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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하이퍼시 구조와 시창작 기법의 실제 / 이선 댓글:  조회:185  추천:0  2019-06-28
하이퍼시 구조와 시창작 기법의 실제 / 이선     필자는 양천문화원, 광진문화원, 성동구민대학 수강생들에게 수년간 시창작을 가르쳤다. 아래 소개하는 하이퍼시 창작기법은 필자가 연구하여 수강생들에게 가르친 하이퍼시 창작 기법의 실제다. 학생들의 예시 작품은 익명으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 (1)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1: 언어충돌 아래에 제시한 낱말들을 연결하여 시적인 문장을 만드시오. 예제 1) 배, 연못, 유리컵, 반사경, 지붕, 김밥, 안개, 뛴다, 흐른다, 사라진다 고향/ 최〇〇// 연못 속 하얀 지붕/ 반사경처럼 비친다/ 안개 닮은 고향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김밥을 나눠먹으며/ 뛰어놀던 순자 얼굴/ 뱃고동 따라 흐른다 정〇〇: 고흐의 잘린 귀가 연못에/ 떨어져 별빛 언어를 듣고 있다/ 유리잔에 비친 얼룩진 얼굴/ 반쪽만 남아 홀로 웃고 있다 예제 2) 전봇대, 청기와집, 봉지, 강(한강), 낙엽 임〇〇: 겨울의 눈썹 밑으로 난 물길을 따라/ 조약돌들이 흘러간다// 한강 바닥의 낙엽 속으로 작은 강물이 흐른다/ 넓은 강을 전봇대들이 껑충껑충 뛰어 건너간다 예제 3) 이슬, 칠판지우개, 색소폰, 드럼, 은행나무, 푸른 바다 정〇〇: 색소폰 멜로디에 풀잎 이슬이 떨어진다/ 푸른 바다가 은행나무에 걸터앉아/ 이슬을 뿌리고 있다 김〇〇// 모기 목 땀띠에/ 백분 곱게 바르고/ 코스모스 향기 나들이할 때/ 고추잠자리 편대가 한가롭다 신〇〇: 지각한 날/ 미끄러진 아침이/ 커피잔 속, 미세먼지에 갇혀 있다 김〇〇: 참새가 울고 간 거리마다 편지만 걸려 있다 정〇〇: 누드화 숲 사이를 꼬불꼬불 도는/ 산꿩 울음소리/ 나목이 되어 서 있다 임〇〇: 우편배달부가 세계지도 위에 봄을 엎지른다. 온 세상이 꽃향기에 취했다. 신〇〇: 유리창에 비친 12월 말 달력/ 등굽은 나무 아래 참새 한 마리/ 눈썹 빠진 단풍 하나 입에 물어/ 바람난 숫고양이 물통에 살짝 빠뜨린다 〇기〇: 내 구부러진 시선에 들킨/ 기와지붕 위 고양이 한 마리/ 하늘 물에 세수를 하고 있다 〇순〇: 지도 한 켠에서 꽃향기가 날아와/ 집앞 정원에 내려앉았다/ 아련한 기억 속의 기차가 봄날을 실어와/ 나른한 즐거움에 젖어 있다 위의 시창작 방법은 거리가 먼 낱말들의 결합으로 언어충돌을 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하이퍼시는 시의 내용을 제한하거나 한정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이퍼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물에 대한 지식에 근거할 때 객관화를 획득한다. (2)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2: 낯설게하기 * 교사는 학생들에게 낯설게하기를 실현할 이미지 시를 쓰도록 한다. 교사 예제 작품 1: 깃털꼬리구름/ 국립중앙박물관 앞 거울호수에 내려앉다가/ 날개가 부러져 물 밖으로 삐져나온다// 허공에 부딪힌 아픈 기억들/ 물살이 흔들린다 유〇〇: 섬진강 쪽빛 물 위에/ 얇은 그림자로 일렁이는 벚꽃 춤사위/ 봄햇살 반짝이는 흰구름 사이로/ 나란히 손잡고 흐르는 벚꽃 십리 길/ 그대와 나의 얼굴에도 팝콘처럼 번져가는 연분홍 봄날 〇〇석: 민들레꽃 피고/ 밀잠자리 날 때/ 자전거를 탄 청년이/ 라일락 향기나는 마을로 내달린다 송〇〇: 나는 벚꽃 만발한/ 4월의 싱그러운 바람이 되어/ 들길을 홀로 걷는다 〇〇이: 물안개 피어오른/ 새벽 강물 속으로/ 침묵이 스며들고/ 테두리 안경 안에서/ 한 폭의 수묵화를 이루네 함〇〇: 활짝 핀 벚꽃 잎이 바람 타고 꽃구경 간다/ 노란 민들레 꽃잎 위에/ 부드러운 개나리 입술 위에/ 달콤한 키스가 흐른다 최〇〇: 앵두빛 서녘하늘에/ 석양이 입술 루즈 칠을 한다/ 산 아래 절 마당엔 은은한 풍경소리/ 달콤한 여름밤 내음 하이퍼시는 사물시에서 출발한다. 거리가 먼 사물끼리 결합하여 낯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꽃을 바라보고 시를 쓰면 기록문이 된다. 꽃이 되어서 꽃의 목소리로 말을 하면 시가 된다. 사물이 되어서 사물의 관점으로 오래 관찰하면 사물이 말을 걸어온다. 심상에 있던 무의식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시를 쓸 때 내용을 중요시하면 관념시가 되거나 설명적이거나 논술이 되기 쉽다. 또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쓰려고 고집하면 사변적인 문장이 된다. 시는 표현이다. 유미주의는 시의 목적이며 결과다. 시를 쓰는 이유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좋은 시를 쓰게 된다. 하이퍼시 기법 중에서 이미지에 운동감을 주는 방법은 시에 상상력이 들어갈 때다. 청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로, 시각 이미지를 공감각 이미지로 확장하면 감각적 미의식을 획득한다. (3)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3: 상상력 ☆ 발상의 전환과 이미지 확장 미끈한 종아리를 드러내고/ 봄날 버드나무 잎새가 연초록으로 물들어갈 때/ 네 치마길이는 점점 짧아진다(이〇〇) 역사가 햇볕 속에서 잘 익은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검은 흑보자기에 싸여/ 천년 동안 뿌리도 없이 수많은 눈들을 비껴/ 어질어질 흩어져 내리는 흙먼지/ 메마른 동굴 속에 혼자다(〇〇만) 잠자리/ 〇천〇/ 연 잎에 살포시 앉은 밀잠자리/ 두 눈을 부라리며 꽃향 맡는다/ 백련, 꽃향기를 빨아대더니/ 향긋한 내음을 밖으로 퍼 나른다 〇윤〇: 지각한 날/ 미끄러진 아침이/ 커핏잔 속, 미세먼지에 갇혀 있다 달빛/ 〇〇석/ 달빛은 이슬을 머금고서/ 그윽한 기타소리에 젖고/ 차가운 물기를 담은 소리/ 그녀의 창문을 두드린다 최〇〇: 분주히 오가던 발자국이/ 긴 수면에 든 거리/ 경계석을 베고 누운 단풍잎 위로/ 늦은 가을이 녹아든다 정〇〇: 허공에 치솟은 미루나무 위에/ 뭉게구름 부리가 꽃잎에 젖어 자욱이 걸려 있다 신〇〇: 지붕 아래 버들가지, 묘목이 하품을 한다/ 안경 너머 시력이 기지개를 켠다/ 모자 테두리가 노랗게 꿈틀거린다 〇〇지: 겨울의 눈썹 밑으로 난 물길을 따라 조약돌들이 흘러간다 위의 학생들의 시는 낯선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상상력을 객관화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시가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운동감을 주어 흔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산문과 운문은 발상이 다르다. 산문을 줄인 것은 시가 아니다. 시는 반전이 필요하다. 시는 정직하게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일상적인 것을 거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거꾸로 생각하기, 반대로 생각하기, 짐짓 시치미 떼기를 일상에서 연습해야 좋은 시를 쓴다. (4)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4: 이미지 확장 이미지 만들기는 시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 교사는 ‘나는 간다’라는 문장을 제시한다. 종속절을 넣어 긴 문장을 만들도록 한다. 〇 꽁무늬바람 한 무리 흩날리는 조팝 꽃잎을 양떼처럼 몰고 징검다리 건너간다(〇〇란) 〇 휘파람 새는 봄빛을 물고 시린 겨울강을 건너왔다(조〇〇) 〇 별박이왕잠자리가 구름을 물고 와 옹달샘에 내려놓는다(정〇〇)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미지 만들기 공부를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시 하는 점은 다음 사항이다. 첫째, 시가 되는 것과 시가 되지 않는 것을 구별한다. 둘째, 감각적이고 미의식이 있는 문장을 만든다. 셋째, 객관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이퍼 사물시를 쓰도록 한다. 넷째, 이미지에 운동감을 주어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하도록 한다. 다섯째, 청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로, 시각 이미지를 청각이미지로 교환하여 공감적 이미지를 만들도록 한다. 여섯째, 구체적인 지명과 사물 이름을 넣어 시가 구체성을 획득하도록 한다. 일곱째,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상투어를 피하도록 한다. 자기가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한 독특한 장면을 시에 쓰도록 한다. 여덟째, 특이한 고유명사를 찾아서 시에 쓰도록 한다. 아홉째,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성 시인의 잘못된 시창작 기법을 모방하지 않도록 한다. 개성적인 작품을 쓰도록 한다. (5)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5: 조건절, 대귀법 ☆ 조건절과 대귀법을 이용하여 문장을 만들어보자. 예)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교사 예시 작품: 흰 나비는 봄날 민들레꽃을 따라가지만/ 그 노랑 꽃잎의 발자국을 만나지 못하였다 〇〇〇: 황혼을 덮어 쓴 조약돌/ 밀물 썰물의 언어로 몸을 씻는다 첫사랑/ 〇혁/ 나는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 별이 되었다/ 그는 내 꿈속으로 들어와 이슬이 되었다 임〇〇: 내가 너를 향해 날린 종이 비행기/ 아직도 날아가고 있나 보다/ 내가 아직도 멀미를 하는 것을 보면 조건절과 대귀법은 서양과 동양의 많은 고전에서 볼 수 있는 시창작 기법이다. 무의식 중에 한국의 현대 시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퍼시에서 조건절과 대귀법을 사용하여 시창작을 학생들에게 실시하였다. 재미있는 하이퍼시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6)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6: 패러디 패러디 시는 베끼기가 아니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지명과 작품을 배경으로 시를 창작하는 확장된 영역이 패러디의 범주에 속한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표절은 패러디가 아니다. 아래에 제시한 방법은 문화원에서 시를 전혀 모르는 학생들에게 시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한 제언서다. 기성 시인에게는 패러디 방법론을 추천하지 않는다. 1) 패러디: 학생 학습과제 1 아래 시는 박남수의 대표시 「종소리」 전문이다. 나는 떠난다. 청동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 박남수, 「종소리」 전문 필자는 문화원 학생들에게 박남수 「종소리」에서 3연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를 발췌하여 패러디 과제를 내주었다. 아래 문장은 수업 시간에 작성한 학생들의 패러디 작품이다. 고〇〇: 리듬을 탄 물방울은/ 풍금소리의 반주가 되고/ 차가운 음률로 그녀에게/ 다가가서 눈가 웃음꽃이 된다 최〇〇: 나는 소주잔을 타고/객줏집에서 노래가 된다/ 산에 올라 막걸리잔 높이 들어/ 건배사를 외치고,/ 비가 오면 중국집 지하에서/ 배갈잔에 독백을 담는다 〇〇숙: 냉이꽃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아가의 배냇짓이 된다/ 초록을 만나 웃는 작은 꽃망울들/ 아지랑이 봄을 위한 합창이 된다 함〇〇: 활짝 핀 벚꽃 잎이 바람타고 꽃구경 간다/ 노란 민들레 꽃잎 위에/ 부드러운 개나리 입술 위에/ 달콤한 키스가 흐른다 박남수의 「종소리」의 문장공식은 A=B+C+D다. A(나)는 B(푸름)와 C(웃음)과 D(악기)가 된다. A는 전혀 다른 사물로 치환된다. 시를 처음 쓰는 학생들은 시를 어떻게 쓸지 당혹스러워한다. 학생들은 시를 좋아하고 향유하는 독자로서 문화원 시창작반을 찾지만, 자신이 직접 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목공 공작소에서 처음 목공을 배울 때 기술자가 사전에 목공의 기초를 가르친다. 톱 사용법, 주의할 점, 재단하는 방법, 못 박는 법, 사포질, 칠하기 등 목공의 각 단계를 가르친다. 사전 주의사항과 제작과정, 작품의 보관정보까지 주지시킨다. 목수는 절대 초보자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함이다. 적어도 십년이 흘러야 기술자가 된다. 먼저 기술자를 따라다니며 눈으로 익히고 뒤치다꺼리를 하며 곁눈질로 배운다. 그러나 시는 언어유희다. 한글을 알고, 손을 다칠 염려도 없다. 오랜 연마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이루려고 조급해 한다. 시도 목공 기술처럼 오랜 시간 단련의 기간이 필요하다. 좋은 시를 읽고, 교사로부터 어떻게 쓰는지 배우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사랑 몇 번 하고 이별시를 쓴다고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도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연습하고, 버리고, 연습하고 버리는 오랜 수련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는 수학처럼 A는 B가 아니다. 정확하고 똑같이 재단해야 하는 목재가 아니다. A는 B, C, D로 형질이 변형된다. 시는 같으면 틀린다. 시는 창의성이 요구된다. ♧    
42    하이퍼시에 대한 토론 댓글:  조회:121  추천:0  2019-06-20
하이퍼 시에 대한 토론     주제: 하이퍼 시에 대한 토론   주제발표와 사회: 심상운   기록: 이선   날짜: 2010년 11월 19일, 오후 3시   장소: ㅇㅇ찻집   참석한 사람들: 문덕수, 김규화, 심상운, 신규호, 유승우, 최진현, 정연덕, 안광태, 송시월, 이솔, 손해일, 조명제, 김기덕, 위상진, 이선,       * 『시문학』에서 기획한 특집은 2009년 11월호부터 2010년 11월호까지 4회에 걸쳐 82편이 발표되는 성과를 이뤘다. 발표된 시 중에서 70% 정도는 하이퍼시의 특성이 나타나지만 아직 흡족하지 못한 상태다. 하이퍼시 동인들은 하이퍼 시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통하여 하이퍼 시의 개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보다 특성화된 하이퍼 시를 쓰고자 동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진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Ⅰ. 하이퍼 시를 쓰면서 느낀 시적 감각       사회자: 자료를 모두 받아보셨습니까? 먼저 문 선생님을 모시고 하이퍼 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덕수: 저는 시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해서 열이 오르는 그런 사람입니다.(모두 웃음) 나중 에 시간이 되면 제가 하이퍼 시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상운: 예 제가 이 토론을 위해서 설문을… 아, 고맙습니다. 유승우 시인 오시네요, 유승우 시인한테는 연락을 안 드렸는데   유승우: 아 나도 하이퍼 시를 쓰고 싶어 공부하러 왔습니다.   심상운: 예   이선: 이것 좀 건네 주시겠어요?(유승우 시인에게 토론자료 건네줌)   심상운: 유승우 시인 오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이 토론을 위해서 설문을 작성해서 이맬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먼저 이 일반시에 비해서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면 더 좋겠습니다. 먼저 말문을 열 분 은 누구십니까?(주위를 둘러보며) 이솔 시인 말씀해 주세요.   이솔: 시적 감각을 말할 때 뛰어나다/ 새롭다/ 참신하다 등등으로 말할 때가 많은데요. 시적 감각은 시의 갈래를 떠나서 시 쓰기의 기본이고 중요한 요소인데요, 특히 하이퍼시의 시적감각은 하이퍼적이어야 하며 한 마디로 새롭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이퍼 시의 특징 중 하나가 색채감각인데요, 시문학 11월호에서 색채를 시적감각으로 한 시를 보면, 송시월「초록거울」과 이선「빨강 스펙트럼」, 강영은「노란집」, 고종목「땡볕 한 장」, 이솔「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등이 있습니다. 「초록거울」은 녹색스프링노트, 떡갈 나뭇잎 거울에서 활활 타는 햇살, 빗방울의 전주곡, 거울 속에서 초록으로 팔랑거리는 난로 초록거울의 시적 감각을 생동감있는 색채로 나타내고, 이선의 「빨강 스펙트럼」에서는 노랑, 빨강, 보랏빛 그림자, 붉은 립스틱, 립글로스, 하얀 이빨, 노랑불빛 등으로 현란한 색채를 통한 감각을 보여줍니다. 강영은의 「노란집」에서는 고흐의 그림을 통해 해바리기, 노랗게 불타는 태양, 햇볕에 그을린 여자의 젖통, 아를의 들판으르 통해 고흐의 단면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고종목도 「땡볕 한 장」에서 8월 한낮에 파란신호등, 빨간 관광버스, 깜박깜박 등을 통해 뜨거운 한낮을 색채감을 통해 보여주고, 이솔ㄷ은 「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에서 흙빛의 촉촉한 검정빛, 알다발 속에서 나를 보는 까만 눈, 인도 델리 짐꾼의 검은 눈, 그러나 터질듯 미끈거리는 생명의 빛으로 적극적 시적감각을 보이고자 했다. 특히 김규화는 청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듭니다. 「계곡 물소리」는 북한산 계곡에 흐르는 afthfl는 발을 담그고 쉬면서 시는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를 얘기하다 지하철 편의점에서 뜨거운 커피르르 마시며 계속 이어지는 물소리를 감각적으로 쓰고 있다. ‘ㄹ’에 빠져서는 둑에서 흘러흘러 홍제천에 빠지는 나비가 ㄹ을 안고 흐르며 한강까지 누워서 흐르는, 시 전편을 f이 빠져 흘러가는 이어지는 그림을 보듯하여 실험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김시인은 특히 소리로 차별성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볼 수 있다. 매미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계곡물소리의 감각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시적 감각에 대해서 말하다 보면 다른 문제와 중복되는 점이 많은데 우선 참신합니다. 시적감각은 하이퍼적이려하며 한마디로 새롭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11월호에서 보면은 색채를 시적감각으로 한 시를 보면은 송시월의 초록 거울, 이선의 빨강스펙트럼, 강영은의 노란, 색채를 고종목의 땡볕담장 색채를 시적 감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제가 쓴 도룡뇽 알의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 ‘흑빛의 생명의 빛으로 특히 생명에 비추어 김규화 시의 청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김규화는 ’ㄹ‘ 소리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시입니다. 매미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하이퍼적인 시적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상운: 그러면 일반시와 하이퍼 시가 어떤 감각에서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송:   조명제: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잠깐 말씀드리면 소리의 울림을 가지고 시르 써 나가는데 사물의 울림과 소리가 그냥 시 작품을 써 나가는데 배경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시들은 배경으로만 작용합니다. 그 소리를 시적 정보를 새롭게 촉발해 나가는 그랫 시를 합니다. 시를 입체화시키지 않느냐 요런 점에서 생각했어요.   이선: 제가 한번 말슴드리겠습니다. 1번 일반시와 하이퍼 시가 어떻게 다른지 위선환의 바위와 김규화의 한강을 읽다를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바위       위선환           백일이       김규화 시   저는 여기서 차이점을 뭐라고 보냐하면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으로 인하여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새로운 감각과 생동감을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하여 움직이는 그림, 새로운 감각과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시는 풍경화를 그린즌 시인들도 있는데 풍경화를 그리느냐, 김규화의 이젤을 거꾸로 세워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 또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디지털 시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의 확산을 디지털 시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상운: 다른 분 준비해 온 것 발표 부탁드립니다.   송시월: 준비는 잘 못했어요. 시향 편집을 하다보니까 아무것도 생각을 못했어요. 준비를 못했어요.   나의 시는 주로 사물을 직관하여 오감으로 느낀 감각으로 시를 씁니다. 그러나 하이퍼 시는 링크되어 사방으로 건너띄는 리좀구조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주로 감각으로 씁니다. 간단한 제 하이퍼 시 쓰는 방법입니다.   심상운: 김기덕 시인 말씀해 주십시오.   김기덕: 저는 하이퍼 시에 대해서 이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배우려고 제가 왔는데요, 시 쓰는 방법에서 변화라고 생각하는데요, 잘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우려고 왔습니다. 기존 시 쓰기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 그 주변의 어떤 것을 대치시켜 가지고 다른 이미지로 확산해서 만들 수 잇을까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글을 쓸까하고 왔는데 글이 시를 써보면 잘 안돼서 제가 제 스스로 만히 볻완해야 겠구나 생각합니다. 오늘은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정연덕: 오늘 자구품을 가지고 애기는 안 하겠고, 하이퍼 시와 생각하고 있는 가장 비선형적인 것의 구성단계를 생각해봤어요. 작법에서 상당히 자유스러워지는 것을 문선생님 작품을 보면 아, 이거구나. 비교하고 있다가 우리도 구체적인 것을 보면 아, 이거구나, 상당히 처음에는 난ㄹ행했었는데 나름대로 말씀드릴 수가 있고 또 진행해 가다가 작법상의 자유스러움, 이것도 우리 하이퍼 시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장점이다. 생각해서 조금 일반시보다 새로워지면서도 자유스러워지는 면도 있겠구나.   심상ㅇ둔: 비선형적인 것에서 오는 자유스러움,   갬규호아: 저도 일반시와 하이퍼 시의 다른점은 시적 감각이라고 했지만, 우선 일반시는 선조적, 선형적이고 시간의 순서대로 원인 결과가 있고 순리대로 나가는데 하이퍼 시는 그렇지 못하고 원인 결과 다 파괴시키고 그렇습니다. 가장 구분되는 것은 원이과 결과 시간은 파괴시켜 버리지요. 파괴시켜버리니까 다른점은 소통이 어렵고 일반적으로 독자와 소통이 어렵고,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구조상으로는 통일이 필ㅇ요하지 않나? 원인결과 파괴하더라고 구조적으로는   심상운: 비선형적이고 다양하지만은 무언가 통일된 것이 있어야 소통이 될 수가 있다? 그럼 신규호 선생님....   신규호: 내가 쓰는 시에 대해서 구태의연한 것을 느꼈어요. 관념적인 것을 벗어날 수 없고, 거기에 대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검정적인 것을 벗어날 수 없고, 하이퍼 시 읽고 참여해 보자. 내 시가 변해지는 걸 느꼈어요. 일차적으로 뭔가 하이퍼 시가 뭔지 잘 모르지만, 어떻게 써야 될지 잘 모르지만 내 시가 변화를 가져왔다, 거기서 잘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해보니가 역시 나이가 먹어 그런지 자꾸 관년이 들어가요. 그걸 완전히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그걸 일반시와 비교한다면 어쨌든 시적 리듬이라는 것은 있어야 되는데 리듬을 살리기가 어렵고 산문적이 되기 쉽고... 그래서 어쨌든 하이퍼 시도 시니까 정서적인 감흥이 일어냐야 되는데 그게 어려워요. 산만히 지기 쉽다. 시의 흐름이 . 그게 고민이예요. 어떻게 하면 하이퍼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기존관념을 벗어나 시적 정서를 살릴 수 있을까? 초점이 기존관념이 아닌, 고정관념이 아닌 어떤 정서적인 초점이 작품 속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심상운: 최진현 시인? 1부는 묶어서   최진현: 제가 언젠가 시문학에 발표를 했습니다만 심상운씨 책을 정독하고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하이퍼 시를 연구하고 그쪽으로 쓰다보니까 과거 내가 쓰던 시가 하이퍼 시가 아니었나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링크라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상관성이 없는 이미지의 집합, 주제는 가상이죠. 거기 다양한 선이 집중해 있는, 초점이 거기 포커스 맞춰가지고 통일성은 없이, 잘 영상언어로 얽어놓는 컴포지션요. 저는 처음부터 그런 시를 많이 써왔어요. 젊어서부터. 내가 조금만 적응하면 하이퍼 시를 쓸 수 있겠구나. 두 번째는 아까 신규호 박사 얘기를 했지만은 시에서 관념을 제거한다는 거 그 속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녹여낼 수 있는 거 그거 제가 제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이퍼 시의 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여넣을 수 있겠는가 하는 거스   송시월: 선생님 옛날 시에 그래프가 하이퍼 적인 시다   최진현: 그래픽 1       2. 실제로 시 쓰기를 할 때 인식한 하이퍼시와 일반 시의 차이점       위상진: 1,2번을 묶어서 말씀드리면 하이퍼를 말할 때 의식과 인식이 유로와질 수 있었다. 그 다음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거. 하이퍼라는 같은 음식도 담는 그릇에 따라서 인식과 의식이 달라진다. 하이퍼를 하나의 그릇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릇에 따라서 소스와 다른 부수적인 것이 들어가는 것이 달라진다. 일반시와 차이를 얘기했는데 저는 장치를 얘기할 때 공백을 채우면서 작업을 용이하게 해 주는 부분, 이음쇼트라고 얘기를 한다면 그 부분 장치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한 부분드리. 서정적인 부분과 관념적인 부분을 무드가 다가오지 않아서 심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 부분을 지나쳐 가는 점이 있었어요. 또 한 가지는 시점과 관점의 차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가령 생활을 일반시라고 한다면 생활을 드라이 플라워라고 한다면 제가 하이퍼로 바꿔볼게요. 기법으로 표현을 하되 생화를 표현해야 하는 느낌이랄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긴 기법적인 요소를 얘기를 한다면 몽타쥬, 쇼트-시작점, 시작점-화자와 독자와의 시점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프레임, 내가 담고자 하는 화면을 따내는 부분을 차이를 하이퍼 시와 일반시와 차이점이라고 제 나름대로 써왔어요.           손해일: 1번과 2번이 썪여서 같이 얘기하여야 할 것 같아요. 시험답안처럼 얘기하지 말고. 하이퍼시에서 오남구 씨에게서 많은 얘기를 듣고 현대시에서 논의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시문학에서 월평을 쓰면서 묻기도 하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서 하이퍼 시의 개념으 물어보멵서 제 시도 하이퍼 시를 내 시도 읽기 싫고 남의 시도 읽기 싫고 식상하여진다. 하이퍼시로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햇고, 중복이 될 지 모르겠는데 첫째는 하이퍼 시는 크게 말하면 상상력의 무한한 확대가 가능하다. 두 번째는 창작기법 면에서 그냥 무한대로 확장이 되는 기분, 언어만 가지고 시는 제한성이 있었는데 두가지를 말할 수 있고, 하이퍼 3편을 썼는데 기존시와 하이퍼 시가 뭐가 다르냐? 그거에 대해서 혼란이 오는데 선조적이다 몽터쥬기법이다. 구성이다, 관념적으로는 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시화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다고 말씀드립니다.   김규화: 저는 전에 전에 알고보니 하이퍼 시를 많이 썼다고 말씀하셨는데 하이퍼 시와 일반시와 다른 점이 없다고 볼 수 도 있어요. 그러나 중요한 점이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시는 원인과 결과 자연스럽게 선조적으로 선형적으로 나가게 되는데, 하이퍼 시는 그걸 파괴해버립니다. 파괴하니까 가상현실, 공상, 버츄얼세계, 파괴하니가 공상, 상상이 들어가게돼요. 원인과 결과가 무너져서 가상현실이 들어가게 돼요. 그게 하이퍼 시와 일반시와 다른 점이예요. 하이퍼시도 일반시도 상상력이 들어가고, 엉뚱한 이미지를 결합해서 하이퍼 시를 만드는데 하이퍼 시가 뭐가 다르느냐 하는데, 그게 무너지면 그것이 두드러져야 하이퍼시로서 특징이 지어진다고 생각해요.   안광태: 할 말 없습니다.   최진현: 제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픽이라는 연작시를 쓸 때 하이퍼 시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프는 컴퓨터의 도형, 영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많이 구상하여 써서 선명한 영상이미지로 조립을 한다. 연과 연은 연관성이 전혀없어요. 한행 연 단위도 연과 연 사이의 획일성이라든지 통일성이 없어요. 문선생님이 말하는 집합적 결합, 요소 그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심상운: 안광태 선생님 말씀 안 하실래요? 한마디는 해야지.   안광태: 흠, 제가 하이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문선생님과 몇 분이 점심을 먹으면서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잠재의식이 흘러갈 때 시공간을 초월한다. 지금생각과 옛날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영어로 여비커터스라고 말슴하셨는데 그것을 시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어요. 영어로는 유비 커터스라고 말하는데 서 그러SWhr으로 써야 한다고 하셨다. 상당히 그것과 연관이 되는 것 같았어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미지가 그냥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연관성이 있으니까 일어나는 거거든요? 잠재의식에서 그것이 연결고리로 연결될 때 하이퍼 시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습니다. 제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점은 오늘 오전에 도종환씨가 얘기하는 걸들었어요. 시에게 듣는다. 도종환씨가 평생교육시에 대해 강의하ㅑ는 걸 드렀어요. 자기 시에 대해 해설하는 걸 듣고 참 저 사람은 시에 대해 듣는다. 평생 몇 가지 시를 가지고 와Tsmssep 1백퍼셑느 관념시예요. 저 사람은 몃ㅊ십년전에 접시꽃당신과 똑같다. 그런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몇 십명 사람드리 곡5ㅐ를 끄덕이면서 듣거든요? 그 사람들은 소통이 잘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이퍼 시를 생각하면 소통에 문제가 있다, 그런데 지금 소통이 전혀 되지 않으며 문제가 있다. 너무 앞서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상운: 이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하이퍼 시와 일반시의 차이는 보통 일반시는 주제를 지향하는 시라고 하면은 하이퍼 시는 이미지를 지향하는 시입니다. 크게 그렇게 나뉘어집니다. 주제는 관념입니다. 관념시, 관념을 가지고 시를 쓰는 선관념, 후 사물을 쓰는 사람들을 일반시인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하이퍼 시는 관념보다 사물, 사물로만 이야기하는 그러니까 이미지를 통해서 이미지로만 이야기하는 시를 하이퍼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이퍼 시와 디지털 시를 처음 쓰려고 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움직이는 그림과 고정된 그림, 그림도 움직이는 그림과 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서 움직이는 이미지로 이동이 될 겁니다. 아까 안광태 시인이 무의식 공간의 개념을 허물어버리는 것이 하이퍼시라고 했는데 맞습니다. 공부를 참 잘 해 오셨습니다. 그런 것을 허물어버림으로서 자유로운 상상이 나옵니다.       심상운: 일반시와 하이퍼 시와 차이점에 대한 김금와 시인이 보내온 내용을 읽겠습니다.   일반시는 주제의식과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정서를 사용합니다. 함축된 하이퍼시는 특별한 주제를 사용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시적 언어 그것이 하나의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의 정서를 경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일반시는 현실셰계의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변화되어 가는 자유로운 시적공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시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데 예를 들어 기도하는 여인을 하이퍼시로 묘사한다면 가지런히 몽든 두 손 끝에 매달린 소망과 새로운 생명이 싹뜨늩 ㅁ병아리ㅐ가 묘사하는 그 공감대가 가깍이 나눌수 있는 방몀 ㄴ조금 난해하게 느껴지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연덕: 저 한바마디 해도 되겠어요?   t심상운: 예   정연덕: 하이퍼시에 들어가면 픽션이 가장 많이 더오르고 픽션이 작품이 됩니다. 다른 픽션이 자유스러워집니다. 구조가 깨지는 거죠. 탈구조적인 모습이 나오고 하이퍼 시가 잘 발전을 하면 공동작업이 가능하다고 해요. 작품응 올려놓으면 작품을 자유스럽게 독자가 읽고 새로운 작품으 촉각형태, 나무형태, 뿌리에 대한 세 가지가 있는데 적어도 뿌리형에 들어가면 자유스럽게 오버할 수도 있고 끊어내거나 자유스럽게 도입되어지는 걸 느낄 수가 있다,   심상운: 1번과 2번에 대해 말씀했는데 더 말씀하실 것이 있는지?   조명제: 하이퍼 시의 여러 이론적 특징을 제 체험을 중심으로 말슴을 드리면 하이퍼 시의 여러 이론적 특ㄹ징이 아까도 말슴 나옸습니다만, 비선형적이다. 비논리적이다. 다시점, 복수시점은 옛날시에서도 나왔습니다. 제 경우에는 다성성,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 사물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방법, 그러니가 비선형적이고 다성성이라든가 복수시점, 다시점, 아주 이질적인 대상이나 어떤 스토리가 한 작품 속에서 링크, 또는 점핑해가면서 서 나타난다. 김규화 선생님 말처럼 산만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는 리좀이라는 것을 잘 사용하면 되리라 생각하빈다. 마지막으로는 하이퍼 시가 발표한 것을 들여다보면 한참 읽다보면 당수상가뭔가 공허해진다는 걸 느긴다. 공허해지면서 감동ㄸ을 줄지 않느낟는 걸 느낀다. 공허함에서 벗어나려면 장면장면들은 좀더 구체화시키고 치밀한 묘사를 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묘사는 좀더 구체화시키고 리얼리티는 태풍의 눈처럼 스스로 제시하지 않아도 독자가 스스로 찾도록   이선: 다음으로 ㄴ넘어가버렸는데, 저는 환타지성과 운동성을 하이퍼 시의 요소라고 생각하는데요, 심상운 선생님 시에서 운동감이 많은데, 그것은 사물에 의식을 넣었어요. 사물에 의식을 넣었어요. 작은 동사, 말그러미 바라본다든지, 탁자가 있는 풍경에서 문덗수 샌성님의 등이 쏘아본다, 재떨이가 바라본다. 사물성에 의식을 넣음으로써, 운동성이 환타지성을 주어 신선한 감각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3. 하이퍼시의 ‘소통’과 독자 수용문제와 그 해결 방법       심상운: 3번 하이퍼 시의 독자수용문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게 ㅆ습니ㅏ. 소통의 문제가 되겠습니다.   손해일: 1번과 2번은 책에도 많이 얘기가 있기 때문에 소통이 많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이퍼 시가 시 운동을 하겠다는 통일 중시를 하는데 그 문제를 제가 곰곰이 생각하면 하이퍼라는 개념하고 탈관념이라는 개념 차이에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에 대해 거부감도 있고 이해를 못하는 점ㅇ도 있고 그 이유를 생각하면 탈관념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에서 이상 시나포스트트 모더니즘시, 기법으로는 새롭다하는데 별로 감동이 없고, 재미가 없다, 새롭기는 한데, 어 하이퍼 시가 새로운면서도 새롭다, 재미있다, 감동ㄹㅇ들 준다. 재미라는 요소를 집어넣어야 될 것 같아요. 감정 정서 중심이 아니고 표현 기법으로 가게 되어 있거든, 디지털적 기법이라든지 그런 걸 사용하기 때문에 정서하고는 자꾸 멀어지고, 하이퍼라는 개념, 관념을 정확하게 쓰면서도 헷갈려요. 감동을 주든지, 재미를 주어야 독자가 읽죠. 재미가 없으면 안 읽어요. 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헷갈린다. 어디까지가 관념이고 어디까지가 관념이 아난지. 독자에게 다가가려면 감동과 재미가 있어야 한다.   심상운: 그렇다면 하이퍼 시는 길어지지 않을가? 서사적으로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 주십시오.   손해일: 디지털ㅈ거인 걸 넣으면 산만해지고 길어진다.   관념하고 개념 자체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다. 하이퍼시는 새로운 것은 눈에 띄는데 감동이나 정서가 없다, 기법에서 재미가 들어가면 요즘 젊은이들은 어록적인 거나 재미 때문에 가지. 그런걸 통해서 좀   심상운: 그러니까 서사성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씀이군요.   안광태: 하이퍼 시의 문제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가 제가 소통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소설이에 비해서 간결성이 중요하거든요? 시는 간결성이 중요한데 메타포라든지....하이퍼 시는 간결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것이 큰 ㅁ분제라고 봅미다. 손선생님은 재미를 가미해서 극복하면 어떡하냐고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ㅇ   이선: 저는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해체시가 어렵다고 하는데요. 아주 건조하고 드라이하고 황폐하고 병들이 좌좌작 모아놓고 사진찍고, 낙동강 하류의 철새떼가 죽ㄹ어 있는 사진을 싣고, 하이퍼 시가 쓰레기 더미가 막 몰려온 낙동강 하류를 사진을 찍고, 새들이 죽어 잇는 걸 어렵다고 말하지 않고 상황제시라고 말하거든요. 보옺 r보여주기를 하는데요, 하이퍼시는 어떤 상황을 따와서 충격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저는 그걸 보면서 우리가 드라이하기만 한가? 아니다. 마음이 아프고 물도 살려야겠다, 산수도 살려야 겠다. 저는 뭐냐하면요, 저기 일반시들이 말하는 영상성으로 보여주면서 느껴라 섬설명하고 웅변하고 설득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방법이 다른다. 네가 느껴라 감각에 호소하는 것 같아요. 드라잉 한 것도 소통이 됩니다. 다만 기법에서 디자인과 기법에서 선명하게 드러냈ㅎ거나 산막하게 막 드러내서 뭔 말ㅇ린지도 모르고 뭔 그림인지도 모르고,, 샤갈기법으로 했느냐 몬드리안 기법으로 했느냐 선이냐 면이냐를 선명하게 드러내면 선명하게 드러냈느냐, 반추상도 아니고 뭔 말인지 모르게 하지 말고 추상화도 아니고 뭔 말인지도 모르게 선으로 했느냐 면으로 했느냐 덩어리로 했느냐 디자인과 기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송시월: 소통의 문제는 시가 되었느냐, 시가되느냐, 안 되었느냐가 문제예요. 난해한 시도 시를 따라 가면 아무리 어려운 시도 소통이 된다. 서사적 구조를 이미지로 선명하게 갖다만 놓으면 안되는데 링크될 요인들이 있다. 링크될 요인들이 정서로 흘러가면 하나의 로드를 놓고 로드를 놓고 마디를 건너뛸 때 링크를 접속사로 복4ㅓ든요. 하나의 접속사로 보는데 독자가 어떤 걸 넣느냐에 다라 또 하나의 ㅛㅣ가 될 수 있다.   심상ㄷ운: 송시월 시인은 하나의 시가 되면 된다?   송시월: 그렇지요. 공허하다.   심상운: 그런데 시적 감동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시적 감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지성, 감성, 영혼으로 느끼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감각적ㄹ인 감동도 있다.   이선: 그런데 송시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주제로 가는데 관념적인 주제의식을 깔고 그림을 그리느냐 무의미성으로 가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시월: 언어에는 관념이 반드시 따르는데 새로운 관념을   심상운: 신규호 선생님 말씀해 주시지요.   신규호: 나름대로 하이퍼 시를 쓰려고 하다보니까 자연히 산문적인 문장이 되더라고요. 산문적 문장ㅇ드로 흐르면서 관념이 자꾸 들어가, 설명이 들어가고 그러면서 다시점으로 전개를 했는데, 이게 하이퍼시라고 하긴 뭔가.... 연과 연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연 하나를 볼 때는 뭔가 서사적인 것이 깔려있고, 그런게 이어 나가면은 초점 하나를 머리에 두고 연과 연을 단절시키면서 뭔가 연을 이끌어나가면 공통적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염두에 두고, ㄱ연과 연을 공통으로 연결하면 소통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러면서 썼어요. 그러나 소통을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정연덕: 소통을 자꾸 생각하면 오히려 더 소통이 안돼, 그게 더 문젠데 하이퍼 시는 상하, 좌우로 왔다갔다, 서양사람이 쓴 것을 보니까 이렇게 썼어요. 시가 안 되면은 거꾸로 읽어라, 그래도 안되면 중간허리부터 잘라 읽어라. 뭐 그런 말도 있는데 ...소통을 자꾸 생각하면 글이 안돼, 자기나름대로 뭔가 자기 나름대로 쓰면 되는데, 낯설게 쓰서 오히려   유승우; 저도 얘기대호 돼요? ㅈ순전히 들어러 왔었는데 제일먼저 이선 시인이 하이퍼 시와 일반시의 차이점으 얘기하시면서 하이퍼 시와 위선화 쇼ㅣ와 김규화 시의 차이점으 얘기했는데 그걸 읽으면서 아 요런 것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요 근래와서 심상운 선생 책을 다시 읽어봤어요. 구채의연한 시를 나도 벗어나야지. 나도 새로운 시를 써보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고 온 건데,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을 보면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그게 동적인 거거든요? 나느 김규화씨 한강을 읽다를 보면 현대적인 것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텔레배젼 호ㅘ면을 보는 걸 느끼는데 아파트라든지 현대적인 이미지들이옝료. 솔직히 얘기해서 김규화 ㅅ너생의 한강을 읽다를 읽으면서 난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위선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아 이사람 시 재미있게 썼다? 생각했어요. 여기, 안 선생님이죠? 잠재의식 얘기를 했는데, 시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을 쓴 것이 시다. 인간을 얘기할 때 빙산에 대해서 얘기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콤플렉스라고 얘기했거든요? 콤플렉스는 사실, 잡동사니거든요? 잡동사니는 기억의 창고에서 의식이 사라질 때 되거든요? 의식이 사라질 때의식이 자라지는 건 언제 사라지냐? 어떤 충격을 받을 때인데, 논리적인 것이 사라질 때 팍 튀어나오는 생명 자체로 튀어나오는 것, 무의식이 튀어나오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ㄴ리논리적으로 세상적으로 볼 때는 전부 낯선거예요. 하이퍼 시에서 낯선 것 대문에 독자와의 거리르 생각하는데, 옛날 소월 적에도 시 안 읽는 사람은 안 읽어요. 요즘 손자가 보는 만화를 봤어요. 이해가 안 되던데요? 아 현대 하이퍼 시는 아예 리얼리티가 없이 아무렇게나 꾸며놓은 것 말고, 젊은이들이 게임 속에 뺏기는 것을 거기서 교양교육을 좀 한다면 시쪽으로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시만 되면 이미지만 만들어지면 이미지 자체가 시적인 논리를 따라서 리얼리티만 유지한다면 볼 사람은 다 볼 수 있다. 11월호 하이퍼 시를 보면서 내가 쓰는 시도 좀 바뀌여 하지 않을까 충ㄱ5을 ㅂ1았어요. 우리 시는 관념이 들어가서 그런지 잘 이해가ㅑ 되더라. 아직도 우리는 관념이 들어갔거든요. 신규호 시인의 시가 이해가 빠르더라. 같은 세대라서 그런가봐요. 김규화 ㅅ너생님. 이솔시인. 요즈 ㅁ젏ㅁ은 세대는 탈관념한게 더 팍팍 올 수 있거든요. 나는 그렇지만 젊은 세대는 탈관념한게 더 팍팍 느낌이 올 수 있거든요? 저는 하는 일은 해 해나가든거 해 보자. 시는 사명이거든요. 시인은 사명에 살거든요? 그러니가 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김규화: 한 마디 할까요? 소통문제는 저는 별거 아니라고 하는데요, 저는 소통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하이퍼 시 우리들만 좋다고 하면 뭐합니까? 많은 시인들이 인정해 주고 시문학사에도 남아야 되지 않습니까? 하이퍼 시는 비선형적이고, 공간도, 원인과 결과가 부서지니까 소통이 안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구조를 형성할 때 말하자면 통일적이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요? 통합적, 구조를 생각해야 한는데 구조라는 건 여러 개체가 모여서 자임새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이퍼 시는 제가 예를 들어서 등산용 반찬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 네모난 프레임이 있어요. 거기에자잘한 반찬통 네 개가 있어요. 반찬통 이름이 모듈반찬통이예요. 아, 정말 하이퍼 시를 이렇게 써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반찬통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역할을 못해요. 그러나 4개를 다 모아야 각각 ㄷ4ㅏ른 게 다 역할을 다해요. 그러나 한 개만 있으면 아무것ㄷ오 아닌데 4개가 다 있어야 비로소 역할을 다해요. 이런데 하이퍼 시가 아닌가 생각해요.ㅣ   송시웕: 제 시 초록거울을 예로 들어볼게요. 거울에 같은 맥락으로 느껴져서   이선: 저는 참 이상한 생각을 가져요. 이번에 발표된 시를 보면서 하이퍼적이지 않을가? 생각했어요.   심상운: 소통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이선: 아니, 소통에 대한 얘기예요. 그 이유가 뭔가 생각을 했더니 심상운 선생님 시는 이해가 됐어요. 심상운 선생님 시는 아주 냉정했어요. 다른 사람 시는 자기 생각을 자구 넣을려고 하니까, 실제로 자기 생각을 넣으려고 하는데 방법이 서투니까 소통이 안 돼요. 빨간 손바닥의자를 읽고 이영식 시인이 이러는거예요. 이선 시인 누구한테 시 배워? 아니요, 혼자 쓰는데요. 이선 시인, 평생 혼자 외롭겠다. 내가 조선일보에 발표했는데 50통이나 편지를 받았어. 나같이 이렇게 살아. 변삼핛시처럼 써. 젊은이들이 좋아할 시인데 젊은이들이 이선 시 읽어? ㅅ6ㅓ? 그 사람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외롭다. 아, 하이퍼에서 소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연과 연에서 시스템에 변화를 하되 소통을 하려면 귓속말하기, 내용은 괄호를 넣어서 보라색을 주조로 한 그림. 단어는 이미 이미지가 있어요. 융의 무의식처럼. 이미지가 이미 관념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단어를 버리지 않는 한 관념을 버리기는 어렵다. 단어에서 소통을 하려면 꼭 무의미한 단어만 써야 하이퍼 시냐?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합니다.   조명제: 김춘수 씨인가요? 전에 시를 써서 아내에게 보여준다. 아내가 아는 척하면 버린다. 쉽게 상대방이 이해하면 그건 자기 시로선 실패다. 문제는 아까 송시인이 말한 것 처럼 나해시가 문제가 아니라, 애매시가 문제다. 난해시는 시적 논리를 타고 들어가면 나중에 해석이 가능한데 애매시는 이해가 안된다. 자기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거든요?   다음 관념이 문제인데,   이선: 그건 나중에 지금은 소통...   심상운: 소통   모두: (웅성웅성) 모두 소 통소통   조명제: 아까 언어는 언어자체가 이미 이미지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념을 우리가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관념을 추구하는 시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시인들 관념을 다 가지고 있죠? ㅜ분적으로 시어들이 다 관념을 가지고 있고, 관념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말고, 관념 자체르 ㄹ추구하는 시가 문제가 된다. 오히려 무의미라든가 무관념, 탈관념을 형상화해내기 위해서는 관념은 불가피하게 수용되는 것입니다 무관념으로 시를 쓰겠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소설을 허구라고 하는데? ㅣ.구무관념 세계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지 무관념 단어 자체를 가지고 시를 쓴는 건 어려운 ㅂ문제입니다. 소설으 ㄹ허구, 진실읅 추구하기 위해서는 허구를 보여주는데, 부분적으로 너무 허구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선: 오케이 바리   심상운: 김금아 씨가 맬로 보낸 독자수용문제에 대한 의견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김영아: 그 자쳄반으로 존재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와의 소통을 고려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 존재하고 하나의 시적 ㅇ뎡역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도 내 시를 읽어주지 ㅇ낳아도 다만 하이퍼 시가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외면당하면서 고립되지 않으려면 지극히 치밀하게 계산되고 보존된 완벽한 이미지를 현 시점이 어디인지, 어떤 색깔인지 어떤 온도인지 핵심적인 부분을 얻어낼 수 있   심상운: 제 의견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에서 독자수용문제는 하이퍼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합 니다. 시에서 소통에만 신경을 쓰면 예술성을 잃게 됩니다. 하이퍼 시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따라서 일반시와 같은 기준으로 논의할 수 없는 것이 따라서 독자들도 하잎 시를 읽어야 합니다.   손해일: 소통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그걸 오해하면 안 되고? 독자들이 워낙 모르고 오해하는데 모르고 기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문젭니다.하이퍼의 핵심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고 방법을 찾자는 거지요.   심상운: 그렇게 하다가 하이퍼 시의 핵심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우리가 소통, 소통하는데... 누구한테 하이퍼 시 읽어보라고 했더니 소통 다 된대. 어려운 거 없대, 사랑 사랑 하는데 하이퍼 시에는 그리움, 사랑도 없고,   이선: 섡생님,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요. 저희가 광고를 해야 된다는 필요성이예요. 저희가 시만 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론이라든지, 시라든지, 우리가 시문학에서 하는 좁으느 확산적인 운동이 다른데 발표를 해야 돼요. 하이퍼 시라는 이름으로요. 여러분드이 다른, 신문, 잡지에 평론, 시를 많이 써 줘야 돼요. 시와 시학의 평론가인데 디지털이 뭐야 디지털이 3년 후에 디지털 3집ㅇㄹ 갖다주었더니, 하이퍼를 쓰면 문선생님과 심상운 선생님 이름만 뜰 것이 아니라 하이퍼 디지털 오남구 선생님 돌아가시고 많이 이름을 알잖아요?eHH 여러분이 하이퍼 시에 대한 평론과 시를 다른 시나 신문에 많이 발표를 해야 해요. 저희 교수님이 평론가세요. 시와 시학요. 박윤우 교수. 그래서 하이퍼 라는 이름을 자꾸 인터넷에 올려야 돼요. 우리 시도 떠야 돼요. 일단은 광고가 부족하니까, 하이퍼라는 이름을 알리는 광고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연덕: 대한민국 사람은 다 ㄷ알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ㅇ보통 시가 일방통행인데 하이퍼 시는 쌍방통행이예요. 들어가서 남의 시를 비집고 자기 시를 넣을 수도 있고, 보강할 수도 있고, 서양 사람들 하이퍼 시르르 봤어요. 시문학에서 하는 시 운동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요.   심상운: 관심은 받는데 두려워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정연덕: 복사하고 난리났어요.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하이퍼시라고 하고. 왜 도대체 저걸 가지고 하이퍼라고 하는지, 또 뭐 평론도 하고 하여튼 잘 되고 있어요.   이선: 하이퍼 시를 안 쓰는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하이퍼적인 시를 쓰는 걸 볼 때 문제라는 거죠.   심상운: 얘기를 해야지, 소통에 대해서 얘기해요. 골고루 얘기해야지.   최진현: 골고루   최진형: 쌍방간에 소통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기거든요. 일반세상에서. 쌍방간에 소통이 그림전시회 여러분 많이 가봤습니다. 추상화를 보면 누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잖아요? 추상화를 보면 많이 이해를 하잖아요? 하이퍼 시는 감각적인 소통에서 거쳐야 돼요. 거기 무슨 의미가 있어요? 감각적인 소통을 하면 돼요. 가각적인 소통을 하면서도 뭔가 여기 있구나 하는게 나는 사상성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시를 쓰면서 감각형을 그려요.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하나는 음악성, 하나는 회화성, 하나는 사상성을 넣어야 돼요. 나는 그 중간지점의 가장 좋은 것을 쓰려고 해요. 어디 억매이면 시를 못 써요.   심상운: 또 누가 말씀하실 분?   김규화: 위 시인   심상운: 누구? 응 위상진 시인   위상진: 익숙하게 우리 자신부터 물들여 가면서 주변에 무의식적으로 잦아들어가면서 우리가 독자임녀서 화자이기더ㅗ 하면서 저희가 시문학에 발표를 하였지만 이렇게 모여서 이렇게 토론을 한 적은 없었을 거예요. 저희가 이렇게 모여서 하이퍼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은 출발점인데요. 유승우 교수님도 오늘 관심이 있어서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서로 물들여지고 E무의식적으로 잦아들고 스며들어가지고 저희가 독자이면서도 화자이기도 하지만 또 우리가 쓴 시를 다른 사람들도 보지 않습니까? 자꾸 스면 스며들어서. 오늘 이 자리가 하이퍼에 대한, 하이퍼 시에 대한 출범이라고 할까? 이러한 것이 자꾸만 확산되고 말 그대로 확산하이퍼가 되어 오늘 유승우 선생님도 관심이 있어서 왔잖아요? 이 하이퍼는 소통 문제에 있어서 굉장히 기술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으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손해일: 소통만 얘기하니까 왜 이런 시가 소통이 안 되냐? 하는 문제가 되는데, 소통 플러스 확산, 소통 및 확산 이런 제목을 써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이선: 맞아, 맞아요.   모두: 웅성웅성   손해일: 소통에 확산을 하나 더하면   심상운: 하이퍼 시 운동이 시문학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하이퍼 시가 뭡니까?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해요. 질문에 대한 답변도 나오고 그렇게 퍼져나가고 있어요. 문제는 학문적으로 시학을 하는 대학 강단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않을까 생각합니다. 학문을 하는, 시학, 대학강단에 까지 올라가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손해일:       4. 시문학에 발표된 하이퍼 시       5. 하이퍼 시의 일반론       가. 링크, 리좀, 몽타쥬, 가상현실(공상, 상상)   심상운: MRJS 다 끝났어요. 5번 문제 로 문제로 넘어갑시다. 링크, 몽타쥬, 가상현실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모두: 다 나왔어요.,   심상운: 더 보춛ㅇ할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손해일: 주제에 대한 총론적으로 얘기하면 얘기할 건 관념이 자꾸 나오니까   심상운: 관념은 또 나오니까,,   김규ㅜ화: 리좀을 링크하여서 몽타쥬로 하여 리좀화하면 하이퍼 시다. 여기 다 말이 되네요.   심상운: 링크는 연결편집기라는 게 필요합니다. 하이퍼 시를 쓰는 시인은 상상 속에서 연결 하이퍼 시를 쓰는 시인은 상상 속에서 연결편집기를 사용하여 시를 쓰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지의 연결편집기라는 것ㅎ을 생각해 주면 되겠습니다. 편집기를 활발하게 작용하여 이미지의 이미지의 편집기라는 것을 생각해 주시면 되겠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링크는 단어와 단어, 클릭이라는 것이 있어서 완전히 다른 장면으로 별개의 장면으로 넘어가는 그러한클릭이라는 것을 링크리는 걸 생각해 봤으면 위상진: 링크, ㅂ몽타쥬, 가상현실, 이건 인식의 세계에서 나오는 기법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몽환적인 환각과 환타지, 여기다 데꼬빠쥬, 저는 여기다 꼴라쥬를 더하고 싶습니다. 환각상태, 착시, 저는 여기다 데꼬빠죠ㅜ, 장며분할, 꼴라쥬를 더하고 싶다고 말씀드립니다. 색채만이 하이퍼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뭘 가져와도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같은 시가 표현되어지는 기법 자체가 달라지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심상ㅇ둔: 또 다른분? 없으면 제가 ㅎ나마디 하겠습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리좀, 컴퓨터의 모듈을 매력을 느꼈습니다. 컴퓨터 시스템은 시를 쓰면서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 때 하나의 하이퍼 시의 리좀이론은 독립적이고 수평적이라는 의미에서 모듈은 리좀고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모듈은 하나의 독자적 기능을 가지는 여러 개의 모듈로 나뉘는 방법입니다. 이때 모듈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간주됩니ㅏ. 모듈은 같은 의밀고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좀과 리좀의 틀,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손해일: 상상력의 기법의 극대화, 꼴라쥬를 넣고 그것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데, 여기에 대한 쉬운 이행. 리좀이라는 게 그런거지 하는데, 시를 쓰려면 제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딸기, 나 띠풀, 딸기를 한 송이 심었는데, 계속 러너가 가면서 30개 한 줄기가 딸기가 되는데, 딸기 러너, 딸기를 한 송이를 심었는데 여러 송이가 생격가지고. 다음에는 리좀, 옛날에 오형제 필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필통이라는 5개가 있는데 대나무 붓을 넣고 연필을 넗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되는데, 하이퍼 시를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이론을 다 알 필요는 없거든요, 그냥 쓰면 되지. 필통이 있고, 기법적인 것을 쉽게 이론이 너무 어렵습니다. 하이퍼를 스마트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카트폰을 쓰려면 이론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쓰면 되지. 하이퍼 시란 이름으로 세편밖에 못 썼는데 어지간한 시는 이거 하이퍼 시가 아니잖아? 이거 기존시하고 뭐가 달라? 기존 시와 조금 다르   심상운: 제가 링크, 리좀, 몽타쥬 이런 이름을 넣은 것으 ㄴ각자 시를 쓰면서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충실하면 좋은 하이퍼 시가 나오지 않을가 생각한 겁니다.이 항목을 넣은 것은 하이퍼 시를 쓰고자 할 때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충실하게 쓰면 좋은 하이퍼 시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부분을 넣은 겁니다.   위상진, 송시월: 몽타쥬   손해일: 다 해체가 되 가지고 다 떨어지고, 단어 하나까지 다 분해되고, 다시 묶어서 영상을 만들고, 영상 플러스 집합 그런 시가 이일남 하이퍼시 영상 전시회를 합디다. 인사동에서 영상이 막 쪼개지고   심상ㅇ둔: 앞으로 그런 시가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가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링크니, 리좀이니 많이들 이해를 하시는데, 몽타쥬는 영화에서 주제와 연관된 필름을 모아 주제와 연관된 영상을 만드는 편집기술을 말합니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 슈타인이 만든 파업이란 영화에서는 노동자들이 기병대들에 의해서 쓰러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이 소가 도살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몽타쥬라고 해요ㅣ. 소가 도살되는 장면하고 기병대들은 전혀 다른 장면이지만 이것이 충격적 결합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 하이퍼 시에서도 도입이 되면은 아까 재미가 없다는 등 하이퍼 시에 육화되어서 잘 집어넣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연덕: 화장실 다녀오느라 못 들었는데요....   리좀에 대해서 집중해서 생각해 봤는데, 리좀에 대해서 처음 얘기한 사람은 프랑스의 드레쥬아 카타리예요. 리좀이 횡적인 구조로 돼서 좌우로 움직일 수 있고,리좀이 구성하고 있는 원칙이 6개가 있는데 연결성의 원리와 심상운샘이 말씀하신 것같이 상하, 좌우 구조를 가지고, 다질성에 대한 설명을 안해서 원리만 읽어볼게요.   첫째는 다양성의 원리, 리좀이 어떤 통일 된 것이 없어요. 그래서 그걸 주체 안에서 나누어서 보늩 것이지, 어떤 지점이 아니라, 선에 해당되는 거지요. 선.   김류화: (작은 소리로) 연결, 링크   정연덕: 네 번째 원리는 탈 기포 작용의 연결, 연결되었다고 보지만 새로운 용어도 아니다.   뭔 얘긴지 잘 모르겠지만 번역한 사람도 썼어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하하… 모두 웃음)   다섯 번째, 지도제작과 전산의 원리, 리좀은 지도의 원리, 투사의 매커니즘이 아니라 여러 결점의 연결 매듭을 가진 지도와 같다. 지도는 투사된즍 대고 어떤 것을 예전의 것을 재현하는 작업니다. 리좀은 투사와 투사의 매카니즘이 아니라 여러 결정, 마디와 같다. 지도는 멈추지 않고 실제적인 것과 직접 이미 주어진 작품에 따라서 그리는 선, 선들에 대해서   이선: 와, 정확하네요.   최진현: 교보에 가보면 책이 있어요. 그 책만 하나 사보면   모두: 웅성웅성       나. 관념       심상운: 관념에 대해서 읽겠습니다.   손해일: 책 속에 다 있어요.   심상운: 관념의 문제는 가상현실을 각자 찾아서 시속에 넣으세요. 괁념은 오감의 감각관믄 다른 차별화된 정신적인 영역의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시에서는 사물시 도는 관념시라고 하지만 관계르 f형성합니다. 대립적이지만 서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관념은 기의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의는 자유로워지고 관념은 제로 지대에서 새로 태어난 관념은 하이퍼 시가 지향한 신선한 그것이 고정관념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념에 대해서 조금 더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사물과 관념은 서로 대립적이면서 결합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기표 관념은 기의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시가 기푱에 둘 때 관념의 제로 지대에서 새로 태어난 관념은 하이퍼 시가 지향하는 언어지대에서 신선한 그것이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해일: 관념을...(중얼중얼 안들림)   심상운: 관념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손해일: 관념에 대한 너무 강박관념. 하이퍼 시는 관념을 배제하고 쓴다더라. 관념을 조금 줄여보자고 하면 의식작용, 언어는 관념이 안 들어간..빼자고 하니까, 확산이 잘 안되고. 로봇트가 쓰면 안 들어갈 거예요.감지단계, 인지단계, 인식단계, 여기까지는 탈관념이고 여기서부터는 관념이다 하니까 일반 독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거야. 우리 자체도 관념을 왜 굳이 뺄려고 하느냐, 우리가 관념에 너무 식상하니까 관념을 굳이 빼려고   (웃음)   하이퍼 시는 관념을 빼고 쓴다더라.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의미를 집어넣으면 관념이면서   혼동이 오고 일반독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거지. 거기 우리 자체도 관념 자체를 굳이 왜 뺄려고 하는지.   심상운: 다음 말씀하실 분   최진현: 내 생각에 그래요. 관념을 주제읫힉을 가지고 외표시킨다든지, 사물 속에 녹아들어가는 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아까 문선생님 말씀하셨듯이 조화를 할 수 있다 생각해요. 말하자면 관념을 사물화시키는 거죠. 심상운 하이퍼 시가 명징성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거예요. 객관적 사물에 관념을 사물화, 심상운 선생님 시가 관념을 노출시키지 않고 절제해서 인지 단계에서 멈추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단계에서 사물화하는 거예요.   안광태: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관념을 사물 속에 넣는 것이지 관념을 완전히 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안광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관념을 사물 속에 인지시키자는 것이지, 관념을 완전히 빼버리자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규화: 언어 자체가 다 관념이예요. 천사와 악마 구별할 필요가 없어요. 하이퍼 시엣는 가상현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상현실에서는 관념이 필요없어요. 그거 빼 버릴 수가 없어요. 그럼 뭐가 중요하냐 하면 하이퍼 시에서는 가상현실이 중요해요. 가상현실에서는 관념이 들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굳이 관념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연덕: 탈관념 문제가 그렇게 용이하고 쉽지는 않다.   김규화: 아, 그렇죠.       6. 하이퍼 시의 가능성       심상운: 하이퍼 시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 주십시오.       신규호: 하이퍼 시는 실험 시지만, 각자 나름대로 개성이 있게 기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험시는 일반시인들 시보다는 낯설고 거부감이 듭니다. 예술은 실험입니다. 한번 해볼 만한 것입니다. 언어의 한계성이 있지만 걸 잘 인식하고 벗어나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 선명한 시가 형이상 시입니다. 시대가 정보화, 다매체 ㅣ대로 바뀌면서 새로운 시를 추구합니다. 하이퍼 시운동은 의미있으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 운동의 모험을 수반하지만 기법개발을 해야 합니다. 하이퍼 시는 선적인 것과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선문답 같아요.   최진현: 조그만 방에 소주 2-3병 마시고 무의식 상태로 비몽사몽간에 쓰는게 시잖아요? 보들레르도 그랬고, 이미지, 그래픽 이미지를 구성하는 거지요.   유승우: 술은 의식을 없앱니다. 단어자체가 의미와 소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를 뺄 수는 없어요. 노자 3장에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면 추악한 것이 이TG다고 했어요. 선하다고 생각하고 선하게 보면 악이 있다고 했어요. 상무- 없음의 자리, 기성의 것을 제거하고 하이퍼의 길은 감각적으로   신규호: 언어로 언어 지우기라고 봐요.   최진현: 의식상태가 아닌 감성의 세계, 컨트롤이 안되죠. 감성통제하면 이성이 떠오르니까.   심상운: 다음 문 선생님을 모시고 하이퍼 시에 대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7. 마무리 시평       문덕수: 이런 생각을 해 봐요. 묘한 몇몇 시인들이 있어요. 일본이 중국에 항복하고 선장을 석방해서 지금 일본이 난리가 났잖아요? 네아스를 너희에게 안 팔겠다고 해서 항복을 했잖아요. 레아아스가 없으면 전자산업이 망해요. 중국이 가지고 있는 레아아스는 세계의 40%를 중국이 가지고 있어요. 삼성, 엘지, 레아아스가 없으면 전자제품을 못 만들어요. 원자번호 56-71번인데, 이 레아아스 같은 존재들이 금요포럼에 있어요. 11월호에 발표된 시를 보면 시인들 중에 레아아스 같은 종자들이 많아요.   두 번째 말할 건 광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론가들이 논리적으로 하이퍼를 뒷받침해 주어야 해요. 논리를 가지고 있는 시인들이 다 못해준다. 각자가 자기 시의 비법을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신문, 다른 문예지에 알리고 선전해야 합니다.   하이퍼 시의 리좀, 몽타쥬, 링크, 모듈에 대해서 비법을 공개할 게요. 내가 이 시를 예로 든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 시가 제일 잘 써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밤에 잠이 안와서 시를 읽다가 보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 것도 하나씩 소개할 생각이예요.       의사가 모가지 안으로 스텐 막대를 밀어넣었을 때   비는 내리고   푸른 곰팡이 벽으로 번지고 있다       비밀을 풀면 하이퍼 시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연에는 안과 밖이라고 하는 2개의 공간이 생깁니다. 안과 밖. 내부와 외부. 앞의 리좀, 뒤의 리좀. 병원 진찰실 안에서 나는 진료를 받고 있고,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어요. 독자는 전혀 별개의 의미상으로 연결이 안됩니다. 인과관계가 없어요. 하이퍼시의 한 가지 기법입니다.       사람들은 물고기 우산을 쓰고   심심한 바퀴소리를 접었다 펼쳤다       자기와 자기 바깥. 내부와 외부       3연-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엣허   나는 주머니 속에서 빠져나간   줄시계처럼 늘어졌다           1, 2, 3연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연결-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 뒷부분은 필요없어요. 버려요. 전혀 관계없는 두 개의 이미지. 서론, 본론, 결론과는 다른 통합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레아아스-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는 볼 수 없는 비밀장치, 비법개발, 자존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김규화- 자기 시작법을 공개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문덕수: 요즘 잠이 안 와서 시를 읽는데 시를 이야기 하면 흥분해서 열이 막 올라요. 내가 얼굴이 벌개지고 열이 막 올라와요. (모두 웃음) 내가 흥분해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상운: 오늘 열심히 토론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열띤 토론이었습니다. 준비도 잘 해오시고요. 나머지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서 식당에서 또 하기로 하고 이것으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심상운: 못다한 이야기는 식사하면서 하기로 합시다. 하이퍼 시인들은 치열한 실험의식을 가지고 시를 열심히 써야 합니다.                               하이퍼시에 대한 토론 답변 자료           위상진       1. 위- 자유로운 시공간에 자신을 내던질 수가 있었다. 소재는 오히려 일반시보다 잡기가 용이한데 비해 뜬금없는 시공간을 흐를 우려가 있기에 ‘이음 쇼트’(공백을 채우면서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작업)를 장치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각과 청각에 전달되도록 쓰려고 했다. 이미지들의 연속성, 링크로 인해 귀착 지점의 예상이 불분명한 부분이 있었다. 서정적인 부분을 배제하다 보니 심정적 무드가 닿지 않는 부분을 그대로 두고 지나치는 느낌이었다.       2. 위-시점 내지는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 틀을 탈피해서 다른 사물에 접목시키는 작업이다. 가령, 생화를 드라이플라워 기법으로 표현하되, 생화로 표현해야 하는 느낌이랄까.   표현기법으로 몽타주(시간과 공간), 쇼트(시의 시작) 시점(화자. 독자의 시점)을 달리 해야 한다고 본다. 프레임(화면)의 범위를 어떻게 따내느냐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3. 위-일반시가 선율적으로 흘렀다면, 하이퍼텍스트 시는 분광의 폭이 넓다고 본다. 속도와 같이 흘러야 하는데 화자와 독자의 간극의 차이가 느껴졌다.       4. 위- 이미지 묘사에 치중한 감이 있어서 사유와 진술이 끼어들 틈이 없는가 하면, 사유와 진술이 지나쳐 하이퍼적 요소가 결핍된 양극단의 끝에서 거리 조정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파편적으로 튀어서 달아나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할까? 속도감으로 달려가는 감정을 한 호흡 가라앉혀 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느꼈다. 다선구조로 교직을 하면서 하이퍼 쪽으로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5.가-위- 인식의 전환이라고 본다. 몽환적 상상, 판타지, 환각상태, 착시 여기에다 데쿠파주(장면 분할, 장면에 대한 시각적 구상), 꼴라주를 더하고 싶다. 발상의 전환에서 기법의 문제다. 꼭 티브이, 영상, 매채 색깔들이 하이퍼의 대상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나-위- 관념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의 육체화가 되지 않아서 읽히지 않는다. 관념을 바탕으로 쓰고 나중에 그 비계를 버려야 하이퍼 시를 낳을 수 있다. 이미지가 사유와 진술을 거느린다고 본다.       다-위- 『장콕도(시인, 소설가, 각본 안무가, 극작가, 평론가, 영화감독, 삽화가, 디자이너, 무대장치가)가 만든 무성영화 「시인의 피」에 강박관념이 심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이 지워지지 않아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화가의 손바닥에서 입술이 말을 하는 기법은 초현실적인 기법이면서 하이퍼적 요소의 발상이었다.   하이퍼텍스트는 이러한 흐름에서 최전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의식과 인식이 앞서 있기에 오히려 새롭다고 본다. 이 또한 2010년의 하이퍼시와 2020년의 하이퍼 시는 분명 다르게 쓰여질 것이다. 조향의 시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새로운 놀라움으로 모던하게 보여진다.   2020년에 가서 2010년의 시가 새롭게 다가온다면 하이퍼시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41    대상과 집합적 결합 - 나의 시쓰기의 한 방법 / 문덕수 댓글:  조회:148  추천:0  2019-06-17
