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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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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1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댓글:  조회:521  추천:0  2022-06-07
201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강원일보 당선작-동시 류병숙/걸어가는 신호등     누나 손잡고 막대사탕 빨며 학교 가는 서준이   건널목 건너며 사탕 든 손 치켜든다   - 야, 막대사탕 신호등이다 버스도 서고 자동차도 서고   달콤한 아침이다.     [경상일보신춘문예당선작]새놀이(동시)-최류빈       겨드랑이를 벌리면 새가 돼요 새가 될 때면 쿵쿵 점프해도 괜찮아요 점프를 해도 그저 날아가는 동안이니까   새 놀이를 하면 날갯죽지가 아파와요 저 멀리 프랑스 파리 조그맣게 보이는데 기웃기웃 창문 밖 빨강, 파랑, 하얀 빛 프랑스 만국기처럼 들어와요   짹짹거리는 울음소리를 내 주어야 해요 그래야 꼭 날고 있는 기분이니까요   너무 멀리 떠나와 둥지를 잊었어요 여섯시 반이면 애벌레 찌개 코끝을 찔러요 찌르르르 하며 몸을 감싸는 달콤한 냄새, 흔적을 찾아가야 해요   한 점씩 떨어뜨려 놓은 새의 깃털. 그담엔 저 바람을 느끼는 거예요   가득한 냄새들 깃털 속에 품고 돌아와서는 주머니를 홀랑 비우고 세모 부리 뻐끔이는 거예요 그곳이야말로 포근한 둥지예요       [2019 대전일보 동시 당선작]       오늘 학교에서 매듭 놀이를 배웠다   영철이와 한 조가 되어 팔자 매듭도 만들어보고 고리 매듭도 만들어보고 십자 매듭도 만들었다   함께 맸다가 풀었다가 하다 보니 가끔 영철이 손가락이 얽히고설키는 매듭처럼 내 손가락을 휘감기도 하고 내 손가락이 영철이 손가락을 휘감기도 했다   마음도 매듭 놀이를 했는지 집에 왔는데도 자꾸만 영철이가 생각난다 무슨 매듭인지 알 수 없는 풀리지 않는 매듭 하나 생겼다.       [2019 매일신문 동시 당선작] 액자 속의 나/ 박지영       언제부턴가 엄마가 날 보고 잘 웃지 않아요 나를 보며 웃는 엄마 얼굴이 보고 싶을 땐   반짝이는 금박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요   태권도 발차기를 하는 미술대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연주를 하는 영어 상장을 든 귀여운 아이 옆에 슬며시 다가서요     [2019 조선일보 동시당선작] 모래시계/모래시계     어느 날 들어가게 된 유리병 안 ​때부터 난 시간이 되었어 날 보는 사람들은 여러 모습이었어 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가는가 하면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어   어느 날은 한 아기가 다가오더니 아래로 다 흘러내리기도 전에 뒤집어 놓기도 했어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있었어 아기는 훌쩍 소년이 되었지   그땐 날 뒤집지는 않았어 대신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더군 그리곤 뭔가 중얼중얼….   자세히 들어보니 10분 동안 자기를 소개하는 거였는데 듣다가 깜짝 놀랐어 내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아주 어릴 적 저는 모래시계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시간은 되돌려 놔도 쉬지 않고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붙잡을 수 없는 게 시간이란 걸 알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가족 ver.2’/ 김성진]     엄마가 너무 바빠 엄마를 새로 주문했다 그리하여 엄마2호   엄마1호는 열심히 회사 다니고 집에 오면 열심히 잠을 잔다   내가 너무 바빠 아들을 새로 주문했다 그리하여 아들2호   나는 열심히 학원 다니고 집에 오면 열심히 숙제하다 잠에 든다   우리가 이러는 동안 엄마2호 아들2호는 집에 남아 같이 밥도 먹고 소소한 대화도 나눈다 가끔은 산책을 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몫까지 열심히 가족이 된다 진짜 가족이 된다
53    【 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 댓글:  조회:1302  추천:1  2022-06-07
【 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 가루        - 정준호 / 매일신문 당선작     할머니는 평생 밀가루 반죽을 빚으셨어 칼국수와 수제비를 잘 만드셨지 할머니는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듯 점점 구부정해지셨어 봄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기침을 하셨어 기침 소리에 놀라 작은 꽃잎들 떨어질까 봐 조용조용 입을 가리셨어 쪼끄만 땅 짐승 놀랄까봐 발 소리를 줄이다가 점점 가벼워지셨어 작아지고 조용해지고 가벼워져서 할머니는 이제 희고 둥근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셨어 무섭지만 나도 손을 넣어 만져보았어 흰 가루가 담긴 항아리 속에서 지금도 따뜻하셨어 박수를 치면서 가루 묻은 손을 털었어 하늘에서도 반기듯 밀가루 같은 할머니 가루 같은 눈이 내렸어 펑펑 내렸어     심사평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려" 심사위원: 박승우(동시인), 임수현(시인)   올해 동시 응모작은 941편이었다. 작년에 비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분이 동시 부문에 응모했다. 동시 창작가가 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응모작을 읽으며 동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소재의 빈곤, 발상의 신선함, 사유의 깊이를 갖지 못한 작품이 다수였다. 신춘문예는 새로운 목소리의 탄생을 기대하는 열망이 있다. 자기 목소리를 담으려는 치열함이 엿보이지 않고 '동시'라는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기본적으로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똑똑', '수학자의 탄생', '찾았다', '연못 배꼽이 작아질 때', '치치', '뒷면', '가루', '1+1', '갈매기', '마침표'까지 10편이었다. 최종적으로 '갈매기', '가루' 두 작품이 남았다. '갈매기'는 발상과 시적 태도가 새로워서 좋게 읽었다. 다만 간결하고 힘 있는 전개에 비해 쉽게 결말에 닿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조나단 리빙스턴의 '갈매기의 꿈'의 기시감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도 지적되었다. 독창적인 시선으로 더 치열하게 시적 대상을 밀고 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것 같다.     ------------------------------------------------------------------------------------------------------------------------------------------     매미 날리기                     - 유인자 / 강원일보 당선      꼼짝없이 공부를 했더니 귀에서 매미 소리가 난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농구대에 공을 넣으며 매미를 한 마리씩 꺼낸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귀에서 놀던 매미들이 다 날아간다. 귀가 뻥 뚫렸다.         심사평   코로나로 어려운 때임에도 응모작이 많았다. 아동문학에 대한 열정에 변함이 없어 기쁘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 끝까지 겨룬 작품은 이정희의 ‘손우물', 신영순의 ‘봄비', 이윤정의 ‘뿔', 유인자의 ‘매미 날리기'였다. ‘손우물'은 동심이 담겨 있는 귀엽고 깔끔한 작품이었으나 메시지가 약했고, ‘봄비'는 비슷한 이미지의 동시가 여럿 있어 낯익은 느낌이, ‘뿔'은 주제를 드러내 닫혀 있는 마무리가 아쉬웠다. 유인자의 ‘매미 날리기'는 청각적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고 시의 구조가 단단해 당선작으로 올리는 데 이견이 없었다. ‘매미 날리기' 외 다른 작품도 빼어나 시인의 역량을 가늠케 했다. 경쟁과 속도의 시대, 공부라는 짐에 꼼짝없이 붙잡혀 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는 시인의 시심을 높이 평가했다. 단순 명쾌하며 절묘한 은유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린이 정서에 밀착한 공감각적인 동시로 많은 생각과 웃음을 준다. 동시 단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리라 믿는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이창건·이화주 아동문학가     ------------------------------------------------------------------------------------------------------------------------------------------     비행운           - 조현미 / 경상일보 당선      비행기가 지나간다 높푸른 하늘에 밑줄 좍 ── 그으며 멀리멀리 날아간다 고추 따던 식구들도 비행기를 따라간다 할머니는 제주도 고모 집으로 외숙모는 바다 건너 베트남으로 내 마음은 말레이시아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간다 비행기는 매일매일 바다를 건너는데 높고 넓은 하늘길을 쉬지 않고 나는데 코로나 19가 바닷길을 막았다 하늘길을 막았다 식구들 마음처럼 고추는 붉게 익고 외숙모 목은 한 뼘 더 길어졌다 혼자서만 가는 게 미안했는지 비행기도 …… 말 줄임표를 남긴다 잘 지내시나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식구들 마음에 밑줄 쫙 ── 긋고 간다   ■심사평-전병호 / 힘든 시대에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8명의 28편이었다. 이름도 없고 번호로만 표시된 원고를 한 편 한 편 새겨가며 읽는데, 문득 그동안 응모자들이 당선의 영예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새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마다 응모자들의 열정과 갈망이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자기만의 목소리가 없거나 치열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성 시인들의 작품을 흉내 내는데 그치거나 뒷심 부족이 느껴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놓칠까 까치는’은 시를 웬만큼 써본 분의 작품이었으나 이 작품의 소재, 주제 역시 많이 다루어 온 것이다. 소재는 같더라도 자기만의 시선으로 이미지와 메시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엄지척’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으나 중심이 되는 시상은 기성 시인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어서 가장 먼저 탈락시켰다. 최종적으로 151번의 ‘비행운’과 ‘괜찮아요, 라는 말’이 남게 되었다. 이 중에서 ‘비행운’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결혼 이민자인 외숙모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고향을 오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외숙모를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시적화자의 마음이 시대적 상황과 관련지어 많은 힘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큰 동시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단풍잎           - 이경모 / 조선일보 당선     단풍잎 떨어진 길을 맨발로 걸으면 살짝살짝 달라붙는 단풍잎들.   내 발이 아플까 봐 나무들이 신겨주는 가을빛 가득 물든 단풍잎 신발.   걸으면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나는 아기 꽃신같이   걸으면 걸을수록 자꾸만 방글방글 웃음이 나는 누구나 딱 맞는 신발.     심사평   수많은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동시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 사랑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수준은 향상되었으나 새롭고 참신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신인에게 바라는 것은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함이다. 기존의 소재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롭게 보인다. 동심의 눈으로 관찰하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세계를 단순 명쾌하면서도 신선한 시적 표현으로 담아내기를 당부한다. ‘꽃바구니 따라간 나비’는 봄날의 정경을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그러나 기존 동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비유라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눈물 한 방울’은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었으나 결말이 밋밋하게 끝난 것이 단점이었다. ‘금속의 몸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금속활자의 탄생을 의인화하여 새롭고 참신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조금 더 생략되고 함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들꽃 교실’은 시골 학교의 아이들을 들꽃에 비유하여 정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너무 시상이 소박하고 단조로웠다. ‘단풍잎’은 소품이지만 빨간 단풍잎처럼 곱고 예쁜 작품이었다. 