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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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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3강 주체와 대타자 2 댓글:  조회:1387  추천:0  2019-03-18
  ◆ 주체분열의 논리 ▲ 무의식의 주체와 시니피앙의 주체   무의식의 주체 시니피앙의 주체 작용 말 언어(글) 목적 진리 지식 드러남의 방식 불연속 연속 지위 무 가시성(현실) 본질 존재 주체(에고) 질서 실재계 상징계   ▲주체분열 (Spaltung)의 논리 · 라캉의 주체분열의 논리는 언어학자 (벤베니스트)들이 제시하는 언표된 주어와 언표행위 의 주어의 대립관계에서 영감을 얻음. ㅡ언표 주체가 문장 속의 자리 혹은 표현된 속사들의 귀결점으로 전제되는 것이라면 언표행위주체는 단지 지시될 뿐 의미화에서는 벗어난다. 예) 지젝의 농담 (아스파라거스)과 “나는 거짓말 한다” 문장 참조. 주체분열 = 욕망의 진실 · 주체분열과 욕망과 요구의 변증법은 결여에 관계 된다는 차원에서 동일 : “욕망은 모든 요구를 넘어선 것” S, 5. p. 365. 진정한 주체의 자리는 결여와 부재, 탈-존재 (ex-sistence). 물 (Ding)을 향함. 원초적인 향락의 대상은 어머니이다. · 진정한 주체는 무1) : 지식의 가정된 주체만 담론 속에 남게 된다.  주체는 담론 속에 파열되는 불연속이다. · 존재는 상징계에 의해 배제되는 실재 (extimite)와 연관된다. → 내밀함, 내면적인 것, 사적인 것 desir(언어) → jouissance(언어 너머) 주체는 향락 (jouissance)의 육화로서의 물 (Chose)과 환상대상 (objet a)을 통해 존재의 사라짐과 나타남의 반복을 경험. ▲ 주체에 대한 여타 정의 · 라캉은 주체를 절대 부정하지는 않지만 고전적인 철학의 주체 (실체, 동일성, 기원)는 거부한다2). · 소외가 주체의 본질 : 타자적 차원3) 과 시니피앙 (법)에 종속. 외밀화 . · 진정한 주체는 사라지는 것4 )이다. → 주체는 하나의 시니피앙에 의해 대리되면서 동시에 사라짐을 통해 나머지 시니피앙의 사슬을 끌고 오는 공백 (빈공간) 같은 것이다.   1)    데카르트의 의식=자아= 대상화된 존재는 “내가 존재한다 (je suis)”의 실존적 진리를 보장할 수 없는데 그 본질이 허구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라캉은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사고하고 내가 사고하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로 정식을 전도시킨다. E, p. 517. (문자의 심급). je라는 것은 주체가 스스로를 알아보는 장소일 뿐이다. 2) 푸코의「저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동 토론참조. 여기서 라캉은 자신의 이론이 구조주의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다. 3) “타자 속에서 주체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우선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E, p. 181. (심리적 원인성에 대한 제안) 4) Lacan, S. XX, p. 130.   ◆ 대타자 ㅡ분석가는 대타자와 소타자의 차이를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 ㅡ소타자는 주체상호간의 관계에서 유사자로 다가오는 타자적 차원으로 상상계에 속함. 반면에 대타자는 언어와 법의 심급으로 상징계에 속함. 대타자는 주체를 상상계적 예속에서 구원시킨다. · “무의식은 언어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다”. 은유와 환유는 시니피앙 사슬이 작동하는 기본 방식이자 구조 = 부성은유 = S (I/Φ) · 대타자는 인격적인 심급이 아닌 하나의 장소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말이 구성되는 장소. 장소로서 대타자는 주체상호관계에서 어머니, 분석가, 아버지에 의해 구현되고 점유될 수 있다. · 시니피앙의 보고 ( E, p. 818). ‘아버지의 이름’: 욕망은 여기에 정착하면서 언어화의 가능근거를 얻음 = 상징화의 대가는 억압. · 법의 대리자 : 시저의 이름 (시저가 암살당하면서 이름은 권력화 됨 = 죽은 아버지와 유사) · 주체가 생성되는 공간이자 진리가 확정되는 곳 (E, p. 839). · 대타자역시 결여되고 빗금쳐진 존재. “대타자의 대타자는 없다”. → 대타자의 결여가 욕망을 영속화시키는 원인. 시니피앙은 주체의 실존에 답을 줄 수 없다.1) 상징적 질서의 중심에는 외상적인 요소 (실재)가 자리잡고 있다. · 여성은 절대적인 대타자 (E, p. 565). ※ 남근적 주이상스 (남성)와 대타자의 주이상스 (여성)의 구별 : 세미나 20. “성관계는 없다”. ▲ 정신분석의 윤리 라캉은 욕망을 윤리의 전면에 위치시키면서 그것의 예화로 안티고네를 든다. 정신분석의 윤리는 보편성이나 선에 대한 윤리가 아니라 전복의 윤리.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안티고네는 테베로 돌아왔지만 두 오빠는 왕위 계승을 놓고 싸우다 죽고 외삼촌 크레온이 왕위에 오른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만 치뤄 주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왕명으로 장례를 금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그 명을 어기고 몰래 장례를 치러 주다가 감옥(무덤)에 갇히게 된다. 결국 안티고네는 자신이 처형당하기 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안티고네의 연인인 하이몬-안티고네와 외사촌, 즉, 크레온의 아들입니다-도 자결한다. 또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자신의 침대에서 자결하는 걸로 끝난다. ※ 분석쟁점 · 아버지의 이름 (법)에 충실. 크레온이 선포한 국가의 선 (애국심)보다는 죽은 자를 장례지내라는 신의 법에 충실. 라캉의 욕망의 윤리는 선의 윤리가 아니라 선과 대립되는 의미에서 욕망의 윤리이다. · 욕망의 윤리 (안티고네)와 선의 윤리 (크레온)의 대립 : 욕망이 개별적 차원을 강조하고 전복의 미를 중시한다면 선은 보편성과 배제에 기초. · 쾌락원리 (금지와 제한)을 넘어서 주이상스 (죽음)를 향하는 행동. 안티고네의 오빠에 대한 태도. ·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는 크레온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며 여성적인 향유 (주이상스)를 포기한다. ㅡ상징계는 욕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욕망을 영속시키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욕망은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상징계의 이면, 즉 죽음의 충동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ㅡ욕망은 법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그 너머로 나아가려고 한다. 여기서 법은 순수 금지가 아니라 주체에게 욕망을 부과하는 향락의 형식일 수도 있다.     5) “결국 시니피앙에 절대 동화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체의 개인적 존재성이다. 왜 주체는 여기에 있는가? 그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왜 주체는 사라지는가? 시니피앙은 이런 질문에 답을 줄 수 없는데 주체를 죽음의 너머에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시니피앙은 주체를 이미 죽은 것으로 취급하면서 본질상 영원한 것으로 만든다 ”. Lacan, S, III, p. 202.
18    제12강 주체와 대타자 1 댓글:  조회:1240  추천:0  2019-03-18
◆ 욕망의 그래프 ㅡ욕망의 대상은 타자의 욕망이다. → 욕망의 의미 차원이 주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 ㅡ욕구는 자연 상태가 아니다. 언어 이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가정되는 것이다. 욕구는 상징계의 대표적 기표인 남근에 의해 구제가 되는데 욕구가 대상으로 바뀌는 것, 언어화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안정성이나 완성이 아니다. ㅡ언어가 욕망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요구에 대해 답을 줄 수 없기 때문 → 요구 자체는 무조건적인 요구이고 ‘사랑의 요구’인데 대타자는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다. 욕구가 요구로 바뀌면서 그 사이에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괴리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ㅡ지젝은 라캉의 이론이 가지는 혁명적인 차원이란 욕망이 언어적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에 결여가 있다는 것, 즉 메타언어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타자 자체가 주체와 같이 빗금 처져 있다는 것이다. 주체는 대타자를 향하지만 대타자 자체가 빗금 처져 있는 데서 욕망의 영속성이 나온다. ◆ 주체와 대타자    “ 주체는 데카르트적 주체로서 무의식의 전제이다. 대타자는 말이 진리로 정립되기 위해 요청되는 그러한 차원이다. 무의식이란 그 둘 사이에서 작용 중인 단절이다”. E, p. 839.    ㅡ담론은 일관성을 갖는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말실수, 망각, 정동적인 차원, 미끄러짐과 같은 단절이 일어날 수도 있다.    ㅡ무의식이 언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무의식을 만든다.    ㅡ단절적인 차원이 담론의 일관성을 깨뜨리면서 존재의 차원을 드러내 보여준다. 단절이 진리의 개념이다. 하지만 진리는 언어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반만 말하기, 뒤집어서 말하기가 진리의 수단처럼 여겨지게 된다.    ▲ 라캉의 주체개념    ① 주체의 시간 = “무의식에는 시간이 없다”. 프로이트    • 주체성과 관련된 시간은 언제나 사후적이며 동시에 전미래.1)    사후적 개념은 연대기적 시간이 아니라 논리적 시간과 관련된다.    사후개념은 결여에도 적용된다.    예)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이 있을 때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이 혁명에 의미를 부여하며 비로소 자리매김하게 된다.    ㅡ주체는 철저하게 사후작용의 산물이다. 그래서 주체의 시간은 연대기적인 시간이 아니라 논리적 시간이 된다.    • 논리적 시간(상호주체성의 시간)  : 주체가 스스로를 주체로 구성하는 순간은 타자와의 관계에 매개된다. 논리적 시간은 요청되고 전제된 것. 1) “내가 현재 생성되어 가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그 직전에 내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전미래 시제” E, p. 300.    1) 응시의 순간 2) 이해의 순간 3) 결론의 순간  (세 죄수들의 문제 참조 - 각자는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자기 색깔을 알게 된다)    → 주체성의 구성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가 된다. 주체성은 사후성만이 아니라 관계성에 의해서 구성된다. 내가 있고 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있으므로 내가 있게 된다.    ㅡ사후성과 관계성을 매개해주는 개념이 응시이다.  • 논리적 시간에 대응하는 세 주체  1) 비인격적 주체   2) 상호간 불확정된 주체   3)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는 주체    
17    제11강 욕망의 그래프와 세 가지 정식 댓글:  조회:1283  추천:0  2019-03-18
◆ 요구와 욕망의 변증법 ▶ (참고자료) 신경증을 이루는 두 가지 큰 카테고리는 히스테리와 강박증이다. 히스테리는 심리적인 문제가 신체의 증상으로 전환되는 것이 특징인 것에 비해 강박증은 비교적 그런 비약이 없다. 강박신경증이란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거듭되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기필코 충동을 실행에 옮겨야만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초조해지고 불안해져서 다른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쥐인간으로 불리는 한 개인의 사례로 강박신경증이 발생하는 과정과 심리기제에 대하여 정리하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어떤 젊은 남자는 4년간 극심한 강박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였는데, 아버지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자살의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자, 사랑하는 여자와 아버지가 권해주는 명망 있는 가문의 딸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사랑과 아버지의 영향력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그는 이 상황을 병에 걸림으로써 해결한다. 병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어서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이다. 그의 병과 성생활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자위를 하고 싶다고 느낀다. 죽은 아버지의 유령 앞에서 아버지의 명령에 대한 반항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가 여섯 살이 되기 전에 자위와 관계되는 성적인 비행을 저질렀고, 그것 때문에 군인 출신의 엄격한 아버지에게 혼이 났었다고 추측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질병의 원인과 관계된 것이다. 자신의 성충동과 욕망을 억제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의 강박증을 낳았던 것이다. 그가 유모를 물고 그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크게 혼이 난 사건은 이후 그가 보인 비겁함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맹렬한 분노는 이후 모습을 감춘 채 심연으로 숨어들어갔다. 쥐인간의 죄책감은 유아기적 무의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 좋아하던 여자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해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적이 있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지만 돈이 없어서 결혼이 어려웠을 때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다. 두려움은 결국은 궁극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소망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죄책감 등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소망의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가 느끼는 슬픔 역시 자신의 욕망에 대한 죄책감의 일환으로 보통사람들의 애도에 비해 더욱 오래 걸릴 수 있다. 강박증 환자의 일반적인 특징을 살펴보자. 강박증 환자는 불확실한 것을 좋아하며 전혀 다른 심리구조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한다. 강박증 환자의 심리적 구조는 그들의 현실이나 미신, 그리고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기형적 형태를 보인다. 강박증은 망각에 의해 억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없어짐으로써 인과 관계의 고리가 끊어져 억압이 일어난다. 억압된 연결고리는 계속 남아 있다가 투사 과정을 .통해서 현실 세계로 옮겨가고 우연적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등의 미신적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다른 형태로는 불확실성과 의심이다. 불확실성은 환자를 현실세계로부터 그를 분리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로 모든 신경증의 목적이다. 강박증 환자들은 불확실한 것과 의심스러운 것을 쫓아가는 경향이 있어서 기원이나, 수명, 사후의 세계, 기억 등에 관심을 보인다. 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은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으로써 끝을 맺으려 한다. 이것이 강박신경증 환자의 죽음 콤플렉스이다. 강박 신경증은 정신적인 힘들의 상호관계에 의해 생긴다. 이때 양가적인 감정들이 수반된다. 여자에 대한 미움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여자에 대한 애정 사이의 갈등을 보이기도 하는데, 결국 이것은 같은 것이다. 강렬한 감정들이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모든 의지가 마비되고 결정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강박 신경증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강박이나 의심 역시 마찬가지 형태이다. 의심은 환자가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대해 느끼는 것이고, 이것은 자신의 사랑이 미움에 의해 억제된 결과이다. 사실상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강박증 환자의 강박행동은 의심을 보상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의심이 증거가 되는 상황을 바로잡아 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 행동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환자는 심한 불안을 느낀다. 결국 결정은 준비행동으로, 행동은 생각으로 퇴행하게 된다. 행동에서 생각으로 퇴행하는 것은 유아기 성 본능의 발달과 관계되어 있다. 가학적 본능의 요소 역시 중요한 역할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성행위가 되는 것이다. 사고 과정이 강박적으로 되는 것은 행동에 쓰여야 할 힘이 사고하는데 사용되었을 때이다. 힘이 옮겨지는 이유는 정신구조 내의 움직임이 상반되는 충동의 갈등 때문에 억압되기 때문이다. 강박증적인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내야 할 것을 퇴행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그 기능으로 한다. ▲ 요구와 욕망의 변증법 · 욕구는 순수한 생물학적 개념이면서 육체에 기원을 둠. 자연적 욕구는 대타자 (언어의 장소)를 향한 요구로 표현되어야 한다. 순수욕구는 없다 (시니피앙에 종속). $◇ D. · 요구에는 욕구에 대한 응답의 기대 뿐 아니라 절대적 사랑의 요구도 포함되어 있다. 욕구와 요구의 분리와 대타자의 한계. · 욕망이란 욕구를 요구로 표명하면서 산출되는 찌꺼기 혹은 잉여이다. “요구로 표현될 수 없어서 소외되는 부분이 어떤 원억압을 구성하게 된다. 이 원억압은 거부된 것들 속에 나타나며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욕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이다”. E, p. 690. ▲ 욕망의 특성 · 욕망은 충족이 불가능한 근본적 추동력. · 욕망의 대상은 오로지 환상대상 a = $◇ a. 욕망의 운동은 환유적으로 진행된다. → ‘욕망은 어떤 다른 것을 향한 욕망’. ·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 = 대타자로서 그리고 대타자의 욕망을 향하여. ▲ 욕망의 인정과 인정에 대한 욕망 : 1) 욕망의 인정 - 욕망이 스스로를 해석되게끔 알리고자 하는 필요성. 언어에 대한 욕망의 의존성을 강조. “인간의 욕망은 중재되는 형태로 구성되는 바, 자신의 욕망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그것이다”. E, p. 181. 2) 인정에 대한 욕망 - 만족을 거부하고 오로지 대타자의 욕망만을 욕망하는 차원. → 히스테리가 가장 전형적 형태 = 살찐 정육점 여주인의 꿈 참조 (타자에 대한 의존과 동일시). ◆ 욕망의 그래프와 세 가지 정식 ▲ 세 가지 정식 · 첫 번째 공식의 설명 ㅡd (욕망), $(주체), a (타자), m (자아), ◇ (L 도식) ㅡ타자이미지 (유사자)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동일화를 설명한다. ㅡ욕망은 항상 타자적 차원에 영향을 받고 나르시즘적 동일화에 의해 지탱된다. ㅡ욕망과 자아는 통일되지 않음을 화살표가 예시한다. · 둘째 공식의 설명 ㅡD (요구), A (대타자), s (시니피에), I (자아이상의 무의식적 심급) ㅡ욕망과 말의 관계를 설명 = 욕망은 대타자에게 인정될 수 있는 요구의 형태로 서술되어야 함. ㅡ욕망의 의미들은 대타자로부터 주어짐(s (A) 기호). · 세 번째 공식의 설명 ㅡ△ (욕구의 원초적 차원 = 주체로 하여금 시니피앙과 관계를 맺도록 강제하는 것), Φ (남근: 결여 혹은 거세의 시니피앙). ㅡ욕망하는 주체와 시니피앙의 관계(의존성 및 규정성)를 설명. ㅡ욕망은 대타자에게 있는 결여 때문에 영속화된다. ㅡ대타자역시 욕망하는 존재다. ▲ 욕망의 그래프 욕망의 그래프 1) 1) 1957년 ‘무의식의 형성물’이란 세미나 (5권)에서 처음으로 도입했고 세미나 6권에 완성된 형태로 소개되었으며 이후의 위상학적 모델을 예고한다.  ♠ 설명 : 첫째 층 (Signifiant → Voix)은 의식에 의해 지배되는 담론의 층위 그리고 둘째 층 (Jouissance →Castration)은 무의식적 담론을 나타냄. ※ 욕망은 언어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지만 항상 언어를 벗어난 곳을 향한다. 언어 이전엔 욕망이 없다 (욕망은 대상이 없다). → 언표된 주체와 언표 행위의 주체는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다. 언표된 주체는 언표 행위의 주체를 가리면서 자리를 잡는데 이 가림이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틈으로 언표 행위의 주체가 나타날 때 실재라는 것들이 외설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지젝) · s(A) 는 의미의 장이자 주체의 진리가 꽉 찬 발화의 형태로 표현되는 곳 (가능성으로서). · 처음 소개된 담론의 순환도식에서는 I(a)에 β (je 혹은 언표주체)가 있었으며 m자리에 β’ (환유대상)이 명시되어 있고 시니피앙 사슬도 Δ→Δ’ 으로 쓰임. · 첫째 공식은 그래프에서 상상계 작용에 대응. d → $◇a→m→ i (a)으로 순환. · 둘째 공식은 그래프에서 상징계 작용에 대응. $→A→s(A)→I. 그러나 A◇d 는 대타자의 응답너머의 욕망을 가리킨다. · 셋째 공식은 그래프에서 상징계 (쾌락) 너머의 주이상스의 영역을 가리킴. 무의식이란 주체가 알지 못하게 진행되는 시니피앙 사슬의 흐름 = “무의식이란 대타자의 담론”. 무의식적 시니피앙 사슬의 전개는 존재의 문제와 연관된다.  
16    제10강 소외, 욕망의 그래프 댓글:  조회:1330  추천:0  2019-03-18
◆ 소외와 분리 (욕망하는 주체의 구성) 소외는 주체의 구성에 있어 필연적인 사태이다. 주체는 소외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성될 수 없다. 우리는 말을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불가피하게 주체를 소외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외는 주체에게 우연적인 사태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사태가 된다. ㅡ라캉은 두 단계로 소외를 설명한다. 1) 첫 번째는 상상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소외, 즉 거울단계에서 나타난다. 거울 속의 이미지는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이미지를 동일시할 때만이 주체의 최초 형상들은 자아로서 주어지게 된다. 상상적인 자아의 매개가 없다면 주체는 구성될 수 없다. 2) 두 번째 소외는 본질적이고 더욱 결정적인데 이것은 언어에 의한 소외이다. 언어는 주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주체를 소외시킨다. 주체를 소외시키는 심급은 시니피앙이다. 시니피앙은 주체가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상징계는 주체가 자기 존재의 단계에서 구현될 수 있기 위한 형상을 두게 된다.” ▲ 주체구성 ㅡ주체는 대타자의 장에서 하나의 시니피앙으로서 나타나지만 곧바로 그 시니피앙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현존과 부재의 변증법 : 초월적인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 주체화의 도식 (강압적인 선택)   · 소외란 주체가 이미지 (타자)와 언어 (시니피앙)에 예속되고 그것에 의존함으로써만 주체성을 획득함을 말하며 그러기에 소외란 주체의 근본적 사태일 수밖에 없다. · 주체란 하나의 시니피앙을 오게 하기 위해 또 하나의 시니피앙에 의해 대리될 때만 주체일 수 있다. ▲ 분리 대타자 (의미) 속의 부재 (틈)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분리된 일부로 취하는 작용. 욕망하는 주체의 탄생순간. “여기서 주체는 자신의 분리로부터 자신의 생산으로 진행해간다 ”. 에크리 843 쪽. 소외 → 분리 → 주체 = $ a. ※ 소외와 분리의 도식 → 소외가 일어나는 이유는, 원래 주체의 현실은 비의미인데 존재성의 획득을 위하여 주체가 의미이자 대타자의 질서인 S1에 자신을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ㅡ주체는 유령과 같은 존재이다. 주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계의 효과가 만들어내는 부차적인 의미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외의 단계는 주체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ㅡ소외는 상징계에 의해 주체가 구성되는 최초의 순간일 뿐, 두 번째 단계인 분리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주체는 욕망의 주체로 태어난다. ㅡ소외는 강제적이지만 분리는 능동적이면서도 주체의 고유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 분리는 대타자의 기표(S1) 자체가 자기의 존재성을 완전하게 해명해주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대타자 속에서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고 주체가 그 공백의 부분을 자기 자신의 부분으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나가는 것이 분리의 순간이다. 자기 속의 비이미적인 부분들을 주체가 적극적으로 떠안아 나가는 것이다. ㅡ결여는 대타자와 주체가 함께 공유하면서도 서로 간에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브제 아는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되는 상징적인 구성물이다. 그래서 objet a는 욕망의 대상이면서 원인이 된다. ㅡ결여를 인정하는 것이 욕망하는 주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 결여, 포기가 있어야만 주체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 분리되고 무화되는 것은 주체의 존재 (). 그것은 언제나 환상 대상 a 의 형태로만 주체에게 드러난다. 언어가 존재를 가리고 소외시키는 것은 언어의 한계이자 대타자의 결여를 보여준다. → 주체의 존재는 무로서만 존재한다.   ◆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 → 분리된 대상은 대타자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킨다고 가정되는 대상으로 아이 (주체)자신의 상징물 → “ 그들이 나를 잃어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fort-da 놀이 참조. ㅡ주체는 대타자의 욕망을 알고자 한다. → 분리작용은 주체욕망의 능동성을 보여줌 “ 자신이 종속된 기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체는 기표의 연쇄적 질서를 공격한다 ”. 에크리, 843 쪽. 자신의 존재를 위한 투쟁. “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 부인 (Verwerfung)의 세 가지 양상. 금지(상징계의 법)에 대한 관계. 신경증 억압 (의심에 지배를 받음), ‘질투심 많은 남편’의 예. 도착증 부인 (예 : 여자가 페니스가 없다는 사실을 부인) 정신병 폐제 (어떤 특정 요소를 상징계로부터 완전히 추방하는 것) * 현실이 억압되거나 부인되기 위해서는 먼저 긍정되어야 하는데 정신병은 처음부터 현실을 축출하는 경우이므로 무의식적 과정이 형성될 수 없다. 억압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억압된 것과 회귀하는 것은 동일. * 엄마에 대한 태도 = 정신병 : 금지되지 않음. 신경증 : 금지됨. 도착증 : 금지되어야 한다. 1) 신경증 ㅡ타자의 욕망에 집착하는 사람. ㅡ예를 들어 쥐인간의 모든 문제는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분석 시 프로이트에게 욕설을 퍼붓고 두려워함). ㅡ최초의 향락에 대한 욕망이 억압되어 있는 사람. 2) 정신병 ㅡ환상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 ( 예-악마가 내 머리 속에 살고 있다). ㅡ신경증자가 언어 속에 거주하는 자라면, 정신병자는 언어가 그 속에 거주하고 그를 소유하는 경우이다. ㅡ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을 보인다. 3) 도착증 ㅡ상징적인 분리자로서 아버지를 승인하고 긍정하는 것에서 출발. ㅡ도착증자는 신경증과 달리 주이상스를 상실해야 하는 지점에서 환상과 연관된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ㅡ소외 (통과)와 분리 (실패)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ㅡ소외는 일어나지만 그 이후의 분리 단계까지 가지 못함. → 자기 자신을 주체가 아닌 대상의 위치에 놓는다. 예) 페티시즘. → 지젝은 스탈린 치하의 체제를 도착증적 구조로 설명한다. 스탈린 체제 하에서는 모든 건 당의 의지이고 주체의 의지는 없다. 인민은 당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일 뿐이다. · 실재는 언제나 그 자리에 . 무의식적 주체가 도래하기 이전 그리고 상징계로의 진입이전 실재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실재는 항상 같은 장소로 되돌아오게 하는 그런 것이다. 사유하는 주체, 즉 사유실체인 코키토는 이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 S, XI, p. 49. · 환자의 담화 속에서 나타나는 실재는 그로 하여금 동일한 주제, 사건, 개념 등으로 다시 돌아가 그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게 만드는 어떤 것. 해석은 욕망의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 실재는 주이상스가 도달하고자 하는 영역. · 라캉은 실재를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 주이상스 · 주체는 쾌락원리에 의해 설정된 쾌락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 주체를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쾌락, 즉 주이상스. · 주이상스는 죽음의 충동 → 근원적 대상인 물을 획득하고자 하는 거역의 욕망. “ 주이상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반이 필요하다”. Lacan, S, VII, p. 208. · 주이상스는 본성상 남근적 (거세와 연관)이지만 여성성엔 보충적 주이상스가 존재. → 성차 공식참조. 남자가 남근을 소유하려는 입장이라면 여자는 남근이다. → 여성성에 대한 자크 알랭 밀러의 정의 “ 우리는 여자들을 무와의 본연적 관계를 간직한 주체들이라 부른다. 나는 이런 표현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고자 하는데, 라캉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모든 주체가 무와 관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여자라는 주체는 보다 본질적으로, 보다 근접하게 무와의 관계를 간직하고 있다 ”. (자크 알랭 밀러)      
15    제9강 물의 보증물 실재 댓글:  조회:1078  추천:0  2019-03-18
◆ 무의식의 주체와 시니피앙의 주체 • 상징계는 이미 죽음의 충동을 전제 한다  (단어는 사물의 살해이다. 죽음의 충동이란 상징적 질서의 가면).  • 상징계는 부재의 질서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기호화시키면서 가능한 것처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 상징계의 반복 • 잃어버린 대상 → 결여의 대상→ 결여는 사후작용에 의해 체험.  어떠한 경우에도 경험적 대상은 결여의 대상이 아니다.  → 여기서의 결여도 언어적인 결과이다. ‘존재’의 문제가 결여에 해당한다. • 금지의 대상 → 어머니에 의해 대현 됨 (근친상간적 욕망의 대상).  금지와 욕망의 관계도 사후적이다.  ▲ 무의식의 주체와 시니피앙의 주체 무의식의 주체 시니피앙의 주체 작용 말 언어(글) 목적 진리 지식 드러남의 방식 불연속 연속 지위 무  가시성 본질 존재 에고 질서 실재계 상징계 ㅡ라캉은 말에 우위를 인정한다. 말은 순간적이지만 언표행위의 주체를 드러냄에 반하여 언어(글)는 그렇지 않다.  → 데리다가 글을 중요시하는 이유 글은 주체의 차원이 철저하게 배제된 차원이고 내가 글을 쓰면 이미 거기 나는 사라지고 텍스트만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주체가 사라진다.  → 텍스트는 해석에 관해서 텍스트 고유의 세계를 가지게 된다.  ㅡ라캉의 에크리는 글로 쓴 것이고 세미나는 말을 한 것(강의)이다.  ㅡ욕망은 해석될 수가 없다. 욕망이 해석된다면 우리는 진리에 대해 얼마든지 답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ㅡ지식은 연속된 체계로 인해 가능해진다. 하지만 지식은 깨어지게 되어 있다. 지식이 진리를 모두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연속이 연속을 파열시키면서 진리를 드러내게 된다.  → 위의 도표에서 상상계는 실재계와 상징계의 중간에 걸쳐서 표시할 수 있다. 상상계는 실재에 대해 상징계로 하여금 알아보게끔 매개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실재는 상상계에 의해 잡히지도 않고 상징계에 의해 잡히지도 않는다.  ㅡ라캉이 말하고자 하는 주체는 무의식의 주체(욕망의 주체)이다. ㅡ무는 없는 것이 아니다. 라캉은 ‘무는 없다’가 아니라 ‘무는 없는 것이 아니다’처럼 이중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욕망은 대상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욕망은 대상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ㅡ라캉은 주체는 대타자 속에 있는 불연속이라고 말한다. → 언어가 개입하는 순간이 최초이다. 언어가 개입했을 때 언어 이전의 상태가 언어에 의해서 사후적으로 상실로서 의미가 띄게 된다. 먼저 상실이 있고나서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욕망이 있으니까 상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법을 통해서만 물을 인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만약 법이 그것을 탐하지 말라고 명하지 않았다면 물을 탐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Lacan, S VII, p. 101. → 물이란 욕망의 대상이자 주이상스의 대상. 쾌락원칙 (상징계)은 주체가 물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 후에 물의 개념은 환상대상 a 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ㅡ물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이 주체에게 다가오는 순간, 그 자체이다. “욕망은 어떤 다른 것에 대한 욕망”. “욕망은 무에 대한 욕망”.  “ 욕망은 대상이 없지 않다 ”.  ㅡ상실의 대상이자 금지의 대상은 동시에 주이상스의 대상이기도 하다. 쾌락 너머의 어떤 것을 탐하는 것은 주체에게 금지되어 있다.     ◆ 물의 보증물 실재   ㅡ욕망의 윤리가 향하는 곳이 곧 실재가 된다. 실재는 불가능 자체이기 때문에 이 불가능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욕망의 출발이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도덕 법칙이 실재를 그 자체로 겨냥하는 데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때 실재는 물의 보증물이라 할 수 있다”. S, VII, p. 92. • 상징계는 실재를 현실 ( -상상계와 상징계에 의해 구성됨)로부터 배제시킨다.  현실은 재현의 질서 혹은 표상의 질서.  → 지식 (savoir)은 현실을 대상으로 삼지만 진리 ( )는 실재계를 드러내는 것과 관련이 됨. • 물은 어떤 외부처럼 배제되어 있는 그런 것.  → 배제되어 있다는 것은 말 표상과 연관되지 않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실재의 영역이라는 의미이다. 실재는 물의 보증물이다. • 실재는 불가능 : 불가능이란 가능의 반대말이 아니다.  실재는 쾌락원리 (상징계)에 대한 장애물이자 쾌락원리를 좌초시키는 암초 같은 것.  → 실재는 상징화가 불가능하다는 효과로 나타난다. S, XI, p. 152. 그러나 상징계 없이는 실재를 이해할 수 없다. 실재는 언제나 애매성의 포로. ㅡ프로이트  무의식(신체)→ 증상→ 해석 ㅡ라캉 시니피앙의 사슬과 또 다른 시니피앙의 사슬 → 무의식 → 이 두 개의 질서 (의식과 무의식)는 별도의 질서가 아니라 서로 어긋나며 반복되는 구조임 “알 수 없는 지식”→ 반복되고 있지만 주체가 다가가지 못하는 지식 ㅡ라캉에게는 프로이트와 같은 일관성의 구도가 적용되지 않고 ‘해석’또한 달라지게 된다. 분석은 해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석은 라캉에겐 부차적인 것이다. 궁극적인 것은 욕망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치료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치료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라캉은 말한다. ㅡ프로이트는 사물표상을 무의식과 연관시킨다. 의식은 전의식과 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들은 언어표상과 연관이 된다.  → 사물표상은 언어표상 이전의 이미지, 사물 자체가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상을 의미한다.  Sache→ 사물, 사태, Ding→ 사물(사물 자체) → 라캉은 프로이트가 말한 사물표상은 sache에 가깝다고 말한다. 딩ding은 언어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 상징화되지 않은 것의 회귀 : ‘늑대인간’에서 잘린 손가락 (거세)의 환상 참조. ‘불타는 아이의 꿈’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느끼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괴로움이 실재.  → 실재는 주체에게 금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금지가 되어 있음으로써 오히려 주체를 안전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실재로부터 거리를 둘 때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가 있다.    ▲ 부인 (Verwerfung)의 세 가지 양상.  → 금지(상징계의 법)에 대한 관계.  신경증 억압 (의심에 지배를 받음), ‘질투심 많은 남편’의 예. 도착증 부인 (예 : 여자가 페니스가 없다는 사실을 부인) 정신병 폐제 (어떤 특정 요소를 상징계로부터 완전히 추방하는 것) ㅡ신경증의 두 가지 예는 히스테리와 강박증이다.  ㅡ도착증의 대표적 예는 페티시즘이다.  → 페티시의 대상들은 남근의 대체물로서 의미가 있게 된다.  ㅡ현실이 억압되거나 부인되기 위해서는 먼저 긍정되어야 하는데 정신병은 처음부터 현실을 축출하는 경우이므로 무의식적 과정이 형성될 수 없다. 억압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억압된 것과 회귀하는 것은 동일. ▲ 싸이코패스(Psychopath) ㅡ선천적으로 가학행위를 즐기는 성격장애자들로 전인구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연쇄살인범들의 경우 여자를 죽일 때 죽이는 행위 자체가 그들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실재가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예로 볼 수도 있다. 실제 성행위를 통해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살자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극도의 쾌락을 맛보는 것이다. ⇒ 주이상스가 보호막 없이 그대로 주체를 덮치고 있는 경우이다. ▶ 참고자료 겉은 멀쩡하면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를 일컫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20년대 독일학자 슈나이더다. 그는 발정, 광신, 자기현시, 의지결여, 폭발적 성격, 무기력 등 10가지 특징을 사이코패스에 속하는 인격 유형으로 규정했다.  일본의 범죄심리전문가 니시무라 유키는 사이코패스를 “정장 차림의 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의 정신병질(精神病質)은 내부에 잠재돼 있다가 범행을 통해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에선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유영철은 3차례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판명됐다. 흥미로운 것은 사이코패스에 유전적, 생물학적 비밀이 있다는 미국 브르크하멜 국립연구소 연구결과다.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 밖에 되지 않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잘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공격성을 억제하는 분비물인 세로토닌이 부족해 사소한 일에도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치료와 교화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이코패스는 생물학적 요인에 현대 사회의 병폐라는 환경적 요인이 결합돼 있다. 따라서 유일한 해결책은 이런 특징을 조기에 발견해 환경적 요인을 제거해 주는 것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제는 약육강식과 정글의 법칙이 판치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의 출현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등장은 그 사회가 얼마나 황폐화 됐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인 셈이다.  
