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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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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우산을 들고 찾은, 가을 강에서 만난 싯달타의 나비 이인선(시인, 평론가)   그 동안 문단의 원로시인들 위주로 평론을 연재하였다. 코스모스가 성큼 계절의 대문을 열고 들어선 가을날엔 이름과 나이를 잊고 싶다.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뭉개구름 따라, 들국화 따라 걷고 싶다. 산들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하염없이 강가를 서성이며 생각에 잠기고 싶다. 다음 소개하는 정기만과 윤유점의 시 2편은 우리들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는 힐링 시다. 머리를 맑게 씻어주는 서정적 그리움의 세계를 만나보자. 정기만의 「싯달타와 나비」는 이미지 확장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거리가 먼 낱말들의 이미지 합성과 충돌로 상상력의 비약을 한다. 돌출된 이미지 연출을 실현하기 위하여 낯선 이미지를 결합하여 시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아래 시는 정기만의 「싯달타와 나비」 전문이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냐?/ 나는 은둔한 꽃의 날개에서 온 잃어버린 왕국/ 갈가마귀 검은색 옷을 입은 암울한 상처// 협곡 사이로 선회하며 끼륵끼륵 여운을 끌고/ 백사처럼 휘는 물거울에 비친 내 모습//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달음질하는 흰 토끼, 하얀 등을 네가 본 것이냐?// 잊혀진 나라를 덮은 혼돈의 자아/ 마침내 껍질을 벗고/ 비린내 나는 선창을 배회하는 나비// 얼어붙은 이 계절이 끝나는 즈음/ 허물에 싸여 속살거리는 은빛 유혹/ 깨뜨리고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 색깔을 벗은 싯달타의 나비// ― 정기만, 「싯달타와 나비」전문 위의 시는 시적 거리가 먼 것끼리 결합하여 이미지 충돌을 하고 있다. 싯달타와 나비의 낯선 대비는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연상시킨다. 위의 시는 대조법을 사용하여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기만의 시는 김기림의 시와 차별화된다. 김기림의 시에서 ‘나비’의 역할보다 정기만의 시에서 보여주는 ‘나비’는 깨달음의 층위가 더 높다. 김기림의 나비는 거대 바다와 왜소한 나비를 대비시켜 감각적 미의식을 주는 표현주의를 강조한 유미주의 시다. 그러나 정기만의 나비는 ‘싯달타의 나비’로 표현주의에 의미화를 삽입하였다. 정기만의 ‘나비’는 ‘싯달타의 나비’로 깨달음의 여러 입자와 깨달음의 껍질이라는, 해탈의 외연과 내연을 내포하고 있다. ‘은둔한 꽃의 날개’와 ‘잃어버린 왕국’은 등가의 가치를 가지는 종속절로 감각적 미의식을 지닌 문장으로 서로 매치시켰다. 다음 시행 ‘협곡 사이로 선회하며 끼륵끼륵 여운을 끌고’ 의 종속절로, ‘백사처럼 휘는 물거울에 비친 내 모습’으로 치환되는 문맥은 청각 이미지와 시각 이미지가 예리하게 맞물리며 공감각적 이미지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랜 사유 후에 혼돈의 자아는 은둔의 왕국에 입성한다. 은 흰색을 주조로 한 그림이다. 흰색은 순수와 정결의 상징이다. ‘흰 눈, 흰 토끼, 하얀 등’ 흰색이 세 번 반복된다. 수도자는 몇 겹의 번뇌의 강을 건너야 선의 황홀한 하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일까? ‘푸른 하늘’과 ‘나비’는 ‘선창의 비린내’와 ‘은빛 유혹’을 밀어내고 마침내 무념무상 깨달음의 경지로 해탈한다. ‘색깔을 벗’고 ‘싯달타의 나비’가 된다. 억압을 벗어던진 싯달타의 나비는 몸이 가볍다. 팔랑팔랑 가벼운 날갯짓을 하며 눈부신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색깔을 벗는다는 것은 탈피다.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이며 창조행위다. 자유와 예지의 영역이다. 색은 사바세계의 거짓의 옷이다. 진리가 아닌 허욕이다. 싯달타의 나비는 순수의 결정이다. 위의 시는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고행의 과정을 원초적 생명력과 환희를 그리며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감각을 채색하였다. 위의 시가 상상력의 비약적 확장을 하면서도, 문장의 객관화를 유지하는 이유는, 선시의 예언서 같은 신비함을 사물시의 객관화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력은 비약적이지만 시어에 사용한 사물은 지극히 현재적인 사물이다. 그러나 비약적인 상상력은 장치를 받쳐주지 않으면 문장이 날아가고 안정감을 상실한다. 시는 시적 논리에 맞는 상상력을 펼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시에 상상력이 가미되지 않으면 운동감이 없고 딱딱한 시가 된다. 표현주의의 감각적 미의식을 외면한 시는 답답하다. 정기만의 ‘싯달타의 나비’는 이미지들이 비상과 곡예를 펼친다. 아래 시는 윤유점의 「마그리트의 우산」 전문이다. 윤유점의 「마그리트의 우산」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그림의 패러디 시 작품이다. 그림을 패러디한 시는 객관화된 상상력을 획득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내기가 쉽다. 그 이유는 시를 쓰기 전에, 그림의 영상이 뇌에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미술의 시녀라는 말이 있다. 그림은 시보다 늘 앞장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한다. 그 한 예로 샤갈의 그림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샤갈은 이미지의 덩어리들을 그림에 뭉쳐놓고 있다. 샤갈 그림의 둥둥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자는 시각적 전위예술 작품이다. 윤유점의 시는 이미지를 객관화하여 감각적으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겨울비는 한 방울의 눈물이다 한 잔의 물이 된 거리의 풍경으로 나는 흐려지는 우산을 편다 빗물에 뜬 내 발자국은 원점으로 일그러진다 수직으로 떨어진 비는 어느새 동심원을 그린다 얼굴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늘 사선으로 떨어지면 가로수 사이로 희미한 빛들이 흔들린다 나는 출렁대는 내 흔적을 밟지 않는다 발걸음을 멈추는 동안 그림자는 빗물 속에서 서럽게 부유한다 우산을 쓴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울음을 삼키며 나는 증발하고 하염없이 비에 젖는 나를 본다 우산 속은 절대공간이지만 수많은 우산들이 틈에서 내 소실점을 찾지 못한다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며 휘발된 나는 기억을 지우며 빗물에 젖은 모호한 익명을 그리워한다 뒤돌아보아도 내가 걸어온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빗물은 결코 빗물만은 아니다 ― 윤유점, 「마그리트의 우산」 전문   위의 시는 무채색 그림이다. 단문과 복문의 흔적이 빗물에 씻긴 발자국처럼 교차적으로 반복되며 무늬를 그린다. 겨울은 흐린 이미지의 빗방울 그림을 그린다. 눈물과 빗물과 발자국은 공통된 이미지가 있다. 지난 계절의 흔적을 지우고, 퇴락한 마음의 서정을 따라 흐른다. 조건절과 종속절로 이루어진 겨울비 그 쓸쓸함이‘내 발자국에 원점으로 일그러진다.’ 는 문장을 주목하여 보자. 윤유점의 시는 우울한 기분을 노래하지만, 시의 분위기는 신발이 밟는 빗물소리처럼 찰방찰방 경쾌하다. 빗물에 지워지는 발자국은 그 존재를 증명하려 하여도 부유하는 물방울로 흘러갈 뿐이다. 존재를 흘려보낸 우산은 그 울음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현대적 감각이 물씬물씬 나는 윤유점의 시를 들고, 햇빛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숨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만난다. 드디어 우산 밖의 새와 우산 안의 새와 격렬하게 조우한다. 접혀진 우산을 펴고 날렵한 그림을 허공에 그려 본다. 무채색 그림 시에 하늘색 공감을 채색한다. 윤유점의 문장은 독자도 캔버스를 펼쳐 놓고 수채화를 그리고 싶은 창작의욕을 갖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다.  
뜸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 김선진   잠을 잃은 밤, 강물이 되어 흐른다 아주 긴 강이 밤을 가로질러 누워 있다 바람도 없는 강기슭에 서서 자꾸만 머리속이 쓸려 감을 알아차린다 나를 건드려 주는 바람 한 점 없이도 밤은 충분히 내게 혼자임을 일깨운다 잠을 잃은 채 긴 긴 강기슭을 내려갔다 거슬러 오르는 물살 빠른 가슴을 아는가, 그대는 이런 밤이면 새벽에 이르는 길도 아주 먼 곳에 있다 아무도 건너지 않는 강나루 이편에서 저편 강나루의 어둠을 지켜본다 자꾸만 밥물이 끓은 후 뜸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 편안한 아침이 기다려진다 아예 잠을 잃은 밤의 강물이 되감기 필름같이 빨리 흘러가 주었으면 세찬 강바람에 강물이 죄다 쓸려 가 강이었다는 흔적조차 날아 가버렸으면 좋겠다 오늘 밤도 잠을 잃은 밤은 강물이 되려고 꿈틀대며 몸부림친다.   일상과 일탈을 꿈꾸는, 시적욕망의 불안한 반란 이인선(시인, 평론가)   김선진의 「뜸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은 제목이 압권이다. 시의 내용에서 보이는 불안과 불면과 동떨어진 제목이다. ‘낯설게하기 기법’을 실현한 반전 매력이 있는 제목이다. 위의 시는 ‘일상과 일탈을 꿈꾸는, 시적욕망의 불안한 반란‘을 표출시킨 작품이다. 시적 화자의 무의식에 잠재하고 있는 불안과 욕망이 불면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예술로의 승화를 기다리는 시적화자의 무의식의 발로다. 시는 불안한 밤을 연모하고, 밤은 불안에서 시를 잉태한다. 시인에게 불면의 밤이 없다면 시의 강물은 말라버릴 것이다. 역발상을 하면 반전이 있다. 잠 못 드는 시인이여, 시를 깨우기 위하여 불안과 불면의 고통 속으로 직진하라. 불면의 밤은 시의 강물을 도도하게 흐르게 한다. 시는 불안과 불면의 강에 돛단배 한척 띄우고 싶어한다. 욕망은 에너지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잉여에너지가 남아있으면 그것을 소모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잉여에너지는 ‘심심하다’라는 형용사를 초대한다. 심심해서 일탈과 반란을 도모한다. 무모한 자는 파멸과 파괴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러나 이성과 분별력 있는 사람은 파괴와 재난을 거부한다. 생각의 일탈과 반란에만 머문다. 불안과 불면은 내적 갈등의 표출이다. 감정이 장기간 억압되면 정신병을 앓거나 분노 유발을 하게 된다. 억압과 분노가 계속되면 ‘묻지마 살인’과 10대의 ‘이유없는 반항’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일탈은 시창작으로 실현된다. 연애시는 감정의 일탈의 대표적인 경우다. 상상력의 비약은 하이퍼시를 생산하기도 한다. 프로이드는 시인을 사회적 부적응자로 분류하였다. 그 부적응을 고뇌하는 과정을 통하여 ‘승화’시킨 것이 시 창작품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사회적 부적응자인 독자가 시인의 그 시를 읽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불안감을 폭력성으로 소모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지성은 ‘편안한 아침’을 기다리고, 감성은 ‘나를 건드려 주는 바람 한 점’을 원한다. ‘이편’에서 지켜보는 ‘저편’의 강 건너 어둠은, 발아하지 않은 시적 긴장감이다. 시적 화자는 ‘뜸들일 때의 밥 냄새처럼’ 일상적이고 안정된 주부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불안증과 불면증은 갱년기의 호르몬의 불균형이나 노년기의 호르몬 감소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예민한 시인은 자신의 감정적으로 더 크게 인지한다. ‘오늘 밤도 잠을 잃은 밤은/ 강물이 되려고 꿈틀대며 몸부림’ 치는 상황이 반복된다. 소모적이고 병리적인 반복적 패턴은 병을 유발시킨다. ‘되감기 필름같이 빨리 흘러가 주었으면’하고 바라는 시적화자의 바람은 ‘세찬 강바람에 강물이 죄다 쓸려 가/ 강이었다는 흔적조차 날아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반란한다. 시적 화자가 왜 자신의 존재의 근원까지 소진시켜서 ‘무’이고 싶어할까? 상담심리 기법으로 심리적 이유를 분석하여 보자. ‘무’이고 싶어하는 심리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현재의 갈등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회피하는 행위다.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절대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도 자녀와 가정의 부조화로 후회하는 경우를 본다. 위의 시의 시적화자도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 무로 돌아간다는 것은 현재의 부정이다. 둘째, 새로 다시 시작하여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하고 싶어 한다. 현재를 부정하는 것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서 새로이 무언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소망과 결부된다. 후회는 ‘출발점’이며 인생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다. 사실 새롭게 시작하지 못할 나이는 없다. 10년, 20년, 30년 더 살면 된다. 인생 60, 70, 80에서 더 산만큼 빼기하면 된다. 그러면 시작하는 출발점이 앞당겨진다. 젊은 나이로 새 포지션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강물이 되려고 꿈틀대며 몸부림치는 것’은 생각을 버리고 행위를 도모하는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은 시적 화자의 내면에 현존하는 꿈이다. 꿈틀대는 욕망의 분화구다. 터질 듯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완성된 시가 탄생할 것이다. 천재는 ‘계속, 계속 노력하는 자’라는 말을 며칠 전 TV 예능 프로그램 자막에서 읽었다. 금방 싫증내고 탐구하지 않는다면 결과물도 평범하다. 시도 열정적으로 학문처럼 그 기법과 표현을 탐구하여야 한다. 노력은 역동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역사를 바꾼 예술작품은 지독한 에너자이저들이 만든 업적이라고 한다. 에너지가 없으면 흥미와 동기유발이 안 된다. 초기단계에서 포기하기 때문이다. ‘물살 빠른 가슴’이 되어 ‘새벽에 이르는 길도 아주 먼 곳’을 향하여 ‘혼자’ 가는 것이 예술가의 길이라고 시인의 무의식은 예견하고 있다. 예술가의 번뇌와 불안, 불면은 창작의 동기며 과정이다. 불안과 욕망은 시소의 양쪽 끝에 앉은 대치적 상황이다. 일상적 평안을 원하면서도 일탈을 꿈꾸는 것은 예술의 속성이다. 시인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생산과 창조를 위한 신경의 줄타기 과정이다. 시는 안일한 일상을 거부한다. 일상을 탈피하여 일탈을 꿈꾼다. 새벽은 불면의 밤과 맞닿아 있다. ‘아주 긴 강이 밤을 가로질러 누워 있다’면 그 강물에 몸을 섞어보길 권고한다. 김선진의 시는 고통 없이 예술은 잉태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일깨워준다. ‘불안과 불면’을 시창작의 필수조건으로 인정하고 역발상으로 접근하여 보았다. 김선진의 시는 새로운 시각으로 시를 바라보고, 시창작 기법을 논의하는 분기점을 제기하고 있다. 시의 물살에 맨몸을 맡기고 둥둥 떠내려가 보라. 절망의 꼭짓점에서 시의 꽃이 필 것이다. ♧
聞香에 들다 가영심     삶에 절망하면서도 꿈꾸는 자 꽃의자처럼 앉아있다 그윽한 향기에 마음을 입맞춤하듯 깊은 혼을 길어올린다   가득 어리는 향기로운 생각들이 알알이 투명언어로 퍼져간다 그 영롱한 눈부심으로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새 세상을 열어준다   백리향 잎사귀를 손끝으로 비비면 분홍 입술끝에 묻어나는 진한 향기   언젠가 가야산 백리향 꽃밭에서 따온 잎사귀로 향을 띠우면 나를 따라와서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머물던 그 향기. 백리향 차향으로 빚은, 정서해소와 심리치료의 시(詩) 이인선(시인, 평론가) 허브라는 이름은 몸에 유익한 치료효과를 주는 식물에만 붙여지는 이름이다. 백리향 차는 허브로 분류되는 치료효과가 좋은 차다. 좋은 시는 차향처럼 은근하고 향기로우며 정서해소와 심리치료 효과가 있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일상에 지친 소시민의 삶에 여유와 향기를 초대한다. 가영심의 시 「聞香에 들다」의 1-4연의 시행들은 차를 마시는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되는 정서해소와 심리치료 효과를 그리고 있다. 백리향의 약효를 모르더라도 ‘분홍 입술끝에 묻어나는 진한 향기’(3연 2행)로 시작하는 아침은 상쾌하다. 또한 ‘분홍 향기’로 마감하는 저녁은 열심히 일한 하루의 피로와 노고를 위로받는 치유효과가 있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작은 사치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일에 쫓기고 마감날짜와 전쟁을 하는 삶은 여유와 향기가 없다. 긴장이 연속되는 생활은 스트레스를 받고 암의 공격에 쉽게 무너진다. 인사동에 가서 비싼 도자기 찻잔을 구입하고, 향기로운 차를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하여 보자. 인사동에 간다는 사실은 바쁨과 현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실천이다. 현재를 버리고 옛스러움과 예스러움을 찾는 마음이다. 엥겔지수를 논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존감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입의 5% 정도는 문화비 지출항목에서 지출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특히 속도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그 정보를 벗어나서 고요한 침묵에 침잠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정서적 일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끔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대치와 억압에서 벗어나서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차향을 사랑하는 것은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달성하는 순간 멈춤이다. 시인은 ‘삶에 절망하면서도 꿈꾸는 자’(1연 1행)다. 시인은 어느 시대에나 현재의 경제력과 인지도에 관계없이 자신의 등급을 최고로 설정한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존심이다. 더구나 시인은 시대를 표상하는 샤프한 지성이다. 위의 시를 읽으면 서울 도심의 인사동이 아닌 일상을 벗어나 더 먼 곳으로 여유를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언젠가 가야산 백리향 꽃밭에서/ 따온 잎사귀로 향을 띠‘(4연 1-2행)우고 ’꽃의자처럼 앉아있다‘(1연 2행)는 가영심 시인의 여유가 부럽다. 위의 시는 먼 곳의 향기로운 백리향 분홍 꽃밭의 가야산 기억을 오늘에 재현한다. 시인은 꽃의자가 되어, 자신이 앉았던 꽃의자에 또 누군가 외롭고 슬픈 영혼을 초대하여 앉힌다. 백리향 꽃향기는 밟거나 흔들어 줄 때 멀리 멀리 퍼진다. 고독과 슬픔은 누군가 상처받은 마음을 정신차리라고 흔들어주어야 치유된다. 백리향 차는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약리작용을 한다. 위의 가영심 시와 백리향 차의 같은 점은 무엇인지 비교분석하여 보자. 첫째, 백리향은 향수의 재료다. 향기가 백리를 간다고 하여 백리향이다. 천리향 만리향도 있다. 백리향은 꽃향을 흔들어 주어야 더 멀리 간다. 시도 이와 같다. 인간의 정서를 흔들어 주어야 시향이 멀리까지 간다. 둘째, 백리향 차는 살균효과가 있다. 차갑게 마셔도 뜨겁게 마셔도 된다. 시도 같다. 독자의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거나 차갑게 이성적으로 만들어 흥분을 가라앉혀 준다. 셋째, 백리향 차는 기관지를 확장하여 호흡을 고르게 해준다. 호흡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시는 분노와 화를 가라앉혀 주고 화병을 치료해 준다. 넷째, 백리향 차는 젊음을 회복해 준다. 소화불량에 좋다. 음식을 먹고 잘 소화시켜야 젊은이다. 젋은이는 과식을 하여도 금방 소화를 시킨다. 그러나 노인은 잘 체하고 소화를 못 시켜서 복부팽만감이 있거나 변비에 시달린다. 다섯째, 백리향 차는 감염을 치료한다. 비타민 A, C가 풍부하여 면역력을 길러준다. 모든 병은 면역력이 약해서 감염된다. 차를 마시는 것처럼 시를 읽고 쓰는 행위는 정신과 정서의 면역력을 길러준다. 여섯째, 백리향 차는 혈행 개선과 고혈압에 좋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몸 안의 노폐물을 잘 배출시켜 준다. 시를 읽는 행위는 뇌 안의 노폐물을 배출하여 정신을 정화시켜 준다. 일곱째, 백리향은 입냄새를 제거해 준다. 시를 읽으면 입과 뇌의 구린내를 제거해 준다. 나쁜 말을 하거나 옮기고 싶은 마음이 억제된다. 왜냐하면 콤플렉스와 억압이 해소되어 정서적으로 여유를 찾기 때문이다. 여덟째, 기분이 좋아진다. 억압이 완화되고 에너지가 충전된다. 차를 마시거나 시를 읽으면 하루가 행복하다. 시를 쓰면 일주일이 행복하다. 매일 시를 읽으면 일 년이 행복하다. 시는 백리를 향기를 퍼 나르는 백리향보다 향기가 진하다. 가득 어리는 향기로운 생각들이/ 알알이 투명언어로 퍼져간다/ 그 영롱한 눈부심으로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새 세상을 열어준다(3연 1-4행) 좋은 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맑고 투명한 향기가 인터넷으로 온 세계로 배달된다. 위의 가영심의 향기로운 시는 백리향처럼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을 환히 밝혀 주는 행복 바이러스로 정서치유 효과가 크다. ♧
