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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강의---독자를 위한 시 읽기 - 김지향 -시란 무엇인가? 등 댓글:  조회:410  추천:0  2022-10-10
독자를 위한 시 읽기 - 김지향 - 1) 시란 무엇인가? 시를 읽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문제가 있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시 독자들이 시의 정체를 이미 다 밝혀내어 터득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서 일까?: 아마도 정확한 대답을 도출해내지 못해서 일 것이다. 시는 정답이 없다 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많은 시인이나 시 연구가들이 시에 대하 각각 자기 나름의 개성 있는 정의를 피력해 왔다. 그러나 그 정의가 시의 얼굴에 각양각색으로 색칠을 해 놓고 있어 어느 한 지점에 통일시키기가 어렵다. 그만큼 통일한 한 개의 해답을 산출해 낼수 있을 만큼 시가 단순하거나 간단한 것이 아니다. 아주 다양한 무한다면체 또는 철면 조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의 정확한 해답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시의 특성이다. 동서양의 시의 원조로 알려진 두 사람의 시의 정의를 보자. 먼저 동양의 대 석학인 공자(孔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서양의 대 철학자 아리스도텔레스(Atistoteles)는 시를 운율적 언어에 의한 모방 즉 사물의 형상을 운율적 언어에 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보면 동양의 공자는 시의 정신면에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의 기법면에서 치우친 인상이 짙다. 따라서 동양의 그것이 관념적이라면 서양의 그것은 실제적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사람만의 해석을 놓고 볼 때도 보는 관점이 이렇게 차이가 있는데 열사람 의 해석은 열 가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해답은 아니다. 다면체 시의 어느 일면의 해명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면체 시 전면을 해명하는 정의가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수 밖에 없다. 시는 시대와 개인의 시각에 따라 편차를 보일뿐 아니라 그 다양한 성질과 요소가 모두 인간의 체험을 담아내는 그릇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시는 인간에 대한 천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우주이든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며 인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수 많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인들은 인간존재의 근원인 삶을 탐색하게 되면 그러한 과정 속에 시는 삶을 반영하는 도구로 원용된다. 따라서 시는 인간에게 카다르시스를 제공해야 하며 이러한 정화적용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감동과 진실을 공급하며 상상력을 통한 추경험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시는 궁극적으로 보다 향상된 삶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양식이며 토양이며 자극제가 된다. 그러므로 시가 진정한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삶 속에 표출되는 인간의 진실을 포착하는데 있다. 말하자면 시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나아가 카다르시스를 통해 성숙된 의식의 소유자로 완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절제된 언어 속에 인간의 진실을 함축 시켜야 하므로 흔히 시인을 언어의 발견자, 또는 창조가로 지칭한다. 2) 시의 형태 무한다면체의 시는 논작에 따라 여러 갈래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운율적인 면 내용적인 면 시대적인 면 등으로 대변될 수 있다. 운율적인 면에서는 정형시, 자유시로 구분할 수 있으며 내용적인 면을 기준으로 대변한다면 서정시, 서사시로 그리고 시대를 원칙4으로 나눌 때는 고대, 근대, 현대등으로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고정불변의(관례에 따른) 원칙은 아니다. 구분자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하게 또는 세부적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러나 팔자가 섬세하게 세분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시 읽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혼란스러워 현낙적 세분을 퇴하고 간략하게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편의상 정형시와 자유시의 형태에 국한시키고자 한다. (가) 정형시 운율을 기반으로 하는 고정된 틀을 갖춘 시를 말한다. 운율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 중 하나로서 시의 형태미를 이루는 기본 틀이 된다. 이것은 또한 서정시의 기반이 되는 요체이며 언어질서를 제한하는 언어의 율동이다, 정형시의 기반을 이룬 이 운율(음악성)은 고조선 시대의 여성 여옥이 공후라는 악기에 실은 애절한 가락의 노래말로부터 시작된 공무도하가를 출발점으로 삼고 잇다. 이러한 노랫말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형시로 장착이 되었으며 정형시의 자구나 음수율이 일정하게 고정된 것도 노랴 가사에 알맞은 짜임새에 기인한 다고 볼 수 있다. 이 짧은 형태의 정형시는 3 4 4 4, 3 4 4 4, 3 5 4 3 의 자수율을 기본형태로 삼는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기분형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종창의 초구 3자와 다음의 5자는 지키도록 지키도록 되어있는 것이 시조다. 정형시(시조)의 운율이 오늘날 자유시의 바탕이 되어있다. 자유시의 시행이나 언어배열을 운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보자들은 정형시를 먼저 익힌 후에 자유시로 가는 것이 운율 훈련을 위해선 자연스런 순서가 될 것이다. 여운과 완결의 면에서 정형시를 능가할 시가 없기 때문이다. (나)자유시 정형시가 전통적인 일정한 형태적 틀에 얽매여 있다면 자유시는 이름 그대로 일정한 형태적 구속에서 벗어난 시를 말한다. 말하자면 외적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체험내용에 따라 독자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즉 정형시가 작은 고정된 형, 고정된 운, 고정된 억양율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시인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각자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의 시다. 그러나 시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구비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행이나 연 구 분은 물론 중요한 요소인 운율(내재율)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체험의 폭이 증폭되고 다원화됨에 따라 작은 그릇의 한정된 정형시에 만족하지 못한 시인들이 자유시를 개발해 냈으나 자유시에도 다양한 체험을 완전히 담아 낼 수 없다. 자유시라고 해서 무한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한히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로 하여 산문시라는 것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행 연의 구분이나 운율의 구속까지 모두 벗어버린 이름 그대로 가까운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시와 산문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있다. 전혀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시다. 3) 시의 요소 시가 되려면 구유 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이를 자잘하게 세분한다면 역시 삶속에 체험되는 모든 사물에 명칭을 부여하여 열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관례대로 몇 가지 즉 언어, 상상, 비유 등으로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가) 언어 시는 말의 예술이며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도 한다. 그만큼 언어가 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죽은 시 살아 있는 시로 가름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시속에서 일상어와 시어를 구분하도 있다. 그러나 언어가 처음부터 시어와 일상어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모두가 일상어이고 시에 쓰이는 언어도 일상어로 적조 된다. 따라서 그 일상어는 하나 하나 명확한 독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 속에 도입된 일상어, 그 자체로는 시적가치를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문맥사이에 놓여서 특수한 작용을 하기 위해 다른 언어와 연결되어 특수한 수법으로 특수하게 사용 될 때 비로소 시어로 전이되어 특수한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일상어를 시어화 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독자들은 시어화 된 언어를 통해 시인의 체험을 추경화하게 된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시 읽기 에 있어 시어로 전이 되기 이전의 일상적 의미, 즉 낱말의 외연적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서 전이된 시어 속의 효과 즉 상징성, 암시성 또는 함축성(내포적 의미)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어로 전이된 언어(시)를 읽을 때 가장 두드러진 현상 즉 표현이 매우 구체적이며 미적기능을 지향하고 있으며 논리적 관계가 표면화되지 않고 표현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쌓인 비 울이 풀렸다.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땅 위의 무덤 같은 내 초막을 덮쳤다 졸시 < 봄꿈.1호> 중에서 올 이란 낱말은 일상적으로 실이나 줄의 가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을 일상어로 읽으려면 이 시에선 합리성이 없다. 비는 실이나 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대신에 빗방울 이라고 쓴다면 합리성은 있어도 암시성은 없어진다. 따라서 올이 풀렸다 라든가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라는 표현은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고뇌 라는 일상어 대신 비 라는 상징성을 거느린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미적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 심상(Image) 복합 구조물인 시의 몇 가지 요소 중 비교적 비중이 큰 것이 심상이다. 심상을 영상(暎像) 또는 사상(寫像)이라고도 하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감각적 체험을 해석하는데 사용된 용어 로 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이 전용한 이래, 문학에서는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가령, 백합꽃 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 의식 속에 하얀 꽃송이가 감각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백합꽃 이라는 이 언어가 심삼 곧 이미지인 셈이다. 문학용어 사전에도 이미지를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되도록 자극하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구상어 는 모두 이미지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두 갈래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포괄적 개념적 개념과 협의적 개념이 그것이다. 포괄적 개념은 모든 대상의 윤곽을 의식 속에 환기시키는 것을 말하고 협의적 개념은 시각적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협의적 개념의 그것은 눈썹 이라는 언어는 이미지가 될 수 없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달 같은 눈썹 한다면 이미지가 된다. 눈썹이 반달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적 체험을 재생시키는 언어는 모두 이미지에 속하지만, 비유적 표현이 시로써는 생동감이 지배하는 이미지에 와 있다. 그것은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지능도 듣기 보다 보기 쪽으로 발달한 연유로 보인다. 그러므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현대시의 육체라 할만 하다. 그리고 보여주는 시는 감각적 체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비가 온다 라고 하면 이미지가 없는 사실기록의 직접진술에 불과하다. 비가 어떻게 오는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집 전체를 차지하고도 배가 고픈/ 비가/ 사방으로 갈기를 뻗어/ 떠 내 려오는 비명을 걷어 감키고도 배가 고픈/ 비가/ 등줄기를 치켜들고 바람이 되어 달린다// 라고 한다면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시는 직접진술을 피하고 그림을 그려 보여주듯하는 묘사로 일관 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A사물을 끝까지 A사물로 끌고 가는 것보다 B사물로 바꿔버리는 쪽이 매력을 더한다. 여기서는 비가 바람으로 전이된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재구성이나 전이 시키지 않으면 사실의 기록 이 될 수 밖에 없다. 사실의 기록은 시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재구성과 전이 는 시의 중요한 수사적 기능이다. 여기서 다양한 이미지의 기능을 요약정리 하자면 구체적 묘사를 위한 사물성 환상적 기능 감각적 호소력 개념, 관념, 상사의 산물화 등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다) 비유 우리의 언어는 한정적인데 반해 사물의 종류는 무한정적이다. 게다가 사물은 모두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개성을 제대로 나타내려면 비유법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란 비교를 통해서 사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수사의 일종이다. 다시 말하면 비유는 한정적인 언어가 비유에 의해 언어의 한계성을 초월하여 무한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사법이라 할 수 있으며 시에서는 중요한 기능으로 꼽힌다. 이러한 방법은 간접표현이기 때문에 매우 암시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사물을 표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알고있는 기지의 사물을(객관적 상관물)끌어와서 비교함으로써 미지의 사물을 파악 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유는 비교를 통한 사물해명의 수사법이다. (유의)이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비유의 요소는 본의, 유의, 유사성, 이질성 등이며 본의, 유의가 유사성, 이질성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비유의 사명은 독특한 인식과 새로운 발전을 기성품인 언어를 가지고 비교를 통해 의미의 변화 또는 언어전이를 모색함으로써 새로움을 획득하는 데에 있다. 또한 비유에는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인유, 의성어, 의태어, 의인법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은유다. (라)직유 사상(寫像)을 선명히 드러내는 강의적 효과가 있어 명유라고도 하는 이 직유는 유사하지 않은 두 개의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의 언술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비교하는 사물과 비교되는 사물이 처럼, 마냥, 같이, 듯이, 만큼, 보다 등이 비교조사에 의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의 네 요소가 모두 표현화 되며 또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직유의 종류는 기술적 직유(단일, 확장)와 강의적 직유가 있으며 구성에 있어서는 대체로 3단계의 구성법을 지니고 있다. 그 1단계는 무덤같은 초막 처럼 원관념, 보조관념이 한 단어로 결합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2단계는 바아뒤 점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와 같이 한 문장으로 결합되는 경우이고 3단계는 기둥과 함께 나둥그러져/ 머리에 대못으로 박히는 비의 부리를 / 두 주먹으로 짓 으깼지만 / 머리칼 하난 남기지 않고 / 벌초나 하듯 싸악. 쓸어 쥐며 / 바다 위 점 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 와 같이 한 연으로 이뤄지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는 비교하는 두 사물이 동직성이기 보다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발견하여 연결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다. (마)은유 메타퍼(metaphor)라고도 말하는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연결이 없이 바로 직결하는 수사법이다. 그러므로 암시성이 강하며 암유(闇喩), 간유(肝油)라고도 한다. 그것은 비유의 요소 중 원관념, 보조관념만 밖으로 드러나고 이질성, 유사성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매우 함축적이다, 따라서 현대사에서 압도적으로 쓰이는 가장 비중이 큰 요소인 만큼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비유의 세계를 넓게 열어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원형을 유지하지 않는 것도 비유와 다른 점이다. 그것은 보조관념이 원관념을 다른 의미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제3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것을 언어적이 라고 하며 전이된 언어 속에 함축된 상징적 의미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은유야 말로 독자의 상상력 개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시인의 능력을 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전이로 이뤄지는 새로운 의미의 언어는 언제나 1회적이란 점이다. 그 속은 같은 언어를 반복 사용할 땐 아무리 새로운 언어였더라도 낡은 언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제나 예리한 언어감각으로 비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새롭고 참신한 언어를 계속 창출해 내야 한다. 은유의 종류는 병치, 치환, 확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4) 시의 경향 시대변천에 따라 인간의 감수성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인간의 감수성에 따라 시의 흐름도 변화를 보이게 마련이다. 인간의 감수성은 낡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메마르고 딱딱한 고전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반대되는 몽환적인 감정의 세계인 낭만주의를 발견해 낸 것이다. 이것은 영접을 지향하는 무한의 세계를 노래하며, 이러한 꿈과 이상이 현실에 실현되지 않을 땐 허무에 빠지게 되고 허무의식으로 탄식과 통곡을 거느린 우울한 정서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이러한 세계에 오래 있지 못한다. 또 다른 세계로 비약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서의 강렬성을 작품 속에 담아내던 낭만주의에서 구성의 강렬성을 강조한 이미지즘 시가 고개를 내밀게 된 것이다. 감정이나 관념 등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사물화 시켜서 사물의 유추에 의해 이미지를 전개 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시인은 새로운 세계를 시도하게 된다. 이간의 경험은 복잡하고 다원적이며 이러한 다원적인 경험을 우리는 모두 정신 속에 저축하게 되는데, 이런 한 이질적인 여러 경험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예술적 정서로 승화시켜 형이상 시를 만들어 내게 된다. 형이상 시는 상상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것은 형이상적 세계, 즉 영적세계를 탐색하게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현실주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꿈 과 자동연상 의 세계인 것이다. 현실은 거짓으로 가려져 있어 진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가치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우주와 관계를 맺는 4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엔 의식적인 논리나 계산이 개입될 수 없으며 완전히 무의식이 이미지를 과감하게 그대로 기술토록 방치하는 자동기술법에 의존한 시다. 그러므로 특수한 인간 정신의 내부를 투사한 시로 볼 수 있다. 이어서 단명하지만, 실험적인 경향의 시도 순환궤도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젊은 계층에 유행되던 포멸, 투사, 해체 등의 유형이 그것이다. 해체 시는 한 때 젊은 시인들을 매료시킨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형태의 해체, 언어의 해체, 의식의 해체 등으로 기형적인 시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시 속에 단편적인 스토리를 삽입하는 시 소설 이란 시도 시도되고 있다. 어떻든 시는 시여야 하고 시는 결국 인간탐구 라는 인식에 촛점을 맞추어 읽어야 한다.
떠남과 안주의 아이러니 - 김지향의 시세계 황정산(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 24권의 시집을 상재한 김지향 시인은 연륜과 경력에 상관없이 여전히 젊은 시인이다. 그는 이미 구축한 자신의 편안한 시 세계 속에 안주하여 행복한 노년을 구가하지도 않고, 하나의 경향에 자신을 옭아매어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를 결단코 거부한다. 그의 시는 세상의 변화를 호흡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해 나간다. 그래서 그의 시는 항상 새롭고도 젊다. 이러한 이유로 김지향의 시를 두고 “모더니즘의 언어적 참신성”, “멈추지 않은 자기 부인의 치열함”,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쓰기” 등의 평가가 있어왔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두 흡수하며 현대문명의 속성을 그 깊이에서 바라보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최근 김지향 시인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평가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모두 김지향 시인의 시가 가진 중요한 특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들은 김지향의 시가 보여준 언어의 현상적 모습만을 보고 내린 피상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무엇이 김지향의 시를 계속 새롭게 갱신하도록 하고 있는지 김지향의 시는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변해 가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계속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참신함을 추구해 가는 것은 떠나기 위해서이다. 아주 오래 전에 쓰인 그의 초기시 한 편을 두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뜰이 일어앉는다 바람이 눈 뜨는 탱자나무 가지가 가볍게 홰를 친다 어제 가을이 퇴원한 아침뜰에는 다시 먼지들이 부시시 걸어나오고 떨어져 누운 마지막 나뭇잎이 서리를 털고 있다 바람을 깔고 앉아 두 아이는 황금빛 동화를 풀어논 황금빛 그림책에 황금햇살 몇 개를 마저 잡아넣고 있다 우유컵을 들고 망설이는 내 등 뒤로 교과서 같은 아버지의 옆얼굴이 드러난다 아침 신문이 펄럭이는 뜰 밖에는 다시 쓰러질 거짓말들이 꼬리를 치고 어제 저녁 퇴원한 가을의 잔해들을 방금 첫차로 내린 겨울의 손이 쓸고 있다. - 전문 아름다운 시다. 이른 겨울 아침의 풍경이 아주 감각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름다운 아침 뜰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태도이다. “뜰이 일어나앉는다”라는 첫 구절부터 우리는 떠나고자 하는 시인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은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 뜰에서 나가고자 한다. 아니 어쩌면 시인에게 이 뜰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떠나고자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우유컵을 들고 망설인다. ‘교과서 같은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 같은 아버지는 편안하고 안정된 현재의 삶이기도 하고 그 삶을 유지하는 지배적인 질서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렇듯 안주와 떠남 사이에서 방황한다. 떠나고자 하는 시인의 갈망은 다음 시에서는 훨씬 강렬하게 나타난다. 하늘에 쌓인 비, 올이 풀렸다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땅 위의 무덤 같은 내 초막을 덮쳤다 집 전체를 차지하고도 배가 고픈 비가 사방으로 갈기를 뻗어 떠내려 오는 비명을 걷어 삼키고도 배가 고픈 비가 등줄기를 치켜들고 바람이 되어 달린다 비켜, 비켜, 소리 지르며 넘어지는 집 기둥을 잡고 버티던 나는 기둥과 함께 나둥그러져 머리에 대못으로 박히는 비의 부리를 두 주먹으로 짓으깼지만 머리칼 하나 남기지 않고 벌초나 하듯 싸악, 쓸어 쥐며 비가 땅 끝으로 가는 중이다 삶의 필름이 말끔히 씻겨 백지가 된 나는 땅 끝의 풍경을 백지에 주워 담아 새 필름으로 땅 끝에서 하늘가는 삶을 새로 시작하려다가 깨고 보니 애석함뿐인 황홀한 봄꿈이었다. - 전문 위 시에 나오는 비바람은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다. 그것은 열정에 몸을 맡기는 파괴적인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예술혼에 몸을 불태우는 지난한 삶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비바람은 자유롭다.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주의 삶이 쳐놓은 담장과 울타리를 초월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제까지의 삶을 백지로 만들고 땅에서 하늘까지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혁명적인 변화의 힘이다. 그것은 기존의 삶이 강요하는 억압적인 삶의 모습도 아니고 그저 여기저기 떠돌며 정처 없는 방황을 일삼는 허망한 욕망의 연쇄도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개진해나가는 창조의 행위이며 바로 문학과 예술의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은 안정과 평안을 뒤흔드는 위험한 일이기에 시인은 쉽게 거기에 휩쓸리지 못하고 ‘집 기둥’을 잡고 버티고자 한다. 여기에서 집은 당연히 안주의 상징이다. 그 안주의 터전을 벗어나 혼돈 속에 자신을 던지는 행위는 ‘무덤 같은 내 초막’을 벗어나 새롭고도 흥미로운 삶의 시작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봄꿈’으로만 꿀 뿐이다. 시인은 결국 또 다른 욕망의 대체물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바로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의 세계가 있다. 바람도 빗겨간 가슴 넓은 산줄기를 안고 안개가 명주실 치마폭을 말아 올리는 중이다 햇살이 아득히 먼 발아래서 자꾸 바스라진다 새파란 가슴을 드러낸 산줄기들 바람에 쓸린 기러기 한 두름 안아드리고 있다 방금 마악 허공 위의 하늘을 찢으며 치솟은 우주선 한 채 우주선을 타고도 세상을 내다보는 사람들 손엔 손가락만한 디카폰 하나씩 들려있다 디카폰은 잽싸게 구름 살을 헤집고 옆으로 지나가는 세상 풍경을 드르륵 밑줄을 그으며 풍경눈알에다가 새겨 넣은 의미를 몽땅 배껴낸다 우주선이 우주정거장에 발을 내릴 땐 우주에서 발사하는 발통 없이도 시간을 잘 굴리는 비행접시 몇 채 세상 창공으로 떠난다 바람소리만 걸려있는 지상정거장에는 수많은 어린왕자들이 버들가지처럼 가느다란 키를 휘청이며 별을 찾고 있다 (세상에서 하늘 위의 하늘로 오가는 사람들 일찌감치 육체에서 육체 위의 육체로도 들락거리고 있었네) - , 전문 2000년 이후 김지향 시인은 현대적인 디지털 문명을 즐겨 소재로 삼고 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문명비판적 의미를 간취해내고자 한다. 물론 그러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인이 왜 이러한 디지털 문명에 관심을 가졌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벽허물기’라는 제목이 잘 말해준다. 시인은 디지털 기기들에서 새로운 탈주의 가능성을 본다. 우주선과 디카폰은 그러한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명의 생산물들이다. 세상을 벗어나 세상을 한눈에 개관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지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꿈꾸는 해방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은 세상에서 하늘로, 육체에서 육체로 소통하는 벽허물기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현대 문명의 산물들이 절대적인 해방과 소통을 안겨 주리라고 애초에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 시대, 디지털 시대에도 각자의 고립된 별을 찾는 불행한 어린 왕자들이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을 넘나들고, 시공의 벽을 허물어 존재들 간의 소통의 가능성이 점점 무한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모두 안주해야 할 자신의 터전을 찾아나서는 약한 존재임을 시인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누군가 길의 입에 손을 넣어 스위치를 끌어당긴다 길의 두루마리가 책장처럼 좌악 펴진다 소리들이 깔린다 소리들을 올라탄 한 두름의 입, 입들을 싣고 길의 지느러미가 출렁이는 공기를 헤엄쳐나간다 (이젠 길 스스로가 세상을 떠메고 간다) 입들은 길이 구불텅, 고개를 넘을 때마다 와-와-와- 길게 소리를 흘리며 구름 속에 펼쳐진 책 밖의 책을 읽는다 몇 줄의 기러기가 구불구불 써 놓은 가을 편지도 읽는다 길이 출렁거리는 공기에 얹힐 때마다 입들은 꺼내보지 못한 소리도 모두 꺼내어 크게 크게 읽는다 입들은 너무 많은 소리를 먹어 숨을 몰아쉰다 잠시 소리들을 게워놓고는 세상 한 바퀴를 돌아온 지느러미를 품속에 집어넣는다 나는 문득 입들이 안쓰러워져서 휴대폰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휴대폰의 전파에 길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 길은 ‘유비쿼터스’라는 말뜻처럼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 길은 우리 몸의 일부분이 되기도 하고 우리들의 욕망이 되기도 하면서 마침내 ‘길 스스로가 세상을 떠메고 간다’. 이렇듯 휴대폰은 현대인의 소통과 해방을 위한 발명품이다. 시공을 넘고 존재를 넘어 떠남과 방랑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효율적인 도구인 셈이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구속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디지털 문명이 우리를 이제까지의 일상에서 벗어나 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소통을 이루게 해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더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구속하고 틀 지운다. 벗어나 자유롭게 방랑한다는 것은 단지 디지털이 만들어낸 욕망의 가상적 대체물을 통해서일 뿐, 이 디지털이 만들어낸 울타리와 틀은 훨씬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그래서 시인은 휴대폰의 스위치를 끄는 미미한 저항을 해본다. 그러나 이 저항이 성공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오늘도 디지털을 통해 탈주를 감행하고 다시 그 세계에 붙들리는 아이러니 속에서 수없이 긴장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긴장이 김지향 시들의 근본적인 동력이다. 이러한 시적 동력은 이 지면에 실린 신작시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밤새 길이 혼자 길을 걷는다 길을 신고 가던 수많은 발을 내려놓은 밤엔 불빛만 태우고 길이 혼자 걷는다 한참 걷다보면 옆구리에서 자꾸 찢겨나가는 길이 또 길을 신고 혼자 걷는다 길이 길을 이고 걷는다 길 위의 길로 또 길이 혼자 걷는다 깊은 밤엔 어둠만 태우고 하늘을 신고 길이 걷는다 머리 위엔 어둠을 걷어내는 빛이 꽃 덤불을 이룬 봉화들이 길이 되고 있는 하늘 밖의 길 밖의 길로 길이 혼자 끝도 없이 걷는다 - 전문 시인이 불면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안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편하게 쉴 정신적 터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불면은 떠남의 연속이다. 그 떠남은 떠난다는 사실이 떠나게 만들고 떠나는 행위 자체가 떠나야 할 길이 된다. 안주하지 못하고 떠나야 함은 시인의 운명이고 김지향 시인의 예술적 본질이기도 하다. 인간은 정착을 하며 문명을 만들었다. 한 곳에 머물러 농사를 짓고 울타리를 치고 가축을 기르고 그곳에서 역사를 이루고 제도와 문물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경제적 번영과 현대 문명은 모두 이 정착의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정착의 삶은 인간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해 준다. 높은 담을 치고 든든한 집을 지어 비바람과 눈보라 그리고 난폭한 들짐승을 막아내고 함께 모여 생활함으로써 노동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비약적인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윤리나 종교 등을 만들어 함께 사는 질서를 세우고 공동체 내 성원들 간의 사랑이 가능하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정착의 삶은 인간에게 억압과 복종을 강요한다. 한곳에서 무리지어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이 생겨나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구별이 생겨나고 폭력이 일어나고 법과 질서를 통한 통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 권력의 지배를 받아들여만 한다. 그런데 이런 정착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우리 인간의 삶에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은 유목의 삶이다. 한군데 머물러 영토를 구축하지 않고 끊임없이 떠돌아 다니는 삶의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항상 가혹한 삶의 환경을 감당해야 하지만 하나의 질서와 권력에 편입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특징인 삶의 방식이다. 인간의 집단무의식 속에는 이 두 가지 삶의 방식과 지향이 동시에 들어있다. 안정과 평안을 추구하면서도 끝없는 방랑 속에 자신을 내모는 자유를 꿈꾸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특히 시인은 남아있는 방랑과 자유로 꿈틀대는 유목민의 피를 버리지 못한다. 누구보다도 시인으로서 유목민적인 피를 가진 김지향 시인은 자유를 꿈꾸기 위해 떠남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를 쓴다. 그러나 또 한편 완전한 해방을 가져다주는 절대적인 탈주와 방랑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오늘도 새로운 길을 찾는다. 그의 시가 젊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21    안수환시인-이솔 시의 사물, 그 선명한 물빛 댓글:  조회:369  추천:0  2022-09-25
이솔 시의 사물, 그 선명한 물빛 ​ 안 수 환 1 사물은 정제된 질서의 전면일까. 이솔의 「첼리스트를 위한 기도」를 읽어보면, 사물 (ʻ첼로ʼ)로부터 오는 응분의 진동이 길고긴 포물선 도면을 그려낸다. 이는, 시를 쓰는 자의 몽상이 어떤 사물의 문턱과 어떻게 겹치고 있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려주는 부분이랄 수 있다. 그것은, 사물은 제자리에 있어도 가만있지 않고 흔들린다는 점이었다. 시인의 경우, 사물은 부지불식 중 실재에 대한 어형語形의 곡용曲用 (즉, 체언의 꼬리에 붙는 격조사)이라는 것이 극명히 드러난다.   첼로의 현을 훑어 내리는 활   시인의 사유는 사물운동의 표면을 따라간다. 시인의 문맥은 정관靜觀 속에 파묻히지 않고 혹은 불가지론의 묵시적 잠언과 제휴하지 않고 사물 하나하나의 풍모를 묘사해가며 사물로서의 보선補繕 그쪽을 잠깐잠깐 넘겨다본다. 「첼리스트를 위한 기도」의 전문을 읽어보자. 첼리스트는 가장 큰 포옹을 할 수 있다 비스듬히 앉아 발끝을 세우고 포옹의 자세를 만든다   여인의 팔에 안긴 피에타 예수의 주검을 받쳐 안은 성모마리아 무릎에 안겨 늘어뜨린 손등의 그 못자국을 비탄과 슬픔을 긴 활은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활이 미끄러지며 끓어오르는 소용돌이를 달랜다 -아가야, 염려마라- 자세를 다잡고 두 팔에 힘을 조여온다 -너를 낳았다- 모두 내어주고 한아름으로 받아 터질 듯 너를 낳았다   첼로의 현을 훑어 내리는 활 울림통을 흔드는 노래 달려 가 포옹으로 안기는 황홀한 기도   보자. 음악을 듣는 자로서의 시인의 청각은 지금 몰각의 지점에 가 있다. 시인은, 첼리스트가 첼로를 끌어안은 ʻ가장 큰 포옹ʼ을 본다. 시종일관 시인의 몰입은 첼로의 벽화壁畵를 바라본다. 첼로의 선율이 아닌 ʻ첼로의 현을 훑어 내리는 활ʼ을 본다. 시인은, 첼리스트가 첼로를 끌어안은 포옹 그 자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는, 사물의 보선 어떤 곳을 들여다보더라도 그 자리엔 어떤 음률이든 음악이 들어앉을 공간이 없다. 시인은 벌써 첼로의 음률을 사물의 곡용으로 고쳐 듣고 있었던 것. 그것은 첼리스트의 비탄과 슬픔이었다. 어느 순간 그러나 첼리스트의 비탄과 슬픔은 첼로를 끌어안은 ʻ가장 큰 포옹ʻ으로 바뀌면서 사물의 공허를 뛰어넘는다. 첼리스트가 첼로를 끌어안은 자세를 보고난 다음 시인은 이곳에서 ʻ여인의 팔에 안긴 피에타ʼ를 보며, ʻ예수의 주검을 받쳐 안은 성모마리아ʼ를 보며, 또 성모마리아의 무릎에 안긴 예수 손등의 ʻ못자국ʼ을 본다. 여기서부터는 시인의 몽상 곁가지에 돋아난 배아胚芽의 눈빛이 활짝 열려버린다. 이때 시인은 공허하기 때문에 ʻ가장 큰 포옹ʻ을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러나 시인이 바라본 세계는 시인 자신의 공허보다도 더 큰 사물의 공허를 보고 있었던 것. 사물의 공허라니. 이리 놓아도 흔들리고 저리 놓아도 흔들리는 사물들의 편산遍散. 시인은 비로소 사물의 공허를 보고 있었던 것.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시인은 그와 같은 공허의 반대쪽에 서있는 ʻ가장 큰 포옹ʼ의 대대待對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첼로의 울림통을 흔드는 노래, 그 노래 곁으로 ʻ달려 가 포옹으로 안기는 황홀한 기도ʼ로서의 독창력이었던 것.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사물 (ʻ첼로ʼ)의 형상 혹은 ʻ포옹ʼ의 사실성이 정신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바로 그 파동이었던 것. 그러기에 이솔 시인은 시간의 궁극 뒤편에 머물러 있던 자신의 시선을 끌어당겨 사물 본색의 앞자락에 매놓고, 그런 다음 그 조형물로부터 달려오는 물체의 계기성繼起性에 대하여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며 화답한다. 그것은 사물로 인한, 사물의 가득찬 시간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살뜰한 감회를 숨기지 못하는 조바심일 것이다.   2 이솔이 본 사물의 범주는 그러나 시간의 실재 ʻ안ʼ에 혹은 ʻ위ʼ에 흘러넘치는 동태적 태몽胎夢을 내보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공간보다도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따라서 가령 비현실의 경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사물은 수많은 일상의 의당宜當 (그것이 혹여 불운의 더께로 얼룩진 옷감일지라도)과 손을 잡은 뒤 차곡차곡 질서의 중심권으로 들어온다. 「히말라야 독수리와 날다」를 읽어보자.   사나이는 페러글라이더로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다 상승기류를 타고 꽃으로 핀 날개 앙다문 빙하협곡의 준엄한 설산들의 침묵 속으로   줄을 당겼다 풀어놓으며 기류를 타는 사나이 상승기류 속에서 함께 날고 있는 히말라야 독수리 페러글라이더와 설산 독수리를 따라 날지 못하는 옷을 벗고 날개를 펴는 또 하나의 나도 히말라야 독수리의 묵언을 들으며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 지는데 별이 마구 빛을 쏟아내는 하늘을 날며 계단식 밭이나 추수를 끝낸 집들 떼로 몰려다니는 양떼들이 까마득한데 사나이는 페러글라이더의 줄을 다시 잡아당긴다 설산이, 히말라야 능선이 눈 아래 있다 히말라야를 넘고 있다   바람이 분다 이상기류가 흐른다 소용돌이 너머 히말라야가 무슨 소리로 말하고 있다 독수리가 솟아오르고 사나이가 따라 솟아오르고 새로 날기 시작하는 나도 무어라 웅웅거리는 하늘 속으로 솟구친다 먼저 떠난 나를 찾아 이미 그곳으로 날고 있는 독수리와 함께   시에서는, ʻ독수리ʼ와 페러글라이더로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는 ʻ사나이ʼ와 그리고 ʻ나ʼ는 하나로 박제剝製된 몸통을 세우며 하늘로 함께 날아오르는 비상의 몸짓을 체현한다. 이들 비상은 히말라야의 ʻ앙다문 빙하협곡의 준엄한 설산들의 침묵ʼ 앞으로 달려가 일순 서로서로 옷깃을 잡아준다. ʻ히말라야 독수리의 묵언ʼ을 그대로 쏙 빼닮은 설산의 백白 앞에서 ʻ나ʼ는 마침내 ʻ새로 날기ʼ 시작한다.   히말라야 독수리의 묵언을 들으며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 지는데   ʻ내ʼ 자신의 은익을 그렇게 드러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은익의 시론적試論的인 노출은, 시인이 이곳에서 추구하고 있는바 물체의 표정으로 드러나는 그 형상의 가시적 인영印影을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물은 그것이 어떤 언어와 연결된 표상을 내보일지라도 자신의 몸에 맞는 기표가 있는 이상 그 사물이 그 사물일 수밖에 없는 기의記意를 따로 숨겨두는 법이 없다. 즉 시인의 입 밖으로 새나오지 않은 언표는 그것이 폐물이라면 모르되, 시인의 입술에 묻은 기물器物은 한사코 시인의 입 밖으로 달려 나오기 마련이다. 아직은 몽상의 조응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단계. 시는, 이 시간의 곡면 위로 고개를 들고 비유와 상징과 함축과 집합의 현상학적인 울림을 몸에 붙인 채 불현듯 달려온다. 시인이 어떤 물체를 보게 되면, 물체는 즉시 시인의 앞가슴을 짓누른 뒤 곤충의 비모飛貌처럼 날개를 펼치고 사뿐히 그 물체 정강이 앞으로 내려앉는다. 물체의 복사는 없다. 「빨간 꽈리를 담은 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읽어보자.   종이찰흙으로 은빛 바구니를 만들었다 종이를 잘게 찢어 물을 부어 삭히고 풀반죽으로 크게 타원형의 둘레를 올려 빚으며 돌아가며 조약돌 조개껍질을 파도결로 박아 빨간 똬리 한 움큼 담아 TV 옆에 놓았다   동이 트면서 왁자한 소리에 깨어났다 용도폐기된, 시로 그려내지 못한 낙서 90% 할인 등산복 컬러광고지 10년도 한참 전의 가계부 몇 장 미사일 시험발사 신문기사 조각조각   바구니를 돌아나와 안개빛 파도로 밀려오는 태어나지 못한 시어를 부르는 소리 가난한 장바구니 이야기가 걸어나오고 미사일 전문가의 어려운 해설이 우주궤도에서 어지럽다 국민유니폼이 된 등산복 상표들 “야호!” 소리 온갖 소리의 꽈리를 불고 있다   해안을 따라 조개를 줍고 조약돌을 바다에 던지며 바다 저쪽 미소를 향해 부르는 소리는 목이 멘다 꽈리 소리 화음을 넣어 그린 정물화 TV속 오늘의 소리까지 가득 담겼다   이솔 시의 문맥에는 개념 (즉, 주장)이 없다. 개념이란 명사가 일반화되고 (즉, 집합의 내포적 방법), 관계가 추상화되는 (즉, 집합의 외연적 방법) 문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한다면, 명사는 질화質化qualification와 양화量化quantification의 단계를 거쳐 일반화되는바 그 단계를 바라보는 눈빛, 그리고 관계가 추상화될 때 개념concept이 나타나는바 그 개념을 데려오는 눈빛 그것들이 없다는 말이다. 이솔 시에는, 집합이 있을 뿐이다. 집합을 만드는 경우, 예컨대 이솔 시의 문맥에 등장하는 낱말 (즉, 요원要員individual) 하나하나가 모여 어떤 개념을 만들었다고 치자. 이때는, 시의 문맥 속에서는 내포와 외연이 논리적으로는 서로 대칭적 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실제로는 이 대칭적 관계가 제대로 삽입되는 경우는 희박하다. 왜냐하면 예를 들면, 수數라는 개념에서는 무한의 요원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까닭에 외연은 나타나지 않고 내포만 드러날 따름이다. 보자. 이솔 시인이 ʻ빨간 꽈리ʼ를 호출할 땐 그 자리엔 즉시 ʻ빨간 꽈리ʼ가 달려 나오고, ʻ은빛 바구니ʼ를 호출할 땐 그 자리엔 또 ʻ은빛 바구니ʼ가 달려 나온다. ʻ 꽈리ʼ와 ʻ바구니ʼ에 붙어있는 내포의 면적도 그리 넓지는 않다. 물체들은 물체들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물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빛의 아들들이다. 그것들은 하늘의 존재가 신성하듯이 시인의 안목과 나란히 겹치면서 대지의 자리 아무데나 떠돌아다니며 인간의 삶과 섞이다가는 이따금 천국의 지평으로 솟아오른다. 이솔의 정물은 그런데 그렇더라도 결코 경배의 대상으로는 몸을 바꾸지 않는다. 생생한 정물의 안뜰. 본래, 형태와 색채와 감정과 영혼 그리고 시적 표현으로서의 모든 감수성은 그것이 지상의 풍경이든 천국을 향한 의미심장한 어느 협화음이든 또 무의식의 근원에 빠진 심원한 심층심리일지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있는 공간으로서의 발호跋扈에 불과한 것들이다. 이는, 실재하는 것의 덧없음일 것이다. 시인이 더욱더 물체의 단단함, 물체의 즉각적인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저와 같은 요설饒舌로서의 몽환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의 보폭은 짧다. 특히 이솔 시의 물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눈팔지 않은 (가령, 부차적인 이미지), 시인의 유비들 속엔 ʻ순간ʼ을 이야기하는 관점 이외에 다른 어떤 ʻ낯선ʼ 낱말들도 끼어들지 않는다. 시인의 ʼ꽈리ʻ와 ʼ바구니ʼ가 이야기하는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   바구니를 돌아나와 안개빛 파도로 밀려오는 태어나지 못한 시어를 부르는 소리 가난한 장바구니 이야기가 걸어나오고   시인이 붙잡고 있는 ʻ순간ʼ이 일러주는 삶의 유비는 또 이렇게 드러난다.   용도폐기된, 시로 그려내지 못한 낙서 90% 할인 등산복 컬러광고지 10년도 한참 전의 가계부 몇 장 미사일 시험발사 신문기사 조각조각   시인은 꿈을 외면했다. 적어도 꿈의 내용에 상응하는 공기와도 같은 혹은 호수와도 같은 찬연한 불빛 따위를 외면한 채 (즉, 물체의 활성화로부터 등을 돌린 채) 그 물체의 감각질 아래 좀더 낮은 비탈길로 내려선다. 시인의 손에 잡힌 신비가 있다면, 더욱이 시인의 폐부로 파고들어온 회한이 있다면 그것은 낯선 낱말 대신 방안 가득 아무렇게나 눈에 띄는 일상의 난마亂麻들 (즉, ʻ신문기사 조각조각ʼ)일 것이다. 그것은 또 고독감일 것이다. 정신현상학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시인의 우울일 것이다. 시인의 비탈길은 그런데 「트럼펫 소리는 쇳소리가 난다」에 이르러 더욱 가파르게 진행된다.   습관처럼 모래사장에 손가락 그림을 그린다 비행운이 하늘에 그린 오선지가 길게 떠 다닌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는 부르다 쓸쓸해 진다 제각각 제 소리만 고집하는 불협화음으로 매달리는 음표들의 반란 현대음악은 날것을 먹던 그때를 추억한다   귀를 찌르는 트럼펫 소리가 달려온다 둥글고 긴 코를 틀어올려 트럼펫을 부는 象牙가 아름다운 그는 식어가는 작은 생명 앞에서 긴코로 흙바람을 일으킨다 몇 마리의 코끼리들도 떠나지 못하고 한 옥타브 올려 쇳소리를 뽑아낸다 목이 메일 때는 쇳소리가 난다 트럼펫으로 소리지르거나 까치가 갑자기 날아오를 때 아프리카는 쇳소리를 낸다 먼 초원을 향한 무거운 발걸음까지   전동차가 레일을 깎는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쇳소리의 긴 꼬리 긴코로 부는 트럼펫 소리를 속으로 듣고 있다   코끼리의 긴 코로 부는 트럼펫 소리는 ʻ쇳소리ʼ를 낸다. ʻ쇳소리ʼ는 ʻ제각각 제 소리만 고집하는ʼ, ʻ현대음악의 날것ʼ과 같은, 이 땅 위의 ʻ불협화음ʼ 즉 아무것도 제자리에 서있지 못하는 혹은 아무것에도 발붙일 수 없는 미궁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비탄의 알레고리이다. 이솔은 분명 ʻ견고한ʼ 물질의 시인이다. 시인이 바라보는 바람은 휘어져 있고, 시인이 바라보는 도시 아이와 아파트는 휘청거리며 (「휘청거리는 새」), 시인이 바라보는 화살은 방향이 없다 (「팽팽함이 좋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물체는 더 무거워져 있고, 물체의 박동은 더 팽팽해져간다. 물체의 박동이 그렇게 팽팽해져간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그 물체의 박동을 시인의 체온 혹은 책임으로 연결되는 층계 위에 놓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저것들 객관의 사물들이 데리고 오는 물질적인 강도强度로서가 아닌 시인 자신의 체질로서의 융점融點으로. 코끼리의 긴 코로 부는 트럼펫 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프리카는 쇳소리를 낸다 / 먼 초원을 향한 무거운 발걸음까지”. 아프리카 먼 초원을 향한 코끼리 트럼펫의 쇳소리. 아프리카의 쇳소리. 무슨 뜻인가. 아프리카 코끼리의 무거운 발걸음 그것은 그 땅 위에 누군가가 살아있고 또 누군가가 죽어가는 침울한 삶, 침울한 슬픔으로 더할 수 없이 허물어져가는 그들 여정에 대한 유추일 것이다. 그러기에 코끼리는 또 “식어가는 작은 생명 앞에서 긴 코로 흙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코끼리의 쇳소리를 바라보는 이솔의 생각은, 사물을 사물로만 응시하던 시인의 냉정과는 달리 비합리의 수사적 조호調號까지도 때로는 기꺼이 꾸어오겠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바야흐로 지금 이솔 시는 아득한 산정 그 능선을 지나 사물의 모진 형태를 깎으며 깎으며 홀연 몸을 바꾸어가는 중이다. 이 점, 마른 장작을 보면 불꽃 솟구치는 아궁이를 보게 된다는 연기적緣起的 감응으로서의 기법 문제가 아닌, 그와는 전혀 다른 인식론적 발상으로서의 사유형식에 새삼 손을 뻗치고 있는 장면이랄 수 있다. 물체 속으로 파고들어간 존재의 익명성이 마침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시인과 사물의 안과 밖이 옥수수처럼 아직도 자웅동체雌雄同體의 홀몸으로 붙어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존재론적인 철학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시인과 사물 사이 내재와 외재,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극명하게 나뉘어있지 않다는 점. 그런 점에서는 이솔 시의 문맥을 통틀어 사물은 사라지지 않고 사라지기는커녕 그 사물의 형상 하나하나가 어둠 속에서 더욱더욱 찬연한 빛을 발산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시인은 사물의 면전 앞에서 그쪽 통지문을 받아 쥔 이상 섣불리 잘 알아들은 체 할 수는 없다. 사물은 빈 공간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사물은 어둠으로 가득찬 공간도 아니다. 사물의 변용은, 가령 『주역』의 십익十翼 육효六爻의 구조적인 해석에서 말하듯 어떤 경우로든 그것들에겐 제자리에 고착된 법칙이 없으며 멸하고 생하며 강약이 서로 바뀌는 이른바 변역變易의 상황을 줄기차게 내보일 뿐이다. 사물은 그러므로 상황인 것. 시인은 이때 어둠 속에 사로잡힌바 자아를 상실하며, 자아를 상실한 찰나, 이때야말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주장할 명분을 얻게 된다. 상황에 대한 대응. 시인은 한사코 만방으로 에워싸인 사물들로부터, 저러한 사물들과는 달리 내가 잠들지 않고 ʻ깨어 있다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시인 것이다.   3 보자. 이솔 시를 읽는 독법은 이렇게 열리고 있었던 것. 사물이 있어야 할 처소는, 그러니까 그 사물의 입지는 이곳에 있지 않고 저곳에 있었던 것. 시인과 사물 그 비분립의 간격은 비로소 이렇게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첼리스트를 위한 기도」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첼리스트의 첼로 연주를 들으면서 이솔은 어느새 로마 바티간 시국으로 휠훨 날아가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조각품을 면대하고 있었던 것. 산피에트로대성당 입구에 있는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피에타와의 만남. 시인의 작품을 통해, 일순간 음악과 조각의 만남이 그토록 비장한 개오開悟의 체험으로 그렇게 성취되었다. 이는, 이솔이 사물을 읽는 또 다른 독법이었다.   활이 미끄러지며 끓어오르는 소용돌이를 달랜다 -아가야, 염려마라- 자세를 다잡고 두 팔에 힘을 조여온다 -너를 낳았다- 모두 내어주고 한아름으로 받아 터질 듯 너를 낳았다 첼로의 현을 훑어 내리는 활 울림통을 흔드는 노래 달려 가 포옹으로 안기는 황홀한 기도   첼로를 끌어안은 첼리스트의 포옹. 첼리스트의 첼로 연주. 첼로의 절규. 음악으로서의 극지의 절정. ʻ황홀한 기도ʼ. 첼로 (즉, 음악)를 끌어안은 이솔의 포옹은, 말하거니와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얹어 놓고 [ʻ-아가야, 염려마라-ʼ], 그 아들을 어깨로 받치면서 [ʻ-너를 낳았다-ʼ], 가슴 속에 꼭 껴안은 비탄을 그대로 옮겨온 사영寫影이었다. 사물과의 피할 수 없는 접촉. 저쪽에 있는 사물의 정황을 마주보며 이른바 ʻ깨어 있음ʼ을 자각할 때 그때 비로소 한 편의 좋은 시는 시인의 몸통 [ʻ첼로의 현을 훑어 내리는 활ʼ 혹은 ʻ울림통ʼ ]으로 흘러들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었다. ʻ없는ʼ 것은 ʻ없다ʼ. 다시 말하자면, 시인은 물체를 경험할 때 그때 비로소 ʻ없는ʼ 것과 ʻ있는ʼ 것을 함께 경험한다. 사물의 형상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그때쯤 사물은 시인의 동공으로 돌아와 캄캄한 밤의 입성을 벗어버린 후 환한 대낮의 기강으로 다시 몸을 세운다. 그때쯤 사물의 섭정은 끝이 나고, 사물의 현존은 변증법적인 대립을 풀고, 시인 앞으로 달려나와 내분비內分泌 정신의 자유로운 익명성과 마주앉는다. 물론 시인의 정신은 저쪽에 있는 사물의 외재적 사안과는 무관한 입장에 놓여 있다. 외재와 내재의 연관은 구만리장천의 아득한 거리에 존재한다. 시인의 자아는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사물과의 접촉을 통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흔들리기 때문에 밤과 같이 어둡고 낮과 같이 환한 궤도를 맴돈다. 엄격히 말해서 시인의 자아는 주체가 없는 존재로서의 탈脫자아와 자주 접촉한다는 말이다. 의식은 현존하지만, 그 의식은 사물의 익명성 앞에서 몸을 곧추세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자기상실의 자아와 홀연 만나게 될 때 그때 내가 ʻ깨어 있다ʼ 는 자기발견을 하게 된다 [ʻ황홀ʼ이 아니다]. 이른바 사물의 출현이 주체의 성립을 재촉했던 것이다. 사물과 정신의 교호작용交互作用. 시인의 자아와 물체의 진동 사이를 오고가는 교호작용. 이 (순환의 이치)를 두고 『주역』 「계사하전」 제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양괘다음 음괘다양 陽卦多陰 陰卦多陽). 정신과 물체의 파동. 창조 (즉, 양陽)와 정적 (즉, 음陰)의 관계. 양상陽象, 즉 밝은 대낮은 하늘과 연결되었고, 그와는 반대로 음상陰象, 즉 어둔 밤중은 땅으로 연결되었다. 하늘은 ʻ위ʼ에 있어 움직임의 표상으로 존재하며 (양의 존재, 즉 정신), 땅은 ʻ아래ʼ에 있어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휴지부로 존재한다 (음의 존재, 즉 물체).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의식은 요컨대 그렇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기 홀로 선 몸이 아니다. 엉뚱하게도 나의 자아는 ʻ밖에ʼ 있었던 것. 하이데거의 생각이 그랬듯이, 시인으로서의 홀로 서기의 굴대는 내 안에 내가 있는 인품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자기 ʻ밖에ʼ 서있는 현존으로서의 존재라는 것. 나는 나 자신을 떠나 ʻ밖으로ʼ 열린, 밖에 있는 세계 저곳 초월로 열려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마주보는 물체의 면적은 어느새 등불이 되어 이 존재실현의 비인칭까지 관할한다. 이 글의 결론을 말해보자. 이솔 문학의 공적은 이 존재실현의 물체들을 더욱 생생한 색채의 물빛으로 물들여 놓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솔은 ʻ나ʼ를 말하지 않고, ʻ나ʼ를 말하는 대신 저쪽 바깥에 존재하는 물체의 위상에 대하여 애써 논변한다. 이는, 이와 같은 시의 인지구조는 ʻ나ʼ를 지켜내는 감성 혹은 내가 나 자신에게 매몰된 관념 그것을 내버린 자로서의, 천지간 물빛을 바라보는 자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를 읽는 즐거움 하나는 시의 문맥 안에 깃든 물체들의 여러 풍모에게 눈길을 주는 대신 시인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사람이 누구이며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판독해내는 기쁨에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시인의 관념을 따라잡기도 어려운 판에 물체들의 뜀박질을 따라가기는 더욱 숨찬 노릇이다. 이솔 시의 탈脫관념이 붙잡고 있는 문체 앞쪽에는, 바라건대 물체들 그것까지도 또 얼마나 큰 혹은 복잡다단한 변덕이 숨어 있는가를 거듭 되물어야 한다는 과업이 가로놓여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물의 틈은 관념의 틈보다도 더 멀다는 것. 사물은 즉물卽物 (사르트르)의 단층을 훨훨 뛰어넘는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대학』에서는, 사물에는 근본적인 것과 말단적인 것이 따로 있고, 끝과 처음이 따로 있고, 먼저하고 나중에 할 것 따로 있으니 그것을 알게 되면 도에 가까워진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그랬다. 극極이 없는 물체들. 지금까지 그 사물들의 간격을 응시해온 이솔 시의 까슬까슬한 인식이 독자의 심금을 새롭게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안수환시인-이솔 시의 사물, 그 선명한 물빛|작성자 나무 곁에서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 ㅡ 송시월 시집 『B자 낙인』   안 수 환        1 인생은 얼마만큼 해석되는가. 인생이 해석될 때 인생은 마땅한 듯이 보인다. 인생이 해석되지 않을 때 그때도 인생은 또 마땅한 듯이 보인다. 인생을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인생을 모르는 때문일까. 혹은 인생이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일까. 인생의 의미는, 그러니까 그 인생 의미의 범주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쓰면 비를 맞지 않는다”의 경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의 세계는 인생의 경계와 또 어떻게 다른 것일까. 시의 의미는 시의 행간 · 자간에 음각陰刻된 인생의 체모體貌라는 점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문맥의 신비로운 속성으로 본다면, 시는 의미 [즉, 해석]에 입술을 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가령 시의 문맥 속에 숨은 신의 이름을 호명할 때, 이때 음각으로 새겨진 신의 작인作因에 대한 제재制裁 [즉, 삼원三元이 되는 상象 · 질량質量 · 속성屬性]에 대하여 시인 [혹은, 독자]은 어떤 해석을 붙여야 할까. 시인은 시를 쓴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시를 쓰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시인에게 시를 쓰도록 시키는 힘은 삶을 해석하는 논리의 힘이 아닌, 시에 붙어 있는 정념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논리에 충실한 송시월은, 그는 지금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 「아차산」”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철학으로든 과학으로든 정신분석학으로든 송시월의 시를 해석할 수 없다는 점 그것이 이 글의 기본입장이다. 송시월은, 지금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바 이대로의 모습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의 착상을 붙들고 시를 쓴다. 그의 착상이란 내 생각으로는 사고기능의 임시적 추론과 감각의 표상물로 대체된 연상활동 그리고 소재인식에 따른 유추 Analogy와 기억력으로 점철된 판각본이다. 시인은 어디 있을까. 세계는 별안간 자기 현시성의 높은 종탑을 세운 뒤 이 종탑으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 시인의 몸을 덜컥 가두어 놓는다. 그는 현실의 서술적 전경全景 위에 꼿꼿이 서있다고는 하지만, 벌써 시인의 마음을 주관하는 연상과 뇌의 복합 영역 앞에서는 특정한 기억의 잔재들을 치우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과 맞닥뜨린 듯이 보인다. 그는 방금 꿈에서 깨어난 듯 이렇게 기이한 담론을 풀어 놓는다.   달빛 우주복을 입고 달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요   태아로 웅크려 달달달 주문을 외우자 무중력으로 떠 올라요   달의 사생아인 나, 사식으로 들어온 별빛을 먹어요 환하게 열리는 500만개의 내 모공 태양동기궤도로 진입하기 위해 방향을 바꾸는데 살짝 스치는 트리톤 표면에 크레바스가 생겨요 저 얼음동굴로 들어가 보고 싶은데 모래알 같은 말똥구리별들 반짝반짝 눈을 흘겨요 수많은 갤럭시들 X자로 꼬리를 흔들어요 [...]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달항아리 앞 알에서 갓 깨어난 나와 퇴화된 내가 합성되어요 나의 이동 경로와 자유의 성분을 정리한, 달이 쓴 서사 네게 전송되지 않네요   원석을 굴리면 달을 훔친 내 코에 B자 낙인이 선명해요 둥둥둥 북을 울려 달내림을 받으려던 내가 달을 부셔버려요 ㅡ 「B자 낙인」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난 달항아리. ‘나’는 달항아리의 원석이었으니, 어느새 ‘달항아리’의 순결을 잃어버린 나는 [나는 나의 퇴화였던 것] 얼굴에 B자 낙인이 박힌 절도범 신세가 되었다는 것. 이 점이 이 시의 작인이랄 수 있다. 그러나 시에 나타난 이야기의 합성이 논리적이든 아니든, 시인 감각의 입력이 변덕스럽든 아니든 문맥의 활성을 불러일으키는 주의력과 판단력은 외부의 주도면밀한 자극에 의해 너무도 생생히 채집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시상詩想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세계인식의 메커니즘 [혹은, 신경조절 능력]은 그만큼 강렬하며 뚜렷한 것이었다. 객관은 주관의 투사透寫인가. 그가 쳐다보는 사물들 혹은 생생한 시각피질들까지도 이제는 시인 자신의 내면적인 심리현상의 지배를 받는 듯이 보였다. 나는 송시월의 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시인은 시를 쓸 때 시적 대상에 기울이는 의식적인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기억을 어느 정도 제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경우 시는 우리가 꿈을 꿀 때처럼 감각 운동의 생생한 환상을, 시를 쓰고 난 다음 그것들을 모조리 씻어버리는 무책임에 매몰될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와 만나고 있으며, 나와 그 누구와의 간격은 도대체 얼마나 먼 거리에 놓여 있는가. 사실상 꿈을 꾸고 난 다음 깨어났을 때 경험하게 되는 의식의 휴면 상태는 현실의 어떤 슬픔보다도 더 뼈아픈 비극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시인의 지각활동에 붙은 연상이 어떤 경우로든 [예컨대, 흥분 혹은 충일감] 자신의 정신세계를 고양시킬만한 신념을 상실할 때, 대개의 시인들은 가뭇없는 자기체면의 관습으로 쉽게 미끄러진다. 그런 점에서 송시월 시의 소재인식에 나타난 일련의 조치들은 지금까지 경험한바 삶의 형식으로서의 패러다임이 아닌, 그 패러다임에 드리운 인식의 변화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묻는 술어들로 채워져 있다. 바꾸어 말한다면, 송시월은 애당초 인생에 관한한 인생의 서술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의미를 무화시키는 송시월 시에 대하여 나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간이 의미를 쫒는 동안에는, 대개의 경우 나 자신의 욕망을 증폭시켜가면서 그 욕망의 방향 또한 명백하지도 않다는 점을 너무도 쉽게 간과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그의 낱말은 요컨대 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과도 흡사한 음색을 띠기도 한다. 삶의 의미에 대한 분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은 듯이 그는 이렇게 쓴다;   아침 비비비 새소리를 손으로 받아본다   비가 미끄러진다   나팔꽃 줄기에 새소리가 방울방울 매달린다   S라인으로 다리 꼬고 하늘로 치솟고 있는 나팔꽃   진보라색 꽃우산 펴들다 초록하이힐이 벗겨진다   지렁이를 신은 빗줄기   자목련건반 스타카토로 두드리다 나동그라진다   아침 비비非非 새소리   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간다 ㅡ 「아침 비비비」 전문   시인은 삶의 의미를 기억하지 않고, [가령, 꿈의 절차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흘러가듯] 머릿속에 남겨진 행위 목록의 여러 장식들 그 소재성의 측면만을 바라본다. 시인은 말한다; 누가 이곳에 ‘나둥그라져’ 있는가. 비나 새소리의 ‘비비비’라는 중의重義는 말장난 이상의 포리포니 polyphony [즉, 대위법對位法]로 울린다. 시인은 지금 이곳에서 새소리의 비비 [즉, 긍정]와 非非 [즉, 부정]의 울음소리를 통합해내면서, ‘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간’ 아침을 본다. 어디든 보잘것없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의 상상력에 유입된 대긍정의 서랍 속에는 대상들 하나하나에 깃든 내밀함의 어떤 정신적 가치도 굳이 힘주어 천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영혼을 가진 자로서 그러니까 그는 태연을 가장할 것도 없이 방안에 놓인 가구들의 기하학적인 도면에 대해서도 몇 마디 비현실적인 놀라움 몇 점을 던져 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시인은 보물 상자의 뚜껑을 열지 않는다. 송시월은 이미 시를 쓰기 전부터 저쪽 사물들의 내밀성의 차원이 제 혼자 저절로 개현開顯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3 그렇다면 송시월 시의 문맥을 덮고 있는 사물과 그 사물을 읽어내려는 상감세공象嵌細工 [즉, 쇠붙이 · 사기 · 나무 · 상아 따위의 속살을 파내고 그 자리에 딴 재료를 틀어박는 상안象眼 기법]으로서의 문법에 대한 한 두 마디 암시를 더 열어보기로 하자. 그는, 자기 시의 행간 속에 자리 잡은 녹두꽃 한 점에서도 그것이 우주적인 유기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다 (「점묘화」). 그는, 손바닥으로 바다를 뜬다 (「게놈지도」). 그는, 물구나무서서 / 가을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 시뻘건 튤립단풍에다 암모나이트를 구워 먹고 / 울컥울컥 청자빛 하늘을 토한다 (「자하연」). 그는, 820광년을 한걸음에 뛰어 / 북두칠성 큰곰자리 등으로 올라가 위아래 / 사면을 둘러본다 (「10분 간」).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의식의 자율성 [즉, 꿈속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이물異物들의 집합]에 기댄 채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 감정은 다음 찰나 시적 상징으로서의 부표浮漂들과 만나면서 시간과 공간의 틈새를 단번에 단축시킨다. 시인은 또 이렇게 쓴다;   막고굴 같은 걸개시 계단 석실마다 발화되지 못한 단세포의 나뭇잎언어들 발밑에서 꼬리 꿈틀 ‘나’ 라는 자음 ‘ㄴ’을 미끄러뜨린다 삼신할매바위 천개의 주름강에서 떨어지는 모음들 내 발등으로 미끄러진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보이지 않는데 앞서가는 등산복 차림의 혜초와 폴 펠리오가 데리다를 데리고 내 우산 속으로 미끄러진다   미끄러지고 미끄러져 영국사 앞마당에 천년의 언어 노오랗게 피워내는 은행나무 내가 “허공의 하트”라고 외치자 노랑나비 무량대수로 날리며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란 플래카드를 펼쳐든다 천태산, 월아천, 천궁자리, 왕오천축국전, 천마도, 천지연, 천 개의 강줄기를 건너 지금 막 해가 뜬다   칙칙한 껍질을 벗어버린 나, 여여산방으로 영국사 공민왕의 무릎 위로 동서남북 천축국으로 자율자율 미끄러진다 어린 동자승구름이 자전거바퀴에다 하늘을 감으며 조용히 내게로 온다 허공이 울퉁불퉁 패이며 아, 아, 아, 소리를 낳는다   내가 서 있는 이곳 언어의 발원지인가? 도착지인가? ㅡ 「천태산」 전문   낭만주의자의 꿈길처럼, 시인의 기억력 현상에 스며있는 낱말의 돌변성과 자발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요체 하나는 “미끄러지고 미끄러져 영국사 앞마당에 천년의 언어 / 노오랗게 피워내는 은행나무 / 내가 ‘허공의 하트’라고 외치자 노랑나비 무량대수로 날리며”에 집중적으로 못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을 주목해보자. 이 부분 사물의 운동 그 동정무단動靜無端을 한 번 깊이 들여다보자. 시인의 자유 연상 속에서는 무극無極 [즉, 지허至虛 (주돈이周敦頤) ]까지도 제자리에 가만있지 않고 움직인다. 동양사상에서는 자연이란 말도 그것은 명사가 아닌 동사였던 것 (『주역周易』). 이기理氣를 쳐다보는 입지에 대한 몇 사람의 생각을 인용하자면,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은 그 움직임의 비분리성을 가리키며 기발이승氣發理乘이라고 말했다. 칸트 (Kant 1724~1804)는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부분 [즉, 자유 혹은 이理]과 시간이라는 감성의 형식을 통해 움직이는 감각의 전체 [즉, 역사 혹은 기氣] 그것을 시공간의 연접으로 통합하면서 영혼의 불사不死를 주장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칸트는 이 땅위의 인지공간은 다름 아닌 양 · 질 · 관계 · 양상으로 나누어지며 이것들은 각각 전체와 개체와 구체로 쪼개지면서 결국 12개의 범주 Categories를 그려낸다고 추론했던 것이다. 사물 그 자체 Ding an sich는 시간과 공간의 통합이었던 것 [칸트의 감성론].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는 이 모양의 추론을 다음과 같은 합성어로 축약했다; ‘허이실虛而實’. 달리 말하자면, 무는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무’였던 것이다. 송시월의 말을 들어보자. 무량대수로 날아다니는 노랑나비의 비상飛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천년의 언어로 말하건대) “허공이 울퉁불퉁 패이며 아, 아, 아, 소리를 낳는다” 고. 물物의 구체성 [즉, 사물의 기화氣化]만이 그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 그러니까 송시월은 “사물 밖에는 어떤 길도 없다” (물외무도物外無道)는 그 길의 자유연상만을 쫒고 있었던 것이다.   4 그렇다면 이제 사물이 움직이는 방향에 대하여 송시월은 어떤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자. 하이퍼시의 전형이랄 수 있는 그의 시 「“의”자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나와 사물의 간격. 역사와 현실의 간격.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사고형식의 이분화된 대칭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든지 선과 악은 별개의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어거스틴 (St. Augustinus 345~430)의 역사철학 『고백록』이 그랬듯이, 시인의 생각 밑바닥에는 자신도 모르게 ‘선-악’의 일원적 갈등이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그랬다. 시인의 추론은 어떤 전제에 대해서 언제든지 그것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시인의 시는 다음과 같이 풀리고 있다;   의자를 잃어버린 내 척추의 4번 뼈 의자야 어디 있니 온 종일 삐꺽 삐그덕 중얼거린다   국어 대사전 2991 페이지가 들썩거리며 줄줄이 따라 나오는 행렬 의자 의사 의부 의인 의병 의상 의심 의자왕 의문사 의무병 의문부호 의료사 고...... 의자들은 귀가 밝고 행동이 민첩하다   000병원 외과 과장실 의료사고, 의사, 의심, 셋이서 만나는 삼각 꼭짓점 ‘의문사’란 회색 모자를 썼다   백제왕궁 의분이 의병에게 의무병을 시켜 의자를 권한다 의병은 의인에게 의자를 권한다 의병인 계백이 빈 의자에 앉자 의심이 많은 의자왕이 계백을 밀어내고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다리에 쥐가 난 의자가 삐그덕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다   사과상자는 사과하지 않는다 굴비상자는 비굴해하지 않는다   ‘義’자가 없는 의자들이 줄행랑을 친다 ㅡ 「“의”자에 대하여」 전문 말은 말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말은 말의 자발성을 낳을 뿐이다. 시는 시인에게 자신의 몸 [즉, 기의와 기표]을 내맡기지 않고, 시는 자신의 말의 전치사와 후치사에게 다만 자신의 말을 넘겨준다. 보자. “의”자는 “義”자로 바뀌고 의자로 바뀌고 의인으로 바뀌고 [......] 마침내 ‘굴비상자는 비굴해하지 않는다’의 착종錯綜으로 몸을 뒤집는다. 착종일지라도 그의 낱말은 그의 시의 추론 형식을 이끌고 가는 긍정적 가치의 차축車軸이었던 것.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 긍정과 부정의 불일치는 이율배반을 낳는다는 점에서 시인은 정성스럽게도 그와 같은 필연을 사뿐히 뛰어넘는다. 물 자체를 알 수 없다는 칸트의 말처럼, 시인도 이곳에서는 인식의 기본적 범주를 잠깐 벗어나 펀 pun [즉, 익살] 놀이를 즐기면서 헤겔 (Hegel 1770~1831)의 ‘정 These’과 ‘반 Antithese’의 경계로 들락거린다. 한 그물망으로 보면, 현 순간은 과거와 미래의 집합일진대 이와 더불어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까지 이쪽으로 한 번 더 끌어 잡아당기면 보편적인 양상 하나와 그는 눈을 맞춘다. 그것은 우리가 평상시에 지각하지 못하는 의식의 씨앗과도 같은 모호한 예감 (즉, 무의식)인 것. 주관적인 언어 형식의 휴지부를 제외한다면, 예감 (즉, 무의식)은 의식의 명료성보다도 훨씬 명료하다는 점에서 시인은 대체로 세계이해의 혼동을 예방하는 방법론으로 이미지를 불러들인다. 그러면서 시인은 사물을 지각하는 데 따른 무의식의 솔직함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기에 시인의 심원한 영혼은 이성의 형이상적 연상 징후들과 손을 잡지 않고 도리어 사물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비효율적인 예견과 입을 맞추면서 성숙한다. 송시월 시의 ‘의’자 유희에 동원된 낱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우주의 전체 혹은 사물의 개체에 닿아 있는 지고지순한 표정에 대해서 그리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응당 물어야 하겠지만] 그의 시에서는 하늘이 좌초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심지어는 시인은 자기완성의 꿈마저도 가차없이 해체해버린다. 절망스러운 바가 없지 않을 테지만,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의자를 잃어버린 내 척추의 4번 뼈 / 의자야 어디 있니 온 종일 삐꺽 삐그덕 중얼거린다 [...] ‘義’자가 없는 의자들이 줄행랑을 친다”. 아프다.   5 형상은 어떻게 있는가. 이 형상 앞에 송시월 시의 문법은 언뜻 보면 출렁거리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단정한 어투로 일관한다. 성인 [혹은, 시인]은 천하의 뒤섞인 모습을 보며 그 형용을 의태擬態하여 사물의 마땅함을 본뜨고, 그 본뜬 모습을 일컬어 형상이라고 불렀다 (성인유이견천하지색 이의저기형용 상기물의 시고위지상 聖人有以見天下之賾 而擬諸其形容 象其物宜 是故謂之象, 『주역周易』,「계사상전 繫辭上傳」 제8장). 송시월 시의 밑변에 깔려있는 무의식을 좀 더 들여다보자면, 그가 바라보는 사물 형상의 즉각성은 시인의 시적 경험의 불확정적인 정념이라 할 수 있는 미분화된 충동과 거침없이 만나며, 그리고 그 정념은 또 다른 이미지들과 섞이면서 매우 투명한 명상을 만들어낸다.   한라봉을 쪼갠다 수평으로 쫙 갈라지는 한라산 봉우리 햇살이 밟고 선 백록담의 출렁이는 무늬들 내 입에다 달디단 과립을 뿌린다 하늘바다 하얀 물고기 떼 파닥파닥 내 얼굴에다 은비늘을 뿌린다   눈 덮인 한라산 봉우리, 먹이 찾는 노루 고라니들 산등성이로 미끄러진다 하얀 털모자아이가 뿌려 논 무늬들 쓸어도쓸어도 쌓이는 노숙의 눈 건너편 용천사 여승, 법문의염화칼슘 뿌리는 소리 “오늘은 空치는 날 내일도 空치면 공처럼 뒹굴지 나미아비타불나미아비타불”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유리창을 내다보며 서걱 씹는 한라봉 신경의 단면 새콤달콤 씁쓸하다 ㅡ 「눈 오는 날 한라봉을 먹다」 전문   시인이 표현하고 있는 “한라봉을 쪼갠다”와 “수평으로 쫙 갈라지는 한라산 봉우리”와의 내포內包 · 외연外延은 한 마디로 말해 명사가 양화量化되는 모양을 보여주면서, 그리고는 이 양화가 관계로 연결됨으로써 [즉, 추상화되면서] 일정한 개념을 만든 다음 또 다른 문장과 연접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 용천사 여승과 여승의 ‘법문의염화칼슘 뿌리는 소리’가 하나로 겹칠 뿐 아니라, “오늘은 空치는 날 내일도 空치면 공처럼 뒹굴지” (즉, 전건前件)와 “나미아비타불나미아비타불” (즉, 후건後件)이 연접해 쌓여 이 둘은 양화되고, 이 양화는 또 다른 연결사인 함축으로 몸을 바꾼다. 이와 같은, 시인의 추론 혹은 추리규칙 rules of inference 들은 송시월 시에 흐르는 명제의 타당성을 정확하게 지켜나간다. 명제의 타당성은, 그러니까 그것은 이곳에서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의 문의文意와도 같이, 의미상의 내포와 외연이 하나의 명제로 결합되는 함축 논법으로 변환된다. 달리 말해서, 이 결합의 함축 속에는 다른 명제를 교체해도 그 결과의 타당성에는 변함이 없음을 드러낸다. 독자들이 예기치 못한 순간 시인의 문맥은 꿈속에서 흔들리는 환영들의 집합처럼 무한의 빛을 복원시키고자 시인의 노래 속에 황홀하게 등장한다. 송시월 문학의 터무니없는 유추 방법이 저와 같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까닭은, 시의 문맥을 채워 주는 연결사가 연접 [즉, 시적 표현 중 두 개념의 공통성을 취함]이든 이접 [즉, 표현 A와 B에서 A나 혹은 B를 택함]이든 시인의 연상 안에서는 언제든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바 수많은 명제들을 추리규칙에 부합하도록 유추해내는 데에 있다. 그것은 시인의 유추 논법이 집합의 일정한 관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닐 때는 송시월은 역설 Paradox을 취한다 [가령, “길을 구르던 천년 묵은 염주알에 싹이 튼다 「접신」” ]. 시의 구조상 명사를 한 겹 한 겹 층화層化하게 되면, 관계가 쌓이고 쌓여 명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명제들은 또다시 부정 · 연접 · 이접 · 함축과 같은 수리논리의 기본구조로 변형되면서 시인의 시적 표현의 다원적 타당성으로 시 형식의 몸을 불리게 된다 [부정 (즉, 외연); “교회에선 부활절 성탄절 소란스러운데, 부처도 예수도 보이지 않고 일급수 물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리에 대한 변」” / 함축 (즉, 내포); “내 눈높이의 정점에서 채송화가 핀다 「채송화」”]. 율곡은 일찍이 이기理氣의 묘합을 수식으로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일이이一而二, 비이非二, 이이일二而一, 비일非一”. 말하자면, 이기의 상수학적 개념은 시인의 낱말조합에 있어서도 [내 억측이 아닌 이상] 얼마든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일이이 (즉, 하나지만 둘, 혹은 둘 이상인 것); “밤잠 「공매」” “아침점심저녁 「막장」” / 이이일 (즉, 둘이지만 하나인 것); “찌르레기별 「비염」” “동자승구름 「천태산」” “하늘바다 「눈 오는 날 한라봉을 먹다」”. 시의 문맥이 합리적인 영역을 벗어날 경우, 유추의 힘이 견고하다고는 하지만 흔히들 시인은 때때로 자기 당착에 빠지기 십상이다. 유추 논법이란, A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근거 앞에서 다른 B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수리논리로 볼 때 이 논법의 인식활동에는 명사와 동사와의 관련성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특별히 시적 표현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동사로서 언표되는 주장에는 마땅히 인지 영역을 넓힐 뿐 아니라 그 안에서 객관적 관계를 찾아내는 눈을 떠야할 것이다 [가령, “나는 꽃을 좋아한다”는 표현 (즉, 주장)에 무슨 감동이 따라붙겠는가.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말은 자기만의 감정을 기준으로 삼은 이분법적인 판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집합이면 충분하다. 짐작컨대 가령 인식형태를 대수화한 베이컨 (F. Bacon1561~1626)의 논리과정 [즉, 네 가지 셈법 + · - · ÷ · ×]을 잠깐만 들여다보아도 좋다. 송시월은 꿈의 정령을 다시 이렇게 불러낸다;   빨갛게 익어 터진 체리를 먹은 예니 흉노 돌궐 위그르 셀주크투르크 오스만 이스탄불 이런 이름을 낳고 이스탄불은 오르한 파묵을 낳고 매운 파묻힘을 먹은 파묵은 “내 이름은 빨강” “순수박물관” 등을 낳고, 순수박물관 심장은 여전히 빨강 피를 낳고 있고   사이프러스에 기대어 흔들리는 예니에게 너는 나와 한 몸이니까 우리 사이프러스가 되면 어때 체리가 말하고   고흐는 별이 요동치는 푸른 밤을 온몸으로 삼키는 검은 사이프러스를 하늘에다 심고 있고 ㅡ 「예니 체리」 부분   이 시 명제 구성의 연접 · 이접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만 말하기로 하자. 시에 등장하는 예니 체리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친위부대]와 오르한 파묵 [그는 터키의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을 써서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음]과 지중해 동부에 있는 사이프러스 섬과 고흐의 그림인 측백나무과의 사이프러스나무 등등의 강압적인 언표 따위 [그것들은 현재 시인의 의식과는 무관한 우주의 보편적 실재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는 그리 중요한 표상들이 아니다. 시인은 제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자기 자신을 몇 억 년 전으로 퇴화된 몸으로 의식한다 (「콜람」). 그런가 하면 저쪽 아득한 공간 [돌멩이들이 데굴데굴 구르는] 천수만 들판으로는 [있으나마나한] 하늘이 편안하게 내려앉기도 한다 (「다이빙 하시는 하느님」). 시인의 별은, 유독 우물 속에서 태어나기까지 한다 (「제의」). 여러모로 보아 나는 나로부터 일탈한 몸이며, 무엇보다도 하늘은 하늘로부터 일탈한 몸이다 [하늘은 하늘의 몸을 버리고 있었단 말인가]. 따라서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지 않고, “해는 서쪽에서 뜬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 썰물이 펼쳐놓은 모항의 아침 백사장, 개미만한 흰 벌레들이 별자리와 지구를 그리고 있다 (「10분 간」). [그래도,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는 핀다, 또, “아차, 미끄러진다” (“미끄러진다”는 말은 시인의 애장품이다. 송시월은 시를 쓰지 않고, 시가 미끄러지고 있음을 보고 있었던 것) ]. 중요한 것은 지금 시인의 내부 시정詩情 속으로 파고들어온 한 묶음의 무의식이며, 그 무의적인 기억을 통해 송시월은 매순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사물과 만나면서 그것들을 이제는 인지적 · 신경과학적 접근으로 높이 신성화시키는 비밀스러운 몽상 [즉, 시간을 읽는 수리철학]과 손을 마주잡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비밀스러운 몽상이란 시인 내부의 삶을 아늑하게 감싸는 몽롱함이며, 그 몽롱함은 다른 것이 아닌 저쪽 초월적인 빛을 그대로 쏙 빼닮은 인각印刻이었던 것. 시인은 그것 말고는 더 이상 달리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 듯이 보였다. 이에, 시인의 저와 같은 행복한 정서에 대하여 나는 달리 무슨 말로 더 덧칠해 훼방할 수 있으랴. ​ [출처] 안수환시인-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송시월 시집 『B자 낙인』|작성자 나무 곁에서