14    제8강 물과 실재의 윤리 댓글:  조회:1039  추천:0  2019-03-18
◆ 네 가지 담론과 진리 · 진리란 상실된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 진리는 상징계와 실재 사이의 연관성. · 실재는 충동이 지향하는 대상이고 상상계는 상징계와 실재 사이에 자리 잡으며, 이질적인 것을 결합하고 존재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항목 : S1 주인의 시니피앙, S2 지식, a 대상 (잉여향유), $주체 · 주체의 공식여기서 S1과 S2의 빈 곳에 환상대상. → 각 담론에서 고정되어 있는 네 자리는 왼쪽 위부터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진행하여 행위자, 타자, 생산물, 진리라고 불린다. 1) 주인의 담론 S1/$ S2/a ㅡ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담론 ㅡa는 환상적으로 결핍을 채우도록 기능하는 대상이며 노예에 의해 생산된다. →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주인과 노예의 의식은 서로 인정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주체만 단독으로 존재하는 의식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타자에 의해서 인정받을 때 비로소 나의 자의식이 의식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자의식을 지키고자 하는 주인의 의식은 즉자대자의식이 되어 타자를 굴복시키게 되고 노예는 자신의 즉자대자의식적인 자의식을 포기하고 대신 생존을 위해서 주인에게 굴복을 하게 된다. 2) 대학의 담론 S2/S1 a/$ ㅡ과학의 담론이라고도 볼 수 있음. ㅡ주체는 모든 특수성을 상실 ㅡ사회적 변동은 그것이 없다면 담론이 자기의 일관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이름 (S1)의 기능을 예시 3) 히스테리의 담론 $/a S1/S2 주인인 대타자에 의존, 지식과 대상의 관계는 무능력 4) 정신분석의 담론 a/S2 $/S1 대상과 주체의 관계는 불가능성, 분석가의 욕망이 원인으로서 행위자 → 분석가의 욕망 피분석자가 분석가를 만나게 될 때 피분석자는 분석가의 욕망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분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석가의 욕망이 피분석자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 분석가의 욕망은 항상 미지의 x로 남아야하고 피분석자가 분석가의 욕망에 대해서 계속해서 물어보는 상태가 될 때 분석이 지속된다. ㅡ실재와 현실의 구분이 없는 상태가 정신병이다. → 우리는 실재 자체에 다가갈 수 없다. 상징계는 구별을 지어주면서 결여를 갖게 하는데 상징계가 차단되어버리면 실재가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상상계로 하여금 주체를 사로잡게 만든다. 상징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타자의 질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S A (향유) 주체와 대타자가 직접 대면하는 관계는 불가능하다. 관계는 언어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이다. 상징적 거세를 인정하지 않고 향유 자체가 가능하다고 믿는 상태이다. 즉 주체와 대타자의 직접적 만남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체와 대타자 모두 결여되어 있다. $ a A (욕망) → 주체는 자신의 결여를 인정해야 하고 대타자 역시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오브제 아를 통해 대타자의 결여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ㅡ향유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정신병의 상태에서는 불가능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정신병에는 무의식이 없다. 무의식은 언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물 (獨Ding, 佛Chose)과 실재의 윤리 ㅡ물은 실재의 얼굴이면서 동시에 실재를 향해 주체를 유혹하는 형상이다. ㅡ물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갖는 본원적인 결여를 상징화하는 형상물이다. ㅡ물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는 어머니이다. → 어머니는 주체에게 있어 최초의 주이상스를 포기하면서 잃어버려야 할 대상이기 때문 → 실재는 윤리적 차원에서 다가가야 한다. 라캉은 윤리가 갖는 절대성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라캉은 윤리의 모델을 칸트에게서 발견한다. 칸트는 선의지를 내세웠는데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절대적 명령이다. → 선의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준칙의 예) ‘너 자신의 행동의 준칙이 항상 보편타당한 입법의 원리가 되게끔 행동하라’,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로 대우하라’ 등 S - J(주이상스) = 칸트식 윤리 싸드는 주이상스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자이다. S - J = $ + a 싸드적 윤리 ▶ 참고자료 1 임마누엘 칸트(1724년 4월 22일 ~ 1804년 2월 12일) 국적 : 독일 학력 :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 약력 : 1765년 왕립도서관 부관장.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철학 교수. 1786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총장 ▶ 참고자료 2 사드 [1740.6.2~1814.12.2] 프랑스의 소설가. 원어명          Donatien Alphonse Fran→→ois de Sade 별칭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저서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1791) 《알린과 발쿠르》(1795) ▲ 쾌락원리 (Lustprinzip) ㅡ불쾌 (흥분과 자극의 과다)를 피하고 쾌 (만족)를 추구함을 목적으로 삼는 정신적 활동 혹은 기능. ㅡ정신기제는 과도한 흥분을 배출하거나 피하려는 경향이 있음. → 쾌락원리는 경제적 원리 (에너지의 흐름, 에너지 투여와 배출, 적정한 긴장상태 유지)에 의해 설명→라캉은 쾌락원리를 상징계와 동일시. “결국 쾌락원리란 정신기제의 작용을 조정하는 긴장의 수준을 가장 낮게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많은 시니피앙들을 펼쳐 놓으면서 주체를 한 시니피앙에서 또 다른 시니피앙으로 이동시키는 그러한 기능이다”. Lacan, S VII, p. 143. ▲ 죽음의 충동 (Todestriebe) ㅡ유기체의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고 비유기적 상태(쾌락원리너머)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으로 삶의 충동에 대립되며 공격성의 근원. ㅡ프로이트 이론에서 가장 논쟁적인 개념 중 하나였음. ㅡ프로이트는 강박충동이 반복되는 현상을 보면서 쾌락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힘을 발견하고 이를 죽음의 충동으로 설명. ▲ 라캉의 물 개념과 실재 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물 (Ding) · 물이란 쾌락원리 너머에 위치하는 대상으로 실재계와 연관. → 물 (Ding)은 언어 밖에 존재 하며 반면에 사물 (Sache)표상은 상징계와 연관됨. ㅡ프로이트는 말 표상을 전의식과 의식에 그리고 물표상을 무의식에 연결시켰고 보통 이를 근거로 라캉의 해석(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 되어 있다)을 비판하지만 라캉은 물의 두 가지 개념이 서로 다르게 쓰임을 근거로 반대자들을 반박한다. * 라캉의 물 개념은 칸트의 물자체 개념과 유사성이 있다. → 물자체 : 인식주관에 대립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물(物)이 아니라, 인식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현상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물 그 자체로서 본체, 또는 선험적 대상이라고도 한다. → 그러나 라캉의 물 개념은 실재계와 연관되며 그것은 욕망의 대상이자 정신분석의 경험이 성립하는 근본 토대이기도 하다. 주이상스 = 여성성 = 실재 = 윤리 욕망 = 남성성 = 상징계 “물이란 인간을 시니피앙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이 최초의 근본적 관계에 의해 괴로움을 겪는 실재에 속하는 것이다”. Lacan, S VII, p. 161.  
13    제7강 충동과 환상대상 a 댓글:  조회:1105  추천:0  2019-03-18
◆충동 ㅁ 충동 (프로이트는 충동과 본능의 구별을 중시 - Trieb =treiben=pousser). → 목적달성이나 대상의 획득보다는 유기체를 밀고 가는 역동적 측면자체가 중요. ▲ 충동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론 : · 1905 년에 처음 사용된 용어 (정신과 육체의 역동성과 둘 사이의 경계개념으로서 충동). · ‘항구적인 힘’, ‘경제적 관점 (에너지의 흐름)’=쾌락원리. 신체적 자극 (긴장)에서 기원. ‘항상성 원리 (Konstanzprinzip)’ · 충동은 대상관계와 만족을 향한 운동 (힘)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된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 충동은 본질적으로 부분적이고 산개되어 있음. 대상은 언제나 가변적. → 충동은 대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가변적 대상 자체를 끊임없이 바꾸려는 힘은 내적인 긴장 자체에서 나옴. · 충동이론은 성이론의 발달단계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 최초에 아이는 구순기를 거치게 되는데 외부 대상을 씹고 빨고 받아들이며 삼키는 시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최초에는 본능의 차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본능적 차원 위에 문화적 차원이 겹치면서 충동이 생긴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대상이 아니라 입 자체가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 1) 구순기의 원형은 대상들을 획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양태가 된다. 2) 항문기에는 대변이 대상이 되겠지만 대상 자체가 아니라 내보내는 행위에 항문기 충동의 원형이 있게 된다. 모든 대상을 규율에 맞게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긴장을 해소하는 것 예) 화를 내는 것도 항문기적인 충동이라고 할 수 있다. 3) 남근기에는 남근 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거세 콤플렉스 때문에 잠복기로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성기관이 남근으로 발달하기 전에 이미 아버지란 존재가 개입을 하고 거세 위협에 의해서 남근기는 잠복기로 들어간다. 4) 성기기가 되면 대상은 이성이 된다.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기기에는 하나의 사람 전체가 충동의 대상이 된다. · 1915년 - 충동의 네 가지 요소 (‘성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 압력, 목적, 대상, 원천(신체 자체) · 충동과 본능의 구별이 중요 : 충동은 주체의 개인적 역사와 문화에 의존. 예) 아이에게 구순충동이 있다고 할 때 모든 어린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건 아니고 다른 식으로 구순충동을 해소하는 경우도 있다. → 이것은 개인이 개체화되고 주체화되는 과정, 사회적으로 편입되는 양상에 따라 다라질 수 있는 것이다. · 충동이원론 리비도일원론(단 하나의 남성 리비도만이 존재한다) → 충동이원론 : 상이한 충동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분화(충동들은 부분충동이기 때문). ‘성적 충동과 자아보존 충동’(초기) → 자아도 성적대상이 됨(나르시시즘과 관련) → ‘자아 충동과 대상 충동’ → ‘삶의 충동(에로스)’과 ‘죽음의 충동(타나토스)’.(후기) ▲ 충동에 대한 라캉의 이론 → 충동은 4 대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1)무의식, (2)전이(피분석자와 분석자가 만났을 때 피분석자의 감정이나 대상집중이 분석가에게로 향하는 것) (3)반복, (4)충동 → 충동은 반드시 오브제 아 (obje a) 개념과 연관된다. · 실재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양태. 실재는 끊임없이 순환운동을 하는 것이고 대상의 주위를 맴도는 운동 자체가 목적. 실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 라캉은 충동들의 부분적 성격을 강조하고 성과 죽음이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ㅡ신체는 원래 무차별적으로 퍼져 있는, 질료 같은 덩어리들인데 여기에 충동들이 각각의 성감대를 따라 모이게 된다. 그래서 성감대는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본다. → 충동들이 안착된 곳이 성감대이고 성감대의 특징은 항상 외부와 내부가 연결되는 장소가 된다. · 욕망은 하나의 정관사로 표현되지만 충동은 복수형태로 쓰여짐. 욕망 Le 충동 Des pulsions → 욕망의 본질에 있어 단 하나이고 충동은 여러 가지이다.   ◆ 환상대상 a · 충동은 언어와 연관되어 있다 → 말 (parole)이란 결국 존재하는 것 속에 있는 부재자를 표현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 네 가지 부분충동 : 구순충동 (젖가슴), 항문충동 (똥), 시각충동 (시선), 청각충동 (목소리). 충동은 환상 대상의 주위를 순환한다. S, XI, p. 220. →부분대상은 이미지의 전체상과 허위성을 비판하는데 유용하다. 전체상은 항상 소외를 일으킨다. 전체상이 허구라는 것이 거울단계의 본질이 된다. “모든 대상들은 반드시 부분대상이며 충동도 부분충동이다”. →몸의 어떤 부분을 부분으로 분리하는 것은 언어가 행하는 의미화와 연관되며 충동의 생산이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 부분대상은 전체의 일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 자체가 충동들의 만족에 있어 절대적이라는 의미에서 부분대상이다. ▲ 환상대상 환상대상 a (objet a) 1)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스피노자. “인간은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캉. · 욕망의 대상이자 원인, · 초기엔 상상적 부분대상 (몸의 일부분으로 상상 속에서 분리 가능)을 가리킴. →63년경부터 실재계에 대한 지시를 포함. 그러나 오브제 a 의 상상적 기능은 완전히 부정 1) 1950 년대 라캉은 Karl Abraham 으로부터 부분 대상이라는 개념을 D. W. Winnicott로부터 과도적 대상이라는 개념을 빌어 왔다. 되지 않음. → 73년부터는 존재의 모사 (분리도식 참조) → 분리 (separation)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철학으로 서유럽 학자들이 '동유럽의 기적'으로 지칭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1949년 옛 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파리 제8대학의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80년대 류블랴나에서 `이론정신분석학회` 를 창립, 회장으로 일했으며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현실정치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1990년 슬로베니아 첫 다당제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다. 지젝은 “욕망이 대상의 고유 가치와 교환 가치의 차액인 잉여 쾌락에 의해 지속된다”는 잉여쾌락 이론, 실재계와 상징계 등을 제시했다. · 주체는 시니피앙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주체가 된다. 존재 자체는 상징계로 들어가는 순간 억압될 수밖에 없다. 존재가 결여된 곳에서 끊임없이 욕망은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objet a의 기능이다. 오브제 아는 욕망의 스크린이라고 할 수 있다. · 욕망은 언제나 어떤 다른 것에 대한 욕망 혹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인데 환상대상 a 는 욕망의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 욕망은 환유이다. 라캉은 은유가 대체라면 환유는 연결이라고 말한다. →욕망은 (1)불가능성 자체이고 (2)어긋남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을 다 같이 보여주는 것이 objet a이다. 오브제 아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 오브제는 실제 대상이 아니라 가능한 대상들을 불러 모으고 주체를 끊임없이 욕망 속으로 데려가는 것. → 윤리/욕망/주이상스/실재는 상징계가 만들어놓은 한계 위에서 그것을 넘어보고자 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거의 같은 맥락으로 묶일 수 있다. · 주체는 본질적으로 존재 결여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환상 (조각난 몸과 분리 가능성)이 개입. 거세는 순수 논리적 구조. ▲ 개념의 변천 · 타대상 (자아라는 대상). 자아는 시선 충동에 대응하는 상상적 구성물. · 남근적 대상 : 대타자의 결여를 충족시켜주는 대체 가능물. · 욕망의 대상 $ ◇ a (환상공식), 임상적으로 도착증에서 두드러짐. · 1970 년 : 잉여 향유 대상 (plus-de jouir) : 맑스의 잉여가치 개념. 주체가 대상을 획득하는 순간 대상 a 는 하나의 잉여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 찌꺼기는 상징계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또 하나의 부분이다. 즉 상징계의 이면에 남아 있는 잔여를 의미하고 이론적으로는 ‘실재’를 말한다. 실재는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고 항상 상징계와 관련해서 그것의 효과로서만 드러난다.    
12    제6강 욕망의 시니피앙 남근과 결여 2 댓글:  조회:1089  추천:0  2019-03-18
◆결여 • 결여는 경험적 대상의 결여(상실)와 아무 상관이 없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상징계에서 존재의 결여→이것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상징계와 대립되는 실재개념으로 발전. ▲ 남근의 의미 ◎ 프로이트의 남근개념 • 명사보다는 형용사적 형태로 사용 (예 : 남근기). 페니스와 남근은 서로 구별되는데 페니스는 해부학적 남성생식기를 가리키며 남근 (phallus)은 그것의 상징적 가치. • 남근은 남,녀 모두에게 리비도의 상징이자 성적기표 (거세냐 아니냐) : 여자아이는 성적차이를 거세로 받아들임.  • 페니스는 남근적 은유 (상징적 등가물의 대체화 과정, 분리 (거세) 가능성)의 연속선상에 기입 된다. • 거세 컴플렉스는 초자아와 자아이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인격형성.  ◎ 라캉의 남근개념 (욕망의 시니피앙) * 상상적 남근  과 상징적 남근  의 구별이 중요하다. 상상적 남근은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으로 아이는 이 대상에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상징적 남근은 시니피앙으로 대타자의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자 주이상스의 기표자체를 말한다.  * 성적인 입장(남자와 여자)을 결정해주는 것은 부모에 대한 동일시가 아니라 상징적 남근과 맺고 있는 주체의 관계이다.  ㅡ프로이트는 그의 손자가 실패를 가지고 노는(포르트-다 놀이) 이유에 대해서 그것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아이가 경험하게 되는 현실, 즉 어머니의 부재를 자기 나름대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 처음에 아이는 모든 상황을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가 실패를 던짐으로써 아이의 수동성이 능동성으로 바뀌게 된다.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 떠나는 순간이 실패가 멀리 갔다가(fort) ‘여기’로 돌아오는(da) 순간들로 대치가 되면서 아이는 비로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 어머니의 부재와 현존을 포르트-다 놀이로 상징화함으로써 아이는 상황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ㅡ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예술 활동이나 놀이도 이러한 상징적인 놀이의 원형을 그 안에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최초의 현실을 상징화하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 죽음의 충동은 경제적인 관점에 의하면 인간이 가장 낮은 상태로 에너지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긴장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충동이다. 쾌락원리에 의하면 긴장이 있을 때, 예를 들어 극도로 배고픔을 느낀다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  • 긴장 자체를 해소시키는 것이 유기체가 지향하는 바가 된다.  → 라캉은 쾌락원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반복강박증을 상징계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라캉은 포르타-놀이에 두 가지 점에서 중요성을 부여한다.  1) 첫 번째는 주체가 구성되는 과정이다.  ㅡ주체는 상황에 따라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를 가질 때 주체가 된다. 그래서 주체는 항상 대상(objet)과 연관이 된다.  → 오브제, 즉 대상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주체의 앞에 놓여 있는, 또한 주체에 대해서 있는 그런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 두 번째로 실패는 주체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대상을 상징한다.  ㅡ남근도 신체에서 분리 가능한 대상처럼 생각이 된다. 그래서 나중에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남근이 아이로 바꿔치기 된다.  → 실패는 어머니로부터 주체가 떨어져 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된다. 이 분리 가능한 대상은 라캉에 의해 ‘objet a’로 개념화된다.  ▲ 결여의 세 형태.  → 오이디푸스 과정에서 겪게 되는 대상상실의 세 형태. “정신분석에서 대상 (objet)은 항상 되찾은 대상”. 궁극적인 결여는 존재의 결여.  ① 좌절 (frustration)  ㅡ상상적 결여, 실재 대상 (예를 들어 페니스).  ㅡ욕망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만족도 있을 수 없다.  ㅡ좌절은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요구가 거부 된 것.  ② 거세 (castration)  ㅡ상징적 결여, 상상적 대상 (남근으로 가정된 아이).  ㅡ오이디푸스에서 아이가 상상적 의존관계에서 벗어나 욕망의 주체로 태어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함.  ③ 박탈 (privation)  ㅡ실재적 결여, 상징적 대상 (상징적 남근).  ㅡ남근선망과 여성거세의 개념을 좀 더 엄격하게 이론화 하고자 개념을 고안.  ㅡ실재계는 결여가 없다.   ◆ 결여의 세 형태 → 오이디푸스 과정에서 겪게 되는 대상상실의 세 형태.  “정신분석에서 대상 (objet)은 항상 되찾은 대상”. 궁극적인 결여는 존재의 결여.  ① 좌절 (frustration) : 상상적 결여, 실재 대상 (예를 들어 페니스).  욕망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만족도 있을 수 없다. 좌절은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요구가 거부 된 것.  ② 거세 (castration) : 상징적 결여, 상상적 대상 (남근으로 가정된 아이).  오이디푸스에서 아이가 상상적 의존관계에서 벗어나 욕망의 주체로 태어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함.  ③ 박탈 (privation) : 실재적 결여, 상징적 대상 (상징적 남근).  남근선망과 여성거세의 개념을 좀 더 엄격하게 이론화 하고자 개념을 고안. 실재계는 결여가 없다.  → 욕망이 생겨나는 이유는 아이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요구를 하는데 반해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의 구체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ㅡ결여를 낳는 것은 상징계이고 실재계가 아니다. 실재 자체는 충만한 질서이다.  →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실재 대상은 없는데 실제로 무언가 없어진 것처럼 상상적 결여를 느낀다.    • 대상(오브제)은 항상 잃어버린 대상인데 여기서 잃어버렸다는 것은 실제 경험이 아니라 상징계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결여가 생기기 때문에 되찾아야할 대상이 된다.  → 되찾아야 할 대상이란 실제로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마치 실제로 잃어버린 것처럼 상상이 되는 대상이다. 그래서 ‘objet a’는 ‘환상적’으로 중요해진다.  • 오브제 아는 실제 오브제가 아니라 실재하는 대상 속에서 무언가를 찾게끔 유도하는, 일종의 미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욕망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는 것이 ‘objet a’이다. 오브제 아 자체가 대상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 결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처럼 주체를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개의 결여가 겹친다. 첫 번째 결여는 어떤 핵심적 결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주체가 시니피앙에 의존하고, 시니피앙은 또한 무엇보다도 대타자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로 인해서 대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주체가 탄생하는 주체-대타자의 변증법이 바로 이 결함의 문제와 직결된다. 첫 번째 결여는 실재계에 속하는 또 다른 결여에 결합되는데 후자는 살아 있는 존재의 탄생 시에, 즉 성적 재생시에 나타나는 더 먼저 된 결여다. 이 실재적 결여는 생명체가 성적 방법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상실하는 그 어떤 것, 즉 생명체로서 자신의 일부인 것이다.” 1)   ㅡ부재를 현존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언어의 기능이다.  1) 최초결여(상징계) 사후작용에 의해서 결여를 인식하게 됨. 2) 실재적 결여 예) 출생시 이 결여는 상징계의 결여에 의해서 의미가 생길 때 비로소 후천적으로 가정이 된다. 궁극적인 결여는 상징계에서 오기 때문에 이 결여는 절대로 채워질 수 없다.  • 실재계와 연관되지만 상징계에 의해서 지시됨. 하나의 시니피앙이 실재를 지칭할 때 부재의 효과로 결여가 나타남→남근은 결여의 시니피앙.  • 욕망은 존재 결여→ 항상 환상대상 a와 관계를 가짐.  환상공식 : ($◇a). 남자에게 여자는 주체가 아니라 환상대상으로만 인식됨. → ‘빗금 친 주체 S는 오브제 a를 욕망한다’, 또는 ‘빗금 친 주체 S는 오브제 a와 관계를 갖게 된다’로 읽으면 된다.  ㅡ환상적인 대상이 놓인다는 것은 대체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실제 결여를 채울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부단히 대상에서 대상으로 옮겨가는 과정만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 결여는 원초적인 어떤 것의 상실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과 더불어 경험하게 되는 소급적 효과이다.  상상적 남근은 거세콤플렉스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상징적 남근은 성차를 가능하게 한다 (성차를 가능하게 하는 시니피앙은 부재 : “성관계는 없다”). → 팔뤼스적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 참조.   1) Lacan, S. XI, p. 186.  