흔들의자     김인숙       아무 생각 없이 흔들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래전 보았던 편백나무 숲속 그 아련한 술렁임처럼 고래의 허밍을 들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젖은 바이올린의 고요한 선율을 귓속에 담고   곁을 내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소식 없는 소식을 기다리며 가끔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는 버스에 손을 흔들었다 흔들리는 나뭇잎이 너무 많아서 금세 파동 속에 묻혀버렸지만   탄력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곁이란 그런 것, 흔들리고 싶을 때 맘껏 흔들릴 수 있도록 몸속에 풍향계를 심어주는 것   안락하고 편안한 양수(羊水)의 출렁임 속에 만삭인 여자가 앉아 있다   흔들림 속에서 찾는 자유와 일탈이 주는 정서치유 효과             이인선(시인, 평론가)  ‘흔들리다’와 ‘흔든다’ 사이에 끼인 자유와 억압을 더듬어본다. 온몸으로 전해오는 차가움과 가벼움을 체감해 본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흔들리지 않는 당신이 그녀를 품을 수 있을까?   사랑의 출발은 흔들림에서 시작된다.   아무 생각없이 사랑이 불현듯이 우연처럼 찾아들고 당신은 열병을 앓는다. 그러나 위의 시 1연처럼 ‘아무 생각 없이 흔들리고 싶은 때가 있다. 당신도 그녀도.   인간들은 그것에 ‘일탈을 꿈꾸다’라는 제목을 붙인다. 일탈은 죄가 아니다. 그것은 법적 구속을 받을 정도로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자해를 할 정도의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흔들리다’라는 행위는 정서에 자유를 선물한다.   흔들리며 나무가 태양광선을 흡수하여 엽록소를 만들 듯이, 무수히 많은 서정시의 숲을 돌아다니다가 필자는 김인숙의 「흔들의자」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필자도 때로 흔들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분석이라는 평론의 틀에서 벗어나서 온몸으로 숲의 흔들림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단어 분석, 문장 분석, 작가 분석, 시대 분석, 이미지 분석의 건조하고 낡은 구조를 벗어나서 새로운 산소를 호흡하고, 일탈의 기쁨을 맛보는 시간을 갖고 싶은 거다. 필자는 일을 하면서 즐기고 싶은 두 가지 욕심과 본능이 늘 꿈틀댄다.  드라마와 노래, 미술작업, 무용, 시, 소설, 수필은 흔들리고 싶은 본능에 충실한 예술행위다. 그녀가 끊임없이 당신을 옥죄고 흔들 듯이, 또 당신이 그녀를 끊임없이 옥죄고 흔들 듯이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예술행위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대상을 향하여 흔들지 않고, 객체인 무생물을 대상으로 흔들어댄다. 사물과 사건, 무생물을 생물로 치환하여 객관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흔든다. 파격미가 심하여 전위예술로 치닫기도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자유를 침해당할 정도로 극심하게 정서가 왜곡되도록 흔드는 예술을 싫어한다.   김인숙은 어떤 일탈을 꿈꾸는가?   또한 일탈을 어떻게 실행하였는지 그 과정을 더듬어 보자.  2연의 중심어는 이다.  일상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고요한 일탈이다. 여유로운 자유라고 이름 하여도 좋다.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사치’다.    그러나 3연은 조금 더 진폭이 크다. 상상력의 공간이 넓고 깊어진다.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는 버스에 손을 흔들었다’라는 문장에 집중하여 보자. 죽은 남편, 애인, 또는 어머니가 대상일 수 있다. 그 대상들은 다시 만날 수 없기에 절실히 그립다. 김인숙의 흔들리는 문장에서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흔들리지 않고 꼿꼿한 나무들은 강풍에 부러질 것이다. 자신의 영역과 역할을 지켜내기 위하여 나무들은 나뭇잎을 흔든다. 바람에 몸을 모두 맡기고 흔들린다. 그대도 나도. 당신도 나도 흔들리고 흔든다.   흔들림의 강도가 강하여 쓰나미가 되어 다른 사람을 불행의 늪으로 내몰기도 한다. 소설적 구도다. 자신이 시궁창에 쳐박혀 부러지기도 한다. 시적 구조다. 소설가는 가해자가 되어 적극적인 행위의 주체가 되어 혁명가를 꿈꾼다. 그러나 시인은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어 소극적 방어를 하며 아파한다.  김인숙의 위의 시를 ‘흔들림 속에서 찾는 자유와 일탈이 주는 정서치유 효과’라고 명명하여 보자.  행위예술은 흔들림에서 찾는 자유와 일탈이다. 행위 예술가가 왜곡이 심할수록 전위예술을 한다. 그것은 유년기의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부모가 유전으로 물려준 상처를 시인들은 시를 쓰면서 스스로 자가 정서치료를 한다.  외로워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시를 쓴다. 그러나 딱히 대상이 있는 그리움은 아니다. 필자도 죽은 시인, 소설 속의 죽은 주인공 남자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애통해 한 적이 많다. 예술은 참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일탈이다.  무한대의 자유가 보장된 예술은 극심한 사회적 폐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억압이 계속되어 긴장이 계속되면, 반대급부적으로 적의감이 쌓여서 파괴본능과 폭력성이 증폭된다. 청소년들에게 시를 읽게 하면 긴장이 풀린다.  시에서 사랑을 빼어버리면, 긴장미가 없는 드라마처럼 지루하다.  4연은 드디어 일탈의 대상을 찾는다. 흔들리는 자아를 잡아줄 멘토를 만난 것이다. 그것은 정서적인 대상인 예술일 수도 있다. 또는 육체적인 대상인 애인일 수도 있다.  ‘몸속에 풍향계를 심어주는 것’은 그 대상이 불타는 육체적 사랑일 수도 있고, 정신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플라토닉 러브일 수도 있다.   5연은 드디어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 생산을 시작한다. 일탈은 예술을 만들고, 예술은 인간의 긴장감을 풀어주어 생산성을 높여준다. 자유가 주는 광활한 상상력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끝은 자유다. 구속받지 않는 자유다.  그 자유가 예술이다.  ‘안락하고 편안한 양수(羊水)의 출렁임 속에/ 만삭인 여자가 앉아 있다’라는 문장의 주체인 여자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생산의 주체다. 예술로 승화된 생산력이다. 예술행위는 이처럼 생산을 지향한다. 작은 일탈과 자유는 큰 범죄를 예방한다.   김인숙의 시는 점층적 구도를 가지고, 점점 일탈의 종류와 범위가 확대된다. 필자가 심심한 서정시 평론을 거부하는 이유다. 생각할 거리, 쓸 거리, 탐닉하고 즐길 거리를 주는 시는 좋은 시다. 평자와 독자를 지루하게 몸을 비틀게 하는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필자가 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평론을 쓰면서 시를 선정하는 기준은 독자를 힐링시켜 주는 시다. 문학사에 남을 위대한 작품이나 어려운 작품보다 쉽고 정이 가는 느낌 있는 시를 선정하고자 한다. 시의 참맛을 느끼도록 자연스럽게 독자를 유도해 주고자 한다. 오늘 김인숙의 시를 읽으며 1단계에서 5단계까지 힐링을 업그레이드하기 바란다. 이인선 평론가 약력   필명 이선. 월간『시문학』등단. 신춘문예 평론 등단.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한국문화예술공연협회 회장, 양천문화원, 광진문화원, 성동구민대학 시창작반 지도교수. 양평 시와 도자기 힐링캠프 대표. 완도전국시낭송대회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문학분야 유공 표창장, 한국현대시작품상, 푸른시학상 수상. 한국문학비평학회 문학비평상 수상. 평론 엔지오신문 2년 연재 100편, 한국문학신문 연재, 웹진시인광장, 가온문학, 시문학, 한국인문학 등 150여 편 발표. 시집: 이선 첫 퍼포먼스 시집『빨간 손바닥의자』, 이선 두 번째 시집 『갈라파고스Galápagos 섬에서』
앵무새 죽이기 채수영   흰색을 색이라 말하는 것은 슬프다.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푸르게 젖을 수 있는 여백조차 지워야 하는 물감, 구부러진 세상에 곧은 길을 가는 사람의 그림자는 길고 고독의 함량이 더해진 슬픔 앞에 당당이라는 리듬이 얼마나 아픈가는 누구나 외면하는 색 단맛을 익히는 고통보다 성찬을 생각하는 화려함의 행방은 열정없어 무미한데도 거긴 붐비는 길, 땀을 심어 길을 개척하는 용기와 아름다운 앵무새는 항상 먼저 죽어야 했다. 하얗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는, 흰색의 상징성 이인선 무지개는 빛의 스펙트럼이 빚어내는 신기루 같은, 곧 사라지는 꿈의 판타지다. 큰길 건너, 아파트 건너, 먼 산 위에 걸려있는 무지개 구름마을을 찾아 떠나지만 무지개는 만질 수가 없다. 꿈의 완성체로 무지개가 상징성을 갖는 것은,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물방울이 모여서 태양광선이 반사 굴절되어 나타나는 반원들의 집합이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는 7가지 색깔이 조금씩 겹쳐진다. 그러나 각각의 색깔은 스펙트럼 효과를 나타내며 빛낸다. 채수영의 시 「앵무새 죽이기」를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는, 흰색의 상징성’으로 해석한 이유는 흰색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흰색이 흰색이기를 고집하면 흰색은 다른 색으로부터 고립된다. 그러나 독창적인 예술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주장과 독립성을 필요충분조건으로 한다. 『좀머씨 이야기』를 쓴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ϋskind)는 세상과 단절하고, 수년 동안 숨어 지내면서 자전적 소설을 집필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문명으로부터 도피하여 자연의 원시적 삶을 살면서, 그의 예술세계는 독특함과 창조성을 획득하였다. 위의 시는 11-12행 ‘앵무새는 항상 먼저 죽어야 했다./ 하얗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라는 구절이 주제다. 하얗게 살아남은 예술을 위하여, 시인은 1-10행의 아픈 통점을 거쳐야 했다. 위의 시 1행 ‘흰색을 색이라 말하는 것은 슬프다.’ 라는 명제를 분석하는 일은 채수영 시의 흰색의 상징성을 분석하는 기본 틀이다. 흰색을 흰색이라고 말하기 겁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반반 양념통닭처럼, 빨강색과 파랑색이 분명하게 반반으로 나누어진 태극기처럼 우리는 좌파, 우파라는 2분법적 사고로 분류당하고 있다. 반반의 경계선에서 좌충우돌하며 집단적 불신은 개인의 존재적 불안감을 야기시키고 있다. 흰색의 삶을 사는 사람은 무향무취의 삶을 산다. 흰색을 주장하며 하얗게 살았기 때문에, 앵무새는 항상 먼저 죽어야 했다. 흰색의 이미지를 분석하여 보자. 흰색은 ‘순결하고 깨끗함’을 상징한다. ‘연약하고 고상하며 슬픈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백의민족이라 표현되는 집단 이미지도, 역설적으로 저항을 인내하는 순종의 착한 이미지를 대변한다. 백색 이미지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목련의 백색 이미지는 화사하고 찬란하며 고귀하다. 예부터 조상들은 흰색을 청백리의 상징으로 존귀하게 여겼다. 그러면 위의 시 1-10행에서 흰색을 지키기 위해서, 시적화자인 시인이 지불한 대가가 무엇인지 분석하여 보자. 흰색을 유지하는 것은 안과 밖, 경계를 긴장하며 지키는 수고가 따른다. 흰 색 옷을 입고 외출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상상이 된다. 흰색의 청결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매사에 조심한다. 혹 음식을 먹다가 김칫국물이라도 튀면, 흰색 옷에 붉은 얼룩이 진다. 얼룩은 순수하지 않다. 흰색은 얼룩을 거부한다. 순백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시인은 백색의 본질을 지키는 청렴결백 이미지에 자신을 가둔다. 흰색은 흰색을 고집한다. 흰색은 흰색에게는 절대 선이다. 흰 옷에 튄 김치국물 같은 얼룩은 경계선 안의 영역에 속한 자아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경계선 밖에서 파생된 타자의 침략이 원인이 되기도 하다. 본질과 원인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흰색인 자아는 슬프다. ‘구부러진 세상에서 곧은 길을 가’려니 시적화자는 고독하다. 흰색을 고집하며 사는 일은 외로운 ‘개척자’의 길이다. ‘당당이라는/ 리듬이 얼마나 아픈가는 누구나 외면하는 색’(5-6행)으로 살아 본 사람만이 안다. 당당하게 의협심이라고 우기곤 하지만, 가끔 도발하는 눈빛을 만나면 확신이 의심이 되며 풀이 죽기도 한다. ‘단맛을 익히는 고통보다 성찬을/ 생각하는 화려함의 행방은/ 열정없어 무미한데도 거긴 붐비는 길,’(7-9행)이다. 늘 구부러진 세상(3행)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시끌벅적 재미있게 산다. 이상주의를 버리고 현재에 자족한다. ‘땀을/ 심어 길을 개척하는 용기’(9-10행)로 흰색은 산다.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푸르게 젖을 수 있는 여백조차/ 지워야 하는 물감’(1-3행)이다. 홀로 고독한 도전과 실험을 하는 흰색은 빛의 삼원색. 밝고 큰 파장을 지향한다. 역경과 억압에 구속당하기도 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으로 산다. 궁극에는 흰색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펼쳐는 황홀한 절정이 기다리고 있다. 무지개는 손에 확실히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존하는 대상이다. 그 무지개 마을에 당도하기 위하여 몇 개의 무지개 씨앗을 시인들은 기르고 있다. 그것은 땀과 용기있는 개척자 정신이다. 시를 쓰는 일은 구도의 길이다. 참 시인이 되는 길은, 매일 매일 걷는 ‘좀머 씨’처럼 흐트러짐 없이 쉬지 않고 정진하는 일이다. 놀고 마시고 춤추는 자, 세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자 누구인가?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기 위해, 시인은 에너지를 과잉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의 창조자로서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에 힘써야 진정성 있는 개척자다. 흰색이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기까지, 어쩌면 시인은 영원이라는 시간을 저당잡힐 지도 모른다. 위의 채수영의 시를 읽으면 시의 도를 깨치기 위하여, 세상을 등진 은둔자의 고독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그것은 형벌 같은 아름다운 고행이다. 앵무새가 붉은색, 초록색, 노랑색 털을 부리로 모두 뽑아버리고, 흰색 털만 키우는 잔혹한 아픔이 묻어난다. 흰색은 무념무상의 색이지만, 시인이 지향하는 영원한 이상주의다. 채수영은 상흔을 들추며 고백록처럼 시를 적어나간다. 탈색된 잠재력의 무의식이 표출된, 표백된 그림 같은 시다. 순수라는 그물로 짠 천사의 흰 날개도 휴식을 필요로 한다. 하늘에서 추락하거나, 나무 위에, 달의 옆구리에 비상착륙하는 천사의 흰 날개를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주름살 없는 순백의 맑고 투명한 아기피부, 인간의 죄를 다 용서하듯 푸른 눈은 예지를 관통한다. 원망이나 불평은 신의 영역이 아니다. 채수영의 시는 비상하는 흰색 날개다. 인간과 신의 경계에서, 흰색 스펙트럼 무지개를 관리하는 시인의 시창작 과업은 고단한 희락이다. ♧
108    평론 연재: 이인선의 힐링 문학산책 1 인연설 / 문덕수 댓글:  조회:313  추천:0  2019-12-19
평론 연재: 이인선의 힐링 문학산책 1   인연설 / 문덕수   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 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입술이며 이마를 한없이 부비고 문지르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   ‘장자와 나비’의 비유를 재해석한 선시(禪詩)의 상상력과 환타지 이인선(시인, 평론가)     문덕수의 「인연설」은‘장자와 나비’의 비유를 재해석한 선시(禪詩)의 상상력과 환타지로 집약된 인생에 대한 해석적 시각의 시다. 선시의 특징과 상상력의 확장이 주는, 꿈속 같이 아름다운 환타지한 이미지의 정원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꽃나무 밑에서 잠깐 낮잠을 자는 동안 꽃잎이 어루만져주는 세계는 인간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다. 여러분도 잠깐 눈을 감고 오수에 잠겨보기를 권유한다. 왜냐하면 위의 시는 아름다운 꿈속 여행이기 때문이다. 위의 시「인연설 」은 장자와 나비 내편 제2편의 이야기의 모티브를 주제로 시를 구상한 것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 스스로 즐겁게 느끼면서도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엄연한 장주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는 이야기는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다. 장자와 나비는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를 넘나든다. 현대의 무의식 철학개념을 장자는 BC 300여 년 경 이미 마스터 하여 풍자시로 지었다. 그러나 문덕수의「인연설」은 장자의 나비를 뛰어넘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다. 철학과 유미주의를 만족시킨 작품이다. 위의 시는 14행으로 씌어진 서화처럼 짧고 아름다운 시다. 지하철역에 게재하기 좋은 내용이다. 지친 시민들에게 주는 위로의 문학이다. 또한 시낭송가들이 낭송하면 대중이 좋아할 감각적인 시다. 위의 시는 두 부분으로 내용이 나뉜다. 시의 상반부 1-10행‘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 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입술이며 이마를 한없이 부비고 문지르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는 아름다운 서정시다. 그러나 9-10행 ‘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의 내용과 이어지는 11-14행 하반부는 선시 형태를 하고 있다. 위의 시의 선시적 요소는‘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9-10행)/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 (11-14행) 부분이다. 장자의 나비처럼, 시적 화자인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꿈속인 듯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을 날아간다. 비현실적 환타지가 몽상적이다. 시를 시적이게 만드는 모든 장치를 숨겨 놓은 압권의 문장이다.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도 장자의 시가 원본이지 않을까 필자는 유추해 본다. 필자는 위의 시를 라고 명명하여 본다. 시에 사건과 스토리가 있다. 1-2행은 영화의 전개 부분에 해당한다.‘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나다니얼 호오손(Nathaniel Hawthorne)의 데이비드라는 소설이 상상된다. 여행을 떠난 미소년이 샘물가에서 낮잠이 든다. 자식이 없는 부자 부부가 지나간다. 깨어나면 아들을 삼고 전 재산을 주겠다고 하나 소년이 깊이 잠들어 있으므로 깨우지 않는다. 그 다음 도둑이 지나간다. 잠이 깨면 돈을 빼앗고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너무 곤히 잠들어 있으므로 소년을 깨우지 않는다. 그 다음 아름다운 처녀가 지나간다. 만약 그 미소년이 잠에서 깨어나면 결혼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너무 곤히 잠들어 있으므로 깨우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자기에게 닥칠세 가지 위기를 모른 채 여행을 계속한다. 위의 시 3-6행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 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입술이며 이마를 한없이 부비고 문지르고, /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내고,’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나다니얼 호오손의 소설보다 잠자는 동안에 펼쳐지는 자유로운 꽃잎의 희롱이 생의 단면처럼 아름답다. 허허로움이 선시적 형태미를 지니고 있다. 객체를 만져주는 대상이 꽃잎이다. 꽃잎이라는 사물은 생의 주인공으로 부각하여 으스대던 부정어를 여과시켜 준다. 전쟁, 불화, 시기, 질투, 불평등이 사라진 세계다. 위의 시 9-10행 ‘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부분은 드라마의 대단원에 해당한다. 11-14행은 위의 시의 주제부다.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 날아가고 있었다.’ 부분은 영화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필자는 이 부분을 소설의 부분으로 분류한다. 문덕수는 마지막 완결부를 환타지로 처리하고 있다. 나비는 애벌레가 그렇게도 꿈꾸던 이상향의 세계다. 인생은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고, 꽃나무 밑에서 잠깐 잠들었다가 나비가 되어 긴 여행을 다시 떠나는 아름다운 여정으로 생을 미화하고 있다. 천상병과 문덕수 시의 관점 차이는 무엇일까? 천상병은 인생을 잠깐 소풍 온 것으로 보았다. 소풍의 시간은 하루의 개념이다. 문덕수의 인생관은 잠깐 낮잠을 잔다고 표현하고 있다. 1-2시간, 혹은 20-30분의 짧은 시간의 개념이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잠깐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고 본 것이다. 위의 시의 시적 매력은 다음 구절이 압권이다. ‘꽃잎 하나가 내려와서 왼 몸을 안아보고 가고, 또 꽃잎 하나가 내려와서 입술, 이마를 부비고 문지르고, 한 잎이 내려와서 손끝 먼지를 닦아’낸다는 발상에 주목하여 보자. 시적 화자가 주인처럼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잘 때, 꽃잎은 마치 겸허한 젊은 남국 여인처럼 주인의 몸을 안아주고, 입술과 이마를 부비고, 손톱의 먼지를 닦아낸다. 꽃잎은 시적 화자의 세속의 때를 닦아주는 정화와 순수다. 또한 위로와 애무다. 고단하고 지친 인생의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지고지순의 선이다. 꽃잎은 신의 부드러운 손길 같다.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는 대단원이지만 미완이다. 현대 유행하는 영화처럼 끝이 아닌 미완성으로 독자에게 상상력의 공간을 부여하고 있다. 쇼팽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영혼을 빗소리처럼 두드리는 여운이 길다. 필자도 이 시를 여러 번 읽다보니 시에 흠뻑 빠져든다. 애송하고 싶어진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싶어진다. 좋은 시가 주는 매혹적인 힘이다. 그 꿈길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일 수도 있다. 또 내가 사랑한 보들레르의 시, 박남수의 시,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작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일 수도 있다. 또한 이사도라 덩컨의 춤, 광기어린 또스또예프키를 만나기 위한 꿈길이다. 시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요소는 무엇일까? 필자는 아름다운 상상력이 이끄는 감각적 미의식의 공간이라고 본다. 시를 향유하는 것은 산만하고 복잡한 현실을 떠난 여유다. 계산과 욕심 버리고 잠깐 쉬는 휴지다. 미완의 공백이다. 인생은 생로병사, 희로애락 슬픔과 실패 좌절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모든 슬픔은 꿈과 같은 찰라의 순간이다. 문덕수 시는 독자를 흠뻑 적시는 위로의 문학이다. 경건한 아름다움이다. 꽃비로 정화된 독자는 새 힘을 얻어 또다시 노동 현장으로 향할 힘을 얻는다. ♧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     이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처장)     박진섭의 시는 짧고 간략한 시어로 구성된,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수채화다. 이미지들은 시인의 삶처럼 담백하고 솔직하며 객관화를 획득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의 해석적 시각이 상흔처럼 도드라진다. 필자가 박진섭의 시를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이라는 제목을 부여한 이유다.   프로이드는 시인은 사회적 부적응자가 불안과 고독감을 시 작품으로 승화시켜, 사회적 부적응자인 독자의 공감을 얻어 감동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프로이드의주장처럼 박진섭은 사회적 부적응과 상처를 시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체감적 경험을 진선미를 지닌 예술작품으로 완성도 있게 제작하여 독자의 공감을 유도한다. 박진섭의 시에서 보여주는 외로움, 그리움, 동병상린, 짝사랑은 시인들이 지닌 감성적 속성이다. 시는 외로움과 그리움,결핍과 상처에서 피어난 꽃이다.   박진섭의 시는 대중의 사랑받을 수 있는 여러 대중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그중 가장 주요한 포인트 하나는 대부분의 시가 사랑시라는 점이다. 남녀상열지사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킨다. 특히 성애시, 짝사랑시, 이별 시, 불륜시는 언제나 영화, 소설,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대중의 촉각을 자극하여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박진섭의 시는 난삽하거나 화려한 기교의 사랑 시가 아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자연미인,숫처녀 같다. 시어와 표현이 유치하거나 저급하지 않다. 두 번째 특징은 짧은 시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속도화 시대의 대중은 바빠서 긴 글을 읽을 시간도 참을성도 없다. 우연인지 기획의도인지 박진섭의 시는 손바닥 시보다 더 짧다. 시에 군더더기가 없다. 시는 짧지만 내용은 허술하지 않다. 짧아서 지루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세 번째 특징은 슬픈 여운이다. 박진섭은 표현주의 문학이 범하는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어 그 상처를 부끄러운 일기장처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용기가 필요한 장인정신이며 고집이다.부끄러움을 벗고 당당하게 대중과 맞서는 것은 작가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필자는 박진섭의 첫 시집 「소소한 안부」 중에서 아래 7편을 그의 대표시로 선정하였다. 각각의 시를 읽고, 그 특징과 표현기법을 상세히 논의해 보자.   이른 아침 단풍국에서 온 안부문자를 꽃이름 어플에 입력합니다   사과나무, 17페이지 책갈피를 펼치면 그 동안 건강은 괜찮은지 어찌 사는지   서울 하늘을 이고 사는, 나는 단풍나무 씨앗 같은 핼쓱한 얼굴, 찌뿌둥 합니다   이상 기후에 혈압이 오르는지 과실들이 곤혹을 치른다는 당신 푸념에 황사비, 미세먼지 뒤집어쓴 듯 내 마음도, 어찔어찔   당신 목소리는 붉은 사과 빛깔로 곱게 깔깔깔, 물들어 가고   나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날씨 이야기를 큰소리로 웃으며, 주절주절   우린 같은 파란하늘 밑, 흰 깃털구름이불 나란히 덮고 다정하게 누워 토닥토닥 잠들었는데, 왜 나는 당신에게 팔베개를 해줄 수 없는지요? 당신은 거기, 나는 여기   비 온다는 핑계로 안부를 물으며 당신 목소리 아껴 듣는, 이 아침   ―「소소한 안부」 전문   위의 시 「소소한 안부」 는 박진섭의 첫 시집 제목이다. 짧은 사랑 시 모음들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제목이다. 애인을 향한 물음, 간절함, 애틋함, 슬픔, 비련, 절망감 등 여러 복합적 시적 화자의 감정을 「소소한 안부」라고 통칭하고 있다. 