만물의 공허를 받아들이는 시간 -위상진의 시집 『시계수리공은 시간을 보지 않는다』 ​ 안 수 환         1 철학자의 눈을 뜬 시인은 긴 시를 쓴다. 명상가의 눈을 뜬 시인은 짧은 시를 쓴다. 철학자는 연상까지도 늘려놓고, 명상가는 논증마저도 생략한다. 위상진 시의 사고력은 그러니까 후자의 에피그램 epigram을 따르지 않고, 전자의 긴 호흡법에 맞추어 시를 쓴다.   2 소요유逍遙遊는 인간을 단순하게 만든다. 장자莊子 (BC 365년경~BC 270년경)의 생각이 그랬던 것이다. 도 [혹은, 현존]의 행방은 공허했던 것. 공허의 경지에 도달할 때, 그때 인간은 비로소 만물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마음의 공허를 장자는 심재라고 불렀다 (허이대물자야 유도집허 허자심재야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心齋也,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만물을 받아들이는 현존. 만물을 받아들이는 공허. 대대성待對性의 한계를 극복하는 공허 [즉, 큰 것이거나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먼 것이거나 가까운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령, 포일抱一 [즉, “성인은 하나를 끌어안는다” (성인포일 聖人抱一. 『노자老子』 22장)]의 “1”은 신성한 수數 [즉, 절대치絶對値]이지만, 그 “하나”라는 전일성全一性으로 인해 때로는 포일까지도 위험한 것이 된다. “하나”가 “나”에게 붙어버리면 나는 아집我執에 묻혀버리고, “너”에게 붙어버리면 그 “너”에 대한 나는 맹종盲從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의 생존은 “하나” 한복판으로 떠도는 꿈결인바 꽃 한 송이와 나는 둘이 아닌 한 몸이었으며, 더 크게는 우주와 나는 단 한 몸의 응명凝命이었던 것이다. 나는 무한 공간의 별빛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그런데 초월 [즉, 신명神明]은 어디에 있었던가. 공허의 역순 [즉, 음양陰陽의 교차]이 초월이었던 것. 그러니 나는, 내가 끌어안은 공허 [혹은, 태허太虛]를 내 자신 바깥에서 찾지 않는다. 나는 물 [즉, 감坎]이었으며, 나는 동시에 불 [즉, 이離]이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실체에 매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름 [즉, 관념]에 매달린다. 시인의 천형天刑은 여기에 있었던 것. 그러기에 시인은 언제나 보조관념의 실타래를 풀어낼 따름이다. 실체는 어디 있는가. 실체의 허리는 어디 있는가. 『주역周易』에서는, 모든 실체는 섞여 있다는 것을 이른바 물상잡物相雜의 간극間隙으로 이야기한다 (「계사전하繫辭傳下」 제10장). 물질이 실체였던 것이다. 자연이 실체였던 것이다. 품물品物 [즉, 천天 · 지地 · 인人 삼재三才]이 형체를 하나하나 갖추어냈던 것이다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 실체는 부조리한 법이 없다. 다름이 아니라 실체의 내인內因은 시인의 실재론적 직관에 연관된 생기였던 것. 시인의 상상력은 실체의 내인계內因界로부터 온다. 시인은 품물을 통해 우주의 중심이 어디 있는가를 풀어낸다 [가령, 불의 동인은 불에 있지 않고 ‘물’에 있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주역周易』의 항구적인 질문 속에서 혹은 ‘불’의 효과를 ‘열熱’이라고 말하는 바슐라르 (G.Bachelard 1884년~1962년)의 몽상을 통해서 물활론적으로 다르게 입증된 바가 있다]. 그런 다음 시인은 품물의 정적靜寂을 듣는다. 다음과 같은 시의 기품을 살펴보자; “물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墨畵」, 『북치는 소년』 1979년, 민음사). 시인은 예기치도 않게 품물 [즉, “물먹는 소”]의 푸르른 순결 [즉, 영혼의 숨소리] 앞에서 저렇게 몸을 떨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부터는 시의 문맥 속에서 뜨거움 [즉, “불빛”]과 차가움 [즉, “물속”]이 서로 뒤바뀌는 위상진의 다음과 같은 시 「시계수리공은 시간을 보지 않는다」를 읽어보자;   그는 시간의 습성을 찾는 중이다 어둠의 부속을 핀셋으로 집어낸다 바늘만 보일 뿐 대못에 꽂혀 있는 전표 같은 시간   멈춰 버린 시계 위 찌푸린 불빛을 내려다 보고 있는 부엉이 한 마리   불빛 아래 해체되고 있는 상속된 시간의 유전자 식은 지 오래된 바람은 왜 한 곳으로만 숨어드는지 이상한 꿈은 왜 물속에서 젖지 않는지 가장 환한 곳에 숨겨진 너를 데려간 시간을 열어본다   제비꽃이 지는 동안 순서를 무시한 채 휘갈긴 신의 낙서 인사도 없이 뛰어내린 별과의 약속을 모래 위에 옮겨 적고 있었지   차가운 불꽃이 부딪치는 별 듀얼 타임의 톱니가 자전을 시작한다 푸드덕, 그의 심장 뛰는 소리 그는 시계가 없다   어둠의 재가 숫자판 위로 떨어질 때 부엉이 날개 바스락거리는 소리 눈꺼풀 닫히는 소리   어제 밀린 시간은 지금부터 흐르기 시작하고 너의 시차를 들여다본다 수척한 바람 냄새 오고 있었던가   그의 시는 정서적 관심의 대상들을 고려한다기보다는 [그의 시에서 사실적인 설명, 즉 실재의 객관적인 처소를 밝히기란 불가능한 듯이 보인다], 사물들의 실체 건너편 은유의 불꽃들에서 피어오른 이미지에게 훨씬 더 짙게 반해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상 시인의 손끝에 닿은 사물 그것들은 그러니까 어떤 윤곽 없이도 붉은색 검은색의 어두운 심연을 뚫고 와서 그의 몸에 달라붙은 욕망인 듯이 보이도 한다. 한 번 생각해보라. 시인이 지금 접촉하고 있는 상상력에는 어떤 불씨가 있어서 아직도 설명 불가능한 황홀이 줄기차게 따라붙는가를. 정신력의 바탕으로 본다면, 시를 신뢰하는 자로서의 그 자신 원초적인 기호嗜好는 사물의 광채를 벗어던진 채 어느 순간 불확실한 환시幻視의 흔적들만 찾아 나선 관행은 아닐는지 [그것들은, 또 불길한 은유의 덫일는지도 모른다]. 시인이 실체를 외면해버릴 때는 [실체가 정신의 먹이일진대] 길바닥에 나뒹구는 돌멩이와 심중에 박힌 욕망의 간격이 단 한 순간에 뒤집혀 사소한 경험인 듯 연기인 듯 빠른 속도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상진의 시는 공기처럼 활달하다. 그의 시의 문맥에는 막연한 갈망이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태허太虛와 품물의 간격을 하늘과 땅의 비장물秘藏物 [즉, 비감각적인 초월의지]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관찰 때문이리라. 그것은 또 물질에 대한 경이를 뛰어넘은 다음 품물 내면 깊은 곳에 불빛의 그림자를 남겨둔 허구적인 상수常數 [즉, 굴절률屈折率]들임에 분명하다. 그와 같은 굴절률에 대한 위상진의 탐구는 여전히 그동안 애써 형상화해온 시적 진실 [즉, 물이면 “물속”ㅡ불이면 “불빛”이 되는 항구적인 가치]들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는 발광열을 내뿜은 것이었다. 그러기에 위상진 시의 태허太虛는 텅 빈 것들에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천상의 미묘한 구름냄새 [혹은, 삶에 대한 신빙성]와 감미롭게 접촉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우주는 넓지 않고, 인체의 맥박과도 같은 공기욕空氣浴을 띤 문맥으로 물결친다. 그리하여 시인은 완전히 가변적인 실체, 곧 빛의 내면화 분비물分泌物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정령들과 나란히 눈을 맞춘다. 이러한 시의 문양을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시인의 조견표早見表에 들어온 물체들의 허황虛荒인지 혹은 시인이 추구하고 있는바 욕망의 흠집인지 (나로서는) 분간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이미 위상진의 시야에 들어온 사물들의 표정은 덧없는 침묵과 훨씬 많이 제휴한 것들이었다.   3 시인은 다시 다음과 같은 시 「온전한 식사」 (앞부분)를 쓴다;   저녁은 별이 타다 남은 재가 떨어지고 있었지 술잔 사이 은닉되어 있는 말의 껍질이 벗겨지는 동안 별자리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았지   저기 녹색 보드 광고판에 잠에서 덜 깨어난 겨울은 무게를 털어 내기 시작했나 보다 그때는 맞고 지금도 맞는 그늘진 늑골 사이 품고 있는 온도의 차이, 넘어가지 않는 마지막 페이지는 안대를 하고 있었지   초벌을 떠낸 도시를 빠져나가는 불빛 다시 돌아오기 위한 출발점과 도착점은 왜 매번 뒤늦게 알게 되는 건지   새가 돌아오지 않는 나뭇가지 잿빛 북향의 바람이 흥정되는 동안 술병은 어린 버섯처럼 순하기만 한데   천진한 직관을 제외하고 나면 시를 통해 드러나는 객관적인 인식이란 실은 그리 믿을 것이 못된다. 사유의 매개물은 지식이 아닌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원초적 본능이 아니었던가. 어둠은 상징이 아니다. 어둠속 “별자리”는 비단 베개와도 같은 것. 시인의 사색을 넘은 파멸에 대한 도취와도 같은 죽음 [즉, “잿빛 북향”]은 세상의 온갖 물정을 단박에 무無로 돌려놓는 범汎우주적인 상처와 내통한 것. 그렇더라도 죽음은 부드럽게 말한다; “새가 돌아오지 않는 나뭇가지 / 잿빛 북향의 바람이 흥정되는 동안 / 술병은 어린 버섯처럼 순하기만 한데”. 기독교의 생각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죽지 않기 위해서 죽는다. 이때, 시인을 놀라게 한 것은 죽음의 불합리한 취약점을 홀연 뛰어넘는 초월의 정기精氣 때문이다. 살아있는 자의 욕망은 신체에 붙어 있지만, 죽은 자의 죽음은 정령들 혹은 사랑처럼 물상物象의 피륙을 찢고 어떤 경우로든 정서적인 초월의 정면과 맞물려 움직인다 [즉, 빛의 점멸點滅을 보라; “저녁은 별이 타다 남은 재가 떨어지고 있었지 / 술잔 사이 은닉되어 있는 / 말의 껍질이 벗겨지는 동안 / 별자리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았지”]. 물론 죽음이 삶에 좀 더 확연히 유연하게 뒤섞이는 모습은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안다 [즉, “초벌을 떠낸 도시를 빠져나가는 불빛 / 디시 돌아오기 위한 / 출발점과 도착점은 / 왜 매번 뒤늦게 알게 되는 건지”]. 불꽃이 꺼진 다음 시인은 이곳에서 우주 회향廻向의 복사열輻射熱을 본다. 시인의 의식에 파고 들어온 빛은 다름 아닌 사랑의 때늦은 [즉, “왜 매번 뒤늦게 알게 되는 건지”] 침전물이었던 것. 위상진 시의 내인內因의 자장磁場은 저와 같은 불꽃 “온도”의 실재화로 기어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4 위상진은 또 무엇을 보고 있을까. 시인의 몸 가까이에는 영매靈媒가 있다. 낮은 곳에 있어도 빛은 수직이다. 영매가 움직이는 방향은 언제나 불꽃과 같은 수직이다. 보자. 모든 존재는 고고한 것. 식물들까지도 어쩌다가 사람 몸 가까이 있게 되면 그것들은 사물의 경계를 건너가서 생각지도 않게 귀기鬼氣 [즉, 영매靈媒]를 띠게 된다. 이는 분명 혼의 엄중함일 것이다. 그는 번뇌를 본다 (「숨어 있는 계단」; “태양은 눈을 감고 있었지”). 아상我相의 주체성이 상실될 때는 번뇌가 찾아온다 (『금강경金剛經』). 이는, 사람의 마음이 객관적 세계인 내 자신 건너편 저쪽 색계色界를 지나치게 탐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실상 아상我相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 그렇다. 존재하지 않은 아상我相이 엉뚱하게도 환상의 세계를 넘겨다보다가는 번뇌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번뇌를 벗어나려면, 청명한 자는 주관과 객관의 대칭적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관 [즉, 아상我相]ㅡ객관 [즉, 인상人相]의 대칭적 범주에 사로잡힌 생각으로 말미암아 번뇌와 욕망의 가시덤불을 밟고 있었던 것. 그러나 주관과 객관 두 쪽을 다 부정해버리면 [즉, 이중부정二重否定] 누구든 편안해진다. 시간에는 현시점이 없다. 현재는 물줄기처럼 쉬지 않고 끊임없이 흐른다. 서둘러 말하건대, 미래 속에 과거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새는 어디에 있는가.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번뇌의 문제를 끌어안은 시인의 몸은 요컨대 새처럼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시인은 조작적이고도 조야한 언어의 매듭을 풀고 역리적逆理的인 사고체계의 감응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상진은 또 절벽을 본다 (「완고한 그림자」; “빈 벽에 남아 있는 대못의 그림자 / 완고한 한 점의 그늘인”). 이럴 때는 안쪽다리 대퇴골 근처에다가 힘을 잔뜩 뿌려주어도 좋으리라. 이때쯤 그는 높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 저쪽 메마른 얼음덩어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먼지는 작동한다」; “남극의 쌓인 눈은 가만가만 나이테를 문 채 녹지 않는 발의 감각이었지 신들이 밟고 올라간 육각형의 층위는 고집으로 빛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 다만 벙긋거릴 뿐인”). 거기 서서 그는 혼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점을 곱씹어 판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기서 그는 돌은 돌인 것을 깨닫고, 풀은 풀인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겸애兼愛의 천덕天德 [묵자墨子 BC 468년경~BC 376년경]을 깨달은 자는 어떤 낭떠러지 앞에서라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존재의 본연을 쳐다보려는 자의 혼미를 염두에 두고 보면, 위상진 시에 담긴 슬픔의 벽은 엷다. 왜 그렇게 보일까. 그는 이 땅에서 자기에게 주어지는바 시인으로 살아가는 길이 얼마만큼 험하다는 것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또 거울을 본다 (「거울의 이면」; “변하지 않는 물감의 비율 /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유전자 / 아무도 모르게 잠겨 있는 너의 / 배후를 보는 일이어서 [···] 만족할 줄 모르는 끝의 시작이어서 // 너는 가끔 나를 숨어서 본다”). 시인의 거울은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보는 나르시스의 반추反芻가 아니라, 세계이해의 여러 이미지들과 겹치는 존재의 변형이었던 것. 그의 거울 속에 들어있는 풍경은 사물의 폭넓은 현상 [즉, 가역성可逆性]이면서도 여러 겹 이미지들로부터 갑자기 얻어낸 매혹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바라보는 물체들은 당장 사실의 숭고한 가치를 대부분 숨긴 것들이었다. 자연은 자연의 표면 그대로 아름다운 가치의 소여所與라는 점을 직시해보라. 그렇다면 시인이 쳐다보는 착시의 색깔은 어떤 기하학적인 도면을 그리고 있는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송이 꽃을 바라보면서도 그 꽃의 수줍은 형용보다는 꽃이 꽃이 아니라는 눈물겨운 억측을 달리 품고 있음을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정오의 아이리스」; “꽃을 그린 줄 알았는데 / 태양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그리고 말았구나 / 누설되지 않은 아는 비밀 / 노란 가루를 입술에 묻힌 채 뜨끈거리는 / 욕망의 다른 이름 / 구겨지지 않는 얇은 꽃술”). 그는, 물론 꽃의 아름다운 형식을 결정하는 장본인이 바로 꽃 자체에 있다는 점을 모를 리는 없다. 본질적으로 말하더라도 꽃을 보는 시인은, 꽃 속에는 움직이지 않는 기묘한 꽃들이 가득 차있는 것도 아울러 보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꽃”은 “꽃” 다음에는 다시는 “구겨지지 않는 얇은 꽃술”의 극점極點을 제 자신의 품속에 감춰두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시인은 또 거울을 본다. 거울을 보되 그는 거울 속으로 들어온 복합적인 의미작용 [즉, 정신분석학적인 의미규정]보다는 그러한 분장으로서의 융합을 털어낸 백합꽃빛 순수를 먼저 보고 있었던 것. 저와 같은 물기를 품은 꽃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꽃을 쳐다보는 시인은 이제 꽃 뒤에 서있는 평온을 본다. 그는, 꽃의 초상을 그려내는 시인일진대 꽃 앞에 서있는 거울의 복합적인 의미망網을 좀 더 멀찍이 치워놓아도 좋으리라. 거울을 보되 그는 이를테면 거울 속으로 들어온 불의 또 다른 증언을 다시 새롭게 들어야 하리라. 그것은, 내 자신의 의지를 최고선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맡겨두는 일이었다 [즉, 칸트 (I,Kant 1724년~1804년)의 『실천이성비판』]. 가령, 사회학적으로 말하더라도 급격한 신분상승은 파멸을 낳는다.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위상진 시에서 아름다움의 질료를 다루는 시적 표징標徵의 문제로 다시 돌아서보자. 예컨대 그는, 불의 시공時空 속에는 물의 도정道程까지 함께 들어있음을 보고 있었던 것. 불의 도움으로 물은 단맛을 낸다. 그는 또 우주적인 시간의 물방울을 본다 (「천국의 시간」; “사랑을 할 때 가장 빛나는 극락조의 깃털 / 배우와 악기의 입에 / 숨을 불어 넣는 그의 두 손 [···] 눈을 뜬 채 눈물 흘리던 / 밤과 낮의 경계가 지워진 불 꺼진 모니터 / 리골레토의 / 절름거리던 시간을 놓아 버렸지”). 이것은, 색色의 절정일 것이다. 그랬다. 하늘에서는 햇빛이 떨어졌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시인은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 마음의 결함이 물방울과 함께 떨어지는 허공의 파동들이라는 점을 쳐다보면서 그것을 어떻게든 보정補正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행을 훨씬 가볍게 매만지는 초월적인 감응이 아니었던가. 그만하면 그는, 색色을 탐하지 않아도 행복했을 것이다. 하늘로 솟구치는 물보라가 있었을 테니까. 그의 독창적인 시의 정수精髓를 열고 들어가 보면, 독자는 벌써 시인의 문맥 속에서 물방울로 떨어지는 수직의 낙하가 얼마만큼 큰 울림을 주는지 알게 된다. 인생은 슬픔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 인생은 이별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 아름다움은 잠들지 않는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그가 / 떨어진다는 말을 했다 /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 시간과 몹시 사이가 나쁜, 그는 / 슬픔을 키워 가는 인칭이었어 / 사다리를 치워 버린 불 꺼진 창은 / 인사도 없이 떨어져 내렸지” (「숨어 있는 계단」). 인생전반에 드리운 추억의 문양紋樣들. 물질의 신탁들. 그의 시 속에 한 겹 두 겹 세 겹으로 남아있는 시간의 공명共鳴들. 햇볕을 머금은 물방울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 자신은 투명한 물방울이었다. 인생은 왜 깊은 것일까. 물방울의 낙차 때문이다. 낙차의 끝은 캄캄한 절벽 [즉, “불 꺼진 창”]인 것. 말 없는 허공. 그렇다면 이 허공의 주제에 위상진은 어떻게 다시 대답하고 있는지를 보자.   5 위상진은 그의 시 「염전이 떠 있다」를 이렇게 쓴다;   나는 나이 먹어 가고 나는 늙을 줄 몰라 입자 굵은 태양이 바닷물에 꽂히고 맨 처음 하늘을 키워 놓는 바다   거대한 산을 품고 있는 물의 씨앗 사그락싸그락 결정체로 엉기는 긴 장화 발소리 들려온다 허공으로 팽창하는 정령들의 말랑한 숨결이었지   지친 낮이 저물어 가는 염전 소금 밟히는 소리 길게 끌고 온다 수건으로 태양을 가리고 굴러가는 바퀴 위의 첫 소금 부드러운 바닷물을 밀고 또 밀고 낯선 음악이 오븐에서 타닥, 탁 튀어 오른다 세이렌이 수평선을 몰고 온다   사금파리 같은 달을 품고 주머니에 구겨 넣은 구름의 입자 감각해야 하는 관계는 어떤 것과 교환되지 않는다 가래로 밀어내고 밀어낸 음절 위에서 소금은 푸르게 빛나고 있었지 이때쯤, 시인은 자신이 쓰고 있는 이미지의 활기참 앞에서 그동안 터놓고 이야기하던 버릇 한 가닥을 철회한 듯이 보인다. “허공”의 속삭임이 그의 시의 속살을 깎아내고 있었던 것. 시인의 “염전”은 이상한 일인데, 바닷가가 아닌 “허공” 중에 떠있었던 것. 시인의 “소금”은 “물의 씨앗” [즉, 존재의 근원]이었으되, 이미 “사금파리 같은 달을 품(은)” “허공”으로 떠도는 “구름의 입자” [즉, 존재의 소멸]였으니까. “소금”을 만드는 주체는 “바닷물”이 아니라, “허공”을 주관하는 “세이렌” [즉, 바다에 사는 정령들]의 숨결이었다. 그의 “소금”은 이미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의 입술로 깨문 삶의 밑간이 아니라, 이 땅위에 살면서 “지친” 욕망의 발뒤꿈치 [즉, “소금 밟히는 소리 길게 끌고 온다”]에 밟힌 채 그렇게 “푸르게 빛나(는)” 보폭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불”과 “물”의 결연結緣들을 주목해온 그의 어법으로 본다면, 이는 뒤늦은 후렴일는지도 모른다. 물질의 속과 겉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이때부터는 시인의 시각視覺은 회화적 [혹은, 공기적] 상상력의 볼륨 volume을 더욱 더 낮은 데로 낮추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그는 나이테처럼 번지는 허공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 허공이란, 실체적 세계 [즉, 오브제]를 제거한 공간 [혹은, 하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적 진술의 서열로 본다면, 실체들 [즉, “감각해야 하는 관계”]은 시의 시원始元을 훨씬 분명하게 다져놓는 의식의 대상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현실세계의 내체內體 깊숙이 파고드는 “허공”이라는 변증법적 직관을 빌어 대지 [즉, “바다”] 위에 한껏 “하늘을 키워 놓(고)” 있지 않았는가.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지친 낮이 저물어 가는 염전 / 소금 밟히는 소리 길게 끌고 온다 / 수건으로 태양을 가리고 / 굴러 가는 바퀴 위의 첫 소금 / 부드러운 바닷물을 밀고 또 밀고 / 낯선 음악이 오븐에서 타닥, 탁 튀어 오른다 / 세이렌이 수평선을 몰고 온다”. 시인의 “소금”은, 그러므로 “염전”에 붙어있지 않았다. 시인의 “소금”은, 이제 “허공으로 팽창하는” 지속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소금”의 시간은, 생명운동의 회귀回歸 [즉, ䷾ 기제旣濟 (“물”)가 ䷿ 미제未濟 (“불”)로 바뀌게 되는 영원회귀의 순환. 『주역周易』]로 높이 고양되었다. 위상진의 언어는 잿불처럼 정교한 만큼 또 동시에 정밀靜謐했다. 정밀만큼 고요한 순환巡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고요함이 말하는 입술을 만져보라. 내 자신이 내가 되는 근본은 여기 있었던 것. 내가 나를 열어놓게 되면 나는 크나큰 대인 [즉, 범아梵我]이 되지만, 내가 나를 내 몸 안에 가두어버리면 나는 소인 [즉, 졸부拙夫]이 된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즉, 개開], 그렇게 문이 닫히는 [즉, 폐閉] 영혼의 소리였던 것. 그의 시에 달라붙은 영혼의 균형은 저와 같은 형상의 체액體液으로 무르녹고 있었다는 말이다. 고요한 마음은 무정형인 것 같지만, 시인 자신의 얼토당토않은 꿈의 점토를 잘 문질러보면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절” 속에 영원회귀의 불꽃이 묻어있었던 것. 저것보라. 사물을 시화詩化하는 데 따른 물질의 원초적인 감각은 낮은 숨결 [즉, “정령들의 말랑한 숨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성적인 “달”의 온도. 심연을 바라보는 위상진 시의 실체론적 효율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 위상진이 보여주는 시의 기원祈願은 “허공”이라는 불급不及의 면전을 가벼이 제 자리로 돌려놓은 약속이었던 것. 그것은 여태껏 “허공”을 업신여겨온 보사적補瀉的 치유로서의 위안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시의 구조를, 그렇다면 우리는 달리 상상력의 형이상학 [즉, 시는 무의식의 표상들로 변주된다]으로 명명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도즈와이유 Robert Desoille 1890년~1966년). 물체 (x)는 다른 물체(x)와 통합되도록 (x²) 짜여 있었으며, 그 반대쪽 대칭의 허공 (~x) 역시도 또 다른 허공 (~x)과 함께 어울리도록 (~x²) 구분되어 있었던 것. 이는, 말하자면 2차원적 사유기반의 의장意匠이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공자가 말하는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인지기능의 덕목이었던 것이다. 허공은 물체의 상위적 대립으로 갈라진 상형相形이 아니라, 정숙하게 본다면 사상事象의 조화를 확립하는 황홀이라 할 수 있다 [노자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위지현덕謂之玄德의 자유자재에서 받는 ‘위무위爲無爲’의 축복일 것이다, 『노자老子』 3장]. 그만큼, 위상진의 시는 지금까지 정신의 자기완성을 꾀하는 동요動搖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대립각으로부터 별반 면박을 받지 않은 위상진의 시는, 우리들 일상 안으로 떠도는 심리현상의 일반에까지 눈을 맞추면서 더 큰 역동성을 띠고 있었던 것. 이는 그의 시의 음색音色에 가라앉은 생생한 활기 [즉, “물속”과 “불빛”의 혼합물]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는 위상진의 시를 침착하게 음미할수록 더 깊은 신비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다시 말하자면 토끼는 뿔이 없지만, 그는 토각兎角이란 말을 감춰둠으로써 만상萬象의 허虛와 실實을 변별해냈던 것이었다. 혹은 모순어법도 또 다른 논리라는 점에서 [가령, 기독교의 인지영역인 패러독스 paradox], 그의 시는 어느덧 한층 더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해냈던 것; “내 이름은 스파이 / 내 이름은 바람 / 여러 개 이름으로 자물쇠를 채워 두었지” (「아주 심한 자물쇠」). 현존 [혹은, 허공]의 가치는 깨질 리 만무했다. 시인은 또한 자기 자신의 최면술催眠術 속에 혼자 고립될 리도 만무했다. 그의 낱말은 어언 공기였으므로.     [출처] 안수환시인-만물의 공허를 받아들이는 시간-위상진의 시집 『시계수리공은 시간을 보지 않는다』|작성자 나무 곁에서
바람, 혹은 우주정신의 습숙習熟 -김규화 시집 『바다를 밀어올린다』를 중심으로   안 수 환       1 시가 인간정신의 상승을 결정짓는 책력 almanac이라는 말은 케케묵은 이야기다. 시는 도리어 인간정신의 돌올突兀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생존에 이로운 여러 장점들을 가학적加虐的으로 억누르면서 그에 대한 슬픈 대가를 치르도록 재촉한다. 삶이란, 그것이 진실한 실질일지라도 어느 정도 유기遺棄된 미세포 소관의 미발未發 속에서 숨 쉬고 있지 않았던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얼금숨숨 결정론자들이 말하는 불변의 잇속이 있기는 있다[즉, 반론의 여지없이 콩은 콩깍지와 상관한 규칙만을 따라다닌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규화 시인의 시공 안에 드러난 삶의 액정液晶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화氣化의 연접들이었다[물론, 시인에게는 물질덩어리들의 역운逆運도 있다. 이때 그의 시는 경건에 휩싸인다; “맑고 깨끗해진 거울이 나를 받아들이다가 / 거울이 나를 본받아 흐려지다가 / 흐려지면서 검게 물든다 / 검은 거울이 겹겹이 쌓여서 / 다시 나를 찾아와 검은 눈물이 된다 // 물은 어딘가로 흐르고 흘러서 / 분노를 보듬어 안으면서 상처를 주지 않는다 // 상처를 주는 것은 폭풍 / 분노하는 것은 벼락 / 상처를 받으면 물은 내 집을 침수시킨다” (「인식의 둘째 단계」)]. 좋은 시인은, 인식의 궤도를 쫓되 대부분은 유추類推[즉, 추측]의 불확정성에 다리를 놓는다. 이때는 철학이나 양자 물리학의 공리公理들이 그의 문맥을 관통한다.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 「동글동글」을 이렇게 쓴다;   두 눈썹을 모으며 위아랫니를 앙다물고 킁킁거리며 앙앙거리며 이마에 내천(川)자를 그린다 내천자를 그릴 때 검은 그림자도 함께 그린다   내천자도 지우고 검은 그림자도 지우고 뜰 아래 연꽃 바라보듯이 뜰 아래 연꽃 바라보듯이 그래서 가슴이 너글너글해지면 새의 노래가 들린다   새의 노래는 물방울같이 동글동글하고 동근 노래를 들으며 연꽃은 핀다   “동근”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찌 “연꽃”만을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지구도 동그랗고, 우주도 동그랗고, “물방울(도) 동글동글한” 근원을 그린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라는 게偈가 있지 않은가 (의상義湘 625년~702년 『법성게法性偈』). “동근” 것을 보게 될 때는, “새의 노래가 들린다”. 어찌 새의 노래뿐이겠는가. 이 세상 모든 실체의 환원까지도 보게 될 것이다. “동근” 것은, 결국은 ‘이승-저승’의 일관된 자활自活까지도 한꺼번에 포용하는 포명佈明을 두고 하는 말이다[즉, “나무는 나이를 먹으면서 몸을 둥글게 한다” (「평생 나무」), “햇덩어리가 목덜미에서부터 갈가리 손가락 펴고 / 강과 바다를 오래 만지다가 / 맑은 눈물만 걸러서 하늘로 가져간다” (「비의 일생」), “속이 텅 빈 공이 둥글게 둥글게 논다” (「공」), “때로는 공 하나를 붙잡고 오래오래 굴리면서 / 몽상을 하지만 몽상은 공보다 모퉁이가 없어” (「늙정이」), “바람이 불면 회화나무 가로수가 부러질 듯 / 멈춰서려는 시간도 보인다” (「‘한’자 풀이」), “합창을 할 때는 입술을 둥글게 둥글게 한다 / 둥글다는 말 속에는 크낙한 웃음이 들어 있다” (「소리가 흐른다」) 등등]. 이른바 인도 사상에서 말하는 윤회설輪迴說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리그베다 Rigveda』 ). 허나, 원효元曉 (617년~686년)는 윤회의 굴레야말로 한 마디로 말해 일심一心에 대한 미혹이라고 가르쳤던 것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어쨌거나 이곳에서 시인이 들여다보고 있는 “동근 노래를 들으며 (피는) 연꽃”은, 마치 명경明鏡과도 흡사하게 반야般若 prajna의 구면球面으로 떨어지는 자성自性 intrinsic nature이었던 것. 사랑도 불심도 기다림도 자유의 표상까지도 저와 같은 “동근” 원의 표상으로 조합된다. 시인의 의식은 이때 원융의 체액體液을 가슴 깊이 적셔낸 뒤 그 메커니즘의 조정調整을 한껏 적용해 나가고 있었던 것[즉, “내천자도 지우고 / 검은 그림자도 지우고 / 뜰 아래 연꽃 바라보듯이 / 뜰 아래 연꽃 바라보듯이 / 그래서 가슴이 너글너글해지면 / 새의 노래가 들린다”]. 그의 “연꽃”은, 그러므로 구도행의 비방祕方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타자[즉, 우주]와 나는 “동근” 원의 회향回向 prinama으로 연결되면서 인식론적으로는 그 관련이 객관화되는 현상을 띠고 있었던 것. 이것[이를테면, ‘바다’]과 저것[이를테면 ‘강’]이 하나가 되는 통합은, 현실과 비현실이 한 몸이라는 점을 꿰뚫어보는 후지厚志였다. 이는, 곧 무無와 유有의 간극을 동일한 것으로 바라보는 정관법의 영효靈效였던 것. 이때는 비로소 시인의 견성見性을 통해서, 세계가 먼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옳으리라.   2 김규화 시인은 자기의식의 섭생에 관한 밀의를 과도하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그의 정의情意는 온건했으며, 무한함에 대한 그의 통찰은 간단명료했다. 내 눈에 띠지 않는 이상, 자연 속에 숨어있는 본질을 굳이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어디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시인이 포섭해야 할 시적 긴장으로서의 의미일 뿐 내 손안에 쥔 순명順命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바라보는 그의 세계관에도 한순간의 침음沈吟은 있게 마련이었다 [즉, “누에가 눈을 감고 뜨지 않는다 / 몸에 밴 슬픔을 잠 속에 가두어 놓고 / 깊은 밤 미명(未明)으로 빠져들어간다 / 달콤한 꿈을 불러들여 무자맥질하다가 / 칠흑 밤하늘에 빠뜨리기도 한다” (『누에의 넉잠』)]. 그는, 기다림에는 이골이 난 과객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꿈꾸어 온 덕량德量들에 대한 호응보다는 일상세계의 덧없는 역설들에게 비교적 꼼꼼한 응답을 건네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 「거문고」를 또 이렇게 쓴다;   당신이 나를 두드릴 때는 뒤숭숭하게 두드릴 때는 나는 볼멘 소리를 낸다   당신의 손이 오르락내리락 감정의 줄을 고를 때는 단지 황홀해서 몽당이로 서 있다   당신의 일기예보를 찬찬히 보며 당신이 흐리면 따라 흐리고 내 눈썹을 짓누르는 만큼이나 흐리고 당신이 고개를 돌리는 쪽을 향하여 당신의 얼굴을 따라간다 나의 노래는 당신을 따라 나선다   강은 이미 대지를 무르게 해놓은 액체 강은 이미 주름살 지으며 흘러가고 강의 바닥은 강의 맨밑에 누워서 대지의 비밀을 털어놓으려고 안간힘 한다   찌는 무더위 속에서 우물에 두레박을 내린다 우물이 출렁이고 가슴이 출렁인다 나는 두레박의 물을 마시고 입을 훔친다   좋은 시는, 대상을 만나되 대상과의 경계를 허물고, 그 대상의 자장磁場을 끌어당긴 후 내 마음 건너편 다른 절망切望의 배후까지도 간절히 품어 안는다. 그러다가는 기진해지면 초자연적인 존재질서의 세라핌 seraphim을 찾아가 그분의 인광燐光 앞에서 내 몸을 다시 추스른다. 그분이 강물이라면, 내 몸은 강바닥 맨밑에 누운 물결일 뿐이다[즉, “강은 이미 대지를 무르게 해놓은 액체 / 강은 이미 주름살 지으며 흘러가고 / 강의 바닥은 강의 맨밑에 누워서 / 대지의 비밀을 털어놓으려고 안간힘 한다]. 시인은 이렇게 쓴다; “당신이 나를 두드릴 때는 / 뒤숭숭하게 두드릴 때는 / 나는 볼멘 소리를 낸다”. 또다시 “당신” 앞에 설 때는 “나”는 “몽당이”가 된다고 토설한다. 이토록 슬픈 사랑[즉, 진혼鎭魂]이 어디 있을까. “당신”과 내 자신의 인연이란, 기투企投와 변이變移의 관계[즉, 『주역』의 괘상卦象으로 본다면, 기제旣濟 (완결성) 뒤꼭지에 미제未濟 (미완결성)가 붙는다]로 이어지면서 거듭거듭 나는 갱생한다. 그렇더라도 (내) 갈증은 여전했다[즉, “찌는 무더위 속에서 우물에 두레박을 내린다 / 우물이 출렁이고 가슴이 출렁인다 / 나는 두레박의 물을 마시고 입을 훔친다”]. 아프다. 좋은 시는, 그렇게 사물의 님프들[즉, “거문고”면 거문고, “강”이면 강, “우물”이면 우물]이 춤을 추는 춤사위를 본받으면서, 이 세상이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남모르는 내상內傷을 간직한 시인일수록 그의 노래는 처연하다. 그렇다면, 그의 시에서 사물의 직핍直逼한 개념을 덜어내고 인식의 현전화現前化[즉, 자의自意]를 크게 늘려 놓은 것은 누구에게나 본받을만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현실 변용變容의 시간성을 우주정신의 개연蓋然으로 연결해 놓은 점 또한 본받을만한 일이었다. 시인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 감정의 솟구침을 누르고 자기 자신의 위의威儀를 지켜낼 줄 알아야 한다. 그의 꿈은, 어쨌든 시간의 자기회복 직전直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3 시인이 느끼는 세계이해의 존재론적인 관점은, 신神이 펼쳐놓은 의미의 처소[즉, 어떤 사실들의 집합]에 있지 않고 언제든 그 자신이 먼저 말을 건네던 시간과의 따뜻한 화해和解에 있었다. 그의 의식은 사물들의 후면으로 건너뛰지 않고, 항시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해석을 문제 삼는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 쳐다보는 일별로 대상들의 존재형식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좋은 시는, 그러니까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한한 허공의 점멸點滅들에게 복무하지는 않는다[즉, 세계는 상대적인 보편일 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 「눈에 보이는 보석을 만들려고 하네」를 또 이렇게 쓴다;   마음 속으로 골백번을 다짐하네 행동은 하지 않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오직 황금알을 낳으려고 골백번을 다짐해 보네   이제는 눈에 보이는 보석을 만들려고 하네 보석은 눈에 잘뜨이네, 금·은 다이아몬드·사파이어 눈에 보이는 건강 눈에 보이는 가우디성당―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내가 너를 좋아하여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너도 내 심장의 두근거림을 듣지 못한다면 영 태어나지 않는 보석을 누가 알까   손은 약한 바람을 눌러버리네 바람은 손으로 하여 묻혀버리네   산봉우리의 둥그러움을 보며 내 키는 커가네 눈 오는 겨울 한낮의 정적 속에 금방 저녁이 찾아오네 바이올린 줄이 팽팽해야 고운 소리가 나네   나는 보석 한 줌을 들고 전동차 홈에 서 있네   이 시는, 재보財寶가 무엇이며 또 어디 있는가를 쉽게 알려준다. 삶에 대한 그윽한 학습이 또 어디 있는가를 알려준다[즉, “내가 너를 좋아하여도 /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 그리하여 너도 내 심장의 두근거림을 듣지 못한다면 / 영 태어나지 않는 보석을 누가 알까”]. “보석”은 어디 있는가. “보석”은 내가 만든 보석이라야 그것이 진짜 보석이라는 것이었다. 정신은 자기의식의 광자光子를 끌어안고 날마다 성장한다. 그러다가는, 그 자기의식은 마침내 감정의 순치馴致를 통해 경건해진다. 그와 같은 순치의 단백질 속에라야 시인이 지금껏 찾아 헤맨 “보석”의 물목이 들어앉게 된다. 시인이 “만드는” (“눈에 보이는”) “보석”의 용량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인생사 “둥그러움”의 증험證驗이었던 것이다. 증험은 증험이로되 “이제는 눈에 (잘) 보이는” 행동규범이어야 했다[즉, “나는 보석 한 줌을 들고 전동차 홈에 서 있네”]. 그렇더라도 내 몸은, 때때로 내 자신이 아닐 때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러니까 얼른 보아도 내 마음만 홀로 용립해 있는 자존감이 아니지 않는가. 자기의식의 팽만한 원둘레는, 먼 하늘이 내게 준 우주적 기강의 징표가 아니었던가. 그랬다. 나는 만물과 더불어 내 자신을 아우르는 복수複數로서의 대자對自였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여전히 나 홀로 외롭게 살지 않으면 안 될 인간정신의 비번非番이었던 것. 시인이 “보석”을 찾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그의 “보석”은, 그러므로 무한에게 새삼스럽게 초청장을 띄울 것도 없는 우주정신의 편재遍在였던 것이다.   4 신神을 보려거든, “바람”을 보면 된다.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자는, 그런데 이 세계의 정면에는 신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무한에 대한 두려움 속에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있기 때문이다[혹여, 상징의 음각陰刻이 신이라면 몰라도].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 「바다를 밀어올린다」를 이렇게 쓴다;   바람에 삭인 하얀 얼굴을 들어올리며 원망이 살갗에 반점을 만든다   꽃을 사랑하지 않고 슬픔을 달덩이 같이 품고 웃음을 멀리 하고 고마움은 개울을 건너다 빠뜨려버리며 가슴에 품고 있던 말들을 토해내면 원망이 다시 일어선다   겨울비를 맞으며 가로수 밑을 걸어가는 원망이 나목들 앞에서 춥고 온기는 멀리 낭떠러지까지 밀리어간다 냉수로 세수한 맑은 얼굴의 수녀가 해변을 동글게 감싸면서 바다를 밀어올린다   물거품을 터뜨리고는 말이 없는 원망   시인이 바라본 바다의 위용威容은, 그러나 해신海神이면서도 해신 같지 않은 서글픈 낯빛을 띠고 있었다[즉, “바람에 삭인 하얀 얼굴을 들어올리며 / 원망이 살갗에 반점을 만든다 // 꽃을 사랑하지 않고 / 슬픔을 달덩이같이 품고 / 웃음을 멀리 하고 / 고마움은 개울을 건너다 빠뜨려버리며”]. 어느 순간, 그러나 “바다”는 바람에 휩쓸리면서 원기를 회복한다[즉, “냉수로 세수한 맑은 얼굴의 수녀가 / 해변을 둥글게 감싸면서 / 바다를 밀어올린다”]. 시인이 말하는 “수녀”는 “바다” 한복판 물결 속에서 물결과 함께 춤을 추면서 “물거품을 터뜨리는” 그런 해신이었다. 다시 한 번 쳐다보자. “슬픔을 달덩이같이 품고” 있는 그분은 누구인가. 그러니까 그동안 “바다를 밀어올리고” 있던 그분의 원심력은, “바람”의 늑골肋骨이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어떤 글에서 바람의 품성에 대한 소견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입 다물고 있는 바람의 지향점은 사랑[즉, 순결한 충동]이었다. 사랑은 바람처럼 분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바람을 보면, 내 마음은 벌써 당신의 풍요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마음은, 그런데 일곱 가지 정情으로 쪼개진다. 칠정七情이 그것이다[이른바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의 마음은 도덕적인 덕목을 필요로 하게 된다]. 누구든지 마음을 함부로 바꾸게 되면, 그때부터 악이 찾아온다” (『주역시학』). 칠정이란, 바람의 기화현상이었다[즉, 풍기風氣 / 궐음厥陰의 별자리 『소문素問』 「천원기대론天元氣大論」]. 그렇다면, “바다”의 물결과도 같은 정신의 문은 언제 열리는가. 그럴 때는, “물거품을 터뜨리고는 말이 없는 원망”[즉, 침묵]이 내 마음결로 깊숙이 파고 들어와야 하리라 [즉, “가슴에 품고 있던 말들을 토해 내면 / 원망이 다시 일어난다”]. 그런 다음에라야 나는, 비로소 내 정신의 소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지 않겠는가. 『금강경金剛經』에서 말하는 ‘유상有相 / 무상無相’과 ‘비유상非有相 / 비무상非無相’의 적멸寂滅[즉, 고요]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품).   5 무신론자가 아닐지라도, 시인은 소멸[즉, 침묵]을 마음속에 넣고 세계를 바라보는 자라야 한다[즉,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70년경~BC 399년경)는 “너 자신을 알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실은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몸의 상실은 곧 정신의 부재를 드러내는 근거일 것이다. 먼 하늘은 언제나 몸뚱어리 건너편에 죽음을 세워 놓는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은 텅 비어 있으나 / 하늘의 별들은 원만하게 리듬을 타며 / 움직이지 않는 운동을 한다 // 우주는 우리에게 어머니를 되돌려준다 / 나는 손가락의 마디마디를 움직인다 / 바람이 나에게 그늘 한 점을 보낸다 // 그늘이 내 흰옷의 윗도리에 떨어지고 / 나는 그늘 한 점을 죽은 심장처럼 /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닌다” (「어머니는 우리를 운반해 간다」). 이는, 죽음이 아닌 생명을 예찬한 게송偈頌이다. 과학철학은 몸을 중시한다. 시인은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몸을 잠자코 건네다 본다[즉, “나는 내가 없는 곳에 서 있다” (「죽을 문제 살 문제」)]. 그렇다면, 다음의 절품을 또 읽어보자; “마음 속에 신(信)을 떠올리거나 / 믿어 잠재우는 일은 / 절반 이상의 운을 움켜쥐는 일 // 신을 떠올리지 않거나 / 마음 속의 의심은 / 열 손가락을 소심하게 만드는 일 / 두 발목의 힘을 빼놓는 일 // 신은 올바른 깃대 위에 매달린 깃발이다 // 바람이 불어 깃발이 날린다 / 바람은 신을 낳는 어머니다” (「신信」). “바람”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신을 낳는 어머니”였다. “깃발”이었다. “신信”이란, 내 자신이 당신의 몸과 우주와의 통섭通涉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인지행위로서의 내포를 의미한다. 이 믿음의 결곡함을 최초로 선포한 인자人子는 아마도 예수이리라[즉,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신약』 「마태복음」 17:20)]. 물론, 돌멩이를 떡으로 만들 수는 없다 (「누가복음」 4:3). 그렇더라도 그 돌멩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으면, 베드로의 반석이 되지 않았던가 (「마태복음」 16:18). 시인은 다시 다음과 같은 시 「죽을 문제 살 문제」를 이렇게 쓴다;   죽을 힘을 다해서 죽을 문제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 문제를 생각한다 한숨을 버리고 푸념을 버리고 그러나 어쩌다가라도 예사롭지 말고   죽은 나무에 꽃 피울 생각을 한다 고목 둥지에 핀 운지버섯꽃 궁리에 궁리를 더하면 기적의 얼굴이 보인다   봄은 여름을 돌고 여름은 가을을 돌아 겨울로 이어져 둥그런 바퀴가 되고 바퀴가 이어져 굴러가듯이 되풀이되는 노래의 후렴같이 들판이 멀리서 배를 깔고 누워 있다가 푸른 하늘에 섞인다 하늘이 내 목을 칭칭 동여맨다 나는 내가 없는 곳에 서 있다   아름답다. “들판이 멀리서 배를 깔고 누워 있다가 / 푸른 하늘에 섞인다 / 하늘이 내 목을 칭칭 동여맨다 / 나는 내가 없는 곳에 서 있다”. 시인의 자각自覺은, 지금 저 건너편 시간의 정밀靜謐을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는, (이상한 일인데) 그의 시를 읽는 동안 이 세계가 한사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우리들을 밀쳐낸다. 왜냐하면, 의미와 실재의 거리는 멀고도 먼 현상의 강물을 건너야하기 때문이다. 시는, 그러므로 내 자신에 대한 탐색이 아닌, 힌두교의 예견력豫見力이 그랬던 것처럼 신神 부재의 인식에 머물도록 속삭인다[그렇다라도, 신을 믿는 행위는 값진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인이란 무無를 신봉하는 자들이 아닌가. 무가 인생의 의미를 더욱 깊이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생이든 물론 수많은 오류와 불운을 겪더라도 헛되이 낭비된 적은 없다. 오행론五行論으로 보면, 음양의 영측盈昃만이 교차될 뿐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죽은 나무에 꽃 피울 생각을 한다 / 고목 둥지에 핀 운지버섯꽃 / 궁리에 궁리를 더하면 / 기적의 얼굴이 보인다”. 삶의 운행은, 실상은 하늘의 28수宿의 궤도를 쫒아 움직인다[즉, 천체가 도는 것과 같은 규율 / 인체 경락經絡의 기氣도 이와 같이 돈다]. 내 운명은, 내 손바닥에 파인 손금처럼 움직인다.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도, 기후는 먼저 달려와 요동을 치는 경우가 있다. 내 몸이 내 정신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때는 어김없이 병마病魔가 찾아온다. 그러므로 정신의 분잡紛雜을 지워버리는 허공도 있어야 하지만, 정신을 살려내는 실유有實도 있어야 한다. 신은 우주의 주관자가 아니긴 해도. 인간의 부적절한 과욕의 주제자로 간주될 수는 있다. 시인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내 목을 칭칭 동여맨다 / 나는 내가 없는 곳에 서 있다”. 좋은 시라고 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공훈功勳보다는 시간의 생기生起를 찾아 바삐 문밖으로 나서야 하리라. 시간은 하늘의 쟁반 속에 담겨 있는 것[즉, 하늘의 시간은 그러기에 x축 곁에 멍석처럼 깔려있지 않고, y축 위에 벽돌처럼 쌓여있다]. 시간적으로는, 그러니까 끝이 없는 무극無極[즉, 태허太虛]만 나타날 따름이다. 나는 이것을, 니체 (F.Nietzsche 1844년~1900년)가 말하는 영원회귀라고 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란, 결국은 막다른 골목[즉, 아포리아 aporia]일 뿐이다. 그런데 김규화 시인의 ‘사건 / 사물’ 들은, 돌연 그 시간 위에 점선을 찍는 변물變物로 나타난다[즉, “내가 하는 일에 두 주먹을 쥐고 / 발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 기쁨과 마주하게 된다” (「믿는 것 옳은 것」), “아, 보면 보라지, 쳐다보는 것이 잘못이지 / 등나무는 더 갈등이 생기기 전에 말을 내려놓는다” (「모월모일의 갈등」),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흐른다 / 흐르는 것은 모두 강으로 간다” (「양이 있는 풍경」), “나는 허공을 향해 팔매질을 한다 / 농밀한 달빛이 한바탕 소스라치더니 / 난간도 붙잡지 못하고 곤두박질이다” (「슈퍼문」), “죽음의 공포 소리도 / 작은 신음으로 바꾸어 놓는 / 네 벽 속의 명랑 주머니” (「그 사람」), “그러면 세상 모두 지나가나니 / 그렇게 살다가 흰나비 따라가는 것이니 / 흰나비는 여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그냥 그렇게」), “나뭇잎이 바르르 떨면 / 바위는 귀가 되어 듣는다” (「이데올로기」) 등등]. 그의 시는, 사변적이었지만 결코 결정론적인 논증에 물들지 않는다. 결정론을 부풀리게 되면, 그것은 자유의지 못지않은 환멸로 자랄 수밖에 없었으니까.   6 김규화의 시편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면서 범하기 쉬운 흠결을 씻어내는 세척제 abstergent다. 그의 시를 읽다가 보면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의 다른 시를 또 읽다가 보면 내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것은 대각에 서있는 자의 자의적인 판단이겠으나,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시듯이 그의 시는 독자의 넋을 사로잡는다. 살아있는 님프들의 고향은 죽은 님프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슐라르 G.Bachelard 1884년~1962년, 『물과 꿈』). 삶이란 칙칙한 어둠으로 물들어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더 자주 성스런 시간의 위엄들로 가득 차있는 것. 자나 깨나 무의식의 무모순율에 따른 마음속 만월滿月을 먼 하늘 말없는 미래로 높이 띠워 올리곤 하지 않았던가. 내 삶을 바꾸어나가려는 결의는, 대지의 명령이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명확히 해두자. 우리는, 삶의 문제 앞에서라면 두 번 살지 못한다는 생각을 철저히 응시할 필요가 있다. 김규화 시인의 도저到底한 생활 반향反響이 그 점을 일러준다.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 「절벽이 말을 걸어온다」 (중간부분)를 이렇게 쓴다;   나는 항상 주춤거리다가 절벽까지 밀리어오고 너그럽게 싸르륵 받아들이자고 싸르륵 허공이 밀물질하며 말을 걸어온다 그에게 매달려 시간을 줄이며 허공에 구멍 하나 뚫어놓는다   시간은 매순간이 궁극이었다. 마침내 그의 시는, 상감象嵌과도 같이 인생의 겸허한 깨우침을 “절벽”[이는, 남편의 임종을 감내해내는 전치前置였겠지만]과 “허공”의 염결성廉潔性 속에다가 깊이 늑석勒石해 놓는다. 그것은 내 마음을 청궁淸躬[즉, 맑은 몸]의 물방울로 닦아낸 자의 온유함이었다[즉, “그에게 매달려 시간을 줄이며 / (나는) 허공에 구멍 하나 뚫어놓는다”]. 이때는 실제로도 하늘과 내 마음의 속내가 다르지 않다는 숨결로 호흡을 하게 된다. [출처] 안수환시인 - 바람, 혹은 우주정신의 습숙習熟-김규화 시집 『바다를 밀어올린다』를 중심으로|작성자 나무 곁에서
□시인론 / 김규화   “무한한 우주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김규화 시집 『말·말·말』을 중심으로     안 수 환   불리어진 이름이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된다 - 시인의 「멍에」 중에서       1 왜 시인은 말(馬)에 대한 말(언어)의 연관을 뿌리치지 못하는가. 그런 질문을 던져가면서 나는 이 글을 썼다; ① “흰 고래가 바다 한가운데서 상어에 붙잡히고 / 한바다가 흰 피를 내며 출렁인다 / 나의 손끝에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말이 뛰쳐나간다” ((이는, 말(언어)에 대한 시인의 경외심을 추인해 보여주는 대목 [즉, 환유換喩]이다))와 같은 극지極地를 보아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고 (「파발마擺撥馬」), ② “세상의 역사는 말로써 씌”어지는 까닭에 그럴 것이며 (「종마種馬」), ③ “무한한 우주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하는” 까닭에 그럴 것이고 (「종마種馬」), ④ “펜을 손에 쥐고 어루만질 때 / 말은 비로소 살아서 / 공기를 밀어내며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까닭에 그럴 것이다 (「종마種馬」). 시인의 말(언어)은 예컨대 ⑤ “맷돌판 밑에서 자근자근 빻이”는 낱말의 체위體位를 매단 채 (시인의) 의식을 마름질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연자硏子방아말」). 이윽고 시인의 낱말은 ➅ “아리송한 말(馬)의 육체가 삼삼하게 아른거리는” 사물 곁으로 다가와 그 사물의 복개覆蓋를 열고 시인의 손가락을 깨물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즉, “내 소중한 말(馬)과 하나인 내 손가락이네” (「연자硏子방아말」, 「오추마烏騅馬」)]. 말이란, 말로서 어떤 일정한 생각을 표현해내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시인이 꿈꾸는 말은 말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말의 도추道樞임에 분명하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시인의 말은, 그러므로 언어의 문자적인 연관에만 묶여있지 않고, 진리의 지향인 우주론적인 시제時制의 그 원점을 향해 불빛처럼 타올랐던 것이다. 김규화 시의 인식론은 단순했다. 그는, 그의 시집 『말·말·말』에서 인지적인 의식의 착각을 덜어내기 위해 언어의 파편화로 나부끼는 불투명한 의미의 미봉책을 한겹한겹 벗겨내고 있었으므로.   2 김규화 시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馬)은, 말(언어)의 구획 [혹은, 실체적 진실]으로부터 뽑아 올린 본질의 의사적擬似的 조형물들이다. 그의 시적 현실태態 [혹은, 기표]는 인간의 마음 언저리로 피어오르는 우주 자연의 요체要諦로 집중돼 있다. 시인은 무오류의 착각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때부터 시인이 된다. 오류는 내 생각의 가벼움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 생각을 대뜸 우주의 무한함으로 비끄러매는 오기에 기인한 것들이다. 생각이 무거워지면, 인생과 삶은 덩달아 무거워진다. 실제와 허구를 갈라놓고 보면, 우주적 형상에 반하는 비사실적인 우연이 판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같은 상황 속에서는 길운吉運도 있기는 있다). 어쨌든 김규화 시인의 시집 『말·말·말』을 일별해 보건대 그의 예술혼 한복판에는 오방五方 대우주와의 정합整合으로 통하는 언어체계의 기표적인 율려律呂가 굽이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랑스 생 짧은 키에 느긋하고 사교성이 많다 짧고 튼튼한 다리로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산악지대를 오른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 창밖의 플라타너스를 본다 달리는 마차의 꽁무니를 TV에서 본다   고장난 마차는 바퀴를 갈아끼워도 말은 내장을 갈아넣지 못한다   나의 부하이다가도 말은 나의 주물(呪物)이 되고 내가 말의 등에 오르면 우리는 한쌍이 된다   태양은 보름달 하얗다 지구는 나뭇잎 초록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 -「콤토이스」 전문 어느새 말 [즉, “콤토이스”]과 내 몸은 한 몸이 된다. 이때는, 위 시 언표의 시의時義가 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즉, “나의 부하이다가도 / 말은 나의 주물(呪物)이 되고 / 내가 말의 등에 오르면 우리는 한쌍이 된다 // 태양은 보름달 하얗다 / 지구는 나뭇잎 초록이다”]. 낱말의 전위轉位로 바라보면 나 자신의 의식은, 그것이 내 몸의 의식이 아닌 또 다른 누구의 목소리 [즉, “지구는 나뭇잎 초록”]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필경 우주의 침묵으로부터 들려오는 예단豫斷일 것이다. 시인은 사물과의 교감없이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시인이 천리天理를 알아채는 것도 모두 사물 [이르테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사막지대를 오르는 (‘콤토이스’)”]과의 정합으로부터 온다. 그것은, 변증론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물의 미세한 단세포 뒤에는 세계연緣과 맞물린 동그란 표상이 끼워져 있었던 것. 그것들 심오한 전하電荷가 시인의 감성에 와 머물기까지는 오래 기다릴 것도 없다. 일순간의 존재론적 파상波狀이면 충분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인은 낯선 대상과의 일면식 한 번으로도 우주정황의 핵심을 추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3 얘기가 별안간 우주론 쪽으로 기울어졌다. 시인의 예지豫知를 이야기하다가보니까 그동안 더없이 궁금했던 외부세계의 여러 조항들이 한꺼번에 말문을 열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계는 내 관점의 본보기일 뿐이다. 우리가 재빨리 적응해야할 부분은 낯선 존재들에 대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그 대상의 외연外延을 하나씩 둘씩 구별해내는 의식의 정립이었던 것.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물의 비익秘匿은 아무것도 시인에게 전달해주지 않는다. 이때는 평정심으로 돌아갈 때다. 그처럼 마음이 고요해지면, 일상적인 경험의 순수 유명론 속에서도 먼 우주통신의 스펙트럼 spectrum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영국은 오래 전부터 암말을 아랍 수말에 교배시킨다 갈색 가죽옷과 진갈색 머리칼에 스멀스멀 풍기는 몸의 향기 질주하며 날아올라 고원(高原)을 넘는 구름같이 서러브레드는 스피드하고 힘 넘치는 경주마가 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당신을 빛나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감이다” 는 카네기의 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맨가슴 펴고 왕발굽으로 콕콕 땅을 차다가 온몸을 떨며 내달리는 행렬에 서서 메뚜기처럼 뛰는 앞다리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 위풍당당 콧소리, 매끌한 대추색 피부를 뽐낸다   별 하나가 공중에서 미끄러진다 공간이 양보하고 시간이 내려온다 말은 아득한 곳에서 와서 아득한 곳으로 간다 -「서러브레드·2」 전문   “서러브레드”의 “진갈색 머리칼”·“바람에 휘날리는 갈기”·“온몸을 떨며 내달리는” 그 몸짓은 그대로 하늘의 융기隆起를 빼닮았다. 저와 같은 대유代喩를 보더라도 하늘은 하늘에 있지 않고 대지 위로 내려와 “왕발굽으로 콕콕 땅을 차(는)” 위용을 내보이고 있었던 것 ((말(馬)을 하늘(乾)이라고 부르는 것은 (위천爲天) 그 때문이다 [즉, 『주역』 「설괘전說卦傳」의 ‘위양마爲良馬’,‘위박마爲駁馬’]. 하늘이 하늘인 것은 그러므로 하늘 자체 안에서 잉태되는 천운天運의 척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다. 시인의 말(馬)은, 어디서나-언제든지 그 같은 하늘의 실체적 진실의 회전축軸 아래서 움직인다. 진리는 모난 돌을 밟지 않는다. 말(馬)에 대한 본질적인 공감을 얻어낸 시인의 지각은 어느덧 공간과 시간의 경사면 [즉, 대지적인 지평]을 건너온 “서러브레드”의 “몸의 향기”를 지켜보면서 “고원(高原)을 넘는 구름 같은” 불확정적인 여백이 또 어디 있는가를 다시금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때 시인이 정말로 꿈꾸는 마음의 평온이란 외부로 연결된 자연의 조화라기보다는 그때까지 공허로 남는 세계이해의 재발견이었으리라 [즉, “별 하나가 공중에서 미끄러진다 / 공간이 양보하고 시간이 내려온다 / 말은 아득한 곳에서 와서 아득한 곳으로 간다”]. 김규화 시인의 상상을 꿰뚫는 우주혼은, 엄밀히 말해서 지금껏 시인이 믿어왔던 절대와의 그 밀월관계를 끊어낼 때 그때 그곳으로 다시 밀려오는 변화율이리라.   4 시심을 느낀다고 해서 누구나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정신의 퇴락頹落은 업무에 복속돼 있거나, 일상의 인연 속에 파묻혀 있거나, 아예 말문도 틔지 않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을 때 홀연 노출되게 마련이다. 만감에 연루된 사물은 또한 그때까지 아무데나 널부러진 채 시들어갈 뿐이므로. 시의 구성이란, 저와 같이 ‘죽은’ 사물을 살려내는 일이었던 것 [즉, “사물들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야단법석이다 / 이름 짓는 일은 말을 짓는 일이다” 「아랍」]. 허나, 시의 직단면直斷面에 맞는 바람은 좀처럼 불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는, 세상과는 무관한 시인 자신의 선善의지만을 감정해가는 제구였단 말인가). 시는 진실의 복원을 위해 해인산매海印三昧를 끌어안은 시인의 무제한적인 법문이 아닌가. 그랬건만 실체의 단역들은 어째서 세상살이의 부조화를 아직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참됨’은 자기갱신의 이성적 절차에만 매달려있을 뿐 아직도 역풍의 페달을 밟고있지 못했다. 그러나 김규화 시인이 바라보는 말(馬)은, 지금 그 역풍을 밟고-대지를 밟고 하늘로 비상한다 [즉, “말이 새라고 말을 하니까 그곳이 환하다 / 환함이 새의 언저리에 산다 / 창이 밝아오고 아침노을이 떠오른다” (「말 탄 자와 차 탄 자」), “말을 타고 말을 하면 말과 한몸이 된다 / 시월 상달은 말날(午日)이어서 / 말있는 날에 말있게 맛있게 간장을 담근다 / 초인종 소리는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말이다” (「말은 기마병騎馬兵을 태우고」), “평원에는 바위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고 / 말은 바위를 내려다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 (「갈기와 꼬리」), “말을 잘 타야 말을 만든다 / 그 많은 말들을 찾아낸다 // 흰색 구름바퀴가 하늘을 굴러간다 / 향수에 젖은 뭉게구름이다” (「캐나디안」)]. 하늘의 광채를 쓸어 담는 말은 이제 더욱 정결해져야 하리라. 망상과 비현실에 가로막힌 말(언어)은 미분화된 물방울의 비산飛散처럼 사물 자체를 존재소素가 아닌 우연한 표물標物로 흩어놓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규화 시인의 낱말은 불포화성不飽和性 질료에 대한 평정이며, 군더더기 사물의 반윤리적인 비번으로부터의 회향이었던 것. 사물의 비상非常만한 비非시적인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5 시인에게는, 사물 [혹은, 사건]의 포괄적인 가닥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예기』는 예악만을 얘기해서 지루한 책이 되고 말았다. 옳은 말을 한다고 그 말을 누가 귀담아 듣겠는가. 사랑의 밀어는 오래가지 못한다. 바람이 바람다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천명天命은 천명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라일락은 라일락의 끝이었다. 그런가 하면 라일락은 라일락의 한계를 다시금 뛰어넘는다. 해체주의의 눈길로 보면, 자연물 속에는 어떤 유일唯一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객관적 통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의 한계는 그렇다고 해서 들쑥날쑥 현존의 실정을 어질러놓는 게 아니다. 현실과의 화해를 꿈꾸는 시인의 지각은 지금도 여전히 다함없는 사유를 통해 사물들의 촉선觸線과 자기 자신의 속내를 하나로 맞춰놓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없이 시인은 무엇으로 아무것도 아닌-아무도 없는 존재의 침묵 앞으로 성큼 다가갈 수 있겠는가. 이때 김규화 시인은 말(馬)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말(언어) 앞으로 다가간다. 그는 다시 이렇게 쓴다;   몸 속에 형광등 켜놓았나 검은 피부가 윤이 난다   눈 속에 백열등 달아놓았나 갑자기 저 세상이 비친다   커피가 발음을 껍데기에 붙이고 나에게 배달돼 와서 ‘커피’ 한다   나는 꿈속에서 그림과 함께 있었다 꿈에서 시작하여 꿈 깨어도 이어지다가 다시 꿈 속으로 나는 들어간다   “전체란 시작, 중간, 그리고 끝이 있는 것이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다   말은 살 공간이 작아서 나는 한사코 말의 공간을 넓힌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사는 말은 태어날 때부터 작아서 빨리 달리기에 좋다   허벅지의 근육이 빠른 속도를 내고 가는 종아리가 넓게 잡는다 앞다리는 몸무게를 뒷다리는 달리기를 맡는다   힘이 좋아서 말은 걷지 않고 잘 뛰어다닌다 -「제주마」 전문   말(馬)의 몸이 대지 [혹은, 우주 “전체”]이고, 말(馬)의 몸이 대지와의 약속이다. 몸은, 몸이 아닌 몸의 초월이다 [즉, “허벅지의 근육이 빠른 속도를 내고 / 가는 종아리가 넓게 잡는다 / 앞다리는 몸무게를 뒷다리는 달리기를 맡는다 // 힘이 좋아서 말은 걷지 않고 잘 뛰어다닌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그 초월의 대지적인 지평을 좀더 자세히 관찰해보아야 하리라. 초월을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업인業因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표상세계의 뒷전으로 한 발짝만 물러나도 유정有情 세간의 그 깊디깊은 표적과 함께 업인의 과보果報가 한꺼번에 밀려들지 않는가. 그랬다. 업인의 휘장 뒤에 숨은 자는 초월을 볼 수 없다. 가만히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라. 거기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자꾸 불러대는 소리가 다가오지 않는가. 바로 그때 내 이름의 공간이 넓혀지고 있었던 것 [즉, “나는 꿈속에서 그림과 함께 있었다 / 꿈에서 시작하여 꿈 깨어도 이어지다가 / 다시 꿈 속으로 나는 들어간다 (···) 말은 살 공간이 작아서 / 나는 한사코 말의 공간을 넓힌다”]. 이때는, 시인은 청정심淸淨心으로 연결된 허공의 가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   6 다시 한번 말해보자. 김규화 시인의 “사물” (「아랍」)은 그의 말(馬)들이 그렇듯이 사물이 아닌 사물 건너편에 있는 존재의 개시開示였다. 그는 시집 『말·말·말』에서 말(馬)의 쓰임을 줄기차게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말(馬)의 기량 [즉, 현실규칙]은 말(馬) 자체의 기량이 아닌 세계정신을 포용하는 시인의 유명론이었던 것. 말(馬)의 쓰임이란, 장자가 말했던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여가餘暇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장자』 「소요유逍遙遊」). 만물을 접촉할 때 사물의 정묘함을 건너가게 되면 지각으로도 알 수 없는 도추道樞의 무궁함을 만나게 된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이때는, “이것은 저것이 되고 저것은 또 이것이 된다”. 사물은 저것이 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이것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물무비피 물무비시 物無非彼 物無非是). 사물은 무궁한 변화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시간 또한 무궁의 그림자가 아닌가. 시인은 그래서 ‘제주말’을 이야기했고, ‘오추마’를 이야기했고, ‘관우의 적토마’를 이야기했고, ‘나폴레옹의 말’을 이야기했고, ‘차마고도의 말’을 이야기했고, ‘몽골초원의 말’을 이야기했고, (···) ‘펠 펜 포니’를 이야기했다. 최종적으로는 시인의 말(馬)은 언어의 몸으로 다가와 인생살이 자기극복을 돌아보는 영매靈媒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또 이렇게 쓴다;   낮 12시는 정오(正午), 오시(午時)에는 말이 뛴다 말이 뛰다가 언덕에서 떨어진다   밤새 어루만지면서 말을 다듬어도 말이 새나간다 말이 새나가면 말이 안 된다 들은 말은 들은 데 버리고 본 말은 본 데 버리라고 어머니가 말한다 눈먼 장님은 서울을 가도 말 못하는 벙어리는 서울을 못 간다고 할머니가 말한다   갈기가 목덜미에서 가지런히 목을 타고 한쪽 가슴으로 모아내려가다가도 달릴 때는 갈기를 펴서 평원에 흩날린다 말총이 길게 꼬리에서 빗질되어 포니테일 머릿채로 서 있다가도 평원을 달릴 때는 산발(散髮)을 한다   평원에는 바위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고 말은 바위를 내려다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몸에 살처럼 깃들어 있는 말 이미 신처럼 몸 안에 산다 말이 내 안에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는 파스칼의 말 -「갈기와 꼬리」 전문   위 시는 말로써 말을 되물리는 중의법重意法이 아니다. 치언巵言이다 [즉, “밤새 어루만지면서 말을 다듬어도 말이 새나간다 / 말이 새나가면 말이 안 된다 / 들은 말은 들은 데 버리고 / 본 말은 본 데 버리라고 어머니가 말한다 / 눈먼 장님은 서울을 가도 / 말 못하는 벙어리는 서울을 못간다고 할머니가 말한다”, “몸에 살처럼 깃들어 있는 말 / 이미 신처럼 몸 안에서 산다 / 말이 내 안에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말로써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하늘을 보라.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의 균형이란 하늘의 실상에 합쳐져 있을 뿐이다 (천균자 천예야 天均者 天倪也 『장자』 「우언寓言」). 시인일진대 그러니까 그는 하늘의 균형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김규화 시인은 말을 하는 동안 말을 지우고. 말을 하지 않고도 말을 하는 (무언이언無言而言) 그와 같은 치언을 붙들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김규화 시인의 수많은 말(馬)들이 또한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말의 이름은 말의 얼굴이다 / 반짝반짝 빛을 내며 돋을새김하고 있다” (「조홍마棗紅馬」)].   7 시인의 상상은 어느새 날개 달린 새의 비상飛上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 [즉, “나의 손 끝에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말(馬)이 뛰쳐나간다” 「파발마擺撥馬」, “오래오래 솟대에 앉아 있던 새가 외발을 떼부수고 / 하늘로 날아오른다 / 다시 내려오면서는 꽃잎이라는 말을 받아 온다” 「서러브레드·1」, “말(馬)이 새라고 말을 하니까 그곳이 환하다” 「말 탄 자와 차 탄 자」, “윙윙 소리에 페가수스의 날개가 붕붕 떠오른다 / 떠오른 자리에서 팔라벨라는 사라지고 / 말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교적으로 대답한다” 「팔라벨라」]. 시인의 통찰은, 여기서부터는 존재의 규격이 아닌 그 존재를 뛰어넘는 순수의 지향에 관한 무결점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스코틀랜드에 사는 키작은 세틀렌드 포니는 밥주머니가 작아서 조금씩 먹고는 자주 배가 고프다 그래도 힘이 세고 용감하다   전쟁터에서는 주검을 사냥터에서는 짐승의 피를 보고 두 눈망울로만 간단하게 말한다   말은 기호를 풀어 눈으로 나타낸다 말은 전쟁을 풀어 힘줄로 나타낸다   내가 기쁘다니까 분수는 몸을 부수어 대답한다 두려움의 나날이여, 말은 나뭇잎처럼 떤다   말은 저 혼자 서서 말은 나와 나란히 서서 먼 산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 기쁘다   산은 그림같이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산은 말보다 먼저 나를 사로잡는다   “실패하는 길은 여럿이나 성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다 -「세틀랜드 포니」 전문   시인의 말(馬)은 항상 타자 [그것이, 하늘인지 땅인지 바람인지는 몰라도: “말은 기호를 풀어 눈으로 나타낸다”]로 태어나는 은유의 포물선들이다. 시는, 공허한 빈말을 말하지 않는다. 빈말의 뿌리는 진실성이 아닌 유사성에 닿아있을 뿐이다. 김규화 시인의 말(馬)은, 그래서 그 공허의 표면을 짓밟고 다닌다. 시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구 “실패하는 길은 여럿이나 성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다”를 차용하는 까닭은 그것들 빈말을 볼모로 잡는 가공의 불빛이었던 것 [즉, “내가 기쁘다니까 분수는 몸을 부수어 대답한다 / 두려움의 나날이여, 말은 나뭇잎처럼 떤다”]. 달리 말하자면, 시인의 철학적인 인식체계의 인용은, 지금까지 말해온 시적 담론을 급회전시킴으로써 그가 꾸려온 언어의 카타크레시스 catachresis (함축적 은유로서의 비유) 자체가 자연의 모방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여실히 검증해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시인이 꿈꾸는 말(언어)의 광채였던 것. 그만큼 시인의 시적 통찰은 삶의 경건함에 닿아있었던 것. 그러기에 그는 한사코 “나뭇잎”의 “떨림”을 바라보면서도 무형상적인 우주와의 화동和同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말은 저 혼자 서서 / 말은 나와 나란히 서서 / 먼 산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 기쁘다 // 산은 그림같이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 산은 말보다 먼저 나를 사로잡는다”]. 시인이 바라보는 말(馬)들의 형상은 그러나 보면볼수록 말(언어)의 허상 [즉, 이름]을 날려보내는 물격物格이었던 것이다. 노자의 관점으로 다시 말해보자; “이름을 얻게 된 뒤에는 또한 (그 이름의) 그침을 알아야 한다”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노자』 32장). 김규화 시인은, 말(언어)의 빈틈 사이로 달려오는 우주공간의 직의直擬가 어느덧 수많은 말(馬)들의 체용體用과 나란히 겹쳐져있음을 깨달았던 것. 시인의 말(馬)은, 말하자면 그의 영혼을 일깨우는 중간자적 소임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중간자의 비표祕標 없이 시인은 어떻게 우주정신의 초월을 품어 안을 수 있었겠는가. [출처] 안수환시인-“무한한 우주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김규화 시집 『말·말·말』을 중심으로|작성자 나무 곁에서
116    프랑스 현대시 또는 공허의 소명/김정란 댓글:  조회:434  추천:0  2022-09-11
세계시의 현장   프랑스 현대시 또는 공허의 소명/김정란     양차 대전을 직접 체험한 프랑스 시인들은 인간의 야만을 목격한 충격 속에서 시를 통해 현실로 다가가기 위한 직접 통로를 열 수 있기를 원했다. 전후의 시인들은 보다 문학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시의 언어는 어떻게 실재와 관계를 맺는가? 실재 앞에서 시적 언어란 무엇인가? 늘 관념에 덜미를 잡혀있는 언어라는 것이 과연 관념의 저주를 따돌릴 수 있는가? 시란 가능한가? 언어 자체마저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새로운 말라르메라고 불릴만한 이 지성적인 시인들은 철학과 시론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이 가능성 없는 수수께끼 풀기에 도전한다. 언제나 보편의 영광에 이르려 하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개인적 해결책밖에는 써낼 수가 없는ㅡ그것도 예외적인 몇몇 명석한 시인들이나 성공하는ㅡ시도. 그러나 그것은 현대시의 한계가 아니라, 현대시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는 이미 초현실주의자들이나 레지스탕스 시인들처럼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싸울 상황이 아닌 것이다. 세계는 미분화되고 다양화되었다. 몇 개의 원칙에 따라 세계를 단순하게 재단하는 시대로부터 시인들은 멀리 와 버렸다. 따라서 시인들은 이제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세계 앞에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시를 가지고 세계의 모든 문제 앞에 마주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여하는 어떤 특정한 문제에 관해 매우 전문적인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자신의 기량을 놀라울 정도로 완숙하게 다듬는다. 앙리 미쇼Henri Michaux와 르네 샤르René Char, 프랑시스 퐁쥬Francis Ponge의 뒤를 이어서 이브 본느프와Yves Bonnefoy와 미셀 드기Michel Deguy, 에드몽 자베스Edmond Jabès, 자크 루보 Jacques Roubaud 등이 언어의 실험실에서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내는 데 성공했다.   퐁쥬와 미쇼 이후에 특히 프랑스의 젊은 시인들은 초현실주의가 삶의 차원에서 시와 범벅으로 수용했던 운명의 문제를 시의 문제로 분화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요란스러운, 그러나 정작 시도 삶도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종합적 해결 방식의 실패를 지켜보면서 생겨난 반작용일 수 있다. 프랑스 현대시의 주된 전통은 1968년 5월 혁명 이후의 여러 가지 문화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랭보보다는 말라르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쩌면 차라리 보들레르의 귀환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인들이 궁극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심은 실존의 존재론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성과 일상성은 프랑스 시를 크게 공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시인들은 더욱더 세련된 시론을 가꾸어 가며, 시의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장 그렇게 시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덤벼들었을 때, 프랑스 현대시인들을 엄습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에 대한 자각이다. 이것은 후기산업사회 안에서 시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누가 시인을 뮤즈의 영감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겠는가. 그는 단지 , 그리고 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문과학의 총아로 등장한 언어학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 이론의 생산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그들의 동국인인 프랑스인들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미 보들레르가 현대시의 문을 열면서 천재적으로 자각했던, 존재와 언어의 원초적 균열이라는 문제는, 다시 한 번 더, 이번에는 철학적인 긴박감과 더불어 시인들을 강타한다.   모든 명석한 프랑스 현대 시인들은, 그들의 경향이 덜 철학적이든, 더 철학적이든 상관없이, 모두 시 쓰기의 근원적 조건인 언어 문제에 민감하다. 말라르메적이라기보다는 랭보적인 열정에 기울어져 있는 앙드레 프레노André Frénaud 같은  전통의 시인도 프랑스 현대 시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 무력한 에 강박적인 관심을 보인다. 시인들의 직업은 최초의 공허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의 부재로부터 시작되는 경험. 언어의 부재. 말하기의 불가능성. 오르페우스는 언제나 소리 내어 에우리디케를 부르는 순간, 즉 음성화한 기호를 발음하는 순간, 사랑하는 여자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호명된 에우리케는 다시 무無속으로, 캄캄한 지옥의 부재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모든 시인들은 언어가 사물의 부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한 인식이 프랑시스 퐁쥬로 하여금 을 들게 만든 것이다. 그에게 시인의 임무란 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언어의 저주를 따돌릴 수 있는 연장으로 시인이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언어뿐이다. 이처럼 시인은 언어의 매개에 의하여 세계에 맡겨진 채, 실재를 드러낼 수 없는 언어의 무능력을 경험한다. 시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갈망에 있어서 첨예하며, 그 갈망의 실현에 있어서 무능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는 우리가 이름을 부르면서 합류하려고 하는 실재를 살해한다. 도망가는 에우리디케. 그것이 최초의 순간이다. 언어의 공허와 세계로부터의 분리. 로제 지루Roger Giroux는 이렇게 쓴다.     새 한 마리, 바다 위로 날아갈 때,   우리가 숨 쉴 때처럼,   이 하루의 끝에 대지의 기억을, 빛과 사랑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한 마리 새...     눈들이, 손들이, 얼굴 전체가 만들어 내는 이 작품을 부수지 않고,     어떻게 이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안의 새와 언어를 죽이지 않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어떻게 이것을 말할 것인가...     모든 작품은 낯설고, 모든 말은 부재하는 것,   시는 비웃는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이 욕망을 경계한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하나의 공간에 대한 나의 욕망을.   이 명명하는 힘은 공허의 자질이다.     시인은 을 가진 자이다! 또는 아르멩 타르피니앙Armen Tarpinian.     말들의 피는 울부짖는다 소멸되는 의미의   십자가에 매달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한 말들 속에서 비틀거린다   나는 밤이 어둡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앙드레 뒤 부세 André du Bouchet도 이렇게 쓴다.     이 웅웅거리는 말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등잔불의 광채   투박한 대지   어쩌면 나에겐 참을성이 모자랐던 것일까   머리가 벌써 어두워진다.     그리고 이브 본느프와.     나는 부재에서 시도된 말일 뿐,   내가 몇 번씩 시도하더라도 부재가 그 모든 반복을 파괴하리라,   그렇다, 말에 불과하다는 것은 곧이어 소멸하리라는 것,   그것은 비극적인 임무, 덧없는 대관식     그러나 그들의 선배들이 이 경험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이 젊은 시인들의 대부분은 그 경험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시는 언어의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가장 , 순간의 진실이었으므로, 그들은 시에 기대어 언어의 저주를 따돌리려고 한다. 앙드레 프레노는 『우리의 치명적인 서투름Notre inhabilité fatale』이라는 매우 랭보적인 제목의 시집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을 재현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드러낸다. 샤르는 너무나 아름답게 그 갈망을 이렇게 묘사한다.     시는 분노에 가득 찬 상승이다. 시는 황폐한 낭떠러지의 놀이이다.     또는 본느프와. 그의 진지하고 무겁고 깊은 발성법:     부딪칠 것,   영원히 부딪칠 것 .   문턱의 미혹 속에서.   닫혀진, 문에.   텅 빈, 문장에.   라는 말들만을 일깨울 뿐인   쇠 속에서.     검은, 언어 속에서.     시인들은 언어를 탐험하고, 실험하고, 언어에게 질문을 던지고, 언어의 모든 의미와 모든 비밀을 언어에서 뽑아내려고 한다. 그들은 임의적이며, 애매하며, 다의적이며, 불안정한 언어들을 붙잡고 싸운다. 그들은 그렇게 변증법적으로 . 그 어떤 시인들의 시들보다도 이브 본느프와의 시들은 이 싸움을 깊이, 그리고 찬란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시도는 전시대의 프랑스의 어느 시들보다도 더욱더 진지하며, 더욱더 성공적으로 시와 존재론을 통합하고 있다. 이들의 시적 태도의 근간이 이미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를 거쳐 마련된 것이라고는 해도, 이들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존재론적인 치열성과 극단적인 명석함을 프랑스 시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다. 엄격한 이론적인 연습에 의하여 정화된, 언어가 부서진 자리에서  방식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력함을 스스로 시인한 자가 부르는 겸손한 노래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찬란한가.   피콩은 이 시인들의 시가 그렇게 고 진단한다. 이 시인들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과 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전통적인 작시법을 포기하고 간결한 호흡의 시를 쓰는 자코테같은 시인들보다는, 비교적 전통적 작시법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는 본느프와 같은 시인들에게서 더욱더 잘 나타나는데, 이러한 특징은 많은 프랑스 현대시인들이 시 한편 한편의 개별적 완성도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시집 한 권, 또는 일생을 두고 발표하는 시집 여려 권을 통해서 하나의 일관성 있는 세계 이해 방식이나 철학을, 아니면 적어도 자신의 시 세계의 굵은 선을 보이려고 시도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한 시인들은 이제  또는 을 짓지, 을 짓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소품 제작에는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것은 노래 가사를 쓰는 작사가들의 일이지, 시인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프랑스 현대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무척 혼란스러워진다.   예를 들어서 장 그로장Jean Grosjean의 작품들은 한 편 한 편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그가 발표하는 연속적인 시들은 일련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 어떤 단편도 우리에게 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 대화 속에서 시인은 상징들과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사용하여 강자들과 약자들을, 신과 인간을 대치시켜 놓고 있다. 각각의 말은 앞서의 말에 대답하며, 하나의 대답을 찾고, 비난하거나 정당화한다. 즉 그것은 지속되는, 매순간 자기 자신으로부터 태어나는 자신의 시적 정합성 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심각하며 감동적인 웅변, 그러나 중간 중간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피콩의 표현을 따르자면 의 웅변. 성서의 어조가 단어의 놀라운 가벼움에 결합되어 있다.   카이로 태생의 유태인인 에드몽 자베스 역시 성서로부터 자양을 공급받고 있다. 모리스 블랑쇼에 의하면, 이 시인은 “행위와 시적 요구, 그리고 뿌리 깊은, 유태인이라는 자신의 소속에 대한 성찰”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 구조보다 더 놀라운 점은, 그의 시작품의 전체적인 이다. 『질문의 책Le Livre des questions』은 3부작으로, 그 뒤를 이어서 『야엘Yael』, 『엘리아Elya』와 『아엘리Aely』가 이어진다. 그의 작품 안에는 이야기, 대화, 자서전, 인용, 시, 책에 대한 성찰 등의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가 들어있다. 잡다한 삶에 대한 성찰과 같은 잡다한 글쓰기? 그가 속해 있는 몇 개의 복잡한 세계를 통합하는 것처럼 장르들을 통합하는 글쓰기? 그리고 그 모든 다양한 갈래들이 궁극적으로 특별한, 계시적인 언어인 라는 의 큰 형태 속에 모여들어 종합을 이루는? 왜냐하면 『책으로의 귀환Le Retour au livre』을 쓴 이 시인에게 결국 모든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를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를 읽어 보면, 근원으로부터 뿌리 뽑혀 떠도는 그가 얼마나 통합에 대한 근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근심의 절박성이 그의 시 전체를 하나의 로 만들게 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느 주에 있는 바뇌Bagneux의 공동묘지에는 우리 어머니가 쉬고 계신다. 오래된 도시 카이로의 모래로 이루어진 공동묘지에는 우리 아버지가 쉬고 계신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죽은 도시 밀라노에는 내 누이가 묻혀 있다. 내 형이 묻혀 있는 로마에서는 그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그림자가 땅을 파냈다. 네 개의 무덤. 세 개의 나라. 죽음은 국경선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하나의 가족. 두 개의 대륙. 네 개의 도시. 하나의 언어. 공허의 언어라는 하나의 고뇌. 한데 모이는 네 개의 시선. 네 개의 실존. 하나의 비명소리. 네 번, 백 번, 만 번 외쳐지는 하나의 비명소리. - 그러면 무덤이 없는 사람은 어쩌지? 라고 랩 아젤이 물었다. - 우주의 모든 그림자들의 비명소리란다. 라고 유켈이 대답했다. (어머니, 나는 삶의 첫 번째 부름에 대답해요, 처음으로 발음된 사랑의 말에 대답해요, 그러면 세계는 당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수학 교수인 자크 루보Jacques Roubaud의 텍스트도 산문과 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그의 작품은 로브그리예나 미셸 뷔토르의 작품처럼 구조주의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동 기술적으로 전적인 자발성에 던져져 있지도 않고, 절대적인 책의 구성을 보이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시인은 작품이 여러 가지 방식의 독서를 버티어낼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든다. 예를 들어서 그의 『∑』를 위해서는 네 가지의 독서 방법이 제안된다. 하나는 텍스트들의 집합으로 읽기, 다른 하나는 수학 기호들의 체계들 따라서, 세 번째는 바둑 놀이가 진행되는 방식에 따라서(361개의 텍스트들은 바둑의 180개의 흰 돌과 181개의 검은 돌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네 번째는 하나 하나의 텍스트들을 따로 읽는 것. 그러나 결국 시인 자신이 수립해 놓은 프로그램은 중요하지 않다. 독자 각자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립 자코테에게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또 다른 통일성의 개념을 만나게 된다. 그에게 진정한 통일성이란 순간적인 결정화 속에서 나타나는 시의 통일성이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 시인은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Paysages avec figures absentes』이라는 산문집도 출간한 바 있고, 레오파르디와 무질과 릴케의 번역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언어는 침묵, 파괴할 수 없는 어떤 것, 또한 시인이 체험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것에까지 이른다. 말수 적은, 오랫동안 억제되어 온 깊은 언어가 향수에 어린 가을의 흐릿한 색채 속에서 떨고 있다. 엄숙하면서도 한없이 가벼운 목소리. 빛 쪽으로 성큼 나가지 못하는, 어두움 쪽에서 빛을 향해 서서 망설이는 위기에 가득 찬 릴케적 분위기. 겸손한 실재. 그러나 내면의 깊이 안에서 절묘한 광채를 부여받고 있는,  실재. 그의 시에서는 아주 좋은 의미에서의 상징주의자들의 메아리가 느껴진다. 소박하다는 점에서는 프랑시스 잠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시는 가능할까? 이 모든 진지한 노력들은 표피적이고 가벼운 후기산업주의 문화적 풍경 안에서 어떤 매우 전문적인 게토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진지함은 그 자체로 인류의 자산이다. 그것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김정란 1976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다시 시작하는 나비』 외 평론집 『비어있는 중심-미완의 시학』 외 현 상지대 문화켄텐츠학과교수
115    2015년 신춘문예 시에 대한 소감/심상운 댓글:  조회:532  추천:0  2022-07-27
2015년 신춘문예 시에 대한 소감   신인들의 젊은 의식과 상상이 펼치는 새로운 구조와 미적 감각의 언어                                                                        심 상 운 (시인, 문학평론가)   1. 1925년 에서 처음 실시한 신춘문예新春文藝 제도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신인등용新人登龍의 권위 있는 제도로 자리를 잡고 2015년까지 9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신춘문예가 신인 배출의 중요한 제도로 자리를 잡게 된 이유 중 가장 중요하게 인정되는 것은 심사의 공정성公正性이다. 신문사에서 문단의 권위 있는 문인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공모된 작품을 예심과 본심의 절차를 거쳐 심사하는 이 제도는 오랜 세월 동안 공정한 심사로 운영되어 수많은 문인들을 문단에 내보낸 전통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당선된 작품은 일반 문학잡지들의 신인작품보다 질적인 면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공정성은 2000년 이후 문학잡지의 범람과 등단 신인들 작품의 질적 저하低下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문단의 상황에서 신춘문예 제도의 전통으로 매우 소중하게 인식되고 있다. 공정성에 못지않게 중요시 되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신인들의 젊은 의식과 상상想像이 산출하는 새로운 의미와 미적 감각의 세계를 수용하는 심사위원들의 안목眼目이다. 신춘문예의 이런 특성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자기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하여 한국현대문학을 빛낸 작가와 시인들의 면면이 증명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문인이 소설가 김동리(1935년 동아일보)와 시인 서정주(1936년 동아일보)이다. 그러나 이 신인 발굴의 신춘문예 제도가 심사위원들의 편향偏向된 경향으로 인해 과거처럼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지 못하고, 미래지향未來指向의 새로운 의미와 미학에 역행한다는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는 일부 문인들의 부정적 시각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신춘문예 제도의 존속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깊이 숙고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25개 신문(중앙일간지 9개 , 지방일간지 14개 특수일간지 2개)의 2015년 신춘문예 시 작품과 심사위원의 심사기를 대상으로 2015년 신춘시(신춘문예당선시)의 경향에 대하여 나름대로 진단診斷하고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2. 중앙 9개 일간지의 심사평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체적으로 시의 난해성難解性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의 완성도完成度도 중요하지만 신인들의 시가 개척하고자하는 새로운 시의 공간과 미개지未開地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암시暗示의 매력도 소중하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시의 서정성과 대등한 위치에서 난해성을 인정하고 젊은 시인들의 상상력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심사위원들의 경향은 한국현대시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하였다고 판단된다. 이는 삶에 대한 실존적實存的 인식이나 어두운 사회 현상에 대한 도전이나 메시지를 통한 출구의 제시보다는 어두운 사회현상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를 상상의 언어로 암시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의미보다는 자유로운 상상 쪽으로 시를 유인誘引하는 언어감각의 시편들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의 시편들은 언어의 유희성遊戱性을 발판으로 언어의 연상聯想이 펼쳐내는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담은 이미지의 창출創出이라는 데 가치를 지닌다. 이런 관점에서 “시에서 발견과 발명은 구분된다. 발견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발명은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나)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는 황지우, 이문재, 남진우의 한국일보 심사평과 “시라는 이름의 관행적 작문방식에 갇혀 오히려 생과 세계의 피 흐르는 실상으로부터 시 자체가 유리되는 자가당착을 돌파하는 패기의 글쓰기, 한국어의 갱신과 재구성이 그로부터 시발될 글쓰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정당한가.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을 또한 고통스럽게 치르는 가운데 일종의 시적 윤리성을 확보한 글쓰기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희망의 새로움이지 ‘새것 흉내’가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문정희, 김사인의 세계일보 심사평은 한국현대시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평문評文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진보적進步的 경향은 현대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경험적 현실에서 유리遊離된 추상적 개념의 수준에서 영위되는 사고형식인 ‘과학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서 그 반대의 ‘야생野生의 사고’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사고이동思考移動의 현상’으로 이해된다. 20세기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이며 구조주의 철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가 말한 야생의 사고는 경험을 중심으로 한 감성적 표현으로 세계를 조직화하는 ‘구체성의 과학’이다. 따라서 과학적 사고가 추상적抽象的인 논리적 틀 속에서 ‘길들여진’ 사고라고 한다면, 야생의 사고는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다. 그래서 야생의 사고는 미리 정해진 목표가 없으며, 구체적인 재료를 사용해 매번 새로운 의미나 관계를 만들며 어떤 질서를 창조해내는 예술적인 사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브리콜라주(Bricolage)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기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춘시의 일부가 야생의 사고에 연관 지어지는 것은 심사위원들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발견의 시로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면서도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시” 발명의 시를 새로운 시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의 시 쓰기는 21세기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이미지의 집합적 구성, 동적 이미지, 무한 상상의 다선구조多線構造 등을 시론의 기본골격으로 해서 창작되고 있는 ‘하이퍼 시(hyper poetry)'와 연결된다.   3. 더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서 당선된 작품을 대상으로 살펴보면, 의 당선작 조창규의「쌈」에는 ‘쌈’ ⟶ ‘동굴 속의 어둠’⟶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구멍난 방충망’⟶‘달의 뒷장’,⟶‘긴 혀’⟶‘보쌈’으로 이어지면서 쌈장 속에 사물과 자연 현상을 포괄하는 다양한 상상의 다선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도 구속되지 않는 시적 화자의 유머가 일상적인 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의 당선작 최은묵의 「키워드」는 우물을 상상의 키워드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는 1,2연만 읽어보아도 이 시의 우물은 실제의 우물과는 전혀 다른 감성과 상상의 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단순한 비유譬喩라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재료를 사용해 매번 새로운 의미나 관계를 만들며 어떤 질서를 창조해내는 브리콜라주(Bricolage)의 예술적인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 ‘죽은 우물’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를 그려내고 있다. 이미지가 지나치게 모호해서 소통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고도의 암시성은 시에 있어서 결함보다는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나희덕, 정호승의 심사평이 긍정적으로 이해된다. 당선작 김복희의「백지의 척후병」도 소통불가능의 언어가 시적 상상의 공간을 확대하고 있다. “연속사방무늬 물이 부서져 날리고/구름은 재난을 다시 배운다/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바닥을 밟는 게 너무 싫습니다/구름이 토한 것 같습니다”라는 이 시의 첫 연에서 ‘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는 구체적 행위가 시의 키워드가 되어 ‘구름’⟶‘흰색 슬리퍼’⟶‘뱀’⟶‘전쟁’⟶‘방설림’⟶‘겨울을 측량’⟶‘폭발음’⟶‘인질’ 등의 언어로 연결되는 데, 이 시에도 의미의 생산보다 상상의 확대에 따른 새로운 시적 공간의 형성을 감지하게 된다. 당선작 김관용의「선수들」도 언어의 연상으로 펼쳐내는 이미지의 전개가 의미의 구속에 갇혀 있는 시와 구별된다. ‘전성기’⟶‘인저리타임’⟶‘옆집’⟶‘옛 애인’⟶‘폭설’⟶‘만약이라는 말’⟶‘수비수 두 명’⟶‘성적증명서’⟶‘아름다운 지진’⟶‘지구의 맨 끝’ ⟶‘땅을 잃은 문장들’⟶‘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원점⟶전광판⟶유니폼 등 부분 부분 단절된 서사敍事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다양성이 한 편의 시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은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며 파열하는 섬광 같은 것을 뿜어내면서 자기 시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삶의 트랙으로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이 시는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다른 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이 주밀한 자본의 세계에서 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균열과 의외성이다. 트랙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결말을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의 이 과감한 투신의 성과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는 이시영 황인숙의 심사평에 공감하게 된다. 이는 현대시가 독자들에게 의미의 영역에서 벗어나 초현실적인 상상의 즐거움을 주는 언어의 유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4. 2015년에도 대부분의 신춘시들은 의미를 배반하지 않는 시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서정성의 원리에서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몇몇 심사평들을 제외한 심사평들이 그런 보수적인 시들을 선호하고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을 성형한 아이돌처럼 잘 빚어진 시들이 선택되고 있다. 그러나 생기生氣를 잃은 관념으로 치장된 시편들은 의식이 있는 독자들에게 ‘생동하는 반역叛逆의 시’를 더욱 갈구하게 한다. 그래서 2015년의 신춘시를 조감鳥瞰하는 이 글은 의미 불통의 시, 다양한 상상의 이미지에 관점을 두고 긍정적肯定的으로 현재의 신춘시를 진단하면서 미래의 한국현대시를 나름대로 전망展望하는데 초점을 맞춰보았다.   월간 2015년 1월호 발표