11    제5강 욕망의 시니피앙 남근과 결여 1 댓글:  조회:1262  추천:0  2019-03-18
◆결여 • 결여는 경험적 대상의 결여(상실)와 아무 상관이 없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상징계에서 존재의 결여→이것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상징계와 대립되는 실재개념으로 발전. ▲ 남근의 의미 ◎ 프로이트의 남근개념 • 명사보다는 형용사적 형태로 사용 (예 : 남근기). 페니스와 남근은 서로 구별되는데 페니스는 해부학적 남성생식기를 가리키며 남근 (phallus)은 그것의 상징적 가치. • 남근은 남,녀 모두에게 리비도의 상징이자 성적기표 (거세냐 아니냐) : 여자아이는 성적차이를 거세로 받아들임.  • 페니스는 남근적 은유 (상징적 등가물의 대체화 과정, 분리 (거세) 가능성)의 연속선상에 기입 된다. • 거세 컴플렉스는 초자아와 자아이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인격형성.  ◎ 라캉의 남근개념 (욕망의 시니피앙) * 상상적 남근  과 상징적 남근  의 구별이 중요하다. 상상적 남근은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으로 아이는 이 대상에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상징적 남근은 시니피앙으로 대타자의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자 주이상스의 기표자체를 말한다.  * 성적인 입장(남자와 여자)을 결정해주는 것은 부모에 대한 동일시가 아니라 상징적 남근과 맺고 있는 주체의 관계이다.  ㅡ프로이트는 그의 손자가 실패를 가지고 노는(포르트-다 놀이) 이유에 대해서 그것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아이가 경험하게 되는 현실, 즉 어머니의 부재를 자기 나름대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 처음에 아이는 모든 상황을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가 실패를 던짐으로써 아이의 수동성이 능동성으로 바뀌게 된다.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 떠나는 순간이 실패가 멀리 갔다가(fort) ‘여기’로 돌아오는(da) 순간들로 대치가 되면서 아이는 비로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 어머니의 부재와 현존을 포르트-다 놀이로 상징화함으로써 아이는 상황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ㅡ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예술 활동이나 놀이도 이러한 상징적인 놀이의 원형을 그 안에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최초의 현실을 상징화하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 죽음의 충동은 경제적인 관점에 의하면 인간이 가장 낮은 상태로 에너지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긴장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충동이다. 쾌락원리에 의하면 긴장이 있을 때, 예를 들어 극도로 배고픔을 느낀다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  • 긴장 자체를 해소시키는 것이 유기체가 지향하는 바가 된다.  → 라캉은 쾌락원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반복강박증을 상징계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라캉은 포르타-놀이에 두 가지 점에서 중요성을 부여한다.  1) 첫 번째는 주체가 구성되는 과정이다.  ㅡ주체는 상황에 따라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를 가질 때 주체가 된다. 그래서 주체는 항상 대상(objet)과 연관이 된다.  → 오브제, 즉 대상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주체의 앞에 놓여 있는, 또한 주체에 대해서 있는 그런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 두 번째로 실패는 주체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대상을 상징한다.  ㅡ남근도 신체에서 분리 가능한 대상처럼 생각이 된다. 그래서 나중에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남근이 아이로 바꿔치기 된다.  → 실패는 어머니로부터 주체가 떨어져 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된다. 이 분리 가능한 대상은 라캉에 의해 ‘objet a’로 개념화된다.  ▲ 결여의 세 형태.  → 오이디푸스 과정에서 겪게 되는 대상상실의 세 형태. “정신분석에서 대상 (objet)은 항상 되찾은 대상”. 궁극적인 결여는 존재의 결여.  ① 좌절 (frustration)  ㅡ상상적 결여, 실재 대상 (예를 들어 페니스).  ㅡ욕망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만족도 있을 수 없다.  ㅡ좌절은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요구가 거부 된 것.  ② 거세 (castration)  ㅡ상징적 결여, 상상적 대상 (남근으로 가정된 아이).  ㅡ오이디푸스에서 아이가 상상적 의존관계에서 벗어나 욕망의 주체로 태어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함.  ③ 박탈 (privation)  ㅡ실재적 결여, 상징적 대상 (상징적 남근).  ㅡ남근선망과 여성거세의 개념을 좀 더 엄격하게 이론화 하고자 개념을 고안.  ㅡ실재계는 결여가 없다.   ◆ 결여의 세 형태 → 오이디푸스 과정에서 겪게 되는 대상상실의 세 형태.  “정신분석에서 대상 (objet)은 항상 되찾은 대상”. 궁극적인 결여는 존재의 결여.  ① 좌절 (frustration) : 상상적 결여, 실재 대상 (예를 들어 페니스).  욕망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만족도 있을 수 없다. 좌절은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요구가 거부 된 것.  ② 거세 (castration) : 상징적 결여, 상상적 대상 (남근으로 가정된 아이).  오이디푸스에서 아이가 상상적 의존관계에서 벗어나 욕망의 주체로 태어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함.  ③ 박탈 (privation) : 실재적 결여, 상징적 대상 (상징적 남근).  남근선망과 여성거세의 개념을 좀 더 엄격하게 이론화 하고자 개념을 고안. 실재계는 결여가 없다.  → 욕망이 생겨나는 이유는 아이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요구를 하는데 반해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의 구체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ㅡ결여를 낳는 것은 상징계이고 실재계가 아니다. 실재 자체는 충만한 질서이다.  →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실재 대상은 없는데 실제로 무언가 없어진 것처럼 상상적 결여를 느낀다.    • 대상(오브제)은 항상 잃어버린 대상인데 여기서 잃어버렸다는 것은 실제 경험이 아니라 상징계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결여가 생기기 때문에 되찾아야할 대상이 된다.  → 되찾아야 할 대상이란 실제로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마치 실제로 잃어버린 것처럼 상상이 되는 대상이다. 그래서 ‘objet a’는 ‘환상적’으로 중요해진다.  • 오브제 아는 실제 오브제가 아니라 실재하는 대상 속에서 무언가를 찾게끔 유도하는, 일종의 미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욕망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는 것이 ‘objet a’이다. 오브제 아 자체가 대상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 결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처럼 주체를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개의 결여가 겹친다. 첫 번째 결여는 어떤 핵심적 결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주체가 시니피앙에 의존하고, 시니피앙은 또한 무엇보다도 대타자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로 인해서 대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주체가 탄생하는 주체-대타자의 변증법이 바로 이 결함의 문제와 직결된다. 첫 번째 결여는 실재계에 속하는 또 다른 결여에 결합되는데 후자는 살아 있는 존재의 탄생 시에, 즉 성적 재생시에 나타나는 더 먼저 된 결여다. 이 실재적 결여는 생명체가 성적 방법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상실하는 그 어떤 것, 즉 생명체로서 자신의 일부인 것이다.” 1)   ㅡ부재를 현존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언어의 기능이다.  1) 최초결여(상징계) 사후작용에 의해서 결여를 인식하게 됨. 2) 실재적 결여 예) 출생시 이 결여는 상징계의 결여에 의해서 의미가 생길 때 비로소 후천적으로 가정이 된다. 궁극적인 결여는 상징계에서 오기 때문에 이 결여는 절대로 채워질 수 없다.  • 실재계와 연관되지만 상징계에 의해서 지시됨. 하나의 시니피앙이 실재를 지칭할 때 부재의 효과로 결여가 나타남→남근은 결여의 시니피앙.  • 욕망은 존재 결여→ 항상 환상대상 a와 관계를 가짐.  환상공식 : ($◇a). 남자에게 여자는 주체가 아니라 환상대상으로만 인식됨. → ‘빗금 친 주체 S는 오브제 a를 욕망한다’, 또는 ‘빗금 친 주체 S는 오브제 a와 관계를 갖게 된다’로 읽으면 된다.  ㅡ환상적인 대상이 놓인다는 것은 대체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실제 결여를 채울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부단히 대상에서 대상으로 옮겨가는 과정만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 결여는 원초적인 어떤 것의 상실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과 더불어 경험하게 되는 소급적 효과이다.  상상적 남근은 거세콤플렉스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상징적 남근은 성차를 가능하게 한다 (성차를 가능하게 하는 시니피앙은 부재 : “성관계는 없다”). → 팔뤼스적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 참조.   1) Lacan, S. XI, p. 186.  
10    제4강 거울단계와 자아의 형성 댓글:  조회:1123  추천:0  2019-03-18
제4강 거울단계와 자아의 형성   ◆ 이상적 자아와 자아이상 ㅡ은유의 본질은 라캉에겐 바꿔치기인데 이것은 주체의 구성 도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체의 본래적인 차원에 아버지의 최초 기표가 들어오면서 주체는 이를 자기 존재의 물질적 근거로 삼게 된다. 이 바꿔치기 과정에서 동일시가 작동하기 때문에 사실 상상계적인 것과 은유의 본질을 일치시킬 수 있지만 은유 자체가 상상계는 아니다. ㅡ우리는 언어 이전의 상태를 가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언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초의 기표는 끊임없이 빈 공간으로 작용하는데 사실 이 빈 공간이 인간에게 의미화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 하나의 시니피앙은 의미가 없다. 하나의 시니피앙은 빈 공간을 대체하기 위해서 들어오지만 시니피앙과 시니피앙이 관계를 맺을 때만 의미화가 가능해진다. 상상계는 의미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차원인데 언어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상계는 의미 자체로 작용. 여기서는 시니피앙과 상징계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 상징계는 의미 자체를 포함하고 시니피앙은 철저하게 의미가 배제된 순수 단위임. → 프로이트의 모델에서 자아 이상이 등장하게 되는데 라캉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구분 지으면서 자아 이상과 이상적 자아를 특화시켜 개념화한다. ▲ 이상적 자아와 자아이상 이상적 자아와 자아이상 1) - 상상계는 이미 상징계에 의해 질서 지워 진다. 그리고 그 사이엔 실재가 있다. (광학모델 참조) 2) . ※ Bouasse의 광학모델과 라캉의 해설 실재대상 (꽃병과 감춰진 꽃), 꽃의 실재적 이미지 = 관찰자가 약간만 위치를 바꾸면 꽃병 받침대 속에 감춰진 꽃의 실재 이미지가 꽃병 위에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임. 라캉에 따르면 꽃병은 우리의 신체를 비유하고 꽃은 욕망의 대상 그리고 눈은 주체를 상징. “주체의 상황은 상징 세계 내에서 그의 위치에 따라 규정되게 된다”.   1) 프로이트의 용어지만 그는 두 용어 간 엄격한 구별을 두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자아이상이라는 개념을 두 번째 인격모델에서 부터 도입하는데 특히 「자아와 이드」에서는 자아이상과 초자아가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1921년의 「군중심리학과 자아분석」이라는 논문에서는 자아이상을 동일화를 가능하게 하는 형성물, 즉 군중의 지도자 같은 유형에 일치시킨다. 라캉은 이를 상상계와 상징계의 기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2) 라캉은 상상계의 작용과 그것에 대한 상징계의 구조적 우위성을 예시하기 위해 광학모델을 사용한다. “이 모델은 상상적 세계와 실재 세계가 우리 정신구조 속에서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방식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라캉, 에크리 p. 93. 세미나 1권에서도 광학모델이 설명되고 있다. ※ Bouasse 모델의 변형과 라캉의 새로운 설명 - · 이상적 자아와 자아 이상에 대한 주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도입. 새 광학모델에서 주체 (눈)는 실재 이미지를 볼 수 없고 가상의 이미지만을 평면거울을 통해 보게 된다. 평면거울은 실재의 이미지를 가상에 공간에 투여하고 주체역시 가상의 공간의 이미지 ($→S I)로 인식된다. 주체가 자신의 이미지 (타자)를 자기 것으로 느끼는 것이 거울단계의 본질. “인간은 전체적인 것으로 구체화된 자신의 형상, 자신의 환영을 자신의 밖으로 투영된 형태로만 보게 된다”. 3) · 시선과 보는 것의 구별 : 라캉은 시선을 주체 쪽이 아니라 대타자에 위치시킨다. 시선은 시각충동의 대상.   3) 라캉, 세미나 1, p. 160. · 주체는 욕망의 대상인 꽃과 감춰진 신체 (꽃병)가 결합된 실재적 이미지를 가상의 공간 (평면거울 속)에 투영된 형태, 즉 타자적 형태로만 인식할 수 있다. 여기서 평면거울은 대타자를 상징. ① 상상적 동일시 : 거울단계에서 이미지에 대한 동일시. 이상적 자아를 낳는다. 공격성과 소외를 낳는다. 일차 동일시. 광학모델에서 이상적 자아는 실재이미지에 위치. 실재이미지와 가상의 이미지 사이에는 리비도의 여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데 환상대상 a는 여기에 깃든다. ② 상징적 동일시 : 오이디푸스 말기 단계에서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 자아 이상의 형성. 61년부터는 상징적 동일화를 시니피앙에 대한 동일화로 설명. 대타자의 단일 특성에 대한 동일시. 광학모델에서 자아이상은 거울이지만 그것은 상상계를 조정해주는 길잡이이자 목소리 → 대타자는 언어가 기원하는 장소. · 라캉은 동일시를 분석의 목표로 삼는 에고 심리학에 대해 반대한다. ㅡ라캉은 관념론자가 아니다. 실재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거울의 매개에 의해서, 즉 언어의 매개에 의해서만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자아 이상은 상상계가 아니라 상징계적인 것이다. 위치를 부여하고 나의 관계들을 자리매김해주는 것 이것이 대상관계에서 자아이상의 역할이고 반대로 거울에 상(이미지)으로 비춰지는 것을 이상적 자아라고 한다. → 자아 이상은 상징계에 관계되고 이상적 자아는 상상계에 관계된다. ㅡ우리는 보는 눈을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여지는 내가 바로 주체가 자리를 잡는 공간이다. 나의 존재는 항상 당연한 듯 사유의 전제가 되지만 보고 있는 상속에 내가 형상적으로 자리를 잡게 될 때 (거울단계의 경험) 모든 인식들이 가능해진다. 내가 어떤 사유를 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유 속에 나의 위치가 먼저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인식은 없고 상징계의 매개에 의해서만 사유도 가능해진다.   ◆ L도식 주체의 구조이면서 주체와 주체가 맺어나가는 상호주체성 관계의 표현이다. ㅁ 의식, 자아 · 자아란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자. ㅁ상상계 (imaginaire) · 상상계는 오인 (착각)이 그 본성이지만 극복되거나 폐기될 수 없다. 거울단계의 자아와 타자적 이미지의 이자관계가 상상계의 전형. ‘상상계의 본질은 소외’. · 상상계의 주요 작용은 동일시와 나르시시즘-자율성과 통합성의 유혹과 공격성. · 상상계는 상징계에 의해 구조화되는데 언어에서 의미작용은 상상계의 작용이다. 라캉은 이런 관계를 L 도식으로 설명한다.   Autre 대타자→언어가 기원하고 있는 장소의 의미 ㅡ시니피앙이 발원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추상적이면서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ㅡ대타자적인 것을 매개로 해서만 주체의 위치를 알 수 있다. ㅡ아이 때는 어머니가 대타자의 역할을 한다. →최초에 아이에게 말을 해 주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ㅡ도식에서 주체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autre 소타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타자의 의미, 타자의 상(이미지))→ (moi) a 자아 → 두 개의 대각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무의식이면서 언어의 장벽에 해당한다. · 라캉은 당시의 주류정신분석이 상상계를 중시하는 것 (분석의 목표는 피분석자가 분석자에 동일시를 실현함으로 완성됨)을 프로이트에 대한 왜곡이라고 비판한다. → 정신분석의 대상은 상징계 (말하는 주체에 관한 과학). ▲ 거울단계 ㅁ 거울단계 4) : * 거울이란 유사와 동일시 (모방)가 가능한 모든 지표들의 총칭. “아이에게 응답하는 타자의 모든 행동이 거울의 역할을 하며, 아이가 자신의 뒤에 남겨둔 모든 물질적 흔적들, 즉 내팽개친 것 혹은 깨뜨린 것 등도 그런 역할을 한다”.5) 주체는 자신의 이미지 (타자)에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환희 (나르시시즘)를 느낀다. · 거울단계는 의식의 본질이 자기 소외임을 보여줌. · 거울단계는 자아가 이미지에 대한 동일시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동일시엔 벌써 분열이 존재하는바 신체적으로 미숙한 아이가 완벽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환호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실제적 경험 (조각난 몸)과 이미지의 전체성과 완벽성이 대립. · 거울단계는 인간의 욕망을 타자의 욕망에 대한 욕망으로 구조화 시킨다. 라캉역시 인간의 주체성 형성이 상상적 동일시에 의한 자기정체성의 획득에서 시작됨을 강조한다. “주체의 사태는 소외다”. 주체성은 타자성을 구조적으로 함축. ㅁ동일시와 주체의 형성 : * 프로이트는 후기의 저서에서 자아와 초자아가 동일시의 산물임을 이미 지적했다. “동일시란 어떤 사람에 대한 정서적 유대”,6) 아이들이 어른을 흉내 내는 놀이는 모방을 통한 인격형성의 전형적 예로 볼 수 있다.   4) 1931년 프랑스 심리학자 앙리 왈롱에 의해 처음으로 기술된 용어로 생후 6개월 된 아이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매료되고 그것을 자신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단계를 심리학적으로 분석. 라캉은 이를 상상계의 예시적 전형이라 설명함. 5) 베르트랑 오질비, 『라캉, 주체 개념의 형성』, 동문선, p. 117. 6) 프로이트, 「군중심리학과 자아분석」, 특히 7장을 보라. 프로이트는 이 논문에서 세 가지 유형의 동일화를 언급한다. 첫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극복과정에서 어린 아이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동일화, 둘째는 대상적 관계의 동일화, 셋째는 다른 사람과의 동일한 상황을 가정하면서 느끼는 히스테리적 동일화. 라캉은 특히 두 번째 유형에 주목하는데 대상의 선택이 퇴행적으로 사람에 대한 동일시로 발전하고 이 때 단 하나의 특성에 대한 동일화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9    제3강 성차공식과 거울단계 댓글:  조회:1203  추천:0  2019-03-18
◆ 성차공식 ㅡ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적 남근으로 자기의 위치를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기표에 자신의 존재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 상징적 방식으로 거세가 이루어진다. ※ 라캉의 성차공식 (세미나 Encore 의 그림참조) : 남자는 전체에 관계됨에 반하여 여자는 전체가 아님 (여자는 큰 타자에 관계), 성별차이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남근에 대한 위치,   ◆ 성차공식 ㅡ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적 남근으로 자기의 위치를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기표에 자신의 존재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 상징적 방식으로 거세가 이루어진다.  ※ 라캉의 성차공식 (세미나 Encore 의 그림참조) : 남자는 전체에 관계됨에 반하여 여자는 전체가 아님 (여자는 큰 타자에 관계), 성별차이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남근에 대한 위치,    La femme n'existe pas.  Φ : 남근의 기능, x : 성차가 기입되는 곳, $ : 거세된 주체, A/ : 대타자의 결여, a : 환상대상. 1) 남성적 방식 ㅡ모든 주체 x는 하나의 남근적인 것을 수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상징적 거세를 받아들여야 한다. 원래의 주체는 빗금 쳐진 의미로 밖에 남을 수 없는데 빗금은 (1)시니피앙에 의해서 관통되었다는 뜻과 (2)지워진다는 의미가 있다. 즉 원래 우리 존재는 지워지고 시니피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름을 부여받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실존적인 차원은 이름에 의해서 하나의 구별점으로 바뀌게 된다.  → 이것은 주체화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남성적 주체의 탄생과정인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거세되지 않은 출발점을 가정해야 한다.  ㅡ상징적 남근의 거세에 복종하지 않는 하나의 예외 (원초적 아버지)가 있다. 이 예외가 있기 때문에 ‘모든’ 주체는 상징적 거세를 받아들여야한다는 논의가 가능해진다.  2) 여성적 방식 ㅡ여성은 남성과는 반대로 전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다. 하나의 예외적 지점이 여성에게서는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상징적 남근의 거세에 복종하지 않는 하나의 예외가 없다. 하나의 예외가 없다는 것은 보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ㅡ모든 여자는 거세 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여자가 다 거세된 것은 아니라는 게 여성 도식의 의미이다. 남성의 경우 모든 남자 모든 인간은 상징적으로 거세되었다고 본다면 여성의 경우 모든 여자가 거세된 것은 아니다.  ㅡ전체에 대한 부정이 여성성의 공식에 나타난다. 여성은 주이상스에 의해 자기의 위치를 설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이상스는 상징계적인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들이다. 상징계에 우리를 가두는 것은 쾌락원리인데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들이 주이상스의 영역이다.  ㅡ여자는 주이상스에 자기의 위치를 설정한다. 그런데 대타자 역시 주체와 마찬가지로 시니피앙에 의해 관통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  → 거세되지 않고 그것을 완전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 기표적 차원의 메타언어는 있을 수 없다. 언어는 우리를 한계 속에 정해두게 된다. 언어는 부재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부재의 언어를 설명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이 빗금 친 A의 의미이다.  ㅡ프로이트는 여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것이 정신분석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인간(양성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여자가 되는가를 물어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과정은 약간 다르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문제의식이었고 남성적인 것은 보편적이므로 이해가 되는데 거기에서 벗어나 있는 여성성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 라캉은 더 나아가서 이야기한다. 보편성은 하나의 전체명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명제에 의해서 인식틀이 가능해지고 인식의 보편성은 전체를 전제할 때만 가능해진다. 그런데 전체 보편성을 벗어나는 것이 여성의 지위이기 때문에 사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비대칭적으로 설정될 수밖에 없다.  ▲ 히스테리의 문제 ㅡ남성은 기표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존재이고 여성은 여성적인 기표를 찾을 때만 여성이 될 수 있는데 여자를 여자로 만들어주는 여성적인 기표는 사실 없다. 단지 그것을 넘어서고자하는 것 속에서 대타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이 여성이다. 그래서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항상 상징적인 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주이상스의 대상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여성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면서도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은 여성성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히스테리의 문제라고 라캉은 말한다.  ㅡ히스테리는 오이디푸스 과정의 억압에서 기원되는데 억압되는 것은 시니피앙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는 하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것이 히스테리의 문제라고 한다.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여성성의 특징이다. 그래서 여성성은 여자나 남자 모두에게 하나의 질문이라고 라캉은 이야기한다. 여성은 여성성이고 남성은 남성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기표에 종속된 존재들이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성에 대해서 우리는 히스테리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라캉의 주장이다.  ▲ 전체에서 벗어나는 여성성 ㅡ남성에게 여성은 항상 ‘오브제 a’로서, 즉 환상적 방식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구별해줄 수 있는 남자/여자의 대등한 기표가 없기 때문이다.  ㅡ불어 ‘homme’는 남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뜻이다. 보편성을 표시하기 위해서 정관사가 들어가면 ‘L‘homme’가 되고 인간이면서 남자라는 뜻이 된다.  ㅡ여자를 지칭하는 것은 ‘La femme’인데 여기서 정관사 ‘la’를 붙이면 사실 성립되지 않는 관계가 된다. 전체 여성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것은 오히려 전체에서 벗어나고 있는 예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정관사 la는 지워지게 된다. 이것은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 전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ㅡ여성성은 주이상스를 가능한 것으로 체험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주이상스는 상징적인 쾌락원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 이 소수자 원리를 윤리적인 차원에 적용할 수 있다.  예)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 모든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모든 사회는 정의로워야 한다.’ 이런 것들이 보편성의 예다. 그런데 여성성의 예는 ‘모든 사회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모든 인권이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처럼 ‘모두가 ~한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 성관계는 없다 ㅡ‘성관계는 없다’라는 것은 남성과 여성으로 지칭할 수 있는 대등한 기표관계가 없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단지 여자 또는 남자를 만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남성적인 기표만 보편성을 갖기 때문에 보편성이 성립될 때만 학문, 인식이 가능해진다.  ㅡ‘성관계는 없다’는 말은 성교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대등한 관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거울단계 ㅡ프로이트는 1920년대 이후로 정신기제의 모델로 자아/이드/초자아를 내세운다.  자아 ⇔ 상상계 이드 ⇔ 실재계 초자아 ⇔ 상징계 ㅡ자아는 상상계적인 차원에서 설명이 되고 이드는 에너지 자체가 발원하는 근본적인 장소이자 충동의 저장고 같은 것이며 실재계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초자아는 상징계로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자아=상상계, 이드=실재계, 초자아=상징계와 같은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ㅡ초기에 라캉은 상상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1)상상계는 주체가 왜 주체가 되는가 하는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ㅡ시니피앙은 우리의 실존적 질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하고 있는 상징계의 기본구조가 시니피앙이고 주체가 아니라 타자에 속하는 것이 시니피앙이다. 시니피앙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고 주체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주체는 상상계적인 방식에 의해서, 즉 동일시에 의해서 주체가 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심급으로서 자아가 설정이 된다.  ㅡ(2)실재계는 65년 이후로 많이 개념화가 되는데 초기에는 실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나 후에 상징계와의 대립관계에서 실재계의 개념이 나오게 된다.  ㅡ(3)상징계는 단순히 말하면 언어적인 질서, 시니피앙에 의해서 구조화되면서 주체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주체가 아는 세계는 상징계이다. 그런데 상징계가 현실세계처럼 다가올 수 있는 것은 거기에 항상 상상계가 같이 다니기 때문이다. 라캉은 이에 대해서 ‘우리는 단어만큼 안다’고 말한다. 언어적 질서가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은 달라진다. 하나의 과학적 발견을 예로 들 수 있다.  예) 예전에 우리는 블랙홀에 대해서 몰랐지만 블랙홀이 발견되면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설들을 동원해 설명하게 된다. 블랙홀은 우리가 직접 만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언어적인 세계’를 매개로 해서 비로소 다가오게 된다.  ㅡ프로이트에게서 있어서는 이드와 초자아적인 것을 자아가 적절히 통제한다. 자아는 현실원리를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캉은 자아는 상상계적인 허구라고 말한다. 그래서 거울단계 이론이 나오게 된다.  ㅡ‘거울단계’는 라캉이 만들어낸 개념은 아니고 1931년에 프랑스 심리학자 앙리 왈롱에 의해 처음으로 기술된 용어이다.  ▲ 참고자료 앙리 왈롱 [Wallon, Henri Paul Hyacinthe, 1879.6.16~1962]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심리학 주요저서        《병리학적 심리학》(1926)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이수한 후, 파리대학 의학부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였다. 1928년부터 국립직업지도연구소 교수, 1937년부터 콜레지 드 프랑스 교수로, 아동심리학과 교육심리학을 강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대독(對獨) 저항운동에 참가하였고, 전후에는 문교부장관, 그리고 국회의원으로서 물리학자 P.랑주뱅과 함께 교육개혁안(1947)을 작성하였다.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작성한 이 개혁안은 랑지뱅-왈롱안(案)으로 불리며, 교육사상 불후의 빛을 발한다. 그는 이상아(異常兒)의 연구로부터 출발하여 이상의 원인을 생물학적 조건과 함께 사회적 조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변증법적유물론)의 입장에서 심리학을 연구하였다. 주저에 《병리학적 심리학》(1926) 《응용심리학의 원리》(1930) 《어린이의 정신발달》(1941) 《행위로부터 사고(思考)로 De l’acte a la pensee》(1942) 《어린이 사고(思考)의 기원 Les Origines de la pensee chez l’enfant》(1963) 등이 있다.  ▲ 거울단계 ㅡ생후 약 6개월 정도 된 아이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신체에 대해 발견하게 된다. 거울은 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매개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울을 꼭 물리적인 거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확인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거울이 될 수 있다.  ㅡ아이는 원초적인 자아성애만을 가지고 있다. 즉 몸에 대한 원초적인 감각들 밖에 없는데 나중에 엄마의 개입으로 타자적인 차원을 알게 된다. 그 발견은 자기의 신체가 외부에 투영된 거울의 발견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신체가 대상처럼 자신 앞에 완전하게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거울은 사실 소외된 모습으로 아이를 비춰주는 것이다. 거울에 비치는 나는 내가 아니라 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 거울단계는 유아기의 성장과정 때에만 겪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기구에서 타자의 인정을 얻기 위한 원형적인 형태로서 계속 작동한다. 거울은 분열 속에서 성립 하는데 6개월 된 아이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완전하게 운동감각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거울에 비친 아이의 상은 완전하지만 실제의 아이는 아직 감각의 덩어리인데 이 완벽한 상과 감각의 덩어리는 사실은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  → 아이는 자신의 상을 보면서 일차적인 신체의 불안감들을 해소하게 된다. 거울은 나의 형상들을 이미지로 되돌려주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주체가 자기의 형상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해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형상에서 나의 원초적인 차원이 배제되게 만든다.  ㅡ라캉은 주체(코키토)의 본성이 거울단계에 있다고 본다. 거울에 비쳐진 상은 내 것이면서 동시에 내 것이 아니다. 나의 이미지이긴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은 아니다. 그래서 거울의 이미지는 내 것이면서 동시에 타자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ㅡ라캉은 철학에서 말하는 사유의 주체가 하나의 소외에 불과하고 이미지적인 차원, 상상계적인 차원에 자기를 고착시키는 거울의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래서 라캉은 ‘우리는 모든 코키토의 철학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울과 같은 본성을 가지는 소외구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ㅡ라캉은 거울단계를 통해서 그 당시의 이른바 프로이트의 정통주의라고 자부하는 주류심리학의 경향들을 가차 없이 비난하게 되고 이 일로 국제정신분석학회와 화해할 수가 없게 된다. 자아심리학이나 프로이트의 가르침을 자아의 차원에서 자아의 강화로 보는 시각은 라캉에 의하면 상상계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단계, 자아의 형상과정의 기본 메카니즘은 소외와 동일시이다. 한편으로는 이미지에 의해서 자기가 소외되면서도 그 이미지에 의해 자기를 고착시킬 수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주체가 최초로 존재론적인 안착을 하는 것이 거울 단계의 출발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아 없이 사고할 수는 없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것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ㅡ상상계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상계가 허구이고 소외라고 해서 그것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상계가 없이는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라캉은 상상계의 본질을 알고 거기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이지 상상계 자체를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오해 me(나, 재귀대명사) + conaissance(지식, 인식)→ 나를 아는 것, 나에 대한 인식 → 나를 아는 것은 오해에 빠질 수밖에 없다.  ㅡ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타자적인 차원(상상계)이 원초적으로 깊이 개입한다. 이것은 인간이 대상세계를 알아나가는 과정은 항상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더불어 우리가 대상을 향하는 욕망의 구조에서 항상 타자적인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울단계의 경험은 욕망을 타자적인 욕망으로 만든다. 