안부전화, 안부편지, 안부문자. 애인의 소식을 묻는 다변화된 시적 장치다. 위의 시는 일상적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속 깊이 숨겨놓은 밀애의 감정을 은근히 즐기고, 은근히 아파하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시는 클로즈업 과정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다.소소한 안부인사다. 1연에서는 ‘단풍국’에서 온 안부문자 같은, ‘꽃이름 어플’에 기록해 놓고 싶은 소시민적 사랑의 아픔을 잔잔하게 적고 있다. 1-3연은 단순한 안부로 시작하여, 4-8연은 고백적 심정을 은은하게 피력하며 점층적 구조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 세상에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박진섭 시의 매력은 현대적 감각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독자와 평자를 애수에 젖게 한다. 안부인사로 시작하여 사랑고백을 절절하게 하는 역설적 문장이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아래 시를 읽고 접속사의 중요성과 이미지 형상화 과정을 논의해 보자.   나는 향기로운, 살구빛 갈색 눈 당신에게 접속합니다   사랑하면 그리고   아픔이면 그러나   잊으려면 오히려   소망하면 혹시나   노랑허리솔새 부리가 긁은 올리브녹색 잎사귀, 흉터처럼   나는 매일 접속사를 바꿔, 당신을 소환합니다   ―「접속사」 전문   위의 시 「접속사」는 남녀상열지사를 고품격 예술작품으로 격상시킨 작품으로 문법의 접속사 를 사랑의 각 상징 단계로 표현하였다. 발랄한 상상력과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랑을 체험적으로 터득한 재해석의 시각이 돋보인다. 현대적 감각의 ‘접속’과 ‘소환’ 등 폭력적 시어와 ‘노랑허리솔새’와 ‘올리브녹색’ 등 아름다운 한국적 자연 속에서 사물을 발견해내는 시어 발굴 능력이 탁월하다.   아래 시를 읽고, 사랑에 대한 직관과 사랑의 속성이 가진 진정성을 논의해 보자.   모르는 거 아니고 서투른 거 아니고 고장 난 거 아니고   조급한 거 알고 서투른 거 알고 미숙한 거 알아   그래도 네게는 작동되지 않는, 제어장치란 걸   ―「브레이크」 전문   위의 시 「브레이크」 는 사랑의 속성인 ‘조급한 거 알고/ 서투른 거 알고/ 미숙한 거 알’지만 ‘제어장치’가 풀려서 급속발진 하게 되는 사랑의 속성을 적확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겉돌거나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이고 선명한 표현을 함으로써, 독자를 통쾌하게 한다. 객관화와 진정성, 직관을 실현한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다.   아래 시를 읽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 과정을 논의해 보자.   만난 것 같고 만날 것 같고   보인 것 같고 보일 것 같고   사라진 것도 아니고 사라질 것도 아닌데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간 ‘묵은실잠자리’ 발자국 같은, 너는   ―「소실점」 전문   위의 시 「소실점」은 사랑을 방금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억압과 불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간/ ‘묵은실잠자리’ 발자국 같은, / 너는'(4연 1-3행)라는 표현은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가 돋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교차하는 행복감과 불안감 등, 사랑의 속성을 극명하게 잘 그렸다.   아래 시를 읽고, 시의 상징을 논의해 보자.   마주 보라 찍었더니 선 하나 그었더라   서로 기대라 찍었더니 아예 등지고 섰더라   ―「데칼코마니」 전문   위의 시 「데칼코마니」는 서정시 계열이 아니다. 상징시의 예리한 직관이 돋보인다. 사랑의 이중성과 배리, 변덕 등 복합적이면서 감정기복이 심한 부정적인 폭력적 감정을 날카롭게 절단하듯이 절명하게 직관하였다. 「데칼코마니」는 시집 제목으로 하여도 좋은 박진섭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래 시에 나타난 직관과 사유, 아하 깨달음에 대하여 논의하여 보자.   가는 길에 부딪혔나 보다   오는 길에 엇갈렸나 보다   ―「교차선」 전문   위의 시는 TV 프로그램에서 보던 ‘사랑의 막대기’가 생각난다. 사랑의 단면을 칼로 잘라서 보여주는 것 같다. 부딪치며 엇갈리고, 좌충우돌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을 대변하는 시다. 보통 등단 시나 시집에서 가장 긴 호흡의 시와 가장 짧은 한 줄짜리 시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시적 필력을 과시하는데 경우가 있다. 긴 시는 시적 긴장력을 늦추지 않고 시력을 펼치는 힘을 보여준다. 가장 짧은 한 줄 시는 촌철살인의 직관과 사유를 보여준다. 작가의 다채로운 시력을 입증하는 ‘아하 깨달음’을 주는 짧은 시다. 독자의 뇌에 감각적 미의식을 주며, 사랑의 깨달음을 주는 사유와 철학이 있다.   아래 시에서 사랑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시적화자의 직관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사랑은 누구나 참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너와 나는 방향이 문제였을까 속도가 문제였을까   난 속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넌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전문   위의 시 「답을 찾을 수 없는」은 사랑을 가장 적절하게 관통한 표현이 돋보인다. 사랑의 중심을 과녘으로 통과한 명쾌한 답변이다. 도대체 사랑은 답이 없다. 맞는 게 없고, 틀린 게 없다. 도대체 사랑은 방향이냐, 속도냐 시시비비를 따질 수가 없다. 사통팔달, 어느 방향으로든 진행한다. 역방향이냐 순방향이냐 따질 수가 없다. 나이, 국적, 피부색, 사고방식, 빈부격차, 학벌, 도대체 일촉즉발 사고다. 사랑은 내가 원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다고 떠나는 것도 아니다. 일방통행, 쌍방통행 따지지 않는 건, 사랑은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영화, 소설, 시에서 사랑의 사고를 보여준다. 사랑은 정답이 없다. 특히 불륜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부정하고 비난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환타지하고, 시에서는 비련의 슬픈 주인공을 동정한다. 예술에서 불륜은 단골주제며 소재다. 화가에게 벌거벗은 모델은 지치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된다. 예술은 모든 시점과 관점, 결과가 용서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덕과 윤리의식으로 억압받은 사랑을 드라마, 영화, 소설, 시, 연극을 통하여 대리만족하며 보상심리를 갖는다. 특히 벗기기, 야한 영화에 몰리는 수백만 관객의 흥행수입이 그것을 입증한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짝사랑이라도 한다. 결국 사랑이 시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다. 누구나 하는 사랑, 언제나 하는 사랑, 어디서나 하는 사랑 이야기는, 성공을 약속받는다. 가끔 여배우와 감독의 불륜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곧 대중은 잊고 용서하며 시인한다. 박진섭은 너무 순진하거나, 고도로 세련된 사랑의 관찰자인지도 모른다. 그가 제작한 모든 시는 사유, 직관, 철학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사랑의 중심에 자신을 출연시킨다. 실화인가? 비밀리에 만나는 여자가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적 장치다. 만약 시적 장치라면 여우같은 책략이고, 시적 화자가 시인 자신이라면 슬픈 사랑 이야기에 독자는 혹해서 빨려들어간다. 성은 만고불변의 진리며 명약이다. 성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시킨다. 뻔한 스토리인데도 남녀상열지사는 흥분시킨다.     위에서 필자는 박진섭의 대표 시 7편을 언급하며 여러 방향에서 논의해 보았다. 박진섭은 사랑을 객관화시켜 이미지로 선명하게 형상화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참신하고 공격적인 이미지의 패턴을 보여주는데, 재해석을 통한 시적 구조가 탄력적이다. 보통 첫 시집은 과거의 장례식이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어릴 적 상처나 과거의 상처를 토로하는 정신과 자가치료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치른다. 그래서 첫 시집에 발표한 시들은 사변적이거나 상투적 표현이 많다. 그 이유는 인간이 살아온 과정은 거의 비슷비슷하고, 동시대를 살아낸 시인들의 아픔도 비슷하기 때문에 소재와 표현도 유사하다. 박진섭의 첫 시집은 서투르지만 솔직하고, 직접적이며 직설적인 특징이 매력 포인트다. 보통 신인 시인들이 범하는 우는 시의 픽션과 기교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과거를 소환한 체험적 진정성과 팩트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첫 시집은 자서전적 성격을 나타낸다. 또한 관념과 주장이 많은 것이 첫 번째 자전적 서정시집의 특징이다. 그러나 박진섭의 시는 상징성과 객관화를 실현하여 관념을 탈피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의 통일성, 재해석이 있는 유미주의적 순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 혼자 시에 탐닉하여 시창작 기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의 패턴화가 고정되었다. 시의 패턴화는 독자에게 특허상표로서 개성적이란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평자에게는 패턴화와 획일성이 비판과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고정된 시창작 기법은 자칫, 퇴행으로 역행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필자는 박진섭의 첫 시집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수준과 상징, 재해석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앞으로 신인으로서 과감한 실험과 도전을 할 것을 촉구한다. 절대 예술의 경지에서 느끼는 심미적 감각과 카타르시스를 쾌감할 것이다. 짧은시, 긴시, 서정시, 이미지시, 철학시, 소설시, 드라마시, 사유시, 초현실주의시, 하이퍼시 등 시창작 과정의 여러 단계적 성장을 경함해 보기 바란다. 시는 표현주의 미학이 주는 절대 선이다. 예술의 정점에서 느끼는 절대 자유와 희락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가치가 있다. 앞으로 사랑 시에 국한된 한계성을 갖지 말고, 사유와 철학이 있는 다양한 시적 방향과 소재를 탐색하여 장르를 통합하는 개성적인 테러를 자행할 것을 당부한다. 첫 시집 「소소한 안부」 발간을 축하하며, 앞으로 치열하게 시 공부를 계속하여, 시단에 큰 족적을 남겨주기 바란다. [출처]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 / 이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처장)|작성자 옥토끼
106    나의 하이퍼시 쓰기 / 이선 댓글:  조회:681  추천:0  2019-02-01
나의 하이퍼시 쓰기     1. 상상력의 공간이동   파란 해바라기   이선   고흐의 해바라기 밭에서 노란 해바라기꽃 두 개를 꺾었습니다     샤갈 그림에서, 파랑색만 손가락에 묻혀 당신 등에 문질렀습니다 해바라기 언덕에는, 종일 해바라기꽃이 핍니다     나는 김병휘 그림- 파란 해바라기 세 송이를 들판에 남겨 두고 그냥 떠납니다     뒤돌아서는 발길은 초록 풀섶입니다     김병휘의 흰 얼굴은 큰 그림책 창백한 여백이 많습니다     나는 그 여백에 갇혀 온종일 파랑색, 분홍색, 색칠공부하며 놀고 싶습니다               2. 상상력의 시간이동   갈라파고스Galápagos 섬에서 2/ 이선         해초보다 미끄러운 피부의 ‘그녀’를   사람들은 ‘물고기자리’라고 부른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아들 에로스가, 접신한 몸   ‘그녀’ 배꼽에서 적도좌표 원점이 시작된다       다윈핀치새가 뾰로로 쫑~쫑 휘파람소리로 유혹할 때   서쪽나라와 북쪽나라로, 적도의 꿈이 갈라진다   날카로운 톱날 지느러미, 펄쩍펄쩍 물살을 가르며   적도의 꼬리가 힘껏 하늘로 치솟는다   꼬리를 맞붙이고, 거대한 섬이 갈라져 서쪽과 북쪽으로 내달린다   연모하는 ‘붉은 해’를 향해 양쪽으로 몸을 서로 당기면서       오, 검은 괴수 ‘티폰'이여,   낮을 질투하는 밤의 마왕이여,   그는 마법을 걸어 아름다운 '이사벨라섬' 입속에   초록 ‘가시선인장’을 빼곡히 심는다   융기한 젖가슴― 납작한 아랫배   이사벨라섬은 발가락과 손가락까지 초록이다     이사벨라섬 항문을 간지럽히며, 춘분점이 지나간다   축축하고 비릿한 땅거미를 삼키는   갈라파고스거북,       용암(Lava)을 삼킨 '아술산' 입술, 석양에 붉다     3. 시간과 공간 순간이동   칼릴 지브란에게/ 이선 칼릴 지브란이여, 당신은 말합니다 “몸의 사랑을 나누면 당신과 영혼의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나의 하얀 목을 더듬는 당신 눈에, 그믐달 그림자가 얼룩집니다 백향목 향기 그윽한 ‘지혜의 숲’은 창백합니다 보랏빛, 달무리 스카프를 벗겨 내 벗은 몸에 칭칭 감아 주세요, 지혜라는 이름은 뱀의 혀처럼, 향기롭지만 당신 말씀은 수백 년 동안 느리게 자라서 우거진 ‘백향목 숲’이 될 것입니다 숲의 어두운 잔금을, 달빛이 환히 드러냅니다 내 머리를 틀어 올린, 황금 핀을 빼는 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갈색 머리카락, 귓불은 조금만 드러낼 것 저 새의 울음소리는, 누구의 잃어버린 욕망입니까? 칼릴 지브란, 당신 詩를, 내 헐벗은 영혼의 이불로 덮고 누운 그 밤에 젊은 여자와 나눈, 정사고백을 내게 하던 당신 ―감질나게, 벗었던 옷을 나는 도로 입었지요 내 몸은 난롯불 앞에서도 부끄러움으로 떨립니다 “메리 해스켈*의 별난 사랑을 위하여 건배!” 흰눈 덮인, 레바논 삼나무 숲에 아직 녹지 않은, 에로스의 뿌리를 묻어 둡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내 사랑을 폭력하지 않도록, * 메리 해스켈: 미혼으로 평생 칼릴 지브란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며 헌신한 칼릴지브란의 책을 편찬한 출판인. 칼릴 지브란보다 훨씬 연상임.   4. 링크 - 각 연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서     이선   눈썹연필을 깎는데 심이 자꾸 부러집니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는 푸른 침대와 흰구름, 부러진 연필심이 있습니다   바다뱀이 S자로 리드미컬하게 헤엄칩니다 파란 발광채를 발사하는, 꽃등 깊은 바다에는 도로가 따로 없습니다 천지사방 어느 방향이든지 새 도로가 됩니다 물고기는 부리로 초고속 도로를 내며 헤엄칩니다 사랑에도 면허증이 필요합니까? 파도가 나선형을 그리며 밀려오는 긴 밤입니다 ⊂거나 ∪∩거나   달빛은 어둑어둑 춥습니다 허공을 밀어내는 바람에서 두-둥 빈 소리가 납니다   젖은 낙엽 어디쯤에선가 살모사, 풀잎 위로 소리 없이 헤엄치던 밤 바람이 방향을 잃고, 내 속눈썹에 눕던 그 밤 당신은 첫눈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습니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당신이 떠난 뒤 나는 미장원에서 긴 파마머리를 자릅니다 “진작, 보라색으로 염색할 걸” 후회합니다   랭보는 베를렌느의 마침표가 됩니다       5.     동백꽃 잎, 또는 공룡의 입   이 선       남해안 붉은 동백꽃들은, 백악기의 거센 파도와 해일이 휩쓸어다 바닷가에 펼쳐 놓은 모래사장, 흰 동백꽃 따라 긴 해안선을 걸어간 프로토케라톱스 공룡발자국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지구에서 질식한 삼엽충 꽃말을,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주문하듯, 당신은 중얼거린다. 비릿한 미역냄새, 해풍과 접속한 빗방울의 DNA, 바닷물에 젖은 당신 눈동자에 파도의 페로몬이 묻어난다.   벽에 걸려있는 추시계는 몇 년째 1시 17분에 멈춰 있다. 말라버린 시간의 벽에 갇혀, 죽은 줄 알았던 몇 마리 거미가 몸을 움찔거린다. 당신은 첫눈이 내리는 광화문 거리에서, 시위대들과 함께 거리공연을 하는 풍물패를 찍고 있다.   악어도마뱀요리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웃는 중국남자의 검은 이가 TV 화면에 클로즈업 된다. 동백 꽃잎, 붉디 붉은 페로몬 향기에 이끌려, 당신이 찍어 온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는 냉동오디를 먹는다. 어느새 화면은 딸기아이스크림 광고가 사라지고, 살품이춤을 추던 여인의 하얀 손가락이 사라지고, 사슴을 잡아먹는 악어의 노란 눈이 확대된다. 나는 타르보사우르스 공룡발자국 분지에서, 키가 ‘줄풀’만큼 자란 붉은 점박이별과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는 꿈을 매일 꾼다. 별똥별이 되어 곧 지구로 귀환할 점박이 아기공룡을 따라 나는 ‘솔잎란’ 꽃씨를 바구니 가득 딴다.   6. 중첩 이미지 만들기 세 개의 이미지           태양이 달의 입술에 엄지발가락을 집어넣는 날, “지진과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리라” 올리브나무는 비둘기 입맞춤을 물고 지중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잎사귀 귀를 떨고 있지 아담 겨드랑이에서는 싱싱한 유칼립투스 향기가 나지   문명의 아들들은 불의 고리 위에 수많은 대도시를 건설했지 -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투창과 방패를 베고 잠든 병사의 품에서 재간둥이 암고양이는 불의 고리를 훔쳐 앞발로 톡톡, 재롱을 부리지 나는 미네르바 여신의 어깨에 올려놓은 올빼미 눈이 머무는 곳마다, 두려움에 떨며 초록 세콰이어 나무를 심었네   전생 전부터 시작 된 불놀이야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지 화성과 토성이 일직선상에 있는 날, 암코양이 수염을 자른 건, 이브들 잘못이지 바다가 대륙의 지진을 음모하는, 날에     7.       북극에서 온 편지           “툰드라의 아침밥상은 눈꽃 천지인 걸요…” 북극여우가 긴 꼬리로 허공을 흔들며, 빗줄기의 허리를 자릅니다   번식기 북극곰의 간식을 만들기 위해서 신은 고요라는 이름으로, 흰눈을 빙하 위에 내려놓으십니다 조용히   내 아버지는 툰드라가 되지 못한, 어둠 겨울을 낳다가, 바다로 침몰한 내 어미의 눈빛은 북극성   나는 얼음조각 유리바다에서 표류 중입니다 바다 거품과 “안녕!” 입맞춤을 하기엔 나는 아직 늙지 않았소만 ―내 고향 그린란드,   내 털들이 하늘로 곤두섭니다 얼음판을 놓쳐서 -40℃ 얼음바다로 미끄러졌습니다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수컷의 향기를 뽐내며 눈향나무 언덕 향해 달리는, 어린 순록의 맑고 유순한 눈빛을 나도 지닌 적 있는데   내 심장은 얼음바다를 부둥켜안고, 쪼그라듭니다 참, 내 꼬리가 퇴화한 사연은 짐작하시겠습니까? ―이글루에 발톱을 날카롭게 벼리다가, 수천 번 얼음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은 다음, 꼬리가 자라지 않는 겁니다? 내 참…   보름달을 사모하며 포효한 것도 죄입니까? -40도의 얼음바다, 120km 강풍, 내 몸속 짐승의 비애   보름달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까? 얼음을 녹이는 것은, 내 원죄를 지우는 일 나는 퇴화한 꼬리를 치켜세우고, 어둠을 힘껏 문지릅니다 ― 흰색이거나, 얼룩무늬거나   툰드라의 밤이 녹고 있습니다 순록의 뿔에 찔린, 달웅덩이   눈향나무 향기로 추위를 녹이며, 나의 젖은 몸을 말립니다 길은 추울수록, 달빛 투명하고 향기로와서     8.   자서전           레몬 유카리(Eucalyptus citriodora) 향기가 화장대 거울 위로 흘러내린다 (상큼한 유칼립투스 향수)   당신이 ‘망상 중독’이라고 말하는- 유칼립투스 꽃을 채취하던, 푸른 달빛을 흰 샴 고양이,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당신의 웃음소리거나, 나의 울음소리거나)   키가 10km까지 자란, 파란 하늘지붕 뭉게구름 발톱에 긁힌 아담의 방언 몇 개, 선캄브리아기 폭풍에 떠밀려 유칼립투스 숲으로 날아갔다는데, Queensland 북부에서- Victoria 남동부까지   늙은 회색코알라는, 아담의 방언을 해독하듯, 말없이 태고의 눈으로, 내 입술을 지긋이 바라본다 “태초에 말씀이 잉태하였나니,”   - 나의, 맹장은 2.5cm 나는 이국의 유칼립투스 향기에 취한다 한때는 유칼립투스 꽃의 꽃술이었을지도 모를, 내 입술 천식에 걸린 캥거루처럼,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며 나는, 노랗게 어지럽다   - 코알라, 맹장은 3m 독성이 엷어진, 늙은 잎만 골라 먹는 어미코알라 어미의 배설물만 먹으며, 면역력을 키우는 아기코알라 “나의 뇌에는 독성이 없어요. 코알라는 하루 2시간 먹고, 종일 22시간 잠만 자는 걸요“   호주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뉴칼레도니아 독감에 걸렸다, 콜록           9.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 TV풍경           “당신의 연애는 언제부터 해빙을 시작한 것일까요?”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나는 그녀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파랑색 벽을 칠한다 그녀 눈빛은, 비의 얼룩 같은 것이어서   네모난 탁자 위에선 레몬차 식어가고   그녀의 툰드라 언덕에, 나는 야생 히아신스 꽃밭 향기를 내려놓는다 두꺼운 스웨터처럼, 내 몸은 그녀의 향기로 체온이 급상승한다 여자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허공을 흔들며, 어둠을 자른다 흰 망사장갑은, 여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북극곰 발톱처럼 뾰족한 그녀 손가락이, 움켜 쥔 공허   해빙기, 그녀 심장은 더 이상 얼지 않아서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노을빛 구름을 뱉어내는 북극양귀비꽃 언덕을 지향하고 있다   ―40℃ 빙하기 옷을 벗고 다시 사랑을 시작할까? 예감하는 저녁에   백야의 푸른 들판을 건너가는 순록 떼, 툰드라가 녹고 있다   그녀의 눈꼬리가 내 눈을 어루만진다   “빙하는, 빗방울의 힘을 버틸 수 있을까요?”     10.   칵테일파티 효과             새벽 로데오 거리, 안개 숲은 포옹을 풀고 창세기 1장 28절은, 개화와 낙화를 반복합니다   내 입술은 당신의 펜촉 끝에서, 빨갛게 착색되거나 억압된 욕망은, 당신의 손바닥에서 결박이 풀립니다 당신, 기억의 저장고에는 패턴분리가 되지 않은, 욕망 알갱이들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신은 창세기를 거꾸로 읽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여자여, 당신의 욕정은 아직 생리를 합니까?   당신 심장의 빠른 박동은, 욕정의 첫단계 그 긴장과 공포를 압축하여 옥죄면, 오르가즘이 증폭됩니다 양버즘나무 열매가 슬몃슬몃, 떨어집니다 잎새들 눈빛이 흔들립니다   가로수들은, 등과 등이 결박당하는 꿈에서 깨어나 허공을 잉태합니다   결박된 거리의 욕정이 해체되며, 2단계로 발효 중입니다   11.     저녁에 드리는 기도     이 선     주여, 내 몸의 마디는 부끄러움과 죄로 뚱뚱합니다 매조히즘으로 뭉쳐진, 내 관절의 혹들 겨울밤, 가난한 초록별들은 내 지독한 마디의 아픔에 이란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만, 학자들은 나의 혹을 분류하여 이라 명명합니다 내 마디의 벌레혹들, 초봄에 비밀리에 잉태하여 보리밭에 종달새 알을 낳을 때쯤, 무성하게 자랍니다 눈의 조직들, 3-6개씩 무더기로 산란하고 유충을 부화시켜 원죄의 잎사귀 왕국을 번식시킵니다   천둥이 칩니다, 내 죄 때문입니까? 지진과 해일 소문이 무성합니다 남은 죄가 더 있습니까?   중독성 강한 밤나무꽃에 모여, 꿀벌들이 춤을 춥니다 반전과 아이러니의 원을 그립니다 원죄의 껍질은 두껍고 질깁니다만, 그 속살은 여리고 아릿합니다   내 죄의 유충은 2.5mm, 몸은 유백색, 또는 반투명 회백색- 기름지고 달달하여, 벌레들이 탐냅니다 주여, 벌레들이 갉아 먹다 남긴 부끄러움으로 겨울 별꽃 밭에, 하얗게 한 줄 시를 쓰게 하소서   12. 복합적 구성     저녁입니까?     이 선       꽃잎 문을 닫는, 저녁입니까? 별빛 부엉이 항문을 닦는, 저녁입니까?   파꽃을 잘라 줄까요? 대파 줄기를 잘라야 튼실한 새 줄기가 난다네요   구기자, 인동초, 컴프리, 비비추, 만수국, 두릅, 뽕나무, 칠자화, 산딸나무 - 서로 엉기어, 밀치고 밀치며, 키가 자라는 데 안경을 맞춰야 하늘이 보인다며, 농성을 벌이는데 말입니다   동네 노인네들 제초제를 마구마구, 뿌리는 날 말입니다 초복날 잡는다고 개를 부지런히 키우는데 말입니다 산수유, 매실, 개복숭아, 농약을 함초롬히 맞고 서 있습니다   고비사막, 켜켜이 쌓인 주름살커튼을, 펼치는 저녁 두물머리에는, 황사비, 초미세먼지 자욱자욱, 물결을 지우는 데 말입니다   아홉 개 꼬리에서 훌훌, 치솟는 불길 끄려고 여우가 강물에 풍덩풍덩, 뛰어들어 목욕하는, 은근한 저녁에 말입니다   민들레 다복다복, 노랗게 핀 계절을 건너 들국화 듬뿍듬뿍, 핀 가을언덕으로 비늘구름 내달리는 저녁 때, 말입니다 저녁 한 끼 건너뛰어도 좋은 그 저녁에 말입니다   맨드라미 꼬불꼬불, 꽃길에 갇혀 별빛에 몸을 적시며, 잠들어도 좋은 저녁인데 말입니다 -쉿, 꽁지 붉은 어미 새, 대문 우편함에, 새끼 일곱 마리를 부화시키고 있습니다 - 사람을 경계하며, 대문 맞은편 매실나무 가지에서 수컷 작은 새가 쏘로롱, 쏘로로롱 보초를 서고     13.     