114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끝) 댓글:  조회:545  추천:0  2022-07-11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끝)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1)   5. 상징주의 시인들   1. 보들레르와 교감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재혼한 어머니와 독재적인 양아버지 사이에서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문필가라는 직업을 단념시키기 위해 가족은 19세의 그를 강제로 상선에 태워, 그는 모리스Maurice 섬과 레위니옹Reunion 섬을 유랑하게 된다. 파리로 돌아와 그는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 호화판 탐미생활에 빠져들고,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며 비참한 보헤미안 생활을 한다. 이때 흑백 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느 뒤발Jeanne Duval과의 악연을 맺었으며 이는 그가 관능적인 시를 쓰는 계기가 된다.   그는 1841년서부터 1857년에 발간될 의 시편들을 쓰기 시작한다. 1848년 혁명으로 신문에서 정치적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다시 그는 문학 비평과 예술비평을 쓰기 시작하고, 1860년에는 이라는 산문시를 발행한다.    그러나 그의 은 발간되자마자 소송에 걸리고 6편의 시는 종교와 풍속을 해친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며 삭제명령과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반신마비와 실어증 상태에서 46세에 사망한다.     은 시인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다룬다. 거대한 건축물처럼 일관된 의도로 구성된 이 시집은 원죄의식에 의한 고뇌, 순수미의 추구와 하강과 타락의 취미, 죽음에 대한 의식 등의 심리가 순수하고 애로틱한 사랑과 복잡하게 섞여있다.   내밀한 정신성으로 일관된 은 근대시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며 현대를 열어주었다. 초판은 서시 외에 100편의 시를 수록하고 77편, 12편, 3편, 5편, 3편의 5부로 되어있다.   제목 자체가 악과 꽃을 결합시키며 모순어법을 택하고 있는 이 시집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상과 심연 사이에서, 쾌락과 추락의 유혹, 그리고 퇴폐와 증오와 고뇌 사이에서 보들레르의 내면이 겪는 모순의 아픔들을 그리고 있다. 삶이라는 커다란 악 속에서 자아는 모순되게도 삶의 황홀과 '지고의 아름다움'을 찾아 줄타기한다.   간단히 말해 이 시집 전체는 삶의 의지와 죽음의 의지,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열된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이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서구시에서 거의 최초로 심연, 즉 심층적 자아 속으로의 탐사를 시화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은 "보들레르의 삶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도 불구하고 탄생한 것이다"라고(Maynial, 1973:317). 그러나 처절한 분열과 갈등과 모순에 찬 그의 삶과 그의 시는 사실 서로 분리될 수 없었다.    보들레르는 에드가 포우의 훌륭한 번역가로서, 그에게서 언어를 구조화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낭만과, 고답파의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의 시는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의 무의식의 심충은 언제나 자신의 섬세한 분석의 대상이 되었으며, 언어의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와 추종 불가한 감각과 통찰력과 상상력과 미의식은 추상성과 관능성과 음악성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시의 지평을 열었다.       자연은 사원, 거기 살아있는 기둥들은     가끔씩 혼동된 말들을 쏟아낸다.     사람은 거기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가고     숲은 그를 친숙한 눈길로 물끄러미 보네.     밤처럼 빛처럼 광막하게,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     향기와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지네.       어린아이 살갗처럼 풋풋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 또 썩고 짙고 강렬한 향기도 있어,       용연항,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     저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하네.                                  ()     상징주의 문학이론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교감(交感 corresponda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조응 또는 만물조응(萬物照應)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사실 만물 간의 조응에서 출발한다기보다는, 사물인식을 하는 주체인 인간이 여러 감각 간의 내밀한 경계를 허묾으로써 시작한다. 위의 시에서 "향기와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감각들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그 무엇이 확산된다는 말이다.    감각들 사이의 의도적인 혼동은 이어서 언어의 관습 허물기, 마침내 인식 대상이나 사물들 사이의 벽 허물기로 이어진다. 이 3단계는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   이제 셋째 연에서 향기는 촉감과 소리와 색깔을 지니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공감각 작용을 통한 통합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통합은 틀에 박힌 사물인식법과 감각을 바꿈으로서 가능하다. 기존의 이미지나 인식이나 감각의 형식은 이 시에는 이미 허물어져있다.   이러한 교감에는 어떤 가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보이는 현실은 내면에 존재하는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상에 비하여 '거짓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징시는 이 가상을 허물고, 외면을 이루었던 원소들을 재조합하며 또 다른 차원이나 공간을 제시하고자 한다. 위의 시에 나타난 외적인 지지대, 즉 숲, 사원, 기둥 등은 이미 현실의 기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구조물이다. 사물들은 이미 눈에 보이는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뒤에 자리하는 이상적 형태들의 상징들로서, 거대한 '상징의 숲'을 이루어낸다.   위의 시에 나탄난 감각을 다루는 보들레르의 새로운 방식은 사물에 대한 다른 상상체계를 열어주었다. 사물 인식에 있어서 '감정의 자연스런 유로'라는 낭만주의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사실은 감각들을 분석하고 통합하고 변형하는 작업을 밀고 나간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의 뒤섞임 등, 감각들의 통합과 융해와 감각 차원의 다양화는 대상들의 세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와도 동시에 감응하여 이뤄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우주적 유추관계'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시인은 관객들의 수수께끼를 읽어내는 '해독자'가 딘다.   향기, 색채, 음향 등 여러 가지 감각 내용들이 등가관계를 이루도록 '수평적 교감'(Marchal, 1993:176)이, 즉 공감각이 이뤄질 때, 시인에게는 다른 공간이 열린다. 세계의 광대한 열림이란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개안(開眼)이 되는 것이다. 열린 감각의 새 차원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시인은 예언가처럼 사상(事象)의 뒷면을 읽어내고 우주를 해석해낸다.   삶은 이제 더욱 가까이 그 본질을 드러낸다. '혼동한 말들'은 울림과 깊이로 다가오며 그것을 이해하는 자는 '상징의 숲'을 자연스러이 가로질러 지나간다. 이 새롭게 형성된 공간은 존재감이 극대화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친숙한 눈길'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는 감각 능력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상징의 새로운 공간에 '사람'이 익숙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 훈련을 통해 얻은 통찰력과 이해력이다. 시선의 힘에 의해 공간은 확장되고 축소된다. 무한한 확산도 가능하다. 현상적 외견 너머 기호와 상징으로 변한 초자연적 세계 - 감각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그 통로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소통의 열쇠는 은유와 '아날로지(유추類推)' 속에 있다.   이제 사람은 우주와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 있다. '칠흑 속에 하나'라는 것은 무의식의 심층까지도 통하는 통일이다. 시인은 하나의 작은 징조로 우주를 알아보게 된다. 이파리 하나로  우주만상을 알고 자연의 비밀스러운 흔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을 내려다보며, 힘들이지 않고     말 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여.                                                            ()     여러 감각들 간의 교감이라는 보들레르 시학의 독창적 양상이 두드러지는 시 에서, 시인은 색채와 후각을 음악과 언어와 결합시키는 정교한 모험을 시도한다.       이제 다가오네 줄기 위에 떨며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는 시간이     소리와 향기들은 저녁 공기 속을 떠도나니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중이여!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고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양 전율하네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증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아 슬프고 아름답네.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양 전율하네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이 슬프고 아름답네.     해는 얼어붙는 제 피 속에 빠져죽었으니 ...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은     빛나던 과거의 잔해를 모두 거둬들이네!     해는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져 죽었으니...     내 속에 그대 추억 성체합처럼 빛나네!                                            ()   시인에게 오랜 동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정신적 연인 사바티 부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시에서, 그는 내면 차원보다 현실 차원에서 만물조응이라는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조화(調和)'란 '소리와 향기들이 섞여 떠돌면서 연상시키는 색체와 움직임과 형대들('제단', '성체합')의 마술이, 사랑에 대한 회한을 주문처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소리와 향기들이  떠돈다'는 것은 소리와 향기가 형태들과 색채로 연결되면서 빚어내는 환기술같은 것으로, 이 환기술은 사랑에 대한 회한과 연결된다.    '팡툼(pantoume)'은 보루네오 지방이나 말라카 반도의 토착적 양식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이국적 색채와 지방색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해서 쓰던 4행의 시구로 이뤄진 시형을 말한다. 시에서 각 연의 2, 4행은 다음연의 1, 3 행에서 반복되고, 다시 마지막 행은 시의 첫 행을 반복하며 시를 종결시키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 시는 팡툼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 첫 행이 마지막 행에 나타나지 않으며, 그 변형이라 하겠다.   겉으로 보면 이 시는 소박한 정경 묘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석양, 꽃향기, 바이올린 소리 등의 몇 개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사실 '빛나던 과거의 잔해'와 마지막의 "내 속에 그대 추억 성체합(聖體盒)처럼 빛나네!" 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이 시는 시의 의미와 힘을 다 만들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리듬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독자는 시인의 내적 춤에 동참하게 된다. 이 시에서 반복적 기법은 여타의 움직임에는 무관한듯 시인이 자신의 태도를 견지하고 자족적인 움직임을 되풀이하게 하여, 생각의 원무(圓舞)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현기증이 의식을 독점한다. 계속되는 반복으로 의식은 비틀거리지만 쉬지 못한다. 소용돌이치며 도는 양식 때문에 주의력은 이리저리 교차하는 여러 움직임들에 이끌리고 어지러워져서 어디에 정착할지 헤맨다.   시의 마지막 행은, 계속 확장되며 피할 수 없는 어지러운 윤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대 추억'이라는 말로써 위의 모든 말들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중심을 만든 후에, 같은 생각과 말들을 시 전체로 되풀이하며 확산시키는 효과다. 시적 자아는 잠시 스스로의 생각을 확인함으로써 쓰러지지 않고 원무를 다시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행들과 음악적 배치는 시의 본질적 테마를 시행 전체로 학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잃어버린 과거의 행복에 대한 인상을 후각, 청각, 시각을 복합하여 호소함은 자아는 이 세상에 잡혀있다는 상황을 스스로에게나 독자에게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절망의 현기증 나는 되풀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로잡힌 자의 날개'라는 생각은 시인 속에 항상 자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으로     거대한 바다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여행의 무심한 동행으로, 쓰디쓴 심연 위로     미끄러져가는 배를 따라가는 이 새를.                      (---)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와 같아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는다.      야유로 찬 땅 위에 그리하여 유배되나니,      거인의 두 날개는 걷지도 못하게 된다.                                  ()     현실에서 이상세계는 실현될 수 없고 시인은 '쓰디쓴 심연 위'를 줄타기한다. 조롱과 경멸 속에 세상과 유리되는 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분열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인공낙원'을 통하여 위안 받고자 한다,   그의 시는 에서 볼 수 있듯이 감각의 심층을 내보여주기도 하고, 에서처럼 정신의 불분명한 영역을 열어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에서는 현실의 불운을 시로 그린다. 시인은 또 현실과 자신에 대한 절망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내 청춘은 칠흑의 폭풍우,     여기 저기 빛나는 햇살 스쳐갔으나     천둥과 바람이 어찌나 휩쓸었느니     뜨락에는 몇 개 주홍빛 열매밖에 남지 않았네. (---)                                                        ()     그러나 그에게는 개인적 상징주의보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많은 그의 시들은 초월적 국면을 강조하고 현실을 넘어서 이상세계를 통찰하려 시도한다. 사실 에서 그는 과거의 사랑에 대한 추억 뿐 아니라 잃어버린 천국을 비통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향수는 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있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집착은 찬란한 꿈이 되어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곳의 고요함과 화려함, 그곳의 맑은 하늘과 질서는 자주 그의 시에서 언급된다. 이상세계는 마치 살아있는 나라인 듯 그려진다.   시인은 이렇게 현실 너머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해 전달하는 존재가 된다. 시인은 '모어'를, 즉 "말 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이 지상에 추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언어는 이 지상과 어울리지 않는 거추장스럽고 필요 없는 알바트로스의 날개처럼, 현실에서 무용하며 무상의 것이다. 그의 시집의 많은 부분은 이처럼 이상세계를 본 자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현실은 우울한 지옥과 푸른빛을 동시에 심연처럼 숨기고 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2)   2. 베를렌, 회한의 선물   상징주의는 언어의 내용보다 '언어가 낳는 효과'를 중시하는 문학경향으로, 말을 의미 있게 연결시키기보다는 말이 빚어낼 수 있는 뉘앙스를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폴 베를렌(1844~1896)은 이라는 시에서 언어의 결, 즉 뉘앙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말의 사용에 음악의 특징을 도입하려 한다. 음악의 섬세한 환기술과 유연성을 시에 도입하여 시어의 해방을  노림으로써, 그는 상징주의 언어를 풍요롭고 새롭게 한다. 관념 속에 머무는 언어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지닌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을,     그러기 위해서는 '홀수각'을 택하라.     더욱 모호하게 노래 속에 잘 녹아들며     짓누르거나 멈짓거리지 않는 홀수각을.       또 그대는 오해를 할 수 없도록     말을 선택하려하지 말 것.     '미묘함'이 '선명함'에 뒤섞이는     회색 노래보다 더 귀한 것 없으니                (----)       왜냐면 우리는 '뉘앙스'를 아직도 원하기 때문이다.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     오! 뉘앙스만이 오직 결합시킨다네.     꿈과 꿈을 , 플롯과 뿔피리를! (---)     음악의 리듬과 환기력과 조화의 힘은 언어와 결합하여 사물과 영혼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다. '영혼의 상태'를 조성하고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홀수각의 언어와 '회색 노래'는 모호한 미결정의 영역을 열어준다. 그리하여 시는 정형의 풍경이 아니라 풍경의 확산이 된다. 시인은 묘사와 인식의 기존틀을 지움으로써, 풍경을 극복하는 힘을 지니고자 하는 것이다.   베를렌과 더불어 상징주의자들은 시구의 해방을 위한 여러 실험들을 하게 된다. 홀수각의 시에 이어 시구의 다양한 '걸치기(enjambement)', 자유시, 구두점 없애기, 페이지 개념 바꾸기, 산문시 등, 그 시도는 다양한다. 그러나 베를렌은 '자유화시'에 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운문의 틀을 깬 것은 아니어서, 전통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시는 대개의 상징주의 작품처럼 난해하지 않았고 일반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는 '이상'을 그려내는 능력에 있어 뛰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현재의 삶에 밀착되어 있었다. 밀착이라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근본적으로 감정적인 시를 썼다 하겠다. 베를렌의 삶은 랭보와의 일화를 포함하여 저주와 비참함으로 점철되어있디.   베를렌의 알콜중독은 독주 압생트를 즐기면서 시작되었다. 그른 마틸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의 시편을 쓰며 안정을 찾는 듯하였다. 그러나 1870년, 17세의 마틸드와 결혼하였지만, 당시 17세였던 랭보가 여덟 편의 시를 베를렌에게 보내왔고 베를렌은 곧 그의 시에 매료되었다. 그는 랭보를 파리로 부르고, 둘의 관계는 모두의 의심을 받게 된다. 그들은 벨기에와 런던에 일시 정착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까닭으로 시를 찾던 두 사람은 방랑 끝에 충돌하기에 이른다. 랭보는 베를렌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베를렌은 랭보를 총으로 쏘고 체포된다. 그들의 만남은 18개월 만에 불화와 상처로 끝나고 베를렌은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 있게 된다.      라는 시가 씌어진 시기는 시인의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이혼문제와 화해의 시도 등으로 흔들리고 있던 기간이었다. 이 시는 처음에는 '무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라는 동명의 시집 속에서는 '잊혀진 아리에타'라는 제목으로 9편으로 된 연작시 중 첫 번째 시로 실려 있으며, 무제이다.                                                  들판에 부는 바람이                                                숨을 멎는다.                                                           - 파바르Favart                  그것은 나른한 도취,                그것은 사랑의 피로,                그것은 미풍의 애무에 일어나는                숲의 온 전율,                그것은 회색 가지들 쪽으로 퍼져가는,                작은 목소리들의 합창.                  오 가녀리고 무후한 살랑거림 소리!                그것은 속삭이며 소곤거린다.                그것은 물결치는 풀밭이                내뿜는 작은 외침소리 같아---                마치 굽은 물길 아래,                조약돌이 소리죽여 구르는 소리 같아.                  탄식소리 숨긴 채                바람에 젖는 이 영혼,                그건 바로 우리의 넋이지 않니?                나의 넋, 그래, 너의 넋이지 않니?                거기서 이 온화한 저녁 아주 나지막이                초라한 송가가 새어나오지 않니?     랭보의 의도적 착란과 광기, 환각에 사로잡힌 방랑과 일탈과는 달리, 베를렌은 내부의 멜로디를 향해 간다. 랭보의 공격적 주제 선택과는 달리, 그는 석양, 안개, 달, 비, 추억, 노래, 회한 등 소박한 것을 즐겨 소재로 택한다. 이 시는 대부분의 베를렌의 시처럼 여성적인 섬세함이 두드러지며, 시인이 말하는 " '미결정(미묘함)'이 '결정(선명함)'과 뒤섞이는 회색 노래"의 전형적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이 불투명한 풍경으로 펼쳐지지만 그것은 별개의 시공간이 아니라 자아가 행복해하거나 아파하는, 자아의 서정이 투영된 극히 주관적인 풍경이다. 결코 풍경은 자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영혼의 상태'를 대신 그려낸다. 미세한 소리들은 모두 숨죽여 영혼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들판이라는 공간 풍경 속에는 바람조차 숨죽이고, 넋은 귀 기울여 존재에 대한 해답을, 즉 자신에게 남아있는 길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풍경에서 아무 것도 사실은 완전히 죽은 것도 완전히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와 움직임은 하나가 되어, 완전한 침묵이 아니라 가녀리고 초라하게 떨고 있다. 소리에 대한 묘사가 특징인 이 시는 거의 침묵을 강요당한 영혼에 대해 소리 죽여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리나 노래의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있다.   베를렌 시의 특징은 이렇게 회색 풍경 속에도 있고 회색의 노래 속에도 있다.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음악에 대해 생각하게 할뿐 아니라, 각각의 시어 또한 소리와 음악에 연결되어있다. 시인의 영혼의 상처는 그대로 소리의 풍경으로 전이된다. 이렇게 그의 시의 기본 요소는 소리라 하겠다. 마치 랭보에게 색깔이, 보들레르에게 향기 그러하듯이.   그가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이라고 외쳤을 때의 뉘앙스란 색깔보다 소리의 뉘앙스이다. 랭보의 색깔과 그의 소리 사이에서 두 시인의 기질의 차이를 읽을 수 있겠다. 랭보와의 관계가 비극으로 끝난 뒤 베를렌은 과거를 지우기 위해 의 시편들을 쓴다.       하늘은, 지붕 위로,     너무 푸르고, 너무 고요해!     나무는, 지붕 위로,     종려잎을 흔드네.          (---)       아니, 이런, 삶이란 저런 것,     단순하고 평온한 것을.     평화로운 웅성거림     도시에서 들려오네.       - 오 거기 있는 너, 넌 무얼 하였지,     한 없이 울어대며     말해 봐, 거기 있는 너, 넌 무얼 하였지,     너의 젊음을 가지고?            ( 1, 3, 4연)     뭉스에서 출감한 시인은 신앙을 엿보기도 하지만, 결국 여전히 폐인상태로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 많은 사람들은 위의 시에서 종교적 신앙의 자취를 찾아내지만, 우리는 종교적 회한보다 오히려 가슴 치는 통한과 마주하게 된다.   시의 전반 3연들을 모두 마지막 4연에 대비시킴으로써 회한은 거의 오열이 된다. 1연의 나뭇가지의 고요한 흔들림, 여기에는 생략된 2연의 종소리, 3연의 웅성거림 소리는 모두 4연의 울음소리와 대비된다. 시인의 모든 신경은 이 시에서도 소리에 집중되어있다. 1, 2, 3연의 억제된 리듬은 마지막 연의 파격으로, 강렬한 아픔으로 돌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에도 랭보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하지 않다. 그에게는 랭보식의 대담함이나 공격성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나약하다 할 정도로 그의 시는 결 고운 비단 같다. 랭보가 자신의 일로 인하여 스스로 불타고 연소하는 형이라면, "베를렌의 것은 더 밀도 있고 관대하며 역광의 아름다움 같은 휘귀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랭세, 1984:158)   그는 랭보처럼 강한 자아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시어 하나 하나에서 '영혼의 상태'가 실려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시어들이 결합되어 빚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마음의 풍경이어서, 좀체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지 못한다. 랭보처럼 풍경을 이끌거나, 보를레르처럼  풍경 속을 드나듦이 아니라, 풍경을 아파하는 것이다.       힘 잃은 여명은     들판으로 쏟아붓는다     지는 해의 우울을.     우울은     달콤한 노래로     내마음 흔들어     석양에 나를 잃다,     모래톱 위로 저물어가는     태양비처럼     이상한 꿈들,     진홍빛 유령들이     펼쳐진다, 쉬임 없이 (---)                       ()     그의 공간이란 두 시인들처럼 거리두기가 가능한 공간이 아니고, 장식 있는 배경도 아니며, 자신을 고요히 쏟아붓는 공간인 것이다. 소리, 색, 미세한 떨림이나 움직임, 빛의 변화 --- 이 모두가 오직 하나만을 향하고 있다. 풍경 속에 자아는 반복되어 투사된다. 시각에 따라 변하는 태양빛에 따라 자아도 변한다. 페이르는 이런 베를렌을 '인상주의 시인'이라 하였으며(Peyre, 1976:60), 마르셀 레몽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베를렌은 그 자체가 송두리째 하나의 자연이다. 매우 섬세하고 복합적인 자연, 여라가지 영향들을 이용할 줄 알지만 즉각적으로 주어진 자연, 근원적이며 삶 그 자체에서 직접 자양을 섭취하는 독창성의 자연이다. (Raymond, 1983:31)     따라서 베를렌의 시는 상징주의의 다른 거성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난해성을 거의 띠지 않는다. 소박하고 꾸밈 없으며 친밀하고 서정적인 특성들은 그의 구어체 어조에서 가장 빛난다. 그는 많은 상징주의자들처럼 초월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결여되어있다는 점은 그이 시의 결함으로 볼 수 있다. 보를레르에게서 볼 수 있는 천국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결여는 그에게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의 개인적 상징주의의 특성이자 장점이라 할 것이다.   그의 명성은 시형의 완벽성이 아니라 가사 없는 노래의 더듬거리는 시들로 더해졌다. 독자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것은 리듬의 근저에 있는 끝없이 상처 입는 영혼, 그것의 리듬 있는 넋두리였던 것이다. 모험이란 그에게 숭고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소박한 것이었으며, 문학은 사실은 그의 계획 밖의 것, "소위 문학이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파격시와 그의 음악은 언어의 논리보다 내적 표현을 따르는 형식이었다. 그것은 어떤 유파의 논리에 머물지 않았다. 내면을 따라간 후에야 그의 이론이 있었다.        여전히 그리고 언제고 음악을!                 (--)      그대의 시는 운 좋은 모험이기를,      박하와 백리향을 꽃피워가며      아침 찬 바람 속에 퍼져가는 모험 ---      소위 문학이라는 것은 나머지 것이다.                                                 ()     베를렌이 "짓누르거나 멈칫거리지 않는홀수각"을 택하라고 하는 것은 운문을 형식의 제약들에서 해방시키라는 말이다. 언어의 무용한 중량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홀수각을 택하는 것이고, 종래의 문학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를렌의 거부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어떤 몸짓이었다. 그것이 그 나름대로 상징주의에 기여한 공헌이며 프랑스 시를 자연스럽게 전통에서 해방시키는 길이었다. 그는 각운을 완전히 폐기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3)   3. 랭보와 '견자'의 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1871년 베를렌의 초청을 받고 파리에 갔지만, 그들의 관계는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랭보는 결국 1973년 브뤼셀에서 만취한 베를렌의 총에 맞게 된다. 어머니의 농장이 있는 로슈로 돌아온 랭보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 을 쓴다. 그러나 베를렌과의 작별에 이어, 1875년경부터는 문학과 작별하며 네델란드, 자바, 북유럽, 독일,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을 유랑한다.  상아밀매, 무기상, 모피상을 했으며, 이미 문학과는 절연한 것이었다. 1880년에는 일자리를 찾아 홍해의 모든 항구를 찾아다녔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교역에 종사한다. 1891년 관절염으로 프랑스로 돌아오며 아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변한 채 마르세유에서 37세로 사망한다.       나는 떠나갔네, 터진 주머니에 두 주먹 지르고     외투는 다 헤져 거의 보이지 않았어.     나는 하늘 아래를 갔지, 시의 여신이여!  나는 그대의 신도였다네.     오 랄라! 찬란한 사랑을 얼마나 꿈꾸었던지!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어.     - 꿈 꾸는 엄지동자처럼 나는 길목마다 시를     뿌려두었지. 숙소는 큰곰자리에 두었고.     - 내 별들은 하늘에서 부드럽게 사르락거렸어.       그래 나는 길 가에 앉아 별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지,     구월 그 아름다운 저녁에. 그때 이마에는     생명수 같은 이슬 방울들이 떨어졌어.       그 저녁, 나는 환상 같은 그림자에 싸여 운을 맞추며,     터진 신발 끈을 잡아당겼네     칠현금인양, 가슴 가까이 한쪽 발을 대고서!                                                ()     발을 칠현금에 비유하고 있다. 걸어가며 어미동자처럼, 에서처럼, 시를 길 어귀에 쏟아둔다. 칠현금 같은 발의 걸음마다가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자주 회자되는 랭보의 시 중 하나로서, 이미 랭보의 분방한, 인습을 뛰어넘는 자유로움과 공격이 보인다. 베를렌 같은 조심스러움이나 약함은 찾아볼 수 없다. 베를렌이 그를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하였듯이 거침없는 그의 행보와 꿈을 뒤를, 시는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풍경 속에 각인된 슬픔이라든가 풍경과의 갈등의 조짐은 없다. 이 방랑기는 1970년 말에 씌어졌는데, 랭보의 글쓰기는 16세가 되기 전인 1870년에 시작되어 1875년에 끝난다.   최초의 시를 발표하고 6개월도 되지 않은 1871년 5월에 랭보는 유명한 를 썼는데, 거기서 그는 프랑스 시를 '운을 지닌 산문'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그의 시는 이처럼 반항으로 시작한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을 꿈꾼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옛날,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열고, 온갖 포도주들이 흘러내렸던 축제였다. 어느 저녁 나는 무릎 위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 그리고 그것은 쓰디쓰다는 것을 알았다.   - 그래서 그것을 모욕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 )     계속되어 이어지는 반어적 문장들과 속도는 시인의 저항과 파괴의 강도를 예측하게 한다. 그는 기존의 가치와 원칙들의 거부에서 출발하며 온갖 신성모욕과 잔혹과 거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반항은 맹목의 것은 아니었으며, 랭보는 부정의 끝에 하나의 해결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나는 타자(他者)다'라는 유명한 선언으로 제시된 해법이다. '이다'라는 불어 동사는 1인칭 'suis'가 아니라 3인칭 'est'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시인은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뚫어볼 수 있는 '견자(見者)'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파괴를 통해 객관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파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시인은 모든 감각들의 오래고도 광범위하며 논리 있는 착란에 의하여 스스로 견자가 된다. 사랑과 고통과  광기의 모든 형태들. 그는 스스로 탐색하고, 자신 속에서 모든 독들을 다 소진시켜, 그 진수만을 간직한다. 이는 모든 신념과 모든 초인적 힘을 필요로 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형벌이다. (---) 왜냐면 그는 미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 1871. 5. 13.)     그는 '미지'의 세계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미지(未知)'란 보들레르나 말라르메도 추구하던 공통의 목적지로서, 정신과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엶으로써 도달 가능하다. 미지에 도달하는 것은 시인은 '잔의 영혼을 경작하여' '이미 풍요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영혼의 단련과 스스로에게 의도적인 형벌을 가함으로써, 즉 모든 감각들의 미리 계획되고 의도적인 착란에 의하여, 이미 이곳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감각과 내적 훈련을 통한 정신의 해방은 먼저 스스로 '불량소년'이 됨으로써, 즉 종교나 기존 사유체계등, 정신과 감각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주저 없는 파괴와 항거로써 가능하다. 질서와 그것의 구속, 기성의 행복과 사랑, 윤리, 종교, 요컨대 인간 정신의 그 어떤 산물이라도 내적 혁명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나의 광기들에 가운데 하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오래 전부터 가능한 모든 풍경들을 소유할 수 있다고 자부하였고, 그림과 현대시의 명성은 하찮은 것이라 여겼다.                                                                                                                                             ()     반항과 거부에 의하여 인간은 변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를렌처럼 그 속으로 파묻히거나 사라지는 풍경이 아니다. 자아는 풍경을 소유하거나 버리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파괴에는 이를 명령하는 논리가 우선된다. 견자가 되는 것은 의도적 광기와 감각과 정신의 훈련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중성적이고 몰아적인 상태에 도달한다. '나는 타자다'라는 말은 주관과 객관적 진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통일한 경지이며, 인식의 장애물들이 정신의 힘으로 극복된 상태를 말한다. 나와 타자 사이에 아무 구별이 없다.   그래서 랭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에 맞서는 코기토를 제안한다.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on me pense'(1871년 5월, 에게)다. '사람들은 나를 생각한다'이거나 '나는 생각되어진다'이다. 이처럼 나는 타자다.   타자인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그 전개를 성찰한다. 이 몰아적 정신과 감각의 상태에서, 시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게 하라는 것이다. 미래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랭보에게서 이 부분을 읽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견자가 된다는 것은 시인이 되기 위한 단계지 견자가 시인은 아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끝에 마치 무병(巫病)을 앓은 후처럼 견자, 즉 '최고의 현인'이 되지만 그것으로 시인은 아니다. 시인은 모음의 탄생을 체득한 자여야 한다. 랭보가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라고 하며 "검은 A. 하얀 E, 붉은 L, 푸른 O, 초록 U"라고 하였을 때, 랭보가 꿈꾸는 것은 언어를 감각적으로 재현하겠다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그는 새롭게 창안한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빚어질 정신과 언어의 우주, 즉 새로운 창조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다.   시인은 따라서 '잠재된 탄생'을 연금술로써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언어는 '모든 감각에 적용될 수 있는 시어'이다. 이 '보편적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연금술사의 소명이다.   랭보는 그러니까 자아의 문제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었던 베를렌을 만나러 가기 직전에 쓴 그의 비교적 초기의 작품 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개인적 모혐으로 시작하는 여행담이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배로 의인화시킨 표류의 이야기나 꿈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시인이 그리는 천국에 대한 인상이기도 한 것이다. 랭보의 천국은 모험과 광기 후의 움직이는 공간이지, 보들레르식의 '평온과 호화 그리고 관능'의 도피적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랭보는 모든 것을 알아버린 듯, 심연을 동시에 암시하기도 한다. 모험은 지속되지 못하고 단념 속에 다시 바다의 이면으로, 현실 속의 어두운 물로 돌아온다.       나는 항성 같은 군도를 보았네!  또 착란하는     하늘을 표류자에게 열어주는  섬들을 보았네.     - 네가 잠들고 유배되는 곳은 바닥 없는 그 밤들 속인가,     수많은 금빛 새들이여, 오 미래의 '기운'이여?       그러나 사실 나는 너무 울었다!  '새벽들'은 가슴 에인다.     모든 달은 잔인하고 모든 해는 가혹하다.     쓰라린 사랑은 내게 취할 듯한 무기력을 불어넣었다.     오 나의 용골이여 깨어져라! 바다로 가야겠다!       내가 유럽의 물을 원한다면 그것은     향기로운 저녁 무렵 웅크린 채     슬픔에 찬 아이가 오월 나비처럼 덧없는     배를 띄우는 검고 차가운 물웅덩이다.                                                            ()     랭보는 당시 바다를 본 적이 없었고 보드레르처럼 인생 경험에 대한 기억도 많지 않았다. 상상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이었다. 시인은 감각의 훈련으로 절망의 심연을 뚫어보는 능력에도 도달한다. 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 착란으로 스스로를 견자로 만든 것이다.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들'을 경험하여 흔히 감지되지 않는 '사물들의 언어'를  포착하는 초감각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  - 검은 A, 하얀 E, 붉은 I, 푸른 O, 초록 U.                                                                                                               (---)     그것은 처음에는 하나의 연구였다. 나는 침묵을, 밤들을 썼으며,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기록하였다. 나는 현기증들을 고정시켰다.                                                                                                                 (---)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상 대신에 회교사원을 아주 분명하게 보았다.  (---)                                                                                                                      ()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어떤 신비로운 탄생, 즉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재현될 세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란 침묵 뒤의 공간까지 아우르는 세계, 우주적 본질들의 현현(顯現)으로서의 세계다. 이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언어는 모든 감각에 다 적용할 수 있다. 새 언어에 의해서 착란은 질서로 안착된다.   그가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장 대신에 회교사원을 보았다"라고 했을 때, 환각 만들기라는 행위는 거부하고 파괴하였던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부활시키는 능력이다.     시란 이제 부정이 아니라 초월을 위한 방법이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신비로운 도취 속에서 우주의 원초 속으로 환원되게 하는 말 - 이를 위하여 자아는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모험을 자청하였었다. 이 모두가 관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한 교란의 정도는 가히 파괴적이었고, 모험을 가능하게한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부정되었던 현실이 현실을 되찾는다. 현실이 '미지'가 된다. 랭보는 이 모든 실험을 불과 몇 년 사이에 해치웠으니, 그의 반항의 강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시인은 '불을 훔쳐온 자'라는 것은 '모든 감각에 적용되는 언어'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이 '보편적 언어' 또는 '우주적 언어'는 향기, 소리, 색채 등 모든 것을 융합하며,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달된다. 영혼을 끄는 영혼의 언어를 갖고서, "영혼과 육체 속에 진실을 소유"()함, 시인은 '보편적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적 감각은 예언적 감각이 되고, 신비로운 발견의 수단이 되며, 무의식까지 탐사하는 정신의 섬세한 도구로 변한다.   비록 짧은 시간에 행해진 이 모든 시험들은 말라르메도 지적하였듯이 인내심의 결여를 보이는 듯하기도 하지만, 그의 모험의 크기는 사실 알 수 없는 또 다른 인내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의 일화까지 포함하여 그의 치열함과 그의 감각과 언어 조합력과 추진력은 아직도 신화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4)   4. 말라르메와 구도의 여정   말라르메(1842~1898)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의 재혼, 이어 여동생 마리아의 죽음 등, 가정적으로 이미 어려서 불행을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과 메리 로랑Mery Laurent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이후의 삶은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여, 시인 스스로가 에서 '일화가 없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이다. '포우'를 더 잘 읽기 위해' 런던에 머문 적도 있지만, 평생을 지방에서, 나중에는 파리에서 영어교사로 지냈다. 그 외에는 오직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죽기 2년 전 '시인들의 왕'으로 뽑힌 것, 그리고 파리의 아파트에서 문학모임 '화요회'를 가졌다는 것 외에는, 가난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정말 랭보식의 일화나 사회적 야망은 거의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다. 퐁텐느블로 인근 발뱅의 시골집에서 삶을 조용히 마감한다.   그는 보들레르를 읽고 지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학적 삶의 결정적 계기를 맞는다. 고답파에서 언어 형태의 완벽성을 배웠고 에서는 자신의 내적 갈등과 비극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의 '창천(蒼天)', 즉 이상에 대한 꿈은 보들레르의 이상과 일치되지는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도덕적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이고, 그의 시학은 본질적이며 관념적인 어떤 실체 찾기를 향하여 열려 있다.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의 시적 경험은 대개 모험이 주는 영감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시란 우연스런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삶의 우연과는 무관한 언어행위라고 말한다.   비록 '일화는 없었다' 하더라도, 시인의 삶은 여러 문학적 시도들로 가득 찼다. 말년의 라는 작품은 그의 모든 언어 실험들의 종합편이자 정수들을 모아놓은 걸작으로,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시언어의 혁명을 촉발시켰다. 사망할 때까지 시인은 절대의 '책(Livre)'을 향하여 매진하였다.   그러나 "1868년과 1898년 사이에 쓴 몇 편의 시는 대단치 않은 것들이며 시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라는 것이 오랜 동안 말라르메를 보는 시각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시언어의 체계를 정립시킨 자로 추앙받고 있다.   사실 말라르메는 보들레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말라르메의 절대적 상징주의는 본래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유래되어 나왔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말라르메의 절대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의 문학을 '절대적 상징주의'라고 불리게 하였지만, 그 출발은 자아와 세계로 분리된 이원성의 인식에서부터다. 아래 실은 은 보를레르의 영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꼽히는시이다.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라도!(any where out of the world!)"를 외쳤던 보들레르처럼, 그도 또한 도망치라고 외친다. 현실이 아닌 이국의 자연이 보들레르에게뿐 아니라 그에게도 계속 '여행 초대'를 하고 있었다.       오! 육체는 슬픈 것,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어버렸다.        달아나자! 저기로 달아나자! 새들은 알 수 없는 물거품과 하늘 사이     있음에 취해있음을 나는 느낀다!     아무 것도, 눈에 비치는 낯익은 정원도     바닷물에 젖어가는 이 마음을 붙들지 못하리     오 밤들이여! 백색이 지켜주는 빈 종이 위에     쏟아지는 램프의 고적한 빛도     아이에 젖 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겠다!     기선이여 돛을 흔들며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잔인한 희망들에 낙담하고도 '권태'는     손수건 흔드는 최후의 작별을 아직도 믿네! (---)    여기까지 보들레르의 시선과 그의 시선은 같은 곳을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권태'는 보들레르의 '우울'과 색깔이 다르다. 이미 백지에 대한 고뇌가 언급되고 있으며, 생략한 시 뒷 부분에 나오는 파선(破船)의 이미지는 말년의 의 장치로 다시 등장한다.    1864년 말경 그는 이상세계에 대한 꿈 속으로 단순히 도피할 수만은 없음을 깨닫는다. 현실을 대체할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논리를 갖는 것이어야 하였다. 그리하여 1864년과 1865년 사이에 그는 와 를 포함하는, 절대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미 그때 시인은 '정신의 도구인 언어'를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라르메는 보들레르와 구분되는데, 와 다음의 를 비교해보면 두 시인이 얼마나 다르게 각자의 세계를 펼쳐갔는지 알게 된다.        순수하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오늘은      이루지 못한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 서성이는 잊혀진 이 굳는 호수를      취한 날개짓으로 우리에게 찢어줄까!        옛날의 백조는 기억한다      불모의 겨울 권태가 번쩍였을 때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노래하지 못한 까닭에 모습은      찬란하나 벗어나려 하여도 희망 없는 자가 바로 자신임을.        새는 온 목을 빼고 떨쳐버릴 것이다,      공간을 부정하나 공간이 안겨주는 이 하얀 번민을.      그러나 깃털이 묶여있는 땅에 대한 혐오는 떨치지 못한다.        자신의 순수 광휘가 이곳에 부여하는 유령이란 모습,      무용한 유형 중에 자신을 감싸는      모멸어린 차가운 꿈 속에서 굳어져 간다. '백조'는 (Cygne).     이 시는 말라르메 시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하나이며, 프랑스 시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시로 조사된 바 있다. 앞의 시에서 '백색의 방어'해주던 원고지는 이 시에서는 '하얀 번민'으로 나타난다. 하얀 번민이란 원고지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이 느끼는 창조의 고뇌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번뇌가 아니라, 자아의 위기, 글쓰기의 부정 등으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번뇌다. 시인은 글쓰기의 문제를 시의 주제로 꾸준히 내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번뇌를 시화(詩化)하겠다는 생각은 잃어버린 창조의 의미를 되찾겠다는 욕구에서 나온다. 이 꿈은 낡거나 늙지 않도록 빙하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꿈에는 절망적인 모멸이 어려있다. 그것은 대중의 모멸이며 동시에 불모인 자신에 대한 모멸이다. 또한 현실 공간에 대한 모멸이며 글쓰기에 대한 모멸이다.   에서는 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 다시 말해 시인의 현실에서의 무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에서는 '이곳'이라는 공간에 과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과 망설임이 지배한다. 공간의 무의미 때문에 번뇌가 이어진다. 공간은 삶의 공간이자 죽음이 공간이며, 여기에 글쓰기의 공간이 겹쳐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긍정적인 반전을 숨기고 있다. 백조의 몸은 호수의 물과 마침내 함께 얼어붙어, 하나의 커다란 거울이 빚어지게 된다. 목숨은 이렇게 아름다운 빙하로만 남아야 한다. 완전한 거울이란 개인이 사라져야 생성되는 것이다. 그때 진정한 언어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최후의 노래는 최고의 노래가 된다.   시는 백조를 뜻하는 대문자의 'cygne'라는 단어로 끝난다. 백조는 '기호'를 뜻하는 불어 'signe'와 같이, 발음이 모두 /sin/이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시인 자신이 언어의 존재론에 집착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기호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아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로잡힌 날갯짓'이다. 그러나 백조의 모습으로 재현된 기호는 상징이자 노래다. 시인 자신이자 인간의 언어다.        오, 꿈꾸는 여인이여, 다할 길 없는 순수한       환희 속에 내가 빠져들 수 있도록,      나의 날개를 정묘한 거짓으로      그대 손 안에 간직하고 있어주오.        황혼의 서늘함이      부채질할 때마다 그대에게 밀려오고      그 사로잡힌 날개짓은      지평선을 살짝 밀어낸다.         현기증! 이제 공간은       큰 입맞춤처럼 전율한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태어나려 몸부림치나,      공간은 분출하지도 진정되지도 않는다.        당신은 느끼는가 야생의 낙원이      또한 묻혀버린 웃음이      당신 입가에서 나의 전면적인      주름 밑바닥으로 스며들어버리는 것을!                  (----)       ()     시의 외적 동기는 부채질하는 단순한 움직임일 뿐이다. 이 시에는 신비나 애매한 장치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부채질이 공간의 전율을 일으킨다는 것은 시인의 관찰이다. 부채질에 따라 지평선이 물러나거나 다가오며 공간이 전율하는 듯하지만, 이는 바람으로 사라질 뿐인 공간,  태어나지 못하고 분출하지도 솟아오르지도 못하는 공간이다. 현상과 내면에 대한 극사실적 형용이다.   부채질이라는 흔한 움직임 속에 지평선을 꿈꾸지만 그것은 곧 매몰되어 없어질 무의미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사실 공간에 전율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헛된 소망이 전율을 일으켰을 뿐이다. 이 모두 '사로잡힌 날개짓'이며 관념의 생성과 소멸의 되풀이다.   2연에서는 지평선을 상상하였다가 3연에서 이는 현실화될 수 없는 공간임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4연에서 낙원에 대한 가정을 거두어들였는데, 생략된 5연에서는 비상의 의지는 '하얀 도약'이었으며, 그것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움직임은 바람과 숨결의 미세한 움직임이며, 욕망이나 시선의 이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어떤 희망이, 입술 가장자리로 스미듯 사라지는 웃음처럼 사라질지라도, 순수한 낙원에 대한 가정은 정당하였다는 것이다. 가정임을 알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정묘한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5연에서는 다시 부채는 팔찌 옆에 접혀져 놓인다.   집요한 것은 공간 구성에 대한 의지다. 거짓된 희망에서 지평선으로, 빈 공간으로, 낙원으로, 다시 일상으로 이어지는 공간 양상 - 여기에 상징의 모두가 들어있다. 공간 자신은 태어나지 못하고 전율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시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치는 상징의 미학을 묘하게 숨긴다. 숨김의 미학은 상징의 맛이 두드러지게 한다.     말라르메는 이렇게 생각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 '언어의 효과'를 통해 그것에 대해 환기시키고자 한다. 언어 외적인 것은 시에서 모두 베제시켜서 전적으로 '말들에게 주도권을 양도'하는 것이다. 비인칭 상태, 즉 자아를 지워 텅 빈 상태를 미리 마련해놓고 암시의 기법을 그 위에 사용함으로서, 언어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인칭화 혹은 탈인성화란 고전주의에서의 그것이 아니라 글 쓰는 주체의 지우기다. 이것을 그는 "시인의 화술적 사라짐"이라 한다. 앞에서 본 백조의 죽음은 시인의 죽음을 뜻한다. 이러한 죽음, 즉 인성의 사라짐에 의해 언어의 기능이 진정 생성되는 것이다.   탈인성화는 또 한편 내면의 '공(空)'을 만들어내면서, 백지상태 위에 정신 스스로가 펼쳐지게 한다.         나는 끔찍한 한 해를 보낸 참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순수개념'에 도달하였다. 그 결과 이 오랜 번민 중에 나의 존재가 겪었던 모든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다행히도 나는 완전히 죽었다. (---)       다시 말해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제 비인칭이 되었다는 것, 나는 네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나였던 것을 통하여 스스로를 보고 스스로 발전해가는, 정신의 '우주'가 지니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 1867. 5.14:Barbier, 1977,341)     이상이라는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은 먼저 세계 저편에는 '무'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상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결코 버릴 수 없었으므로 그는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즉 이상세계는 '허무' 뒤에 있다. '무' 안에 무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의 전환은 불교와 헤겔의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먼저 현실의 모든 '거짓된 외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상과 자신을, 다시 말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자발적으로 비운다. 그 텅 빈 '무' 위에 새로운 긍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나는 완전히 죽어, 몰아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답파의 엄정한 중립주의에 도움을 받은 것이기 하지만, 고답파의 객관성과도 다른 것이다. 몰아의 '공' 상태에서 정신과 우주는 자연스럽게 다시 펼쳐진다. 나는 그 전개를 바라보는 하나의 보는 '능력', 즉 시선이다. 시선은 매개체일 뿐, 인칭이 없다.    시인이 이 편지를 쓰고 몇 년 후인 1871년, 랭보는 '나는 타자이다'라고 말한다. 두 시인 모두 주체의 위기에 대해 설파한다. 그런데 이 위기는 '미리 계획된' 것이다. 위기를 전개시키는 방법은 달랐을지라도 상징주의의 이상은 이처럼 의도적 위기와 자아의 정화 후에야만 진정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상징과 상징체계란 모든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스스로를 비우는 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자아의 부정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의 구축을 겨냥한다. 그리하여 거미줄처럼 사물들의 관계 요소들이 섬세히 그물망을 이루도록 관계의 구조물을 구축하는 것, 혹은 레이스처럼 논리의 실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 - 이처럼 탄탄한 체계들만이 무한한 확산력을 지닐 수 있다. 보들레르의 은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는" 확산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확산을 위하여 랭보에게는 광기와 착란이 필요하였다. 말라르메는 확산을 위하여 감각을 우선 안으로 응축시킨다. 사물에 대한 말들은 겉으로는 모두 지워진다. 아래의 시에서도 주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죽었거나 몰아상태일 것이다. 이 시는 1868년에 '자신에 관한 우화적 소네트'라는 제목을 쓴 것이다. 그러나 계속 수정하다가 20년이 지난 1887년에야 무제로 출판한다. 완전히 상징들로만 이루어졌으며, 상징주의의 난해성을 대표하는 시로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주석이 가해졌던 시이다.         그의 맑은 손톱들은 자신의 줄마노를 아주 높이 바치고,       이 자정에 고뇌가 횃대를 떠받치고 있다       골호(骨壺)가 받아들이지 않는       '불사조'에 타버린 저녁의 꿈 몇을          빈 방, 제기단 위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소리 울리는 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은,        ('허무'가 자랑하는 유일한 이 물건을 갖고서 '주인'은        '삼도천'에 물을 길으러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텅 빈 북쪽 유리창 가까이,        물의 요정과 싸우며 불을 내던지는        아마 일각수 장식을 따라, 금빛이 죽어가고 있다.        요정은 벗겨진 채, 죽은 자로 거울 속에 있다        거울 테두리가 감싸고 있는 망각 속에        섬광의 북두칠성이 그렇게 빨리 고정되고 있지만,        ()     이 시에서도 여전히 공간 창조의 고뇌가 문제되고 있다. 여기서는 빈 방과 선반 하나, 그리고 열린 창문의 덧창밖에 없는, 그야말로 텅 빔의 미학적 풍경 자체다.  주인은 삼도천(三途川)에 물 길으러 갔으므로, 그가 실제로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거울 테두리에는 금빛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빛도 모두 스러져가고 있다. '불사조에 타버린 꿈 몇'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인이 작품 모두를 불태웠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소리'를 가리키는 "소리 울리는 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이란, 악기이자 글 쓰는 도구이다. 삼도천에 이 악기를 가지고 갔다는 부분에서 오르페우스가 그려진다.  서양의 시에서 이처럼 비어있음만을 주제로 삼고 그것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려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극도의 텅 빔이 시 전체를 지배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열린 북쪽의 덧창을 통해 보일 북두칠성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어떤 희망을 시사한다. 그것은 어떤 조화로운 탄생일 것이다. 이 해석하기 어려운 상징시는 말라르메식 오르페우스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옛날에 사람들이 '대작'을 만드는 용광로에 불을 때기 위하여 자기 집 가재도구와 지붕 서까래를 불태웠듯이, 모든 허욕과 모든 만족감을 던져버릴 용의를 가지고 연금술사와도 같은 인내심으로, 언제나 다른 것을 꿈꾸고 시도했습니다. 어떠한 대작일지? 말하기 어렵군요. 간단히 말해 여러 편으로 된 한 권의 책, 아무리 경탄스러울지라도 우연히 부딪치는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건축적 구성이며 미리 계획된, 책이랄 수 있는 책 말입니다. 나아가 나는 '책(Livre)'이라고 하겠습니다.       (---)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 이야말로 시인의 단 하나 의무이자 더할 나위 없는 문학 작업입니다. 왜냐면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적인 동시에  생생할 '책'의 리듬 자체는 이 꿈의 방정식, 혹은 '오드'와 병행하기 때문입니다.                          (, 베를렌에게, 1885년: 말라르메, 1974, 662~66)     오르페우스는 말라르메의 꿈이었다. 오르페우스의 업은 노래하는 것이다. 꿈의 방정식은 오드라고 한다.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이 꿈의 방정식의 '해(解)'인 것이다. 해는 대문자의 '책(Livre)'이다. '오드'를 통하여 '책'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세상은 아름다운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Huret, 1984:80) 말한다. 시인의 꿈은 이토록 소박한 것이었지만 정말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대지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꿈은 절대의 책을 완성하겠다는 크나큰 야심이다. '책'은 그에게 언어와 정신과 삶이 어우러져 용해된, 인식론적이고 존재적인 어떤 총체, 어떤 '하나'였다. 시인에게 세상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보들레르가 교감이라는 사물 인식법으로 새로운 문학을 열어 낭만주의와 고답파를 버리게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그를 계승하면서 언어형식의 또 다른 혁명을 낳는다. 그 결과의 하나가 라는 시다. 시인은 절대의 책을 가정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페이지라는 형식을 버린다. 대신에 펼쳐지는 책의 (우좌가 아니라) 좌우 페이지를 합쳐서 한 '장'이라고 한다. 이 하얀 화폭 위에는 오직 하늘과 바닷물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 보들레르가 초대받고 싶어하였던 여행을 그는 거의 마지막 시도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그곳에는 미학과 철학과 음악과 문자가 하나가 되어 있다.   베르나르는 를 '시와 산문의 종함'으로 보고 있다. (Bernard, 1988:311)       (---) 는 산문시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와 산문을 나누는 칸막이를 깨고 '통합' 예술의 시도에 상응하는 총합의 양식을 발견하기 위해 당시 시인들이 시도하였던 언어 탐구들에 대한 의미 있는  증언이다(Bernard, 1988:328).      에서,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적인 동시에 생생할 '책' 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가 어쩌면 실험에 그칠지 몰라도, 우선은 절대의 책으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사고의 질서이자 우주의 질서이며 언어의 질서이다. 인간의 말을 통하여 우주의 신비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 속의 신비'를 구현하려는 이 다중의 언어 프로젝트를 통하여, 시인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두텁게 싸여진 상징체계를 생의 마지막으로 완성한다.  언어를 완성하려는 그의 의지는 언어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일화가 없는' 삶을 선택하게 하였다. 시인의 단 하나 의무란 이 땅에 대한 오르페우스식 설명일 뿐으로, 삶의 '일화'는 모두 그속으로 묻히면 되었던 것이다. 발뱅의 시골집에서 후두경련으로 사망하는 시간에까지 그는 아름다운 '책'에 대한 설명을 놓지 않았다. 언어에 몸을 맡긴 그의 이 모든 여정은 사제의 삶에 근접하였다. 여기서 '시라는 종교', 그리고 '언어의 사제'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19세기 후반세기의 위대한 시인들 중 가장 진정한 상징주의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Peyre, 1976:37), 과작(寡作)의 실패한 시인이라는 평이 1950년대까지도 주류였다. 과작은 그가 나태하거나 황폐하여서가 아니라, 상징의 완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한계였다. 얼핏 보아도 동양적 성찰에 많이 닿아있는 말라르메의 공간학은 발레리의 것과 색채와 향기가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의 여정과 가닿는 길은 달랐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5)   5. 발레리와 지중해의 명증   폴 발레리(1871~1945)는 지중해에서 태어나고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1890년대 초부터 시를 발표한다. 이 시기의 시는 후에 (1920년)으로 발행한다. 그러나 발레리는 1892년, '제노바의 밤'이라고 불리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위기를 겪고 시를 포기한다. 그는 1894년부터 말라르메의 화요회에 참석하며, 시는 쓰지 않고 철학과 수학, 과학 등에 매혹되면서, 과학적 정신과 예술적 정신의 결합의 상징이었던 다 빈치에 대한 글( 1895년)과 1896년)을 발표한다. 1896년, 오래 글쓰기를 중단하게할 두 번째의 위기를 겪은 후에 발레리는 시로 돌아온다. 기나긴 침묵은 를 발표함으로써 깨어진다. 그는 1912년 앙드레 지드와 갈리마르사의 강력한 권유에 의하여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고, 5년 뒤인 1917년 발표된 는 시인에게 확실히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사이의 침묵의 20년은 개인 비서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갔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에 몰두할 때 그는 시인은 건축가가 사원을 짓듯이 시작업으로 시를 건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는 영감이 아니라 '구성(composition)'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포우의 훌륭한 번역자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를 따른 것이다. 20세기 시에 고전적 원칙을 복원히켰다는 평을 듣는 그는 수학적 정밀함과 우연을 배제하는 명확성과 객관성과 순수함을 갖춘 시를 쓰고자 하였다. 그의 지적이고 심미적인 시는 건축의 견고성과 음악성과 순수한 시적 이미지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는 또 뛰어난 성찰력으로 학들과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된다.   발레리는 1945년 사망하여 고향 세트Sete의 해변의 묘지에 묻힌다. 그가 1917년과 1922년 사이에 쓴 시집 속에 발표된 가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꼽힌다.     발레리는 제노바에 체류 중 번개 치는 어느 '하얀 밤'에 여럿으로 분열된 자아를 체험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감수성과 이성, 육체와 영혼, 무의식과 명철성 사이로 갈라진 심연을 보게 된다. 이 위기 이후 발레리는 지적이고 엄격한 사유를 막는다고 하며 예술활동을 중단한다. 영감이나 정념 등을 버리고 지적 활동과 내적 성찰 속에 침잠하였던 오랜 내성기간을 지낸 후에야 발레리는 심연에서 돌아온다. 그는 조금씩 시를 쓰는 즐거움과 감각적인 현실세계가 주는 새로운 충격을 받아들인다.    발레리는 인간은 감각과 현실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지적 자아는 감각적 자아를 밖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안의 모든 시는 감각 세계와 지적 세계 사이에서 시적 세계를 전개시키는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자아를 보여준다.       알갱이들이 과일을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여,     나는 자신의 발견들로 파열한     지고의 이마들을 보는 듯하다!       너희가 견뎌온 햇볕들이 비록,     오 반쯤 벌어진 석류들이,     자존으로 다져진 너희로 하여금     루비의 간막이들를 부수게 하였더라도,       또 껍질의 메마른 금빛이 비록     어떤 힘의 요구를 따라     과즙이 빨간 보석들을 터뜨린다 하더라도,       이 빛나는 파열은     옛날의 내 영혼에게     자신의 은밀한 구조를 그리워하게 한다                                                          ()     말라르메의 부채 연작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징주의 시는 공허한 이상세계에 대한 그림이 아니다. 시어는 막연한 암시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질긴 관찰이 있은 뒤, 바로 그것에 의해서야 그 위에 상징체계를 축조할 수 있다. 그 탄탄한 구조를 읽어내려면 독자들은 축조과정을 따라가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상징의 묘(妙)는 여기에 있으며 해독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다. 위의 시도 사물에 대한 자세한 관찰로부터 출발한다. 구체성 없는 것은 시가 아니라는 듯이 석류 알갱이의 벌어짐을 천천히 묘사한다.   그러나 시의 1연에서는 '지고의 이마들'이 언급되고 마지막 연은 '은밀한 구조'라는 단어로 끝남으로써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금빛 껍질의 루비빛 파열 등은 객관적 묘사일 뿐 아니라, 그의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발레리는 에서 다양한 지식들의 관계와 우주체계를 과학적으로, 즉 최상의 정신력으로 파악한 다 빈치를 모범으로 그리며, 우연으로 찬 외적세계의 논리를 거부한다. 또한 내면 의식을 탐구하여 인간정신의 법칙을 발견하고자한 테스트씨라는 가상의 인물처럼, 스스로 의식을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력을 갖고자 하였다. 테스트씨는 감각적 인식을 부인하고 자의식과 지적 인식만을 인정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측면은 발레리의 사상과 작품 속에서 이원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남아있게 된다. 다 빈치와 테스트씨가 '자기 사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지적 훈련의 표상들이라면, 와 에서는 이 극단성은 화해를 향한다.     는 발레리의 와 함께 시인의 내면 성찰을 시화한 작품이다. 어느 섬에서 여명에 눈을 뜬 파르크는 방금 꾼 악몽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과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순수와 관능 사이의 갈등을 회상하며 살아보려 하지만 또 다시 광란에 빠져들게 된 파르크는 죽으려 하나 죽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며, 영혼의 각성에 전율하게 된다.    많은 이미지들과 풍부한 상징의 망, 음악성, 관능의 제시와 그 극복 등은 이 시를 최고의 상징시의 하나로 불리게 하며 독자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의 파르크는 운명의 세 여신 중 막내로 탄생의 신 클로토Clotho를 가리키는데, 생명의 실을 짜는 것이 임무다.   다음은 이 시의 시작으로, 젊은 파르크가 한밤에 깨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한밤에 일어나니 모든 삶이 다시 살아나서 자아에게 말을 하고" 있다.       거기 누가 울고 있는가, 단지 바람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혼자서, 지고의 금강석들과 함께?... 아니 누가 울고 있는가     이토록 나의 가까이서 내가 울려는 순간에?     여기서 화자나 화자가 들여다보는 대상 모두 나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어 있다. 울고 있는 것은 바람과 금강석들, 그리고 나이다. 관찰자인 나는 막 울려고 하는 순간이지만 울지 않고 울고 있는 자연과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의식으로 깨어나 이렇게 자아와 주변을 분석하려 한다.   관찰자인 자아의 눈뜸은 뱀에게 물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의의식과 욕정의 상징인 뱀에게 물림으로 인하여 파르크의 관능적 자아아 성찰적 자아는 동시에 인식된다. 또 하나의 나는 '명철한 정신'으로서, 이들에 대한 관찰이다.       물 굽이치듯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고, 시선에서     시선으로 내 깊은 숲들을 금빛으로 칠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나를 막 문 뱀을 쫓아가고 있었다.       욕망들이 이 무슨 꿈틀거림인가, 뱀의 기는 모습이란!... 내 탐욕에서     빠져나오는 보석들의 이 무슨 혼란,     또한 명철에 대한 이 무슨 어두운 갈증!                                                     ()     관능적 자아에 가까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자아'와 성찰적 자아, 이를 지켜보는 자아 사이에서 자아의 갈등과 분열은 극에 달한다. 그리하여 화자인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말라르메의 앞서 본 편지에서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부분을 상기시킨다. 발레리는 그 자아를 더욱 분석한다.   말라르메가 금욕적 자세로 '공(空)'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아의 분열을 체험하였다면, 발레리의 분열은 관능적 자아의 문제가 전면화되어 더욱 미묘하다. '의식하는 의식'은 자아를 점점 의식의 심연으로 밀어넣고, 그리하여 나는 "오 위험하게도 그의 시선의 포로가 될 뻔하였다!"라고 외친다. 의식의 깨어남과 분열의 고통은 마침내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사라진 나의 시선이 보고 있는 바를 안다.     검은 내 한쪽 눈은 지옥의 거소로 난 문턱이니!     나는 생각한다, 시간들은 산들바람에 내맡기고     영혼은 쓰디쓴 관목 숲에서 돌아오지 않은 채 (---)     죽음은 그러나 실제 죽음이 아니라 허구적인 죽음으로, 파르크가 새벽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었을 때, 모든 것은 존재론적 고뇌였음이 밝은 빛 속에서 밝혀진다.       (---) 내가 옷 벗은 채, 두려움 없이     이 바닷가에 와서, 치솟는 거품 들이마시고     드넓고 웃음 띤 쓰라림을 눈으로 마신다면,     가장 생생한 대기 속에, 존재는 바람을 마주한다면 (---)                                                                ()     자아가 죽음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 이 풍경은 에서 "바람이 인다! --- 살아보아야 한다!" 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풍경이다. 삶을 초월한 논리적 결론이, 비록 우연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삶의 의지를 이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시인의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파르크의 유혹과 망설임은 시인의 자아 부정과 자아를 되찾는 과정의 번뇌를 표현한 것이다. 자아는 이제 지적 탐구와 고뇌를 극복하고, 변화로운 감각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각성을 따르고자 한다.   다양하고 시간적인 현상과 안정적이고 비시간적인 상태 사이에서 흔들림도 시인의 사고의 두 축에 기인한다. '타고난 시인'(레몽, 1984:200)이었으므로 '지적 유혹과 감성적 자질'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 없었던 발레리에게는, 이처럼 이원적 문제를 화해시키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화두로 제시되었다.   발레리의 시간의 이원성에 대한 생각은 무한에 대한 관조의 세계로 다시 재현된다. 1920년  발표된 는 그의 고향 세트의 바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일생 중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끌어다 쓴 최초의 시"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은 자신이 경험하였던 맑고 고요한 감각을 명상 속에서 회상한다.       비둘기들이 걷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펄럭인다 소나무 사이에서 무덤 사이에서     엄정한 자, 정오는 거기 불로써 빚어낸다     바다를, 언제고 새로 시작해있는 바다를!     오 생각 하나에 따른 보상이여,     신들의 평온을 오래 관조하는 시선이여!     여기서 비둘기는 바다에 떠있는 삼각돛을 말한다. 그러니까 지붕은 평화로운 바다를 지칭한다. 이 시에서 내적 리듬은 에서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전체적으로 더 자연스럽고 구속을 버렸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시인의 사유의 발전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인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 '순수 자아'의 힘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공허 속에서 본질과 영원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오, 나만을 위하여, 나 자신에게만, 나 자신 속에서,     마음 곁에서, 시의 원천에서,     공허와 순수 사건 사이에서,     나는 나의 내면의 위대함이 메아리치기를 기다린다     항상 앞날에 다가오는 공동(空洞)이 영혼 속에 울리게 하는,     쓰라리고 어둡고 소리 울리는 저수조여!     그럼에도 바다 앞에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시인은 거부할 수 없이 변화를 인정한다. 인식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던 시인은 고향의 해변 묘지를  배경으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리듬이 살아남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시인의 인성이 가장 많이 드러난 시라는 평을 받았다.       아름다운 하늘이여, 진실된 하늘이여, 변화하는 나를 보라!     그토록 대단한 자존 끝에, 이상하나 힘에 찬,     그토록 대단한 무위의 끝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나를 맡긴다 (---)     가 변화와 불변 사이, 추상과 구상 사이로 찢겨진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라면, 이 시는 드라마의 완결편이라 할 정도로 상대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파르크도 구체적 현실을 수용하고 삶의 의지를 인정하려 하였지만, 자아는 쉽게 변화를 수용하는  양상은 아니었다. 유사한 장면이지만 수용이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아니다, 아니다!... 일어서라! 계속되는 시대 속에!     부숴라,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틀을!     마셔라,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뿜어나오는 서늘함이     내게 나의 혼을 돌려준다... 오 짜디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 거기서 생생하게 솟아오르자!                             (---)     바람이 인다!... 살아보아야 한다!     광막한 대기는 나의 책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파도는 가루로 부서져 바위 위에 용솟음치려 하네!     눈부시게 하얘진 책장들이여 날아가라!     부숴라, 파도여! 기쁨을 되찾은 물로써 부숴버려라!     비둘기들이 모이 쪼던 그 고요한 지붕을!                                                      ()     앞에서 글쓰기 불면의 진리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변화와 현실을 수용하는 글쓰기를 인정한다. 여기 책은 열었다가 다시 닫힌다. 책장들은 날아간다. 현실을 버리는 글쓰기는 없는 것이다. 무한은 현실을 포용하고 펼쳐질 것이다.  생각의 변화는 시의 첫 연에 등장하였던 비둘기에 대한 묘사로도 드러난다. 비둘기는 이제 명상의 평화를 깨는 속된 호기심을 가리킨다고 한다. 비둘기든 돛이든 사실 무의미하며, 생각을 흔들 수 없다. 시가 비둘기에서 시작하여 비둘기로 끝난다는 사실은 닫힘을 말하는 것 같지만, 폐쇄를 넘어선 자존감을 마침내는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의 불안한 고요가 아니라 이제 파도와 마주할 힘을 자아는 되찾는다.  간단히 말해 파르크는 바다 앞에서 격리나 해방이나를 가슴 에리도록 번뇌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묘지와 바다를 앞에 두고 해방의 여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젊은 파르크는 인생의 매혹을 알게 되어 거기에 굴복하는 과정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고, 는 영구불변에 매혹되었다가 이에 저항을 느끼는 과정을 기록한다. 결국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순수와 절대에 대하여 시인이 오랜 시간 쌓아왔던 물음이 에서 어느 정도 답에 도달하는 것이다.  와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택하면서, 시인은 바다의 정화력과 포용력, 재생력을 미리 마련해놓았던 것이다. 격리된 상태 속에 도피하고자 하는 파르크의 자의식적 태도는 말라르메의 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격리보다 중요한 것은 돌아와 자신의 동질성을 되찾는 일이며,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두에 시인이 다음 같은 핀다로스의 일 절을 소개하는 까닭이다. "오 나의 영혼이여, 영원불멸을 꿈 꾸지 말고, 다만 가능성의 영역을 다 소진시켜라."     말라르메와 같은 곳에서 출발하였지만 두 사람은 이처럼 다른 곳에 도달한다. 발레리의 시가 발레리의 사상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 시를 비교해보면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라르메가 사물과 관념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추상화 단계에 거의 도달하였다면, 그리하여 고유한 상징체계를 축조하는 변함 없는 장인의 인내를 보였다면, 발레리는 다소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발레리는 사물에 가까이 있고 싶어한 시인이었다. 그는 사물의 매혹을, 그 구체적 힘을 이길 수 없었고 이기기를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말라르메가 더 관념적 시인이라 하겠다. 상징주의의 완성에 그가 더 가까이 있는 이유다. 발레리는 새로운 시 형식을 연 "개척자는 아니었다(레몽, 1984:216)"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6)   6.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1. 상징주의와 음악     음악이 없이는 상징주의 문학의 지금과 같은 형태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상징주의 문인들은 언어가 빚어낸 경계들을 지우는데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것은 감각을 정화시키고 인식이 구획지어지고 이성적인 틀을 버리는 것과 같은 차원의 일이었다. 자연히 예술 영역들 사이의 간막이를 허무는 일에도 주력하였다. 경계들을 넘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상징체계를 조성하는 계획은 언어만으로 충족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음악을 필요로 하였다.   상징주의가 낭만주의의 막연하고 과도한 감성의 표출에 반기를 들어, 우연에 지배되는 영감이니 모호한 서정주의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비록 고답파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답파의 형식주의적인 면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주의는 형식을 위한 형식이 아니라, 범우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상징 논리를 영혼의 각성 위에 쌓아가고자 하였다. 그것을 위한 언어의 정화와 확산은 상징주의자들에게 주어진 기본적 소명이었다.   언어의 정화란 왜곡되고 마비되어 기능을 상실한 언어를 '모어' 상태로 되돌려놓는 일이었다. 그것은 언어의 근원, 즉 노래와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때의 본래의 언어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원천의 언어에 도달하기 위하여 언어의 모험가들이 성운처럼 떠오르게 되었고, 상징주의자들은 음악을 천착하였던 것이다.   보를레르는 모어와 수수께끼의 상형문자를 되찾고자 하였다. 베를렌은 음악이라는 기법을 통하여 언어의 확산을 기도하였다. 랭보의 모험은 결국 주술적 언어를 포착하는데 바쳐진 것이었다. 말라르메는 기존의 구문 구성법을 바꾸면서까지 언어의 순수 리듬을 찾고자 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구문법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난해성이 있게 된다.    음악은 시원(始原)의 언어, 즉 무한한 확산력을 가진 언어를 되찾는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가 되었다. 암시와 모호성이라는 상징언어의 기법이 꽃 피는데 음악은 가장 큰 몫을 하였다. 음악이 상징주의 언어와 소통할 여지가 넓었다는 것은 음악이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물질적 경향을 훨씬 덜 띠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문학의 차원을 고양시키는 것으로 음악과 상징주의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상징주의 문학은 이어서 음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라벨Ravel은 말라르메가 에서 보여준 탈인성화 이론을 자신의 음악 속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음악가는 거울 속으로 스스로 사라지는 것, 그것이 그의 피아노 조곡 이 도달하려 한 목표였다.   이제 우리는 상징주의 확립과 확산이라는 두 차원에 더욱 크게 기여한 음악가들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상징주의 언어의 확립에 도움이 된 바그너와 음악에서 상징주의에 근접하였던 드뷔시가 그들이다.   리하르트 바그너   바그너(1813~1883)가 사망한지 2년 후인 1885년 2월에 에두아르 뒤자르댕 등은 을 창간한다. 이미 바그너는 프랑스에서 활발히 연주되고 있었고 상징주의자들 일부는 그에게 종교에 가까운 존경을 표하였다. 그에게서 부각되는 점은 음악 자체보다 사상이었다. 그는 정신예술과 상징예술의 선구자이자 거의 '종교의 창시자'(Marchal, 1988:171)였다.   그리하여 창간호에 상징주의 선언에 유사한 글이 실리는 등, 은 상징주의 운동에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중 하나가 된다. 1886년 1월 8일 자에는 바그너에게 바친 여덟 편의 시가 실린다. 그들은 말라르메, 베를넨. 르네 길, 스튜어트 메릴, 뒤자르댕 등 모두 상징주의자들이었다. 이 모두는 "상징주의의 공식적 등장을 준비하는"(Marchal, 1993:47)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바그너를 상징주의자들에게 소개하여 상징주의 운동의 촉매가 되게 하였던 보다 앞선 선구자가 있다. 그는 바로 프랑스에서 '바그너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로 꼽히는 상징주의 시인 빌리에 드 릴라당이다. 릴라당은 당시 프랑스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바그너를 1860년(혹은 1861년)에 처음 듣게 된다. 작곡과 성악, 피아노에 능했던 그는 바그너가 프랑스에 알려지기 전에 직접 연주하거나 노래 부름으로써 그를 프랑스 문인 등, 소수그룹에 알려왔다.  카튈르 망데스, 쥐디트 고티에, 릴라당은 1869년 상징주의자들의 메카가 될 바이로이트로의 여행을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헤겔에 경도(傾倒)되었던 릴라당은 바그너와 직접 만나 그에게 헤겔의 철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상징주의 운동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던 독일 철학자는 헤겔보다 쇼펜하우어였다. 릴라당은 바그너의 중개로 상징주의자들에게 쇼펜하우어를 소개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Raitt, 1986:131)   등 릴라당의 극작품은 바그너의 면모와 개혁 모델을 담으면서 극작품의 개혁에 앞장서게 된다. 상징주의자들 사이에 바그너를 유포시킴으로써 릴라당은 상징주의 극을 예감하게 하였는데, 그가 도입하고자 한 것은 바그너극의 신화적 요소 외에도, 구성방식과 음악성과 주제와 감정이었다. 그에게 바그너는 (Marchal, 1988:190).   바그너의 음악과 에술에 대한 개념이 상징주의 미학 발전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은 누구나 인정한다. 바그너는 당시 상징주의자들의 요구에 여러 면에서 부응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답해줄 수 있었던 것은 구성과 문체 차원 외에도, 정신적 예술과 예술철학에 대한 갈증, 통합예술과 비교미학과 폭 넓은 형태의 연극에 대한 요구 등이었다.   바그너가 예술 분야들의 결합이라는 이상을 주장한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음악과 연극을 문학에서 통합하려는 말라르메의 시도, 그리고 신화와 종교의 근원에서 문학을 되찾으려는 그의 시도에 바그너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순수하고 비밀스러운 것'(Marchal, 1988:179), 다시 말해 근원에 대한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종교와 신비의 기능이었다. 그것은 윈시 예술에 가까운 본원적 예술에 대한 암시였다. 바그너가 이상으로 삼은 예술 장르 간의 결합이라는 꿈은 프랑스에서 결실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과 신화와 연극의 결합은 민중에게 민중의 근원을 되찾고 무의식 속에 집단의 동질성을 깨닫게하는 것이었다. 그 동질성으로 언젠가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도래할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요컨대 연극은 집단 무의식의 바탕 위에 잃어버린 신화의 힘을 부활시키는 것, 예술을 종교적 예찬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 무엇보다 바그너의 극은 '신화적 상징주의'의 모델을 시인들에게 주입하였다. 바그너와 더불어 신화는 상징예술의 자연스런 지지대가 되었다 (Marchal, 1993:98).     바그너는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식 모델을 재생시키려하면서도 민족신화를 초월하지는 못하였다. 말라르메 같은 시인이 보기에는 그에게는 인류에 대한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성찰의 면모가 부족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말라르메가 말하는 연극의 음악적 혁신이란 바그너식 모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상적 연극에 대한 말라르메식 모델이었다(Marchal, 1988:175). 말라르메는 바그너에 대하여, "모든 것은 원초적 흐름 속에 다시 젖어든다. 그러나 그 원천까지 가닿지는 못한다"(말라르메, 1974:544)라고 평한다.   그럼에도 그의 절대의 '책'이라는 개념 속에 극에 대한 개념이 녹아있는 것은, 바그너의 이상적 연극개념과 상상력이 영향을 끼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절대의 '책'이라는 개념에는 정신적 연극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자리한다.   그 외에 바그너의 음악이 상징주의, 특히 후기 상징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종교적 계시와 그 구원,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절대적 사랑 등, 그의 신화적 주제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촉발하였다. 화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해석해내었다. 음악을 사랑하였던  르동은 바그너늘 다룬 판화들을 제작하였다.   클로드 드뷔시   이론적 성향이 강한 말라르메는 미술보다 연극과 음악에 대한 의견을 더 많이 내놓았다. 말라르메가 주재한 화요회에는 그에 열광한 젊은 문학가, 화가, 음악가들이 몰려들었다. 거기에서 그는 언어 탐구에만 집착하지 않았으며 20년 연하인 드뷔시(1862~1918)와도 깊은 교우를 맺었고, 그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때부터 드뷔시도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 시에 곡을 붙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가 노래의 가사와 '서정적 산문들'을 썼다는 일화는 언어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과의 관계, 시와 산문, 음악과 문학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 글쓰기의 목적은 상징주의의 순환적인 글쓰기에, 모든 형식적인 절차에서 해방된 인상주의를 대립시키고자한 것이었다. 그는 시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간의 피할 수 없는 갈등에서 멜로디를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가사를 쓰면, 즉 더 유연성이 있는 산문을 쓰면, 노래의 멜로디의 굴곡에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멜로디를 음악화했을 때 소절의 유연성과 갑작스런 비약, 그리고 느릿한 주문 효과들은 이미 드뷔시 특유의 것이었으나, 가사들은 여전히 상징주의에 대한 과도한 경도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순환구조, 데카당적인 매력, 신조어, 다소 인위적인 표현의 우회 등이었다.   말라르메는 화요회에서 자신의 극시 속에 잠재해있는 유머와 풍자와 감각적인 생명력에 대해서 드뷔시에게 피력한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으로 드뷔시는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세련된 울림과 몽환적 분위기, 아름다운 화음 등이 일찌기 이처럼 완벽한 현악 반주 속에 플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변덕스럽고 난해한 멜로디는 성숙한 드뷔시 작품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하여 드뷔시는 음악에서의 '무언가를 바꾸었고,' 새로운 운율과 새로운 미를 창조한다. 이러한 일은 바그너의 이래로 없었던 일이다. 상징주의자들과 교유하고 있을 초기 무렵에 드뷔시는 바그너의 취향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바그너가 물려준 소리의 유산을 확대하면서 뛰어넘은 것이다. 리듬의 섬세함, 멜로디의 움직임, 장단조 특성의 폐지, 화음의 자유로운 확신과 연속, 분위기를 빚어내는 재능 등은 미적 감각을 새롭게 하고 감수성과 셈세함을 증대시킨 것이었다.   드뷔시는 말라르메의 그 외의 시 몇 편, 베를렌과 그외 시인들의 시 등, 많은 상징주의 작품에 곡을 붙였다. 보들레르와 릴라당에서 영감을 받아 와 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상징주의 문학과 미술을 자신 속에서 융해시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려는 그의 특이한 시도는 말년에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그의 2집으로 된 는 피아노 문학을 완성하였다는 평을 얻게 된다. 