대상과 집합적 결합  - 나의 시쓰기의 한 방법 문덕수 대상·1 시에 있어서 ‘대상’이란 무엇일까? 얼른 대답할 수가 없다. 많은 시인들(필자도 당연히 포함됨)이 대상(對象)의 개념을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혼동해서 쓰거나 미숙한 상태에서 쓰고 있지 않는가도 생각된다. ‘사물, 제재, 세계, 주제’ 등의 개념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런 실례일 것이다. 나는 한때 현대시에 있어서 “대상에서의 해방”을 주장한 바 있다. 최근까지도 전위시의 문제와 관련해서 ‘무대상’의 이슈가 논의되고 있거니와, 이미지의 미적 주권을 강조하면서 시가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에서의 달갑지 않은 구속이나 주종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요지의 논문인 「내면세계의 미학」 (『사상계』 통권 151호, 1966. 3)을 1960년대에 발표했다. 이 무렵, 나는 시의 ‘대상’은 언어적 표상(表象)의 바깥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내면세계의 미학」의 발표 몇 개월 뒤에, 김춘수도 무의미시문제와 관련하여 대상 문제를 언급한 논문 「대상·무의미·자유」 (『시문학』 1966. 11, 『김춘수전집2 시론』 1999, p.376에 수록)을 발표했다. “대상이 있다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구속을 받고 있다는 것이 된다” (동 전집, p.377)라는 대목은, “대상에서의 해방” (『모더니즘을 넘어서』 2003, p.406)이라는 나의 주장의 연장선에 놓이는 발언으로 간주된다. 김춘수는 또 같은 논문에서 “같은 서술적 이미지라고 하더라도 사생적(寫生的) 소박성이 유지되고 있을 때는 대상과의 거리를 또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되지만, 그것을 잃었을 때는 이미지와 대상은 거리가 없어진다”고도 말하여, ‘대상’이 시 텍스트 바깥에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로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춘수는 그 뒤 또 「대상의 붕괴」 (『김춘수전집2 시론』 1999, pp.395 ~402)라는 논문도 발표했다. 여기서는 자기의 다음과 같은 시를 소개하면서 작품에서의 대상 파괴의 시도를 설명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 김춘수, 「눈물」 전문 대상의 파괴를 통해서(?) 관념이 파괴되어 무의미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된 이미지나 의도를 찾아내기 힘든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우선 제2행까지와 제4행까지로 이미지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게 납득이 안 될 것이다. ‘남자와 여자’와 ‘오갈피나무’가 무슨 상관일까? 이것은 하나의 트릭이다” (동상 전집, p.397)-이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이 시는 작자의 말대로 ‘트릭’으로 쓴 것이다. ‘트릭’(trick)이란 책략, 계략, 속임수라는 뜻이다. 작자는 대상과 관념을 파괴하기 위하여 ‘트릭’이라는 의식적인 시쓰기의 방법(이것도 지적 방법이다)을 고안한 것이다. 그러면 작가의 의도대로 대상도 관념도 파괴되어, 이 시에는 그것이 없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분석해 보자. 작자는 “남자와 여자”나 “오갈피나무” 사이의 관계는 얼른 납득이 안되는데, 고의로 납득이 안되도록 트릭을 썼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와 “오갈피나무”의 관계뿐만 아니라, 제5행의 “맨발로 바다를 밟고간 사람” (작자는 예수를 염두에 두고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도 쉽게 되지 않는데, 이 부분도 작자가 고의로 쓴 트릭 때문이다. 이 세 주어를 동일화(同一化)하기 어렵도록 작자는 지적 숙고 끝에 이러한 트릭(나쁘게 말하면 꼼수, 속임수, 좋게 말하면 수수께끼를 만들었다)을 쓴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남자와 여자, 오갈피나무,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이 시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세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일하는 ‘동일성’을 찾기는 어렵다. 이러한 트릭은 명사관계(名辭關係)뿐만 아니라 술어관계(述語關係)에서도 보인다. 이 시의 술어는 모두 ‘물’과 같은 성질에 젖는다는 서술로 통일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아랫도리가 젖어 있고, 오갈피나무도 아랫도리가 젖어 있고,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발바닥이 젖어 있다. 이러한 수성(水性)을 나타내기 위하여 제목을 「눈물」이라고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젖어 있다”는 개개의 술어를 어떤 동일성의 관념으로 통합시키는 기능은 매우 약한 것 같다. 아니 그런 의미 기능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러한 단절을 위한 지적 장치도 작자의 고의적인 트릭이고, 심지어 제목을 「눈물」로 정한 것은 한술 더 뜬 트릭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령 “젖어 있다”는 술정(述定)을 연결하는 어떤 통일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 통일점이 갖는 어떤 동일성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나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의 경우에는 모두 “아랫도리”라는 통일점을 갖고 있고,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의 경우에는 “발바닥”이 젖는 부위를 갖고 있다. 물과 같은 성질의 수액(水液)에 젖는 부분은 아랫도리이건 발바닥이건 겉으로 잘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거나 가리워져 있는 하위부이다. 이런 하위부는 인체(남자와 여자), 식물(오갈피나무), 초월자(예수) 모두가 다 가지고 있고, 따라서 작자가 이러한 대상들의 동일성적 통합을 일부러 파괴하려고 트릭을 썼다고 할지라도 ‘대상’은 존재하며, 다만 그 대상들이 동일성적 통일점을 정립하지 못한 채 분산된 형태를 드러내어 미규정 상태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김춘수의 이러한 ‘트릭’이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의식적 방법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의를 접어두자. 첫째 시쓰기에서 어떤 진실을 암시하거나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트릭’의 사용이 필연적일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대상을 파괴하고 관념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독자에게는 “대상과 관념”을 찾게 하려는 사고(思考)를 더욱 강요하여 부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그의 시쓰기의 의도에 대한 역설적 반동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2 김춘수는 시 「눈물」 「하늘수박」 등, 트릭을 사용한 작품을, 대상 파괴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전히 대상은 시 텍스트 안에서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상은 시 텍스트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춘수나 다른 시인들이 갖는 관념과 대상의 혼용도 지양해야 하고, 대상은 일률적으로 작품의 외부 또는 표상의 바깥에만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상식화된 도그마를 버려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이 점은 새로운 시쓰기의 키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탁자’를 볼 때 바로 앞 부분은 잘 보이지만 탁자의 저쪽 모서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정면에서 탁자를 볼 때와 이동해서 왼쪽에서 볼 때와는 달리 보인다. 또 두 사람 이상이 볼 때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인다. 보는 사람, 보는 위치, 조명의 유무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달리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작품 외부에 있는 대상과 작품 내부의 대상은 전연 같은 존재가 아닐 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대상’이라고 할 때는 작품 외부에 있는 객관적 사물만 가리키기 쉽다. 객관이나 객체도 인식에 대응하여 독립된 것이라면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작품과 작품 바깥, 표상과 표상의 외부, 주관과 객관-이런 흑백 이분법적 대립으로만 대상개념의 파악이 가능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여기서 작품도 언어적 표상이라는 관점에서 ‘표상’(表象, represen tation)이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대상’이라고 할 때, 표상(‘표상력’이라고 해도 괜찮음)의 한계 밖에 있는 대상의 의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지각이나 사고 즉 인식에 대응하는 사물 자체로서의 대상을 의미한다. 표상의 한계 외부에 있는 이러한 물 자체는 현전화(現前化)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즉 물 자체는 규정불가능, 인식 불가능의 것이다. 우리는 인식이 절대로 안 되는 물 자체를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의 ‘대상’이 표상활동의 산물인 시작품과 어떻게 관련되고 구별되는지 숙고해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 예시한 바와 같이, ‘탁자’라는 물 자체의 인식은 불가능하지만, 작품의 표상 속에서 탁자가 나타나 있다. 나타나 있는 그 표상도 탁자이긴 하나 표상 바깥에 있는 물자체로서의 탁자와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표상된 현상으로서의 ‘탁자’(정확하게는 ‘탁자’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실물로써 존재하는 탁자와의 어떤 관련성을 이해한다. 여기서 우리는 표상의 내부라는 영역 한계를 확정해도 그 내부에는 역시 표상의 대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표상 내부에 존재하는 이 대상은, 시인의 인식과는 대응하면서 선험적으로 이미 부여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나 과제를 가지고 부여된, 그러나 규정불가능이 아니라 단지 미규정 상태에 있는 것이다. 표상의 대상인 ‘탁자’나 ‘남자와 여자’ 같은 대상이 시에 등장하는 보기를 앞에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상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 즉 원리적 탐구는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즉 시와는 관계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시의 중립성이나 객관성 문제, 그리고 시의 구성 방법 문제(‘물리적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등)도 바로 이러한 대상의 본질론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표상의 대상에 대하여 현상학에서 ‘대상X’라는 개념으로 말하기도 한다. 앞에 든 ‘남자와 여자, 오갈피, 예’ 등은 대상X라고 할 수 없을까. ‘남자와 여자’와 ‘오갈피나무’는 사물로서 실재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고, ‘예수’는 담화(談話)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므로, ‘대상X’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젖어 있다”와 “맨발로 바다를 밟은”의 술어들을 관계지워 연결하는 통일점이 없기 때문에 ‘대상X’라고 한 것이다. 즉 ‘X’란 아직도 규정하지 못한 술어관계의 통일점이다. ‘대상X’란 ‘어떤 것’ 또는 ‘어떤 것의 일반’이라는 말 외에 달리 그 본질을 규정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대상X’를 ‘무’, 또는 ‘공허’라고 할 수 없을까. ‘무와 공허’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반된 복수의 언설이 경합하여 논의될 수 있는 토픽의 ‘담론공간’이라는 뜻이다. 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에서도 시의 중립성 내지 객관성이 흔히 지적되곤 하는데, 그 문제가 그런 지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그 특징의 원인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중립성이나 객관성 논의도 ‘대상X’에 귀착된다. 회의주의나 허무주의가 모더니즘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지 모르지만, ‘대상론’에서 찾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일이 아닐까. 김춘수의 ‘트릭’도 이 ‘대상X’에 귀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의 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간다 우리들의 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닐밭 새로 헐레벌떡어리며 지나간다 - 정지용, 「슬픈 기차」에서 이런 시에 일제식민지시대라는 역사 의식을 둘러씌우거나 어떤 이데올로기로 포장하면, 사실 공소한 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비난까지 포함한 논의 지점으로서 이 시는 담론공간으로 열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중립성·객관성은 ‘공허’나 ‘무’라고 하는 대상의식에서만 열려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상론은 시의 구성방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동일성, 감각이나 관념의 유사성 등에서 대상의 결합 원리를 찾고 있지만, 1, 2, 3, 4와 같은 기수개념(基數槪念)에 의거해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수나 번호(사무실 번호, 아파트 번호, 주민등록번호, 차량번호, 군번, 기타 등등)는 개별성이나 개개의 구체적 내용규정과는 관계없는, 또는 그런 것을 사상(捨象)해 버린 높은 추상성과 초월성을 갖고 있다. ‘대상X’라는 것은 기수화(基數化)할 수 있는 요소(단위)가 아닌가 생각되고, 기수에 의한 결합이라는 것은 시의 구성방법을 무한히 확장·확대할 수 있는 혁명적 열림이 된다고 생각한다. 집합적 결합 지금까지의 한국시는 처음부터 단일성·동일성의 원리에만 의존해서 구성되어 왔다. 현재의 시도 대부분 그렇다. 꽃이면 꽃, 베고니아면 베고니아, 빌딩이면 빌딩-이런 식으로 대상, 주제, 내용, 정서, 기타 등등 모두 단일의 동일성 원리에 의거하여 발상되고 구성되어 왔고, 효과면에서도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이러한 폐쇄적 단순성의 경향은 단시(短詩)의 구조가 지향하는 것으로부터의 영향인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한국 서정시의 허약성과 왜소성은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모든 대상이 그 성질이나 내용의 어떠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모두 사상(捨象)되어 숫자나 번호처럼 추상하고 초월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지금가지 볼 수 없었던 미지의 ‘구성의 틀’이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상의 중립성과 더불어 이러한 초월적 추상성은 제재의 다변화, 내용의 다양화, 구조의 복합화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상의 내용도 여러 가지 이질성, 대립성, 모순의 공존적 연결을 보일 것이다. 즉, 결합되는 개개의 대상이 가지는 성질, 종류, 범주, 형태 등에는 제한이 없다. 추상이건 구체이건, 또 물리적이건 심리적이건, 사실이건 공상이건, 그러한 성질이나 종류와는 관계없이 결합될 수 있다. “소나무, 백당나무, 칠엽수” 등은 모두 나무의 종류로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지구, 화성, 태양, 달’ 등은 천체의 종류로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결합은 동일성이나 유사성의 원리에 의거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집합적 결합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마르크스, 서울, 지옥, 관음보살, 의사’ 등의 결합 관계는 동일성이나 유사성의 원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감정, 이데올로기, 의식, 무의식 등의 성질이 추가되면 초월적 기수의 집합개념에 더욱 더 다가서는 예가 될 것이다. 나는 1960년대에 무의식의 세계, 즉 내면세계의 시를 강조한 바 있고,(「선에 관한 소묘」의 연작시 등, 이 방면에 관한 시를 꽤 많이 썼다.) 그 뒤 내면세계에서 사회로 나와 현실과 문명을 비판하는 시를 썼으며, 다시 내면세계와 외면세계의 철폐를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은 나의 시력(詩歷)의 연대적 변화를 그대로 나타내지만, 결국 이러한 꽤 오래된 나의 시적 탐사여행도 결국 이 기수적 종합(基數的 綜合)에 이르는 방법을 목표로 한 나름대로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하철에 막 핀 장미 한 송이 사뿟 들어와 앉다 빨간 매니큐어, 이탈리아제 검은 악어백에서 제라늄 꽃지갑을 열더니 녹색 잎사귀 두 장을 끄집어 내다가는 판도라의 상자인 양 지레 닫아버리다 지상으로 올라와 더욱 살센 지하철 유리창엔 비바람에 우수수 젖은 가로수 잎이 한 장 달라붙어 파르르 떨더니 그 몸부림 뚝 떨어지다 여리고로 가는 길가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를 기다리던 삭개오가 이것을 보다 - 「삭개오가 보다」 전문 최근에 쓴 시이지만, 나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여인이 지갑에서 지폐를 끄집어내는 것, 비에 젖은 가로수 잎사귀가 지하철 유리에 붙었다가는 떨어지는 것, 뽕나무에 올라가서 지나갈 예수를 기다리는 삭개오(『누가』 19장 1절~10절) 등의 세 장면의 결합이지만, 주제의 차원에서는 동일성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담화의 세계와 현실적 현장의 결합, 과거의 폭력적 현재화(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결합) 등의 방법은 그런대로 괜찮으나, 동일성의 원리를 파괴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속 80킬로의 지하철 선반에 알록달록 배낭 네 개, 눕고 기대고 포개져 흐너지지 않다 뭔가 오순도순 속소리로 속삭이다 선반 밑에는 서른을 갓 넘은 아빠엄마 사이에 낀 맏딸은 씨걱거리며 살세게 달리는 깜깜한 터널이 무서운 듯 여신 고개를 돌려 힐끗거리다 둘째는 머슴애, 엄마의 오른손을 꼭 잡고 휘둥그레 세상을 익히는 눈치다 천원 한 장에 두 켤레라고 꼬두기면서 목이 쉬어버린 요술장갑장수가 그 앞을 막 지나가다 아뿔사, 그때 나는 약을 먹고 가라는 아내의 말을 깜박 잊어버리다 이 시에는 지하철을 탄 젊은 부부의 일가족 모습, 요술장갑장수의 행상, 아내의 말을 잊고 나온 화자(나) 등 세 장면이 결합되어 있다. 지하철 안이라는 공간의 동일성이 여전히 전제되어 있어 이 점이 불만이다. 시간적으로는 현재와 과거(회상)가 동시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비록 지하철 안이라는 공간적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대상이 가지는 술어 상호간을 연결하는 통일점은 찾아내기는 어렵게 되어 있고, 이 점이 바로 집합적 결합(集合的 結合)을 전향적으로 열어놓고 있다. 대상의 초월적 추상성과 기수화를 바탕으로 한 복합적, 종합적 결합은 여러 가지 개념의 명명이 가능하나 E. 훗설의 용어를 빌려 ‘집합적 결합’ (kollektive Verbindung)이라는 용어로 부르고자 한다. (문덕수 지음 『현실과 초월』에서 발췌)
40    "낯설게 하기 자체가 하이퍼텍스트 " 댓글:  조회:288  추천:0  2019-03-15
낯설게 하기(하이퍼텍스트)와 분절  서설 지나 텅 빈다          오남구 창은 플라타너스 잎을 가만가만 비운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북서쪽에서 빌딩의 틈새로 소리가 흘러 조용한 흐름이 느껴져서 깊숙이 손 찔러서 넣은 주머니 속의 만져지는 감촉 매끄러운 동전 한 닢이 따뜻하다. 쨍그랑, 깡통에 한 닢의 소리 던져 넣는 손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서설이 지났다 첫 눈이라도 내릴까 올려다보는 빌딩 사이로 조각난 허공이 찬바람에 김을 불어 넣어 뿌옇다 깊숙이 손 찔러서 넣은 주머니 속의 움켜 쥔 빈손이 텅 빈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플라타너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서론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이미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슈클로브스키가 주장한 용어, 예술은 경험적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것 "시의 효과는 언어를 삐딱하게, 어렵고 날카롭게 ,뒤틀린 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 문학성, 전경화, 문제점 을 차례로 풀어본다. 본론:"서설 지나 텅 빈다".작품을 통해 본 낯설게 하기 1)문학성: 문학을 언어의 특수한 예술 영역 지시적 언어로 본다면 . 이 작품은 화자가 충분히 언어를 손아귀에서 휘두르고 있으며 자유자제로 가지고 논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분절, 행갈이 자체를 파괴하고 있음도 우리는 쉽게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전혀 말이 안 되는 듯 그러면서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문장 전체가 링크되고 있다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가령 "뿌연 허공"이 지난 초겨울의 첫 눈을 떠오르게 하여(링크되어)두 마디가 그 마디 사이에는 상상하는 공간이 있고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면 과거 현재의 시점이 같이 있다. 이것을 하이퍼텍스트의 비선조적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2)전경화(foregrounding):티냐토프와 무카로브스키가 슈클로브스키의 낯설게 하기를 변용한 이론으로 작품은 여러 가지의 상호작용인데 그 가운데 지배적인 요소를 앞으로 내세워 체계화하는 것 (시에 따른 종속 관계의 재배치)이 작품에서는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는 "서설 지나 텅 빈다"는 문장이 될 수 있겠다. "서설瑞雪"은 상서로운 눈으로 봄이 시작되는 입춘이 지나 내리는 눈으로 경사스러운 길조의 눈으로도 봐도 무난할 것이다. 첫눈이 겨울의 시작 이라면 서설은 겨울이 끝나는 눈인 것이다. 즉 새로운 생성을 기다리는 구도자의 내면을 우리는 읽어 낼 수가 있다. 잎이 다 떨어진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가지에 서설이 내리고 봄을 준비하는 텅 빈 자리를 화자는 빌딩 사이로 난 조각난 허공(하늘을 )보면서 첫눈이라도 내릴까? 첫눈이 내리기를 바란다. (막내 딸 시집보내면서 쓴 작품 )무의식 적으로 화자는 지난겨울 아니 힘겹게 예까지 온(작품세계) 을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서설 지나 텅 빈다 " 이 한 문장이 전경화 되어 화자의 외로움 아니면 앞으로의 더 긴 고독한 여정을 말해 주고 있을지도……. 3)문제점: 감정적 요소의 경시(미학적 근거가 약함)가 자체를 다시 뒤집어 본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고 있는 화자는 솔직한 개인감정을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전혀 낯설게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학적 근거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움켜 쥔 빈손이 텅 빈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플라타너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마지막 세연에서 화자는 모든 것을 다 놔버린다. 손이 텅 비우고, 그 비운 손을 바람이 가만가만 불어 스쳐가고, 플라타나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이 표현은 불교의 윤회설을 통해 절대자처럼 이 화자는 초월적인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는 구도자 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말하고 싶다. 결론 :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기만 한 날씨가 겨울을 다시 맞는 것 같은 뿌연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우울한 내면을 들어다보면서 그가 40여 년의 세월을 힘들게 걸어 온 여정을 함께 반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면했던 그의 외로운 작품 활동 투쟁의 결과는 지금에서야 빛을 바라고 글 좀 쓴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앞에서 치세우고 뒤에서 짓밟고 닮아 가고자 하는 심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배반하고…….나는 그의 작품을 더 알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의 "낯설기 하기의 텍스트"를 빠져 나온다. 아니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서 그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겠다. 결론적으로 "낯설게 하기"를 통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들이 이 작품에 다 녹아들어 있지는 않지만 하이퍼텍스트 글쓰기 자체가 낯설게 하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조건이 성립 된다고 본다. 그의 작품을 다루면서 작품이나 그분에 대한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분의 앞날에 서광이 있기를 ……. 2 하이퍼텍스트 서론 : 무의미시 뒤집기, 즉 무의미 시는 화자의 관념이 내포해 있다. 본론 : 상대적 심상과 무의미시 1. 상대적 심상 1) allegory,`축자적 심상 가, 우언-(寓話) 즉 인격화한 동식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 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ㄱ. fable-교훈을 내포한 짧은 이야기, 꾸며낸 이야기(거짓말),전설, 설화, 신화 ㄴ. parable-비유 담, 비유,(성경말씀) ㄷ. allegory a.사전적 의미 allegory -비유 우언 법, 우의소설, 비유 담, 상징 b.실재로 쓰고 있는 allegory-,처럼 몇 십 만자, 혹은 몇 만자적인 긴 소설을 얘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교재 "시론" 166p에서 보여주고 있는 -조병화의 의자에서 보여주는 의자 이미지가 allegory(회화)적인 반면 단지 회화성을 만을 강조 했다면 오히려 fable의 더 가까운 해석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fable-산문 혹은 짧은 시가 체로써 아주 짧음과 정갈 함을 강조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위의 사전적 의미로써의 세 가지를 통틀어 우언이라는 공통적인 부분으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나 차이점으로 본다면 parable은 (종교)적인 특색을 가미하고 있기 때문에 allegory 또한 서로 다른 부분으로 해석함이고자 한다.    2)축자적 심상 축자적(묘사)―서술 하거나 그림, 서술-사물의 생각이나 차례를 쫓아 서술하는 것 allegory(회화)―그림, 그럼 조병화의 의자는 축자적이며,allegory 라는 공통된 부분 즉 "회화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그럼 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의자는  allegory 보다는 fable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2. 탈 관념으로 가기위한 무의미 시 와 하이퍼텍스트(접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전문 "그"의 이름을 불러 준 명명행위를 통해 '그'의미가 '꽃'으로 확립 되었다. 고 생각하는 관점은 1연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표현과 대비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면 사실 이러한 관점의 근거는 들뢰즈가 지시 작용이라 지칭한 전통적인 의미론 즉 실증주의적인 의미론을 따른 해석이 다고 [함종호]는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미 김춘수는 프랑스의 상징주의나 미국의 낭만주의로 부터 무의식의 세계를 모방해온 것이라고 본다면 김춘수의 작품세계를 초기 중기 말기로 봤을 때 '꽃'은 초기 시 세계와 중기 시 세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로 봐야 할 것이며 '꽃'이라는 대상물을 통해서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관념을 그대로 노출 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아직은 무의미 시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점을 밝히는 부분이다. 김춘수의 말대로 불손함을 보여주고 있는 시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즉 완전한 의식이 없는 순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볼 때 무의미 시로 가기는 아직도 길이 멀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접으면서 단국대학교 국어교육전공 유경진 석사논문에서는 를 전후로 전기 시와 후기 시로 나누고 있기도 하다 이전의 시들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들인데 반해이후의 시들은 관념과 의미가 배제된 무의미 시로 하이데거와 릴케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그 존재탐구 방식을 설명한 논의와 후기시의 경우 전기시가 존재론적 탐구를 통해 추구해온 의미를 해체한다고 보면서 전기 시는"존재탐구의 시"라고 비교적 일관된 평가가 내려지지만 후기시의 논의는 천차 만별이여서 다음 기회가 온다면 계속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여지를 남겨 두면서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또한 유강진은 (1959)을 끝으로 무의미 시 이전의 시가 청산되고 새로운 무의미 시로의 세계를 열기 위한 실험과 모색을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그 시가 바로 이라는 시 다. 나의 하나님 -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비,비,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선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 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 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러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오남구吳南球의 [부드러움의 단상] 전문 비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상징화 시켜서 사진 찍듯 접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팔딱팔딱"이란 의성어만을 보더라도 생명이 느껴지고 싱싱한 생선이 살아 뛰는 모습이 그려 질 것이다. 이 빗줄기는 칼날이 되어 날을 세워 수평 수직으로 마구 제멋대로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직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 안에 시적 화자는 물론 보이는 모든 일상들이 빗길이 휘두르는 날 안에 똑 같이 갇혀있다. 결국 그 화자가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팔딱팔딱 수직으로 선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제풀에 겨워 결국은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따끔한 꾸짖음을 느낄 수 있다. 늘 자기 잘난 맛에 자기가 최고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방방 뛰는 사람들 ,위세 당당한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러는 시인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는 소리 죽여 시인들의 의식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결론 두 작품을 통해서 무의 시와 하이퍼텍스트 시를 감상해 봤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단지 내 생각은 무의미시는 하이퍼텍스트의 시로 가기위한 어떤 한 가교 역할을 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전혀 방향이 맞지 않거나 동떨어지지는 않고 공통된 부분을 통해서 업그레이드 된 시론이 하이퍼텍스트시라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는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길만을 고집하며 걸어온 그분들의 문학사적인 체면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험적인 시작 활동에 있어 무수한 번뇌, 유혹, 모든 것을 뿌리치고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은 문학사적으로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오남구의[부드러움의 단상]에서 빗줄기를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비가 갠 허공 속에서 조각난 무지개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화자의 이상은 아니 그의 외로운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음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칼날을 세울 만큼 그의 시 세계에 있어서는 강하고 꼿꼿한 분이지만 그의 심성은 제목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고 정이 많은 분이란 걸 밝혀둔다. 인생은 결코 부질없다는 것을 빗줄기를 통해 말해 주고 싶었을까? 어려운 작업을 누군가는 계속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다 지쳐 힘들 때 오아시스 같은 시인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급히 길을 빠져 나온다.   3 아방가르드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서론 일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서술하면서 근대에서 탈현대 아방가르드에서 포스트 모더니 즘까지를 서술, 분석 하면서 작품 분석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본론  1. 시대적 구분  1)근대 일반 적으로 고대, 중세와 더불어 역사 전개의 한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가. 넓은 의미의 근대를 18세기 후-르네상스의 (이성 중심)세계관에서 원인이 경제적(자본의), 정치적(민주주의)라는 과정 즉 근대화 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나. 좁은 의미의 근대를 1920년 이후-실제로 역사학자들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15-16세기에 싹터서,17-18세기의 성장과정 거친 후 ,19세기 산업 혁명 시대에 꽃 피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기 이후로 좁은 의미의 그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넓은 의미의 근대만큼은 르네상스 15세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다)다른 견해로 보는 근대 ㄱ. 제1기-19세기 산업혁명에서 완성되는 시기(자유 시장 경제  자본주의) ㄴ. 제2기-19세기 말 독점 자본주의 국가 경영에서 비롯된 시기(제국주의 자본주의) ㄷ. 제3기-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1940년대부터)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기술발전에     의 이루어진 시기(다국적 자본주의) 2)현대- 1930년 이후 (19세기말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3)탈현대-1980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오늘에 이르기 까지를 일컫는다. 2. 작품의 구분 (문예사조)  1) 아방가르드-아방가르드 운동이 넓게는 낭만주의적 세계관에 토대하여 보들레르와 같은 세기말 사상을 계승한 반이성적, 해체적 예술 운동     2) 모더니즘- 고전주의적 세계관에 토대하여 흄의 철학을 계승한 이성적, 구조 지향적 예술 운동  가. 미국 모더니즘 란 (신학에서 이미 중세부터 시작 )한바 있으나 영미의 문예 이론가들이 20세기에 들어 그들의 특별한 문학 사조 흄(T.E.hulme)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이미지즘, 네오클래식(주지주의.NEO-classic)`을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영미의 모더니즘은 유럽의 문학 사조와는 다른 것이다.   나.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아방가르드라 부르는 문학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미래파, 표현주의 영미의 모더니즘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3) 포스트모더니즘-유럽의 아방가르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뒤늦게 미국으로 수입되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미학적으로 반영한 문예사조, 즉 미국 화된 아방가르드이기 때문이다.   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영미 모더니즘을 부정했다는 측면에선 -모더니즘을 부정했다는 논       리   나. 아방가르드를 계승했다는 측면에선 -영미 모더니즘을 계승했다는 논리가 성립 될 수       있다.   다. 우리 현대사회에서는 영미 문화적 패권주의자들의 논리를 좇아'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아방가르드까지 포함 시켜 사용한 것은 잘못이다.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 본다. ㄱ.모더니니스트 시인    해방 전-정지용, 김광균, 김기림    해방 후 -박인환, 김경린 ㄴ.아방가르드 시인    해방 전-이상, 임화, 고한용(삼사문학)    해방 후- 조향, 김수영(초기),김춘수, 김구용, 이승훈, 오규원 ㄷ.포스트모더니스트    1980-황지우, 박남철, 김영승, 장정일, 김혜순 자생적 포스트 모더니니스트    21세기-문덕수, 이승훈, 오남구 3.작품 분석 1) 탈 관념의‘디지탈리즘시’ 쓰기 " 병치은유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몸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 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가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吳南球의전문 짐승이 불을 키고, 빗소리가 몸속을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신경이 불을 키고 선미루나무가 있고. 짐승의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몇 칼로리 바람이 그리움 되어 미루나무 이파리를 흔든다고 문장 전체를 아주 멀리 병치 시켜서 말하고 있으므로 시적 묘미를 더해 주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화자는 깊은 밤중에 혼자서 빗소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갇혀 있는 몸속으로 빗소리가 흘러 짐승(이성)이 살아나 새파란 의식의 불을 키고 빗소리를 더 가까이로 받아 드리는 것이다. 그 짐승은 때로 환하게 불을 키다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몇 칼로리의 그리움 바람으로 살아나 미루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이다. 깜빡깜빡 하다가도 그의 의식을 뭔가가 깨우고 있는 것이다. 때로 지쳐 안위하고 싶다가도 차가운 빗물을 통해 의식은 끝까지 살아 저 깊은 내면으로 부터 알 수 그리움이 그의 여정을 여전히 밟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리라. 미루나무가 비를 맞는 풍경과 바람에 이는 이파리들이 내 힘든 나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깝게 클로즈업되어 접사되고 있다. 결론 1.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미의 문화론자들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자신들의 문학 사조,즉 이미니즘, 네오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이 유럽 아방가르드까지도 포함시켜 부르기 시작,미국이 세계 중심국으로 부상하면서 그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를 추종한 한국의 논자들까지 풀 수 없는 혼란의 개념 속에서 허우적이며 학계나 문단에서 '모더니즘'론이 끝없는 말장난과 공허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 이른바'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도 후자가 전자를 계승하고 있다는 일면에서는 부정하고 있는 입장이다. 예컨대1950년대에 등장하여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의 1세대라 불리는'뉴욕파'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초현실주의를 수입한 화가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지양, 극복하고 그 대신 아방가르드를 계승한 문예사도들인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모더니즘이란 단어 앞에 포스트란 접두사를 붙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3. 국문학을 배우면서 혼란스러운 것은 이렇다 하는 정설, 즉 결론을 내려 주지 못한 부분에 참으로 혼란을 느낀다. 이쪽으로 생각하면 그럴듯하고 저쪽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맞는 것 같고 논문을 읽어 가면서도 어떤 사람들 것을 참고 해야 하나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공통적인 부분도 있지만 모든 논문이 그 앞사람들의 책을 참고하고 본인의 생각을 가미 한 거라 혼란스러움만 더 초래 할 뿐이다. *참고문헌 -오세영 외 지음 [한국현대 詩 사]민음사 *          오남구[이상의 디지털리즘]범우사 4 즉물환타지 Ⅰ서론 융의 원형-인간의 정신 의식 속에 내재한 원형 적인 시적화자를 끄집어내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1.Shadow-무의식적인 자아의 어둡고 열등한 측면 악마적인 것을 얘기한다. 2. Soul (1) anima-남성의 무의식 내에 존재하는 여성적 측면 (2) animus -특히 여성의 억압된 남성적인 특성(적의, 악의, 악감, 적개심) 3 Persona-인간의 외적 인격이 외부세계와 맺은 자아양상(이성의 능력) 문학 작품의 내레이터(반드시 저자와 동일일 필요는 없다) 즉 가면 해넘이의 부신 해 하나가 서해의 수 천 수 만 물고기 떼의 물속에 빠지자 선명한 분계선을 긋는다. 일시에 선 아래 꿈의 물고기 떼가 눈에다 수 천 수 만 환희 불을 켜고서 동으로 동으로 흐른다. 선 위에서는 다만 파르르르......,화사한 물고기 떼의 노을 지느러미가 떨고 있다.       -오남구吳南球의 전문 오남구는 수평선은 의식의 분계선으로서 직관하는 시점이다. 해가지고 나서 동해로 향하는 물고기 떼는 판타지이며, 독자에게 사진을 찍듯이 염사 하여 내면의식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판타지는 시각에 의에 인식한 사물의 영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맹인은 촉각에 의해서,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한 사람과 빛을 보았던 사람이 서로 달랐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꿈을 꾸게 되면 빛을 보지 목한 맹인은'캄캄한 허공' 빛을 본 사람은 '하얀 허공'속에서 서로에 대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손으로 잡으려고 한다고 그의 시집에서 말하고 있다. 꼭 즉물환타지라 일컫지 않는 시라 할지라도 모든 시에는 Persona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탈 관념화된 시는 더 그렇겠고 객관적 대상물을 통한 시는 모두 가면 또 다른 자아를 노래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시적 화자를 넘어가는 해 A 로 본다면 이 물고기 떼를 독자 혹은 사람들로 본다. 그 분계선은 중립을 지키는 A'해로 보고 싶다. 그 많은 독자 혹은 인간들이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모습은 눈에다 불을 키고 수 천 수만의 물고기 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봤을 때 그 물고기 떼들은 다만 선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을 뿐이다. 시적 화자처럼 중립적이지도 ,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것이지도 못한다고 본다.   Ⅲ 결론 분명한 것은 감히 누구도 쉽게 쳐다 볼 수 없는 그의 시세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면 되는 것이다. 라고 나 또한 감히 건방을 떨어본다. 그는 여러 시세계를 넘나들며 실험하고, 아파하고, 고통 받고, 상처받으며 오늘에 이르러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수제자 이었음을 아는 이는 알고모르는 이는 모른다. 그의 책 "꽃의 문답법" 에 보면 서정주 시인과의 재미 난 얘기가 실려 있다.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 강조 하고 싶은 부분은 모든 시가 또 다른 Persona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싶다. 넓게는 어떤 시인이던 Shadow, Soul(anima, animus) 이런 심상들을 내포한 작품들을 다 가지고 있으며 쓰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작품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과 공간을 매 꾸어 본다. 5 패러디  Ⅰ 서론 시의 구성 원리를 리듬, 심상, 비유, 상징, 인유, 패러디로 봤을 때, 패러디는 맨 마지막에 시의 묘미를 한층 살려주는 인유와 혈연관계에 놓인 문학 장치라 본다.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시의 매력과 원리, 정의를 제시해 보기로 한다.  Ⅱ 본론 1. 패러디의 원리(원전) 환한 대낮 활활 옷을 벗고 뛴다. 키 큰 내가 뛴다. 키 작은 내가 뛴다. 적당한 내가 뛴다. 어우러졌다가 일렬로 서서 뛴다. 푸른 밀밭       -오남구吳南球전문 1)모방(인유) 이 화자는 밀밭을 인유하고 있다. 키가 작은 밀과 키가 큰 밀이 있다. 또 표준의 키를 가지고 밀이 있다. 그들과 결코 어울리지 못한 것 같지만 그들과 화자는 나란히 어우러져 더불어 크고 있는 것이다. 2)비판, 골계(모순) 이 화자는 키가 제일 작은 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표준인 밀과 키큰 밀에 결코 뒤지지 않는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당당하게 그들과 맞서 일렬로 뛰고 있는 것이다.     3)변용(창조) 환한 대낮 그것도 활활 옷을 벗고 뛰는 모습에서 이 시의 최상의 부분으로 본다. 그는 결코 음습한 곳이 아닌 환한 대 낮에도 옷을 벗고 뛸 수 있는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단연코 그는 실력 면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는 면을  읽어 낼 수가 있다. 결론 부분에서 더 얘기를 하기로 한다. 2. 정의 1)인유와 혈연관계 2)Parodia:다른 것에 반대 입장에서 불려 진 노래  Parodi :모방하는 것, 모방하는 가수 3)적대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지님 4)모방과 변용이 패러디의 기본 개념 5)고유한 문체를 저급하게 주제에 적용 6)풍자적 목적을 위한 채용 7)골계적인 것, 희극적인 것의 강조 *을 보면 원초적인 '나'가 생명력의 본질이 발동하여 통제와 질서로 부터 일탈하려는 무의식의 '질주'가 일어난다. 이 질주는 감정의 정화로써 관념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탈 관념된 알몸이 막 달리는 본질이다. 화자의 유년기는 아버지로 부터 '-하지마라' '-하라'하고 나 스스로를 통제하고 길들이고 있었다. 내 속에 성장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회 관념으로 자리한 '나의 아버지'는 순수 본질의 아버지와 함께 1975년에 쓴 은 질주하는 성장기의 이런 잠재한 의식이 그대로 나타난다. '적당한'내면의 질서가 '일렬로 서서 뛴다'. 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오남구吳南球                     3. 시의 매력 앞에 보여주는 정의 여러 가지 내용들은 시를 한층 돋보이게 혹은 잘 못 사용하면 저급 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몇 가지들은 시의 활력과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의매력이 숨어 있기도 한다고 본다.    Ⅲ 결론 : 이 화자는 전문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가장 키가 작은 밀에 속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화자에게 누가 되겠지만 외형적으로는 아주 외소하고 볼품없는 모습이다. 이 분의 작품으로 3학점 3학년 전공과목임에도 굳이 이분을 끝까지 고수 하는데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다. 이 화자를 만난 것은 학기 초에 들어가기 직전 이었다. 원고 청탁을 했었고 우연찮게 나와 절친한 분이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함께 하는 자리에서 별거 아니라고 내미는 시집을 받고, 또 범우사에서 출간한 "이상의 디지털리즘"이라는 이론 집을 받고나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 시피 읽고 또 읽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하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이론 집을 읽고 난 이후에 그의 시집 라는 시집을 대하고 보니 탁 무릎은 칠 수 밖에 없는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아 바로 이거 구나, 바로 이 분이구나 하는 나의 시에 대한 부끄러움과 절실함이 움트기 시작했다. 여태 내가 찾던 그런 시었으며 절로 재미가 나서 글이 쓰고 싶어져 미칠 지경이었다. 시간은 내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틈을 주지 않았고 글 또한 만만찮은 그분 눈에 찰 리가 만무했다. 단지 희미한 희망의 실가 닥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아마도 그분은 기억하시지 못 하겠지만 기초가 탄탄하고 정시인은 오히려 서정적인 시 보다는 모던한 시가 더 어울리는 분입니다. 그 말끝을 놓칠 수 없는지라 틈만 나면 열심히 그분의 시론을 읽고 시를 읽고 나름대로 여기까지 오면서 감히 그분에게 도전이라면 한없이 건방진 거고 그 분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분의 시를 대하면서 우습게도 속된말로 신문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잘 나간다는 분들의 시가 넋두리란 생각에 싱겁기까지 했다. 처음에 그분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 내게 4년여 전에 인터넷상에서 내 글을 보고 프러포즈를 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고 자신감과 함께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왜 선생님은 세상 밖으로 나오시지 않느냐고 동석한 시인이 말했지만 본래 시인이란 숨어서 글만 쓰는 거라는 말과 함께 정시인도 그러려면 아예 시 쓰기를 집어 치우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걸을라치면 내 어깨정도 밖에는 안 차는 그런 분이었지만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넓은 마음과 아버지 같은 다정다감한 마음 씀씀이와 다르게 그의 시 세계는 아주 매섭고 이성적인 번뜩임이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게 파닥인다. 감히 그 분 앞에서 시라는 표현을 쓰지도 못 한다. 작은 밀(A) 큰 밀 (A')표준의 밀(C)라고 볼 때, 가장 큰 밀을 훨씬 웃자란 밀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고 그들과 더불어 일렬로 서서 뛰는 그분의 심상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얼마 남지 않는 학기지만 끝까지 이분의 작품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렇게 시켜서도 아니고 그 분과 또 다른 친분이 있어서도 아니다 단지 여태 방황하던 나이 시세계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차 하는 말이지만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한 얄팍한 내 지식이 그분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늘 부족하고 배우는 입장임으로 많은 도움을 요 하면서 이만 내 생각을 접는다.          6   어조와 화자 Ⅰ 서론 시적 장치에 있어서 어느 한 쪽 만으로 치우쳐 그 작품을 감상하고 논하기 보다는 개괄적인 감상과 비평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제시해 본다. Ⅱ 본론: 어조와 화자 1)담화 양식으로서의 시 2)개성과 태도 3)풍자 4)어조창조와 시적 장치 5)어조와 시의 양식 이처럼 여러 단계를 통해서 우리는 시를 감상하고 평 할 수 있는 시적 장치'가 있다면 어느 한쪽만으로 치우쳐 그 작품을 감상하고 논하는 것 보다는 개괄적인 감상과 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본다. 굳이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읽은 다는 건 물론 독자의 몫이라 탓 할 것은 아니지만 배우는 입장에서 내 소신을 밝힐 뿐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어조 부분에서 그것도  전문을 통해 풍자만을 설명하고자 한다.     461120-10675**오진현吳鎭賢 2002년 12월 29일 57시로 살아 있음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가 파란 신호등이 켜졌다. 뇌세포의 신경 체계가 잘 유지된다. 오늘 경운동 88번지에 도착할 시간 10분 남았 고. 잠깐 내 모습의 환영, 팔순 노구가 앞을 멈칫멈칫 가다 쉰다. 말없이 손을 내밀어 잡는다. 이때 번쩍 뇌세포에 녹화된 화면이 켜진다. 2002년 12월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 목사가 돈뭉치를 하늘에서 뿌린다. 파 란 만 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한 노구 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띵……, 붉은 전등이 켜진다. 다시 '복제인간 아기탄생!'화면이 겹 친다. 몸이 떨린다. 쾅! 쾅! 쾅! 맥박이 가슴 친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 이 없다 인내천 인내천 소리치고 숨을 고르면서 경운동88번지로 가는 탈출구를 찾는다. 쏴아-, 싸늘한 바람, 번쩍,5번 출구의 표시등이 켜졌다. 침략으로 점멸하기 시작하는 신호, -5번 출 구,바뀐다.   시련의 점멸하는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며 내 신호 체 게가 경운동88번지로 간다.             -오남구吳南球 전문 개인적, 역사적, 민족적 심장이었던 상징적인 곳으로 나는 거의30 년 동안을 88번지를 향해가며 보고 느꼈다.깜박이며 바뀌어 가는데, 30여 년 전의 세월이 간단히 압축 표현된다. 시인의 시점은 민족 영욕의 역사를 보는 시점이다. 그 이름이 깜박이며 바뀌는 것은 지각없는 민족의식 때문이다. 천도교의 이름이 사라지고 아랍문화원의 이름이 표기되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큰 문제이다. 침략 당하고 있는 민족의 상징이다. 오남구의 -이상의 디지털리즘- 중에서 이 시를 1.2.3연으로 봤을 때 1연에서 이 시인은 경운동88번지가 어떠한 장소였는지 보여 주고 있으며, 경운동88번지로 향해 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팔순의 노구를 통해 문득 30여 년 전의 시간을 만난다. 1978년을 만난다. 그는 역사적인 굴욕을 보게 된다. 그 굴욕 앞에서 2002년 12월 24일 밤, “12월 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목사가 돈뭉치를 하늘에서 뿌린다. 파란 만 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한 노구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모습을 풍자하고 있으며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연에서 다시 깜박이가 켜지면서 '복제인간 아기탄생' 즉 시인의 진짜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30여년을 걸었던 경운동88번지의 탈출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부단하게 이 현실이 싫어서 도망쳐 버리고 싶다가도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익숙한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오는 시간동안 몸이 떨리고, 맥박이 가슴을 치며 숨이 가빠짐을 느낀다. 탈출구를 찾음과 동시에 쏴-바람을 통해서 혼미해졌던 정신에 다시 신호등이 들어 온 것이다. 신호등이 들어 왔음에도 화자는 머뭇거린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긴 하되 시련의 점멸을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는 화자의 귀향은 돌아오는 그 자리가 어쩐지 꺼림칙하고 화자가 안식할 수 있는 예전의 천도교의 이름이 사라지고 이국적인 즉 침략을 일삼든 민족의 상징인 아랍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Ⅲ 결론 여기서 분명하게 이 화자는 지금의 경제 식민지, 문화식민지, 종교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는 아득한 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머뭇거렸던 것이다. 이 아이러니하고 풍자적인 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각성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넓게는 자아와 또 다른 자아와의 담화가 들어있기도 하고 독백이 들어 있기도 하고 시인의 개성이 들어 나있기도 하고 시적 장치에서 보여주는 논리적 가치와 심리적 가치도 함께 드러나 있기도 하다. 단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제각기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아이러니와 풍자 쪽으로 이글을 바라봄으로써 더욱 시적 가치와 매력을 느끼고 나온다.          7   어조와 화자 중에서 퍼소나 서론 : 퍼소나의 다섯 가지 분류와 그에 따른 "화자의 두 가지 주체"를 대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본론 1. 퍼소나 1)개성론과 몰개성론 2)시점 선택 3)시점의 유형(체험시, 배역시, 논증시) 4)객체와 자기풍자 5)화자의 두 가지 주체 (1)화자는 기호에 지나지 않음 (2)포스트 모더니즘의 시각 외진 등산길도 호젓이 걸어 보았고요. 땅굴이며 기지촌 색시 굴이며......들여다보고 또 보고 와서는 ,한강변을 거닐어 보고 두 주먹으로 눈물만 훔치고 또 시골로 가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찾아 냉이도 캐어보고 전봉준이 집도 가보고, 또 보고 끝내는 여치에게 찾아가고 골방 같은 데까지 누구 얼굴을 찾아 보았지요. 나는 5호라는 기호 위를 날아갑니다. 누구 이 얼굴 아십니까           -.1 이 시에 앞서 시詩는 어떠한 것이란 말인가? 빠져 어느 다방에 쪼그려 앉아 성냥개비 다섯 개를 가지고 망수()의 기호를 탁자위에 만들어보고 이 다섯 개의 성냥개비를 쓸어 모아 뿌렸다. 그리고 중얼 거린다. 열 번 백 번, 수 천 번을 뿌렷을 때에 이런 비슷한 모양도 저절로 나타 날 게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모양이 뿌려질 게야. 기상천외한 수많은 가치 있는 모양도 뿌리칠 게야. 우리는 이 모양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겠어 그는 여기서 '시의 발견'시를 쓰는 것만이 아닌 '발견 할 수도 있는 것'으로 못을 박는다. 이 발견은 곧 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영감을 얻어 디지털리즘에서 사진 찍듯이 시를 찍는다.                                                 -오남구의 이상의 디지털리즘 중에서- -.1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본인 스스로가 독자가 되어 또 다른 자아에게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외지고 호젓한 등산로 길을 통해서 화자는 혼자 쓸쓸히 외길만을 위해 걸어 온 길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으며 질펀한 기지촌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그 기지촌은 잘 난 시인 들이 득실거리는 현 글 판을 풍자 하고 있기도 하다. 함축적인 시인과 화자가 구별 되거나 일치 할 수도 있는 부분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자 역시 시인은 많은데 "시다운 시"가 없는 글 판을 질퍽질벅 함께 걸어도 보고 들여다보고 와서는 한강변을 거닐며 두 눈을 훔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강역시 역시 오염됨을 인식한 그는 사계절이 뚜렷한 아직은 깨끗한 시골을 찾아 냉이도 캐어보고 전봉준도 만나보고 골방 같은 데서 즉 화자의 또 다른 자아를 찾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한 이 시적 화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공간을 훨훨 날아 있는 3차원 아니 그 이상의 세계를 찾아 5호라는 기호를 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시란 기호에 불과 한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 포스트모더니즘 시 쓰기 맥로한, 델리다를 이어 '하이퍼텍스트'까지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본론에서 말하고 있는 퍼소나의 조건을 모두 함축하고도 남은 작품이라 하겠다. 앞전에도 말했듯이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양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 인의 많은 제자들은 그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최근에 잘 나가는 시인들은 모두 이 분의 제자 인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 시인은 외로운 것이다. 진정 이분만이 느끼는 제자가 없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쩜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우렁을 까먹다가 칵 씹히는 게 있어 보니 그 새끼가 벌써 그 우렁 안에서 집을 짓고 살아보지도 못 하고 함께 잡혀서 가족이 몰살당한 그 상황을 봤다. 어쩜 이 시인은 모던 시 쪽에 있어서는 어미 우렁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은 내리사랑은 해도치사랑은 어렵다고 한다.  얄팍한 내 지식이 정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만 내 생각을 접는다.     8. 미적 거리 거리와 표현 기법 Ⅰ서론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서열화 시키는 걸 좋아한다. 인간-샘물-무기 물 무기물-샘물-인간 역이든 순차적이든 몇 가지 방법을 제시 해 보기로 한다. Ⅱ본론 1. 서열의 역전 2. 소외기법 3. 구조와 반구조 4. 환유 시와 비 유기적 형식 5. 불확실성과 새로운 서사 구조 1    시장 정육점 갈고리에 생고기와 나란히 걸린 가죽, 가족?    *  
이미지, 변용과 비약적 결합 2014.3월호 시평                                                              이혜선(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시인은 익숙하게 보아오는 일상을 비틀어서 낯설게 보기도 하고, 평범한 체험이나 사상(事象)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미지를 변용(變容: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하여 전혀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각각의 시에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보이는 현상 너머의 이면과 본질을 보아내는 그 시인만의 개성적인 시각이 담겨 있어 독자로 하여금 새로움과 경이에 눈 뜨게 한다. 그래서 시에는 독자적인 개성이 중요하다. 독특하고 개성적인 시 창작을 위해서 시인은 이미지를 변용시키고 비약적으로 결합하여 그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말소리 들린다고 말 노인들이 대문 밖으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말에는 말 없는 노인들이 윷놀이한다   말이 몽골초원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이리로 온다   콘트라베이스의 묵직한 바람소리와 더불어   지그재그로 달리는 네 개의 다리가 어지러운 곱하기 곱하기를 한다   앵글로 아랍은 중동에 사는 “영리하고 용감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이름   대추색 온 몸에 머리와 갈기와 꼬리만 검푸르게 염색을 하고   간밤의 파티장에서는 멋쟁이 신사   할아버지의 몽골 초원이 그리워 긴 입을 들어 힝힝거리며           (중 략)   서울 아파트의 말매미가 한거번에 운다   말매미의 말은 우랄알타이지방의 거친 말이다                 -김규화 「말 • 앵글로 아랍」부분      김규화 시인의 위의 시에서는 이미지들의 비약적인 결합으로 미끄러지는 시니피앙(signifiant:記標)들 사이에서 중의법으로 쓰이거나 동음이의(同音異義)인 시니피에(signifie:記意)들이 새로운 제 3의 이미지로 변용되고 있다. ‘말소리 들린다고 말 노인들이 대문 밖으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말에는 말없는 노인들이 윷놀이한다’에서는 말-언어, 말-말(馬), 말-윷말, 말-마을, 말- 끝(末), 늙음 등 여러 가지의 동음이의어들이 중첩되어 중의법으로 쓰이거나 혹은 각각 사용되어 ‘말’이라는 연상기법을 통해 여러 가지 변용된 이미지들을 비약적으로 결합시킨다. ㅁ, ㅏ, ㄹ 은 모두 유성음으로 그 발음만으로도 의성어나 의태어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음성상징을 느끼게 한다. 그 중의 하나의 의미인 ‘말’에서 몽골초원과 갈기를 휘날리는 말이 연상되고 ‘대추색 온 몸에 머리와 갈기와 꼬리만 검푸르게’ 보이는 앵글로 • 아랍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 멋진 모습이 ‘염색’한 것이 되어 여기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다시 ‘간밤의 파티장에서는 멋쟁이 신사’로 변용된다. 2연에서는 ‘할아버지의 몽골초원’을 그리워하는 말의, 몽골에서의 자유롭고 힘찬 나날의 삶이 묘사된다. 그러나 3연에 와서는 다시 ‘말’이라는 시니피앙과 결합되는 ‘말매미’가 등장하면서 시적 공간은 몽골초원에서 갑자기 시인의 사적 공간인 서울 아파트로 옮겨오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말매미들의 울음에서 ‘말(언어)’을 연상하고 그 말을 다시 ‘우랄 알타이지방의 거친 말’로 변용시킨다. 이 시는 얼핏 보아서는 이미지의 비약적 결합과 변용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지만, 중동에 사는 “영리하고 용감한” 앵글로 아랍에서 연상되는 ‘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 거센 박차를 받아라’라는 역동성과 함께, 말매미의 ‘거친 말’까지 전체적으로 용감하고 힘찬 느낌을 주는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친 말’에서 ‘서울’의 말(언어)의 현주소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감정의 유로’에서 창작되던 낭만주의 시와는 다르게 현대시를 창작하는 시인은 ‘말 사전’을 찾아가며, 여러 가지 지식을 동원하여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을 한다. 특히 다층구조를 기본으로 하이퍼링크로 창작되는 하이퍼시에서는 이미지들의 비약적 결합과 함께 더욱 치밀한 구조가 요구된다.       시간의 화석을 꺼내 든다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린다 KTX보다 빠른 속도로 풀리는 타임캡슐 어둠 속에 누워 있던 뼈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다       푸른 넝쿨 속에 줄지어 피어난 줄장미 붉은 꽃송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쏟아내는 웃음소리 자지러진다   “우리집에 왜 왔니 왜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술래는 잘 익은 꽈리의 가슴팍을 열어젖힌다 덩그런 태양이 붉다 한가득 입에 물고 햇덩이를 굴린다       환하게 볕이 드는 우주 그대와 나 사이에 서면 바람은 구름에 안겨 고개를 넘고 구름은 바람에 업혀 사막을 건너간다 그런 날이면 아기똥풀 노란 피똥에서 라일락 향기가 난다 흙탕물 묽은 잔등이에도 햇살이 내려앉아 반짝거린다                             -김예태 「사진을 보다」전문       김예태 시인은 지난 시절의 사진을 보는 행위를 ‘시간의 화석을 꺼내’드는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어서 그것이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고 ‘타임캡슐 속에 누워 있던 뼈들’이 일어서는 것으로 묘사하여 이미지의 변용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사진을 보는’ 행위로 인해 시적 화자는 단숨에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동무들과 민속전래동요를 부르며 즐겁게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손에 손을 잡고 웃음소리 자지러지게 쏟아내는 아이들은 ‘푸른 넝쿨 속에 줄지어 피어난 붉은 꽃송이들’로 빛나게 변용된다. 또한 잘 익은 ‘꽈리’를 ‘덩그런 태양’으로, ‘햇덩이’의 이미지로 변용시킴으로써 그 시절의 화자는 ‘햇덩이’를 입에 물고 굴릴 수 있는 태양의 친구가 된다.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개념으로 시공을 초월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역사 속의 일반적인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에 비하여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특별한 기회와 의미를 갖는 시간이다. 시인은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까지도 카이로스의 개념으로 순식간에 초월하여 자신이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시간 속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 마술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간의 화석을 꺼내’ 드는 이미지의 제시로 가능해지는 것인데, 그 이미지는 다시 ‘환하게 볕이 드는 우주’를 화자에게 불러주고, 그곳에서는 삶을 건너는 힘에 겨운 고개도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도 구름에 안겨, 바람에 업혀 힘들이지 않고 건너갈 수 있다. ‘아기똥풀 노란 피똥’에서도 라일락 향기가 나고 ‘흙탕물 붉은 잔등이’에도 햇살이 반짝이는 환희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처럼 시인은 지난 시절의 사진을 보는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과거와 현재 이미지를 비약적으로 결합시키고 변용시켜 새롭고 환희로운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방죽의 물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을 때   첫 해의 열매를 큰 짚가마니에 담아 주시던 아버지   이듬해 가을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가마니 속의 꿈을 끌고   수줍게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기다림이 부풀리는 풋감에서   뿌리로 돌아가는 고운 잎사귀에서   첫 가을도 우주도 익기 시작했다     섬으로 가득 채워진 가을을 안았다   장대 끝에 꺾여 땅에 내려온   수많은 붉은 해를 누이며   가을의 투명한 창을                 -정숙자 「고욤나무」부분       정숙자 시인은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는 고욤나무 열매를 ‘태양의 빛을 가득 담은 작은 전구’라는 이미지로 변용시켜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표현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욤의 못생기고 작은 열매가 순식간에 환하게 빛을 내는 발광체처럼 우리 마음을 밝게 비춰주고 아울러 남루한 우리 삶도 밝게 비춰줄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해 준다. 이처럼 하나의 이미지 변용을 통해 시인은 독자의 마음을 밝고 희망차게 하기도 하고 어두운 수렁을 지나게 하기도 한다. 그 이미지는 다시 ‘가마니 속의 꿈’으로, ‘풋감’에서 ‘뿌리로 돌아가는’ 생명으로, 익어가는 우주로 무한한 변용을 거친다. 그리고 마침내 ‘섬으로 가득찬’ 가을이 되어 화자의 품에 안긴 고욤은 다시 ‘수많은 붉은 해’가 되어, ‘가을의 투명한 창’이 되어 끝없이 꿈꾸게 하는 빛이 되어 우리를 비춰준다.       뛰어내리기 바쁘게   스스럼 없이 몸을 포갠다   하나밖에 모르기 때문일까      (중 략)   세상이 말릴 수 없는   물불 가리지 않는 용기에   개들이 좋아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몸이 녹아 없어져야 끝나는 연애   눈이 여름에 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권숙월 「오랜 연애를 위하여」부분       권숙월 시인은 눈이 내려 쌓이고 그 위에 또 쌓이는 것을 보면서 ‘이루지 못한 연애’를 비로소 이루어 ‘한 몸 되는’ 것으로 ‘눈’의 이미지를 변용시킨다. 그것은 너무도 절실하여 ‘세상이 말릴 수 없는/ 물불 가리지 않는 용기’이며 마침내 ‘몸이 녹아 없어져야 끝나는’ 전부를 바치는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하나 밖에 모르’는 연애를 ‘이루지 못하는’ 자기 나라를 버리고 겁 없이 뛰어내려 몸을 포개는 사랑을 보면서 화자는 조금 더 더디 녹는, 오래 함께 몸 포개고 싶은 눈의 마음을 짐작해 ‘눈이 여름에 오지 않는 이유’를 헤아린다. 이처럼 한 번의 이미지 변용을 통해, 흔히 보던 사물은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서고 그 새로운 이미지의 속성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되는 발견과 개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손을 놓아버리면 끝장이었다//   암벽이 그의 하늘이었던 것//   절친한 하늘//   무서운 하늘//   나는 밤마다 암벽을 기어올랐다//   헬리콥터에 앉아 저 쪽을 내려다보니//   세상은 땅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암벽에 매달려 있는 것//   나는 밤마다 암벽을 기어올랐다//   눈 감고 눈 뜨고 하늘의 입술에게 입을 맞추었다                         -안수환 「지상시편 Ⅵ부」       안수환 시인은 삶에게 ‘암벽타기’라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아슬한 높이에 매달려  밤마다 암벽을 기어오르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기를 쓰는 것이 우리네 ‘살이’라고 변용시켜 비유적으로 일러준다. 우리가 날마다 밤마다 기어올라야 하는 암벽은 때로 우리에게 ‘절친한’ 가족이며 이웃이며, 모든 것을 포괄하고 함의하는 ‘하늘’이기도 하고, 때로는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을 수 없는 ‘무서운’ 칼날이기도 하다. ‘헬리콥터에 앉아 저쪽을 내려다보니’ 에 이르면 시점의 차이를 일깨워준다. 반대의 시각, 제 3의 시각에서 현재의 나와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새로움과 낯설게 하기는 시인만의 특권이며 시인만의 탁월한 변용능력이다. 이러한 반대의 시각에 의해 변용된 새로운 이미지가 태어나고 우리는 그 글을 읽으며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깊이를 터득하게 된다. 비록 ‘암벽타기’같은 나날의 삶이지만 때로는 ‘하늘의 입술’에 입을 맞출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쩜 저리 여린 것이   애벌레에서 나올 수 있을까   날 수는 있을까   젖은 날개는 언제 마를까   순한 그 고요 앞에서   박새의 작고 뭉툭한 검은 부리가   번개처럼 날카롭다고 느껴지는 순간   한 묶음의 고요가 출렁!   끊긴다   있던 자리에   애기나비가 없다                            -박정원「사라진 우주」부분       박정원시인은 ‘막 깨어난 애기나비’를 하나의 ‘우주’라는 확장, 변용된 이미지로 제시한다. 애벌레 자체도 하나의 우주이지만, 그 애벌레의 우화(羽化)는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하는 번데기의 어둠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죽음과도 같은 어두운 터널을 믿음 하나로 거쳐 나와 비로소 탄생된 크나큰 우주인 ‘순한 고요’가 박새의 날카로운 부리에 의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충격을 ‘한 묶음의 고요가 출렁!’ 끊기는 절묘한 이미지로 변용시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한 세상’이 오다가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화자의 심정을 ‘층층나무 이파리들’의 담담한 눈길을 통해 제시하는 이미지 등에서, ‘사라진 우주’에 대해 이 작품이 주는 안타까움과 충격이 더 큰 파장으로 확장된다. 他者의 모든 생명에 대한 생명존중의식과 측은지심이 담담한 묘사적 이미지로 표현되어 더욱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처럼 이미지의 변용과, 변용된 이미지들의 비약적 결합을 통해, 흔히 보던 사물은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서고 그 새로운 이미지의 속성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되는 발견과 개안을 할 수 있는 것이 시쓰기의 묘미이다.   이미지의 변용은 새로운 발견에서 비롯된다. 시인의 눈은 끝없이 사물과 상황 속으로 파고 들어가 새로운 발견을 하며 ‘낯설게 하기’를 통해 파격적인 새 패러다임과 새 세계를 독자 앞에 제시해준다.