이브의 예언       이 선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인도 시장 골목을 헤매다, 전생에서 건너온 듯, 상처투성이 맨발 계집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의 날갯죽지에 난, 혹을 만져보았지 "갠지스 강에 알을 낳은 네 자매니라" 우렁우렁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은 미세한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증폭되어 들렸어 그 계집아이는 물고기의 DNA를 지니고 있었어 그 계집아이가 바로 나라는 걸, 난 금방 알아챘지   2천 년 전 그날부터, 이브의 딸들 DNA는 슬픔을 직감했어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자, 시조새로 바비큐 파티를 할 시간입니다! (마을회관 노인들도 후다닥, 화투판 접고, 소주병 들고)     14.   0, 또는 Oh~ Henry   이 선         교도소에서 탈옥한 바람은 조금 홀쭉하거나 눈매가 어둡습니다 풋사과 꽃, 수정하기 좋은 날 당신 회색눈동자는 출소했습니다만   "O. Henry~" 당신이 잃어버린 미래는 무엇입니까? 감탄사 O든지, 또는 아라비아 숫자 0든지   결핵에 걸린 당신처럼, 회색도시의 두툼한 입술은 육감적입니다 당신의 아내 ‘아솔’을 닮은,   야생 길고양이가 신발이 닳도록 어슬렁거리며 찾는 달빛꼬리처럼 낭낭하오   당근주스 꼴깍꼴깍 마시고, 입을 쓱 닦은 별무리들 입을 O로 벌리고, Oh~ Oh~ "Oh~~ 헨리,"   토요일 저녁, 홍대역 9번 출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마지막 잎새’처럼 3포 시대, 합병증에 걸린 청춘의 클럽문화를 소개하겠소 저들 청춘의 잃어버린 113페이지 의식의 두피에 낀 비듬을 먹고 자란, 가로수의 비애를 논쟁합시다 광란의 춤과 음악으로 밤새 자라난 가시를, 서로 어루만져 주며 새벽거리는 구토를 합니다 가로수의 굽은 줄기를 펴기엔, 네온사인 불빛 허리가 연약합니다만   식탁 위에 올려놓은 수박을 닮은, 0의 줄기세포 (햇빛을 못 본 탓인지, 당신 왼쪽 눈이 파르르, 떨립니다)     이방인 0, 당신에게 나는 집착합니다 천재를 뽐내시는 겁니까? (나는 0를 질투하며 비아냥거린다) 0는 큰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실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 폰을 꺼버린 거지만) 연일 번성하는 ‘0’ 왕국을 지지합니다만, 유행이란 변덕스럽고, 외도가 심한 법인걸요   15.   이브의 예언       이 선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인도 시장 골목을 헤매다, 전생에서 건너온 듯, 상처투성이 맨발 계집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의 날갯죽지에 난, 혹을 만져보았지 "갠지스 강에 알을 낳은 네 자매니라" 우렁우렁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은 미세한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증폭되어 들렸어 그 계집아이는 물고기의 DNA를 지니고 있었어 그 계집아이가 바로 나라는 걸, 난 금방 알아챘지   2천 년 전 그날부터, 이브의 딸들 DNA는 슬픔을 직감했어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자, 시조새로 바비큐 파티를 할 시간입니다! (마을회관 노인들도 후다닥, 화투판 접고, 소주병 들고) 16.   그 숲속, 바람소리처럼   이 선       파가니니의 손가락이 지향하는, 바이얼린 현의 능선에는 군화를 벗어던지고 뛰쳐나온, 야생화 구호가 함몰되어 있다   “꼭지점에서 뒤돌아 서!”   ‘처녀치마’의 레이스자락을 밟는 군화소리 거꾸로 힘껏 능선을 뛰어내려오는 ‘노루귀’의 절규   캐비어는 철갑상어 가죽의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다 어린 풀꽃들은 속기 쉽지   ‘각시붓꽃’은 사관의 모자를 쓰고 사열을 흉내 내려다가 ‘복수초’ 목을 투두둑, 꺾는다   백화점에서 빌린 유모차처럼, 색깔과 모양이 똑같은 지식을 만나면 ‘너도바람꽃’ ‘꿩의 바람꽃’   ‘쇠뜨기’ 생식줄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밤 여자들은 ‘얼레지’ 꽃잎 물고, 사내를 유혹하고 -‘홀아비바람꽃’ 씨눈 품는, ‘요강꽃’ 사내들은 술과 혁명을 모의하며, ‘양지꽃’ 언덕 구석기시대를 꿈꾼다   고라니, 바람을 껴입고 피아노 선율처럼 개울을 건너는, 밤   흐느적거리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뿌리에서 다시 뿌리가,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17.   기억의 초상(肖像) - 기형도 시인에게 바칩니다     이 선     신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 족자카르타에는 보름달 뜨는 밤에, 북극성을 찾아 산을 넘는 표범이 살고 있다   그믐밤엔, 특히 꿈을 조심하라 꿈 조각 틈새로, 악마의 날갯짓소리 범람하리라   아담의 얼굴은 불의 고리- 환태평양 지진대 불의 왕국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다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83세의 늙은 어머니는, 2014년에야 한글을 터득한 늙은 어머니는, 암호처럼, ‘입 속에 검은 잎을 물고’ 퍼즐보다 어려운 아들의 시를, 읽는다   피카디리 극장에는 XXXX년 3월 7일, 기형도의 지문을 기억하는, 아침 9시에 눈을 뜨는 의자가 있다 붉은 의자는 기형도의 이름을 만지작거리며 짜라투스트라의 눈빛은, 버드나무 잎사귀를 닮았다고 중얼거린다   27살의 기형도 이름이 요절한, P영화관 극장 입구에는 노란색 리본을 단, 동성애자들이 피켓을 흔들고 있다   18.   바람기둥에 대하여   이선   사막의 허공에, 남북으로 길게 카페트를 깔면서 날아가는 시조새를 잡아주겠소?   한랭하고 몹시 건조한 내 목소리는, 모래언덕에 분양하여도 좋소 잠자거나 깨어 있거나   파랑색 대문 안, 그 책상서랍은 아직 수리되지 않았소? 닫혀 있거나 열려 있거나   서랍 속에서 하얗게 질려 기절한, 그녀 목소리는 가늘고 앙칼지오 점심‘전갈비빔밥’양념으론 충분하오 참회의 땅은, 붉은 입술 건너편 고백의 땅은, 무지개 건너편 비늘구름 켜켜이 우거진, 오아시스가 적당하겠소   하늘에는 모시조개 구름 땅에는 가시도마뱀   직경 10km 크기 시속 7만 km 소행성, 내 식구들 목소리 아직도 울창, 울창 기억하오   그 파랑색 구름대문을, 내가 아직 열어두고 나왔소?       20.   무릎 자서전     이선       한 각도에서 떨어져 나온 연골이 삐그덕, 소리를 낸다   행성의 틈새로 푸른 잉크빛 바람이 흐른다 무릎연골에서 잘 익은 과육이 빠지고 있다   심층 해류가 사는 어느 몬순 기후에서 불어온 습한 바람인가? -이 비릿한 살바람   무릎과 무릎, 사이 관절과 관절, 사이   사막모래 언덕에도 선인장 꽃은 핀다 스크린의 검은 자막처럼, 선명한 초원의 배꼽 허공으로 튀어오르는 날치의 은빛 몸부림을 닮은 줄무늬 초록빛 오로라, 모래언덕에 켜켜이 쌓인 빛의 스크럼 아침을 떠나서 저녁의 사랑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산호섬 저 너머 사막여우, 사막뱀, 전갈 꼬리 저 너머   사막의 갈비뼈를 더듬으며 낙타는 모래벌판에 하얀 발을 내딛는다 비릿한 붉은 살점 같은, 텁텁한 공기는 귀납법이거나 점층법   은빛 물방울무늬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엔 달빛조차 무너진, 오늘 같은 한밤중이 알맞다   “긴 혀를 내밀어 선인장꿀을 맛볼 황홀한 시간입니다. ”   무릎 활막 기포들이 헉헉, 숨가쁘게 모래방파제 안개더미 위로, 은밀한 기표들을 뱉어놓는다 (스콜 내리기 10분 전)   낙타는 인어공주가 사는 전설을 나타샤별에게 듣는다 (무릎 관절이 시릴 때, 미완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21.     소금꽃을 꺾다     이선(李仙)     모래고양이 발톱과 사막의 낙타 발자국은 푸른색인가요, 신이여 그래, 새끼낙타를 삼켜버린 밤도 푸른색이지 어미낙타 눈동자가 점점 줄무늬하이애나를 닮아가요 괜찮아 곧 나이를 먹을 테니까, 뱀의 푸른 눈이 살아 있어요 그래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는 8000피트 상공에서도 살아 있더구나 모래고양이가 파 놓은 토굴에 숨어 새끼를 낳는 도마뱀 빨간 엉덩이를 보았지? 거울 속, 염색한 내 빨강 머리카락을 보고 있어요 오늘을 부정하면서, 벌써 내일을 초대한 거니? 이 거리에서 입양에 대하여 말하는 건 금기어예요 그 아이들은 곧 자기의 성이나 이름을 버리게 될 거다 14세 여중생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이여, 날기를 거부한 새가 새벽 공원에는 많아요 밤새 도둑고양이를 피해 잠을 설쳤나보다 그래 삭제할 게 많은 서울거리는 참 부지런하구나 경계경보를 울릴까요, 지금? 땅! 총을 쏘기 전에 선을 넘으면 아웃이라고   23.   대륙붕 크루즈여행 체험기       이 선       차가운 눈(雪)과 어두운 박쥐가 악수를 하는 저녁 우아한 손님처럼, 경쟁은 또 시작되곤 했지   희고 정갈한 탁자 위에 하얀 케이크와 촛불을 켜 놓을까요? -가면무도회처럼, 23:00 정각에   바다는 달빛에 취한 흰 파도 위에, 낯선 물고기들 이름을 샴페인처럼 터뜨린다 청춘이 저지른 실수를 위해 건배! 늙은 가수의 흘러간 팝송이 끝나기 전에 다행히 사람들은 수다를 멈추었다   바다는 잃어버린 산호숲을 다시 찾아 나선다 스마트폰에서 삭제된 이름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번진다   바다 속 200미터 대륙붕 정거장엔 자유를 예약한 크루즈여행 궁전엔 과열경쟁에 지친 탁자들이, 담뱃재를 털러 모여들고 있었다       25. 무의미 불확정 무제한적 상상력의 최대치 확대   탁상공론 문명일지       이 선(李 仙)       책꽂이에 거꾸로 돌아앉은 사르트르는 더러운 손과 지저분한 손, 그 차이점을 모르지 바람이 꽃씨의 발화점을 외우는 동안 바다는 구름을 잉태하지 늙은 토인 여자의 자궁은, 그린파파야 향기     “당신은 곧 당신이 먹은 것”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몸은 화학적으로 다르다는군 프랑스 남자가 고급 바닷가재 요리를 먹을 때 아프리카 아이들은 쓰레기더미를 뒤지지 부자가 먹은 바닷가재 '수은, 비소'가 더 고가의 죽음이라고 현대문명은 우기지     아프리카 처녀, 녹슨 깡통이 익히고 있는 흰개미죽은 21c 서울처녀가 꿈꾸는 다이어트 음식, 파파야 통조림은 고갱의 여인, 젖은 머리카락 냄새가 나지     현대문명이 5분 동안 끙끙, 자동차 바퀴를 굴리는 동안 아프리카 사슴은 태어난 지 5분 만에 걷는다네 탯줄 피막 피냄새를 맡고 곧 달려들 맹수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동물들 연애사를 들먹이는 건 철학의 수치라고 사르트르는 주장하지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던 사자의 갈퀴 따윈 잊었다고 현대문명은 또 곧 우기겠지만,   26.   결론     이선     곁가지, 원가지보다 더 길게 뻗은 새벽 찔레꽃길, 건너왔구나. 기어이, 구렁이 입속에서 뒷다리부터 몸통 반쪽 물린, 개구리 울음소리를 만나는구나. “웩, 웩” 거꾸로 뒤집혀 쑥을 부둥켜안고 파닥이는 장수풍뎅이 집착을 만났구나. “놓아라, 놓아야 네가 살아”   헌 벽난로 연통에서 부화한, 오색무늬 새끼 새들 오늘도 기다리는구나 찌찌찌찌 삐삐삐삐, 요란했던 여섯 바퀴 비행연습 4년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두나무 자를까, 말까 또 3년을 지켜보는구나   꽃뱀이 목 치켜세우고, 코앞에서 나를 노려보는구나 장맛비에,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 스물세 마리 여기서 톡, 저기서 톡 온 천지가 미끌, 미끌 흐르는구나 ―양평군 양평읍 대흥리 300번지, 여름     27.       서론     이 선     그 밤, 성경의 를 읽었지 생선비린내가 베어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잃어버린 내 청춘, 116페이지 원고를 넘겼지 혁명을 외치는 낡고 더러운 붉은 양탄자 위로 검정도둑고양이가 먼저 지나갔지 앞집 길고양이와, 내 집 길고양이가 네 팔, 네 다리 서로 껴안고, 한데 엉겨붙어 가파른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지,   붉은 단풍나무 그림자가 누워있는 내 의식의 흐름을 흔드는, 개울물소리 자갈 밟히는, 소리   냇물 속으로 뛰어든 단풍잎들은 계절을 순환하며, 흰돌을 암갈색으로 물들였지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향기가 났지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   ‘서다’라는 이미지를 잡고 치타가 긴 꼬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 밤에       인연론   이선   불광사, 스님 황금빛 옷자락에 기와지붕 씻어낸 처마 물이 떨어진다 저 빗물은 내가 아침밥상에서 먹은 한강 물이다   한 컵 푸른 유리컵 안에는 계곡을 온 몸으로 휩쓸고 내려온 비의 DNA가 숨어 있다 비릿한 살내음이 묻어 있다   어제 먹은 쑥차는 오늘 내 몸에서 들풀의 생각을 키운다   물길은 제 근본을 버리지 않는다 어제 골짜기에 남겨놓은 비의 족보를 또 다른 빗줄기가 오늘 읽어내린다   지금, 계곡 돌틈에 남겨놓은 물의 DNA 족보를, 스님의 젖은 법의가 기운차게 읽어낸다 계곡 물은 넓적한 바위를 지날 때 몸을 납작 업드려 바위인양 딱 달라붙어 낮게 흐르고 높은 언덕에선 눈을 질끈 감고 천길 아래 바위로 뛰어내려, 몸을 만신창이로 부서뜨린다 낮은 골짜기를 지날 때에는 가로 막는 바위를 비껴서 제 몸을 아프게 찢어, 유순하게 두 갈래로 갈라져 길을 내며 흐른다 안개숲을 지날 땐 몸을 가볍게 오므린다 그대여,   석촌호수 혼탁한 물에도, 오늘 아침엔 맑은 이슬, 통통 튀며 빗방울 내린다   그대여, 콧물을 훔치는가 역한 냄새로 숨어들어, 숨 가쁜 비의 DNA 당신께 무어라 웅얼거리는가     이사도라 덩컨   이선     아프로디테의 부서진 거품 알갱이들이 얼어붙어 내 몸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나는 믿는다 내 춤의 원소는 1905년 1월 5일, 겨울궁전에서 학살당한 노동자들의 맨발이다 -47˚c 가로수 잎, 잎사귀에 맺혀 얼어붙은 눈물(雪淚)은 내 춤의 세포조직,   내 몸의 원소는 바다와 바람, 러시아 설원에 첫발을 내딛는 순록의 맑은 눈망울, 첫눈, 첫 입맞춤   “내 영혼이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때까지, 지상을 떠나지 않을 거야”   발끝으로 세상을 밟으며 허공을 껴안고 춤추던, 그 밤 별빛에 내 몸이 쓰러지던, 그 밤 안개 숲을 헤치고, 맨몸으로 나이어린 가로수가 나를 부둥켜안고 키스를 퍼부었지 그 밤, 어린 날 사고로 강물에 빠져죽은 내 아들 패트릭 깃털처럼 가볍게 내 품속을 파고들었어 “내가 어떻게 그를 상처낼 수 있겠어?” ―예세닌 내 아들, 내 남편   밤마다 그의 꿈은 신경쇠약, 알코올 중독, 간질, 술과 폭력의 공포에 떨며 자살을 기도한다 ―젊은 천재시인, 예세닌   “내 안의 詩가 날 잠재우지 않아” 내 춤의 날개인, 우주의 긴 푸른 스카프에 소리와 빛을 담고, 나는 뜬 눈으로 그의 꿈을 지킨다     * 이사도라 덩컨: 1877~1927년 미국 출신의 현대무용의 개척자. 전통 발레를 거부하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     28.     달팽이 학습일지   이선     월요일 나는 앞얼굴과 뒷얼굴이 다른 껍질이 부서진 달팽이, 내 주인은 아픈 나를 ‘옐로우 트리’라고 불러요 그녀와 나는 자웅동체 한 몸이예요 나처럼 그녀도 우렁이 껍질같은, 곱사등을 형벌처럼 짊어지고 살지요. 작고 왜소한, 달팽이 껍질 같은 그녀 나는 광렌즈 끼고, 매일 그녀를 은밀하게 관찰합니다. -한번 뒤집어지면 말라죽어버리는, 그녀도 나처럼 똑바로 누울 수가 없어요.   화요일 그녀는 매일 달팽이를 관찰합니다 달팽이똥을 이쑤시개로 뒤적이며 근심스레 살핍니다 -녹색, 빨강색, 노란색 나도 그녀 몸을 관찰합니다 그녀 정수리, 미간, 목울대 그녀가 나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나는 그녀를 애처롭게 쳐다봅니다. 그녀가 오늘 밥을 얼마나 조금 먹었는지 내 더듬이는 그녀에게 예민합니다.   수요일 달팽이는 어둡고 조용하며 따뜻한 곳을 좋아해요 좁고 아늑한 그녀 방이 좋습니다 그녀는 오늘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싱싱한 상추, 당근, 바나나를 먹여주고 싶어요 그녀 속을 말갛게 헹궈주고 싶어요   목요일 새벽이슬은 허기져요 삭제된 그녀의 뇌도 허기져요 신경섬유의 다발성 병변(neurofibrillary tangle)과 초로성 반점(neuritic plaque) -옐로우 트리, 그녀에게 Dr. 알츠하이머씨가 왕진을 왔냐고요?   금요일 기억장애로 햇빛을 폭식하는, 그녀 하루종일 달팽이가 몇 cm 기어갔는지 집착하는, 그녀 솔론드 박사에게 내일은 편지를 부쳐야겠어요 그녀의 알츠하이머 10번 염색체, 11번 염색체에 이상이 생겼는지?   토요일 20121213 암호처럼 비종일비 주룩주룩비 주룩 그녀가 연애를 하냐고요? 14살, 소녀의 꿈을 임신중절수술 시킨, 친 오빠 곁가지 꺾인 뒤, 말을 놓아버린 그녀 그녀 속잎이 아파요 오, 나는 그녀와 짝짓기를 할 수 없어요   일요일 그녀 베개 밑에 구겨진, 예로우 트리 잠든 그녀 손가락에 더듬이가 닿았습니다   달팽이, 뿔에 붙은 꽃불,     29.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     이 선   나의 젖가슴은 보름이면 살이 오르고 조금 때는 살이 빠진다 해와 달과 별이 내 줄기세포를 키우는가보다 누군가 나를 지었다, 작은 키, 급한 성격, 갈색 눈동자, 예민한 입맛 가는 목소리, 위의 크기와 창자길이, 누군가 내 유전자를 조립한 거다   내 정신의 줄기세포는 어디에서 이식받은 것일까?   페이지가 접혀, 뇌혈관 어디쯤 파묻혀 있을 니체, 보들레르, 토스토에프스키, 이사도라 덩컨, 까미유 끌로델, 열기와 헛소리 내 피는 샤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 파랑색 스카프, 파랑색 가방, 파랑색 원피스, 나의 詩도 파랑색이다. 착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詩, 나의 詩에는 적도의 피가 들끓고 있는데 러셀의 연애론보다 더 겁쟁이인 불쌍한 나의 詩, 감염되지 않은 단어가 내 시에 한 줄이라도 있을까? 생각의 껍질까지, 타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어머니의 눈으로 본 아버지,) (언니의 코로 맡은 돈 냄새,) 내 몸의 세포조직엔 적도의 바람과 햇빛이 녹아 있다 (한국인의 조상은 동남아인이라고 흥분하던 KBS, 9시 뉴스앵커, 내 두툼한 입술과 주먹코는 분명 남방계다)   하늘은 초록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무들 밑둥 잡고, 오늘도 땅에다 열심히 글씨를 쓴다 제 생각을 뿌리 채 땅속에다 모두 이식하고 싶은 거다.   나뭇잎의 떨림을 이식받아 바람 앞에 내 줄기가 떨리듯 내 굴절된 파장이 혹,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당신 심장 한쪽을 떼어내 내 할딱이는 심장에 마저 붙여주고 갔듯이,   지금, 나는 누구의 푸른 눈동자로 응고되어 가는 너를 보는가?   *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 장기이식 후 기증자의 성격과 습성까지 전이되는 현상. 애리조나주립대학 심리학 교수 게리 슈왈츠(Gary Schwartz)가 처음 발견함. * 2011년 웹진 시인광장 100인 선정 작품     30.   까미유 끌로델의 외출   이선   빨강, 주황, 흰색 아네모네 꽃을 내 젖가슴에 탐스럽게 그려줄래요? 나는 연보라색 줄무늬 드레스를 벗고 바람 앞에 가슴을 드러내고, 달빛에 젖을 거예요 북쪽 작업실 창문 모서리엔 노란 수은등 북두칠성 자리에 둥둥 떠 있어요 나는 그 별을 ‘나의 거북이별’이라고 불러요 나는 ‘나의 별’에 천년 동안 등뼈를 문질러댔죠 몽블랑, 에펠탑, 미라보다리 건너 오늘밤에도 내 침실로 달려오신, 당신 오, 나의 어여쁜 신神이여   나는 우주의 원기元氣를 빨아들인, 흰돌 로댕의 긴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요 나는 그 커다란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요 부드럽게 열리는, 돌의 입술 오, 돌의 처녀성   “아~악, 난 미치지 않았어요!”   로댕의 길고 하얀 손톱이 돌의 입술을 찢어요 점점 야위어가는, 수백만 년 풍화된 흰돌의 갈비뼈 달그락, 누군가 내 전두엽 뚜껑을 열어요 내 천재를 염탐질하는, 당신 차가운 회색눈,   별똥별 우르르 쏟아지는, 봄밤 아직, 아기별은 등불을 끄지 않았나요? 로댕, 당신 눈동자가 어두워요 나의 미소로, 당신 눈동자를 반짝반짝 닦아 드릴게요   1억 5천만년 후,       로댕, 나는 당신의 초록별로 다시 태어날 거예요, [출처] 나의 하이퍼시 쓰기|작성자 옥토끼    
2015년 가온문학 여름호 발표       이제는​          박남희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기우는 것은 빨리 파는 것이 남는 것이지요   술잔을 생각하면   저녁하늘이 붉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누가 술에 조금씩 어둠을 섞어 하늘에 버렸을까요   이제는 별을 팔아야겠습니다   벌을 받아야겠습니다   술 취한 별이 모여서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을 사이에 두고   영영 벌 받기 위해   견우와 직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하늘을 팔아야겠습니다      죽어서 말이 없는 자와   살아서 눈물 흘리는 자가 흘려보낸 시간 속   자꾸만 기울어지던 중심을   바다 깊숙이 가라앉힌 채 인양할 줄 모르는   저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판다’의 이미지에 부재와 이별을 담은 트라이앵글 구조     위의 시는 ‘판다’라는 이미지에 부재와 이별을 담은 트라이앵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트라이앵글 구조는 대등하고 독립적인 시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의 시를 의미구조와 형태구조로 분석하여 살펴보자.    1. 의미 구조      위의 시「이제는」은 많은 시간의 경과를 겪어낸 ‘현재 시점’의 제목이다. 현재 시점에서 화자는 지금까지 생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집착하며 소유한 것들, 이를 테면 에 대하여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놓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예견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제까지 집착하며 소유하고 있던 을 팔고 싶다고 말한다.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고 ‘팔고 싶’어하는 표현에 주목하여야 한다. 시적 반전 매력을 갖는 대목이다. 버리지 못할 정도로 간절하고, 집착하며, 소중한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팔다’는 ‘석양’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석양은 존재하다가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생물체의 쓸쓸한 뒷모습’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잡다’와 ‘놓다’라는 단어는 반대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존재와 부재, 소유와 상실, 집착과 회피를 의미한다. ‘석양’의 이미지는 ‘놓음’의 이미지다.   ‘별’과 ‘하늘’이라는 단어를 의 적 상징성으로 해석하여 보자. ‘별과 하늘’은 실제하는 사물이지만, 등의 현대적 상징성을 가진 단어로 해석된다.   ‘석양, 별, 하늘’은 이미 많은 시인들이 상용한 단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단어들은 늘 새로운 의미와 표현으로 재탄생되는 신비로운 명약과 같은 이미지를 재창조한다. 굳어버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단어도 표현과 구조의 새로움을 갖는다면 독창적인 시로 탄생할 수 있다.         2. 형태 구조      다음은 위의 시의 형태 구조를 살펴보자.     첫째, 독립적 병렬구조   제목과 1, 2연의 연결 형태를 살펴보자.   제목 ‘이제는’은 독립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목을 1연과 2연 맨 앞에 배치하여 보자. 모두 의미가 통한다. 또한 ‘1, 2, 3, 6, 7, 8, 12, 15행’의 앞에 어떤 곳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다. ‘지금은’이라는 제목은 전체를 아우르는 수식어 작용을 한다. 물론 1연 1행과만 연결하여도 된다. 위의 시는 병렬적이며 독립적이다.        둘째, 트라이앵글 구조    이라는 단어를 중심어로 하는 트라이앵글 구조를 가지고 있다. 3개 단어의 구조와 형태는 대등한 등가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각 연과 행들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유기적이다.     셋째, 파생적 구조   구조에서 파생어와 파생의미 구조를 갖는다.   1행 ‘석양’에서 파생된 이미지가 2행 ‘기우는 것’이다.   3, 4행도 ‘석양’에서 파생된 이미지의 구조를 갖고 있다.   3행 ‘술잔’과 4행 ‘붉어지는’은 5행의 ‘술에 어둠을 섞은 하늘’의 이미지로 파생된다. 5행의 ‘술’과 6행의 ‘별’은 8행의 ‘술 취한 별이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으로 연결된다. 8행의 ‘흐르는 것’들의 별의 이미지를 끌고 와서 10행의 ‘견우와 직녀’로 연결된다.     2행 ‘기우는 것’은 14행 ‘기울어지던 중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15행과 16행의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석양’의 이미지와 같다.     1행 ‘팔다’의 이미지는 6행, 11행, 16행에서 반복적 파생을 한다.        넷째, 아이러니 기법   위의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에서 보여주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와 같은 아이러니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반복되는 ‘팔겠습니다’라는 단어는 역설적이다. 쉽고 짧지만 강렬한 연시다.  