음악으로 맺은 암시의 시학의 결실을 이제 역으로 드뷔시가 수용하는 것이다.   드뷔시가 에서 애용했던 침묵기법 또한 암시의 미학을 음악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바그너풍의 음악을 원하던 드뷔시는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상징주의 극 를 보고 감명 받아 오페라로 작곡한 것이다(1902). 이 상징주의 극은 "포레, 쉔베르크, 시벨리우스 등 다양한 음악가에게 영향을"(Marchal, 1993:59) 주었다.   과 외에도, 드뷔시의 , , 1, 2집, 피에르 루이스의 시를 작곡한 가곡집 등은 상징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드뷔시의 음악은 모호하게 암시하는 효과를 위하여 다채롭고 난해한 표현들로 가득 차있다. "나의 음악은 (---)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드는 것과, 어떤 풍경이나 대상과 동일시되는 것, 이 두 가지 목적만을 갖는다"(타임, 1993:69)라고 드뷔시는 말한다. 그에게 영감을 제공한 것은 '비 내리는 정원', '안개', '달빛' 등, 그의 작품제목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물 흐르는 듯한 아라베스크 무늬와 영혼의 상태를 재현하는 베를렌풍의 풍경들, 해석을 요구하는 난해한 이미지 들의 이어짐, 또한 이미지들 속을 집요하게 파고들다가 다시 다른 이미지들로 넘나들기 - 이러한 드뷔시의 요소들은 상징주의를 음악의 차원에 도입한 것이었다. 음악에서는 드뷔시의 작품들을 상징주의라고 흔히 칭하지는 않지만, 문학에서는 이러한 상징주의를 '애매한 상징주의' 또는 '제3의 상징주의'(Marchal, 1993:6) 등으로 수식한다.   일반적으로 음악의 '인상주의'는 1900년경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상주의 음악은 풍부하고 섬세한 음색, 자유로운 형식적 구성, 분명치 않아 보이는 선율과 리듬의 윤곽, 세분화되고 인상적으로 연결된 선율, 그리고 전통적 조성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회화의 인상주의적 특징과 유사하게, 선율이나 화성의 흐름이 유동적인 형식인 드뷔시의 음악은 인상주의라고 불린다.   그러나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벼운 피상성과 일상성을 싫어하기도 하였거니와, 자신이 회화의 인상주의를 음악에 모방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한 음악은 항상 외적 인상을 내적인 표현으로 변환시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가는 "낮이나 밤, 하늘과 땅의 매혹을 알아보고, 그 분위기를 깨울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고, 이 모두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보았다. 인상주의 미학의 한계점인 피상성의 재현을 피하려함으로써 그의 음악은 상징주의의 모험에 근접한 것이다.    보들레르는 문학을 매춘이라고 하였고 랭보는 사기라고 하였다. 드뷔시가 "음악은 거짓 중 가장 아름다운 거짓"이라고 하였을 때, 우리는 '문학은 영광스러운 거짓'이라는 말라르메의 유명한 화두를 읽게 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7)   2. 상징주의와 미술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빛과 색채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인상주의가 약 10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던 이유는 빛과 색채가 변하는 방식에 대한 사고의 차이 때문이었다. 빛과 색채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가 나타내고자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상주의자들도 깨닫는다. 르레상스 이래 이어졌던 사실주의의 추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음이 확고해졌던 그즈음에, 영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상징으로 예술을 전달하려는 욕구와 꿈과 환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그리고 꿈과 상징과 성의 중요성에 대한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발견이 발표되었다.   모레아스의 상징주의 선언이 있었던 1886년, 베르나르와 앙크탱이라는 두 화가는 "사상이 회화 기법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인상주의를 포기한다"(타임, 1993:83)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1880년대 후반의 반예술 운동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시각을 통한 분석보다는 감정의 경험에 근거한 예술을 추구했으며, 그림의 주제를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에서 찾았다(타임, 1993:83).     그리하여 고갱과 고흐 등은 상징주의를 예술의 아방가르드로 부상시킨다. 이러한 1880년대 후반의 반(反)예술 운동은 정신적, 종교적 가치에 대한 상실감과 물질세계와의 구조적 충돌 속에서, 두 세계의 갈등을 해소하고자한 것이다. 상징주의화가들은 부르주아의 물신주의와 대중주의에 혐오를 느끼고 그들의 관습이 예술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과학에 대한 맹신에서 시작된 기계적 삶에서 해방되고자 하여, 감정과 욕망과 꿈과 신화를 표현하였다. 인상주의의 한계인 일상성과 피상적 재현을 버리고, 정신세계와 감정을 시각화하였다.   보들레르에게 향기, 소리, 색채는 영혼의 상태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상상력으로 재현되는 환기력 있는 시각 예술은 그에게 내재적 관념과 본질적 실재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따라 상징주의 화가들은 자연에 대한 모방주의에서 해방되어, 색채, 선, 형태로써 내적인 아름다움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이집트, 원시미술, 중세, 근동, 민족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다양성과 직관과 감각을 추구하였다. 원시미술에는 본능, 무의식, 꿈이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었다. 미술은 이렇게 비물질적 세계와 개인의 내면을 중시하며 도덕성의 차원을 넘어섰고, 탐미적으로 흐르거나 '데카당'하게 되었다.   한편 상징주의 문학운동은 스스로를 정당화시켜줄 화가들을 찾게 되었는데, 위스망스는 모로와 르동을 발견하여 이들을 1884년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 에 몇 페이지씩 언급한다. 모로는 상징주의를 풍요하게 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여 상징주의 문학의 확립에 기여한다. 르동은 상징주의 이론을 미술에 실현시켜 상징주의 미술의 전형을 만들었고, 그의 작품은 다시 상징주의 문학에 전파되어 문학에서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귀스타프 모로   모로(12826~1989)는 1856년부터 4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원시 화가들과 고대의 예술, 모자이크와 비잔틴의 에나멜화에 매력을 느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그림은 괴이함과 환상성 등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1880년경 유행한 신비로운 동양문화에 대한 동경의 결과, 사람들은 불화(佛畵)와 이탈리아 미술이 결합된 것 같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띠는 그의 그림에 열광한다.    그는 그림의 기초를 문학, 철학, 고고학, 신지학 등에 두어 신화와 소설에서 주제를 얻었다. 데카당스 문인들은 그의 정교한 그림에서 전설, 신화, 복잡한 상징, 팽창적인 배경과 색조 등을 읽어내고 경탄해 마지 않는다."인도신전의 이미지에서 잔혹하고 엄숙하며 남녀양성으로 보일 만큼 모호하게 그려진 여성들과 지나치게 화려한 실내장식들은 세기말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장티,2002:59) 문예화가라고도 할 수 있는 모로의 그림에 문인들은 매료되어 그것을 시화하거나 소설로 옮겼다.    그러나 모로는 자신이 문예화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며, 미술의 본질과 의미에 대헤 다음처럼 한다.          물질의 외피와 피상적인 육체미 밑을 흐르는 영혼의, 정신의, 마음의, 그리고 상상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인류가 느끼는 이들 신성한 욕구에 응답하는 저 미술은 얼마나 감탄할 만한 것인가? 이것은 신의 언어다. (---) 나는 선과, 당초무늬(아라베스크) 등 조형예술에 허용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상을 환기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이것이 나의 목적이었다(루사-스미스, 1990:68-71)     모로는 여러 가지 조형수단을 통하여 상징과 암시의 예술을 지향한 것이다.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의 본질을 그림을 통하여 느끼게 하고자 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 느끼는 것을 믿고 그것으로 특유의 내면 풍경을 창조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풍경이 환기시키는 꿈과 환상이었다. 그의 인물들이 환기시키는 생각들은 개인의 내적인 섬광들을 촉발시키는 것이다. 그의 환상은 단순한 환상의 재현이 아니라 치밀한 생각과 계획의 결과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주의적이었다. 르동은 "모로는 생각들의 비약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형식을 다듬어내는 작가와 같았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의 나아감을 놀라운 이성으로써 인도한다(르동, 1961:65)"라고 말하고 있다.    모로는 말라르메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징주의 시운동과 관련되며 상징주의 운동에 중요한 몫을 하였다. 그는 "위대한 신비는 그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자연 전체는 이상과 신성함으로 채워져 모든 것이 변형된다."(루시-스미스, 1900:71)라고 하며, 보다 높은 세계를 향한 고양(高揚)을 꿈꾸었고, 그 실현을 위하여 상징주의자들처럼 정교한 계획을 따라 작품을 완성하였다.  사물을 변형시키는 힘과 상상을 촉발시키는 그의 놀라운 능력은 문학을 또 다른 길로 안내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였다. 후에 그가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를 망각에서 불러낸다. 등에서 그가 형상화해내었던 무의식의 세계에 초현실주의자 브르통은 크게 매료된다. 그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였으며 20세기 회화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그는 오리엔탈리즘과 기독교와 유대주의와 비교주의를 교묘히 융합하고, 몽상의 동물들과 모세, 프로메테우스, 양성의 존재 등으로 다양한 꿈들을 전한다. 인간의 내적 감각에 대한 절대적 감수성과 문학적 소양으로 상상력을 촉발시켰던 모로는 다수의 시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졸라는 모로의 상징주의에 대해 다음처럼 요약한다.         모로는 사실주의에 대한 증오로 독창성을 찾고자하는 예술가가 빠질 수 있는 최고도의 기상천외함을 가장 놀랍게 드러낸다. (---) 현대의 자연주의는, 자연을 연구하려는 예술의 노력은 분명 반작용을 초래할 터이었고 이상주의적 예술가들을 산출하게 되어있었다. 상상력 영역에서의 이 역행적인 움직임은 귀스타트 모로에게서 아주 흥미로운 특질을 지니게 된다. (--) 그는 낭만적  정열과 안이한 배색을 경멸하였고 그림자와 빛의 대비로 화폭을 뒤덮기 위해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려 눈을 현혹시키는 붓의 뒤엉킴 따위를 경멸하였다. 그게 아니었다. 구스타브 모로는 상징주의에 헌신한 것이다. 그는 수수께끼 놀이들로 이루어진 조각그림들을 그렸고 태초의 원초적인 형태들을 다시 찾아내었으며 (---) 그의 꿈들은 더 기교적이고 복잡하며 수수께끼 같다 (---) ()     모로의 상징주의에 대한 헌신은 자연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자연주의자 졸라 자신도 그 반작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로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와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 반대하면서 상징주의를 풍부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세기말의 에술과 데카당스의 한 지침이 되었고, 초현실주의를 촉발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이처럼 모로는 많은 사조들의 중심되는 경계선 위에 서서, 다양한 예술 사조의 프리즘 역할을 하였다.   오딜롱 르동   르동(1840~1916)은 1879년 석판화집 연작으로 화단에 데뷔하는데, 위스망스는 자기 소설에서 주인공이 숭배하는 예술가로 르동을 그린다. 르동은 1885년 위스망스의 소개로 말라르메와 알게 되어 급속히 친해졌으며, 시인의 사망 때까지 오랜 기간 교유한다.     말라르메는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것이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라고 한 바 있다. 르동은 인상주의를 강하게 부정하였으며, 그의 목판화와 석판화는 암시적 기법을 충실히 실현하게 된다.   그는 "나의 데생들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아무 것도 결정짓지 않는다. 그것들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미결정의 모호한 세계 속에 있게 한다."(르동, 1961:27-28)라고 말한다.    말라르메는 르동에게, 화가는 시인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으나 화가의 상상력과 시인의 환상은 결국 같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음악 애호가였던 르동은 상징주의자들이 문학에서 음악을 사용하였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술에 음악을 사용하여 상상적인 것들에 논리를 부여하였다.   그의 미학은 그리하여 "시각의 미학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의 미학에"(장티, 2002:53) 가까워지게 된다. 그는 말한다.          암시적 예술은 음악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속에 더 자유롭게, 빛나게, 전적으로 존재한다(르동, 1961:26).     암시적 기법은 음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는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은 현실이 아니라 신비이기를, 혼의 상태와 생각을 자유로이 반영하는 것이기를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르동은 자신의 판화들을 유례 없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의 판화들은 다양한 장면들이 덧입혀져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표현되어있다. 이미지 안에 이미지가 내포되므로, 신비와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감상자의 의식과 무의식의 움직임을 촉발한다. 그것은 암시의 미학을 철저히 따른 결과였다.    암시의 미학을 따르는 예술작품은 적극적인 감상을 요구한다. 르동의 감상에 있어서는 감상자의 해석이, 따라서 그의 내면의식이 아주 중요하다. 감상자들은 찬탄하거나 보는 것만으로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화가는 말한다.         (---) 감상자의 정신 속에 파생된 효과는 그를 허구세계로 이끌어준다. 이 허구세계의 의미는 감상자의 감수성과 모든 것을 확대시키거나 축소시키는 그의 상상 능력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진다(르동, 1961:27)     이러한 생각은 예술의 수용 문제를 문학에서 다루고자 하였던 말라르메의 시도를 떠올린다. 말라르메는 또한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사물을 '보는 법'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강조하였고, 이 점에 있어서도 그들은 서로 통하였을 것이다. 르동은 "본다는 것은 사물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파악하는 것이다"(르동, 1961:48, 62)라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이 감상자들에게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가 지니고 있던 신비에 대한 감각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상징주의 문학에서와 유사한 차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르동이 화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상징주의 문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평자도 있을 정도였다. 모리스 드니도 지적했듯이 르동이 영혼의 상태나 감정의 깊이, 내면적인 비전을 일러주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상징주의 문학에서 신비를 표현하는 방식을 더욱 상상력 쪽으로 밀고 나아간다. 그는 사물에 대한 표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차원의 신비까지를 감상자에게 촉발하고자 하여, 모호성을 극대화시킨다. 그에게 신비란 그림 속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비란 관찰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형성될 어떤 형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의 상상력은 조형적 실현 차원을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나의 독자성은 보이는 것의 논리를 보이지 않는 것에 가능한 한 적용시켜, 있음직한 것의 법칙을 따라 있음직하지 않은 존재들을 인간처럼 살아있게 만드는 데 있다"(르동, 1961:28)라는 그의 유명한 주장은, 그를 초현실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수긍하게 한다.   르동의 조형적 실현은 무의식의 심연에까지 가닿는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도 그는 초현실성과 잘 연결된다. 그러나 그의 환상과 몽환의 세계는 뿌리 없는 것이 아니며 그 뿌리는 면밀히 관찰된 현실에 있다. 자연의 대상을 섬세히 포착한 후에 상상적인 것의 재현이 스스로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은 그의 예술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따라서 예술을 하게 되었다. 나는 가시적 세계의 경이를 향하여 눈을 뜨고 예술에 임하였으며, 또 그것은 누가 무어라 하였건, 자연적인 것과 삶의 법칙에 순응하겠다는 지속적인 관심에 의한 것이었다(르동, 1961:9)     자연과 삶의 법칙에 순응하며 예술을 통하여 우주적 상징으로 나아가는 것은 르동의 자연스런 여정이었다. 그는 " '부호(Code)'는 그것이 우주적 의식의 진지한 표현이 될 때 복음서를 대신할 수 있을 것"(르동, 1961:26)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상징주의 문인들의 궁극적 지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부분이다.   신비와 불안과 환상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자주 문학화 되었다. 또한 르동은 '에드가 포우에게' 라는 제목으로. 이 시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6점으로 된 판화집을 발행하고(1882년), 바그너를 다룬 판화를 여러 점 제작하기도 한다. 말라르메에게는 석판화집 을 헌정하고, 의 판화를 제작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8)   3. 상징주의와 연극   상징주의 극 상징주의 소설에 비교했을 때, 상징주의 극은 상징주의의 면모를 상대적으로 더욱 화려하게 구현하였다. 상징주의 극은 바그너와 말라르메 없이는 생각할 수 없도록 그들의 기여가 크다. 말라르메는 연극의 모든 장치를 배제하고 순수 한 이상주의 무대 위로 옮겨놓는 것이다. 이러한, '극 자체의 부정' 혹은 '문학적 반연극(反演劇)'(Marchal, 1993:125)은 1890년 이후의 연극에 대단히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1890년에는 릴라당의 유작 이 공연된다. 이 극은 상징주의, 이상주의, 바그너 등, 모든 기법을 동원한다. 나아가 일부 상징주의 극은 공감각을 무대에서 시험하기도 한다. "라는 극에서는 공연장에 향수가 뿌려지기도 한다 (Marchal,1993:127).      말라르메의 이상주의 연극 미학은 이러한 과도한 시도를 거부하였다. 무대장치는 순수 허구를 그려내려는 목적만을 지녔다. 즉 색깔과 선들에 의한 유추적 효과만을 노려, 무대는 배경과 몇 개의 유동적인 휘장들로 되어있었을 뿐이다.   메테를링크의 는 정신적 연극과 시적 연극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가스를 나오게하거나 조명의 기술 등을 도입함으로써 물질적 배경들을 부정하였다. 배경은 없거나 있어도 암시적인 것이었다. 극단적인 절제로써 진실주의나 자연주의에 반대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무대는 거의 부호들로 이뤄내고자 하였다. 즉 책의 형태를 닮아가려한 것이다.   폴 클로델의 연극은 상징주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나, 정통적 상징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시를 해방시켜서 시적 연극을  펼쳐내고자 하였다. 거기서 그는 내적 탐색을 보여주거나 종교적 신비를 드러내려 하였다.    종합예술   바그너는 통합 예술작품의 시대가 점차 도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통합적 작품이란 그리스 연극을 모델로 연극과 음악을 결합시켜 하나로 통일된 작품이다.     각각의 예술은 자신의 힘의 한계에 도달하자마자 인접한 예술의 도움을 청하게 된다. (--) 각 예술 속에 깃들어있는 이러한 특이한 성향, (---) 그것을 나는 음악과 시의 관계 속에서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다. (---) 이렇게 개별적인 모든 예술들을 포용하며, 그들은 또 각자 개별적으로 완성되게 하면서 그 예술들이 전체를 결합하는 예술작품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제시하려 애썼다(, 1860: Marchal, 1993:159).     에술의 통합을 계획한다는 것은 연극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원시 시절의 예술형식을 되찾겠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후에 의 공저자가 되는 에두아르 쉬레는 미래의 예술에 대해 예측한다(1875년). '책, 바카스, 리라'라는 제하의 글에서 그는 다음 같이 말한다. 태초의 세 자매인 시, 춤, 음악은 함께 태어났지만 오늘 날에는 분열되었다. 새로운 결합이 이룩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확실한 기호가 될 것이고, 그 속에서는 육체, 영혼, 생각이 조화되며 스스로를 되찾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 통합의 수단이자 목표로, "책은 우리 시대의 주된 목표이자 변별 기호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이야말로 이제 모든 것을 표상하고 흡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바그너와 쉬레의 글에서 나타나는 통합예술의 모습은 말라르메의 예술론 이해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의 통합예술은 의도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극시 과 를 쓸 때, 그는 극에 대한 야심은 덮어두고 몇몇 장면들에 대한 초안으로 만족하려 하였다. 그러나 극은 그 본질적 특성상 결국 미학적 차원을 넘어서 거의 종교에 닿아있는 현상으로 시인에게 다가오고, 시인은 극시의 완성에 전념하게 된다.   말라르메의 연극 미학은 신화에 기초하며, 또 그는 고전주의의 근원에서 자신의 꿈을 되찾고자 한다. 그 꿈은 쉬레의 글에서 나타난 생각과 많은 부분 유사하다. 고전주의는 넓은 의미의 고전주의였으며, 따라서 그는 바그너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그너의 통합예술은 태초의 근원의 언어에 가닿지 못하는 것으로 시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그는 바그너가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게르만 신화의 영웅들, 즉 죽은 인물들에서 동기를 찾는 점이 불만이었다.   비인칭 극   말라르메의 극에 대한 개념은 고전주의나 사실주의를 넘어선다. 소품과 장치들로 가득 찬 사실적, 전통적 무대를 그는 거부한다. 무대는 장치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무대가 '중성적 공간'이 되어야 관객의 정신이 자유롭게 투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중성적 공간에서 추상적 인물의 전형을 그려내고자 한다. 따라서 영웅주의적인 바그너극과 통속극을 거부한다. 그것들의 일상적 틀은 환기적이고 암시적인 효과를 죽이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비인칭 극'을 지향한 것이다. 무대 장식을 없앤 중성적 공간에는 본질만이 재현된다. 그는 을 모델로 삼는다. 거기서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하는 본질적 문제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연출과 모든 조역들과 단역들이 사라지고 주인공의 환영들만 등장하는 극으로 을 읽는다. 이 모노드라마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정신의 극이다. 그러므로 을 제외하고는 어떤 연극도 시인의 생각에 맞지 않았다.   일부 상징주의자들은 말라르메의 생각을 따라 연출의 힘보다는 텍스트에 무게를 두고자 하여, "읽혀지는 희곡이 상연되는 연극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배우들의 역할은 "종종 내레이터 정도로 축소되었고, 꼭두각시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장티,2002:96-97). 이상주의 극에 대한 이러한 경도는 결국은 극에 대한 거부, 즉 반연극이었다.   극의 물질성을 확실하게 덮어주는 장르는 바로 발레였다. 발레는 모든 장치를 버린 것으로, 말라르메는 그것을 '육체의 글쓰기'라고 하였다. 발레는 백지와 같이 중성인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간결한 글쓰기'였다.    연극을 정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무언극(mimique)'이었다. 무언극은 순수 허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중성의 공간과 무명의 배우를 결합시킨 '최소의 연극' 이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9)   4. '책'과 문자예술   [그것이]                    수라면 별에서 나온                                   그것이 존재한다면                               빈사의 산란스러운 환시와는 다르게                           그것이 시작한다면 멈춘다면                   부정되었을 때 솟아나오며 나타났을 때 폐쇄되나                                         마침내                                 휘귀하게 퍼트려진 어떤 과잉에 대해                                                       그것이 밝혀진다면                                              하나일지라도 합이 자명함을                                       그것이 비춰준다면     [그것은]                                                    우연     말라르메는 24페이지로 된 라는 시에서 여러 실험을 행하는데, 그 중 하나는 페이지의 개념을 깨고 있다는 점이다. 페이지를 '장(feuillet)'의 개념으로 대치시키면서,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이어지는 글쓰기를 한다. 여기에 여덟 가지 다른 활자를 배치한다. 배치는 가장 큰 캔버스가 된다. 위의 시는 아무 부분이나 옮겨본 것이다(좌우 페이지 상단 부분)   이 시, 혹은 극시는 파선의 풍경만을 보여준다. 난파선의 선장은 절망의 상황에서 주사위를 던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햄릿처럼 망설인다는 이야기며, 그밖에 아무런 행동도 이뤄지지 않는다. '시와 산문 종합'(Bernard, 1988:311)이라고도 하는 이 시에서, 활자들은 감각과 생각의 변화에 따라, 명상의 깊이에 따라, 음악의 강약이 표기되듯 크기와 배치가 달라진다. 시행들도 생각과 함께 움직이며, 때로 이탤릭체로 때로 로만체로 변한다.   잔잔한 물결이 흐르듯 작은 글자들로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띠던 시행들은 홀연 사라지고 백지 위에 커다란 단어 하나만 남기기도 한다. 단어의 주변은 커다란 침묵이다. 크고 작은 글자들은 문자의 심포니를 만들어내지만 난파 뒤에 계속되는 정적과 침묵 또한 말을 한다. 한 페이지가 완전한 공백이 되기도 한다.   모든 장마다 시구 주변으로 여백이 둘러싼다. 행간에도 다양하게 여백들이 배치되어, 클로델의 말대로 '여백에 의한 생각의 분리법'(Bernard, 1988:319)을 보여준다. 침몰이라는 절망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하여 활자들은 페이지 밑바닥에 파선 조각처럼 침전된 모습으로 배치되기도 한다.   치밀한 계산 하에 사용된 여백의 기법과 다양한 행간두기 등은 시집 전체가 가장 정교하고 창조적인 건축물, 혹은 하나의 미술작품이나 악보집으로 빚어지게 한다. 아폴리네르의 은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다. 누보로망에서의 여백두기도 이 방식을 따른 것이다. 해석은 아직 많은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서구 문학사상 가장 혁명적이며 난해한 문법이다.   "한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폐지하지 못하리라"라는 시의 대명제는 가장 굵은 글씨로 시집의 처음과 끝 장 모두를 관통하여 지나간다. 그 주변으로 부속 문장들이 나무의 잔가지처럼, 물결무늬처럼, 거미줄이나 레이스처럼, 악보의 음표처럼 종속된다. 대명제 주변으로 산재한 각각의 문장들은 연계되어 통합적 역동성을 보여주고, 때로 침묵을 때로 폭풍을 그린다.   이 시의 중요함은 시가 닫힌 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시집의 12장은 펼쳤다 닫혔다 할 수 있는 부채를 상기시키는 구조이다. 대명제가 시집 전체를 가장 큰 문자들로 관통한 후, 시의 마지막에는 작은 문자로 "모든 생각은 주사위 던지기를 말한다"라는 문장이 이전의 시행 전부을 요약한다.   시집 전체는 이렇게 단 두 개 문장으로 이뤄지며, 시집은 닫힌다. 그러나 마치 보들레르가 에서 마지막 행을 통하여 순환구조를 만들어내었듯이, 마지막 문장을 통하여 시는 순환구조를 이뤄낸다.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책도 결코 닫힐 수가 없다. 생각은 다시 계속되는 것이며, 따라서 시에서 구두점은 사라진다. 언어는 확산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렇게 지니게 된다. 닫아도 그 속에 바람의 가능성은 언제나 지니고 있는 쥘부채와 같다.   '책'과 극 시인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랭보가 자청한 모험은 태초의 모어가 지닌 환기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파른 재난이었다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여정을  생각하게 된다. 말라르메의 언어는 마지막에야 '책'과 극에 도달한다. 우연이 아닌 언어의 순수역학을 따르는 책, 대문자의 책(Livre)이다.   시인은 이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책'을 꿈꾸었다. '책'을 꿈꾸었다. '책'이라는 의미의 불어는 대문자로 쓰이던 성서를 뜻하기도 한다. 시인은 '책'이라는 '대작(大作)을 구워내는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하여 '연금술사처럼 인내하며', 모든 삶의 노력을 경주하였다고 베를렌에게 고백한다. '책'은 관념상의 책이 아니었다. 성서도 존재하는 책이듯이.  '대작'이라는 꿈은 완전한 언어에 대한 꿈으로서, 언어 연금술을 전제한다. 불어로 '대작'이라는 말은 비천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의 화금석(化金石)을 의미하기도 한다. 는 많은 점에서 화금석에 닿아있다. 화금석의 탄생에 의하여 진정한 모어가 우주에 확산될 수 있기를 시인은 꿈 꾸었던 것이다.     '책'의 계획은 '책'의 읽기 계획까지 포함한다. 시인은 시 낭독회에 대하여서도 대단히 특이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고정되게 제본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낱장의 페이지들로 되어있다. 낭독자는 책을 낱장별로 따로 읽으며, 낭독한 후에 묶거나 정리함에 넣으면 또 다른 책이 된다. 낱장들은 여러 방식으로 결합된다. 책장들의 무한한 조합을 가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이렇게 쓰기와 인쇄에 그치지 않고 읽기까지 포함하는 커다란 계획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글은 쓴 자의 차원을 넘어선다. 쓰기는 더 이상 닫힌 공간에서 자족하지 않는다. 읽기의 확대이자 독자의 공간의 확대 - 이제 수용의 문제가 주요 이슈로 대두된 것이다.    나아가 시인은 극의 요소를 '책'에 도입하고자 한다. 시,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예술 범주들을 융합해낼 수 있는 극처럼, 진정한 시언어는 여러 범주들이 교감과 통합을 이뤄내며 원시예술처럼 무대 위에 펼쳐져야 한다. 시의 낭독회는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오랜 세월 분업화로 고착된 분열의 예술이 아니라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분열된 바벨의 언어가 아니라 제례(祭禮)와 예술의 통합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읽기는 이제 정신을 무대에 올리고 연출해내는 작업이 된다. 시적 공간이 재창조되는 작업인 읽기 - 읽기는 내면화된 극이다. 쓰기에서 읽기로 나아가는 것은, 내면의 시를 극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일이다. 읽기는 하나의 의식(儀式)이 된다. '책'은 그리하여 '정신의 도구'이자 '정신적 연극의 장소'로 완성된다. 여기에 시인이 말하는 '문자 속의 신비'가 빚어지는 것이다.      언어는 더 이상 자족적이지 않게 된다. 독자에 대한 의식이 전환되고 그 몫은 무한 확대된다. 독자는 이제 나 야유하는 자가 아니다. 독자는 참여자가 된다. 무한한 교감이 약속된다. 시인은 저주당하거나 추방당한 자가 아니다. 진정 시인은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끝)   7.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의 핵심과 주변을 탐사하고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 꽃과 열매는 어떠하였는지, 개화와 결실 후의 역풍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시들어갔는지, 열매 맺음이 문학과 예술이라는 드넓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으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시든 후에도 열매에 열매를 이어주고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상징주의의 큰 길과 소로들을 따라 가보았다.     우리는 상징주의 시의 계보에서 출발하여, 다른 사조로의 전이 양상, 즉 데카당스에서 초현실주의, 현대시 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상징주의의 맥락을 살펴보았는데, 상징주의 문학의 구체적 양상은 무엇보다 시 분야에 서 두드러졌다. 상징주의 시에서는 우선 자유화시, 자유시, 새로운 활자배치법, 구두점의 제거, 페이지 개념의 변모 등, 다양한 시 형식의  실험에 주목하게 된다. 그 실험은 시와 산문의 통합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 장르 간의 경계 넘기, 통합예술 등 여러 형식의 발명들로도 이어졌다. 이처럼 시를 기존의 기능과 형식에서 최대한 해방시키고자 하여, 오늘날의 시의 모습이 있게 한 것은 상징주의의 가장 현대적인 기여의 하나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의 해방과 동의어였다.   상징주의는 다양한 예술 방법의 도입과 철학의 영향으로 자신의 영역을 이토록 풍부하게 확충시켜갔지만, 상징주의에 고유한 언어의 완성은 무엇보다 교감, 암시, 상징 등의 방법을 통한 감각과 시선의 해방에서 출발한다.    우선 보들레르의 교감 이론은 상징주의 시학을 주도하면서, 향후 시인들의 사물 읽기에 획기적인 전기를 제공하였다. 랭보의 자유로운 상상과 감각과 환상의 힘은 현대시를 향한 우상파괴적 시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지옥으로의 하강은 초현실주의의 세계를 선구적으로 보여주었으며, 그의 심연은 또 다른 오르페우스를 그려내었다. 그의 화려하고 고통에 찬 하강의 그늘에는, 저주와 자학 속에 완성되는 베를렌의 겸손한 선율이 있었으며, 감각과 음악과 언어의 융해와 교감이 있었다. 말라르메는 언어와 사물과 상징과 신비 등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 결과를 섬세히 시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감각과 언어의 재정립을 통한 이러한 길찾기들에 비하여 발레리의 길은 조금 달랐다. 그는 말라르메의 언어철학을 토대로 순수시를 더 밀고 나아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빚어진 관념시를 제시한다. 상징 시인들의 구도의 여정들을 발레리는 지중해적 명증의 시학으로 다시 빚어냄으로써 서구 상징주의의 골격은 완성된다. 랭보의 우상파괴, 발레리의 순수시 등으로 현대시의 세계는 더욱 열리게 된 것이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이처럼 자신의 방법 자체를 끝없이 넘어서려 하였다. 그리하여 음악은 상징주의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으며 미술은 그 확산에 기여하였고, 상징주의는 다시 음악과 미술로 구현된다. 또한 상징주의자들은 특정 예술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징주의의 추구는 그러나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추구였다. 말라르메는 언어의 완성을 절대의 '책'에서 보여주려 하였다. 거기서는 문자와 그림과 음악과 철학이 절묘하게 만난다. 그것은 통합언어를 향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문자예술은 그림문자를 지향하였고 활자법의 혁명을 보여주었다. 전통적 외양의 순수시로 자족하지 않고 일탈과 변모를 통하여 형식의 새로운 열림을 꿈 꾸는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통합예술이고자 하였다.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창조이면서 동시에 예술 스스로의 초월이고자 하였다. 랭보의 파괴가 재창조를 빠르게 그려내려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거기서 인내심의 부족을 읽어내었다. 그가 이끈 시형식의 혁명은 현대의 시와 산문들 속에 다시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의미와 색채가 어떠하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의 언어의 풍경이다. 사람은 '상징의 숲'을 걸어가고 숲은 친숙한 눈길로 그것을 지켜본다. 인간은 언제나 상징을 필요로 하고 빚어내며, 상징은 또 해독되기를 기다린다. 상징주의는 그러므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늦게는 중반까지 성행하였던 일시적 조류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상징주의는 역사적으로 폐지되었음에도 부정할 수 없도록 존재하는 문학의 태도로서 언제나 의미 있다. 상징은 비록 여러 겹으로 두터워져도,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기만 하면 많은 것에 가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징주의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효용적 의미에서의 상징주의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적어도 표현의 한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도 상징주의는 살아있다.   상징주의에 대한 부정론은 상징주의의 발생 속에 배태되었던 것이다. 현실과 관념 사이에서 관념을 현실화한다는 문제는 시작부터 수용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 놀이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구나 관념의 외적 형식에 무의미하게 집착할 때, 마침내는 무용한 언어놀이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 의미이든, 상징주의는 내용상 그리고 형식상 이미 대중과  유리라는 전제조건 하에 출발한 것이었다.   상징주의 선언을 기점으로 전개되었던 협의의 상징주의는 시작한 불과 몇 년 만에 끝나버린 운동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에 대한 위선적 조작에 이를 수 있는 허구적 행위로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 언어 혁명의 맥을 놓치지 않고 따라 가보면, 상징주의는 끝없이 스스로를 부정, 수정, 완성시켜가려한 언어 행위였고. 상징주의가 보여주었던 형식의 실험은 오늘날의 문학 행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현실과 이상, 현실과 초현실 간의 대립 속에 오히려 안주하려 하였던 행위로 상징주의를 읽는다면 그것은 상징주의를 다 읽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안주가 지속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통합의 언어로 나아가고자 하면서도 상징주의는 그 의도 자체로 인하여 오히려 시인과 대중과의 유리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는 이미 상징주의의 본질적인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타기(唾棄)한 것은 허위로 끝난 상징주의였다 하겠다. 진정한 상징주의는 언어의 혁명 혹은 점진적 수정행위와 더불어 언제나 진행형일 것이다. 발레리의 말대로 상징주의는 어떤 한 '유파'가 아닌 것이다.   상징주의는 또 모레아스의 에서와 같이 같은 소문자의 상징주의와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 저긴 상징주의, 후기 상징주의 등, 여러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진정한 상징주의는 이러한 분류를 넘어서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예술 분야와 통합되기도 하면서 확대될 수 있었고, 있어야 하였다. 모든 상징주의는 빨리 오건 늦게 오건 다시 대해에서 합류하는 것이다.     상징주의가 퇴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믿음이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해온 것은 언어통합의 욕구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분업의 양상이었던  언어의 장르들을 넘어설 언어가 요구되어왔던 것이다. 상징주의가 대통합을 궁극에 그리는 것은 분화된 바벨의 언어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였다. 우리는 대문자의 '책'에서 언어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읽을 수 있었다. 상징주의가 남긴 긍정적 몫의 하나이다.   상징주의는 그 진행과정의 필연적으로 반동적 움직임들, 그리고 감각과 언어의 유희 속에 스스로를 한정시키는 내재적 오류들과 부딪히기도 하였다. 의미 없는 신비 추구, 현실에서의 변화와 변혁의 욕구를 거의 도외시한 비현실적인 세계 속의 침잠(沈潛), 지시적 메시지들에 대한 지나친 경도 등은 상징주의 스스로를 이미 새로운 글쓰기를 막는 낡은 굴레로 전환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새로운 형식주의를 버리고, 순수성이나 모호성이 아니라, 생활의 본연과 실상으로 돌아오고자 한 문인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상징주의의 원래 추구하였던 목표는 허구적 조작에 의한 상징의 창조가 아니었다. 베를렌든 말라르메도 발레리도 모로도 르동도 모두 대상에 대한, 그리고 대상들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출발함을 우리는 보았다. 그들 스스로 이 점을 여러 번 강조하였으며, 관찰 과정은 작품들 속에 섬세히 구현되었다.   더불어 기억할 것은 신비나 통합예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더라도 상징주의는 궁극적으로 언어의 탐구라는 사실이다. 고대의 언어, 즉 인간 본연의 언어를 찾는 일이다. 춤과 노래와 재례의식이 분리되지 않았던 태고(太古)의 하늘, 그 언어를 지표로 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상징주의는 문학에서의 어떤 변형의 기술로 만족하려 하지 않았다. 말라르메가 "아름다움이 꽃 피는 이전의 하늘"을 그리며, 문제는 "변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Mallarme, 1974:880)이라고 말하였듯이, 상징주의에서의 언어탐구는 어너의 변형이 아니라 언어의 창안이고자 하였다.   그 탐구는 한 마디로 모성언어로 회귀하려는 언어의 지향성이다. 언어와 음악이, 제레와 축제가 하나이며, 기표와 기의의 분리를 원하지 않았던, 상징이 꽃 피던 시간, 그것에 대한 믿음과 향수 - 이들이 상징주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주술적 언어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언어 주변을 떠돌고 있으므로  시 언어는 상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불어로 전개되었으나 코스모폴리탄적인 운동"(Richaed, 1978:395)인 것이다.   큰 의미에서 상징주의는 사조를 넘어선다. 잊지 말 것은 상징주의의 언어 화해와 대통합의 작업은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시대에 따라, 사람 마음에 따라, 겉과 속의 모습을 달리하며 상징주의는 언제고 전개될 것이며, 인간의 상징 또한 영속할 것이다. 인간의 상징은 과거나 미래의 현상이나 희망이나 절망과는 거리를 둔 채, 빠르게 느리게, 섬세하게 때로 거칠게,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거대한 페르소나를 바꾸고 또 굴러갈 것이다.  / 연세대학교 출판부​
113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 10) 댓글:  조회:531  추천:0  2022-07-11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   김경란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말라르메의 시간의 시학과 공간의 시학을 연구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프랑스 파리 7대학교에서 말라르메의 '무'의 추구 와 글쓰기의 문제를 연구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 서문     상징주의란 무엇인가?   막연히 우리는 상징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고 접하게 된다.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이며, 또 상징이란 무엇인가.   상징주의라는 말은 이제 지나가버린 사조를 기술하고 정리할 때 쓰는 한갓 하나의 용어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상징주의라는 말은 사실주의나 자연주의라는 용어처럼 오래 전에 문학개념 사전에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하였다. 고전주의, 낭만주의만큼이나 보편적인 존재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상징주의는 역사적으로 폐기되었음에도 부정할 수 없도록 존재하는 문학의 어떤 양식이자 도도한 흐름이기도 하다. 좁은 의미에서 상징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표현의 한 방법을 지칭하기도 한다. 상징주의 문학운동이 전개되었을 때와는 다른 의미이지만, 사실주의적 태도에 반대되는 태도를 지칭할 때도 이 용어는 유효하다. 더 중요한 점은, 상징주의가 큰 흐름을 이루든 아니든 적어도 하나의 문학적 태도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징주의라는 흐름이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지, 또 어떻게 남아있게 되는지를 알고자 한다.   어떠한 사조든 그것은 발생 자체 속에 이미 자신의 한계를 지니고서 출발한다. 상징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상징주의는 어떠한 연유로, 어떠한 양식으로 살아있기도 하는가. 그것은 현금의 문학의 양상들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그것이 존재한다면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어쩌면 출발에 앞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상징주의라는 소멸된 조류가 살아있는 조류와 연결되는 것은 '상징'이라는 문학의 어떤 , 가장 작을 수도 커질 수도 있는 이 영원한 도구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사물과 언어를, 현실과 생각을 잇는 매개인 상징은 단순한 의사소통 차원을 넘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징주의가 상징에 대한 어떠한 태도와 필연에서 싹 텄는지, 그것은 어떠한 언어체계에 도달하는지, 자라고 꽃 피는 과정이, 열매가 문학과 예술에 어떠한 작용을 하였고 할 것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그러나 여기는 상징 이론이나 의사소통 이론을 다루는 장소가 아니며, 문학의 작은 기법으로서의 상징주의를 다루는 장소도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히겠다.     여러 문학 사조들 중에서 '상징주의'는 정의 영역이 넓고 모호하며 영향 범위 또한 아주 넓은 사조이다. 그것이 문학 전반과 예술의 다른 장르에 미치는 상호관계들은 쉽게 개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 독자들을 위하여 상징주의가 충분히 설명된 경우가 많지는 않아 보인다.   상징주의는 19세기 중반 이후, "고답파(高踏派)와 자연주의의 문학적 유물론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사조라고 정의 내려지기도 한다. 이는 형식적 정의에 지나지 않는다. 상징주의의 내용상의 특징은 무엇보다 언어 자체에 대한 자세와 상징에 대한 태도 속에 있는 것이다. 즉 상징주의란 문자 그대로의 사상(事象)들 너머의 또 다른 현실을 언어로써 환기시키고, 언어를 통하여 그들의 세계를 완성하려 한 태도라 하겠다.   '상징'의 개념 또한 대단히 모호하고 그 영역이 넓다. 상징은 단순히 기호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신화를 지칭하기조차 하는 등, 언어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과 연관되기까지 한다. 따라서 상징 자체를 정의내릴 때, 그것은 우선 언어학적 정의와 문학적 정의로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후자에 관심을 두면서 상징주의의 여러 현실들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우리는 상징주의 태동에서 출발하여 상징주의의 막다른 점까지, 전체적인 움직임들을 그리면서, 동시에 그 다양한 양상들을 항목별로 정리하고자 하는데,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여러 용어들의 전문적 세부로 들어가기보다는, 다양한 상징주의의 영역들을 독자들에게 평이하게 요약하여 설명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낭만주의, 고답파 등을 배경으로 하고 데카당스, 초현실주의, 현대시, 누보로망 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상징주의 운동의 궤적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아울러 이 움직임과 문학 내적이고 외적인 여러 요소와의 관계들을 다양한 차원에서 소개하는 식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징주의가 포용하는 예술의 다른 영역들, 즉 상징주의의 영향 범주를 따라 가보려 한다. 문학과 다른 예술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징주의는 그것 자체로 결코 닫혀 있으려 하지 않았던 사조였기 때문이다. 궁극에는 예술과 예술과의 경계를 넘고 예술 스스로의 초월을 지향하였기 때문이다. 화가와 음악가와 문인들의 일화들은 그러므로 상징주의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모습들을 드러내준다. 상징주의의 눈에 띄는 특징은 문인들이 다른 예술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기를 시도했다는 점에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춤은 상징주의 언어에 비유되었으며, 상징주의 문학은 가장 완성된 모습을 극 형식을 빌려 구현하고자 하였다. 상징주의는 궁극적으로는 예술들을 통합한 예술에 언어를 통하여 도달하려 하였다. 이러한 의지는 언어에 대한 여러 실험과 활자배치술의 혁명에까지 이어져서, 우리들의 오늘날의 시와 산문에 있어서 가장 첨단적인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점은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시각으로 상징주의의 면모에 조심스레 가닿고자 한다. 상징주의를 낳은 정신은 결국 어떠한 것이었나, 또 그것은 어떻게 하나의 미학으로 완성되었는가, 우리는 지금부터 이러한 질문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징주의 문학사를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지향과 한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문학이 어떻게 위기를 맞이하며, 또 그 위기를 넘어서 것인지를 상징주의라는 척도를 통하여 가늠하고자 한다. 문학이 도달하는 딜레마와 동시에 문학이 제시하는 희망을 따라 가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의견의 수동적 종합보다는, 미숙하다 하여도 우리의 고유한 시선에 도달하고자 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2)   2. 상징주의의 정의   1. 상징의 어원과 의미   상징이란   '상징(symbole)'이란 말은 희랍어 'sumibolon'에서 나온 말로, 희랍어에서 '상징'은 둘로 나눠진 물건이나, 부호나 표지를 의미한다. 어떤 두 사람이  하나의 물건을 나누어 가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 각자 나눠가졌던 두 반쪽은 신표(信標)로서, 그들의 친밀관계를 증명해줄 수 있다. 상징은 이렇게 증표의 기능을 한 것이다. 상징은 그 밖에 동일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이나 담보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모든 것, 아테네의 판관들이 법정으로 들어설 때 제출하던 출석증, 두 사람 간의 계약이나 두 부로 만들어진 영수증 등을 뜻하였다.    간단히 말해 상징이란 서로 인식할 수 있는 부호에 근거하는 약속과 관련된 것이다. 상징에서는 이처럼 언제나 인식이 문제가 된다. 나아가 상징은 유추적 상응관계에 의거하여 다른 것을 표상하는 그 무엇이면서, 현실을 환기시켜주는 구체적 부호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왕홀(王笏)'은 '왕권'의 상징이다. 우리는 보이는 물건인 왕홀에서 보이지 않는 왕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상징은 하나의 물건이나 대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다른 모든 이미지들과 같은 하나의 이미지"(Aquien, 1993:290~291)를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상징은 환유나 제유, 은유 등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울은 정의를, 월계관은 명예를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의 상징은 대상의 한 가지 특성만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힘이나 아름다움이나 고결함 등, 여러 특성들의 상징이기도 하다"(Morier, 1981:1080).   상징은 또한 하나의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상징은 "유추관계나 관습에 근거하여 또 다른 실체를 표상하는 어떤 실체나 개념이나 대상이나 인물, 혹은 어떤 이야기를 가리키기도 한다."(Benoist, 1985:124)   사전에서는 '상징'은 "대상의 주요 특질들 중 어느 한쪽 특질을 의미하기 위해 선택된 구체적 대상"으로 "그 구체적 대상은 언제나 특질들의 총체에 속하며, 그 대상은 무한한 의미 내포력을 갖는다."(Morier, 1981:1080)라고 단순히 정의 내리기도 한다.   상징의 특성   상징이라는 약속의 기호는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상징의 영역은 다양하며 무한할 수 있다. 상징의 환기력(喚起力)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징은 자의적 기호와는 판이한 차원의 언어이며, 다양한 정신적 현상을 그리는 언어이게 된다.    상징은 근래에 그러나 오랜 동안, 주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조명되어져왔다. 하나의 언어기호를 이루는 양면, 즉 기표(記標 씨니피앙signifiant)와 기표(記意 씨니피에signifie')는 단절된 상태로 존재 가능하고 인간이 단절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동시에 모순되게도 기표와 기의가 합치되는 부호를 갈망한다. 이는 인간 본능에 속한다.   인간은 정신적인 것을 육체적인 것 속에, 보이지 않는 것 속에 투영하려 한다. 문학에서의 상징은 기표와 기의로 나눠진 기호가 그 단절관계를 지워 없애고자할 때 필요한 것이다. 의미와 기능상 언어학에서의 상징과 다른 차원의 것이다.   상징이 가능하고 필요한 까닭은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체계로 이루어진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상징은 인간의 인식 체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욕구의 결과인 것이다. 카시러Ernst Cassirer는 상징주의는 "언어적 현상이 아니라 정신적 현상이다"(Auroux, 1990:2519)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다음의 글은 기호와 상징이라는, 언어를 대하는 두 가지 다른 태도에 대해 요약한다.             소쉬르Saussure의 개념에서 기호는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그리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무연적(無緣的 immotive)이지만 필연적인 것이다. 반면 상징은 두 기호 사이의 결합이며, 기호들 간의 관계는 유연적(有緣的motive)이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Auroux, 1990:2515).     소쉬르의 개념에서 기호는 기호를 이루는 양면의 결합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상징 언어는 기호의 차원을 넘어선다. 어떤 기호 내부의 결합이 아니라 기호들 사이의 결합과 결집인 것이다. 문학에서 상징은 기의와 기표의 동질성을 전제한다. '유연성'은 '동질성'이라는 전제 하에 있게 된다. 그 전제 하에 '조직적 역동성'이 생겨난다. 상징관계는 기호 자체의 자의성 차원이 아니라 정신의 필요에 의해서 빚어지는 것이다.    상징은 요컨대 정신의 구조 위에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징언어는 동일한 대상의 여러 특질을 하나의 관점에서 한 단어로 결집시키고 표현하고자 한다. 상징언어는 따라서 정신의 길이며, 가장 짧은 길이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이 표현하려 할 때 상징은 가장 직접적 수단이 된다. 아무 것도 첨가할 필요가 없다. 개념의 길은 우회적이고 힘들지만 "상징은 바로 들어맞는 기호"(Gouriant, 1991:682).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 자동으로 연결된다. 상징은 "무한의 의미 내포력"을 지닐 수 있다. 상징은 정신의 언어인 것이다.    그 결과 상징 속에는 커다란 개념이 존재하게 된다. 그 의미는 상징 뒤에 숨어있으므로 사람들은 가려진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궁금하여 그것을 찾아 나선다. 상징은 사람들을 현상으로부터 생각의 다른 단계로 끌어올리는 힘을 지니는 것이다. 즉 상징체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최고의 인식체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3)   2. 상징주의의 의미     "상징주의(symbolisme)' 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문예사조로서의 상징주의란 '고답파(高踏派)'와 자연주의의 유물론적 태도에 대하여 정신주의적이고 관념적인 반동으로 발생한, 문학과 예술의 어떤 특별한 움직임을 말한다.   '고답파(또는 파르나스 le Parnasse)'는 낭만주의 특유의 서정주의와 모호한 동경, 언어와 감정의 과잉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문학의 한 경향으로서, 객관주의와 언어의 엄정성과 완벽한 형식미에 집착하며 예술지상주의를 내세웠다. 19세기 후반 소설에서 사실주의의 추구와 일면 유사한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던 고답파는 초기에는 현실에서 주제를 찾았으나 고대 그리스 문명과 인도 등, 다른 곳으로 점차 시선을 돌리게 된다. '파르나스'라는 명칭은 카튈르 망데스, 알퐁소 르메르 등이 1866년, 18712년, 187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편집, 출판한 동인지 에서 얻은 것이다.1)    고답파의 시운동은 운율의 실험과 소네트의 부흥 등, 언어 형식의 폭을 넓히기도 하였지만, 객관성과 기교의 완벽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서 마침내는 텅 비고 굳은 형식과 정신성의 부재만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상징주의는 이에 대한 거부로서 존재하게된 것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에 대한 철저한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파르나스를 계승하지만, 시어에 대한 전체적 태도를 혁신하려 하였다. 상징주의는 형식을 위한 형식을 넘어 서서, 시어의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려 한 것이다. 나아가 시언어를 절대적 언어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하였다는 점에서 상징주의는 파르나스와 또 다른 정신성을 보여주었다.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의 모호한 서정주의를 반대하여 고답파의 일면을 계승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객관성 추구에로만 지나치게 기울어있는 점을 수긍하지 못한다. 그것의 생명 없음에 대해 반기를 든 상징주의는 자연주의에 대해서도 유사한 이유로써 반대한다. 상징주의자들에게 언어란 사실적 묘사나 객관적 기술이나 지시기능을 넘어서 암시적이고 함축적인 것, 인간의 본질과 관념을 표상하고 넓은 정신 공간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하였다. 언어는 더 먼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어 자체에 집착하였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다르며 파르나스와는 같은 방향이었지만, 언어에 대한 철학과 지향에 있어서는 크게 달랐다.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 운동은 일반적으로 1857년 샤를르 보들레르의 의 출간으로 시작하여, 19세기 말까지, 또는 20세기 초에서 중반까지 확산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 스테판느 말라르메. 폴 발레리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이밖에도 파리의 카페와 카바레에 진을 치고 보헤미안 문인 생활을 한 자 들이 있었고, 그들은 '쥐티스트'(냉소주의자), '쥬망푸티스트'(오불관언파),2) 동물들처럼 텁수룩하다는 뜻으로 '털복숭이파'3) 등, 이상한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그들 문인, 예술가, 반(反)부르주아들은 비관주의와 반순응주의적 태도로 현실을 조롱하고 시를 숭배하며, 신비주의 취미에 빠져든다. 자유분방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여 '테카당(decadent퇴페주의자)'이라고 통칭되었던 그들은 예술을 물질주의로부터 행방시키고, 전통의 도덕적 굴레를 벗어나려 하였다. 모든 것의 부정의 외쳤던 다다이스트(dadaist)4)들의 태도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퇴폐주의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평론지 (1886~1889)의 편집장 아나톨 바쥐Anatole Baju는 시를 잡지에 싣는다면 그것은 다만 독자에게 "시의 신들의 무기력과 신들의 체제 붕괴를 보여주기 위한 것"(Richard, 1968:24)이라 선언한다. 바쥐는 '퇴폐'라는 말을 자신의 활동의 표지로 삼아, "우리는 '퇴폐주의자들'이다. 우리 잡지에는 퇴폐의 모든 뉘앙스들이 표현된다. 형식의 퇴폐, 관념의 퇴폐가 순수 퇴폐에 이르도록까지"(Richard, 1968:24)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신조어와 동시에 고풍의 어법, 방언, 통소거에 집착하고 예외적인 것, 미묘한 것, 특이한 것과 신비주의 등을 추구하여 기교에 치우친 경향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글쓰기와 예술 방식은 '퇴페주의 양식'(style decadence)이라고 형용되기도 한다. '데카당스'의 의미는 확대되어 '세기말(fin du siecle)'과 유사한 뜻으로도 쓰이게 된다.5)   부정적 외양만이 '퇴폐주의'의 진면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조롱으로 '퇴폐적'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였지만, 진지한 의미로서의 퇴폐주의는 중요한 사조였고, 이 흐름 속에 상징주의가 배태되어 있었다. 퇴폐주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자연주의는 정신성이 결여된 '예술의 민주적 타락'(Richard, 1968:34)에 지나지 않는 것, 또는 바쥐의 표현대로라면 '산업적 문학'(Richard, 1968:34)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 흐름은 상징주의라는 더 큰 발전적 흐름으로 합류한다. 퇴폐주의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파'라는 이름이 제시된 것이다. 사실 19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던 이들 퇴페주의자에 훨씬 앞서서, 퇴페주의의 출발에는 보들레르가 있었다. 또한 베를렌은 퇴폐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랭보와 말라르메, 위스망스도 넓은 의미에서 그 일원으로 꼽힌다   요컨대 퇴폐주의라는 용어에는 단순한 모욕 차원의 지칭과 상징주의의 '예비적 단계'(Richard, 1968:8)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카당스와 상징주의는 확실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징주의는 이 모든 퇴폐주의 양식과 시도들을 통합하게 되고 심화, 발전시킨다.     '상징파'라는 명칭은 장 모레아스Jean Moreas가 1886년 9월 18일 지에 '상징주의 선언'을 함으로써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우두머리를 자처하였다. 이 상징주의는 좁은 의미의 상징주의, 소문자의 상징주의이며, 기껏해야 약 15년 내외의 활동기간을 가졌을 뿐이다. 상징주의자들의 탐구영역과 활동기간은 사실은 아주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상징주의'라는 깃발 아래 전개되었던 상징주의의 전성기는 이들 '상징파'만이 점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유파에는 시인들이 다양하고 수가 많았지만 상징주의가 평가 받고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은 이들 군소 상징주의가 아니라, 보들레르에서 말라르메에 이르는 전기 상징주의 시인들이 구축한 상징주의다. 사실 상징주의를 구획 짓기가 아주 애매할 정도로, 자칭 상징주의자들을 전후하여 4반세기 이전서부터 보들레르,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이 대단한 성과들을 이룩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단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상징주의'라는 용어가 없었다. 이들이 상징주의자들이라고 일찍이 불리지 못하였던 것은 상징주의 초창기에는 미학이 확립되지 못하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징주의의 '신호탄'격인 보들레르의 은 고답파의 거장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iter에게 헌정되었고, 말라르메는 라는 고답파 동인지를 통하여 데뷔하는 등, 당시의 상징주의 시인들은 고답파 시인들과 시단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모레아스가 주창한 미시적 개념의 상징주의와 대조되는 거시적 상징주의6)는 가리키는 폭이 넓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성경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아니 적어도 보들레르에서 시작하여 말라르메, 베를넨, 랭보에게서 그 정점에 이르는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를 칭하거나, 아니면 낭만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이의 시적 현대성을 간편히 칭하여 일컫는 말일 수도 있다."(Marchal, 1993:5)     미시적 상징주의와 거시적 상징주의 외에 제3의 상징주의가 있는데, 그것은 1880년과 1914년 사이에 자연주의와는 별도로, 문학뿐 아니라 미술과 음악 작품에서 본질을 포용하려는 이상주의적 시대 분위기를 말한다.7) 빌리에 드 릴라당, 마르셀 프루스트,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오딜롱 르동, 귀스타브 모로, 리하르느 바그너, 클로드 드뷔시 등이 이들 범주에 속한다(Marchal, 1993:5-6).   이러한 다양한 상징주의의  정의와 개념 때문에 어떤 평자는 다음 같은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소문자로 쓰면 '상징주의'라는 단어는 상당히 폭 넓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물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다른 것을 매개로 해서 간접적으로 그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면, 그 어떤 형태의 표현 방법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비평의 어휘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려면 반드시 그 한계가 좁혀져야 한다.(체드윅, 1983:1)     그밖에 불어에서 '상징주의'라는 말은 문예사조만을 가리키지 않고 더 일반적인 단어로도 사용된다. 이때 상징주의란 예술작품은 인간의 생각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을 말한다. 상징의 차원을 구분하는 말로 '상징계'나 '상징성'이라는 말도 있다. 해의 '상징계'라고 하면 해가 암시하는 상징적 관계들과 해석 가능한 영역들을 폭넓게 내포한다. 반면 해의 '상징성'이란 어떤 한 보편적 특성을 겨냥하여 영역이 한정적이다.   1) '파르나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의 신 아폴론과 시의 신 뮤즈가 살았다고 하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 파르나소스山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2) '쥐티스트(zutiste)'란 1883년 샤를르 크로Charles Cros가 사용한 단어. 체념과 분노와 무관심을 뜻하는 '쥣(zut 이런, 제기랄!)' 이라는 감탄사를 앞세우고 크로 주변에 모인 시인들을 말함. '쥬만푸티스트', 또는 '쥬망피쉬스트' 란 '난 개이치 않아' 라고 무관심을 표현하는 자들. 3) 퇴폐주의자들은 진보에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였다. 바쥐는 진보의 결과 20세기에는 텁수룩하거나 수염 기른 자들은 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털복숭이란 그러므로 문명 세례를 받지 않은 자유인과, 그들의 진보에 반대하는 태도를 상징한다. 4) 1차 세계대전부터 전후에 걸쳐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반문명적인 예술문화 운동, 기존의 가치관과 도덕과 미학과 전통을 일체 부정하고 파괴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5) 일반적으로 '세기말'은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1890년대 유럽에 퍼진 정신의 퇴폐주의' 라고 정의된다. 회의주의, 유물주의, 비관주의, 신비주의, 현실 도피 등의 여러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는 또한 낭만주의의 유물로 1850년대 문학에서부터 이미 표현되었던 태도로서, 현실은 환영이며 관습이나 진보 등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단정한 태도이다. 6) 마르샬의 용어임. 1993 참조 7) 이라한 분류와는 일치하지 않으나, 상징주의를 3단계로 나눠보는 또 다른 견해가 있다. 1850년경부터 1880년경까지를 전기 상징주의, 1880년경부터 1900년경까지를 상징주의 전성기, 1900년경 이후를 후기 상징주의로 보는 관점이 그것이다. (김기봉. 2000. 56~57)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4)   3. 상징주의 운동      '위대한 선구자'라고 불리는 보들레르가 1857년을 기점으로 열어놓은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 문학운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기까지 전개된다.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는 보들레르를 계승하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감각으로 상징주의의 또 다른 문들을 열어놓는다. 보들레르 시 과 베를렌의 시 (1882)은 상징주의 운동의 기본 강령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뚜렷하게 시대를 구분지울 수 있을 만큼 확실한 문학선언이나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상징주의는 19세기 말까지 펼쳐지고 20세기에 와서 쇠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쇠퇴는 사조로서의 상징주의에 한한다. 사실 상징주의는 이후에 소멸한 것이 아니라 20세기에 와서 개인의 상징주의는 더욱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폴 발레리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프루스트는 (1913-1927) 라는 '의식의 흐름' 수법의 내면소설을 통하여 상징주의 소설을 완성시켰으며, 발레리는 상징주의의 정신과 언어를 더욱 발전시켜서 '순수시'라는 양식으로 완성시킨다.그의 와 은 1917년과 1922년에 출판된다.   대체적으로 상징주의는 19세기 말에 끝난다고 개관하지만 사실은 세기를 넘어서도 계승되고 변모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개화하였던 것이다. 이는 문학사에서 연대기적 분류가 무의미해지게 하는 면모이다. 이렇게 상징주의에는 사조사(思潮史)보다는 개인의 어법(語法)이 더 의미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19세기에서 20세기에까지 펼쳐졌던 대시인들의 활동을 보면, 협의의 상징주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19세기의 문예사조를 개관할 때,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으로 나타나게 된 낭만주의가 19세기 전반을, 19세기 중반의 약 30여 년은 사실주의와 고답파가, 상징주의는 19세기 후반 30여 년을 주도한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 또한 다음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적이지 않다.        "19세기 중반에는 시단을 주도해왔던 (---) 고답파 시인과 보들레르, 베를렌느 등 후에 상징주의의 거성으로 칭송되는 한 잡지에 시를 같이 발표하는 등 문학적 이념의 갈등이나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상징주의의 성립기에는 그 확고한 이론과 미학이 정립되지 못한 채 고답파와 시단을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김기봉, 200:54)     사실주의적인 고답파 시는 현실과 세계의 구체적 아름다움의 실현을 목표로 하면서 객관세계를 완벽하게 형상화하는 일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상징주의라는 일종의 반동을 불러왔다. 그러나 고답파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침으로서, 즉 예술 이외의 것은 모두 예술에서 배제시키려고 함으로써, 초연하고 명상적인 새로운 예술의 토대를 동시에 마련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예술가들, 즉 상징주의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은 상징주의라는 용어를 쓰기를 매우 조심스러워하였다. 르네 길Rene' Ghil처럼 유파를 형성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를 거절하였다.   보들레르, 베를렌, 말라르메, 랭보는 특정한 유파나 소위 말하는 상징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특정 유파로 통칭되는 것을 혐오하였다. 말라르메는 "나는 유파들을 혐오한다.  또한 이와 유사한 그 모든 것을"(Mallame', 1974:869)이라고도 하였거니와, 1890년대에 젊은 작가 그룹이 '상징주의' 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했을 때에, 보들레는 이미 오래 전에  사망하였고, 랭보는 파리의 작가 그룹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랑을 끝맺는 중이었다. 말라르메와 베를넨은 각자의 작품 중에서 흥미로운 부분들을 많은 부분 완성해놓은 상태였다.     이들 '위대한 상징주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군소 상징주의자들'은 1880~1890년 사이 상징주의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상징주의'라는 표지를 확실하게 수용한다. 이러한 수용의 배경에는 실증주의와 반실증주의, 유물론과 정신주의, 그리고 정치와 역사 등의 대립적 요인들이 있었다.   1870년대 말에 1880년대 상반기, 즉 에밀 졸라의 (1877)과 (1885)이 출간되는 시기에는 자연주의가 전성기에 달했다. 당시는 또 위스망스의 (1884)가 반자연주의의 교과서로 널리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였다. 또한 졸라의 실증주의와 유물론에 맞서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이 정신적 소설이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8)   1870년 보불전쟁이 있기까지 프랑스를 지배해온 사상은 사회주의, 실증주의, 과학만능 사상이었다. 1789년의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가 정치적 역사적 격변을 체험하면서 발전시킨 진보적 사상들은, 경제발전과 유토피아가 건설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강한 페시미즘이 정신을 피폐화시켜가기 시작하였다. 전쟁에서 참패한 후 프랑스 사회에는 현실에서 이상향을 제시해주리라 여겨졌던 사회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회의론이 주도하게된 것이다. 이상을 현세에서는 구현할 수 없다는 한계가, 다시 말해 기존 가치의 붕괴와 텅빈 공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870년대의 패배는 군사적 패배 뿐만 아니라 문명의 종말을 보여주었다.    또한 당시의 "자연과학의 진보는 인문과학의 진보와 결합되었다"(Marchal,1993:37). 생물학, 고생물학, 고고학, 문헌학의 발전은 글쓰기의 진실과 가톨릭의 교조주의와 실증적 사고를 시험대 위에 놓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여기에 가세한다. 1877년에 번역되기 시작한 그의 페시미즘은 많은 작가들에게 비극적 관념을 심어주었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라는 그 유명한 아포리즘은 "반자연주의적 반동의 철학적 근거"(Marchal,1993:38)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가치체계의 붕괴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은 극단적 회의론, 퇴폐론, 그리고 유미론(唯美論)을 낳았다.   이러한 정신적 무정부 상태와 가치붕괴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체계와 문학이념을 제시하고자한 것이 상징주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본질상 이미 반현세적인 태도를 지니고 관념적 이상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8) 마르샬, 위의 책. p.34 참조   4. 상징주의 선언     모레아스는 파리에 결집하였던 다양한 문학적 보헤미안들, 퇴폐주의자들을 '상징파'라고 명명하였다. 이 명칭은 그가 1886년 지에 을 발표함으로써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 선언에 의하여 미시적 상징주의 운동이 결집되었던 것이다. 퇴폐주의를 비난하는 지의 기사에 응답하면서 모레아스는 1885년에 이미 '퇴폐주의자'라는 칭호를 훨씬 환기적인 용어인 '상징주의자'로 바꿀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에서 상징주의자는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며, 교훈성이나 웅변술, 진실주의를 거부하였고, 시란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고 유추와 상징을 통하여 '관념(idee)'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낭만주의는 반항이라는 소란스런 경종들을 모두 다 울린 후에, 영광과 전투의 나날들을 다 보낸 후에, 자기 힘과 영광을 잃어버리고, 영웅적이었던 참신함을 포기하였으며, 회의적이고 상식만으로 가득 찬 채, 마침내 길들어져버린 것이다. 또한 낭만주의는 고답파들의 명예로우나 인색한 시도 속에서도 허위로운 재생을 꿈꾸었지만, 유년기에 무너져버린 군주처럼 이제 마침내 스스로의 몸을 자연주의에다 위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자연주의는 시류에 아첨하는 몇몇 소설가의 무미건조함에 맞서는, 정당하나 또 오도된 항의라고밖에는 진실로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예술선언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       우리는 예술에서의 창조적 정신이 보여주는 현재의 경향을 온당히 지칭할 수 있는 유일한 명칭으로 상징주의라는 명칭을 이미 제  안한 바 있다. (----)       교훈과 과장된 묘사와 허위의 감수성과 객관적 묘사에 맞서는 적이라 자처하면서, 상징주의 시는 '관념'을 어떤 감각적 형식으로 빚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전적으로 관념을 표현하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 복종하는 것이어야 한다(Marchal,1993:135-137에서 재인용).     모레아스는 낭만주의와 고답파와 자연주의를 비판함으로써 상징주의의 길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거짓 감수성과 교훈성과 과장된 수사에 대한 거부, 객관적 묘사라는 것에 대한 거부이면서, 자연주의의 무의미에 대한 반동이라고 그는 설파한다.   동시에 그는 상징주의는 언어의 창조성과 진정한 감수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상징주의 시는 '관념'을 어떤 감각적 형식으로 빚어내고자 한다"라는 그의 말은 상징주의의 언어와 철학, 또는 형식과 내용이라는 두 차원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상징주의는 틀에 박힌 언어와 형식에서 자유를 찾고자 한다. 그러므로 직관과 감각이 지시하는 언어에서 길을 찾는다. 또 한편 상징주의는 현실의 거짓된 외양과 감각적 현상들을 관념에 대립시키면서, 현상에 존재이유를 부여하는 본원적 관념을 암시한다. 감각적 형식을 다시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거부의 근저에는 이렇게 플라톤적 관념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주의와 고답파의 문학적 물질론에 대한 관념적 반동으로, '상징'을 결집의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이 '엄밀한 의미의' 상징주의, 협의의 상징주의는 그러나 겨우 10년 너머 지속되었을 뿐이다. "오늘날의 박학자들의 호기심이나 끌 정도의 의미일 뿐"(Marchal,1993:5)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이 문학운동은 큰 수확 없이 끝났다.   '상징주의 파라독스'란 상징주의 운동이 자신의 공식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소멸되어버린 것을 말한다.(Forest, 1989:117). 이 상징주의는 직접 상징주의 선언을 하였던 모레아스 자신이 1891년 '로마파'를 창시하면서 분열되기 시작한다. 로마파는 고전주의 정신의 장점을 재발견하고 고대 로마의 제도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여 신고전파로 분류되었다. 모레아스의 이러한 '요란한 상징주의'를 베를렌은 이미 상징주의(symbolisme)가   아니라   '심벌즈   때리기(cymbalisme)'(Marchal,1993:6)이라고 평해놓았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5)   3. 상징주의의 방법   1. 상징주의 정신   이상주의, 정신주의   1891년 말라르메는 상징의 신비란 "영혼의 어떤 상태를 보여주기 위하여 조금씩 어떤 대상을 환기시키거나, 아니면 반대로 한 대상을 선택하여 일련의 해석 과정을 거쳐 영혼의 어떤 상태를 이끌어내는 데에"(Mallarme, 1974:869)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글자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를 빚어내는 데에 몰두한다 함은 정신주의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지향을 요약하는 말이다. 상징주의는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물질주의는 졸라의 자연주의나 고답파적 사실주의로 드러나고 있었다. 상징주의는 이에 반대하며 반불질주의와 반자연주의로, 즉 관념과 이상이라는 정신 우선주의로 기울었다.    자연이라는 개념도 상징주의에서는 정신적 조화의 문제와 상관되는 것이었다. 조화를 언어의 세계 속에 구현하는 것, 즉 시 속에 내적이고 우주적인 질서를 다시 빚어냄으로써, 언어와 자아와 우주가 하나로 포용되는 상태, 그것이 상징주의의 이상이었다. 고답파의 무관심에 가까운 '무심' 자체는 상징주의에서는 무용한 것이었다. 내적 상태에 몰두하였지만 그것은 개인의 차원 너머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것이었다. 초월을 위하여 '탈인성화(d'epersonnaliser)가 요구되었으므로 낭만주의와도 구별된다.       낭만주의는 우주의 중심을 주관적, 개인적 자아에 두고서 그 자아의 본질을 감성과 심정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고, 상징주의는 우주의 중심을 인간까지를 포괄하는 우주 자신에게로 환원시키고 그 우주의 본질를 감각과 이념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김기봉, 2000:113)     이상이라는 것은 막연하 동경이 아니었으며, 감각이나 감정 속의 안주가 아니라 스스로를 우주적 질서 속에 합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와 달랐다. 더구나 자연주의에서의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었다.   상징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자연주의 담론이 제시하는 생경하고 거친 현실로 축소될 수는 없다는"(Marchal, 1993:8) 저항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상징은 현실의 것을 기계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칠고 절망적인 현실 '저 넘어'의 현실을 환기하는 것이 상징의 중요한 존재의미였다.       이제 현실의 것은 적이 되고, 철학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저 너머 세상은 모두 기꺼이 수용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들이기 때문이다.(Marchal, 1993:8).     상징주의는 따라서 자연스럽게 철학을 동반하고 필요로 하게 된다. 쇼펜하우어와 헤겔과 니체의 철학은 상징주의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 외에도, 기존의 진리에 의문을 표시하고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만들려 하였다는 태도 자체에서도 상징주의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와 아울러 신비와 신비주의는 상징주의 미학의 이상적 모습이자 '가장 세련된 형태'로서 '유행 현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문학은 영혼, 정신, 이데아, 본질이란 개념에 집착한다. 또한 자연주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생경하고 과장된 현실보다는신화와 전설에서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문학의 자율성   자연주의에서처럼 문학과 과학이 접목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주의는 언어 외적인 모든 범주를 떨쳐내고자 한다. 이는 고답파의 예술지상주의를 계승한 측면이다. 언어는 스스로 자율성을 확보하기에 주력한다. 문학과 언어 자체를 되찾고자 한다. 샤를르 모리스는 1891년 상징주의의 차별성을 다음처럼 강조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문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리학이나 지리학이나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되면 문학에 어떤 특이한 혼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구가 가져다주는 혼동이다. (---) 사람들은 도덕이 도덕론자를 유인했던 논리적 결론을 시인들에게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란 '아름다움' 외에 다른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Huret, 1984:94).      도구와 목적의 혼동이 자연주의의 부정적인 면의 원인이 되었거나 그것을 증대시켰던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언어의 자율성과 미적 독립을 위하여 문학 외적인 목표는 모두 문학에서 배제해야 한다. 문학은 언어 자체만으로써 내적인 긴밀한 구성을, 즉 건축물처럼 '미리 계획된' 구성의 완성을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은 원래 에드가 알렌 포우Edgar Allan Poe를 계승한 보들레르의 지향이었다 이러한 지향은 말라르메로, 발레리로, 다시 이어진다.   문학은 문학 자체로 존재의 근거를 지닌다. 아름다움은 진실되거나 선한 것과 구별된다. 이러한 신념은 고답파에 이어 상징주의가 문학에 가져다준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다. 이미 도래한 문학의 상징주의 시대에, 문학이 시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는 문학이 이제 모순되게도 절대적으로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은 자비로 출간되었고, 스스로에게 비상업적인 가치를 부여하였다. 말라르메는 말한다.       어쩌면 팔리면 안 될 것을 거래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더구나 그것이 팔리지도 않을 때에는.                                                                                     ( : Mallarme, 1974:378)     팔리지 않는 문학이란 다시 말해 정신의 목적에 봉사하기를 희망하는 문학이었다. 어떤 목적이나 종속을 거부하였던 문학, 다시 말해 대중과의 유리(遊離)라는 위험까지 자청하였던 문학은 1857년 이후 세기말까지 "이상과 절대에 목마른, 대부분은 신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거의 신앙을 대신"(Marchal. 1993:10)해주고자 하였다. '문학의 사제' '문학이라는 종교'라는 수식어들은 이러한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비교주의, 난해성   사실주의 시대에 소설은 대량 인쇄권을 얻어 거대한 대중이라는 문학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상징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내밀한 시 속에서 "정신의 마지막 피난처를 찾았으며, 입문자들만이 다가갈 수 있는 비교주의(秘敎主義)의 성역을 찾고자"하였다(Marchal. 1993:10). 비교주의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지 않은 종교의 태도를 말하므로, 상징주의는 일종의 정신적 귀족주의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문인들이 신비주의의 결사에 가입했다는 연구와 자료들이 있다. 상징주의 주변에 탄생한 데카당스도 반(反)대중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상징주의자들은 일종의 '선민의식'(Marchal. 1993:10)을 지니고 비교주의에 탐닉하여 새로운 시 언어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그들은 고대어를 차용하거나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며, 신문이나 연재소설의 일상어와 구별되는 순수한 언어의 탐구에 전념한다. 기존의 구문 구성법을 해체하거나 그것에 대한 새로운 시도 등으로도 이어지는 이러한 자세는 상징주의 문학에 필연적으로 난해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논리적 근거 하에 시작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난해함은 그들에게는 극복 가능한 것이었다. 난해성은 "독자의 준비 부족이나, 시인의 준비 부족에서 온다"(Mallarme, 1974:869)고 상징주의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구문 구성법과 단어 선택 등의 난해함, 거기에 더해지는 상징 자체의 난해함, 반대중주의, 비교주의, 이 모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새로운 상아탑이었고, 결국 비난과 오해를 동반하며 상징주의 쇠퇴의 중요 요인이 되기까지 이른다.   이러한 언어추구의 양상 외에도 우리는 보들레르의 댄디즘과 에서 상징주의가 일반 대중과 유리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댄디즘(dandysme)'은 19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일종의 문학적 태도로서, 타협하지 않는 예외적 삶의 양식을 통해 사회적 권위를 얻으려는 태도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보들레르는 댄디즘과 나르시즘을 연관지어 보았다. 그에게 댄디즘은 "정신주의와 국가주의에 닿아있는" 것으로, 영혼의 초월적이고 순수한 체험을 위한 것이었다. 알코올과 아시슈(haschisch 인도 삼에서 뽑은 마약)라는 인위적 방법으로 실현된 창조의 상태인 '인공낙원'을 그가 그리는 것도 이러한 체험과 상통한다. 그것은 시적 창조의 원동력인 상상력의 인공 공간을 버리는 일이어서, 시인은 어쩔 수 없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갔다.     이러한 자세는 귀족주의보다는 고립주의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탐색과 난해성, 비교주의 등은 예술과 정신의 독자성 추구에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질주의와 이성론과 엄정한 객관적 묘사나 무감동에 맞서서 정신의 '불확실한 영역' '미지의 영역' '불확정성'을 찾는다는 것은, 굳어버린 토대를 지우고 정신의 자율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일이었다.   