단풍잎 떨어진 길을 맨발로 걷는 감흥과 설렘을 산뜻한 비유와 경쾌한 리듬으로 표현하였다. 동심적인 생각을 잘 살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간결하고 단순 명쾌하게 표현한 점이 미덕이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신선한 비유와 의태어의 느낌을 살려 정감 있게 그려냈다. 오롯이 아이의 생각과 느낌으로 쓴 작품이라서 흐뭇하고 아름다운 동심에 젖게 하는 점도 좋았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도 수준작이라서 역량에 신뢰가 갔다.   이준관·아동문학가     ------------------------------------------------------------------------------------------------------------------------------------------     가루약 눈사람                    - 전윤리숲 / 한국일보 당선     감기는 다 나았니   나는 녹지 않았어   발자국도 나지 않았어   아직 다정한 어른은 되지 못했지만   가끔은 아빠처럼 우체국 커다란 창문 앞에서 잠자고   엄마처럼 기념품 가게에서 일해   너의 청록색 엄지장갑을 심장 자리에 넣어두는 걸 깜빡했는데도, 오늘은 춥지 않더라   무려 스무 날 전 네가 내 볼에 붙여주었던   귤껍질에서는 보물상자 냄새가 나   가끔 크게 웃고 있어   네가 생각나면     심사평   눈이 내리자 SNS에 눈사람 사진들이 올라왔다. 큰 동그라미에 작은 동그라미를 얹은, 전통적인 눈사람뿐 아니라 이글루, 눈 토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와 올라프 등 일상의 예술 작품이 속속 게시됐다. 아이스크림 스쿠프처럼 생긴 장난감으로 만든 ‘눈오리’의 행렬도 따듯하고 사랑스러웠다. 코끝이 얼어가며 만들었을 눈사람들로 세계는 잠시 ‘동화’의 나라가 됐다. ‘동화같다’고 흔히 표현되는 낭만성이 아동문학의 전부는 아니고 종종 아동문학을 왜곡하지만 아동문학의 한 조각인 건 분명 사실이다. 아동문학은, 동시는, 눈사람의 세계를 노래한다. 내가 굴려 쌓은 눈 뭉치가 눈 ‘사람’이 되어 나를 돌봐주고 지켜주는 세계, 양 볼에 귤껍질을 붙여준 다정하고 가난한 마음이 오래도록 서로에게 보물로 남는 세계.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역시 눈사람의 세계와는 달라서, SNS에는 누군가 일부러 발로 차고 손으로 뭉개 죽어버린 눈사람의 사진들이 곧이어 올라왔다. 그렇다면 동시는 이 세계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동시는 생각할 게 많은 장르다. 단숨에 휘 읽을 수 있고 많이 애쓰지 않고도 쓸 수 있어 보이지만 장르 자체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된다고,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눈사람이 태어나는 세계와 눈사람이 죽는 세계, 어느 쪽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게 여러 생각거리 중 하나의 결론이기도 하다. 마치 “발자국도 나지 않았어”라는 짧은 문장에 눈사람이 죽는 세계를 알아채고 외면하지 않는 시선을 담아놓듯이. “다정한 어른은 되지 못했지만”이라는 시행이 ‘당신은 과연 다정한 어른인가요?’라고 어른 독자에게 넌지시, 종이에 베인 손끝에서 날카롭게 아려오는 통증처럼 묻고 있듯이. 올해도 높이 쌓인 응모작들을 읽으며 역시 가장 중요하게 발견되는 건 동시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과, 어린이가 살아가는 두 세계를 오롯이 살피는 시선이었다. 많은 작품이 동시의 익숙한 외양을 갖추고 있어 반가운 한편 그 생각과 시선이 뚜렷이 보이지 않을 때 또 한 번 한없이 내려앉기도 했다. 그중 '가루약 눈사람'에서는 엄지장갑 없이도 더 이상 춥지 않아 하고, 크게 웃으며 끝내 ‘약’이 되는 눈사람의 절망과 희망이 투명하게 빛났다. 툭툭 터뜨리며 자유로이 오가는 문장 사이 스며든, 바싹 마른 귤껍질의 잔향 또한 전에 없이 새로웠다. 가뿐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소개하는 만큼 좋은 동시를 오래 써 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 김개미 시인 
52    <2021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댓글:  조회:1000  추천:0  2021-12-18
   엄마의 꽃밭 ​ 김광희 ​ ​ 종일 튀김솥 앞에 서서 오징어 감자 튀기는 엄마 밤늦게 팔에다 생감자 발라요. ​ 그거 왜 발라? 예뻐지려고 웃으며 돌아앉아요. ​ 얼마나 예뻐졌을까 곤히 잠든 엄마 팔 걷어 봐요. 양팔에 피어 있는 크고 작은 꽃들 ​ 튀김기름 튄 자리마다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동생과 나를 키운 엄마의 꽃밭 ​ 팔뚝에 가만히 얼굴을 묻으면 아릿한 꽃향기에 눈이 촉촉해져요. ​ ​ -1957년 경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6년 신춘문예 시 당선 -2016년 신춘문예 시조당선 ​ ​ ​ ​ 검은 고양이 ​ 최영동 ​ 전봇대 밑을 두리번거리는 그림자 그 속에서 발톱이 솟아올랐다 ​ 날카롭게 가다듬은 발톱에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아 등뼈는 어제보다 하늘로 솟구치고 뱃가죽은 전단지처럼 펄럭거리네 ​ 사방에 참치 캔이 구르고 살코기가 있던 자리 혓바닥보다 콧잔등이 먼저 파고들었어 ​ 살코기 한 점 남아있지 않은 오늘 저녁 ​ 지붕 너머로 번쩍 저녁을 낚아채려는 고양이의 앞발 ​ 솟아오르는 발톱에 걸려드는 생선 꼬리 같은 골목의 불빛들 ​ ​ -1981년 부산 출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졸업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 ​ ​ 별들이 깜빡이는 이유 박미영 ​ ​ 하늘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 오버! 노을이 빨갛게 위험 신호를 보낸다. ​ 저녁은 절전 모드로 진행 중 ​ 배경부터 어두컴컴하게 밝기 조절 완료 바람과 구름도 잠시 멈춤 완료 새들도 가만히 대기 모드 완료 ​ 하나둘셋넷,둘둘셋넷...... 드디어 나타났다, 오버! ​ 별들이 깜빡깜박 하늘을 충전시키고 있다. ​ ​ -공무원문예대전 최우수상, 충남문학대상 -시집 ,등 ​ ​ ​ ​ ​ 개구리 구슬치기 ​ 장두현 ​ ​ 개구리가 연잎 위에서 구슬치기 놀이를 한다 자, 받아라 잘 못 튀긴 구슬이 그만 연못에 퐁당 빠져버렸네 개구리가 구슬을 찾겠다며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는데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다고 개굴개굴 지금껏 울고만 있습니다 ​ ​ ​ ​ 구두 ​ 김사라 ​ ​ 새벽녘 아버지 구두가 집을 나선다 ​ 내가 잠들었을 때 나가서 잠들기 직전에야 돌아오는 구두 어떨 때는 내가 잠들고 나서 꿈속에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 돌짝길 걷다 다쳤을까 옆구리가 조금 찢긴 구두 밑창은 할머니 무릎뼈처럼 닳았다 ​ 아버지 구두의 원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제 빛깔을 잃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버지 구두를 오늘은 꼭 수술대 위에 눕힌다 ​ 구두의사 면허증이 없지만 첫 수술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구두를 안았다 ​ 구둣솔로 아버지 삶에 떨어진 먼지를 턴다 우리집 앞마당까지 놀러오는 비둘기가 모이를 콕콕 찍어 먹듯 솔에 콕콕 바른 구두약으로 긴급 처방을 내린다 ​ 이제 기름칠만한면 잘 나가는 내 새 자전거처럼 아버지 구두도 막힘없어 걸어 나가겠지 ​ 아버지 삶에 윤기를 내기 위해 아버지 나이만큼 주름진 구드를 호호 불어 토닥토닥 어루만진다 ​ 비로소 아버지 삶에 떨어진 흙먼지를 모두 털어내고 하루에 고됨도 말끔히 씻어낸다 ​ 새로 변신한 아버지의 구두가 콧노래 흥얼이며 밝은 새벽녘 길을 향해 나간다 ​ ​ -1986년 서울 출생 -제 4회 바다 문학상 시 부문 차하 -제 1회 호연재 여성문학상 시 부문 장려 -2009년 한국문학세상 수필 등단(J 와의 인연으로) -제 17회 설중매 문학 신인상    
