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gli 블로그홈 | 로그인
강려
<< 10월 2018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방문자

홈 > 중외문학향기

전체 [ 45 ]

45    옥타비오 빠스 <태양의 돌> [스크랩] 댓글:  조회:203  추천:0  2018-07-22
글   어느 고적한 시간 종이에 붓이 글을 쓸 때, 누가 그 붓을 움직이나? 나를 대신해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에게 쓰나? 입술과 꿈으로 얼룩진 해변, 조용한 언덕, 좁은 항만, 세상을 영원히 잊기 위해 돌아선 등어리.   누군가 내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내 손을 움직이고, 말을 고르고 잠깐 멈춰 주저하고 푸른 바다일까 파란 산등성이일까 생각하면서 차거운 불길로 내가 쓰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불태운다, 정의의 불. 그러나 재판관도 역시 희생자일 수밖에 없다. 나를 벌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벌하는 일. 실은 그 글은 아무에게도 쓰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위해 쓴다.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를 잊는다. 이윽고 뭔가 살아남은 것이 있으면 그건 다시 나 자신이 된다.   시인의 숙명   말은? 그렇다, 그건 공기다, 대기 속에 사라지니까. 이 나를 말들 속에 사라지게 하라,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 뉘 떠돌며 바람을 흩뜨리는 바람.   빛도 스스로의 빛 속에 사라지나니.   휴식   새 몇 마리가 찾아온다. 그리고 검은 생각 하나. 나무들이 수런댄다. 기차소리, 자동차 소리. 이 순간은 가는 걸까? 오는걸까?   태양의 침묵은 웃음과 신음소리를 지나 돌들 사이 돌의 절규를 떠뜨릴 때까지 깊이 창을 꽂는다.   태양 심장, 맥박 뛰는 돌, 과일로 익어가는 피가 도는 돌; 상처는 터지지만 아프지는 않다, 나의 삶이 삶의 참모습으로 흐를 때.   행인   사람들 사이에 끼어 세바스또 대로를 가고 있었지, 이 일 저 일 생각하며, 빨간 불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어. 위를 쳐다 보았지:                     위에는 잿빛 지붕 위에는, 검으잡잡한 새들 사이에 끼어 은빛으로 반짝이며 생선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어.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고 길을 건너면서 그는 문득 뭘 생각하고 있었지 하고 혼자 물었지    너의 눈동자   너의 눈은 번개와 눈물의 조국, 말하는 고요 바람 없는 폭풍, 파도 없는 바다, 갇힌 새들, 졸음에 겨운 황금 맹수, 진실처럼 무정한 수정, 숲 속의 환한 빈 터에 찾아온 가을, 거기 나무의 어깨 위에선 빛이 노래하고, 모든 잎사귀는 새가 되는 곳. 아침이면 샛별같이 눈에 뒤덮인 해변, 불을 따 담은 과일 바구니 , 맛있는 거짓, 이승의 거울, 저승의 문, 한낱 바다의 조용한 맥박, 깜박거리는 절대 사막.   씌어진 말   첫마디 써놓은 말(결코 생각한 일이 없는 다른 말-이 말 즉 말도 않고 딴 소리를 하는 즉 말은 않지만 말을 하고 있는) 첫마디 써놓은 말(하나, 둘, 셋- 위에는 태양, 너의 얼굴 우물 한가운데 멍청한 태양처럼 박혀 있는 네 얼굴) 첫마다 써놓은 말(넷, 다섯- 조약돌이 끝내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며 네 얼굴을 본다, 떨어지며 추락의 수직선을 헤아린다) 첫마디 써놓은 말 (다른 말이 없다. 밑에는, 떨어지고 있는 말이 아니라 얼굴과 태양의 시간을 떠받고 있는 지옥 위에 간신히 떠받고 있는 말 추락 전, 사고 전의 말) 첫마디 써놓은 말(둘, 셋, 넷- 부서진 네 얼굴을 보라, 흩어지는 태양을 보라, 부서진 물속에 돌을 보라, 똑같은 얼굴, 똑같은 태양을 보라, 똑같은 물 위에 새겨진 첫마디 써놓은 말(을 계속한다, 생각이 있는 말밖에는 말이 없다)   말한 말   말은 일어선다 써놓은 종이위에서. 말은 일부러 만든 돌고드름 글로 쓴 기둥 하나씩 하나씩 글자 글자마다, 메아리는 얼어붙는다 돌로 된 종이 위에.   영혼은 종이처럼 하얗다. 말이 일어선다. 걸어간다 밑에 놓인 실을 타고 침묵에서 외침으로, 칼날 위에 정확한 말의 칼날 위로, 귀는 보금자리 아니면 소리의 자궁   말한 소리는 말이 없다 말한 소리-말하지 않는 소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말하라 어쩌면 곰녀는 곰보일지도 몰라   외침 한 마디 사위어간 통감 속- 다른 천체에서는 를 뭐라고 할까? 말한 말은 생각은 한다. 마음은 마음 아프고 미친 마음 때면에 묘지는 묘지 싹은 싹수가 있다.   귀의 미궁, 네가 한 말은 스스로 딴소리를 한다 침묵에서 절규까지 들리지 않는 소리.   무죄는 죄를 모르는 것- 이야기를 하려면 말 안 하는 것을 배우라   우정   기라리라던 시간 책상 위에 끝없이 떨어지는 램프의 머리칼 밤은 창문만 키워놓고 아무도 없다 이름없는 실체가 나를 에워싸고 있다.    육체를 보며   마침내 어둠이 열리고 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 너의 머리칼, 짙은 가을, 태양빛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너의 입과 그 식인종 치아의 하얀 군대는 불길 속에 잡혀 있다. 갓익은 노란 빵 색깔의 너의 살결과 불에 태운 설탕 빛 너의 눈, 거기에서 시간은 흐름을 멈춘다. 오직 나의 입술만 아는 언덕이여, 가슴을 거슬러 너의 목까지 오르는 달의 행로, 목덜미의 굳어진 분수 폭포, 너의 배의 높은 고원, 너의 옆구리의 끝없는 해변   너의 눈동자는 응시하는 호랑이의 눈이다가 일 분이 지나면 물기 젖은 강아지 눈이 된다.   너의 머리칼에는 항상 벌이 있다   너의 잔등은 조용하게 나의 눈 밑을 흘러간다 불길 밑에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의 잔등처럼.   잠든 물결이 밤 낮 진실로 된 너의 허리를 두들긴다 달 빛 아래 모래벌 같은 크막한 너의 바닷가에서   바람은 내 입으로 불려나오고, 그 긴 신음소리는 이 육체와 육체의 밤을 잿빛 날개로 감싼다, 사막의 고적을 덮고 가는 독수리 그림자처럼. 너의 발가락의 발톱들은 한여름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너의 다리 사이에는 물이 잠든 우물이 있다. 밤 바다가 고요해지고 물거품의 검은 말이 머무는 항만, 보물을 감춘 산 자락의 동굴, 성스러운 빵을 빗는 화덕의, 반쯤 열린 사나운 입술의 미소, 빛과 그림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결혼 (거기 육은 스스로의 부활과 영원한 삶의 날을 기다린다.)   피의 조국, 유일하게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아는 고향, 내가 믿는 유일한 조국, 영원으로 행해 열려진 유일한 문 하나.   새벽   차갑고 날쌘 손길이 하나씩 하나씩 어둠의 껍질을 벗긴다. 눈을 뜬다          아직 난 살아 있다          한가운데 아직 생생한 상처의 한가운데   되풀이   심장과 그 성난 고동소리 피 속의 검은 말 눈먼 망아지 고삐 풀린 망아지 밤의 축제 행진 공포의 수레바퀴 벽을 향한 절규와 빨간 불 걸어온 길은           걷지 않은 길 날을 곧두세운 사념과 육박전 날마다 심문을 해도 대답없는 아픔 이름도 부피도 없는 아픔 핀 하나가 뚫고 나간 동공 고생 많았던 날의 동공 때묻은 시간 침 뱉는 사랑 미친 웃음과 지독한 거짓말 고독과 세상 걸어온 길은          걷지 않은 길 피와 괭이와 휘파람 소리의 광장 상처 위에 햇빛 죽은 물 위에 털보 하늘 분노와 온몸이 뒤틀리는 쓴 입맛 녹슬어가는 사고 병든 글씨 괴로운 새벽 잎에 자갈을 물고선 하루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밤 갉아먹는 밤의 뼈 항상 새로운 항상 되풀이되는 공포 걸어온 길은          걷지 않는 길 물 한 컵 약 한 알 양철판 같은 혓바닥 한 밤 꿈 속에 개미굴 피 속의 검은 폭포 밤 속의 돌의 폭포 허무의 총 무게 커다란 도시에 차의 모터소리 나의 귀 주위에 멀리 가까이 멀리 눈이 나타나고 벽이 몸짓을 하고 절름발이 지하철이 나타나고 부서진 다리와 물에 빠져죽은 사람 걸어온 길은 걷지 않는 길 뱅글뱅글 도는 사념 가족 분위기 내가 뭘 했는가 넌 뭘 했는가 우리는 무얼했는가> 죄없는 죄의 미궁 이의를 제기하는 거울과 상처를 내는 침묵 불모의 날과 불모의 밤 불모의 고통 잡동사니 고독한 사람이 없는 세계 이젠 아무도 없는 대기실 그 길이 그 길이고 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버리고 없다.   소녀   아직 사라지지 않는 하오의 빛과 쌓여 있는 밤 사이 한 소녀의 시선이 있다   노트와 글씨 쓰는 것을 그만둔다. 그녀의 모든 존재는 앞을 응시하는 두 눈동자뿐. 벽에는 빛이 사라진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종말인가? 시초인가? 그녀는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하리라. 영원한 투명한 것.   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결코 모르리라.     마지막 여명   지평선에 누운 채 너의 머리칼은 숲으로 사라진다 너의 발이 내 발을 만진다. 자고 있으면 너는 밤보다 더욱 크고 그러나 너의 꿈은 이 방에 찬다. 그렇게도 작으면서 그렇게도 큰 우리! 밖에는 택시 하나가 지나간다 도깨비들을 한 짐 가득 싣고 흘러가는 강물             항상 돌아오고 있는 강물.   내일은 진정 다른 날이 올까?             움직이는 것   네가 호박빛 암말이라면        나는 피의 길 네가 첫눈이라면        나는 첫새벽의 화롯불에 불 붙이는 사람 네가 밤의 첨탑이라면        나는 너의 이마에 박힌 불붙은 못 네가 새아침의 밀물이라면       나는 거기 첫새의 외마디 울음 네가 오렌지 바구니라면       나는 태양의 칼 네가 돌의 제단이라면      나는 성배를 하는 손 네가 가로누운 땅이라면      나는 푸른 갈대 네가 뛰어오르는 바람이라면        나는 땅 속에 묻힌 불더미 네가 물의 입이라면       나는 이끼의 입 네가 구름의 숲이라면       나는 구름을 가르는 도끼 네가 속세의 도시라면       나는 성스러운 비 네가 노란 산이라면       나는 리켄으로 된 빨간 품 네가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나는 피의 길   말   말, 정확한 소리 그러나 틀린 말; 어둡고 빛나는 상처난 샘물 :거울; 거울이면서 광휘인 것 ; 광휘이면서 칼인 것,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칼, 이젠 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드라운 손; 열매 나를 자극하는 불길; 고요한 잔인의 눈동자 현기증의 절정에 머문; 눈에 보이지 않는 차거운 빛이 나의 심연을 파헤친다, 나를 허무로 채운다, 공허한 말로. 달아나는 투명한 육체들, 그 바쁜 움직임에 나의 발길을 맡긴다.   이제 나를 벗어난 말, 허나 나의 말, 내 죽은뒤 남은 뼈다귀처럼 이름도 없는, 가냘픈 내 육신의 흔적; 나의 어두운 눈물의 소금 맛, 얼어붙은 금광석. 말, 하나의 말, 버림받아 웃고 있는, 순수한, 자유로운, 구름처럼, 물처럼, 대기처럼, 빛처럼, 온 땅을 헤매는 눈처럼 나처럼, 나를 잊은 나처럼.   말, 하나의 말, 마지막이면서 처음인 항상 말없는 항상 말하는 성체용 빵이면서 잿더미인 것.     날   시간의 물결 속에 떨어진, 아 놀라운, 어느 하늘에서 떨어진 외로운 나그넨가, 이 고요한 사람아. 너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익어간다. 어느 크막한 순간에 투명해진다: 공중에 뜬 화살 하나, 표적을 잃은 마침내 화살의 기억을 잃은 공간 하나. 시간과 허공으로 이루어진 날들이여, 너는 나를 비우고, 내 이름을 지우고, 나의 실체를 없애고 대신, 너로 나를 채운다, 빛이며 허무뿐인 너로   그리고 나는 뜬다, 마침내 나를 잃고, 순연한 존재만으로.   수사학   1 새가 노래한다, 노래한다 무엇을 노래하는지 모르면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의 울대뿐   2 움직임에 들어맞는 형식이란 감옥이 아니라 사고의 피부일 뿐.   3 투명한 수정의 맑음은 내게는 충분한 맑음이 되지 못한다; 맑은 물은 흐르는 물이다   신비   대기가 반짝인다, 반짝인다 정오가 빛난다 하지만 내 눈에 해는 안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모든 것이 자명해진다. 하지만 내 눈에 해는 안 보인다.   투명함 속에 빠져 길을 잃고 나는 빛에서 현란한 빛 속으로 간다. 하지만 내 눈에 해는 안 보인다.   그리고 해는 빛 속에 벌거숭이가 되어 빛살마다 묻는다 하지만 해도 해를 보지 못한다.   말들   뒤집어 엎어라, 꽁지를 잡아라(악을 쓰라고 그래, 똥갈보 년들), 집어 패라, 채찍에 묻혀 입에다 설탕을 먹여라, 풍선처럼 불어대, 그리고 터뜨려, 피고 골수고 빨아 마셔라, 말려라, 공알을 까버려라 짖이겨라, 멋진 수탉처럼, 울대를 비틀어라, 요리사처럼, 털을 벗기고 창자를 꺼내고, 투우처럼 숫소처럼, 짓이겨 놓아라, 새 말을 만들어라, 시인아 말은 제가 한 말을 혼자 다 들어 마시게 하라.    시   너는 말없이, 은밀하게 온다. 와서는 분노와 행복을 일깨우고 이 무서운 고뇌를 불러일으킨다. 만지는 대로 불을 붙이고 사물마다 어두운 목마름을 심는다.   세상은 물러나고, 불 속에 집어넣은 쇠붙이처럼 허물어져 녹는다. 허물어진 나의 형체 사이에서 나는 홀로, 벌거숭이로, 껍질이 벗겨진 채 일어선다. 내가 선 곳은 침묵의 크막한 바위 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대를 향한 외로운 투사다.   불타는 진실이여, 너는 나를 어디로 밀어붙이는가? 나는 너의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너의 그 철없는 질문도 뭐하러 이 소득없는 전쟁을 벌인 것이냐? 인간은 너를 포용할만한 존재가 못 된다. 너의 목마름은 또 다른 목마름으로 배가 찰 뿐, 너의 불길은 모든 입술을 태울 뿐 너의 정신은 아무 형태로든 살기를 거부한다. 모든 형태를 불타오르게만 할 뿐, 너는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내 존재의 이름모를 중심에서 병대처럼, 밀물처럼 올라온다. 너는 점점 커지고 너의 목마름은 나를 질식시킨다 너는 폭군처럼 너의 열광의 칼 끝에 항복하지 않는 모든 무리를 추방한다. 그리고 마침내 너 혼자 나를 점령한다. 이름도 없는 너, 분노의 실체여, 지하의 목마름, 그 광기여,   너의 유령들이 내 가슴을 친다, 내 감촉을 일깨우고 내 이마를 얼리고 내 눈을 띄운다.   세상을 감지하며 너를 만진다 너, 만질 수 없는 실체여, 내 영혼과 내 육체의 조화여. 나는 내가 싸우는 싸움을 바라보며 땅의 결혼식을 본다.   상반된 이미지들이 내 눈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그같은 이미지들에 다른, 더 깊은 이미지들이 앞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불타는 더듬거림, 더욱 숨겨진, 더욱 짙은 물길이 앞의 물길을 흩트린다. 이 젖은 어둠의 싸움 속에 삶도 죽음도 고요도 움직임도 모두 하나다.   계속하라, 승리자여, 내가 존재하기 위해, 오직 그것만을 위해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입, 나의 혀도 오직 너의 존재를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너의 은밀한 음절들, 만질 수 없는 횡포한 말은 내 영혼의 실체다.   너는 오직 하나의 꿈. 하지만 세상은 네 속에서 꿈꾼다. 그리고 말 없는 세상은 너의 말로 입을 연다. 너의 가슴을 만지면서 나는 삶의 지평의 기류를 더듬고 어두운 피는 사랑에 취한 잔인한 입과 세상을 묶는다. 너의 입은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려는 욕망으로 파괴하는 것을 다시 살 욕망으로 항상 똑같은 비정한 세상과 결탁한다. 세상은 어떤 형태로든 머물지 않고 스스로 창조한 어느 것 위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기에.   외로운 사람아, 나를 데려가 다오, 꿈 속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나의 어머니가 되어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일깨워주고 내 너의 꿈을 꿈꾸게 하라, 내 눈을 올리브유로 적시어 내 너를 찾음으로 하여 나를 찾게 해다오.   손으로 느끼는 삶   나의 손은 너의 존재의 커튼을 연다. 너를 또다른 벌거숭이 옷으로 입히고 네 몸의 그 많은 육체들을 벗긴다. 나의 손은 너의 몸에서 또 다른 몸을 창조한다.   태양의 돌   - 아무 일도 없다, 그냥 하나의 눈짓 태양의 눈짓 하나, 움직임조차 아닌 아무 것도 아닌 그런 거. 구제할 길은 없다. 시간은 뒷걸음 치지 않는다. 죽는 자는 스스로의 죽음 속에 묶여 다시 달리 죽을 순 없다. 스스로의 모습 속에 못박혀 다시 어쩔 도리가 없다. 그 고독으로부터, 그 죽음으로부터 별수없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우리를 지켜볼 뿐 그의 죽음은 이제 그의 삶의 동상. 거기 항상 있으면서 항상 있지 않은 거기 일 분 일 분은 이제 영원히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도깨비 왕이 너의 맥박을 점지한다. 그리고 너의 마지막 몸짓, 너의 딱딱한 가면은 시시로 바뀌는 너의 얼굴 위에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삶의 기념비 우리 것이 아닌 우리가 살지 않는 남의 삶.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인 일이 있는가? 언제 우리는 정말 우리인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되어 본 일이 없다. 우리 혼자는 현기증이나 공허밖에는 거울에 비친 찌그러진 얼굴이나 공포와 구토밖에는 인생은 우리의 것이어 본 일이 없다, 그건 남의 것. 삶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이고-남을 위해 태양으로 빚은 빵, 우리 모두 남인 우리라는 존재-, 내가 존재할 때 나는 남이다, 나의 행동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내게서 떠나와 남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남들이란 결국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 그 남들이 내게 나의 존재를 충만시켜 준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삶은 항상 다른 것, 항상 거기 있는 것, 멀리 멀리 있는 것, 너를 떠나 나를 떠나 항상 지평선으로 남아 있는 것.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남으로 남겨놓는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존재하고 싶은 허기증, 오 죽음이여, 우리 모두의 빵이여.   짝수와 홀수   무게가 없는 한 마디 말 새 날에 인사를 보내는 돛 달고 날아가는 말 한 마디         아! ----------------   잠 못자서 네 눈자위에 생긴 커다란 쌍꺼풀 네 얼굴은 아직 밤.   ----------------------------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엮은 목걸이가 너의 목구멍에 달려 있다.    -----------------------------------   신문이 떨어지는 동안 너는 새들에게 휩싸인다 -------------   나의 품 속에  y 너의 다리 속에 우리가 있다. 물 속에 물처럼 비밀을 간직한 물처럼   ---------------------   내 손에 너의 두 가슴 다시 계곡을 내려오는 물 ----------------------   한 발코니에서 (부채가) 다른 발코니로 (펼펴진다) 태양이 뛰어나간다 (그리고 닫힌다)   상호보조   나의 몸에서 너는 산을 찾는다 숲 속에 묻힌 산의 태양, 너의 몸에서 나는 배를 찾는다 갈 곳을 잃은 밤의 한 중간에서   발사   생각보다 앞서 말 하나가 튀어나온다 소리보다 앞서 말이 말처럼 뛴다 바람보다 앞서 유황빛 송아지처럼 밤보다 앞서 두개골 속 거리로 사라진다 곳곳에 맹수의 발자취 나무의 얼굴엔 진홍빛 문신 첨탑의 이마에는 얼음 문신 교회의 음부에는 전기 문신 너의 목에도 맹수의 발톱 너의 배에도 맹수의 발 오랑캐빛 상흔 하얗게 될 때까지 돌아가는 해바라기꽃 비명이 터질 때까지, 이제 그만! 할 때까지 해바라기 꽃이 돌아간다 껍질이 벗겨진 비명처럼 너의 피부를 타고 줄줄이 새겨진 이름없는 도장 곳곳마다 눈을 멀게 하는 절규 생각을 덮고 마는 검은 물줄기 나의 이마에서 두들기는 성난 종소리 나의 가슴에 번지는 피의 종소리 탑 맨 꼭대기에서 웃는 영상 하나 말들을 터뜨리는 말 하나 모든 다리를 불지르는 하나의 영상 포옹의 순간 사라져버린 여인 어린 아이들을 죽이는 거지 할멈 멍충이 거짓말장이 근친상간을 일삼는 쫓기는 암노루 점장이 거지할멈 삶의 한 가운데서 나를 일깨우는 나를 일깨우는 소녀 하나   너의 이름   너의 이름은 내게서 태어난다, 나의 그림자에서 나의 피부로 오르며 동이 튼다, 조으르는 듯한 빛의 예명.   사나운 비둘기 너의 이름은 나의 어깨 위에서 마냥 부끄럽다   독백   허무와 꿈 사이, 부서진 기둥들의 밑에서, 나의 불면의 시간을 가로질러가는 너의 이름의 음절들,   붉으레한 너의 긴 머리칼, 한여름의 번갯불이 달콤한 횡포의 불빛으로 떨리고 있다.   폐허에서 솟아나는 꿈의 어두운 물살, 허무로부터 너를 벼루어내는 물에 젖은 밤의 해변이여. 거기 눈 먼 바다가 밀려와 미친듯 후려치고 있다.   눈 앞에 다가온 봄   투명한 보석의 잘 닦여진 광채, 기억을 잃은 석상의 훤칠한 이마: 겨울 하늘, 더욱 깊고 더욱 텅빈 어느 하늘에 되비친 공간.   바다는 거이 숨을 멈춘다, 거이 빛을 감춘다. 빛은 나무들 사이에서 눈을 감는다. 잠든 병사들.그들을 깨우는 것은 짙푸른 깃발을 들고 온 바람.   봄은 바다에서 태어난다, 언덕을 휘덮는다, 육체도 없는 물결은 노란 유칼토스 나무 숲에 가서 부딪기도 하고, 이내 메아리가 되어 평원으로 쏟아진다.   대낮이 눈을 뜨고 철 이른 봄 속으로 헤집고 들어간다. 내 손에 닿은 것은 모두가 날개를 단다. 세상이 온통 날으는 새뿐이다.   새   투명한 고요 속에 한낮이 머물고 있었다; 투명한 공간은 투명한 고요이기도 했다. 하늘의 단단한 빛이 풀잎의 자람을 고요히 잠재우고 있었다. 땅의 벌레들도, 돌들 사이에선 빛이 같아서, 그냥 돌멩이들이었다. 시간은 1분 속에서도 배가 불렀다. 고요한 침묵 속에 한낮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 때 새 한 마리가 울었다, 가느다란 화살 하나. 상처난 은빛 가슴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잎사귀들이 움직였다. 풀잎들이 잠을 깼다......... 그 때 나는 죽음이 누가 쏜지 모르는 하나의 화살인 줄 알았다, 눈을 뜨자마자 우리가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침묵   음악의 맨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듯이 하나의 음계가 솟아올라 떨리는 동안 커지다가 이내 가늘어진다 다른 음악이 오르면 그 음계는 입을 다물고 침묵의 맨 밑바닥에서 또다른 침묵이 솟아오른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탑이거나 칼 같은 것이 오르다, 커져가다, 머문다. 오르는 동안 또 떨어지는 것은 추억과 희망과, 우리의 크고 작은 거짓말들. 소리치려해도 목구멍 끝에서 외침은 사라지고 우리는 수많은 침묵이 입다무는 그곳으로 또 다른 침묵이 되어 튀어나간다   새로운 얼굴   밤은 네 얼굴 위에 수많은 밤을 지운다. 메마른 너의 동공 위에 기름을 붓고 너의 이마 위에 생각을 불태운다. 생각 저편에는 추억만 남는다.   수많은 어둠들이 너를 없애고 또 다른 얼굴을 떠올린다 내 옆에 잠든 네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여기 잠든 건 네가 아니라 지나간 어떤 여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여인은 단지 네가 잠드는 이유가 다시 돌아와 또 다시 나를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라고 믿었지.   연인들   풀밭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밀감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파도와 파도가 거품을 나누듯이.   해변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레몬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구름과 구름이 거품을 나누듯이.   땅 밑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말이 없다, 입맞춤이 없다 침묵과 침묵을 나눈다.   두 개의 몸뚱아리   두 개의 몸뚱아리가 마주 보면 때로는 파도 같다. 밤은 크낙한 바다.   두 개의 몸뚱아리가 마주 보면 때로는 두 개의 돌멩이 같다. 밤은 그땐 사막.   두 개의 몸뚱아리가 마주 보면 때로는 뿌리같다, 밤에 꽁꽁 얽어맨.   두 개의 몸뚱아리가 마주 보면 때로는 칼 같다. 밤은 번개.   두 개의 몸뚱아리가 마주 보면 두 개의 별똥별 빈 하늘에 떨어지고 있다.   잠깐 본 세상   바다의 밤 속에 물고기, 아니면 번개, 숲의 밤 속에 새, 아니면 번개.   육체의 밤 속에 뼈는 번개. 오 세상이여, 모든 것은 밤이다 삶은 번개.   흩어진 돌멩이들   1 꽃 외침, 부리, 이빨, 으르렁거리는 소리들, 살기등등한 허무와 그 혼잡도 이 소박한 꽃 앞에선 자취를 감춘다.   2 여인 밤마다 우물로 내려가곤 아침이면 다시 얼굴을 내민다, 품에는 새로운 뱀을 안고,   3 자서전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랬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랬던 것들은 이미 죽은 것들이다.   4 밤중에 듣는 종소리 그림자의 물결, 눈먼 파도가 불 타는 이마 위에 밀려온다; 내 사념을 적셔다오, 그리고 아주 불을 꺼버려!   5 문 앞에서 사람들, 말들, 사람들, 잠시 멈칫했지: 문은 위에 있다, 홀로 떠 있는 달 하나.   6 보이는 것   눈을 감자 내가 보였다; 공감, 공간 내가 있고 내가 없는 이곳.   7 풍경 저토록 바쁜 벌레들, 태양빛 말들, 구름빛 당나귀들, 구름은 무게를 잃은 커다란 바위, 산은 내려앉은 하늘, 나무들이 무리져 내려와 골짜기 물을 마신다. 모두들 있다. 행복하게, 저기, 스스로의 분수만큼 행복하게, 우리 앞에, 그런데 우리는 없다 분노와 증오와 사랑에, 마침내 죽음에 송두리채 먹혀버린 우리는 없다.   8 무식장이 하늘을 쳐다보았지. 하늘은 비문이 닳아진 커다란 바위돌, 별들도 한 마디 내게 읽어주질 못했어.   불면의 기록노트   1   시계가 갉아먹는다. 내 심장을, 독수리가 아니다. 쥐다.   2   한 순간의 정점에서 나는 홀로 부르짖었다. 하나 그 순간은 떨어지고 있었다 또다른 순간 속에, 시간도 없는 심연 속에.   3 나는 문득 어느 벽 앞에 당도했다. 벽에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4 향수  똑같은 푸르름 속에 똑같은 샛별이 반짝이지만 우리는 몰라본다. ......하지만 수탉마다 제 헛간을 노래하는 것을.   그 많은 날들의 하나   태양의 홍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보인다 무게 없는 육체들 두께 없는 땅 우리는 올라가고 있는가 내려가고 있는가?   너의 육체는 금강석 하나 너는 어디 있는가? 너는 너의 육체 속에 묻혔다   이 시간은 조용한 번개. 발톱도 없다 결국 우린 모두 형제들 오늘 우리는 안녕하세요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멕시코인까지 행복해도 좋다 물론 다른 이방인까지도   자동차들은 풀잎이 그립다 집 꼭대기들이 걸어다닌다.                 시간은 멈췄다 두 서너 눈동자가 나를 못잊게 한다 석회빛 남녘의 반짝이는 해변같이 분노빛 바위 사이의 바다같이 분노한 유월, 그 벌떼의 이불같이   태양은 바다의 사자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아                  나를 보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우상이여                    우리를 보라 하늘은 돌며 바뀌어도 항상 똑같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 태양과 사람들을 마주하고 나는 홀로 있다 너는 육체였다 너는 빛이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날 나는 너를 다른 태양에서 발견했다   하오가 내려온다          산들이 자라난다 오늘은 아무도 신문을 읽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발을 반쯤 벌리고 앉아 아가씨들이 커피를 마시며 지껄인다 내 책상을 연다           파란 날개로 가득하다 노란 엘레뜨르 꽃으로 가득하다 타자기가 혼자 간다 쉴 새 없이 똑같은 불타는 음절을 써간다 밤은 마천루 뒤에 숨어 있다. 식인종의 포옹의 시간이다 긴 손톱의 밤 기억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분노! 떠나기 전 태양은 모든 보이는 것을 불태운다   시간 자체   바람이 아니다 물이 아니다, 몽유병자 같은 물의 발걸음이 아니다 돌이 된 집들과 나무들 사이를 스쳐가는 붉으스레한 밤을 따라 흐르는 바다가 아니다, 층계를 밟고 올라가는 모든 것은 고요하다                     자연계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건 도시다, 스스로의 그림자에 휩싸여 스스로를 찾고 있는, 항상 찾고 있는 스스로의 광대한 어둠 속에 묻혀 한번도 찾지 못한 스스로를 찾고 있는                   한번도 스스로를 헤쳐나오지도 못한 도시. 나는 눈을 감는다,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불이 켜졌다가 켜졌다가 켜졌다가  이내 꺼져간다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더 이상 아는 게 있는가? 벤치에서 노인 한 사람이 혼자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혼자서 말을 할 때 우리는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까? 과거는 잊었다              미래는 만져보지도 못할 것이다. 누군지 모른다 밤 가운데 살아 있는 사람일 뿐                          자기 말소리를 혼자 듣고 있다 담장 근처에선 남녀 한 쌍이 포옹을 하고 있다 여자가 웃는다, 뭔가 물어본다 그 물음은 떠올라 높은 곳에서 펼쳐진다 이때 하늘은 주름살 하나 없다 한 나무에서 이파리 세 개가 떨어진다 누군가 골목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맞은편 집 창문 하나에 불이 켜진다 살아 있다는 감각ㅇ느 참 이상하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를 걸어간다는 것 살아 있다는 비밀을 소리쳐 입증이라도 하듯이   소깔로에는 사람 하나 없는 새벽이 오간다 다만 미치광이 같은 우리의 열정과                                 전철들 따꾸바 따꾸바야 소치밀꼬 산 앙헬 꼬요야깐   밤보다 넓은 광장에 이들 정거장만이 불을 켜고            어딘가 우리를 데려갈 차비를 하고 시간은 있는 대로 넓게 잡고                이 세상의 마지막 끝까지 데려갈 차비를 하고 검은 선들 전차의 우뚝 솟은 가공선 접촉 촉수들만이                      돌 같은 하늘을 찌른다 불똥 튀기는 상투 끝, 불의 혓바닥 밤을 뚫는 화염                 새 새가 날아간다. 물푸레 나무의 칩칩한 그림자 사이로 산 뻬드로에서 미스꼬악까지 두 줄로 늘어선 가로수 사이로 비비거리며 나르는 새 푸르뎅뎅한 하늘                젖은 침묵의 두께가 불타는 우리 머리 위를 누르고 있다 우리는 뒤늦게 다가오는 전차를 타고 무너져 내린 탑이 우글대는 빈민촌을 지나간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걷고 있다는 것이다 돌 자잘, 밭길, 바로 그 길을 웅덩이를 넘고 진흙탕길을 누비며 유월에서 구월까지의 긴 포도를 현관을 지나고 높은 담장, 잠든 꽃밭을 지난다 지금 여기 눈 떠 있는 것은 오직                             하양 파랑 하양 꽃향기      손에 잡히지 않는 꽃가지들 어둠 속에       살아 있는 듯한 가로등 하나 죽은 담장에 기대어 서 있다     개 한 마리가 짖는다 밤을 향한 물음표            아무도 없다 바람이 나무숲에 스며들었을 뿐 구름 구름 일어나고 무너지는 구름 구름 무너진 사원 새로운 왕조들 하늘에 떠 있는 암초와 재난들                     위에 뜬 바다는 고원의 구름, 다른 바다는 어디?   눈을 가르치는        구름은 침묵의 건축가 그리고 문득 다짜고짜 금방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얀 눈조각같은 어디서 나타난지도 모르는 가느른 투명함 너는 말했다       내 그말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야 겠어 음절의 성곽을 말이야       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하얀 눈송이 같은        꽃도 없고 향기도 없는 피도 없고 물기도 없는 석고 어디선가 잘려나온 하얀색 그것          목구멍 오직 목구멍만 남은 밑도 끝도 없는 노래  나는 오늘 살아 있다, 별다른 향수도 없이 밤은 흐르고       도시도 흐르고 흐르는 종이 위에 낱 글을 쓴다 흘러가는 말을 타고 나도 흐른다 세상이 나와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다 나와 함께 죽을 것도 아니다                          나는 생명의 맥박의 강 속의 하나의 맥박 이십 년 전에 바스꼰셀로스가 내게 그러더구먼 그리고 오르떼가 이 가셑은                    로다노 위에 있는 바에서 하더구먼.   나는 사실 시간이나 죽이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시간이 나를 통해 살도록, 되살아나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쓴다 오늘 오후는 다리 위에서 강물 속으로 태양이 들어간느 것을 보았다 모든 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석상들도 불타고 집들도 문짝들도 불타올랐다 정원에는 여성스러운 포도송이들이 열렸다 물빛 햇살의 토막들 태양빛 물그릇들의 신선함 포플러 나무 숲은 무성한 빛살의 축제 하늘 아래, 불붙은 세계 속에 물은 수평선처럼 꼼짝않고 서있었다 물방울 하나하나는                고정된 눈동자 그 크막한 아름다움의 무게는 열려진 동공마다 반짝였다 시간의 줄기 끝에                머물고 있는 현실 아름다움은 무게가 없다               시간과 아름다움은 고요한 반영일 뿐 모두가 한가지다                 빛도 물도   아름다움을 받들고 있는 눈길 눈길 속에 황홀한 시간 무게를 잃은 세계               사람이 무게가 있다면 아름다움의 무게 이외 더 있는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남는 것뿐이다.                       충분한 게 아니다 무지는 아름다움처럼 어렵다 언젠가 내 조금 더 모르게 되는 날 나는 눈을 뜨리라 어쩌면 시간은 무겁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무거운 건 시간의 영상이다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현제가 돌아온다 이 삶에는 또다른 삶이 없다 저 무화과 나무도 오늘 밤 다시 오리라 오늘 밤 또 다른 밤들도 돌아오리라   글을 쓰면서 나는 강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이 강이 아니라          저 강이 바로 이 강이다 순간과 영상이 맞부딪는 곳 앵무새 하나 잿빛 돌 위에 있다 삼월 어느 청명한 날                   까망은 맑음의 한 가운데 있다 올 것 같은 황홀의 순간이 아니다                                  지금 느끼는 현실 더없는 현재           더 없이 가득하고 충일한 것 기억이 아니다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원하지 않았던 것 똑같은 시간이 아니다          다른 시간 항상 다른 시간이면서 같은 시간이 들어와서 우리를 우리로부터 몰아낸다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은 눈이 보지 못한다 시간 속에 또 다른 시간이 있다 시간도 무게도 그림자도 없는                             고요한 시간 과거나 미래도 없는                        살아 있기만 하는 벤치에 앉은 노인처럼 하나가 된 똑같은 영원한 시간 우리는 결코 볼 수는 없다               투명할 뿐        마이투나   나의 눈이 너를 벗긴다 벌거숭이로        그리고 이내 너를 덮는다 뜨거운 빗줄기 눈길 세례   소리가 갇힌 새장이                열린다   찬연한 아침         새하얗게 너의 허벅지보다 새하얗게         한밤중에 너의 웃음 아니, 차라리 너의 짙푸른 잎사귀 너의 달빛 속옷이           침대에서 펄럭일 때 곱게 쏟아지는 달빛           노래하는 소용돌이가 흰 실 꾸러미를 감는다            산골짜기에 심은 풍차의 날개              너의 밤 속       나의 대낮이 폭발한다       너의 탄성이 파편이 되어 튄다               밤이 너의 몸을 풀어 흩뜨린다  썰물 너의 흩어진 몸뚱아리들이 되모아진다  다시 너의 몸이 탄생한다   수직의 시간         가뭄이 거울 달린 바퀴를 돌린다 칼들이 피어난 정원               협잡의 축제 그 번뜩이는 눈길 사이로                너는 상처 하나 없이   들어선다         내 손의 강물로   신열보다 빠르게 너는 어둠 속에서 헤엄친다                     너의 그림자가 더욱 밝아온다 애무 속에서         너의 몸뚱아리는 더욱 검다 예측할 수 없는 강 저편으로                          네가 뛰어넘는다 어떻게 언제 그게 그런 거야  
44    심보르스카 시모음 (2) 댓글:  조회:475  추천:0  2017-09-15
심보르스카 시 (2)   동굴 / 쉼보르스카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습기만 흐를 뿐. 이곳은 어둡고, 춥다.   불이 꺼지고 나니 더욱 어둡고, 춥다. 아무것도 없었다-황토에 그려진 들소가 사라지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들소는 머리를 구부린 채 오랫동안 저항했지만 일말의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문장은 밑줄을 쳐서 강조할 만하다, 일반적인 의미의 '무(無)'를 신봉하는 이단(異端). 그들은 결코 회개할 줄 모른다.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레 여기므로.   아무것도 없었다-우리들이 떠나고 난 뒤에는. 우리들은 이곳에 왔었고, 자신의 심장을 먹어 치웠고, 스스로의 피를 마셨다.   아무것도 없었다. 미처 다 끝마치지 못한 우리들의 춤 말고는. 화염 속에서 불타오르던 너의 첫벗째 허벅지, 팔과 목, 그리고 얼굴. 미세한 파스칼*로 진동하는 생명을 잉태했던 나의 첫번째 복근(腹筋).   적막-하지만 소리보다 한발 늦었다. 소리는 적막보다 부지런한 천성을 지녔으므로. 적막-언젠가 네 목구멍 속에 걸려 있던 피리 소리와 북소리. 야생 동물의 비명 소리, 웃음소리와 더불어 동굴은 이곳에 적막을 단단히 아로새겨놓았다.   적막-하지만 감겨진 눈꺼풀처럼 암흑에 휩싸인 어둠이 먼저다. 어둠-하지만  싸늘하게 식은 살과 뼈가 먼저다. 싸늘함 하지만 죽음이 먼저다.   땅에서, 아니면 하늘에서? 어쩌면 일곱번째 하늘*에서? 너는 이 공허한 폐허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으리라. 여기에 무엇이 있었을까 자못 궁금해 하면서.   *파스칼; 압력의 단위. 1 파스칼은 1 제곱미터의 넓이에 1뉴 턴의 힘이 가해질 때의 압력을 의미하며. 기호는 pa를 쓴다. *일곱번째 하늘; 유대교에서는 하늘을 일곱으로 나누고, 일곱번째 하늘을 신과 천사들이 사는 가장 높은 하늘이라 믿는다.   애물단지 / 쉼보르스카   그는 행복을 원했었다. 그는 진실을 원했었다. 그는 영원을 원했었다. 자, 그를 봐라!   현실과 꿈을 간신히 구별해낸다. 자신이 누구인지 가까스로 깨닫는다. 어류의 지느러미 같은 손으로 부싯돌을 부딪쳐 힙겹게 봉화(烽火)를 피워 올린다. 쉽사리 증오에 휩싸이는 존재. 공허한 웃음을 터뜨리기에도 미욱한 존재. 눈으론 그저 보기만 하고, 귀로는 그저 듣기만 한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어투는 조건문, 이성을 사용해서 이성을 비난해보지만,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둔감한 살집 외에도 그의 머릿속은 자유와 박식함. 그리고 존재로 가득 차 있으니 자, 그를 봐라!   눈에 보이는 엄연한 실체이기에 변방의 별빛 가운데 하나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나름대로 생기 있고 꽤나 능동적인 그는 쓸모없는 수정(水晶)이 무력하게 퇴화하는 걸 지켜보며 짐짓 놀란다. 떼를 지어 다녀야만 했던 그 옛날,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제 그는 진정으로 독립적인 개체. 자, 그를 봐라!   지금 이 순간이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이대로 지속되기를. 깜빡이는 저 작은 은하수 아래서 끊임없이 빛을 발하기를! 미약하나마 이미 세상에 존재하기에 앞으로 무엇으로 탈바꿈할는지 희미한 윤곽이나마 드러낼 수 있기를. 그는 고집이 무척 세다. 코걸이를 걸고 있는, 토가*를 걸친 스웨터를 입고 있는 그가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쨋건 그는 애물단지. 측은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 실재(實在)하는 인간.   *토가; 고대 로마에서 시민이 입던 겉옷, 남자가 14세가 되면 성년의 표시로 착용했다.   만일의 경우 / 쉼보르스카   일어날 수도 있었어. 일어났어야만 했어. 일어났었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너무 가까이, 아니면 너무 멀리서. 일어났었어. 너에게, 혹은 너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왼쪽으로 갔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비가 왔기 때문에. 그늘이 드리웠기 때문에.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에.   운 좋게도 거기 숲이 있었어. 운 좋게도 거기 나무가 없었어. 운 좋게도 철로, 갈고리, 대들보, 브레이크, 문설주, 갈림길, 일 밀리미터, 일 초가 있었어. 운 좋게도 지푸라기*가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렇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손발을 움직여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어. 우연의 일치에 좌우되는 불과 한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 안에서, 일촉즉발의 오차 내에서.   그래서 넌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 가까스로 열린 찰나의 순간에? 그물에 뚫린 단 하나의 구멍, 그리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버렸니? 난 놀랄 수도, 침묵할 수도 없어. 자, 귀 기울여봐. 네 심장이 내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두근거리는지.   *지푸라기; 원문에는 '면도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 폴란드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은 면도날이라도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 쉼보르스카   마침내 마법이 풀린다. 비록 강력한 힘이 작용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해도. 8월의 밤, 너는 알지 못하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너는 알지 못하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예정된 섭리인지, 아닌지. 너는 알지 못하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 할지, 운명을 점쳐야 할지. 운명을 점친다고? 제대로 의사소통도 안 되는 별똥 별 따위로? 지금이 21세기가 아니라 고리타분한 선사 시대란 말인가? 저 수많은 섬광 중에 과연 어떤 빗줄기가 호언장담할 수 있으려나: 불꽃이라고, 나는 불꽃이라고, 별똥별의 꼬리에서 생성된, 진짜 불꽃이라고. 왔다가 순순히 사라지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로지 불꽃 그 자체라고. 내일자 신문을 향해 곤두박질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엔진이 고장 난, 바로 내 옆의 다른 불꽃이라고.   실수 / 쉼보르스카   미술관에 전화벨이 울린다. 밤 열두 시, 텅 빈 전시장 안에 벨 소리가 요란하다. 만약 누군가가 깜빡 잠들어 있었다면, 놀라서 곧바로 깨어났을 것이다. 이곳엔 불면증에 시달리는 예언자들과 달빛에 안색이 창백해진 고색창연한 왕들뿐. 그들은 조용히 숨죽인 채 만물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겉으로만 부지런한 척하는 고리대금업자의 아내는 벽난로 위에 놓인 전화기가 쩌렁쩌렁 울려대는데도 손에 든 부채를 내려놓을 생각조차 않는다. 다른 이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반응에 익숙해져버렸기에. 토가를 걸치거나 혹은 알몸인 그들은 마치 그 자리에 없는 듯 오만한 태도로 한밤중의 경적을 무심히 흘려보내고 만다. 맹세컨대 이것은 왕실의 가령(家令)이 전화를 받기 위해 액자에서 뚜벅뚜벅 걸어 내려오는 것보다 더 우습고 황당한 일이다. (하긴 그의 귀를 두드리는 건 고요한 적막뿐인데 무얼 기대할 수 있으랴.) 더 황당한 건 도시의 저편, 어딘가에 자신이 잘못된 번호를 돌렸는지도 모르는 채 꽤나 오랫동안 수화기를 관자놀이에 갖다 대고 있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살아 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양로원에서 / 쉼보르스카   그녀의 이름은 야브윈스카, 누구를 말하는지 아마 다들 아실 거예요. 우리들 사이에서 거의 여왕 폐하로 통하는 거만한 그녀. 목에는 항상 화려한 스카프를 두르고, 머리를 곱슬곱슬 말아 올린 그녀. 아들 셋을 먼저 천국에 보냈고, 거기서 그들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그녀 말입니다.   "그 애들이 전쟁에 나가 죽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거야. 겨울엔 큰 아들과 살고 여름은 둘째와 보냈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확신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죽음을 당하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우리의 아이들에 관해 꼬치꼬치 묻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셋째 아들이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으리라는 사실을 말이죠 "막내는 분명 새하얀 백조나 비둘기가 끄는 눈부신 황금마차를 타고 나를 찾아왔을 게야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모두가 잊지 못하도록"   우리의 야브윈스카 여사가 해묵은 신세타령을 시작하면 그녀를 돌보는 간호원, 마니아*는 가끔씩 무기력한 미소로 응수하곤 합니다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임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이야기죠.   토요일, 일요일과 여름휴가 때는 우리에게도 쉴 권리가 있으니까요.   *마니아Mania는 폴랜드에서 다소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다소 구식의 여자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아기에게 '마니아'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폴랜드 사람들은 하녀 혹은 유모의 전형적인 이름으로 생각한다.   광고 / 쉼보르스카   나는 진정제입니다. 주로 집에서 효과를 발휘합니다. 사무실에서도 효력이 있습니다. 시험을 치르거나 재판에서 증언할 때도 힘이 됩니다. 깨진 컵 조각을 조심스럽게 붙이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단지 나를 입에 넣고 혓바닥 아래서 살살 녹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저 나를 꿀꺽 삼키기만 하면 됩니다. 오직 물과 함께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압니다, 불행을 요리하는 방법. 나쁜 소식을 견뎌내는 방법. 불의를 최소화하는 방법. 미망인 얼굴에 잘 어울리는 장례식용 모자를 고르는 방법까지도. 무엇을 망설이고 있나요? 화학 약품의 자비로운 효능을 한번 믿어보시라니까요.   당신들은 아직 젊습니다. 삶을 새롭게 가꾸고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참고 견디는 거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당신들의 나락(奈落)을 주저 없이 내게 맡겨주십시오. 네 번이나 추락에서 건져 올려지고 나면 당신들은 틀림없이 고마워할 것입니다.   나에게 영혼을 파십시오. 다른 장사치들은 오지 않을 테니.   다른 악마는 더 이상 없습니다.   발견 / 쉼보르스카   나는 위대한 발견을 믿는다. 그 발견을 이루어낼 사람을 믿는다. 그 발견을 이루어낼 사람의 두려움을 믿는다.   그의 얼굴에 깃든 창백한 기운과 거친 호흡, 입술 위에 맺힌 식은땀을 믿는다.   기록을 태우는 것, 재가 될 때까지 태우는 것, 마지막 한 조각까지 남김없이 활활 태우는 것을 믿는다.   숫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 그것들이 유감없이 산산조각 분해될 것을 믿는다.   서두르기 좋아하는 인간의 성향과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일 줄 아는 치밀함과, 그들의 강요되지 않은 자유 의지를 믿는다.   석판이 부서지고, 액체가 쏟아지고, 광신이 꺼지리라는 것을 믿는다.   단언컨대, 반드시 성공하리라. 결단코 늦지 않으리라. 증인들이 배석하지 않아도 사건은 전개되리라.   확신컨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리라. 아내도, 벽도, 심지어 밀고하기 좋아하는 저 수다스러운 새들조차도.   불미스러운 일에 개입하지 않은 깨끗한 손을 믿는다. 엉망진창이 된 경력을 믿는다. 어러 해 동안 소진한 각고의 노력을 믿는다.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을 믿는다.   이 말들은 모두 규범의 영역 저 너머를 배회하고 있으니, 나는 어떤 경우에도 근거를 바라지 않는다. 내 믿음은 강하고, 맹목적이며, 원칙을 초월한 것이기에.   귀환 / 쉼보르스카   그가 돌아왔다. 아무 말도 없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든다. 담뇨 아래로 머리를 파묻고, 무릎을 끌어당긴다. 나이는 마흔 살 가량,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아니다. 일곱 겹의 살갗 너머 어머니 뱃속, 어둠의 안식처에서 지금 이 순간, 그는 존재한다. 내일은 은하계 전체를 비행하는 데 필요한 인체의 항상성*에 대해 강의할 예정.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그맣게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항상성; 외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체내의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   공룡의 뼈 / 쉼보르스카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는 여기서 균형이 맞지 않는 잘못된 비례의 전형적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차곡차곡 쌓인 이 공룡의 뼈에서.   그리운 벗이여, 왼쪽에는 무한대를 향해 뻗은 꼬리가 있고, 오른쪽에는 반대편을 향하는 목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자연은 결코 오류를 범하거나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농담을 즐길 뿐. 이 우스꽝스러운 작은 머리통에 주목해주십시오.   신사 숙녀 여러분, 이런 조그만 머리로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이 머리통의 주인은 멸종하고 만 것이죠.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보잘것없는 뇌의 사이즈에 비해, 식욕은 지나치게 왕성하군요. 이런 작은 뇌 속에는 현명한 판단력보다는 어리석은 몽상이 으레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법. 오직 하나뿐인 태양처럼.   탁월하신 위원회여, 이 얼마나 솜씨 좋은 손인가요. 이 얼마나 언변이 풍부한 입인가요. 이 얼마나 명석한 두뇌인가요.   위대하신 판관이여, 지금은 퇴화되어버린 꼬리가 자라던 바로 그 자리에 너무 많아 버거운 의무감만 남아 있군요.   추적 / 쉼보르스카   적막이 나를 맞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혹시라도? 시끌벅적한 소동도, 팡파르도, 박수갈채도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비상사태를 알리는 정적도, 아니 비상사태 자체도 없으리란 걸 나는 안다.   마른 잎사귀조차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은빛 궁전과 아름다운 정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마라. 존경스러운 연장자와 정의로운 법률, 유리구슬에 비친 예언자의 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달빛 속을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 건 잃어버린 반지와 리본 따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이 한발 앞서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   증거가 될 만한 건 아무거도 남기지 않았으니. 죽음도, 나무토막도, 과일 껍질도, 아스파라거스도, 찌꺼기도, 대패질하고 남은 부스러기도, 깨진 유리 파켠도, 먹다 남은 고깃덩이도, 쓰레기 조각도.   내가 몸을 숙이는 건 단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을 줍기 위해서일 뿐. 하지만 그 돌에는 아무런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내게 신호나 단서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흔적을 지우는 기술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그들의 놀라운 재능에 대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들이 뿌리나 꼬리, 하늘로 날아오르느나 잔뜩 부푼 드레스 자락은 인간의 손에는 절대로 잡히지 않는 신성한 것임을. 그들의 머리카락은 단 한번도 머리에서 이탈하여 내 손아귀에 들어온 적이 없다.   내 궁리를 보란 듯이 비웃는 교활하고 영리한 생각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늘 꼭 한 발자국씩 내가 미처 쫓아가지 못할 만큼만 앞서 간다. 선명하게 찍힌 그 흔적들은 원시적인 본능이 얼마 어리석은 지 조롱하듯 보여준다.   그들은 현존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나는 스스로에게 열심히 그 사실을 반복해서 주입시켜야만 한다. 그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는 어리석은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러면 발아래에서 느닷없이 풀쩍 솟구쳐 오르는 건 과연 뭐지? 금세 내 발에 밟혀버렸기에 미처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도망치려 버둥거리는 것. 스스로를 침묵의 연장이라 여기는 것. 그것은 비로 그림자-어느 틈에 목표물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착각할 만큼 터무니없이 커져버린 나 자신.   분실물 보관소에서의 연설 / 쉼보르스카   나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에 몇몇 여신을 잃어버렸다. 또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에 많은 신들을 놓쳐버렸다. 나의 별 몇개가 영원히 꺼져버렸다. 하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의 섬이 하나 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심지어 어디에 발톱을 놓아두었는지도 통 모르겠다. 누가 내 거죽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지, 내 껍데기 안에서 살아 숨쉬는 건 무엇인지. 내가 육지로 기어 나왔을 때, 형제들은 다 죽었고. 단지 내 뼈 가운데 일부만 내 안에서 기념일을 맞고 있다. 나는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와 부질없이 척추와 다리를 혹사하고 말았다. 그러곤 여러 차례 감각을 상실했다. 오래전에 이 모든 것에 대해 세번째 눈을 감았고, 지느러미를 움직였고, 나뭇가지를 뒤흔들었다.   사라지고, 소멸되고, 바람결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니. 나는 한없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다. 어제 전차 안에서 우산을 잃어버린 평범한 인간의 형체는 그저 잠시 동안 빌려온 허물에 불과할 뿐   경이로움 / 쉼보르스카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 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   작은 별 아래서 / 쉼보르스카   우연이여, 너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하노라. 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하노라.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 고인들이여, 내 기억 속에 당신들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데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 시간이여, 매 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 지옥의 변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여, 이렇게 한가하게 미뉴에트 CD나 듣고 있어 정말 미안하구나.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 막다른 골목까지 추격당한 희망이여, 제발 눈감아다오,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사막이여, 제발 눈감아다오, 한 방울의 물을 얻기 위해 수고스럽게 달려가지 않는 나를. 그리고 그대, 아주 오래전부터 똑같은 새장에 갇혀 있는 한 마리 독수리여, 언제나 미동도 없이, 한결같이 한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비록 그대가 박제로 만든 새라 해도 내 죄를 사하여주오. 미안하구나, 잘려진 나무여, 탁자의 네 귀퉁이를 받들고 있는 다리에 대해. 미안하구나, 위대한 질문이여, 초라한 답변에 대해. 진실이여, 나를 주의 깊게 주목하지는 마라. 위엄이여, 내게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 달라. 존재의 비밀이여, 네 옷자락에서 빠져나온 실밥을 잡아 뜯은 걸 이해해 달라. 영혼이여, 내 안에 자주 깃들지 못한다고 나를 질타하지 마라.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될 수 없음을.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가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다오. 한껏 심각하고 난해한 단어들을 빌려와서는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열심히 짜 맞추고 있는 나를.   거대한 숫자 / 쉼보르스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억의 사람들. 내 상상력은 늘 그랬듯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거대한 숫자는 감당하지 못하고, 사소하고, 개별적인 것에 감동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얼굴들만 닥치는 대로 비추곤 한다. 그럴 때 뒷줄에 있는 나머지 얼굴들은 모조리 생략되고 만다. 기억 속에서도, 회한 속에서도 그들은 영원 속으로 도태되고 만다. 저 위대한 단테조차도 그들의 소멸을 멈출 순 없다. 모든 뮤즈*가 함께 어울려 내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는다 해도 존재를 상실한 그들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Non omnis moriar* -시기상조에 불과한 근심 걱정. 정녕 내가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으로 충분한지 단 한순간도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지금은 더욱더 그러한데. 뽀족한 수가 없기에 끊임없이 버리면서 선택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버렸으니 그만큼 복잡하고, 그만큼 성가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읗 상실한 대가는 고작 시 한 구절과 한숨뿐. 천둥과 같은 우렁찬 부름에 나는 꺼져가는 속삭임으로 간신히 대답한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침묵 속에서 견뎌야만 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으리라. 고향 산기슭에서 찍찍대는 생쥐 한 마리, 인생이란 결국 그 생쥐가 모래 위에 발톱으로 끼적거린 몇 개의 희미한 흔적과도 같은 것.   나의 꿈들-꿈속의 인구 밀도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사람들의 무리나 시끌벅적한 소동보다는 텅 빈 고독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아주 가끔씩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들를 때도 있다. 그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문고리를 돌린다. 메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빈집에 울려 퍼지고, 현관을 넘어 계곡으로 흩어져간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닌 듯 아주 조용하고 또 은밀하게.   무엇 때문에 이 공간이 내 안에까지 비집고 들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뮤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정령. *Non omnis moriar: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호레이스(B.C. 65~8)의 발라드에서 인용한 구절로                           "내 전부가 죽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   롯의 부인*/ 쉼보르스카   아마도 호기심 때문에 뒤를 돌아봤을 것이다. 어쩌면 호기심 말고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은그릇에 미련이 남아서. 샌들의 가죽 끈을 고쳐 매다가 나도 몰래 그만. 내 남편, 롯의 완고한 뒤통수를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어서. 내가 죽는다 해도 남편은 절대로 동요하지 않을 거라는 감격스러운 확신 때문에. 과격하지 않은 가벼운 반항심이 솟구쳐 올라. 추격자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적막 속에서 문득 신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샘솟았기에. 우리의 두 딸이 언덕 꼭대기에서 사라져버렸으므로. 문득 스스로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리를 확인하고 싶어서. 방랑의 덧없음과 쏟아지는 졸음 탓에. 대지 위에 꾸러미를 내려놓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걷고 있는 오솔길에 갑자기 뱀이 나타났기에. 거미와 들쥐와 어린 독수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기에.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은 그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거대한 패닉 상태에 빠져 꿈틀대고, 튀어 오르는 걸 바라보면서. 갑작스러운 외로움 때문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몰래 도망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소리치고 싶고,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 때문에. 혹은 돌풍이 불어와 내 머리를 헝클고, 내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던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이 소돔의 성벽에서 우리를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청천벽력처럼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만 같았기에. 아마도 분노 때문에 뒤를 돌아보았을지도. 어쩌면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파멸을 안겨주기 위해서. 아무튼 위에서 열거한 구구한 모든 이유 때문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단지 내 발밑에서 나로 하여금 발길을 돌리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쓴 성난 돌멩이 하나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지 내 눈앞에서 돌연히 끊겨버린 오솔길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지 성벽의 가장자리에서 뒷발을 세우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 한 마리 햄스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살금살금 기어갔다. 폴쩍 날아올랐다. 어둠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기 전까지. 어둠 속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돌덩이들과 죽은 새들이 무참히 추락하기 전까지. 숨을 쉴 수 없었기에. 나는 빙글빙글 돌고, 또 돌았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봤다면 아마도 내가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아마도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엇을지도. 어쩌면 내 얼굴은 도시를 향하고 있었을지도.   *롯의 부인: 이 시는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죄악에 물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로 한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에게 이 사실을 예고하면서, 도망쳐서 생명을 보존하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일렀으나, 롯의 아내는 그만 뒤를 돌아봐 결국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햄스터: 비단결쥣과의 하나. 의학 실험용으로 많이 쓰인다.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 / 쉼보르스카   시골 길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세 쌍의 다리를 배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채. 죽음의 혼란 대신 청결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이 광경이 내포하는 위험도는 지극히 적당한 수준. 갯보리와 박하 사이의 지정된 구역을 정확히 준수하고 있다. 슬픔이 끼어들 여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우리의 평화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동물들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숨을 거둔다. 우리들이 믿고 싶어 하는 대로, 감각이나 이승에 대한 미련을 훌훌 떨쳐버린 채. 우리들이 짐작한 대로, 저승보다는 덜 비극적인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 그들의 온순한 영혼은 절대로 어둠 속에서 우리를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그들은 배려가 뭔지를 안다.   여기 길 위에 죽은 딱정벌레 한마리가 있다. 그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가운데, 태양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저 한번 쳐다봐주는 것도 딱정벌레에겐 커다란 추모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지극히 태평스러워 보인다. 중요하고 심각한 일은 모조리 우리, 인간들을 위해 예정되어 있다. 삶은 오로지 우리들의 것이며, 언제나 당연한 듯 선행권(先行權)을 요구하는 죽음 또한 오로지 우리들의 전유물이다.   실험 / 쉼보르스카   우리를 울리고, 웃기기 위해서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한 본 영화를 상영하기에 앞서, 특별 보너스로 머리를 이용한 흥미로운 실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어딘가에 고착되어 있던 머리가 지금은 완벽하게 절단되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본체에서 깨끗하게 분리되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목의 뒷부순에 주렁주렁 매달린 튜브는 기계에 연결되어 체내의 혈액 순환을 유지시켜줍니다. 네, 머리는 잘 지내는 중입니다.   고통의 징후도, 충격의 흔적도 없습니다. 다만 손전등의 불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불안한 듯 눈으로 쫓고 있을 뿐,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은 코는 돼지 비계 냄새와 비실재(非實在)의 무취(無臭)를 예민하게 구분해냅니다. 입은 생리 현상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침을 흘립니다.   강아지의 충성스러운 머리, 강아지의 상냥한 머리는 부드럽게 쓰다듣어주기라도 하면 아직도 제가 몸에 귀속된 신체의 일부인 양 착각하면서 바보처럼 눈을 찡긋거립니다. 등뼈를 살짝 어루만져주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머리를 조아리던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에.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만약 이런 게 인생이라면, 머리는 그저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했을 테니까요.   미소 / 쉼보르스카   세상은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 거물급 정치인들은 늘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어야만 한다. 미소는 사기가 꺾이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이므로. 혹 사업이 꼬이고, 골치 아픈 시합과 불확실한 결과 탓에 속이 상할지라도 하얗고 가지런한 그들의 치아를 바라보노라면 언제나 위안이 된다.   회담장에 들어설 때나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설 때 그들은 항상 찡그리지 않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활기 넘치 자태와 명랑한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누군가를 환영하고, 또 누군가와 작별하며 구경꾼들과 카메라 렌즈를 위해 늘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야 한다.   치과 의술은 외교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빛나는 미래를 보장해준다. 매력적인 송곳니와 조화로운 앞니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일상적인 슬픔을 얼굴에 맘 놓고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이 시대가 편아하고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몽상가들은 말한다. "인류의 형제애가 지구를 웃음의 천국으로 바꾸어놓는다"고. 하지만 난 회의적이다. 제발 부탁이다. 더 이상 거물급 정치인들이 억지로 미소 지을 필요가 없도록 그들을 가만히 좀 내버려주자. 안면 근육을 억지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도록. 봄 또는 여름이 와서 진정 기쁠 때 그저 가끔씩 서두르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을 수 있도록. 그러나 인간은 본래 천성적으로 슬픈 존재. 나는 그 존재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기쁨에 젖는다.   여인의 초상 / 쉼보르스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게 스스로 변해야 한다. 이것은 쉽고, 불가능하고, 어렵고, 그래서 더더욱 해볼 만한 일이다. 필요하다면 그녀의 눈동자는 때로는 짙푸르게, 때로는 잿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리라. 검은빛을 띠다가도 때로는 명랑하게, 때로는 이유 없이 눈물을 머금으리라.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단 한 사람, 혹은 수많은 사람 중 '누군가'가 되어 그와 함께 곤히 잠자리에 들리라. 그를 위해 네 명이거나, 한 명도 아니거나, 아니면 단 한 명의 아이를 낳아주리라. 순진무구하지만, 가장 적절한 충고를 하게 되리라.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리라. 목 위에 머리가 없지만,* 곧 갖게 되리라. 야스퍼스*와 여성지를 동시에 읽게 되리라. 나사를 어디에 조여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근사한 다리를 만들어 세우리라. 항상 그래왔듯 젊은 모습으로, 갈수로 더 젊은 모습으로 남아 있으리라. 양손에는 날개가 부러진 참새와, 길고도 머나먼 여행을 위한 약간의 여비와, 고기를 토막 내는 식칼과, 붕대와, 한 잔의 보드카를 들고, 어디를 향해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 피곤하지도 않은지, 많이 고단하건, 조금 고단하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건, 아니면 아집 때문이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혹은 신의 가호 덕분이건.   *목 위에 머리가 없지만; 폴란드 속담에 "남자는 집안의 머리이고 여자는 목이다"라는 말이 있다. 목이 움직여야 머리도 움직일 수 있듯이 집안의 우두머리이자 가장은 남자지만 그 가장을 좌지우지하는 건 여자라는 뜻에서 비롯된 속담이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독일의 사회철학자로 칸트, 키르케고르, 니체 등의 영향을 받아 실존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서 을 썼다. 그는 실증주의 철학을 내세우는 과학에 대한 과신(過信)을 경고하고, 근원적인 불안에 노출된 인간의 비합리성을 포착하여 본래적인 인간 존재으 양태를 전개하는 실존 철학을 시대 구원의 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쓰지 않은 시에 대한 검열 / 쉼보르스카   시의 첫머리에서 이 여류 시인은 지구가 작다고 성급하게 단정 짓는 반면, 하늘은 극단적으로 거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잠시 인용해보자: "하늘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별들이 있다."   하늘에 관한 표현에서 우리는 시인의 무력감이 발견된다. 저자는 저 끔찍한 무한대의 공간에서 길을 잃었다. 수많은 행성들이 무기력한 휴면 상태로 그녀에게 충돌한다. 머지않아 그녀의 지성, 부연 설명하자면 '그다지 견고하지 못한' 지성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기 시작하리라: 태양 아래서, 햇살이 비치는 이 세상 곳곳에서, 우리는 결국 혼자가 아닐까?   이것은 확률의 법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발상, 오늘날 보편적으로 공인 받은 가설을 완전히 뒤집는 행위. 언제든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 있는 명확한 증거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아, 도대체 시라는 건 왜 이 모양인지. 마침내 우리의 여류 시인은 지구로 돌아왔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지구는 "목격자 없이도 열심히 돌아가는 행성"이며, "우주가 탄생시킨 공상 과학 소설"이다. '안드로메다'나 '카시오피아' 행성도 파스칼(1623~1662)의 절망에는 대적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인간의 배타적이고 고독한 본질은 점점 악화되어, 일종의 허무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리석은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기타 등등---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공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길을 밝혀주소서---"   시인은 인생이 마치 고갈되지 않은 재고품이라도 되는 듯 함부로 낭비되는 것에 대해 일종의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고집스러운 견해에 따르면 항상 양쪽 모두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전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타인들 위에 "주인으로 군림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덕적인 성향이 작품 속에서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도들은 조금난 덜 노련한 펜으로 씌여졌다면, 아마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리라.   애석하긴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시인은 "태양 아래서, 햇살 비치는 이 세상 곳곳에서, 우리는 과연 혼자일까, 아닐까?"와 같은 본질적으로 설득력이 결여된 명제를 고상한 미사여구와 일상적인 언어가 뒤섞여버린 자신의 무심하고 태평한 문체 속에 억지로 쑤셔 넣어버렸다. 그러니 과연 누가 이 작품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확신컨대 이 작품을 납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정답이다.   경고 / 쉼보르스카   우주 공간에 갈 때는 어릿광대를 데려가지 말 것, 이것이 내 충고다.   열네 개의 죽은 혹성들과 몇 개의 별, 그리고 두 개의 혜성을 지나 마침내 세번째 행성을 향해 길을 떠날 때쯤이면 어릿광대들은 유머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테니까.   우주는 말 그대로 우주다. 다시 말해 '완전하다'는 뜻. 어릿광대들은 바로 그 점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그 무엇도 어릿광대들을 기쁘게 하지는 못하리라. 시간으로도-너무나 아득하니까. 아름다움으로도-일말의 빈틈도 없으므로. 위엄으로도-유쾌한 분위기로 되돌리면서 너무나 힘이 들기에. 모두가 경탄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하품을 할 것이다.   네번째 행성으로 향하는 길은 더욱더 끔찍하리라. 경직된 미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잠, 망가진 균형, 쓸데없는 잡담, 까마귀는 부리에 치즈를 물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에는 파리가 앉았다. 원숭이는 사우나를 하고 있다--- -그래, 인생이란 다 이런 거지, 뭐   그들은 속박과 구속을 원한다. 무한한 시간보다는 목요일을 선택한다. 그들은 원시적이다. 광활한 음악의 세계보다는 조율 안 된 음 하나를 선택한다. 그들은 이론과 실제의 틈바구니, 원인과 결과의 사이에 존재할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결합된 우주 공간.   서른번째 행성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허허벌판 황무지라는 건 안 봐도 뻔하다는 생각에) 그들은 조종석에서 내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요" "손가락을 다쳤어요" 기타 등등 온갖 자질구레한 핑계를 늘어놓으며.   아, 얼마나 수치스럽고, 난처한 일인가. 우주 공간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비용을 탕진하고 말았다.   양파 / 쉼보르스카   양파는 뭔가 다르다. 양파에겐 '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파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양파 그 자체이다.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순수하게 양파스럽다. 그러므로 양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용감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피부 속 어딘가에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야생 구역을 감추고 있다.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옥, 저주받은 해부의 공간을. 하지만 양파 안에는 오직 양파만 있을 뿐 비비꼬인 내장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양파는 언제나 한결같다. 안으로 들어가도 늘 그대로다.   겉과 속이 항상 일치하는 존재, 성공적인 피조물이다. 한 꺼풀, 또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좀더 작아진 똑같은 얼굴이 나타날 뿐, 세번째도 양파, 네번째도 양파. 차례차례 허물을 벗어도 일관성은 유지된다. 중심을 향해 전개되는 구심성(求心性)의 아름다운 푸가. 메아리는 화성(和聲) 안에서 절묘하게 포개어졌다.   내가 아는 양파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둥근 배. 영광스런 후광을 제 스스로 온몸에 칭칭 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건 지방과 정맥과 신경과 점액과, 그리고 은밀한 속성뿐이다. 양파가 가진 저 완전무결한 우둔함과 무지함은 우리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자살한 사람의 방 / 쉼보르스카   당신들은 틀림없이 그 방이 비어 있었으리라 단정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등받이가 튼튼한 의자 세 개. 어둠을 밝히기에 딱 알맞은 전등 하나. 지갑과 신문이 놓인 책상이 있었습니다. 근심 걱정 없는 자애로운 부처, 고뇌와 비탄에 잠긴 예수. 행운의 상징인 일곱 마리 코끼리, 그리고 설합 속에 수첩 한 개가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거기에 우리들의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까?   책과 그림과 음반들이 없었다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거기엔 검은 손이 연주하는 위로의 트럼펫 선율이 있었습니다. 진심 어린 꽃송이를 들고 서 있는 사스키아*가 있었습니다. 신성의 불꽃이 뿜어내는 환희가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제 5장에서 힘겨운 고난을 마치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책장 안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 있고, 아름답게 무두질한 표지 위에는 금박으로 새겨진 도덕군자들의 이름이 자랑스레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정치가들이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문이 있으니 출입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창문이 있으니 내부의 정경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이 방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듯 텅 비어 있었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한 안경이 창턱에 놓여 있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파리 한 마리가 윙윙대며 그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편지가 적어도 뭔가를 밝혀줄 거라 기대하고 있군요. 하지만 감히 한마디 하리다. 애초에 편지 따위는 없었습니다. 한때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우리들은 유리컵에 기대어 세워놓은 텅 빈 봉투 속으로 들어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사스키아Saskia ; 화가 렘브란트(1606~1669)의 아내. 렘브란트는 자신의 아내를 소재로 한 몇편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시의 소재가 된 '화장대의 사스키아'(1641)이다. 사스키아가 손에 꽃을 들고 있는 이 그림은 독일 드레스덴의 알테 마이스터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오디세우스Odysseus;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군의 대장이었다. 라틴어로는 '율리시스'라고 불림.   자아비판에 대한 찬사 / 쉼보르스카   대머리 독수리에게는 스스로를 비판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 검은 표범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란 말이 낯설기만 하다. 피라니아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데 일말의 의혹도 품지 않는다. 방울뱀은 무조건 자기를 추겨세운다.   스스로를 냉철하게 평가할 줄 아는 자칼*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뚜기, 악어, 선모충 그리고 쇠파리도 마찬가지. 생긴 대로 살아가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범고래의 심장은 수백 근의 무게를 자랑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가볍기 짝이 없다.   태양계의 세번째 행성에 있는 순수한 양심보다 더 동물적인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쟈칼; 여우와 이리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육식 동물로 유럽 동남부,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 등지에 서식하는 갯과의 들짐승   인생이란------기다림 / 쉼보르스카   인생이란------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思考)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역할은 나만을 위한 것이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무엇에 관한 연극인지는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늘 엉망진창이다. 주어진 극의 템포를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중 즉흥 연기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맞는 즉석 연기를 해야 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사물의 낯설음과 부딪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려 있다. 내 본능은 어설픈 풋내기의 솜씨. 긴장 탓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그럴수록 더 큰 모멸감이 되돌아 올뿐. 정상 참작을 위한 증거들이 내게는 오히려 잔인하게만 느껴진다.   한번 내뱉은 말과 행동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 밤하늘의 별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했다. 서두르고 덤벙대다가 잘못 잠근 외투의 단추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우연이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   어느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미리 연습할 수 있다면, 어느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번 되풀이할 수 있다면! 하지만 금요일 되면 벌써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그러곤 묻는다-자, 모든 게 이상 없죠? (잔뜩 쉬어터진 거친 목소리로 막 뒤에서 헛기침으로 미리 귀띔을 해주는 일조차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임시로 마련된 무대 위의 간단한 오디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정교한 무대 장치 아래 서서 모든 사물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배치되었는지르 똑똑히 보고 있다. 구석구석 놓여 있는 소품들이 정확성과 견고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대를 회전시키는 장치는 벌써 오래전부터 작동 중이다. 저 멀리서 성운(星雲)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 이것은 틀림없는 개막 공연이다. 이 순간 내가 시도하는 모든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저지른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동작으로 영원히 굳어져버린다   스틱스 강변에서 / 쉼보르스카   자, 개별적인 영혼들이여, 여기는 스틱스 강*이다. 그래 맞다, 여기는 스틱스 강이다. 뭣 때문에 그렇게들 놀라서 쩔쩔 매느냐? 머지않아 확성기를 통해 카론*의 굵은 저움이 들려오면, 속세의 숲에서 놀라 달아았던 님프의 보이지 않은 손이 너희를 안식처로 데려갈 것이다. (대부분의 님프들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정식 계약을 맺고 이곳에서 일하는 중이다.) 강력한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든 견고한 방파제 너머로 켸케묵은 썩은 나룻배 대신 모터가 장착된 수백 개의 보트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인류의 과잉 번식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으니, 친애하는 영혼이여,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는지. 쓰레기 더미처럼 빽빽하게 솟은 고층 빌딩은 강변의 아름다운 정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승객들에게 효율적인 운행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숙박 시설과 창고, 각종 사무실과 여행사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중. 친애하는 영혼이여, 여기 위대한 신들 가운데 하나인 헤르메스*가 있다. 그는 최소한 몇 년 앞서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어느 지역에서 독재가 시작될지 철저하게 예측해서 배에 오를 승객들의 자리를 미리미리 배정한다. 스틱스 강을 건너는 운임은 무료, 단지 고풍스러운 고대 문명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 때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는 요금함이 형식적으로 놓여 있을 뿐; "이곳에 주화 또는 동전을 넣지 마시오." 자, 거기 있는 영혼이여. 시그마* 16구역에 정박한 타우 30에 승선하라. 비록 배가 만원이어서 숨 막히게 더울지라도 당신을 위한 공간은 어딘가에 반드시 있으리라. 필연이 요구하는 대로 컴퓨터가 당신의 자리를 정확히 마련해놓았을 테니. 타르타로스*에서도 마찬가지. 넘쳐나는 예약 탓에 몸을 펴기 힘들 정도로 비좁고 갑갑하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옷자락은 형편없이 구겨지리라. 내 작은 유리병 안에는 레테의 강에서 퍼온 마지막 반 방울의 물이 담겨있다. 영혼이여, 명심하라. 저승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갖고 확인을 해야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니라.   *스틱스 강; 그리스 신화에서 레테,  아케론과 함께 저승으로 흐르는 세 개의 강 중 하나이다.              사자(死者)는 사공인 카론의 배를 타고 이 강을 건너 황천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카론Caron; 저승으로 가는 스틱스 강의 나룻배를 젓는 사공 *헤르메스Herm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 신들의 사자(死者)이며 상업, 웅변, 발명, 도둑 따위의 수호신 *시그마: 그리스 문자의 열여덟 번째 자모, 영어의 s에 해당한다. *타르타로스; 그리스 문자의 열아홉 번째 자모, 영어의 t에 해당한다.   유토피아 / 쉼보르스카     모든 것이 명백하게 설명되어 있는 섬.   이곳에서는 탄탄한 증거의 토대를 딛고 서 있을 수 있다.   모든 길은 목적지를 향해 뻗어 있다.   덤불은 정답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이곳에는 혼돈에서 영원히 해방된 나뭇가지로 뒤덮인 '논리적인 가설의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우물가에는 곧고 탄탄한 '이해의 나무'가 '옳아! 이제 알겠어!'를 연방 외치는 중.   그 안쪽으로 '명백한 타당성의 계곡'이 드넓게 펼쳐진 푸른 숲이 있다.   일말의 의구심이라도 싹트기 시작하면 바람이 불어와 사방으로 흩어놓는다.   메아리는 부른 사람 없어도 저절로 응답하면서 세상의 비밀에 대해 기꺼이 속삭인다.   오른 쪽에는 '의미'가 보관된 동굴.   왼쪽에는 '심오한 깨달음'의 호수 바닥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온 '진실'이 수면 위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언덕에 오르면 꼭대기에서 '사물의 본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매력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다만 해변에서 희미한 발자국이 발견될 뿐. 그것들은 한 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바다에 몸을 던져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 것뿐이라는 듯.   삶이란 워낙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니.   무대 공포증 / 쉼보르카     시인, 그리고 작가. 흔히들 말한다. 시인은 작가가 아니라고, 그러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시인은 '시'를 작가는 '산문'을 쓴다?   산문 속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으며, 그 속에는 물론 '시'도 포함된다. 하지만 '시'는 단지 '시'여야만 한다.   '시'의 탄생을 널리 알리는 플랭카드에는 화려한 아르 누보풍으로 장식된 'ㅅ'자가 날개를 단 고풍스러운 라이어* 줄에 보란 듯이 멋지게 매달려 있다. 자, 나는 무대에 들어설 때 평범하게 뚜벅뚜벅 걷기보다는 사뿐사뿐 날아서 입장해야 마땅하리라.   어설프게 천사의 자태를 흉내내려면 밑바닥에 무거운 가죽 밑창을 댄 낡은 장화를 신고 쿵쾅대며 뒤뚱뒤뚱 걷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벼운 맨발이 나으리라.   드레스 자락을 좀더 늘어뜨릴 걸 그랬나. 가방이 아니라 기다란 소맷자락에서 시를 꺼내는 건 어떨까. 성대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흥겨운 퍼레이드를 앞세우고,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건 어떨가. 뎅-그-렁. 뎅-그-렁.   저기, 무대 위에는 금박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다리를 가진 매우 정적인 탁자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작은 탁자 위에는 조용히 연기를 내뿜는 조그만 촛대 하나.   무대에 마련된 광경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촛불 아래서 '시'를 낭독해야만 할 듯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전깃불 아래서 탁, 탁, 탁 자판을 두드리며 게계적으로 써내려간 '시'를.   이것이 과연 '시'일까, 아닐까, 만약 '시'라면 세부적인 장르는 무엇일까. 괜스리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과연 '시' 속에 '산문'이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아닐까. 산문 속에서 나의 '시'는 어떤 평가를 받으려나.   그러나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보라색 술이 달린 진홍빛 커튼을 드리운 이 어두컴컴한 무대에서만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음에야.   *라이어; 고대 그리스의 악기로 일곱 줄로 된 수금.   과잉 / 쉼보르스카     새로운 별이 발견됐다. 그렇다고 하늘이 더 밝아졌다거나 부족했던 뭔가가 채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거대하지만 동시에 까마득히 멀리 있는 별. 우리 육안에는 조그만 점으로 보일 만큼 멀고도 먼, 때로는 저보다 훨씬 작은 다른 별들보다 더 조그맣게 보이는 별. 만일 우리에게 놀라움을 음미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게 되련만,   별의 나이, 별의 무게, 별의 위치, 이 모든 사실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도 남을 만큼 위대하고 심오한 것이라 해도, 하늘과 가깝게 지내는 동료들이 모두 모여 축배의 포도주 한 잔 들이켜기에 충분할 만큼 중대하고 획기적인 가치를 지녔다 해도, 지금 이 순간 천문학자와 그의 아내, 친척들과 친구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저 '별'일 뿐. 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주로 지구와 관련된 잡담을 나누며 지구에서 생산된 땅콩을 으적으적 씹어 먹을 따름이다.   별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까이 있는 우리의 여인들을 위해 축배를 들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별은 언제나 좌충우돌, 계획성도 일관성도 없다. 날씨와 유행, 경기의 결과, 정책의 변화나 가계의 소득, 가치의 위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선동적인 과업이나 중공업 발전에도 보탬이 되지 못하고, 회담용 탁자의 번쩍이는 광택 속에 투영되는 일도 없다. 별은 우리가 열심히 헤아리는 인생의 무수한 날들보다 더 많고, 아득하다.   얼마나 많은 별들 아래서 사람들이 태어나는지,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별들 아래서 사람들이 죽어가는지, 대체 이런 질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람.   새로운 별들이 출현했다. -그 별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좀 가르쳐줘. -저 멀리 회색빛 구름이 보이지? 뭉게구름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와 그보다 왼쪽에 있는 아카시아 가지, 그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아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나.   고고학 / 쉼보르스카   자, 불쌍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여. 내 분야에서 진보는 이미 이루워졌다. 네가 나를 '고고학'이라 불르기 시작한 지 벌써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내게는 더 이상 화석의 신들이 필요치 않다. 판독하기 쉬운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 폐허도 마찬가지.   네가 가진 것 중 아무거나 좋으니 내게 보여다오. 그러면 네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알아맞히리라. 무언가의 안쪽, 깊숙한 바닥도 좋고, 아니면 꼭대기, 맨 윗부분도 좋다. 엔진의 파편, 브라운관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전선의 부스러기, 산산조각 난 손가락뼈. 그보다 더 작은 일부분, 아니 더욱 더 미세한 단서여도 상관없다.   네가 살던 시대에는 미처 개발되지 않았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소와 성분들 속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기억의 자취를 모두 일깨우리라. 핏자국은 영원히 남는 법. 거짓은 명백하게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 번호는 사방에 메아리 치고 있다. 모든 의혹과 의도들은 공개적으로 밝혀지리라.   너는 아마 믿을 수 없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침묵 속에 닫혀버린 네 목구멍 속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음을. 먼 옛날 네가 바라보았던 풍경을 네 안구에서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네가 인생에서 죽음 말고 또 무엇을 기다려왔는지 시시콜콜 파헤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네게 남겨진 것 중에 아무것도 아닌 '무(無)'를 내게 보여다오. 나는 그 '무'를 가지고 숲과, 도로와, 비행장을 만들고, 비열함과 다정함을 되살리고, 무너진 집을 다시 복구할 테니까.   나에게 너의 시를 보여다오. 그러면 네게 말해주리라. 어째서 더 일찍도, 더 늦게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너의 시가 탄생했는지를.   저런, 아니야, 너는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문자들이 잔뜩 써 있는 이 우스운 종이 쪼가리를 어서 치우렴. 내게 필요한 건 땅 위에 쌓아 올려진 네 둥그런 흙무덤과 옛날, 아주 오랜 옛날부터 공기 속을 유영하던 뭔가를 태우는 냄새, 오직 그것뿐.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 쉼보르스카   우리는 그것을 모래알갱이라 알고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모래 알갱이는 보편적이건, 개별적이건,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그릇된 것이건, 적절한 것이건, 이름 없이 지내는 익명의 상태에 익숙하다.   우리가 쳐다보고, 손을 대도 아무렇지 않다. 시선이나 감촉을 느끼지 못하기에. 창틀 위로 떨어졌다 함은 우리들의 문제일 뿐, 모래 알갱이에겐 전혀 특별한 모험이 아니다. 어디로 떨어지건 마찬가지. 별써 착륙했는지, 하강 중인지 분간조차 못하기에.   창밖에는 아름다운 호숫가 풍경, 그러나 풍경은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서 풍경은 아무런 색깔도, 형태도, 소리도, 향기도, 고통도 감지하지 못한다.   호수 바닥에는 바닥이 없고, 호수 기슭에는 기슭이 없다. 호수에 고인 물은 축축하지도, 건조하지도 않다. 자신이 물결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파도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바위를 향해 한 번도, 여러 번도 아닌 게 그렇게 휘몰아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하늘 아닌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 하늘에서 태양은 지지 않고, 다만 스러질 뿐. 무심하게 흐르는 구름 뒤로 태양이 숨지 않고, 몸을 가리면 그저 바람이라는 이유로 공기 속을 유영하는 바람이 구름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닐 뿐.   일 초가 지나고, 두번째 일 초, 세번째 일 초,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만 삼 초일 뿐.   급한 전갈을 지닌 사자(使者)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비유일 뿐. 상상이 빚어낸 가공의 인물이 급한 듯 서두른다. 인간의 것이 아닌 어떤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과장 없이 죽음에 관하여 / 쉼보르스카   죽음은 농담을 모른다. 별이나 다리에 대해서도. 직조 기술, 채광, 곡식의 경작법이나 조선술, 빵 굽는 비법에 관해서도 알지 못한다.   내일을 설계하는 우리의 대화 속에 화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의 마지막 말을 느닷없이 끼어넣는다.   자신의 본업과 직결된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무덤을 파는 일도, 관을 짜는 것도, 모든 작업에 으레 수반되는 뒷정리조차도.   오로지 '죽이는 순간'에만 열중한 나머지 매사를 서투르게 처리하고 만다. 체계적인 계획이나 훈련도 없이, 이제 막 뭔가를 습득한 미숙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처럼.   대개는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지만, 실패 또한 얼마나 많았는지. 헛된 발길질과 또다시 반복되는 시도!   때로는 공중의  파리를 잡기에도 힘이 부치고, 몇 마리의 애벌레들과 기어가지 시합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있다.   구근(球根)과 꼬투리, 더듬이, 지느러미, 호흡기, 짝짓기를 위한 깃털, 겨울나기에 필요한 털가죽, 죽음이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이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죽음에 업무가 잔뜩 밀렸음을 경고하고 있다.   적개심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다. 전쟁이나 테러를 동원한 우리의 지원 사격도 아직까진 턱없이 부족하다.   심장은 알 속에서 힘차게 고동친다. 갓난아기의 골격은 나날이 성장한다.   씨앗은 두개의 떡잎으로 싹을 틔우고, 때로는 지평선에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난다.   스스로가 전능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전혀 전능하지 않다는 살아 있는 증거.   어차피 삶에서는 단 한순간의 불멸도 기대할 수 없다.   죽음은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뒤늦게 찾아드는 법.   보이지 않는 문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헛되이 흔든다. 정해진 시간 안에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려 발버둥 쳐도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법이련만.   우리 조상들의 짧은 생애 / 쉼보르스카   서른 살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노년기는 단지 돌이나 나무의 특권일 뿐. 유년기는 새끼 늑대가 무럭무럭 자라듯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삶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서둘러야만 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첫눈이 내리기 전에.   열세 살에 자식을 낳은 엄마들, 갈대숲에서 새 둥지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열네 살의 사냥꾼들. 어부들을 휘하에 거느린 스무 살의 우두머리들. 그들은 막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벌써 사라졌버렸다. 불멸은 종말 속에 너무도 빨리 융화되었으니, 마녀들은 몇 개 안 남은 쓸만한 이빨을 갈면서 저주 섞인 가래침을 내뱉었다. 아버지의 눈앞에서 아들은 남자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텅 빈 동공 속에서 손자가 태어났다.   애초부터 나이 따위를 헤아릴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다만 그물과 냄비와 헛간과 도끼의 숫자를 세었을 뿐. 밤하늘의 보잘것없는 별들에겐 그처럼 관대하기만 하던 세월이 그들에겐 빈손을 불쑥 내밀었다가는 그것마저 아깝다는 듯 금세 거둬들이고 말았다. 한 발자국 가까이, 두 발자국 가까이 어둠 속에서 샘솟았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빛나는 강물을 따라서.   잃어버린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미뤄진 질문도, 때늦은 계시도 없었다. 단지 타이밍을 정확히 맞춘 생의 체험만이 있었을 뿐. 지혜는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기 전에 분명히 알아야만 했다. 모든 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에 똑똑히 들어야만 했다.   선과 악- 그들은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실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악이 승리하면, 선은 자취를 감춘다는 걸, 선이 모습을 드러내면, 악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는 걸. 그러므로 기쁨 곁에는 언제나 공포가 따르고, 절망에는 고요한 희망의 그림자가 깃들기 마련이란 걸. 인생이란 아무리 긴 듯해도, 언제나 짧은 법.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기엔 너무나도 짧은 법.   2 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 / 쉼보르스카   우리의 20세기는 이전의 다른 세기들보다 훨씬 발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입증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모든 연도에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흔들리는 걸음걸이, 숨가쁜 호흡.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이미 너무도 많이 일어났다. 또한 기대했던 수많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20세기는 행복을 향해서, 따뜻한 봄을 향해서 전진할 예정이었다.   공포는 골짜기 너머, 산 너머, 멀리멀리 내동댕이칠 예정이었다. 진실은 거짓보다 한발 앞서 목표 지점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예기치 못했던 몇 가지 비극이 우리를 엄습했다. 전쟁과 굶주림. 그와 유사한 다른 재앙들----   무방비 상태의 무력한 사람들을 존중할 예정이었다. 혹은 그에 준하는 다른 가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생을 즐기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임무를 떠맡은 것과 매한가지.   어리석다는 건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니다. 지혜롭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희망, 그것은 더 이상 저 풋풋한 어린 소녀도, 그와 비슷한 그 무엇도 아니리니, 애석하기 짝이 없구나. 바야흐로 신은 인간이 선하면서,  동시에 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수긍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함과 강함은 여전히 공존하지 못한다. 선한 인간은 독하지 못하고, 독한 인간은 선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내내 말했듯이,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보다 더 절박한 질문은 없다.   