나의 욕망은 타자에 의해 인정될 때 제대로 욕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나의 고유한 욕망이란 없고 욕망은 타자에 의해서 인정되고 매개되며 한편으로는 나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타자적인 차원, 즉 자아의 개입에 의해서 왜곡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주체는 자기의 욕망에 대해 알 수가 없게 된다.  ㅡ자아가 자아일 수 있는 이유는 최초의 거울이미지(반사이미지라고도 한다)에 대한 동일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아는 언제나 나르시시즘의 결과물이다. 프로이트 자신이 자아 형성에 있어서의 동일시의 메카니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자아와 이드’, ‘군중심리’에서 세 가지 유형의 동일시를 설명하는데 첫 째는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동일시 두 번째는 대상적 관계의 동일시 세 번째 동일시는 히스테리의 동일시이다. 라캉은 이 중에서 두 번째 동일시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ㅡ대상관계를 통해 하나의 특징을 자기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의 모범적 이미지를 자기가 수용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엄마라는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취하고자 하는 동일시의 표현인 것이다.  → 프로이트의 인격구조에서 자아는 동일시로 설명되는데 라캉은 동일시의 개념을 확대하고 발전시켜 자아 자체가 상상계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8    제2강 오이디푸스와 성적 주체의 탄생 댓글:  조회:1035  추천:0  2019-03-18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ㅡ각각의 화투에는 고유한 규칙이 있다. 그것이 이른바 언어에서의 코드와 같은 것인데 화투를 한 장씩 늘어놓았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게임의 규칙에 맞게 조합을 이루어나갈 때는 서로 간의 관계에 의해서 그 게임의 규칙에 맞게 가치가 정해진다. 기호의 체계들도 이와 비슷하다. 개별적인 기호들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기호들이 관계를 맺어 나갈 때 상호규정성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이 된다.  ㅡ프로이트는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그 이전까지 히스테리에 주어졌던 설명, 즉 유혹설(아이가 어른의 성적 유혹에 의해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서 히스테리 환자가 된다는 설)을 폐기하고 유아 자체가 이미 성적인 것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관계 속에서 표현된다고 주장한다.  → 그래서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성적 주체를 구성하는 핵심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이후에는 주체의 발생과정 뿐만 아니라 모든 문명과 도덕, 종교의 기원 등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연관을 시킨다.  → 라캉에게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중요한 핵심범주로 이해되지만 라캉은 그것을 자기 식으로 수정을 한다. 라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시니피앙에 의해서 주체가 탄생해 나가는 과정,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을 해서 자신의 위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으로 정의를 한다.  ㅡ잡다한 기억과 표상들의 집합이 콤플렉스이다. 정동적 성격을 갖는 것, 자기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감정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집합들이 콤플렉스이다. 보통 유아기의 인간관계로부터 시작이 된다. 하지만 콤플렉스는 과거 차원의 것만은 아니고 현재의 감정이나 태도, 모든 관계들에 영향을 미친다.  ㅡ왜 노이로제가 발생하는가, 왜 히스테리가 발생하는가 하는 원인의 중심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다. 보통 4~6세 아동이 겪게 되는 과정인데, 물론 경험적 과정은 아니다. 신화적인 과정은 아빠, 엄마, 아이의 삼각관계에서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실질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아빠와 엄마와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성적인 정체성과 대상관계들이 형성되어 나가는 원형적 과정이다.  → 그래서 오이디푸스 자체를 실증적 과정으로 이해하면 정신분석에 대해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예) 홀아버지가 키우는 아이는 오이디푸스를 겪지 않는 것인가→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실제의 아버지, 어머니, 아이의 경험적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원형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ㅡ오이디푸스의 전형적인 예는 남아의 성적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는 리비도는 단 하나만 인정된다. 즉 여성적 리비도, 남성적 리비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남성적 리비도만 인정이 되기 때문에 가장 전형적 형태가 남아에게서 나타나게 된다. → 여기에서 여자아이의 성적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가 나오게 된다.  (1)아이는 최초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애착을 갖게 된다. 이것은 여자 아이나 남자 아이나 마찬가지이다. 최초에 아이는 하나의 덩어리로 태어난다. 지각도 발달되어 있지 않고 외부라는 개념도 없고 오로지 감각의 덩어리로 자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어머니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세계와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2)그 이후에 아이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들을 배워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어머니다. 어머니는 최초로 아이에게 타자적인 차원을 보여주고 가르쳐주면서 아이를 돌보는 존재로 등장을 한다. 여기서 아이의 상태와 어머니의 상태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는 엄마가 자신의 세계가 되고 자신의 육체와 생리적인 모든 욕구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3)이러한 아이-어머니의 이자적인 관계에 제3자로서 아버지가 개입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이와 어머니의 융화된 상태(물론 여기서 대상관계의 초보적인 형태들이 형성되긴 하지만 완전한 의미에서 대상과 주체와의 관계가 형성된 건 아니다)를 분리시키는 사람으로 등장을 하게 된다.  → 여기서 아버지를 금지와 법의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에서는 아이와 엄마의 최초의 관계 자체를 깨뜨려주는 금지의 심급으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설명한다.  → 주체로서 자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대상에 종속되어 있는 관계가 아니라 대상 자체를 마주하고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해지는데 한 덩어리(엄마-아이)로 모아져 있는 카오스의 상태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러한 융합 상태를 깨뜨리기 위해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집착하게 되고 이것을 깨뜨리는 아버지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 구순기/항문기/남근기/성기기 ㅡ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4세가 될 때 인격과 성적인 정체성이 단계를 거쳐서 발전하게 된다. 물론 이 단계는 순차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퇴행을 하기도 하고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1) 구순기(口脣期, oral phase) ㅡ최초의 단계인 구순기의 단계는 외부 대상을 입을 통해 받아들이고 외부 대상을 먹거나 뱉어내거나 배척하는 대상관계가 입을 통해 형성된다. 대상을 소유하려는 마음의 원형들을 구순기가 마련해준다.  예) 받아들이는 입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우는 ‘지식에 굶주렸다/권력에 굶주렸다/사랑에 굶주렸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관계로서 입의 원형이 작용하는 것이다.  2) 항문기[肛門期, anal phase]  ㅡ다음 단계는 항문기인데 여기서는 규칙을 배우게 된다. 항문기는 외부를 통해 긴장을 표출하면서 해소하는 방법의 원형을 이루는 시기이다. 구순기/항문기는 성인이 되면 원형적인 형태로 심리에서 작용을 한다.  ㅡ항문기는 밖으로 내보내고 표출하는 것인데 분노를 터뜨린다든지 화를 냄으로써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다.  3) 남근기[男根期, Phallic Phase]  ㅡ다음 단계가 남근기이다. 여기서는 페니스와 남근phallus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남근은 실제 남자가 가지고 있는 성기가 아니다. 아이의 성적인 충동들을 상징하면서 그것을 성적 정체성으로 묶어줄 수 있는 상징적인 기표가 남근이다. 남자 아이는 자기의 성기를 남근과 동일시하고 여자 아이는 자신이 거세되어 있다고 느낀다.  ㅡ오이디푸스의 과정에서는 아이에게는 남근이라는 단 하나의 성기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성적 정체성에 있어서 중요하게 부각된다. 여기서 실제 해부학은 중요한 게 아니다. 여자 아이는 자신의 신체적 차이를 남자 아이와 대등한 관계에서 느끼지 못한다. 남자 아이나 여자 아이나 단 하나만의 남근을 아는 시기이고 이 시기 동안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과정이 일어난다.  4) 성기기 ㅡ이것이 사춘기까지 잠복(잠재기)해 있다가 사춘기에 성기기로 완성이 된다. 성기기에 와서야 남자 여자의 신체적 차이는 성적 정체성과 일치된다. 일치된다는 것은 성적인 관계가 이성을 향한 대상적 관계에서 표현이 된다는 의미이다.  ▲ 꼬마 한스의 사례 ㅡ남자 아이는 구순기, 항문기를 거치며 몸 자체가 여러 가지 충동의 만족을 주게 된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각각의 신체 부위를 따라서 성감대가 형성이 되는데 여기서 자기 성기에 대한 발견도 이루어진다. 또한 남자는 여자 아이가 성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워하게 된다.  ㅡ한스는 동물이나 인간 같은 ‘유기체’와 ‘비유기체’로 세계를 구별한다. 한스는, 유기체는 모두 성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건물이나 돌 같은 것들에는 성기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한스는 자기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엄마에게 자기 여동생은 왜 꼬추가 없냐고 물으며 나중에 자라날 것이라고 말한다. 한스에게는 엄마, 아빠도 성기가 있고 자기도 성기가 있고 어른이 되면 이것이 커진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스는 단 하나의 성기 (페니스)만을 알기 때문에 여자 아이는 성기가 없는 존재로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여자 아이도 남자 아이를 보면서 자신은 남근이 없는 존재, 즉 거세된 존재처럼 생각하게 된다.  → 여기서 남근을 가지느냐, 가지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성적 정체성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자 아이는 자기도 성기가 없는 여자 아이처럼 될 수 있다는 거세 공포를 갖게 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거세 콤플렉스와 짝을 이루어 발달하게 된다. ▲ 거세 콤플렉스  ㅡ남자 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거세 콤플렉스(castration complex 佛 complexe de castration)로 느끼기 시작한다. 이것을 성기가 실제로 잘린다는 의미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갖는 불안감이 상징적인 기표인 남근으로 집약되고 그것을 여자 아이와의 차이 속에서 충격적으로 느끼게 되면서 거세 콤플렉스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여자 아이를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방해자고 명백하게 자기를 분리시키는 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ㅡ여기서 남자 아이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갖는 적극적 측면과 소극적 측면이다.  (1)적극적 측면에서 아이는 자신을 남자(아버지)와 동일시하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를 욕망하고 아버지와 경쟁을 해보려고 하는 상태가 된다.  (2)소극적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서 무서워하면서 자기를 여성적인 위치에 놓게 되면서 어머니처럼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 이렇게 양가적인 차원이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 실제로 하나의 남성 리비도만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성적인 리비도가 양가성으로 작용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100% 남성적인 것은 있을 수 없고 100% 여성적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ㅡ거세콤플렉스를 느끼면서 아이는 아버지에게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남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로서 극복하게 된다. 아버지와의 가망 없는 싸움을 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자기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여자를 소유할 수 있다, 나의 남근을 가질 수가 있다는 식으로 자기 동일시를 하면서 남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 여자 아이의 정체성 형성 ㅡ여자 아이는 최초에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존재가 들어올 때 어떻게 해서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되는지가 문제가 된다. 남자 아이의 경우엔 거세콤플렉스 때문에 오이디푸스적인 경쟁 관계를 종식시키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여자 아이는 반대로 남근 선망적인 것에 의해서 오이디푸스에 들어가게 된다.  ㅡ남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거세당할지도 모른다는 지키는 입장이다. 여자 아이는 자기는 없으니까 가져야 되겠다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여자 아이는 아버지를 욕망하게 되면서 자기처럼 거세된 동일한 존재인 어머니를 원망하게 된다. → 결국 아버지에 대한 욕망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여아는 남근을 아버지, 즉 남자를 통해서 받아들이며 자기를 여성적인 입장으로 만들어간다.  ㅡ오이디푸스기를 겪으면서 아이는 엄마와의 의존적인 관계, 정서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처럼 되어있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아버지는 아이를 어머니에게서 분리시키면서 원초적인 좌절을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분리를 통해서 아이를 주체로 만들어주는 구원자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은 아버지와 그리고 그로부터 변이처럼 나타나는 여성성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 오이디푸스기를 통과하면서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주체가 자기 자신으로 서게 되면 그 이전에 투영되었던 리비도의 자기성애적인 측면을 원초적 차원에서 대상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 자기성애 ㅡ자기성애narcissism는 1차적 나르시시즘 2차적 나르시시즘으로 나뉘며 중요하게 부각이 된다. (1)1차적 나르시시즘 → 처음에는 원초적 상태에서 엄마와 분리되면서 아버지를 통해서 매개되는 대상적 관계를 나르시시즘의 전형으로 보았다. 그것이 1차적 나르시시즘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2)2차적 나르시시즘 → 2차적 나르시시즘은 어떤 사건을 거치면서 변이를 통해 대상관계에서 다시 퇴행하여 자기 자신에게 리비도가 집중되는 퇴행적 현상으로 보았다.  → 그래서 나르시시즘 자체에 대한 검토가 초기에는 정신병이나 동성애를 해명하면서 설명이 되었는데 나중에 프로이트의 2차 모델이 나오면서 바뀌게 된다. 즉 1차 나르시시즘과 자기성애의 구분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자기성애란 충동이 아직 대상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자기의 몸에 부분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아직 완전한 대상관계가 아니다. 그러다가 분리를 경험하게 되면서 자기의 몸 자체를 원초적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신체적 자아, 즉 이상적 자아ideal ego라는 형태로 투영을 하면서 거기에 대상들을 설정하게 된다.  →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오이디푸스의 극복과정이기도 하다. 자아성애적인 원초적 차원에서 대상관계로 바뀌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ㅡ자기성애의 상태는 어머니의 몸과 아이의 몸이 아직 구별되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묶여 있는 원초적 상태인데 이것을 아버지가 깨뜨려줌으로써 그 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상적 자아(아버지)를 모델로 해서 외부 대상으로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ㅡ성적 정체성은 동일시를 모델로 형성된다. 여자 아이는 어머니를 모델로 삼으면서 여성으로서 남자 아이는 아버지를 모델로 삼아서 남성으로서 성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ㅡ원초적 욕망은 아직 욕망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부분충동들의 발산일 뿐이지 자기의 몸에 대한 자기성애에 기반을 두고 있는 원초적 충동은 아직 주체의 욕망 차원으로 승화되지는 못한 단계이다. 여기서 대상관계로 넘어갈 때 비로소 욕망이 성립하게 되는데 그것은 금지를 받아들임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모든 신경증의 핵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금지를 원천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후에 자기를 결여된 주체로 설정하는 최초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라캉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는데 부모와의 양가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것을 철저히 상징계의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 오이디푸스 과정, 은유와 환유 오이디푸스 과정에 대한 라캉의 설명 1) 상상적 삼각관계(아이-남근-어머니) ㅡ아이와 엄마를 매개해주는 것은 남근인데 이것은 상상적 남근으로 작용한다. 이 관계는 아이와 엄마의 이자관계가 아니라 상상적 남근이 작용하는 삼각관계이고 아이는 엄마에게 있어 자신이 남근이라고 생각한다.  ㅡ이 시기에는 아직 욕망의 차원이 들어올 수 없다. 아이는 남근이 아닌데 아이는 스스로를 남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상징적 거세  ㅡ거세는 상상적 남근에 가해진다. 아이와 엄마의 상상적 남근을 매개로 한 관계를 아버지가 깨뜨리는 자로 들어오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의 거세가 된다. 아이는 상상적인 남근이 될 수 없고 그 위치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엄마의 욕망은 아이가 아닌 아버지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아버지가 들어오기 때문에 상징적 거세 차원에서 상상적 남근이 제거되는 식으로 두 번째 단계가 설정이 된다.  3)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극복  ㅡ라캉은 주체의 형성에 있어 동일시를 강조하는데 프로이트는 이상적 자아라는 것을 아버지가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마고imago의 차원에서 설명을 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원형적 이미지들, 어머니의 이미지들 같은 것이 이마고의 차원인데 프로이트에게는 정교하게 이상적 자아가 개념화되어 있지는 않다.  ㅡ라캉의 경우는 주체가 대상에 대해서 동일시하는 것들을 상상적 방식과 상징적 방식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 아버지의 법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이디푸스 과정이 끝난다. 아버지가 명한 법, 상징적 거세를 아이가 수용하면서 남근을 상징계에서 찾게 된다.  → 남근이 되고자 하는 차원에서 남근을 가지려는 차원으로 바뀌게 된다.  ㅡ‘to be or not to be’ → 내가 엄마의 남근이냐 아니냐가 1차시기의 관심이라면 이것은 욕망의 성격을 완전하게 규정해줄 수는 없다. 대신에 ‘to have’, 즉 가져야 하는 차원으로 발전할 때, 다시 말해 남근 자체를 상징계에서 찾으면서 가지려고 할 때 주체가 형성이 된다.  ㅡ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압축과 전치를 핵심적 메카니즘으로 설명을 하면서 그것이 무의식 과정의 가장 중요한 양상들이라고 설명한다. 라캉도 마찬가지이다. 은유와 환유가 가장 중요한 시니피앙의 작동 논리이고 그것을 통해 주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압축과 전치는 이드적인 것들이 자기의 숨겨진 욕망들을 만족시켜 나가는 방식과 관계가 된다.  ㅡ꿈은 대체로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들이 많이 있고 굉장히 짧다. 의식차원에서 보면 꿈이라는 것은 간단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뒤집어보면 복합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우연처럼 보이는 표상들 속에 달라붙어 있고 그것을 통해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전후좌우로 엮어서 보여준다. 간단해 보이는 이미지 속에 숨겨진 여러 가지 무의식적 사유의 이미지들이 중복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의 표상들이 그 속에 여러 가지 것들을 중층적으로 겹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는 것이다.  ㅡ이드는 원초적으로 대상들을 아무렇게나 설정해가면서 자기의 에너지를 투여하는 본성이 있다. 여기서는 대상간의 구별이 사라진다. 우리가 의식적 사고로 꿈을 해석하니까 꿈의 내용들이 상징들 간의 관계로 이해가 되지만 사실은 이드가 그것을 뚫고 대상들을 설정해 나가는 것이다.  ㅡ이드는 속성적 사고를 특징으로 한다. 이드에겐 대상 자체는 의미가 없다. 평소 내가 아는 대상들이 아니라 우연적인 대상들에 자기 에너지를 투여하는 것이 이드의 본성이다.  ㅡ전치는 특히 검열과 관계된다. 무의식은 검열을 피해가면서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 하찮게 보이는 이미지들에 대상적 에너지, 리비도가 가서 붙는다.  → 꿈에서는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 엉뚱하게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연관관계 속에서 나의 숨겨져 있는 무의식적 표상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  ▲ 은유와 환유 → 라캉은 압축과 전치를 은유와 환유의 공식으로 설명한다. 세미나3권에서 ‘슈레버(Schreber)’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은유와 환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ㅡ은유는 하나의 대체이다.  예) 영화 제목인‘왕의 남자’도 하나의 은유가 될 수 있다. ‘왕의 남자’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왕의 남자’라는 하나의 말을 통해서 권력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표현할 수도 있고 왕이 가지고 있는 동성애적인 탐닉과 변태적인 성향들을 표현할 수도 있다.  예) ‘그는 사자이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그가 용감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사자처럼 저돌적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사자처럼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다.  ㅡ라캉은 ‘사랑은 햇빛 아래 웃는 조약돌’이라는 예를 든다. 여기에서도 사랑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사랑은 조약돌’이라는 식으로 사랑의 이미지를 조약돌의 이미지로 바꿔치기함으로 해서 그 속에서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 창조적인 여백들을 주게 된다.  ㅡ은유는 본래 의미와 의미의 유사성, 연관 관계 안에서의 대체를 통해서 표현들을 풍부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라캉은 하나의 시니피앙이 또 다른 시니피앙으로 치환되는 것이 은유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ㅡ프로이트가 융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 사람들은 우리가 페스트를 가져온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페스트는 정신분석을 지칭한다. 이것은 미국 사람들은 정신분석에 페스트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정신분석/상담,치료,전복             페스트/병,죽음,전복                페스트 S2/정신분석(S1/s1) → 라캉이 은유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의미들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의미화는 은유적인 것을 통해서만 나타나게 된다. 은유는 하나의 시니피앙이 또 다른 시니피앙을 바꿔치기하는 것이라고 라캉은 말한다.    ㅡ환유는 제유법의 일종이기도 한데 부분으로 전체를 지칭하거나 원인을 가지고 결과를 지칭하거나 하는 것이다. 환유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쓴다.  예) ‘한 잔 먹다.’→ 사실은 한 ‘잔’을 먹는 게 아니라 한 잔에 담긴 술이나 음료를 마시는 것을 한 잔을 마신다고 표현하는 경우인데 이것은 용기를 가지고 그 내용물을 대체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 ‘저기 푸른 모자가 걸어간다.’→ 푸른 모자(일부)를 가지고 군인(전체)을 지칭하는 것 ㅡ은유가 일종의 바꿔치기라면 환유는 인접성에 의해서 부분으로 전체를, 원인으로 결과를 지칭한다. 라캉은 하나의 단어가 또 다른 단어와 연관되는 측면에서 환유를 정의한다. 대체성은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으나 인접성은 같은 문맥이나 차원을 전제로 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ㅡ환유에서는 지시적인 관계의 연결만 있고 의미의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은유→ 하나의 단어를 다른 단어로 (un mot pour un autre mot) : 동일화의 메카니즘 (보아스와 볏단).  환유→  하나의 단어가 또 다른 단어에 연결되는 것   ◆ 부성은유 ㅡ라캉은 부성은유paternal metaphor로 오이디푸스 과정을 설명한다. “아버지라는 것은 현실의 대상이 아니다‥‥ 아버지는 하나의 은유이다. 은유란 무엇인가→ ‥‥은유란 하나의 시니피앙이 또 다른 시니피앙의 자리에 오는 것이다. ‥‥아버지란 이 다른 시니피앙을 대체하는 하나의 시니피앙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개입하는 아버지의 본질적이고 유일한 힘이 여기에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속에서 아버지의 기능은 상징화 과정에서 도입된 최초의 시니피앙, 즉 어머니의 시니피앙을 대체하는 시니피앙이다.” ㅡ라캉에게 있어 아버지는 시니피앙의 기능으로 이해된다.  ㅡ최초에 아이에겐 아이의 욕망이 있다. 그렇지만 아이의 욕망은 아직 의미가 없다(x). 원초적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매달려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아이의 욕망은 어머니의 욕망을 향해 있다. 아이의 욕망이 어머니 자체가 아니라 어머니의 욕망을 향하는 이유는 아이에겐 아직 대상관계 (어머니가 하나의 대상으로 이해되는)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ㅡ아이는 상상적 남근을 매개로 한 이자관계에 몰입해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서는 대상의 구별도 없으며 나와 너의 구별도 없고 오로지 어머니의 욕망에 의해서 모든 게 규정되고 아이는 그로부터 만족을 찾아나가는 단계이다. 그런데 나중에 여기에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이 개입하게 된다. 즉 어머니의 욕망 대신 아버지의 시니피앙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ㅡ아버지의 이름은 아이에겐 아직 낯선 존재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머니의 욕망이 향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욕망은 실제로 아버지의 이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족 관계에선 아이가 어머니와의 원초적인 이자관계에 있다가 그것을 깨뜨리는 사람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엄마와 자기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ㅡ아이의 욕망(x)은 어머니의 욕망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어머니의 욕망은 아버지를 향하고 있다. 결국 오이디푸스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되길 그친다. 대신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의 이름은 어머니의 욕망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름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의 욕망은 아이에게 있어 원초적인 욕망의 빈 자리를 상징하는 식으로 남게 된다. 아버지는 남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바꿔 말하면 힘을 가진 자, 어머니를 소유하고 있는 자, 어머니를 자신과 분리시킬 수 있는 자로 아버지가 들어오기 때문에 의미들은 남근으로 각인이 된다. ㅡ남근은 결여를 상징한다. 어머니의 욕망과 하나였던 것을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원초적 상태를 버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결여의 자리인데 그 자리는 아버지의 남근으로 지시가 된다. 아버지가 아버지일 수 있는 이유는 남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ㅡ엄마와의 관계는 상상적인 것을 매개로 한 관계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지의 심급이다.  → 아버지는 여기서 타자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상징계의 질서를 명하는 추상화된 심급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대타자가 된다.  (1)최초의 결여→ 최초의 어머니의 욕망,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 (2)아버지→ 실제 아버지가 아니라 단지 아버지적인 기표, 추상화된 기호이지만 남근을 대신하는 기표를 아이가 수용하면서 어머니와의 원초적인 합일을 버리는 것 → 결국 라캉은 오이디푸스 과정을 부성은유로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욕망(S1)은 자신의 욕망이기도 한데 이것은 영원히 남아 있는 무의식적인 원형을 이룬다. 그래서 무의식은 처음부터 언어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들어온다는 것은 타자로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제3자로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빈 공간을 대체할 뿐이다. 어머니의 욕망(S1)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체되었을 뿐이지 완전히 주체에게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ㅡ주체의 탄생은 욕망의 탄생과 맥을 같이한다. 라캉은 ‘말하는 주체’를 강조하는데 말이 없이는 주체도 없는 것이다. 말은 아버지의 이름이 어머니의 이름을 밀어내면서(억압하면서) 자기에게로 대신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에게는 이름을 부여받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아이는 더 이상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들이며 셋째이고 장남이고 오빠이기도 하나는 식으로 상징계에서 자신의 위치가 규정이 된다.  → 라캉이 오이디푸스 과정을 부성은유와 거의 동일화시켜 이야기하는 이유는 하나의 시니피앙이 또 다른 시니피앙을 바꿔치기 하는 것과의 유사함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체를 그 효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니피앙의 역할이다.  ㅡ라캉은 주체의 구성을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던 ‘포르트다(fort-da) ’ 놀이로 설명을 한다.  ㅡ프로이트는 1살 손자가 포르트-다(fort-da) 놀이를 하는 것을 본다. 아이는 ‘포!’라고 하면서 실패를 멀리 던지고 다시 끌어당기면서 ‘다!(여기 있다는 뜻)’라고 외친다. 프로이트는 왜 아이가 이 놀이를 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아이는 엄마와의 결별이라는 고통스런 체험을 이 놀이를 통해 상징적으로 극복한다고 말한다.  ㅡ실패를 던진다는 것은 내가 엄마를 보내는 것이고 실패를 당기는 것은 엄마를 다시 데려오는 것을 상징한다. 아이는 상황에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황을 상징화시키면서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이 놀이를 통해 부재와 현존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ㅡ실패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어머니의 부재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실패라는 매개를 통해 상징화하면서 아이는 부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존은 아이가 끌어당길 때 아이 앞에 오는 실패이다. 이 부재와 현존의 반복되는 놀이를 통해 주체는 상황들 자체의 주인이 된다.  ㅡ최초의 원초적인 상태를 분리하는 경험, 부성은유의 경험들은 아이가 그 상황에 대해서 상징적 방식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주체가 상징계에 진입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상징계에 의해 호명을 당한다는 의미는 아니라 주체가 상징적 방식으로 체화하는 것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이 아이에게 잘못 받아들여지면 정신병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ㅡ정신병의 특성 중 하나가 퇴행regression인데 퇴행은 유아기적인 원초적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없어지면 정신병의 단계로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원초적 상태는 우리에게 실제로는 없는 것인데 이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기 시작하면 정신병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분리를 수행하는 아버지의 이름이 주체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ㅡ주체가 갖는 원초적 상태의 욕망은 상징계와 연관될 때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원초적 상태는 아이와 엄마가 합일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것은 나의 묙망이 아니라 어머니의 욕망이다. 이 상태에서는 주체의 욕망이 있을 수 없다.  ㅡ부성은유는 원초적 억압을 전제로  가 자리를 잡게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이란 라캉의 이론이기 보다는 프로이트에게서 원형이 나오는데 물론 프로이트가 아버지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ㅡ프로이트에게는 『토템과 터부』에서도 그렇고 『모세와 일신교』 『종교의 기원』 『문명사회의 불안』 등에서 아버지를 항상 죽은 아버지로 생각한다. 즉 실재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는 죽어있을 때만 이름으로서 남아 있다. 라캉이 말하는 아버지의 이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 줄리어스 시저는 한 개인이었는데 그가 공화정의 위협이 되는 걸 느끼니까 브루투스나 여타의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바로 죽이는 순간 줄리어스 시저는 황제의 고유명사가 된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이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는 이것이 초자와와 연결되어 설명이 되지만 라캉에게는 부성은유 자체로 이해가 된다.  ㅡ원초적 아버지의 모델들이 프로이트에게서 이미 제시가 되었기 때문에 사실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개념은 라캉적이기도 하지만 프로이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도 된다.  
