리 들리리 두견이 피를 토하고 원숭이 슬피 울어 꽃 피는 봄 달 밝은 가을 밤에 흥겨우면 홀로 잔을 기울여 봐도 초동의 노래와 목동의 피리 뿐이여 제가락 찾아서 들을길 없더니 오늘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꿈결에 들려 오는 신선의 주악인듯 원하노니 그대여 한 곡조 더 타다오 그대를 위해 비파행 지으려거니 내 말에 느껴 이윽고 다시 일어나 줄 골라 비파를 급히 타누나 먼저보다 설어라 타는 그 소리 모두다 눈물없이 들을 길 없어 게서도 누가 가장 섧어하는가 내 옷깃 적시네 눈을 적시네     夜雨 早蛩啼復歇 殘燈滅又明 隔窓知夜雨 芭蕉先有聲 밤비 귀뚜라민 자꾸만 울어 예고 꺼질듯 등불이 다시 밝아라 창 건너 구슬픈 밤비 소리 파초에 흩뿌리며 지나가누나.     落花古調賦 留春春不駐 春歸人寂寞 厭風風不定 風起花蕭奈 낙화부 봄은 좋더라 머물지 않아도 저만 가고 우리만 남아 서럽지 바람은 싫더라 나는 싫더라 꽃샘에 지는 꽃이 어떻게 많다고......     池窓 池晩蓮芳謝 窓秋竹意深 更無人作伴 唯對一張琴 가을 저문날 못 가엔 연꽃 지는 소리 창 옆엔 댓잎도 가을을 머금어라 같이 거닐 사람도 없는 것을 혼자서 거문고를 대하는 마음.     古秋獨夜 井梧凉葉動 隣杵秋聲發 獨向檐下眠 覺來半牀月 가을밤 우물 가에 오동 잎새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드미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졸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     古墳 古墳何代人 不知姓與名 化爲路傍土 年年春草生 옛무덤 반남아 헐린 무덤 그 뉜줄을 몰라라 길가에 한줌 흙인데 해마다 풀만 우거져     買花 帝城春欲暮 喧喧車馬度 共道牡丹時 相隨買花去 단장 장안에 봄은 이미 저물어 오가는 차마도 시끄러운 속에 모란도 필 무렵이여 속삭이면서 꽃을 사 가는 이의 주고 받는 이야기.     晩望 江城寒角動 沙州夕鳥還 獨在高亭上 西南望遠山 만망 강기슭 성터에 각적이 들려 사주에 새들은 떼지어 돌아오고 홀로 정자에 올라서 보니 서남엔 산만 첩첩 쌓여 있구나.     宿樟亭驛 夜半樟亭驛 愁人起望鄕 月明何所見 潮水白茫茫 장정역에서 야반에 장정에 홀로 누워서 고향을 생각한다 먼 고향을 달은 밝아 휘영청 밝아 밀물도 끝없이 달빛에 젖는다.     賦得古原草送別 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 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 풀 언덕 위에 풀이 길 나마 우거져 해마다 시들고는 되 살아나     들불에도 풀은 타지 않나보이 봄바람 불면 그러기 돋아 나지     그윽한 향기 길에 스며 들고 옛성 가에도 푸른 빛 연연하다     너를 또 다시 보내고 나면 애끊는 정만 가득 넘쳐 흐른다.     두 보 杜 甫 (712-770) 唐나라 初期의 詩人. 字는 子美, 號는 小陵. 睿宗 太極 원년(712, 신라 선덕왕 11년)에 하남성 鞏縣에서 났다. 7살 때 이미 詩를 지을 줄 알았고, 14~5살 때에는 어였한 詩人이 되었다. 24살 때 進士 시험을 보았으나 낙방, 이 때부터 10여년 동안 山東.洛陽.長安등지로 돌아다니며 李 白․高 適등과 깊이 사귀었다. 36살 때 玄宗의 부름을 받아 長安으로 가서 40살에 集賢院待制, 44살에 太子右衛率府의 兵曹參軍事가 되었다가 안녹산의 난리에 난을 피해 三川으로 달아 났다. 46살에 右拾遺가 되었으나 곧 좌천당해 華州의 司功參軍이 되었다. 기근때문에 생활이 곤란하여 벼슬을 버리고 泰州로 가서, 나무 열매를 주워 먹으며 목숨을 이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 20수가 있다. 代宗 大曆 5년(770, 신라 혜공왕 5년)에 湖南의 潭州, 岳州부근에서 病으로 죽었다. 나이 59세. 그의 시는 공상적이 아니고 실제적이다. 시집 20권에는 古體詩 399수, 今體詩 1,600수가 수록되어 있다.     登高 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鳥非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등고 바람도 높은 하늘인데 원숭이 설리 울고 흰 모래 적시우는 강엔 물새가 날아 끝없는 숲엔 우수수 낙엽지는 소리 다할 줄 모르는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라 또다시 이향에서 가을을 맞이하노니 오랜 시름 이길길 없어 홀로 대에 오르네 쓰라린 세월을 머리칼은 자꾸만 세어 늙어가는 외로움을 술로 풀어 보리.     春望 國破山何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춘망 나란 망했어도 산천은 있어 봄들자 옛 성터에 풀만 짙푸르다 한송이 꽃에도 눈시울이 뜨겁고 새소리 마음이 더욱 설렌다 봉화는 석달을 연달아 오르는데 진정 그리워라 고향 소식이여 흰머린 날로 짧아만지고 비녀도 되려 무거웁구나.     絶句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時歸年 이 봄도 예이고 보면 파란 강물이라 나는 새 더욱 희고 산엔 타는듯 사뭇 꽃이 붉어라 올봄도 이대로 예이고 보면 어느때 고향엘 돌아가리. 贈花卿 錦城絲管日紛紛 半入江風半入雲 此曲衹應天上有 人間能得幾回聞 화경에게 금성에 풍류 소리 분분히 흘러 반은 강바람에 또 반은 구름 속에 이 가락 응당 하늘에 있을 것이 인간에 몇번이나 들려 오리까.     解悶 一辭故國十經秋 每見秋瓜憶故丘 今日南湖采薇蕨 何人爲覓鄭瓜州 고국을 떠나 고국을 떠나 온지 십년을 지나 추과 볼적마다 그리운 고향 오늘도 남호에 뜯는 고사리 주구를 위하여 정과주를 찾는다.     書堂飮旣夜復邀李尙書下馬月下賦 湖月林風相與淸 殘尊下馬復同傾 久拌野鶴如雙鬢 遮莫鄰鷄下五更 음주 호수엔 달이 밝고 숲에는 맑은 바람 말 내리자 남은 술 다시 기운다 버려둔 수염은 그대로 학을 닮았는데 닭은 덧없이 오경을 아뢰는구나.     貧交行 飜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飽貧時交 此是今人棄如土 빈교행 손을 두집으면 구름 되고 엎으면 비라 경박한 세사를 어찌 다 헤아리리 그대도 보았으리 관포의 사귄 것을 인제는 그 길을 버렸어 흙같이 버렸어.     도연명 陶 淵明 (365-427) 이름은 潛, 淵明은 그의 字다. 東晋 哀帝 建元 원년(365, 신라 내물왕 10년) 심양의 柴桑에서 났다. 어릴 때부터 榮利를 생각하지 않고 글읽기를 좋아했다. 부모는 늙고 집안은 가난하여, 주의 際酒가 되었으나 마음에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덜아왔다. 35살 때 다시 彭澤의 수령이 되었으나, 고을의 督郵가 오게 되어, 이속들의 말이, 의관을 정제하고 뵈어야 한다 하므로, “내 어찌 5말 쌀을 위해 향리의 어린아이에게 허리를 굽히랴”하고, 그자리에서 벼슬을 내어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저 유명한 를 지었다. 뒤에 또 著作郞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취임하지 않고, 고향에서 술과 국화를 즐기며 지내다가, 文帝 元嘉 4년(427, 신라 눌지왕 11년) 63살로 죽었다. 세상에서 그를 靖節先生이라 일컬었다. 그의 시는 평이하고 담박하면서도 깊은 의취가 있다. 그는 낙천주의자였고, 또한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8권이 있다.     歸去來辭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自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乃瞻衡宇 載欣載奔 僮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松菊猶存 携幼入室 有酒盈樽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牕以寄傲 審容膝之易安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游觀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絶游 世與我而相遺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귀거래사 자, 돌아가련다.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제껏 자신의 존귀한 정신을 천한 육체의 노예로 삼았으나 어찌 슬퍼 탄식하여 홀로 서러워 하리 지나간 인생은 후회해도 이미 쓸데 없음을 깨달아 장래 인생을 쫓아 갈 수 있음을 알았네 실상 내가 인생길을 갈팡질팡한 것은 오래지 않았나니 지금이 바른 삶이요, 어제까지 그릇됨을 알았네 고향가는 배는 흔들흔들 움직여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솔솔 옷깃에 불어 온다 길손애게 고향이 얼마나 머냐고 물어 보며 새벽빛 아직 희미하여 길 떠나지 못함을 한스러워한다. 마침내 우리 집 대문과 지붕을 보고 기뻐서 뛰어갔네 머슴들도 기뻐 마중나왔고 꼬마들은 대문께서 기디리고 있네 집 마당의 세 줄기 오솔길은 황폐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나를 반기어 꼬마 손을 끌고 방에 들어가니 술이 가득 독에 담겨 항아리와 잔을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마당의 나무 보고 웃음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내키는대로 움직이고 무릅이나 들어갈 좁은 방이라도 편안히 있음을 알았네 동산은 날마다 취향있는 경치로 바뀌고 대문은 달았으나 언제나 닫힌 채로다 지팡이 짚어 늙은 몸 부축하여 걷다가는 쉬고 때때로 머리 들어 주위를 살핀다 구름은 산 굴속에서 나와서는 흘러가고 새는 날기가 싫어져 둥지로 들어가네 저녁 햇빛 그늘져 서산에 지려하고 나는 마당의 외솔을 쓰다듬으며 거니네.     돌아가련다. 세상 사람과 교유를 끊고 세상과 나는 서로 잊고 말지니 다시 한번 관리가 되어도 거기 무슨 구할 것이 있으료 친척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지우련다 농부가 찾아와 애게 봄소식 알려 주니 이제는 서쪽 밭에 갈이를 시작하자 어떤 때에는 장식한 수레를 명하고 어떤 때는 한 척의 배를 노저으리니 작은 배 저어 깊은 시내 골짜기를 찾아가고 장식한 수레 타고 험한 언덕 나아가리라 길가의 나무는 생기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흘러 가네 모든 만물 봄을 기뻐 맞이하고 내 생은 곧 사라짐을 느끼네 아 그저 그런 것인가 육체가 이 세상에 깃드는 것이 얼마 동안이리오 어찌 마음이 명하는대로 생사를 운명에 맡겨 두지 않으며 어찌 이제 와 덤벙거리며 어디로 가려 하는가 돈도 지위도 내 바라는 바 아니요 신선의 세계도 기약할 수없네 따뜻한 봄볕을 그리워하여 홀로 산과 들 거닐고 또한 지팡이 세워 두고 밭의 풀을 뽑는다 아님 동편 언덕 올라가 느긋히 시를 읊고 맑은 강물 흐르는 곳에서 시를 짓는다 하늘에 맡겨 죽으면 죽으리니 천명을 즐기며 살면 그뿐, 근심할 일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歸園田居 少無適俗韻 性本愛丘山 誤落塵綱中 一去三十年 전원에 돌아와서 차라리 허튼 세상엔 뜻도 아니 맞았어 어쩌자고 나는 산이 자꾸만 그리운 것이냐 보살필 일도 없는 것을 헤매이다간 그대로 서른 해가 섬적 지나깠구나. (귀원전거 6수중 한구절)     擬挽歌辭 千秋萬歲後 誰知榮與辱 但恨在世時 飮酒不得足 만가에 비겨서 오랜 세월이 흘러간 이후 뉘 있어 너와 나의 이야길 하리 오직 한되는 일이 남아 있노라 세상엔 내 마실 술이 그리도 없거니와.     飮酒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국화 따 들고 동녘 울밑에 심은 국화 제철이여 따든채 남산을 조용히 바라보노니 해질 무렵 먼 산은 진정 아름다워라 저물어 뭇새들도 깃 찾아 돌아오고 여기 우리 살며 느끼는 끝없는 기쁨이 있어라 무어라 이것을 모집어 이를길도 없구나.     맹호연 孟 浩然(689-740) 당나라 盛時의 詩人. 이름은 浩, 字는 浩然. 中宗 嗣聖 6년(689,신라 신문왕 9년) 호북성 襄陽에서 났다. 鹿門山에 들어가 숨어 살면서 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다가, 40살 때 서울로 나와 진사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하고, 뒤에 大學에서 시를 강의했는데 학생들은 그의 박식함에 경탄했다. 張九齡 등과 가까이 사귀었다. 등창이 나서 고생하다가 玄宗 開元 28년(740,신라 효성와 4년) 52살에 죽었다. 그의 시는 自然美나 靜寂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 많은데, 특히 五言詩에 뛰어났다. 4권이 있다.     洛陽訪袁拾遺不遇 洛陽訪才子 江嶺作流人 聞說梅花早 何如此地春 그대는 가고 낙양에 그댈 찾아 가니 강령으로 떠난 지 오래더고 매화 피는 철도 이르다지만 어찌 낙양의 봄만 하오리.     臨洞庭 八月湖水平 涵虛混太淸 氣蒸雲夢澤 波撼岳陽城 欲濟無舟楫 端居恥聖明 坐觀垂釣者 徒有羨魚情 동정호에서 팔월달 호수가 잔잔도 하이 하늘도 물에 잠겨 더욱 맑아라 운몽못 가에 물안개 자욱하고 물결은 악양성 향하고 흘러 건너고 싶어도 배엔 노가 없으니 묻혀 살기엔 성덕이 부끄럽다 낚시질하는 옆에 덧없이 앉아 헛되이 고기를 부러워하는 마음     義公禪房 夕陽連雨是 空翠落庭陰 看取蓮花淨 方知不染心 단장 해 지자 몰려 가는 빗발 따라 푸른 산 그리매 뜰에 들고 조촐한 연꽃 바라보니 물들지 않은 마음 알아 즐겁다.     送杜十四之江南 荊吳相接水爲鄕 君去春江正水茫 日暮孤舟何處泊 天涯一望斷人腸 두십사를 보내는 노래 형오랑 강남이라 모두 다 수향이래 그대 떠난 뒤 강물만 아득한데 해 지자 외로운 배 어느 곳에 멈추리 하늘가 바라보면 마음 더욱 애달퍼.....     왕 유 王 維 (699-759) 字는 摩詰, 산서성 太原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詩名을 날려, 12살에 진사에 급제하여 大樂丞이 되었으나, 이내 산동으로 좌천당했다. 얼마후에 벼슬을 버리고 서울 장안의 근교 輞川에 땅을 사 가지고 은사의 생애를 보냈다. 31살에 아내를 잃고나서는 독신행을 계속하다가, 나중에 불교에 귀의했다. 735년 37살 때 張九齡에 의해 右拾遺에 발탁, 차차 벼슬이 높아져서 752년에는 吏部郎中, 756년에는 給事中에 이르렀고, 시명도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곧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그 해 6월 장안이 함락되고 그는 적에게 잡혔다. 난이 평정된 뒤에 복직되어 759년에는 尙書右丞이 되었으나, 그해 61살로 죽었다. 그는 李 白이나 杜 甫에 비하면 마음이 약하여, 현실의 汚濁에 초연할 수도 없고, 반항할 수도 없어, 청정한 자연과 西方往生의 사상에 도피하여 裵 迪․錢 起등과 사귀면서, 평범한 그러나 순수한 정신을 시와 그림에 담았다. 저서에 20권, 6권이 있다.     斷章 天寒遠山淨 日暮長江急 단장 추운 하늘인데 먼 산 씻은듯 맑고 해 지자 강물 소리 더욱 잦이다.     過香積寺 不知香積寺 數里入雲峯 古木無人徑 深山何處鍾 泉聲咽危石 日色冷靑松 薄暮出潭曲 安祿制毒龍 향적사를 지나며 알길 없어라 향적사 가는 길은 몇 리를 들어가도 구름 덮인 산이로고     나무는 길이 넘고 인적도 끊첬는데 깊은 산 어드메쯤 들려 오는 종소린가     흐르는 물 소리는 돌에 걸려 흐느끼고 산 깊어 푸른 솔에 햇볕도 서늘하다     해설피 여울 물 소리만 들려 오는데 선정에 들으니 알 길 없어라.     送沈子福之江南 楊柳渡頭行客稀 罟師盪槳向臨圻 唯有相思似春色 江南江北送春歸 심자복을 강남으로 보내며 버들 우거진 나룻가엔 행인도 드문데 어부는 노 저어 한가히 포구로 간다     다만 못 잊는 정 봄빛처럼 한없는데 강남북으로 찾아온 봄을 보내는듯 하구나.     竹里館 獨坐幽竹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죽리관 홀로 고요한 대숲에 앉아 거문고 뜯다간 휘파람도 불어 보고 깊은 수풀이라 아는 이는 없어도 달빛이 소리 없이 비쳐 오도고......     雜詩 已見寒梅發 復聞啼鳥聲 愁心視春草 畏向玉階生 춘수 (春愁) 벌써 한매도 피어 나고 새 소리도 들려 오고 우거진 풀을 보면 더욱 시름겨워 층층계 덮으니 이렇게 슬플밖에     鹿柴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녹시에서 빈 산에 사람 기척 없는 데 간간이 들려 오는 말소리 있어 비낀 햇볕 먼 숲에 맑고 푸른 이끼 더욱 짙푸르게 빛난다.     雜詠 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倚窓前 寒梅著花未 잡영 그대 고향에서 돌아왔거니 응당 고향 일을 알으렸다 올 무렵 우리집 창 옆엔 하마 매화꽃이나 피었던가     送別 下馬飮君酒 問君何所之 君言不得意 歸臥南山陲 但去莫復問 白雲無盡時 송별 말을 내려 그대여 술을 마시라 묻노니 그댄 어디로 가느뇨 그대 말하기를 뜻을 얻지 못하여 남산 기슭으로 돌아간다 하거니 다못 가라 다시 묻질랑 말아라 흰구름 항상 끝날 줄이 있으리.     送元二使安西 渭城朝雨浥更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一酒 西出陽關無故人 이별의 노래 위성 아침 비에 먼지만 개었구나 객사엔 파릇파릇 버들잎이 푸르러라 임이여 다시 한잔 마시고 떠나시라 관문을 나서면 뉘 있어 또 찾으리.     九月九日憶山東兄弟 讀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徧揷茱萸少一人 여수 홀로 타향에 외론 손 되어 명절이면 어버이 더 그리워라 형이랑 아우랑 같이 오르던 언덕에 수유를 꽂고 놀던 한사람이 줄었겠다.     春桂問答 問春桂 桃李正芳菲 年光隨處滿 何事獨無花 春桂答 春華詎幾久 風霜搖落時 獨秀君知不 춘계문답 계수나무여 도화 이화 향그러워 봄빛 간데마다 무르녹는데 그대만 홀로 꽃이 없는가     계수나무 대답하길 언제까지 도화 이화 꽃이 피리 낙엽이 우수수 지는 가을엔 내 홀로 꽃피는 것 그대 아는가     臨高臺 相送臨高臺 川原杳何極 日暮飛鳥還 行人去不息 별리 보내고 돌아서서 고대에 다다르니 산천은 끝닿은 델 알길 없어라 저문날 새들도 깃 찾아 오는데 떠난인 쉬어 가는 흔적도 없어......     소동파 蘇 東坡(1036-1101) 宋代의 詩人. 字는 子瞻, 이름은 軾, 東坡는 號다. 仁宗 景祐 3년 (1036, 고려 정종 2년) 사천성 眉山에서 태어났다. 22살 때 아우 蘇 轍과 함께 과거에 급제, 곧 代理評事簽書에 임명되고, 다시 鳳翔判官에 제수되었다. 神宗때 王安石과 의견이 맞지 않아, 지방으로 나가 杭州通判이 되었다가, 이어 密州.徐州.湖州등지를 맡아보았다. 이 무렵 이미 그의 文名이 높아서 소인들의 싫어하는 바 되어, 44살 때 마침내 黃州로 좌천되었다. 이 때 그는 동쪽 언덕(東坡)에 집을 짓고 거처하면서 스스로 東坡居士라 일컬었다. 哲宗이 즉위하자 吏部尙書가 되었다가, 곧 潁州지사가 되고 뒤에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兵部尙書, 禮部尙書를 역임, 翰林 侍讀의 양 學士를 兼했으나, 紹聖初에 또 반대파에 모함당해 瓊州로 귀양가 다시 永州로 옮겨왔다가 뒤에 사면되어 돌아왔는 데, 徽宗 建中靖國 원년(1101, 고려 숙종 6년) 7월28일, 常州에서 66살에 죽었다. 高宗때 太師를 追贈, 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는 儒․佛․道에 다 통했고, 시는 음률이나 詩句에 구애받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이 있다.     東欄梨花 梨花淡白柳深靑 柳絮飛時花滿城 惆悵東欄一株雪 人生看得幾淸明 배꽃에 부쳐 배꽃 담백한데 버들잎 짙푸르다 버들개지 흩날리고 꽃은 만발하고 난간엔 서러운듯 하얀 꽃송이 보고 지고 몇해나 보낼 것인가.     春夜 春宵一刻直千金 花有淸香月有陰 歌管樓臺聲細細 鞦韆院落夜沈沈 봄밤 봄밤은 그대로 일각도 천금이여 꽃 향기 그윽한데 달도 밝어라 풍류에 섞인 노래 멀리 들려 오고 그네 소리에 쩌른 밤 깊어 가누나.     縱筆 寂寂東坡一病翁 白鬚蕭散滿霜風 小兒誤喜朱顔在 一笑邪知是酒紅 종필 적막하다 동파에 병든 늙은이 흰수염 소조히 바람에 날린다 어린앤 붉은 얼굴보고 기뻐하건만 내 술에 취한 것을 어찌 알으리.     왕창령 王 昌齡 (?-755) 섬서성 長安에서 났다. 726년 進士, 방만한 성격 때문에 여러 번 좌천당했다. 755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살해당했다. 李 白과 아울러 일컫는 七言絶句의 명수로서, 閨怨의 작품이 많다. 高 適.王之渙등과 사귀었다. 시집에 5권, 1권이 있다.     西宮秋怨 芙蓉不及美人妝 水殿風來珠翠香 郤恨含情掩秋扇 空懸明月待君王 추원 부용도 미인엔 따를길 없는데 수전 드는 바람에 향기만 그윽하다 문득 품은 정 풀길도 없어 휘영청 밝은 달에 임이 더욱 그립다.     閨怨 閨中少婦不知愁 春日凝妝上翠樓 忽見陌頭楊柳色 悔敎夫婿覓封侯 원한 규중에 젊은 아가씨 시름을 몰라 봄단장 고이하고 누대에 오르니 멀리 푸른 버들 우거진 언덕이 보여 벼슬살이 나간 임 보고파 뉘우침 새롭다.     出塞行 白草原頭望京師 黃河水流無盡時 秋天曠野行人絶 馬首東來知是誰 출새행 백초 우거진 원두에서 서울을 바라보니 황하는 굽이굽이 그칠 길이 없구나 가을날 빈 벌엔 인적도 끊쳤는데 말 머리 동으로 두르는 뜻을 뉘 알으리.     從軍行三首 一. 烽火城西百尺樓 黃昏獨坐海風秋 更吹羌笛關山月 無那金閨萬里愁 二. 靑海長雲暗雪山 孤城遙望玉門關 黃沙百戰穿金甲 不破樓蘭終不還 三. 秦時明月漢時關 萬里長征人未還 但使龍城飛將在 不敎胡馬度陰山 종군행 삼수 1. 누대 드높은 성 밖엔 봉화 타는데 해 지자 해풍은 가을을 싣고 온다 관산 걸린 달에 대피리도 구슬퍼 그리운 네 생각에 시름은 만리 간다.     2. 청해 덮은 구름 설산도 어두운데 성 밖엔 옥문관도 아득하여라 황사 싸움에 갑옷도 해졌는데 누란땅 치기 전엔 돌아가지 않으리.     3. 진한이 바뀌어도 관을 못넘어 만리 전야에 떠난인 아직 오지 않고 용성 땅엔 비장이 지키고 있거니 호마로 하여금 음산을 넘게 하리.     送別魏三 醉別江樓橘柚香 江風引雨入船凉 憶君遙在湘山月 愁聽淸猿夢裏長 위삼을 보내며 취한 채 이별하는 강가에 귤 냄새 풍긴다 강바람 비를 이끌어 배에 들어오고 생각하면 그댄 상산 달 아래에서 잔나비 소리에 시름도 꿈속에 잠기리.     西宮春怨 西宮夜靜百花香 欲捲朱簾春恨長 斜抱雲和深見月 朧朧樹色隱昭陽 서궁춘원 서궁에 밤들자 꽃 향기 그윽하고 발을 걷기에도 마음 설렌다 거문고 비스듬이 안고 달을 바라보니 숲은 어둠 속에 소양궁을 가렸구나.     題覇池 腰鎌欲何之 東園刹秋韭 世事不復論 悲歌和樵叟 비가 낫을 허리에 차고 어디메로 가는가 부출 베러 밭으로 가노니 인젠 뜬 세상일 또다시 이야기 않으리 슬픈 노래를 저 초동에게 부치고.......     두 목 杜 牧 (803-853) 당나라 말기의 시인. 字는 牧之, 號는 樊川. 德宗 貞元 19년(803, 신라 애왕 4년) 섬서성 장안부근에서 났다. 26살때 진사, 현량과에도 급제했다. 宣宗 大中 6년(852,신라 문성왕 14년) 에 50살로 죽었다. 성질이 강직하고 호방하여 장군 재상을 역임했다지만 항상 즐겁지 못해 시문에 그 심정을 담고, 양주 진주등 당시에 유명한 환락지를 떠돌아다녔다. 杜 甫를 大杜라 함에 대하여, 杜 牧은 小杜라 일컬었다. 시집은 20권, 1권, 1권이 있다.     題安州浮雲寺樓寄湖州張郎中 去夏疎雨餘 同倚朱欄語 當時樓下水 今日到何處 恨如春草多 事與孤鴻去 楚岸柳何窮 別愁紛若絮 장낭중에게 부치는 노래 지난 여름 비개인 어느날 난간에 기대어 서로 이야기하던 우리 그날 다락 아래 흘러가던 물 시방은 어디메쯤 흘러갔으리 가실줄 모르는 상채긴 사뭇 봄 풀처럼 우거지고 생각하면지난 일 기러기처럼 모두 날아가 강가에 버들 멀리 늘어섰는데 애달퍼라 그대 생각하는 이 시름이여.     經闔閭城 遺蹤委衰草 行客思悠悠 昔日人何處 終年水自流 孤烟村戌遠 亂雨海門秋 吟罷獨歸去 風雲盡慘愁 합려성을 떠나며 옛 성터에 풀은 시들어 지나는 나그네 애달퍼라     나의 사람아 그대 지금 어딘가 강물만 소리 없이 흘러 가누나     수자리에 연기만 멀리 흐르고 해문에 흩뿌리는 가을비 어지러워......     노래도 끝난 뒤 혼자 돌아가노라면 하늘에도 시름은 사무치는듯......     別離 多情却似總無情 唯覺樽前笑不成 蠟燭有心還惜別 替入垂淚到天明 별리 다정도 병인양하여 그리운 정을 잔들고 바라봐도 웃음은 걷고 이별은 촛불도 서러운 탓에 기나긴 밤 저렇게 울어 새우지........     泊秦淮 煙籠寒水月籠沙 夜泊秦淮近酒歌 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 진회에서 연기도 달빛도 모두다 자욱한데 밤 들자 진회 가까운 주막에 드니 장사치 계집애는 나라 망한 한을 몰라 강을 건너 시방도 후정화를 부른다.     淸明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청명 청명절 비가 마구 쏟아져 길가는 사람도 넋을 잃었다 주막은 어디멘가 목동에게 물으니 멀리 가리키는 살구꽃 핀 마을.     위 장 韋 莊 (?-910) 五代 前蜀의 詩人. 字는 端己, 섬서성 長安 杜陵에서 났다. 黃 巢의 난리에 서울 장안에서 전란의 참혹한 꼴을 보고, 이듬해 낙양으로, 다시 강남으로 피난을 가, 여기서 10년 동안 불우한 생애를 술과 여자로 달래다가,893년 서울로 돌아가 이듬해 진사에 급제, 校書郞에 임명되었다. 900년 경에 蜀에들어가 정치․문학에 전념 907년 吏部尙書平章政事가 되었다가, 910년 城都에서 죽었다. 강남에 있을 때의 작품은 대개 환락․퇴폐․自嘲의 심정을 노래한 낭만적인 것이 많다. 시집에 10권이 있다.     白牧丹 閨中莫妬新粧婦 陌上須慙傳粉郎 昨夜月明深似水 入門唯覺一庭香 백모란 백모란엔 규중 여인도 시새워하리 풍류랑도 또한 부끄러울 것을 지난 밤 달은 물같이도 밝아 뜰에 들자 선뜻 오는 그윽한 향기.     春日晏起 近來中酒起常遲 臥見南山改舊詩 開戶日高春寂寂 數聲啼鳥上花枝 봄 아침 연달아 마시는 술이 몸에 배어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자리에 누운채 남산을 바라보며 묵은 시를 뒤저기노니 문 열자 해는 높아 봄날은 적적하고 멀리 들려 오는 새소리 더욱 고요하여라.     古別離 晴煙漠漠柳毿毿 不那離情酒半酣 更把玉鞭雲外指 斷腸春色在江南 별리 막막한 연기 새로 버들가지 휘날린다 떠나는 정 어쩌지 못하여 반남아 술에 취해 옥 채찍 다시들고 구름 밖을 가리키니 애끊는 봄빛도 강남으로 강남으로.     東陽酒歌贈別 天涯方歎異鄕身 又向天涯別古人 明日五更孤居月 醉醒何處各沾衣 나그네 떠도는 나그네 그대 마저 여의고 내일 밤 새벽 달을 어디서 보리.     金陵圖 江雨霏霏江草齊 六朝如夢鳥空啼 無情最是臺城柳 依舊烟籠十里堤 봄 보슬비에 강도 풀도 모두 젖는데 지난 날은 꿈이런지 새만 우짖어 무심한 봄에도 버들은 늘어져 십리 긴 뚝에 연기처럼 푸르구나.     잠 삼 岑 參 (?-?) 南陽사람.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중에서도 학문을 힘써, 唐詩의 극성 시기에 활약한 詩人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代宗때 嘉州刺史를 지내고, 幕職使로 있다가 파면되어 蜀으로 귀양가 거기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시는 말과 뜻이 淸切하여 뛰어난 걸작이 많은데, 한편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다투어 베꼈다고 한다. 시집 8권이 있다.     見渭水思秦川 渭水東流去 何時到雍州 憑添兩行淚 寄向故園流 애가 위수는 동녘으로 흘러가는데 언제 옹주를 찾아간단 말이냐 덧없이 지는 애 눈물을 실어 고향엘 찾아가는 물결에 부치리.     磧中作 走馬西來欲到天 辭家見月兩回圓 今夜不知何處宿 平沙萬里絶入煙 사주에서 달리는 말 서녘으로 하늘도 아득한데 떠나와 달은 두번 다시 차고 이울어도 오늘 밤 잠자리는 찾을 길도 없구나 인적도 없는데 연기조차 끊쳤어.....     斷章 海暗三山雨 花明五嶺春 단장 삼산에 오는 비 바다를 가렸는데 봄이라 영 위엔 꽃도 밝구나.     蜀葵花 昨日一花開 今日一花開 今日花正好 昨日花已老 촉규화 어제도 꽃피더니 오늘도 꽃이 피네 오늘 핀 꽃 애틋한데 어제 핀 꽃 이울었어.......     行軍九日思長安故園 强欲登高去 無人送酒來 遙憐故園菊 應傍戰場開 중양에서 산에 오르리 높은 산에 오르리 술 보내 올 친구도 없는 것을...... 생각은 먼 고향 국화에 부치노라 비오듯 살은 가도 꽃은 피었으리.     한 악 韓 偓 (?-?) 9세기경 詩人. 字는 致光, 섬서성 長安에서 났다. 889년 進士가 되고 昭宗때 兵部侍郞.翰林學士를 역임했다. 뒤에 朱全忠에 반대하여 좌천당했다가, 905년 복직의 허락이 있었으나 入朝하지 않고 남쪽으로 갔다. 閨房 婦女의 媚態와 戀情을 주제로한 妖艶한 작품이 많다. 시집에 3권이 있다. 그의 작품과 같은 시를 香奩體라고 하는 것은 이 詩集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效崔國輔體 雨後碧苔院 霜來紅葉樓 間階上斜日 鸚鵡伴人愁 비 뒤에 비 걷자 이끼 더욱 짙푸르고 서리철 단풍이 한결 붉어라 층층계엔 누엿누엿 해가 저물고 잔시름 알아채는 앵무로구나.     效崔國輔體 羅幕生春寒 繡窓愁未眠 南湖夜來雨 應濕採蓮船 밤비 엷은 창창으론 추운 봄이여라 창 아래 시름겨워 잠 못 이루는데 남호에 밤비가 촐촐히 내려 연 따는 배에도 후줄그니 젖으리.     效崔國輔體 澹月照中庭 海棠花自落 獨立俯閑階 風動鞦韆索 달밤에 푸른 달빛 뜰에 들어 해당화는 소리 없이 지고 홀로 층층계에 서성거리니 가는 바람에 그네줄 흔들린다.     장약허 張 若虛 (?-?) 唐나라 초기의 詩人. 楊州사람으로, 연주의 兵曹가 되어 賀知章․張 旭․包 融 등과 吳中의 四士라 일컬었는데, 이에는 이설이 있다. 시집도 전해 오는 것이 없고, 다만 가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유일한 것이다.     春江花月夜 春江潮水連海平 海上明月共潮生 艶艶隨波千萬里 何處春江無月明 江流宛轉遶芳甸 月照花村皆似霰 空裏流霜不覺飛 汀上白沙看不見 江天一色無纖塵 皎皎空中孤月輪 江畔何人初見月 江月何年初照人 人生代代無窮已 江月年年望相似 不知江月照何人 但見長江送流水 白雲一片去悠悠 靑楓浦上不勝愁 誰家今夜扁舟子 何處相思明月樓 可憐樓上月徘徊 應照離人粧鏡臺 玉戶簾中卷不去 擣衣砧上拂還來 此時相望不相聞 願隧月花謝照君 鴻雁長飛光子度 魚龍潛躍水成文 昨夜閑潭夢落花 可憐春半不還家 江水流春去欲盡 江潭落月復西斜 斜月沈沈藏海霧 碣不瀟箱無限路 不知乘月幾人歸 落月搖情滿江樹 달노래 강물은 사뭇 먼 바다에 연닿아 아득하고 바다 위엔 달이 밝아 물결도 눈부시다     굽이굽이 물결은 천만리로다 어디멘들 강물에 이 달빛 흐르리     강물은 흘러흘러 푸른들 돌고 꽃수풀 우거진데 달빛은 눈과 같아     소리 없이 오는 서리 알길 바이 없고 강가에 흰 모래도 보이지 않아     하늘도 강도 분간할 길 없는데 달빛만 외로이 휘영청 흘러라     강기슭에 저 달을 누가 먼저 보았으리 저 달이 처음으로 언제 사람을 비쳤으니     끊칠줄 모르고 이어사는 인생이거니 해마다 강에 비치는 달과 다르리     알길없어라 저 달은 누굴 비치는가 다만 흐르는 물 보내는 아득한 강인데     흰구름 소리없이 흘러가고 이 포구에 잔시름 이길길 없구나     그 뉘가 이 밤을 배에서 새우는가 어디메 다락엔 달 보고 애끊니니     설어라 다락엔 달빛만 흘러들고 그대의 거울을 소리없이 비치리니     발을 말아도 달빛은 흘러 오고 쫓아도 찾아와선 다드밋돌에 들어     서로 바라봐도 아무런 기척 없고 달 따라 그대 있는 곳 비치어 지고     기러기 길게 날아 달빛을 가리는가 물고기도 이 밤엔 유난히 뛰는구나     그리운 그대여 난 지는 꽃을 꿈꾸며 반남아 봄은 가도 갈길은 몰라     강물도 봄을 싣고 흘러 가는데 소리 없이 지는 달도 서녘에 기울어     달 기울자 바다는 안개에 싸여 남북으로 한없이 아득한 길     저 달 따라 몇몇이 고향엘 갔는가 지는 달만 강가의 숲을 적시네.     유장경 劉 長卿 (?-?) 세기말의 詩人. 字는 文房, 하북성 河間에서 났다. 733년에 進士, 玄宗 至德 연간에 監察御史가 되었다가, 상관과의 사이가 나빠, 지방으로 좌천, 벼슬이 隨州刺史로 그쳤다. 王 維의 영향을 받아 五言詩를 잘 지었으며, 시집에 10권이 있다.     重送裴郞中貶吉州 猿啼客散暮江頭 人自傷心水自流 同作逐臣君更遠 靑山萬里一孤舟 별리 원숭이 울어 예고 손은 떠나고 서러워라 부두에 날은 저문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서러워하고 물은 물이기에 흘러가는 게지 그대와 더불어 쫓긴 몸인데 더 멀리 떠나는 그대로구나 청산은 아득한 천리 만리여 또다시 뱃길을 언제 가려나.     酬李穆見寄 孤舟相訪至天涯 萬里雲山路更賖 欲掃柴門迎遠客 靑苔黃葉萬貧家 이 목에게 부치는 노래 뱃길도 아득한 먼 하늘 가 그대는 이렇게 찾아왔구려 구름에 첩첩 싸인 머나먼 산길 그대는 이렇게 찾아왔구려 사립문 조촐히 쓸고 또 닦아 멀리 온 그대를 맞아들이리 가난이 무르녹는 나의 집이라 푸른 이끼 누른 잎을 그대께 뵈리라.     彈琴 冷冷七絃上 靜聽松風寒 古調雖自愛 今人多不彈 탄금 거문고 고요한 소리 일곱 줄을 오가는데 멀리 들려 우는 솔바람 소리 추워라 옛 곡조 내 비록 사랑하지만 지금은 타는 사람 드물어 한이여.     過鄭山人所居 寂寂孤鶯啼杏園 寥寥一犬吠桃源 落花芳草無處尋 萬壑千峰獨閉門 그대 집을 지나며 외로운 꾀꼬리 살구꽃 새에 울고 복사꽃 핀 골엔 개가 짖는다 꽃입파리 바람에 흩날리는데 깊은 산 외론 집엔 문도 닫혔어.     逢雪宿芙蓉山 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柴門聞犬吠 風雪夜歸人 눈 오는 밤 저문 날 푸른 산 더욱 멀고 하늘도 추운데 뼈저린 가난이여 사립문 밖엔 개 짖는 소리 눈보라 속에 누가 오는가.     유우석 劉 禹錫 (772-842) 字는 夢得, 代宗 大曆 7년 강소성 中山에서 났다. 貞元 9년에 進士, 監察御史가 되었다. 806년 憲宗이 즉위, 후에 連州刺史로 좌천, 다시 朗州로 밀려났다. 이 때 10여편을 읊었다. 그는 다시 播.連.和.蘇.汝등의 여러 주로 전전하기를 10년, 소환되어 太子賓客이 되고, 뒤에 檢校禮部尙書가 되었는데, 오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白居易와 친히 사귀었고, 五言詩에 능하여 그의 작품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의 시풍은 민요풍의 소박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또 南蠻 땅의 풍토를 주제로한 것이 많이 있어, 당시중 특이한 작품이라고 한다. 시문집에 30권, 10권이 있다.     烏衣巷 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夕陽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오의항 주작교 변두리에 들꽃이 피고 옛 거리에 지는 해 비꼈어라 옛날에 날아들던 제비떼들은 시방은 농부의 집을 오락가락하누나.     浪淘沙詞 鸚鵡洲頭浪颭沙 靑樓春望日將斜 銜泥燕子爭歸舍 獨自狂夫不憶家 낭도사사 앵무주 기슭엔 모래 씻는 물소리 임 계신 곳 바라보니 해는 이미 기울고 제비도 흙물고 자꾸 돌아가는데 그대는 오늘도 집이나 생각는가.     秋風引 何處秋風至 蕭蕭送雁群 朝來入庭樹 孤客最先聞 가을 바람 어디서 불어 오는 가을 바람이기에 소소히 기러기뗄 보내 오는가 바람은 뜰에 들어 나무잎 흔들린다 혼자서 들어 예는 나그네 마음.     秋思 自古逢秋悲寂寥 我言秋日勝春朝 空晴一鶴排雲上 便引詩情到碧宵 가을날 가을은 서럽다 일러 오지만 나는 봄도곤 가을이 좋아 학은 구름을 헤치고 날아 가는데 생각도 푸른 하늘 멀리 흐르네.     가 도 賈 島 (777-841) 字는 浪仙, 范陽사람. 처음에 중이 되어 號를 無本이라 하고 법건사에 있었는데, 뒤에 京兆尹 韓 愈에게 그 시재를 인정받고 환속하여 변변찮은 벼슬자리에 앉았다. 일찌기 의 句를 얻어, 推자로 할 것인지 敲자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해 몹시 애를 먹었다는 일화가 있고, 그래서 지금도 시문을 다듬는 것을 推敲라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하루 시를 짓지 않으면 마음이 말라 붙어 낡은 우물과 같이 된다”고 했다. 시집은 10권이 있다.     尋隱者不遇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心不知處 그대를 찾아서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으면 스승은 약을 캐러 갔노라고 다만 이 산중에 있으련만 골마다 구름이라 알길 없구나.     三月晦日贈劉評事 三月正當三十日 風光別我苦吟身 共君今夜不須睡 未到曉鍾猶是春 전춘사(餞春詞) 봄도 막가는 삼월 그믐인데 계절은 저만 가고 나만 남긴다 그러면 그대여 이 하룻밤을 뜬채 새면서 이야기 다하리 새벽 종 그윽히 들리기 전엔 우리는 그대로 봄에 사는 몸이여.     度桑乾 客舍幷州已十霜 歸心日夜憶咸陽 無端更渡桑乾水 郤望幷州是故鄕 고향으로 십년을 병주 땅에 외론 손되어 날마다 고향을 생각하였노라 상건강 건너와 바라보니 병주가 흡사히 내 고향 같구나.     고 적 高 適 (?-765) 字는 達夫, 하북성 滄州에서 났다. 玄宗때 과거에 급제, 肅宗때 諫議大夫에 발탁되어 거리낌 없이 바른 말을 했다. 50살 때 비로소 詩文에 힘썼다. 762년 西川 節度使가 되어 蜀에서 吐蕃을 막고, 左散騎常侍등을 지냈다. 많이 종군하여 그의 시는 변방의 풍경이며 전쟁에서 취재한 것이 많은데, 웅장 호방하여 王 維.孟浩然등과 어깨를 겨루었다. 8권이 있다.     夜別韋司士 高館張燈酒復淸 夜鍾殘月雁歸聲 只言啼鳥堪求侶 無那春風欲送行 黃河曲裏沙爲岸 白馬津邊柳向城 莫怨他鄕暫離別 知君到處有逢迎 야별 등불 밝은 곳에 술빛 더욱 맑고 종소리 들리는데 달 아래 가는 기러기 새는 짝 찾아 울러 밤을 새우는가 어찌하리 봄바람 따라 헤치는 이 심정 황하 굽은 골에 모래 씻는 물 소리 백마진 강변에는 버들만 우거졌다 원망하지 말아다오 잠시 나뉘는 것을 그대 가는 데마다 반가이 맞아 주리.     田家春望 出門無所見 春色滿平蕪 可歎無知己 高陽一酒徒 봄에 문을 나서봐도 바라볼 것 없는데 봄빛만 제 홀로 무르녹아라 찾아볼 친구조차 나는 없는가 주도라 일컬어도 서럽진 않아.     除夜作 旅館寒燈獨不眠 客心何事轉凄然 故鄕今夜思千里 霜鬢明朝又一年 제야 여관 찬 등 아래 잠 이룰길 없어 어쩌자고 마음은 이리도 설레는가 고향을 생각하면 아득한 천리 센 머리 이밤 새면 또 한해 가는구나.     別董大 十里黃雲白日矄 北風吹雁雪紛紛 莫愁前路無知己 天下誰人不識君 그대를 보내며 십리를 뻗힌 구름 햇볕을 가렸는데 기러기 몰고 가는 북풍에 눈은 내려 서러워 말아라 그대의 가는 길을 천하에 그대를 누가 모르리.     위응물 韋 應物 (?-?) 8세기말의 詩人. 섬서성 長安에서 났다. 756년 玄宗을 섬겨 京兆의 功曹가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德宗 때 蘇州刺史가 되었다가 文宗 때 죽었다. 白居易가 그의 詩를 評하여, 高雅閑淡의 독특한 품격이 있다고 했다. 오언시가 많다. 시집에 10권이 있다.     酬柳郎中春日歸楊州南國見別之作 廣陵三月花正開 花裏逢君醉一廻 南北相過殊不遠 暮潮歸去早潮來 양주로 보내며 삼월 광릉엔 꽃이 한창인데 꽃 속에 만나서 취토록 마시고파 남북으로 떠난들 먼길은 아니여 쓰고 드는 물 따라 오고 갈수 있거니.     聞雁 故園渺何處 歸思方悠哉 淮南秋雨夜 高齊聞雁來 문안 고향은 아득하다 어디메던가 떠도는 길손의 서글픈 심사 회남 가을밤에 비가 듣는데 멀리 지나가는 기러기 소리.     秋夜寄丘二十二員外 懷君屬秋夜 散步咏凉天 山空松子落 幽人應未眠 가을밤 가을도 밤이라 그리운 그대 거닐다 바라보면 머언 밤 하늘 솔방울 떨어져 밤은 한결 고요한데 이 밤을 그댄들 잠을 이루리......     幽居 貴賤雖異等 出門皆有營 獨無外物牽 遂此幽居情 微雨夜來過 不知春草生 靑山忽已曙 鳥雀繞舍鳴 時與道人偶 或隨樵者行 自當安蹇劣 誰爲薄世榮 유거 귀하고 천한게 모두 다르지만 문밖에 나서면 제각기 일이 있어     홀로 명리에 끌리지 않아 끝내 한가히 사는 정 기른다     밤새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풀은 얼마나 길어 났는가     청산엔 아침 햇볕 비꼈는데 새들은 집을 싸고 울어 예누나     때로는 도사와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초부를 따라도 가고     이렇게 사는 것이 즐거운 것을 뉘라서 세상영화 엷다 하더뇨.     이상은 李 商隱 (813-858) 당나라 말기의 詩人. 字는 義山, 하남성 沁陽에서 났다. 25살 때 進士, 누진하여 儉校工部郎中에 이르렀는데, 宣宗 大中 12년에 죽었다. 그의 작품은 抒情的인 詩가 많고, 修辭를 중히 여겨, 精密하고 華麗하다. 唐나라 말기와 五代를 통하여 그의 시는 크게 유행했는 데, 세상에서 西崑體라 일컬었다. 저서에 과 3권이 있다.     嫦娥 雲母屛風燭影深 長河漸落曉星沈 단장 운모 병풍에 촛불 그림자 그윽하고 긴 강에 새벽 별 소리 없이 숨는다.     夜雨寄北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翦西牕燭 郤話巴山夜雨時 밤비에 부쳐 그대 돌아올 길 기약하기 어려워라 파산에 오는 밤비 가을 못을 넘는고야 어느 때 그대와 함께 창 아래 촛불 돋구려 파산에 밤비 오던 때를 서로 이야기하리.     早起 風露澹淸晨 簾間獨起人 鶯花啼又笑 畢竟是誰春 이른 봄 찬 이슬 바람 이는 이른 봄 아침 발새에 혼자서 일어나 보면 꽃 피고 꾀꼬리도 울어 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봄은 아니어.     왕지환 王 之渙 (?-?) 8세기 唐나라 詩人. 산서성 太原에서 났다. 高 適.王昌齡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6수뿐인데, 모두가 絶句이고, 그중에서 가 특히 유명하다.     送別 楊柳東風樹 靑靑夾御河 近來攀折苦 因爲別離多 송별 버들은 휘늘어져 바람에 나부끼고 파릇파릇 실개천 덮었는데 이즈음엔 손 들어 가지도 꺽을수 없어 그렇게 오가는 이별도 잦았던가.     登鸛鵲樓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관작루에서 산을 의지하고 해는 길이 바쁜데 황하는 아득한 바다로 숨어 멀리 바라보고싶은 덧없는 마음에 또 다시 층층계를 올라가노니.     凉州詞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 春光不度玉門關 양주사 황하는 멀리 구름 밖에 흐르고 성 밖엔 밋밋한 산이 솟았네 피리는 원한의 양류곡이로고 봄빛도 옥문관은 못 넘나봐.     왕 발 王 勃 (647-675) 唐나라 초기의 詩人. 字는 子安,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뽑혀서 朝散郞이 되었다. 당시 유행하는 鬪鷄를 쓴 글로 高宗의 노여움을 사서 劍南으로 좌천되었다가, 뒤에 파면당했다. 交趾에 있는 아버지에게 가다가 배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었다. 유명한 는 이 여행 중에 鍾陵에서 지은 것이다. 賦詩를 잘하여 唐初 四傑의 한 사람으로 이컬었다. 시집 30권이 있다.     縢王閣 滕王高閣臨江渚 佩玉鳴鸞罷歌舞 畵棟朝飛南浦雲 朱簾暮捲西山雨 閒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度幾秋 閣中帝子今何在 檻外長江空自流 등왕각 등왕각 높은 집이 강가에 있어 옥을 굴리며 부르던 노래도 끊쳤구나 단청 고운 기둥 새로 구름이 흘러가고 서산으로 비낀 빗발은 발을 걷고 바라보거니 한가한 구름과 못에 내려앉은 그리매 날은 고요하여 말썽 많은 세월이 몇번이나 흘러갔던가 등왕각 노니던 이 시방은 어디 있으리 난간 너머 아득한 강물만 소리없이 흐르누나. (王 勃의 遺詩)     蜀中九日 九月九日望鄕臺 他席他鄕送客杯 人情已厭南中苦 鴻雁那從北地來 중양에 구월구일에 망향대에 올라 잔 들고 손 보내는 외로운 심정 이제 촉나라엔 머물기도 괴론데 기러긴 어쩌자고 북녘에서 또 오는가.     고청구 高 靑邱 (1335-1374) 이름은 啓, 靑邱는 號다. 강소성 吳縣에서 났다. 1368년에 를 修撰, 戶部侍郞에까지 올랐다. 궁중의 비사를 읊은 일로하여 허리 잘리는 형으로 죽었다. 1,700여수나 되는 그의 시는 청신하고 웅건한데, 18권에 수록되어 있다.     問梅閣 問春何處來 春來在何許 月墮花不信 幽禽自相語 단장 찾아 든 봄 있는 델 알길이 없고 지는 달 말없는가 꽃가지 새만 우짖어.     尋胡隱君 渡水復渡水 看花還看花 春風江上路 不覺到君家 그대를 찾아서 물을 건너고 또다시 물을 건너고 여기 저기 꽃을 보고 가노라면 봄바람도 강을 건너 스쳐 오는데 어느 틈에 그대 집에 다달았구나.     장구령 張 九齡 (673-740) 字는 子壽, 광동성 曲江사람이다. 玄宗을 섬겨 재상에까지 올라서 명망이 높았다. 20권이 있다.     自君之出吳 自君之出吳 不復理殘機 思君如滿月 夜夜減淸輝 그대 떠난 뒤 그대와 나뉜 몸이 베를 짠들 무엇하리 흡사히 보름달 같이 밤마다 빛만 예이느니.     왕 건 王 建 (?-?) 9세기때 詩人. 字는 仲初, 하남성 許昌에서 났다. 775년에 進士, 827년에는 陝州司馬가 되어 변경에 종군했다가 돌아와 韓 愈.張 籍같은 詩人들과 사귀었다. 친척인 宦官으로부터 궁중의 일을 듣고 지은 는 널리 애송되었다. 詩集 10권이 있다.     十五夜望月 中庭地白樹棲鴉 冷露無聲濕桂花 今夜月明人盡望 不知秋思在誰家 십오야망월 달빛 들어 흰뜰인데 까마기 깃들이고 찬 이슬 소리 없이 꽃을 적신다 오늘밤 저 달 보는 이 퍽은 많지만 뉘라서 가을을 생각하는가.     送 人 河亭收酒器 語盡各西東 回首不相見 行軍秋雨中 너를 보내고 술도 다하고 잔을 던지고 이야기도 다하고 훌훌히 갈려 오던 길 되돌아 바라보면 너 실은 차는 가을비 속에 묻혀......     장 설 張 說 ?     蜀道後期 客心爭日月 來往預期程 秋風不相待 先至洛陽城 여정 헤매는 길손 일월과 다투는 뜻은 오고 가는 기약을 하였기 탓이지 그래도 가을 바람 기다리질 않고 날보다 먼저 낙양에 이르었네.     전 기 錢 起 (?-?) 字는 仲子. 玄宗 때 進士가 되어, 벼슬이 考功郎中에 이르렀다. 王 維와 친히 지냈으며, 代宗 大曆年間에 이름 높았던 大曆 十才子의 제 일인자다. 그의 시는 風趣가 풍부했다. 시집 10권이 있다.     歸 雁 瀟湘何事等閑回 水碧沙明兩岸苔 二十五絃彈夜月 不勝淸怨郤飛來 귀안 소상에서 어쩌자고 한가히 돌아올까 푸른 물 흰 모래에 이끼 더욱 푸르다 달 아래 뜯는 거문고 소리 맑은데 그 소리에 못이겨 되돌아오는가.     江行無題 咫尺愁風雨 匡廬不可登 祗疑雲霧窟 猶有六朝僧 강에서 비바람 흩뿌려 여산은 못 오르리 구름 짙은 골에 고승은 사는가.     온정균 溫 庭筠 (?-?) 8세기 중엽의 詩人, 本이름은 岐, 字는 飛卿, 산서성 陽曲에서 났다. 당나라 시인으로서 처음으로 詞에 전심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거의 다 散逸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수십首는 修辭美를 다한 艶麗한 것들이다. 이 있었고, 소설 가 있다.     題分水嶺 溪水無情似有情 入山三日得同行 嶺頭便是分頭處 惜別潺湲一夜聲 분수령에서 무정한 시냇물도 어찌 보면 뜻 있는듯 산에 들어 사흘을 같이 걸었지...... 분수령에 다달아 이별할 때는 서러워 하룻밤내 울며 갑데다.     유종원 柳 宗元 (778-819) 唐宋八大家의 한사람. 字는 子厚, 산서성 永濟에서 났다. 進士에 급제, 803년 監察御史禮部員外郞이 되었다가 남쪽지방으로 좌천, 815년에 柳州刺史에 전임했다. 廣西지방을 방랑하며 많은 기행문을 남겼다. 시문집 45권이 있다.     江雪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눈 산엔 나는 새 기척도 없고 길엔 지나는 사람도 없는데 어옹은 외론 배에 앉아 눈 속에 낚시를 드리운다.     登柳州峨山 荒山秋日午 獨上意悠悠 如何望鄕處 西北是融州 가을 날 황산 가을날 한낮인데 산엔 아무 기척도 없어 홀로 고향을 생각하노라 서북엔 융주가 있으려니.     황정견 黃 庭堅 (1045-1105) 字는 魯直, 號는 부翁 또는 山谷, 강서성 修水사람이다. 1067년에 進士, 國子監 敎授.國史編修官이 되었다가 1094년 지방으로 좌천, 마지막에는 귀양가 宜州에서 죽었다. 저서 이 있다.     鄂渚南樓書事 回顧山光接水光 凭欄十里芰荷香 淸風明月無人管 倂作南樓一夜凉 다락에서 돌아보니 푸른 산은 물에 연하고 난간에 기대 서니 연꽃 향기 그윽하이 휘영청 밝은 달밤인데 피리 소리도 안들려 드높은 다락에 밤은 그저 시원하여라.     가 지 賈 至 (718-772) 字는 幼隣, 洛陽사람이다. 玄宗때 起居舍人.知制誥를 지냈다. 肅宗이 선위받자. 그는 冊文을 지어 바쳤다. 뒤에 中書舍人이 되었다가 岳州의 司馬로 좌천당했다. 代宗 大曆 7년 (772, 신라 혜공왕 8년) 55살로 죽었다. 시호를 定이라 했다. 시집 10권이 있다.     春思 草色靑靑柳色黃 桃花歷亂李花香 東風不爲吹愁去 春日偏能惹恨長 춘수(春愁) 풀빛 짙은데 버들 더욱 노랗고 복사꽃 난만하고 이화 더욱 향그럽다 동풍은 시름도 불어 갈줄 모르는가 봄날엔 한되는 일 이렇게 많으니......     送李侍郞赴常州 雪晴雲散北風寒 楚水吳山道路難 今日送君須盡醉 明朝相憶路漫漫 노만만(路漫漫) 눈 걷자 흩어지는 구름 바람도 춥다 초나라 오나라는 가는 길도 험하리 그대 보내며 우리 잠시 취해나 보자요 낼 아침 생각해도 길은 아득하리.     西亭春望 日長春暖柳靑靑 北雁歸飛入窅冥 岳陽城上聞吹笛 能使春心滿洞庭 춘망 해 길고 바람 잔데 버들만 푸르러 기러기 돌아가는 먼 북녘 길 악양성 가에 피리 소리 들려 봄 마음 이끌고 동정호로 가누나.     위승경 韋 承慶 (?-?) ?     南行別弟 淡淡長江水 悠悠遠客情 落花相與恨 到地一無聲 별리 담담한 강물 멀리 흐르는데 길손의 심정 비길 데 없어라 낙화도 서러라 바라보는 마음 흩날려도 땅에는 소리도 없이......     江樓 獨酌芳春酒 登樓已半醺 誰驚一行雁 衝斷過江雲 강루 봄날 홀로 마시는 술에 취한채 오르는 높은 누대 어디서 난데없는 기러기 한떼 구름을 가로질러 날아 가누나.     대숙륜 戴 叔倫 (?-?) 당나라 중기의 시인. 字는 幼公, 潤州 사람이다. 德宗때 李希烈이 모반하자, 그는 항주자사로 가 있다가, 뒤에 돌아오는 도중에 갑자기 죽었다. 나이 58, 이 있다.     贈殷亮 日日河邊見水流 傷春未已復悲秋 山中舊宅無人住 來往風塵共白頭 은량에게 부치는 노래 한종일 나는 강기슭에 앉아 한종일 나는 물을 바라보노라 서러운 봄 채 가시우기 전에 애달다 가을이 또 찾아오누나 황량한 고향은 찾을 길도 없는데 옛집엔 사는 이도 없다하더고 풍진에 싸여 사는 몸이라서 모두다 머리칼이 세어 가나베.     湘南卽事 盧橘花開楓葉衰 出門何處望京師 沅湘日夜東流去 不爲愁人住少時 상남에서 비파꽃 피어나는 겨울이 오면 문 밖에 바라보는 먼 서울길 강물은 밤낮 없이 흘러 예어라 나를 위해선 멈출법도 하건만......     夜發袁江寄李穎川劉侍郞 半夜回舟入楚鄕 月明山水共蒼蒼 孤猿更叫秋風裏 不是愁人亦斷腸 가을 밤 배 돌려 야반에 초향에 드니 달 밝아 산과 불 한결 푸르다 가을 바람 속에 잔나비 울어 시름 없는 사람도 애를 끊나니.     이 섭 李 涉 ?     宿武關 遠別秦城萬里游 亂山高下入商州 關門不鎖寒溪水 一夜潺湲送客愁 무관에 들어 고향을 멀리 떠나 만리 길이라 산은 한이 없이 가는 길을 막는구나 관문을 흘러가는 추운 물소리 밤 새어 시름 싣고 흘러가누나.     형 숙 荊 叔 ?     題慈恩塔 漢國山河在 秦陵草樹深 暮雲千里色 無處不傷心 자은탑에 제하여 산천은 한나라 의연하고 진나라 능엔 풀만 우거져 저문날 천리나 먼 구름 보면 상채기 많은 마음 둘 곳이 없어......     낭사원 郎 士元 (?-?) 字는 君冑, 정주 中山 사람. 玄宗의 天寶 15년(756) 進士, 京畿選官에 뽑히고, 渭南尉. 拾遺를 거쳐 영주자사가 되었다. 그의 시는 淸幽秀澹, 한아한 맛이 넘친다. 문집이 있다.     送麴司直 曙雪蒼蒼兼曙雲 朔風燕雁不堪聞 貧交此別無他贈 惟有靑山遠送客 국사직을 보내고 새벽 눈도 추워라 구름도 추워 삭풍에 기러기 소리 마음 설렌다 가난도 몸에 젖어 서러운 이별 푸른 산 푸른 산이 그댈 보내네.     장 욱 張 旭 ?     山中留客 山光物態弄春暉 莫爲輕陰便擬歸 縱使晴明無雨色 入雲深處亦沾衣 청명 산도 눈부시게 빛나는 봄인데 구름을 핑게 삼아 흐렸다 가지마오 청명에 무슨 비가 오기야 하리만 구름도 깊은 곳엔 옷깃을 적신다오.     상 건 常 健 ?     破山寺後禪院 淸晨入古寺 初日照高林 曲徑通幽處 禪房花木深 山光悅鳥性 潭影空人心 萬籟此俱寂 惟聞鍾磐音 선원 새벽녘에 옛절에 들어서니 뜨는 해는 먼 숲 실가지에 빛나고 굽어든 오솔길을 걸어 들며는 선방에 꽃나무만 우거져 파란 산빛은 새도 좋아하는가 푸른 소에 그리매 마음도 가라앉어라 누리는 죽은듯 고요한데 먼 종소리 그윽히 들려 온다.     옹유지 雍 裕之 ?     宮人斜 幾多紅粉委黃泥 野鳥如加又似啼 應有春魂化爲燕 年年飛入未央棲 궁인의 무덤터 연지 곤지 단장하던 궁녀의 무덤터에 새 소리 노래하듯 또 울어 예듯 그대들 혼이 있어 제비라도 되었다면 길 익은 미앙궁을 해마다 찾아 오리.     황보염 皇甫 苒 ?     送魏十六還蘇州 秋夜沈沈此送君 陰蟲切切不堪聞 歸舟明日毘陵道 回首姑蘇是白雲 그대를 소주로 보내며 그대 보내는 적막한 가을 밤에 풀벌랜 어쩌자고 설리 울어 옐까 돌아가는 배 내일엔 비릉에 닿으리 머리 돌리니 고소산엔 흰 구름 인다.     소강절 邵 康節 ?     淸夜吟 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 야곡 눈부시게 달은 밝고 바람은 물 위를 기어 오는데 이렇게 시원한 이 한밤을 뉘라서 알고 즐기오리.     개가운 蓋 嘉運 ?     伊州歌 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啼時驚妾夢 不得到遼西 단장 가지에 꾀꼬리 울리지 마라 임 찾아 가는 꿈길 행여 깨일라.     왕 주 王 周 ?     宿疎陂驛 秋染棠梨葉半紅 荊州東望草平空 誰知孤宦天涯意 微雨瀟瀟古驛中 소피역에서 아그배 가을 물들어 반남아 붉었구나 형주를 바라보면 풀은 하늘에 닿았는데 천애에 외로이 헤매는 나그네 시름 역에는 가는 비 부슬부슬 자꾸만 내리고.     장 악 張 鄂 ?     九日宴 秋葉風吹黃颯颯 晴雲日照白鱗鱗 歸來得問茱萸女 今日登高醉幾人 구일연 나무잎 바람에 불려 사뭇 누렇게 지고 가을 구름 해에 비껴 비늘처럼 빛난다 물었노라 수유 꽃은 여인이 돌아오기에 “오늘은 산에 올라 누구누구 취했던가”.     사마 예 司馬 禮 ?     宮怨 柳色參差掩畵樓 曉鶯啼送滿宮愁 年年花落無人見 空逐春泉出御溝 궁원 버들은 서로 얽혀 다락을 덮고 꾀꼬리 울어 옛 궁엔 시름만 가득하다 철 따라 꽃은 피고 져도 보는 이 없고 샘물은 무심히 뜰을 흘러 넘는다.     두 공 竇 鞏 ?     南遊感興 傷心欲問前朝事 惟見江流去不回 日暮東風春草綠 鷓鴣飛上越王臺 애가 서럽다 지난 일 묻자 했더니 흘러서 올길 없는 강물이구나 해 지자 이는 바람 풀만 푸르러 자고새만 월왕대를 넘나드누나.     우무릉 于 武陵 ?     勸酒 勸君金屈巵 滿酌不須辭 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 권주 그대여 이 잔을 들으라 가득 부었다 사양치 마소 꽃 피자 비바람 더욱 많거니 우리 별린들 서럽다 하리.     유 상 劉 商 ?     送王永 君去春山誰共遊 鳥啼花落水空流 如今送別臨溪水 他日相思來水頭 왕영을 보내며 그대 가고보면 누구와 이 봄을 지내오리 새 울고 꽃도 이룰고 물만 흐르는데 그대 시방 보내는 이 시냇물 가를 오는날 생각하면 찾아올 밖에.     구 위 丘 爲 ?     左掖梨花 冷艶全欺雪 餘香乍入衣 春風且莫定 吹向玉階飛 이화 써늘한게 흡사 눈과 같구나 향기는 사뭇 옷깃에 들어와 봄바람도 그렇게 정처 없는지 불어다간 자꾸 섬돌로 날리네.     최혜동 崔 惠童 ?     秦和宴城東莊 眼看春色如流水 今日殘花昨日開 단장 그대 눈망울에 비치는 봄빛 흐르는 물과 같으이 오늘 남아 있는 꽃은 분명 어제 피었으리.     진 우 陳 祐 ?     雜詩 無定河邊暮笛聲 赫連臺畔旅人情 函關歸路千餘里 一夕秋風白髮生 잡시 무정하 강변에 피리 소리 들려 오고 혁련대 기슭을 거니는 나그네 합곡관 돌아오는 길 천리도 더 되어 하룻밤 갈바람에도 머리칼 센다.     두순학 杜 荀鶴 ?     春窓怨 風暖鳥聲碎 日高花影重 춘창원 화창한 날 바람결에 새소리 부서지고 드높은 햇볕 아래 꽃 그리매 두터웁다.     장경충 張 敬忠 ?     邊詞 五原春色舊來遲 二月垂楊未掛絲 卽今河畔氷開日 正是長安花落時 변사 오원 변방엔 봄철도 늦어 이월이 다 가도 버들움 안 터지고 인제사 강에는 얼음 풀리는 소리 장안엔 시방 꽃도 떨어질 것을.     한 굉 韓 翃 ?     宿石邑山中 浮雲不共此山齊 山靄蒼蒼望轉迷 曉月暫飛千樹裏 秋河隔在數峰西 석읍산속에서 구름도 산이 높아 못 올라오는가 아지랑이 사이로 바라보노니 새벽달 나는듯 나무 새에 숨고 은하도 봉을 건너 멀리 흐른다.     장 계 張 繼 (?-?) 字는 懿孫, 연주사람. 天寶 12년 進士에 급제, 代宗 大曆말에 檢校戶部員外郞이 되었다. 시집 1권이 있다.     楓橋夜泊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水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풍교에서 달 지자 가마귀 울어 서리 찬 하늘 신나무 사이 사이 어화가 졸아 고소성 밖 한산사에선 종소리 은은히 배까지 들린다.     저광희 儲 光羲 ?     江南曲 日暮長江裏 相邀歸渡頭 落花如有意 來去逐船流 강남곡 해는 저물어 강 밖에 저물어 데불고 돌아오는 이 부두에 지는 꽃잎에도 뜻은 있는가 오거니 가거니 배는 물을 따라서......     최 호 崔 顥 ?     黃鶴樓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州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下使人愁 수 (愁) 그댄 흰구름과 더불어 떠나고 여기 다못 황학루가 남아 있구나 학은 떠나 돌아올 길 바이 없어라 흰구름 천겹 쌓여 하늘만 드높은데...... 한양엔 나무만 길남아 솟고 앵무주엔 봄풀만 우거졌거니 해 지자 이 심사 어디다 돌리리 연기 낀 먼 강엔 시름만 부른다.     장 호 張 祜 ?     胡渭州 亭亭孤月照行舟 寂寂長江萬里流 鄕國不知何處是 雲山漫漫使人愁 산만만(山漫漫) 외로운 달 휘영청 가는 밸 비쳐 강물만 요요히 만리를 흐른다 고향 가는 길은 어딘지도 몰라라 구름만 산을 덮어 시름 자아낸다.     설 영 薛 瑩 ?     秋日湖上 落日五湖遊 煙波處處愁 浮沈千古事 誰與問東流 가을날 오호에 해는 지고 저녁 연기 떠 오른다 천고 옛 일은 누구에게 물어보리.     진자앙 陳 子昻 (?-?) 學者요 詩人. 字는 白玉, 사천성 梓州사람. 대대로 집안이 부유했다. 進士에 뽑혔을 때, 高宗의 임종에 글을 올려 시사를 논했다. 側天武后에게 쓰이어 右拾遺가 되었는데, 마침 武攸宜가 거란을 정벌하게되자, 그 書記가 되어 文翰을 맡아 보았다. 뒤에 아버지의 喪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현령이 되어 그의 재산을 탐낸 誣告를 당하여 옥에 갇혀 죽었다. 나이 43이었다. 唐나라 文章의 興隆이 陳子昻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있다.     春夜別友人 銀燭吐靑煙 金尊對綺筵 離堂思琴瑟 別路繞山川 明月隱高樹 長河沒曉天 悠悠洛陽去 此會在何年 그대 보내는 밤 촛불은 은빛으로 사뭇 타는 이 밤에 우리 술이나 한잔 마셔 보자요 떠나는 마당에 거문곤들 못 타오리까 그댄 저 산을 넘고 또 강을 돌아가느니 어쩌자고 나무는 달을 가린 것일까 강물도 소리 없이 하늘 밖에 숨었는데...... 이런 밤을 다시 언제 가져 보리까.     登幽州臺歌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애가 바라보아도 떠난 이 없고 돌아보아도 오는 이 없고 천지는 태고처럼 하냥 조용한데 혼자 서성거리며 눈물지느니.     여 온 呂 溫 ?     鞏路感懷 馬嘶白日暮 劒鳴秋氣來 我心渺無際 河上空徘徊 강가에서 말 울자 해지고 칼 소린 가을을 머금어 내 마음 둘 곳 없어 강가를 거닌다.     조 영 祖 詠 ?     終南望餘雪 終南陰嶺秀 積雪浮雲端 林表明霽色 城中增暮寒 여설 밋밋하게 보이는 종남산 봉우리 쌓인 눈이 구름 끝에 더욱 빛난다 숲 너머 개인 날이 밝기도 하여라 해 지자 성중은 자꾸만 추워지고......     이 목 李 穆 ?     發桐廬寄劉員外 處處雲山無盡時 桐廬南望更參差 舟人莫道新安近 欲上潺湲行自遲 동려에서 유원외님께 가는 곳마다 산엔 구름 끊일길 없고 동려서 바라보니 더욱 밋밋하구나 사공아 신안이 가까왔다 이르지 마소 잔잔한 물길 따라 서서히 가려니.     태상은자 太上隱者 ?     答人 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眠 山中無曆日 寒盡不知年 한진(寒盡) 때로 이 늙은 소나무 아래에 돌을 벤채 잠을 이루기도 하였더니라 도시 산중에 묻힌 몸이라 봄이 와도 해가신 줄을 몰랐어...... 이 화 李 華 ?     春行寄與 宜陽城下草萋萋 澗水東流復向西 芳樹無人花自落 春山一路鳥空啼 봄 의양성 아래 풀만 우거지고 흐르는 물 동으로 또 서으로 숲은 적막한데 꽃만 떨어져 봄 산에 새 소리 자지러지게 들린다.     장 조 張 潮 ?     江南行 茨菰葉爛別西灣 連子花開不未還 妾夢不離江上水 人傳郎在鳳凰山 강남행 자고 잎새 단풍들 무렵 서녘 항구에 이별한 그대 연꽃이 시방 한창인데 돌아올 길 바이 없구나 설어라 가엾은 이내 심사 꿈은 언제나 그 강물에 흘러 잊으랴 잊을길 없는 나의 사람아 봉황산에 산다니 언제 만나리.     허 혼 許 渾 ?     秋思 高歌一曲掩明鏡 昨日少年今白頭 단장 한 곡조 소리 높여 거울을 바라보니 소년은 간데 없고 흰 머리 나부낀다.     謝亭送別 勞歌一曲解行舟 紅葉靑山水急流 日暮酒醒人已遠 滿天風雨下西樓 별리곡 노래 한가락에 배는 떠나고 단풍이 타는 산엔 물 소리 급하다 해 지고 술 깨고 그대는 멀리 가고 비바람 가득한데 다락을 내려온다.     양사악 羊 士諤 ?     登樓 槐柳蕭疎繞郡城 夜添山雨作江聲 秋風南陌無車馬 獨上高樓故國情 누대에서 성근 버드나무 성을 둘렀는데 밤비에 물이 불어 강소리 높다 가을 바람 부는 거리엔 차마도 없고 나는 홀로 누대에 올라 고향을 바라본다.     郡中卽事 紅衣落盡暗香殘 葉上秋光白露寒 越女含情已無限 莫敎長袖倚欄干 즉흥 연꽃 이울고 그윽한 향기만 남아 잎 위에 가을빛 흰 이슬이 차다 월녀의 품은 정 한이 없으니 행여나 긴 소맬 난간에 스치리.     고 황 顧 況 ?     湖中 靑草湖邊日色低 黃茅瘴裏鷓鴣啼 丈夫飄蕩今如此 一曲長歌楚水西 호반에서 청초호반에 날이 저물어 풀섶엔 자고새 설리도 운다 장부의 뜬 마음 둘 곳도 없어 한 곡조 길게 빼어 노래부른다.     聽角思歸 故園黃葉滿靑苔 夢後城頭曉角哀 此夜斷腸人不見 起行殘月影徘徊     단장곡 고원에 누른 잎 푸른 이끼 덮는다 꿈 깨니 성 가엔 효각 소리 서럽고 이 밤사 말고 애끊는 이도 안보여 기우는 달 아래 홀로 서성거린다.     정 곡 鄭 谷 ?     經賈島墓 水遶荒墳縣路斜 耕人訝我久咨嗟 重來兼恐無尋處 落日風吹鼓子花 가도의 무덤을 찾아 무덤엔 물이 둘러 길이 더욱 아득한데 흐느껴 우는 나를 밭갈던 이 바라본다 다시 찾아 오는 뒷날 무덤이나 남았을까 누엿누엿 해는 지고 고자화에 바람인다.     贈別 揚子江頭楊柳春 楊花愁殺渡江人 一聲羌笛離亭晩 君向瀟湘我向秦 증별 양자강 기슭에 버들이 무르녹아 버들개지 흩날려 나그네 시름 자아내고 해설피 들려 오는 젓대 소리에 그대는 소상으로 나는 진나라로.     맹 교 孟 郊 ?     古別離 欲別牽郎衣 郎今到何處 不恨歸來遲 葉向臨卬去 고별리 그대 옷깃을 차마 놓기 어려워 가시는 데 어딘 줄 나는 몰라도 돌아올 길 늦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행여나 임앙으로 떠나실까 두려워.     秋夕懷遠 高枝低枝風 千葉萬葉聲 단장 높고 낮은 가지 바람이 기어들고 잎사귀 잎사귀마다 그윽히 이는 소리.     조 하 趙 蝦 ?     江樓書感 獨上江樓思渺然 月光如水水連天 同來翫月人何處 風景依稀似去年     강루에 올라 홀로 서성거리다 누에 오르니 달도 물을 닮아 하늘에 닿았는데 같이 달 보던 그인 멀리 가고 산천만 그대로 지난해로구나.     도홍경 陶 弘景 ?     詔問山中何所有賦待以答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 산에서 산에 묻혀 살자니 무엇 있으리 고개 넘어 오고 가는 흰구름인데 내 홀로 즐기며 살아 가거니 그리운 그대가 생각날밖에......     하지장 賀 知章 (?-?) 字는 季眞, 會稽 永興사람이다. 처음에 秘書監이 되고, 禮部侍郞으로 옮겼다가,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道士가 되었다. 스스로 四明狂客이라 號했는데, 성질이 활달하고 언변이 좋았다. 나이 86살에 죽었다.     回鄕偶書 一. 離別家鄕歲月多 近來人事半消磨 唯有門前鏡湖水 春風不改舊時波 二. 少小離家老大回 鄕音不改鬂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고향에 돌아와서 1. 고향엘 고향엘 돌아와보니 모두다 변한 것은 인사로구나 문 앞에 호수만 거울도곤 맑아 봄바람 따라서 물결이 인다.     2. 어려서 떠난 고향 돌아와 보니 사투린 예 같아도 머리가 세어 애들도 서로 바라보면서 웃으며 이르는 말 어디서 왔느냐고.     유정지 劉 廷芝 ?     公子行 天津橋下陽春水 天津橋上繁華子 馬聲廻合靑雲外 人影搖動綠波裏 綠波淸廻玉爲砂 靑雲離披錦作霞 可憐楊柳傷心樹 可憐桃李斷腸花 此日遨遊邀美女 此時歌舞入娼家 娼家美女鬱金香 飛去飛來公子傍 的的朱簾白日映 娥娥玉顔紅粉粧 花際徘徊雙蛺蝶 池邊顧步兩鴛鴦 傾國傾城漢武帝 爲雲爲雨楚襄王 古來容光人所羨 況復今日遙相見 願作輕羅著細腰 願如明鏡分嬌面 與君相向轉相親 與君雙棲共一身 願作貞松千歲古 誰論芳槿一朝新 百年同謝西山日 千秋萬古北邙塵 공자행 다리 아랜 봄 싣고 흐르는 물 소리 다리 위엔 귀공자의 발자국 소리     말 울어 구름 밖에 멀리 사라지고 물 가엔 오가는 사람 그림자 잦이다     물결에 씻기는 조약돌 옥같고 구름은 흩어져 바로 비단결이구나     늘어진 버들에도 애끊는 마음이여 복사꽃도 애달퍼 서러운 것을     즐거워라 이날을 젊은 아가씨 노래하며 춤추며 때를 보내리     울금향같이 사뭇 예쁜 아가씨 귀공자 옆을 따라 오고 가느니     주렴엔 햇볕 눈이 부시고 억안엔 단장도 더욱 곱구나     꽃 따라 짝지어 나는 나비들 못가엔 원앙이 오고 가는데     한무제도 한때는 이리 보내고 초야왕도 한때는 이리 보내고     고래로 고운 얼굴 원하는 것을 항차 서로 보는 이날에서랴     원컨대 옷이 되어 그대 허리 감으리 아니면 거울 되어 그대 얼굴 비추리     서로 만나 가까운 우리들이라 일평생 이대로 살아지이다     소나무로 한 천년 살아지이다 뉘라서 무개꽃을 원하오리까     백년을 이대로 살고지고 천추만세후엔 북망의 티끌 되리.     代悲白頭翁 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 洛陽女兒惜顔色 行逢落花長歎息 今年落花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 已見松栢摧爲薪 更聞桑田變成海 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寄言全盛紅顔子 應憐半死白頭翁 此翁白頭眞可憐 伊昔紅顔美少年 公子王孫芳樹下 淸歌妙舞落花前 光祿池臺開錦繡 將軍樓閣畵神仙 一朝臥病無相識 三春行樂在誰邊 宛轉蛾眉能幾時 須臾鶴髮亂如絲 但看古來歌舞地 惟有黃昏鳥雀悲 노인을 대신하여 부르는 노래 낙양성 동녘에 핀 복사꽃 바람에 흩날려 뉘 집에 지는가     낙양에 색시들 늙기 한되어 지는 꽃 바라보며 긴 탄식한다     지는 꽃 따라 늙는 이 얼굴 명년에 피는 꽃엔 누가 남으리     보았노라 송백은 땔나무 되고 들었노니 상전은 벽해된다고     낙성엔 옛사람 자취도 없고 지는 꽃 설어하는 젊은 사람들     해마다 해마다 꽃은 피어도 사람은 해마다 해마다 가네     사랑하는 나의 청춘들이여 서럽지 않은가 늙은 이 몸이     늙은이의 센 머리 가련하구나 이래뵈도 옛날엔 소년이었대     나무 아래 모여서 춤추는 귀공자 지는 꽃도 모르고 노래만 부르네     지대엔 비단에 수놓아 걸고 누각엔 신선화 붙이던 장군     병상에 누우니 알 길 없고 구십춘광도 즐길길 없어     그 곱던 얼굴엔 주름 뿐이요 흰 머리 흡사히 실낱 같구나     고래로 놀고지고 하던 터전엔 밤들자 새들만 설리도 운다.     배 적 裵 迪 ?     送崔九 莫學武陵人 暫遊桃源裏 단장 무릉 사람을 배울라 말어 잠시 이 도원에 놀다 가소.     孟城拗 結廬古城下 時登古城上 古城非疇昔 今人自來往 옛성에서 성 아래 집을 마련하고 때로 고성에 올라가면 성엔 옛 모습 간데 없고 낯 모를 사람만 오고 가거니......     두추랑 杜 秋娘 ?     勸君莫惜金縷衣 勸君惜取少年時 花開堪折直須折 莫待無花空折枝 청춘을 비단 옷 쯤이야 아끼질 마오 차라리 그대 청춘을 아낄 것이 꺽고프면 재빨리 꺽어버리지 꽃 지면 빈 가지만 남는 것을......     왕안석 王 安石 (1019-1086) 北宋의 政治家. 字는 介甫, 강서성 撫州 臨川사람이다. 神宗에게 인정받아 翰林學士參知政事가 되고, 1069년 制置三司條例司를 두고 스스로 그 우두머리가 되어, 이른바 新法을 실시했다. 이리하여 新法, 舊法의 당쟁이 일어났다. 재상의 자리에 있기를 8년, 물러나 10여년만에 병으로 죽었다.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29권이 있다.     梅花 牆角數枝梅 凌寒獨自開 遙知不是雪 爲有暗香來 매화 담 모퉁이 매화가 눈 속에 피어 멀리 보면 눈인듯 그윽한 향기.     원 진 元 稹 ?     聞白樂天左降江州司馬 殘燈無焰影幢幢 此夕聞君謫九江 垂死病中驚坐起 暗風吹雨入寒窓 병상에서 가물거리는 등불 어슴프레한데 이 밤사 말고 그대 구강에 쫓기는 소식 병상에 누웠다 놀라 일어나니 어둔 밤 비바람이 창에 부딪쳐.     심전기 沈 佺期 ?     邙山 北邙山上列墳塋 萬古千秋對洛城 城中日夕歌鍾起 山上惟聞松柏聲 망산 북망산 위엔 무덤도 많아 천추에 서린 한이 낙양에 간다 해 지자 성중엔 노래 소리 일어도 산엔 소나무 스쳐 가는 바람소리.     무명씨     贈人 懶依紗窓春日遲 紅顔空老落花時 世間萬事皆如是 扣甬狂歌誰得知 그대에게 창에 기대어 보내는 봄날은 길어 청춘도 지는 꽃에 늙어가는가 헛되이 여의는 서른 마음에 미친듯 노래한들 뉘 알으리.     溪歌 憂思出門倚 逢郎前溪渡 莫作流水心 引新都舍故 단장 선뜻 나서니 그리운 임 오신다 마음이 물같다 버리지 마오.     子夜歌 擥裾未結帶 紋眉出前窓 羅裳易飄飄 小開罵春風 자야가 치마자락 부여잡고 띠도 못 맨채 그대 오시나 창 열고 바라보노라면 표표한 바람에 치마폭 나부끼고 속절없이 바람만 흘러 가누나.  