104    [스크랩] 가온문학 이선 평론- 이낙봉 2016년 여름호 댓글:  조회:887  추천:0  2018-12-28
시답잖은/시답지 않은 – 묘비명      이낙봉     1. 우리 지역과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따뜻한 시끄러운 조용한 아름다운 지루한 안전한 더운 재미있는 지저분한 작은 무뚝뚝한 위험한 추운 높은 평화로운 어두운 활기찬 오염된 다정한 큰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4학년 2학기, 두산동아(주), 94쪽에서 인용   2. 나와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외로운, 심심한, 즐기는, 노래하는, 사랑하는, 짜증나는, 찌질한, 불안한, 슬픈, 한심한, 흐릿한, 우는, 떨리는, 짜릿한, 메마른, 우울한, 취한, 비틀거리는, 두려운, 울부짖는, 몽롱한, 초조한, 빠는, 핥는, 조급한, 미친, 침침한, 휘청거리는, 꿈틀거리는, 어두운, 비릿한, 바람인, 바위인, …………걸,   3. Epitaph , 8분 38초 동안 숨 막히는, 그럼에도 사는,   , , , 걸,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하이퍼시     이 선         1. 서론   이낙봉은 작고한 오남구 시인이 주장한 디지털시론의 ‘탈관념’론 시를 창작하며 그와 뜻을 같이 한 시인이다. 현대의 하이퍼시 기초를 닦는데 한 역할을 하였다. ‘시답잖은/ 시답지 않은’ 시리즈도 하이퍼시의 여러 구성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이낙봉의 시를 하이퍼시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위의 시는 연을 1. 2, 3의 장의 구조로 병렬적이며, 개별적, 독립적인 하이퍼시 구조로 구성하였다.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새로운 구성방법은 지금까지 본 일반 단어로만 된 시들과 차별화된다. 각 연들이 나타내고 있는 하이퍼시의 구조와 기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장에서 필자는 편의상 1연, 2연, 3연으로 구분한 점 양해 바란다.     2. 1연-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하이퍼시 기법   1연은 학습지 구조와 형식을 가진 도표를 영입한 새로운 하이퍼시 형태의 시다. 1연에서 ‘우리 지역과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0표한 부분은 독자의 의식구조를 대표한다. 또한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부분도 주목하여 보자. 하이퍼시의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부분에 해당된다. 시의 구조가 독자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시인의 감정이나 시적화자의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독자중심이다.   반대어로 구성된 제시어는 사회화된 인간의 안전과 행복지수를 점검하게 한다. ‘따뜻한- 추운, 시끄러운- 조용한, 아름다운-지저분한, 지루한- 활기찬, 안전한- 위험한, 더운- 추운, 작은- 큰, 평화로운- 어두운, 안전한- 오염된, 다정한- 무뚝뚝한’ 등 ‘지역’과 ‘사회’라는 집단구조에 대한 의식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현대인의 문명사회를 향한 안전과 행복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주제의식을 배제한 도표를 통하여 가장 강한 주제의식을 전문처럼 주장하고 있다. 역설과 아이러니 기법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3. 2연-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음, 독자참여   2연은 세 개의 중요한 하이퍼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째, ‘나와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1연은 긍정어로 ’0표‘를 하라고 하였는데, 2연은 부정어로 ’x표‘를 하라고 한다. 1연과 구분하는 기교적 표현이다. 또한 ’나‘라는 개인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부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긍정어 3개에 부정어 30개다. 긍정어는 ‘즐기는, 노래하는, 사랑하는’ 단 3개 단어인 반면에 부정어는 ‘외로운, 심심한, 짜증나는, 찌질한, 불안한, 슬픈, 한심한, 흐릿한, 우는, 떨리는, 짜릿한, 메마른, 우울한, 취한, 비틀거리는, 두려운, 울부짖는, 몽롱한, 초조한, 빠는, 핥는, 조급한, 미친, 침침한, 휘청거리는, 꿈틀거리는, 어두운, 비릿한, 바람인, 바위인’ 등 30개다. 현대인의 소외와 회피, 불안하고 우울한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구성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1연과 같은 구조로 독자에게 참여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셋째, ‘…………걸,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이 부분은 ‘이상 시인’의 시와 소설에서처럼 나른한 권태가 느껴진다. ‘심심함, 나른함, 시시함, 시답잖은, 게으른’ 감정들이 주는 회피적 심리가 잘 드러나고 있다. 현대인의 무관심과 소외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걸’이 주는 메시지는 따라서 여러 방향으로 해석된다. 하이퍼시의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기법이다.   4. 3연- 개별적, 독립적, 자립적, 병렬구조의 하이퍼시   2연은 첫째, ‘Epitaph , 8분 38초 동안 숨 막히는,’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Epitaph 음악세계는 하이퍼시의 구조와 같은 심리상태를 지니고 있다. 열정과 광기의 음악으로 ’헤비메탈,고전, 낭만파, 팝송 등‘ 다양한 음악 갈래를 병렬적 구조로 조합한 음악이며 열정과 소외, 우울과 집착 등 여러 복합적 현대인의 ’숨막히는‘ 불안한 정신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분열과 소외 중에서도 열정과 광기의 예술세계가 주는 희열과 집중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하이퍼시도 병렬적 구조로 각 연들은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다. 사물시의 특징인 객관화된 문장은 과학적이다. 미술의 초현실주의 작품과 비슷하다. 둘째, ‘그럼에도 사는,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Epitaph 음악은 개인의 소통부재, 인터넷과 미디어와 소통하며 사는 소외된 현대인의 정신분열과 우울을 잘 대표하는 음악이다. 하이퍼시도 모든 연들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행과 단어도 서로 충돌하며 자립적이다. 병렬적이고 대등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고 있는 개인의 우울한 모습이 현대적이다. 셋째, ‘ , , , 걸,’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적인 문장이다. ‘, , , 걸’은 현대적 문장이다. 짐짓 아닌 척하는 시적 기교다. 이런 표현은 전체와 부분을 모두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있다. 시니컬하며, 방관적이며, 회피적 문장이다. 한정적이거나 제한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구조를 단 한 단어인 ‘, , , 걸’이라는 낱말은 니힐리즘의 대표어다.     5. 결론   이낙봉 시의 특징은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1연, 2연, 3연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독립된 하이퍼시는 무의미 문장과 무의미 단어들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시답잖은/ 시답지 않은’ 제목부터 주장적이지 않고, 제한적이지 않으며, 착한 문장이다. 겸손한 문장이다. 주제를 주장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날카롭게 현대문명과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 갈등을 첨예하게 논문처럼 주장하고 있다-행간 뒤에, 문장과 단어, 도표 뒤에 숨겨 두고 있다. 시인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소외와 단절, 회피의 고독한 시대에도 하이퍼 시인들은 그 작품으로 문예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어로 번역되어도 손상받지 않는 것도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객관화된 문장으로, 질 높은 하이퍼시 작품을 생산하여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8月       박항식         봉선화 고 빨강 꽃 속에 8月이 들어 있다.   콩콩 찧어 물들이면 빨강 8月이 손톱에 옮아 온다.   눈동자 푸른 바닷가에서 빨강 모자를 쓰고 웃는 少女―   ―손톱이 자라면 차츰 8月이 밀려 가겠지만   나직한 歲月을 등에 지고 기대어 생각노라면   해가 갈수록 짙어지는 기억 속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빨강 8月이 온다.                   한국시단의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적 이미지스트 ― 박항식의 재조명     이 선(시인)     1. 서론   한국 시단의 모더니즘 운동의 대표적인 유미주의적 이미지스트는 정지용과 김광균이다. 그런데 한국시단에 알려지지 않은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동시대를 살다 간, 남원 출신의 박항식 시인이 있다.   「8월」은 박항식의 대표적 이미지 시로서, 김광균의 「추일서정」이나 정지용의 「유리창」과 대비될 작품이다. 박항식의 시를 중앙문단에 소개하면서, 박항식의 이미지 시의 특징을 김광균, 정지용 시와 대조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2. 김광균의 이미지 시의 구조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은 도회적 감각과 서구적 세련미가 있다. 「설야(雪夜)」, 「와사등(瓦斯燈)」, 「외인촌(外人村)」, 「데생」 등의 작품에서도 선명한 이미지 시로서의 고른 작품성을 보여준다. 1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2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3 도룬 시의 가을을 생각게 한다. 4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5 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6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7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8 포플라나무의 근골 사이로 9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10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11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12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13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14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15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16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전문   「추일서정」은 ‘낙엽’을 중심으로 한, ‘추락 이미지’와 ‘소멸 이미지’, ‘하강 이미지’를 각 시행 전체에서 골고루 보여준다. ‘낙엽이 떨어진다’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시는 출발한다. 각 행들은 낙엽의 ‘하강 이미지’ ‘소멸 이미지’ ‘추락 이미지’의 동사와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다. 는 표현을 눈여겨보자. 모두 낙엽의 ‘사라진다’는 ‘소멸 이미지’와 ‘추락 이미지’ ‘하강 이미지’를 가진 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각 시행의 명사나 주어들은 어떤 이미지 역할을 할까?  는 표현을 눈여겨 보자. 모두 낙엽의 ‘소멸 이미지’를 가진 단어와 표현이다. ‘떨어진다’는 낙엽의 이미지에서 파생된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각 행마다 철저히 계산된 낙엽과 치환되는 단어, ‘소멸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의 사물을 다양하고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각각의 사물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진다. 낙엽의 ‘날아간다’와 ‘떨어진다’와 ‘사라진다’는 이미지를 차용한 이러한 표현은 정지된 시에 운동감을 준다. 시를 흔들어 주며 정서를 환기시킨다. 낙엽의 ‘소멸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어떤 표현이 있을까?  부분을 눈여겨 보자.각 문장들은 다른 사물을 차용하였지만, ‘사라진다’ ‘풀어진다’ ‘나부낀다’ ‘기울어진다’ ‘잠긴다’는 ‘소멸 이미지’ ‘하강 이미지’의 동사를 내포하고 있다. ‘낙엽’의 ‘떨어진다’는 이미지를 붙잡고 여러 형태의 공감각적 이미지의 합일을 보여준다. 6, 9, 11행  부분은 현대문명에 대한 반항과 부정, ‘소멸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연기, 지붕, 구름’의 연상 이미지는 ‘둥둥 뜬다’라는 ‘상승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시에 ‘운동감’을 주며 시를 처지지 않게 받쳐준다. 그러나 12-14행 에서는 다시 부정적 추락과 쇠락의 ’하강 이미지‘로 변환하고 있다. 5, 7, 11, 16행  부분에서도 ‘하강 이미지’가 있다. 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으로 가볍게 그림을 그리듯 가볍게 터치하고 있다. 다양한 은유는 내용과 주제의식, 시대 상황까지 유의미한 진정성을 심어준다. 시는 역사와 사람을 대변한다. 욕구불만시대의 지성은 나라를 잃고 좌절하였다. 해방을 맞았지만, 남북분단과 강대국의 지배라는 혼란에 휩싸인다. 시인의 박제된 지성과 역사의식, 문명에 대한 불안감이 잘 표출된 작품이다.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 라는 표현은 절박하고 급박한 실존적 반항과 행동주의가 투영되어 있다. 김광균은 「추일서정」 에서 교과서적 표현주의 이미지 문학의 외형적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는 가볍다, ‘단어 합성’의 기술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시다, 위의 시는 현란한 기교주의, 표현주의 시의 감각적 미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3. 정지용의 이미지 시의 구조   정지용의 「유리창」은 또 다른 독특한 이미지와 심상을 보여준다.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2 열 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3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4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5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6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7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8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9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10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전문   정지용의 대표시 「유리창」은 김광균의 「추일서정」이나, 박항식의 「8月」과는 다른 이미지의 시다. 1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객관적 상관물을 차용한 화자의 심상이 압축된 객관화가 완성된 표현이다. ‘유리’라는 사물에 화자의 마음을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라고 담아놓았다. 3행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나, 5~6행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부분의 선명한 이미지를 주목하여 보자. 「유리창」은 고요한 서정이 내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7-8행  부분의 내면적 고요의 관조적 심상에 집중하여 보자. 승화된 슬픔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정지용의 「유리창」은 기교가 찬란한 이미지 시가 아니다. 모든 이미지와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시의 기조는 조용하고 단정하다. 아니, 억압이 느껴질 정도로 정숙하다. 냉철한 이성이 폭발적 슬픔을 억압한다. 절제의 미학이다. 그래서 더욱 절절하다. 이 시는 사물인 ‘유리창’과 사물의 마음인 화자가 ‘산새가 되어 날아간, 너’에게 내밀하게 ‘말 걸기’를 한다. ‘너’에게 속삭이는 심상의 편지다. 화자의 독백적 고백록이다. 이미지 시지만, 언어유희라고 느껴지는 구절이 없다. 각각의 시행은 ‘슬프다’ ‘외롭다’ 라는 단어를 관통한다. 시와 시인이 먼저 감상에 빠지면 안 된다. 감정의 절제를 보여주어야 한다. 「유리창」은 심상의 진정성이, 독자를 압도하여 공감을 이끌어낸다. 정지용은 찬란한 슬픔을 완성하는 마력의 이미지스트다. 4. 박항식의 이미지 시의 구조   (1) 박항식 소개   박항식 시인은 1917~1989년까지 생존한 남원 출신 시인으로 한국적 정한을 이미지로 선명하게 표현한 시인이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 시 『눈』 당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文藏臺』 당선. 1946년 시집 『白沙場』(1946, 삼덕문화사), 1959년 시집 『流域』(삼덕문화사), 1976년 시조집 『老姑壇』, 1981년 시집 『方壺山 구룸』을 발간하였으며, 원광대에서 시인을 양성한 교육자다. 박항식의 대표시 「8월」은 김광균과 정지용의 이미지 시와 어떻게 다를까? 어떤 구조적 차이와 내용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을까?   「8월」은 전통적 이미지 시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의 효과는 위에 소개한 김광균, 정지용의 시와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첫째, 민족적 정한의 상징인 ‘봉선화’를 제재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표현주의는 관념을 배제하며 유미주의를 지향한다. 이미지 시의 문제점은 화려한 기교주의로 인한 내용과 주제의 결핍인데 그 문제점을 박항식 시는 거뜬히 해결하였다. ‘봉선화’는 가장 한국적 정한의 ‘집단무의식’을 대표한다. 한국적 집단무의식은 참고 견디는 인고다.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에 애국가처럼 불렸다. 무언의 항변이며 데모였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구슬프게 부를수록 효과적이다. 시골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보는 봉선화, 화려하고 아름다운 봉선화, 낙화가 더 아름다운 봉선화, 손톱에 꽃물을 들여 겨울까지 견디는 봉선화. 봉선화는 민족의 눈물이요, 카타르시스다. 봉선화는 한국인의 정서적, 정신적 지주였다. 시골마을의 상징이면서― 서울로 시집간 순이, 서울로 돈 벌러 공장에 간 순이, 서울 술집에 팔려간 순이를 상징한다. 또한 아직도 그리운 고향, 어머니, 장독대의 상징이다. 둘째, 위의 시의 완성도는 제목 때문이다. 「8월」은 시간 이미지를 내포한 현대적 감각의 초현실주의적 제목이다. 아마도 시창작 초보자라면 위 시의 제목을 「봉선화」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시가 제한적이며 한계성을 갖게 된다. 「8월」이라는 제목은 시원하다. 여유와 유연함이 있는 확장된 제목이다. (2) 「8월」의 이미지 구조   그러면 「8월」 시가 갖는 구조적 매력은 무엇일까? 아래 세 가지 측면으로 분류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가) ‘색채 이미지- 빨강’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8월은 선명한 ‘빨강색 이미지’다. 빨강 모자를 쓴 소녀는 곧 봉선화다. 선명한 ‘빨강 이미지’다. 위의 시는 봉선화를 소재로 빨강이라는 ‘색채 이미지’로 「8월」을 구조화하고 있다. 1   나) 「8월」이 상징하는, ‘시간 이미지’ 위의 시에서 모든 연들은 제목 「8월」에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각 연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연― 봉선화 고 빨강 꽃 속에/ 8月이 들어 있다.(시간) 2연― 8月이 손톱에 옮아 온다.(시간) 3연― 눈동자 푸른 바닷가에서(장소인 동시에, 시간― 계절을 명시함) 빨강 모자를 쓰고 웃는 少女(봉선화 이미지) 4연― 손톱이 자라면 차츰/ 8月이 밀려 가겠지만(시간) 5연― 세월을 등에 지고 기대어/ 생각노라면(시간의 경과) 6연― 해가 갈수록 짙어지는 기억 속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빨강 8月이 온다. (과거의 현재화, 지난 기억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   다) 봉선화- 사물의 관점과 시점에서 본 시의 이미지 구조   「8월」은 사물시로서, 사물의 관점과 시점에서 씌어졌다. 1연: 봉선화― 빨강꽃― 8월(사물의 관점, 사물적 시점) 2연: 봉선화 물들임― 빨강― 8월― 손톱(봉선화 물들이기, 손톱도 사물임. 사실적 사물의 관점과 시점) 3연: 바닷가(시간, 계절)― 빨강모자(봉선화 치환은유)― 소녀(봉선화 이미지)(봉선화의 사물의 관점) 4연: 손톱― 8월(시간의 경과, 사실적 사물의 관점) 5연: 세월(인간의 관점과 시점) 6연: 1행 기억(화자, 또는 시인의 시간적 시점, 인간의 관점) 2행 손톱물― 빨강― 8월(제목과 연결시킴, 봉선화의 사물적 관점과 시점) 위의 시는 사물시로서 사물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그러나 2연, 4연, 5연에서 보여주는 ‘세월’ ‘기억’ 등의 단어들은 숨은 인간 화자의 목소리가 엿보인다.   (3) 박항식이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런데 왜 「8月」과 같은 우수한 이미지 시를 쓴 박항식 시인은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필자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관점에서 유추해 보았다. 첫째, 지방시인의 한계성. 중앙문단 진출이 막힘. 학연, 지연, 거리, 발표지면 등. 둘째, 장르적 분산. 교육자, 저자, 시인, 시조시인, 동시작가 등 지필활동이 분산됨. 셋째, 홍보 부족. 서울에서 시집을 출판하지 않고 활동하지 않아서 중앙문단이 모름. 넷째, 평론가와 제자들이 부각시키지 않음. 다섯째, 노년기, 시인 후반기에 시집을 내지 않음.   (4) 박항식의 기타 이미지 시   박항식의 아래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위의 모든 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음을 밝혀 둔다. 아래의 이미지즘 시들은 박항식 시의 경계가 다양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시가 쉽게 독자와 친교할 수 있는 시 세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둔다. 靑山을 사랑에 눈 뜨게 한 도라지꽃 피었네 청산을 半만 취하게 한 한들한들 도라지꽃 피었네   淸明한 가을날 풀 푸른 내 故鄕 뒷山에 이쁜 固執으로 도라지꽃 피었네 ― 박항식, 「도라지꽃」 전문 * 청산을 반만 취하게 한 → 의인화 * 이쁜 고집으로 도라지꽃 피었네 → 의인화 「도라지꽃」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단 7행의 짧은 시가 갖는 매력은 김소월의 「산유화」에 비교할 수 있다. 정답고 친절하며 사유적이다. 특히 밑줄 친 부분은 압권이다.  인간과 산, 도라지가 한 공간에서 포옹하고 호흡하는 시다. 「동그라미」처럼 노래로 만들어 불러도 좋은 이쁜 시다.     마음이 서러우면 쏟아지는 눈물 알알이 이슬져 영롱하구나   하늘은 언제나 쪽빛이어도 푸른 잎 푸른 恨을 연상 지녀서…   무성한 구름이 지나가는 날에는 길 잃은 새들이 여기 모여서 가지각색 이야기를 조잘대었다. ― 박항식, 「앵두」 전문 * 쏟아지는 눈물/ 알알이 이슬져 영롱하구나 → 앵두의 시각 이미지 * 무성한 구름이 지나가는 날에는 → 시각적 이미지 「앵두」처럼 그의 시는 달콤하다. 인간과 자연을 품어주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동시를 쓰는 시인의 맑고 순수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바다는 사과처럼 둥그러운 껍데기에 싸여 있습니다 (중략) 사과를 먹은 사람은 그 향기에 볼이 붉어지고 바다를 가는 사람은 그 물감에 눈이 파알해집니다   바다! 바다는 사철 사과처럼 행그럽습니다 ― 박항식, 「바다」에서 * 향기에 볼이 붉어지고 → 후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화 * 물감에 눈이 파알해집니다 → 시각 이미지, 색채 이미지 「바다」는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과 비교되는 시다. 같은 발상에서 시작한 시지만, 내용의 질량이 다르다. 박항식의 「바다」는 동그라미에서 이끌어낸 사유와 철학이 있다. 시의 향기가 시간을 넘어 코끝에 맡아진다. 세상을 위로하는 착한 시다.   해는 西으로 기울어 琉璃窓마다 칸칸이 곱게 크레용을 발라 놓고 ― 박항식, 「송학초등학교 일요일 오후」에서 * 크레용을 발라놓고 → 색채 이미지 곱디 고운 초등학교 교실의 어린이들 모습이 상상되는 색채 이미지 시다.     초록 치마를 입고 섰는 少女 덧없이 흐르는 歲月이지만 빠알간 리본 하나로 푸른 하늘을 온통 꾸미고 섰다. ― 박항식, 「코스모스」에서 * 빠알간 리본 → 색채 이미지 * 하늘을 꾸미고 섰다 → 역발상 역발상 시의 진수다. ‘소녀가 하늘을 꾸미고 섰다’는 새로운 표현은, 거시적 색채 이미지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박항식, 「포플라·Ⅰ」 *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시각 이미지/ 운동감 양면이 다른 미루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팔랑이는 모습을, 이토록 귀엽고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발랑 발랑, 조랑 조랑 귀여운 의태어가 압권이다.   베짜는 소리 한창 들려 오는 날   나무는 고깔을 쓰고 합창을 했다. ― 박항식, 「살구꽃」 * 합창 → ‘살구꽃’의 청각 이미지 살구꽃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진한 향기와 팝콘처럼 닥지닥지 붙은 하얀꽃을. 꽃들이 합창을 한다면, 온 동네에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항상 끄트머리로부터 처음이 온다는 號外의 방울소리 ― 「아침」 * 방울소리 → ‘아침’의 청각 이미지 사유가 있는 한 문장의 짧은 시로 처음부터 창작하였으면 한다. 이 한 문장으로 완성된 시다. 아침의 청각 이미지가 청량하다.   5. 결론   「8月」과 함께 한국의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박항식의 이미지 시 몇 편을 소개하였다. 또한 과거의 작품을 통한 현재적 관점에서, 박항식 시인의 위치와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여 보았다. 박항식 시의 한국적 서정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김광균, 정지용과 함께 박항식을 새로운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인정하는, 문학적 재평가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102    2017년 가온문학 여름호/ 정성수- 사기꾼 이야기/ 평론 이선 댓글:  조회:751  추천:0  2018-12-28
사기꾼 이야기       정 성 수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      「사기꾼 이야기」 의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   이 선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각각의 연들이 보여주는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의 문장들이 감동적인 가난한 사기꾼(?) 아버지의 이야기다. 사기의 내용은 ‘봄이 온다고 가족들에게 사기를 쳤다’이다. 제목과 연관시켜보면, 이 시의 중심어는 ‘봄이 온다’이다. 그러므로 위의 시의 1-7연의 각 연들은 사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처럼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시인이 꿈꾸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상주의와 몽환적 환상주의를 나긋나긋, 비애적인 목소리로 ‘보여주기’하고 있다. 그런데 시를 읽다보면 ‘사기꾼’이 맞기는 한데,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이게도 진정성 있는 한국의‘아버지상’과 직면하게 된다. 시인이 미리 장치한 ‘아이러니와 역설’의 시적 기교 장치 때문이다.   시인은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플라톤 시대부터 ‘시인 추방론’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시인은 ‘비현실적 사회부적응’ 인간형이 분명하다. 시인은 현존하는 자신의 주변의 실제적인 ‘현실 밀착형 인간’보다, ‘먼 거리’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 더 긴밀하게 소통한다. ―꽃과 나무, 구름과 바다, 돌과 별 등 자신에게 말로 직접적 비난이나 거부를 보이지 않는 자연과 더 긴밀히 소통하며 친애적인 경향이 강하다. 「사기꾼 이야기」는 식물이 태양을 향해 나뭇가지를 뻗듯, 식물성 유전자를 가진 가난한 아버지의 거부당한 꿈을 이야기한다. 시인의 뇌와 감각들은 예민하고 촉수가 가늘고 길다. 태양의 후예라기보다는, 달과 별과 구름의 DNA를 유전적으로 상속받은 혼외자식처럼. 그러므로 위의 시의 화자인 ‘아버지’도 인간과 생활,의식주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가난은 시인의 필연성일 터. 투쟁적이며, 경제관념이 투철한 태양의 후예들과는 달리, 시인의 감각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시의 자질이 형성되어 있다. 시는 ‘자유’와의 숨바꼭질이다.   위의 시 1-7연에서는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이 병렬적이며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 정성수가 제시하고 있는 ‘아버지상’은 슬픈 소외자의 음성을 지녔지만, 실은 역설적으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내하는 한국의 아버지상이다. 시적 화자인 ‘아버지’는 ‘사기꾼’이라고 자신을 지목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어조는 비애적이지만, 그 목소리는 당당하다. 1연을 살펴보자. 1연 1행은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라고 자신을 시니컬하게 고발한다. 시적 긴장감이 고조되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화두를 던지며 야심차게 시에 접근한다. ‘사기꾼’이라는 자기고발은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기의 내용을 보니 죄로 인정하고 감옥에 넣기는 애매하다. 긴장감이 풀어지며 ‘어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흠’ 내심 작품 속으로 빠져든다. 그 대답은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1연 3행)라며 사기의 진상을 밝힌다. 죄의 지목은 현장성과 피해정도가 객관적으로 측정될 때 부가되는 것인데, 정성수의 사기죄는 성립이 애매모호하다. 오히려 사기꾼이라고 비난받기보다는, 가난 중에도 ‘꿈과 이상, 희망’을 잃지 않는 칭찬받아야 할 덕목으로 보인다. 아이러니 기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날렵한 표현이다. 1연 4행―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눈이 큰 사람은 겁이 많으며 마음이 약할 것 같다. 생활비를 벌어다 주지 않아도 바가지를 긁거나 원망의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또 시인은 그런 아내와 딸, 아들의 약점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식구들이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1연 5행) 부분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이 실현되어 있다. 사실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데 슬프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기꾼은 늘 말로 상대의 마음을 바꾸는 말기술자다. 굳이‘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라고 자기성토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아이러니 기법의 표현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보여주는 반어적인 표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와 같은 ‘반어적 표현’이 아이러니의 기본 조건이다. 위의 시의 어조는 반성적이며, 고백적이며, 애조적이다. 그 부분들이 이 시를 해석할 때 반어적으로 작용하게 한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2연 1-3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가난한 60-70년대 풍경이 그려진다. 아내는 가난한 밥상을 물리고, 아이들은 후줄근한 이불을 차내며 곤히 잠을 자고 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의 볼은 창백할 터. 2연을 읽으면 독자는 아버지를 사기꾼이라고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수용을 하게 된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시절의 기억을 한국인은 누구나 배경처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며. 가난한 아버지를 향한 불만을 표출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그때 그 시절 아내와 아이들은 착했다. 3연에서는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3연 1-4행) ‘향기로운 화관’과 ‘푸른 채찍’의 이미지는 백마 타고 오는 왕자의 이미지다. 봄날의 희망을 왕자의 이미지로 바꾸며 3연에서는 다시 아이러니 기법을 쓰고 있다. 슬픈 이야기인데, 울고 싶은 이야기인데 지고지순 아름답다. ‘봄이 온다고’ 약속하는 가장의 거짓말 사기극은, 가난을 부끄러움 없이 숭상하던 계절의 인생관이며 순애보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의 아름다운 약속이며 꿈이다.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3연 4-5행)는 다시 아름다운 사기 약속으로 이어진다. 눈물 나게 그리운 아름다운 계절의 가난한 아버지의 약속이다. 가족을 보호하고 안락하게 숨겨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사기꾼 아버지가 분명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아니하고 약속은 어긋났지만- 용서하고 안아주고 싶은 약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3연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의 모순적인 문장과 기교가 돋보인다. 4연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4연 1-2행) 부분을 살펴보자. 생활과 삶의 아이덴티티 앞에서 아버지의 고뇌는 춥다. 4연쯤 되면 독자는 연민과 동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점층적이며 반복적인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으로 시인은 독자를 압도적으로 사기꾼 아버지에게 끌어들인다. 어느새 시인의 삶 속으로 동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독자는 곧 시인의 마음이 된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5연 1-3행) 늙은 아내와 말이 없어진 사춘기 아이들의 대비는, 또 ‘아버지’라는 이름의 비애의 조건이 된다. ‘아이러니 비가’라는 제목을 붙여 따로 분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각 연들이 갖는 호소력 때문이다.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6연 1-4행) 아버지의 사기 행각은 6연에서 절정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 부분이압권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이 시의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의 시적 장치다.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7연 11-5행) 7연에서도 1행과 2행, 3행에서 아이러니 기법을 보이고 있다.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7연 3행) 부분이다. 아직 겨울인데 봄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억지스러움이 이 시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 아이러니는 애매하여 경계를 짓기 어렵다. 참인듯한데 거짓이고, 거짓인듯한데 참이다.   아이러니 기법은 시의 기본 구도이다. 넌지시 짐짓 말을 던져놓고, 반응에 반응하지 않는 언어유희다. 말 던지기를 하며, 은근히 역설적으로 반응한다. 「사기꾼 이야기」 는 진정성과 ‘아이러니와 역설’ 이라는 시적 기교, 시대상, 시인의 조건과 시인의 천형까지 드러내어 보여주기 하고 있다. 이 세대에도, 이전 세대에도, 다음 세대에도, 아버지들의 애환은 계속될 것이므로.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독자의 수용과 공감이 증폭될 가장의 비애로 남을 작품이다.  