7    제1강 상징계 댓글:  조회:1345  추천:0  2019-03-18
◆ 욕망의 주체와 무의식의 주체 ㅡ라캉의 주체는 욕망의 주체이자 무의식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라캉은 53년부터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내걸고 프로이트의 새로운 계승자를 자처하게 되는데 라캉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빠져 있는 언어와 주체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게 된다.  ▲ 강의개요 및 구성 ㅡ강의는 총8강으로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 시간에는 상징계와 시니피앙이 라캉이론에서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가를 공부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으로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공부한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론으로, 아이가 성적인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겪게 되는 복합적 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신경증의 핵으로 설명한다. 라캉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라캉은 이것을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말하는 주체로 태어나는 과정으로 설명 한다. 제2강의 부재는 ‘오이디푸스, 성적 주체의 탄생’이다.  ㅡ3강은 ‘거울단계와 의식’이다. 라캉은 거울단계를 통해 전통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아심리학으로 해설했던 미국의 정신분석을 비판하고, 또한 철학에서 말하는 의식적 주체, 데카르트적 사유주체를 비판한다. 이는 라캉이 의식을 거울에 비친 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소외이자, 타자성에 지배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거울단계는 라캉이 왜 자아심리학을 비판하고 상징계 이론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ㅡ4강에서는 욕망의 시니피앙인 남근(phallus)과 결여 (manque)에 대해 공부한다. 남근이란 성적인 차원의 모든 의미화를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기표이며 결여와 연관된다. 욕망의 본성은 결여자체이지 대상의 결핍이 아니다. 그리고 결여는 무엇보다도 존재결여이다.  ㅡ5강에서는 환상대상 a (오브제 a)와 부분대상의 개념들에 대해 공부한다. 환상대상이야말로 욕망하는 주체가 보이는 가장 능동적인 모습이다.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결여에서 비롯되는데 결여는 어떠한 대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여이다. 그래서 ‘순수결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오브제 a’는 결여자체를 주체로 하여금 감당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주체의 공백과 언어의 심급으로서 대타자가 갖는 공백 부분을 채우는 것이 환상대상 a이기 때문에 주체가 가지는 욕망의 능동적 측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라캉에게 있어 주체의 욕망개념은 결여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 이런 입장은 들뢰즈가 욕망을 해석하는 입장과는 차이가 나는데 들뢰즈는 결여로서 욕망을 바라보는 것을 비판하고 욕망의 충만성, 능동성과 힘 자체를 강조한다. 하지만 라캉은 수동성이나 결여로부터 욕망의 능동성을 가져온다. 결여가 이야기되는 것은 상징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라캉의 욕망이론은 상징계에 대한 복종의 측면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의 또 다른 측면을 보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ㅡ6강에서는 ‘물’(Ding)에 대해 공부한다. ‘물’이라는 것은 욕망의 대상으로서 특히 실재계에 속한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라캉의 욕망은 결과적으로 상징계가 아니라 실재계를 겨냥하는 데서 영원성이 있게 된다. 욕망은 결국 충족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욕망 자체가 실재계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계란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에서 배제되면서도 상징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핵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재는 불가능성이다. 이 불가능성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상징화된 접근방법으로는 실재 자체에 다가갈 수 없는 게 실재의 모습이기 때문에 불가능성이라고 지칭된다. 라캉은 이 부분을 욕망의 윤리적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정신분석에 윤리가 있다면 그 근저에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욕망이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ㅡ7강에서는 언어와 욕망에 대해 공부한다. 언어를 떠나서는 욕망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욕망은 상식적으로는 대상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로 생각되지만 라캉의 욕망개념은 이와는 다르다. 말하는 주체가 가지는 결여가 그 근본특성이기 때문에 비록 대상적인 것을 지향을 하긴 하지만 대상관계로서 욕망이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을 찾고자 하는 것이 욕망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미끼의 역할일 뿐이고 근원적으로 욕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존재이다. 이 존재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말하는 존재로서의 주체가 가지는 본질적인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ㅡ8강에서는 주체와 ‘주이상스jouissance’에 대해 공부한다. 주이상스는 고통 속의 쾌락 같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쾌락이기도 하고 법률적 의미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고 향유하는 측면을 뜻하기도 한다. 내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잠시 누리며 향유하는 측면을 말한다. 성적인 의미로는 사정,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도 주이상스에 들어간다.  주이상스야말로 욕망의 또 다른 모습이자 궁극적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쾌락원칙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 주이상스인데 쾌락원칙은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이다. 상징계 자체가 주체를 현실적인 쾌락의 충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체는 상징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너머로 가보려 하는데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들이다. 바로 이 불가능한 것들에 도전하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에 욕망의 운명이라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것이다.  ▲ 라캉의 연표 ㅡ프로이트가 신경과 의사로서 자기의 경력을 출발했듯이 라캉도 정신과의사로 시작한다.  ㅡ1932년 ‘인격과 관련된 편집증적 정신병에 대하여’라는 의학박사논문을 씀 → 정신병은 크게 (1)편집증과 (2)정신분열증이 있다. 편집증은 과대망상, 극단적인 동일시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들은 예를 들어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박해한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이나 과대망상적인 경향이 있다.  ㅡ‘에메(가칭)’는 편집증에 걸렸던 여성인데 라캉은 그녀를 대상으로 어떻게 편집증이 인격적인 구조와 연관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체적 이상에서 정신병을 설명하는 당시 학계의 주류 흐름과의 차별화된 입장을 보여준다. 라캉은 선천적이고 유전적/신체적 이상으로부터 정신병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를 하면서 주체가 가진 역사 속에서 인격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ㅡ1934년에는 SPP(파리정신분석학회)에 정식으로 가입 ㅡ1953년에는 SPP에서 분리해 나오게 되고 SFP(정신분석프랑스학회)를 주도적으로 만들게 된다. 이 단체의 창립선언문 형태로 발표한 글이 에크리의 유명한 '로마담론'이다.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루이 알튀세르의 주선으로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강의를 시작. 일반대중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세미나의 내용도 철학적이면서 사상적인 면이 강화가 됨 ㅡ1963년 계획되어 있었던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는 라캉의 SFP 제명 소식과 함께 한번의 강의를 끝으로 취소된다. 대신 라캉은 ‘정신분석의 4대 기본개념’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세미나를 시작한다.  ㅡ1966년 『에크리Ecrits』를 출간한다. 라캉 자신은 에크리를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책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라캉 자신이 무의식의 기본 개념을 풀어서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미나에서 라캉은 글을 배포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것은 무의식의 과정이기 때문에 이중적이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속성들이 있게 된다. 에크리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의식적으로 지향되기 때문에 말장난이나 모호한 의미들이 많이 등장해서 읽기가 굉장히 어렵다.  ㅡ1964년 파리프로이트학교가 창설된다. 1980년에 해체가 되면서 프로이트주의파, 81년 또 이름이 프로이트주의학교로 또 이름이 바뀐다.  → 라캉이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말할 때는 후기까지 이어지는 프로이트의 전체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의 프로이트, 그러니까 1900년 출판된 『꿈의 해석』, 그리고 『무의식과 농담의 관계』,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의 프로이트를 말한다.  → 프로이트는 언어적 현상인 망각, 말실수, 말장난, 농담 같은 것들이 무의식의 억압된 매카니즘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고 본다. 꿈도 마찬가지인데 왜곡되어 있고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지만 무의식의 잠재된 생각들을 잘 보여준다. 라캉이 주목하는 프로이트는 바로 이러한 프로이트이다.    ▲ 상징계 ㅡ프로이트의 인격구조모델은 메타심리학, 즉 경제적economic 관점, 역동적dynamic 관점, 공간론적 관점 등에 의해 설명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관점이다.  →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르면서 그것이 긴장되어 있을 때는 해소하려 하고 한 곳에 집중되는 리비도 집중, 대상선택 등에 대해 설명한다.  → 라캉은 이것들을 언어학적 설명과 구조로 바꾼다. 에너지의 흐름이 아니라 언어적인 관계에서 무의식을 해설한다.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ㅡ대타자는 타자적인 차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만날 때 A가 주체라면 B는 A에게 있어 ‘타자’로서 이해된다. 그러나 라캉의 대타자는 A와 B가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가정할 수 있는 제3의 장소, 즉 언어가 기원하는 곳이 대타자이다.  ㅡ일반적인 의미의 타자는 라캉의 체계에서는 ‘소타자’라고 한다. 소타자는 상상계적인 이미지이다. 주체와 주체가 만나는 관계는 단순히 주체와 주체의 만남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주체가 만들어낸 자아상과 타자의 상이 만나는 상상계적인 작용이다. 그래서 이것은 왜곡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분석의 관계는 자아심리학에서 말하듯이 자아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분석가의 목표가 된다.  ㅡ분석가의 조건 중 하나는 상징계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대타자는 언어의 장소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타자는 아니지만 점유될 수 있는 공간이다. 분석가는 여기서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서 설명이 되는데, 즉 대타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주체로 성장하게 될 때는 어머니/아버지가 대타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대타자는 언어가 기원하는 장소이다.    Wo Es war, soll ich werden. (그것이 있던 곳으로 내가 되어 가야 한다.) Where the id was, there the ego shall be. (정통프로이트주의자들의 해석) Le moi doit deloger le ca. (라캉의 해석) La ou fut ca, il me faut advenir.    → 프로이트 후기 이론에 의하면 이드/자아/초자아가 있다. 1) 이드id ㅡ성적인 에너지, 리비도가 나오게 되는 저장고 같은 곳.  ㅡ쾌락원칙의 지배를 받음. 즉각적이고 제한 없는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이드의 본성이다.  2) 자아ego ㅡ대상관계에서 확립이 됨. 외부세계와의 접촉에서 생겨남.  ㅡ현실원칙의 지배를 받음. 만족에 대해 지연시키는 역할을 함 ㅡ이드와 초자아의 욕망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자아는 두 마리 말을 몰고 가는 마부에 비유된다. 3) 초자아super ego ㅡ도덕과 종교의 기원. 억제하는 양심의 형태로 자리 잡음. → 부모의 명령, 도덕적 요구들이 주체에 내면화되면서 욕망을 억제하고 양심으로서 기능 ㅡ때때로 초자아는 다른 방식으로 이드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는데 이드는 공격성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본성을 갖고 있는 반면 초자아는 도덕적이지만 때때로 도덕의 이름으로 공격성이 표출되기도 한다.  예) 중세의 종교 재판→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고문하고 처형한다.  ㅡ도덕이라는 명분으로 승화된 형태의 공격성을 표출되도록 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드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자아심리학에 의하면 정신적으로 사람의 자아는 현실원칙을 잃어버리지 않고 항상 두 가지 요구, 즉 이드로부터 오는 욕망의 원초적 차원과 초자아로부터 오는 외부적인 억제, 도덕적 요구를 적당히 조절하고 통제해준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이드가 있던 자리를 에고가 차지하게 된다.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해석은 ‘자아가 이드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라캉은 ‘그것이 있던 곳으로 내가 돌아가야 한다’고 해석한다.  ㅡ분석가의 역할은 환자의 불완전한 자아를 교정해주고 모범을 보여주는 선생님과 같은 것인데 이 관계는 라캉에 의하면 자아와 또 다른 자아의 상상계적인 만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분석은 이런 것들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체의 진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대타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 라캉이론은 상징계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이 상징계가 라캉 이론의 전부이거나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징계는 라캉의 고유한 개념은 아니다. 이미 프랑스에서 60년대 이후 구조주의 사상이 나오면서 상징계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제3의 질서로서 언어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언어가 인간의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언어의 지배를 당하는 이러한 발견 자체가 현대사상의 출발점이 된다. 들뢰즈 역시 ‘구조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구조주의의 7가지 특성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그 중 첫 번째가 상징계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면에서 라캉이 구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그러한 측면만 강조되면 라캉의 주체라는 것이 상징계의 또 하나의 효과처럼 소극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 시니피앙의 역할 ㅡ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라캉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시니피앙/시니피에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ㅡ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사회관계의 기본적 토대로서의 상징계 개념이 라캉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ㅡ로만야콥슨의 은유/환유 개념도 라캉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ㅡ전치 평소에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던 하찮은 이미지들이 꿈속에서 많이 부각되는데 그것이 무의식적 표상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표상이 여러 대상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전치이고 압축은 하나의 표상에 여러 가지 것들이 겹쳐져 있는 것이다. → 야콥슨은 이것을 은유/환유의 언어학적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ㅡ라캉은 데카르트의 주체를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과 결합 시킨다. 데카르트의 주체는 원래 의심하는 주체로서 의심을 통해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방법적 회의의 주체인데 라캉은 바로 이 의심하는 상태 자체가 무의식과 같다고 본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의심에서 확실성으로 넘어간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유하는 주체가 사유의 행위로부터 입증이 되는 것이다.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ㅡ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기호들로 이루어진다. 언어는 기의(개념/의미)와 기표(청각적 이미지/언어의 질료적 차원)로 이루어지는데 기의에 해당하는 것이  고 기표에 해당하는 것이 (2)시니피앙signifiant이다. 기의, 기표는 자의적이지만 일단 결합이 되면 떨어지지 않는다.  ㅡ각각의 기호들은 떨어져 있지 않고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이렇게 기호들끼리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소쉬르는 체계system라고 설명한다. 각각의 기호들끼리 연결되는 관계를 변별적 관계라고 말하며 기호 간의 이러한 관계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ㅡ소쉬르는 공시적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내부적인 체계를 분석하고 다루는 것이 언어학의 임무이지 역사적으로 어떻게 언어가 변천하면서 발달해왔으며 의미들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소쉬르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예) 냇물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면 우선 냇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강과 시내와 내의 의미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가운데 냇물의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ㅡ언어는 어휘들의 집합이 아니라 기호와 기호들이 변별적으로 맺어진 관계의 체계가 된다. 소쉬르의 기호 이론은 라캉의 상징계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여기서 상징계를 상징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은유화시키는 것이 상징인데, 예를 들어 어떤 배에 단 깃발의 해골 그림은 그것만으로 해적선임을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나 라캉의 상징계 이론에서 상징계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주체 이전에 존재하면서 주체에 영향을 미치고 구성하는 제3의 질서를 의미한다.  → 언어를 떠나서는 무의식, 욕망, 주체 등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라캉의 입장이다.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언어가 있는 게 아니라 언어가 먼저 있고 나서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 라캉의 입장이다. 주체는 상징계로 들어갈 때만 주체가 된다.  ㅡ상징계의 기본적 토대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인데 소쉬르는 이것들이 안정적으로 붙어 다니는 관계로 설명하는데 라캉은 이것을 받아들이면서도 변형을 시킨다.  S/s ㅡ주체의 연산식/무의식의 연산식 ㅡ대문자 ‘S’는 시니피앙으로서, 주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질료가 된다.  ㅡ시니피앙이 시니피에 위에서 일방적인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ㅡ소쉬르의 기호에서는 라캉의 연산식과는 반대로 설명된다. s/S  → 소쉬르에게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체계가 기호라면 라캉에게는 기호가 아니라 시니피앙이다. 라캉에게 있어 시니피앙은 순수차이의 질료이고 의미(시니피에)가 배제되어 있다. 의미는 이차적으로 결정이 된다. 소쉬르가 기호들 상호간의 변별적 관계에서 의미가 파생된다고 설명하듯이 라캉도 변별적 관계에서 의미가 파생된다고 설명하는데 그 기초는 기호가 아니라 시니피앙들이다.  ㅡ주체는 시니피앙에 의해 대리가 될 때 비로소 주체가 된다.  예) 하나의 이름이라는 것은 의미도 물론 있지만 의미보다는 나와 너를 구별시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표식역할을 하게 된다.  ㅡ라캉은 초기에는 기호와 시니피앙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다가 나중에는 바뀐 입장을 취한다.  1) 초기→ ‘누군가를 대신해 어떤 것을 대리해서 표상시켜 주는 것’을 기호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즉 기호는 부재하는 사물들을 지시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과’라고 하면 곧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떠올릴 텐데 ‘사과’라는 말로써 우리는 표상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2) 초기 이후→ 하나의 시니피앙(S1)은 또 다른 시니피앙(S2)을 위해서 주체를 대리한다. 초기에는 기호의 의미가 사물을 대리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주체를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 시니피앙의 역할이 된다. 주체는 시니피앙의 효과로 설명이 된다. 시니피앙 자체가 주체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시니피앙의 고유한 정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라캉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다.  ㅡ단순히 언어적인 것들만이 아니라 주체를 드러내주는 모든 것들이 시니피앙의 차원에 속하게 된다.  예) 무의식의 증상, 몸짓  ㅡ시니피앙과 시니피앙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 주체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주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하나의 효과로서 주체가 드러난다는 것은 고정된 주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ㅡ철학에서 주체는 모든 것의 출발점을 이룬다. 주체가 있어야 인식이 가능하고 대상관계들이 가능해지는데 고정된 실체로서의 주체, 기원을 이루는 주체는 반드시 자기동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동일성을 지닌 주체라는 개념은 라캉의 체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 → 실체로서 주체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ㅡ라캉은 주체를 분열된 주체로 설명하는데 한쪽에서는 상징계에 의해서 주체들이 드러나게 되고 드러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주체는 (1)언표행위를 하는 주체와 (2)언표된 주체로 갈라지게 된다.  ㅡ라캉은 스스로를 언어학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시니피앙/시니피에, 은유/환유, 상징계 등의 개념들을 언어학에서 빌려와 쓰기는 하는데 내용들을 많이 바꾸다보니 언어학적 입장에서 보면 왜곡된 부분이 있게 된다.  예) ‘저 여인은 한 떨기 장미꽃이다.’ →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꽃과 여인의 유사성 때문인데 라캉은 의미적 차원을 제외하고 은유/환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라캉이 언어학적 모델을 주체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학적 전제들에 충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linguistique(언어학)→ linguistrie(라캉의 신조어. 언어를 판매하고 상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공장 같은 뉘앙스를 준다.) ㅡ라캉은 상형문자를 시니피앙의 예로 설명한다. 상형문자가 새겨진 돌판이 발견이 될 때 그것은 분명히 의미를 가진 것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의미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시니피앙도 마찬가지이다. 시니피앙은 의미들을 이차적으로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의미가 유보되어 있다.  ㅡ가장 물질적 차원이면서 동시에 공시적 구조가 시니피앙에 귀속된다. 시니피에는 의미적 차원이기 때문에 역사의 차원, 통시적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 누빔점(佛 point de caption 고정점, 英 quilting point 누빔점)   ㅡ주체의 원초적 차원은 언어로 구조화되기 이전에, 즉 상징화되기 이전에는 알 수가 없고 반드시 시니피앙의 사슬을 관통해서 알려지게 된다.  ㅡ누빔점은 원래 소파 안의 쿠션들을 고정시켜주는 단추를 말하는데 라캉은 이 개념으로 시니피앙의 관계들을 설명한다. 시니피앙은 순수차이로서 시니피앙들 사이에 서로 관계를 형성하는데 의미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지점에선가 거는 지점들이 있어야 한다. 거는 지점이 바로 누빔점이고 나중에 라캉은 거는 지점을 대타자로 설명을 한다.  ㅡ누빔점은 사후작용의 개념과 연관이 된다. 하나의 사건은 뒤의 사건들에 의해서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이 사후작용의 뜻이다. 대표적인 것이 환상설이다.  → 초기의 프로이트는 신경증, 특히 히스테리를 설명하면서 유아기 때의 성적 경험들이 히스테리의 기원을 이룬다고 설명을 했다. 프로이트는 나중에는 이런 입장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제기하는데 유아가 성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어렸을 때 기억들을 거꾸로 대입시켜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때 투영되는 기억은 순수기억이라기 보다는 주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환상적인 틀이다. 유아성욕은 유아가 자기의 경험을 사후적으로 투영하는 성적인 환상에 관계된다. 이것은 유혹설과는 관계가 없다. 직접적으로 성적 유혹을 당하거나 성적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치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ㅡ주체는 사후작용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원초적 차원은 언어적인 것을 거쳤을 때 비로소 주체가 된다. 주체가 구성되었을 때 원초적 차원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원초적인 어떤 상태가 있고 그 다음에 주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언어적으로 구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과거의 원초적 욕구의 차원에 의미들이 부여가 된다.  → 사후작용의 논리는 주체구성에 대해 설명해준다.  ㅡ시니피앙은 반드시 주체를 필요로 한다. 주체가 있어야만 의미적 차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체 역시도 시니피앙에 의해 대리가 될 때에만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된다.  → 프로이트는 원초적 차원을 전제한다. 무의식(성적 욕망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이라는 원초적인 공간이 있는 것인데 무의식은 신체적 증상이나 강박증 같은 증상들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ㅡ신경증은 두 가지로 나누게 되는데 (1)히스테리와 (2)신경증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강박신경증이 중요하다. 강박신경증은 어떤 생각, 기억, 표상들에 사로잡혀 있고 어떤 행동들을 불쾌하게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반복하는 증상을 말한다.  예) 손을 병적일 정도로 자주 씻는 증상이나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계속 주우려 하는 증상  ㅡ꿈은 무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무의식의 극장이다. 그것을 통해 무의식적인 욕망들이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은 꿈과 꿈꾸기 전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자유연상을 통해 주체에게 이야기하게 한다. 그 중에서 저항에 의해 떠오르지 않는 부분이 주체의 감추어진 욕망을 잘 드러낸다.  ㅡ히스테리는 신경성 마비와 같이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ㅡ라캉에게 무의식은 언어에 의해 설명이 된다. 언어가 없이는 무의식도 없다. 언어에서 벗어나 있는 원초적인 상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언어적인 것이 주체에게 구조화되면서 그로부터 빠져나가는 부분이 있게 된다. 물론 이 부분도 언어적인 것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지만 거기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개념으로 정식화된다. 실재 개념은 반드시 언어와의 관계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원초적 상태라고 설명할 수 없다.  1) 선재성→ 주체보다 먼저 있다 2) 대타자→ 주체와 주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제3의 공간 → A라는 주체와 B라는 주체가 상호 의사소통을 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대타자이다. 대타자가 배제가 된다면 A와 B의 만남은 A의 자아와 B의 자아간의 상상계적임 만남에 불과한 것으로 떨어지게 된다. 특히 분석관계에서 자아가 강조되면 분석가와 자아의 관계만이 남게 된다. 라캉은 상징계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복원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대타자의 묙망이다.”  →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1)언어적으로 욕망이 설명이 된다는 것이고 (2)욕망은 언제나 나의 욕망이 아니라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주체는 대타자의 욕망을 알고자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대타자에 견주어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욕망의 대상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욕망 자체이다.  ㅡ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질서인 언어들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주체에게 상징계라는 개념이 다가오게 된다. 그래서 아이의 모든 행동들은 상징계에 의해서 조직화가 되어야 한다. 갓난아이는 언어를 말할 수 없지만 욕구를 가진다. 그 욕구들을 울음으로 표현하게 되면 그것을 해석해주는 것은 항상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중에 아이는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함을 배우게 된다.  ▲ 욕구/요구/욕망 1) 욕구 need 아이가 바라는 것, 생물학적 욕구 2) 요구 demand 원초적인 욕구가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것 3) 욕망 desire 끝내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의 불가능성 ㅡ욕구와 요구는 일치할 수 없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대상적인 욕구도 있지만 대상이 없는 절대적인 욕구 자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적 욕구는 엄마가 채워줄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절대적 욕구는 충족시킬 수 없다.  → 대타자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언어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 한계 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 욕망이다. 그래서 욕망은 사실 불가능성이다. 욕구가 요구로 충족이 안 되기 때문에 욕망이 생기므로 욕망은 불가능성을 자신의 운명처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항상 환상적으로 주체를 유혹한다. 욕망은 빈 공간을 채우는 환유적인 유희이기 때문에 절대로 빈 공간 자체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 결과적으로 라캉의 상징계는 주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이론이 된다.  ㅡ주체는 언표된 주체와 언표행위의 주체로 분열되며 또한 소외된다. 주체는 언어적인 상징계로 들어가면서 존재성을 얻게 되지만 그 대가는 자신의 원초적인 차원을 상실하는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존재인 이상 소외는 극복되지 않는다.  → 그래서 고전적인 주체를 라캉은 인정하지 않는다. 라캉은 우리의 모든 철학적 작업은 데카르트로부터 기원되는 자기동일성의 주체,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를 거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의 주체야말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주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 라캉연표 1901 파리에서 출생. 1919 스타니스라스(Stanislas) 중학교를 졸업. 1916년부터 의학도를 지망. 스피노자를 읽고, 다다이즘과 빈학파의 이론과 자신이 만났던 샤를르 모라스(Charles Maurras)의 생각에 관심을 가짐. 1920 의학 공부. 1926 셍 탄느(Sainte-Anne) 병원의 앙리 클로드(Henri Claude)-정신질환 및 뇌 전문과 과장- 밑에서 정신과 인턴과정 수련. 공저로 다수의 논문을 출판함. 1928 클레랑보(Clerambault)의 지도하에 경찰청 정신병원 특별 의무실에 1년 동안 근무함. 1930 초현실주의자들-크르벨(Crevel), 브르통(Breton)-을 만남. 편집증에 대해  달리(Dali)와 의견교환. 1932 의학박사 논문 발표. 뤼돌프 뢰벤슈타인(Rudolf Lœwenstein)과 함께 수련분석을 시작.  《인격과 관련된 편집증적 정신병에 대하여 De la psychose paranoiaque  dans ses rapports avec la personnalite》 1933 코제브(Kojeve)의 세미나 시작. 1934 파리정신분석학회(Societe Psychanalytique de Paris-이하 SPP)에 가입.  외과 의사이며 그의 친구인 실뱅 블롱댕(Sylvain Blondin)의 누이 마리 루이즈 블롱댕 (Marie-Louise Blondin)과 결혼.  1934, 1939 그리고 1940년에 둘 사이에서 세 아이 출생. 1936 정신 병원 의사로 임명됨. 셍 탄느(Sainte-Anne)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봄. 개인병원 개업. 처음으로 마리엔바트(Marienbad)에서 있었던 국제 정신분석협회 (Association Psychanalytique Internationale-이하 IPA)의 회의에 참가하여 거울 단계에 대한 짧은 보고를 하지만 의장-존스(Jones)-에 의해 중단. 텍스트는 분실. 1938 SPP의 정식 회원으로 선출 됨. 그 직후 뢰벤슈타인(Rudolf Lœwenstein)과의 분 석을 중단. 1939 1933년에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와 헤어진 실비아 막클레스-바타이유(Sylvia Mackles-Bataille)를 만남. 징집. 1941 실비아와 쟈크 라캉의 딸 주디트 바타이유(Judith Bataille) 출생. 마리 루이즈  블롱댕(Marie-Louise Blondin)과 헤어짐.  파리로 돌아와 셍 탄느(Sainte-Anne) 병원에서 얼마간 활동을 한 후 자신의 개인 환자들에 주력함. 집필 중단. 유태인 친구들에게 체류증을 얻어주기 위해 힘씀. 1942 릴(Lille) 거리 5번지에 있는 아파트에 정착하여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됨. 1947 런던 여행. 1949 SPP의 새 정관 만들어짐(정관규약은 라캉에 의해 작성됨). 1951 SPP의 부회장. 내부적인 재조직화. 자신의 아파트에서의 첫번째 개인 세미나. 1953 SPP로부터 분리. 대립적인 두 경향을 나타내는 라가쉬(Lagache)와 라캉에 의해 추진된 정신분석 프랑스학회(Societe Francaise de Psychanalyse-이하 SFP) 창설. 선언문 형태를 띤 로마강연.(『에크리』참조. p. 237) 실비아 막클레스-바타이유 (Sylvia Mackles-Bataille)와 결혼.  1953년부터 1963년까지 장 들레(Jean Delay)를 통해서 빌린 셍 탄느  (Sainte-Anne) 병원의 대강당에서 세미나가 공개적으로 진행됨.  1963 SFP와 IPA의 교육법 전문가의 명단에서 제명됨. 세미나는 셍 탄느(Sainte-Anne) 를 떠나서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주선에 의해 윌름(Ulm) 거리의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에서 재개.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는 고등교육 실천학교(E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에서 강의함.  쇠이유(Seuil)출판사의 프랑스와 발(Francois Wahl)과 출판계약을 맺음. 1964 파리 프로이트학교(Ecole Freudienne de Paris-이하 EFP) 창설.  1969 윌름(Ulm)거리의 고등사범학교 강의실이 학교장 로베르 플라슬리에르(Robert Flaceliere)에 의해 회수됨. 세미나는 팡테옹(Pantheon)의 법학부로 옮겨짐. 1971 수학소 (Matheme)라는 개념 창안. 1980 마지막 세미나. EFP의 해체. 프로이트주의파(Cause freudienne) 창설. 1981 프로이트주의학교(Ecole de la Cause Freudienne-이하 ECF)가 프로이트주의파 를 계승함. 9월 9일 라캉 사망. * 세미나의 청중들 첫 번째 시기 : 51-63 분석가들을 대상 두 번째 시기 : 64-69 모두를 대상 세 번째 시기 : 70-79 대타자 혹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