97    심상운의 디지털시 하이퍼시 모음 댓글:  조회:455  추천:0  2020-02-09
출처ㅡ 시의 꽃이 피는마을 디지털 시 하이퍼시   심상운의 디지털시 하이퍼시 모음     빈자리  -낮 12시 25분     꾸벅꾸벅 졸던 중년 여인이 빠져나간 빈자리에 노란 꽃다발을 들고 앉은 꽃무늬 스카프의 아가씨   두 꽃의 향기가 흥건하던 자리에 머리에 무스를 바른 청년이 앉는다 그의 핸드폰이 뿜어내는 경쾌한 소리   순간, 나는 조금씩 발을 들썩이고 파랗게 살아나는 오래된 바다 흰 목덜미의 그녀는 노란 유채꽃 밭을 뛰어가고 있다   그가 훌쩍 일어서서 나간 뒤 하나의 공간으로 돌아간 진홍빛 우단의 빈자리 그 위로 눈부신 햇빛과 신록新綠의 그림자가 번갈아 앉았다가고   낮 12시 25분 전동차 안은 계속 섭씨 20도의 환하고 푸른 공기 속에 있다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                      역驛 승강장엔 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쓰러져 있다.           그가 쏟은 핏덩이가 시멘트와 자갈에 묻어 있다.           역무원들은 서둘러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검은 기차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가 타고 간 기차의 빛깔을 파란 색으로 바꾸었다.             그때 어두운 바닥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먼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안고 간 눈물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그는 드디어 눈물이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일까?)             2006년 7월 21일 오후 2시 23분           서울 중계동 은행 사거리 키 6m의 벚나무 가지 위로           하얀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간다.    수돗물을 세게 틀었다                 오후 4시 30분               책상 위의 헌책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붉게 타오르던 유리병의 꽃이 시들시들하다                 나는 주방廚房의 수돗물을 세게 틀었다                              쏴아-                뇌세포 속으로 퍼져나가는 파란 물소리                청각聽覺이 파르르 떤다                유리병의 꽃이 파르르 떤다                  그때 핸드폰에서 터져 나오는 경쾌한 음악                 싱싱한 푸성귀 냄샐 풍기는 그의 목소리                   전파電波를 타고 날아온                 강원도 산속 공기가 내 귀를 파랗게 물들인다       물고기 그림   겨울 저녁, 물고기는 투명한 유리 공간 속에 혼자 떠 있다. 느릿느릿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그는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k읍으로 간다고 했다. 흰 눈이 검은 돌멩이 위로 나비처럼 날고 있다. 유리 밖으로 뛰쳐나갈 듯 위로 솟아오르던 물고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는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는 하얀 소리들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함박눈이 내리는 그의 설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보이지 않고 그의 걸걸한 목소리만 떠돌고 있다. 유월 아침에 나는 겨울 물고기 그림을 지우고 초여름 숲 속의 새를 넣었다. 그때 설경 속으로 떠나간 그가 나온다. 오전 10시 30분 나는 푸른 공기 속을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 있다.   빨간 방울토마토 또는 여름바다 사진     그는 눈 덮인 12월의 산속에서 누군가가 두드리는 북소리를 듣고 있다고 한다.   그가 촬영한 여름 바다 푸른 파도는 우 우 우 우 밀려와서 바위의 굳은 몸을 속살로 껴안으며 흰 가슴살을 드러낸다.   나는 식탁 위의 빨간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고 TV를 켰다. 무너진 흙벽돌 먼지 속에서 뼈만 남은 이라크 아이들이 뛰어나온다. 그 옆으로 완전 무장한 미군병사들이 지나가고 있다.   갑자기 눈보라가 날리고 1951년 1월 20일 새벽 살얼음 진 달래강 얼음판 위 피난민들 사이에서 아이를 엎은 40대의 아낙이 넘어졌다 일어선다. 벗겨진 그의 고무신이 얼음판에 뒹굴고 있다.   나는 TV를 끄고 밖으로 나왔다.  벽에 붙어서 여전히 흰 거품을 토하며 소리치고 있는 파란 8월의 바다   그때 겨울 산 속으로 들어갔던 그가 바닷가로 왔다는 메시지가 핸드폰에 박혔다.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          어두컴컴한 매립지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가지를        흐늘쩍흐늘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 안개 속의 나무들'        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야채를 먹는다. 마른 벽이 축축한 물기       에 젖어들고 깊은 잠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       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고, 지느러       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회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싱싱해서 좋다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기억에 대한 명상    나는 심심할 때, 크레파스를 들고 내 뇌腦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 저장된 기억을 뽑아내어서 색칠을 한다. 그러면 파란 기억. 노란 기억, 발그레한 기억, 푸른 기억,검은 기억, 희뿌연 기억. 그들은 색유리가 되어 반짝이다가 아주 가끔 새로운 모자이크 그림이 된다.그들은  타다남은 내면의 불꽃같이 아니면 무덤 속에서  살아나온 시간의 눈빛같이 아니면  버스 창문 밖으로 지나가버린 아카시아 숲의 향기같이 이제는 만져볼 수 없는, 냄새도 없는, 단지 모니터의 영상 속에 숨어 있는, 그러다가도 아, 하는 순간 시퍼런 손자국을 남기고 심장을 관통하는 전율. 그러나 그러나 이따금씩 봄바람이 되어 나를 흔드는 그림. 나는 그 그림들이 띠운 풍선風船을 타고 기억 이전으로, 그 이전의 이전, 부모미생전 父母未生前으로 날아가는 연습을 한다. 아주 홀가분하게 '야호' '야호' 소리치며.  여행지의 들판에서 피어오른 듯한 눈부신 무지개의 등 위에 올라타기도 하며.      길                 길이 1cm 쯤 될까 말까한              배추벌레 한 마리가                     퍼런 배추 잎 위로              배밀이하며 올라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벌레가              지나온 흔적이 보일 듯하다                (배추 잎에 붙어서 분비한 듯)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분비물의 자국!                        마추픽추의 무너진 벽돌 계단 위에             노란 나비가 하늘하늘 날고 있다             * 마추픽추:페루 중남부 안데스 산맥에 있던 고대 잉카 제국의 요새 도시. 마추픽추의     바람소리          겨울 밤 침대에 누워서 읽는 바람소리. 바람은 소리의 알맹이고 소리는 바람껍질인가? 그런 건 알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바람소리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히잉히잉 말 울음소리가 내 잠의 줄기를 흔든다. 잠의 뿌리는 짙은 안개 속에 잠기면서 알타이 초원의 기억을 재생한다. 초원의 별빛이 지붕을 뚫고 쏟아져 내린다. 나는 벌거숭이 망아지처럼 초록 들판을 뛰어간다.    기억은 시간과 어떤 관계일까? 기억은 시간의 집에 놓여있는 오래된 가구일까? 집 안 여기저기엔 지나간 시간들의 지문이 찍혀있고 아직 사물 속에 갇혀있는 시간들도 있다. 그들은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은박지같이 반짝이고 싶어서 스스로 해방공간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바람소리가 또 창문을 흔든다. 나는 집 밖에 나와서도 창문 소리 듣는 것이 즐겁다.그 소리에는 별사탕같이 달콤한 파랑, 초록, 노랑, 빨강, 하양 빛이 묻어있다. 들어가서 살 수 없는 집 울타리엔 노란 개나리꽃이 피어있다   이미지 여행    너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이전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거기에는 빛도 어둠도 아닌 것들이 웅숭그리고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다만 무엇이 휘익 휘감는 느낌만 든다고? 너는 그림자여서, 그 느낌은 빛이 발산하는 백색의 전율이라고?    어디서 둥둥둥둥 소리가 들려오고 막이 오르면, 무대 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너는 거기서 또 다른 이미지를 형성하는 원소가 된다고? 그곳에는 시간을 지워버리는 안개의 덩어리들이 솟구쳐 오르고, 너는 투명한 물방울 같은 것으로 둥둥 떠올라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너는 아침 햇빛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나일 강을 내려다보다가 히말라야 하얀 눈 산 위를 지나간다고? 너는 도시의 전동차 안을 떠돌기도 하고,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나는 너와 통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앙코르와트 사원 숲 푸른 공기 속을  둥둥 떠간다. 그때 사원의 짙은 그늘과 무한 질량의 환한 햇살 사이를 넘나들며 UFO처럼 번쩍이다 사라지는 것들이 보인다.   북한산의 레몬 향기        비봉(碑峰)이 눈앞에 탁 마주서는 북한산 계곡 비탈길에서 허옇게 누워있는 늙은 눈을 만났다. 늙은 눈은 피부가 푸석푸석하다. 그 옆에는 오전 11시의 햇빛이 벗어 놓고 간 잠옷이 보인다. 꽃나무와 밤을 보낸 햇빛의 잠옷에 발그레한 향기가 묻어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옷 속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빛이 뿜어져 나온다. 1937년 4월 17일 오전 4시 20분 일본 동경제대부속병원(東京帝大附屬病院) 어두운 침대 위에서 28세의 뼈만 남은 이상(李箱)이 눈을 감고 있다. 그는 임종의 순간, 갑자기 '레몬 향기를 맡고 싶다'고 한다.진달래나무 가지들이 무성한 계곡, 일주일 전에 속옷마저 훌훌 벗어버린 겨울이 허공에서 와와와와 소리치며  하얗게 쏟아져 내리던 비탈길. 등산화에 밟히는 늙은 눈의 몸에서는 질척한 체액이 흘러내린다. 그때 갑자기 북한산이 꿈틀거리며 체취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노란 레몬 향기가 사방에 퍼진다. 정오의 환한 빛 속에서 수염을 깎지 않은 이상(李箱)이 웃고 있다. 꽃이 피지 않은 꽃나무가지가 반짝인다.   은백색 미확인 비행물체   순식간에 내 눈의 자동 셔터가 찍은 한 컷의 동영상. 2008년 5월 25일 정오 일행들과 북한산 사모바위 틈에 뿌리 뻗어 만개한 라일락 꽃 짙푸른 향기에 취해 있을 때, 햇빛 환한 비봉碑峰 쪽으로 휘익 날아가던 은백색 깃털들. 야아, 소리 지를 틈도 주지 않고 반짝이는 빛을 던지며 10분의 1초의 속도로 내 시야를 벗어나는 은빛 부챗살. 그 반짝이는 부챗살은 화창한 초여름 날 산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쾌한 UFO? 그럼 지금 산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무성하게 돋아난 녹색 이파리들이 노랑 하양 보라 꽃들과 어우러져 한창 신명나는 판을 벌이고 있는 중! 12월 아침 아이들과 식탁에서 죽은 닭의 살점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빈센트 반 고흐의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사이프러스와 찬란한 별밤 길 그림을 보고 있을 때, 소리 없이 도시 전체를 점령해버린 은백색의 젊은 눈들. 질주하는 차바퀴에 깔린 눈들의 몸에서 나온 맑은 피는 도로에 줄줄 흐르고, 아이들은 포크를 던지고 와아, 환성을 지르며 공터로 뛰어나가고, 도시는 하루 종일 은백색의 축제. 너는 지금 사람들의 무의식無意識 속 공간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환한 불꽃들을 팡팡 터뜨리는 UFO의 고향을 찾아 네팔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발 5000미터가 넘는 백색고산지대白色高山地帶. 그곳은 어떤 것이든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지점. UFO의 탄생지는 그곳 새파란 공기층 속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UFO:미확인 비행물체        사각형 스크린     비 그친 아침, 나는 닫힌 창문을 연다. 스르륵 열린 사각형의 스크린 속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경쾌하게 달리는 구름 A, 구름 B,구름 C. 이어서 펼쳐지는 파란 여름바다의 영상. 여름바다, 여름바다, 여름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출렁인다. 동해 화진포에는 빨간 사과 빛 안개. 나는 그곳에 푸른 비늘 덩이로 살아 움직이는 집을 지어 놓았다. 그 집은 환상의 집.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시간 밖에서 일하는 푸른 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별빛이 찬란한 밤바다 모래 위를 걷는다. 사각형 스크린은 무한 공간. 그 속에 가득한 여름바다, 여름바다. 여름바다는 나뭇잎에서도 출렁이고 땅강아지 집에서도 출렁이고 아스팔트 속에서도 출렁이고 노래방에서도 출렁인다. 젊은이들은 동해의 고래를 잡으러 가자며 매일 밤 어깨동무를 하고 여름바다로 떠난다. 그들에게 바다는 황홀한 전율의 출렁임. 햇빛 번쩍이는 검푸른 등을 보이며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사각형 속 스크린도 부르르 부르르 온 몸을 떤다. 스크린은 사각형을 확 밀어버리고 수영복차림으로 뛰어나가려는 거 같다. 그때 사각형 스크린 밖에서 사람 A가 열무, 가지, 오이, 호박을 트럭에 싣고 와서 스피커로 “무공해 싱싱한 채소를 싸게 팝니다.”라고 소리친다. 캄차카 바다 돌고래들이 펄떡펄떡 솟구치고 있는 장면이 TV 화면에 가득한 아침이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는 긴 꼬리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기차. 여름밤엔 노란 불을 켜고 여우, 뱀, 방패, 전갈, 화살, 직녀, 도마뱀, 헤라클레스, 돌고래, 백조, 견우의 나라를 지나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키론이 사는 은하수의 남쪽 궁수자리로 가는 기차. 젊은 화가들은 일곱 살 아이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파란색 기차를 타고 별나라 여행을 한다. 기차 옆에서는 우주의 고래들이 허연 거품을 뿜어내며 신나게 솟구치고, 기차의 창을 열고 고래 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와와 소리치는 아이들. 펄떡펄떡 솟구치는 고래 옆으로 우주 로켓이 유유히 지나가는 한낮, 초록 별 연못가에서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무지갯빛 달팽이와 폴짝폴짝 뛰는 왕눈이 개구리가 식탁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 나는 먼 은하수로 날아가는 긴 꼬리 기차 대신 아이들과 놀이동산에서 파란색 기차를 탄다. 파란색 기차는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파란 나라로 들어간다. 한여름 어느 바닷가 물개들의 도시. 건물의 지붕 위로 날렵하게 날아오르는 검은 물개들의 쇼. 물개들의 등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5월의 햇빛이 내 뇌 속을 파랗게 휘감는 일요일이다.     녹색 전율                                                                                7월 아침나절 갑자기 쏟아지는 비                       한낮의 아프리카 대평원엔                      피범벅이 된 사자의 입과           사슴의 붉은 살덩이가 내뿜는 싱싱한 비린내           6월의 태양 아래 이글이글 벌어지는 초원의 잔치!               나는 TV에서 가슴 떨리는 아프리카 생태계를 보다가           식탁의자에 앉아           빨간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우쩍우쩍 씹는다.              그때 휴대폰을 울리는 그녀의 숨 가쁜 목소리             그녀는 여름비의 유혹이 참을 수 없어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굵고 기운찬 빗줄기에           온몸 부르르 떠는 녹색 가로수들이 제각기 잎사귈 퍼덕이며           소리치는 도로를 지나 녹색의 광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뜨거운 들판의 가슴을 향해 돌진하듯 달리고 있는 그녀   박쥐 또는 소녀        동굴 탐사요원으로 다녀 온 그의 디지털 카메라 속에서는 신생대新生代의 동굴 속 벽에 검은 부챗살 날개를 접고 붙어 있던 박쥐 떼들이 동영상으로 변해 푸르르 푸르르 날아다니고 있다. 박쥐들은 휘황한 불빛에 놀라 어둠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가려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난다.    하얀 시트 위에 누워 내시경內視鏡 검사를 받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사춘기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녀의 동굴에서 어둠을 모아 발그레한 찔레꽃을 계속 피워 내고 있는 볼이 빨간 소녀.    나는 가끔 이미지가 형성되기 이전 암흑의 물질들이 떠다니는 무의식無意識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때 동굴의 후미진 곳에서 푸드덕대며 날아가는 박쥐가 보이고 그때마다 그녀의 방 벽에 걸려 있는 에서 빨간 볼의 사과들이 햇빛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까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모형 전시실 또는 깨진 유리창      6월의 태양이 눈부신 한낮 국립박물관 모형 전시실에서는 신석기시대 근육질 젊은 사내의 돌칼 가는 소리가 난다. 사내는 숫돌에 칼을 갈다 가끔씩 고개를 들고 사냥할 때 쓰던 돌화살촉을 움켜쥐고 유리 상자를 깨고 뛰쳐나오려는 듯 허연 수은등 불빛을 노려보고 있다.   12월이 되면  카메라를 메고  세찬 눈보라로 뒤덮인 겨울날 뻘겋게 이글거리던 드럼통 석탄 난로 곁에 둘러서서 외지外地로 떠나려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방금 검은 탄 속에서 나온 듯 이빨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젊은 광부들의 뿌연 입김이 깨진 유리창에 묻어 있는 30년 전의 K역을 찾아서 눈길을 떠나는 그녀.    낮 12시 20분, 나는 그녀의 모형 작업실 벽에 걸려있는 컬러사진 검붉은 고철古鐵들의 무더기 사이로 돋아난 풀잎의 푸른 혈관 위에 앉아 있던 벌 한 마리가 잉잉 잉잉 방안을 돌며 유리창에 몇 번 몸을 부딪칠 듯 하다가 열린 유리창 밖 환한 빛 속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다.     자살폭탄 또는 푸른 울음     자신의 부풀어 오른 봉오리를 만지며 은밀한 욕망 속으로 잠입하는 영화 속의 그녀. 밤마다 폭탄을 준비하는 그녀의 몸은 800만 화소의 선명한 영상 속에서 움직인다.   날카로운 과도果刀로 사과를 도막내어 빨갛게 익은 사과의 중심에 박혀서 스스로 소리 없는 폭발을 꿈꾸고 있던 까만 씨앗 몇 개를 들여다본다. 그들도 촉촉한 살의 유혹 속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있던 걸까?     TV 뉴스 자막이  사라지자, 한여름 밤 안동 지레 마을 산 개구리들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쏟아내는 푸른 울음소리가  달빛 속을 벗어나서 무한허공으로 출렁거리며 퍼져나가고 있다.      오전 11시 40분의 통화   도봉산 성인봉 하얀 바위벽 아래 깊은 골짜기에서 옆의 푸른 빛 솔잎에게 빨갛게 불타는 자신의 순수한 몸뚱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가을 단풍나무를 본다.   산새 몇 마리 그들 사이를 포르르 포르르 포르르 재빠르게 옮겨 다니는 오전 11시 40분   -삐 소리 후 소리샘 픽 보이스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가됩니다. 내 휴대폰에서 거듭 흘러나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순간 하얗게 눈 덮인 소림사 마당에 달마를 찾아온 혜가가 붉은 피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팔 하나를 들고 서 있는 그림이 만월암 바위벽 스크린에 나타나고   하얀 침대시트 위에서 좌선坐禪의 자세로 꼿꼿하게 앉아 있는 *남구의 감은 눈이 불그레해진다.   * 남구: 오남구 시인    아침 드라마    아침 8시 TV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빨갛게  부풀기 시작하고  나는 1,2,3,4...숫자에서 벗어난 그녀의 시간이 접시 위 생선토막에  빨간 소스로 뿌려지는 상상을 한다.   (낳자마자 자식을 버린 어미를 어찌 어미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 드라마의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 그녀는 생선을 구우며 눈물을 흘린다.   그때 40대 여자의 가슴에서 뭉클 솟구쳐 나온듯한 한 뭉치 희끄무레한 연기가 주방의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가고   (파란 신호등 앞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머니와 딸)   나는 또 그녀가 울면서 헤쳐 온 시간의 숫자들이 둥근 공이 되어 아스팔트 위를 통통통통 뛰어가는 상상을 한다.    (오늘 서해상에는 시계 30m의 안개가 걷히고 중부지방엔 오전까지 10mm의 비가 내린 후 날씨가 점차 맑아지겠습니다.)   계속되는 미해결에서 잠시 빠져나온 대도시의 아침시간은 유리창에 줄줄 빗물 흘러내리는 거리에서 초록, 노랑, 빨강 물이 든 풍선을 펑펑 터뜨린다.      사각형과 삼각형과 원     사각형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각종 스크린이 보인다. 아침 7시. 사각 침대 위에서 기지갤 켜며 일어난 삼각형이 사각문을 열고 나오고, 원이 통통통통 튀면서 그 뒤를 따라온다. 삼각형은 원의 손을 잡고 파랗게 출렁이는 바닷가로 뛰어간다. 사각형의 바다 위에서 삼각형의 돛배가 하얀 물보랄 날리며 신나게 달린다.   몇몇 삼각형이 무어라고 소리치며 사각형의 오래된 집의 창문과 벽을 부수고 있다. 사이렌을 울리며 사각형의 경찰차들이 몰려오고, 100여 명의 삼각형과 원이 둘러서서 응원을 한다. 그들은 손뼉을 치며 응원가를 부르다가 가슴팍 속주머니에서 노랑 풍선을 꺼내서 하늘로 날린다. 그 풍선들은 허공에서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고 입맞춤을 한다. 입맞춤을 할 때마다 풍선의 입 속에서 또 노랑 풍선들이 나와서 파란 하늘을 가득 채운다. 대도시의 봄 하늘에 유채꽃이 만발한다.   밤 12시 20분.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육각형 빙산 벽이 철썩철썩 무너져 내려 새파란 육각수의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수천만 톤의 새 육각수가 바다를 넘어 사각형의 도시건축물都市建築物들을 우르릉우르릉 흔들며 밀려오고 있는 밤이다.   태초의 빛    컴컴한 칠흑 공간 속에서 빛 한 줄기 휘익 환한 선을 그으며 지나가는 찰나 여기저기서  펑 펑 펑 펑 터지는 불꽃들. 아 아 소리치며 태초의 허공 속으로 빨려들어간 나는 눈부신  빛의 알갱이들이 파랑, 초록, 노랑, 빨강, 하양 색깔로 부서져 흘러내리는 프로방스의 야경  사이프러스 숲에서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떠오르는 물고기가 된다.      머리나 입술이나 가슴이나 허리에서 빛이 찬란하게 꿈틀거리는 밤길. 괭이를 멘 농부들은  별빛에 휘감긴 듯 비척거리고, 지나가는 역마차도 흥이 났는지 더 털털거린다. 그때 점점 더 거칠어지는 빈센트 반 고흐의 숨소리.      한여름 밤 놀이 공원 은하수가 빛나는 스카프를 목에 두른 유모차 속 아이는 잠이 들고, 태초의  빛 속에서 나와 웅성거리던  어른들은 실로폰 소리가 나고 이어서 “아홉 십니다”라는 여자의 예  쁜 음성이 흘러나오는 곳을 향해 몰려가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     그는 카메라를 메고 사물들의 꿈을 찾아서 매립지埋立地의 안개 속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나는 방 안에서 거울 속의 내 눈동자를 찍는다. 내 눈동자 속에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   그 나의 눈동자 속에 들어 있는 3,4,5,6,7,8,9,10,...의 나, 나, 나, 나............    *第一의兒孩/第二의兒孩/第三의兒孩/第四의兒孩/第五의兒孩/第六의兒孩.........................     나는 만다라曼茶羅 속에 들어가 뱀 옆에 피어 있는 빨간 꽃잎속의 꽃잎에 카메라의 렌즈를 고정한다.     그가 찍어온 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대학로 큰 길을 점령한 시위대의 고함 소리  가 계속 울리고 있다.       * 1930년대 아방가르드 시인 이상(李箱)의 시 (시 제 1호)에서 발췌    초여름 풍경   뱀 굴에서 미끈미끈한 몸뚱일 좌우로 흔들며 뱀 한 마리 뱀 두 마리 뱀 세 마리 뱀 네 마리 나온다.가늘고 긴 혀 날름거리며 나온다. 엊저녁 기억들은 푸른 가지 사이에 허연 비닐봉지로 걸어놓고 햇빛 속으로 스르르르 스르르르 미끄러지며 나온다.   발가숭이 햇빛들은 분수噴水에서 물장구치며 깔깔거리고 아이스크림처럼 햇빛을 빨아먹는 가로수 잎사귀들 사이로 풍선 하나 풍선 둘 풍선 셋 풍선 넷 둥둥 떠오른다. 찢어진 풍선들은 보이지 않고 새 풍선들이 떠오른다.   초여름 풀 향기 풍기며 19살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청계천 물속에서 나온다. 눈이 큰 헵번, 입이 큰 헵번이 눈웃음치며 나온다. 휴대폰을 들고 시청 앞 광장 잔디 위에 앉아 있는 목이 긴 헵번은 빨간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있다.   가슴에 철퇴를 맞고 허물어진 50년 전 건물들의 폐자재 더미 속에서 나온 유리창의 파편 조각들이 반짝인다. 덤프트럭에 실린 우그러진 창틀을 향해 반짝인다. 원주민들의 구멍 난 양말짝,찌그러진 양재기, 찢어진 홑이불에 묻어있는 얼룩을 보며 반짝인다.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밤 12시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 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구멍탐색     아침나절 5월의 숲 속으로 들어가면 개미떼들이 제각기 까만 등을 반짝이며 들락거리고 있는 쓰러진 나무의 구멍에서 작고 투명한 물방울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그 방울들은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서 나와 초록 이파리 사이사이로 떠돌고 있다.     맥주를 좋아하는 그는 시를 ‘황홀한 탐색’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탐색은 카메라를 메고 존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존재의 구멍은 탄생의 출구? 구멍 속의 시간은 언제나 태초? 병 속에 갇혀 있던 맥주가 구멍에서 나와 투명한 유리 컵 속에서 하얀 거품을 뿜어낸다.     밤 10시, 나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산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탐험대들을 본다. 컴컴한 굴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전조등을 켜고 굴의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굴 속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아 흐르고 불빛에 비친 종유석이 찬란하다. 산의 구멍은 컴컴함 속에 찬란함을 숨기고 있다. 한 탐험대원은 꿈틀거리며 굴의 벽을 기어가는 작은 생명체를 촬영하고 있다.    그는 내일 오래 비워둔 집에 들어가서 보일러 연통청소를 하고, 3만6천 피트의 하얀 구름 위에서 빨간 바다 새우를 맛있게 먹었다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한다.     노란 색을 주조로 한 세 개의 그림     구파발에서 의정부 쪽으로 뻗은 큰 도로 옆엔 봄바람에 흔들리는 개나리꽃 울타리가 석재상 마당 한쪽과 세상에 나오기 이전의 돌부처 돌마리아 돌사자 돌여인 돌사슴의 머리와 가슴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나는 그 석물들과 손잡고 노는 상상을 하며 노란 개나리꽃 울타리를 툭툭 치고 흔들었다. 그때 그 소리 때문일까? 돌부처와 돌마리아가 손을 잡고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처럼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둘레를 돌사자 돌사슴 돌여인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들이 뛸 때마다 개나리 울타리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와 그늘진 석재상 마당이 환해지곤 한다.   목만 있는 늘씬한 젊은 여인이 노란 원피스를 걸치고 서 있는 대형 마트 의류 코너. 그 건너편 쪽에는 목만 있는 청년이 청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앉아있다. < 그들은 초현실의 예술품이 아니라고요?>   강남 터미널 대형 TV에서 갑자기 콸콸콸콸 흙탕물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나고, 홍수가 휩쓸고 간 마을에서 떠내려 온 가재도구들이 큰 물살에 둥둥 떠가다가 나무그루에 걸려있는 게 보인다. 주민들은 무너진 집 지붕 위에 올라가 무어라 소리치며 손을 흔들고 멀리서 털털털털 헬리콥터 소리가 나고 노란 조끼를 입은 구조대원들이 여기저기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구경을 하던 청년 셋이 TV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 들어간다. 그때마다 모니터에서 튀어나온 흙탕물이 내 몸에 확확 끼얹힌다. 내 옷에서는 노란 개나리꽃 향기가 난다.   우아우아 아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검푸른 파도 펄떡이는 돌고래 (산의 어깨 위로 솟구치는 검붉은 불길)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다시마 미역 멍게 해삼 조개 (풀과 나무들의 울부짖음 불길 속의 주택들)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파란 바다 빨간 구름 허연 맥주 거품 (47인치 모니터에서 풀썩풀썩 뿜어져 나와 중계동 은행사거리 상공을 떠도는 LA의 검은 연기 검은 연기)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파도소리 기타소리 사각사각 사과 먹는 소리 (거대한 공동묘지 상공 떼 지어 떠도는 검은 비닐봉지 위에서 반짝이는 하얀 눈 하얀 눈)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뜨거운 모래밭 달빛 속 엉덩이 (당신은 죽은 30대 여인의 목에서 반짝이던 나비날개 모양의 보석을 보았다고요?) (그녀는 나비가 되어서 봄 나라로 날아갔을 거라고요?)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모닥불 하얀 잿더미 빈 맥주병 (당신은 사람들이 모두 복제품 같다고요?) (검푸른 파도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가 혁명을 꿈꾸는 체 게바라의 가슴을 껴안고 싶다고요?)   꿈틀꿈틀 아침 바다 붉은 핏덩이 핏덩이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블랙홀(black hole)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검은 구멍이 되어 소멸하는 거대한 별에는 정지된 시간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여 있는 ‘사건의 지평선’이 있다고요? 그들은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화석化石 속의 물고기처럼 박혀 있을 거라고요?   아산병원 영안실에 있는 그녀의 시신屍身도 자세히 관찰하면 연료가 모두 소모된 마지막 순간에 자체의 중력으로 인해 스스로 붕괴되어 생성하는 죽은 별들의 검은 구멍과 다르지 않다고요?   오늘 밤 당신은 35000피드 상공의 비행기가 컴컴한 허공 벽에 얼어붙어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우주의 얼음덩이 속에서도 뜨거운 입맞춤을 하는 남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환각제 복용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그들이 자리에 두고 간 가슴선이나 허리선이나 다리의 선이 보인다. 20대 아가씨들이 벗어놓고 간 볼록한 가슴선에선 노란 봄꽃냄새가 물씬 풍긴다. 종업원들이 그 선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려도 빛 밝은 오전엔 구석에 숨어있던 둥근 선들이 제각기 반짝이는 물방울이 되어 유리창 밖 허공으로 둥둥 떠다니는 게 선명하다.   2월 중순 달리는 승용차 유리창에 윙윙 휘날리며 떼 지어 달라붙는 선들. 브러쉬는 백색 환각제 같은 무수한 선들을 계속 지우지만 도로 옆 막 피어나는 하얀 꽃송이들 속으로 자주 끌려들어가는 바퀴. 차는 발긋발긋한 딸기를 가득 안고 맨살 그대로 누워있는 비닐하우스의 둥근 허리선이 보이는 시골 눈길 뿌연 안개 속에서 미끄러진다.   그때 라디오에선 미국 인기 가수의 죽음에 대해 심층보도하며 죽음의 원인이 환각제의 과다 복용이라고 한다. 봄눈 오는 날 오후 3시 20분. 죽은 가수의 뜨겁고 경쾌한 목소리가 전라북도 부안 고랑 진 눈밭에 선홍빛 물방울을 뿌리고 있다.   아스팔트 위의 맨살 여자     아스팔트 위에서 30대의 여자가 전라의 몸을 둥글게 말고 머리를 허벅지 사이에 넣고 앉아있다. 둥근 여자의 몸은 매끈한 살덩이 바퀴가 되어 아스팔트 도로를 굴러갈 것 같다.   (화가는 왜 여자를 달팽이같이 둥글게 말아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놓은 것일까?)   (여자는 화가에게 태어나기 이전의 시공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한 것일까?)   나는 상상 속에서 그녀를 굴려 본다. 그녀는 공기가 팽팽한 고무공같이 가볍게 구른다. 그녀는 통통 튀기도 한다. 구름이 그녀를 태워 하늘로 오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검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파란 바다로 굴러가며 깔깔거린다. 그때 100km로 달려오던 육중한 화물차가 삐익 소리를 내며 간신히 그녀를 비켜간다. 핏발선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휙 스친다.   지금 내 눈 앞에는 파란 바다가 보이는 아스팔트 도로에서 도로에게 반항이라도 하는 듯 맨살로 앉아있는 30대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숨소리가 너무 뜨겁다.   파란 의자   아침 10시,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는다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 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TV 속에서는 굶주린 하이에나 두 마리가  뚝뚝 뻘건 피 떨어지는 누우새끼의 허벅지를 입에 물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고 있다 )    그녀는 구름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무거운 가방을 든 검은 외투의 사내에게 손을 흔든다 사내도 그녀를 보고 웃으며 손짓한다   버스 안은  침묵들이 움직이고 있는 빈 악보 속 같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표들이 투명한 물방울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녀는 그 방울들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터뜨린다 그럴 때마다 방울 속에서 나온 노란 알몸의 소리들이 쪼로롱거리며 버스 안에서 뛰어놀다가 바람에 실려서 도시의 하늘로 줄지어 날아간다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그녀를 덮친다 그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은빛 지느러미를 퍼들거리며 튀어오른다   순간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무역센타 쌍둥이 빌딩 눈부신 유리창 속으로 날아 들어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은빛 비행기   (그 은빛 비행기에는 검은 외투를 벗어버린 알몸의 사내가 타고 있었다고?)   아침 11시, 빨간 버스는 아마존 숲 위를 날아가고 그녀의 파란 의자는 더 반짝이기 시작한다   우주의 시간   그 미술관 대형 바다 그림 속에는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그녀의 가족들이 푸른 살 번득이며 파도치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반짝이며 춤을 추고 있다.    밤 11시20분, 사이언스 TV에선 은하계 넘어 어느 별에 납치되었던 지구의 사람들이 눈부신 빛에 휩싸여 귀환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4,400명의 귀환인 들은 우주의 0의 시간 속에서 살다왔다고 한다.   3월에 내리는 함박눈은 서로 다른 집에 살면서 애태우다가 떠나간 이들이 만나서 산과 들과 바다에 눈부신 알몸으로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하얗게 풀어서 보여주고 있다. 눈의 입자 속에서는 눈물을 안고 살아온 1000년도 우주의 0의 시간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    공과 아이        파란 옷을 입은 아이가 꿈속에서 가지고 나온듯한 빨간 공을 길바닥에 굴리며 놀고 있다. 공은 반짝이며 굴러가고 아이는 공을 쫒아 소리 지르며 뛰어간다. 거리의 유리창들이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는 아침 9시, 공을 따라 신나게 뛰어가는 아이. 공은 주택가를 빠져나와 통통통통 공장 굴뚝을 오르기도 하고, 통통통통 푸른 가로수 가지 위로 올라가 나무 위에서 건너뛰기를 하다가 초록 들길을 달리는 버스 지붕 위에 내려 앉아 잠시 멈춰 있다. 아이도 버스지붕 위에서 흰 구름을 보며 쉬고 있다.   긴 사다리를 허공에 설치하고 구름 위로 올라가는 TV 속 사내가 당신을 유혹한다고요? 그래서 당신도 파란 옷의 아이처럼 빌딩과 빌딩을 휙휙 건너뛰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 오늘도 꿈속에서 본 빨간 공을 찾아서 뛰어다니다가 빌딩 옥상 구석에 누워서 10월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요? 그 아이의 집은 해초들이 나부끼는 바다 속인 거 같다고요? 아이의 몸에선 바닷물 냄새가 난다고요? 빨간 공은 수평선의 해 같다고요?   버스 지붕 위에서 쉬고 있던 아이가 빨간 공과 함께 노랗게 불타는 한낮의 해바라기 밭으로 뛰어간다. 그 뒤를 밀짚모자를 쓴 이중섭이 화판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      돌밭의 아우성이 만들어 낸 연상     발가숭이 햇빛이 남한강 물 위에서 팔짝팔짝 놀고 있는 낮 12시 30분. 돌밭에선 하얀 돌멩이들이 피 묻은 깃발을 손에 들고 아우성치며, 아우성치며 파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날아오른 돌들은 한 순간 붉은 동백꽃이 되어 푸른 강물 위를 둥둥 떠가기도 하고 흰 날개 퍼덕이는 두루미 떼가 되어 들판 습지로 날아간다. 나는 수많은 돌중에서 허공으로 떠오르다 물속으로 떨어진 검은 돌 하나를 주워서 걸망에 넣는다.   정동진 새벽바다 뻘겋게 번지는 핏물 위에서 퍼덕이는 금빛 살점들. 그 거대한 물 밑에서 아 아 아 아 아 아 소리치며 꿈틀거리는 붉고 둥근 돌 하나. 그때 둥둥둥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 그 후끈 후끈한 소리 속에 그가 있을지도 몰라. 10년 전 지상을 떠나간 그가 비늘 번쩍거리고 있을지도 몰라. 새 빛 번지는 백사장에 나가 껑충껑충 학춤 추는 무의식 속의 나.       *< >부분은 스에나가 타미오의『색채심리』에서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일기를 인용한 글임   한여름의 검은 자전거와 파란 비닐봉지와 빨간 모자     파란 지붕의 자전거 보관대에 쓰러져 있는 검은 자전거의 바퀴살이 햇빛에 번쩍이고 있다. 오전 10시 46분,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가 서 있는 가로수 밑으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고 점점 뜨거워지는 8월의 태양. (검은 자전거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자전거 보관대의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자신의 가슴을 다 드러낸 채 번쩍이고 있다.   그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왜 하루 종일 번쩍이고만 있을까요? 지금 을지로 상공을 날아가는 반투명의 파란 비닐봉지는 몸무게가 0으로 줄어든 나의 모습이에요. 나는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바람에 출렁이며 청계천 다리 위를 가고 있어요. 나처럼 가끔 허공을 떠다니고 싶으면 눈을 감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0의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몸의 무게를 계속 줄여 보세요. 그러면서 저기저기 빌딩 창문 위 하늘로 둥둥 떠가는 자신을 느껴 보세요. 검은 자전거의 주인이 노랑 풍선이 되어 햇빛에 반짝이며 여의도 쪽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아, 아, 여보세요. 8월의 풀밭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발가숭이 아이들이 모여서 노란 나팔을 불기도 하고 파란 페인트 통을 굴리며 뱀과 놀고 있다고요? 그 맨살의 아이들이 사람들의 잠속 연못에 들어와서 물장구칠 때가 있다고요? 그 시간에 꿈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빨간 꽃잎 요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달디 달다고요? 그것이 한여름 낮잠의 신비한 맛이라고요?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비오는 날의 아우슈비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작은 언덕같이 쌓여있는 머리칼이랑 가죽 가방 일곱 살 아이들의 꽃무늬 구두가 유리창 진열장 속에서 푸르르 푸르르 떨고 있는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1940년 5월 감옥을 쌓는 회색 벽돌에서 푸른 하늘 한 자락을 꺼내들고 환한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내가 있었다고요? 그가 벗어 놓은 듯한 파란 상의上衣가 높은 감시탑 지붕 끝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고요?   나는 영하의 겨울밤 서울 을지로 지하철역 시멘트 바닥에 박스를 깔고 새우잠 자는 노숙자露宿者의 주머니 속에서 흘러나온 파란 손수건을 본다. 영하 25도의 얼음 꽃밭에서 환한 햇빛 속으로 팔랑팔랑 날아오른 노랑나비 한 마리가 그의 잠든 머리 위에서 날고 있다.   비오는 날 폴란드 오슈비엥침 아우슈비츠의 어둡고 침침한 허공에서 쪼로롱 찍찍 쪼로롱 찍찍 쪼로롱 이름 모르는 새소리가 들린다.   30대 여인 또는 구렁이        한 청년이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딴다. 검푸른 살의 꽁치 한 마리가 책처럼 잘 요약 되어 삭아 있다. 이집트 미라의 여인이 관(棺) 속에서 꿈틀거리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대신전(古代神殿)의 조각상에서 나온 30대 여인이 혼자 중얼거린다. “가면을 쓴  사내가 칼을 들고 말했어” “신(神)은 인간의 피를 좋아 한다고” “나는 그와 잔 적이 있어” 그녀의 그림자 뒤에서 붉은 노을이 TV 화면 가득 이글거린다.     작은 새들이 찌르르 쫑쫑 찌르르 쫑쫑 경쾌한 소리로 날고 있는 5월의 물푸레나무 숲에서  어젯밤 드라마 속 여인이 자신의 검은 머리 위로 물을 쏟아 붓고 있다. 그녀의 허리가 푸른 잎 사이에서 구렁이처럼 햇빛에 번득인다.     뱀과 그녀     그녀의 그림 속 뱀들은 금 간 아스팔트 위에 무리지어 똬릴 틀고 있다. 풀밭을 떠나온 뱀들이 화물차가 100km 이상 달리는 검고 뜨거운 바닥에서 서로 엉겨 바들바들 고무락거린다. 햇빛이 그들의 허리에서 번쩍인다.   화랑畵廊에서 돌아 온 날 밤 침대 위에서 허리를 잔뜩 웅크린 나는 키가 30cm로 줄어들고 팔과 다리가 없어졌다. 새벽에 눈을 뜨니 내 옷걸이가 커다란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명의 어둠 속에서 옷걸이는  “넌 누구니”하고 묻는다. 내가 누구냐고? 하룻밤 사이에 내가 뱀이 되었다고?   아침 햇빛이 소리치듯 창문으로 환하게 쏟아져 들어온다. 햇빛의 뼈가 나를 일으킨다. 내 몸이 점점 커진다. 팔과 다리도 다시 생긴다. 거울에 반사된 빛이 사방으로 뻗어가고 있다. 빛A 빛B 빛C........빛A에는 구름의 살 향기가 묻어 있고 빛B에는 자동차의 경적이 묻어 있고 빛C에는 전화벨소리가 묻어있다.   그녀는 뱀들과 함께 빛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창 밖 허공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반짝이고 있다.   통화通話     아 아, 여보세요. 40대의 사내가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가서 집 나간 아내를 찾아 달라며 자살소동을 벌이고 있는 걸 봤다구요. 그 사내는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듯 뛰어내릴 듯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구요. 3월의 하늘에선 확성기를 든 경찰과 구경꾼들에게 주는 선물인양 하얀 눈송이를 흩뿌렸다구요.   말수가 적은 40대의 회사원 K씨는 1년에 한두 번 손에 날카로운 못을 들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차장 고급 승용차들의 차체에 굵은 금을 긋고 다닌다구요.   망치를 들고 깨진 유리창 조각들을 더 잘게 부수고 있는 인부들의 얼굴이 점점 환해 지고 있어요. 그들은 망치질에 신명을 풀어내는 듯 리듬을 타고 있어요. 작은 알갱이로 돌아간 유리들도 햇빛에 반짝이고 있어요.   아 아, 여보세요. 조주 선사가 신발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한강대교를 걸어가고 있다 구요?   * 조주 선사(778-897):『육조단경』에 나오는 중국의 선승. 선가(禪家)에서는  조주고불(趙州古佛) 또는 조주라 부른다. 불교의 근본원리를 묻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는 말을 했다.     검은 도로     직선의 아스팔트 도로를 100km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검은 도로를 손짓하며 말한다.   “ 방금 지나온 길이 어릴 적 뛰놀던 동네 언덕이야” “ 이 검은 도로 밑에 내가 태어난 마을이 깔려있는 거야“ " 길을 낼 때 언덕의 중심에 퍼런 정수리 뼈 드러낸 바위 하나 있었대" " 비 오는 날이면 도로 밑에서 둥둥둥둥 풍물소리가 울려오는 거 같아"    TV 속에서는 마다가스카르 맨발의 여자들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 웃으며 벌거숭이 아이들 손을 잡고 맑은 강물이 보이는 푸른 풀밭 언덕길을 뛸 듯이 걸어가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의 그래픽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신전神殿의 원형을 복원한 화려한 채색 조각상 그래픽이 TV 모니터 속에서 가볍게 빙빙 돌고 있는 오전 10시 30분   횡단보도를 건너온 30대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구겨진 풍경화風景畵에서 청계산 숲속 산새 몇 마리 나와 삐삐삐 쪼로롱 삐삐삐 쪼로롱 허공에 반짝이는 초록 물방울 뿌리며 빌딩 사이를 지나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K화백이 지난 밤 하얀 화선지 위에 내려놓은 검은 묵향墨香의 산 속에서는 걸망을 멘 한 사내가 나와 사방을 둘러보다 징검다리를 건너 빨간 노을이 물든 여진女眞의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이른 봄 햇살의 눈부신 바늘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저수지 수초水草 속에서 발가숭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나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채소장수의 확성기 소리에 창밖을 본다     붕어빵이 구워져 나올 때       중계동 은행사거리 40대 사내의 붕어빵틀에서 뜨겁고 말랑말랑한 붕어빵이 구워져 나올 때   전자상가 TV 화면에는 시리아 반정부군의 자살폭탄으로 반쯤 부서진 건물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상자들   나는 제주산 노란 감귤 한 봉지를 사들고 행인들이 붐비는 4차선 도로를 건너가고   내 옆을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10대 여자 아이들   아파트 화단 젖은 흙속에서 10cm 가량의 검붉은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탈출       제각기 자기의 방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한밤중   하얀 살들이 속으로 말 하고 있었어. 비 오는 날 손잡고 벌거벗은 망아지처럼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고 싶다고.   TV 속에서는 야생의 말들이 히힝거리며 몽골 초원의 빛 속으로 뛰어가고 있었어.   나는 벽에 딱 붙어서 바닥에서 통통 튀며 놀다가 창밖으로 날아가는 고무공을 보고 있는 타일 조각들을 생각하고 있었어.   빛 또는      검은 옷을 입은 빛이 무표정한 아파트 유리창에 매미처럼 붙어서 부르르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 시간   성난 개들이 어둠 속 4차선 도로를 횡단하며 번쩍이는 빛을 향해 컹컹 짖어대고   한여름 바닷가 뜨거운 모래밭에선 배구를 하고 있는 맨발의 30대 비키니 여자들의 번들거리는 붉은 살   흰옷을 입은 장발의 50대 남자가 푸른빛이 흐르는 무대 위에서 하늘을 향해 한껏 팔을 벌리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의 그래픽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신전神殿의 원형을 복원한 화려한 채색 조각상 그래픽이 TV 모니터 속에서 가볍게 빙빙 돌고 있는 오전 10시 30분   횡단보도를 건너온 30대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구겨진 풍경화風景畵에서 청계산 숲속 산새 몇 마리 나와 삐삐삐 쪼로롱 삐삐삐 쪼로롱 허공에 반짝이는 초록 물방울 뿌리며 빌딩 사이를 지나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K화백이 지난 밤 하얀 화선지 위에 내려놓은 검은 묵향墨香의 산 속에서는 걸망을 멘 한 사내가 나와 사방을 둘러보다 징검다리를 건너 빨간 노을이 물든 여진女眞의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이른 봄 햇살의 눈부신 바늘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저수지 수초水草 속에서 발가숭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나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채소장수의 확성기 소리에 창밖을 본다   노랑나비     비오는 날 번쩍이는 빛을 향해 어두운 헛간을 뛰어나간 고양이의 눈빛 같은   노랑나비 하나 내 숲의 어둠 속을 떠다니며 반짝인다   李箱은 에서 “찢어진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 본다. 그것은靈界에絡繹 되는秘密한通風口“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靈界의 컴컴한 숲속에서 죽은 나비와 춤을 추고 있을까?   정리해고 된 40대의 사내가 중고 트럭 조수석에 아내를 태우고 휘파람 불며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   노랑나비 한 마리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날고 있다.   마네킹 또는 아침 햇빛    오전 8시 30분 백화점 지하창고에서 점원들의 들것에 실려 나오는 가슴이 깨진 20대의 남녀 마네킹 새 두 마리 지하의 어둠 속에서 날아올라 아침 햇빛 눈부신 빌딩 사이로 날아간다   햇빛 속에서 반짝이며 출렁이기 시작하는 나뭇가지들   바이칼 호수 마을에서 둥 둥 둥 둥 푸른 하늘로 울려 퍼지는 북소리 운길산 수종사 나한전에서는 환한 빛을 향해 맨 머리의 나한들이 웃고 있다     빨래판   아파트 창 밖 젊은 남자의 스피커 소리 -싱싱한 물오징어 한 마리가 이천 원, 이천 원   교실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유리창을 흔들며 바다 속 청어가 되어 퍼덕인다   나는 빈 방에서 생목의 가구가 내쉬는 나무의 숨소리를 듣는다 숲의 나무들이 잎사귀를 흔들고 있다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팔만대장경판을 둘러보고 나오는 할머니가 옆 할머니 허리를 찌르며 소근거린다 빨래판만 보고 간다고   푸른 풍선 하나 허공에서 둥둥 떠돌고 있는 한낮이다   열탕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다가 어둠이 물컹물컹 밟히는 무의식의 늪지대로 들어간다. 축축하고 후끈후끈한 그 늪이 내 원시의 열탕이라는 걸 발견한다.   식탁에 앉아 칼질과 포크질로 죽은 암소고기의 탄력에서 느끼는 관능. 그 암소고기는 물질의 열탕 속에서 꿈꾸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수석 수집가인 그녀는 쑥돌의 속살을 문지르며 원생대 바다 속 생명체들의 숨소리를 만지고 있다고 한다. TV에서는 시리아 난민 열세 살 키난 마살메흐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냥 전쟁만 멈춰줘요, 그게 전부예요."라고 외치고 있다.   카프치나 엔진 소리를 내며 굴삭기가 새 길을 내고 있다   굴삭기의 날카로운 삽날에 맥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마을의 푸른 언덕 부르륵 부르륵 퍽, 퍽, 퍽 불꽃이 튀는 굉음 언덕의 중심에 숨어 있던 바위의 정수리에서 터져 나오는 핏빛소리 길바닥엔 언덕에서 파낸 돌과 흙들이 맨 몸뚱이로 바들바들 떨고 있다 그는 어제 밤 빨간 버스를 타고 19세기의 그림 속 마을 카프치나로 떠난다고 했다 산양들이 흰 구름들과 살고 있다는 카프치나   고산지대高山地帶의 산양들이 파란 하늘을 향해 메에 메에 노래할 때 흰 구름은 자주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모습을 하고 산양들의 머리 위에서 떠돌고 있다는 카프치나 카프치나   아스팔트 도로의 옛 마을 우물터에서는 어릴 적 빠져죽은 계집아이가 밤마다 색동옷을 입고 나와 혼자 놀고 있다   빛과 시간   빛은 과거의 공간 속에서 탈출한 새 시간이라고? 15억 년 전에 폭발한 초신성의 빛이 지금 지구에 도착한 것이라고? 컴컴한 터널 속에서 환한 빛을 뿜으며 달리고 있는 전동차 속의 나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동일하게 맞출 수 있을까? 그녀는 꽃을 안고 천년의 시간이 파란 이끼로 피어나는 탑의 둘레를 돌고 있다          지붕 없는 집   도로를 달리던 차가 지붕 없는 집 앞에 멈춰 서 있다   지붕 없는 그 집에서는 밤이 되면 하늘의 별빛들이 내려와 의자며 식탁이며 깨진 유리창 창틀에서  아이들처럼 뛰고 노는 소리가 들린다   그 집은 어느 날 스스로 배가 되어 별빛 찬란한 우주의 바다로 둥둥 떠갈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CCTV 화면에는 60대의 여자가 목에 별빛 스카프를 두르고 아파트 옥상에 서 있는 장면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의 화면   그는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은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이다. 그는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걷고 있다. 태양 볕이 영상 50도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는 모래밭에 쓰러졌다. (그는 장면을 바꾼다. 사막을 초원으로, 계절을 4월로, 그리고 구름이 덮인 하늘, 기온은 영상20도, 풍속은 .....) 그는 풀밭에 앉아 있다. 멀리 마을이 보인다. 그는 일어서서 마을 쪽으로 걷는다. 아스팔트 길이다. (그는 1500cc 빨간 승용차를 아스팔트 길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운전을 하고 달린다. (그는 운전석 옆 자리에 23세의 금발 아가씨를 앉혔다.) 그는 23세의 금발 아가씨와 함께 휘파람을 불며 마을로 들어간다. (그 순간 사라지는 화면) 그는 눈을 떴다. 아침이다. 머리맡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 50분전. 그는 세수를 하고 정장차림으로 문을 나선다. (초원, 빨간 승용차, 금발의 아가씨는 그의 화면에서 지워지고 없다.)              시간   불빛 환한 아파트 창가에는 잠의 시간에서 추방된 사람이 서 있고 지나간 시간이 몽롱한 안개를 피우는 거리엔 한 여인이 죽은 개를 가슴에 품고 걸어가고 있다 그 시간 You Tube의 인문학 특강 “존재의 세계에는 절대로 넘어 설 수 없는 선이 없다“는 강사의 목소리가 귀를 울리고 발굴을 끝낸 인골이 굵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카자흐스탄 박물관 유리관 속에서 2500년 전 유목민의 시간이 전등불빛 아래서 반짝이고 있다      사진 한 장           그는 눈 덮인 광야의 사진 한 장 남겨놓고   아시의 시간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밤이 되면 히힝 히힝 광야의    말울음 소리가 집안을 흔들었다.    알타이 산맥 눈 녹은 초원지대 허공에서    검독수리 한 마리 빙빙 돌고 있는 한낮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남미의 정글 속    거대한 마야의 탑 돌계단에서 잠자던 곰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집을 떠난 한 사내가 몽골말을 타고    바이칼 푸른 호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96    김기덕 시모음 3 ( 한국) 댓글:  조회:490  추천:0  2019-12-21