38    색채에 의한 관념의 극복과 순수의 회복/신규호 댓글:  조회:257  추천:0  2019-03-10
색채에 의한 관념의 극복과 순수의 회복   서평 - 심상운 시집 『녹색 전율』                                                                       신 규 호       1. 스스로 술회하고 있듯이 심상운 시인은 2006년에 『디지털시의 이해』(한국시문학아카데미)를 발표한 이래, 하이퍼시의 이론서인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2010년 5월)를 간행하는 등, 새로운 시론을 개척하기에 노력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간행한 시집 『녹색 전율』은 이러한 그의 하이퍼시 창작 결과 간행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두 7부로 구분된 이 시집은 서문(시인의 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하이퍼 시 55편과 일반 서정시 61편 등, 총 116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 3부까지는 하이퍼 시이고, 4부부터 7부까지는 일반 서정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심상운 시인이 근자에 와서 특별히 추구하고 있는 하이퍼 시 55편에 주목하면서 평설을 쓰고자 한다.   하이퍼 시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면, 심상운 시인이 대상을 인지하는 방법 가운데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것은 시집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색채 단어’(이하 색채어라 칭함)를 빈번히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 심상운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대상의 일차적 시각 체험인 색채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집의 표제(녹색 전율)도 수긍이 가지만, 다수의 작품에 골고루 등장하고 있는 여러 색채어의 출현이 그 점을 확인해 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모든 동물은 시각적으로 물체의 색을 분간하는 기능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지만, 똑같은 색채인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동물은 적색 색맹인 경우도 있고, 모든 색을 초록 아니면 회색 등의 단색으로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과 똑같이 색채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다. ‘색채-존재’의 관계와 관련된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示空空卽示色)’이란 말이 있지만, 이 말은 색, 즉 존재는 눈으로 인지된 대로의 모습이 아니요, 따라서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참 존재가 아니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원근법만 보아도 색, 즉 존재의 모습은 거리나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므로, 물체의 참모습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지점에서 인간에게 언어에 의한 형이상적 관념이 탄생한다. 그러기에 관념을 기피하는 시인에게 언어 이전의 순수색채는 사물의 아르케(Arche)를 찾는 기본이 되는 것이므로, 알 수 없는 그 구극에서 색채에 감각적으로 ‘전율’하게 되고, 일단 유아적 공포를 느끼게 된다. 생명체의 색인 녹색에 전율하는 심 시인의 정서는 따라서 관념적 진술이 아닌, 언어 이전의 느낌이라 하겠다. 언어적 관념 이전의 색채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존재의 첫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색채도 각기 관념적 의미를 지니기도 하는 바, 국기의 색깔처럼 경우에 따라 색채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빨간 색은 정열, 사랑, 혁명이나 피를, 파란 색은 하늘, 영원, 이념, 이상, 동심(童心)이나 꿈을, 검은 색은 대지, 모성, 회의, 어둠, 죽음, 절망을, 흰 색은 순결, 순수, 무염(無染), 무구(無垢), 백치, 무저항, 항복을, 초록은 생명, 안전, 평화, 식물을 흔히 상징한다. 하지만, 문학(시)과 예술 작품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색채, 또는 색채어가 이런 관념적 의미를 제거한 채 사용될 경우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독창적 순수 감정의 개성적 선택이므로, 색채어가 지니고 있는 기존의 관념이 제거된 특별한 정서 자체를 표현할 뿐이다. 상징적 의미가 제거된 색채감각은 기존의 어떤 관념도 개입이 안 된 동심적 순수성 그 자체일 뿐이다. 심상운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색채어는 전자가 아닌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므로, 의미를 제거한 비(非)관념적 색채어의 세계인 그의 작품이 난해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새로운 시를 실험하는 심 시인이 색채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기존의 관념적 표현을 외면하고 대상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관념이 개입되는 기존의 비유법을 버리고 순수 색채어로 그만의 독특한 하이퍼적 이미지를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의 이미지를 본의와 유의에 의한 전통적 비유의 방법이 아닌, 원관념을 포함한 모든 의미가 제거된 단순한 색채어로 표현하다 보니, 작품 자체가 자연히 관념과 거리가 먼 동심의 세계를 닮게 된다. 심 시인의 시가 마치 어린이가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과 같이 언어 이전의 순수성을 지니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나 음악이 아닌 언어를 도구로 삼는 시 창작에 있어서, 기존의 언어적 의미나 관념을 완벽하게 지워 버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색채어를 이용하여 언어가 지닌 관념을 적극적으로 기피하려는 심상운의 시에서도 작품 속에 내재하는 최소한의 의미는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여, 필자는 심 시인의 난해한 시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뤄 보고자 하는 본고에서 작품의 구조적 특징과 함께 작품이 지닌 최소한의 의미를 찾아 서술해 보려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음을 미리 밝힌다. 2. ‘헤드라이트’의 한 줄기 빛에 의해 어둠에 묻힌 사물들이 얼핏 그 색채-존재를 드러내는 충격적 느낌을 심상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표현한다. 초여름 감자밭 고랑에 앉아 포실포실한 흙속으로 맨손을 쑤욱 밀어 넣으면 화들짝 놀라는 흙덩이들. 내 난폭한 손가락에 부르르 떠는 축축한 흙의 속살. 나는 탯줄을 끊어내고 뭉클뭉클한 어둠이 묻어 있는 감자알을 환한 햇살 속으로 드러낸다. 그때 아 아 아 외마디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에 신생의 비릿한 피 냄새를 묻히고 미꾸라지처럼 재빠르게 흙속으로 파고드는 어둠. 흙속에 숨어 있는 어둠의 몸뚱이에는 빛이 탄생하기 이전 우주의 피가 묻어 있을 거라고? 그럼 붉은 피는 어둠 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우주의 꽃빛 파일(file)! 몇 장의 헌혈 증서를 남기고 떠나간 20대의 그녀는 하얀 침대에 누워 누군가의 혈관 속으로 흐르는 자신의 장밋빛 시간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비 오는 밤, 검정고양이가 청색 사파이어 눈을 번뜩이며 잡동사니로 가득한 헛간을 빠져나와 번개 속을 뛰어가고 있는 TV화면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불빛이 번쩍이는 순간 번개 속을 통과한 검정고양이를 찾아 승용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강변도로를 달린다. 비가 그치고 가로수를 껴안고 있던 어둠들이 깜작깜짝 놀라면서 몸을 피하는 게 희뜩희뜩 보이는 밤이다 - 시 「헤드라이트」 전문 시집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는 어둠과 빛(헤드라이트)의 극명한 대조가 전제된 가운데, 흰색과 검정색, 핏빛, 꽃빛, 장밋빛, 청색, 불빛(번개) 등의 천연색들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영상적 하모니를 이룬다. ‘환한’, ‘사파이어 눈’, ‘희뜩희뜩’ 등도 역시 색채를 강하게 떠올려 주기는 마찬가지다. ‘포실포실한’, ‘부르르 떠는’, ‘축축한’, ‘뭉클뭉클’과 같은 촉감적 감각과 함께, ‘비릿한’, ‘피 냄새’ 등의 후각적 표현도 등장하고 있지만, 작품 전체를 지배하며 이끌고 있는 것은 색감적 표현이다. 어떤 관념도 배제된 채, 오직 색채를 중심으로 오감(五感)에 의해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특색이 있다. 먼저, 이 작품이 지닌 구조적 비밀을 알아본다. 우선 거시적으로 보면, 이 시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연상법에 의해 수직적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다시 전체를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 의식의 흐름을 살펴보면, 전반부의 이미지 군은 ‘감자 캐기-> 놀라는 흙덩이들-> 난폭한 손가락에 떠는 흙의 속살-> 어둠이 묻어 있는 감자알-> 신생의 비릿한 피 냄새-> 피 냄새를 묻히고 흙속으로 파고드는 어둠-> 우주의 피가 묻어 있는 어둠-> 우주의 꽃빛 파일’로 이어지고, 후반부의 또 다른 이미지군은 ‘헌혈 증서를 남기고 떠난 그녀-> 혈관 속으로 흐르는 장밋빛 시간-> 비 오는 밤-> 번개 속을 통과하는 검정고양이의 청색 사파이어 눈-> 헛간을 빠져 나와 번개 속을 통과한 검정고양이-> 검정고양이를 찾아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나-> 가로수를 껴안고 있던 어둠들이 깜짝깜짝 놀라며 피하는 밤’으로 이어진다. 첫 이미지 군과 다음 이미지 군 사이를 ‘피’가 연결해 주고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작품 전체의 이미지들이 의식의 흐름 수법에 의해 단순히 수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지만, 각 그룹의 이미지들을 미시적으로 세분해 보면, ‘감자 캐기 / 놀라는 흙덩이 / 탯줄 끈킨 어둠 / 피 냄새를 묻힌 손가락 / 흙속으로 파고드는 어둠 / 우주의 피가 묻어 있는 어둠? / 우주의 꽃빛 파일,’과 같이 상호 단절된 채 서로 다른 수평적 구조의 이미지들, 곧 하이퍼적 리좀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구조는 둘째 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이 작품의 전체 구조가 수직적 연상 이미지와 수평적 리좀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진 하이브리드적 다시점의 이미지 군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그 때문에 이 시는 마치 잘 깎인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발하는,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느낌을 주면서 다양한 인상을 준다. 다시 그 의미를 찾아서 보편적으로 서술해 보면, 심시인은 밭에서 감자를 캐는 순간의 체험을 의식의 흐름에 의한 수직적 연상법과 수평적 다선 이미지들을 입체적으로 동시에 구사함으로써, 새롭게 재창조된 입체적인 제2의 초월적 비유를 이룬다는 것이다. 감자밭 흙속에 ‘난폭한’ 손가락을 넣는 순간, 먼저 ‘화들짝 놀라며 부르르 떠는 흙덩이’를 만난다. 캄캄한 땅속에 감자라는 생명체를 잉태하고 있는 흙의 의인화를 통하여 땅과 생명체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깨닫게 한다. 어떤 종교적 이념이나 철학적인 관념적 표현보다도 생명체를 낳아 기르는 땅의 모성이라는 제2의 초월적 의미(관념)를 하이퍼적 감각으로 일깨워 준다. ‘흙-어둠’과 ‘감자-빛(햇살)’이 떠올리는 ‘무(없음, 죽음)’과 ‘유(있음, 생명)’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 주목할 것은 ‘뭉클뭉클한 어둠이 묻어 있는 감자알’이 햇살 속으로 드러나는 순간 ‘아 아 아 외마디 소리를 내며 손가락에 비릿한 피 냄새를 묻히고 어둠이 흙속으로 파고 든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 어둠의 몸뚱이에는 ‘빛이 탄생하기 이전 우주의 피가 묻어 있을 거’라는 관념적 회의(?)가 진술된다. 이 부분에서도 끝까지 회의함으로써 갑자기 개입하려는 관념을 기피하려는 의도를 엿보인다. ‘비릿한 붉은 피는 어둠 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우주의 꽃빛 파일(file)!’이라는 대목 역시 뛰어난 제2의 하이퍼적 비유이다. 앞에서 식물적 생명의 상징인 ‘피’가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동물적 ‘피’로 전환된다. 곧 ‘헌혈증서를 남기고 떠나간 20대의 여인’ 이야기와, ‘번개 속을 통과하는 검정고양이’, 그리고 승용차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가로수를 껴안고 있던 어둠들이 놀라며 몸을 피한다’는 다이나믹한 시각적 이미지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색감에 의해 동적 세계의 공포를 드러낸다. 앞부분이 정적인 식물적 지하의 세계라면, 이 후반부는 지상의 다이나믹한 동물적 세계다. 밭(지하)에서 감자를 캐는 단순한 체험에서 우주와 생명체의 근원(피)을, 뒤이어 20대의 여인과 검정고양이, 그리고 승용차에 의한 지상세계의 동적 이미지에서 동물적 피의 세계를 다룸으로써, 입체적 구조를 이룬다고 하겠다. 색채어에 의한, 색채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시는 생명의 근원인 식물적 이미지와 함께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는 지상의 동물적 살육의 현장까지 강하게 떠올려 주면서, 매우 다양한 초월적 의미를 상기시켜 준다. 결국, 이 작품은 ‘하이퍼시는 전통적 비유를 뛰어넘어 입체적으로 초월 세계와 연속하려고 하는 다이나믹한 정신적, 언어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문덕수, 하이퍼시 개관, 한국하이퍼시클럽, P209. 참조)는 하이퍼시의 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그림 속 뱀들은 금 간 아스팔트 위에 무리지어 똬릴 틀고 있다. 풀밭을 떠나온 뱀들이 화물차가 100km 이상 달리는 검고 뜨거운 바닥에서 서로 엉켜 바들바들 고무락거린다. 햇빛이 그들의 허리에서 번쩍인다 화랑(畵廊)에서 돌아온 날 밤 침대 위에서 허리를 잔뜩 웅크린 나는 키가 30cm로 줄어들고 팔과 다리가 없어졌다. 새벽에 눈을 뜨니 내 옷걸이가 커다란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명의 어둠 속에서 옷걸이는 “넌 누구니?”하고 묻는다. 내가 누구냐고? 하룻밤 사이에 내가 뱀이 되었다고? 아침 햇빛이 소리치듯 창문으로 환하게 쏟아져 들어온다. 햇빛의 뼈가 나를 일으킨다. 내 몸이 점점 커진다. 팔과 다리도 다시 생긴다. 거울에 반사된 빛이 사방으로 뻗어가고 있다. 빛A 빛B 빛C........빛A에는 구름의 살 향기가 묻어 있고 빛B에는 자동차의 경적이 묻어 있고 빛C에는 전화벨 소리가 묻어 있다 그녀는 뱀들과 함께 빛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창 밖 허공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반짝이고 있다 - 시 「뱀과 그녀」 전문 시인은 화랑에서 뱀들의 그림을 감상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입체적 체험을 한다. 아마도 얼마 전에 작고한 천경자 화백의 그림(뱀을 머리에 얹고 있는 여인)을 보고 촉발된 강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목도 제목이지만, “그녀의 그림 속 뱀들”이라는 구절로 이 시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 중에도 뱀과 여인을 결합한 작품이 특별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일단, 배경이 화랑이라는 점에서 시각적으로 현란한 색채를 떠올려 준다. ‘미명의 어둠’과 ‘아침 햇빛’, ‘거울에 반사된 빛’, ‘빛A 빛B 빛C’ 등의 색채가 작품의 주조를 이룬다. 마치 헤드라이트처럼 어둠을 걷어 내면서 비치기 시작하는 아침 햇빛에 서서히 물체들의 모습(빛, 색채)이 드러나는 경이로운 느낌을 빛(색채)으로 상기시켜 준다. 온통 갖가지 빛들로 채워진 화랑이 햇빛으로 환하게 드러나면서 눈부시게 하는 작품이다. 이 시 역시 그 구조가 전통적 비유법과 거리가 먼 하이퍼적인 작품이다. 시상의 전개가 의식의 흐름인 수직적 연상법과 함께 각 이미지들이 리좀으로 이루어진 수평적 이미지의 집합 구조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형식을 보면, 제1연은 ‘그림 속의 뱀-> 풀밭을 떠나온 뱀-> 아스팔트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 그 위를 달리는 화물차들-> 햇빛에 번쩍거리는 뱀’과 같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수직적 구조를 이루면서 욕망과 문명에 얽힌 온갖 상념을 떠올려 준다. 제2연에서는 ‘침대 위 30cm 로 줄어든 ‘나’-> 새벽에 ‘넌 누구니?’ 질문하는 옷걸이-> 밤사이에 뱀이 된 나’로 전개되면서, 뱀처럼 팔과 다리가 없어진 채 몸통만 남은 지난 밤 ‘나’의 모습이 욕망 덩어리(뱀)였음을 암시한다.제3연에서는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아침의 햇빛-> 다시 팔과 다리가 생기면서 커지는 몸-> 거울에 반사되는 빛들(빛 A, 빛 B, 빛 C......) -> 구름의 살 향기’-> 자동차의 경적-> 전화 벨소리가 되는 빛’으로 전개된다. 지난 밤 침대 위의 육욕에서 벗어나 아침을 맞았지만 또 다른 욕망(빛A의 관념, 빛B의 현실, 빛C의 생활)이 햇빛에 드러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다양한 빛들로 표출함으로써 환상적인 수직적 구조를 이룬다.제4연은 결구로, ‘뱀들과 함께 빛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 투명한 뱀들이 혀를 날름대는 허공’으로 이어지면서 역시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수직적 구조가 된다.이 시의 수평적 구조도 앞의 작품(헤드라이트)과 같이 의식의 흐름에 의한 이미지들과 함께 ‘그림 속 뱀/아스팔트/달리는 화물차/번쩍이는 햇빛//침대 위/팔다리가 없어진 나/넌 누구니? 묻는 옷걸이/밤 사이 뱀이 된 나?//나를 일으키는 아침 햇빛/팔다리가 생기고 몸이 커지는 나/사방으로 뻗어가는 빛/A, B, C의 여러 빛들// 뱀들과 함께 빛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투명한 뱀들이 혀를 날름대는 허공’ 등으로 이미지들이 각기 단절된 채 수평적 리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각 연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찾아본다. 제1연에서 심 시인은 그림에서 촉발된 또 다른 환상을 떠올린다. 즉, ‘뱀들은 풀밭을 떠나 화물차들이 달리는 금간 아스팔트 위에 서로 엉켜 고무락거리면서 햇빛에 번쩍거린다.’ 즉, 원초적 세계인 ‘풀밭’을 떠나 ‘금간 아스팔트(도시문명)’의 한가운데에 ‘바들거리며 고물고물하는 뱀들’의 형상을 통해 현대인이 구차하게 살아가는 문명 속의 욕망 덩어리를 상기시킨다. 본디 뱀은 그 형상이 남근과 닮음으로써, 성적 리비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주장대로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리비도 덩어리가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대는 징그러운 형상이 상기되는 이 구절은 뱀이 떠올려 주는 흉측한 현대문명적 악의 모습이다. 제2연에서는 화랑에서 돌아온 날 밤 침대 위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서정적 자아(‘나’)가 뱀이 되었던 지난밤의 일을 떠올리고 있다. 밤사이에 ‘나’는 뱀이 되어(?) ‘넌 누구니? 하고 자신에게 질문한다. 1연에서의 집단적 욕망이 2연에 와서 개인적 욕망으로 치환됨으로써, 악에 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때 몸이 30cm로 줄어들고 팔다리가 없어졌다는 의식적 진술이다. 즉, ‘팔다리가 없는 뱀’의 형상(욕망덩어리)만 남은 스스로의 모습을 옷걸이가 내려다보며 ‘너는 누구니?’ 질문하는 대목인 바, 이는 인간 본능의 원초적 본질에 관한 궁극적 질문이다. 제3연에서는 육체적 욕망(밤,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햇살 가득한 현실로 돌아온 서정적 자아인 ‘나’는 인간의 몸(이성?)을 회복하고 재생된 현실의 세계인 빛들(빛A, 빛B, 빛C....) 속에 던져진다. 그 빛(색채)들은 인간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상상하는 구름의 향기(꿈과 이상)나 자동차 경적(도시 문명적 현실), 또는 전화 벨(생활)로 구체화 되어 거기 매몰된다는 의미이다. 제4연에서는 그녀가 뱀들과 함께 ‘빛의 향기’ 속으로 ‘들어간다’가 아니라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로 (주관적 서술을 피하고) 객관적 진술로 표현한다. 인간인 그녀가 뱀과 함께 들어간다고 하는 ‘빛의 향기’란 무엇인가. 동원되고 있는 온갖 빛은 개별적 사물들의 존재를 의미하지만, 그것이 ‘향기’와 결합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사물들마다 지니고 있는 의미망을 거느리는 현실적 관념(매혹하는 향기)을 떠올려 주기 때문이다. 그 관념 속으로 그녀는 뱀들과 함께 다시 들어가 함몰되고 만다는, 속악한 삶의 되풀이를 상기하게 한다. 결국, 창밖 허공에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뱀들(온갖 관념들)이 혀를 날름거리며(욕망을 유혹하며)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다양한 내용을 관념적 진술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다만 빛(색채)을 중심으로 한 객관적 이미지의 집합체로 상기시켜 주는 하이브리드적 작품이다. 하지만, 이 시가 품고 있는 비밀은 간단하지 않다. 우선 뱀의 등장이 그렇다. 뱀이란 무엇인가? 뱀이 떠올려 주는 전통적 상징을 전제 할 때, 이 시는 의미심장함을 지닌다. 성서적으로 뱀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이브)를 타락시킨 원흉이다.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게 유혹함으로써 인간에게 원죄를 심어 준 장본인이다. 뱀(남근)은 먼저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임신)시키고, 하와로 하여금 아담을 꾀어 다시 타락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경자 화백의 작품에도 남성이 아닌 ‘여인’이 머리에 뱀을 이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수컷)을 유혹하는 것은 여성(암컷)이다. 범박하게 말해서 수컷(아담)은 영원히 암컷(하와)에게 유혹을 당하는 괴로운 존재일 뿐이다. 성서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이 이 작품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뱀과 그녀」라는 제목이 그 이유가 된다고 하겠다. 인류의 원죄인 ‘선악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선악과’라는 달콤한 열매는 문명사적으로 볼 때 다름 아닌 ‘언어’를 상징한다. 직립한 인간만이 발음해서 사용할 줄 아는 ‘언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선’과 ‘악’, ‘이것과 저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는 ‘분별지’(사물을 분별하게 하는 능력)를 갖게 함으로써, 상호간에 의사를 소통시켜 정보(지식)를 교환하거나 충돌하게 하고, 그것을 축적하고 전파해서 편리한 문명과 고급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도 하지만, 또한 언어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지닌 것과 같은 원초적 삶의 단순한 지혜(단순한 욕망)가 타락되어, 다른 동물과 달리 엄청난 욕망으로 인한 갈등으로 전쟁과 살육과 시기와 모함, 싸움 등, 온갖 죄악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디 인간(아담과 하와)이 살았던 천국(에덴동산)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기 이전, 즉 ‘언어’ 사용 이전인 인류의 원초적 자연상태를 의미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성서적 상징을 떠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직립한 동물인 인간의 두개골 형태(90도의 안면각)를 해부학적으로 살펴보면, 인간의 구강 속에 분절음(자음과 모음)인 언어를 발음할 수 있게 잘 발달된 조음기관(입술, 치아, 잇몸, 혀, 입천장, 목구멍)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여타의 동물들(안면각이 45도)은 찌그러진 구강 안에 인간과 같이 발달한 조음기관을 갖고 있지 못해서 목청을 울려 나오는 모음을 조음하여 자음을 발음할 수 없어서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분절음(언어)을 발음하지 못한다. 언어 사용이 인간의 뛰어난 능력(언어의 순기능)이지만, 반면 언어의 역기능(죄악의 양산) 때문에 인간만 에덴(언어 이전의 세계)에서 쫓겨났고, 결국 엄청난 고통과 질곡 속에 비극적 존재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뱀을 소재로 한 천경자 화백의 그림이 시인으로 하여금 선과 악이 갈등하는 인간의 근원적 모순을 상상하게 하고, 그것을 의식의 흐름과 리좀의 복합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파란 지붕의 자전거 보관대에 쓰러져 있는 검은 자전거의 바퀴살이 햇빛에 번쩍이고 있다. 오전 10시 46분,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가 서 있는 가로수 밑으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고 점점 뜨거워지는 8월의 태양.(검은 자전거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자전거 보관대의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자신의 가슴을 다 드러낸 채 번쩍이고 있다 그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왜 하루 종일 번쩍이고만 있을까요? 지금 을지로 상공을 날아가는 반투명의 파란 비닐봉지는 몸무게가 0으로 줄어든 나의 모습이에요. 나는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바람에 출렁이며 청계천 다리 위를 가고 있어요. 나처럼 가끔 허공을 떠다니고 싶으면 눈을 감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0의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몸의 무게를 계속 줄여보세요. 그러면서 저기저기 빌딩 창문 위 하늘로 둥둥 떠가는 자신을 느껴보세요. 검은 자전거의 주인이 노랑 풍선이 되어 햇빛에 반짝이며 여의도 쪽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아, 아, 여보세요. 8월의 풀밭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발가숭이 아이들이 모여서 노란 나팔을 불기도 하고 파란 페인트 통을 굴리며 뱀과 놀고 있다고요? 그 맨살의 아이들이 사람들의 잠속 연못에 들어와서 물장구칠 때가 있다고요? 그 시간에 꿈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빨간 꽃잎 요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달디달다고요? 그것이 한여름 낮잠의 신비한 맛이라고요? - 시 「한여름의 검은 자전거와 파란 비닐봉지와 빨간 모자」 전문 제목에서부터 ‘검은 자전거, 파란 비닐봉지, 노랑 풍선, 빨간 모자’의 검은 색, 파란 색, 노란색, 빨간색 등이 시선을 끄는 이 작품은, 첫째 연에서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는 아이들의 동영상을 제외하면 우체통이 있는 도시의 골목, 한여름의 적막한 풍경화다. 정적 분위기가 한 폭의 정물화처럼 펼쳐지면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 빨간 오토바이가 서 있을 뿐, 검은 자전거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이 지나가 버린 다음의 고요가 제시되고 있다. 무섭도록 고요한 정적을 느끼게 하는 이 구절은 사물들의 색채가 적막 속의 공포를 느끼게 할 뿐, 다른 어떤 의미도 상기하기 어렵다. 8월의 태양에 가슴을 드러낸 채 번쩍이고 있는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이 무의미한 정물화의 마지막 풍경으로 제시되어 있다. 1차적으로 보면 역시 의식의 흐름 수법에 의해 수직적 이미지 군으로 이루어진 환상적 풍경화라고 하겠다. 먼저 그 수직적 구조를 살펴본다. ‘파란 지붕의 자전거 보관대-> 햇빛에 반짝이는 검은 자전거의 바퀴살->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는 아이들-> 뜨거워지는 8월의 태양-> 번쩍이는 파란 플라스틱 지붕 // 종일 번쩍이는 플라스틱 지붕-> 날아가는 반투명의 파란 비닐봉지-> 몸무게가 0으로 줄어든 나의 모습-> 청계천 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는 나-> 허공을 떠다니고 싶으면 0의 감각에 집중해 보라-> 하늘로 떠가는 자신을 느껴라-> 노랑 풍선이 되어 여의도 쪽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검은 자전거의 주인이 보일 거다 // 8월의 풀밭-> 빨간 모자의 벌거숭이 아이들이 모여 노란 나팔을 불고-> 아이들이 파란 페인트통을 굴리며 놀고 있다고?-> 맨살의 아이들이 사람들의 잠속 연못에 들어와 물장구칠 때가 있다고?-> 꿈의 식탁에 빨간 꽃잎요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달다고?-> 한여름 낮잠의 신비한 맛이라고?’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시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왜 시인은 한여름 도시 골목에 펼쳐져 있는 사물들의 눈부신 색채에 주목하고 있는가. 을지로와 여의도 쪽을 0이 된 몸으로 날아다니는 환상에 빠진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아이들이 등장하는 동영상 한 폭과 같은 이 작품의 의미를 추적해 본다. 한 폭의 정적 풍경화가 제시된 1연을 이어받아, 2연에서는 하루 종일 번쩍이고만 있는 파란 플라스틱 지붕에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된다. ‘하루 종일 번쩍거리는 파란 지붕’이 떠올리는 온갖 관념적 권위와 위엄은 또 다른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곧, 그 환상은 배경인 을지로 상공에 날아가는 반투명의 비닐봉지(상품 꾸러미?)처럼 몸무게가 0으로 줄어든 나의 모습(억압된 욕망의 해소?)이다. 번쩍이는 지붕(권위, 권력?)의 모습에 눈을 감고 환상 속에 공중으로 떠오르며 몸무게를 줄이면 0이 된다는 진술에서 시인이 무엇을 지워버리는 꿈을 꾸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번쩍거리는 파란 지붕 그 자체이다. 뿐만 아니라, 1연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검은 자전거(노동?)의 주인이 나타나 노랑 풍선이 되어 여의도 쪽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게 보일 거라니, 이것은 또 무엇인가. ‘여의도 쪽 상공(권위)’이 0이 될 거라는 부분에서 지독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파란 지붕이 떠올리는 허공의 이미지, 즉 초월적 권위와 여의도 쪽의 가식적 행위의 대조가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파란 지붕 등, 번쩍이는 사물들의 풍경에 눈을 감고 몸무게가 0이 되는 환상을 체험하라고 권고하는 마지막 부분은 경구를 이루면서 다음에 발가벗은 아이들(순수, 동심)로 나타난다. 제3연에서는 1연에서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간 아이들이 발가숭이가 되어 다시 등장해서 노란 나팔을 불기도 하고, 파란 페인트 통을 굴리며 놀고 있다. 역시 ‘물장구치고, 아이스크림처럼 달디단 빨간 꽃잎 요리를 먹으며, 한여름 낮잠의 신비함을 맛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환상일 따름이다. 아이들이 부는 ‘노란 나팔’은 검은 자전거 주인의 노랑 풍선과 연결되고, 아이들이 굴리는 ‘파란 페인트 통’은 ‘파란 지붕’과 연관되지만, 아이들의 동심도 곧 회의로 나타난다. 그래서 ‘뱀(욕망)과 놀고 있다고요?’, ‘신비한 맛이라고요?’처럼 결국 허망한 환상으로 치환되고 만다는 몇 개의 장면으로 채색된다.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의 색채와 함께 ‘을지로’와 ‘여의도’라는 특정 공간이 제시된 상황에서 다선적 환상으로 희미하지만 현실적 의미를 떠올려 준다. (여러 색채들이 하늘 또는 을지로나 여의도와 관계가 있음을 간파할 때, 검은 자전거-노동자, 어둠, 절망; 파란 지붕-국회, 권위, 권력; 빨간 오토바이, 빨간 모자-열정, 순수; 노랑 풍선-시민, 데모대; 을지로-일상 공간, 현실; 여의도-국회, 정치권력; 아이들-순수한 시민; 꿈의 식탁-미래 생활 등으로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복잡한 사회 현상에 관한 컨시트적 다양한 심리가 환상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현실과 매우 밀접한 의미를 지닌 일종의 풍자시라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억압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풍자적 환상이 지배하는 작품으로, 역시 다선적 이미지 군으로 복잡하게 짜여진 하이퍼시이다. 푸른 오토바이가 달린다 푸른 소리를 사방에 뿌리며 무너진 건물 속에서 나온 피 흘리는 시신들이 흰 천에 덮여 있는 바그다드 한복판을 달린다 빨간 오토바이가 달린다 엉덩이에서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여름 바다 위를 달린다 해변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뛰어 온다 하얀 오토바이가 달린다 산맥을 넘어 붉은 토마토 즙을 온 몸뚱이에 바른 벌거숭이 사내들이 떼를 지어 뛰어가는 도시 위를 달린다 노란 오토바이가 달린다 혼자서 신나게 비가 갠 들판을 달린다 “어이, 저거 봐, 오토바이가 무지개 허리 위로 올라가고 있어.” 시골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다 - 시 「오토바이가 달린다」 전문 이 시는 ‘달린다’는 동사가 여러 시상을 각각 이끌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제1연은 ‘달리는 푸른 오토바이-> 푸른 (오토바이) 소리-> 무너진 건물-> 피 흘리는 시신들-> (시신이 덮여 있는) 바그다드의 거리를 달리는 오토바이’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이란 단순한 수직적 구조를 이룬다. 뒤이어 2연과 3연, 4연, 5연 모두 같은 수직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각 연과 연은 상호 단절된 다시점의 이미지로서, 작품 전체를 볼 때 수평적 구조를 이루어 결과적으로 거시적 리좀을 형성한다. 심 시인의 하이퍼시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구조적 특징인 연과 연이 리좀을 이루는 한 사례라 하겠다. 다음으로, 작품의 의미를 찾아 서술해 본다. 연이어 등장하는 푸른 오토바이, 빨간 오토바이, 하얀 오토바이, 노란 오토바이들이 각 연을 마치 오토바이 무리가 떼 지어 달리는 영화의 장면처럼 동적으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생동하는 현장감과 함께 극적 반전 및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작품이다. 첫 연의 푸른 오토바이는 ‘푸른 소리를 뿌리며’ 피 흘리는 시신들이 흰 천에 덮여 있는 바그다드의 파괴된 거리를 달린다. 오토바이의 (요란한) ‘푸른 소리’와 시신이 흘린 ‘붉은 피’의 청각과 시각의 극적 대조로 충격을 느끼게 하면서, 전쟁으로 파괴된 바그다드의 끔찍한 실상을 부각시킨다. 참상이니 비극이니 하는 어떤 관념적 서술도 개입시키지 않은 채, 오직 푸른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색채감과 함께 달리는 ‘푸른 오토바이’의 요란한 푸른 소리(폭발음)가 위기적 상황을 고조시킬 뿐이다. 제2연에서 빨간 오토바이는 1연의 푸른 오토바이와 달리, 지극히 평화로운 장면을 이끌며 달린다. 1연과 2연은 서로 단절된 이미지로, ‘엉덩이에서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여름 바다 위를 달리고’, ‘해변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뛰어 오는’ 평화로운 정경이다. 1연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으로, 전쟁과 평화의 공존이란 현대사의 끔찍한 아이러니를 제시해 준다. 제3연에서는 장면이 다시 바뀌어 ‘하얀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오토바이의 하얀 색과 토마토 즙의 붉은 색이 대조되고, 붉은 토마토 즙을 몸에 바른 벌거숭이 사내들이 도시를 떼 지어 달린다. 토마토를 트럭에 싣고 나와 서로 던지면서 축제를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의 광적인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바, 인간들이 벌이는 싸움과 평화라는 무의미한 놀이의 부조화를 깨닫게 한다. 제4연에서는 노란 오토바이가 비가 갠 들판을 달린다. 이어 5연에서는 시골 사람들이 무지개 허리 위로 올라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마지막 행에서는 ‘그’가 등장하여 손에서 리모콘을 놓아 버리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상과 같이, ‘달린다’는 동사가 이끄는 여러 장면들로 제시된 이 작품은, 마지막 행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정적 자아인 ‘그’가 리모콘을 손에 들고 TV 화면을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바꿔가며 보고 있다는 일견 단순한 내용이다. 바그다드의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장면과 평화로운 해변 풍경, (스페인의) 광적인 토마토 축제 등이, 각각 단절된 채 아무 의미 없이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시인이 어떤 관념적 서술도 없이, TV 화면에 나타나는 현대의 복잡한 시대상을 냉철하게 제시하고 있는 의도는 무엇인가. 아무 선입견도 없이 제시된 장면들에서 독자는 비극적 세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내면심리를 읽을 수 있으며, 어떤 관념어의 개입도 없이 냉철한 시선으로 비극적 시대상의 아이러니를 제시해 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 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 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갑게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 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의 숲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 시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전문 역(驛 )승강장엔 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쓰러져 있다 그가 쏟은 핏덩이가 시멘트와 자갈에 묻어 있다 역무원들은 서둘러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검은 기차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가 타고 간 기차의 빛깔을 파란 색으로 바꾸었다 > 그때 어두운 바닥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먼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안고 간 눈물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그는 드디어 눈물이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일까?) 2006년 7월 21일 오후 2시 23분 서울 중계동 은행 사거리 키 6m의 벚나무 가지 위로 하얀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간다 - 시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 전문 위의 두 작품은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메멘토모리’란 말이 있듯이, 비록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죽음을 생각하라’는 경구이다. 죽음을 다루는 시가 많지만, 대부분 죽음에 관한 일반적 관념 때문에 죽음에 관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평범한 진술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위의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앞의 시는 40대 한 남성의 죽음(병사)을, 뒤의 시는 철길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단독자인 ‘그’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40대의 남성은 검붉은 색인 미라의 목관으로, ‘그’는 검은 기차를 타고 떠났다. 두 사람 다 ‘검은 색’의 세계로 가 버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은 색은 죽음이나 저승을 상징한다. 두 사람의 죽음이 모두 ‘검은 색’의 세계로 갔다는 것은 죽음 그 자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40대 남자의 죽음은 생전에 비록 찬 밥덩이를 꺼내 데워 먹으며 산 가난한 가장이지만, 뒤의 ‘그’는 단독자다. 40대는 병원 응급실에서 가족이 울며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철길에서 홀로 기차에 치어 급사했다. 가장인 40대의 죽음은 검붉은 미라로 연결되고, 단독자로 비명횡사한 ‘그’는 ‘눈물 없는’ 세계로 갔다. 시인은 두 사내의 삶과 죽음을 대조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니, 가정을 가지고 병을 앓다가 병원에서 정상적 환경에서 죽어간 전자를 ‘검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이란 제목으로, 가족도 없고 홀홀단신 홀로 살다 간 후자를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둘기’란 제목으로 구별해 놓고 있다. 두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 것은 곧, 두 가지 삶에 대한 시인의 생사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죽음이지만, 망자가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느냐, 하는 삶의 차이가 죽음의 차이로 치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절차에 따라 가정을 갖추고 정해진 순리대로 평범하게 살다가 죽어서 검붉은 얼굴의 미라로 지상에 묻혀 흔적을 남기는 삶과, 생의 희노애락과 생노병사를 두루 거쳐보지 못한 채 갑자기 떠나간 죽음 중에 어떤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사관의 대조인 것이다. 같은 죽음이지만, 40대의 남자는 ‘밥의 살을 나무젓가락으로 찔러보면서 웃으며, 미라의 목관 사진을 보는 반면, 검은 기차를 타고 떠난 단독자인 ‘그’에게 나는 “그가 타고 간 기차의 빛깔을 파란 색으로 바꾸었다”는 진술에서 시인이 두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전자는 땅에 묻히고, 후자는 파란 하늘로 갔다는 차이에서 시인은 차라리 후자의 홀가분한 죽음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3. 심상운 시인의 작품에서 색채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 언급한 바와 같이, 심 시인의 작품에서 또 하나 다른 특징을 지적할 수 있는 바, 그것은 작품 대부분이 어린이의 동심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동심으로 바라보는 사물들은 의미(관념) 이전의 색채 인식이 우선될 것이며, 작품이 의미와 거리가 먼 색채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그 이미지가 결국 동심의 세계와 같이 된 것이다. 대상에서 관념을 무화시키려다 보니, 무의미한 색채어를 주로 사용하게 된 것이고, 한편 사물에서 관념을 배제한 채 색채로 덧입히다보니, 기성관념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담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는 긴 꼬리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기차. 여름밤엔 노란 불을 켜고 여우, 뱀, 방패, 전갈, 화살, 직녀, 도마뱀, 헤라클레스, 돌고래, 백조, 견우의 나라를 지나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키론이 사는 은하수의 남쪽 궁수자리로 가는 기차. 젊은 화가들은 일곱 살 아이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파란색 기차를 타고 별나라 여행을 한다. 기차 옆에서는 우주의 고래들이 허연 거품을 뿜어내며 신나게 솟구치고, 기차의 창을 열고 고래 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와와 소리치는 아이들. 펄떡펄떡 솟구치는 고래 옆으로 우주 로켓이 유유히 지나가는 한낮, 초록별 연못가에서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무지갯빛 달팽이와 폴짝폴짝 뛰는 왕눈이 개구리가 식탁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 나는 먼 은하수로 날아가는 긴 꼬리 기차 대신 아이들과 놀이동산에서 파란색 기차를 탄다. 파란색 기차는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파란 나라로 들어간다. 한여름 어느 바닷가 물개들의 도시. 건물의 지붕 위로 날렵하게 날아오르는 검은 물개들의 쇼. 물개들의 등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5월의 햇빛이 내 뇌 속을 파랗게 휘감는 일요일이다 - 시 「파란색 기차」 전문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 같은 이 작품도 심상운 시인의 시적 특징 중 하나인 ‘관념 이전의 순수(동심)의 세계’를 입증해 준다. 독자를 동심의 세계로 몰입시키는 이 시는 사물을 대하는 어린이의 일차적 느낌이나 마음 상태는 어떠할까.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심리는 어떻게 움직일까, 하고 상상하게 해 준다. 역시, 파란색 기차, 노란 불, 허연 거품, 초록별, 무지갯빛, 검은 물개, 5월의 햇빛 등의 색채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어린이 놀이공원의 풍경을 단순히 묘사한 것처럼 보이나, 시행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단, 파란색 기차를 타고 허공(하늘)을 날아가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를 보며 시인은 갖가지 환상을 떠올린다. 여름밤에 노란 불을 켜고 여러 나라를 거쳐 은하수로 가는 그림 같은 꿈이 그려진 그림 속 아이들과, 환상의 세계 밖인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현실과 환상이란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다. 후반부에서, “나는 먼 은하수로 가는 긴 꼬리 기차 대신 아이들과 놀이동산에서 파란색 기차를 탄다”고 하면서, ‘나’는 그림 속 하늘로 가지 않고 차라리 놀이동산에서 파란 기차를 탄다고 말한다. ‘일곱 살 아이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파란색 기차를 타고 허황된 별나라 여행을 하는 젊은 화가들’이 되기보다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싶다는 심리를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이들의 그림으로 들어가는(지도하는) 화가를 바라보면서,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는 지상 놀이의 풍경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아이들 나라인 놀이공원의 두 가지 꿈을 동시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과 같이, 심상운 시인 대부분의 작품이 감상자에게 동심의 세계로 다가오는 까닭은 상술한 바와 같이, 창작에서 심 시인이 힘써 의도하는 관념의 극복이 초래한 결과라고 본다. 관념으로 때 묻은 언어에서 그 관념을 지우기 위해 순수 색채어를 동원하다 보면 실제로 관념(의미)이 사라지게 되고, 자연히 관념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과 같은 환상에 몰입되게 마련이다. 순수한 동심의 표현은, 역으로 일상적 관념에 길들여진 독자들을 동화적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줌으로써, 때 묻은 관념을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심 시인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읽을 수 있다. 이상으로, 일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의지와, 그 억압된 욕구의 무의식적 해소라는 심리적 기제를 다양한 색채어에 의해 표현한 심상운 시인의 하이퍼시를 살펴보았다. 관념이 제거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심리가 결과적으로 동심과 같은 순수한 시세계를 이루게 된 것이며, 그 세계가 심상운 시인의 하이퍼시라는 것이 이 글의 대체적인 요지이다. 그 밖에, 본고에서 살펴보지 못한 일반 서정시 61편도 변함없이 ‘관념 지우기’를 위주로 창작되었고, 역시 색채어가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하이퍼시와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37    하이퍼시, 어디까지인가 / 16인의 좌담- 댓글:  조회:260  추천:0  2019-03-10
하이퍼시, 어디까지인가                              16인의 좌담-「시문학」2011년 1월호 발표       주제: 하이퍼시의 특성과 가능성 사회: 심상운 기록: 이선 날짜: 2010년 11월 19일, 오후 3시 장소: 미스터 브라운 찻집 (시문학사 근처) 참석한 사람들: 문덕수, 김규화, 심상운, 신규호, 유승우, 최진연, 정연덕, 안광태, 송시월, 이솔, 손해일, 조명제, 김기덕, 위상진, 이선,   Ⅰ. 하이퍼 시를 쓰면서 느낀 시적 감각과 일반 시와의 차이점     심상운: 에서 기획한 특집은 2009년 11월호부터 2010년1월호까 4회에 걸쳐 82편이 발표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확산 하이퍼 시에 참여한 시인들이 모였습니다. 하이퍼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하여 하이퍼시의 정착과 미래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문덕수 선생님의 격려 말씀을 듣도록하겠습니다. (그때 유승우 시인이 들어옴) 문덕수: 저는 시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해서 열이 오르는 그런 사람입니다.(모두 웃음) 나중 에 시간이 되면 제가 하이퍼 시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상운: 유승우 시인 오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이 토론을 위해서 설문을 작성해서 E-mail 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먼저 하이퍼시를 쓰면서 느낀 시적 감각과 일반시와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서 구 체적인 이야기를 하면 더 좋겠습니다. 먼저 말문을 열 분 말해주세요. (주위를 둘러보며) 조명제: 하이퍼시의 감각에 대해서 제가 잠깐 말씀드리면 소리의 울림을 가지고 시를 쓸 때, 과거의 시들은 소리가 배경으로만 작용하였지만, 하이퍼시에서는 사물의 울림과 소리 가 그냥 시의 배경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고, 시적정보를 새롭게 촉발해 나갑니다. 즉 시를 입체화시키지 않느냐 하는 관점에서 생각했어요. 이선: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시와 하이퍼시가 어떻게 다른지 위선환의「바위」와 김규화의「한강을 읽다」를 읽고 일반시와 하이퍼시의 감각의 차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百日이 지나고 지나면서 보았다 거기에 계셨다 그 해가 지나고 지나면서 보았다 거기에 계셨다 몇 해가 지나고 지나면서 보았다 거기에 계셨다 여러 해가 지 나고는 햇수를 잊었다 허겁지겁 찾아뵈니 아직 거기 계셨다 벼랑같은 몸으로 깎아질러 계셨다 발바닥을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려놓고 허리뼈를 곧추세운 앉 음새 그대로 거죽이 헐고 광대뼈가 부스러지는 큰 바 위 몸으로 들어앉아 계셨다 큰절 받고 잔기침하며 앉 음새를 고치시는 때, 한번 더 당겨 얹는 두 무릎에서 우두둑, 힘줄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 위선환, 「바위」 전문   이젤을 거꾸로 일요일의 한강이 그림을 그린다 부우우 몰려와 늘어선 물가의 아파트군 단숨에 세우고 짐짓 흔들어본다 하늘을 제 가슴 깊숙이 클릭하고 그 위에 구름 몇 송이 흘러내리는 이내 지워버린다 아파트를 흑수정으로 꾸며놓고 올랑촐랑 물살 속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구부정한 어머니 뒤 따르는 나를 덥석 안는다 돛단배 하나 지나가면서 한강은 우리를 지운다 피사로의 「수문」을 물새가 가로 지른다 ―김규화, 「한강을 읽다」 전문   위의 시 위선환의「바위」와 김규화의「한강을 읽다」는 아날로그 시와 하이퍼시를 비 교하기 위하여 예제로 든 것입니다. 위선환의 시가‘바위’를 대상으로 한 아버지에 대한 비유의 시라면 김규화의 시는 ‘한강’을 대상으로 한 어머니에 대한 시입니다. 위선환의 시는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주제 중심으로 내부로 심층적으로 파고듭니다. 그러나 김규 화의 시는 외부로 확산적으로 흘러가며 확장됩니다.「바위」는‘주제’중심의 ‘대상’을 중 심으로 한 ‘의미화’시며 「한강을 읽다」는 ‘사물 중심의 풍경화 기법’의 시입니다.「바 위」가 ‘정지된 그림’이라면 한강을 읽다」는 ‘움직이는 그림’입니다. 운동성을 획득하고 장면전환을 합니다.「바위」의 구조는 고정적이며 답답하게 독자를 설득하려 하려한다면 「한강을 읽다」는 풍경화 기법으로 시원하게 확장적으로‘보여주기’합니다. 하이퍼시는 확 실히 차별화 되는데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운동성을 줍니다. 정지된 풍경화가 아니라, ‘움직이는 풍경화’입니다. 움직이는 그림은 새로운 감각과 생동감을 줍니다. 또 한 「한강을 읽다」는 ‘시점’을 거꾸로 하여 변화를 줍니다. ‘이젤을 거꾸로 세워’ 한강 이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무생물인 ‘한강’이라는 사물에 행동과 의식을 넣습니다. 상상 력의 확장은 하이퍼시의 특징입니다. 심상운: 이선 시인의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하이퍼시와 일반시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 거 같습니다. 다른 분 준비해 온 것 발표 부탁드립니다. 송시월 시인 준비 잘 해오셨나요. 송시월: 준비는 잘 못했어요. 편집을 하다보니까 아무것도 생각을 못했어요. 일반시에 비해서 하이퍼시는 링크되어 사방으로 건너뛰는 리좀 구조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주로 언어 감각으로 씁니다. 이것은 간단한 제 하이퍼시 쓰는 방법입니다. 심상운: 김기덕 시인 말씀해 주십시오. 김기덕: 저는 하이퍼시에 대해서 이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존 시 쓰기에서의 변화를 위해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 그 주변의 어떤 것을 대치시켜 가지고 다 른 이미지로 확산해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쓸까 하는데, 시를 써보면 잘 안돼서 제가 제 스스로 많이 보완해야겠구나 생각합니다. 오늘 많이 배우려 합니다. 김규화: 저도 일반시와 하이퍼시의 다른 점은 시적 감각이라고 했지만, 우선 일반시는 선조 적, 선형적이고 시간의 순서대로 원인결과가 있고 순리대로 나가는 데, 하이퍼시는 원인 과 결과를 다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독자와 소통이 어렵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 조상으로 통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심상운: 비선형적이고 다양하지만 무언가 통일된 것이 있어야 소통이 될 수가 있다. 그런 말씀이시죠. 그럼 신규호 선생님… 신규호: 내가 쓰는 시에 대해서 구태의연한 것을 느꼈어요. 관념적인 것을 벗어날 수 없고, 감정적인 것을 벗어날 수 없고.. 그래서 책도 읽고 하이퍼시에 참여해 보자 생각했어요. 일차적으로 하이퍼시를 어떻게 써야 될지 잘 모르지만 내 시가 변해지는 걸 느꼈어요. 거 기서 잘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해 보니까 역시 나이가 먹어 그런지 자꾸 관 념이 들어가요. 그걸 완전히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그걸 일반시와 비교한다면 어 쨌든 시적 리듬이라는 것은 있어야 되는데 리듬을 살리기가 어렵고 산문적이 되기 쉽고… 그래서 어쨌든 하이퍼시도 시니까 정서적인 감흥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게 어려워요. 산 만해지기 쉽고. 시의 흐름이. 그게 고민이예요. 어떻게 하면 하이퍼적인 느낌을 살리면서 도 기존관념을 벗어나 시적 정서를 살릴 수 있을까? 초점이 기존관념이 아닌, 고정관념이 아닌 어떤 정서적인 초점이 작품 속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심상운: 최진현 시인 최진연: 제가 언젠가 에 발표를 했습니다만 심상운 시인 시론집『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를 정독하고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하이퍼시를 연구하고 그쪽으로 쓰다보니까 과거 내가 쓰던 시가 하이퍼시가 아니었나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링크라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상관성이 없는 이미지의 집합, 주제는 가상이죠. 거기 다양한 선이 집중해 있는, 초점이 거기 포커스 맞춰가지고 통일성은 없이, 잘 영상언어로 얽어놓는 컴퍼지션(com·po·si·tion)이지요. 저는 처음부터 그런 시를 많이 써왔어요. 젊어서부터. 내가 조금만 적응하면 하이퍼시를 쓸 수 있겠구나 했어요. 두 번째는 아까 신규호 시인이 얘기를 했지만은 시에서 관념을 제거한다는 거, 그 속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녹여낼 수 있는 거, 그거 제가 제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이퍼시의 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여 넣을 수 있겠는가 하는 거지요. 송시월: 최진현 시인의 옛날 시 「그래픽」이 하이퍼 적인 시였어요. 최진연: 네,「그래픽 1」이 그렇습니다. 위상진: 하이퍼시를 말할 때 의식과 인식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어요. 그 다음 긴장감을 유 지한다는 거예요. 같은 음식도 담는 그릇에 따라서 인식과 의식이 달라지듯이 하이퍼를 하나의 그릇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릇에 따라서 소스와 다른 부수적인 것이 달라져요. 자 유로운 시공간에 자신을 내던질 수가 있었어요. 소재는 오히려 일반시보다 잡기가 용이한 데 비해 뜬금없는 시공간을 흐를 우려가 있기에 ‘이음 쇼트’(공백을 채우면서 다른 시공 간으로 이동하는 작업)를 장치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시각과 청각에 전달되도록 쓰려고 했어요. 이미지들의 연속성, 링크로 인해 귀착 지점의 예상이 불분명한 부분이 있었어요. 서정적인 부분을 배제하다 보니 심정적 무드가 닿지 않는 부분을 그대로 두고 지나치는 느낌이었어요. 또 한 가지는 시점과 관점의 차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가령 생화를 일반시라 한다면 하이퍼시는 드라이플라워 기법으로 표현을 하지만 생화 같은 느낌이랄 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법적인 요소를 얘기를 한다면 몽타주, 쇼트-시작점, 화자 와 독자와의 시점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내가 담고자 하는 화면을 프레임에 서 따내는 부분의 차이를 일반시와의 차이점이라고 여기며 제 나름대로 써왔어요. 손해일: 나는 하이퍼시에 대해 오남구 시인에게 많은 얘기를 듣고 현대시에서 논의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에 월평을 쓰게 되어서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서 하이퍼 시의 개념을 정리했어요. 내 시도 읽기 싫고 남의 시도 읽기 싫고 식상하여져서, 하이퍼 시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중복이 될지 모르겠는데 첫째는 하이퍼시는 크게 말 하면 상상력의 무한한 확대가 가능하다는 것. 두 번째는 언어만 가지고 시는 제한성이 있 는데 창작기법 면에서 그냥 무한대로 확장이 되는 기분,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어요. 하이퍼시 3편을 썼는데 기존시와 하이퍼시가 뭐가 다르냐? 그 거에 대해서 혼란이 오는데 비선 조적이다, 몽타주 기법이다, 구성이다, 관념적으로는 안 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시화하기에 는 상당히 어려웠다고 말씀드립니다. 김규화: 전에 전에(최진연 시인의 발언을 지칭하는 것 같음) 알고 보니 하이퍼시를 많 이 썼다고 말씀하셨는데, 하이퍼시와 일반시와 다른 점이 없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 나 중요한 점이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시는 원인과 결과가 자연스럽게 선조적으로 선형적으로 나가게 되는데, 하이퍼시는 그걸 파괴해버립니다. 파괴하니까 가상현실, 공상, 상상이 들어가게 돼요. 원인과 결과가 무너져서 가상현실에 들어가게 돼요. 그게 하이퍼 시와 일반시와 다른 점이예요. 하이퍼시도 일반시도 상상력이 들어가고, 엉뚱한 이미지를 결합해서 시를 만들지만...... 심상운: 안광태 시인 말씀해 주시지요. 안광태: 할 말 없습니다. 최진연: 제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픽」이라는 연작시를 쓸 때를 생각하면 하이퍼시 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그래픽」은 컴퓨터의 도형, 영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많이 구상하여 써서 선명한 영상이미지로 조립을 했어요. 연과 연은 연관성이 전혀 없어요. 한 행 한 행, 연 단위도 연과 연 사이의 획일성이라든지 통일성이 없어요. 문 선생님이 말하는 집합적 결합 요소가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심상운: 안광태 시인 말씀 안 하실래요? 한 마디는 해야지… 안광태: 흠, 제가 하이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문 선생님과 몇 분이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잠재의식이 흘러갈 때 시공간을 초월한다. 지금 생각과 옛날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그것을 시로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영어로는 유비쿼터스(u·biq·ui·tous)라고 말하는데, 하이퍼시가 상당히 그것과 연관이 되는 것 같았어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미지가 그냥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연관성이 있으니까 일어나는 거거든요. 잠재의식에서 그것이 연결고리로 연결될 때, 하이퍼시가 된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습니다. 심상운: 이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보통 일반시는 주제를 지향하는 시라고 하면 하 이퍼시는 이미지를 지향하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그렇게 나누어집니다. 주제는 관념 입니다. 관념을 가지고 선관념후사물(先觀念後事物)의 시를 쓰는 사람들을 일반시인이라 고 말하면 됩니다. 하이퍼시는 관념보다 사물, 사물로만 이야기하는 그러니까 이미지를 통해서 이미지로만 이야기하는 시를 하이퍼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림도 움직이는 그림과 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 있듯이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서 움직이는 이미지 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아까 안광태 시인이 무의식 공간의 개념을 말했는데 맞습니다. 자 유로운 상상이 하이퍼시의 중심입니다. 심상운: 일반시와 하이퍼 시와 차이점에 대해 부산의 김금아 시인이 보내온 글을 읽겠습니다. “일반시는 주제 의식이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다듬어 사용합니다. 함축적이고 리드미컬한 언어라는 형식 속에 주제와 정서라는 내용을 담은 것이지요. 하지만 하이퍼시는 특별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적 언어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어와 언어의 교합과 배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나 이미지가 시의 정서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일반시는 현실 세계의 한 단면을 압축하는 편이지만, 하이퍼시에서는 공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변화되어 가는 자유로운 시적 공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시적 의미 자체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시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에 초점을 두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을 일반시로 묘사한다면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의 현실적인 장면을 그리겠지만, 하이퍼시로 묘사한다면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의 끝에 매달린 소망과 간절함을 새로운 생명의 싹트는 병아리가 부화되는 장면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시는 대체로 쉽게 다가오고 공감대도 가까이 나눌 수가 있는 반면 하이퍼시는 조금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연덕: 저 한 마디 해도 되겠어요? 심상운: 말씀하세요. 정연덕: 하이퍼시에 들어가면 픽션이 가장 많이 떠오르고 픽션이 작품이 됩니다. 탈구조적인 모습이 나오고, 구조가 깨지는 거죠. 하이퍼시가 잘 발전을 하면 공동작업이 가능하다고 해요. 작품을 올려놓으면 작품을 자유스럽게 독자가 읽고 다른 픽션을 넣습니다. 새로운 작품으로 자유스러워지는 걸 느낍니다. 심상운: 초현실주의의 ‘아시체 놀이’가 그와 유사한 언어행위입니다. 더 말씀하실 분.... 조명제: 하이퍼시의 여러 이론적 특징을 제 체험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면 아까도 말씀 나왔습니다만, 비선형적이다. 비논리적이라는 것, 다시점, 복수시점은 옛날 시에서도 나왔습니다. 제 경우에는 다양성입니다.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 사물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비선형적인 다양성이라든가 복수시점, 다시점, 아주 이질적인 대상이나 어떤 스토리가 한 작품 속에서 링크, 또는 점핑해가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김규화 선생님 말처럼 산만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는 리좀이라는 것을 잘 사용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이퍼시 발표된 것을 한참 읽다보면 상당수가 뭔가 공허해진다는 걸 느낍니다. 공허해지면서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걸 느낍니다. 공허함에서 벗어나려면 장면 장면들은 좀더 치밀한 묘사를 하여 구체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묘사를 좀 더 구체화시키면 리얼리티는 독자가 스스로 찾게 될 것 같습니다. 이선: 저는 환타지성과 운동성을 하이퍼시의 요소라고 생각하는데요, 심상운 시인의 하이퍼시에 운동감이 많은데, 그것은 사물에 의식을 넣은 것 같아요. 적은 동사를 써서, 문덕수 선생님의「탁자가 있는 풍경」에서도 무생물인 사물에 의식을 넣어서 상황적 분위기를 표현했어요. 최소한의 동사를 사용했는데, ‘신사의 등’이 ‘유리컵을 노려보고’, ‘재떨이가 발딱발딱’ 숨을 쉽니다. 사물성에 의식을 넣음으로써, 운동성과 환타지성을 주어 신선한 감각을 준다고 봅니다.   2. 하이퍼시의 독자 수용문제(소통)와 그 해결 방법   심상운: 하이퍼시를 쓸 때 느끼는 독특한 감각과 일반 시와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은 하이퍼시의 독자수용문제에 대하여 토론하겠습니다. 소통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이퍼시의 소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손해일: 소통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이퍼시에 대해 거부감도 있고 이해를 못하는 점도 있고 그 이유를 생각하면 하이퍼라는 개념하고 탈관념이라는 개념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이상(李箱)의 시나 포스트모더니즘 시, 기법으로는 새롭다하는데 별로 감동이 없고, 재미가 없어요. 시가 새로우면서도, 감동을 주고, 재미라는 요소를 집어넣어야 될 것 같아요. 디지털적 기법은, 감정이나 정서 중심이 아니고 표현기법으로 가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 걸 사용하기 때문에 정서하고는 자꾸 멀어지고, 하이퍼라는 개념을 알면서도 헷갈려요. 감동을 주든지, 재미를 주어야 독자가 읽죠. 재미가 없으면 안 읽어요. 어디까지가 관념이고 어디까지가 관념이 아닌 지. 독자에게 다가가려면 감동과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심상운: 그렇다면 하이퍼시는 서사적(敍事的)으로 길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 대해서 소견을 말해주세요. 손해일: 디지털적인 걸 넣으면 산만해지고 길어집니다. 관념하고 개념 자체에 대한 몰이해에서 옵니다. 하이퍼시는 새로운 것은 눈에 띄는데 감동이나 정서가 문젭니다. 기법에서 재미가 들어가지 않으면... 요즘 젊은이들은 어록적인 거나 재미 때문에 읽지요. 그런 걸 통해서 좀… 심상운: 그러니까 서사성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씀이군요. 이선: 저는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가령 소주병들을 모아놓고 사진 찍고, 철새 떼가 집단으로 죽어 있는 사진을 찍고, 쓰레기더미가 산더미처럼 막 몰려온 낙동강 하류를 사진을 찍어서 보여줄 때, 그걸 보고 사람들이 어렵다고 말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이해하잖아요? 드라이하게 상황제시를 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여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이퍼시도 어떤 상황을 따와서 충격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조금 오버해서 보여준다고 할까요? 저는 그걸 보면서 우리가 드라이하기만 한가? 라고 묻습니다. 아니다, 죽은 새떼를 보고 살벌해서 충격을 받지만 반대적인 심리적 변화가 있잖아요? 마음이 아프고, 물도 살려야겠다, 산수도 살려야겠다고 강한 결심을 하게 하죠. 일반시들이 말로 설명하면서 웅변하고 설득하려고 한다면 하이퍼시는 방법이 다릅니다. 화면을 보여주고 ‘네가 느껴라’ 감각에 호소하는 것이어요. 드라이 한 것도 소통이 됩니다. 다만 디자인과 기법에서 선명하게 드러내야지, 산만하게 흩어놓아서 뭔 소린지도 모르면 문제가 됩니다. 샤갈기법으로 덩어리로 이미지를 그렸느냐, 몬드리안 기법으로 면으로 나눴느냐, 선이면 선, 면이면 면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반추상도 아니고, 추상화도 아니고, 뭔 말인지도 모르게 섞어놓으면 안 됩니다. 시스템의 변화가 하이퍼시의 핵심입니다. 안광태: 하이퍼시의 문제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는 소설에 비해서 간결성이 중요하거든요. 시는 간결성이 중요한데 메타포라든지…하이퍼시는 간결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봅니다. 손 시인은 재미를 가미해서 극복하면 어떠하냐고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송시월: 소통의 문제는 시가 되었느냐, 시가 안 되었느냐가 문제예요. 난해한 시도 시를 따라 가면 소통이 돼요. 서사적 구조를 이미지로 선명하게 갖다만 놓으면 링크될 요인이 들이 있어요. 링크될 요인들이 정서로 흘러가면 하나의 시가 될 수 있어요. 심상운: 송시월 시인은 ‘시의 완성도’가 소통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송시월: 그렇지요. 이선: 그런데 송시월 시인이 말씀하신 것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시를 쓰면서 관념적인 주제의식을 깔고 그림을 그리느냐, 무의미성으로 가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시월: 언어에는 관념이 반드시 따르는데, 새로운 관념을 발견하는 것이 탈관념입니다. 심상운: 신규호 선생님 말씀해 주시지요. 신규호: 나름대로 하이퍼시를 쓰려고 하다보니까 자연히 산문적인 문장이 되더라고요. 산문적 문장으로 흐르면 관념이 들어가고, 설명이 들어가고 그래서 다시점으로 전개를 했는데도, 하이퍼시라고 하긴 뭔가 석연치 않아요. 연과 연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연 하나를 볼 때는 뭔가 서사적인 것이 깔려있고… 연과 연을 단절시키면서 공통적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과 연을 공통으로 연결하면 소통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러면서 썼어요. 소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정연덕: 소통을 자꾸 생각하면 오히려 더 소통이 안 돼요. 하이퍼시는 상하, 좌우로 왔다갔다합니다. 서양 사람이 쓴 글을 보니까 이렇게 썼어요. 시가 안 되면 거꾸로 읽어라, 그래도 안 되면 중간허리부터 잘라 읽어라. 뭐 그런 말도 있는데… 소통을 자꾸 생각하면 글이 안 돼요, 뭔가 자기 나름대로 쓰면 되는데..... 유승우: 저도 얘기해도 돼요? 순전히 들으러 왔었는데. 제일 먼저 이선 시인이 하이퍼시와 일반시의 차이점을 얘기하시면서 위선환 시와 김규화 시의 차이점을 얘기했는데 그걸 읽으면서 ‘아 요런 것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요 근래 와서 심상운 시인의 시론집을 다시 읽어봤어요. 구태의연한 시를 나도 벗어나야지. 나도 새로운 시를 써보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고 온 건데,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그게 동적인 거거든요? 나는 김규화 시인의 「한강을 읽다」를 보면 그래요. 현대적인 것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시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걸 느끼는데… 아파트라든지 현대적인 이미지들이 있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김규화 시인의 「한강을 읽다」를 읽으면서 난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위선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아 이사람 시 재미있게 썼다’ 생각했어요. 