시대의 아이들 / 쉼보르스카     우리들은 시대의 아이들, 바야흐로 시대는 정치적.   너와, 우리와, 너희의 모든 일들, 낮과 밤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원하건 원치 않건 우리의 유전자에는 정치적인 과거가, 우리의 피부에는 정치적인 색채가, 우리의 눈동자에는 정치적인 양상이 담겨 있다.   무엇에 대해 말하건, 늘 반론이 돌아오고, 무엇에 대해 침묵하건, 늘 웅변으로 돌변하며, 마지막엔 걸국 정치적인 내용으로 귀결되어진다.   원초적인 밀림을 지날 때도 우리는 정치적인 토대 위에서 정치적인 발걸음을 옮긴다.   비정치적인 시 역시 사실은 정적일 따름이니 하늘 저편에는 휘영청 달이 밝건만, 그 아래 사물들은 달빛에 물들지 않았다. 여기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죽느냐 사느냐. 이 물음은 과연 무슨 뜻일까? 어디 한번 대답해봐요, 내 사랑. 결국 여기에도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다.   반드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모든 사물은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받았다. '석유'나 '단백질 식품' 또는 '가공 원료'로 존재할지언정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다.   아니면 '회담 탁자'여도 무방하리라. 몇 달씩 모여 탁자 모양에 대해 다투고: 그 주변에 둘러앉아 삶과 죽음에 대해 심각한 협상을 나누는 둥그렇거나 혹은 네모난 '회담 탁자'   그동안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동물들은 죽었고, 집들은 불탔고, 들판은 폐허가 되었다. 좀처럼 정치적이지 않았던 아득한 태고의 그 어떤 시대처럼.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 쉼보르스카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조그만 실험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라 밝은 대낮 한 개의 커다란 불빛 아래서, 어두운 밤, 수억만 개의 불빛 아래서.   어쩌면 우리들은 실험용으로 제작된 특별한 세대인지도 몰라. 유리병 속에서 또 다른 유리병으로 옮겨지고. 삼각 플라스크에 담겨져 이리저리 뒤섞이고, 눈보다 더 정교한 그 무엇에 의해 면밀히 관찰되고, 그러다가 결국엔 각각 핀셋으로 접혀서 들어 올려질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영 딴판일지도 몰라. 아무런 간섭도, 훼방도 없을지 몰라. 모든 변화는 정해진 계획에 따라 스스로 생겨나고, 스스로 움직일 지도 몰라. 그래프의 눈금은 미리 예측한 지그재그의 윤곽을 천천히, 정확하게 아로새겨 나갈지도 몰라.   지금까지 그래왔듯 우리에겐 흥미로운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감시용 모니터를 작동시키는 일은 좀처럼 없을지도 몰라. 단지 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그것도 큰 규모일 경우에만, 혹은 지구의 동토(凍土) 위로 미확인 비행 물체가 출현했을 때만, 아니면 A지점에서 B지점까지 대규모의 민족 이동이 발견된 상황에만.   어떠면 정반대일지도 몰라. 그것에선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사건들에 관심을 보일지도 몰라. 자, 보라구! 거대한 화면 속에서 어린 소녀가 소매에 단추를 달기 위해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잖아. 마침내 경보가 울리면 직원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겠지. 박동하는 조그만 심장을 가냘픈 몸 속에 품고 있는 저 사랑스러운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손에 들고서도 얼마나 의연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지. 누군가가 기쁨에 넘쳐서 소리칠 거야. "자, 어서 가서 보스에게 전하시오. 와서 직접 보시라고!"   공짜는 없다 / 쉼보르스카   공짜는 없다. 모든 것은 다 빌려온 것이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놓아야 하며,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   자. 여기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심장은 반납 예정이고, 간도 돌려주기로 되어 있다. 물론 개별적인 손가락과 발가락도 마찬가지.   계약서를 찢어버리기엔 이미 늦었다. 내가 진 빚들은 전부 깨끗이 청산될 예정. 내 털을 깍고, 내 가죽을 벗겨서라도.   나는 채무자들로 북적대는 세상 속을 조용히 걸어 다닌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날개에 대한 부채를 갚으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중. 또 다른 이들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나뭇잎 하나하나마다 셈을 치르는 중.   우리 안의 세포 조직은 송두리채 채권자의 손으로 넘어가버렸다. 솜털 하나, 줄기 하나도 영원히 간직할 순 없는 법.   명부의 기록은 모두 다 정확하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빈털터리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남겨질 예정이다.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이 복잡한 청구서를 스스로 펼쳐 보게 되었는지.   이 거래에 반대한 지금 거절 증서를 우리는 '영혼'이라 부른다. 이것은 명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유일한 항목이기도 하다.   슬랩스틱 코미디 / 쉼보르스카   만일 천사가 있다면, 절망으로 끝난 희망에 대한 우리의 소설을 그들이 과연 읽고 싶어 할는지 의심스럽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시를 외면할 것 같아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의 연극 속에 등장하는 비명과 경련은-짐작컨대- 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리라.   천사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비번을 맞은 천사들, 그러니까 비인간적인 그 존재들은 우리를 보면서 무성영화 시대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떠올리리라.   옷깃을 갈기갈기 쥐어뜯고, 고통으로 이를 갈며, 탄식하고 울부짖는 자들보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론-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지푸라기 대신 가발을 움켜잡거나 배고파서 자신의 구두끈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저 불쌍한 사내를 훨씬 선호하리라.   허리에서 위쪽으로는 뜨거운 가슴과 열정, 하지만 그 아래 바짓가랑이 속에는 겁먹은 생쥐 한 마리. 오, 그래, 그들은 틀림없이 손뼉 치며 환호하리라.   끊임없이 계속되던 무모한 추적은 도망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탈주로 뒤바뀐다. 터널의 끝에서 기다리는 한 줄기 빛은 호랑이의 눈동자임이 밝혀진다. 백 가지 재앙은 백 가지 자기 심연 위를 구르는 백 가지 익살스러운 재주넘기로 탈바꿈한다.   만일 천사가 존재한다면 -부디 바라건대- 그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리라. 공포 속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서도 모든 것이 완벽한 적막 속에 자행되기에 차마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 아슬아슬한 쾌락의 본질을.   용기 내어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그들은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신나게 박수를 치리라. 그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은 절대로 슬퍼서가 아니다. 그저 너무 많이 웃었기 때문이다.   사건들에 관한 해석 제1안 / 쉼보르스카     만일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면, 우리는 아마도 오랫동안 망설였으리라.   우리에게 제공된 육체는 어딘가 불편하고, 제대로 맞지 않아 그만 흉하게 망가져버렸다.   허기를 달래라고 제공된 음식들은 도리어 우리를 메스껍게 했다. 수동적으로 세습된 각종 성향들과 분비샘의 횡포는 우리를 질리게 만들었다.   우리를 에워싸기로 한 세상은 끊임없이 썩어 들어갔다. 그 속에서 원인에 대한 결과가 격노하여 함성을 질렀다.   우리에겐 개개인의 운명을 감시하라는 사명이 주워졌지만 무한한 슬픔과 공포 때문에 다수가 거부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야기되었다. 죽은 아기를 낳기 위해 출산의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있을까, 만일 결코 뭍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뱃사람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들은 죽음에 동의했다. 그러나 모든 유형에 다 찬성한 것은 아니다. 사랑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사랑만 그렇다.   바다가 시시각각 변하듯 예술 또한 유한한 것이라고 음악의 신 뮤즈는 우리에게 조심스레 경고했다.   모두가 이웃 나라의 간섭이 없는 조국을 원하며 전쟁과 전쟁 사이 휴전 기간 동안에 태어나기를 갈망했다. 우리 중 아무도 권력을 장악하거나 혹은 그것에 복종하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 혹은 타인의 헛된 환상으로 인해 희생양이 되기를 바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행렬이나 군중 속으로, 아니 한술 더 떠,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부족들 속으로 뛰어들기를 원하는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순 없었으리라.   바로 그때 너무 일찍 빛을 발한 몇 개의 별들이 느닷없이 소멸되고, 식어버렸다. 결정을 내리기엔 최적이 시간이다.   수많은 불길한 징조 속에서 마침내 후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은 탐험가 또는 의사가 되려 했고, 몇몇은 인정받지 못하는 고독한 철학자를 원했다. 이름 없는 정원사를 꿈꾸는 사람도, 예술가나 음악가 지망생도 있었다. -더 이상 다른 신청자는 없었지만 아무튼 모두가 자신의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다.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금방 되돌아와야 하고, 또 반드시 돌아와야 할 짧은 여행을 제안 받았다.   영원성이 철저히 제거된. 유한한 세월 속으로의 여행, 단조롭고 한결같은, 동시에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의 여행, 어쩌면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문득 우리는 의구심을 느꼈다.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과연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한발 앞서 내리는 결정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망각 속에 던져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만일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저 아래, 저곳에서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우리는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연약한 갑초가 바위틈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도 결코 자신을 바위에서 떼어놓지 못할 거라는 어리석은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서,   조그만 동물 하나가 굴속에서 열심히 구멍을 파고 있었다.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활기와 희망을 품고서.   순간 우리 스스로가 소심하고, 보잘것없고, 우습기 짝이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저 세상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참을성이 부족한 이들이 제일 먼저 떠났다. 그들은 그곳에서 첫번째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래, 그것은 틀림없는 생생한 불꽃이었다.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현실의 강기슭에서 활활 불을 피웠다.   그들 중 몇몇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귀향길에 올랐다. 그러나 끝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과연 그들의 손에는 저 세상에서 쟁취한 뭔가가 들려 있었을까? 정말로 그랬을까?   이것은 커다란 행운 / 쉼보르스카   이것은 커다란 행운 우리 스스로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눈군가가 아주 긴 세월 동안, 적어도 이 세상보다는 더 오래된 까마득한 옛날의 그 시점으로 돌아가 항구히 존재해야만 하리.   한계투성이에다 말썽을 일으키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육신 따위는 훌쩍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하리.   연구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보다 선명한 영상을 위해셔, 결정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재촉하고, 옭아매는 시간의 한계쯤은 당당히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리.   자, 이런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세부적인 사랑이나 자질구레한 시간들과는 영원히 작별의 인사를 나누시오,   요일을 계산하고 따져보는 것쯤은 얼마든지 무의미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어야 하리.   우체통에 편지를 던져 넣는 일 정도는 젊은 날의 어리석은 객기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하리.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표지판 따위는 정신 나간 소리쯤으로 무시할 수 있어야 하리.   순간 / 쉼보르스카   초록빛으로 물든 언덕길을 오른다. 출발, 그 풀밭 위 작은 꽃들, 그림책 삽화에서 본 듯한 풍경, 안개 낀 하늘엔 어느새 푸른 기운이 감돌고 저 멀리 또 다른 봉우리가 적막 속에 펼쳐진다.   고생계(古生界)도 중생계(中生界)도 애초에 없었던 듯 스스로를 향해 포효하는 바위도, 심연의 융기도 없었던 듯, 번쩍이는 섬광 속엔 낮의 숨결을 찾을 길 없다.   뜨거운 열병 속에서도 얼음장 같은 오한 속에서도 아직 평원은 여기까지 떠밀려오지 않은 듯,   바다가 소용돌이치고 해안선이 산산조각 나는 것도 오로지 딴 세상에서나 벌어지는, 낯선 일인 듯.   현지 시각 9시 30분, 모든 것은 약속대로 정중하게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골짜기의 시냇물은 시냇물의 모습으로 한결같이. 오솔길은 오솔길의 모양으로 언제나 그렇게. 숲은 숲의 형상을 갖추고 영원히 그 자리에. 언덕 위를 나는 새들은 언덕 위를 나는 새의 역할에 충실하게.   시선이 닿는 저 너머까지 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긴 찰나의 순간. 지속되기를 모두가 그토록 염원했던 지상의 무수한 시간 중 하나.   무리 속에서 / 쉼보르스카   나는 바로 이러이러한 사람. 그것은 모든 우연이 그러하듯 이해할 수 없는 우연.   다른 이들이 내 조상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둥지에서 날아올랐을 수도. 다른 그루터기에서 다른 껍데기를 쓰고 기어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자연의 옷장에는 꽤나 많은 옷들이 걸려 있다. 거미, 갈매기, 들뒤의 의상. 모든 것이 맞춘 것처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닳아서 해질 때 까지 각자 주어진 의상을 열심히 입는다.   나 역시 스스로 선택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덜 개별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물고기 떼나 개미집, 윙윙대는 벌 떼의 일부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속의 한 조각으로.   지금보다는 훨씬 덜 행복한 존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누군가의 모피를 위해, 혹은 명절 음식용으로 사육될 수도 있었기에. 유리 상자 속에 갇혀 그 안에서 헤엄쳐 다니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었기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길 속에 속수무책 대지에 뿌리박은 한 그루의 나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휩쓸려 무자비하게 짓밟혀진 풀잎.   누군가에게는 찬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어두운 별빛 속을 돌아다니는 수상쩍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기에.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단지 공포의 대상이거나 혐오감. 혹은 동정심이나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면?   지금 내가 속한 종족이 아닌 전혀 다른 종족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앞길이 막막하게 막혀버렸다면?   지금껏 운명은 내게 자애로웠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자꾸만 뭔가가 견주고 싶어 하는 내 열망이 거세당할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일말의 의구심도 없이 이것은 내가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름 / 쉼보르스카   구름을 묘사하려면 급히 서둘러야만 하지. 순식간에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형상으로 변하기에.   구름의 속성이란 모양, 색조, 자세, 배열을 한순간도 되풀이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기억할 의무가 없기에 사뿐히 현실을 지나치고,   아무것도 증언한 필요 없기에 곧바로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네.   구름과 비교해보면 인생이란 그래도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 상당히 지속적이고, 꽤 영원하네.   구름 곁에서는 바윗덩이조차도 의지할 수 있는 형제처럼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네. 그에 비하면 구름은 마치 변덕스러운 먼 사촌 누이 같네.   인류여, 원한다면 계속해서 존재하라. 그 다음엔 차례차례 죽는 일만 남았으니. 구름에겐 이 모든 것이 조금도 낯설거나 이상스럽지 않다네.   너의 전 생애와 아직은 못다한 나의 생애 너머에서, 구름은 예전처럼 우아하게 행진을 계속하네.   구름에겐 우리와 함께 사라질 의무가 없다네. 흘러가는 동안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없다네.   /최성은 역.   수화기 / 쉼보르스카   잠에서 깨어나는 꿈을 꾼다, 전화벨 소리가 들려오기에.   죽은이가 내게 전화한다고 굳게 믿는 꿈을 꾼다.   수화기를 들기 위해 손을 내미는 꿈을 꾼다.   그런데 늘 사용하던 그 수화기가 아니다. 갑자기 무거워졌다. 마치 어떤 것에 꽉 매여 있거나 어딘가에 깊숙이 파묻혔거나 무언가가 뿌리를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수화기를 들어 올리려면 지구 전체를 끌어당겨야만 하리라.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며 쩔쩔매는 꿈을 꾼다.   적막이 찾아오는 꿈을 꾼다. 전화벨 소리가 잠잠해졌기에   스르르 잠들었다가 또다시 벌떡 깨는 꿈을 꾼다.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쉼보르스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식물들의 침묵 / 쉼보르스카   나와 너희들 사이의 일방적인 낮익힘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구나.   나는 잎이 뭔지, 꽃잎과 이삭, 솔방울 줄기가 어떤 모양인지. 사월이나 십이월에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잘 알고 있어.   너희는 내 관심따위엔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나는 부러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너희들 중 몇몇을 정성껏 들여다보곤 하지.   단풍, 우엉, 우산이끼. 겨우살이, 히스, 향나무, 물망초, 너희는 나한데 이름으로 불리지만, 너희에게 나는 아무 이름도 없어.   우리는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거란다. 동승한 사람들끼리는 의례 이야기를 나누는 법. 최소한 날씨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거나 스쳐 지나가는 역들에 대해서 떠들곤 하지.   우리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화제가 부족하진 않을 거야. 우리를 지탱해주는 건 같은 별이고, 같은 법칙에 따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니까. 자신만의 방법으로 뭔가를 이해하려 한다는 점. 우리가 모르는 것들조차도 서로 많이 닮았으니까.   뭐든 물어봐도 좋아. 최대한 열심히 설명해줄께. 내 두 눈으로 무얼 보고 있는지. 어째서 내 심장이 고동치는지. 왜 내 육신은 대지에 뿌리박혀 있지 않은지.   그러나 하지도 않은 질문엔 대답할 도리가 없잖니. 게다가 너희에게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의미라면 더더욱 그렇지.   덤불, 관목, 잔디, 골풀- 내가 너희를 향해 속삭이는 건 전부 혼잣말이구나. 너희는 좀처럼 귀 기울이려 하지 않으니.   꼭 필요한 줄 알면서도 불가능한 게 바로 너희들과의 대화. 황망한 삶에서 시급한 줄 알면서도 기약 없이 미루다 끝내 실현되지 못하는.   어린 여자아이가 식탁보를 잡아당긴다 / 쉼보르스카   여자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 지 일 년 남짓 되었다. 모든 것이 미리 조정되고, 통제되어질 수 없는 이 세상에.   오늘 시도하는 실험은 제 스스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사물들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이 밀고, 당기고, 들어 올리고, 자리를 옮기는 일을 도와주어야만 한다.   물론 모든 사물이 현재 위치에서 이탈하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장롱과 찬장, 단단한 벽과 탁자는 꿈쩍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고집 센 탁자 위에 깔린 식탁보는 -만일 끝 자락이 제대로만 손에 잡힌다면- 여행을 떠나려는 의지를 한껏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식탁보 위에는 유리잔, 접시들, 우유병, 숟가락, 사발이 이리저리 놓여 있어 흔들고픈 욕망을 일렁이게 만든다.   그것들이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비틀거릴 때 과연 어떤 움직임을 택할지 너무나 궁금하다. 천장에서 정처 없이 헤매 다닐까? 등잔 근처를 빙글빙글 비행할까? 창턱을 껑충 뛰어넘어 나무를 향해 날아갈지도?   위대한 과학자 뉴턴 역시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이봐요, 뉴턴 선생님, 하늘에서 내려다보다가 손이나 흔들어주시죠.   이 실험은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 꼭 그렇게 되리라.   추억 한토막 / 쉼보르스카   한창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우리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네.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 아, 무척이나 아름다웠네. 그녀의 자태가 눈부시게 황홀했기에 우리는 무심히 휴가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네.   바시아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반사적으로 남편의 손을 꼭 잡았네. 순간 나는 생각했지: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리라. -당분간 여기 오지마 며칠 동안 내내 비가 올 거래.   과부인 아그네슈카만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그 사랑스러운 소녀를 반겼다네.   웅덩이 / 쉼보르스카   어린 시절 두려움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언제나 웅덩이를 피해 가곤 했다. 소나기가 내리고 난 뒤 새로 생긴 것일수록 더욱 조심했다. 겉보기에는 서로 비슷비슷하지만 개중에는 한없이 깊은 것도 있으니까.   한 걸음 내닫는 순간 몸 전체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도약하는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좀더 깊숙이 밑바닥으로 수면에 비추어진 구름 저편까지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시간이 지나면 웅덩이는 마르고,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나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덫에 걸려버렸다. 공간 속으로 끄집어내지 못한 비명 소리와 더불어.   먼 훗날에야 깨달았다. 세상의 법칙 속에는 항상 운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슬아슬 불운이 덮쳐올 듯해도 꼭 실제로 일어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첫사랑 / 쉼보르스카   사람들은 말한다. 첫사랑이 가장 소중하다고. 매우 낭만적이긴 하지만 내 경우는 아니다.   우리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가 없어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다 사라져버렸지만.   자질구례한 추억의 물건들을 만져보거나 리본도 아닌 노끈으로 아무렇게나 묶인 편지 뭉치를 열어볼 때도, 내 손은 결코 떨리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단 한번의 만남 차가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 나눈 몇 마디 의례적인 대화.   다른 사랑들은 지금껏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다. 그러나 내 첫 사랑은 호흡이 가빠 숨을 내쉴 수조차 없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내 첫사랑. 감히 다른 사랑이 못하는 걸 할 수 있으니- 기억조차 나지 않고, 꿈에도 깃들지 않는 그 사랑은 나를 죽음에 익숙하게 만들어버린다.   영혼에 관한 몇 마디 / 쉼보르스카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하게 된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 영혼이 없이도 시간은 그렇게 잘만 흘러간다.   어린 시절 이따금씩 찾아드는 공포나 환희의 순간에 영혼은 우리의 몸속에 둥지를 틀고 꽤 오랫동안 깃들곤 했다. 때때로 우리가 늙었다는 섬뜩한 자각이 들 때도 그러하다.   가구를 움직이거나 커다란 짐을 운반할 때 신발 끈을 꽉 동여매고 먼 거리를 걷거나 기타 등등 힘든 일을 할 때는 절대로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설문지에 답을 적거나 고기를 썰 때도 대개는 상관하지 않는다.   수천 가지 우리의 대화 속에 겨우 한 번쯤 참견할까 말까,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원체 과묵하고 점잖으니까.   우리의 육신이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근무를 교대해버린다.   어찌나 까다롭고 유별난지 우리가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하찮은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거는 우리들의 암투와 떠들썩한 음모는 영혼을 메스껍게 한다.   기쁨과 슬픔 영혼에게 이 둘은 결코 상반된 감정이 아니다. 둘이 온전히 결합하는 일치의 순간에만 우리 곁에 머무른다.   우리가 그 무엇에도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나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는 순간에만 영혼의 현존을 기대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물 가운데 추가 달린 벽시계와 거울을 선호한다.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므로.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갈 건지 아무 말도 않으면서 누군가가 물어봐주기를 학수고대한다.   보아하니 영혼이 우리에게 그러한 것처럼 우리 또한 영혼에게 꼭 필요한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이른 시간 / 쉼보르스카   나 아직 잠들어 있다. 그동안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창문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어둠은 회색빛으로 바랜다. 방이 흐릿한 공간 너머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창백하고 불안정한 광선들이 저편을 요청한다.   모든 일들이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한다. 이것은 엄연한 의식이므로. 천장과 벽 사이의 평명에 빛이 스며들면 어떤 것으로부터 다른 어떤 것이, 오른 쪽으로부터 왼쪽으로, 형상의 선명한 분리가 시작된다.   사물과 사물 사이 비좁은 간격에서 먼동이 터오고, 유리컵과 문고리에서 첫번째 섬광이 반짝 빛난다. 모두가 단지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명확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어제 어디론가 밀려났던 그것,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그것이 지금은 확고한 틀 안에 담겨져 있다. 아직 세부적인 항목들만 시각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뿐.   그러나 주의, 또 주의! 여러 가지 징후에 따르면 색깔은 반드시 되돌아오는 법. 심지어 가장 사소한 존재들조차 자신의 고유한 빛깔과 그림자의 음영을 회복하는 법.   드물지만 이따금 날 놀라게 하는 그것은 꼭 필요한 일. 일상적으로 나는 '때늦은 증인'의 역할을 연기하며 늦은 잠에서 깨어난다. 이미 기적이 일어나고 난 뒤에. 이미 일과가 확정되고 난 뒤에. 새벽이 아침으로 멋지게 탈바꿈하고 난 뒤에.   통계에 관한 기고문 / 쉼보르스타   백 명의 사람들 가운데   모든 것을 아주 잘 하는 사람 -쉰둘   매 순간 확신이 없는 사람 -나머지 전부 다   비록 오래가진 못할지라도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최대한 많이 잡아 마흔아홉   달리 행동하는 법을 몰라 늘 착하기만 한 사람 -넷, 아니, 어쩌면 다섯   시기심 없이 순수하게 찬사를 보낼 줄 아는 사람 -열여덟   누군가에 대한, 혹은 무언가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일흔 일곱   진심으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 -최대한 스물 하고 몇 명   혼자 있을 땐 전혀 위협적이지 않지만 군중 속에서는 사나워지는 사람 -틀림없이 절반 이상   주변의 강압에 의해 잔인하게 돌변한 사람 -이 경우는 근사치조차 모르는 편이 나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는 사람보다 단지 몇 명 더 많을 뿐   인생에서 몇 가지 물건들 말고는 아무것도 건질 게 없는 사람 -마흔 (내가 틀렸길 간절히 바라지만)   불빛도 없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여든 셋 (지금이건, 나중이건)   연민을 느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아흔아홉   죽게 마련인 사람 -백 명 중에 백 명 모두 이 수치는 지금껏 한번도 바뀐 적이 없음.   9월 11일자 사진 / 쉼보르스카   그들은 불타는 계단에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몇 명에서 조금 더 많거나 아니면 적거나.   사진은 그들을 어떤 생에서 멈춰 세웠다. 대지를 향하고 있는 미지의 상공에서 그들의 현재를 온전히 포착했다.   현재로선 모든 것이 무사하다. 각자의 얼굴도 그대로고, 몸속에서 빙글빙글 순환 중인 피도 그대로다.   머리카락이 엉클어지고, 주머니에서 열쇠와 동전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기까지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제 막 열린 어떤 공간의 가장자리. 공기가 유영하고 있는 한정된 구역 내에서.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뿐.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   목록 / 쉼보르스카   질문 목록을 만들어보았다. 솔직히 답변을 기대하진 않았다. 대답을 듣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거나, 아니면 그 대답을 이해할 여력이 내게는 부족하므로.   질문 목록은 매우 길며, 중요한 사안과 덜 중요한 사안을 포함하고 있다. 당신들을 따분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에 몇 가지만 발표하겠다.   무엇이 진실이었는가. 행성, 혹은 행성의 대체 공간에 마련된 이 공연장에서, 입장권과 퇴장권을 한꺼번에 요구하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내 비록 생생하게 현존하는 다른 세상들과 비교할 수 있을 때를 놓쳐버렸지만 아무튼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 현실 속의 이세상은 어떠한가.   내일자 신문에는 무엇이 씌어 있을까.   전쟁은 언제 끝나며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네게서 훔쳐간-내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반지는 누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까.   존재하면서 동시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이 열 명의 사람들은 또 어떤가- 우리는 정말로 아는 사이였을까.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M이 내게 애써 말하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옳은 것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옳지 않은 것을 선택했을까. 더 이상 혼동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잠들기 직전에 끼적였던 몇몇 질문들은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때로 나는 의심을 품곤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타당한 기호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질문들 또한 언젠가는 나를 버리고 홀연히 사라지리라.   모든 것 / 쉼보르스카   "모든 것"- 이것은 뻔뻔스럽고 주제넘기 짝이 없는 낱말이다. 따옴표 안에 집어넣고,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마치 빼먹은 건 하나도 없다는 듯, 집중하고, 아우르고, 수용하고 포함하는 척 그럴듯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 그저 순간적인 폭풍의 끝자락에 불과할 뿐이면서.   부재 / 쉼보르스카   내 어머니가 즈둔스카 볼라 출신의 B모 씨와 결혼할 가능성은 절대로 희박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면-그건 내가 아닐 것이다. 그 애는 사람 이름이나 얼굴, 혹은 처음 듣는 멜로디를 외우는데 나보다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척 보기만 해도 새의 품종을 알아맞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어 점수는 형편없지만 물리나 화학에서 뛰어난 점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 작품들보다 훨씬 흥미로운 시를 남몰래 끼적거릴지도 모른다.   같은 시각, 내 아버지가 자코파네 출신의 R 모 씨와 결혼할 가능성은 절대로 희박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면-그건 내가 아닐 것이다. 그 애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에 훨씬 고집스러울지도 모른다. 두려움 없이 깊은 물에 첨벙 뛰어들지도 모른다. 여론의 동요에 쉽게 흔들릴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지만,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적은 거의 없고, 주로 마당이나 운동장에서 사내아이들과 공을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두 아이는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짝 친구는 절대로 아닐 테고, 혈연관계도 아닐 테니, 단체 사진에서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리라.   "이봐요, 여학생들, 이쪽에 서보세요." -사진사가 외친다- "저기 작은 학생은 앞으로, 거기 키 큰 학생은 뒷줄로. 내가 신호를 하면 다들 예쁘게 웃으세요. 자, 마지막으로 인원수를 점검해보죠. 모두 다 있는 거죠?"   "네 아저씨, 모두 다 있어요."   ABC / 쉼보르스카   이제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나에 대해서 A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B는 결국 나를 용서했는지. 어찌하여 C는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했는지. D의 침묵에 E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지. F가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혹시라도 기대를 했었다면) 모든 걸 잘 알면서도 G는 왜 모른 척했는지. H는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I가 덧붙이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의미라도 남겼는지. J와 K, 그리고 나머지 알파벳에게.   우리가 없는 이튿날에 / 쉼보르스카   아침에는 안개가 끼고 서늘하겠습니다. 서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와 사야가 흐려지겠습니다. 도로는 미끄럽겠습니다.   한낮에는 북쪽에서 다가오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곳에 따라 점차 날씨가 개는 곳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강한 돌풍이 불어와 천둥 번개가 칠 수도 있겠습니다.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기압은 오르겠습니다.   내일은 대체로 날씨가 맑겠습니다만, 여전히 살아 계신 분들에겐 우산이 유용하겠으니 외출 시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노교수 / 쉼보르스카   그에게 물었다. 그 시절에 대해서. 순진하고, 성급하고 어리석고, 미처 준비를 갖추지 못했던, 우리들이 아직 젊은이었던 시절.   그 시절에서 남은 게 조금은 있죠, 젊음만 빼고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여전히 알고 있냐고. 인류에게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그건 아마 착각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일걸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미래에 대해서, 여전히 앞날이 훤히 보이느냐고.   그러기엔 역사책을 너무 많이 읽었네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사진에 관해서. 액자 속에 있는, 책상 위에 있는.   예전엔 있었지만, 다들 떠나버렸어요. 남동생, 사촌, 제수씨, 아내, 아내의 무릎 위에 앉은 딸, 딸의 품에 안긴 고양이.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벚나무. 그 벚나무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때로는 행복하냐고.   아직도 일을 합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벗에 대해서. 아직 친구가 있느냐고.   자기들도 벌써 전(前) 조교를 갖게 된 과거에 내 전 조교였던 몇몇 친구들. 살림을 맡아주는 루드밀라 부인, 아주 가까운 친구 하나는 멀리 해외에 나가 있고, 도서관에 근무하는 두 명의 연인들, 미소가 아름답죠. 우리 집 맞은편에 사는 어린 그제쉬,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기분은 어떤지, 건강은 괜찮은지.   커피와 보드카 담배를 삼가고, 상념이든 물건이든, 무거운 건 절대 짊어지고 다니지 말라더군요. 그럴 때면 못 들은 척할 수밖에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정원에 대해서. 그 정원에 놓인 벤치에 대해서.   날씨가 화창한 저녁이면 하늘을 보곤 해요.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니까요. -그가 대답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121~180):로마 제국의제 16대 황제. 로마의 5명의 현명한 황제 중 마지막 황제였으며, '철인황제(哲人皇帝)라고 불렸다. 후기 스토아파의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저서로는 을 남겼다. 그가 죽은 후 로마 제국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은 데다가 페스트까지 성행하는 바람에 쇠퇴하게 된다.   관망(觀望) / 쉼보르스카   타인처럼 스쳐갔다. 어떤 말도, 몸짓도 없이, 그녀는 가게로 향하고, 그는 자동차로 걸어갔다.   어쩌면 당황해서, 어쩌면 경황이 없어서, 아니면 짧은 시간, 서로를 영원토록 사랑했음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하긴 그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보장도 없다. 멀리서는 그랬지만, 가까이서는 전혀 아닐 수도.   나는 창가에서 그들을 봤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틀릴 확률은 매우 높다.   그녀는 유리문 안쪽으로 사라졌고, 그는 운전석에 올라 서둘러 출발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일어났다 한들 또 어떠리.   내가 본 장면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단지 한순간뿐이었으니 지금 나는 덧없는 시구 속에서 독자 여러분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는 중. 그것은 슬픈 일이었노라고.   사건에 휘말린 어느 개의 독백 / 쉼보르스카   개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선택된 개였다. 혈관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고, 그럴듯한 족보도 있었다. 자연의 향기를 듬뿍 마시며, 고산 지대에서 살았다. 햇빛이 쨍쨍할 땐 풀밭에서, 비가 오면 전나무 숲에서, 눈이 내릴 땐 동토(凍土)에서 지냈다.   번듯한 집도 있고, 시중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게 먹이를 공급하고. 씻기고. 빗질하고, 우아하게 산책을 시켜 주었다. 그것은 친밀감의 차원이 아닌 존경의 표시였다. 내가 누구의 개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몸에 이가 들끓는 하찮은 잡종들도 주인을 가질 순 있다. 하지만 주의하시라-함부로 비교해서는 안 되는 법. 내 주인은 정말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하려한 무리들이 늘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두려움과 찬탄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게는 다들 질투 섞인 비웃음만 보냈다. 왜냐면 풀쩍 뛰어올라 주인을 맞이할 권리는 나한테만 주어졌기에. 바짓부리를 이빨로 잡아끌며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그의 무릎에 머리를 파묻는 것도 내게만 허락된 일이었기에. 그가 쓰다듬거나 귀를 잡아당기는 대상은 오직 나뿐이었기에. 단지 나만이 그의 곁에 앉아 자는 척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나를 향해 몸을 숙인 채 뭔가를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나 혼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으므로.   주인은 다른 이들에게는 종종 화를 내고 사납게 굴었다. 그들과 다투고, 소리를 지르고, 초초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는 오직 나만 좋아한다고, 절대로,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물론 내게 주어진 의무 조항도 있었다. 기다리기, 그리고 믿음을 가지기. 주인은 잠깐 나타났다가 오랫동안 사라지기 일쑤였으므로. 골짜기 너머에서 무엇이 그를 붙잡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일 때문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고양이나 기타 쓸데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들과 티격태격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운명이란 변화무쌍한 것, 내 것 또한 갑자기 변했다. 어느 날 봄이 찾아왔을 때, 그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었다. 알 수 없는 야단법석이 온 집안을 휩쓸었다. 상자와 트렁크, 궤짝이 자동차에 실렸다. 산 밑으로 내려가는 요란한 바퀴 소리도 잠시. 모퉁이 저편에서 잠잠해졌다.   발코니에서 부서진 가구와 넝마 조각들이 불태워졌다. 노란 상의와 검은 마크가 내겨진 완장들. 무수히 많은 낡은 상자들과 그 속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온 깃발들도 함께.   난장판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서성거렸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에 털끝이 쭈뼛 섰다. 마치 내가 주인 없는 개라도 되는 듯. 문간에서 당장 빗자루를 들고 쫓아버려야 할 귀찮은 떠돌이라도 되는 듯.   은도금을 한 내 목걸이를 누군가가 낚아채갔다. 며칠 전부터 텅 비어 있던 내 밥그릇을 누군가가 걷어찼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일행 중 하나가 길 떠나기 직전 운전석에서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심지어 과녁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내가 꽤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간 걸 보면. 버릇없는 파리가 귓가에서 윙윙대는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죽어갔다. 나, 내 주인의 충성스런 개는.   시인의 끔찍한 악몽 / 쉼보르스카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겉으로는 우리가 사는 이곳과 똑같아 보이네요. 발밑의 토양, 물과 불, 공기, 수평과 수직, 삼각형과 원, 왼쪽과 오른쪽, 견딜 만한 날씨, 그럴싸한 풍경 그리고 언어를 부여받은 몇몇 존재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지구상의 그것과는 다르네요.   문장을 지배하는 건 비조건문. 명칭들은 사물들과 매우 정교하게 밀착되어 있어 함부로 덧붙이거나, 생략하거나, 변형시키거나, 위치를 바꿀 순 없어요.   시간은 시계 속의 개념대로 기능하는 것. 과거형과 현재형은 모두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회상에는 지나버린 일 초가 할당되고, 예측에는 이제 막 시작될 이초가 배당됩니다.   단어는 꼭 필요한 만큼만, 한 마디도 넘치는 법이 없으니, 다시 말해 시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없다는 뜻 이곳에는 그런 종류의 유희는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사색을 필요로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 또한 아무 것도 없네요.   뭔가를 찾는다면, 그건 분명 옆에 있는 것. 뭔가를 묻는다면, 그건 분명 해답이 명확한 것.   놀라움의 근거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늘낄 줄만 안다면, 그들은 분명 매우 놀랄 텐데요.   '불안'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겐 사뭇 외설적으로 느껴지기에 사전을 뒤적일 용기조차 갖지 못하는군요.   아무리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도 세상은 밝게만 표현되는군요. 모든게 헐값에 나누어졌지만,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군요.   감정 가운데 남은 건 오로지 만족감뿐. 괄호 속 부연 설명은 전혀 없네요. 마침표가 늘 따라붙는 인생. 그리고 은하수의 부르릉, 엔진 소리.   인정하세요, 시인에게 있어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서둘러 잠에서 깨어난다 해도 조금도 나아지는 건 없네요.   그리스 조각상 / 쉼보르스카   인간들과 다른 원소들의 도움으로 시간은 비교적 원활하게 조각상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먼저 코를 도려내고, 나중에는 은밀한 부위를, 계속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삭제해나갔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깨를 차례로 없애더니, 오른쪽 허벅지와 왼쪽 허벅지, 등과 허리, 머리와 엉덩이를 제거했다. 떨어져 나간 부분은 조각조각 잘게 부서져 돌멩이가 되고,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됐다.   만약 살아 있는 누군가가 이렇게 죽어간다면 매번 일격을 가할 때마다 많은 피를 흘렸으리라.   하지만 대리석 조각상들은 하얗게 무너져 내린다. 게다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앞서 언급한 그 조각상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건 토르소뿐이다. 몸뚱이는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며 애써 숨을 참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머지 부위들이 잃어버린 모든 매력과 권위를 자신에게로 되돌려놓아야 하기에.   토르소는 성공했다. 마침내 성공했다. 성공을 거두며, 황홀경에 빠진다. 황홀경에 빠지며, 존재를 지속한다-   이 시점에서 시간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일찌감치 하던 일을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나중으로 미루었기에.   사실상 모든 시에는 / 쉼보르스카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1)   한 구절이면 충분하나니 그것이 현재형이든 과거형, 혹은 미래형이든.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바스락거리고, 반짝거리고, 흩날리고, 흘러가는 것들이 단어에 실려 온다면 움직이는 그림자를 가진 가상의 불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 마디면 충분하나니 누군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 혹은 뭔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 2)   고양이를 가진 알라에 관해서 혹은 고양이를 가지지 못한 알라에 관해서 3)   혹은 또 다른 알라들에 관해서 또 다른 고양이들과 고양이가 아닌 다른 것들에 관해서 바람결에 책장이 넘겨진 또 다른 초등학교 교과서들에 관해서: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작가에 의해 시선이 도달하는 반경 내에 일시적인 산과 가변적인 골짜기가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4)   마침 기회가 주어졌기에 겉으로만 영원하고 안정적인 하늘에 대해서 넌지시 이야기할 수 있다면: 5)   한창 펜을 움직이고 있는 손끝에서 누군가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6)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추측이나 어림짐작으로 그랬건, 아님 중요한 이유든, 하찮은 이유든 간에, 흰 종이 위에 검은 펜으로 물음표가 적혀 있다면, 그리고 대답으로- 달랑 이렇게 적혀 있다면, 콜론 :     1) '순간'은 쉼보르스카가 2002년에 발표한 열번 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는 쉼보르스카가 그동안 자신이 썼던 시의 여러 대목을 빌어다가 패러디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2) 1872년에 발표한 시집 에는 "무(無)의 의미는"으로 시작하는 제목이 없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나는 지금 네 옆에 서 있게 되었다. / 이렇게 되기까 무엇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음을 / 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이 부분을 응용하여 재구성하였다. 3) 폴란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첫 페이지, 첫 문장이 바로 "알라는 고양이를 가지고 있다"이다 즉 폴란드인이 국어 책에서 제일 먼저 배우고, 제일 먼저 기억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4)2002년에 발표한 시집 에 수록된 표제작 '순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시선이 닿는 저 너머까지 / 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건 찰나의 순간" 이 구절을 응용하여 재구성한 대목이다. 5) 1993년에 발표한 시집 에 수록된 '하늘'이라는 시에서 쉼보르스카는 하늘이 "부서지기 쉽고, 유동적이며, 바위처럼 단단한 / 휘발성으로 변했다가. 또 가볍게 날아오르기도 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 구절을 응용하여 쓴 것이다. 6) 1967년에 발표한 에 수록된 "쓰는 즐거움"이라는 시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쓴 구절이다. / 번역 최성은   쉼보르스카의 시편들 중 국내에 번역 출간된 시들은 거의 망라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구할 수 있는 번역 시선집은 과 두권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한 쉼보르스카 그녀의 흔적을 보기위해 폴란드의 유서 깊은 고도(古都)인 '크라쿠프'와 그녀가 자주 은거했던 휴양지 '자고파네'를 여행했으나 일정도 빡빡했고 폴란드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필자로서는 잘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혹시 내 생에 또 한번의 기회가 오길 기대한다,  끝.  / 김민홍
43    심보르스카 시모음 (1) 댓글:  조회:438  추천:0  2017-09-15
감사 / 쉼보르스카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다른 누군가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안도를 느낀다.   내가 그 선한 양의 무리 속에서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그들과 함께하면 평화롭고, 그들과 함께하면 자유롭다. 그것은 사랑이 가져다줄 수도, 빼앗아갈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이다.   나는 창문과 대문을 서성이며 그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마치 해시계처럼 무한한 인내심으로 항상 너그럽게 그들을 이해한다. 사랑이 결코 이해 못하는 것을. 언제나 관대하게 용서한다. 사랑이 결코 용서 못하는 것을.   첫 만남부터 편지를 주고받을 때까지 영원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단지 며칠이나 몇 주일만 기다리면 된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성공적이다. 음악회에 가도 끝까지 집중할 수 있고, 대성당을 구경할 때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다. 주위의 모든 풍경도 또렷하게 잘 보인다.   일곱 개의 산과 일곱 개의 강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그것은 이미 지도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산과 강일 뿐, 그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만일 내가 삼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서정적이지도 수사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지평선, 실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그들의 덕택이다.   그들 자신도 모른다. 맨주먹 안에 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고 있는지.   "난 그들에게 아무런 빚도 없어." 아마도 사랑은 이렇게 말할 게다, 이 공개된 질문에 대해서.   시집 『끝과 시작』 문학과 지성사.   나에게 던진 질문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을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 시집『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07)   단어를 찾아서 / 쉼보르스카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네 안에 무덤들이 똬리를 틀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문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대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뜻밖의 만남 / 쉼보르스카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공손히 대하며, 오랜만에 만나서 아주 기쁘다고 말한다.   우리의 호랑이들은 우유를 마신다. 우리의 매들은 걸어다닌다. 우리의 상어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우리의 늑대들은 훤히 열려진 철책 앞에서 하품을 한다.   우리의 독뱀들은 번개를 맞아도 전율하고, 원숭이는 영감(靈感)때문에, 공작새는 깃털로 인해 몸을 부르르 떤다. 박쥐들이 우리의 머리 위로 멀리 날아가버린 건 또 얼마나 오래전의 일이던가.   문장을 잇다 말고 우리는 자꾸만 침묵에 빠진다. 무력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인간들은 대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밤 / 쉼보르스카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거기서 내가 일러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창세기 22장 2절   도대체 이사악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신부님께 교리 문답이라도 청해야겠다. 공을 차서 이웃집 유리창이라도 깨뜨렸나? 울타리를 넘다가 새 바지에 구멍이라도 냈나? 연필을 훔쳤나? 암탉을 놀라게 했나? 시험칠 때 친구에게 답을 슬쩍 가르쳐주었나?     어른들이여, 바보 같은 꿈이나 꾸며 무기력하게 잠에 빠져들어라. 나 아침까지 뜬눈으로 이 밤을 지새우리니, 고요한 암흑이 내게 맞서 팽팽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브라함의 고뇌처럼 어두운 이 밤.   성서에 나오는 신의 눈동자가 먼 옛날 이사악을 주목했듯이 지금 이 순간 뜷어져라 나를 응시하고 있다. 과연 어디에 이 몸을 숨길 수 있을까? 신이 마음만 먹으면 죽은 사람도 소생시킨다는 건 이미 해묵은 옛날이야기 이 공포의 극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머리끝까지 담요를 뒤집어쓰는 것뿐.   머지않아 창가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방 안 곳곳에서 새처럼, 바람처럼 퍼드덕대리라. 하지만 현실 속에는 그처럼 커다란 날개짓을 하는 새도, 그처럼 기나긴 여운을 남기는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 법.   신은 정말 우연히 나를 선택한 것인 양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엔 비밀스러운 작당을 위해 아버지를 부엌으로 슬그머니 데려가 귓가에 대고 거대한 뿔 나팔을 불어대겠지.   내일 먼동이 틀 무렵 아버지가 나를 부르면. 나는 떠나리라. 나는 떠나리라. 내 증오는 더욱더 깊어만 가리니 이제 나는 인간의 선함도, 그들의 사랑도 믿지 않으리라. 나는 11월의 낙엽보다 더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 결코 믿음을 주지 말 것. 믿음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니. 함부로 사랑하지 말 것. 기계적으로 박동하는 심장을 그저 가슴속에 품고 다닐 것.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오래전에 이미 그리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니.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나를 뒤흔드는 건 심장이 아니라 말라틀어진 화석에 불과할 테니.   구름 위 발코니에서 신은 유유히 기다리고 있다. 가련한 번제물을 태우게 될 장작이 보기 좋게 골고루 잘 타고 있는지 편안하게 지켜보면서 나는 반드시 죽으리라. 나를 구원하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견디기 힘든 악몽이 나를 괴롭히던 그날 밤부터 견디기 힘든 고독이 날 괴롭히던 그날 밤부터 신은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의 확실한 의미'에서  '애매모호한 비유'를 향해.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쉼보르스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박물관 / 쉼보르스카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 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 홍조 띤 빰은 어디 있나요?        칼은 있는데- 분노는 어디 있나요?        어두운 해질 녘 류트를 퉁기던 새하얀 손은 온데간데 없네요.          영원이 결핍된 수만 가지 낡은 물건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어요.        진열장 위에는 콧수염을 늘어뜨린 채        곰팡내 풀풀 풍기는 옛날 파수꾼이        새근새근 단잠을 자고 있어요.          쇠붙이와 점토, 새의 깃털이        모진 시간을 견디고 소리 없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고대 이집트 말괄량이 소녀가 쓰던 머리핀만이        킬킬대며 웃고 있을 뿐.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 쪽 구두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나는 어떨까요, 믿어주세요, 아직도 살아 있답니다.        나와 내 드레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를 열망하듯 말이죠.    연극에서 받은 감상 / 쉼보르스카         내게 있어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6막,       연극의 제일 마지막 장면,       전쟁터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대목.       그들은 구겨진 가발과 의상을 다시 펴서 매무새를 고치고,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내고,       목을 졸라맨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살아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가지런히 정렬한 뒤,       청중을 향해 미소 띤 얼굴을 돌린다.         혼자, 혹은 무리를 이뤄 절을 한다.       창백한 손을 상처 입은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무릎을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는 자살한 여인들.       정중하게 절을 하는 잘려나간 머리들.         둘이 함께 절을 한다:       분노는 화해를 향해 부드럽게 손 내밀고,       희생자는 고문관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모반을 꿈꾸는 반역자는 폭군의 곁을 너그럽게 지나친다.         영원은 황금빛 구두 굽 아래서 무참히 짓밟히고,       교훈은 차양 넓은 모자를 휘두르는 바람에 여기저기 흩어져버리고 만다.       시간 관계상 미처 복구하지 못한 다른 사항들은 어느 틈에 내일 새롭게 시작할 채비를 한다.         자, 이제는 초반에 일찌감치 죽은 자들이 일렬종대로 입장할 차례.       그들은 3막과4막, 그리고 장면의 중간 중간에 이미 숨을 거두었다.       흔적도 없이 죽음을 당했던 이들의 기적적인 생환,         의상도 벗지 않고,       립스틱도 지우지 않은 채.       무대 뒤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을 그들을 생각하니       비극의 기나긴 사설(辭說)보다 저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내려왔던 막이 다시 올라가기 직전,       바닥과 막 사이의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기묘한 광경:       여기 서둘러 꽃다발을 집어 올리는 손과       떨어진 칼을 부지런히 줍는 나머지 다른 손이 있다.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눈에 띄지 않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       진정 내 목을 메게 하는 건 바로 그 사람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 / 쉽보르스카       시골 길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세 쌍의 다리를 배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채,     죽음의 혼란 대신 청결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이 광경이 내포하는 위험도는 지극히 적당한 수준,     갯보리와 박하 사이의 지정된 구역을 정확히 준수하고 있다.     슬픔이 끼어들 여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우리의 평화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동물들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숨을 거둔다.     우리들이 믿고 싶어 하는 대로, 감각이나 이승에 대한 미련을 훌훌 떨쳐버린 채,     우리들이 짐작한 대로, 저승보다는 덜 비극적인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     그들의 온순한 영혼은 절대로 어둠 속에서 우리를 겁주지 않는다.     그들은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그들은 배려가 뭔지를 안다.       여기 길 위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있다.     그저 한 번 쳐다봐주는 것도 딱정벌레에겐 커다란 추모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지극히 태평스러워 보인다.     중요하고 심각한 일은 모조리 우리, 인간들을 위해 예정되어 있다.     삶은 오로지 우리들의 것이며,     언제나 당연한 듯 선행권(先行權)을 요구하는 죽음 또한 오로지 우리들만의 전유물이다.        히틀러의 첫번째 사진 / 쉼보르스카         앙증맞은 유아복을 입은 요 갓난아이는 과연 누구?       히틀러 부부의 아들, 꼬맹이 아돌프.       법학 박사가 될까나, 아니면 비엔나 오페라의 테너 가수가 될까나?       요건 누구의 고사리 손? 요 귀와 눈, 코의 임자는 누구?       우유를 먹여 빵빵해진 이 조그만 배는 또 누구 거지? 아직은 알 수 없네.       인쇄공인지, 의사인지, 점원인지, 신부님인지.       요 우스꽝스러운 조그만 발이 결국엔 어디로 향할까나, 과연 어느 곳으로?       정원으로, 학교로, 사무실로.       아니면 시장 딸과 결혼하기 위해 결혼식장으로 가려나?       아기 천사, 금지옥엽, 재롱둥이, 애물단지,       일 년 전 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       하늘과 땅에는 온갖 징조 가득했지.       봄의 햇살, 창틀에 핀 제라늄.       뜰에서 들려오던 아코디언 소리,       분홍빛 종이로 포장된 행운의 점괘,       태어나기 직전 어머니가 꾸었던 운명적인 태몽까지,       꿈속에서 비둘기를 보는 건 즐거운 소식,       그 비둘기를 잡는 건 오랫동안 기다리던 손님이 온다는 반가운 기별,       똑똑---- 누구세요? 아돌프의 조그만 심장이 우리들의 귓가를 두드리는군요.         장난감 젖꼭지, 기저귀, 턱받이, 딸랑이,       건장한 사내아이, 신에게 기도하자, 부정 타지 말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부모를 닮았고, 바구니 속 졸린 눈을 가진 새끼 고양이를 닮았고,       가족 앨범 속의 모든 다른 애들과 꼭 닮은 귀여운 아가,       쉿 아가야, 지금은 울면 안 돼,       사진사 아저씨가 검은 천 아래서 찰칵 하고 사진을 찍을 거야.         클리게르 사진관, 그라벤 거리, 브라우나우.       부라우나우는 작지만 멋진 도시.       건실한 회사들과 선량한 이웃들이 있고,       효모로 반죽한 맛있는 케이크와 회색빛 빨래 비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         개의 불길한 울음소리도, 운명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이곳에서 역사 선생님은 옷깃을 느슨히 풀고       공책을 쌓아놓은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번역; 최성은                                          한국 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및 같은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 졸업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 폴란드 문학박사 학위 받음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문학과 교수 역임. 현재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                                        2012년 폴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십자 기사 훈장 받음                                        저서; 외 다수.                                        번역; , 등 다수                                               황선미의 김영하의 를 비롯,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을 폴란드어로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참수(斬首) / 쉼보르스카       '데콜타쥬 decolletage'의 어원은  '데콜로 decollo'.     라틴어로 '데콜로'는 '목을 자른다'는 뜻     스크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사형 집행에 딱 맞는 슈미즈 드레스를 입고 단두대에 올랐다.     목 부분이 길게 파인 그 슈미즈는     목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선명한 붉은 색.       바로 그 순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튜더는     자신의 한적하고 호화로운 방에서     눈처럼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창가에 서 있었다.     턱 바로 아래까지 의기양양하게 단추를 채우고서.     빳빳하게 풀을 먹은 깃 가장자리엔 화려한 주름 장식.       두 여자는 동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신이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정의가 언제나 내 편에 머물기를----"     "산다는 것은 결국 난관에 부딪히는 것."     "어떤 곳에서는 제빵사의 딸을 '부엉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이것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벌써 다 끝났다."     "아무 것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드레스의 차이점-그렇다, 그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자.     나머지 세부적인 항목들은     절대로 동요되지 않는 법이니.   바벨탑에서 / 쉼보르스카   "지금 몇 시야?" "그래요, 난 행복해요. 단지 목에 걸 수 있는 조그만 종이 필요할 뿐예요. 당신이 곤히 잠든 사이 당신의 머리 위에서 딸랑딸랑 울릴 수 있게." "그러니까 천둥소리를 못 들었단 말이지? 바람이 온통 벽을 뒤흔들고, 탑은 대문의 경첩을 삐걱대면서 커다란 사자처럼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구."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그때 나는 어깨에 단추가 달린 평범한 회색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걸요." "그 순간 수많은 폭발과 함께 하늘이 갈라져버렸어." "나는 분명 그곳에 들어갔었다구요. 기억 안 나요? 당신은 분명 혼자가 아니었잖아요." "그때 난 갑자기 내 시력보다도 더 오래된 듯한 색깔들을 봤어." "당신이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다니 정말 유감이네요."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건 아마 꿈이었을 거야." "당신 왜 자구 거짓말하는 거예요? 왜 날 보면서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거죠? 아직도 그 여자를 사랑하나요?" "오, 그래. 난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후회는 없어요. 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 좀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남자를 생각하나?" "그렇지만 난 울고 있지 않다구요." "하고 싶은 말 . 이게 다야?" "당신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거야." "적어도 당신은 솔직하군." "걱정하지 말아요. 이 도시를 곧 떠날 테니까." "염려 마, 내가 여기서 떠날게."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손을 가졌군요." "그건 이미 아주 오래된 옛일이야." "걱정 말아요, 달링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세요." "지금이 몇 신지 모르겠군. 하긴 시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사실상 모든 시에는 / 쉼보르스카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1)   한 구절이면 충분하나니 그것이 현재형이든. 과거형, 혹은 미래형이든.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바스락거리고, 반짝거리고, 흩날리고, 흘러가는 것들이 단어에 실려 온다면. 움직이는 그림자를 가진 가상의 불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 마디면 충분하나니 누군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 혹은 뭔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2)   고양이를 가진 알라에 관해서. 혹은 고양이를 가지지 못한 알라에 관해서.3) 혹은 또 다른 알라들에 관해서 또 다른 고양이들과 고양이가 아닌 다른 것들에 관해서 바람결에 책장이 넘겨진 또 다른 초등학교 교과서들에 관해서;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작가에 의해 시선이 도달하는 반경 내에 일시적인 산과 가변적인 골짜기가 거리매김할 수 있다면.4)   마침 기회가 주어졌기에 겉으로만 영원하고 안정적인 하늘에 대해서 넌지시 이야기할 수 있다면:5)   한창 펜을 움직이고 있는 손끝에서 누군가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6)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추측이나 어림짐작으로 그랬건. 아님 중요한 이유든. 하찮은 이유든 간에. 흰 종이 위에 검은 펜으로 물음표가 적혀 있다면. 그리고 대답으로- 달랑 이렇게 적혀 있다면 콜론:   1) '순간'은 쉼보르스카가 2002년에 발표한 열번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는 쉼보르스카가 그동안  자신이 썼던 시의 여러 대목을 빌어다가 패러디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2) 1972년 발표한 시집 에는 "무(無)의 의미는"으로 시작되는 제목이 없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는 지금 네 옆에 서 있게 되었다./이렇게 되기까지 무엇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음을/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이부분을 재구성하였다. 3)폴란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첫 페이지. 첫 문장이 바로 "알라는 고양이를 가지고 있다."이다. 즉, 폴란드인이 제일 먼저 배우고, 제일 먼저 기억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4)2002년에 발표한 시집 에 수록된 표제작 '순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시선이 닿는 저 너머까지/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건 찰나" 이 구절을 응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5)1993년 발표한 시집 에 수록된 '하늘'이라는 시에서 쉼보르스카는 하늘이 "부서지기 쉽고, 유동적이며, 바위처럼 단단한,/휘발성으로 변했다가, 또 가볍게 날아오르기도 하는"것이라고 썼다. 이 구절을 응용하여 쓴 것이다. 6)1967 년에 발표한 에 수록된 '쓰는 즐거움'이라는 시에서 모디프를 가져와 쓴 구절이다   이력서 쓰기 / 쉼보르스카   무엇이 필요한가? 신청서를 쓰고, 이력서를 첨부해야지.   살아온 세월에 상관없이 이력서는 짧아야 하는 법.   간결함과 적절한 경력 발췌는 이력서의 의무 조항, 풍경은 주소로 대체하고, 불완전한 기억은 확고한 날짜로 탈바꿈시킬 것.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만 사랑으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만 자식으로 인정할 것.   네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누가 널 아느냐가 더 중요한 법. 여행은 오직 해외여행만 기입할 것. 가입 동기는 생략하고, 무슨 협회 소속인지만 적을 것. 업적은 제외하고, 표창 받은 사실만 기록할 것.   이렇게 쓰는 거야. 마치 자기 자신과 단 한번도 대화한 적 없고, 언제나 한 발자국 떨여져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해왔던 것처럼.   개와 고양이, 새, 추억의 기념품들, 친구. 그리고 꿈에 대해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가치보다는 가격이,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중요하고, 내가 행세한 '너'라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보다는 네 신발의 치수가 더 중요한 법이야. 게다가 한쪽 귀가 잘 보이도록 찍은 선명한 증명사진은 필수. 그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보다는 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 이런, 서류 분쇄기가 덜그덕거리는 소리잖아.   죽은 자들과의 모의 / 쉼보르스카   당신이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주로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납니까? 잠들기전에 종종 그들을 생각하나요? 누구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죠? 매번 같은 사람인가요? 이름은? 성은? 묘지명은? 사망 날짜는?   그들은 주로 무엇에 관해 이야기합니까? 오래된 우정? 혈연관계? 아니면 조국에 대해서? 그들이 어디서 왔다고 밝히던가요? 그들 배후에 누가 있는지. 당신 말고 또 누구의 꿈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말하던가요?   그들의 얼굴은 사진과 똑같았습니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그들도 늙었습니까? 그들은 건강해 보였나요, 아니면 안색이 창백했나요? 살해당한 자들은 예전의 치명적인 상처를 깨끗이 회복했나요? 누가 자기들을 죽였는지 여전히 기억하던가요?   손에는 무엇을 들고 있었습니까? 그 물건들을 쭉 적어보세요. 그것들은 썩었나요? 녹슬었나요? 불에 탔나요? 부서졌나요? 어떤 기색이 눈빛에 담겨 있었나요? 애원, 아니면 위협?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당신은 그들과 단지 날씨에 관한 이야기만 했습니까? 그들이 난처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신중하게 입을 다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은근슬쩍 꿈의 주제를 바꾼다든지 때맞춰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건 어떤가요?   고문 / 쉼보르스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육신은 고통을 느낀다. 먹고, 숨쉬고, 잠을 자야 한다. 육신은 얇은 살가죽을 가졌고, 바로 그 아래로 찰랑찰랑 피가 흐른다. 꽤 많은 이빨과 손톱. 뼈는 부서지기 쉽고, 관절은 잘 늘어난다. 고문을 하려면 이 모든 것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떨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로마 건국 이전이나 이후, 예수 탄생 이전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또한 마찬가지. 고문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땅덩이만 줄었을 뿐, 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마치 벽 하나 사이에 둔 듯 가까이서 일어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인구만 증가했을 뿐 해묵은 규칙 위반이 발생하면, 현실적이면서 타성에 젖은, 일시적이며서 대수롭지 않은, 새로운 과오가 다시금 되풀이된다. 그에 대한 책임으로 육신은 비명을 지른다. 이 무고한 비명 소리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역과 음계를 준수하며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재하리라.   예식과 절차, 춤의 포즈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 쥐는 손동작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육신은 몸부림치고, 뒤틀리고, 찢겨져 나간다. 기진맥진 쓰러져, 무릎을 웅크리고, 멍들고, 붓고, 침 흘리고, 피를 쏟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강물의 흐름과 숲의 형태, 해변, 사막과 빙하를 제외하고는. 낯익은 풍경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작은 영혼이 배회한다. 사라졌다 되돌아오고, 다가왔다 멀어진다. 스스로에게 낯설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존재. 스스로 알다가도 모르는 불확실한 존재. 육신이 존재하는 한, 존재하고 또 존재하는 한, 영혼이 머무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시인의 끔찍한 악몽 / 쉼보르스카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겉으로는 우리가 사는 이곳과 똑같아 보이네요. 발밑의 토양, 물과 불, 공기, 수평과 수직, 삼각형과 원, 왼쪽과 오른쪽. 견딜 만한 날씨, 그러싸한 풍경 그리고 언어를 부여받은 몇몇의 존재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지구상의 그것과 다르네요.   문장을 지배하는 건 비조건문. 명칭들은 사물들과 매우 정교하게 밀착되어 있어 함부로 덧붙이거나, 생략하거나, 변형시키거나, 위치를 바꿀 순 없어요.   시간은 시계 속의 개념대로 기능하는 것. 과거형과 현재형은 모두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회상에는 지나버린 일 초가 할당되고, 예측에는 이제 막 시작될 이 초가 배당됩니다.   단어는 꼭 필요한 만큼만, 한 마디도 넘치는 법이 없으니, 다시 말해 시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없다는 뜻. 이곳에선 그런 종류의 유희는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사색을 필요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네요.   뭔가를 찾는다면, 그건 분명 옆에 있는 것. 뭔가를 묻는다면, 그건 분명 대답이 명확한 것.   놀라움의 근거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낄 줄만 안다면, 그들은 분명 매우 놀랄 텐데요.   '불안'이란 단어가 그들에겐 사뭇 외설적으로 느껴지기에 사전을 뒤적일 용기조차 갖지 못하는군요.   아무리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도 세상은 밝게만 표현되는군요. 모두에게 헐값에 나누어졌지만,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군요.   감정 가운데 남은 건 오로지 만족감뿐, 괄호 속 부연 설명은 전혀 없네요. 마침표가 늘 따라붙는 인생, 그리고 은하수의 부르릉, 엔진 소리.   인정하세요, 시인에게 있어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서둘러 잠에서 깨어난다 해도 조금도 나아지는 건 없네요.   맹인들의 호의 / 쉼보르스카   시인이 맹인들 앞에서 시를 낭독한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목소리가 떨린다. 손도 떨린다.   여기서는 문장 하나하나가 어둠 속의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처럼 느껴진다. 빛이나 색조의 도움 없이 홀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의 시에서 별빛은 위험한 모험이다. 먼동, 무지개, 구름, 네온사인, 달빛. 여태껏 수면 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던 물고기와 높은 창공을 소리 없이 날던 매도 마찬가지.   계속해서 읽는다-그만 두기엔 너무 늦었기에- 초록빛 풀밭 위를 달려가는 노란 점퍼의 사내아이. 눈으로 개수를 헤아릴 수 있는 골짜기의 붉은 지붕들. 운동선수의 유니폼에서 꿈틀거리는 등번호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낯선 여인에 대해서.   침묵하고 싶다-이미 불가능한 일이지만- 교회 지붕 꼭대기에 올라앉은 모든 성인(聖人)들, 열차의 창가에서 벌어지는 작별의 몸짓, 현미경의 렌즈와 반지의 광채, 화면과 거울, 그리고 여러 얼굴들이 담겨진 사진첩에 대해서. 하지만 맹인들의 호의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들은 한없는 이해심과 포옹력을 가졌다. 귀 기울이고, 미소 짓고, 박수를 보낸다.   심지어 그들 중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거꾸로 든 책을 불쑥 내밀며 자신에겐 보이지도 않는 저자의 서명을 요청한다.   우리가 없는 이튿날에 / 쉼보르스카   아침에는 안개가 끼고 서늘하겠습니다. 서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와 시야가 흐려지겠습니다. 도로는 미끄럽겠습니다.   한낮에는 북쪽에서 다가오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곳에 따라 점차 날씨가 개는 곳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강한 돌풍이 불어와 천둥 번개가 칠 수도 있겠습니다.   한밤중에는 전국에 걸쳐 화창한 날씨를 보이겠습니다만, 남동부 지방에서는 곳에 따라 비가 내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기압은 오르겠습니다.   내일은 대체로 날씨가 맑겠습니다만, 여전히 살아 계신 분들에겐 우산이 유용하겠으니 외출 시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어릿광대 / 쉼보르스카   먼저 우리의 사랑이 저물고 나면 백 년, 이백 년, 세월이 흐르고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함께하리라.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한 몸에 받는 남녀 희극 배우가 극장에서 너와 나의 배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중간 중간 간주를 곁들인 소규모 광대극, 가벼운 춤과 폭소가 어우러진 적당히 드라마틱한 내용, 이어지는 박수갈채.   이 장면에서 너는 어쩔 수 없이 조롱거리가 되리라. 우스꽝스러운 넥타이를 매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쩔쩔매는 네꼴을 보면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겠지.   웃음거리가 된, 내 머리통, 그리고 내 심장과 왕관, 터져버린 어리석은 심장과 바닥에 떨어진 왕관.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리라. 공연장엔 환호성과 웃음이 가득, 일곱 개의 강과 일곱 개의 산을 사이에 둔 채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리니.   마치 현실의 고통이나 불행 따윈 우리에게 거의 없었다는 듯 말로써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안기리니.   마침내 둘이 정중하게 머리 숙여 절하고 나면 광대극은 막을 내리리라. 눈물이 맺히도록, 배꼽이 빠지도록 웃던 관객들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은 또다시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리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에 길들여가면서. 사나운 호랑이조차 고분고분 꼬리를 내리고, 그들의 손 위에 놓인 음식을 얌전히 핥아먹으리니.   우리는 영원히 이러이러한 존재. 작은 종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우스꽝스러운 광대 모자를 쓰고, 그 종소리의 원초적인 울림에 열심히 귀를 기울리는.   사소한 공지 사항 / 쉼보르스카   어디에 가면 연민의 감정을 되찾을 수 있는지, 비록 그것이 심장의 헛된 상상이 빚어낸 인공적인 감상에 불과할지라도 일단 출처를 알고 계신 분은 누구든지 알려주세요! 제발 좀 알려주세요! 온 힘을 다해 노래 부르며 이성을 잃은 듯 덩실덩실 춤을 추십시오,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은 여윈 자작나무 아래서 왁자지껄, 힘겨게 놀아보는 거예요.   침묵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다 가능합니다. 별이 총총 수놓인 하늘과 북경 사람의 각진 아래턱과 메꾸기의 뜀박질과 갓난아이의 손톱과 플랑크톤과 눈송이를 골똘히 응시할 수 있는 비법을 특별한 훈련을 통해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되돌려드립니다. 자, 조심조심! 기회가 왔어요! 풀잎이 목덜미를 간지럼 태우던 일 년 전의 바로 그 잔디밭에 벌렁 드러누어 가만히 기다리세요. 바람이 춤을 춥니다. (작년 이맘때 그대들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던 바로 그 장본인이죠) 자, 아직도 꿈에 흠뻑 도취된 다양한 매물들이 여기 있습니다.   양로원애서 숨진 노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애도해줄 사람을 구합니다 신청서를 작석하거나 증명서을 제출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 제출된 서류는 전부 파기될 예정이고, 수령 확인증은 발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남편이 남발한 헛된 약속에 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음을 밝힙니다. 내 남편은 사기꾼, 사람들이 득실대는 이 세상의 온갖 빛깔과 떠들썩한 소음. 창가의 노래 한 곡조, 벽 너머 짖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로 당신들을 참 잘도 속여 넘겼죠, "어둠 속에서도, 적막 가운데서도 결코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내게는 그 서약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낮'의 미망인인 '밤'으로부터.   루드비카 바드쥔스카* 부인을 애도하는 일 분간의 묵념 / 쉼보르스카   당신은 떠났습니다.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가 자욱한 그곳으로! "그곳에 네 명의 아이들이 있으니 가서 그 애들을 데려올께요!"   어떻게 그처럼 과감하게 모든 걸 떨쳐낼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에 대한 집착과 낮과 밤의 질서와 내년에 내릴 눈과 사과의 붉은 빛깔과 아무리 곱씹어도 늘 부족하기만 한 사랑에 대한 끈끈한 미련을.   작별 인사 따위는 하지도, 받지도 않고 모르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달려갔으니, 다들 보세요, 무릎까지 넘실대는 불꽃, 미친 듯이 이글거리는 붉은 기운을 헤치고서 아이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왔답니다.   그녀는 차표를 끊고, 잠시 여행을 다녀오려 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도 쓰려 했고,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창문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거나, 숲 속의 오솔길도 타박타박 걸어보려 했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넘실대는 광경도 바라보고 싶어했습니다.   때로는 죽은 이를 위한 일 분간의 묵념이 늦은 밤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나는 구름과 새들의 비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산 증인입니다. 귓가에는 잔디가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가 생생히 들립니다. 종이에 인쇄된 수백만 개의 글자들을 열심히 읽었고, 망원경으로 저 신비로운 별들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누군가가 그렇게 간절히 구조를 요청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진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뭇잎과 드레스와 시에 대한 구구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타인들에 의해 평가되고 검증된, 꼭 그만큼뿐. 스스로도 사뭇 낯설기만 한 심장이 명하는 대로 나는 이 사실을 당신들에게 꼭 말하고 싶습니다.   *루드비카 바브쥔스카(Ludwika Wawrzynska. 1908~1955) 폴란드의 초등학교 교사. 1955년 2월 8일 바르샤바의 한 초등학교 목조 건물에서 불이 났는데, 어린이들이 그 안에 갇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네 명의 어린이들을 구해냈다. 심한 화상을 입은 바브쥔스카는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며칠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명예 회복 / 쉽보르스카   상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인간의 가장 오랜 권리에 의거, 내 생애 처음으로 죽은자들을 불러본다. 그들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들의 발걸음에 열심히 귀 기울인다. 누가 죽었는지, 죽은 게 확실한지, 명백히 알고 있음에도.   지금은 두 손에 자신의 두개골을 들고, 이렇게 말해야 할 시간. "가여운 요릭* 네 천진함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네 맹목적인 믿음과 순진무구함, 어떻게든 되리라는 낙천적인 기대감, 검증된 사실과 그렇지 못한 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던 평정심은 어디에?"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배신하리라는 사실을. 이름 따윈 아무런 값어치도 없음을. 무성한 잡풀과 목메어 울어대는 까마귀, 휘날리는 눈보라만이 익명의 무덤에서 떠나간 이들을 비웃고 조롱하게 되리라는 걸. "요릭이여, 그들은 위선적인 증인에 불과했다."   죽은 자의 불멸은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만 유효한 법. 결국엔 순간적이고, 유한한 가치일 뿐이다. 누군가가 스스로의 불멸을 상실하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오늘 나는 불멸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으니 그것은 내어줄 수도 빼앗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름과 함께 스러져갈 운명이라면 감히 '배신자'란 호칭을 누구에게 붙일 수 있겠는가.   죽은 자 위에 군림하는 우리의 권리는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중립을 요구한다. 캄캄한 밤에 판결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도록. 판사가 제복을 벗어던진 채 알몸이 되지 않도록.   대지가 꿈틀댄다-이제 그들은 대지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한 줌의 흙이 되어, 한 웅큼의 흙더미가 되어 조용히 무덤에서 일어선다. 은폐한 암흑을 헤집고 나와 옛 이름을 되찾고, 민족의 기억 속으로, 그 옛날 영광의 월계관과 환호 속으로 당당히 복귀한다.   단어를 마음껏 호령하던 내 절대 권력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눈물의 골짜기로 추락해버린 낱말들 따위는 죽은 자의 부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산화된 마그네슘만이 광채 되어 번득이는 빛바랜 사진처럼 공허하고 부질없는 묘사만 남았을 뿐. 나, 시시포스는 일찌감치 '시(詩)의 지옥'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이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날카롭게 날이 선 채로, 전리품을 늘어놓은 유리 진열장과 아늑한 보금자리에 난 창문들과 분홍빛 색안경과 유리로 만든 뇌와 심장에 무참하게 생채기를 내기 위해서.   *요릭 ; 섹스피어의 희곡 5막 1장에서 햄릿이 공동묘지에서 무덤을 파고 있는 두 명의 어릿광대와 대화를 나누다가, 임금의 어릿광대였던 재담꾼 요릭의 두개골을 보고 비탄에 잠겨 심복인 호레이쇼에게 말하는 대목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아틀란티스* / 쉼보르스카   그들은 존재했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섬에서 혹은 섬이 아닌 곳에서. 대양 혹은 대양이 아닌 것이 그들을 집어삼켰거나 혹은 집어삼키지 않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한 누군가가 있었던가? 누군가와 싸우던 누군가가 있었던가? 모든 일이 일어났거나 혹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났거나. 거기에서 혹은 거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곱 개의 도시가 있었다는데 정말로 확실한가? 영원히 존재하길 바랐다는데 증거는 어디 있는가?   그들은 화약을 발명하지 않았다. 그래, 아니다. 그들은 화약을 발명했었다. 그래, 그렇다.   있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 불확실한 사람들.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공기나 불이나 물이나 흙에서는 전혀 추출되지 않은 사람들.   물속에서도 빗방울 속에서도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   사뭇 심각한 척 훈계나 늘어놓는 가식적인 포즈 따윈 취할 수 없었던 사람들.   유성이 떨어졌다. 아니, 유성이 아니었다. 화산이 폭팔했다. 아니, 화산이 아니었다. 누군가 뭔가를 애타게 불렀다. 아니, 누구도 그 무엇도 부르지 않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아틀란티스에서.   원숭이 / 쉼보르스카   인류가 아직 천국에서 추방되기 전 마지막으로 에덴동산 구석구석을 훑어보던 원숭이의 눈빛이 너무도 강렬해서 천사들조차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예기치 못한 슬픔에 허덕였다네. 결국 원숭이는 다소곳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 지구상에 자신의 위대한 종족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네. 때론 생기발랄, 때론 진지하며, 동그랗게 말린 꼬리를 뽐내는 우리의 원숭이. 원숭이는 신생대 전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라치아Gracya'*를 쓸 때, 꼭 'y'자를 고집한다네. 오래전, 존엄한 은빛 광채를 지닌 풍성한 갈기로 인해 이집트에서 사람들로부터 대대적인 숭배를 받을 때 원숭이는 슬픔에 잠겨 근엄하게 침묵을 지키며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열심히 귀 기울렸다네: 흠, 영생을 원하는군--- 원숭이는 붉으스름한 엉덩이를 흔들면서 멀리멀리 떠나갔다네. 권고도 금지도 아니라는 그런 의미로.   유럽에서 그들의 영혼은 거세되었네. 하지만 두 팔은 무심결에 남겨두었지. 어느 수도사가 거룩한 성인(聖人)의 팔에다 홀쭉하고 가느다란 원숭이의 손을 그려넣었네. 거룩한 성인은 마치 도토리를 움켜쥐려는 듯 양손을 내밀어 자비를 구걸하고 있네.   전함은 왕궁으로 원숭이를 데려왔다네. 잣난아기처럼 따뜻한 체온을 지닌 채, 늙은이처럼 온몸을 벌벌 떠는 원숭이는 황금으로 만든 쇠사슬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네. 고관대작들이 입는 앵무새처럼 알록달록 맵시 좋은 연미복을 입고서, 카산드라*, 대체 무엇이 우습단 말이지? 중국에서 원숭이는 식용으로 사용된다네. 접시에 담겨진 원숭이는 구워진 표정 또는 삶겨진 표정을 짓고 있다네. 모조품 장신구에다 억지로 끼워 맞춘 진짜 다이아몬드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원숭이의 뇌는 미묘한 맛을 내겠지. 비록 그들의 뇌가 화약을 발명하지 못했기에 뭔가 부족한 듯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동화 속에서는 늘 외롭고 우유부단한 원숭이. 거울의 내부를 찡그린 얼굴로 채웠던 원숭이가 스스로를 조롱하며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네. 비록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우리에 관해서라면 모든 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가난한 친척 여동생처럼.   *폴란드어로 '그라치아Gracja'는 '우아함, 고상함, 매력'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영어로는 'grace'이다. 중세 폴란드어에서는 이 단어를 쓸 때 'j' 대신 'y'를 썼다.   *카산드라Kassand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라이모스와 헤카베의 딸이다. 트로이 전쟁을 미리 예견하였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트로이에서의 한순간 / 쉼보르스카   어린 계집애들, 비쩍 마른 데다가 언젠가는 두 뺨의 주근깨가 말끔히 사라진다는 걸 도무지 믿지 못하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의 눈꺼풀 위를 사뿐사뿐 돌아다니는.   깜짝 놀랄 만큼 엄마 혹은 아빠를 쏙 빼닮은 그 아이들이   식사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거울 앞에서 트로이로 납치되어 간다.   어린 계집애들은 커다란 탈의실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아름다운 헬레나로 탈바꿈한다.   드레스 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온갖 탄성을 뒤로 한 채 왕실의 계단을 사뿐사뿐 오른다.   스스로가 공기처럼 가볍다고 느낀다. 안다, 아름다움이 곧 안식이며, 말투가 입술의 효용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영감을 받은 무심함 속에서 몸짓들은 스스로의 외양을 조각한다는 것을.   사절단을 거부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그들의 아리따운 얼굴이 포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새하얀 목덜미 위로 자랑스레 우뚝 솟아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검은 머리의 남자들, 친구의 오빠들, 미술 선생님, 모두가 이 전쟁에서 전사하리라.   어린 계집애들은 웃음의 탑 꼭대기에서 끔찍한 대참사를 태연히 내려다본다.   어린 계집애들은 위선적이 감정에 도취되어 두 손을 꼭 움켜쥔다.   어린 계집애들은 한창 유행하는 탄식의 귀걸이를 주렁주렁 달고서, 작은 왕관을 쓴 채 불타는 도시의 폐허를 배경으로 무심히 서 있다.   창백한 얼굴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으며, 승리에 한껏 도취한 자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실컷 즐기고 있다. 그들이 슬퍼하는 건 오직 한 가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자, 이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트로이의 어린 계집애들.   그림자 / 쉼보르스카   내 그림자는 여왕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어릿광대와 같다. 여왕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 어릿광대는 벽을 향해 몸을 일으켜 세우다가 바보처럼 천장에 머리를 쿵 부딪친다.   이차원의 세상에서는 무엇으로도 그림자에게 고통을 가할 수 없다. 어쩌면 어릿광대에겐 내 왕궁이 불편할지도. 그래서 다른 역할을 원할 수도 있으리라.   여왕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면 어릿광대는 곧장 바닥을 향해 뛰어내린다. 모든 동작과 역할을 여왕과 분담했지만 공평하게 반반씩 나누진 못했다.   저 단순무지한 숙맥은 스스로의 의지로 광장된 몸짓과 허풍, 뻔뻔함을 택했다. 왕관과 지팡이, 왕실의 가운, 내게는 이 모든것들을 지탱할 힘이 없으니.   아, 앞으론 어깨를 움직일 때도 한결 가뿐하겠구나. 아, 앞으론 고개를 돌릴 때도 한결 홀가분하겠구나. 왕이여, 우리가 작별 인사를 나눌 때도, 왕이여, 우리가 기차역에 서 있을 때도.   왕이여, 언제나 이 시간이 되면 우리의 어릿광대는 철로 위에 길게 드러눕는다.   방랑의 엘레지 / 쉼보르스카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수 없다.   가까스로 기억을 떠올린들 불확실한 뿐. 머리를 잘못 맞춘 여신의 조각상처럼.   사모코브*에 내리는 비는 멈출 줄 모른다.   파리의 정경은 루브르에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까지 가물가물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생마르텡*의 가로수 길. 그곳의 계단은 갈수록 페이드 아웃*   내 기억 속에서 '다리의 도시' 상트테르부르크는 고작 다리 한 개와 반쯤 남은 또 다른 다리의 영상. 가여운 움살라*에는 무너진 대성당의 잔해.   소피아*에는 얼굴 없이 몸통만 남은 가여운 무희가 있다.   눈동자 없는 그의 얼굴 따로, 동공 없는 그의 눈동자도 따로, 고양이 동공도 따로.   새롭게 재건된 협곡 위에서 카프카스*의 독수리가 날고 있다. 태양의 황금빛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고, 바위는 엉터리 모조품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수는 없다.   헤아릴 수도, 저장할 수도 없는 풍경들 미세한 섬유질이나 모래알. 물방울의 개별적인 세밀함은 더한 법.   나는 나뭇잎의 뚜렷한 윤곽 하나 뇌리에 새기지 못한다.   한 번의 눈짓에 담긴 작별을 내포한 환영의 인사   넘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한 한 번의 고갯짓.   *사모코브;불가리아에 있는 도시 *생마르텡;파리 시내에 있는 운하 *페이드 아웃(fade out);영화나 T.V.에서 화면이 차차 어두워져서 캄캄해지는 것. 방송이나 녹음에서는 소리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뜻함.                             *움살라;스페인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도시 *소피아;불가리아 수도 *카프카스;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지역.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라고 불린다.   