해장하다       술이 덜 깬 날엔 해장을 한다. 뚝배기에 담겨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해장국이 몸속에서 뼈가 녹는 진실을 풀어낸다. 몽롱함을 깨우며 불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한때 푸르렀던 무청과 아삭한 콩나물들이 뒤섞여 회색빛 아침을 깨운다. 싱거운 삶의 시간을 새우젓으로 간 하며 뼈대만 남은 간밤의 생각들을 떠올린다. 하루 종일 불에 달궈지며 한 끼니 식사를 위해 뜨겁게 살았다. 가마솥에 통째로 삶아지며 끓어오르는 내장을 물로 다스렸다. 귀도 잘리고, 간도 썰어져서 한 생의 순대를 채우기 위해 나도 국밥으로 끓어올랐다. 파 마늘에 선지들을 가득 담고 임계점을 넘어야만 맛이 나는 비법을 깨닫는다. 누군가가 내 몸에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질렀던 것은 깊은 맛을 내기 위함이었다. 매콤한 다대기를 넣고 휘휘 저으며 칼, 칼을 휘둘러 칼칼하게 맛을 더했던 뚝배기 속에 수저를 담가 열정을 퍼 올린다. 콩나물과 시래기 뒤엉킨 식물성의 생각들을 건져 먹는다. 뱃속에서 해장이 풀어질 때 간밤의 서릿발도 말끔히 풀린다. 얼었던 뼈들도 녹아내려 살이 되고 피가 된다. 불에 달구어질 때 해장국 뚝배기와 나의 전성시대다. 뜨겁게 열 받을 때마다 밥풀떼기 차갑게 식어버린 빈 뚝배기를 조문한다. [출처] 해장하다|작성자 김기덕   깃발이거나 플랜카드         몸 안에 것이 가끔씩 밖으로 내걸리는 것이 혀다. 입이 열리고 혀가 움직일 때 내면을 알 수 있다. 점막으로 덮여 미각과 저작을 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지만, 혀는 내면을 쓴 유일한 깃발이다. 아니 플랜카드다. 입이 열리고 나면 깃발이 펄럭이고 함성이 울린다. 플랜카드가 내걸린 벽엔 언어들이 춤춘다. 집집마다 혀가 내걸린 창문엔 저마다의 목소리와 의미들이 나부낀다. 창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에 빠진 집안의 내력은 알 수 없다. 무엇을 씹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얼굴, 입을 열고 혀를 내보일 때 우린 소통을 느낀다.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의 혀를 맞대지만 혀의 색깔이 왜 빨간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혀가 왜 그렇게 부드러운지에 대해도 나는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색색으로 내걸린 플랜카드들이 유혹의 말을 흘린다. 코드를 찾은 사람들이 펄럭이고, 바람을 핥으며 내통한다. 단칼에 너를 밸 수도 있지. 혀 앞에선 늘 꼬리를 내보인다. 보이는 꼬리와 보이지 않는 꼬리 사이엔 원의 세계가 있다. 혀를 잘 놀려야 천국을 얻는 것이 아니라 혀가 꼬리를 물고 있어야 천국을 얻을 수 있지. 날마다 깃발들이 펄럭이고, 플랜카드가 나부끼는 창문에선 혀를 찾을 수가 없다. 붉게 물든 깃발들이 바람을 삼킨다. 몸 밖으로 나온 혀들이 서로를 피터지게 물어뜯는다. [출처] 깃발이거나 플랜카드|작성자 김기덕   튀김들은 바삭거린다         검은 솥에서 기름이 끓는다. 모든 튀김들은 지옥을 경험한 후에 탄생한다. 바삭바삭 입에서 부서지는 지옥의 맛은 감동적이다. 살면서 지옥을 맛볼 때 튀김이 된다. 질기거나 익지 않음으로 먹을 수 없는 관계는 닭이나 오징어만은 아니다. 튀겨진 살과의 접촉, 익혀진 관계의 바삭거림은 행복하다. 양념을 입었어도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지 않은 이들이 서로 피하며 등을 돌린다. 강한 고통만이 순간에 뼈와 살을 익힌다. 하루의 검은 솥에서 기름이 끓고 지옥의 고통으로 튀겨질 때, 죽어도 죽지 않는다. 지글거리며 등 뒤집고 부상하는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다. 허옇게 부풀며 스스로 가벼워질 때 기름불에서 건져진다. 불 속의 순간은 짧아도 변화의 쾌락은 긴, 지옥 불을 경험한 이에게선 바삭한 튀김 냄새가 난다. 끓는 기름의 고통을 경험한 이는 뼈와 가시를 내세우지 않는다. 비릿한 풋내기의 생살을 드러내지 않는 고소함. 푹 삶아지고 고아져서 완숙의 꿈으로 떠오를 수 있는, 죽음은 바삭한 열매다. [출처] 튀김들은 바삭거린다|작성자 김기덕   모래시계         모래 속에 박힌 해골 하나 입 벌리고 웃는다. 눈동자가 사라진 퀭한 구멍으로 나를 바라본다. 구멍 속엔 블랙홀이 담겨있고,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를 빨아들인다. 그가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과 찬란했던 빛깔들은 어둠이 되었다. 오뚝하던 콧대마저 사라진 구멍 속으로 사막의 모래바람만이 드나든다. 몸의 감각을 다 지우고 나면 남는 해골 하나, 풍화작용하며 모래가 되어간다. 태양빛 입술과 볼의 노을을 지우고, 밤을 닦아 하얗게 탈색해 간다. 모래 속에서 반 쯤 머리 들고 바라보는 세상에 미련이 남았는지 해골이 징상한 이빨로 웃는다. 사는 게 다 풍화작용이지. 감각 속에 울고 웃다가 무감각에 빠져드는 사막, 모래가 되다 만 해골 하나 사막에 누워 말이 없다. 모래가 모래가 되고, 모래가 다시 모래가 되어 미세입자가 되면 나는 누구와 만나 새로운 생명체가 될까. 분해와 결합의 반복을 이루며 살아가는 나와 해골은 하나의 시간 속에 있다. 사막 속에 누운 해골과 사막을 걷는 해골이 마주보고 웃는다. 거꾸로 선 내 몸에서 모래들이 쏟아진다. 시간의 반복, 내가 모래 속에 눕고 해골이 사막을 걷는다. [출처] 모래시계|작성자 김기덕   쓰레기 섬           버려진 이들이 태평양 한 가운데서 만났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흘러 다니다 바다에서 만나 섬이 되었다. 밟히고 차이며 품었던 독기를 숨겨 쓰레기의 영토를 세웠다. 상처투성이로 뚜껑이 열린 영혼들이 바다를 정복했다. 바다는 쓰레기의 식민지가 되고, 쓰레기들에게만 바다의 시민권이 주어졌다. 물고기들은 페트병의 살을 먹으며 군대로 키워졌고, 자살특공대원들은 뼈에서 살까지 플라스틱으로 세뇌되었다. 스티로폼의 명령에 물고기들은 수천 킬로를 헤엄쳐서 자살테러를 했다. 살을 나눠먹은 배신자들의 뱃속엔 비닐의 독 가루가 퍼지고, 사지가 뒤틀리는 죽음이 찾아왔다. 일회용 비닐봉지 하나 버려질 빼마다 쓰레기 나라의 인구는 늘어났다. 햇빛에 미세분말로 개체분열하며 불멸의 종족으로 무한번식 했다. 게릴라전을 준비해온 바다왕국엔 동원령이 내려지고, 밥상머리에서 바다와 안개전투가 시작되었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물고기들로 평화는 깨져있었다. 하얀 소금으로 위장한 병사들도 맛을 내며 흥겨운 식탁을 점령해 갔다. [출처] 쓰레기섬|작성자 김기덕   틀의 유전       아버지는 나를 위해 틀을 만드셨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틀은 숨통을 조였다. 다리를 접고, 팔을 오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틀이 나를 기형적으로 만들어갔다. 물처럼 살아야지. 벽돌공장의 진흙처럼 너도 반듯하게 자라야지. 하지만 아버지, 제겐 저만의 모양이 있어요. 둥글지도, 각지지도 않은 상상할 수 없는 도형이 있어요. 아들아, 그걸 꿈이라고 생각하며 복잡한 도형을 만들지만 결국은 거대한 프랙탈에 갇히는 거란다. 단순한 원을 그리고, 세모, 네모를 그리자, 남들처럼. 아버지는 날마다 틀을 만들고, 나는 날마다 틀을 부쉈다. 틀 안에서 자란 형제들은 사각형이 되고, 삼각형이 되어 인기 있게 팔려갔지만, 나는 아버지의 열매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가출하고, 바람이 되어 들판을 헤매다가 길가에 변종의 씨앗을 뿌렸다. 상상의 가지를 뻗고, 무수한 꿈의 이파리를 흔들며, 영원을 향한 프랙탈을 그렸다. 지상으로 도형 하나 그려갈 때마다 내면으로 깊어가던 뿌리들. 나는 구름을 걸치고, 호수를 들여다보며, 사색에 잠겨 빗변을 걸었다. 내가 완전한 바람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였다. 겨울이 되면 옷을 벗어야 하는 나목이었다. 또 다른 틀에 갇혀, 아들아 둥글게 자라 거라. 꽃을 피우면서 꽃 아닌 틀을 만들었다. 아버지보다 더 견고한 틀. 이런 지독한 아버지 같으니, 나는 틀을 깨뜨렸다. 네모, 세모의 아이들이 기어 나왔다.   [출처] 틀의 유전|작성자 김기덕   마지막 화살     주톳빛 광중(壙中)에 관을 내린다. 상·중·하의 세 흰 끈을 잡은 여섯 명의 친구들이 땅 아래 몸을 누인다. 관을 걷어내고 차디찬 땅에 내려놓아도 마포에 싸여진 몸은 말이 없다. 저승에서도 사용하라고 평소에 쓰던 명기를 주변에 묻고, 광(壙)에 흙을 채운다. 첫 삽을 뜬 상주의 흙이 주검 위에 투두둑 떨어진다. 동시에 자식들의 곡(哭)이 후드득 흔들리면서 천천히 한 사람이 땅 속으로 잠겨간다. 잘 생긴 얼굴 웃음 많던 이름이 말없이 지워져간다. 정해진 시간 지관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는 한 생의 흔적이 사라지는 순간, 살(殺)을 피해 등 돌린 사람들은 뒤돌아보지 말라 한다. 사라지면서 쏘는 마지막 화살에 명중되는 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떠나는 자는 마지막 화살을 쏜다.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인 기억을 남기고 간다. 마지막 살에 급소를 맞은 자는 따라서 죽음을 맞거나, 평생 흉터처럼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아무에게도 추억을 남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살아있어도 이미 죽어있었다. 화살을 피하고 싶다. 난 왜 어머니의 마지막 화살을 피하지 못했을까. 즉사의 명중은 피했지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었다. 나는 또 하관(下官)의 순간 누구의 가슴을 맞출 것인가. 사라지는 자는 말이 없는데, 마지막 쏜 마지막 화살은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있다. [출처] 마지막 화살|작성자 김기덕   철길 위의 하모니카       코스모스 피어있는 철길에 하모니카 소리 아다지오 완행열차로 지나고 바람은 들숨과 날숨으로 곡조를 만든다 차창으로 스치는 플라타너스 얼굴 내뿜는 한숨조차 단조의 연주가 되는 하모니카의 입맞춤은 악보 없는 레일 위의 선율로 흐르고 하고픈 말 다 하지 못해 도·미·솔·도 듣고 싶었던 말들이 귀를 열면 레·파·라·시·레 풀잎들도 말없이 하모니카 떨림으로 노래한다 철길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지 하늘엔 뭉게구름 피어나고 기적소리 산허리를 돌아 끊겨진 철길 하모니카 이름은 구름 따라 떠가고 하모니카 구멍 속 눈물 담긴 화병에선 해마다 젖은 코스모스 꽃잎들이 피어난다 [출처] 철길 위의 하모니카|작성자 김기덕   핀셋을 든 여자     현미경 속의 불순물들을 핀셋이 집어낸다.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엔 은밀한 무리들이 살아있다. 손잡을 수 없다면 골라내야지. 살면서 만져서는 안 되는 부류들은 핀셋이 필요하다. 두 개의 금속을 붙여 만든 핀셋은 오므려지지 않는 탄성을 갖고 있다. 자기 고집이 강할수록 탄성은 강하고, 탄성이 강할수록 콕 집어 예리하게 집어낼 수 있다. 흑백의 하루에서 골라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내겐 더 뾰족한 핀셋이 필요해. 강하게 집어도 휘어지지 않을 탄성을 키우면서 뾰족한 감각을 세웠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거침없이 골라낸 주변엔 친구 하나 남지 않았다. 썩어서 골라내고, 덜 여물어서 집어내고, 벌레 먹어서 버렸다. 핀셋이 닿는 곳마다 상처를 남기며 뿌리들이 뽑혀나갔고, 고독은 늘어났다. 나중엔 핑계를 대서라도 억지로 괜찮은 놈들까지 콕, 콕 집어냈다. 손에 피를 묻히기 싫거나, 이물질과의 접촉을 꺼리는 이는 핀셋에게 청부살인을 시키기도 했다. 모두 다 어딜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주변을 집어낼수록 고독해졌다. 나는 내 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썩고 병든 주름 속에 벌레들이 가득했다. 어서 어서, 핀셋을, 사람들의 입엔 핀셋이 물려 있었다. 내 안의 이물질들을 집어낼수록 주변엔 좋은 이들로 채워졌다. 핀셋이 방에 콕 박힌 나를 들어 올렸다. [출처] 핀셋을 든 여자|작성자 김기덕   통증을 모르는 아이         통각의 보호막 속에 나는 물처럼 담겨있다. 비닐봉지에 담긴 물은 바늘이나 가시의 상처에도 쉽게 새버린다.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내용물이 쏟아져서 빈 껍질로 돌아간다. 나를 부풀게 하는 것은 아직 찢어진 막이 없기 때문이다. 살가죽이 물과 피와 정신을 감싸고 있는 줄만 알았지만, 새는 것을 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통각이 없다면 누가 언제 내게 칼을 던졌는지도 모를 것이다. 미세한 누수나 작은 외부의 침입도 감지할 수 있는 통증의 피막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비닐 팩은 그저 물만 담고 있을 뿐, 예리한 칼이나 송곳의 침입을 막을 수 없지. 줄줄 물이 새서 쪼글쪼글해져도 비닐 팩은 소리 지를 수 없지.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은 가죽이나 괴로운 표정이 아니라 바늘 하나 침투할 수 없이 온 몸을 밀봉하고 있는 통증이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몸에 붙어 있을지라도 내가 아니고, 죽은 것이다. 굳은살이나 사마귀 같은 가족과 함께 살면서 나도 통각을 잃어갔다. 통증은 공감인데도 무관심으로 피하기만 했으므로. 통증이 사라지고 나니 넘어져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고관절에 금이 가도 망가져가는 나를 알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또 손가락 하나를 잘라 먹었다. 모두가 아픔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통증 없는 곳이 지옥이다. 두려움과 연약함을 깨우치기 위한 신의 선물이 내겐 없다. 덜렁거리는 무릎을 흔들며 논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는 아직 어린아이. 성숙한 이는 통증의 두려움을 안다. [출처] 통증을 모르는 아이|작성자 김기덕   마지막 보시     나귀에 망자를 싣고 천장으로 떠나는 길은 라마승과 천장사뿐이었다. 가족도 없이 떠나는 길은 외롭고 멀었다. 하늘이 맞닿은 천장터에 망자를 누이고 라마승이 주문을 외운다. 망자를 인도하는 독수리를 부르기 위해 향불을 피우고 종을 울린다. 뼈피리를 불며 덧없는 한 생의 바람을 보낸다. 이생에 미련이 남은 자에겐 독수리가 오지 않는 법. 인연을 끊고 환생을 꿈꿀 때만 독수리들은 날아온다. 아낌없이 제 몸을 보시하고 돌아가는 자를 위해 까맣게 허공을 덮는 하늘의 십자가들. 눈을 쪼고, 코를 쪼고, 입술을 찢으면서 한 세상 살아온 욕망을 뜯어먹는다. 감각은 사라지고 백골만 남아서 빈 마음이 되면 훨훨 저승까지 가리라. 독수리의 인도 따라서 껍데기를 벗고 날아오른 망자의 혼은 어디에서 다시 환생했을까. 독수리들이 떠나자 천장지엔 방울소리 잦아들고, 타던 향불도 꺼졌다. 가끔씩 하늘이 열리고 망자가 떠나는 천장터, 뼈를 씻는 비가 내렸다. [출처] 마지막 보시|작성자 김기덕   통         통을 옮기다가 넘어져 구르면서 나도 하나의 통임을 알았다. 숫자를 세며 머리통을 굴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악, 소리가 먼저 울림통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몸통이 중력 작용으로 언덕 아래 굴러 떨어졌다. 통 안의 내장들이 거꾸로 쏟아지는 것 같았고, 허리와 다리통엔 상처가 났다. 서있는 통들은 견고히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 내면에 가득 내용물이 채워진 통일수록 흔들림이 없다. 두드려 보면 알 수 있는 깊은 내면의 무게. 꿈이 가득 채워진 통은 어떠한 바람에도 넘어지거나 구르지 않는다. 가벼운 통에서만 울리는 얄팍한 불만의 울림. 속이 빈 통들의 공명은 요란하다. 출렁 하고 넘어진 술꾼의 입에서 오물들이 쏟아진다. 누구나 통 안에 감추어진 내용물은 함부로 쏟지 말아야 하는 법. 수십 년 묵은 장일수록 함부로 뚜껑을 열지 않는다. 튼튼한 다리통에 힘을 주고, 허리통을 동여매어 넘어지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내 안에 오랠수록 썩지 않는 내용물로 가득 채우고, 단 한 번 비밀의 뚜껑을 여는 순간, 아낌없이 주기 위해 함묵하리라. 숨통이 다하는 날까지. [출처] 통|작성자 김기덕   톱이 놓여진 시간       톱이 한 생명의 밑둥치를 자른다. 처절한 비명을 지르다 쓰러진 나무의 부러진 가지들이 진액을 흘린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엔 하얀 목질의 살점들이 묻어있다. 쩍 소리를 내며 쓰러지던 마지막 비명이 계곡에 메아리로 울렸다. 수십 년 다져온 삶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톱이 발등에 놓일 때 그 섬뜩한 기운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야금야금 내 살 속을 파고들 때 단단히 톱날을 붙들고 놓지 말았어야 했다. 잘 생겼다는 바람의 말 한 마디, 쓰윽. 꼭 필요한 데 쓰일 거라는 구름의 말 한 마디, 싸악. 쓱쓱 싹싹 뼈가 잘리는 줄 모르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밑둥치 잘리는 줄 모르고 푸른 이파리 펄럭였다. 한 눈 파는 동안 발목에 섬뜩한 톱날이 놓인다. 춤추는 순간 옆구리에 날카로운 이빨들이 박힌다. 시계의 톱날들은 날카롭고 촘촘하다.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는 이빨들이 밑둥치를 물고 놓지 않는다. 내가 가장 강하고 튼튼하다고 생각한 곳에 톱날이 놓인다. 쓱쓱 싹싹 발목을 자르는 시간. 밤과 낮의 반복되고, 하얗게 발밑엔 회한의 톱밥들이 쌓인다. [출처] 톱이 놓여진 시간|작성자 김기덕   카멜레온의 이름들       구두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유전자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5센티 숨겨진 깔창. 난 이미 가식적인 사람이란 걸 안다. 순수했던 내가 아니다. 치아를 교정했고, 머리염색을 하며, 숨겨진 옆구리의 살들을 감추고 산다. 성형미인을 보고 험담을 했고, 짙은 화장의 얼굴을 보고 비웃었다. 거짓말을 하며 자신을 유리하게 변호할 때 카멜레온의 이름을 붙였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반칙과 트릭의 일상에서 나도 강자인양 주변에 맞는 보호색을 띠며 깃털을 세워 몸집을 부풀렸다. 거친 욕을 하며 광란의 질주를 하고, 추월과 끼어들기에 능해졌다. 들킨 자는 비판 되고, 들키지 않은 자는 용납되는 은폐의 숲에서 살아남기를 한다. 발가락의 뼈들이 휘었다. 목과 눈가에 칼자국이 남았다. 호스로 빨아들인 나의 지방덩어리들은 더 이상 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과감히 나의 일부를 잘랐다. 일부의 공장은 폐쇄됐고, 발전소의 불들은 꺼졌어도 함몰된 젖가슴을 감추며 고상하게 살아간다. [출처] 카멜레온의 이름들|작성자 김기덕   고치 속은 따뜻하다                                                                      찜질방의 벌레집 같은 공간에 몸을 밀어 넣는다 온탕 냉탕을 오가며 사우나에서 땀을 뺐다 날아갈 것 같은 가벼움으로 나비를 꿈꿨다 방과 하늘이 통하는 구멍에서 육체의 한계를 느꼈다 거북의 등껍질을 벗은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고 오락을 했다 낮선 얼굴들이 둘러앉아 계란이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잠을 청했다 코를 골아도 깨우지 않고 통로 복판에 큰대자로 누워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으면 다 똑같은 족속이지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동굴 속의 공간 따뜻하고 습한 기운에 세균들도 달라붙어 잠을 청한다 시간을 갉아먹다 찾은 인간도 한통속이 되어 벌거벗고 목욕하고 시원한 음료나 간식을 먹으며 꿈틀 돌아눕는다 세상에 피난처 하나쯤 있다는 게 좋은 거야 제 맘대로 뒹굴며 시간 때울 수 있는 벌레들의 자유, 한 잠 자고나면 찜질한 몸에선 날개가 돋고 나방들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날 테지 나방과 나비의 차이는 생각에 있었지 육체를 벗어나려는 나비 한 마리 언젠간 내 품을 찢고 날아가겠지 등이 가려운 사람들이 서로의 등짝을 밀어주다가 봄날의 방바닥에 등 붙이고 누워 날개를 기다리는 시간, 고치 속은 참 따뜻하다 [출처] 고치 속은 따뜻하다|작성자 김기덕   장고                                                                     변죽만 두드리며 살아왔지.   울림통의 한복판에서 신명나게 장단을 맞춰 궁채 한 번 놀리지 못한 채, 세요고의 가는 허리 조이며 뼈를 깎아 살아 온 몸. 탕개에 걸린 목숨 줄만 팽팽히 당겨져 붉고 흰 조임줄에 묶여있었지. 낮과 밤의 채편과 북편을 두드려 덩 · 덕 · 쿵 · 더러러…. 명고수를 만나야 해. ‘덩’ 하고 가슴을 울리고, ‘덕 · 쿵’ 뼈마디를 울리며, ‘더러러’ 말초신경까지 뻗어가도록, 오른손 말가죽은 높은 음을 내고, 왼손 소가죽은 낮은 음을 내어 오동나무 붉은 가슴을 울려줄 운명을 만나야 해. 해와 달의 궁채를 들고 온 이가 피 묻은 십자가를 울린다. 털썩 주저앉아 자지러질 것 같은 울림의 만남.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에 가막쇠를 걸고 있는 조임줄을 당기며 하늘의 북소리를 울린다. 말씀을 씌운 방망이가 ‘쿵’, 쪼개진 우레 소리 ‘더러러’ 동서남북을 울리는 장고소리에 발을 맞춰. 비스듬히 어깨에다 장고를 둘러메고, 덩실덩실 춤추며 흥청흥청 놀다가도. 이웃들 부추겨 추임새 넣어주고, 빠른 장단 휘몰아쳐 신명나게 도약하며, 초로인생 흥을 돋워 장엄하게 끝맺으세. 덩 · 덕 · 쿵 · 더러러, 덩 · 덕 · 쿵 · 덩덕쿵.   좌뇌와 우뇌를 울리는 영혼의 소리 [출처] 장고|작성자 김기덕   빨강색 통신                                                                         빨간 몸통의 전화기를 사랑했다. 수화기를 들면 전해지는 하트의 언어들, 귓가에서 함박눈이 속삭였다. 일방적으로 받을 수만 있었던, 하늘의 음성들이 시작된 번호를 나는 알지 못한다. 누가 내게 하늘로 거는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을까. 액정화면엔 발신자의 번호가 뜨지 않았지만 늘 세상엔 함박눈이 내렸다. 나는 가끔씩 전화선 복구를 위해 새벽이면 교회를 찾기도 했다. 강대상에 선 목사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하늘이 닿을 것 같은 긴 선을 늘였다. 나는 책을 덮었다 폈다 하며 ON/OFF 스위치를 작동했지만, 끊기는 전화 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기지국은 구름 속 어딘가에 있다고 사람들은 수런댔다. 하지만 전봇대가 세워진 방향은 늘 서산 너머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성경 속의 문장들을 다 이으면 하늘까지 닿을 수 있을지 나도 문장들을 꺼내 틈틈이 이어보았다. 페이지를 열어 다이얼을 돌려봐도 빨간 성경책에선 발신음이 들리지 않았다. 먹통이 된 전화기는 차갑게 식어있었고, 나는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언제쯤 하늘의 벨소리는 울릴까. 하늘엔 구름만 가득하고 아직 눈발은 내리지 않는데, 곧 겨울이 올 거라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출처] 빨강색 통신|작성자 김기덕   밝음 조명가게     밤이 찾아오고 밝음 조명가게에 불이 들어오면 또 다른 은하계가 열린다. 빛을 얻고 살아 숨 쉬는 기구들 모여 새로운 세상의 별을 꿈꾼다. 한 세상을 비추기 위한 생명들이 다양한 빛깔과 모양으로 태어났다. 길거리에 세워지고, 천장에 매달리고, 벽에 걸리고, 바닥에 매몰되어서도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빛을 발하리라. 자신의 빛깔과 온기를 품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주변을 위해 살아가는 이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안개등이 샹들리에를 시기하지 않고, 형광등이 백열등을 질투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남을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는 등불들이 빛난다. 광원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 굴절, 투과시키면서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는 눈부신 얼굴들. 투광기는 건물의 벽이나 공항·경기장·분수를 비추고, 정원등은 정원을 비추고, 가로등은 길을 비추고, 특수효과를 위한 무대등은 눈과 구름, 불길을 만들며 무대를 비춘다. 아무리 작은 소형전구라 해도 그의 삶은 빛난다. 태양이 뜨기 전까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며 어두운 세상에 꿈과 희망을 나눈다. 겸허히 어둠을 물리치며 주어진 공간을 지키다가 태양빛을 품고서야 잠든다. 빛의 주인이 돌아오는 날 세상의 어둠은 사라지고 불빛들은 휴식을 얻으리라. 아침마다 가장 크고 광휘로운 십자가 앞에서 작은 십자가들이 무릎 꿇는 것을 보았다. [출처] 밝음 조명가게|작성자 김기덕   지퍼의 웃음                                                                   지퍼의 슬라이드를 밀어 올리자 촘촘한 이빨들이 가지런히 웃는다. 첫 인연은 막음쇠에 발을 들이밀면서였다. 우린 두 개의 테이프 가닥으로 살다가 서로 이가 맞물려 인연을 이뤘다. 똑딱단추나 갈고리단추보다 견고히 뼈를 맞대고 살아. 함께 옷깃을 여미며 바람 한 점 새지 않게 문단속을 하지. 방심 하나에 이빨 하나 빠지고, 원활하던 슬라이드에도 장애가 와서 와이(Y)라는 물음이 많아지면 가지런히 웃어주던 미소는 사라지고 지퍼가 안의 지저분한 내용물이 보여. 벌어진 입으로 바람이 새며 급격히 서로의 결속은 무너지지. 헤픈 여자들 앞에선 함부로 지퍼를 내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벼운 입 앞에선 지퍼를 열지 말아야 했는데, 지퍼가 벌어지자 수치스러운 내장들이 쏟아졌지. 바느질 자리 촘촘히 꿰맨 실밥으로 굳게 입을 다문 지퍼들 단단히 이빨을 앙다물며 우린 사랑해야 해. 한 번 벌어지면 다물기 어렵고, 이 맞지 않은 채 진행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슬라이드의 길은 늘 처음이 중요하다. 이가 어긋나 옴짝달싹하지 않는다면 이별보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바람 부는 세상, 단단히 서로를 껴안을 때까지. 지퍼가 웃는 건 웃는 게 아냐. [출처] 지퍼의 웃음|작성자 김기덕   십자가 침술원             내 몸의 막힌 혈을 뚫기 위해 침술원을 찾았다. 허리에 찾아 온 통증과 하반신 저림이 잘못 된 나의 자세 때문이라고 의사가 일침을 놓았다. 장침이 뻐근하게 뼈 속까지 찔러왔다. 내 어릴 땐 회초리 드시던 어머니 말씀이 정체된 혈을 뚫어주었지. 비위가 약해 조그만 일에도 심사가 뒤틀리고 맥이 뛰지 않던 체증에 사관을 놓았다. 혈이 막히는 것은 생각이 막히는 것이란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래, 평소 나의 자세가 삐딱했었지. 음양의 기운을 다스리며, 변하고 순환하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통通하여 정심正心하지 못했다. 비딱해진 세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하지 못했다. 막힌 혈을 뚫고 내 몸 안에 고인 옹종의 생각들을 제거하기 위해선 피침이 필요했다. 살을 째고 고름을 도려낼 칼의 침.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는 십자가의 말씀으로 침뿌리 끝까지 찔러 넣어 혈을 뚫어야 한다. 간절한 기도가 봉침이 되어 허리에 꽂혔다. 끔찍하도록 다리 끝까지 전해지는 통증을 느끼고서야 깨달음이 전해졌다. 침침했던 눈이 밝아지며 침로針路가 보였다. [출처] 십자가 침술원|작성자 김기덕   충치         뼈를 갉아먹으며 벌레들이 이빨에 구멍을 뚫는다. 잠시 한눈 판 사이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와 집을 지었다. 설마 강철도 씹을 수 있는 단단한 뼈를 무너뜨릴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을 두드리며 밤마다 집요하게 내부로 파고드는 망치질을 느낀 후엔 이미 늦었다. 먹고 마시며 씹었던 쾌락의 침입자는 벌써 나의 한쪽 성벽을 허물고 있었다. 마지막 기둥마저 무너지면 방어할 수 없는 적들이 몰려올 것이다. 거대한 성벽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겠지만, 성벽이 무너지기까지는 조짐들이 있었다. 성을 지키는 일은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멀리 했어야 할 술과 사탕, 달콤한 언어들이 치석을 만들고 부패의 관습이 되었다. 안일한 피로감에 무시해버린 칫솔질이 엄청난 파문을 가져왔다. 벌레는 단순한 벌레로 끝나지 않았고, 망치질은 일회성 위협으로 끝나지 않았다. 밤마다 암벽을 뚫는 착암기의 진동에 골이 흔들리고 세상이 진동했다. 통증의 진앙이 퍼지며 발끝까지 아파왔다. 의사를 찾아야 해. 병든 뼈를 허물고 금을 녹여 새로운 뼈로 채워줄 의사를 만나야 해. 흰 날개옷의 천사가 입을 벌리고 구멍 뚫린 뼈 속에 정금 같은 말씀을 채운다. 어떤 벌레도 접근하지 못할 뼈있는 말씀이 내 안에 기둥을 세웠다.   [출처] 충치|작성자 김기덕   자르고 싶은 촉수들       흡반의 입술이 내 입을 덮쳤다. 끈적이며 달라붙은 입술이 입을 빨아들이며 머리와 몸통을 끌어당겼다. 어느 새 촉수들이 팔과 다리를 휘감고 빨판을 붙이고 있었다. 실낱같던 촉수들은 커져 동아줄 같았고, 고무줄처럼 조여 왔다. 그 사내는 촉각으로 나를 맛보았다. 감각의 세계가 해파리의 나른한 끈으로 풀리며 너풀거렸다. 포식의 혓바닥이 날름거리며 손을 뻗었다. 어느새 수십 개의 빨판이 달린 다리가 내 허리를 휘감았다. 끈적이는 촉수들이 내 몸의 구멍들을 열고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며 흔드는 촉수에 몽롱한 눈꺼풀이 풀려갔다. 잘라내야지. 내 몸을 파고드는 파충류의 혓바닥들, 문어발의 끈적이는 뿌리들을. 길바닥엔 잘못 뻗은 촉수들이 나뒹굴고, 담벼락엔 함부로 놀린 혓바닥들이 달라붙어있었다. 날름거리는 촉수들을 피해 우린 아름다운 산호 밭을 살아왔다. 평화를 가장한 지느러미를 흔들며 촉수들의 뻘밭을 헤엄쳐왔다. 아니, 내겐 예리한 칼날이 있었지. “안 돼요.” 사정없이 붉고 긴 혀를 내밀어 칼을 휘둘렀다. 나를 빨아들이던 입술들이 소릴 지르며 하나둘 추락했다. 나무뿌릴 옥죄던 빨판들의 힘이 풀려 단두대에 섰다. 몽롱하게 끈적이던 물길이 투명해졌다. [출처] 자르고 싶은 촉수들|작성자 김기덕     악마의 빛깔 김 기 덕     커피의 분말엔 코피가 묻어 있다 흑인 소녀의 뼛가루 같은 열매를 얻기 위해 늘 멍이 들던 하늘에 2달러짜리 태양이 시들면 쓰디쓴 밤이 찾아왔다 매를 맞으며 지옥불에 볶아져서 태어난 악마의 빛깔 검은 뼛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영혼을 거른다 창가엔 밤의 앙금만이 쌓이고 한 스푼의 천사와 한 스푼의 악마와 두 스푼의 사랑으로 믹스된 내 몸에도 에스프레소의 피가 흐른다 한 개비 고독과 절망이 타다 남은 타르와 니코틴처럼 몸에 스미는 마성의 수액 초콜릿이라도 믹스할까 검은 네 속셈에 크림을 부어봐 하트가 그려지는지 아무리 백설탕을 넣어도 지워지지 않는 유혹의 빛깔이 독해질 땐 휘핑크림이라도 넣어야지 하늘에 담긴 어둠을 바람의 스푼이 휘젓고 가면 별들이 각설탕처럼 녹는다 달의 입술에서 생크림 빛이 흘러내려도 여전히 캄캄한 창밖 흑인 영가 소리를 내며 나뭇잎들은 떨고 까마귀의 검은 눈동자가 물결의 파문으로 흔들린다 어둠을 마실수록 환해지는 불면의 밤 흑인 소녀의 영혼을 마신 혀끝으로 향기로운 악마의 잔상이 노을처럼 감긴다 [출처] 악마의 빛깔|작성자 김기덕   중심에 서면 김 기 덕   가위질 소리를 내며 시계가 시간을 자른다. 긴 가위가 한 바퀴 돌면 1분씩 잘려나가는 시계의 중심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고속주행 하는 고속도로 위에 바퀴들도 중심엔 속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깊은 중심은 외부의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아. 중심을 잡지 않으면 디스크의 음악은 흐르지 않지. 부드러운 멜로디, 행복에 겨운 박자들도 중심에서 탄생하는 것. 돌고 도는 이 땅의 사계절, 매일 다른 365일도 중심의 힘이야. 중심에 서면 세상을 다 얻는데, 중심을 잡지 못하는 한 사내 포장마차에서 나와 비틀비틀 어디로 가는가. 시간의 중심에 서면 영원하고, 바퀴의 중심에 서면 흔들림이 없어. 바람의 중심은 늘 하나의 점. 중심이 되는 순간 태양도 나를 향해 돌고, 별들도 나를 향해 뜨지. 무수한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곳은 십자가의 중심. 하나의 점 위에 서면 중심이 되지. 시계는 시간을 자르고, 자는 세상을 잰다 해도 중심은 언제나 영원한 제자리이다. [출처] 중심에 서면|작성자 김기덕   지문을 읽다 김 기 덕     출근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대자 기계가 나를 읽는다. 죽어서도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상징마크가 내 몸에 숨겨져 있었다. 길거리에서 객사하거나,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죽거나, 영영 기억을 잃었을 때 나를 확인하기 위해 누가 내 몸에 지문을 새겨놓았는가. 손가락 끝의 살갗무늬, 방금 한 나의 행동들도 도어 록과 유리창, 주전자와 커피 잔, 내 손이 닿는 데마다 지문은 흔적을 남겼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온 나만의 물결무늬는 어느 바닷가 모래밭에서 새긴 파도의 흔적일까. 아니면 감자 심고, 고구마 캐던 어느 밭고랑의 무늬일까. 손가락 끝마다 새겨진 등고선은 내가 살면서 넘어야 할 험한 산일거야. 내 몸에 보물지도처럼 새겨진 지문을 찍으며 권리를 행사하고, 지문을 찍으며 출근을 확인한다. 아무도 나라는 것을 확인해 주지 않는 아침, 지문인식기만이 진짜 나임을 확인해준다. 너, 아직 잘 살아있었구나. [출처] 지문을 읽다|작성자 김기덕   지팡이 댄스 김 기 덕       지팡이를 든 신사가 경쾌한 스텝을 밟는다   정장의 날씬한 몸매가 빙글 돌며 지팡이를 흔들자 지팡이는 박자를 맞추는 스틱이 되었다가 빙그르 한 바퀴 더 돌면 적을 물리치는 칼이 되고 빙글빙글 돌면 펼쳐진 우산이 되었다   지팡이 하나면 두려울 것 없지 마법의 지팡이는 원 안에 혼령을 부르고 황홀은 생사를 결정하고 산신령의 지팡이는 연기 속에 순간이동을 했지 평생 함께 갈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구름이어도 좋을 역마살인데   가누기 힘든 몸의 다리가 되고 외로워 다정히 손잡아 주면서 미끄러운 언덕을 오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뼈가 필요해 중절모를 벗어 들고 빙글 신사복의 앞단추를 풀고 빙그르르 장단을 맞추며 지팡이를 흔든다   모세의 지팡이는 광야에 구리뱀이 되고 예수의 지팡이는 세상에 십자가가 되었지   지팡이를 의지해 땅을 두드리며 지팡이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들어 봐 중절모에 선글라스 신사가 빙글빙글 돈다 무대가 돌고 세상이 돌고 하늘이 돌다가 펄쩍 지팡이만 의지해 양발을 차고 오른 하늘   지팡이 끝에서 지구별이 돈다 [출처] 지팡이 댄스|작성자 김기덕  
95    김기덕 시모음 2 ( 한국) 댓글:  조회:470  추천:0  2019-12-21
기우는 꽃   발을 내딛는 길마다 방사선의 금이 갔다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검은 빙판 위에서 꽃보다 먼저 꺾인 관절이 소리 없는 날개로 퍼덕거렸지 바람에 풀잎들이 머리칼로 휘날릴 때 눈빛만으로도 피어나는 꽃이 있었지 은행 한 잎의 미소에도 중심을 잃고 꽃잎은 이슬을 쏟아놓았어 어둠에 젖은 나뭇가지 사이로 별들이 커질수록 붉은 날개는 한 뼘씩 길어졌지 바람을 먹은 빙판이 억새꽃 뿌리를 드러내고 시계추처럼 흔들릴 때도 바위를 등에 지고 천년을 기다려준 산이 있었어 민들레 꽃씨, 깃털의 불꽃을 품고 바람 속으로 기울어져 간다. [출처] 중심잡기|작성자 김기덕   청소부     찢겨진 손들이 멱살을 잡는다.  비질에 껌처럼 달라붙는 아스팔트 위에 젖은 낙엽들   가지 끝에 매달린 잎을 떨어내기에는 몇 마디 입김으로 충분했다.    몽둥이와 쇠망치의 계절  된서리로 온 포클레인이 버마제비 발톱을 내려찍는다.  패전 복서처럼 쓰러진 붉은 담벼락들  사각의 링에서 몸을 떠는 무함마드 알리의 다음 상대는 누구인가.    길거리엔 포플러들이 하늘을 비질한다.  빗자루처럼 사형제가 등장하고  고층빌딩에선 히틀러가 사각 유리창을 닦는다.  세르비아 군인들이 무슬림 여자를 목욕시키던 붉은 창가  쓰레기들이 청소부마저 쓸어내는 비질로  길은 늙은 여자의 머리칼처럼 헝클어져 있다.    지우개는 문지를수록 때가 묻고  무심코 뱉은 언어가 압정으로 박힌다.  버려진 것들의 악취,  향기가 떠난 후 몸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다.    기억을 다 지우고 흔들의자에 앉아계신 할머니는 언제쯤 부처가 되시는 걸까     기러기들 달의 연못으로 목욕 가는  밤하늘의 푸른 광장  눈처럼 날리는 새털구름을 후후 바람이 비질한다. [출처] 청소부|작성자 김기덕   유리의 본능   다리뼈가 살을 뚫고 나온 피 흘림 뒤에 유리는 나와 동족임을 알았지 속도계가 멈춘 철의 심장 조각난 유리 칼날이 젖은 내 바짓가랑이 속에도 꽂혀 있었어 손을 놓칠까봐 이 앙다문 웃음들 폭포로 무너지는 강물이 유리알처럼 내 몸 속을 흘렀지 조각난 물체들의 몸엔 왜 날카로운 이빨들이 날까 발길에 채이면 물방울마저 조각조각 눈물이 되는 돌아 선 등에 모로선 유리조각이 만져진다 거울 같은 수면 위에 누워 별 총총히 뜬 너의 창문이고 싶었던 내 안의 투명한 뼈들 풀잎이 돋아난 파란 유리창 너머 빗줄기에도 실금이 간다 [출처] 유리창|작성자 김기덕   투명인간    누군가 몰래 나의 방을 다녀갔다.  금언의 황금을 도굴한 흔적과 함께 검은 발자국들이 남았다.  바람의 불청객은 날개도 없이 건물을 건너뛰며 창가의 어둠처럼 방에 스며들었겠지.   빗자루를 탄 마녀들의 누리 사냥에  유명 탤런트가 살해되고, 몇몇 정치인의 옷이 벗겨지고  성업 중이던 업소가 폐쇄됐다.   어두운 영들의 빙의  도깨비감투 쓴 얼굴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젯밤에도 왕의 골짜기를 헤매던 그림자들이  투탕카멘의 황금가면과 황금마차를 훔쳤다.  밤의 두건을 쓰고 침실을 들여다보는 검은 망자가 창가에 먹물처럼 번진다.  돌팔매의 파문을 내며 도미노가 시작되고  사냥게임이 현실이 되는 정글 속에서  무색의 유리조각, 서로의 살을 베는 익명의 얼굴들로  쫒기는 하루가 첨탑 위에 서있다.  하트와 꽃다발과 편지와 별무리는 사라지고  뱀과 전갈과 돌멩이와 칼과 화살과 총알과 포탄으로 채워지는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 노려보는 한밤의 부엉이  흔들리는 수면 위로  투명망토를 걸친 달빛이 박쥐처럼 내려온다. [출처] 투명인간|작성자 김기덕   연리지목       소나무와 자귀나무가 살을 맞대고 산다. 눈비 오는 한 세월 서로를 껴안고 피와 살을 나누며 살아온 듯하나 실은 냉전 중이다.       자귀나무 연분홍 꽃을 피우고 가지를 흔들어도 소나무는 바늘 같은 잎을 찌르며 공중으로 뻗어간다. 이럴 거면 왜 합했느냐고 몸을 비틀고 소릴 질러도 상처만 깊어갈 뿐 관심이 없다.       안개 속에 눈 뜨는 휴일이면 아이의 손을 잡고 교회 가고 결혼식에 참석하여 행복한 듯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동창회에서 등을 다독이며 다정한 하루를 연출한다.       밤이면 각방 쓴지 5년, 혼자 지옥을 산다. 등 돌린 나무의 유령부부, 섹스리스의 삶이 가랑잎으로 바스라진다. 가끔씩 생활비청구서나 아이들 학원비가 적힌 낙엽 메시지가 소통의 전부다. 아이들 위해 자리만 지킬 뿐, 자정 지나 삐삐삐 현관문 잠금장치 열리는 외계인 소리에 한기를 몰고 오는 술 냄새의 역겨운 솔향 매달린 아이들은 자귀나무 차지인데, 소나무는 승승장구하며 하늘로 뻗어간다.       한 때 정장이 어울렸고, 곧고 푸른 성격이 좋았던 남자 안경 너머 반짝이는 눈과 자귀꽃 미소가 고왔던 여자       단 한 번만이라도 안아달라고 바람 속에 흐느낄 때 남자는 외면했고 휴식이 필요해 집에 돌아왔을 때 여자는 지네발 같은 잎을 펄럭였다.       옆구리에 박힌 쐐기를 자를 순 없다. 한 집의 불편한 동거 커풀룩을 입고 활보하는 연인들이 부러웠다. 잎사귀를 서걱거리며, 가지들 비벼대며 서로를 원망도 했다. 쓸리는 맨살이 아파 소리도 질렀다. 서로 가슴을 후벼 파며 밤새 삐걱대던 가지에서 흐르던 피, 피가 멈추자 딱지가 굳는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투명한 나무가 되었다. [출처] 연리지목|작성자 김기덕   분리수거    노인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병과 깡통과 박스를 고른다.  잡쓰레기들과 불태워지기 전 고철과 플라스틱을 분류한다.  쓸 놈들과 못 쓸 놈들,   몹쓸 놈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어른들은 늘 금을 그었지만  누구나 신상품으로 태어나 속 꽉 찬 시절이 있었다.  철학서와 잡지와 통속 소설들이 함께 꽂힌 서고에서   한 눈에 양서를 읽듯   예리한 눈금을 그어 돈이 되는 놈들만 고른다.  같기도 하고 안 같기도 하고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선과 악  천사이면서 악마인 얼굴을   둘로 나눌 천국과 지옥은 있는 걸까.  현의옹(懸衣翁)이 의령수 가지에 사자의 옷을 내걸고   연옥에선 때 묻고 속 빈 껍데기들도 녹아 알맹이가 된다지.  번뇌를 쫓아 성불한다고  불 속에서 해탈을 기다리는 페트병 스님들,  기의 흐름에 따라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바람 같은 삶의 재생을 위해   빈 깡통이 찌그러진 깡통을 고르고   빈 박스가 물 젖은 박스를 품는다.   뚜껑 열린 병이나 옆구리 터진 봉지들이 토한 내용물들로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장   빈 병들이 빈 병을 알아보는 동병상련의  병과 깡통과 박스들이   껍데기만 남은 노인들을 줍는다.   *의령수: 『시왕경』에 나온 죄의 무게를 제는 나무 [출처] 분리수거|작성자 김기덕   누수     밤새 수도가 샌다. 헛바퀴만 도는 꼭지, 파이프를 타고 흘러온 강의 상류는 눈물샘이 되어 솟구친다. 차가운 물방울들은 지류를 따라 계곡을 흘러가고, 체온이 떨어진 숲에 낙엽이 진다. 통증처럼 이는 바람   부어오르는 십이지장의 벽, 천공 직전까지의 증상에도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장을 거쳐 대장의 배관을 타고 빠져나간 그림자들은 검은 바다를 떠다녔다. 오물과 섞여 부글거리는 물거품들   가스가 새고, 양분들이 빠져나간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입에서 폭언이 쏟아진다. 걸을 때마다 흘리는 요실금, 흐린 기억들을 바지에 지리며 젖어 사는 빗속은 작은 폭우에도 절벽이 무너져 내린다.   구멍 뚫린 방화벽에서 지폐가 쏟아진다. 탱크의 기름은 통에 나뉘어져 어둠 속으로 실려 간다. 썩은 나무 구멍을 두드리는 딱따구리들의 보이스 피싱, 한 순간 가지들이 부러지고   증기자동배출 콕이 고장 난 압력솥은 밥이 되지 않는다. 익기 위해 부글부글 끓이는 속앓이. 적당한 열과 압력을 위해 치밀한 밀봉이 필요해   입을 다물고 괄약근을 조여 아랫배를 끌어당긴다. 운동을 하고, 약을 먹고 눈물을 삼키며 밥을 채워 넣는 내 안의 방수. 팔등신의 미녀들이 활보하는 거리로 나는 고무공처럼 튀어 오른다. [출처] 누수|작성자 김기덕   물 위에 접시   거울 같은 연못이 하늘을 만난다. 연꽃 접시들은 물결에 몸을 싣고 구름으로 떠다닌다. 번개 같은 스침에도 천둥같이 울리는 인연 부딪는 접시들의 소용돌이가 태초의 침묵을 깨뜨리며 우주로 공명한다. 별의 목소리들은 빛이 되고 꽃이 되어 서로를 부른다. 은하수 꿈길을 가는 동그라미들 법당 처마 끝에서 풍경이 운다. 종탑 꼭대기 종소리가 비눗방울로 하늘을 덮는다. 빈 마음으로 만나는 접시들의 청아한 음성, 웅 웅 뼈 속을 울린다. 시간의 물길을 돌고 돌아 티 없이 만나는 접시의 얼굴 눈빛만 마주쳐도 “뗑”하고 가슴에 사무친다. [출처] 물 위에 접시|작성자 김기덕   배말뚝       배가 부른 대리석에 팔뚝만한 쇠사슬이 감겨 녹물을 흘린다. 밀물로 왔다 썰물로 빠져나간 배들 잡지 못한 선착장에서 비바람 휘몰아치던 격정의 밤을 잉태하고 끝과 끝이 만나 다시 돌아오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쇠사슬로 동여매도 물처럼 빠져나가 매어둘 수 있는 것은 바람의 흔적과 끈적거리며 매달리는 비린내뿐이라는 걸 안다. 부침하는 물살과 배반의 폭풍에 밀려온 난파선의 이야기를 뼈에 묻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구름도 보내고 갈매기도 보내고 뿌리로 남아 파도치며 안으로 멍들어 가는 바다를 닮아간다. [출처] 배말뚝|작성자 김기덕   맹수는 우리를 뛰어 넘을 뿐       우리 밥 먹으러 갈까? 우리라는 말이 울타리를 친다. 밥을 먹기보다 우리를 만들기 위해 만나는 우리.       숲에 가면 늑대가 많아 혼자 길을 가면 위험하지. 양들의 무리는 풀을 뜯다가도 해가 지면 서둘러 우리를 찾는다는데. 무리들과 어울려야 풀도 맛있게 뜯을 수 있다는 것을 붐비는 점심시간 혼자서 밥상을 차지해본 사람은 안다. 전쟁터 같은 식당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히 풀과 고기를 뜯기 위해선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가는 길은 당당하고 힘이 넘치지. 자살사이트에선 손잡고 함께 갈 우리를 구했어. 강한 척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던 시간은 우리 속에 있을 때였나 봐. 뿔로 들이받고 싸우던 양들은 우리를 벗어나는 순간 예기치 못할 위험에 몸을 떨었어. 한 평 반의 우리에 갇혀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짐승처럼 나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몸 하나 안온히 받아줄 우리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루이비통을 사고 샤넬을 구한다. 명품으로 약점을 가린 발걸음들은 활기차다. 말뚝을 박고 가로막대를 얹은 끼리끼리의 어깨동무엔 가시철망이 엉켜있다. 명문대를 나온 그녀는 우리에서 내몰리지 않기 위해 밤새워 책을 읽고 논문을 쓴다. 들소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자들을 향해 방어막을 치듯 약자들은 고치를 짓고, 벽을 쌓고, 빌딩을 세우고, 등을 내보인다.       나는 가끔 우리 안에 들지 못한 호랑이를 본다. 강하기 때문에 혼자이고, 혼자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맹수는 우리를 뛰어넘을 뿐, 스스로 갇히지 않는다.   [출처] 우리|작성자 김기덕   슈거파탈   입 맞추기만 해도 솜사탕 여신은 눈물이 된다. 삼킬수록 목마른 생크림 입술 혀끝에 감기는 황홀감에 정신이 혼미하다.   이빨 하나 쯤 정표로 주어도 좋아. 풍선이 부풀고, 바람이 빠져나간 뼈들은 수수깡이 되어간다. 심장이 멈추도록 탐하고 싶은 꽃잎들 잎새를 애무하다 사라지는 한 방울 이슬이고 싶어.   페이스트슈크림이 눈보다 희게 웃는다. 마들렌에 취한 몽환의 눈빛으로 뭉게구름 슈플레가 드레스를 벗는다. 아트아슈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열매들 애플 타르트의 황홀한 감촉에 오, 오르가즘에 오르는 쇼콜라 퐁당   혼을 팔아 펌킨푸딩의 속살을 산다. 미소 속에 감춰진 환각제를 핥는다.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의 육체가 흐느적거린다.   여신은 구름이 되어 사라지고 옷깃을 적시는 백색 필로폰의 눈물 마리화나의 연기에 취해 네펜테스로 굴러 떨어진 몸이 초콜릿 시즙으로 녹는다.   죽음이 참 달다. [출처] 슈거파탈|작성자 김기덕   지구를 지켜라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로봇을 부른다. 지구를 지켜온 로봇 태권브이, 마징가제트, 미래용사 볼트론 눈감으면 태양 저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 이젠 그만 일어나라 내게 외친다. 그 때마다 움츠러든 몸엔 무쇠팔 무쇠주먹이 생기고 캉타우의 철퇴가 들려지곤 했다. 남자가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세상에서 나의 삶을 로봇들이 대신 해왔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고 천둥 속에서, 번개 속에서 저들은 용기를 주었지만 늘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나는 피닉스킹이나 제트건담의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분노를 삼키며 날개를 폈다. 강철얼굴에 맞서 우뢰매에서 킹 라이온으로 메칸더브이로 변신합체하며 맞서왔다.   밀리면 죽을 수밖에 없어 무적의 파워레인저가 되어야 했고 초강력 칼과 로켓을 장착해야 했다. 누구는 하이퍼 다간이 되었고, 누구는 에반게리온이 되었고, 누구는 영혼을 판 라젠카가 되었다.   미래 도시 지구를 지켜온 로봇들 땅을 뚫고 바다를 건너 하늘을 날았던 용사들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부르면 어디서든 발진했다. 포탄이 떨어지고 건물이 쓰러지던 도시 어둠에 맞서 싸우던 나도 한 시대의 트랜스포머였다. 우주 행성을 점령하려는 메카트론을 물리쳐 평화를 지켜온 지구의 용사들   그때 그 로봇들은 늙고 병들었는지 이젠 보이지 않는다. 영이도, 데일리도 더 이상 불러주지 않는 영웅들은 잊힌 캐릭터와 먼지 뒤집어 쓴 장난감이 되어 어느 진열대에서 호명을 기다리는 걸까.   눈물이 날 때 로봇을 불러봐. 그대의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철문이 열리고 무쇠팔, 무쇠다리, 로켓엔진을 타고 창공을 날아오를 거야. [출처] 지구를 지켜라|작성자 김기덕   코골이   물감처럼 어둠이 흘러내린 밤 그의 머리가 땅에 닿는 순간 광풍이 불고 영들이 몰려온다. 도깨비, 달걀귀신, 몽달귀신, 터귀신, 저승사자 콧구멍을 드나들며 굿판을 연다. 들이키는 꽹과리소리, 내뿜는 징소리 밀고 당기며 행차를 나간다. 산 넘고 물 건너 세링게티의 숲, 영역을 지키기 위한 사자의 포효가 울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갈기를 휘날리며 누의 목을 물었고 들소의 숨통을 끊었다. 콸콸 목구멍을 새어나와 초원을 흐르는 강물소리 아래층 여자는 밤새 세탁기를 돌린다고 쫓아올라오고 아무리 빨아도 희어지지 않는 빨랫감들이 목구멍 속에서 물소리와 섞여 돌아간다. 빙글빙글 몸을 돌린 회전의자에서 의사는 늘어진 목젖을 자르자고 한다. 악어 같은 목구멍에 매달린 종 한때는 학교종소리였고 바람결에 풍경소리였다고 여자는 배계를 의심하지만 고혈압 동맥경화가 지속되면서 뼈 속에 바람이 분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엘니뇨와 라니냐는 지역적 태풍과 홍수를 몰고 왔고 몸에선 허리케인과 토네이도가 잦아졌다. 밤마다 바람에 날아간 여자는 거실 소파에 나뒹굴었고, 아이들은 제 각각의 언덕으로 몸을 숨겼다. 송두리째 휘감아 오르는 용오름, 그는 밤마다 승천하는 걸까. 지각변동 하는 밤의 풍차돌리기가 일순 멈춘 무호흡의 폭풍전야 침묵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출처] 코골이|작성자 김기덕   끈 자르기   들판에서 순산한 어머니는 탯줄을 짚으로 묶고 이빨로 끊었단다.   삼신할미 손에 침 발라 정맥과 동맥의 탯줄을 꼬았다. 탯줄 속의 태극이 우주나무로 이어져 하늘과 땅이 하나이다가 홍수가 나고, 암흑의 동굴을 지나 태양이 뜨며 둘로 갈라졌다. 교미하던 뱀들이 잘려 대문에 내걸린 왼 방향 금줄. 하늘에선 옴파로스*가 떨어졌다.   산소 호흡기에 매달리다 아버지는 줄을 자르고 하늘로 갔지만, 바람 속에서 열매들은 안간힘으로 꼭지에 매달렸고, 배꼽이 허전한 나는 복희와 여와도의 그림 같은 DNA 구조에 집착했다.   한 다발의 볏짚을 잡고 새끼줄을 꼰다. 세 개의 줄을 모아 삼승 가닥을 만들고 구승을 만들어 이십칠근승 용줄을 만든다. 용을 잡고 노는 마을 사람들의 줄다리기, 용과의 한 판 씨름이 끝나면 줄을 조각내어 지붕에 얹고 달여 먹으며 아들을 빈다. 용줄이 똬리 튼 당산나무엔 별무리 같은 정자들이 꿈틀거렸다.   나는 아이의 탯줄도장을 꺼낸다. 상아 속에서 오그라든 탯줄을 잡고 백지 위에 도장을 찍는다. 피가 배어난 이름, 암호 같은 배꼽 속엔 내 전생의 미로가 열려 있다.   은하수 자궁 속의 별들은 자라고, 창가에 매달린 거미줄 하나 바람에 흔들린다.      *옴파로스: 창조주가 세계의 중심을 잡기 위해 던졌다는 돌. [출처] 끈 자르기|작성자 김기덕   하이브리드 정원   스피커에서 사물놀이와 재즈가 몸을 섞는다.   순혈의 기둥에 우산살처럼 꽃피운 단일민족 혈통주의 식민지 지리상의 발견 농경사회 오지탐험 게르만 600만 학살, 하늘 가린 검은 파라솔을 접자 태양이 뜨고 구름들은 산을 넘어 빛과 흘레붙는다.   농촌총각과 서양처녀가 사는 전원주택엔 피자군만두에 된장소스스테이크와 라이밀*이 어울렸다.   텃밭에 토감*을 거두고 나면 무추*를 심었지 상추와 깻잎이 한 가지에 피는 세상이 오면 소통이 열릴 거라고.   크로스 오버하는 뜰에 나뭇가지들은 그늘을 만들고, 한 입 베어 문 과일향이 온 몸으로 퍼진다. 열매들로 나를 진단하며, 사랑 없이 사랑하며, 춤으로 노래하며, 숫자로 요리하며, 유행가로 불공하며, 역사를 악보로 연주하며, 철학으로 문학을 색칠하며, 뒤엉킨 가지와 잎들 속에서 라이거의 포효가 들린다.   기름과 전기가 만나 소리 없이 미끄러져 온 시간   할아버지는 유학자였고 할머니는 무당이었다가 기독교인이 되었지.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아침마다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이기도 했지. 제삿날엔 할아버지 따라 축문을 읽었고 일요일엔 교회에서 기도했지. 방학 땐 절에서 공부하며 불공드렸어. 할머니 돌아가신 날 방에선 예배드렸고 대청에선 불공드렸고 마당에선 제사지냈지. 방 마루 마당을 오가며 천당과 극락과 저승이 교미하는 걸 나는 본 걸까?    폭탄주에 컴퓨터와 TV와 오디오가 한 몸으로 춤추며 불러대는 트로트와 니나노의 클래식한 합창 속에서 비빔밥이 버무려져 참기름 향기가 진동한다.   * 라이밀: 쌀과 밀이 교배된 곡식 * 토감: 토마토와 감자가 함께 열리는 식물 * 무추: 무와 배추가 함께 자라는 식물 [출처] 하이브리드 정원|작성자 김기덕     그림자밟기   그림자에 쫓기는 남자가 빛 속을 뛴다. 