아까 안 시인이 잠재의식 얘기를 했는데, 시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을 쓴 것이 시’다. 인간을 얘기할 때 빙산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콤플렉스’라고 얘기했거든요? 콤플렉스는 사실, ‘잡동사니’거든요? 잡동사니는 ‘기억의 창고’에서 의식이 사라질 때 나타나거든요? 의식이 사라질 때…의식이 사라지는 건 언제 사라지냐? 어떤 충격을 받을 때인데, 논리적인 것이 사라지고 생명 자체로 팍 튀어나오는 것. 무의식이 튀어나오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논리적으로 볼 때는 전부 낯선 거예요. 하이퍼시에서 낯선 것 때문에 독자와의 거리를 생각하는데, 옛날 소월(素月) 적에도 시 안 읽는 사람은 안 읽어요. 요즘 손자가 보는 만화를 봤어요. 이해가 안 되던데요? 그런데 아이는 빨리 이해해요. 현대 하이퍼시는 아예 리얼리티가 없이 아무렇게나 꾸며놓은 것 말고, 시만 되면, 이미지만 만들어지면, 이미지 자체가 시적인 논리를 따라서 리얼리티만 유지한다면 볼 사람은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11월호 하이퍼시를 읽으면서 내가 쓰는 시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시는 관념이 들어가서 그런지 이해가 잘 되더라구요. 신규호 시인의 시가 이해가 빠르던데 같은 세대라서 그런가 봐요. 김규화 시인, 이솔 시인도. 나는 그렇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탈관념한 게 더 팍팍 올 수 있거든요. 저는 하는 일은 해 나가 보자, 시인은 사명에 살거든요. 시는 사명이거든요. 그러니까 하이퍼시도 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김규화: 한 마디 할까요? 저는 소통문제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이퍼시를 우리들만 좋다고 하면 뭐합니까? 많은 시인들이 인정해 주고 한국 시문학의 역사에도 남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이퍼시는 비선형적이고, 공간도 자유롭고, 원인과 결과가 부서지니까 소통이 안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통합적 구조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하이퍼시의 구조는 등산용 반찬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 네모난 프레임이 있어요. 거기에 자잘한 반찬통 네 개가 들어 있어요. 반찬통 이름이 ‘모듈반찬통’이예요. 이선: 와, 딱 들어맞네요. 일동: (놀라서) 모듈 반찬통… 김규화: 아, 정말 하이퍼시를 이렇게 써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반찬통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역할을 못해요. 그러나 한 개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4개가 다 있어야 비로소 역할을 다해요. 이런 게 하이퍼시가 아닌가 생각해요. 이선: 저는 참 이상한 생각을 가져요. 11월호에 발표된 시를 보면서 왜 하이퍼시 발표인데 하이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심상운: 소통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이선: 소통에 대한 얘기예요. 그 이유가 뭔가 생각을 했어요. 심상운 시인의 시는 이해가 잘 돼요. 심상운의 시는 아주 객관적이고 냉정해요. 다른 사람 시는 자기 생각을 자꾸 넣으려고 하는데, 방법이 서투니까 소통이 안 돼요. 제가 하이퍼 시를 보여주니까 어떤 시인이 “이선 시인 시는 젊은 독자층을 겨냥한 건데, 나이든 세대가 이런 시 읽겠어? 즐겁게 살아. 이런 시 쓰면 무덤까지 외롭게 혼자 가겠다”고 했어요. 하이퍼시를 거부하는 일반 시인들과 소통하면서 하이퍼시를 쓸 방법은 무엇일까? 제 시 「귓속말하기」는 소통되는 의미를 제공하되, ‘시스템을 바꾸자’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연에 ( ―귓속말로)라는 말을 통일적으로 넣어서 을 그렸어요. 단어는 이미 의미라는 관념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융의 무의식적 집단의식처럼. 그래서 ‘디자인’을 바꾸었어요. 또 제목을 「( )호와 ( ) 사이에」라고 하여 ( )라는 기호를 써봤어요. 또한 괄호라는 개념을 여러 개념으로 상상하여 써서 괄호의 개념을 확장하면서 무의미화시켰어요. 세상을 향한 소통과 하이퍼시의 차별화를 병행하는 게 힘들더군요. 우리가 단어를 버리지 않는 한 관념을 버리기는 어려운데, 소통을 하려면 꼭 ‘무의미’만 추구해야 하나 거기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조명제: 김춘수 시인은 시를 써서 먼저 아내에게 보여준대요. 아내가 아는 척하면 버린대요. 쉽게 상대방이 이해하면 그건 자기 시로선 실패라고 했대요., 문제는 아까 송시월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난해시’가 문제가 아니라, ‘애매시’가 문제입니다. 난해시는 시적 논리를 타고 들어가면 해석이 가능한데 애매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자기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거든요. 심상운: 김금아 시인이 E-mail로 보낸 독자수용문제에 대한 의견을 읽겠습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시도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존재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독자와 소통을 하기 위해 쓰인 시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이퍼시는 독자와의 소통을 고려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 표현하고 존재해야 할 하나의 언어적, 시적 영역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람도 내 시를 읽고 이해해 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이퍼시가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외면당하면서 혼자만의 세계로 고립되지 않으려면 하이퍼시라는 이름으로 앞뒤 없이 자기만의 정신세계를 마구 늘어놓는 창작으로 자기만족에 빠지기보다는 지극히 치밀하게 계산되고 보정된 언어로 하나의 완벽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작품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혹은 현시점이 어디인지, 어떤 색깔인지 어떤 온도인지 등 가장 초보적이고도 핵심적인 이미지를 충분히 얻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하이퍼시인들의 책무이자 기쁨이겠지요.” 심상운: 제 의견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에서 독자수용, 즉 소통의 문제는 하이퍼시만의 문제가 아니고 현대시 전반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 소통의 문제를 지나치게 중시하게 되면 시의 예술성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예술성에는 난해성이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이퍼시에서 ‘이미지의 객관화’와 ‘의식의 내면화’가 선명하게 형성되어 있다면 소통문제에서는 벗어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이퍼시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모자이크)을 통해서 현실공간에서 해방된 제2, 제3의 가상현실의 공간을 지향합니다. 따라서 일반시와 같은 기준으로 논의할 수 없는 것이 하이퍼시의 소통문제입니다. 독자들도 하이퍼시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시를 읽어야 합니다. 손해일: 소통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그걸 오해하면 안 되고? 독자들이 워낙 모르고 오해하는데 그것을 해결하는 기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이퍼의 핵심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고 방법을 찾자는 거지요. 심상운: 그렇게 하다가 하이퍼시의 핵심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우리가 소통, 소통하는데……누구한테 하이퍼시 읽어보라고 했더니 소통 다 된대요. 어려운 거 없대요, 이선: 선생님,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요. 저희가 광고를 해야 된다는 것이예요. 하이퍼 라는 이름을 자꾸 인터넷에 올려야 돼요. 하이퍼라는 이름을 알리는 광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연덕: 대한민국 사람은 다 알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에서 하는 하이퍼시 운동에 관심이 있어요. 자기들 끼리 하이퍼시 쓰기도 하고. 도대체 뭘 가지고 하이퍼시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뭐라고 평론도 하고 하여튼 잘 되고 있어요. 심상운: 관심은 있는데 접근하는데 두려워하고 있는 거 같아요. 이선: 하이퍼시를 의식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하이퍼적인 시를 쓰는 걸 볼 때 저 절로 긴장이 됩니다. 최진연: 쌍방간에 소통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림 전시회에 여러분이 많이 가봤을 겁니다. 추상화를 보면서 누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잖아요? 추상화를 보면 많이 이해를 하잖아요? 하이퍼시는 감각적인 소통에서 그쳐야 돼요. 거기 무슨 의미가 있어요? 감각적인 소통을 하면 돼요. 감각적인 소통을 하면서도 뭔가 여기 있구나 하는 게 나는 사상성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시를 쓰면서 삼각형을 그려요.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하나는 ‘음악성’, 하나는 ‘회화성’, 하나는 ‘사상성’을 넣어야 돼요. 나는 그 중간지점의 가장 좋은 것을 쓰려고 해요. 어디 억매이면 시를 못 써요. 심상운: 또 말씀하실 분은? 위상진: 저희가 이렇게 모여서 하이퍼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이 처음인데요. 유승우 교수님도 오늘 관심이 있어서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서로 물들여지고 무의식적으로 잦아들고 스며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독자이면서도 화자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쓴 시를 다른 사람들도 보지 않습니까? 자꾸 스며들어서. 오늘 이 자리가 하이퍼시의 출발점이 될 것 같네요. 그래서 하이퍼시의 소통문제는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심상운: 하이퍼시 운동은 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컴퓨터에 들어가면 하이퍼시에 대한 질문이 뜨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나오고, 그렇게 퍼져나가고 있어요. 문제는 학문적으로 시학(詩學)을 연구하는 대학 강단에까지 올라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3. 에 발표된 하이퍼시에 대한 소감   심상운: 에 발표된 하이퍼시에 대한 소감을 듣겠습니다. 이솔 시인이 준비를 많이 해오신 거 같습니다. 이솔: 우리가 시적 감각을 말할 때 뛰어나다/ 새롭다/ 참신하다 등등으로 말할 때가 많은데요, 시적 감각은 시의 갈래를 떠나서 시 쓰기의 기본이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하이퍼시의 시적감각은 하이퍼적이어야 하며 한 마디로 새롭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이퍼 시의 특징 중 하나가 색채감각인데요, 11월호에 발표된 하이퍼시 중에서 색채를 시적감각으로 한 시를 보면, 송시월「초록거울」과 이선의「빨강 스펙트럼」, 강영은의 「노란집」, 고종목의「땡볕 한 장」, 이솔의「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등이 있습니다. 「초록거울」은 녹색스프링노트, 떡갈 나뭇잎 거울에서 활활 타는 햇살, 빗방울의 전주곡, 거울 속에서 초록으로 팔랑거리는 난로 초록거울의 시적 감각을 생동감 있는 색채로 나타내고 있고, 이선의「빨강 스펙트럼」에서는 노랑, 빨강, 보랏빛 그림자, 붉은 립스틱, 립글로스, 하얀 이빨, 노랑불빛 등으로 현란한 색채를 통한 감각을 보여줍니다. 강영은의 「노란집」에서는 고흐의 그림을 통해 해바라기, 노랗게 불타는 태양, 햇볕에 그을린 여자의 젖통, 아를의 들판을 통해 고흐의 단면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고종목도「땡볕 한 장」에서 8월 한낮에 파란신호등, 빨간 관광버스, 깜박깜박 등을 통해 뜨거운 한낮의 색채감을 보여주고, 이솔은 「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에서 흙빛의 촉촉한 검정빛, 알다발 속에서 나를 보는 까만 눈, 인도 델리 짐꾼의 검은 눈, 그러나 터질듯 미끈거리는 생명의 빛을 시적감각으로 보여 주고자 합니다. 김규화는 청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계곡 물소리」는 북한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쉬면서 시는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라는 얘기를 하다가 지하철 편의점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이어지는 물소리를 감각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ㄹ’에 빠져 둑에서 흘러흘러 홍제천에 빠지는 나비. ‘ㄹ’을 안고 한강까지 누워서 흐르는, 시 전체가 흘러가는 ‘ㄹ’로 이어지는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김규화는 ‘소리’를 자유연상 하여 ‘매미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계곡물소리’로 감각적 이미지로 만들었습니다. 심상운: 색채 이미지와 소리의 감각적 이미지에 대한 분석이 좋습니다.   4. 하이퍼시의 일반론에 대하여   가. 링크, 리좀, 몽타주, 가상현실(공상, 상상) 등   심상운: 링크, 몽타주, 가상현실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더 보충할 거 있으면 말 씀해 주세요. 김규화: ‘링크로 연결된 리좀을 몽타주 기법으로 구성한 가상현실을 시로 쓰면 하이퍼시다. ’라고 정리하면 되네요. 심상운: 네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링크는 컴퓨터에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일을 뜻합니다. 링크를 하기 위해서는 연결편집기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이퍼시에서도 링크는 이미지(장면)와 이미지(장면)을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합니다.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은 상상 속에서 연결편집기를 가동하여 이미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하이퍼시를 쓸 때, 상상 또는 공상 속에서 이 연결편집기를 활발하게 작용하여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링크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것이라면, 완전히 다른 별개의 장면으로 넘어가는 클릭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위상진: 시점 내지는 관점의 차이라고 봐요. 틀을 탈피해서 다른 사물에 접목시키는 작업인데요. 가령, 생화를 드라이플라워 기법으로 표현하되, 생화로 표현하는 느낌이랄까. 표현기법으로 몽타주(시간과 공간), 쇼트(시의 시작) 시점(화자. 독자의 시점)을 달리 해야 한다고 봐요. 프레임(화면)의 범위를 어떻게 따내느냐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링크, 몽타주, 가상현실, 이건 인식의 세계에서 나오는 기법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환각상태, 착시, 저는 여기에다 데꼬빠쥬, 장면분할, 꼴라쥬를 더하고 싶다고 말씀드립니다. 색채만이 하이퍼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뭘 가져와도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되는 기법을 생각합니다. 심상운: 더 말할 분이 없으면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저는 시론「디지털시의 이해」를 쓰면서 컴퓨터의 모듈(module)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컴퓨터 시스템은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 때, 독자적 기능을 가지는 여러 개의 모듈로 나뉘는 방법입니다. 하나의 독립적이고 수평적이라는 의미에서 모듈은 리좀과 유사합니다. 리좀과 리좀이 결합하는 틀을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손해일: 하이퍼시를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 이론을 다 알 필요는 없거든요. 그냥 쓰면 되지요. 기법적인 것은 쉽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론이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하이퍼시란 이름으로 세 편밖에 못 썼는데 어지간한 시는 이거 하이퍼시가 아니잖아? 이거 기존시하고 뭐가 달라? 되묻게 됩니다. 심상운: 제가 링크, 리좀, 몽타주 등 하이퍼시의 기법을 토론의 설문에 넣은 것은 시를 쓰면서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충실하면 좋은 하이퍼시가 나오지 않을까 해섭니다. 손해일: 내가 얼마 전에 인사동에 이일남 영상전시회를 가봤는데, 영상이 막 쪼개지고, 다 해체가 돼 가지고 단어 하나까지 다 분해되고, 다시 묶어서 영상을 만들고 합니다. 영상 플러스 집합 그런 시가 하이퍼시인 거 같습니다. 심상운: 앞으로 그런 시가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몽타주는 영화에서 주제와 연관된 필름을 모아 하나의 연속물로 결합시키는 편집기술을 뜻합니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 슈타인이 만든 이란 영화에서는 노동자들이 기병대들에 의해서 쓰러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이 소가 도살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주제를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한 몽타주 기법입니다. 그의 몽타주 이론은 ‘충돌의 집합’으로 요약됩니다. 이론의 초점은 개별적인 장면들을 극적으로 충돌시킴으로써 이미지들의 상호작용을 유도하여 새로운 관념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하이퍼시에서도 이미지 표현의 방법으로 몽타주 기법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 하이퍼시에 도입이 되면 감동과 재미가 없다는 등의 얘기는 안 나올 겁니다. 그러나 시를 쓸 때, 하이퍼시에 육화(肉化)해서 집어넣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연덕: 화장실 다녀오느라 못 들었는데요. 리좀에 대해서 집중해서 생각해 봤는데, 리좀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해서 제기된 새로운 책 혹은 질서에 대한 모델입니다. 많은 이론가들은 리좀 부분이 들어 있는 들뢰즈/가타리의 책 『천개의 고원』자체를 하이퍼텍스트의 선구적인 인쇄물로 제시하기도합니다. 그는 리좀을 구성하는 원칙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연결접속의 원리, 2, 다질성의 원리는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든 지 다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구성요소가 서로 연결 될 수 있는 횡적구조이며, 상부구조에서 하위구조에 이르는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다양체의 원리는 대상 안에서 주축역할을 하는 통일성도 없고, 주체 안에서 나뉘는 통일성도 없다. 연결을 늘리면 늘릴수록 성격의 변화를 겪게 된다. 다양체 안에서 차원들이 늘어난 것들이 리좀으로 만들어진 구성체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연결 지점이 아니라 그 사이의 선이라는 것입니다. 4는 탈기표 작용적인 단절의 원리입니다. 어떤 곳에 든 끊어지거나 깨질 수 있으며, 자신의 특정한 선들을 따라 혹은 다른 새로운 선들을 따라 복구된다는 이론입니다. 5,6은 지도제작과 전사의 원리입니다. 지도는 그 자체로 리좀에 속한다, 지도는 열려 있다. 지도는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 접속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요약하면, 리좀은 중앙 집중화되어 있지 않고, 위계도 없으며, 기표작용을 하지도 않고, 조직화는 기억이나 중앙 자동장치도 없으며, 오로지 상태들이 순환하고 있을 뿐인 하나의 체계라는 것입니다. 이선: 와, 자세하네요. 최진연: 교보에 가보면 책이 있어요. 그 책만 하나 사보면 돼요.   나. 하이퍼시에서 관념의 문제   심상운: 관념은 사물과 대립되는 개념의 언어입니다. 관념은 사물이 만들어주는 의식주의 실제생활이나 오감의 감각과는 차원이 다른 사유에 속하는 정신적인 영역의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시에서 관념시와 사물시로 분리하기도 하지만 사물과 관념은 대립적이면서도 서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사물은 기표(記票시니피앙)의 역할을 관념은 기의(記意시니피에)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이퍼시가 순수한 기표에 시의 기반을 둘 때, 기의는 자유로워지고 확대됩니다. 관념의 제로지대에서 새로 태어난 관념은 하이퍼시가 지향하는 언어예술에서 신선한 정신이 됩니다. 그것이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관념에 대해서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조명제: 언어는 언어자체가 이미 이미지와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념을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관념 자체를 추구하는 시가 문제가 됩니다. 오히려 ‘무의미’라든가 ‘무관념’ ‘탈관념’을 형상화해내기 위해서는 관념은 불가피하게 수용되는 것입니다 무관념으로 시를 쓰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관념 단어 자체를 가지고 시를 쓰는 건 어려운 문제입니다. 소설을 허구의 세계라고 하는데,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허구를 보여주는 겁니다. 손해일: 하이퍼시는 관념을 빼고 쓴다더라.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의미를 집어넣으면 관념이라서 혼동이 온다고 일반 독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거지요. 우리 자체도 관념을 굳이 왜 빼려고 하는지, 관념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지 말자고요. 관념이 안 들어가니깐…빼니깐, 확산이 잘 안되고, 관념을 조금 줄여보자고 하면 의식작용이 되고, 로보트가 쓰면 관념이 안 들어갈 거예요. 감지단계, 인지단계, 인식단계, 여기까지는 탈관념이고, 여기서부터는 관념이다 하니까 일반 독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겁니다. (모두 웃음) 심상운: 다음 말씀하실 분 최진연: 내 생각에 그래요. 관념이 사물 속에 녹아들어가는 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아까 문 선생님 말씀하셨듯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관념을 사물화시키는 거죠. 심상운 시인의 하이퍼시가 명징성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거예요. 객관적 사물에 관념을 사물화, 관념을 노출시키지 않고 절제해서 인지단계에서 멈추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단계에서 사물화(事物化)하는 거예요. 안광태: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관념을 사물 속에 넣는 것이지 관념을 완전히 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규화: 언어 자체가 다 관념이예요. 천사와 악마 구별할 필요가 없어요. 하이퍼시에는 가상현실이 중요해요. 가상현실에서는 관념이 필요 없어요. 그래서 저는 가상현실의 하이퍼시에서 굳이 관념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연덕: 탈관념 문제가 그렇게 용이하고 쉽지는 않다는 것이죠. 김규화: 아, 그렇죠.   5. 하이퍼시의 가능성   심상운: 하이퍼시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 주십시오. 신규호: 하이퍼시는 실험 시지만, 각자 나름대로 개성이 있게 기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험시는 일반 시보다는 낯설고 거부감이 듭니다. 예술은 실험입니다. 한번 해볼 만한 것입니다. 시대가 정보화, 다매체 시대로 바뀌면서 새로운 시를 추구합니다. 하이퍼시 운동은 의미가 있으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 운동의 모험을 수반하지만 기법개발을 해야 합니다. 하이퍼시는 선적(禪的)인 것과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선문답(禪問答) 같아요. 언어의 한계성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 선명한 시가 기대됩니다. 최진연: 소주를 마시고, 조그만 방에서 무의식 상태로 비몽사몽간에 쓰는 게 시 잖아요? 보들레르도 그랬다고 해요. 무의식 속에서 이미지(그래픽 이미지)를 구성하는 거지요. 저는 젊을 때 시를 그렇게 썼어요.(모두 웃음) 유승우: 술은 의식을 없앱니다. 단어자체가 의미와 소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를 뺄 수는 없어요.『노자(老子) 』3장에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면 추악한 것이 있다고 했어요. 선하다고 생각하고 선하게 보면 악이 있다고 했어요. 없음의 자리, 기성의 것을 제거하고 하이퍼의 길은 감각적으로 가야 합니다. 신규호: 언어로 하는 언어 지우기라고 봐요. 최진연: 의식상태가 아닌 감성의 세계, 무의식은 컨트롤이 안 되죠. 감성통제하면 이성이 떠 오르니까. 심상운: 다음은 문덕수 선생님의 하이퍼시에 대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6. 마무리 시평     문덕수: 이런 생각을 해 봐요. 레이아스(稀土類 Rare earth)가 없으면 전자산업이 망해요. 중국이 이를 일본에게 안 팔겠다고 해서 일본이 항복을 했잖아요. 중국은 세계의 40%를 가지고 있어요. 삼성, LG도 레아아스가 없으면 전자제품을 못 만들어요. 일본이 중국에 항복하고 선장을 석방해서 지금 일본이 난리가 났잖아요? 원자번호 56-71번인데, 이 레아아스 같은 존재들이 금요포럼에 있어요. 11월호에 발표된 시를 보면 시인들 중에 레아아스 같은 몇몇 시인들이 있어요. 두 번째 말할 건 광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평론가나 시인들이 다 조명을 못해줘요. 각자가 자기 시의 비법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신문이나 다른 문예지에 알리고 선전해야 합니다. 하이퍼시의 리좀, 몽타주, 링크, 모듈에 대해서 비법을 공개할 게요. 이름은 말 안할게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모두 웃음) 이 시가 제일 잘 써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밤에 잠이 안와서 시를 읽다가 보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 것도 차례차례 하나씩 소개할 생각이예요. 1연을 볼게요.   의사가 목 안으로 스텐 막대를 밀어 넣었을 때, 비는 내리고 푸른 곰팡이는 벽으로 번지고   이 시의 비밀을 풀면 하이퍼시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연에는 안과 밖이라고 하는 2개의 공간이 생깁니다. 안과 밖. 내부와 외부. 앞의 리좀, 뒤의 리좀. 병원 진찰실 안에서 나는 진료를 받고 있고,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어요. 이 장면은 별개의 사건이어서 의미상으로 전혀 연결이 안 됩니다. 인과관계가 없어요. 하이퍼시의 한 가지 기법입니다. 2연을 봅시다.   사람들은 물고기 우산을 쓰고 유령 같은 어둠은 침침한 바퀴소리를 접었다 펼쳤다   자기와 자기 바깥. 내부와 외부를 말하고 있지요? 3연을 보죠.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에서 나는 주머니 속에서 빠져나간 줄시계처럼 늘어졌다   1, 2, 3연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연결-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 뒷부분은 필요 없어요. 버려요. 전혀 관계없는 두 개의 이미지. 서론, 본론, 결론과는 다른 통합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는 볼 수 없는 비밀장치, 비법개발을 가진 레아아스의 시인들은 자존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김규화: 앞으로 자기 시작법을 공개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문덕수: 요즘 잠이 안 와서 시를 읽는데 시를 이야기 하면 흥분해서 열이 막 올라요. 내가 얼굴이 벌개지고 열이 올라와요. (모두 웃음) 내가 흥분해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상운: 오늘 열심히 토론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열띤 토론이었습니다. 준비도 잘 해오시고요. 나머지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서 회식자리에서 또 하기로 하고 이것으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36    한국하이퍼시클럽 시집 -하이퍼시 댓글:  조회:231  추천:0  2019-03-10
2012-02 하이퍼시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함(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즘)을 형성한다. 다시점의 이이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敍事)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變換)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김규화.심상운-편집자 발간사 中 일부 발췌 page 5-6]     발간사에서 설명하고 있는 하이퍼시의 구현방법을 읽어보고서야 책에 수록된 시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이브리드. 링크. 네트워크. 敍事. 초월. 變換. 이중구조. 연출자’ 하이퍼시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추려내 본 낱말들이다. 무척이나 초현대적인 단어라는 느낌이다. 문학적이기보다는 철학적인 뉘앙스가 더 많이 풍긴다고 해도 틀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 특히 敍事라는 낱말에 머릿속이 명징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그동안 왜 하이퍼시는 길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시의 운율보다는 자칫 산문적인 느낌으로 읽히는 시를 읽으면서 줄곧 풀지 못 했던 문제였다. 초월의 이미지도 따라가기엔 너무 보폭이 크고 넓어서 영 어렵기만 하다고 생각했었다. 9가지의 하이퍼시 구현방법을 읽고 나니 비로소 내 문제의 답들을 찾아낼 수 있을 거 같다. 아무튼, 나는 새로운 세상을 하나 더 알아보려는 착한 학생의 마음으로 하이퍼시의 문 앞에 서 보았다.   내가 하이퍼(hyper)시를 처음 만난 건 월간 시문학을 통해서이다. 매달 문덕수 선생님의 하이퍼 시론을 읽으며 하이퍼 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배움이 부족해서일까 하이퍼시는 여전히 내겐 너무 어렵다. 한국하이퍼시클럽 동인들이 작품집 ‘하이퍼시’를 출간했다. 하이퍼시에 대해 궁금해 했던 참이라 반가운 시집이다. 물론, 이미 시문학에 게재되어 만나본 시도 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시집을 읽는 재미 이외에도 새로운 시를 공부하기 위한 텍스트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고 나는 본다.     잘 익은 부사를 깍는다/ 둥글게 깎여나간 ‘잘’이란 꽃뱀 한 마리/ 쟁반에다 또아리를 튼다// 과도에, 내 손에 닿아 끈적끈적 달라붙는 군살// 우리집 통유리창 틈으로 들어오다 보름달이 해체된다/ 초승달 하현달 반달 갈고리달 둥글게 머리 맞대고 모/니터 앞에 앉아/ ‘부사’란 단어를 검색 중이다/ ‘사과의 한 품종으로서 당도가 높고 색깔이 붉다. 품/사의 하나로서 한 문장의 특정한 성분을 꾸며주는 성분/ 부사(잘 매우 겨우) 등 그리고 문장 전체를 꾸며주는/ 문장부사(과연 설마 제발) 등’// 내가 갂아낸 부사, 슬슬 기어다니는 붉은 꽃뱀을 만/진다/ 미끈 소름이 돋는다// 잘 깎은 내 얼굴, 속살이 달다// [송시월-사과를 깎으며 全文 page95]     눈을 뜨고 잠을 자다 소복한 여인처럼 시장골목 여기/저기 종종 걸음으로 넘쳐나 돌아치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숨죽이고 엎어져 있다 왜들 그러냐고 묻지 마라/ 입을 다물고 산자락에 꽃뱀처럼 똬리를 틀다 거리에 춤/추다 어디에서 숨바꼭질을 하는지 누구 가슴에 숨어 울/다 잠들다 작은 소리로 징징거리다 기우뚱거리며 실룩거리다 늪에 빠져 이내 조용하다 채송화 봉선화 벌겋게/피었다 흘러내리다 주막집 끝자락에 연분홍 바람 한줌/매달다. [정연덕-유월의 낮달 全文 page164]   시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든 시를 매개로 한 시인과 시를 읽는 독자와의 교감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쓴 시인의 생각이 시를 읽는 독자와 모두 일치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시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해독불가의 암호 문자가 되어서도 곤란하지 않을까. 물론, 시인이 독자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일단 어떤 매체로든 독자와의 만남을 의도한다면 독자에 대한 배려 또한 시작과정에서 어느 만큼은 안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할 때 입에서 꽃이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네/ 그런 사람의 가슴에는 꽃밭이 있지/ 당신도 그런 하늘이었으면 좋겠네/ 저기 푸른 물고기가 뛰노네/ 만지면 붉은 잎맥이 전달되는 꽃이 있네/ 꽃의 눈에는 연못이 있지/ 그 연못이 해를 들어올리네/ 초인종 소리 느리게 떨어지는 저녁/ 가시연이 하늘을 떠다니네/ 바람에 턱을 괴고 있던 별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스멀스멀 일어나 꽃이 되네// [김은자-꽃과 물고기 정물 全文 page71]     시 공부를 위해서 시를 많이 읽는 편이지만 시는 텍스트만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공부를 위한 시 읽기로 시작해서 문학과 예술로서의 시 읽기로 끝이 나서 난감할 때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시란 ‘정서’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독자로서의 나는 시를 복잡한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퍼시는 얼핏 불친절한 시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하이퍼시가 가지는 특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보니 하이퍼시가 의외로 유쾌하고 재미있는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는 아래로 내리고 바람은 누워서 불어 비와 바람이 마주치는 비바람소리에//숲속의 새들은 날개를 접고 풀슾을 헤치며 놀던 아이들도 발걸음 줄이며 함께 내리는 소리가// 어울려 알아들을 수 없는 무슨 Z Z Z? // 손가락으로 밀며 보는 스마트폰 안에서는 킬힐 신고 춤추는 잡가에 판소리에// 건물 옥상에서 나오는 울음 타는 소리, 초가집 구들장 무너지는 소리// 없이 고양이가 쥐를 잡는다는 소식, 소리소문없이 나는 소리 [김규화-소리에 링크하기 全文 page32]     한 청년이 공원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툭하고 딴다. 그 속에 꽃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유통기한이 찍힌 주검이 눈부신 5월의 햇살 속에서 검푸른 살을 드러낸다. 눈감고 있던 맨살이 꿈틀거린다// 물에 젖은 살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비누의 살을 만진다. 비누는 아무에게나 포동포동한 맨살의 향기를 풍기며 몸뚱일 비틀다가도 가끔 미끄러져 나와 세면대 바닥에서 통통거린다// 누가 푸른 바다를 유리병 속에 넣고 어항이라고 했을까? 열대어 두 마리 맨살 번득이며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오전 11시 20분 한 쌍의 남녀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어깨를 감싸고 있다// ( ) // *()안은 당신의 상상이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링크해서 펼쳐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반짝이며 나타날 것입니다. [심상운-맨살에 링크하기 全文 page119]     사전을 찾아보아도 hyper라는 말의 의미는 참 어렵다.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하이퍼시를 컴퓨터 용어로서의 하이퍼텍스트라는 말의 의미에 더 비중을 두고 이해하려 했었다.(hyper-컴퓨터 용어. in nonsequential manner 비순차적으로 연결된// hypertext-정보란을 마음대로 만들거나 연결시키고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비순차적으로 기억된, 데이터의 텍스트) ‘낯설게 하기’로 설명 하는 ‘은유’와 ‘하이퍼’의 차이점을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이즈음의 문학잡지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뭔가를 주장한다. 어떤 문학잡지는 ‘정신’으로의 회기를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잡지는 ‘탈관념’을 부르짖기도 하고 ‘순수’를 표방하지만 그렇다고 순수하지만도 않은 문학잡지들의 주장 속에서 ‘하이퍼시’는 근래의 문학잡지들이 표방한다고 하는 그 주장 또는 지향점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하이퍼시가 지닌 색체는 일단 범접하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문덕수 선생님의 하이퍼시론을 요약해보면, 하이퍼시에 대한 개념 정리가 조금 더 명료해지고 텍스트로서의 하이퍼를 비로소 시의 하이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이퍼(hyper)라는 말은 과도(過渡)한, 과다(過多)한, 초월하여, 넘어서, 초(超)...3차원보다 더 높은 등의 의미로서, 본래 그리스어에서의 일종의 연결어입니다. 사전에 hyperpoetry라는 말은 보이지 않으나, hyperacid(위산과다증), hyperactivity(극단적으로 활동적인), hyperacute(아주 과민한, 초과민한) 등의 용어가 보입니다. hyperpoerty라는 말은 미국의 브라운대학 교수인 P.란도의 저서 [하이퍼텍스트 3.0]에서 보입니다. 처음엔 하이커텍스트를 발견하였으나 뒤에 하이퍼시(hyperpoetry)를 발견하여 이 말로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이퍼’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세계를 넘어선, 저쪽 너머의, 또는 초월의 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따라서 하이퍼시는 틈이 있는 두 세계(일상적 의식에서는 결합될 수 없는 두 세계)가 연속 연결되는 형식을 일컫는 말로 볼 수 있고, 문학작품 특히 시의 경우엔 하이퍼적인 것이 도입되어 비로소 시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문덕수-하이퍼시 개관 中page193-page194)   지난 며칠. 갑자기 착한 학생이 되어선 나름대로 열심히 하이퍼시에 대한 공부를 했다. 과월호 시문학을 꺼내놓고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이 책 ‘하이퍼시’에 실린 작품들도 다시 읽어보았다. ‘디지털리즘’에 소개되었던 작품들도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하이퍼시’가 대중들에게 다가서기엔 다소 시간이 걸릴는지도 모른다. 내 나름대로의 결론대로라면 하이퍼시는 매우 고급스러운 시의 한 표현양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5    하이퍼 시의 가능성/신진 * 조명제 대담 댓글:  조회:215  추천:0  2019-03-10
이 글은 월간 2009년 3월호에 발표된 '하이퍼 시의 가능성'을 주제로 한 신진(시인) 조명제(시인,문학평론가)의 대담에서 중요부분을 발췌한 글입니다.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하고 전망하는 대담형식의 이 글은 중요한 이슈가 담긴 글이라고 평가됩니다.                          하이퍼 시의 가능성                                                                 신진/ 조명제 대담 ------------------------------------------------------- 오늘날 우리는 TV, 컴퓨터, 휴대폰 등 ‘기호’(記號, sign)의 세계에 살고 있고, 시단에서는 기호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하이퍼 시’ 동인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이퍼 시’는 ‘기호의 모더니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방면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두 시인의 지상대담을 마련해 봅니다. 조명제(趙明濟, 1946~ ) 시인은 『시문학』 출신(1985)으로 중앙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후진을 지도하면서 시집 『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1988, 재판 2002), 논저 『한국 현대시의 정신논리』(2002) 등이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쓰기는 물론이요, 한국시의 미래적 가능성에 대한 깊은 연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신진(辛進, 1949~ ) 시인은 동아대학교 문과대 교수로서 『목적(木笛)이 있는 풍경』(1978), 『장난감 마을의 연가』(1981), 『멀리뛰기』(1986), 『강』(1994) 등의 시집과 논저가 있습니다. 특히 『멀리뛰기』와 『강』은 삶의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물의 감각적 모더니티는 현대시의 좌표를 시사하는 문제시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과학적 기호의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퍼 시’에 대하여 두 분의 지상대화를 통하여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편집자 ------------------------------------------------------- 1) 신진 /조명제의 연구 성과, 시적 경향 등은 위의 편집자 주로 대체하고  생략함. 2). 시쓰기 운동은 그 본령이 ‘동인지 운동’에 있고, 동인지 운동은 ‘에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콜이 없는 동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이퍼 시’ 운동 동인(심상운, 김규화, 오남구)은 그 취지가 당찬 것 같으나 1)‘하이퍼텍스트’라는 방법적·기호의 공통성, 2)그들의 시쓰기가 현대과학 특히 컴퓨터가 입력 데이터를 이진법적 인공언어로 처리하는 보다 복잡한 네크워크를 작성해 그 방법과 연결되어 있고, 3)기존 텍스트의 시간적·선조적(線條的) 구문(構文)의 맥락을 어떻게든 벗어나거나 극복해 보려는 기호적 노력이 있는 점, 4)기타 등등이 발견됩니다. 이들의 동인지 운동을 어떻게 보는지요? 그 인상이나 느낀 바, 장래성, 특히 그 가능성 등에 대하여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신 진 :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첨단 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공상과학 영화와 디지털 TV,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 24시간 컴퓨터를 통해 문을 여는 시장들과 게임, 사이버 섹스 등 하이퍼 액티비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가상공간의 경험이 순식간에 현실로 다가오면서 사람들의 사고도 바뀌었고, 거리마다 사이버 인간의 원조들이 활개를 치는 하이퍼 모더니즘의 시기를 맞은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거짓이나 거짓 이미지를 사용하는 하이퍼 이미지 광고가 판을 치고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이미지 광고, 예컨대 요즘 TV의 ‘생 쇼’시리즈, 휴대폰의 장식물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는 질서 지키기 공익광고 따위의 하이퍼 영상들. 영상들 외에도 평범한 30세 청년이 경제대통령 미네르바로 둔갑하기도 하는 하이퍼 리얼리티, 연예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흑인 헤어스타일이나 노란 머리의 백인 스타일 등의 하이퍼 정체성이 현실에 다가와 있습니다. 가상 공간의 경험이 모든 개념과 경계를 무너뜨리는 하이퍼 모더니즘의 시대에는 그동안 믿어오던 국가, 경제, 사회 등의 개념과 가족을 비롯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 자아와 타자의 정체성과 윤리적 가치관, 실재와 거짓, 인간과 기계, 개인과 집단의 의미까지 부정되고 변하게 됩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철저하게 사실을 숨기고, 완벽하게 거짓을 꾸며내는 시대, 거짓말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 김규화, 심상운, 오남구 시인의 하이퍼텍스트 시 운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시대에 부응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퍼텍스트란 용어는 1965년 넬슨(Nelson)이 책, 필름, 연설 등의 선형구성과는 대조적인 비선형구조로 컴퓨터를 통해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합니다. 사회학자이기도 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관해 철학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프랑스의 피에르 레비(Piwrre Revy,1956-)는 하이퍼 세계가 결코 허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창조적 미래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가상성을 통해 현실을 공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이퍼텍스트란 네트워크라는 환경 속에서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다양하고 이질적 요소들이 공존상태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에 복제, 축소, 확대는 물론 변형과 갱신도 일어납니다. 이는 이질적이며 복수적인 동시에 유동적 접속이라는 관계를 이룹니다. 이는 새로운 문화 환경, 새로운 문화의 생태계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인터넷 문화 속에서 소위 댓글이라는 형식이 계속적인 접속을 통해 끊임없는 변형을 일으키며 변화무쌍한 이슈로 번져가는 현상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퍼 시 동인들은 그동안 몇 가지 동인 결성의 취지와 논리를 설명해왔습니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하이퍼 시란 하이퍼텍스트 시를 줄여 부르는 말이며, 하이퍼텍스트는 기존 텍스트의 선형성(線形性), 인과성, 고정성, 중심성, 관념성, 단선성 등에 대해 비선형, 비인과, 비고정, 탈중심, 탈관념, 다방향 등 상대적인 속성을 가진, 하이퍼링크가 만드는 불연속적인 상상의 세계입니다. 고정된 의미의 세계를 벗어나 무목적의 넓은 공간에서 공상의 가지치기를 보여주는 것이 순수한 하이퍼텍스트의 세계라 합니다. 물론 이들 논리는 컴퓨터상의 하이퍼텍스트를 종이 위의 시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이라 하겠습니다. 이미지의 병치와 링크, 통사법의 해체와 해사체 글쓰기, 의식과 무의식의 자동적 교합을 주장하는 이들의 작시법에는 분명 컴퓨터상의 하이퍼텍스트를 지면(紙面) 위의 하이퍼 시로 생산하려는 의지와 지혜가 배어 있습니다. 미래적 시 쓰기와도 깊이 관련되는 문제여서 동인 외의 시인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하는 도전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솔직히 턴다면 아직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 보입니다. 동인들 외에도 문덕수님까지 가세, 정치한 논리를 가다듬고 있습니다만 새로운 종이 하이퍼 시와 시법을 내놓기란 지난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심상운 시인은 작년 한국현대시협 여름 세미나의 주제발표문을 작년 『시문학』 10월호에 수정 재발표하면서 하이퍼 시의 창작방법 9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중 1).이미지의 집합적 구현(하이브리드의 구현)은 다다이즘의 콜라주와 몽타주,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에 2).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과 5). 상상 또는 공상으로 시영역 확대, 7).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음, 8).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 등은 역시 앞에 든 것들 외에도 초현실주의의 자유연상이나 자동기술법의 원리와 변별되기 어렵습니다. 3).다시점 이미지를 만드는 캐릭터 연출, 4).가상현실의 보여주기 위한 서사 양식 활용, 9).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 제작 등의 작시법 등은 입체파와 미래파 다다이즘의 동시시, 초현실주의의 ‘우아한 시체놀이’, 그리고 장르의 넘나듦이 예사로운 포스트모더니즘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하이퍼 시 동인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시단의 중심축 하나가 된 해체시, 미래시, 환상시 시인들 사이에는 일반화 되다시피 한 시작법과의 변별성을 더 뚜렷이 해야 문학적 에콜을 바탕으로 결성된 동인이라는 명분에 값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이퍼 시가 하이퍼텍스트로서의 특성을 보다 선명히 실천할 때라야 하이퍼 시의 미래적 가능성은 담보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조명제 : 2008년은 우리 문단사에서 ‘하이퍼 시 동인’의 결성이라는 점이 특기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용어의 선점 면에서, 그리고 그 실천적 운동 면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문단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고, 문예지 또한 수백 종을 헤아리게 된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예지가 실제로 출신 그룹의 동인지 구실을 하게 되면서, 문단 전체의 동향과 현장문학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려는 소수의 문인이나 학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문인들은 시야가 아주 좁아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하이퍼 시 운동에 대해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문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이퍼 시 운동과 동인 활동은 디지털문명 시대를 앞서 가고 있는 첨병의식의 한 결과적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 쓰기 운동이 에콜을 구심점으로 한 동인지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은 지당합니다. 에콜로 뭉쳐진 동인 활동은 색깔의 선명성, 결집력, 개성과 인간성 등에 있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 법입니다. 오남구와 심상운 두 시인이 외롭게 디지털리즘 시 운동에서 하이퍼 시 운동으로 전개해 가는 과정에,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비유적 표현법이 하이퍼미디어 시대인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과감히 뛰어든 김규화 시인으로 하여 하이퍼 시 운동은 실제적, 조직적 결집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하이퍼 시 동인’ 활동은 확실한 주목의 대상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동인 김규화, 심상운, 오남구의 3인이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일으켜 온 본격적인 하이퍼 시 운동은 그 선언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 초석 위에 동인들이 얼마나 특성 있는 작품과 체계적 담론으로 전개해 가느냐, 그리고 에콜에 부합하면서 일정한 수준과 개성적 경향을 가진 멤버를 어느 정도로 확보하느냐 등에 그 장래성이나 가능성이 달려 있다고 해야겠지요.   3. 하이퍼 시 동인들의 작품을 읽어 보시고 그 특성, 공통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그 메리트(merit)를 말씀해 주세요.   신 진 : 포스트구조주의자로 잘 알려진 보드리야르는 그의 시뮬라시옹 이론에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가상 현실의 사회’라 진단했습니다. 일종의 코드와 기호로 이루어진 ‘근거 없는 실재’가 실재를 대치하기도 하고 조종하기도 하는 ‘시뮬라시옹 ’사회, 즉, 근거 없이 만들어진 이미지와 정보가 사람들도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대중들은 허구의 늪에 빠지게 되고, 공동으로 제작한 시뮬라시옹을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이퍼시는 원칙적으로 허구를 제시하되 그 세계를 독자들과 공유하며 독자로 하여금 나름의 현실을 재구성하게 하는 시뮬라시옹의 시라 할 것입니다. 독자들이 어떤 전제와 확신에도 갇히지 않는,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무한히 확대될 수 있는 유동성의 문학양식이며 이 논리의 골격은 리좀(rhizome)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쉬임없이 변화하는 모든 사물의 상호연관성이란 뜻으로 쓴 리좀은 원래 식물학적인 용어로 줄기와 뿌리가 같이 이어져 땅속으로 뻗어나는 줄기를 뜻하며, 스스로 뿌리이기도 한 식물을 가리킵니다. 시작도 끝도 아니고, 언제나 중간에 있으면서 접속 가능한 모든 차원과 접속될 수 있는, 복잡한 상호연관성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깨어지고 부수어지며 재생하는 반계보학적 네트워크입니다.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시학을 포용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무너뜨리고 2차원의 종이텍스트를 언제나 유동적인 4차원의 사이버 공간까지 확대한다는 하이퍼 시 동인의 논리에 부합합니다. 심상운 시인의 시를 한 편 들겠습니다.              7월 아침나절 갑자기 쏟아지는 비              한낮의 아프리카 대평원엔            피범벅이 된 사자의 입과            사슴의 붉은 살덩이가 내뿜는 싱싱한 비린내            6월의 태양 아래 이글이글 벌어지는 초원의 잔치!              나는 TV에서 가슴 떨리는 아프리카 생태계를 보다가            식탁의자에 앉아            빨간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우쩍우쩍 씹는다.              그때 휴대폰을 울리는 그녀의 가쁜 목소리            그녀는 여름비의 유혹이 참을 수 없어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굵고 기운찬 빗줄기에             온몸 부르르 떠는 녹색 가로수들이 제각기 잎사귈 퍼덕이며             소리치는 도로를 지나 녹색의 광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뜨거운 들판의 가슴을 향해 돌진하듯 달리고 있는 그녀                                                                              ―심상운 「녹색전율」전문      인과(因果)의 틀을 벗어나 나열되는 이미지들이 상호 연계되면서 리좀의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7월 아침의 비와 6월의 초원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사투, 식탁에 앉아 우적우적 씹는 방울토마토, 휴대폰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는 역동적인 이미지들이 병치되어 하이퍼 실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심상운이 “이미지들을 동시적으로 공존하게 하거나 나열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무화시키며 열린 코드로 무한한 상상력(환상ㆍ공상)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했듯이 버추얼(virtual) 세계라고도 일컫는 가상이미지들의 세계요, 자유연상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동적 영상들의 리좀이라 할 것입니다. 오남구 시인의 시도 한 편 들어봅시다.   새벽녘이 텅 빈다. 거울 속 환히 비치는 하늘, 불그스레 실눈을 뜬 쪽달이 베갯잇 속으로 미끄러진다. 베갯잇의 조각보에 꿈오라기 오락가락 청-백-적-흑-황 지금 신행 온 딸아이가 베고 있다. 꾸륵 꾸륵 흑두루미가 철원하늘을 날아간다. 오르르∼ 신부가 떠는 입춘에 나뭇가지에서 오락가락 햇살 따뜻한 에너지가 스민다. 꿈틀 꿈틀 망울이 가렵고 겨드랑이가 가렵다. 거울 속에 팝콘 같이 흰 철쭉 꽃망울이 터진다.                                            ―오남구 「입춘詩」전문   서두 “새벽녘이 텅 빈다. 거울 속 환히 비치는 하늘”에서부터 표준 어법을 이탈하고 있고, 한 마디의 서술 없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이미지들을 나열하여 연결함으로써 입춘의 추상을 구체화 하고 있습니다. 시의 길이에 비해 움직임이 큰 동사와 형용사, ‘오락가락, 꾸륵 꾸륵, 오르르∼, 꿈틀 꿈틀’ 등과 같은 의성어, 의태어를 빈번하게 사용하여 역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은 특히 오남구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동인들도 동적 이미지와 색채어를 비롯한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지만 특히 그가 색채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그것도 이 시의 경우, 오행ㆍ오방위색인 ‘청-백-적-흑-황’ 등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주역을 비롯한 동양사상, 동학 운동에 한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것과도 관련된다 하겠습니다.  김규화, 심상운, 오남구 동인 3인의 하이퍼 시는 공히 기존의 문장에서 낱말, 문장, 문단과 같은 구성단위의 전후 관계를 바꾸기도 하고, 고의로 통사적 맥락을 끊어 의식적, 전의식적인 이미지들이나 정보들을 동시 공존하게 합니다. 또 역사적, 사회적인 삶보다는 추상적 심미적 차원에서 집중하며 엘리트적 미의식과 세련된 언어감각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입니다. 시각적 감각어, 특히 색채 감각어와 언어의 청각적ㆍ음악적 영상을 실감나게 구사하는 공통점도 갖습니다. 이들은 의성어 의태어를 즐겨 쓰는 미래파적 역동주의와 기계주의, 입체파 시의 동시공존법, 다다이즘 시의 무의미시법,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과 자동기술의 작시법,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 해체와 인유적 패러디 등과 유사한 시법을 내세우고 실제 적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산 산행 소재를 즐겨 쓰고 있는 것은 이들의 결속력과 집중력을 입증하는 공통 분모의 하나라 할 것입니다.  심상운 시인은 석기시대, 돌칼 가는 소리, 석탄난로, 광부들의 입김, 신생대, 말울음소리, 벌판의 망아지와 초록벌판, 탄광지대 등등 원시주의적인 취향을 강하게 풍기고 있고, 김규화 시인은 상대적으로 보다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버추얼 이미지들을 병치하면서, 언어의 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특징을 갖기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하이퍼 시 동인들은 현대시의 공간에 실감 있는 당대적 체험과 시어 계발의 틀을 만들고, 나아가 미래적 세계를 전망하게 합니다. 더 구체화 할 경우 시문학의 독자층 확대에도 일익을 담당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존재의 확장을 성취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오랫동안 귀감이 될 만한 시를 써온 세 시인이 회갑을 넘어 새로 시작한 하이퍼 시는 세련된 감수성과 구성, 논리적 설득력을 갖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 하이퍼 시가 독자들이 새로운 하이퍼 실재를 경험하고 하이퍼 정체성을 확인할 만큼 새로운 실감을 주는 데는 미흡하게 생각된다는 점을 숨기지는 않겠습니다. 그 위에 2000년대 들어서기 바쁘게 시 평단과 학계의 일각에서는 지난 세기 전위 취향의 시들에 대한 비판과 깊은 우려를 서슴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시켜두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실험적 경향의 시는 1930년대에 이상(李箱)이라는 특별한 아방가르드가 나온 후, 1950, 60년대의 과격 모더니즘 시인들이 이를 계승했고, 1980년대의 황지우, 박남철 등의 실험을 끝으로 실험성과 새로움의 위의가 거의 상실되고, 언어의 유사 실험성은 젊은 시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왜곡과 언어생활의 타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걱정과 경고도 따랐습니다. 미래적 메리트가 있는 작업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하이퍼 공간에의 궤도 진입 단계에 있는 하이퍼 시동인들은 이러한 사정과 시단의 각별한 관심을 어깨 무겁게 짐지고 있다 할 것입니다.   조명제 : 지난해 봄 하이퍼시 3인의 동인 결성 이후,금년 『시문학』 1월호까지 세 번에 걸쳐 개인별 5편씩 종합 15편씩의 하이퍼시가 발표되었습니다.그 15편씩을 읽어 보면 각자의 개성이나 특성이 좀더 뚜렷이 드러나는 면이 있습니다. 먼저, 김규화 시인은 다양한 방법적 실험을 해 보입니다. 특히 「햇빛과 단풍」 「거인들」 「과학적 이유 세 가지」 「달팽이와의 대화」 「매미소리」 「숨바꼭질」같은 작품들을 함께 놓고 보면 그 형식적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햇빛과 단풍」의 경우 무색인 햇빛이 가을 나뭇잎에 닿아 노랑,빨강의 금빛 단풍잎이 되는 풍경을 관찰, 사유하는 데서 비롯된 시상이 의식의 흐름과 자유연상을 통해 동양과 서양, 현재와 과거(추억) 사이의 시공을 자유로이 넘나듦을 보여줍니다. 햇빛을 받아 불타는 듯 붉은 단풍은 일순에 머나먼 갠지스강가 노천 화장터의 불꽃으로 하이퍼 링크되고, 허공의 햇살을 받아 종일 금빛 영혼을 태우며 타들어가는 시체의 단풍빛 불꽃은 어느새 열여덟 소녀적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몰래 숨어 본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의 마릴린 몬로의 웃음소리로 링크되지요. 햇빛과 단풍의 교호작용에서, 입을 약간 (섹시하게)벌린 몬로가 금빛 머리칼을 신사의 가슴에 올려 놓는 영화의 황홀한 장면으로 점핑되는 연결고리는 ‘햇빛은 단풍을 좋아해’라는 단풍 읽기에서 얻은 시구입니다. ‘햇빛과 단풍’에서 촉발된 하이퍼적 상상력은 비논리적 비선형적 링크로 이렇듯 시공을 초월한 작품적 구조를 보인 것이지요. 「거인들」은 이미지의 전개에 있어 연쇄고리식 행갈이의 파격을 통해 불연속의 연속을 강화하고 있고,대화체로 구성된 「과학적 이유 세 가지」는 ‘아시체 놀이’처럼 행간의 연결이 무시되어 있지만, 홀수행은 홀수행끼리 짝수행은 짝수행끼리 의미 맥락이 연결되게 깍지끼듯 직조된 특성을 보입니다. 그 사이에 선문답 같은 대화의 내용, 즉 다이어트와 관련된 광고 문구가 제시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신의 땅 티베트의 라싸로, 다시 그 곳 해발 5천 미터의 고지대에서 가난한 영혼의 경전을 외는 사람들로 건너뛰어 집합적 결합의 네트워크를 완성합니다. 「달팽이와의 대화」는 교통 신호를 기다리고 건너는 사이 달팽이를 기른다는 아이와 나눈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극히 흥미롭고 사실적인 대화에서 관념을 찾아 볼 수 없을뿐만 아니라, 마치 교통신호처럼 하나의 기호가 되고 캐릭터가 되어 아이는 저만치 ‘달팽이 길’로 사라집니다. 기호와 캐릭터는 전자 하이퍼 시대의 대표적 상징임을 환기시킨 예입니다. 그런가 하면 「숨바꼭질」은 내용단락에 따라 산행의 과정과, 산꾼들 풍경 대 추억의 고향마을을 치차처럼 엇물리게 구성하여 시상의 건너뛰기와 이어가기를 숨바꼭질시킨 것이지요.   역사박물관에서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마당 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이 한꺼번에/미륵 미륵 미륵,미르 미르 미르 르르르/사정한다//염소에게서 배웠나,매해해 얌얌 염소/입술을 뾰죽이 내밀어/매매매 하는 그그그 미/매 하는 미,매미이이이를//플랫폼에 혼자 두고 가는 기차가/소리 한번 매앵! 지르고 바퀴를 자글자글 굴리며 떠난다//맴맴맴 매애애/매앵매앵 앵앵앵/미잉미잉 잉잉잉 ―김규화의 「매미소리」 전문   「매미소리」의 방법적 특질은 화자가 강의를 듣고 나오면서 ‘미륵론’의 환청처럼 들리는 매미소리와 그 울음의 유사성으로 하여 연상되는 염소 울음소리, 심지어 기차를 놓친 과거 어느날 떠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마저 맹랑한 매미소리로 환치 혼융된 감각적 변용에 있어 보입니다. ‘미륵’과 ‘매미’는 ‘미’라는 기표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기의에는 유사성이 전연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인은 강의의 잔상효과와 ‘미륵’/‘매미’ 두 말이 지닌 기표의 유사성만으로 그 관련성을 맺어 줍니다. 매미소리는 매미의 언어로서 어떤 의미신호가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의 귀에는 그저 카랑한 울음소리의 기표만 들릴 뿐이지요. 우리가 노승의 독경소리를 들을 때 그 의미는 전연 알지 못하면서도 그 유려한 독경소리 자체에 매료되어 열복(悅福)을 느끼는 절대 순수의 순간처럼 매미소리의 시니피앙 속으로 빠져들어 추억과 환상의 절대적 세계를 맛보게 하려는 것이지요. 언어(기호)의 의미(관념)가 깡그리 증발(배제)되고 울림(리듬)만이 남는 경지, 그것은 김춘수 시인이 봉착했던 시의 마지막 경지이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김규화 시인은 여러 가지 하이퍼적 방법 실험을 해 보이고 있습니다. 심상운 시인은 의식과 무의식, 자유연상의 방법과 그림 이미지를 통한 보여주기의 기법을 주된 특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상과 공상의 과감한 투여로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동양과 서양, 고산과 바다 등 모든 영역을 뛰어넘고 넘나듭니다. 특히 그러한 방법으로 기호론적 ‘이미지’의 생성 과정과 이미지의 추상적 정체를 주로 미확인 비행물체인 UFO와 중첩시켜 암시하고 있지요. 그의 시는 하이퍼시의 생성과 특성에 관한 자신의 지론을 함축시킨 것이기도 합니다. 「바람소리」를 보면, ‘바람소리-말 울음소리-알타이 초원(말의 고장)-기억의 시간-갇혀 있는 시간-해방 공간-바람소리-파랑, 초록, 빨강, 하양 빛-들어가 살 수 없는 집(사이버 공간?)-노란 개나리꽃’으로 자유연상에 의한 링크로 가지치기와 건너뛰기를 실현하여 집합적 결합의 이미지를 완성해 보입니다. 「북한산 레몬 향기」 「이미지 여행」「은백색 미확인 비행물체」 「사각형 스크린」 등 여러 작품이 그와 같은 방법의 범주에 듭니다.   아침 TV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빨갛게 부풀기 시작하고/나는 1,2,3,4…숫자에서 벗어난 그녀의 시간이 접시 위 생선토막에 빨간 소스로 뿌려지는 상상을 한다.//(낳자마자 자식을 버린 어미를 어찌 어미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드라마의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 그녀는 생선을 구우며 눈물을 흘린다.//그때 40대 여자의 가슴에서 뭉클 솟구쳐 나온 듯한 한 뭉치의 희끄무레한 연기가 주방의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가고//(파란 신호등 앞에서/서로 반대 방향으로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머니와 딸) ―심상운의 「아침 드라마」 전반부   심상운 시인의 또 다른 하이퍼적 시상의 특성으로는 작품의 중간에 불연속적으로 핸드폰의 소리샘 소리가 끼어들거나, 인용시에서 보듯 TV 드라마의 장면들이 편집, 링크되는 경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TV의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피범벅이 된 사자의 입’과 화자 혹은 동석인들의 식행위(붉은 과일을 먹는다든가 그와 유사한 이미지의 식사)를 중첩시키며 의식, 무의식의 연상작용에 따라 건너뛰기나 가지치기를 이어가는 방법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인용시를 볼까요. 아침 8시나 저녁 8시무렵은 못 말릴 한국 아줌마들의 TV 드라마 시청 시간대지요. 텍스트 속의 ‘그녀’는 아침 식사를 위한 요리를 하며 현실 상황을 깡그리 잊을 정도로 연속 드라마에 몰입합니다. 드라마는 점점 고조되고, 사이사이에 드라마의 대사나 등장인물들의 행동 묘사가 삽입됩니다. 화자는 TV 드라마에 깊이 빨려들며 요리하는 ‘그녀’의 시간들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전위시키는 상상도 합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바꾸었는지 다음 장면은 기상 예보가 방송되는데, 오전의 짙은 안개가 걷히고 내리던 비도 그치며 날씨가 점점 맑아지겠다는 그 기상 예보는, 리모컨 하나로 손바닥 뒤집듯 채널을 바꿈과 같이, 비현실에서 현실(TV 드라마의 가상공간에서 현실공간으로)로 순간 전환시키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지요. 질질 끌며 하루하루 지연되는 TV 드라마의 오늘 하루분이 끝나자 대도시의 아침 시간은 그제서야 일제히 환각에서 깨어난 듯, 각자의 감정 색깔로 보았던 드라마의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심상운 시인은 TV가 보여 주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장면과 일상현실을 대비 또는 중첩시킨다든지, 핸드폰 속의 음성 서비스를 편입시켜 디지털문명 시대의 가상과 현실을 포착해 하이퍼적 시세계를 펼치기도 합니다. 오남구 시인은 특히 언어의 감각, 말의 기지,(어휘 중심의) 계기적 이미지 연상,극적 상황 포착, 기호나 부호의 대상화, 대상의 캐릭터화 등에 탁월한 하이퍼시를 보여 줍니다. 그의 매끄러운 언어 구사는 시를 속도감 있게 만들지요. 「입춘시詩」를 보면, 입춘절에 신행와서 곤히 잠자는 딸이 꿈길을 오가며 베고 있는 베개의 고운 베갯모 자수 그림과 텅 빈 새벽하늘에 뜬 조각달의 풍경이 하나로 미끄러집니다. 말하자면 몽환적 꿈속 일처럼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실제의 ‘차이와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인 것이지요. 그리하여 순간 포착의 하이퍼적 상상은 베갯모의 흑두루미가 철원 하늘을 날아가고, 입춘 무렵의 한기를 느끼듯 아직 미숙한 시집살이에 오르르 떨고 있지만 곧 새살림을 봄꽃처럼 피워갈 신부마냥 한기 속 따뜻한 햇살을 받아 나뭇가지들의 망울이 부풀고 마침내 흰 철쭉꽃 망울이 터지는 시간으로 연상적 링크를 수행합니다. 「사과」라는 시는 끝말잇기처럼 하나의 어휘를 매개로 연신 어의 반전을 거듭하며 시상을 증폭시켜간 작품입니다. 또 「약수터」는 약수터라는 공간을 무대로 약수를 뜨러 온 인물들을 그 인상착의의 특징을 캣취해 ‘낡은 골프 모자,굵은 테 안경, 빨간 딸기코 노인,반백의 꽁지머리’로 캐릭터화 하여 하이퍼시의 기호론적 특성을 십분 살리고 있지요. 그리고, 늘 나오던 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죽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나누는 노인들의 간결하고 담담한 대화와 행위는 마치 한 토막의 깔끔한 상황극을 연상시킵니다. 금년 『시문학』 1월호에는 오남구 시인의 투병생활과 병상일기를 풀어 낸, 가슴 저려오는 작품들을 보게 되어, 병마와 힘겨운 고투를 벌이고 있는 그에 대한 안타움이 여간 큰 게 아닙니다. 「요만큼의 희망」「IB 폴대」 「부호 그리고 벌레」가 바로 그 병상시(病床詩)들인데요, 여전히 오남구의 재기는 살아 번뜩입니다.   꿈같다. 진통제를 맞는다. 띵 머리가 아프다. 갑자기 창을 통해 날아든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눈앞에서 퍼덕거린다. 눈 아래 길들이 꿈틀꿈틀 벌레다. 나무로 기어올라가기도 하고, 무수한 벌레들이 꿈틀대는 부호다. 돌아보는 길, 내가 걸어온 길, 무수한 부호들이 날아서 꿈틀거린다.//저 부호를 누가 읽어낼까, 하이퍼 시인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나는 부호의 벌레.                                                                    ―오남구의 「부호 그리고 벌레」 전문   병든 시적 화자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현실이 현실로 보이지 않는 비현실의 환상을 만납니다. 현실의 일상적 질서로부터 이탈된 그의 몸과 마음은 진통제를 맞으며 고통스런 꿈속을 헤맵니다. 갑자기 병실의 창을 통해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어 퍼덕거리는 불길한 환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가운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통제 주사와 기력의 소진은 우울하고 아픈 몽환으로 시달리게 합니다. 병상 밖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길’들이 병균(벌레)에 시달리는 환자의 눈에는 모두 꿈틀거리는 ‘벌레’로 보입니다. 나무로 기어오르는 듯이 보이기도 하는 그 벌레들은 어느새 몽환적인 환자의 의식을 타고 ‘부호’로 다시 은유화됩니다. 쓸쓸히 돌아보는 그의 인생길이 또한 판독할 수 없는 부호의 무리가 되어 꿈틀거립니다. 고뇌에 찬 자신만의 인생길을 그 누가 읽어낼 수 있게습니까. 기호와 캐릭터의 시적 형상에 매진해 온 시인은 화자와 작가의 경계도 허물고 ‘나는 부호의 벌레’라고 규정합니다. 누구든 한 사람의 일생은 결국 해독할 수 없는 한 점, 하나의 부호나 암호가 아닐까요?(오남구 시인의 쾌차를 빕니다). 하이퍼미디어의 특성에 바탕을 둔 하이퍼시는 디지털문명 시대의 새로운 시쓰기의 한 경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인간의 뇌 구조의 복잡한 그물망처럼 하이퍼 시 동인들의 시는 그 개별성과 함께, 인과적 논리성이나 선조적 질서, 혹은 위계적 시스템을 벗어나 탈중심의 리좀 형태를 구축하며,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관계론적 체계를 공통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인들은 기호의 체계에 집중하여 기의적 관념을 벗어 던지고 사물의 순수 이미지와 감각적 기표의 분산을 즐깁니다. 