무제 / 쉼보르스카   그들은 철저하게 홀로 남겨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철저한 사랑의 부제 속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적뿐. 드높은 구름 위에서 바야흐로 천둥이 울리고,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놀라운 기적뿐. 이백만 종의 그리스 신화가 출판되었지만, 그와 그녀를 위한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가 제발 문가에라도 서 있어줬으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그저 잠시라도 나타나줬으면, 기쁜 소식도 좋고, 나쁜 소식도 좋으니, 어디에서 왔건, 어디로 가건 아무 상관 없으니, 미소를 남겨주건, 공포를 불러일으키건 개의치 않을 테니.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버렸다. 부르주아의 연극에서처럼 이별은 아마도 끝까지 지속되겠지. 멀쩡한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기적은 절대로 없으리라.   만질 수 없는 벽을 뒤로 한 채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지극히 상식적인 영상 외에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 앞에 하염없이 서 있다.   두 사람의 모습 말고는 아무 것도 투영되지 않는다. 질료(質料)*는 항상 경계를 풀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넓고도, 깊고도, 높기에 땅 위에서, 하늘에서, 사방 구석에서 타고난 운명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갑자기 방 안으로 뛰어든 노루 한 마리가 단숨에 우니베르숨*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에.   *질료; 형식 또는 형태를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사물을 이루는 소재(素材). 예를 들어 건축물의 경우 구조는 형태,  제목은 질료에 해당한다. *우니베르숨Universum; 라틴어로 '온세상'이란 의미   금혼식 / 쉼보르스카   언젠가 그들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였고, 물과 불처럼 확연하게 구별됐었다. 서로의 다른 점을 맹렬히 공격하고픈 열망을 간직한 채 뺏기고 빼앗기를 반복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서, 내 것이 네 것이 되고, 네것이 내 것이 되었다. 한때 찬란히 작렬하던 번개가 자취를 감추고 난 후 서로의 품 안에서 투명한 공기가 될 때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해답이 주어졌다. 어느 고요한 밤, 어둠 속에서,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성별의 구분 따위는 점차 희미해지고, 비밀은 전부 불에 타버렸다. 흰 바탕 위에서 모든 빛깔이 자유롭게 섞이듯 공통된 성향 안에서 상반되는 기질들이 어우러졌다.   둘 중에 누가 두 배가 되고, 누가 사라져버렸는가? 두 사람의 몫의 미소로 웃음 짓는 것은 누구인가? 누구의 목소리가 두 개의 음성으로 갈라졌는가? 둘 중에 누가 동의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가? 숟가락을 입가에 가져가는 건 누구의 의지인가?   누가 누구의 살가죽을 벗겼는가?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었는가? 서로의 손금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누구의 손인가?   오랜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쌍둥이가 태어난다. 서로를 향한 친밀감, 그것은 가장 위대한 어머니. 둘 중 누구도 자신의 쌍둥이 아이들을 구별하지 못한다. 누구 누구인지 가까스로 기억해낸다   금혼식 날에, 이 기쁜 날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창가에 앉은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다.   야스오*의 강제 기아 수용소 / 쉼보르스카   어서 써. 써보란 말이야. 평범한 용지 위에 보통 잉크로: 그들에겐 식량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모두 굶어 죽었다고. 모두라고?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데? 이곳은 거대한 초원이잖아. 한 사람당 얼마나 많은 풀잎과 잔디를 먹어 치웠을까? 어디 이렇게 써봐: 난 아무 것도 모른다고. 역사는 유골을 어떻게든 제로(0)의 상태로 결산하려 애쓰고 있다. 천 명에다 한 명이 더 죽어도, 여전히 천 명이라고 말한다. 그 한 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어딘가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상상으로 임신한 태아, 텅 빈 요람. 한번도 펼쳐진 적 없는 철자법 교본. 저 혼자 웃다가, 소리 지르다가, 팽창하는 공기. 공허의 늪을 향해 내달리는 계단. 가지런히 정렬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미지의 공간.   우리는 육체가 되어버린 초원 위에 서 있다. 초원은 마치 매수당한 증인처럼 침묵을 고수한다. 태양 아래서 눈부시게 선명한 푸른 빛깔로. 숲 저편에 질겅질겅 씹을 수 있는 나무가 자라고. 그 나무에서 꿀꺽꿀꺽 들이킬 수 있는 수액이 뚝뚝 떨어진다. 눈이 멀지만 않는다면 일상의 풍경들은 매일매일 어김없이 배급되리라. 저 산 너머 영양 만점 도톰한 날개를 가진 새의 그림자가 비친다. 새들은 텅 빈 주둥이를 크게 벌린 채 쩝쩝 입맛을 다시고 있다. 낫처럼 생긴 초승달이 밤하늘에 슬며시 나타나 꿈속에 등장한 호밀빵을 쓱싹쓱싹 베어낸다. 이콘*에 등장하는 성인(聖人)의 검은 두 팔은 텅 빈 잔을 손에 든 채 허공을 휘젓고 있다. 가시 돋친 철조망의 날카로운 꼬챙이 위에는 인간의 육신이 꼬치 요리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들은 대지와 함게 노래를 부른다. 전쟁이 어떻게 그들의 심장을 꿰뚫었는지에 관한 아름다운 노래를 자. 어디 한번 써보시지. 이곳이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운지. 그래, 알았어.   *야스오jasto: 폴란드 남부 카르파티 산맥 근처에 있는 도시로 이곳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거주 지역인 게토Getto가 있었으나 전쟁 막바지에 독일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콘: 동방 정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나 성인들을 그린 초상화. 폴란드는 카톨릭 국가이지만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이콘을 허용했으며, 특히 제일의 카톨릭 성지인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 마리아상'이 유명하다.   우화 / 쉼보르스카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부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유리병을 낚아 올렸어요. 그병에는 종이 쪽지가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답니다:   "사람들이여, 나좀 구해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대양이 나를 파도에 싣고서 무인도에 갖다 버렸답니다. 모래사장에 나와 도움을 기다리고 있어요, 서둘러 주세요. 나 여기 있을께요."   "이 쪽지에는 날짜가 누락되어 있군. 틀림없이 이미 늦었을 거야. 유리병이 얼 마나 오랫동안 바다를 떠다녔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첫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게다가 장소도 적혀 있질 않군. 대양이 한둘도 아니고, 어디를 말하는 지 통 알 수 없잖아."   두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늦은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야. '여기'라는 섬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세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불현듯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침묵이 흘렀습니다. 보편적인 진실이란 원래 다 그런 법.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발라드 / 쉼보르스카   이 노래는 살해당했다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어떤 여인에 관한 발라드.   건전한 의도로 씌어졌고, 한 자 한 자 종이 위에 정성껏 기록되었다.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창가에서, 혹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그 일은 벌어졌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문이 굳게 닫히고, 살인자가 계단을 막 뛰어 내려가는 순간, 그녀는 뜬금없이 적막에 놀라 깨어난 생명체처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마치 반지에서 빠져나온 보석처럼 견고하고, 단단한 시선으로 천천히 구석구석을 살핀다.   허공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마룻바닥 위를 삐걱대는 판자 위를, 침착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다.   범행 후에 남겨진 모든 흔적들을 아궁이에 넣고 활활 태운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서랍 밑바닥에 들어 있던 구두끈까지 모조리.   그녀는 목을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총에 맞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그녀를 잠시 엄습했을 뿐.   그녀는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사소한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심지어는 쥐를 보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방하고 가장할 수 있는, 우습고도 하찮은 일들은 이렇게나 많다.   다들 일어나기에 그녀도 일어난 것이다.   다를 걸어다니기에 그녀도 걷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는 머리카락을 빗질하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포도주를 마시며 / 쉼보르스카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곤 내게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나는 그 아름다움이 마치 내 것인 양 당연히 받아들인다. 별을 꿀꺽 삼켰으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그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잔영에서 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나는 춤을 춘다, 춤을 춘다. 느닷없는 날개짓에 온몸을 전율하면서.   탁자는 탁자, 포도주는 포도주다. 술잔은---- 술잔은 뭐더라? 술잔은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나는--- 몽상적인 환영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추상적이고, 뼛속까지 비현실적이다.   하고 싶은 말을 그에에 전부 털어놓는다. 수과(瘦果)*의 별자리를 타고나서 사랑에 목숨을 거는 개미들에 관해서. 맹세하노니, 붉은 포도주가 흩뿌려진 새하얀 장미가 노래를 부른다.   웃음을 터뜨리며 조심스레 머리를 숙인다. 위대한 발명품을 재차 확인하고 점검하듯이. 나는 춤을 춘다, 춤을 춘다. 내 외양을 벗어내고, 내 존재를 풀어준 피부 거죽이 경악할 정도로 아름답게.   갈비뼈로 빚어낸 이브, 거품으로 만들어진 비너스, 주피터의 머리에서 나온 미네르바가 나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이다.   그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틈을 타 나는 벽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찾아 헤맨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림을 떼어낸 자리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쇠못 한 개.   *수과(瘦果) ; 민들레나 메밀 들 건조과 식물의 열매로, 겉으로는 씨처럼 보이지만 속에 또 하나의씨를 갖고 있다.   루벤스의 여인들 / 쉼보르스카   힘이 아주 센 여자 거인들, 암컷 무리. 덜컹대며 굴러가는 커다란 술통처럼 온전히 벌거벗은 여인들. 그 여인들이 무참히 짓밟힌 침대 위에 보금자리를 틀고, 먼동이 틀 때까지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다. 동공은 근육 저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췄다. 누액(漏腋)이 샘솟는 분비샘을 통해 누룩이 서서히 스며들어간다. 온몸의 혈관 속으로.   바로크의 딸들, 케이크 반죽이 반죽 통 안에서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욕조에선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와인은 붉게 빛난다. 뭉게구름이 만들어낸 살진 새끼 돼지가 하늘 위를 질주한다. 관능의 신호를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오, 코끼리처럼 풍만하고 거대한 여인들이여. 알몸이 되었을 때 오히려 두 배로 팽창한 여인들이여. 격렬한 체위에서 오히려 세 배로 부픈 여인들이여. 오, 기름진 사랑의 양식이여!   그 여인들에겐 말라비틀어진 여동생들이 있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그 애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화폭에서 비쩍 마른 소녀들이 거위처럼 가지런히 열을 지어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을.   전형적인 추방자의 모습. 밖으로 튀어나온 갈비뼈, 왜소한 참새를 쏙 빼닮은 손과 발. 소녀들은 견갑골을 움직여 낼갯짓을 해보려 애쓴다.   13세기라면 그 애들에게 황금빛 후광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슬프도다, 17세기는 말라깽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태양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한없이 비대해져간다. 하늘을 온통 점령해버린 건 오동통한 천사들과 포동포동 살이 오른 신들. 턱수염을 기른 포이보스,* 그가 땀에 젖은 준마들 타고, 뜨겁게 타오르는 침실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포이보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을 부르는 이름.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 쉼보르스카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낚는다. 물고기가 날카로운 물고기로 물고기의 내장을 도려낸다. 물고기가 물고기를 만들어내고, 물고기가 물고기 안에서 산다. 물고기가 무리 지어 다니는 물고기 떼를 피해 도망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사랑한다. 너의 눈동자는 이른바 천상의 물고기처럼 황홀하게 빛난다. 나는 너와 함께 공동의 해협을 유유히 헤엄치고 싶다. 물고기 떼 가운데 가장아름다운 한 쌍의 물고기가 되어!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상상하고, 물고기가 물고기를 창조한다. 물고기가 물고기에게 좀더 천천히 헤엄을 치자고 부탁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에서는 나는 최소한 나무 물고기, 바위 물고기와는 구별되는 개별적인 물고기, 독립적인 물고기이다. 매 순간 나는 은빛 비늘을 가진 아주 작은 물고기들에 대해 기록한다. 어쩌면 그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어둠일 수도 있다. 눈을 깜빡하는 바로 그 찰나에 번쩍하고, 빛을 발하는 순간의 암흑.   *헤라클레이토스 Heracloeitos ;기원전 6세기경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사람은 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몸을 담글 수는 없다. 두번째 강물은 이미 전혀 다른 물이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쉼보르스카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명언에서 착안하여 이 시를 썼다.   쓰는 즐거움 / 쉼보르스카   이미 종이 위에 씌어진 숲을 가로질러 이미 종이 위에 씌어진 노루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자신의 입술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투사지 위에 씌어진 옹달샘, 그곳에서 이미 씌어진 물을 마시러? 왜 노루는 갑자기 머리를 쳐들었을까? 무슨 소리라도 들렸나? 현실에서 빌려온 네 다리를 딛고서 내 손끝 아래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고요"-이 단어가 종이 위에서 버스럭대면서 "숲"이라는 낱말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놓는다.   하얀 종이 위에서 도약을 위해 웅크리고 있는 글자들, 혹시라도 잘못 연결될 수도 있고, 나중에는 구제 불능이 될 수도 있는 겹겹으로 둘러싸인 문장들.   잉크 한 방울, 한 방울 속에는 꽤 많은 여분의 사냥꾼들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숨어 있다. 그들은 언제라도 가파른 만년필을 따라 종이 위로 뛰어 내려가 사슴을 포위하고, 방아쇠를 당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사냥꾼들은 이것이 진짜 인생이 아니라는 걸 잊은 듯하다. 여기에선 흑백이 분명한, 전혀 다른 법체계가 지배하고 있다. 눈 깜빡할 순간이 내가 원하는 만큼 길게 지속될 수도 있고, 총알이 유영하는 찰나적 순간이 미소한 영겁으로 쪼개질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명령만 내리면 이곳에선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내 허락 없이는 나뭇잎 하나도 함부로 떨어지지 않을 테고, 말발굽 아래 풀잎이 짓이겨지는 일도 없으리라.   그렇다, 이곳은 바로 그런 세상. 내 자유 의지가 운명을 지배하는 곳. 신호의 연결 고리를 동여매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고, 내 명령에 따라 존재가 무한히 지속되기도 하는 곳.   쓰는 즐거움. 지속의 가능성.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   풍경 / 쉼보르스카   이것은 나이 지긋한 거장이 만들어낸 풍경. 나무는 유화 물감 아래 굳건히 뿌리를 내렸고. 오솔길은 목적지까지 정확히 뻗어 있다. 잎사귀가 위풍당당 서명을 대신한다. 지금은 틀림없는 오후 다섯 시. 오월은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억류되었다. 그러므로 나 또한 망설이며,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섰다. 내 그리운 이여, 나는 물푸레나무 아래 서 있는 순박한 시골 처녀이기 때문이다.   내가 널 두고 얼마나 멀리까지 떠나왔는지 봐라. 내가 걸친 새하얀 모자와 노란색 치마를 들여다보고, 그림 밖으로 뛰쳐나기지 못하게 얼마나 단단히 바구니를 움켜잡고 있는지도 살펴봐라. 낯선 운명을 어떻게 꿋꿋이 견디어 냈는지. 삶의 비밀들로부터 어떻게 벗어났는지 샅샅이 감상하라.   설사 네가 부른다 해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으리니. 만약 들었다 해도 몸을 돌려 되돌아가진 않으리니. 정녕 있을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될 그 행위를 저질렀다 해도 이제 네 얼굴은 내게 한없이 낯설게만 여겨지리라.   나는 10킬로미터의 반경 내에서 세상을 알고 있다. 나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약초와 주문을 알고 있다. 신神은 여전히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변함없이 기도를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맞지 않게 해달라고. 전쟁은 형벌이고, 평화는 포상이다. 수치스러운 꿈은 사탄에게서 비롯되었다. 자두 속에 씨가 박혀 있듯 내 안에는 당연히 영혼이 깃들어 있다.   나는 심장의 유희를 알지 못한다. 내 아이의 아버지, 그 사람의 나체를 알지 못한다. 구약 성서의 위대한 시편을 읽으며, 그 뒤에 잉크 자국으로 얼룩진 무수한 습작 노트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의심따윈 단 한번도 품어본 적 없다. 내가 하고픈 말들은 늘 문장 속에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다. 내 사전엔 절망이란 없다. 왜냐하면 그건 내 몫이 아니니까. 내게 맡겨진 임무는 오로지 '스스로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뿐'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을 네가 가로막는다 해도, 네 두 눈을 네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해도, 절망의 가장자리를 따라 아슬아슬 너를 지나치리라.   우리 집은 오른 쪽에 있고, 나는 근처 지리를 구석구석 꿰뚫고 있다. 집으로 향하는 층층다리와 안으로 통하는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안다. 그 안에는 미처 화폭에 담기지 못한 또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다. 안락의자 위로 뛰어 오르는 고양이. 주석으로 만든 주전자에 빛을 드리우는 태양. 테이블 너머, 뼈만 앙상히 남은 한 남자가 앉아 시계를 고치는 중.   사진첩 / 심보르스카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은 그저 그뿐, 신화로 남겨질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로미오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줄리엣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늙어빠진 노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았다. 눈물로 얼굴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 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구두끈과 *만틸라, 스커트의 주름 장식이 사진에 나오는 데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아무도 영혼 속에 *보스의 지옥을 품고 있지 않다! 아무도 권총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두개골에 총알이 박혀 죽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야전 병원의 들것 위에서 사망했다.) 심지어 무도회가 끝난 뒤 피로로 눈자위가 거무스레해진 저 황홀한 올림머리의 여인조차도 네가 아닌 댄스 파트너를 쫓아서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아무런 미련 없이. 이 *은판 사진이 탄생하기 전, 아주 오래 살았던 그 누군가라면 또 모를까. 내가 아는 한 이 사진첩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 나올 때까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은 흐르고, 그렇게 위안을 얻은 그들은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만틸라; 스페인이나 멕시코 등지에서 머리와 어깨를 덮는 여성용 대형 스카프. *보스; 히로나뮈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 네델란드 출신의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 20세기 초현실주의의 선구로 평가받는 보스의 작품들은 '광기와 부조리로 가득 찬 지옥도'라 일컬어지고 있다. 다양하게 변모되고 합성된 기괴한 동물들과 식물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어두운 해학은 당신의 종교적 배경과 관련된 상징 체계와 연관을 맺고 있다. 대표작으로 등이 있다. *은판 사진; 은판銀板에 찍는 초창기 사진술을 말함.    웃음 / 쉼보르스카   언젠가 바로 나였던 그 소녀. 나는 물론 그 애를 안다. 소녀의 짧은 생애를 담고 있는 몇 장의 사진을 나는 갖고 있다. 몇 줄의 시구를 쓸 수 있을 만큼 유쾌한 연민도 느끼고 있다. 몇몇 사건들 또한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이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꼭 끌어안을 수 있게, 오로지 한 가지 추억만 회상하련다. 작고 못생긴 소녀의 어린 시절 풋사랑을.   이야기를 들려주마. 소녀가 어떻게 그 대학생을 사랑했는지. 소녀는 그가 자신을 쳐다봐주기를 원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마. 그를 만나기 위해 어떻게 달려갔는지. 멀쩡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오, 무슨 일이야. 한마디라도 물어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조그만 계집아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만일 팔자가 좋아 오래오래 살 수만 있다면 결국엔 절망조차 득이 된다는 사실을.   소녀에게 과자라도 사 먹으라며 돈 몇 푼 쥐어줄 수 있었을 텐데. 소녀에게 영화라도 보러 가라며 돈 몇 푼 쥐어줄 수 있었을 텐데. 얼른 물러가지 못하겠니, 내겐 시간이 없다구.   이미 불은 모두 꺼져버렷다는 걸 너도 알잖아. 아마 넌 이해하겠지, 벌써 오래전에 문은 닫혀버렸다는걸.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마. 웃음을 터뜨리던 그 남자. 나를 끌어안던 그 남자. 그는 먼 옛날, 너의 그 대학생이 아냐.   네가 왔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제일 좋을걸. 난 네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구.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인걸. 언제쯤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면 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그렇게 우리를 쳐다보지 말라구. 마치 죽은 자의 눈처럼 비정상적으로 크게 부릅뜬 그런 눈으로.   기차역 / 쉼보르스카   내가 N시(市)에 가지 않은 그 일은 정확히 시간 맞춰 일어났다.   발송되지 않은 편지가 내게 미리 예고를 해주었고,   예정된 시각에 너는 가까스로 역에 오지 않을 수 있었다.   기차가 3번 플래홈으로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나의 부재(不在)는 인파 속에 섞여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황망함 속에서 별빛 여인들이 서둘러 나를 대신했다.   그중 한 여인을 향해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달려갔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것도 당장에.   내 것이 아닌 트렁크가 분실되었을 때, 두 사람은 우리의 입맞춤이 아닌 낯선 입맞춤을 서로 나누었다.   N시의 기차역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라'는 시험에 훌륭하게 통과했다.   전체는 있어야 할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세부적인 사항들은 지정된 철로를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는 미처 약속되지 못한 만남조차 정확한 타이밍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철저하게 우리의 현존이 미치는 범위 밖에서. 있음 직한 개연성을 상실한 파라다이스에서.   어딘가 다른 곳에서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이 낱말 조각들이 실은 얼마나 커다란 울림을 가지고 있는지.   살아 있는 자 / 쉼보르스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살아 있는 자를 포옹하는 것, 감싸 안는 것.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심장의 박동뿐. 우리의 모계 혈통을 이어받은 거미들이 그를 보자마자 혐오감에 줄행랑을 쳤기에 게걸스러운 거미들에게 통째로 잡아먹히는 일은 없으리라.   그의 머리가 집행 유예를 받은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의 어깨에 기대어 쉴 수 있는 특권을 허락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천 가지도 넘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의 숨소리에 열심히 귀 기울리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중세의 기적극*은 야유와 조롱 속에 막을 내렸다. 범죄는 철저하게 진압되었다. 여성들의 전유물인 공포에 대한 상속권은 박탈당했다.   오로지 손톱들만 살아남아 반짝이다가, 점점 닳아 소멸될 뿐.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 손톱이 막대한 재산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겨진 은화 한 닢이란 사실을.   우리를 보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조차 그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목덜미 위에 돋아난 천 개의 눈을 부릅뜬 공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미처 알지 못한다.   그 모습은 가까스로 이 세상을 향해 두발을 내디딘 듯 힘겹게만 보인다. 우리 모두가 그랬듯. 우리의 모습 그대로.   뺨 위에는 속눈썹이 애원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쇄골 사이에는 회한에 젖은 땀방울이 시냇물처럼 고여 있다.   지금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 그는 조용히 잠들어 있다. 시효가 만료된 죽음과의 포옹 속에서 그는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   *기적극; 예수나 성도에 의한 기적을 소재로 한 중세의 종교극.   태어난 자 / 심보르스카   그러니까 이 여인이 그의 어머니다. 작은 키의 여인.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생명의 근원,   몇 년 전 그를 태우고 물가로 떠내려온 조각배.   그는 그 조각배에서 탈출했다. 세상으로, 영원이 아닌 이곳으로.   나와 함께 불꽃을 뛰어넘은 그 남자를 출산한 여인.   그녀는 완제품이 아닌 미완성의 그를 선택한 유일한 여인이다.   내겐 이미 친숙한 그의 살갗을 가져다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뼈대에다 동여맨 장본인이다. 철저하게 혼자의 힘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짙은 회색빛 눈동자를 그녀는 스스로 고안하고, 만들어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알파. 그는 왜 내게 그녀를 보여주었을까.   그 남자은 그렇게 태어났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언젠가는 죽게 될 나와 마찬가지로.   진짜 여인의 아들. 육신의 깊은곳에서 막 허물을 벗고 나온 신참내기. 오메가를 향한 방랑자.   매 순간 사방에서 자신의 부재(不在)를 위협당하는 존재.   그의 머리 그것은 시간에 순응하는 벽을 향해 사정없이 부딪쳤다.   그의 행동 그것은 보편적인 평판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도피였다.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미 그 길의 절반을 지나왔다는 걸.   그러나 그는 내게 그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분이 내 어머니야" 오직 이 한마디만 했을 뿐.   인구조사 / 쉼보르스카   언젠가 트로이 대제국이 우뚝 서 있던 그 언덕에서 일곱 개의 도시가 발굴되었다. 한 편의 서사시를 노래하려면 도시 하나면 충분치 않을까. 나머지 여섯 개는 필요치 않다. 그것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육보격의 시는 완전히 붕괴되어버렸다.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허구가 아닌 논픽션의 벽돌이 삐죽 튀어나온다. 무성 영화처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와르르 벽이 무너져내린다. 대들보가 붕괴되고, 솨시슬이 끊어진다. 마지막 한 방울의 수분까지 남김 없이 말라버린 녹슨 주전자.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부적, 과수원의 씨앗들. 우주비행사가 달에서 가져온 화석처럼 직접 손으로 만져야만 확인 가능한 두개골들.   태고의 흔적들이 퇴적물처럼 우리 옆에 빼곡히 쌓여간다. 공급 과잉으로 넘쳐날 지경. 무지막지한 지역 주민들이 원주민의 역사 속으로 난폭하게 쳐들어왔다. 고기 자르는 기다란 칼을 양손에 든 유목민들. 헥토르의 용맹에 결코 뒤지지 않는 무명용사들. 수천 명의 개별적인 얼굴들. 매 순간 처음이고 마지막인 그 얼굴들. 제각기 범상치 않은 한 쌍의 눈을 가진 얼굴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동안은 한결 편했다. 공간도 훨씬 넓었고, 추모의 감정도 훨씬 풍부했다.   과연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인구 밀도가 유달리 낮았던 어떤 시대를 골라 거기에 전부 파묻어줄까? 아니면 그들의 금세공 기술을 인정하고 한껏 칭찬해줄까? 최후의 심판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 삼백만 명의 판사들 앞에는 각자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에. 말주변이라곤 전혀 없는 군중들과 무수한 가차역들, 야외 경기장의 특별관람석, 다양한 행진과 시위들. 이국땅의 수많은 거리들, 계단과 벽들. 무수한 기차역들, 야회경기장의 특별관람석, 다양한 행진과 시위들. 이국땅의 수많은 거리들, 계단과 벽들. 우리들은 백화점에서 새로운 물 주전자를 구입하면서 그렇게 영원히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호메로스*는 현재 통계청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그가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메로스Homeros : 고대 그리스의 시인으로 영웅 서사시인 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의 탄생 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나 대체로 기원전 9~8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두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로서 문학의 고전이라 불리고 있으며,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중세와 근세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피에타* / 쉼보르스카   영웅이 탄생한 작은 마을에서 동상을 바라보며, 그 커다란 규모에 찬사를 보내라. 텅 빈 박물관 문간에서 훠이훠이 암탉 두 마리를 쫓아내라.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라. 문을 두드려라. 삐걱대는 대문을 밀어젖혀라. 어머니늘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말끔히 벗어 넘긴 머리에, 밝은 시선을 던지리라. 폴란드에서 왔노라고 당당히 말하라. 어머니께 인사하라, 분명하게, 큰소리로 안부를 물어라. 그렇다, 그녀는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렇다, 그는 늘 그대로였다. 그렇다, 그날 그녀는 감옥을 둘러싼 담벼락 옆에 서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총격 소리를 들었다. 녹음기와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하라. 그렇다, 그녀는 언젠가 그 기계들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의 마지막 편지를 읽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오래된 자장가를 불렀다. 한번은 영화를 찍다가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렇다, 기억은 여전히 그녀를 감동시킨다. 그렇다, 그녀는 약간의 피로를 느낀다. 그렇다, 하지만 곧 사라질 것이다. 일어나라, 감사의 인사를 전하라, 작별하라.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곳을 떠나라.   *피에타 Pieta: 예수의 유해를 무릎에 안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 또는 상(像)   1960년대의 영화 / 심보르스카 저기 서 있는 성인(成人) 남자, 땅을 딛고 선 인간. 10만 개의 신경 세포. 300그램의 십장과 그 안에 담겨진 5리터 가량의 혈액. 무려 3백만 년 동안 끊임없이 생성되어져온 개체.   초기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어린 소년은 아주머니 무릎 위에 머리를 포겠다. 그 어린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릎은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린 소년은 이미 너무 커버렸다. 아, 그는 더 이상 어린 소년이 아니다. 이 거울들은 잔인한 데다가, 아스팔트처럼 매끄럽기까지 하다. 어제 그는 고양이를 차로 치어 죽였다. 그래, 그건 꽤 괞찮은 아이디어였어. 이 시대의 끔삑한 지옥으로부터 고양이를 해방시켰으니 자동차에 타고 있던 소녀가 속눈썹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본다. 이건 아니야, 그녀는 그가 원하던 무릎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바란 건 모래사장에 길게 누워 마음껏 숨을 쉬는 것. 그는 세상과 아무런 연관성도 갖지 못했다. 자신이 손잡이가 부서진 주전자 같다고 여겼다. 귀퉁이가 깨진 것도 모른 채 여전히 물을 길어 나르는 가엾은 주전자--- 이것은 사뭇 경이로운 일이다. 고난을 무릅쓰고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누군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집은 이제 다 지어졌다. 문고리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졌고, 나무에는 어린 가지가 접목되었다. 이제 곧 서커스단이 공연을 시작하리라. 이 '완벽한 전체'는 현재 상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싶다. '조각'과 '부분'이 결합되어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음은 까맣게 잊은 듯. sunt lacrimae renum(이것은 존재가 흘린 눈물)* 마치 접착제처럼 끈적끈절하고, 견고한 액체. 이 모든 것들은 단지 부수적인 배경일 뿐, 언제나 본질에서 한 발짝 비껴나 있다. 그의 내면에는 극심한 어둠이 있고, 어둠의 한가운데에 예의 그 어린 소년이 있다.   무엇이든 그에게 해주소서, 유머의 신이여. 어떻게든 그에게 웃음을 주소서, 유머의 신이여.   *sunt lacrimae renum(이것은 존재가 흘린 눈물); 기원전 1세기에 활약했던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남긴 위대한 서사시에 나오는 "사물 또한 눈물을 흘린다"는 구절을 인용한 것. 베르기리우스는 애국적인 정서와 종교적 경건함, 풍부한 교양, 완벽한 시적 기교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특히 단테가 에서 그를 안내자로 삼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병원에서 작성한 보고서 / 쉼보르스카   누가 그를 만나러 갈까. 우리는 성냥개비로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내가 당첨됐네요. 나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병원의 면회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습니다.   문안 인사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는 오히려 제 손을 뒤로 뺐습니다. 뼈다귀를 감추고, 절대로 내놓지 않으려는 굶주린 강아지처럼.   그는 죽는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듯 했습니다.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에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합성 사진 속의 인물들처럼 우리의 시선은 스치고, 엇갈렸습니다.   그는 그만 가달라고도, 곁에 있어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탁에 함께 앉았던 사람들 중 그 누구의 안부도 묻지 않았습니다. 볼레크, 너에 대해서도 톨레크, 너에 대해서도, 롤레크, 너에 대해서도*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네요. 죽는 자는 누구이고, 애도하는 자는 누구인가요? 나는 유리컵에 꽂힌 세 송이의 제비꽃에 관해, 현대 의약품의 놀라운 효력에 관해 찬사를 늘어 놓았습니다. 태양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다가 불을 껐습니다.   아래로 뛰어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와락 열어젖힐 수 있는 문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아직도 너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기쁜 일인지.   병원 냄새는 내게 구토를 불러일으킵니다.   *볼레크Bolek, 톨레크Tolek, 롤레크Lolek는 우리나라의 철수, 민수, 영수처럼 폴랜드에서 흔한 남자 이름이다.   철새들의 귀환 / 쉼보르스카   그해 봄, 철새들은 또다시 너무 일찍 돌아왔다. 이성(理性)이여 기뻐하라, 본능 또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에. 본능이 꾸벅꾸벅 졸며 방심하는 사이, 철새들은 눈 속에 추락하여 어이없이 죽음을 맞는다. 정교한 인후(咽喉)와 예술적인 발톱, 건실한 연골과 진지한 물갈퀴, 심장의 배수구와 창자의 미로, 갈비뼈 사이의 가지런한 통로와 열을 지어 곧게 뻗은 근사한 척추, 공예품 박물관에나 어울릴 듯 멋들어진 깃털, 참을성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부리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황당한 죽음을 맞는다.   이것은 애도의 노래가 아니라, 단지 분노의 표현일 뿐. 눈부시게 깨끗한 순백의 천사, 구약 성서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 땀구멍을 지닌 나는 연(鳶), 공중에서는 한없이 자유롭고 개별적이어서 우리 손에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무한한 존재,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극처럼 근육과 근육의 시간과 장소의 일치속에 긴밀하게 이어져 있고, 힘찬 날갯짓으로 환호를 보내는 경이로운 생물체가 바닥으로 곤두박질한다. 그러곤 자신만의 고풍스럽고, 소박한 태로로 미수(未遂)로 그치고 만 무기력한 시도를 바라보듯, 아무렇지도 않은 담담한 얼굴로 비둘기의 최후를 응시한다.   안경원숭이* / 쉼보르스카   나는 안경원숭이, 안경원숭이의 아들. 안경원숭이의 손자이며, 안경원숭이의 증손자. 두 개의 커다란 동공과 그 밖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결합된 조그만 피조물. 계속되는 진화와 끊임없는 변형으로부터 나는 기적적으로 구출되었죠. 내 고기가 기막힌 맛을 내는 것도 아니고, 내 모피 가지고는 털목돌리 한 개를 만들기도 부족하니까요. 내 침샘이 다른 동물들처럼 행운의 부적으로 쓰이는 것도 아니고, 내 창자로 음악회에 사용할 현악기의 줄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는 안경원숭이, 인간의 손가락 위에 산 채로 덩그러니 앉아 있습니다.   친애하는 주인님, 안녕하세요. 내게서 아무것도 빼앗아갈 필요가 없으니 그 대가로 무엇을 주실 건가요? 주인님의 너그러운 아량으로 어떤 보상을 베푸실 건가요? 나는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 당신의 미소를 똑같이 흉내 낸 대가로 얼마나 많은 상금을 하사하실 건가요? 관대하신 주인님, 너그러우신 주인님,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가치 없는 죽음은 없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증언해줄까요? 행여 당신들이 해줄 건가요?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이 모든 사실들은 별이 총총한 이 밤이 지나면 금세 잊혀져버릴 것을.   가죽이 통째로 벗겨진다든지, 뼈가 뽑히거나 깃털이 갈기갈기 찢기는 끔찍한 불행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던 우리들 중 몇몇 원숭이만이 가시와 비늘과 송곳니와 뿔을 감히 동경할 수 있었답니다. 단백질의 착상으로 만들어진 그 밖의 다른 것들을 소망할 수 있었답니다. 친애하는 주인님, 우리는 당신의 꿈입니다. 일시적이나마 당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백일몽입니다.   나는 안경원숭이,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다 안경원숭이. 다른 짐승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조그만 몸집을 가진 피조물.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무엇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완벽한 존재. 먼 옛날 나는 너무나 가벼워서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를 사뿐히 뛰어오를 수도 있었고, 하늘 위로 튕겨져 감상적인 돌멩이 때문에 한 번, 또 한 번, 자꾸 밑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안경원숭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답니다. 안경원숭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당위성에 대해서.   *안경원숭이; 동인도 제도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원숭이류의 동물. 안경을 쓴 것처럼 동그랗고 큰 눈이 특징이다.   일요일에 심장에게 / 쉼보르스카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보채지도, 소란을 피우지 않아서. 타고난 성실성과 부지런함에 대해 그 어떤 보상도, 아첨도 요구하지 않아서.   너는 1분에 70번의 공로를 세우고 있구나. 내 모든 수축과 이완은 바다 한가운데로 조각배를 밀어내듯 세상의 주위를 맴돌고 있구나.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한 번, 또 한 번, 나를 전체에서 분리시켜주어서. 심지어 꿈에서조차 따로 끄집어내주어서.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내가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해주어서. 비록 오늘은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날이지만, 내 갈비뼈 바로 아래쪽에선 휴일을 코앞에 둔 분주하고, 일상적인 움직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곡예사 / 쉼보르스카   공중그네에서 공중그네로. 묵소리가 멈춘 뒤 갑자기 찾아든 죽음과도 같은 적막 속에서, 느닷없이 놀란 공기를 헤집고 관통하면서, 또다시 추락의 타이밍을 비껴난 육신의 무게보다 한 템포 더 빠르게.   그는 솔로였다. 아니 솔로보다 더 작고, 부족한 존재였다. 절름발이였기에, 날개를 잃어버렸기에. 이 모든 결핍은 더욱더 크나큰 장애가 되어 마침내 그는 깃털 하나 없이 적나라한 시선 속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풀쩍,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힘겹지만 가볍게, 끈질긴 민첩함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영감 속에서, 너는 아느냐, 비행의 순간을 낚아채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숨죽이고 기다려야 했는지. 너는 아느냐, 자신이 지닌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만 했는지. 너는 아느냐,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느냐. 그가 얼마나 절묘하게 자신의 체형을 짜 맞추고 조립했는지를 흔들리는 세상을 손아귀에 포착하기 위해 그는 계획에 맞춰 새로이 제작된 양팔을 앞으로 곧게 뻗었다.   바로 그 순간, 벌써 화살처럼 저만치 달아나버린 그 짧은 찰나에 그의 두 팔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고 위대했다.   다산을 기원하는 구석기 시대의  페티시즘* / 쉼보르스카   위대한 어머니는 얼굴이 없다. 무엇 때문에 위대한 어머니에게 얼굴이 필요하겠는가. 얼굴은 충실하고, 정숙하게 몸의 일부로 머무르질 못한다. 얼굴은 몸에게 훼방을 일삼는 신성치 못한 존재다. 육신의 장엄한 일치와 조화를 방해할 뿐. 위대한 어머니에게 아름다운 얼굴은 한가운데 눈먼 배꼽이 새겨진 볼록한 배와 다름 아니다.   위대한 어머니는 발이 없다. 위대한 어머니에게 무엇 때문에 발이 필요하겠는가. 대체 어디를 헤매고 다닌단 말인가. 세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느닷없이 끼어들 일이 뭐가 있겠는가. 위대한 어머니는 이미 자신이 원하던 그곳으로 떠났다. 거기서 살갗을 팽팽하게 긴장시킨 채 열심히 보초를 서고 있다.   그래, 저기 저 너머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있는가? 뭐, 아무래도 좋다. 그곳은 풍요와 축복의 땅인가? 그렇다면 더욱 좋다. 아이들이 어딘가를 향해 분주히 달려가고 있다. 고개 들어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가? 훌륭하다! 그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터무니없을 만큼 온전하게,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들이 등을 돌려도 여전히, 변함없이 존재한다 세상으로선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위대한 어머니는 간신히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가슴 위에 가지런히 포개어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두 개의 가느다란 손. 이 손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生)을 축복해야 한단 말인가. 무슨 이유로 넘치게 축복 받은 자들에게 또다시 은총을 베풀어야 한단 말인가. 이 손이 맡은 역할은 오직 하나.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한 무슨 일이 생겨도, 설사 아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견뎌내는 것, 자신에게 허락된 본분을 지키며, 지그재그로 엇갈린 본연의 자세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아름다운 자태에 마지막 미소를 보태는 것.   *페티시즘 ; 일종의 물신 숭배로 나무나 돌 따위에 마력이 있다고 믿고,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원시 종교의 한 형태.
42    황무지 / T.S. 엘리엇 (황동규[한국] 번역) 댓글:  조회:449  추천:0  2017-08-24
황무지 / T.S. 엘리엇    (황동규 번역)   "한번은 쿠바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이 제사(題詞)는 1세기 로마 황제의 궁정시인이었던 페트로니우스의 48장  에서 인용한 것으로, 술 취한 김에 주인 트리말키오가 신기한 이야기를 해서 술친구들을 압도하려고 하는 장이다. 희랍신화에서 무녀는 앞날을 점치는 힘을 지닌 여자이다. 그녀는 아폴로신에게서 손안에 든 먼지만큼(30행 참조) 많은 햇수의 수명을 허용받았으나 그만큼 젊은도 달라는 청을 잊고 안 했기 때문에 늙어 메말라 들어 조롱 속에 들어가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죽음보다도 못한 죽은 상태의 황무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보다 나은 예술가"는 단테가 (연옥편) 26장에서 12세기 이탈리아 시인 다니엘을 찬양한 문구. 혼란 상태에 있던 의 초고를 에즈라 파운드가 약 절반의 길이로 고쳐 준데 대한 감사의 찬사.   1 죽은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르베르거 호(湖)***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죽은 자의 매장: 영국 정교의 매장 성사에서 나온 것임.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가사(假死) 상태를 오히려 원하는 현대의 주민들에게 모든 것을 일깨우는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일 수 밖에 없다. 시인 초서(1343~1400)의 에서는 4월에 주민들이 성지순례를 떠나지만 황무지의 주민들은 8~18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쾌락의 관광 여행을 떠난다. ***슈타른베르거 호: 뮌헨 근처에 있는 호수. 휴양지로 유명. *호프가르텐 공원: 뮌헨에 있는 공원.   어려서 사촌 태공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으로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내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 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아 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마리 라마슈 백작부인의 가  8~18행의 기조를 이루고 있음은 밝혀진 사실이지만 여기서 마리를 특정인으로 볼 필요는 없다. 8~18행은 휴양지에서 상류사회 사람들이 하는 의미 없는 대화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구약 2장 1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엘리엇 원주. *** 6장 6절 "너의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참조  * 12장 5절 노년의 적막을 말하는 곳.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참조. 엘리엇 원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 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 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32장 2절 "'의로운 왕'은 광풍이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참조. 여기서 '의로운 왕'은 예수를 예언한 것으로 풀이됨. **이 시 앞의 제사(題詞)의 주 참조. *** 바그너의 오페라 1막 5~8절. 배사공의 아리아. 엘리엇의 원주 *히아신스꽃은 풍요제에서 부활한 신의 상징이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수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네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로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3막 24절 . 이졸데의 배가 오나 살펴보던 목동이 죽어가는 트리스탄에게 하는 말, 엘리엇 원주. **올더스 헉슬리(1894~1963)의 소설 27장에 가짜 점쟁이 마담 세소스트리스가 등장 이집트식 이름 '독감에 걸렸다'는 부분에 아이러니를 줌. ***점쟁이들이 사용하는 타로 카드는 모두 일흔여덟 장으로 되어 있으며 풍요제와 민화에 기원을 갖고 있다. 엘리엇의 원주에 의하면, 자신은 타로 카드의 정확한 구성을 잘 모르며 편의에 맞추어 변형시키기도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영특한 카드"에서 "요새는 조심해야죠"까지 나오는 상징들은 1)의식의 타락. 2)원형적 상징물 해석의 모호함. 3)정신 구조를 파헤치기 위한 열쇠가 되는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풍요신의 한 전형, 여름의 죽음을 상징하기 위해 매해 그를 본뜬 상을 바다에 던진다. **세익스피어의 1막 2장. 에서 인용. 익사한 자의 눈이 진주로 변했다고 함으로써 놀라운 바다의 변화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건 벨라도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예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 보이는군요. 몰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 없는 도시,***   *이탈리어로 미인. 마리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다빈치가 그린 암석의 마돈나를 생각하라)벨라도라라는 이름을 지닌 눈 화장품을 연상하기고 하다. 그리고 수상한 여인이 되어 3부의 여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타로 카드에 나오는 인물. 엘리엇은 그를 멋대로 어부왕과 연결시켰다고 원주에서 밝히고 있다. ***운명의 바퀴 *프로필이기 때문에 하나만 보인다. 3부의 상인 유제니데스와 연결. **타로 카드에 나오는 인물 T자형의 십자가에 한쪽 다리로 매달려 있음. 식물의 재생을 위해 살해당하는 신을 상징함. ***보들레르의 시 참조.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때의 사람들이 런던 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 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 가***를 내려가 성(聖) 메리 올노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 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슨**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템스 강에 놓인 다리. 런던 주택가에서 상업 중심지로 가려면 건너는 다리. **단테의 3장 55~57행 참조.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았던 사람의 무리 보들레르를 논하는 자리에서 엘리엇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상태보다는 차라리 악한 것이 낫다도 말함. 다음 2행 역시 단테의 3장 55~57행 참조. *킹 윌리엄 가에 있는 성당 이름 건축가 렌이 설계한 성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한다고 엘리엇은 원주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전 9시는 런던 교를 건너는 군중들의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마도 흔한 사업가의 이름. ***1차 포에나 전쟁(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해전 1차 세계대전처럼 포에니 전쟁도 경제적 문제로 발생한 것이다.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상(錨床)을 망쳤나? 오 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고대 풍요제에서는 신의 형상들을 뜰에 묻었다. 그 풍요제가 정원 가꾸기로 바뀌었다. **엘리엇 원주에 의하면 존 웹스터(1580~1633)의 비극 5막 4장에서 코르넬리아의 조가(弔歌). 무덤 없는 자들의 비정한 시체들을 위한 노래. "하지만 인간의 적인 늑대들을 조심하시오. 발톱으로 다시 파헤치리니"에서 '늑대'를 '개'로 '인간의 적'을 '인간의 친구'로 바꿈. 이 이미지는 풍요제의 궁극적 속화를 보여 주기도 한다. 즉 신이 뒤뜰에 묻혔다가 개가 파내는 물건들로까지 된 상태. *** 엘리엇의 원주. 보들레르의 서시 의 마지막 행. 보들레르처럼 엘리엇도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어 적극적으로 시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는 뜻도 있고, 독자까지 공모자로 만드려는 뜻도 있다.   2 체스 놀이* / T.S. 엘리엇      그네가 앉아 있는 의자는 눈부신 옥좌처럼** 대리석 위에서 빛나고, 거울이 열매 연 포도 넝쿨 아로새긴 받침대 사이에 걸려 있다 넝쿨 뒤에서 금빛 큐피트가 몰래 내다 보았다 (큐피트 또 하나는 날개로 눈을 가리고) 거울은 가지 일곱 개인 촛대에서 타는 불길을 두 배로 반사해서 테이블 위로 쏟았고, 비단 갑들로부터 잔뜩 쏟아 놓은 그네의 보석들이 그 빛을 받았다 마개 뽑힌 상아병과 색 유리병에는 이상한 합성향료들이 연고(軟膏) 분 혹은 액체로 숨어서 감각을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익사시켰다 향내는 창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자극받아 위로 올라가 길게 늘어진 촛불들을 살찌게 하고   *이 제목은 토머스 미들턴(1570~1627)의 극 와 를 연상시킨다. 특히 후자 2막 2장에서의 체스 놀이는 며느리가 겁탈당하는 동안 보호자인 시어머니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능욕당한 필로멜라의 이야기가 이 테마를 다시 강조해 준다. 이 마당에서 전개되는 두 개의 장면 모두 무의미한 성의 아야기임에 유의하자. **엘리엇의 원주. 섹스피어의 2막 2장 190행. "그네가 앉아 있는 거룻배는 눈부신 옥좌처럼 물 위에 빛났다."   연기를 우물반자(格天井)* 속으로 불어넣어 격자무늬를 설레게 했다. 동박(銅箔)을 뿌린 커다란 바다나무는 색 대리석에 둘러싸여 초록빛 주황색으로 타고 그 슬픈 불빛 속에서 조각된 돌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 고풍의 벽난로 위에는 마치 숲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처럼** 저 무지한 왕에게 그처럼 무참히 능욕당한 필로멜라***의 변신 그림이 걸려 있다 나이팅게일은 맑은 목청으로 온 황야를 채우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한다. 그 울음은 더러운 귀에 "쩍 쩍"* 소리로 들릴 뿐,   *베르길리우스의 1권 726 참조.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가 아이네이스를 위해 잔치하는 장면 부정한 카르타고 이야기는 3부 끝머리에 나온다. **엘리엇의 원주. 밀턴의 4권 140행 사탄의 눈으로 보는 에덴동산 묘사 ***오비디우스(BC.43~AD.17)의 6권 참조. 엘리엇의 원주. 오비디우스는 희랍신화의 필로멜라가 형부 테레우스 왕에 의해 능욕당하고 혀가 잘려 결국 나이팅게일로 변한 것을 노래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의 소리는 성교를 암시하는 말로도 쓰임. 비극적 신화가 전한 이야기로 변화된 상황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   그 밖에 시간의 시든 꽁초들이 벽에 그려져 있고, 노려보는 초상들은 몸을 기울여 자기들이 에워싼  방을 숙연케 했다. 층계에 신발 끄는 소리, 난로 빛을 받아, 빗질한 그네의 머리는 불의 점들처럼 흩어져 달아올라 말(言)이 되려다간 무서울 만치 조용해지곤 했다.   "오늘밤 제 신경이 이상해요. 정말 그래요. 가지 말아요. 얘기를 들려주세요. 왜 안 하죠. 하세요. 뭘 생각하세요? 무슨 생각? 무슨? 당신이 뭘 생각하는지 통 알 수 없어요. 생각해 봐요."   나는 죽은 자들이 자기 뼈를 잃은 쥐들의 골목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해*   "저게 무슨 소리죠?" 문 밑을 지나는 바람 소리.** "지금 저건 무슨 소리죠? 바람이 무얼 하고 있죠?"   *3장 193행 참조. 엘리엇 원주. **웹스터의 극 3막 2장 162행 참조. 죽은 사람으로 생각한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은 의사가 다른 의사에게 하는 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무것도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죠? 아무것도 보지 못하죠 아무것도 기억 못 하죠?"   나는 기억하지 그의 눈이 진주로 변한 것을* "당신 살았어요, 죽었어요?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나요?" 그러나 오오오오 저 세익스피이이어식 래그 재즈 -** 그것 참 우우아하고 그것 참 지(知)적이이야 "저는 지금 무얼 해야 할까요? 무얼 해야 할까요?" "지금 그대로 거리로 뛰쳐나가 머리칼을 풀어헤친 채 거리를 헤매겠어요. 내일은 무얼 해야 할까요? 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요?" 열 시에 온수(溫水).   *세익스피어의 1막 2장. 에서 인용. 익사한 자의 눈이 진주로 변했다고 함으로써 놀라운 바다의 변화력을 보여 주고 있다. **'오오오오'는 세익스피어의 오델로나 리어왕의 부르짖음 표시로 'O'를 네 번씩 반복하였음. 래그 재즈는 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유행한 것으로 싱커페이션(당긴음)이 툭색이다. 세익스피어의 스펠링이 변한 것은 이 싱커페이션 흉내이다. 만일 비가 오면, 네 시에 세단 차. 그러곤 체스나 한판 두지. 경계하는 눈을 하고 문에 노크나 기다리며.*   릴의 남편이 제대했을 때 내가 말했지 --** 노골적으로 말했단 말이야.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이제 앨버트가 돌아오니 몸치장 좀 해. 이 해 박으라고 준 돈 어떻게 했느냐고 물을 거야. 돈 줄 때 내가 거기 있었는 걸. 죄다 뽑고 참한 걸로 해 넣으라고, 릴. 하고 앨버트가 분명히 말했는걸, 차마 볼 수 없다고. 나도 차마 볼 수 없다고 했지. 가엾은 앨버트를 생각해 봐. 4년 동안이나 군대에 있었으니 하고 싶을 거야. 네가 재미를 주지 않으면 다른 여자들이 주겠지. 오오 그런 여자들이 있을까, 릴이 말했어. 그럴걸, 하고 대답해 줬지. 그렇다면 고맙다고 하며 노려볼 여자를 알게 되겠군, 하고   *능욕당한 필로멜라의 이야기가 이 테마를 다시 강조해 준다. 이 마당에서 전개되는 두 개의 장면 모두 무의미한 성의 아야기임에 유의하자 **여기서부터 둘째 마당 마지막까지는 술집에서 두 여자가 혹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하는 대화 내지는 말로 되어 있다. ***바텐더가 묻 닫을 시간임을 알리는 말.   릴이 말했지.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그게 싫다면 좋을 대로 해봐, 하고 말했지. 네가 못하면 다른 년들이 할 거야. 혹시 앨버트가 널 버리더라도 내가 귀띔 한 안 탓은 아냐. 그처럼 늙다리로 보이는 게 부끄럽지도 않니? 하고 말했지. (개는 아직 서른한 살인걸.) 할 수 없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릴이 말했어. 애를 떼기 위해 먹은 환약 때문인걸. (개는 벌써 애가 다섯, 마지막 조지를 낳을 땐 죽다 살았지.) 약제사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그 뒤론 전과 같지 않아. 넌 정말 바보야, 하고 쏘아 줬지. 그래 앨버트가 널 가만두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애를 원치 않는다면 결혼은 왜 했어?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그런데 앨버트가 돌아온 일요일 따뜻한 햄 요리를 하곤 나를 불러 제대로 맛보게 했지.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서두르세요, 닫을 시간입니다.  빌 안녕, 루 또 보자, 메이 안녕, 안녕. 탁탁, 안녕, 안녕, 안녕, 부인님들, 안녕, 아름다운 부인님들, 안녕 안녕*   *오필리어가 물에 빠져 죽기 전에 하는 인사말. 4막 5장 참조.    3. 불의 설교* / T.S. 엘리엇     강의 천막이 찢어졌다,** 마지막 잎새의 손가락들이 젖은 둑을 움켜쥐며 가라앉는다. 바람은 소리 없이 갈색 땅을 가로 지른다. 님프들이 떠나갔다. 고이 흐르라, 템스 강이여, 내 노래 끝낼 때까지*** 강물 위엔 빈 병도, 샌드위치 쌌던 종이도 명주 손수건도, 마분지 상자도 담배꽁초도 그 밖의 다른 여름밤의 증거품 아무것도 없다. 님프들의 친구들, 빈둥거리는 중역 자제들도 떠나갔다, 주소를 남기지 않고.   *물이 정화시키는 힘과 익사시키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처럼 불도 정화시키는 힘과 태워 없애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다. 는 부처가 인간을 파괴하고 재생을 막는 정욕의 불에 대해 설교한 것이다. 현대적인 설교 장소는 탬스 강변, 즉 런던이다. **시각이 주는 이미지만을 생각한다면 천막처럼 위를 덮고 있던 나뭇잎이 가을에 졌다는 뜻임. 그러나 구약성경에 의하면 유목민인 유대인들이 천막을 성소로 사용했으므로 성소가 무너졌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일반적으로 여자의 순결이 깨졌음을 뜻할 수도 있다. ***에드먼드 스펜서(1552~1599)의 의 후렴, 결혼을 축하하는 장소도 템스 강임. 그러나 쓰레기가 널린 오늘날의 템스 강과는 다르다. 래먼 호숫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 고이 흐르라, 템스 강이여, 내 노래 끝낼 때까지. 고이 흐르라, 템스 강이여, 내 크게도 길게도 말하지 않으리니. 그러나 등 뒤의 일진냉풍 속에서 나는 듣는다** 뼈들이 덜컹대는 소리와 입이 찢어지도록 낄낄거리는 소리를.   어느 겨울 저녁 가스 공장 뒤를 돌아 음산한 운하에서 낚시질을 하며*** 형왕의 난파*와 그에 앞서 죽은 부왕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쥐 한마리가 흙투성이 배를 끌면서 강둑 풀밭을 슬며시 기어갔다. *구약 137편 1절 "우리가 바빌론 강변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고 울었노라." 참조. 래먼 호는 제네바 호의 프랑스식 이름. 이곳에서 엘리엇은 의 많은 부분을 썼다. 한편 래먼이 첩이나 창녀라는 말로도 쓰이므로 욕정과의 관계도 있다. **마빌의 의 1절 "하나 등 뒤로 나는 항상 듣는다 시간의 날개 달린 전차가 가까이 달려오는 소리를." 엘리엇 원주. ***물고기를 잡는 것은 영원과 구원을 찾는 일임(어부왕 참조) 그러나 이 행위는 이제 속화되어 버렸음. *1막 2장. 페르디난도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장면, "둑 위에 앉아 부왕의 난파를 슬퍼했노라" 참조. 엘리엇 원주. 흰 시체들이 발가벗고 낮고 습기 찬 땅속에 뼈들은 조그맣고 낮고 메마른 다락에 버려져서 해마다 쥐의 발에만 차여 덜그덕거렸다. 하나 등 위에서 나는 때로 듣는다. 클랙슨 소리와 엔진 소리를, 그 소리는 스위니를 샘물 속에 있는 포터 부인에게 데려가리라.* 오 달빛이 포터 부인과 그네의 딸 위로 쏟아진다. 그들은 소다수에 발을 씻는다.** 그리고 오 둥근 천장 속에서 합창하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여!** *엘리엇 원주. 존데이(1574~1840)의 극 "갑자기 귀를 기울이면 들으리/나팔 소리와 사냥감 쫓는 소리/그것은 악타이온을 샘물 속에 있는 다이애나에게 데려가리라/거기서 모두를 그네의 벌거벗은 살을 보리라." 다이애나가 목욕하는 것을 본 악타이온은 사슴으로 변해 동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위의 희랍신화와는 달리 현대의 악타이온 스위니 씨는 다른 운명을 맞는다. **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레일리아의 병사들 간에 유행한 노래. 원주에서 엘리엇은 출처가 선명하지 않음을 술회하고 있다. ***엘리엇의 원주. 베를렌(1844~1896)의 시 의 마지막 행 부상당한 암포르타스(어부왕)에게 내린 저주를 기사 파르시팔이 벗겨 주기 전 발을 씻는 예식에서 소년들이 합창함. 바그너 작곡의 참조. 투윗 투윗 투윗 져 져 져 져 져 져 참 난폭하게 욕보았네 테류.*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낮의 갈색 안개 속에서 스미르나 상인** 유게니데스 씨는 수염도 깎지 않고 포겟엔 보험료 운임 포함 가격의 건포도 일람 증서를 가득 넣고 속된 불어로 나에게는 캐논 스트리트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주말을 메트로폴 호텔*에서 보내자고 청했다.   보랏빛 시간, 눈과 등이 책상에서 일어나고 인간의 내연기관이 택시처럼 털털대며 기다릴 때. *테류는 필로멜라를 능욕한 테레우스의 호격. **스미르나는 터키 서부에 있는 항구. 이곳 상인들은 고대의 신비한 의식을 퍼뜨렸다. 오늘날의 의식은 메트로폴 호텔에서 보내는 주말로 되었다. ***유럽 대륙과 거래하는 상인들이 자주 가던 호텔 *영국 남안 브라이튼 시에 있는 호텔. "주말을 메트로폴에서"라는 말은 당시 성적인 낌새가 많은 말이었다. 비록 눈 멀고 남녀 양성 사이에서 털털대는 시든 여자 젖을 지닌 늙은 남자인 나 티레지아스*는 볼 수 있노라. 보랏빛 시간, 귀로를 재촉하고 뱃사람을 바다로부터 집에 데려오는 시간** 차(茶)시간에 돌아온 타이피스트가 조반 설거지를 하고 스토브를 켜고 깡통 음식을 늘어놓는 것을. 창밖으로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마르고 있는 그네의 콤비네이션 속옷이 위태롭게 널려 있다. (밤엔 그네의 침대가 되는) 긴 의자 위엔 양말 짝들, 슬리퍼, 하의, 코르셋이 쌓여 있다. 시든 젖이 달린 늙은 남자 나 티레지아스는 이 장면을 보고 나머지는 예언했다 - *희랍신화에 나오는 남녀 양성의 인물, 헤라에 의해 눈이 멀었으나 제우스에 의해 예언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엘리엇의 원주는 다음과 같다. "티레지아스는 단순한 방관자이고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타의 모든 인물들을 통합하고 있다. 마치 외눈박이 건포도 상인이 페니키아 수부로 융합되고 다시 그 수부가 나폴리 왕자 테르디난도와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여자는 한 여자이고 남여 양성은 티레지아스 속에서 만난다. 티레지아스가 '관찰하는 것'이 사실상 이 시의 내용이다." **희랍의 여류 시인 사포(B.C. 612?~?)의 시행과 꼭 같지는 않으나 나는 해 질 무렵에 돌아오는 '근해 어부' 또는 '평저 어선'의 어부를 생각했다. 엘리엇 원주. 나 또한 놀러 올 손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 여드름투성이의 청년이 도착한다. 군소 가옥 중개소 사원, 당돌한 눈초리, 하류 출신이지만 브래드퍼드 백만장자의* 머리맡에 놓인 실크 모자처럼 뻔뻔스러움을 지닌 젊은이. 식사가 끝나고 여자는 지루하고 노곤해 하니 호기라고 짐작하고 그는 그네를 애무하려 든다. 원치 않지만 내버려 둔다. 얼굴 붉히며 결심한 그는 단숨에 달려든다. 더듬는 두 손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다. 잘난 체하는 그는 반응을 필요로 하지 않아 그네의 무관심을 환영으로 여긴다. (나 티레지아스는 바로 이 긴 의자 혹은 침대 위에서 행해진 모든 것을 이미 겪었노라. 나는 티베 시의 성벽** 밑에 앉기도 했고 가장 비천한 죽은 자들 사이를 걷기도 했느니라.) 그는 생색내는 마지막 키스를 해주고 더듬으며 층계를 내려간다. 불 꺼진 층계를--- *요크셔에 있는 모직 도시. 1차 세계대전 후 많은 갑부가 생겨났다. **고대 희랍 도시. 티레지아스는 이 도시에서 여러 세대 동안 살며 예언했다.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이 있었다. 그네는 돌아서서 잠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애인 떠난 것조차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어렴풋한 생각이 지나간다. '흥 이제 일을 다 치뤘으니 좋아,' 사랑스런 여자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혼자서 방을 거닐 때는 무심한 손으로 머리칼을 쓰다듬고 축음기에 판을 하나 건다.   "이 음악이 물결을 타고 내 곁으로 기어 와"** 스트랜드 가(街)의 술집 옆에서 달콤한 만돌린의 흐느끼는 소리와 생선 다루는 노동자들이 쉬며 안에서 *골드스미스(1730~1774)의 소설 중의 노래. 여주인공 올리비아는 과거에 유혹받은 장소에 와서 노래를 부른다. "사랑스런 여자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므로 남자가 배반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을 때 어떤 마술이 그네의 슬픔을 덜어 주랴." 그리고 '죽는 길'이 있음을 노래한다. 현대의 올리비어는 축음기를 튼다. ** 1막 2장의 페르디난도의 말. "둑 위에 앉아 부왕의 난파를 슬퍼했노라" 다음에 이어지는 구. ***런던 교 부근에 있는 거리 이름. 떠들어 대며 지껄이는 소리를 그곳에는 마그누스 마르티르 성당의 벽이* 이오니아풍(風)의 흰빛 금빛 형언할 수 없는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강은 땀 흘린다* 기름과 타르로 거룻배들은 썰물을 타고 흘러간다. 붉은 돛들이 활짝 육중한 돛대 위에서 바람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이 부분의 몇 행은 "달콤한 음악"과 일하고 쉬는 "생선 다루는 노동자" 그리고 성당 내부의 찬란함이 진정한 가치의 세계을 암시하고 있다. 즉 노동과 휴식이 모두 절실하고 종교적 의미와의 관련 아래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 템스 강 처녀들의 노래는 여기서 시작된다. 192행, 즉 전차와 먼지 뒤짚어쓴 나무들"부터 "아무 기대도 없는"까지 그들은 교대로 이야기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두 번 반복되는 "웨이얼랄라---" 바그너의 후렴에 의해 대조된다. 이 후렴은 바그너의 오페라 의 4부 3막 1장에서 라인 강의 처녀들이 부르는 것으로, 라인 강의 황금이 도난당한 후 라인강의 아름다움이 사라졌으나 곧 그것을 다시 찾을 것을 기대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거룻배들은 떠 있는 통나무들을 헤치고 개 섬(島)*을 지나 그리니치 하구로 내려간다. 웨이얼랄라 레이어 윌랄라 레이얼랄라   엘리자베스 여왕과 레스터 백작** 역풍에 젓는 노 고물은 붉은빛 금빛 물들인 조개껍질 힘차게 치는 물결은 양편 기슭을 잔무늬로 꾸미고 남서풍은 하류로 가지고 갔다. 노래하는 종소리를. *개 섬(島)은 런던 중심가로부터 약간 하류에 있는 반도. 첫 마디의 '개'의 모티프를 상기시킨다. 그리니치는 개 섬 건너편의 강변. **엘리자베스 여왕(세익스피어 시대)과 레스터 백작은 서로 연애하는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프로드의 7권 349쪽 참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템스 강 뱃놀이를 즐겼으며, 그리니치 하구 근처에 있는 그리니치 저택에서 여왕이 레스터를 접견하기도 했다. 하얀 탑들을. 웨이얼랄라 레이어 윌랄라 레이얼랄라   "전차(電車)와 머지 뒤집어쓴 나무들 하이베리가 저를 낳고 리치몬드와 큐가 저를 망쳤어요* 리치몬드에서 저는 좁은 카누 바닥에 누어 두 무릎을 추겨올렸어요"   "저의 발은 무어게이트에,** 마음은 발밑에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울었습니다. 그는 '새 출발을 약속했으나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무엇을 원망해야 할까요?"   "마게이트*** 모래밭. 저는 하찮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 다녔어요. *엘리엇의 원주. 단테의 5장 33행 "저 라피아를 기억해 주세요/시에나가 저를 낳고 마렘마가 저를 망쳤어요>"에 대한 풍자적 개작. 하이베리는 런던 교외의 저택가. 리치몬드와 큐는 보트장과 호텔로 유명한 템스 강변의 지명. **동부 런던의 빈민가 ***템스 강 하구의 해변 휴양지. 더러운 두 손의 찢긴 손톱. 제 집안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 아무 기대도 없는" 랄라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   불이 탄다 탄다 탄다 탄다.** 오 주여 당신이 저를 건지시나이다.*** 오 주여 당신이 건지시나이다.   탄다.   *엘리엇의 원주. 성 아우구스티누의 3부 1장.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 한 가마의 사악한 사랑이 내 귓전에서 온통 끓어 대는 곳으로" **엘리엇 원주에 의하면 부처의 에 근거한 것이다. 는 그 중요성으로 볼 때 5장 7절에 나오는 예수의 산상 수훈에 맞먹는다. 헨릴 클라크 워런의 (하버드 도양 총서 1896)의 부분은, "모든 것은 불탄다. 형태도 타고눈으로 받은 인상에 의해서 생기며 그것 또한 탄다." ***에서 부처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즉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 금욕주의자들을 이 마당의 극점으로 나란히 놓은 것은 의도적인 배려였음을 엘리엇은 원주에서 밝히고 있다   4 수사(水死)* / T.S. 엘리엇   페기키아 사람 플레바스는 죽은 지 2주일 갈매기 울음소리도 깊은 바다 물결도 이익도 손실도 잊었다 바다 밑의 조류가 소근대며 그의 뼈를 추렸다, 솟구쳤다 가라앉을 때 그는 노년과 청년의 고뇌들을 다시 겪었다. 소용돌이로 들어가면서 이교도이건 유태인이건** 오 그대 키를 잡고 바람 부는 쪽으로 내다보는 자여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한때 그대만큼 미남이었고 키가 컸던 그를.   *첫째 마디에서 소소트리스 부인이 예언한 페니키아 수부의 익사가 이루어진다. **즉 인간이면 누구나 다.    5. 천둥이 한 말*/ T.S. 엘리엇    땀 젖은 얼굴들을**  붉게 비춘 햇불이 있은 이래 동산에 서리처럼 하얀 침묵이 있은 이래 돌 많은 곳의 고뇌가 있은 이래 아우성 소리와  울음소리 옥(獄)과 궁궐(宮闕) 먼 산을 넘어오는 봄 천둥의 울림 살아 있던 그는 지금 죽었고 살아 있던 우리는 지금 죽어 간다 약간씩 견디어 내면서   여기는 물이 없고 다만 바위뿐 바위 있고 물은 없고 모랫길뿐 길은 구불구불 산들 사이로 오르고   *비를 기다리는 황무지에 비를 몰아오는 천둥의 소리이다. 이 마디의 첫 부분은 세 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즉 2장 13~31절에 기록된 에마우스로 가는 여행(두 제자가 예수가 부활한 날 에마우스로 간다. 도중에 한 사람이 끼어들지만 저녁 식사 때까지 그가 부활한 예수임을 모른다)과 제시 웨스턴(1850~1928)의 저서에 나오는 위험 성당에의 접근, 그리고 현재 동부 유럽의 피폐상. 엘리엇 원주. ** 다음 몇 행은 예수의 체포와 재판,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언덕에 대한 암시를 갖고 있으며, 예수가 처형당한 금요일부터 부활한 일요일. 즉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절망적인 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것은 어부왕이 죽은 후 황무지에 내린 절망과 연결된다.   산들은 물이 없는 바위산 물이 있다면 발을 멈추고 목을 축일 것을 바위 틈에서는 멈출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땀은 마르고 발은 모래 속에 파묻힌다 바위 틈에 물만 있다면 침도 못 뱉는 썩은 이빨의 죽은 산 아가리 여기서는 설 수도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다 산속엔 정적마저 없다 금 간 흙벽집들 문에서 시뻘겋게 성난 얼굴들이 비웃으며 으르렁댈 뿐 만일 물이 있고 바위가 없다면 만일 바위가 있고 물도 있다면 물 샘물 바위 사이에 물 웅덩이 다만 물소리라도 있다면 매미 소리도 아니고 마른 풀잎 소리도 아닌 바위 위로 흐르는 물소리가 있다면 티티새*가 소나무 숲에서 노래하는 곳 뚝뚝 똑똑 뚝뚝 또로록 또로록 하지만 물이 없다   항상 당신 옆에서 걷고 있는 제삼자는 누구요?** 세어 보면 당신과 나 둘뿐인데 내가 이 하얀 길을 내다보면 당신 옆엔 언제나 또 한 사람이 갈색 망토를 휘감고 소리 없이 걷도 있어. 두건을 쓰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   *물방을 듣는 소리 흉내를 잘 내는 새. **엘리엇의 원주. "다음 몇 행은 남극 탐험대의 이야기에 자극을 얻어 쓴 것이다. 어느 탐험인지는 잊었으나 아마 어니스트 헨리 세클턴의 탐험 가운데 하나로 생각된다. 탐험대원들이 극도로 피로했을 때 실제 그들의 수효보다 '한 사람이 더 있다'는 환상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또한 이 부분은 엠마우스로 가는 여행을 상기시켜 준다. 공중 높이 들리는 저 소리는 무엇인가* 어머니의 비탄 같은 흐느낌 소리 평평한 지평선에 마냥 둘러싸인 갈라진 땅 위를 비틀거리며 끝없는 벌판 위로 떼 지어 오는 저 두건 쓴 무리는 누구인가 저 산 너머 보랏빛 하늘 속에 깨어지고 다시 세워졌다가 또 터지는 저 도시는 무엇인가 무너지는 탑들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런던 현실감 없는   한 여인이 자기의 길고 검은 머리칼을 팽팽히 당겨** 그 현(絃) 위에 가냘픈 곡조를 타고, *이 연은 헤르만 헤세의 참조. "유럽의 반 부분, 적어도 동구의 반이 혼돈으로 가는 중이다. 성스러운 망사에 취햐여 절벽 끝을 따라달리며 취해서 노래 부른다. 마치 찬송을 부르듯이 마치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도스토예프스키의 )가 노래한 것처럼. 이 노래를 듣고 기분 상한 부르주아들은 조소하지만, 성자와 예언자는 눈물을 흘리며 듣는다." 엘리엇 원주. **엘리엇에 의하면 이 연에 사용된 몇몇 세부 사항은 15세기 폴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1516)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성배 전설의 중세판들에 의하면 위험 성당은 기사의 용기를 시험하기 위하여 악귀의 영상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어린애 얼굴을 한 박쥐들이 보랏빛 황혼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개 치며 머리를 거꾸로 하고 시커먼 벽을 기어 내려갔다 공중엔 탑들이 거꾸로 서 있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종을 울린다. 시간을 알렸던 종소리 그리고 빈 물통과 마른 우물에서 노래하는 목소리들.   산속의 이 황페한 골짜기 희미한 달빛 속에서 풀들이 노래하고 있다 무너진 무덤들 너머 성당 주위에서, 단지 빈 성당이 있을 뿐, 단지 바람의 집이 있을 뿐* 성당엔 창이 없고 문은 삐걱거린다 마른 뼈들이 사람을 해칠 수는 없지. 단지 지붕마루에 수탉 한 마리가 올라 꼬꾜 꼬꾜 꼬꾜 꼬꾜** 번쩍하는 번개 속에서. 그러자 비를 몰아오는 일진(一陣)의 습풍(濕風).   갠지스 강은 바닥이 나고 맥없는 잎들은 비를 기다렸다. 먹구름은                                                       *이 아무것도 없다는 환상은 기사에 대한 마지막 시험이다.                                                            **닭 울음소리는 유령과 악령들이 떠나감을 나타내 준다. 멀리 희말라야 산봉 너머 모였다. 밀림은 말없이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천둥이 말했다 다* 다타(주라): 우리는 무엇을 주었던가? 친구여, 내 가슴을 흔드는 피 한 시대의 사려분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은 죽은 자의 약전에서도 자비스러운 거미가 덮은 죽은 자의 추억에서도** 혹은 텅 빈 방에서 바싹 마른 변호사가 개봉하는 유언장 속에도 찾을 수 없다. 다 *5의 1 에 실린 설화. 신들과 인간 그리고 악귀들이 차례로 자기들의 부친인 프라야파디에게 물었다. "저희에게 말하소서." 그들에게 프라야파티는 각각 한 음절의 '다'로 답했다. 각 무리들은 그것을 각기 다른 말로 해석했다. 즉 '다타(주라).'다야드밤(공감하라)'. '담야타(자제하라)'로. 설화는 "이것이 신의 소리인 천둥이 다다다 할 때 말하는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웹스터의 5막 4장. "그들은 재혼하리라. 벌레가 너의 수의를 좀슬기도 전에, 거미가 너의 비명에 얇은 그물을 치기도 전에." 엘리엇 원주. 다야드밤(공감하라):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단 한 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다만 해 질 녘에는 영묘한 속삭임이 들려와 잠시 몰락한 코리올라누스**를 생각나게 한다. 다 담야타(자제하라): 보트는 경쾌히 응했다, 돛과 노에 익숙한 사람의 손에. 바다는 평온했다. 그대의 마음도 경쾌히 응했으리라 부름을 받았을 때, 통제하는 손에   *33장 46행 우고리노는 아이들과 함게 탑에 갇혀 굶어죽은 일을 회상한다. "그때 그 아래서 그 무서운 탑의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었지요." 엘리엇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공감하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엘리엇의 주는 F.H. 브래들리(1846~1924)의 346쪽에서 계속된다. "외부에서 받는 내 감각도 내 생각이나 감정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내 경험은 밖으로 닫힌 원, 나 자신으 원 안에 속한다. 그리고 모든 요소가 흡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원에 대해 불투명하다. ---- 요컨대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로 간주될 때 전 세계는 각자에게 그 영혼에게만 특이하고 개인적인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참조. 의무보다도 자만심에 의해 행동한 코리올라누스는 자신의 감방에 갇힌 인간의 전형이다. 자부심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그는 자기가 태어난 도시를 향해 적을 지휘했다. 순종하여 침로를 바꾸며.   나는 기슭에 앉아 낚시질했다* 등 뒤엔 메마른 들판.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 볼까? 런던 교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그리고 그는 정화하는 불길 속에 몸을 감추었다***  언제 나는 제비처럼 될 것인가* - 오 제비여 제비여 황폐한 탑 속에 든 아키텐 왕자** 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 왔다. 분부대로 합죠***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웨스턴의 에서 참조. **영국 민요의 후렴 ***26장 148핼 참조. 자진해서 고통 받는 프로방스 시인. 아르노 다니엘의 이야기에 붙인 단테의 표현, 재생을 찾는 사람에게 희망적인 단편의 하나. *작자 미상의 라틴어 시 로부터 인용. 그곳에서 시인은 자기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여 언제 봄이 와서 제비처럼 목소리를 줄 것인지 묻고 있다. 제비는 필로멜라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다. **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1808~1855)의 소네트 로부터 인용. ***토머스 키드(1557~1595)의 극 은 부제가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이다. 아들이 암살되자 히에로니모는 미치게 된다. 극중에서 궁정의 오락을 위해 극을 쓰라는 요청을 받고 그는 대답한다. "분부대로 합죠" 그리곤 그 짧은 극 속에 아들을 암살한 자들이 죽도록 만든다. 그 극중극은 < 황무지>처럼 여러 나라 말로 되어 있다.   다타, 다야드밤, 담야타 산티 산티 산티* *우파니샤드의 형식적인 결어로 쓰이는 산스크리트어 '이해를 초월한 평화'의 뜻.       작가 연보 1888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다. 1906~09년   하버드 대학 프랑스 상징주의와 라포르그에 친숙해지다 1909~10년    하버드 대학 대학원 시작(詩作)을 시작하다. 착수. 1910~11년     프랑스와 독일에서 공부 완성. 1911~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 유학이 중단됨, 옥스퍼드에 거주.                      풍자적 단시들 완성 출판.  1915년 7월    비비안 헤이우드와 결혼. 1915~16년     런던에서 교직 생활. 서평, 브래들리에 관한 논문 완성. 1917~20년     로이드은행에 취직. 평론 발표 1921~25년     런던 특파원(1921~22) 프랑스의 런던 특파원(1922~23) 편집장(192                   2년 10월) 츨판 및 다이얼상(1922) 수상. (1909~1925) 출판. 1926~27년     세네카에 대한 논문 1927~31년      영국 정교로 개종. 영국 시민권 획득(1927년) 1932년           출간                                          1932~34년      완성 1935년           출간 1939년           출간 1947년           아내의 죽음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 1950년          출간 1957년           발레리 플레처와 재혼 1965년           별세. 모더니즘과 새로운 시의 탄생 / 황동규      1  개인의 기호에 관계없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시 한 편만을 고르라면 가 뽑힐 공산이 크다. 이 작품은 1922년 출판되자 곧 '새로운 시'의 보통명사가 되었고, 그 새로운 시에 '모더니즘'이라는 팻말이 붙은 후에는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리고 다른 모든 문화 현상과 마찬가지로 명성의 오르내림을 겪었다. 그러나 모더니즘이 한창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헤게모니를 상당히 빼앗긴 지금에 와서도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최초의 뛰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 평가하는 비평가들이 생길 정도인 것이다.  엘리엇을 이해하는 데는 모더니즘을 20세기 전반의 문학 조류의 하나로 보는 입장과 더불어 또 하나의 입장, 즉 서구 문학이 칸트 이래로 추구해 온 하나의 목표, 즉 예술 작품은 어떤 것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정점에 가 있다는 입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의 흐름 속에 괴테를 비롯해 플로베르, 보들레르, 조이스, 토마스 만 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이 여기에 있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낭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상징주의까지도 모더니즘을 만드는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의 흐름을 큰 사이에서 보려는 사람은 모더니즘의 시작을 중세 말 프로방스 지바의 트루바두르(음유시인) 전통에까지 밟아 오르기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기독교적인 구원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대담한 삶의 태도는 모더니즘의 핵심 가운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모더니즘의 창시자라 부를 수도 있는 에즈라 파운드(1885~1972)가 트루바두르 시의 전문가였다는 사실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2  엘리엇은 처음부터 '모더니스트'였다. 하버드 대학을 다닐 때 교지에 발표한 '낭만주의적'인 시들을 빼고 그가 전문 잡지에 최초로 발표한 는 그 작품 발표를 주선했던 에즈라 파운드로부터 "최초의 현대적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그 찬사는 지금에 와서도 유효하다. 이 작품은 영국이 19세기에 개발해서 고도의 경지에 오르게 한 '극적 독백(dramatic monologue)'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독백을 듣고 있는 청자가 모호해서(여기에 등장하는 '너'를 내적 자아(inner self)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내적 독백'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요절한 프랑스 시인 라포르그(1860~1887)의 자조적인 내적 독백의 영향이 엿보이지만, 그 스케일이나 담고 있는 20세기 삶의 조명 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는 최초의 뚜렷한 '내적 고백'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한 중년 사내의 내적 독백을 통해 기력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이 그려진다. 그것은 종교와 공동체 의식이 제거된 삶의 실체이며 제사(題詞)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옥의 삶이다. 그러나 그 삶은 18세기의 유행한 의영웅시(擬英雄詩 mock-heroic)의 어조로 노래 되어서, 독백의 간절함과 의영웅시의 비꼼 사이의 긴장이 작품을 끝까지 이끌고 간다.  그리고 그 '지옥'의 삶은 또 얼마나 잘 그려져 있는가.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등을 창유리에 비비는 노란 안개, 주둥이를 창유리에 비비는 노란 안개, 저녁의 구석구석에 혀를 넣고 핥다가 하수도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머뭇대다가 굴뚝에서 떨어지는 검댕을 등으로 받고, 테라스를 빠져나가, 별안간 한 번 살짝 뛰고는 때가 녹녹한 시월 밤임을 알고 한 번 집 둘레를 돌고, 잠이 들었다                   -에서    지금 그려지고 있는 것은 시월 저녁이다. 장소가 런던이든, 보스턴이든, 우리나라의 가을 저녁과는 달리 습기 많고 안개 많은 저녁이다. 우선 그런 저녁을 안개로 대표하는 환유의 수사법을 쓰고 있으며 안개는 또 고양이로 대치하는 은유 수사법을 쓰고 있다. 이처럼 두 수사법에 동시에 사용되어 효과를 얻는 경우는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이런 수사법을 동원하여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무기력한 삶이고 그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처절한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을 게에 비유하는 중간의 환상적이고 자조적인 상상("차라리 나는 소리 없는 바다 바닥을 허둥대며 거너는---")이 마지막에 가서는 인어들이 등장하는 환상적이 낭만적인 상상으로 바뀌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독백을 통해 자신의 삶의 구조를 계속 추적한 끝에 얻은 자신의 실체가 결국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이 그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엘리엇은 도시의 시인이다. 은 도시에 살고 있는 한없이 순하고 고통받는 인간들이 풍경이다. 이 시의 중심을 이루는 셋쩨 토막의 주된 배경은 프랑스 작가 샤를루이 필리프(1874~1909)의 의 착한 매춘부 여주인공의 삶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사실이 이 시의 이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감상에 빠지기를 언제나 거부하는 엘리엇은 마지막 토막에 가서 스토아적인 인내 혹은 자동적인 삶의 고집을 보여 주며 시를 끝낸다.  는 처음 읽을 때 역자를 사랑 노래로 착각하게 한 시이다. 그러나 이 시는 남녀의 헤어짐을 노래하고 있고, 그것을 보는 시인(여기서 '그'와 '나'는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이     그들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요! 단지 제스처 하나 포즈 하나 잃었을까요.                       -에서    라고 지극히 비낭만적으로 생각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물론 비낭만에도 아픔은 있어서 "때로 이런 상념들이 아직/심산한 밤이나 낮의 휴식을 숨막히게 해요."가 뒤를 잇기는 하지만.  위의 세 편은 를 읽기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시들이다. 도입에 '현대시'의 출발의 모습을 그 어느 시보다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들인 것이다.   3  의 발표와 더불어 엘리엇은 좋든 나쁘든 세계의 '현대시'를 지배해 왔다. 시뿐 아니라 그의 평론은 신비평(New Criticism)을 생기게 했고, 1960년대 중반까지 그의 이론은 대학가의 문학론을 압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비낭만적이고 지성 일변도적인 자세는 시와 비평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그리고 예술의 거의 모든 영역의 평가에까지 스며들었던 것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그의 영향이 재평가되는 추세 속에서 우리는 그의 시작품이 앞으로 생명력을 계속 지닐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대학 생활을 할 때 너무 지나치게 '비인간적인' 그의 예술론에 의해 괴로움을 당한 일이 있는 역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려는 유혹을 받아 왔다. 그 유혹은 엘리엇의 새로운 자리매김이 진행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엘리엇은 계속 살아 있는 실체였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의 시는 그의 시론의 연습곡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낭만주의와 그처럼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낭만주의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으며, 그가 아무리 객관적이기를 바랐지만 그의 시는 예술가적 주체의 고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이번에 들을 새로 손볼 때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엘리엇의 시에서 요구하는 것은 기지와 균형과 아이러니이다. 그것은 소위 자연 발생적인 감정과 관련이 적은 것이며 세련된 정신이 문화 속에서 빚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전통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전통이야말로 시의 소재가 되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은 그다음 시인의 전통이 되는 것이다. 전통이 중요한 과제가 될 때 그 전통의 정통성이 문제괸다. 엘리엇은 정통을 희랍, 라틴,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랑스, 영국에 이어지는 서유럽 문화의 흐름에서 찾았다. 엘리엇의 비평은 그 '정통'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으로 보아야 하며, 설사 그 투쟁이 윌리엄 불레이크과 D.H. 로렌스에 대한 평가를 잘못 내리게 했다 하더라도, 존 던과 제라드 홉킨스에 정당한 빛을 주었다는 사실로 회복될 수 있는 행위인 것이다.  그가 시에 기여한 업적은 우선 과도한 감정을 배제할 때 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감동을 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T.E. 흄이나 에즈라 파운드의 견고한 이미지들을 프랑스 상징파들의 유연한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프랑스 시인 쥘 라포르그의 회화체의 틀을 통해 이룩되지만 라포로그의 회화체 틀을 통해 이룩되지만 라포르그가 가지고 있지 못한 '다성성(多聲性)'이 가세된다.  다음으로 그가 새롭게 시에 도입한 것은 '콜라쥬' 수법이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상(像)과 상의 연결을 위한 언어를 제거하고 그것들을 그대로 병치시키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의 시 읽기의 어려움은 대부분 여기서 나오지만 상과 상의 연결 부분에서 시인의 개인적 감정인자 약점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효과적인 수법인 것이다. 병치된 상들이 직접 독자에게 강렬한 힘을 발휘할 때 시인은 음험하게 숨어 그 힘의 모든 효과에 대하여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좀 더 복잡한 인간이다. 그는 스스로 제 작품에 주를 붙임으로써 위의 효과에 제한을 가하기도 했고, 1920년대 말의 일반적인 민주주의 조류와는 달리 자기는 "문학에 있어서 고전주의자. 정치에 있어서는 왕당파, 종교에 있어서는 영국 정교 내지 카톨릭"이라고 술회함으로써 인간적인 자신에에 제한을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극도로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되 자기를 묶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서구의 지성이 이룩한 하나의 완성이며, 그것이 20세기의 심연 앞에서 행해졌을 때 20세기의 한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  에 대한 간단한 길잡이를 제시해 보자. 이 작품은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이다. 엘리엇 자신이 이 작품의 테마와 구조에 대해 원주(原註)에서 실마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제시 웨스턴이 지은 에서 제목과 구성과 많은 상징을 얻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리고 프레이저(1854~1941)의 가운데 식물 신화와 풍요 의식을 다루는 부분에서 많은 것을 얻었음을 밝히고 있다.  웨스턴은 당시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이들 신화와 의식이 기독교, 특히 성배 전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추궁했다. 그네는 어부왕 이야기에서 풍요 신화의 원형을 발견했다. 어부왕의 죽음, 병 혹은 성 불능이 그의 나라에 가뭄과 황폐를 가져오고 사람과 짐승에게는 생식력 불모를 가져온다. 이 상징적인 '황무지'는 순결한 기사가 그 땅의 한복판에 있는 위험 성당에 가서 여성 남성의 풍요 상징인 성배와 창에 대해 의식(儀式)적인 질문을 함으로써만 재생을 얻을 수 있다. 이 질문을 함으로써 왕을 낫게 하고 그 땅에 풍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원초적인 성배 신화와 풍요제(대체로 신이 죽었다가 재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와의 관계는 식물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소생하는 계절의 순환적인 진행에 대한 인간의 공통적인 반응을 보여 준다. 기독교는 이 공통적인 반응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상당히 적극적으로 받으들인 흔적을 보여 준다. 원시 기독교도들이 물고기 상징으로 자신들을 나타낸 것은 어부왕과 관련이 있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 자체도 풍요제와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죽음을 통한 재생은 뿐 아니라 엘리엇의 여러 다른 시와 시극(詩劇)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다. 에서는 그 모티프가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 내지는 종교적 자료를 사용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다채로운 즐거움도 주지만 동시에 이 작품을 어렵게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엘리엇의 시는 뒤에 숨어 있는 전거를 잘 모르더라도 섬세한 독자라면 전체를 '느낄 수'있을 만큼 적절하면서도 충격적인 다채로운 속도의 흐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하나의 긴 서정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휴양지에서 지껄이는 사람들은 진정한 새로운 삶을 원치 않는다. 재생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재생을 요구하므로 또한 잔인하다. 특히 이 부분은 콜라쥬 수법을 사용해서 효과를 보고 있다.  갑자기 구약성경의 에스겔적인 음성으로 문명의 메마름과 희망 없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는 낭만적인 정열과 실패한 사랑의 추억이 담긴 노랫소리로 바뀐다.  다음에 고대의 종교의식이 점치는 행위로 바뀐 황무지의 상황으로 바뀐다. 타로 카드의 원초적인 상징들이 속화되어 나타난다(시적으로는 이 속화된 상징들이 뒤에 가서 발견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그리고 현대 문명에 대한 좀 더 직접적인 상이 나타난다. 보들레르의 파리, 현대 런던, 단테의 지옥 및 연옥,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다. 그리고 나서 화자는 저 위대한 부활 제식을 기괴한 정원 가꾸기로 바꾼다. 그러고는 보들레르의 시구를 따다가 독자들도 같은 상황에 있음을, 공모자임을 자각하도록 한다.  : 권태로운 유한부인이 화장대 앞에 앉아 있다. 실내 장식과 향수(香水)와 화려함이 감각을 마비시킨다.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 혹은 독백(따옴표 부분은 여자의 말이고 나머지 부분은 그네의 남편 혹은 애인의 말 없는 대답이라고 보는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과 세익스피어를 재즈로 바꾸기까지 이르는 패러디는 문화의 타락을 암시해 주고 삶의 무의미감을 고조시켜 준다.   이들을 기다리는 무서운 '노크'는 술집 바텐더가 문 닫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카운터에 치는 노크로 바뀐다. 그리고 등장인물은 앞서의 상류층 인물에서 하류층 인물로 바뀐다. 그들이 주고받는 생(生)과 성(性)이야말로 생식이 없는 황무지의 생과 성이다.  : 템스 강의 가을 장면이다. 이 장면은 문학의 유명한 작품의 부분들을 아이러니컬하게 인용하거나 왜곡함으로써, 그리고 과거의 고상한 제식 행위를 현대의 사소하고 음탕한 행위와 일치시킴으로써 괴기한 장면이 된다. 잠시 지중해에 풍요 의식을 퍼뜨린 스미르나 상인의 현대판을 보여 주고 나서 현대의 성(性)이 지닌 무서운 무의미의 사실적인 현장에 들어간다.  템스 강에서 유혹당한 이야기가 엘리자베스 여왕 때의 사랑과 비교되며 바그너, 세익스피어, 단테 들의 작품이 주는 메아리들과 함께 황무지의 성이 지닌 무의미와 저속함을 더 파고든다. 그리고 서양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동양의 부처의 정욕을 버리라는 호소로 끝맺는다.  : 자명한 것 같은 이 짧은 마디는 두 가지 상반되는 해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즉 재생이 없는 수사(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대적 상황)를 암시한다는 해석과, 재생에 앞선 희생적 죽음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있다. 두번째 설명을 따르는 비평가가 더 많지만, 이 마디에 나오는 죽음에는 이상한 고요함이 뒤따르고 있어 딱 결정하기 힘든 문제이다.  : 주에서 밝힌 세 가지 테마가 나타나고 예수가 죽임당한 풍요신과 관련이 맺어지나 아직 부활은 없다. 바위만 있는 풍경이 점점 열을 더해 가자 서양 문명이 낳은 위대한 도시들이 모두 악몽으로 바뀌는 비전에까지 이른다. 그러자 곧 황무지 한가운데 있는 위험 성당으로 장면이 바뀐다. 그 성당은 비어 있고 버림받는 것 같으며 지금까지 그곳을 찾아온 고행이 헛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갑자기 닭이 울고 번개가 치며 풍요를 약속하는 비가 내린다. 천둥은 동양의 지혜의 틀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 그러나 우리는 적절히 주기에는 너무 신중하고 적절히 공감하기에는 너무 자신들에게 갇혀 있고 자제하기에는 자제를 당하도록 되어 있다. 구원은 아직 문제를 안고 있고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지탱해 보는' 상태를 보여 줄 뿐이다.    