광속의 추격자를 따돌리고 숨은 곳은 또 다른 그림자   보름달이 뜨면 동네 아이들은 골목에서 그림자밟기를 했다. 술래가 되어 뒤를 쫓던 흑백의 영상들이 컬러풀한 광케이블을 타고 전속력으로 쫓아온다.   벽에 사르트르의 손이 형상을 만든다. 새가 날아오르고, 개가 되어 짖다가 목을 세운 코브라가 사르트르의 손을 문다. 흰 벽에 번지는 검은 피   하나의 태양엔 하나의 그늘이 지고 천의 빛 속엔 천의 얼굴이 흔들린다. 빛의 각에 따라 나무처럼 자라는 색깔들 패션에 쫓긴 알몸들이 거리를 헤매고 헤어스타일에 머리채 잡힌 여인들은 횡단보도를 질질 끌려 다닌다.   구두에 짓밟힌 술래들이 또 다른 술래를 쫓는 그늘의 품에서 콩나물 같던 아이들이 흑백의 이모티콘을 먹으며 거인으로 자란다.   빛이 사라지는 밤 쥐눈처럼 말똥말똥한 별들만 땅에 내려와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출처] 그림자밟기|작성자 김기덕     물의 사진   호숫가에 사람들은 풍경 한 장씩 복사해 간다. 폴라로이드처럼 망막에서 인화되는 물의 필름 속엔 흐느낌의 주파수가 흐른다. 단풍잎들은 수면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을 찍고 백발의 시인은 돋보기 너머로 내둘러 쓴 자서전을 읽는다. 빛바랜 일기장들의 나들이 오늘이 복사되는 호수엔 둥근 거울이 떠있고 머리 푼 낮달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 달을 닮은 사내아이 하나 쯤 거뜬히 낳아줄 것 같던 그녀에게서 덜덜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빛의 칼에 잘린 얼굴이 흐름을 멈춘 미소 끝에 걸려 말려 올라가지 못한다. 반 쯤 새겨진 이름들은 백지 같은 밤을 까맣게 지새워야 하리라. 짝퉁들이 여류화가의 캔버스 위에서 옷을 벗는다. 발목이 빠지는 껍질들의 숲 물의 렌즈를 연 호숫가에서 나무들은 바람을 낳고 수면은 파랗게 멍든 허물을 벗는다. [출처] 물의 사진|작성자 김기덕   번지 점프                            김 기 덕   추락하는 몸엔 끈이 있다. 심연에 떨어졌다가도 솟구치는 용수철의 힘 부도 맞은 아버지와 낙엽 사이엔 상대성 끈이론이 작용한다.   버티던 줄을 놓아버린 여자는 아파트 옥상에서 화단으로 떨어졌고 화살들은 돌아올 수 없는 숲으로 날아갔다.   놓아버림과 매달림 사이에서 열매들은 방황한다.   성년의 통과의례처럼 추락하는 하루의 절벽, 꽃잎들도 비명을 지른다.   줄을 매는 하늘과 줄을 푸는 땅 사이에 비처럼 금을 긋는 유성들 별들은 날기 위해 벽을 넘어 사다리를 오른다.   먹이를 움켜쥐려 급 하강하는 독수리 낚시에 꿰어 요동하는 물고기 끈에 매달려 붕붕 울고 있는 요요   팽팽히 나를 잡은 끈들의 매듭은 굳게 손가락을 걸고 있다.   탯줄의 숨소리 흐르는 양수의 강물로 낙하하는 씨앗들 끈이 풀린다. [출처] 번지점프|작성자 김기덕     열림에 대해                              김 기 덕   꼭지가 비틀린 열매들의 웃음이 터진다. 엔진이 켜진 자동차는 부르르 몸을 떨고 등뼈에 꼬리만 남아 금은방 화석이 된 황금열쇠 수만 년 바위 문을 연 월척의 뼈대는 눈부시다. 해를 향해 채널을 고정한 텔레비전 집들의 안개 드라마에 나무들도 눈물샘을 열고 할머니 허리춤 같은 배, 치맛자락 흘러내리는 파도를 타고 아가미가 꿰인 생선들은 열쇠꾸러미처럼 흔들리며 온다. 잠을 퍼내는 바람의 손짓에 공명하는 휘파람소리 빈 항아리 속을 넘나들고 꽃밭을 나는 흰나비들 은색 실핀을 꽂는 능숙한 솜씨에 꽃들의 방이 털리는 아침 숫자들의 젖꽃판을 누르면 열리는 비밀의 문들 땅에서 가슴에서 우주로 길이 통한다.  [출처] 열림에 대해|작성자 김기덕   달력의 힘   화, 수, 목, 금, 토, 은하수 징검다리를 해와 달이 놓는다.  빛의 발자국마다 열리는 신비한 숫자들       번호 속엔 사계의 바람이 불고  눈과 비의 생애와, 풀과 꽃과 나무의 이력이 담겨있다.       그 중에 나를 닮은 숫자판를 열자  호랑이, 돼지, 소, 쥐가 그려진 한 아이의 출생지도가 드러난다.  손금 같은 길, 하지만 가야 할 능선은 백지 같은 안개로 가려져 있다.     호기심으로 나는 비밀의 방 2012를 들여다본다.  끊어진 마야의 달력, 지축이 기울어진 땅에선 지진과 해일이 일고  활화산의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달력이 필요해.  숫자마다 시간을 엮는 재생의 뿌리들이 빼곡히 들어찬, 완전한 달력이.  나는 하나 둘 믿음의 숫자를 써내려갔고, 일일이 의미를 새기며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3을 열자 들판엔 꽃들이 피어났고, 7을 펼치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떠났고  9를 뜯어내자 숲속엔 낙엽이 휘날렸고, 12를 벽에 걸자 거리마다 함박눈이 내렸다.  해와 달의 번호판을 누르는 밀물과 썰물   달력의 숫자들이 만드는 회오리에 세상 빛들이 춤추고  밤과 낮의 채널이 바뀐다. [출처] 달력의 힘|작성자 김기덕   빛                      김 기 덕   베드로가 십자가에 매달려 등불을 켠다. 성냥불꽃 만큼 검은 문틈으로 밝은 세상이 비친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별처럼 지나는 표정들이 깜박인다. 연탄이나 장작의 체온이 그리운 길거리마다 내걸린 아크릴 이름들 영토를 지키기 위해 밤새 피를 흘린다.   이 밤을 견딜 만큼 나는 반딧불만한 빛이라도 있는가. 빛인 척 반짝이며 스테인리스와 유리들이 웃는다.   화살과 총탄과 질주의 무리들은 불꽃으로 박히기 위해 휘파람소리를 낸다. 광야에 외치는 소리 유성들은 밤새도록 머리 위로 성수를 뿌린다.   유리벽에 반사된 얼굴들이 야경 속에 파편처럼 흩어지고 흐물흐물 달의 살이 묻어난 골목길로 은 삼십을 받은 유다가 질질 어둠을 끌고온다.   태양이 오기까지 가로등에선 뚝뚝 목련 꽃잎이 떨어져 길에 쌓일거야. 하루살이들의 밤 가시관을 쓴 예수가 동녘의 구름을 쓸어낸다. [출처] 빛|작성자 김기덕   레드 와인                     김 기 덕   코르크를 뽑자 4백 년 전의 바람이 인다. 뚜껑이 열린 알라딘의 램프  햇빛 출렁이는 포도밭과 포도송이들 광장과 깃발과 군중들의 압축파일이 풀려 나온다. 오크통 속으로 쏟아진 눈알들 발굽에 짓밟혀 어둠에서 피 흘리던 얼굴들과 인두 같은 입을 맞춘다. 혀끝에서 감전되어 전신을 마비시키는 뇌향 굽고 뒤틀린 가지에 매달렸던 벙어리들이 두 손으로 바쳐 든 고풍의 병 속에서 나와 자유를 외친다. 시간의 눈금을 긋고 강물로 기다린 오늘 칼이 울리는 축배의 종소리에 나는 천상의 불을 훔친다. 유리창에 달라붙는 단풍의 입술 속에서 불의 언어들이 쏟아진다.  루주가 묻어난 하늘 비틀거리며 루이 13세는 노을 속으로 떠나고 깃발과 함성과 징소리의 불길로 번진다. [출처] 레드 와인|작성자 김기덕   피자                                김 기 덕     돌풍에 금이 간 여자는 도우 위에 페파로니, 양파, 토마토, 올리브, 치즈를 얹고 날마다 오븐에 태양을 구웠다. 고구마피자, 포테이토피자, 치즈‧불고기피자, 구울수록 피자들은 유리처럼 조각이 났다. 아이들은 초승달 하나씩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며 보름달을 꿈꿨다. 곰팡이 핀 지하실에 해가 뜨고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자 아이들은 방 하나씩 차지했지만, 여자는 소스냄새를 풍기며 거실 소파에 피클처럼 쓰러져 쪽잠을 잤다. 아버지 생각이 나면 아이들은 조각난 그림 속의 숫자를 맞추며 치즈의 나른함 속에 녹아든 피망이나 버섯을 스케치북에 그렸다. 고무줄처럼 늘어난 얼굴이 몇 가닥의 기억을 붙들고 끈적끈적 매달렸다. 볼우물이 수줍던 아이들은 개나리가 피자 반쪽을 찾아 집을 떠났고, 여자는 그림처럼 남아 미완의 퍼즐을 맞췄다. 보름달이 부풀고 수반에 꽃들이 차오르면 외출을 꿈 꿀 거야. 들판 가득 돌아온 계절과 빗방울 커지는 동그라미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오븐 속의 피자가 익어갔다. [출처] 피자|작성자 김기덕   임플란트   방풍림을 흔들며 치통처럼 바람이 불었다.   피고름이 고인 갯벌은 훅훅 입 냄새 풍기며 달려온 태풍에   아랫도리부터 허물어 졌어  파도에 물어뜯긴 모래언덕, 할아버지 수염처럼 늘어진   뿌리들은 허공을 향해 촉수를 흔들었지     쓰레기 매립지를 파고 박은 철 빔들   지반이 약한 탓에 건축 전문가는 조립식 건물을 권했지만   내겐 어떤 태풍도 견딜 반영구적 빌딩이 필요했지   꽃 같은 웃음을 보여주던 마른 대궁들을 뽑고  들뜬 땅을 다진 후 콘크리트 하여 세운 든든한 믿음의 뼈    아버지는 날마다 성현의 말씀 뼈마디에 새겨 곱씹으며 살라 했는데   고기토의 집, 상앗빛 말씀들을 갈고 닦지 못했다.  입에선 악취의 언어들이 쏟아지고   한 순간, 마른 풀잎들은 바람에 흩날리다 떨어졌지   뼈 속에 뼈를 심고서야 말씀의 뿌리들이 가슴에 사무친다  몸에 심겨진 206개의 뼈들이 다 진리였구나.     마을 입구 옹벽이 새 단장을 했다.   폐차들이 녹슬고   빗물과 함께 토사가 넘쳐나던 담벼락,   허물어진 골과 틈을 채워 성형을 했다.   꿈을 디자인한 타일들의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옹벽이 웃는다.   초특급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을 옹벽의 신념들  동네가 훤하다. [출처] 임플란트|작성자 김기덕   포토샵                                          김 기 덕     점과 주름을 문지르자 별들이 돋아난다. 칼이 지나는 자리마다 피어나는 꽃들, 다이어트 되지 않는 부위들을 자르고 지우며 바비인형들이 태어나는 상자 속에서 유체 이탈한 나를 수정한다.    명품 옷과 구두를 다운받고 다크서클을 가린 선글라스와 시간이 멈춘 다이아몬드 시계, 드라이플라워의 가슴장식, 흑백의 과거 위에 컬러페인트를 부어 구름이 사라지면 나는 새로운 아바타, 신의 합성품이 되지.     그녀는 잘나가는 탤런트의 눈을 오려왔다지. 다음엔 펄펄 끓는 심장을 잘라온댔어. 구름을 만들어 온 뱃살과 처진 엉덩이를 도려내고 이참에 신세대 몸매로 바꿔치기하면 누군가의 메모리에 저장되어 두고두고 컬러풀한 내일을 복사할 수 있을까.     세상은 불붙이면 타버릴 듯 메마른 나무들이 서있다. 동공 속에 별을 그려 넣으며 뼈를 추켜세워도 흐물흐물 무너져 검게 떨어지는 잎사귀들, 내장들. 죽고서야 전송되는 완성품을 위해 바람은 혼을 불러오고, 하나 둘 익숙했던 이름들이 오려진다.     셀 수 없는 클릭으로 계곡의 그늘과 상흔을 다 지운다 해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의 기억들, 별을 담은 요술 상자 속에서 태어나는 피그말리온의 조각품, 낮선 모습이 우주 밖으로 나를 전송한다.     새롭게 인화되고 싶어. [출처] 포토샵|작성자 김기덕   그물                                 한 달 만에 그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로 발견되었다. 지하실 벽 옷걸이에 나일론 줄로 매여진 몸을 음습한 기운과 악취의 유령들만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줄을 타고 오르던 피라미드 빙벽, 올이 풀리자 믿었던 구석부터 무너지며 순식간에 추락했다. 안전망 하나 없는 절벽 아래 뒹굴다가 정착한 낙엽의 영토, 지하 무덤은 해가 뜨지 않았다. 익명의 무기를 든 악풀러의 베풀과 유러들의 승패가 갈리는 장에서 만랩이 되고 싶었다. 새들의 포위망은 좁혀졌고, 아바타는 코드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갔다.     로그아웃.  몰리면 고스톱 판을 뒤엎듯 피시를 끄는 거야. 가상공간에서 심장이 깜박인다.     피라미드가 길거리마다 세워지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생매장 되었다. 사촌에 팔촌까지 끌어들여 꼰 실로 숨구멍 없는 집을 지었다. 누에는 집을 나오지 못하고 끝내 질식했다. 도미노로 무너진 건물들의 틈을 비집고 나온 끈끈이들이 놀라 뛰쳐나온 사람들의 목을 졸랐다. 거리엔 통나무 나동그라지는 소리와 함께 태풍이 몰려 왔다. 하늘이 없어 날지 못한 스파이더맨은 손바닥의 거미줄을 제 목에 감고 몸을 날렸다.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진 몸, 벽에 달라붙어 단잠에 빠졌다. [출처] 그물|작성자 김기덕   방                       김 기 덕   책과 가구들은 문 밖으로 쫓겨났다. 액자가 떼어지자 얼굴 속에 얼룩이 선명히 드러났다. 전신거울의 뒷면에 살던 바퀴들과 빗물이 스며든 벽에 핀 검은 곰팡이들, 눈송이처럼 침대 밑을 굴러다니던 먼지를 치우고 칼로 반듯반듯 재단하는 봄 풀냄새 흠뻑 묻어나도록 풀질했다. 꼿꼿이 일어선 풀잎, 벽과 천장엔 꽃잎이 번지고 새들은 날아와 눈빛으로 노래했다. 작은 발소리에도 우우 공명하는 푸른 우주, 벌판엔 겨우내 살아남은 새싹들이 채워지고 하늘엔 강한 날개의 철새들이 날아다녔다. 에덴을 위해 빛바래고 상처 난 영혼들은 길거리에 버려져야 했다. 주인의 취향을 따라잡지 못한 아날로그TV와 성해 낀 냉장고, 지겹게 누러 붙던 밥솥도 고물상에 넘겨졌다. 아끼던 책들과 흠이 적은 장롱만 제자리를 찾았을 뿐, 최신형 벽걸이형TV나 노트북이 빈자리를 차지했다. 낡은 책상들이 빠져나가고 명패가 바뀌며 활기가 도는 환절기 어둠의 문을 열고 샤워를 하면 이빨 부딪는 물소리에 바이러스들이 지워지며 낮선 바다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출처] 방|작성자 김기덕   데칼코마니                         김 기 덕   아이가 종이 위에 물감을 짠다. 빛바랜 나의  도화지는 천장에 떠있고 아이의 도화지는 백지로 깔려있다. 적‧청‧황‧흑의 물감들이 꿈틀거리는 애벌레 같다고 아이가 깔깔거리며 동‧남의 끝을 잡고 북‧서의 경계를 맞대 반으로 접어 꾹꾹 눌렀다 편다.   대칭을 이룬 뇌 속엔 산과 강이 흐르고 땅과 바다가 하나로 합쳐져 아이의 꿈지도가 펼쳐졌다. 입을 맞추는 남녀의 얼굴, 엄마의 품속에서 나팔꽃 길을 타고 온 나비 한 마리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른다. 반평생 그려온 나의 산과 달과 구름들은 물그림자로 뜨고 너는 꽃과 나무와 열매의 중심에 내려앉는다.   시간의 모래알로 부서지는 물감들, 묵묵히 걸어 온 낙타의 발자국들도 모래바람에 지워지며 박제된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쉴 새 없이 꽃과 벌들은 만났다 헤어지고 날마다 접혔다 펴지며 풀어놓는 밤과 낮의 씨앗들이 아이 눈망울 같은 빛을 향해 날아오른다. 땅과 하늘 빼곡히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가는 점돌,알락, 팔랑 문양들   물감들이 눌리며 분출했던 화산을 접어 하늘에 날리자 소리는 사라지고 소용돌이만 허공을 맴돌다가 아이의 동공 속으로 사라진다. 오목렌즈 같은 호수엔 용암들이 잠기고,  풀과 꽃과 나무와 접속하던 나비 한 마리 훌쩍 내 어깨에 매달린다. [출처] 데칼코마니|작성자 김기덕   초점                                밤을 입은 드레스의 여인이 흑인 이빨 같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번개의 손놀림에 한 템포가 늦는 천둥소리. 수천의 눈과 귀의 빔이 쏘아진 피아노에서 소녀의 음계들이 타오른다. 도레미파 솔 솔 솔    어깨동무한 산과 섬들이 바다의 일출을 기다린다. 양수를 터트리고 나올 햇덩이, 수평선을 향해 숨을 멈춘다. 카운트 다운하는 폭발점. 용광로의 쇳물이 끓는다. 핏물이 번지며 솟는 새벽, 펄 펄 펄    이파리들 휘날리는 골목을 향해 눈뜨는 집들. 원무를 추는 수·금·지․화·목·토·천·해. 태양을 향해 돌고, 태양은 우주를 향해 돈다. 하늘 향해 모은 눈빛들이 반짝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시선이 머문 종이에 불이 붙는다. 눈빛만 닿아도 연기가 풀풀 날리는 빛의 응집. 그녀의 총에 맞아 쾡 하니 구멍 난 표적지의 그을린 탄착점에서 화약 냄새가 피어오른다. 아지랑이 몽롱한 나의 눈동자     구멍을 들여다본다. 홍채 속의 동공이 반짝인다. 암실에 떠오르는 별. 구멍들은 블랙홀이 되고 나는 머리부터 빨려들어 간다. [출처] 초점|작성자 김기덕   얼음 날개                     김 기 덕   수은주가 곤두박질치자 지퍼가 열린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갈가리 찢겨진 비닐하우스 난도당한 화초의 속살마다 피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고 추락한 날개의 깃털들은 팝콘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볼을 부비며 구름 풍선을 타고 오른 물방울들 결빙선을 따라 눈물이 되고 얼음이 되어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관절들은 얼음과자처럼 쉽게 부러져 덜그럭거렸고 단절된 혈관의 마른 잎들은 기침 소리를 내며 얼음 나라로 굴러갔다. 15층 옥상에서 투신한 여학생의 차디찬 몸이 떨어진 곳은 왜 하필 국화꽃 만발했던 화단이었는지 길엔 꿀을 잃은 벌들이 떨어져 눕고 바다엔 엔진이 다한 비행기가 불꽃으로 산화했는지 차가운 눈망울로 쏟아진 빙점의 쓰라린 상처를 박하사탕처럼 밤은 오래오래 녹여 먹는다. 얼음유성들이 긴 꼬리를 끌며 매달리는 어둠 속에서 꽃향기의 마지막 기억을 품고 마른 대궁들이 쓰러진다. 추락하는 별의 얼음 날개 사선을 긋는 찰나의 빛들이 섬뜩 살을 벤다. [출처] 얼음 날개|작성자 김기덕   화장   주름을 지우고 눈썹을 그린다. 어둠이 내려앉은 다크써클, 분화구를 메운 대지엔 베이지 톤의 양광이 눈뜬다. 대리석으로 만져지는 표피의 한기, 찢겨진 상처 위에 파우더를 바르고 순간의 충격 속에서 하늘을 꿈 꾼 푸른 멍울에 무지개를 그린다. 잠의 수렁에 빠진 백설 공주의 핏물 든 독 사과가 검다. 한껏 폼을 잡으며 미소 짓던 순간의 사진들만 낙엽처럼 불길 속에 흩어진다. 구름을 지우는 하늘, 햇살 고운 색조화장에 과실마다 노을이 물들고 산들은 그림자를 지운 머리칼로 이마를 덮는다. 가재미눈을 감추는 아이 샤도우, 치켜 올라간 입 꼬리를 지우는 빨강 루주, 밤새 눈이 온다 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땅의 낮선 얼굴들, 거울은 늘 빛이 비치는 한 면만 보여주곤 했다. 파운데이션을 덧칠한 여인의 팬터마임은 끝났다. 어둠의 문을 열면 극명히 드러날 하늘과 땅, 마지막 화장을 고친 여인은 춤추는 불꽃과 함께 한 줌 바람의 잡티로 지워진다. 하늘엔 재가 날리고 관객들은 연기처럼 흩어져 간다. 덕지덕지 간판으로 덧칠한 빌딩들도 하나둘 옷을 벗는다. [출처] 화장|작성자 김기덕   그대 안의 블랙홀                      창밖에 비가 내리면 나는 LP레코드를 튼다. 먼지 앉은 뚜껑을 열고 잊힌 얼굴 같은 판을 얹으면 그대 좋아하던 음악들이 바늘을 타고 떨리는 손길로 전해진다.   어둑한 방의 격자무늬 하늘엔 눈물방울 별들만 떨어진다. 핵융합이 끝난 별들은 급격한 중력현상으로 블랙홀이 되고 LP판의 검은 음악 속으로  분열되어 빨려드는 나의 우울증, 쳇바퀴 도는 구멍 속을 빠져나올 순 없는가.   목을 조이는 거미줄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밤마다 바다를 헤엄쳤다. 아웃토반을 달려도 여전히 제자리인 집과 얼굴들, 벽에 걸린 음화들이 잠깐 느슨한 감각에 탄력을 주었지만, 이내 절망의 구멍에 빠졌다. 천억 개의 은하계 중 지구별이 속한 은하계엔 천억 개의 별들이 반짝이고, 수백만 개의 블랙홀은 빛을 삼키며 남자들을 빨아들인다. 촉수를 흔드는 검은 실루엣의 Event Horizon 거리를 활보하는 블랙홀들은 가슴에 늙은 느티나무 옹이 하나씩 퀭하니 뚫려 있다.   초신성중력으로 다가온 블랙 아이라인 그대 눈동자는 언제쯤 비를 멈출는지. 나이테로 흐르는 삶의 궤적이 다하기까지 지글지글 흐르는 빗소리 LP레코드판이 비를 다 삼키고 나면 우린 상처를 잊고 다시 태양으로 뜰까? 그대 안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든 빛들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하늘엔 어머니의 양수가 은하수로 흐르는데. [출처] 그대 안의 블랙홀|작성자 김기덕   벽은 너머를 감추고 있다                        김 기 덕   가시철망을 두른 무기고의 담을 담쟁이덩굴이 페인트자국을 더듬어 오른다. 담들은 너머를 감추려하기에 볼 수가 없어 넘어가고픈 너머, 콘크리트 암벽의 옆구리에 철심을 박으며 녹슬지 않는 긴장을 찾아 벽을 넘는다. 우리가 꿈꾸는 너머엔 풀과 나무와 새들이 어우러져 노래하며 집을 짓지만, 언제나 뛰어넘는 너머엔 절벽과 웅덩이와 운무들로 가득했다. 톱니바퀴를 타고 오르는 시간의 벽이 보여주지 않는 너머로 사람들은 손을 모은다. 수억 광년을 뚫고 온 별빛이 아름다운 거라고 무르팍이 깨져 달려 온 파도가 푸른 거라고 네 안의 너머를 갖지 못해 시들지 못하는 담쟁이 촉수를 깨워 젖꼭지 같은 뇌관을 더듬는다. [출처] 벽은 너머를 감추고 있다|작성자 김기덕   아직 한여름이다   장마전선이 몰려온다. 기단의 지루한 대치에 뱃속은 하루 종일 부글거리고 뼈마디에 천둥이 인다.   검은 양복들이 난무하던 길거리 번개 사건이 인터넷 톱기사로 뜨기도 했지만 국지성 호우가 멈춘 거리엔 언제 그랬냐는 듯 건물들이 젖은 몸을 말린다.   먹구름이 가득했던 집안에는 아버지 대신 상복들이 밀려다녔고 장례식장으로 날벼락 같은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끼니때마다 들려오던 구름 부딪히는 소리 아내와의 말다툼도 하나로 섞이는 비의 화음인데 꽃이 떠난 뒤 우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구름이 날리는 하늘, 닦을수록 창이 흐려지는 오늘 하루도 일조량이 부족했다. 골목마다 곰팡이가 피고 지각 변동을 꿈꾸는 판들의 지진과 해일,   내 안의 용들이 한바탕 휘감고 장대비를 퍼 붓고 나면 왁자지껄 시장바닥처럼 풀들이 일어서겠지 검은 발자국 소리에 광장에는 한낮에도 해가 저문다. [출처] 아직 한여름이다|작성자 김기덕     거세에 대하여   파일을 지우자 또 다른 악성파일들이 떴고 휴지통엔 무의식의 상처들이 넘쳐흘렀다.   수퇘지들이 피 흘리며 비틀거리던 80년대 여름엔 예비군들은 훈련장 귀퉁이에서 유행처럼 정관수술을 했다.     성폭력 기사가 모니터를 능욕하면서 한 달 분의 욕망을 제거하는 주사가 짐승들에게 놓아졌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고 내시들은 궁형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베어도 베어지지 않는 잡초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내장의 분비물을 밀어내는 관장약 농글리세린 신진들도 조직을 치고 올라 보스를 흔들어 댔다. 사람들은 과일 속의 씨를 잘라내지만, 늘 제거된 것은 과육이었기에 도시는 스캔들로 들썩였고, 돼지고기는 노린내를 풍기며 몸엔 악성종양이 꽃을 피웠다.   땅을 파고 묻은 반코마이신 항생제, 비에 섞여 옴 몸으로 퍼진 후 나무들도 뿌리 뻗어 흙을 움켜잡았다. 자동제거 되는 바이러스파일들, 꿈의 조각모음이 시작됐지만, 서로의 방호벽은 높아만 갔다.   [출처] 거세에 대하여|작성자 김기덕   하이힐                 김 기 덕   나는 가끔씩 여자의 하이힐을 신는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몸을 숙인 자태에 발을 밀어 넣으면 G-스폿이 만져질 듯하다 무릎 나온 추리닝에 슬리퍼를 끌다가 문득 빈 자루 같은 몸을 추슬러 세운다 못을 박으며 못이 박히며 벼랑 위에 선 생고무 같은 엉덩이들 허리를 곧추세우고 아랫배를 끌어당기며 괄약근을 조여 자루들의 끈을 묶으면 감각은 깎아지른 언덕에서 하이힐을 신는다 발기한 근육의 종아리 날선 유리의 균형 감각이 발바닥을 찌른다 발레슈즈를 신은 백조들의 비상으로 정상의 바위 끝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장난감 나라일 뿐이다 하이힐을 신은 나는 나무처럼 자라고 하이힐을 벗은 여자의 종아리는 물먹은 스펀지가 된다 몸의 감각에 불을 댕기는 하이힐은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있는 고원으로 나를 실어간다 아슬아슬 줄을 타고 못을 뽑으며 못이 뽑히며 직선의 첨단을 또각또각 걸어가는 정점엔 유리처럼 투명한 빙벽의 추락이 보인다 [출처] 하이힐|작성자 김기덕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낡아 보인다                        언어들은 대장간의 칼로 녹슬어 있다. 태양이 시간을 돌리는지 시간이 태양을 돌리는지 궁금하지 않은 나의 삶이 식상하다. 달의 짜여진 공식처럼 세상엔 그녀의 달거리와 한통속 아닌 것이 없다. 지구가 기울어져 한 쪽으로 도는 것과 나의 메시지가 물처럼 아래로만 가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바람 따라 구름 흐르고, 그녀 따라 내 마음 흐르는 물리학의 법칙엔 예외가 없다. 먹고 마시는 몸의 기계적 활동은 건망증의 뇌가 지시하기 전 내장들이 먼저 아우성쳤기 때문이리라. 주기적인 사랑에 길들여지고 빡빡한 일정표가 나의 삶을 제 맘대로 살고 장기들은 때마다 지급되는 양분에 군말이 없다. 날마다 신문을 읽고 뉴스를 들으며 중독되는 생각들 부활과 윤회의 소식이 또 다른 반복일 뿐, 새 것이 되지 못한 지 오래다. 쏟아진 우유가 다시 컵에 담기지 않는 고뇌하는 중년이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화살에 집 나간 나의 언어들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태양이 뜨듯 사랑한다는 메시지의 처절한 진동 집요한 울림이 아침마다 그녀 몸에 녹슨 못을 박는다. [출처]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낡아 보인다|작성자 김기덕   이성의 초원                            삶은 이성의 뼈대 위에 세워져 있다. 반듯한 합리성에 윤리의 기둥을 세워 지은 사고의 집 속은 드라이플라워의 장식처럼 메말라 있다. 인류의 구원을 꿈꿨던 20세기 이성의 칼날엔 피가 묻어 있고, 사고의 벽돌로 쌓은 바벨탑은 더 이상 새 하늘을 보여 줄 수 없게 되었다.   사막의 삶에 영감은 생명력을 부여해 왔다. 이성이 지배해 온 것 같은 세상을 실은 영감이 지배해 왔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 베토벤의 운명 속에서, 도공이 빚은 청자 속에서, 죽음을 초월한 선지사도들의 삶 속에서 영감이 충만한 기운을 느낀다. 초월적 세계의 신성한 불을 만진다.   영감이 없는 이성의 세계는 향기가 없는 꽃과 같다. 영혼이 사라진 육체와 같으며, 반복된 작업의 복사물이다. 반면 이성이 없는 영감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과 같다. 몽환이고 환상이며, 숲에 떨어진 나비의 허물이다. 영감만 있는 자는 정신분열자요, 귀신들린 자에 불과할 것이다.   이성의 초원 위에 영적 기운이 서릴 때 우린 새벽을 볼 수 있다. 이성만 있는 십자가는 심판의 형틀이었지만, 신령한 영적 능력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이성의 기름 위에 이글거리는 꿈의 열정, 성령의 불로 타오를 때 삶은 세상을 비추며 밝게 빛날 수 있으리라. [출처] 이성과 광기|작성자 김기덕   나는 타오르고 있다                              김 기 덕              나는 굴뚝을 보고 자랐다. 산꼭대기에 우뚝 선 굴뚝은 바지랑대처럼 하늘을 떠받쳤고, 심호흡으로 내뿜어진 연기들은 용을 만들고 새를 만들며 구름이 되었다. 방에 누워서도 산타가 굴뚝을 타고 온다는 말을 실감하곤 했지만, 쉴 새 없이 오르는 연기에 내 하늘 한 자락은 늘 검게 흐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골초였다. 집안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날에 식구들은 기침을 쿨룩거리며 쫓겨났다. 담배연기가 방안에 찰수록 집안은 어두워져갔고 구겨진 아버지의 미간에선 가끔씩 담을 헐어버릴 듯 천둥이 쳤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검은 눈물을 흘렸고, 하나 둘 자란 형제들은 구름으로 집을 떠났다.   15년 된 나의 아반테 고물 자동차는 아직 쌩쌩하다. 길거리에 매연을 내뿜으며 큰소리치는 그의 입에서 나온 침과 독설들이 거리를 더럽히고, 하늘과 내 가슴에 구멍을 뚫는다. 덜덜거리는 내 가슴 한 쪽은 늘 허전하다. 금과 은을 제련하듯 속도를 제련하는 연기들, 그 속도에 실려 나는 가끔 바람이 되었다.   내 몸의 세포들이 날마다 양분을 태워 구멍으로 내보낸다. 내 몸의 구멍마다 연기가 피어났고, 염분과 소량의 미네랄들은 산성비가 되었다. 힘든 노동의 대가가 불러온 사막화로 희미한 미소와 창백한 육질 속엔 중금속이 쌓여갔다. 태울수록 늘어나는 주름과 어두운 그림자, 잡티 같은 욕망들은 고스란히 앙갚음으로 땅에 떨어졌다.   고혈압으로 대동맥이 파열한 친구를 화장했다. 갑자기 그의 몸에서 생긴 굴뚝에선 붉은 연기가 뿜어졌고, 너무 빨리 태워버린 젊음은 45년 3개월의 불꽃을 남기고 재가 되었다. 화장장의 굴뚝에선 또 다른 굴뚝들을 태웠고, 굴뚝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랐다. 굴뚝으로 와서 굴뚝으로 사라지기까지, 나는 한창 타오르고 있다. [출처] 나는 타오르고 있다|작성자 김기덕     퍼즐놀이                      김 기 덕   모자이크에 누워 모자이크 속에 빠진다. 타일조각 흩어진 기억들을 모아 완성된 돌고래 위에서 내가 조립된다. 아이와 맞추던 로봇 태권V 퍼즐은 이 빠진 한 조각에서 균열이 시작되다가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곤 했다. 그물망 같은 재건축 단지에 살면서도 사소한 이유로 금이 가는 이웃들, 얼굴 본 지 오래인 내 인맥들은 견고할까. 조각조각 희망을 끼워넣으며 가족들은 제 몸에 맞는 무늬를 고르지만 목소리 큰 아내 곁에서 무능한 남편은 늘 모자이크 처리된다. 땅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세력을 맞추고 하늘엔 완성된 은하의 별들이 총총히 채워지는데 빈 구석이 많아 나는 평생 성경 속의 구절들을 꿰맞춰왔다. 예수와 붓다와 공자와 소크라테스, 하지만 미완인 나의 퍼즐엔 아버지가 없다. 찢겨진 불경들이 빠져나간 빈자리에서 실금이 간다. 촘촘히 짜인 밑그림들은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된다고 이를 악문다. 아슬아슬한 나의 해부도 모자이크의 법칙을 벗어난 돌고래는 이미 죽어있고 그림들은 시간 밖으로 줄줄이 풀려난다.  [출처] 퍼즐놀이|작성자 김기덕     입술의 상징                                   김 기 덕(공도)       우리 몸에서 입술처럼 특별한 곳도 없을 것이다. 피부로 덮인 몸 전체에서 입술만이 속살이 돌출되어 생긴 곳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심장의 돌출부’라고 표현했다. 두근두근 가슴 뛰듯 입술엔 심장의 기운이 살아있다. 입을 맞추면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입술은 몸의 문이다. 몸은 세상이요, 음식물은 세상만물이다. 세상에 오는 것들은 형상을 입고 오지만, 나가는 것들은 영혼의 언어들이다. 우리도 하나의 육체를 입고 세상에 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화이다. 자신을 부수고 갈아 사랑의 양분이 될 때 다시 말씀의 모양으로 하늘문에 다다를 수 있다.   입술엔 태양이 떠있다. 희망의 아침과, 절망의 저녁이 맞물려 있다. 삶은 이 두 입술을 벌려 백옥같이 미소 짓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의 휘파람이며 만남과 이별의 사랑노래이다. 입술을 꼭 깨물고 생각에 잠겨보라. 순간 가슴 속에서 정열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입술은 독주고, 꽃뱀이고, 네펜테스이면서 동시에 꽃잎이고, 심장이고, 불이다. 가롯 유다의 입술엔 죽음이 담겨 있었고, 옥합을 깬 마리아의 입술엔 부활이 담겨 있었다. 찬송과 기도와 절제가 있는 입술, 그 아름다운 집에서 말씀인 하나님이 사신다. [출처] 입술의 상징|작성자 김기덕   마블링                            김 기 덕   거리엔 섞이지 못한 피들이 둥둥 떠다녔다. 기름들은 스크럼을 짰고 띠를 형성하고 질주한 길거리마다 붉은 꽃이 피어났다. 연약한 풀뿌리들의 봄 혁명, 하늘을 복사하는 양동이 물 위로 안개 낀 골목을 비추는 거울과 같이 떠다니는 고뇌들 도로마다 넘쳐나는 물감들로 메커니즘의 반항아들은 시내로 잠식하며 흘러들었다. 세상을 휘젓는 막대기 같은 바람과 함께 격동하는 젊음의 무늬들은 피로 엉기어 갔다. 아침을 기다리며 샘물같이 살아온 이파리들도   물 아닌 삶을 밀어냈다. 검은 영혼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밀려다니는 바다 흰옷의 달빛이 머릴 풀고 혼을 건진다. 차마 떠나지 못해 끈적이며 매달리는 붉고 푸른 영혼들 시즙은 수의에 한을 그린다. 백지 위로 나타난 넋의 기하학적 무늬 응결된 정신의 문양은 물결로 요동치고 있었다. 살아 있어 처절한 혼의 불꽃을 태우며 한 겹 한 겹 벗겨진 물의 껍질들이 꿈틀꿈틀 생살을 파고들어 새기는 문신 울컥, 치밀어 오른 각혈이 무지개로 흘러내린다. [출처] 마블링|작성자 김기덕   몸에 그린 동그라미 ​ 은행잎 카시미론 이불에서 연인들이 입을 맞춘다. 엄마는 아이를 손짓하고 아이는 발목까지 빠지는 노랑물감 속을 뒤뚱거리며 걷는다. 가을을 붓질하는 은행나무 옆에서 내 한쪽 가슴이 물든다. ​ ䷭ 지풍승地風升, 바람이 땅 위로 자라서 올라간다. ​ 징코민 한 알이 몸속에 바람을 풀어놓는다. 으슬으슬 몸살이 날 것 같다. 차단된 벽속에서 그리움 탓인지 잎들의 떨림소리가 들린다. 나를 압축캡슐로 너에게 보낼 수 있다면 너의 혈관을 뚫어줄 수 있을까? ䷑ 산풍고山風蠱, 산 아래 바람이 부니 일이 생긴다. 황금이 쌓인 은행들, 현금지급기 앞에 서면 돈세는 소리가 바람소리로 들린다. 바람에 스쳐가는 얼굴들. 발아를 꿈꾸는 은행의 정자들과 자루 속의 동전들과 묶였던 지폐들과 이별의 메시지들이 흩날린다. ​ ䷩ 풍뇌익風雷益, 파종하여 봄바람이 이니 만물이 풍성하다. ​ 썩는 냄새 훅훅 입김에 불려온다. 거리엔 곰팡이들이 피어나고, 뱃속에선 용연향이 익는다. 알맹이를 감싸는 썩음의 껍질. 구린내가 빗어내는 향기로운 과당을 위해 몸이 썩어간다. 뼈를 감싸고 살이 문드러진다. ​ ䷌ 천화동인天火同人, 하늘 아래 태양이 비추듯이 모두가 만나 함께한다. ​ 여인은 재가 되어 뿌려지고 뿌리만 남았다. 뼈를 타고 온 몸으로 전율하는 뿌리, 몸속엔 나무가 산다. 세모, 네모, 각진 잎들을 떨구며 둥글게 다짐하는 동그라미. 그녀의 얼굴은 해마다 커진다. [출처] 몸에 그린 동그라미|작성자 김기덕   인두화                       김 기 덕   연탄불에 달군 인두가 흰 목질에 달을 그린다. 비명소리 타오르는 연기 속에서 상처들은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눈 위에 찍는 구두 발자국 뜨겁게 흘린 검은 눈물들이 몸에 문신을 새긴다. 남자는 여자의 볼에 화인을 찍고 여자는 뜨거운 채찍을 피 흘리며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불탄 흔적이 박힌 사람들은 두고두고 재가 된 상처를 쓰다듬는다. 옆구리를 핥으며 독을 내뿜는 붉은 혀의 뱀들이 비늘을 말아 올리며 제 살 깎는 대패질의 꽃판 위에서 달마가 되고 예수가 되고 사막의 능선을 넘던 낙타의 무리들도 빙벽의 등고선을 오르던 설인들도 화석으로 박힌 나신의 등걸, 달빛 뽀얀 속살에 떨어진 마른 꽃잎들을 별로 새겨 넣는 뼈 마디마디 향불처럼 목향이 낮은 숨소리로 피어오른다. [출처] 인두화|작성자 김기덕  
94    김기덕 시모음 1( 한국) 댓글:  조회:404  추천:0  2019-12-21
가을의 환상 교향곡       마법의 성 구름옥탑에 4옥타브 공주가 창백한 달로 갇혀있다. 기러기 그림자만 독수리 날개처럼 창가에 머물다 간다. 달을 구하기 위해 흰 턱시도의 별 테너가 피아노 건반 3옥타브 G선의 나선 계단을 오른다. 고음의 절벽에서 미끄러진 오페라 왕자들이 추락한다. 입술에 한 방울만 적셔도 저주가 풀릴 이슬이 쏟아진 숲에서 첼로도 호른도 몽환 속에서 길을 잃고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바람만이 낙엽의 악보를 켠다. 부를수록 멀어지는 파란 하늘의 창문 틈으로 파리하게 시든 그믐달이 누웠다. [출처] 가을의 환상교향곡|작성자 김기덕     달빛 처방전                                                                          김기덕                                 고양이의 눈에서 어둠을 먹고 초승달이 떠올라. 잠 못 이루는 것은 달이 커졌기 때문이야. 상자 속에 눈들은 빛을 싫어해. 달이 가늘어지면 쿨쿨 잠만 자지. 나른해진 몸은 아무리 튀어 오르려 해도 바닥에 눕게 돼. 목을 쓰다듬고 발바닥을 간질여도 생각들은 털 속에 숨으려고만 해.   상자 안의 고양이는 날마다 방문을 걸어 잠그지. 밀폐될수록 달은 커지고, 발톱들은 날을 새우지. 이파리 사각거리는 소리에도 창가에 커다란 귀를 매달게 돼. 유리창으로 웅크린 고양이들이 노려봐. 똑, 똑, 똑, 핏방울이 떨어지는 초침소리가 들려.   언제부턴가 달은 악마들의 출구란 걸 알았지.   달이 차면 알약들을 몸에 묻고 시체놀이를 하지. 눈꺼풀을 밟고 잠이 올까봐 눈가에 까만 아이라인을 칠하지. 하지만 입 맞추는 밤은 늘 죽어 있어. 매니큐어로 지워버린 달은 한나절이 지나면 또 다시 떠오르곤 해. 눈 속에 까만 달은 저리도 매력적인데.   달빛 고인 침대 시트는 돌돌 말아 세탁기에 넣었어. 시계 위에 누워 아무리 바늘을 돌려도 제자리인 상자 속. 고양이 울음의 스위치를 끄는 거야. 손톱을 물어뜯어도 지지 않는 달. 손가락 하나 씩 잘라지는 쪽잠이어도 좋아. 피 묻은 자판을 두드려 방안 가득 검은 활자를 채우면 죽음처럼 찾아오는.   고양이의 눈 속에서 달이 지는 한낮. [출처] 달빛 처방전|작성자 김기덕     빛 ​ 베드로가 십자가에 매달려 등불을 켠다. 성냥불꽃 만큼 밝은 세상이 비친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별처럼 지나는 표정들이 깜박인다. 연탄이나 장작의 체온이 그리운 길거리마다 내걸린 아크릴 이름들 영토를 지키기 위해 가로등은 밤새 피를 흘린다. 이 밤을 견딜 만큼 나는 반딧불만한 빛이라도 있는가. 빛인 척 반짝이며 스테인리스와 유리들이 웃는다. 화살과 총탄과 질주의 무리들은 불꽃으로 박히기 위해 휘파람소리를 낸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유성들은 밤새도록 머리 위에 성수를 뿌린다. 유리벽에 반사된 얼굴들은 야경 속에 파편처럼 흩어지고 흐물흐물 달의 살이 묻어난 골목길로 은 삼십을 받은 유다가 질질 어둠을 끌고 온다. 태양이 오기까진 뚝뚝 떨어진 목련이 어두운 길을 밝힐 거야. 하루살이들의 밤 가시관을 쓴 예수가 동녘의 구름을 쓴다. [출처] 빛|작성자 김기덕   만원의 이력서   나랏말싸미 듕궉에 달아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피를 받아 한국은행 일월오봉도에서 태어났다. 차원이 다른 홀로그램의 족보를 새기고, 등과 가슴에 용 문신으로 가문의 인장을 찍었다. 뼈 속에 쓴 일만만의 설법, 진짜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가슴에 품고 보현산 천문대 혼천의에서 우주를 꿈꿨다. 비스듬히 기운 각도에도 언뜻 비치는 성골의 요판잠상은 평범한 신분이 아닌 듯했다. 신출귀몰한 바람소리를 내며 한국은행 출신의 빳빳한 칼라들은 은빛 어깨띠를 두르고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동안 두툼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다가 블랙박스에서 몇몇 구름 속을 오간 후, 할머니 전대에 떨어진 뒤에야 알았다. 도가니탕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동그라미들의 무게감을. 노래방 아줌마의 젖가슴에 꽂혀 마이크를 잡다가, 도박판에 던져진 누런 배춧잎들과 함께 고리를 뜯다가, 창녀의 손에 침 발라 비벼지며 닳고 닳은 얼굴들을 봤다.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순간 황홀하게 만났던 육체들이 구겨진 채로 몸을 뒤집는다. 너덜너덜 뭉개진 몸에서 구린내가 난다. 지하도에서 떨고 있던 여인에게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 주름투성이의 얼굴이 UFO를 닮은 자선냄비 안에서 천상의 종소리를 듣는다. 산동네 양은냄비를 끓이는 할머니를 위해 마지막 연탄을 사랑해야지. 몸을 내어주고 얻는 최후의 어둠. 덜컹, 철문이 열린다. [출처] 만원의 이력서|작성자 김기덕   악마의 중독 김 기 덕     염소가 검은 상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열어보였지. 젖이 범람한 젖꼭지에서 쓰디쓴 강이 흘렀어. 어둠 속에 뿔은 왕관처럼 반짝였고 이마에 새겨진 펜타 그램에선 게이의 웃음이 새어나왔어. 박쥐의 은빛 날개를 퍼덕이며 펼친 오른손에 선명했던 못자국 중지와 약지를 벌린 각인에 혀를 끼우고 왼손에 들었던 횃불로 바람의 꼬리에 불을 붙이자 메케하게 피어난 악성 루머들 사람들은 스스로 검은 상자에 매달린 중독성의 쇠사슬을 목에 걸었지. 자동조절 되지 않는 나의 몸에서도 고열이 일었어. 통증으로 웅크린 배를 독수리의 발톱이 휘젓자 거친 호흡으로 들썩이던 종잇장은 찢겨져 쏟아진 폐를 독수리가 인공호흡기처럼 입에 물고 숲을 흡입했어. 노을이 빠져나간 얼굴에서 금세 어둠이 흘러나와 달의 내장을 꺼낸 굴뚝이 목에다 뱀처럼 구름을 두르고 방안을 노려봤지. 구멍 난 튜브 속에선 지독한 황사와 매연, 미세먼지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의 목구멍에서도 뱀의 혓바닥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랐어. 독수리가 홀연히 날아간 후에야 검은 상자 위에 염소가 목의 쇠사슬을 풀었지만, 손바닥을 뒤집는 타로카드 15번 재가 된 사람들은 안개처럼 공중에 떠다녔지. 한 방울 눈물과 백색연기로.     [출처] 악마의 중독(미래시학, 과천문학)|작성자 김기덕     가위가 오린 풍경 김기덕   하늘을 오린 가위들이 황사로 날아왔다. 찢어진 헝겊조각처럼 펄럭이는 내 봄날의 모래바람   가위질할 수 없는 밤과 아침 사이로 빠져든 도시는 사막에 잠기고 낙타로 깨어난 차들은 느릿느릿 사구를 넘었다.   죽은 태양을 파묻은 땅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비릿한 악취를 풍겼지. 스펀지 같은 폐에 꽂힌 바늘들은 찢긴 상처를 꿰매지 못해 수풀로 짠 바람을 밀어 넣어도 숨을 쉴 수가 없었어.   찢어버리고 싶은 하루의 졸린 책장을 오리면 태양은 다시 떠오를까. 꽃과 아이들, 이슬방울 영롱한 아침과 가위를 부서뜨릴 바위덩어리. 가위! 바위! 보!   간밤에 내 몸을 짓눌렀던 검은 가위는 어디부터 나를 오려내고 싶었을까. 담배연기 찌든 폐, 이미지를 상실한 뇌 황사로 뿌연 내 가슴 한 귀퉁이도 오려내고 싶었겠지만, 난 공포감으로 상영 중인 가위 꿈의 필름을 소리 내어 잘라냈어.   비단 폭처럼 찢어진 어둠 속에서 보았지 잠든 여인의 눈부신 속살, 등 돌린 창가에서 그믐달이 새벽을 꿈꾸고 있는 것을. 아침이 동녘부터 야금야금 오려져 능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어.   흐린 유리창을 오리면 무지개가 뜨던 오늘밤 머리맡엔 어머니가 쓰시던 가위 하나 놓고 자야겠다. [출처] 가위|작성자 김기덕     절벽에 선 나무 김 기 덕   바다로 향한 불빛들이 강물로 흘러갔다.   뼈만 남은 어깨엔 눈과 비와 바람을 채색한  누더기뿐.   바람의 난간에 선 맨발 실금 하나 사이로 생존과 파멸이 공존하고 있었다. 뜬구름 접어서 종이비행기로 날려준 바람 줄을 나는 놓지 못하는 걸까.   힘줄이 불거진 발은 평생 수직의 길을 걸어왔다. 담쟁이 더듬거리던 길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못 박혀 직각의 모서리를 걸었다.   날개 접은 풍문들이 벼랑 끝으로 낙엽들을 몰아갔을 때   달은 지프라이터에 갇혀 초승달로 사그라지고 별의 눈동자들은 담배 불빛 깜박이던 옥상에 올라 마지막 어둠을 태웠다.   절벽에 매달려서야 창틀의 위대함을 알았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유리창을 껴안고 절벽에 매달려 본 적이 있던가. 내 몸 하나도 붙들지 못했던 옹벽   바위를 껴안던 뿌리가 뽑혀 내 척추로 이식되던 밤 신경줄마다 흐르고 있는 이빨들의 강을 보았지.   이를 앙다문 뼈들이 절벽에 매달린  ​절규.  [출처] 절벽에 선 나무(문학메카 2015. 9)|작성자 김기덕     사막의 연인(戀人) (문학메카 2015. 9)​   아담과 이브가 바람뿐인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퇴색된 열두 개의 생명나무 불꽃은 일 년 열두 달 검은 장미로 피어났어.   생크림을 핥는 뱀의 혓바닥 위로 노을이 지고 꽃잎이 떨어졌지.   선악을 알기 전의 남녀는 누드였단다. 서로를 알고 난 후부터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몸에서 솟는 붉은 가시들   녹색의 초원이 놓인 탁자 위로 에스프레소가 쏟아져 황무지가 펼쳐진다. 사막을 오가던 말들이 선인장이 되어 모래 속에 뿌리박고 피보다 진한 꽃을 피운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동산엔 열두 개의 태양과 열두 개의 달이 뜨고, 보라색 옷을 입은 천사가 양팔저울에 해와 달의 열매들을 달았지.   구름이 치마끈을 풀고 능선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면 산은 잔이 되고, 잔엔 옥수로 가득했던 눈물을 안 후,   다시 누드로 돌아갈 수 없는 아담과 이브가 라이브 카페의 난간에 앉아 마시는 치사량의 검은 유혹. 피 묻은 입술이 머그잔을 타고 흘러내린다.   카펫 위엔 엉겅퀴가 자라고, 독버섯이 피어났지. 구둣발에 짓밟힌 뱀들이 서로의 몸을 말며 물어뜯는 아담과 하와의 발뒤꿈치. [출처] 연인|작성자 김기덕     철탑 속의 황제                                        김 기 덕 ​ 카페나 호주머니 낡은 가방 그 어디에도 황제는 있지 황홀을 든 태양의 눈동자가 물결 위를 지날 때마다 갈대들이 허리를 꺾던 강가  갑옷 속에 감추어진 발톱이 물결을 할퀴며 건져 올린 안개의 거리는 마차소리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어  괴목의 뿔을 매단 절벽, 죽음의 부리만이 서로를 쪼아댔지 피로 번진 노을이 암투의 커튼을 드리운 하늘가 욕망이 치솟는 곳은 어디든 마천루였어  달의 보주를 차지하기 위해 밤마다 강물 위로 별들은 폭죽처럼 쏟아졌지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왕관이 흘러 정박한 곳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독수리는 늘 땅으로 추락했어  바위들이 송곳처럼 삐져나온 안개 속 철탑의 도시엔 뿔 달린 머리들만 문마다 내걸렸지 ​아기의 울음이 헤롯의 칼과 창과 방패를 삼킨 후 스카이라운지나 전광판, 갤러리, 그 어디에도 황제는 없어 대관식을 마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로 떠나고 성난 군중들만 남은 광장에 붉은​ 십자가 [출처] 황제의 비밀|작성자 김기덕     권태기의 화학반응 김 기 덕   유기물과 무기물의 화학기호들로 결합된 여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 H2O를 마시며 CO2의 언어를 내뿜는다.   시냅스가 전달한 한 남자의 페르몬 물질로 첫눈에 반해버린 신경세포들의 발작적 흥분이 죽어도 좋을 환각을 몰고 왔다. 뼈와 심장의 얼음까지도 다 녹일 수 있는 순수 가용성의 용매가 되고 싶어.   초고온으로 발생한 마이크로파가 플라즈마를 일으키는 자기장 속에서 한평생 서로를 밝히는 오로라가 되기로 했지. 외로움의 전자를 버리며 금속으로 만나든, 그리움의 전자를 얻으며 비금속으로 만나든, 서로의 이온결합을 만들며 분해되지 않는 화합물을 꿈꿨어.   혹서와 한파를 지나며 서로 다른 비등점과 빙점을 확인해온 시간 속의 유리벽은 넘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유기물을 분해하고 흡수하여 가스로 방출하는 일상의 기계적인 실습에서 흥미로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의무감으로 서로의 용액을 섞으며 무관심의 밀도를 잰다. ​ ​더 이상 흥분 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 비환유의 뇌 속으로 연결된 소통의 회로들은 막다른 골목처럼 좁아져 갔다. 가슴 떨렸던 반응들이 멈추고 몽환의 기체들이 날아간 비커 속에 유리조각처럼 남은 추억의 불순물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굳어진 몸처럼 검은 구멍에서 뿜어진 독설로 흡열반응, 발열반응이 멈춘 무의식의 몸이 식어간다. [출처] 권태기의 화학반응(미래시학, 과천문학)|작성자 김기덕   상자 속의 수평선     무쇠상자 안의 슈뢰딩거 고양이는 관찰을 통해서만 살아있다. 원자가 방사능을 방출하는 순간, 망치가 독가스 용기를 깨뜨리도록 고안된 상자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는 오십 대 오십. 어느 시점에서 고양이가 죽는 지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다. 고양이는 발견을 통해서 죽는다. 고양이의 죽음은 내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여다볼 때 결정된다. 관찰자가 상자를 들여다볼 때 고양이가 죽어있다면 그는 고양이를 죽인 것이다.          핵이 붕괴하는 순간 분기점이 생기고,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분리되어 평행 우주를 만든다. 관찰되지 않는 나와 관찰되는 당신과의 사이엔 물과 기름의 길이 있다.  당신은 나의 의식속에 살고, 나는 당신의 무의식속에 산다.        관찰되지 않는 태양은 영원하다. 나의 죽음이 발견되지 않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사랑은 확인되지 않기에 영원하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바람과 공기는 존재한다. 귀신과 영혼과 망령과 풍문들이 떠나지 않는 세계는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살아있다. 무쇠상자 안의 고양이를 관찰하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영원히 산다.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다.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관찰되지 않는다. [출처] 상자 속의 수평선|작성자 김기덕   0과의 만남           음식을 비운 접시처럼 달은 어둠을 비우고서야 보름달이 되었다. 무소유의 달 대웅전 불당의 부처 얼굴이 달처럼 환했던 것도 어둠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속이 빈 시간의 굴렁쇠가 오늘도 태양의 길을 따라 굴러간다. 음과 양의 물줄기가 합쳐지며 동맥과 정맥의 피돌기를 시작한다.      0이 더해진 숫자와 사물은 백지 위에 그리움이 되었다. 0을 뺀 숫자와 사물은 욕심을 오려낸 허공이 되었다. 0을 곱한 숫자와 사물은 나무속에 천년의 나이테를 채워도 0이 되는 하나일 뿐. 0을 나눈 숫자와 사물은 물결이 번지며 사라져가는 파문이었다.      마음을 비웠다고 못 박은 0 하나 잘난 척 나설수록 십의 배수로 가치가 떨어졌다. 0.1, 0.01, 0.001…… 마음을 비우고 못을 뺀 0 하나 뒤에서 따를수록 십의 배수로 가치가 상승했다. 10, 100, 1000……     0의 얼굴을  닮은 무중력의 비행체가 새처럼 내 품으로 날아들었다. 0과 0 사이의 무한 공간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0을 그리며 사라져간다.  웜홀과 블랙홀을 지나서 미래의 공간 속으로 달려가는 靈 0과 0이 손을 잡는다. ∞의 세상이 손끝에서 만난다.  [출처] 0과의 만남|작성자 김기덕   오늘의 날씨       눈부신 태양은 매일 뜨지 않는다. 구름 옷 입고 출근하는 날씨의 하루는 비이거나 눈 천둥소리에 풀들은 고개를 움츠렸다. 회오리에 추풍낙엽의 증권들 핏빛으로 물드는 창문 사무실마다 썰물이 빠져나가고 사막의 도시엔 한 생의 발자국을 묻는 모래바람이 불었다. 안개 속을 잠행하며 자리를 지켜오던 김씨, 이씨, 박씨도 보이지 않는다. 면도날 같은 날씨의 예상이 일기예보를 빗겨간다. 계절이 공존하던 객장엔 수축하는 시간의 지층이 쌓이고 동전만한 우박이 사선을 긋는다. 내려치는 번개에 후줄근히 등줄기가 젖는다. 쾌청을 꿈꾸는 실내와 구름 낀 실외와의 기온 차에 유리창엔 날마다 성에가 꼈다. 기쁨과 슬픔의 기상도가 교차하는 스크린 삼한사온을 오가던 엘리베이터의 로프마저 끈긴 수은주의 하강에 구겨진 날씨의 하루는 눈보라였다. 몸을 웅크린 노씨, 나씨, 남씨의 하루도 눈사태였다. 영원한 겨울은 없는 법, 영원한 여름을 꿈꾸지 않는다. 내일 먼 바다의 파고는 높음 강풍이 불수록 깃발들의 심장이 펄럭인다. [출처] 오늘의 날씨|작성자 김기덕   달의 기원   달이 커지며 그녀의 가슴도 부풀었다. 늑대가 울고 광기가 차오르는 밤. 스톤렌지의 돌들은 그녀의 월경주기를 계산하고 있었다. 여자는 무엇으로 태어나는가.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분리가 있은 후 남자의 가슴엔 태평양이 생겼다. 조석간만의 애증이 출렁이며 눈물바다를 남겨주었지만, 왜 여자는 남자 주변에서 공전해야 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녀와 나 사이의 공간도 진공은 아니다. 주변의 매개물인 미소행성체들과의 만남 속에 이루어진 브레이킹, 오 부킹.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달은 주변의 바람들을 다 삼켰을까. 아니, 달은 지구의 관심으로 융합, 팽창하며 태어난 거야.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주변을 배회하며 한 마디의 말이나 표정까지 몸에 돌로 다져 넣었던 거야. 어느 날 내 허블망원경에 포착된 여드름투성이 얼굴. 내 안에 뜨기까지 충돌했던 파편들 치솟아 뭉쳐진 애증의 달. 서로 부딪칠 때마다 노아의 홍수가 일고 여호수아의 태양이 떴다구. 아니, 아니 달은 지구를 위해 설계된 신의 못질일 뿐, 일식과 월식의 관계를 만들며 서로 입 맞추고 그늘이 되는 필요충분관계야. 늘 한 면만 보여주는 그녀의 뒷모습이 나는 그립다. 어느 곳도 중력의 차이는 없다고 나를 향해서만 무게중심이 쏠려있다. 어둠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달. 나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태양을 보여주지 못했다. 쿵, 떨어진 로켓에 달의 가슴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출처] 달의 기원|작성자 김기덕   골프   十八界의 홀을 정복하기 위해 108구멍에 염주를 굴린다. 버디와 보기를 오가다 파로 끝나는 중생의 라운드 스코어는 나이 같은 숫자에 불과했다. 임펙트한 퍼팅보다는 비워야 할 루틴이 많았던 시간 롱 드라이브 아이언 샷으로 꿈의 깃발에 어프로치해 보지만 페어웨이보다는 러프와 벙커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죽음의 연못에 잠겨버린 순간들조차 또 다른 세상의 여정임을 알려주며 숲과 나무와 구름의 갤러리들이 손을 흔든다. 바람을 읽고 잔디의 굴곡을 재며 웃음으로 도반이 돼 주었던 캐디 리봇을 남기고 떠난 인연들을 일일이 손으로 덮어주며 이 세상 다녀간 그린 위에서 나의 흔적을 지운다. 잔기침마저 태풍이 되는 숲 속의 나비효과에도 핸디캡을 극복하고 흔들림 없이 스윙을 해야 해 깨달음의 이글을 날리며 홀인원했던 무아경의 돈오돈수 물과 불을 다스리는 가부좌를 틀고 우주를 굴린다. [출처] 골프|작성자 김기덕   먼지 보고서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바람의 미세 혼령들 한통속으로 몸을 드나들며 구름을 일으킨다.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불을 피우고, 물을 뒤집어쓰며 풀풀 먼지만 피우다가 연기로 사라지는 미세먼지들 벽을 통과해 내 몸속에 둥지 틀고 기침을 한다. 어젯밤 꿈으로 분해된 초미세먼지의 빙의 아 무서워, 현실의 악몽들은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분해결합하며 공간 이동한 에어로졸들은 또 거미가 되고 세균이 되겠지.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질 내 안의 미립자들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메트로놈의 파장이 엔진을 돌린다. 먼지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날개들의 소리 없는 퍼덕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출처] 먼지 보고서|작성자 김기덕     황금비의 비밀   170센티미터의 아빠와 105센티미터의 딸이 손잡고 화랑을 걷는다. 현의 길이 1:2의 8도 화음, 2:3의 5도 화음, 3:4의 4도 화음이 섞이며 라파미, 미파라의 선율이 흐른다. 다섯 개의 꼭지점과 다섯 개의 면을 가진 피라미드가 별을 가리킨다. 살바도르 달리의 최후의 만찬장엔 고개 속인 제자들이 영의 양식을 먹고 있었다. 여신 아테나 파르테노스를 숭배한 파르테논 신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풀처럼 기둥에 기대어 5분지2 바퀴마다 난 잎들을 세며 얼마나 햇빛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파보나치의 수처럼 커지는 내가 무서워. 내 안에서 앵무조개 같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태풍이 되든가 나선은하가 되든가 같은 비율에 갇히는 게 싫어. 몸의 중심인 배꼽에 컴퍼스를 대고 영향력의 한계를 그려보았다. 손끝과 발끝에서 만난 원이 알파와 오메가를 그렸다.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길이를 수직으로 긋고 뻗은 양팔의 길이를 가로로 그으니 정사각형의 땅이 생겼다. 다빈치의 아름다운 드로윙 속에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인 내가 최초의 인체 골격으로 서있었다. 몬드리안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티브이를 보고 담배갑을 매만졌다. 창문 안에 가득했던 책들은 액자가 되어 벽에 걸리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을 간직한 피아노에서 피타고라스 원리인 직각삼각형의 파랑이 인다. 점점 커지는 소프라노의 하이 톤. 수학자인 신은 놀라운 비율의 분할을 숨겼고, 나는 바로 선 펜타그램과 거꾸로 선 펜타그램 사이에서 방황했다. 누가 동그라미와 세모와 네모 사이에서 프렉탈을 그리나. 시간의 원근법은 늘 하나의 꼭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출처] 황금비의 비밀(시문학)|작성자 김기덕   물에는 바퀴가 달려있다     물이 흐르는 냇가에선 엔진소리가 난다. 울컥 눈물로 가동되는 물의 모터 눈물 마르지 않는 나무엔 물기둥들이 수직으로 오른다. 수십 층의 벽을 타고 오르는 물의 동력으로 콘크리트 건물은 살아있다. 직립하는 내 몸의 벽을 타고 오르는 바퀴들의 힘으로 나의 하루도 굴러간다.     몸에 시동을 거는 정액의 힘 들이켠 한 잔의 물이 온 몸에 바퀴를 굴린다. 계절의 바퀴 윤회의 바퀴 죽음과 부활의 바퀴를 굴리며 물이 흐른다. 