상징세계는 그리하여 냉엄한 질서에 맞서서 유동성과 환상이 빚어낼 새로운 조화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존 예술에 대한 부정은 그러므로 생성과 삶을 위한 움직임이었으며, 환상은 환상을 위한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상징주의의 이상은 일탈이나 격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 현실, 현상, 사실의 세계를 끊임없이 초월항 '영혼의 상태'와 이상, 관념, 절대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징주의가 설혹 현실과 사실의 세계를 떠나고 벗어날지는 모르되, 현상의 세계 자체까지를 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징주의는 (---) 반드시 현상을 통해서 관념과 현상 그것에 여일하게 실려서 현상 및 존재와 관념 및 본질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결합 내지 통일을 이루기를 꿈꾼다(김기봉, 2000:110~111)      상징주의가 필연적으로 추구하는 내재성과 독자성은 이렇듯 고립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상과 본질의 조화를 위한 것이었고, 궁극적 통합을 향해있었다. 통합이란 현상에서 출발하여, 현상과 이상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초월이란 허황한 구름잡기도, 세상 모두를 버리는 일도 아니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6)   2. 상징주의 미학     상징주의는 그러므로 도피 자체를 위한 이상 추구가 아니었다.현실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의 대안으로 이상과 절대적 관념과 형이상학을 미학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것, 즉 '지고의 미'를 표현하고 창조하는 것이 상징주의의 진정한 목표였다.     그 결과 "모든 인식 대상은 하나의 상징 현상이요 상징적 존재"(김기봉, 2003:32)이게 된다. 즉 현상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상징계로서, 그것이 감추고 있는 본질적 실체에 다가서는 것이 상징주의 철학의 요체였다.    말라르메에 의하면 대상들의 현재의 외양 자체는 진실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을 숨기고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그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현상은 관념을 표방하고 있거나 함축하고서 그것을 끝없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에게 이 세계는 상징들이 거대한 덩어리, 상징의 숲으로서, 인간은 그것을 바라보고 읽고 그것을 체험한다. 현상은 끊임 없는 해독을 요구하는 본질의 전언자(傳言者)인 것이다.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을 현상에 대한 관념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에게는 상징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관념'이 예술로 형상화하지 못한다면, 철학이나 사상에 머물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징주의는 언어 자체의 미학이었다. 일반 언어가 아니라 환기력 있는 언어의 추구였다. 문학은 사실적 산문을 넘어서서 상징적, 함축적, 암시적일 수 있는 힘, 즉 순수한 환기력을 빚어내고 간직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언어의 이러한 힘을 위하여 상징주의는 언어에서 굳어버린 관습을 지우고자 한다. 굳어진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이러한 언어탐구의 과정을 시인들은 "연금술"에 비유하였다. 그것은 언어의 금과 은을 만드는 방법이었으며, 하나의 의식(儀式)이었다. 현자의 돌이나 지모(地母)나 절대의 언어는 동일한 신성성(神聖性)을 목표로 하였다.    상징의 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감각의 정화작업과 동시에 언어의 정화가 요구되었다. 본질적 관념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언어의 새로운 사용법이, 그 세계의 자연스런 유로(流露)를 위해서는 암시의 기법이, 암시를 위해서는 음악의 기법이 필요하였다.   교감   새로운 질서의 공감을 빚어내고 읽어내기 위해서는 감각의 정비가 필요하다. 감수성을 신선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낡은 감각들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부정, 즉 어떤 논리적 필요와 근거 하에 기존의 감각체계를 뒤흔들고 지우는 행위를 랭보는 "모든 감각들의 오래고도 광범위하며 논리 있는 착란:(폴 드무니에게 보낸 편지)" 이라고 설파한다.   이는 감각의 틀을 단순히 새 것으로 바꾸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랭보는 스승이었던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인은 착란에 의하여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시인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세계를 촉지하고, 그곳에로 나아가야 한다. 낡은 시선으로는 볼 수 없고 예언자의 통찰력을 가져야한다고 하였다.   이 '보는 힘', 즉 정신의 참되고 아름다운 새 질서를 완성하는 능력의 소유자를 랭보는 '견자(見者)라 하였다. 그것을 위하여 감각의 오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착란을 통하여 견자가 되는 것, - 이는 마치 무병(無病)을 앓고 난 뒤에 신통력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견자 -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제어력를 벗어나고 자신을 버린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 그는 "나는 타자(他者)"라고 말한다. 나는 죽은 것이다. 말을 하는 자는 나의 넋이 아니라 다른 자의 넋이다.   이토록 무의식의 바닥으로까지 내려가 만나고자 하였던 감각과 인식의 또 다른 차원을 보들레르는 일찍이 랭보보다 앞서, 이란 시에서 열어주었다. 랭보가 말하는 '모든 감각들의 착란'이란 보들레르에게서는 감각과 감각의 경계선이 없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청각과 시각이 통합되는 것,9) 즉 '색깔 있는 청각' 등으로, 감각이 섞이며 새로운 감각으로 변하여 또 다른 '영혼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감각과 정신의 해방되어 맞는 낯선 상태, 즉 '미지(未知)'에 대한 추구를 말해준다. 그곳의 '가장 새로운, 보장된 높은 자유"(Mallarme, 1974:3632)를 위하여 무구(無垢)한 감각과 시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제 감수성과 시선의 혁명이 없으면 언어는 세계를 창조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까지 불러일으키는 증상," 다시 말해 '공감각(共感覺)'은 요컨대 질서를 다시 빚어내고자 하는 욕구의 결과이다. 이 교감(交感)은 감각과 감각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감의 세계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섞인다. 그리하여 자아조차 버린다. 나는 나를 벗어나 나를 바라본다. 자아가 아니라 타자 - 자아인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이 발현하는 것에 동참"한다고 랭보는 말한다. (). 자아의 바깥에서 자아의 발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행복한 격리에 대해 말라르메 또한 말한다. "나는 이제 비인칭(impersonnel)이 되었다." "네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우주적 합일을 향하여 가는"하나의 능력일 뿐이다"라고(). 논리와 언어의 우주적 합일을 위하여 그는 개인의 감성을 버리고자 한다. 그것을 시인은 '탈성인화'라고 한다. 일체의 감성적 여건으로부터 비인칭화 됨으로써 거짓된 감성의 한계를 초월하고, 현상의 모순을 극복할 논리를 수용한다.   말라르메와 랭보는 결국 같은 곳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탈인성화나 자아의 의도적 위기를 통하여 그들은 정신과 언어의 격을 바꾸고자 하였다.     암시와 모호성  '암시(suggestion)'의 기법은 문학, 음악, 미술, 춤, 연극 등, 상징주의의 모든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기법이다. 상징주의자들은 대상을 묘사할 때 객관적인 언어로 윤곽 있게 선명하게 그리는 일은 대상을 죽이는 일이라고 보았다. 말라르메는 "오직 암시만 있어야 한다"(Mallarme, 1974:869)고 말한다.        어떤 대상을 명시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일이다. 시의 기쁨이란 조금씩 점쳐보는 데 있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     조금씩 점쳐본다는, 상징이 주는 기쁨의 여지는 지시적 언어로써는 바랄 수 없는 것이다. 꿈이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이 대상에 대한 관념을 예감하며 대상의 양상들을 따라가는 것이 언어가 주는 기쁨이다. 대상을 '통째로 취한다'는 것은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기존 언어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든 생성을 전적으로 막는 일이다.       고답파 시인들은 사물들을 통째로 취하여서 그것을 제시한다. 따라서 신비감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것이다. 기쁨이란 조금씩 풀어 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     "신비야말로 상징을 이루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비가 없으면 생성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신비야말로 생성의 영역이다. 사물을 명명하는 것은 상징의 목적에 반하는 일, 즉 신비로운 상상작용이나 유추작용, 환기작용을 막는 일이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꿈과 언어가 주는 기쁨을 가로막는다.    베를렌이 음악이 그려내는 모호한 영역에 집착하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음악에서의 '뉘앙스'를 시에 이식시키고자 한다, 베를렌의 모호함에 대한 추구는 랭보의 '감각들의 논리 있는 착란'이 겨냥하는 바와도 통한다. 모두 다 대상에 대한 굳어있는 의식 지우기에서 출발하여, 열린 감각과 질서를 향하겠다는 의지를 따른다. '회색 노래'란 서정적 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지향이었다.      또 그대는 오해를 할 수 없도록    말을 선택하려하지 말 것.    '미묘함'이 '선명함'에 뒤섞이는    회색 노래보다 더 귀한 것 없으니.      그것은 너울 뒤의 아름다운 두 눈,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빛,    미지근한 가을 하늘에    밝은 별들의 푸른 뒤엉킴이어라!      왜냐면 우리는 '뉘앙스'를 아직도 원하기 때문 (---)                                                   ()     암시기법은 그 특성상 미술에 손쉽고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미술에서 암시는 신비와 거의 동의어였다. 암시의 기법은 신비의 해석이라는 작업에 함께 참여하도록 감상자를 더 쉽게 청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상상과 무의식이 개입되는 감상 - 이로써 감상자는 적극적인 해석자가 된다.       르동은 암시적인 기법이란 사유를 자극하면서, 그것이 조명하고 예찬하려는 꿈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숭고한 조형 요소들을 결합시켜 빛을 발산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모호란 형식들을 통해 '감상자'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했다(장티, 2002:92-93).      암시는 그러므로 단순한 하나의 기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전통적 표현기법에, 그리고 사실주의의 허상에 맞서는 일이다.    그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태양광선 아래 사물을 새롭게 보았던 방식과도 어쩌면 상통한다. 빛이 인상주의자들에게 해주었던 역할을 상징주의자들은 암시의 기법에서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감각과 언어의 쇄신과 병행하는 것, 새로운 사물읽기와 같이 가는 것이었다. 암시법은 다르게 보는 것을 요구하였다. 이제부터 상징주의는 한 마디로 다르게 보는 법이었다.       (---) 새로운 시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상징주의자들 덕이다. 인상주의가 회화를 재현의 틀에서 분리시킴으로써 현대회화를 고안해내었듯이, 언어를 상징기법에 우위를 두면서 동시에, 말을 부호만이 아닌 또 다른 무엇, 완전한 권리를 가졌으며 향후로 확고부동해질 어떤 예술, 즉 시의 -화가에게 색채 같고 음악가에게 소리 같은 - 특수 재료로 만들면서, 우리에게 다르게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상징주의이다(Marchal, 1993:30).     인상주의 회화에서 빛의 발견과 같은 의미를 지닐 정도로, 상징주의에서 중요한 발견은 서술이나 묘사나 설명이 아니라, 암시와 상징을 통해 제시하는 방법이었다. 단지 정확하거나 사실적인 기술 또한 함축적이거나 웅변적이기만한 기눙에 머물러서는 이제 시의 언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지지어와 지시대상과의 자의적 관계를 넘어서서 본질을 향하고 다른 우주를 창조해내야 한다. 창조가 이뤄지는 때에야말로 '문자 속의 신비'가 존재하는 것이다. 진정 순수한 '허구'가 실현되며, 글쓰기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기본적으로 세계라고 하는 상징현상을 해독해내는 '번역자'이면서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특이한 상징적 기능을 지닌 언어를 빚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김기봉, 2000:40). 시인의 소명이란 상징을 읽어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징들을 통해 본질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음악   베를렌이 이라는 시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음악은 상징주의 시의 바탕을 만드는데 언어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말라르메는 "음악에서 우리 자신을 되찾아오는 것"이 문학이라는 예술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음악은 현악기나 목관악기의 소리 등, 음악의 기초 재료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총체"로서 마치 기악편성이나 교향악과 같은 것이다.   이 밖에도 음악은 상징주의 언어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음악은 암시의 기법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의 신비를 빚어내는 일에 조력자 역할을 한다. 또한 음악은 시에 유연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역동적 움직임을 주도하기도 한다.   음악은 나아가 마치 글쓰기의 직접적 도구나 재료인 것처럼 사용된다. 말라르메의 작품 에는 문자들이 악보의 음표들인 듯 배열되어 있다. 소리의 강약처럼 문자들이 크게 작게, 여러 다른 활자들로써 다채롭게 배치된다. 음악에서 휴지나 중지가 있듯이 백지와 여백이 텍스트 전체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가 를 악보처럼 생각하고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새롭게 창조될 상징들의 조화로운 세계, 즉 언어가 빚어낼 '새로운 환경'을 위해 이처럼 음악의 도입은 필수적이다. 상징주의 시에서처럼 철저히 음악을 사용한 문학은 없다. 음악에 문학을 근접 또는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상징주의자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보들레르는 음악을 이라는 시에 이미 차용하고 있다. 라는 시는 언어와 음악과 춤의 구체적이고 정교한 융해를 보여준다. 이들은 단지 언어의 기교 차원만이 아니라 시의 원론에 음악을 사용하였고, 음악의 구체적인 사용법들을 보여준다. 음악의 모방 차원을 이미 넘어, 말라르메는 '시는 더할 나위 없는 음악'이라고까지 하였다.   음악을 더욱 현실적으로 언어에 적용한 예는 베를렌에서 찾을 수 있다. 베를렌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고 음악을!"이라고 에서 외쳤다. 그는 음악을 시 속에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거창한 야망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사용은 소박하지만 능란한다. 리듬의 도입은 그의 시에서 아주 자연스러워서 음악과 시의 리듬은 구별할 수 없도록 거의 하나가 되어있다. 이것이 그의 서정시를 완성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그의 시에서는 언어와 감정과 음악이 완전히는 분리되지 않는다.   9) 흔히 말라르메의 이라는 시에 나오는 '푸른 알제뤼스(삼종기도) 종소리' 같은 예를 들기도 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7)   3. 상징주의의 언어     말라르메가 "시를 만드는 것은 생각들이 아니다. 그것은 말들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라고 르동에게 설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은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나, 여기서 시인은 문학에서 문학 외적인 것을 분리하고, 상징주의는 결국 언어탐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언어는 마침내 그것 자체로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하였다. 언어가 살아있는 것은 대부분의 언어는 죽은 언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문학어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말라르메는 언어를 두 개의 층위로 구분한다.       우리 시대의 떨쳐버릴 수 없는 욕구 중 하나는 한편으로는 날 것 혹은 직접적인 상태와,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인 상태로, 마치 서로 다른 기능을 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의 이중적 상태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 : Mallarme, 1974:368)     직접적 언어나 날 것의 언어라는 말은 자연적 언어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 우리들이 사용하는 관습에 젖은 일상어를 말한다. 일상어가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시인은 언어를 '분리시킨다'는 말을 쓰고 있다. 언어를 '불완전한 언어들'과 완전한 언어로 구분한다.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언어, 즉 보들레르가 말하는 '모어母語'를 빚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여기가 아니라 '저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언어는 날 것이며 언어 연금술의 대상이다. 두 언어는 기능이 다르다.       서술하거나 가르치기거나 묘사하는 것까지도 괜찮다. 더구나 사람의 생각을 주고 받으려면 말없이 타인의 손에서 동전 한 잎을 가져가거나 건네주는 것으로 어쩌면 각자에게는 충분할 것이다. 언어의 이러한 일차적 사용법은 보편적인 '보고'의 임무를 맡고 있으며, 현대에 씌어진 글의 종류들은 문학만 제외하고 모두 이러한 성격을 지닌다().     문학어는 일상어와는 다른 이차적 언어이다. 일차적 기능과 그것이 전달해주는 허위의 현상들은 지워야만 언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본질에 대해 암시할 수 있다.   '순수개념'이라는 말은 '관념' 혹은 '이상'이라고 번역된 '이데(idee)'10)와 많은 경우 동이어로 쓰이는데, 다음 글에서는 기존의 생각으로 굳어지지 않고 본원적 진실에 가까운 개념이나 생각을 말한다. 그 '순수 개념'의 유로流露를 희망하여 이차적 언어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율하면서 거의 사라져가는 자연의 한 현상을 말의 작용에 의하여 옮겨놓는다는 기적은 대체 어디에 소용되는 것인가. 눈 앞에서의 구체적 환기라는 제약을 넘어서, 순수개념이 거기서 유로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한 송이 꽃! 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의 목소리가 꽃의 어떠한 윤곽도 다 지워내버리는 망각의 저 밖에서, 내가 알고 있던 꽃받침보다 다른 그 어떤 것으로서, 모든 꽃다발이 부재하는 꽃이, 꽃에 대한 그윽한 생각 자체가 음악처럼 솟아오른다.                                                                                                               ()     기존의 생각과 언어는 모두 지워버린 상태인 빈 마음 위에, 대상에 대한 생각이 새로이 환기되도록 하는 것이 이차적 언어의 기능이다. 대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지시하고 명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의 매개체인 시어들이 대상을 환기시키고 유추하게 함으로써 마음 속의 이미지를 독자가 깨닫게하는 것이다.       발음된 말은 그 말의 주위를 진공 상태로 만들고, 감각세계에서 온 일체의 비전을 제거하며, 그리하여    (---) 순수하고 외롭고 성스러울 만큼 무용한 관념 그 자체를 환기할 수 있는 위력을 보유하게 된다(레몽, 1983:36)     이러한 힘에 비해 직접적 언어는 소통의 관습적인 도구로만 쓰인다. 동전을 조용히 타인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기능일 뿐이다. 의사전달에 쓰이는 언어는 일단 의미가 이해되고나면 공허한 것으로, 실질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없다. 반면 본질적 혹은 본원적 언어는 영혼을 감동시키고 영혼 속에서 몽상들의 생성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이제 언어 이상의 하나의 '존재', 즉 유기체다. 다시 말해 언어에 의하여 솟아나는 이미지, 소리, 색채, 울림, 그리고 '은밀한 친화력'(레몽, 1983:36)이 결합된 어떤 생성이라고 하겠다.   말라르메의 말대로, "언어는 생명을 내포하고 있는 유기체에 가까워짐으로써 모음과 이중모음 속에 일종의 살과 같은 것을 드러낸다." 언어의 '살' 즉 실질을 지닌 살아있는 언어라는 존재는 상징들의 더 큰 '관계망'을 만듦으로써, 나아가 태초의 질서를 복원시키는 힘까지 갖게 된다. 상징주의자들이 말하는 언어의 진정한 효용성이다. 이 효용성은 거의 마법에 가까운 힘이다. 언어의 이러한 신비란 신비주의가 아니라 언어에 최대의 '효율성'이 주어지는 양상을 말한다.   순수와 긴장에 의하여 빚어지는 언어의 이 압도적인 힘은 거의 본질을 발현시키는 신비로운 가능성이다. 직접적 언어인 일차 언어는 현실의 언어, 기능언어인 데 비하여, 이 본원적 언어는 우리 삶에 새로운 유동성과 자유를 부여하는 언어이다. "타락되고 모양이 일그러진 것들을 온전한 모습으로 환원시키고 원초적인 무죄의 상태로 복원"(레몽, 1983:37)시키기 위해 존재하여야 하는 이 언어는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용한 무상의 언어이다.     이런 종류의 시학에 있어서 난해성은 불가결한 요소임을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난해성과 신비주의 경향을 띠며 상징주의 시인들이 대중과 유리된 것은 글자 그대로의 귀족주의는 아니었다. 그것은 상징주의 언어가 갖는 피할 수 없는 속성이었다. 그 속성은 나아가 이제 시 언어와 산문 언어를 차별화하기에 이른다. 시와 산문은 형태상으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산문을 논하는 것처럼 시를 논할 수 없도록, 시 개념에 대한 새로운 차원이 마침내 열리게 된다.     발레리는 에서 시와 산문을 구분하여, 산문은 걷기처럼 어떤 목표를 갖는 것이지만, 시는 춤을 추는 것처럼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며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시는 목적에 산문은 수단에 가깝다. 시의 대상은 분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노리는 것은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드러난 목표는 오히려 사물에 대한 스쳐가는 듯한 인상이나 기억일 수 있다.       산문과 마찬가지로 걷기는 하나의 확실한 대상을 노립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하나의 행위이고, 우리는 그것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춤, 이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분명 이것도 어떤 행위들의 체계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들은 자신 속에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춤은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대상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하나의 관념적 대상, 하나의 상태, 하나의 황홀, 꽃에 대한 하나의 환영, 삶의 하나의 극한, 하나의 미소 -- 텅 빈 공간에다 그것을 갈구하던 자의 얼굴 위에 마침내 솟아오르는 미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말라르메가 언어를 관습적 언어와 본원적 언어로 구분하였듯이, 발레리는 산문언어와 시언어로 구분하면서, 상징언어의 속성에 대해 설명한다. 실용언어와는 달리 시언어를 표현하고 해독하는 것은 내적 감수성이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계와 본질과 생성의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와 산문은 그러니까 우리의 신체와 신경의 유기체 속에서 결합되고 해체되는 어떤 결합관계들과 연상관계들의 차이에 의해 구별되는 것입니다. (---)     나의 의도, 나의 욕구, 나의 명령, 나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방금 내게 소용되었던 언어, 제 의무를 다한 이 언어는 도달하자마자 사라집니다. (---)     반대로 시작품은 살았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명백하게 그것은 잿더미에서 재생하도록, 그리하여 좀 전의 자신으로 끝없이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산문언어는 언어의 목적지에 닿는 순간 효용이 다하지만, 시언어는 결코 소멸하지 않으며 본질 속에 끝없이 재생한다.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는다. 언어는 이렇게 실질을 지니게 된다.   '관념(이데)'의 특질은 일상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부분을 전체로, 이미지를 현실로" 보이도록, 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의 힘을 빌려 빚어내도록 하는 것이 상징의 기능이다. 이것이 바로 시언어이다. 시언어는 현실적 교환이나 지시가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가 목적이다. 그러나 실용언어는 근본 속성상 바로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시언어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것이 바로 언어에 대한 시인들의 꿈이다. 말라르메는 그것을 '불사조에 타버린 꿈'이라 하였다. 그 언어는 클로델 Paul Claudel의 말대로 '앎의 상태'를 넘어서 '기쁨'의 차원을 지향한다. 보들레르의 '상징의 숲'은 일상어의 초월을 통하여 창조되는 언어의 신세계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관습적 언어를 정신의 필요에 의해서 영혼의 상태를 그려낼 수 있도록 거의 비의적인 방법으로 정화하는 일, 그것 때문에 언어의 난해성이 있게되는 것이다. 본질로 환원된 언어를 통하여 언어와 정신의 어떤 통합에 도달하는 것 - 그 일을 랭보는 '언어의 연금술'이라고 하였다. 그의 시 은 연금술에 의한 신비로운 언어의 탄생을 그린 것이다.   10) 관념으로 번역되는 '이데'는 대체적으로 대문자로 쓰이는데, 원래 시적 관념, 내적 관념, 형이상학적 관념 등을 가리키며, 그 범위가 '상징' 만큼이나 넓다 (Marchal, 1993:174 참고)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8)   4. 상징주의의 전개   1. 상징주의의 계보   자유시, 산문시, 순수시   상징주의는 19세기 중엽에서 말까지 성행하였고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그 성숙한 성과를 보여주었던 문예사조로서, 고답파의 객관주의에 의한 반동이며, 이성이나 추론에 의하여 포착할 수 없는 주관적 감정을 파악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직관들과 사고의 표현을 목표로 하여, 기존 문학형식에 많은 혁신을 가져왔다.   그 혁신은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태도에서 두드러진다. 본질언어에 대한 탐색은 시언어, 즉 상징언어에 대한 추구였다. 그리하여 상징주의는 위고Victor Hugo의 낭만주의에서 고답파에 이르렀던 프랑스 당대의 시 전반에 새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이 새 바람은 자유시와 순수시를 낳게 된다. 관념적이던 상징주의자들이 공략한 것은 시, 그중에서도 자유시 부분이었다.   베를렌은 자연스럽게 전통 시구의 갱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자유화시' 또는 과격시는 각운에 대한 전통적 규율에서 해방된 시를 뜻하지만, 정형시의 전통적 율격을 더 철저히 따름으로써 '자유시(vers libre)' 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랭보는 베를렌의 (1874)보다 앞서, (1873) 등의 시에서 베를렌과 유사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베를렌의 자유화시는 자유시의 초석이 되었으나, 각운에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하였다. 시를 외형적 율격에서 진정으로 해방시켜 자유시, 곧 오늘날 현대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상징주의의 가장 현대적인 기여의 하나다.      자유시는 음절 계산을 넘어선 시로서, 생각, 호흡, 음악성의 요구에 따라 시가 흐르는 대로, 때로 완전히 자의적인 방식으로까지 변조되는 시이다. 시를 해방시킨 것은 상징주의이다(Marchal, 1993:177).    1886년 7월에는 귀스타브 칸Gustave Kahn이 자유시의 창안자로 나선다. 베르트랑 마르샬은 쥘 라포르그의 원고를 친구 칸이 발표시기를 늦추어 한 달 뒤인 8월에 발표함으로써, 그 우선권을 탈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Marchal, 1993:52).11) 라포르그는 두 달 뒤 마약과 폐결핵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마르샬 이전에 이미 리샤르는 칸은 오히려 시의 '절(storphe)'을 시의 가장 핵심적 기본단위라고 생각하였다고 하면서, 칸이 자유시의 창안자라는 점에 의문을 표시하였다(Richard, 1978:380). 모리에 등은 일반론대로 칸을 그 창안자로 기술하였다(Morier, 1981:1168).   이제 시의 리듬은 기존의 정형에서 많은 변모를 보인다. 상징주의 자유시는 "의미 있으며, 소리 들리는 부호이자, 영혼의 움직임의 상징들인 리듬들을 채택하고자 하였다"(Morier, 1981:1168). 그것은 '언어의 공식적 리듬'에 비하여, 정신의 '새로운 모험'(말라르메)을 가능하게 하여, 시의 형태를 놀랍도록 변모시켰다.    자유시는 칸과, 언어의 음악성과 순수시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끝까지 밀고 '악기파'의 제창자 르네 길Rene Ghil 같은 시인 등을 중심으로 더욱 발전한다.    상징주의 시는 자유시에서 더욱 나아갔고 그 결과 산문과 유사한 형태의 시가 널리 퍼지게 된다. 보들레르, 로트레아몽, 랭보, 말라르메 등은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1807~1841)이 시작한 산문시를 더욱 발전시킨다.     너무 엄격한 형식에 대한 반동으로 탄생하였던 산문시는 대체적으로 베르트랑이 죽은 다음 해인 1842년 간행된 그의 가 시작한 것으로 본다. 보들레르는 베르트랑에서 영감을 받아 산문형식을 빌려 '소산문시'를 발표함으로써(1855~1867) (사후에 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다), 상징시의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산문시는 "자유시가 나타난 뒤 사라지게 될 한 전위적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 언어를 창조하려는 노력"(Bernard, 1988:771)의 일환이었다. 또한 산문시는 표현의 무한한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인간의 내적 자유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르로 부각되었다.    산문시의 시도는 그리하여 초현실주의 시인들과 현대 시인들의 광범위한 시도로 끝없이 계속되게 된다. 베르나르의 8백 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저서의 결론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자유와 반항의 장르인 산문시는 (---) 시형식을 갱신하려는 하나의 단순한 시도 이상이다. 정신의 욕구, 즉 인간이 운명에 대해 영원히 다시 시작하는 싸움에서의 한 양식이었다.(1988:773)     산문시의 가장 큰 성과는 이렇게 시를 해방시켰다는 데 있다. 상징주의 시는 이렇게 언어의 외적 형식의 소박으로부터의 자유, 즉 언어의 해방과 동의어였다. 동시에 내면이 해방의 동의어로서, 시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확고히 각인시켜주었다. 향후 프랑스 시는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뉘게 되며, 상징주의는 자유시와 같다는 생각이 당대인들의 머리에 확고히 새겨졌다.     음악의 특질들을 시에 수용하고자 하였던 '순수시'는 프랑스 상징주의가 빚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는 "산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시의 이상을 정의 내리는"(Marchal, 1993:175) 말이었다.  이야기나 서술, 개념적 사고 등, 시의 요소 이외의 것들은 모두 시에서 배제하고자 하였던  이 순수시는 말라르메로부터 시작된 생각으로, 음악적 암시의 순수한 효과를 중시하였다. 순수시는 극단적으로는 "언어이긴 하지만, 감각적 언어 혹은 음악적 언어였다"(Marchal, 1993:176). 이러한 상징주의의 순수시는 일체의 사회적, 현실적 관심을 떠나서 서정의 세계만을 대상으로 하고자 하는 넓은 의미의 순수시와는 구별된다.   말라르메의 생각을 '순수시'라는 말로 제시한 시인은 발레리였다. 그는 고도의 지적 세계를 이미지와 감정의 결정체로 조화롭게 빚어냄으로써, 순수시의 영역을 더욱 확충시킨다.   자유시와 산문시와 순수시의 확립에서 볼 수 있듯이, 상징주의는 이전의 문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겠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이미 부여하고 출발한 것이다. 문학은 전위적이 되었고 다양한 유파와 문학선언이 이어졌다.   상징주의의 계보   상징주의 운동에는 세 스승, 즉 감정의 탁월한 양식을 빚어내었던 베를렌, 감각 인식의 새 지평을 연 랭보, 지성의 언어관을 구축한 말라르메가 확고하게 자리한다. 각기 다른 성향을 낳았던 상징주의의 거대한 움직임들의 정점에는, 감각과 시형식과 상징술과 사상의 위대한 선구 보들레르가 있었다. 그의 은 서구 현대시를 낳은 가장 거대한 뿌리였다.   베를렌은 음악적으로 완벽한 순수 서정시를 썼으며 그 감정적인 어두운 면, 원죄의식 등은 데카당스로 이어진다. 주술과 환각으로까지 이끄는 랭보의 언어와 감각은, 환상적 시세계를 개척하였으며, 초현실주의를 열어주었다.   말라르메의 언어의 정화와 형식의 혁신 작업은 상징주의 이념의 체계화의 결과였다. 말라르메의 순수시와 절대시의 체계는 19세기에 그치지 않는다. 발레리는 그의 업을 확실히 계승하여 20세기 최고의 상징시이자 지성시의 탑을 쌓는다. 말라르메는 소네트를 완성시켰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또한 전통을 넘어서는 활자법을 개발하여 시행이 해체된 시를 창안하였고, 오늘날의 다양해진 활자배치술을 미리 시사하였다.    상징주의는 세기를 넘어서도 훌륭한, 개인적인 개화들을 보여주었다. 발레리와 더불어 20세기 대표적 시인의 하나인 폴 크로델, 상문에 있어서 마르셀 프루스트와 앙드레 지드도 사징주의 범주에 들어간다.   협의의 상징주의, 또는 미시적 상징주의는 약 15년 내외에 걸친 활동으로 1890년경이 전성기였다. 장 모레아스, 트리스탕 코르비에르, 귀스타브 칸, 쥘 라포르그, 알베르 사맹, 프랑시스 잠, 에두아르 뒤자르뎅, 르네 길, 조르주 로당바크, 에밀 베르아랑, 아리 드 레니에, 프랑시스 빌레-그리펭, 사를르 모릿, 르미 드 구르몽, 등 많은 시인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상징주의 선구자들의 창조적 혁신은 구스타브 칸의 자유시와 르레 길의 '악기파'의 창시로 다시 꽃핀다. 그러나 이 짧았던 상징주의는 문학적 기여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보들레르의 시적 혁명, 말라르메의 이론적 체계화, 원죄의식의 베를렌, 감수성의 랭보 - 이 선구자들의 새로운 문학에 비하여 협의의 상징주의는 결국 이에 필적할 만 영향력 있는 대시인은 낳지 못한 것이다.   그밖에 후기 시에 깃든 병적인 악몽의 세계에 빠진 로트레아몽이 있다. 일명 이지도르 뒤카스의 (1868년, 1869년)는 '파괴적 아이러니'(Marchal, 1993:23)와 비현실적 내용과 형식의 독창성이 결합된 장편의 미완 산문시로, 후에초현실주의로 부활한다.   11) 참고로, 1886년은 상징주의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한 해가 된다. 모레아스의 랭보의 과 르네 길의 발간 외에도 칸과 라포르그의 자유시의 원년이었고, 쇼펜하우어의 가 불역된 해이기도 하다.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9)   4. 상징주의의 전개   2. 상징주의의 반향   상징주의의 다른 장르   말라르메는 위스망스의 소설 에서 세련되고 완벽하며 압도적인 시인으로 소개되었으며, 젊은 문학가 예술가들은 그를 정신적 사표로 삼았다. 파리의 로마로(路)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는 화요일마다 소박한 문학 모임이 열렸는데, 여기서는 시와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춤, 연극 등,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베를렌, 지드, 발레리, 클로델, 피에르 루이스, 프루스트, 구르몽, 레니에, 모리스 바레스 등의 많은 프랑스 문인뿐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널리 알려져서 오스카 와일드 등도 참석한다. 그 외 르동, 고갱, 로댕, 드가,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드뷔시 등, 현대 프랑스의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줄을 잇게 된다. 이 모임은 예술의 여러 분야에 상징주의의 새로운 미학을 전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화요회의 영향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렵 여러 나라에까지 미쳤다.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은 현실 너머 세계의 창조에 몰두한다. 상징주의는 극도 이상주의에 몰두하여, 1865년경 말라르메는 운문극 혹은 극시 와 를 쓰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들은 현실을 떠난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보였다.   또한 18세기 마지막 4반기에 바그너의 영향은 프랑스 연극에서 사실주의를 버리고 시적 언어로 신비주의를 그리도록 하였다. 1885년 의 창간은 이미 행사하고 있던 바그너의 영향력을 더욱 크게 하였다. 빌리에 드 릴라당, 모리스 메테를링크, 폴 크로델이 그 가장 활발한 성과를 보여주었다.12)   상징주의의 출발과 본령은 무엇보다 시에 있었다. 그러나 시에서 보여주었던 이상과 관념과 절대에 대한 추구는 다른 장르들에도 영향을 주었고 특이한 양상으로 완성되면서 상징주의의 영역을 더욱 확충시켰다.   이상주의는 소설에서도 부족하지 않았다. 릴라당의 소설들이 손꼽힌다. 몰락한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유창한 콩트 작가로서 주로 물질주의에 맞서 정신적인 절대의 세계를 동경하는 이야기들을 썼다. 그의 영향으로 많은 상징주의자들은 외부 세계의 현실에 등을 돌리고 절대적 이상주의라는 고통스런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의 모험은 '절대적 페시미즘'에 도달하였고 다수의 상징주의자들도 같은 길을 갔다(Rait, 1986, 261~262).  위스망스의 (1884)는 주인공 데 제생트라는 귀족이 퇴폐적 미학을 추구하며 외부와 단절한 채 삶보다 예술에 빠져 다양한 실험을 행한다는 이야기로, 보들레르가 그렸던 이국적이고 인공적인 세계를 탐미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 긴 독백형식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미적 쾌락 속에서 고통의 출구를 찾는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연적 대하소설 를 썼는데(1913~1927), 여기서 그는 이상을 찾아 의식의 심층을 탐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문학청년인 나, 마르셀이 기술해가는 7편으로 된 1인칭 고백형식의 소설이다. 이 대하소설은 그러나 기존의 서사적 소설이 아니다. 서사적이라면 자아의 내면에 대한 서사라 하겠다.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소설이 탄생하는가에 대한 내적 이력을 탐사한 소설이다.   마들렌느를 먹는다. 그러면 유년의 어떤 추운 겨울, 홍차에 곁들여 먹던 조가비 모양의 이 작은 과자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일리에에서 보낸 유년기가 시간의 흐름에 의하여 순화되고 결정(結晶)이 되어 살아난다. 홍차와 마들렌느가 촉매가 되어 자아는 무의식의 심층 탐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태양계의 조직처럼 화자의 의식이 태양인"(Marchal, 1993:121)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화자의 시선에 의해 세계가 재구성되지만 여기서의 세상은 내면화된 세상이다.   말라르메가 에서 꽃다발의 부재와 더불어 언급하였던 언어의 환기적이고 암시적인 기능은 이제 프루스트에게 와서 표층의식 저 멀리, 그리고 사실주의적 현상 너머로, 또 다른 하나의 현실을 광범위하게 그리는 데에 쓰이는 것이다. 이제 자아는 사실주의 공간이 아니라 '되찾은 시간'의 새로운 매혹에 빠져든다.   이처럼 프루스트의 는 "19세기의 세계 중심적 소설을 다시 통합하여"(Marchal, 1993:121), 자아 중심의 상징주의 소설의 전형을 창조하며 동시에 성숙시켰다. 따라서 프루스트의 소설은 상징주의 범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보들레르가 시작한 의식의 심층탐사를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서 더욱 천착하여 무의식의 영역을 탐사함으로써, 이미 상징주의를 넘어섰다고 평가 받는다.   상징주의의 전이   이상이 상징주의의 횡적인 반향의 양상이라면, 우리는 또 문예사조의 전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초현실주의를 낳게 한 상징주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일찍이 보들레르가 에서 시도하였으며 로트레아몽과 랭보가 추구하였던 환상, 그리고 베를렌의 퇴폐주의(데카당스)는 초현실주의의 초석을 놓게 된다.   현실을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상징주의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그 너머의 새로운 조화의 공간을 창조하려 하였다. 이에 비해 1900년경부터 시작되었던 '초현실주의'는 보들레르의 로트레아몽, 그리고 랭보의 환각적이고 주술적인 언어에서 시사 받고 현실의 배후로, 현실과 의식의 밑바닥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둘 다 모두 의식의 다른 곳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같은 출발이다. 그러나 앙드레 브르통을 위시한 초현실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 있어서 상징주의와 다르다.       즉 목적보다는 수단에 강세를 두고, 이렇게 해서 달성된 초현실의 본질보다는 비합리적인 수단의 사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또 음악보다 회화에 더 집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체드윜, 1981:65)     초현실주의는 초현실만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을 꿰뚫어 배후의 현실 속으로도 향하였고, 반면 상징주의는 초현실을 향하기도 하였다.   한편 19세기 상징주의는 순수 조형적 구성이라는 차원에서도 주요 역할을 한다. 상징주의는 '세기말'과 '아르누보(Art nouveau)'가 복합되어 널리 파급된다. 글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누보는 전통과 단절하려는 의지와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려는 의지에 의해서 상징주의와 같은 궤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미학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유사한 예술운동으로, 아르누보는 1893년에서 1905년까지 주도되었으며, 기존의 역사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근대 세계에 맞는 새로운 양식 창조를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아르누보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진정한 생명체로서의 주거환경이라는 유기적인 개념 차원에서 구조와 장식 간의 구분을" 없애고자 하였다(장티, 2002:9).   상징주의 활동은 산문에서는 제임스 조이스 뿐 아니라13) 슈테판 게오르게에게 직접 영향을 끼쳤으며, 라이너 마리아 릴게의 시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파울 첼란,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기욤 아폴리네르, 프랑시스 퐁주, 자크 루보, 레몽 크노, 이브 본느프와, 미셀 드기 등, 현대의 무수한 작가들에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은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12) 제드윜, 1983, p.62 참조 13) David Hayman, 1956을 참고할 것. 프랑스 상징주의 / 김경란 (10)   3. 상징주의의 퇴조     이상과 관념을 지향한다는 것은 정신의 갈망에 대한 현실의 충족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결핍감을 줄 때 더 성행하는 현상이다. 가치체계의 흔들림은 그러나 가치의 위기를 잠재울 수 있을 현실적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세기말병'이라는 병리현상도 물 밑으로 가라앉고 경제적 안정이 찾아옴으로써 이상과 본질이라는 두 명제의 문제도 사람들의 뇌리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파나마 사건, 모로코 사건, 식민지를 얻기 위한 열강들의 각축 등, 세기 말과 초의 역사적이고 격동적인 사건들은 사람들을  또 다른 혼란과 위기의 와중으로 밀어넣었다.   상징주의는 현실에서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생래적인 특성상 현실 변화들에 초연하려는 의지를 중시하고, 실제로 초월을 꿈꾸었다. 역사의 격동기에도 초연히 유지되는 상징주의 상아탑은 현실 감각의 결여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말라르메는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 대한 활발한 참여나 견해 표명이 부족하다고 지금도 비난받는다.     관념주의, 순수에 대한 집착, 언어 자체의 모호성, 언어의 지시대상의 모호성, 유희로까지 전락하였다는 비판을 동반하였던 현학 취미, '신조어에 대한 집착과 체계적 난해성'(Richard, 1978:393), 그리고 합리적 정신으로는 수용할 수 없었던, 일부 상징주의자들의 비교술(秘敎術)과 신비주의에 대한 집착은 상징주의가 시대착오로 전락하게 하였다.   신비주의, 이상주의, 암시적 기법, 교감, 언어와 문학의 절대화, 난해성, 선민의식 등은 상징주의의 고유한 세계를 열었고 광범위한 문학 공간의 구축과 내용과 형식의 혁신에 기여하였지만, 바로 그 특성들로 인하여 상징주의는 대중과 시대의 요구에서 유리된다.   더구나 상징주의가 대중을 외면하고 작은 잡단의 변두리 속에서 칩거하며 그들의 시집을 자비로 출판하고 있었을 때, 자연주의 소설들은 대량 출판의 시대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적 삶과 단순성과 명확성을 멀리하였으며, 현실의 다양한 욕구들을 수용할 수 없었던 상징주의는 쇠퇴를, 적어도 수정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프랑스의 대륙적 합리주의라는 그릇은 상징주의를 한 없이 담아둘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모호하고 난해한 영역에 대한 집착, 즉 "명석성과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전통적인 정신을 여유 있게 포괄하지 못한 상징주의의 그 반(反)정통성"(김기봉, 2000:53)으로 인하여, 상징주의의 쇠퇴는 미리 예정된 것이었다. 상징주의로서도 마침내 시대를 수용하지 못하였으며, 또 프랑스라는 공간도 상징주의를 결국 거부한 것이었다.   암시와 상징을 통한 모호한 영역의 환기, 그리고 비교주의와 언어의 연금술이라는 것, 이들 모두는 상징주의가 벗어나고자 하였던 낭만주의의 성향에 오히려 가까운 것이었다. 상징주의가 향후에도 남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시의 가장 모호하고도 보편적인 영역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못한 언어와 관념의 유희는 더 이상 주류일 수가 없었다.       기실 상징주의는 시를 통해서 순수하고 고도한 정신의 수정 같이 아름답고 별처럼 고결한 영혼 가꾸기라는  관념적인 유희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김기봉, 2000:53)     클로텔은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필요에 의하여, 가톨릭적 상징주의에 여전히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발레리는 1892년 '제노바의 밤'이라는 위기를 겪고, 문학을 '처단'하였다고 하며, 시 쓰기를 포기하게 된다. '자아'의 문제에 몰두하며 그는 20년이 넘는 동안 침묵에 빠진다. 앙드레 지드는 북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에 몰두한다. 프루스트는 문학의 변모를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들 대부분은 상징주의의 유업을 이어받고 있거나 변모시키거나 장차 발레리처럼 더욱 완성시키게 된다.   이에 반하여, 상징주의의 용도페기를 선언한 다양한 조류들이 상징주의의 뒤를 잇게 된다. 상징주의를 선언했던 모레아스는 현실과 관념 사이의 "전이전 현상에만 관심을 갖는 상징주의는 죽었다"고 하며, 1891년 '로마파' 선언문을 지에 게재함으로써 스스로 신고전주의로 복귀함을 알렸다.   '본연주의', '전일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선언 등으로, 문학계도 역사적 격동의 현장에 동참한다.   본연주의는 19세기 말, 고답파와 상징주의에 반기를 들어 연금술적인 언어 만들기와 추상화를 거부하며, 자연의 단순성과 풍요를 구가하려 하였던 예술과 문학의 주장이다. 그것은 꿈과 관념보다는 일상과 세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였다. 1897년에 있었던 모리스 르 블롱의 본연주의 선언보다는, 앙드레 지드의 이나 아나 드 노아이유와 프랑시스 잠에게서 그 취지가 더 잘 표명되었다.   쥘르 로맹은 1905년 전일주의를 제창하여, 집단의 초개인적 일체감을 중시하고 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일주의는 공동체적 생활에서 체험하는 집단의식과 감정의 진실성을 내세웠다.   이탈리판 입체파 운동이라 할 수 있는 '미래주의'는 1909년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으로 표명된 것으로서, 속도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형태의 미로서 내세웠다. 기계의 위력으로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고, 움직임과 시간의 본질을 추구하여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할 것을 주장하였다.   '다다이즘'은 모든 것을 부정하며, 기존의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해방된 개인의 진정한 근원을 찾고자 하였다. 1913년에서 1922년 사이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에서 일어났던, 일체의 현실을 부정하는 반문명이고 반(反)합리적이었던 예술문화 운동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박상순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번째는 나   열번째는 전화기       시집『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민음사, 2005) 중에서           박상순 시인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91년 《작가세계》에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6년 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6은 나무 7은 돌고래』와『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이 있다.                 말문이 트인 아이는 어느 날 선언한다. "엄마, 오늘부터 엄마는 아지, 아빠는 끼리, 언니는 콩콩이, 나는 밍밍이야, 이제 그렇게 불러야 돼, 꼭." 또 어느 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오늘부터 식탁은 구름, 의자는 나무, 밥은 흙, 반찬은 소라라고 해야 돼, 알았지?" 난감, 황당 그 자체일 때가 많은 박상순(46) 시인의 시는 이런 네 살배기 놀이의 사유로 들여다보았을 때 쉽게 이해되곤 한다. 그러니 주의하시라! 그의 시를 향해,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묻는 순간 당신은 헛방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니. 'A는 B'라는 반복으로 이루어진 시다. A와 B의 관계는 무연하고 또 우연하다. 인과관계가 없는 '관계 맺기' 혹은 '이름 바꾸기' 놀이다. 그러니 왜 첫 번째가 나이고 6이 나무이고 7이 돌고래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독자들도 A에 혹은 B에 마음껏 다른 단어를 넣어 읽어도 무방하다. 또한, 이 시는 앞에는 숫자가, 뒤에는 낱말이 새겨진 아이들의 카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6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나무라고 씌어 있고, 7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돌고래라고 씌어 있다. 십진법에 따르면 세상 혹은 세상의 모든 숫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환원된다. 현실과 언어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숫자와 낱말의 관계도 무연하고 우연한 약속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모든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일까? 이 시의 핵심은, '내'가 이 순서와 관계를 (외우듯) 반복하는 그 리듬에 있다. '자, 아무 생각 말고 따라 해 봐'라는 식의 폭력적인 우리의 교육 현실 혹은 성장 과정을 암시하는 것일까?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내지는 언어(혹은 제도)의 감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유년의 로망이 담긴 단어의 나열이라는 점에서 상실한 본향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아무것이면서 아무것이 아니기도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천진난만한데 읽다 보면 슬쩍 공포스러워지는 까닭들이다. 박상순 시인은 회화를 전공한 미술학도다. 유능한 북(표지)디자이너이자 편집자이며 출판인이기도 하다. '무서운 아이들'의 유희적 상상력, 신경증적 반복, 파격적 시 형식, 의미의 비약적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시에 대해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다 알려고 하면 박상순 시는 없다. 박상순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도 박상순처럼 시를 쓰지는 못한다. 그게 중요하다.   상징이라 할 만하다.           시평: 정끝별 시인        1964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평론‘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과 『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이 시론 평론집으로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산문집으로 『행복』, 『여운』, 『시가 말을 걸어요』 등이 있다. 현재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조선일보  2008.02.23               작품 해설            1960년대 후반부터 발표한 일련의 책들에서 전통적인 서양의 형이상학에 대해 중요한 비평을 가한 프랑스의 자크 데리다가 주도한 문학 비평의 유파나 그 운동을 해체(deconstruction)라 한다. 해체 이론은 `말 중심주의(logocentrism)'의 허실을 파헤침으로써 언어를 개념과 대상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러한 방법론에 기대어 쓴 시를 해체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문학에서 해체시는 80년대 초 황지우, 박남철 등에 의해 씌어진 전통시의 형태를 파괴한 일련의 전위적 실험시를 가리키는 용어로 김준오의 『도시시와 해체시』에서 사용되었다. 해체시는 시인의 세계관이 유보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가 아니라 표절하고 습득하고 인용하는 형태를 취한다. 언어가 더 이상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언어에 대한 불신에서 전통 시형식의 파괴라는 해체의 충격이 가시화된 시가 바로 해체시이다.       무의미시란, 이미지를 서술적으로 사용하여 대상을 잃음으로써 대상을 무화시킨 결과 자유를 얻게 되는 시를 뜻한다. 그러므로 대상이나 사물을 제거시키고 난 어떤 방심 상태, 그 자유스런 유희의 상태가 곧 무의미시라는 것이다. 무의미시란 결국 허무의 극복에서 비롯되는 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춘수는 그의 무의미시에 대하여 대상의 새로운 의미를 부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지가 곧 대상 그것이 된다. 대상이 있다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구속을 받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 구속이 긴장을 낳는다. 긴장이 몹시 팽팽해질 때 반 고호의 풍경들이 된다. 그것들은 물론 풍경(대상)이긴 하지만, 풍경 이상의 그 무엇이 된다. 무의미시라고 하는 것은 언어 이론이나 의미론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한 편의 시작품 속에 논리적 모순이 있는 센텐스가 여러 곳 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의미에는 실지로 이론적 모순이 있는 센텐스가 더러 끼이고 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 반 고호처럼 무엇인가 의미를 덮어씌울 그런 대상이 없어졌다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 대상이 없으니까 그만큼 구속의 굴레를 벗어난 것이 된다. 연상의 쉬임없는 파동이 있을 뿐 그것을 통제할 힘은 아무 데도 없다. 비로소 우리는 현기증 나는 자유와 만나게 된다. 현대의 무의미시는 시와 대상과의 거리가 없어지는 데서 생긴 현상이다. 현대의 무의미시는 대상을 놓친 대신 언어와 이미지를 실체로서 인식하게 되었다. 박상순 시인의 경우는 해체시와 무의미시를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언어와 이미지를 시로 표현한다. 시의 대상은 현실이 아니라 언어, 혹은 기호이다. 그는 현실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재현한 현실, 말하자면 기호의 세계를 노래하고, 다시 기호화하고, 그런 점에서 헛것, 환상, 2차 현실을 노래한다. 그가 대상으로 하는 것은 영화, 만화, 포르노, 회화, 상품 기호 등이다. 뿐만 아니라 기법의 측면에서도 그는 만화, 그림,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文字와 이미지의 경계 해체를 노린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그의 시는 이상의 시처럼 난해한 듯하면서도 결코 난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듯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서정적이면서도 그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이면서도 독보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그다.       또한 박상순 시인의 시는 변신한다. 시의 내부에서, 시의 외부에서, 시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얼굴을 바꾼다. 그 어떤 존재의 규정으로부터도 벗어나고자 한다. ‘박상순의 시는 이렇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그렇지 않은 다른 것’이 된다. 그래서 박상순은 “리좀적 존재”(오형엽)다. 박상순은 공포에 대해서 대단히 잘 말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는 그 어떤 잔혹한 ‘엽기’보다 더 공포스럽다. 그 까닭은 박상순의 그로테스크가 서정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동원되는 많은 시들은 기괴하고 살풍경한 느낌을 준다. 거칠고 과격한 언어도 서슴지 않고 사용된다. 그리고 그들은 시를 통해 폭력적 세계 질서를 고발한다. 그런데 박상순의 경우는 좀 다르다. 박상순 시에서 고통의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은 대부분 “소년”, “아이”, “국민학생”, “일곱 살”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생의 잔혹함을 얘기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나’가 너무나 천진한 목소리로 말한다.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라는 이 시는 그의 세번째 시집의 표제시다. 마치 동시를 읽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기에서 이 시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승훈 시인의 해설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의미가 탈락된 상태에서 제멋대로 연결되는 무의식의 삶, 그것은 정신불열증적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시는 부르주아 문화를 지배하는 고상한 인문주의 자들,선험적 관념적 자아를 믿는 정신주의자들의 세계관을 미적으로 비판한다는 특성을 보여준다. 이런 부정의 극한에 남는 것은 일종의 절망의 놀이이다. 시 속에서 열 개의 장난감이 나온다. 재미 있는 것은 여기서 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장난감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이라는 시행들이 암시한다. -중략. 이 시는 이성적 사고니 의식이니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시대의 황폐한, 끔찍한, 그러나 해학적인 의 초상이다.'       신인상 수상작 2007년 상반기 평론부문, 임영선 (기호와 變轉의 미학)         ▣ 기호와 변전(變轉)의 미학                -박상순의『6은 나무 7은 돌고래』를 중심으로                                                                                                                        임 영 선       1.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전통과 정체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그러한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들은 쉽게 자기세계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으며 실험성이 강한 포스트모더니즘 적 해체경향을 보여준다. 포스트모던한 시는 새롭고 전위적이어서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시가의 전통적 서정성이나 상징적 질서를 철저히 해체하고 부정함으로써 보편성을 뛰어넘고, 언어조차 인간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에 짜여진 범주에 넣을 수는 없어 보인다.     한국시에 있어서 1990년대 이후 새로운 감수성의 양상은 도시문화에 대한 매혹과 반성 혹은 소외된 공간에서 파괴되는 시적자아에 대한 탐색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한 우리시의 전위성을 대표하는 선상에 시인 박상순이 있다. 그는 문단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개성이 강한 만큼 특별한 매력을 지닌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가 즐겨 다루는 결핍이나 단절, 소외는 자신의 체험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심리적인 언어들 속에 감추어진 상처와 고뇌를 그는 시종일관 반복과 변전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한 자의식과 언어에 대한 고도의 자각은 기존의 세계나 언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에 좌우된다. 이는 이상(李箱)의 유명한 “어느 시대에도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절망한다”는 말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언어의 해체는 당대의 미적 인식을 부정하는 것으로 전위적인 시인들이 찾고자 하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적 인식이다. 적어도 문학의 경우 포스트모던이란 의미는 모더니즘의 논리적 계승이며 발전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단절이기 때문이다.     박상순의 시세계는 끊임없는 ‘자기존재의 변전(變轉)화’로 집약될 수 있다. 그의 첫 시집『6은 나무 7은 돌고래』(1993)나『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1996), 세 번째 시집『Love Adagio』(2005)를 통해 쉽게 근접하기 어려운 낯선 이미지들과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기법으로 묘사한다. 그의 시편들은 판타지 시에서 나타나는 환청, 환시, 환각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말로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반복되는 기호와 숫자놀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박상순의 시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기존재의 변전(變轉)화’란 결국 세상을 뒤덮고 있는 해결할 수 없는 부조리한 문제들, 가족의 해체,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주체들, 무서운 테크놀로지와 같은 커다란 상대와 싸우는 처절한 몸부림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말 중심의 허실을 파헤침으로써 언어를 개념과 대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을 자처한 시인이다. 즉 문자와 이미지의 경계를 해체하여 기호적 환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시대적 상황에 자연스레 동참하는 것으로도 또는 언어의 해체적 실험을 통해서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행위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한 그의 시세계를 들어가 보자.    2.         박상순의 시들은 하나의 이미지들→메시지→이상적 가치→미적가치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변전을 시도한다. 두 번째 시집인『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에서는 만화의 주인공 ‘마라나’를 통해 사라지는 세계를 본다. 세 번째 시집『Love Adagio』에서는 건조하면서도  섬세한 언어들의 유희가 토해내는 슬픈 노래이나 첫 시집이나 두 번째 시집보다는 다소 부드러운 이미지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들은 의미론적으로 접근하면 끝내 해독하지 못한 채 헤매고 만다. 많은 연과 행이 반복적 변주를 거듭하면서 리듬감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성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의 말처럼 언어를 직조하기 보다는 직조된 언어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박상순의 세 권의 시집 모두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코드는 기호를 통한 해체와 변전이다. 또한 억압된 욕망들이 어떤 형태로 자아를 뚫고 나오는지를 순간순간의 대리물들에 의해 ‘나’라는 존재를 계속 변전시킨다.     특히 시 속에 동화나 낙서 같은 그림이 주는 난해한 요소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어렵고, 말과 문장이 문맥에 닿지 않아 비문법적이고 비상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가 얼핏 이성과 동떨어진 듯 하지만 실제로는 완벽히 가려진 이성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그의 시를 해독하거나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박상순은 자기 시론에서 “내가 하나의 시스템이라면 시는 나의 센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수없이 많은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꽝’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한 번 더’를 만들 것인지는 순전히 그의 몫이다. 여기서 박상순의 굉장한 독창성과 상상력의 깊이는 분명 어떤 하나의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는 수없이 많은 대중매체의 증가와 산업의 발달로 소비문화가 범람하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인간의 욕망의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다. 또한 무방비 상태로 열려있는 공간에서 풍요와 빈곤이 공존해 있고, 사랑과 소외가 대립되어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러한 문제들을 박상순은 깊이 인식하고 자기만의 언어와 기호로 시적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들은 피묻은 내 반바지를 갈아입혔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다락으로 옮겨놓았고        기차가 지나갔다               첫 번째 기차가 아버지의 머리를 깨고 지나갔다        두 번째 기차가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지나갔다        세 번째 기차가 내 눈동자 속에서 덜컹거렸고        할머니의 피묻은 손가락들이 내 반바지 위에        둑둑 떨어지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갔다        나는 뒤집힌 벌레처럼 발버둥 쳤다        기차가 지나갔다        달리는 기차에 앉아        흰구름 한 점 웃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갔다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전문         이 시에서 박상순은 도시적이면서도 목가적인 언어의 특징을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계속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구조 속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낳게 하고 있다. 기차가 지나가며 ‘아버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발버둥 쳤다는 사실이다. 시의 1연에서 3번 기차가 지나갔고, 2연에서 2번, 3연에서 3번 반복되는 동안 시간의 순차성에 따라 상황이 악화된다. 그 악화의 주범은 문명의 힘이고 그 힘의 주체가 기차라는 것이다.     여기서 ‘빵공장’이란 의식주에서 먹고 사는 일의 힘겨움이고, 그 어려움이 부모의 죽음까지 몰고 온다는 명제를 말하고 있는데 ‘뒤집힌 벌레처럼 발버둥 쳤다’는 이 변전은 타율적이든 자율적이든 가족의 불행으로 인한 ‘뒤집힘’ 그 자체이다. 그의 다른 시「폐허」나「트럼펫을 불어라」와 같은 시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실에서의 생존의 의미를 뒤집어서 표현한다. 뒤집혔다는 의미는 도시적 현실이 주는 고통과 상처일 수 있고, 아무도 나를 구원해줄 수 없는 철저히 소외된 자아의 모습인 것이다. 형식면에서도 반복과 나열의 표현법은 변형을 통한 상황의 허용성으로 바뀌어 지면서 표현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시의 표현력은 단번에 확대되고, 그로테스크한 상황에서 마지막 연의 4~6행은 변전의 미학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그의 시적 발상과 표현은 제목 자체가 그러하듯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파동은 다각적이고 자유로운 연상의 결과로 느껴진다. 특히 박상순의 시가 쉬운 듯 보이나 어려운 것은 그의 의도된 단순성에서 오는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은 시인의 의도가 잘 나타나지 않고 내포나 상징과 같은 것들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발소의 봄」이란 시에서도 보면 거울 속에 있는 본래의 자아 역시 소외된 자아를 나타내고 있는데 시가 가지고 있는 기법과 주제가 갖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뒤통수를 맡긴 채        거울 속에 허옇게 앉아 있었다                   ―「이발소의 봄」 전문           과연 시 속의 화자가 이발소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거울 속의 영상과 원상과의 관계가 분열된 자아 속에 존재하는 이상과 현실의 모습에 대응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여기서 이상(李箱)의 거울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상(李箱)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드러내며 거울의 상징성으로 자신의 성향을 시에 반영했다. 거울이미지는 상징적 기법이지만 ‘거울’이라는 것은 자신을 비춰주는 매체로 작용한다. 즉 화자가 자아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매개물이 되는 것이 ‘거울이미지’인 것이고 거기에 자아인식이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화자가 ‘나’는 뒤통수를 맡긴 채 거울을 보며 허옇게 앉아있다. 왜 하필이면 뒤통수가 허옇게 일까를 생각해보면 머리를 깎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아있는 ‘나’를 방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뒤통수를 맡긴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어감처럼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도 허옇게 앉아있다는 것은 나를 텅 비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마음→공(空)→거울이미지인 것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비추는 ‘거울’앞에서 박상순의 시가 갖는 미적 감수성으로서의 변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여섯 개의 다리로 움직였다. 나는 언덕에서          그를 기다렸다. 은사시나무에 그는 여섯 개의 다리를        걸고 있었다. 그의 다리가 은박의 나무를 열고 내 얼        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곤충처럼 움직였다.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곤충처럼 앉았다. 백열등이 켜졌다. 터널        의 끝에서 흘러나온 습기가 내 어깨 위에 완전히 가        라앉을 때까지 나는 서랍을 열지 않았다.                                  ― ( 중   략 ) ―            나는 두 팔을 휘저었다. 금새 두 팔이 다리가 되고        두 다리가 다시 여섯이 되고, 딱딱해진 내 얼굴은 모        자가 되고, 모자는 다시 황혼이 되고, 황혼은 다시        잠자리로 변하고 …… 나는 나에게로부터 도망쳤다        더 깊은 가을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곤충의 가을」부분         이 시는 카프카의『변신』이란 소설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게 한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 그레고르가 자신이 벌레로 변해있음을 깨닫고 경악한다. 이 작품에서 카프카는 실존의 차원과 부조리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데 절망적인 세계 속에서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르는 현대인의 유폐된 삶을 그리는 소설이다.     물론 이 시와『변신』이 장르적으로 다르지만 현대인의 소외를 다룬 측면에서는 매우 흡사한 느낌을 받는다. 다리를 통해 남의 몸  속으로 들어간 ‘나’는 어느 날 곤충이었다. 박상순의 다른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나’는 어느 날은 쥐(「나는 더럽게 존재한다」)였다가 어느 날은 아이(「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2년 뒤」)였다가 수시로 바뀐다. 이 모든 ‘나’는 나의 대리물로써 나의 변전의 결과물이지만 한편 인간 상호간의 소통과 단절의 소외상황을 암시한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나는 나에게로부터 도망쳤고, 더 깊은 가을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로 끝난다. 이 시 뿐 아니라 박상순 시들에서의 주체는 기표와 기의가 서로 위치를 바꾸어가며 뛰어다니는 그곳에 현대적 사유의 문제가 변주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라캉의 이론을 빌린다면 라캉의 상징계는 언어의 질서를 받아들인 인간의 세계를 말한다. 박상순 시에서의 주체는 그런 인간의 질서를 거부하고 언어를 거부하며 상징계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주체인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세상을 뒤집어보고, 무의식과 언어 사이를 오가며 자아를 해체하고 있다. 그렇게 또 다른 언어로 인간 내면세계를 해부하고 있으나 어떠한 설명과 이론을 끌어온다 해도 그의 내적세계를 관통할 수는 없어 보인다. 도시문명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 서정과 만나는 지점에 그의 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 경로를 찾아가보는 과정은 박상순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집에는 무덤이 다섯 개 있다            무덤 1: 머리 없고 다리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A, B, C,                큰아버지 X, Y, Z, 아버지,                어머니 A, B, C,                작은아버지 X, 작은아버지 Y, Z가                쇠막대기에 걸려 있고        무덤 2: 첫번째 무덤에서 떼어낸 허벅지와                무릎과 발목과 발가락들이        무덤 3: 잘려진 손가락들 비닐봉지 속에서                A, B, C        무덤 4: 눈알 뽑힌 머리통들                                        ― (중 략) ―                        그래도 우리집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녹색 머리를 가진 소년」부분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죽은 뒤 무덤에서까지 진행되는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시에 나오는 남자는 단수로 되어있고, 여자는 복수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덤에 묻힌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다. 이 시에서 ‘녹색머리를 가진 소년’으로 표기되는 화자는 떼어낸 허벅지와 잘려진 신체의 부분들, 눈알 뽑힌 머리통들을 지켜본다. 결국 이 시에서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결핍된 공간에서의 소외된 사람들의 운명을 통해서 자아의 의지를 발현시키려는 욕망을 말함이다.     이 시에서는 현실에 없는 주체의 소멸을 말하고 주체의 죽음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의문스러운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둘이나 된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을 가정해 본다면 하나는 권력으로부터 벗어난 자아(시인 자신), 또 하나는 관찰자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 시적 분위기는 공포스럽고 말이 안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냉정하리만큼 담담한 어조는 분명 거친 해체가 아니고 그 해체로 인하여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형태의 힘으로 작용한다. 특히 시의 낯설음, 독특함의 부각이 그의 서정적 이미지와 묘한 매력으로 섞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여기에서 현대시의 양가성과 해체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양가성이란 인간가치의 이중적 양상이나 대립적 체계를 일컫는 말이며, 이분법적 도식의 틀을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양가성은 이분법적 행위체 도식을 해체적으로 와해시켜버린 것을 의미한다.1) 이러한 양가성의 인식은 데리다의 해체이론의 출발이 모든 이분법적 대립을 없애려는 시도라 할 수 있으므로,2) 역사적으로 볼 때 해체론의 등장과 보조를 같이 한다. 양가성은 단일성, 통일성에 대한 비판과 전복을 의미하고 전통적 인식 속의 가치관이나 관념을 다원적 가치체계로 전환하려는 의도인 만큼 해체론의 방향과 일치한다.     80년대 해체시의 출발은 오규원과 황지우, 박남철 등으로 시작되어 기존의 전통시에 대한 거부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일례로 황지우의 시「도대체 시란 무엇인가」는 전통서정시에 익숙한 독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식의 틀을 전복함으로써 당대의 미적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실제적 삶과 무관해진 제도로서의 예술을 부정하는 것이란 점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박상순의 시세계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은 ‘소외된 자아로부터의 탈출’과 ‘이분법적 도식의 틀의 해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추구하는 방향과 꿈꾸는 것은 결국 기존의 권력적 공간이나 결핍된 공간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시에서 찾아보자.              아내가 그린 그림 속에서 외눈박이 금붕어가 튀어        나온다. 나는 금붕어를 두 손에 받쳐들고 그림 속으        로 들어간다. 그림 속에는 눈이 내리고 붉은 표지판        들이 눈발에 묻히고 있다. 나는 표지판을 따라 들녘        을 가로지른다. 외눈박이 금붕어가 꿈틀거린다.              외눈을 껌벅인다. 내 눈꺼풀 위로 눈발이 자꾸 달        라붙는다. 나는 계속 표지판을 따라 눈 덮인 들판을        간다. 바람이 눈보라를 밀치며 금붕어에게 묻는다.          ― 저 사람 누구니?                                          ― ( 중   략 ) ―                    나의 한쪽 눈이 지워진 눈보라에 묻힌다. 반 토막        의 내가 외눈을 뜨고 눈덮인 들판을 간다. 아내가 다        시 반 토막의 나를 지운다.  들판의 눈을 지운다. 아        내의 발 밑에서 외눈박이 금붕어가 꿈틀거린다.                                         ―「지워진 사람」부분         위의 시「지워진 사람」을 읽다보면 아내가 그린 금붕어 그림 속에 시적 자아가 들어간다. 눈 덮인 들판에서 표지판을 따라 헤매는데 아내가 표지판 그림을 지우고 따라서 ‘나’도 지워진다. 제목에서 말하는 ‘지워진 사람’은 바로 시인 자신을 말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금붕어는 아직 살아남아 ‘아내의 발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시적 자아가 그림의 ‘밖’에서 그림의 ‘안’으로 들어갔다가 지워져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금붕어가 ‘저 사람 누구니?’ 라고 물었지만 그것은 자아를 확인하는 일일 뿐이다. 이제 영원히 지워진 그림 속에서 다시 재생 불가능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박상순의 시에서는 ‘묻는다 / 말했다’ 라는 표현도 거듭 나오는데 그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안으로 감겨드는 소통의 단절과 같이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 시에서의 권력은 기존의 고정된 관념에서 온 것이지만 유년 속에서 억압된 기억이나 육체 등을 해체를 통해서 뒤집기 하는 것이다.     이승훈은 박상순의 시「통 속의 아이」를 무의식 운동이라 하고 라캉의 개념을 빌려 의미가 타락된 상태, 말하자면 시니피에가 탈락된 상태에서 제멋대로 연결되는 시니피앙의 운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단순히 ‘시니피앙의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박상순의 언어는 그 의미가 매우 심리적인 면이 많기 때문이다. 기법 면으로는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박상순의 시세계는 보다 자의적이지 않고 심리적 언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 녹색의 내가 차례를 기다릴 동안                  8) 녹색의 나를 닮은 우표가 붙은                                                              내 마지막 편지를 우체국에 전한다              (그림 삽입)                                   9) 여덟 번째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들의 어머니가 죽다                                                          10) 통 밖의 마을에서 너희들의 아버지           첫 번째 아이는 나를 기다린다                   2) 내가 앞으로 나아갈 동안                                 (그림 삽입)                  (그림 삽입)                                                                                                      통이 되어 쓰러지고                        두번째 아이는 통 속에서 운다                   11) 녹색의 나는 화가가 되어                3) 녹색의 내가 우체국에서 말할 때                     녹색의 내 얼굴을 페인트로 칠하며                                                          12) 너희들을 버린다              (그림 삽입)                                      아직 어린 너희들을 버린다                                                                                    세 번째 아이는 통 속에서 달린다                            ― ( 중  략 ) ―                                                                                                                   ―「녹색의 소년」부분          이 시에서는 ‘녹색의 나’와 ‘통 속의 아이’의 관계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 속에 여덟 명의 아이가 등장하는데 ‘녹색의 나’는 의식 속에 있는 거울 밖의 자아, 통 속의 아이는 무의식 속에 있는 거울 속의 자아로 이해되며 녹색의 ‘나’의 이미지는 ‘그’에 대한 반기라고 생각한다. 박상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짧은 몇 줄의 시구와 동화 같은 그림으로 인간의 현실적 모습을 기호로 표현하고 있으며, 난해하고도 단순한 그림을 통해 인간들의 고독과 공포, 죄과를 적절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3년 뒤」나「가짜 데미안」에서의 그림 역시 분명한 형태나 기호를 하고 있으나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불확실성이라든가 그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시 속에는 여러 명의 사람이 나와 각자 다른 말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한 여러 가지 의도된 이미지 속에서 기표와 기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가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수용하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시인만의 장치일 수 있다. 단지 현실 속에서 전혀 소통되지 못하는 상호부재와 소외된 자아에 대한 슬픔이 남을 뿐이다.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 번째는 전화기             첫 번째의 내가        열 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 번째는 나        열 번째는 전화기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째는 전화기」전문         이 시 속에는 열 개의 장난감이 나오고 1부터 10까지 숫자를 붙이고 있다. 박상순은 ‘숫자놀이 장난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장난감에 화자인 ‘나’도 포함된다는 말이 성립된다. 특히 첫 번째 ‘나’와 열 번째의 ‘전화기’는 이 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 작용하고 있다. ‘전화기’는 ‘나’와 다른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반복과 전환을 통해서 그가 동경하는 세계를 상징적 기호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는 거의 ‘내가 없고, 내가 있고’의 싸움의 연속이다. 그것은 박상순이 가지고 있는 아이와 같은 눈으로 본 사물 또는 사람을 기호로 표시하고 있다는 단서가 된다. 첫 번째 ‘나’로 시작하여 자동차와 잠수함, 비행기라는 문명의 산물 다음으로 식물과 동물의 나열을 거쳐 마지막은 ‘나’와 ‘전화기’로 끝을 맺는다. 이는 결국 세계의 해체에서 ‘나’의 해체로 나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논리적 의미를 규명하고 억지로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이성과 의식이 사라지는 시대의 황폐한 ‘나’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굳이 싫거나 좋은 사람이거나 물건, 사물의 이름을 대지 않고 표시하는 그러면서 그 속에서 잃어가고 있는 자아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방법으로 분석해보고, 자신을 해체시켜 보고, 비틀어보면서 박상순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3.         박상순의 경우 시의 대상은 현실이 아니라 언어 혹은 기호이다. 그는 현실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재현한 현실, 즉 기호의 세계를 노래하고 다시 기호화하고, 그런 점에서 또 다른 2차적인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는 당시 독자들의 항의로 인해 신문연재가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연작과 그가 제창한 ‘모더니즘’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우리 문학에 중요한 자산의 하나로 인정되었고 그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어느 시대건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난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누가 어떤 소재로 시를 쓰건 대부분 수용되어지는 시대를 산다. 박상순의 경우 그가 대상으로 하는 것은 영화, 만화, 회화, 상품, 기호 등이다. 다만 문학도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사실을 수긍할 때, 현재 사회적 상황을 흡수하여 반영할 것이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요소들이 박상순과 같은 시인의 기법적인 그물망에서 문자와 이미지의 경계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게 한다.     박상순의 시들은 실험적 전위시로 일관해 온 시인답게 단순하면서도 특별한 자기만의 스타일을 냉정하게 시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러나 거칠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서정성에 대한 가치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이 시대의 헛된 욕망과 상투성 속에 있는 난폭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박상순에게 있어 시 쓰기는 자신의 공간에서 철저하게 고통을 억누르며 초현실적으로 역전시키는 조작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해체된 언어는 주체를 부정하게 되는데 주체가 부정된 시에서는 허무와 욕망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시적 특징인 반리얼리즘, 기호와 변전, 의미의 관계혼란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언어의 해체적 실험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가 해체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긴장과 조화 사이에 놓인 자신의 시에 장치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메시지와 이미지라는 비실재적 대상이 현실적 존재로 인식되어 통용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상순의 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시어나 문장의 표현들이 다소 어렵고 까다롭다는 것이다. 그의 시편들이 워낙 실험성이 강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해소되지 못하고 시종일관 ‘나’의 정체성만을 찾다가 끝났다는 점이다. 그러한 문제들을 독자에게 툭툭 던지는 것 또한 그 만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해체시의 꼭짓점에 있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상순의 시적 수용의 폭이 넓은 것은 도시인들의 상처, 자아와 세계로부터의 소외, 자기부정과 같은 이미지들을 감각적 기법으로 살려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속에서 끊임없는 자아의 변전, 그런 변전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는 서정성을 이해하는 것이 박상순 시의 해석의 열쇠이다.     그런 면에서 리얼리즘적 풍토가 지배적인 우리 시단에 일단 파란을 일으킨 언어의 실험은 확실한 그의 시세계를 보여주고 형식적으로도 열려있는 공간을 연출한다. 이러한 기법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작업인 만큼, 세 번째 시집『Love Adagio』에서는 좀 더 의미가 명료해졌고 확장된 것처럼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시적 행보가 주목되어진다.