101    <가온문학 평론 특집- 세자르 바예호의 시 세계 / 이선 댓글:  조회:864  추천:0  2018-12-26
          같은 이야기                                                                  세자르 바예호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있고, 내가 나쁘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을 모르지요 여쟀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들 아는 데… 그러나 빛이 폐병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곱사등이이고, 정오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길 멀리서도 알려준다는 것을 모릅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주 아픈                 자학과 절망의 종착점에서 피어난 해탈의 시학 ―하이퍼시 구조론을 중심으로   이 선(시인)     1. 서론 세자르 바예호Ce'sar Vallejo(1892-1938)의 시 세계는 내용면에서는 을 실현하고 있다. 또한 시의 표현구조는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를 가지고 있다. 세자르 바예호는 현대 초현실주의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모더니즘 시와 초현실주의 시로 문예사조를 갈라놓는다. 바예호의 시가 현대 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의 어떤 조건을 내포하고 있는지, 하이퍼시의 구조론에 입각하여 작품을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 시의 형식인 외형을 살펴보자. 본 논문 2장에서는 표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하이퍼시의 기본요소인 ‘링크- 리좀 - 무의미 시- 환타지 영상시(이미지의 결합)-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에 초점을 맞추어 시의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시의 내용을 중심으로 3장과 4장에서‘자학과 절망- 해탈의 시학’으로 분류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자학과 절망을‘해탈의 시학’으로 승화시켜 독자를 매료시킨 바예호의 하이퍼시의 특징을 분석하는 일은 현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필자가 바예호의 시를 하이퍼시 구조로 분류하는 것은 학계 최초의 학문적 고찰임을 밝혀 둔다.   2. 하이퍼시 하이퍼시는 ‘링크’와 ‘리좀’기능이 시의 단절과 결합, 연결을 실행하고 있다. 모든 행과 연은 제목과 소통되지만, 종속적이지 않다.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필자는 바예호의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인‘하이퍼시’구조를 으로 명명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링크 링크(link)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하이퍼시의 링크 기능은, 각 행과 연의 자립성과 독립성을 실현한다. 하이퍼시의 링크 기능이 바예호의 시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연과 연의 이질적 결합’‘제목과 내용’이 분리된다. ‘링크’의 기능은 ‘연결’이다. 그러나 내용이 제목에 제한을 받거나 구속받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 다른 내용’이가능하다. 각 연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위의 시 1-7연의 각 연들은 제목 「같은 이야기」와 연결되어 링크된다. 그러나 이미지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제목과 독립적으로 연결된다. 새로운 이미지 덩어리들의 합성이다. 그 이미지들은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 새로운 감각적 미의식을 시에 준다. 1-7연의 각행은 자립적이며 독립적이다. 각 행들은 앞문장을 뒷문장이 지배하지 않는다. 각행도 ‘이질적 단어와 단어의 합성으로 각 행은 독립적이다. 단어, 행, 연은 삭제와 삽입을 하여도 시의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자립적이다. 아래 3연과 5연의 시를 살펴보자.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3연)//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5연)//   위의 시「같은 이야기」 3연과 5연은 제목과 링크되어 연결된다. 그러나 1, 2, 4연과 6, 7연을 모두 빼거나 넣어도 시의 구조가 유지된다. 그 이유는 각 연들이 링크되나, 각 연들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기 때문이다. 링크 기능은 ‘낯설게하기’를 실현한다. 2) 리좀 리좀(Rhyzome)은 그물망처럼 얽혀, 확장되는 기능이다. 리좀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시에 제공한다. 리좀은 확산적 기능이다. 리좀은‘이질성, 다양성, 무의미적 단절’을 실현하는 하이퍼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은‘중첩 이미지’로 실현된다. ‘리좀’의 기능은 거미줄처럼, 그물망처럼 러너로 퍼져나가 확산적 기능을 한다. 다음 시 「삶의 발견」일부를 읽어보자. 한번도, 지금 아니고는 한 번도 삶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지금 아니고는 한 번도 사람이 지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지금 아니고는 한번도 집이나, 거리, 대기, 수평선이 있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 친구 빼리에가 오면 난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우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사실 내가 언제 내 친구 빼리에를 알았던 걸까요? 오늘 처음 우리가 아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가라고, 가서 다시 돌아오라고, 그리고 나를 보러 들어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를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것처럼, 말하자면 처음처럼. 우리가 산 세월은 얼마나 짧은 겁니까! 내가 태어난 것은 갓 지금입니다. 내 나이를 셀 단위가 없습니다. 지금 금방 태어났거든요! 아직 삶을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여러분, 나는 지금 너무 작아서 하루가 내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어요. 됐어요! 삶이 시방 나의 모든 죽음을 정통으로 꿰뚫었습니다. ―「삶의 발견」3, 5,7연   「삶의 발견」은 리좀 기능을 활용한 하이퍼시다. 한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자꾸 덧붙인다. 각각의 다른 단상과 의견을 계속 끼워 넣는다. 삽입하고 점점 부풀려져서 한권의 드라마같은 이야기가 생성된다. 리좀 기능을 사용하여 그물망처럼 여러 이야기를 촘촘하게 실로 짜놓은 듯 구성하고 있다. 리좀은 구성력이며 내용과 표현을 결정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무의식적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자동기술기법’으로 쓰고 있다. 요즈음 현대 시인들이 막 시작한 시창작 기법을 바예호는 백년 전에 이미 실험한 것이다. 리좀은 나뭇가지가 각각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같다. 시의 기둥에 뿌리가 내리고, 시의 기둥에서 가지가 뻗어나간다. 그 가지에서 줄기가 나온다. 잎이 피고, 꽃이 핀다. 허공엔 새가 날아다니고, 비가 오고, 나비가 와서 앉는다. 구름이 흘러가다 발을 멈추고 머물기도 한다. 바람이 열매를 떨어뜨리기도 할 것이다.   3) 무의미 시 하이퍼시의 ‘무의미 시’는‘열린 문장’이다. 시의 내용을 한정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지시적이거나 명령적이지 않다. 무의미 시는 불확정적이며 무제한적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아래 시에서 하이퍼시의 ‘무의미 시’의 요소를 살펴보자.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위의 밑줄 친 4연 3-5행을 눈여겨 살펴보자.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라는 표현은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표현이다. ‘초현실주의 하이퍼시’는 굳이 의미적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무의미 시’라고 보면 된다. 굳이 해석하려는 독자나 평자가 있다면, 1월에 어떤 단어를 대입하여도 제한받지 않는다. ‘나무, 장미, 도자기, 애인’ 어떤 다른 단어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현재와 미래, 과거’라는 시제를 넣어도 시가 성립된다. ‘무의미 시’는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어떤 행과 연을 삭제하거나 삽입할 수 있다.   4) 환타지 영상시― 이미지의 결합 하이퍼시는 ‘환타지 기법’과 ‘영상 기법’을 결합하고 있다. 현대인은 ‘환타지’한 영상과학의 시대, 빛의 파노라마 세계에 살고 있다. 바예호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비디오쇼와 빛의 쇼가 합성되는 광전자 시대다. 멀티비젼은 초현실주의의 특징이다. TV도 한 화면에서 여러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각각의 다른 요소와 단위의 덩어리들이 합하여 개별적, 선별적 전체를 만든다. 다음 「한 사내가 빵을 어깨에 메고…」전문을 소개한다. 한 사내가 빵을 어깨에 메고 간다 좀 있다가 나의 조정에 대해 시를 써볼까? 다른 사내가 앉아 긁는다. 겨드랑이에서 이를 꺼내 죽인다. 무슨 용기로 정신분석학에 대해 말하지? 다른 사내가 손에 몽둥이를 들고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의사한테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해볼까? 절뚝발이가 한 어린애의 팔에 의지해 간다 나중에 앙드레 브르통 책을 읽을까? 다른 사내가 추워서 떨고, 기침하더니 피를 뱉는다. 심오한 '나'라는 존재를 결코 암시할 수 없는 걸까? 다른 사내가 진흙탕에서 뼈다귀와 과일껍질을 뒤진다. 그 다음에 영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쓰지?     샤갈의 그림처럼 바예호의 시는 이미지의 작은 알갱이들이 결합하여 이미지 덩어리를 만든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한 화폭 위에 낯선 이미지 덩어리로 펼쳐져 있다. 그 낯선 이미지들은 환타지 영상을 만든다. 위의 시는 새로운 형식의 시다. 각 연마다 끝행에 물음표를 넣고 있다. 평서문과 의문문이 첫연부터 끝연까지 똑같은 형식으로 반복된다. 어긋나는 낯선 질문은 낯선 이미지다. 그 질문이 시에 극적 상황을 만든다. 초현실주의 기법의 하이퍼시다. 동문서답, 선문답 같은 질문과 대답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작가의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던, 진정성을 가진 의문이다. 새로운 시창작 기법은 환타지하다. 대답과 질문을 반복하고 있지만, 반어적으로 하고 있다. 역설적이다. 남자 앞에 나타난 새 여자처럼. 위의 시는 마지막 연, 끝행부터 거꾸로 서술하여도 시가 된다. 무의미적 나열형식의 시다. 바예호는 시는 표현주의를 추구하며, 언농일 뿐이라는 것, 심각한 물음도 심각하게 풀지 않고 가볍게 터치하듯, 음악적으로 ‘보여주기’ 하고 있다. 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라는 작가 나름의 메시지다. 실험정신으로 쓴 하이퍼시다.   위의 시는 필자의 시 「소금꽃을 꺾다」와 하이퍼시 시창작 기법이 비슷하여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래에 필자의 졸필, 시문학 문예지에 발표된 논문을 소개한다. 필자는 지난주 전에는(2017년 9월 28일, 오후 5시- 국회 시낭송회 날) 단연코 바예호의 시를 만난 적이 없다. 어느 지방 국회의원이 바예호 시인의 「같은 이야기」를 낭송하는 것을 듣고 전율을 느꼈다. 몇 명의 시인들에게 다음날부터 전화로 「같은 이야기」를 낭송해 주며, 서러움에 함께 숨죽여 울었다. 그의 매력의 빠져서, 17편의 시를 타자를 쳤다. 갑자기 바예호 시인으로 인하여 필자는 페루에 대하여 급 호감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페루는 당장 알고 싶고, 여행가고 싶은 나라 1순위가 되었다. 단지 바예호를 더 이해하기 위하여.   아래 필자의 졸시「소금꽃을 꺾다」전문을 소개한다.      모래고양이 발톱과 사막의 낙타 발자국은 푸른색인가요, 신이여 그래, 새끼낙타를 삼켜버린 밤도 푸른색이지  어미낙타 눈동자가 점점 줄무늬하이애나를 닮아가요  괜찮아 곧 나이를 먹을 테니까,  뱀의 푸른 눈이 살아 있어요   그래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는 8천 피트 상공에서도 살아 있더구나   모래고양이가 파 놓은 토굴에 숨어   새끼를 낳는 도마뱀 빨간 엉덩이를 보았지?   오늘을 부정하면서, 벌써 내일을 초대한 거니?   이 거리에서 입양에 대하여 말하는 건 금기어예요   그 아이들은 곧 자기의 성이나 이름을 버리게 될 거다   11세 초등학생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이여, 날기를 거부한 새가 새벽 공원에는 많아요   밤새 도둑고양이를 피해 잠을 설쳤나보다   그래 삭제할 게 많은 서울거리는 참 부지런하구나   경계경보를 울릴까요, 지금?  땅! 총을 쏘기 전에 선을 넘으면 아웃이라고   필자의 졸시는 하이퍼시의 몽타주‘환타지 영상시’기법을 장치한 시다. 현대문명 속의 부조리한 상황을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였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한 공간에 마구‘불안’한 현재를 뭉쳐서 던진다.  위의 시는 ‘신’과 ‘인간’의 ‘질문과 대답’ 형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필자의 하이퍼시는 상투어와 일상적 문장을 거부한다. 그 대화는 혼돈스럽고, 낯설며, 단절적이다. 미성숙한 초등학생이 낳은 아기는 곧 외국으로 입양되어‘알렉스’나‘미미’로 자랄 것이다. 위의 시는 제목에서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소금’은 잎도 줄기도 없는 몸통만 있는 사물이다. ‘소금’과 ‘꽃’을 합성한 ‘소금꽃’도 꽃만 있지 줄기나 뿌리가 없다. 꽃받침도 없다. ‘소금꽃을 꺾다’라고 행위를 강조한 제목에 주목하여 보자. 제목이 아이러닉하며 역설적이다. 소금꽃은 꺾을 그‘무엇’이 없다.  필자는 환타지 기법의 환경고발, 사회고발 부조리 시를 여러 편 발표하였다. 하이퍼시는 철학과 사유가 없는 말장난 시라는 비난을 극복하려 한 시도다. 까지 시의 중심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적으로 이동한다. 필자가 백년 뒤 한국에서 죽은 페루 시인 바예호에게 순간이동하여 만나듯이. 환타지 영상시는 장면이동이 가능한 한편의 시극이다. 환타지 드라마다. 5) 상상력의 공간이동, 상상력의 시간이동 바예호의 시에, 젊은이와 시인들이 탐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지금 시대에 딱 맞는 표현, 딱 맞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바예호의 시는 SNS가 친구인 시대, 단절의 시대, 고독의 시대에 적화된 시다. 쇼셜미디어적 감각이 있다. 바예호의 시는 방안에 앉아서 세계와 소통하는 시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공간에서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하는 시대에 알맞은 하이퍼시다. 모든 시는 거의 다 현재형으로 쓰고 있지만, 내용은 과거인 경우가 많다.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시에 현장감과 실감을 주기 위해서다. 다음 시 5연에서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위의 5연의 시의 중심어는 나의 시 --> 사막의 스핑크스 --> 해묵은 바람 --> 울음>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시에 적용하였다. 그 기능은 시의 깊이와 감각적 미의식을 더하고 있다. 정적이며 한정적인 시의 답답함을 해소해 준다. 시에 운동감을 준다.‘상상력의 공간이동-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초현실주의적 하이퍼시’를 창조하였다.   3. 자학과 절망 본 논문 2장에서는 ‘초현실주의 하이퍼시’의 표현기법을 위주로 하이퍼시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본 논문 3장과 4장은 시의 내용 측면에서 시를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위에 제시한 시작품 「같은 이야기」 를 살펴보자.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1, 2, 4, 7연) 위의 시‘1, 2, 4, 7연’을 살펴보자. 화자인 시인은 자신의 탄생을 아파한다. 신이 아픈 날 만든 미완성 제품이라고 자학한다. 4연에서는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라며 거듭 항변한다. 신이 아픈 날 만든‘나’는 모든‘인간’을 대표한다. 신이 아픈 날 제조된 인간이라는 제품은 불완전하고 조악스러울 것. 그 모양새나 쓰임새도 미숙하며, 고장이 잦고 어설플 것. 이미 슬픔과 불행이 예견된 현재다. 다음 시 「아가페」일부를 살펴보자.   그 누구도 오늘 나에게 물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이 오후에 그 아무것도 내게 청하지 않았습니다.(1연)// 찬란한 빛의 행렬 아래에서/ 단 한 송이 묘지의 꽃마저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 너무도 조금밖에 죽지 못했음을 용서해주세요.(2연)// 그 아무도 오늘 제게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나는 너무도 조금밖에 죽지 못했습니다.(7연)//   위의 시는 죽음과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한 하루는 죽은 하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과 삶이 딱 붙어서 같이 살고 있다. 그는 가난과 병마, 11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어머니와 형이 일찍 사망하여 전 생애 동안, 분리불안을 겪었다. 러시아, 영국, 파리 등 해외로 떠돈 이유도 정체성의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는 자학과 절망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다음 시는 「하얀 돌 위에 검은 돌」전문이다. 소나기 오는 날 난 파리에서 죽으리, 그 어느날에 대한 기억이 내겐 벌써 생생하다. 난 파리에서 죽으리-아직 바쁘진 않지만- 어쩌면 어느 가을, 목요일, 오늘같은. 목요일일 것, 왜냐하면 오늘, 목요일, 지금 이 시들을 산문으로 베끼고 있는 순간, 내 상박골이 쑤시기 시작하고, 한번도 오늘같이, 이 많은 길을 걸어오며, 정말 혼자라는 생각을 다시 한 일 없다. 세자르 바예호가 죽었다, 그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모두들, 그는 아무에게 아무 짓도 안 하는데; 그를 몽둥이로 거세게 때렸다, 거세게 또한 밧줄로; 이 목요일들 그리고 고독과 비의 길들......   1936년에 발표한 「하얀 돌 위에 검은 돌」의‘소나기 오는 날 난 파리에서 죽으리(1연 1행 참조)’라는 예언처럼. 2년 뒤인 1938년 ‘세자르 바예호가 죽었다’(같은 시 3연 1행 참조). 정말 ‘파리’에서.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자인 바예호는 마르크시즘에 심취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시를 발표하다가 1919년 첫 시집 「검은 전령」을 발표했다. 1920년 방화범으로 몰려 3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1922년 그의 두 번째 시집 「트릴세」를 발간했다. 바예호의 시는 자학과 절망, 추락의 종착점을 향하여 점프한다. 시는 정신이 아픈 거다. 시를 쓰는 정신의 도구인 시인도 영혼이 아프다. 그렇다, 세자르 바예호는 한 몸에 두 개의 모순된 피를 가지고 태어났다. 인디오와 메스티소의 혼혈아로 태어나, 평생 한 몸에 두 문명의 DNA가 갈등한다. 억압된 불안과 절망은 그의 시를 예민하고, 깊고, 강하게 했다. 4. 해탈의 시학 본 장은 시의 내용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의 기능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배설’ 즉 ‘카타르시스’라고 하였다. 시인의 ‘나르시시즘’과 ‘감상주의’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세자르 바예호의 시는 반전이 있다. 죽음과 절망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독자에게 미치는 결과는 시원한‘해탈의 미학’과 카타르시스다. 필자가 본 논문에서 바예호의 시적 논제를‘자학과 절망의 종착점에서 피어난 해탈의 시학’이라 명명한 이유다. 아래 시행을 살펴보자.   ‘내가 나쁘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2연 1-2행)’/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4연 4-6행)’   ‘모두들 아는 데… 그러나 빛이/ 폐병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곱사등이이고, 정오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길 멀리서도 알려준다는 것을 모릅니다.//(6연)   위의 시 6연은 빛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빛의 상징은 밝음, 선함, 신을 지칭한다. 빛은 사물인 빛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빛을 중의적으로 함의하고 있다. ‘아픈 신’의 부연 설명이다. 인디오의 후예인 바예호가 섬기는 페루의 신은 ‘태양신’이다. 지금 그 태양신이 아프다. ‘폐병환자, 곱사등이’로 묘사되어 있다. 외세침략과 전란, 이데올로기의 혼란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겪은 페루. 황금이 많다고 소문나서 에스파냐의 침략을 받은 페루. 과연 폐병쟁이, 곱사등이 신은 페루를 구원할 수 있을까? 바예호의 고독을 구원해 줄까? 신의 역할은 남의 일에 관여하여 구해주는 해결사다. 프롤레타리아였던 바예호는 신을 부정한다. 그의 시는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하다. 빛은 선이며, 어둠은 악이라는 원시적 개념을 부정한다. 위의 시는 ‘빛은 통통’하고, 어둠은 ‘비실거린다’는 발상을 버렸다. 빛이 상징하는 ‘상승 이미지’를 ‘하강이미지’로 바꾸었다. 어둠과 ‘악’을 오히려 통통한 상승이미지로 격상시켰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이 되다 그만둔 그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이 바람을 품어 낳는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목을 잘랐다 해도 역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아버지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되기에는 등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두면 빛나지 않을 것이고, 밝은 방에 두면 그림자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지간에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2연, 4연   가을비 내리는 날 바예호의 시를 읽어보라, 그 시의 울림이 깊게 아프다. 그의 시는 너무 아파서 아름답다. 당신의 심연에서 피어난 꽃처럼, 시의 구절들이 내 안에 침잠한다. 내 몸처럼.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는 반어적이다. 아이러니하다. 제목이 「절망에 대하여 말씀드리지요」라고 들린다. 그러나 깊이 음미하여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깊은 사유와 철학의 힘이다. 작가는 존재론적 고독을 직관으로 깨우친 것이다. 슬픔에 탐닉하다보면, 슬픔을 모두 쏟아내어 울어보라, 정신과 몸이 맑아진다. 눈물은 카타르시스다. 슬픈 시도 슬픈 영화나 슬픈 노래처럼 정화작용을 한다. ‘3포 시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감성이 예민한 시인집단이 바예호의 시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망의 나락의 정점을 찍으면 집착을 버리게 된다. 승려가 느끼는 해탈의 경지다. 바예호의 시는‘절망과 추락의 종착점에서 피어나는 해탈의 시학’이다. 슬픔의 미학, 절망의 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집착을 버리면 영적, 정서적, 육적 평안을 얻는다. 완전한 자유다. 바예호의 시가 보여주는 새 패러다임이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문이란 문은 모두 두드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 소리없이 울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고 모두에게 갓 구운 빵 조각을 주고 싶다. 한 줄기 강력한 빛이 십자가에 박힌 못을 빼내어 거룩한 두 손이 부자들이 포도밭에서 먹을 것을 꺼내오면 좋으련만   이 차가운 시간, 땅이 인간의 먼지로 변하는 서글픈 시간, 문이란 문은 모두 두드려, 누구에게든 용서를 빌고 싶다. ―「일용할 양식」1, 4연   바예호의 시는 위의 「일용할 양식」처럼, 갓 구은 빵 같은 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손바닥이다. 누구에게든 용서를 빌고 싶은 손이다. 내가 당신에게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그의 시는 구원과 해탈이다. 5. 결론 세자르 바예호의 시는 링크와 링크, 리좀으로 이루어진 ‘하이퍼시’다.‘환타지 영상시’는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하며 시에 운동감을 준다. 그의 시는 단절과 단절 사이, 질문이 있다. 반전과 반전 사이, 역설적 질문은 독자에게 황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세자르 바예호의 삶과 시는 드라마틱한 ‘극적 갈등구조’를 지니고 있다. 패망한 고대 잉카문명처럼, 마추픽추 돌담 언덕처럼. 그의 시는 가파르게 질주하며 점프한다. 슬픔을 녹여내어 해탈의 시학을 완성하고 있다. 황금에 눈이 먼 스페인에 학살당한 인디오―제1차 세계대전― 국경분쟁―내전―가난―이데올로기 전쟁- 페루의 역사와 함께 바예호 시인은 동시대적 고난을 아파 한다. 바예호는 시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방화범으로 몰리며 외국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다 타국에서 죽는다. 그러나 그는 처절하게 열정을 가지고 시를 썼다. 그의 초현실주의 문학은, 남미 라틴문학을 세계화시켰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바예호의 시를, 한국의 하이퍼 시인인 필자가 로 분류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예사조에 올려놓고자 한다. 시문학을 중심으로 문덕수, 오남구, 심상운, 김규화 등 하이퍼시 동인들이 출범시킨 하이퍼시는, 현재 40 여명의 하이퍼시 동인들이 매년 시집을 내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하이퍼 시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하이퍼시는 현재 평론가와 시인들의 조명을 받고 있다. 앞으로 평론가들이 서로 논쟁하며, 시창작 기법을 연구할 것이다. 정반합의 원리에 의하여, 하이퍼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로 문예사조에 족적을 남길 것이다. **  