파도들이 쓸려간 갯벌 위에 남겨진 타이어 자국들 기하학의 무늬 속엔 생명들이 가득하다.     엔진이 꺼진 바퀴들은 계곡을 미끄러져 폭포로 추락했다. 동력이 멈춘 물들의 하향곡선 바퀴가 정지한 호수엔 시간의 기어들이 녹슬어 갔다.     태풍이 몰려온다. 파도가 몸을 말며 굴러온다. 눈물의 엔진을 달고 지상에서 영원까지 무지개가 굴러간다. 대지의 자궁에서 바퀴를 굴리며 나오는 꽃들 ​ 만조로 차오른 달이 외발 자전거를 밟으며 하늘을 건넌다. [출처] 물에는 바퀴가 달려있다.|작성자 김기덕   불의 기억   부싯돌 속에서 태어난 씨앗들은 별처럼 반짝거렸지. ​ 마른 쑥잎에서 실연기로 성장해 바람결에 눈을 뜬 아이들은 석유나 나무나 양초 위에서 붉은 혓바닥을 놀렸지. ​ 태풍의 풍문을 들으며​ 자란 불새들은 몸을 웅크리고 담배와 폭죽과 수류탄 속에 잠들어 있었어.   성냥골의 뇌관을 건드리던 불장난으로 단 한 번 불꽃이고 싶던 봉오리들도 재가 될 운명의 껍질 속에 몸을 숨겨왔지. ​ 태양을 삼킨 잎들은 불꽃을 토하려 물을 뽑아 올리는데 단 한마디 기도이기 위해 침묵해온 향불 흐려질수록 태풍의 고요와 심해의 어둠이 감싸온 심장이 꿈틀거렸지. ​ 가시덤불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몸속에서 타오르지만 않았다면, 불이 빚어서 혼이 된 흙이 도자기처럼 끌어안고 싶었던 죄의 불 ​ 성화는 분수처럼 뻗쳐올랐어. ​ 악을 담금질하며 녹슨 뼈를 연마하는 연금술사의 손이 풀무로 지나는 계절, 껍질이 깨진 은행에서 천년 동안 줄기와 가지들이 폭발하고​ 아기의 입술에선 태초의 말씀이 울음을 터트리는데 ​ 재가 되기 전 마지막 바람의 입술을 기다리는 ​숯 [출처] 불의 집(과천문학)|작성자 김기덕   가로등                           김 기 덕     달항아리에서 물이 넘친다. 화석이 된 어둠의 뼈를 녹이며 빛의 웅덩이를 만든다. 눈과 귀와 코와 입술이 떨어져나간 달의 얼굴에서 백설탕이 쏟아진다. 골탄의 검은 발바닥에 감각은 사라지고 별빛 물의 언어들만 밟힌다. 굽이굽이 책장을 넘겨 강으로 흘러온 푸른 경전 속의 활자들이 천 길 물줄기로 추락하다가 영겁의 불로 활활 송전탑을 가로질러와 철골에 혼불을 밝혔다. 수백 만 볼트 물의 혼령들이 유방을 열고 밤새 쓰레기와 도둑고양이와 부서진 자전거를 적신다 해도 젖지 않는 유리창 안의 풍경들 병아리를 품은 날개의 온도로 떨어지는 깃털들이 는개같이 내려 골목 가득 물안개를 피워도 좋아 아무리 비워도 샘솟는 달항아리의 물이 밤새도록 길 위에 넘친다. [출처] 가로등(2015. 스토리문학)|작성자 김기덕    중간숙주     불뱀이닷! 광야에서 불타던 뱀이 종아리에서 꿈틀거린다. 물벼룩에 감염되어 내장에서 자라던 메디나의 뱀들이 수포를 일으키며 발뒤꿈치를 물어뜯는다. 물속에 알을 낳기 위한 저들의 뜻을 위해. 불에 덴 이빨자국을 물에 담그라하는 메디나충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물에서 짝짓기하기 위해 유인한 곤충들을 자살시키는 연가시의 지상명령은 계속된다. 위장에 암거하던 헬리코박터들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라한다. 요충들이 항문을 긁던 손으로 이웃을 위해 떡을 떼라한다. 노란 끈 같은 촌충이 알 밴 몸을 끊어내며 입맛을 돋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내 안에 존재들의 입덧 때문. 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항아리 모양의 편충들이 빈 그릇을 채우라 한다. 주걱을 닮은 디스토마가 밥을 푸라한다. 살을 뚫고 다니던 스파르가눔이 환청을 들려주며 밤마다 꿈꾸게 한다. 간흡충, 폐흡충, 선모충들의 비위를 맞추며 나는 식단표를 고른다. 바이러스, 세균들의 눈치를 살피며 외출을 준비한다. 그녀와 공생관계가 깨지면서 내 의식에 뿌리박은 애증의 빨판들. 머릿니나 빈대처럼 집요하게 잠의 뼈를 갉아먹는다. 내 몸의 주인이 된 에이리언이 장기 어딘가에서 나를 조종하는지도 몰라. 가끔씩 전해지는 외계의 텔레파시. [출처] 중간숙주|작성자 김기덕     통증은 말한다   편두통이 머리에 못질을 한다. 망치를 든 귀신을 쫒기 위해선 연기처럼 빠져나갈 틈이 필요했다. 머리에 구멍을 뚫고 아무리 울어도 통증은 눈물에 녹지 않았다. 벌레를 잡기 위해 쪼아대는 딱따구리 약을 먹으며 플라시보 효과를 꿈꿨다. 몽환의 잠속에서 꽃의 원초적 뿌리를 캐보았지만 경련의 시작과 끝은 알 수가 없었다. 우울과 불안의 늪에서 물풀 같은 말초신경들이 손을 흔들었다. 물결무늬의 고통이 썰물과 밀물로 오가는 골짜기는 깨달음이 클수록 깊어졌다. 살아있음의 은유, 몸이 주는 메시지를 나는 받지 못하고 있었다. 라오콘의 형상에서 울부짖음이 흘러나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얼굴에서 읽을 수 없었던 통각신호기의 적색등이 깜박였다. 눈을 감아야 해. 귀를 막고 통증이 없는 낙원을 찾아야 해. 소리를 잃어버린 나환자들이 촛농처럼 녹아내린 손을 흔든다. 에테르 기체를 마신 사람들이 표백된 얼굴로 무덤에 누워있다. 꼬챙이로 혀에 구멍을 뚫고, 피부를 낚싯바늘로 꿰며 통각의 소리를 듣는다. 고통이 무거울수록 위로를 얻는 뼈의 외침을 듣는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영혼은 몸을 벗어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두드리고 담금질하는 연금술사의 망치소리.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가 내 몸 안에서 천국 문을 두드린다. [출처] 통증은 말한다|작성자 김기덕   동양화 보는 법   동양화가 집안에 들어왔다. 그림 현실이고 현실이 그림인 풍경 속엔 계절과 상관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퍼즐처럼 이를 맞춰 그려진 사물들, 참새와 까치가 입을 모아 기쁨을 노래했다. 70년 된 고양이가 수천 년 묵은 바위 위에서 소나무를 올려다본다. 수탉이 울어대는 공명의 울림, 백로들은 하나의 길로만 날아갔다. 부유한 집안에선 모란이 피고, 석류가 익으면 포도, 박 넝쿨 뻗으며 자손들이 자랐다. 누구에게나 피라미 시절은 있었다. 학업을 마치고 꽃을 피워 부평초 같은 타향살이엔 원추리 어머니가 그리웠다. 장미꽃 청춘이 가고 붉게 복숭아는 익어갔다. 맨드라미, 닭 벼슬 같은 불을 꿈꾸며 일품의 두루미가 파도를 바라본다. 작은 잉어를 건진 후 큰 잉어를 건지는 과거시험, 장원급제한 오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대궐은 하나였기에 두 개일 수 없는 배반의 쏘가리들이 탁본된 벽 속에서 퍼덕였다. 관아에서 귀뚜라미들은 갈대로 게를 묶은 임금의 음식을 먹었다. 금옥만당에 금붕어들이 놀고 여러 신선들은 늙지 않는 색비름을 따고 있었다. 근검절약 속에 피어난 연꽃들, 마음을 비운 연뿌리들이 한 줄기 형제애로 통했다. 바다새우와의 해로偕老, 구리그릇에 평안을 담아 국화꽃 핀 뜨락에서 유유자적한다. 갈대와 기러기들도 춤추며 노안老安을 즐긴다. 게들은 바르게 걸어보지만 늘 반항적이었다. 팔랑팔랑 나비가 흰 사슴 뿔 위에 앉아 팔순을 축복한다. 난초 같은 자식들, 죽순 같은 손자들 바위와 대나무 우거진 숲에서 축수한다. 군자의 인품이 가득한 매‧난‧국‧죽의 꽃향기. 냇가에 앉은 노인이 빈 마음으로 발을 씻는다. 벽이 동양화이고 동양화가 벽인 창문을 연다. 새롭게 펼쳐지는 산수화. 호리병박, 포도가 열리고 소나무 등걸에 기대어 달이 산을 올려다본다. [출처] 동양화 보는 법|작성자 김기덕     원시 다이어트       숲이 나뭇잎을 털어낸다. 해독을 위해 토해내는 붉고 노란 빛깔들, 최소한의 식단을 위해 꽃은 피우지 않기로 했다. 원 푸드에 길들여진 포도알을 씹는다. 미더덕처럼 터지는 배반의 껍질들, 풍선으로 부풀려진 세포마다 침을 꽂고 비파나무 같은 효소를 심었다. 지방흡입용 호스를 타고 빠져나가는 바람에 내장들이 쪼그라든다. 산화되지 못한 불꽃들이 물이 되어 흐른다. 위절제술은 이제 뿌리부터 행해질 거야. 식욕억제제를 먹으며 한겨울을 버텨야 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구토하는 나뭇잎들의 얼굴이 붉다. 거리마다 부는 구조조정 바람 때문일까. 가지치기할 때도 아닌데 꼬마 인형들이 오른팔을 분질러 뽑는다. 이삿짐을 싼 방은 곧 얼음동굴이 될 것이다. 겨울왕국에 눈이 쌓이고, 일만 년 쯤 빙하기가 찾아온다 해도 상대성이론의 시간이라면 버티기엔 하루나 이틀로 충분해. 말라깽이 모델이 활보하던 쇼룸에 불이 꺼지고 성형외과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요요현상의 함박눈들을 쏟아낸 하늘이 구름을 마구 집어 삼킨다. 거식증에 걸린 위벽이 딱딱하게 굳어진 땅에 빈혈로 쓰러진 하얀 풀잎들 좀 봐. 굶어죽은 혼백들이 나풀거려. 골다공증이 찾아온 내 골반뼈를 인수분해하며 빈 마음의 방정식을 푼다. 부질없는 공식들을 꿰맞추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노라 복잡한 선들을 지우고 단순화된 도형을 세운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압축파일들은 지금 즉시 천국으로 보내고 싶어. 참선하고 고해성사하던 나무들이 뼈만 남아 도장을 새기는 길거리에서 바다가 고무줄놀이를 한다. 해안선을 따라 복식호흡하는 아스팔트 위에 섬들. 구석기의 식탁을 차리면 나는 원시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겨울마다 계절은 허리띠를 조이고 밥을 굶는다. 실반지처럼 가늘어진 허리, 비틀거리며 초승달이 검은 스테이지를 밟는다. [출처] 원시 다이어트|작성자 김기덕     살풀이       생의 반쪽들이 갈고리에 걸려 물구나무를 섰다. 0을 가리키는 기울기의 눈금엔 잘려진 시간의 핏물이 고여 있었다.       칼을 맞고 일어서는 냉동의 살들 해체되는 의미 속엔 뼈도 눈물도 없었다. 세월의 등살에 새겨진 물결무늬마다 하루가 풍랑이고 폭풍이었던 여정이 끝났다.       푸른 도장을 받기 위해 문자와 글자들의 건초더미를 되씹던 언어의 사체에서 한 근의 채끝살을 바르기 위해 살아서 고뇌 중인데, 죽은 자의 칼이 산자의 살을 바른다. 광란의 바람이 이는 ㄱㄴㄷㄹ       소가 환전된 금고를 열면 목쉰 쇠방울소리가 울렸지       벌판에서 울부짖던 메아리들만 뼈 속을 맴돌았다. 난도질 할수록 부드러운 칼의 속삭임, 현란한 혀의 놀림에 상처는 깊었다. 무덤 속 벌레들의 섬뜩한 미소 같은 하늘을 품고 되새김질해 온 말씀들이 일어나 칼춤을 춘다. 헝겊처럼 얇게 썰어지며 리듬을 탄다.       해의 시즙이 묻어나는 언덕 위로 밤새 뚝, 뚝 떨어진 달의 꽃무늬들 이글거리는 불꽃 속으로 눈송이들이 몸을 던진다. [출처] 살풀이|작성자 김기덕     길 잃은 방       입에서 언어들이 부글거린다. 찌그러진 냄비의 얼굴 라면가닥 같은 생각의 통로들이 끊겨있다. 창문에 오려붙인 구름에서 유아기의 옹알들이 떨어진다. 배수관을 타고 오른 벌거벗은 냄새들만 쿨룩거리며 기침을 토한다. 산에 막혀 길을 잃은 아들이 흐느낀다. 바다에 갇혀 섬이 된 어머니가 깔깔거린다. 막혀서야 차오른 강물의 정은 마그마처럼 뜨겁다고 광야마다 구리뱀의 눈물이 흐른다. 댐을 넘어선 물이 오열하며 낙차 큰 절규로 발전을 시작하면 차단된 기억의 방에도 전기가 들어올까. 소통 없는 수위를 다스리며 강물은 누워 바람의 젖을 물리는데 빛을 만드는 저항의 필라멘트처럼 뼈에 박힌 다이오드들만 부루치 같은 내 심장을 밝힌다. 아스피린의 냇물이 마르며 툭, 길이 끊어진 숲의 어둠에 갇힌 어린 아이가 뇌혈관처럼 펼쳐진 가지들의 푸른빛을 풀어 털실로 짠 방에서 무덤처럼 열리는 내세를 본다. [출처] 길 잃은 방|작성자 김기덕     바람의 영양제 김 기 덕       파도의 혓바닥이 태양을 삼킨다. 밤의 목구멍을 넘어 아침의 능선에서 꽃씨를 뿌리는 햇살, 파랗게 열린 길 위로 바람이 인다.       비타민은 채소의 언어였다. 순식물성의 말속엔 엽록소가 담겨있었다. 신진대사를 부르던 언어들은 뱀처럼 꿈틀거렸고, 한 알의 씨앗은 산과 바다를 풀어놓았다. 심해를 헤엄치는 상어 떼들, 근육질로 영그는 산비탈에 씨알들. 한 계절의 농익은 얼굴들이 토마토를 심는다.       바람은 계절 내내 나무들의 유방에 볼을 부비고, 이파리를 흔들며 젖을 물렸다. 햇살 밴 과실의 유두를 빨면 꿀물이 쏟아지던 하늘.       바람이 빠져나간 골다골증의 땅들은 황무지로 변해갔다. 끼니때마다 밥을 떠 넣으며 양분을 채워도 무의식의 토양에서 나무들은 고사목이 되어갔다. 랩을 씌우고 비닐 포장한 안개의 날들. “새로운 태양이 필요해” 바람의 알갱이들이 플라스틱 병에서 달그락거렸다. 하늘 사방에 매인 구름의 묵시록.       바람의 말씀은 미네랄이 되었다. 식이섬유의 알약을 삼킨 뿌리마다 풀냄새가 났다. 컹컹 짖어대는 어둠속에서 뼈의 백색분말들은 눈물로 녹아들었다.       가시만 남은 입으로 어머니의 젖을 빤다. 독으로 박힌 파편들이 뼈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고래들이 뛰는 맥을 짚어 노을을 넣고 숲의 바람으로 빗어낸 캡슐. 목구멍으로 넘기자 초신성이 타오른다. 온 몸으로 번지는 붉은 파도. 입에서 나온 말들이 딸기밭에 불콰하다.       태풍이 몰려온다. 가득 수액을 실은 바퀴를 밀고와 후드득 뿌리마다 바늘을 꽂는다. 새파랗게 일어서는 핏줄. [출처] 바람의 영양제|작성자 김기덕     블랙박스         젖은 그림들이 판화처럼 찍힌다. 네거티브 필름으로 현상되는 암실의 풍경, 검은 동공이 하늘을 열고 X-ray 눈으로 뼛속까지 어둠을 찍는다. 구름의 눈, 바람의 셔터, 물의 렌즈들, 보지 않는 것은 신의 눈뿐이다. 잎사귀들 엿듣는 밤을 헤드라이트 불빛이 순간복사한다. 번개처럼 스쳤다 사라지는 허상들, 가드레일을 넘어 뜨겁게 키스한 차들처럼 내겐 사랑할수록 파편들로 가득해진다. 중앙선을 넘나드는 철제 심장으로 횡단보도를 간통하며 깜박깜박 영상을 찍는 신호등을 무시하며 살았다. 천수보살 관음상의 풀과 나무들, 순간도 놓치지 않는 별들의 기록은 누구에게로 흘러갈까. 유성의 속달 메신저가 사라진다. 하늘의 이름으로 이웃들을 손가락질하다 도시의 십자가 무덤에 누워 내시경을 하고 MRI를 한 후, 내겐 영혼이 없음을 들켜버렸다. 뉴런을 타고 가는 도파민의 검은 웃음을 흘리며 항히스타민제를 먹은 벌레들이 머릿속을 찍어댄다. 어젯밤에 뱉은 나의 말들이 뛰어다니며 검은 발자국을 남기는 마룻바닥, 피사체 속의 어린아이가 웃는다. 눈부신 거울은 렌즈에 잡히지 않는데 벽에 못 하나 나를 꼬나본다 [출처] 블랙박스|작성자 김기덕   꿈꾸는 금연     남자가 여자를 빨아들인다. 흰 종아리부터 불꽃이 일며 머리카락 같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혼미하게 타다만 이파리들이 누렇게 얼룩지며 머릿속에 달라붙는다. 너 없인 못살아. 필터 같은 입술을 부비며 걸었던 손가락 사이에서 백색가루들이 흩어진다. 솟구치는 검은 타르의 배반은 갑 속의 누구를 선택해도 마찬가지. 치아를 부딪치며 혀를 핥아도 다 태워지지 않는 건 늘 자신이었을까.     빨아들인 독사과 향의 혼, 아무리 삼켜도 삼켜지지 않는 바람을 토해내며 소유할 수 없는 구름으로 보낸다. 남은 것은 니코틴의 채취와 거친 호흡의 파동뿐. 물에 젖은 우울의 습도에 다시 태울 수 없는 육체들이 사라져간다. 안개, 그리고 눈물.     남자를 흡입한 여자의 입술 사이에서 안개꽃들이 흔들린다. 붉은 루주의 도취, 검은 손톱에 파인 배꼽에서 불꽃으로 피가 흐른다. 수축되었던 뱃속으로 막소주 같은 기억들이 차오르며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간다. 몽상의 도넛들이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다 주고 싶어도 섞일 수 없는 뜨거운 폭풍들이 휭 하니 빠져나간 저녁. 몽롱이 피어오르는 순간의 미학으로 또 하나의 석양이 저문다.     구둣발에 비벼지는 불꽃 심장. 침을 뱉고 돌아서는 빙석의 뒷모습은 언제나 절벽이었다. 두려움으로 담배를 꺼낸다. 두려움으로 불을 붙인다. 매번 시작하는 마지막 사랑은 늘 첫사랑으로 끝났다. 날마다 최후의 담배를 쥐며 파르르 떠는 손. 다시 원점에 서있다. [출처] 꿈꾸는 금연|작성자 김기덕   달리의 꽃      달걀 속에서 꽃들이 부화한다. 초콜릿처럼 녹아내린 시간 위에 알들이 깨지며 시침이 검은 잎을 피운다.폭탄같이 웅크렸던 꽃봉오리가 남자의 몸에서 폭죽으로 터진 후 시작된 검은 우주의 빅뱅, 하늘엔 거위 알 같은 별들이 눈을 떴다. 동굴의 문이 열리며 열꽃을 피우던 여드름투성이 얼굴이 스친다. 풀어헤친 머리칼에서 풀 비린내가 번진다. 술병 마개가 빠진 안개의 숲, 팝콘처럼 터진 잎을 물고 배꽃 웃음이 쏟아진 곳에서 나의 뿌리를 찾는다. 어둠이 내려 푹푹 발이 빠지던 늪에서 연꽃처럼 개화를 꿈꿨었다. 창밖엔 천둥소리로 흙탕물이 흘러갔고 계절은 지독한 거름 내를 풍기며 썩어갔다. 늑골의 유정에서 불꽃을 길어 올리는 창세기. 몸 안의 용연향이 풀어지며 배꼽에서 꽃들이 부화한다. 흐물흐물 시계들이 녹는 사막의 땅으로 향수병이 넘어진다 [출처] 달리의 꽃|작성자 김기덕     종이비행기       소녀의 팔은 접혀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밴 붉은 꽃물로 온통 꽃밭인 화단엔 깃발처럼 스커트자락이 펄럭였다. 바람의 손에서 놓인 구름은 비가 되었고 꽃들은 시들기 시작했다. 줄기를 놓친 지상의 나뭇잎들은 절벽으로 떨어졌고, 할딱이는 심장들은 비에 젖어 상처가 아물어 갔다. 연서처럼 안개가 피어오르며 나뭇가지마다 그리운 나라의 엽서가 매달릴 때면 초록 글씨들은 꽃이 되고 열매가 되었다. 노을을 접어 날리는 언덕 위로 빨간 우체통 안의 석류 알 같은 얼굴들이 흩날린다. 밀랍으로 붙인 하루하루가 이카로스 날개처럼 떨어진다. 몸을 흔드는 꽃잎들. 하강기류에 휘말린 엔진들은 정지하고, 강철 심장의 새들마저 둥지로 비상하지 못한 채 깃털로 흩어진다. 탯줄을 자른 눈송이들은 땅에 닿자마자 불꽃 눈물로 태어난다.     종이비행기 소녀의 팔은 접혀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밴 붉은 꽃물로 온통 꽃밭인 화단엔 깃발처럼 스커트자락이 펄럭였다.   바람의 손에서 놓인 순간 구름은 비가 되었고 꽃들은 시들기 시작했다.   손을 놓친 지상의 나뭇잎들은 절벽으로 떨어졌고 할딱이는 심장들 위로 비가 내려 상처들이 아물어 갔다.   연서처럼 안개가 피어오르며 나뭇가지마다 그리운 나라의 엽서가 매달릴 때면 초록 글씨들은 꽃이 되고 열매가 되었었지.   노을을 접어 날리는 언덕엔 빨간 우체통 안의 석류 알 같은 얼굴들이 흩날린다.   밀랍으로 붙인 계절의 이카로스 날개들이 떨어진다. 꽃잎들이 몸을 흔든다.   하강기류에 휘말린 엔진의 정지 박동이 멈춘 강철 심장의 프로펠러 새들도 둥지로 비상하지 못한 채 깃털로 흩어진다.   탯줄을 자른 눈송이들은 땅에 닿자마자 불꽃같은 눈물이 되었다. [출처] 종이비행기|작성자 김기덕     시소의 법칙   빛과 어둠이 시소를 타는 놀이터에서 나는 땅으로 기울고 아이는 하늘로 기운다.  모래알 같은 언어의 지층을 뛰며 타이어의 탄력에 별이 되고 달이 되다가도 산의 무게에 아이는 차가운 철재 손잡이에 매달려 지구 끝에서 대롱거렸다. 기울어진 평균대 위에 발이 흔들리고 창이 가려진 하늘엔 천칭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팔이 부러진 병신 저울들이 춤추는 세상에 가로놓인 절벽, 입구까지 엉덩이를 들이 민 바위들로 기우뚱 마을이 기울고 사람들은 거꾸로 길에 매달려 거미줄 같은 집으로 종종걸음 친다.  철봉 위에 무중력 아이가 삐걱거리는 관절소리를 들으며 철탑으로 성장한다. 시간의 파도타기에  낙엽이 되어가는 나 방향이 바뀐 바람에 꽃잎들이 떨어진다. 일어섰던 풀들이 일제히 쓰러진다.  서로의 무게를 양보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늘 사다리를 타는 계절의 메트로놈 소리에 해와 달이 널뛰기 하는 골목 3옥타브 C 쯤의 가을이 내 어깨 위로 ♭ 된다. [출처] 시소의 법칙|작성자 김기덕   달의 암자   죽 그릇 속에 담긴 핏기 없는 얼굴들 흰 밥알로 풀어져 형광등 하늘을 비춘다.   사발에 새겨진 竹竹竹   竹音이 들린다.   숟가락을 뜨지 못하고 풀어진 눈동자들 희멀건 밥풀이 목구멍에 달라붙는다.   화장실 변기에 엎드려 토해본 후 알았다. 몸 안의 죽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역겹던 가스와 마그마   활화산 같은 암자엔 죽 쑤며 살아온 사람들이 그릇을 비우는 게지. 暗, 癌, 庵   粥飮을 맛본다.   막걸리 푸고 길바닥에 게풀어져 오장육부 게워낸 보름달 창가에 빈 사발만 남았다. [출처] 달의 암자|작성자 김기덕   휴대폰 하나님       가게에서 별을 샀다. 별 속에 길을 내고 빛을 밝혀 생명의 씨앗을 뿌렸다. 여호와는 지구별의 하나님 나는 검은 별의 하나님   메네메네데겔우바르신 패턴인식으로 문을 연 세상엔 상징들로 가득했다. 집집마다 태양이 뜨고 손끝에서 사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터치패드의 새로운 인사가 시작되었다.   E.T의 손끝에서 만나는 별들의 교신   지하철은 신들로 가득했다. 저마다의 행성에 문자를 보내고 메시지를 날리며 계시를 입력했다. 서로의 중력을 확인하며 다운로드한 복음들이 가득한 행성 목마른 영혼들이 게임을 즐겼다. 전쟁을 즐겨온 신들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피조물로 전락한 자폐아들은 땅을 피로 물들이고도 스위치를 끄지 못했다.   신이 된 별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주로 뻗어간다. 기계와 인간이 접속하여 응시하는 하늘의 창 은하의 별들이 뜨고 상형문자들이 흘러간다.   한시도 하늘을 보지 않으면 불안한 중독 아이들은 매일 접신 중이다. [출처] 휴대폰 하나님|작성자 김기덕   단풍나무 별     별이 쏟아진 언덕엔 심장들이 할딱이며 피를 흘렸다. 새의 부르튼 발자국들은 길을 잃고 밤이 늦도록 단풍나무 아래를 서성였다. 숭숭 구멍 뚫린 날개를 접은 거울 속의 빛바랜 눈빛들 풍선처럼 부푼 달빛에 산산조각 난 옷자락들은 새털처럼 흩어지고 눈동자는 땅에 묻히어 해가 떠도 하늘은 검은 가면이었다. 중력에 끌려 행성이 된 남자만 풀어헤친 밤의 미로를 이리저리 헤매 다녔다. 유성우의 칼날에 바람의 편지들이 풀잎처럼 허공에 찢겨질 때 노을이 묻힌 무덤가에서 흐느끼던 실루엣의 그림자 별이 지고서야 단풍나무 별 하나 가슴에 품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며 푸른 시트가 걷히는 언덕 파란 약병에서 쏟아지는 붉은 알약들 뼈만 남은 단풍나무는 흰 달빛에 실려 가고 비처럼 내리던 빛들이 검은 입속에서 초록빛으로 피어났다. [출처] 단풍나무 별|작성자 김기덕   비 개인 아침       옥상 위에 지렁이들이 물음표를 그린다. 승천하던 용들이 떨어져 지렁이가 된 건 아닐까. 간밤의 천둥 번개가 수상했다.       하늘엔 비룡이 살고 바다엔 해룡이 살고 성경엔 리워야단이 산다는데 땅에는 토룡이 산다.       여의주 같은 이슬을 물고 어둠 속에서 흙을 삼켜 빛을 토해낸다. 기꺼이 제 몸을 두더지나 뱀에게 내어주고 어혈을 풀어주면서 토막이 나서까지 생명을 낚는 낚시 밥이 된다.       밟힌다 해도 꿈틀 돌아누우며 온 몸으로 참아내는 묵언수행의 민초들 헌신의 용상에 올라 예수로 부활하고 석가로 환생한다.       흰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채워 하늘빛으로 상추와 깻잎을 가꾸신 어머니 품 같은 옥상에서       승천도 마다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목숨이 다해 전하는 상징의 기호들 동그라미를 그린다. 알파와 오메가를 그린다. 세상과 하늘과 내가 하나 되는 한일자를 쓴다. [출처] 비 개인 아침|작성자 김기덕   달의 항해   비행기가 지나자 물보라가 일었다. 반딧불과 어우러져 은어 떼처럼 별들이 유영하는 밤하늘 달의 목선을 타고 심해로 떠나는 항해를 꿈꿨다.   턱시도를 입고 구름 파도에 휩쓸리던 밤바다엔 용암이 흘러넘쳤다. 꽃밭의 별들이 숯불을 피워 이글이글 타올랐다. 해저에 닻을 내리고 은사銀絲의 투망을 던지는 초신성의 바다 달의 나침반은 지상을 가리켰다.   아버지의 이마에서 남자의 등에서 말의 엉덩이에서 새의 날개에서 나뭇잎의 푸른 잎맥에서 신의 성경책에서 마주보던 거울 속에서 출렁이는 바다,   달의 뒷면에서 어둠은 바다를 잊고 살았다. 문득 발견한 빛, 둥실 허공에 뜬 몸에서 엔진소리가 들렸다. 밀물로 차오른 보름달 망망대해엔 북극성의 부표가 떠올랐다.   온 세상 밤의 물결로 차오른 중수감 ䷜ 손 안에서 바다가 출렁이고 바람에 깃발처럼 달력이 찢겨진다. 시간의 속력에 찌그러진 유선형의 그믐달, 화살이 날아간다. [출처] 달의 항해|작성자 김기덕   날마다 선택된다    바람 속에서 춤추던 4g의 고무공들이   빛을 뚫고 세상에 나온 0.1초의 순간, 운명은 결정되었다.  비너스의 몸에서 나온 60억분의 일의 확률로 나는  아프리카 오지가 아닌,  가난과 굶주림의 전장이 아닌  대한민국,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에 산다.  당첨번호는 62, 10, 2, 8  권천성, 수천성, 귀천성, 예천성의 별들이 반짝이고  날마다 다이아몬드 태양이 떠오른다.  상금으로 받은 재산과 아이들, 최고의 행운은 그녀의 과녁을 맞힌 화살이었다.  황금 달과 지폐다발을 세는 바람  평생 쓰고도 남을 물과 공기 속에서 나는 또 다른 화살을 쏜다.  서울역 근처 와이티엔 빌딩 앞 명당에서 로또를 사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녹번동 은평구청 사거리   편의점 바이더 웨이에서 즉석 행운을 긁는다.  시간의 통 속엔 64궤의 공들이 돌아가고 384의 효들이 춤춘다.  지금 내가 뽑은 공은 33번째   천산돈(天山遯), 세상을 피해 잠시 몸을 숨겨야 한다.  백 번째 여자에게서 태어난 우레가 온 동네 떠나갈 듯 울어대는 밤  벼락 맞을 확률에 돈을 걸고  돼지나 불타는 집이나 물난리 꿈을 꾸진 않았어도  회차와 당첨금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린 이미 꽃이 된 구름을 따고, 눈물이 된 강을 마시고  백지 같은 땅을 구겼다 폈다하며 날마다 복권(福權)을 누린다.  비너스의 문이 열리는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 빗방울 하나에도 환성과 탄식이 교차한다. [출처] 복권|작성자 김기덕  
93    이브 본느프와 詩選 『살라망드르가 사는 곳』(열음사, 1987) 댓글:  조회:525  추천:0  2019-07-12
이브 본느프와 詩選 『살라망드르가 사는 곳』(열음사, 1987)     극장   1 나는 보았다 그대가 테라스 위를 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대가 바람과 싸우는 것을, 추위가 그대의 입술 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대사 부서져 즐거이 死者가 되고자 하는 것을, 번갯불이 훤한 유리창을 그대의 피로 얼룩지게 할 때 오오 번갯불보다 더욱 아름답게.     4 나는 잠을 깬다, 비가 온다. 바람이 그대에게 스며든다, 두우브여, 내 곁에서 잠자는 송진내나는 광야. 나는 테라스 위, 죽음의 구멍 속에 있다. 무성한 이파리들 속에 큰 개들이 떨고 있다.   문 위에, 문득, 그대가 스치는 팔이, 여러 세기를 통해 나를 바친다. 나는 잉걸불의 마을, 순간마다 나는 그대가 태어나는 것을 본다, 두우브여.   순간마다 죽는 것을.   6 어떠한 창백함이 그대를 때리는가, 지하의 강이여, 어떠한 동맥이 그대 속에서 끊어졌는가, 어디에서 메아리가 그대의 추락을 울려퍼지게 하는가?   그대가 문득 쳐드는 팔이 벌려져, 불타오른다. 그대의 얼굴이 떨어진다. 깊어가는 어떠한 안개가 내게서 그대의 눈길을 빼앗아가는가? 그림자의 느슨한 낭떠러지, 죽음의 경계선.   말없는 팔들이 그대를 반긴다, 다른 강변의 나무들이.   7 이파리들 속에서 확실치 않은 상처에 시달리는 사람, 하지만 길을 잃은 발자취의 피에 사로잡혀, 그러고도 여전히 살 수 있는 공범자.   나는 보았다, 싸움 끝에 모래에 파묻혀 그대가 침묵과 물의 경계선에서 망설이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 별들이 더러혀진 입 그대의 밤 속에서 밤샘하는 것의 두려움을, 외침으로써 깨뜨리는 것을.   오오 싸늘한 대기 속에서 갑자기 바위와도 같이 석탄의 아름다운 몸짓을 일으키며.   13 오늘 저녁 대지 위에서 밝게 비춰진 그대의 얼굴, 그러나 나는 그대의 눈이 썩어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얼굴이라는 말은 더 이상 뜻을 갖지 않는다.   선회하는 독수리의 밝게 비춰진 내부의 바다,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이다. 나는 그대를 차디찬 채로 소유한다, 이미지들이 더 이상 뿌리박지 못하는 깊이에서.         나무에게   그녀의 통로 위에서 모습을 감춘 그대들, 그대들은 그녀 뒤에서 그대들의 길을 닫아버렸다 두우브가 죽었을지라도 無가 아닌 채 여전히 빛을 비친다는 비정한 보증인들.   섬유질의 물질인 딱딱한 그대들 죽은 자들의 배[船] 안에서 입을 다물어 그녀가 굶주림과 추위와 침묵의 하찮음을 위해 몸을 던졌을 때, 내 가까이 있는 나무들이여.   나는 듣는다, 그대들을 통해서 개들과 형태없는 뱃사공들과 그녀가 어떤 대화를 시도할 것인가를. 그리고 나는 그대들에게 속한다 많은 밤을 통해, 이 모든 흐름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녀의 걸음에 의해서.   그대들이 가지 위에 내리치는 세찬 우뢰, 그 우뢰가 한여름에 불타오르게 하는 축제는 그대들의 엄숙함을 매개로 하여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내 운명에 맺어주는 것임을 뜻한다.   무엇을 붙잡는다는 말인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본다는 말인가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원한다는 말인가 죽는 것이 아니라면, 말하는 것, 찢겨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 가까이 있는 말이여 무엇을 찾는다는 말인가 그대의 침묵이 아니라면, 어떤 어렴풋한 빛을 깊이 묻혀진 그대의 의식이 아니라면,   근원과 밤 위에 물질로서 던져진 말이여.               단 하나의 증인   6 진흙투성이 더러운 겨울에, 두우브여, 나는 떠올리고 있었다, 그대 숲의 나지막한 빛나는 얼굴을. 모든 것이 해체되고, 모든 것이 멀어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되돌아올 길도 없이 웃으며 그대를 다시 보았다, 풍성한 계절의 저녁에, 그대는 머리카락으로 창백한 얼굴의 빛남을 감추었다.   나는 사라져가는 그대를 다시 보았다. 가을이 나뭇잎새에 강풍소리를 내며 스산해질 때 그대는 숲의 경지에서 불처럼 나타났다.   오오 더욱 까맣게 거칠어진 그대! 마침내 나는 죽은 그대를 보았다, 허무가 떠받치고 있는 달랠길 없는 번갯불 이내 꺼지는 캄캄한 집의 유리창           참다운 이름   나는 이름 붙일 것이다, 그대가 있었던 그 城을 사막이라고 그 목소리를 밤이라고, 그대의 얼굴을 不在라고 그리고 그대가 불모의 땅에 쓰러지게 될 때 나는 이름 붙일 것이다, 그대를 데려간 번갯불을 허무라고   죽음으 그대가 사랑했던 나라. 그러나 나는 간다, 영원히 그대의 어두운 길을 통해서. 나는 부순다, 그대의 욕망, 그대의 형태, 그대의 기억을 나는 연민의 정을 품지 않는 그대의 敵   나는 그대를 싸움이라고 이름 붙일 것이다, 나는 그대에 대해서 싸움의 자유를 가질 것이다, 또한 나는 가질 것이다, 내 손에 그대의 어두운 꿰뚫어진 얼굴을, 내 마음 속에 천둥치는 비바람 훤히 비치는 그런 나라를.           불사조   새는 우리들 머리 앞으로 날아갈 것이다, 피의 어깨가 새를 위해 치켜 세워질 것이다. 새는 즐거워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 그대가 새에게 내맡긴 몸, 그 나무 꼭대기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멀어져가는, 새는 오래 노래할 것이다. 그림자가 그 외침의 경계를 지워버릴 것이다. 나뭇가지마다에 새긴 죽음을 거부하며 새는 감히 밤의 봉우리를 넘어서 날아갈 것이다.           참다운 몸   입이 다물어지고, 얼굴이 씻겨지고 몸이 깨끗해져, 그 빛나는 운명 언어의 땅에 매장되어, 가장 나지막한 결혼이 완료되었다.   우리들은 살벌했고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내 얼굴을 향해 외치던 목소리는 스러졌다. 그 눈이 감겨져, 이제 나는 두우브를 죽은 채로 간직한다, 나와 함께 자아의 격렬함 속에 갇힌 채로.   그리하여 그대의 존재에서 올라오는 차거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들 친밀함의 결빙이 아무리 타오를 듯 할지라도 두우브여, 나는 그대 속에서 말한다, 그리고 그대를 껴안는다 안다는 행위와 명명한다는 행위 속에서.           詩法   첫 나뭇가지들로부터 분리된 얼굴 나지막한 하늘 아래 온통 두려움으로 만들어진 미   어느 난로에다 그대 얼굴의 불을 지를 수 있을까, 오오 머리를 아래로 떨군 채로 붙잡힌 메나드*여?   * 메나드(Ménade) 는 酒神 Bachus의 무녀               두우브는 말한다   1 때때로 그대는 말했다, 새벽에 헤매며 캄캄한 길 위에서, 나는 돌의 최면 상태를 나누어 가졌으며 나는 돌처럼 눈멀었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와 나의 코메디는 죽은 행위를 밝히고 말았다.   나는 여름을 바랬었다, 나의 눈물을 말리기 위한 광포한 여름을, 그런데 추위가 닥쳐와 내 사지에서 심해져 나는 깨어나 괴로워했다.   2 오오 운명적인 계절이여, 오오 칼날처럼 벌거벗은 땅이여! 나는 여름을 바랬었다 누가 낡은 피 속에서 이 쇠를 끊었는가?   참으로 나는 행복했었다 그 죽어가는 순간에 눈은 멍하니, 나의 손은 영원한 비의 불결함에 벌려져 있었다   나는 외쳤다, 나는 얼굴로 바람을 맞고 있었다······ 왜 미워하는가, 왜 우는가, 나는 살아 있었고, 그 깊은 여름 대낮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는데.   3 우리가 드러나 있는 이 존재의 표면 위에서 유한성이라는 바람만이 부는 이 메마름 위에서 말은 꺼져다오   한 그루 포도나무처럼 선 채로 타오르던 가수,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소재를 비추며 정상에서 구르는 최고의 가수.   그대가 나를 만나는 나지막한 방에서 말을 꺼져다오, 외침의 아궁이는 닫혀다오 발갛게 물드는 우리들의 말로 해서.   내 죽음 때문에 추위가 일어나 의미를 띠게 해 다오.         오렌지 밭   그리하여 우리들은 걸어갈 것이다, 끝없는 하늘의 폐허 위를, 목적지가 멀리서 나타날 것이다, 생생한 빛속의 운명과 같이.   오랫동안 찾아헤맸던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우리들 앞에 살라망드르의 땅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 돌을 보라고, 그대는 말할 것이다 : 이 돌은 죽음의 현존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의 몸짓 아래 타고 있는 돌이야말로 은은한 램프, 그리하여 우리들은 걷는다, 램프에 비치어.           싸움터   1 패배한 슬픔의 기사가 여기 있다 그가 샘물을 지켜주었기에, 나는 깨어난다 그것은 나무들 덕택이다 물소리 속에 계속 이어지는 꿈.   그는 말이 없다. 그의 얼굴은 온갖 샘물과 절벽을 쏘다니다, 내가 찾아낸 죽은 형제의 얼굴. 정복당한 밤의 얼굴, 찢어진 어깨의 새벽에 고개 수그린 얼굴.   그는 말이 없다. 패비한 자가 싸움이 끝난 뒤 변명할 만한 말로써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처참한 얼굴을 땅바닥에 떨군다 죽는다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외침, 참다운 휴식이다.   2 하지만 그는 운다, 깊은 샘물가에서 죽은 자의 다알리아꽃처럼 과연 그는 피어날 수 있을까? 우리들에까지 죽음 세계의 소리를 내지르는 11월의 흐릿한 물의 앞뜰에서.   내게 책임이 있는 날, 내가 다시 정복한 그날의 참담한 새벽에 기대어, 나는 영원히 매장된 내 비밀스런 악마의 영원한 존재가 흐느끼는 것을 들은 듯하다.   오 내 힘의 기슭이여! 그대는 다시 나타나리라 나를 이끌어간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있게 해다오 그림자여, 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림자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밤 속에서 그리고 밤을 통하여 그렇게 되리라.           살라망다르가 사는 곳   놀란 살라망드르는 꼼짝하지 않고 죽음을 가장한다. 이것이야말로 돌 속으로 나아가는 의식의 첫걸음. 가장 순수한 신화. 정신 자체인 커다란 불, 가로 질러가는 커다란 불.   살라망드르는 유리창의 빛 속, 벽 한가운데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하나의 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그의 심장이 영원히 고동치는 것을.   오오 나의 공범자여, 나의 思考여, 모든 순수한 것의 알레고리여, 이렇듯 자신의 침묵 속에서 오직 하나의 즐거움의 힘을 억제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꼼짝하지 않는 몸 전체로 하늘의 별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신의 승리 시간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을, 내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아름다운 여름   불이 우리들 대낮에 붙어다니다 대낮을 완성시켜가고 있었다, 쇠가 더욱 회색빛으로 물드는 새벽마다 시간을 상처내고 있었다, 바람이 우리들 방의 지붕 위에서 죽음과 부딪치고 있었다, 추위가 우리들 마음을 에워싸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아름다운 여름, 빛바랜, 파괴하는, 캄캄한 여름이었다, 그대는 여름 비의 부드러움을 사랑했었다 또한 그대는 그 회색빛 날개를 떨리는 별장에서 여름을 지배하는 죽음을 사랑했었다.   그 해 그대는 거의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돌, 바람, 물, 그리고 나뭇잎으로 그대의 눈앞에 다가오는 언제나 까만 하나의 기호를.   그리하여 쟁기날은 벌써 경작하기 쉬운 대지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대의 오만함은 사랑했다 그 새로운 빛을, 여름의 대지 위에서 두려워하는 도취를.           램프가 낮게 타고 있었다   램프가 낮게 타고 있었다, 그대를 향해 회색 얼굴을 기울이고, 나무들의 공간에서, 상처 입은 죽음을 지닌 새처럼 그것은 떨고 있었다. -재투성이 바다의 항구에 겉도는 기름은 마지막 날빛으로 빨갛게 물들 것인가, 물거품 헤치고 해안에 닿으려는 배는 마침내 낮의 빛속에 나타날 것인가?   여기서 돌은 홀로이며 광막한 회색빛 영혼, 그대는 낮이 오지 않는데도 걷고 있었다.         철교   내가 어린 시절에 거닐곤 했던 길다란 거리 끝에는 언제나 기름의 늪이, 캄캄한 하늘 아래 묵직한 죽음의 長方形이 있었다.   詩가 다른 물로부터 스스로의 물을 분리시킨 이후, 어떤 아름다움도, 어떤 새깔도 그 늪을 간직하지 못한다, 늪은 쇠와 밤을 위해 괴로워한다.   늪은 죽은 물가의 기다란 슬픔을 기르고 있는데, 보다 몽상적인 저쪽 기슭으로 걸쳐 있는 철교는 그의 유일한 기억이며 오직 하나의 참다운 사랑이다.           미완성이 절정이다   파괴하고, 파괴하고, 파괴해야만 했다. 구원은 그 댓가로써만 이루어졌다.   대리석 속에 떠오르는 벌거벗은 얼굴을 파괴할 것, 모든 형태 모든 아름다움을 파괴할 것.   완성이란 입구이므로 완성을 사랑할 것, 하지만 알게 되면 곧 그것을 부정할 것, 죽게 되면 곧 그것을 잊어버릴 것,   미완성이 절정이다.           불의 연약성   불이 붙었다, 불은 나뭇가지의 숙명, 그것은 나뭇가지의 조약돌처럼 차가운 마음을 스치려고 한다, 모든 태어난 사물의 항구에 찾아든 불. 물길의 기슭에서 그것은 쉬게 될 것이다.   불은 타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알리라, 순수한 열망 속에서, 벌거벗은 땅의 공간이 불 밑에서 나타나리라는 것을, 죽음의 별이 우리들의 길을 비춰주리라는 것을.   불은 사그라져버릴 것이다. 그림자 짙게 드러운 개여울은 그 발걸음 아래, 잠시 반짝거릴 것이다. 이데아도 그것이 사용하는 물질을 넘어서 구원할 수 없는 시간을 포기하리라.           골짜기   돌 무더기 속에 한 자루의 劍이 꽂혀 있었다. 손잡이는 녹슬어 있었다, 고대의 쇠가 회색빛 돌의 옆구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대는 두 손으로 不在를 붙잡아야 했고 밤의 광맥에서 어슴프레한 불꽃을 빼앗아야 했음을 알았다. 몇 마디 말이 돌의 피 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들을 아는 길과 죽는 길을 말하고 있었다.   不在의 골짜기에 들어가, 멀어져가라, 항구인 것은 조약돌뿐인 여기. 한 마리의 새의 노래가 새로운 강변에서 그대에게 그것을 가리켜줄 것이다.           여기, 언제나 여기   여기, 밝은 곳. 이것은 더 이상 새벽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욕망을 지닌 대낮. 그대의 꿈 속에서 노래의 신기루 가운데 남아 있는 건 다가오고야 말 돌의 이 반짝임뿐.   여기, 그리고 저녁 무렵까지. 그림자의 장미는 벽 위에서 돌고 있으리라. 시간의 장미는 소리도 없이 꽃잎을 떨어뜨리리라. 밝은 鋪石 바닥은 대낮에 넋을 빼앗긴 이것들의 발걸음을 제멋대로 이끌어가리라.   여기, 언제나 여기. 돌에 돌을 쌓아 추억에 의해서 말해진 나라를 세웠다. 이제 막 떨어지는 다순한 과일의 소리가 더 한층 그대 속에서 치유되어가는 시간을 열광시킬 것인지.         폐허의 새   폐허의 새는 죽음에서 멀어진다, 새는 햇빛 비치는 회색 돌 속에 둥우리를 짓는다, 새는 온갖 고통, 온갖 기억을 뛰어넘는다, 새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영원 속에서 내일이 무엇인지를.           하나의 소리   불이 타들어오는데 그대는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지어주고자 하는 것인가, 무슨 검을 글자를 써주고자 하는 것인가?   오랫동안 나는 그대의 記號 앞에서 머뭇거렸다, 그대는 나를 온갖 밀도로서 옭아매었다.   하지만 이제 한없는 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나는 검은 말을 타고 그대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또 하나의 소리   모든 것이 멈출 때 머리칼을 흔들거나 의 재를 뿌리면서 그대는 무슨 몸짓을 시도하려 하는가, 그리하여 존재의 자정이 책상을 바치는 것은 언제인가?   모든 것이 침묵을 지킬 때 그대의 검은 입술 위에서 그대는 어떤 기호를, 어떤 가난한 언어를 지키려고 하는가, 아궁이에 불이 꺼져버릴 때 마지막 불씨를 지키려 하는가?   나는 그대 속에서 살아가리라, 그리고 나는 그대 속에서 모든 빛을 꺼내리라, 모든 化肉, 모든 암초, 모든 법을.   그리하여 내가 그대를 끌어올린 허무 속에다 나는 번갯불의 길을 열리라, 아니면 아직껏 소리친 적이 없는 가장 커다란 외침을.           하나의 돌   그는 바랐다. 아무것도 아지 못한 채 그는 사라졌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 나무, 연기, 바람과 실망의 모든 실이 그가 사는 거처였다. 한없이 그는 껴안았다 자신의 죽음만을.           죽은 자들의 장소   죽은 자들의 장소는 어디인가, 죽은 자들은 우리들처럼 길을 걷는가, 그들은 말을 하는가, 그들의 말은 우리보다 진실한가, 그들은 나뭇잎의 魂인가, 나뭇잎보다 더 높은 나뭇잎의 혼인가?   불사조는 그들을 위해 하나의 성을 세웠는가, 그들을 위해 하나의 책상을 만들었는가? 어떠 나무의 불더미 속에서 울부짖는 어떤 새의 외침소리가 죽은 자들이 모두 밀어닥치는 공간인가?   아마도 그들은 송악의 이파리 속에 누워 있는 것이리라, 그들의 일그러진 말[言語]의 이파리는 밤이 찾아오는 항구, 찢겨진 말의 이파리의 항구이리라.           새벽의 땅에서   눈물의 딸, 새벽이여, 다시 일으켜 세우라 방을 그 회색빛 사물의 평화 속에, 그리고 그 질서 속에 마음을 숱한 밤이 시들어, 사라져 버리기를 이 빛에게 요구했었다, 우리들은 죽은 얼굴 곁에서 밤샘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램프의 o는 항구에 들어갈 것인가, 여기 책상 위 재가 된 불꽃은 딴 곳의 다른 광명 속에서 커다랗게 타오를 것인가? 새벽이여, 일어나라, 그늘 없는 얼굴을 쳐들어라 다시 시작하는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색칠하라.           베네란다   오오, 쪼개진 빵 속이 이 무슨 불빛인가, 희미해진 별빛 속에 이 무슨 순수한 새벽인가! 나는 돌들 사이로 햇빛 비쳐드는 것을 바라본다, 그 밝음 속에 그대 혼자서 검은 빛을 두르고 있다.           또 다른 죽음의 강변   1 피닉스가 되는 것에서 자유로와진 새는 죽기 위해 나무에 홀로 머물러 있다. 새는 상처의 밤으로 몸을 감싸고 자신의 심장을 찌를 劍을 느끼지 않는다.   램프 속에서 기름이 낡아지고 시커멓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그토록 많은 길처럼, 새는 나무의 물질에 천천히 돌아온다.   어느 날인가 새는 그렇게 되리라, 어느 날인가 새는 분명 죽은 동물, 피가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갈라진 목을 지닌 부재가 되리라.   풀숲 속에서 모든 진실의 깊이를 찾아낸 새는 풀숲에 떨어지리라. 피의 맛은 그 강변을 물결로 부딪칠 것이다.   2 새는 깊은 비참으로 해체되리라, 새는 거짓말하기를 바라지 않는 목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부심과 타고난 성격으로 새는 오직 허무, 죽은 자들의 노래일 수밖에 없으리라.   새는 늙어가리라. 벌거벗은 엄한 모습을 지닌 나라는 그 목소리의 또 하나의 비탈이 되리라. 파도가 치지 않는 끌어올려진 배는 그리하여 마멸된 모래바람에 시커멓게 되리라.   새는 침묵을 지키리라. 죽음은 그리 장중하지 않다. 새는 존재의 무익성 속에서 쇠에 날개를 찢기운 그림자의 몇 발자욱을 만드리라.   새는 장중한 빛 속에서 죽어가리라. 그것은 또 하나의 어두운 세계 속에 세워 놓은 더 한층 행복한 빛의 이름으로 말해질 수 있으리라.   램프, 잠자는 사람들     1 내려가는 계단을 아예 내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사 나는 알아차렸다, 죽음 속을 내려가는 길이 있는 이 땅이 또그대 없이는 잠들 수가 없었다, 그대 없이는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바랐다 내 열병의 베갯머리에 그대가 존재하지 않기를. 그대가 밤보다도 더 어두운 존재이기를. 그리하여 무용한 세계 속에서 내가 소리 높이 말했을 때 너무도 광막한 잠의 길 위에서 나는 그대를 붙잡았다.   내 속에서 짓누르는 神, 그것은 내가 떠도는 기름으로 빛나게 했던 강기슭, 그대는 알고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줄곧 괴롭히는 내 심연의 발걸음을, 밤이면 밤마다 찾아오는 나의 새벽, 이룰 수 없는 사랑을.   2 -나는 그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숱한 돌의 골짜기여 나는 듣고 있었다 그대의 묵직한 휴식의 소리를, 나는 보고 있었다 그대를 가리는 그림자 속에 아주 나지막이 잠의 거품이 허옇게 이는 슬픈 장소를.   나는 그대가 꿈꾸는 것을 듣고 있었다. 오오 단조로운 둔한 자여, 때때로 보이지 않는 바위에 부서져 얼마나 멀리 그대 목소리는 사라져갈 것인가! 그 목소리의 그림자 속에 가냘프게 속삭이는 기다림의 격류를 밀어헤치면서   저쪽, 울긋불긋한 꽃빛깔의 뜰 가운데, 방자한 공작 한 마리 죽음의 빛으로 자라고 있다. 하지만 그대,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꿈틀거리는 나의 불꽃뿐, 그대는 유연한 말의 밤에 살고 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대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미완성 儀式의 놀람과 서두름분 그대는 책상 꼭대기에서 어둠을 나눠갖는다, 오오 유일하게 빛나는 것이여, 그대의 손은 얼마나 벌거벗었는가!             하나의 돌   그대의 다리, 매우 짙은 밤, 맺어진, 몹시도 검은 그대의 가슴, 나는 눈을 잃어버렸는가? 돌보다도 싸늘한 이 어두컴컴한 속에서 끔직스런 내 눈의 신경을 잃어버렸는가? 오오 내 사랑이여.   빛의 한가운데서 나는 없애버린다 처음에는 가스로 하여 벗겨진 내 머리를, 그리고 나선 여러 나라와 함께 내 이름을, 단 하나 똑바른 내 손만이 끈질기게 남는다.   행렬의 선두에서 나는 쓰러졌다 神도 없고, 들을 수 있는 목소리도 없고, 죄도 없이, 울부짖는 삼위일체의 짐승으로서.             하나의 돌   떨어져라, 하지만 얼굴 위에, 부드러운 비여. 꺼져가라, 하지만 서서히, 몹시도 가난한 샬레이유*여   *샬레이유(chaleil)는 호야가 없는 고풍스런 옛날 램프의 일종.             쟝과 쟌느   그대는 황폐해진 나지막한 이 집의 이름을 묻는다, 그것은 또 하나의 나라에 있는 쟝과 쟌느.   널따란 바람이 지나갈 때 노래 부르는 자도 나타나는 자도 없는 문지방.   그것은 쟝과 쟌느. 그들의 회색 얼굴에서 낮의 회반죽이 떨어져, 나는 다시 본다 지나간 옛 여름날의 유리창을. 그대는 기억하는가? 멀리서 아주 뚜렷이 빛나는, 그림자의 딸 聖櫃를.   오늘 이 저녁, 우리들은 불을 지피리라 커다란 방에. 우리들은 떠나가리라, 우리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그 불을 살려두리라.             하나의 소리   우리들은 늙어가고 있었다, 그는 나뭇잎 나는 샘물, 그는 약간의 햇빛, 나는 심연 그는 죽음, 나는 삶의 지혜.   나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간이 조종하는 기색 없이 웃는 牧神의 얼굴을 그림자 속에서 우리들에게 내미는 것을,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자를 실어오는 바람이 일어서는 것을.   어두컴컴한 샘물에서 죽는다는 것은 송악이 마시는 바닥 없는 물을 뒤흔드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영원한 꿈 속에 서 있었다.         나무, 램프   나무가 나무 속에서 늙어가는 여름이다. 새가 새의 노래를 넘어서 달아난다. 옷의 붉은 빛깔이, 저 멀리 하늘에서 고대적인 고통의 수레를 빛나게 하다가 산산이 흩뜨려 버린다.   오오 들고 다니는 램프의 불꽃처럼 연약한 나라여, 세계의 수액 속 잠은 가깝고 헤어진 영혼의 고동소리는 단순하다   그대는 또한 사랑한다 램프 빛이 날빛 속에서 생기를 잃어 꿈꾸는 순간을. 그대는 또 알고 있다 그대 마음의 어둠이 치유되고, 배가 강 기슭에 닿아 가라앉아 버리는 것을.           미르트(桃金孃)   때때로 나는 그대를 흙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그대의 입술에서, 뜨거운 돌 속에서 솟아나올 때의 샘물의 고뇌를 마셨다. 그리하여 여름은 행복한 돌과 물 사니는 자를 힘차게 지배했다.   때때로 나는 미르트에 대해 그대에게 말했다. 나는 온종이 그대 몸짓의 굴대를 불태웠다. 그것은 베스타 무녀의 빛의 간결하고 위대한 불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대를 그대의 밝은 머리카락 속에서 만들어냈다.   위대한 여름 내내 우리의 꿈을 말라붙게 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녹슬게 하고, 우리의 몸을 자라게 하고, 우리의 쇠를 망가뜨리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때때로 침대는 선회하고 있었다 앞바다에 닿아가는 자유로운 한 척의 배처럼.   * 미르트(myrte)란 도금양과(桃金孃科)에 속하는 식물의 이름.           하나의 돌   하나의 불이 우리들 앞을 지나간다. 나는 순간마다 그대의 목덜미, 그대의 얼굴을 알아본다. 그 다음은 불꽃만을, 불더미만을, 죽은 자들의 울부짖음만을.   석양의 빛 속에서 그대를 불꽃으로부터 떼어놓은 재, 오오 현존이여, 그대의 은밀한 궁륭 아래서 우리들은 맞아들인다 어두운 축제를 위해.           변화된 빛   우리들은 서로 똑같은 빛 속에서 더 이상 보고 있지 않다, 우리들은 똑같은 눈, 똑같은 손을 더 이상 지니고 있지 않다. 죽은 자들 사이에서, 나무는 보다 더 가까이 있고, 샘물 소리는 보다 더 생생하며, 우리들의 발걸음은 보다 더 신중하다.   지금 여지 있지 않는 신이여, 우리들 어깨 위에 그대 손을 얹으라, 그대 再臨의 힘으로 우리들 몸을 지으라, 우리들 영혼에 이 별들, 이 나무들, 이 새들의 울음소리, 이 그림자들, 이 날빛들을 섞어라.   과일이 째지듯 우리들 속에 그대 스스로를 버리라 그대 속에 우리들을 사라지게 하라. 우리들에게 밝혀라 오직 단순할 뿐인 것의 신비로운 의미를, 사랑 없는 말 속에 불도 없이 떨어졌던 것의 신비로운 의미를.           고뇌와 욕망의 대화   1 때때로 나는 나 이상의 어떤 희생적인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 얼굴의 빛은 마치 갈아엎은 밭의 흙과 같다. 입술과 눈은 웃음을 짓고, 이마는 음울하다, 바다 소리는 지루하고 둔중하다. 나는 얼굴에게 ‘내 힘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얼굴의 빛이 더욱 환해진다. 그 얼굴은 어슴프레한 박명의 싸움의 나라를, 굽이굽이 돌아 비옥한 땅을 확실이 보장해주는 강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이러한 시간과 괴로움이 필요했던 것에 놀란다. 왜냐하면 과일들이 벌써 나무 속에서 군림하고 있었으며, 또한 해가 이미 저녁의 나라를 빛나게 하고 있었기에. 나는 내가 거기서 살 수 있는 높은 지대를 바라보고 있다, 또 하나의 딱딱한 손을 붙잡고 있는 이 손, 미완의 가을 노고의 짐을 들어올리고 있는 이 부재의 호흡   2 그리고 나는 부재의 여인 꼬레를 생각한다, 그녀는 자기 손에 꽃들의 반짝이는 검은 심장을 치켜들어, 그 검은색을 마시면서, 빛과 그림자의 목장에서, 끝내 밝혀지지 않는 여인으로서 쓰러졌다.   나는 이 오류, 이 죽음을 이해한다. 백합과 쟈스민은 우리들 지방으 산물이다. 그렇게 깊지 않은, 맑고 푸른 물의 강기슭은 세계의 중심의 그림자를 떨게 하고 있다······ 그렇다, 꺾어라. 꽃을 꺾는 잘못이 우리에겐 허용되어 있으니까. 영혼 전체가 단순한 말의 둘레에 몸을 구부리고 있고, 그리자이유 그림은 무르익은 과일 속에서 사라져간다.   싸움의 말의 쇠는 되돌아올길 없는 행복스런 물질 속에서 스러진다.   * 회색의 농담만으로 그리는 화법에 의한 그림 또는 장식유리창을 가리킴.   3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오래된 말 속에 깃들어 있는 찬란함. 생생한 물이라는 무기가 밝혀준, 행복스런 바다와 같은 머나먼 우리들 모든 생명의 단락   우리들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이미지 같은 것은. 저기, 저 나무만으로 우리에겐 충분하다, 빛으로 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된 저 나무. 겨우 몸을 입기 시작한 神의 겨우 불러주기 시작한 이름밖에 알지 못하는 저 나무.   아주 가까이서 가 타고 있는 드높은 나라.   단순한 시간이 슬픔도 없이 손으로 대고 있는 벽의 초벌바름, 손이 그것을 재고 있다.   4 그리고 그대, 그대야말로 나의 자랑, 오오 逆光의 위치에서 떠나, 더욱 사랑받던 여인이여 내게 더 이상 낯선 여인이 아닌 그대여 나는 알고 있다, 우리들은 똑같은 어두운 뜨락에서 자라고 있음을. 우리들은 나무 밑에서 똑같은 어려운 물을 마셨다. 똑같은 천사가 가혹하게 그대를 위협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발걸음은 똑같아진다. 잊어버리기 쉬운 어린시절의 나무딸기를 떠나서 똑같은 불순한 저주를 떠나서.   5 저녁 지상에는 작별이 빛아 아직 남아 폭풍우의 손, 증여의 손을 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 손바닥은 우리들의 장소, 괴로움과 희망의 장소다. 빛이 죽음의 장소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자이며 분명 멀리 떨어져 있는 검은 신에게 복종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오후는 자줏빛이었고 단순한 描線이었다. 상상은 우리들 쪽으로 맑으 은빛 미소의 얼굴을 향한 채 거울 속에서 깨어졌다. 그래서 우리들은 조금 늙어버렸다. 행복이 부재의 가지에 열매를 익어가게 하고 있었다. 내 순수한 물이여, 그건 보다 가까운 나라인가? 쓸데 없는 말 속으로 그대가 나아가는 길 그것은 영원히 그대의 사는 거처가 있는 강변 위 음악을 연주하고, 풀어져 가는 길일까?   6 오오 그대 흙의 날개, 그림자으 날개로 우리들을 깨우라, 대지처럼 웅대한 천사여, 그리고 지금 어떤 시작을 찾아서 우리들을 데려가라, 죽은 대지와 똑같은 곳으로. 오래된 과일은 겨우 다스러져니 우리들의 굶주림이며 갈증이어라. 불은 우리들의 불이어라. 기다림은 다가오는 운명, 이 시간, 이 머무름 속에서 변한다.   쇠, 절대의 밀이며 우리들의 몸짓, 우리들의 저주, 우리들의 손이 쉬는 사이에 싹트는 밀이여 가까운 별들의 운행처럼, 마음씩 착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시간의 황금을 따버린 씨앗으로 떨어진 말이여.   여기, 우리들이 가는 곳 우리들이 보편적 말을 배운 곳.   활짝 마음을 열어라, 우리들에게 말하라, 부수어라, 불타는 왕관이여, 투명한 고동이여, 태양의 마음을 지난 琥珀이여.           틴토레트의 피에타*   괴로움이 햇빛 쪼이는 이 검은 쇠창살 속에서 이다지도 우아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또한 우아함이 이다지도 정신적인 요인이 됐던 적도 없었다. 석양의 쇠창살 위에 서 있는 이중의 불.   여기서는, 위대한 희망이 바로 화가였다. 오오 바라던 괴로움, 또는 그려진 이미지에 대해 이보다 더 진실한 것이 어디 있을까? 욕망은 이미지의 장막을 찢고 이미지는 핏기 없는 욕망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내려진 그리스도의 몸을 무릎 위에 안고 슬퍼하는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함. 라틴어로 마테르 돌로로자(mater dolorosa)라고 함.           피, 시 音標   길고 긴 나날. 진정되지 않는 피가 피와 부딪친다. 헤엄치는 사람은 장님. 진홍빛 계단을 지나 그대 심장의 고동 속으로 내려간다.   목덜미가 팽팽히 당겨질 때 언제나 황량한 외침이 순수한 입을 때린다.   그리하여 여름은 늙어가다. 그리하여 죽음은 꿈틀거리는 불꽃의 행복을 둘러싼다. 그리고 우리들은 약간 잠든다. 시 음표가 붉은 천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울린다.           마음, 흐려지지 않는 물   그대는 즐거운가 아니면 슬픈가? -내가 그것을 안 적이 있었던가, 되돌아올 길 없는 마음에는 아무것도 무거운 짐이 되는 게 없다는 것밖에는.   뜰과 그림자를 가로질러간 마음의 유리 상자 위에는 새의 발자욱이 하나도 없다.   나의 삶을 마셔버린 그대에의 걱정 하지만 나뭇잎 그늘 속에는 추억이 하나도 없다.   나는 단순한 시간 흐려지지 않는 물이다. 죽지 않고서 그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시의 작용   이 밤의 밖에서 시선은 샅샅이 파헤쳐졌다. 손은 꼼짝 못하게 되고 텅 비게 되었다. 열병은 누그러졌다. 마음에는 마음이라고 일러주었다. 혈관 속에 데몽이 있어, 외치면서 도망쳤다. 입 속에 음울한 피투성이 목소리가 있어, 씻겨지며 다시 불러들여졌다.  