111    쉽게 보람 있는 논문쓰기 / 정원철 댓글:  조회:981  추천:1  2021-10-05
 쉽게 보람 있는 논문쓰기 / 정원철       목    차      1 부   1. 논문 주제 선정 2. 논문 자료 조사 3. 주목하는 자료의 정독 4. 목차 세우고 초고 작성하기 5. 논리 전개에 유용한 방법 6. 논문 작성시 유의사항 7. 각주 및 참고문헌 8. 논문에 대한 공포를 없애자 9. 논문계획서 작성 사례   ^^^^^^^^^^^^^^^^^^^^^^^^^^^^^^^^^^^^^^^^^^^^^^^^^^^^^^^^^^^^^^^^^^^^^^^^^^^^^    2 부   1. 논문이란 2. 어떤 것을 논문으로 쓸 것인가 3. 선행 연구의 탐색 4. 논문의 구성 5. 논문의 문장         (1) 애매성과 모호성         (2) 좋은 글이란         (3) 오류 6.인용과 표절   ^^^^^^^^^^^^^^^^^^^^^^^^^^^^^^^^^^^^^^^^^^^^^^^^^^^^^^^^^^^^^^^^^^^^^^^^^^^^    3 부   1. 문헌학적 방법론 2. 국문학사 연구 방법론 3. 비교문학적 방법론 4. 신화 비평적 방법론           쉽게 보람 있는 논문쓰기 / 정원철     논문쓰기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작년 가을에 당시 3학년 대표인 최중환 대표가 내게 “선배님이 내년에 논문 특강을 좀 해 주세요.” 라는 요청을 하였다. 나는 “하게 되면 최선을 다 할께요.” 라고 답했었다. 미리부터 준비를 하는 최대표의 발 빠름에 조용히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후 나는 내 졸업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통보를 받았고, 이어서 해가 바뀌면서 국문학과 조교로부터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고 최중환 대표는 4학년이 되어 인천지역 대학 국문학과 학회장이 되었다. 지난달에 내게 정식으로 요청했다. “선배님, 이번 특강 해 주시는 거지요?”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한 나는 몸 어딘가에 투명한 쇳덩이가 매달린 듯 한 달여를 긴장하며 지내고 이제 내일 모레, 논문 특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생각해 보니 논문 특강을 내가 할 수 있는가 하는 것부터 점검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생각한 것들을 그냥 이야기하면 되지 라고 가볍게 생각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 각자가 논문을 대하는 경우수가 많을 텐데 그 의문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에 내가 논문 쓰려 준 준비해 두었던 몇 권의 책을 뒤적였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책도 한 권 구입하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보고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강의에 참석 못하는 이들에게도 논문에 대한 안내를 하고, 강의를 듣고서도 정리된 견해를 가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서를 써서 제시하고, 그를 간단히 요약하여 강의 교재로 삼는 것이 내가 처한 이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것이 ‘쉽고 보람 있는 논문쓰기’란 보고서를 작성한 동기이다.     ^^^^^^^^^^^^^^^^^^^^^^^^^^^^^^^^^^^^^^^^^^^^^^^^^^^^^^^^^^^^^^^^^^^^^^^^^^^^^^ 1부    사전을 찾아보니 “논문 (論文)이란 어떤 일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논술한 글이라고 되어 있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은 기존의 지식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대학이란 교육기관에서는 기존의 지식을 어떻게 학생이 소화하여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을 졸업의 요건으로 생각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기의 의견을 논술한 글을 필요로 한다 싶다.                   1. 논문 주제 선정   국어 국문학과는 ‘국어학’과 ‘국문학’을 공부하는 학과이니, ‘국어학’과 ‘국문학’ 중에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의 공부를 할 때에 이미 자신의 견해가 생겨 있는 부문을 찾아내야할 것이다. 그러한 학문적 견해는 책과 강의를 통해서 충분히 배양될 수 있지만, 방송대학교의 특성상 교수를 대면하기 어려운 곳이어선지 친절하게도 미리 졸업논문 주제를 예시를 들어 내 놓았다. 먼저 그 중에서 학생이 자신이 창의적 사고를 펼 수 있을 유형을 먼저 정해야할 것이다. 유형은 학교에서  논문계획서를 제출받아 지도교수를 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데, 제출한 논문계획서와 실제 내는 논문이 다를 경우도 그 유형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처음 논문계획서 작성 때에 유형선정에 특히 유의해야한다.  유형 안에서 논문을 쓸 주제를 선정하는데 학교에서 예시한 그 주제를 그대로 선정해도 된다. 내용만 창의성이 있으면 된다. 특별히 논문에 생각을 않았던  사람들의 경우 그 중에서 선정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아래는 이번에 방송대학보에 공고한 졸업논문 예시이다.    2006학년도 졸업학력평가 논문 주제   (A∼E) 형: 국어학   A형 국어사     ① 국어 음운 체계의 변화 ② 국어 통사 단위들의 문법 형태화 등 B형 국어음운론 ① 국어 음운 자질과 규칙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② 음운규칙과 비음운론적 제약 등 C형 국어문법론 ① 국어의 격조사에 대한 연구,  ② 국어의 파생어, 합성어 연구 등 D형 국어의미론 ① 국어 어휘들의 의미적 관여성                ② 국어 어휘의 형성에서 외래어가 미치는 영향 등 E형 방언 및 사회언어학  ① 경상도 방언의 문법 형태 연구  ② 여성어 연구     (F∼I) 형 : 고전문학   F형 고전소설 ① 에 나타난 애정 모티브 연구(작품론)              ② 연암 박지원 문학에 나타난 실학사상 연구(작가론) G형 고전시가 ① 고려가요 의 작품구성방식 연구(작품론)              ② 윤선도의 사상과 문학관 연구(작가론) H형 한문학  ① 임제(林悌)의 산수시(山水詩) 연구(작품론)              ② {백운소설(白雲小說)}을 통해본 이규보의 문학사상 연구(작가론) I형 구비문학 ① 서사무가 에 나타난 페미니즘적 성격 연구(작품론)              ② 민요 의 대화체 실현 양상 연구(유형론)     (J∼N) 형 : 현대문학 J형 현대소설 ① 김유정 문학의 풍자성 연구  ② 1930년대 농촌 소설 연구              ③ 김유정 소설의 비도덕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연구              ④ 1930년대 계몽적 농민소설 연구 - 심훈의 {상록수}를 중심으로 K형 현대시   ① 정지용 후기시에 나타난 동양적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② 김현승 시의 기독교적 특징 연구 L형 비평론   ① 포스트 모더니즘의 국내 수용양상 연구 90년대 몸담론을 중심으로              ② 90년대 여성문학에 나타난 페미니즘 양상 연구              ③ 최재서의 풍자문학론 연구  ④ 1950년대 비평의 전통성 논의의 의미 M형 희곡론  ① 채만식 희곡 연구  ② 에 사용된 오브제의 상징성 연구              ③ 오영진의 민속 3부작 연구              ④ 유치진의 초기 리얼리즘 극과 극예술연구회 연구 N형 수필     ① 피천득 수필의 서정성 연구  ② 수필의 장르적 특성에 관한 고찰                           2. 논문 자료 조사   논문 주제를 선정할 때에 자신이 관심을 많이 가진 분야를 설정하는 것과 동시에 고려해야할 것은 자료가 많은 가이다. 학사 학위논문 작성의 경우에 한 분야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논문을 쓰기 보다는,  논문에 착수하면서 지식을 쌓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자료가 많아야 논문 준비를 하면서 쓸만한 지식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며, 발생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시인에 관한 시인론을 전개하려는데 생존해서 활동을 하는 분의 경우에는 객관화되고 정리된 자료가 적어 논문을 쓰는데 어려움이 있게 된다. 물론 그 경우 작품론을 쓸 수는 있지만, 이름이 알려졌어도 논문 한 편 쓰여지지 않은 시인을 선정할 경우에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행연구 논문이 많은 주제를 선정하도록 유의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료가 풍부한 주제를 임시로 선정한 후에 자료가 풍부한 지를 조사해야 한다.  그 방법이야 말할 것도 없이 서점과 도서관을 활용해야한다.  자료 조사의 경우에 관련 논문을 찾아서 그 논문에 붙은 참고문헌을 중심으로 필요한 책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을 일차 구입하도록 한다. 실제로 선정된 주제와 유사한 책이나 논문을 다룬 책을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면 주제에 접근하기가 편할 것이다. 그 분야의 권위지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그 학자의 책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 책에는 최근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소개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 시켰을 테니 한 눈에 현황을 파악하기 좋을 것이다. 그 책에 나타난 참고 문헌은 최근 것이니 구하기도 쉬울 것이다. 논문을 쓰고 나서 그 논문을 뒤받쳐준 책들을 몇 권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학사 논문을 써서 제출했다는 것이 그 분야에 도통한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기에, 논문을 제출하고 통과한 후에도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대학원을 진학하고 나서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여 더 좋은 논문도 쓸 수 있는 것이니 도서관에 가서 필요부분을 복사해놓는 것도 좋지만,  장서로 구입할 만한 것을 선정하여 책을 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싶다.  논문을 쓰면서 그 주제에 대하여 정돈된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은 논문쓰기의 수확이지만, 몇 번을 뒤적이며 정독한 좋은 책 하나를 소장하는 기쁨도 크다 할 것이다. 백과사전 하나 들여 놓고 찾아볼 때마기 기뻐하는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3. 주목하는 자료의 정독   책이나 논문을 정독해야 한다. 논문의 경우에 먼저 방법론에 대하여 연구해야 한다.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어떤 논증 방법을 택했는가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논문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추기 위하여 본론 부문의 전개에서 연구방법론이라는 것이 적용되기 마련인 것이다. 자연과학 계통의 논문은 실험을 통하여 입증을 주로 하고, 사회학이나 경영학의 경우에는 통계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기 마련인데, 국문학의 경우에는 그러한 실험이나 통계조사를 활용하기가 용이치 않으므로 정해진 방법론이 분명치가 않다. 그래서 참고문헌을 읽으면서 선행 연구자들이 어떤 주장을 했는데, 논문에서 다루는 텍스트에는 이러이러하게 나타났다는 비교에 의한 논리를 전개해야만 한다.   이때에 자신의 주제와 책속의 주제를 비교하면서 선정된 주요 논문을 읽으며, 일련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머리에 그리면서 정독을 하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논문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주제와 거의 동일한 것을 논문주제로 삼아도 되게끔 용인이 되고 있으니 이러한 방법은 아주 유용할 것이다. 이 경우 표절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견해를 잘 정리하여 놓으면 이후는 논리적인 문장으로 원고지를 메우는 일만 남았다할 것입니다.                     4. 목차 세우고 초고 작성하기   논문을 쓸 때엔 목차를 세우는 것만도 큰일이라는 말들을 한다. 목차를 세우는 것은 주제에 대한 깊은 탐구와 사색을 하여야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이러한 길을 거쳐서 어디로 가야겠다는 출사표와 같기도 합니다. 목차를 세우면 집짓기 다 끝났다고들 한다. 목차를 정할 정도가 되면 그 논문은 큰 고민거리들이 해결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목차는 논문의 주제를 관통하는 감이 생겨야만 그에 의해서 논리를 세워 본문의 목차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세워진 목차에 의해서 논문의 서술이 진행이 되는 것이니 목차를 잘 세워야 할 것이다. 논문을 쓰면서 목차를 수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주제를 이미 정하고, 그 주제를 이끌어갈 방법론이 이미 정해졌다면 목차세우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시작은 어디서부터이고, 중간에는 어떻게 주장을 이끌어 가고, 끝은 어떻게 마무리해야할 지가 윤곽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중간을 진행해가면서 끝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가 결정하기도 한다. 처음에 생각한 것과 자료를 정리하고 문장을 이끌어가면서 처음의 생각과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   시작은 보통 ‘서론’이라고 쓰기도 하고, ‘머리말’, 또는 ‘들어가며’ 등으로 제목을 단다. 먼저 내가 무엇에 대해서 연구하겠다고 연구 대상을 말하고 이어서 그 연구를 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연구의 가치는 이러할 것이다는 서술을 하면 서론의 진입부분으로 가름이 된다.  다음에 현재까지의 연구 진행상황은 이러이러하고 어떤 방법으로 그 연구를 하겠다는 연구방법론을 이야기하면 서론부분이 해내야할 몫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매끄럽게 써내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생각은 있어도 몇 줄 쓰고는 더 못쓰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이것은 다른 논문들을 보면서 서론 부분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지  몇 편만 읽어본다면 해결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이어서 중간 부분, 이 곳은 보통 본론의 내용을 바로 목차로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두 개의 챕터나 세 개의 챕터로 하는데 , 대개 논지를 펼치면서 잠정결론까지를 이끌어 냅니다. 이 부분이 논문의 핵심인데. 이 곳에서 연구 방법론을 적용시켜서, 국문학의 경우 문헌 조사에 의한 제시, 기존에 소개된 연구 실적은 이러이러한데 현상은 이러이러 하다라는 연구자의 주장까지 나와야 한다. 그러한 현상을 소개할 때에 신빙성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연구자의 주장을 전개가 논리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 이 곳에서 기존의 자료만을 나열하고 상호 연계를 시키지 못하면 다른 논문이나 선행연구의 표절이라고 지적받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평시에 관심 가지던 분야를 논문으로써야 하는 이유가 드러나게 됩니다. 즉 평시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이란 논리적 사유와 감성적 관찰 둘로 나뉘는 법인데, 논리적 사유의 경험이 바로 본문에 자연스럽게 배어 들어가기 마련이지요, 이 경우 권위 있는 이들이 말한 것을 인용하여 그것과 대비한다든가, 그 이론의 선위에서 이러이러한 과정이 전개된다고 쓰게 되면 논문의 중요 부분을 함락한 것이 되겠지요)   끝 부분은 보통 결론이라고도 하고, ‘나가는 말‘ ’맺음말‘이라고도 한다.  중간의 뒷부분에서 주장한 바를 다시금 정리하여 서술하고, 이어서 제안이나 추후 연구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마무리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목차로 적으면 될 것이다. (지난 해 인천지역대학교 4학년에게 특강을 하신 최미화 선배의 강연 중에서 ‘목차 세우기’ 부분을 소개하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특강을 들으며 정리해 놓았는데 유용한 부분이기에 그 메모를 소개합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논문의 7할 정도의 비중이 들어가는 부분으로 목차는 5개의 챕터로 나뉘는 것이 안정감이 있다. 즉, Ⅰ서론(머리말)Ⅱ본론  Ⅲ본론  Ⅳ본론  Ⅴ결론 (맺음말)의 구조이다.   서론은 연구 목적과 필요성을 먼저 이야기 하고 연구 방법을 이어서 적는다. 그리고 기 연구 했던 것들에 대한 연구사를 개관하여 나는 어떠어떠한 것에 대해서 연구하겠다고 한  쪽 정도의 분량으로 적으면 무난하다 할 것이다. (참고로 논문 제출분량 기준이 A410장 이상이라고 하니 12장 이상정도로 볼 때에 한 쪽의 분량을 말한다.)   본론은 3개의 chapter가 해당된다고 볼 때에 그 세 개의 챕터를 대등하게 이끌어가는 방법 (소설의 경우에 인물 , 사건, 배경의 삼요소를 기준으로 연구를 진행할 때에 그 요소들을 하나씩의 챕터에 적는다)이 있고 , 전진적으로 연구의 깊이를 더해가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작가에 대한 분석을 한다 할 때에 개괄적인 인물 분석을 하고 이어서 어떤 형태로 구분이 되는 가를 쓰고 그래서 이러 저러한 장단점 등이 있고, 문학적 업적이나 효과들이 있다 라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형태가 있다. 분량은 약 8-9쪽 이상으로 하면 무난할 것이다.   결론은 A4자 1-2쪽의 분량으로 하며 서론과 본론에서 취급한 내용 이외에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면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논문의 기본적인 존재 의미를 퇴색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요약, 강조하는 의미로 보면 되며, 마지막에 제언을 한두 줄 정도 넣으면 더욱 좋다.                 5. 논리 전개에 유용한 방법   집필에 들어갈 때엔 이미 많은 자료가 정리 되어 그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본론 부분의 경우에 스토리 보드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각각의 자료를 벽면이나 칠판 등에 붙여 놓고, 그것의 상호 연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붙여 놓고 수시로 생각을 하다보면 보다 집중해야할 일이 있을 테고, 생략해야할 부분, 순서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일 등이 용이하다. 비슷한 연구를 한 이들이 자료들을  상호 어떻게 연결 시켰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큰 참고가 될 것이다                     6. 논문 작성시 유의사항   아래에 본교 이호권 교수의 특강에서 말씀하신 논문 문장의 요건과 주의점을 살펴본다. 몇 가지로 요약하여 필요한 것만을 제시한 것이 돋보인다. (존대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1인칭 대명사를 사용 않아야 하는 점 등이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어미처리를 자신감없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점, 학술논문이고 다른 이들에게 주장을 하는 사람의 언사는 그래야 할 것입니다)   - 정확하게 표현할 것. - 생각이나 내용을 필요 없이 되풀이하거나 길게 늘어놓지 말 것. - 이해하기 어려운 말, 모호한 말을 쓰지 말 것. - 남의 말을 인용할 때 본문의 내용에 잘 어울리게 할 것.   (지나치게 인용을 적게 한 것도 문제, 인용문만으로 채워 놓은 듯한 것도 문제) - 존대어 ‘~입니다, ~합니다’를 사용하지 말 것.    (논지가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우므로, 공정한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우므로) - 1인칭 대명사(나, 저)를 사용하지 말 것.    (필요한 경우, ‘필자는’, ‘본고에서는’, ‘우리는’ 정도) - 감정적 판단이 드러나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기쁘다, 통쾌하다, 울적하다 등) - 종결형은 ‘~이다, ~하였다’ 류를 주로 사용할 것.    (“~라고 생각한다, ~라고 할 수 있다” 등의 표현은 되도록 피할 것.) - 집필이 끝나면 반드시 퇴고할 것(문장 오류, 맞춤법, 오자 등).     또한, 최미화 선배의 특강에서 제시한 내용을 살핀다. (간결체, 기호들의 일관성 유지, 문단 구분과 들여쓰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장은 상호간에  호응이 잘 맞도록 쓰기에는 간결체가 만연체보다 좋다. 대 여섯 줄을 쓰고 마침표를 찍는다면 비록 문장이 잘 맞았더라도 읽는 이를 지치게 할 공산이 크며, 문장이 호응이 일치하지 않기 십상이다. -표나 기호 등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목차를 표시하는 기호들이 챕터별로 달리 진행이 된다면 말할 나위 없이 연구자의 자질이 의심받을 것이다. =문단을 시작할 때에  들여쓰기를 분명히 해 주어 문단 구분을 해주어야 하며, 문단이란 하나의 생각, 즉 주제를 다루는 논문 전체의 일 부분, 즉  소주제를 다루는 단락이라고 생각하여 구분해 주면 된다.                     7. 각주 및 참고문헌   각주란 주지하다시피 다리 부분에 주를 단다는 말이다. 책 페이지의 아래 부분에 인용한 글의 출처를 적어 주거나, 필자가 어떤 해석을 별도로 달거나, 논문의 주제를 조금은 비켜선 논외의 부분이지만 어떤 주장을 싣고자할 때에 사용하기도 한다. 논문이 학술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이 각주 또는 미주에 의해서이다. 평론과 논문이 구분되는 것도 이러한 출처의 제시가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그런데 각주에 출처를 명기해야 하는 대상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먼저 생각해야할 것이 학문적으로 어떤 성과를 이룬 뚜렷한 말을 필자의 말처럼 그냥 쓴다면 안 될 일이다. 또한 이미 일반화되어 모두가 아는 사실을 일일이 출처를 찾는 것 또한 공연한 시간의 낭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학술적으로 객관 타당하다고 인정된 이야기도 아닌데 어느 논문에 쓰여져 있다고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또는 그 논문에서 과정의 이야기로 칠만한 부분까지 일일이 출처를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각주를 달아야 하는 인용문 선정은 아주 주관적일 수  밖에 없지만, 논리 전개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부분들은 꼭 출처를 명기해주어야 할 것이다. 각주는 큰 이야기들의 출처를 제시하여  논문을 객관 타당성있게 하는 기능으로 논문작법에서 그 비중이 높으며, 잘 활용할수록 논문에 빛을 더하게 된다. 아래는 졸업생 최미화님의 강의내용이다.   - 본문을 보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 연구자의 개인생각을 적는다. 연구에 직접 관련이 없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들. -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말을 각주로 내려놓는다. 본문을 보충하는 용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문맥에서 상호 호응이 어려워 -부호 뒤에 적을 글을 적는 다고 보면 될듯하다. 부연설명을 적는 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 출처를 적는다. 책의 경우, 저자, ,,출판사, 출판년도, 페이지수의 순으로 적고, 논문의 경우 저자, , 출판사, 출판년도, 페이지 수 순으로 적는다. (여기서 주제란 논문의 제목을 말하며, 기타 참고문헌을 적는 방법은 곳곳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참고하세요) - 출처인 적힌 각주를 인용할 경우에는 마지막에 ‘재인용’이라고 기록해 준다. - 또한 각주에 인용문을 적을 때, 쪽, 면, 페이지 (P)중에서  어느 것을 사용할 지를 결정하여 논문 전체에 일관되게 해주어야 한다. (PP라고 표기된 것은 시작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를 말하는 것임.  PP 5-7 : 5쪽부터 7쪽이라는 말임) - 기타 부호사용도 사용규칙에 맞추어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참고 문헌을 적는데 이는 각주에서 취급하지 않은 문헌이라도 넣을 수가 있다. 가나다 등의 내림차순 등으로 정리하여 논문, 책 , 잡지 등으로 구분해서 적어준다.                                        8. 논문에 대한 공포를 없애자.   작년 전국 국문과 엠티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주 행사를 마치고 학년별로 모임을 가졌는데 학과장이신 이호권 교수님과의 질의, 응답 때에도 주관심사는 논문 쓰기였다.  보고서 정도의 수준을 벗어난 정도, 기존의 지식에 대한 충분한 인식, 그리고 논문이라는 것이 논리적인 흐름과 출처를 밝히는 형식 정도만 되어도 통과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실제 작년에 함께 공부한 동기들을 보아도 논문이 통과되지 못하여 학과 학점을 모두 이수하였는데 졸업을 못한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잘못된 논문은, 지도교수가 전화를 해서 방향을 지도해주고 다시 제출하게 하여 거의 통과가 되는 것으로 안다. 그러므로 공부의 총정리라는 개념으로 스스로 쓰기를  권한다.   나의 경우도 가벼운 마음으로 논문을 시작하였다.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기에, 그 근거자료를 제출하면 논문을 대체할 수 있지만 공부하는 계기로 삼고자 논문계획서를 제출했었다. 논문을 제출하였다가 통과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에 관해서 그동안 책을 읽고 시를 쓰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논문을 쓰면서 공부를 확대하고 싶었고, 그 결과를 제출하면 되리라는 생각으로 임했었다.    실제로 논문이라는 것은 레포트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폭넓은 근거자료, 조금 더 창의적 생각 등이 필요한 것이다. 보고서를 잘 쓴 정도로 생각하고 써도 되리라 생각한다. 이호권 교수님의 이야기 중에 재미난 부분이 있다. 우수 논문 선정의 어렵다 하였다. 잘 쓴 논문이다 싶으면 다른 사람의 논문을 그대로 이름만 바꾼 것인지도 일일이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다 싶다.   이참에 이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러하다. 방송대학에 입학하여 4년을 마친 자랑스러운 학우들, 그리고 국문학과를 택하여 국문학을 공부하는 국문학도들이 전 기간의 공부를 정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필요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는 편한 마음으로 임했으면 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름 있는 작가의 어느 작품을 선택해서 분석하여도 좋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인의 작품론을 전개하여도 좋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을 논문으로 쓴다는 것은 그자체로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기를 권한다. 방송대학생들은 졸업장을 가지기 위해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공부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이니....       9. 논문계획서 작성 사례 논문 제목: 독자 중심이론에 입각한 신비평 분석 연구 개요 볼프강 이저는 문학 텍스트에는 독자만이 채울 수 있는 빈 자리가 있다고 주장하였고,움베르토 에코는 의미의 생산에 독자의 협력이 들어가는 열린 텍스트의 개념을 주장하였다. 또한 제럴드 프린스는 청자를 실질적 독자와 이상적 독자로 나눈 바 있다. 이들은 그간의 텍스트 중심이론인 신비평등에서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의 생산적 측면보다는 소비 측면에서의 역할에 주목하여 '신 비평'의 분석에 있어서 작품의 소비의 측면에 입각하여 문학내의 주요 쟝르인 시를 비평하는 틀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독자의 자리를 고려하는 시창작과 비평의 틀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고자 한다. 목차  1. 머리말 (1) 연구 대상 (2) 연구 목적및 방법 2. 독자 중심 비평 (1) 독자 중심이론 발전현황 (2) 독자가 작품 창작에 미치는 영향 3. 신 비평 이론 (1) 신 비평 이론 체계 (2) 시 창작에서의 신비평의 영향 4. 시창작의 모형 (1) 독자 중심 비평의 시창작에의 영향 (2) 독자 중심 이론에 입각한 신비평 5. 맺음말 참고서적 (1-6은 번역된 책에 의존하려함) 1.움베르토 에코의 독자의 역할 2.볼프강 이저의 가상적 독자 3.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의 기대의 지평 4.데이비드 블레이치의 주관적인 비평 5. 미셸 리파르떼의 문학적 능력 6.조나단 컬러의 관습적 독서습관 7. 김윤식, 뉴크리티시즘에 대하여-한국문학 연구방법과 관련하여,숙명여대 논문집, 1960.12 8. 백철, 뉴크리티시즘이 방법, 비평의 이해,민중서관,1974 9. 이상섭, 복합성의 시학-뉴크리티시즘 연구,민음사, 1987 10. 버넌 홀 2세, 뉴 크리티시즘, 서양문학 비평사 ,이재호 외 역, 탐구당, 1976 11.Richard Poster,뉴 크리티시즘의 재 평가, 정태진 역,한신 문화사,1990 12. 정창범,뉴 크리티시즘, 현대문학의 방법, 지문사,1981 (모범적인 논문계획서는 아니지만, 연구자가 자신의 논문 연구 방향을 이렇게 잡아 놓고서 실제 연구에 들어가면서 수정을 해도 됩니다. ) ^^^^^^^^^^^^^^^^^^^^^^^^^^^^^^^^^^^^^^^^           이제 2부로 들어간다. 강의 시간을 세 시간이나 배정하였으니 곤혹스런 일이다. 논문쓰기란 학술적으로 파고 들어가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기준을 일러주고, 요령을 일러주는 것이 논문특강일진대 한 시간이면 적절하다 싶지만 기왕 배정된 시간이니  논문의 질을 높이고 보람을 크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하여야 하겠다. 논문에 공포를 느끼고 졸업요건으로서의 논문쓰기를 생각하던 학생은 앞의 강의만 새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는 논문을 통하여 나를 발전시키고, 그 학문분야에서 발전된 나를 논문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곳에서는 이화여대 출판부에서 발행한 연구와 논문이라는 책을 주로 참조하였다.                     1. 논문이란   학문이란 무엇일까? 학문이란 논문에서 결론지어진 지식들을 해석하고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1). 그러니 논문이란 학문을 이루는 주요인자라 볼 수 있다. 그러한 논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과학기술 논문의 경우,  실험실에서 얻은 실험 자료를 정리하여 논문의 대상으로 삼을 때에 이를 정보라 일컬으며, 이러한 정보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지식이다. 마지막 단계로 이러한 지식들을 해석하고, 상호 연계하고 관계를 지어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논문이다. 따라서 그 분야에서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을 창의적 해석인 논문으로 정리하는 것일 중요하다 할 것이다.                      2. 어떤 것을 논문으로 쓸 것인가   학생들에게 논문을 쓰게 하는 것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식화시키고, 우주와 사회와 인생에 대하여 질문하게 하고, 전통과 가치에 대하여 검토하게 하는 학문적 태도를 배양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의 이론과 논리를 비판적으로 읽고, 그 책의 저자와 책을 통하여 대화를 하고 질문을 던져보고,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규명을 위한 논문인가, 가치진술적인 논문인가. 내가 공부하는 학문은 특징이 무엇이고, 어떤 분야가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문제의식을 가지면 논문의 소재가 발견이 된다. 어떠한 분야를 결정했으면 다시 시간적 구분, 공간적 구분을 하여 본다. 즉, 시대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면서 발전하였나, 그 특징은 왜 대두 되었을까, 무슨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연구자가 주의할 점은 ‘왜 하느냐’ 하는 목적에 대한 자문과, ‘어떻게 문제를 전개 시킬 것인가’ 하는 연구방법에 대한 끝없는 자문을 해야 한다.                     3. 선행 연구의 탐색   도서관의 서지 목록 카드와, 잡지실, 참고실, 서고 등을 들락거리며 다음을 참고하여 선행연구를 탐색한다. 즉, 내가 선정한 주제가 그 학문 내에서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교재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꽤 진전된 연구성과 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살펴야만 소용이 닿는 논문이 쓰여 질 것이며, 학습효과도 보람있을 것이다.   - 어떤 분야의 연구 논문들을 제목만이라도 훑어보면서, 그 연구의 빈도를 대충 조사하고, 이러한 빈도 조사를 통하여 비교적 연구의 기회가 적었던 분야나 주제를 찾아본다.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연구의 동향이라든가 토론과 논쟁이 되풀이 되고 있는 이슈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 교수와의 대화에서 교수의 견해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논문들이 제기하고 있는 연구문제, 미해결의 문제를 찾아보고, 논문들이 시사하는 문제 해결의 방향들을 눈여겨 보아둔다. -논문들의 전개방법, 연구방법, 서술의 기술과 방향을 통하여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방향을 익혀 둔다.   이어서 구체적인 문헌조사에 들어가는데, 문헌 조사를 끝내면 논문은 반이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문헌조사는 주제를 한정하고 그 윤곽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주며, 본격적 연구를 하기 전에 모르고 있던 결론, 사실 등을 알게 해주며, 새로운 연구 방법을 알게 해주기도 하고, 다른 연구자가 사용한 좋은 방법을 알게도 해준다. 특정 사안에 대한 연구 진행상태를 알게 해주고, 이론적인 문제를 확실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준다.                     4. 논문의 구성   먼저 논문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점을  객관성, 공정성, 정확성, 검증성이 있어야 한다고 제시하기도 한다. 아래에 살펴본다.  이중에서 객관, 타당성이 논문 정신의 가장 중요한 점일 것이다. 이런 점이 있다고 해서 논문이 더 빛이 난다기 보다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객관성은 집필자의 단순한 의견이나 주관적 생각을 서술해서는 안 된다. 원인과 결과를 제시한다든가 등의 근거를 제시하여야 객관성을 띠게 된다. -공정성은 여러 학설이 있을 경우 감정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정확성은 다루고자 하는 문제의 실존, 통계의 정확, 인용된 인명, 책명, 참고문헌 기입, 맞춤법 등에 정확을 기해야 한다. -검증성은 논문의 결과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재현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논문자료의 출처, 연구의 각도나 방법, 주제에의 접근 방법 등을 명시하여야 한다.     어떤 학자는 자기가 늘 생각해 온 문제와 거기에 대하여 읽어온 자료를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 직접 원고지에 글을 써 나가면서 논문의 구성도 하고 이론의 전개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논문의 내용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서 어떤 결론 점에 이르게 되면 그것으로 그 논문이 완성된 것으로 하고, 그 때에 그 논문의 제목도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숙련된 학자의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이 논문을 쓸 때엔 주제의 선정, 참고 자료의 조사, 그리고 논문의 구성에 대해서 점진적으로 일을 해 나간다. 논문의 구성은 일차 목차 세우기를 하면서 구상을 하지만, 보다 좋은 논문을 쓰려면, 논문의 구성에 대하여 별개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준비된 자료와 머리에는 결론적 사고가 있지만. 논문의 구성을 통해서 그러한 논리적 흐름이 잘 제시되어야 하므로 초고를 작성하고 나서 다시 고칠 때에도 논문의 구성 원리에 대한 생각을 하여야 할 것이다. 조금 기술적 개념이지만, 논문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자료수집이 어느 정도 된 다음에는 논문의 구성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이미 이야기한대로 자료카드를 보드에 붙여 놓고 그 순서를 이리 저리 바꾸어 가면서 구성을 해 본다. 논문개요를 작성해 보면 구성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간다. 먼저 구성의 원리를 살펴본다. 이는 논문의 충분조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통일성: 주제와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포괄성: 주제를 충분히 다룰 만한 내용이 제시되어야 한다. -균형성: 본론에서의 각 챕터의 크기가 비중이 균형 잡혀 있는지 여부이다. -조리성: 논문이 어떤 순서로 전개되느냐의 문제이다.  내용이 앞뒤가 바뀐 듯이 느낀다든지. 한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의 진행이 납득 되지 않으면 조리성이 없는 논문이 된다. -집중성: 초점이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전하고 싶은 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구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구성의 유형에 맞추어 적는다.  구성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 금 어려워지는 듯하지만, 이러한 부분을 잘 이해한다면 이후 학문 연구에 많은 지침을 주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시간관계: 어떤 주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논문은 그 내용을 시대 순으로나 연대순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구성방법이 된다. 한 사상가나 예술가의 생애와 업적을 소재로 하는 논문도 대체로 시간관계에 의한 구성의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2) 공간관계: 공간적 관계에 의한 구성 순서는 동쪽 지역에서 서쪽 지역으로, 중심지에서 변두리, 낮은 지역에서 높은 지역이라든가 의 기준을 설정하고 구성한다.   (3) 집합관계: 전체에서 부분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구성을 한다. 예를 들어 교육에 관한 논문이라면 교육 전반의 문제점을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견지에서 다루어 보고, 그 다음에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의 영역으로 나누어 다루면 된다.   (4) 인과관계 : 결과적인 현상을 서술하는 부분과, 그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5) 논리관계 : 주어진 전제에서 시작하여 연역적으로 추리될 수 있는 명제들을 추리의 순서에 따라 설명하는 구성 방식이다.   (6) 문제와 해답: 해답을 요하는 문제, 또는 해결방안을 요하는 문제가 논문의 주제일 때에는 그 문제를 설명해 주고 제시해 주는 부분과 거기에 대한 해답이나 해결방안을 설명하고 전개해주는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 주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구성 형식이다. 그것이 현실적인 문제이건 이론적인 문제이건 간에 학술적인 문제에 대한 학술적인 해답을 제시해 보는 논문이라면 문제와 해답이라는 기본적인 구성 형식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7) 가설과 검증 : 과학적인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논문은 자연히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 설정의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과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 방법에 관한 설명, 그리고 그 연구 결과와 가설의 검증에 관한 설명을 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8) 분석과 분류 :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된 상태에 있는 어떤 자료에서 특정한 요소들을 구별해서 가려내는 것이 분석 작업이다. 이렇게 해서 분석이 된 자료나 본래 개개의 것으로  수집된 자료를 어떤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분류작업이다. 역사학이나 고고학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 발굴된 자로를 소개해주는 것이 논문의 주요 내용이 될 때는 그 자료의 분석과 분류가 노문의 구성형식을 결정하게 된다. 또한, 반드시 답사나 조사연구를 통해서 제시할 가치가 있는 자료가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이차적인 자료를 소개하는 논문도 그 구성에서는 분석과 분류의 방법에 의한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9) 비교와 대조 : 사본을 원본과 대조해 보는 것은 사본의 정확성, 또는 신빙성을 검초해 보기 위한 것이다. 검은 색과 흰색을 대조시키는 것은 서로의 구별이 뚜렷하게 하고자 함이다. 이처럼 두 가지 이론이나 두 가지 현상을 대조시켜 보는 것은 상대적인 서로의 특징을 뚜렷하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물론 평가적인 의미도 있다. 학술 논문 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10) 비판과 종합 :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나 이론을 비판함으로써 각각의 장단점을 가려내고, 그 장점들을 종합하여 새롭고 지양된 견해나 이론을 제시하는 논문도 흔히 볼 수 있는 학술 논문의 유형이다. 논문의 전개가 비판에서 종합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5. 논문의 문장   쉽게 쓴 글은 읽기가 어렵고, 어렵게 쓴 글은 읽기가 쉽다고 한다. 어렵게 쓴 글은 개념화와 문장화를 거친 글이다. 사람의 기억 속에나 생각 속에는 개념화되지 않은 경험의 내용이 많다. 또한 개념화는 되어 있어도 문장화는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즉, 표현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적절한 개념을 찾지 못한다든지 개념으로까지는 나타나는데 문장으로 표현이 되지 않아 써 내려 가던 글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뜻을 나타내는 개념을 문법과 맞춤법에 맞추어 쓸 수 있어야 한다.   (1) 애매성과 모호성   말로써 표현하면 애매하지 않은 것도 글로 표현하게 되면 애매한 것이 있다. 말할 때는 강조하는 부분이 쉽게 나타나지만 글에서는 특별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애매함이란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애매한 문장의 예를 본다. “ 예수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장이 뜻하는 바의 대상이나 한계가 분명치 않은 모호한 문장도 있다. 모호함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흐릿하다, 분명하지 않다는 말이다.  모호한 문장은 대개 그 문장의 주된 개념이 지시하는 대상 또는 집합의 한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 대머리 총각과 키다리 처녀는 결혼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 머리가 빠져야 대머리인지,키가 얼마나 커야 키다리인지, 총각은 법적 총각인지, 숫총각을 말하는지, 대머리 총각과 키다리 처녀가 결합하여 결혼하기 어렵다는 것인지. 그 두 부류의 사람들 자체가 결혼하기 어렵다는 것인지 애매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애매성과 모호성이다. 시어로 사용될 때엔 의도적으로 애매성을 함유하기도 하고, 어떤 생각을 감추고자 할 때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 “ 이번 휴고 조치는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도 아니고, 교수회의 결의에 의한 것도 아니지만, 학교 당국이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논문에서는 애매함과 모호함이 없는 말로 분명하게 논지를 이끌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좋은 글이란 -될수록 평범하고 쉬운 말을 써야 한다. -뜻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선택하는데 신중해야한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뜻으로 쓰지 않고 특별한 뜻으로 사용할 때엔 그 말에 대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감정이 담긴 말이나, 강한 표현은 사용 않아야 한다. -글은 간결할수록 좋다 -문장은 짧을수록 좋다 -말하듯 쓰는 글이 좋은 글이다 -계속 같은 어미로 끝나는 문장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문장과 문장을 잇는 말을 잘 써야 한다 -문장의 연속성은 무엇보다도 내용의 연속성에 의존한다   (3) 오류   학순 논문을 써내려 가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는 한 가지는 이론을 전개해 가는 것이다. 이론을 전개 한다는 것은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어떤 사실을 뒷받침해 줄 수 있을 만한 다른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전개시켜 나간다는 뜻이다. 사실과 사실의 관계를 추리의 관계가 되게 엮어 간다는 뜻이다.  다음은 이론 전개상에서 흔히 범할 수 있는 추리상의 잘못을 살펴본다.   자가당착의 오류 “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실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과학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실험실에서 신을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과학 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무엇이든 실험 튜브로 실험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 실험 튜브에 담을 수 없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어머니와 자식간의 사랑을 실험 튜브에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신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증거는 많이 있다. 물론 최후의 단계에 가서는 신앙이 있어야 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   논리비약의 오류 “Philosophy의 Philo는 사랑을, sophia는 앎을 의미하므로, 철학은 앎 또는 지혜의 사랑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철학은 존재에 대한 지식의 사랑, 가치에 대한 지식의 사랑을 의미한다.”   순환논법의 오류 어떤 한 사실을 증명하거나 뒷받침해주기 위해서 제시한 새 사실의 근거를 물었을 때, 만일 처음 문제가 되었던 사실로써 그것을 뒷받침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순환논법이 된다. 도둑이 두목에게 항의를 했다. “ 왜 너만 세 개를 가지지? ” 나는 두목이니까.“ ” 왜 너가 두목이냐?“ ” 나는 보석을 너희보다 한개 더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A를 B가 입중하고,B를 C가 입증하고, C를 D가 증명하고, D를 E가 증명하는데, 그 E를 증명할 것이 A밖에 없다면 이것은 순환논법의 오류인데,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잘 파악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필자 자신도 순환 논법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도 한다.   조건 혼동의 오류 “필기시험에 합격해야만 입학을 할 수 있다.“인데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입학할 수 있다.“라고 추리하는 것은 잘못이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한 가지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의 충족만 가지고는 결과가 실현된다고 추리할 수 없다.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라고 할 때 비가 오는 것은 땅이 젖는다는 것의 충분조건이다. 그것은 필요조건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비가 오지 않고서도 땅이 젖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을 뿌려서 땅이 젖을 수도 있고, 강물이나 수돗물이 잘못 흘러서 땅이 젖는 수도 있다. 따라서 ” 비가 오면 땅이 젖게 마련인데, 땅이 젖었으므로 비가 온 것이다“ 라고 추리하는 것은 오류가 된다.   조건에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다. 필요조건이란 그것이 성립되지 않으면 결과가 실현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충분조건이란 그것만 성립되면 결과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물이 있어야만 생물이 있을 수 있다.”라고 한다면, 물이 있다는 것은 생물이 있을 수 있는 것의 필요조건이다. 즉, 물이 없으면 생물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물이 있으면 생물이 있다.”라고 한다면, 물이 있다는 사실은 생물이 있다는 사실의 충분조건이 된다는 뜻이다. 가령, “ 생물은 물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데, 화성에서는 아직 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생물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필요조건이 성립하지 않음으로써 결과가 성립될 수없다는 논법이다.  그러나 ” 물이 있으면 생물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만일 화성에서 물이 발견되기만 한다면 곧 생물이 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충분조건의 성립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관한 논법이 된다.   만일 물과 생물에 관한 위의 두 조건 관계가 모두 다 성립한다면, 그것은 필요충분 조건의 관계가 될 것이다. 즉, 물이 있어야만 생물이 존재할 수 있고, 물이 있으면 ( 언제 어디서나)생물이 존재한다는 뜻이 되는데, 이런 조건 관계가 성립된다고 가정한다면, 화성에 관한 이야기도  “ 화성에서 물이 발견된다면 곧 생물이 발견될 것임, 생물이 발견된다면 곧 물이 발견될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필요 충분 조건의 관계에 있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그 어느 한 쪽의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다른 한 쪽의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는 논법이 허용된다. 그러나 필요조건으로만 연결된 사실이라든지, 충분조건으로만 연결된 사실들의 경우에는 그 조건 관계를 잘못 파악함으로써 범할 수 있는 오류가 된다.  그러므로 “ A이면, 그리고 A이어야만 B이다.” 가 필요 충분 조건의 관계이다.    원인과 결과의 오류에 대한 오류 친구의 충동으로 범죄를 하게 된 아들이 부모의 힐책에 대하여 “ 지나친 부모의 참견 때문에 주체성 있는 행동을 못하게 되었다.” 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 말하는 자기 합리화가 된다. 물론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나 참견이 아들의 주체성을 약화시켜서 또 다시 남의 유혹에 넘어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 사실의 결과가 새로운 사실의 원인이 되는 연쇄적인 인과 관계의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자식의 범죄가 부모의 참견이 간접적인 원인은 되어도, 직접적이 아니므로 부모의 책임은 직접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논리로 부각시킨다면 안된다. 인과관계가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인과관계가 복잡해져서 여러 가지 원인들을 구별해야할 경우라든지,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특히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가를 분명히 구별해둘 필요가 있다.   흑백 논법의 오류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는 두 개의 대립된 집합들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집합과 여집합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은 아니다.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해서 모두 다 유신론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무신론이 입증될 수 없다고 해서 유신론이 입증된 것처럼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아님을 입증할 수 없으니 무죄로 판정한다든지, 자기편에 가담하지 않으므로 자기네와 반대되는 편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든지 하는 것은 흑백논법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서로 반대관계에 있는 두 명제들에는 그 두 명제를 다 부정하는 제 3의 명제가 있을 수 있다. “ 김은 제국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다.” 라고 한다면 그 두 가지를 다 부정할 수 있는 사실이 가능하다. 즉 김은 자유주의자일 수 있는 것이다.                     6.인용과 표절   인용문이 많아야만 학술 논문으로서의 무게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할 정도로 논문에는 많은 인용이 필요하다. 학문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남들이 미리 정리해둔 것을 인용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데 출처는 모르지만, 과거에 읽었던 어떤 자료에서 얻은 생각일 경우에 출처를 밝히기도 어렵고, 인용된 것이라는 인식조차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불필요한 인용이라는 말이 있다. 평범한 사실은 인용해줄 필요가 없지만 그것을 말한 사람이 중요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이름만을 나타내고 그 사실만을 인용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일반화된 사실 중에서 어느 특정한 사람의 말이나 글에서 인용하지 않아도 될 것을 그 사람만이 그것을 이야기한 것처럼 인용해 주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권위를 이용하고자 하는 오류이다. 가능한 한 논술자는 인용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전개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 어떤 권위자가 한 말과 같다면 인용으로 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의 말을 인용해야하는 필요성은 그 사람의 말이 전개해나가고자 하는 내용에 적절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직접 인용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경우라든지 인용을 많이 해주어야 논문의 전개가 좋을 경우는 인용문이 많은 것을 문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용을 많이 도입하면 글의 흐름이 어지러워지기 십상이므로 글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인용문이 내포한 문장양식이 여러 형태이므로 논술자의 문장형태와 조화를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글이 토막토막 끊어지는 듯 여겨질 것이다. 이 경우 짧은 인용문이나 인용구를 자기 가 써 내려가는 문장 속에 포함시켜 주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 단절감을 피할 수 있다. 간접인용을 사용할 경우, 인용문의 본 뜻을 정확하게 옮겨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인용문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인용한다면 직접 인용을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인용문이 길 경우에는 그 내용에 대한 짤막한 소개를 해주는 것이 좋으며, 인용이 끝난 후에도 그 인용문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하여주는 것이 논리적이고 부드러운 흐름의 문장이 된다.             ^^^^^^^^^^^^^^^^^^^^^^^^^^^^^^^^^^^^^^^^^^^^^^^^^^^^^^^^^^^^^^^^^^^^^^^^^^^^ 3부로 접어들었다. 국문학을 공부하는 이들, 논문을 쓰려 하는 이들, 국문학은 연구하려는 이들은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를 잘 살피면 논문 쓰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면서 국문학도로서의 보람이 커진다 할 것이다.   자연과학(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계통의 연구는 가설을 설정하고 분석, 실험을 통해서 나온 결과를 해석하여 연구와 논문을 진행한다. 사회과학( 인간사회의 여러 현상을 과학적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의 경우에도 현실사회의 현상을 면접이나 설문 기타의 방법으로 조사를 하고 그 통계 자료를 해석하여 결론을 추출하는 방법론이 주로 사용되어진다. 그런데 국문학의 경우는 어떤 방법론으로 연구를 할까? 실험이나 조사 없이 문헌만으로 연구를 진행하는데 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그것에 대한 비교, 분석을 진행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정신세계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비교하면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는 인문과학이니, 선행연구의 결과를 어떻게 인용하고, 어떻게 비교 분석해야하는 지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 생각된다.  전규태의 ‘국문학 방법론 연구’( 1981년, 평민사)를 참고로 논지를 펴본다. 이 책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국문학의 연구 대상은 한글로 쓰여 진 문학과, 한국 내에서 통용되었던 한자로 된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를 나타내는 것은 문헌이다, 그러므로 문헌을 발굴하고 원본 확정하는 일은 국문학의 고유 학문적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문학 연구의 가장 기본은 문헌학적 연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문학이 홀로 선 국문학이면 좋지만 갑오경장 이전은 중국문학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는 일본을 통하여 서구문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왔다. 이러한 것을 대상으로 하여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피는 방법론과 학문이 비교문학이다.   이렇게 국문학의 기본과 그 주변을 살피고 나면 국문학 자체를 접근하는 방법들을 찾을 수있다. 즉, 카테고리가 문헌학적 연구 방법론과 비교문학적 방법론의 하위 카테고리에 우리는 문학 비평론을 위치시킬 수 있다. 방송대학교 국문학과 3학년 1학기 때 배우는 문학비평론이 그것이다.  문학비평의 방법에는 역사, 전기적 비평과 사회주의 비평, 형식주의 비평, 구조주의 비평, 탈구조주의 비평, 신화원형비평, 독자중심비평, 페미니즘 비평 등이 있다. 이러한 비평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피고 지고하였는데, 현재 주류를 이루는 비평론은 이러한 비평론들의 결합 또는 취사선택을 하여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의 비평 분석에 용이한 형식주의 비평은, 작품 자체만을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근자는 역사 , 전기 비평과 함께 평을 하고 있다. 한편 페미니즘 비평은 여성의 사회운동과 궤를 같이하여 진행되었기에 유행처럼 지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그 운동이 폐지되는 것이니 말이다.   논문을 논문답게 의욕적으로 쓰고자 한다면  국문학 작품들을 신화원형 비판의 틀에 입각해서 그동안 분석되지 않은 작품들을 분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신화 원형 비판에 관한 기본서를 충실히 익힌 상태에서 분석이 들어가야 하니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탈구조주의에 입각해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 등을 논하는 논문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 중심비평이라는 개념 또한 모든 작품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독자를 인식하는데 어느 선으로 인식해야하는가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비교문학적 방법론을 외국 작품과의 비교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리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비교 고찰하는 논문을 쓸 수도 있을 테고.... 형식주의 비평에서 모호성이라는 개념이 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살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국문학을 계속 이어서 공부하면서 깊이를 더해가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이들에게는 한번 고려의 대상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우는 독자 중심이론에 입각한 신비평이라는 논문제목을 정하고 논문계획서를 제출하였다가, 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어 다른 것으로 하였는데, 나중에 석, 박사 논문 쓴 이에게 들으니 자료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자료 수집에는 이리 저리 쏘다니며 하지를 않았음이 부끄럽다. 그러하니 의욕적인 논문 제목을 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분석해서 논리를 추출해 내고, 그리고 그것들을 기술해가는 논문이라는 작업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의 보람을 스스로 가져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논문 통과 자체는 성실하게 공부를 정리하는 마음으로만 진행하여도 통과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이제 마지막 부분 국문학 방법론에 대하여 전규태의 국문학 방법론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놓으니 이것의 활용으로 보다 큰 사고의 항해를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1. 문헌학적 방법론   “문헌학은 철학과 형제이다.“라고 이른다. Philogie(문헌학) 와 Philosophy(철학) 은 어원적으로도 근사하다는 것이다. 문헌학 본래의 자세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자세와 예술적 정열은 현대에 와서 그 자취를 감추어가고 고증적인 방면에 중점을 두는 현상이라고 한다.  물론 문헌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문제로서 다루어진 문헌을 신뢰할 수 있는 역사연구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국문학에 있어서 문헌학적 연구는 말 그대로 문헌에 의거해서 문헌에 깃든 민족정신의 이해를 꾀하는 것인데, 문헌의 비판에 입각하여 문헌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문학사적, 문학 비평적 연구의 기초적, 준비적 작업을 행하는 것이다.    국문학의 연구, 특히 문학적 연구는 선조이래의 정신생활의 특질을 밝히고, 방향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하겠는데, 특히 문헌학적 연구의 특색은 문헌상에 감추어진 온갖 허위, 분식을 제거하여 문헌에 따라 그 문헌에 배어있는 참 정신, 참 생명을 습득하는데 있다. 새로운 문헌의 발견과 부실 되어 가는 문헌의 진면목을 찾아 주기 위하여 교본을 만들고, 정본을 만들어 문학사적 내지 문학 비평적 연구의 준비를 함과 아울러 문헌의 해석을 함으로써 정신사적 연구까지 나아가야 한다. 신자료의 발견이나, 민족정신의 재창조 역시 하나의 창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함에 있어 문헌에만 골몰하는 것을 벗어나 국문학 연구외의 다른 학문과의 연계에도 몫을 할애해야할 것이다. 19세기 초 이래 ‘문헌학적 역사학 연구법’으로 발전하였다. 문헌학적 연구는 낱낱의 작품에 중점을 둔 것이고, 역사적 연구법은 시간적, 공간적 관계를 보려고 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하나로 묶여 발전해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문헌학적 연구 방법은 결과적으로 정신적 고찰태도를 살펴야 한다. 모든 문헌의 가치는 정신사적인 고찰의 재료로서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영역은 첫째 주석적 연구인 언어문장( 字義的 설명)과 사실적 내용 등의 고찰과 아울러 민족적인 고유정신을 파악한 정신사적 연구등 문헌의 내면적 연구와 함께 문헌의 역사적 성질을 밝혀내고 본문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다형적 연구가 겸비되어야 한다.                     2. 국문학사 연구 방법론   국문학사 연구가 빈곤한 이유는 현대문학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서술의 양식이 해제적이라는 점이다. 문학의 역사를 하나의 학문으로 천착해 보려고 하면, 역사 쪽으로 볼 때 가치창조라는 면에서 철학적이어야 하고, 지식의 조직화 면에서는 과학이며, 순수한 반응 그것으로는 비평이다, 여기에 문학 스스로의 본질적 기능마저 덧붙인다면 문학사는 4차원의 연속체가 된다.   문학사의 연구에는 외적( 작가의 생애, 작품의 계열화, 시대와 환경 구분) 연구와 자료에 의존한 문헌적 연구가 그 기본이다. 종교, 철학, 예술, 정치 등 역사속의 내면적 리듬과 동시대 작가들의 우주관, 인생관, 연애관등의 비교 연구도 필요하다. 그런데, 국문학사가들이 사료를 배열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옹근 과거의 모습은 전혀 우리에게 부각되어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사적 연구에만 시종하다보면 작가를 소홀히 하기 쉽고, 인명 없는 문학사가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국문학사 연구에는 양식사적 연구도 또한 몫이 되어야 한다. 문학의 형식이 어떤 양식에 담겨 나온 것인지를 살피는 것도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의 고전 연구가 한 학자의 무료의 소견 책이거나 서재 유희로서가 아니라, 고전의 타당한 문학적 평가를 위해서 정리하는 사람, 연구하는 사람의 단계에서 한 단계 나아간 비평가적 센스가 요구된다.                     3. 비교문학적 방법론   학문의 체계화를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비교문학은 그 중요성이 점차 세계적으로 인정되어 가고 있는데, 이제까지 우리 문학사는 작가나 작품이 일정한 시대구분에 의해 나열되었을 뿐 가치 기준에 의한 비교연구가 없었다.   본디 비교문학이란 두 나라 이상의 문학적 영향관계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으로서 문학의 본질론이나 가치론이 아니라 연구의 방법론이다. 엘리어트는 비교와 분석이란 비평의 주요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문학연구에 있어서 어떤 대상의 본질을 천명할 경우에는 분석만으로 가능하나, 무엇인가 독자적인 특질의 구명일 경우에는 비교에 의하여야 한다. 비교 없이는 귀납적 인식도 불가능함은 물론 비교 없는 연구결과는 곧잘 독단과 고루한 주관을 내세우기 쉽다. 따라서 문학연구는 넓은 의미에서 비교연구라야 한다. 그것이 국가간의 비교이든, 선대와 후대의 비교이든 간에 말이다. 아래에 비교 문학에서의 주요 용어를 살펴 본다. -영향: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변화이다. 그 변화의 요인으로 영향이 있다. 수동자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의 새로운 상태를 창조하는 것이다. -표절: 무단히 타인의 작룸을 도용하여 이를 자작인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 시에 있어서 선인의 장귀를 삽입하여 일층 풍부한 연상을 활발히 환기시킴으로써 가급적 큰 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있으므로 무조건 그 자체를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T.S.엘리옷도 황무지나 네 사중주 가운데서 토마스 엘리어트의 통치자의 서의 일부를 인용부호도 붙이지 않고 도용했으나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 것은 그의 도용이 전체에서 볼 때 극히 적은 부분에 그쳤다는 것과 그 부분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새로이 가치 있는 것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지금 말로 하면 패러디가 되는 것이다. -모방: 초심자의 습작 시대에 그가 사숙하는 작가의 영향을 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 모방의 고비를 넘어서 자기 것을 창조하였을 때, 학문으로서의 존립가치가 있다. 모방과 모작은 다르며, 문학을 보는 관점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모방론이 있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비교문학의 임무이다.   국문학 하면 공연히 고루하고 배타적인 민족적인 감정에서 자아도취의 관념론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모름지기 앞으로의 국문학 연구 태도는 비교 문학 등 외국학계의 연구방법론을 도입하여 범세계적인 호흡으로 세계문학의 일익으로서의 국문학이라는 의식이 고조되어 각국 문학 상호의 비교연구로써 우리의 문학사 정리 작업에 중요한 기능을 하여야 하겠다.                   4. 신화 비평적 방법론   신화 원형 비평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특별히 더 가치가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인간의 형태와 지능, 감성, 사고는 그리 다른 것이 아니듯이. 각 나라간의 문화도 공통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적 표현이었던 신화에 들어있고, 원형의 공통점을 찾게 된다고 한다. 작품 속에 들은 그것을 밝히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고대 인간 집단은 그 내면적 생활의 모습을 신화나 전설로서 표현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그 상상력에 의해서 신화를 만들어 내고 신화에다가 그들의 상태를 표현하였다. 이는 원시 시대의 사람들이 자연 현상을 스스로의 내부생활과 관련시켜서 관찰했기 때문이다. 집합적 무의식에 의한 상상력은 한낱 개인의 공상이 아니라 생동하는 이미지를 다량으로 내포하고 있는 강물과도 같이 신화나 전설의 근원이 되는 원형적인 패턴이 나오게 된다. ( 원형: 플라톤의 탁자를 예를 들면 수평의 표면이 수직의 받침으로 받쳐 지고 있다는 것으로 ,그 속성은 모든 탁자의 원형이라고 본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원시적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후세의 사람들 무의식 속으로 받아들여져서 후세의 인간의 상상력에 원시적 이미지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시의 경우에 원형이란 매우 기교적이고 특이하면 특수하다기 보다는 원시적이고 일반적, 보편적인 어떤 본질적 특질을 지니는 생각이나 성격, 행위, 대상, 사건, 관계, 배경 등의 그 어느 하나가 된다.   신화의 원형은 눈사람처럼 커져가면서 전파되어 각각 생활 관습 속에 용해되어 마치 제도와도 같이 전해져 사람들의 의식 속에 침잠되어 후세에 이르러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0세기의 이미지를 중추로 한 비평은 작품에서 특정한 이미지만을 추출하여 그 작품의 문제점으로 삼는다. 분석비평에서는 분석에 분석을 가한다. 하지만 원형비평이나 신화비평에서는 작품을 그 부속물에서 떼어내서 그 속에 어떠한 원형을 내포하고 있는 가를 찾으려 한다.    N. 프라이는 창조적 비평을 주장하였다, 독자에 의한 창조적 비평. “과거의 문화란 인류의 기억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파묻힌 생활이므로 이를 연구하노라면 인식의 장, 즉 우리들의 과거가 아닌 현재생활의 문화적 형태를 전부 알게 되는 발견의 장에 도달한다. 온갖 사물을 일신시키는 책임을 지는 것은 시인만이 아니라, 독자도 져야 한다.“   문학 연구 방법에 있어서 구조적 측면을 너무 깊이 파고들면 내용적인 면을 소홀히 하게 되고 작품 자체에 몰입하다보면,  문학이라는 전체를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 신화비평도 광범위한 투시주의적 고찰로 문학을 연구하다보면 미학적 범위나 역사적 근거를 소홀히 하게 된다. 그리고 문학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문학적 가공물로서의 필수적 내적 경험을 전환시키는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무릇 문학의 학문적인 연구에 있어서의 자연적이며 현명한 출발점이란 문학작품 그 자체의 해석과 분석이어야 할 것이다. 결국 작가의 생애와 작가의 의식과 사회 환경과 문학이 산출되는 전 과정에 우리들이 지니는 관심이란 작품 그 자체의 심층을 파헤침으로써 올바른 의미가 부여된다.   ( 국문학과 졸업생들에게 제출하는  ‘쉽게 쓰는 논문’에 관한 보고서를 이만 마친다. 긴 글, 논문 정도의 긴 글로 쓰고서도 부족하기만한 듯해 죄스럽다. 학문이 짧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작은 부분이지만 방송대학 국문학과에서 졸업을 앞둔 이들에게 논문작성의 지침이 되고 나아가 국문학도로서의 식견이 커지고, 문학에 대해서 깊이 있는 견해를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나도 긴 세월 노력하면서 발전하고 싶다.-2006년 3월 17일 정원철 )     참고문헌:    이호권, 논문 특강 자료. 최미화, 논문 특강 강의록,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연구와 논문, 1997년 김형순, 논문 10%만 고쳐써라, 야스미디어, 2005년 전규태, 국문학의 방법론 연구, 평민사 하창수, 논문 작성법 , 예하 미디어, 2003년  
110    수필의 상징과 은유 - 남홍숙 댓글:  조회:1125  추천:0  2021-05-19
수필의 상징과 은유 - 남홍숙   1. 로그인   상징과 은유로 쓰여 진 문학은 읽는 맛과 느껴지는 멋이 있다. 요리에도 독특한 향과 세련된 장식은 맛과 품위를 더해준다. 하여, 문학에서 상징과 은유는 요리에서 향신료와 데코레이션의 역할을 한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질서 속에서도 상징이 사라진다면 사회는 더 복잡하며 더 허술해지고 우리 가슴은 사막처럼 서걱거릴 것이다. 신호등 앞에서 멈춤을 상징하는 ‘빨간 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미소의 상징 ‘모나리자’가 자취를 감춘다고 생각해보라. 이렇듯 상징은 일시적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 졌더라도 우리에게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머니’라는 단 세 음절의 상징으로서 어머니의 품과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훈훈해진다. 세계 각국의 언어도 상징에 속한다. ‘개’라는 동물의 범주, ‘홍길동’이라는 이름의 개별체도 모두 상징이다. 카프카의 잠자와 신화 속 이카루스는 허무의 바다로 추락한 낙오자의 상징이며 지킬과 하이드는 선과 악의 상징이다. 문학작품 속에서는 원관념이 생략된 은유를 상징이라 한다. 역으로 은유는 상징에 원관념을 더한 작품이 된다. 은유에 의해서 “우리의 눈은 호수”가 된다. “모습은 천사”가 된다. “마음은 갈대”가 된다. 세상의 문법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논리의 축약을 은유를 통해서 당당히 드러낸다. 겨울의 바싹 마른 잎에서 여름 동안 담고 있던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보이는 것은 우리의 언어 속에 은유가 들어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필이 문학으로서 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서는 우선 진부한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식상한 이미지, 구태한 습관적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원적이고 다각적이며 다층적인 생각으로 빈곤하지 않은 수필언어의 옷을 입혀야 한다. 수필작가는 현실에 놓여 진 리얼리티의 틈새를 포착하여 인간 삶의 본질을 찾아내고 우주와의 소통구조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한다.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끌어내어야 한다. 작가의 내면세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표현하여 언어의 미감을 살려내야 한다. 작가의 경험, 독서를 토대로 한 상상을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상징과 은유를 수필문학의 배필로 삼아야 한다.     2. 수필의 상징(symbol)   상징법의 종류로는 기호적, 제도적, 원형적, 문학적 상징이 있다. 기호적 상징은 부호와 도형, 기호로써 현상을 나타낸다. 십자가 - 기독교, 국기 - 나라, 빨간색 신호 - 멈춤, 초록색 십자가 - 병원 등은 기호적 상징이다. 제도적 상징은 반복되는 사회적 관심에 의해 생겨나서 대중적이고 보편화된 상징이다. 고착화된 상징으로서 독창성이나 참신성이 없어 인습적 상징으로도 불린다. 비둘기 - 평화, 독수리 - 강경파, 소나무 - 절개, 매화 - 선각자로 표현된다. 원형적 상징은 문화, 지역의 한계를 넘어 전 인류의 보편성을 띤다. 수학의 기호, 과학의 기호가 이에 속한다. 또 상(上)의 개념으로서 날아오르는 새, 별, 산, 나무 등으로 표상하며 이들은 희망이나 선(善)을 상징한다. 하(下)의 개념으로는 지옥, 죽음으로서 무질서와 허무를 상징한다. 문학적 상징은 개인적 상징이라고도 하며 독창적이며 참신한 이미지로써 행간의 공명을 높여준다. 구체적 사물로 다른 범주의 의미를 암시, 환기하는 상징법이다. 이상, 위의 모든 상징법은 원관념이 생략되고 보조관념만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은유법과 다른 점이다. 본고에서는 수필 작품 속에 나타난 상징의 효용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첫째, 하나의 상징으로 주제의 함축을 강하게 부각시킨 작품, 둘째, 한 작품 안에 다른 몇 개의 상징들을 배열하고 각각의 차이성을 이용하여 작품을 이어간 경우, 셋째, 작품 속 상징물이 다른 의미체로 변용된 경우, 넷째, 상징, 그 하나에서 다의성을 띠는 작품을 선해서 살펴본다.     1) 상징의 함축성 두 여학생과 남학생이 있다고 하자. 남학생 이름은 동이이며 여학생 이름은 청이이다. 그들의 본래 이름은 길동과 심청이다. 길동은 ‘길을 가는 아이’라는 의미이고 심청은 ‘마음이 맑다’는 의미로 함축된다. 「흥부전」에서 흥부는 ‘흥하는 남자’이고 놀부는 ‘놀고먹는 남자’로, 이름 속에 함축적인 상징이 들어있다. 「흥부전」이라는 서사 속에 그들의 이미지를 유사하게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길을 건너려면 신호등에 달려있는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 길을 건너겠다는 상징을 버튼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동안 그것을 몰라 한참을 신호등 앞에 서 있었던 아이러니를 범한 적이 있다. 이처럼 주관적 경향이 강한 상징성은 “어떤 때는 함축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해 손해나 봉변을 당하기도하고 어떤 때는 함축의미를 환히 알고서도 모르는 척 눈 감기도 한다. 인간의 멋과 맛이 함축의미 속에 있다.”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곳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그의 꽃병에 물을 갈아준 뒤에, 가지고 갔던 꽃 중에서 두 송이를 꽂아놓았다. 그리고 딸을 두고 오는 어머니 같이 뒤를 돌아보며 그 집을 나왔다. - 피천득 「장미」 일부     위의 수필에서 보조관념 ‘장미’는 원관념 ‘소시민적 행복’을 상징한다. 작가는 행복이라는 원관념을 작품 뒤로 숨기고도 행복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환기하고 있다. 장미와 행복은 유사성이 없음에도, 콜라주기법으로 엮은 몇 개의 서사가 지닌 상징적 함축에 의하여 작품의 주제가 선명하게 요약된다. 작가가 “잠이 깨면 바라보려고 산 장미 일곱 송이”를 거리에서 사람들이 보고 여학생이 보고 지나간다. 그러다 길에서 만난 Y가 “언제나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작가는 그에게 행복의 상징인 장미 두 송이를 건넨다. 장미를 받은 Y도 행복해지고 그것을 건넨 작가도 행복해졌을 것이다. 이어서 장미 두 송이를 C라는 친구의 빈 하숙방에다 꽂아두고 나온다. 또, 애인을 만나러 가는 K에게 남은 장미 세 송이를 다 준다. 빈손이 된 작가 자신은 “장미 한 송이도 가져서도 안 되는 것 같아 서운하다”는 반어적 결론으로써 잔잔한 행복의 공명을 전해준다. 작가는 장미를 보조관념으로 하여, 행복의 이미지를 스스로 피어나게 한다.     2) 상징의 차이성   어느 날 청이는 동이를 찾아가 모호한 문제를 낸다. “너, 차이가 뭔지 알기나 해?” 그러자 동이는 5분 정도 심사숙고 한 후, 긴 설명을 시작했다. “소쉬르라는 기호학자가 있었어. 그는 ‘서로 다른 것’을 부정형(negation)에 의해서 정의한 사람이야. 누군가 소쉬르에게 ‘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개는 돼지가 아니다, 닭이 아니다, 소가 아니다, 말이 아니다 등의 부정의 연쇄로써 말이야. 다른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개가 되는 ‘개’의 값은 다른 어느 것과도 치환되거나 혼동 될 수 없는 ‘개’ 고유의 가치임을 그는 주장했어. 네가 묻는 차이란 나는 너가 아니기 때문에 나일 수 있다는 거, 소쉬르에 의하면 그것이 차이이지.” 그러자 청이는 “그럼 난 네가 아니기 때문에 나구나. 그래, 바로 그거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너는 너고 나는 나야” 하며 의기양양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 엄마는 나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존재로 생각하셔” 한다. 사실 청이 어머니에게 청이는 공주보다 더 귀하고 오드리 헵번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아닌가. 상품의 광고도 차이성을 이용한다. 같은 재료를 쓴 향수이지만 이름만을 달리 붙여서 서로 다른 상품인 것처럼 만든다. 수십 종류의 커피에 대한 광고도 바깥으로 드러나는 차이를 만들기 위하여 엄청난 돈을 투자하며, 소비자는 바로 이 피상적 차이를 산다. 그렇다면 동이는 청이에게 어떤 차이성을 주문할까.     수용하는 삶도 삶이기에 현실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흐르는 대로 떠밀려가는 대로 놓여진 상황에 순종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동안 바람막이로 존재해 준 남편, 어설픈 나를 어머니로 거듭나게 해준 1남 3녀의 자녀들, 미흡한 나를 문단의 길로 이끌어준 스승, 주변에서 조언과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 그러나 모든 것은 나를 나답게 주어진 길에 고개 숙이게 하지만, 진정한 의미로서의 나는 아니다. 나는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익사직전의 생명에서 탈피하고 싶어 황금빛 생명선, 붉은 빛 구명조끼를 입고 있을 뿐이다. (중략) 나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전혜린이나 루 살로메 같은 여자가 되거나, 이름 없는 수녀나 비구니가 되는 것…. - 오차숙 「차라리, 구명조끼를 벗고 싶다」 일부     오차숙의 이 작품에는 5갈래로 나누어진(상징의 차이성을 지닌) 인생행로가 등장한다. 익사직전의 생명으로서 붉은 색 구명조끼를 입고 자신만의 존재 찾기를 희구하는 작가 자신의 인생을 비롯하여 전혜린, 루 살로메, 비구니, 수녀의 인생행로이다. “인생행로”라는 원관념으로 상징된 이들 네 종류의 보조관념 군(群)은 작가가 희구하고 있는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조관념으로 채택한 전혜린, 루 살로메, 수녀, 비구니의 인생행로 또한 각각 이질성을 지닌다. 이들은 오차숙의 수필작품에 들어와 각각의 차이를 발생시키며 그들의 삶을 의미화 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아닌 네 갈래의 다른 삶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며 존재의 비상구인 구명조끼를 입고서 전혜린, 루 살로메, 비구니, 수녀적 삶의 바다를 향해 헤엄쳐 간다. 그들의 삶을 거울로 삼아 오차숙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가는 것이다. 위에서 동이는 청이가 아닌 것처럼, 오차숙이 전혜린도, 루 살로메도, 수녀도, 비구니도 아니다. 서로의 인생행로가 전혀 다르다. 하여, 오차숙이 동경하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전혜린의 낯선 곳에서의 모험적인 생과 루 살로메의 지적인 사람들과의 교분을 희구하고 있음이 암시된다. 또, 수녀, 비구니가 상징하는 삶은 속물적 일상에서 탈출하여 혼자일 수 있는 곳에서 영성을 가꾸어 가길 원한다는 암시이다. 독자는 오차숙이 설정해놓은 이 5개의 다름 속에서 무한한 인생행로를 상상을 할 수 있다.     3) 상징의 변용성   어느 날 동이는 공원에서 청이를 만난다. 청이는 동이의 모자 쓴 모습을 보고 “멋있구나” 한다. 모자챙을 거꾸로 쓴 동이의 모습이 색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자를 자세히 보기위해서 동이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 청이는 “이거 너희 학교 교모 아니야?” 한다. 사실 동이는 자기 학교를 상징하는 교모에 온갖 배지를 주렁주렁 매달아서 나들이 모자로 변용시켜 돌려쓰고 나온 것이다. 동이의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청이는 그런 동이에게서 참신한 멋을 느꼈다. 그러나 청이는 동이의 변용한 모자가 상징하는, 깊은 뜻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았다. 다음 날 동이는 자신의 교모를 원 상태로 되돌려놓기에 바빴을 것이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에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은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 이양하 「나무」 일부     동이의 학교를 상징하는 교모가 나들이용으로 변용되듯이 이양하의 수필에서 ‘인생’을 상징하는 나무는 덕 있는 나무에서 고독한 나무로 변용되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등가물로서 나무를 끌어와 자신의 내면세계를 객관화하고 있다. 나무를 그저 바라보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자기화하고 있다. 나무가 지닌 독특한 이미지를 세밀히 묘사하여 한 인간과 긴밀하게 관련지음으로써 문학적 형상화를 하고 있다. 노드럽 프라이(N. Frye)는 “모든 작가는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상상력을 남달리 갖고 있는 사람이며 작가는 서사를 직접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유나 상징, 객관적 상관물을 끌어들여 상상하도록 그들의 언어를 바꾸어야한다”고 했다. 문학 장르에서 나무는 다양한 의미체가 되고 있다. 인격을 지닌 한 인간이 되거나 우주 자체로서 그 안의 물질을 생성, 소멸시키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이양하의 「나무」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인생관을 나무의 덕성과 견인성에 비유하면서 자아성찰에 이르는 상징체로 표상된다. 나무를 다원적인 입장에서 관조하며 바라보던 작가는 자신의 삶의 좌표를 나무의 덕성과 견인주의에다 안치 시키고 있다. 인간보다 우위에 놓여 진 나무는 물, 흙,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불만족을 말하지 않는 덕스러운 인간으로 상징되다가, 안개, 구름,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에 잠기면서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며 고독을 즐기는” 인간으로 변용된다.     4) 상징의 다의성   동이라는 남학생이 청이라는 여학생에게 아르바이트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장미 한 다발을 선물한다. 그러자 청이는 “난 장미는 정말 싫어. 매번 볼 때마다 붉은 색 피가 떠오르거든” 했을 때 청이에게 장미는 ‘피’로 상징된다. 그러나 동이는 그것이 ‘온 리(only) 사랑’의 상징이었으리라. 동이는 마음속으로 ‘뉘앙스 제로인 바보맹추!’ 라며 청이를 차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뉘앙스와 멋을 가지고 출발하는 상징은 개인적 경험에 의하여 상호 해석이 달라진다. 이것이 상징의 다의성이다. 실제로 “시인 릴케가 장미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서 생손을 앓다가 (사실은 파상풍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장미에서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문학의 다의적인 상징성은 독자의 심층에 들어가 심원한 반응을 일으킨다.     사랑이 떠나는 소리는, 20층 건물이 파괴공법으로 순간에 무너지는 소리다. 그 굉음이 귀에 남아 밤이면 이명으로 찾아온다. 끝없는 울림 울림. (중략) 길 잃은 혼은 ‘빨간구두’를 신고 숲속을 헤매다 어두운 숲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같은 길에서만 맴돌다 지쳐 가시덤불 위에 넘어졌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두 손을 모으고 그곳에 있던 맑은 샘물로 타는 목을 축인다. 그때 멀리서 한줄기 빛이 보인다. 빛은 안개를 거두어 간다. 두려움에 떨던 나무의 일그러진 검은 그림자가, 지금은 반짝이는 초록색 잎들이다. 빛 안에서 모두가 하나다. 사랑도, 그리움도, 아픔까지도. - 조재은 「언제나 새롭고 가장 오래된 주제」 일부     윤오영은『수필문학 입문』에서 “내가 원하는 수필은 시로 쓴 철학이 아니면 소설로 쓴 시다”라고 했다. 이는 함축적 언어로서의 긴 여운을 주는 수필을 의미한다. 상징의 묘는 윤오영이 희구하는 언어의 경제성 원리에도 부합되며 수준 높은 문학수필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위 인용한 조재은의「언제나 새롭고 가장 오래된 주제」는 윤오영이 지향하는 위 수필론에 부합되며 작품 전체가 은유로 쓰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적 수필로서, 행간에 현의 떨림 같은 울림판을 형성하고 있다. 위의 작품에서 “한줄기 빛”이라는 보조관념은 다의성을 내포하고 있다. ‘믿음’, ‘희망’, ‘아가페적 사랑’이기도 하며 그가 도달하고자하는 ‘절대이상’을 원관념으로 한다. 조재은이 언명한 “빛 안에서 모두가 하나다. 사랑도, 그리움도, 아픔까지도”에서 빛 대신 믿음, 희망, 아가페적 사랑, 절대이상을 대입시켜 볼 때, 상징의 다의성이 독자에게 얼마나 상상의 지평을 열어주고 창의적 세계로 안내하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 다의성을 지닌 상징은 작가 자신이 직접 조립해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숨결에 따라 독자가 자의적으로 해독하여 의미를 재생산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행간에 침묵의 공간과 정서의 긴장감이 살아 숨 쉬게 된다. 긴 설명은 행간의 긴장을 빼앗아 갈 우려를 지니고 있는데 비해 위 조재은의 작품처럼 상징의 묘로 부려쓰는 문학작품은 보다 고도의 장력을 지닌 감동을 유발할 수 있게 된다. 독자들은 상징의 다의적 그물 안에서, 읽으면서 구성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게 된다. 이어령은 어느 강단에서 “작가는 빵 속에 초원이 있고 바람이 있으며 호밀이 있음을 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는 작가의 심오한 영성을 중요시 함이다. 한 그루의 나무로써 생을 요약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내밀한 영안으로 포착해내는 상징적 언어의 조합을, 수필 작가들은 끓임 없이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3. 