41    워즈워드 시모음 댓글:  조회:378  추천:0  2017-08-23
워즈워드 시모음   초원의 빛 / 워즈워드  한 때엔 그리도 찬란한 빛으로서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돌이킬 길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리는 서러워하지 않으며  뒤에 남아서 굳세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티없이 가슴에 품어서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달래어서  죽음도 안광에 철하고  명철한 믿음으로 세월 속에 남으리라    우리는 너무 세속에 묻혀있다 / 윌리엄 워즈워드  우리는 너무 세속에 묻혀 있다  꼭두새벽부터 밤늦도록 벌고 쓰는일에 우리 힘을  헛되이 소모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도 보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 마저 저버렸으니  이 비열한 흥정이여!  달빛에 젖가슴을 드러낸 바다  늘 울부짖다  시들은 꽃포기 처럼 잠잠해지는 바람  이 모든 것과 우리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아무것도 우리를 감동 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이여!  차라리 사라진 옛믿음으로 자라는  이교도나 되어  이 아름다운 풀밭에 서서  나를 슬프게 하지 않을 풍경을 바라보고  바다에서 솟아나는 프로테우스를 보고,  트라이튼의 뿔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수선화  ─윌리엄 위즈워드  골짜기와 언덕 위로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이다가  나는 보았네  호숫가 나무 아래  미풍이 하늘거리는  한 무리의 황금빛 수선화를  은하수에서 빛나며  반짝거리는 별처럼  물가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 있는 수선화  수 많은 꽃송이가  즐겁게 춤추며 고개를 흔드는 것을  주위의 물결도 춤을 추었으나  기쁨의 춤은 수선화를 다르지 못 했으니!  이렇게 흥겨운 꽃밭을 벗하여  어찌 시인이 흥겹지 않으랴!  나는 지켜보고 또 지켜 보았지만  그 풍경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미처 몰랐으니  가끔 홀로 생각에 잠겨  내 자리에 누으면  고독의 축복인 마음에 눈에  홀연 번뜩이는 수선화  그때 내 가슴은 기쁨에 차고  수선화와 더불어 춤을 추네   나는 구름처럼 외롭게 방황했네  ─윌리엄 워즈워드  계곡과 언덕 위로 높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외롭게 방황하다  문득 나는 한 무리를 보았네.  수많은 황금빛 수선화들  호숫가 나무 아래서 미풍에 나부끼며 춤추는 것을.  그들은 은하수에서 빛나고 반짝이는  별들처럼 이어지고,  만의 가장자리를 따라  끝없는 선 속에 펼쳐져 있었네  나는 한 눈에 보았네. 수천 송이 수선화가  머리를 흔들며 흥겹게 춤추는 것을.  물결도 그들 옆에서 춤추었지만 꽃들은  환희 속에서 활기 넘친 몸짓을 했네  시인은 기쁘지 않을 수 없었네,  그토록 명랑한 무리속에서  나는 바라보고 -- 바라보았지만 -- 거의 생각할 수 없었네  그 광경이 얼마나 값진 것을 내게 가져다 주었는지를.  공허속에서 또는 우수에 젖은 심상속에서  종종 나의 긴 소파에 누워 있을 때면,  고독의 행복속에 있는 내부의 눈에  수선화들이 문득 떠오르곤 하네.  그러면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차고,  그 수선화들과 함께 춤추고 있네.    외로운 처녀  ─윌리엄 워즈워드  비둘기강 가 외진 곳에서  그녀는 살았습니다  칭찬해주는 사람도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는 처녀였습니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끼 낀 바위 틈에  피어난 오랑캐처럼  하늘에서 반짝이며  홀로 빛나는 샛별처럼  그렇게 아름다웠답니다  하지만 그녀 이름없이 살다 죽었을 때  그 일 아는 사람 몇몇 일 뿐  이제 그녀는 무덤 속에 누웠으니  아, 크나큰 내 이 허무함이여!    내 가슴 설레이고 / 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가슴 설레이고  어릴 때에도  어른된 지금에도  늙어서도 그러하려니.  아니면 목숨은 죽은 것!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여생, 자연의 경건(敬虔)속에  어울려 살고파.    3 월 / 윌리엄 워즈워드      -브러더즈-워터 기슭의 다리      위에서 쉬는 사이에     수탉이 꼬꼬댄다. 시내가 흐른다. 새들이 지저귀고 호수가 빛나고 푸른 들이 별 속에 잠들어 있다. 늙은이도 어린 것도 장정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마소가 풀을 뜯는다. 마흔 마리가 도무지 하나 같구나!   패배한 군사처럼 눈은 물러가고 산 꼭대기에서나 겨우 지탱을 한다 이따금 고함치는 소 모는 젊은이 산 속에는 기쁨 샘 속에는 생기 조각구름 떠가고 온통 푸른 하늘 비는 멀리 가버렸구나!   무지개 / 윌리엄 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이느니, 나 어린 사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외진 곳에서 / 윌리엄 워즈워드   비둘기 江가의 외진 곳에서   그녀는 살았습니다. 지켜 주는 사람도   사랑해 주는  이도 없는 처녀였지요.   눈길이 안 닿는 이끼 낀 바위틈에   피어 있는 한떨기 오랑캐꽃! 샛별이 홀로 빛날 때처럼   그렇게 그녀는 아름다웠지요.   이름없이 살다가 죽었을 때   그것을 안 사람은 있는 둥 마는 둥, 이제 그녀는 무덤 속에 누웠으니 아! 크나큰 이 내 허전함이여!   선 잠이 내 혼을 / 윌리엄 워즈워드     선잠이 내 혼을 봉해 놓았었다. 나는 삶의 두려움을 몰랐다. 그녀는 초연한 사람인 듯 싶었다. 이승이 세월의 손길에.   이제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운도 없다. 듣도 보도 못한다. 바위와 돌멩이와 나무와 더불어 하루하루 땅덩이의 궤도를 돌고 있을 뿐. 그녀는 기쁨의 환영幻影 / 윌리엄 워즈워드     처음으로 내 눈에 비쳤을 때 그녀는 기쁨의 환영이었다. 순간을 치장하기 위해 온 귀여운 그림자였다. 눈은 초저녁 별처럼 아름다왔고 검은 머리채 또한 초저녁 같았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것은 오월의 상쾌한 새벽에서 나온 것 출몰하고 놀래주고 매복하는 춤추는 몰골, 즐거운 모습.   더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니 선녀이면서 여인! 살림살이 거동이 거침없이 가볍고 구김살 없는 처녀의 발걸음 달콤한 추억과 달콤한 희망이 함께 어울린 얼굴, 사람됨의 나날의 양식인 덧없는 슬픔과 하찮은 농간 치켜줌과 꾸지람과 사랑과 입맞춤, 눈물과 미소에 알맞게 환하고 착한 여인이었다.   이제 나는 차분한 눈으로 그녀 몸매의 고통을 본다. 깊은 생각을 숨쉬는 존재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는 길손 단단한 이성理性, 온전한 의지意志 끈기와 빛나는 눈, 기운과 솜씨를 두르 갖춘 일러주고 달래주고 호령하는 빼어나게 태어난 흠없는 여인 일변 눈부신 천사의 빛을 두른 선녀였다.   낯 모르는 사람 속을 / 윌리엄 워즈워드     바다를 건너서 여러 나라   모르는 사람 속을 여행했었네 내 나라 영국이여!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는지 그때 비로소 그것을 알았네   그 우울한 꿈은 지나갔네   두 번 다시 그대 바닷가를 떠나지 않으려나   내 더욱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   그대의 산 속에서   사랑의 기쁨을 알았노라 내 그리던 여인도   그대의 화로 곁에서 물레를 돌렸느니.   아침이 보여 주고 밤이 숨겼던   루시가 놀던 집 루시가 둘러 본 마지막 푸른 들판   모든 것이 그대로 그대의 것이어니.   가을걷이 하는 처녀 / 윌리엄 워즈워드     보라!  들판에서 홀로 가을걷이하며 노래하는 저 고원의 처녀를. 일어서라, 아니면 슬며시 지나가라. 홀로 베고 다발로 묶으며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귀 기울려라!  깊은 골짜기엔 온통 노래소리가 있구나.   아라비아 사막에서 그늘진 오아시스를 찾아 쉬는 길손에게 어떤 나이팅게일도 이렇듯 반가운 노래른 들려 주지 못했으리. 아득히 먼 헤브리디이즈 섬들 사이 바다의 정적을 깨뜨리며 봄에 우는 뻐구기도 이렇듯 떨리는 목소리는 들려 주지 못했으리.   무엇을 노래하는지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으려나? 구성진 노래는 아마도 이득히 먼 서러운 옛일이나 옛싸움을 읊은 것이리. 아니면 한결 귀에 익은 오늘날의 이 일 저 일 옛날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피치 못할 슬픔과 이별과 아픔이리.   노랫말이 무엇이든 그 처녀는 끝이 없는 듯 노래했으니 나는 들었네, 허리 굽혀 낫질하는 그녀의 노래를 --- 꼼짝않고 잠잠히 귀 기울리다 내 등성이를 올라 갔으니 그 노래소리 이미 들리지 않았으나 내 가슴에 그것은 남아 있었느니.   노고지리에게 / 윌리엄 워즈워드     하늘의 떠돌이 시인!  하늘의 순례자여! 너는 시름 많은 대지를 업신여기느냐? 아니면 두 나래 솟아 오를 때도 가슴과 눈은 보금자리와 함께 이슬 젖은 땅 위에 있느냐? 떨리는 나래를 진정하고 저 노래 그친 채 멋대로 내려와 앉는 그 보금자리!   바라뵈는 끝까지, 그리고 그 너머로 솟아 오르라, 담보 큰 새야! 사랑이 부채질하는 노래는 -너와 네 어린 것 사이엔  끝 모르는 연줄이 있다- 평원의 가슴을 서서이 설레게 한다. 땅 위의 봄과는 상관없이 노래하니 자랑스런 특권이리.   그늘진 숲속일랑 나이팅게일에나 맡겨라. 네 몫은 눈부신 빛의 은밀한 구석 거기서 너는 세상에 내려 쏟는다. 보다 거룩한 본능으로 화성의 홍수를, 솟아 오르나 헤매지 않는 너는 지혜의 왕자 천국과 고향의 엇갈림일진저.   뻐꾸기에 부쳐 / 윌리엄 워즈워드     오, 유쾌한 새, 손님이여! 예 듣고 지금 또 들으니 내 마음 기쁘다 오, 뻐꾸기여! 내 너를 라 부르랴, 헤매이는 소리랴 부르랴?   풀밭에 누워서 거푸 우는 네 소릴 듣는다. 멀고도 가까운 듯 이산 저산 옮아 가는구나.   골짜기에겐 한갖 햇빛과 꽃 얘기로 들릴 테지만 너는 네게 실어다 준다. 꿈 많은 시절의 얘기를.   정말이지 잘 왔구나 봄의 귀염둥이여! 상기도 너는 내게 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하나의 목소리요, 수수께끼.   학창시절에 귀 기울렸던 바로 그 소리 숲속과 나무와 하늘을 몇 번이고 바라보게 했던 바로 그 울음소리.   너를 찾으로 숲속과 풀밭을 얼마나 헤매었던가 너는 여전히 내가 그리는 소망이요 사랑이었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들판에 누워 네 소리에 귀 기울린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일라치면 황금빛 옛 시절이 돌아 온다.   오, 축복받은 새여! 우리가 발 디딘 이 땅이 다시 꿈같은 선경처럼 보이는구나 네게 어울리는 집인 양!   가엾은 스잔의 낮꿈 / 윌리엄 워즈워드         웃드거리 모퉁이에서 햇볕이 들면 내걸린 찌빠귀가 목청높이 운다. 벌써 석삼년째, 가엾은 스잔이 이곳을 지나다 아침의 고요 속에 새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황홀한 가락, 그런데 어찌된 까닭일까? 불현듯 그녀는 본다. 솟구치는 산을 나무들의 모습을 로드베리를 흘러 가는 짙은 안개를 치입사이드 골짜기로 흐르는 강물을.   또한 그녀는 본다. 우유통을 들고 오갔던 골짜기 그 골짜기 한복판의 푸른 목장을, 그녀가 정 부쳤던 단 한 채 비둘기집 같은 외딴 채 오두막을.   지켜 보던 그녀 마음은 천국에라도 간 듯, 하지만 안개도 강물도 산도 그늘도 온통 사라진다. 강물은 흐르려 하지 않고 산도 솟구치려 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녀의 눈은 온통 생기를 잃어버렸다!   루시 그레이 / 윌리엄 워즈워드     루시 그레이 얘기는 가끔 들었다. 광야를 건너 가다가 우연히 동 틀 무렵 그 외로운 아이를 보게 되었다.   말벗도 배필도 아지 못한 채 그녀는 넓은 황무지에서 살았다. 人家의 문가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꽃나무처럼.   아직도 볼 수가 있다. 뛰노는 새끼 사슴과 풀밭에서 뛰는 산토끼를 그러나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루시 그레이의 어여쁜 얼굴은.       이 말에 아버지는 낫을 들고 나뭇단의 새끼를 잘랐다. 그는 제 일에 열을 내었고 루시는 초롱불을 손에 들었다.   사슴보다도 더 신이 났다. 장난치는 그녀의 발걸음이 채이는 눈가루를 날려 연기처럼 오르게 했다.   불시에 눈보라가 불어 닥쳤다. 많은 산을 오르내리며 그녀는 헤매었으나 읍에는 이르지 못했다.   처참해진 부모들은 밤새 고함치며 멀리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인도해 줄 소리도 뵈는 것도 없었다.   새벽녘에 그들은 서 있었다. 황야를 굽어 보는 등성이에 자기 집 대문 가까이에 나무 다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은 느껴 울었다. 집으로 향하면서 소리쳤다. 바로 그 때 어머니는 눈 속에 난 루시의 발자국을 보았다.   두 사람은 가파른 산마루를 작은 발자국 쫓아 내려 갔다. 흥이 난 산사나무 울타리를 지나 길고 긴 돌담을 따라.   이어 활짝 트인 들판을 가로 질렀다. 발자국은 여전하였다. 두 사람은 별일없이 따라 가서 나무 다리에 닿았다.   눈 덮인 둑에서부터 하나 하나 발자국을 따라 갔다. 다리의 널빤지 한 복판에서 자국은 이제 끊겨져 있었다!   그녀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지금껏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외진 광야에서 어여쁜 루시 그레이를 볼 수 있다고.   가파르건 순탄하건 가리지 않고 그녀는 길을 간다. 뒤도 돌아 보자 않고 일변 그녀의 노래소리는 바람 속에 한숨 지으며.   다리 위에서 / 윌리엄 워즈워드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이렇듯 뿌듯이 장엄한 정경을 그냥 지나치는 이는 바보이리 런던은 지금 아침의 아름다움을 의상처럼 입고 있구나 말없이 벌거벗은 채 배도 탑신도 둥근 지붕도 극장도 사원도 들판과 하늘에 드러나 있고 온통 내없는 대기 속에 눈부시게 번쩍이는구나 태양도 이 보다 더 아름답게 골짜기와 바위와 등성이를 아침의 눈부심 속에 담근 적이 없으리. 내 이처럼 깊은 고요를 보도 느끼지도 못했으니 강은 유연히 제뜻대로 흐르고 집들도 잠들어 있는 듯 아 ! 크낙한 도시의 심장도 잠자코 누워 있구나.
40    프레베르 시모음 댓글:  조회:321  추천:0  2017-08-20
프레베르 1900~1977 뇌이쉬르센 출생. 파리에서 자랐으며, 1930년까지는  초현실주의 작가 그룹에 속하는 시인으로서 활약하였는데,1925~29년에 초현실주의 작가 로베르 데스노스, 이브  탕기, 루이 아라공, 앙드레 브르통 등과  활동을 같이  하  면서 오랜 전통의 구전시를 초현실주의 풍의 '노래시'라  는 형식으로 만들어서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그 관심을 영화로 돌려 《악마는 밤에 온다》 《말  석 관람객들》 등의 명작 시나리오를 썼다. 초기의 시에는 쉬르레알리슴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샹송풍의 후기 작  품에서는 무엇보다도 우열(愚劣)과 불안의 시대에 대항  하는 통렬한 풍자와 소박한 인간애가 평이하고 친근감 있는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파롤 Paroles》  (1948) 《스펙터클》  (1951)  등은 그와 같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대표작이다. J.  코스마가 작곡한 샹송 《낙  엽》의 작사자  이기도 하다.   주요저서:《파롤 Paroles》《스펙터클》   쟈크프레베르 시모음   고양이와 새 /쟈크프레베르  온 마을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상처 입은 새의 노래를 듣네  마을에 한 마리뿐인 새  마을에 한 마리 뿐인 고양이  고양이가 새를 반이나 먹어 치워 버렸다네  새는 노래를 그치고  고양이는 가르랑거리지도  콧등을 핥지도 않는다네  마을 사람들은 새에게  훌륭한 장례식을 치르고  고양이도 초대받아  지푸라기 작은 관 뒤를 따라가네  죽은 새가 누워 있는 관을 멘  작은 소녀는 눈물을 그칠 줄 모르네  고양이가 소녀에게 말했네  이런 일로 네가 그토록 가슴 아플 줄 알았다면  새를 통째로 다 먹어 치워 버릴 걸  그런 다음 얘기해 줄 걸  새가 훨훨 날아가는 걸 봤다고  세상 끝까지 훨훨 날아가더라고  너무도 먼 그곳으로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면 네 슬픔도 덜어줄 수 있었을 걸  그저 섭섭하고 아쉽기만 했을 걸  어떤 일이든 반쪽만 하다 그만두면 안된다니깐    나는 이런 사람 / 쟈크 프레베르  나는 이런 사람  이렇게 태어났지  웃고 싶으면  큰 소리로 웃고  날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매번 다르다 해도  그게 어디 내 탓인가  나는 이런 사람  이렇게 태어났지  하지만 넌 더 이상 무엇을 바라나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태어났지  내 발뒤꿈치가 아주 높이 솟았다 해도  내 가슴이 너무도 거칠다 해도  내 두 눈이 이다지 퀭하다 해도  네가 그걸 어쩌겠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이런 사람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좋은 걸  네가 그걸 어쩌겠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인데  그래 난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누군가 날 사랑했었지  어린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듯이  오직 사랑밖에는 할 줄 모르듯이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듯이...  왜 내게 묻는 거지  난 너를 즐겁게 하려고  이렇게 있고  바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아름다운 계절 / 쟈크 프레베르     빈 속에 길 일고 얼어붙은 채 외롭게 무일푼의 열여섯 살 소녀가 꼼짝않고 서 있는 콩코르드 광장 정오 팔월 십오일   너를 위해 내사랑아 / 쟈크 프레베르   나는 새 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새를 샀지 너를 위해 내 사랑아 나는 꽃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꽃을 샀지 너를 위해 내 사랑아 나는 고철 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쇠사슬을 샀지 무거운 쇠사슬을 너를 위해 내 사랑아 그리고 나는 노예 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너를 찾아 헤맸지만 너를 찾지 못했지 내 사랑아   하느님 아버지 1) / 쟈크 프레베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거기 그냥 계시옵소서 그러면 우리도 땅위에 남아 있으리다 땅은 때때로 이토록 아름다우니 뉴욕의 신비도 있고 파리의 신비도 있어 삼위일체의 신비에 못지 아니하니 우르크2)의 작은 운하며 중국의 거대한 만리장성이며 모를레의 강이며 캉브레의 박하 사탕3)도 있고 태평양과 튈르리 공원의 두 분수도, 귀여운 아이들과 못된 신민도 세상의 모든 신기한 것들과 함께 여기 그냥 땅위에 널려 있어, 그토록 제가 신기한 존재란 점이 신기해서 어쩔 줄 모르지만 옷 벗은 처녀가 감히 제 몸 못 보이듯 저의 그 신기함을 알지도 못하고 이 세상에 흔한 끔찍한 불행은 그의 용병들과 그의 고문자들과 이 세상 나으리들로 그득하고 나으리들은 그들의 신부, 그들의 배신자. 그들의 용병들과 더불어 그득하고4) 사철도 있고 해(年)도 있고 어어쁜 처녀들도 늙은 병신들도 있고 대포의 무쇠 강철 속에서 썩어가는 가난의 지푸라기도 있습니다. 5)     1) 와 직역할 수 있는 이 라틴어 제목은 < 주기도문>을 뜻한다. 2) 우르크 운하 프랑스의 우르크  강은 마마른느 강와 합류하도록 되어 있으나      80Km에 달하는 아름다운 우르크 운하와 연결되어 센 강과도 만난다. 3) 프랑스의 강 이름인 모를레와 지명인 캉브레는 말운의 효과를 위하여 선택된 듯.     물론 시인이 사랑하는 가난한 고향 브르타뉴에 있는 모를레 강은 개인적인 애착과     무관하지 않다. 캉브레의 박하 사탕은 동시에 못난이의 바보짓이라는 뜻도 겸하고     있다. 4) 나으리maitres, 신부pretre, 배신자traitre 그리고 용병reitre은 다 같이 마지막 음절     이 같고, 실제로 프레베르에 있어서는 세상의 소박한 인간 본연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시인의 반기독교적인 태도, 즉 자연인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 5) 반전주의자인 프레베르는 전쟁 무기의 차고 단단한 질감과, 자연물이며 부서지기 쉽고     인간적인 지푸라기(농사꾼, 가난한 사람들)의 감각을 대비시키고 있다.     센가 / 쟈크 프레베르     저녁 열시 반 센 가街 어느 길모퉁이에 한 남자가 비틀거린다---- 모자를 쓰고 바바리 코트를 입은 한 젊은 남자가 어떤 여자가가 그를 흔든다---- 그녀가 그를 흔들며 그에게 말을 한다 그는 머리를 흔든다 그의 모자는 뒤집혀 씌어져 있고 여자의  모자는 뒤로 넘어지려 한다 그들은 둘 다 몹시 창백하다 남자는 분명 가버리고 싶어한다---- 사라져버리고---- 죽어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자는 미치도록 살고 싶다 그의 목소리 그의 속삭이는 목소리를 안 들을 수가 없다 그것은 탄식---- 명령---- 절규---- 목소리는 그토록 욕망에 차고 또한 슬프고 또한 생명에 넘치니---- 겨울 묘지의 묘석 위에서 떨고 있는 병든 갓난아기---- 어느 생명의 외침 문틈에 끼인 손가락---- 하나의 노래 하나의 문절文節 쉬임없이 대답도 없이---- 되풀이되고---- 남자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의 눈이 돌아간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두 팔로 몸짓을 하고 말이 되살아나고 센 가 길모퉁이에서 여자는 계속한다 지칠 줄도 모르고---- 불안한 그의 질문을 계속한다 치료할 길 없는 상처 피에르 사실을 말해 봐---- 어리석고 거창한 질문 피에르는 무엇을 대답할지 모른다 그는 정신이 없다 피에르란 이름의 청년은---- 그는 웃음을 지으며 건네주고 싶다 그는 거듭 말한다 이것 봐 진정해 정신이 돌았어 그러나 제대로 말한 것 같지 않다 저의 입이 어찌하여 웃음으로 뒤틀렸는지 그는 보지 못한다 그는 알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세상이 그의 위에 내려앉아 목을 조인다 그는 저의 맹서에 사로잡인 포로---- 빚을 갚으라고 조른다---- 그의 앞에는---- 계산하는 기계---- 연애 편지를 쓰는 기계 괴로워하는 기계가 그를 붙잡는다---- 그에게 매달린다---- 피에르 사실을 말해 봐.   열등생 / 쟈크 프레베르   그는 머리로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것에게는 그렇다고 하고 그는 선생에게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고 선생이 질문을 한다 별의별 질문을 한다 문득 그는 폭소를 터트린다 그는 모두를 지워버린다 숫자도 단어도 날짜도 이름도 문장도 함정도 교사의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우등생 아이들의 야유도 모른다는 듯 모든 색깔의 분필을 들고 불행의 흑판에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   귀향 / 쟈크 프레베르     어느 브르통1)이 온작 못된 짓을 다한 후 고향에 돌아왔다네 그는 두아른네 공장 앞을 거닐었지 그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고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 그는 몹시도 슬펐지. 크레프2)를 먹으러 크레프집에 들어갔지 그러나 먹을 수가 없었지 그 무언가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지 그는 값을 내고 밖으로 나왔지 담배불을 붙였지 그러나 피울 수가 없었지. 무엇인가 그 무엇인가 안 좋은 것이 그 무엇인가 머릿속에 들어 있어 점점 더 슬펐지 문득 생각이 떠올랐지. 어렸을 때 누군가 말했었지 그래서 여러 해 동안 그는 감히 어떤 일도 못해봤지 길도 못 건너고 바다로 떠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전혀 아무것도 못했지. 그는 생각났지. 모든 예언을 한 것은 그레지야르 아저씨였지 누구에게나 재수 없던 그레지야르 아저씨 그 못된 치였지! 그래 브르통은 생각했지 보지라르 가街3)에서 일하는 여동생을, 전쟁에서 죽은 형을, 그가 본 모든 것을 생각했지 그가 한 모든 것을. 슬픔이 가슴을 조여 다시 한번 담뱃불을 붙여보려 했지 그러나 피우고 싶은 생각이 안 나 그래 그레지야르 아저씨에게 가 볼 결심. 그는 찾아가서 문을 열었지 아저씨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그는 아저씨를 알아봤지 그래 그에게 말했지 그리곤 그의 목을 비틀었지 그래 그는 캥페르4)의 단두대에서 끝장을 보았지 두 다스의 크레프를 먹은 뒤에 담배 한 가치를 피우고 난 뒤에     1)브르통; 이 말은 프랑스의 브르타뉴 출신의사람을 칭하는 말. 16세기        이후에야 프랑스와 합병된 이 지방은 수도권에서 소외되어 가난하        고 풍토와 습속이 특이하다. 시인은 고향인 이 지방에 유별난 애착        을 갖는 것 같다. 이 시는 물론 신문의 일반 기사와 같은 특유한 분        위기를 담고 있다. 2)크레프; 밀가루와 달걀 노른자위를 섞어 부티는 일종의 전. 설탕, 치즈,        럼주 등을 치고 말아서 먹는 간식의 일종이다. 3)보지라르 가: 파리의 제6구에 있는 좁고 기나긴 거리 이름으로 시인이          소년 시절을 보낸 서민가 4)캥페르; 브르타뉴의 도시명 로 이름난 곳.   나의 집에 / 쟈크 프레베르   나의 집에 당신은 오시겠습니다 사실 이건 나의 집도 아니랍니다 누구의 집인지 나도 모릅니다 어느 날 나는 그냥 들어왔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얀 벽에 붉은 고추들이 걸려 있을 뿐 나는 오랫동안 이집에 있었지만 아무도 찾는 이 없었지만 언제나 언제나 나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말해 이렇다 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침이면 때때로 짐승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당나귀처럼 짖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발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발이란 것은 참으로 영리한 것이어서 당신이 멀리멀리 가고 싶을 때에는 당신을 멀리멀리 데려다주고 당신이 나가고 싶지 않으실 때는 그 곁에 남아서 친구해 준답니다   음악이 있으면 춤을 춥니다 발 없이 춤추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이처럼 바보 같은 말을 하려면 때로는 사람들처럼 바보같이 되어야겠지요 그들의 발처럼 바보 같고 팽송처럼 명랑해야 되겠지요 팽송은 사실 명랑하지도 않답니다 제가 즐거울 때 팽송은 그냥 즐거워할 따름. 제가 슬플 때 팽송은 슬프고, 혹은 즐겁지도 슬프지도 아니하고 팽송이 도대체 뭘 알기나 한답니까 사실 그놈은 진짜 그런 이름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새를 그렇게 불렀을 뿐 팽송 팽송 팽송 팽송   이름이란 그토록 이상한 것이지요 마르탱 위고 빅토르는 이름1)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이름 왜 저렇게가 아니고 이렇게 부르지요 한 때의 보나파르트가 사막을 지나갑니다 황제의 이름은 낙타라고 불립니다2) 그에겐 금고마金庫馬와 경마 서랍이 있답니다3) 저 멀리 세 개의 이름뿐인 한 남자 이름은 탱탕통일 뿐4) 거창한 존함 따윈 없습니다 조금 더 멀리는 또 그 누군가 아무거나. 훨씬 더 멀리는 아무거나 그런데 이 모두가 어쨌다는 것입니까   내 집에 너는 찾아오리라5) 나는 다른 생각도 하지만 그 생각뿐 그리고 네가 내 집에 들어올 땐 너는 옷을 모두 벗고 하얀 벽에 걸린 붉은 고추와 같은 네 붉은 입술로 다 벗고 가만히 서 있으리라 그리고 너는 누우리라 나는 네 곁에 누우리라 그렇지 내 집도 아닌 나의 집에 너는 오리라     1)유명한 이름 중의 하나로 선택해 본 프랑스의 대시인 빅토르 위고 거기다가   가장 흔한 이름 마르탱을 붙여본 것. 2)문맥 속에서 보통명사인 낙타떼를 대문자로 쓰고 고유명사인 보나파르트를   소문자로 써서 위치를 고의로 바꾸어놓았다. 3)복합명사인 경마용 말과 금고 겸용 서랍의 반씩을 교체시켜 뜻 없는 어휘를    고의로 만들어본 것. 4)탱탕통은 거창한 이름과 뜻 없는 소리를 대비시키기 위하여 지어낸 의성어류   의 말. 5)제 1연의 경칭 이 나의 집(문명이 비어버린 집)의 세례를 통하여 친숙한   로 변신한다. 모든 의례적 절차를 벗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꿈에 도달   한다.   느긋하고 푸짐한 아침 / 쟈크 프레베르   끔찍해 스테인리스 카운터에 삶은 달걀을 깨는1) 그 나직한 소리는 끔찍해 배고픈 사내의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달걀 깨는 소리는 끔찍해 아침 여섯 시 백화점 유리창에 비쳐 보이는 배고픈 사내의 낯짝도 끔찍해 먼짓빛 그 낯짝도 끔찍해 포탱 상점2)의 진열장 유리 속에서 그가 바라보는 건 그러나 제 낯짝이 아니야 낯짝이야 아무렴 어때 그가 그리는 건 그가 상상하는 건 다른 낯짝 예컨데 송아지 낯짝 식초 소스로 양념한 송아지 낯짝 아니면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그 무슨 낯짝 그래서 그는 달콤하게 턱을 움직이지 달콤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이를 갈지 세상이 그의 머리를 삶아 먹어도 세상을 어쩔 수야 없으니까 그는  하나 둘 셋 손꼽아 보네 하나 둘 셋 못 먹고 굶은 지 사흘째 이럴 수가 없다고 사흘째 되뇌어도 소용이 없네 이럴 수가 있는 걸 사흘 낮 사흘 밤 굶고 지내걸 이럴 수가 있는걸 저 진열장 뒤에는 저 햄통들 저 술병들 저 통조림들 죽은 생선은 깡통이 보호하고 깡통들은 진열장이 보호하고 진열장은 순경이 보호하고 순경은 공포심을 보호하지 여섯 마리 불쌍한 정어리를 위해 바리케이트도 많아라 --- 좀 떨어진 곳에는 카페 크림 친 커피와 따뜻한 반달빵3) 사내는 비틀거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안개 끼는 이름들 안개 끼는 이름들 먹고 싶은 정어리 삶은 달걀 크림 친 커피 럼을 탄 커피 크림 친 커피 크림 친 커피 피를 탄 크림 친 커피!---- 동네에서 아주 존경받던 한 사내가 백주 대낮에  칼을 맞았네 뜨내기 살인자가 2프랑을 강도질했네 술은 탄 커피 한 잔에 칠십 상팀 버터 바른 빵 두 개 그리고 팁으로 이십오 상팀 끔찍해 스테인레스 카운터에 삶을 달걀을 깨는 그 나직한 소리는 끔찍해 배고픈 사내의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그 소리는 끔찍해   1) 프랑스 서민들은 흔히 동네 카페의 스테인리스(사실은 주석) 카운터 앞에 서서     카페 주인이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침 식사하기를 좋아한다. 아침     식사는 주로 버터 바른 빵과 크림 탄 커피, 그리고 삶은 달걀(그 달걀을 카운터     바닥에 대고 깬다)   2) 프랑스에서 한때 많이 볼 수 있었던 식료품 체인 스토어.   3) 아침 식사에 즐겨 먹는 빵인 크루아상.   가정적1)  / 쟈크 프레베르   어머니는 뜨게질을 한다 아들은 전쟁을 한다 어머니는 그게 아주 당연하다 여긴다 그럼 아버지는 무엇을 할까? 아버지는 사업을 한다 그의 아내는 뜨게질을 한다 그의 아들은 전쟁을 한다 그는 사업을 한다 그는 그게 아주 당연하다 여긴다 아버지는 그런데 아들 그 아들은 그럴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아무렇게도 전혀 아무렇게도 생각지 않는다 아들은, 그의 어머니는 뜨게질을, 그의 아버지는 사업을, 그는 전쟁을 한다 전쟁을 끝내면 제 아버지와 사업을 하겠지 전쟁은 계속하고 어머니는 뜨게질을 계속하고 아버지도 계속하여 사업을 한다 아들은 전사하여 이제 계속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덤으로 간다 그들은 이게 모두 당연하다 여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생을 뜨게질로 삶을 계속하고, 사업으로 전쟁을 전쟁으로 사업을 전쟁으로 뜨게질을 사업으로 사업과 사업을 무덤으로 삶을 계속한다.   1) 반전적인 시. 가정의 판에 박히고 무반성한 생활. 그 생활이 연장되어     사회 국가 단위에 이르면서 구체적으로 누구를 휘한 것인지도  모르는     전쟁에 참여해 죽임을 당하고도 그것을 습관 속에 수용하는, 한편 참담     하면서 한편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이라는 삶을 애정과 비판     의 눈으로 시인은 묘사한다.   이 사랑 / 쟈크 프레베르   이 사랑은 이토록 사납고 이토록 연약하고 이토록 부드럽고 이토록 절망한 이 사랑은 대낮같이 아름답고 날씨처럼 나쁜 사랑은, 날씨가 나쁠 때 이토록 진실한 사랑은 이토록 아름다운 이 사랑은 이토록 행복하고 이토록 즐겁고 또 이토록 덧없어 어둠 속 어린애처럼 두려움에 떨지만 한밤에도 태연한 어른처럼 자신 있는 이 사랑은 다른 이들을 겁나게 하던 그들의 입을 열게 하던 그들을 질리게 하던 이 사랑은 우리가 그네들을 못 지키고 있었기에 염탐당한 이 사랑은 우리가 그를 추적하고 해(害)하고 짓밟고 죽이고 부정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쫒기고 상처받고 짓밟히고 살해되고 부정되고 잊혀진 이 사랑은 아직 이토록 생생하고 이토록 볕에 쪼인 송두리째 이 사랑은 이것은 너의 것 이것은 나의 것 언제나 언제나 새로웠던 그것 한번도 변함없던 사랑 초록같이 진정하고 새처럼 애처롭고 여름처럼 따뜻하고 생명에 차 우리는 둘이 다 가고 올 수 있으며 우리는 잊을 수 있고 우리는 다시 잠들 수 있고 잠 깨고 고통받고 늙을 수 있고 다시 잠들고 죽음을 꿈꾸고 정신 들며 미소 짓고 웃음 터뜨리고 다시 젊어질 수 있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여기 고스란히 멍텅구리처럼 고집 세고 욕망처럼 피 끓고 기억처럼 잔인하고 회한처럼 어리석고 회상처럼 부드럽고 대리석처럼 차디차고 대낮처럼 아름답고 어린애처럼 연약하며 웃음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도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몸을 떨며 귀를 기울인다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외친다 나를 위해 외친다 네게 애원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서로 사랑하는 모두를 위해 서로 사랑하였던 모두를 위해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내가 모르는 다른 모두를 위해 거기 있거라 지금 있는 거기 있거라 옛날에 있던 그 자리에 거기 있거라 움직이지 마라 사랑받는 우리는 너를 잊어버렸지만 너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우리에겐 땅위에 오직 너 뿐 우리들 차디차게 변하도록 버리지 마라 항상 더욱 더 먼 곳에서도 그리고 그 어디에서든 우리에게 생명의 기별을 다오 훨씬 더 훗날 어느 숲 기슭에서 기억의 숲속에서 문득 솟아나거라 우리에게 손 내밀고 우리를 구원하여라.   아침 식사 / 쟈크 프레베르   그이는 잔에 커피를 담았지 그이는 커피잔에 우유를 넣었지 그이는 우유 탄 커피에 설탕을 탔지 그이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지 그이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그이는 잔을 내려놓았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이는 담배에 불을 붙였지 그이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그이는 재털이에 재를 털었지 내겐 아무 말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이는 일어났지 그이는 머리에 모자를 썼지 그이는 비옷을 입었지 비가 오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이는 빗속으로 가버렸지 말 한마디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래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지   위대한 사람 1)/ 쟈크 프레베르   내가 그를 만났던 돌 깎는  사람 집에서 그는 후세를 위하여 제 몸의 치수를 재고 있었다.   1) 앞의 이 담고 있는 단단한 것, 모가 난 것, 굳어버린 것의     이미지가 위대한 사람이 현재의 삶보다 후세의 유명에 더 관심 갖     는 끝에 생각하게 되는 동상의 이미지와 결부된다. 유연성이     사라진 자들에 대한 풍자.   멋진 가문 / 쟈크 프레베르   루이 1세 루이 2 세 루이 3세 루이 4세 루이 5세 루이 6세 루이 7세 루이 8세 루이 9세 루이 10세(세칭 고집쟁이) 루이 11세 루이 12세 루이 13세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 루이 17세 루이 18세 그리고는 끝----- 도대체 어찌된 사람들이 스물까지도 다 셀 줄 모르게 생겨먹었을까?   국립 미술 학교 1)/ 쟈크 프레베르   밀짚 바구니 속에서 아버지는 종이뭉치를 골라냈지 그리고는 궁금한 애들 앞에서 깔대기 속에 그걸 집어넣었지 그러나 오색의 커다란 일본꽃이 솟아나왔지 즉흥의 연꽃 신기하여 아이들은 입 다물고 말 없었네 그 아이들 추억 속엔 저희들을 위하여 문득 핀 이 꽃은 저희 앞에 그 순간에 피어난 이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겠네.   1) 예술 창조의 신비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종이뭉치와 동양적 신비의   꽃(일본꽃)의 탄생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하여 표현됨으로써 현실 속에 기   적과 같은 꿈을 창조한다.   깨어진 거울 / 쟈크 프레베르   항상 노래하던 키 작은 남자 내 머릿속에서 춤추던 키 작은 남자 청춘의 키 작은 남자가 구두 끈을 터뜨렸네 축제의 침묵 속에서 축제의 폐허 속에서 내 그대 행복한 목소리를 들었네 찢어지고 연악하고 순진하고 비통한 그대 목소리가 먼 곳에서 찾아와 날 부르는 소리를 내 가슴에 손을 얹으니 그대 별빛 어린 웃음의 일곱 조각 난 거울이 피에 젖어 흔들리네   자유 지역 / 쟈크 프레베르     군모를 새장에 벗어 담고   새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외출했더니   그래 이젠 경례도 안하긴가? 하고   지휘관이 물었다.   아뇨   경례는 이제 안 합니다 하고   새가 대답했다.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경례를 하는 건 줄 았았는데   하고 지휘관이 말했다.   괜잖습니다 누구나 잘못 생각할 수 있는 법이지요 하고   새가 말했다.   불어 작문 / 쟈크 프레베르   아주 젊었을 때 나폴레옹은 말라깽이 포병 장교였네 나중에 그는 황제가 되었네 그러자 그는 배가 나오고 많은 남의 나라를 삼켰네 그가 죽던 날 그는 아직 배가 나왔지만 그는 더 작아졌다네.   일식* / 쟈크 프레베르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는 구멍난 의자에 앉는 수가 많아 치세의 말기 어둡던 어느 날 밤 태양왕은 침상에서 일어나 당신의 의자에 가서 앉더니 사라져버렸다네   * 과 함께 독재 왕권 루이 왕조를 풍자한 시   태양 같은 왕이  몰락하는 말로와 의자 모양의 단두대로 비유된 처형의  비극을 야유한 희극적인 시이다.   옥지기의 노래 / 쟈크 프레베르   피 묻은 열쇠를 들고 멋쟁이 옥지기여 어디를 가나, 아직 시간이 남았다면 내 사랑하는 여자를 풀어주러 가지. 내 가장 은밀한 욕망 속에 내 가장 속 깊은 번민 속에. 미래의 거짓말 속에 맹세의 어리석음 속에 내가 가두어둔 그 여자를. 나는 풀어주겠네 그 여자가 자유를 얻도록, 나를 잊어버리는 자유일지라도, 떠나가 버릴 자유 되돌아올 자유 그래서 다시 나를 사랑하는 자유, 혹 다른 이가 마음에 들면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도록, 혹 나는 외로이 남고 그 여자 멀리 떠나가 버린들 나는 오직 간직하리 나는 항상 간직하리 내 생명이 다하도록 내 두 손 오목한 곳에 사랑이 지은 그의 두 젖가슴의 부드러움을.   첫날 / 쟈크 프레베르   장 속에 하얀 홑이불 침대 속에 붉은 홑이불 어머니 뱃속에 어린 아기 고통 속에 그의 어머니 복도에 아버지 집 속에 복도 마을 속에 집 어둠 속에 마을 외침 속에 죽음 그리고 삶 속에 어린 아기.   메시지 / 쟈크 프레베르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의자 누눈가 연 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건너지르는 숲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물 누군가 죽은 병원.   꽃집에서 / 쟈크 프레베르   어느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꽃을 고른다 꽃집 처녀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러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동시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돈이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떨어진다 돈은 굴러가도 꽃들은 부서져도 남자는 죽어가도 꽃집 처녀는 거기 가만 서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매우 슬픈 일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처녀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를   남자는 죽어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가지 해야 할 일이란 그토록 많아.   일요일 / 쟈크 프레베르   고블랭 가街 겹겹이 늘어선 가로수 사이 대리석상 하나가 내 길을 가리킨다 오늘은 일요일 극장은 만원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인간들을 바라본다 석상은 내게 입맞춤하지만 아무도 안 본다 우리에겐 손가락질하는 눈먼 아이뿐.   공원 / 쟈크 프레베르   우주 속의 별 지구 속의 파리 파리의 몽수리 공원에서 겨울 햇빛 속 어느 아침 네가 내게 입맞춘 내가 네게 입맞춘 그 영원의 한순간을 다 말하려면 모자라리라 수백만 년 또 수백만 년도.   꽃다발 / 쟈크 프레베르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작은 아씨여 갓 꺾은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처녀여 시든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고운 여인이여 떨어지는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늙은 여인이여 즉어가는 꽃을 들고   승리자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바르바라 / 쟈크 프레베르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그날 브레스트에는 끝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지 너는 웃음 지으며 활짝 피고 유열에 차 빗속에 비에 젖어 걷고 있었지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브레스트에는 끝없이 비가 내리고 나는 너를 시암 가에서 마주쳤지 너는 웃고 있었지 나도 같이 웃었지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내가 알지 못했던 너는 나를 알지 못했지만, 기억하는가 그날을 그러나 기억하는가 잊지 마라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한 남자를 그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바르바라 그래 너는 빗속으로 그에게 달려갔지 비에 젖어 유열에 차고 활짝 피어서, 그래 너는 그의 품에 안기었지,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내가 너에게 반말을 한다고 서운해 말아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너라고 부른다 내가 그들을 오직 한 번 보았다 해도 나는 서로 사랑하는 모든 애인들을 너라고 부른다 내가 비록 그들을 알지 못한다 해도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잊지 마라 그 얌전하고 행복했던 비를 너의 행복한 얼굴 위에. 행복한 그 도시 위에 내리던 비를 바다 위에 해군 기지 위에 웨상의 배 위에 내리던 비를 오 바르바라 전쟁은 얼마나 바보짓이냐 무쇠의 이 빗줄기 속에서 피의 강철의 불비 속에서 이제 너는 어찌되었느냐 두 팔로 너를 사랑스레 가슴에 껴안던 그 사람은, 그는 죽었느냐 사라졌느냐 아직 살아 있느냐, 오 바르바라 지금도 브레스트에는 옛날처럼 끝없이 비가 내리지만 그러나 이제는 옛 같지 않고 모두가 부서졌다 기막히고 참담한 죽음의 바다 피의 강철의 무쇠의 폭풍조차 아니로다 다만 개처럼 쓰러지는 구름일 뿐 브레스트의 빗줄기 따라 사라지는 개들 브레스트에서 멀리멀리 떠나가 죽어 썩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개떼들처럼.   바른 길 * / 쟈크 프레베르   발을 옮겨놓는 곳마다 해마다 이마가 좁은 늙은이들이 콘크리트의 몸짓으로 어린애들에게 길을 가리키고 있다.   * 반자유 교육을 풍자한  시. 자유와 삶이 저해하는 굳어버린  정신(똑바른 길, 즉 비인간적 규범의 길, 늙은이들, 콘크리트)  이 속박하는 여리고 때묻지 않은 정신.   난 본래 이런걸 뭐 / 쟈크 프레베르   난 본래 이런걸 뭐 난 본래 이렇게 생긴걸 뭐 웃고 싶을 땐 그럼 깔깔대며 웃지 나를 사랑하는 그이를 난 사랑해 그때마다 사랑하는 그이가 같은 이가 아닌 게 내 잘못인가 뭐 난 본래 이럴걸 뭐 난 본래 이렇게 생긴걸 뭐 그 이상 어떻게 해 날보고 어쩌라고   나만 보면 좋다는걸 그러니 바꿀 수도 없는 일 내 발굽은 너무 높고 내 허리는 너무 늘씬 젖가슴은 너무너무 단단하고 두 눈은 뚜렷해 아니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난 본래 이런걸 뭐 나만 보면 좋다는 걸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나에게 생긴 일 누군가 나를 사랑해 버린 거야 서로 사랑하는 아이들이 그냥 그렇게 사랑할 줄 알듯이 사랑할 줄 사랑할 줄 알듯이--- 왜 자꾸만 묻는 거야 나만 보면 좋다는걸 그러니 바꿀 수도 없는 일.   말馬 이야기 / 쟈크 프레베르   여보세요 벗님네들 내 하소연 들어보소 내 살아온 이야기 좀 귀담아 들어보소 부모 없는 고아가 하는 말이오 딱하고 시시한 넋두리라오 이러이러----1)                                                    1) 말을 앞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모는 소리 어떤 장군이 어느 날 아니 어느 밤이던가 하여튼 어떤 장군이 거느린 말 두 필이 죽었다오 그 말 두 필은 사실은 이러이러---- 삶이란 쓰디쓴 것 그 두 필은 불쌍한 우리 아버지 그리고 불쌍한 우리 어머니였는데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오 장군의 침대 밑에 남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 후방에 숨어 있던 장군의. 장군은 말도 많아 밤이면 혼자서 말했다오 대개는 딱하고 시시한 넋두리를, 2)                          2) 넋두리라고 번역한(ennui)는 본래 권태. 따분함을 뜻함.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이러이러---- 어느 날 밤에 따분해서 죽었다오 내겐 가정 생활이 애저녁에 거덜나서 잠자리 탁자에서 뛰어나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다오 모두가 다 빛나고 모두가 다 번쩍이는 대도시를 향하여 도망쳤다오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해 보니 사비 앙파로 미안해요 말의 말이거든요 어느 날 아침 나막신을 신고 파리에 도착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를 좀 만나자고 면회 신청했다가 콧잔등에 몽둥이 세례 전쟁중이라 전쟁이 계속중이라 나는 눈가리개로 눈 가린 채 바야흐로 징집되고 말았다오 전쟁중이라 전쟁이 계속중이라 물가는 올랐고 먹을 것은 귀해졌고 귀하면 귀할수록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이빨을 지근지근 나를 피프테크라더군                                            난 그게 영언 줄 알았죠 이러이러----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날 쓰다듬는 모든 사람들은 내 죽기만 기다렸죠 날 잡아먹으려고. 어느 날 밤 마구간에서 자고 있던 어느 날 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오 나도 아는 목소리가 늙은 사령관과 더불어 유령처럼 돌아오는 늙은 장군의. 그들은 내가 자는 줄 알았던지 그들은 나직나직 말을 했는데. 맹물에 쌀 넣고 끓인 죽은 지긋지긋해 짐승 고기 좀 먹어봤으면 이놈 먹는 귀리 속에 축음기 바늘을 섞어 주면 될 터인데 그 말을 듣자 내 몸속 피는 목마가 돌듯 한바퀴 핑그르 돌아 나는 마구간을 뛰쳐나와 숲속으로 도망쳤소.   이제 전쟁은 끝났고 늙은 장군은 죽었네 제 침대 속에서 죽었네 그래도 나는 살았으니 그게 제일 중요해 그럼 안녕히 안녕히 주무시고 맛있게 드시죠 나의 장군님.       가을 /쟈크 프레베르   오솔길 한가운데 쓰러지는 말 한 마리 그 위에 떨어지는 잎새들 우리들의 사랑이 떤다 그리고 태양도.   시집 전재 끝    
39    쉴러 시모음 댓글:  조회:334  추천:0  2017-08-20
쉴러 1869. 2. 11 독일 엘버펠트~1945. 1. 22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20세기초 독일의 시인·단편작가·극작가·소설가.   유대계로서 1894년 내과의사 베르톨트 라스커와 결혼(1903 이혼)한 후 베를린에 정착했다. 베를린에서 아방가르드 문학 서클에 자주 다녔으며 서정시와 단편소설들을 정기간행물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도적인 표현주의 잡지의 편집인이었던 헤르바르트 발텐과 2번째 결혼(1901~11)을 했다.   〈슈튁스 Styx〉(1902)라는 제목의 첫번째 시집에 이어 〈나의 기적 Meine Wunder〉(1911)·〈히브리 민요 Hebraische Balladen〉(1913)를 비롯한 여러 권의 서정시집을 발표했다. 그밖에 주요작품으로는 희곡 〈부퍼 Die Wupper〉(1909)와 자전적 소설 〈나의 마음 Mein Herz〉(1912), 단편소설집 〈테베의 왕자 Der Prinz von Theben〉(1914)와 〈바르셀로나의 놀라운 랍비 Der Wunderrabbiner von Barcelona〉(1921)가 있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 후인 1933년 스위스로 이주하였고, 1940년에는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 다시 정착하였다. 언제나 상도를 벗어난 예측할 수 없는 생을 영위하였고 말년을 가난하게 지냈다. 그녀의 시들은 풍부한 환상의 특질과 상징성을 활용하였으며 부모, 낭만적 열정, 예술, 종교, 다른 주제 등과 어린시절의 개인적인 환기를 비애감과 황홀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열정적으로 써내려갔다. 많은 단편소설들은 아라비안나이트를 재해석한 것으로 시각적 이미지가 풍부한 현대적 감각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녀의 소설들은 분위기와 상징성은 풍부하지만 서사적 초점이 약하고 플롯이 거의 짜여져 있지 않은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커 쉴러는 20세기초 중요한 독일 서정시인으로서 확고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환희의 송가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광채여, 낙원의 처녀들이여,   우리 모두 감동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전으로 들어가자.   잔악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은 다시 결합시킨다.   그대의 다정한 날개가 깃들이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환희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그렇다. 비록 한 사람의 벗이라도 땅 위에 그를 가진 사람은 모두...   그러나 그것조차 가지지 못한 자는 눈물 흘리며 발소리 죽여 떠나가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연의 가슴에서 환희를 마시고   모든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환희의 장미 핀 오솔길을 간다.   환희는 우리에게 입맞춤과 포도주,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친구를 주고   벌레조차도 쾌락은 있어 천사 케르빔은 신 앞에 선다.     장대한 하늘의 궤도를 수많은 태양들이 즐겁게 날 듯이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리듯.   서로 서로 손을 마주잡자, 억만의 사람들이여,   이 포옹을 전 세계에 퍼뜨리자. 형제여, 성좌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신이 계시는 곳이다. 엎드려 빌겠느냐, 억만의 사람들이여, 조물주를 믿겠느냐   세계의 만민이여, 성좌의 저편에 신을 찾아라, 별들이 지는 곳에 신이 계신다."         장갑   사자 우리 앞에서 격투 경기를 기다리며 프란츠 왕이 앉아 있다.   주위에는 귀족들이 둘러 앉아 있고 높은 발코니에는 귀부인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둘러 앉아있다.     왕이 손가락으로 신호하자, 사자우리의 문이 열리고   육중한 발걸음으로 사자 한 마리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천천히 둘러 보더니,   입을 크게 한 번 벌리고, 갈기 털을 부르르 떨더니만,   그 자리에 몸을 �혔다.     다시 왕이 신호를 하자 두 번째 우리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호랑이 한 마리가 사납게 뛰쳐 나오더니   사자가 앞에 있음을 보고 커다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꼬리를 흔들면서 둥그렇게 한바퀴 돌더니   불타는 혀를 드러내고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사자 주위를 빙빙 돌더니만, 으렁거리면서 사자옆에 몸을 �혔다.     왕이 또 신호를 내리자 우리문이 두 개가 열리고 표범 두 마리가 뛰쳐 나왔다.   살기찬 표범들은 호랑이에게 달겨들었다.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표범을 붙들자,   사자가 위엄있는 모습으로 일어나 울부짖었고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맹수들은 살기를 품은 채 원을 그리더니 모두들 자리에 누웠다.     그 때 발코니 윗자리에서 장갑 한 짝이 아름다운 손에서 떠나   호랑이와 사자가 있는 한 가운데 떨어졌다.   쿠니쿤트 공주는 비웃는 듯이 기사 델로게스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기사님, 당신의 사랑이 열렬하고 늘 내게 맹세한 말씀이 참말이라면   저 장갑을 주워 올 수 있겠지요?"     그러자 기사는 즉시 일어나 힘찬 걸음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맹수들 한가운데에서 겁 없이 장갑을 주워들었다.   놀람과 몸서림을 치면서 모든 기사와 귀부인들이 그걸 보았다.   태연히 장갑을 가져오는 그에게 모든 사람들은 칭송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참다운 행복을 기대하는 쿠니쿤트 공주는   부드러운 사랑의 눈동자로써 그를 맞이하였다. 기사는 공주의 얼굴에 장갑을 던지며,   "공주여, 나는 감사의 말을 바라지 않소." 기사는 그 자리에서 공주를 버렸다.       타향에서 온 소녀     해마다 새 봄이 오고 종달새가 첫노래를 부를 때가 되면   골짜기 가난한 목자들 곁에는 예쁘고 신비스런 소녀가 나타났었네,     그 소녀는 거기 출생이 아니었고 아무도 고향을 아는 이 없었기에   한 번 작별하고 가버리면 그의 행방 또한 알 수 없었네.     소녀가 있는 곳엔 기쁨이 뒤따랐고 사람들 또한 마음 너그러워졌지.   하지만, 소녀가 지닌 높은 위엄 때문에 아무도 희롱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네.     소녀는 아름다운 꽃을 가져왔고 단 맛이든 과일도 가져왔지.   그 과일은 이 곳과는 전혀 다른 곳 행복한 자연의 햇볕으로 익은 것이었지.     소녀는 아름다운 꽃과 익은 과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선물했고   젊은이나 지팡이 든 노인들이나 모두 선물을 들고 집에 갔네.     누구 하나 푸대접 받는 이 없었으나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이 찾아왔을 때   소녀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골라 그들에게 주었으니, 그건 예쁜 꽃이었네.     이상과 생명     옛날, 넘치는 정열로 기도하며, 피그말리온이 돌을 끌어안자   마침내 그 차갑게 빛나던 대리석이 감정의 빛을 나타낸 것처럼,     나도 온 정열로 빛나는 자연을 내 시인의 가슴으로 안았다.   그러자 마침내 숨결이, 따뜻함이, 생명의 움직임이 그 자연의 현상 속에서 뛰쳐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모든 정열을 나누어 주었다. 이 무언의 상은 나타내어야 할 말을 생각하고   젊고 대담한 내 키스에도 따라주며, 높이 뛰는 내 가슴의 고동까지도 알아 주었다.     그때 빛나는 자연도 나를 위해 있었고, 은빛 시내물도 노래로 가득 차 흘렀으며   나무도, 장미도 서로가 느낌을 나누어 이야기 했다. 그것은 내 영원한 생명의 메아리였다.       쉴러는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을 인용하여 젊은 가슴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였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이별을 눈물로써 대신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먼길을 떠나는 순간,   사랑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져 간다 할지라도   그대 가슴속에 남겨진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순 례 자   인생의 봄에 벌써 나는 방랑의 길에 올랐다.   청춘의 아름다운 춤들일랑 아버지의 집에 남겨둔 채로     유산과 소유의 모든 것을 줄겁게 믿으며 버려 버렸다.   가벼운 순례자의 지팡이를 들고 어린이의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     길은 열려 있다. 방랑하라 언제나 상승을 추구하라는,   거대한 희망이 나를 휘몰고, 어두운 믿음의 말이 들린 때문에.     황금빛 대문에 이를 때까지, 그 문 속으로 들어가라고,   그곳에서는 현세적인 것이 거룩하고도 무상하지 않으리라.     저녁이 되고 또 아침이 와도, 나는 한 번도 멈춘 일이 없다.   그러나 내가 찾고 원하던 것은 나타난 일이 도무지 없다.     산들이 행로를 가로막았고 강들이 발걸음을 얽매었으나,   협곡 위에는 작은 길을 내고 거친 물살 위엔 다리을 놓았다.     그리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어떤 강기슭으로 나는 왔다.   강의 길을 즐거이 믿으면서 나는 강의 품속에 몸을 맡겼다.     그 강의 유희하는 물결은 나를 큰 바다로 이끌어 갔다.   내 앞에 드 넓은 허공만 있고, 목적지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어떤 길도 그곳으론 가지를 않고, 나의 머리 위의 저 하늘도   땅과는 한 번도 닿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은 결코 이곳일 수 없다  
38    에이츠 시모음 댓글:  조회:346  추천:0  2017-08-19
에이츠 시모음 이니스프리 호수 섬  흰새들  죽음  오랜 침묵 후에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대 늙었을때  방황하는 인거스의 노래  술노래  하늘의 융단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레다와 백조  쿠울호의 백조  둘째 트로이는 없다  유리 구슬  학생들 사이에서  내 딸을 위한 기도  1916년 부활절  육신과 영혼의 대화  비잔티움  벌벤산 아래  긴다리 소금쟁이  ~~~~~~~~~~~~~~~~~~~~~~~~~~~~~~~~~~~~~~~~~~~~~~~~~~~~~~~~~~  이니스프리 호수 섬  나는 일어나 지금 갈거야, 이니스프리로 갈거야,  조그마한 오두막을 거기에 지을거야, 진흙과 나뭇가지로.  콩을 아홉 이랑 심고, 꿀벌도 한 통 칠거야,  그리고 벌소리 잉잉대는 숲에서 홀로 살거야.  나는 거기서 평화로울 거야, 왜냐면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장막을 뚫고 귀뚜리 우는 곳으로 천천히 오니까.  거기는 한 밤은 항상 빛나고, 정오는 자주빛을 불타고,  저녁은 홍방울새 소리 가득하니까.  나는 일어나 지금 갈거야, 왜냐면 항상 밤낮으로  호수물이 나지막이 찰싹이는 소리가 들리니까.  나는 차도 위나 회색 보도 위에 서 있는 동안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소리가 들린다.  ~~~~~~~~~~~~~~~~~~~~~~~~~~~~~~~~~~~~~~~~~~~~~~~~~~~~~~~~  흰새들  애인이여, 나는 바다 물거품 위를 나는 흰 새가 되고 싶구려!  사라져 없어지는 유성의 불길엔 싫증이 나고,  하늘까에 나직이 걸린 황혼의 푸른 별의 불길은,  애인이여, 꺼질 줄 모르는 슬픔을 우리의 마음에 일깨워 주었소.  이슬 맺힌 장미와 백합, 저 꿈과 같은 것들에게선 피로가 오오.  아 애인이여, 그것들, 사라지는 유성의 불길은 생각지 맙시다.  그리고 이슬질 무렵 나직이 걸려 머뭇거리는 푸른 별의 불길도,  왜냐하면, 나는 떠도는 물거품 위의 흰 새가 되었으면 하니, 그대와 나는!  나는 수많은 섬들, 그리고 많은 요정의 나라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오.  그곳에선 분명 시간이 우리를 잊을 것이고, 슬픔도 더 이상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며,  곧 장미와 백합, 그리고 불길의 초조함에서 벗어날 것이오.  애인이여, 우리 다만 저 바다의 물거품 위를 떠도는 흰 새나 된다면 오죽 좋겠소.  ~~~~~~~~~~~~~~~~~~~~~~~~~~~~~~~~~~~~~~~~~~~~~~~~~~~~~~  죽음  두려움도 바램도  죽어가는 동물에 임종하지 않지만,  인간은 모든 걸 두려워하고 바라며  최후를 기다린다.  그는 여러 차례 죽었고  여러 차례 다시 일어났다.  큰 인간은 긍지를 가지고  살의(殺意) 품은 자들을 대하고  호흡 정치 따위엔  조소(嘲笑)를 던진다.  그는 죽음을 뼈 속까지 알고 있다 -  인간이 죽음을 창조한 것을.  ~~~~~~~~~~~~~~~~~~~~~~~~~~~~~~~~~~~~~~~~~~~~~~~~~~~  오랜 침묵 후에  오랜 침묵 후에 하는 말 -  다른 연인들 모두 멀어지거나 죽었고  무심한 등불은 갓 아래 숨고  커튼도 무심한 밤을 가렸으니  우리 예술과 노래의 드높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이 마땅하리.  육체의 노쇠는 지혜,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무지했어라.  ~~~~~~~~~~~~~~~~~~~~~~~~~~~~~~~~~~~~~~~~~~~~~~~~~~~~~~~~~~~  버드나무 정원에서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녀와 나 만났었네.  눈처럼 흰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나뭇가지에 잎이 자라듯 사랑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난 젊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 들으려 하지 않았네.  강가 들판에서 그녀와 나 서 있었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젊고 어리석었던 나에겐  지금 눈물만 가득하네.  ~~~~~~~~~~~~~~~~~~~~~~~~~~~~~~~~~~~~~~~~~~~~~~~~~~~~~~~~~  그대 늙었을 때  그대 늙어 백발이 되어 졸음이 자꾸 오고  벽로 가에서 고개를 끄떡끄떡할 때,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으며 그대 눈이 옛날 지녔던  부드러운 눈동자와 그 깊은 그림자를 꿈꾸어라 ;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의 즐거운 우아의 순간을 사랑했으며,  또 그대의 미를 참사랑 혹은 거짓사랑으로 사랑했던가를,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그대의 편력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의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었음을;  그리고 달아오르는 쇠살대 곁에 몸을 구부리고서,  좀 슬프게 중얼대어라, 어떻게 사랑이  산 위로 하늘 높이 도망치듯 달아나  그의 얼굴을 무수한 별들 사이에 감추었는가를.  ~~~~~~~~~~~~~~~~~~~~~~~~~~~~~~~~~~~~~~~~~~~~~~~~~~~~~~~~~~~~  방황하는 인거스의 노래  내 머리 속에 불이 붙어  개암나무 숲으로 갔었지.  개암나무 한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딸기 하나를 낚싯줄에 매달았지.  흰 나방들이 날고 (아마 이 구절인 듯)  나방 같은 별들이 깜빡일 때  나는 시냇물에 딸기를 담그고  작은 은빛 송어 한 마리를 낚았지.  나는 그것을 마루 위에 놓아 두고  불을 피우러 갔었지.  그런데 마루 위에서 무엇인가가 바스락거리더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지.  그것은 머리에 사과꽃을 단  어렴풋이 빛나는 소녀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며 달아나  빛나는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나 비록 골짜기와 언덕을  방황하며 이제 늙어 버렸지만  그녀가 간 곳을 찾아 내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고 손을 잡고서  얼룩진 긴 풀밭 속을 걸어 보리라.  그리고 시간이 다할 때까지 따보리라.  저 달의 은빛 사과를  저 해의 금빛 사과를...  ~~~~~~~~~~~~~~~~~~~~~~~~~~~~~~~~~~~~~~~~~~~~~~~~~~~~~  술노래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뿐.  술잔을 입에 대면서  내 그대를 쳐다보고 한숨짓는다.  ~~~~~~~~~~~~~~~~~~~~~~~~~~~~~~~~~~~~~~~~~~~~~~~~~~~~  하늘의 융단  만일 나에게 하늘의 융단이 있다면  금빛과 은빛으로 짠,  낮과 밤과 어스름의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천으로 짠.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련만  허나 가난한 나는 꿈밖에 없어  그대 발 밑에 꿈을 깔았습니다.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잎이 많아도 뿌리는 하나입니다.  내 청춘의 거짓 많던 시절에는  태양 아래서 잎과 꽃을 흔들었건만  이제는 나도 진실 속에 시들어 갑니다.  ~~~~~~~~~~~~~~~~~~~~~~~~~~~~~~~~~~~~~~~~~~~~~~~~~~~~~~~~  레다와 백조  별안간의 강한 휘몰아침. 커다란 날개들이 아직  비틀거리는 소녀 위에서 퍼덕이고, 그녀의 허벅지는  검은 물갈퀴로 애무되고, 목은 그의 부리에 잡혀 있을 때,  그는 그녀의 무력한 가슴을 자기 가슴에 껴안는다.  어떻게 놀라고 모호한 그 손가락들이 밀어내겠는가  그녀의 느슨해지는 허벅지에서 깃털달린 영광을?  어떻게 그 하얀 물풀 속에 눕혀진 육체가  느끼지 않을 수 있으리 낯선 심장의 고동을?  허리의 떨림이 거기에 낳는다  파괴된 담, 불타는 지붕 그리고 탑과  아가멤논의 죽음을.  그렇게 잡혀서,  하늘의 그 야만적인 피에 지배되었을 때,  그녀는 그의 힘과 더불어 그의 지혜도 받았는가  그 무관심한 부리가 그녀를 놓아주기 전에?  ~~~~~~~~~~~~~~~~~~~~~~~~~~~~~~~~~~~~~~~~~~~~~~~~~~~~~~~~~  쿠울호의 백조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에 싸여 있고,  숲 속의 오솔길은 메말랐다,  시월의 황혼 아래 호수물은  잔잔한 하늘을 비춘다,  솔 사이로 넘치는 물 위에는  쉰아홉 마리의 백조가 있다.  열아홉 째 가을이 나에게 왔다  내가 처음 세기 시작한 이래.  나는 내가 잘 끝내기도 전에,  모두 갑자기 올라가  부서진 커다란 고리 모양으로 선회하며  요란한 날개소리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빛나는 생물들을 보아왔고,  이제 내 마음을 쓰리다.  모든 것이 변했다, 내가, 황혼녘에,  이 호숫가에서 처음,  내 머리 위로 그들의 날개짓 소리 들으며  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이후로.  여전히 지치지 않고, 연인끼리,  그들은 사귈만한 찬물에서  노닥거리거나 하늘로 올라간다.  그들의 마음은 늙지 않았다.  정열과 정복심이, 그들이 어딜 가든,  여전히 그들에겐 있다.  지금 그들은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다,  시비롭고, 아름답게.  어떤 물풀 속에 그들은 세울까,  어떤 호숫가나 연못가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까 내가 어느날 잠깨어  그들이 날아가버린 것을 발견할 때?  ~~~~~~~~~~~~~~~~~~~~~~~~~~~~~~~~~~~~~~~~~~~~~~~~~~~~~~~~  둘째 트로이는 없다  왜 내가 그녀를 책망해야 하나 그녀가 내 생애를  고통으로 채운 것을, 또는 그녀가 최근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방법을 가르친 것을,  또는 작은 거리들을 큰 거리로 내던진 것을,  만일 그들이 욕망에 상응하는 용기를 가졌다면?  무엇이 그녀를 평화롭게 할 수 있었을까,  고상함이 불처럼 단순케 한 마음과,  이런 시대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종류인,  팽팽히 당겨진 활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를,  만일 그녀가 높고 외롭고 매우 엄격했다면?  아니, 무엇을 그녀가 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오늘날의 그녀였다면?  또 하나의 트로이가 있었단 말인가 그녀가 불태워 버릴 ?  ~~~~~~~~~~~~~~~~~~~~~~~~~~~~~~~~~~~~~~~~~~~~~~~~~~~~~~~~~  유리 구슬  나는 들었다 병적으로 흥분한 여인들이 말하는 것을  자기들은 팔레트와 바이올린 활과,  항상 명랑한 시인들에 넌더리가 난다고,  왜냐면 모든 이들은 알거나 알아야 하기에  만일 근본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비행기와 비행선이 나와서,  빌리 왕처럼 폭탄을 떨어뜨려  도시가 납작하게 두드려 맞을 것이기에.  모두가 자신의 비극을 연출한다,  저기 햄릿이 활보하고, 리어가 있고,  저건 오필리아, 저건 코델리아,  그러나 그들은, 만일 마지막 장면이 되어,  커다란 무대 장막이 내려지려 하더라도,  극 중의 그들의 뚜렷한 역할이 가치가 있다면,  울느라고 대사를 중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햄릿과 리어가 명랑하고,  명랑함이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을 변형시킨다는 것을.  모든이들이 목표했고, 발견했고 그리고 잃었다.  무대 소등. 머리 속으로 빛내며 들어오는 천국,  최대한도로 진행된 비극.  비록 햄릿이 천천히 거닐고 리어가 분노해도,  수십만 개의 무대 위에서  모든 무대 장막이 동시에 내려진다 해도,  그것은 한 인치도, 한 온스도 자랄 수 없다.  그들은 왔다, 그들 자신의 발로 걸어서, 배를 타고,  낙타를 타고, 말을 타고, 당나귀를 타고, 노새를 타고,  옛 문명들이 칼로 죽임을 당할 때.  그 후 그들과 그들의 지혜는 파괴되었다.  대리석을 청동처럼 다루었던,  바다 바람이 그 구석을 쓸어갈 때  올라가는 듯이 보이는 휘장을 만들었던,  칼리마커스의 수공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가냘픈 종려나무 줄기 같은 모양의  그의 긴 등갓은 단 하루만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세우는 자들은 명랑하다.  두 중국인이, 그들 뒤엔 또 한 사람이,  유리 구슬에 새겨져 있다,  그들 위로는 장수의 상징인,  다리 긴 새가 날아간다.  세번째 사람은, 분명히 하인인데,  악기를 가지고 간다.  돌의 모든 얼룩이,  우연히 생긴 틈이나 움푹한 곳이,  물줄기나 사태처럼 보인다,  아니면 아직도 눈내리는 높은 비탈처럼 보인다,  비록 분명히 오얏이나 벗나무인 가지가  그 중국인들이 올라가고 있는 곳의 중간 쯤에 있는 작은 집을 기분좋게 하지만,  그리고 나는 즐거이 상상한다, 그들이 거기에 앉아있는 것을,  거기에, 산과 하늘 위에,  그들이 바라보는 모든 비극적인 경치 위에.  한 사람이 구슬픈 곡조를 요청하자,  능숙한 손가락들이 연주하기 시작한다.  많은 주름 속의 그들의 눈, 그들의 눈,  그들의 오랜, 빛나는 눈은, 즐겁다.  ~~~~~~~~~~~~~~~~~~~~~~~~~~~~~~~~~~~~~~~~~~~~~~~~~~~~~~~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질문하며 긴 교실을 걸어간다.  흰 두건을 쓴 친절한 노 수녀가 대답한다.  아이들은 배웁니다 셈하기와 노래하기,  독본과 역사를 공부하기,  재단하기와 재봉하기를, 모든 면에서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잘하기를--아이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놀라서 응시한다  육십세의 미소짓는 공직자를.  II  나는 꿈꾼다 꺼져가는 불 위에 웅크린  레다의 육체를, 그녀가 말한  어떤 어린 시절을 비극으로 변하게 한  거친 책망이나, 사소한 사건의 이야기를--  들었지, 그러자 우리의 두 본성은 섞이는 듯했다  젊은이 특유의 공감 때문에 한 구체로,  아니, 플라톤의 비유를 바꾸어 말하자면,  한 껍질 속의 노른자와 흰자로.  III  그리고 슬픔이나 분노의 그 발작을 생각하며  나는 거기 있는 이 아이 저 아이를 바라보고  궁금해한다 그녀도 그 나이에 저랬을까 하고--  왜냐면 백조의 딸들이라도 모든 물새들의 유산을  조금은 공유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뺨이나 머리에 저 색깔을 지녔었을까 하고,  그러자 내 마음은 미칠 듯했다.  그녀가 내 앞에 서 있다 실물과 같은 아이로.  IV  그녀의 현재의 영상이 마음 속에 떠오른다--  십오세기의 손가락들이 그것을 만들었나  마치 바람을 마시고 고기 대신  한 접시의 그림자를 먹은 듯 뺨이 훌쭉하게?  그리고 나는 결코 레다의 종류는 아니지만  한 때 예쁜 깃털을 가졌었다--그것이면 충분하다,  미소짓는 모든 이에게 미소짓고, 보여주는 게 나으리라  편안한 종류의 늙은 허수아비가 있음을.  V  어떤 젊은 어머니가, 생식의 꿀이 드러내어,  회상이나 그 약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잠자고, 고함치고 고망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형체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자신의 아들을, 만일 그녀가 그 머리 위에  육십이나 그 이상의 겨울을 얹은 그 형체를 보기만 한다면,  그의 출산의 고통이나 그를 세상에 내보낼 때의  불확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할까?  VI  플라톤은 자연이 사물들의 희미한 모형 위에  떠도는 거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보다 견실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질을 했다  왕 중 왕의 궁둥이 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금-허벅지의 피타고라스는  바이올린 활대나 줄을 손가락으로 연주했다  별이 노래하고 무심한 시신들이 들은 것을.  새를 쫒아버리는 낡은 막대기 위의 낡은 옷들일 뿐이다.  VII  수녀들가 어머니들은 상들을 숭배한다,  촛불들이 밝히는 것들은  어머니의 환상을 활기차게 하는 것들과 같지 않다,  그러나 대리석이나 청동의 평온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것들도 가슴을 찢는다--오  정열, 경건, 아니면 애정이 알고  천상의 모든 영광을 상징하는 존재들이여--  오 인간의 일을 조롱하는 스스로 태어난 자여.  VIII  노동은 육체가 영혼을 즐겁게 하려고  상처입지 않는 곳에서 꽃피거나 춤춘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의 절망에서 생기지 않고,  흐린 눈의 지혜는 한밤의 기름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 밤나무여, 크게-뿌리박은 꽃피우는 자여,  그대는 잎인가, 꽃인가, 아니면 줄기인가?  오 음악에 맞춰 흔들린 육체여, 오 반짝이는 시선이여,  어떻게 우리는 무용수와 춤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  내 딸을 위한 기도  폭풍우가 한 번 더 불고 있으나 이  요람 덮개와 이불 아래 반 쯤 덮혀  내 아이는 잠잔다. 그레고리의 숲과  헐벗은 동산 하나 외에는 장애물이 없다  거기에 대서양에서 생긴 바람이 머물 수 있다.  건초더미와 지붕을 납작하게 만드는 바람이,  한 시간 동안 나는 걸으며 기도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큰 어둠 때문에.  나느 한 시간을 걸으며 기도했다 이 어린 아이를 위해  그리고 바다바람이 탑 위에서, 다리의 아치 아래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물이 불은 냇물 위의 느름나무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흥분된 환상 속에서  미래의 세월이 도래했다고 상상했고,  바다의 살인적인 순진에서 나온 격노한 북소리에 맞추어 춤추었다.  선택받은 헬렌은 삶이 단조롭고 무료함을 발견했고  후에 한 멍청이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물보라에서 태어난 그 위대한 여왕은,  아버지가 없었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안짱다리 대장장이를 남편으로 골랐다.  멋진 여인이 그들의 고기와 함께  미치게 하는 샐러드를 먹는 것은 확실하다  그로 인하여 풍요의 뿔은 망쳐진다.  예절에 있어서는 그녀가 주로 배웠으면 한다,  마음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름답지 만은 않은 사람들이 수고해 얻는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아름다움 자체를 위해 바보짓을 한  많은 사람들을 매력이 현명하게 했다,  헤매고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생각한 많은 불쌍한 사람들은  즐거운 친절에서 자신의 눈길을 돌릴 수 없다.  그녀의 모든 생각이 홀방울새처럼 되도록  그녀가 꽃피는 숨은 나무가 되기를,  그 소리의 관대함을 나누어 주는 것 이외의  다른 일은 하지 않기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면 추격을 시작하지 않기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면 싸움을 시작하지 않기를.  