『시집』스테판 말라르메 지음/황현산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5       인사   없음이라, 이 거품, 처녀 시는 오직 술잔을 가리킬 뿐 ; 그처럼 저 멀리 세이렌의 떼들 수없이 뒤집혀 물에 빠진다.   우리는 항해한다, 오 나의 가지가지 친구들아, 나는 벌써 뒷전에서, 그대들은 벼락과 겨울의 물살을 가르는 화사한 뱃머리에서 ;   아름다운 취기 하나 나를 부추겨 그 키질도 두려워 말고 서서 이 축배를 바치게 한다.   고독에, 암초에, 별에, 우리 돛의 하얀 심려를 불러들인 것이면 어느 것에나.           불운   얼빠진 인간의 무리 위에 창공을 구걸하는 자들 그 발은 우리의 길을 밟고도 그 야성의 갈기는 번쩍이며 솟구치고 있었네.   그들의 걸음 위로 군기처럼 펼쳐진 검은 바람이 살 속까지 추위로 매질을 하여 그때마다 성마른 바퀴 자국을 거기 파놓곤 했네.   항상 바다를 만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들은 여행했네, 빵도, 지팡이도, 물 항아리도 없이, 쓰디쓴 이상의 황금 레몬을 씹으며.   대부분 밤의 행렬 속에 헐떡거리며, 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리라는 행복에 도취하였으니, 오 죽음이여 그들 고집스런 입술에 단 한 번의 입맞춤을!   그들이 패배한다면, 그것은 벌거벗은 칼을 들고 지평선에 서 있는, 막강한 한 천사의 탓. 감읍하는 가슴에 한 조각 선홍빛이 엉기네.   그들은 꿈의 젖을 빨았듯이 고통의 젖을 빠네, 그리곤 관능적인 눈물을 리듬에 맞춰 노래하노라면 대중은 무릎을 꿇고 그들의 어머니는 일어서네.   이 사람들이야 위로를 받고, 자신 있고 당당하나, 조롱당하는 백 명의 형제들을 그 발치에 끌고 가네, 음흉한 우연의 가소로운 순교자들을.   눈물 소금이 늘상 그들의 부드러운 뺨을 갉으니, 그들은 한결같이 사랑으로 재를 삼키나 야비하거나 익살을 떠는 운명이 그들을 차형에 처하네.   그들은 북을 울리듯, 생기 없는 목소리로 종족의 천한 동정을 자극할 수도 있었지, 한 마리 독수리가 부족한 프로메테우스의 동류들!   아니야, 비천하고, 웅덩이도 없는 사막을 배회하는 그들이 성마른 군주의 채찍에 몰려 둘러쓰는 것은 불운, 그 들리잖는 웃음소리에 무릎 꿇어 엎드리네.   연인들이여, 겹살이꾼 그놈! 말 엉덩이에 곁다리로 함께 올라타고, 급류를 뛰어넘으면, 당신들을 진창에 처박아, 허우적대는 허연 한 쌍의 진흙더미만 남겨놓지.   그놈 덕분에, 남자가 제 괴상한 날라리를 불라치면, 아이들은 엉덩이에 주먹을 붙여 팡파르를 흉내 내며 끈덕진 웃음으로 우리 허리를 쥐어짜게 하리라.   그놈 덕분에, 婚期의 가슴 빛낼 장미 한 송이로 여자가 시든 가슴 알맞게 장식할라치면, 저주받은 그 꽃다발 위에 가래침이 번들거리리라.   그리고, 이 난쟁이 해골, 깃털 장식 펠트帽를 쓰고, 장화를 신고, 옆구리엔 진짜 털인 양 구더기가 슬었으니, 그들에게는 끝도 한도 없는 막막한 쓰라림.   화가 난 그들이 악당에게 덤벼들지 않으랴만, 이를 가는 그들의 장검은 그놈의 해골에 눈 내리며 맞구멍을 뚫고 나가는 달빛이나 뒤쫓네.   불우한 신세를 높이 받들 오기도 없이 처량하고, 고작 험한 말로 제 뼈의 원수를 갚는 것이 한심한 이 작자들은 원한에도 못 미치는 증오를 갈망하지.   서투른 三絃胡弓 연주자들에게도, 애새끼들, 창녀들에게도, 술병이 바닥났을 때 춤을 추는 누더기 늙다리들에게도 놀림감.   적선에건 복수에건 훌륭한 시인들은 이 지워진 신들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지루하고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네.   “갑옷을 두르고 내달려 출정하진 않더라도 폭풍 같은 거품을 뿜는 신출내기 말처럼, 그들도 깐으로는 공적이 웬만하니 도망쳐도 무방하리.   축제의 승리자에게라면 훈향을 실컷 피워 올리련만, 이 어릿광대들은 왜 진홍빛 넝마도 걸치지 않은 주제에 발걸음을 멈추시라 소리만 지르는가!”   아무 놈이나 그들의 얼굴에 경멸을 침 뱉고 나면, 비천한 말들을 수염에 매달고 천둥에 기구하는 헛것들, 익살맞은 불안을 못 이겨 이 영웅들은   가로등 기둥에 우스꽝스럽게 목을 매러 간다네.         顯現   달은 슬펐다. 눈물 젖은 세라핀들이. 손가락에 활을 들고, 아련한 꽃들의 고요에 잠겨 꿈꾸며, 하늘빛 꽃부리를 따라 미끄러지는 그 하얀 흐느낌을 잦아드는 비올라에서 끌어내고 있었으니 -그것은 너의 첫 입맞춤으로 축복받은 날. 마냥 나를 괴롭히려 드는 몽상은 슬픔의 향기에 슬기롭게 취했었지, 후회와 환멸은 없어도 꿈을 꺾고 나면 그 꺾은 가슴에 슬픈 향기는 남는 법. 낡은 포석에 눈을 박고 그러므로 나는 떠도는데, 머리에 햇빛을 이고, 거리에서, 저녁에, 그때 활짝 웃으며 나타난 너, 빛의 모자를 쓰고 옛날 응석받이 아기 내 고운 잠을 밟고 지나가며 언제나 가볍게 쥔 그 손에서 향기로운 별 하얀 다발을 눈 내리던 그 선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시답잖은 청원서   공주여! 이 찻잔 위에 그대 입술이 입 맞추는 자리에 솟아오르는 헤베의 팔자가 부러워, 나는 내 불꽃을 낭비하나 사제의 얌전한 지위밖에 가진 게 없으니 세브르의 도자기 위에 발가벗고는 나타날 수 없으리.   나는 당신의 수염 난 복슬강아지도 아니고, 박하사탕도 입술연지도, 응석받이 노리개도 아니기에, 그래도 당신의 감은 눈길이 내게 떨어진 줄은 알고 있기에, 그 달통한 미용사들이 금은세공사 노릇을 해야 하는 금발 여인아!   우리를 임명하시라······ 딸기 향내 나는 그 많은 웃음이 길들인 어린 양떼인 양 모여들어 아무에게서나 그 소원을 뜯어먹으며 열광하여 울어대는데, 당신아,   우리를 임명하시라······ 부채 하나로 날개를 단 사랑의 신이, 손가락에 피리를 들고 이 양 우리를 잠재우는 내 모습 부채에 그리도록, 공주여, 우리를 그대 미소의 목동으로 임명하시라.           벌 받는 어릿광대   두 눈, 호수, 캥케 燈의 더러운 그을음이 깃털인 양 시늉으로 환기하는 딴따라 광대 노릇 그만 접고 다른 것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내 소박한 도취에 잠겨, 나는 천막의 벽에 창 하나를 뚫었네.   내 다리와 두 팔로, 헤엄치는 맑은 사람 배반자 나는 무수한 도약을 거듭하여, 서툰 햄릿을 부정하였으니! 파도 속에서 마치 수천 무덤을 새롭게 바꿔 그 안으로 순결하게 사라지기라도 할 것 같았네   주먹질에 화내는 심벌즈의 명랑한 황금, 태양이 갑자기, 내 자갯빛 신선함으로 순결하게 증발한 알몸을 때리니,   피부의 고약한 어둠 그대가 내 위로 흐를 때였네, 빙하의 음험한 물에 풀린 이 연지분이 내 축성식의 전부였음을, 배은망덕한 놈! 나는 몰랐던 것.           창   슬픈 병원이 지겨워, 빈 벽의 크고 권태로운 십자가를 향해 휘장의 진부한 백색을 타고 피어오르는 역겨운 향 내음이 지겨워, 딴 마음을 먹는 빈사의 병자는 늙은 등을 다시 세우고,   저를 끌어가, 그 썩은 몸을 덥히려는 게 아니라 돌 위에 떨어지는 햇빛을 보려고, 앙상한 얼굴의 하얀 털과 뼈를 맑고 고운 광선이 검게 태우려는 창에 붙이니,   열에 들떠, 푸른 하늘을 탐식하는 그의 입은, 젊은 날, 그의 보물, 왕년의 어느 순결한 피부를 마시려 들었을 때처럼! 쓰디쓴 긴 입맞춤으로 금빛 미지근한 유리창을 더럽힌다.   취하여, 그는 살아난다, 聖油의 끔찍함도, 탕약도, 시계와 강요된 침대도, 기침도 잊고, 저녁 해가 기와지붕 사이에서 피를 흘릴 때, 빛살 가득한 지평선에 그는 눈길을   보내니, 백조처럼 아름다운 금빛 갤리선들, 얼기설기 풍요로운 황갈색 섬광일랑은 추억에 잠겨 태무심하게 흔들어 재우며, 주홍빛에 싸여 갯내음 풍기는 강 위에 잠드네!   이렇게, 행복 속에 파묻혀 오직 그 식욕으로만 밥을 먹고, 아등바등 오물을 찾아 제 어린 것 젖먹이는 아내에게 바치려는 모진 마음의 인간에게 역겨움 지울 수 없어.   나는 도망친다, 그리고 누구나 삶에 등을 돌리는 모든 창에 매달리고 싶다, 그리고 축복을 받아, 무한의 순결한 아침이 금빛으로 물들이고, 영원한 이슬로 씻긴, 그 창유리에   나를 비추니 나는 천사이어라! 그리고 나는 죽으니, -그 유리가 예술이건, 신비로움이건- 내 꿈을 왕관으로 쓰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 美가 꽃피는 전생의 하늘에!   그러나, 오호라! 이 세상이 주인 : 고착된 이 생각 때로는 이 확실한 피난처에까지 찾아와 내 속을 뒤집고, 어리석음의 더러운 구토가 창공을 앞에 두고도 코를 막도록 나를 몰아대는구나.   그래, 있는가, 오 쓰라림을 아는 나여, 괴수에게 모욕 받은 수정을 부수고 깃털 없는 나의 두 날개로 도망칠 방법이? -영원토록 추락하는 한이 있어도.           꽃들   첫날 새벽에, 옛 蒼天의 황금 사태와, 별들의 영원한 눈사태에서, 아직은 젊고 재난에 물들지 않은 땅을 위해 옛날 당신은 풀어놓았지 거대한 꽃송이들을,   목이 가는 백조들과 함께, 황갈색 글라디올러스를, 오로라를 밟고 부끄러움에 붉게 물든 세라핀의 해맑은 엄지발가락 같은 주홍빛 유형받은 영혼들의 저 거룩한 월계화를,   히아신스를, 경애로운 섬광 지닌 도금양을, 그리고 여자의 살결을 닮아 잔인한 장미, 밝은 정원에 꽃핀 에로디아드 사납고 빛나는 피에 젖은 그 꽃을!   그리고 당신은 백합들의 흐느끼는 백색을 만들었으니 한숨의 바다 위를 스치듯 굴러가며 희미한 지평선의 파란 향 연기 가로질러 눈물 젖은 달을 향해 꿈꾸듯 올라가네!   시스트르 곡조를 타고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호산나, 우리들의 마님, 우리네 古聖所 뜨락의 호산나! 그리고는 하늘나라의 저녁을 빌려 메아리는 끝나네. 저 시선들의 법열, 저 후광들의 번쩍임!   오 어머니, 당신은 의롭고 굳건한 그 가슴 안에, 저 미래의 약병을 흔드는, 크나큰 꽃들의 꽃송이들을, 향기로운 죽음과 함께 창조하셨네, 삶이 시들어 지친 시인을 위해.           새봄   병든 봄이 겨울을, 침착한 技藝의 계절, 냉철한 겨울을 처량하게 쫓아 보냈으니, 침울한 피가 지배하는 내 존재 안에서 無力이 기지개를 켜며 긴 하품을 한다.   낡은 무덤처럼 쇠테가 조이고 있는 내 두개골 아래 하얀 황혼이 식어가고 그리고 슬피, 나는 어렴풋하고 아름다운 꿈을 좇아 헤맨다, 무한한 수액이 넘치며 으스대는 들판을 누비며.   이윽고 나무 향기에 맥을 잃고 나는 쓰러져, 지쳐, 이마로 내 꿈에 구덩이를 파고, 라일락이 돋아 오르는 더운 흙을 씹으며,   기다린다, 바닥까지 잠겨들며, 내 권태가 일어서기를······ -그런데 창공이 웃는구나, 산울타리 위에서, 꽃 피듯 깨어나 태양을 향해 지저귀는 수많은 새들 위에서.           고뇌   오늘 저녁 내 발걸음은 네 육체를 정복하기 위함도 아니요, 오 인간 족속의 죄악이 몰려드는 짐승이여, 네 칙칙한 머리칼 속에, 내 입맞춤이 퍼붓는 치유할 길 없는 권태 아래, 처량한 폭풍을 뚫기 위함도 아니다   내 너의 침대에서 구하는 것은 꿈도 없는 무거운 잠, 회한이 찾아들지 못할 저 장막 아래 그 잠이 떠도니, 새까만 거짓말을 늘어놓은 뒤 너라면 맛볼 수 있겠지, 허무의 바탕에 누워 그 잠은 죽은 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너.   그것은 악덕이, 타고난 내 고결함을 파먹으며, 내게도 너처럼 그 불모의 표적을 찍어두었기 때문이지. 그러나 네 돌과 같은 젖가슴에는 어느 죄악의 이빨에도   상처 입지 않을 심장 하나 깃들어 있건만 창백한, 수척한, 내 壽衣를 떨치지 못하는, 나는 도망친다, 내 홀로 잠든 사이에 죽을 것이 두려워.             [쓰라린 휴식이 지겨워······]   자연의 하늘 밑 장미 숲의 매혹 어린 어린 날을 떠나며 옛날 내가 바라던 영광을 내 게으름이 욕 먹이는 쓰라린 휴식이 지겨워, 그리고, 내 뇌수의 인색하고 냉랭한 땅에, 밤새워 새로운 묘혈을 파겠다는 모진 계약이 일곱 배나 더 지겨워, 불모가 제 품삯인 인정머리 없는 매장 인부 나는, -장미꽃들이 찾아오면, 오 몽상이여, 그 새벽을 보고 무슨 말을 하리? 막막한 무덤은, 제 창백한 장미들이 두려워, 저 빈 구덩이들을 하나로 합칠 텐데, - 잔인한 나라의 게걸스런 예술을 팽개치고, 내 친구들과 과거와 천재와, 그나마 내 빈사의 고뇌를 알고 있는 내 등불이 내게 던지는 그 해묵은 힐난들을 웃어넘기며, 저 마음 맑고 공교로운 중국인을 따르고 싶으니, 그의 순결한 법열은 황홀한 雪月의 찻잔들 위에, 그 청명한 삶을 향기롭게 하는 야릇한 꽃 한 송이, 어린 시절, 제 영혼의 푸른 결에 접 붙는 것만 같던 그 꽃의 끝을 그리는 것. 그리하여, 현자의 유일한 꿈만 지닌 죽음이 그렇듯, 평온하게 나는 젊은 풍경을 골라 찻잔 위에 그려 보리, 저만치 외떨어지게. 가늘고 파리한 하늘빛 선 하나가 민무늬 백자 하늘 가운데 호수 하나를 이루련가, 하얀 구름에 이지러진 맑은 초승달이 고요하게 그 뿔을 물 얼음에 적시네, 멀지 않게 그 긴 비취빛 속눈썹 세 개, 갈대 서 있고. 저만치     종치는 수사   순수하고 청명하고 그윽한 새벽 하늘에 종은 그 맑은 목소리를 깨워 일으켜, 라벤더와 백리향 풀숲에 안젤루스를 던지는 저 아이를 밝고 가며 기쁨은 안겨주건만,   종치는 수사는 제가 눈뜨게 하는 새의 깃털에 스치며, 백년 묵은 밧줄 팽팽하게 당기는 돌덩이를 올라타고 구르며 처량하게 라틴어를 웅얼거려도 들리는 것은 그에게 아련히 떨어져내리는 땡그랑 소리뿐.   내가 바로 그 사람. 슬프구나! 갈망의 밤으로부터, 내 아무리 동아줄을 잡아당겨 이상의 종소릴 울려본들, 차가운 죄의 충실한 깃털 하나가 장난을 치고,   소리는 부스러기로만 내게 떨어져 허망하게 울리는구나! 그러나, 어느 날, 헛된 줄다리기에도 끝내 지쳐빠지면, 오 사탄이여, 나는 돌덩이를 풀어내고 내 목을 매리라.           여름날의 슬픔   태양이, 모래 위에서, 오 잠든 女戰士여, 네 머리칼의 황금 속에 나른한 목욕물을 덥히고, 적의에 찬 그대의 뺨 위에 향불을 사르며, 사랑의 음료에 눈물을 섞는다.   이 백열의 타오름이 잠시 요지부동으로 멈추는 틈에 너는 말하였지, 구슬프게, 오 내 겁먹은 입맞춤들, “우리는 결코 단 하나의 미라로 되진 않으리라 이 고대의 사막과 행복한 종려수 아래!“   그러나 너의 머리칼은 따뜻한 강, 우리에게 들린 혼이 떨림도 없기 어기 잠겨들어 그대가 알지 못하는 저 허무를 만나리.   나는 네 눈꺼풀에서 눈물 젖은 분을 맛보며, 너에게 상처 입은 이 심장이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련다, 저 창공과 돌의 무감각함을.           창공   영원한 창공의 초연한 빈정거림은 꽃들처럼 무심하게 아름다워서, 고통의 메마른 사막을 헤매며 제 재능을 저주하는 무기력한 시인을 짓누르네.   도망가며, 두 눈을 감아도, 나는 내 비어 있는 영혼을 응시하는 그 눈길이 따가워 강렬한 회한에 억장이 무너지네. 어디로 달아나랴? 어느 흉물스런 밤을 갈가리 찢어 집어던져, 저 가슴 아픈 멸시를 가리랴?   농무들아, 피어올라라! 너희 단조로운 재들을 안개의 긴 넝마들에 실어날라, 가을의 납빛 늪에 익사할 하늘에 쏟아부어 거대하고 적막한 천장을 지어라.   그리고 나, 망각의 못에서 기어나오라, 친애하는 권태야, 진흙과 창백한 갈대를 주워와서, 새들이 방정맞게 뚫어놓는 저 거대한 푸른 구멍들을 결코 지치지 않는 손으로 틀어막아라.   아직도 남았다! 처량한 굴뚝들아 쉬지 말고 연기를 뿜어내라, 떠다니는 그을음의 감옥들아 지평선에 노랗게 죽어가는 태양을 그 시커먼 옷자락의 공포로 덮어 꺼버려라!   -하늘은 죽었다.-너를 향해 달려가노니, 오 물질이여, 잔인한 이상도 죄도 잊어버릴 망각을 달라, 행복한 人間畜生들이 누워 있는 그 잠자리를 함께 나누려는 이 순교자들에게.   담장 밑에 뒹구는 연지분 단지처럼, 내 뇌수 마침내 텅텅 비어, 흐느껴 우는 생각을 울긋불긋 치장할 기술 이제 더는 없는지라, 비천한 죽음을 향해 내 침울하게 하품하고만 싶기에······   헛일이로다! 창공이 승리한다, 종소리 타고 울리는 그의 노래 들린다. 내 마음이여, 그는 목소리 되어 그 심술궂은 승리로 우리를 더욱 으르대며, 살아 있는 금속에서 푸른 안젤루스로 솟아나는구나!   그는 안개를 타고 구르며, 노회하도록, 너의 타고난 고뇌를 꿰뚫으니, 실수를 모르는 칼날 같구나, 소용도 없이 악랄한 반항을 둘러쓰고 어디로 도망갈거나? 나는 들려 있다. 창공! 창공! 창공! 창공!           바다의 미풍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오 밤이여! 백색이 지키는 빈 종이 위 내 등잔의 황량한 불빛도, 제 아이를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리라! 그대 돛대를 흔드는 기선이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한 권태 있어, 잔인한 희망에 시달리고도,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그리고, 필경, 돛대들은, 폭풍우를 불어들이니, 바람이 난파에 넘어뜨리는 그런 돛대들인가 종적을 잃고, 돛대도 없이, 돛대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탄식   내 마음은, 오 조용한 누이여, 어느 가을이 주근깨를 둘러쓰고 꿈꾸는 그대의 이마를 향하여, 그대의 천사 같은 눈에 떠도는 하늘을 향하여, 어느 우수 어린 정원에서 하얀 분수 하나, 열심히, 창공을 향하여 탄식하듯, 솟아오른다오! -넓은 연못에 그 끝없는 우울을 비추고, 잎새들의 황갈색 단말마가 바람 따라 떠돌며 차가운 물이랑을 내는 죽은 물 위에 노란 태양이 한 가닥 긴 빛살에 끌려가게 놓아두는, 창백하고 청순한 시월 그 온화한 창공을 향하여.           적선   이 돈자루를 집어들게, 걸인이여! 인색한 유방의 늙다리 젖먹이라도 되는 양, 한 푼 한 푼 방울져 그대의 弔鐘이나 울리게 하자고 이 자루에 알랑댄 건 아니겠지.   이 귀중한 금속에서 어디 야릇한 죄를 짜내보게, 그리곤, 마치 우리들이 두 주먹 가득 쥐고 거기 입을 맞추듯 듬뿍 그게 비틀어져라 불어제치게나! 뜨거움 팡파르를.   이 집들이 모두 향 연기 피어오르는 교회가 아니겠나, 담벼락에, 잠시 푸르게 갠 하늘을 흔들어 재우는 담배가 말도 없이 기도를 굴릴 때   또한 강한 아편이 약상자를 깨뜨리고 나올 때 말씀이야! 그대는, 드레스이자 피부인, 그 비단을 찢고프며, 행복한 무기력을 침 흘리며 마시려는가,   왕후의 카페에 앉아 아침을 기다리고 싶은가? 천장에는 님프와 베일이 푸짐하기도 한데, 창문의 거지에게도 饗宴을 던지지.   그래서 늙다리 하느님아, 그대가 외출할 때는, 부대자루를 둘러쓰고 덜덜 떨면서도, 새벽 하늘이 금빛 술의 호수인지라 그대는 목구멍으로 별들을 마신다 큰소리치지!   그대 보물의 광채를 헤아릴 순 없더라도, 적으나마 그대는 깃털 하나로 멋을 낼 순 있지, 저녁기도를 드릴 때 그대 아직 믿고 있는 성자에게 촛불 하나를 바칠 순 있지.   내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 생각지 말게. 大地는 굶어죽는 자에게 늙어빠져서야 열리는 법. 나는 또 하나의 적선을 증오하며 그대가 날 잊길 바란다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제여, 빵을 사러 가진 말게.           獻詩   당신에게 이 아기를 이뒤메의 밤으로부터 데려왔구려! 깜깜하게, 핏빛 어린 희미한 날개를 달고, 깃털을 벗고, 香油와 황금으로 태운 유리를 통하여, 얼어붙은, 오호라! 또다시 음울한 窓을 통하여, 저 새벽빛이 천사 같은 램프에게 덤벼들었소. 종려나무들이여! 敵意에 찬 미소를 시험하는 이 아버지에게 새벽빛이 이 유물을 보여주었을 때, 푸르고 삭막한 고독이 전율하였다오. 오 아기를 어르는 여자는, 당신의 딸과 함께, 당신들의 차가운 발의 그 천진함으로, 이 끔찍한 탄생을 맞아들이시라. 당신의 목소리가 비올라와 클라브생을 생각나게 하는 동안, 순결한 창공의 大氣에 배고픈 입술을 위해 여인이 巫女의 백색으로 흘러내리는 그 젖가슴을 당신은 시든 손가락으로 누르련가?           에로디아드 장경   유모-에로디아드   유 살아 있구나! 아니면 내 여기서 한 王女의 망령을 보는 것인가? 그 손가락과 반지에 이 입술로 입맞추게 하고, 이제 그만 미지의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일랑은······   에 물러서시오. 무결한 내 머리칼의 금빛 격류가, 내 고독한 몸을 멱 감기며 공폴 얼어붙게 하니, 빛이 감아도는 내 머리칼은 不威하다. 오 여인아, 한 번의 입맞춤으로도 나는 죽으리라, 美가 곧 죽음이 아니라면······ 어떠한 매혹에 내 이끌렸는지, 선지자들도 잊어버린 어떠한 아침이 죽어가는 저 먼 땅에 그 슬픈 축제를 퍼붓는지 낸들 알겠는가? 오 겨울의 유모여, 그대는 내가 늙은 내 사자들 그 야수의 世紀가 어슬렁거리는 돌담과 쇠창살의 육중한 감옥 속에 들었음을 보았으니, 숙명의 여자, 나는 무사한 손으로 저 옛날 왕들의 황량한 냄새 속으로 걸어갔지. 그러나 또한 그대는 보았는가 내 공포가 무엇이었는지를? 나는 망명지에 꿈꾸며 멈춰 서서, 분수를 뿜어 나를 맞이하는 못가에라도 서 있는 양, 내 안에 피어 있는 창백한 백합의 꽃잎을 따는데, 내 몽상을 가로질러, 적막 속으로 내려가는 그 가녀린 꽃 이파리들을 시선으로 뒤쫓느라 얼이 빠진 사자들은 내 옷자락의 나른함을 헤치고, 바다라도 가랑힐 내 발을 바라보았지. 그대는 그 늙은 육체의 전율을 가라앉히고, 이리 와서, 내 머리칼이 너희들을 두렵게 하는 저 사자 갈기의 너무나 사나운 꼴을 닮았으니, 나를 도와라, 이대로는 거울 속에서 하염없이 빗질하는 내 모습을 그대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것인즉.   유 마개 덮인 병 속의 상쾌한 몰약은 아니라도, 장미의 노쇠에서 뽑아낸 향유의 불길한 효험을, 아기씨여, 시험해보심이 어떨지?   에 그런 향수 따윈 치워라! 그게 내가 혐오하는 것임을 모르는가, 그래 내 머리에 나른하게 적셔드는 그 도취의 냄새를 맡으라는 말인가? 내가 바라는 바는, 인간적인 고뇌의 망각을 퍼뜨리는 꽃이 아니라, 향료로부터 영원히 순결한 황금인 내 머리칼이, 잔혹한 광채를 띨 때도, 윤기 없이 하얗게 바랠 때도, 금속의 그 삭막한 차가움을 끝내 간직하는 것이니, 내 고독한 어린 날부터, 고향 성벽의 보석들아, 무기들아, 화병들아, 너희들을 그렇게 비추어왔듯이.   유 용서하소서! 여왕 마마, 나이가 드닌 낡은 책처럼 희미해진 아니 까매진 쇤네의 정신에게 아기씨의 금지령이 지워져서······   에 그만 됐다! 내 앞에 이 거울을 들고 있어라. 오 거울이여! 네 틀 속에 권태로 얼어붙은 차가운 물이여 얼마나 여러 번을, 그것도 몇 시간씩, 꿈에 시달리며, 네 얼음 밑 그 깊은 구멍 속에서 나뭇잎과도 같은 내 추억을 찾으며 나는 네 안에 먼 그림자처럼 나타났던가. 그러나, 무서워라! 저녁이면, 네 엄혹한 우물 속에서, 나는 내 흩어진 꿈의 裸身을 알아버렸다! 유모, 내가 아름다운가?   유 한 개 별이지요, 진실로 그런데 이 머리타래가 흘러내려서······   에 멈춰라, 내 피를 그 근원에서 다시 얼어붙게 하는 그대의 범죄를, 그리고 그 거동, 그 지독한 不敬을 응징하라 : 아! 이야기해보라 어느 든든한 마귀가 그대를 그 을씨년스런 흥분 속에 빠뜨리는지, 내게 제안한 그 입맞춤, 그 향수, 그리고, 내가 그 말을 할까? 오 내 가슴이여, 그대가 필경 날 만지려 하였으니 또한 불경한 그 손, 그것들은 망루 위에서 불행 없이는 끝나지 않을 어느 날······ 오 에로디아드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날이여!   유 괴이한 시간으로부터, 진정, 하늘이 그대를 보호하시옵길! 그대는 고독한 그림자가 되고 새로운 분노가 되어 배회하며, 그 마음속을 때 이르게 공포에 떨며 바라보시지만, 하오나 불사의 여신에 버금하리만큼 경애로우시며, 오 나의 아기씨, 끔찍하도록 그렇게도 아름다우셔서······   에 그러나 나를 만지려 하지 않았더냐?   유 저는 운명의 신이 아가씨의 비밀을 맡기는 그 사람이고 싶습니다.   에 오! 닥치거라!   유 때로는 그분이 오실까요?   에 순결한 별들이요, 듣지 말아다오!   유 음침한 공포들 속에 빠져든 것이 아니라면 어찌 갈수록 더 요지부동으로 꿈꿀 수 있으랴 저 어여쁨의 보석더미가 기다리는 그 神에게 간청이라도 하시는가! 그런데 누구를 위해 고뇌로 애를 태우며 지키시는가요, 그대 존재의 남모르는 광채와 헛된 신비를?   에 나를 위함이다.   유 슬픈 꽃이여, 홀로 자라며 마음 설레게 하는 상대라곤 오직 물속에 무력하게 보이는 제 그림자뿐.   에 가거라, 그대의 연민과 빈정거림을 흘리지 말라.   유 하오나 가르쳐주소서 : 오! 아닙니다, 순긴한 아기씨여, 어느 날엔가는, 그 기고만장한 멸시도 수그러들겠지요······   에 그러나 누가 날 건드릴 것이냐, 사자들도 범접하지 못하는 나를? 그뿐이랴, 난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원치 않으며, 조각상이 되어, 낙원에 시선을 파묻고 있는 내 모습이 그대 눈에 비친다면, 그것은 내가 옛날에 빨았던 그대의 젖을 회상하는 때.   유 제 자신의 운명에 바쳐진 애절한 희생이여!   에 그렇다, 나를, 나를 위함이다, 내가 꽃피는 것은, 고독하게! 너희들은 알겠지, 난해하게 지은 눈부신 심연 속에 끝없이 파묻히는 자수정의 정원들이여, 태고의 빛을 간직한 채, 알려지지 않은 황금들이여, 始原의 대지 그 어두운 잠 아래 묻힌 너희들, 맑은 보석 같은 내 눈에 그 선율도 아름다운 광택을 빌려주는 돌들이여, 그리고 너희들, 내 젊은 머리칼에 숙명의 광채와 순일한 자태를 가져오는 금속들이여! 그대를 말한다면, 巫女들의 소굴에서 벌어지는 악행에나 어울리게 못된 世紀에 태어난 여인이여, 죽게 마련인 한 인간을 이야기하다니! 그자를 위해 내 옷자락의 꽃시울에서, 사나운 환락에 젖은 향기처럼, 내 裸身의 하얀 떨림이 솟아나와야 한다는 말인가, 예언하라, 여름날의 따뜻한 창공이, 여자는 천성적으로 하늘을 향해 저를 드러내지, 별처럼 벌벌 떨며 부끄러워하는 나를 본다면, 나는 죽으리라고!   나는 사랑한다 처녀로 삶의 끔찍함을, 나는 바란다 내 머리칼이 내게 안겨주는 공포 속에 살기를, 밤이면, 내 잠자리로 물러나, 아무도 범하지 않는 파충류, 쓸모없는 내 육체 속에서, 네 창백한 빛의 그 차가운 반짝거림을 느끼기 위해, 스러지는 너, 정결함으로 타오르는 너, 얼음과 잔인한 눈의 하얀 밤이여!   그리고 네 고독한 누이는, 오 내 영원한 누이여, 내 꿈은 너를 향해 솟아오르리라 : 벌써 그렇노라고, 그것을 꿈꾸는 한 마음의 희귀한 맑음인 나는 내 단조로운 조국에 나 홀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가, 내 주위에서, 우러러 받들며 산다, 다이아몬드 맑은 시선의 에로디아드가 그 잠든 정적 속에 비쳐 있는 거울 하나를······오 마지막 매혹이여, 그렇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나는 고독하다.   유 마님, 그렇다면 죽으려 하십니까?   에 아니다, 가련한 할머니여 조용하라, 그리고 물러가며, 이 냉혹한 마음을 용서하라, 그러나 먼저, 괜찮다면, 덧문을 닫아라 : 세라핀 같은 창공이 그윽한 유리창에서 미소짓는데, 나는 증오한다, 나는, 저, 아름다운 창공을! 물결들은 흔들리고, 저기, 한 나라를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저녁마다 우거진 나뭇가지에서 타오르는 비너스의 미움을 받는 시선들이 불길한 하늘에 박혀 있는 나라를 : 나는 그리 떠나리라. 다시 불을 켜라, 어린애 같다고 그대는 말하는가, 불꽃 가볍게 타오르는 밀랍이 빈 황금 속에서 무언가 낯선 눈물을 흘리는 저 촛대에······   유 지금?   에 안녕히 그대는 거짓말을 하는구나, 내 입술의 벌거벗은 꽃이여!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어쩌면, 신비와 그대의 외침을 알지 못한 채, 그대는 터뜨리는가 드높고 상처 입은 오열을, 몽상에 잠겨 있다가 제 차가운 보석들이 마침내 흩어지는 것을 느끼는 한 아이처럼.           목신의 오후 -전원시   목신 이 님프들, 나는 그네들을 길이길이 살리고 싶구나. 이리도 선연하니, 그네들의 아련한 살빛, 무성한 잠으로 졸고 있는 대기 속에 하늘거린다.   내가 꿈을 사랑하였던가?   두텁게 쌓인 태고의 밤, 내 의혹은 무수한 실가지로 완성되어, 생시의 숲 그대로 남았으니, 아아! 나 홀로 의기양양 생각으로만 장미 밭의 유린을 즐겼더란 증거로구나-   어듬어 생각해보자······   혹여, 그대가 떠벌리는 여자들은 그대의 전설적인 육욕의 소망을 그림 그리는가! 목신이여, 환각은 더 정숙한 여자의, 눈물 젖은 샘처럼, 푸르고 차가운 눈에서 솟아나온다. 그러나, 온통 숨결 가쁜 다른 여자는 그대 털 속의 뜨거운 대낮 바람처럼 대조적이라 말할 것인가? 아니다! 요지부동의 지친 失神으로 더위에 목이 졸려, 서늘한 아침은 발버둥치면서도, 화음으로 축여지는 숲에 내 피리가 퍼붓는 물이 아니면 어느 물로도 속삭이지 않고, 메마른 빗속에 소리를 흩날리기 전에 두 대롱 밖으로 서둘러 빠져나가려는 유일한 바람은, 주름 한 자락 움직이지 않는 지평선에서, 하늘로 되돌아가는 저 영감의 가시적이고 진정되고 인위적인 숨결이로다.   태양들에게 질세라 내 허영이 분탕질하는, 오 조용한 늪의 시칠리아 기슭, 명멸하는 불티들의 꽃 아래 말없는 沿岸이여, 이야기하라. “재능으로 길들이는 속빈 갈대를 내 여기서 꺾었을 때, 샘에 포도넝쿨을 바치는 먼 초원의 청록색 황금 위로, 휴식하는 짐승들의 하얀 빛이 물결을 이룬다고, 피리 소리 태어나는 느린 전주에 저 날아가는 백조의 떼들, 아니다! 水精의 떼들 도망친다고, 또는 물에 잠긴다고······”   나른하게, 황갈색 시간에 만상이 타오르고 라音을 찾는 자가 소망하는 너무 많은 혼례가 무슨 재주로 한꺼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그때 나는 첫 열기에 깨어 일어나, 太古적 빛의 물결 아래, 우뚝 홀로 서며, 백합꽃들이여! 이 순진함으로 그대들 가운데 하나가 되련가.   아주 나직하게 믿을 수 없는 여자들을 믿게 하는 입맞춤, 그네들의 입술이 누설한 그 부드러운 공허와는 달리, 증거의 허물이 없는 내 순결한 가슴은 어느 고귀한 이빨에 말미암은 신비로운 상처를 증언한다. 그러나, 아서라! 이런 秘義는 은밀한 이야기 상대로 속 너른 쌍둥이 갈대를 골랐으니 푸른 하늘 아래서 부는 갈대 피리는 뺨의 혼란을 저 자신에게 돌려, 한 자락 긴 독주 속에 꿈을 꾼다, 우리가 주변의 아름다움을, 바로 그것과 우리의 순박한 노래 사이 감쪽같은 혼동으로, 기쁘게 하는 꿈을, 내 감은 눈길로 따라가던 그 순결한 등이나 허리의 흔해빠진 몽상으로부터, 한 줄기 낭랑하고 헛되고 단조로운 선을 사랑이 변조되는 것만큼 높이 사라지게 하는 꿈을.   그러하니, 도피의 악기여, 오 얄궂은 피리 시링크스여, 부디 호수에 다시 꽃피어나, 날 기다려라! 나는, 내 소문을 뽐내며, 오랫동안 여신들을 말하련다, 우상 숭배의 그림을 그려, 그네들의 그림자에서 다시 허리띠를 벗기련다. 이렇게, 포도 알알에서 그 빛을 빨고 나서, 내 거짓 시늉으로 회한을 흩뜨려 쫓아버리려고, 웃으며, 나는 빈 열매를 여름 하늘에 들어올리고, 그 빛 밝은 껍질에 숨결 불어넣으며, 도취를 갈망하여, 저녁이 올 때까지 비쳐보노라.   오 님프들이여, 가지가지 추억으로 부풀어오르자. “내 눈이, 골풀들을 뚫고 나가, 불후의 목덜미를 하나하나 쏘았더니, 제각기 숲의 하늘에 광란의 비명을 울리며, 그 타오르는 상처를 물결 속에 잠그는구나, 머리칼의 눈부신 목욕이 빛과 잔물결 속에 사라지는구나, 오 보석들이여! 나는 내닫는다, 내 발치에 잠자는 여자들이(둘이라는 그 고통에서 맛본 나른함으로 기진하여) 나는 그네들을 덮쳐, 떼놓지도 않은 채, 후려안고, 변덕스런 그늘도 머물기를 마다하여 태양에 향기 모두 날려버리는 저 장미 덤불로 날아드니, 거기 우리의 장난은 불타버리는 대낮과 같을시고.” 내 너를 찬미하노라, 오 처녀들의 분노여, 내 불의 입술을 피하여 미끄러지는 裸身 그 성스런 짐의 오 사나운 환락이여, 한 줄기 번개가 전율하는가! 육체의 은밀한 공포를 내 입술은 마시니, 무정한 여자의 발끝부터 수줍은 여자의 가슴까지, 순결이 단 한 번에 단념하여, 미친 눈물에, 아니 덜 처량한 입김에 젖어드는구나. “내 죄는 그 믿지 못할 공포를 깨뜨리는 것이 즐거워, 신들이 그리 잘 얽어놓은 포옹의 저 헝클어진 숲을 갈랐다는 것. 그건 내가 단 한 여자의 행복한 굴곡 아래 타오르는 웃음을 감추려 하자마자 (단순한 손가락 하나로는, 얼굴도 붉히지 않는 순지한 동생을 붙들어 그 깃털 같은 순백이 불붙는 제 언니의 흥분에 물들게 하고,) 어렴풋한 죽음으로 헐거워지는 내 팔에서, 여전히 나를 취하게 하던 울음도 아랑곳없이, 이 포로는 영영 보람도 없이 풀려나갔기 때문.”   어쩔 것인가! 다른 여자들이 내 이마의 뿔에 그네들의 머리타래를 묶어 나를 행복으로 이끌리라. 너는 알리라, 내 정념이여, 진홍빛으로 벌써 무르익은, 석류는 알알이 터져 꿀벌들로 윙윙거리고, 그리고 우리의 피는, 저를 붙잡으려는 것에 반해, 욕망의 영원한 벌떼를 향해 흐른다. 이 숲이 황금빛으로 잿빛으로 물드는 시간에 불 꺼지는 나뭇잎들 속에서는 축제가 열광한다. 에트나 火山이여! 그대 안에 비너스가 찾아와 그대의 용암 위에 순박한 발꿈치를 옮겨놓을 때, 슬픈 잠이 벼락 치거나 불꽃이 사위어간다. 여왕을 내 끌어안노라!   오 피할 수 없는 징벌······ 아니다, 그러나 말이   비어 있는 마음과 무거워지는 이 육체는 대낮의 오만한 침묵에 뒤늦게 굴복한다. 단지 그것뿐, 독성의 말을 잊고 모래밭에 목말라 누워 잠들어야 할 것이며, 포도주의 효험을 지닌 태양을 향해 나는 얼마나 입 벌리고 싶은가!   한 쌍이여, 잘 있어라, 그림자 된 너의 그림자를 내 보러 가리라.           [머리칼 極에 이른 한 불꽃의 비상······]   머리칼 極에 이른 한 불꽃의 비상 그 타래 활짝 펼치려는 욕망의 서쪽이 관을 썼던 이마 제 옛 아궁이를 향해 (왕관이 스러지듯) 내려앉네   그러나 이 생기에 찬 구름밖에 다른 황금 불어넣지 않아도 항상 내부적인 불의 연소 애초부터 하나뿐인 그것은 지속되네 진정하거나 웃음짓는 눈의 보석 속에   손가락에 별도 불꽃도 놀리지 않고 영예로운 광채로 여자를 단순화하는 것밖에 없이 눈부신 그 머리로 공훈을 완수하여 즐겁고 수호하는 횃불처럼   루비의 의혹을 채집하여 뿌리는 그녀를 다정한 한 주인공의 裸身은 더럽히네           성녀   플루트나 만돌린과 더불어 옛날 반짝이던 그녀의 비올라의 금박이 벗겨지는 낡은 백단목을 감추고 있는 유리창에,   저녁 성무와 밤 기도에 맞추어 옛날 넘쳐흐르던 성모 찬가의 책장이 풀려나가는 낡은 책을 열어놓고, 창백한 성녀가 있다.   섬세한 손가락뼈를 위해 천사가 제 저녁 비상으로 만드는 하프에 스쳐 星光처럼 빛나는 그 창유리에,   낡은 백단목도 없이, 낡은 책도 없이, 악기의 날개 위로, 그녀가 손가락을 넘놀린다 침묵의 악사.           葬送의 건배   오 우리네 행복의, 그대, 치명적 표상이여!   착란의 인사이자 창백한 헌주련가, 황금빛 괴수가 몸부림하는 이 내 빈 술잔을 회랑의 마술 같은 희망에 바친다고는 생각지 마시라! 그대가 나타난다 한들 나를 흡족하게 하지는 않으리. 내 그대를 손수 반암의 자리에 모시지 않았던가. 儀式이란 무덤의 문들 그 육중한 무쇠에 두 손으로 횃불을 비벼 끄는 것. 그렇거니 시인의 부재를 노래하는 너무나 단순한 우리네 축제를 위해 선택한 이 아름다운 기념물에 그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모르기는 어렵도다. 다만 남는 것, 누구나 맞이할 그 저열한 재의 시간까지, 어느 저녁이 우쭐거리며 내려와 불태우는 그 창문으로, 죽음의 순결한 태양 그 불꽃을 향해, 직분의 타오르는 영광이야 되솟아오름이 없으랴만!   장엄하게, 총체적이고도 고독하게, 그렇게 산화될 것이 두려워 인간들의 거짓 긍지는 떠는도다. 저 험상궂은 군중! 그들은 고하노니 : 우리는 우리 미래 망령들의 슬픈 암흑이로다. 그러나 헛된 담벼락에 애도의 紋章들 흩어져 있어도 나는 눈물의 냉철한 공포를 무시하였으니, 내 성스런 시에조차 귀먹어 소스라치지 않는, 뽐내는, 눈멀고 벙어리인, 저 행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 제 아련한 壽衣의 손님된 자가 死後 기다리기의 순결한 영웅으로 변하고 있을 때였더라. 그가 말하지 않은 말들의 성마른 바람을 타고 안개 더미에 싸여 실려오는 막막한 나락, 無가 옛날의 폐기된 그 인간에게 : “지평선의 기억들이란, 오 그대여, 대지란 무엇이냐?” 이 꿈을 울부짖는데, 청아함이 변질되는 목소리로, 허공은 이 외침을 장난감 삼는도다 : “나는 알지 못하노라!”   스승은, 그윽한 눈으로, 걸음걸음, 에덴의 불안한 경이를 진압하였으니, 그 마지막 떨림은, 당신의 목소리만으로도, 장미와 백합을 위해 한 이름의 신비를 깨우도다. 그래 이 운명에서 아무것도 남는 것은 없는가, 그런가? 오 그대들 모두여, 어두운 믿음을 잊어버리시라. 찬란하고 영원한 재능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법. 내, 그대들의 욕망을 염려하여, 내 보고자 하는바, 어제, 당신이 사라진 뒤에도, 이 별의 정원들이 우리에게 지정하는 이상의 숙제 속엔, 평온한 재난의 영예를 위해, 도취한 주홍이자 크고 선연한 꽃송이, 말들의 그 장엄한 공기 진동은 살아남으리라, 빗방울이며 금강석, 그 어른거리는 시선이 거기 어느 것 하나 시들지 않는 그 꽃들 위에 남아 시간과 햇살 가운데 꽃송이 따로 떼어놓는지라!   이곳이 진즉에 우리네 진정한 숲들의 모든 거처일진대, 순수 시인은 여기서 겸허하고도 너그러운 행적으로, 당신의 직분의 적, 꿈에게 이 거처를 금지하는 바이니, 이는 그 당당한 휴식의 아침에, 저 오래된 죽음이란 것이 고티에에게도 다름없이 신성한 두 눈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며 입을 다문다는 것일 때에, 해를 입히는 모든 것이랑 인색한 침묵이랑 오솔길에 딸린 장식으로 솟아오르게 하기 위함이라.     산문 (데 제생트를 위해)   과장이여! 내 기억으로부터 기세당당하게 일어설 줄을 모르는가, 오늘이야 무쇠의 옷을 입은 한 권 책 속의 주술일 뿐인 그대는.   왜냐하면 나는 靈的인 마음들의 찬송을 지도책이며 식물 표본집이며 全體圖鑑인 내 인내의 작품 안에, 학식에 의해 배치하기 때문이다.   풍경의 수많은 매혹들 위로 우리는 얼굴을 스쳐갔다 (우리는 둘이었다, 나는 그렇게 주장한다), 오 누이여, 네 매혹들을 거기 비교하며.   권위의 시대는 당황한다, 우리의 두 겹 의식의 상실로 깊어지는 이 정오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일백 개 아이리스의 흙, 그 정오의 자리가, 그게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여름날 트럼페스이 황금이 불러대는 이름을 지니지 않았다고 말을 할 때.   그렇다, 대기가 환영들이 아니라 조망을 싣고 있는 한 섬에 모든 꽃이 더욱 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거대하게, 송이송이가, 그 하나하나를 정원에서 분리시키는 명철한 윤곽으로, 공백으로, 예사롭게 장식되었다.   이 새로운 의무를 향해 솟아오르는 아이리스의 가족들을 보려고 오랜 소망의 영광, 이데아들이 모두 내 안에서 열광하였으나,   슬기롭고 상냥한 누이는 눈길을 미소보다 더 멀리 가져가진 않았으니, 그녀를 이해하려는 듯 나는 내 오래된 정성을 기울인다.   오! 논쟁의 정신은 알아야 하리, 우리가 침묵하는 이 시간에, 가지가지 백합의 뿌리줄기가 우리의 이성에는 과분하게 자라나고 있었을 뿐.   크나큰 것이 다가오길 바란 나머지 제 단조로운 유희가 거짓말을 할 때 해안이 울고 있다 해도, 모든 하늘과 지도가   내 걸음걸음마다 가라지는 바로 그 물결 따라 끝없이 확인되는 소식 듣는 내 경탄 싱그러운데, 그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이는 제 황홀을 단념하고 道程에 의해 벌써 학자인 그녀는 이 말을 말한다 : 아나스타스! 영원한 양피지를 위해 탄생하는 말,   어느 풍토에서건, 그 조상인 한 무덤이, 퓔케리! 너무나 거대한 글라디올러스에 가린 이 이름을 제가 가졌노라 웃기 전에.           부채 -말라르메 부인의 부채   언어라도 되는 듯 가진 것은 고작 하늘을 향한 파닥임밖에 없어도 미래의 시가 매우 정교한 住居로부터 풀려나오는구나   아주 나직한 날개 전령 이 부채 이것이 그것이라면 바로 그것으로 그대 등 뒤에서 어떤 거울 청명하게   빛났던 것이라면 (거기 보이지 않는 재만 약간 알알이 쫓겨났다 다시 내려앉아 나를 우수에 젖게 할 터라)   언제나 그렇게 나타나야 하리 부디 게으르지 말고 그대 손 사이에.           다른 부채 -말라르메 양의 부채   오 꿈꾸는 아가씨야, 저 길도 없이 순수한 희열에 내 잠기도록, 부디, 섬세한 거짓말로, 너의 손에 내 날개를 붙잡아둘 줄 알아라.   황혼의 서늘함이 한 줄기씩 파닥임 한 번마다 네게 오나니, 그 붙잡힌 날갯짓이 지평선을 그리 살포시 밀어내는구나.   어지러움이여, 바야흐로 허공이 떠는구나, 누구를 위함도 없이 태어나기를 열망할 뿐 솟아오르지도 가라앉지도 못하는 거대한 입맞춤처럼.   너도 느끼느냐. 매몰찬 낙원이 묻어 감춘 웃음인 양 흐르는구나, 네 입술 구석에서 혼연일치의 주름 저 안쪽으로!   저 금빛 저녁 위에 고이는 장밋빛 다른 기슭의 왕홀, 바로 그것이지, 네가 한 개 팔찌의 화염에 기대놓는 이 닫힌 하얀 비상은.           앨범 한쪽   갑자기 장난치듯 내 잡다한 피리에서 숲이 조금 솟아오르는 것을 듣고 싶다던 아가씨야   한 풍경 앞에 두고 저질러보는 이 연습은 그대 얼굴 바라보려 그쳤을 때가 좋은 것 같구나   그렇고말고 아둔한 내 손가락 몇 개 따라 내 마지막 바닥까지 뽑아올린 이 빈 숨결은 흉내 내려 한들 도리가 없구나   그리도 천진하고 맑아 곡조에 마법을 거는 그 앳된 웃음을.           벨기에 친구들을 회상함   어떤 시간에 이런저런 바람결에 흔들림이 없이도 은밀하면서도 확연하게 한 자락 한 자락 과부 돌이 옷을 벗음을 내 느끼듯 香煙과도 같은 모든 창연한 古色이   까마득한 날의 우리 몇 사람 그리도 흐뭇한 우리네 새로운 우정의 갑작스러움 위로 떠돌거나 오직 해묵은 芳香인 양 시간만 뿌릴 뿐 스스로 어떤 증거도 보여줌이 없는 성싶은데   수많은 백조의 흩어진 산책으로 죽은 운하에 새벽을 번식하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도시 브루게에서 만났던 오 아주 귀중한 벗들이여   그때 장엄하게도 이 도시는 내게 가르쳐주었지 그 아들들 가운데 누구누구가 또 다른 비상의 지정을 받아 날렵하게 정신을 날개처럼 펼쳐 비칠지를.           속된 노래   1 (구두 수선공)   樹脂를 떠나서는 할 일이 없는가, 백합은 하얗게 태어나니, 다만 향기 때문에도 나는 그 편이 더 좋아 이 착실한 수선공보다는,   내 이제껏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가죽을 그는 내 한 켤레에 덧대려 하니, 발가벗은 발꿈치의 욕망 하나를 그렇게 무참히 꺾어버리네   빗나가는 법이 없는 그의 망치가, 항상 다른 곳으로만 앞장서는 갈망을 신발 바닥에 단단히 조롱하는 못으로 박아버리네.   오 발들아, 너희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는 구두를 다시 만들기도 하리라!   2 (향기로운 허브를 파는 아가씨)   네 라벤더 하늘빛 다발을, 그 속눈썹 건방지게 치키며 위선자에게 팔 듯 내게 팔 생각은 마라, 그가 비록   장소 그 피치 못할 장소의 벽을 그걸로 장식하여 이죽거리는 배[腹]가 파란 감정으로 거듭난다 할지라도.   그보단 차라리 성가신 머리칼 바로 여기 꽂아라 그 건강한 새순으로 향기 어리도록, 제피린아, 파멜라야   혹은 네 이의 맏물들이 신랑에게 몰려가도록.           쪽지   모자의 검은 비행에 얼이 빠진 거리라도 휩쓸 듯 시도 때도 모르는 돌풍이 아니라 한 무희 거품같이 흩어지는   모슬린의 혹은 격정의 선풍으로 솟아오르니 우리를 사렉 한 바로 그 여자가 무릎으로 일으키는 이 바람이   저를 제외하곤, 진부한 모든 것에 정신적으로, 열광적으로, 요지부동하게 그 튀튀로 벼락을 때려도, 달리 속 썩일 것은 없다   그 치맛바람 깔깔거리며 휘슬러를 부채질해줄 수만 있다면.           소곡   1 백조도 없고 둑길도 없는 어디라도 좋을 외진 물가가 석양의 황금으로 그 여러 하늘 영롱하게 빛나는   손 닿을 수 없이 높은 허영으로부터 이곳으로 물러난 내 시선에 그 廢地를 비춘다   그러나 벗어내린 하얀 속옷 같은 그런 덧없는 새가 나른히 따라 내려간다 만일 기쁨에 넘쳐 그 곁에   너로 변하는 물결 속에 네 발가벗은 환희가 잠수한다면           소곡   2 걷잡을 길 없이, 내 희망이 거기 던져지듯, 격정과 침묵으로 저 높이 사라지며 파열해야 했던가,   목소리 숲에 낯설어 혹은 추호의 메아리도 뒤따르지 않아, 생애의 다른 때에는 누구에게도 그 소리 들리지 않았던 새는.   험악한 악사, 그는 의홋 속에 숨진다 그의 가슴 아닌 내 가슴에서 가장 나쁜 오열이 솟아나왔던 것인가   찢겨져서도 그는 고스란히 어느 오솔길에 남을 것인가!           소네트 몇 편   [어둠이 숙명적인 법칙으로······]     어둠이 숙명적인 법칙으로 위협할 때 내 척우의 욕망이자 고통인, 그런 오랜 꿈은, 음산한 천장 아내 사멸할 것이 원통하여 의심할 수 없는 그 날개를 내 안에 접어두었다.   사치여, 오 흑단의 방이여, 한 왕을 흘리려고 거기서 이름 높은 꽃장식들이 죽음을 둘러쓰고 사리를 틀어올려도, 제 신념에 눈이 부신 고독자의 눈에 그대는 암흑이 거짓 선언한 오만일 뿐.   그렇다, 나는 안다, 이 밤의 저 먼 곳에, 지구가 거대한 한 광채의 이상한 신비를 던지고 있다. 이 땅을 더 어둡게는 못하는 흉악한 세기들의 밑바닥에서.   확장되건 부정되건 항상 그대로인 공간이 이 권태 속으로 비천한 불들을 운행하여 증인으로 삼으니, 축제의 한 별로 천재가 타오르고 있다 말하리라.           [순결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순결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자는 오늘 달아난 적 없는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 들려 있는 이 망각의 단단한 호수를 취한 날갯짓 한 번으로 찢어줄 것인가   지난날의 백조는 회상한다, 모습은 장려하나 불모의 겨울 권태가 번쩍이며 빛났을 때 살아야 할 영역을 노래하지 않은 까닭으로 희망도 없이 스스로를 해방하는제 신세를.   공간을 부인하는 새에게 공간이 떠맡긴 그 하얀 단말마야 목을 한껏 빼어 흔들어버린다 해도, 그러나 아니다 날개 깃이 붙잡혀 있는 이 땅의 공포는.   제 순수한 빛이 이 자리에 지정하는 허깨비, 그는 무익한 流謫의 삶에서 백조가 걸쳐 입는 모멸의 차가운 꿈에 스스로를 붙박는다.           [의기양양하게 피한······]   의기양양하게 피한 아름다운 자살, 영광의 장작불이여, 거품으로 끓는 피여, 황금이여, 폭풍이여! 오 웃으리라 저기 한 주홍빛이 준비하여 나의 없는 무덤만을 장엄하게 펼칠 뿐이라면.   무어라고! 저 모든 광채의 넝마마저, 이 자정의 시간ㅇ, 우리를 환대하는 어둠에 머무르지 않으니, 오직 머리의 오연한 보물 하나만 남아 애무에 싸인 그 나른함을 불길도 없이 퍼부을 뿐,   그것은 그대 머리, 그렇게도 항상 열락인! 그렇지 그대 머리 홀로, 사라진 하늘에서, 천진한 승리를 조금 거두어 그 빛으로 그대를   덮는구나, 어린 황녀의 투구 같은 그대 머리 그대 베개 위에 기댈 때, 그 장미들은 떨어져 그대 모습 그려내리.           [제 순결한 손톱들이 그들 줄마노를······]   제 순결한 손톱들이 그들 줄마노를 드높이 봉정하는 이 한밤, 횃불 주자, 고뇌가 받들어올리는 것은 불사조에 의해 불태워진 수많은 저녁 꿈, 어느 遺骨 항아리도 그를 거두어들임이 없고   빈 객실의 장식장 위에는 공허하게 울리는 폐기된 골동품, 소라껍질도 없다 (無가 자랑하는 이 물건만 가지고 주인이 지옥의 강으로 눈물을 길러 갔기에).   그러나 비어 있는 북쪽 십자창 가까이, 한 황금이, 필경 한 水精에게 불꽃을 걷어차는 일각수들의 장식을 따름인가, 모진 숨을 거두고,   그녀, 거울 속에 裸身으로 죽었건만, 액틀로 닫힌 망각 속에는 붙박인다 이윽고 반짝임들의 七重奏가.         에드거 포의 무덤   마침내 영원이 그를 그 자신으로 바꿔놓는 그런 시인이 한 자루 벌거벗은 칼을 들어 선동한다 이 낯선 목소리 속에서 죽음이 승리하였음을 알지 못하여 놀라는 자신의 세기를.   그자들은, 히드라의 비열한 소스라침처럼, 옛날 종족의 말에 더욱 순수한 의미를 주는 천사의 목소리 들으며 이 마술이 어떤 검은 혼합의 영광 없는 물결에 취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였다   대적하는 땅과 구름의 오 다툼이여! 우리들의 사상이 그것으로 얕은 부조를 새겨 포의 무덤 눈부시게 장식할 수 없기에,   어느 알 수 없는 재난으로부터 여기 떨어진 조용한 돌덩이 이 화강암만이라도 끝끝내 제 경계를 보여주어야 하리 미래에 흩어져 있는 저 冒瀆의 검은 비행들에게.           샤를 보들레르의 무덤   파묻힌 신전이 진흙과 루비를 침 흘리듯 흘리는 하수구의 무덤 같은 아가리로 구역질나게 토해내는 것은 사나운 짖음처럼 콧마루 온통 타오르는 어떤 아누비스의 우상.   혹은 최근의 가스등이 저 수상한 심지를, 알다시피 수모를 문질러 씻는 그 심지를 쥐어짜, 어느 불멸의 사타구니에 사납게 불 밝힐 때 그 비상은 가로등을 따라 잠자리를 옮긴다.   저녁 없는 도시에서 마른 어느 봉헌의 잎사귀들이, 헛되이 보들레르의 대리석에 그가 기대앉듯, 축복할 수 있으랴,   부재의 저를 감싸는 베일에서 떨고 있는 그, 바로 그의 그림자를, 우리가 죽을지라도 항상 호흡해야 하는 어떤 수호의 毒을.           무덤 1주기-1897년 1월   북풍에 굴러가며 격노하는 검은 돌덩이는, 어떤 불길한 거푸집을 찬양하려는 듯 인간들의 고통과 그것의 닮음을 더듬는 경건한 손길들 아래서도 멈추지 않으리라.   여기서는 거의 언제나 산비둘기가 구구 울건만 이 빗물질의 애도는 혼례의 수많은 면사포 주름으로, 한 번 반짝여 무리를 은빛으로 물들일 내일의 무르익은 큰 별을 무겁게 누른다.   우리 방랑자의 머지않아 밖에 드러날 고독한 도약을 답사하며 찾는 자 누구인가- 베를렌을? 그는 풀밭에 숨어 있다, 베를렌은   입술로는 거기서 마시지 않고 혹은 숨결을 바닥내지 않고 순진하게 동의를 얻어서만 붙잡으려 한다 억울하게도 죽음이라고 불리는 약간 깊은 시내를.           예찬   무아르 천의 벌써 음울한 침묵이 주름을 여러 개 홀로 배열하네, 가운뎃기둥의 붕괴가 기억의 소실로 팽개치지 않을 수 없는 가구 위에.   우리네 주술서의 기세 높았던 그 낡은 장난을 날개의 스스럼없는 떨림으로 전파하며 천 개씩 무리지어 열광하는 상형문자들이여! 차라리 그 주술서를 장롱 속에 감추어다오.   태초의 웃음짓는 소동의 증오를 받으며 으뜸가는 광채들로부터 그것들 한가운데서, 그 흉내를 위해 탄생한 전당 앞뜰 근처까지,   양피지 위에서 넋을 잃는 황금의 트럼펫 소리 드높게, 리하르트 바그너 神이 솟아올라, 잉크로도 온전히 침묵시키지 못한 한 축성식을 무녀의 오열로 펼치네           예찬   온 새벽은 비록 마비에서 덜 풀려 어두운 주먹 움켜쥐고 이 귀머거리의입에 물린 하늘빛 나팔들을 향해 치흔들어도,   牧者를 가졌으니, 호리병박 매달린 그의 지팡이가 그의 미래의 발걸음 더듬어 꿋꿋이 때린다 풍요로운 샘이 솟아나올 때까지.   이와 같이 앞질러 그대는 산다 오 고독한 퓌비 드 샤반이여 결코 혼자가 아니니   시대를 이끌어 마시게 한다 그대의 영광이 찾아내준 壽衣도 없는 님프에서.           [항해하려는 유일한 열망에······ ]   어느 찬란하고 흐린 인도 저 너머로 항해하려는 유일한 열망에 -이 인사는 마중 나가니, 그대의 船尾가 벗어나는 岬, 이 시대의 전령사라   이처럼, 쾌속범선과 함께 낮게 키질하는 어느 활대 위에서 한 마리 새로운 소식의 새도 항상 그렇듯 파닥임으로 거품 일며   키 잡는 손이야 변함없어도 마냥 지루하게 외쳐대곤 하였지 쓸모없는 땅의 정보를 밤이며 절망이며 보석인   그것 새의 노래에 의해 창백한 바스코의 미소에까지 반사되고.           [소네트 3부작]   1 모든 긍지가 저녁 연기를 피운다 한 번의 휘두름에 꺼지는 횃불 불후의 입김이라도 그 저버림을 유예할 수는 없겠지!   풍요롭지만 추락한 여러 전리품의 상속자 그의 해묵은 방은 그가 문득 복도로 들어선다 한들 따뜻해지지도 않으리라.   과거의 필연적인 고통들이 否認의 무덤을 발톱이라도 가진 듯 움켜쥐는데,   외롭게 떠받들린 무거운 대리석 아래서는 번쩍거리는 그 까치발 시렁밖에 다른 어느 불도 타오르지 않는다.   2 가녀린 유리 세공의 둔부와 도약에서 솟아올라 쓰라린 밤샘을 꽃피우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은 모가지는 중단된다.   내 믿어 마지않나니 두 입은, 그녀의 애인도 내 어머니도, 결코 같은 空想에서 마시지 않았다, 나, 이 차가운 천장의 공기 요정!   무진장한 空房밖에 어떤 음료도 없이 순결한 항아리는 죽어가나 동의하지 않는다,   가장 불길한 자들의 순진한 입맞춤이여! 어둠 속에 한 송이 장미를 알리는 그 어느 것도 내뿜으려고는.   3 헤이스가 한 겹 사라진다 드높은 유희의 의혹 속에서, 침대의 영원한 부재만을 신성 모독이나 저지르듯 설핏 열어 보이고.   꽃무늬 장식 하나가 같은 것과 벌이는 이 한결같은 하얀 갈등은 희부연 창에 부딪쳐 꺼지나 제가 가려 감추는 것보다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꿈이 금빛으로 무르익는 자에게선 음악가 그 텅 빈 허무의 만돌린이 서럽게도 잠들어 있다   어떤 窓을 항하여 어느 배도 아닌 제 자신의 배에서 아들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그런.           [시간의 향유에 절여든 어느 비단이······]   시간의 향유에 절여든 어느 비단이, 키메라가 거기서 스러지는데, 거울 밖으로 그대가 펼쳐내는 이 물결치는 천연의 구름을 당하랴!   깃발을 명상하는 구멍들은 우리의 대로에서 들떠오르지. 내게는 이 두 눈을 흐뭇하게 감출 그대의 발가벗은 머리칼이 있지.   아니야! 입은 저의 깨물음에서 아무것도 맛본다 장담할 수 없으리라, 그 사람 왕자님 그대 연인이   제가 질식시키는 영광들의 비명을 이 막중한 머리타래 속에 파묻어, 다이아몬드처럼, 숨지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이야기 속에 내가 등장한다면······]   당신의 이야기 속에 내가 등장한다면 그거야 질겁하는 주인공으로지 영지의 어느 잔디밭을 발가벗은 발꿈치로 밟고 나서 말이야   두세 개 빙하에나 발 들여놓은 나는 그가 제 성공을 소리 높여 웃도록 당신이 막지 않았을 순진한 죄를 알지 못하네   말해주어 내 기쁨이 저런 것은 아닌지 이 불길로 구멍 뚫린 저 허공에서 천둥과 루비 굴대   내 유일한 저녁 마차 그 바퀴가 저 흩어지는 왕국들을 따라 주홍빛으로 죽어가는 것만 같은 그 모습 보는 것은 아닌지           [짓누르는 구름에게······]   짓누르는 구름에게 노예 같은 메아리들에게마저 효력 없는 霧笛으로 알리지 못한 현무암과 용암의 암초   어떤 무덤 같은 난파가(너는 알면서도, 거품이여, 거기서 침만 흘리는구나) 표류물들 가운데 가장 높은 하나 발가벗은 돛을 폐기하였는가   혹은 어떤 고급한 조난을 얻지 못해 노발대발하며 온통 허망하게 펼쳐진 심해가   길게 끌리는 그 새하얀 머리칼 속에 고작 인어의 어린 허리나 치사하게 빠뜨렸으련만 시치미를 뗐는가           [내 낡은 책들이 파포스의 이름 위에······]   내 낡은 책들이 파포스의 이름 위에 접혔으니, 저 승승장구하던 날의 자수정빛 아래, 멀리, 일천 개 거품으로 축복받은 한 폐허를 하나뿐인 재능으로 뽑아냄이 즐겁구나.   추위여 낫의 침묵을 휘두르며 달릴 테면 달려라 나는 헛된 弔曲으로 울부짖지 않으리라 비록 땅바닥의 아주 하얀 저 장난질이 모든 자리마다 그 거짓 풍경의 榮華를 거부한다 할지라도.   여기서는 어느 과일도 즐기지 않는 내 배고픔은 그 유식한 결여에서 똑같은 맛을 발견한다 : 하나쯤은 향기로운 인간의 육체로 터져나와 빛나거라!   우리들의 사랑이 불씨를 뒤적이는 어떤 날개 달린 뱀을 밟고 서서, 내가 더 오랫동안 어쩌면 더 열렬히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 옛날 아마존 여인의 타버린 그 젖가슴.  