51    내가 읽은 해외동시 묶음 댓글:  조회:1734  추천:0  2020-05-05
 추운 날 / 이 준 관   추운 날 혼자서  대문 앞에 서 있으면요.      지나가던 아저씨가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온,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지나가던 강아지가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대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내 마음  알지도 못하고…….      팽, 팽, 팽, 돌고 싶은 팽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친구를 동동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냇물이 꽁꽁 얼었습니다. 팽이를 치러 가려고 합니다. 대문 앞에서 주머니 속의 팽이를 만지작거리며 친구를 기다립니다.  친구는 오지 않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말합니다.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아주머니가 걱정을 합니다. "온,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강아지도 약을 올립니다.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마음이 답답합니다. (김종상)    + 빨랫줄 / (조영수·아동문학가 징마가 끝난 뒤 아빠와 이불을 널려고 하는데 이런이런 나팔꽃이 먼저 넝쿨손을 뻗어 젖은 분홍 꽃봉오리를 널어놓았다. 이런이런 수세미가 먼저 넝쿨손을 뻗어 젖은 노랑 꽃을 널어놓았다. + 빗방울 / (작자 미상)     또르르 유리창에 맺혔다.   대롱대롱 풀잎에도 달렸다.   방울방울 빗방울이 모여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 모래 한 알 / (정용원·아동문학가)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눈에 한 번 들어가 봐 울고불고 할 거야.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밥숟갈에 한 번 들어가면 딱! 아이구 아파! 할 거야.   모래알들이 작다고 하지 마 레미콘 시멘트에 섞이면 아파트 빌딩으로 변할 거야.     + 들리지 않는 말 / (김환영·극작가이며 삽화가, 1959-)   풀섶 두꺼비가 엉금엉금 비 소식을 알려온다   비 젖은 달팽이가 한 잎 한 잎 잎사귀를 오르며 길을 낸다   흙 속에서 지렁이가 음물음물 진흙 똥을 토해낸다   작고 느리고 힘없는 것들이   크고 빠르고 드센 것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바닥 숨을 쉬고 있다     + 고 조그만 것이 / (전영관·아동문학가)   고 조그만 산새 알에서 하늘을 주름잡는 날개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꽃씨 속에서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새싹이 자라 밀림을 만드는 아름드리 나무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아기가 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나올까? 흙 / 최 운 걸   흙 속엔 가지가지의 빛깔이 있나 봐. 그러길래 노랑, 빨강, 하양… 꽃도 가지가지 피나 보지.   흙 속엔 가지가지의 맛이 있나 봐. 그러길래 딸기, 자두, 포도랑… 과일도 가지가지 맺히나 보지.   흙은 푸짐한 마음씨를 가졌나 봐. 그러길래 씨 한 톨 떨어지면 열매도 백 곱절 더 주나 보지.     흙 속에는 '가지가지의 빛깔이 있나 봐' '가지가지의 맛이 있나 봐' 얼마나 놀라운 발견입니까? 어른들의 눈에는 놀라울 것도 없지만,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경이로운 발견이 훌륭한 시를 낳게 하고, 시를 읽는 사람에게는 큰 감동을 주게 되지요. 나무나 풀의 입장에서 보면 흙은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가지가지의 빛깔도, 가지가지의 맛도 전부 흙으로부터 얻어내게 되니까 흙은 푸짐한 마음씨를 가졌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허동인)   눈 오는 날 / 이 문 희   논밭들도 누가 더 넓은가 나누기를 멈추었다.   도로들도 누가 더 긴지 재보기를 그만 두었다.   예쁜 색 자랑하던 지붕들도 뽐내기를 그쳤다.   모두가 욕심을 버린 하얗게 눈이 오는 날.     눈이 오는 날이면 모두가 하나로 통일되어 버립니다. 산도, 들도, 집도, 길도 모두가 하얗게 보여 어디가 어딘지 구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잘난 체하며 뽐낼 수도 자랑할 수도 없고, 화난다며 다투거나 싸울 일도 없습니다. 눈 덮인 세상처럼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 우리들도 그런 사회를 바랄려면 지나친 욕심부터 버려야겠지요. (허동인) 1997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은 「눈 오는 날」 (이문희)이란 동시이다. 누구나 잡을 수 있는 흔한 소재이나 선명한 심상을 통해 동시의 본질에 접근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춘문예 당선 작품으로서는 일반적 상상을 깰 만큼 짧은 동시인데 동시다운 어법과 참신성이 돋보인다. (엄기원의 심사평)   + 달팽이가 말했어 / (민현숙·아동문학가   집을 지고 다닌다고? 아니야, 난 지금 부릉부릉 차를 몰고 가는 거야. 내 차는 캠핑카거든.   걸음이 느리다고? 아니야, 난 지금 둘레둘레 세상 구경하느라 그런 거야 난 여행을 무척 좋아하거든.   소문 / 정 진 숙   사알짝 나비가 꽃에게 귓속말을 했다 ―참 이뻐!   바람이 엿듣고 나무에게 전했다 ―나비가 꽃을 좋아한대   나무가 우렁우렁 큰 몸을 흔들엇다 ―뭐? 나비랑 꽃이 결혼한다고   나무에 있던 매미 온 동네 시끄럽게 외쳤다 ―어머나 세상에! 꽃이 나비의 아기를 낳았대   여름 지나자 아무 일 없이 조용해졌다.   이 작품은 나비, 꽃, 바람, 나무, 매미를 등장시켜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한 유형의 소문을 그려 놓았다고 볼 수 있겠다. 