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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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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 33 전봉건
2018년 12월 26일 20시 22분  조회:1519  추천:0  작성자: 강려
 
6 ․ 25 33
 
전봉건
 
 
문이
열리면
드륵
새가
날아도
드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지붕 위에서
햇살이 번쩍거리면
드르르륵
길 아닌 데서
그리고 물론 길에서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나기만 하면
드륵 드르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객관적인, 가장 객관적인 감각의 정수리를 보며
 
 
 
이 선 (시인)
 
 
전봉건과의 첫 만남은 속눈썹이 떨리는, 첫눈내리는 날 같은 운명적 만남이었다. 시인과의 만남은 청계천 헌 책방을 매일 뒤지며 보들레르 <악의 꽃>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구했을 때의 감격과 같다.
전봉건의 시는 필자에게는 발견이다. 1970년대 초, 청계천 헌 책방을 뒤지는 것이 필자의 큰 낙이며 매일의 습관이었다. 표지가 다 낡은 투명 비닐커버가 씌어진 황색으로 된 누런 갱지로 된 두꺼운 시집인데, 상하권으로 한국의 모든 시인의 시가 여러 편씩 총망라되어 있는 <한국대표시선집>이라 기억한다. 지금도 그 책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문이 섞여서 여고 2학년 실력으로 시집을 음미하기엔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당시 필자는 한글세대로서 괄호 안에 한자가 있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그 시집은 원문 그대로 모두 한문으로 된 시집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 많은 시인 중에서 ‘전봉건’이라는 시인이 필자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그 당시 세계 명시와 한국의 명시를 거의 다 외웠는데, 유독 그때까 전봉건 시인 작품은 한 편도 못 만났다. 그 시선집을 다 통독하고 ‘전봉건 시인은 시를 아주 잘 쓴다’라는 인식이 필자의 뇌리에 지금까지 박혀 있다.
언젠가 전봉건 시인에 대하여 평론을 쓰겠다고 다짐하였는데, 그러나 요즘은 현존 작가들의 현재 작품을 조명하고 있는 시점이다. 전봉건 시에 대하여 평론을 쓰기로 작정하고, 다시 50년 만에 전봉건의 여러 시를 읽어보았다. 여중 때부터 여러 시인들의 시를 외웠는데 유독 전봉건의 시는 한편도 외우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국명시선집>에는 전봉건의 시가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청계천 헌책방에 그 누런 낡고 오래된 시집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명시선에 실린 시보다 우수한 작품이 많은데 왜 그의 시가 교과서에서 빠졌는지 의문이다.
전봉건의 시는 고른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작품을 고민하다가 필자가 선정한 시는 <6 ․ 25 33> 이다. 위의 시는 ‘객관적인, 가장 객관적인 감각의 정수리’를 보여준다. 감각적 미의식은 전봉건 시의 특징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은 설명이 없다. 간결함 속에 인생을 관통하는 심미안이 있다. 간단명료하지만 긴 침묵, 뒤에 숨은 철학이 있다. 눈물이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철학적으로 간결하게 냉정하게 처리되어 있다. 필자는 전봉건 시의 특징인 ‘객관화의 정수’와 감각적 미의식을 높이 평가한다.
위의 시는 아이러니 기법을 사용한 전쟁 고발시다. 8연 모두 짧은 시구들이 ‘절절하다, 안타깝다, 애련하다’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그런데 그 슬픈 상황이 지독히도 감각적이며 아름답다는 것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울고 싶도록 애절한데, 그 눈물이 쏙 들어가게 하는 이성적인 문장이다. 각 연들이 가지고 있는 시창작 기법과 시적 미의식을 1-8연의 시구를 읽고 살펴보자.
1연- 문이 열리면/ 드륵
보통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누가 들어오나 살핀다. 호기심은 관심이다. 호기심은 사랑이다. 그런데 전쟁 시에는 다짜고짜 총을 갈긴다. 묻지도 않는다. 살펴보고 이런 저런 상황과 이유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갈긴다. 죽이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다.
2연- 새가/ 날아도/ 드르륵
새가 날아간다는 것은, 제삼자의 침입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가 날아간다는 상황은 평화 시에는 희망이나 이상주의를 암시한다. 어떤 희망도 절망으로 바뀌는 것이 전쟁이다.
3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1연에서는 ‘드륵’ 한번 총을 갈긴다. 그러나 2연에서는 ‘드르륵’ 점층법을 썼다. 글자 수도 변화를 주어 현장감을 주고, 총을 갈기는 횟수도 늘어난다.