수필의 은유(metaphor)   윤재천은「접목(接木)을 통한 발전의 모색」에서 “수필은 처음부터 잘못된 관념의 늪에 빠져있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수필관은 창작성 - 예술성보다는 경험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라는 점에 더 관심을 보여왔다”고 했으며 또 「좋은 수필」에서 “수필은 함축의 묘가 있어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야 한다”고 했다. 윤재천은 평소 그의 수필론에서 시적수필, 소설적 수필을 강조해 온 터라 이는 그가 수필의 문학성을 염원하고 있음이 감지되며 그 담론의 기저에는 은유적 표현의 중요성도 담겨있다. 그러나 움베르토 에코의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를 조심하라”고 한 경구도 염두에 두고서, 수필작가는 언어의 조탁에 쉼 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은유는 “익히 아는 어떤 체험에 의해서 잘 모르는 다른 체험을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기호체이다.” 이러한 은유는 연상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가령, “보도 기자는 상어다”라고 했을 때 상어의 냄새 맡고 물어뜯고 씹어대는 특성이 연상적 치환에 의해서 기자의 낌새채고 들춰내고 비판하는 은유적 변신을 하는 것이다. 기자와 상어의 비슷한 행동양태에 의하여 은유가 탄생된 경우이다. 이 두 기호는 연상법칙에 의해 연결된다. “판이하게 서로 다른 것이 어떤 비슷한 특성에 근거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은유는 공상적이고 초현실적 효과를 사람의 마음에 일으킨다. 이 효과가 은유의 힘이다. 하지만 은유는 두 기호의 어떤 공통적 특성만을 돋보이게 할 뿐, 그 외의 다른 특성들은 밑보이게 하거나 숨긴다.” 예를 들면 기자가 매일 물어뜯고 씹어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감시의 기능도 하는 것이다. 은유에는 반드시 원관념(기자)과 보조관념(상어)이 함께 등장한다. 또, 은유에는 관습적 은유, 비관습적 은유가 있으며 관습적 은유에는 구조적, 지향적, 실체적 은유가 있다.     1) 관습적 은유 관습적 은유는 인간의 실제체험에서 연유된 것들이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은유라는 특성으로 분류하기가 새삼스러울 때가 생기기도 한다. 이에, 작가들은 창의적으로 형상화된 은유의 조립에 고심할 필요가 있다.     a. 실체적 은유   실체적 은유는 사건, 관념, 감정 등을 실체화 한다. 사랑, 인내, 정서, 안정, 평화, 행복 등을 실체적인 것들로 환치한다. “사랑을 찾는다” 할 때, 사랑을 마치 연장통에 든 도구이듯 찾는 방식으로 구체화하거나, “사랑이 부족하다”는 은유로 사랑을 정량화 한다. “사랑은 잔인하다”, “사랑을 찾아 나섰다”라는 표현은 모두 실체적 은유에 속한다. 찬송가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는 은유에서 날마다 나아간다고 하지만 우리의 발은 항상 땅위에 붙어 있다.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한다. “은유는 분명히 우리의 관념을 날마다 더 고결하게 한다. 생각이 고결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땅은 점점 더 높은 곳만큼 소망스러운 곳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넷째사람이 셋째 사람 옆의 빈자리에 빛을 완전히 차단하며 매달려 올랐습니다. 서로서로 통성명을 합니다. 첫째 승객의 이름은 감사이고 둘째 승객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벽을 보고 앉은 승객의 명함은 이해이고 빛의 길을 완전히 차단한 넷째승객은 탐욕이라고 합니다. 요지가지 이름의 인간이 만나서 천태만사 인생사를 연출하는 게 인생행로지요. 철마는 달리기 시작합니다. 가속도는 날개가 되어 철마를 질주시킵니다. 시작은 미약하게 출발하지만 이내 칙칙칙 보이지 않는 미래로, 가야만 할 세상 속으로, 갈 수밖에 없는 내일로 질주합니다. 달리는 철마에 실린 몸이 흔들흔들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빛이 들어오는 쪽엔 의지할 벽이 없습니다. 탐욕이 추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가 싶더니 끝내 옆 사람인 이해조차 끌어 잡고 나락으로 튕겨지고 말았습니다. - 김용옥 「빛」 일부     위 작품은 말미에서 “이 수필은 꿈의 과정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 했다. 이로써 꿈을 수필작품으로 형상화한 그 자체로서도 실체적 은유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수필에서는 “꿈이 현실”인 것이다. 또, 무의식을 그대로 수필로 전이시킨 작품으로서 현실의 욕망이 덧입혀진 가식의 덩어리가 제거되고 난 순수의 응결체로도 효력을 지닌다. 작가는 꿈의 모티브를 통해서 발현된 이미지를 “그대로” 은유의 방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인생행로’를 은유한 ‘철마’ 위에 감사, 사랑, 이해, 탐욕을 승객으로 태운다. 이는 추상어를 구체어로 환치하는 수법이다. 그리고 그 관념어들(추상어)은 생명체로서 통성명까지 하는 장면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첫째 승객의 이름은 감사이고 둘째 승객의 이름은 사랑이다. 독자는 김용옥이 설정해놓은 실체적 은유라는 이 창을 통해 사랑, 감사, 이해, 탐욕의 현상을 실제로 볼 수 있다. 그들이 탄 철마는 아슬아슬하다. 왜냐하면 그 철마는 벽이 없이 흔들흔들 흔들리면서 달리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인식된다. “탐욕이 추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가 싶더니” 끝내 이해까지 끌어안고 추락하게 만든 장면으로 탐욕의 본질적인 속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위 작품에서 철마는 공간을 달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달린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행로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이르러 “사랑이 곧 빛”이 됨을 언술하는 장치는 구성의 묘를 높여준다. 의식의 근원적 지향점을 실체적 은유를 통하여 표상하고 있다.       b. 지향적 은유   지향적 은유는 공간적 지향성을 유발하는데 이것은 실제적, 문화적 체험에서 기인한다. 한 가지 예로써 레이코프와 존슨은 “상-하 지향성 체험으로부터, ‘의식은 위쪽에 있다’라든가 ‘무의식은 아래쪽에 있다’ 같은 은유가 생성되었다고 한다.” 밝은 빛은 위쪽으로부터 오고 어둠은 아래쪽(지하)에 있다는 체험으로부터 위쪽은 좋고 아래쪽은 나쁘다, 라는 은유가 생겨난다. 영은 상방성, 육은 하방성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지향적 은유는 물리적 체험의 세계와 관념적 체험의 세계를 연결해주지만, 이 두 다른 세계의 독립성을 전제하고 있다. 저 위쪽의 관념적 천국을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은유는 무의미해진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늙은 가로등’이란 작품이 있다. 밤이면 가로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마가 넓은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된 작품이다. 가로등은 그 고독한 청년의 허연 이마에 불빛의 쓸쓸한 키스와 쓸쓸한 축복을 부어주었다.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면서 젊은 청년의 이마에 비쳐주는 가로등의 쓸쓸한 불빛의 키스를 내 이마 위에도 느꼈다. 다만 내게는 그것이 가로등의 쓸쓸한 불빛이기보다 오히려 신神의 너그러운 축복이요, 내 삶이 내게 비쳐주는 빛과 같았다. 나는 길고 아득한 인생 여로의 대목마다 가로등이 켜 있기를 빌었다. 참으로 가로등을 멀리서 바라볼 때, 그것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은은히 비치는 별빛이다. 나는 그것을 목표로 어둔 길을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게 된다. - 박목월의 「가로등」 일부     가로등을 원관념으로 한 위 작품은 상방향적인 보조관념을 교체하면서 작가의 소망을 표상하고 있다. 가로등은 신의 축복 → 별빛 → 희망이라는 관념적 세계와 등가성을 가지고 상향적인 공간성을 획득하고 있다. 가로등과 신의 축복, 가로등과 별빛, 가로등과 희망, 그 구심점에는 작가의 소망이 있기에 이와 같은 보조관념이 탄생한다. 인간의 소망은 상방향(위)쪽에 있음을 인식하는 지향적 은유로써 작가의 내면을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로등은 신의 축복이며, 가로등은 별빛이고, 가로등은 희망으로 은유되고 있다. 위쪽에서 빛을 비쳐주는 가로등의 현상, 우리가 올려다보는 상방향으로서의 수직적 공간, 그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종국에는 ‘희망’으로 은유된 것이다.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수직의 다리로서의 가로등이 작가의 연상적 치환에 의해 신의 축복, 별빛, 희망이라는 지향적 은유를 탄생시키고 있다.     c. 구조적 은유 구조적 은유는 부분, 단계, 목적 같은 것을 표현할 때 쓰인다. “인생은 전쟁이다”라고 했을 때 그에게 인생은 치열하고 야비한 싸움터가 된다. 그러다 그가 목적을 달성했을 때는 “인생은 연극”이거나 “인생은 천국”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은유는 자기 달성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은유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 판도가 달라진다.”     원이 순환을 반복한다. 직선이던 팔과 줄이 둥근 원으로 창조되는 줄넘기에 나도 마음의 발을 들여놓고 푹 빠져있다. 아주 오랜만에 맛보는 순수의 미학이다. 아이들과 줄이 서로에게 몰입하여 지구를 돌리는 동심의 BE - 존재로써 아름다움. 원은 원으로 있어라. 무엇이 환이 될까. 원이 평면이라면 환은 부피의 이미지다. 손가락 두 개로 그려지는 고리環는 단순한 원이 아니라 돈을 지칭한다. 톱니바퀴처럼 세상과 맞물려 세상을 돌리고 자신도 세상 따라 도는 돈. - 남홍숙 「원 VS 환」 일부     위의 글은 ‘원’圓이라는 원관념과 ‘환’環이라는 원관념이 서로 대척관계에 놓여있다. 원의 보조관념은 동심의 "BE - 존재로써 아름다움"으로, 환의 보조관념은 돈의 세계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족쇄의 HAVE - 소유욕에 눈 먼 만국 공용어”로서, 세계를 원 vs 환의 이중 구조로 분류해놓고 있다. 원은 줄넘기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의 세상이며, 환은 돈 넘기에 빠져있는 어른들의 세상이다. 원은 “동심의 BE- 존재로써 아름다움”으로 은유되고, 환은 “족쇄의 HAVE - 소유욕에 눈 먼 만국 공용어”로 은유된다. 이로써 이 수필이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한 부분을 표상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원 vs 환」이라는 게임과도 같은 제목은 공평한 출발을 위함이고 객관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드러냄이다. 결국 이 작품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인생은 놀이”이고, 어른들에게 “인생은 돈”으로 은유된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물신화 된 사회 구조의 단면을 구조적 은유로 나타내고 있다.     2) 비관습적 은유 비관습적 은유는 공상과 창조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유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일상이라는 갇혀있는 틀거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법이다. 그러나 관습적 은유와 비관습적 은유를 구분하는 확실한 선은 없다. 왜냐하면 은유는 문화적 체험에 의해서 생성되기 때문에 한 문화의 관습적 은유가 다른 문화 입장에서는 비관습적 은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모든 이론은 은유이다. 은유가 지니는 표상성의 약점이나 허점에도 불구하고 은유에 의하지 않고는 문학작품이나 문학이론을 만들 다른 방도가 없다. 은유의 허점을 어느 정도 메우고 그것의 약점을 보강하는 수단은 담론이다. 은유로 축조된 세계를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한번 더 살아야한다면 거품으로 태어나고 싶다. 왜 하필 거품이야 하고 묻는다면, 거품이 어때서? 라고 말하겠다. 일생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누듯, 내가 거품이라면 유년기는 ‘치약거품’으로 자라겠다. 누군가 튜브에서 치약을 짜 입에 문다. 아래위로 칫솔질을 한다, 거품이 하얗게 일기 시작한다. 향긋한 냄새와 함께 부푸는 거품은 입 속의 치아를 훑어보지만 정말 닿고 싶은 곳이 있다. 사람들의 하얀 미소와 깨끗한 마음에 닿고 싶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중략) 청년기는 ‘맥주거품’으로 지내겠다. 학구열로 불타는 나이에 알코올로 세월을 보낼 거냐고 놀라겠지만 아니다. 감수성이 예민하여 상처받기 쉽고, 흔들리는 자아로 방황 속에서 길을 헤맬 때, 내게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절실하다면 맥주거품으로 나설 일이다. 둘 셋이나 여럿이 모여 축배의 잔을 들며 생의 절정을 향해 결속하는 그들 자리에 끼면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른다. (중략) 장년기는 ‘비누거품’으로 보내겠다. - 김희수 「거품이 되고 싶다」 일부     다시 태어난다면 이양하는 나무로 환생하고 싶다고 했으며 김희수는 거품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거품은 사치이거나 진실의 부풀림으로 은유된다. 그러나 누군가 문학작품에서 “거품은 사치다”라는 은유를 사용했다면, 그것은 식상한 은유, 관습적이고 제도적인 은유다. 위의 작품에서는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의 이상향을 얼핏 생각하면 누구나 꺼릴 수 있는 허상적인 거품으로 은유하고 있다. 비관습적 은유로서 진부한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하고 틀에 박혀있던 시각의 한계를 파격적으로 끌고 간다. 김희수가 열거한 거품은 세대에 따라 종류를 달리한다. 유년기 - 치약거품, 청년기 - 맥주거품, 장년기 - 비누거품이다. 기발한 이 은유의 소재가, 단순한 거품이라고 해서 외출복에 브로치를 바꿔 단 것처럼 가벼운 소품으로만 간주하면 그것은 독서의 결함이다. 거품이라는 다소 가벼운듯한 제재이지만 그 속에는 그의 자아를 동화시키고 자아를 투사하기 위한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이 글에서 거품은 존재의 본질을 천착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처럼 참신한 소재로써 생성되는 창의적 기법의 은유는 문학적 미감을 살려준다. 유년기에는 사람들의 하얀 미소와 깨끗한 마음에 닿고 싶어 치약거품으로, 청년기에는 축배의 잔을 들고 싶어 맥주거품으로, 장년기에는 젖꼭지처럼 또렷한 기억한 토막 건져 올리고 싶어 비누거품으로 환생하길 희구하는 그 발상이 얼마나 참신한가. 이는 비관습적 은유의 동력에서 기인한다.     4. 로그아웃   “피카소에게 있어 예술은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라 했을 때 피카소의 예술은 슬픔과 고통의 은유이자 상징이 된다. 그러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보고 평론가 판 라레아는 “이 화폭 속에서 말(馬)은 스페인 국가주의를 대표하고, 수소는 인민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해석을 했을 때, 화가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게르니카”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서슴없이 내뱉는 이 평론가에게 ‘이 수소는 수소이고, 이 말은 말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신분석가 라캉은 “의미는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의적이다”라고 했다. 본고에서 몇 작가의 작품을 추출하여 은유를 말하고 상징을 내세워 보았지만 이 원고 역시 인용의 표본이 된 원작자나 몇 독자 앞에서 실소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의미는 본질적으로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소를 하는 그 작가의 인상조차도 수필문학의 비관습적 은유이거나 다의적인 상징으로 차용한다면 어쩌겠는가. 필자의 논을 거부하는 그 작가가 이번에는 조소를 머금을 것인가. 하지만 수필문학의 상징과 은유는 일상의 빵과 물이기도 한 것을, 그것을 부정하겠는가. 문학적 형상화로써, 상징과 은유로써 부정해 보겠는가.     참고서적   김경용,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2004. 3. 박양근, 『좋은 수필 창작론』, 수필과비평사, 2004. 4. 윤오영, 『수필문학 입문』, 태학사, 2001. 5. 윤재천, 『윤재천 문학 전집 1』, 문학관, 2007. 4. 이가림, 『미술과 문학의 만남』, (주)월간미술, 2000. 7. 한상렬, 『디지털시대, 수필문학의 패러다임』, 신아출판사, 2003. 5. 이양하, 『나무』, 인터넷 검색창 피천득, 『인연』, 샘터, 2001. 10. 김용옥, 『생각 한 잔 드시지요』, 수필과비평사, 2007. 9. 김희수, 『한순간 그리고 오랫동안』, 문학관, 2006. 6. 남홍숙, 『물빛』, 문학관, 2006. 12. 오차숙, 『장르를 뛰어넘어』, 문학관, 2007. 12. 조재은, 『새롭고 오래된 주제』, 문학관, 2007. 12. 계간수필 29호, 박목월, 「가로등」 수필시대 13호, 이정심, 「수필에서 상징성의 위상」  
109    현대시의 난해성의 의의와 역할/김신영 댓글:  조회:1140  추천:0  2021-01-04
현대시의 난해성의 의의와 역할/김신영 현대시의 난해성은 늘 왈가왈부하는 논의의 대상이다. 시에 대한 논의가 변방으로 밀려나도 난해성에 대해서만큼은 문단을 달구는 요소가 된다. 그만큼 난해성에 더해지는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과 심화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라는 시대가 갖는 특성 중에는난해성으로 표출되는 언어와 또한 표현의 다양성으로 논의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현대는 시대적인 특성으로 인한 독자적인 언어의 다양성으로 산문시나 소설같은 시의 양산을 부추키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각양각색을 가진 다양한 독자성과 자기목적성으로 인해 앞으로도 시는 더욱 난해성을 추구해 갈 것으로 여겨진다. 유럽의 시들은 난해성을 논할 때 주로 상징주의 시인들을 떠올린다. 엘리어트의 대화시나 보들레르나 말라르메의 시에서 발견하는 의미는 사물의 외적 요소에 대한 것들이라기보다 내적인 요소에 대한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은 각계각층에 영향을 미치는 데 특히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재창조되어 그 의미의 심오함을 표출하고 있다. 이에 상징성으로 대표되는 애매성(曖昧性, ambiguity)을 앰프슨은 7가지로 정의하면서 시에서 애매성이 갖는 의미를 역설한 바 있다. 이것은 시의 애매성이 그 미묘한 차이로 인하여 의미의 확장과 풍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복잡성을 제공하여 본래 가진 의미를 확장시켜준다고 하였다. 이러한 애매성이나 상징이 시를 난해하게 하는 요소이다. 그로 인하여 시는 복잡성을 띠면서 의미를 확장하며 그때 내포된 의미로 인해 난해해진다. 이것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시에서 어떤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난해한 시는 자기목적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으며, 난해한 시의 탄생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말 할 수가 없다. 우연히 난해한 시를 쓴다는 것은 상징이나 모호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쓰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난해한 시는 시인의 뚜렷한 자기목적성을 동반하면서 탄생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시에서 난해성으로 논의되는 시인들은 대략 이상과 김수영, 김춘수, 김구용, 이승훈, 오규원 그리고 최근에 논의가 활발했던 황병승 등이 있다. 이들의 시도 산문성과 문법의 무시 또는 파괴, 그리고 상징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그 난해성에 대해 논란을 일으킨 바가 있다. 이 시인들의 시는 우리 문단에 일단락 나름의 공헌을 하였다. 새로운 시를 갈구하는 사회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의 패턴을 제공한 것이다. 독단적인 언어 독법과 새로운 인식의 틀을 구성하면서 파란을 불러일으킨 시가 이상의 「오감도」가 아닌가? 그것은 의미전달과 더불어 존재에 대한 인식의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김수영 시인도 자신의 시를 난해시로 규정하면서 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기도했다. 김수영의 「꽃잎.1」 이나 황병승의 시 「여장남자 시코구」등은 해석에 있어 여러차례 문단에서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특히 이상의 작품은 시의 진위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으며, 김수영은 난해시가 갖는 특성으로 상징성을 들어 논의한 바 있다. 또한 최근 황병승의 작품은 소위 ‘미래파’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평단은 미래파 시에 대한 논의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난해시는 무엇보다도 시의 해석에 대한 난삽함을 드러내면서 더불어 의미의 재생이나 새로운 의미의 탄생이 화두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보니 난해시는 일면 기교중심의 시로 흐른 면도 없지 않아 이 또한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해시는 시의 발달사에 비추어볼 때, 이상 시인을 선두로 꾸준히 다시 나타나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난해시는 더욱 늘어난 양상을 보인다. 시인들을 위한 말잔치라고 비판하는 독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시인들은 난해시를 즐기며 또한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술계에서 피카소의 그림은 추상화의 의미와 더불어 난해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미술계는 이미 난해한 미술이 오래전부터 나타나 일반독자와 거리두기를 시도한지가 오래 되었으며 미술은 추상미술이나 입체파로 진화일로에 있다. 그러나 문학계는 책읽기의 난독성을 제기하면서 독자층의 중요성이 확대되어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해시는 새로운 독자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 독자들은 일반적인 독자가 아닌 시를 이해하는 어느 정도 수준의 이해력을 가진 독자층이다. 그들은 시가 난해해 지는 것을 반긴다. 시가 갖는 신선함과 의외성은 문학의 창조적 역량을 충족시켜주는 까닭이다. 즉, 일반적인 서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세계를 난해시는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난해시가 갖는 문학적 특성이며 의의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앞서도 논의하였듯이 문학예술의 창조적 역량과 심화는 심오한 정신적인 세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정신적인 세계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현대시에서 서정성으로 나타날 때 단순화될 소지가 있으나 난해시는 이를 더욱 정교하게 복잡미묘한 세계를 표현한다. 정신병리적인 현상이나 신경증적인 강박증들이 시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4 내가 결석한 나의 꿈.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내 거울. 무능이라도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다. 나는 드디어 거울 속의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그에게 시야도 없는 들창을 가리키었다. 그 들창은 자살만을 위한 들창이다. 그러나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그는 네게 가리친다. 거울 속의 나는 불사조에 가깝다. 5 내 왼편 가슴 심장의 위치를 방탄 금속으로 엄폐하고 나는 거울 속의 내 왼편 가슴을 겨누어 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 그의 왼편 가슴을 관통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바른편에 있다. 6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받았다. 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악수할 수조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가 있다. 이상의 시제15호에서 하늘의 뜨거운 꼭지점이 불을 뿜는 정오/도마뱀은 쓴다/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에서 낯선 문법이 등장하면 사회는 열광한다.   프랑스의 누벨바그(전통적 영화에 대항해 1957년 태동한 영화운동)도 즉흥연출과 장면의 비약적 전개로 장 뤼크 고다르에게 대단한 영예를 안긴 바 있다.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독으로 누벨바그를 등장시키며 뉴웨이브의 기수로 불렸다. ) 개인의 실존문제를 주로 다루는 이 누벨바그처럼 난해시의 등장은 낯선 문법과 새로운 시의 양식으로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다시 말해 난해시는 낡은 것을 밀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은 주로 개인의 자아를 탐구하면서 새롭고 낯선 규범들을 창조하였다면, 황병승의 시에 등장하는 소수의 대변자인 캐릭터는사회의 탐구를 추구하는 측면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상의 시에는 자아의 분열적 증상이 나타나지만 황병승의 시에는 사회적인 병리현상과 더불어 신경증적인 반응들이 詩化된다. 어지럽고 복잡한 언어들 속에서 표상화되는 시어들을 살피다 보면 이 넓은 세상에 어지러이 불고 있는 갖가지 바람의 의미를 이해할 듯도 하다. 이것이 난해시의 의미이며 역할이라고 아니겠는가? 이제 난해시에 대한 나름의 논의는 일단락된 것이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난해시도 하나의 조류이며 새로운 현상으로 이미 시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영 (시인, 문학평론가), 충북 중원 출생 94년 《동서문학》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시집, 문학과지성사, 1996) 『불혹의 묵시록』(시집, 천년의 시작, 2007)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평론집, 한국학술정보, 2007) 중앙대 국문과 문학박사, 홍익대 등에서 강의 문학서재 : http://ksypoem.kll.co.kr   아시아문예 2008년 가을호  
108    시의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 - 박상천 댓글:  조회:1088  추천:0  2020-11-11
 시의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                                박상천     시를 일컬어 흔히 언어예술이라고 한다. 언어예술이라는 말은 시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언어는 시의 질료(material)이면서 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에 관한 이론을 공부하건 시 창작의 방법을 공부하건 그 출발은 언어일 수밖에 없다. 언어에 대한 공부는 시 공부의 출발이자 기초이며 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공부를 언어 공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은 먼저 언어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일상의 언어와 시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일이 시 공부의 출발이다.   1. 언어는 사물을 존재하게 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것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언어란 가장 쉽게 말해 어떤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 ‘하늘’ ‘책상’ ‘물고기’ 등 물질적인 것들을 일컫는 언어만이 아니라 ‘슬픔’ ‘기쁨’ ‘사랑’ 등 추상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언어들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감정들에 붙여진 이름이다.사물들은 이러한 이름(언어)에 의해 구별되고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언어에 의해 사물들이 구별되고 존재한다’는 말을 더 쉽게 설명해보자. 여기 우리가 ‘볼펜’이라고 부르는 사물과 ‘연필’이라고 부르는 사물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이 두 가지 사물들을 각각 ‘볼펜’ ‘연필’이라고 구분하여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저 ‘필기도구’라는 이름만을 붙였다고 한다면 ‘필기도구’는 존재하지만 ‘볼펜’과 ‘연필’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장롱’ ‘식탁’ ‘의자’라는 각각의 이름이 없이 ‘가구’라는 이름만 있다면 이 세상에는 ‘가구’는 있지만 ‘장롱’ ‘식탁’ ‘의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이름이 붙지 않은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므로 ‘필기도구’라는 이름이 ‘필기도구’를 존재하게 하고 ‘볼펜’이라는 이름이 ‘볼펜’을 존재하게 하며 ‘연필’이라는 이름이 연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하이데거는 언어를 일컬어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언어는 이처럼 사물에 붙여진 이름으로서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일부 어떤 사물이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하늘’이 된다.   2.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자의적이지만 사회적 약속이다   언어는 가장 쉽게 말해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사물과 사물의 이름인 언어의 결합 관계에는 필연성이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라고 부르는 사물과 ‘나무’라는 언어의 결합은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이다. 만약 ‘나무’라고 부르는 사물과 ‘나무’라고 부르는 언어 사이에 꼭 그렇게 결합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다면 세계 각국의 언어가 서로 다를 수가 없고 시대를 따라 언어가 변화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모두 알다시피 우리가 ‘나무’라고 부르는 사물을 15세기에는 ‘나모’라고 하였고 영어에서는 ‘tree’라고 부른다. 사물과 언어의 결합이 필연적이라면 동일한 사물을 이렇게 다르게 부를 수는 없고 또 다르게 불러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와 사물의 결합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것은 여기서 명백해진다.그러나 사물과 언어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해서 말하는 사람이 임의로 그 이름을 바꿀 수는 없다. ‘나무’를 ‘나무’라 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늘’이라고 한다면 의사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사물과 언어 결합의 자의성은 사회적으로 용인을 받아야 하고 용인을 받은 이름으로 사물을 부름으로써 우리의 의사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일상의 언어는 사회적 약속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3. 시의 언어는 사회적 약속을 깨뜨린다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분명 자의적이지만 그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속을 저버리면 의사 소통이 불가능해지거나 어려워진다. 그런데 시는 이러한 언어의 사회적 약속을 저버리고 그 약속을 깨뜨리려고 한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이 시는 우리가 잘 아는 유치환의 「깃발」이다. 그러나 우리가 제목도 없이 이 시를 처음 대했다고 했을 때, 이 시가 무엇을 대상으로 쓴 글인지 또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사전을 찾아보면 ‘기(旗)’는 “헝겊이나 종이 같은 데에 무슨 글자, 그림, 부호, 빛깔 같은 것을 잘 보이도록 그리거나 써서 막대 같은 것에 달아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쓰는 물건의 총칭”이라고 되어 있고 ‘깃발’은 ‘헝겊이나 종이로 된 기의 근본 부분’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들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유치환은 누구에게나 뜻이 통하는 이런 정상적인 언어를 버리고 깃발을 일컬어 ‘소리없는 아우성’이니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니 ‘백로처럼 날개를 편 애수’니 하는 말로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일까?한 마디로 말해서 시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를 ‘비틀고 왜곡’하는 것이다. 일상 언어가 지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사 소통’ ‘정보 전달’이라 할 수 있는데 의사 소통을 위하여서는 언어의 사회적 약속을 잘 지켜서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한 일상어의 사용법을 ‘정상적 언어 사용법’이라고 한다면, 시의 언어는 그러한 정상적 언어 사용법을 어기고, 부수고, 비틀어 비정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시는 일상 언어의 정상적 용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회적 약속을 깨뜨리며 비정상적 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과 둘째, 그러므로 시는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효율적이거나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4. 시의 언어는 왜 사회적 약속을 깨뜨리는가?   언어가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흔히 언어와 사물을 동일시하기 쉽다. 그러나 언어가 곧 사물은 아니다. 언어는 ‘사물의 공통적인 속성에 붙여진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예를 들어 여기 ‘연필’ 두 자루가 있다고 하자. 이 두 자루의 연필은 각각 별개의 사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두 가지 별개의 사물을 모두 ‘연필’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이러한 언어 사용법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두 자루의 연필 중에 하나를 A라 하고 또다른 하나를 B라고 하자.그러면 우리의 언어 사용법으로 볼 때, A〓연필, B〓연필이고 이 명제에 따라 ‘A〓B〓연필’이라는 명제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A와 B는 서로 다른 사물이므로 ‘A〓B’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없다. 왜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가? 그 까닭은 ‘A〓연필’, ‘B〓연필’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사물과 언어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언어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며 또한 사물 개개의 이름이 아니라 ‘사물의 공통적인 속성에 자의적으로 붙여진 이름(기호)’에 불과한 것이다. ‘연필’이라는 언어는 연필 하나하나에 붙여진 개별적인 이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연필의 공통적 속성(흑연 심을 가느다란 나무때기 속에 넣어 만든 필기도구)에 붙여진 이름인 셈이다.개별적인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공통적 속성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언어의 성격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근본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고 불완전한 것이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 A가 ‘나는 슬프다.’고 말했다. B도 ‘나는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이 말한 ‘슬픔’은 동일한 것일까? 이 두 사람의 ‘슬픔’이 동일한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슬픔’이라는 말은, 모든 이들이 가진 그 다양한 ‘슬픔’의 공통적 속성(뜻밖의 일에 낙심하여 눈물이 나거나 한숨이 나오며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느낌)을 뽑아내어 ‘슬픔’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슬프다’ 라는 말을 가지고 자신이 지닌 개별적인 ‘슬픔’의 진실을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시는 일상의 언어가 지닌 이러한 추상성과 불완전성을, 언어를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슬픔. 그래서 사람들은 나의 슬픔의 진정한 모습을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한 노력이 시를 탄생하게 하였다. 그래서 시는 비유, 묘사, 상징, 이미지 등 다양한 시적 장치들을 동원하여 사물의 공통 속성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 개별적 사물에 적합한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에서는 일상 언어의 정상적인 사용법이 아닌 언어의 비정상적 사용법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는 셈이다. 5. 시의 언어는 의사 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니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의사 소통’ ‘정보 전달’을 위해서는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사회적 약속을 지켜 언어를 정상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시는 이러한 언어의 정상적 사용법을 무시하고 깨뜨리고 왜곡한다. 따라서 시는 언어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언어와는 달리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위해서는 그다지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다시 말해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위해 시를 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정상적 용법으로 가장 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그러나 시는 앞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의사 소통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 결코 아니다.그렇다면 시는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시도 언어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 의사 소통의 목적을 위해 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의사 소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때 시는 일상의 언어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의사 소통의 일반적 원리를 생각해보자. 의사 소통이란 발신자(말하는 이)가 어떤 ‘매체’를 사용하여 수신자(말 듣는 이)에게 ‘내용’을 보내고 수신자는 매체를 통해 받은 ‘내용’을 해독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러한 의사 소통의 과정이 제대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발신자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사용하여 수신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내야 하고 수신자는 발신자가 매체를 통해 보낸 내용을 발신자가 의도한 내용대로 해독하여야만 한다. 만약에 발신자가 보낸 내용이 수신자가 해독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거나 또는 발신자가 보낸 내용을 수신자가 임의로 해석하게 되면 의사 소통은 실패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 소통의 일반적 원리를 시에 적용한다면 시인은 발신자, 시의 언어는 매체, 독자는 수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의사 소통의 일반 원리에 따라 시인은 독자가 해독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고 독자는 시인의 의도에 따라 시를 해석해야만 한다. 그러나 시는 이러한 의사 소통의 일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어떤 세계를 창조하였고 독자는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인이 창조해 놓은 세계를 해독할 뿐이다. 즉, 시인은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고 독자는 시인의 의도를 알기 위해 시를 읽는 것이 아니다. 시는 시인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다.   6. 시의 언어는 체험하게 하는 언어이다   일상의 언어와 시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시의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그대로 시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기능 면에서 두 언어는 차이를 보여준다.언어는 크게 보아 세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정보 전달의 기능이고 둘째는 행위 요구의 기능이며 셋째는 체험의 기능이다.첫째 정보 전달의 기능은 일상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정보 전달을 위하여서는 언어는 가장 간명해져야 하며 사전적 정의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간명하면서도 효과적인 정보 전달의 방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다고 하자. 사전에는 ‘사랑’을 ‘① 아끼고 위하는 정성스런 마음 또는 그러한 일 ② 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 또는 그러한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이렇게 사전적인 정의를 통해 그 개념을 전달하면 읽는 이나 듣는 이에게 가장 간명하면서도 분명한 개념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 전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이러한 설명의 방법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설명의 한계로 먼저 우리의 감정이나 정서를 설명하는 데에는 따르는 어려움을 들 수 있다.앞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언어는 개개의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사물의 공통되는 속성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추상이란 ‘낱낱의 구체적인 사물에서 공통되는 속성이나 관계 따위를 관념적으로 뽑아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개개인의 감정 상태를 적확하게 표현해 보여주지 못한다.예를 들어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를 설명해보도록 하자. ‘나는 요즈음 A를 사랑하게 되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라고 설명을 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를 상대방에게 모두 전달할 수는 없다.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 명의 사람은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열 명이 지닌 각각의 사랑을 ‘구체적, 개체적’이라고 한다면 그 구체적이고 개체적인 ‘사랑’이 지닌 공통의 속성 즉,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이라는 관념을 뽑아낸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추상적 언어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의 언어는 나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있는 대로 모두 다 표현해 낼 수는 없다.둘째는 말하는 이가 말 듣는 이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거나 유도’하기 위한 기능이 있다. 그러나 그 행위를 실행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어디까지나 듣는 이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설득하여 행동하게 하기 위하여 씌어지는 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을 읽은 이들이 그 글에 설득당하거나 감동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간혹 그 글에 감동하여 그 글이 요구하는 어떤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언어 행위는 읽는 이의 ‘의지’라는 장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은 인간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 사랑하자.” 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워질 것인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 모두는 개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 요구나 유도 지향의 언어는 그 목적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시의 언어는 정보 전달이나 행위 유도를 위해서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의 언어는 어떤 기능을 하는 언어인가?먼저 다음에 있는 시 한 편을 읽어보자. 당신 곁에 머물면화상(火傷)을 입고. 당신 곁을 떠나면동상(凍傷)에 걸린다. 아나벨리 내 사랑. 아아, 불 ―이세룡의 「아나벨리」 이 시는 ‘사랑’을 ‘불’의 속성에 비유하여 시화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독자들에게 ‘당신 곁에 머물면 火傷을 입고 당신 곁을 떠나면 凍傷에 걸린다.’는 사실(정보)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사람 곁에 머물면 火傷을 입으니까 가지 말라거나 또는 사랑은 이렇게 좋은 것이니까 사랑을 하라.’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이 시인이 ‘사랑’의 속성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또는 ‘사랑’을 요구하기 위해서 시를 쓴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시는 산문의 언어, 일상의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랑의 아이러니를 단 6행으로 표현해내고, 세계 어느 나라 사전에도 없는 ‘사랑’의 속성을 새롭게 말하고 있다.이처럼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기존의 ‘사랑’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사랑’이라는 ‘존재’를 새로 태어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사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내는 ‘발견자’이며 그러한 발견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사물을 새롭게 존재하게 하는 ‘명명자’이기도 하다.따라서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또는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정보 전달의 언어가 지닌 관념성이나 추상성을 극복하려는 시의 언어는 새로운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일정한 사실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시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그러므로 시는 언어를 통해 언어가 지닌 추상의 세계를 극복하고 구체화한다. 이해의 대상은 될지언정 체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추상의 세계를 구체적인 체험의 세계로 만들어 준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이해하고 있었던) ‘사랑’은 ‘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 또는 그러한 일’이지만 우리의 구체적인 사랑을 만족시켜주는 설명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상을 추상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게 한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 보듯 한 시인에 의해 ‘사랑’은 새롭게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는 시인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그렇다면 체험이란 무엇인가. 체험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대상과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과 만나게 되고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데 이를 ‘지각’이라고 하며 이러한 지각을 통해 대상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 대상을 지각하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이 움직이는 어떤 느낌(감정)을 갖게 되기도 하고 이성적 사유를 하기도 한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체험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일한 체험들이 반복되면서 체험의 대상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상 만나고 있는 사물에 대하여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습관적이고 무감각해진 삶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자동화된 삶’이라고 말한다. 자동화된 삶 속에는 감동이 있을 수 없다. 어떠한 느낌도 주지 못하는 체험, 그 체험은 이미 체험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만 것이다.이렇듯 일상의 반복되는 체험은 우리의 삶을 무감각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려 줄 수 있어야 하고 대상과 삶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새로운 체험이야말로 시를 시답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 할 수 있다.‘사랑’이란 ‘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 또는 그러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를 쓰는 것도 아니고 여름에는 나무가 푸르고 가을에는 낙엽이 진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내가 실연을 해서 슬프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도 아니다. 시는 무디어져버린 우리의 감각을 되살려주고 느낌이 사라져버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시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그리고 세계의 사물을 새롭게 지각하고 체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시의 언어가 새로운 세계를 존재하게 한다. 우리는 시의 언어가 새롭게 존재하게 해준 세계를 만남으로써 현실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시는 기존의 삶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출처 : 나는..영혼을 적시며 서있다  |  글쓴이 : 푸른하늘저편 원글보기 [출처] 시의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작성자 최진연    
107    시와 예술, 그리고 신화 -유승우 댓글:  조회:1058  추천:0  2020-11-11
시와 예술, 그리고 신화                             유 승 우   1. 시란 무엇인가     시는 무엇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시에 대한 정의의 문제이며, 시에 대한 본질적 문제이다. 그런데 시의 개념과 시에 대한 정의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시, 곧 문학의 관점과 정의는, 시는 세계를 모방한 것이라는 관점(모방설-아리스토 텔레스), 작품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초점으로 하는 관점(실용설-호라시우스), 작품을 예술가인 시인 자신의 표현으로 보는 관점(표현설-워즈 워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작품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관점(객관설-신 비평) 등에서1) 보는 바와 같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변화할 수 없는 시에 대한 개념이나 정의가 있다. 시라는 말의 어원에 의한 개념이나 정의는 동서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시에 대한 본질적 문제이다.   나는, 이 글에서 어원에 의한 시의 정의를 고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시의 내용적 정의와 형식적 정의를 시도함으로써 시 창작의 이론과 실제의 문제를 밝혀보고자 한다. 시의 내용적 정의는 ‘시는 무엇을 쓰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며, 시의 형식적 정의는 ‘시는 어떻게 쓰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제까지는 시의 정의와 같은 것은 이론의 측면이고, 시 창작 곧 시를 쓰는 것은 기능의 문제라고 하여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에 대한 이론은 시 창작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시의 이론은 오히려 시 창작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의 이론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것이고, 시인은 시를 쓰는 기술자이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기술자가 아니며, 또한 시를 떠난 이론의 연구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의 이론이 시인의 생리가 되고, 시를 쓰는 것이 바로 시인의 삶 자체가 될 때, 시가 사람의 삶 속에서 생기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 곧 존재 자체가 바로 시이며, 시를 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살아가는 것이 될 때,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의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2. 시는 언어(言語) 예술이다     시는 언어(言語) 예술이다. 그러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藝術)의 ‘藝’자를 자전에서 ‘種也’라 풀이하고, ‘種’의 뜻은 ‘씨앗’과 ‘심다’라고 했다.2) ‘씨앗’ 곧 종자란 무엇인가. 생명의 씨눈이 잠들어 있는 집이다. 이 씨앗을 심어서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생명의 잠을 깨우고 자라게 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기술이 곧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에는 반드시 그 열매인 ‘작품’이 있어야 한다. 이 열매인 시작품에서, 언어는 시적 생명의 씨눈이 잠들어 있는 종자이다. 그러면 언어(言語)에서 씨눈에 해당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말씀(言)이다.   이 말씀(言)은 마음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며, 글(文)은 마음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말씀(言)이 글(文)보다 먼저이다. 이 말씀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말(語)이 되기도 하고, 시(詩)가 되기도 한다. 말씀(言)이 관청(寺)에3) 바쳐지면 시(詩=言+寺=poetry)가 되고, 나(吾)를 위해 쓰여지면 말(語=言+吾=language)이 된다. 관청에서 가장 높은 곳엔 천자 곧 하늘의 아들이 있다. 그러므로 제정 일치 시대에는 관청이 곧 신전이다. 그러니까 말씀이 관청에 바쳐진다는 것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言)과 시(詩)는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언어(言語)처럼 언시(言詩)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말씀은 곧 신이며,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이다.4) 처음에는 말씀(言)이 곧 신이며 마음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신과 함께 있는 ‘言=神’의 모습 그대로였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마음이 곧 신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신(神)의 자리에 내(吾)가 끼어 들면서, 말씀은 그 본래의 생기인 신성(神性)을 잃고, 인간 상호간의 의사소통의 도구인 말(語)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상어이며, 본래의 생기가 죽은 말인 것이다. 생기가 죽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기운이 잠들었다는 것이지, 생명이 끊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언어(言語)가 된 것이다. 언어는 말씀(言)과 말(語)이 함께 사는 존재의 집이다. 그래서 언어는 시의 종자이다. 이를테면 번데기나 식물의 씨앗과 같은 것이다. 이 번데기나 씨앗과 같은 언어에다 따뜻함 곧 사랑을 불어넣고, 다시 말해 신(神)을 불어넣으면 시가 태어난다. 예술이란 원래 생기와 신을 불어넣어 생명의 잠을 깨우는 기술이다.   시의 종자인 말(言語)에서 생명의 씨눈은 말씀(言)이다. 이 씨눈을 싹틔우려면 이 씨눈을 잠들게 한 나(吾)를 죽여야 한다. 언어라는 집에서 나(吾)를 내쫓고 그 자리에 신의 아들(天子)을 들이면 시(詩)가 된다는 것이다. 관청은 곧 신의 아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관청은 곧 신전인 것이다. 로마에서도 주(主)라는 영어단어를 소문자로 ‘lord’라고 쓰면 노예가 자기 주인을 가리키는 말이고, 대문자로 쓰면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말씀을 신에게 바치면 시가 되고, 나를 위해 쓰면 말(言語)이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신과의 대화는 시가 되며, 사람과의 대화는 언어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은 곧 신이며 마음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신과 교감하면 시가 되고, 사람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언어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에서도 시는 신탁(神託)이라고 해서,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으며,5) 공자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해서 그냥 뜻을 받아 진술할 뿐 자기가 짓지 않는다고 했고,6) 구약성경에서도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뿐 자신의 생각을 보탤 수 없었다. 그래서 서정시를 ‘신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천자를 섬기면 시인(詩人)이 되지만, 몸으로 천자를 섬기면 또 다른 시인(侍人)이 된다. 몸으로 천자를 섬기려면 궁중 안에 있어야 함으로 내시(內侍)가 된다. 천자도 남자이고 내시도 남자이지만, 내시는 자신의 남성을 거세해야 한다. 이것은 주(主)를 모시기 위해서는 나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시가 천자를 속이고 권세를 잡으면 나라가 망한다. 천자가 하늘의 뜻을 어기고 하늘 자리에 앉으면 우상이 되고, 이 우상이 바로 용(龍)이다. 용은 신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하늘에 올라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은 귀머거리다. 용(龍)의 귀(耳)는 귀머거리(聾)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 신의 음성, 곧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신은 무엇인가.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어떤 무엇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마음의 귀로 들어야 하는 것이 신의 소리다. 여기서 참고로 관청 시(寺) 자가 어떻게 절 사 자가 되었는지를 알아보면, 후한(後漢)의 명제가 백마에 불경을 싣고 인도에서 돌아온 마등과 축법란 두 스님을 귀빈 접대 관청인 홍려시에 머물게 했다가 낙양성 교외에 그들을 위한 거처를 짓고 백마시라고 했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절인 백마사가 되었다고 한다.7)              사람에게 처음 주어진 것은 마음(心)이며, 이 마음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 말씀(言)이다. 그러니까 말씀이 시(詩)가 되든지 아니면 언어(言語)가 되든지 하는 것은 순전히 그 마음에 달렸다. 그래서 휠더린은 “그러므로 모든 재보(財寶) 가운데 가장 위험한 재보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인간이 자기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증시하기 위해---”8)라고 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주어졌고, 그 마음의 씀인(用) 언어가 주어졌다. 이 언어가 나를 위해 봉사하면 죽음을 지향하게 되고, 신에게 바쳐지면 시가 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재보인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증시(證示)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없음(無)’이며, ‘0’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주어졌기 때문에 ‘없음’이 되고, ‘0’가 된 것이다.   싸르트르는 자의식 곧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모든 존재(물체와 생물)를 ‘즉자(卽自․en-soi)’라 하고,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대자(對自․pour-soi)’라고 부른다. 사람은 의식 곧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없음(無․neant)’이라고 한다는 것이다.9) 이 ‘없음’에서는 ‘있음’이 되고자 하는 지향성이 있기 마련이며, 이 지향성이 곧 욕구가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게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이 주어졌다. 물론 사람에게도 본능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에겐 마음이 더 주어졌기 때문에 본능의 욕구 위에 마음의 욕구가 더 있게 된 것이다. 이 마음의 욕구를 우리말로 옮기면 ‘그리다’가 될 것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은 이 욕구를 소유(to have)에의 욕구와 존재(to be)에의 욕구로 나누고 있다.10) 소유에의 욕구는 ‘욕심(慾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존재에의 욕구는 ‘꿈’이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밥이나 옷을 주지 않는 즉 소유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 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꿈과 사랑, 즉 존재에의 욕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존재 일반의 단순한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존재 일반도 사람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가리켜 ‘존재의 목자’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그런데 그 목자도 말이 없이는 그가 할 일을 다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말은 ‘존재의 집’이라는 것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의식되어 졌다’고 할 수 없으며, 의식되어지지 않은 것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캄캄한 어둠 속에 던져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실존을 비롯하여 존재 일반에 대해서도 캄캄한 무지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의식 곧 마음이 있기 때문에 물체나 생물처럼 어둠 속에 버려진 채로 묻혀 있을 수는 없다. 빛을 캐내어 나의 실존도 비추어 밝혀야 하고, 모든 존재 일반에 대해서도 그 모습을 밝혀 드러내야 한다. 이러한 의무를 진 사람을 가리켜 ‘존재의 목자’라고 하며, 이러한 사람에게만 ‘위험한 재보(財寶)인 말’이 주어졌던 것이다.11)   사람은 말(言語)로써만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증시(證示)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소유의 욕구’로 쓸 때엔 오히려 더욱 더 어둠 속에 묻히게 된다. 그래서 말을 위험한 재보라고 하는 것이다. 말은 어떤 목적을 위해 쓰는 수단이나 기호가 아니라 어둠에서 빛을 피워 내는 존재 그 자체가 될 때 재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본질적 언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언어는 ‘비본질적 언어’이며, 시는 ‘본질적 언어’가 되는 것이다. ‘비본질적 언어’인 ‘외연적 의미(denotative meaning)’의 말이 시인의 가슴속에서 그 일상성이 죽고, ‘본질적 언어’인 ‘내포적 의미(connotative meaning)’의 말로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이 바로 시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어에서 내(吾)가 죽어야 시로 환생하는 것이다. 언어에서 말씀(言)은 곧 언어 속에 잠들어 있는 씨눈이다. 이 씨눈이 시인의 가슴에서 싹이 터서 시의 나무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가슴은 정서(emotion)의 도가니이기 때문에 꿈과 사랑이 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꿈과 사랑이 끓고 있는 것은 ‘의식의 지향성’ 때문이며, ‘존재에의 향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이며, 이 욕구가 동사로 표현될 때 ‘그리다’가 되는 것이다.   이 ‘그리다’라는 말은 사람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은 언제나 ‘없음(無)’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0’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질이 ‘없음’이기 때문에 ‘그리다’가 아니면 ‘0’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그리다’라는 말의 한자어는 상상(想像)이다. 상상의 뜻은 어떤 모습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아가 부모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도 ‘그리다’이고, 애인이 없는 사람이 애인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도 ‘그리다’이다. 그러니까 ‘그리다’라는 동사는 ‘없음’의 상태를 느꼈을 때 활동을 시작한다. 사람은 원래 ‘없음’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무언가가 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바로 ‘그리다’이다. 이 마음의 움직임이 손을 통해 눈에 보이는 모습을 만들었을 때 ‘그림’이 되고, 마음속으로만 그리고 있으면 ‘그리움’이 된다.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金春洙 〈능금Ⅲ〉 전문     이 작품은 시로 된 시론이면서 또한 존재의 원리를 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김춘수는 ‘그리움’을 제시한다. 모든 시작품은 이 ‘그리움’의 성육(成肉 : incarn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은 그리움을 가지고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상상력(imagination)이란 에너지가 정서의 도가니에 열을 가해 꿈과 사랑을 끓일 때 반짝이는 빛이 ‘그리움’인 것이다. ‘그리움’은 존재를 지키는 등대이며, 시인은 그 등대지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꿈과 사랑이 끓고 있는 시인의 가슴속에서 일상의 언어, 즉 때묻은 말은 허물을 벗게 되는 것이다. 허물을 벗으면서 존재는 개명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시인의 가슴속에서 ‘그리움’은 존재의 목소리인 ‘빛깔과 향기’를 가진 새로운 말의 수육(受肉 : incarnate)되어 시로 탄생하는 것이다. 시는 바로 그리움의 성육인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金春洙 〈꽃〉 전문     꽃은 시인이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지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시인의 그리움에 성육된 말을 통하여 살아 있는 눈짓이 되는 것이다. ‘나’도 어는 누구의 그리움에 성육이 되기 전까지는 보통명사인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길 기다린다. 그리하여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마음으로 해서 그리움이라는 의식의 병을 앓고 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생각 있음의 존재이며 그리움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가슴속에서 꿈과 사랑이 뜨겁게 끓고 있는 정서의 도가니가 있기 때문에 시에서 떠날 수도 없고 시를 버릴 수도 없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라기보다 ‘정서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은 ‘정서의 동물’이기 때문에 시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시를 떠난다는 것은 사람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서의 동물’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시의 나라의 백성일 수밖에 없다. 정(情)이란 무엇인가. 정(情)은 마음(忄)이 푸르게(靑) 살아 있는 것이다. 육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동물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다. 마음이 살아야 사람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은 영혼의 다른 표현이며, 영혼은 사람 속에 자리한 신(神)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살면 영혼이 살고, 영혼이 살면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영혼이 신과 교감하는 것을 영감(靈感)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영혼과 육체를 갈라서 말하는 이원론은 아니다. 육체나 영혼이나 살아 있는 것은 느낌(感)이 있어야 한다. 육체의 느낌은 육감(肉感)이며, 영혼의 느낌은 영감(靈感)이다. 마음이 살아 있는 것으로 표현하면 정감(情感)이지만, 영혼이 살아 있는 것으로 표현하면 영감이다. 그러니까 정감이나 영감은 ‘그리다’라는 동사가 활동하는 단서가 된다. ‘그리다’가 활동을 시작하면 나(吾)는 죽게 되고, 내가 있던 자리에 신(神)이 자리해서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부터 시의 나라가 건설된다. 육체가 죽는 것은 죽을 사(死) 자로 표현하고, 영혼이 죽는 것은 망할 망(亡) 자로 표현한다. 육체가 사는 것은 살 생(生) 자로 표현하지만 영혼이 사는 것은 흥할 흥(興) 자로 표현한다. 그런데 영혼이 살 수 있는 길은 시의 나라에만 있다.12) 시의 나라는 신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제정 일치 시대에는 관청이 곧 신전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이곳에서만은 신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신과의 교감이 시(詩)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시에서 영혼이 살고, 영혼이 살면 영혼의 감각이 살게 되어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시는 곧 신과 만나는 길이며, 신과 통하는 길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관청에는 신이 없다. 인간만이 살아서 서로 다투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관청은 그 사회의 중심이다. 이 관청을 중심으로 사회는 활성화된다. 여기서 활성화의 활(活)은 육체의 삶인 생(生)과 영혼의 삶인 흥(興)이 합작해서 만들어 가는 삶이다. 그러니까 활(活)은 곧 ‘몸’의 삶이다. 인간의 사회에는 특히 관청에는 영혼의 삶인 시와 나의 삶인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는 없고 언어만 있다는 말이다. 육체는 죽으면 썩는다. 영혼도 죽으면 썩는다. 그것을 부패라고 한다. 오늘의 관청이나 사회가 부패한 것은 시가 없고 언어만 있기 때문이다. 시가 살아야 관청이 살고 사회가 산다는 말이다.      3. 시는 신화이다     ‘시는 神話이다’라는 말은 시의 내용적 정의이다. 시의 내용, 즉 시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러니까 시의 내용은 ‘神話’라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神話의 의미를 밝혀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러면 신화는 무엇인가. 신화는 글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 혹은 ‘신과의 대화’이다. 그런데, “지금은 ‘신들의 황혼’도 훨씬 지난 신들의 밤의 시대, 신들을 위해 떠오를 해가 없는 세기(世紀).”13)라는 인간들의 세기에 신들의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이 인간들의 세기에 대해 토마스 만은, “합리주의란 현대인이 행하는 자기 억제의 속물적 표현이다.”라고 했다.14) 그리고 이어서 토마스 만은, 자신의 신화에 쏠리는 관심을 ‘흔들리는 배의 균형 잡기’에다 비유했다. 신화적 세계가 대표하는 초 합리와 과학이 대표하는 합리 사이에 형평을 유지하려는 것을 인간들이 지닌 충동 내지 본능이 빚은 결과로 보는 것이 토마스 만의 ‘균형의 이론’이라는 것이다.15) 그렇다. 현대는 아무리 봐도 신(神)들을 위해 떠오를 해가 없는 시대다. 균형이 맞지 않는 시대다. 땅의 시대이며, 육체의 시대이며, 물질의 시대이다. 육체는 죽었다가 살아날 수 없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고 잠든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깨울 수 있다. 현대는 신이 죽은 시대가 아니라 잠든 시대다. 신은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 언어 속에 말씀(言)으로 잠들어 있다. 이 말씀을, 이 시의 씨앗을 싹틔우면 신이 깨어나 신화의 세계가 열린다. 그러면 신화(神話)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화 연구가들에 의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풀이된다.     ① 신들의 이야기  ② 신과의 대화  ③ 신의 말씀     위의 세 가지 신화의 의미 중에서 시의 내용이 되는 것은 ②번의 ‘신과의 대화’이다. 오늘날에는 시라고 하면 서정시만을 가리키는 말이 되므로 ‘신과의 대화’는 곧 서정시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①번의 ‘신들의 이야기’는 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펼치는 이야기로서 그리스․로마 신화 같은 것을 말한다. 이것도 시의 내용이긴 하지만 서사시와 극시의 내용인 것이다. 오늘날의 소설과 희곡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신들의 이야기’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도 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③번의 ‘신의 말씀’은 종교적 차원의 의미이다. 그러니까 시는 다시 말해서 서정시는 ‘신과의 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신과의 대화’가 시의 내용이라면, 시인은 신을 만나서 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시인과 종교인은 같은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인은 신의 말씀을 듣고, 신의 뜻에 순종하고, 신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시인(詩人)이 아니라 시인(侍人)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시인(詩人)은 신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말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니까 시인의 표현은 신에게 보내는 회답이다. 그래서 시를 ‘신과의 대화’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신과의 대화’를 가리켜 시적 영감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시를 신탁(神託)이라고도 했다. 신이 사람을 매개로 해서 그의 뜻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신과 대화하는 사람인 것이다.     詩神의 詩觀은 詩를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詩로써 神(Muses)과 인간은 通話를 한다고 보았다. 그 通話의 通路가 바로 靈感(inspiration)이었다. 詩神에게 靈感은 시인을 부르는 것이었고 詩人에게 靈感은 부름에 응함이었다. 詩神의 부름과 詩人의 응함을 가능하게 했던 靈感은 神의 목소리를 듣는 귀였고 읊는 입이었던 셈이다.16)      이것은 그리스 시대의 ‘詩神의 詩觀’에 대한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해, 오늘날 예술(Art)로 번역되는 그리스의 용어인 Techne를 ‘황홀함의 양식(a mode of ecstasis)’ 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는 양태(a pattern of looking beyond whatever is already given at any time)’로 보기도 한다.17) 이것은 신화의 신비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성적인 견해이다. 신이 사람 속에 들어오면 영혼이 되고, 이 영혼의 작용이 마음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언어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言語)에서 내(吾)가 죽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죽어야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다. 다시 말해서 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입신의 경지를 의미한다. 입신의 경지가 바로 황홀함이며, 한자로는 흥(興)이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신의 소리를 듣는 데까지는 시인이나 종교인이나 같다. 그런데 종교인은 신의 말씀에 대한 회답을 몸으로 하고, 시인은 언어로 한다. 신의 말씀에 대한 회답으로서의 언어, 이것이 곧 언어 예술이다. 신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다. 느낌으로 전해 오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이 살아 있는 말씀에 대한 회답도 살아 있는 언어라야 한다. 살아 있는 언어를 만드는 것이 곧 언어 예술이다. 예술이란 생명(藝)을 살리는 기술(術)이란 뜻이라고 앞에서 밝힌 바 있다. 또한 시인이란 뜻의 영어인 ‘poet’은 만드는 사람(maker)이란 뜻이다. 살아 있는 언어를 만드는 사람 곧 창조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고 시를 우리말로는 노래라고 하는데, 노래는 ‘놀+애’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놀이도 원래 ‘놀+이’의 구조라고 한다. 그런데 ‘놀’이라는 말이 ‘神’의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노래는 ‘神樂’의 의미이며, 놀이는 ‘神遊’의 의미라고 한다.18) 서정시는 원래 시가(詩歌)이다. 그러니까 시와 노래는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 곧 사람 속에 있는 신(神)이 살아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을 워즈워드는 강한 느낌(powerful feeling)의 자발적 유로(spontaneous overflow)라고 했으며, 한자로는 흥(興)이라고 하고, 그리스의 ‘techne’에서 말하는 ‘황홀함’이라 하는 것이다. 마음은 영혼의 나타남이며, 영혼은 곧 사람 속에 있는 신이다. 이 마음이 신과 만나서 교감(交感)할 때 이를 영감이라 하며, 영감에 의해 시가 탄생하고, 거기서 마음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상태를 ‘神난다’라고 한다.   사는 것의 반대는 죽는 것이다. 땅에서 온 물질인 육체가 물질의 모체인 자연과의 교통이 이루어져야 살 수 있듯이, 영인 마음도 영의 모체인 神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신과의 교감, 마음과 마음과의 교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떤 사람이 시를 낳게 되며 어떤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흔히 시를 가리켜 체험이라고 한다. 그런데, 체험을 정의해서, ‘남은 못 보는 것을 나만이 보고, 남은 못 듣는 것을 나만이 듣는 것’이라 하고, 또는 ‘경험+사랑=체험’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체험을 하려면 누구보다도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경험에 그치고 말며, 체험은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음속으로 ‘그리는 것’이 많아야 한다. 마음속으로 그리는 것은 ‘그리움’이며, ‘사랑’인 것이다. 문학적 용어로는 ‘상상(想像)’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상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떤 모습(像)을 생각한다(想)’이다. 그러니까 상상을 우리말로는 ‘그리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다’의 작용은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의 대상이 없을 때 작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성을 하늘로부터 명부 받았다고 한다.19) 그런데 남성은 남성만을, 여성은 여성만을 하늘로부터 명부 받았기 때문에 남성에겐 여성이 없고, 여성에겐 남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다’의 원리이며, 시 창작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상상력이 활발하게 움직일 때, 다시 말해서 가슴이 뜨거울 때, 사람은 신을 만나서 교감하게 되고, 남은 못 보는 것을 보게 되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신과의 대화’라고 하는 것이다. 신의 음성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며, 가슴으로 듣는 것이다. 시인은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신의 이미지를 보고, 그 음성을 듣는 시적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체험만으로는 시인이 될 수 없다. 이 체험을 살아 있는 언어로 만들어서 회답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특권이며 또한 시인에게 주어진 십자가이기도 하다. 시를 낳지 못하는 시인은 그 영혼이 죽은 망(亡)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신을 위해 떠오를 해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불균형의 시대라고 한다. 하늘과 땅, 영혼과 육체, 빛과 그늘, 아버지와 어머니, 이것이 균형을 이루어 잘 어울릴 때,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이 말은 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땅에 산다. 그래서 하늘을 그려야 하고, 영혼의 삶을 그려야 하고, 빛과 아버지를 그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신과의 교감, 곧 영감에 의한 시를 써야 한다. 영감은 신의 소리를 듣기 위한 귀의 열림이다. 이 귀가 열려야 신탁이 이루어진다. 한국 민속에서는 이것을 ‘공수’라고 한다. 신에 접한 무당이 신의 말을 듣고 이를 옮기는 것이 ‘공수’이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그의 입무식(入巫式) 동안의 탈혼 상태에서 즉흥적인 시작(詩作)을 한다고 한다. 입신하여 있는 경지가 바로 창작하고 시작(詩作)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20) 그러니까 시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신과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 시인이나 무당은 신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제 멋대로 조작하거나 거역할 수 없었다. 종교성이 특히 강한 기독교의 예언자들은 더욱 그랬다. 왜 그랬을까. 그들에게 있어서 신은 절대이면서 진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할 일이 없어서 심심풀이로 시나 써야지 하는 생각에서 시인이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란 이름은 사명 그 자체이며, 입무(入巫)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지도자가 따로 있고, 시인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누구나 입무를 해야한다. 모두가 신화를 창조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옛날에는 황제만 신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황제만 주(主)였지만 지금은 모두가 주(民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정신이다. 시를 쓰는 기술자로서의 시인이 아니라 시정신의 소유자로서의 시인이 되어야 한다.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한다. 진리의 소리에 귀를 열 수 있어야 한다.   개체 생명도 늙으면 다시 어린애로 돌아간다고 한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한다. 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신과 같아야 한다. 등신(等神)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 생명인 사회도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시시대는 신화 시대다. 네 것도 없고, 내 것도 없는 때다. 내가 없는 말씀(言)만의 시대다. 시정신이란, 언어(言語)의 말(語)에서 내(吾)가 죽고 그 자리에 절대적인 공간(寺)인 신전을 세워 에덴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가짐이다. T. 만의 말대로 불균형의 황무지에서 에덴을 꿈꾸는 마음과 노력이다. 황무지는 영적 죽음의 풍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무지에서 시의 나라에 대한 동경이나 에덴에 대한 향수가 곧 시정신이라는 것이다. 시정신은 곧 신과의 교감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자세는 종교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원시 종합예술 시대에는 종교와 예술이 한 자리에 있었으나, 예술이 분화되어 따로 나왔을 때에는 종교의 자리를 이성(reason)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 사회는 결국 종교의 멸종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21) 그러면 인간 존재의 원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다시 말해서 황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이에 대해 조셉 캠블은, “신학처럼 권위의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 경험에 충실한 능력 있는 통찰, 감성, 사고, 비젼에서” 나오는 창작 신화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했다.22) 창작 신화란 시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해답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창작 신화 곧 시작품을 통해 시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움’ 곧 사랑이란 에너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문학의 3요소 중 첫째와 둘째인 정서와 상상력의 의미가 확실해진다. 정서는 살아 있는 마음의 덩어리로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상태이며, 상상력은 무언가의 모습을 그려 줄 수 있는 힘이다. 이 두 가지는 다 마음이 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마음은 영혼에서 오고, 영혼은 신에게서 왔다. 살아 있는 마음을 통해 영감이 살아나고, 영감을 통해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통해 영혼으로, 영혼을 통해 신(神)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그 과정은 어떠한가. 그 과정이란 신의 나라, 곧 신화의 마을인 시의 나라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다’인데, 이 ‘생각하다’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그 첫째가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思考)’이며, 둘째가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想像)’이다. 흔히 사고는 머리로 하고, 상상은 가슴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주된 기능은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슴이 곧 마음이며 심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력은 분석하는 힘이고,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은 종합하는 힘이라고 한다. 상상력을 통해 마음에서 영혼으로, 다시 영혼에서 신화의 나라에 이르는 과정을 재구하여, 처음 신화의 나라에서 쫓겨나 황무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창작 신화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캠블은 상상력으로 종합하여, “생성되는 것은 사물(死物)이 아니라 생명이다. 될 것이나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또 되었던 것이나 전혀 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안과 밖에, 지금 여기에, 깊음 속에,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23)라고 한 것이다.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고력에 의해 과학이 발달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실험적 진실만이 진리이며, 인간 체험이라는 공통 분모에 의해 이루어진 종교적 혹은 시적 진리는 허구나 착각이라고 무시되어버렸다. 