소문에 대한 속성을 잘 살렸으며, 이야기의 구성이 매우 유연하고 시의 마무리도 야무져 구성의 견고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야기가 구체성을 띠고 있어서 마치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는 느낌이 든다. (서재환)   서쪽 하늘 /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빨간 사과 껍질이 널려있다.   드문드문 귤껍질도 섞여있다.   + 햇살 발자국 /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 발자국   누구 집에 다녀갔는지 시치미 뗄 수가 없다   햇살이 쉬었다 간 나무마다 잎새들 반짝 반짝   햇살이 앉았다 간 꽃마다 꽃잎들 반짝 반짝     바람도 코 막고 비켜간 쓰레기 더미 옆 민들레 집에도 찾아갔는지 민들레 꽃잎이 반짝 반짝     + 꽃들의 노크 /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문 열어 주세요."   냉이꽃이 똑똑똑 텃밭 한 귀퉁이가 밝아 온다.   제비꽃이 똑똑똑 개구리들도 문을 열고 나온다.   할미꽃이 똑똑똑 할머니께 봄 인사를 한다.   냉이꽃 제비꽃 내가 지나갈 때마다 까딱까딱 봄 인사를 한다.   시집오는 봄 / (이임영·아동문학가   산등성이 진달래 빨간 볼연지   산자락에 개나리 노랑 저고리   들판에 새싹들 연초록 치마   길가에 벚꽃 하얀 면사포   꽃단장하고서 새봄이 와요   빛은 / 정 현 정   가을 빛은 녹아서 단맛이 된다 사과 속에서.     가을빛은 녹아서 향기가 된다 국화 속에서.   어머니 눈빛은 녹아서 사랑이 된다 내 가슴 속에서.   태양계 / 정 현 정   태양 둘레 도는 수성, 금성, 지구.     지구 둘레 도는 달.   우리집도 태양계   아빠 둘레 도는 엄마   엄마 둘레 도는 나.   꽃들의 시계 / 정 현 정   새벽이면 어김없이 꽃 피우는 나팔꽃   해 질 녘 꽃잎 열고 해 뜰 때 꽃잎 접는 달맞이꽃   이상해 꽃들은 어디에 시계를 놓고 보는지.   뿌리에 숨겨 두었을까 꽃대궁 속에 걸어 두었을까   참 정확한 꽃들의 시계.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엄마의 메아리 / 정 현 정   "얘들이 나더러 땅꼬마래." 소리치면 "넌 마음이 거인이야." 엄마의 메아리.     "달리기도 못하고 공부도 못한대." 소리치면 "넌 조립도 잘하고 만화도 잘 그려." 엄마의 메아리.   갯벌 /정 현 정   지구 어디에 빈 자리 있어 바닷물은 우르르 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나요?     바닷물 우르르 몰려오면 꽃게 나라.     바닷물 우르르 몰려가면 도요새 나라.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여름 낮(서정숙)   꽃들이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비가 펄럭펄럭 부채질해요.   새들이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뭇잎이 살랑살랑  부채질해요.   시계 소리 / 정용원 해가 굴러가는 소리 꽃잎 위를 굴러서 한여름 폭포에서 곤두박질 하고 낙엽따라 구르다가 흰 눈 위로 자박자박 걸어가는 소리   달님 굴러가는 소리 호수 위를 반짝반짝 걸으며 찰방 찰방 찰방 파도 위를 걸으며 철벙 철벙 철벙   + 여름 /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해는 활활 매미는 맴맴 참새는 짹짹 까치는 깍깍 나뭇잎은 팔랑팔랑 개미는 뻘뻘 꿀벌은 붕붕 모두모두 바쁜데   구름만 느릿느릿   뿌리와 나뭇가지 / 오 은 영   뿌리는 두레박 가득 남실남실 물 담아 올려 보내며 물방울 편지를 띄웁니다.   "빛나는 햇살 보내줘 고마워."     나뭇가지는 빈 두레박에 찰랑찰랑 햇살 채워 내려보내며 햇살 편지를 띄웁니다.     "달콤한 물 보내줘 고마워." 문이 없다 / 오 은 영 떡갈나무숲 속 오소리네 집에는 문이 없다 꽃내음이 지나가다 들러 보라고.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네 집에도 문이 없다 별빛도 잠깐 놀다 가라고.     울 엄마 마음에도 문이 없다 힘들면 아무 때나 쉬었다 가라고. 놀고 있는 것 같아도 / 오 은 영 잔잔한 바다, 거북이 다랑어 돌고래 정성 다해 돌보고 있지요.     텅 빈 겨울 들판, 초롱꽃 민들레 씨앗들 다독다독 재우고 있어요.     개구쟁이 우리들도 놀고 있는 것 같지만 고물고물한 생각들 키우고 있는걸요.   2003년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이까짓 바람쯤이야 / 오 은 영   단단한 씨앗문 머리로 밀고 나올 때 고 작은 새싹은 참 아팠겠다.     딱딱한 달걀껍질 부리로 깨고 나올 때 고 작은 병아린 참 힘들었겠다.     그런데 뭐 그런데 뭐 이까짓 꽃샘바람쯤이야.       바람 속 꽃눈이 이를 악문다.     (아동문예 2002-2)     매달려 있는 것 / 신새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나!   비오는 날 - 김용택     하루종일 비가 서 있고 하루종일 나무가 서 있고 하루종일 산이 서 있고 하루종일 옥수수가 서 있고   하루종일 우리 아빠 누워서 자네   겨울 들판 - 이상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냇물 - 유성윤     모래알 따라가는 냇물 속에는 싱그러운 풀잎도 춤을 추지요.       잠자리 따라가는 냇물 위에는 청개구리 누워서 여행 가지요. 코스모스 - 박경용     무얼 먹고 저리도 키가 컸을까? 하늘 먹고 컸겠지. 바람 먹고 컸겠지.     무얼 발라 얼굴은 저리 이쁠까? 햇발 발라 이쁘겠지. 달빛 발라 이쁘겠지.     하늘 먹고 바람 먹고 나보다 키클라...     햇발 발라 달빛 발라 나보다 이쁠라...   쌀 씻고 빨래하는 바다 / 김진광     바다가 쌀을 씻는다. 금모래쌀 은모래쌀 저 많은 밥 누가 다 먹누?     바다가 빨래를 한다. 비누거품 풀어 치대고 헹구고 저 많은 옷감 누가 다 입누? 좀좀좀좀 - 한상순     잠 좀 자라 공부 좀 해라 내방청소 좀 해라 제발, 뛰지 좀 마라 게임 좀 그만해라 텔래비전 좀 그만봐라 군것질 좀 그만해라     엄마 잔소리 속에 꼭 끼어드는 좀좀좀좀   겨울 / 윤동주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두름)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래미 달랑달랑 얼어요.   집오리 /권 오 훈     우리 속에 날 왜 가둬 왜 왜 왜 왜.   문 열어주면 넓은 세상 빨리 가자 갈 갈 갈 갈.   연못에 뛰어들어선 어, 시원하다 어 어 어 어.   집오리의 소리는 사람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로 들립니다. 우리 속에 갇혀 있을 때는 답답하다고 왜 가둬 두느냐며 왜왜왜…. 그래서 문 열어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갈 길이 바쁘다는 듯, 갈갈갈…. 연못에 풍덩 뛰어들어서는 너무 시원하다고 어어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집오리가 자기 형편에 따라 다르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느끼고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왜왜왜, 갈갈갈, 어어어.' 하는 의성어가 재미있고 그럴듯합니다. (허동인)   어른들은 모르셔 / 제 해 만   엄마, 제비가 왔어요.