오 그녀가 한 사랑스런 영속적인 장소에 뿌리박은  어떤 푸른 월계수처럼 살기를.  내 마음은, 내가 사랑했던 마음들 때문에,  내가 인정했던 종류의 아름다움 때문에,  조금밖에 번창하지 않고, 최근엔 메말라버렸다,  그러나 증오로 목 메이는 것이  모든 악운 중에서 최고라는 것을 안다.  마음에 증오가 없다면  바람의 습격과 공격이  홍방울새를 잎사귀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  지적인 증오가 가장 나쁘다,  그러니 그녀로 하여금 의견은 저주받은 것이라고 생각케하라.  풍요의 뿔의 입에서 태어난  가장 사랑스런 여인이,  그녀의 완고한 정신 때문에  그 뿔과 조용한 본성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모든 선을 분노한 바람이 가득한 풀무와  맞바꾸는 것을 나는 보지 않았던가?  모든 증오가 여기에서 쫒겨나고,  영혼이 근본적인 순결을 회복하고  드디어 그것은 스스로 기쁘게 하고,  스스로 달래고, 스스로 위협한다는 것과,  그 자체의 감미로운 뜻이 하늘의 뜻이라는 알게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녀는, 비록 모든 얼굴들이 지푸리고  모든 바람부는 지역이 고함치거나  모든 풀무가 터져도, 여전히 행복하리라.  그녀의 신랑이 그녀에게 집을 가져오기를  그곳에선 모든 것이 익숙해져 있고, 의식적인 그런 집을,  왜냐면 거만과 증오는 대로에서  사고파는 물건들이니.  어떻게 단지 관습과 의식에서만  순진과 아름다움이 태어나는가?  의식은 풍요의 뿔의 이름이고,  관습은 널리 퍼지는 월계수의 이름이다.  ~~~~~~~~~~~~~~~~~~~~~~~~~~~~~~~~~~~~~~~~~~~~~~~~~~~~~~~~~~~~~  1916년 부활절  나는 잿빛 십팔세기의 집들 가운데서  계산대나 책상으로부터  활기찬 얼굴로 다가오는  그들을 낮이 끝날 때 만났다  나는 지나갔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예의바른 별 뜻없는 말을 하거나  잠시 머물러  별 뜻없는 말을 하거나 하곤,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과 내가 광대옷을 입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클럽의 난로에 둘러 앉아 있는  친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농담이나 조롱을 끝마치기도 전에,  모든 것이 변했다, 완전히 변했다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고.  그 여인의 낮들은 보내졌다  무지한 선의 가운데,  그녀의 밤들은 토론 가운데 보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와질 때까지.  그녀가 젊고 아름다울 때,  말타고 사냥개를 쫓을 때,  어떤 목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보다 감미로왔는가?  이 남자는 학교를 경영했고  우리의 날개달린 말을 탔다,  이 사람은 그의 조력자이자 친구로  한창 본령을 발휘하고 있었다,  결국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그의 본성은 지극히 민감해 보였고,  그의 생각은 지극히 대담하고 감미로워 보였으므로.  이 사람은 내 생각에  술주정뱅이고, 허영심 강한 촌놈이었다.  그는 매우 심한 나쁜 짓을 했다  내 마음에 가까운 누군가에게,  그러나 나는 그를 노래 속에 넣어준다,  그도, 또한, 이 우연한 희극에서  자기 역할을 그만두었다,  그도, 또한, 자기 차례가 되어 변했다,  완전히 변형되었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한 가지 목적만 가진 사람들은  매혹되어 돌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 있는 강물을 괴롭히기 위하여.  길에서 오는 말,  말탄 자, 구름에서 휘모는 구름으로  날아가는 새들,  순간순간 그들은 변한다,  냇물에 비친 구름 그림자는  순간순간 변한다,  말발굽이 물가에서 미끄러지고,  말은 그 속에서 텀벙거린다,  다리가 긴 붉은 뇌조들이 잠수하고,  암컷들은 수컷들을 부른다,  순간순간 그들은 살아가고.  그 돌은 이 모든 것 가운데 있다.  너무 오랜 희생은  마음을 돌로 만들 수 있다.  오 언제면 충분할까?  그건 하늘의 몫이다, 우리 몫은  마음대로 뛰놀던 사지에  마침내 잠이 닥쳐왔을 때,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부르듯이,  이름들이나 중얼거리는 것,  그것이 황혼이 아니고 무엇이오?  아니, 아니, 밤이 아니라 죽음이오.  그건 결국 필요없는 죽음이었나?  왜냐면 행해지고 말해진 모든 것에 대해  영국은 신의를 지킬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그들의 꿈을 안다, 충분하다  그들이 꿈꾸었고 죽었다는 것만 알면,  긜고 과도한 사랑이 그들이 죽을 때가지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면 어떻소?  나는 그것을 시로 쓴다--  맥도너와 맥브라이드  그리고 코놀리와 퍼스는  지금과 장래에  녹색 옷이 입어지는 곳 어디서나,  변했다, 완전히 변했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  육신과 영혼의 대화  영혼: 나는 굽이도는 옛 계단으로 부른다,  너의 마음을 모두 가파른 오르막에,  부서지고 무너지는 성벽에,  호흡없는 별빛 비친 공기에,  숨은 극을 표시하는 별에 집중하라고.  헤매는 모든 생각을  모든 생각이 다해버린 그 지역에 고정하라고.  누가 어둠과 영혼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육신: 내 무릎 위의 그 신성한 칼은  사토의 옛 칼로 여전히 예전과 같다,  여전히 날리 예리하고, 여전히 거울같고  긴 세월에 의해 얼룩지지 않았다.  그 꽃무니, 비단의 옛 장식은, 어떤  궁정여인의 옷에서 찢어내어져  그 나무칼집을 묶어 싸고 있는데,  해어졌으나 여전히 보호할 수 있고, 빛바랬으나 장식할 수 있다.  영혼: 왜 인간의 상상은  전성기를 한창 지나서  사랑과 전쟁을 상징하는 것들을 기억해야 하는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밤을 생각하라,  다만 상상이 대지를 경멸하고  지성이 그것이 이것 저것으로  또 다른 것으로 헤맴을 경멸하기만 한다면,  죽음과 탄생의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그 밤을.  육신: 몬타시기, 그의 가족의 셋째가, 그것을 만들었다  오백년 적에, 그 주변에는  어떤 자수인지 나는 모르는--진홍빛의--  꽃들이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밤을 상징하는 탑에 대한  낮의 상징으로 놓는다,  그리고 군인의 권리에 의한 것처럼  그 죄를 한 번 더 범할 특권을 요구한다.  영혼: 그 지역의 그러한 충만함은 넘쳐흘러  정신의 웅덩이에 떨어져  사람은 귀멀고 말못하고 눈이 먼다,  왜냐면 지성은 더 이상 구별하지 못하기에  존재와 당위를, 주체와 대상을--  다시 말하여, 하늘로 올라가기에,  단지 죽은 자들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걸 생각할 때 내 혀는 돌이 된다.  II  육신: 산 사람은 눈멀어 자신의 배설물을 마신다.  도랑이 불결하면 어때?  내가 그 모든 것을 한 번 더 살면 어때?  자라는 노고를,  소년시절의 치욕을, 어른으로 바뀌는  소년시절의 슬픔을,  자신의 어색함을 직면하게 된  끝나지 않은 사람과 그의 고통을 참아내면 어때?  적들에게 둘러싸인 끝난 사람을 참아내면 어때?--  도대체 어떻게 그가  마침내 저 형상이 자신의 형상이라고 생각하도록  악의에 찬 눈들의 거울이  자신의 눈들 위에 던져준  저 더럽고 일그러진 형상을 피할 수 있는가?  명예가 그를 겨울의 강풍 속에서 발견할 때  도망이 무슨 소용있는가?  나는 이 모든 것을 다시 하는데 만족한다  그리고,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때리는  눈먼 사람의 시궁창의 개구리 알 속으로,  가장 비옥한 시궁창 속으로,  만일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혈족이 아닌 오만한 여인에게  구애하면 그가 행하거나 겪어야만 하는 그 어리석음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 삶이라 해도,  나는 또 다시 사는데 만족한다.  나는 행동이나 생각에 있어서의 모든 사건을  그 원천까지 추구하는 데, 운명을 헤아리는 데,  내 자신에게 그 운명을 허용하는 데 만족한다,  내가 이렇게 후회를 내버려서  매우 큰 감미로움이 가슴 속으로 흘러들 때  우리는 웃고 노래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의해 축복받았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축복받았다.  ~~~~~~~~~~~~~~~~~~~~~~~~~~~~~~~~~~~~~~~~~~~~~~~~~~~~~~~~~~~~~~~~  비잔티움  낮의 정화되지 않은 상들이 물러난다.  황제의 술취한 병사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밤의 메아리도, 밤-보행자의 노래도  대 성당의 큰 종이 울린 후에는 물러난다.  별빛이나 달빛 비친 둥근 지붕은 경멸한다  인간인 모든 것을,  다만 복잡하기만 한 모든 것을,  인간 혈관의 격노와 오욕을.  내 앞에 상이 떠다닌다, 인간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이라기 보다는 허깨비이고, 허깨비라기 보다는 상인.  왜냐면 미이라의 옷에 감긴 하계의 실꾸리가  구불구불한 길을 풀어 놓을 지도 모르니,  습기도 없고 호흡도 없는 입을  호흡없는 입들이 소환할지도 모르니,  나는 환영한다 그 초인을,  나는 그것을 삶-속의-죽음과 죽음-속의-삶이라 부른다.  기적이, 새나 황금 세공품이,  새나 수공품이라기 보다는 기적이,  별빛 비친 황금 가지에 얹혀서,  하계의 수탉처럼 울 수 있거나,  달빛에 격분하여 큰 소리로 경멸할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금속을 찬양하여  보통의 새나 꽃잎을  그리고 오욕과 피의 모든 복잡한 것들을.  한밤에 황제의 포도 위에는 날아다닌다  나무도 공급하지 않고, 부싯돌도 부치지 않고,  폭풍우도 방해하지 않는 불꽃들이, 불꽃에서 나온 불꽃들이,  거기로 피에서 나온 영혼들이 오고  격노의 모든 복잡한 것들이 떠난다,  춤 속으로  황홀한 고뇌 속으로  소매도 그을릴 수 없는 불꽃의 고통 속으로 죽어간다.  돌고래의 오욕과 피에 걸터앉아 영혼이  줄지어 온다. 용광로들이 홍수를 부순다,  황제의 황금 용광로들이!  무도장 바닥의 대리석들이  복잡한 것의 격렬한 격분을 부순다,  여전히 새로운 상들을 낳는  그 상들을,  그 돌고래에 찢긴, 그 큰 종의 괴롭힘을 받은 바다를.  ~~~~~~~~~~~~~~~~~~~~~~~~~~~~~~~~~~~~~~~~~~~~~~~~~~~~~~~~~~~~~~  벌벤산 아래  아틀라스의 마녀가 알고 있었고,  말했고, 닭들을 울게 했던  마레오틱 호수 주변에서  성자들이 말한 것을 걸고 맹세하라.  안색과 모습이 초인임을 증명하는  그 말탄 자들, 그 여인들을 걸고 맹세하라,  그 창백하고 얼굴 긴 동료  불멸의 그 태도를  그들의 완전한 정열이 성취했음을.  이제 그들은 겨울 새벽을 타고 간다  벌벤 산이 경치를 보여주는 곳에서.  여기 그들이 뜻하는 바의 요점이 있다.  II  여러 번 사람은 살고 죽는다  종족의 그것과 영혼의 그것인,  그의 두 영원 사이에서,  옛 아일랜드는 그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사람이 자기 침대에서 죽든  아니면 장총이 그를 죽게 하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짧은 이별은  사람이 두려워해야 하는 최악이다.  비록 무덤-파는 자들의 노고는 오래고,  그들의 삽이 날카롭고, 그들의 근육이 강하더라도,  그들은 다만 그들이 매장한 사람을  인간의 마음 속으로 다시 되밀어 넣을 뿐이다.  III  "우리 시대에 전쟁을 보내주소서, 오 주여!"라는  미첼의 기도를 들은 당신은  모든 말들이 말해지고,  한 사람이 미쳐서 싸울 때,  무언가가 오랫동안 멀었던 눈에서 떨어지는 것을 안다,  그는 자신의 편파적인 마음을 응시하고,  잠시 편안히 서서,  큰 소리로 웃는다, 그의 마음은 평온하다.  가장 현명한 사람조차도 긴장한다  어떤 종류의 격렬함으로  그가 운명을 완수하거나  자신의 일을 알거나, 짝을 고를 수 있기 전에는.  IV  시인과 조각가는, 일을 한다,  시류를 따르는 화가로 하여금  그의 위대한 선조들이 한 것을 피하도록 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영혼을 신에게로 가져가고,  그로 하여금 요람을 옳게 채우도록 한다.  도량법이 우리 이론을 일으켰다,  힘찬 이집트인이 생각한 형체들을,  보다 점잖은 피디어스가 만든 형체들을,  미켈란제로는 시스틴 성당 지붕에  증거를 남겼다,  거기선 단지 반쯤 잠깬 아담이  지구에 거니는 마담을 혼란케할 수 있다  그녀의 내장이 열받을 때까지,  은밀히 작용하는 마음 앞에 놓인  목적이 있다는 증거이다.  인류의 세속적 완성이다.  십오세기는 신이나 성자의 배경으로  영혼이 편안히 쉬고 있는 정원을  그림으로 그렸다,  거기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꽃과 풀과 구름없는 하늘이,  잠꾸러기들이 깨었으나 여전히 꿈꿀 때,  그리고 단지 침대와 침대틀만 거기 남아 있고,  그것이 사라졌으나  천국이 열렸다고 여전히 선언할 때,  존재하거나 보이는 형체들을 닮았다.  가이어들은 계속 회전한다,  보다 위대한 그 꿈이 사라졌을 때  칼버트와 윌슨, 블레이크와 클로드는,  신의 국민들을 위한 휴식을 준비했다,  팔머의 말로, 그러나 그 후  우리 생각에 혼돈이 일어났다.  V  아일랜드 시인들이여, 당신네의 일을 배우시오,  잔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노래하시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형체에서 나온 모든 것  지금 자라고 있는 종류의 것을 경멸하시오,  그들의 기억않는 가슴과 머리는  미천한 침대에서 미천하게 난 산물이오.  농부를 노래하시오, 그리고 그 다음엔  어렵게 말타는 시골 신사를,  수도승들의 성스러움을, 그리고 그 후엔  흑맥주 술꾼들의 요란한 웃음을 노래하시오,  일곱 영웅적인 세기 동안에  땅 속에 매장된  명랑한 귀족과 귀부인들을 노래하시오,  당신의 마음을 지난날에 던지시오  우리가 다가오는 시대에도 여전히  불굴의 아일랜드 인이 되도록.  VI  헐벗은 벌벤 산 정상 아래  드럼클리프 묘지에 예이츠가 누워 있다.  조상 한 분은 그곳의 목사였다  오래 전에, 교회가 가까이에 서 있다,  길 옆에 한 오래된 십자가.  대리석도, 전통적인 구절도 없다,  가까운 곳에서 채석된 석회암에  그의 명에 따라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삶에, 죽음에.  말탄 자여, 지나가거라!  ~~~~~~~~~~~~~~~~~~~~~~~~~~~~~~~~~~~~~~~~~~~~~~~~~~~~~~~~~  긴다리 소금쟁이  문명이 멸하지 않도록  큰 전투에 패하지 않도록  개를 조용하게 하고 나귀를  먼 기둥에 매어라.  우리 장군 시저는  지도가 펼쳐진 텐트 속에 있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정적 속에서 움직인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정적 속에 움직인다.     드높은 탑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그 얼굴을 기억하도록  이 외로운 곳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아주 상냥하게 움직여라.  사분의 일 여자에 사분의 삼 아이인 그네  아무도 자길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네의 발은 거리에서 익힌  땜장이의 걸음을 흉내낸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네 마음 정적 속에서 움직인다.     사춘기 소녀들이 마음속에  최초의 아담을 발견할 수 있도록  법황청 성당의 문을 닫고  아이들을 들여보내지 마라.  성당 안에서 미켈란젤로는  비게 위에다 몸을 기댄다.  새앙쥐 움직이는 소리 정도로  그의 손은 이리저리 움직인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정적 속에서 움직인다.  ~~~~~~~~~~~~~~~~~~~~~~~~~~~~~~~~~~~~~~~~~~~~~~~~~~~~~ 
37    바이런 시모음 댓글:  조회:319  추천:0  2017-08-19
바이런 1788~1824 영국의 시인   런던에서 태어났다. 1798년 제5대 바이런 남작이 죽음으로써 제6대를  상속하여, 조상 대대로 내려 오는 노팅엄셔의 뉴스테드애비의 영주가 되었다. 1805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갔고, 시집 《게으른 나날》을 펴냈다.   그는 슬프고 애절한 서정성, 날카로운 풍자성이 있는 시들로 근대 유럽 문학의 발전에 공헌하였고, 낭만파 시인의 대표로 꼽힌다.《차일드 해럴드의 편력》이 예기치않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때 “자고나니 유명해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등이  있다.     추 억   아아, 모든 것은 끝났도다!- 꿈이 보여준 그대로, 미래는 이제 희망에 빛나지 않고   나의 행복의 나날은 끝났노라.   불행의 찬 바람에 얼어   내 삶의 동트는 새벽은 구름에 가렸구나,   사랑, 희망 그리고 기쁨이여 안녕!   내 이제 또 하나 잊을 길이 없을까,   추억을!     아, 꽃처럼 저 버린 사람   오, 그 아름다움 한창 피어날 때 저버린 그대   잠든 그대 위엔 묘석일랑 놓지 못하게 하리라.   그대를 덮은 잔디 위엔 오직 장미를 심어   봄이면 새싹 트게 하고   야생 실백편나무 수심어려 휘청거리게 하리라.   때로는 또 저기 푸르게 흐르는 시냇가에   슬픔의 여신 찾아와 고개 숙이며   갖가지 꿈으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고   혹은 머뭇거리고 혹은 사뿐히 걸음 옮기게 할지니   상냥한, 가엾은 그대여!   혹시나 그 발걸음이   고이 잠든 그대를 깨울까 하여이니라.     시용성      사슬 없는 마음의 영원한 정신! 자유여,   그대는 지하 감옥에서 가장 찬연히 빛난다.   그대 사는 곳은 사람의 마음 속이기에   그대를 묶어 놓는 것은 그댈 사랑하는 마음 뿐,   그대 아들들이 족쇄에 채워져 얽매일 때-   그리고 축축한 지하 감옥 햇빛 없는   어둠 속에 던져질 때,   그들의 조국은 그들의 순교로 승리를 얻고   자유의 명성은 그 날개를 널리 펼친다.   시용이여! 그대의 감옥은 오히려 성스러운 곳   그대의 슬픈 돌바닥은 제단이다.   보니바르가 한 때 그 차디찬 돌바닥이 잔디인 양   그의 발자국이 그 모두에 남을 때까지   그 돌바닥을 짓밟고 거닐었기에   아무도 그 발자국들을 지우지 말지어다!   그 발자국들이 폭정을 신에게 호소하는   증거가 되기에.     바벨론 강가에서 앉아서 우리는 울었도다.                       우리는 바벨의 물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그리고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버드나무에 하프는 걸려있고   그 소리는 울리지 않는구나. 오 예루살렘아!   너의 영광이 끝나던 시간에   하지만 너는 징조를 남겼다.   나는 결코 그 부드러운 곡조를   약탈자의 노래에 맞추지 않겠노라고.     우리 둘 헤어질 때              말없이 눈물 흘리며     우리 둘 헤어질 때   여러 해 떨어질 생각에     가슴 찢어졌었지   그대 뺨 파랗게 식고     그대 키스 차가웠어   이 같은 슬픔     그때 벌써 마련돼 있었지     내 이마에 싸늘했던     그 날 아침 이슬   바로 지금 이 느낌을     경고한 조짐이었어   그대 맹세 다 깨지고     그대 평판 가벼워져   누가 그대 이름 말하면     나도 같이 부끄럽네     남들 내게 그대 이름 말하면     그 이름 조종처럼 들리고   온몸이 한 바탕 떨리는데     왜 그리 그대 사랑스러웠을까   내 그대 알았던 것 남들은 몰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걸   오래 오래 난 그댈 슬퍼하리     말로는 못할 만큼 너무나 깊이     남몰래 만났던 우리--     이제 난 말없이 슬퍼하네   잊기 잘하는 그대 마음     속이기 잘하는 그대 영혼을   오랜 세월 지난 뒤     그대 다시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말없이 눈물 흘리며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해럴드 공자의 편력' 중에서, 캔토 4, 시 178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외로운 바닷가에 황홀이 있다   아무도 침범치 않는 곳   깊은 바다 곁, 그 함성의 음악에 사귐이 있다.   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이러한 우리의 만남을 통해   현재나 과거의 나로부터 물러나   우주와 뒤섞이며, 표현할 수는 없으나   온전히 숨길 수 없는 바를 느끼기에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돌려주오, 오, 내 마음 돌려주오   아니 기왕에 내 마음 떠난 바엔   이젠 그걸 가지고 나머지도 가져가오   나 떠나기 전 내 언? 들어주오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에게해 바람마다 애무한   흘러내린 그대 머리칼에 맹세코   그대의 부드러우 뺨에 피어나는 홍조에 입마주는   까만 속눈썹이 술 장식한 그대 눈에 맹세코   어린 사슴처럼 순수한 그대 눈망울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애타게 맛보고 싶은 그대 입술에 맹세코   저 허리띠 두른 날씬한 허리에 맹세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사연도   전해주는 온갖 꽃에 맹세코   교차되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아테네의 아가씨여! 나는 떠나가리라   님이여! 홀로 있을 땐 날 생각하오   몸은 비록 이스탄불로 달려갈지라도   내 마음과 여혼은 아테네에 있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천만에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별이 총총한 구름 한점 없는 밤하늘처럼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어둠과 빛의 순수는 모두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서 만나고,   하늘이 찬연히 빛나는 낮에는 주지 않는   부드러운 빛으로 무르익는다.   그늘 한 점이 더하고 빛이 한 줄기만 덜했어도    새까만 머리칼마다 물결치고   혹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밝혀 주는   형언할 바이 없는 그 우아함을 반은 해쳤으리라.   그녀의 얼굴에선 사념이 고요히 감미롭게 솟아나   그 보금자리, 그 얼굴이 얼마나 순결하고 사랑스런가를 말해 주노라.   저 뺨과 이마 위에서   상냥하고 침착하나 힘차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 환히 피어나는 얼굴빛은   말해 준다. 착하게 보낸 지난날을   이 땅의 모든 것과 화목한 마음,   순결한 사랑이 깃든 마음을.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한밤중에   지금도 사랑은 가슴 속에 깃들고   지금도 달빛은 훤하지만.   칼을 쓰면 칼집이 해어지고   정신을 쓰면 가슴이 헐고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도 때로는 쉬어야 하니.    밤은 사랑을 위해 있고   낮은 너무 빨리 돌아오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달빛 사이를......  
36    귄터 아이히 詩 모음 댓글:  조회:404  추천:0  2017-08-09
비가 전하는 소식 귄터 아이히  슬레이트지붕에서 기와지붕으로, ... 빗방울이 북소리 같이 울리며, 전염병처럼 퍼져, 내게 전하는 소식,  가지고 싶지 않은 자에게 전달되는 밀수품- 벽의 바깥에 창문의 함석조각이 울리고, 자음과 모음들이 달그닥거리며 한데 합치면, 비는 말한다 나밖에는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언어로- 깜짝 놀라 나는 듣는다 절망의 소식을, 빈곤의 소식을, 그리고 비난의 소식을, 이 소식이 내게 전해져 불쾌하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나는 소리높여 외친다, 비도, 비의 고발도, 그리고 그것을 내게 보낸 자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적당한 시간에  밖으로 나가 그에게 대답하리라고     소지품 목록/ Guenter Eich 이것은 나의 모자, 이것은 나의 외투, 여기 아마포로 만든 주머니 속에는 나의 면도기. 통조림 깡통은 나의 접시, 나의 술잔, 나는 그 생철 그릇에다 이름을 새겼다. 모두들 갖고 싶어 해서 내가 숨겨두었던, 이 소중한 못을 가지고 여기에다 새긴 것이다. 빵주머니 속에는 면양말이 한 켤레 들어 있고. 또한 내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몇 개 들어 있다. 그래 이것을 밤이면 베개처럼 머리 맡에 베고 잔다. 여기 있는 이 마분지 판때기를 땅바닥에 깔고. 이 연필심을 나는 가장 아낀다. 밤에 생각한 몇 줄의 시를 낮에 이 연필심으로 쓰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공책, 이것은 나의 천막조각, 이것은 나의 세수수건, 이것은 나의 바느질 연장.       - 쓰레기 적치장/귄터 아이히     누구도 듣지 않고, 모두가 듣는 세계의 슬픔은 며느리밑씻개 위에서 시작된다. 바람은 매트레스의 스프링의 신축재를 건드린다. 꽃들과 포도송이들의 장식 속에서 잔에 쓰인 금자를 나는 어슴푸레 읽을 수 있었으니, 오 나는 얼마나 섬찟했던가. 사랑, 희망 그리고 믿음이란 말. 아 누가 너무나 쓰디쓴 고통에 대해 조각들을 이렇게 붙일 수 있나? 가슴을 지나듯 법랑을 지나 면리밑씻개의 불길은 커만 간다. 녹슨 철모에 남은 물찌꺼기는 스쳐가는 새들의 목욕을 위한 것. 망실되 영혼이여, 네가 누구를 떠나든간에, 누가 은총 속에서 너를 다시 맞출까?     - 변소/귄터 아이히   피와 오줌이 잔뜩 묻은 종이조각들, 악취가 진동하는 도랑 위에, 싯누런 똥파리들에 에워싸여, 나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숲이 우거진 강가, 정원들과, 물가에 멎은 보트를 바라본다. 썩은 진흙구렁 속으로 돌덩이처럼 딱딱한 똥이 철썩 떨어진다. 엉뚱하게도 내 귀에는 휠덜린의 시가 울려온다. 눈처럼 하얀 구름이 오줌 속에 반사한다. 『이제 그만 가서 아름다운 가론느 江에게 인사하라-』 휘청거리는 발 아래서 구름이 헤엄쳐 도망간다.    기하학적 위치/ 귄터 아이히   우리는 우리들의 그림자를 팔아 버렸다, 그림자는 히로시마의 담벼락에 걸려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던 사업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자를 거둬들이고 있다. 한데,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의 위스키를 마시자꾸나. 그러나 양심의 증명서인 이름을 지닌 나의 술병이 있는 주막집을 나는 찾을 수가 없으리라. 예수의 탄생 때에 나는 동전 한 푼 은행에 맡긴 일이 없다. 그런데 인간에 대적해서 훈련받은 개들의 자손들을 나는 도나우 학파의 언덕 위에서 보았다. 그것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나는, 히로시마의 주민들처럼, 화상 입은 피부는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마시고 노래하고 싶다, 위스키에 대해 나는 노래를 한다. 채석강이나 철조망 속에서 그의 조상들이 인간을 향해 뛰어오르던 그런 개들을 나는 쓰다듬고 싶다. 히로시마의 은행에 있는 그대, 나의 그림자여, 때때로 나는 모든 개들과 함께 너를 방문하며 우리들의 당좌예금의 안전을 위해 그대를 향해 잔들 들겠다. 박물관은 뜯겨 버리리라, 그 전에 나는 몰래 너에게 숨어들리라, 너의 난간 뒤로, 너의 웃음 뒤로, 우리들의 구원된 외침으로, 바로 그 순간 너와 나의 신발이, 우리들이 또다시 서로 어울리리라. - 비둘기/귄터 아이히   밭을 지나 저쪽으로 비둘기들이 날아간다, - 날개를 한 번 치는 것이 아름다움보다 더욱 빨라 아름다움은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나의 마음 속에 불안으로 남는다. 비둘기집 앞에서, 녹색 페인트 칠을 한 그 조그만 새집 앞에서, 비둘기들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날으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일일까, 땅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은 얼마나 날카로울까. 그들은 어떻게 모이를 쪼아 먹으며 또한 매가 날아오는 것을 알아차릴까. 나는 비둘기들을 두려워하리라 마음먹는다. 나는 말하고 싶다. 네가 그들이 주인은 아니라고, 네가 모이를 뿌려주려고, 네가 그들의 깃털에 통신문을 매달고, 네가 그들을 예쁜 모습으로 치장해주긴 하지만, 새로운 색깔, 머리와 발목의 새로운 깃털. 너의 힘을 믿지 말라, 그러면 너는 놀라지 않으리라, 네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너희들의 곁에 숨겨진 王國이 있어, 알아낼 수 없는, 소리없는 언어가 있고, 힘은 없어도, 건드릴 수 없는 다스림이 있고, 또한 비둘기가 날아갈 때 결단이 내려진다는 것을 알아도. - 꿈/귄터 아이히     깨어나라, 너희들은 악몽을 꾸고 있다! 잠들지 말라, 무서운 일이 서서히 닥쳐오고 있다. 네 비록 피 흘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너에게도 그것은 닥쳐오고 있다. 네가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역시. 오늘 그것이 닥쳐오지 않으면, 내일 오리라. 그러나 틀림없는 일이다. 『아니타가 일주일 동안 수를 놓아서 크리스머스 선물로 준, 빨간 꽃무늬의 베개를 베고, 오, 쾌적한 잠, 기름진 불고기와 연한 채소를 먹고 난 다음의 오, 쾌적한 잠, 잠들면서 우리는 어제 저녁의 뉴스 영화를 생각한다. 유월절의 양들, 소생하는 자연, 바덴바덴의 도박장 개설, 케임브리지 팀이 옥스퍼드 팀을 2정신반 앞서 이겼다든가 하는- 잠들기 전의 상상으로는 이만하면 족하다. 오, 최고급 깃털로 만든 이 부드러운 베개! 이 베개를 베고 우리는 이 세계의 불쾌한 일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예컨대 낙태를 시켰다고 고발된 여인이 스스로의 변호를 했다는 소식을, 일곱 아이의 어머니인 그 여인이 젖먹이를 데리고 나에게 왔다. 아기의 기저귀가 없어 신문지로 기저귀를 채워가지고. 하지만 그거야 재판소에서 알아 할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팔자를 세게 타고난 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 손자들은 훌륭히 싸워 이길 테니까』 『아, 너는 벌써 자고 있느냐? 어서 깨어나라, 나의 친구여! 철조망에는 벌써 전류가 흐르고, 초병들이 늘어섰다』 이 세계의 주재자들이 분주한 동안은 안 된다. 자지 마라! 너희들을 위하여 노력해야만 한다고 그럴 듯하게 내세우는 그들의 권력을 믿지 마라! 너희들의 마음이 공허하게 될 것을 얘기하더라도 너희들의 마음이 텅 비지 않도록 주의하라! 유익하지 못한 일을 하라, 사람들이 너희들의 입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노래를 불러라! 불유쾌하게 살라, 이 세계라는 기계 속의 기름이 되지 말고, 모래가 되라!    
35    괴테 시모음 댓글:  조회:435  추천:0  2017-08-09
괴테 시모음   신비의 합창  지나간 모든 것은  한갓 비유일 뿐,  이루기 어려운 것 여기 이루어졌으니.  글로 쓰기 어려운 것이  여기 이루어졌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라가게 한다.  ~~~~~~~~~~~~~~~~~~~~  첫 사 랑  아 - 누가 그 아름다운 날을 가져다 줄 것이냐,  저 첫사랑의 날을.  아 - 누가 그 아름다운 때를 돌려 줄 것이냐,  저 사랑스러운 때를.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기르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한탄과 더불어  잃어 버린 행복을 슬퍼한다.  아 - 누가 그 아름다운 날을 가져다 줄 것이냐!  그 즐거운 때를.  ~~~~~~~~~~~~~~~~~~~~  그대 곁에서  나 그대가 생각납니다.  태양의 미미한 빛살이  바다 위에서 일렁거리면  나 그대가 생각납니다.  달의 어렴풋한 빛이  우물 속 그림자로 출렁거리면  나 그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먼 길에 먼지에 일게 되면  나 그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슥해진 좁은 길 위에서  나그네가 떨고 있으면  나 그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요란한 소리로 높은 파도가 밀려 올때면  나 그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모든 것이 숨죽인 공원을 거닐 때면  나 그대 곁에 있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대는 늘 내 곁에 있습니다.  태양이 가라앉고  잠시 후 별이 빛날 것입니다.  아아, 그대가 저 하늘의 별일 수만 있다면.  ~~~~~~~~~~~~~~~~~~~~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희미한 햇빛 바다에서 비쳐올 때  나 그대 생각 하노라.  달빛 휘영청 샘물에 번질 때  나 그대 생각 하노라.  저 멀리 길에서 뽀얀 먼지 일 때  나 그대 모습 보노라.  어두운 밤 오솔길에 나그네 몸 떨때  나 그대 모습 보노라.  물결 높아 파도 소리 아득할 때  나 그대 소리 듣노라.  고요한 숲 속 침묵의 경계를 거닐며  나 귀를 기울이노라.  나 그대 곁에 있노라, 멀리 떨어졌어도  그대 내 가까이 있으니  해 저물면 별아, 나를 위해 곧 반짝여라  오오 그대 여기 있다면.  ~~~~~~~~~~~~~~~~~~~~  동경(憧憬)  내 마음을 이렇게도 끄는 것은 무엇인가  내 마음을 밖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방에서, 집에서  나를 마구 끌어 내는 것은 무엇인가.  저기 바위를 감돌며  구름이 흐르고 있다!  그곳으로 올라갔으면,  그곳으로 갔으면!  까마귀가 떼를 지어  하늘하늘 날아간다.  나도 그 속에 섞여  무리를 따라간다.  그리고 산과 성벽을 돌며  날개를 펄럭인다.  저 아래 그 사람이 있다.  나는 그쪽을 살펴본다.  저기 그 사람이 거닐어 온다.  나는 노래하는 새.  무성한 숲으로  급히 날아간다.  그 사람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  혼자 미소 지으며 생각한다.  저렇게 귀엽게 노래하고 있다.  나를 향해서 노래하고 있다고,  지는 해가 산봉우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건만,  아름다운 그 사람은 생각에 잠겨서  저녁놀을 보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목장을 따라  개울 가를 거닐어 간다.  길은 꼬불꼬불하고  점점 어두어진다.  갑자기 나는  반짝이는 별이 되어 나타난다.  저렇게 가깝고도 멀리  반짝이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놀라서  그 빛을 바라보면,  나는 너의 발 아래 엎드린다.  그 때의 나의 행복이여!  ~~~~~~~~~~~~~~~~~~~~  이 별  입으로는 차마 말 할 수 없는 이별을  내 눈으로 말하게 하여 주십시오  견딜 수 없는 쓰라림이 넘치오  그래도 여느 때는 사나이였던 나였건만  상냥스러운 사랑의 표적조차  이제는 슬픔의 씨앗이 되었고  차갑기만 한 그대의 입술이여  쥐여 주는 그대의 힘 없는 손이여  여느 때라면 살며시 훔친 입맞춤에조차  나는 그 얼마나 황홀해질 수 있었던가  이른 봄 들판에서 꺾어 가지고 온  그 사랑스런 제비꽃을 닮았었으나  이제부터는 그대 위해 꽃다발을 엮거나  장미꽃을 셀 수조차 없이 되었으니  아아 지금은 정녕 봄이라는데 프란치스카여  내게만은 쓸쓸하기 그지없는 가을이라오  ~~~~~~~~~~~~~~~~~~~~  슬픔의 환희  마르지 말아라, 마르지 말아라  영원한 사랑의 눈물이여!  아아, 눈물 마른 눈에 비치는 이 세상이란  얼마나 황량하며, 그 얼마나 죽은 것으로 보이랴!  마르지 말아라, 마르지 말아라  불행한 사랑의 눈물이여!  ~~~~~~~~~~~~~~~~~~~~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단 한번 그대 얼굴 보기만 해도,  단 한번 그대 눈동자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은 온갖 괴로움 벗어날 뿐,  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하느님이 알 뿐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 가슴의 슬픔을 이해합니다.  홀로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등지고  머언  하늘을 바라봅니다.  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알아 주던 사람은  지금 먼 곳에 있습니다.  눈은 어지럽고  가슴은 찢어집니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 가슴의 슬픔을 이해합니다.  ~~~~~~~~~~~~~~~~~~~~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느껴요  산과 강, 도시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비록 헤어져 있을지라도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느끼며  영혼이 가까이 있는 그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있다면  이 세상은 사람이 살고 있는 정원이 될 것입니다.  ~~~~~~~~~~~~~~~~~~~~  사랑의 독본  책 중에  가장 오묘한 책,  사랑의 책을  나는 차분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기쁨을 말하는 페이지는 적었고  한권을 읽는 동안  괴로움만 계속되었습니다.  이별은 특별히  한 장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재회에 대해서는  아주 짧은 단문으로 말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고뇌는  전편에 걸쳐 매우 긴 설명이 붙어 있었고  끊임없이 이어져 갔습니다.  오오 시인이여,  마침내 그대는 정답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풀 수 없었던  그 문제는 결국  다시 만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  들 장 미  한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  그리도 싱그럽고 아름다워서  가까이 보려고 재빨리 달려 가,  기쁨에 취하여 바라보았네.  장미, 장미, 빨간 장미  들에 핀 장미  소년은 말했네. '너를 꺾을 테야  들장미야!'  장미는 말했네. '너를 찌를테야  끝내 잊지 못하도록.  꺾이고 싶지 않단 말이야'  장미, 장미, 빨간 장미  들에 핀 장미.  짖궂은 아이는 꺾고 말았네  들에 핀 장미  장미는 힘을 다해 찔렀지만  비명도 장미를 돕지 못하니,  장미는 그저 꺾일 수 밖에.  장미, 장미, 빨간 장미  들에 핀 장미.  ~~~~~~~~~~~~~~~~~~~~  나그네의 밤노래  모든 산봉우리위에  안식이 있고  나뭇가지에도  바람소리 하나 없으니  새들도 숲속에 잠잔다.  잠시만 기다려라  그대 또한 쉬리니.  ~~~~~~~~~~~~~~~~~~~~  5월의 노래  밀밭과 옥수수밭 사이로,  가시나무 울타리 사이로,  수풀 사이로,  나의 사랑은 어딜 가시나요?  말해줘요!  사랑하는 소녀  집에서 찾지 못해  그러면 밖에 나간 게 틀림없네  아름답고 사랑스런  꽃이 피는 오월에  사랑하는 소녀 마음 들 떠 있네  자유와 기쁨으로.  시냇가 바위 옆에서  그 소녀는 첫 키스를 하였네  풀밭 위에서 내게,  뭔가 보인다!  그 소녀일까?  ~~~~~~~~~~~~~~~~~~~~  거룩한 갈망  현자에게가 아니면 말하지 마라  세속 사람은 당장 조롱하고 말리니  나는 진정 사는가 싶이 살아 있는 것을  불꽃 속에 죽기를 갈망하는 것을 찬미한다  그대를 낳고 그대가 낳았던  사랑을 나눈 밤들의 서늘한 물결 속에서  그대 말없이 타는 촛불을 보노라면  신비한 느낌 그대를 덮쳐 오리  그대 더 이상 어둠의 강박에 매이지 않고  더 높은 사랑의 욕망이 그대를 끌어올린다  먼길이 그대에겐 힘들지 않다  그대 마술처럼 날개 달고 와서  마침내 미친 듯 빛에 홀리어  나비처럼 불꽃 속에 사라진다  죽어서 성장함을 알지 못하는 한  그대 어두운 지상의 고달픈 길손에 지나지 않으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로버트 블라이 번역  ~~~~~~~~~~~~~~~~~~~~  미뇽(Mignon)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꽃 피는 나라?  그늘진 잎 속에선 금빛 오렌지 빛나고  푸른 하늘에선 부드러운 바람 불어 오고  감람나무는 고요히, 월계수는 드높이 서 있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그 곳으로 ! 그 곳으로 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내 사랑이여 !  당신은 아시나요. 그 집을? 둥근 기둥들이  지붕 떠받치고 있고, 홀은 휘황 찬란, 방은 빛나고,  대리석 입상(立像)들이 날 바라보면서,  "가엾은 아이야, 무슨 몹쓸 일을 당했느냐?"고 물어 주는 곳,  그 곳으로 ! 그 곳으로  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내 보호자여 !  당신은 아시나요, 그 산, 그 구름다리를?  노새가 안개 속에서 제 갈 길을 찾고 있고  동굴 속에는 해묵은 용들 살고 있으며  무너져 내리는 바위 위로는 다시  폭포수 내려 쏟아지는 곳,  그 곳으로 ! 그 곳으로  우리의 갈 길 뻗쳐 있어요. 오 아버지, 우리 그리로 가요 !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  가뉘메트  아침놀 가운데인 양  나를 에워싸 작열한다.  그대, 봄이여, 사랑하는 것이여!  수천의 사랑의 기쁨 더불어  그대의 영원한 열기  거룩한 마음  내 가슴으로 밀쳐든다.  끝없이 아름다운 것이여!  하야 내 그대를 끌어 안고자,  이 품안으로!  아, 애태우며  그대 가슴에 내 누우면,  그대의 꽃, 그대의 풀포기  내 가슴에 밀려든다.  사랑스런 아침 바람  내 가슴 속 불타는  갈증을 식혀주면,  바람결에 나이팅게일 사랑스럽게  안개낀 골짜기에서 나를 향해 우짖는다.  곧 가리라! 가리라!  그러나 어디로? 아, 어디로?  위를 향해, 위를 향해서이다.  구름은 아래로 떠오며, 구름은  그리운 사랑으로 내려 온다.  나에게로, 나에게로 오라!  너희들의 품에 안겨  위를 향해서  에워 싸고 에워 싸이어!  위를 향해  그대의 가슴에 안겨  자비로운 아버지여!  * 가뉘메트 ; 아폴로의 독수리를 따라 하늘로 올라간 미소년  ~~~~~~~~~~~~~~~~~~~~  마왕  이 늦은 밤 어둠 속, 바람 속에 말타고 가는 이 누군가?  그건 사랑하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다.  아들을 팔로 꼭 껴안고,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다.  "뭣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무서워 하느냐?"  "보세요, 아버지, 바로 옆에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왕관을 쓰고 옷자락을 끄는 마왕이 안 보이세요?"  "아이야, 그건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란다."  "오, 귀여운 아이야, 너는 나와 함께 가자!  거기서 아주 예쁜 장남감을 많이 갖고 나와 함께 놀자.  거기에는 예쁜 꽃이 많이 피어있고  우리 엄마한테는 황금 옷이 많단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지금 제 귀에 말하고 있어요."  "조용히 해라 내 아가야, 너의 상상이란다.  그건 슬픈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란다."  "귀여운 아이야, 자, 나와 함께 가자꾸나.  나의 딸들이 널 예쁘게 돌봐주게 하겠다.  나의 달들은 밤마다 즐거운 잔치를 열고  춤추고 노래하고 너를 얼러서 잠들게 해줄거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에 보이지 않으세요?  마왕의 딸들이 내 곁에 와 있어요."  "보이지, 아주 잘 보인단다.  오래된 회색 빛 버드나무가 그렇게 보이는 거다."  "귀여운 아이야 나는 네가 좋단다. 네 귀여운 모습이 좋단다.  네가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 끌고 가겠다."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나를 꼭꼭 묶어요!  마왕이 나를 잡아가요!"  이제 아버지는 무서움에 질려 황급하게 말을 몬다.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아이를 안고서.  가까스로 집마당에 도착했으나  팔 안의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죽어 있다.  ~~~~~~~~~~~~~~~~~~~~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슬픈 밤을 한 번이라도  침상에서 울며 지새운 적이 없는 자,  그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니,  하늘의 권능이시여.  당신을 통하여 삶의 길을 우리는 얻었고  불쌍한 죽을 자들 타락케 하시어  고통 속에 버리셨으되,  그럼에도 저희는 죄값을 치르게 됩니다.  ~~~~~~~~~~~~~~~~~~~~  툴레의 임금님  옛날 예적 툴레에 한 임금님이 사셨지,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정성을 바쳐  사랑하던 왕비가 세상을 떠나며  황금 술잔 하나를 남기고 가셨지.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어서  잔치 때마다 그 잔을 쓰시고  그걸로 술을 드실 때마다  계속 눈물을 흘렸지.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 지자  다스리던 고을들과 온갖 것들을  세자에게 물려주셨지만  금 잔만은 그러지 않았지.  임금님은 왕궁 잔치를 열었는데  바닷가 높은 성 안에  선조들 대물려 온 넓은 연회장에  기사와 귀족들 모두 불렀지.  늙으신 임금님은 거기에 서신 다음  그 잔으로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드시더니  그 성스러운 잔을 들어  바닷물로 힘껏 던지셨지.  임금님은 잔이 떨어지는 것과, 물이 들어가고  바다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신 다음  눈을 영원히 감으시고  다시는 마시지 않으셨네.  ~~~~~~~~~~~~~~~~~~~~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여, 그대의 하늘을  구름의 연기로 덮어라!  그리고 엉겅퀴의 목을 치는  어린이처럼  참나무나 산정들과 힘을 겨뤄라!  그러나 나의 대지는  손대지 말고 내버려둬야 한다  그대가 짓지 않은, 나의 작은 집과,  불길 때문에 그대가  나를 질투하는  나의 화덕도  나는 태양 아래에서  신들인 그대들보다 가엾은 자들을 알지 못한다.  그대들은 제물과  기도의 숨결로  간신히 먹고산다.  대단한 분들이여  그리고 만일 어린이들과 걸인들이  희망에 부푼 바보들이 아니었던들  그대들은 굶주렸을 것을.  나 역시 어린애여서,  들고 날 곳을 몰랐을 때,  나는 당황한 시선을  태양을 향해 돌렸다. 마치 저 하늘에,  나의 탄식을 들어 줄 귀가 있고,  압박받는 자를 불쌍히 여겨 줄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는 듯이.  그러나 누가 거인족의 오만에 대해서  나를 도왔으며,  누가 죽음과  노예상태에서 나를 구했던가?  거룩하게 불타는 나의 마음이  이 모든 것을 성취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젊고 선량한 마음은,  기만당하여, 구원에 감사하며  천상에서 잠든 자를 열애하지 않았던가?  그대를 존경하라고? 왜?  그대가 이전에 한 번이라도  짐을 진 자들의 고통을 덜어 준 적이 있는가?  그대는 이전에 한 번이라도  겁먹은 자들의 눈물을 달래 준 적이 있는가?  전능의 시간과  나의 주이며, 그대의 주인인  영원한 운명이  나를 사나이로 단련하지 않았던가?  꽃봉오리의 꿈이 모두  성숙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삶을 증오하고,  황야로 도주할 것이라고  그대는 착각하는가?  나는 여기에 앉아, 나의 모습에 따라,  인간들을 형성한다.  괴로워하고, 울며,  즐기고, 기뻐하는,  나와 같이  그대를 존경하지 않는  나를 닮은 족속을.  ~~~~~~~~~~~~~~~~~~~~  - 괴테 (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  독일의 시인·작가. 고전파의 대표자이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출생. 부친에게서 엄한 기풍을,  모친에게서 명랑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적 성격을 이어 받았고,  부유한 상류가정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아 뒷날의 천재적 대성(大成)을  이룰 바탕을 마련하였다.  괴테는 독일의 시인,비평가,언론인,화가,  무대연출가,정치가,교육가,과학자.  세계문학사의 거인중 한사람으로 널리 인정되는 독일 문호이며,  유럽인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르네상스 거장다운 다재다능함과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가 쓴 방대한 저술과 다양성은 놀랄 만한 것으로,  과학에 관한 저서만도 14권에 이른다.  서정적인 작품들에서는 다양한 주제와 문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허구문학에서는 정신분석학자들의 기초자료로 사용된 동화로부터  시적으로 정제된 단편 및 중편소설(novella)들.  의 "개방된" 상징형식에 이르기까지  폭넓음을 보여준다.  희곡에서도 산문체의 역사극.정치극.심리극으로부터  무운시(blank verse) 형식을 취한 근대문학의 걸작 중 하나인  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82년간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적인 경지의 예지를 터득하기도 했으나,  사랑이나 슬픔에 기꺼이 그의 모든 존재를 내어 맡기곤 했다.  내적 혼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상적인 생할 규율을 엄수하면서도  삶, 사랑, 사색의 신비가 투명할 정도로 정제되어 있는  마술적 서정시들을 창조하는 힘을 잃지 않았다.  .......  마침내 그에게는 원하는 대로 창조력을 샘솟게 하는  자신조차도 신비스럽게 여긴 재능이 생겨나 60년 가까이 노력해온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죽기 불과 몇 달전에 완성한 전편은  괴테의 반어적인 체념이 덧붙여져 후세 비평가들에게 전해졌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2행연구(couplet)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 우리를 끌어 올린다"는  인간존재의 양극성에 대한 괴테 자신의 감성을 요약한 말이다.  여성은 그에게 있어 남성의 영원한 인도자요 창조적 삶의 원천인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가장 숭고한 노력의 구심점이었다.  괴테에게는 상호 배타적인 삶의 양극을 오가는  자연스러운 능력과 변화 및 생성에 대한 천부적 자질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 삶이란 상반된 경향들을 자연스럽게 조화시미는 가운데  타고난 재능을 실현해가는 성숙의 과정이었다.
34    하이네 시모음 댓글:  조회:358  추천:0  2017-08-09
하이네 시모음     로렐라이  소녀  백합 꽃잎 속에  별은 아득한 하늘에  나무 아래 앉아서  그대가 보낸 편지  흐르는 내 눈물은  서시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잔잔한 여름철의  노래의 날개를 타고  연꽃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꿈의 신이 나를  온갖 꽃들이  밤은 잔잔하고  아아,나는 눈물이 싫어졌다  둘이는 서로 속을  다이아몬드랑 진주랑  너는 꽃에라도 대고 싶다  산위에 올라  뺨에 뺨을 비비며  그대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나는 꽃속을 거니네  내 눈을 이토록  너의 그 말 한마디에  ~~~~~~~~~~~~~~~~~~~~~~~~~~~~~~~~~~~~~~~~~~~  로렐라이  왜 그런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슬퍼지고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내 마음에 메아리친다.  싸느란 바람 불고 해거름 드리운  라인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지는 해의 저녁놀을 받고서  반짝이며 우뚝 솟은 저 산자락.  그 산 위에 이상스럽게도  아름다운 아가씨가 가만히 앉아  빛나는 황금빛으로  황금빛 머리카락을 빗고 있다.  황금빛으로 머리를 손질하며  부르고 있는 노래의 한 가락  이상스러운 그 멜로디여 마음속에 스며드는 그 노래의 힘.  배를 젓는 사공의 마음속에는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기만 하여  뒤돌아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강속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무참스럽게도 강 물결은 마침내  배를 삼키고 사공을 삼키고 말았다.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로렐라이의  노래로 말미암은 이상스러운 일이여  ~~~~~~~~~~~~~~~~~~~~~~~~~~~~~~~~~~~~~~~~~~~~~~~~~~~~~~~~~  소녀  장미를 백합을 비둘기를 태양을  일찌기 이 모든 것을  나는 마음 깊이 사랑했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귀엽고 맑고 순정스러운  한 소녀일 뿐,  사랑이 샘솟는 그 소녀만이  장미며, 백합이며, 비둘기며, 태양입니다.  ~~~~~~~~~~~~~~~~~~~~~~~~~~~~~~~~~~~~~~~~~~~~~~~~~~~~~~~~  백합 꽃잎 속에  백합 꽃잎 속에  이 마음 깊이 묻고 싶어라.  백합은 향기롭게  내 임의 노래를 부르리라.  노래는 파르르 떨며  언젠가 즐겁던 그 한때에  나에게 입맞춰 주던  그 입술의 키스처럼 생생하리라.  ~~~~~~~~~~~~~~~~~~~~~~~~~~~~~~~~~~~~~~~~~~~~~~~~~~~~~  별들은 아득한 하늘에  별들은 아득한 하늘에  몇 해를 두고 몸 하나 까닥않고  그리워 하는 저쪽 별에게  눈 웃음 보내고 있다.  별들이 말하는 얘긴  아름답고 너무나도 푸짐해  지금 세상 어떤 학자도  그 뜻은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나만은 그것을 배워  언제나 잊지 않고 익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 얼굴에  그것을 풀 수 있는 방식이 있다.  ~~~~~~~~~~~~~~~~~~~~~~~~~~~~~~~~~~~~~~~~~~~~~~~~~~~~~~~~~  나무아래 앉아서  하얀 나무 아래 앉아서  너는 새된 먼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  하늘에서 말없는 구름이  안개에 싸이는 것을 보고 있다.  지상의 숲과 들이 시들고  앙상해진 것을 바라보고 있다.  너의 주위에도, 네 속에도 겨울이 와서  너의 마음은 얼어 붙었다.  갑자기 새하얀 눈송이 같은 것이  네 머리 위에 떨어져 내린다.  너는 짜증스레 생각한다.  나무가 눈보라를 뿌리는 것이라고  ~~~~~~~~~~~~~~~~~~~~~~~~~~~~~~~~~~~~~~~~~~~~~~~~~~~~~~~  그대가 보낸 편지  그대가 보내 주신 편지에  나는 전혀 마음 슬퍼하지 않겠소.  그대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했지만,  그러나 그 편지는 너무나 길었습니다.  열두 장이 넘도록 오밀조밀하게 쓰신!  이 정성스러운 글씨를!  만약 그대가 이별을 원한다면  이토록 상세하게 쓰실 수는 없는 것을.  ~~~~~~~~~~~~~~~~~~~~~~~~~~~~~~~~~~~~~~~~~~~~~~~~  흐르는 내 눈물은  흐르는 내 눈물은  꽃이 되어 피어나고  내가 쉬는 한숨은  노래되어 울린다.  그대 나를 사랑하면  온갖 꽃들을 보내 드리리  그대의 집 창가에서  노래하게 하리라...  ~~~~~~~~~~~~~~~~~~~~~~~~~~~~~~~~~~~~~~~~~~~~~~~  서시  옛날에 한 기사가 있었다. 우울하여 말이 없으며,  두 볼에는 살이 빠지고 핏기가 없었다.  언제나 흐릿한 꿈을 꾸고 있는 듯,  비틀대며 바깥을 흔들흔들 나돌고 있었다.  멍청하고, 굼뜨고,  돌에 채어 비트적거리며 걸어갈 때면,  주위에서 꽃과 소녀들이 낄낄 웃었다.  집에서는 항상 깜깜한 구석에 움추리고 있었다.  그곳이면 인간세사를 피할 수가 있었다.  이윽고 무엇인가 동경하며 두 팔을 내밀었지만,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밤중에  기이한 노래가 울리기 시작하고---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넘실대는 바다 물결의 포말같은 옷을 입은  사모하는 여인이 들어선다.  선명하게 타오르는 장미의 아름다움,  금은으로 치장된 그녀의 면사포,  남실대는 금발에 날씬한 몸매,  두 눈에 넘치는 달콤한 미소---  두 사람은 다가가서 끌어안는다.  기사는 사랑으로 힘껏 안는다.  멍청하던 사람이 생기를 되찾고,  창백한 얼굴에 피가 돌며, 흐릿한 꿈에서 깨어난다.  수줍음은 점덤 사라져간다.  그러나 익살맞게 그를 놀려서,  그녀는 반짝이는 하얀 면사포를  살며시 그의 머리에 덮에 씌운다.  그러자 기사는 마법에 걸려,  어느덧 바다밑 수정궁에 와 있다.  휘황한 반짝임에 눈이 부셔  어찌할 바 모르는 기사를  바다의 요정이 상냥히 안아준다.  지금, 기사는 신랑, 요정은 신부.  수많은 쳐녀들이 찌터를 연주한다.  구슬같이 아름다운 노래 소리와  춤추는 옷깃에서 드러나는 발.  기사는 넋을 잃고  사랑스런 요정을 끌어안는다.--  그때. 불이 갑자기 꺼지고,  기사는 다시 외롭게 집에 앉아있다.  침침한 시인의 방에.  ~~~~~~~~~~~~~~~~~~~~~~~~~~~~~~~~~~~~~~~~~~~~~~~~~~~~~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꽃망울들이 피어날 때에  내 가슴속에도  사랑이 움텄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새들이 지저귈 때에  그리운 그대에게  불타는 사랑을 고백했지.  ~~~~~~~~~~~~~~~~~~~~~~~~~~~~~~~~~~~~~~~~~~~~~~~~~~~~~~~  잔잔한 여름철의  잔잔한 여름철의 저녁 어스름,  숲에, 푸른 들에 내려 깔린다.  파아란 하늘에 황금빛 달이  향기롭게 흔흔히 내리비친다.  귀뚜라미 찌륵찌륵 우는 시냇가,  물 속에 흐늘흐늘 그림자 하나.  나그네는 물소리에 귀 기울인다,  고요 속에 들려오는 숨쉬는 소리.  인적 없는 시냇가에 살며시 홀로  아름다운 요정이 멱을 감는다.  백설같은 두 팔과 가는 목덜미,  달빛 속에 은은히 떠오른다.  ~~~~~~~~~~~~~~~~~~~~~~~~~~~~~~~~~~~~~~~~~~~~~~~~~~~~~~~~~~~~~  노래의 날개를 타고  노래의 날개를 타고,  나의 사랑이여, 내 너와 함께 가련다.  갠지스 강의 들판 저편으로,  거기에 나는 가장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다.  고요히 흐르는 달빛 아래  빠알간 꽃이 가득 핀 정원이 있고,  연꽃들은 그곳에서  사랑스런 자매를 기다린다.  제비꽃들은 소리죽여 웃으며 애무하고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며,  장미꽃들은 몰래 귓속말로  향기로운 동화를 주고받는다.  온순하고 영리한 영양(羚羊)들은  깡충깡충 뛰어와 숨어서 기다리고,  머얼리서 성스러운 강의 물결이  파도치는 소리 들려온다.  그곳 야자나무 아래  우리 함께 내려앉아,  사랑과 안식을 마시며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  연꽃  연꽃은 찬란한  햇님이 두려워,  머리 숙이고 꿈꾸며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달님은 그녀의 연인,  달빛이 비쳐 그녀를 깨우면,  연꽃은 수줍게 얼굴을 들고  상냥하게 님을 위해 베일을 벗는다.  연꽃은 피어 작열하듯 빛나며  말없이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향내음 풍기며 사랑의 눈물 흘리고  사랑의 슬픔때문에 하르르 떤다.  ~~~~~~~~~~~~~~~~~~~~~~~~~~~~~~~~~~~~~~~~~~~~~~~~~~~~~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참으로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이  나의 가슴 속까지 스며든다.  언제나 하느님이 밝고 곱고 귀엽게  너를 지켜주시길  네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나는 빌고만 싶다.  ~~~~~~~~~~~~~~~~~~~~~~~~~~~~~~~~~~~~~~~~~~~~~~~~~~~~~~~~~  꿈의 신이 나를  꿈의 신이 나를 커다란 성으로 데리고 왔다.  후덥지근한 방향과 반짝이는 등화와  그리고 잡다한 인파가  미궁처럼 착잡한 방마다 범람하고 있었다.  창백해진 사람들이 손을 비비고 불안에 흐느끼며  나갈 문을 찾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쳐녀들과 기사들이 눈에 띈다.  나도 인파에 싸여 움직여갔다.  그러나 갑자기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어느덧 군중이 사라져 버린 것을 보고  나는 놀라며 혼자 걸어갔다.  그리고 기묘하게 구부러진 수많은 작은 방을 급히 지났다.  다리는 납처럼 무겁고, 마음은 불안과 슬픔에 찼다.  나갈 문을 못찾아 거의 절망하고 있을 때  가까스로 마지막 문에 이르렀다.  나가려고 하자 --- 거기에,  그 문 앞에 애인이 서 있었다.  입술에는 고통이, 이마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다.  돌아오라고 나에게 손을 흔든다.  조심하라 주의를 시키는지, 화를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두 눈에는 감미로운 빛이 반짝이고 있다.  그것이 번갯불처럼 내 마음과 이마를 꿰뚫는다.  그녀가 근엄하고 기괴하게, 그러나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온갖 꽃들이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5월에  수줍게 피어난  마음속의 이 사랑.  온갖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5월에  님을 잡고 하소연한  그리 웁던 이 사랑.  ~~~~~~~~~~~~~~~~~~~~~~~~~~~~~~~~~~~~~~~~~~~~~~~  밤은 잔잔하고  밤은 잔잔하고 거리는 고요하다.  바로 이 집에 내 애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이 고장을 떠났지만  집은 그대로 옛 자리에 있다.  집 앞에 옛날처럼 사람이 서 있다.  손을 비비며, 몸을 뒤틀며 우러러 보고 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보였을 때, 나는 섬뜩하였다.  달빛에 틀림없는 바로 내 얼굴.  오, 바로 나를 닮은 창백한 사나이여,  사랑으로 괴롭던 나를 왜 닮는가,  허구 많은 밤들을 이 자리에서  괴로움에 지새던 옛날의 나를.  ~~~~~~~~~~~~~~~~~~~~~~~~~~~~~~~~~~~~~~~~~~~~~~~~~~~~  아아,나는 눈물이 싫어졌다  아아, 나는 눈물이 싫어졌네.  달콤한 근심에 쌓인 사랑의 눈물.  그처럼 그립던 마음이  그리움 그대로 끝나지 않을까 두렵구나.  아아 사랑의 달콤한 근심과  그 아프고 슬픈 기쁨이  또다시 내 가슴을 괴롭히려고  미처 아물지도 않은 가슴속에 밀려드누나.  ~~~~~~~~~~~~~~~~~~~~~~~~~~~~~~~~~~~~~~~~~~~~~~~~~~~~  둘이는 서로 속을  둘이는 서로 속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데 없이 사이가 좋았다.  우리 둘이는 곧잘 를 했지만  할퀴고 때리고 싸우지는 않았다.  둘이는 어울려 소리치고, 시시거리고  아주 다정히 입맞추곤 하였다.  그런데 필경에는 어린아이 마음에  숲과 골짜기에서 을 하였다.  그러나 너무도 깊이 숨어버려서  다시는 서로를 찾아내지 못했다.  ~~~~~~~~~~~~~~~~~~~~~~~~~~~~~~~~~~~~~~~~~~~~~~~~~~~~~~~~~~~~  다이아몬드랑 진주랑  다이아몬드랑 귀한 진주랑  그밖에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지고,  거기에다 어여쁜 눈을 하고서 --  그런데도 너는 또 무엇을 바라는가.  그지없이 어여쁜 너의 눈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쉴 사이 없이  노래를 차례 차례 나는 지었다 ___  그런데도 너는 또 무엇을 바라는가.  그지없이 어여쁜 너의 눈으로  나를 몹시도 괴롭히면서  이렇게도 절망 속에 몰아넣고서__  그런데도 너는 또 무엇을 바라는가.  ~~~~~~~~~~~~~~~~~~~~~~~~~~~~~~~~~~~~~~~~~~~~~~~~~~~~~~~~~~  너는 꽃에라도 대고 싶다  너는 꽃에라도 대고 싶다  정말 귀엽고 예쁘고 티없는......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슬픈 심경을 견디기가 어렵다......  나는 문득 두 손을 내밀어  네 머리 위에 얹고  언제까지나 귀엽고 예쁘고 티없이  있게 하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싶어진다.  ~~~~~~~~~~~~~~~~~~~~~~~~~~~~~~~~~~~~~~~~~~~~~~~~~~~~~  산위에 올라  산 위에 올라 보니  웬지 자꾸 슬퍼지누나.  만일 내가 산새라면  어느만치 한숨을 내쉴 것이메냐?  만일 내가 제비라면  그대 있는 곳에 날아갈 것을.  그런 후 그대 집 창가에  조그만 둥지를 만들어 볼 것을.  만일 내가 원앙새라면  그대 있는 곳에 날아갈 것을.  그런 후 푸른 저 보리수에서  밤마다 들리어 줄 노래 부름을.  만일 내가 비둘기라면  이내 그대 가슴에 날아갈 것을.  비둘기 좋아하는 그대일지니  어리석은 번뇌쯤 잊으시리라.  ~~~~~~~~~~~~~~~~~~~~~~~~~~~~~~~~~~~~~~~~~~~~~~~~~~~~~~~~~~~~~~~~~  뺨에 뺨을 비비며  뺨에 뺨을 비비며  울어 봅시다.  가슴과 가슴을 맞대며  불태웁시다.  눈물이 불길에  떨어질 때엔  서로 꼭 껴안고서  죽어 버립시다.  ~~~~~~~~~~~~~~~~~~~~~~~~~~~~~~~~~~~~~~~~~~~~~~~~~~~~~~~~~~  그대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그대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근심도 괴로움도 이내 사라지네  그대와 더불어 입맞출 때면  내 마음 금방 생기가 도네  그대가 내 품에 안길 때면  천국의 즐거움 용솟음치고  그대를 사랑한다 호소할 때면  눈물은 하없없이 솟아나네  ~~~~~~~~~~~~~~~~~~~~~~~~~~~~~~~~~~~~~~~~~~~~~~~~~~~~~~~~~~~~~  나는 꽃속을 거니네  나는 꽃 속을 거닐고 있네  마음도 꽃도 활짝 열리어  마치 꿈인 양 거닐고 있네  한걸음 한걸음 휘청거리며.  아아, 내 사랑아, 날 놓지 말지니  안 그러면 사랑에 취한 나머지  그대 발 아래 쓰러질 듯하네  사람들이 보고 있는 이 정원에서  ~~~~~~~~~~~~~~~~~~~~~~~~~~~~~~~~~~~~~~~~~~~~~~~~~~~~~~~~~  내 눈을 이토록  내 눈을 이토록 흐려만 놓고  적적한 눈물은 어찌해야 하는가?  적적한 이 눈물은 옛날부터  내 눈 속에 고여 있던 것.  투명하게 빛나는 눈물도 많았지만,  모두 다 흘러가 버렸고  내 온갖 슬픔과 기쁨과 함께  밤과 바람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살포시 웃음 지며 내 가슴 속에  기쁨과 슬픔을 담뿍 안기어준  영롱하고 귀여운 작은 별도  안개가 사라지듯 사라져갔다.  덧 없는 입김의 허무함처럼  내 사랑마저 사라져가고  옛부터 고여 있는 이 적적한 눈물이여,  너도 이제는 사라지기를  ~~~~~~~~~~~~~~~~~~~~~~~~~~~~~~~~~~~~~~~~~~~~~~~~~~~~~~~~~~~~~~~  너의 그 말 한마디에  너의 해맑은 눈을 들여다보면  나의 온갖 고뇌가 사라져 버린다  너의 고운 입술에 입 맞추면  나의 정신이 말끔히 되살아난다..  따스한 너의 가슴에 몸을 기대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  "당신을 사랑해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한없이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33    헤세 시모음 댓글:  조회:357  추천:0  2017-08-09
(독일)헤르만 헤세의 시 모음     - 헤르만 헷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깊은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가 다 혼자로구나!  나의 삶이 밝았던 때에는  세상엔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 자욱한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어라.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도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인 것을!  -헤르만헤세 하느님이시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자아가 송두리째 부서지거든  그 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헤세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멀리 객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이해해 준 분은 어느 때나 당신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드리려는 나의 최초의 선물을 수줍은 어린아이 손에 쥔, 지금 당산은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의 슬픔을 잊는 듯합니다. 말할 수 없이 너그러운 당신이, 천가닥의 실로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 -헤르만헤세 어찌할 바를 몰라 슬픔에 젖어 이곳에 서 있다. 고향을 멀리 떠나  나는 헤매이며 왔다. 내가 알고 있던 꼿이여 푸른 높은 산이여 인간이여, 들판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 다만, 너의 입에서만 엿날의 소리를 듣고 다정한 동화의 말처럼 옛날의 소식을 듣는다. 멀지 않아 착한 원정인 죽음이 부모가 기다리는 저녁 노을 속으로 그의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 -헤르만헤세 언제나 같은 꿈이다. 빨간 꽃이 피어 있는 마로니에 여름 꽃이 만발한 뜰 그앞에 외로이 서 있는 옛집 저 고요한 뜰에서 어머니가 어린 나를 잠재워 주셨다. 아마도, 이제는 오랜 옛날에 집도 뜰도 나무도 없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 위로 초원의 길이 지나고 쟁기가 가래가 지나 갈 것이다. 고향의 뜰과 집과 나무를 이제는 꿈에서만 남을 것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떠올리는 무수한 낯모르는 얼굴들.... 서서희 하나, 둘 불빛이 흐려간다. 그 여린 빛이 회색이 되고 --------------------------------------------------------   헤르만 헤세 지난날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행복을 약속한 하나의 음향이 나에게로 다가 온다. 만일 이것이 없으면 살기가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이 마력의 음향이 울리지 않는다면 나는 빛없이 서서 주위에 불안과 암흑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슬픔과 죄에 다치지 않는 소리가 행복에 찬 달콤한 음향이 울린다. 슬픔과 죄악에도 파멸되지 않는 그 음향이. 너 자랑스런 목소리여 내 집의 불빛이여 다시는 꺼지지 말고 그 푸른 눈을 감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부드러운 빛을 모두 잃고 크고 작은 별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만 홀로 남게 될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청춘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으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타고 있는가를 !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그 길을 나는 이제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잘못도 실대도 많앗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    헤르만 헤세 양떼를 몰고 목동이 조용한 오솔길을 가고 있다. 집들은 잠이 오는 듯 벌써 깜박이고 있다. 나는 이 마을에서, 지금 단 하나의 이방인 슬픔으로 하여 나의 마음은 그리움의 잔을 남김없이 비운다. 길을 따라 어디로 가든 벽난로에는 따뜻한 불이 타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고향과 조국을 느껴보지 못했다. ------------------------------------------   헤르만 헤세 피곤한 여름이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 호수에 비친 그의 마지막 모습을들여다본다. 일상에 지친 나는 먼지에 싸여 가로수 그늘을 방황하고 있다. 포플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그러면 내 뒤로 황혼이 금빛으로 타오르고 앞에는 밤의 불안이 죽음과 함께 온다. 먼지에 싸인 채 지친 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러나 젊음은 머뭇거리듯 뒤로 밀려나며 고운 모습을 감춘 채 나와 함께 앞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검은 수목들의 그림자가 꿈을 식히는 어둠 속을 그는 즐겨 걸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빛에서 빛으로 타오르는 욕망에 갇혀 괴로움을 다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 은빛으로 맑은 별이 가득 찬 하늘이 있음을, 그는 몰랐다. -----------------------------------------------------------   헤르만 헤세 전나무 아래서 쉬고 있노라면 지난날이 생각난다. 익은 숲의 냄새가 최초로 소년의 슬픔을 잉태했던 그날이. 바로 이곳이었다. 내가 이끼위에 누워 수줍은 소년의 열정이 가냘픈 금발 소녀의 모습을 꿈꾸었다. 환한 속에 처음 핀 장미를 꺾어 넣고. 세월은 흐르고 꿈은 늙어지고 멀어져서 다른 꿈이 왔다. 그것도 작별한 지 이미 오랜 일이다. 최초의 꿈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나는 늘 괴로워했다. 그래, 누구였을까. 잊혀지지 않는 것은 ? 다만, 그녀가 상냥하고 가냘픈 금발이라는 것 뿐이다. -------------------------------------------------------------   헤르만 헤세 슬픈 듯 너는 얼굴을 잎새에 묻는다. 때로는 죽음에 몸을 맡기고 유령과 같은 빛을 숨쉬며 창백한 꿈을 꽃피운다. 그러나 너의 맑은 향기는 아직도 밤이 지나도록 방에서 최후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한 가닥 은은한 선율처럼 마음을 적신다. 너의 어린 영환은 불안하게 이름 없는 것에 손을 편다. 그리고 내 누이인 장미여, 너의 영혼은 미소를 머금고 내 가슴에 안겨 임종의 숨을 거둔다. ----------------------------------------------------------- (크눌프의 추억)   헤르만 헤세 슬퍼하지 말아라, 곧 밤이 오리라. 그러면 우리들은 파리해진 산 위에서 몰래 웃음짓는 것 같은 시원스러운 달을 보리라. 그러면 손을 잡고 쉬자. 슬퍼하지 말아라, 곧 때가 오리라. 그러면 우리는 쉬리라, 우리들의 십자가가 밝은 길가에 나란히 설 것이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젊은 날에는 하루같이 쾌락을 쫓아 다녔다. 그 후에는 우수에 싸여 괴로움과 쓰라림에 잠겨 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기쁨과 쓰라림이 형제처럼 스며 있다. 기쁜 듯 슬픔 듯 둘은 하나로 되어 있다. 신이 나를 지옥으로 탱양의 하늘로 인도한다면 나에게는 둘 다 같은 곳이다. 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는 한. ----------------------------------------------   헤르만 헤세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온다. 보리수가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달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 방을 엿본다. 나를 버린 그리운 사람에게  긴 편지를 썼다. 달빛이 종이 위로 흐른다. 글위를 흐르는 고요한 달빛에  나는 슬픔에 젖어 잠도, 달도, 밤 기도도 모두 잊는다. ----------------------------------------------------   헤르만 헤세 가을의 찬 바람이 시든 갈대밭을 스잔히 불어간다. 갈대잎은 밤 사이에 회색이 되었다. 까마귀는 버드나무를 떠나 육지로 날아간다. 호수에서는 한 노인이 외로이 서서 쉬고 있다. 머리에 바람과 밤과 다가오는눈을 느끼고 그늘진 호수에서 밝은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 구름과 호수 사이에 한 줄기 물가의 육지가 햇빛 속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꿈과 시처럼 행복에 찬 금빛 호수가. 노인은 빛나는 이 풍경을 똑똑히 눈 속에 간직하고 고향을, 지난 행복한 세월을 생각한다. 그리고 황금빛 태양이 흐려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자 머리를 돌려 버드나무에서 떠나 천천히 육지로 걸어간다. ---------------------------------------------------   헤르만 헤세 나는 항상 방랑의 길에 있었다. 순례자였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쁨도 슬픔도 흘러갔다. 나는 방랑의 의미도, 목적도 알지 못한다. 몇 천 번을 쓰러지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아,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성스럽고 멀리 높은 하늘에 걸려 있었던 사랑의 별이었다. 그러나 그 별을 안 지금은 목적을 알지 못하던 동안에는 마음 편히 걸어 갔고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늦었다. 별은 돌아서 버리고 아침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화려한 세상과 작별을 해야 한다. 나는 목표를 잃어버렸으나 그래도 가야 할 나그네의 길이 있었다 ----------------------------------------------------------   헤르만 헤세 나는 촛불을 꺼버렸다. 열린 창문으로 밤이 밀려와 살며시 나를 안고, 나를 벗으로 형제로 삼는다. 우리들은 같은 향수에 젖어 있다. 불안한 꿈을 밖으로 내쫓고 소곤소곤 아버지 집에서 살던 지난 날을 이야기한다. -----------------------------------------------------------   헤르만 헤세 숲이 금빛으로 타고 있다. 상냥한 그이와, 여러 번 나란히 걷던 이 길을 나는 혼자서 걸어 간다. 이런 화창한 날에 오랜 동안 품고 있던 행복과 고로움이, 향기 속으로 먼 풍경으로 녹아 들어간다. 풀을 태우는 연기 속에서 농부의 아이들이 껑충거린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노래를 시작한다. 