100    날샘일기- 김정현/ 가온문학 봄호 2016년/ 이선 명시 읽기 댓글:  조회:819  추천:0  2018-12-26
  날샘일기      김정현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   여름 가을 뜨거운 햇볕, 늙어버린 호박에 기대었다가 몇 잎 남지 않은 파인애플데이지와 눈을 마주쳐보다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새까만 하늘에 그림을 그리다가 빈방에 윙윙 휘젓고 다니는 파리 한 마리를 지켜보다가 밥 달라고 빽빽거리는 휴대전화를 달래다가 책을 꺼내어 활자를 끌어당기다가 꿈길로 들어서려고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도로 이불을 걷어내고 앉아 새벽의 문턱 넘는 시간을 주물럭거린다 동쪽 산이 붉은 해 하나 토해낸다   별과 달을 닮은 해가 방실거린다     별과 달이 잠 든 탓에 홀로 밤에게 손을 흔들었다                                                             간결한 문체와 진정성, 독창적 개성의 손바닥그림       위의 시는 간결한 문체와 진정성이 있는, 독창적 개성의 손바닥그림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이다. 반복미와 확장성, 역발상과 도치 등 시창작의 표본처럼 여러 기법을 보여주기 하고 있다. 그 기법을 간단하게 아래의 여덟 가지 형태로 분류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진정성과 의인법, 아이러니 기법   1연은 매력적인 전개방식이다. 잠이 안 온다고 하지 않고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라고 역발상적 아이러니 기법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별과 달은 사실, 하늘에 뜨지 않은 날에도 하늘에 존재한다.  시인은 달과 별이 뜨지 않은 것을 잠자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아이러니 기법과 의인화 기법을 써서 잠자고 있다고 표현한다. 인간의 눈, 시인의 눈으로 발견한 사실이다.   위의 시가 진정성을 갖는 이유를 살펴보자.  불면의 상황은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또 지금 겪고 있을 법한 상황이다. 1연과 3연의 2행의 시는 짧지만 강렬하다. 1연에서 잠이 안 온다는 사실을 말하였다면,  2연에서는 왜 잠이 안 오는지 그 이유를 말할 법하다. 그런데 이 시는 한 단계 진보하였다. 그 이유를 관념으로 하지 않고 여러 잠 안 오는 밤에 일어날 수 있는 행위로  대치하였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간결한 답이다. 군더더기가 필요없다. 1연과 3연의 상황과 이유를 2연에서 부연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설명적이지 않고 사실적이다.   위의 시가 진정성을 갖는 이유는 사건의 이류를 사실과 사물적 접근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연과 3연은 참이며 사실이다.   2연의 모든 행은 사실이다. 거짓이 없는 참이다.    위의 시는 독자와 평자, 시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진정성이 있는 시다라는 명제에 적합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2. 사실적, 사물적 은유   1연과 2연, 3연의 행에서 무리한 관념이 전혀 없다. 사실과 사물에 기본적 발상을 두고 있다. 이것은 현대시의 가장 중요한 표현기법 중 하나이다. 관념에 흐르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사물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사념도 사물화하고 있다.  ‘뜨거운 햇볕- 늙은 호박- 파인애플데이지-툇마루-하늘-파리-휴대전화-이불-새벽-붉은 해- 별과 달’ 등 온갖 사물을 나열하고 있지만 산만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념과 정서적 방황을 사물에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초보 시창작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관념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사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3. 나열형 어미의 효과    2행을  주목하여 보자. 나열형 어미를 왕성하게 활용하고 있다. 나열형 어미는 설명적 시와 다르다. 위의 시에서 2연의 나열형 어미  ‘-다가’ 가 범람하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자.     그 이유는 2연은 사건과 사물, 사실만을 나열하고 있다. 의식의 나열, 생각의 나열을 하지 않고 있다.  시적 기교에서 관념을 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관념과 사념에 빠지면 시인 본인의 감정에 치우친  감정시, 토로시가 되기 쉽다. 그러나 위의 시는 사물과 사건, 행위를 나열하여 그 우를 범하지 않았다. 무기교의 기교의 좋은 표현기법이다. 시인이여, 사물에 집중하라.   4. 짧고 간결한 행과 연   위의 시는 짧고 간결하다.  손바닥 그림처럼 한눈에 쏙 들어온다.  시는 문자로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1연 2연은 단 두 줄이다.    3연의 각 행들의 길이도 짧다. 또한 2연의 각 행들은 그 길이가 각각 다르다. 각 행마다 들어가기, 나가기, 들쭉날쭉하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각적 미의식도 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한 행이 너무 길면 시인의 의도와 달리 책이 출판되었을 때, 한 행만 다른 줄로 넘어간다. 특히 한 칸 들어가고 시작하는 경우기 때문에 미완의 그림처럼 불균형이 되기 쉽다.    짧고 간결한 행과 연은 독자에게 시원함을 준다. 질리지 않고 쉽게 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말이 통한다면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는 것이 좋다. 명사에 붙는 조사도 뗄 수 있으면 떼면 좋다. 각 행과 연도 줄일 수 있는 대로 더 줄이면 시가 더 단단해진다.   5. 심심함과 나른함과  게으름의 미학   시는 바쁘고 조급하게 쓰면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어렵다.  일제 통치시대  한국의 초창기 현대시를 쓰던 서정시인들은 룸펜생활을 하였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야 무념무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사유에 잠겨야 개성적인 좋은 시를 쓴다.  조급하게 급생산하면, 발표된 후 고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시는 심심하고 나른하고 게으르게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한다. 한 사물과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심하게 느긋하게 한 사물을 계속 직시하면 직관적 사유를 얻게 된다.    위의 시도 1연과 3연에서 밤을 꼴딱 새웠음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하릴없이 이일 저일, 이것 저것 만지작 거리고 참견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 1연과 3연은 시인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2연은 시인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2연은 한없이 더 길어질 수 있다. 그 부분은 독자의 상상력의 몫이다. 또 더 짧아질 수도 있다. 그것은 시인의 역량의 문제다.     6. 행간과 여백의 확장성   행간과 여백은 상상력의 폭을 넓게 하여 시를 확장시켜 준다. 시에서 확장성은 사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위의 시는 각 연들의 배치가 시적 완성미를 더해주고 있는 부분적 한 이유다.      7. 반복과 강조, 도치   반복법은 시의 대표적인 강조법  중 하나이다. 서정시인 김소월의 시에서 많이 보여주고 있는 기법이다. 위의 시에서는 1연과 3연의 반복이 시의 미의식을 더해 주고 있다.  1연 1-2행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 와 3연 1-2행 ‘별과 달이 잠든 탓에/ 홀로 밤에게 손을 흔들었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애잔한 외로움과 번민을 강조한다. 또한 1연과 3연에서 1행과 2행을 도치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반복이 주는 지루함을 도치를 함으로써 시적 매력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8. 긍정적 에너지   위의 시는 긍정의 힘이 있다. 2연 ‘동쪽 산이 붉은 해 하나 토해낸다/   별과 달을 닮은 해가 방실거린다’를 주목하여 보자. 번민과 불면의 날밤을 새우고 또 희망의 아침을 기대한다.        위의 시는 읽을 수록 윤이 난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시와 차별화된다.   진정성이 주는 힘이다.  좋은 시는 독자가 읽고 읽고 외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더 좋은 시는 시를 창작한 시인 자신과 독자, 평론가가 모두 힐링된다. 오랜 만에 시창작 강의 자료가 될 좋은 시를 발견하여 필자도 힐링되었다.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       민용태         첫눈 올 때까지 손톱에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던 봉숭아는 서울에 시집와서 생활의 철인 3종 경기를 하다 그만 허리가 부러져 누워버렸다. 봉숭아는 꽃보다는 몸을 으깨는 생활 전선의 손톱이 되고 싶었지만, 하루 9 시간 철인 경기는 손톱도 등도 다 닳고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벌 나비마저 날아오지 않는 아파트 철창에 화분 되어 걸쳐 있는 봉숭아. 꽃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아파트에 아파 누워서 손톱에 꽃물 들이는 봉숭아.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                         의인화 기법을 사용한 상징 시     1. 서론   민용태의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는 다음과 같은 기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의 형태와 구성요소로 시의 외부적 요소로 보면 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시의 내부적 요소로 시의 내용적 면을 분석하면, 등으로 요약하여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본장에서는 이와 같은 기준에 준거하여 다음과 같이 논의하기로 한다.   2. 의인화 기법   위의 시는 봉숭아의 자서전 같다. 그 장치는 이다. 위의 시에서 인용한 아래 낱말과 문장은 ‘봉숭아’인 식물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패턴을 통한 의 실례이다.       3. 사물시의 요소   위의 시는 사물시의 형태를 부분적으로 강렬하게 지니고 있다. 아래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1연-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벌 나비마저 날아오지 않는 아파트 철창에 화분 되어 걸쳐 있는 봉숭아. 꽃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2연-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   위의 1연과 2연의 부분은 “봉숭아”의 관점에서 보면 참이다.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시의 눈으로 보면 거짓 없는 참이다. 위의 시가 봉숭아의 자서전이라고 본다면, 객관화된 사물시의 형태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시는, 아래 부분 때문에 완벽한 사물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식물인 봉숭아는 객관적으로 ‘철인 3종 경기’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의인화 기법으로 재해석하면, 봉숭아가 당면한 환경 즉, 강한 햇빛과 건조한 기후, 폭우를 ‘생활의 철인 3종 경기’로 생각할 수 있다. 사물시는 철저히 사물의 관점에서, 사물이 말하고 행동하게 씌어야 한다. 그러나 2연에서 ‘손톱에 꽃물 들이는 봉숭아’라는 표현은 사물시의 요건에 맞지 않다. 봉숭아는 자기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봉숭아꽃에게 꽃물을 들여 주는 존재는 햇빛이거나 공기거나 토양일 것이다. 위의 시는 객관화된 사물시의 여러 요소를 함의하고 있지만, 100% 사물시는 아니다. 그렇다고 위의 시가 시적 논리에 어긋난 잘못 창작된 작품인가? 절대 아니다, 독자를 집중하게 만드는 2중 구조적 표현방식이 이 시의 매력 포인트다.     4. 다초점의 복합적 구성 및 상징성   위의 시는 1연과 2연으로 된 짧은 시다. 그러나 각각의 연은 다초점의 모자이크 된 복합적 구성 및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시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외적 요소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여러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의식화하고 있다. 1연은 ‘봉숭아’라는 사물과, 봉숭아와 대비시킨 ‘인간’이라는 두 개의 관점으로 씌어졌다. 1연 1행-4행, ‘첫눈 올 때까지~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부분을 살펴보자. 이 부분은 인간이 주체다. 인간의 관점으로 씌어졌다. 다음 1연 아랫부분 4행-6행,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식물인 ‘봉숭아’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2연을 살펴보자. 2연은 ‘봉숭아’로 대변되는 어떤 ‘인간’의 삶의 배경이 노출되어 있다. ‘꿈-서울-막노동-병’ 패턴을 보여주기 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고도의 위험군에서 일한 ‘봉숭아’로 대변되는 국민, 즉 노동자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해석하면 그 상징성이 증폭된다. 또한 제목이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라고 하여 주체가 여자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봉숭아꽃의 여성 이미지 때문에, ‘서울에 시집온’이라는 꽃을 주체로 한 사물의 관점으로 쓴 시로 해석해야 한다. 1연 5-6행은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은 노동자 관점의 시다. 노동자의 최고 행복은 삽, 톱, 망치를 버리고,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서류로 일을 하는 것이다. 펜 노동은 몸을 사고로 죽게 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또 다른 꿈은 화이트칼라의 여유다. 월급봉투는 일당이 아닌 빨간색 날 유급휴가도 포함된다. 위의 시의 다초점의 복합적 구성은, 시에 긴장감과 해석의 묘미를 준다.   5. 서울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도시빈민층 노동자 문제   위의 시를 앞에서 외연적 측면, 즉 시적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면, 이제 위의 시를 내용적 측면, 즉 사회적 배경, 즉 환경적 측면에서 조명하여 보자. 시인이 시를 쓰는 동기는 정서적 자극이다. 행복한 나라에는 시인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시는 심성의 깊은 상처나 자극, 깨달음이 창작 동기가 된다. 창작욕구는 시인이나 시인주변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산된다. 1연 2-4행을 살펴보자. ‘봉숭아는 꽃보다는 몸을 으깨는 생활 전선의 손톱이 되고 싶었지만, 하루 9 시간 철인 경기는 손톱도 등도 다 닳고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서울에 시집 온 봉숭아’는 위험한 육체노동에 노출된다. 위의 시에서 봉숭아는 노동자를 상징한다. ‘서울에 시집 온 봉숭아’는 상징일 뿐이다. ‘지구에 온 인간’이거나, ‘외국에서 온 근로자’거나, 시골에서 서울에 온 봉숭아거나 큰 카테고리 안에서 ‘이방인’으로 분류된다.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병든 노동자에 대한 연민이 문제제기의 골자다.   6. 질병과 소외, 노인문제 위의 시를 또 다른 측면으로 고찰하여 보자. 2연 1-2행을 살펴보면,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   위의 시는 ’봉숭아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전선에서 난투극을 벌이다가 허리를 다쳐 누워있는 샷시공, 건설현장에서 비계를 타다가 떨어진 노동자의 슬픈 뒷얘기다. 소외계층의 인권과 행복권, 생존권에 대한 사회고발적 시다.. ‘나비’는 노동자의 이상주의와 꿈의 실현을 상징하는 단어다. 그런데 병든 몸은 이제 날고 싶은 의지가 없다. 아픈 노인은 자신을 찾아올 자녀의 전화벨소리에 예민하다. 그러나 2연 3행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처럼 허탈한 자조가 느껴진다. 한 편의 시는, 노인 소외문제, 장애우의 환경문제, 자녀에게 희생과 외면을 당한 부모 등, 당면한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호소하며 각성시키고 있다.   7. 결론   시의 세계에서는 사물과 자연, 인간과 동물이 물아일체를 이룬다. 시인은 사유와 관찰을 한 뒤 시를 써서 사회문제로 클로즈업하여 이슈로 만든다. 시인은 상상력과 이미지로 최초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낸 특허권자가 되기도 한다. 시는 웅변하지 않지만 데모군중보다 부드럽게 대중을 재빨리 흡입한다. 시인이 베란다 난간에 있는 허리가 꺾인 ‘봉숭아’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그 상황을 직면하고 아파하지 않았다면? 노동자의 생명권과 행복권에 관심이 없었다면?   그 사회는 아프고 병든 거다. 지성을 잃어버린 도시는 영혼이 죽은 거다. 통찰력을 가지고 사회병리현상을 고발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의 행복이 곧 국가의 힘의 원동력이다. 시는 짐짓 빗대어 표현하는 문학이다. 위의 시는 설명하거나 웅변하지 않는다. 재해석의 관점으로 ‘봉숭아’의 삶을 인간, 특히 병든 노동자의 사회적 소외로 치환한 것이다. 짧은 2연의 시로, 긴 대하소설 분량의 사회적 모순을 고발한 상징성이 있다. 단어와 문장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일. 독자와 평론가에게 주는 시의 이벤트다.  
  담쟁이 1                                                        강기옥         무섭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당신의 꿈을 쫓겠습니다.     무리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당신의 이상을 따르겠습니다.     당신의 크기만큼만 당신의 넓이만큼만 내 모든 소망을 걸어 웅숭깊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그리기 기법     강기옥의「담쟁이 1」은 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 그리기 기법’으로 씌어졌다. 3연의 짧은 시로, ‘1연-3행, 2연- 3행, 3연-4행’으로 간결하다. 현대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심플라인 옷처럼, 심플하다는 것은 필요없는 군더더기를 삭제하여 내다버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버리면 시는 더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강렬한 파장을 가지고 확장된다.      위의 시「담쟁이 1」이 가지고 있는 ‘ 그리기 기법’의 특징을 아래 7가지로 분류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1. 함축미와 형태미   위의 시는 10행의 짧은 시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함축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욕심을 내려놓기’하지만 더 큰 ‘이상주의의 실현’이라는 거대한 욕망을 품고 있다. 또한 형태미에서도 3연의 짧은 시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시어 배치를 하고 있다. 짧지만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2. 상징성   상징과 확장은 시에서 요리사의 절대미각과 같다. 3연 1-2행의 ‘당신의 크기만큼만 / 당신의 넓이만큼만 ’ 부분을 눈여겨보자. 이보다 큰 상징이 없다. 결코 인간이 우주를 벗어나 살 수 없듯이, 담쟁이도 결코 기대고 버틸 수 있는 ‘공간’을 벗어나서 생존할 수 없다. 당신이 있는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연시’로 해석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위의 시는 상징과 함축, 확장이 큰 시다.     3. 감각적 미의식   위의 시는 짧은 시어의 반복, 패턴을 통하여 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주고 있다. 그림 같은 연 배치도 시인의 의도된 계획이다. 반복적이고 점층적인 시어들은 독자의 뇌를 세뇌시키는 작용을 한다. 향수를 자극하는 고전적 방법의 시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사물이 말하게 하라는 현대적 시창작법을 적용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완성된 형태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는 좋은 시다.     4. 확장성   확장성은 사물인 담쟁이와 인간에게 치환된 주제의 확장성으로 두 가지로 분류하여 해석할 수 있다.  먼저 1-3연에서 비중있게 강조된 ‘이상주의’ 부분을 살펴보자. 다음 항목으로 요약된다. 인간과 담쟁이 모두 포함된다.     당신의 꿈을 쫓겠습니다(1연) -> 당신의 이상을 따르겠습니다(2연) -> 내 모든 소망을 걸어/ 웅숭깊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3연)      ‘비현실적인 꿈 -> 당신이 보여준  현실적인 이상실천 의지 -> 전심전력 의지표명’으로 점층적으로 확장된다.     다음 1-3행의 점층적 구조를 살펴보자.     1연 1-2행: 무섭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2연 1-2행: 무리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3연 1-2행: 당신의 크기만큼만/ 당신의 넓이만큼만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이상을 실천한다는 내용이지만, 1-3연에서 보여주는 계속 반복되는 형태는 점층적으로 확장되어 강조된다.     5. 패턴구조   위의 시는 1연, 2연, 3연이 아래와 같은 구조의 패턴화를 보여주고 있다.     1-3연에서 부사어 사용과 내용에서 패턴화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1연 1-2행: 무섭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2연 1-2행: 무리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3연 1-2행: 당신의 크기만큼만/ 당신의 넓이만큼만      다음 이상주의의 실천의지에서도 같은 패턴화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1연 3행: 당신의 꿈을 쫓겠습니다.   2연 3행: 당신의 이상을 따르겠습니다.   3연 3-4행: 내 모든 소망을 걸어 / 웅숭깊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6. 철학과 사고의 힘   불교의 참선의 마지막 목표는 ‘내려놓다’와 ‘해탈’이라고 본다. 위의 시는 삶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철학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첫째, 천천히(1연 2행)   둘째, 서두르지 않기(1연 2행)   셋째, 욕심부리지 않기(2연 103행)   넷째, 당당하기(1연 1행)   넷째, 이상주의(1연 3행, 2연 3행, 3연 4행)   다섯째, 되바라지지 않기(3연 4행)     그런데 위의 다섯 가지 철학은,  ‘더불어 살기’와 ‘양보하기’까지.  종교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범인의 경지를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삶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시인은 영원히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현실이 좌절과 고통스러워도 이상을 품고 산다. 배신과 압박에도 이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위의 시가 일제시대 발표되었다면 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위의 시가 1980년대에 발표되었다면 로 거론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7. 감동의 힘   3연의 짧은 시는 파장이 커서, 하루쯤 욕심을 내려놓고 온종일 생각에 잠기고 싶어지게 한다. 그만큼 시가 독자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감동을 준다는 뜻이다.   3연 4행 ‘웅숭깊다’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보자. 사전에는 ‘ 1. 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다. /  2. 사물이 되바라지지 아니하고 깊숙하다. ’라고 정의되어 있다. 1번 해석과 2번 해석 모두 포함하여 이 시의 중심어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현재 잘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단어를 발굴하여, 반짝이는 기쁨을 주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 ‘웅숭깊다’라는 단어는 보석과 같다.     ‘담쟁이’의 묘한 매력은 이상주의에 거치는 것이 아닌, 강력한 실천의지를 계속 설파하고 있다. 지하철역에서 매일 만나고 싶은 시다.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시인들이 꿈꾸는 쉽고 아름다운 시다. 매일 읽고 묵상과 반성을 촉구하는.  