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빨래를 하십니다.   아빠, 새싹이 나왔어요.   아빠도 들은 척 않고 비질을 하십니다.   어른들은 정말 모르셔 말다툼이나 하고 돈 걱정이나 하시고,   할머니, 여기 꽃이 웃어요. 빙그레 웃어요.   ―무슨 소리냐? 꽃이 웃다니!     정말 어른들은 모르셔 꽃이 웃는 것도 모르시나 봐.   어른들이 어린이들 마음을 너무 몰라 주신다. 그것이 야속하다. "제비가 왔어요." "새싹이 나왔어요." "꽃이 웃어요." 어린이들 생각에는 놀라운 사실인데도 어른들은 관심을 갖지 않으신다. 일에 바빠서일까? 생활이 힘들어서일까? 정말 속상하다. 이 시는 우리 생각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하고 어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김수남)   목련 / 제 해 만   목련은 입이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 모금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이다.   목련은 웃음이다.   아무 욕심도 불평도 없이 얼굴 가득 담고 있는 아이들 티없는 웃음이다.   가을은 / 제 해 만   가을은 노을지는 강물을 딛고 온다. 가을은 풀벌레 울음에 묻어 온다. 가을은 방울꽃 소리를 내며 온다. 가을은 양지밭 수숫잎을 흔들며 온다. 가을은 산능금 열매 속으로 온다. 가을은 단풍나무 물든 숲으로 온다. 가을은 새털구름 은빛을 타고 온다. 가을은 하늘 높높은 너머에서 온다. 가을은 아이들 푸른 꿈 속에서 온다.   태풍 후 / 박 소 명   풀들은 뿌리를 더 든든히 엮는다.   새들은 둥지를 더 촘촘히 깁는다.   들마다 산마다 상처를 싸맨다.   엮고 깁고 싸맨 후에 하늘 보라고 하늘이 더 푸르게 웃고 있다.   산의 사진 찍기 / 박 소 명   언덕은 편히 앉으세요.   앞산은 몸을 낮추고 뒷산은 반듯이 서세요.   먼 산은 까치발로 서고 어깨 사이사이로 봉우리는 얼굴을 내미세요.   찰칵!   앞산, 뒷산, 먼 산 봉우리들의 다정한 어울림.   (한국동시문학 2003-3호)   홍시 / 문 삼 석   잎새를 떨구고 부끄러워 그러니?   꼭지에 매달려 무서워서 그러니?   파아란 하늘만 가지 끝에 걸렸는데,   넌 왜 얼굴을 붉히고만 있니?   씨앗들이 모여서 / 문 삼 석   씨앗들이 모여서 자랑을 했대요. 뭐라 했게요?   민들레 꽃씨가 가만가만 말했대요. ―난 낙하산을 타고 하늘하늘 바람 따라 내려왔단다.     봉숭아 꽃씨도 또글또글 말했대요. ―난 뜨거운 햇볕 속을 총알처럼 빠르게 튀어 왔지.     그러자, 도깨비바늘이 큰소리로 말했대요. ―겨우 그거야? 난 노루 등을 타고 껑충껑충 신나게 달려왔다구.   우리 동네 뒷산길엔 / 문 삼 석   우리 동네 뒷산길엔 이름표를 단 풀꽃들이 많습니다.     꽃무릇 옆에 동자꽃이 있고 동자꽃을 지나면 털머위가 있고 털머위 다음엔 노루오줌, 노루오줌 다음엔 애기똥풀꽃이 있습니다.     하얀 이름표를 단 애기똥풀꽃은 웃음이 작고 노랗습니다.     우리에게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들에서 자라는 들풀도, 거기서 피는 풀꽃들에게도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들풀들은 그리고 들꽃들은 저마다 자기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김원석)   사마귀야 / 문 삼 석   사마귀야, 네 앞다린 왜 그리 짧은 거니?     ―뒷다리는 안 보니? 얼마나 긴데!   그럼, 네 머린 왜 그리 작은 거니?   ―눈망울은 안 보니? 얼마나 큰데!   별(9) / 문 삼 석   9   아가 같은 귀연 눈.   엄마 같은 따슨 정.   10   너를 보면, 그리움이 무언지 알 것 같아.     너를 보면, 기다림이 무언지 알 것 같아.   별(5) / 문 삼 석 5   알 듯 말 듯 작은 웃음.   날 듯 말 듯 누나 얼굴.   6   밤에만 피고 작게만 피고,     하늘에만 피고 눈으로만 피고.   머얼뚱 / 문 삼 석   왜 그러니? ―머얼뚱   할 말 있니? ―머얼뚱   나를 보고 누렁소   커단 눈만 ―머얼뚱 눈 내린 날 / 문 삼 석 소복이 눈 모자 쓴 공중 전화실로     소복이 눈 모자 쓴 꼬마가 들어간다.   소복이 눈 내린 거리를 내다보며   소복이 눈 내렸다고 전화하려나 보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꼬마는 소복이 눈모자 쓰고 공중 전화를 하고 있다. 눈 오는 정경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떠오르는 시이다. 소복이 눈모자 쓴 공중 전화실과 꼬마, 그리고 소복이 눈 내린 거리와 꼬마의 속삭임이 이 시의 모티브이다. 이 시를 읽으면 세상의 잡다한 번뇌도 한 올의 재처럼 스러진다. (오순택) 꽃을 보면서 / 문 삼 석 네가 꽃이야? ―그럼, 예쁜 꽃이지.     요 꽃망울은? ―그건 우리 아가란다.     엄만 어딨어? ―꽃을 싸고 있는, 요 잎이지.     그럼, 아빠는? ―여기, 굵은 줄기 보이잖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어? ―땅 속에 계신단다. 튼튼한 뿌리로…….   고추 / 문 삼 석   가을 해랑 놀다가 빨개졌다.     알몸으로 놀다가 빨개졌다.     가을 해 눈짓 땜에 빨개졌다.     알몸이 부끄러워 빨개졌다. 딸기를 보고 / 문 삼 석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보고,     눈이 뭐랬게? ―'참 빨갛다' 했지.     코는 뭐랬게? ―'참 향기롭다' 했지.     입은 뭐랬게? ―'참 맛있겠다' 했지.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보고….   그만 뒀다 / 문 삼 석   신발짝 물어 던진 강아지 녀석 엉덩일 차 주려다 그만 뒀다. 살래살래 흔들고 있는 그 꼬리 땜에…….     우윳병 넘어뜨린 고양이 녀석 꿀밤을 먹이려다 그만 뒀다. 쫑긋쫑긋 세우고 있는 그 두 귀 땜에…….   그냥 / 문 삼 석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아이와 엄마의 사랑 '그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혹은 '그런 모양으로 줄곧' 등이다. '그냥 내버려두다' 혹은 '그냥 기다리고만 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경우다. 그런데 '그냥'은 또한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란 뜻도 있다. '그냥 주는 돈이 아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면 위 시의 '그냥'은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 문삼석(67) 시인은 엄마와 아이의 사랑을 '그냥'이라는 말 속에 함축했다. 아이와 엄마는 막 잠에서 깨어 서로의 몸을 간질이며 까르르 웃고 있는 중이다. 엄마와 아이의 몸에 살짝 손을 대기만 해도 아이는 몸을 오그리며 숨이 넘어가도록 킥킥댄다. 아니다. 아이는 일하는 엄마 옆에서 방바닥에 배를 대고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힘겹게 글씨를 쓰고 덧셈을 하는 아이를 언뜻언뜻 돌아보며 엄마는 잠시 일하던 손을 놓고 빙그레 웃는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이 시 속의 아이와 엄마는 서로 '마주본다' 이 마주봄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궁극, 절대적 신뢰의 한 표현이다. 