그들은 또, 그들만의 무기는 아니지만, 자유연상과 공상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가상공간을 자유로이 점핑해 가며 텍스트의 마디들을 연결짓기도 하고 병치하여 기계론적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를 맛보게 합니다. 동인들의 이러한 공통적 노력과 장점이 보다 진전되어, 왠지 하이퍼시의 상당수는 감동이 없다라는 일부 문인들의 지적을 잠재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4. 언어 기호가 가진 종이 위에서의 정보(시) 처리 방법, 다시 말하면 1)언어가 현실의 사물이나 대상과 떨어져 있는 점, 즉 사이버스페이스적 특성, 2)기존의 모든 언어텍스트의 구문이 갖는 맥락은 선조적·시간적인 일방통행인데, 하이퍼의 경우에는 센텐스의 어떤 부분(주어, 목적어, 서술어 등)에서든 가지처럼 갈라내어 거기서 다시 새로운 센텐스의 맥락을 만들 수 있는 맥락의 분산(分散) 등의 특징이 가능한데, 이러한 하이퍼적인 시가 가능할까요?   신 진 : 공상과학 소설의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뉴로맨서」(1984)의 작가 윌리엄 깁슨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사이버스페이스’란 말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와 인터넷 속의 인공적 풍경을 가리킵니다. TV, 컴퓨터 등에 의한 사이버스페이스는 우리의 감각을 확장, 다중감각(Multi-sense)을 경험하게 하며,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게 하며 실체가 없는 이탈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사실이 허구보다 낯설기도 하며, 거짓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을 실재의 삶으로 경험하게 하는 ‘가상의 실재’의 세계입니다. 실재와 가상이 공존하는 가상의 경험은 가상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확장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여 자아를 확장시키게 됩니다. 영화 「로보캅」, 「토탈리콜」, 「제5원소」, 「매트릭스」 등이 보여주고 이끌고 가는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센텐스의 특정 부분을 갈라내어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가는 ‘분산적 맥락’이란 그러한 가상의 실재를 리좀(rhizome)과 같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통해 연출하기 위한, 종이 하이퍼 시의 주요 방법론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한 문장 속의 언어 단위를 가지가 파생하는 식으로 이어지면서 종합되는 하나의 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컴퓨터 화면의 그림이나 밑줄부분을 선택하여 마우스를 누르면 다른 텍스트가 나타나는, 즉 다른 텍스트를 분산해서 연결해 주는 하이퍼 링크적 기능을 살리기 위한 방법입니다. 여기서 김규화 시인의 하이퍼시를 한 편 들어보겠습니다.   역사박물관에서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마당 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이 한꺼번에 미륵 미륵 미륵, 미르 미르 미르 르르르 사정한다 염소에게서나 배웠나, 매해해 얌얌 염소 입술을 뾰죽이 내밀어 매매매 하는 그그그 미 매 하는 미, 매미이이이를 플랫품에 혼자 두고 기차가 소리 한번 매앵! 지르고 바퀴를 자글자글 굴리며 떠난다 맴맴맴 매애애 매앵매앵 앵앵앵 미잉미밍 잉잉잉 ―김규화 「매미소리」전문   ‘미륵 강의-마당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미륵 미륵 미륵 사정(射精?)’ 등 음운론적 분산과 ‘매미소리-염소소리-기차소리’, ‘미륵- 마당- 미루나무- 매미- 맴맴’ 등 음성적 자질들의 분산과 비약적 연결이 텍스트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로써 가상은 실재화 하고 현실과 환상의 교차, 시간과 공간들의 병치와 공존 현상이 일어납니다. 앞에서 말한 들뢰즈와 가타리는 동양적 사상의 흐름을 원래 주체도 객체도 정해진 길도 없는 유목민적 사유의 전형, 즉 리좀 양식으로 보았습니다. 다양성으로 이원론적 나무의 사유를 극복하여 다원론은 곧 일원론이라는 데까지 접근했습니다. 이러한 사유는 중심도 주체도 위계도 없이 모두가 동등한 주체로서 영토화, 탈영토화, 재영토화 합니다. 그리하여 형성되는 관계가 ‘비질서의 접속’과 ‘상호연관성’ 속에 하나가 되는 글로벌적 환경을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문맥의 분산과 재영토화를 통한 자유로운 네트워크 생태의 구축은 이상의 미래주의와 다다이즘, 그리고 초현실주의 시에서부터 그 예를 찾을 수 있고, 김춘수 시인은 이와 유사한 방법을 시창작상 비법으로 간직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김춘수는 1960년 경 정지용의 시 「향수」를 분석하면서 시작에 있어서의 우연성과 몽타주 수법, 그리고 ‘이을고리(環)’를 강조한 바 있는데, 이미지나 정보의 병치에 무슨 인과론적 의미가 있는 듯 연결시키는, 그의 무의미 시 창작비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연은 영화의 한 컷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cut와 cut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런대로 그들은 우연이 필연이 될려면 여기 montage가 있어야 한다. cut와 cut를 montage하여 이을 고리(環)는 전혀이다. 열쇠는 이것이 잡고 있는 셈이다. (더 진보된 형태에 있어서는 이것이 필요없을 것인데 거기까지는 미달이다.)...시의 효과는 전혀 montage의 솜씨에 달렸다.(김춘수 『한국현대시형태론』, 해동문화사, 1969, 63면) 김춘수는 이와 같이 단절된 이미지 사이의 이을고리를 발견하고 그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라는 「향수」의 드러난 이을고리보다 자신은 더 진보된, 세련된 솜씨를 갖추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고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 정보들의 연결이 바로 그 비법(?)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의 많은 시들은 후렴구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련된 링크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안들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몽타주, 콜라주의 구조적 혼란을 극복하는 기능을 할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론적 네트워크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의 세련된 연결고리의 우리나라 원천은 다름 아닌 이상(李箱)의 시들에 있습니다.(신진, 「한국현대시의 전위의 맥락 검토」, 『한국시학연구』 22호,252-254면. ) 아무튼 사이버 스페이스적 속성을 종이 위에 구현하기 위해 맥락 분산의 방법을 이용하는 것은 이해되는 발상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버 스페이스적 특성뿐 아니라 60년대 김춘수의 말마따나 전의식의 흐름을 좇는다든지, 현실ㆍ상상ㆍ환상ㆍ공상의 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다른 시에서도 드물지 않게 쓰여 왔습니다. 동인 중 한 분이 대표적인 비하이퍼 시의 예로 거론한 바 있는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각 연은 ‘한송이의 국화꽃-한송이의 국화꽃-누님같이 생긴 꽃-노오란 네 꽃잎’으로 분산, 연결되는 축과 ‘소쩍새의 울음-천둥의 울음-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졸임-불면의 밤’ 으로 병치, 공존하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라 할 것입니다. 하이퍼 시는 이 점도 유념해서 분산적 맥락을 위시한 하이퍼 시 제작 방법들을 보다 하이퍼텍스트답게 개량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명제 : 이를테면, ‘새’는 ‘새’가 아니지요. 즉 ‘새’는 ‘새’라는 언어기호일 뿐 새(사물)가 아니지요. 체계의 체계로 설명되는 문학 언어 이전에 언어기호 자체가 이미 사물(대상)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오그덴과 리처즈의 구도를 좀 수정해서 말하면 말(언어기호)과 대상과 연상(이미지)의 삼각구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언어기호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자의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말합니다. 언어의 자의성은 언어의 사회성에 의해 제약받게 되지만, 그 때에도 개별적 언어의 자의적 특성은 사회성에 의해 완전히 제약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꽃’이 라고 언술하면 기호와 대상이 일치하지 않음은 물론, 사회성에 의해 약속, 공인된 기호가 언어라고 하지만 기표와 기의 또한 일치하지 않습니다. ‘꽃’이라는 기호 자체가 추상적이기도 하거니와, 청자는 꽃 중에도 각자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꽃을 그리게 되겠지요.그런 점에서 기호는 차이의 체계요 관계의 체계인 것이지요. 류현주 교수도 그의 저서에서 시는 언어가 만드는 회로라고 하고, “읽는 사람마다 같은 시어에서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언어와 그 언어가 나타내는 의미의 고정성이 분리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같은 언어에 대해 여러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하이퍼 텍스트 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면 문학 언어와 문학 텍스트의 동일한 해석이란 불가능합니다. 언어의 문화적 역사성까지 고려하면 언어의 개인별 정서적 특성은 더욱 차이가 커지고, 국제적으로는 언어의 정서적 차이 때문에 문학 텍스트의 온전한 번역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따라서 컴퓨터상의 전자 언어기호뿐만 아니라 종이 위에서 처리되는 정보(시) 역시 원천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적 특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하이퍼 텍스트의 기본적인 특성이 문맥의 선조성이나 논리성, 혹은 단선구조로부터 탈피하는 것인 만큼, 센텐스의 가지치기나 건너뛰기 같은 방식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실천되어 왔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하이퍼 시 동인들의 실험적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일찍이 격렬한 자기 파괴적 실험을 감행했던 이상이나 조향의 시들에서도 발견됩니다. 특히 김춘수의 경우 그의 「처용단장」 제3·4부에서 하이퍼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김춘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논리적 순차성의 파괴와 통사적 해체를 실험해 보이고 있는데, 「처용단장」 제3부의 「36」, 제4부의 「14」는 그 좋은 한 예입니다. 내적 필연성이 없이 열거되다시피 연결된 어휘들이나 문장들, 그리고 연결고리가 무시된 연과 연 사이의 폭력적 연결로 말미암아 이 작품들은 시니피앙의 미끄러짐만이 두드러집니다. 기존 현실이나 세계와의 단절로서, 소통 구조의 근본인 통사의 해체는 곧 현실 너머의 마이너스 현실을 떠올려 주지요. 김춘수 시인이 만년에 직면한 과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바로 이 마이너스의 세계였는지도 모릅니다.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뒤섞이고 융합된 김춘수의 「처용단장」 제3·4부는 여러 면에서 요즘 집중 논의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 시와 하이퍼 모더니즘론의 한 전거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나 리좀(rhizome) 형태 및 다선구조로 그 특성이 설명되는 종이 하이퍼 시의 실제를 보인 점에서도 김춘수 시인은 끝나지 않은 아방가르드의 선구적인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황무지」를 비롯한 T.S.엘리엇의 작품에서 이미 하이퍼시의 여러 특성들이 실현되어 있고요, 황지우, 박남철, 장정일 같은 80년대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더러 시도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발표한 저의 「황사일기」 「봄편지」(세계 최초의 하이퍼 작품이 발표된 1987년과 일치하네요)는 구체적인 한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5. 만약 하이퍼 시의 운동이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이 도입되어야 하겠습니까?   신 진 : 하이퍼 시운동은 우리 현대시를 보다 당대 문화적 가치에 가깝게 서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속의 가치가 인정된다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어린 시 지망자도 찾기 어렵고, 읽는 독자사회도 붕괴되다시피 한 시단의 현실 타개책을 제공해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인들의 희망대로 전자 하이퍼텍스트가 종이 위의 시로 실현되어 자아의 확장을 가져 올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동인들과 문덕수 선생님은 이 준비작업을 마치고 항해를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에게는 더 구체적이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능력이 없습니다만 두어 가지 단견으로 답을 대신해보겠습니다. 2000년대의 우리 시 평론가 중 일군은 언어적 실험성이 갖는 파괴행위의 창조적 위력은 일회적인 것이고 이상 이후의 시인들은 더 이상 언어 파괴와 해체를 통한 극적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다른 창조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이퍼시 동인들이 문맥의 파괴와 분산에 못지않게, 연결, 비약적 연결 등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 저는 앞에 든 것과 같은 우려들을 불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읽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형태적 새로움 외에 내용적 새로움을 추구해나갈 가능성을 읽는 것입니다. 독자와 함께 가상의 실재를 즐기고 함께 인간성의 확장의 차원으로까지 나아가려면 함께 공유할 내용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수가 상수 훈수하고 달아나는 심정으로 드릴 수 있는 답안도 그런 것입니다. 저는 서사성의 과감한 도입과 현실성, 서정성을 심화,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서사 양식의 대폭적인 차용입니다. 디지털 미디어는 음성언어나 문자언어에 비해 훨씬 통합적이고 통섭적입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우연성, 해체성, 특수성, 환상성을 짜깁기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상호교류와 초언어적 보편구조를 갖습니다. 작가는 편집자로, 독자는 행위자로, 쓰기와 읽기는 놀이행위로 치환됩니다. 시인의 특수성, 시론가의 논리가 그대로 독자에게 강요될 수도 없습니다. 독자의 참여와 놀이를 보장할 수 있으려면 만화나 영화, 컴퓨터 게임 따위에서 보이는 서사양식을 과감하게 차용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20세기의 아방가르드식 논리와 시 작법은 시인의 놀이터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독자들의 놀이터로는 부적합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현실과 환상이 부분적이고 말초적인 언어기법에 의해 연결되기보다는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서사성, 그것도 흥미진진하고 긴 형태나, 짧더라도 촌철 살인의 위트와 기발함이 번뜩이는 서사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현실성(reality)과 서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현대 시사(詩史)에 있어, 그 동안의 아방가르드들은 예술적ㆍ표현적 방향으로 치우치는 취약점을 보여왔습니다. 원래 서구의 아방가르들은 공산주의적 열망, 무정부주의적 이상 등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가졌고, 자동화된 전통이라거나 타성 등 저항의 적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어느정도는 공감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전위 시인들은 현실도피적인 입장에서 통사적 문맥 파괴 놀이를 하거나 이국문화 따르기에나 열중하다보니 자기들끼리의 잔치만 즐기는 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군의 후배 시인들이 그 뒤를 따랐던 데는 정치적인 안정이 보장되는 데다, 흉내 내면서 만들어내기도 쉬웠고, 더군다나 이름 내기도 쉽고 했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추측됩니다. 어쨌거나 독자들은 그것들을 마음에 새겨두거나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독자에게 놀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시는 당대적 현실감감이 탁월하거나 개별성과 보편성을 통합적으로 형상화해 낼 수 있는 서정의 깊이를 갖춘 것들이었습니다. 당대적 인간미-통합적 서정은 시로서의 당위이자 독자와의 주요 소통로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관적인 감정표현만이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사고는 금물입니다. 공통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어떤 신성함과의 관계 속에서 감동적으로 구현되는, 구체적이고 진정 어린 서정의 세계를 굴착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 속의 하이퍼텍스트를 대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쓰는 사람들의 인성을 즉흥적 도발적 비선형적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비판적 시각에서 이에 상응하는 시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라고 한 김규화 시인의 하이퍼 동인 참여동기(시문학 08년, 4월호,15-6쪽)의 ‘비판적 시각’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 된다 하겠습니다.   조명제 : 글쎄요, 어디까지나 저의 단견을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원래 하이퍼텍스트는 첨단 디지털문명을 배경으로 한 컴퓨터상의 전자 텍스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라는 매체는, 500년 전통의 물질적인 매체인 종이 인쇄물(책)에서 온라인상의 전자 텍스트로의 이동에 따른 문학의 급격한 변화를 불가피하게 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용어들이 생겨나 혼란스럽기도 했으나, 현재 가장 주목받는 디지털문학 형태가 하이퍼문학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므로 하이퍼문학은 컴퓨터 매체의 사이버 공간에서 행해지는 것이 본령이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요즘 펼치고 있는 하이퍼문학 운동이나 담론의 중심은 ‘종이 하이퍼 텍스트시’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을 그 태생으로 한다는 점으로도 그렇지만, 하이퍼텍스트 이론가들은 종이 하이퍼문학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종이 위에 쓰는 시의 사이버스페이스적 특성, 곧 ‘종이 하이퍼텍스트 시’ 라는 것의 논리적 동인(動因)을 체계적으로 확립, 소책자를 제작하여 문학인과 대중에게 확실히 인지시키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합니다. 동시에 하이퍼 시집을 발간하여 문단(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이퍼텍스트 문학 이론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활로를 발전적으로 모색해 보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 하겠습니다.   6. 이상(李箱)이나 조향(趙鄕)의 시를 하이퍼텍스트의 관점에서 보는 이도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신 진 : 이상이나 조향의 시, 그리고 문덕수의 시 등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선구적인 면모를 읽는 것은 그동안 동인들도 논해온 바이기도 하고 이는 또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이들뿐 아니라 「처용단장」의 김춘수, 「전화이야기」의 김수영은 물론, 「하여지향」의 송욱, 김지하의 담시 「오적」과 대설 「남」, 그리고 황지우, 박남철 외 젊은 해체시인들, 환상시 시인들에게서도 하이퍼시적 면모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시는 원천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 이전의, 상상력이란 사이버스페이스를 가진 문화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시는 전자 기계에 못지않는 강력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실재를 제공해왔고, 이는 일반 독자들의 창의력까지 신장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할 것입니다. 특히, 신화적 상상력, 현실 전복의 전위성, 초현실주의의 무의식, 그리고 중심해체와 패러디의 세계는 이미 인간의 무한한 자유와 유희와 도전이 춤추는 가상의 공간으로 인간 사회의 리얼리티와 정체성을 확장시켜왔다 할 것입니다. 그만큼 하이퍼시의 실현을 위한 자료는 무진장인 셈이라 할 것입니다.   조명제 : 이상이나 조향의 시를 그대로, 오늘날 컴퓨터 매체를 기반으로 형성된 하이퍼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이퍼시의 기본적 특성을 비선형성과 다선형성으로 볼 때, 이들의 시는 분명 하이퍼시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하이퍼시는, 과거의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포멀리즘, 큐비즘이나 콜라주, 모자이크 기법 등의 종합판이라는 생각이 들거니와, 이상과 조향의 시는 적어도 그 어떤 부분을 선행 실험해 보인 셈이지요. 외국의 경우 T. S. 엘리엇의 「황무지」는 복수시점이나 콜라주 기법 등 훨씬 더 하이퍼적 특성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편이지요.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저자 류현주 교수는 21세기에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혁명(하이퍼문학)의 조짐은 근대소설의 발생기인 18세기부터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그 예로 18세기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탄 센티 (Tristan shanty)』부터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Ulysses)』에 나타난 당시의 새로운 기법, 곧 선형성 탈피의 서사방식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큐비즘 예술을 포함시킬 수 있겠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상과 조향의 시는 이미 하이퍼적 특성들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겠지요.   7. 현재 앞이 꽉 막힌 것 같은 시단에서 길을 열고 나갈 방법이 있을까요.   신 진 : 산업화, 상업화에 이어 바야흐로 전자 미디어가 주도하는 하이퍼 모더니즘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의 진로가 불투명하고, 시단의 앞길이 막힌 듯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추세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의 역사를 통해 진, 선, 미 등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를 창출해 온 시의 위의가 더 소중스럽고, 그 발전의 토양이 되는 시단의 생태 회복은 간절해진다 할 것입니다. 시단의 새로운 진로를 열어줄 방안 모색을 위한 자리는 10여 년 전에 경향 각지에서 빈번하게 가져졌습니다. 그동안 정부 또는 자치단체 쪽에 요구해온 사항들은 그래도 많은 부분 시행 시스템을 갖추고 있거나, 시행되고 있습니다만 시단 내부에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까운 시단 내부의 병인(病因)부터 찾아 반성하고, 혁신하는 일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가 독자를 잃게 되고, 시 지망생을 잃게 된 데에는 문학권력들이 저질러온 병폐들, 예를 들어 시인 등단의 남발과 학연, 지연(誌緣), 인연에 의한 섹트주의, 안이한 서정이나 일방적인 현실문제 의식, 자폐증적인 언어유희 등에 그 내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를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업적 이익이나 명리쟁취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문학 권력들과 수많은 유령(?) 협회는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원인들을 제공해 왔습니다, 시인들이 시적 순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적인 취향이 달라도 ‘좋은 시’는 존중할 줄 아는 풍토, 시인이기 전에 애정 어린 독자로서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인의 숫자가 훨씬 줄어들거나 동호인 그룹을 따로 움직이게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흑백 논리나 이도 저도 아닌 혼돈은 둘 다 비시적인 독선입니다. 바른 방향을 외면하고 문화 해석의 독선을 지속하는 관행은 너무 오래 지속되어온 정치 권위주의가 초래한 함정이라 할 것입니다. 문예지 중 상당수는 문화 콘텐츠를 실현하는 문화 기획사로의 전환도 생각해 봄직 합니다. 요즈음 본격화 되고 있는 하이퍼시, 디카시, 공연시, 음악시 등을 전문화 하기도 하고, 통섭적인 콘텐츠를 계발하기도 한다면, 어느 정도는 오늘의 독자를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실행에 옮기기가 요원한 일일 것 같습니다. 사심 없는 실천이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명제 : 어려운 문제입니다. 시단의 문제라기보다 시문학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젊은세대의 생장 배경이나 생활문화가 되어 버린 영상 중심의 멀티미디어 시대에 시(문학)의 권위와 영향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현대판 만능 지팡이로 불리는 다기능 핸드폰의 무한 진화, 컴퓨터의 지적 변신, 다용도 TV의 보편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영상(영화) 산업의 다국적 기업화 등등 영상정보 미디어의 발달은 상대적으로 문학의 위축과 소외현상을 가져온 중대 요인의 하나라고 봅니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문화적 지배는 ‘시의 시대’ 대신 ‘대중가요’의 시대, ‘희곡 문학’ 대신 ‘TV 드라마’의 시대, 그리고 스포츠와 댄스의 시대를 촉발시켰습니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문학은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게도 되지만, 흔히 상업주의적 유혹에 빠져들기도 하지요. 대중문화에 편승한 상업주의 문학이나 인기 영합주의적 문학운동은, 마르쿠제의 지적처럼 문학이 문학으로부터 소외되는 문학의 역승화 현상을 낳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는 문학과 과학의 융합으로 잉태된 보물’(류현주, 『하이퍼텍스트 문학』,김영사, 2000, p. 20.)이라고도 하는데, 디지털문학이든 하이퍼문학이든 그것은 최첨단 과학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매체의 산물이지요. 하이퍼문학이 컴퓨터 매체의 특성을 최대한도로 이용하여 오랫동안 매체의 한계 때문에 발휘되지 못했던 문학의 미학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과는 별개의 문제로, 디지털문학이나 하이퍼문학은 용어상 디지털 문명 및 대중 추수적(追隨的) 문학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게 됩니다. 과학사상의 발달과 문학적 상상력 및 기법의 발전 관계는 인류의 역사가 잘 증명해 주는 터이지만, 문학은 대체로 과학문명(기술과학), 정확하게 말하면 과학문명의 역기능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요는 하이퍼시를 포함한 현대시가 기술문명의 추수나 대중 추수적 경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시뮬라시옹』의 저자로 우리 나라에도 두어 번 다녀간 적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대가인 장 보드리야르는 멀티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시뮬라시옹의 시대’ 라고 규정하고, 오늘날의 ‘시뮬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실재로부터 모방된 이미지 혹은 기호가 다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거듭된 과정을 통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를 형성하며, 마침내는 원본이나 실재와는 무관한 상태의 가상현실을 구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재가 실재 아닌 실재인 파생실재로 전환된 시뮬라크르(simulacres)의 사회에서는 현실이 그 때 창작된 가상을 모방하게 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이미지 폭력’이 결국 현실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확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차피 21세기의 현대인은 좋든 싫든 멀티미디어가 생산해 내는 이미지와 기호, 곧 시뮬라크르 라는 파생실재(가상현실) 속에서 무의식 무관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의 물신적 우상과 마찬가지로 그 유일한 타개책이란 이미지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하이퍼시나 요즘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사물시의 논리와 창작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제 시를, 기술적 진보와 대중매체에 의해 한정 없이 확산되고 있는 대중가요나 스포츠, 영화나 TV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 양식과 동렬에 놓고 허탈해 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통속적 시뮬라크르에 의해 사람들의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시문학이 사회적으로 그런 대중문화를 압도하거나 우위에 놓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현대시는 고급문화의 창출로 대중문화와 차별화 하면서,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키는 이미지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대중의 무의식을 일깨울 인자(因子)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신진/조명제 상호 비평 생략)
34    이선의 하이퍼시 시창작론[펌글] 댓글:  조회:241  추천:0  2019-03-08
이선의 하이퍼시 시창작론 ㅡ회화 기법을 중심으로     이 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1. 하이퍼시의 개념과 정의    ‘하이퍼시’시론은 1965년 테드 넬슨(Ted Nelson)이 주장한 “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서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는 말을 문덕수가 하이퍼시에 차용하여 시론으로 정립한 시론이다.  하이퍼(hyper)는‘과도하거나 지나친’또는‘극’이라는 용어로 해석된다. 필자는 하이퍼시를 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명명함을 밝혀둔다. 시는 문덕수가 주장한 와 같은 개념으로, 지금부터 로 명명한다.   테드 넬슨이 주장한 link(연결)라는 개념은, 현대 컴퓨터 세대들이 상용하는 용어다. 문덕수는 넬슨의 하이퍼텍스트 이론을 1930년대의 이상(李箱)의 초현실주의 시에 대입하여 새로운 하이퍼시 시론을 모색하였다. 문덕수의 하이퍼시 시론은 으로 요약된다.   링크는 분산된 이미지를 연결하고 집합하는 기능이다. 리좀(rhizome)은 쌍방향, 사방으로의 링크의 기능을 의미한다. 평면상에서 그물망처럼 확산되는 이미지들의 러너 기능을 말한다.     심상운은 문덕수와 오남구가 발의한 하이퍼시 시론을 근간으로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라는 하이퍼시 시론을 정리하여 하이퍼시 시론집을 발간하였다. 심상운은 등 현대 컴퓨터 용어를 재해석하여 시론으로 정립하였다. 모듈은 컴퓨터의 최소 단위(unit)의 결합과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하이퍼시는 으로 요약된다. 자유로운 를 추구하며 자유로운‘편집 기능’을 갖는다.        2. 하이퍼시의 성립조건      문덕수는 오남구의 을 연구 보강하여, 하이퍼시의 조건을 로 정리하였다.     심상운은 오남구의 과 문덕수의 을 결합 보강하여 현재 널리 알려진 을 정립하였다. 심상운은 하이퍼 시론집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에서 하이퍼시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으로 요약하였다.     필자는 하이퍼시 성립조건을 다음 7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언어충돌, 이미지 폭력- 링크, 리좀     둘째, 무의미시     셋째, 씨네 포엠cine΄ poe΄ me (영상시)     넷째, 추상화 기법: 몽타주, 모자이크, 추상화 겹쳐 그리기(색채 이미지)     다섯째, 환타지     여섯째,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동시성)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은 하이퍼시 창작 기법으로 치환되는 개념이다. 하이퍼시는 표현주의 미학인 유미주의를 추구하며, 시에 운동감과 감각적 미의식을 부여한다. 또한 존재론적 상황 시로서 서사적 구조를 갖는다. 내용을 제한하거나 지시하거나 명령하여 한정하지 않는다. 표현주의 미학을 추구하는 하이퍼시는 을 성립조건으로 한다.       3. 하이퍼시의 회화기법 시창작론       필자는 위에서 하이퍼시의 6가지 성립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언어충돌, 이미지 폭력- 링크, 리좀   둘째, 무의미시   셋째, 씨네 포엠cine΄ poe΄ me (영상시)   넷째, 추상화 기법: 몽타주, 모자이크, 추상화 겹쳐 그리기(색채 이미지)   다섯째, 환타지   여섯째,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동시성)     그러나 본 장에서는 지면관계상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모두 논의할 수 없음이 유감이다. 위의 하이퍼시 성립조건들은 다음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본 장에서 필자는 하이퍼시의 시창작 기법으로 미술의 회화기법 중 추상화 기법을 새로운 하이퍼시 시창작 기법으로 도입하였다. 아래 7가지 기법은 하이퍼시 시창작론으로 필자가 최초 주장한 내용이다. 으로 분류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하이퍼시는 거부와 부정을 하면서도 현재 문단의 흥미를 자극하는 관심주제가 되었다. 시인과 평론가는 하이퍼시가 기존의 시와 어떤 변별력을 갖는지 증명해보이라고 한다. 새로운 실험시의 존재증명을 위하여, 필자는 하이퍼시를 쓰면서, 새로운 현대시의 패러다임인 하이퍼시를 연구하고 있다. 필자는 2004년에 「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를 발표하면서부터 하이퍼시를 10년 이상 써 왔다. 그러나 당시는 문단의 칭찬과 외면, 반격을 받으면서 고군분투하였다. 그 당시에는 하이퍼시라는 말이 없어서,“특이한 시를 쓰는 이선 시인을 소개합니다”라는 멘트를 들었다. 필자는 하이퍼시 시창작론을 경험적으로 체득하며  이론이 있기도 전에 하이퍼시를 쓴 것이다. 문덕수는 필자의 첫 퍼포먼스 시집, 『빨간 손바닥의자』서문 평론에서 “이선은 타고난 하이퍼 시인이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필자의「회화 기법을 중심으로」한 하이퍼시 시창작론은 필자의 실험적 시 쓰기 방법론으로 이미 써 왔던 시창작 기법이다. 미술의 회화기법 중 추상화 기법을 이미 필자의 시에 도입하여 왔던 것이다. 새로운 방법론의 실험은 필자의 시창작의 목표며 과정이다.     ‘어떤 시가 과연 하이퍼시인가?’   시인, 평론가, 독자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필자는 아래 예시된 시 작품 을 분석하여 하이퍼시의 시창작 방법론을 역으로 추론하고자 한다. 어떤 요소들이 하이퍼시를 구성하는 조건인지 밝혀내어 새로운 하이퍼시 시창작 기법을 정립하고자 한다. 하이퍼시와 아날로그 시의 차별화된 시창작 기법을 밝혀서 분류의 기점을 세우려는 것이다. 본 연구가 사람들의“도대체 하이퍼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객관성을 가진 구체적인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정보화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매일 인터넷에는 새로운 소식이 전개되고 있다. 인터넷 기능은 조합과 결합의 연결기능을 갖고 있다. 하이퍼시는 디지털시계, 디지털 계산기, 디지털 사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디지털은 컴퓨터 시스템을 적용하여 연속적이며 분절적인 오차가 없는 정확한 시스템이다. 디지털은 무한 반복적이며 합성과 재결합이 가능하다. 자기의 기본적인 본질을 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시스템과 만나 새로운 합성구성, 새로운 시스템으로 탄생한다. 반면 아날로그는 연속적이지만 조금씩 오차가 난다. 아날로그가 직선이라면 디지털은 점선이다. 또한 모자이크다.   디지털 그림은 점묘화 기법으로 여러 스타일로 합성되기도 하고 형태를 아주 바꾸기도 하고, 다른 이질적인 그림이 들어와 덮어버리기도 하면서‘움직이는 그림’을 그린다. 네모 박스 안에서 물고기가 모였다가 흩어지고, 물풀이 돋아나 바람에 흔들린다. 그 물풀 사이로 무수히 많은 고기 떼가 지나간다. 빠르게 화면이 바뀌면서 새로운 그림들이 나타난다. 디지털 그림의 중요한 포인트는 화면이 빠르고 운동감 있게 움직이며, 장면이 계속 전환되며, 사물도 임의로 바꿀 수 있는 편집기능이 있다. 즉 고정적 정물화가 아니다. 움직이며 변화하는 그림을 무한정 반복 감상할 수 있는‘움직이는 그림’이다.         아날로그 시를 지향하여 새로운 감각의 젊은 시, 곧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의 감각도 디지털 그림과 다르지 않다. 그 화면이 빠르게 전개되고 장면 전환이 빠르다. 아날로그 시가 검정과 흰색. 빨강, 파랑색으로 구성된‘보여주기’위주의 정지된 단일구성의 시라면 하이퍼시는‘다초점’과‘다시점’으로 복합적 구조를 갖는다. 여러 방향의 상상력에 움직임을 가미하여‘상상력의 이동’을 한다. 디지털 시는 한 마디로‘움직이는 그림’, 또는‘움직이는 영상’이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이나 미술의 표현기법처럼 시인의‘상상력의 이동’이 생각지도 않았던 기하학 무늬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의미한‘단어던지기’나‘언어충돌‘로 우연적 미술기법처럼 하이퍼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거리가 먼‘단어’의‘결합’과‘분리’가 만든‘모자이크 이미지’가 하이퍼시에‘낯설게하기’를 실현한다. 또한 사물을 각각 다른 연에 임의적으로 배치하여‘병렬배치’된 사물들이 서로 다른 질서와 의미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다른 의미와 세계로 확산된 무의미하고 낯선 사물들은 서로 다른 상황을 보여준다. 각각 분리된 이야기들의 합성과 결합이다. 하나를 빼도 더해도 내용은 연결된다. 의미에 구애받지 않는다. 한 폭의 단절된‘추상화’가 그려진다. 의도성을 가지고 쓴 의미추구의‘아날로그 시’보다 새로운 감각의 하이퍼시 작품이  더 감각적이고 선명하다.     하이퍼시는 전자제품의‘디지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새로운 감각’이다. 새로운 감각의 시는‘시스템의 혁명’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기법의 실험을 통하여 보다 새로운‘무엇’을 추구한다.    아날로그 시가‘보여주기’의 평면적인 그림이라면, 하이퍼시는‘움직이는 그림’으로 입체적이며 운동감이 있는 그림이다.‘움직이는 그림’은 정지된 그림이 아니다. 시간 이동과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상상력의 이동’을 하여 새로운 공감각적 하이퍼시로 탄생된다. 하이퍼시를 으로 정의한 것은 필자가 김규화의 시 평론에서 처음 주장한 하이퍼시 이론이다.   공간이동은 그림의 내용인 화면이 변화하며 순간이동한다. 합성사진처럼 합성과 분리, 삽입이 가능하다. 즉‘시간ㅡ공간ㅡ상상력의 이동’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시의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디자인은 새로운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새로운 시창작 기법의 주요 이슈다. 새로운 구조, 새로운 의미, 새로운 상상력, 즉 시에서의 새로움은 새로운 기법이다. 하이퍼시는 내용 중심의 시가 아니다. 하이퍼시는 상황 중심의 시다.      본 장에서는 예시된 하이퍼시 작품에서 하이퍼시의 회화적 요소 중, 추상화 기법을 집중적으로 추출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하이퍼시의 내용과 형식, 구조와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1) 정물화 기법ㅡ ‘탈관념’      하이퍼시의 내용, 즉 의미의 영역을 먼저 살펴보자. 하이퍼시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탈관념이다. 하이퍼시는 아날로그 시가 추구하던 의미영역의 관념을 배제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진찍기’를 하여 ‘보여주기’하고자 한다. 정물화 같다. 영화의‘컷’의 기능이다. 정지된 화면이다. 시인의 의식이나 명령, 유인, 강요를 배재하고 객관적‘정황’을‘보여주기’한다.‘시적 거리’가 먼 객관화된 사물 시가 탈관념 시에 속한다. 물론 무의미 단어들의 연합된‘언농’도 포함한다. 탈관념 시는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독자에게 관찰하도록 한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감상하게 한다. 시는 시로서 현존할 뿐, 그냥 작품으로‘놓아둔다’. 아래 문덕수의 하이퍼시를 읽어보자.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   유리컵 세 개.   횅하니 열린 문으로는   바람처럼 들이닥칠 듯이 차들이   힐끗힐끗 지나간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 있었다.   열린 문으로는   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그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金箔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성냥갑이 앉아 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    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ㅡ문덕수,「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전문     문덕수의「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은 철저히 감정을 배제한‘사물 시’다. 한 공간에 존재하는 사물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존재하는 것들이다. 작가는 자기의 감정을 담지 않고 냉정하게 ‘정물화’를 그리듯 탁자 주변의 상황을 나열한다. 그림처럼 보여준다. 화면에 관념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건조하고 딱딱한 사물들의‘정물화’는 무념무상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이발소 그림처럼 무심히 스쳐 지나칠 장면이다. 위의 정물화가 시적 미의식을 갖는 것은 1연 1행의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 유리컵 세 개.’부분이다. 빨간 유리컵은 사실적 표현이지만 ‘저녁놀이 반쯤 담긴 유리컵’은 시적 이미지다. 1행의 감각적 서정 이미지는, 하이퍼시의 단점인 건조함을 극복하였다. 문덕수는 시의 문제점 극복은 시인의 역량의 문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위의 시가 시적 긴장감을 가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사물에 ‘의식’을 넣었기 때문이다. 차들이‘힐끗힐끗’지나가고, 신사의 등이 유리컵을‘노려보고’라이터가‘발딱발딱’숨을 쉰다. 건조한 하이퍼시에‘의미화’영역을 더한 것이다. 시의 백미다. 무념무상의 사물에‘의식을 넣어’, ‘사물의 감정’을‘의인화’하였다. 정지된‘정물화’는 폭풍전야의 고요와 같은 긴장된 정적의 순간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긴장감이 시에 감돈다.    ‘사나이의 등’이‘노려보고’있는‘세 유리컵’은 세 사람의 상대방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 독자는 순간적인 장면에 당혹스럽다. 이혼서류를 찍기 직전의 풍경일까?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합석했을 수도 있다. 어린 딸아이가 주스를 마시다 엎지를 수도 있다. 아니면?, 마약 흥정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배반의 현장일까? 독자는 각자 체험을 바탕으로 각인된 무의식의 세계와 연상작용하여 상황을 파악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사물 하이퍼시는 작가의 지시나 의도성을 배제하였으나 위기상황을 유발시킬 수 있다. 작가의 관념을 집어넣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참여공간을 넓힌다. 독자에게 상상력의 확장된 공간을 부여한다.    문덕수는 최소한의 사물과 최소한의 동사와 부사만을 사용했다.‘힐끗힐끗’이나 ‘발딱발딱’같은 부사어와‘노려본다’는 최소한의 동사를 사용하여 현장감과 긴장감을 주었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시에 직접적이고 감각적인‘느낌’을 부여한다.「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은 냉정하게 최소한의 요소만 조건적으로‘보여주기’한 하이퍼시의‘정물화’기법의 시다.    또한 위의 시는 퍼포먼스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이퍼시의 서사적 기능이다. 장면 장면의 배경에는 극적인 요소가 있다. 어떤 사건이‘침묵하는 사물’들의 배후에 음모처럼 숨어 있다. 최소한의 상황제시를 하면서도 시적 긴장감을 갖도록 배치한 것은 작가의 역량이다. 작가의 숨은 의도는 한껏, 독자의 호기심을 부추겨놓고는 짐짓‘시침떼기’를 한다.    문덕수는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에서 자신의 을 증명하고자 한다. 탈관념의 무의미 시가 관념의 서정시보다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냉정한 사물의 관점과 시점으로 건조한 시를 쓰고자 한다. 독자의 상상력이 그 모든 상황을 순간 포착하게 하는 하이퍼시 창작 기법이다. 시는 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시를 읽으면서‘상상력의 순간이동’을 하여 시를 해석한다. 설명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시에 암묵적 질서가 부여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문덕수의‘하이퍼시’는 새로운 무의미 실험시의 모델이다.   위의 시는‘디지털 시는 탈관념의 시‘라고 선행 주장한 오남구의 디지털 시론에 당위성을 부여한 시다.        2) 겹쳐 그리기 기법ㅡ ‘다시점’‘다초점’     오남구는 염사와 접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디지털 시를 정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수학적 공식과 시론은 많은 사람들이 해독하지 못하고 어려워한다. 필자는 염사나 접사라는 추상적이고 심리적 용어를 피하고자 한다. 심상운의 다선구조와 오남구의 염사와 접사와는 달리 필자는‘겹쳐 그리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하이퍼시의‘겹쳐 그리기’기법은‘미술 구성’에 가까운 시창작 기법이다. 여러 개의 선과 면을 겹쳐서 새로운 구성을‘보여주기’하는 방법이다. 여러 선이 될 수도 있고, 여러 면이 될 수도 있는‘겹쳐 그리기’는 심상운의‘다선구조론’과는 다른 개념이다. 심상운의 ‘다선구조론’은 오히려‘옴니버스 형식’에 가깝다.  '겹쳐 그리기’는‘외면의 겹쳐 그리기’와‘내면의 겹쳐 그리기’가 있다. 외면의‘겹쳐 그리기’는 피카소의 처럼 앞, 뒤, 옆, 위, 아래, 여러 방향으로 관찰하여 한 화폭 위에 펼쳐 놓은 그림이다. 또한 내면을 여러 방향에서 여러 각도로 관찰하고 직관하여 한 화면 위에 형상화하여 그려내는 것이‘겹쳐 그리기 기법’의 시 창작 기법이다. 투시도를 여러 개 겹쳐 놓은 것과 같은 시창작 방법론이다.   피카소는‘다초점, 다시점’의 그림을 그렸다.‘다른 방향에서 여러 개의 눈으로 바라보기’이다. 단순히‘사실 대로 보여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하여 재창조한 보여주기 방법이다.‘투시도’라고 보면 된다. 여러 각도에서 투시한 그림이다. 찍는 각도와 방향, 위치에 따라서 피사체가 달라진다. 시에서 비유와, 비유의 비유와 같은 개념이다. 디지털 시는 한 방향에서 본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구조의 그림이다.     한 단계 더 심연으로 느낀 직관적‘무엇’이다. 그 개념인‘무엇’은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방법(기법)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아날로그 시가‘대상’을 바라보고 그렸다면, 하이퍼시는 대상의 DNA와 본질을 직관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본질은 거짓이 없다. 본성과 본질의 진정성을‘투시’하한다. 필자는 하이퍼시를‘여러 겹의 투시도’라고 명명한다.      아래 오남구의 시「부드러움의 단상」을 읽어보자.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산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로운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ㅡ오남구,「부드러움의 단상」전문     오남구의 하이퍼시는‘신호등이 켜진’거리에서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비’를 직관한다. 아날로그 시에서‘비’는‘슬픔’과‘이별’의 이미지와 관념의 동의어와 상징어였다. 그러나 오남구의‘비’는 군더더기 없이, 직관적이다.‘보여지는 것’그 너머 존재하는 비의 속성을 내면의 눈으로 투시한다. 그것도 여러 방향에서 관찰한 비다. 내면의 눈으로 투시한 비다. 피부와 촉각, 감각으로 느껴 접촉한 비다. 비는 여러 겹의‘겹쳐 그리기 기법’으로 그린 그림 처럼 겹쳐져 내린다. 허공에 쌓여 내리는 비다.      팔딱팔딱 숨을 쉬는 비, 단단한 비, 날카로운 날을 세운 비, 수직으로 솟는 비, 수평으로 퍼지는 비, 팔딱팔딱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지는 비, 시인은 비를 직관적으로 여러 방향에서 본다. 직관의 날카로움은 사물성의 비가 운동감을 가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이퍼시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의 운동성이다. 아날로그 시의 그림이 정지된 ‘정물화’라면 하이퍼시의 그림은‘움직이는 정물화’라고 할 수 있다. 하이퍼시는 지금까지 흔히 보던 정지되고 일상적인 그림이 아니다. 움직임이 있는 특별한 그림이다. 사물의 운동감은 시에 감각적 새로움을 제공한다. 오남구의 「부드러움의 단상」은 사물을 직관하여 투시한다. 또한 사물에 운동감을 주어 감각의 새로움을 창조하여 하이퍼시의 새로움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겹쳐 그리기 기법’의 또 다른 예를 소개한다. 위상진의 시 「사진촬영금지 구역」1연을 읽어보자.     마그리트 그림 속, 눈 하나가 방에 가득 차있다    어둠의 속눈썹을 따라 들어가면    나방처럼 날아다니는 불빛,     흰 가루약처럼 내 얼굴에 쏟아진다     위의 시도‘겹쳐 그리기 기법’의 시다. 빛이 얼굴에 쏟아진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단계의 층위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속눈썹 위에 여러 개의 성냥개비를 올려놓은 것을 상상해 보라. 몇 겹으로‘겹쳐 그린 그림’이 보일 것이다.'겹쳐서 그리기ㅡ다시점ㅡ다초점'의 하이퍼시다.    위의 시는‘그림ㅡ눈ㅡ속눈썹ㅡ나방ㅡ불빛ㅡ흰가루 약ㅡ내 얼굴’까지 여러 개의 층위를 거쳐 도달하도록 한다. 단일구성의 단순함을 극복하고 복합적 구조를 갖는다. 시가 감각적인 구성기법의 하이퍼시 그림이 된다.    하이퍼시는 사물성에 기초를 두고 시를 써야 한다. 관념에 층위를 여러 개 두면 개념이 불분명한 넋두리 시가 된다. 객관화가 되지 않은 대부분의 서정시들은 관념의 층위를 여러 개 겹친 시다. 또한‘마그리트 그림ㅡ> 눈ㅡ> 어둠의 속눈썹ㅡ> 나방처럼 날아다니는 불빛ㅡ> 흰 가루약ㅡ> 내 얼굴’까지 ‘화살표’를 따라 층위적으로 공간이동하고 있다.‘내 얼굴에 비치는 불빛'의 한 가지 사실을 점층적으로‘겹쳐 그리기’하고 있다. 단어와 단어에 수식어를 덧대기 하고 있다.   위의 시가 ‘겹쳐 그리기’를 하며 여러 개의 층위를 거쳤지만 객관화를 획득한 것은 사물성의 힘이다. 사물성은 관념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시키는 힘이 있다. 시를 쓸 때 관념에 옷을 입혀서 사물화하는 것은 객관화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위상진의 시는 하이퍼시의 현대적 감각성을 실현하였다.‘흰 가루약’은 현대인의 아픈 뇌를 연상시키는 단어다. 층위적 복잡성은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을 연상시킨다.‘겹쳐 그리기 기법’은 새로운 구성의 하이퍼시 창작 기법이다.      다음 송시월의「물웅덩이」하이퍼시를 읽어보자.     비 그친 후, 물웅덩이   붉은 하늘 한 조각   하늘 속의 물구나무 선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와   육교 한 토막,   그 틈새에 납작이 끼인 나   한 조각   언뜻 멧새 한 마리 휙 일렁이며 간다       ― 송시월, 「물웅덩이」전문               이 시도‘물웅덩이’에 비친 그림자를‘겹쳐 그리기’하고 있다. 물웅덩이 속에는 여러 그림자들이‘겹쳐 그려져’있다.‘붉은 하늘 한 조각ㅡ거꾸로 처박힌 빌딩ㅡ육교 한 토막ㅡ틈새에 끼인 나ㅡ멧새 한 마리’가 ‘겹쳐 그려져’있다. 일상적인 사물의 긍정적인 풍경화가 아니다. 조각나고, 부서지고, 거꾸로 처박힌, 모서리진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 부조리한 사물들‘틈새’에 시적 화자인 내가 끼어 힘들게 살고 있다. 극한 현실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압박 속에 고뇌하는 존재론적인‘나'가 있다.    작가가 사물 속에 뛰어들어 함께 만든‘정물화’다. 정지된 부조화의 그림 속에서‘멧새 한 마리 휙 일렁이며 간다’. 날아가는 새를 정물화 속에 집어넣어, 그림에 운동감을 준다. 그림 속에‘새를 날림’으로써 정물화는 생동감과 현장감을 갖는다. 시가 확장된다. 따라서 이 시는 정물적인 그림에 운동감을 줌으로써 새로운 하이퍼시의 생동감을 갖는다.‘겹쳐 그리기’를 하여 여러 정황을 동시에‘보여주기’하고 있다.    물웅덩이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그런데 거기 가 끼어 있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지만, 웅덩이에 비친 그림자를 확장하여‘상상력을 이동’하고 있다.‘상상력의 이동’을 한‘겹쳐 그리기’하이퍼시 창작 기법이다.       3) 움직이는 그림 기법ㅡ ‘상상력의 이동’     아날로그 시에서도‘이미지’와‘시적 상상력’은 시의 중요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더구나 하이퍼시의‘상상력’의 부재는 하이퍼시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김규화의「한강을 읽다」는‘공간이동ㅡ시간이동ㅡ상상력의 이동’이라는 복합적 요소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어머니’라는 보통명사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그림으로 다시 그렸다. 아래 김규화의 「한강을 읽다」을 읽어보자.        이젤을 거꾸로   일요일의 한강이 그림을 그린다   부우우 몰려와 늘어선 물가의 아파트군   단숨에 세우고   짐짓 흔들어본다   하늘을 제 가슴 깊숙이 클릭하고   그 위에 구름 몇 송이 흘러내리는   이내 지워버린다   아파트를 흑수정으로 꾸며놓고   올랑촐랑 물살 속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구부정한 어머니   뒤 따르는 나를 덥석 안는다   돛단배 하나 지나가면서   한강은 우리를 지운다   피사로의「수문」을 물새가 가로 지른다        ― 김규화,「한강을 읽다」전문    「한강을 읽다」는 감정을 배재한 냉정한 관찰자의 시점을 끝까지 흐트러뜨리지 않고, 보여지는 것을 객관적인 눈으로 그린 그림이다. 감정을 통제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시가 힘을 갖는다. ‘그린다ㅡ흔들어본다ㅡ지워버린다ㅡ 지나간다ㅡ지운다ㅡ가로 지른다‘는 최소한의 동사가 장면전환 역할을 한다.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지우개처럼‘물살ㅡ돛단배ㅡ새’가 화면을 지운다.‘이젤을 거꾸로 세워’그린 그림은 몇 번이고 장면이 바뀌며 ‘공간이동ㅡ시간이동ㅡ상상력의 이동’이 진행된다. 정지된‘정물화’가 운동감을 가진‘움직이는 그림’이 된다.   김규화의 시는 사물, 즉 피사체의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한다. 많은 아날로그의 시들이 시인의 관점에서 시에 접근했다면, 이 시는 역발상으로 사물의 관점에서 시를 쓴다. ‘한강’이‘거꾸로 이젤’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 순행적인 시간의 시점을 거꾸로 돌려‘반시계 방향’으로 진입하며 시에 긴장감을 준다.   ‘이젤을 거꾸로/ 일요일의 한강이 그림을 그린다’1연 1행은 이 시를 시간, 공간, 지각을 모두 열고 심미적으로 인도하는 구실을 하는 서정적 묘사다.‘시간ㅡ> 공간ㅡ> 지각ㅡ> 다초점ㅡ> 다시점’의 시적 구조를 이동시킨다. 직선, 평면 구조의 시를 입체 하이퍼시가 되게 하는 요건이다.    이 시는 정지된 그림이 아니다. 여러 부분에서 운동감을 준다. 한강변에 서 있는 부동성의‘아파트’라는 사물을‘부우우 몰려와 늘어선’이라는 운동성을 부여하여 시는 생동감을 갖게 된다. 움직임을 갖는다.‘무슨 구경거리가 있나?’독자는 궁금하여 몸을 기웃 기울이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      ‘한강’은‘단숨에 세우고/ 짐짓 흔들어본다’물살이‘출렁’하고 움직이는 모양이 시각적으로 그려진다. 여러 번 물결이‘출렁거림’으로써 이 시는 딱딱한 획일성과 고정성에서 벗어난다. 정서환기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하늘을 제 가슴 깊숙이 클릭하고/ 그 위에 구름 몇 송이 흘러내리는’부분은 수채화의 여백의 공간처럼 시적 여운을 남긴다.‘하늘’을‘가슴에 클릭’하는 새로움이 감각적이다.‘흘러내리는’이라는 미완의 동사, 어미변화가 수채화를 그릴 때의 붓놀림처럼 여유로 흐른다.  시인의 무의식 속에서 그렸다가‘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워도’ 여러 번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어머니’가 뿌옇게 아련한 향수 속으로 끌려들게 한다.    ‘올랑촐랑 물살 속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구부정한 어머니’부분에서 사용한‘올랑촐랑’의태어가 큰 역할을 한다.‘올랑촐랑’은 살가운 모녀의 대화처럼 작고 정다운 의태어다.‘창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구부정한 어머니’라는 표현은 시적 미의식을 고조시킨다. 늙은 한국의 어머니상이 이미지로 그려진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창문을 열고’독자들의 무의식을 깨운다.    이 시는 사실적인 표현과 정서적인 표현이 아우러져 심상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돛단배 하나 지나가면서/ 한강은 우리를 지운다’부분은 붓으로 물을 찍어 그림을 그리듯 감각적인 표현이다. 또한 정지된 화면을 바꾸어‘장면전환’을 한다.    ‘피사로의 「수문」을 물새가 가로 지른다’는 부분에서‘가로 지른다’는 동사를 눈여겨보자. 만약‘날아간다’로 하면 어떤 시적 이미지가 될까? 모두 떠나버린 공허와 고독한 이미지가 파생될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가 강조되며 냉정한 현실이 부각된다. 그러나‘가로 지른다’는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미련과 아쉬움의 이미지다.‘눈가에 어머니가 어른거리는’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그리움의 정서를 남긴다.     ‘물새가 가로 지르며‘ 정지된 그림이 또 한 번 출렁,‘움직이는 그림’이 된다. 감각적 운동감을 갖는다.    김규화의「한강을 읽다」는 아날로그 시가 아닌 파스텔톤의‘움직이는 하이퍼시 풍경화’다. 여러 번 출렁거림을 주어‘정물화’에‘움직임’을 주었다. ‘시간 이동ㅡ> 공간 이동ㅡ> 상상력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사물을 이동시켜 붓으로 지우듯 현대적 하이퍼시 기법으로 장면전환을 하였다.「한강을 읽다」가 현장감과 운동감, 정서환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이 시가 고정된‘정물화’가 아닌‘움직이는 정물화’하이퍼시기 때문이다.         4) 옴니버스 기법       심상운의 대부분의 시들은 옴니버스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맨살에 링크하기」는 아날로그 시와 하이퍼시의 분기점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단어와 제목, 내용에서 신선한 하이퍼시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맨살에 링크하기」는 제목이 현대적이며 감각적이다. 또한‘맨살’의 선정적 이미지와‘링크하기’의 컴퓨터 용어가 낯설게 맞물려 신선한 현대적 감각을 준다. 심상운의 다음 시를 읽어보자.   한 청년이 공원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툭하고 딴다. 그 속에 꽁치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유통기한이 찍힌 주검이 눈부신 5월의 햇살 속에서 검푸른 살을 드러낸다. 눈감고 있던 맨살이 꿈틀거린다.   물에 젖은 살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비누의 살을 만진다. 비누는 아무에게나 포동포동한 맨살의 향기를 풍기며 몸뚱일 비틀다가도 가끔 미끄러져나와 세면대 바닥에서 통통거린다.   누가 푸른 바다를 유리병 속에 넣고 어항이라고 했을까? 열대어 두 마리 맨살 번득이며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오전 11시 20분 한 쌍의 남녀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어깨를 감싸고 있다.   (                                                               )                                                                 * ( ) 안은 당신의 상상이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링크해서 펼쳐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반짝이며 나타날 것입니다.        ―심상운,「맨살에 링크하기」전문         위의 시는‘통조림ㅡ비누ㅡ어항’세 가지 사물을 각 연에 배치한 옴니버스 형식의 시다. 또한 4연은 긴 ( )를 제시하여 독자에게 시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시인은 새로운 시 형식과 디자인을 실험하고 있다.   1연의‘통조림 속의 맨살의 꽁치의 검푸른 살’과  2연의‘포동포동한 맨살의 향기를 풍기는 비누’와 3연의‘맨살의 열대어 두 마리’는 감각적이며 선정적인 이미지를 풍긴다.‘맨살’이라는 공통된 이미지 때문이다.    4연의 긴 ( )는 새로운 시도로써 독자를 시 쓰기에 초대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여기 넣을까? 상상력을 펼치게 된다. 독자와 시인이 50%씩 시를 쓴다. 필자도 ‘아가씨 입술과 이빨 사이에 끼어서 신음하는 빨간 사과의 하얀 맨살’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써 본다. 감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농염한 문장이 만들어질 것 같다.     심상운은 새로운 구성과 디자인의 시 형식을 차용하여 하이퍼시의 요소를 여러 곳에 적시하고 있다. 각각의 옴니버스적인 다른 이야기는, 한편의 각각 다른 시로 만들어도 좋을 소재다.    1연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한 청년이 공원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툭하고 딴다.’이 부분에서 새로움은 없다. 사실만 적었다. 냉정한 관찰자 시점이다. 그러나 다음 시행 ‘그 속에 꽁치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부분에서‘웅크리고 있는’ 사물에 조건적으로 의식을 집어넣었다.‘통조림 속의 꽁치’에게 시인은 어떤 역할을 부여하려 한다.‘유통기한이 찍힌 주검’은 정확하게 죽은 날짜를 명시하고 있다.    ‘눈부신 5월의 햇살 속에서 검푸른 살을 드러낸다.’부분에서‘어떤 주검’이 선명하게 시인의 무의식을 잡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그 주검은 생생하고 감각적이다. 마지막 부분 ‘눈감고 있던 맨살이 꿈틀거린다.’에서 시인이 나타내려고 하는 의식이 표출된다.‘눈감고 있던 꽁치 맨살의 꿈틀거림’은 시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주검’이 의식 표면으로 튀어나온 순간이다.‘꽁치’라는 대상을 통하여 시인의 무의식은‘어떤 주검’을 의식화하고 표출시킨 것이다. 간단한 몇 줄의 시가 시적 긴장감을 가지는 것은‘주검’은 삶과 마찬가지로 생의 주요한 중심 단어이기 때문이다. 종결이면서 시작이다. 누구에게나 아픈‘주검’에 얽힌 상처가 있다.‘꽁치의 주검’은 승화된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맨살의 주검이다.   2연의‘물에 젖은 살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비누의 살을 만진다.’는 부분을 살펴보자. 사물인 비누가 대상이지만, 애인의‘맨살’을 만지는 것 같은 감각적 쾌락을 느낀다. 다음 행의‘비누는 아무에게나 포동포동한 맨살의 향기를 풍기며 몸뚱일 비틀다가도 가끔 미끄러져나와 세면대 바닥에서 통통거린다.’는 부분에서는‘몸을 줄 듯 줄 듯’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뒤로 빼버리는 여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시인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또한‘비누의 포동포동한 맨살’과‘미끄러운 여자의 맨살’의 이미지가 겹쳐 연상작용을 한다. 독자에게 관능적 상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3연의 1행‘누가 푸른 바다를 유리병 속에 넣고 어항이라고 했을까?’화두를선문답처럼 툭, 던진다. 독자에게 ‘어??“ 정서적 환기를 시킨다. 긴장감은 다음 시행에 집중하게 한다. 마지막 행‘열대어 두 마리 맨살 번득이며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오전 11시 20분 한 쌍의 남녀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어깨를 감싸고 있다.’부분은 '맨살의 열대어 두 마리’와‘한 쌍의 남녀’를 병치시켜 묘한 관능적 섹슈얼리즘을 풍긴다.‘맨살의 열대어 두 마리’와‘한 쌍의 남녀’가 간질간질한 욕망을 부추긴다.    「맨살에 링크하기」는 시의 내용과 제목, 디자인에서 하이퍼시의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각각 다른 내용을 담은 연들이 연상작용을 부추겨 시적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이 시는 하이퍼 사물 시로서 내용과 형식에 하이퍼시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5) 기호 시(詩) 기법     소쉬르는 단어를 기표(記表:signifiant)와 기의(記意:signifié)가 결합하여 의미작용(signification)을 하는 기호라고 정의하였다. 기표는 사물의 본질이 아닌 형식이다. 가상의 무의미한 문자인 기호는 송신자의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수신자의 수용 태도에 따라서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기표란 단일 의미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다의적이고 상징적 의미작용을 하기도 한다. 자연과 사물에 인간이 이름을 붙이고 감정을 넣었다. 원래의 자연과 사물의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보는 자의 우격다짐식 강요된 감정이다.   기호 시는 소쉬르의 기호학을 바탕으로 문자를 원래의 무의미한 원상태로 돌려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기호시론은 무의미 시론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하이퍼 시론’ 에서 추구하는 ‘무의미 시’를 필자는 기호에서 찾았다. 아래 시는 필자의 졸시 「( )와 ( ) 사이에」하이퍼시 다.     너와 나, 사이, 강물   ( ) 안에서    넘치지도 않고 유유히 흐른다     하늘과 땅의 큰 괄호{ } 사이로   빌딩이 자란다   가로수, 긴 괄호[ ] 사이로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 )를 치고 ( )를 치고 ( )를 치고   ( )작은 괄호, ( )큰 괄호 끼리끼리 몰려다니다,   큰 괄호가 작은 괄호를 (((())))먹어버린다     철길을 홀로 걷던, 그 사내   누구의 잃어버린 ( )인가?   쇠파리 몇 마리, 사내 입술에 달라붙어    ( ) 속, 갇힌 말을 열려고 버둥댄다     입맞춤과 포옹은 ( )를 열고 닫는 것   꽃잎 닫혔던 괄호( )가 화르르, 열린다       가로수 귀를 막고   ( )를 치고   위로만 나뭇가지를 뻗어가는데       ― 이선, 「( )와 ( ) 사이에」전문     위의 시는 제목에 ( )를 사용함으로써 디지털적 감각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또한 사물과의 관계성을 ( )라는 미지수로 보았다. 만약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자동차가 달리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지 의문을 가져 보았다. 사물은 이름이 부여되기 전에는 미지수 ( )의 형태를 가졌을 것이다.   ‘하늘과 땅의 큰 괄호{ } 사이에 갇혀서’ 무생물인 빌딩과 생물인 동물과 사람과 나무가 공존한다. 대상인 괄호( )를 열려고 집착하는 관계성에 주목하여 쓴 시다. ( )를 사물이나 관계로 인식하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소통에 장애를 갖는 것은 현대인의 ( ) 의식, 즉 의문과 단정적인 의식 때문이다.   단어와 말을 버리고 세계와 사물을 ( )라고 인식하여 본다. ( )를 의미의 공간으로 해석한 것은 모든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른다는 역설이다. 사물은 그냥 ( )로 존재한다.      4연의‘사내의 주검’에 달라붙어 ( )를 열려고‘버둥대’는‘쇠파리’처럼 의미 없는 행동이다. 누구도 사내의 닫힌 ( )를 열고 말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사내의 생은 ( )로서 존재한다. 모든 관계와 사물을 ( )로 인식한 것은 ( )로 사물화한 것이다. 소쉬르가 주장한‘말’, 즉 언어는 소통에 여러 장애들을 겪는다. 그것은 곧 인간이 의식화된 괄호( )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소통되지 않는 ( )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 ) 기호시를 시도한 것은 무의미 하이퍼시를 기표인 ( )를 시에 도입하여 언어와 사물, 관계의 무의미를 ( )화하여 하이퍼시의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다. 그러나 단어와 문장을 의미적으로 한 것은 여러 개의 의미로 분산되어 해석되는 ( )를 역으로 추적해 본 것이다. 본래의 ( )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단절되고 결합되지 못하는 의미(기의)인‘인간ㅡ빌딩ㅡ꽃ㅡ입맞춤ㅡ포옹ㅡ나무’를 간접적으로 ( )로 표현하였다.      6) 모자이크 기법     하이퍼시는‘단절’과‘결합’이 작게 나누어지는 최소 단위의 조합인‘모자이크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디지털시계는 빨간 불을 반짝이면서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단절’과‘결합’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이퍼시에서도 단절과 결합을 통한‘추상화 미술기법’과 미술‘구성’과 같은 배열, 즉 몬드리안의 그림이나 샤갈의 그림처럼 시의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이퍼시는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불특정하게 결합하고, 분리된 모자이크 시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언어충돌이 난무한 작품을 찾았으나 완전히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과 투척이 첨예한 감각적 미의식을 가진‘언어 그림’이 시가 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양준호의「비상구」를 골라보았다. 양준호의 시는 의미해석을 하려고 하면 어렵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단절’과 ‘단절’의 절대고독의 이미지 시다. 현대인의 위기와 부조리를‘극한상황’으로 느끼기만 하면 된다. 양준호 시인도 단어의 의미를 분석하여 주기를 바라는‘의미 추구의 시’를 쓰려고 시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양준호의 아래 시를 읽어보자.     바람은 비늘 흔든다 귓속에   파란 새 날아간다   꽃은 피어라 말의 콧등에도   소금은 준비되었을까   뼈들 파도처럼 춤춘다   눈알만 남아 귀만 남은   고무공 뛰어간다        ― 양준호,「비상구」전문     위의 짧은 시를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양준호 시인의 은둔과 고독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단어’를 공기돌을 던지듯 허공중에 흩트려 놓은 것 같다. 그러나‘바람ㅡ비ㅡ파란 새ㅡ꽃ㅡ소금ㅡ뼈ㅡ파도ㅡ눈알만 남은 고무공ㅡ귀만 남은 고무공’은 「비상구」라는 제목과 부조리하게 흩어졌다가도 묘하게 단어들이 결합되어 의미화로 연결된다.    꽉 막힌, 비상구도 없는 곳에서 새처럼 날아보려고 시도하는 시인의 몸부림이 감지된다.‘절대 고독’과‘외로움’이라는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비상구를 잃어버린 현대인. 친구가 없는 현대인. 이기주의 현대인. 단절된 너. 그리고 나.    양준호의 시의 단어들은 결합과 분리로 산화한‘모자이크 이미지’하이퍼시다. 단어들의 모자이크 디자인이 반짝반짝 빛난다. 양준호는 하이퍼시 시론이 정립되기 전에도 이미 1980년대부터 하이퍼시를 써 왔다.     7) 추상화(구성) 기법- 시스템 바꾸기(변화)     시스템의 변화를 하이퍼시에서 시도한다는 것은 형식과 디자인, 기법, 표현기법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포괄한다. 필자의 졸시「귓속말하기」는 하이퍼시 기법의 새로운 시의 형식을 고민하며 의도적으로 쓴 시다. 결국 하이퍼시가 무의미 단어들의 조합이나 연과 연의 단절만 추구한다면 똑같은 이미지와 형식의 시들이 양산될 것이다. 개성을 추구하다 비개성적인 작품들이 만연할 수 있다. 하이퍼시가 이름만 가리면 똑같은 몰개성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이퍼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래 시는 필자의 졸시다. 이 시는 각각의 독립된 다른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병렬배치하였다. 미술의 구성기법인 추상화기법을 하이퍼시에 적용한 시창작 기법이다. 「귓속말하기」부제로 ‘ㅡ때, 장소, 시간, 그리고?’라는 제목을 붙여서 각각의‘현장 상황’을 연상시키고자 하였다. 반복적인‘귓속말로’라는 똑같은 말을 넣어 언어의 디자인을 하였다. 추상화기법의 구성 기법이다. 내용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친 그림으로 디자인하였다.    추상화 기법으로 시의 형식은 ( ) 속에 들어간 ‘귓속말로’가 포인트다. 노랑, 파랑, 빨강, 초록 등 다양한 색깔의 구성 디자인 중,‘귓속말로’는 보라색 포인트와 같은 것이다. 연마다 똑같은‘보라색 포인트’ 말을 넣음으로써, ‘보라색을 주조로 한 그림’을 그렸다. 디자인과 시스템 바꾸기(변화)를 실험적으로 시도한 작품이다.‘추상화 그림’ 기법으로‘몬드리안 무늬’를 기하학적으로 구성한 시다.      개미가 벌에게 엉덩이를 한방 냅다 쏘였어요   이를 악 물고,    입술이 노랗게 물들도록, 호박꽃잎 물어뜯는데    (“꿀맛 좋니?”귓속말로 )     오랫동안 기우뚱한 안방 벽이    너덜너덜 갈라지고 금이 간, 건넌방 벽에게 묻는다   (“나한테 너무 오래 기대고 살지 않았니?” 귓속말로)     숫모기만 보면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애~앵 앵앵, 암모기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끈질긴 구애   여자 뒤통수치기 여왕모기, 그녀   (“질투도 힘이니?” 귓속말로)     초생달이 허공에 밀려   헛바퀴 돌아, 돌아   거꾸로 매달려, 그믐달로 서 있네요   (“하늘이 노랗게 보이니?” 귓속말로)     하이힐 소리 또각또각, 입술 빨간 꽃바람   피사의 탑에 반해서 리포트를 못 썼다나?   빨간 하품이 강의실 앞 붉은 장미가시에 걸렸다가,   억대 소나무에 걸렸다가,    초록잔디밭 위를 떼구르르,     대학정문에 대자보가 걸렸다고요?     보석자랑? 차자랑? 구찌핸드백 자랑? 꽃바람   맨 먼저 대학교단에 선다고?   (“쯧 공부해서 남 주니?” 귓속말로)     나뭇잎은 하늘을 한 입 베어 물고   파랗게 멍든 입술로 벙긋거린다   (“후~우 불어 버릴까?” 귓속말로)      가랑비, 눈썹에 내려앉아 가볍게 소곤댄다    (“슬픔도 키스처럼 부드럽지 않니?” 귓속말로)        ― 이선, 「귓속말하기/ㅡ때, 장소, 시간, 그리고?」전문     프로이드는 시를 사회 부적응자인 시인이 사회와 화합하지 못하고 소외와 고독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작품을, 사회에 부적응자인 독자가 공감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누구나 인생에서‘어느 때ㅡ어느 장소ㅡ어느 시간’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당혹스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억울한데, 차마 반박하지도 못했던 경험. 그 비열한 인간이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경우를 지켜보는 역겨움. 프로이드는 해결되지 못한 상처를 꺼내서 치유하는 과정을 시 창작 과정으로 보았다.   필자의 위의 시는 인간 속에 숨어 있는 비밀스런 추한 속성을‘추상화(구성) 기법’으로 고발한 작품이다. 소통을 위하여 내용은 의미추구를, 디자인은 하이퍼시로 시도하였다. 하이퍼시가 무의미만 추구한다면 역으로 천편일률적인 하류작품이 된다. 개성적인 작품은 새로움을 추구한다.              필자는 위에서 하이퍼시의 개념과 정의,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논의하였다. 하이퍼시의 구성 요소를 미술의 회화 기법을 도입하여, 하이퍼시 추상화 시창작 기법으로 재해석하였다. 하이퍼시의 시창작 기법을 7가지 회화 기법으로 분류하여 심도있게 논의하며‘하이퍼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답을 하였다.     필자는 기존의 문덕수, 심상운, 김규화, 오남구의 하이퍼시 선행 연구 과제를 발전시켜 몇 가지 새로운 하이퍼시 시창작 기법으로 정립해 보았다. 필자가 하이퍼시를 쓰면서 현장에서 체험한 하이퍼시 구조와 시창작론이 후배 시인과 평론가들에게 선행자료로써 하이퍼시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최첨단 시창작 기법인 하이퍼시와 시론은 고착되지 않는다. 필자는 그 기법을 탐구하는 과정에 있으며, 앞으로 실험정신을 가지고 하이퍼시 시창작에 도전할 것이다.  ♧♧