91    『뻬이따오의 시와 시론』 정우광 엮음 (고려원, 1995) 댓글:  조회:477  추천:0  2019-07-11
『뻬이따오의 시와 시론』 정우광 엮음 (고려원, 1995)         미소, 눈송이, 별   온갖 것이 재빠르게 빙빙 도는데 너만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미소 띤 빨간 장미로부터 나는 겨울의 노래를 뜯는다   짙푸른 눈송이여 너희들은 소곤소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에게 대답해 보아 별은 항상 별 아닌가             냉혹한 희망   1 짙은 갈색 그림자들을 휘저으며 바람은 솨무들의 끊임없는 재잘거림을 가지고 사라졌다   인색한 밤은 거지들에게 별처럼 총총한 은동전들을 흩뜨린다 고요함도 무기력해져 다시는 어린애들의 잠꼬대를 멈출 수가 없다   2 다시는 되풀이 될 수 없는 밤 다시는 되풀이 될 수 없는 꿈 살그머니 바래지는 아침 안개 속으로 가라앉는다   3 어린애의 커다란 두 눈동자가 침침한 처마 아래 숨는다 조그만 지붕창도 벌써 눈이 멀어 다시는 성애 낀 별들을 채집할 수 없다 나팔꽃도 벌써 벙어리 되어 다시는 달빛 속의 童話를 말할 수 없다   이별을 고했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천연색 꿈들에게 대지는 돌진하고 있다... 후퇴하는 지평선을 휙휙 무너뜨리며   4 세계는 정말로 크다   5 아침 노을에 분홍빛인 광고판 위 초록 별 하나가 벌쩍인다 손에 손을 잡고 우리는 앞으로 걸어간다 자신들의 실루엣을 하늘에 비치며   6 작디작은 손바닥 위로부터 사뿐한 버들솜 하나가 치솟는다 그를 날게 하여 안개 낀 바다의 비밀을 폭로케 하리다 그를 날게 하여 거친 바람을 타게 하리다   7 왁자지껄한 것이 무엇이냐 하늘로부터 온 것 같은데   야, 태양아-萬花鏡 회전을 시작해 보아 그리고 무수한 미지의 꿈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렴   8 무거운 장송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며 시커먼 구름들은 장례식의 행렬로 정렬한다 태양은 深淵으로 떨어지고 뉴턴도 죽었다   9 천공의 낮은 처마 아래 엷은 회색 울타리가 짜여진다 거품 같은 조그만 버섯들이 길 웅덩이에 가득 재배된다   비는 한방울 한방울 우리의 슬픔 머금은 뺨에서 미끄러진다   10 깨어진 꽃병은 갈색 점토로 가득 메워져 있다   연약한 갈대들은 위-이-휙 어찌 우리가 제지할 수 있겠는가! 이 미쳐 날뛰는 大屠殺을   11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태양과 대지를 잃었고 우리 자신들도 잃었다   12 희망 이 대지의 유산이 이토록 무거운 것일까   고요 추위   성애는 안개와 함께 밀려갔다   13 밤 짙푸른 그물 별빛 매듭을 가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이 장중한 序曲 나로 하여금 죽음을 믿게 만든다   14 자흑색 파도가 응고되었다 산 사이 흔들리는 조그만 다리 아래 까마귀들은 빙빙 맴돈다 한마디 소리도 없이   15 비둘기가 총총히 날아 갔다 희디흰 깃털 하나를 떨구며   아이야 어머니 혈액 속에서 너는 무엇을 계승했느냐   16 눈물은 짜다 아, 생활의 바다는 어디에 있는가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진실되게 웃을 수 있고 통쾌하게 울 수 있게 되었으면   17 결국 천둥조차 벙어리가 되었다   어둠은 추함과 죄악을 가렸고 순결한 눈동자들을 차단했다   18 꾸벅꾸벅 조는 석유램프는 비굴한 쌕-쌕 소리로 어떤 한 행성의 見聞을 묘사한다 한줄기 시퍼란 연기와 함께 연한 남빛 光輝 껍질을 벗는다   19 공중에 솟아오르는 황금색 애드벌룬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을 잡아 끌었다   떠올라라 이 시커먼 해양을 넘어 말끔히 개인 하늘을 향해 떠올라라   20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이 장중한 序曲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21 희망 이 대지의 유산이 이토록 무거운 것일까   고요 추위               하루   서랍에다 자신의 비밀을 가두고 좋아하느 책 모퉁이에도 메모를 남기고 우체통에다 편지를 넣곤, 잠시 동안 묵묵히 서서 바람 속에 지나가는 행인들을 헤아리며, 조금도 거리낌없이 네온등 휘황한 가게 진열창을 유심히 살피고 전화통 속에다 동전 한 개를 넣고 다리 아래서 낚시질하던 영감에게 담배 한 개비를 빌리니 강 위 汽船은 광활한 기적을 울리고 극장 문 앞 칙칙한 體鏡으로 자욱한 담배 연기를 통과해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무수한 별들의 아우성을 커튼으로 가로막으며 등불 아래서 빛 바랜 사진들과 글자들을 넘긴다             태양이란 도시에서의 메모들   생명 태양도 떠오른다   사랑 평안함, 기러기들이 날아 지나간다 황폐한 處女地 위를 늙은 나무는 쓰러진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하늘엔 짜고 떫은 비가 흩날려 떨어진다   자유 나부낀다 갈기갈기 찢긴 종이조각이   손자 온 해양을 포용하던 그림이 한 마리 종이학으로 접힌다   아가씨 아른거리던 무지개는 새들의 화려한 깃털을 모은다   청춘 시뻘건 파도가 고독한 노에 스며든다   예술 억만 개의 휘황한 태양들이 박살난 거울 위에 드러나 있다   인민 달은 찢겨 번득이는 밀알이 되어 성실한 땅과 하늘에 뿌려진다   노동 손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운명 아이는 제멋대로 난간을 두드리고 난간은 제멋대로 밤을 두드린다   신앙 양떼는 초록 웅덩이로 떨어지건만 목동은 단조로운 피리만 불어 젖힌다.   평화 帝王이 사망했던 장소에 옛 창이 가지치기를 하고, 싹이 터서 신체장애자들의 지팡이가 되었다   조국 그녀는 청동 방패 위에 주조되어 어두운 박물관 벽에 기대어 있다   생활 그물               가자   가자- 낙엽은 흩날려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건만 노랫소리는 돌아갈 곳조차 없다   가자- 빙판 위 달빛이 벌써 강바닥으로부터 넘쳐 나왔어도   가자- 눈동자들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심장들은 황혼의 북을 두드린다   가자- 우리의 기억을 잃지는 않았다 가서 우리는 생명의 호수를 찾아야 한다   가자- 길과 길에 나부끼는 뻘건 양귀비들이 가득 덮여 있더라도             회답   비열은 비열한 자들의 통행증이고 고상은 고상한 자들의 묘지명이다 보라, 저 금도금한 하늘에 죽은 자의 일그러진 거꾸로 선 그림자들이 가득 차 나부끼는 것을   빙하기는 벌써 지나갔건만 왜 도처에는 얼음뿐인가? 희망봉도 발견되었건만 왜 死海에는 온갖 배들이 앞을 다투는가?   내가 이 세상에 왔던 것은 단지 종이, 새끼줄, 그림자를 가져와 심판에 앞서 판결의 목소릴 선언하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   너에게 이르노니, 세상아 난-믿-지-않-아! 설사 너의 발 아래 천 명의 도전자가 있더라도 나를 천한 번째로 세어다오   난 하늘이 푸르다고 믿지 않는다 난 천둥의 메아리를 믿지 않는다 난 꿈이 거짓임을 믿지 않는다 난 죽으면 보복이 없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바다가 제방을 터뜨릴 운명이라면 온갖 쓴 물을 내 가슴으로 쏟아 들게 하리다 만약 육지가 솟아오를 운명이라면 인류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봉우리를 다시 한번 선택케 하리다   새로운 조짐과 번쩍이는 별들이 바야흐로 막힘없는 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들은 오천 년의 象形文字이고 미래 세대의 응시하는 눈동자들이다           온갖 것   온갖 것은 운명 온갖 것은 구름 온갖 것은 결말 없는 시작 온갖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추구 온갖 즐거움엔 웃음도 없고 온갖 고난엔 눈물조차 없다 온갖 언어는 반복 온갖 만남은 초면 온갖 사랑은 마음속에 온갖 과거는 꿈 속에 온갖 희망엔 脚注가 따르고 온갖 신앙엔 신음이 따른다 온갖 폭발은 찰나의 정적을 가지며 온갖 죽음을 질질 끄는 메아리를 가진다             갈림길   바람이 멈추었다 바람은 묵묵히 길목에 서 있다 안개 속에 떠오르는 울타리 밤을 여는 조그만 문 어둠은 가로등을 빌려 축배를 든다   네 눈 속의 창살은 혼미한 대낮을 여과시킨다 이별을 배워라 기왕의 모든 것을 베워왔듯이 歡樂과 哀愁를 배워왔듯이   뒤돌아가거라, 여인아 연약한 가로등 빛을 네 어깨에 떨구며 설사 네가 홀가분히 미소짓더라도 망사 친 땋은 머리의 성애는 밤이슬과 함께 뚝뚝 떨어질 것이다             낯선 해변   1 돛들이 드리워진다   돛대, 이 겨울의 숲은 뜻밭의 봄을 가져다 주었다   2 등대의 폐허는 꺼져가는 빛을 신음한다   너는 파괴된 계단에 기대어 녹슨 난간을 두드리며 일련의 단조로운 소리를 내고 있다   3 정오의 장엄함 속에 그림자들은 휴식을 취할 곳을 찾고 있다 온갖 후미진 곳마다 굵은 소금 알갱이들이 과거의 추위와 추억의 섬광들을 응결하고 있다   4 멀리 희뿌연 망망함   수평선 이 요동하는 갑판은 얼마나 많은 熟眠에 빠진 그물들을 던졌었나?   5 스카프 그 빨간 새 日本海로 날아간다 불꽃에 타오르는 반사광은 너로부터 떨어져나가 그림자를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하늘을 향해 던져 버린다 폭풍우가 없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고정된 풍향이 없더라도 어쩌면 부름에 답하기 위해 날개는 활시위를 당기는 울음을 울었나 보다   6 썰물은 층층 겹겹이 황금색 융단 위에 범람하는 거품 같은 밤을 토해 놓는다 헐거운 굵은 밧줄, 절단된 노 어부들은 벌거벗은 등을 구부린 채 폭풍우에 무너진 사당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7 아이들은 초승달을 뒤쫓고 있다   한 마리 갈매기가 우리를 향해 푸드득 날아왔건만 네가 뻗은 손에는 내려앉지 않는다             부케   나와 세상 사이에 너는 灣이요, 돛이요 신뢰할 만한 로프의 양끝이다 너는 분수요, 바람이요 어릴 적 맑고 낭랑했던 울음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너는 액자요, 창문이요 활짝 핀 들꽃으로 뒤덮인 전원이다 너는 숨결이요, 침대요 별들을 동행하는 밤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너는 달력이요, 나침반이요 어둠 속을 미끄러져 나가는 광선이다 너는 이력서요, 題簽*이요 맨 끝에 쓴 序文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너는 실크 커튼이요, 안개요 꿈속에서 빛을 내는 등잔이다 너는 대나무 피리요, 가사 없는 노래요 석고상의 아래로 드리운 눈까풀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너는 鴻溝*요, 늪이요 곤두박질하는 심연이다 너는 울타리요, 담장이요 방패에 새겨져 있는 영원한 도안이다   * 題簽 : 표지에 쓰지 않고, 종이에 써서 앞표지에 붙인 外題 * 鴻溝 : 漢 高祖와 楚 항우가 천하를 양분할 때의 경계선이었던 강. 여기서는 큰 틈, 큰 격차를 말한다.           그래, 어제는   팔뚝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며 숲 속의 혼돈도 가리며 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그래, 어제는....   漿果로 저녁놀을 바르며 자신의 수줍음도 칠하며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긋 웃음을 지었다 : 그래, 어제는....   어둠 속에서 성냥 한 개를 문질러 우리 마음 사이에 놓으며 너는 창백한 입술을 깨물었다 : 그래, 어제는...   종이로 접은 배를 시냇물 속에 넣으며 맨 처음 언약을 싣고 너는 결연히 몸을 돌려 가버렸다 : 그래, 어제는.....             섬   1 너는 안개 낀 바다를 항해한다 돛대도 없이 너는 달밤에 배를 정박시킨다 닻도 없이   길은 여기서 사라지고 밤은 여기서 시작된다   2 지표도 없다 분명한 경계도 없다 단지 물보라가 찬미하는 가파른 벼랑들만이 세월의 그 음울한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일련의 으리으리한 기념들과 함께   꼬마들이 백사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달빛 아래, 먼 곳의 고래는 바야흐로 샘물을 높디높게 내뿜고 있다   3 갈매기들이 깨어났다 날개와 날개를 연이어 그들의 울음이 어찌나 처량한지 매 合歡木의 잎사귀들과 꼬마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 조그만 세상에서 깨어 있다는 것이 고통일 줄이야   4 지평선이 기울어졌다 흔들흔들, 몸을 뒤척이며 갈매기 한 말가 아래로 떨어졌다 뜨거운 피가 커다란 부들잎들을 말아 올린다 그 어디나 다 있는 밤이 총 소리를 덮어 가렸다 -이것이 금지된 구역이자 자유의 결말이었다 깃털로 된 펜 하나가 모래에 꽂혔다 微溫의 숨결을 띠고 그것은 흔들리는 뱃전과 계절풍에 속한 것이었다 해안과 비의 비스듬한 선에 속한 것이었다 어제나 내일의 태양으 지금 이곳에서 죽음을 공개하는 비밀을 쓰고 있건만   5 매파랑에 번뜩이는 깃털 하나가 떠오른다   꼬마들은 모래 언덕을 쌓아 올린다 바닷물이 밀려와 그들을 둘러싼다 화환처럼, 썰렁하게 요동치며 달빛 장송곡조가 하늘가까지 뻗어간다   6 아, 종려나무여 너의 침묵이 반역자의 칼을 들어 올리고 있다 다시 한번 더 바람이 너의 머리칼을 밀쳐 올릴 것이다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듯이 최후의 국경은 영원히 꼬마들의 마음속에 있다   7 밤은, 바람을 맞받으며 서 있다 재난을 위하여 매복한 암살범을 위하여 부드러운 카펫을 깔며 조가비 잔들의 열을 배열하며   8 죄 없는 하늘만 있어도 충분하다 하늘만 있어도 충분하다 들어보라,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라, 거문고 소리를 잃었던 소리를 召喚하는           둑   현재와 과거를 벗하며 둑은, 높다란 갈대 하나를 들어올리며 멀리 사방을 바라본다 바로 너 언제나 일렁이는 파랑을 지켜온 것은 황홀한 泡沫과 별을 지켜온 것은 흐느끼는 달빛이 오랜 뱃노래를 불어 젖힐 때 얼마나 처량한가   나는 둑 나는 漁港 나는 팔뚝을 뻗어 빈궁한 아이들의 조그만 배들을 기다리다 한줄기 등불을 가득 실어 보낸다               船票   그는 선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게 갑판에 올라갈 수 있겠는가 철커덩, 철커덩, 닻 쇠줄의 소리가 이곳의 밤을 떠들썩하게 한다   바다, 바다 썰물로 상승하는 섬 마음처럼 고독하다 부드러운 숲 덤불의 그림자도 없다 연기나는 굴뚝도 없다 섬광을 번뜩이던 돛대 섬광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다 무수한 폭풍은 단단한 물고기 비늘과 조개 껍질 위에 해파리란 조그만 우산 위에 정지된 무늬를 남겨 왔다 한 옛날 이야기가 물보라와 물보라 사이에 전해진다 그는 선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바다, 바다 암초에 밀집해 있는 이끼 발가벗은 한밤중을 향해 만연된다 어둠 속 빛을 내는 갈매기들의 깃털을 따라 달 표면에도 들러붙는다 潮水가 잠잠해지자 소라와 인어가 노래를 시작한다   그는 선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세월은 지금까지 중단된 적이 없다 침몰하 배에 막 불이 지펴져 빨간 산호 불꽃들을 다시 점화시켰고 파도가 용솟음칠 때면 죽은 자들의 눈동자들은 희미하게 가물거리며 해양 깊숙한 곳으로부터 떠오른다   그는 선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 사람을 현기증 나게 한다 백사장을 바싹 말리고 있는 저 태양광선이 얼마나 사람을 현기증 나게 할까   그는 선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비 내리는 밤   물웅덩이 속에서 박살난 밤이 새 잎사귀 하나를 살살 다독거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아기를 달래어 잠들게 하듯 빗방울들로 꿴 등불이 너의 어깨를 수놓고 있었다 번뜩이며, 굴러 떨어지며 너는 말했다 : 안 돼 말투는 그렇게 단호했건만 미소는 도리어 마음속 비밀을 누설하고 있었다   우중충한 시커먼 구름이 축축한 손바닥으로 너의 머리카락을 비볐다 꽃 같은 향기와 나의 뜨거운 호흡을 반죽하며 우리의 그림자들은 가로등에 길게 잡아당겨져 매길목과 매꿈에 잇닿아 있었다 그물로 우리 환락의 수수께끼를 붙잡으며 과거의 고생으로 응결된 눈물은 너의 손수건을 적셨고 칠흑 같은 門洞 속에서 잊혀졌다   설령 내일 아침 총부리와 피 흘리는 태양이 나로 하여금 자유와 청춘과 펜을 포기하도록 할지라도 나는 이 밤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너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벽으로 내 입술을 막아 보아라 쇠꼬챙이로 내 하늘을 잘라 보아라 내 심장이 뛰는 한, 피의 干滿이 있을 것이고 시뻘건 달에 찍혀 있는 너의 미소는 밤마다 내 조그만 창문 밖에 떠서 기억을 환기시킬 것이다   * 門洞 : 중국식 저택의 대문에서 집안으로 통하는 지붕이 있는 통로                 잠들어, 산골짜기야   잠들어, 산골짜기야 쪽빛 雲霧로 하늘을 덮으며 들백합 창백한 눈동자들을 덮으며 잠들어, 산골짜기야 비 걸음으로 재빨리 바람을 뒤쫓으며 뻐꾸기 불안한 울부짖음을 뒤쫓으며   잠들어, 산골짜기야 우리는 여기에 숨어 마치 천 년 꿈속에 숨은 듯 다시는 시간이 풀잎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아 구름층 뒷면에 멈춰 선 태양의 시계추 다시는 저녀골과 여명을 흔들어 떨구지 않겠지   빙빙 도는 나무들은 단단한 솔방울들을 무수히 떨구어 두 줄의 발자국들을 보호해 주지 우리의 어린 시절과 계절은 더불어 이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지나가 버렸어 꽃가루가 가시덤불을 흠뻑 적셨지   아, 얼마나 적막한가 던져진 돌멩이는 메아리도 없어 어쩌면 너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한줄기 무지개가 고요 속에 떠오르고 있어 -눈에서 눈으로   잠들어, 산골짜기야 잠들어, 바람아 산골짜기는, 쪽빛 雲霧 속에서 잠들고 있어 바람은, 우리 손바닥에서 잠들고 있어               너의 손을 내게 뻗어   너의 손을 내게 뻗어 내 어깨로 막은 세계가 다시는 너를 불안하지 않게 해 설사 사랑은 잊혀질 수 없고 고난은 기억될 수 없어도 내가 한 말을 기억해 모든 것이 過去事일 수 없다는 것을 설사 마지막 사시나무 한 그루만이 묘비명도 없는 무덤처럼 길 끝에 우뚝 서 있더라도 낙엽은 말을 할 수 있어 나뒹굴며 바래지고, 창백해져 천천히 얼어붙어 우리의 무거운 발자국들을 떠받치잖아 물론, 누구도 내일을 알 수는 없어 내일은 또 하나의 새벽으로부터 시작되니까 그때 우리는 깊게 잠들 거야             귤이 익었다   귤이 익었다 태양을 가득 담은 귤이 익었다   네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게 해 묵직한 사랑을 가지고   귤이 익었다 껍질은 고운 안개를 내뿜고 있다   네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게 해 슬픔이 기쁨의 눈물이 되도록   귤이 익었다 구린 그물이 매쪽 알갱이들을 담고 있다   네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게 해 그 산산조각난 내 꿈을 찾도록   귤이 익었다 태양을 가득 담은 귤이 익었다             빨간 돛배   어디나 무너진 벽과 끊어진 담이라 해도 길이, 어찌 우리 발 아래로부터 뻗어나 있겠소 하나둘 가로등이 동공 속에 미끄러져 들어와도 쏟아져 나오는 것은, 새벽별이 아니잖소 나는 당신을 위로하고 싶지 않소 전율하는 단풍잎 위에는 봄에 관한 거짓말들이 마구 씌어 있소 열대에서 온 태양새도 우리 나무에 내려앉지 않았소 게다가 뒤쪽의 산불도 단지 먼지 가득한 황혼일 뿐이잖소   만약 지구가 벌써 얼음으로 봉해졌다면 우리가 난류를 향해 바다로 나가게 놔두시오 만약 암초가 우리 미래의 모습이라면 우리가 바다를 향해 석양으로 나가게 놔두시오 안 되오, 불지르고 싶은 갈망은 결국은 재로 변하는 갈망이잖소 다만 우리는 순탄한 항해를 추구하려 하오 당신의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와 나의 똑바로 들어올린 팔뚝을 가지고                 습관   나는 익숙해져 있다, 어둠 속에서 내 담배에 불을 붙여 불꽃이 타오를 때면 언제나 부드럽게 묻는 너에게 : 알겠어, 내가 무엇을 태웠는지?   나는 익숙해져 있다, 뱃머리에 앉아 흥얼거리며 노가 물방울을 떨어뜨릴 때 깨지는 안개 속의 태양을 보는 너에게 질질 끌고온 피곤과 고집센 발걸음에 다시는 벤치 위에서 우리의 옛 꿈을 데우려 하지 않는 너에게 나와 함께 경주할 때 너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우리의 어깨가 멀어지면 개의치 않고 웃는 너에게   나는 익숙해져 있다, 산골짜기에서 큰소리로 외친 후 우리의 이름을 뒤쫓는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는 너에게 책을 한아름 가져와 항상 온갖 문제를 묻고는 입을 삐죽거리며 조그만 손으로 답을 가득 적는 너에게 겨울에 푸르둥둥한 가로등 아래서 스카프같이 따스한 호흡으로 나의 목덜미를 감싸주는 너에게   그렇다, 나는 익숙해져 있다 부싯돌을 문질러 내가 익숙해져 있는 어둠에 불을 당기는 너에게도             너는 말했다   암호를 사용하며 내가 문을 두르리자 너는 말했다 : 들어와, 봄아 내가 천천히 모자를 벗자 귀밑머리가 서리와 눈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내가 너를 포옹하자 너는 말했다 : 두려워 마, 바보야 한 마리 깜짝 놀란 새끼 사슴이 너의 동공 속에서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생일 바로 그날 너는 말했다 : 안 돼, 선물하지 마 하나 나의 카시오페아는 벌써 너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십자로 갈림길에서 너는 말했지 : 헤어지지 말자, 영원히 한무리 차량의 전조등이 우리 사이를 통과했다                 매일 아침 우리의 태양   어린 풀들의 연약한 팔뚝이 태양을 떠받치고 있다 각기 다른 피부색을 띤 사람들이 너를 향해 걸어가 한줄기 빛으로 모아진다, 너는 종소리처럼 山頂에 쌓인 눈을 뒤흔든다 주름살 움푹 패인 곳에서 전율하는 공포와 비탄 영혼들은 더 이상 幕 뒤로 몸을 숨기지 않는다 책은 창무을 열고, 뭇새들은 자유롭게 나렬 보낸다 늙은 남도 더는 코를 골지 않는다, 더는 바싹 마른 덩굴로 어린애들의 활발한 다리를 속박치 않는다 소녀들은 목욕중 돌아온다 별들과 무한한 달빛을 끌어당기며 사람마다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목소리, 사랑, 희망을 가지고 있다   악몽 속에 우뚝 서 있던 빙산은 이른 아침에 녹아 흘러내린다, 잔류한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그림자를 이끌고 걸어간다 다리 아래 놓은 무거운 기억들은 걸어가는 동안에 점차 사라진다 팔뚝과 팔뚝을 맞잡고 있는 지평선에서 옛 이야기마다 새로운 시작을 갖는다 자, 시작해 보자구             선고 -遇羅克 열사*에게   설사 최후의 시작이 왔다 해도 난 유언 따윈 남기지 않겠소 오직 한 마디 말만 남기겠소, 어머님께 저는 결코 영웅이 아닙니다 영웅이 없던 시대에 인간이기를 갈구했을 뿐입니다   고요한 지평선이 산 자와 죽은 자의 대열을 갈라 놓아도 난 오직 하늘을 선택할 뿐 결코 땅에 꿇어앉아 사형 집행인들을 더욱 크게 보이게 하여 자유의 바람을 잘 막게 하지는 않겠소   뭇별 같은 탄착 구멍에선 새빨간 새벽이 흘러나온다   * 遇羅克 열사 : 1942년에 태어나 1968년 「반혁명분자」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1970년 北京의 인민공장에서 인민해방군에 의해 처형당했다. 처형시 자본주의자 가정 출생의 학생 신분으로 규정되었다. 北島는 이 시에 대해 「초고는 1975년에 씌어졌다. 내 몇몇 친한 친구가 遇羅克과 함께 투쟁에 참여했고, 그 중 2명이 감옥으로 보내져 3년 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이 시는 그 비극적 울분적 시대에 우리의 비극적 울분적 투쟁을 기록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끝이냐 시작이냐 -遇羅克 열사   나는, 여기 서 있다 살해 당한 한 사람을 대신하여 매번 태양이 뜰 때마다 하나의 무거운 그림자가 길처럼 온 국토를 관통하도록   비탄에 잠긴 안개는 기워 들쭉날쭉한 지붕들을 덮고 있고 집과 집 사이의 굴뚝들은 잿더미 같은 군중들을 내뿜고 있다 따뜻함은 희멀건 나무 초리로부터 발산되어 곤궁한 담배꽁초들 위에 꾸물거리며 머무니 모든 피곤한 손들에서 우중충한 시커먼 구름이 일어난다 태양의 이름하에 어둠은 공개적으로 약탈을 자행하고 침묵은 여전히 동방의 이야기이고 사람들은 낡은 벽화 속에서 묵묵히 영원히 살고 묵묵히 죽어 사라진다   아, 나의 토지여 너는 왜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설마 黃河에서 배를 끄는 인부의 밧줄들조차 절단된 거문고 줄마냥 더 이상 울려 퍼질 수 없단 말인가 설마 시간, 이 컴컴한 거울조차 너에게 영원히 등을 돌려 단지 별과 뜬구름만 남겨 두었단 말인가   나는 너를 찾는다 매번 꿈을 꿀 때마다 안개 자욱한 모든 밤이나 아침마다 나는 봄과 사과나무를 찾는다 꿀벌들이 휘젓는 미풍의 한올 한올마다 나는 해안의 밀물과 썰물을 되찾는다 파도 위 일광으로부터 형성되는 갈매기들 나는 담에 쌓여진 전설들을 찾는다 너와 나의 잊혀진 이름   만약 鮮血이 너를 비옥케 할 수 있다면 내일의 가지 위 성숙한 과실은 나의 색깔을 가질 것이다   시인해야마 한다 죽음의 백색 싸늘한 빛 속에서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운석이 되고자 한 자나 순교자의 얼음같이 차가운 塑像은 꺼지지 않는 청춘의 불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겨진다 설사 비둘기들이 그 어깨에 내려 앉더라도 그들의 체온과 호흡을 느낄 수 없으니 그들은 깃털을 다듬고 재빨리 날아가 버린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사랑이 필요하다 나는 갈망한다, 내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 속에서 늘 평온한 황혼을 보내기를 요람의 흔들림 속에 아기의 첫울움을 기다리고 풀밭과 낙엽 위에서 진지한 응시마다 생활의 시를 쓰는 이런 소박하고 평범한 희망조차 지금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바람의 모든 대가가 되었다   일생 중 나는 여러 번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언제나 성실히 지켜 왔다 어릴 적 했던 언약만은 그러므로, 이 어린애의 마음을 용납지 못하는 세상은 아직도 나를 용서치 못하고 있다   나는, 여기 서 있다 살해 당한 한 사람을 대신하여 다른 선택은 없다 내가 쓰러지는 곳에선 다른 사람이 설 것이다 내 어깨 위는 바람이고 바람 속에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아마 언젠가 태양은 시들은 화환으로 변할 것이다 불굴의 전사들의 산림처럼 자라나는 묘비들 앞에 놓여지기 위해 까마귀들, 이 밤의 파편들 떼를 지어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다             항구의 꿈   달빛이 층층이 항구에 밀려오자 夜色은 투명한 듯 하나 둘씩 빻아지는 돌계단 하늘로 통하오 내 꿈으로 통하오   내가 고향으로 돌아왔다오 어머님께 드릴 산호와 소금을 가지고 산호는 자라 숲이 되었고 소금은 얼음을 녹였다오 아가씨들의 속눈썹은 떼구루루 잘 익은 밀알들을 떨구었다오 낭떠러지의 노쇠한 이마는 촉촉한 바람을 불어 젖혔다오 내 사랑의 노래가 창문마다 찾아가 손님이 되면 맥주의 거품은 거리로 넘쳐 나와 줄지은 가로등이 된다오 나는 노을빛에 빛나는 지평선을 향해 걸어갔다오 그리고 몸을 돌려 허리를 크게 굽혀 절을 했다오   물보라가 갑판과 하늘을 씻어 버렸다오 별들은 나침반 위에서 한낮 동안 자신들의 方位를 찾고 있다오 사실, 나는 뱃사람이 아니라오 태어나기를 뱃사람이 아니라오 하나 내 마음을 뱃전에 걸고 닻마냥 선원들과 항해를 한다오             길을 잃은   비둘기 휘파람을 따라 나는 너를 찾아 다녔다 높디높은 숲이 하늘을 가로막았다 오솔길 위 길 잃은 민들레가 나를 푸르스름한 잿빛 호수로 이끌었다 잔잔히 출렁이는 수면에 비친 그림자 속에서 나는 너를 찾았다 깊이를 측정할 수 없었던 너의 눈동자를             한계   나는 맞은편 둑으로 가고 싶다   강물은 하늘의 색깔을 바꾸고 나도 바꾼다 나는 흘러가건만 내 그림자는 강둑 근처에 있다 번개에 타서 눌은 한 그루 나무마냥   나는 맞은편 둑으로 가고 싶다   맞은편 둑 숲속에서 깜짝 놀란 고독한 산비둘기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화음들   나무들과 나는 바싹 연못을 에워쌌다 내 손을 뻗어 물에 담그자 칼새들의 깊은 잠을 방해했다 바람은 혼자 고독했고 바다는 아득히 멀었다   나는 거리로 걸어 나왔다 소란함이 빨간 신호등 뒤에 멈췄다 내 그림자는 부채꼴로 펼쳐졌고 발자국들은 비뚤비뚤 안전섬*은 혼자 고독했고 바다는 아득히 멀었다   푸른 창이 밝아졌다 아래 층, 사내 녀석들은 마구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담배꽁초는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도둑 고양이는 혼자 고독했고 바다는 아득히 멀었다   백사장에서, 네가 잠들자 바람은 너의 입가서 멈추었다 파도가 살그머니 밀려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었다 꿈은 혼자 고독했고 바다는 아득히 멀었다   * 안전섬(safety island) : 교통이 복잡한 거리나 전차 정류장 등 일정한 지역에 사람이 안전하게 피해 있도록 베푼 곳.             단풍잎과 북두칠성   세계는 거리의 모습만큼이나 조그맣다 우리가 만났을 때, 너는 간단히 고개만 끄덕였다 온갖 과거사와 정겨운 안부 인사도 생략한 채 아마 행복은 단지 하나의 과정이었을까 모든 것이 벌써 끝났건만 너는 왜 아직도 그 빨간 스카프를 매고 있는가 보아, 단풍잎으로 장식된 하늘이 얼마나 맑은지, 태양은 벌써 최후의 유리창을 향해 이동했다   거대한 지붕들 뒤로 저 북두칠성이 솟아 오른다 이미 잘 익은 포도 송이는 아니다 또 가을이 되었으니 당연히, 가로등은 곧 밝혀질 것이다 너의 미소를 보고자 얼마나 고대했던가 관대하면서도 냉담한 그리고 그 잔잔한 응시 가로등은 곧 밝혀질 것이다               옛 절   사라져 가는 종소리 거미줄되어, 찢겨진 기둥 속에서 둥그런 나이테로 퍼진다 기억들도 없는, 바위가 희뿌연 산골짜기서 메아리를 퍼뜨렸다 바위가, 기억들도 없는 오솔길이 이곳에 굽이굽이 펼쳐졌을 때 용들과 기괴한 새들도 날아가 버렸다 처마 아래서 벙어리 종들을 훔쳐 잡초는 일 년에 한 번씩 자란다, 무관심하게 그들이 복종하는 주인이 스님의 헝겊신인지 아니면 바람인지 돌 비석은 훼손되어, 비문은 벌써 닳아 없어졌다 마치 큰 화재가 한 번 일어나야지만 판독이 가능할 것처럼, 어쩌면 산 자들의 한줄기 눈빛으로 거북이가 진흙 속에서 부활해 무거운 비밀을 등에 지고, 문지방을 기어 넘을 것이다               십 년 동안   잊혀진 토지 위에서 세월은, 말 멍에의 방울들과 뒤엉켜 밤 새워 소리를 냈다, 길조차도 흔들리는 무거운 짐에 헐떡이며 노랫가락으로 각색되어 사람들에 의해 전해져 도처에서 불리어졌다 여인의 목걸이는 呪文 속에 영험을 본 듯 밤하늘로 올라갔다 형광 다이얼은 음탕하게 마음껏 소리를 냈다 시간은 무솨 鐵柵마냥 믿음직스러웠다 시든 나뭇가지들에 가위질 당하듯 다듬어지는 바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넘어가거나 왕래를 할 수 없었다 단지 책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들만을 영원히 가두어두고 진리의 情夫로 삼을 수 있었으나 어제 깨어진 등잔은 장님들의 마음속에서 어찌나 휘황찬란했던지 그들이 사살당하던 그 순간까지 갑자기 부릅뜬 눈 속에다 살인범의 마지막 초상을 남겼다             밤 : 主題와 變奏   여기서, 도로들은 모은다 한줄기 한줄기 평행된 전조등 빛들을 장황하나 갑자기 중단된 대화 운전사들의 지독한 담배 냄새와 거칠고 몰상식한 욕지거리들에 뒤덮인 도로 난간은 인간의 대기 행렬로 대치되었다 상점 덧문들 틈새서 스며 나오는 불빛들 담배꽁초들과 함께 길가에 팽개쳐진다 민첩한 발들에 짓밟히기 위해 게시판에 기대어 있는 어느 노이의 잃어버린 지팡이 마치 몸을 움직여 걷고 싶은 듯 바위의 睡蓮도 시들어 떨어졌고 분수 속에서, 큰 건물들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떠로으는 달이 갑자기 울린다 뗑그렁 뗑그렁 종소리를 고궁 담 너머 옛날을 회상시키며 해시계는 빙빙 회전하며, 오차를 점검하며 이른 새벽의 성대한 朝會를 기다린다 비단 옷 댕기들 바람 속에 서서 살랑살랑 돌계다 위 먼지를 쓸어 버린다 부랑자의 그림자가 담을 슬금슬금 넘어가면 울긋불긋한 네온사인들이 그를 위해 번쩍번쩍 그가 밤을 지새우도록 한다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는 황급히 벤치에 올라가 멀리 연기처럼 부드러운 빛의 파도를 바라보나 수은등은 무례하게 커튼을 열고 다른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엿보며 꿈을 교란하고, 고독한 이를 깨운다 조그만 문 뒤서 빗장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는 손 마치 총의 노리쇠를 당기듯               예술가의 생활   가서 무 사오거라 -엄마가 말했다 여봐, 안전서늘 잘 봐야지 -경찰이 말했다 -바다여, 너는 어디에 있느냐 -주정꾼이 말했다 어떻게 가로등마다 다 터졌지 -내가 말했다 길을 지나가던 장님이 민첩하게 대나무 장대를 들어올렸다 마치 안테나를 뽑아 당기듯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온 구급차는 나를 병원으로 보냈다   그래서 나는 모범 환자가 되었다 우렁차게 재채기를 하며 눈을 감고 밥 먹을 때를 궁리하며 한 번 두 번 피를 빈대에게 주며 탄식할 틈도 없이 결국엔 의사의 직분을 떠맡아 굵직한 주사기를 쥐고 복도를 왔다갔다 거닐며 밤을 지새웠다               내일은, 안 돼   이것이 이별은 아니오 왜냐며 우리가 결코 만난 적이 없기에 비록 그림자와 그림자가 길 위에 겹겹이 포개졌을망정 도망치는 고독한 범죄자처럼   내일은, 안 돼 내일은 밤의 다른 측면이 아니오 희망을 가졌던 자는 누구나가 죄인이었다오 밤새 일어났던 이야기를 그 밤 속에서 끝맺었다오               전설의 이어짐   낡은 옹기 단지는 오래 전부터 우리들에 관한 전설을 담고 있었지만 너는 끊임없이 묻고 있다 과연 이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물론, 불은 바람에 꺼질 수 있고 산봉우리도 黎明 속에 무너져 내려 장례 행렬의 밤 하천 속으로 용해될 수 있다 사랑의 쓴 과일은 잘 여물면 떨어질 것이다 현시점은 석양만이 우리들에게 왕관을 씌우고 있나니 이에 따른 온갖 것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나긴 밤은 뒤척임과 침묵의 시간             사랑 이야기   결국, 오직 하나의 세계였다 우리를 위해 성숙한 여름을 준비한 것은 하나 우리는 어른들의 규칙에 따라 어린애 같은 놀이를 계속했다 길가로 자빠지는 사람들을 문제 삼지 않으며 좌초되는 배들도 무제 삼지 않으며   그렇지만, 연인들을 축복했던 햇살은 노동자들의 등 위에 칠측같고 피곤한 밤을 던지고 있다 설사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오솔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원수 같은 응시 속에 얼음과 서리만 떨어질 뿐   이제 그저 단순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없다 이 이야기 속에는 너와 나, 아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雪線   내가 한 말도 잊자 하늘에서 총에 맞아 떨어지는 새도 잊자 암초들도 잊어 다시 한 번 그들을 침몰케 하자 심지어 태양도 잊자 그 恒久한 위치에는 단지 먼지와 재에 뒤덮인 등잔만이 빛을 내고 있다   雪線 위 절벽은 한차례 붕괴 후 무엇이나 침묵으로 봉해 버린다 雪線 아래 실개천은 나긋한 풀밭 위를 졸졸 흐른다             악몽   방향이 일정치 않은 바람 위에다 나는 눈을 그렸다 그래서 정체된 시간은 지나갔건만 누구도 깨어 있지 않았다 악몽은 햇살 아래서도 여전히 범람했다 강바닥을 넘쳐 나와, 자갈 위를 기어가 새로운 마찰과 분쟁을 선동했다 나뭇가지의, 처마 위의 깜짝 놀란 새들의 눈초리가 얼음으로 응고되어 대지 위로 떨어지며 도로의 바퀴 자국들은 다시 얇은 층의 서리로 엉기기 시작했다 누구도 깨어 있지 않았다               혜성   돌아와라, 그렇게 않을 바엔 영원히 떠나거라 그렇게 문 앞에 서 있지는 마라 石像처럼 결코 회답을 기대할 수 없다는 눈길로 우리들 사이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며   사실 상상키 어려운 것은 어둠이 아니라 새벽이다 등불이 얼마나 더 오래 탈 수 있겠는가 어쩌면 혜성이 출현해 폐허 속에 깨진 잔해들과 실패자들의 명부를 끌어당기며 그들을 번뜩이게 하고, 태운 후, 재로 변하게 할 것이다   돌아와라, 우리는 家庭을 다시 지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바엔 영원히 떠나거라, 혜성처럼 찬란하면서 서리같이 차갑게 어둠을 떠나, 다시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두 밤을 연결하는 하얀 복도를 관통하는 메아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산골짜기에서 너 홀로 노래한다               鄕村의 밤   석양과 먼 산이 포개지며 초승달이 된다 느르바무 숲을 통과해 새둥지는 텅 비어 있다 오솔길은 연못을 둘둘 휘감으며 지저분한 누렁개를 뒤쫓는다 마을 입구의 흙담까지 우물 속 빈통은 가볍게 흔들흔들 괘종시계도 마당의 연자방아처럼 고요하다 마른 보리 짚단들이 떠들썩하다 마구간의 씹는 소리는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 남정네의 긴 그림자가 문 앞 돌계단에서 미끄러진다 부뚜막의 불꽃들이 아낙네의 팔뚝과 이빠진 질그릇을 벌겋게 물들인다               겨울로 향하자   바람은, 참새의 마지막 남은 체온을 석양을 향헤 불어 버렸다   겨울로 향하지 우리가 태어난 것은 결코 신성한 예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자 곱사들 노인들이 만든 아치형 문을 지나 열쇠를 뒤에다 남겨 놓고 귀신 그림자들이 가물가물하는 대청을 지나 악몽을 뒤에다 남겨 놓고 온갖 쓸데없는 것들뒤에다 남겨 놓고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랴 심지어 의복들과 신발들도 팔아 버리자 마지막 남은 식량조차도 땡그렁 소리나는 동전들을 뒤에다 남겨 놓고 겨울로 향하자 노래하며 축복이 아니다, 기도도 아니다 결코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저 녹색 칠을 한 잎들을 장식키 위해 매력을 상실한 계절에 과실은 술로도 빚을 수 없고 신맛의 물로도 변할 수 없다 신문지를 말아 담배를 만들어 개처럼 충실한 시꺼면 연기로 하여금 개처럼 바짝 뒤쫓으며 태양 아래의 온갖 거짓말들을 지우게 하자   겨울로 향하자 녹색 음탕함 속에 타락치는 말자, 처한 환경에 만족하며 천둥과 번개의 저주를 반복케 하지는 말자 思想의 省略으로 하여금 빗방울 줄기를 이루게 하거나 정오의 감시 하에 수인처럼 거리를 걸어감으로써 우리의 그림자를 잔인하게 짓밟거나 혹은 커튼 뒤에 숨어 죽은 자의 말을 더듬거리며 암송하며 학대받는 환희를 표현함으로써   겨울로 향하자 강이 얼어붙은 곳에서는 도로가 흐르기 시작한다 강가 건축용 골재 자갈들 위 까마귀들은 달들을 하나씩 부화하였다 깨어 있는 자는 누구나 곧 알 것이다 꿈이 대지로 곧 강림할 것을 시린 아침 서리마냥 침전하며 저 피곤에 지친 별들을 대체하며 죄악의 시간은 끝나고 빙산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한 세대의 塑像이 될 것이다             歸路   기적이 끝없는 울음을 울어 젖히는데 설마 계속해서 세지는 않겠지 저 오동나무 위 까마귀들을 묵묵히 그들을 기억하며 마치 이 흔적들에 의지해 또 다른 꿈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듯   시들은 잎과 빨간 꽃봉오리가 관목 속에서 흔들린다 사실 바람도 가라앉았는데 새벽빛에 응결된 서리가 차창을 통과하며 창백하고 권태로운 얼굴을 너에게 남겨 놓는다   그렇다, 세상사 상관 않고 너는 歸路에 올라야 한다 옛날 짧은 피리가 팽개쳐진 곳은 벌써 번성하여 숲이 되었다 도로를 바라보며 하늘을 쓸어버리는             너는 빗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너는 빗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길은 창문 깊숙한 곳으로 통해 있다 달의 뒷면은 틀림없이 차가울 것이다 그 해 여름밤, 백마는 북극광과 질구해 지나갔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몸을 떨었다 가자, 네가 말했다 분노로 우리를 파괴치는 말자고 갱년기 산에 들어간 것처럼 빠져 나갈 방법이 없어 수많은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지만 결국은 사막에서 만났다 온갖 年代가 이곳에 모여 들었다 매, 선인장도 이곳에 모여 들었다 이글거리는 신기루보다 더욱 진실되게 탄생을 두려워하는 한 미처 가면을 쓰지 못하고 웃는 얼굴을 두려워하는 한 모든 것은 반드시 죽음과 연결됐다 그 해 여름은 결코 종말이 아니었다 너는 빗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력서   일찍이 나는 열병하며 광장을 걸었다 빡빡 깎은 머리로 태양을 보다 잘 찾기 위하여 그러나 미쳐버린 계절에 방향을 바꾸었다, 울타리 너머 추위에 떠는 염소들을 보고는 알칼리성 토지와 같은 백지 위서 내 理想을 보기 전까지 나는 등뼈를 구부린 채 진리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을 찾았다고 믿고 있었다, 마치 불에 구워진 물고기가 바다를 꿈꾸는 것처럼 만세! 나는 한 번만 외쳤다, 제기랄! 그러나 수염이 자라기 시작해 뒤엉켰다, 셀 수 없는 世紀들처럼 나는 부득불 역사와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칼날 아래 우상들과 가족을 결성한 것은, 결코 대항키 위함이 아니었다 파리 눈 속의 분열된 그 세계와 언쟁이 그치지 않는 책 더미 속에서 차분하게 우리는 똑같은 몫을 받았다 별을 하나 하나 팔아서 마련한 적은 돈이었다 하룻밤 새, 나는 도박으로 날렸다 내 허리띠, 그리고 발가벗겨진 채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소리 없는 담배에 불을 당긴 것은 한밤에 죽음을 불러온 총이었다 하늘과 땅이 자리 바꿈을 할 때 나는 대걸레 같은 한 그루 고목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범   수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雲母는 진흙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사악하면서도 환하게 살무사 눈 안의 태양처럼 손들의 밀림 속, 무수한 갈림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젊은 사슴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묘지만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황량함을, 그리고 시가지를 이룰 것이다 자유란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뒤돌아 바라보니 아버지 세대 초상들의 광활한 배경 위에서 박쥐가 그린 圓弧는 땅거미와 함께 사라진다   우리에게 죄가 없지는 않다 오래 전에 우리는 거울 속의 역사와 공범이 되었다, 그날을 기다리며 화산 마그마 속 깊숙이 저장되었다 기어나와 차가운 샘으로 변하여 다시 어둠을 만나는 그날을             메아리   너는 이 계곡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장례 행렬 속에서 너 혼자 관을 보낼 수 없다 죽음으로 평화를 얻거나, 가을로 하여금 계속 집에 머물게 하라 화로 옆 깡통에 머물며 불임의 꽃봉오리를 맺게 하라 눈사태가 시작되자- 메아리는 너와 사람들 사이에서 심리학적 관계를 찾는다 : 행운이 계속되어, 행운이 내일까지 가 내일의 태양광선을 만나더라도 네 가슴속 숨겨진 다이아몬드로부터 나온 죄악의 다이아몬드부터 너는 이 계곡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장례식의 주인공은 바로 너이기에             맹목적 생각들   황혼이 봉화대에서 떠올랐을 때 이 하천을 경계로 한 섬에 한 종족이 정착해 번식해 갔다, 토지는 색깔이 변해 갔고 신화는 낡아 허름해진 솜이불 속에 놓여졌다 꿈을 임신하자 독화살이 퍼뜨리는 고통스런 두근거림을 지니게 되었다, 나팔소리가 잠잠해지자 해골들은 밤새 걸어가 하염없이 솟아나는 아내의 눈물 속에서 하얀 병풍을 펼쳤다 머나먼 곳으로 통하는 문을 가로막고 있는   동쪽은, 이 琥珀 속에서 아득한 제방 갈대 숲은 전율하는 여명을 향해 달렸고 어부들은 배를 버리고, 밥짓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제방으로부터 시작된 역사는 울창한 대나무 숲을 베어 不朽의 簡冊 조각에다 有限된 문자들을 새겼다   묘혈 속, 줄지은 常夜燈들은 청동과 황금의 죽음을 목격했다 또한 다른 죽음도 있다 밀의 죽음 칼날이 교차하는 틈새에서 일찍이 그들은 도전하듯 성장했다 태양에 불을 붙였고, 그들의 재는 겨울을 덮었다 수레바퀴가 쓰러졌다 바퀴살이 흩어지는 방향을 따라 風砂에 함락된 壕는 또 다른 하나의 죽음, 석비는 비단같이 보드라운 이끼에 싸여 꺼져가는 초롱과 같았다 단지 도로만이 살아 있었다 대지에 최초의 윤곽을 새겼던 도로는 기나긴 죽음의 지대를 통과해 내 발 아래 도착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옛 포대 상공에는 아직도 화약 연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나는 오래 전에 주조되었다, 차디찬 무쇠 속에서 충동을 보유하며, 불러내기 위해 천둥소리를, 폭풍우 속에 돌아오는 조상들을 불러내기 위해 천만 개의 유령들이 지하로부터 자라나 한 그루 고독하고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면 우리에게 그늘을 주기 위해, 우리는 쓴 과일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출발의 시간부터               주인   푸대접 받은 손님도 가버렸다 그는 炎難性 소식과 장갑 한 짝을 남기고 떠났다 다시 나의 문을 노크하기 위해 아직도 白晝의 화염들을 볼 방법이 나에겐 없었다 춤곡이 불을 붙인다 저 방앗간에서 흘러나오는 달빛에 꿈의 암시들로 가득한 기적을 믿자 기적은 바로 벽에 박혀 있는 못에 걸린 내 그림자가 흔들거리며 입으려 하는 옷이다 내 마지막 행운을 시도하자 두 버 노크 소리의 공간에서 짐을 떠받치던 내 손이 쓰러지고 위험한 계단이 어둠 속에 윤곽을 드러낸다               아주 오랜 세월   이건 너, 이건 떠도는 그림자들로 애태우는 너, 밝았다 어두워졌다 다시 너를 향해 갈 수는 없어 추위도 나를 절망케 해 아주 오랜 세월, 빙산이 이루어지기 전 물고기는 수면까지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아주 오랜 세월 나는 늘 조바심에 천천히 유동하는 밤을 보냈다 등불이 뾰족한 강철 끝에서 빛을 발하는 아주 오랜 세월, 寂寞은 바로 이 시계가 없는 방 떠나는 사람들조차 가지고 가는 열쇠, 아주 오랜 세월 짙은 안개 속에 휘파람을 불어 젖히며 다리 위 열차는 질주해 지나갔다 계절과 계절을 들판의 조그만 정거장에서 출발해 나무마다 머물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아주 오랜 세월               청년 시인의 초상   당신 옷소매로부터 질질 끌려진 영혼은 한도 끝도 없다, 당신이 밤낮으로 빠져 나간 끊임없는 문장들과 골목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벌써 늙어 있었다 비록 당신 야망이 예전처럼 당신 대머리 가장자리를 따라 성장할지라도 당신이 틀니를 뽑자, 당신은 더욱 앳되어 보였다 당신은 등을 돌리자마자 이름을 공공변소의 벽에다 써 갈겼다 발육부진에 기인해, 당신은 매일 몇 알의 호르몬 약을 삼켜야만 했다 목청을 溫柔하게 만들고자 옆집 발정 난 고양이처럼 연거푸 아홉 번 재채기를 모두 종이에 떨으뜨렸다, 당신은 반복을 개의치 않았다 누차 돈을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좋아했다 소방차는 미친 듯이 외쳐댔다 당신에게 찬양토록 일깨우며 보험료를 지불한 달빛이나 보험료를 지불치 않은 넓죽한 도끼를 찬양토록, 묵직한 도끼는 思想보다도 더 무게가 나갔다 날씨는 더럽게 추웠다, 피 모두 어두워지자, 밤은 동상에 걸린 발가락마냥 그렇게 마비되었다, 당신은 절름거리며 길가 덤불 속을 드나들었다 월계관을 쓴 얼간이들을 만나며 나무마다 각자의 부엉이가 있기에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골치가 아팠다 그들은 늘 과거사를 꺼내기 좋아했다 旣往之事를, 당신과 나는 모두 스컹크였다               가파른 벼랑 위 창문   나나니벌은 불안정한 자세로 꽃송이를 열고자 재촉한다 편지는 벌써 부쳐졌다, 일 년에 하루 물기 묻은 성냥이 다시는 나를 밝혀줄 수 없다 이리떼가 나무로 변한 인간들 사이를 빠져 나간다 눈 더미가 갑자기 녹았다, 다이얼 위에서 겨울의 침묵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바위를 뚫는 것은 결코 깨끗한 물이 아니다 도끼로 절단된 굴뚝의 연기는 공중에 똑바로 멈춰 서 있다 태양 광선의 호랑이 줄무늬 가죽은 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돌은 자라난다, 꿈은 방향이 없다 풀숲 속에서 흩어져 떨어지는 생명 언어를 찾고자 위를 향한다, 별들 파열한다, 發情난 강은 도시를 향해 무수한 녹슨 탄피들을 돌진케 한다 하수구로부터 음험한 관목들이 자라나고 시장에는 여인네들이 봄을 매점한다             빗속의 메모들   잠에서 깨니, 거리를 향한 창문은 창유리의 그 完整하고 평온한 고통을 보존한다 빗속에 점차 투명해지는 새벽, 내 주름살을 읽는다 책상 위 펼쳐진 책이 내는 바스락 바스락 소리, 마치 불이 탈 때 내는 소리처럼 마치 부채 같은 날개를 멋지게 뻗어, 深淵 위 上空에서 불꽃과 새가 함께 엉기는 것처럼   여기, 나와 영원불변의 저녁놀 사이에는 돌이 가득 떠 있는 강 사람의 그림자들 서로 밀치며 깊은 물 속에 빠지자 솟아나는 거품들은 위협한다, 별들도 없는 白晝를   땅에서 과일을 그리는 인간들은 배고픔을 忍耐하도록 운명을 타고 났다 친구들 사이 寄宿하는 인간들은 고독하도록 운명을 타고 났다 삶과 죽음을 초월해 노출된 나무뿌리에서 빗물이 씻어 내리는 것은 진흙, 풀 哀怨의 소리             전통에 관하여   산양은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 아치형 다리는 만들어졌던 날부터 벌써 노후되었다 호저*마냥 촘촘히 자라나는 年代 속에서 누가 지평선을 분명히 볼 수 있었을까 밤과 낮으로, 風磬*은 문신한 사내처럼 그렇게 음침하다, 선조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여 기나긴 밤은 묵묵히 바위에 기어든다 바위를 움직이고자 하는 바람은 山, 역사 교과서 속에서 盛衰하고 있는   * 호저 : 몸 길이는 90cm, 무게 27kg 가량이며, 몸에는 부드러운 털과 뻣뻣한 털,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털이 밀생하고, 머리에는 길고 뻣뻣한 털의 갈기가 있는 것도 있음. 꼬리는 짧 고 가시털이 났으며 위험이 닥치면 고슴도치처럼 몸을 둥그렇게 움츠림. * 風磬 : 처마 끝에 다는 경쇠.           어제부터   내가 이 曲에 들어갈 수 없으니 단지 몸 구부려, 레코드판 위에서 빙빙 돈다 희뿌연 시각 속에서 빙빙 돌 양으로 번개에 의해 고정되는 배경 속에서 어제는 꽃마다 그윽한 향기를 내뿜었다 어제는 접의자를 하나씩 폈다 모든 사람들을 앉게 할 목적으로 저 병자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들 눈 속의 겨울 해안은 끝없고 또 끝없다   단지 나는 겨울 해안으로 들어간다 혹은 반대로, 奧地로 깜짝 놀란 빨간 단풍잎들을 흩뜨리며 학교의 침침한 복도로 들어간다 온갖 날짐승들의 표본들을 마주 대하며             팔월의 몽유병자   해저의 石鐘은 두드려 울려 퍼져 울려 퍼져, 파도를 넘실거리게 한다   울려 퍼지는 것은 팔월 팔월의 정오엔 태양도 없다   젖으로 부풀려진 삼각돛은 표류하는 시체 위로 높이 치솟는다   높이 치솟는 것은 팔월 팔월의 사과들은 산마루로 굴러 떨어진다   오래 전에 꺼졌던 등대는 뱃사람들의 눈실 속에서 빛을 발한다   빛을 발하는 것은 팔월 팔월의 장터는 첫서리와 아주 가깝다   해저의 石鐘은 두드려 울려 퍼저 울려 퍼져, 파도를 넘실거리게 한다   팔월의 몽유병자는 한밤중에 태양을 보았다           이 한걸음   탑 그림자가 잔디밭을 가로지른다, 너를 향하기도 나를 향하기도 하면서, 시시각각 우리는 단지 한걸음의 거리 헤어지거나 다시 만남은 하나의 반복 출현하는 주제 : 미움은 단지 한걸음의 거리 하늘이 흔들린다, 공포의 지반 위에서 건물이 창문을 사방으로 열어 젖혔다 우리는 생활한다, 그 안에서 혹은 그 바깥에서 : 죽음은 단지 한걸음의 거리 꼬마는 벽과 말하는 법을 배웠다 이 도시의 역사는 노인들에게 봉해져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 늙어 감은 단지 한걸음의 거리             언제나 그랬다오   언제나 그랬다오 불은, 겨울의 중심 나무들이 타올랐을 때 주위에 모여들기 원치 않았던 바위들만이 미친 듯이 짖었다오   사슴뿔에 걸린 鐘이 멈추었다오 생활은 한 번의 기회 오직 한 번 누구든지 시간을 체크하면 새삼 늙었다는 것을 깨닫는다오               유혹   예로부터 변함없이 그건 일종의 유혹이었네 뱃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제방이었네 비스듬한 육지가 해저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은 것은   돌고래가 별무리로 뛰어 올랐지만 다시 떨어졌고, 하얀 모래밭이 풍요로운 달빛 아래 사라졌고 바다는 제방을 넘쳐 텅 빈 광장에 밀려와 해파리가 온 등전주 위에 걸려 있고 바다는 계단을 기어올라 펑하고 문과 창을 깨로 들어와 바다를 꿈꾸던 이를 뒤쫓네             지하철 역   저 시멘트 전신주들은 본시 하천에 둥둥 떠있던 한 토막 토막 통나무들이었다 너 이걸 믿겠어? 매가 이곳에 날아온 적은 결코 없었다 설사 각양각색의 토끼털 모자들이 大路上에 드러나 있더라도 너 이걸 믿겠어? 단지 밤이 깊어 인기척이 없을 때 山羊만이 떼를 지어 마을로 쏟아져 들어온다 네온사인에 알록달록 물들며 너 이걸 믿겠어?               