과학은 이렇게 하여 종교나 시의 정신적 공화국의 위대한 독재자가 되었다.   인간이라는 의식이 성숙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그 언어 자체가 시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시인이다. 원시언어는 다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주고받은 말이나 그들이 하나님과 대화한 것도 그 자체가 다 시라는 것이다. 원시언어는 리듬과 은유를 동시에 사용하는 신비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며, 세려된 언어보다는 집단심성(community mind)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24) 따라서 원시언어는 주술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주술적 기능이란 신과의 교감을 의미한다. 영혼이 살아야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신과의 교감은 곧 집단심성의 표현이라면, 영혼의 죽음을 한자로 망할 망(亡)자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 망한다는 것은 집단 곧 공동체 생명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생명의 첫 단계는 가정이고, 아직까지는 그 끝 단계가 국가이다. N. 프라이는, “신화는 심오한 공공의식의 표현이다. 이 때 공공의식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문제되는 것처럼 지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느낌과 행위와 삶의 전체의 일체감이다.”라고 했다.25)    이 가정과 국가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그것에 소속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니까 집단심성의 표현인 원시언어란 나의 뜻인 내 마음이 생기기 이전의 언어다. 이 원시언어의 세계가 곧 신화의 세계이며 시의 나라인 것이다. 나(自我)라는 자의식이 눈뜨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신화의 세계에는 공동체의식의 발로에서 일체감이 양식화되었으며, 이렇게 양식화된 일체감은 제의(祭儀)나 기도, 춤, 그리고 노래 등의 리듬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이 신화세계에서는 종교적 의식이 자유롭게 발달할 수 있어서 신비감이 모든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러한 신비감은 신과 악마들이라는 다신교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의 위대한 유일신으로 집중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26) 그런데 신화 시대에는 이 신비가 주로 외형적인 리듬으로 나타났는데, 현대에는 외형적인 운율의 정형시가 없어지고 내재율의 자유시가 되었다. 그렇다면 내재율이란 무엇인가.    나는 내재율을 글자 그대로 풀고 싶다. 그렇다면 내재율이란 ‘안에 있는 가락’이다. 이 ‘안’이 바로 마음이다. 가락 곧 리듬은 ‘살아 있음’을 뜻한다. 살아 있는 마음에서만 마음의 가락인 내재율이 울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곧 영혼의 가락이며, 이 영혼의 리듬이 바로 신과의 교감이며, 한자로는 영혼의 삶을 뜻하는 흥(興)이 되는 것이다. 이 흥은 곧 신(神)이 살아나는 것이며, 신이 살아나는 것 곧 신이 날 때 노래와 춤이 나오는 것이다. 내재율은 오히려 시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유시 곧 현대시는 외형률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재율 곧 마음의 가락으로 쓴다. 다시 말해서 신과의 교감으로 쓰는 것이다. 신과의 교감이란, ‘남은 못 보는 것을 보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듣는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없는 ‘우리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칼 마르크스는 이 ‘우리의 상태’를 ‘원시공산사회’라고 했다. 네 것도 없고, 내 것도 없는 사회 곧 에덴동산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분명히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였기 때문에 물질의 생산을 공유한다는 공산(共産)에다 초점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이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공산주의 사회가 와야한다고 했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곧 물질의 생산과 소유의 구조로만 본 것이다. 개체생명도 노인이 되면 다시 어린애가 되는 것과 같이 ‘원시공산사회’에서 시작하여 ‘현대공산사회’로 끝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27) 그들은 자본주의 다음에, “그러나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공산주의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되지만 보다 높은 차원에서 돌아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원시적인 생산력에 원시공산주의 자리에 극단적으로 발전된 생산력에 근거하며, 자체 내에 거대한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공산주의가 오게 된다.”라고 했다.28) 그러나 역사는 물질의 생산과 소유에 관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서 영혼, 영혼에서 다시 신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인간사회는 물질의 공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공유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한 사회가 형성되는 것은 그 시대의 마음들의 모음인 시대정신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원시공산사회’가 아니라 신과의 대화가 가능한  그 시대의 마음들이 형성한 ‘신화시대’인 것이며, ‘현대공산사회’가 아니라 현대인의 마음들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민주시대’가 되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이 마지막으로 다다라야 할 곳은 ‘민주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아래로 흐르는 물이 가장 낮은 자리에 이르러 머문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하늘과 닿아 있다. 하늘과 만난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마음과 영혼을 상징하는 것이다. 낮아지는 마음과 영혼의 안에는 하늘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겉으로 보면 하늘과 바다는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하늘은 바다 속에 잠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의 빛깔이 하늘보다 더 푸른 것이다. 더 푸르다는 것은 더욱 생명력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민(民)은 가장 낮은 사람이다. 이 가장 낮은 사람이 임금이며 주인인(主) 시대가 ‘민주시대’이다. 이것은 순전히 마음의 문제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영혼이나 정신을 배제한 유물론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출발에서부터 영혼이 죽은 것이므로 망(亡)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는 망했으며, 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성 어거스티누스의 이라는 대 순환론의 영향이라고 한다. 헤겔과 토인비도 마찬가지며, 유태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 그리고 이슬람까지 순환론적 역사관이다. 동양에서는 힌두교, 불교, 그리고 스리 오르빈도와 라다크리쉬난에 이르기까지 모두 순환론적 역사관이다. 이들의 순환론적 역사관이 모두 신에서 출발해서 신으로 귀착하는 순환론이다. 오직 마르크스만이 공산에서 출발하여 공산으로 귀착하는 것이다. 오르빈도의 경우, 사람을 무한자로 보고, 이 무한자의 퇴화는 가장 저급한 수준의 존재인 물질로의 하행이며, 물질은 비 의식적인 차원이므로 여기서부터 진화가 시작되어 의식적인 차원에 도달한 다음 정신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진화 과정의 최종 목표인 영지(靈知)적인 차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29) 어쨌든 인간의 문제는 마음에서 영혼으로, 거기서 다시 신으로 이어져야 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론적 역사관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숨어 있다. 역사는 절대로 순환하지 않는다. 순환론의 뿌리는 인도에 있다. 역사는 시간과 영혼이 만드는 것이다. 시간과 역사는 원이 아니며, 만다라가 아니다. 하루는 아침에서 출발해서 다시 아침으로 돌아오지만 오늘 아침이 어제의 아침은 아니다.        역사는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는 물의 흐름에 비유한다. 에덴동산 곧 신화시대에서 나(吾라)는 의식이 생기면서부터 나를 중심으로 모인 것이 씨족이다. 시간은 흐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것은 자연이다.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모인 작은 냇물과 같은 것이 ‘씨족시대’라는 흐름이다. 이 시대가 열리면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예제도가 탄생한다. 한 씨족이 다른 씨족을 정복한 다음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의 물은 저절로 합류하지만 인간 공동체의 흐름은 싸우면서 큰 집단이 된다. 작은 냇물이 여럿이 만나면 큰 냇물이 되듯이 몇 개의 씨족이 서로 싸워서 합병해 부족을 이룬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봉건제도다. 큰 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듯이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합병하여 민족국가를 만들게 된다. 여기에 과학의 발달과 함께 산업이 발달하면서 자본이라고 하는 돈의 힘이 부각되고, 권력이 돈의 힘인 자본과 합작하면서 만들어진 게 자본주의사회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마음은 물질로 향하게 되고 영감은 돈을 버는 경제감각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물신시대가 오고, 영적 황무지가 된 것이 현대다. 오늘날은 공산주의자만 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유물론자가 되었다. 공산주의자만 좌익이 아니라 모두가 좌익이 되었다.   한 어둠이 또 다른 어둠에게 캄캄한 제 속뜻을 전한다. 다른 어둠이 빨리 알아듣고 둘은 서로 캄캄하게 껴안는다. 덩달아 모여드는 어둠들이 온 누리를 뒤덮는다. 어둠들이 한데 뭉쳐서 캄캄한 대권을 거머쥔다. 눈을 떠도 캄캄하고 눈을 감아도 캄캄하다. 빛을 모두 잡아먹고 캄캄하게 살이 오른 거대한 야행성 동물의 뱃속이다. 나도 그 뱃속에서 캄캄하게 소화된 지 오래다. 어둠공화국의 충실한 백성이 된지 오래다.                    -유승우, 전문.     현대의 영적 황무지를 상징한 작품이다. 모든 사람이 시정신을 떠나서 산문정신으로 무장되었다. 현대야말로 시가 탄생해야 할 때다. 그래야 영혼이 살아서 흥(興)이 나고, 신(神)이 나서, 남은 못 보는 것을 보고, 남은 못 듣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흥이 나고 신이 나는 것은 바다의 물결이다. 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이 역사는 흘러서 민주로 가야한다. 바다는 민주를 상징한다. 바다는 평등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 멋에 겨워 흥이 나고 신이 나는 것이 물결이다. 바다는 편을 가르지 않는다. 압록강에서 흘러온 물이나 섬진강에서 흘러온 물이, 낙동강에서 흘러온 물이나 두만강에서 흘러온 물이, 서로의 근원을 따져 지역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모두가 민주(民主) 곧 임금이며 주인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갈 때 그 가슴속에 키우던 민물고기들은 다 두고 간다. 바다의 가슴속 어디에서도 강물의 추억이나 기억을 찾아볼 수 없다. 송사리 새끼 한 마리도 그 품속에 숨겨두지 않는다. 이토록 깨끗한 몸 바꿈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지만, 나는 송사리나 미꾸라지처럼, 아니면 산골의 가재처럼 민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유승우, 전문.     물이 강물일 때까지는 흘러야 한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늪이 되어 썩는다. 그러나 바다는 흐르지 않아도 썩지 않는다. 이렇게 될 때, 나(吾=私)는 죽고, 우리(公共)만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신화가 탄생하는 것이며, 신화가 탄생한다는 것은 영혼이 산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혼이 살면 영감이 발달하여 마음의 눈과 귀가 열린다. 그리하여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듣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이미지’라고 한다. 그러니까 현대시를 쓰는 것은 외형률로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정신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지란 무엇인가.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4. 시는 이미지이다     ‘시는 이미지이다’라는 말은 시의 형식적인 정의다. 신(神)의 체험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보여주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신의 체험은 지식이나 사상이 아니다. 지식이나 사상이라면 설명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나 예술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이며 체험이다. 종교의 교리를 이해함으로써 종교적 체험을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미술이나 시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감동이며 교감이다. 시인은 시를 음악처럼 느끼게 하기 위하여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고, 미술처럼 느끼게 하기 위하여 시각적 이미지를 만든다.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체험을 하게 된다. 그 체험들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의 창고 속에 저장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라고 한다. 시인은 이 무의식 속에 묻혀 있는 체험들을 살려서 이미지로 만든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지각이 결합하는 것이 바로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poet'이란 말이 만드는 사람(maker)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런 뜻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신과의 대화’라든지 ‘신의 말씀’이란 것은 추상적 관념이다. 자기만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타인에게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만든다. 신과의 대화란 정신적 혹은 영적 교감이다. 쉽게 말해서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의 느낌은 그 느낌의 당사자인 시인에겐 생동하는 감각이다. 이 생동하는 감각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다. 보여줘야 하고, 들려줘야 한다. 그래서 이미지를 만든다. 이해시키는 언어는 과학적 언어이며, 보여주고, 들려주어서 느끼게 하는 언어는 시적 언어이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시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C. D. 루이스는 이미지를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보여주는 언어, 곧 ‘언어로 구성된 회화’라고 할 수 있다.30)   과학적 언어는 이해하는 언어이며, 논리적 언어이다. 과학적 언어의 가장 훌륭한 표본은 수식이다. 모든 과학의 법칙은 수식으로 요약되고, 이해된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통해 ah/2라는 수식으로 요약된다. 이 명쾌한 요약을 사람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해된 지식은 추상적 관념이다. 사실 숫자보다 추상적인 것은 없다. 숫자는 이미지가 없다. 1이나 2가 어떻게 생겼는가. 1이나 2는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산수 책에서는 3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과 세 개나 병아리 세 마리를 보여준다. 추상적 관념을 이해하게 되면 과학이나 철학을 지식으로 갖게 된다. 그러면 시를 느낄 수가 없다. 어린이의 마음을 지녀야 시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시심은 동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인과 어린이는 모든 것을 이미지로 감각한다.   나는 앞에서 상상(想像)을 우리말로 ‘그리다’라고 했다. 이 ‘그리다’를 다른 말로는 ‘묘사’라고 한다. 묘사라는 말은 수사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수사학에서는 글을 쓰는 형식을 ‘설명, 논증. 묘사, 서사’로 나눈다. 이 중에서 ‘묘사’는 시를 쓰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시를 쓰는 것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며, 느낌을 말로 그리는 것이다. 윤재근은 상상에 대해, “마음속에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코가 있으며 온 몸의 觸角이 있음을 想像은 확인한다. 想像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마음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한다. 이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妙하므로 옛부터 想像을 강조하여 神思라고 하였다.”31)에서 보듯이, 劉勰의 ‘文心雕龍’에 나오는 ‘神思’를 상상으로 풀이한다.32) 상상은 마음의 기능이며, 마음은 영혼의 다른 이름이고, 영혼은 神과 교감할 수 있는 신적 요소다. 그러므로 마음이 하는 일은 무엇이나 신을 빼놓고는 논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상상(想像)’을 특히 ‘神思’라고 한 것은 마음이 그리는(想) 모습(像)이 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상상이란 말 대신에 신사(神思)를 쓴 것이다. 노래를 ‘神樂’이라 했고, 놀이도 ‘神遊’라고 한 것을 보면 동양적 신(神)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E. 파운드는 이미지를 ‘지적 정서적 무의식의 일시적 발현(presents an intellectual and emotional complex in an instant of time)'이라고 했다.33) 나는 여기서 ’complex'를 ‘무의식’이라고 번역했다. 원래 콤플렉스는 종합이나 합성물이란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을 모든 경험이 녹아든 기억의 창고라고 한다. 그리고 빙산의 물 속에 잠긴 부분을 무의식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물 밖에 나와 있는 부분은 의식이다. 이 빙산이 바다 위에서 떠도는 것은 밖에 나와 있는 부분이 바람에 밀려서가 아니라 물 속에 잠긴 부분이 물결에 밀려서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동이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상상은 마음의 행동인 ‘그리다’인데, 이 상상이 그려낸 이미지가 바로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은 정확한 해석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시적(in an instant of time)인 발현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무의식이 왜 일시에 튀어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무의식이 일시에 발현되려면 의식이 사라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 바로 나(吾)라는 자아이다. 그렇다면 의식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신과의 교감을 위해서 내(吾)가 죽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면 어떤 때 의식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일상적으로는 충격을 받았을 때 의식이 사라진다. 그러나 여기서의 충격은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이다. 정신적인 충격은 사랑하는 심장을 가진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의식이 곧 생각이나 마음이라면 여기서는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 죽어야 사물 자체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심장을 가진 사람은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대상만 있고 나는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바로 시인의 영혼이 신(神)과 교감하는 상태인 것이다.   신과 교감하는 상태에서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 때의 말은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신과의 교감은 느낌일 뿐 의미와는 상관이 없다. 순수 예술은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이미지를 만들뿐이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다. 소리를 살리는 것이 음악이다. 소리는 느낌일 뿐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높은 소리로 아버지를 발음하나 낮은 소리로 발음하나 그 의미는 다르지 않고 느낌만 다르다. 미술도 순수 예술이다. 미술의 재료인 색채도 의미와는 상관이 없다. 빨강이나 파랑은 느낌이 다를 뿐 어떤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이나 미술은 번역이나 통역이 필요 없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그런데 언어는 소리와 의미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이 두 요소 중 사람과 대화할 때는 의미가 중요하지만 신과의 대화에서는 느낌이 중요하다. 말의 요소 중 소리로는 듣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정형시의  율격이다. 그러나 현대시는 자유시다. 귀로 듣는 율격이 아니라 눈으로 보아서 소리도 느끼게 하고 의미도 느끼게 하는 것이 이미지이다. 여기서 눈으로 본다는 것은 듣는 시가 아니라 읽는 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를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정의한 의미이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김광균 ‘외인촌’에서)   꽃처럼 붉은 울음에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에서)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정한모 ‘가을에’에서)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김종한 ‘살구꽃’에서)   “요한복음 삼장 십육절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고 있다.“ (유승우 ‘섣달에 내리는 눈’에서)     위에 인용한 것들이 감각적 이미지들이다. 감각적 이미지의 이상적인 방법은 여러 종류의 이미지들이 결합해서 정서를 환기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을 공감각적 이미지라고 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원동력은 상상력이다. 위대한 시인은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위대한 상상력은 참으로 살아 있는 듯한 감각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는 또한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이다. 남은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이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듣는 사람이다. ‘푸른 종소리’에서처럼 종소리의 빛깔도 보며, ‘붉은 울음’에서처럼 울음의 빛깔도 보는 것이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것도 볼 수 있으며, ‘요한복음 3장 16절이’ 눈처럼 내리고 있는 것도 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시인인 것이다.   감각적 이미지는 마음으로 그려보는 그림이다. 사실은 없는 것을 그렇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종소리와 울음에 무슨 색깔이 있으며, 음악이나 요한 복음이 어떻게 피처럼 흐르며 눈처럼 내릴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모두 정신적인 관념을 육체의 오관을 통해 느끼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감각적 인식이라고 하며, 정신적 이미지라고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을 체험이라고 한다.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은 경험이며, 없는 것을 시인만이 보는 것을 체험이라고 한다. 시인은 어떻게 남은 못 보는 것을 볼 수가 있으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볼 수가 있을까. 그것은 시인의 살아 있는 마음이 하는 일이다. 살아 있는 마음은 곧 영감(靈感)이며, 영감은 신과 교감하기 때문이다.     5. 마무리-시는 몸이다     사람을 가리켜 작은 우주라고 한다. 우주란 무엇인가. 무한 공간인 우(宇)와 무한 시간인 주(宙)가 만나서 우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끝이 없는 무한(無限)에는 결코 사이(間)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 공간’이나 ‘무한 시간’이란 말을 쓴다. 여기서 쓰는 공간이란 말은 땅(地球)이 있음으로 해서 성립된 낱말임을 알 수 있다. 지구가 없다면 그냥 빈 하늘일 것이다. 그래서 빌 공(空) 자는 하늘 공자도 된다. 지구가 있음으로 해서, 이 쪽 하늘과 저 쪽 하늘 사이에 땅이 있다는 공간 개념이 성립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땅이 있음으로 해서 하늘도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땅이 기준이다. 땅으로 해서 공간개념이 있게 된 것이다. 땅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땅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이다. 이 땅의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들었다. 땅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물질로 된 부분이 육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사람의 모형일 뿐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 생명이 들어가야 하고, 마음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들은 형체가 없으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종합해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우주는 공간과 시간의 모음인 몸이고, 작은 우주인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모은 몸이다. 그러니까 우주는 몸을 의미한다. 여기서 ‘시는 몸이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1) 문덕수, ꡔ시론ꡕ(서울, 1993, 시문학사), p.36.2) 김언종, ꡔ한자의 뿌리ꡕ(서울, 문학동네, 2001), p.636.3) ‘寺’자는 원래 관청이란 뜻과 ‘시’의 음을 가진 글자이다. 제정 일치 시대에는 관청이 곧 신전이다. 그러므로 관청에 바쳐진다는 것은 곧 신에게 바쳐진다는 뜻이다.4)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씀 참조.5) 윤재근,ꡔ詩論ꡕ(서울, 둥지, 1990), p.259.6) 論語, 述而篇, ‘述而不作 信而好古’7) 김언종, 앞의 책, pp.400-401.8) 하이데거, 소광희 옮김, 「시와 철학」(서울, 박영사,1978). p.43.9) 박이문, 「현상학과 분석철학」(서울, 이조각. 1982). p.114.10) 에리히 프롬, 김진홍 옮김, 「소유냐 삶이냐」(서울, 홍성사, 1978). p.30.11) 박이문, 앞의 책, pp96-98.12) 論語, 泰伯篇,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13) 김열규 외, 「우리 民俗文學의 이해」(서울, 1984, 개문사). p.11.14) 위의 책, 같은 곳.15) 위의 책, p.12.16) 윤재근, 「詩論」(서울, 둥지, 1990), p.259.17) 위의 책, p.258.18) 서정범, 「어원별곡」(서울, 1991, 범조사) p.158.19) 中庸, 제1장, 天命之謂性.20) 김열규, 앞의 책, p.21.21) 지라르,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서울, 2004, 문학과 지성). p.7.22) 캠블, 정영목 옮김, 「창작 신화」(서우, 2002, 까치), p.15.23) 캠블, 위의 책, p.16.24) 김병욱 외 편역, 「문학과 신화」(서울, 1981, 대람). p.138.25) 김병욱 외 편역, 「문학과 신화」(서울, 1981, 대람). p.137.26) 위의 책, p.137.27) E. 케언즈, 이성기 옮김, 「역사철학」(서울, 대원사, 1990). p.267.28) 위의 책, p.290.29) 위의 책, pp.244-317.30) 문덕수, 「詩論」(서울, 1993, 시문학사). p. 215.31) 윤재근, 「詩論」. p.721.32) 崔信浩 譯註 「文心雕龍」(서울, 1975 재판, 현암사)에서는 券六, ‘信思二六’을 ‘想像力의 陶冶’라고 했다.33) Handy and Westbrook, Twentieth century criticism, LIGHT & LIFE, p.18. [출처] 시와 예술, 그리고 신화|작성자 최진연
106    문학작품의 해석 방법 댓글:  조회:2206  추천:0  2019-12-21
출처 문학작품의 해석 방법 by 김용식   문학작품의 해석 방법 ​ 문학은그 자체로 진공의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자 - 작품 - 독자'의 구도 속에서 '현실 세계'에 역동적으로구체화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문학의 참된 의미는 작자, 독자,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 가운데서어디에다 중점을 두고 문학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관점이 나온다. 현실세계   ∥ 작가 〓 작품 〓 독자   표현론적 관점(생산론적) ⑴ 기본 입장 : 문학 작품은 작가의 체험, 사상, 감정의 반영물이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창조 능력의 소산이다. ⑵ 특징 ♠ 작품이 작자와 맺는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점 ♠ 문학 작품은 작가의 표현욕구가 드러난 대상이기에 작가의모든 것을 작품에 연관시켜 해석하려 함. ♠'작가론(作家論)'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님. ⑶ 방법 ♠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창작 의도에 대한 연구 ♠ 작가에 대한 전기적(傳記的) 연구 ― 성장환경, 가계, 학력, 교우관계, 취미, 사상, 병력 등의 조사. ♠ 작가의 심리 상태에 대한 연구 ⑷ 장 · 단점 ♠ 장점 : 작가의 개인적인 능력과 천재성을 중시함. ♠ 단점 : 의도의 오류를 범할 수 있음.(작가가 표현하고자의도한 것과 그것이 실제로 표현된 결과인 작품이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 반영론적 관점 ⑴ 기본 입장 : 문학 작품은 현실 세계의 반영이다. ⑵ 특징 ♠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품과현실 세계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관점임. ♠ 실제로 인간의 삶은 현실 세계에서 영위되고 있으므로, 작품은 인간의 현실적 삶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고할 수 있다. ♠ 작품에 나타난 현실과 실제의 현실이 맺고 있는 관련성에촛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방법임. ⑶ 방법 ♠ 작품이 대상으로 삼은 현실 세계에 대해 연구한다. ♠ 작품에 반영된 세계와 대상 세계를 비교 검토한다. ♠ 작품이 대상 세계의 진실한 모습과 전형적 모습을 반영했는지검토한다. ⑷ 장 · 단점 ♠ 장점 : 문학이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서출발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며, 문학 작품에대한 이해가 삶의 현실, 시대 및 역사에 대한 이해로 확대될수 있게 한다. ♠ 단점 : 이 방법이 지나치면 작품을 작품으로서가 아니라실제 사실들의 조립체 또는 역사적 자료로 보게되는 단점이 있음. 효용론적 관점(수용론적) ⑴ 기본 입장 : 문학은 독자에게 미적 쾌감, 교훈, 감동 등의효과를 주기 위해 창작한 것이다. ⑵ 특징 ♠ 작품과 독자의 관계를 중시하는 관점 ♠ 능동적 참여자로서의 독자의 역할을 강조함.(독자가 작품을수용함으로써 의미가 구현된다는 점, 즉작품 해석이 수용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다는점 등을 제시함) ♠ 작품의 가치를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어느 정도 주었느냐에따라 평가하려는 관점이다. ⑶ 방법 ♠ 독자의 감동이 무엇이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작품의 어떤면에서 촉발되는가를 검토한다. ♠ 그 시대의 최고의 지성과 정신 등 객관적이고 타당한 기준이도입된다. ⑷ 장 · 단점 ♠ 장점 : 독자가 능동적인 주체가 되며, 일반 독자들이 쉽게실천할 수 있는 관점이다. ♠ 단점 : 독자의 주관적 느낌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하는오류에 빠질 염려가 있음. 절대주의적 관점(구조론적) ⑴ 기본 입장 : 문학 작품은 고도의 형상적 언어로 조직된자율적인 체계이다. ⑵ 특징 ♠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는 작품밖에 없으며, 작품속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함. ♠ 작품을 그 자체로 독립된 자족적 세계로 인식하기 때문에, 작품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생각함. ♠ 작품을 작가나 시대, 환경으로부터 독립시켜 이해한다. ♠ 언어 표현의 방식과 작품의 내적인 짜임새를 중시함. ⑶ 방법 ♠ 작품의 언어적 구조를 중시한다. ♠ 문학의 언어가 지니는 특징 및 언어의 이미지, 비유, 상징등에 주목한다. ♠ 작품을 유기적 존재로 본다. 특히, 시에 있어서 시어와시어 사이, 행과 행, 연과 전체 작품의 상관 관계, 운율과 의미와의 관계 등을 분석적으로 이해한다. ⑷ 장 · 단점 ♠ 장점 : 언어에 민감한 시의 분석에 뛰어난 성과를 보임. ♠ 단점 : 작품에 대한 해석의 폭을 좁힐 수 있으며, 문학이궁극적으로는 역사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고려하지 않는다. 종합주의적 관점 ⑴ 기본 입장 : 작품의 총체적이고도 통일적인 의미를 추구하기위해서는 표현론적, 반영론적, 효용론적, 절대주의적관점을 통합하여 연구해야 한다. ⑵ 특징 ♠ 작품을 어떤 하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그 작품의 부분적의미만을 볼 가능성이 있음을 전제함. ♠ 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총체적으로이해하려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는것이다. ⑶ 방법 ♠ 네 가지 관점을 통합한다. ♠ 네 가지 관점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유지한다. ​ 출처 : http://www.woorimal.net/ [출처] [공유] 문학작품의 해석 방법|작성자 옥토끼  
105    1950년대 시인의 <시와 시인의 말>1/정한모(鄭漢模) 댓글:  조회:1518  추천:0  2019-12-14
1950년대 시인의  1/정한모(鄭漢模)       멸입(滅入)                                        한 개의 돌 속에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 그렇게 옮기어 가는 정연(整然)한 움직임 속에서   소조(蕭條)한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미루나무의 나상(裸像) 모여드는 원경(遠景)을 흔들어 줄 바람도 없이   이루어 온 맑은 빛깔과 보람과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   끝 가지 아슬히 사라져 하늘이 된다.   별리(別離)       지금은 차라리 아름다울 수 있는 그것은   현악기(絃樂器) 혹은 목관악기(木管樂器)의 고음(高音) 그 가늘한 도레모로로 내 가슴에 금을 그으면서 사라져 간 몇 개의 이별(離別)들   녹아드는 빙과(氷菓)의 맛처럼 슬픔은 그런대로 자릿한 미각(味覺)이기도 하였으나   흔들리는 바다의 그 푸른 바탕에 떠서 하늘하늘 하얀 꽃이파리는 지고 우리들의 이별(離別)은 끝났다.   끝이 난다는 것은 홀가분한 휴식(休息) 아니면 고요한 기도(祈禱)와도 같은 것   뜨거웠던 입술 속에서 떠오르는 달무리 그렇게 번지어가는 추억(追憶)   창의 불빛 휘파람소리 숨소리 이슬 젖은 소롯길   빗소리 바람소리 하얀 눈길   가슴 조이는 통고(痛苦)마저도 불붙는 생명일 수 있었던   그것은 떨어뜨린 눈물로 지워진 흐릿한 글씨 또는 남은 향기   이제는 거리(距離)에서 아물아물 바람에 스치우는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별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난해難解와 전달傳達                                                                                            정한모(鄭漢模)                                                                        는 말을 듣는다. 지당한 말들이다. 사실 현대시는 난해하다. 말라르메의 상징시 이래 T. S. 엘리어트 의 철저한 주지적 경향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도 이미 허다한 논란을 거듭하여 왔다. 이와 같이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오면서도 시인을 있게 하고 더욱 더 시가 절실하게 요구되면서 현대시가 발전해 왔다는 것은 현대시의 난해성이란 어쩔 수 없는 필연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시의 난해성은 긍정(肯定)되어야 할 것이다. 극도로 압축된 문학형식 속에서 현대 지성의 다양성과 그 논리를 처리하려고 하면 작품은 당연히 난해해질 수 밖에 없다. 현대시가 노래하는 시로부터 읽고 생각하는 시로 그 매력의 중심을 이행해 온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으나, 현대시는 그 대부분이 읽는 시이지 애송(愛誦)할 수 있는 시가 아니다. 노래하는 시에서는 반복이 생명이며 언어의 형식이나 음률적(音律的) 요소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반복되기 쉬운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시인 현대시는 그 기억의 성질이 전연 다른 것이다. 노래하는 시의 경우엔 그 기억이 언어의 음에 더 많이 의존하지만 읽는 시는 이미지 혹은 의미로서 마음에 남는 성질의 것이다. 이리하여 노래하는 시로서의 전달성은 잃었지마는 그 대신 읽는 시로서의 전달성을 갖게 되었다. 즉 생각하고 느끼고 보고 지각하는 기능을 현대시는 갖추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의 기능과 효용은 그 폭을 넓혔고 또 그 전달성에 있어서도 단순했던 과거의 시보다 복잡해졌으므로 자연 난해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시는 언어에 의한 표현활동의 최고의 형식이다. 시인들은 이것을 믿고 있으므로 여러 각도에서 끊임없이 언어에 대한 시도를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경험이 새로우면 따라서 언어표현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표현을 달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욕은 생활을 새롭게 하고자하는 지향(指向)과 근본적으로 결부되고 있다. 시인들이 그 표현에서 특이한 형식, 리듬, 신기(新奇)한 이미지, 또는 의미가 풍부한 메타포(metaphor)에 의하여 혹은 리듬을 뒤바꾸거나 이미지나 의미를 고의로 축소 내지 확대하거나 탈락, 단절시키거나 하여 그것 때문에 대단히 난해한 표현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시인의 기술의 미숙이나 경험의 부족에서 생긴 혼란 때문에 난해해진 것까지 포함시킨다는 말은 아니지만 현대시의 난해성은 이런 필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의 난해성은 시에서 의미를 제거(除去)하는 데서부터 비롯하였다. 시에서 의미를 제거하는 데에도 본질적으로 뜻이 다른 두 계열이 있었다. 저 몽롱한 음악적 정서에 젖고자한 상징시(象徵詩)나 그 뒤 순수시 같은 것은 오직 심미적(審美的)인 목적을 위하여 의미를 버렸고, 같은 심미적 목적을 위함이면서도 몽롱한 음악의 경지를 지양(止揚)하여 명쾌한 시각적 심상을 찾는 초현실주의의 이후 모든 포멀리즘(formaism)은 회화적(繪畵的)인 세계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시에서는 음악을 듣거나 시화(詩畵)를 감상(鑑賞)하듯 다만 순수히 감각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 감각하는 것이 바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는 이런 심미적 목적만이 아니라 보다 더 시인의 개체적 현실의식과 내적체험을 새로운 언어의 구성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주체적 리얼리즘(realism)을 기초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시가 난해한 경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보편성을 가진 가치의식이 아니고 다만 현대적 자아 속에서도 사적(私的)이며 개인적인 현실의식과 내적세계를 표현하고자 할 때 그 속에는 남에게 이해될 수 없는 많은 것이 불가피하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대의 시인들이 전달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알기 쉬운 시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또한 아무리 난해한 시라 할지라도 완전히 불가해(不可解)한 시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시는 그 구성에서부터 긴장과 갈등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 꾸며진 경우엔 그것은 산란한 단편(斷片)들의 어지러운 모습이거나 참으로 무엇인지 전연 짐작할 길 없는 그야말로 난해한 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짤 째어진 시라면 미묘한 색채(色彩)의 새로운 조화(調和), 또는 불협화음의 아름다운 화음(和音)의 매력을 지니게 된다. 좋은 시는 반드시 아름답게 이해될 것이며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난해성과 전달이 현대시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처럼 T. S. 엘리어트는 “진정한 시는 이해되기 전에 전달할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발레리는 “시는 천 명의 독자에게 한 번만 읽혀지는 것과 한 명의 독자에게 천 번 읽히는 작품이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난해한 시라고 할지라도 단 한 명의 독자에게 천 번이 아니라 열 번만이라도 읽히는 작품이라면 훌륭히 전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발레리의 이 말은 시의 고고성(孤高性)을 더 강조한 듯하나 T. S. 엘리어트의 이 말은 현대시의 난해성의 본질을 정확하게 구명(究明)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현대시의 난해성을 시인(是認)한다. 더욱이 감상능력이 그 감상의 대상 내용인 시적미(詩的美)의 조직의 변화를 미처 따르지 못하고 있을 때 그 난해성은 더욱 완고(頑固)할 것이다. ‘시의 빈곤(貧困)’이란 말이 어느 시대에도 잘 씌어진 말 같지만 오늘날 역시 ‘시의 빈곤’이란 말은 자주 논의되고 있다. 현대라는 시대와 현대의 인간성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면 현대만큼 절실하게 시가 필요한 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현대의 버스’를 미처 타지 못한 지참(遲參)한 인간이 자기의 낡은 시의 개념과 그에 따르는 낡은 시의 방법과 기술로 쓰거나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과거의 세계를 현대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시의 빈곤’을 재래(齎來)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희극(喜劇)은 시의 빈곤의 원인이 자기의 낡아빠진 머리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고 있다는 점에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매력을 불변의 규준(規準)으로 삼고 모든 사리(事理)를 단정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청각이나 시각 같은 감관(感官)의 세계에서도 또한 논리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시대의 진화와 변화를 쉽사리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시의 경우에도 낡은 감상능력을 한도로 하여 언제까지나 이것에 의거하여 오늘 날의 현대시를 비판하려고 한다. 이러한 독자에겐 현대시는 다만 차단된 벽일 수밖에 없으며 더욱 불가해한 것이 되고 만다. 여기서 다시 현대시의 난해성을 시인하며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대시의 난해성이 불가피한 경향이란 사실에 현혹되어 난해한 시만이 가장 새로운 시인 듯 착각하고 일부러 불가해한 시를 써가지고 자랑으로 삼고 있는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시를 쓰는 사람이 오늘날 없지 않아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는 말이 시인에게 조금도 자랑이 될 수 없다. 현대시에서 난해한 시는 있을 수 있으나 전달되지 않는 불가해한 시는 있을 수 없다. 빈약한 육체와도 같은 보잘 것 없는 사고(思考)를 감추기 위하여 불투명한 의미를 가진 의상(衣裳)으로 애매하게 감싸가지고 난해성이란 추세를 이용하여 현대시 속에 한 몫 끼어보려는 사이비(似而非) 현대시는 적발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난해성이 현대시의 운명에 가까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난해성에 편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현대시인의 시의 기술이 이러한 난해성을 얼마나 가능한 한도에서 막아내는데 있지 않을까 한다. 오늘날 시인들의 노력은 이 현대의 다양성(多樣性)과 착잡(錯雜)한 논리를 어떻게 정돈하고 질서를 세워 나가느냐 어떻게 논리적 이미지를 조형(造形)하여 현대시로서의 발랄한 생명을 지니게 하느냐 하는 방향에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난해성을 일종의 스타일처럼 착각한다든지 심한 경우 난해성을 도리어 과시하는 넌센스는 현대시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통찰과 그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정화(淨化)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韓國戰後問題詩集』(1961년 신구문화사) *한자는 한글로 표기하고, 중요한 한자는 괄호에 넣어 표기하였으며 영어단어는 괄호속에 영문자를 넣었음.
104    낭만적 영혼과 꿈 / 알베르 베겡 저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댓글:  조회:1708  추천:0  2019-06-30
낭만적 영혼과 꿈 알베르 베겡 저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독일낭만주의와 프랑스 시에관한 시론       서문       꿈의 개화 현상   밤의 꿈들, 표면에 너무 근접해서 조그만 충격에도 표면으로 드러날 것같은, 낮에도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더욱 신비로운 꿈들, 거기에는 여러가지 기호들을 통해 자신의 영속성과 풍성함을 나타내는 또하나의 현실이 있다.     내가 소홀히 한 것, 망각속으로 사라져버린 것들이 어느날, 뜻하지 않게, 땅속에 묻힌 씨앗이 꽃이나 나무로 자라듯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자양으로 성장하여 변용된 모습으로 거기서 다시 솟아오른다.     그것은 나 자신보다 훨씬 더 먼곳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오는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 또는 개체로서의 내 존재의 영역과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 오는 것만 같다.         상상력의 세계   상상을 통해 표출되는 이미지들은 바로 나의 내부에 있는 꿈을 자극하고 표면에 떠오르게 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에 투사하는 능력을 갖고있다. 또는 사물들이 나의 외부에 존재하기를 멈추고   마술적인 그들의 진정한 이름으로 부름받고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위해 생동한다고도 말 할 수있다.     사상이나 예술작품은 실제로 우리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에 관계한다. 외관상의 개체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 자신에게로 향해진 그부분에 이르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근심밖에 남지 않는다.     징조와 신호들에 우리자신을 열고, 그럼으로써 한순간 완전히 생소하게 응시된 인간조건이, 그것이 가지는 위험과 전반적인 불안, 아름다움과 실망스런 한계들과 함께 불러일으키는 혼미함을 깨닫는 것이 바로 그 근심이다.           꿈 신화의 황금시대의 유적인 우리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성인이 된 인간은 사물들, 종이 조각들, 예전에 친숙했던 풍경들과 같은 마술적 잔해의 힘을 빌어, 자신 속 어딘엔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 끓어오를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을 일깨우려한다.     우리의 자애심 자체가 우리에게 깊이 감추려드는 가장 독특한 우리 존재에 대한 인식은, 거울이나 사진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죽어버린 우리의 초상에서 우리의 얼굴 혹은 어깨에 대한 미지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러한 조화 혹은 특수한 법칙을 포착하려면, 시간에 대한 관조를 통해 시간에서 벗어나거나, 귀를 귀울여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의 운명인 이 멜로디를 식별해 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류가 행하는 , 각 개인의 멜로디가 귀결되는 인류 자신의 멜로디에 대한 탐구이기때문이다.     꿈이란 말은 한편에서는 미학적이거나 특이한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는 밤의 꿈을 지칭하고, 또한편에서는 관념의 세계보다는 감성으로 채워진 , 안락처를 찾아 나선 정신을 이끄는 변함없는 이미지들의 세계를 뜻한다.     또 달리는 시인과 신화적 상상력이 한결같이 그들의 부를 길어오는, 먼 과거에서 대대로 이어져오는 무의식적 기억이라는 보물창고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때로는 유령들이 살고있는 위험한 장소이기도하고, 또 때로는 천국을 향해 열려있는 휘황찬란한 현관이기도 하다. 신 자신이 꿈을 통해 우리에게 엄숙한 경고를 전하기도 하고, 대지에 밖혀있는 우리의 뿌리가 꿈에 의해 자연의 풍요로운 품으로 뛰어 들기도 한다.     예술의 리듬에 영감을 불어넣는 몽환적 삶의 리듬은 별들의 영원한 운행과도, 원죄를 짓기 전에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었던 원초적인 박동과도 일치한다.     낭만주의자들은 무의식적 이미지들 속에서, 그것이 비록 병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을 미지의 영역으로 이끄는 길을 찾으려 한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병적 이미지를 정화시켜 지상의 삶에 유용한 것으로 만들려는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시공 속에서 우리를 우리 너머로 연장시켜 현재의 우리존재를 무한한 운명의 선 위에 찍힌 한점으로 만드는 모든것의 비밀을 거기에서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제1장 낮에서 밤으로   낭만주의자들은 꿈이나 또다른 주관적인 상태들을 통해 자신 속에 침잠함으로써 우리의 의식보다 '더 우리자신인' 우리의 부분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일한 앎은 내적 심연으로의 침잠을 통한 앎, 개별적인 우리의 리듬과 전 우주적 리듬의 일치를 통한 앎,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어떤 실재에 대한 유추적인 앎이다.     1. 켜진 촛불 우리의 무의식적 기억과 향수는 우리가 육체화되어 생리적으로 개인이 되는 탄생의 신비에 앞서는 어떤 존재의 무엇인가가 우리 속에 계속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2. 지상의 미로 이중적 충동- 광활한 공간에 대한 갈망과 칩거생활에 대한 욕망, 감옥처럼 느껴지는 한계 밖으로의 도피와 그 울타리 안으로 되돌아 오게 만드는 현기증- 모리츠는 일찌감치 자신의 내부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그 충동은 그의 내적 삶의 원초적이고 심원한 리듬, 그존재의 풍부함과 비극성을 형성한다.     팽창에서 자기 내부로의 귀환, 신비주의적 내적일치에서 행동의지의 고갈로 이행되는 동일한 리듬이 각운을 이룬다.     내적 숙명의 자각   모리츠는 인간이 다른 능력을 가지게 될 미래에 대한 '마술적'이고 낭만적 생각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개인의 저주로 여기는 신비적 염세주의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신비학자들 그리고 이어 낭만적 사상가들은 원초적 통일성이 죄로 인해 깨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연에서 발효되어 요동치는 모든 생명과 모든 사랑을 자신 속으로 들여마신다고 믿을 정도로 그 생각을 밀고 나갈 수만 있다면, 자신을 동시에 꽃이자 초목이자 새이자 노래이고 신선함이자 유연함이며 쾌락이자 평온으로 느낄수만 있다면! 수축에 '활짝 피어남'이 대응한다. 최상의 순간은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모리츠에게도 무한속에서 자아가 완전히 망실되는 순간이 아니라, 팽창과 한정이 실재감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 존재의 팽창과 수축의 감정은 한순간 안으로 집약되며, 거기서 유래되는 혼합한 느낌에서 바로 그와같은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이상한 종류의 우울이 탄생된다.     그의 정신적 진화의 본질적인 문제는 두 세계,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실제 세계와 그가 안식처로 삼으려 했던 꿈의 '이상적인' 세계의 분열이었다. 거친 현실에 의해 손상을 입은 자아가 활짝 피어날 수잇는 자의적 세계를 창조하는 것, 그것은 낭만적 영혼의 첫 움직임이다.     이러한 믿음을 획득한 영혼이 삶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빛으로 그 삶을 변모시키고, 무덤너머에 있는 고등한 삶의 '여기와 지금'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움직임 말이다. 꿈은 그에게 사람들이 은신처로 삼으려하는 하나의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가시적 현실에 아직 마술적인 색깔들을 퍼뜨리지는 않는다.     그는 꿈이 의식적인 삶에 의해 망각된 기억의 수문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그 기억들을 거대한 전체속의 혼돈이었던 이전의 삶과 연관시키고, 기억의 고리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갈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감한다.   제2장 꿈, 자연 그리고 복귀     한개인이나 한 세기의 우주는 우리 정신의 이미지에 속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의 통일성은 자신의 통일성을 믿는 자에게만 존재한다.   '영혼'이라는 낱말에 그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전체적인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중심의 개념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통일성은 무한대로 분열한다.     합리주의자들의 오만은 가장 명백하지만 가장 깊이가 없는 우리의 능력에 집착하는데 있고, 신비주의자들과 시인들의 오만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면, 자신이 자신을 한없이 초월하는 어떤 신비한 실재와 유사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이 오만은 결국 최고의 겸손이다. 그것은 인간조건의 불안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끊임없이 우리자신의 신비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피조물은 알 수없는 운명에 따른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그운명이 자신의 존재에 관해 우리에게 보내는 모든 신호들을 포착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18세기 리히텐베르크와 모리츠, 하만과 헤르더, 젊은 괴테와 장 파울, 게다가 장 자크와 디드로까지, 그리고 경건주의자들과 신비론자들... 그들의 사고와 정서에 있어서도 그들 자신의 전 존재를 몰입시키는 일에만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앞선 경험적 시대와 뒤이어 오는 과학적 시대에 반하여 그들은 어떤 감정적 충격에 의해 강화되는 직관만을 믿는다. ......거대한 반항과 신비적 겸허함이 언제나처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낭만주의가 모든 위험과 난파를 무릎쓰고, 또한 모든 운을 걸고 그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편적 통일성, 세계의 영혼, 절대적 수와 같은 대신화들을 부활시키고 보물창고와 수호신인 밤- 우리가 지고한 실재와 성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성소인 무의식- 모든 광경이 변모하고, 모든 이미지가 상징과 신비적 언어가 되는 꿈과 같은 대신화들을 창조해낼 것이다.   3. 르네상스의 재발견   자신에 대한 앎만이, 이 지옥으로의 탐방만이 우리에게 신으로 이르는 길을 열어준다 - 하만   19세기초 자연철학자: 사변가,실험가,신비론자,최면술사, 연금술사   비이성주의의 태동- 독일 르레상스의 신플라톤 학파: 낭만적 물리학자: 케플러/파라겔수스/쿠자/아글파/브루노/ 등에게서 우주는 영혼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     본질적인 하나의 정체성이 전체의 발현에 불과한 모든 개별자들을 연결시킨다. 보편적 친화의 관계가 삶의 모든 발현들을 지배하고, 르네상스의 모든 사상가들이 왜 마술을 믿었는지 설명해준다. 그의 울림들이 단계적으로 만물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래서 마술적 작용은 머나먼 곳에 있는 사물이나 존재들에게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자연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유사는 각각의 운명이 별들과 성좌들의 흐름에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사고할 수 있고 의식이 있는 피조물이라는 긍지, 우주가 스스로를 비추어 보고 자신을 알게되는 거울이라는 긍지 덕분에 인간은 만물의 중심에서도 특별한 자리를 점한다. 또한 거꾸로 인간은 자신의 중심에서 만물의 전체를 되찾는다. 안다는 것, 그것은 내부를 탐방하는 일이다.     신비의 길은 내부로 향한다. 영원이 그의 세계들 과거와 미래와 함께 있는 곳은 우리의 내부이지 그외의 어느 곳도 아니다.     자연을 창조한 신은 자신의 이미지를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 바로 거기에 인간적 운명의 모든 비밀이 있다.창조주와 인간의 주요한 유사점은 둘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갑자기 만물이 완전히 새롭게, 그들의 완전한 의미를 갖춘채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들은 특별한 순간에만 우리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바로 이순간들을 포착한다.     내부의 인간은 하나이다. 그의 모든 열정은 보이지 않는 관계들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한결같이 단 하나의 불꽃에 의해 생기를 얻는다.     헤르더의 생기론적 개념   합리주의에 반대하여 내적 감각의 직관, 혹은 모든 존재와 그가 속한 유기체 전체 사이의 교감 뿐만 아니라, 자연은 살아있기때문에 그것을 포착하기위해서는 이성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다.     생물학적 생성의 법칙   모든 존재들의 진화와 정련의 대신비이고 증오와 사랑, 매혹 변모의 심연이다. 신은 자연과 역사라는 평행적인 두진화 속에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영원히 생성중인 하니의 힘으로 이해된다. 그 두 움직임 속에서, 끊임없는 투쟁은 앞선 형태들 보다는 항상 더 우월한 형태들의 탄생과 변모를 야기 시킨다.     전체 사이의 교감   만물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에 따른 리듬적 의미 - 인간의 본성과 신의 본성 사이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자연의 진화 사이에도 존재한다.     우주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예술작품의 법칙은 바로 영원을 포착하되 그러나 순간 속에서 포착하고, 무한을 인식하되 그러나 대상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괴테는 사물을 통해 그들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하기를 거부했고, 인간의 행위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행위는 최상의 비전으로 사물들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라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포착된 각 순간 속에서, 파악된 각 사물안에서 그가 도달하는 것은 영원이라고, 영구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살아 있는 , 생기에 찬 하나의 실재인 영원 자체라고 확신 하고 있다.     경험주의자들에 대한 신비주의자 낭만주의자들의 반발: 자연의 상징적 가치 그리고 감각적인 세계를 초월하는 실재하는 세계의 우의성. 그것은 즉각적인 우주의 기계적인 힘이 아니라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실재들에 대해 발휘되는 권능이다.     자연에 대해 진실인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도 진실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둘 사이에는 단순한 유사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동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유기체의 구조와 우주의 구조 사이에 무한히 많은 유사성이 설정된다.     4. 우주적 통일     고로 자연은 다양한 요소들로 분해될 수 있는 하나의 기계장치가 아니라 생기에 찬 하나의 유기체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동물적 삶과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외적 현상들의 다양성에서 하나의 기본적인 통일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에 따랐던 모든 이에게 공통된 본질적 직관이다. 자연을 시간 속에서 바라볼때, 그것은 모든 개별적인 존재가 태어나고 죽으며, 총체에의 복종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순환으로 보인다.     공간 속에서의 자연은 모든 현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현상들 각각은 전체적인 삶을 반영하고 재생산 할 뿐이다.     오직 전체(절대)만이 살아 있다. 각 개인은 전체에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에 비례해서만, 다시 말해 엑스터시가 그를 그자신의 개체성에서 분리 시키는 한에 있어서만 살아있다: 바아더     그러므로 생명만이 유일한 실재이고 영원한 움직임은 신적인 것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유동은 방향이 있으며 맹목적인 힘과는 구별된다.     "각자의 종에서 완벽한 모든 것은 자신의 종을 넘어 다른 무엇,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괴테     생성 과정은 일정한 방향을 따라 진행되고, 개별적인 생명들의 진보는 생명 전체가 최초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게 해준다.     신비주의자들의 출발점   원초적으로 주어진 것은 신적인 통일성이고, 자신들은 그로부터 추방당했다고 느끼며, 신비한 결합을 통해 그것으로 되돌아 가고자 열망한다, 또한 낭만적 사상가들은 우주의 생성과정 자체를 상실된 통일성으로 돌아가는 도정으로 설명하려함.     분리된 존재는 악이다. 모든 개별적 존재는 전체의 불완전한 반영일 뿐이며, 자연이 그 전체성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는 생명의 절대적 관념을 표현하고자하는 미완성의 시도일 뿐이다.     모든 것 속에는 개별화와 분리의 근원과 상실되었지만 미래에 되찾을 통일성의 씨앗이 함께 비밀스럽게 살고 있다. 하지만 오직 통일성 만이 실재하기 때문에 복귀를 향한 삶은 불가피한 것이다.     생명을 구성하는 모든 쌍들의 성향들 사이에서 하나의 방대한 유사체계가 세워진다. 낮과 밤의 리듬에 여러가지 층위의 성의 대립, 중력과 빛, 힘, 물질등의 원리들이 상응한다.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힘이 모든 존재를 서로 서로 그리고 전체와 연결시키며 전 우주적 생명을 관통한다. 자기에 대한 발견들에 영향을 받아 이힘은 친화력이라 명명한다.     우주-동물이라는 신플라톤 학파적인 인식과 더불어, 개별적인 영혼들을 통해 발현되거나,한 양상을 드러내는 , 모든 사물의 정신적 근원이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보편적 영혼의 개념이 다시 태어난다. 이 영혼은 정신적 실재와 우주가 발현하는 근원이다. 관념들의 초월적 차원과 자연의 차원사이에는 더이상 심연은 없고 공통된 관계만 있을 뿐이다.자연은 인간 정신 속에서 의식적인 것이되는 , 그리고 창조의 측면에서 볼때는 분리될 수없는 통일성인 이 영혼의 어떤 무의식적인 행위와 동일시된다.     신이 모든 것안에 있다면, 그는 동시에 결코 우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원리, 그의 중심, 그의 영혼으로서 우주안에 현존해 있는 진정하고 유일한 존재라고 그들은 말한다.     인간은 '모든 순간에 살아있고 그 내부에 있는 그 무엇도 결코 우주에서 고립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하나의 내부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 속에서 자연의 전체성을 반영하고 거기서 신을 발견한다. 분리된 각각 의 존재를 유기체 전체의 상징으로 만드는 유추에 우리의 정신을 우주의 완전한 상징으로 삼는 유추가 응답한다.     자연의 신비는 인간의 형태속에 전체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인간은 지구의 멀고 먼 과거의 심연 속에서 만들졌다. 인간은 지구의 전 운명 그리고 무한한 우주의 운명을 자기자신의 운명처럼 그내부에 지니고 있다- 우주의 전역사가 우리 각자 속에 잠들어 있다. (슈터펜스)     인간은 자신의 내부로 내려가, 사랑과 언어, 시 그리고 무의식의 모든 이미지 속에서 그에게 아직 그의 기원들을 기억나게 할 수있는 다양한 모든 잔해들을 찾아야 한다.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 신과의 유사점에 대한 감명을 모호하게라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자연 속에서 재발견 해야만 한다. 잠들어 있는 이 씨앗들을 취해 경작해야만 한다.     신비한 현존을 드러내주는 꿈의 씨앗들   5. 삶, 그 밤의 양상들     인간 -소우주는 내적 감각 혹은 보편적 감각이라 명명된 단 하나의 인식방법을 갖춘 완벽한 유기체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신비신학의 교리에 따르면, 이 감각은 유추를 통해 우주를 알고 있다. 인간이 조화로운 자연과 유사하기때문에 그자신이 그대로 반영되는 현실에 도달하기위해서는 자기자신의 관조 속에 침잠하기만 하면 되었다.     현상태에 이르기까지 이감각은 지위지고 조각나기는 햇지만 우리 내부에 살아 남아 있다. 진정한 앎에 이르고자 한다면 그감각까지 내려가야한다. 그감각은 자연을 지배하는 역동적인 힘 -자기작용 같은 것-과 유사한데, 최면, 몽유, 시적 고양의 모든 상태들, 다시말해 엑스터시라 불릴 수 있는 자연의 리듬 자체에 자신을 유기하는 상태들 속에서 나타난다.     엑스터시 ekstase 우리를 평상적인 상태 밖으로 데리고 가서 일시적으로 다른 존재로 복원시켜 놓는다.     랭보: 시인은 본질적으로 견자다. 시는 예언이며 과거, 미래, 전체성에 대한 엑스터시 상태의 비전이다.     프시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생명원리, 영혼을 나타냄. 심리학적으로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모든 정신현상의 총체를 가리킴.     영혼: 우리 마음 속의 현존, 우리를 한없이 초월하는 무엇인가의 신성하고 강력한 현존이다. - 마음 속에 현존하는 신     깨어있음과 잠의 교대는 우리가 우주적 생명에 속해있고 리듬의 유사가 보편적 관계라는 가장 뚜렷한 표현이다.     온갖종류의 '대지의 영향'에 의해 물리적 우주에 뿌리를 박고있는 우리는 모두 포로들이다. 하지만 이 포로들에게 는 그들을 묶고있는 사슬자체가 미래의 자유와 조화의 약속이다.     잠은 대지의 산물이며 깨어있음은 태양의 산물이다.     영혼은 잠에 빠져 있을때, 자연이라는 전체적인 유기체와, 그리고 동시에 바로 자신의 육체적인 생명과 보다 밀접한 공생관계를 이룬다. 인간은 주기적으로 두뇌가 지배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대지의 영향을 받던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고로 꿈은 생리학적 성장의 모든 무의식적 과정이 모호하게나마 예감되는 희미한 의식상태로, 전 우주에 생기를 불러넣는 생명의 유기적 존재로서의 행위와 가장 즉각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순간으로 인식된다.     꿈   꿈을 통해 우주적 실재에 참여 꿈은 아직 인간이 자연의 말씀이었던 황금시대에 인간이 처해있던 최초의 상태였고, 신화적 시간에 대한 이 무의식적 생각은 자연의 완전한 계시다. 꿈을 통해 우리는 신호들에 귀 기울이고, 우리 존재의 밤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유적들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6. 꿈의 형이상학     마음과 관능은 둘다 존재의 중심을 지칭하는데, '진정한 실재 속에서'사느냐 아니면 무의 변경에 있는 감각적인 현상의 세계즉 maya에 사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신을 지각하고 자신의 관능 속에서 우주를 지각한다.     트록슬러: 인간의 물질적인 본성은 우주 안에 스스로를 드러낸 신의 발현인 반면에, 그의 정신적 본성은 신에게로 회귀하려는 성향     최초의 통일성이 우주와 인간이라는 자연의 창조 속으로 전개되었다면, 자연의 모든 진화는 최초의 상태에 다시 도달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회귀성향의 최고의 표현은 본질적인 갈망들로 목말라하는 인간의 영혼이다.     깨어있음은 삶의 밝은 면이고 잠은 어두운 면이다. 하나는 신 속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속의 삶이다. 이 교대의 삶은 죽음에 의해 해방되고 불멸에 이르러우주의 삶 속에서 새로이 자리잡을 때까지 계속된다.     꿈, 그것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실재의 중심 자체이다. 원초적이고 영원한 인간 내부의 심원이며 '생명의 행위 그자체'이다.     정신이 물질 속으로 내려오면, 상상력은 신에게서 나오는 모든 생성에 동반되는, 그리고 앎이라고 불리우는 그 꿈을 꾼다. 하지만 거꾸로 물질이 정신을 향해 상승하면, 앎은 자신의 '심연' 혹은 그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엑스터시라는 이름을 가진 상상력의 두번째 꿈이다.   그러므로 밤의 꿈은 영원한 꿈과 '유사한 것' 이상이다. 즉 그것은 영원한 꿈의 잔존물이고 우리 마음속, 우리내부 깊은 곳의, 최초의 통일성의 실제적 현존이다. 그것은 '깊이를 알수없고 탄생전과 죽음 후에나 그의 완전한 실재성을 가지게 되는 원초적 상태에 대한 암시'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부터 이심연들은 우리 모든 삶의 근원이 된다.   7. 꿈의 상징 체계     1814년 슈베르트 : 발간 바아더 를 통해 신비주의적 사상에 입문     사랑의 법칙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연적인 모든 과정을 지배한다. 금속은 공기와 결합하려는 욕망에 의해 녹슨다. 빛은 생명이 없는 존재들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형태이고 소리는 동성의 사물들 사이의 우정이다.     우주적 순간들에서 사물들은 자기를 통해 보다 발달된 종류의 존재 속으로 통합시켜주는 활발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질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생명은 어디에서나 하나이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식물과 동물의 삶은 자연의 대주기, 즉 연 일 시를 주재하는 동일한 리듬에 따라 조직된다.     '생명은 서로 대립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보편적인 거대한 힘들과의 일치에 다름아니다.' 식물들에 있어서 '죽음의 순간이기도 한 개화의 순간은 동물적 존재에 대한 예감이다.' 이처럼 단계에서 단계로 모든 자연적 생성은 존재의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인간을 지향한다.     시적 리듬은 그자체로서 마법적 주문의 역할을 하고, 일깨어진 어떤 조화, 우리와 우리가 속하는 우주 사이에서 복원된 보다 심원한 어떤 교감을 나타내는 행복감을 발생시킨다. 노래는 낮의 기능들을 '잠들게 함'으로써 무의식적인 삶의 내적인 탄생을 촉진 시킨다.     운명은 어떤 신성에 의해 계산된 길을 따라 우리의 삶을 이끄는 숙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 생애를 구성하는 모든 순간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이다.     현 세계는 반대되는 두 힘에 의해 지배된다. 하나는 개별화를 지향하고, 다른 하나는 자석처럼 작용하여 모든 사물들 사이의 유대와 모든 사물과 신 사이의 유대를 창조한다. 인간의 영혼은 사랑을 통해 화해하게 되는 이 두경향의 포로이다.   8 무의식의 신화       프리드리히의 위대한 풍경화; '그는 풍경의 비극을 발견했다' -다비르당제르.   자신의 내적비극 , '황혼은 그의 기본요소였다' -카루스     인간의 본성을 찢어놓는 화해할수없는 이중성들에서 오는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그는 자신의 신앙심과 예술관이 동시에 표현되는 통일성의 획득을 통해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자연을 앞두고 있는 인간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   화가가 우주적 유기체의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앎.   이 두야망을 밀접하게 일치시켜야 했고 만물 속에 있는 신의 존재를 짐작하게 해주기위해 그토록 생생한 인상을 우리의 인상을 결합시켜야 한다.     이상적인 풍경은 만물의 배면에 있는 무한을 우리에게드러내는 영혼의 주관적 상태들과 유한한 세계를 향해 있고 형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객관적 비전을 동시에 일깨워준다.   카루스의     전 자연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 부터, "영원한 법칙들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주를 전체적으로 창조하는 영원한 생성, 모든 삶의 근원"에 의해 생기를 얻는다.   "이생명의 원동력이 우주의 변화 뿐만 아니라 아주 미세한 유기적 성장 속에서도 표출된다."   전체와 부분 사이에는 카루스가 리듬의 일치라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유사의 관계가 존재한다. 천체들의 삶을 특징짓는 주기들의 광대한 리듬이 '신적인' 항구성을 가지고, "우리 자신의 내적 삶의 극도로 작은 입자들의 존재 속에도 반영된다."     유기체의 각 부분은 그의 내적 구조에 있어서 전체적 유기체와 흡사하다. 모든 부분들은 서로 동일하고, "생체의 각부분의 성장은 아주 단순한 하나의 동일한 원초적 형태의 극히 다양한 증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 형태는 바로 완벽한 원형, "전체라는 관념을 표현하고, 그결과로 일종의 자율을 누리는 " 세포이다.     하지만 생명의 무한한 흐름은 방향이 없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무궁한 상승, 극에 도달하는 완벽은 끊임없이 태어나는 형태들에 그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물리학과 우주발생론의 중심에 가치의 개념 재도입.   식물에서 동물 ,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함에 따라, 이 존재들과 이에 생기를 불어 넣는 신과의 관계는 밀접.   " 자신의 종에서 완벽한 모든 것은 그 종을 초월하여 다른 ,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괴테의 생물학적인 원칙, 카루스의 사상에도 낯설지 않은 개별적 진보를 통한 분화와 향상의 원칙인 것만은 아니다.   신적인 것은 모든 것 속에 존재하지만, 신은 동시에 세계의 중심이고 영혼, 혹은 생명과 그부분들의 원동력이다.   무의식     의식적인 정신적 삶에 대한 앎의 열쇠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속에 있다.     관념, 영혼은 모든 피조물에 형태와 생명을 부여하는 제1원인이다. 하지만 개인의 전 형성과정은 그 개인 자신의 의식에서 벗어난다. 유기적 진전과정, 성장, 생리적 형성은 무의식이라는 생기에 찬 거대한 실재속에 속한다.     "무의식은 우리가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지칭하는 주관적 표현이다."     그로므로 무의식은 그의 심원한 본질 속에서는 비개인적인 실재, 영원하고 끊임없는 생성, '신의 창조적 활동' 같은 것이다.     유기체적 통일   의식 속에서 기억과 예견이라고 부르게 될 시간들의 상관관계의 깊은 이유.     무의식은 의식의 본질적인 형태들에 대한 예시를 자신 속에 지니고 있다.   식물의 씨앗과 동물의 태아는 미래에 있을 성장들을 모조리 그안에 내포하고 있다.   카루스는 이러한 유기적 무의식의 예견에 프로메테우스의 원리라는 이름 부여.     다른 한편으로 유전은 과거가 현재의 진화 속에서 살아남아 활동하고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증명 이것이 기억의 무의식적인 형태 , 에피메테우스적 원리이다.     그러므로 삶을 이루는 모든 순간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이러한 유기적 기억은 그 내용물이 개인적 삶의 틀을 넘어서 존재의 근원들 자체에 이르는 일종의 무의지적 기억이다.         개인적인 삶은 '인류'라는 유기체의, 더나아가서 우주적 유기체의 한 부분이다.   인류의 영혼 그리고 세계 영혼의 모든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각각의 개별적 영혼을 거쳐 지나가야만 하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의 형상을 만들어야한다.     따라서 절대적 무의식은 우리 모든 삶에 있어서 극히 중요. 그것은 우리 모두의 본능적 삶과 내부에 있는 , 개별적 진화와 개인적 독창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닌, 우리 종 전체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휘한다.( 카알 융 과 일치)     본능의 형태로 각자의 삶 속에 잔존해 있는 무의식적 과정의 에피메테우스적 원리는 인간의 전 역사를 통한 경험을 영속화 시킨다. 유리환 정화들 속에서 투여된 개인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피조물 자격으로 우리가 우주와 관게를 맺는 모든 순간에 있어서,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이 보물에서 방어수단과 삶의 창조적 근거를 빌어온다.     시적 창조와 사고의 일례, 직관- 가장 심원한 창조력은 개인의 의식적인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조상 대대로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것을 간직하고있는 무의식의 집단적 저장소안에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그 과정의 절대적 필연, 어떠한 학습도 필요로 하지 않은 즉각성, 우주적 생명 그리고 과거와 미래와의 법촉으로 특징지어진다.     감정은 무의식적 삶에 섞어들고 그 모든 특성을 함께하는 '의식적 영혼의 어떤 특수한 색조'이다.       감정을 통해, 영혼은 모든 영혼들의 공통된 통일성과 관계하고 있는 심원한 영역에 가 닿는다.   감정중 최고의 형태인 사랑은 "분리된 존재로 부터의 최초의 해방이고 전체로 되돌아가는 첫걸음이다."   꿈의 귀환적 상상력     꿈을 통한 이미지의 순환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귀환은 서로 다른 두가지 양상   혈액의 순환과 유사한 첫번째 순환은 어떤 특수한 이미지나 감정을 망각속에 잠기게 하고, 이 이미지와 감정은 의식적인 삶 속에 새로이 작용하기 위해 변화하고 풍성해져 망각에서 다시 솟아오른다. 그사이 그것들은 발아되기 이전의 식물의 씨앗의 삶과 비교되는 잠재적 삶을 산다.     하지만 이런 분리된 이미지들과의 순환과는 별도로 보다 본질적인 또다른 리듬이 의식전체를 주기적으로 무의식의 밤 속에 잠기게 한다.   이 리듬은 "관념이라는 영원한 존재의 대 주기들, 우리의 삶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주기들을 재현"할 뿐이다. 꿈으로의 귀환은 식물적 삶 혹은 "아직 이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유아의 무의식적 삶"과 유사한 하나의 의식없는 잠이었던 태초의 상태로의 귀환이다.     "영혼이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이중의 삶을 끊임없이 영위하고" 이 양극사이를 영원히 오갈수있도록 잠은 그에 앞선 깨어있음을 통합한다.   그래서 카루스에 따르면 "표면적인 비존재 속의 존재의 연속성"이야말로 심리적 삶의 가장 큰 신비들 중 하나이다.     잠은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과 의식의 부분적인 퇴거에 의해 유발된다. 이처럼 식물적인 삶 속에 침잠함으로써 '영혼의 자연적인 부분들'은 새로운 활력을 취하고, 동시에 '자연 전체와의 보다 활발한 관계'가 무의식 속에 생겨난다.     일단 나라는 경계들이 무너지면, 존재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위대한 무의식과 보다 즉각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게되고, 한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달된 기억들의 불분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험은 의식의 세계에 우주에 대한 모호하고 심원한 인식을 가져다 준다.     그에게 있어 의식적 영역은 여전히 자율성을 지닌 이물질처럼 잠속에서 잔존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내밀한 결합이 이루어지고 그 결합에서 꿈이 생겨난다.     유기체의 어떤 내적 불균형들은 실제로 어떤 특별한 감정들을 발생시키고, 이감정은 다시 어떤 내적 이미지, 어떤 시적 상징을 일깨워 그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자연 속에서 발현된 신적인 관념인 영혼은 스스로는 시간과 공간을 알지 못한다.   영혼이 자연에서 퇴거함에 따라, 발현된 세계에 대한 의식이 흐려짐에 따라 영혼은 "생각들의 연속, 즉 식간과 그것들의 병렬, 즉 공간이 사라지고, 그자리에 이제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모든 존재의 통일성이 들어서는 것"을 보게된다.     전체 유기체의 의식적 부분이 인격 개성 그리고 자유가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유기체의 무의식적 부분은 그 유기체를 일반적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것, 요컨데 그를 보편화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무의식이기때문에 우주의 모든 움직임에 의해 관통되고 그것에 참여한다. 더 나아가서 가가운 것과 먼것, 그리고 공간에 속하는 모든 것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 그리고 시간에 석하는 모든 것도 그안에서 서로 만나고 섞인다.     "영혼의 건강한 성숙에 적합한 우리의 습관적 한계"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가 실제로 모든 현순간에 존재하고, 멀리 떨어져 공간들이 서로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인 생명의 얼마되지 않는 부분이외에는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우리 상태의 어떤 변모에 힘입어 우리는 보편적인 생명의 다른 양상들 , "우리로 하여금 멀고 먼 곳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도 접촉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양상들"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예외적으로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무의식 속에 깊이 침잠해 있기때문에 영혼이 바로 무의식에 고유한 특성인, 만물을 연결하는 그물망 속에, 공간적인 모든 것과 시간적인 모든 것의 상호침투에 속에 더 깊이 침잠하게 되는 " 예외적인 상태들 속에 신비롭거나 불가사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ㅜ여기서 유기적 참여와 의식적 참여를 구분해야한다.   예감과 통찰력       예감   우주적 감각의 조건인 우리의 무의식적인 삶은 자신의 자율성을 유기함으로써 보편적 생명의 순환 속으로 삼켜진다.   그리고 그때그것은 인체의 변모와 동일하게 보편적 생명의 변모들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이처럼 인류 혹은 자연의 생명의 순환 속에 침잠하여, 일반인은 전혀 느낄 수 없는 ,   멀리 발생한 혹은 미래에 발생할 어떤 사건들이나 다른 작용들에 영향을 받아 이상한 불안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이러한 예외적인 사실의 설명할 수 없는 지각은 그들의 정신상태를 완전히 변모해 놓는다.   바로 이것이 흔히들 예감이라 칭하는 것이다.     통찰력   다른 한편으로 우주와 인류의 모든 생명과 가지는 이 관계가 인간의 의식적인 영혼 속에 드러나 새로운 종류의 민감한 지각의 형태를 취한다. 그때 그빛이 항상 우리 각자를 관통하고 있지만, 우리가 평상시에는 지각하지 못하는 보편적 생명의 양상들이 의식에 도달하는 것은 더이상 모호한 감정들로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한정된 생각들로나타나는데 이것을 통찰력이라 부른다.     무의식을 통해 옛시대의 인류, 우리시대의 인류 그리고 우리 종의 미래적 운명들도 매순간 우리를 변모시킨다.   그리고 꿈의 이미지들 속에서 모호하게나마 의식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이 변모들이다.     카알 융은 이러한 낭만적 철학자 카루스의 직관을 이어간다.   '무의식 본래의 언어'인 이미지들에 말할때, 카루스는 슈베르트의 직계상속인이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최초의 직관 속에 있었다면, 카루스의 힘은 이러한 각각의 통찰력을 정신적이고 자연적인 삶에대한 전체적 비전에 연결시켜주는 일관된 구성에 있다.   명상   신의 의식에 그의 전능함을 되돌려주는 이 명상은 "사랑의 힘과 깊이로 심연을 메우고 극복하기위해" 열심인 우리의 노력이 도달할 수있는 최고의 진보이다.하지만 일단 이 정상에 도달하게되면 정신은 인간적인 삶 그자체로 되돌아 올수있다. 정신은 자신의 엑스터시로 인해 아름답게 변모된 인간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고귀한 종교적, 시적 영감들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이 변모이다.     이 각성된 영혼은 눈먼 유기적 생명의 심연 뿐만 아니라 신의 생명의 무한 속에서 '제2의 눈'을 담고 있을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우리안에 불멸하는 것은 관념, 영혼, 우리의 생성의 법칙이지 생성 중에 획득된 모든 특성들이 아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진보는 연속되는 모든 경험들, 감정들,사상들,관념이 신에게로 회귀하는 데에 소용이 되게하는데 있다. 유기적인 무의식은 생성의 모든 단계를 결합시키고, 그것들과 일치되며, 영원히 변함으로서 그 경계가 이동하는 과거와 미래로 나뉠 수밖에 없는 반면, 정신은 현재를 포착하기에, 다시말해 그본질에 있어 영구불변하는 관념 그자체를 응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것의 발현을 통해서만 관념을 알 수 있다.     < 우리 영혼의 관념은 지고의 존재의 이중적 빛의 방사를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속에 함축하고 있다. 이 발현 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창조하는 신적인 원동력으로 우리 외양의 끊임없는 변모를 결정한다. 다른 하나는 지속되는 하나의 내적 현재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정신으로, 우리의 자유로운 반쪽이고, 다른 반쪽의 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신과 맺고있는 이중적 관계가 설명된다. 만물에 속하는 우주적 존재들로서 우리는 무의식에 의해 신의 실재속에 뛰어든다   9. 순수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낭만주의 사상가들의 첫번째 공리는 오직 전체만이 존재를 절대적으로 부여받았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분리된 존재는 악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잃어버린 통일성에 이르는 길을 되찾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의 매개체는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 그 설명이 의식 속에서 찾아질 개인적 영역으로 귀착하지 않고   - 우리의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근원이 있는 초-개인적인 실재이고,   우리가 보편적 유기체와 접촉을 가지는 지점이다.     꿈과 다양한 열광들, 언어에서 인칭의 변화와 같은 사고들과 시적인 번득임들, 광기의 창조들과 유아기의 상상력들, 이모두가 태초에 자연의 생명과 함께한 협화음의 소중한 유물인 동시에, 결국에는 우리를 태초의 조화의 품으로 되돌려줄 근원들이다.     독일 낭만주의 시인들은 사상가들에 앞서 제각기 독특하지만 모두 밤의 가장자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따라 무의식의 모습들을 포착하고자 시도했다.   이러한 무의식의 양상들을 일깨우는 도구인 그들의 예술을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과 동일시했다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그들은 영웅적인 정열을 가지고 그일에 달려 들었다.     정신속에 내재해 있는 집단적 무의식(신화) , 즉 우주적 통일성과 개인적 이미지 (직관) 즉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징적 발현이 낭만주의의 근원적 미학이다.   이는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인바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로 나타난다.   이는 자연과 영혼의 합일에 이른다.   10 성운과 혜성     낭만주의의 핵심적소재(근원) -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 - 꿈의 미학   1) 집단적 무의식 (신화)   2) 개인적 이미지(직관)     우리의 상상력은 세계를 형성시킨 거대한 창조력의 알 수 없는 하나의 응답이다.   그의 활동이 우리에게 아주 생생한 행복감을 부여해 주는 것은 '정신이 창조한 이미지들이 바로 정신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휠더린   그가 전력을 다해 지향하는 소유는 낭만주의가 획득하고자 할 그 마술적 권능이 아니다.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관조적이고 미학적인 소유이다.   세계를 소유한다는 것은 만물이 갑자기 완벽하고 은혜로운 조화의 관계속에서 드러나 보일정도로 순수한 관조와 아름다운 비전을 되 찾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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