 라깡적 정신분석 시각에서 본 문학과 정신분석의 관계      문학과 정신분석의 관계는 문학의 구성과정에서 작가의 정신적 작용과 창조적 상상력이 상호적으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대가 깊은 관계이다. 프로이트는 ‘창조적 글쓰기와 백일몽’이라는 글에서 작품의 기본재료가 되는 작가의 백일몽은 바로 그의 소망충족의 욕구와 직결되며, 작품의 플롯과 다양한 문체는 작가의 원초적인 소망을 변경시키고 다양한 형태로 우회하여 접근함으로써, 작가나 독자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대할 때 수반되는 긴장감이나 수치심 등을 피하게 해주면서 동시에 독자들이 형태로부터 즐거움을 얻게 하는 일종의 ‘전희’(forepleasure)라고 보았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작가는 이 전희를 통해 독자들을 자신의 더 핵심적인 심층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준비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정신분석적 맥락에서 문학의 장르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형태로 설명되었다. 사실세계보다 환상을 다루는 로망스의 형식은 좀더 작가의 원초적이고 유아기적 환상 혹은 꿈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장르로 인식되었고, 반면에 소설의 형식, 특히 사실주의 소설은 로망스와 달리 환상보다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거나 작중인물들의 망상의 비이성적 요소들을 파헤치려는 의도를 가졌다하여서, 다소 정신분석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예를 들어서, 패트릭 브랜트링거는 조지 엘리어트 같은 사실주의 작가가 “자아의 망상이 [현실을] 왜곡하는 것과, 우리 삶을 형성하는 실질적 힘들에 대해 우리가 맹인들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점 . . . 인간의 고통과 기쁨을 형성하는 그 세세한 과정들의 어두움을 꿰뚫으려는 강력한 욕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와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브랜트링거는 이런 일반적 인식을 그대로 수용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 두 개의 장르가 서로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것을 다루는 문학형태가 사실주의 보다 더 핵심적 진리를 다룰 수 있고, 사실주의 소설에서 보이는 현실 혹은 인물에 대한 냉철한 분석에 대한 욕망은 “환상에 대해 느낀 공포를 누그러뜨리려는 욕망”의 일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문학은 “무의식을 해방하려는” 로망스 혹은 “자기-분석적”인 소설 장르에 관계없이 “무의식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며, 정신분석은 각 작품의 정신적 경향들을 특징짓는데 유용하다고 보았다.    “무의식을 무의식적으로 다루는”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문학비평가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자세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 불릴 정도로 인간의 진정한 진리추구에 필수적인 무의식이라는 도구를 발견한 프로이트의 혁명적 직관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망각되어졌을 때, 문학은 정신분석이 그 개념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동적이고 비창조적인 영역으로 전락하고, 문학이 과학을 초월하여 미리 예견해준 소중한 지혜들의 출구를 막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점에서 현대 문학비평가의 당면한 과제는 도구적 이성 즉 규범적 자아의 양성에 몰입한 비창조적이고 비직관적인 자아심리학에 대항하여, 무의식의 발견자로서의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외치며, 정신분석을 재정립한 라깡의 정신분석적 개념과 그의 문학비평을 살펴보고, 그의 정신분석적 시각이 열게 해줄 문학의 새로운 지평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적 비평의 역사      정신분석적 비평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문학에 적용함으로써 문학이 제2의 자리에서 정신분석의 개념을 증명해주던 도구로 전락하였던 초기1 단계를 쇼쇼나 펠만은 “응용 정신분석applied psychoanalysis”라 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런 정신분석비평에 대한 대안으로,  펠만은 정신분석과 문학이 서로 어느 하나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루implication”된 상태임을 지적하면서, 문학은 정신분석에 의해 더 잘 이해될 수 있고, 정신분석도 문학적 기제로 구성되어있어서, 그것을 이해할 때 더 진정한 이론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정신분석과 문학의 상보적 관계 내지 동등한 관계를 강조하던 정신분석의 두 번째 단계는 그 대칭성에서 엿보이듯이, 무의식적 영역을 다루고 파악해내는 문학 및 정신분석 둘 다의 속성을 지나치게 균형적인 모델로 만들어버린 한계를 가진다. 이런 한계를 보충하는 제 3번째 단계는 라깡의 이론이 사회의 구조인 언어 및 법 체계에 인간의 의식이 결정되는 것을 인식한 초기 단계의 이론을 극복하고, 인간의 “욕동drive”과 그것이 속한 영역인 “실재계”를 강조하던 단계와 일치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의 정신분석 비평은 이런 라깡의 이론을 문학에 적용하여, 하나의 기호로 존재하는 문학의 의미를 정신분석에 의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이론도 문학처럼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 실재계와 사라지는 동시에 맞닿은 문학의 기호들이 어떻게 더 풍부하게 발굴되지 않은 주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현현시키는가를 언급함으로써, 무의식을 다루는 문학을 진정으로 살리고 또 사이버화되어가고 상품문화와 예술에 제도화되어가는 인간의 의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가를 살펴보는 단계이다.    우선, 정신분석의 첫 번째 단계의 양상을 살펴보자. 프로이트는 문학이 그 구성과정에서 정신적 과정과 직결됨을 보여준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신분석 논문에서 문학의 기본기제인 은유를 통해 여러 환자들의 꿈이나 증상을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자신의 환자 중 도라라는 여성의 증상을 설명하면서, 도라의 손지갑을 여성의 성기로 그리고 도라의 어머니가 남편으로부터 받은 진주귀걸이를 남성의 ‘정액’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또한 새로운 정신적 기억들이 옛 기억들과 접합하여 기억된다는 정신적 작용을 시냇물이 흘러갈 때 옛 마른 수로위로 먼저 흘러들어간다는 은유적 비유법을 써서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프로이트는 남성들이 소변으로 불을 끄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의 심지가 남성의 팰러스를 상징하므로 남성의 동성애적인 욕망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문명적 욕망이라고 설명함에 있어서도 문학의 기본기제인 상징을 이용해 정신적 상황을 설명했다. 프로이트는 상징과 은유를 즐겨 사용하는 문학적 소양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핵심적 개념인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도 소포클레스의 비극(《오이디프스 왕》)에 기초를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를 논하거나  E. T. A. 호프만의 작품(《모래인간The Sand-Man》)을 논의하면서 직접적으로 정신분석비평가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문학적 성향과 비평적 실천은 초기 정신분석비평가들이 문학을 대하는데 모델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초기 정신분석비평은 프로이트처럼 문학작품에서 주로 상징을 읽어내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주력을 하였다. 예를 들어, 초기 정신분석비평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권총 혹은 뾰족한 탑들을 남성의 성기인 팰러스로, 집 혹은 동굴 등을 여성의 성기라는 단순한 상징으로 읽거나, 조금 복잡한 차원에서는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지 못하는 햄릿의 우유부단함을 오이디프스적 콤플렉스로 설명하여서, 햄릿이 어머니를 소유한 삼촌, 클로디어스와 동일시하여 그가 누리는 것을 원하는,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펠만은 이런 첫단계 정신분석비평의 예로 조셉 우드 크러치Joseph Wood Krutch와 마리 보나파르트Marie Bonaparte의 애드가 알렌 포우의 비평을 들었다. 펠만은 크러치가 포우의 상상적 직관력은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그의 작품이 그의 병리적 속성들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하는 한계를 지적하였다. 마리 보나파르트의 포우의 분석은 그녀의 《도난당한 편지》의 논의에서 장관이 여왕의 편지를 되찾아주는 것을 어머니의 잃어버린 페니스를 다시찾아주기rephallicization로 해석하는 것에서 보여지듯이, 적어도 그의 작품이 담지하는 시적 영감과 직관들을 풍부한 프로이트적 개념들(벽나로를 어머니의 자궁으로, 벽난로 중앙의 편지통을 달고 있는 매듭을 여성의 음핵으로) 상징적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하지만, 그녀 역시 그의 작품을 정신분석의 개념들을 증명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펠만은 보나파르트도 역시 “포우의 작품을 그의 신경증의 재창조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 . 포우의 텍스트가 표현하는 병리적 경향들은 정상적 사람들이 어렸을 때 더욱 성공적으로 단순히 억압하였던,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본능들과 욕동”들의 과장된 모습들“이라고 봄으로써, 문학작품을 ”임상적 진단clinical diagnosis"의 접근으로 처리한다고 비난하였다. 펠만은 보나파르트의 문학에 대한 임상적 접근의 예로 포우를 ‘시체애호가necrophilist'로, 보들레르를 ’공공연한 가학자declared sadist'로 보는 그녀의 시각과, 보들레르가 포우를 존경하고 그의 안에서 자신의 형제를 발견한 것, 즉 “시체애호증과 가학증의 관계”는 오로지 본능이론에 의해서만 밝혀진다고 본 점을 들고 있다.    펠만은 과연 “시가 임상적으로 진단될 수 있을까?”에 의문을 품고, 작가의 무의식적인 성적 환상들만 다루고, 작가의 탁월한 의식적 예술, 즉 그의 시적 기술과 의식적인 예술적 통제력을 전적으로 배제한 보나파르트의 정신분석비평의 한계를 라깡이 극복하였다고 보았다. 펠만은 포우의 《도난당한 편지》에 대한 라깡의 정신분석적 비평과 보나파르트의 정신분석적 비평을 다섯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비교하였다. 첫 번째 특징은 라깡의 읽기는 ‘차이성difference’의 해석이었고 반면에 보나파르트의 읽기는 ‘동일성identity’의 해석이었다는 점이다. 라깡이 이 소설에서 읽어낸 반복은 편지라는 하나의 기표가 여왕, 장관 그리고 듀팽의 세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구조적인 차이성의 연쇄고리를 형성하여서, 이 연쇄고리는 편지가 누구의 손에 떨어지든지에 관계없이 편지가 상징하는 기표를 주변으로 결정되는 구조적 차이 때문에 의미를 형성해 간다고 읽었다. 반면에 보나파르트는 충동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포우의 가학적 시체애호적 욕망이라는 같은 무의식적 환상이라고 보았다.    라깡과 보나파르트의 읽기 사이의 그 두 번 째 특징은 라깡의 분석은 기표의 분석이고 보나파르트의 분석은 기의의 분석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라깡의 분석은 편지를 하나의 기표로 보고 이 기표의 텍스트 상의 움직임을 간파하여서 이것이 전치되어가는 구조적 관계를 밝혀내는 것에 주력하였다면, 보나파르트의 분석은 이 편지 자체의 숨겨진 내용을 읽어내려는 분석이었다고 지적하였다. 펠만이 지적한 세 번 째 특징은 라깡의 분석이 텍스트적인 분석인 반면에, 보나파르트의 분석은 작가의 전기에 입각한 접근이었음을 지적하였다. 네 번째 특징은 라깡의 분석이 분석가와 작가의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분석가가 환자로서의 작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 텍스트 속에서 일상적인 논리를 뛰어넘어서 문제를 풀어나간 듀팽이라는 시인적 인물로서의 작가에 관심을 두는 분석이었던 반면에 보나파르트의 분석은 포우라는 시인이 병자로, 그리고 비평가는 의사로 존재하는 주인과 하인의 양상을 띄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펠만은 라깡의 읽기는 전통적인 정신분석비평, 즉 “응용 정신분석”을 전복하는 대안적 읽기임을 주장하였다.   두 정신분석비평의 읽기의 다섯 번 째 특징은 보나파르트의 분석이 정신분석이론의 ‘적용application'이었다면, 라깡의 읽기는  바로 정신분석비평이 문학 안에 ‘연루’ 되는 읽기라는 점이다. 펠만은 라깡의 읽기는 프로이트의 텍스트가 포우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포우의 텍스트가 프로이트를 재해석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신분석과 문학은 서로 안에서 ‘상호연루interimplication’되었음을 주장하였다. 펠만은 라깡의 정신분석이 문학에 대해 기여한 바는 그의 “학파”의 새로운 ‘도그마’에 있다기 보다 해석가의 중요한 자질인 독창성과 직관을 통해 어떻게 정신분석이 문학에 연루되는지를 보여준 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펠만이 전통적인 정신분석비평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한 이런 ‘연루’의 정신분석비평도 두 확고한 영역을 연결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해석가의 ‘직관의 모험’을 예찬하였다는 점과 두 영역의 대칭적 관계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무의식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문학의 접근방법으로서는 다소 도식적이고 제한적인 방법이며, 무의식의 차원을 다루기 보다 표층의 의식적 영역을 직관적으로 연결하는 고도의 의식적 차원에 기초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또다른 형태의 제한적이고 의식적인 정신분석적 비평을 극복하는 것은 펠만이 제시한 것과 달리 라깡의 정신분석적 ’도그마‘(이론) 그 자체의 힘으로 가능하다.       라깡의 정신분석적 개념에 의한 새로운 정신분석 비평      라깡의 이론의 발전이 초기의 상상계 강조시기, 중기의 상징계 강조시기 그리고 말기으 실재계 강조시기로 나뉘어졌듯이, 쥴리아 라인하드 립튼과 케네드 라인하드는 정신분석을 ‘상상계적 적용’, ‘상징계적 연루’, 그리고 ‘실재계적 외/친밀성extimacy’의 단계로 나우었다.  앞서 언급한 두 단계의 정신분석비평의 역사도 바로 프로이트이론의 일방적 적용으로 문학에서 이미지나 작가 및 작중인물의 성격분석을 중심으로 정신분석의 개념을 증명하는 상상계적 적용단계와 펠만의 분석처럼, 첫 단계의 나르시스적인 일방적 적용의 실수를 교정하고 정신분석과 문학의 쌍방적 연루과정을 강조하던 시기는 상징계적 단계의 정신분석비평이라 볼 수 있다. 사실 라깡의 《도난당한 편지》의 분석도 1955년 4월에 상징계를 강조하던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서 펠만이 강조하였듯이, 정신분석이 문학과 상호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계적 정신분석비평이라 할 수 있다. 라깡의 상징계적 포우 읽기는 후기구조주의자 쟈끄 데리다에 의해 비난된 바 있다. 데리다는 라깡이 자신의 이론인 상징계의 역할과 기표, 무의식을 ‘잃어버린 편지’로 비유하여 설명함으로써, 문학을 자신의 이론을 위해 사용하였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문학자체의 요소인 화자를 배제하여 화자가 마치 듀팽인 것처럼 생각함으로써, 주체의 이중적 분리성을 무시함으로써 및 의미의 산종성을 완전히 배제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이런 라깡의 정신분석비평의 한계는 그의 이론이 점점 실재계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극복되고, 명실공히 문학을 정신분석의 ‘원인cause' 즉 ‘욕망의 대상object a'으로 간주하고 실재계와 결합함으로써, 문학의 의미를 확장하였다. 얼핏 보기에 이 말은 펠만의 정신분석과 문학의 ’연루‘와 다를 바 없이 보이지만, 라깡의 ’원인‘이라는 개념이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원인과 결과’의 원인이 아니라 명확히 규정될 수 없지만, 그것이 실재계와 상징계의 빗겨간 소실점vanishing point이라는 의미에서의 ‘원인’임을 생각할 때 이 오해는 사라진다. 다시말해 ‘원인’ 혹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문학은 지금까지처럼 그 의미가 명확히 규명되어져야하는 기표로 쓰여진 상징계만의 차원이 아니라, 실재계도 담고 있어서 그 모호함과 비결정성으로 인해 더 많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이제 문학은 실재계가 상징계의 차원에서 드러내지지 못해,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라는 그림의 해골처럼 ‘일그러진 형상anamorphosis’으로 표출되며, 상징계와의 빗겨난 만남으로 인해 생긴 ‘얼룩stain’이다. 끊임없이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문학은 각자 따로 떨어져나가려는 실재계와 상징계 그리고 상상계를 함께 묶어주는 일종의 ‘쌩똠므sinthome'('징후’의 라깡적 개념)이기도 하다. 라깡은 1975-76년 그의 세미나를 《쌩똠므》라는 제목으로 제임스 조이스 논의를 위해 진행했다. 라깡에 의하면, 조이스의 ‘현현epiphany’(어떤 대상이나 주체의 속성 혹은 무의식적인 어떤 것이 이 한 순간 강렬하게 느껴지거나 폭로되어지는 느낌)이나 《피네간의 경야》같은 작품은 바로 실재계의 ‘쥬이상스’가 상징계를 침범한 것과 같은 ‘생똠므’를 표출하는 것이라고 본다.    라깡의 포우읽기 같은 상징계적 정신분석비평이 이런 실재계적 정신분석비평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그의 《햄릿》비평에서 엿보인다. 이 비평은 라깡의 포우비평이 보여준 이론중심적 경직성을 벗어나서 ‘욕망의 대상’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햄릿의 욕망을 잘 읽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재계적 비평이 되기 까지에는 미흡하다. 이런 비평은 라깡의 ‘두번째 죽음’, ‘두 죽음 사이in-between the deaths’, 죽음충동death drive, '외/친밀성extimité‘, '그 것das ding', '칸트와 사드’ 등 여러 개념들이 사용하여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및 《콜로노스의 오이디프스》의 인물들을 비평할 때 가능해졌다. 《욕망과 해석》이라는 세미나(VI)에서 행해진 햄릿 비평은 다소 상징계적 법과 그것에 의해 표출되지 못한 실재계의 잔존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라깡은 이 연극을 제 2의 《오이디프스 왕》이라고 불렀으며, 일종의 오이디프스적 드라마로서 (아버지 살해의) 범죄와 질서의 관계를 비극적 차원으로 다루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비평과 더불어, 라깡은 햄릿 비평에서 욕망과 강박신경증의 구조적 관계를 상술하였다. 라깡은 인간이 소유하기 불가능한 ‘팰러스’ 내지 쥬이상스를 욕망하면서, 유일하게 그것의 잔존물로 남겨진 ‘욕망의 대상’을 통해 이 ‘팰러스의 상실’, 즉 ‘존재(실재계)의 구멍hole in the real'을 애도한다고 보았으며, 햄릿의 욕망은 바로 타자의 욕망으로서, 타자(어머니 혹은 무의식)가 욕망하는 팰러스에 대한 ‘불가능한 욕망impossible desire’ 때문에 햄릿의 ‘강박 신경증obsessional neurosis’이 발생되었다고 말한다. 연극에서 햄릿이 ‘욕망의 대상’인 오필리아에 대해 감정을 정립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욕망의 대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그런 맥락에서 그녀의 이름을 ‘오 팰러스oh phallos’로 연상시켰다. 또한 햄릿이 결국 아버지의 복수를 연기하는 것도 이전의 비평처럼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삼촌을 통해 획득하려는 욕망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팰러스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쥴리아 라인하드 립튼과 케네드 라인하드가 《햄릿》을 상징계적으로, 《리어》를 실재계적으로 보았듯이, 슬라보 지젝도 라깡의 후기 정신분석 비평이 실재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립튼과 라인하드는 햄릿의 주체를 욕망의 주체로, 안티고네와 《콜로노스의 오이디프스》의 주인공을 욕동의 주체로 보았다. 지젝도 라깡의 이론이 욕망의 대상을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욕망의 주체에서 실재계의 욕동drive을 중심으로 이론이 전개된다고 보았다. 특히 모든 욕동의 근본인 죽음의 욕동은 실재계를 가장 잘 대변해줄주는 개념으로 라깡의 여러 복잡한 개념의 핵심이 된다. 특히 라깡이 안티고네와 눈 먼채로 콜로노스를 떠도는 오이디프스를 아름답고 숭엄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죽음의 욕동은 중요한 개념이다. 라깡은 이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두 죽음 사이’의 언캐니한 세계라고 말한다. 이 ‘두 죽음 사이’의 세계는 생물학적 죽음도 초월하여 ‘두 번째 죽음the second death’과 관련된 세계이다. ‘두 번째 죽음’은 일명 죽음의 욕동으로서, 상징계상의 죽음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햄릿이 기도하는 삼촌을 죽였다면, 그 삼촌은 육체적 죽음을 겪은 것이지만, 햄릿은 그런 죽음에 만족하지 않고 기도로 인해 삶의 흔적도 남길 수 도 없게 의미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도 완전히 죽는 것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두 번째 죽음’은 리어왕이나 콜로노스의 오이디프스처럼 자신의 운명(Ate: 상징계적 차원)을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육체적 죽음에 매인 자들이 아니라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처해서 그 운명을 초월하고 무(無)화시키는(두 번째 죽음)도 감행하는 진정한 욕동의 주체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두 죽음 사이’에 사는 것이며 상징계와 맞닿으며 빗겨나간 실재계의 핵인 ‘사물’을 맴도는 숭고한 차원의 주체이다. 이 ‘두 죽음 사이’의 세계는 리비도적 라멜라lamella처럼 무정형적인 영원히 죽지 않는 차원의 세계이다.   립튼과 라인하드가 새로운 정신분석비평으로 제시한 욕동의 주체를 읽어내는 비평은 바로 이 ‘두 죽음 사이’의 숭고한 인물들, 바로 운명과 상징계적 의무를 초월함으로써 고통을 지불하면서도 윤리적으로 실재계적 차원에 충실했던 인물들을 예찬하였다. 그러나 지젝은 이런 죽음의 욕동을 두 가지의 모델로 제시하여서, 고통을 치르더라도, 즉 쾌락원칙을 넘어서‘죽지 않는’ 리비도적 쥬이상스에 충실한 죽음의 욕동이 있는 반면에, ‘즐기라’는 쥬이상스의 본질적이다 못해 윤리적이라고 까지 설명된 “쾌락의 어리석은 수퍼에고적 죽음의 욕동”을 극복하고 자신의 ‘환상을 거슬르게traversing the fantasy“ 만드는 죽음의 충동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라깡은 ’칸트와 사드‘라는 논문에서 사드처럼 일상적인 차원에서 악이라고 할 정도로 가혹한 일이지만 그것을 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하는 것, 즉 ’쥬이상스에 대한 의지‘를 윤리적이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법, 윤리는 우리가 우리의 상황이나 개인적 열망(칸트에서 병리적인 것)에 따라 취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충족되기를 원하는 초자아의 욕망이다. 이런 맥락에서 법과 욕망은 서로 반대적인 것이 아니라 같은 실체로서 윤리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라깡의 윤리학은 욕망에 따르는 것, 즉 욕망을 타협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지젝의 설명에 의하면, 그렇다고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홀로코스트의 주체들처럼 ‘전체주의적인’ 쥬이상스에 대한 의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분석에서 치료의 목적인 ‘자신의 [상상계적] 욕망을 극복하고’, 윤리적일 정도로 거스를 수 없는 [실재계의] 욕망을, 즉 더욱 과격하고 윤리적 차원에서’ ‘즐겨라’라는 초자아의 명령, “씰리쎄Scilicet: 너는 해도 된다You are allowed to”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라깡의 사드에 대한 언급은 쥬이상스의 의지를 자유로이 구가한 사드를 윤리적으로 예찬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라깡은 사드가 지나치게 사디즘의 테크니크를 과시하는 잘못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라깡은 고통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즐기려는 욕망의 목소리에 충실하는 쥴리에뜨 같은 사드의 가학적 행위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윤리적인 숭엄한 인물로 승화된 반면, 사드는 사형선고를 면하기 위해 그의 범죄를 변명하는 비윤리적 주체로 전락한 것을 지적하였다. 라깡은 이런 사드가 결국에는 절대적인 욕망 그 자체에 순응하기 보다 여성들의 ‘남근선망’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해결책으로 ‘구부러진 바늘’curved needle', 즉 페니스 그것도 ‘큰 것’을 제시하는 아이러니를 지적하였다. 라깡은 이런 사드의 한계로 인해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사드가 언어가 사용되는 ‘우리의 세계에서, 깨어있는 상태로, 자연의 가슴으로 다시 들어가게 해 줄 수 있게 했을’ 그런 종류의 무감각을 성취하지 못하였다”고 , “진정으로 욕망에 대한 글로서, 거기에는 거의 아무 것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라깡의 실재계를 강조하는 이론은 문학이 일종의 현실의 세계라는 가상과 더불어 반드시 실재계에 속한 존재의 핵, 즉 ‘사물’ 주위를 맴도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문학은 더 이상 일상적인 기표만이 아니라, ‘사물’주위를 맴도는 침묵과 비문법적, ‘외/친밀성’의 언어로 구성되어야한다. 이런 라깡적 의미에서 문학은 다른 담론과 달리 원인과 결과가 일관적으로 연결된 데서 오는 읽기의 쾌락을 주지는 않지만, 사물’ 주위를 맴돌음으로써, 어떤 몇 개의 의미로 한정되게 전달되는 언어활동이 아니라, 좀더 실재계와 상징계가 그리고 독자의 상상계가 어우려져서 얻게되는 쥬이상스, 즉 그 자체도 작가의 이 세 영역의 어우려진 매듭인 ‘쌩똠므’의 문학만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은 독자의 실재계에 속한 ‘사물’을 자극하는 모호한 ‘일그러진 형상’, 얼룩, 오브제 아, 즉 또 하나의 '욕망의 대상‘이 된며, 이러한 실재계와 조우하려는 라깡적 문학 비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창작품이고 ‘얼룩’이 되어 독자에 의해 더 풍부한 의미로 대체되어지는 결과를 유발하게 된다.   출처 : Lacanian | 글쓴이 : 해넘이 | 원글보기
5    공유]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댓글:  조회:1054  추천:0  2019-02-07
[공유]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출처 흐르는 물처럼|우강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피에르 스크리아빈 - 권희영 역 (정문연)         머리말   그의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를 라깡은 라고 이름 붙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무의식이라는 용어가 환원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시니피앙으로 환원할 수 없으며 지식으로 환원할 수도 없고 의미로 환원할 수도 없는 것이다. 확실히 무의식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그 때문에 그로부터 프로이드의 발견이 나오는 것이며 그 때문에 이 숨은 의미는 주체의 고통의 대가로 벗겨지고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의식적 지식에서 관계되는 것은 의미를 넘어서 혹은 이 의미와 반대하여, 시니피앙의 물질성 가운데, 그 결합가운데, 그 해석가운데 그 의미의 장소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주체가 그것을 즐기는 태도이며 향락이 거기에 깃들이는 방식인 것이다. 그로부터, 의미에 만족하는 것은 정신분석으로 하여금 길을 잘못 들게 하는 막다른 골목인데, 의미는 심리치료로의 쉬운 비탈길의 미끄럼틀 역할을 하며 정신분석가의 욕망을 배제하는 심리주의적 실추가 되는 것이다.   이 주제는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분석적 경험의 약동의 본질적인 지점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게 하는데, 라깡이 구분하였던 4개의 근본 개념 중의 하나인 무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론적인 경계에 있어서나 임상적인 경계에 있어서 우리는 아주 엄격하게 분석적 경험에 있어서의 대체 즉 의미를 향락으로 대체하는 것 같은 역설처럼 보이는 질서들을 구분하고, 미늘을 벗기고, 풀어내려고 하며 그럴 때 무의식은 그 영역이자 동시에 흔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적 노선과 실천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 라깡” 즉 1970년 이후의 라깡의 가르침의 지점에로 프로이드적 발견의 단면으로 이끌어간다.       주체가 없는 지식   프로이드적 발견으로부터 시작하자. 그것은 한 주체가 증상을 제시하며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불평하기 위하여 그것에 대해 말하며,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것은 불가항력으로 실언이나 실수같이 그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확인에 기초한 것인데, 또는 그 주체는 꿈을 꾸며 농담을 하며 주체 스스로가 그로부터 오는 것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는 그 확인에 기초한 것이다.   프로이드는 꿈, 농담, 실언, 실수에 주목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 현상들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고 증상과도 같은 구조와 인과관계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들의 구조를 밝히면서 프로이드는 증상과 무의식의 구조를 발견한다. 무의식의 소산들인 이 현상들에 대해 그는 그 해독이 가능하다며 하나의 해석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들은 또한 주체에게 강요하며 주체의 통제나 의지를 벗어나게 한다는 점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 주체가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은 그가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느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주체인 나로서 볼 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다. 이 현상들을 프로이드는 말과 꿈의 이야기와, 자유연상을 통하여 접근한다. 그리고 라깡은 “무의식은 말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말은 말하기 하는 것이고 그것은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 무의식은 어떻게 말하며 무엇을 말하는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 말은 라깡이 우리에게 “샹폴리옹 같은 방법”인 프로이드의 해독법을 따라서 무의식이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것을 공식화시킨 것인데, 거기에서 라깡은 그것은 시니피앙과 그것들의 결합, 다른 말로 언어의 구조, 은유, 환유의 법칙들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샹폴리옹과 같은 방법”, 이 말은 기록에 관계하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무의식의 문자와의 유관성을 검토하게 한다. 각자는 무의식의 형성의 프로이드적 이미지가 풀어야 할 그림수수께끼와 같다는 것을 안다. 그림수수께끼는 필적이며 스스로 읽지 못하는 것이고 해독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림수수께끼에 있어서 이미지는 시니피앙과 같으며 이는 또한 시니피에와는 관계가 없다. 예컨대 물양동이인 소(seau)의 이미지는 시니피앙으로서 음소인 “so”의 물질적 지지이며 이는 단어의 구성에 있어서 그러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또한 멍청이 소(sot)가 될 수도 있고 약동(saut)이 될 수도 있고 또다시 양동이(seau)가 될 수도 있으며 도시 소(Sceaux)도 될 수 있다.   지나는 길에 일본어가 한자를 音讀으로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언급하여 두자. 이것은 의미론적인 가치와는 무관하게 글자로서 음소를(그들의 중국어 읽기) 나타내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같은 중국어를 이용하여 프랑스어를 쓸 수 있듯 이 글자들을 이용하여 일본어를 쓰고 글자를 바꿔 쓴다. 이 필적은 정확하게 문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어준다. 문자란 의미작용으로부터 떨어진, 시니피에로부터 떨어진 것으로서의 시니피앙이다. 그리하여 필적은 해석과 해독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라깡이 그의
4    라캉 검색중 비교적 잘 요약된 자료 댓글:  조회:1078  추천:0  2019-02-02