32    폴 발레리 시 모음 댓글:  조회:705  추천:0  2017-08-09
폴 발레리 시 모음 발레리 1871-1945     남 프랑스 지중해안의 항구 sete에서 이탈리아인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발레리는 프랑스정신의 '지중해적'.'아폴로적' 특질을 남김없이 발휘한 시인,평론가이다.   말라르메의 문하생으로 문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전위적인 문학잡지 등에 시를 발표했으나   그후 20년간의 긴 침묵 끝에 '젊은 파르크'라는 장시를 발표하면서 부터 당대 최고의시인으로 군림,  아카데미회원, college de france교수등의 영광을 얻게된다.     주요작품: 다양성(Variete)1924,          다양성Ⅱ(VarieteⅡ)1929,          다양성Ⅲ (VarieteⅢ) 등     잃어버린 포도주   어느 날인가 나는 대양에 (허나 어느 하늘 아래선지 모르겠다)   던졌다, 허무에 진상하듯, 귀중한 포도주 몇 방울을.     누가 너의 유실을 원했는가, 오 달콤한 술이여? 내 필시 점쟁이의 말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술을 따를 때 피를 생각하는 내 마음의 시름을 쫓았던가?     장미빛 연무가 피어오른 뒤,   언제나 변함없는 그 투명성이 그토록 청정한 바다에 다시 다다른다 ......     그 포도주는 사라지고, 물결은 취해 일렁이도다! ......   나는 보았노라 씁쓸한 허공 속에서 끝없이 오묘한 형상들이 뛰어오르는 것을 ......       석류   알맹이들의 과잉에 못 이겨 방긋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숱한 발견으로 파열한 지상의 이마를 보는 듯하다!     너희들이 감내해 온 나날의 태양이, 오 반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으로 시달림받는 너희들로 하여금 홍옥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즙든 붉은 보석들로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 파열은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를 꿈에 보게 한다.     애정의 숲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었다. 나란히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았다. 말도 없이......이름 모를 꽃 사이에서;     우리는 약혼자처럼 걸었다. 단둘이, 목장의 푸른 밤 속을;   그리고 나눠 먹었다 저 선경의 열매, 광인들이 좋아하는 달을.     그리고, 우리는 죽었다 이끼 위에서 단둘이 아주 머얼리, 소곤거리는 친밀한   그리고 저 하늘 높이, 무한한 빛 속에서 저 숲의 부드러운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오 나의 사랑스런 말없는 반려여!       시      시의 젖가슴에 안겨 젖을 빨던 입이   깜박 놀람에 엄습되어 입술을 뗀다.     ---- 따스한 정 흘러 나오던 오 내 어머니 지성이여   젖이 말라도 가만히 있는 이 무슨 소홀함인가!     그대 품안에서 하얀 밧줄로 짓감기면,   재보(財寶)로 가득 찬 그대 가슴의 바다 물결은 곧장 나를 어르곤 했노라.     그대의 침침한 하늘에 잠겨, 그대의 아름다움 위에 기진하면,   어두움을 삼키면서도, 빛이 나를 침범함을 느꼈노라!     자기 본질에 숨어 지고한 안정의 인식에   그지없이 순종하는 신(神)인 나,     나는 순수한 밤과 맞닿아, 이젠 죽을 도리도 없어라,   면면히 흐르는 강물이 내 체내를 감도는 것만 같아서 ......     말하라, 그 어떤 부질없는 공포 때문에, 그 어떤 원한의 그림자 때문에,   이 현묘한 영감의 수맥이 내 입술에서 끊어졌는가?     오 엄밀함이여, 그대는 나에게 내가 내 영혼 거스르는 징조여라!   백조처럼 비상하는 침묵은 우리들의 하늘엔 이미 군림하지 않나니!     불사의 어머니여, 당신의 눈시울은 나에게 나의 보물들을 인정하지 않고,   내 몸을 안았던 부드러운 살은 이제 돌이 되고야 말았구나!   그대는 하늘의 젖마저 내게서 앗아가느니, 이 무슨 부당한 보복인가?   내 입술 없으면 그대는 무엇이며 사랑이 없으면 나는 또 무엇인가?   허나 샘물은 흐름을 멈추고 박정함 없이 그에게 대답한다.   ----당신이 하도 세게 물어뜯어 내 심장이 멈추고 말았노라고!     뚜렷한 불꽃이                 뚜렷한 불꽃이 내 안에 깃들어, 나는 차갑게 살펴본다 온통 불 밝혀진 맹렬한 생명을......   빛과 뒤섞인 생명의 우아한 행위는 오직 잠자면서만 사랑할 수 있을 뿐.     나의 나날은 밤에 와서 나에게 눈길을 돌려주며, 불행한 잠의 첫 시간이 지난 뒤,   불행마저 암흑 속에 흩어져 있을 때, 다시 와서 나를 살리고 나에게 눈을 준다.     나날의 기쁨이 터질지라도, 나를 깨우는 메아리는 내 육체의 기슭에 죽은 이만을 되던졌을 따름이니,   나의 야릇한 웃음은 내 귀에 매어단다     빈 소라고동에 바다의 중얼거림이 매달리듯, 의혹을---- 지극히 불가사의의 물가에서,   내가 있는지, 있었는지, 잠자는지 아니면 깨어 있는지?       실 잣는 여인 / 폴 발레리                            나리꽃은 --- 길쌈도 않는다.     가락도 아름다운 뜨락에 넘실거리는 파아란 유리창가에 앉아 실 잣는 여인; 코고는 낡은 물레 소리에 취해 버려.   푸른 하늘을 마셨기에, 갸날픈 손가락 피하는 어리광쟁이 머리카락 잣기에 지쳐, 여인은 꿈꾸고, 작은 머리가 숙여지고,   작은 관목과 맑은 공기가 분수를 만들고, 햇빛에 매달려 흐믓한 분수는 꽃잎을 뿌려 일없는 여인의 뜨락을 적셔 준다.   바람둥이 바람이 와서 쉬는 나무줄기 하나, 눈부신 제 장미 송이를 늙은 물레에게 바치며, 총총한 별 모양 맵시있는 헛인사를 보낸다.   그런데도 잠꾸러기 여인은 외로이 양털을 잣고; 그 여린 그림자는 이상하게도 자아져 조으는 길다란 손가락들 따라 짜여진다.   꿈은 천사처럼 게으르면서도 끊임없이 순하고 숫된 가락에 감겨들고, 머리카락은 쓰다듬는 손 따라 일렁거리고---   창공은 그 많은 꽃들 뒤로 숨으니, 잎가지와 빛에 둘러싸인 실 잣는 여인아; 초록빛 하늘이 온통 죽어간다, 마지막 나무가 타오른다.   한 성녀가 미소짓는 큰 장미 송이인 네 언니가, 그 순결한 숨결 바람으로 네 흐릿한 이마에 향을 뿌리니, 너는 나른해지는 기분---너는 사라진다   네가 양털을 잣던 그 파아란 유리창가에서.     / 박은수 역   헬레네 / 폴 발레리   푸른 하늘아! 나예요--- 나는 죽음의 동굴을 빠져나와 웅성거리는 층계들에 부서지는 물결 소리 들으며, 갤리선들이 새벽빛 속에 금빛 노들을 저어대며 어둠에서 되살아나는 걸 다시 보고 있어요.   소금처럼 하얀 수염으로 내 순결한 손가락들 달래던 군주들을 내 외로운 두 손이 부르고 있어요; 나는 그때 울고 있었죠. 그들은 자기네의 어두운 승리들과 배 고물에 사라지는 물굽이들을 노래하고 있었고.   깊숙한 소라고동 소리며, 날개치는 노들과 장단 맞추는 전투 나팔 소리가 지금도 들려와요. 노 젓는 사람들의 낭랑한 노래가 법석을 억누르고,   물보라 덤벼드는 용맹의 뱃머리에는 우쭐한 신들이 그 옛날 그대로의 미소를 띄고, 그 조각된 너그러운 팔들을 나에게 내밀고요.   은밀한 노래 / 폴 발레리     눈부신 추락, 이토록 기분 좋은 마지막, 싸움들은 잊어버리기, 춤을 춘 후, 매끈한 몸이 이끼 바로 위에 눕는 이 즐거움!   이 여름 불티들과도 같은 섬광 한 가닥이 땀 흘리는 한 이마 위에서 승리를 축하한 적은 일찍이 없다!   그러나 황혼이 다가오자, 수 많은 일들을 이루어 낸 이 위대한 몸도, 춤을 추며 헤라클레스를 꺽던 이 몸도, 이젠 하나의 장미꽃 더미일 뿐!   서서히 몸 사그러든 승리자여, 별들의 발걸음들 아래 잠들어라. 왜냐하면 영웅과 맞수인 히드라별자리도 몸을 끝없이 펼쳐 놓았으므로---   영혼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 들어갈 때는, 오 황소별자리 개별자리 곰별자리 따위의 엄청난 전리품들을, 영혼은 형체 없는 공간으로 밀어넣는다!   하늘나라에 가 있는 위대한 업적들을, 괴물들과 신들을 내세워 온 누리에 널리 선포하는 더할나위 없는 마지막, 눈부심이여!   시간 / 폴 발레리     시간이 나한테 와서 미소짓다가 사이렌이 되고: 내가 새로운 햇빛에 모두가 환히 밝아지니: 햇살아, 어둡지만 더할나위 없는 영혼의 앞뜰에서    너는 오래 춤출 생각인가?   이젠 시간, 목마름, 샘물 그리고 사이렌.   내 욕망 채워 주는 시간아, 너를 위해 과거가 타오르니: 마침내 외로운 자의 광채, 오, 나를 가로챈 보물들, 나는 지금대로의 내가 좋으니; 내 고독은 바로 여왕! 내켜서 노예가 된, 어없이 은밀한 내 악마들이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그빛 햇살과 공기 속에서 명석한 의견들 지닌 순수한 지혜 하나를 완성시키니;    나의 여기 있음은 아주 맑고 잔잔하다.   이젠 시간, 목마름, 샘물 그리고 사이렌,   햇살아, 저견의 앞뜰에서, 내 더할나위없는 밤의 검은 눈 앞에서, 오래 춤출 생각인가?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                  내 넋이여, 영생을 바라지 말고,              힘 자라는 분야를 바닥내라.               -핀다로스, 중에서     비둘기들 거니는 저 조용한 지붕이, 소나무들 사이, 무덤들 사이에 꿈틀거리고, 올 곧은 정오가 거기서 불꽃들로 바다를 구성한다, 늘 되풀이되는 바다를! 오, 신들의 고요에 오래 머문 시선은 한 가닥 명상 뒤의 고마운 보답!   날카로은 번갯불들의 순수한 작업이 잔 물거품 속 무수한 금강석을 간직하고 있어 아늑한 평화가 잉태되는 것만 같지 않은가! 하나의 해가 심연 위에 쉴 때는, 영원한  두 가지 순수 작품인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곧 깨달음이다.   견고한 보물, 소탈한 미네르바* 신전, 고요의 더미, 눈에 보일만큼 풍성하게 저장된 것들, 우뚝 솟은 물, 불꽃 너울을 쓴 채 무수한 잠을 내면에 간직한 눈이여, 오, 나의 침묵!---영혼 속의 신전, 그러나 기왓장도 무수한 금빛 등마루같은 지붕아!   단 한번의 한숨에도 요약되는, 시간의 신전, 이 순수점에 나는 올라가 익숙해진다. 바다 두루 살펴보는 내 눈길에만 둘러싸여서; 그리고 바다의 잔잔한 반짝거림이 온갖 경멸을 바다 깊이 씨뿌린다 신들에게 바치는 내 최고의 제물인 양.   과일이 즐거움이 되어 녹아들듯이, 과일이 제 모습 죽어가는 입 안에서 자신의 사라짐을 환희로 바꾸듯이, 나도 여기서 미래의 내 연기를 들이마시고, 하늘은 웅성거리는 해변들의 변화를 타 없어진 영혼에게 노래해 준다.   아름다운 하늘, 진실한 하늘아, 나를 바라보라, 나는 그 많은 자만 끝에, 이상야릇하면서도 능력 넘치는 그 많은 무위 끝에, 이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고, 내 그림자는 죽은이 집들 위를 지나가며 제 허약한 발걸음에 나를 길들인다.   사정없는 화살들 지닌 빛의 놀라운 올곧음, 하지점의 햇불을 쬐는 넋이여, 나는 버티고 서서 너를 쳐다본다! 나는 너를 순수한 그대로 네 으뜸 자리로 돌려주니: 네 모습을 보라! ---그러나 빛을 돌려주면 그림자의 어두운 반쪽도 따르게 마련.   오, 나만을 위해, 나 혼자서, 나 자신 속에서, 한 마음 곁에서, 시의 샘물들에서, 나는 기다린다, 내 속에 있는 위대함의 메아리를, 늘 미래인 빈속을 넋 속에 울리는, 쓰고 어둡고 소리 잘 내는 저수탱크를!   잎가지들에 갇힌 듯한 가짜 포로, 이 앙상한 쇠울짱** 갉아먹는 물굽이 감겨진 내 눈 위의 눈부신 비밀들아, 어떤 육신이 제 게으른 종말로 나를 끌고가고, 어떤 이마가 이 뼈투성이 땅으로 육신을 끌어당기는가를? 불똥 하나가 거기서 내 부재자들을 생각한다.   막혀, 거룩하고, 물질 없는 불로 가득 차, 빛에게 바쳐진 땅 조각, 이곳이 나는 좋다, 횃불들이 지켜주고, 금빛과 돌과 침침한 나무들로 구성된 곳, 숱한 대리석이 숱한 망령들 위에 떨고 있는 이곳이; 충직한 바다가 여기서 잔다, 내 무덤들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암캐야, 우상 숭배자를 피하라! 목동의 미소를 짓는 내가 외로이, 신비의 양들, 고요한 내 무덤들의 하얀 양떼를, 오랫동안 풀 뜯기고 있을 때는, 멀리하라, 조심성 많은 비둘기들을, 부질없는 꿈들과 호기심 많은 천사들을!   여기에만 오면, 미래는 바로 게으름. 깔끔한 매미는 메마름을 긁어대고; 모두가 타고 허물어져, 공기 속에 스며든다 나도 모를 무슨 가혹한 정기가 되어--- 부제에 도취하면 삶은 한없이 드넓고, 쓴맛이 달고, 정신은 환히 맑다.   숨겨진 죽은이들은 바로 이 땅속에 있고 땅은 그들을 다시 태워 그들의 신비를 말린다. 저 높은 곳에 정오가, 꼼짝도 않는 정오가 저 속에서 저를 생각하며 저 자신의 마음에 드니--- 완전한 머리, 완벽한 왕관아, 나는 네 속에서 은밀한 변화일 따름.   네가 주는 겁을 당해낼 자는 나뿐! 나의 뉘우침들, 나의 의혹들, 나의 얽매임들은 네 거창한 금강석의 흠집이고--- 그런데도 나무 뿌리들 달린 흐리멍텅한 주민은, 대리석들로 온통 무거워진 자기네 어둠 속에서 이미 서서히 네 편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두꺼운 부재 속으로 녹아들었고, 붉은 찰흙이 하얀 종족을 마셔 버렸으며, 살아가는 재간은 꽃들 속으로 옮아 갔으니! 죽은이들의 그 단골 말투들이며, 저마다의 솜씨, 남다른 마음씨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눈물 맺히던 그곳에는 애벌레가 기어다닌다.   간지럼먹은 처녀들의 킬킬거림, 그 눈들이며 이빨들, 젖은 눈까풀들, 불꽃과 장난치는 귀여운 젓가슴, 순종하는 입술들에 반짝이는 피, 막바지 선물과 그걸 감싸는 손가락들, 모두가 땅밑으로 가서 윤회에 다시 끼여드니!   큰 넋이여, 그래도 너는 바라겠는가 물결과 금빛이 여기서 육신의 눈앞에 빚어내는 이 거짓말 빛깔들도 이미 갖지 않을 그런 꿈을? 네가 안개가 될 때도 너는 노래할 생각인가? 자아! 모두가 도망친다! 나의 현존은 잔구멍투성이. 영생을 바라는 거룩한 조바심 또한 죽어가니!   금칠을 해도 검은 수척한 영생이여. 죽음을 어머니 태로 삼는, 끔찍스럽게도 월계관 받쳐쓴 위안자여, 아름다운 거짓말과 경건한 속임수여! 이 텅빈 머리통과 이 영원한 웃음을, 누가 몰라보고, 또 누가 마다하지 않으랴!   그 숱한 삽질들의 흙 무게 아래서, 흙이 되어 우리의 발걸음도 분간 못하는, 깊은 곳의 조상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머리들아, 정말로 좀먹는자, 막무가내인 벌레는 묘석 아래서 잠자는 당신들 위한 것은 아니어서, 생명을 먹고살고, 나를 떠나지 않으니!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인가, 아니면 미움인가? 그 숨은 이빨은 하도 바싹 내게 달라붙어 있어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다 알맞을 수 있을 판! 상관없어! 벌레는 보고, 바라고, 꿈꾸고, 만지고! 내 육신이 제 마음에 드니, 내 잠자리 위에서까지도, 나는 이 생물에 딸려서 살고 있는 걸!   제논! 잔인한 제논! 엘리아의 제논이여! *** 날면서도 날아가지 않는 그 바르르 떠는 날개돋친 화살로 너는 나를 꿰뚫었어! 그 소리는 나를 낳고 화살은 나를 죽이니! 아! 태양은--- 성큼성큼 달려도 꼼짝않는 이킬레스인 이 넋에게는 이 무슨 거북한 그림자인가!   아니야, 천만에! ---일어서라! 잇닿은 시대 속에! 내 육신아, 생각에 잠긴 이 형태를 깨뜨려라! 내 가슴아, 태어나는 바람을 들이마셔라! 바다가 내뿜는 시원한 기운 한 가닥이, 내 넋을 내게 돌려주니--- 오, 짭짤한 힘이여! 물결로 달려가 거기서 힘차게 솟구쳐오르자!   그럼! 광란을 거느린 큰 바다, 얼룩덜룩한 표범 털가죽과 태양의 무수한 영상들로 구멍난 망토여, 침묵과도 비슷한 야단법석 속에서 번쩍이는 네 꼬리를 자꾸 물어뜯으며, 네 시퍼런 살에 도취해, 날뛰는 히드라여***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겠다! 가없는 공기가 내 책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부서진 물결이 바위들로부터 마구 용솟음치니! 날아올라라, 온통 눈이 부셔 어지러워진 책장들아! 부수어라, 물결들아! 흥에 겨운 물로 부수어라 삼각돛들이 모이 쪼던 저 조용한 지붕을!       *Minerva 로마 신화에 나오는 공에, 직업, 예술의 여신, 나중에는 전쟁의 여신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아네나 여신과동일시된다. **쇠울짱  쇠로 만든 말뚝 을 죽 늘어서 세운 울타리  ***Zenon of Elea  BC 495경~ 430경.  그리스의 철학자·수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변증법의 발명자라고 부른 인물로서 특히 역설로 유명하다. 그의 역설은 논리학과 수학의 엄밀성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연속과 무한이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발전하고서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었다.     *** 히드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물속에 사는 뱀. 아홉 개의 커다란 머리를 가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불사의 마력을 지녔다고 하며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 새로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에 의해 퇴치되었다.
31    프랑스 명시선 ( 3 ) 댓글:  조회:351  추천:0  2017-08-09
프랑스 명시선 ( 3 )   풍신(風神) / 폴 발레리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바람에 실려 살기도 죽기도 하는 나는 뜬 향기(香氣)라네!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우연인가 영감(靈感)인가? 왔다 할 땐 일은 이미 끝났다!   누가 읽고 누가 알 것인가? 명석한 정신에게도 얼마나 많은 오해의 씨앗이 담겨 있는가!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속옷 갈아입는 여인의 언뜻 보이는 젖가슴의 순간!     *이 5음절의 경쾌한 시는 시집 안에 들어 있다. "풍신(실프Sylphe)란 겔트나 게르만 족의 신화에 나오는 공기나 바람의 신이다. 발레리는 이 바람의 신에 기탁하여 시인의 마음에 떠오르는 시상(詩想)의 도래를 암시하 려고 한 것 같다. 이 때 "풍신"은 마녀의 지팡이 같아 한 번 때리면 끝난다. 그러나 읽혀지지도 이해되지도 않고 많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제 3절은 천재나 특이한 생각을 가진 시인의 참뜻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고립감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더 추측해 보면 여기서 말하는 "풍신"은 발레리가 가장 경계하고 멀리하려는 소위 낭만파 시인들의 영감(靈感)이나 감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영감이란 없는 것은 아니 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이며, 때로는 환상에 불과하며 도저히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빛 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속담대로 영감은 영감이 아닌 것과 구별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여하튼 이 시에서는 이상 세 가지 추측이 모두 동시에 가능한 점에 묘미가 있다. 그렇다고 발레리가 이 시에서 추상적인 논리를 전개하 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는 구체적이며 명료하고 감각적이며 제 4절에 보는 바대로 관능적이기도 하다. 구체적 사물과 추상적 상징이 완전히 밀착되어 있고 조화되어 있는 점에서 상징파 시인으로서의 그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석류들 / 폴 발레리     너의 수많은 씨알의 힘에 못 이겨 마침내 반쯤 벌어진 굳은 석류들이여, 스스로의 발견에 파열된 고매한 이마들을 보는 듯!   오, 반만 입을 연 석류들이여, 그대들이 받아 온 햇볕들은 자만심에 움직인 그대들로 하여금 홍옥(紅玉)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리고 금빛 메마른 껍질마저 어떤 힘의 욕구에 밀려 과즙(果汁)의 붉은 구슬되어 터진다 하지만,   이 눈부신 파열은 일찌기 내가 가졌던 어느 영혼의 은밀한 구조를 몽상켸 한다.     *이 시도 시집 에 수록된 것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짧은 시이다. 짧은 시이나 아름다운 색채 이미지와 상징이 교묘히 조화된 아름다운 시이다.  이 시의 상징은 익어 벌어진 붉은 석 류들을 빌어, 오랫동안 마음 속에서 익어 가다 드디어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의해 굳은 벽을 뚫고 나오는 어 떤 사상이나 시상(詩想)을 암시한다. 그러나 발레리는 사상가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반쯤 벌어진 석류를 통해 언어가 지닌 음과 색채와 뜻을 서로 어울리게 하고 침투시킴으로써 독자의 마음에 미적 감각 과 이미지와 상징을 떠오르게 한다. 어떤 사람은 발레리의 세잔느나 마티스의 정물화에 비하고 있다.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     1 비둘기들이 걷는 고요한 지붕1)은 소나무 사이에서 무덤 사이에서 가물거린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정오는 거기에 불로써 바다를 항상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 구성한다! 신들의 정온(靜穩)함을 오래 바라다본다는 것은 오 명상 뒤에 오는 크나큰 보상!                               1)바다를 지붕으로 보았다.   2 섬세한 섬광들의 얼마나 순수한 작업이 자디잔 물거품의 무수한 금강석을 태우고 얼마나 큰 평화로움이 형성되는 듯한가! 태양이 바다의 심연 위에 쉴 때 영원불변의 순수한 두 작품 시간은 반짝거리며 꿈은 지식이다.     10 닫혀지고, 신성하며 물질 아닌 불로 가득 찬 광명에 바쳐진 대지의 한 모퉁이, 태양의 횃불 아래 압도되어 금과 돌과 침울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이 곳이 내 맘에 든다 그 많은 대리석이 그 많은 망자(亡者)들 위에서 떨고 있    는 이 장소가, 충직한 바다는 여기 나의 무덤들 위에서 잠을 잔다!     11 찬란한 암캐여, 우상 숭배자들을 멀리 하라! 내가 외롭게 목자(牧者)의 웃음을 머금고 오랫동안 신비스런 양들을, 고요한 무덤들의 흰 양 떼를 칠 때에, 너는 이 무덤들로부터 멀리하게 하라, 신중한 비둘기2)들을, 헛된 꿈을, 호기심 많은 천사3)들을!   2)3): 기독교 신앙의 상징들.   12 일단 여기 오면 미래는 안일무위(安逸無爲). 날카로운 벌레는 대지를 긁는다; 모든 것은 타고 해체되고 어떤 알 수 없는 순화(醇化)된    본질이 되어 대기 가운데 흡수된다--- 부재(不在)에 도취될 때 인생은 광대하며, 고통은 달고, 또한 정신은 맑다.   13 숨겨진 망자(亡者)들은 이 땅 속에서 평안히 쉬고 있으며 대지는 그들의 몸을 따듯하게 하고 그들의 생의 신비를     말린다. '정오'는 저 높은 곳에, '부동(不動)의 정오'는 자기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에게 자족(自足)하고     있다--- 완벽한 두뇌이며 완전한 왕관(王冠), 나는 그대 속에 은밀히 변화하는 존재.     14 그대의 공포를 제어하는 자는 나 하나뿐! 나의 회한(悔恨), 나의 회의(懷疑), 나의 부자유는 그대의 큰 금강석의 흠--- 그러나 나무 뿌리 아래 누운 어렴풋한 인생들은 대리석에 눌려 한없이 무거운 그들의 밤 사이에 이미 서서히 그대의 편에 가담했다.     15 죽은 자들은 두꺼운 부재(不在) 속에 용해되었고 붉은 진흙은 그들의 흰 형질(形質)을 마셔 버렸다. 생명의 천혜(天惠)는 꽃 속으로 옮겨 갔다. 지금 어디 있는가, 망자(亡者)들이 항시 쓰던 말들, 개인적인 기교, 특이한 정신들은? 눈물 맺혔던 곳엔 구더기들이 줄지어 달린다.     16 간지럼당한 처녀들의 찢는 듯한 소리, 그 눈, 그 이, 촉촉히 젖은 눈꺼풀들 불장난하는 매혹적인 젖가슴 내맡기는 입술에서 빛나는 피 최후의 보물들, 이를 지키는 손가락들 모든 것이 땅 밑으로 가고 자연의 운행으로 되돌아간다!     17 그리고 그대 위대한 영혼이여, 그대는 여기 이 물결과 저 황금의 태양이 육체의 눈에 지어 내는 이 허구의 색채를 갖지 않을 어떤 꿈을 바라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가 공기로 증발할 때도 노래부를 것인가? 가거라! 이 세상 모든 것은 달아난다! 나의 존재는 공기      구멍으로 되어 있으며, 영생을 바라는 성스러운 초조감도 또한 죽는다!     18 흑색과 금색으로 된 앙상한 영생(永生)이여, 죽음을 어머니의 품으로 만든 끔찍한 월계관을 쓰는 위안자(慰安者)여, 이 아름다운 허위와 이 경건한 속임수! 누가 그것을 모르며 누가 이를 거절치 않으랴, 이 텅 빈 두개골과 이 영원한 웃음을!     22 아니다, 아니다--- 일어서라 이어가는 시대 속으로! 깨뜨리라, 나의 육체여, 이 생각하는 형태를! 마셔라, 나의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떠오르는 싱그러움이 나에게 영혼을 돌려 준다--- 오, 소금의 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자 거기서 다시 살아 솟구쳐 오르기 위해!     23 그렇다! 광란(狂亂)을 천성(天性)으로 하는 너는 표범의 가죽, 그리고 태양의 수천 수만의 우상으로 뚫린 고대 그리스 인의 망토, 너의 푸른 육체에 취하여, 침묵과 같은 소란 속에서 네 자신의 반짝거리는 꼬리를 물려는 날뛰는 히드라여,     24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겠다! 크나큰 대기는 나의 책을 열고 또 닫는다. 파도는 물 안개가 되어 바위에서 힘차게 용솟음친다! 날아가라, 광명에 눈이 어두운 책장들이여! 무너뜨려라, 파도들이여! 무너뜨려라 즐거워하는 물결로 작은 돛단배들이 먹이를 쫓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을!     *"해변의 묘지"는 발레리의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며 와 더불어 그의 이름을 드높인 작품이다. 전 6행, 24절로 된 이 장시(長詩)는 또한 난해한 것으로도 유명해 많은 주석가(註釋家)-해설가 -연구가 들이 정력을 바친 작품이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시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어떤 감상이나 사상을 전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가 아직까지 써 보지 않은 하나의 시 형식, 즉 매행 10 음절로 된 6 행 시를 써 보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써 가며 그는 이 시 가운데 하나의 개인적 독백을 담고자 했다 따라서 어렸을 때의 추억은 고향인 세트 바닷가의 묘지가 머리에 떠오르게 되고 급기야 이 시는 묘지에서 바 라다보는 바다 앞에서 삶과 죽음, 동(動)과 부동, 존재와 무에 대한 명상이 되었다. 이 세트의 묘지는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지중해의 눈부신 바다는 그가 어린 시절 자주 가고 자주 바라보며 명상한 곳이다.  이 시는 이러한 자연의 광경을 배경으로 한 사색과 철학의 시이다. 시인은 태양과 바다와 묘지, 이를 바라보 는 시인을 통하여 부동의 절대자와 변화하고 활동하는 인간의 생을 관조하고 부재와 정적(靜寂)이 지배하는 묘지와 광란을 내포하는 바다를 명상한다. 특히 위의 발췌된 10절의 이하에서 시인은 대리석 돌 아래 누운 죽 은 자들을 통하여 죽음과 영생(永生)에 대하여 생각한다. 무와 정온(靜穩)의 영원한 세계는 그를 유혹하나 종교적 신앙의 위로나 사후의 영생은 이를 완강히 물리친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죽음과 빈 해골 앞에 무의 열반 (涅槃)의 세계도 무산된다.. 결국 그는 이 시의 끝부분에서 신(神), 영원, 절대 부동의 세계를 바라느니보다 인간적인 것, 순간적인 것, 연속적인 것, 행동과 변화와 창조가 승리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의 도덕적 결론은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BC518?~438?)의 명구(銘句)와 같이 "나의 영혼아, 영생을 갈구하지 말고 가능 한 땅을 끝까지 파라"이다.  시인 발레리는 이러한 주제와 명상의 철학시가 가지기 쉬운 현학(衒學)과 생경(生硬)을 극복하고 풍부한 감 수성, 명쾌하고 은밀한 이미지, 연상적(聯想的)인 상징, 때로는 시인 자신이 가장 경계하던 서정적이며 관능적 인 감정과 감각도 섞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시가 가진 시적 음악성은 거의 마술적인 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볼 때 필자가 이 시를 번역한 것은 피상(皮相)을 면치 못한 것 같다. 더우기 원시의 형해(形骸) 도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더우기 윈시(原詩)는 24절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1-2, 10-18, 그리고 마지막 부분 22-24절만 번역 게재하였다. 지면 관계와 독자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폴 발레리(1871~1945): 폴 발레리는 신앙적 절대주의자인 폴 클로델과는 대조적인 위치에서 20세기 프랑스 전반의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남 프랑스 지중해안의 세트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는 코르시카, 어머니는 이탈리아의 제노바 출신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 황혼의 땅인 북방 유럽인과는 다른 자중해 정신을 타고났고 그 속에서 자라났다. 지중해 정신이란 모호하고 신비하고 격정적인 정신에 비해 명쾌하고 지성적이며 정적인 정신을 말한다.  그는 몽펠리에 법과 대학에서 수학하였는데 이 동안(1889~1890) 우연히 피에르 루이스를 만나 사귀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앙드레 지드, 말라르메 등을 알게 된 일은 그의 생애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 때 이미 시를 쓰고 있었고 이 시들은 당시 전위적인 문예지에 발표되어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었다. 그의 교우 관계로 보나 그의 타고난 재질로 보아 그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한 듯 했다. 즉 문학 특히 시의 길이었다.  그러나 1892년 10월 어느 날 밤, 그는 이상한 거의 계시와 같은 심적 동기로 일체의 문학이나 시작(詩作)을 버리고 지적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정서적인 예술 활동이 명료하고 논리적인 지적 활동이나 엄격한 사고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모든 문학이나 시작에서 손을 떼고 사색과 성찰의 생활로 들어가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사고에 대한 흔련 및 과학적 연구에 몰두한다. 이 때에 그는 파리에서 처음에는 육군성, 후에는 아비스 통신사 사장의 개인 비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새벽 5시부터 출근시까지, 그리거 시간만 잇으면 자기 방에 칩거하여 논리와 추상적 과학 방법의 연구와 훈련에 정력을 쏟았다. 이렇게 하여 그는 17년 동안이나 문학이나 창작 방면에는 완전히 침묵을 지키고 추상적인 과학적 연구 방법에 전념했는데 이 동안 얻은 지적 작품이 , , 등이다. 그가 문학 창작을 중단하였다고 해서 그가 예술계와 접촉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말라르메가 죽기까지 그는 그의 가장 충실한 제자이었고 전기한 루이스, 지드, 에레디아 등의 작가들과 자주 만났으며, 또한 유명한 화가 드가, 르느와르 등과도 교분이 있었다. 또한 자주 음악 특히 글록이나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폭넓은 취미와 접촉이 후의 그의 탁월한 미학이나 예술론의 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그의 속에서 잠자고 있던 시인이 다시 깨어난 것은 그 후 20년이 지난 1913년 그것도 순전히 타의(他意)에 의한 것이었다. 즉 "지드"와 "갈리마르" 출판사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발레리는 드이어 젊은 시절에 써 두었던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출판하는 데 동의하였다. 그리고 그 첫 시집을 완성하기 위하여 단시(短詩) 한 편을 더 쓰기로 하였다. 이 단시가 유명한 이며, 이 시는 그의 의도와는 달리 512행의 장시가 되었으며, 이 시를 깎고 다듬는 데 발레리는 5년이란 긴 세월을 바쳤다. 결국 이 시는 단독으로 출판되었다(1917), 이 작품은 난해한 것이었으나 그 성공은 그만큼 경이적이었다. 그는 모든 지적 엘리트를로부터 세기적 시인으로 인정되었고, 여기 자극되어 그는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신중하며 작품에 완벽을 기하는 그는 결코 다작(多作)이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의 걸작이라고 하는 "해변의 묘지"도 가 발표된 지 3년 후에야 발표되었다(1920). 발레리는 이 시를 비롯하여 20세기 전후의 젊은 시절 그가 써 발표하였던 시들(1890~1893) 약 20편을 합쳐 같은 해 그의 첫 시집 을 출판하였다. 이 시들은 약 30년 후에 빛을 본 것이나 이 가운데에는 이미 발레리의 독창성을 보여 주는 시들이 들어 있으며 그 중의 많은 시가 아직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다시 1922년 그가 이후에 쓴 최후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이 두 권의 시집으로 그는 모든 사람이 공인하는 '현대 시인'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된 것이다.  시집 을 계기로 시인으로서의 그의 창작 활동은 끝나고 이후부터 발레리는 지성인의 대표, 현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유명한 신문이나 잡지에서 그의 논문과 수기를 다투어 싣고 프랑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저명한 학회나 단체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많은 강연과 주제 발표를 하였다. 이러한 논문과 수기와 강연이 편집되고 출판되어 20세기 전반의 상상계와 정신계에 깊은 통찰과 많은 시사를 남기었다.  만년에 그는 프랑스의 국가적 시인이며 국제적인 지식인의 상징이 되었다. 1925년에는 아나톨 프랑스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고, 1924년에서 1934년 까지 국제 펜 클럽(Pen Club)의 회장이었다. 1935년에는 의장으로 국제 연합 제5차 예술 학문 회의를 주재하였고, 1939년 부터 죽기까지 콜레지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임명되어 시학 강좌를 맡고 있었다. 이는 시인에게는 처음 있는 영예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독일군 점령 시절 그는 지조를 굽히지 않았고, 국민 작가 위원회에 소속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의 최후의 작품이며 독일 점령군 치아의 어두운 심경을 쓴 것이 라는 작품이다. 심신이 극도로 쇠잔된 발레리는 해방된 다음 해인 1945년 병을 얻어 7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거행했으며 그의 유해는 그의 소망대로 세트 해변 묘지에 묻혔다.    시인으로서의 발레리는 보들레르, 말라르메를 잇는 심미적 상징주의 계보에 속하나, 시의 창작도 지적 작업의 소산이며 엄밀한 방법에 의하여 제작된다는 그의 주장대로 주지적이며 기교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그에 따르면 시는 산문과 달라서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감흥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시는 언어가 가진 모든 능력을 구사하여 독자의 마음 속에 어떤 미의 감각, 조화의 세계를 낳게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시인은 말의 모든 힘(음, 리듬, 음률, 낱말과 낱말의 접근과 대조, 이미지, 상징, 비유 등등)을 구사하여 이러한 미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기하학자-건축가-지성인이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영감이나 정열이 아니라 맑은 의식과 각고면려(刻苦勉勵)하는 노력이다. 라고 했다. "나는 무아 상태에서 번갯불을 기다리느니보다 맑은 정신, 의식적의 의지를 가지고 나의 마음대로 반짝거리는 불꽃을 만들기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그의 시론은(말라르메의 시론과 더불어) 세계 제 2차 대전 후의 프랑스 시단에 중요하고 깊은 영향을 주었고 주지적 심미파에 속하는 많은 시인들은 그들의 시적 창작 활동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이 두 스승에게서 배우고 있는 형편이다.   미라보 다리 /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는 흐르는데 나는 왜 우리들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아픔 뒤에 왔는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 마주 대하자 그러면 우리들의 두 팔이 놓은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빛의 피로한 물결이 지나간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간다 흐르는 이 강물같이 사랑은 간다 얼마나 인생은 더딘 건가 또 얼마나 희망은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도 가버린 세월과 우리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는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상테 감옥에서 / 아폴리네르     1 감방에 들어가기 전 나는 알몸이 되어야 했다 한즉 어떤 불길한 목소리가 웅얼거린다 "기욤 군, 이게 어찌된 일이요"   무덤에서 나오는 나사로 대신에 무덤으로 들어가는 나의 신세 잘 있거라 잘 가거라 노래하는 원무(圓舞)여 오 나의 청춘이여 젊은 아가씨들이여     2 아니, 여기서는 이미 나는 나라는 생각이 안 든다 이제 나는 11 감방의 제 15 번   햇빛이 창문으로 흘러들어 햇살은 내가 쓰는 시 위에서 장난을 치며   종이 위에서 무용을 한다 귀 기울이니 누구인가 발로 천정을 두드린다   3 구렁 속의 곰처럼 매일 아침 나는 걷는다 돌자 돌자 쉬지 말고 돌자 하늘은 쇠사슬처럼 푸르다 구렁 속의 곰처럼 매일 아침 나는 걷는다   바로 옆 감방에서는 수도물 꼭지를 틀어 놓는다 열쇠를 쩔거럭거리며 잔수가 오가곤 하나 바로 옆 감방에서는 수도물 꼭지를 틀어 놓는다.     4 뿌연 페인트 칠한 맨벽 안에서 나는 한없이 지루하다 종이 위에 파리 한 마리 종종걸음으로 들쑥날쑥한 글 줄 위를 바삐 다닌다   오 저의 고통을 잘 아시며 그 고통을 주신 하나님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불쌍히 여기소서 눈물 마른 제 눈과 창백한 제 얼굴 쇠 사슬에 매인 저의 걸상 소리를   그리고 이 감옥 안에서 숨쉬는 모든 불쌍한 가슴들을 저와 항상 함게 하시는 사랑의 신이시여 저의 연약한 이성과 이를 능가하는 절망감을 특별히 불쌍히 여기소서.   5 시간들은 얼마나 느리게 지나가는가 마치 장례식 행렬 같아   그대가 울고 있는 이 시간도 슬퍼할 때가 있으리라 모든 시간과 같이 이 시간도 너무 빨리 지나갈 것이므로     6 나는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지평선이 없는 죄수에게는 미움에 찬 하늘과 이 감옥의 쓸쓸한 담장들만이 보일 뿐   날이 저물고 이윽고 감방 속에 전등불 하나가 붉게 켜진다 아름다운 불빛 친애하는 이성(理性)아 이 감방 속엔 너와 나 단 둘뿐이다.   *1911년 가을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 소장의 유명한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가 없어졌다. 그러자 혐의는 당시 과격파 예술 운동 의 하나인 미래파 예술가들에게 걸렸다. 당시 미래파 문인이나 화가들은 극렬 분자로 통용되어 있었던 만금 이들이 과거의 예술품 이나 전통을 파괴하기 위하여 이 불후의 명작을 없애 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피래파 그룹을 조사해 보니 아폴리네 르가 이 운동의 선봉장이며 열렬한 옹호자인 것이 드러났다. 결국 장물 은닉죄라는 죄목으로 그는 파리의 상테 감옥에 수감되었다. 친구들이 백방으로 노력하고 탄원을 넣어 약 1주일만에 집행 유예로 풀려났으나 이 수치스런 경험은 그에게 상당히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 시는 그때의 경험을 쓴 것이다.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현대시의 시발자(始發者)로 불리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일생은 그의 경쾌하고 화려한 인상과는 달리 슬프고 너무 짧았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태생인데 아직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아버지와 폴란드에서 이주해 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향락과 도박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남 프랑스 지방의 간느-니스 등지를 옮겨 다니며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 때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올라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많은 독서를 하였고 이 때에 폭넓은 교양을 쌓았다고 한다. 파리의 생활은 어려워 은행의 말단 행원의 일을 해오다가 한때는(1901~1902)어떤 부유한 독일 가정의 가정 교사로 초빙되어 독일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이 동안에 거기서 가정부로 와 있던 영국 소녀 애니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지나 얼마 안 되어 실연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 때의 착찹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 유명한 "사랑 못 받는 남자의 노래(1903)"이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신문 기사를 쓰거나 잡지 등에 주로 에로틱한 글을 기고하여 생활을 하면서 앙드레 살몽-막스 쟈콥 등 문인들과 문예지를 펴내기도 하고, 화가 피카소-브라크-블라멩코 등 소위 당시 화단의 전위파(前衛派)들과 친교를 맺어 예술 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전위파 예술 운동에는 언제나 선두에 서서 활약했는데 입체주의, 미래파, 흑인 예술, 환상파, 그리고 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유파나 '이즘'이 나올 때마다 그는 선구자이며 또 그 운동의 강력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라는 낱말은 그의 창작이다.  1913년 그가 33세 때 그의 첫 시집 이 출판되어 성공하였다. 제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무겁고 음울하고 불안한 유렵 사회에 그의 새롭고 신기하고 경쾌하고 애수 섞인 유머는 인기가 있었다. 소위 새 정신이었다.(이 말도 그의 창작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나 그는 비록 외국 국적을 가졌으나 자원하여 출전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프랑스에 빚지고 있다. 프랑스를 위해 싸우는 것은 나의 최소의 봉사이다." 라고 했다. 1916년 그는 전장에서 포탄의 파편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두 번이나 뇌 수술을 받았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1918년 "아름다운 빨간 머리"로 유명한 젊은 부인의 팔에 안겨 30세을 일기로 죽었다.    그는 두 권의 시집을 남겼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이며 또 하나는 죽기 전에 끝낸 *이다. '칼리그람'이란 낱말도 그가 지어 낸 새로운 단어이다.  에는 그가 두 번에 걸쳐 겪은 실연이 서정적이며 회고적인 엘레지와 그가 본 세상에 대한 스냅 사진에다 그의 독특한 꿈과 환상과 무의식을 병치(竝置) 혹은 뒤섞은 현대적인 시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는 그의 시에서 일체의 구두점을 빼버려 시구의 리듬을 완전히 유동화시켰다. 이는 '상드라르'의 시를 읽고 받은 충격으로 그는 시집 의 최종 교정시에 자기 시에서 모든 구두점을 없앴다는 것이다. '상드라르'가 무의식적으로 부분적으로 한 일을 아폴리네르는 의식적으로 전적으로 한 것이다. 이후 많은 현대 시인들이 구둣점 없는 시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이며 마지막 시집인 에서는 그가 시집 출판 이후 추진해 온 시에 있어서의 새로은 혁신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카페의 소음 속에서 들리는 대화를 주어 모은 소위 대화시라든가 추상파 화가의 수법을 시에 적응시킨 추상시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는 이 시집에서 시에다 형상적(形象的)인 요소를 합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시를 구성하는 활자나 활자로 구성되는 시구의 배치로 어떤 현상을 나타내어 무언 중에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자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와 같이 시행을 같은 모양으로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그림을 그려서 독자의 시각에 호소하는 수법이다. 심장은 하트 모양, 시가(cigar)는 여송연 담배 모양으로, 분수는 물이 올라가 버드나무같이 퍼져 떨어지는 모양으로 활자를 배열하였다. 시의 음과 그림을 함께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그의 생존시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혹은 즐겁게 할 뿐이었으나 그의 사후 차츰 세월이 감에 따라 그가 시에서 시도한 새로운 정신과 형식의 추구는 20세기의 시가 갈 길에 대하여 큰 시사와 문제를 남겨 주었다. 지금에는 그의 시는 고전(古典)이 되어 프랑스 중학생들이 암송하고 소르본느 대학에서 강의되는 전통 문학이 되었다.   *calllgramme: 시구의 배열이 도형을 이루어 시의 대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로 아폴리네르가 만든 조어.   빙산 / 앙리 미쇼      난간도 울타리도 없는 빙산(冰山)에, 지친 늙은 까 마귀들과 요사이 죽은 수부들의 망령들이 북극의 마(魔) 와 같은  밤에 와서 팔꿈치를 괸다.   빙산, 빙산, 영원한 겨울의 무종교(無宗敎)의 대 성당(大聖堂), 유성(流星) 지구의 머리 위에 씌운 빙모(氷 帽) 추위에서 태어난 너의 기슭은 얼마나 고귀하고 또 순 결한가.   빙산, 빙산, 북대서양의 등,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바다 위에 얼어 붙은 장엄한 불상(佛像), 출구 (出口) 없 는 죽음의 번쩍거리는 등대, 침묵의 절규는 수세기 동안 계속된다.   빙산, 빙산, 필요 없는 고독인, 갇히고 멀고 벌레 없는 나라, 섬들의 가족, 샘물의 가족인 그대들은 보면 볼 수록 얼마나 나에게는 친숙한 것이냐---     익살광대 / 앙리 미쇼     어느 날, 어느 날, 아마도 곧 어느 날 나는 바다에서 먼 곳에 내 배를 매어 둔 닻을 뽑 아 내리니. 나는 무(無), 무 가운데서도 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일종 의 용기를 가지고 나에게서 분리할 수 없이 가깝게 보였던 것을 버리리라, 나는 그것을 짜르고, 그것을 뒤엎고, 그것을 꺾고, 그것 을 땅 위에 딩굴게 하리라. 나의 비참한 수치심(羞恥心), 조물조물 이어가는 나의 구차한 계략(計略)과 논리의 맥락을 단번에 내뱉어 버리며, 소위 큰 인물이라는 종기를 짜내 버린 뒤 나는 자양(滋養) 있는 공간을 다시 마시리라.   조소와 실추(失墜)에 의하여(도대체 실추란 무엇인가?)> 파열(破裂)과 같이 공허와 전적인 소산(消散)-모멸(侮蔑) -배출(排出)로 나는 사람들이 나의 주위 환경이나 이 고상하고 고상한 나의 주변 인물들과 썩 잘 합치되고 맞고 조화되고 어울린다고 믿고 있는 생활 형태를 나 의 몸에서 쫓아 낼 것이다. 큰 재난 앞의 겸손이나 극심한 공포 뒤와 같은 완전한 평 지화(平地化)로 줄어 들고 재어 볼 품도 없이 낮아진 나의 참된 위치, 알 수 없는 어떤 생각-야심에서 내가 버렸던 가장 미미한 내 자 리고 되돌아와 고상함도 존경도 사라지고 머나먼 곳에서(혹은 있지 않은 곳인지도 모른다) 이름도 신원(身元)도 잃어버리고, 익살 광대가 되어 조소(嘲笑)와, 폭소와 괴기(怪奇) 가운 데, 내가 모든 양식(良識)에도 불구하고 나의 중요성 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을 없애 버리며 나는 뛰어들리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숨어 있는 무한 정신 속으로 나 자신 새롭고 놀라운 새벽 이슬에 열려 아무것도 아님으로 해서 그리고 벌거숭이가 됨으로 해서--- 그리고 웃음거리가 됨으로 해서--     플룀 씨 여행 하다 / 앙리 미쇼     풀륌 씨는 여행 중 사람들이 자기를 지나치레 우대 해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무단히 그의 몸을 밟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꺼리낌 없이 그의 양복 저고리에 손을 닦는다. 결국 그는 이런 일에 익숙해 졌다. 겸손하게 여행하는 게 더 좋았다. 가능한 한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만약 식당에서 그의 접시 위에 나무 뿌리를 큼직한 나무 뿌리를 내놓고 무뚝뚝하게 "자 먹어요, 먹지 않고 무얼 기다리시요" 하면 -"좋습니다, 곧 먹지요, 자아, 끝냈습니다" 그는 공연히 그 날 밤 그에게 방이 없다고 거절하면서 "뭐요?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서 잠자러 온 것은 아닐테지요, 그렇지요? 자, 당신의 가방과 물건들을 드 시요. 지금 이 시각이 하루에서 가장 걷기 좋은 때요." -"좋습니다, 좋아요, 그럼은요---그렇구 말구요. 물론 웃자고 한 말이지요. 그저 노---농담으로" 그리하여 그는 어두운 밤중에 다시 떠난다. 그리고 만일 누가 그를 기차 밖으로 밀어 내면서 "아니, 우리가 벌써 세 시간 전부터 기관차를 데우 고 여덟 칸의 객차를 단 것이 당신 같은 나이에 건강한 몸을 한 청년을, 또 여기서도 얼마든지 소용이 있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수송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우리가 터널을 뚫고 나이너마이 트로 수천 톤의 바위를 폭파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백 킬로의 철로를 놓은 것이 그래 이런 일을 위해서였단 말이 오? 그뿐인가, 사보타지(怠業)가 있을 염려 때문에 아직도 철로를 감시해야 하는 일을 빼놓고라도 말이지. 그런데 이 모든 일이 그래---" -"좋습니다, 좋아요. 잘 알았습니다. 제가 기차에 오른 건 그건 그저 한 번 둘러보기 위해서였지요 자 이젠 됐습니 다. 단순한 호기심, 그런 거지요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짐을 들고 길로 되돌아 나온다. 그리고  그가 로마에서 콜롯세움 원형 극장을 보겠다 고 하면 "아, 안 됩니다. 제 말 들으시오. 이 곳은 이미 관리가 잘 못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금  뒤에 선생은 그것을 만지려고 할 것이고 그 위에 기대려고 할 것이고 앉으려고 할 거요. --- 그리하여 이 곳은 도처에 폐허밖에 남지 않았소. 이건 우 리에게 교훈이, 준엄한 교훈이 되었소. 그러나 앞으로는 안 됩니다, 이젠 그만이오, 알겠소?"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건 --- 저는 그저 그림 엽서나 혹은 사진을 얻고자 했을 뿐입니다---- 혹시 있으면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이 도시를 떠난다. 또한 만일 여객선 위에서 배의 사무장이 갑자기 그를  손 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자는 여기 무얼하고 있지? 거 참, 아래쪽에는 전혀 규율 이 없어 보여.  빨리 저 자를 선창 아래로 내려 보내도록 해! 방금 반시(半時) 종이 쳤어"라고 말하고 나서 그는 휘파람을 불며 가버렸고 플륌으로 말하면 배가 항해 하는 동안 내내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그는 전혀 여행을 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런데 자기는 여행을 한다. 계속해서 여행 하지 않는가.     앙리 미쇼(1899~1984):  앙리 미쇼는 때로는 자기의 무의식 속을 파고들어가 존재의 실태와 존재 이유를 찾기도 하고 또는 악의(惡意)에 찬 세계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고뇌와 무력(無力)을 독특한 풍자와 유머로 표현하므로써, 현재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원래 프랑스어계의 벨기에 출신으로 1955년에야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어려서부터 극히 고독한 성격으로 부모형제나 어떠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는 이방인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브뤼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신비 작가의 작품이나 성인들의 전기들을 즐겨 읽었고 잠시 의과(醫科) 대학에 다닌 적도 있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 21세 때 새로운 다른 세계를 동경하여 일개 수부(水夫)가 되어 약 2년 동안 바다를 떠다니며 방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4년 부터 파리에 정착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로트레아몽'의 작품을 읽고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27년 자아(自我)의 분열을 다룬 시집 를 발표하고, 계속하여 자신에 대한 거의 과학적-의학적 관찰 보고서인 ,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박해받는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린 , 그리고 꿈과 환각-충동을 조사-보고한 등의 시집을 내어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1927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동안 그는 또 다시 다른 세계를 찾아 에쿠아도르를 비롯한 남미-터기-인도-중국-일본 등을 여행하고 두 권의 여행기 와 을 펴내었는데 저자는 이 가운데 각국의 도시-인물-풍습-동식물에 대한 학자적인 정밀한 관찰과 시인으로서의 깊은 성찰을 하여 많은 독자에게 감명을 주었다.  1940년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남 프랑스의 코트다지르로 피난하였는데 여기서 '앙드레 지드'를 만났고 '지드'는 미쇼의 내면적 시가 가지는 현대적 뜻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앙리 미쇼를 발견하자!"라는 강연을  하여 그의 이름을 높이었다. 같은 시기에 그가 전시(戰時) 중에 쓴 특이한 항전시(抗戰詩)가 발표되어 일약 그는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30대 부터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은 자기류의 그림을 발표해 왔는데 이 특이한 그림이 화단에서도 높이 인정되어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퍼졌다.  그는 시인으로 계속하여 , 등의 환상적인 시집과 라는 가공적이며 상상적인 3부작 기행 문집을 펴내었다.  1955년 경부터 인간의 심층 내부를 철저히 탐색하기 위해 그는 마약인 '메스칼린'을 복용하여 그 환각과 취기를 이용하여 의식 내부를 탐험하려고 하였다. 즉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잠입하여, 약의 힘을 빌어 인간의 모든 감각, 꿈, 인상, 이미지, 무의식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려 하였다. 그는 그가 직접 느끼고 본 것을 그의 시로 또는 그림으로 옮기었다. 어느 작가도 그만큼 인간의 희미하고 붙잡기 힘는 내부 세계를 이렇게 철저하게 탐험-실험하려고 애쓴 작가는 없었다.  약 15년에 걸친 실험에서 얻은 작품으로 "비참한 기적(1955)" , "소란스러움의 무한(1957)" "구렁에서 얻은 지식(1961)", "정신의 큰 시련(1966)" 등이 있다.  미쇼는 만년에도 인간의 내부 세계와 환상 세계에 대한 많은 작품을 ("잠든 모양, 깬 모양"(1969); "사라지는 것과 대면하여"(1976)) 등을 내놓았으나 점점 글자로 표현하기보다는 형상적 그림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의 그림이란 회화라기보다 현미경 아래 보는 박테리아의 표본이나 X선 사진 같은 기이하고  독특한 것이다. 그러나 화가로서 그는 거의 매년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전람회을 열었고 그 때마다 주목과 논란을 일으켰다. 1965년에는 파리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그이 총작품 전시회가 개최되어 그의 예술에 대한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국가 문학 대상의 수상자로 추대되었으나 그는 이를 사절하였다. 그는 시인으로서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엄밀한 뜻에서 문학권 외에 있으면서도 1940년대 이후 젊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김현, 권오룡 번역의 또 한 편의 앙리 미쇼의 시   바다와 사막을 지나 / 앙리 미쇼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사막에 물이 없듯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따로 서 있는 배반자처럼 효력 있다 물건을 감추는 밤처럼 효력 있다 새끼를 낳는 염소처럼 조그맣고 조그맣고 벌써 비탄에 잠긴 새끼들   효력 있다 독사처럼 효력 있다 상처를 낸 단도처럼 그걸 보존하기 위한 녹과 오줌처럼 강하게 하기 위한 충격, 동요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증오의 대양을 가슴에 심 어주기 위한 모멸의 웃음처럼 효력 있다 몸을 말리고 넋을 굳히는 사막처럼 효력 있다 내팽겨쳐 논 시체를 뜯어 먹는 하이네나의 턱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프랑스 명시선 25. 생-존 페르스(1887~1975): 최완복 번역(25)     원정(遠征) / 페르스     1 세 위대한 계절 위에 영예롭게 포진(布陣)하며 나는 나의 법을 세운 이 땅의 전도(前途)가 탄탄하리라 점친다.   아침에 무기들은 아름답고 또한 바다도: 우리들의 말에 맡겨진 이 편도(扁桃) 열매 없는 땅은 맑고 변함없는 이 하늘과 더불어 우리들에게 손색이 없다. 태양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나 그 힘은 우리들 가운데 있다. 그리고 아침의 바다는 정신의 오만함과 같다. 힘이여, 너는 우리들의 야간 행군길에 노래 불렀다 --아침이 한창 퍼진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의 상속권자인, 꿈에 대하여 무엇을 아는가? 아직 일 년 동안 그대들과 함께! 곡식의 주인, 소금의 주인으로, 그리고 공사(公事)는 공평의 저울로! 나는 다른 기슭의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리라. 나는 산비탈 위에 산호(珊瑚)의 백사(白沙)로 도시들의 구역들을 긋지 않으리라, 허나 나는 너희들과 함께 살 계획이다. 천막(天幕) 입구에 높은 영광 있으라! 나의 힘은 너희들 가운데! 그리고 소금알같이 순수한 관념이 대낮에 회합한다     ---그런데 나는 너희들의 꿈의 거리에서 자주 나타나 인적 없는 장터에서 내 영혼의 순수한 교역을 결정하 는 것이었다. 너희들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그리고 재빨리 마치 강품 속의 가시나무 불같이 힘이여, 너는 우리들의 장도(壯途)에서 노래 불렸 다--- "정신의 모든 창(槍)날은 소금의 단맛에 황홀하며 ---나는 소금으로 욕망의 죽은 입을 소생케 하리라! 목마름을 찬양하며 모래밭의 물을 투구로 떠마시지 않은 자와의 영혼의 교역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그리고 태양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나 그 힘은 우리들 가운데 있다).   인간들, 먼지 같은 자들과 또 가지각색의 인간들, 상인과 한가한 자, 변두리 사람과 타처 사람, 아, 이 고장의 기억 속에 아무 무게도 없는 자, 골짜기와 고원에 사는 자, 우리들의 기슭의 말단에 사는 자: 징후(徵候)와 종자의 냄새를 맡는 자, 그리고 서방(西方)의 숨결을 듣고 보는 자; 발자취와 계절을 쫓는 자, 새벽의 미풍에 장막을 걷는 자; 오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이유를 찾는 자, 오, 그 이유를 얻은 자, 그대들은 이 때보다 더 강력한 소금을 사지 못한다. 즉 아침에 왕국들과 죽은 듯한 바닷물이 높이 이 세상의 연기 위에 걸려 있는 예조(豫兆) 가운데 유배의 북소리 가 변경에서 모래 위에서 하품하는 영원을 깨울 이 때.   * ---청결한 옷을 입고 너희들과 더불어, 아직 1년 동안 너희들과 더불어! "나의 영광은 바다 위에, 나의 힘은 너 희들 가운데! 우리들의 운명에 약속된 다른 기슭에서 오는 이 소슬 바 람은, 저울대에서 그 정점(頂點)에 이른 세기의 광휘를 시대의 파종을 넘어 저 먼 곳으로 싣고 간다----" 소금의 떠 있는 얼음에 매달린 수학! 시가 자리잡는 나의 이마의 예민한 점(點)에 나는 불멸의 배들을 조선 창(造船廠)으로 끌고 가는 나는 가장 도취된 한 민족 전 체의 이 노래를 새긴다.   *'Anabase'란 진군(進軍) 또는 원정이란 뜻이 있다. 역사상으로는 사이러스 2세가 이끈 그리스 용병대의 중앙 아시아 원정이 유명하며 또 이 장시(長詩)와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 시집 은 전후 두 편의 노래 와 10편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 게재한 것은 그 제1편이다.  전체적으로 어느 군단이 대륙의 연안을, 그러나 황무지와 고원을 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일면 파괴하며 일면 건설하며 진군하여 마른나무라는 도착지까지 이르는 군사적 원정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는 모험에 대한 인류의 끝없는 도전, 영원한 것, 상승, 확대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갈망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 1편은 도시를 건설할 땅에 정복자가 도착한 장면이다.  생-존 페르스는 유년기의 회상을 담은 를 발표한 지 13년 만에 이 서사시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그가 외무성 재직시의 일이다.  이 장시는 그의 다른 모든(초기 작품은 제외) 작품같이 난삽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와 표현이 산재해 있 다. 이 점이 노벨 문학상과 세계의 여러 위대한 작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경원시되고 일반 에게는 읽혀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인류적이며 문화사적인 서사시는 그 방대한 구상, 백과 사전적인 해박한 지식과 아울러 간소하 며 강력한 리듬, 고양(高揚)된 억양과 변화 있는 문체로 프랑스의 옛 서사시에 견주어지고 있다.     시인이 증언한 것은--- / 페르스     시인이 증언한 것은 이렇듯 극한적인 순간에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대망(待望)의 극한점에서 누구도 방으로 되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라! "탄생되는 날이 황홀함--- 새 술이 이보다 더 진 실될 수 없으며 새로운 삼베가 이보다 더 신선할 수 없 으니---   이방인인 나의 입술 위에 느끼는 이 월귤의 맛은 무 엇인가? 이는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며 이상한 것인데? ---   서두르지 않으면 나의 시는 해방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이 순간에 탄생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밖에 없다. (이는 마치 제주(祭主)가 새벽 제사(祭司)를 드리기 위해 한계단 한 계단 안내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와 같다. - 삭발한 머리와 맨손, 그리고 손톱에 이르기까지 빈틈 없이 차리고 - 그의 존재의 향기로운 이파리가 낮의 첫 햇살에 발하는 메시지는 매우 빠를 것이다.) 그리고 시인도 우리와 함께 그의 시대의, 인간의 길 위에 있다. 우리들의 시대의 흐름에 쫓아, 이 큰 바람의 흐름에 따라,   우리들 사이에 그의 사명; 주어진 메시지를 명료히 하는 일, 그리고 심정의 계시에 의하여 그의 마음 속에 주어지는 응답.   쓰여진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 생동하는 사물 에서 직접 얻은 것이며 전체적인 것.   복사된 것이 아니라 원본의 보존, 그리고 시인의 기술(記述)은 조서(調書)를 따른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기술된 것들도 또한 변하 리라고 - 문제의 장소; 이 세상의 모든 모래 사장들)   "드디어 나는 나타나리라, 잃어버린 숫자여!--- 너무나 많은 기대가 우리들의 청각의 기능을   무디게 하지 않기를! 어떤 불순함도 시각의 문턱을 더럽히지 않도록!---   그리고 시인은 아직 우리와 함께 있으니, 그 시대 사람들 가운데, 그 시대의 악을 지닌 채----   낙인 찍힌 자의 침상에서 자고 나서 그로 인해 온통 얼룩이 진 자와 같이 엎질러진 기름 속을 걸어 흠뻑 더러워진 자와 같이 꿈으로 부패된 인간, 성스러운 것에 감염된 인간,   스키타이* 인처럼 대마초 연기 속에 취함을 찾는 자 들이 아니라                     *스키타이: 기원 전 6~3세기에 걸쳐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서                                     활약한 이란계의 기마 민족                                     새나 짐승 무늬를 청동기에 새기는 등의 독자적인 문화를                                     확립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초원 지대의 여러 유목 민                                     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가지의 식물 - 벨라돈나나 사리풀에 중독되는 것도 아니며   아마존의 사람들이 먹는 올로기의 둥근 씨앗을 냄 새 맡는 자도 아니며   사물의 이면(裏面)을 나타나게 하는 빈자(貧者)의 칡뿌리, 야게나 필루 풀도 아니고   자신의 명철한 정신을 주시하며 자신의 권위에 민 감하며 바람 속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대낮같이 명 확하게 견지하는 자.   "이 부르짖음! 신의 날카로운 부르짖음! 그것이 우리들을 방 속에서가 아니고 군중의 한가운데서 붙잡도 록   그 소리는 군중에 의하여 전파되어 우리들의 지각(知覺) 의 한계점까지 울려 퍼지기를----   자기의 열매를 찾아 끈적끈적한 담벽 위에 그려진 새벽이 우리들의 이 강렬한 소망을 흐리게 하지 못하리 라."   그리고 그 시인은 아직도 우리들 가운데 있다---- 이 시간, 아마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시간, 아니 바로 이 순간, 이 찰나!--- 그런데 우리는 이 순간에 태어나기에는 너무나 짧 은 시간밖에 없다.   "---약속 자체가 숨결이 되는 이 기대의 극한적인 시점에서,   그대는 스스로 숨을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보는 자에게 기회가 있지 않을까? 듣 는 자에겐 그 응답이?---   시인은 아직도 우리들 가운데----아마도 마지막일 이 시간---바로 이 순간--- 이 찰나!   -"이 부르짖음, 우리들 위에 신의 날카로운 부르짖 음!   *이 시는 그의 주요 작품의 하나인 의 제 3 제 6가(歌)이다. 생-존 페르스는 바람, 비, 눈 등의 자연 현상을 주제로 한 몇 편의 시집을 펴내었다. 에서는 우주 현상이 가진 무한한 힘과 이것이 인간의 생활-문명- 문화가 가지는 관계를 우화나 신화처럼 다루고 있다. 시인은 바람을 땅과 인간과 시와 정신을 창조하는 근원적 인 힘으로 보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다. 여기 제 6가(歌)가 발췌된 제 3편에서는 이러한 창조적인 바람과 인간 과의 협력 관계가 취급된다. 따라서 에서 정복자의 동료들과 같은 인간 문명의 선구자들에 대한 열거가 전개 된다. 자산가, 상인, 법률가, 성직자, 개혁자, 과학자, 집제사(執祭司) 등등이다. 이 가운데 시인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 시인은 극한적인 간구에서 증언하기 때문이다. 제 6가에서는 시인과 시, 특시 시가 탄생하는 최고의 그리고 최후 의 순간에 대한 시인의 증언을 나타내고 있다. 시인은 현실 배후에 숨어 있는 시, 생동하는 사물 자체이며 전체적인 것 을 붙잡으려는 정신의 최후의 순간에 대하여 그 긴박성, 찰나성을 증언하고 있다.     생-존 페르스(1887~1975): 1960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생-존 페르스는 시인으로서의 그의 이름은 모국인 프랑스에게서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 유명하며 그의 작품은 현대 시인 가운데 가장 많이 외국어로 번역된 시인의 하나다.  그는 쿠바 동쪽 과들루프라는 프랑스 령(領) 섬에서, 프랑스의 오랜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귀공자와 같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11세 때 온 가족과 더불어 프랑스 서남단의 포(Pau)시로 이주하였는데 이 곳 중고등 학교에서 프랑시스 잠, 발레리, 라르보 등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또 잠의 소개로 그의 집에서 클로델과 알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페르스는 클로델과 같이 자기도 장차 외교관이 될 뜻과 시를 쓸 의욕을 가지게 된 듯하다. 그후 보르도 대학으로 진학하여 법률 공부와 함께 시의 창작도 병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수십 편의 시를 써서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적도 있으나. 1911년 여러 친구들의 권고와 주선으로 라는 첫 시집을 낸 것이 그의 문학 활동의 첫걸음이었다. 이 시들은 카리브 해의 과들루프에서 지낸 그의 유년 시기의 생활과 그의 머리에 비친 어린 시절의 신선하고 이국적인 풍물에 대한 회상, 바다, 종려나무, 꽃 선풍(旋風), 원주민들의 풍습 등을 다채롭고도 섬세하게 그린 것이다.  1914년 외무성 외교관 시험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중국 북경 공사관에 파견되어 서기관으로 약 5년 동안 근무하며, 일본, 한국, 몽고, 중앙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였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로 돌아와 외무성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유명한 정치가이며 외무 장관이던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중요한 보조자가 되어 1920년대에서 20년 동안 그는 외무성의 모든 중요한 자리를 맡았고 최고 실무 책임자인 외무 차관으로 재직하였다. 이 시기에도 일면 창작 생활을 계속한 듯하며 1924년 생레제 레제라는 필명으로 이라는 장시를 발표하였다. 이는 호메로스의 와 같은 모험과 정복의 서사시이나 전설과 현실과 꿈이 뒤섞인 신화(神話)와 같은 작품이다.  1940넌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6월 14일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고 페탱 원수가 비시 정부를 수림함에 이르러 페르스는 6월 16일 보르도에서 배를 타고 처음에는 영국으로 갔으나 다시 미국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그는 미국 정부의 호의로 워싱턴의 국회 도서관에서 프랑스 어 자문 의원으로 일하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2년 비로소 생-존 페르스라는 필명으로 를 1944년 , 1945년에 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인간 존재의 고뇌를 극복하려는 철학적인 시이거나 혹은 바람-비 등 자연적인 힘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우주적인 서사시로 방대한 구상과 장중한 음률, 박학 심오한 지식으로 위대한 시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영국-미국의 시인-비평가들로부터 높은 인정을 받고 있으며, 영국의 엘리어트는 일찍부터 그의 작품을 소개-번역하였다.  1944년 전쟁의 종식으로 그는 40년에 박탈당했던 프랑스 국적과 영예가 복권되었으나 1958년이 잠시 프랑스에 귀국하였을 뿐 계속 워싱턴 근처에 살며 시작과 연구 그리고 카리브 해와 뉴 멕시코 등지를 여행하며 지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바다와 사랑의 무한성을 찬미한 . 시간을 정복한 인간과 지구의 위대함과 영원함을 노래한 등이 있다. 이 해에 그는 프랑스 대사로 복권되고 그의 전작품에 대한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이후에도 시의 창작 활동이 계속되어 1963년에는 13가(歌)로 된 를 출간하였고 1975년에는 몇 편의 장시를 모은 시집 를 내놓았다. 이는 그의 최후의 메시지가 되었다. 그는 이 해 지중해의 지앙 반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존 페르스는 넓은 뜻에서 자연 시인이다. 자연과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 늘 경이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그는 쉬지 않고 여행하며 보통 사람보다 훨씬 광대한 세계에 살았다. 이미 그의 초기 작품인 에서 자연에 대한 영광의 노래를 불렀고, 에서도 중앙 아시아 지방 유목지의 풍물과 사물에 대한 깊은 애착과 동경을 그리고 있다. 또한 빛과 색체와 동식물이 넘쳐 흐르는 땅과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 늘 신선한 놀라움과 신비의 근원이었다. 대지를 비단같이 감싸주는 눈, 때에 따라 부는 바람, 우주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바다 등은 그의 시의 영원한 원천이었다. 그는 자연을 무한히 또한 쉬지 않고 찬양한다. 현대시의 조류가 세계와 자연을 멸시하고 저주하는 경향과는 극히 대조되는 태도이다. 그러나 시인 생-존 페르스는 자연을 그리는 데 있어서 서정(抒情)이나 감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에 대한 깊고 넓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구성할 뿐 아니라 자연의 현상과 힘을 인간의 역사와 운명, 인류의 문화와 문명과의 관계에서 다룬 점에 그의 작품의 깊은 뜻이 있다. 또한 언어와 리듬의 장중함, 다채로움, 풍부함, 다양한 이미지와 불가해(不可解)한 상징이 곁들어 그의 작품의 위대함과 신비함과 또한 난해함을 이루고 있다.   종소리 / 피에르 르베르디       모든 것이 꺼졌다 바람이 노래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나무들이 몸을 떤다 동물들이 죽었다 이제 아무도 없다      보라 별들은 반짝임을 멈추었다       지구도 더 돌지 않는다 머리 하나가 숙여졌다       머리카락으로 밤을 쓸면서 서 있는 최후의 종탑은       자정을 친다     서로 가슴을 터놓고 / 피에르 르베르디       드디어 나는 여기 서 있다 나는 그 곳을 지나왔다 누군가 지금 또한 그 곳을 지나간다 내가 그랬듯이 어디를 가는지 모르면서   나는 떨고 있었다 깊은 방 속에 벽은 캄캄했다 그 벽도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나는 이 문지방을 넘어 올 수 있었던가   소리칠 수도 있으리라 아무도 듣지 않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의 망혼(亡魂)을 만났다 망혼은 너 자신보다 온화하였다 전날에는 방 한 구석에서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죽음이 너에게 이 평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너는 아직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너를 두고 떠나려 한다   한 줄기 바람이라도 불어 온다면 바깥 세상을 우리들이 아직도 분명히 볼 수 있게 해 준다면 숨이 막힌다 천정이 내 머리를 누르고 나를 떠밀어 낸다 어디에 몸을 둘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내게는 죽을 자리도 변변히 없다 저 멀리 내게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는 어디로 가나 나와 나의 그림자, 우리는 둘뿐이다 밤이 내린다.     한데서 / 피에르 르베르디      나는 아마 열쇠를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모 두들 나를 둘러싸고 웃으며 각자 자기 목에 건 큼직한 열 쇠를 내게 보여 준다.   나만이 어디라도 들어가자면 가져야 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유일한 존재, 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닫 혀진 문들은 거리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아무도 없다. 나는 모든 문을 두드리리라.   욕설이 창문들에게서 터져 나오고 나는 거기서 떠나 간다.   그러자 나는 이 거리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에 강 과 숲 가장자리 사이에 문이 하나 있는 것을 찾아 냈다. 허술한 살문으로 자물쇠도 없다. 나는 그 문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서 창문들은 없지만 넓은 커튼이 드리운 밤 아래서 그리고 나를 지켜 주는 숲과 강 사이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피에르 르베르디(1889~1960): 한때 초현실주의 대장인 브르통, 수포, 아라공 등이 한결같이 당대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부른 르베르디는 한동안 잊혀져 있었으나 현대시의 큰 조류가 허무-부재(不在)-고뇌를 주제로 함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으며 현대시의 선구자로 부각되었다.  피에르 르베르디는 프랑스 남쪽 지방 나르본느에서 태어나서 소년 시절을 태양이 빛나고 샘물이 노래하는 야생의 자연 가운데서 지냈고 투르즈와 나르보느의 중고등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1907년에 이 지방에서 일어난 포도 재배 노동자들의 폭동은 그의 아버지의 포도밭을 망쳐 버렸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군경과의 유혈 사태는 소년 르베르디에게 큰 충격을 주어 현실 사회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갖게 했다고 한다.  돌과 나무를 깎아 조각을 하며 생활하고 문학과 학문을 좋아하던 부친의 권고와 격려를 받아 그는 문필가로 살기 위해 1910년 파리로 올라왔다.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에 자리를 잡고, 생활을 위해 인쇄소의 교정일이나 직공의 밤일을 하여 가며 남몰래 열심히 시를 썼다. 가난과 고독과 고뇌 속에서 시만이 그를 살게 하는 유일의 것이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는 지원병으로 참전하고 돌아와 소위 입체파(立體派)의 예술가로서 잡지 을 창간하여 약 1년 반 동안 전위 예술을 위해 애쓰기도 하였다. 이 동안에도 계속 시를 써 오며 1915년에는 를 비롯 등의 시집을 연속적으로 내놓아 입체파 시인 혹은 초현실파 또는 서정 시인이란 평을 받았다.  그는 원래 극히 개성적이고 고독한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남에게 알리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비록 그가 전위파의 예술가 브라크, 피카소, 아폴리네르 등과 교류가 있었다고 하나 누구도 그의 진정한 심중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누룰 수 없는 고독감과 인생과 현실에 대한 허무와 위화감으로 고민했으며 시를 이러한 고뇌와 불안을 극복하는 구제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하여 1923년 그는 종교적 목적이라기보다 세속으로부터의 초탈과 진실에 대한 갈구로, 유명한 솔레슴 수도원 근처로 은거하였다. 이 때부터 1960년 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여기서 궁핍과 고독와 명상의 생활을 했다. 그의 후기에 속하는 중요한 시와 산문을 수록한 , 이 있으며 , 는 그의 정신적 문학적 자서선이다.    그의 시는 당시의 사상계와 문단을 지배하던 객관주의-자연주의-물질주의에 근본적으로 대치한 것으로 감각이나 통속적인 관념으로 그리는 자연이나 현실이 아니라 사물과 현상 배후에 있는 진정한 실재, 순수한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또한 인간이나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적인 문제보다도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인간의 고독과 허무와 고뇌의 상황과 그 감정을 상징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뜻에서 그의 시는 부재와 허무에 대하여 명상하는 현대 실존주의 파 시에 30년이나 앞섰던 것이다.  그의 언어는 혼자서 조용하게 고백하는 말이며, 그의 어조는 낮고 단조로우며 모든 화려한 음이나 이미지를 고의로 피하고 있다. 또한 그가 그리는 상황은 모든 사물이 정지되고 침묵이 지배하는 세계, 이상한 고뇌의 빛이 감도는 한 폭의 정물화 같은 것이다.  그의 시가 가진 이러한 정신성과 단순성은 그에게 시인으로서의 큰 영광을 주진 않았으나 그 깊은 내면성과 순수성은 현대시의 가장 중요한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희(舞姬) / 쟝 콕토      게는 발 끝으로 걸어 나온다 두 팔로 꽃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귀 밑까지 찢어진 듯한 웃음을 짓는다.  오페라의 무희는 꼭 게 모양을 닮아 색칠한 무대 뒤에서 두 팔로 원을 그리며 나온다.     너의 웃음은 / 쟝 콕토    장미꽃 잎의 가장자리처럼 위로 잦혀진 네 미소는 너의 변신(變身)에 원망스럽던 내 심사를 달래 준다. 너는 잠이 깨어 이제는 꿈은 잊어버렸다. 나는 또다시 너의 나무에 매어진 몸이 된다. 너는 제 작은 힘을 다하여 내 몸을 얼싸안는다. 우리는 어째서 나무가 되지 않는가, 한 껍질 한 체온(體溫), 한 빛깔의 나무가, 그리고 우리들의 입맞춤이 그 나무의 유일의 꽃이 되지 않는가     나의 시풍(詩風)이--- / 쟝 콕토   이 시집의 시풍이 전과 다르다 해도 오호라,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 나는 항상 시를 기다리기 힘들어 그저 오는 것을 붙잡는다.   독자여, 뮤즈 시신(詩神)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같아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를 무대로 삼아 움직이는 저들의 깊은 책략을 나로서는 추측할 수가 없다.   나는 저들이 내 머리 속에서 춤추며 맺었다 풀었다 혹은 중단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저들의 법을 쫓는 길 외에 별다른 무모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   쟝 콕토(1889~1963): 나의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가 그립습니다,  경쾌하고 신기하고 때로는 신비하기까지도 한 시나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도 하고 한편 즐겁게도 한 쟝 콕토는 한때는 20세기 초반 문단의 총아로, 유럽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이나 우리 나라 독자에게도 친숙한 작가이다. 특히 그는 영화 , , 등의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파리의 명문 가정 태생으로, 조숙하여 어린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20세 전후에 이미 세 권의 시집을 내어 문단과 일반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조숙할 뿐 아니라 실로 다재다능하여 문필뿐만 아니라 미술-조각-연극-영화-발레 등 열 손가락에 이르는 예술 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했고, 그의 작품들은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되었고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재능과 취미는 다방면에 걸쳤으나 본령은 어디까지나 시(詩)였다. 그가 손을 덴 모든 예술 양식은 그의 중심 사상인 시 정신의 표현 수단이라고 그 자신이 말해 왔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시집으로 , 등을 발표하고, 이 시기 후에 그는 상당히 긴 공백 기간을 이용하여 소설-수필-연극-영화-데생 등에 몰두하였다. 다방면에 걸친 마술사 같은 그의 재간은 실로 종횡무진하여 전기의 활동 이외에도 교회의 내부 장식, 색종이로 붙인 회화, 러시아 발레에서 샤넬의 의상 고안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1941년 다시 시단으로 돌아와 등의 시집이 발표되었다. 그의 시풍은 시집마다 경향을 달리하여 각각 전위적, 미래적, 초현실적, 환상적, 주지적, 고전적 등등의 평을 받았으나. 본인은 시에 필요한 것은 시 정신이지 유파(流派)가 아니라고 응수했다. 그런데 라는 시집은 이상하게도 죽음의 찬가이다. 콕토는 60이 훨씬 넘어서도 그의 정신의 젊음과 시 정신은 변치 않았다. 새로운 것, 이상한 것, 마적(魔的)인 것에 대한 추구는 계속 각방면에서 추구되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좀더 평온해지고, 좀더 신비로운 것으로 기울어진 점이다. 이 시기의 시집으로서는 이 있다. 이 유행과 신기(新奇)의 추구자는 1955년 프랑스 문예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어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의 여러 방면에 걸친 많은 작품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것이 망각의 세계에 묻히고 말았다. 100여 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10여 편의 작품 또는 제작이 그의 걸작으로 인정되고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상당한 일이다.  다재다능하고 카멜레온같이 변화무쌍한 그는 당대에 유례없는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경박-피상은 물론, 앙드레 브르통 같은 시인은 그를 한때 사기꾼으로 혹평하였다. 그러나 차츰 그의 가치를 공정하게 인정하고 그의 독창적인 위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생겼다. 즉 피상적인 허구와 단순한 말장난으로 보이는 많은 그의 작품의 표면 뒤에 진정한 시인, 날카로은 지성의 시인을 발견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이 예술의 곡예사가 사실은 늘 고독과 허무와 죽음의 깊은 늪을 보아 온 심각한 작가라는 것이 차츰 알려지게 되었다. 시인이란 그가 말한 대로 "참다운 시인은 죽은 사람과 같아 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가 진실이었는지 모른다.  '지붕 위의 황소'라는 카바레의 주인에서부터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짧으나마 경건한 카톨릭 신자가 되기도 한 콕토는 실로 복잡하고 모순되고 항상 변하고 알 수 없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 자신도 자신을 몰랐는지 혹은 숨겼는지 모른다. "나는 항상 진리를 말하는 허위이다"라고도 했고, 또 "나는 낙관적인 비관론자이다"라고도 했으니까---.   확신 / 폴 엘뤼아르       내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은 그대의 말을 더욱 잘 듣기 위함이며 내가 그대의 말을 들으면 나는 확실히 깨닫는다   그대가 짓는 미소는 나를 더욱 차지하기 위함이며 그대가 미소 지을 때 나는 온 세계를 본다   내가 그대를 끌어안음은 나를 유지하기 위함이며 우리들이 살면 모든 것이 기쁨이리라   내가 그대를 떠나면 우리는 서로 기억할 것이며 서로 헤어짐으로써 우리는 다시 만나리라    *이 세상의 많은 사랑의 시 가운데서도 이렇게 다정하며 자연스럽고 뜻깊은 시는 드물다. 마치 사랑하면 이이렇게 된다는 것을 열거라도 하는 것 같다. "서로 헤어짐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리라"는 구절은 확신적이며 인상적이다. 사실 시인으로서 엘뤼아르의 근원적 감정은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랑의 시인으로 출발했고 또 끝냈다. 그 사랑은 남녀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은 물론 남녀의 사랑이었다. 실제로 그의 생애는 개인적인 사랑의 역사, 여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사건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912년~1930년 '갈라'와의 만남과 헤어짐, 뉘슈와의 만남, 1946년 이 여인의 돌연한 죽음과 그 이후 몇 해 동안의 위기, 1949년 도미니크를 만남으로써 생의 회복 등이 그것이다. 엘뤼아르는 이 사랑을 통해서 세상을 보았고 사랑을 모델로 우주를 만들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여성은 시인과 우주의 매개체이었으며 양자를 잇는 교량이었다. "나는 너를 통해서 이 세상이 옳다고 했다" 고 그는 노래 했다. 레지스탕스가 낳은 걸작시의 하나이며 엘뤼아르의 이름을 세계에 유명하게 한 시 "자유"도 그 자신의 술회에 의하면 처음에는 한 여성에 대한 사무치는 사랑으로 출발하였지만 차츰 써 가다 보니 문제는 애인의 이름을 쓰는 한 남자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억압되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즉 자유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 가담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랑의 차원을 개인적인 지평에서 모든 사람의 지평으로 확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사랑의 시와 정치적 시와의 사이에는 영감이나 근원-어조에 별 차이가 없다.  그의 시는 시인의 호흡같이 자연스럽고 그의 육체와 마음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의 말은 애써 찾아낸다든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있는 그대로를 노력하는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어의 음악성이나 시구(詩句)의 리듬을 잃지 않는 점이 그의 시를 고전적으로 평가받게 하는 이유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 폴 엘뤼아르    입술엔 가벼운 실과를 물고 몸은 가지각색의 꽃으로 치장하고 태양의 팔에 안겨 빛나며 낯익은 새 한 마리에 행복하며 빗물 한 방울에 황홀해하는 아침 하늘보다 더 아름다운 정숙한 그녀   나는 정원을 말하고 있는데 꿈을 꾸는 모양이다.   그러나 분명 나는 사랑하나 보다     그리고 하나의 미소 / 폴 엘뤼아르      절대로 완전한 밤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오, 내가 말하거니와 내가 확언하거니와 슬픔의 끝에는 항상 열려진 창문이 빛이 비치는 창문이 있소 항상 눈 뜨고 있는 꿈이 있고 이루어질 욕망 채워질 주림 너그러운 마음 내민 손, 벌려진 손 지켜보는 눈 한 인생, 서로 나누어 살 인생이 있는 법이오.     올바른 정의 / 폴 엘뤼아르      포도로 술을 만들고 석탄으로 불을 만들고 입맞춤으로 사람을 만드는 일 이것은 인간의 따뜻한 법칙이다   전쟁과 빈곤 속에서도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순결히 몸을 지키는 일 이것은 인간의 힘겨운 법칙이다   물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을 형제로 변하게 하는 일 이것은 인간의 아름다운 법칙이다   어린애의 가슴 속으로부터 최고의 이성(理性)에 이르기까지 항상 완성시켜 가는 오래고도 새로운 법칙이다.     야간 통행 금지 / 폴 엘뤼아르     문은 감시되어 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리들은 갇혀 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도로는 막혀 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도시는 무릎을 꿇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도시는 배가 고프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리는 무장 해제되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밤이 되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리들은 사랑을 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 이 우아하면서 유머러스한 시는 제 2차 대전 중 수만 수십 만의 프랑스 인이 그의 장시 "자유" 다음으로 즐겨 부른 노래다. 이러한 시로 그는 아라공과 더불어 민중 시인이 되었으며 그것은 그의 희망이었다. 엘뤼아르는 이미 "이미 오늘날 시인의 고독이란 무너져 버렸다. 오늘날 시인은 이미 사람들 사이의 사람이다. 그들은 형체를 가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그게 어쨌단 말인가"란 야유적이며 반항적인 그리고도 낙천적인 말투에 묘미가 있다.      폴 엘뤼아르(1895~1952): 사랑의 시인, 혹은 정치적 시인이란 평을 받는 폴 엘뤼아르는 20세기 프랑스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파리 북쪽 교외에 있는 노동자의 거리 생-드니에서 출생하였으나 아버지는 회계사이며 어머니는 양재사인 비교적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여 중고등 학교 시절 페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해야 했고, 1911년에서 1913년까지 스위스의 다보스라는 곳에 있는 사나토륨(요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의 작품을 읽게 되고 특히 미국 시인 휘트만의 시를 좋아하며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소년 엘뤼아르는 여기에서 러시아 태생의 한 소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결실되어 4년 뒤인 1917년 드디어 결혼하게 되는데 후일 그가 애칭으로 '갈라'라고 부른 여인이다. "그녀는 순결한 눈을 녹게 하고 풀 속에서 꽃을 태어나게 한 유일의 존재이다"라고 그는 찬양했다.  이 보다 앞서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엘뤼아르는 요양원에서 나오자마자 간호병으로 전선에 동원되었다. 그는 야전 병원에서 전쟁의 참상을 맛보았고 이는 그의 마음 속에 큰 충격을 주어 전시 중 병원에서 쓴 "평화를 위한 시"외 1편의 선언문 같은 시들을 자비 출판하였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한때 '차라'와 당시 유행하던 다다이즘 운동을 벌였고 후에는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데스노스-아라공과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요하고 열렬한 멤버가 되었다. 엘뤼아르와 초현실주의와의 관계는 밀접할 뿐 아니라. 이 새로운 문학 정신이 그의 시에 준 영향은 깊다. 1920년에서 1936년까지 그는 브르통이나 르네 샤르와 공동으로 여러 권의 초현실주의적인 시집과 평론을 펴냈을 뿐 아니라 "죽지 않으므로 죽는 일(1924)" 및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통의 수도(1926)" "사랑, 시(1929)", "직접적인 생(1932)" "모든 사람의 장미(1934)" 등 그의 중요한 시 작품들은 모두 직접 간접으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시집 로 그이 초현실주의 시대는 끝난다. 이 동안에 엘뤼아르는 첫 부인 갈라와 헤어지고 제2의 부인 마리아 벤즈, 속칭 뉘슈와 결혼한다. 뉘슈와의 사랑과 애정은 그의 첫사랑인 갈라에 못지않게 짙고 깊어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낳게 하였으며, 그녀의 영향은 그녀가 죽은(1946) 뒤에도 계속되었다.  1936년을 전후하여 그의 시는 점차 사회적-정치적 관심을 보이고 인류와 정의를 위한 연대 운동에 가담한다. "지금의 모든 시인은 그가 다른 사람의 생(生)에, 공동의 생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주장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는 때가 왔다."라고 그는 썼다.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그는 공화파에 가담하였고 "게르니카의 승리(1938)"를 발표하였다. 이 도안 인간애와 자유를 노래한 시점에 < 볼 것을 준다(1939)>등이 있다.  1940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한때 사랑과 꿈의 시인이었던 엘뤼아르는 자유와 조국을 위한 투사가 되었다. 이로부터 1944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독(抗獨) 비밀 저항 운동에 가담하여 싸웠고 작가 국민 위원회의 북부 책임자가 되어 비밀 출판물인 를 간행하여 자유와 조국 해방을 위하여 시를 통해 투쟁하였다. 이 동안에 그는 시집으로 유명한 그의 시 "자유"가 맨첫머리에 실려있는 , < 독일인의 집합지에서(1944)> 등이 있다. 1942년에는 영국의 항공 편대가 수천 부의 그의 을 독일군 점령 아래 싸우는 프랑스의 마키자르(항독투사) 위에 뿌렸다. 시가 무기가 된 것이다.  대전이 끝나자 그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대감을 고취하고 계속 개성적이며 서정적이고, 그의 시의 주재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과 죽음-평화-자유이었다.  1946년 그가 강연 여행으로 스위스에 있을 때 아내 뉘슈의 죽음의 통지를 받았다. 그는 한때 절망과 공허에 빠져 약 1년 동안 실어증에 빠져 있었으나 인류에 대한 신뢰와 사랑과 희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였다. 1949년 멕시코의 세계 평화 회의에 참석하였다가 거기서 다시 도미니크라는 여성을 만나 제 3의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 재혼을 기하여 엘뤼아르는 이라는 시집(사후에 출판됨)을 써서 생의 기쁨을 되찾은 행복을 노래했다. 그러나 1952년 엘뤼아르는 과로와 협심증을 일으켜 급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전세계의 지식인과 문인의 애도를 받으며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에 묻히었다.   엘사의 눈 / 루이 아라공      너의 눈은 한없이 깊은 심연(深淵), 내가 마시려 몸을 굽 히면 이 세상 모든 태양들이 그 속에 와 비추고 모든 절망한 사람들이 죽기 위해 그 속에 몸을 던지는 것 을 나는 보았다 너의 눈은 한없이 깊어 나는 거기서 기억을 상실한다   네 눈은 새들 그림자에 거칠어진 대양(大洋) 짐짓 날씨가 개면 네 눈도 변한다 여름은 천사들의 앞치마를 잘라 구름을 만들고 밀밭 위에 보이는 하늘만큼 푸른 것은 또 없다   바람이 불어 창공 위의 슬픔들을 날려 버려도 소용 없어 눈물로 빛날 때 네 눈은 창공보다 더 맑아 비 내린 뒤의 하늘도 네 눈을 시새운다 깨진 유리의 틈살보다 더 푸른 빛은 없다   칠고(七苦)의 어머니, 아, 젖은 빛이여 일곱 개의 검(劍)이 오색의 프리즘을 꿰뚫었다. 눈물 속에 돋는 해는 더욱 감동적이며 검은 점이 박힌 홍채(紅彩)는 상복(喪服)을 입어 더욱 푸 르다   네 눈은 불행 속에 이중(二重)의 돌파구를 열고 이를 통하여 동방 박사의 기적이 또 다시 일어난다 세 박사가 모두 뛰는 가슴 누르고 말 구유에 걸린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보았을 때의 그 기적이   5월에 이 세상 모든 노래, 모든 탄식을 부르기 위한 말에 단 하나의 입이면 족하다 수백 만의 별을 담기엔 너무나 좁은 창공 성신(星辰)들에게는 너의 눈이 그리고 저들의 숨은 쌍동이 별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그림에 도취한 어린애의 벌어진 눈도 너의 눈보다는 크지 못해 나는 네가 큰 눈을 뜰 때 혹시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 차라리 소나기가 야생의 꽃을 벌린다 하리라   네 눈은 벌레들이 격렬한 사랑을 벌이는 이 라벤더 꽃 그 속엔 번갯불이 숨어 있는가 나는 많은 유성(流星)의 그물에 걸렸다. 8월의 한중턱 바다에서 죽는 한 수부(水夫)처럼   나는 우라늄 광석에서 이 라디움을 뽑아 냈다 나는 이 금단(禁斷)의 불에 손가락을 태웠다 아, 백 번도 넘게 찾았다 되잃은 낙원이여 네 눈은 나의 페루(Perou)나의 골콩드(Golconde) 나의 인도 제국(帝國)   어느 날 저녁 세계는 해적(海賊)들이 불태운 암초에 걸려 깨졌다. 그러나 나는 바다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엘사의 눈 엘사의 눈 엘사의 눈   *아라공에 있어서 그의 부인이 된 '엘사 트리올레'와의 만남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남과 같이 그의 생에 일대 전기(轉機)를 가져다주었다. 엘라 트리올레는 러시아 여자로 소련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처제였으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지성적인 여성이었다. 1928년 11월 4일 아라공은 이 여성을 몽파르나스의 기차 정거장 같이 넓은 카페 쿠폴에서 마야코프스키와 함께 처음 만났다. 그 다음 날 아라공은 같은 장소에서 엘사와 단 둘이서 만났으며 그 후 두 사람은 엘사가 1970년 죽기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 엘사는 아라공의 문학의 원천이었으며 그의 시의 존재 이유였으며 그의 정신적인 이상이었다.  사실 엘사를 만나기 2 개월 전만 하더라도 아라공은 허무주의에 빠져 베니스에서 자살하려고 계획했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고뇌의 교향악을 가지고 다녔다. 런던의 태양은 안개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파리의 마로니에는 얼마 안 되어 누래졌다. 나는 베니스에서 죽고자 한다.   이 때 엘사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또한 그녀를 위하여 그는 다시 살고 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엘사에 대한 그의 사랑과 경애와 감격은 엘사가 죽은 뒤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그의 시 가운데는 엘사에 주는 노래, 가요, 송가 등이 수없이 많은데 "엘사의 눈"(이는 그의 두번 째 시집의 이름이기도 하다)은 그 중의 하나로 아라공의 엘사에 대한 사랑과 경이(驚異)를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이다.     (19)40년의 리처드 2세 / 루이 아라공   나의 조국은 사공들이 버리고 간 거룻배처럼 처량하며 나는 불행보다 더 불행해져 자기 슬픔의 왕으로 남아 있던 저 임금 같아   산다는 건 한낱 책략일 뿐 바람도 흐르는 눈물 말릴 줄 모르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미워해야 하며 이미 내게 없는 것도 그들에게 내주어라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심장은 뛰지 않을지 모르며 핏줄에는 찬 피가 흐를지 모른다 도적들의 놀음놀이에서는 이미 2 더하기 2는 4가 아니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해가 죽으나 다시 사나 하늘은 그 빛을 잃었다 나의 젊은 시절의 다정한 파리여 케-오-플뢰르의 봄이여 안녕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숲과 연못들을 멀리하라 조잘대는 새들이여 입을 다물라 너희들의 노래는 격리(隔離) 당했다 새잡이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고난의 시대가 있는 법이니 이럴 때에 쟌느가 보쿨뢰르에 왔다 아 프랑스를 난도질하라 그 날도 이렇게 창백한 날이었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리처드 2세"는 아라공이 1940년 9월에 쓴 단시이다. 1940년 프랑스 군이 허망하게 패배하고 독일군이 파리 시를 점령한 지 불과 2 개월, 잇단 충격으로 비탄에 빠진 아라공은 프랑스와 파리를 잃은 절망감과 슬픔을 리처드 2세의 고통과 불행에 견주고 있다. 리처드 2세는 14세기 영국에 실제 있었던 비운의 왕이나 아라공은 세익스피어의 동명(同名)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매 시절(詩節) 끝에 있는 후렴,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은 직접 세익스피어 희곡 제 4막 제 1장에서 옮긴 것이다. 이 장면에서 리처드 왕은 탄식한다. "그대는 나의 영광과 나라를 없앨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슬픔은 없앨 수 없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이로다" 또 독일군의 점령 아래 갇혀 살게 된 프랑스의 비참한 모습을 역시 국민과 신하들의 배신을 당하여 프린트 성 가운데 유폐된 리처드 2세의 신세에 비한 것이다.  아라공은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아이러니칼한 필치로 나치 지배하의 절망적인 생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새잡이꾼의 통치와 도적들의 '놀이'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자연도 피해야 하며 새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라공은 최후의 기적을 믿는다. 그는 마지막 시절(詩節)에서 한 줄기 희망을 건다. 프랑스를 구원한 오를레앙의처녀 쟌느 다르크가 보쿨뢰르에 나타났던 것도 프랑스가 가장 비참한 때가 아니었던가. 지금은 바로 그런 슬픈 때이다.   루이 아라공(1897~1982): 1897년에서부터 20세기 거의 전부를 살아오면서 60여 년의 작품 생활과 시-소설-에세이-예술 비펑-정치 논설 등 근 80권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그의 일생은 학실히 현대의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라공이 그의 정수(精髓)를 보이고 후세에 그의 이름을 길이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의 슬픔과 분노와 저항을 나타낸 시들과 또한 그의 아내이며 영원한 여성인 엘사(Elsa)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통하여 그의 프랑스에 대한 사랑과 자유와 희망을 노래한 10여 권의 시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라공은 실은 의학도였으나 청년 시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가담하여 핵심적 인물로 활약했고 이를 계기로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에 쓴 시를 모든 시집으로 과 이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현실적이며 전투적이었던 그는 환상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초현실주의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차츰 이와 결별한다. 1017년 발발한 러시아의 10월 혁명의 여파는 유럽에도 강하게 몰아쳐 아라공은 1927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고민의 돌파구에 지나지 않을 뿐 모든 것에 허무를 느끼고 생의 방향을 잃은 그는 한때 자살까지 기도하였다. 이 암담한 시기에 만난 것이 러시아 여인 엘사 트리올레였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결합되었는데 이후 엘사는 그의 생활과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라공이 시인으로서 특히 프랑스의 민중 시인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나타낸 것은 1940년을 전기로 한 그의 상황시(狀況詩)와 사랑의 시에서였다. 1940년 5월 그의 조국 프랑스는 썩은 집같이 무너졌다. 이 허망과 절망 속에서 그는 패배하고 점령당하고 자유를 잃은 프랑스의 설움과 분노와 희망을 노래로 부른 것이다. 아라공은 이 전쟁과 전후를 통하여 문필로써 항독(抗獨) 운동을 전개하며 "단장(斷腸)의 아픔(1941)>, , ,