불행에겐 이런 말을                                                              이기철        불행도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더운 물로 그의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한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조금씩 내리는 찬비처럼 내게 오는 불행이여   내 새 옷 한 벌 사 줄게 채소 같은 행복 한 잎만 들고 오면 안 되겠니   신장에도 장롱에도 책상에도 지붕에도 이슬 같이 내리는 불행   그러나 내가 그를 찾아가 이마를 짚어주면   불행도 부츠처럼 편안해진다   나는 서른까지는 불행하고 마흔은 행복하고   쉰은 조금씩 아끼며 불행하고 예순은 조금씩 보태며 행복하고 싶었다   철조망 안에도 햇볕이 놀듯 활짝 불행을 꽃 피워   행복의 열매를 맺고 싶었다   먼 길 걷는 사람은 처음부터 불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가 행복을 맞으러 가는 발자국소리임도 알아야 한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   마침내 그의 머리카락 냄새 속옷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불행은 행복의 언니에게 안기면 스스로 행복의 누이가 될 줄도 안다                     연극은 일상적인 것이 없다.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범상한 갈등으로 끝난다. 시 제목이 일상적이면, 그 내용과 구조와 표현은 일상적이지 않으며, 좋은 사유를 이끌어내야 한다. 반대로 시가 독특한 제목으로 출발하면, 그 내용과 방법론은 일상과 연계시켜야 한다. 사유를 이끌어내어 인생과 개인의 삶과 연결시켜야 한다.    이기철의 시,「불행에게 이런 말을」은 일상적인 제목이지만,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제목이다. 그 이유는 ‘불행’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잘 알고 있고,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칫하면 관념이나 사설로 흐르기 쉬운 제목이다. 그런데 이기철 시인은 가장 관념적인 ‘불행’에 대하여 쓰면서, 전혀 관념적이지 않은 시를 완성하였다. 그 방법론을 살펴보면 다음의 6가지 방법론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시각적 이미지와 객관화   ‘불행’이란 ‘관념’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해석하고, 사물화하여 ‘객관화’하였다.  다음 시행을 읽어보자.   ‘신장에도 장롱에도 책상에도 지붕에도 이슬 같이 내리는 불행’ (7행)   위의 시 7행의 중심단어는 ‘신장-장롱-책상-지붕’이다.   신장, 장롱, 책상, 지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각각의 형태와 색깔이 연상된다.  나무나 플라스틱 신장.   흰색, 나무색, 갈색, 검정색 나무장롱.   빨강, 파랑, 흰색 플라스틱 장롱.   파랑, 주황, 회색 기와집.   한옥, 전원주택, 연립과 아파트   각각의 사물들은 각각 다른 색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신장, 장롱, 책상, 지붕’이라는 단어가 대표하는 불행의 조건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신장- ‘신발’은 서정주의 시에서 보여주듯 식구들을 상징한다. 신발은 저녁이 되면 온전히 신발장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당당히 기득권과 소유권을 주장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혼, 가출, 입양, 군입대, 해외근무, 병원입원, 병사, 사고사’ 등 수많은 이유로 신발은 신발장을 떠난다. 신장은 불행을 고스란히 표출하는 대표적 사물이다. 신발은 모양과 색깔이 다른 색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장롱- ‘옷’은 인간을 대표한다. 인간의 취미와 교양, 직업을 나타낸다. 장소에 목적에 따라서 모양과 색깔이 수시로 바뀐다. 신발과 똑같은 기능을 하면서 좀더 눈에 띈다. 신발장의 신발이 저녁을 상징한다면 옷은 활동하는 낮을 상징한다. 개성과 색깔이 분명히 표출된다. 옷이 떠난다는 것은 ‘노랑 원피스’와 ‘검정 청바지’의 대결구도처럼 갈등과 비극을 반영한다. 결혼, 이혼, 별거, 사별 등, 어떤 이유로든 옷장을 떠난 옷은 소속과 집단을 떠난 불행한 사건을 상징한다.   책상- ‘책상’은 직업, 특히 회사원이나 교수, 작가 등을 상징한다. 한국은 1998년 IMF때 출근하면 책상이 없어지는 실직의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책상에서 불행이 발생한다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붕- ‘지붕’은 각 세대를 의미한다. 지붕은 생로병사가 한통속으로 읽히는, 세대와 가족을 상징한다. 한 사람이 아프면 가족이 아프다. 불행은 세대에게 집단으로 일어난다. 가족 구성원이 불행의 피해자가 된다.   위의 시는 ‘불행’이라는 관념에 ‘신발, 장롱, 책상, 지붕’ 이라는 상징물에 옷을 입혀 객관화시켰다. 또한 각 사물들은 개인, 가족, 집단을 상징한다. 불행이 일어나는 장소를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은 불행의 형태까지 포괄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불행’이라는 관념어에 옷을 입혀서, 실제적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구체성’과 ‘객관화’를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각적이며 채색적인 색채 이미지가 있다. 모든 사물들은 그 단체사회가 규정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체험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구체성   아래의 행을 살펴보자.   불행도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1행)   더운 물로 그의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2행)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3행)   불행을 친구와 유순한 내복으로 본 것은 늘 가까이 불행 속에서 산 사람만이 경험적으로 요약하여 도출해 낼 수 있는 수학적 공식이다. 체험적이며 경험적이다.      ‘한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4행)    ‘조금씩 내리는 찬비처럼 내게 오는 불행이여’ (5행)   순전히 경험적 체험을 바탕으로 도출해낸 공식이다. 위의 시는 인생의 ‘10일’은 불행이고 ‘1일’을 행복으로 보았다. 인생의 9할은 불행이고 1할은 행복으로 본 것이 아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한 달을 30일을 기준으로 삼을 때, 불행과 행복은 27.27: 02.72라는 공식이 도출된다. 1달에 3일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위의 시처럼, 우리 인생은 불행을 맞받아치고 추스를 사이도 없이 찬비처럼 계속 맞고 살아간다. 불행 속에서 불행과 함께, 불행과 일심동체가 되어 동고동락하며 산다. 불행에 대한 눈물겨운 한줄 엑기스 문장이다.   하늘이 주는 불행이라는 비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다만 우산을 쓰든지, 개인 비행기를 타든지, 부모나 형제의 등에 업혀 편히 가든지, 저축한 돈으로 고용인을 고용하든지 목적지로 가는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셋째, 달관의 미학   아래에 제시한 행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친구사이에서 흔히 행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1행)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3행)   내 새 옷 한 벌 사줄게 (6행)   부츠처럼 편안해진다 (9행)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 (15행)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16행)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17행)   스스로 행복의 누이 (19행)   친구라면 자주 만나고, 유순해지고, 생일에 옷도 선물하고, 편안하고, 함께 걷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찜질방에 가서 잠도 잔다. 친구가 어려울 때는 뒤를 봐주고 돈도 빌려준다. 서양에서는 만날 때마다 볼에 입도 맞춘다. 친구라면 서로 행복한 형과 동생의 역할도 나누어 한다.    시인이 시를 구상할 때, ‘불행’을 친구라고 직관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친구와 나눌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복의 순간들과 조건을 불행이라는 관념에 대입하였다. 불행을 ‘행복의 누이’라고 정의한, 역발상 관점이 이 시의 포인트다. 누구나 싫어하고 경계하는 불행을 기꺼이 초대한 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넷째, 의인화 기법   불행이라는 관념어를 인간의 행위로 치환하고 의인화하였다.     친구가 되어주고, 발을 씻겨주고, 몸을 타월로 닦아주고, 함께 걷고, 만나고, 밥먹고, 잠을 잔다. 머리카락 냄새, 속옷 냄새를 맡으며, 뒤도 닦아주고, 입도 맞춘다. 이런 경지라면 친구가 아니라 애인에 가깝다. 친구가 장애인이 아닌 이상, 뒤를 닦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뒤는 뒷배경이 되어 도움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      다섯째, 순응적인 희망의 메시지   아래의 행들을 살펴보자.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4행)   채소 같은 행복 한 잎만 들고 오면 안 되겠니 (6행)   서른까지는 불행하고 마흔은 행복하고 (10행)   쉰은 조금씩 아끼며 불행하고 예순은 조금씩 보태며 행복하고 싶었다 (11행)  철조망 안에도 햇볕이 놀듯 활짝 불행을 꽃 피워 (12행)  행복의 열매를 맺고 싶었다 (13행)  먼 길 걷는 사람은 처음부터 불행할 줄 알아야 한다 (14행)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가 행복을 맞으러 가는 발자국소리임도 알아야 한다 (15행)   위의 시에서 주장하는 불행의 개념과 재해석은 포기와 절망이 아니다. 순응적인 희망의 메시지다. 사실 필자가 살면서 터득한 이치는, 불행의 극점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가장 불행한 시점은 희망을 잉태한 터닝 포인트였다. 그 극점에서 포기하고 절망하여 도태되든지, 극기로 새로운 모색을 하여 발전하든지, 극명하게 갈리는 분기점이다. 가장 큰 시련과 비극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그 행복은 견디고 넘어선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눈비와 가뭄이라는 불행 뒤에 열리는 열매가 더 맛있는 법이다.     여섯째, 연극적 구조와 문장   위의 시는 입체적이고 연극적이다.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2행)   이마를 짚어주면 (8행)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 (16행)   마침내 그의 머리카락 냄새 속옷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17행)   때로는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18행)   불행은 행복의 언니에게 안기면 스스로 행복의 누이가 될 줄도 안다 (19행)   시의 문장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 거리가 숨어 있다. 그 문장과 구조는 옷을 입고 행동하며 움직임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기승전결이 있으며, 클라이맥스가 있다. 시작과 끝이 있다. 대사와 지문도 들어 있고, 행위도 있다. 스토리가 있으며 연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의 시를 6가지 방법론을 적용하여 분석하여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첨언하면, 위의 시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제목이다. 보통의 시인이라면 제목을「불행」이라는 명사로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불행」과「불행에게 이런 말을」이라는 제목은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불행’이라는 제목으로 고정하면, 시가 관념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불행에게 주는 말’은 구체성과 객관화를 획득한 제목이다. 말은 추상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관념으로 흐르더라도 적합성과 정당성, 타당성을 약속받고 들어간다. 더구나「불행에게 이런 말을」이란 제목은 구체성과 객관화는 물론, 현재성과 현장성까지 확보한다. 직접적이며 생동감과 힘이 있다.   시가 주는 절정의 기쁨과 카타르시스를 이런 부분에서 느낀다. 부드럽고 편안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 그러나 시어를 파고 들어가면 지적이며 예리한 사유, 승화된 내용.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내공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친근한 주변의 내용을 극화시켜 읽는 재미가 크다.   ♣♧♣
  칠 놀이 또는 페인트통                                                      심 상 운       나는 가끔   페인트통을 들고 낡은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제각기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는다     페이트통 속에선 붉은 해가 부글부글 끓고   가지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칠 놀이에 지칠 줄을 모르던 아이들은   구름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나는 온몸에 페인트를 묻히며 칠 놀이에 빠진다     벽에 묻은 칠들은 나뭇잎같이 팔랑거리기도 하고   제각기 새가 되어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한다     붉은 빛에서는 타히티 여인들의 허리 곡선이 굼실거리고   퍼런 빛에는 아파트 담을 넘어오다 총탄에 맞은   젊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도 묻어 있다     나는 빛깔들을 다 쏟아낸 페인트 통을 두드려본다   가볍고 맑은 아이들 소리가 나고     눈부신 햇살 속에서 수천의 아파리를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던   은사시나무의 잎사귀소리가 들린다           * 심상운 신작시집 『녹색 』전율 중에서                                              하이퍼시의��겹쳐그리기 기법��                     ―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이 선( 시인 )       심상운은『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시론집을 통하여 하이퍼 시론을 정립하였다. 이번 신작시집 『녹색 전율』에 실린 「칠 놀이 또는 페인트통」은 그의 신작시집에 실린 하이퍼시 중 하나이다.   필자는 위의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하이퍼적 요소에 이라는 이름을 명명하고자 한다. 이미 다른 논문에서 발표한 바 있다. 각각의 연들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과 을 하여 정서를 환기시켜 준다. 1-7행의 각 연들을 분석하여 의 요소들을 살펴보자.       1.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칠 놀이 또는 페인트통」의 시적소재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페인트칠이 된 벽��이다. 그런데 1-7연의 시행에서 보여지는 그림은 각각 다른 패턴의 그림이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시점의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1-7연은 각각 다른 상상력의 조합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필자는 다시점과 다초점의 여러 각각의 다른 그림들의 합을 이라고 명명한다. 의 구성요소인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의 예를 1-7연의 시행을 분석하여 살펴보자.     1연- 나는 가끔/ 페인트통을 들고 낡은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제각기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는다(1연 1-3행)   페인트통을 들고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시인의 상상력의 공간으로 과거의 아이들을 현재시점으로 초대한다. 시인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벽의 그림에서 듣는다. 그림은 보는 것인데, 본다고 하지 않고,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였다. 한시각 이미지를 청각이미지로 교환하였다.  단계를 뛰어넘어 공감각적 이미지를 살린 표현이다.   한 편의 시를 극이라고 가정하여 보자. 시의 도입부부터 현재형으로 극적 현장감을 준다.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한다.  시에 집중도를 높여주는 장치다. 과거와 과거완료형을 현재형으로 재생하여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고 있다.     2연- 페이트통 속에선 붉은 해가 부글부글 끓고/ 가지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2연 1-2행)   위의 시에서는 그림에서 붉은 해가 끓고 구름이 피어오른다고 하지 않았다. 페이트통에서 붉은 해와 구름이 등장한다. 완성된 그림이 아닌, 그림의 재료인 페인트통에서 붉은 해와 구름이 이미 만들어져 펑하고 마술처럼 빠져나온다. 1연과 같은 표현기법이다. 시인의 상상력의 세계에서 시적논리가 맞는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위의 표현은 비논리적인 표현이 아니라 한 단계를 건너뛴 표현이다.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는 4세경까지 물활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물건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시는 어린이의 물활론적 세계와 비슷한 세계가 있다. 시와 어린이의 정신세계에서는 상상력의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지렁이를 늘려 줄넘기도 하고, 지렁이로 팔찌도 하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어린이들의 고정관념을 깨며 큰 인기를 받았었다. 시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작업이다. 여러 색깔로 칠이 된 벽에서, 그 이전의 칠의 단계인 페인트통으로 상상력이 이동되어 있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중 구조적인 상상력의 겹치기 기법이다.     3연- 칠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구름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나는 온 몸에 페인트를 묻히며 칠 놀이에 빠진다( 3연 1-3행 전문)   아이들의 놀이에서 어른 놀이로 행동의 주체가 바뀐다. ��아이들->나��로 상상력의 수평적으로 순간이동 하였다.     4연- 벽에 묻은 칠들은 나뭇잎같이 팔랑거리기도 하고/ 제각기 새가 되어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한다.( 4연 1-2행 전문)   벽의 그림은 정지된 화면이다. 그런데 벽의 그림들에 움직임을 주었다.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하게 하였다. 그림 속의 나뭇잎이 팔랑거리고, 그림 속의 새가 포르르 날아간다.   그런데 사실 벽의 페인트칠에는 실제로 나뭇잎이나 새가 없을 수도 있다. 순전히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일 가능성도 크다.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며 행동을 시작한다. 정지된 그림이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하이퍼적 상상력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현재형의 그림에 미래형 옷을 입혔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5연- 붉은 빛에서는 타히티 여인의 허리 곡선이 굼실거리고/ 퍼런 빛에는 아파트 담을 넘어오다 총탄에 맞은/ 젊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도 묻어 있다( 5연1- 3행)      붉은색- ��타이티 여인의 허리곡선��을 상상하였다.   푸른색- ��총탄에 맞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상상하였다.   색깔 이미지를 살아있는 인물과 사물로 치환하였다. 사물인 색깔에 행위를 주어 실제성과 현장감을 주었다. 극적 구성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소설과 극에서 사건을 담당하는 주요한 포인트인 여자를 드디어 등장시켰다. 또한 가장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멧돼지를 등장시켜 극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있다. 정물에 행위를 주어 의인화하였다. 상상력의 공간이동이 현재형으로 시간이동을 하고 있다.     6연- 나는 빛깔들을 다 쏟아낸 빈 페인트통을 두드려본다/ 가볍고 맑은 아이들 소리가 나고(6연 1-2행)   시적화자는 상상력의 공간에서 빈 페인트통을 두드린다.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여 페인트통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의 상상력의 이동을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그림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림의 원재료인 페인트통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 시의 포인트다. 상상력의 이동을 대대적으로 크게 한 것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라는 2개의 과정을 동시에 이행하고 있다.     7연- 눈부신 햇살 속에서 수천의 이파리를 반짝이며/ 바람에흔들리고 있던/ 은사시나무의 잎사귀소리가 들린다( 7행 1-3행)   7행은 시에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효과다. 한정적인 시의 공간인 벽과 그림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자연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의 지문이나 그림의 배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연이다. 죽은 그림에서 살아있는 그림인 자연으로, 독자의 눈을 공간이동시킨다.   ��눈부신 햇빛, 반짝이는 이파리, 바람, 잎사귀소리��로 독자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벽과 칠’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모두 벗어나버렸다. 아주 다른 공간이다. 아이들과 멧돼지와 여자라는 동물에게서도 벗어났다.       2. 하이퍼시의��겹쳐그리기 기법��     위의 시는 1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1-7연에서 골고루 상상력의 순간이동과 시간이동, 공간이동이 자유롭게 실현되고 있다. 여러 연들은 각각의 다른 그림을 그린다. 상상력이 겹쳐지고, 중첩 이미지를 만든다. 공감적 이미지가 정서를 환기시킨다. 위의 시 1-7연에서 보여주고 있는 하이퍼시의 이 겹쳐그려지며 반복된다. 이 반복적이고 중의적인 겹쳐그리기 그림 기법이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필자는 이 기법을 본 장에서 이라 명명한다.  제한적인��페인트칠이 된 벽��에서 얻은 단순한 시인의 아이디어가 무한대의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시인이 아이들이 낙서를 해 놓은 벽을 보고 시상을 얻었을 것이다. 과거의 벽 속에서 나온 아이들은 시인의 상상 속에서 현재의 시점에서 행동을 한다.    여러 이미지들이 재탄생하여 각각 다른 옷을 입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무한대로 이동한다. ��나-아이들-나뭇잎-새-타히티 여인-멧돼지-눈부신 햇살- 바람- 나뭇잎소리��등 상상력을 현재로 끌고 와서 각각의 사물에게 행동과 행위를 부여하고 있다. 주재료와 부재료의 구분이 모호하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 시가 가지는 특징은 상상력에서 시작하여 상상력의 겹치기가 계속 반복된다. 이 1-7연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무한대의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무형의 사물인 페인트와 그림에 행위를 제공한다. 그림이 여행을 떠나고, 작가인 시인도 합류하여 함께 페인트칠을 하며 논다. 시에 자유로움을 주어 작가와 독자와 등장인물이 함께 상상력의 세계에서 논다. 재미있게 시원하게 잘 논다. 한정적이지 않고 제한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한정적이고 제한적이지 않다. 상상력의 폭이 무한대다. 그러나 이 시가 횡설수설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하이퍼시의 특징인 각 연들의 독립성과 개별성 때문이다. 각 연들의 다른 그림은 서로 링크된다.    각각의 행들은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여 다른 이야기를 산만하게 하는 것 같지만, 링크되어 한 공간에서 만난다. 링크는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위의 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각 연 중에서 한 연을 빼도, 한 연을 더 집어넣어 8연, 9연을 만들어도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이퍼시의 독립성과 개별성 때문이다.         3. 결론         위의 시는 이 1-7연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다. 1장에서 하이퍼시의 특징인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하이퍼시의 특징인 링크, 개별성, 독립성 등 하이퍼시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하이퍼시는 답답하지 않다. 상상력의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극대화를 통하여 시를 한정적이지 않게 한다. 독자에게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한다. 시공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정서환기를 시키며 시에 재미를 더한다.       하이퍼 시인은 한 공간에서 연줄을 들고 서 있는 어린 아이와 같다. 어린이는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다. 그러나 실은 허공을 날아가서 꽃과 나무, 언덕을 넘어 하늘 끝까지 날아간다. 어린이의 상상의 세계에서는 낮달과 숨바꼭질하는 낮별과 은하수계까지 도달할 것이다.      지금 문학사에서 하이퍼시가 서 있는 위치는 어린아이가 연을 들고 서 있는 것과 같다. 줄을 끊지 말고 문학사에 족적을 남기도록 좋은 하이퍼시가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하이퍼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심상운의 하이퍼시 신작시집 『녹색 전율』이 집중받기를 바란다.  
95    6 ․ 25 33 전봉건 댓글:  조회:751  추천:0  2018-12-26
  6 ․ 25 33   전봉건     문이 열리면 드륵 새가 날아도 드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지붕 위에서 햇살이 번쩍거리면 드르르륵 길 아닌 데서 그리고 물론 길에서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나기만 하면 드륵 드르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객관적인, 가장 객관적인 감각의 정수리를 보며       이 선 (시인)     전봉건과의 첫 만남은 속눈썹이 떨리는, 첫눈내리는 날 같은 운명적 만남이었다. 시인과의 만남은 청계천 헌 책방을 매일 뒤지며 보들레르 과, 프루스트의 를 구했을 때의 감격과 같다. 전봉건의 시는 필자에게는 발견이다. 1970년대 초, 청계천 헌 책방을 뒤지는 것이 필자의 큰 낙이며 매일의 습관이었다. 표지가 다 낡은 투명 비닐커버가 씌어진 황색으로 된 누런 갱지로 된 두꺼운 시집인데, 상하권으로 한국의 모든 시인의 시가 여러 편씩 총망라되어 있는 이라 기억한다. 지금도 그 책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문이 섞여서 여고 2학년 실력으로 시집을 음미하기엔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당시 필자는 한글세대로서 괄호 안에 한자가 있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그 시집은 원문 그대로 모두 한문으로 된 시집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 많은 시인 중에서 ‘전봉건’이라는 시인이 필자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그 당시 세계 명시와 한국의 명시를 거의 다 외웠는데, 유독 그때까 전봉건 시인 작품은 한 편도 못 만났다. 그 시선집을 다 통독하고 ‘전봉건 시인은 시를 아주 잘 쓴다’라는 인식이 필자의 뇌리에 지금까지 박혀 있다. 언젠가 전봉건 시인에 대하여 평론을 쓰겠다고 다짐하였는데, 그러나 요즘은 현존 작가들의 현재 작품을 조명하고 있는 시점이다. 전봉건 시에 대하여 평론을 쓰기로 작정하고, 다시 50년 만에 전봉건의 여러 시를 읽어보았다. 여중 때부터 여러 시인들의 시를 외웠는데 유독 전봉건의 시는 한편도 외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에는 전봉건의 시가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청계천 헌책방에 그 누런 낡고 오래된 시집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명시선에 실린 시보다 우수한 작품이 많은데 왜 그의 시가 교과서에서 빠졌는지 의문이다. 전봉건의 시는 고른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작품을 고민하다가 필자가 선정한 시는 이다. 위의 시는 ‘객관적인, 가장 객관적인 감각의 정수리’를 보여준다. 감각적 미의식은 전봉건 시의 특징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은 설명이 없다. 간결함 속에 인생을 관통하는 심미안이 있다. 간단명료하지만 긴 침묵, 뒤에 숨은 철학이 있다. 눈물이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철학적으로 간결하게 냉정하게 처리되어 있다. 필자는 전봉건 시의 특징인 ‘객관화의 정수’와 감각적 미의식을 높이 평가한다. 위의 시는 아이러니 기법을 사용한 전쟁 고발시다. 8연 모두 짧은 시구들이 ‘절절하다, 안타깝다, 애련하다’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그런데 그 슬픈 상황이 지독히도 감각적이며 아름답다는 것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울고 싶도록 애절한데, 그 눈물이 쏙 들어가게 하는 이성적인 문장이다. 각 연들이 가지고 있는 시창작 기법과 시적 미의식을 1-8연의 시구를 읽고 살펴보자. 1연- 문이 열리면/ 드륵 보통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누가 들어오나 살핀다. 호기심은 관심이다. 호기심은 사랑이다. 그런데 전쟁 시에는 다짜고짜 총을 갈긴다. 묻지도 않는다. 살펴보고 이런 저런 상황과 이유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갈긴다. 죽이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다. 2연- 새가/ 날아도/ 드르륵 새가 날아간다는 것은, 제삼자의 침입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가 날아간다는 상황은 평화 시에는 희망이나 이상주의를 암시한다. 어떤 희망도 절망으로 바뀌는 것이 전쟁이다. 3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1연에서는 ‘드륵’ 한번 총을 갈긴다. 그러나 2연에서는 ‘드르륵’ 점층법을 썼다. 글자 수도 변화를 주어 현장감을 주고, 총을 갈기는 횟수도 늘어난다. 3연에서 중심어는 ‘우리는’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우리는 ‘너’가 아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가장 아름다운 한국말이다. 우리집, 우리동네, 우리나라, 우리는 가장 정겨운 복합어인데, 서로 보살피는 아름다운 대명사인데, 그 우리가 서로 총을 쏴갈기는 거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아이러니 기법이다. 언어의 기본적 의미를 역설로 뒤집으며 전쟁을 고발한다. 4연- 지붕 위에서/ 햇살이 번쩍거리면/ 드르르륵 4연의 타자는 ‘햇살’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햇볕. 무한정 내어주는 헌신의 존재인 햇살을 향해서 ‘드르륵’ 총을 쏜다. 지붕은 적의 틈입이 가장 잘 보이는 가장 높은 장소다. 한국의 지붕은 뒤쪽이 경사져서 목을 들이밀었다, 내밀었다 정찰하기 좋은 조건이다. 총구가 햇살을 받으면 번쩍거릴 것이다. 가장 짧은 문장 속에 모든 상황을 다 캐치하는 표현이다. 전봉건 시인의 시적 역량이 돋보인다. 5연- 길 아닌 데서 그리고 물론 길에서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나기만 하면 드륵 드르르륵 5연의 ‘길 아닌 데’와 ‘길’을 합치면 모든 곳이다. 아무데서나 총을 쏜다는 뜻이다. ‘드륵 드르르륵‘ 점층법이 고조되고 있다. 점층법은 시에 운동감을 더해주고, 현장감을 더하여 준다. 또한 음절의 길이의 변이를 통하여 각행과 연의 시각적, 감각적, 미의식도 더해 준다. 6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3연과 6연은 반복이다.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강조법이다. 처절하고, 냉정한 전쟁에 대한 고발이다. 또한 시의 흐름에서 표현의 기교로써, 3연에서 언급한 것을 6연에서 반복한다. 비슷한 시점에 다시한번 더 언급함으로써 시적 운율도 살리고 있다. 시의 치밀한 계산이다. 7연-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7연은 가장 슬프고 심미적 미의식이 표현된 시구다. ‘꽃’은 연애시의 대명사다. 그런데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총을 갈긴다. 총을 더 오래 갈긴다. ‘꽃’을 선물로 받을 때 사람들은 가장 행복하다. 왜냐하면 금방 시들어버릴 비싼 꽃을 선물받는 것은 고급스러운 사치다. 꽃무더기는 여자나 남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누구나 백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그 꽃이 총상을 입고, 찢겨진다. 꽃덤불은 무슨 꽃일까? 상상해 보라. 필자는 싸리꽃이나, 찔레꽃이 연상된다. 싸리꽃이나, 찔레꽃은 무리지어 피고, 부피는 둥글고, 키가 낮아서 그 뒤에 포복하거나 숨기에 적합하다. 은행나무나 소나무는 위로 높게 뻗어서 적군의 몸이 다 드러난다. 그때는 달리며 서로 전면 대항전을 하며 싸운다. 전쟁은 보통 산에 숨은 적을 향하여 무차별적으로 총을 쏜다. 전쟁 때는 사람이 직접 면대 면으로 맞닥뜨려 싸우는 것보다, 버리는 총알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총을 갈긴다’는 표현이 맞다. 8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8연에서 다시 강조법을 사용하였다. ‘총을 쏴갈기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의 본질은 총을 적에게 쏘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자 전쟁을 한다. 가장 객관적인 방법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이토록 냉정하고, 처절하게 고발하는 시는 처음 본다. 필자가 아직 다른 전쟁 시를 많이 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가장 객관적인 방법으로 가장 아름답게 쓴 전쟁 시라고 감히 말한다. 전봉건의 시에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없다. 전봉건은 우회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말하지만 관념적이지 않다. 가장 객관적인 문장으로, 가장 객관적인 대상을 도입한다. 여러 편의 6 ․ 25 전쟁 시 중에서 위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2016년과 2017년이라는 한국적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 누구에게나 소통될 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우리는 정치적으로 서로 총을 겨누었다. 말로 싸웠지만 전쟁보다 더 저급하고 치사스럽게 싸웠다. 올해도 우리는 지금 싸우고 있다. 말로 싸우지만, 글로 싸우지만, 가장 치사스럽고 저급하게 서로 총을 겨누고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여 더욱 전쟁기운이 고조되는 시점이다. 지구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타이틀도 눈에 뛴다. 전봉건의 시를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그 진정성에 눈물이 난다. 그 표현의 미려함에 눈물이 난다. 그가 북한에서 월남하여 망향의 한을 가진 시인이기에 전쟁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30년 동안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다는 걸 걸 알기 때문에- 그 시를 읽었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 ‘전봉건 시인’이라는 이름이 눈물 나게 좋다. 전봉건의 시를 읽으면 눈으로, 마음으로, 뇌로 운다. 죽도록 아름다워서.  
94    가을의 노래 / 이수화 댓글:  조회:825  추천:0  2018-12-26
    가을의 노래                                                                  - 이수화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 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잎이 진다. 아침을 나서는 생활의 문턱에도 이름 모를 일년생(一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이 잎을 떨구고,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우리가 살아갈 누리에 낙엽이 져도 나의 기도(祈禱)는 낙엽과 더불어 흙이 되리니- 아아.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 가을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생애 단 한편의 대표작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수화의「가을의 노래」는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의 감상주의적인「가을날」이나, 릴케의 기도 시「가을날」과는 다른 품격과 내용, 철학, 시적 표현 방법으로 변별력을 갖는다.   이수화의 「가을날」은 위의 시들보다 날선 감각과 표현이 있다. 또한 반성적 철학과 지혜를 갈구하는 시인의 진정성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1-5연에서 보여주는 아래 구절들은 ‘가을 이미지’를 ‘철학’과 ‘사유’로 승화시켰다.     1연- ‘이 가을에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2연-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4연-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5연- ‘나의 기도(祈禱)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아래에 제시한 2연과 3연의 감각적 미의식과 날카로운 직관적 표현은 압권이다.    2연-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3연-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아래에 제시한 4연과 5연은 자연의 섭리에 무조건 순응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갈등과 항거를 통해 배운 순리를 깨달은 자의 지혜가 번뜩인다. 가난도 아름다운 비움의 철학으로 빛난다.     4연-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5연-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수화의 「가을날」은 시인의 하늘로 높게 솟은 아름다운 ‘백발’처럼, 그의 내면이 범상치 않은 ‘개성’과 칼칼한 ‘직관’을 그의 ‘시의 눈’에서도 볼 수 있다. ‘시는 그 사람이다’라는 등식을 확인한다.     천상병의 「소풍」이나, 릴케의 「가을날」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쉽고 간절한 진정성과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도 ‘잉걸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수화의「가을날」도 매력적인 ‘표현주의’ 적 기법이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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