33    내 시의 하이퍼시 구조와 창작기법 /이선 댓글:  조회:269  추천:0  2019-02-04
내 시의 하이퍼시 구조와 창작기법 이 선(시인)     을 요약하면 다음 11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각각 시를 예로 들어서 역으로 하이퍼시 쓰기 방법론을 유추하여 보고자 한다.             1. 사물시- 객관화             이선의 하이퍼시의 특징은 사물시에서 출발한다. 단일구성보다는 복합구성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하이퍼시를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객관화’다. 시적 논리에 맞지 않는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의 시는 ‘사물시’가 대부분이다.   또한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외국어로 번역이 되는 문장이다. 세계인이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그날까지, 필자는 번역할 수 있는 객관화된 문장을 쓸 것이다. 번역이 가능한 문장은 ‘객관화’가 실현된 문장이다.       그 밤, 성경의 를 읽었지   생선 비린내가 베어 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잃어버린 내 청춘, 116페이지 원고를 넘겼지   혁명을 외치는 낡고 더러운 붉은 양탄자 위로   검정 도둑고양이가 먼저 지나갔지   앞집 길고양이와, 내 집 길고양이가   네 팔, 네 다리 서로 껴안고, 한데 엉겨붙어   가파른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지,     붉은 단풍나무 그림자가 누워있는   내 의식의 흐름을 흔드는, 개울물소리   자갈 밟히는, 소리     냇물 속으로 뛰어든 단풍잎들은   계절을 순환하며,   흰돌을 암갈색으로 물들였지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향기가 났지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     ‘서다’라는 이미지를 잡고   치타가 긴 꼬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 밤에   ―「서론」 전문     위의 시「서론」의 제목을 주목하여 보자. ‘서론’은 질문적인 제목이다. ‘서론’이라는 제목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되는 확장형 제목이다. ‘결론’이 안 나도 그만인 질문 같은 제목이다. 제목은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시에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위의 시 1연을 살펴보자. 1연의 중심어는 ‘아가서- 생선 비린내- 다락방- 잃어버린 청춘 116페이지- 혁명- 붉은 양탄자- 검정 도둑고양이’까지 혁명적이고 도발적이다. 전시적 긴장감이 있다. 독자는 반전을 기대하며 다음 연에 집중한다.   2연은 청춘이 ‘의식화’되는 과정을 은유하였다.   3연은 단풍잎이 돌을 의식화하는 과정이다. 연약한 단풍잎도, 자신의 몸을 반복적으로 던짐으로써 단단한 돌을 착색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향기가 났지’(3연 4행) 부분은 감각적이고 예민한 청춘의 순수와 이상주의를 녹여내었다.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3연 5행)는 청춘의 불안정과 애증의 관계를 묘사하였다. 표현주의 문학을 지향하는 하이퍼시의 주요 포인트는 ‘감각적 미의식’을 지닌 문장표현이다.   청춘은 혁명을 갈구한다. ‘서론’이라는 제목은 얼핏 객관화된 문장이 아닌, 미래적이고 허구적인 뉘앙스의 제목이다. 그러나 논문에서 언급되는 ‘서론-본론- 결론’ 중 하나인 그 ‘서론’이 맞다. ‘객관화’된 제목이다. 시에서 웅변하거나 설교하지 말라, 표현하라. 필자의 시 쓰기의 근본원리다. 내용은 진지하고 깊게, 그러나 표현은 감각적이고 유연할 것.                 2. 링크- 각 행과 연의 자립성과 독립성         하이퍼시의 구성요소에서 ‘링크’의 기능은 대단히 중요한 기본요소이다. 필자의 하이퍼시 쓰기에서도 ‘링크’는 거의 모든 시에 사용되고 있다. 링크 기능은 ‘제목- 행- 연’을 연결시키는 구도를 갖는다. 그러나 각 연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다. 필자의 하이퍼시는 어떤 행을 빼거나 더하여도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필자의 시「북극에서 온 편지」를 살펴보자.     “툰드라의 아침밥상은 눈꽃 천지인 걸요…”   북극여우가 긴 꼬리로 허공을 흔들며, 빗줄기의 허리를 자릅니다     번식기 북극곰의 간식을 만들기 위해서   신은 고요라는 이름으로, 흰눈을 빙하 위에 내려놓으십니다   조용히     내 아버지는 툰드라가 되지 못한, 어둠   겨울을 낳다가, 바다로 침몰한 내 어미의 눈빛은   북극성     나는 얼음조각 유리바다에서 표류 중입니다   바다 거품과 “안녕!” 입맞춤을 하기엔 나는 아직 늙지 않았소   ―내 고향 그린란드,     내 털들이 하늘로 곤두섭니다   얼음판을 놓쳐서 -40℃ 얼음바다로 미끄러졌습니다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수컷의 향기를 뽐내며   눈향나무 언덕 향해 달리는, 어린 순록의   맑고 유순한 눈빛을 나도 지닌 적 있는데   (중략)   보름달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까?   얼음을 녹이는 것은, 내 원죄를 지우는 일     나는 퇴화한 꼬리를 치켜세우고, 어둠을 힘껏 문지릅니다   -흰색이거나 얼룩무늬거나     툰드라의 밤이 녹고 있습니다   순록의 뿔에 찔린, 달웅덩이     눈향나무 향기로   추위를 녹이며, 나의 젖은 몸을 말립니다   길은 추울수록, 달빛 투명하고 향기로와서   ―「북극에서 온 편지」1-6연, 8-11행       위의 시 「북극에서 온 편지」의 화자는 ‘북극곰’이다. 위의 시의 각 ‘행’과 ‘연’은 ‘제목’과 ‘링크’된다. 위에 제시한 시에서 7연이 빠졌지만 시의 전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각 행과 연은 제목인 북극에서 온 편지와 연결되지만, 각 행과 연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하이퍼시에서 링크 기능은 가장 기본적인 주요 요소이다. 컴퓨터의 링크 기능과 같다.     3. 리좀- 중첩 이미지, 낯설게하기       필자의 시「소금꽃을 꺾다」는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을 적용한 시 쓰기다. 또한 중첩이미지와 단어충돌, 이질적이고 먼 단어의 합성을 통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행과 행의 낯설게하기,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제목과 내용의 낯설게하기를 통하여 신선한 감각을 주고 있다. 아래 제시한「소금꽃을 꺾다」에서 하이퍼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보자.     모래고양이 발톱과 사막의 낙타 발자국은 푸른색인가요, 신이여   그래, 새끼낙타를 삼켜버린 밤도 푸른색이지   어미낙타 눈동자가 점점 줄무늬하이애나를 닮아가요   괜찮아 곧 나이를 먹을 테니까,   뱀의 푸른 눈이 살아 있어요   그래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는 8천 피트 상공에서도 살아 있더구나   모래고양이가 파 놓은 토굴에 숨어   새끼를 낳는 도마뱀 빨간 엉덩이를 보았지?   오늘을 부정하면서, 벌써 내일을 초대한 거니?   이 거리에서 입양에 대하여 말하는 건 금기어예요   그 아이들은 곧 자기의 성이나 이름을 버리게 될 거다   14세 여중생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이여, 날기를 거부한 새가 새벽 공원에는 많아요   밤새 도둑고양이를 피해 잠을 설쳤나보다   그래 삭제할 게 많은 서울거리는 참 부지런하구나   경계경보를 울릴까요, 지금?   땅! 총을 쏘기 전에 선을 넘으면 아웃이라고   ―「소금꽃을 꺾다」 전문     위의 시의 배경은 현재와 과거, 미래가 한 공간 안에서 거미줄처럼 합성되어 있다.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을 장치한 것이다. ‘그물망’처럼 서로 엇갈려 엉기며, 상황극처럼 각각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한 공간에 마구 던져 재구성하고 있다. 필자의 하이퍼시 쓰기는 상투어와 일상적 문장을 거부한다.   위의 시는 제목에서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소금’은 잎도 줄기도 없는 몸통만 있는 사물이다. ‘소금’과 ‘꽃’을 합성한 ‘소금꽃’도 꽃만 있지 줄기나 뿌리가 없다. 꽃받침도 없다. ‘소금꽃을 꺾다’라고 행위를 강조한 제목에 주목하여 보자. 제목이 아이러닉하며 역설적이다. 소금꽃은 꺾을 ‘무엇’이 없다. 그 ‘무엇’이라는 현대문명의 부조리한 현실을 상황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작품이다.   위의 시는 ‘신’과 ‘인간’의 ‘질문과 대답’ 형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대화는 혼돈스럽고 탁구공을 치듯이, ‘핑’하고 질문하면 ‘퐁’하고 낯선 대답을 한다. 질문과 대답이 모두 엉뚱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멀리 날아간다.   ‘소금꽃을 꺾는 행위’로 표현되는 부조리한 현재는 다음과 같이 시의 중심어로 표현되고 있다. 시의 중심어는 ‘사막의 낙타- 파푸아뉴기니 상공의 뱀- 모래고양이-도마뱀-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은 여중생-도둑고양이와 공원’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적으로 이동한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이다. 필자는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라고 여러 평론에서 명명하였다.           4. 환타지 영상기법           필자의 많은 시에서 ‘환타지 영상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이사도라 덩컨」「까미유 끌로델」「셀룰러 메모리」「빨간 손바닥의자」등의 시에서 보여주는 환타지 영상기법은 극적 긴장감을 주며 드라마틱하고 동적이다. 아래 시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TV풍경」을 살펴보자.     “당신의 연애는 언제부터 해빙을 시작한 것일까요?”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나는 그녀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파랑색 벽을 칠한다   그녀 눈빛은, 비의 얼룩 같은 것이어서     네모난 탁자 위에선 레몬차 식어가고     그녀의 툰드라 언덕에, 나는 야생 히아신스 꽃밭 향기를 내려놓는다   두꺼운 스웨터처럼, 내 몸은 그녀의 향기로 체온이 급상승한다   여자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허공을 흔들며, 어둠을 자른다     흰 망사장갑은, 여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북극곰 발톱처럼 뾰족한 그녀 손가락이, 움켜 쥔 공허     해빙기, 그녀 심장은 더 이상 얼지 않아서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노을빛 구름을 뱉어내는   북극양귀비꽃 언덕을 지향하고 있다     -40°C 빙하기 옷을 벗고   다시 사랑을 시작할까? 예감하는 저녁에     백야의 푸른 들판을 건너가는 순록 떼,   툰드라가 녹고 있다     그녀의 눈꼬리가 내 눈을 어루만진다     “빙하는, 빗방울의 힘을 버틸 수 있을까요?”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 TV풍경」 전문       위의 시는 몽환적 환타지를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 우수에 잠긴 ‘그녀’와 해빙기의 ‘북극 툰드라’의 모습이 오버랩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낯선 ‘그녀’는 시의 환타지다. 시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타지한 ‘그녀’다.   사랑의 갈등을 겪는 한 여자인 ‘그녀’와 해빙기를 맞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툰드라의 ‘북극양귀비꽃’의 극한상황을 그녀와 한 공간에 배치하였다.   시의 분위기는 감각적이며 연애적이다. 그러나 내용은 인간과 환경을 다루는 깊이를 갖는다. 나의 시의 매력은 하이퍼시를 무의미한 언어유희로 전락시키지 않고, 의미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유미주의적 감각으로 시를 쓴다. 감각적 미의식과 상상력의 공간이 크다.인간의 DNA는 남의 연애에 민감하며, 이성에게 호기심이 많다. 카페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인간 군상의 한 장면을 잘라내어 TV화면처럼 보여주기 한 것이다. 그녀와 TV 화면의 툰드라의 한 장면을 오버랩 영상기법으로 그려, 드라마틱한 상상력을 전개한 것이다. 김용오 시인은 「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에서, 이선 시의 특징을 ‘환타지’라고 표현한 바 있다.               5. 무의미시- 열린 문장         하이퍼시는 열린 문장이다. 각 행과 연은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 내용을 한정적이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내용의 해석은 지시적이거나 명령적이지 않다. 문장은 확장적이며 상상력의 공간이 넓다.   무의미 시는 불확정적이며 무제한적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필자의 아래 시「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서」를 살펴보자.       눈썹연필을 깎는데 심이 자꾸 부러집니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는   푸른 침대와 흰구름, 부러진 연필심이 있습니다   (2연 앞 중략)   사랑에도 면허증이 필요합니까?   파도가 나선형을 그리며 밀려오는 긴 밤입니다   ⊂거나 ∪∩거나     달빛은 어둑어둑 춥습니다   허공을 밀어내는 바람에서 두-둥 빈소리가 납니다     젖은 낙엽 어디쯤에선가   살모사, 풀잎 위로 소리 없이 헤엄치던 밤   바람이 방향을 잃고, 내 속눈썹에 눕던 그 밤   당신은 첫눈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습니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당신이 떠난 뒤   나는 미장원에서 긴 파마머리를 자릅니다   곧 “보라색으로 염색할 걸” 후회합니다     랭보는 베를렌느의 마침표가 됩니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서」 1-6행     위의 시는 랭보와 베를렌느의 동성애를 다루었다. 랭보와 베를렌느의 부적절한 사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어디에도 그 사랑을 구구절절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이퍼시는 내용을 중시하는 시 형식이 아니다. 서정시의 지시적이고 명령적인 해석을 거부한다.   필자의 하이퍼시의 문장은 확장적이며 무의미 시에 가깝다. 그러나 김춘수의 무의미시와는 전혀 다르다. 김춘수의 대표적인 무의미 시「처용단장」2부-5는 무의미시라기보다는 의미없는 문장의 나열이다. 김춘수 시에서는 두 개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한 행마다 엇갈려삽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무의미 하이퍼시는 각각 다른 ‘이미지’의 삽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충돌’로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위의 시 1연은 현재 상황제시- 2연은 배경제시/ 물고기의 비유- 3연은 시의 배경 구성요소- 4연 사랑의 대상재연- 5연 이별 후 상황- 6연 제목과 연결시킨 구도를 가지고 있다. 랭보와 베를렌느의 관계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상황만 암시하고 있다. 하이퍼시는 비유로 극적 요소를 중계하는 ‘상황 시’다.               6. 예언적, 계시적 문장       필자의 시에는 주술적이며 예언적인 문장이 있다. 거시적 우주나 태고의 신비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아래 두 편의 시를 살펴보자.     태양이 달의 입술에 엄지발가락을 집어넣는 날,   “지진과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리라”   (중략)   나는 미네르바 여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은 올빼미 눈이   머무는 곳마다, 두려움에 떨며 초록 세콰이어 나무를 심었네   ―「세 개의 이미지」 1, 2행 부분     신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 족자카르타에는   보름달 뜨는 밤에, 북극성을 찾아 산을 넘는 표범이 살고 있다     그믐밤엔, 특히 꿈을 조심하라   꿈 조각 틈새로, 악마의 날갯짓소리 범람하리라     아담의 얼굴은 불의 고리- 환태평양 지진대 불의 왕국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다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기억의 초상(肖像)」1-3행       위의 시 「세 개의 이미지」는 지진과 전쟁의 이야기다. 지구의 종말의 예언서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기억의 초상(肖像)」은 피카디리 극장에서 숨진 기형도에 대한 시다. 동성애자로 오인받으며 요절한 천재시인 추모시다. 반신불수가 된 부끄러운 아버지, 한글도 모르던 야채장수를 하던 어머니, 자신을 엄마처럼 돌보던 둘째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 기형도의 입장에서 보면 쓰나미처럼 견디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가족의 영웅이었던 기형도의 죽음은 가족에게도 충격이었을 것. 기형도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형도와 어머니의 삶을, 지구의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으로 묘사하였다. 족자카르타의 표범으로 기형도의 혁혁한 기상을 예언적 문체로 쓴 시다.                7. 상상력의 확장- 상상력의 공간이동, 시간이동, 순간이동         필자가 최초로 하이퍼시에서 주장하는 기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법의 하나는 상상력의 확장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 상상력의 시간이동, 상상력의 순간이동’이 이루어지는 하이퍼시 쓰기 기법에는 생동감과 운동감이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공간과 시간에서 ‘순간이동’ 한다. 그 효과는 감각적 미의식과 운동감이다. 문장 표현이 신선하고 젊다.   상상력의 공간이동, 시간이동을 통한 순간이동의 시는 대비효과가 크다. -색상대비, 문명대비, 시적거리가 먼 것끼리 대비. 확장성, 연상작용의 폭이 넓다. 필자의 아래 시를 살펴보자.     내 아버지는 툰드라가 되지 못한, 어둠   겨울을 낳다가, 바다로 침몰한 내 어머니의 눈빛은   북극성   ―「북극에서 온 편지」 3연 1-3행   이질적인 것들이 한 공간에서 조우한다. -툰드라와 북극성은 먼 이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와 매치시켜서 가까이 한 공간에 놓고 있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이 거리를 초월한다.       바람이 꽃씨의 발화점을 외우는 동안   바다는 구름을 잉태하지   늙은 토인여자의 자궁은, 그린파파야 향기   ―「탁상공론 문명일지」 부분   ‘바람과 꽃씨, 바다와 구름, 늙은 토인여자와 그린파파야 향기’는 사실 이질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한 공간에 놓음으로써 친화적 관계를 지닌다. 하이퍼시 쓰기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공간이동’과 ‘시간이동’ 기법이다.       꽃잎 문을 닫는, 저녁입니까?   별빛 부엉이 항문을 닦는, 저녁입니까?     고비사막, 켜켜이 쌓인 주름살커튼을, 펼치는 저녁   두물머리에는, 황사비, 초미세먼지 자욱자욱,   물결을 지우는 데 말입니다     맨드라미 꼬불꼬불, 꽃길에 갇혀   별빛에 몸을 적시며 잠들어도 좋은 저녁인데 말입니다   -쉿,   꽁지 붉은 어미 새,   대문 우편함에, 새끼 일곱 마리를 부화시키고 있습니다   ―「저녁입니까?」 1, 5, 8행   같은 저녁이지만 각각의 저녁은 의미가 다르다. ‘환경파괴’와 ‘생명의 잉태’라는 각각의 주요 메시지를 지닌 ‘저녁’을 대비시켜 보았다. ‘저녁’을 주제로 한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만들어낸 여러 상황들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은 환타지성과 운동감, 상황의 전이와 반전의 매력을 연출한다.               8.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는 서정시에서도 사용되지만, 필자의 하이퍼시에서는 자주 쓰인다. 필자의 아래 시를 살펴보자.     레몬 유카리(Eucalyptus citriodora) 향기가   화장대 거울 위로 흘러내린다   (상큼한 유칼립투스 향수)     당신이 ‘망상중독’이라고 말하는-   유칼립투스 꽃을 채취하던, 푸른 달빛을   흰 샴 고양이,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당신의 웃음소리거나, 나의 울음소리거나)   ― 「자서전」 1, 2행   위의 시 1연은 몽상적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연도 환타지처럼 뿌옇다. ‘당신의 웃음소리거나, 나의 울음소리거나’ 부분은 주목하여 보자. 이상의 시처럼 한정하거나 지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되어도 좋다는 허용이며 놓음의 미학이다.     0, 또는 Oh~ Henry     교도소에서 탈옥한 바람은 조금 홀쭉하거나 눈매가 어둡습니다   풋사과 꽃, 수정하기 좋은 날 당신 회색눈동자는 출소했습니다만     “O. Henry~"   당신이 잃어버린 미래는 무엇입니까?   감탄사 O든지, 또는 아라비아 숫자 O든지   (중략)   O는 큰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실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을 꺼버린 거지만)   연일 번성하는 ‘O' 왕국을 지지합니다만,   유행이란 변덕스럽고, 외도가 심한 법인걸요.   ―「O, 또는 Oh~ Henry」 1, 2, 8행   위의 시 2연은 감탄사든지, 아라비아 숫자든지 한정하지 않는다. 8행도 원인이나 인과를 따지지 않는다. 하이퍼시는 자유방임적 문장이다. 애매모호함이 주는 미학이다.                 9. 확장성- 이미지의 확장       필자의 하이퍼시는 이미지 확장성이 크다. 아래 시를 살펴보자.     이사벨라섬 항문을 간질이며, 춘분점이 지나간다   축축하고 비릿한 땅거미를 삼키는   갈라파고스 거북,     용암(Lava)을 삼킨 ‘아술산’ 입술, 석양에 붉다   ―「갈라파고스Galάpagos 섬에서」 4행     “ 내 안의 시가 날 잠재우지 않아”   내 춤의 날개인, 우주의 긴 푸른 스카프에   소리와 빛을 담고, 나는 뜬 눈으로 그의 꿈을 지킨다   ―「이사도라 덩컨」 끝행     나의 젖가슴은 보름이면 살이 오르고   조금 때는 살이 빠진다   해와 달과 별이 내 줄기세포를 키우는가보다   (중략)   하늘은 초록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무들 밑둥 잡고 오늘도 땅에다 열심히 글씨를 쓴다   제 생각을 뿌리 채 땅속에다 모두 이식하고 싶은 거다   ― 「셀룰러 메모리」부분       위의 밑줄친 부분을 눈여겨 보라. 시공간으로 이미지가 확장되어 있다. 확장된 이미지는 마음과 눈을 시원하게 한다.                 10. 감각적 미의식       유미주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각적 미의식이다. 예술성의 근본이다. 필자의 문장은 예민하고 감각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래 시를 살펴보자.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이브의 예언」 4행   위의 시는 부드럽고 고요하게 미세한 음성으로 여자의 수다와 뒷담화를 꼬집는다. 감각적 미의식에 묻혀 있는 의미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도 독자들이 시를 읽는 재미다.                 11. 연상작용-파장효과     연상작용은 시의 파장효과와 확장효과가 크다. 필자의 아래 시를 살펴보자.       나뭇잎의 떨림을 이식받아   바람 앞에 내 줄기가 떨리듯   내 굴절된 파장이   혹,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당신 심장 한쪽을 떼어내   내 할딱이는 심장에 마저 붙여주고 갔듯이,     지금, 나는 누구의 푸른 눈동자로 응고되어 가는 너를 보는가?   ― 「셀룰러 메모리」 부분   ‘나뭇잎-떨다’라는 문장은 ‘내 굴절된 파장-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다’와 연상작용을 한다. 시의 비유는 연상작용의 좋은 예다.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이브의 예언」1연, 2연   필자는 가끔 ‘꿈’을 꾸고 나면, 이 꿈이 과거 언젠가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또 현실의 극한 상황이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예감처럼 꿈은 현실과 연계되어 연상작용을 한다. 위의 시는 그 상황을 이미지로 형상화해 본 작품이다.               위에서 11가지 을 살펴보았다. ‘사물시- 링크- 리좀’은 하이퍼시의 기본구조론이다. 그 구조론에 입각한 필자의 시를 제시하여 역으로 하이퍼시 쓰기 방법론을 유추하여 보았다. ‘상상력의 확장- 무의미시-감각적 미의식- 확장성- 연상작용’은 하이퍼시의 효과적인 시창작 방법론으로 여러 차례 필자의 시에서 증명된 시창작 기법이다.   시에서 ‘감각적 미의식’과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는 서정시 창작기법에서도 주요한 요소이다. 다만 하이퍼시에서는 초월적이며 현대적 감각으로 더욱 젊은 시를 생산하다는 점이 다르다. 필자의 하이퍼시 창작론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평론가와 독자에게 ‘하이퍼시’가 더욱 주목받고 연구될 것을 기대해 본다. 필자의 하이퍼시 창작도 더욱 풍성하고 독창적으로 발전될 것이라 확신한다. ※  
32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관련성 / 문덕수 댓글:  조회:292  추천:0  2019-02-04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관련성   문덕수     [1] ‘디카詩’의 창시자는 누구일까. 신(神)의 유무보다는 디카시의 창시자의 누구냐의 물음엔 한 가지 대답밖에 없으니 더 쉽습니다. 디카시의 창시자라는 말에 “창시자” 그 동격어 “이상옥”이라고 하면 대답하면 되겠습니다만 말하자면 디카시의 창업자는 이상옥입니다.       [2] 디카는 “디지털 카메라‘의 준말입니다. 우니라에도 생산되고 있고, 이제는 스마트폰에도 장착되어 있으므로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학기기인 이 디카가 시쓰기의 주체인가, 아니며 단지 보조기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주체라고도 할 수 있고 보조기구(원고지나 펜같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TV나 컴퓨터가 안방에 들어와 있는 판에 과학기기가 시쓰기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버스, 지하철, 비행기, 승용차 등 인간은 과학기기의 사용이 없으면 생활이 안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디지털 카메라가 시와 결부될 수 있음도 불가피한 시대의 요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 등 돌려서 현대시를 쓸 수 있겠습니까?       [3] 가만히 들여다보면 디카시는 기호시임을 깨닫게 됩니다. 『디카시마니아 24인사화집』(2012, 도서출판 디카시)에는 이상옥의 디카시 「숙명」(The Fare)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의 시는 망가지고 있는 나무 뿌리 등의 사진 옆 페이지에 “이제 내 몸 부수어 너에게로 간다”(Breaking down mybody now I go to you)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내 몸 부수어” “너” 가 가장 요점이 되는 어구인 것 같습니다. “내 몸 부수어”는 많은 함축(含蓄)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랑의 주체인 “나”, 가장(家長)으로서의 나, 제자들의 스승으로서의 나, 역사(歷史) 속의 한 주체로서의 나, 주인이 아닌 봉사자로서의 나 등이 그러한 연상의 목록입니다. 이렇게 제시해 내놓고 보니 그 나열이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호화해 가는 목적적 존재를 “너”라고 했습니다. “너”는 분명히 남(他者)입니다만, 우리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우수한 “남”으로 둘러싸여 공생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의지를 내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존적 삶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자의 의지에 의해 사는 존재입니다. 어쨌든 이 “나”는 앞에서 “나”의 경우에 열거한 그러한 나와 대등되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너”의 대응 관계로 수용할 때 이상옥의 디카시는 1차시입니다만, 그 함축과 내포는 다양하고 풍성한 의미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카시가 언어로 기록되건 사진영상으로 촬영되건 그것의 1차적, 기본적으로 사물시와 동질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디카는 하이퍼 시와 첫걸음을 함께 내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이퍼와 디카는 같은 스타트라인에서 같은 신호로 함께 출발합니다. 여기서 사물시와 디카시는 일치합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제시된 ‘사진’도 기호(記號)이고, 언어로 표현된 디카시 문자도 “기호”라는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기호라고 하면 프랑스의 소쉬르(1857~1913)와 미국인 퍼스(1839~1914)의 두 사람을 듭니다만 기호의 세계를 더욱 폭넓게 본 사람은 퍼스인 것 같습니다. 퍼스는 언어 뿐만 아니라 “사진”을 포함한 영상이나 도상, 길바닥이나 눈 위의 발자국 같은 것을 모두 기호로 보았습니다. 퍼스는 이 세계는 기호로 충만한 세계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물이 다 기호이지요. 퍼스는 다만 “기호 처리의 프로세스로서 인간”을 이해했습니다. 아마 시인도 기호체계의 한 프로세스를 처리하는 자로 이해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반사된 빛이 눈의 망막에 도달하는 순간, 일련의 감각이나 인지적(認知的) 기능이 마치 연못의 둑을 끊은 것처럼 흐르는 것— 이것이 경험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사진의 어떤 부분에 집중하는 것은, 이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어지럽게 이동하는 색이나 윤곽이나 형태를 즉시 감각신호로 변환시켜 후두부에 있는 시각야(視覺野)라고 불리는 뇌의 영역에 보내집니다. 거기서 특징들이 분석되어 그 결과가 대뇌피질(大腦皮質)의 많은 영역을 이동시킵니다. 그러한 활동분야의 하나가 피질의 중앙에 위치하고 근운동(筋運動)의 중추 역할을 맡은 운동야(運動野)입니다. 여기서 눈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근육을 움직이는 지령이 나와, 눈은 사진 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눈이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향하게 하는 과정이 몇 백 번 되풀이됩니다. 한 번 얻은 상(像)은 피질의 뉴런 네트워크로 보여지며, 그때까지 저장되어 있는 정보와 연결되고, 사진에 대한 해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뇌가 행하는 사진(그림 포함) 이해의 프로세스를 인지 과학자 R L. 소쉬르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빛이라는 물리 현상에서 시작하는 ‘그것이 감각 신호로 바뀌는 그 처리를 거친 특징이 추출되어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사전 지식도 참조하면서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상옥의 디카시가 망가지고 있는 「숙명」이라는 디키시는 많은 내포가 다양하게 응축된 디카시의 전형인 것 같습니다. 사화집 『너머』(Beyond Over)는 대분분 이와 같은 보편적 레벨에 도달한 디카시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5] 그런데 이상옥의 「숙명」을 잘 들여다보면, 그 해석은 단지 나무 밑둥이 부서지고 있는 붕괴현상만이 아니라 현상이 형이하(形而下)의 세계와 형이상의 세계(形而上世界)를 연결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이해는 디카시의 형이하적 특징과 형이상적 특징을 연결하는 것으로 보여 무척 흥미롭습니다. 나무 밑둥의 붕괴는 풍화작용인지, 세균의 잠식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시간의 먼 지평 속에서 변호마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 인도인(특히 힌두교도)은 모든 만물은 시간상에서 변화하며 여러 가지 존재의 직접적, 간접적 조건과 원인에 의해 생겨서 변화한다라고 한, 그 위대한 사상체계의 “연기설”(緣起說, Pratitiya-samurāda)을 발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한(漢)나라를 세운 유비도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상옥의 디카 사진을 잘 봅시다. 산에서나 길가에서, 나무 밑둥지가 부서져가는 현상을 흔히 발견할 수 있고, 이 현상에서 흙구덩이 속의 인체도 결국 이런 과정을 밟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체의 경유, 균이나 박테리아가 흙 속에서 겨드랑이나 허벅지 등을 먼저 먹게 되겠지요. 사물인식은 가정,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지식과 결부되어 나무밑둥이라는 물체의 내면의식세계가 형성됩니다. 사물은 감각성, 시각성, 외부성 등의 욉줙 존재입니다만, 동시에 내면의 영혼적 무의식적 무한성을 가지고 있음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있음 esse)는 있는 것(ens, 개별 사물 존재)의 시간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사물을 외면이나 내면의 한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외부적 존재로 보고 동시에 내면세계를 본다는 것은, 모든 사물이 지닌 α위상과 β위상의 이중을 본다는 뜻이 되고, 또 이렇게 보아야만 사물 전체를 본다는 것이 됩니다. 이상옥이 있는 것(ens), 즉 「숙명」을 통해서, 우리가 가정→역사의 영역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와 연결시킨다는 것은, 사물의 내면성도 동시에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상옥의 「숙명」의 밑둥은 흙 속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꽤 깊이 박힌 듯합니다. 지표에서의 윗부분이 갈라져 부서지고 있으나, 아마 그 뿌리는 여전히 땅속에서 꿈쩍 않고 대지(大地)를 물고 호흡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숙명」이 지닌 형이하적(形而下的) 특질인 것입니다만, 한편 부서짐의 과정을 통하여 껍질이 벗겨지고 나무의 육질이 파삭파삭해지면서 그 영혼이라고 할까 정신이라고 할까 그런 것은 형이상적(形而上的) 세계로 차원이 다른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역사 너머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즉「숙명」이라는 디카 영상은 형이하와 형이상에서 초월을 동시에 공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디카시는 이러한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고, 여기서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짙은 공통 관련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내 몸 부수어 너에게로 간다”라는 일행시에서도 형이하와 더불어 여기서 초월하려고 하는 형이상의 몸짓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서진다”(망가지다, 붕괴핟, 변화한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매우 다채롭고 풍부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6] 마지막으로 두 장르의 통합단계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즉 디카 영상과 언어예술의 두 단계를 하나의 세계로 통합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디카시는 디카 영상과 언어시와의 두 존재를 포함하고 있고 두 단계가 통합해서 다르나 같은 의식적 이미지의 세계를 이룩합니다. 통합 단계는 두 장르가 “서로 관계”를 가지고 하나의 세계(시 세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두 장르의 관계는 접근, 영향, 융합 등의 상생(相生) 공발(共發)의 관계입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정복하거나 먹어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어디까지 상생공존의 발전 관계를 맺고 더 높은 하나의 통합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형이하적 관계와 형이상적 관계가 엄존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형이하적 관계부터 보겠습니다. 형이하적 관계는 사물의 감각적, 가시적, 외부적 관계에서 연관을 맺게 됩니다. 그러한 외부적 배치에 의하여 하나의 가시적 이미지(즉 사물존재로서의 이미지, 그러니까 β위상의 관계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이루게 되면, 그러한 가시적인 두 이미지가 융합되어서 서로 보완하여 하나의 더 높은, 더 완성된 이미지의 세계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형이하적 세계, 즉 물질세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높은 형이상적 단계로 상승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디카시라고 하는 통합적 장르가 비로소 “의의”(意義: 의미보다는 높은 의미의 세계로 연결된다는 뜻)의 단계에 이르게 되고, 그 의의주제에 접근한 가장 높은 뜻으로 뭉치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형이상적 통합의 의의는 첫째 형이상적(신적) 뜻을 이루고, 둘째 그 뜻은 형이하적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어떤 미세하거나 광대한 움직임에 의해 영향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역할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방향과 방법을 정립시켜 주기도 합니다. 흔히 ‘섭리’라고도 하고, ‘천명’(天命)이라고도 하는 그런 차원의 뜻입니다. 모든 디카시는 여상과 언어의 두 단계가 통합된 형이하적, 형이상적인 미학적 뜻으로 통합, 형성되어 완료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적 통합을 거쳐, 두 장르는 장르적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이미지 세계를 이룩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하이퍼적이라고 하고, 이 점에서 디카시가 하이퍼시의 또 한번의 강력한 유대와 그 관련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7] 여기서 간단히 결론을 내리고 그칠까 합니다. 디카시가 가진 기호성, 디카시의 이중성(형이하와 형이상) 등을 토대로 디카시와 하이퍼시의 관련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밖에 디카시의 사진과 언어는 사진과 언어라는 장르적 경계를 허물면서 디카시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하이퍼적 패러독스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이퍼시에서는 진실과 허위의 두 세계가 비유의 본의(本義)와 유의(喩義)의 양 항에 관련되어 있고, 그 관련에서 진실과 허위의 두 세계를 역설적으로 사사해 준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런 점에서 디카시나 하이퍼시는 파라독스의 언어로 된 역설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간《시문학》 2012년 10월호    
31    構造主義 槪觀 / 曺 惠 蓮 댓글:  조회:229  추천:0  2019-01-31
構造主義 槪觀   曺 惠 蓮(96207022)   Ⅰ. 여는 글   Ⅱ. 구조주의의 개념과 원리 1. 구조의 개념과 특성   1) 구조란 무엇인가   2) 구조의 특성   3)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Ⅲ.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 사상 1. 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언어학   1) 소쉬르의 생애  2)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 2. Lévi-Strauss의 구조인류학   1) 레비스트로스의 생애   2) 레비스트로스의 기본적 사상   Ⅳ.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와         지리학과의 관계   Ⅴ. 구조주의의 문제점과      탈구조주의의 등장   Ⅰ. 여는 글   구조주의는 20세기초기에 전통적인 역사주의적 인간 인식에 반기를 들고 나온 언어학자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출발하여 프라그언어학파, 코펜하겐 언어학파로 그 정통성이 이어지고 발전되어 구조언어학으로 정식화되자 이 언어이론의 원리와 법칙은 반세기를 지난 1960~70년대에 구조주의로 개화되었다. 구조언어학이론은 이때부터 언어학을 벗어나 인간과학 제분야의 향토개념이 되어 신화․설화․문학․영화․TV․심지어는 요리와 의상유행에 이르기까지 그 내재적 구조분석의 기본이 되었다. 물론 그 확산이 일시적인 붐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각 분야에 대한 해석이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므로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도 후기구조주의에서 포스터모더니즘까지 그 기저엔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 자체는 지리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구조주의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 이론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구조주의의 선구자라 불리우는 소쉬르와 구조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그 시작과 확산을 알아볼 것이다.     Ⅱ. 구조주의의 개념과 원리   1. 구조의 개념과 특성   1) 구조란 무엇인가 (1) 체계와 구조 구조(構造)라는 말은 일반용어로서도 또 학문적인 술어로서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 원래 건축구조물이란 건축용어로 쓰였던 말로 생물구조라든가 심리구조 등 생물․심리학에서도 예사로 쓰이는가하면 경제구조, 유통구조 또는 사회구조 등 사회과학적인 용어로도 쓰이고 있고 심지어 마르크스경제학에서도 상부구조라는 말이 하부구조에 대위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구조란 말은 실은 19세기 실증주의에서부터 빈번하게 쓰이는 말로서 막연한 의미로 쓰여오기도 하고 있다. 구조의 어원을 살펴보면 멀리 라틴어의 structura(strutuere〈건조하다〉에서 파생됨)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건조물, 건축물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2) 구조의 개념 구조의 개념은 철학적으로 도는 이념적으로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우선 그 기본적인 개념부터 정밀하게 규정지어 놓는 것이 좋겠다. 구조의 개념은 그 시발점이라고 할 구조언어학에서 조작적 개념으로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은 옐름스레우의 정의이다. ① 내적 관계란 특성을 지닌 이 개념은 언어체계의 내부에서 각 요소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관계의 망이며 그 관계의 교차가 사항을 규정하여 상대적으로 제사항(諸辭項)을 구성하는 것이다. ② 구조를 규정짓는 관계의 망은 계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구조라는 하나의 총체는 부분으로 분해할 수 있으며 그 부분들은 부분 상호간에 그리고 그 부분들이 이루고 있는 전체와도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③ 구조가 자율적 실체라 함은 구조가 그보다 큰 총체와의 의존성 또는 상호의존성을 유지하고 있는, 구조 그 자체에 특유한 내적 조직(내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④ 구조가 하나의 실체라 함은 그 실재론적 지위는 따질 필요가 없고 다만 조작개념을 가능케 하기 위한 하나의 총체라는 뜻이다.   2) 구조의 특성 구조주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문화활동의 전체성을 파악하는 과학적 방법과 그 사상적 자각으로서의 이념으로서 등장했다. 그것은 대상을 구성하는 제요소간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것을 그대로 통합적으로 포착하려는 것이다. 그 전체로서 당연히 주체와 대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요구될 수 밖에 없다. 곧 인간의 문화활동의 전체성은 시각으로나 촉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험의 장이나 또는 서기자료나 통계적 자료의 장에서는 파악될 수 없고 항상 경험의 배후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구조란 계층(階層)으로 이루어진 내적 관계(relations internes)의 자율적(自律的)실체(實體)이다. 피아제(Jean Piaget)에 의하면 구조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기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 전체성 - 첫째로 구조가 실재 속에 숨겨져 있는 전체성을 발견하는 조작개념이라면 그 구조는 전체성이란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전체성의 요건이란 구조를 이루는 제요소가 단순한 고립된 집합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에 의해서 결합되어 있다는 데 있다. 구조를 이루는 실체의 배치는 가치충족적이며 전체성이란 내재적인 통합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 전체성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그 배치의 성질 및 각 요소의 성질을 결정하는 고유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 이러한 법칙은 그 구조내의 구성요소에 대하며, 그 구조를 떠났을 때 각각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개별적 특성 이상의 전체성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구조의 요소는 서로의 상관관계뿐만 아니라 그 구조가 속하고 있는 총체 또는 전체라는 전체성과도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조는 단순한 집합과는 다른 것이며 그 구조요소는 구조를 떠나서 구조 밖에 있어도 구조 내에 있는 바와 똑같은 형태로 대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고 다만 구조의 전체성에서의 관계의 망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가 자기충족적이면서 자기 폐쇄적이라는 것은 그러한 뜻이다. (2) 변환 - 구조는 실재를 산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적인 것이 아니다. 소쉬르가 정태언어학이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언어의 변화성속에서의 어느 시점에 있어서의 공시적 대립관계를 연구해야 한다는 조작관점이지 언어가 정지상태에 있다는 주장의 표현은 아니었다. 언어의 공시대라는 것은 부동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체계의 대립이나 결합에 의하여 결정지어지는 필요에 따라 혁신을 억압하거나 수용하거나 하는 것이다. 구조의 법칙은 단순히 그것이 구조화되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구조 자체가 구조화를 행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소쉬르는 구조란 말을 쓰지 않고 체계란 말밖에 쓰지 않았는데 그것은 공시적 대립과 공시적 균형의 법칙을 특징짓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 균형의 개념은 구조의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어떤 일정한 시점에서 구조는 한 언어의 제사항이 상호간에 유지하고 있는 관계의 총체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 관계란 요소상호간의 결합규칙을 말하는 것으로 따라서 구조는 하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 규칙의 일부, 다시 말해서 관계의 일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에 대하여 구조는 단순히 구조화되는 수동적 수준에 떨어지지 않고 변환의 절차를 밟아 오히려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환은 구조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3) 자동제어 - 구조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자동제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구조는 그 변환절차를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그 자체를 넘어선 것에 의존하려 하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언어의 균형성과 같은 구조의 특성은 구조의 불변성을 위협하는 제요소의 대립이나 잘못된 결합을 항상 점검하고 미지의 무수한 제요소가운데서 적합한 것만 선택하여 결합해 가는 기능 곧 자동제어 기능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구조화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제어(自動制御)란 어떤 행위계의 결과를 재도입함으로써 얻어지는 제어방식으로서 반송되는 정보에 의하여 그 계의 작용과 방법을 모델로 바꿀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이는 환류활동(還流活動)의 원리로서 이 원리에 의하여 언어는 고도로 발달된 컴퓨터처럼 스스로 기능장해를 제거하는 하나의 능력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도 하나의 자동제어기구라고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언어의 자동제어기능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예로서는 음성변화에 의하여 어떤 불편한 동음이의가 생겼을 대 이를 제거하는 과정이 그렇다. 언어에 이러한 자동제어기능이 없다면 언어는 상호이해에 필요한 최소한도의안정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인 기능이 공시적 균형을 이룩하게 하고 따라서 공시론적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3)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라깡의 정신분석학, 푸코의 인식론, 알뛰세의 정치경제학, 바르뜨의 문예비평 그리고 Tel Quel의 저자들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결국 구조주의가 언어학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우리는 ‘언어적인 것’이라는 개념에서 단서를 잡아야 한다. 언어적인 것에 구조가 있다. 무의식은 그것이 말하는 한에서, 그것이 언어인 한에서 구조를 가진다. 신체는 그것이 징후들을 드러내는 한에서 그리고 그 징후들이 기호로서, 언어로서 읽히는 한에서 구조를 지니는 것이다. 구조주의란, 단순히 표현해서, 결국 세계를 언어로 보는 한에서 성립한다. 사물들은 기호로서, 언어로서 해석된다. 그들은 침묵의 언설을 가지고 있다. 구조주의는 플라톤 이래의 인간의 강렬한 욕구인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꿈을 사물의 기호(記號)와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인식의 어떤 형식적인 측면을 포착함으로써 이루고자 한다. (1) 구조주의의 특징 ① 상징적인 것(le symbolique)에서 찾을 수 있다. 구조주의 이전의 철학자들은 그들이 다루는 존재를 크게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으로 나누곤 했다.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대립에 대해, 때로 그들의 상보성에 대해 논하고 했다. 이들 사이에 복잡한 관계에 대한 틀 내에서 초험적 통일성과 경계선상의 긴장 그리고 상호간의 융합과 날카로운 대립을 발견할 수 있다. 구조주의의 발견 중 가장 첫 번째의 것은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제 삼의 질서로서의 상징적인 것의 발견이다. 우리가 언어에서 발견하는 실제적 차원, 즉 말의 시각적 모양과 청각적 감각의 차원 그리고 상상적 차원, 즉 우리가 그 말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이마쥬나 관념이 아닌 제 삼의 차원 즉 그 말의 구조적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현대언어학은 시작되었다. 「상징적」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던 사람은 쟈크 라깡이었다. 정신분석학은 라깡에 의해 언어학과 접속된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19세기 프랑스심리학이 다룬 중심주제중 하나였다. 프로이트가 공헌한 점은 이 무의식에 어떤 의미(意味)를 부여했고 따라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라깡에 따르면 무의식 역시 결국은 하나의 언어일 뿐이며 언어인 한에서 그것은 구조를 지니는 것이다. 무의식은 이제 언어학적 기초를 가지게 된 것이다. 보다 더 들어가 말하면, 구조는 요소로서의 상징적인 것은 생성의 원리로 이해된다.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외에 상징적인 것의 존재에 대한 강조는 구조주의의 첫 번째 특성인 것이다. 구조주의자들은 「보는 것」과 「표상하는 것」외에 비가시적인 어떤 것을 「읽어내기」를 원하는 것이다. ② 구조의 국소적인(local), 위치에 관련해서의 특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구조의 요소들은 외적인 지시에 의해서도(실제적인 것) 내적인 의미작용에 의해서도(상상적인 것)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다. 구조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위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의치란 실제공간에서의 위치도 아니며 상상적 공간 속에서의 위치도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공간 속에서의 위치이며 본질적으로 위상적topologigue)이다. 이 공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외정으로서의 거리가 아니라 이웃관계인 것이다. 사물이 있음으로써 구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있음으로써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희와 극장에 대한 구조주의적 선호가 나타난다. 레비 스트로스의 유희이론, 라깡의 유희에 대한 은유들, 알뛰세는 실제의 극장, 관념의 극장이 아닌 자리와 위치의 순수한 극장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명한 구조주의적 표현이 나온다 : ‘사유하는 것, 그것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다.’ 결국 구조주의는 최근 형태의 유물론이며 무신론, 앙띠 휴머니즘이다. 신(神)은 죽었고 이제 인간(人間)도 죽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치가 나를 통해 말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데카르트에 대해 라깡은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내가 사유하는 그곳에 나는 있지 않고, 내가 있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사유한다”(사유(思惟)와 존재(存在)의 불일치(不一致))」 ③ 「변별적인 것」과 「단일한 것」을 들 수 있다. 언어의 경우에 있어 감각적 소리와 말에 연결된 이마쥬 외에 또 하나의 요소를 음소(音素)라 한다. 음소는 문자나 그 소리에 구현되어 있지만 그와 구별되어야 한다. 이 음소는 그것이 속하는 관계체계 내에서 다른 요소들과 함께 상호 동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 구조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상징적 요소들, 변별적인 요소, 단일한 점들의 유무에 따라 대답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비가시적인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가시적인 것들에 구현되어 있으며 가시적인 것들을 넘어 이들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④ 「분화시키는 것」과 분화를 들 수 있다. 구조는 필연적으로 무의식적이며 모든 구조는 하부구조, 미시구조이다. 그것은 실제적이지도 않고 허구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현실적이지도 가능적이지도 않다면 그것은 어떤 존재인가? 야콥슨이 말했듯이 음소는 문자나 음절, 그 소리 등과 또는 그에 연결되는 관념들과 동일시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구조 혹은 이론의 대상을 가장 적절히 가리킬 수 있는 말은 잠재성일 것이다. 잠재성은 직접적인 실재성과는 다른 그 나름대로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은 추상적이지도 않은 나름대로의 관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잠재성으로서의 구조는 현실적이지 않으면서 실제적이고 추상적이지 않으면서 관념적이다. 구조 속에는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공존한다. 그중 부분적인 조합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구조를 밝힌다는 것은 모든 현실적 존재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잠재성을 밝히는 것이다. ⑤ 구조의 계열적인 특성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조의 반쪽만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구조가 실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요소들이 계열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구조는 복수계열적이다. 우리는 음소와 형태소의 구분을 상기할 수 있다.     Ⅲ.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 사상   -Ferdinand de Saussure 의 구조언어학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을 중심으로- 구조주의사상은 구성과 과정으로 양분된다.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사상은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푸꼬에 이르는 사상이고 과정으로서의 구조주의사상은 맑시즘의 토대위에서 성립되었다.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이란 인간의식에 선천적으로 각인된 심층주고의 표현이라고 간주하는데 비해서 과정으로서의 구조주의는 그 현상들이란 기저에 눌린사회구조의 표층이며, 그 사회구조의 토대는 물질적 존재 조건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구조와 전에 말한 심층구조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전혀 없다. 구성구조주의와 과정구조주의간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과정구주조의에 따르면, 변형은 자연적 수준에서보다는 차라리 사회적 수준(하부구조, 토대)에서 발결되는 구조에 속한다. ☞과정 구조주의에 의하면, 구조는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변형되는 것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차이점으로 인해 접근방식에서도 상이한 면이 많다. 여기서는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에서 구조주의의 시조인 소쉬르와 구조주의의 아버지인 레비스트로스에 대해서 논하겠다.   1. 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언어학   ☞즈네브대학의 선사(先師)소쉬르(1857~1913)는 스스로가인구어의 역사언어학을중심과제로 하는 소장문법학파의 밭에서잘 약관 21세인 1878년에 「인구어 모음의 원초체계에 관한 논고」라는 독창적인 논물을 발표한 천재적인 학자였으나 그는 인구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언어학의 조류에 대해서도 널리 관시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체의 언어현상을, 19세기가지의 인문․사회과학의 일률적인 방법에 회의를 품고 언어 자체의 형식적 체계화라는 과학적 분석의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반언어학강의」라는 책인데 이 책은 오늘날의 과학적 언어학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고 소쉬르 이후의 언어학 논의치고 소쉬르이론을 들먹이지 않는 것은 없다시피할 정도로 크게 영향을 끼지게 된다. 소쉬르의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미치기 쉬운 불어사용권에 있어서는 소쉬르이론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저조했던 데 비겨 1920년대에는 프라그학파1)에서, 그리고 1930년대에는 코펜하겐학파2)에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이론이 구조주의언어학으로 먼저 정립되고 다시 후술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그 뒤에야 구조언어학으로,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야 그 폭발적인 구조주의의 유행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역사의 장난이랄까, 적이 기이한 느낌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1) 소쉬르의 생애 소쉬르는 1857년 11월 26일 프랑스에서 이민온 즈네브의 위그노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과학자가 많이 배출된 명문집안이었다. 이러한 과학적 가문은 그 자체가 자랑할 만한 것이었고 그것을 이어가야 하겠다고 생각할 만한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때문인지 소쉬르가즈네브의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875년에 즈네브대학에 들어갔을대 가족의 과학자적 전통에 어울리게 처움에는 물리화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조숙하여 그러한 조숙성이 어릴 때부터 두드러져서 다방면에 관심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신학, 과학, 법률 등 여러 방면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과학적 교양과 다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이 그의 일반언어학에 관한 이론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을 것이다. 그후 소쉬르는 파리언어학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남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즈네브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 외에 논저를 발표하지 않는 등 활동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소쉬르는 이 무렵 언어학에 대해 권태를 느끼고 있었는데 언어학연구의 근본적인 것에 회의를 느낀듯 하다. 그러니까 언어활동의 연구에 있어서의 개념을 명백히 세우는 일 한마디로 말해서 일반언어학의 이론의 기초를 확립하는 일에 고심하고 있었다는 그이 고뇌의 편린이 여기저기 나타나있다. 소쉬르의 즈네브대학에서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제의 이 겸손하면서도 전대미문의 독창적인 강의 〈일반언어학강의〉를 그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애정으로써 자기들이 필기한 노트를 면밀하게 정리하여 재현시켜 스승의 족적을 남기게 한 것이요, 그것이 오늘날 바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이다.   2)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 오늘의 구조주의적 사조의 대부분은 그의 업적에 바탕하고 잇다. 소쉬르는 전통적인 관심, 즉 세계는 독립해서 존재하는 대상물로 되어 있어서 정밀하고 객관적인 관찰과 분류확 가능하다는 관점을 이어받았다. 언어학적 견지에서 말하면, 이러한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언어관이 생긴다. 즉 언어는 「낱말」이라고 하는 분리독립해 있는 단위의 집합으로서, 그것의 하나하나는 각자에 부착되어 있는 독립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전체는 통시적 즉 역사적 차원에서 존재하는데, 이런 것이 언어를 관찰가능한 그리고 기록이 가능한 변화법칙에 따르도록 한다라는 견해인 것이다. 소쉬르가 이룩한 언어연구에서의 혁명적인 공헌은 언어를 「실질」로 보는 견해를 배척하고 「관계적」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 일인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식방법에서의 더 큰 변화에 긴밀히 연관되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또 언어는 개개의 부분이라는 견지에서 그리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 부분들 상호간의 관계라는 견지에서 그리고 공시적 관점에서, 다시말하면 그 언어의 현시점에서의 타당성이라는 견지에서도 연구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던 것이다. 소쉬르가 언어연구에서 공시적 연구를 통시적 연구로부터 뚜렷하게 구별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데는 언어가 걸어온 역사적 경위의 인식도 그러하거니와 지금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구조상에 대한 인식도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독창성은, 언어가 하나의 전체적 체계로서, 그 한순간 전에 무엇인가가 그 체계에 변화를 주는 일이 있었을지라도, 언제나 그 순간마다 완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일이다. 즉 각 언어는 그 역사적 경위와는 상관없이 그 언어를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의 체계라는 점에서 온전히 정당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의 호언은 사실상 그 언어의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현상 전체의 고찰을 언어가 지니는 두 개의 기본적 차원에서 진행시키고 있다. 즉 랑그(langue)라는 측면과 빠롤(parole)이라는 측면에 대해서이다. 그가 행한 이 양자간에서의 변증법적 구별은, 언어학 전반의 발전 특히 구조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또한 인간은 언어를 고안하고 구사하는 특성을 가진 짐승이라고도 말해질 수 있는데 이 언어라는 것은, 구별이 뚜렷한 기호와 이 기호가 변별적으로 연관되는 분명한 개념 즉 「의미」와의 사이에 맺어지는 대응관계에 의해서 성립되는 복잡한 체계 또는 구조인 것이다. 아마도 우연이기는 하겠으나, 현실세계의 사회적 교류에서는, 음성기관이 언어의구체적 실현의 주된 수단 방법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은 입으로 행하는 말이 아니고, 언어 즉 각각 다른 개념에 상응하는 구별있는 기호의 체계를 구성하는 능력이다. 이 「고유의 언어능력」이라는 능력은 실제로는 여러 가지 기관의 기능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이며, 「기호를 지배하는 더 보편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기호를 조립하는 그 능력이 언어에서 생성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 물리적 의미에서는 듣지도 보도 못하는 것이나, 실제의 인간의 발화에서 순간적으로 노출되는 것에서 연역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더 큰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랑그라는 것은 「언어능력의 사회적 산물인 동시에, 개인이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부는 사회단체에 의해서 채용되고 있는 필요한 약정의 집합」인 것이다. 그러니 빠롤은 물위에 나타나 있는 빙산의 일각이며, 랑그는 그것을 받쳐주는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다같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그 자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더 큰 빙산덩어리인 것이다. 언어는 만져볼 수 없는 것이며 또 결코 그 전체 모습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일이 없고, 개개의 학자에 의해서 그 목록의 일부분이 불완전하게 운용되는 데에서만 모습을 나타낸다. 