30    프랑스 명시선 ( 2 ) 댓글:  조회:334  추천:0  2017-08-09
프랑스 명시선 ( 2 )   유쾌한 죽은 자(死者) / 샤를르 보들레르     달팽이 우굴대는 진흙 땅 속에 내 손으로 깊은 구멍을 파리라 그 곳에 내 늙은 뼈를 한가로이 눕히고 파도 아래 상어와 같이 망각 속에 잠을 자리라.   나는 유언과 묘석(墓石)을 싫어하나니 사람의 한 줄기 눈물을 청하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서 까마귀들을 불러 내 더러운 육체의 모든 끝에서 피를 빨게 하리라,   오, 땅의 벌레들아, 귀 없고 눈 없는 암흑의 친구들, 방탕의 철인(哲人)들, 부패의 자손들이여 보라, 그대들을 위하여 한 자유롭고 유쾌한 죽은 자가 보   리니.   주저 말고 나의 잔해(殘骸) 속에 파고들어가 죽은 자 가운데 죽고 혼 없는 이 늙은 몸에 말해 다오, 아직도 무슨 고통이 남아 있는지를.   가을의 노래 / 샤를르 보들레르   멀쟎아 우리들 잠기리 차디찬 어둠 속에 잘 가거라 너무나 짧았던 여름의 강렬한 빛이여! 벌써 들리나니 안 마당 깔림돌 위에 음울한 소리내며 떨어지는 나무 토막들.   가슴 속에 온통 겨울이 되살아오리니 분노, 증오, 전율, 공포, 강요된 고된 일 나의 심장은 북극 지옥에 매달린 태양처럼 붉게 얼어 붙은 한 덩어리 혈괴(血塊)에 불과하리니.   몸서리치며 귀기울리며 툭툭 떨어지는 장작 소리 사형대 세우는 울림이 이보다 더 무딘걸까 내 마음은 무거운 파성목(破城木)의 연타 아래 무너져내리는 성탑과도 같아.   단조롭게 부딪치는 소리에 흔들리며 듣나니 어디선가 서둘러 관 뚜껑에 못박는 소리 누굴 위하여? ---어제는 여름; 어제는 가을 이 신비의 소리는 마치 출발인 양 울리네     명상 / 샤를르 보들레르   아, 나의 고통아, 떠들지 마라 그리고 좀더 조용히 하라 네가 저녁을 원했다; 저녁이 내린다; 자 황혼이다; 어떤 사람에겐 안식을, 어떤 사람에겐 근심을 가져다주며.   인간의 천한 무리들이 쾌락이라는 사정 없는 사형 집행인의 채찍 아래 노예의 잔치로 후회를 거두러 가는 동안 나의 고통아, 손을 내게 다오; 이리로 가까이 오라. 저들을 멀리하고 보라, 저 하늘의 난간 밖으로 해바랜 옷을 입은, 고인(故人)이 된 세월들이 몸을 굽히는   모습을 웃음 띠운 회한이 깊은 물 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빈사(瀕死)의 석양이 다리의 아치 아래 잠드는 것을 그리고 동쪽에서 긴 수의(壽衣)가 옷자락을 끌며 오듯 들어라, 정다운 고통아, 걸어오는 따사로운 밤의 발소리를.     취하시오 / 샤를르 보들레르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대의 허리를 땅으 로 굽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일 한 과제이다. 쉬지 않고 취해야 한다. 무엇으로냐고? 술, 시, 혹은 도덕, 당신의 취함에 따라, 하여간 취하라. 그리하여 당신이 때로 고궁(古宮)의 계단이나 도랑의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당신 방의 삭막한 고독 속에서 취기 가 이미 줄었든가 아주 가 버린 상태에서 깨어난다면 물으 시오.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벽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 탄식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으시오.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벽시계는 대답하리다. "지금이 취할 시 간이다!" 당신이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 하시오; 쉬지 않고 취하시오! 술로,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따라."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 이 세상에는 그 시대나 사회의 목소리나 조류를 잘 대변하는 천재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극히 개성적이며 특이한 천재가 있어서 당대에는 이해되지 않으나 후세에 가서야 이해되고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보들레르는 후자의 경우이다. 그가 이해되고, 진가가 알려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고 많은 오해와 비난과 박해 뒤에 비로소 근대시의 원조(元祖)로 추앙되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넓은 이마, 빛나는 눈, 꼭 다문 입은 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참고 이기려는 굳은 의지를 보는 듯 하다. 46세를 일기로 한 이 시인의 생애는 시종 비참과 불행의 늪을 헤매었다고 볼 수 있고 그의 시들도 우울과 슬픔과 절망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보들레르는 7살 때 늙은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의 젊은 어머니는 1년도 못 되어 군인인 오피크라는 사람에게 개가하였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남달리 죽은 아버지를 사랑했던 소년은 의붓아버지인 이 장군과 뜻이 맞지 않았다. 질서와 규율을 숭상하는 아버지는 이 반항아를 정상적으로 교육시켜 훌륭한 외교관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유명한 파리의 루이 르 그랑 중고등학교에 입학시켜 성적도 좋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년은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이 학교를 퇴학해 버렸다. 개인 교사의 지도 아래 바카로레아(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통과, 법과 대학에 등록까지 해 주었으나 그는 학교에 나가는 일 없이 파리의 라킨 구역을 배회하며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즐겼다.  이를 보다못해 장군은 묘안 하나를 짜냈다. 아들의 파리에서 무궤도한 생활 태도를 바꾸기 위해 상당 기간 동안 긴 항해 여행을 시키는 일이었다. 이로써 파리의 병적 생활을 청산하고 아울러 항해를 함으로써 호연지기를 기르고 외국의 풍물에도 접하게 하자는 뜻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보들레르는 1841년 5월 9일 보르도를 떠나 캘커타로 향하는 배를 탄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도중에 배는 큰 풍랑을 만나 동인도양의 모리스 섬에 기착하게 되었고 보들레르는 더 이상 항해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그해 11월 4일 프랑스로 오는 배를 타고 되돌아오게 되는데 이로써 일대 여행 계획은 좌절되었으나 이 수개월 동안의 항해와 남국 일대 열대 지방의 체재는 그에게 이국 풍물과 정서를 담은 많은 시를 남기게 하였다.   항해에서 돌아온 보들레르는 건전하고 성실해진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욱 반사회적이며 부도덕하게 되었다. 21세의 성년이 된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하여 당시로는 막대한 75,000 프랑의 유산을 받게 되자 그가 동경하던 댄디(dandy,멋장이)의 호화 생활을 즐긴다. 유명한 피모당 호텔에 묵으면서 귀족 같은 시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음주-마약 복용 등을 일삼아 급기야는 성병-두뇌 동맥의 결함증이 생겨나고, 혼혈의 정부 쟌느 뒤발과의 파란 많은 치정 생활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차츰 마멸시킨다.  이에 당황한 그의 의부는 법정에 제소하여 그를 금치산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 결과 보들레르의 생활은 완전히 궁핍에 빠졌고, 이 고고한 시인은 병과 가난과 싸우며 미술 비평-음악론-번역 등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하여 가며 자존심을 달랬다.  36세 때에 이라는 시집을 출판하였다. 당시 이미 문단의 대가인 빅토르 위고는 이 시집을 새로운 전율을 가져왔다고 격찬했는데, 경찰은 풍속 문란이라는 죄목으로 3백 프랑의 벌금과 6편의 시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그의 이름은 유명해졌으나 심한 생활고와 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깊어만 갔다. 40세에 이미 그는 심신이 쇠잔한 노인이 되었다. 미국의 괴기 작가 에드가 알렌 포우의 작품 번역 등에 몰두하다 1864년 벨기에의 브뤼셀로 간다. 거기서 조용한 생활을 하며 문학 강의도 하고 자기 작품의 전집을 내기 위한 정리 작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신경 질환으로 쓰러지게 되어 급거 파리로 옮겨졌으나 전신 마비와 실어증으로 약 1년 동안 신음하다 1867년 여름 외로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생을 끝냈다.    보들레르는 그의 단 하나의 시집, 으로 존재되고 기억된다. 이 시집은 출판되자 풍속 문란이란 죄명으로 기소 처벌되고 당시 비평계의 권위자인 브륀티에르는 "이 시집에서는 부도덕과 광기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시집은 후세에 전세계에서 읽혀지고 감동을 주어 시인들의 성전(聖典)이 되었다.  무엇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고 공감하고 혹은 비난 혹은 감격하는가? 그것은 그가 근대 문학사상 처음으로 자기의 고백을 통하여 인간의 죄악, 비참, 슬픔, 외로움, 소망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나타내고 고발한 까닭이 아닐까? 그는 인간이 쓴 가면과 가식을 벗겨 버리고 적나나하게 인간 상황과 그 내면 세계를 깊이 파헤치고 조명한 까닭이 아닐까? 이런 뜻에서 그의 을 단테의 에 비하는 사람도 있다. 단테가 내세의 지옥과 연옥을 탐색한 것과 같이, 보들레르는 인간 심중의 지옥으로 사람을 인도한다는 뜻에서이다. 하여튼 그는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사하기 위하여 인간의 숨겨진 심층과 치부, 사회 질서와 도덕의 터부를 파헤쳤다. 많은 시인묵객들이 그들의 시상(詩想)을 자연이나 사랑-예술의 꽃동산에서 찾을 때 보들레르는 악의 늪에서 미를 얻으려고 했고 현실이라는 거름통에서 금을 캐내려고 했다. 이러한 시인의 기도는 당시의 사회와 시단에서는 가히 혁명적이며 충격적이며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 시집 가운데 타락하고 추잡하고 절망적인 인간 상황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외롭고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허무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하는 노력, 동물로 떨어지려는 욕망에 항거하여 이상을 향해 올라가려는 인간의 본질적 갈구가 일면 청순한 샘물같이 흐르고 있다.  보들레르는 그의 난맥과도 같고 오욕에 찬 생활 가운데서도 일생 높은 기품을 잃지 않았고, 영혼의 순결과 고매한 정신적 이상을 추구한 노력은 비장한 바가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 심정, 종교, 분노를, 그는 시인으로서 그의 독특한 감성과 풍부한 상상과 암시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가히 마술적이라고 할 언어와 음률로 새로운 세계, 신비로운 분위기, 전율적인 감각을 창조함으로써 그는 프랑스 시 가운데 깊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이 점이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찾고 공감하게 하는 까닭이 아닌가 생각한다.  은 초판에는 101편의 시가 들어 있었으나 후에는 151편으로 늘어났다. 이 시집은 6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 우수와 이상, 2. 파리 풍경, 3. 술, 4. 악의 꽃, 5. 반항, 6. 죽음 등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인은 이 시집을 자신의 시학-철학-종교를 담는 하나의 체계적인 건축물을 구상한 듯 하나 그렇게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이지는 않다. 에서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가지각색의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이질적인 시들이 섞여 있다.   앙트완느와 크레오파트르 / 에레미아     둘은 함께 높은 망루에서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집트는 숨막히는 하늘 아래 잠들고 나일 강은 검은 삼각주를 쪼개 가며 뷰바스트 혹은 사이스를 향해 기름 같은 물결을 굴려    간다   이 로마인은 이제 어린애를 잠재우는 한낱 포로 병사 그가 두 손으로 포옹한 요염한 육체가 사랑의 승리자인 그의 가슴 위에 휘어져 쓰러짐을 무거운 갑옷 아래서도 느끼었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을 돌려 그녀는 입술과 맑은 눈동자를 강렬한 향수에 도취된 남자에게 내맡겼다.   여인 위에 몸을 굽힌 열에 뜬 이 통수(統帥)는 금점(金點)들이 별같이 박힌 그녀의 두 큰 눈동자 속에 망망한 바다와 그 물 위를 달아나는 로마의 병선(兵船)들   을 보았다.   *앙트완느는 유명한 로마의 장군 아토니우스의 불어 표기다. 시이저가 죽은 뒤 그는 옥타비우스와 함께 로마 제국을 삼등분하였다. 이 때 앙트완느는 도양 지방(지금의 중동)을 맡고 옥타비우스의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동방으로 간 앙트완느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에게 매혹되어 여왕의 야심에 좇아 이집트를 중심으로 동방 제국을 세우려 하였다. 이는 로마의 국익에 배반되는 일이므로 옥타비우스는 군선을 이끌고 동방 원정에 나서 악티움 해전에서 앙트완느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 함대를 궤멸시킨다.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에 포위된 앙트완느는 자살하고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 물리게 하여 자결한다는 역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 이 시는 다가오는 악티음 해전의 전야(前夜)를 나타내고 있다. 앙트완느 통수와 클레오파트라여왕은 지금 사랑의 절정에 있으나 그들의 앞날에 대하여 불안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로마의 통수는 사랑하는 여왕의 눈동자, 금점이 가득히 박힌 눈 속에서 망망한 바다 위를 도주하는 무수한 자신의 군선들을 봄으로써 자신의 패망과 사랑의 비극적 종말을 예견하고 있다.     정복자들 / 에레디아   거대한 매가 자라난 소굴을 떠나 날듯 이제 잔병(殘兵)들과 명장(名將)들은 도도하나 비참한 생   활에 지쳐 영웅적이며 난폭한 꿈에 취하여 모게르의 팔로스*를 떠난다.   이들은 지팡고* 나라의 아득한 광맥 속에서 익고 있는 신기한 금속을 정복하러 가는 길 등에서 부는 계절풍은 서방 세계의 신비로운 해안을 향해 그들의 범선 돛대를 휘게 한다.   매일 저녁, 웅대한 다음 날을 바라는 이들의 꿈은, 열대 바닷물의 인광(燐光)을 발하는 하늘색 물빛을 금빛 신기루로 변화시켰다;   혹은 흰 카라벨 범선의 뱃머리에 기대어 이들은 대양(大洋) 깊은 곳으로부터 미지의 하늘로 오르는 새로운 별들을 바라다보는 것이었다.   *팔로스: 콜롬버스는 1492년 그의 최초의 대륙 발견 항해를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모세르 근처의 항구 팔로스에서 떠났다. *지팡고: 일본에 대한 중국식 이름 Zippan Khou가 와전된 것.     호세-마리아 데 에레디아(1842~1905): 호세-마리 데 에레디아는 원래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레스의 후예로 스페인계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프랑스로 이주하여 상리스에서 중고등 학교를 마치고 파리에 올라와 고문서 대학(古文書大學)을 수료했다. 이때부터 시단의 고답파의 거장, 르콩트 드 릴르를 스승으로 또 친구로 삼고 그가 주제하는 문학 모임이나 그가 주관하는 잡지의 가장 열렬하고 성실한 지지자이며 협력자이었다. 또한 젊은 시인 앙리 드레니에의 장인(丈人)이 되기도 하였다.  고문서 학교를 나온 그는 유명한 아르스날 도서관에서 일하며 옛날의 기록, 고서(古書), 판화, 유물 등을 관리하며 그 가운데 고대의 이국에 대한 풍부한 시상(詩想)을 얻었다.  그는 극히 과작(寡作)의 시인으로 이따금 시 한 편씩을 잡지 등에 발표하였는데, 1893년 그가 51세 될 때 비로소 한 권의 시집으로 출판되었다. 이 시인의 시집은 이 한 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그의 사명과 명성은 이것만으로 족하였다. 라는 이름의 이 시집에는 118편의 소네트가 들어 있다. 내용은 고대 그리스-로마-동양-스페인-브르타뉴 지방 등의 역사와 인물-풍물들을 주제로 한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주제들을 거의 완벽한 기교와 회화적인 수법으로 고대와 이국적인 정취를 간결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아름다운 또는 극적인 장면을 그림과 조각과 같이 완전히 재현시켰다. 이러한그림과 조각의 시는 풍부한 음률과 깎고 다듬은 형식과 잘 조화되어 그의 시집은 단 한 권이나 프랑스 문학의 하나의 빛나는 보석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새들의 죽음 / 프랑스와 코페     저녁, 난롯가에 앉아 나는 참으로 여러 번 지금 숲속 어느 곳에 있을 어떤 새의 죽음을 생각했다. 지루한 겨울, 구슬픈 날이 계속되는 동안 가엾은 빈 새 둥지들, 내버려진 둥지들은 무쇠 잿빛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아, 얼마나 많은 새들이 겨울에 죽어갈 것인가! 그러나 오랑캐꽃 피는 계절이 돌아올 때 우리가 뛰어다닐 4월의 잔디 위에 새들의 가냘픈 뼈들은 볼 수 없으리라 새들은 죽기 위해 숨는 것일까?     향기 / 프랑스와 코페     향기의 쾌락! 그렇다, 모든 냄새는 마술사다. 내가 저녁때 뜨뜻해진 오렌지 껍질을 벗기면 나는 극장과 그 깊은 무대 장치를 상상한다; 내가 장작불을 지필 때면 나는 겨울 숲속에 사냥꾼들이 뿔나팔을 불며 멎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 악취나는 검은 아스팔트가 가마솥 주위에 내뿜는 연기 속을 지날 때 나는 마치 역청(瀝靑) 향기 나는 어느 부둣가에 서서 보라빛 바다의 금강석 물결 사이를 달려오는 흰 쌍돛배를 바라보는 착각이 든다.     영원히 / 프랑스와 코페     "영원히!"라고 그대는 말한다. 이마를 내 어깨 위에 대고, 그러나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다. 우리들 중 하나가 먼저 죽음에 붙잡혀 주목(朱木)이나 버드나무 아래 잠자러 갈 것이다.   부두를 한가로이 거니는 이 늙은 수부(水夫)는 수십 번 쌍돛배가 깃발로 장식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빼는 북쪽을 향해 떠났다. 그 후 감감 무소식, 배는 북극 얼음장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봄바람이 불면 우리 집 처마 끝에 철새들이 돌아왔다. 수십 년 동안을; 그러나 이번 여름, 둥지에는 그 제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의 애인이여, 그대는 내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이별을 생각한다. 어찌 죽을 입술 위에 "영원히"라는 말을 올리는 가?     프랑스와 코페(1842~1898) : 프랑스와 코페는 프랑스 서민의 시인, 대중적 시인으로 꼽히어 한때 그의 시는 프랑스 시의 본보기로 교과서에 실리고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특히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시인이다.  그는 파리 변두리 태생으로 거의 한 번도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진짜 파리지엥(Parisien)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생활고로 학교도 중단하고 작은 회사의 사무원, 관청의 말단 직원, 후에는 국회 상원의 도서관 사서, 프랑스 국립 극장의 문서 보관원 등으로 이라며 시와 연극, 소설 등을 썼다.  그도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파르나스(고답적) 풍의 시를 써 보았으나 차츰 자기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에 애정과 애착을 가지게 되어 그 후부터는 이들의 생활을 주제로 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는 시집 , 등에서 그 자신이나 서민들의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단순하고 평이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그의 시의 매력은 일상다반사를 보는 그의 우아하고 따스한 눈, 소위 친밀한 사실주의에 있다. 또한 때에 따라서는 신랄한 풍자 정신도 잊지 않는 골(Gaule) 정신에 있다.  따라서 그의 시는 가장 널리 읽혀지고 가장 광범한 독자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42세 때(1884)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된 것도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아나톨 프랑세즈는 그를 평하여 "코페는 참되고 자연스러운 시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독특한 시인이다. 그 까닭은 자연스러움은 예술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의 시는 통속시라는 평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진실되기 때문에 감동을 주었고 또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코페는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극작가-소설가로서도 유명했다. 그의 만년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 때는 프랑스 조국 연맹이라는 극우 단체에 가담하여 반(反) 드레프스 파로 싸웠다. 당시의 문인-지식인들 대부분이 드레프스 옹호파였으므로 이로 인해 그는 많은 비방과 오해를 받았다. 그의 최후의 해는 고통스러운 병으로 고생했으나 친구 쟝 리시팽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시키기 위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나가 투표에 참가한 우정 깊은 친구이기도 하였다. 그 후 몇 주일 후에 그는 파리의 자택에서 5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소네트 / 말라르메   순결하고 생기 넘치며 아름다운 오늘이야말로 그의 취한 날개를 한 번 쳐서 달아나지 못한 비상(飛翔)들의 투명한 얼음 덩어리가 흰 서리 아래 배회하는 이 얼어 붙고, 잊혀진 호수를 깨   뜨려 줄 것인가!   지난 날의 한 백조는 회상한다. 그가 바로 황량한 겨울의 우수(憂愁)가 찬란할 때 자기가 살아야 할 곳을 노래하지 않았기에 화려한 생물이지만 이 구속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 자임을.   그는 온 목을 흔들어 떨쳐 버릴 것이다. 공간이, 원치 않는 새에게 억지로 과하는 이 백색의 임   종의 고뇌는, 그러나 그의 날개를 붙잡는 대지에 대한 공포는 없앨 수   없다.   그는 순결한 빛이 이 장소에 부착시키는 환영(幻影)이   되어 백조는 무익한 유배 속에서 그가 스스로 감싸는 경멸의 차가운 꿈을 안고 적연부동(寂然不動)이다.   * 백조는 그 아름다운 자태와 흰 빛깔로 예부터 많은 전설을 낳게 했다. 특히 그 새가 죽기 전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이야기는 백조와 순수한 시인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생기게 하였다. 이 소네트는 백조를 빌어 말라르메 시인 자신의 고뇌와 심경을 읊은 것이다.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 중 언어와 음악성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아름다운 시일 뿐 아니라 그의 시풍(詩風)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시의 하나로 꼽힌다.    차가운 기운이 넘치는 청명한 겨울날, 우리 눈앞에는 흰 서리롸 얼음 덩어리가 배회하는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얼어 붙은 호수에는 백조 한 마리가 얼음에 갇혀 이를 벗어나려고 허우적거린다. 날개를 한 번 쳐서 천상(天上)으로 향하고 싶으나 이 구속에서 빠저나갈 희망이 없다. 또한 이미 여러 번 실패를 하였다. 그에게는 순결하고 고독한 이상만이 있을 뿐 현세나 현실과의 타협이 없기 때문이다. 현세(공간)가 그에게 부과하는 종말의 고뇌는 뿌리칠 수 있으나 결국 백조는 얼음의 호수 속에 하나의 하얀 환상이 되어 부동의 자세로 조용히 죽어 간다. 그의 마음 속에 현실과 자신에 대한 부정(否定)과 멸시를 품은 채---    이것이 이 시의 내용이며 개요이다. 의미상, 백조는 물론 시인 자신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말라르메가 자주 시적 무력감에 빠졌고 백조가 얼음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그 자신도 전혀 시를 쓰지 못하던 시기가 있어 자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순수하고 난삽한 시 정신은 백조와 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나 일반 독자나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고, 그의 생활도 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자연히 무익한 유배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유배를 죽어가는 백조와 같이 차가운 경멸감을 가지고 감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수시를 지향하는 말라르메는 이 시로 위와 같은 정경(情景)이나 시인의 심경-사상-도덕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상징-암시-연상을 통한 추상적 이미지와 순수한 언어가 가지는 음악성을 배치-조화시킴으로써 미적 세계와 시적인 미를 창출하고자 한 것이다. 이 때에 언어는 그가 가지는 뜻이나 문법적 기능보다 악보와 같이 음(音) 부호의 구실을 많이 한다고 보겠다. 따라서 이 시의 바른 감상을 위해서는 논리적 분석보다 음과 리듬의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  우선 이 "소네트"는 전 14행이 모두 (i)나 (ui)음으로 끝나는 데 주목하여야 한다. 또한 이 (i)음은 마지막 3행시절의 끝 두 절 안에서도 반복된다. 그런데 알베르 티보데니 그 외의 여러 비평가에 의하면 (i)음은 이 시에서 방대하고 단조로운 흰 공간과 추위를 환기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시를 장조(長調)의 소네트라고도 부른다. 그 외에도 첫쩨와 둘째 4행시절에서의 장중한 (v)음의 호응, 그리고 전체 시 위에 떠 있는 환상적인 신령스러운 기운, 추상적 언어에 의한 최후의 백조(Cygne)를 대문자로 써서 하늘의 백조 별자리를 환기시킨 점 등등으로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학의 표본을 이루고 있다.   창(窓) / 말라르메   음침한 병실과 허름한 흰색 커튼을 쫓아 향불 연기가 빈 벽에 지루하게 달린 큰 십자가상을 향해 올라가며 풍기는 빈사의 병자는 늙은 허리를 펴,   몸을 이끌고 썩은 육체를 따스하게 하려기보다 돌 위에 비치는 햇빛을 보기 위해 창가로 가 흰 수염과 여윈 얼굴의 뼈를 아름답고 맑은 햇살이 들이쬐는 유리창에 대고,   그리하여 열띠고 푸른 창공에 허기진 입으로 따스한 금빛 유리창에 오랫동안쓴 입술을 댐으로써 흔적을   묻힌다. 마치 그의 입이 젊은 시절 그의 보물인양 옛날 한때 순결했던 한 살갗을 들이마시려 하였듯이,   도취 속에 그는 살았다. 임종시의 성유(聖油)의 두려움도 탕약(湯藥)도 벽시계도 피할 수 없는 병상도 기침도 잊고; 그리하여 저녁 노을이 기왓장 사이에서 피를 흘릴 때 그의 눈은 빛으로 가득 찬 지평선 위에,   백조같이 아름다운 황금색의 범선(帆船)들을 본다. 이들은 보라와 향기의 강 위에 떠서 추억 가득한 한가   로움 속에 현란한 황갈색의 반짝이는 선(線)들을 본다. 이들은 보라와 향기의 강 위에 떠서 추억을 가득 실은 한가   로움 속에 현란한 황갈색의 반짝이는 선(線)들을 흔들면서 잠자고 있었다.   이리하여 냉혹한 영혼의 소유자인 인간 단지 식욕만으로 먹는 행복 속에 뒹굴며 자기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는 아내에게 바치려고 이 오물(汚物)을 찾아 광분하는 인간이 끔찍해,   나는 도망친다. 그리고 나는 생(生)에 등을 돌리는 모든 창문가에 매달린다. 그리하여 영원한 이슬에 씻기고 무한의 청결한 아침이 금빛   으로 물들이는 창문 유리알 속에 축복받은 내가 비춰지고   내가 천사임을 본다! 그리고 나는 죽는다, 유리창이 예술이기를, 신비이기를-- 그리하여 나는 내 꿈을 면류관으로 삼고 미(美)가 꽃피는 전생의 하늘에서 재생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속세가 주인임을: 이 고정 관념은 때로 안전한 내 은신처까지 쫓아와 나를 메스껍게 하고 어리석음의 불결한 구토는 나로 하여금 창공 앞에서 코를 막게 한다.   오오, 인생의 고뇌를 아는 나는 괴물에게 멸시받는 수정문(水晶門)을 깨뜨리고 들어가 털 없는 내 두 날개를 펴 달아날 방법이 있는 건가? -영원한 시간 동안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말라르메는 중등 학교 영어 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1862년 11월 부터 1년간 영국에 체재하였다. 이 시는 이 기간에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의 극히 초기의 것으로 그가 21세 때의 창작이다. 그는 이 시와 그 외 몇 편의 작품을 1863년 6월 영국 런던에서 그의 친구이자 후견인인 카잘리스에게 보냈다.  그의 영국 체재는 불행한 것으로 그가 말한 바대로 고뇌-절망-가난에다 장차 그이 아내가 될 마리 제라르와의 사랑의 갈등이 뒤범벅이 된 시기였다. 또 그가 런던에 도착한 직후 발병하여 병상에 누운 일도 있다. 이 경험이 작품 "창"에 나타나는 음울한 병실과 빈사의 병자를 상상케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의 줄거리는 속세와 현실 세계를 혐오하는 병자가 병상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창문 유리를 통해 빛나고 아름다운 바깥 세계를 몽상한다. 이 때 유리창은 그를 병실(현실)에 가두어 두는 벽인 동시에 열려진 세계(이상)로 통하는 문이요 길의 상징이다. 병자의 욕망은 일격으로 유리창을 깨뜨리고 열린 세계로 자유로이 비상하려고 하나 결국 자신의 무력(無力)으로 갇혀진 세계의 운명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갈등과 자신의 무력감이라는 이 주제는 이후, "창공(1884)"과 위에 수록된 백조의 "소네트" 등으로 이어진다.     목신(牧神)의 오후(발췌) / 말라르메     목가   목신: 나는 이 요정들을 영원하게 하고 싶다.                                그녀들의 연분홍 살빛은 너무 깨끗하여, 무성한 잠에 졸고 있는 대기 속을 떠돈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꿈이었나? 옛 밤에 축적된 내 의혹은 많은 작은 나뭇가지 같이 끝나 버렸는데 이들이 그대로 진정한 숲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오호라! 나 혼자만이 장미꽃들에 대한 상상적 유린을 승리로 돌리    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대가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여인들이란 그대의 상상적 감각이 원한 것의 형상이라면! 목신이여, 그 환상은 가장 정숙한 여인의 푸르고 찬 눈에서 나오듯 울고 있는 샘물 소리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한숨에 싸인 다른 여인에 대해선 반대로 그대 가슴털에 스치는 낮의 더운 미풍에서라고 할 것인가? 아니다! 더위는 부동(不動)의 권태로운 무력감으로 살아나려는 신선한 아침의 목을 죄고 속삭이는 물이란 단지 화음(和音)으로 젖은 숲 위에 내리는 내 피리 소리뿐이요, 다만 한 줄기 바람이란 소리를 메마른 빗속으로 흩뜨려 버리기도 전에 피리의 두 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날라 버리는 숨결뿐, 이 바람은 주름 하나 없이 평평한 지평선상에 하늘로 되돌아가는 영감(靈感)의 눈에 보이는 평온하며 인공적인 숨결이다.   * 오, 태양빛과 겨루려는 내 헛된 욕망이 유린하는 섬광(閃光)의 꽃다발 아래 묵묵히 누운 고요한 늪의 시칠리아 기슭이여, 이야기하라 "나는 이 곳에서 숙련으로 길들인 빈 갈대를 꺾고 있었다. 이 때 포도 덩쿨을 샘들 위에 드리우고 있는 아득히 보이는 초록의 녹색 금빛 위에 쉬고 있는 생물(生物)의 흰 모습이 잔물결친다. 그리고 풀피리가 살아나는 느린 서곡(序曲)에 이 백조의 무리, 아니! 요정들의 무리는 혹은 달아나고 혹은 물 속으로 뛰어든다----"                 만물은 무력하게 황갈색 시간 속에 타고 '라'의 화음을 찾는 연주자가 바라던 너무나 많     은 결혼이 어떠한 계략으로 일제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지 그 때 나는 고대의 빛 물결 아래 홀로 우뚝 서 나의 첫 정열에 눈뜨리라 백합이여! 순결함에 있어 나는 너희 모두들 중 하나이다.   저들의 입술이 퍼뜨리는 이 달콤하고 실없는 일 속삭여 사랑의 배신자를 안심시키는 이 입맞춤과는 달리 완전무결하게 순결한 내 가슴은 어느 고귀한 이(齒)가 물어 생긴 신비로운 상처의 흔적을     증언한다; 그러나 좋다! 이러한 신비로운 흔적은 그의 마음을 들어 줄     친구로 창공 아래서 굵은 두 개의 갈대를 골랐다. 갈대는 빰의 동요를 자신에게 돌려 긴 독주(獨奏)로 주위의 아름다움과 우리들의 소박한 노래를 거짓 혼동케 함으로써 주위의 아름다움을 즐겁게 해 주었다고 꿈꾼다 또 갈대는 사랑의 노래를 힘껏 높여서 하나의 낭랑하고 공허하고 단조로운 선율이 내가 눈 감고 쫓는 등과 순결한 허리의 통상적인 환상을 사라져 흩어지게 한다고 꿈꾼다.   도주(挑走)의 악기여, 오 심술궂은 신(神)의 피리여. 네가 나를 기다리는 호수에서 다시 꽃피어나도록 하라; 나는 내 자랑스런 목소리로 여신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말하리라 그리고 우상 숭배자들의 그림으로 저들의 어두운 부분에서 또 다시 허리끈을 풀리라; 그리하여 내가 거짓으로 위장에 물리쳤던 미련을 떨쳐 버    리기 위해 포도알들의 광명을 빨았을 때 웃으며 나는 그 빈 포도 송이를 여름 하늘에 쳐들고 빛나는 껍질 속에 내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도취를 갈망하며 저녁때까지 나는 그 속을 투사한다.   * 위의 시는 "목신의 오후"의 일부 발췌시이다. 이 시는 그가 일생 탐구한 절대시(絶對詩)가 어떤 것인지 보이기 위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문학도들에게도 난해하고 신비로운 이 시의 감상은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이 시를 이해-감상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드뷔시의 교향시 "목신의 오후 서곡"을 듣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학자-연구가-시인들의 계속적인 연구와 해설, 주석들로 인해 과거보다는 훨씬 시에 대한 이해도 분명해지고 시인의 의도도 밝혀졌으나 시에 대한 해석과 주석도 너무 구구하여 어떤 것이 정통적이며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난해-난삽의 평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그의 대표작으로 통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그가 새롭고 아름다운 시를 얻기 위해 주야로 악전고투하여 쓴 것이며, 10년 동안 닦은 각고(刻䇢)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독창적인 시가 그의 시를 늘 게재해 오던 제 3집에 편짐위원회, 특히 아나톨 프랑스로부터 거부를 당하였다. 그 이유는 "만일 이 작품이 게재되면 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목신의 오후"는 그 다음 해 단행본으로 당대 유명한 화가 마네의 목판화를 곁들인 호화판으로 출판되어 다시금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그 후 마네에 이어 마티스-피카소 등의 화가들이 시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1894년에는 말라르메 찬양가이던 드뷔시가 이 시를 주제로 한 교향시를 써 유명해졌다. 더우기 1912년에는 러시아의 무용가 니진스키가 발레로 안무-상연함으로써 이 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목가는 18세기 프랑스 화단의 거장인 부셰의 그림에서, 또는 그의 선배 시인인 방빌의 한 연극에서 시상(詩想)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출발점, 대강의 줄거리에 지나지 않고 그 내용이나 분위기-상징은 전적으로 말라르메의 꿈과 환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그는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이 세상 것이 아니며 완전히 만들어 내야 한다. 꿈만이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이 시의 줄거리를 말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전반부: 목신이 잠에서 깨어난다. 간밤의 정사(情事)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스스로 묻는다. 그가 본 못가에서 미역을 감던 이 요정들은 실제의 인물이던가 혹은 그가 꿈을 꾸었던가? 그의 기억 속에 두 요정이 떠오른다. 하나는 정숙하고 차갑고, 다른 하나는 한숨만 쉬는 요정이었다. 그는 이 요정들의 육체를 범했던가? 그러나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자연 가운데 혼자 있었다. 그는 피리를 만들어 불며 기억을 더듬는다. 혹은 그들의 존재를 의심도 하고 혹은 사실을 낱낱이 회상도 하며--- 그러나 그는 피리를 불음으로써 사랑의 신비로운 잇자국을 잊어버리고 영감(靈感)의 기쁨을 맛본다.   참고로 여기 싣지 않은 후반부의 개요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후반부: 이 영감은 다시 목신이 욕정을 일으킨 장면을 상세히 보여 준다. 몸이 얽힌 두 요정이 잠들어 있다. 목신은 이 들을 하나씩 겁탈한다. 그러자 두 요정은 서로 떨어져 도망쳐 버린다. 허망에 빠진 그에게 또 다른 요정 비너스가 에트나 산에 나타난다. 그는 사랑의 여신을 포옹한다. 그러나 이 또한 환상으로 그에게서 사라진다. 이제 목신은 뜨거운 오후의 열기 속에 굴복하여 목마른 모래 위에서 다시 잠이 든다. 꿈에서 님프들을 다시 만나 보기를 바라면서---  이 시에 대한 해설도 구구하다. 말라르메에 대한 명쾌한 해설가 피튀로는 이 시는 우아한 상징 속에 격렬한 에로티시즘을 감추고 있다고 했고, 어떤 학자는 이 시는 말라르메의 집념인 사랑과 시, 욕정과 영감, 꿈과 현실의 갈등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시가 어떤 사상이나 도덕, 또는 감정을 전달하는데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단지 목신의 전설을 빌어 감각적이며 우아하고 몽환적인 세계의 분위기를 나타내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짙은 육체의 향기와 원색적인 이미지, 추상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음악과 회화와 시의 종합적인 공예 작품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시의 길에서 이 시만큼 멀리 간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테판 말라르메(1842~1989): 말라르메는 문학 사조에서 상징파에 속하는 시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상징주의적인 시를 썼다기보다 순수시, 시의 이상적 형태를 위해 일생 생각하고 찾고 쓴, 시의 수도사(修道士)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의 양적으로 많지 않은(단 한 권의 시집) 시는 난해라는 장애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앙자를 내었다. 그가 죽은 지 100여 년이 된 지금에도 계속 많은 추종자들이 배출되어 그의 작품을 연구-해석하고 그의 교리에 따라 시를 짓고 있다.   말라르메는 파리 태생으로 하급 공무원 가정 출신이다. 5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재혼하여 일종의 고아와 같은 처지로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손 아래에서 자라났다. 학교 시절부터 심약한 그는 고독하였으며 야유하는 동료들을 피하여 혼자 몽상과 노트에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였다. 성인이 된 말라르메는 시골 중학교 영어 교사가 되어 이후 일생 동안 계속(약 30년 동안) 주로 지방 중고등 학교의 영어 교사로 빛 없는 평범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교사란 직업은 생활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참다운 생은 시에 대한 사색과 탐구와 각고로 일관했다.  그가 시를 써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경부터인데 때때로 산문시나 소네트를 문학 잡지 등에 기고하였다. 1866년 라는 문학지에 10편을 써서 발표한 것이 문단의 주목을 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상에 잘 알려진 "창문", "창공", "바다의 미풍" 등이 이 가운데 들어 있다. 이것은 그의 20대 때의 시이다. 그가 그의 온 정력을 다 쏟아 쓴 독창적인 시는 시극(詩劇) "에로디아드(1868)"와 "목신의 오후(1876)"이다. 이 2편의 시는 그가 오랜 시일에 결쳐 갈고 다듬은 것으로 특이한 사상과 정밀한 시적 언어를 구사한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두번째 작품은 후일 드뷔시가 같은 이름의 교향시 서곡을 써서 더욱 유명하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모두 극히 난해하여 전체적인 이해와 통일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난해성과 과작(寡作)으로 인하여 그는 1884년경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며 그의 작품은 경원시되어 왔다. 그의 유명한 "목신의 오후"는 원래 제 3집에 싣기로 되어 있었으나 심사 위원회에서 부결되어 게재되지 못하였다. 온화하고 누구에게도 친밀한 그도 이 일에는 격분하여 반대의 주동자 아나톨 프랑스에게 일생 원한을 가졌다 한다. 극소수의 시인들만이 그를 추앙했고 말라르메 자신 또한 대중적 명예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1884년 베를렌느가 그의 시인론 가운데 말라르메의 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게재하였고, 같은 해 위스망스의 소설 의 주인공이 말라르메의 시 "에로디아"에 압도되었다는 대목이 널리 전파되어 그의 이름이 갑자기 유명해지고 이어서 젊은 상징파 시인들이 그를 정신적 지도자로 삼았다.  그는 1871년 가을 파리로 올라와 계속 영어 교사로 지내면서 로마 가(街)의 작은 그의 아파트에서 '화요회'를 주재했다. 그의 탁월하고 깊이 있는 시와 예술론에 힘입어 1880년대에는 당신의 유명한 시인과, 문인 라포르그, 레니에, 바래스, 클로델, 지드, 발레리 등이 참석-경청하여 그의 작품 못지않게 시단에 영향을 주었고 그의 이름을 높이었다. 그가 파리에 정주한 시기는 비교적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로 창작에 있어서도 일종의 휴식 시기였다. 생활을 위해서인지 - 등의 어학 서적과, 그리스 신화의 해설팜인 을 출판하였고, "최신 유행"이라는 유행 잡지의 편집을 맡는 등 상당히 세속적인 활동도 하였다.  그러나 말라르메가 또다시 난해무쌍한 장시(長詩)를 쓰기 시작한 것은 1885년 "데 제생트를 위한 산문"을 발표한 이후이다. 데 제생트란 앞서 나온 위망스의 소설 의 주인공이다. 이 시는 시인을 위한, 시인의 이상을 노래한 시의 본보기라고 하나 이 시의 해석은 난해한 일 중의 난해한 일로서 일반인에게는 접근이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상징주의자와 그의 주석자(註釋者)들에게는 일종의 경서(經書)가 되었다. 만년에 이르러 그는 산문이나 소네트 형식으로 시인의 입장과 사명감 같은 것을 내용으로 한 시를 많이 썼고 또한 보들레르-베를렌느 등의 시인, 바그너-샤반느와 같은 예술가, 바스코 다 가마와 같은 항해사의 업적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그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이제 그의 이름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유럽에 퍼지고 그의 작품도 세계 각국에서 번역-출판되었다. 그의 화요회는 유럽의 가장 유명한 문인 인사들이 참가하는 모임이 되었고 1896년에는 젊은 시인들에 의하여 베를렌느에 뒤이어 시왕(詩王)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그는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방랑가인 베를렌느나 반항아인 랭보와는 정반대의 성품으로 우아하고 절제 있고 다른 불행한 시인들을 따뜻하게 돌보아 주는(베를렌느도 보호 받은 사람 중 한 사람) 인정 있고 고귀한 성격의 소유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시론에 있어서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1897년 1월 그의 예술론인 과 같은 해 5월에 국제적인 잡지, 에 시 "한번의 주사위가 우연을 없앨 수는 없으리라"가 발표되어 소수의 그의 동조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다음 해 9월 8일, 파리 근교 발랑에 있는 시골 집 서재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후두 경련을 일으켜 다음 날 아침 절명했다. 그의 나의 56세였다.   흰 달빛--- / 베를렌느     흰 달빛 숲속에 환하고; 가지가지마다 한 목소리 흘러나와 나무 그늘 아래로---   오, 사랑하는 이여,   연못은 깊은 거울, 그 속에 검은 버드나무 그림자 드리우고 그 위에 바람이 운다---   자, 지금은 꿈꿀 때,   크고도 부드러운 안식이 달무리진 창공에서 내려오는 듯---   지금은 더없이 그윽한 때.     가을 노래 / 베를렌느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외로운 가락으로       내 마음 여이나니.   종소리 나면 가슴 꽉 막혀       파리한 얼굴로 지난 날 돌이켜보며       눈물 흘린다.   나도 가버리리라, 모진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떠도는       낙엽과 같이     거리에 비 내리듯--- / 베를렌느                      거리에 조용히 비가 내린다.                         -아르튀르 랭보-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맘 속에 눈물 내린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외로움은 무엇이런가?   속삭이는 비 소리는 땅 위에, 지붕 위에! 울적한 이 가슴에는 아, 비의 노래 소리여!   역겨운 내 맘 속에 까닭 없는 눈물 흐른다. 무엇, 배반은 없다고? 이 슬픔은 까닭 없는 것.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 왜 이다지 아픈지, 이유조차 모르는 일이 가장 괴로운 아픔인 것을!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 베를렌느          1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 야 한다. 너는 보지 않는가? 창에 찔린 내 옆구리, 빛나며 피 흘리는 내 심장, 그리고 너의 죄로 무거운 내 아픈 팔을   그리고 내 두 손을! 그리고 너는 보지 않는가? 십자가와 못들과 담즙과 해면(海綿)1)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네게 육(肉)이 지배하는 이 괴로운 세상에서 내 살과 피, 내 말과 목소리만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나 자신도 너를 죽기까지 사랑하지 않았던가? 오, 성부(聖父) 안의 내 형제여, 오, 성신(聖神)  가운데 내 아들이여 그리고 나는 기록된 바와 같이 고난을 받지 않았던가?   나는 너의 최후의 고뇌를 흐느껴 울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네가 밤마다 흘리는 땀을 흘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심한 친구여, 그대는 내가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1)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목 마르다고 하자                                                                군사들은 담즙(혹은 초)로 적신 해면을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는 성경 구절을 말함.              8   아, 주님이시여, 어찌된 일입니까? 아아! 저는 지금 엄 청난 기쁨으로 온통 눈물에 젖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저에게 기쁨과 동시에 고통을 줍니다. 그리고 악(惡)과 선(善)은 똑같이 저를 끄는 힘을 가졌습     니다.   저는 웃고, 웁니다. 주님의 목소리는 마치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오라 부르는 나팔 소리와 같습니다. 저는 봅니다, 방패 위에 높이 실려가는 청백(靑白)의 천군 천사(天軍天使)들을 그러나 이 나팔 소리는 저를 자랑스러운 불안으로 이끌어 갑니다.   저는 당신이 저를 택하심에 황홀하여 또한 두렵습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관용을 압니다. 아! 얼마나 큰 노력이, 그러나 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熱情) 입니까! 그리하여 저는   겸허한 기도에 가득 차 지금 여기 있습니다. 비록 이 크 나큰 심적 동요는 당신의 목소리가 저에게 알려 주신 소망을 아직은 혼동하 고 있어, 저는 떨면서 갈망하고 있습니다.     폴 베를렌느(1844~1896): 베를렌느의 생애는 추문으로 얼룩지고 비참과 불행으로 연속되었다. 한 마디로 의지라는 것이 결여되어 음주와 방랑과 본능적 충동에 휘말려 아내에게는 동성애로 인해 이혼 당하고,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하였으며, 만년에는 가난과 병으로 계속 자선 병원의 신세를 져야만 했던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 추하게 생긴 용모와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알콜 중독자인 그에게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시가 흘러나왔다는 것은 기이한 신의 배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폴 베를렌느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도시 메츠에서 출생하였다. 외아들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7세 때 부모와 함께 파리로 올라와 당시의 보나파르트 중고등 학교(지금의 콘돌세 중고등 학교)에 입학, 이를 졸업하고 바카로레아(대학 입학 자격 시험)도 합격하였다. 그러나 세상일에 별다른 야심이 없는 그는 대학 진학에는 뜻이 없어 얼마 후 그가 20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 친구의 주선으로 파리 시청의 하급 서기로 들어갔다.  그 후 7년 동안 보불 전쟁이 일어나 그가 그 자리를 물러나기까지, 그는 줄곧 같은 과, 같은 자리, 같은 책상에 앉아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 했다. 그렇다고 불평하거나 전직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의 유일의 관심사, 유일의 노력은 마음이 내키면 시를 써 보는 일이었으며 유일의 즐거움은 퇴근 후 카페에 들러 압생트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문학과 세상일을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그의 음주벽은 이 때 이미 상당히 진전되어 그의 부모나 친구들도 걱정할 정도이었다.  그는 시청 재직시 2권의 시집인 과 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이 두 시집이 나왔을 때 위고를 비롯, 일부 문인들의 형식적인 찬사와 격려도 없지 않았으나 그의 진가를 알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70년 보불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그는 마틸드 모테라는 16세 소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비록 전쟁의 위험과 불행이 예견되었으나 이로써 베를렌느는 오랜 외로움과 무위 끝에 그의 생애에 밝은 햇빛이 비추는 듯했다. 이 아름다운 심경을 노래한 얄팍한 시집이 이다. 그러나 가정적 불행은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결혼한 지 1년도 못 되어 랭보라는 소년이 나타났다. 베를렌느 보다 10년이나 아래인 17세의 폭풍 같은 이 천재는 그를 삽시간에 정복하고 지배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신혼 가정을 산산이 부셔 버렸다. 드디어 베를렌느는 아내와 가정을 버리고 랭보와 함께 벨기에-영국 등지를 방랑하며 동거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 두사람 사이에도 갈등이 생긴다. 부뤼셀에서 사소한 일로 베를렌느는 랭보에게 총을 쏘아 부상케 하여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1875년 1월 베를렌느는 어머니만이 홀로 기다리는 옥문을 나섰다. 그는 2년 동안의 옥중 생활로 참회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감방에서 를 써서 아내 마틸드에게 용서를 구하고, 출옥하기 얼마 전에는 신비적인 체험을 통하여 열렬하고 눈물겨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가 이로부터 훨씬 뒤에(1881) 출판한 시집 와 이외의 몇 편의 작품집은 이 때의 종교적 체험을 순수하고 솔직하게 담은 것이다.  감옥을 나온 그는 새사람이 되어 자기 힘으로 살기 위하여 파리를 떠나 그 후 몇 해 동안 영국과 벨기에의 시골 중학교의 교사로 초빙되어 프랑스어 또는 영어를 가르쳤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선생으로 학생들과 학부형에게 사랑과 존경도 받았다. 한때는 농부가 되어 농원을 일으키려고 노력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결심도 노력도 허사였다. 그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사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그 이유로서 그가 내심 극진히 사랑하여 온 아내 마틸드가 그이 호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법적으로 헤어지게 된 사실을 든다. 여하튼 그는 다시 술을 마시게 되고 본능적 충동과 욕구가 그를 엄습해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올라왔다. 파리에서의 그의 생활은 비참 그것이었다. 팔리지 않는 원고를 들고 떨리는 한 손에 단장을 짚고 한 쪽 다리를 끌려 두 눈을 반쯤 감고 파리의 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어려운 동안에도 시작(詩作)과 소설과 평론 등의 작품 활동은 계속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그의 시학(詩學)이 들어 있는 , 그리고 당시 문단에서 무시되거나 참다운 가치가 알려지지 않았던 코르비에르, 빌리에 드 릴르-아당, 말라르메, 랭보와 자기 등 불행한 시인들의 예술적 가치를 논한 그의 시론 은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잊혔던 이들 시인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1886년, 그를 사랑하고 돕고 보살펴 주던 유일의 보호자인 그의 어머니도 죽었다. 이 헌신적인 어머니를 그는 한 해 전에 목을 졸라 죽게 할 뻔하여 1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제 베를렌느는 혼자 살아가기 위해 더욱 많은 시. 소설, 수기, 잡문 등의 글을 써야 했다. 이 가운데는 그의 시 작품 가운데 걸작이라고 인정되는 "평행하여(1889)"도 들어 있다.  그가 50세가 된 만년에는 그의 시가 차츰 알려지고 젊은 시인들 특히 상징주의와 데카당(퇴페주의)파의 시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고 이것은 또 그의 불행하고 파란 많은 생활과 겹쳐 그를 둘러싼 일종의 문학적 전설이 생겨났다. 이제 그는 카페나 병원으로 그를 찾는 많은 젊은 문인들에게 새로운 예술을 가르치는 시단의 소크라테스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젊은 문인들의 추대로 르콩트 드 릴르의 뒤를 이어 '시의 왕'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896년 그는 52세로 빈민굴의 하숙방에서 청부의 팔에 안겨 쓸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운집한 시인, 화가, 문인, 배우 등 그의 숭배자들에 둘러싸여 성대하게 바티뇰 묘지로 갔다.   감각 / 아르튀르 랭보     여름날 푸른 석양 녘에 나는 샛길을 걸어가리라. 밀 이삭에 찔리며 여린 풀을 밟으며 꿈꾸듯 가는 나는 산뜻한 풀잎들을 발에 느끼며 들 바람이 나의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맘 속에 솟아오르는 끝없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 보헤미안처럼 자연 속을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에 젖어.   *자연스런 이 짧은 시는 그의 초기의 것이며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다. 이 시는 16세의 고등 학교 학생 랭보가 당시 그보다 30세나 위이며 시단의 중견인 방빌에게 보낸 편지 속에 들어 있었다. 그가 늘 좋아하며 마음껏 걸어다니던 들판을 생각하며 쓴 것일까? 혹은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느끼며 쓴 것일까? 여하튼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에서 방랑자 랭보의 앞날이 나타나 있다.  우리 나라의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시이다.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모음(母音)들 / 아르튀르 랭보     A 검정색, E 백색, I 빨강색, U 초록색, O 파랑색; 모    음들이여, 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A, 코를 찌르는 악취 주변에서 잉잉대는 빤짝거리는 파리 떼들의 털난 검은 조끼,   어둠의 만(灣);E, 안개와 텐트의 순진무구함, 오연(傲然)한 빙산(氷山)의 창(槍), 백발의 왕(王), 산형    화(繖形花)의 떨림; I, 붉은 색의 옷, 토한 피, 분노 가운데 아름다운 입술에서 나오는 웃음 또는 참회의 도취; U, 천체(天體)의 순환, 녹색 바다의 신비로운 진동 가축들이 널려 있는 목장의 평화, 넓은 학구적인 이마 위에 연금술이 새겨 놓은 주름살의 평화로움!   O, 이상한,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 찬 최후의 나팔 온 세상과 천군천사가 지나간 뒤의 침묵; -오, 오메가, 그녀의 눈의 보라색 광채여!   * 이 시는 비평가, 문학사가 들로 하여금 그 설명에 가장 많은 잉크를 쏟게 하였고 지금도 논란과 다른 의견의 대상이 될리만큼 유명하다. 이미 보들레는 향기와 소리와 빛깔이 서로 응답하는 세계를 예견한 바 있는데 랭 보는 이를 좀더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한 점에 특색이 있다. 어떻게 랭보가 글자(모음 들)에서 빛 깔을 느끼게 되었는가에 대하여서도 여러 가지 연구와 설명이 있다. 보들레르의 '조응(照應) 이론' 외에도 그가 유년 시절 글자를 배울 때 색칠한 알파베트를 즐겨 본 기억이 무위식적으로 잠재해 있었다든가, 신체적 공감설, 신비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랭보는 우리들의 여러 감관(感官)이 파악하는 현상 뒤에 통일되고 서로 호응하며 어떠한 감관에도 파악될 수 있는 어떤 절대적인 실재를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감 각의 조직적 착란과 의식적 환각 상태의 유지로서 이러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보기이다.  그러나 그의 기도나 목적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이 시는 그 놀라운 연상력, 대담한 상상, 강렬한 인상과 환상 이 뒤섞인 특이한 시이다.     새벽 / 아르튀르 랭보   나는 여름 새벽을 가슴에 끌어 안았다.   궁전(宮殿)의 앞쪽은 아직 아무 기척 없이 고요했 다. 물도 죽은 듯 했다. 어둠의 진영(陳營)은 숲속의 길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나는 생생하고 따스한 공기를 깨우며 걸어갔다. 이슬 보석들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밤의 날개 들은 소리 없이 일어났다.   나의 첫 사업은 이미 신선하고 푸른빛으로 가득 찬 오 솔길에서 나에게 자기 이름을 일러 주는 한 송이의 꽃을 만난 일이었다.   나는 전나무 사이로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떨어지는 금발의 폭포에게 웃음지었다. 나는 은빛 나뭇가지 끝에 서 여신(女神)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나는 여신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겼다. 길 에서는 팔을 흔들어 대며, 들판에서는 수탉에게 그녀를 밀고(密告)했다. 그녀는 큰 도시의 종각들과 둥근 지붕 사이로 도망쳤다. 나는 거지처럼 대리석 부둣가를 달려 가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월계수 숲 근처의 언덕길 높은 곳에서 나는 주어 모은 그녀의 베일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방 대한 육체를 약간 느꼈다. 새벽과 어린아이는 숲 아래로 쓰러졌다.   깨어 보니 대낮이었다.   *시집
29    프랑스 명시선 ( 1 ) 댓글:  조회:336  추천:0  2017-08-09
프랑스 명시선   1. 프랑스와 비용(1431~1463)   대유언서(발췌)   26. 아, 하나님, 어리석었던 젊은 시절 공부 열심히 하고 조신했다면 집과 포근한 잠자리가 있었을 것을 헌데, 오호라, 나는 악동(惡童)마냥 학교에서 도망질쳤지. 이런 글 적는 나의 가슴 찢어질 듯하구나   35. 어릴 적부터 나는 가난했다 돈 없고 미천한 집 태생으로 나의 아버지는 별 재산이 없었고 오라스라 불린 그의 아버지도 가난뱅이 가난은 우리 집 모두의 뒤를 쫓아다녔다 나의 조상들의 무덤 위에는 신이여, 그들의 영혼을 보살펴 주소서! 면류관도 왕홀(王笏)도 볼 수 없었소.   36. 가난을 한탄할 적마다 나의 속마음은 자주 나에게 타이른다 "이 사람, 그리 슬퍼하지 말게 그런 설움 또한 나타내지도 말게! 자네는 자크 커르 영감만큼 돈이 많지 않지만 가난하고 껄끄러운 옷을 걸치고라도 살아 있는 편이 생전에 고관이었다가 지금 호사스런 무덤 속에 썩고 있는 것보다는 낫네."   37 고관이었던 것보다 낫다구! 이 무슨 말인가? 이제는 오호라! 이미 대감이 아니란 말인가? 다윗의 말에 의하면 "영혼이 거하던 처소를 영영 알지 못하리라" 했으니까 이 이상 이 문제를 거론치 않으리라 그것은 죄인인 내가 관여할 바 아니므로 나는 이것을 종교가들에게 맡긴다. 바로 이런 일는 설교가들의 직책이니까.   38 곰곰이 자신을 생각해 보아라 나는 별이나 천체(天體)로 장식된 면류관을 쓴 천사의 아들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죽었고 하나님의 그의 영혼을 거두었으며 그의 육신은 무덤 돌 아래 누워 있소 나는 나의 어머니가 멀잖아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불쌍한 어머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소 그리고 그의 아들도 오래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50 미남 파리스도 미녀 헬레네도 죽었다 누구나 죽는다, 죽어도 고통스럽게 죽는다 숨통이 꽉 막혀 죽는다 쓸개즙은 염통에서 터지고 그리고 땀을 흘린다. 끔찍한 땀을! 그러나 아무도 그의 고통을 덜지 못한다. 이 때 그를 대신하고자 하는 자식도 형제도 누이도 없기 때문이다.   51 죽음을 그를 떨게 하고 창백하게 만든다 코는 비뚤어지고 핏줄은 뻣뻣해지며 목은 부어오르고 살은 흐늘거리며 뼈마디와 신경줄은 늘어나고 벌려진다. 그토록 보드랍고 매끄럽고 향기로운 그토록 귀중한 여인의 육체여, 그대도 이러한 고통을 맞이하여야 하는가? 그렇소, 그렇지 않으면 살아서 천당으로 곧장 가야지.     왕년의 미녀의 노래   말해다오 어드메 어느 땅에 있는가! 아리따운 로마의 유녀(遊女) 플로라는, 아키피아드는, 그리고 그녀의 사촌동생 타이스는, 강물 위나 연못 위에서 소리나면 응답하던 그 에코는? 가히 초인간적인 미모를 지녔던 이 요정은?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雪)은?   어디 있는가 저 슬기롭던 엘로이즈는, 그녀로 인해 피에르 아벨라르는 거세되어 생-드니 수도사가 되었지 그의 고난도 결국 그의 사랑 때문 또한 어디 있는가? 뷔리당을 자루에 넣어 세느 강 속에 던지게 한 여왕은?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은?   인어(人魚) 시렌느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백합같이 희었던 블랑시 황후 발이 큰 배르트 태후, 그리고 비에트리스, 알리스 멘느 주를 다스렸던 아랑뷔르지스 백작 부인 그리고, 영국 군사들이 루앙에서 불태워 죽인 로넨느의 착한 처녀 쟌 다르크는 그녀들 지금 어디? 어디에? 성모 마리아시여!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은? 님이시여, 그 미녀들 지금 어디 있는지 이 해에도 다음 해에도 묻지 마시오 그런데 지금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은?     비용의 묘비명(墓碑銘)      비용이 교수형 집행을 기다리는 그의 동료들과      자신을 위하여 쓴 발라드 형식의 묘비명.   우리 죽은 뒤 살아갈 형제들이여 우리에게 냉혹한 마음 품지 말라 차라리 그대들 우리를 불쌍히 여길 때 신께선 곧 당신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보라, 여기 우리들 다섯 여섯씩 목매달려 포식(飽食)으로 길러 온 육체는 이미 오래 전에 뜯어지고 썩어지고 우리들의 해골들은 흙이 되어 간다 아무도 우리들의 비운을 비웃지 말라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해 줄 것을!   우리 비록 법으로 처형된 몸이나 그대들을 형제라 부름을 탓하지 말라 인간이 모두 옳은 생각만을 가질 수 없는 일 이는 그대들도 알고 있다 이미 우리는 죽은 몸이니 용서하고 성모 마리아의 아들께 기도드리라 우리에게 내리는 그의 은총이 마르지 않고 지옥의 불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도록 우리는 죽은 몸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지 말고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 줄 것을!   빗물은 우리를 적셔 씻겨 내고 햇빛은 우리를 말려 검게 태운다 까치와 까마귀는 우리들의 눈을 파내고 수염과 눈썹을 쪼아 낸다 우린 잠시도 쉴 때가 없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한없이 흔들리며 새 쪼아 먹은 몸은 골무보다 더 험상궂다 그러므로 행여 우리 같은 신세 되지 말고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 줄 것을!   만백성을 주관하시는 왕자 예수시여, 지옥의 권세에 들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그 곳에서 할 일도 갚을 것도 없게 하소서 사람들이여 이 일은 절대 비웃을 일이 아니니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 줄 것을!     프랑스와 비용: 1431년 말이나 1432년 초에 파리 태생으로 되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성 베네디트' 교파의 기욤 드 비용이라는 신부집에 맡겨졌는데 비용이란 이름도 그가 기른 이 신부의 이름을 딴 것이다. 1452년 당시 소르본느 대학 문학부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얻었다. 그대로 나갔으면 그의 서사시에 있듯이 교직자로서 좋은 자리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난폭한 성질이 드러나 젊은 혈기와 더불어 위험한 장난, 패싸움, 도박, 그리고 민중 봉기에 가담하였다. 당시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직후로서 강토는 황페해지고 도처에 도적과 살인과 방화가 잇달아 민심이 흉흉하던 때이고 당시의 학생이란 일종의 부랑자. 불한당이 많았으므로 비용도 이 때까지는 이런 부류에 속하였다. 1455년 어느 여름 저녁, 비용은 여자 문제로 인한 사소한 싸움 끝에 세르모아즈라는 신부를 돌로 쳐서 숨지게 했다. 이 사건 후 비용은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음 해 그에 대한 사면장(赦免狀)이 나오자 파리로 되돌아왔다.그런데 그 해 12월 나바르 대학의 금고를 깨드리고 그 속에 든 돈자루를 훔쳐 간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비용은 이 사건 며칠 뒤 파리에서 이라는 작은 책자를 하나 써 내놓고 앙제르로 떠난다. 이 책에서 그가 파리를 떠나는 이유는 자기의 사랑을 배반한 한 여자에 대한 원한을 잊기 위하여, 그의 말을 빌면  "사랑이라는 감옥의 쇠사슬을 끊기 위하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나바르 대학의 도난 사건은 범인들이 붙잡히고 그 중 하나가 자백하여 비용이 일당 5명 중의 하나라는 것이 드러났다. 비용은 도난당한 금화 120 에퀴의 변상을 조건으로 파리로부터 추방령을 받았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란 책자는 결국 자기의 범죄를 은페하려는 데 목적이 있어 보이나 이 시집 속에는 그의 시인으로서의 기질과 재질이 마음껏 발휘되어 웃음과 눈물과 야유와 풍자가 교차하는 주옥 같은 시가 많이 들어 있다.  추방령을 받은 이후부터 그의 신세는 완전한 부랑자, 거지가 되어 앙제르, 부르지 블르와 등지를 전전한다. 블르와에서는 한때 시인 왕족 샤롤르 도를레앙의 식객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그의 행방은 묘연하여졌는데 사건 후 5 년이 지난 1461년 그가 다시 묑-쉬르-르와르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이 기록에 나타나 있다. 그 지방 주교의 명으로 투옥되었는데 그 근처에서 일어난 절도 살인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마침 이때에 왕위에 오른 루이 11세가 묑 근처를 방문했을 때 모든 죄수에게 사면령을 내리게 되어 비용은 풀려나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의 나이 겨우 30세이나 그 동안 겪은 가난과 고생과 방랑과 감옥살이로 심신이 모두 병들어 있었다. 이제 죽음의 예감도 깊이 들었던지 그는 그의 생활을 총람하는 을 썼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시집도 과 같이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고 있다. 자기를 감옥에 보낸 디보 도시니 주교에게는 무서운 저주를 퍼붓고 자기를 사면해 준 루이 11세에게는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유언이나 유품 분배는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고 그는 이 가운데 자신의 생을, 후회를, 소망을 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조소를 강렬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여 신의 자비를 빌고 있다. 한 마디로 비용은 이 가운데 그 자신을 투사함으로서 인간의 모든 것, 그의 약점과 죄악, 그의 사랑과 즐거움, 그의 소망과 믿음, 인생의 무상, 죽음의 가혹함 등을 꾸밈없이 성실하게 또한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비용의 불행과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해 또 다시 우연한 패싸움에 끼어 들어 샤를레 감옥에 투옥된다. 전과자로 가중되어 교수형의 선고를 받는다. 비용은 당신의 최고 재판소에 탄원서를 내어 겨우 사형은 면했으나 10년 동안 파리 입성을 금하는 추방령을 받았다.  이후부터 그의 이름은 역사상의 기록이나 사람의 입에서 영영 사라진다. 영국에 가서 살았다고도 하고 프와투에서 신비극을 쓰고 또 상연했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된 비용을 상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 병과 가난으로 불쌍하게 죽었다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많다.     2, 피에르 드 롱사르(1524~1585)     님에게 꽃다발 보내오니 (마리에게 바치는 소네트)   활짝 핀 이 꽃들 꽃다발로 손수 엮어 님께 지금 보내오니 이 꽃들 이 저녁에 따지 않으면 내일이면 땅 위에 떨어지리.   이는 그대에게 분명한 교훈되오 그대 미모 지금 한창 꽃핀 듯 화려하나 멀지 않아 시들어져 떨어지오 홀연히 사라지는 낙화(落花)와 같이.   님이여, 세월은 가고 자꾸만 가오 아니, 가는 것은 세월 아닌 우리들 인생 멀지 않아 우리들도 북망산 아래 누우리다.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이 사랑도 우리 사후(死後) 말하는 사람 없으리다 그러니 그대 모습 아름다운 지금 이 내 몸 사랑해 주오.     늙어짐 (엘렌드에게 바치는 소네트)     그대 늙어 저녁 촛불 아래, 불가에 앉아 실 뽑고 감을 때, 나의 노래 읊으며 감탄하듯 말하리라: "롱사르는 내 아름다운 시절 날 찬미했었지."   이 때 일에  지쳐 반쯤 잠든 그대 시녀들도 이 소식 듣고, 불멸의 찬사로 그대 이름 축복한 나의 이름 소리에 깨어나지 않는 자 없으리라.   이미 나는 황천(黃川)에 내려 뼈 없는 망혼(亡魂)이 되어 도금양(挑金孃) 그늘 아래 몸을 쉴 때 그대는 난롯가 쭈그린 노파되어,   나의 사랑과 이를 뿌리친 그대 교만을 뉘우치리라. 진정 그대에게 말하노니 오늘을 사시오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꺽으시오 이 날부터 인생의 장미꽃을     최후의 시     이제 뼈만 앙상한 내 몸은 해골과 같아 살은 빠지고 힘줄은 늘어지고 근육은 물러나고 바싹 마른    몸에 죽음의 화살은 가차 없이 날아와 박혔네 몸이 떨려 차마 내 팔을 바라볼 수도 없구나.   아폴론과 그 아들, 두 위대한 명의(名醫)도 내 병은 고칠 수 없어 그들의 의술도 내겐 소용 없겠지 잘 있거라, 즐거운 태양아! 나의 눈은 벌써 가려져 간다. 내 몸은 아래로 내려간다 만물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곳으로.   어느 친구가 이 앙상한 모습 보고 자리에 누운 나를 위로하고 내 얼굴에 입맞추고 죽음으로 잠들어 가는 내 눈을 닦아 주며   슬프고 눈물 괸 눈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잘 있게나, 나의 동무들! 잘 있게나 나의 친구들! 내가 먼저 가서 자네들 자리 미리 준비하겠네     피에르 드 롱사르(1524~1585)    16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에 르네상스라는 새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그 진원지는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와 1세가 즉위한 다음(1515) 이탈리아로부터 많은 예술품들과 예술가, 학자들을 데려와 새로운 학문과 예술을 널리 퍼지게 한다. 프랑스와 1세도 퐁텐느블로나 르와르  강변에 많은 아름다운 이탈리아 식 궁성을 지어 그 안에서 연극, 무도회, 음악회 등을 열어 생의 즐거움을 구가함으로써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게 된다.  롱사르는 이 시절에 생을 즐긴 사람이다. 시골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2살 때 프랑스와 1세의 블르와 왕국에 시동(侍童)으로 들어가 장래에는 군인이나 외교관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중병을 앓은 끝에 반귀머거리가 되어 그의 꿈은 깨지고 말았다. 그는  그 대신 문필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로 결심하고 시골로 돌아가 고대 문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계속하여 파리에 올라와 당대의 석학 도라(Dorat)의 지도 아래 약 5년간 고대 문학 특히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을 모방한 시를 썼으나 차츰 독창적이며 순수하고 서정적인 시를 쓰게 되었다. 그가 16세 되던 해부터 30대 전반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작은 절정에 이르렀으며 그의 이름은 궁중과 시단에서 유명하여졌고 그의 시집은 계속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당대의 유명한 시인 6명과 더불어 라는 시파(詩派)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언어와 시를 더욱 세련되고 우아하게 만드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이로써 그는 당대의 버질(Virgil)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시의 왕자가 되었다.  그의 행운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앙리 2세는 그를 궁중 시인으로 임명했다. 비록 그의 공식적인 임무는 미사 때 왕에게 성수(聖水)를 떠 바치고 왕이 무릎을 꿇을 때 방석을 펴는 일이었으나 그의 주된 직책은 왕실에서 거행되는 모든 축제 행사를 주관하는 일이었다. 공이 있는 궁신이나 신하들의 찬사를 시로 쓰고 중요한 서한, 사랑의 편지도 대필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에게 명예와 더불어 큰 재산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특히 이름 난 미인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그 까닭은 그의 시 속에 한번 음미되면 그녀의 이름과 재덕과 미모는 영원불멸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품이 관대하고 우아하고 때로 용감하기도 한 그는 역대 왕의 총애를 받았고 왕실 귀현과 숙녀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영광과 행복 속에 살았다. 그러나 롱사르는 사랑의 시인만은 아니었다. 16세기 후반 프랑스가 신구 종교의 싸움으로 두 쪽으로 갈라져 싸운 내란 시절,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이 싸움에 가담하였다. 처음에는 양파의 잘못을 지적하며 관용과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고 이에 실패하자 카톨릭 편에 서서 문필로써 싸웠다. 이라는 3부작이 그것으로 그 논조는 당당하고 성실하여 반대파로부터도 존경과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51세로 왕실 시인의 자리를 물러나 시골에서 은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지병인 통풍의 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계속 시를 쓰고 작품 퇴고를 쉬지 않았다. 유명한 등은 이 시절의 것이다.  그는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그의 장례식은 죽은 지 2개월 뒤 파리에서 일찌기 볼 수 없을 만큼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런데 이 풍부하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의 노래들이 그후 200년 동안 전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묻혀 있었던 일은 문학사상 기이하고도 불행한 일이었다.  이는 그리스 로마 문학을 모델로 한 그의 작품에 대한 말레르브,브왈 등 국수파의 반발이었으며, 조화, 명확, 규칙을 금과옥조로 하는 이들이 롱사르의 독창성, 서정성과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석학 아르노르 같은 사람도 '롱사르의 한심스러운 시'라고 할 정도였다. 19세기의 낭만파 문학이 일어날 때야 비로소 그의 진가가 알려졌는데 이에는 특히 당대의 비평가 생트-뵈브의 역할이 컸다. 그 후부터는 문학파마다 롱사르를 자기파의 선구자로 삼으려고 할 정도였다.   죽음과 나무꾼 /장 드 라 퐁넨느     불쌍한 나무꾼 하나 온통 나뭇가지에 뒤덮여 나뭇짐과 쌓인 나이 아래 짓눌려 끙끙거리며 굽은 허리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연기에 그을린 오두초막집으로 돌아가는 중 드디어 힘이 빠지고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뭇짐을 내려 놓고 제 가엾은 신세를 곰곰이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무슨 낙이 있었나? 둥근 땅덩이 위에 나보다 더 가련한 인생 있을까? 뻑하면 식량이 떨어지고 한시도 쉴 새가 없다 여편네와 자식들 병사들과 세금   빚장이와 부역(賦役)으로 나야말로 불쌍한 인간의 완전한 본보기가 아닌가 나무꾼은 죽음을 부른다. 죽음은 지체 없이 대령한다.   그에게 무엇을 해 드릴까 묻는다.   "할 일이란" 그는 말한다. "나를 도와 이 짐을 다시 지워 주시오 당신이면 금방 하리다"     죽음은 와서 모든 고통을 덜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있는 곳에서 꼼짝 말자   죽기보다는 괴로운 게 낫지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표어(標語).     이리와 개 / 장 드 라 퐁넨느     이리 선생 한 분 피골(皮骨)이 상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견공(犬公)들이 그만큼 집을 잘 지킨 까닭, 이리 선생이 우연히 힘 세고 잘생긴 맹견 하나를 만났지요. 살이 오르고 털에 윤기가 나는 이 맹견은 잠깐 실수로 길   을 잃었던 것,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는 것은 이리 선생의 간절히 바라는 것이나 그러자면 일전(一戰)을 각오해야 하며 이 맹견 모양을 보아 하니 일대 방어전을 벌일 성 싶다.     그러므로 이리 선생 겸손히 견공 가까이 가 말을 건네고 살이 보기 좋게 쪄서 부럽다고      찬사을 한바탕, 견공 대답하길      "나같이 살 오르기가 소원이시라면 그야 다만 선생 마음 먹기에 달린 일 숲을 떠나시요 그게 좋으리다 선생의 그 곳 동료들의 신세는 말이 아닙니다. 불쌍하고 가엾은 거지 신세들 굶어 죽기에 꼭 알맞은 형편이죠 그 이유야 뻔하죠,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있나, 거저 얻 어 먹는 밥이 있나, 모든 것은 목숨 걸고 싸워야 하니까요. 날 따라오시오. 훨씬 신세가 편하게 되리다" 이리 선생이 말한다 "그럼, 나는 무얼 하면 되겠소?" "별로 하는 일 없지요,"라는 견공 대답. "몽둥이 든 자나 거지들은 쫓아 내고 집안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주인에게는 맘에 들게 꼬리를 흔들면 당신의 보수는 갖가지 푸짐한 상물림 병아리 뼈에다 비둘기 뼈 주인의 애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리 선생, 이미 고져친 팔자를 머리에 그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길을 가다가 문득 견공의 목덜미에 털 빠진 자국을 보고 이리 선생이 묻기를 "이게 뭐요?" - "아무것도 아니요" - "아무것도 아니라니, 뭐요?" "대수롭지 않을 일" - "그렇지만 좀 압시다" - "선생이 보신 건 아마 나를 잡아 매었던 끈 자국인가 보오" - "잡아 매다니" 이리 선생의 말: 그럼 댁은 가고 싶은 곳에 달려갈 수 없단 말이요? - 견 공: "그럴 때도 있지만 그게 뭐 대수롭소?" - 대수롭다마다요, 그 값을 치른다면 귀댁의 고량진미도 난 원치 않고 금은보화를 준다 해도 난 원치 않소 이 말 끝내자 이리 선생 출행랑을 칩니다. 지금도 달립니다.     