정신분석학과 언어철학   인간사랑 간 김형효 저 중에서 Note     정신분석학에서 인간은 일상적으로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연관을 맺고 그렇게 사는 것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곳'un Autre Lieu에 있다. 그러면 그 다른 곳이 무엇인가? → 정신분석학의 연구과제   ▷ 프로이드 : 심적 체계를 Helmholtz(에너지 항존법칙)의 에너지 양식 위에 기술하려고 시도 ▷ 자크라캉 : 언어의 법칙으로 프로이드에게로 복귀   라캉의 세계에서는 과 의 차이는 원칙적으로 환상   ▷ 합리적인 진술도 '증후'symptome가 숨어있고, 모든 자아는 그런 증후로서 구조화되어있다 ▷ 인간 : 형이상학적으로 아픈 동물(Hegel), 모든 인간은 다 정신의 병적 증후를 지니고 고통스러워 함(라캉) ▷ 의식 : 무의식적 구조에 의하여 조종되는 허수아비 혹은 도구에 불과 → 서양철학사에서 힘차게 내려온 모든 의식의 철학은 사상누각이거나 신기루. '나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생각되어진다.' 즉 의식이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확신에 불과함 ▷ 욕망 : 인간에게 나타난 모든 대상은 인식론적 대상이기 이전에, '욕망의 원인'la cause de desir이 된다 (신도 절대선도 욕망의 대상) ▷ 원억압 : 욕망의 실현은 운명적으로 불가능. 인간은 근원적 욕망의 좌절에 의한 생애의 초기단계에서 이미 '원억압'le refoulement originaire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갖게 됨. 원억압은 도덕적 의식보다 늘 선행. 어머니의 젖가슴이 아기의 입을 성감대로 변형시키는 순간, 이미 아기는 무의식과 원억압을 준비 ▷ 무의식 : '동물에게는 무의식이 없다', '언어활동은 무의식의 조건이다', 라캉은 이와 같이 말하며 무의식을 동물적 본능과 혼동해서는 안되며, 무의식이 언어활동의 조건이라는 것과 혼동해서도 안된다고 함. 그는 인간의 언어활동이 없다면, 무의식도 존재할 수 없다고 봄.   ※ 신생아는 어머니와 최초의 접촉을 통하여 어떤 표상(상상)을 갖는다. 그러나 그 최초의 성적 표상이 오래가지 않고 다음에 올 '표상' 또는 '상징'에 의하여 '억압'을 받는다. 최초의 '성욕적 표상과 지각'은 장막 뒤에 감추어지고 만다. 그 감추어진 것과 감추어지게 하는 것 사이에 장벽과 울타리가 쳐진다. 그 장벽 이하가 바로 '무의식'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원초적으로 성욕과 관계된다. 무의식은 끊임없이 분출할 기회를 찾는데, 그 무의식이 솟아나오는 방식이 언어학의 기본법칙에 따른다.   라캉이 보는 언어의 기본법칙   ▷ 能記(記標)le signifiant : '구조에 의해서 연결된 언어활동의 물질적 요소들의 전체'로 정의, 즉 능기는 진술의 물질적 토대. 同時的, 계열체적, 변별적 : 음성, 글   ▷ 所記(記意)le signifie : '진술 속에 서술된 경험의 의미'로 정의. 通時的, 결합체적 : 의미   ◈ 소쉬르의 공식 은 라캉에게도 적용되지만, (/)의 의미는 다름.    → 소쉬르 : 자의적 관계    → 라캉 : '능기와 소기가 잘 대응되지 못하게 하는 '차단과 저항의 선, '무의식의 벽', 즉 '소기의 억압'을 뜻함          * 무의식의 장애 때문에 인간의 언어활동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없음. ※ 소기와 능기는 1:1의 단순관계를 맺는 것만이 아니고, 하나의 소기(개념적 의미)는 여러개의 능기의 연쇄적 구조에서 겨우 나타날 정도이며, 그 반대로 하나의 능기가 여러가지의 소기로 분열되는 경우도 있음. 그래서 하나의 문장 속에 소기가 정직하게 그대로 표출되지 않음. 무의식의 능기는 소기와 연결되지 못한 채 소기를 떠나서 떠돌고 있음. 그래서 라캉은 '떠도는 능기'le signifiant flottant라고 함. 즉 능기는 소기와 분리되어 주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작용함.      의식이 그런 문자와 소리를 내지만, 의식 자신은 자기가 왜 그런 표시를 하는지 모름. Ca는 '주체가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장소'에서 생각하고 있음.      부부의 성교를 아기가 옆에서 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줄 전혀 모른다. 그러나 그 성교행위가 아기에게 전혀 소기적 의미를 지니지 않더라도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능기가 되어 아기의 무의식에 깊숙히 박히게 됨.   무의식의 언어활동에 대한 해석   ▷ 은유법 → 압축 la condensation : 무의식의 세계(꿈 등)에서 응축되어서 간단하지만 대단히 내포가 복잡한 언어로 나타나는 것(꿈에서 나체 → 도덕적 수치감) ▷ 환유법 → 치환 le deplacement : 환유법 특유의 구조 상 부분이 전체를(그 반대의 경우도 있음) 의미할 때를 말함(환자가 맛는 단내 → 과거의 마음의 상처)   ※ 정신분석에서 가능한 증후는 - 정상이든 병적이든 - 언어활동의 구조와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진단적 지표   ※ 알퐁스 드와렌스는 '무의식과 철학적 사유에 관하여'에서 인간의 언어활동의 특수한 기능은 어떤 것을 가리키기 위하여, 그 어떤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대체함으로써 어떤 것이나 사물을 환기시키는 일을 한다고 지적. 이는 즉 '부재의 밑바탕에서 자기의 현전을 환기시키는 일'임.       드와렌스는 프로이드가 서술한 Fort-da의 놀이가 엄마의 부재와 현전이라는 현실로 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기능을 행사하는 언어활동의 탄생을 뜻한다고 봄          * 18개월 된 아이의 Fort-da 도표              체험의 상상        치환 혹은 압축      의     미       아이의 표정              엄마의 부재           O (Fort)          멀리, 떠난      무표정, 슬픔            엄마의 현전           A ( da )          여기, 자!        기쁨 , 인사       이와 같은 Fort-da의 실례는 인간이 체험의 세계를 떠나, 상징의 질서, 언어활동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비로서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해짐을 보여준다.       상징적 언어의 등장으로 인간은 체험의 상상을 영원히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시키고 만다. 인간의 체험세계의 상상은 어쩔 수 없이 억압을 받아야 하고, 그 억압은 무의식의 시작이며, 그렇지 못하면 아이는 객관의 세계를 의미화하지 못한다. 이른바 정신병의 세계로 빠져든다.     ▷ 상상과 체험 : 어쩌면 무의식에 묻어두어야 할 금단의 열매일지도 모름   ▷ 언어활동 : 소쉬르가 말한 것처럼 대립관계, 관여적 변별관계를 떠나서 성립할 수 없음.       → 내가 '나'이기 이전에 '너'와 '그'가 있어야 하고 대립이 전제되어야 함. '非我'가 없으면 '자아'가 출현하지 못함.   ※ 언어활동이 인간 정신에 부여하는 3가지 기능      ① 자아와 타인의 구분    ② 안과 밖의 구분    ③ 현실과 진술의 구분      언어활동이 주는 기능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접하게 되고, 그 세계에 접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원초적 뿌리인 의 세계에 재귀하려는 모든 의도가 영구히 차단된다.      남녀간의 사랑도 물론 성교의 행위와 결부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미 원초적 이 아니고, 언어처럼 과 함께 표시되는 사회관계의 이기 때문에, 언제나 자동적으로 사랑과 증오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표출함.   ♧♧♧♧♧♧♧♧♧♧♧♧♧♧♧♧♧   주체의 형성 - 거울의 단계(상상적인 것)   거울의 단계 : 자아가 인생의 초기단계에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알려주는 의미   ○ 주인공 : 생후 6개월~18개월의 유아 ○ 무   대 : 거울 앞   주인공 : 거울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보고 대단히 즐거운 표정을 지음   해설 : 유아가 거울 앞에서 거기에 비친 영상을 보면서 근본적으로 그 영상이 자기 것이라는 '동일화의 경험'을 갖게 됨. 유아는 언어활동의 세계에 들어가기 이전이다. 따라서 에 있는 유아는 언어의 매개에 의한 타인과 자기와의 관계를 짓지 못한다. 거울의 단계 이전의 유아는 자신의 몸이 '조각조각 해체'되어 있는 '환상'을 가졌는 데, 거울을 봄으로써 자기의 몸을 '하나의 전체성'으로 통일되게 생각하게 됨.   결론 : 인간에게 최초로 주어지는 것은 '조각난 몸의 고뇌'다. 거울의 단계에서 이 고뇌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 아이는 대단히 즐거워한다. 이른바 주체가 형성되는 '거울의 단계의 기능은 우리에게 있어서 유기체와 그 현실과의 관계, 즉 내면세계와 주위세계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영상의 기능의 특수한 경우로서 판명된다.'   ※ 거울의 단계의 3가지 절차      ① 거울 속 영상을 실재적 존재로 지각 : 잡으려 하고, 그 영상을 다른 존재의 것으로 여김.    ② 영상을 실물이 아님을 인식 : 거울 뒤로 가서 실물을 찾으려 함    ③ 그 영상이 결국 자신의 반영이라는 것을 암    → 에 의하여 자신의 몸을 비추는 주체의 동일성을 확립   이러한 과정은 거울이 아니라 아기가 다른 아기를 밀쳐놓고서 자기가 넘어졌다고 우는 것과 같다.(二者的 관계) ⊙ 라캉의 이러한 분석은 주체의 구성이 순수통각의 행위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고 신체의 영상을 필연적인 매개체로서 필요로 함.     → 데카르트에서 후써얼에 이르는 모든 전통(의식의 철학)이 무더기로 거부당함     * 라캉의 사유체계를 따라가면 주체란 스스로 잉태한 산물이 아니고 바깥에서 온 것임.   ▷ 정신병 : 에서 이루어진 자기의 원초적 통일이 서서히 붕괴되고, 자기 몸의 영상을 해체시켜 나가는 과정을 밟게 됨. ▷ 사춘기 : 자기가 아닌 자기의 우상의 몸짓과 표정을 연출 → 가 무의식 중에 지속되는 뜻 ▷ 紋身, 할례, 刺身 : 공격성과 구조적인 맥락을 함께 함. 아이는 인형을 갖고 놀다가 머리를 자르고 눈알을 뽑고 배를 후빈다. 이와 같은 '공격성'은 자기 몸의 영상이나 타인의 몸의 영상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조각난 자기 몸의 환상'과 같은 구조를 지님. ▷ 공격성 : 남에 대한 공격이나 자해행위나 다 같은 공격성이다. 매저키즘(피학성음란증)이나 죽음의 본능도 공격성의 변형임. 공격성은 '조각난 몸의 옛 환상'을 지니고 있는 무의식에서 나옴. 그것이 에서 극복됨. 이때에 누구든지 '나르시스적'(자기편애적, 자아도취적) 환상에 빠짐. ▷ 나르시즘 : 자아도취와 자기소외가 동시에 연결되는 매듭, 갈림길에 구조적으로 서 있음. '바로 이런 매듭에 나르시스 신화가 본질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죽음에의 경향과 영상의 관계가 놓여 있다.'   상상적인 것 l'imaginaire   ▷ 상상적인 것의 본질 : 二者的 관계   거울의 단계는 자기 신체의 통일성을 지각한 '자기동일성'을 이해하는 단계이지만, 그 단계는 타인을 배제하는 '자기동일성의 형성' ▷ 나르시스적인 동일성 상상적인 것은 자기와 진짜 다른 것, 영상과 자기의식과 구분이 형성 안된 최초의 연속성의 심적 상태임. 二者的 관계는 유아가 자기자신 또는 자기 어머니 만이 이 우주의 모든 것이라고 여기는 환상을 말함.   ▷ 외디푸스 컴프렉스le complexa d'Oedipe : 二者的 관계에서 三者的 관계로 심적 상태가 이행할 때 발생   인간이 사회생활을 수행해 나가기 위하여 이자적 관계가 극복되지 않으면 안됨 이때 가 제 삼자적인 관계인 le symbolique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됨.   ♧♧♧♧♧♧♧♧♧♧♧♧♧♧♧♧♧   아버지의 이름 - 자아의 균열(상징적인 것)   三者的 關係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주체는 분열을 일으킴. 즉 주체의 심적 상태와 언어활동의 상징적 연쇄사이에 금이 감. 즉 과 사이에 '입벌림'이 일어나게 되며, 후자가 전자를 이기는 단계가 생김.   라캉에 의하면 그런 '틈', '균열' 또는 '입벌림'으로 분열이 생김으로써 무의식이 구조화된다고 함.   위의 표에서,   ⊙ S : 주체(sujet)를 뜻함. 동시에 id(Ca). 주체 S는 의식 상에 떠오른 주체라기 보다 id의 주체 ⊙ ⓐ'utre : 거울 속에 비쳐진 자기 모습의 타인적 신분 → 상상적 관계에 의하여 자아 a 가 됨 ⊙ 자아 a : a는 나르시스적 상상적 관계가 동시에 다른 것(타인: 거울 속의 타자)에 의하여 자아를 보기 때문에 소외된 자아의 뜻도 지님 ⊙ A utre(타인) : 상징적 관계에서 등장하는 , 사실 상 주체가 상상적 관계의 노예가 되어 있는 한 상징적 질서에 속하는 절대적 타인(Autre)가 자기를 명령하고 자기를 실재로 만들고 있음을 알지 못함. ⊙ 화살표/구성과 명령의 관계, 점선/무의식, 실선/의식 : 개체발생은 동물과 인간을 구분짖게 하는 척도인 속에 자신을 가입시킴으로써 가능함. ⊙ 타인으로서의 에서 자기의 정당한 正體性이 확립 ⊙ 주체(아기)는 이라는 관계, 그리고 그에게 붙여진 이름을 통하여 상징세계에 관여 ⊙ '인간은 능기의 원인이라기 보다 능기의 결과다.' 아기는 가정과 사회가 포괄하고 있는 문화가 주는 가 만든 존재. 그 능기를 거부할 때, 정신적 질병을 앓음   능기가 인간을 만드는 방법   ⊙ 부모가 아기의 이름을 부름 → 아기는 삼인칭 고유명사에 자기를 일치시킴 → 그래서 자신을 객관화시킴 → 그리고 주위의 남들이 ~의 아들, ~의 딸 이라고 부름 → 주체는 자기의 개체발생을 분명히 하게 됨 ⊙ 여기에서 와 사이에 균열 발생 ⊙ 균열은 와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간섭에서 생기고, 그런 균열에서 이 가능 ⊙ 는 스스로의 에서 오는 것이고, 는 타인이 붙여준 에서 옴 ⊙ 는 그에게 으로 부터 생기는 것이기에 그 주체는 타인들에 의하여 명명된 사회적 역할과 기능의 분배와 다르지 않음 ▶ 은 주체가 타인과의 때문에 자아를 억압한 대가로 주어짐. 이 억압은 이요 근원적인 며, 욕구불만을 필연적으로 야기   아버지 :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 二者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도록 하며, 三者 관계를 가능케하는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존재   ▶ 외디푸스 컴플렉스란 모든 아기가 성욕과 리비도를 어떤 규법에 종속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의무를 뜻하고 그 의무는 인간화의 첫걸음 ▶ 아기는 二者的 관계에서 어머니의 모든 것이기를 바란다.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결핍을 보충하고자 함. 어머니에게 결핍된 것은 le phallus임. ▶ 이 남근은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닌 나 임. ▶ 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스스로 남근에 자기 자신을 동일화함 ▶ 아이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주체로서 존재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욕망의 연장이거나 하나의 으로 혹은 으로 수동적, 종속적으로 존재하기를 바람. ▶ 아버지는 아기에게 어머니의 과 동시에 이 됨을 금지시키고 어머니에게도 그렇게 생각말도록 함. ▶ 이때 는 권위이며 법 ▶ 거세 : 아들이 어머니와 이자적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면 은 아들에게 위협이 되고 그 위협의 거세의 공포로 나타남. 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아기는 과 그 에 굴복함 → 어머니에 대한 나르시스적인 사랑에 종지부 ▶ 외디푸스 컴플렉스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에서 세계, 즉 의 세계로 이행케 하는 드라마   정신질환   ① 신경증 la nevrose : 상징적 세계와의 관계를 마다하고 주체가 상상적 세계로 돌아가려하는 심적 상태     ▶ 상징적 의미의 세계를 자기화하는 데 큰 혼란을 빚음 → 치료는 주체로 하여금 말의 정상적 진술세계로 되돌려 놓는 것   ▶ 히스테리(여성에게 주로 나타남) : 자신의 성을 완전히 인정하고 감수하는 데 미치지 못하여 생김. 거세된 성기를 가진 여자임을 수용하는 것을 거울의 단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머니에게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자신의 이미지를 보상적으로 주체화하려함. 즉 그녀와 일치될 수 있는 동성의 대상(거울 속의 이미지)을 찾음. 가급적이면 사랑을 담뿍 받는 여자를 선택하고, 자기 동성의 대상에게 보내지는 남자의 경의를 자신이 받는다고 꿈을 꾸고,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를 제공해 준다는 환상 속에 삼. 그러면서도 연속적인 불만 속에서 삼. 일반적으로 히스테리 증세는 삼각관계의 구조를 이룸. 히스테리의 무의식적 구조는 그녀가 때 스스로 거세된 존재임을 자인하여 아버지에의 복종으로 향하지 않고 어머니의 남근임을 고집한데서 옴.   ▶ 강박증세(남성에게 주로 나타남) : 무의식 구조에서 어머니에게 너무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 자기가 진실로 어머니가 원했던 남근이었다는 과잉적 자신감이 응결되어 늘 아버지에 의한 의 공포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의 필연성을 요구함. 그 공포를 잊기 위하여 미친 듯이 일에 열중함.   ② 정신병 la psychose : 원억압이 완전히 실패하여 상징의 세계에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     ▶ 신경증에서는 이 이루어졌지만 억압된 내용이 강렬하거나 의 금지가 약할 때, 억압된 내용이 분출됨. 그러나 이 무서워 억압된 내용을 속임수나 위장을 통해 나타냄.   ▶ 정신병은 전혀 원억압을 받으려 하지 않고 상징적 언어의 수용을 거부하는 배제로 나타남. 따라서 정신병 환자는 어떤 나 을 아예 모르고 영원한 의 세계에 머무려고 함. 그에게 있어서 과 이 일치할 뿐이며, 갈등도 없음.   능기의 기호학 인간사랑 간 김형효 저 중에서 Note   '能記는 그 본성 상 없는 것의 상징이란 점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단위다.'   무의식적 자아는 의식이나 초자아에 의하여 인정되지 아니한 적 충동을 교묘한 수단으로 엄폐하면서 나타남   '정신분석가는 능기와 소기의 근본적인 구별에......자신을 도입시켜야 한다. 그리고 서로 겹쳐지지 않는 관계로 그들이 조직한 두 망과 함께 훈련하도록 시작해야 한다.'   □ 능기(기표)의 망 : 언어활동의 물질적인 것의 同時的 구조, 변별적 대립의 관계에 의하여 정립 □ 소기(기의)의 망 : 구체적으로 무의식이 발음한 진술들의 通時的 집합, 즉 소기는 시간의 차이에 따라 나타난 진술 속에 담긴 의미의 통일체    → 소기는 많은 능기의 기호가 지닌 법칙을 분석함으로써 나타남   ※ 소기의 의미(개념의 통일)도 능기의 구조적 문법을 모르면 그 의미가 해독되지 않음   환유와 은유 : 능기적 구조가 형성되는 무의식의 문법은 은유 그리고 환유임.   '언어활동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들의 연쇄수준에서 발견되어지는 결과, (다시 말하자면) 환유la metonymie와 은유la metaphore가 구성하는, 즉 소기를 생산하는 두 개의 측면을 따라서, 능기 속에 결합la combinaison과 대체la substitution의 이중 유희에 의하여 결정되는 결과를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결과는 주체의 제도화를 위해서 결정적이다.'   위의 표에서 A와 B는 두개의 진술, I는 두 진술을 연결하는 공통적 요소   @ 은유법 la metaphore   □ 압축, 대체, 동시성 : 압축(A 욕망, B 불타다) = I 화택  □ 라캉의 은유법의 공식 :  f (S'/S)S = S (+) s  □ "그의 다발은 인색하지도 증오를 품지도 않았다"(V.Hugo) 에서 은유는 다발이라는 개념에서 이루어짐. 이 개념의 능기는 성경의 룻의 남편 보아즈(다윗의 조상)을 대체하고 있다고 함. 결국 보아즈가 다발의 소기인 셈임. 그러나 그 인명은 다른 능기들의 연쇄에 은연 중에 연계됨. 보아즈는 주인, 아버지, 남근, 다산적 정력 등으로  □ 다발('S)은 (/) 아래의 예전 능기인 보아즈(S)를 지님. 옛 능기 는 새 능기 의 소기 역할도 한다.  소쉬르에게 임. 그것은 f=S(1/s)로 변형가능, 이것은  f (S'/S)S와 같음. 여기에서 S (+) s는 능기와 소기 사이의 (/)가 돌파되었음을 의미  □ 아랫등 선골에 통증을 느끼는 환자가 자유연상에서 십자가(Kreuz)라는 단어를 반복 사용. 독일어 Kreuz는 도덕적 고통이라는 의미도 지님.  □ 즉 선골의 통증('S)은  Kreuz가 지닌 이중성 때문에 도덕적 고통(S)를 대신하여 신체에 나타남. 그에게 도덕적 고통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그것이 십자가의 무게로 인하여 통증을 느끼게 함   @ 환유법 la metonymie   □ 치환, 결합, 통시성 : 지방이름(A) + 술(B) = 샴페인(I)  □ 라캉의 환유법의 공식 : f (S...S')S = S (-) s  □ 잔을 들다는 술을 마신다의 의미임. 이 경우 술이란 내용물이 잔이라는 그릇으로 치환, 그 까닭은 술잔과 술의 인접성의 관계  □ 공식의 (-)는 능기와 소기가 돌파되지 못한 상태를 뜻함  □ 프로이드의 경험 예: 그가 꿈꾸기 전날 밤, 친구가 와서 그가 너무 환상에 빠졌다고 질책. [꿈] 발견자가 되겠다는 그의 생각은 책에 대한 열정과 깊은 관계 → 열정은 그가 5살 때 책을 한장씩 찢던 쾌감과 연결 → 이 기억은 능기적 연쇄성으로 추후의 기억으로 연결 → 좀벌레로 가득한 식물표본의 청소작업 → 벌레는 책벌레 혹은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으로 자신을 연상 → 이 벌레는 어린아이의 남근 → 프로이트의 무의식에는 벌레가 책을 갉아 먹듯 어머니를 핥아먹는 욕망  □ 여기에서 왜 그는 책과 그의 어머니를 연상하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에게 아끼던 성경책을 줌 → 그는 그것을 어머니의 유산으로 생각 → 그는 어머니를 이미 여의였다. 즉 그 꿈을 통하여 능기와 능기를 전전하다가 어머니와 결합하는 최초의 능기에 다다름. 그러나 어머니는 부재고 욕망에서 출발한 욕구는 많은 다른 능기들을 접합시킴으로써 발견자의 꿈으로 이어짐.    ※ 은유법의 선골의 통증은 도덕적 고통(S)를 풀어주면 선골의 통증(S')는 사라지지만, 환유법의 프로이드의 꿈은 상상적 이자관계의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에서 최초의 능기가 어머니를 찾지 못하자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능기의 항해를 계속하는 것임.   정신병의 능기적 기호체계   신경증이 원억압과 관계된다면, 정신병은 배제 또는 배척과 관계됨 정신병적 증후는 아예 상징세계와 그 능기들을 배척해서 그 세계에 대한 접근의 가능성이 거의 차단된 심적 상태   ▷ 정신착란증 : 하나의 능기가 여러개의 소기를 지시하는 증후 □ 두 술꾼이 만취 상태에서 라고 불리는 경찰에게 구타를 당함. 다음 날 두 술꾼은 어젯밤의 일을 전혀 기억치 못함. 몇달이 지난 후 한사람이 거리를 나갈 때마다 새떼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을 일으킴. 이 경우 경찰에게 폭행당한 기억은 배제되고, 지각하는 거리의 모든 대상(소기)들이 라는 능기로 나타남.  ▷ 정신분열증 : 하나의 소기에 여러개의 능기가 접목되어 나타나는 증후 □ 헤겔의 개념에 따라 즉자가 대자를 매개로 하여 즉자대자로 종합하면서 주체성이 정립되는데, 정신분열증 환자는 타자(대자적)의 능기에 의한 매개를 마다하고 모든 능기를 스스로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주체(s) 속으로 끌어당기고 맘. 그래서 주체의 과대망상증이 생겨 자신을 절대화함.   바르뜨가 말하는 능기와 소기에 대한 라캉의 인식론적 특징   ① 능기(S)는 총괄적이며 다양한 수준에 속하는 은유적 연쇄에 의하여 구성되 있음. 그런데 능기와 소기는 떠도는 관계 속에 있고 그것들은 어떤 정박지점에서만 일치함. ② 능기(S)와 소기(s)는 분리의 막대기에 의하여 나눠지고 있는데, 그 분리 막대기는 소쉬르의 애매한 막대기와 달라 고유한 기호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 그 가치는 소기(s)의 억압된 상태를 표상함.   의식의 심급에서 말하여진 진술에서 우리는 쉽게 명백한 소기를 파악할 수 있다.그러나 무의식 차원으로 내려가면 그렇게 간단히 소기가 의미론이나 통사론의 차원에서 쉽게 잡히지가 않는다. 정신분석가들은 꿈의 진술에서 여러가지 능기들의 연쇄를 구성하고 의미파악에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꿈의 소기다 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고, 소기의 개념과 의미가 언제나 또 새롭게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일정한 언어개념이 다 담기지 않는 잉여성을 발견한다. 자꾸 미끄러져 가면 한결같이 최초의 능기의 남근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능기이지 소기는 아니다. 그것의 소기는 속에 파묻혀 있다. 속에 능기를 정박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 대한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는 에 속하지 않고, 의 알 수 없는 세계에 관계된다.   라캉은 분석가는 마치 과 유사해서 의 세계의 흐름에서 , 그의 낚시줄이 고기의 수영법과 강물(소기?)을 전혀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 △ → $ : 소기의 미끄러짐, 이 방향의 선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 (통시적)   □ $ : 근원적인 소기가 에 속해 있어서 인간에게 막혀 있다는 뜻  □ S → S' : 능기의 연쇄성. 이 연쇄성의 선분은 소기의 타원을 가로질러 갈구리 모양에 걸리면서 통과. 두점이 만나는 곳이 (동시적)  □   □ 무의식의 궁극적인 소기는 영원한 미제처럼 보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안의 문제지, 은 물-자체처럼 불가지인 것처럼 보임. 그러한 한에서 라캉의 철학은 우리가 무의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기호화가 가능한, 상징화가 가능한 영역 밖에 없음을 알려줌.   ※ [S/s]라고 일반적으로 기호화하지만, 모든 무의식의 기호는 [S/s(s1,s2,s3.....sn)]. 그러므로 소기의 전체적인 집합은 사실 상 끝없다. 즉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라캉의 인식체계는 무의식의 범주에 있어서 과 의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즉 언어의 상징기호가 안된 세계나, 될 수 없는 형이상학은 인식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언어활동으로서의 무의식   인간사랑 간 김형효 저 중에서 Note       이 명제는 와 의 사실적 분리를 뜻함.   사유와 존재의 관계     ◎ 이 이드가 있는 곳, 여기가 무의식의 지대  ◎ 이드는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이 id의 생각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 ◎ 이드의 생각인 무의식은 무엇인가? :   ◎ 타자는 내 욕망이 겨냥하는 대상이라기 보다, 오히려 주체의 무의식이 말하는 장소 : 즉 타자는 무의식이 나타나는 장소  ◎ 자의식은 자기 자신을 에서 사는 로서 스스로 직관(Hegel)   라캉의 타자의 개념   ◎ 언어활동, 능기의 장소, 상징적인 것을 뜻함.   ◎ 환자와 정신분석가가 분석적 대화를 하는 상호주체성의 장소.   ◎ 무의식의 능기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주체 속에 타자인 한에서 곧 무의식임.   ◎ 하나의 진리를 형식화하는 것이 문제되는 때에 분석에서 환기된 제 3의 증인을 타자로 의미하는 수가 있음.   ◎ 어머니나 아버지를 뜻함.    위의 다섯가지 타자를 다음 도표에 대입하여 보면,    a 나 a'즉 자아는 주체나 타자가 아니고, 가상즉 자아가 하는 역할의 배역에 가까움   ◎ 를 연결하는 자아는 의 편에 서 있게 되고, 자기가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주체는 즉, 타자와의 직접관계 속에서 자기정체성을 취득. 관계는 상상의 관계, 의 축은 상징의 관계. 는 우회도 없는 간접매체도 없는 교제관계를 표시   ○ 정상인 : 자기 자신의 존재의 능기를 그의 진술로 부터 만듬. 즉 그가 사물들에 관하여 말하면 그는 사물들을 자신으로 부터 구별함.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할 때도 그는자기 자아를 언어활동에 의하여 매개된 (타자로 부터 매개된) 자기 주체성과 동일하게 하려고 애쓴다.   ○ 정신착란증: 이 환자는 진술을 할 때 자신에 관하여 마치 타자이듯이, 즉 사물들 사이에 있는 한개의 사물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자기주체성을 해체시킴. 대상과의 관계에서 모든 을 상실하고 그의 진술은 타자에 의해서 매개된 자기 주체성을 표현못한다. 그가 기술하는 자아(a)는 하나의 타자고 하나의 대상이기 때문에 의 결합의 관절이 부서지고 마찬가지로 대화자의 측면에서도 의 관절이 파괴된 것으로 그는 타인을 생각함. 그에게는 오로지 의 , 의 축만 존재함. 의 관계는 증발하고 주체성을 형성케 하는 란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일인칭/이인칭/삼인칭 모두구별없이 화.   ♣ 착란증은 하나의 능기가 일정한 개념(소기)에 연결되어 있지 못하고 나타나는 모든 대상들을 그 능기에 결부시킴. 앞의 예처럼 가해자가 라고 불리는 경찰인데 가해자를 라는 하나의 능기에서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고 건물, 자동차, 지나가는 사람 등 모두가 가해자라는 소기가 되어 다가옴. 착란증은 자아(a)가 타자로부터 능기를 받되 그 능기를 변별하지 못하고 를 와 합치되는 것으로 착각함.   ○ 정신분열증 : 환자는 자아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 자아가 타아와 매개되어 타자(A)로 부터 상징을 받아 타자의 매개를 통하여 주체성이 사회적으로 형성됨을 모른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정상상태에서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주체(S)를 절대화하고 극단화하여서 마치 자기 주체가 신성불가침의 것인양 착각함. 증세는 축에서 일어남.   ♣ 분열증은 그 타자(대자적)의 능기에 의한 매개를 마다하고 모든 능기들을 스스로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주체(S) 속으로 끌어당기고 만다. 그리하여 주체의 과대망상증이 생겨서 자신을 절대시함.     라캉;라깡;Lacan:J.Lacan;Jacques Lacan" 관련 글 목록 2014/01/18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2) 2013/04/18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0) 2013/03/14 지젝의 글을 읽으며... (0) 2013/02/22 How To Understand 라캉이라는 흐린 시선으로 (0) 2009/12/14 읽지 못하는 책들... (10) 2009/09/11 완물치지 (6) 2009/01/14 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마지막 (1) 2008/03/12 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12 (1) 2008/03/03 불온한 글... (0) 2007/05/27 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07 (1) 2007/05/24 사랑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03 (5) 2007/04/24 라캉을 읽으며 (1) 2006/06/27 성(Sex)에 대한 잡글들 (1) 2006/06/15 녹슨 시절 -12 (3) 2006/04/15 라캉의 공식 중 (1) 2005/12/26 라캉의 재탄생 (2) 2005/04/17 덮은 책 위를 스치는 어느 날의 음악 (2) 2004/07/01 책들... (2)
3    라캉의 언어심리 [스크랩] 댓글:  조회:1150  추천:0  2018-11-13
라캉의 언어심리    1. 프로이드와 라캉 프로이드는 신경증, 히스테리로 치료를 위해 정신분석을 시작했다. 따라서 정신병 치료에 연구의 주목적이 있었다. 라캉은 프로이드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라캉도 정신병과 관련해 연구를 시작했으나 정신병 치료와 무관한 철학 사상으로 발전시킴. 따라서 라캉의 연구는 정신병 치료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라캉은 1936년 거울단계에 관한 최초의 이론을 제시한 이후 언어학 쪽으로 관심 이동했다. 정신분석학을 육체와 관련된, 신경 생물학적 연구의 한 분야로 간주하려는 경향에 반대하면서 구조 언어학을 적극적으로 정신분석에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이때 라캉은 소쉬르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니까 라캉은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심리학)을 결합시켜 현대인간의 삶이 갖는 특징을 해명하려고 한 것이다.   2. 꿈 분석의 한 사례 프로이드는 꿈이 무의식적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주로 두 가지 작업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하나는 압축이고 다른 하나는 전치이다. 꿈의 구체적 내용을 꿈 내용, 그 꿈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원래의 욕망을 꿈 사고라고 한다면, 이 꿈 사고의 풍부함은 검열 작업 때문에 그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매우 빈약한 내용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압축의 결과이다. 압축이란 꿈 사상(사고)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 버리는 것이다. 전치는 꿈 사상을 표현하는 꿈 내용의 여러 요소 가운데 검열 작업을 피하기 위해 중요성의 강도가 차지하는 위치를 이동시키는 작업이다. 무의식은 의식으로 떠오르는 경우 일정하게 왜곡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욕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석이 필요하다. 라캉의 경우에 혁신적인 측면은 이러한 분석의 중요수단을 언어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라캉은 정신분석에서 언어를 전면화하면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주장했다.   3.구조주의 언어학의 몇 가지 특징 첫째, 기표가 기의와 자의적이어서 필연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한 기표와 다른 기표간의 관계 역시 기표체계를 떠나 외부의 실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각 기표들 간의 관계는 서로의 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기표와 기표간의 관계는 차이에 있다. 차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내부의 상호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둘째, 차이의 강조는 기의보다 기표를 강조하고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이다. 내용이나 의미에 해당하는 기의의 차이가 아닌 물리적 기표의 차이를 통해 서로를 구별하므로 기표가 기의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그렇게 되면 언어의 지시성은 무의미해진다. 넷째, 언어에서 내부적인 것이 지배적인 것이 되면 언어를 연구하는 방식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선택과 결합(배열)이 주요한 조작이 된다. 선택은 여러 유사한 기표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며 결합(배열)은 명사에 조사가 붙듯이 접근한 관계에서 서로 결합되는 설질을 뜻한다. 그러한 연유로 선택은 은유적이고, 결합(배열)은 환유적이다. 압축은 유사성(은유)과 관계하고, 전치는 근접성(환유)에 관계한다.   4.라캉의 이론   (1)실재계 현실계는 인간이 직접적으로 인식하거나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재계에 속하는 대표적 두 가지는 개인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생존하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욕구와, 그것의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현상의 세계 즉 사물들의 세계이다. 따라서 현실계란 부분적으로 마주칠 수는 있지만 그 전체로 볼 때나 원래의 모습으로는 감추어져 있는 세계이다. 실재계란 라캉이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적 사항으로 보고 있는 결여의 배경이다. 물론 출생은 결여의 시작, 출발이다. 실재계의 또 다른 흔적은 성감대로, 이는 문화적·사회적 규정에 의해 형성된다. 대상 a - 구체적이고 의식적인 경험에서 인지된 것이 아니라 아직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수준에서 파악된 것이기 때문에 상세한 모습으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2)상상계 자아가 형성되는 영역이다. 대략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나타나지만 그 시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상상계는 상징계에 진입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작용하는 영역이며 인간이 죽는 순간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영역이다. 상상계를 지니고 있어 인간은 불가능한 이상을 갖는다. 상상계는 '거울단계'로 특징지어진다. 상상계를 규정짓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중성과 동일화가 그것이다. 아이는 자신과 자신의 거울이미지를 동일화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관념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는 결여나 상실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소외일 따름이다. 아이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거울의 이미지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며 실물이 아니라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상계는 차이성보다는 동일성에 기초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이는 자신의 자아를 거울상에 비추어 규정한다. 거울상은 내면으로 투사되어 자신을 형성한다. 내면의 자아에 의해 거울상은 전적으로 동화되거나 소유될 수 없으므로 이중성은 남는다.   (3)상징계 아이가 언어의 체계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현실계와의 철저한 분리를 마무리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표는 현실적인 것과의 모든 연관을 끊고 자기 폐쇄적인 영역에 머무는 것이 보통이다. 생물학적 육체와의 연관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분리는 자신의 본능에서 소외되는 것인데 정작은 이를 통해 욕망이 형성된다. 자연의 흔적은 최소화되고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주체로서 남게 된다. 상징계로의 진입은 바로 무의식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은 언어로 대표되는 문화적 체계의 미리 정해져 있는 질서에 따라 욕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무의식이란 원본을 상실하고 언어를 통해 간접적인 매개만이 존재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아이는 언어의 체계 또는 기표의 체계, 즉 상징계에 진입하는 결과로 현실계와 상상계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욕구와 요구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남는다. 이에 따른 상실감 또는 결여감의 자리가 욕망이 위치하는 곳이다. 라캉의 경우 욕구와 요구란 상징계로의 진입 이전의 것이며 욕망은 그 이후의 것이다. 상징계가 상상계와 다른 점은 상상계가 동일시를 원리로 하고 있다면 상징계는 차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2차적 동일시, 즉 상징적 남근과의 동일시를 상징계는 원리로 한다. 현실계를 상실의 자리로 남겨두고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는 것은 자연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아이에게는 사회 안에서 하나의 주체로 살아갈 지위에 이르는 일이다. 상상계에서의 자아는 타인의 자아라고 간주되는 이미지를 따라 이루어진다. 그것은 대상 a를 내면적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상징계에 진입하면 이제 주체는 기표체계를 통해 정립된다. 따라서 주체와 상상적 자아는 분열된다. 이를 통해 이전에 상상적 자아에 의해 파악되던 대상 a 는 상실된다. 대상 a를 다시 규정하자면, 그것은 주체의 분열에서 상실된 대상으로서 상징계에서 언어화된 대상으로 자리 잡지 못하기 때문에, 따라서 무의식화되기 때문에 결코 그 충족을 바랄 수 없는, 끝없이 유예되는 대상이다. 이제 그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을 욕망의 근원이 된다. 아무리 상징계적 거세를 극복했다고 해도 상상계적 요소가 남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다. 프로이드는 인간이 상상계를 떠나와서 인간이 불안하다고 이야기한다면, 라캉은 상상계에 계속 집착함으로써 불안하다.   (4)외디푸스 콤플렉스와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세 단계 ①아이에게 어머니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서 나타난다. ②이내 어머니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존재로서 인식된다. 즉 '남근'을 욕망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따라서 자기가 상상적 남근이 되고자 한다. ③그러나 자신이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없음을 발견한다. 그때 어머니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후의 시기에는 아버지는 상징적 남근으로 등장한다.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사회화는 성숙을 의미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사회화는 근친상간 금지에 바탕을 둔 문명세계로의 진입과 기표체계에 갇히는 것을 의미한다.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극복되는 과정은 욕망의 발생과 억압을 나타낸다. 환유 혹은 전치의식이 보여주는 것은 욕망의 항구성이다. 이는 욕망이 결코 채워지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에 대한 욕망은 다른 사람, 다른 사물에 대한 욕망으로 계속 이동해가지만 그것이 원래 지향했던 욕망의 충족이 아닌 이상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은유, 그리고 응축의식이 보여주는 것은 욕망이 이따금 일정한 대상을 환기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도달되지는 않지만 마치 성욕의 만족에서 순간적으로 체험되는 남근에의 환기 같은 것을 나타낸다.