보살   흐르는 겉옷의 주름은 너의 잔잔한 숨결   네 휘두르는 천 개 팔뚝의 손바닥마다 휘둥그런 눈동자들 靜的인 고요함을 애무하나니 萬物을 끊임없이 엇섞으며 꿈처럼   수세기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며 네 이마에 박힌 진주는 망망 大海에서조차 비길 데 없는 위력의 상징 조약돌을 투명케 하나니 물처럼   성별이 없는 너 半裸의 유방이 부풀어 오름은 단지 母性을 갈구하는 욕망인가 속세의 고통들을 양육해 그것들을 자라게 하려는               詩藝   내가 종속된 이 거대한 집 탁자 하나만 남았을 뿐, 온통 주위는 끝없는 늪지로 에워싸였다, 달은 여러 각도에서 나를 비추고 해골처럼 깨지기 쉬운 꿈은 아직도 서 있다 멀리, 철거되지 않은 건축용 비계마냥 그리고 백지 위 진흙 발자국들 그건 오랜 세월 길러온 여우 불 같은 꼬리를 홱홱 움직이며 나에게 아첨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는   물론 너도 있지, 내 앞에 마주앉아 네 손바닥 안에서 마른 하늘에 번개를 쳐 마른 장작으로 변하기도 하고 다시 잿더미가 되기도 하는               장송가   과부가 찢어지는 눈물로 공양를 했다 偶像 앞에서, 어머니 젖을 기다리는 것은 세상에 갓태어난 굶주린 늑대 새끼들이었다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하나씩 하나씩 벗어났다 산봉우리도 우뚝 치솟으며, 나의 울부짖음을 전달하다 우리는 함께 농장을 포위했다   너는 밥짓는 연기가 감도는 농장으로부터 들국화 화환을 바람에 흩날리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작으나 영글은 유방을 꼿꼿이 세우고 우리는 밀밭에서 마났다 밀이 화강암 위에서 미친 듯이 자라고 있었다 너는 바로 그 과부, 잃어버린 것은 바로 나, 나의 평생토록 간직했던 소중한 열망 우리는 함께 드러누웠다, 땀에 흥건히 배어 침대는 새벽 강에 떠 있었다             미심쩍은 곳   순식간에 사라지는 역사 좀처럼 파악키 어려운 여인들의 미소 모두가 우리 재산들이지 미심쩍은 것은 대리석에 대겨진 세밀한 무늬들이지 신호등은 세 가지 색깔로 계절의 질서를 상징하지 새장 안을 지켜보는 사람은 자신의 나이도 지켜보게 되지 미심쩍은 것은 조그만 여인숙의 빨간 양철 지붕이지 파란 이끼가 가득한 혓바닥으로부터 수은 같은 언어가 뚝뚝 떨어져 입체 교차로를 따라 사방팔방으로 내달리지 미심쩍은 것은 아파트의 침묵하는 피아노지 정신병원 속의 조그만 나무들은 몇 번이고 동여 매지지 쇼윈도 속 패션 모델은 유리 눈알로 행인들을 가늠하지 미심쩍은 것은 문지방의 맨발이지 미심쩍은 것은 우리 애정이지               우화   그는 그의 우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이미 우화의 주인이 아니다 그 우화는 이미 되팔렸다 또 다른 뚱보의 손에게   그는 뚱보의 손에서 살아간다 카나리아가 그의 영혼이다 그의 목구멍은 보석가게에 있다 주위가 유리로 된 새장이다   그는 유리로 된 새장 속에서 살아간다 모자와 구두 사이에서 사계절의 호주머니는 열두 개 표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열두 개 표정들 속에서 살아간다 그가 배반한 강은 도리어 그를 바싹 추격한다 개의 눈알을 생각나게 하는   그는 개의 눈알 속에서 살아간다 온 세상의 굶주림과 한 사람의 풍요함을 본다 그는 그의 우화 속의 주인이다               여명의 청동 거울   여명의 청동 거울에 펼쳐지는 것은 여명 사냥용 매들이 하나의 초점에 모여든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 가수들이 구름처럼 떼를 이룬 해안 단지 얼어 白玉이 된 병원만이 낮게 신음한다   여명의 청동 거울에 펼쳐지는 것은 여명 뱃사람들은 절망적 忍苦 속에서 바위의 행복과 하늘의 행복과 작디작은 모래알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말씹조개 껍질의 행복을 깨닫는다   여명의 청동 거울에 펼쳐지는 것은 여명 지붕 위 돛은 아직 올려지지 않았다 나무결은 광활한 바다의 형태를 펼친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결국 잃을 것이다 우리들 사이의 이 유일한 여명도               감전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과 악수를 한 적이 있었다, 외마디 비명과 내 손은 화상을 당했고 낙인이 남겨졌다 내가 보이는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는, 외마디 비명과 그들의 손이 화상을 당했고 낙인이 남겨졌다 다시는 나는 감히 다른 사람들과 악수를 할 수 없었다 항상 내 손을 등 뒤로 감추어 놓을 뿐 그러나 내가 기도를 올릴 때면 하늘에, 두 손 모아 외마디 비명과 내 가슴 깊은 곳에 낙인이 남는다               공간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있다 에둘러진 산골짜기 위에 아래가 무엇인지 모른 채   기념비 도시의 광장에 있는 검은 비 텅 빈 거리를 하수구는 통하고 있다 다른 도시를 향해   우리는 빙 둘러앉아 있다 불 꺼진 난로에 위가 무엇인지 모른 채               우리의 나이를 묻지 마라   우리는 천진난만한 숲속에서 초원을 나는 담요를 타고 하늘에 접근했었다   우리가 어떤 아파트를 점거했을 때 진리를 점거하듯 실수로 도시망에 들어온 버스는 콘크리트 절벽을 기어 올랐다 전선으로 속박된 집들 틈새로 밤은 이방인의 서신을 가지고 다녔다 계단은 느슨해졌다 덫에 걸린 돌사자가 우리 모두의 주인이었다   우리의 나이를 묻지 마라 냉장고 속의 물고기처럼 우리는 깊이 잠들어 있다 우리의 틀니는 컵 속에 놓여 있다 우리의 그림자들은 우리를 이탈해 다시 한 번 잘렸다 소맷부리로부터 자라난 시들은 가지는 송이송이 터뜨렸다 핏빛 입술들을             백일몽   1 가을의 폭행 후 얼음과 서리로 마취된 이 十一月은 벽 위에서 평평해지고 있다 어슴푸레 층층 겹겹이 이것은 골격이 석화되는 과정이다 네가 예정대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내 목구멍 속 과일의 씨는 따스한 돌이 되었다   나는 행동거지가 수상한 인물인 것 같다 새 계절의 열병식은 나의 창문을 두드린다 괘종시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흔들거리는 심장을 가지고 달린다 나는 시간을 무시해 몸을 돌리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내 컵 속에 있는 一年의 암흑으로부터   2 음악이 방출한 시퍼런 영혼은 담배 꼬투리에서 피어올라 문과 창 틈으로 출입한다   사과를 자르기 위해 재비를 갖췄건만 -그 속에는 씨도 없다 敵意를 자라게 하는 종자도 없었다   태양의 자기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유리방에서 자라난 頭髮은 해초와 같다, 진실을 회피하는   폭풍, 우리는 공항에서 길 잃은 迷兒였다 언제나 울음을 터뜨리고자 하는   와이드 스크린 영화 같은 소란 속에 먼지를 빨아들이는 코들이 서로 충돌했다   끊임없이 말했따 : 이것은 나 나 나, 우리들   3 중얼중얼 잠꼬대를 하는 책들으, 한데 배열되어 있다 새벽 3시에 異端의 불꽃을 기다리며   시간은 결코 고통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산림과 호수를 버리고 함께 모였다 우리가 왜 함께 모였을까 한 마리 양철 까마귀가 대리석 받침돌에 앉아 있다 그 영원한 사물의 용접한 곳은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다   石棺 안에서 깨어난 인간들은 나와 함께 앉아 있다 우리의 生前과 時代를 함께 찍은 사진은 긴 책상 끝에 걸려 있다   4 네가 예정대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이별의 순간을 갖게 되었다 한 번 사랑의 여행이 때로는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할까   너를 위해 지하실을 비워 놓았다 마음의 純銀 수선화는 어둠 속에서 찬란히 피어났다 너는 온갖 나쁜 날씨를 마음대로 노하게 하고, 울부짖게 하니 창문을 열도록 너에게 구걸한다   책장을 열면 온갖 문자는 흩어지고 단지 하나의 숫자만 남는다 -내 좌석의 번호 창무 바로 옆에 있는 이 기차의 종착역은 바로 너   5 해바라기의 갓은 날개도 없이 난다 돌은 매끄럽고, 믿음직하다 본질의 완전함을 보전하며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심지어 山조차 젊어지며 저녁 종소리조차 반드시 설명될 필요가 없다   거대한 이무기는 허물을 벗으며 진화한다 -새끼줄로 매듭을 지어 생선들을 높은 곳에 걸어 놓는다 물웅덩이의 죽은 물은 무수한 번개를 불렀다 범과 표범의 반점과 줄무늬가 점차 쪽빛을 띠자 하늘은 벌써 통째로 삼켜 버렸다   역사는 고요하다 낭떠러지는 응시하고 있다, 강 위를 발원지로부터 표류하며 떠내려오는 어린이들을 이 인류의 어린이들을   6 나는 광장이 필요하다 하나의 광활한 광장이 그릇 한, 숟가락 하나 외딴 연의 그림자를 늘어놓기 위해   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새장 속의 새는 산보가 필요하다 몽유병자는 빈혈적 햇빛이 필요하다 길이 맞닥뜨려지면 평등한 대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충동들이 압축된 우라늄은 믿을 만한 곳에 맡겨져 있다   어떤 조그만 점포에서 지폐 하나, 면도칼 하나 한 봉지 극약의 살충제가 탄생했다   7 내가 죽던 그 해 나는 열 살이었다 공중을 향해 던진 공조차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었다 네가 유일한 목격자였다 열 살에, 나는 알았다 그 후 나는 기어올랐다 들소를 운송하는 기차에 나는 기간이 지난 화물 명부에 기입되었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오늘 아침 새 한 마리가 내가 펼친 신문을 날아 통과했다 너의 얼굴이 그곳에 박혀 있었다 오래 지속되었던 열정이 아직도 너의 눈동자 깊숙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영원히 머물 것이다 네가 설계한 그림자 속에   8 얼마나 많은 해를 얼마나 많은 불 속으로부터의 도망자들은 해와 달의 빛을 봉쇄했었나 백마는 긴 붕대를 펼쳤다 말뚝이 석탄층을 관통했다 검붉은 피가 솟아 나온다 독거미는 그의 거물고줄을 뜯는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드넓은 대지 위에, 불덩어리들이 이리저리 구른다   얼마나 많은 세월에 얼마나 많은 강물이 말랐었나 은밀한 부분을 노출시키며 이것은 하나의 텅 빈 박물관이다 누구라도 몸을 그 속에 놓으면 자신을 진열품으로 여기게 된다 보이지 않는 시선들의 주목을 받는 마치 한 알 琥珀의 폭발 후 깨어 날아가는 천 년을 잠자던 조그만 벌레처럼   9 결국 어느 날 거짓말처럼 겁 없는 사람들이 거대한 라디오 속에서 걸어나왔다 재난을 찬미하며 의사는 하얀 침대 시트를 들어 올리며 병든 나무 위에 서서 격렬히 외쳤다 : 자유다, 면역 없는 자유 당신들을 독살했던   존재하는 것은 단지 소리뿐 얼마간의 간단하고 가냘픈 소리들 마치 單性生殖하는 생물들처럼 그들은 古鐘 위 銘文들의 합법적 계승자들이다 영웅들, 어릿광대들, 정치가들 가느다란 발목의 여인들이 이 소리들 속에서 어지럽게 몸을 숨긴다   10 손들이 헐떡거린다 술*들이 신음한다 무늬로 조각된 창살들이 서로 겹쳐진다 종이 초롱이 긴 복도를 관통해 막바지에서 꺼진다 화살 하나가 커다란 문을 때린다   位牌가 연거푸 쓰러진다 -연쇄반응하는 악몽이다 자손들은 위엄 있는 돌사자 입 속의 썩은 이빨들이다   그 해 경치를 잠갔던 정원엔 한 그루 나무만 남았다 그들은 술을 마신 후 속박을 벗어난다 나무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그러나 狂奔은 예외다   * 술 : 수레 깃발 장막 등의 가장자리에 꾸밈새로 늘어뜨리는 것   11 네 情欲을 가을로 이끌지는 마라 이 불구자의 가을로 우렁차게 휘파람을 불어 젖히는 가을로   여인의 메마른 손은 해면을 스쳐 지나도 물 한방울 적시지 못한다 암초를 움직이는 저녁 노을은 너의 情欲 나를 불태운다   나의, 마음은 마른 우물 바다를 향한 갈망은 나를 바다로부터 격리시켰다 나의 시작을 향해 걸어가면-너 너의 끝은- 나   마침내 우리들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다 서로를 외쳐 부르며 각각 다른 곳에서 쓸모 없는 이정표가 되었다   12 하얀 긴 두루마기가 그 존재하지 않는 곳을 향해 나부낀다 마음은 한여름 밤 맥박치는 물펌프처럼 까닭없이 느낌들을 마구 털어 놓는다 황혼의 晩餐이 끝나면 산은 흩어지고 하루살이들은 물 위에다 시를 쓴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지평선의 頌歌   그림자는 결코 한 사람의 역사일 수 없다 가면을 쓰기도 하고 벗기도 하고 꽃은 계절에 따라 피어나고 거짓말과 비애는 분리될 수 없는 것 만약 가면들이 없다면 온갖 시계들이 무슨 의미를 계속 가질 수 있을까   영혼들이 암석 위에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때 단지 새 한 마리만이 그들을 알아본다   13 은빛 늪지대를 가리키며 그는 말했다 저곳에서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연기를 내뿜는 몇몇 나무들이 지평선을 따라 앞을 다투었었다 이미 지하에 묻혀버린 병사와 말들은  光을 번쩍이며, 밤낮으로 장군의 갑옷과 투구를 뒤쫓았었다   그러나 우리가 뒤쫓은 것은 이데올로기의 유탄들 속에서 자유롭게 도망치고 있는 짐승의 표피   그때 죽었던 병사들의 머리는 그믐달마냥 떠올라 사각사각 소리 내는 관목들을 넘어가며 예언자의 말투로 말했다 너희들은 결코 생존자가 아니야 너희들은 영원히 돌아갈 곳이 없어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 시대의 뒷모습을 때렸다 파리의 피 한 방울이 나를 전율케 했다   14 나는 해변에 앉을 운명이다 한 장 백지 위에서 오랜 얼룩 같은 단어들을 기다리며   출현하며, 질서와 혼란으로 벌집은 각양각색의 情欲을 양조한다 아흔 아홉 개의 시뻘건 산봉우리를   오르면, 공기는 희박해지고 이끼는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게 번지고 있다 하찮음, 이 속세처럼   陰謀들, 그들의 권력은 철근으로 지탱하고 있다 돌도차도 현기증이 날 수 있다니 이것은 필경 두려운 것이다   고도, 백지의 뒷면 어린이의 손은 그림자 놀이를 하고 광선은 해저로부터 온다, 교미한 한 쌍의 전기뱀장어로부터   15 토기동이에 웅크리고 앉은 밤은 넘치게 한다, 청량한 물을, 그것은 우리 사랑의 원천이다   회고는 흉터와 같고 내 일생은 네 다리 아래서 유동했던 모래 언덕 네 손 위에서 응집되어 하나의 번쩍이는 다이아몬드로 변했다   침상도, 방도 없었다 너무 좁아 우리는 떨어질 수 없었다   네 벽은 화장지처럼 엷었고 벽에 그려진 무수한 주둥이들은 낮은 음으로 돌림노래를 불렀다   네가 예정대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우리가 함께 마셨던 컵은 펑하고 깨졌다   16 광산은 아주 오래 전에 폐기되어 그 금속은 가늘고 긴 선으로 잡아당겨졌다   빛이 부엉이 몸을 관통하니 위와 신경계가 밤 하늘을 스쳐 지나갔다   古生物의 동맹이 해체되었다 화석으로 점착되는 작업   아직도 진행중인, 생존은 끝없는 하나의 集體冒險   생존은 끝없이 봄과 전쟁을 하고 있다   녹색 캐퍼필러가 롤러를 밀며 지나갔다 음울한 문명을   저 수은을 내뿜는 분수의 금속 꼭지가 地形을 변화시켰다   꿈도 꾸지 않는 편안함   17 몇 세기가 지나갔다 하루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내 손을 접촉했다 나선형의 계단처럼 상승하며 검고 흰, 광선들은 기와 지붕의 음계 위에서 변형되었다 한 그루 대추나무의 평안함으로 남자들의 목구멍들도 익어 여물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책갈피에 끼워진 강철 회초리가 휘둘러지면 두근거리는 알록달록한 색채들 기나긴 세월 동안 격리되어 처량히 울부짖고 있다 한 장 觀光案內地圖가 나를 이끌로 지나가면 도시 속의 도시로 별들은 교활하고 잔인하다 어떤 한 사건의 핵심마냥   18 나는 항상 거리의 고독한 의지를 따라 한가롭게 거닌다 아, 나의 도시 단단한 유리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는   나의 도시 나의 이야기 나의 수도꼭지 나의 쌓이고 쌓인 원한 나의 앵무새 나의 평형을 유지한 睡眠   양귀비꽃같은 향기 머금은 아가씨 슈퍼마켓에서 나와 훌쩍 지나가고 잭나이프 같은 표정을 띤 사람들 함께 차가운 겨울 광선을 마신다   詩는, 발코니처럼 무자비하게 나를 학대한다 때가 더덕더덕 붙은 벽들 항상 짐작했던 일이다   19 네가 몸을 돌리자 화강암은 붕괴되어 고운 流沙가 되고 네가 낯선 어조로 허공에 한 말은, 거짓이다 너의 미소가 얼굴만큼이나   어제 깊디깊게 심겨진 고난의 뿌리들은 가장 어두운 곳의 번개들 내 상상의 둥지를 때리고 있다 流沙의 폭포 속에서 나는 水晶이 부딪치는 음악을 듣는다   한차례 경미한 외과 수술은 우리가 부싯돌을 캐낸 눈 덮인 땅 위에서 참새가 남긴 손톱 자국들 실성한 겨울 마차 한 대가 한여름의 화염 속을 지나간다   20 방목은 일종의 견해를 진술한 것 熱病은 양들을 부풀게 하여 마치 애드벌룬이 상승하는 것처럼 전갈자리를 때렸다 熱風이 내 지붕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방의 벽 속에서 나는 문자도 없는 하늘을 가만히 응시한다 문화는 일종의 共生現象이다 양들의 가치와 늑대들의 원칙을 포괄하는   시계 덮개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시야에는 메마른 강바닥과 몇 가닥 연기만이 보이고 있다 옛날의 성현들은 무한한 적막으로 인해 낚시를 던져 물고기를 잡았나 보다   21 은밀한 완두 꼬투리는 다섯 개의 눈을 가지고 대낮을 보려 하지 않으며 단지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색깔은 아기가 탄생할 때 내는 울부짖음   연회의 커버는 순결한 흰색 컵 속에는 죽음의 맛 -追悼詞가 증발시키는 역겨운 냄새   전통은 한 장의 항공사긴 山河가 축소돼 자작나무 무늬결이 되었다   항상 인간은, 다소곳이 복종한다 설교, 모방, 투쟁과 이들의 존엄에   격정을 찾는 여행자는 철새들의 황량한 서식지를 통과한다   석고상들이 창문을 열면 예술가는 뒤에서 망치로 그들을 잔인하게 두드려 깨뜨린다   22 弱音器 장치로 벙어리가 된 트럼펫이 갑자기 크게 울린다 이 위대한 비극위 연출가가 조용히 죽어간다 도르래를 장착한 두 마리 사자들이 고정된 궤도 위에서 아직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새벽녙 동터오는 빛이 大路 상에 마비되면 무수한 주소들, 이름들, 시름들 우체통 속에서 밤새 비를 피한 꽥꽥 소리치는 화물 기차역의 오리들 창문은 하품을 한다 리졸 냄새나는 이른 아침에 당직 의사는 사망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비극의 중대함, 아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하고 번거로움   23 낮과 밤 사이에 틈이 생겼다   갑자기 언어가 진부해졌다 마치 첫눈처럼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증인들이 너를 겹겹이 에워쌌다 너는 땅에도 소나무 가지들을 줄줄이 꽂고 묵묵히 불을 놓았다 그것은 일종의 장례의식이었다 죽음의 언덕 위에서 나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 보았다 너는 누구냐 나와 무엇을 바꾸고자 하는가 하얀 학이 한 장 펄럭이는 종이를 펼쳤다 종이에 너의 회답이 써 있었건만 나는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너는 예정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프랑스편 /신구문화사(29)    프랑스편   르네 샤르(Rene Char)     굳은 자연현상 / 르네 샤르(Rene Char)   숲속에서 벌레의 꾸륵거리는 소리가 들    린다 맑은 얼굴에 몸을 돌리는 누에 그의 자연스러운 해방   사나이들은 잔인한 도구 비밀의 고기에 굶주린다 짐승들아 일어나거라 태양의 목을 베어 그것을 얻기 위해   (박이문 번역)      발명가들 / 르네 샤르(Rene Char)   그들은 왔다, 저쪽 산허리 산림관(山林官)들,    우리들이 모르는 사람들, 우리들 습관    의 반항자(反抗者)들이.   그들은 많이 몰려왔다. 그들의 떼는 작은 소나무 분령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후부터 해묵은 수확(收穫)의 들(田)    에는 물이 들어오고 푸르게 되었다. 오래 걸어오느라고 그들의 몸이 더웠다. 그들의 모자는 그들 눈 밑에 찢어지고 그    들의 거친 발(足)은 물결 속에 놓였다. 그들은 우리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 분명히 그들은 우리가 그곳에 있다고는 생    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드러운 대지(大地) 꼭 닫힌 고랑 위에서, 청중에 완전히 무관심했었다. 우리들은 머리를 들고 그들을 격려했다.   제일 말 잘하는 자가 가까이 왔다. 그리    고 두 번째 사람이 발을 떼고 천    천히 왔다. 당신들의 막을 수 없는 적(敵)인 폭풍이 가까    이 옴을 예고해 주려 우리들은 온 것입    니다 라고 그들은 말했다. 선조들과의 관계와 고백이 없었던들 우리도 당신들처럼 그런걸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들 앞에서 갑자기 어랜애처럼    우리들은 어째서 알 수 없이 행복할까    요? 라고. 우리들은 고맙다고 말하고 그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 때부터 그들은 술을 마셨다. 그    래서 그들의 손은 떨리고, 그들의 눈가    에는 웃음이 돌고 있었다. 어떤 공포를 견딜 수는 있지만, 물을 이    끌고 초석(礎石)을 쌓아 예쁜 색채를 칠하지    는 못하는 수목(樹木)과 도끼의 인간들. 그들은 겨울의 정원과 자그마한 기쁨을    모르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는 그들을 정복시키고 그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폭풍의 고통이 감명 깊기 때문이    다. 그렇다, 폭풍은 금방 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고, 그    때문에 미래를 걱정할 가치가 있을까? 우리들이 있는 곳, 여기에는 다급한 공포    가 없다.   (박이문 번역)      ---A에게 / 르네 샤르(Rene Char)   당신은 오래 전부터 나의 사랑, 아무 것에도 노쇠(老衰)하게 되거나 식을 수 없는, 우리의 죽음을 기다리던 것일지라도, 우리들의 낯선 것일지라도, 나의 *분식(分蝕)과 회귀(回歸)일지라도 어쩌지 못하는     *분식(分蝕):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같은 현상 그 많은 기다림 앞에서의 내 현훈(眩暈).        *현훈: 정신이 아찔하여 어지러운 증세.   황양(黃楊)나무 덧문처럼 닫힌 꽉 찬 지상의 챤스는 우리의 산맥(山脈), 우리의 압축하는 광채.   나는 챤스라 말했다. 오 내 꽉막힌 챤스여, 우리는 누구나 비밀을 퍼뜨리지 않고도 타자(他者)의 신비로운 부분을 얻을 수 있다. 더우기 연이은 고통은 우리들의 결합된 육체 속에 마침내 분리를 찾는다, 태양의 도정(道程)이 찢고 다시 시작하는 우리들 구름의 중심에서 마침내 그의 태양의 길을 찾는다. 나는 내가 느낀 대로 챤스란 말을 했다. 당신은 산정(山頂)을 쌓아 올렸다 내일이 사라지면 나의 기다림은 그 산정(山頂)을 넘어서야 할 것    이다.   (박이문 번역)      라스꼬* / 르네 샤르(Rene Char)    *라스꼬: 프랑스 서남쪽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가 있는 동굴      죽은 인조(人鳥)와 빈사(瀕死)의 야우(野牛)    *라스꼬 속에 있는 그림.   바라는 것이 많은 열광(熱狂)을 지난 날에 가졌    던 긴 몸뚱이 지금은 상처 입은 금수(禽獸)로 수직(垂直)으로.   오오 피살되어 창자도 없는! 지난 날의 모든 것이었으며, 화해했으며    지금은 죽으려고 하는 피살된    것. 그의, 내락(奈落)*의 광대이고 정신이고, 언제나    * 내락: 곧 추락하는(?)    탄생하려고 하고 있던 것, 새, 그것은 그리하여 잔인하게도 구출된    여러가지 마법(魔法)의 패덕(悖德)의 과실,       검은 노루   물은 하늘의 귀에게 말하고 있었다 노루여 너희들은 천 개의 공간을 뛰어넘었    다. 바위의 어둠에서 바람의 애무에로 너희들을 쫒는 사냥꾼, 너희들을 지켜보    는 요정 그들의 정열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    는지, 어지간히 넓은 나의 물가에서! 그러나 내가 희망하는 순간에 그들의 눈    동자를 이 내가 갖고 있다면?        형용하기 어려운 짐승   형용하기 어려운 짐승, 애꾸눈의 거인(巨人)의    입맛을 다시듯 하며 양(羊)떼의 우아한 걸음    걸이를 멈춰 버린다 여덟 개의 조롱(嘲弄)이 그의 장식이 되고 그의    광기(狂氣)를 구분한다. 짐승은 시들은 공기 속에서 경건하게 게    트림을 한다 가득 채워서 늘어질 것만 같은 옆구리는    고통에 차서 지금 그 임신(姙娠)을 허사가 되    게 하려고 하는 순간. 나막신에서 호신(護身)의 송곳니에 이르기까지    견디기 어려운 냄새에 싸여 있다.   이같이 나의 눈에 라스꼬의 장식대(裝飾帶), 몽환(夢幻)    의 여러가지 가장(假裝)의 어머니인 이 장식대(裝飾帶)    속에 나타나는 두 눈에 눈물이 괴어 있는 예지(叡智)의 모습        목털의 날리는 젊은 말   참으로 너는 아름답다 봄이여 말이여 목털의 그물발 사이로 하늘을 체로 거르고 우거진 갈대를 발로 누르면서! 사랑의 너의 가슴 끝에 전신을 잠기게 하    고 있다   아프리카의 백왕녀(白王女)*에서  *백왕녀: 고대 신화에서 따온듯하나 미상(未詳). 거울 앞에 선 마드레느(?)까지 싸우는 우상(偶像)을, 또는 명상에 잠기는 전아(典雅)    함을.     전율(戰慄) / 르네 샤르(Rene Char)       전율   이 부분, 여태껏 정착된 일이 없이 우리    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분. 그곳에서    명일(明日), 저 다양한 것이 솟아 나올 것이    다.   *순록(馴鹿)의 시대. 오오 유리(琉璃)여,   * 순록의 시대: 후석기시대    오오 수빙(樹氷)이여 안으로는 꽃 피고 겉으로    는 파괴되어 있는, 정복당한 자연이    여!   제멋대로 우리들은 자연과 인간들을 높이    고 또 정통으로 반역한다. 그러나 무서    운 일이다,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태양    은 그 적(敵)들의 표적 속에 있다.   독신(瀆神)의 비정(非情)에 대한 싸움, 아아 왕개미    들의 싸움, 이 싸움이 우리들의 개신(改新)이    될 수 있겠는가?   겨울 태양에 맺어진 몇 단의 삭정이 다발.    그리고 벽(壁)에 맺혀져 있는 나의 불꽃.   내가 잠자는 흙이여, 내가 눈 깨는 공간    이여, 너희들이 이젠 거기에 없을 때,    도대체 누가 오겠는가? (내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나에겐 거의 무한한 열(熱)    을 가졌다는 것이다)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프랑스편 /신구문화사(28)   프랑스편   폴 앨류아르(Paul Eluard)     달과 해 사이에서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나는 너에게 말한다 상냥하게 빛나는 눈    부신 빛이여 네 알몸이 소년인 내 눈을 핥으면 그것은    행복을 사냥하는 황홀이다 물없는 병 속에서 부푸는 투명한 수획물(收獲物 )을 크게 만드는 것은 돌멩이의 그림자를 씨앗으로 생각하는 것    과 같은   나는 알몸의 너를 본다 서로 얽히는 아라    베스크의 부드러운 바늘을, 커다란 시계가 회전할 때    마다 낮 사이 해는 넓힌다 내 쾌락의 엷은 자락을, 얽어 짠 빛의 얼    룩 무늬를.   (정한모 번역)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나는 관객이고 배우이며 작가이다 나는 여인이고 그 아내이며 그들의 아기 최초의 사랑이고 최후의 사랑 잠시 동안의 통행인이고 당황한 사랑이다   그리고 또 여인이고 그 잠자리 그 의상(衣裳)이    고 나누어 가진 팔이고 인간의 경영사 화살과 같은 쾌락이고 여인의 살이랑이다 단순하고 또한 이중(二重)인 내 살(肉)은 결코 추방    되지는 않았다   그 까닭은 하나의 몸뚱이가 비롯되는 장    소에 나는 형체와 의식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비록 몸뚱이는 죽음 속에 무너질지라도 나는 그 소용돌이 안에 누워 그 고뇌와    결혼한다 고귀한 그 굴욕(屈辱)과 내 마음과 인생과   (정한모 번역)     육체의 서(書)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나는 허공 속의 한 사나이 귀머거리이고 장님이고 벙어리다 거대한 초석(礎石)과 음울한 침묵 위의   무(無), 한없는 이 망각(忘却) 반복하는 영(零)의 절대치(絶對値) 완전한 고독   낮에는 얼룩이 없고 밤에는 순수하다   *   가끔 네 샌들을 신고 나는 너를 향해 걷는다   가끔 나는 네 의상을 꿈꾸고 또한 네 젖가슴 네 배를 갖는다   그리곤 나는 나를 본다 네 얼굴로 그리하여 나는 나를 안다   (정한모 번역)     사랑의 힘에 대하여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모든 나의 괴로움 사이 죽음과 나 사이 내 절망과 살아가는 이유 사이에는 부정(不正)과 용서할 수 없는 인류의 불행이 있    고 내 분노가 있다   스페인의 핏빛을 한 마끼(?)단(團)이 있고 그리스의 하늘빛을 한 마끼(?)단(團)이 있다 악(惡)을 미워하는 모든 무구(無垢)한 사람들을 위한 빵과 피와 하늘과 희망에의 권리가 있다   빛은 언제나 금방 꺼지려 하고 생활은 언제나 시시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소멸(消滅)한 적이 없는 봄은 다시 살아    나고 싹은 어둠을 빠져나온다 그리하여 열정은    뿌리를 뻗는다   그리고 열정은 에고이스트를 때려눕    힐 것이다 그들의 위축된 감각은 그것에 저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이 웃으면서 말하는 미적지근한 일에    대한 이야기에 나는 귀를 기울인다 한 번도 낭패를 본 일이 없었다는 사람의 말    에 귀를 밝힌다   내 육체의 민감한 양심이었던 너 영원히 내가 사랑하는 너 나를 만들어 내 준 너는 억압과 모욕을 허락하는 일이 없었다 너는 지상의 행복을 꿈꾸며 노래해 왔다 그리고 나는 바로 너를 계승한다   (정한모 번역)      희망의 자매들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희망의 자매들이여 아 용감한 여인들 죽음에 대하여 그대들은 하나의 맹약(盟約)을 맺    었다 사랑의 덕의(德義)를 하나로 한다는 맹약을 아 살아남은 내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생명의 자랑스러운 승리를 위하    여 그대들 자신의 생명을 즐긴다   그 날은 가깝다 아 고매(高邁)한 내 자매들이여 우리들이 전쟁과 비참이란 말을 웃어넘기    는 그 날은 일찌기 고뇌였던 어떠한 것도 자취를 남    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뭇 얼굴마다 애무(愛撫)를 받을 권리를 누릴 것    이다   (정한모 번역)     선(善)한 정의(定義)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그것은 사람들이 뜨거운 법칙(法則)이다 포도 열매로 술을 만들고 석탄으로 불을 만들고 입맞춤으로 사람을 만든다   그것은 사람들의 단단한 법칙이다 전쟁과 비참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킨다   그것은 사람들의 상냥한 법칙이다 물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敵)을 형제로 바꿔 만든다   옛날로부터 새로운 법칙이다 아이들의 마음의 *오저(奧底)에서 출발하여    *오저(奧底): 깊은 바닥 지고한 이성의 높이까지 완성되면서 이르러 가는 것이다   (정한모 번역)     평화의 얼굴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1 나는 비둘기가 깃드는 곳은 모두 알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곳은 인간    의 머리이다   2 정의와 자유에의 사랑은 하나의 훌륭한 과실을 낳았다 그 과실은 결코 상하는 일이 없다 그것은 행복의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   3 대지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대지가 꽃피    는 것처럼 살아있는 살과 피가 결코 희생되는 없기를   4 인간의 얼굴이    반성의 날개 아래   미(美)가 쓸모 있음을 아는 것처럼   6 우리는 휴식을 피하리라 우리는 수면(睡眠)을 피하리라 우리는 쉽게 새벽과 봄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날과 계절을 준비할 것    이다 우리의 꿈의 크기만큼 한   7 모든 가능한 한의 선(善)을 믿는다    순백(純白)한 조명이여   8 평화로 머리가 가득찬 인간은 희망의 관(冠)    을 쓴다   9 평화로 머리가 가득 찬 인간은 언제나 미    소를 띄운다 미소를 위해서 필요한 모든 싸움이 끝난    뒤에   10 곡물(穀物)과 손과 언어와의 비옥(肥沃)한 불이여 기쁨의 불은 켜지고 마음은 모두 다 뜨겁    다   14 예지(叡智)는 천정(天井)에 매달리고 수정(水晶)의 램프처럼 그 시선은 이마로부터    떨어져 온다   15 빛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온다 보다 낡은 이마로부터 빛은 옮는다 쇠사슬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아이들의 미    소를 향하여   16 이렇게도 오랜 동안 인간이 인간에 대하    여 무서움을 갖게 하고 머리 속에 살고 있는 새들에게 공포를 품    게 했다는 것은   17 햇빛으로 얼굴을 씻은 뒤    인간은 살고 싶어 한다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사랑으    로 단결한다    미래를 향하여 단결한다   18 내 행복 그것은 우리의 행복이다    나의 태양 그것은 우리의 태양이다    우리는 행복을 나누어 갖는다 공간은 시간은 만인을 위한 것이다   19 사랑은 부지런히 일을 한다 사랑은 피로     할 줄 모른다   23 우리는 결백함이 그렇게 오랜 동안 우    리에게 결핍되었던 힘을 가지고    채울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고독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6 평화의 건축은 전세계 위에 기초(基礎)를 둔다   27 너의 날개를 펼쳐라 아름다운 얼굴이여 세계에게 현명하게 되라고 과제를 주어라 우리가 현실적이 되는 바에는   28 우리는 더불어 현실적이 된다 노력에 의    하여 그림자를 지워 버리려는 우리의 의지에    의하여 새로운 빛츠로 더욱 밝아지는 진로 속에서 힘은 차차 경쾌해질 것이다 우리는 더욱 훌륭히 호흡할 것이다 우리는 더욱 소리 높여 노래할 것이다   (정한모 번역)     청신(淸新)한 대기(大氣) / 폴 앨류아르(Paul Eluard)   나는 지켜보았다 저 앞을 군중 속의 너를 보았다 밀밭 사이에 너를 보았다 나무그루 아래에 너를 보았다   모든 나의 여로(旅路) 맨 끝에 모든 나의 고뇌 맨 밑에 모든 웃음의 낱낱 끝에 물 속에서 불 속에서   여름에 겨울에 너를 보았다 내 집 안에서 너를 보았다 내 두 팔 사이에서 너를 보았다 내 꿈 속에서 너를 보았다   나는 이제 너를 떠나지 않으련다   (정한모 번역)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7)     영국편   D.J. 엘라이트(D,J, Enright)     불사조(不死鳥)의 옥좌(玉座)     죽었는지 살었는지 알 수 없는 에 서 있다. 얌전히 서서, 이렇다 할 그늘이나 피난처    도 그 밑에 없고, 좀 먼지가 심해서 마음 놓고 기댈 수도 없다. 이것은 다만    한 그루의 나무. 가까이에는 지나가는    아랍인들이 멋모르고 이용하는 코카콜라 매장 옆에 전    차(電車)가 선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변화가 생겼다. 별안간    진홍색 꽃의 괴이(怪異)한 불꽃에 불타 죽은 노란 잎들이, 변하기 잘하는    벨베트가 되었다. 이제 전차는 조용하고, 아랍인들은 평화    롭게 떠나갔다. 우리는 이것을 영어(英語)로 불꽃나무라 부르나,    실상 타는 것은 우리들이다.   (고원 번역)     버스를 기다리며   나이와는 달리 여인의 눈은 더욱 젊어지    고, 상점에 가득하던 의상으로 치장을 했다. 바람 모질고 비는 억수로 퍼부었으나 여인의 자태는 여름을 따라 한결 부드러    웠다.   꿈인 줄 알면서 사라져 버리지 않는 꿈, 시계와 일기(日氣)에 마음 쓰지 않는 잠시. 나는 신문을 내던졌다. 신문은 그러한 얘    기를 전하지 않고, 가질 수 없는 것, 영원한 건강과 자유와    영광을 부르짖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때묻은 깃털을 휘휘 돌    려 보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를 놓쳤을까? 혹은    우리는 바람 부는 방향을 분명히 알고    있을까?   (고원 번역)          죤 홀로웨이(John Holloway)     밤 여행   새벽 첫 시간에 창가의 자리에 앉은 나그네는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 큼직하고 짤막한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 넘기고 하품을 하    고, 허옇게 이슬 맺힌 흐린 유리창을 닦고 나    서는, 아마 그의 고향땅이 보이는 듯 참으로 열심히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새벽 둘째 시간에 창가의 자리에 앉은 나그네는 너무도 아름답거나 너무도 혹독해서 차마 못견딜 무엇을 보기라도 한 듯이 갑자기 세상에서 눈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내 눈과 마주치자 그는 몸을 벽에다 움추렸는데, 나는 그가 운다고 생각했으나 자고 있었는지도 모른    다.   새벽 셋째 시간에는 표 파는 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그네는 다른 어느 곳, 더 먼 어느 곳으로 갈 다른 표를 달라고 불쑥 청하였다. 나그네는 당황한 채 간단히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세상의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고원 번역)     합류(合流)   남자와 여자는 가장 복잡한 해안(海岸)을 이룬다. 바다 위에 행여 가벼운 움직임 하나 귀찮은 일 없을 때, 가오리와 오징어와 십각류(十脚類)는 해도(海圖)에 없는 고요한 잠자리를 마련한다.   그리하여 미풍이 불어 흰 물결 검은 물결이 일 때, 혹은 기선이 그 뒤로 흔적을 남기며 지나갈 때, 눈 먼 괴물들이 떠서 잠들어 있는 심해(深海)를 방해하는 아무것도 없다.   현명하게도 그들은 오직 여기 해면(海面) 위로 순항(巡航)해 올라올 뿐, 바다 속을 살피는 측선(測船)이나 잠수기(潛水器)를 성급히 사용하지 않는다. 바닷물은 뒤섞이고, 경솔하게도 무엇을 해야 할지 물을 필요는 없다.   (고원 번역)         테드 휴즈(Ted Hughes)     조가비   흰 조가비, 갈색 조가비, 바닷물에 뒹구는 바다의 조가비들이 울부짖으며, 물거품을 물고 재잘거리는 사주(砂州)에 무리질    때, 그것은 기묘한 혼잡- 그러나 파도가 물러날 때는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혹은 환히 드러나 메마른 채 번쩍인다.   암흑이 의 몸에 진주와 괴물과 말미잘을 출생시키는 그 거대한 바다의 침대로부터 나오는 것은 다만 조가비뿐, 와서는 공허(空虛)를 재재거리거나, 아니면 말 없이 고이 드러눕는다.   (고원 번역)   영국편 끝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6)     영국편   존 베즈먼(Jhon Betjeman)   병원출장소(病院出張所)   어느 불그레한 지방 도시의 길게 담장에 에워싸인 정원 끝에 한 벽돌 깔린 샛길에 뽕나무 있는 데로 뻗쳐 그 밑은 빈약한 풀밭, 나는 어둠이 짙은 가지를 밑에 누워 있었    다. 거기 뽕잎들은 늘어져 일요일 오후의 햇볕을 가리어 둥굴둥굴한 진홍빛 열매들을 감싸 준다. 울타리 사이에 서 있는 사과나무 자두나    무는 갈색 벽돌 담 앞에서 햇볕을 받는다. 곤충(昆蟲)을 싣고 대기(大氣)는 헤엄치고, 아이들은 거리에서 논다. 이 찬란한 황홀경으로부터 뽕나무 그늘 속으로 집 파리 한 마리가, 6월 햇빛 속에 둥실 날라 기다리고 있던 거미가 마련한 매끈매끈한 옷 속으로 곧장 들어간다 거미는 부드러운 줄을 늘여 결국 그 파리를 시의(屍衣)로 단단히 싸맬 것이    다. 털과 같은 수족(手足)이 달려들고 무서운 독(毒)의 칼날이 내려쳤건만, 정원에선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거품을 품어가며 싸운 그 절망적인 싸움    을.   말해 보라, 어떤 병원 출장소에 - 완강한 간호사의 발로 연마(練馬)된 목세공(木細工) 마룻바닥을 밟을 때, 그 희미한 푸른 벽(壁)이 반향(反響)하는 그 병원 - 내가 몸을 눕힐 것인가, 사람들은 주위에 포장을 드리우고. 또한 말해 보라, 내가 과연 땀에 젖은 시    트를 휘감으며, 임종의 신음을 할 것인가. 또는 내 의식이 꺼져감을 느끼면서 소리없이 가쁜 숨을 헐떡일 것인가, 곤충을 싣고 대기는 헤엄치고 아이들은 거리에서 놀고 있을 때.   (이창배 번역)      성(聖) 세비어교회(敎會)   아 저렇게 묘하게 가지치고, 사방으로 퍼    진 *가선(架線)을 가지고   *가선(架線): 전선(電線) 전기를 보내는 선 트롤리 삐스선주(線柱)는 런던의 하늘에서 선(線)      *선주(線柱): 전봇대.    과 선(線)을 모은다, 그 하늘은 원경(遠景)을 축소하여, 하이베리 방    면으로 선들과 삐스와 가선주(架線柱)들이 연이은 보탄나    무와 더불어 물러가고, 더욱 기묘하게, 그 점증(漸增)하는 소용돌이는 색색으로 변화하는 높은 지붕 위에서 나    팔이 된다.   트롤리 삐스를 세워라, 세워라. 그리고    이곳, 피곤(疲困)할 대로 피곤하고 탕진한 런던의, 담    배도 없고 맥주도 없고, 놀이터들도 열리지 않고, 남은 물건이란    하나도 없는, 런던의 도로가 합치는 이곳에서, 차(車)를 내    려라. 그리고 저 버들숲 벌판 위로 저 교회를 보라, 말    끔히 솟은, 빅토리아 시대풍의 저 교회, 높이 아직 부    서진 데 없는, 여기에서 우리를 물들이며 웨일스든으로    지는 해의 석양을 받아 찬란한.   이것은 우리의 조상이, 그들이 사랑하고    승리했을 때 알고 있던 거리들 - 자갈길을 바삭바삭 지나던 마차. 로렐에    에워싸인 *원곡(蜿曲)하는 소로(小路),   * 꿈틀거리는 작은 길  잔디밭 대신하는 제라늄 화단(花壇), 해를 가리    는 베니스의 포장, 따로 떨어진 상인(商人)용 입구, 뒷마당의 집, 마차가 달리는 반경 4마일의 거리에 견고한 이탈리아풍의 집들, 견실(堅實)한 상인(商人)    들을 위한.   이것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거리들이다.    그리고 나도 세습적(世襲的)으로 여러 셋방으로 분할된 이 높은 버림받은    집들에 사는 사람이다. 다만 저 유물(遺物)의 교회, 거기에 마차들은    늘 군집(群集)하였고, 나의 어머니는 주름잡힌 치마로, 아버지     는 게에트르 차림으로 걸어 나왔었다. 색유리에 그림자 어리는 아침 예배나 가    스등의 저녁 예배를 보러, 그리고선 굴뚝모자를 벗어들고, 고요한    시골로 돌아갔었다.   우리 조상들의 크고 붉은 교회,  그들이    알고 있는 열십자 횡단보도, 이 꼭 같은 채색의 타일 위를 그들과 그들    의 조상들은 걸었다. 붉은 벽돌 바깥 마당을 통해서 전에 익숙    한 그 교회내 좌석을 찾아서, 거기에 앉으면 그들은 오르간 소리에 노래    가 나오고, 설교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 색벽돌 벽으로 그 긴 그림자가    커진다. 그것은 신의 면전에서 무릎을 꿇는 이 모형(模型)    진 *내진(內陣)의 그것과 같은 그림자.  *내진(內陳): 벽이나 기둥을 겹으로 두른 건물의 안쪽 둘레에 세운 칸   시간의 경이(驚異)를 초월한 경이, 금빛 커텐    에 싸인, 그렇게 희고 작은 성찬병(聖餐甁), 너무 장엄하여    보이지 않는, 그것은 이 채색 영롱한 벽 위에 그림자를    던지는 그 힘, 그리고 그것은 현재를 창조하고, 줄담배    피우는 축생과 나를 창조한 신(神). 엔진의 고동을 초월하여 모든 심장의 고    동이 있다 - 그리스도여, 이 하이베리 제단에서 나    는 그대에게 이 몸을 봉헌(奉獻)하나이다.   (이창배 번역)     웨스트민스터 사원(寺院)에서   오르간 소리 물결치고, 에덴의 아름다운 벌판이 사원의 종소리에 젖을 때 이쪽 손의 장갑마저 벗자. 여기 영국의 정치가들이 누운 이곳에서 한 부인(婦人)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자하신 주님이시여, 아, 독일인들을 폭격    하시라. 그대를 위하시어, 그들의 여인들을 구하    시고, 만일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대의 잘못을 용서할 것이외다. 그러나 인자하신 주님이여, 무슨 일이    있든 아무도 나를 폭격하는 일 없게 하소서,   우리 제국이 뭉쳐 있게 하시고, 우리의 군대를 그대의 손으로 이끄시고, 멀리 자마이카, 온두라스, 토고란드로부    터 온 용감한 흑인들을, 주여, 그들이 싸울 때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보다 더욱, 백인들을 보호하소서.   이 나라가 궐기한 목적을 생각하소서. 하인들로부터 책과 시골길과, 언론자유, 통행자유, 계급차별, 민주주의와 완전한 배수구(排水溝). 주여, 캐도잔구(區)의 89번지를 그대의 각별하신 보호하에 두소서.   주여, 비록 저희가 죄인이긴 하나 중죄(重罪)를 저지르진 않았나니다. 이제 시간이 있기만 하면, 저녁 예배에 나가오리다. 그러니, 주여, 날 위하여 영광을 간직하    셨다가 나의 그 몫이 몰락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그대의 왕국을 위하여 일하겠나이    다. 우리의 젊은들을 도와서 승전하게 할    것이고, 비겁한 자들에게는 흰 것을 보낼 것이며, 여군부대(女軍部隊)에 가담하겠나이다, 그리하여 영원의 안전지대 그곳의 그대의 옥좌주변의 계단을 씻으리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하옵니다. 그대의 말씀을 듣사오니 상쾌하옵고, 위대한 정치인들의 뼈가 빈번히 묻히고 묻힌 이 곳에서, 그런데 이제, 주여, 기다릴 수가 없습니   다. 제게 오찬(午餐)의 약속이 있사와.   (이창배 번역)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5)     영국편   죤 웨인(John Wain)   빛의 유용(有用)   바람의 흰 손가락에 휘젓기어 하루종일 눈이 돌아 내린다. 하늘이 깨끗해지고, 빛깔이 여기 와서 머문다.   밤이 순환해 지나가고, 다시 빛이 움직인다. 태양이 소리 내며 내려 세상이 다시 깨끗해진다. 태양은 마을에서 얘기를 한다.   태양은 그 광선을 마치 대지를 살 돈처럼 소리쳐 내린다. 바람의 긴 숟가락은 평형(平衡)이 되고, 그 무엇이 탄생한다.   그 무엇이란 사랑, 사랑이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기에 - 울타리를 넘어가는 도약(跳躍) 손 안에 든 지식.   사랑은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요구한다. 사랑의 긴 숟가락에 휘젓기어 우리 가슴이 휙휘 돌아가는 곳에 태양이 소리내며 내리게 하면서.   그 청명(淸明)이 곧 사랑이며, 기다란 바람이 가슴의 독한 안개를 휩쓸어 버렸을 때 와서 머물은 지식이 곧 사랑이었고.   그것은 또 우리가 소리나는 빛 속에서 본 다른 것이었다 - 빛깔이 왕이요 사랑이 시각(視覺)을 위한 이름으로 되어 있는 그러한 세계였다.   (고원 번역)     이중의미의 제8형(二重意味의 第八型)   이 말은 우리가 그 뜻을 쉽사리 알 수 있    을 것같다.   하지만 이처럼 명료한 말이 만만하게 해석될 수 없음은 분명한 일이    다. 이 말의 바늘은 이중(二重)의 홈을 지나가는 것    이다.   사랑은 묘한 것, 섬세하기도 거칠기도 한    것. 그래서 시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묻기 시    작했다 -   그러니 사랑을 이해하기란 정녕 힘든 일    이다. 세익스피어도 자기 얘기에 가면(假面)을 맞춰 씌우는 데 현명했을 뿐이다.   사랑은 언제나 흐린 눈에 보이고 실상 을 뜻하는 양심은 큰 한숨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임을 밝혀 주는 것. 그러나 어리석은 정신은 여전히 사랑 때    문에 그 꿈의 논리(論理)를 찾아, 저 어두운 구역(區域) 안    으로 꿈도 없이 전진하느라 애태우고 있다.   사랑이 세균(細菌)처럼 혈관을 침범하는 날이면, 욕망의 대상이 그럴 것같은 그대로 될 때    까지 철벅철벅 피를 튀기며 돌아다니고 또 번    식시킨다.   그러면 만물이 다 멋진 변장을 하고, 의식은 벌(罰)을 상(賞)으로 변하게 하는 요술장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경우든 사랑이란 하나의    위험이다. 더러는 사랑이란 곧 승락(承諾)임을 의미한다 생    각하고, 더러는 그것을 제가 먹기도 남에게 주기    도 싫어한다.   이 말은 우리가 그 뜻을 짐작도 못할 것    만 같다.   (고원 번역)      지난번의 회의록(會議錄)                           - E.E. 카밍즈     하나의 주소로서 그것은 우리를 잠시 기    쁘게 했다. 우리는 이것을 친구들 앞에서 말하기 좋    아했고, 편지지에 인쇄를 해서 의식(儀式)이란 것이 생    겼다.   우리는 주말이면 초대장을 냈다. 친척들까지도 꼭 가야겠다 생각하고, 우리 실수를 용서했으며 우리는 잘못을 수    정(修正)했다.   오직 벽에 걸린 달력만이 이라 경고(警告)하면서 올라가는 자는 떨어지게 마련임을 암시했    다.   빚을 갚기 위해 물론 우리는 빚을 내야    했으나 그래도 시인은 우리가 할 말을 가르쳐 주    었다.   우리는 냉정한 관공식(官公式)을 싫어했는데, 배달원은 매일 아침 어제로부터 넘어온 편지 다발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겉봉을 뜯어 무뚝뚝한 불신(不信)의 사    연을 대충 읽고 나서 웃고는, 갈기갈기 찢어버    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은 구원(救援)이 되지는    않았다.   처참한 것은 언제나 계산서였기 때문이    다.   (고원 번역)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4)   영국편     로버트 콘퀘스트(Robert Conquest)   다뉴브강에서   1 변경의 보루(堡壘)에서 일하던 수인(囚人)들이 철수(撤收)해 버렸고. 이제 나의 주변에 촉감(觸感)할 수 있는 저녁의 차거운 공기가 누    워 있다. 살구의 썩은 냄새를    풍기며, 어느 농부가 비틀거리며 지나가면, 나는 고독하다.       날이 머뭇거린다. 크낙한 江이 삼각주와 바다를 향하여 부드럽게 흐른다. 태양이 낯선 각도에서 빛발치면 변화하는 볕살.       언제나 이 시간에 그런 풍경에 싸여 나는 계시(啓示)를 기다린다 진주조개처럼 파아란 하늘 밑에서. 몽롱한 가슴 속에 초자연의 을 던    져주는 것은 이처럼 순수한 순간이 아니지만 퇴색(褪色)한 혹성(惑星)을 말끔히 숨겨 준다. 이제 빛은 *초절(超絶)한 것이 아니라     *초절(超絶): 다른 것에 비하여 유별나게 뛰어남. 초월 싱싱한 공기의 색깔에 친밀한 것, 나의 가슴의 지평선 언저리에서 크낙한 광채를 머금은 광채가 반짝거린다.   2   의 비극적인 바람이 모든 곳에서 詩의 돛을 팽팽히 한다. 어느 멋지고 영원한 시인이 이 풍요(豊饒)롭고 황량(荒凉)한 땅을 따스하게 감싸    줄 것인가.      지난 밤 나루터 옆의 조그만 여인숙에서 상어를 뜯어 먹으며 젊은이가 테이불에 기대어 詩를 쓰고 있    었다. 아마도 그는 아무도 예기(豫期)하지 않지만 이 기다리는 시인일는지도 몰랐다.      그 전날 나는 강변의 에서 를 읽고 있    는 그를 보았다. 그것은 요즘 이 나라에서 허용되며 무정부주의자들을 위한 기지(機智)가 넘치는 신고(辛苦)    의 청사진(靑寫眞).  (사회적 풍토는 이제 그의 변증법을 태양을 위해서 지켜    줄 뿐, 그러나 사랑의 달빛 아래 詩의 나무에서 나는 그늘을 발견한다.)      밤이 내렸다, 희미한 별빛 아래 어린 *청로(靑鷺)가 불쑥     *청로: 해오라기 날개쳐 서역(西域)을 향한다. 강은 커다란 물고기가 뛰어드는 것처럼 잔     물결이 일고. 나는 여인숙으로 돌아간다.       달이 뜨고 있다.   3   나는 반쯤 모래에 묻힌 기관총 뿌리에 채여 비틀거린다. S-S 연대 이 이곳 전투에    끌려와 포위 되어 잔멸(殘滅)한 것은 여덟 달 전, 아직도 폭력의 냉각(冷脚)한 복합성(複合性)이 부서진 대륙 위를 무섭게 뒤덮었고, 청동빛 강물이나 이 소박한 밤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다.      전쟁하는 의 광휘(光輝)에       서 멀리 떨어져 나는 고독하다 어느 시골마을에서 봄비를 쳐다보며 사랑의 공상을 그리는 소녀를 생각한다.   (황운헌 번역)       제이고프셀프 근방에서   조그만 버드나무, 월귤나무 솜꽃이 피어    난 호수의 땅, 북쪽으로 편편하고 투명한 바다가 빙원(氷原)까지 뻗치었고. 언제나 첩첩이 얼어붙은 중량(重量)이 어디멘가 있고, 지금은 지난 무더웠던 날과 초록빛의 풍    화(風化) 속에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뒤쪽에.   곤충이 피리불며 우짖는다. 북극의 하늘    은 창백(蒼白)하게 푸르고 구름도 없어 침울한 심야(深夜)가 동토지대(凍土地帶)에 머문다. 우리의 뒤엔 아무런 인적도 없고 이제 우리는 눕고 잠이 든다. 그리고 지    켜본다. 새로운   북극의 세계가 아지랑이처럼 녹아드는 겨울에서 일어나는 것을. 낡아서 스러지    지 않고 그대로 숨지고 마는 것을. 이곳은 중심의 유성(遊星)이나 긴 역사나 그리고 인간의 과 동떨어진 곳.   이곳에 넘치는 영상(影像)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 속도와 광채는 순결한 의지. 북쪽에서 기다리는 크낙한 겨울의 귀환(歸還)에는 이 없고 --- 얼음은 분노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는 누워 귀를 기울인다 독수리의 황량(荒凉)한 울부짖음에.      아마도 이처럼 싱싱한 고립(孤立)이 가슴 속에 숨겨진 진동을 일깨우고 바위틈에 물을 샘솟게 하나 보다.      나의 동료는 청록빛의 이끼에 누워 숨쉬며 잠이 들었    다. 변하지 않는 가냘픈 광채가 온통 어린 풍경에서 우리를 비쳐주고 나는 누워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안흔 호수와 농병아리가 뛰어드    는 것을 본다.   (황운헌 번역)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3)   영국편   엘리자베스 제닝스(Elizabeth Jennings)     보는 방식   우리가 모색하는 것은 결국 연상(聯想)이다. 우리는 곧잘 자신의 생각들을 다시 살펴    보고서 이 풍경이 어느 생각의 영상(影像)인가를 찾아    낸다. 그러고는 생각을  존중하고 풍경은 예사로    안다. 마치 나무와 폭포는 그 뿌리와 원천(源泉)이 우리 마음 속에 먼저 있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 무엇이 장면(場面)에다 속임수를 부    린다. 다른 종류의 빛, 좀더 낯선 색깔이 자기에게만 충당(充當)된 광경(光景)에 흘러내려, 마음 속의 아무것과도 맞지 않고 새것이    된다. 그래서 생각과 반영(反映)은 또다시 그 영상(影像)에    맞추어 이를 틀림없는 것으로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고원 번역)      밤에   이슥한 밤 나는 창문 너머로 멍하니 별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정녕 눈여겨 보    는 것은 아니다. 기차 소리가 들여오나 귀를 기울여 분명    히 듣는 것도 아니다. 맘 속으로는 내내 뜬눈으로 돌아눕곤 하지    만 그렇다고 아주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 그 무엇이 어두운 풍경 속으로 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내가 생각하고 느    끼는 그대로인가? 눈은 얼마나 별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억제하는    셈일까? 혹은 이것은 꼭 따르게 마련인 나의 환영(幻影)    일까? 맘 속에서 돌아눕는 나, 내 마음은 그 벽    의 꼭대기를 내가 볼 수는 있어도 완전히 올라가 보지    못한 방이란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밤처럼, 외부(外部)    에 있어, 간단한 손짓으로 내 머리 속이나 가슴 속    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듯한, 바라보기 좋은    것. 그러나 이에 대한 내 생각이 나와 내 대    상(對象)을 갈라 놓는다. 이제 내 깊은 잠자리에서 나는 한쪽으로 또한 세상은 다른 쪽으로    돌아눕는다.   (고원 번역)     초가을의 노래   냄새를 풍기며 여기 찾아드는 이 가을을 보라. 모든 것이 아직 여름과    같다. 빛깔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대기(大氣)는 녹색과 흰색으로 고요한 채 무심하다. 한껏 자라서 무거운 나무와 그득한 들판, 꽃은 도처에 만발해 있다.   어린애 과자 속에 시간을 모아 넣은 프루스트는 이 모호한 면을 이해할 것이다 - 여름은 아직도 한창인데 한 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땅에서 솟아 우리를 더듬는 가을을 알린다.   그러나 어느 계절이든지 일종의 풍부한 노스탤지어. 마치 마음에서 우리 기분을 풀어 겉에 나타나는 형태를 갖추려는 듯이 우리는 춘하추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 사람이란 확실하고 튼튼한 것을 원하는 것.   그런데 나는 나의 뜻과는 달리 어린 시절로 이끌려 간다. 그 시절의 가을은 불놀이요 돌치기요 연    기. 나는 나의 창문에 기대어 대기 속에서 부르는 소리와 격리된다. 내가 가을이라 말을 했더니 즉 가을이 나타    났다.   (고원 번역)    이태리의 일광(日光)   그렇기 때문에 눈덮인 산을 내려와서 우    리들이 만나는 것은 남국(南國)의 따스함이 아니고, 정성스레 일광으로 디자인된 집들인 것이다. 건축    가(建築家)는 목수(木手)들에게 그늘이 지는 곳을 조사하도록    가르쳐서 건물을 순한 돌로 변하게 했다. 그 돌은 물이 달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태양으    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고원 번역)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2)     영국편     톰 건(Tom Gunn)     인간의 조건     안개가 꼈다.   속에 담기어 나는 걷는다   성(城)은 이제 *호(壕) 때문에 앞을  *호(壕): 해자. 성 주위에 둘러 판 못.   차단(遮斷)하지 않고.   초병(哨兵)의 기침과   용병(傭兵)의 말소리뿐.     가로등은 눈에 보이지만,   땅 위에 빛을 던지지 않고,   안개가 뒤덮인 뜨락에   군중(群衆)이 고통에 싸여 번득거릴 뿐.   나는 개인(個人)이라는 숙명에서   피할 수 없다.     영원히 지속(持續)할 변경(邊境)에서   다만 의식(意識)의 핀 끝만이   균형(均衡)을잡는다.   나는 이곳에 머물지 않으면 출발하리,   이제 더 안개는   이웃을 무질서하게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정신과 우주의   한계를 찾아내야 한다,   사상과 감성을 끄집어내어   나의 효용(效用)으로 삼는다   난잡한 증오(憎惡)와 욕망.     나는 나의 한정(限定)을 깨뜨려 모색(摸索)한다   나는 나의 시금석(試金石).   아직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시련(試鍊)이다.   그래서 나는 감시인(監視人)을 둔다   그로 말미암아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숱한 것이 불가지(不可知)한 것.   문제일 때까지   아무 문제에도 부딛치지 않으리.   나는, 안개로 태어나, 소멸(消滅)하기 위하여   가설(假設)의 속을 걷는다.   개인(個人).     (황운헌 번역)        헬렌의 겁탈(劫奪)     마지막 믿을 수 있는 겁탈이었다.   사육자(飼育者)의 억센 즐거움으로   격렬한 꿈의 도피가 가져다준   그것은 와 다      른   싱싱한 모양으로 왔다.     . 그는 사내였다. 그러나   가 가져온 원(願)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고.   숙모(叔母)가 겁탈당하였다는   그런 이야기엔 얼굴을 돌렸다.     참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흐지부지 위장(僞裝)해 버리는 사람을 믿을까   人의 울부짖음을 질식시킨      人은   人도 우아(優雅)하게 다룬 것을   배가(倍加)하여 비속(卑俗)하게 했다.     은 육체로서 육체를   버릴 수 없었다. 허전하게 비어 버린   몸에 둘러싸여 죽음의 그늘이 번지는 것      을.   그칠 줄 모르는 전쟁의 음향(音響)이 싱싱하지      않게 감돌고 있었다.     (황운헌 번역)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1)   영국편   필립 리아킨(Philip Larkin)   두꺼비   왜 내가 두꺼비를 내 생활에 개재(介在)시켜서 틀에 박힌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내 지혜를 갈퀴로 사용해서 그 동물을 몰아내 버릴 수 없단 말인가?   한 주일의 엿새를 두꺼비는 그 해로운 독으로 더럽힌다 - 오직 얼마간의 셈을 치루기 위해서! 그것은 도무지 균형을 잃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지혜로 산다. 임시 강사, 약장사, 얼치기, 엉터리, 건달이 - 그들은 가난뱅이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양철통의 불을 쬐며 골목길에 알맞은 생활을 한다. 떨어진 과일과 통조림한 정어리를 먹으    며 - 그들은 이런 일을 좋아하는 것같다.   어린 것들은 맨발을 벗고, 그들의 말 아닌 아내들은 경주용의 개처럼 말라깽이 - 그러면서도 정녕 굶주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 내가 고 외칠 수 있을 만큼 용감하다면!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한낱 꿈 속의 헛소리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참으로 두꺼비같은 그 무엇이 내몸 안에도 웅크리고 있어. 그 궁둥이는 불행처럼 무겁고, 또한 눈처    럼 싸늘하고,   내가 명성과 여자와 돈을 당장에 모두 얻을 수 있도록 아양을 떨며 살게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편이 다른 한편에게 그 자신의 참 다운 정신을 구현(具現)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    라, 두 가지를 다 가질 때 어느 하나도 잃을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고원 번역)      삼박자   이 텅빈 거리, 새초롬하게 개인 이 하늘, 가을도 뚜렷하지 않아, 반사(反射)처럼 다소 몽    롱한 이 대기(大氣), 이러한 것들이 현재를 구성하고 있다 - 그것은 으례 흥미를 끌지 않는 시간, 별로 중대한 일이 생기지 않는 시간.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동시에 다른 것을    이룬다. 그것은 먼 미래, 아득한 어린 시절에 기다랗게 늘어선 집채들 사이, 구름 떠돌아 다니는 하늘 아래서 보았고, 다투어 울리는 종소리 속에서 들은 것 - 어른들 법석대는 일이 어른거리는 분위    기.   또한 훗날에는 과거가 될 것이다. 과거란 우리가 어리석게도 놓쳐 버린, 좋지만 소홀히 여긴 기회들이 노출(露出)한 골    짜기.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초라한 전망(展望)과 세월에 따르는 감퇴(減退)를 이 탓으로 돌린다.   (고원 번역)    피부   너 온순한 나날의 의복이여, 너는 그 젊은 외면(外面)을 언제까지나 속일 수 없게 하지는 못한다. 너는 제 주름살을 알아야 한다 - 노여움과 즐거움과 잠. 줄곧 소란한 모래 섞인 바람의,   시간과 같은 것의 몇 가지 볼 수 없는 흔적들을. 네 가죽은 더 두꺼워져야 한다, 때묻은 이름 하나를 지니고 다니는 낡은 자루에 느슨해지는 것. 이어 바싹 말라 거칠어지고 늘어지는 것.   그런데 네가 새것이었을 때에도 너를 입고 다녀 보아야 마침내 유행이 바뀔 때까지 정녕 새옷에 합당할 만한 멋들어진 흥겨움이야 아예 몰랐음을 어이하랴.   (고원 번역)      다음 분 차례입니다   미래의 일을 너무 열심히 생각하는 나머    지, 우리들은 기대(期待)한다는 나쁜 버릇이 생겨 버린다. 무엇인가가 늘 다가오고 있다. 우리들은    날마다 라고 말한다.   (고원 번역)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20)     영국편     E.J. 스코벨(E.J. Scovell)     까만 세계      추녀 머리 나무가지 밑으로 여덟 마리의      백조가 나와   수송(水松)나무 뿌리 근처 흑녹색(黑綠色) 물 속으로 들      어간다.   한 줄기 광선처럼 저희의 방으로 가는 계      단, 호수(湖水)로 내려.     부드러운 연회색(灰色) 깃에 싸인 어린 백조들은   그 깃이 바람에 불렸거나 광선을 받아서      희미한 동색(銅色) *훈연(燻煙)으로 되어,   *훈연(燻煙): 연기로 익힘, 또는 그 연기.    어버이들을 따라 얌전히 내린다, 아직도      몸은 4분의 3의 성장(成長).     대리석처럼 몸이 빛으로 구성된 늙은 백      조들은 솟아올라서   어둠 속에 빛을 헤친다. 그러나 어린것들      은 수송나무 그늘의 짝.   손같은 암록색(暗綠色) 지막(肢膜)으로 된 발로써 그것      들은 물을 가르고,     *원환(圓環)과 수정같은 물방을 사이를 돈다,  *원환(圓環): 둥근 고리   그것들이 일으킨 그 물방울보다도 보이지      않게. 그뿐 아니라,   격자(格子) 진 뿌리를 곱고 화려하게 목에 감는      다.     몇 무리의 떼가 되어 서로서로 뒤를 따라 *둔      주곡(遁走曲)으로   *둔주곡:푸가    저희들이 주고 받는 말을 계속적인 음악      으로 화한다. 그리고   고개를 길게 빼고서, 날쌘 사냥개같은 표정      으로, 끼리끼리 지나가거나,     또는 보다 천천히 서로 속력을 맞춘다,      그리고 소리없는, 접은 날개가   서로 닿을 때, 깃을 늦추고, 밤같은 수면      에 띄운다,   까만 세계처럼 흰 별들이 둥실 떠 있는 물      위에서.     (이창배 번역)        국화(菊花) 그림자     꽃들이 기울어 벽(壁)위에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림자 꽃이 그 꽃들보다 한층 더 찬란(燦爛)하      다,   자체(自體)보다 한층 깊은 색조(色調)와 한층 뚜렷한      원형(圓型)으로      *원형(圓型): 둥근 거푸집   그 꽃이 갖는 천연(天然)의 밝음에 대신한다.   (즉 그것은 태양의 광휘나 황홀경에 있는    성자(聖者)처럼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찬연히 융해(融解)한다.) *융해(融解): 녹아 풀어짐      그러나 그 그림자 세계의 공간은 확장(擴張)하      여,   거기 생물들은 물러가고 거리(距離)가 그 모습      들을 취한다.   멀리 *상격(相隔)하는 꽃 그림자는   *상격(相隔):서로 떨어져 있음   유상(乳狀) *성운(星雲)처럼 몽롱해진다. 그리하여,  *성운(星雲): 구름 모양으로 퍼져 보이는 천체   유령(幽靈)이 램프불과 벽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그 그림자는 성(聖)스럽고 눈에 보이지 않는      다.   불빛 속에 동일한 희고 노랗고 붉은 꺼질      듯한 천연의 국화들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기 이 그림자 속에, 색조(色調)는 그      대로여서,   짙은 곳은 짙고, 챙백한 안색(顔色)에는   멀리 떨어진 제 고장이 깃들었으며,   꽃송이들은 섬세하게 그 윤곽을 새기거나      큰 송이 속에 묻히거나 한다.     (이창배 번역)         고기 잡는 소년     나는 춥고 외롭다,   나무 뿌리 위에 꼼짝 않고 앉아 있노라니.   고기들이 내 그물로 온다. 나는 태양을      멸시했다,   길 위에 들리는 목소리들을, 그랬더니 그      들은 사라져 버렸다.   내 두 눈은 차가운 웅덩이 속에 잠긴다,   찬 깔린 나뭇잎 밑으로. 내 생각은 은빛      으로 젖는다.    * 찬 : 배(船)의 함경도 방언(?)   반나절의 소득, 가시고기 열 마리를 얻었      다,   그릇에 넉넉히. 나는 열 마리를 더 잡을      것이다.     (이창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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