토끼와 개구리들 / 장 드 라 퐁넨드     토끼 생원 제 굴 속에서 몽상에 골똘합니다. (하기야 굴 속에서 몽상 외에 별 할 일이 없지만) 이 토끼 생원 깊은 수심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 짐승는 원래 심란한 성질인데다 겁이 많아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겁 많게 태어난 사람들은 정말 불행하지" 하고 한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몸에 이롭다는 음식을 먹을 수가 있나 맘 놓고 즐길 수가 있나 항상 전전긍긍합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생활: 이 고약한 겁 때문에 나는 눈뜨고 잘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고치시오"라고 어떤 머리 좋은 사람이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겁이라는 게 고쳐지는 겁니까?" 그런데 사실은 인간들도 나처럼 겁장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토끼씨는 추리합니다 이 동안에도 그는 주위를 살핍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수상하고 불안합니다. 한 줄기 바람 한낱 그림자 하챦은 모든 것들이 열을 오르게 합니다. 이 우울한 동물이 이런 생각에 골몰할 때 어디서 바스락 소리, 이는 그에게 자기 굴 쪽으로 도망치라는 신호 달려가다 연못가를 지나갑니다 갑자기 개구리들 저마다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들도 그들의 깊은 토굴 속으로 되돌아갑니다 아니! 토끼 군이 말합니다. 나도 남이 나한테 하듯 남에게 할 수 있다고! 나의 출현이 또한 사람들을 무섭게 만든다고! 온 진지(陳地)에 비상사태를 편다고! 도대체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한테 생기는가? 아아! 내 앞에서 벌벌 떠는 동물들도 있다니! 나야말로 그들에겐 용맹 장군 아닌가! 알았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겁장이라도 그보다 더한 겁장이가 있구나!   장 드라 퐁넨느: 프랑스의 어느 작가가 라 퐁넨느를 가리켜 비도덕적인 모랄리스트이며 아마추어 시인이지만 가장 완벽한 시를 쓴, 그의 우화 속에 나오는 동화적인 인물이라고 평하였다. 그는 본의 아니게 프랑스의 태양왕 루시 14세 치하의 기라성 같은 문인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애독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는 명예나 지위에 대한 욕망이라든가, 이해타산, 남의 평판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비실제적인 사람이었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유력한 산림관(山林官) 자리도, 그가 공부한 변호사 자리도, 성직자 자리도 마다하고 시골에서 유유자적, 산책과 명상과 책 보는 일만 즐겼다. 그가 26세 때 아버지가 결혼을 시켰고 부인과의 사이에 어린 자식도 있었으나 그는 35세 때 홀연히 가정을 버리고 단신 파리로 올라와 버렸다. 이 일로 인하여 당시는 물론 후세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난을 받았으나 본인은 별 잘못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반면 그의 아이 같은 청순한 마음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은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아, 아무 밑천이나 준비 없이 파리에 와서 이후 일생 동안 당시의 유명한 고관과 귀부인들의 보호와 총애 밑에 살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식객이나 종자로서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순수한 인간성과 재질로 인해 그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았다. 또한 라 퐁텐느로서도 이들에 대하여서는 끝까지 애정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고 때로는 신변의 위험이나 고난을 무릎쓰고 이들의 안위나 명예를 위하여 진력한 용기있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또 당시의 유명한 문인과도 친교를 맺어 라신느, 몰리에르, 브왈로와는 평생 변치 않는 우정을 가졌다. 이렇게 보호자와 친구들 사이에 태평스럽게 지내며 기회 있는 대로 여러 내용과 형식의 작품을 생각나는 대로 썼으며 친구들의 주선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기도 했다.(1684).  대기(大器)는 만성(晩成)이라고 그의 시재(詩才)는 상당히 느리게 성장하여 그의 이름을 후세에 길이 빛나게 한 그의 작품, 즉 우화 제1집이 나온 것은 그가 47세 때였다. 그 후 다시 10년 뒤인 57세 때에 제2집이, 그리고 마지막 편인 제3집이 나온 것은 그가 74세의 나이로 죽기 1년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우화집은 장장 27년 동안 씌어졌고 출판된 것이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우화집은 그의 이름과 함께 프랑스 문학에서 영원히 남게 될 걸작이다.  그의 만년은 그의 보호자이던 사블리에르 부인이 죽자 데르바르 부인의 초청을 받아 그녀의 저택에서 인생의 모든 영예와 행복을 즐기며 지내다 1695년 74세로 생을 마쳤다.  그의 작품을 떠난 개인적 생활은 일생을 권세가나 귀부인 비호 아래 살아가며 인생의 목적이나 책임을 모르고 일종의 향락주의자의 무위도식의 생활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도 스스로 이것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으로 "어느 게으름뱅의의 묘비명"이란 제목으로 일종의 자기 묘비명을 썼다.     쟝은 밑천과 수입을 모두 까먹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노라.   그의 소용 없는 것을 보물인 양 간직했었다.   시간만은 잘 쓸 줄 알았는데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한 쪽은 잠자는 데   또 한 쪽은 무위(無爲)에 썼다.    그러나 이러한 묘비명은 다분히 자조적이며 유머러스한 것으로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리어 권문대가의 비호 아래 살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사회적 양심이 잠자지 않고 있었으며 만사에 흥미와 열의가 없는 그의 태도 속에서도 관찰의 눈은 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17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가식, 불의, 모순을 모르지 않았으며, 인간성의 비굴, 허위, 간교 등을 너무나 생생히 보았고 느껴 왔고 겪어 왔다. 다만 그는 이러한 자신의 관찰이나 생각을 공공연히 직접적으로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시대가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고 그에게 그러한 정열도 없었다.)따라서 그는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표현을 통하여 그의 사상이나 인생관, 철학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이 우회적인 표현 수단이 바로 '우화'였다고 할 수 있다.   네에레 / 앙드레 셰니에     그러나 아름다운 백조가 죽음 앞에 마지막으로 탄식하며 그 부드러운 목소리로, 곧 끊어져 버릴 그의 목소리로 떠나기 전, 인생에 이별을 고하며 노래하듯 그녀는 슬픔과 죽음이 가득 찬 눈에 창백한 모습으로 최후의 힘을 다하여 입을 열었다: "아아, 그대들 세베투스 강을 배회하는 나이아테스의 요   정들이여 나의 무덤 위에 그대들의 금발의 머릿단을 잘라 주어요. 잘 있어요, 나의 클리니아스; 그대의 마음에 들었고 그대를 사랑한 나를 그대는 다시 보지 못할 거요. 오오, 하늘이여, 오오, 땅이여, 오오, 바다여, 들과 산과   바닷가여, 꽃밭, 노래하는 숲, 골짜기와 험난한 동굴이여 그로 하여금 자주, 그로 하여금 항상 기억켸 하라 네에레, 그의 모든 행복, 네에레 그의 모든 사랑 오오라, 그가 나의 네에레라고 부른 이 네에레는 그를 위하여 죄인되어 어머니를 버렸고 그를 위하여 도망질치며 이곳 저곳으로 헤매었고 사람들의 눈앞에 차마 얼굴도 들지 못하였지요. 오오! 헬레네의 두 형제의 깨끗한 별이 그대의 뱃전 아래 이오니아의 파도를 잔잔케 하거나 페스툼 해안가의 그대의 정원이 그대의 정성스런 손길 아래 해마다 두 차례씩, 장미꽃으   로 덮일 때 석양에 그대 마음 외로와져 조용하고 부드러운 명상에 빠지면 그러면, 나의 클니아스여, 나를, 나를 불러요, 나는 오리다, 나는 그대에게 날아오리다. 떠다니는 내 영혼은 나뭇잎새들을 지나오면서 떨 것입니다, 바람 위에 혹은 어떤 구름 위에 그대는 보리다, 내 영혼이 내려오는 것을, 혹은 바다 한   가운데서 꿈과 같이 솟아올라 공중 속에서 빛나는 것을 그리고 언제나 부드럽고, 다정하나 한 맺힌 내 목소리는 떠나가며 그대의 기울인 귓전을 스칠 것이외다."     젊은 여수(女囚) / 앙드레 셰니에     "새로 돋은 이삭은 낫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익어 가며; 포도알들은 압착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름내   달콤한 새벽의 선물을 마신다; 포도처럼 아름답고 이삭처럼 영롱한 나는 아무리, 지금 이 시간 불안과 슬픔이 있다 해도   아직 죽고 싶지는 않다.   냉정하게 죽음을 찾아가는 냉혈한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울며 또 바란다, 모진 폭풍이 불면   나는 머리를 숙였다 다시 든다. 괴로운 날들이 있으면 지극히 행복된 날들도 있는 법! 아아, 쓴 뒷맛 안 남기는 꿀이 어디 있었으며   폭풍이 불지 않는 바다 있었던가?   무성한 몽상이 나의 가슴 속을 채우고 있어 감옥의 벽이 무겁게 누른다 해도 소용 없다   나에게는 희망의 날개가 있으므로 잔악한 새잡이의 그물을 빠져 나와 밤 꾀꼬리는 넓은 하늘에서 더욱 경쾌하고 더욱 행복하게   노래 부르고 또 솟구쳐 오른다.   내가 죽으리라고? 나는 편안히 잠들며 또 편안히 눈 뜬다: 자나깨나   나에게 후회는 없다. 일어나면 나를 반기는 모든 눈에 웃음이 떠오르고 감방 속의 내 모습은 절망한 얼굴들 위에   거의 기쁨을 소생케 한다.   나의 아름다운 인생 행로의 종점은 아직은 너무나 멀어 나는 지금 출발할 뿐, 길 양쪽에 늘어선 느릎나무도   나는 이제 그 몇 그루를 지나왔을 뿐 겨우 시작된 인생의 향연에서 아직 내가 든, 가득 찬 술잔에   단 한 순간 입술을 대었을 뿐.   나는 인생의 봄일 뿐, 수확의 가을을 보고 싶다. 그리고 계절에서 계절로 움직이는 태양처럼   나는 나의 한 해를 다하고 싶다. 나무 줄기 위에서 빛나며 정원의 자랑인 나는 빛나는 아침 햇살밖에 보지 못하였으니   나는 나의 하루를 다하고 싶다.   오, 죽음이여 그대는 기다리라; 떠나가라. 멀리 가버리라 가서 수치와 공포와 챙백한 절망이 괴롭히는   마음들을 위로하라. 나에게는 아직 팔레스 신의 푸른 안식처와 입맞춤의 사랑이 있고 풍류의 무즈 신이 있으니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이리하여 슬프고 갇힌 내 거문고는 젊은 여수(女囚)의 이 탄식, 이 목소리, 이 소망을 듣고   깨어났다. 그리하여 지루한 나날의 짐을 떨어 버리고 그녀의 사랑스럽고 천진한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아름다운 시구(詩句)에 담았다   나의 감방 격조 높은 증인인 이 노래들은 학문적 여가를 즐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아름다운 여인이 누구였나 찾게 하리라; 그녀의 얼굴과 말에는 우아한 기품이 있었으며 그녀의 옆에서 나를 지낼 사람들은 그녀와 같이   저들의 생이 끝남을 보기 두려워하리라.     이얌므 8 / 앙드레 셰니에     사람들은 산다; 사람들은 비열하게 산다. 어찌하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걸;     비열한 자들도 먹고 자야 하니까. 이 곳에서도, 이 울타리 속에서, 우리들이 죽음 앞에 풀   을 뜯고     단두대 작도가 우리들을 제비 뽑는 이 곳에서도   허튼 수작, 어리석은 자들의 음모 따위 노래를 부른다; 노름을 한다; 치마를 올린다;   유행가를 부르고 재담을 한다; 어떤 자는 바람을 넣은 공을 밀어 내어   지붕과 창문 위에서 튀게 한다. 속이 빈 공이라면 7백명의 저속한 무뢰한들의 연설이 그   러하고   그 중에서 바레르라는 자가 제일 유식한 자. 다른 자는 달리고 또 어떤 자는 뛰고 정치가 이론가들은   고함 지르고 마시고 웃는다. 갑자기 쇠돌쩌귀 위에 문 여는 소리가 삐걱거린다.   우리들은 호랑이 판사 나리들의 징발관이 나타난다. 오늘 단두대 칼이 부르는   밥은 누구일까? 모두 부들부들 떨며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아직   자기 차례가 아닌 것을 알고 기뻐한다---     앙드레 셰니에(1762~1794): 1794년 6월 25일, 지금의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앙드레 셰니에는 26명의 사람들과 함께 단두대의 칼날 아래 목이 떨어졌다. 그의 나의 32세였다. 이 때에 누구도 그들이 한 시인을, 아니 한 위대한 시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만큼 한때 혁명가였던 이 사람을 시인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의 작품도 발표된 적이 없었다.   그가 단두대에서 사라진 지 25년이 지난 1819년 라쿠슈라는 출판사에서 그의 작품이 간행됨으로써 비로소 그는 갑자기 위대한 시인으로, 특히 사막 같은 18세기 문단에 솟은 유일한 종려나무라는 절찬을 받았다. 특히 당시에 낭만파 시인들은 그들의 선구자라고 환호성을 올렸고, 앙리 드 레니에는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롱사르, 위고, 셰니에의 이름을 꼽을 정도였다.   앙드레 셰니에는 1762년 콘스탄티노풀에서 당시 이 곳에 프랑스 영사로 부임해 있던 아버지와 그리스 태생의 아름답고 교양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그는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리스의 문화와 문학에 대한 애착과 동경을 가졌다. 그 후 파리로 돌아온 뒤에는 사교가이기도 한 어머니가 그녀의 살롱에 많은 문인, 학자, 다비드 같은 유명한 화가를 손님으로 맞이하였으므로, 젊은 셰니에는 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였고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정열도 높아졌다. 이 때에 그는 그리스 시가를 본뜬 몇 편의 시를 썼다.   그가 25세  때 프랑스 대사관의 서기관으로 런던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2년에 걸친 영국 생활은 그에게는 무척 고통스럽고 무료하고 적적하였던 모양이다. 그는 이 망향의 슬픔과 고적한 생활을 달래기 위해 방대한 작품을 계획하고 "헤르메스"와 "아메리카"라는 두 작품을 썼다.   2년이 좀 넘어 1790년 그는 꿈에도 못 잊던 프랑스에 돌아왔다. 때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파도와 불이 소용돌이치는 격동기였다. 젊고 정열에 넘치는 셰니에는 이 와중에 뛰어들어 열렬한 혁명가가 되어 변혁과 자유를 찬양하는 노래와 시를 썼다. 그러나 그는 자유와 동시에 정의와 질서를 사랑하는 온건주의자로서 공포 정치로 치닫는 자코뱅의 과격한 행동을 비판 공격하고 차츰 루이16세의 옹호파와 협력하게 된다. 이리하여 그는 혁명파에 의하여 반동파,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고 루이 16세가 처단된 뒤에는 베르사이유 교외에 숨어서 지내다가 1794년 3월 파리에서 체포되어 생 라자르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옥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몰래 12편의 이얌브라는 형식의 풍자시를 써서 자코뱅의 폭정과 독재를 맹렬히 공격한다. 이 원고를 그는 세탁함 속옷 속에 숨겨 자기 아버지에게 보냈다.감옥에 들어온 지 약 4개월 뒤 인민의 적이라는 죄목으로 그는 단두대위에서 사라진다. 그가 죽은 지 이틀 뒤에 그의 적이던 로베스피에르도 같은 형장에서 사라졌다.     그는 비록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으나 그가 남긴 작품은 그 자체로 보나 그 작품들이 후세에 미친 영향으로 보나 매우 중요하다.   그는 당시의 사회 환경이나 가정 교육으로 보아 자연히 그리스의 고대 문화가 문학에 젖고 심취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시(특히 초기의 것) 가운데는 헬레니즘의 취미 사상이 가장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그러나 셰니에의 독창적인 점은, 고대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차츰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자신의 풍부한 감수성과 열정으로 가지고 살았으며 그것을 고대의 형식미와 조화시켜 표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세기를 넘어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시대의 감각, 감정, 사상,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성실하고 힘차게 표현한 데 있다. 또한 17세기, 18세기의 프랑스의 시가는 감정이 마르고 개성이 없어 귀족이나 풍류객들이 즐기는 말의 기교나,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였다. 이 메마른 땅에 셰니에는 마음을 불러들였다. 그의 유명한 말에 "기교는 시구(詩句)를 만들 뿐 마음만이 시인이다"가 있다. 이는 바로 말의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표현이 시를 이룬다는 새로운 태도로, 앞으로 올 낭만파의 구호가 된다. 한편 그는 문학에 있어서 개성과 마음을 중요시하였지만 그가 이어받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가의 미의 이상인 우아와 절도, 형식과 내용의 조화, 조형미와 음악성의 융화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고전성이 또 후에 파르나스 파의 선구가 된 것이다.   나비 /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     봄과 더불어 태어나 장미와 함께 죽으며 하늬바람 날개에 실려 맑은 하늘 속을 헤엄치며 겨우 피기 시작한 꽃가슴에 앉아 하늘거린다 향기와 빛과 창공에 취하고 아직 젊은 몸에 날개의 분가루를 뿌리면서 한 줄기 바람처럼 무한한 창공으로 날아가는 것 이것이 나비의 매혹된 운명. 이는 결코 쉴 줄 모르고 만사를 스쳐 가나 만족됨이 없어 결국 쾌락을 쫓아 하늘로 되돌아가는 인간의 욕망 같이.     호수 /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     아아, 이렇듯 항상 새로운 기슭으로  밀려가고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밤 속으로 실려 가는 우리들은 일월(日月)의 바다 위에 단 하루도    닻을 내릴 수 없단 말인가?   오, 호수여! 세월은 이제 겨우 한 해의 운행을 끝냈을   뿐인데 그녀가 와서 다시 보았을 정다운 물가에 보라, 내가 홀로 이 바위 위에 앉았노라.   너도 보았지. 그녀가 와서 거기 앉던 것을 !   너는 그 때도 이렇듯 깊은 바위 밑에서 울부짖고 있었노라 너는 그 날도 이렇듯 바위 모서리에 부딪쳐 깨지고 있었   노라. 그 날도 이렇게 바람은 너의 파도 거품을 그녀의 너무나   사랑스러운 발 위에 끼얹고 있었노라.   어느 날 저녁, 너는 기억하는가? 우리는 말없이 배를 저   어 가고 있었다. 물결 위와 하늘 아래 저 멀리서 들리는 것이라곤 장단 맞춰 너의 아름다운 수면을 치는   노 젓는 이의 소리뿐이었다.   갑자기 이 세상 소리 같지 않은 음향이 홀린 듯한 기슭에서 메아리친다. 불결도 귀기울인 채 나에겐 정다운 목소리가   이런 말을 떨어뜨렸다.   "오오, 시간이여, 너의 날개를 멈추어라! 그리고 행복의   순간들이여     그대들의 흐름을 멈추어라! 우리들로 하여금 가장 아름다운 날들의      일순간의 환희를 맛보도록 하라!   그러나 이 세상의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그대에게 탄원하    나니 시간이여,      흘러라, 흘러라 저들을 위하여 가져 가라, 저들의 날들과 함께 저들을 괴롭히는 근심 걱정도      행복한 자들은 잊어버려라.   "내가 몇 순간의 유예(猶豫)를 청했으나 부질없는 일,     시간은 나를 피하여 달아났다. 나는 이 밤에게 말한다. "좀더 더디 가라" 그러나 새벽은   이미 밤을 거두려 한다.   "사랑하자, 그러므로 사랑하자! 달아나는 시간을     서둘러 즐기자! 인간에게 항구가 없고 시간에게 기슭이 없으니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지나간다!"   시기 많은 시간이여, 사랑이 우리들에게 철철 넘치게 행복을 부어 주는 이 도취의 순간들도 불행한 나날들과 같이 빨리 우리들로부터 멀리     날아가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뭐라구! 우리는 도취된 순간의 자취마저 간직할 수 없을     것인가? 뭐라구!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무엇이! 완전히 없    어져 버렸다고? 그 순간들을 주었고 또 그것을 지워 버리는 이 시간을     우리들에게 그것을 돌려 주지는 않을 것인가?   영원이여, 허무여, 과거여, 어두운 수렁이여, 너희들이 삼켜 버린 이 날을 어찌하려는가? 말하라, 너희들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이 숭고한 황홀의     순간들을 우리에게 돌려 줄 것인가?   오, 호수여! 말없는 바위여! 동굴이여! 검푸른 숲이여! 시간이 아직 손대지 않고 때에 따라서 다시 새롭게 하는 그    대들은 간직해 다오,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밤의 추억이나마 간직해 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그대의 휴식 속에 또는 폭풍우 속에 그대의 웃는 듯한 언덕의 모습 가운데 그리고 이 검은 전나무와 물 위를 내려다보는     거친 바위 가운데!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미풍 속에 너의 기슭에 부딪치고 또 기슭에 반복되는 물결 소리 가     운데 보드라운 광채로 너의 물 위를 하얗게 물들이는     은색 얼굴의 달 가운데 깃들게 하라!   울부짖는 바람, 탄식하는 갈대, 너의 향긋한 대기 속의 가벼운 향기 듣고 보고 숨쉬는 만물이여, 모두 말하라;     "그들은 사랑하였노라"고.     고독 /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     해질 무렵 나는 자주 산 위에 올라 해묵은 떡갈나무 그늘 아래 힘없이 앉는다. 무심코 눈초리를 들판으로 돌리면 변모하는 전야(田野)의 풍경화가 발 밑에 펼쳐진다.   이 쪽에선 거품 이는 강물이 웅얼대며 흘러 이리저리 굽어서 먼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리고 저 쪽에선 움직이지 않는 호수물이 잠든 듯 펼쳐 있다. 그 위에 저녁별이 푸른 하늘 위에 솟는다.   검푸른 나무로 덮인 이 산마루에는 석양이 아직도 그 마지막 햇살을 던지고 있으며 어둠의 여왕 달님의 수레가 어렴풋이 떠올라 벌써 지평선 가장자리를 희게 물들인다.   이윽고 고딕 종탑에서 날아오는 경건한 종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지면 길손은 발걸음을 멈추고 마을 종소리는 이 날의 마지막 소음에 성스러운 주악을 섞는다.   그러나 이 온화한 풍경들 앞에서 나의 무심한 영혼은 아무 매력도 열광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떠다니는 환영처럼 대지를 바라다볼 뿐 살아 있는 사람들의 태양은 이미 죽은 자들을 덥게 해 줄    수가 없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부질없이 눈길을 돌리며 남에서 북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 광대한 공간의 구석구석을 찾아보고 나는 말한다; "행복이 나를 기다리는 곳은 아무데도 없   다"고.   이 골짜기들, 이 화려한 건물들, 이 초가집들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미 나에게는 흥미를 잃은 부질없는 물건들 강물도 바위도 숲도 정다운 외로움도 한 존재가 없을 때엔 모든 것이 비어 있다.   태양의 순회가 시작되건 끝나건 나는 무관심한 눈으로 그 운행을 쫓는다; 혹은 흐린, 혹은 맑은 하늘에 해가 지건 돋건 태양이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나날에 아무 기대도   갖지 않는다.   비록 내가 그의 광대한 행로를 쫓을 수 있다 해도 나의 눈으 도처에 허공과 사막을 보리라. 나는 태양이 비추는 모든 것에서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으며 무한한 이 우주에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아마도 태양계의 한계를 넘은 저 쪽에 참다운 태양이 다른 하늘을 비추는 곳에 내가 만일 나의 육체의 허물을 지상에 버릴 수 있다면 내가 그토록 꿈꾸던 것이 눈앞에 나타나리라!   거기서 나는 그리던 샘물에 취할 것이며 거기서 나는 희망과 사랑을 그리고 모든 영혼이 갈망하나 지상에는 그 이름조차 없는 최상의 복락을 되찾으리라!   어찌하여 나는 오로라의 수레에 실려 나의 소원의 막연한 대상인 그대에게 달려갈 수 없는가? 어찌하여 나는 아직까지 유배의 땅에 머물러 있는가? 이 땅과 나와는 아무런 공통되는 바가 없다.   나뭇잎이 초원에 떨어지면 저녁 바람이 일어 낙엽들을 골짜기로부터 몰아간다. 나는 또한 시든 낙엽과도 같으니; 거센 북풍이여, 나를 저 나뭇잎처럼 실어 가 다오!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1790~1869): 샘 솟듯 흘러나오는 감정의 토로, 호수-숲-골짜기를 거닐며 과거에 대한 회상-현실에 대한 실의로 시작하여 체념 혹은 희망으로 끝나는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의 시는 1820년 프랑스 독자를 매혹하고 열광시켰다.  5세기에 걸친 오랜 왕정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혁명이라는 거센 바람에 휘말리다 나폴레옹의 출현과 더불어 전설과 꿈 같은 제정 시대에 젖었던 프랑스 국민은 또 다시 하루 아침에 황제와 그 제국의 붕괴를 눈앞에 보게 되자 깊은 허무감과 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급격하고 잇단 변천은 사람들을 깊은 실의와 애수에 빠지게 하였고, 그들은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받고 달래 주는 무엇을 찾고 있었다. 라마르틴느의 시는 바로 이러한 공감과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이었다.   라마르틴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 즉 1790년에 포도주의 명산지 마콩에서 태어났다. 원래 귀족 가문이었던 그의 집안은 혁명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갔다가 1794년 풀려 나오자 더 이상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온 가족이 시골 밀리(Milly)로 이사하였다. 이제 세월을 바뀌어 나폴레옹이 출현하고 공화국은 제정으로 바뀌었다. 20세가 된 라마르틴느는 외교관이 되거나 또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군인이 될 생각이었으나 그의 가문은 원래 왕정파로서 왕위의 찬탈자 아래 봉사하기를 원치 않았다. 1815년 루이 18세가 복위된 뒤 1820년 비로소 그는 외교관이 되어 이후 10년간 이탈리아 각지에서 서기관 또는 대리 대사로 지내게 된다. 그런데 이 동안 그는 외교관으로서 일하기보다는 시인으로서 더 많이 일하였으며 더 널리 알려졌다.  1820년  , 1825년의 , 1830년에는 두 권의 등이 출판되었다. 특히 첫 시집 을 발표한 뒤 그는 일약 새로운 시대를 고하는 국민 시인이 되었고 1829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라마르틴느는 문학을 일생의 직업으로 삼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국민 대중과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삼았다. 1830년 7월 혁명이 일러나 복구된 왕정이 전복되고 루이 필립 아래 소위 입헌 군주제가 수립되자 1833년에 라마르틴느는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외교관을 퇴임하고 국회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된다. 이리하여 그는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구테타로 공화 체제를 전복할 때까지 18년 동안 국정에 참가하였고 특히 1848년 5월 혁명 직후에 수립된 과도 정부에서 외무 장관으로서 또 실제로는 정부 수반으로 온건파의 공화국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폭력적인 파리 시민과 다른 쪽에서는 군의 지지를 업은 유산층(有産層)의 틈바구니에서 악전 고투를 하다 결국 4개월 만에 정치 판도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정직하고 용감하고 성실하고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나 너무나 선량하고 이상적이었으며 관대한 그는 필경 정치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놀라운 일은 이러한 정치적 생활 가운데서도 그는 간헐적으로 시를 썼고 여러 편의 시집을 출간한 일이다.  유명한 도덕적, 종교적 서사시 , , , 그리고 정치가로서의 저서인 등이 있다.   그의 만년의 20년(1849~1968)은 비참한 것이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무시되고 대중에게는 잊혀진 그는 고독 가운데에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천성이 대범하고 관대한 그는 그 동안 생각없이 걸머진 빚을 갚아야 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썼다. 역사 소설, 자서전, 심지어 월간지-문학의 대중 강좌도 맡아 했다. 스스로 문학의 강제 노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겨우 그가 죽기 2년 전 그를 동정한 정부로부터 약간의 연금을 받아 겨우 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는 기진맥진하여 79세의 긴 일생을 파리에서 마쳤다.   이리의 죽음 / 알프레드 드 비니   1 구름은 불길 위를 날아가는 연기처럼 붉은 달 위를 달리고 숲은 땅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묵묵히 젖은 풀숲을 밟으며 총총한 잡목, 키 큰 가시나무 속을 걸어가고 있을 때 문득 랑드 지방의 솔 비슷한 전나무 숲 아래 우리들이 쫓던 그 떠돌이 이리들이 남긴 큰 발톱 자국들을 보았다.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숨을 삼키고 발걸음도 멈춘 채-숲도 들도 숨소리 하나 공중에 내지 않았다; 단지 바람개비만이 황량하게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바람이 땅 위로부터 높은 곳으로 불어 발꿈치로 외롭게 선 첨탑을 스치고 갈 뿐 땅 위에 떡갈나무들은 바위에 몸을 기대고 팔굽을 베고 누워서 잠이 든 듯했다. 천지가 고요한 이 때 이리 떼를 찾고 있던 포수 중 제일 연장자가 몸을 줍혀 모래 바닥을 살폈다; 이윽고 아직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이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방금 생긴 이 발자국들은 두 마리의 큰 삵쾡이와 그들의 두 새끼들의 걸음걸이와 억센 발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 사냥칼을 갖추고 너무 희게 빛나는 총부리를 감춘 채 나뭇가지를 헤치며 한발 한발 걸어나갔다. 세 명의 포수가 걸음을 멈춘다. 그러자 나는 그들이 보고   있는 쪽을 찾다가 갑자기 이글이글 타는 두 눈을 보았고 그 뒤쪽으로 네 개의 희미한 형상이 달빛 아래 잡목 덩굴 속에서 춤추는 것을 보았다. 마치 주인이 돌아오면 좋아 날뛰는 사냥개들이 큰 소란을 피우며 뛰노는 늘 보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은 형태도 뛰는 모습도 비슷했다. 그러나 새끼들은 소리 없이 놀고 있었다. 이는 바로 지척지간에 인간이란 그들의 적이 그의 집 안에서 깊이 잠들지 않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비 이리는 서 있고 그 뒤로 좀 떨어져 어미 이리는 나무 옆에서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옛날 로마 인들이 숭앙하고 그 털 난 가슴에 반신(半神) 레무스와 로물루스를 품었던 대리석 이리   상(像)과 같았다. 아비 이리는 앞으로 나와 앉았다. 두 앞발을 세우고 갈퀴 같은 발톱을 모래 속에 박았다. 뜻밖에 당한 일이므로 살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퇴로는 차단되었고 모든 길은 막혔다; 그러자 이리는 불타는 듯한 입으로 가장 용맹스러운 개의 헐덕이는 목덜미를 물었다, 그의 살을 꿰뚫은 총탄에도 무쇠 집게와 같이 그의 넓은 배창자 속을 십자로 꽂는 날카로운 비수에도 그의 강철 같은 턱은 벌리지 않았다. 목 졸린 사냥개가 그보다 훨씬 앞서 죽어 그의 발 아래 내동그라진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제야 이리는 개를 놓고 나서 우리들을 쳐다본다. 우리의 칼들은 그의 허리에 손잡이까지 꽂혀 피로 홍건한 풀밭 위에 그를 못박아 놓았으며; 우리의 총부리는 험상한 초승달처럼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계속 우리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입가에 질펀한 피를 핥으면서 다시 눕는다. 그리고 어떻게 자기가 죽게 되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큰 눈을 다시 감으면서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고 죽어 간다.   2 나는 화약에 빠진 총대에 이마를 대고 생각에 잠겨, 남은 암 이리와 그의 두 새끼들을 뒤쫓을 일조차 결심할 수 없었다. 이 세 식구는 모두 아비 이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내가 생각컨대 이 아름답고 슬픈 빛의 암 이리는 그의 두 새끼만 없었던들 그가 홀로 이 큰 시련을 받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미의 의무는 자식들이 굶주림을 잘 참으며 인간이 비열한 가축들과 맺는 도시의 협약에 절대 말려들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 노예 근성의 가축들은 그들의 잠자리를 얻기 위해 인   간의 앞에 서서 숲과 바위의 원 소유자들을 몰아 내고 있는 것이다.   3 나는 생각했다. 아아, 인간이란, 이 위대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우리들 인간을 나는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하는   가! 사람이 이 세상과 인생의 모든 고난을 어떻게 떠냐야 하   는지 그것을 아는 자는 너희들, 고귀한 짐승들아! 우리가 지상에서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남기고 가는지 생   각할 때 무언(無言)만이 위대할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연약한 일 --아아 야성(野性)의 방랑자여, 이제 너희 뜻을 깨달   았으니 너의 마지막 눈초리는 나의 가슴까지 와 닿았다. 그 눈초리는 말하였다; "그대 할 수 있다면 꾸준히 노력하고 생각함으로써 너의 영혼이 가장 높은 인종(忍從)의 자존지경(自存之境)   에 이르도록 하라 숲 속에서 태어난 우리들이 처음부터 올라선 이 높은 곳으로, 탄식, 눈물, 기원, 이는 모두 비겁한 일 운명이 그대를 부르고자 한 길에서 그대 오래고 무거운 과업을 힘차게 다하라. 그리고 나서 나와 같이 소리 없이 괴로와하고 죽어라."     알프레드 드 비니(1797~1863): 시인이며 소설가며 극작가였던 알프레도 드 비니는 프랑스 시골의 군인 귀족 가문 출신이다. 이 귀족 가문도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회오리 바람 속에 몰락해 버렸으나 젊은 비니는 귀족의 명예를 지키고 영광을 되찾기 위해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다. 왕정의 열열한 지지자인 그는 18세의 소년으로 루이 18세의 복귀와 망명 때에는 총사(銃士)의 붉은 제복을 입고 호위하였다. 그러나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후 들어간 군문(軍門)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지루하고 단조로운 굴종의 생활에 불과하였다. 이미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전쟁과 영광의 시대는 지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비니는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문인으로서 영광을 되찾기로 하였다. 그는 타고난 시인이며 명상가이며 철학자였다. 군복을 입은 채 시를 쓰고 또 소설을 썼다. 그리하여 그가 군인 생활에 환멸을 느껴 자진 퇴역하기 1 년 전 즉 1826년 그는 을 발표하고 이어서 역사 소설 를 출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29년에는 세익스피어의 를 번안하여 국립 극장 에서 상연함으로써 일약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이에 자극되어 1827년 그는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로 올라와 창작과 아울러 위고를 중심으로 한 낭만파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이 때까지 그는 유명한 작가이며 행복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1839년을 고비로 타고난 염세적인 고독감과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 기독교와 생에 대한 완전한 회의를 느낀 그는 차츰 문단과 사회를 멀리하고 자신의 세계에 들어앉아 자신의 체험과 사상을 담은 시, 연극, 소설을 발표하였다. 천재의 정신적 고독을 다룬 소설 , 이 소설을 극화한 , 자신의 군인 생활의 체험과 사상을 담은 , 종교적 비관주의를 쓴 등이 있다. 또한 이 때부터 그는 순수한 문학 작품이라기보다 사회적-철학적 문제를 다룬 많은 책을 출판하였다. 또한 이 시절 그는 인생의 다른 현실적인 시련을 겪게 되었다, 사랑하던 어머니의 죽음, 문인 친구들과의 심한 불화, 더우기 그가 열애하던 무대 여배우 마리 도르발의 변심과 배반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드디어 그는 파리를 떠나 고향 멘느-지로로 내려갔다. 외부와의 일체 접촉을 끊고 소위 생트-뵈브가 말한 상아탑에 들어가 사색과 명상과 시작(詩作)으로 지냈다. 그는 만년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지냈다. 그러나 이러한 유페 생활은 그에게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사상이 담긴 시를 낳게 하였다. , , , , 등 정신적-철학적 시와 아주 만년에 그의 유일한 내면적 수기 를 썼다. 앞서 말한 시들은 그가 죽은 다음해 1864년 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도 1867년 사후 출판되었다. 이 몇 편의 시와 일기는 그의 시인으로서의 위치, 아니 위대한 시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확보하기에 충분하였다.   만년에 그는 작가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섯 번이나 아카데미 프랑세스 회원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되어 1845년에 겨우 회원이 되기도 하였다. 1848년에는 자기 고향에서 대의원으로 입후보하여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하였다. 그의 사회 생활은 불운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863년 고향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내일은 새벽부터 / 빅토르 위고     내일은 새벽부터 들이 훤해지면 난 떠날 테다. 난 안다, 네가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가련다, 숲을 지나 산을 넘어. 이 이상 더 너와 멀리 떠나 있을 수가 없구나.   나는 걸을 테다, 나의 눈은 오로지 한 생각에 골똘하여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아무것도 없을 게다 홀로, 낯선 나그네, 굽은 등에 두 손을 맞잡고 슬픈 나에겐 대낮도 밤과 같으리라. 나는 저무는 석양녘의 항금빛도 멀리 아르폴뢰르 항구 향해 내려가는 돛단배들도 보지   않으련다 다만 너 있는 곳에 다다르면 네 무덤 위에 푸른 호랑 가시나무와 꽃핀 히드 다발을 놓으리라.     파종의 계절, 저녁 / 빅토르 위고     황혼의 순간 나는 문간에 앉아 노동의 마지막 시간을 비추는 이 하루의 종막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어둠에 젖은 들판에서 미래의 추수를 한 줌씩 밭고랑에 뿌리는 한 노인의 해진 옷을 나는 감격된 맘으로 본다.   그의 크고 검은 영상(影像)은 깊은 밭고랑들을 제압하고 나는 지나가는 나날들의 유익함을 그가 얼마나 믿고 있는지 느낀다.   그는 막막한 들판을 걸으며 가고, 오고, 멀리 씨를 던지고 손을 다시 펴 또 뿌리기 시작한다. 나는 명상에 잠긴다. 무명(無名)의 증인.   그 동안, 웅성거리는 소리가 섞인 어둠의 장막은 베일을 한장 한장 펼쳐 내린다. 씨뿌리는 사람의 장엄한 움직임을 별들에게까지 퍼지게 하는 듯.     최종(最種)의 말 / 빅토르 위고     나는 굴하지 않으리라! 입에 불평의 소리를 울리지 않고 조용히, 슬픔은 가슴 속에, 짐승 같은 인간의 떼 무시   하며 나는 이 거친 유형(流刑)의 땅에서도 아아, 조국을 나의 제단(祭壇)으로, 자유를 나의 깃발로   삼으리라! 나의 고결한 동지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신앙을 지키리라 우리 비록 추방되었으나 공화국은 여기 있고 우리를 결합   한다. 나는 저들이 멸시하는 모든 것을 영광으로 삼으며 나는 저들이 찬양하는 모든 것을 저주하리라   나는 재(灰) 부대를 몸에 쓰고 목소리 되어 "화(禍) 있을진저!" 할 것이며 입 되어 "아니   다!" 외칠 것이다. 너의 하인들이 너에게 루브르 왕궁을 가리킬 때 나는 너, 케사르여, 너에게 미친 자의 감방을 가리키리라.   배신의 행위와 숙여진 머리들 앞에서 나는 팔짱을 끼고 보리라, 분노하나 평온한 마음으로, 무너진 것에 대한 슬픈 충성이여 나의 힘, 나의 기쁨, 나의 청동(靑銅) 기둥이 되어라!   그렇다, 그가 거기 있는 한, 사람들이 그 앞에 굴하든 참   고 견디든! 아, 프랑스! 우리들이 사랑하며 슬퍼하는 프랑스 나는 너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너의 아름답고 슬픈 땅을, 나의 조상이 묻힌 곳, 나의 사랑의 보금자리!   나는 다시 보지 못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그 강가를 프랑스! 아아, 그러나 나는 의무(義務) 외엔 모든 것을   잊으리라. 나는 고난받는 자 가운데 나의 장막을 칠 것이며 나는 서 있기 원하므로 추방자로 남으리라.   나는 이 험난한 유형을 달게 받으리라 비록 끝도 기한도   없을지라도 좀더 굳세리라 믿었던 누군가 굴복했고 머물러야 했던 몇 사람이 가 버렸는지 나는 알려고도, 생각하려고도 않는다.   이제 천 명밖에 안 남을지라도, 그야 물론 나는 그 속에   있을 것이며 만약 이제 백 명밖에 안 남았다 해도 나는 계속 독재자에게 항   거할 것이다 만일 열 명밖에 안 남았다 해도 나는 그 열번 째가 될 것   이며 이제 단 한 명밖에 안 남았다면 나는 그 한 명이 되리라!     빅토르 위고(1802~1885):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사람에게 쓸 수 있다면 빅토르 위고는 이 형용사를 받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찌기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에 가장 위대한 작가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여, "할 수 없다. 위고다"라고 했다는데, 그의 이 평은 위고가 많은 인간적 내지 예술적 결함을 가졌으나 그의 위대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충을 피력한 말이다.   19세기를 거의 다 살면서, 이 긴 세월 동안 그는 위대한 시인, 위대한 극작가, 위대한 소설가, 위대한 사상가이었고 또 위대한 투쟁가이었다. 한때 그의 목소리는 프랑스 민중의 양심과 감정과 희망의 울림판이었으며 그의 박애주의적 인도주의 사상은 19세기 후반에 전 유럽 사회에 빛을 던져 주었다.    이미 14세의 소년 시절에 '사토브리앙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무(無)'라고 쓰고 문학에 뛰어든 그는 26세 시집 를 출판하여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이래 1843년 장녀 레오폴딘느의 익사로 인해 잠시 동안 문학 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약 20년 동안 6권의 시집, 3편의 소설, 9편의 연극을 발표하였다. 이 가운데 시집으로서 , , , 등이 소설로는 , 연극으로는 ,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정력적인 그는, 쉴 줄 모르는 창작 활동과 동시에 열정적인 문학 운동도 폈다. 연극 공연을 둘러싸고 일어난 고전파-낭만파 싸움에서 사령관 위고는 학생-문학 청년- 무명 화가들, 그리고 네르발이나 고티에 등의 20대 젊고 전투적인 시인들을 동원하여 육탄적인 공격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당시의 쟁쟁한 시인, 작가들, 비니, 뒤마, 메리메, 발자크, 생트-뵈브, 네르발, 고티에 등을 자기 집에 모아 일종의 낭만파 문학클럽 세나클(Cenacle)을 조직함으로써 낭만파 운동의 총수가 되었으며 젊은 세대의 우상이 되었다. 그는 1941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43년은 그의 생애에 전기(轉機)를 이루는 해였다. 위고의 사랑하는 장녀 레오폴딘느는  이 해 결혼한 지 얼마 후인 9월 4일, 남편과 함께 세느 강 하류에서 보트를 타다 얼마 후인 9월 4일, 남편과 함께 익사했다.   졸지에 사랑하는 딸을 잃은 충격으로 위고는 언어 상실증에 걸렸다.  겨우 일년 만에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으나 이 시기를 계기로 그는 문학 운동과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혁명적인 이상을 사회에 펴기 위하여 정치에 깊이 관여한다. 그의 생각으론 시인의 사명은 민중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향의 결과 위고는 1845년 왕당파로 프랑스 국회 상원 위원이 되었고, 1848년 2월 혁명 후에는 파리 출신 제헌 의회의원으로 또 입법 의회 의원으로 활약하며 가난한 자와 피압박자의 편에 서서 자유, 평등, 공화 체제를 위한 싸움에 가담했다. 드디어 군(軍)과 우익 정당을 배경으로 등장한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미주적인 헌법 개정을 하자 위고는 그의 가장 격렬한 반대자가 되었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쿠테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하고 반대파와 공화파 의원을 체포할 때 첫번째 대상이 된 것이 그였다. 위고는 파리 시민을 봉기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동료 의원 72 명과 함게 프랑스를 떠나 망명의 길에 올랐다. 그의 망명은 이후 19년 동안 계속되었다. 위고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영불 해협의 제르제섬으로, 다시 고도(孤島) 게르네제 로 옮겨 이 섬에서 1870년 고국에 돌아고오기까지 15년이란 긴 세월을 지냈다. 이 동안 그는 루이 나폴레옹으로 부터 두 번에 걸친 사면령과 귀국 권고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나폴레옹 3세의 몰락과 자유의 회복 후에야 비로소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 괴롭고 외로운 망명 생활은 그를 슬프거나 좌절케 하지 않고 도리어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이 때에 창작 또는 완성시켰다.   루이 나폴레옹을 매도한 , , 그리고 역사에 유래가 없는 풍자 시집 , 죽은 딸 레오폴딘느에 대한 추억의 시를 담은 그의 걸작 시집 ,  인간의 서사시 , 그리고 위대한 소설 , 평론 , 소설 , , 환상적 서정 시집 , 등이 있으며 그 중의 한 작품만으로도 가히 한 작가의 영광을 가져올 수 있는 명작들이다.  위고는 나폴레옹 3세가 보불 전쟁에서 패하여 퇴위, 망명하고 파리 시가 프러시아 군에 의하여 완전 포위되기 직전 파리로 돌아왔다. 이 극적인 입성은 용감하고 희생적이었으며 파리 시민은 그를 애국적 영웅으로 맞이하였다. 이로부터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만년의 생활(1870~1885)은 주로 창작 활동에 바쳐졌다.  비록 그는 다시 국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파리 지역의 상원의원이 되었으나 정치에 있어서는 실패와 실망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 활동은 쉬지 않아 파리의 농성과 점령을 다룬 시 , , < 세기의 전설>의 보충편(1877) 등의 시와, 과학 문제를 다룬 , , 소설로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야기를 다른 등 노년에 이르러서도 무한한 재질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1885년 5월 22일 83세를 일기로 죽고 프랑스 정부는 이례적으로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정했다. 6월 1일 그의 유해는 긴 국장 행렬 가운데 온 파리 시민들의 애도와 추모를 받으며 개선문에서 팡테옹으로 향하였다. 가난한 사람의 영구차와 간소한 장례식을 요구한 그의 유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위고의 작품에서 독자가 받는 강렬한 인상과 감동은 그의 다이내믹한 생명력에서 오는 변화무쌍한 창조력, 무진한 상상력, 강렬한 감정 등에서 온다. 이 거대한 창조력은 그로 하여금 시-연극-소설 등 여러 분야에서 창작하게 했으며 각 분야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써, 그가 손대지 않은 문학 부분으 거의 없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주된 힘은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은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머리 속에 상상하는 바를 실제로 있는 존재같이 정확 명료하게 보는 힘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는 서사시-역사소설-환상극 등에 있어서 뛰어나며 자연이나 환경-인물 묘사에 탁월하였다. 구약 성서 시대의 인물들의 성격과 생활, 중세 기사들의 영웅적 모험, 나폴레옹 휘하 군대의 전투 장면 등 세밀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실제와 방불하게 묘사함은 풍부한 고증이나 사실(史實)보다는 강력한 상상력에 의한 것이다.  시인 위고에게는 치밀한 지성이나 분석적인 정신이 없는 대신 크고 풍부한 감정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그는 감정의 큰 불덩어리였다. 이러한 감정은 그의 작품과 생활에서 일차적으로 사랑으로 나타난다.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 나타난다. 또 이 사랑은 확산되어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압박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상으로 번져 그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  이렇게 강력하고 웅건한 상상력과 우주 만상에까지 펼쳐지는 감정을 위고는 또한 천재적인 언어의 구사로 자유자재로 표현하였다. 그의 문장은 숨쉬듯 자연스러웠으며 강물같이 도도했으며 장엄 화려했고 많은 이미지를 동반했다. 이로서 그는 가장 작고 평범한 일과 사물에 생명을 주고 일상적인 행위와 감정을 승화시켜 우주적인 비젼을 일으키는 마력을 지녔다고 하겠다.  물론 그에게 결점이나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 지나쳐 때로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흐르는 점, 위대함과 장중을 좋아하는 허장성세, 웅변조, 지나친 언어의 기교, 대중에 영합하는 통속성 등 열거하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점을 내포하면서도 그는 19세기의 프랑스 문단의 최고봉이었으며 프랑스 문학사의  빛나는 거성이었다.   환상 / 제라르 드 네르발     롯시니, 모짜르트, 베버의 음악을 다 준다 해도 내가 바꿀 수 없는 곡조가 있다 그것은 아주 낡고 느리고 구슬픈 것이지만 오로지 나에게만 숨은 매력을 지녔다.   그런데 우연히 그 곡조를 들을 적마다 내 마음은 2백 년이나 젊어진다; 때는 루이 13세 치하; 나의 눈에 보이는 듯 석양이 노랗게 비치는 굽이치는 푸른 언덕이,   그리고 모서리가 돌로 된 벽돌의 성관(城館) 거기에 불그스레 물든 유리창들 성곽을 둘러싼 광활한 정원, 성 밑을 적시며 꽃 사이를 흐르는 한 줄기 강물;   그리고 드높은 창가에 나타난 한 부인 검은 눈에 금발을 하고, 옛 의상을 걸친 이 부인은 어쩌면 전생에서 내가 이미 만났고 그리고 내가 지금 기억하는 그 여인!     황금시(黃金詩) / 제라르 드 네르발   인간이여! 자유 사상가 - 그대는 믿고 있는가? 생명이 모든 것에서 작렬하는 이 세상에서 그대만   이 생각하는 존재라고? 그대는 가진 능력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대의 모든 생각에서 만물은 빠져 있다.   짐승 속에서 움직이는 정신을 존중하라--- 모든 꽃은 하나하나 대자연에 핀 독립된 영혼이며 금속(金屬)에는 사랑의 신비가 담겨져 있다; 만물은 느낀다; - 그리고 만물은 그대의 존재에 강력하   게 작용한다.   눈 없는 벽 속에 그대를 살피는 눈을 두려워하라 물질에도 언어가 부여되어 있으니--- 이를 불경한 일에 쓰지 말라.   자주, 희미한 존재 가운데 신이 숨어 있으며 갓난아기의 눈이 눈꺼풀로 덮여 있듯 순수한 정신이 돌 껍질 속에서 자라고 있다.     제라르 드 네르발(1808~1855): 제라르 드 네르발은 유명한 가문 출신으로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때 어머니를 잃어 르발르와 지방에 사는 큰아버지 집에서 자라났다. 이 지방의 쓸쓸한 풍경과 전설로 가득찬 자연과 환경, 그 위에 심령교(心靈敎)-점성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큰아버지의 영향이 어머니 없이 자란 어린 네르발에게 강하게 작용한 듯 하다.  소년기가 되어 파리에 올라와 샤를마뉴 중고등 학교에 다녔는데 마침 테오필 고티에가 동창이어서 함께 어울려 문학적 방랑 생활을 즐겼다. 이때부터 그는 여행을 즐겨 유럽 각지와 중동 지방을 찾아다녔다. 독일 문학에 심취되어 19살 때에 이미 괴테의 를 번역했으며 이어서 독일 작가이며 작곡가인 호프만 류의 환상적인 이야기(contes)를 쓰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미 그에게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징후가 나타나 이 때 쓴 그의 시 가운데는 그의 영원한 여성이며 수세기 전 수녀원에서 죽은 금발의 아드리엔느가 현실로 나타난다.  1836년 가을 그가 28세 때 무대 여배우 제니 콜롱을 알게 되었는데 네르발은 그녀에게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이 여배우는 그의 작품 가운데 또는 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그는 제니 콜롱이 그가 소년 시절 보았다고 생각하는 영원의 여성 아드리엔느의 환생이라고 확신한다. 제니 콜롱은 그의 사랑을 모르지 않았으나 얼마 안 되어 다른 남자롸 결혼한다. 이 일은 그에게 극심한 심적 충격을 주어 현실 생활 속에서 꿈의 유출이 심해진다. 1842년 정신 착란을 일으켜 약 8개월 동안 정신 병원에 입원되었다가 회복하였으나 그 다음 해의 제니의 죽음은 그의 신비적인 꿈을 더욱 짙게 하였다. 영원한 여성이라는 낭만적 관념은 그가 줄곧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이나 죽은 제니의 모습은 앞서 말한 아드리엔느뿐만 아니라 시바의 여왕,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 성모 마리아, 심지어 그의 어머니의 화신(化身)으로까지 이어진다.  이후부터 그의 생활은 때때로 일어나는 발광증과 가중되는 생활고으로 몸 담을 집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처음에는 청춘의 정열이었으며, 다음은 사랑, 최후는 절망이다"라고 술회할이만큼 40대의 그의 생은 절망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마치 인생을 정리나 하듯 정신이 들 때마다 자신의 관찰, 연구, 정신적 체험을 담은 작품을 하나 둘 출판했다. 그리고는 1855년 1월 이른 아침, 파리의 한 모퉁이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그는 미친 상태와 냉철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많은 작품과 번역-연구를 남기었으나, 결국 시집(오델리아>와 콩트 라는 두 권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두 작품은 프랑스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이 두 작품은 모두 상상적 기억의 이야기로서, 는 오델리 즉 제니 콜롱의 이야기이며, 는 그의 고향인 발르와 지방의 시골 처녀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의 꿈과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환상적이며 꿈의 세계를 가장 성실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쓴 점에 그의 문학적 가치가 있다.  시의 특성도 그가 살고 느낀 환상적이며 초자연적인 체험을 성실하고 진실되게 기술한 점에 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꿈은 꿈이라 아니라 다른 하나의 생(生)이었고 이 생 가운데 신비로운 세계를 보았다. 이 꿈 속에서 개인의 과거는 인류 전체의 과거와 혼합되고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초현실적 세계 사이에는 일종의 신비로운 조응(照應)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계에서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초자연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상징이며 징조가 된다. 이러한 면에서 그의 시는 앞으로 올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의 선구적인 시가 되었다. 또한 그가 마음 속에서 체험하는 꿈과 환상을 냉철히 관찰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세계와 진리에 도달하려던 노력은 그 후 현대 문학에도 이어져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그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   창백한 저녁별--- / 알프레드 드 뮈세   석양의 베일을 제치고 빛나는 얼굴을 드러내는 먼 곳에서 온 사자(使者), 창백한 저녁별이여, 창공 속 그대의 푸르른 궁전에서   그대는 이 들판의 무엇을 바라봅니까?   폭풍우는 물러가고 바람도 잡니다. 떨고 있는 숲은 히드 황야에서 울고 있소; 금빛 나방이 가벼운 날개를 치며   향긋한 초원을 지나갑니다.  그대는 잠 든 이 땅 위에서 무엇을 찾습니까? 그러나 이미 그대는 산봉오리 쪽으로 내려오고 있소; 그대는 웃음 지으며 도망갑니다. 우수의 친구여, 그대의 떨리는 눈초리는 꺼질 듯 합니다.   푸른 언덕 위에 내리는 별이여 칠흑의 밤 망토 위에 달린 슬픈 은(銀)의 눈물 방울. 목자가 타박타박 걷는 긴 양 떼를 거느리고 길을 가며 멀리서 쳐다보는 그대,- 별이여, 이 무한한 밤 속에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강가의 갈대 숲 속에 잠자리를 찾으려는 겁니까? 그렇잖으면 아름다움 별이여, 이 고요한 시각에, 그대는 한 잎의 진주알같이 물 속 깊이 떨어지려는 겁   니까? 아아, 그대가 죽어야 한다면 아름다운 별이여 만일 그대가 금발의 머리를 망막한 바다 물 속에 던지려   한다면 우리를 떠나기 전 잠깐 멈추기를; - 부디 하늘에서 내려오지 말기를, 사랑의 별이여!     잘 있거라 쉬종 / 알프레드 드 뮈세     잘 있거라 쉬종, 금발의 장미화야, 네가 날 사랑한 건 단 여드레지만; 이 세상이 가장 짧은 쾌락이 때로는 가장 진실된 사랑도 된다. 널 두고 떠나는 이 순간도 나는 몰라, 떠돌이 내 별 따라가는 이 내 몸은 어디로 가는지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항상 다름질치며,   떠나는 내 더운 입술 위에 네 마지막 키스가 아직 타고 있다. 내 두 팔 속에, 분별 없는 아가씨야 네 예쁜 얼굴이 와 묻혔으니 네 가슴 얼마나 고동치는지 들리는가? 지난 날 네 가슴 얼마나 즐겁게 뛰었던가!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항상 널 사랑하며,   철썩! 내 말 위에 안장 얹는 소리 어찌하여 나 가는 길에, 내 사랑아 네 퉁명스런 얼굴 데러갈 수 없나, 내 손은 네 머리 향기로 온통 물들었는데! 너는 요정처럼 도망치며 웃음 짓는다. 귀여운 새침데기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활짝 웃음지으며,   네 정다운 이별 속에는 귀여운 아가씨야 슬픔도 많고 매혹도 많아 네 눈 속에 진정이 담겨 있을 땐 네 모든 것이, 네 눈물까지 날 취하게 해. 네 눈을 보면 나는 살고 싶어 그 눈은 나 죽을 때 위로되리라.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온통 눈물 뿌리며,   혹시 네가 나를 잊는다 해도, 쉬종 우리들의 사랑만은 잠시 남기도록; 창백해진 꽃다발인 양 네 귀여운 가슴 속에 숨겨 두어라! 잘 있거라 행복일랑 이 집에 두고 추억만이 나와 함께 떠나가니 그 기억은 나와 함께 가리라, 나의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언제나 네 생각 품고.     시월이 밤 / 알프레드 드 뮈세     시인이여, 그만해 두오, 그대를 배반한 여인에 대한 그대의 환상이 단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해도 그녀를 말할 때 이 날을 저주하지 말아요. 그대가 사랑받기 원한다면 그대의 사랑을 존중하시오. 타인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애써 용서한다는 일이 약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힘든 일이라면 적어도 사람을 미워하는 괴로움만은 피하시오. 용서를 할 수 없다면 잊어버리도록 하시오. 죽은 자들의 땅 속에서 평화로이 잠자듯 우리들의 꺼진 감정도 잠자야 합니다. 심정의 유뮬(遺物)들도 유해(遺骸)을 가지고 있으니 이 성스러운 꺼진 감정도 잠자야 합니다. 그대는 왜 이 쓰라린 고뇌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의 꿈, 배신당한 사랑만을 보려 합니까? 신의 섭리가 동기 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그럼, 그대를 매질한 신이 그렇게 소홀한 분이라고 생각   합니까? 도리어 그대가 불평하는 이 타격은 그대를 지켜 주었는지   모릅니다. 젊은이여; 바로 그로 인해 그대 마음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배우는 자, 고통은 그를 가르치는 스승 고통을 당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이 슬픔의 값을 치르고야 모든 것이 얻어진다는 것은   가혹한 법칙이나 절대적 법칙이며 이 세상이나 운명과 같이 오랜 것입니다. 곡식이 익기 위해선 이슬이 필요하며 인간이 살고 인생을 느끼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합니다. 기쁨이란 아직 비에 젖고 꽃으로 덮인 한 대의 꺾어진 풀잎이 그 상징입니다. 그대는 어리석은 잘못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요? 그대는 젊고 행복되고 어디서나 환영받지 않나요? 인생을 사랑하게 하는 이 작은 쾌락들도 만일 그대가 눈물 흘린 적이 없었다면 이런 것들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했을까요? 해 저무는 석양의 잡목 우거진 광야에 앉아 정다운 친구와 함께 한가로이 술 마실 때 그대가 만일 기쁨의 댓가를 치루어 보지 못했다면 말해 봐요,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잔을 들 수 있을까요? 그대는 꽃과 풀밭과 초목의 푸르름을, 패트라르카의 소네트와 새들의 노래 소리, 미켈란젤로와 예술을, 세익스피어와 자연을 그대는 좋아   할 수 있엇을까요? 만일 그대가 그 속에서 옛날 그대가 체험한 오열을   다시 보지 않았다면? 만일 그대가 그 어느 먼 곳에서 몸의 열기와 못 이루는   잠으로 인해 영원한 안식을 희구한 적이 없었다면 천상의 오묘한 조화를, 밤의 침묵을 중얼거리는 파도 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 그대는 무엇이 불만입니까? 불멸의 희망이 불행의 손길 아래 그대 맘 속에서 다시 단련된 것입니다. 어째서 그대는 젊은 날의 체험을 싫어하며 그대를 보다 훌륭하게 만든 이 고통을 미워하려 합니까? 오, 나의 젊은이여! 불쌍히 여겨요, 한때 그대를 눈물 흘리게 한 이 아름다운 변심의 여인을 불쌍히 여겨요, 이는 여자이며 신께서는 그녀를 그대 곁   에 둠으로써 고통을 통하여 행복된 자의 비결을 그대에게 깨닫게 한   것입니다. 그녀의 역할은 괴로운 것이었으며 그대를 아마도 사랑했   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로 하여금 그대의 가슴을 찢도록 원한   것입니다. 그녀는 인생을 알았고 그것을 그대에게 알게 한 것입니다. 다른 여인이 그대의 고통의 열매를 거두었지요. 그 여인을 불쌍히 여겨요, 그녀의 슬픈 사랑은 꿈같이 지   나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그대의 상처를 보았으나 그것을 아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다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설사 다 거짓이었다 해도 그녀를 불쌍히 여겨요; 이제   그대는 사랑할 수 있어요---   *알프레드 드 뮈세(1810~1857): 알프레드 드 뮈세는 파리의 한 부유하고 교양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아하고 매력있는 이 청년은 인생의 여러 가지 복을 타고 났는데 천재라는 귀한 복도 가지고 있었다. 총명하고 재기 넘치는 이 세기아(世紀兒)는 인생의 여러 길 가운데 생을 살고 맛보고 즐기기 위하여 결국 시를 선택했다.  18세 되던 때부터 이미 유명한 위고의 문학 서클 등에 출입하여 재기와 환상으로 모든 사람의 주목과 사랑과 촉망을 받았으며 20세 되던 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풍물을 주제로 한 경쾌하고 재치 있는 시 의 제1부, 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사랑의 모험담, 극적인 멜로드라마 연극 등을 출판하여 문단과 사교계의 놀라움과 찬탄을 한 몸에 받았다.  그가 아직 24세가 채 되기 전에 조르지 상드를 만났다. 상드는 30세의 풍만한 육체의 정열적인 부인으로, 가정에서 뛰쳐나와 소설가가 되었다. 두 사람은 곧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파리 근교 퐁텐느블로우 등에서의 아름다운 밀월(密月) 후 상드는 뮈세를 데리고 이탈리아의 제노바, 플로렌스 등으로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실망은 빨랐다. 베니스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뮈세는 중병(뇌막염)에 빠져 생사를 헤매게 된다. 상드는 헌신적으로 그를 간호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동안 뮈세의 주치의인 이탈리아인 파젤로란 젊은 의사와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된다.  절망과 질투에 빠진 뮈세는 한때 목숨을 끊으려고도 하였으나 병을 안고 혼자 귀국, 그 후 4개월 동안 온종일 그의 방에 들어 앉아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다시 화해하려는 노력도 있었으나 결국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다.  이 사랑과 갈등에 대하여 뮈세는 이란 책 가운데 그 내막을 폭로하였고 상드는 라는 책을 써서 자기 자신을 옹호하였다.  이 3년에 걸친 사랑과 파탄은 뮈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나 다행이 이 위기를 통하여 시인은 더욱 성숙해지고 인생과 예술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의 시작(詩作) 활동은 왕성해지고 열기를 띠었으며, 문체는 더욱 유려(流麗)해져 가히 절창이라고 부를 만한 일련이 시를 남겼다. 즉 그는 1835년에서부터 약 6년 동안(25세부터 30세까지) "밤"이란 제목의 네 편의 장시(長詩)를 썼는데 "5월의 밤"(1835), "12월의 밤"(1835), "8월의 밤"(1836)과 "10월의 밤"(1837)이다. 이 영혼의 절규는 그의 시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 유창하여 프랑스 낭만파 서정시의 걸작이라고 하는 작품 들이다.  이 시들 가운데 시인은 그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절망과 저주에서 벗어나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회복할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그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이 인생과 예술 창작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찾고 있다. 인간은 고통과 슬픔을 통해서 더욱 깊어지고 힘차지고 이를 통해서 비로소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의 만년은 비참한 것이었다. 그는 30세에 이미 노성(老成)한 폐인(廢人)으로 그 후에도 몇 편의 시, 몇 개의 단편소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둔 연극 작품도 있었으나 지나친 음주와 무절제한 생활로 그의 정신과 육체를 조기에 마멸시켜 버렸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기도 한 그가 47세의 나이로 소식 없이 죽었을 때에는 겨우 30명 내외의 친지가 모여 그의 관을 따랐다고 한다.   뮈세의 무덤은 파리의 몽마르트 근처에 있는 페르 라세즈 공동 묘지 안에 있는데 그 무덤 옆에는 그의 희망에 따라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의 묘석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6행시가 새겨져 있다.   내가 죽거든, 내 친구들이여, 무덤 위에 버드나무 한 그루 심어 주오. 나는 그 늘어진 잎새를 좋아하며 그 푸른 빛깔은 부드럽고 다정해, 내가 잠자는 땅 위에 산뜻한 그림자를 드리울 거요.    뮈세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낭만파의 응석동이' 혹은 '무서운 아이'였다. 모든 재능과 자질을 겸비하면서도 사회적 안목과 도덕적 척추가 결여된 그는 자연히 인생의 향락과 청춘의 구가에 온 정력을 소진했다. 특히 음주와 연애 행각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그는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방탕아는 이러한 사랑의 편력 가운데서 사랑의 본질을 추구했고, 그 고뇌를 체험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고, 그 가치를 찾으려 했다. 이러한 노력과 싸움은 성실하고 진지하고 강렬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가 있었다. 그는 라는 시의 끝에서   "이제  이 세상에 남은 나의 유일한 재산은 때로 눈물 흘렸다는 일"   이라고 했는데 그 대신 "때로 사랑을 했다는 일"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뮈세는 사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사랑의 절대성을 믿었고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변치않는 유일의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대의 뼈는 관 속에서 먼지로 남으리라. 그대의 기억도 이름도 명예도 사라지리라. 그러나 그대의 사랑만은, 만일 그 사랑이 그대에게 귀한 것이   라면 그대의 영원한 영혼은 이 사랑을 기억하리라.    사랑의 절대성을 믿었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하였다는 그 사실, 그 추억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행복보다도 감미롭다고 믿었다. 그가 옛날 사랑을 주고받던 곳에 돌아가 보고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단지 이렇게 말하리라; 이 때 이 곳에서 한때 나는 사랑받았고 사랑했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나는 이 보물을 내 영원한 영혼 속에 묻고 하늘 나라로 가져가리라.    이러한 생각과 믿음은 그의 지식이나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의 심정에서, 그의 감정에서 그대로 우러나온 것이다. "예술가나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또 "네 가슴을 두드리라" 거기에 천재가 있다" 라고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는 영원히 낭만파에 속하며 이 영원한 감정에 대하여 그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주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낭만파의 4대 시인의 하나로 꼽히게 하였으며,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흥미롭고 근대적인 가치라고 하겠다.   바닷가에서 / 테오필 고티에     드높은 창공에서 달님이 손에 든 오색 찬란한 큰 부채를 잠시 방심한 사이 바다의 푸른 융단 위에 떨어뜨렸소.   건지려고 달님은 몸을 숙여 은빛 고운 팔을 내밀었으나 부채는 흰 손을 빠져 나가 지나는 파도에 실려 나갔소.   그대에게 부채를 돌려주기 위해, 달님이시여, 천 길 물 속에라도 뛰어들리다 그대가 하늘에서 내려오신다면 이 몸이 하늘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비둘기들 / 테오필 고티에     저기 무덤들 널려 있는 언덕 위에 아름다운 종려나무 한 그루, 군모(軍帽) 앞의 녹색 깃털   처럼 우뚤 서 있고 거기에 저녁마다 비둘기들 몰려와 그 속에, 깃들이며 몸을 숨긴다. 아침되면 이 새들, 나뭇가지를 떠나간다. 목걸이 구슬알이 풀려 나가듯 흰 비둘기들 푸른 하늘 속에 산산이 흩어졌다가 좀더 먼 지붕 위에 내려앉는다.   나의 영혼은 이 종려나무, 거기에 밤마다, 비둘기처럼 산란한 환상의 흰 떼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새벽 빛이 들자마자 날아가 버린다.     랑드의 소나무 / 테오필 고티에     흰 모래로 뒤덮인 진정 프랑스의 사하라라고 할 랑드의 광야를 지날 때 보이는 나무라곤 메마른 풀숲과 초록색 웅덩이에 솟아나는 옆구리에 상처입은 소나무들 뿐,   이는 소나무의 눈물, 송진을 훔치기 위해 자기가 살해한 자의 희생으로만 사는 인간이라는 욕심 많은 창조물의 사형 집행인이 나무의 아파하는 몸통에 넓은 홈을 파놓기 때문.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아쉬워함도 없이 소나무는 향유(香油)와 수액(樹液)을 흘린다. 그러면서도 길가에 시종 꿋꿋이 서 있다. 서서 죽기를 원하는 부상병같이.   시인도 인간의 광야에서는 이 나무와 같아 상처가 없을 때엔 자기의 보화를 심중에 간직하나 일단 그의 노래, 성스러운 황금 눈물을 뿌리기 위해서는 그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가져야 한다.     테오필 고티에(1811~1872): 테오필 고티에는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시인으로서 처음에는 낭만파의 색채가 농후했으나 차츰 감정의 시가(詩歌)에서 벗어나 지적이며 냉철한 파르나스파(Parnassien 고답파)의 시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이루고 있다.  그는 프랑스 서쪽 국경 지대, 피레네 지방의 타르브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루이 르 그랑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후에 샤를마뉴 중고등학교로 옮겼는데 여기서 제라르 드 네르발을 만나 친교를 맺는다. 젊은(19세) 시절, 빨간 조끼의 시인 고티에는 동창생 네르발과 젊은 화가-시인들을 규합하여 전투적인 낭만파를 조직, 빅토르 위고의 깃발 아래 고전파 공격에 앞장섰다. 1830년 위고의 연극 상연 첫날 밤에는 빨간 공단 조끼에 녹색 바지를 받쳐 입고 머리에 챙 넒은 모자를 쓰고 위고 편에 서서 소위 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일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일은 당시의 고전파 인사들과 상류층 신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이 때부터 그는 그림을 버리고 문학, 특히 시에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하여 신문사에 들어가 예술과 연극 비평가로 기사, 잡문, 논설, 신문 단편소설 등을 썼는데 여가를 내어 시도 썼다. 1830년에 발표한 첫 시집 를 비롯하여 , , , 그리고 그의 대표 시집으로 등이 있다. 형태와 색채를 즐기는 그는 또한 여행을 좋아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터기, 러시아 등을 두루 다니며 이를 주제로 한 많은 풍물기와 시들을 썼다. 특히 이베리아 반도의 거칠고 햇빛으로 가득 찬 풍경과 스페인 화가 들의 그림을 주제로 한 시들은 아름다운 소품들이다.  그는 원래 화가가 되려다 문학으로 옮긴만큼 시에서 시각(視覺)을 중요시한 이미지스트(Imagiste)이며 자연미 보다 인공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시인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시를 이루는 말과 형태를 깎고 다듬어 완성된 조형미를 만들어 내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자기의 역작이며 중심 작품의 이름을 이라고 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마치 금은 보석의 세공사와도 같이 작은 형상을 아름답게 갈고 다듬어 완전한 형대를 만드는 데 그의 노력을 바쳤다. 따라서 문학사에 있어 그의 공적은 낭만파의 조잡한 자연 묘사나 무절제한 감정 토로에서 벗어나 시가의 미(美)에 인공적 미를 가하고 아름다운 형태미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 데 있다.   또한 그는 시나 문학에서 예술 이외의 모든 것 즉 사상이나 정치, 도덕, 철학, 그 밖의 모든 유용성을 배격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창자로 나섰다. "아무 것에도 쓰일 수 없는 것만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유익한 모든 것은 추하다"라고 선언했다. 이 주창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이론과 실천(창작활동)은 의외로 많은 예술가와 문인의 호응을 받았고 또 보들레르, 방빌, 플로베르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보다 10살 아래인 보들레르는 이 이론의 열렬한 신봉자이었다. 보들레르가 그의 유일한 시집 을 고티에 선생에게 바치고 그 헌사(獻詞)에서 그를 '완전 무결한 시인', '프랑스 문학의 마술사'라고 부른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 제정(帝政)시 고티에는 관보(官報)의 편집 책임자로 임명되고 생활도 나아졌으나 1870년 보불 전쟁과 뒤이은 파리 코뮌(Commune)의 충격으로 1872년 파리 근교에서 급서(急逝)하였다.  
28    에밀리 디킨슨 시모음 댓글:  조회:326  추천:0  2017-07-31
에밀리 디킨슨 시모음   1830-1886   미국 시인   미국의 여성 시인. 매사추세츠 주 에머스트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지냈다.   에머스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마운트 홀리요크 신학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시쓰는 일에 전념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처자가 있는 목사와의 사랑이 실연으로 끝나자 그녀의 시적 재능은 둑을 터뜨린 봇물처럼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녀가 쓴 시 1775편 가운데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 7편에 불과하다.     그녀의 시는 자연과 사랑 외에도 퓨리터니즘을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운율에서나 문법에서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19세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미지즘과 형이상학파적 시의 유행과 더불어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작품으로는 〈상처난 사슴은 높이 뛴다〉 등이 있다.   주요저서 : 《전시집(全詩集)》(1855) 《전서간집 (全書簡集)》(1858)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길에 뒹구는 저 작은 돌     길에서 혼자 뒹구는 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출셀랑 아랑곳없고 급한 일 일어날까 두려움 없네   천연의 갈색 옷은 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혼자 살며 홀로 빛나는 태양처럼 다른 데 의지함 없이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살며 하늘의 뜻을 온전히 따르네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나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한듯 짐작되던 바로 그 날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인생은-장전된 총     내 인생은 - 장전된 총으로 구석에 서 있던- 어느 날   마침내 주인이 지나가다- 날 알아보고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국왕의 숲을 헤매면서 사슴사냥을 하고 있다.   내가 주인 위해 말할 때마다- 산들이 당장 대답한다.     내가 미소지으면 힘찬 빛이 계곡에서 번쩍한다.   베수비어스 화산이 즐거움을 토해내는 듯하다.     밤이 되어 멋진 하루가 끝나면 나는 주인님 머리맡을 지킨다.   밤을 함께 보내다니 푹신한 오리 솜털 베개보다 더 좋다.     그분의 적에게- 나는 무서운 적이다. 내가 노란 총구를 겨누거나   엄지에 힘을 주면 아무도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한다.     비록 그분보다 내가- 더 오래 살지 모르나 그분은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   나는 죽이는 능력은 있어도 죽는 힘은 없으므로-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무르면서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 멈추는 일이란 없다.     광풍 속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들린다. 폭풍우도 괴로워 하리라.   이 작은 새를 당황케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었는데.     얼어들 듯 추운 나라나 멀리 떨어진 바다 근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빵조각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황야를 본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히드 풀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파도가 어떤 건지 알고 있다오.     나 아직 하느님과 말 못 했어도, 저 하늘 나라에 간 적 없어도,   지도책을 펴놓고 보는 것처럼 그 곳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오
27    로버트 프로스트 시모음 댓글:  조회:352  추천:0  2017-07-31
로버트 프로스트 시모음   1874~1963   미국의 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교사,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1912년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그것이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토마스·브룩 등 영국의 시인과 사귈 기회를 얻었으며 그들의 추천으로 첫 시집 《소년의 의지》가 런던에서 출판되었고, 이어 《보스턴의 북쪽》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함으로써 현대 미국 시인 중에서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꼽힌다. 일상적인 언어와 익숙한 리듬, 평범한 생활에서 취한 상징을 사용하여 뉴잉글랜드 지방 생활의 평온함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의 시집으로는 《산의 골짜기》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 《표지의 나무》 등이 있다.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고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자작나무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버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던지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골 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   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조심스럽게 기어 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 내린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도 돌아가고 싶어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 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 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창가의 나무   내 창가에 서 잇는 나무, 창가의 나무여 밤이 오면 창틀은 내리게 마련이지만   나와 나 사이의 커튼은 결코 치지 않으련다.     대지에서 치솟은 몽롱한 꿈의 머리 구름에 이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   네가 소리내어 말하는 가벼운 말이 모두 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나무여, 바람에 흔들리는 네 모습을 보았다. 만일 너도 잠든 내 모습을 보았다면   내가 자유를 잃고 밀려 흘러가 거의 절망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리라.     운명의 여신이 우리 머리를 마주 보게 한 그 날 그녀의 그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네 머리는 바깥 날씨에 많이 관련되고 내 머리는 마음 속 날씨에 관련되어 있으니.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재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이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뿐,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 속.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밤에 익숙해지며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빗속을 홀로 거닐다 빗속에 되돌아왔다. 거리 끝 불빛 없는 곳까지 거닐다 왔다.   쓸쓸한 느낌이 드는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저녁 순시를 하는 경관이 곁을 스쳐 지나쳐도 얼굴을 숙이고 모르는 채 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발소리를 죽이고 멀리서부터 들려와 다른 길거리를 통해 집들을 건너서 그 어떤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나를 부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이별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멀리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높다란 곳에 빛나는 큰 시계가 하늘에 걸려 있어     지금 시대가 나쁘지도 또 좋지도 않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불과 얼음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 끝날 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내가 맛 본 욕망에 비춰 보면 나는 불로 끝난다는 사람들 편을 들고 싶다.   그러나 세상이 두 번 멸망한다면 파괴하는 데는 얼음도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할 만큼 나는 증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걸로 충분하다  
26    롱펠로우 시모음 댓글:  조회:402  추천:0  2017-07-31
롱펠로우 시모음 1807~1882   미국의 시인   메인주(州)의 포틀랜드 출생. 보든대학을 졸업한 뒤 약 3년 동안 유럽에 유학하고, 1829년 귀국하여 모교 교수로 있다가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되었다.   1839년 독일 낭만주의 영향을 받은 첫 시집 《밤의 소리》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된 뒤, 많은 시를 발표하였다. 국민 시인으로서, 건전한 인생관을 가진 그의 시는 비교적 쉽게 쓰여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또한, 유럽의 민요를 미국 대중에게 널리 전달한 공은 크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등이 있다.   화살과 노래     하늘을 향해 나는 활을 당겼다. 화살은 땅에 떨어졌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다. 하늘을 향해 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땅에 떨어졌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길이 제 아무리 예리하고 강하다한들 날아가는 노래를 그 누가 볼 수 있으랴.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느티나무에서 나는 보았다. 아직 껏이지 않은 채 박혀있는 화살을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인생예찬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으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잃고 얻은 것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이룬 것   저울질해 보니 자랑할 게 별로 없구나   내 아느니 많은 날 헛되이 보내고   화살처럼 날려보낸 좋은 뜻 못 미치거나 빗나갔음을   하지만 누가 이처럼 손익을 따지겠는가   실패가 알고 보면 승리일지 모르고 달도 기우면 다시 차오느니     바다의 소리   바다는 한밤중 정적을 깨고, 조약돌 해변에 몰려온다.   나는 잠을 깨고 거침없이 밀려드는 썰물 소리를 듣는다;   심연의 정적을 뚫고 나오는 소리, 산허리에 떨어지는 폭포 소리처럼,   울창한 절벽을 스치는 성난 바람 소리처럼, 신비하게 바뀌는 소리를.     때로는 우리 인생에도, 미지의 세계에서 고독의 파도가 밀려온다.   영혼으 조수가 밀려온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영감,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예지의 하느님의 뜻이.     비오는 날   날은 춥고 어둡고 쓸쓸하여라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고,   허물어지는 벽에는 담쟁이 덩굴,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을 날려가네,   날은 춥고, 쓸쓸하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하네,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네.   내 생각은 허물어지는 과거의 담벽에 붙어 불어오는 질풍에 젊음의 꿈을 날려 보냈네.   날은 어둡고, 적막하네.     슬픈 가슴이여, 조용하라! 불평은 그만하라!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비치고 있다. 그대의 운명도 예외는 아닌 것!   모든 사람의 운명에 얼마의 비는 내리는 것, 인생이 어둡고 쓸쓸할 때도 있는 것!     연인의 바위     결코 죽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부서진 가슴으로 각자 운명을 맞이하고   마치 별들이 뜨고 불타고 지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떠나가 버렸다   부드럽고 젊고 찬란하고 짧았던 봄에 떨어진 잎새 속에 자기네 세월을 묻은 채     결코 죽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아아, 그 사랑은 무덤 너머로 이어진다 수많은 한숨으로 삶이 꺼지고   대지가 준 것을 대지가 다시 거둘 때 그 사랑의 빛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집을 비춘다       마을의 대장간     가지를 펼친 밤나무 아래 마을 대장간의 오막집이 있다.   대장장이는 건장한 사나이로서 손은 커다랗고 아주 억세다.   우람한 그 팔뚝의 근육은 무쇠 테처럼 강하다.     그의곱슬머리는 검고 길며 얼굴은 구릿빛이다.   눈썹은 깨끗한 땀에 젖어있다. 그는 힘껏 일해 벌고   세상을 똑바로 보고있나니 아무에게도 빚이 없기 때문이다.     매주 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풀무 소리가 들려온다.   가락에 맞추어 느릿느릿하게 저녁해가 질 때 교회지기가   울리는 마을의 종소리처럼.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이들이 문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모두들 불을 뿜는 대장간의 풀무를 보기도 하고 풀무소리 듣기가 하도 좋아서   타오르는 불꽃이 탈곡장의 낟알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본다.     그는 주일날이면 교회에 가서 어린이들 사이에 앉는다.   목사님의 기도나 설교말씀을 듣고 그의 딸의 목소리가   성가대 속에서 들려오면 대장쟁이의 마음은 크게 두근거린다.     그에게는 그 목소리가 천국에서 노래하는 아내의 목소리처럼 들려서   대장쟁이는 무덤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하고 기뻐하며 슬퍼하면서 그는 앞을 향해 살아나간다.   매일 아침 그 어떤 일이 시작되고 매일 저녁 그일은 끝나게 된다.   무슨일인가를 시도하고 또 그 일을 끝내고서 하룻밤의 휴식을 취한다.     고맙구나 나의 친구 귀한 벗이여 그대가 베푼 교훈에 감사하노라!   그러한 인생의 불타는 풀무로부터 우리는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며   그처럼 인생의 소리 나는 모루위에서 불타는 위업과 사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인물 | 단체 | 블로그 | 쉼터 | 레터 | 포토 | 조글로뉴스 | 칼럼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 | 뉴스스탠드 | 광고문의
[조글로]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潮歌网) • 연변두만강국제정보항(延边图们江地区国际信息港) •아리랑주간(阿里郎周刊)
地址:吉林省延吉市光明街89号A座9001室 电子邮件: postmaster@zoglo.net 电话号码: 0433) 251-7898 251-8178
吉林省互联网出版备案登记证 [吉新出网备字61号] | 增值电信业务经营许可证 [吉B-2-4-20080054] [吉ICP备05008370号]
Copyright C 2005-2016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