2    자크 라캉 ㅡ 언어와 무의식 댓글:  조회:1530  추천:0  2018-10-24
자크라캉의 언어와 무의식     자크 라캉 (1901 ~ 1981)    그는 1901년 프랑스 도매상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가 그의 집안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할아버지는 그의 연약한 아버지를 짓눌렀다. 그는 네 아이 중의 장남으로서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였다. 성격적으로 보면, 관계가 단절되어 회복할 수 없으면 앙심을 품음으로써 나르시스적인 취약성을 보였으며, 편집증 환자라는 말을 들었고, 과장적 자아, 나르시시즘적 성격장애를 보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일찍이 소쉬르의 탁월성을 깨닫고 언어학과 기호학적 통찰을 이용하여 전통적인 프로이트 이론을 재정립하는 일에 착수했다. 전후의 소쉬르와 프로이트를 극적으로 개조하며, 라캉은 프로이트의 텍스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정신분석학을 구조주의 노선에 따라 수정한다. 특히 그는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되었다」라는 이론과 「꿈작업(dream work)은 기표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런 놀라운 통찰이 뜻하는 바를 세심히 밝히는 가운데 라캉은 현대 정신분석학을 태동시켰으며 기호학의 제2주자로 부상된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구조가 밑받침이 된다. 먼저 이 세 가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그의 핵심 주장인 「언어와 무의식」에 대해 알아보겠다.    1. (1) 상상계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어린 아기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울리며 반가워한다. 아이는 그 속에 비친 모습을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는데 라캉은 이 단계를 ‘거울단계(mirror stage)’라고 하여 주체의 형성에 원천이 되는 모형으로 제시한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자신의 몸을 가눌 수는 없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총체적이고도 완전한 것으로 가정한다. 이 형태는 정신분석 용어로 이상적 자아(ideal-I)라 부르는데 타자에 의해 보여짐을 모르는 객관화되기 전의 ‘나’에 해당된다. 거울단계는 ‘상상계(the Imaginary)’라고도 한다. 거울단계는 비활동성 혹은 고착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신경증환자는 모두 이 단계에 머물러 자아와 상황을 구별하지 못하고 소외된다. 그는 대상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는 오인 혹은 환상의 단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기에 타자의식이 전혀 없다.    1. (2) 상징계    ‘상상계’는 ‘상징계(the Symbolic)’로 진입하면서 사회적 자아로 굴절된다. 언어의 세계이자 질서의 세계인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거울단계(상상계)는 사라지거나 프로이트의 경우처럼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연결된다.    1. (3) 실재계    라캉에게 ‘실재계(the Real)’는 상상계와 상징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변증법적으로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의식의 출발을 상상계라는 오인의 구조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자아를 완벽하게 조정하는 절대적 주체란 없다. 그러므로 주체의 형성에서 거울단계의 설정은 데카르트의 이성절대주의는 물론이고 실존주의나 현상학이 암시하는 실존적 자아까지도 거부한다. 그들은 모두 이 오인의 구조를 바탕에 깔고 있지 않은 흠집 없는 이성, 혹은 현실원칙에만 굳건히 서 있는 의식의 체계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오인의 구조를 실재계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킴으로써 라캉은 의식이 지닌 환상을 강조하기에 자기의 의견만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독선적인 사람들을 환자의 범주에 넣는다.      2. 언어와 무의식    ⑴ 기표의 물질성    라캉의 이론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은 알다시피 무의식이 언어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의 경험이 무의식 속에서 발견해낸 것은 언어의 구조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진실의 모든 효과는 정신과 아무 상관없이 문자에 의해서 생겨난다.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정신의 허세가 사라지게 되었다. 예컨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살펴보면 모든 면에서 문자에 관한 언급이 나오며, 담론이나 텍스트 구조 속에서 또는 관용어법 속에서 문자가 차지하는 위치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소쉬르가 분명히 한 것처럼, 언어의 구조는 그것을 사용하는 어떤 개인과도 무관하게 사회적 규약으로서, 객관적 구조로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언어적인 기호가 특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기호들 간의 관계에 의해서, 기호들을 조직해내는 고유한 규칙에 의해서이며, 이러한 규칙을 우리는 흔히 언어구조라고 부른다. 여기서 언어가 발화주체에게 봉사하는 다양한 심리적, 육체적 기능과 혼동되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언어와 그 구조는 각각의 주체가 그 정신적 발전에서 언어를 습득하는 순간보다 앞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사용하려는 어떠한 개인도 그 기호들이 조직되는 그 규칙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 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기호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언어적인 규칙들에 의해 정의된다. 따라서 발화하는 주체는 언어의 노예로 나타나고, 나아가 주체는 그 자신의 고유한 이름(기표)을 통해서만 자신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표를 조직해내는 언어구조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한 언어적인 구조에, 즉 기표를 조직해내는 규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기표들은 주체를 복속시키는 물질적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표들의 구조가 주체에 대해서 갖는 이러한 물질적인 힘을 그는 ‘기표의 물질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라캉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를 통해 행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유의할 것은 여기서 ‘물질성’이란 말이 실증주의적인 실체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인 어떤 관념들과 달리 다양한 개인들에 대해 기표의 구조가 갖는 강제성과 구속성을 뜻한다는 점이다.  라캉 말대로 무의식이 언어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이제 무의식에 대한 연구 역시 무의식의 기호들이 조직되는 규칙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라캉이 소쉬르와 야콥슨의 언어학이론을 정신분석에 끌어들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담론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적 규칙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적 규칙의 차이는 재현가능성(Darstellbarkeit)에 대한 고려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기호가 부재하는 어떤 대상을 대신하여 표상하는 것처럼 무의식에서 증상이나 꿈은 직접적으로는 현전하지 않는 어떤 것의 현전이며, 언어와 담론에서 은유와 환유가 표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호들이 조직되는 방식인 것처럼, 무의식에서 은유와 환유 역시 증상이나 꿈이 조직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또한 기호의 의미는 기표들 간 차이에 의해서 구별되고, 그 기표들의 결합을 통해 정해지듯이, 증상이나 꿈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정해진다.  결국 라캉은 언어야말로 '무의식의 조건'이라고 한다. 언어가 없다면 무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를 통해서 무의식이 만들어지고 작동하게 됨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이는 라캉의 무의식 개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로이자, 타자와 주체의 개념에 이르는 중심적인 테제이기도 하다.    ⑵ 기표의 고정점  라캉은 기표(S)와 기의(s)가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이룬다고 본다. S/s에서 바bar는 이 양자를 가르는 구분선이며 기표가 기의에 이르는 것에 저항하는 저항선이라고 한다. 소쉬르는 기표의 자의성'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기표와 기의간의 관계는 자의적이란 것이다.      3. 결론-정리    라캉은 사유의 체계에 언어의 구조를 끌어들인다. 그는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이나 성본능을 억압하고 자아의 자율성만을 강조한 모던시대 정신분석학이 보수적인 엘리트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성본능을 귀환시키면서 이것에 소쉬르의 언어학을 적용하여 주체가 어떻게 언어의 지배를 받는지 보여준다.  소쉬르는 언어는 사물을 지칭하는 기표와 지칭 당하는 대상인 기의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언어는 차이에 의해 변별의 기능을 갖는 자의적 체계라고 했다. 이 두 가지 정의는 각기 기호학과 구조주의로 가는 토대가 되는데 앞의 것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일 대 일의 정확한 대응이 되지 못하고 기의가 미끄러져 의미가 수없이 확산되는 언어의 비유성 쪽으로 나가고, 뒤의 것은 은유와 환유의 두 축으로 정립되어 정 ․ 반의 대립항이라는 구조주의 시학을 낳는다. 라캉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적용하여 주체와 욕망을 해석한다.  언어가 한 가지 의미에 고정되지 못하고 의미가 꼬리를 물 때, 즉 기표만이 존재할 때 그 언어를 통해 생각을 표출하는 인간은 이 기표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언어의 세계 속에 사는 한, 주체는 기표의 지배를 받기에 그것은 '언어처럼 구조된다'는 것이다. 주체는 언어처럼 구조되어 있다. 그런데 그 언어는 은유와 환유로 구조되어 있다. 인간의 의식은 은유와 환유로 구조되어 있다는 뜻이고, 이것이 바로 라캉이 시도한 프로이트의 재해석이다. 그리고 이런 재해석에 의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라캉에 와서 정치, 사회, 문화예술의 분야로 확대된다.    자료 2     라캉 Jacques Lacan 의 심리분석적 저서들은 비평가들에게 주관 subject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공해 주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형식주의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은 '주관적' 비평을 낭만주의적이고 반동적이라고 부정해 왔다. 하지만 라캉의 비평 이론은 '말하는 주관'의 '유물론적' 분석을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에 더욱 수긍할 만하다.   언어학자 에밀 방브니스트에 의하면 '나' '그' '그녀' 등은 단지 언어가 규정하는 극단적 위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말할 때, 나는 나 자신을 '나'라고 지칭하여 상대방을 '당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신'이 대답할 때엔 위치가 뒤바뀌어 '나'는 '당신'이 된다. 우리는 인칭의 이러한 전도를 받아들일 때만 비로소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자아는 그 '나'와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내일 나는 졸업한다"라고 말할 때, 그 진술 속의 '나'는 '공표의 주체'로서 알려지며, 그 진술을 한 자아는 '공표하는 주체'가 된다. 낭만주의 사상이 단지 그것들을 무시하는 반면, 후기 구조주의 사상은 그 두 주체 사이의 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라캉은 인간의 주관이 언어 체계 안에서만 의미를 취하는 기존의 '지시어' 체계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언어 속으로의 그러한 진입은 우리로 하여금 관련 체계(남성/여성, 부친/모친/딸) 안에서 주관적 위치를 발견하도록 해준다. 이러한 과정과 그 과정이 이전의 상태는 무의식에 의해 지배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유아기의 가장 초기의 성적 충동은 구체적인 성적 대상이 없고, 다만 신체의 여러 성감대 (입.항문.'남근')를 가지고 노는 것뿐이다. 性이나 정체성이 수립되기 전에 다만 '쾌락의 원칙'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 '현실의 원칙'이 아버지의 형태로 등장하여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외디푸스적 욕망을 '거세'라는 처벌로 위협하게 된다.   욕망의 이와 같은 억압은 남자 어린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부친의 위치에 놓고 '남성의' 역활을 하도록 해 준다. 여성의 외디푸스적 도정은 휠씬 덜 직선적이다. 바로 그 이유로 해서 프로이트의 명백한 성차별주의는 여러 페미니스트 비평가들로부터 공격받아 왔다.   이 단계에서 어린이는 '부권적 법칙'으로 상징화된 도덕.법률.종교 등을 배우게 되며, '초자아 superego'가 개발되도록 유도된다. 하지만 이 억압된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남아 있어, 본질적으로 분열된 split 주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욕망의 힘이 바로 무의식인 것이다.       참고문헌 레이먼 셀던 지음, 현대문학 이론 연구회 譯, , 문학과지성사, 1987.   '상상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에 대한 라캉의 구별은 '기호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에 대한 크리스테바의 구분과 부합된다. 이 '상징적인' 것이란 주관과 객관 사이에 아무런 명백한 구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ㅡ 즉 주관과 객관을 구별한 중심 자아가 부재하는 것이다.    이 언어 이전의 '거울 상태'에서, 즉 이 '상징적인' 존재의 상태 속에서, 어린 아이는 거울(꼭 실재 거울일 필요는 없다) 속의 단편적인 자아 이미지 속에 어떤 통일성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허구적인 ' 이상, 곧 '자아'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이 거울(반사경 = 거울)의 이미지는 아직도 부분적으로는 상상적이지만 (그것이 그 아이인지 다른 존재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타자 another'로서 구별되기도 한다. 이 상상적인 경향은 자아의 형성 이후에도 계속된다. 왜냐하면 통일된 자아의 신화는 '타자'로 알려진 세상의 객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능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린 아이는 또한 만일 스스로 주관적인 주체가 되고 싶다면 자신을 타자와 구별하는 것도 배워야만 한다. 부친의 금지와 더불어 어린 아이는 차이의 '상징적' 세계(남성/여성, 부친/아들, 현존/부재 등)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과연 '남근상 phallus'(음경 penis 자체가 아닌 그것의 '상징')은 라캉의 체계 속에서, 모든 '지시어'로 하여금 스스로의 '지시 대상' 속에서 통일성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특권을 가진 지시어이다. 상징적인 영역에서 남근은 왕이 된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이 점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상상적인 것도 또한 상징적인 것도 도달할 수 없는 저 켠에 남아 있는 진짜 현실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의 본능적인 필요 needs는 만족의 요구 demands를 표명하는 언술에 의해 형성된다. 하지만 필요에 대한 언술의 틀은 만족이 아닌 욕망을 초래하며, 이 욕망은 일련의 '지시어' 속에서 작용한다.   '내'가 말로써 내 욕망을 표시할 때, '나'는 언제나 옆에서 억누르는 그 무의식에 의해 도전받게 된다. 이 무의식은 의식을 피하는 은유적.환유적 대체와 대치들 속에서 작용하며 꿈이나 농담이나 예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참고문헌 레이먼 셀던 지음, 현대문학 이론 연구회 譯, , 문학과지성사, 1987.     라캉은 소쉬르의 언어 속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재진술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무의식적 과정은 불안정한 '지시어'와 동일시 된다. 이미 살펴본 대로, '지시어'와 '지시 대상'의 분리된 체계 사이의 틈을 메꾸어보려고 했던 소쉬르으이 시도는 헛된 것이었다.   예컨대, 하나의 주체가 상징적 질서 속에 들어와서 '아들'이나 '딸'의 '위치'를 받아들일 때 '지시어'와 '지시 대상' 사이의 어떤 연결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나'는 결코 나의 위치에 완전한 존재를 부여하지 못한 채, 찢어진 존재로서 '지시어' 와 '지시 대상' 사이의 축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라캉의 기호학에서는, '지시 대상'은 '떠 있는 float ' '지시어' 밑에서 '미끄러져 slide' 달아난다.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욕망의 주요 배출구로 생각했다. 그러나 라캉에 오면 그의 꿈의 이론은 텍스트 이론으로서 재해석된다.   무의식은 해석되어져야만 하는 상징적 이미지 속에 그 의미를 숨긴다. 꿈의 이미지는 '압축 condensation'(몇 개의 이미지가 섞여지는)과 '자리바꿈 displacement'(의미가 하나의 이미지에서 인접한 이미지로 바꿔지는)을 겪게 된다.  라캉은 이 첫번째 과정을 '은유'라고 부르며, 두번째 과정을 '환유'라고 부른다.    말을 바꾸면, 그는 왜곡되고 수수께끼 같은 꿈이 사실은 '지시어'의 법칙에 따른다고 믿고 있다. 프로이트의 '방어 장치'도 역시 스피치의 양태(아이러니.생략 등)로서 처리된다. 어떤 종류의 심리적 왜곡이라도 어떤 이상한 언어 이전의 충동으로서보다는, '지시어'의 변형으로서 재진술되는 것이다.   라캉에게는 왜곡되지 않는 '지시어'란 없다. 그의 심리분석학은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수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라캉의 프로이트주의는 현대 문학 이론으로 하여금, 사물을 지시하고 관념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의 힘에 대한 신념을 저버리도록 권장했다. 모더니스트 문학은 간혹 지배적인 내러티브의 위치를 피함으로써, 그리고 의미의 자유로운 유희로 말미암아 꿈과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레이먼 셀던 지음, 현대문학 이론 연구회 譯, , 문학과지성사, 1987.   라캉 자신도 두 개의 에피소드를 포함하고 있는 이야기인, 포우의 를 분석한 유명한 논문을 썼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왕비가 자신이 탁자에 놓아둔 편지를 갑자기 내실에 들어온 왕이 보게 될까 봐 조바심하고 있는 것을 장관이 눈치챈다. 그리고 장관은 그 편지를 비슷한 다른 편지와 바꿔치기 한다. 왕비는 왕이 알게 될까 두려워서 그걸 막지 못한다.   두번째 에피스드에서는, 파리 경찰 국장이 장관의 숙소를 뒤졌으나 편지를 찾지 못한 일이 있은 후, 뒤팽(탐정)은 곧 그 편지가 장관의 벽난로 위의 카드꽂이에 공공연하게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다시 장관을 찾아가서 그의 주위를 산만하게 한 다음, 그 편지를 비슷한 다른 편지와 바꿔치기 한다.   라캉은 그 편지의 내용이 끝내 밝혀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 이야기는 개인의 성격이나 편지의 내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에피소드에서  사람의 상호 연관을 통해 이루어지는 편지의 에 의해 전개된다. 편지에 대한 이러한 관계는, 라캉에 의하면, 세 가지 종류의 '시각'에 따라 정의된다.   ㅡ 첫째 시각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왕과 경찰국장); 두번째 시각은 앞의 두 부류의 시각이 '감추어진' 편지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을 안다(왕비와 두번째 에피소드의 장관) ; 세째 시각은 앞의 두 부류의 시각이 '감추어진' 편지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을 안다.(장관과 뒤팽). 그렇다면 그 편지를 내러티브 속에서 등장 인물들을 위한 주관적 위치를 만들언냄으로 인해서 '지시어'처럼 행동한다고 볼 수 있다.   라캉은 이 이야기가, 상징적 질서는 "주관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심리분석 이론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냐하면 주관적 주체는 '지시어의 여정으로'으로부터 '결정적인 방향 지시'를 받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이야기를 심리분석의 한 우화로 생각했지만, 동시에 심리분석을 픽션의 한 모델로 생각하기도 했다.   두번째 장면에서 첫번째 장면의 구조를 되풀이한 것은 순수한 지시어(편지)의 효과에 의해 지배된다. 즉 등장 인물들은 무의식적 충동으로서 자기들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라캉의 글뿐만 아니라 라캉의 해설을 비판적으로 읽은 데리다(자크 데리다)의 독서에 대한, 보다 더 포괄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바바라 존슨 Barbara Johnson 의 탁월한 에세이를 읽으면 될 것이다. 후기 구조주의 사상을 명료하게 제시하면서 그녀는 의미의 자리바꿈을 한 걸음 더 나아가 포우>라캉>데리다>존슨의 끝없는 연속 작용으로 파악하고 있다.       참고문헌 레이먼 셀던 지음, 현대문학 이론 연구회 譯, , 문학과지성사, 1987.  
1    [현대비평의 이해] 자크 라캉 이론 정리[스크랩] 댓글:  조회:1520  추천:0  2018-10-21
[현대비평의 이해] 자크 라캉 이론 정리   ◈ 작가 이야기 -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프로이트 이후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꼽히는 자크 라캉은 1901년 파리에서 부유한 포도주 제조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청소년기에는 초현실주의에 심취했다. 그러나 의과대학에서 정신병치료학을 전공하고 의사로 출발한 라캉은 1932년 박사학위 논문 한 부를 프로이트에게 보내 존경을 보이기도 했다. 라캉이 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36년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이른바 '거울단계' 이론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66년 논집 의 간행으로 갑자기 유명해졌으며 미셸 푸코 등과 함께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라캉은 말년까지 무려 4백만 명이 넘는 환자를 상담하고,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정립하여 '프로이트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인간의 욕망, 또는 무의식이 말을 통해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무의식은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라캉의 유명한 문장은 정신분석학과 언어학과의 새로운 만남이었다. 그것은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는 특유의 무의식 이론을 낳았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분석학과 연결시켜 재조명하는 일이 유행이 되면서 라캉의 무의식 탐구는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받았다. 진홍빛 벨벳 망토를 걸친 차림으로 라캉이 진행하는 세미나에는 항상 청중이 북적댔다. 미국의 프로이트 연구자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왜곡시켰다며 1964년에는 국제프로이트학회를 탈퇴했지만, 70년대 이후 미국 MIT, 예일대 등에 초청 받아 강의하는 등 미국에서도 각광받았다.  그의 이론은 환자를 치료하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다. 사후 E. 루디네스코가 쓴 는 방대한 분량(700면)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라캉의 학문적인 업적은 인정하나 라캉은 거칠고 차가운 성격에다 여성편력이 심했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이론에 집착하여 독선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하였다. ((문화 평론가 이상룡의 말을 인용함))  ◈ 자크 라캉 주요 이론  1. 타자와 주체  라캉의 새로운 정신분석학의 결론은 언어학적으로 재구성된 무의식 개념을 프로이트에게 돌려주는 것 즉 바로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의 실제 내용이었다.  라캉의 이론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며 가장 중심적인 지위를 갖는 개념들로 ‘무의식’, ‘타자’,‘주체’ 등을 들 수 있다. ‘언어/ 언어적 구조’나 ‘상징적인 것’ 등은 이 개념들의 구조를 정의하고 분석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요컨대 라캉의 이론은 정신분석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무의식’과 그것을 구조화하고 있는 ‘언어’라는 두개의 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두 축이 만나는 지점을 미리 얘기하자면 대문자로 시작하는 타자'l'Autr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라는 개념은 라캉 이외에도 (프랑스의) 여러 저자들의 글에서 자주 접하는 개념인데, 저자에 따라서 매우 다르게 사용된다.  라캉에게 타자란 개개인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언어 혹은 기표의 자리요 상징체계며, 주체의 타자인 무의식이다. 즉 그것은 개개의 개체가 포섭됨으로써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주체--인간의 자식--이 될 수 있는 질서라는 점에서, 푸코가 말하는 동일자의 일종이다. 그리고 타자로 요약되는 언어학적 무의식 개념을 통해 결국은 인간이란 주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개개의 생물학적 개체가 어떻게 인간세계에서 용납되는 주체로 되는지를 연구한다. 따라서 ‘타자’와 ‘주체’는 라캉의 새로운 사고가 집중되는 초점이며, 라캉의 새로운 이론이 갖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2. 정신분석의 대상  정신분석의 대상은 ‘무의식’이다. 라캉은 무의식을 어떤 심리적인 것이나 의식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거기에 존재하는 의미화signfying 메카니즘 (ES:165)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의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며, 의식 및 사고, 행동이 그 위에서 조직되는 기초다. 다시 말하면 의식이나 사고, 행동이 그 위에서 가능하게 되는 조건이다.  라캉은 거시기/초자아/자아라는 후기 프로이트의 위상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의식/무의식이란 위상학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당장에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즉 무의식을 구성하는 요소, 그리고 그것들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설명되던 무의식의 작용방식이 거시기에 대한 거부를 통해 제거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무의식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라캉의 대답은 우선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으며, 상징적인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는 주장은 프로이트에게 돌아가는 라캉만의 고유한 길인 셈이며, 이런 점에서 라캉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테제(these)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무의식의 형성과 작동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중심으로 욕망에 대해 새로이 정의함으로써 설명된다. 레비스트로스에게 근친상간 ‘금기’가 인간적인 질서를 이루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었으며, 따라서 모든 인간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규칙이었다. 이는 라캉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언어의 사용과 함께 오이디푸스 기(期)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만 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적인 금지와 억압을 통해 욕망은 결핍으로서 새로이 정의되고, 이것이 무의식의 형성과 작동에서 결정적인 또 하나의 지점을 이루게 된다.  요컨대 라캉에게 무의식이란 어떠한 개인이 인간의 자식으로서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점에서 형성되며, 그로 하여금 인간의 질서 아래 하나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조건인 셈이다. 그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태어난 하나의 유기체가 하나의 인간으로, 다시 말해 인간주체로 되어가는 과정을 주목하는 것이다. 결국 라캉에 따르면 정신분석이 무의식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의 생물체가 인간이란 이름에 걸맞는 주체로 변화됨으로써 만들어지는 결과물인 것이다. 라캉은 주체와 무의식, 주체와 무의식적 질서의 관계를 설정한다기보다는 무의식과 타자, 상징적 질서 안에서 주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라캉의 이론을 주체에 대한 이론, 하나의 개체가 주체화하는 과정에 대한 이론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잠정적으로 비교한다면 라캉에게 무의식이란 인간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상징적 질서의 메카니즘이며, 주체로서 사고하고 표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반이요 조건(이런 의미에서 '의식'이 아니라 의식의 전제조건이고 '무의식'이다)이다. 한편 이와 달리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이란 단지 질서의 메카니즘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무질서한 충동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질서의 갈등과 대립이 이루어지는 장이며, 이런 이유에서 의식의 표면 아래로 억압되어 진행되는 과정이다(이런 의미에서 '무의식'이 '의식'이 아닌 것으로 정의되는 이유도 다르다). 또한 라캉에게 무의식은 생물학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상징적인 것으로서 정의되지만, 프로이트가 보기에는 차라리 생물학적이고 성적인 에너지가 좀더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라캉은 언어학이란 우체국을 경유하여 정신분석을 프로이트에게 되돌려 준 셈이다.  3.언어와 무의식  라캉의 이론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은 알다시피 무의식이 언어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의 경험이 무의식 속에서 발견해낸 것은 언어의 구조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진실의 모든 효과는 정신과 아무 상관없이 문자에 의해서 생겨난다.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정신의 허세가 사라지게 되었다.  소쉬르가 분명히 한 것처럼, 언어의 구조는 그것을 사용하는 어떤 개인과도 무관하게 사회적 규약으로서, 객관적 구조로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언어적인 기호가 특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기호들 간의 관계에 의해서, 기호들을 조직해내는 고유한 규칙에 의해서며, 이러한 규칙을 우리는 흔히 언어구조라고 부른다. 여기서 언어가 발화주체에게 봉사하는 다양한 심리적, 육체적 기능과 혼동되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언어와 그 구조는 각각의 주체가 그 정신적 발전에서 언어를 습득하는 순간보다 앞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사용하려는 어떠한 개인도 그 기호들이 조직되는 그 규칙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 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기호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언어적인 규칙들에 의해 정의된다. 따라서 발화하는 주체는 언어의 노예로 나타나고, 나아가 주체는 그 자신의 고유한 이름(기표)을 통해서만 자신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표를 조직해내는 언어구조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한 언어적인 구조에, 즉 기표를 조직해내는 규칙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기표들은 주체를 복속시키는 물질적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표들의 구조가 주체에 대해서 갖는 이러한 물질적 힘을 그는 '기표의 물질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라캉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를 통해 행해지고 있다 고 말한다. 유의할 것은 여기서 '물질성'이란 말이 실증주의적인 실체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인 어떤 관념들과 달리 다양한 개인들에 대해 기표의 구조가 갖는 강제성과 구속성을 뜻한다는 점이다.  라캉 말대로 무의식이 언어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이제 무의식에 대한 연구 역시 무의식의 기호들이 조직되는 규칙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라캉이 소쉬르와 야콥슨의 언어학이론을 정신분석에 끌어들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담론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적 규칙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적 규칙의 차이는 재현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기호가 부재하는 어떤 대상을 대신하여 표상하는 것처럼 무의식에서 증상이나 꿈은 직접적으로는 현전하지 않는 어떤 것의 현전이며, 언어와 담론에서 은유와 환유가 표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호들이 조직되는 방식인 것처럼, 무의식에서 은유와 환유 역시 증상이나 꿈이 조직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또한 기호의 의미는 기표들 간 차이에 의해서 구별되고, 그 기표들의 결합을 통해 정해지듯이, 증상이나 꿈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정해진다.  결국 라캉은 언어야말로 무의식의 조건이라고 한다. 언어가 없다면 무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를 통해서 무의식이 만들어지고 작동하게 됨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이는 라캉의 무의식 개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로며, 타자와 주체의 개념에 이르는 중심적인 테제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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