이 사실은 소쉬르 이후의 현대언어학의 앞날에 결실이 풍부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다시 말하면, 개개의 발화와 이해의 목표가 되고 또 전체가 되고 있는 체계화된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 완전한 패턴을 기술하고자 하는 방향이 그것인데, Noam Chomsky와 같은 더 최근의 언어학자가 제안하는 수정된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그것은 개개의 「언어운용」에 앞서서 존재하는 그리고 그 언어운용을 「생성」하는 「언어능력」의 체계를 설명하는 방향인 것이다. 언어운용이나 빠롤은 패턴이 없고 체계적인 긴밀성도 없어서 혼질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에 앞서서 있는 언어능력이나 랑그는 균질적인 것으로 보인다는데 대해서는 놀라울 것이 없다. 즉 그것은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언어는 결국 「낱말이라는 자료적인 실질」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추상적인 「기호의 체계」안에 있다는 것이다. 낱말들은 이 체계의 지엽말단일 뿐이다. 실제로 「기호 및 기호들의 관계가 언어학의 연구대상」이며, 기호 및 기호들간에서의 관계의 본질도 역시 구조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언어기호는, 그 「개념」과 「청각이미지」, -혹은 소쉬르의 저서에서 유명해진 용어를 사용한다면, 소기(signifie)와 능기(signifiant)라는 두 측면간에 존재하는 관계라는 견지에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나무」의 개념(즉 소기)과 「나무」라는 낱말의 청각이미지(즉 능기) 사이에 있는 구조적 관계는 이렇게 해서 하나의 언어기호를 구성하며, 언어는 이들 언어기호에 의해서 성립된다. 즉 언어는 「관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체계」인 것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청각적 체계이므로, 능기와 소기의 관계는 시가의 흐름을 통해서 성립된다. 그림은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복잡한 요소들을 동시에 제시하고 병치해서 보여줄 수 있으나 입으로 행하는 발화는 그런 종류의 동시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요소는 그 자체로서 유의적인 어떤 순서나 연쇄에 따라서 제시되어야 한다. 요컨대 능기와 소기의 관계의 양은 비록 사소하게 이기는 하나, 본질적으로는 계기적인 성질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관계의 전체적인 특징은, 이미 보았던 바와 같이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나무」라는 청각이미지 즉 능기와 그것에 수반되는 개념 즉 소기, 그리고 지상에 실제로 자라고 있는 물리적인 나무 사이의 연결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적합성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나무」라는 낱말에는 요컨대 「자연 그대로인」 혹은 「나무다운」성질이 없다. 그러니 언어의 구조를 떠나서는 「현실」에서의 연결을 보증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어기호는 바로 그 임의성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게 되어 있다. 소쉬르가 말하는 것처럼, 「어떠한 문제라도 논의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기호의 임의성은 「합리적」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의 타당성을 고려하거나 논의한다고 해도 얻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기호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영어의 tree 대신 다른 어원에서 온 낱말인 arbre(프랑스어), baum(도이치어), arbor(라틴어), 혹은 제멋대로 만든 낱말인 fnurd를 더 좋아할 이유는 정녕 없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적절하다거나 혹은 더 「합리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나무라는 낱말이 따위에서 자라고 있는 잎이 있는 물리적 물체를 의미하는 것은, 그 언어의 구족 그 낱말에 그 물체를 의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그 낱말은 그 효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언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강한 보수적인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언어는 자기충족적인 「상관적」구조의 가장 좋은 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구성부분은, 그 구조의 테두리 안에서 통합되지 않는 한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소쉬르가 말하는 것처럼, 「언어는 상호의존적인 사항의 체계인데, 여기서 각 사항의 가치는 다른 사항들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만 얻어진다」 이처럼 언어는 그 모든 측면이 「관계에 바탕하고」있는데,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 관계중에서 두 개의 차원이 특별한 중요성을 띠고 있다. 소쉬르는 그것을 언어기호의 연합적 관계와 동시적인 상합적 관계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능기이든 소기이든간에, 언어에는 언어체제 이전에는 관념도 음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 체계에서 비롯하는 개념적 및 음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언어는 최종적으로, 「형식이고 실질이 아니다」로 판단되어야 한다. 즉 언어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항목의 집합이 아니고, 오히려 양식을 가지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조절적인 형식은, 우리 이외의 세계를 만나서 그것에 대처해가는 우리의 독특한 수단이 되고 있는 터이므로, 그 형식은 아마도 특유한 인간구조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아마도 이 형식은 또 인간현실의 특징적인 구조가 되리라는 논의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2. Lévi-Strauss의 구조인류학   1) 레비스트로스의 생애 끌로드 레비-스트로스(Calude Levi-Strauss)-예술가의 아들이며, 랍비의 손자인-는 1908년에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년에 양친을 따라 베르사이유로 갔다. 그는 이 시기 이전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내성과 사색과 독서에 심취하면서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혼자 걸으면서, 또한 그가 수집했던 여러 잡동사니들-그가 짜맞추기(bricolage)라고 부르는 돌멩이들, 자갈들, 식물들(그는 “모자이크”의 조립을 의도했다)-의 본성에 관해 사색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러한 활동들이 자신의 지질학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고, 후에는 자신의 구조주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늦게까지도 과학도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얼마 동안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32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고,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4년에 상파울로 대학의 인류학 교수자리가 주어졌을 때, 그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직책은 브라질의 내륙지방을 수시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그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에서 그는 많은 원시 종족들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그가 훗날 발전시켰던 아이디어들을 그에게 제고해 주었다. 1939년에 그는 군복무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파리가 함락되자 뉴욕으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신사회 연구원에서 강의했고, 야콥슨과의 친교가 도화선이 되어 구조언어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1945년에는 「뉴욕 학단 연구지」에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종전이 되어 이 학원이 종신 재직 조건을 그에게 보장해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파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1955년까지는 「슬픈 열대」를 저술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행담이라든가 답사보고서라기보다는 지적인 재구성물 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된 기억과 경험적 지역 탐사와 과학적 연역이 묘하게 조화된 「슬픈 열대」는 뜻밖에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렇지만 만일 그 책이 1950년대 중반에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그와 같은 즉각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회상들과 해석들, 관찰과 사색, 사실과 자유연상이 혼합된 이 민족학적 자서전은, 「친족의 기본구조」와 같은 레비트로스의 친족 이론과 그의 신화론「신화의 구조적 연구」를 부상시켜 주었고 정당화해 주었다. 또한 이 학문적 저작들은 사변적 관념들을 상당한 정도의 과학적 지위로 올려놓았고 다시 이 관념들은 「야만적 사유」와 4권으로 된 「신화학」에서의 새로운 개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아무튼 이 초기 저작들을 통해 그는 꼴레쥬 드 프랑스의 명망있는 교수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이 이론적 탐구들을 확장하여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화연구를 구체화했다.   2) 레비스트로스의 기본적 사상 위와 같은 이론들은 검토하는데 있어서 다음과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신화들을 체계화하려는 레비스트로스의 시도-즉 여러 가지 경우의 모든 신화들은 그 문화와의 관련 속에서 말해야 한다는 시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진행중인 과업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기초적인 가정들은 미국의 대부분의 체계 이론들과 판이하다. 후자의 경우 관찰 가능한 자료들만 취급하고 정신의 무의식적인 구조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과학적”이라는 개념의 불어 용법은 미국에서의 용법처럼 경험적 증명과 연결된 것이 아니다. 셋째로 프랑스 저술가들은 전통적으로 개인적 경험들을 역사 해석에 적용해 왔다. 이상과 같은 지적 습관들이 합쳐져서 매우 암시적인 언동 형식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또한 그로 인해 레비스트로스의 초기 이론들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종종 사변적인 관념들을 사실들에로, 과거의 반성들을 현재의 가정들에로 변형시킨다. 그는 지질학과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자신의 “3명의 연인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개인적 경험과 지적인 해석의 혼합을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소년 시절의 레비스트로스는 어떻게 식물들이 상이한 토양에서 자라는가라든가 혹은 어떻게 상이한 시대의 유물들이 암석의 복잡한 퇴화과정 속에 스며들었는가와 같은 문제에 주목했었기 때문에, 인류학자로서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지각에는 과거의 경험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과, 따라서 지각은 “시간과 공간을 뒤섞는…한 순간의 활동하는 다양성 속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점을 사색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즉 역사가들의 역사와는 달리 지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이 보는 역사는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시간 밖에서 - 차라리 일종의 활인화의 방식으로 -구체화하려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역사란 재수집될 때 현재의 일부가 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반역사적인 조망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유쾌할 리는 없었다. 이는 특히 레비스트로스가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때 더욱 그러했다. 즉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는 지리학 및 정신 분석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이 세가지는 모두, 이해란 한 형태의 현실을 다룬 형태로 환원시키는 것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문제는 항상 이성과 감각적 지각 사이의 …관계에 기인하기 때문에…참된 현실이란 결코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 현실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한편 레비스트로스에게는 네 번째 애인이 있다. 그것은 음악인데 음악의 영향은 「날것과 익힌 것」에 잘 나타난다. 비록 그가 후에는 그 영향력을 감소시켰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다양한 경우의 종족 신화들이 음악의 보표처럼 읽혀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방법론 속에 음악의 3차원적 성격을 구체화했다. 「날것과 익힌 것」과 「벌거벗은 인간」의 종절은 음악적 주제들의 주변에서 형성되었다. 야콥슨에 의해 구조언어학이 소개되자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언어연구를 모든 언어적 기호들의 구성 요소들 사이의 , 언어 체계와 개인의 언어표현사이라든가 청각이미지와 개념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제시하는 하나의 자족적인 체계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그 기본적 이원론 위에 야콥슨의 음성학적 분석 모형을 얹어 놓았다. 아큡슨은 구조언어학을 통해 언어구조란 항상 대칭적 구성들의 두갈래 길을 따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의 발견을 계시에 비유했으며, 그 발견으로 인해 언어학 뿐만 아니라 인류학과제반 사회과학이 대변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음소 체계에 관한 야콥슨의 연구를 친족 구조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반영시켰다. 그러나 그에 병행하여 음소적 방법이 단순하게 인류학적 분석으로 전치될 수 없음을 환기시켰다. 대신에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허용할 수 있도록 다듬어져야 한다. 즉 인류학에 있어서 미시 사회학적 분석에 의해 발견되는 법칙들은 거시 단계에 적용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친족 체계에 있어서 용어법의 체계와 예법의 체계 혹은 명명법의 체계와 사회 조직의 체계간에는 커다란 차이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스트로스는 이들 모든 체계가 상징적이라는 점에서 모두 유사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의 입장에서 볼 때 직접적인 경험적 관찰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나 친족체계는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언어학에서처럼 상징적 제관계의 집합들로 취급되어야 한다. 거시단계에서 이 상징적 관계들은 언어와 문화 사이에 존재하며, 종족 사회들 내에서 그것들은 신화의 형태로 표현된다고 한다. 모든 기지들의 신화들이 신화의 구조적 법칙에 의해 발견되고 따라서 현재의 무질서에서 질서정연한 분석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연에서 문명으로서의 전환이 어떻게 관습의 변화와 병행될 수 있었는가를 그는 보여줬는데 예컨대 음식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익힌 것으로 먹는다든지 또는 손대신 식기류가 등장하는 것 등이다. 이런 예들은 단지 신화의 공통 요소를 설명하려거나 아니면 그것의 구성단위를 보이려고 하는 가정에 불과했다. 예컨대 두 편의 보로로족 신호는 문화의 출현을 한 공동체의 대학살과 대등한 것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 “문화”로의 전환은 항상 신화의 사상 그대로 “연속적인 것”에서 “불연속적인 것”으로서 전이에 대응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항상 신화의 분석은 그것의 용어 혹은 내용의 분석 그 이상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구조들을 파악하는 작업은 일종의 문화에 대한 심리분석이다. 또한 계속해서 신화의 구조적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마침내는 옛날 이야기들을 과학으로 변형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구조주의의 이러한 대계획이 성공을 거든다면 원시적이고 무의식적 단계에서 모든 사람의 유년기의 환상이 신성시 될 것이다. ※사르트르의 레비스트로스 비판 사르트르는 레비스트로스를 공격한 첫 번째 인물인데 무의식의 세계를 부정한 사르트르에게 레비스트로스의 무의식적 정구조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또는 레비스트로스의 방법이 관념의 진리를 논증하는 방법론적인 동어 반복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레비스트로스는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주고나성의 환영에 사로잡힌, 참된 사유에 반대되는 것으로 무시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도 전통적인 진화론 혹은 발전 이론을 무시했다. 사르트르의 변증법은 인간과 그의 환경 그리고 인간의 이 주위 환경들과 관계하여 의식적으로 행위하는 과정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의 변증법과 대립된다. 실존주의자의 “표면”은 구조주의자의 “심층”과 대비된다.     Ⅳ.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와 지리학과의 관계   실증주의나 인간주의와 마찬가지로 구조주의가 지리학에 도입된 것도 역시 다른 사회과학을 통해서였다. 구성구조주의를 인문지리학의 연구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구성구조주의 중에서도 다만 Piaget의 연구만이 지리학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그의 발달심리학에는 아동의 공간 및 기하학적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Piaget의 실험에서 제시된 바에 의하면 아동의 공간관 발달에는 4단계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는 지리학적인 연구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몇 사람의 연구자들은 아동이 어떻게 지리적 지식을 획득하는가라는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들의 연구 역시 구조주의적 설명양식보다는 그 패턴에 관심을 가졌던 실증주의적 경향이 강하였다고 할 수 있다. Piagetian적 연구의 잠재가능성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구조주의적 연구라고 할만한 것은 비교적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과정구조주의는 경제지리, 정치지리 등 많은 지리분야에 영향을 미쳐 구성구조주의와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Ⅴ. 구조주의의 문제점과 탈구조주의의 등장   1. 구조주의의 문제점   구조주의는 그 특성 자체가 처음부터 스스로의 숙명적인 해체요인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구조주의는 우선 개개의 텍스트들의 특성과 가치는 무시한 채, 전체적인 〈구조〉만을 중시함으로써 개체를 전체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적 독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구조가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한 문학작품의 의미가 작거나,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개인을 지배하는 언어체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 구조주의는 보편적인 〈구조〉, 〈문법〉, 〈구문〉또는 〈법칙〉을 찾아내고 수립하려는 과정에서 스스로 경직된 과학적 이론이 되고 말았다. ☞ 구조주의는 하나의 구조, 하나의 체계를 분리해 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역사를 무시하는 비역사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 구조주의의 이와같은 태도는 자연히 자아나 주체나 개인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는 비인본주의적․비실존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 구조주의에 의하면 〈구조〉는 곧 모든 것의 기원이나 센터가 되며 〈개체〉에 대해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가 된다. ☞ 구조주의는 비록 지시어와 지시대상의 사이가 필연적이 아니고 임의적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재현가능성을 믿었던 직관주의에 근거하고있다. 다시 말해, 구조주의자들은 모든 것의 근본이 언어체계로 설명될 수있다고 믿었는데 언어체계는 곧 기호체계이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자연기호학적 특성을 띄게 되었고, 더 나아가 기호의 재현능력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 탈구조주의의 등장3)   구조주의가 등장한지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은 1960년대 후반에 이미 강력하게 부상하기 시작한 탈구조주의는 위에 지적한 구조주의의 6가지 특성을 모두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하지만 탈구조주의가 구조주의 밖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내부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발견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단순한 연장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것의 완전한 배제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체적인 〈구조〉보다는 〈개체〉의 존엄성과 자유를 인정한다. ☞사고의 경직화 및 문학과 학문의 과학화를 배격하며 인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표명하며, 과거를 향수가 아닌 탐색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자아와 주체를 중요시한다. ☞절대적인 진리나 센터나 근원의 독선과 횡포를 거부하며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부터 탈피하여 〈타자〉를 인정하고 포용한다. ☞모든 기호와 그것들의 재현능력을 불신한다. [출처] [공유] 구조주의 개관 ①|작성자 옥토끼  
30    구조언어학 댓글:  조회:252  추천:0  2019-01-31
퍼온 글임 구조언어학        서론       인류학은 구체적 관심 분야가 어떠한 것이든 지간에 인간의 고유한 속성인 인간성이 어떻게 자연과 대립을 이루거나 또는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문화 속에서 인간성의 특질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연구도 인간정신을 보편적으로 입증하는 사실들을 추출해 내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무의식의 구조적 측면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에 접근하려고 했는데, 그의 접근 방식은 심리학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구조언어학을 통해서 였다.   레비스트로스는 저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였던 야콥슨과 학문적인 대화를 통하여 구조언어학의 방법론을 습득하였으며, 그 성과로서 1954년에는 야콥슨과 공동으로 이라는 논문을 집필하였다. 이를 통하여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언어학의 영향을 받았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구조와 사회관계의 복합적인 전체는 현대언어학의 방법론을 응용하여 가장 적절히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그는 현대의 구조주의 언어학, 특히 야콥슨의 이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즉, 그는 모든 문화현상은 하나의 언어라는 견해를 세련시켰다. 문화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하나의 구문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구문의 이해를 통하여 우리는 특정한 의식, 교환, 신화 등의 인간행위를 음운으로서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서로 다른 종류, 혹은 서로 모순적인 요소들의 진실한 상호관계를 나타내어 준다. 구조언어학의 경우처럼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사회현상의 각 요소는 오직 내재적인 수준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는 모든 문화를 하나의 의사전달 부호로 간주하고, 모든 사회과정을 하나의 문법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류학에 있어서의 주요한 가정이나 방법은 역사적인 이론체계들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이해서는 그의 구조인류학이 영향을 받고 있는 루소, 뒤르켐, 마르크스, 프로이드 등의 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며, 나아가 구조언어학의 기본적 특성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1)   위의 내용을 근거로 구조주의의 이해에 있어서 구조언어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구조언어학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였다. 또한 구조주의가 레비스트로스에게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아본다.        본론    1. 구조언어학의 연원    언어학이 독자적인 학문이 되기 이전에는 언어의 진화문제가 사람들의 의식에 크게 떠오르게 되었고 18세기말부터 19세기에 거쳐 언어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억설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로나 비교언어학과 사적언어학이 발달함으로써 언어의 신빙성을 잃게 되고 그 여세를 몰아 언어의 연구는 주로 언어의 역사적 연구로 흐르게 되었다. 제언어의 역사적 연구는 다시 언어 자체의 구조와 진화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그것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 결과 특히 20세기 초두 이래로 새로운 기초 위에서 언어의 일반적인 성격에 관한 연구가 추진되게 되었다. 제언어의 공통된 원리에 관한 이러한 고찰은 일반언어학을 탄생시키게 되고 그 연구과정에서 언어가 지니고 있는 체계적인 구조와 기능 문제가 구명되기에 이르러 구조언어학이 발생하게 되었다.   소쉬르는 스스로가 인구어의 역사언어학을 중심과제로 하는 소장문법학파의 밭에서 자라 1878년에 라는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한 천재적인 학자였으나 그는 인구어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언어학의 조류에 대해서도 널리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체의 언어현상을 19세기까지의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역사주의 관점에서 언어의 역사적인 변천에만 설명하려던 비교문법이나 소장문법학파의 사적언어학의 일률적인 방법에 회의를 품고 언어 자체의 형식적 체계화라는 과학적 분석의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언어의 역사적 연구를 포기했다기 보다는 과학적 언어학 이론을 정립하기까지, 그래서 언어의 전면적인 개혁이 이루어 질 때까지 사적언어학적인 방법은 당분간 보류하고 언어의 본질과 그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을 선행시켜야 하겠다는 학문적 입장에서 서게 된 것이다.   소쉬르의 그러한 언어에 대한 기본적 성찰의 결실이 나타난 것은 1907년, 1908-1909년 그리고 1910-1911년의 세 번에 걸쳐 즈네브대학에서 행한 라는 강좌에서 였다. 이 강의의 원전은 오늘날의 과학적 언어학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고 소쉬르 이후의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2)    2. 구조언어학의 대두     구조주의는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유행사상으로 등장했다고 했지만 구조주의 인식방법이 시대적, 사상사적 배경에서 역사주의의 오류에 대한 하나의 뼈아픈 반성으로 너무나 올바르게도 또 그릇되게도 제인간문화의 사상에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지 구조주의라는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그 때 처음으로 창시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구조주의는 사회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방법론으로서 하나의 선작관념임을 먼저 인식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구조주의는 실상 소쉬르의 에서 배태된 것이다. 인간문화 사상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인간 문화적인 언어연구에 있어서 19세기의 언어학이 사적언어학 및 비교언어학 또는 언어계통론 등으로 하나같이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회의를 품은 나머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있어서의 언어상태를 정태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체계로서 파악하자는 데서 구조언어학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독창적인 인식방법은 같은 불어문화권인 즈네브와 프랑스에는 바로 계승되지 못하고 도리어 1920년대, 30년대에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그언어학파 그리고 이윽고 덴마크의 코펜하겐학파에 의하여 계승하여 구조언어학의 구조가 잡혀갔던 것이다.   구조언어학의 원리를 언어가 아닌 다른 인간문화사상, 특히 민속학적, 문화토템현상 등의 원초적 인간문화 현상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한 것이 유명한 레비스트로스였다. 그의 연구는 이미 1940년대부터 남미의 원시부족에 대한 현지조사에서부터 구조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에 와서부터 역사주의를 불신하게 된 지적 상황이 그 타개구로서 찾은 것이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구조언어학의 원리에 여타 인간문화사상에 대한 적용으로 일시에 꽃피게 된 것이다.3)    3.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들    1>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의 편집자들은 양분법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이로부터 소쉬르의 언어학의 제반 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는 랑그(언어의 공동체가 수용하고 있는 기호체계)와 빠롤(발화체를 말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랑그를 사용하는 개인적인 행위)의 구별이다.   소쉬르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바의 이러한 구별을 훨씬 나중에 가서야 행했지만, 그는 언어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찾아내려고 오랫동안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어학의 대상은 아주 다양하고 잡다한, 따라서 물리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 그리고 정신적인 면을 지닌 전체로서의 언어활동이 될 수는 없다. 방언적 차이, 역사적 변화, 개인적 오류, 이 모든 것은 언어활동에 속하지만 이 언어활동에 고유한 것을 분리해 내려는, 즉 발화체를 있는 그대로 취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발화의 의미에 본질적이지 못한 우연한 사실들(역사적, 방언적, 문제적인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즉 빠롤을 제외하면 우리에겐 “언어학의 전적이고도 동시에 구체적인 대상”인 랑그가 남게 된다. 그 당시까지 언어학은 랑그의 정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에 의하면 언어학은 진정하고 유일한 대상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언어활동은 모든 언어현상에 적용된다. 소쉬르는 언어활동을 랑그와 빠롤로 나누었고, 그렇게 구별함으로써 그는 언어의 체계적이고 사회적인 면과 우연적이고 개인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구별했다. 랑그는 또한 언어의 공동체가 수용하고 있는 기호들간의 관계의 체계이다. 반면 빠롤은 말하고 듣기 위해 이 랑그를 이용하는 행위이다.4)     2> 공시태와 통시태    소쉬르 이전의 언어학은 주로 언어의 역사적 변천을 기술하는데 시종되어 왔다. 이에 비겨 언어상태를 일정시기에 있어서의 기능작용의 측면에서 고찰할 때 이를 공시태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언어를 일정시기에 있어서 정태적인 체계로 고찰하는 것이 공시론이며 그 특정한 시기에 기능하는 체계로서 정지상태로 간주하여 연구하는 사실이 공시적 사실이라고 일컬어진다.   언어의 활동을 랑그와 빠롤로 구별한 후 소쉬르는 또 하나의 구별을 하였다. 소쉬르는 언어에 있어서의 공시적 연구와 통시적 연구를 구별하고 공시론에 있어서의 기술을 강조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공시태란 일정시기에 체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된 언어 사실의 총체인 동시에 언어를 일정시기에 체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고찰하는 관점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언어의 모든 현상은 항상 역사적 인자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구체적으로 공시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시태란 어떤 사실을 기술하고 설명할 경우에 어느 특정한 언어의 상태에 속하는 것 이외에는 고려밖에   둔다는 방법론적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통시태란 언어의 사실이 진화의 면에서 분석되는 체계로 간주된다. 통시론에 의하여 언어사상을 역사적 어느 시점에서 다른 시점으로 이르는 계기적 연속 곧 그 변화의 족적을 살필 수 있다. 소쉬르에 의하면 통시론은 첫째로 언어학자가 선택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입장의 하나이며 공시론과 대립되는 것이다. 통시론의 관점에서는 통시론의 연구 전체가 공시적 체계의 역사적 설명이며 통시적 사상은 그 언어가 겪은 변화이다. 따라서 통시태는 공시태의 계기적 연속이며 소쉬르의 생각으로는 이 계기적 연속만이 언어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5)     3> 능기와 소기    소쉬르는 언어를 기호의 체계라고 생각했다. 기호는 음성표현인 능기(의미하는 것)와 의미내용인 소기(의미되는 바)의 두 측면을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어기호에 있어서는 그 기호의 음성과 그것이 전달하는 개념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말하자면 능기가 없이는 소기가 없고 소기가 없이는 능기도 없다. 소쉬르는 이 능기와 소기의 불가분의 관계를 종이 한 장의 표리에 비겼다. 능기와 소기의 관계는 종이와 같이 이면과 표면을 떼낼 수 없는 것과 같이 기호의 두 측면이란 불가분의 것이라고 주장했다.6)     4> 가치    언어의 가치의 개념도 소쉬르에 의하여 고안된 것인데 이 가치의 개념이야말로 구조분석의 중심개념이다. 언어기호의 소기는 낱말의 대립에서 오는 차이에 의하여 규정될 따름이지 기호의 자의성의 원리에 따라 기호의 능기 자체는 적극적으로 어떤 소기와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관계는 없을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를 화폐와 비교했는데 이유는 화폐는 다른 것들과 관련해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가치로서의 기호는 자의적이다. 기호와 실재 세계의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 단어 (그런데 이 외의 어떤 다른 음성들의 배열은 안 된다)가 네 바퀴 달린 자동차를 지시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그렇게 사용된다는 사실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호의 체계는 일종의 사회계약으로서 기능을 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동일한 음성 즉 사고의 연합이 모든 화자들의 뇌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pere(아버지)와 mere(어머니)는 p와 m의 대립에 의해서만 소극적으로 한쪽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요, 또 한쪽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차이에 의해서 언어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7)    4. 구조언어학의 제법칙    1> 내재성의 원리    소쉬르는 라는 기본적인 견해에서 그러한 특성을 가진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학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소쉬르의 주장을 옐름세우는 다시 문제삼아 내재성의 원리라는 형식으로 재정립하였다. 내재성이란 언어가 그 체계 속에 내유하고 있는 그 나름대로의 특유한 자율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언어학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언어이며 따라서 언어의 언어외적 사실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언어기술의 동질성에 편견이 개입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일체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언어전달에 있어서의 기능작용을 통하여 실현되는 언표는 내재성의 원리에 따라 그 언표의 내적 특성에 의해서만 분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재성의 원리에 의하면 하나의 언표는 모든 역사적 과정은 배제하고 그 자체가 자기 폐쇄적 구조로서 규정되어야 한다.   바로 이 내재성의 원리에서 소쉬르가 제기한 기본적 개념규정의 하나인 공시태와 통시태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시론 같은 언어공동체의 집단의식에 의해서 인지되는 바 언어의 체계를 이루는 동시에 공존하는 제사항간의 논리적, 심리적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고 이에 비겨 통시론 같은 집단의식에 의하여 인지되지는 않으며 체계를 이루지 않으면서 서로 교체되는 계기적인 사항들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둘째로 내재성의 원리는 언어와 언사의 구분이 이론적 근거로서 그야말로 내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사는 언어연구의 자료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분석절차가 적용될 수 있는 자기 폐쇄적인 원전으로서 그것이 바로 언어기술의 자료체가 된다는 말이다.8)     2>관여성의 법칙     관여성의 개념은 원래 프라그학파의 음운론에 의하여 도입되었다. 애초에는 어떤 표가 이에 대비되는 다른 요소와 구별되고 그럼으로써 언어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을 말한다. 이러한 특성을 관여적 특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관여성이란 언어학자나 기호학자가 어떤 선택된 대상을 어떤 한 관점에서만 기술하는 입장을 말한다. 기호학자는 어떤 주어진 자료체에서 관여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를 추출하는데 있어 비관여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를 배제하고 작업에 임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는 관여성은 과학적 기술의 필수적인 규칙 중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이 규칙에 따르면 관여성은 어떤 대상의 가능한 관여적 특징 중에 일정한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특징밖에 고려하지 않는 과학적 태도와 입장을 일컫게 된다. 따라서 그 대상은 같은 수준에 있는 다른 대상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구조분석에 있어서 관여성은 어떤 선택의 형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 선택이라 함은 선택된 언어요소 자체의 차이로 말미암아 체계의 분절을 구성하고 전달을 가능케 하는 선택을 말한다.9)    5.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앞에서 우리는 구조언어학의 발생과 기본적인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소쉬르의 사상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들뢰즈는 구조언어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바 있다. 구조주의는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라깡의 정신분석학, 알뛰세의 정치경제학, 바르뜨의 문예비평 등의 다방면에 영향을 주었지만 결국 언어학에서 출발한다라고 했다. 이 중에서 구조언어학이 레비스트로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1> 신화 연구에서의 구조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야콥슨의 언어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레비스트로스는 2차대전 중에 뉴욕에서 야콥슨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WORD의 제2호의 한 논문에서 트루베이코츠의 음운론의 원리를 친족체계 연구에 적용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운론은 사회과학에 대해서, 예컨데 핵물리학이 전체 자연에 대해 가졌던 혁신적인 역할과 같은 역할을 반드시 할 수 있다.”   소수의 기본 규칙과 이들의 변형으로 사회조직을 표상하는 작업은 신화 연구에서 그 극치를 이룬다. 이 신화의 분석은 양분대립체계를 이용함으로써 야콥슨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양분 대립은 몇몇 기본적인 대립(남성/여성, 밤/낮)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들의 적용이 일반화 될 때는 아주 경직된 것처럼 생각된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분석이 너무 형식주의적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 자신은 프로프(Propp)가 에서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나아가서 “소쉬르 이후 모든 언어체계에서 인정된 시니피에10)와 시니피앙11)의 상보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를 구별한다.   은 이 형식과 관계가 없는 실질과의 대립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나 는 독자적인 내용이 없다. 왜냐하면 구조는 내용 그 자체이며, 실제의 속성으로 간주되는 논리적 조직 내에서 파악되기 때문이다.   신화라는 의사소통 체계 내에서 “동일한 요소들은 차별없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기호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에 의해 랑그의 차원에서 생성된 것이므로, 상위의 차원, 즉 신화에 의미작용을 부여하는 차원의 시니피앙이 될 수 있다. 이 두 차원에서의 기능작용은 많은 기호체계의 속성이며, 이로 인해 언어와 여타 기호체계들이 구별된다.   구조주의를 문학에 최초로 적용한 것은 레비스트로스와 야콥슨의 분석이다. 야콥슨에 의하면 시란 구조화가 아주 심한 언어라고 한다.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그는 보들레르의 소네트에 내재한 구조를 설명하는 규칙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이 분석은 문학비평계의 대논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1966년 미셀 리파테르의 이 소네트에 대한 논평은 이들의 분석을 비판하고 능가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구조주의적 방법을 문학비평에 적용시키는데서 파생되는 점을 명석하게 해설하고 있다.12)    2> 친족체계의 구조    모든 사회는 친족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누구와 결론할 수 있느냐, 또는 일반적으로 누구와 결혼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가족관계의 일반적 성격을 규정한 일련의 규칙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같은 사회에 있어서의 다른 유형의 전달체계인 친족체계와 언어란 것이 실제로는 같은 무의식적 구조에 의하여 생성되고 있다는 근거에서 이러한 친족의 체계 내지 구조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언어의 구조와 상동적이 아니겠는가 하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문화현상의 특질을 결정하는 것은 그 현상자체의 어떤 내부적 양상이 아니고 현상의 구성 요소간의 관계라는 것이 구조주의의 기본적 원리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로만 야콥슨이 음운론을 전개한 구조적인 방법에서 영감을 얻어 친족의 기본 구조가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표의작용에 대하여 새로운 조명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인류학에서 늘 문제가 되어 오던 부모사촌혼에 있어서의 여자의 교환과 숙질관계의 구조를 분석했다. 곧 여태까지의 역사주의적 인류학의 방법은 부모, 숙부, 숙모 등 친족의 명칭의 체계와 그들 상호간의 애정이나 반발이라는 친족의 체계의 두 개의 수준을 혼동하여 이를테면 다수의 미개사회에서 볼 수 있는 외숙과 생질간의 특수한 관계를 모계제사회의 유물처럼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적인 갚은 통찰을 통해 그 부당함을 지정하였다.13)   결론    지금까지 구조 언어학에 대해서 그리고 구조주의 언어학에 관련하여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구조주의에 대해서 깊이는 아니지만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구조주의에 대하여 많은 글들을 보게 되었다. 를 읽으면서도 구조주의는 단지 레비스트로스가 연구하는 인류학에 대해서만 한정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실상 구조주의는 당시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사상의 한 조류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주의가 다름 아닌 언어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하게도 한 책에 의존하여 ‘구조언어학’이라는 단어가 그냥 끌려서 손을 댔는데 다행히 끝마칠 수 있어서 기쁘다.   이 글은 소쉬르의 를 많이 참조했으며 소쉬르를 중심으로 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혀 둔다. [출처] [공유] 구조언어학|작성자 옥토끼    
퍼포먼스 시와 하이퍼시의 창조적인 공간 속에 펼쳐지는 사유의 세계                                                                                                   -이선 첫 시집 『빨간 손바닥의자』                                                                                                                          심 상 운(시인, 평론가)   1. 들어가는 글    이선 시인의 첫 시집 『빨간 손바닥의자』에 담긴 55편의 시들은 도전적인 자세와 거침없이 펼쳐지는 창조적인 이미지의 공간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 충격은 첫째로, 이 시집의 1부에 수록된 퍼포먼스 시편들이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공연시(perfomance poetry)의 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구체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작은 현상 같지만 시사적(詩史的)인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된다. 극시나 시극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1시간 이상 공연되는 연극의 대본(희곡)이지만, ‘퍼포먼스 시’는 보통의 짧은 서정시를 시인이 5~7분 동안 무대에서 연출하여 보여주는 시이다. 그래서 퍼포먼스 시는 이미 존재하는 극시나 시극과는 성격이 다른 독립성을 갖고 시사적인 면에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이 시집의 퍼포먼스 시편들은 ‘공연을 위한 시’의 극적 요소가 창작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이 공연을 통해서 시의 이미지를 온 몸으로 시현(示顯)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이선 시인은 자신이 시인이면서 배우라는 투철한 자기인식 속에서 자신의 시를 적극적으로 공연(公演)하고 있어서 다른 시인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퍼포먼스는, 획일적인 무대에게 주는 나의 문학을 향한 ‘사랑 이벤트’다. 시낭송 퍼포먼스에 대한 사랑, 완성된 무대를 향한 노력과 열정은 평생 내 문학적 목표가 될 것이다.”(시인의 말)라는 그의 말이 시에 대한 열정을 얼마나 뜨겁게 나타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런 그의 열정적 행위는 1960년대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현실참여시의 깃발을 들고, 큰 충격의 결과를 남기고 간 김수영 시인이“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1968,「詩여, 침을 뱉어라」에서 발췌)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이선 시인의 퍼포먼스 시와 김수영의 현실참여시는 전혀 차원이 다른 곳에 위치하지만 시에 자신의 온 몸을 던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둘째로는 에 대한 도전이다. 그는 21세기 새로운 시론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예리한 언어적 감성으로 개성적인 하이퍼시를 써 내고 있다. 이 시집 2부에 수록된  하이퍼시에 대해 그는 “하이퍼시의 목표는 ‘새로움’과 ‘초월적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이퍼시를 쓰면서 ‘회화성’과 ‘공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디지털적 영상감각을 도입하여 시를 디자인한다.”(시인의 말)라고 하면서 하이퍼시와 퍼포먼스 시의 창조적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하이퍼시의 영상성을 퍼포먼스 시에 도입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이 밖에도 3부에서 보여주는「가족(이웃들)」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존재론적 의식 추구와 그늘진 현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던져주는 전율감도 충격적이다. 4부 「야생화」, 5부「표절시비」등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왜곡된 현실에 대한 그의 불안과 분노, 구원의식은 독자들을 깊은 사유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이 시집의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문제에 대한 친절한 해답을 주는 대신 문제에 대한 ‘화두(話頭)’를 던지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것이 이선 시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작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의 제목을 라고 했다. 가상현실과 현실의 이미지에는 무의식 속을 흐르는 사유(思惟)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포퍼먼스 시     20세기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은 언어에서 “기표와 기의는 처음부터 일치하지 않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 기표가 ‘기의에 닻을 내리는 곳’이 존재한다.”고 했다. 따라서 눈앞에 실재하는 것은 기표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기표의 이미지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같이 은유와 환유의 구조로 되어있다.  따라서 무의식(無意識) 속 욕망은 환유의 기표로 부상(浮上)한다. 이선 시인의 퍼포먼스 시는 이런 언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현대시의 창조적인 변화의 모습으로 해석된다. 그는 ‘시+공연’의 방법으로 은유와 환유의 구조로 형성된 신명나고 즐거운 새로운 시의 마당을 펼쳐보이고자 한다. 이 시집의 표제가 된 첫 번째 시 「빨간 손바닥 의자」에는 그런 시인의 의도가 표출되어 있다.   눈 덮인 수명산 공원까페, 빨간 손바닥의자/(지금 여기)/앉아있는, 긴 머리 여류시인// 엉덩이를 종일 받쳐주던/ 의자가 그녀를 떠나버린 뒤부터였을까?/ ―뒤가 늘 허전한 그녀//지금 그녀를 떠받들고 있는 손들도/ 언제 갑자기 빼버릴지 몰라,/뒤에서 몰래 꽈당 넘어뜨린, 그 손/ 내리 누르는 엉덩이 힘이 버거운가?/ 지난번보다 빨간 손가락이 아래로 처졌다/ 불안하다,// 문득, 의자가 아픈 손가락을 오므리면?/ 그녀 엉덩이를 빨간 손가락이 비틀면?/ ―샤갈의 추상화, 하얀 탁자 위, 파란 유리컵, / 주르르, 흘러넘치는 헐렁한 물의 엉덩이,/ 한 컵 푸른 사과향기// 하얀 접시 위, 피자 위, 소년의 잘 익은 눈빛 위,/ ―토마토페이스트처럼 붉은 뺨, 소녀/소녀 엉덩이 아래, 의자 엉덩이 아래,/ ―가볍게 눌려 킥킥대는 농담// “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고무줄 끊던 짓궂은 소년, 새까만 손/ (그때 거기)/ 싱거운 농담도 따뜻했다,// 빨간 손바닥 의자,/ 미끄러지는 늙은 여자의 엉덩이를/ 다시 끌어다 앉힌다// ―「빨간 손바닥 의자」전문    이 시에서 무엇보다 먼저 감지되는 것이 퍼포먼스의 기본이 되는 ‘행위(行爲)’이다. “뒤에서 몰래 꽈당 넘어뜨린”, “문득, 의자가 아픈 손가락을 오므리면?”, “주르르, 흘러넘치는 헐렁한 물의 엉덩이” 등 시 속에서 벌어지는 동적상황이 그것이다. 시인은 리포터의 위치에서 은유와 환유로 형성된 상상의 언어와 행위의 이미지로 하나의 상황을 제시하고 독자(관객)를 그 세계로 유인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 ‘빨간 손바닥의자, 긴 머리 여류시인, 그녀의 엉덩이를 종일 받쳐주던 의자, 샤갈의 추상화, 하얀 탁자 위, 파란 유리컵, 소녀/ 소녀, 미끄러지는 늙은 여자의 엉덩이’ 등은 한 여자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은유와 환유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추상적(抽象的) 상상은 이선 시인의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유추된다. 시인은 자신의 무의식을 객관화하여 시적상황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의해 불안한 현재, 푸른 사과 향기 같은 환상적인 과거의식, 그리고 빨간 손바닥 의자에서 미끄러지는 늙은 여자의 모습(미래)은 시인자신의 존재의식이 담긴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선 시인은 이 시를 각색(脚色)하여 보여줌으로써 퍼포먼스 시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  9) 뒤에서 몰래 꽈당 넘어뜨린, 그 손/ (7-9행 모션: 의자를 바닥에 꽈당, 소리가 나게 쓰러뜨린다)/ 10) 내리 누르는 엉덩이 힘이 버거운가?/ 11) 지난번보다 빨간손가락이 아래로 처졌다/ 12) 불안하다,/ 13) 문득, 의자가 아픈 손가락을 오므리면?/ 14) 그녀 엉덩이를 빨간 손가락이 비틀면?/ 15) -샤갈의 추상화, 하얀 탁자 위, 파란 유리컵, / 16) 주르르, 흘러넘치는 헐렁한 물의 엉덩이, / 17) 한 컵 푸른 사과향기/ (10-12행 모션: 일어나서 의자를 의리저리 만져본다)/ (의자를 툭툭, 두드려본다)/ (13행 모션: 손을 치켜들어 관객에게 보이며 손가락을 앞으로 오므린다)/ (14행 모션: 손가락을 펴서 엉덩이를 찝는다.)/ (15행 모션: 탁자위의 유리컵을 든다) / (16행 모션: 컵을 들고 물을 주르르, 흘러넘치도록 따른다)/ (17행 모션: 컵을 코에 대고 행복하게 냄새를 맡는다) ―퍼포먼스「빨간 손바닥 의자」부분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도 존재의식의 객관화라는 점에서「빨간 손바닥 의자」와 같은 무의식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추상적인 상상에서 벗어나 “내 정신의 줄기세포는 어디에서 이식받은 것일까?”라는 사실적 화두(話頭)를 제시하고 자신의 존재성을 유전자(遺傳子)로 추적하는 사유가 자유분방한 상상과 결합되어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그리고 시의 화자로 ‘나’를 등장시킨 직접 화법의 기법이 시적감각을 상승시키고 독자와의 거리를 밀접하게 한다.    나의 젖가슴은 보름이면 살이 오르고/ 조금 때는 살이 빠진다,/ 해와 달, 별이 내 줄기세포를 키우는가보다/누군가 나를 지었다, / 작은 키, 급한 성격, 갈색 눈, 예민한 입맛,/ 가는 목소리, 큰창자 길이와 작은창자 길이,/ 누군가 내 유전자를 조립한 거다 // 내 정신의 줄기세포는 어디에서 이식받은 것일까?// 페이지가 접혀, / 뇌혈관 어디쯤 파묻혀 있을 니체, 보들레르, / 토스토에프스키,/ 이사도라 덩컨, 까미유 끌로델, 열기와 헛소리…/ 내 피는 샤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 / 파랑색 스카프, 파랑색 가방, 파랑색 원피스,/ 나의 詩도 파랑색이다,/ 착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詩,/ 나의 詩에는 적도의 피가 들끓고 있는데/ 러셀의 연애론보다 더 겁쟁이인 불쌍한 나의 詩, / 감염되지 않은 단어가 내 시에 한 줄이라도 있을까?/ 내 생각의 껍질까지, 타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 (어머니의 눈으로 본 아버지,)/ (언니의 코로 맡은 돈 냄새,) / 내 몸의 세포조직엔 적도의 바람과 햇빛이 녹아 있다/ (한국인의 조상은 동남아인이라고 흥분하던 KBS,/ 9시 뉴스앵커, 내 두툼한 입술과 주먹코는 분명 남방계다) // 하늘은 초록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무들 밑둥 잡고, 땅에다 오늘도 열심히 글씨를 쓴다/ 제 생각을 뿌리째 땅속에다 모두 이식하고 싶은 거다,// 나뭇잎의 떨림을 이식받아 / 바람 앞에 내 줄기가 떨리듯/ 내 굴절된 파장이/혹,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당신 심장 한쪽을 떼어/ 내 할딱이는 심장에 붙여주고 갔듯이, // 지금, 나는 누구의 푸른 눈동자로 응고되어 가는 너를 보는가?//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전문 *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장기이식 후 기증자의 성격과 습성까지 전이되는 현상. 애리조나주립대학 심리학 교수, 게리 슈왈츠(Gary Schwartz)가 처음 발견함.     이 시도 각색한 시를 보여주고 있다. 3인이 등장하는데, 2인은 보조 출연자이고 1명이 주도하는 1인의 포퍼먼스 시다. 시의 내용과 퍼포먼스가 예상치 못하는 결합을 하지만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를 얻는다.   #1 1) 남녀 2명이 무대에 나와서 를 부른다./ 2) 1절― 여자, 2절― 남자, 3절― 남녀 같이/ 3) 1―2절 노래하는 동안 낭송자 1은 파란 의상과 파란색 긴 스카프를 휘날리며/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며 행위예술을 한다. / 4) 춤을 추는 사람이 따로 있고, 낭송자는 시만 낭송하여도 좋다./ 5) 스카프를 휘날리며 관객 사이를 뛰어다니며 춤을 춘다./ 6) 파란색 구두를 벗어 무대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7) 스카프를 앞으로 높이 들고 관객을 스텝을 밟으며 무대와 관객을 가른다./ 8) 다시 스카프를 높이 하늘로 치켜들고 춤을 춘다./ 9) 다시 관객 사이로 뛰어다니며 스카프를 뒤로 휘날린다./ 10) 관객 머리 위로 스카프를 가볍게 휘날리며 무대 쪽으로 나온다.// ―퍼포먼스「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앞부분   「커닝 페이퍼」에서도 시인은 자신의 존재의 모습에 잠입(潛入)하고 있다. “고개가 35도 갸우뚱 기울어버린 모델 쟌느”의 잃어버린 자유와 시인자신의 모습이 무의식의 공간에서 만나는 상상이 이 시의 밑그림이다. 시인은 오랜 시간 모딜리아니의 광기어린 눈과 그의 모델 쟌느에 대한 연민(憐憫)의 이미지를 무의식 속에 넣고 살아 온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이 “나는 몇 세기 동안 타인의 생을 기웃거린 촉매였을까?”라는 독백이 진정성을 띠게 된다. 따라서 이 시속의 모딜리아니와 쟌느는 자크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 속 타자(他者)의 환유(換喩)로 인식된다. 그것은 또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존재들이 바다에 떠있는 빙산처럼 잠재해 있다는 의미로 확대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커닝 페이퍼’의 의미도 순조롭게 풀린다. 인간의 생각이나 행위는 의식 속의 자기가 아닌 무의식 속의 타자에 의해서 조종된다는 것이다.   이 빠진 단어처럼/ 꽃잎이 톡, 떨어진다/ 나는 꽃잎을 집어들고/ 캔버스 속, 잃어버린 눈동자 속으로 잠입한다// 모딜리아니, 밥줄에 걸려/ 고개가 35도 갸우뚱 기울어버린 모델 쟌느,/ 그녀의 긴 목, 초록색 짝 눈// 내가 매표소에 던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론/ 쟌느의 목을 똑바로 세울 수가 없다/ 그녀의 잃어버린 자유를 드로잉 할 수가 없다// 나는 쪽동백 하얀 꽃잎을 몇 번이고 씹는다/ 모딜리아니 광기어린 눈/ (면도칼, 임산부, 붉은 핏방울, )/ 콜록콜록, 내 입속에서 기침하는/ 꽃잎// 씹다가 뱉어놓은 꽃잎, 꽃잎,/ A4 용지에 수북이 배설해 놓은, 설익은 문장들/ 수채화의 밑그림처럼 누워있는/ 커닝 페이퍼,// 나는 몇 세기 동안 타인의 생을 기웃거린 촉매였을까?// ―「커닝 페이퍼」전문   「퍼포먼스―커닝 페이퍼」도 1인 또는 2인의 공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델 쟌느 역할 여자 1.(시낭송자 1, 퍼포먼스 1로 시낭송과 퍼포먼스를 분리할 수도 있다)”그리고 ‘주의 집중’포퍼먼스를 펼친 후, 시낭송을 한다. 시낭송자는 낭송을 하며 동시에 시의 내용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한다. 시의 내용과 낭송자의 연기가 합치되는가. 그것이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반응이다.    16) 씹다가 뱉어놓은 꽃잎, 꽃잎, / 17) A4 용지에 수북이 배설해 놓은, 설익은 문장들/ 18) 수채화의 밑그림처럼 누워있는/ 19) 커닝 페이퍼,/ (16행 모션: 꽃잎, 꽃잎, - 관객을 한 명, 한 명 손을 옮기며 지적한다.)/ (17행 모션: A4 용지를 바닥에 흩뿌린다.)/ (18행 모션: 바닥에 눕는다. 태아가 웅크린 자세를 취한다.)/ 20) 나는 몇 세기 동안 타인의 생을 기웃거린 촉매였을까?/ (20행 모션: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멀리 시선을 둔다)/  * 무대조명 천천히 꺼진다.// ―「퍼포먼스―커닝 페이퍼」끝부분   이 외에  일상으로부터 이탈된 예술가의 고뇌를 풍자한「고흐와 설사」,가족의 관계와 자신의 존재 원소(DNA)를 우주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하이퍼적인 상상의 세계를 펼친「페르세우스 流星雨(유성우)」, 시인 자신의 현실적 모습을 냉장고 속의 식품으로 비유한 「이력서」, 사랑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열쇠를 잃어버렸어요」, 퍼포먼스 시로만 발표한 「버릇과 타성의 줄다리기」, 퍼포먼스 시로 각색한 이육사의 「광야」와 김소월의 「진달래 꽃」등의 퍼포먼스 시편들이 시적 긴장감과 일상에서 벗어난 신선한 사유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그래서 그 시편들은 독자들을 유일하고 독특한, 육감적(肉感的)인, 진정으로 유니크(unique)한 시의 열정 속으로 끌어들여 용광로 속의 쇳물로 만들 것 같다.    나. 하이퍼시(hyper poetry)    하이퍼시는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불연속적인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다선구조), 동적 이미지를 기본으로, 독백적 서술과 주장과 설득의 거부 등을 통해서 새로운 시 형태를 추구하고 구현하려는 개혁적인 시운동이다.에서 발간한 20명의 시 선집(anthology)『하이퍼시hyper poetry』(2011년 11월 5일 시문학사)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벌여온 하이퍼시 운동의 결과물로 주변의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선 시인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개성적인 하이퍼시를 발표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 )와 ( ) 사이에」는 에서 ‘새로운 감각과 발상, 실험의식이 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수상하는 제8회「푸른 시학상」을 수상한(2011년 11월 22일)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필자는 심사평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선 시인의 「( )와 ( ) 사이에」는 시어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시 속에 ( )를 넣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숨은 의미를 찾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 )는 독자참여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공간은 수평적인 위치에서 독자와 시인이 소통하는 현대시의 탈구조적 형태를 구상하게 한다. 내용면에서도 “ ( )작은 괄호, 〔 〕큰 괄호 끼리끼리 몰려다닌다/큰 괄호가 작은 괄호를 [{(((())))}] 삼켜버린다 ”에서는 괄호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현대사회의 갈등의 요인이 무엇인가를 도상(圖像 icon)으로 암시하는 시적 깊이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기호시(記號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언어작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시가 하이퍼적이라는 점은 (  )을 통해 독자와의 소통, 무한한 상상의 확대가 가능하고 시인은 객관적 위치에서 안내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너와 나, 사이, 강물/ ( ) 안에서/ 넘치지도 않고 유유히 흐른다// 하늘과 땅의 큰 괄호 { } 사이로 / 빌딩이 자란다 / 가로수, 긴 괄호∥∥사이로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 ( )를 치고 ( )를 치고 ( )를 치고/ ( )작은 괄호, 〔 〕큰 괄호 끼리끼리 몰려다닌다 // 큰 괄호가 작은 괄호를 [{(((())))}] 삼켜버린다// 철길을 홀로 걷던, 그 사내 / 누구의 잃어버린 ( )인가? / 쇠파리 몇 마리, 사내 입술에 달라붙어/ ( ) 속, 말을 열려고 버둥댄다 //  입맞춤과 포옹은 ( )를 열고 닫는 것/ 꽃잎 닫혔던 ( ) 화르르, 열린다 // 가로수 귀를 막고 / 《》를 치고/ 위로만 나뭇가지를 뻗는다 //   ―「( )와 ( ) 사이에」전문    「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샤갈의 잠」은 사과나무⟶사과⟶소녀의 꿈⟶말의 허공으로 이어지는 1, 2, 3, 4 부의 변화가 이미지의 집합적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저녁 새들은/ 해를 쪼아다 나뭇가지에 콕콕 박아 넣는다/ 사과가 빨갛게 익는다”라는 초현실적인 상상의 감각과 현실의 결합이 하이퍼시의 언어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하이퍼시를 의식하고 쓴 시는 아니지만 발상과 상상과 감각에서 하이퍼시의 요소가 감지된다.        1./ 꽃사과나무 기둥에 다윗의 비파를 숨겨 놓았다./ 바람타고/ 줄기타고,/하얗게 소리를 지르는 사과나무, // 저녁 새들은/ 해를 쪼아다 나뭇가지에 콕콕 박아 넣는다 / 사과가 빨갛게 익는다 // 2./ 사과나무, 제 살을 물어뜯다 지친/ 달빛 잘 익은 밤/ 비명소리, 사과 살만 골라 야금야금 먹는다 / 귀퉁이마다 하얗게 남아있는 이빨자국/ 하늘을 밀어내고/ 허공중/ 사과나무에 매달렸던 아담의 사과들/ 투두둑 떨어진다/ 달이 떨어진다 // 3./ 12시, 소녀가 꿈꾸던 신데렐라의 꿈도 달빛모양/ 땅에 떨어진다/ 펄럭이던 하늘빛 레이스자락/ 땅에 길게 눕는다/ 그 위에 빛이 흥건히 고인다// 4. / 휴식, 휴식이 필요해……/ 말은 말의 풀을 잘라먹고/ 잘라먹은 말의 허공, / 사과 나뭇가지에 끼어있던 햇살/ 휴식, 휴식이 필요해……/ 저것 좀 봐/ 저것 좀 봐/ 두 얼굴의 말이 나를 쫓아 안방으로 달겨든다/ 빨갛고 / 초록인, 어둠 //    ―「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샤갈의 잠」전문   「숨은그림찾기」는 숨은 그림에서 연상되는 이야기가 다양하고 자유로운 이미지의 공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가오리, 8분음표, 성냥개비, 버섯, 화살표, 신발 등의 이미지는 숨은 그림 찾기라는 놀이 속 공간에 집합되어 있어서 이미지의 수평적 결합이라는 ‘하이퍼시’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숨은 그림 속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는 시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미지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에는 여러 종류의 그림이 캡처되어 있습니다. / 숨은그림찾기는 늘 흥미롭지요? / 자,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릴렉스 릴‥렉스)// * 온 가족이 환하게 웃는 그림이 인상적이군요./ 그럼, 먼저 가오리를 찾아볼까요? / ―(아, 술안주? 취해서 어머니에게 소주병을 던지던 아버지, 벌름거리는 콧구멍)//* 흠흠,������신발������도 찾아보시죠,/ ―(내 여자 친구에게 빨간구두를 사주고 영화관, 형, 거세해 버리고 싶었‥)// * ������성냥개비������도 어렵지 않게 찾았군요?/ ―(직장 상사가 그녀 엉덩이를 만지네. 나쁜자식! 고추를 확 불질러 버릴‥)/ * 숨은 그림에서 ������8분음표������가 자꾸만 튀어나온다고요? / ―(아이는 무릎을 꿇고 ������멍멍������ 개 짖는 소리를 내요, 친구들 책상 옆… 토끼뜀…어지러워요, 5학년, 담임)// ―「숨은그림찾기」부분    이 외에「귓속말 하기― 때, 시간, 장소, 그리고?」,「보들레르와 은행잎 편지」,「선문선답-모자이크 이미지 」,「잃어버린 동화 1」,「시인을 위하여 -감성스케치」,「빨강 스펙트럼-근친상간 , 성폭력, Red Card??」,「프리다 칼로 1-자화상〮 〮부서진 ․ 기둥」,「 프리다 칼로 2-자화상 ․ 다친 사슴 」,「프리다 칼로 3-자화상 ․ 꿈 」등의 시편에서 이선 시인이 추구하는 하이퍼시를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사유과 감정을 하이퍼시에 넣어서 인간의 피가 흐르는 하이퍼시를 쓰려고 한다. 그것은 하이퍼시가 유리판 같은 냉랭한 이미지만의 시에서 벗어나서 독자와 소통하는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이퍼시와 다른 시와의 차별성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타인의 상처에 대한 치유와 하이퍼시의 특성을 결합하고 있는 이선의 시는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빈센트 반 고흐’나 ‘프리다 칼로’는 불행을 딛고 예술을 꽃 피운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그들을 시에 등장시켜서 그들의 고통과 함께 하고자 한다. 그것이 치유의 한 방법이다. 연작시 「프리다칼로」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는 소녀시절, 전차 사고 후 척추장애로 평생 걷지 못한 불구의 화가다. 그는 평생 남편의 바람기로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리다 칼로에 대한 연민은 같은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더 적극적인 거 같다.    고통스럽게 미간이 점점 밀려 맞붙는다// ―이 절박한 밤에도 / 선인장 꽃향기, 몸부림친다/ 희롱하듯 헐벗은 내 몸을 부드럽게 스쳐가는, 꽃바람// “여동생이, 남편 디에고와 잤어‥”// 내 자궁은, 알티플라노 중앙고원을 품고 홀로 잠든다/ 새벽안개가 첫눈을 치켜뜰, 때 /―초원이 용설란, 꽃잎 잉태하는 소리// ―「프리다 칼로-자화상 〮〮․ 부서진 기둥」부분   “내 몸에 박힌 화살을 빼지 마세요‥제발”// ―상처는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붓/ ―고통은 잘 섞은, 물감/ 배경처럼 서 있는 멕시코만, 푸른 바다/ 남색꽃 만발한, 클리토리아 초원// 봄이 오면,/ 굳어버린 뿔은 마피미 분지에 내던지고/ 말랑말랑한 새 뿔을 왕관으로 쓰고/ 초원을 힘껏 내달릴 터, /―귀를 쫑긋 세우고// ―「 프리다 칼로2-자화상 〮․ 다친 사슴 」부분    3부 「가족」, 4부 「야생화」, 5부 「표절시비」 에 대한 해설은 줄인다. 그 시편들에도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현실의 문제를 포착하고 왜곡된 현실에 대한 불안과 분노, 구원의식, 자기 존재에 대한 추구가 들어 있어서 긴장감과 충격을 주고 있지만 새로운 시의 형태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3. 나가는 글    이선 시인은 자신의 시를 온 몸으로 공연(performance)하는‘행위의 시’를 통해서 현대시의 공간을 확대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첫 시집『빨간 손바닥 의자』는 21세기 한국현대시의 현장에 퍼포먼스 시의 모델을 제시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집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답답한 언어의 틀에서 벗어나서 노래와 춤이 서로 어울렸던 ‘시의 원형’을 재현하려는 ‘현대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운동은 원시시대의 예술 정신과 표현 양식을 현대 예술에 접목하려는 원시주의(Primitivism)와 상통한다. 그는 또 하이퍼시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인간의 피가 흐르는 하이퍼시를 창작하고 있다. 유리판 같이 냉랭한 이미지에 사유와 감정을 넣자는 것이 그의 하이퍼시 창작 정신이다. 필자는 그의 첫 시집 『빨간 손바닥 의자』에서 그의 종횡 무진한 상상을 접하고 내심 경이로움을 느꼈다. 앞으로 그의 시가 어떻게 변모하고 어떤 놀라움을 줄지 기대하면서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의 해설을 줄인다.   가져온 곳 :   카페 >토요시학회 | 글쓴이 : 김명| 원글보기     