3연에서 중심어는 ‘우리는’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우리는 ‘너’가 아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가장 아름다운 한국말이다. 우리집, 우리동네, 우리나라, 우리는 가장 정겨운 복합어인데, 서로 보살피는 아름다운 대명사인데, 그 우리가 서로 총을 쏴갈기는 거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아이러니 기법이다. 언어의 기본적 의미를 역설로 뒤집으며 전쟁을 고발한다.
4연- 지붕 위에서/ 햇살이 번쩍거리면/ 드르르륵
4연의 타자는 ‘햇살’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햇볕. 무한정 내어주는 헌신의 존재인 햇살을 향해서 ‘드르륵’ 총을 쏜다. 지붕은 적의 틈입이 가장 잘 보이는 가장 높은 장소다. 한국의 지붕은 뒤쪽이 경사져서 목을 들이밀었다, 내밀었다 정찰하기 좋은 조건이다. 총구가 햇살을 받으면 번쩍거릴 것이다. 가장 짧은 문장 속에 모든 상황을 다 캐치하는 표현이다. 전봉건 시인의 시적 역량이 돋보인다.
5연- 길 아닌 데서
그리고 물론 길에서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나기만 하면
드륵 드르르륵
5연의 ‘길 아닌 데’와 ‘길’을 합치면 모든 곳이다. 아무데서나 총을 쏜다는 뜻이다. ‘드륵 드르르륵‘ 점층법이 고조되고 있다. 점층법은 시에 운동감을 더해주고, 현장감을 더하여 준다. 또한 음절의 길이의 변이를 통하여 각행과 연의 시각적, 감각적, 미의식도 더해 준다.
6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3연과 6연은 반복이다.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강조법이다. 처절하고, 냉정한 전쟁에 대한 고발이다. 또한 시의 흐름에서 표현의 기교로써, 3연에서 언급한 것을 6연에서 반복한다. 비슷한 시점에 다시한번 더 언급함으로써 시적 운율도 살리고 있다. 시의 치밀한 계산이다.
7연-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7연은 가장 슬프고 심미적 미의식이 표현된 시구다. ‘꽃’은 연애시의 대명사다. 그런데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총을 갈긴다. 총을 더 오래 갈긴다. ‘꽃’을 선물로 받을 때 사람들은 가장 행복하다. 왜냐하면 금방 시들어버릴 비싼 꽃을 선물받는 것은 고급스러운 사치다.
꽃무더기는 여자나 남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누구나 백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그 꽃이 총상을 입고, 찢겨진다. 꽃덤불은 무슨 꽃일까? 상상해 보라. 필자는 싸리꽃이나, 찔레꽃이 연상된다. 싸리꽃이나, 찔레꽃은 무리지어 피고, 부피는 둥글고, 키가 낮아서 그 뒤에 포복하거나 숨기에 적합하다. 은행나무나 소나무는 위로 높게 뻗어서 적군의 몸이 다 드러난다. 그때는 달리며 서로 전면 대항전을 하며 싸운다.
전쟁은 보통 산에 숨은 적을 향하여 무차별적으로 총을 쏜다. 전쟁 때는 사람이 직접 면대 면으로 맞닥뜨려 싸우는 것보다, 버리는 총알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총을 갈긴다’는 표현이 맞다.
8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8연에서 다시 강조법을 사용하였다. ‘총을 쏴갈기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의 본질은 총을 적에게 쏘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자 전쟁을 한다.
가장 객관적인 방법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이토록 냉정하고, 처절하게 고발하는 시는 처음 본다. 필자가 아직 다른 전쟁 시를 많이 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가장 객관적인 방법으로 가장 아름답게 쓴 전쟁 시라고 감히 말한다.
전봉건의 시에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없다. 전봉건은 우회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말하지만 관념적이지 않다. 가장 객관적인 문장으로, 가장 객관적인 대상을 도입한다.
여러 편의 6 ․ 25 전쟁 시 중에서 위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2016년과 2017년이라는 한국적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 누구에게나 소통될 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우리는 정치적으로 서로 총을 겨누었다. 말로 싸웠지만 전쟁보다 더 저급하고 치사스럽게 싸웠다. 올해도 우리는 지금 싸우고 있다. 말로 싸우지만, 글로 싸우지만, 가장 치사스럽고 저급하게 서로 총을 겨누고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여 더욱 전쟁기운이 고조되는 시점이다. 지구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타이틀도 눈에 뛴다.
전봉건의 시를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그 진정성에 눈물이 난다. 그 표현의 미려함에 눈물이 난다. 그가 북한에서 월남하여 망향의 한을 가진 시인이기에 전쟁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30년 동안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다는 걸 걸 알기 때문에- 그 시를 읽었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
‘전봉건 시인’이라는 이름이 눈물 나게 좋다. 전봉건의 시를 읽으면 눈으로, 마음으로, 뇌로 운다. 죽도록 아름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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