하이퍼시의 구조란 무엇인가 -하이퍼시란 무엇이냐? 탈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 두 단위의 초월 관계를 연결하여 완성한 시다       문덕수    [1] 가끔 하이퍼시란 무엇이냐고 묻는 시인들이 의외에도 많습니다.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 중에도 그렇게 묻는 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우나, ‘탈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를 연결한 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탈관념의 사물을 한 단위로 보고, 상상의 이미지를 한 단위로 본다면 모든 하이퍼시는 A단위와 B단위의 두 단위의 구조를 이룹니다. 결국 하이퍼시는 A단위를 어떻게 만들고, B단위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점으로 귀결되고, 그 두 단위를 연결함으로써 완성됩니다. 우리말에 ‘비근’(卑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상하거나 웅승깊지 아니하고 주변에 가깝게 있는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하이퍼시는 비근한 사물을 묘사하여 A단위를 먼저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즉 ‘이성’(理性)이나 ‘정의’나 ‘선(善)’이나 하는 말이 아니라, 즉 관념이 아닌, 우리 주변에 가깝고 낮은 모든 사물들(집, 부엌, 그릇, 호미, 쟁기, 나무, 펜, 그릇, 종이 등)을 가지고 묘사하여 시를 쓰라는 것입니다. 영어에 ‘아우트리치’(outreach)라는 말이 있습니다. “팔을 뻗는다”는 뜻입니다만 동시에 팔을 뻗은 범위 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곧 비근한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 팔을 뻗어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이 비근한 사물입니다. 즉 하이퍼시란 ‘아우트리치의 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탈관념 사물과 상상 이미지가 연결된 구조의 시라는 것이 제일 정확한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이퍼시를 쓰기 위해 칸트나 사르트르 같은 위대한 철학적 저서를 읽기 위해 인공위성을 탈 필요가 없습니다. 장자나 맹자나 불교학자인 용수(龍樹, Nagrjuna, 150~250)의 저서인
27    사물로써 시를 쓰자 / 문 덕 수 댓글:  조회:242  추천:0  2019-01-27
사물로써 시를 쓰자       문 덕 수       1.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나는 평소에 생각하고 말해 온 시에 관한 나의 소신의 한 토막을 존경하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까 하여, 이러한 기회를 나에게까지 주신 신규호 학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그 동안 시인 여러분들께서도 어느 정도 짐작하셨겠지만 시에 관한 나의 소신과 직․간접으로 관계되지 않은 말을 한 적이 거의 없고, 대부분 나의 소신에서 나온 말들이었음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나는 그 동안 기회 있을 때 반 관념주의(“탈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얼마 전에 작고한 오진현 시인이 ‘탈관념’이라는 말을 써왔습니다.), 사물시, 형식주의, 사물, 기호시, 하이퍼시, 의식적 방법 등 여러 가지 개념을 써 왔습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나의 시론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만, 이러한 다양한 말들 때문에 도리어 혼란을 일으켰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나는 가장 쉬운 말로 나의 시쓰기의 원점이라 할까, 출발점이랄까, 즉 스타트 라인을 말하고 싶습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우리 나라의 고승이신 성철 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성철 스님은 불교와 관련해서 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우리 시의 원점으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1.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성철스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현대시의 원점’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너무도 당연한 말씀 같아서 더 이상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돌은 돌이요, 나무는 나무다”, “꽃은 꽃이요, 흙은 흙이다”― 이렇게 바꾸어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산을 보고 산으로 보지 않고 시를 쓰고, 꽃을 보고 꽃으로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 있을까요. 의외에도 많습니다. 놀라운 일이지만 의외에도 많습니다. 나도 초기에는 그런 시인이었습니다. 나는 「생각하는 나무」라는 시를 썼는데 처음 3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2. 나무는 어딘지 먼 길을 가고 있다 3. 가다가 가만히 머뭇거리며 고독을 느낀다 4. 가지를 흔든다 무엇인가 골돌히 사유한다 5. -문덕수, 「생각하는 나무」에서    나무가 먼길을 간다든지, 가다가 머뭇거리며 고독을 느낀다고 표현한 것은, 나무를 의인화하고, 나무를 멀리 여행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표현한 것이 분명합니다. 나무를 나무로 보고,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을 물로 보고 표현한 시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김소월(1902~1934)의 「萬里城」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6. 밤마다 밤마다 7. 온 하룻밤! 8. 쌓았다 헐었다 9. 긴 萬里城 10. -김소월, 「萬里城」 전문    이 시는 ‘만리성’을 읊은 것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잠들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不眠)상태를 읊은 것입니다. 만리성이라고 하는 사물의 모습은 조금도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만리성이라는 객관적 사물을 객관적으로 표현해도 될 텐데, 그리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말하자면 ‘불면(不眠)의 그리움’이라는 자기의 정서를 읊은 것입니다. 김소월의 유명한 시에 「진달래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는 시입니다.    11. 나 보기가 역겨워 12. 가실 때에는 13.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14.  15. 寧邊에 藥山 16. 진달래꽃 17.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18. -김소월, 「진달래꽃」에서    이 시도 제목은 「진달래꽃」이지만 ‘진달래꽃’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이별의 정서’를 노래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萬里城」이건 「진달래꽃」이건 모두 인간사나 인간의 정서를 읊은 사실을 알게 되고, 이러한 시를 ‘인생주의’시라고 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시는 시에서 인생이나 인간을 뺄 수 없습니다. 인생주의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진리이고 진실한 삶인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생주의 시의 목표는 인생의 진리나 진실이 무엇이냐고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인생주의 시는 시와 진리의 일치를 가장 높은 목표로 삼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시인은 모두 인생주의 시인입니다. 인생주의의 영향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가는 김소월 다음 세대의 시인들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최고의 시인으로서 서정주(1915~2000)를 들 수 있습니다.    19. 내 너를 찾아왔다 수나 20.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21.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22.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23. -서정주, 「부활」에서    이 시에서도 ‘수나’라고 하는 연인인 인간이 등장합니다. 이 시가 표현한 ‘그리움’이라는 정서도 인간의 정서입니다. 즉 인생주의 시입니다. 김소월이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가는 길」)의 그 ‘그리움’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서시」)의 ‘부끄럼’이라는 윤동주의 정서도 김소월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또 서정주의 「문둥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밤새 울었다”(「문둥이」)입니다. 이 시는 ‘문둥이’를 읊은 시이지만, 문둥이로 태어난 천형의 운명적 슬픔보다는 문둥이를 빌어 그 ‘울음’을 더 중시한 시로 보입니다. 즉 “꽃처럼 붉은 울음”을 노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에서 기쁨이나 슬픔과 눈물은 중요한 소재이긴 하나,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의 역사에서 너무 많이 울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앞으로의 시에서는 이러한 인생적 눈물은 좀 참고 바위나 쇠덩어리처럼 견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돌과 6.25 언젠가 북한산성에서 산행한 일행 앞에서, 내가 돌멩이 한 개를 주워들고, “이 돌멩이에 무슨 사회주의가 있고, 자본주의가 있고, 민족주의와 계급주의가 있느냐”, “무슨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느냐, 단단한 이 돌멩이는 단지 돌멩이일 따름”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 말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의 말과 상통하는 말입니다. 이 “돌멩이”에 관한 시인의 상반된 태도를 우리는 김윤성과 전봉건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봉건의 「돌 50」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24. 돌은 25. 얼굴이 없다 26. 그래서 돌은 먹빛이다 27. 모래밭에 엎드려 묻힌 어둠의 먹빛이다 28. 아무튼 그 돌을 파내어 뒤집어라 29. 그러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30. 만에 하나도 있을까 말까 한 일이지만 31. 얼굴 없는 돌의 얼굴과 문득  32. 꿈처럼 그렇게 마주칠 때가 있다 33. -전봉건, 「돌 50」에서    이 시에서 전봉건은 분명히 돌은 “어둠의 먹빛”이라 하면서 그 얼굴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돌의 얼굴이라고 한 말은 “돌 그 자체”, “돌이라고 하는 사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물의 본질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봉건은 “먹빛”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1724~1804)도 사물 자체(Ding an sich, thing in itself)는 알 수 없고, 우리는 다만 사물 자체의 겉(현상)만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의 현상도 잘 못 보고 있습니다. 햇빛, 어둠, 거리, 기분 등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나의 건물인데, 아주 멀리서 보면 거의 안 보이거나 조그마한 하나의 ‘점’으로 보입니다. 가까이 갈수록 그 건물의 형태가 좀 뚜렷이 드러나지만, 그것도 보이는 쪽인 앞면만 보이고, 뒷면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밤이면 더 안 보입니다. 이와같이 사물의 현상 그 자체도 잘 볼 수 없습니다. 이러니 더구나 사물의 참된 모습 그 사물의 진정한 모양과 본질을 알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시인은 그 사물 자체의 참된 모습 찾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사물의 참된 모습을 찾는 일은 진리나 진실이나 정의를 찾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전봉건은 「돌1」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34. 나는 봄눈 녹는 35. 나루터 찬물 속에서 36. 삭은 뼈처럼 하얀 37. 돌 하나를 건져냈다 38. 날개 뼈 같은 그런 모양이었다 39. -전봉건, 「돌1」    나루터의 찬물 속에서 전봉건이 건져올린 ‘돌’은 날아가는 새가 떨어져 죽은 그 날개 뼈로 보이다가, 나중에는 6.25 때 전사한 K라는 친구의 촉루, 또는 심지어 ‘석정’(石鼎)이라는 스님의 얼굴도 발견합니다. 여기서 전봉건 같은 모더니스트도 돌에서 돌을 보지 않고 그가 경험한 어떤 사건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마 전봉건에게는 이것이 돌의 참된 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돌에서 스님을 보고, 6.25 때 전사한 전사자를 보는 것은, 돌에서 돌을 본 것이 아니라 돌에서 그것이 환기하는 역사나 종교나 정치 같은 다른 ‘관념’을 본 것입니다. 돌은 역사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며 기타 다른 관념도 아닌, 그저 돌일 뿐인데, 돌을 돌로서 안 본다는 것은 마치 예수님을 예수로 안 보고, 부처님을 부처로 안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엔 김윤성(1925~ )의 경우를 봅시다. 산에서 돌 한 개를 주워 집에 갖다 놓았는데 아들, 손녀 등의 반응이 각기 다릅니다.    40. 산에 있는 돌 하나를 내 집으로 옮겨놓았다…… 41.  42. “이게 뭐야?” 43. 딸애는 의아한 뜻으로 묻고 44. 아들은 다짜고짜 주먹으로 딱! 쳐보고는 손이 아파 상을 찌푸리고 45. 아내는 무해무득한 것을 대할 때 늘 하는 식으로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버린다 46. -김윤성, 「돌Ⅳ」에서    ‘아내’의 태도가 제일 안 좋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그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돌’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 태도는 시인, 철학자 모두에게 공통된 생각입니다. 김윤성의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라는 작품에서, ‘돌’을 두고 손녀와 둘이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손녀가 작자에게 묻습니다.    47. “왜 이래, 이 돌” 48. “뭐가” 49. “이 돌 말이야” 50. “그 돌이 어때서” 51. “아이, 아니 이 돌” 52. 어린 손녀는 마침내 짜증을 낸다 53. -김윤성,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에서    매우 재미 있는 장면입니다. 손녀의 ‘짜증’은 돌이 무엇인가를 볼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사나이답게 주먹을 쥐고 돌을 다짜고짜로 딱 쳐보고 손이 아파 상을 찌푸립니다. 손녀의 ‘짜증’이나 아들이 손이 아파 ‘찌푸리는 상’은 돌의 본질을 모르는 데서 오는 공통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손녀의 경우는 돌과의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짜증’을 냈지만, 아들은 돌과의 감각적 접촉 뒤에 ‘상을 찌푸린 것’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여기서 공통적인 태도 이상의 중요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돌을 어디까지나 ‘타자’(他者)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 둘째 객관적 태도로 돌을 보거나 돌과 접촉하고 있다는 점, 즉 객관주의입니다. 사물을 나와 같은 생각, 같은 느낌, 같은 감정을 지닌, 동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러한 ‘객관주의’는, 우리 시인이 지녀야 할 앞으로의 태도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전봉건보다 더 철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은 돌을 주먹으로 쳐보고는, 돌이 단단하고 뭔가 저항하는 힘이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 저항력은 돌이 다른 존재가 침입하는 것을 막는 힘입니다. 영국에 존 로크(1632~1704)라는 철학자가 있는데, 그는 사물의 고성(固性, solidity)을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사물에는 다른 사물의 침입을 막는 성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자의 ‘고’(固)라는 글자는 바깥 둘레(口)를 싸 막아서 엄중하게 이를 고수(固守)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견고(堅固)해야만 구안(久安)이 있고 고유, 고정이 가능합니다. 아들이 돌을 치자 아파서 상을 찌푸린 것도 바로 돌이 가진 저항력의 반응입니다.(불교에서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한 것은 사물의 2차 성질로 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고성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3. 즉물이시(卽物而詩) 앞에서 나는 (1)인생주의 태도에서 벗어난 (2)객관주의 태도(혹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를 다 초월하여)로, (3)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 보고, (4)사물에다 먼저(어디까지나 ‘먼저’입니다) 역사나 종교나 국가나 도덕이나 그러한 관념과 관련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사물을 보는 일에서 인생주의나 여러 가지 관념에서 벗어나면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 보게 됩니다. 그러한 경지가 있을까 하고 의문으로 여기는 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물을 사물로서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은 ‘혁명’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나딴에는 쉽게 말씀드린다고 애를 썼습니다만, 이해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한국시는 사물에서 사물을 안 보고, 그 사물이 환기하는 다른 관념(역사, 종교, 국가, 도덕 등등)을 보고, 그 관념을 그 사물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십자가를 십자가로 보고, 산사(山寺)의 종소리의 참뜻을 듣지 못하고 그 겉만 보거나 그 겉소리만 듣고 그것이 그 사물의 안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사물을 사물로 보자”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이것은 혁명입니다. 여러분들도 나와 뜻을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만, 각자 생각이 있으니까 그 생각에 따라가도 상관 없습니다. 사물을 사물로 보자는 것은 사물(사물은 인간과 관념을 초월한 그 자체의 독자적 세계입니다.)로 시를 쓰자는 주장입니다. ‘관념’으로 시를 쓰지 말고 사물로써 시를 쓰자는 것입니다. 나는
26    오늘의 시론/ 시문학 10월호/ 심상운 댓글:  조회:286  추천:0  2019-01-24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21세기 '하이퍼시'의 이해를 위하여     심상운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로 바꾸는 방법에서 1차적인 방법은 시 속에 제2 제3의 등장이다. 제1의 화자가 '나'라면 제2 제3의 화자는 '너'와 그'가 된다. 소설에서 1인칭 시점에서 3인칭 시점으로 바귀는 것과 비슷하다. 화자의 변화는 시점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기 땨문이다. 시점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를 수반한다. 그러나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로 이동하는 방법에는 화자의 시점 변화가 아닌 하이브리드(hybrid)적인 리좀(이미지)의 연결이나 화자의 '의식의 변화'도 가능하다. 의식의 변화는 실세계와 가상세계의 만남과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의식의 다선구조'라고 한다.  조향/「 바다의 층계」, 문덕수/「마릴린 몬로」는 하이브리드적 다선구조의 시이고, 문덕수「철원군 노동동 당사 」는 의식의 중층구조로 이루어진 다선구조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시 속에 '나' 만이 아닌 '너' 나 '그' 가 들어가서 시상을 전개하는 다선구조의 시는 서정시의 표현방식을 주관적인 독백 형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화자는 시 속에서 리포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시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서사구조(敍事構造)가 된다. 인물과 환경과 행위가 결합할 때 서사는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때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은 시의 캐릭터(character)가 된다. 그리고 시의 이미지는 움직이는 이미지 즉 동영상이 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시에 등장하는 '나' 와 일반 서정시의 '나'는 입장이 전혀 다는 존재가 된다. 일반 서정시의 나는 시인 자신일 경우가 많지만, 하이퍼텍스트 시의 나는 '상상 속의 나' 가 되어 시의 캐릭터로서의 나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이퍼텍스트의 시의 중심이 되는 상상엥 대한 고찰(考察)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시인의 모겆ㄱ의식, 의도상과 연관ㅇ되어서 비유적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상상보다 콜리지(Coleridge 영국의 문예비평가)의 말처럼 '시간과 장송의 서열에서 해방 되어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공상(fancy)에 더 비중을 두게 된다. 공상은 어떤 모적의식이 없이 공상의 가지치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공상의 가지치기는 어떤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으므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가상공간을 제공한다. 공상은 목적의식의 조1은 공간에서 벗어난 무목적의 넓은 공간 속으로 시인과 독자를 안내하다. 이것이 순수한 하이퍼텍스트의 세계다. 그러나 삶의 현실을 외면할 때, 시는 관념 쪽으로 끌려들어가게 되고 박제(剝製) 같은 이미지의 그림만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삶으이 현실과 하이퍼텍스트의 상상이 어떻게 조화로운 화합을 하느냐 하는 갓이 중요하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의 조화 속에서 시의 싱싱한 감각이 생동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어두컴컴한 매립지埋立地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     뭇가지를 흐늘쩍흐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               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     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이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직어온 '안개 속의 나     무들' 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야채野菜를 먹는다. 마른 벽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들고 깊은 잠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動力船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        고, 지느러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회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     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심상운「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전문        '자연풍경 + 사회와 정치적 사건 + 실내의 식탁 광경 + TV 화면'으로 구성된 이 시는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2.동영상과 공연시 지향 3.영화의 몽타주(montage) 기법 4.가상현실의 구현 드의 기법을 시에 도입하여 제작된 시다. 그래서 네트워크가 형성된 하이퍼텍스트적인 공간의 시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시의 장면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심리적인 이미지로 링크(연결) 된다. 따라서 이 시의 맥락을 추적해보면, 시의 내면에 생명의 본능적인 움직임과 갈구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먹는다'라는 행위와 '아우성'으로 표현된다. 안개는 나무를 먹고, 나는 야채를 먹고, 여자 리포터는 갈치 히를 먹는다. 안개 속의 나무들도 또한 안개의 입 속에서 아우성치듯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고, 시위대들은 구호를 외치고(아우성치고) 있다. 이 시는 이런 생명현상의 움직임을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라는 디지털적 기법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설득적으로 표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법이다. 그래서 영화의 몽타주기법도 사용된다.   이 시에 나오는 '나'와 '그'는 시 속의 캐릭터다. 끝부분 "은빛 갈치의 회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는 사이버 공간의 장면이지만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이 21세기의 현실감각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시에서 TV도 등장인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하나의 경로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 시는 하나의 독립된 공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세계를 모사(模寫) 한다거나 어떤 정리된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시 속에 존재하는 것은 실세계와 맞닿아 있는 가상공간(假想空間)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실세계와의 관계에서 리좀을 형성한다. 이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복제(複製)하거나 또는 다른 하나의 의미가 되기를 거부하는 하이퍼텍스트 공간이다.    
25    디지털 시대의 詩 展望 / 吳南球 댓글:  조회:301  추천:0  2019-01-24
             [하이퍼텍스트 시론.2 ]                    디지털 시대의 詩 展望   吳南球       지금은 디지털 영상 시대이다. 드브레(Regis Debray, 프, 1941~)는 현대를 메디올로지 시대라고 한다. 메디올로지는 단순히 매스컴론이 아니라 IT의 기술, 제도, 조직 등을 다 포함한다. 순간적으로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는가라는 문제보다 장기적으로 어떠한 정보가 전달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다. 그는 네 개의 권역으로 구별하여 원시부족 사회의 ‘기억권’, 제국주의 시대의 ‘언어권’, 근대 이성의 ‘문자권’, 미디어가 주인인 IT, 디지털의 ‘영상권’으로 나눈다. 현대는 ‘영상권’의 이미지 시대, 보여주는 영상 시대이다.  따라서 시도 영상의 보여주는 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보는 시란, 시는 언어로 표현되므로 묘사하여 사물의 표상이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 즉 ‘보여주기’가 되겠다. 독자는 보여주는 대로의 상을 마임을 보듯, 마음 속 화면에 떠 올리고 그 의미를 상상하여 읽고 감상할 수 있다. 시인은 연출자와 같은 입장에서 사물의 표상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형식에 그치고 시를 완성하는 주체는 시인이 아니라 독자가 된다. 이 ‘보여주기’는 주체가 바뀌는 시 쓰기이다. 즉 시를 의미의 예술에서 해방시켜서 의미보다는 감각과 이미지의 예술로 전환시키고 독자에 대한 일방적인 설득이나 강요가 아니라 독자 참여의 공간을 확대시키는 쓰기의 방법이다. 이 형식은 시인이 직접 말하지 않고 다만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의 대상(사물)을 묘사하여 보여줌’(디지털적)으로 시인의 어떤 생각이나 판단 등이 빠져서 관념 빼기가 이루어진다. 관념 빼기는 곧 탈-관념으로, 고정되어 있는 관념 언어의 벽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독자가 무한한 의미의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특성은 미래에 디지털(히이퍼텍스트)와 아날로그(텍스트)의 시 쓰기의 중요한 차이점으로 나타날 것이다. 최근 주목되는 탈-관념의 내용을 ① 언어에서 관념 빼기 ② 사물성의 쓰기 ③ 사이버성의 쓰기로 간단히 요약해서 살핀다. 이로써 디지털 시대의 시 특성의 일단을 소개하며 전망한다. 실험은 미완성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그 성과는 시의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1.   언어에서 관념 빼기에는 ①단어에서 관념 빼기 ②어구(단어+단어)에서 관념 빼기 ③문장에서 관념 빼기 ④ 시 전체에서 그 무엇이라고 하는 주제 등의 관념 빼기가 있다. 하이퍼텍스트의 이러한 네 가지의 관념 빼기를 살펴본다.   붉은 공이 튄다. 목련 담장 넘어서 깍 깍 깍 세 번 짓는다 붉은 공이 튄다. 소리 계곡 넘어서 울긋불긋 몇 점 핀다 붉은 공이 튄다. 진달래 암벽 넘어서 日 - 出 - 山 - 行 붉은 공이 튄다.   ―吳南球 「日出山行」전문     이 시에서 첫째, 단어 ‘공’을 보자. 공에 무슨 관념이 붙어 있는가, 이를테면 인생의 비애라든가 희망이라든가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상징성이나 배경의 의미도 없이 탁구공이라든가 축구공이라든가 하는 그저 사물인 공이라는 단어만 있다. 둘째, 어구(단어 + 단어) ‘붉은 공’에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 관념이 없다. ‘붉은+공’이라고 해서 공에다가 이데올로기 이미지를 더하지 않았을 뿐더러 잘 익은 사과라든가 하는 아무런 뜻도 없다. 셋째, ‘붉은 공이 튄다.’라는 이 문장에도 어떤 의미를 뜻하지 않고 있다. ‘붉은 공’이 공산주의의 공이 아닐 뿐더러 ‘튄다’에는 그저 튀는 그 사물성만 있다. 넷째, 또한 이 한 편의 시 전체에는 ‘붉은 공’이라는 사물이 심리적인 공간에서 감각적으로 튀고 있을 뿐, 무슨 주제니 주의주장이 있지 않다. 이 시는 공이 튀고 있는 동영상의 환상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이러한 심리적 이미지를 묘사해내는 것을 필자는 ‘염사’라고 한다). 위의 텍스트는 ‘탈-관념의 시쓰기’(吳南球.『이상의 디지털리즘』범우사.p37~p51)로 ‘관념 빼기’를 하고 있다. 이 쓰기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사진 찍듯(접사와 염사) 묘사하는 방법으로 독자에게 영상 이미지를 보여준다. ‘접사’는 사진기술을 시 쓰기에 도입한 말로서 사물을 보는 하나의 관법이다. 원근법이나 방위감각에 끼어든 오염된 관념을 제거하여 외부세계의 사물을 직관하고 생생하게 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지금 앞에 있는 유리컵에 바짝 눈을 대어보면 일상적인 컵의 모습은 갑자기 사라지고 유리만 보인다. 새로운 질감과 함께 긴장감을 느낀다. 염사 또한 내면의 의식세계를 염사(念寫)한다. 이 쓰기는 이와 같이 사물을 인지하고 언어로 묘사하여 서술하고 독자가 이미지나 표상을 통해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관념 빼기의 시와 비교되는 관념의 시를 보자.   일본의「진보적」지식인들은 소련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흰 원고지 뒤에 낙서를 하면서 그것이 그럴듯하게 생각돼서 소련을 내심으로도 입 밖으로도 두둔했었다.   ―김수영「轉向記」에서   이 시의 일본, 소련, 진보적 지식인이란 단어와 어구에는 시인의 어떤 관념이 있다. ‘일본’은 자유 민주주의, ‘소련’은 공산주의,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은  ‘공산주의를 두둔하는’ 등의 관념이 있다. 여기서 ‘나’는 ‘내심으로도 입 밖으로도 두둔 하는 지식인’이며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시는 그러했는데, 그가 ‘전향’(轉向)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독자는 그의 회고담을 듣는다.   2. 사물성의 쓰기는 언어 이전의 ‘사물과 언어와의 만남’이다. 사물이란 무엇인가, 추상의 슬픔, 미움, 사탄, 하나님, 사회주의는 관념이다. 관념이 아닌 사물이란 일상적으로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과 물건이다.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는 고성(固性)이 사물의 1차적 성질이라 한다. 다른 요인의 침입을 막고 사물 자체의 성질을 고수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사물의 넓이, 무게, 부드러움, 단단함은 고성이다. 책상을 탕 치게 되면 손이 아픈데 이것은 사물이 갖는 저항감이다. 이 순간 ‘사물의 언어와의 만남’은 관념이 들어갈 틈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1차적 사물성의 즉 고성은 색, 소리, 향, 감촉 등 거의 무한하다. 사물성의 시 쓰기는 이러한 사물이 갖는 1차적 성질의 감각적 요소가 관념의 제로 포인트인 있는 그대로의 대상(사물)이다. 이를 기호화(추상화)하는 것이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 있었다. 열린 문으로는 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그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金箔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성냥갑이 앉아 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 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문덕수「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에서   사물들, 즉 유리 컵, 재떨이, 열린 문, 신사, 금, 금 밖의 청자담배, 라이터, 숨 ... 이렇게 일상적으로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들이 탁자 위에 모여서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다. 모이는 것을 ‘집합’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수학적 개념을 도입해서 말하게 되면, 사물이 집합하여 ‘순열’ 또는 ‘배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문덕수는 이것을 ‘모여서 결합’되어 있다 하여 ‘집합적 결합’이라 한다. ‘집합적 결합론’을 이렇게 보면 이해가 쉽다. 여기서 좀 더 이학적인 논리를 전개시키게 되면, 모여 있는 사물들은 하나하나가 집합을 이루는 ‘원소(元素)’이다. 이 원소는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집합하여 조합하고 순열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사물성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원소의 개념으로 파악된 이 사물의 단어들이 상징 등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면, 아니 그것들이 논리적인 인과로 놓이게 되면, 즉 시인의 생각을 설명하게 되면 자연스럽지 않다. 인위적이다. 인위적이라면 곧 관념적이 된다. 그러면 존재하고 있는 진실이 왜곡되고 만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인의 어떤 의미인 사상이나 주의주장을 강요받음으로써 독자의 시적 공간이 극히 좁혀진다. 위의 시를 살펴보면, 앞의 ‘관념 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어, 어구, 문장에 어떤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관념 이전의 순수한 사물들이 그저 탁자 위에 놓여 있고, 여기서 시인이 직관(直觀)하고 직각(直覺)하고 있다. 세 유리컵이 놓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된다. 물론 삼각형이 계급적 의미라든가 사회적 상징적인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저 삼각형이라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 삼각형 금(선) 안에는 재떨이가 금 밖에는 한 사나이, 청자담배, 라이터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사물들이 ‘오롯이 앉아 있었다.’ ‘노려보고 있었다.’ ‘밀려나’ ‘틈새’ ‘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한다.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심경의 어떤 배경 의미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사물에 얹히어 있다. 이런 시 쓰기가 바로 물리주의(?)인 듯싶다.   3. 사이버성의 쓰기는 가상현실의 이미지의 분리와 결합이다. 예를 들면, 물고기에다가 사람의 얼굴을 붙이면 인어가 된다. 인어를 가상현실의 시라고 보면 된다. 현대는 이미지를 분리하고 결합하는 이러한 기능이 컴퓨터 그래픽에서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스캔(데이터화)하여 그림이 모니터에 뜨면 이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창의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림을 찌그러뜨리거나 늘어 빼거나 할 수 있고 어느 부분을 떼어낼 수 있고 두 사람의 얼굴을 바꾸어 놓을 수 있고 그래서 분리와 합성이 마음대로 되므로 사람이 바다 위로 걸어가게 할 수도 있다.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배경(육지)을 바다로 바꾸면 된다. 이런 가상현실은 실제처럼 느낀다. 그러나 가상현실과 현실 사이에는 중요한 차별성이 있다. 예를 들어 현실의 물질(아날로그)인 시계를 보자.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을 순간적으로 읽을 수 없고 정확하지도 않다(상대적으로 디지털과 쉽게 비교되는 특성). 더구나 이것이 거울(물질) 속에 비치게 될 때는 시계바늘이 거꾸로 보이고 잘 읽을 수 없다. 그러나 거울 속처럼 보이는 컴퓨터 화면의 시계는 정확하다. 왜곡되고 굴절되어 보이는 것은 물질이 서로 간섭하는 성질 때문인데, 소리의 잡음(노이즈 현상)은 좋은 예이다. 비물질의 가상현실에서는 이런 노이즈(관념과 같은 성질) 현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데이터화, 즉 샘플링(sampling. 현실에서 견본 추출하여 데이터화, 즉 디지털화 하는 것)하는 과정에서 노이즈가 제거된다. 시의 현실은 가상현실이다. 이것은 현실을 샘플링한 세계다. 바꾸어 말하면 시는 시인에 의해서 기호화 된 것으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는 기호화 하는 과정에서 염사와 접사 등의 방법으로 관념 빼기를 한다. 그래서 기호에는 순수 이미지만 남게 된다. 그 순 수 이미지에는 심리 세계나 현실의 표상이 담긴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개념에서 디지털의 불연속적인 개념으로 바뀐다. 그래서 공간과 공간의 마주보기, 시간과 시간의 마주보기 뒤섞이기가 가능해 진다. 그것은 이미지를 컴퓨터의 그래픽처럼 임의로 결합하기도 하고 합성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이미지의 분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디지털 시 즉 사이버성의 시 쓰기이다.     나는 그가 타고 간 기차의 빛깔을 파란 색으로 바꾸었다.   그때 어두운 바닥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먼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안고 간 눈물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그는 드디어 눈물이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일까?)   2006년 7월 21일 오후 2시 23분 서울 중계동 은행 사거리 키 6m의 벚나무 가지 위로 하얀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간다.   -심상운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에서   이 시는 지하철역 사고현장을 설명 없이 최대한 간략하게 보여준다(이것은 가상현실이다). 독자는 시인이 보여주는 대로 마음속에 한 장면씩 떠올리고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 이때 장면과 장면이 서로 간섭하고 잔상을 일으키어 이미지형성의 효과를 빚는다. 이 공간엔 내면의 의식이 흐르고 영상이 움직인다. 가상현실을 만들고 있는 기법을 보자. 그는 컴퓨터 그래픽처럼 기차의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꾼다. 그때 먼지가 반짝인다. 이 두개의 장면은 기본적으로 사진 찍듯(염사접사) 샘플링(기표화)한 것으로, 어떤 의미도 없이 사물성의 산뜻한 이미지만 있다. 그래서 독자를 가상현실의 세계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일상적으로 칙칙하고 그을리고 무거운 기차의 관념을 파란색으로 바꾸어서 가볍고 유쾌한 환상을 펼쳐 놓는다. 그런데 특이하게 시 속의 괄호로 묶은 곳이 시나리오 지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디지털(탈-관념)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실험하는 아날로그의 퓨전이라 할 수 있고 소위 디지로그(디지털과 아날로그)일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디지털 시의 실험이 한발 더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최근 주목되는 탈-관념의 시 쓰기를 살폈다. 현실은 시간과 공간의 규제를 받는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노예가 되어 유한한 수명(목숨)을 가지고 있다. 유승우(시인, 인천대 명예교수)는 「시와 현실-시의 소재로서의 현실」이란 글에 “시의 소재로서의 현실은 시간과 공간의 규제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규제의 극복이 시적 형상화 작업이며 시의 영원성이라는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디지털의 가상현실은 시간을 살해하고 공간을 살해하고 전 세계가 현실의 공간을 극복하고 공간적 마주보기를 하고 있다. 또한 현실의 시간과 원근을 극복하고 동시적 마주보기를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시 세계는 현실이 가지는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파괴하고 탈-관념의 시간과 공간이 확장된 새로운 질서와 형태를 만든다. [문학선언.2006.11.1.시의 날]  
[하이퍼텍스트 시론 1]   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 ― 시집 「실험실의 미인」을 중심으로     吳南球 (시인, 평론가)     ❙ 들어가며 ❙현대시가 ‘해체에서 통합’으로 가고 있다. 해체된 언어(조각, 유니트)가  다시 통합되는 원리는 무엇인가?,'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는  일종의 초현실로서 저절로 통합되어 자동기술 되는 ‘탈-관념'의 시 쓰기이다.     1976년, '시인의집' 모임에서 현대시의 ‘수학적 존재 증명’을 얘기하곤 했다. 모임이 활기를 띠기 시작할 무렵 한성례씨가 찾아왔다. 분위기가 갑자기 환하게 느껴지는 용모였다. 가까운 문우들에게 필자가 이 모임을 탈관념의 ‘실험실’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시를 살펴보니 ① 탈관념의 선언에 영향을 받은 존재론적인 것과 ② 탈관념의 언어여행, 또는 감각여행의 감성훈련 과정에서 비롯된 것과 ③ 탈관념 그 습작과정에서 쓰여진 것과 ④ 수학여행이라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시고(詩稿)들을 읽어보니 모던이스트 중에서도 모던이스트로 그 문명비평적인 쎈스의 풍자와 기지들은 많이 지나칠 정도여서 내게 씨(氏)가 시골사람이라는 걸 아조 잊어버리게까지 하고 있다.”   미당(서정주)이 한성례씨의 시집에 붙인 서문의 글이다. 이 말이 아니라 해도 시를 읽어보면 독자는 깨뜨려진 어떤 낮선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시는 표백제로 얼룩진 물감을 탈색해서 이제 막 내어놓는 옥양목 같다고나 할까, 고정관념이 깨뜨려지고 있는 시어들은 낯설고 싱싱하다.     한 가름, 탈관념 선언에 영향을 받은 시   당시 탈관념의 실험을 시작하면서 모임에 내세울 새로운 이슈를 선언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미당을 찾아가서 자문도 구하고 노장사상(老莊思想)도 읽었다. 동경대전(東經大全)도 다시 읽었다. 숙고한 끝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소의 소신대로 한국적인 사상에 기초한 선언문을 작성한다. 그 해가 1980년 1월 무렵이었다. 후에 그 일부가 경구(警句)처럼 동인지 표지에 한동안 게재된다. 그 표지에 써 놓은 글은 이러하다.   “신은 시인 앞에 오면 한 낱의 낱말이다. 시인은 낱말을 죽이고 또 창조한다.”   이 같은 문구는 동인들 중 크리스천들에게는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시를 쓰는 ‘주체’에 대해서 ‘신이 아니라 사람, 즉 시인’이라는 등, 시의 본질이 되는 요인들을 하나하나 담론해 갔는데, 물론 그 선언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바로 다음 항에서 말하는 탈관념의 논리를 구축해 가는 ‘쓰레기통 문답’ 또는 ‘함수f(x) 시론’인데, 지적이고 논리적이던 한성례씨는 이러한 시론을 좋아했다. 이 무렵 그는 갈등하며 시적인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관념적 허구’로서 절대자를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허무감’을 느꼈고, ‘막막한 신천지에 서듯’ 외로움을 타고, 불안・초조 등의 실존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다. 다음의 시를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그가 드디어 동양적인 사고로 ‘직립’하여 바로 서는 자존적인 자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서구화된 우리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절망과 고뇌를 반복한다.     1.「무풍대에서」에 나타난 자아, 그 직립   「무풍대에서」그가 자아의 눈을 뜨고 바라본 진실은 무엇인가? 시를 보자.   종소리 속에서 느릿느릿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관성만 남은 일상 더듬이가 필요한 날에는 볕이 드는 쪽과 음지를 혼동한다.   낯선 바람 원점 향해 위치 변동 꽉 채우고 있는 물먹은 공기 빠져나갈 출구가 없다. ─「무풍대에서」중에서    첫째, 사고가 신의 세계에 갇혀 “종소리 속에서 / 느릿느릿 /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그런 관성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정작 옳고 그름의 이성적인 ‘더듬이’의 가치 판단이 필요할 때마다 그 관성으로 인하여 그 판단이 혼동된다. 둘째, ‘낯선 바람’조차 불지 않는 곳이라고 파악되는 ‘무풍대’이지만 ‘낯선 바람’이 태동한다. ‘낯선 바람’이란 시인이 의식한 ‘새로운 것’ 즉 서구적이 아닌 동양적인 의식의 ‘새 바람’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현실이란 서구 정신문화가 포화된 상태로서, “꽉 채우고 있는 / 물 먹은 공기”로서, ‘새바람’의 출구도 없는 무풍지대로 인식된다.   구겨져 쓰레기통 속에 곤두박질하는 멍한 하늘 그 언저리는 꼭  지평에 맞닿아 숨죽이고 있다.   직립한 바람은 직립한 바람끼리 손잡고 있는 무풍대에서    껌딱지로 도배된 기지촌의 포도처럼 사인 코사인의 귀를 맞추며 덕지덕지 하품으로 이어 놓는다. ─「무풍대에서」중에서    셋째, 그는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절망을 느낀다. “구겨져 쓰레기통 속에 / 곤두박질하는 멍한” 하늘을 본다. 또 죄지은 듯이 “꼭 / 지평에 맞닿아 숨죽이고” 있고, ‘기죽은 초라한 자아’ 그 실존의 위기를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시인으로서 ‘직립’ 하여 ‘바로 서는’ 자의식의 입지(立志)를 한다. 물론 ‘기지촌’, ‘껌딱지’의 서구적 극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의지로 견디어야 하는 숙명이다. 이제 그는 무풍대에서 직립한 바람의 존재로서 홀로 서 있다.     2. 「벼랑 끝에서」의 춤   신을 ‘관념적 허구’로 파악하고 ‘절대자’를 부정했으나, 그는 아직 확고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실로 한성례씨는 두려움 속에 있다. 신천지에 서듯 막막함과 불안・초조의 벼랑에 서게 된다. 이때 ‘춤’을 추게 되는데, 불안・초조로부터의 극복과 탈출을 위한 몸짓이다. 이 절대 고독상황에서 손잡아 주는 것은 새로운 의식의 ‘어설픈 바람’ 뿐이며, 그 절실한 모습에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낭떠러지에 서서 춤을 춘다. 동작보다 언제나 한 템포 느린 음악   아래로부터 걷어 올라온 바람이 어설프게 손잡아 준다.   언제부터였을까  엄청난 배반의 현실에도 때때로 풋풋한 여명을 맛보곤 한다.   내 가슴 속에 출렁이는 배 한 척 무거운 방황은 젊은 날의 피를 낭비하는 것이라 해도 음울한 예정론에 기대를 걸고 출항을 서둘렀다.   이제 나이 드는 것이 타락의 나이테라면 차라리 돌아가지 말아야지   벼랑 끝에서 느릿느릿 춤을 춘다. ─「벼랑 끝에서」전문     3.「불완전 명사의 저녁」에 나타난 존재   눈을 뜬 자아, 그래서 막 태어난 '불완전 명사'로 나타난 존재! 그 직립에 의한 행보는 방황과 갈등이다. 벼랑에서 새로운 출항을 하게 되지만 이는 불안한 항해로서 익숙지 못한 실존주의자의 삶이다. 좌절과 불안과 머뭇거림의 연속이다. 그의 사상은 불투명한 상태로 “시침을 살피며 얼룩진 돛”을 내리는 “머무는 일이 불투명해서” 늘 갈등 한다.   터널로 빠져 드는 녹슨 연기 시침을 살피며 얼룩진 돛을 내린다. 철분의 붉은색 앙금으로 가라앉히고 머무는 일이 불투명해서 늘 자맥질처럼 움직인다.   퇴색된 석양 언저리에서 태우며,  가늘게 남은 내 생의 나머지 끈을 푸는 저녁   줄자로 잴 수 없는 문화의 어정거리는 습성  그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다.   터널로 빠져드는 녹슨 연기 아우성으로 떠는 흐느낌이다. ─「불완전 명사의 저녁」 중에서   그러면서, “가늘게 남은 내 생의 / 나머지 끈을 푸는 저녁”으로 그의 존재(存在)를 확인하며, “줄자로 잴 수 없는 / 문화의 어정거리는 / 습성”을 꼬집어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스스로 질타한다. 존재자의 갈등! 바로 진실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시인, 그 인간다움이다. 이러한 그는 「도편수의 노래」에서 스스로의 배-새로운 출항을 위한 도편수가 되기도 하고, 줄타기 하는 삶의 곡예사로서 ‘땅에 발 디디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두 가름, 언어여행 또는 감각여행의 감성훈련에서 비롯된 시   이렇듯 그가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 그것은 ‘최면을 통한’ 자동기술(自動記述) 훈련이었다. 그 한 가지 내용을 보면,   “자,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감는다. 편안히 호흡을 고른다. 깊이 숨을 들이 마신 후에 아랫배에 지긋이 힘을 모은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숨을 쉰다. 1초, 2초, 3초……. 이제 감각여행을 떠난다. 태양! 태양을 마음에 그린다. 태양을 향해서 몸이 둥둥 떠간다. 경비행기 속도로 간다. 빛의 속도로 간다고 생각한다. 1초, 2초, 3초…. 태양! 태양이다! 느껴본다. …뜨겁다. …탄다!…… 눈을 뜬다.”   대강 이런 식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 성취는 괄목할 만 했다. 눈을 떴을 때는 대체로 들뜬 상태가 아니면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공통점은 한결같이 마음이 가벼워졌고 바라보는 사물들이 움직인다고 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느낌을 말한다. 몇 분 전만 해도 무심히 무감각하게 보아 넘겼던 커피잔, 스푼, 화분, 의자 등이 새로운 정서로서 움직인다. 그 성취 정도는 사람들마다 각기 달랐다. 불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강렬하고 빠른 반면에, 서구적인 종교와 철학, 지식의 깊이가 강한 사람은 그 성취가 느렸다. 그의 시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는 그 즈음 겪은 갈등과 실험을 꾸밈없이 쓰고 있는데, 드디어 관념이 깨어지는 그의 꿈꾸기(Image-Dream)는 ‘황홀한’ 첫 시적 경험을 한다.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태양으로 떠난다 해서 따라나섰다.    ─ 타버린다 ─ 는 감각은 없어지고 경비행기로 출발한 우주여행은 그저 행위로만 남았다   기착지는 태양 뜨거움보다는  황홀한 색채에 질식당했다.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전문   당시 그는 자동기술의 감성훈련에 적응이 늦었던 것 같다. 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지적인 서구적인 합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자신의 곤혹스런 입장을 “태양으로 떠난다 해서 따라나섰다”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늘 도로(徒勞)의 작업이던 ‘꿈꾸기’가 첫 느낌을 얻게 된다. 자연스러운 “기착지는 태양”으로서, 첫 시적(詩的) 체험인 “황홀한 색채에 질식” 당하는 희열을 맛본다. 이후 그는 초현실적인 감각의 시 쓰기가 익숙해진다.「구의역에서」,「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 등의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되고, 또한「방」,「장마」에서는 빗줄기의 기하학적인 선(線)이 꿈처럼 펼쳐지며 새로운 시세계를 열고 있다.     1.「구의역에서」의 우주적인 시점   이러한 ‘탈관념의 꿈꾸기’를 체험한 사람들은 우주적 감각인 둥둥 떠가는 ‘느낌’이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구의역에서」는 시점의 ‘일상성 벗기’라는 ‘감성훈련’으로 빚은 큰 성과다. 그가 바라보는 사물(역, 길, 사람 등)이 둥둥 떠다니며 지구의 자전에 따라 시각이 바뀐다. 낮에 바로 서 있던 물건이 밤이면 거꾸로 처박히는 모습이 된다. 이 시는 바로 우주적인 시각에서 본 움직임인데, 탈관념의 꿈 중 하나이다. 한성례씨에게는 그녀 인생의 무대, 그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바로 서기도 하고 거꾸로 서기도 한다.   둥둥 떠가는 구의역 내 앞에 누워 있는 길. 뱉어낸 사람들 물살로 흘러 흘러서 무시로 흩어져 간다.   질주하던 길이 문득 산 밑에 가서 머문다. 시선 끝으로 길 한 줄기 붙잡으면 녹음이 앞서 무질러 오고 밀려드는 차 물결   쏟아질 듯 곤두박힐 듯 가로수 함께 일렁이다가 몇 개로 틀어지고 조각난 풍경 판토마임의 내가 거꾸로 서서 자막 속을 걸어간다. ─「구의역에서」중에서    그는 우주적인 감각이 자유로워졌고, 그에 따라 무한하게 시의 세계가 확장된다. ‘가로수와 함께 일렁이기도’ 하는 판토마임 속의 자신을 확인하면서 눈을 뜬 현실로 되돌아 와서 다음과 같이 ‘구의역’을 직시한다.     잠시 눈 뜬 플랫폼, 흘러 흘러서     투사되듯 입력(入力)되는 곳 구의역.  ─「구의역에서」 중에서     2.「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의 전전반측   전전반측(輾轉反側)하는 시인의 정(情)은 무엇일가? 그는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러면서 갈증 같은 향수를 느끼고, 그때 “기지개 켜는” 의식이 꿈꾸기를 한다.     산과 들, 강물 걸어 넘는다.   그 끝은 평행선 한 가닥 분실된 몇 낱 낯선 어둠에 섞여 보이지 않고 ─「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 중에서   몽롱한 의식 상태의 그의 ‘꿈꾸기’는 비몽사몽간 눈앞에 고향산천을 그려보지만 원근 속에 하나의 점이 되어 소멸돼가서 끝이 보이지 않고, 다만, “멍든 석양의 조각들이 / 도시 꼭대기에 차양처럼” 매달린 메커니즘의 현대문명 속의 삭막함만이 남는다. 현대인의 짙은 외로움이 드리워져 있다.      3.「장마」에서의 기하학적인 선   1980년대의 답답한 현실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현실을 탈출하려는 꿈꾸기가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기하학적인 선으로 나타나는 빗줄기는 대단히 시원하고 자유분방하다.     빗줄기 속에서 뻗어 내린 흰 꼬리 화살 화살은 내게 일제히 달려든다.  몸짓으로 털고 몸짓으로 도망하고 또는 몸짓 거부로 넘어지는 행위   시대의 재채기 최루탄의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 ─「장마」중에서    그의 시는「장마」에서 안정(安定)되고 한 단계 더 세련되었다. 빗줄기로 시작한 ‘꿈꾸기’가 “시대의 재채기 / 최루탄의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로서, 현실과 이어져 있다.     세 가름, 탈관념의 자동기술된 시   1. 수학적 시론의 전개   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는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데 있어 새로운 질서의 공감각과 방향이 있어야만 망상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그 질서는 ‘자연’에서, 그 방법은 ‘직관’이라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실험에 의한 체험적 소신이었다. 고정관념의 ‘깨뜨림’은 습작을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서 상당기간 대화법으로 실험을 도왔다. 그때 집약된 내용이 ‘쓰레기통 문답’ 또는 ‘함수f(x) 시론’이었다. ‘쓰레기통 문답’은 이러했다.   ‘꽃 한 송이를 들고 신인들에게 보인다. “이게 뭡니까?”라고 묻는다. “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때 필자는 쓰레기통에 꽃을 던진다. 그리고 “쓰레기입니다”라고 말한다. 누군가 그 얘기를 듣고 와서 “쓰레기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이게 왜 쓰레기통입니까? 꽃이죠!”라고 무안을 주었다.’   이 쓰레기통 문답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첫째,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게 하고 둘째, ‘꽃’이라는 이름이 쓰레기통(박스) 속에 들어가면 순간 ‘쓰레기’가 됨으로써 허무하게 관념(의미)이 바뀌는 것을 보여 준다. 셋째, 청각이나 시각 등 오감으로 느낀 사물에 대한 정서와 감정이 시시각각 변하며 각기 다른 언어로 표출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시킨다. 그럼으로써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가 각기 다른 ‘의식의 함수 f(x)다’ 라는 가설로 유도시킨다. 당시 한성례씨는 이러한 수학적 시론의 전개를 신선한 충격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였다. 필자는 보다 체계적으로 시론을 정립해 가며, 그 가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설명했다.   “시인의 삶이 f(x)면 시는 그 도함수(기울기)이다. x는 ‘만남(사물)’의 변수, y는 의식 공간이다.”             2. 의식의 단면   어느 날 좌표평면 상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순간변화(의식의 단면)를 발견했다. 수학적 시론의 가설을 구체화시켜 x축과 y축으로 하는 평면좌표를 그렸는데, x축은 시간의 만남(시간적인 흐름 속에서의 만남)이고, y축은 그때그때의 ‘의식 공간’으로 구성했다. 다음은 한 ‘시인(한성례씨)’과 남산’의 ‘만남을 함수관계’로서 그 의식(체험)을 나타내 보았다.   [예] 만남의 요소-남산   ① 20대의 한 시인이 1974년 1월 처음 남산을 보았다. 이후 계속 보게 된다. 그 높이를 300m쯤으로 직감한다. 이를 y축 3에 표시한다. ②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동진강변의 평야지대에 살았다. 그가 산을 보아온 일상적인 의식체험은 100m 쯤의 야산들이었다. 이를 y축 1에 표시한다      위의 ‘가나다라’ 선은 시인이 사물을 만나서 느낀 의식의 그래프이다. 이것은 의식(체험)의 한 단면이고, 여기에서 수평을 이루고 있는 선분 ‘가나’와 ‘다라’는 늘 바라보았던 일상적인 것인데, ‘반복된 사건의 일상성’이다. 그런데 상경하여 남산을 접한 어느 순간, 그 일상성이 깨뜨려지는 수직의 선분 ‘나다’가 나타난다. 이 순간의 의식(느낌)은 긴장이나 시적 충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 나는 이를 ‘일상성의 깨뜨림’이라 했고, 수평의 선분 ‘가나’ ‘다라’를 반복된 사건의 고정관념을 나타내는 ‘일상성의 직선’ 이라고 했다. 이로써 좌표평면 상에 시의 존재(기울기)가 나타나는데, 바로 선분 ‘나다’로서 긴장의 정도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나다’의 선분은 앞의 가설인 함수 f(x)의 ‘시간 x축’과 ‘의식 공간 y축’으로 하는 좌표 상에 나타난 ‘순간변화’이다. 그래서 이것을 의식의 ‘순간변화’ 또는 ‘순간변화율’이라고 이름 붙였고, ‘느낌의 기울기’라고 했다.  이렇듯 '만남의 자극과 반응’으로 나타난 ‘순간변화율’로서 그 존재를 확인하고, ‘만남이라는 사건’에 착안하여 집합과 조합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시공에서 사물과의 만남은 무수히 진행되고 의식은 집합적으로 결합된다.’ 이처럼 시공의 개념에서 접근하여 수학적인 방법으로 좌표 위에 '나'의 존재(의식)를 나타내고, x축을 시간의 흐름, y축을 의식공간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x축과 y축 사이에 무수히 진행되는 ’만남의 사건‘을 변수 x로 가정하였다. 그래서 자동기술의 시는 무수히 사물과 만나면서 이뤄진 체험이 잠재했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은 초현실주의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초현실 시 쓰기인 탈관념의 ‘꿈꾸기’를 하면서 시의 ‘질서는 자연에서, 방법은 직관’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하게도 되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자연스러움’은 곧 시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3. 그 습작과정에서 쓴 시,「서울의 큐비즘」   그는 그때까지 ‘매끈한 시’, ‘잘 다듬어진 시’가 좋은 시라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며 고교생 대상의 여러 시문학상도 수상하고 나름대로 시에 식견이 있다고 여겼던 그에게 탈관념은 커다란 충격과 혼란이었다. ‘깨뜨림’을 당한 멍한 상태라고 할까, 아무튼 이로 인하여 시적방황이 시작되었는데, 그 와중에서 처음으로 자동기술 되어 나온 작품이 ‘서울의 큐비즘’인 것으로 기억된다. 이어서 ‘지하도 풍경’도 발표했는데, 두 작품이 각각 문학지 ‘신인문학상’과 ‘대학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에게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핏빛 바람 갈대숲 안고 달아나는 소나무 하늘은 꽃씨 눕힌다. 누이의 속치마 능선을 타고 호랑나비 하늘을 앓는다. 소나무 허리 껴안은 거문고 울음과   한강변 세 살 난 잠실동 아이의 맏연습  아파트 아파트 우리 집은 아파트 충무로 1가에서 떠돌던 바람 소리 내어 돌아가고   호랑나비 푸득 푸드득 날개 짓 하는 하오는  종합전시장 앞 14차선 도로 악을 쓰며 누워 있다. 맨드라미 노을 넘실거리고   서울의 꿈은 유리알 맑은 모래처럼 내 온몸을 휘감는다. 남산 중턱에 해가 허리를 반쯤 걸치고 앉아 있다. ─「서울의 큐비즘」 전문   우선 시에 나타난 어휘들을 집합(集合)해 보면, "달아나는", "앓는다", "울음", "맏연습", "떠돌던", "악을 쓰며", "허리를 반쯤 걸치고" 등의 말들이 모이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 즈음의 그의 갈등에서 생성된 것으로서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표출, 순열(順列)된 것이다. 시 자체는 좀 생경스러우나 일대 혁신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미화되거나 인위적으로 포장됨이 없이 시인의 솔직한 진실(감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이나 확신이 없다. 긍정 반 부정 반의 자세로서 엉거주춤한데,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남산 중턱에 해가 허리를 반쯤 / 걸치고 앉아 있다”의 표출이 그것이다. 그의 신경세포가 ‘반쯤’의 어중간한 상태를 자의식하고 있는 가운데, 해의 한 시점인 반쯤 앉은 상태가 강한 이미지로 입력되었다가 자동기술(순열)된 것으로 이해된다.     네 가름, 삶 언어의 집합・조합・순열의 묘    1. 언어의 표현   시인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물과 만나며 느끼는 자극(느낌→의식)을 y 라고 하고, 사물과 만나는 시간 x를 변수로 하는 의식의 함수 y= f(x)를 가정할 때, 어느 시점의 자극(만남)과 반응(의식)을 나타내는 순간변화율(기울기)이 있다. 즉 사물과 만나는 '의식(느낌)의 변화율'이 있다. 이것을 필자는 '의식의 기울기'라 하고, '긴장' 또는 '흥분' 등의 파동을 나타내는 '시의 순간 변화율'이라고 했다. 곧 시를 어떤 순간 변화율인 '생명의 파동'으로 보았다. 그래서 언어로 표현 기술되었을 때, 이 기울기(시라는 순간변화율)는 생명적이므로 의식 또는 잠재의식 속의 언어(하이퍼텍스트)는 어떤 생명의 존재질서 위에 있으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집합, 조합, 순열된다. 그래서 벤다이어그램으로 이를 도표화해서 보면 ‘언어A, 언어B, 언어C’의 표현을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언어의 집합   도표를 살펴보면, 언어의 합집합인 최대공배수 ①A∪B∪C와 공통집합인 최대공약수 ②A∩B∩C 등의 모양이 나타난다. 합집합은 세 단어가 나타낼 수 있는 의미 내용의  최대로서 표현의 L.C.M이고, 세 단어가 의미 내용을 공통으로 가지는 빗금 친 부분의 공통집합은 표현의 G.C.M이다. 이 G.C.M으로써 보편적인 언어의 의미가 구성된다. 그러나 이 의미는 독자(평론가)에게 수용되고 물론 그의 체험에 의해 재구성된다.   2. 시 해설은 적분   이상의 수학적 시론의 전개는 동인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것을 바탕으로 실험습작을 했다. 그에 따른 시의 성취나 그 가치는 별도로 하고, 당시 탈관념의 ‘꿈꾸기’에 몰두했던 한성례씨의「지하도 풍경」의 한 예문을 분석해서 정리해보겠다.   범람하는 성욕의 용설란들 남아프리카 지도가 피를 흘린다. ─「지하도 풍경」 중에서   위의 예문에 “범람/ 성욕 / 용설란 / 남아프리카지도 / 피” 다섯 개의 단어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 사물과 만남(사건)으로써 생긴 단어들인데 긴장과 흥분 등 느낌의 기울기(미분)를 갖는다. 이것은 삶의 한 시점이 미분된 것이고 의식 또는 잠재의식 속의 언어(하이퍼텍스트)이다. 이 단어들이 독자(평가)에게 수용되고 해설될 때 시적체험이 되고 시인의 삶이 된다. 그러므로 해설은 곧 ‘적분’이다. 표현되는 내용은 집합, 조합, 순열된다. 여기서 표출되는 내용을 도표화해 보면,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예문의 ‘집합① 범람하는 성욕의 용설란들, 집합② 남아프리카 지도가 피를 흘린다.'를 보자. 그림 ①처럼, ‘범람∪성욕∪용설란’의 집합과 그림 ②처럼, ‘남아프리카 지도∪피’ 의 합집합은 단어들이 갖는 상징과 이미지 등 표현의 모든 범위를 갖는다. 그리고 단어들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인 공통집합(빗금)은 특별한 의미를 만들고 공감을 얻는다. 그런데 집합 ③에서 한 행 한 행의 내용 표현이 문장을 이루고, 다시 조합, 순열로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해 간다. 이와 같이 언어, 즉 의식 또는 체험으로 연결된 잠재의식 속의 단어(하이퍼텍스트)는 시인을 통해서 다시 집합, 조합, 순열해서 통합된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그림과 같이 ‘범람∩성욕∩용설란’으로 공통집합 되면 시인 개체 안에서 자동으로 이미지나 의미가 결합되어 생명의 질서(정서)를 갖고서 표출된다.    3. 언어의 징검다리 건너기   이렇듯 해체에서 통합으로 가는 원리는 미래 시의 새로운 항해에서 나침판이 되어줄 수도 있다. 구문론을 과감하게 파괴(탈-관념)하는 시가 길을 잘못들 경우 난해한 미로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해체된 언어들은 어떤 질서로 통합되어야 한다. 그의 시 ‘옵니버스 율’은 시인(생명)의 어떤 질서를 내포한 무의식의 흐름이고, 그 흐름의 경로(항해 -‘탈-관념의 꿈꾸기’)가 나열됨으로써 정서(질서)가 표출되었다.   햇살 빠른 음률이 피어 회부럭담 아이들 어깨 너머로 프리즘에 갈리는 하얀 겨울 햇살은 나비의 눈물같이 산 빛 초록초록 꽃밭동 머슴애의 논갈이 뒤꿈치에 펼치어 흔들리는 들판 새까만 기적의 음률이 간다   ─「들판」 전문   ‘산 빛 초록촉록 꽃밭동’ 에는 조사가 없다. 다른 행에서도 주어, 술어 등의 구문론이 다수 파괴되어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시에서 보이는 선형성(線形性)이 없다. 비선형적이다. 또한 앞뒤의 문장이 원인과 결과, 논리가 없고 순차적이지 않다. 이 텍스트는 전통적인 텍스트에서 벗어난 하이퍼텍스트 적이라 할 수 있다. 끊어져 있는 마디가 무작위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독자가 이 시를 읽을 때는 징검다리를 건너가듯 언어의 마디와 마디를 뛰어 읽어가야 한다. 이때 독자는 단절된 마디와 마디 사이의 틈을 뛰는 스릴을 맛볼 수 있고,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상상을 펼칠 수도 있다. 또한 시의 행갈이 순서도 자유로워서 역순 뿐 아니라 얼마든지 행을 뒤섞어 읽어도 이미지가 선명하다.   새까만 기적의 음률이 간다 펼치어 흔들리는 들판 머슴애의 논갈이 뒤꿈치에 산 빛 초록초록 꽃밭동 햇살은 나비의 눈물 같이 프리즘에 갈리는 하얀 겨울 회부럭담 아이들 어깨 너머로 햇살 빠른 음률이 피어   그는 이러한 시들의 묶음을 ‘옴니버스 율’이라고 했는데, 행이나 구문에 이미지나 표현이 묶이지 않고 한 행 한행 독립적으로 배열된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옴니버스이므로 한 줄 한 줄 독립된 이미지의 마디를 다시 독자가 재배열해서 읽어도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이 역순으로 배열된 텍스트가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보이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원본 텍스트보다 역순 텍스트인 메타텍스트가 더 하이퍼텍스트 적이고, 특히 선형성과 순차적인 배열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가 행한 이 실험은 모더니즘 시의 한 가닥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 나가며   탈-관념의 꿈꾸기는 우주적(하이퍼) 공간이다. 그의 시「구의역에서」에서 보이는 부유하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고,「태양을 향해 날아갔다」에서도 현실감각이 사라진 공간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시적 꿈꾸기는 사이버세계의 ‘경로’로 이해할 수 있다. 별과별을 잇는 상상의 ‘링크’가 있고, 그 링크를 계속 따라가는 궤적과 같은 그런 경로다. 은하계의 ‘북두칠성’을 보자. 하나하나는 멀리 떨어진 별이다. 우리의 상상은 일곱 개의 별을 이어 놓고 이 별자리에 ‘북두칠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의 시를 이처럼 우주 공간의 ‘경로’로 이해해도 되고, 봄날에 꽃과 꽃을 옮겨다나며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나비의 ‘경로’에 비유해도 된다. 이러한 시 쓰기는 인간의 뇌 속에 잠재해 있는 기억의 소자(원소)들 사이를 흐르는 의식의 흐름과 흡사하다. 시를 ‘의식이 흐른 하나의 경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현대시가 ‘언어를 해체한다’고 해도, 해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시인의 의식을 표출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 특히 경로를 통해 표출된 정서나 음률은 시의 바탕을 이룬다. 한성례씨의 탈-관념된 시가 정서와 음률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뛰어 넘어 언제든 수준 높은 독자와 만나게 될 것이다.(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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