그것은 터져 나올 것 같은 행복의 비명이자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이기도 하다. 이 숨 막힐 것 같은 사랑의 회오리 속에서 아이는 저도 모르게 묻는다. 엄만 내가 왜 좋아? 이것은 질문이되 질문이 아니다. 아이는 다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충만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 그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시의 '그냥' 역시 답이되 답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그 어떤 의미도 이 시의 '그냥'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엄마는 아가를/ 품속에 안고서도/ "아가야, 아가야."/ 아가만 부르지요."()라거나 "엄마는 나 몰래 나가셨지만/ 어디 계시는지 난 다 알지요./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가/ 부엌에 계신다고 알려 주거든요."()라고 노래할 때, 문삼석 시인은 이미 아이와 엄마의 사랑은 설명 불가능의 영역, 즉 이른바 '언어도단'의 경지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그냥'은 존재하는 것들이 내지르는 신음소리에 가깝다. 세상의 어떤 사전에도 이때의 '그냥'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의 용례는 오로지 시인의 작업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이 새로운 말의 창조자라는 이야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고향, 그 고향에 / 노원호     고향에 가면 바람이 있다. 내 눈을 가만히 적실 바람이 있다. 강물에 발 담그고 푸른 하늘을 끌어내릴 꿈이 있다. 초록빛 들판에서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그 아지랑이를 몸에 감을 종달새 목소리도 있다.     고향에 가면 은비늘 반짝이는 미루나무 숲이 있다. 수천의 피라미떼 오르는 강물 소리를 숲에서 들을 수 있다. 눈을 비비며 맑아지는 바람을 잡을 수 있다.     고향에 가면 내 어머니의 흙손을 만날 수 있다. 한 줌의 흙을 보듬으며 푸른 보릿골에 앉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숱한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 속에 괴어 있는 것은 고향의 흙냄새, 그 진한 냄새를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맡을 수 있다.     향토적인 시어를 많이 사용해서 고향맛을 느끼게 하는, 고향을 노래한 시입니다. 첫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바람이 있고 꿈이 있고 아지랑이가 있고 종달새 목소리가 있음을, 둘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미루나무 숲이 있고 강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람을 잡을 수 있음을, 셋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어머니의 흙손을 만날 수 있고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고 또 고향의 흙냄새를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맡을 수 있음을 노래했습니다. 결국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어머니가 그 곳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을 두고 객지에 나가 살면서 상상을 통하여 그려본 그리움의 시입니다. (허동인)   나무들의 목욕 / 정 현 정   나무들이 샤워하고 있다.     저것 봐 저것 봐     진달래는 분홍 거품이 조팝나무는 하얀 거품이 영산홍은 빨강 거품이 보글보글 일고 있잖아   깨끗이 씻은 자리 씨앗 마중하려고 부지런히 목욕 중이야     온 산이 공중목욕탕처럼 색색의 거품으로 부글거리고 있어.     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걸 '거품을 내며 목욕하는 것'으로 그렸다. 상상력에 의해 사물의 모습이 이처럼 새롭게 달라져 있다. 달라진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시 읽는 쾌감을 한층 깊이 느끼게 되고, 새로운 사물 세계로 여행을 하게 된다. 때문에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의 세계가 열리지 않고, 시들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박두순)   봄바람 / 전 원 범     새장 안의 새 부리 끝에 쪼르릉 걸렸다가     하늘하늘 살구꽃으로 내리다가     파랗게 파랗게 들을 헤매다가     산을 기어오르면서 미친 바람이 되어     아, 빠알갛게 불타 오르는 진달래. 모두가 다 말을 한다 / 전 원 범   세상 무엇이든지 때리면 소리 내어 대답을 한다. 종은 종 소리로 북은 북소리로     양철통은 양철통 소리 나무는 나무 소리 방바닥은 방바닥 소리로   말이 없다고 해서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소리의 말 바람 소리의 말 빗소리의 말   행복한 아이들 / 구 용 맹아학교에 갔어요. 앞 못 보는 아이들 점자로 공부하며 지팡이로 더듬어 골마루를 오가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청각장애인에 비해 아름다운 소리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습니다.   농아학교에 갔어요. 말 못 하는 아이들 수화로 열심히 이야기하며 놀고 있엇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시각장애인에 비해 아름다운 세상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 구 용   기쁠 때 꽃을 봅니다. 언젠가 떨어질 꽃을 봅니다.     슬플 때 달을 봅니다. 언젠가 보름달이 될 달을 봅니다.     욕심이 생길 때 나무를 봅니다. 꽃도 열매도 다 주는 나무를 봅니다.   봄날에 / 이 준 관    바람이 불 때마다 꽃나무 삐죽한 새순에 화그르 불이 붙는다.     동동동 발을 구르며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이 사르르 껍질을 벗는다.     아! 가지마다 쌓인 겨울 햇살을 퍼내는 푸른 삽질 소리.     아이들은 창가에 앉아 거울을 들고 쏟아지는 환한 햇빛을 줍고 있다.   실비 / 강 정 안   실비 금비 내려라. 잔디밭에 내려라.   실비 꽃비 내려라. 꽃송이에 내려라.   실비 싹비 내려라. 가지마다 내려라.   실비 떡비 내려라. 못자리에 내려라.   실비 은비 내려라. 연못 속에 내려라.   비는 한 가지지만, 비가 오는 그 때의 마음에 따라 좋게도 느껴지고, 나쁘게도 느껴져요. 이 시에서는 '금비', '꽃비' 등 좋은 비로 나타내고 또 좋은 곳에 내리라고 했네요. 아무리 나쁜 것도 좋게 보면 좋게 보인답니다. (김원석)   꼭 / 이 준 관   꼭 손 잡고 가자. 감꼭지처럼 다정한 말.     꼭 잊지 않을게. 새끼손가락처럼 사랑스런 말.     장갑 꼭 끼고 가렴. 장갑처럼 따스한 말.     '꼭'이라는 말. 어딘가에 붙여 주면,     엄마처럼 말없이 꼭 껴안아 주는 말.   빈 나뭇가지에 / 김 구 연   빈 나뭇가지에 구름 한 조각 걸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하얀 눈 몇 송이 앉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뾰쪽뾰족 초록잎 돋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빨간 열매 달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한 마리 산새 쉬었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빈 나뭇가지에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빈 나뭇가지에 왔다가 떠나가는 것을 '걸렸다, 앉았다, 돋았다, 달렸다, 쉬었다'로 말을 바꾸어 나타낸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시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표현을 달리 해야 좋은 문장이 됩니다. 만약 이것을 모두 '앉았다 가고'로 표현했다면 '구름 한 조각 앉았다 가고' '초록잎 앉았다 가고' '빨간 열매 앉았다 가고' '한 마리 산새 앉았다 가고' 로 되어 참으로 지루하고 멋없는 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김종상)   꼭 집어낸다 / 오은영      진달래꽃은 와르르 쏟아지는 빛살 속에서 "바로 내 빛깔이야!" 분홍빛 꼭 집어내고     기러기는 많고 많은 하늘길 속에서 "바로 이 길이야!" 가야 할 방향 꼭 집어내고     우리 엄마는 단체 사진 속 콩알만한 얼굴들 사이에서 "여기 너 있다!" 나를 꼭 집어 낸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만유인력의 법칙 / 오 은 영     '안 떨어질 거야' 얼굴이 노래지도록 안간힘 쓰지만 기어이 열매는  땅으로 끌려가고야 말지.     '끝까지 매달릴 거야' 얼굴이 빨개지도록 이 악 물지만  마침내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야 말지.     '엄마랑 얘기하나 봐라' 야단맞고 새침하게 토라져 보지만 엄마가 다정하게 부르면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말지.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제목부터가 낯설다. 감히 과학 용어를 시어로 쓰다니.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고정관념에 매여 있으면 새로운 시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좋다. 다만 시적 육화가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물리학에서 만유인력은 사물이 낙하할 때 지구 중심부를 향해 떨어진다는 원리를 말한다. 1,2연에 그것을 미적으로 잘 드러냈다.   인간 심리에서의 만유인력은 어떤 것인가? 3연에 그것을 심상으로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만유인력은 어머니의 다정함이다.   인간에게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시로 표출하고 있다. (박두순)     이 시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과학의 법칙을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에 비유한 발상이 돋보이며, 뉴턴이 그랬듯이 둘 사이에 '끌려감의 미학'을 시인은 발견한다.   사람들은 물질에 끌려 생명마저 경시하며 살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끌려감의 힘은 물질로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다.   읽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오는 그러한 시라 할 수 있겠다. (김진광)   손님 오실 때 / 엄 기 원   현관에 신발들이 나란히     거실엔 탁자 유리가 반짝     주방엔 커피물이 팔팔     엄마 입술엔 꽃잎이 두 장     게으른 우리 식구 옷도 깔끔   연못 속 / 윤 석 중   연못 속으로 사람이 거꾸로 걸어간다. 소가 거꾸로 따라간다. 나무가 거꾸로 쳐다본다.     연못 속에는 새들이 고기처럼 헤엄쳐 다닌다. 구름이 방석처럼 깔려 있다. 해님이 모닥불처럼 피어 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허리를 구부리고 두 다리 사이로 둘레를 보면 늘 보던 풍경도 별다르게 보입니다. 연못 속에 비쳐 보이는 풍경도 그러합니다. 소를 몰고 가는 사람과 연못가의 나무들이 거꾸로 되어 있어 색다른 세상을 보는 듯합니다. 물 속에서 날아가는 새는 물고기 같고, 그 아래쪽에 하늘이 있어 구름은 폭신한 방석만 같습니다. 해는 동그랗지만 흔들리는 물결에 밀려서 꼭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보입니다. 참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김종상)   연못 속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 위를 사람이나 소들은 걸어 다니는데 연못 속 사람과 소들은 거꾸로 걸어 다닙니다. 연못 속의 세상은 정말 신비스럽고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김진태)   봄날에 /강 현 호   엄마가 사 온 연둣빛 새 치마를 구겼다 폈다 하는 앞산     뒤뜰로 나들이 나와 봄 햇살을 톡톡 부리로 쪼는 수다쟁이 햇병아리들     선잠 깬 개나리만 노오란 손바닥을 가리고 긴 하품을 토한다. 할아버지 등 긁기 / 김 경 성   대구 대구 대구 아이구 시원테이.     전주 저언주 거그 거그 어이 시원혀.     서어울 서울 그래그래 아이 시원해.     부산부산 부산 거어 쫌 글거봐라. 부산은 옆구리니까 할아버지가 긁어요.   산에서는 / 김 용 석   쉿 사뿐사뿐 걷기.     아기 멧새 걸음마 한창인걸요.     쉿 사뿐사뿐 앉기.     길섶 아기 풀씨 새 옷 나들이.     쉿 소곤소곤 말하기.     잎새마다 이는 바람 온 산이 엿듣거든요 깊은 산 속 / 강 영 희     깊은 산 속 나무들은 아름다운 산새 소리 오래오래 쌓아 두고 싶어 날마다 잎을 키운다.     깊은 산 속 나무들은 밤마다 속삭이는 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자꾸만 하늘로 뻗어간다.     조잘대는 산새 소리 발끝까지 간지러운 산골물 소리 그 소리가 듣고 싶어 산토끼 다람쥐도 쫑긋쫑긋 귀 기울이고 찾아오면     지나던 달님도 밤새도록 함께 놀다가 새벽에야 허겁지겁 산을 넘는다.   진땀 / 강 윤 제   결 곱게 불어야지 결 곱게 불어야지 바람은 진땀을 흘렸습니다.     딱 맞게 뿌려야지 딱 맞게 뿌려야지 가랑비까지 진땀을 흘렸습니다.     논과 밭, 흙들도 땅심을 보태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그것들을 버물러서 노오랗게 익히느라 빠알갛게 다듬느라 햇볕도 진땀을 흘렸습니다.     엄마 아빠도 두 손이 갈퀴가 다 되도록 짭조롬한 진땀을 흘렸습니다.     농사를 지어 그 열매를 거두어들일 때까지는 농부들의  노력과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갑니다. 그 노력과 정성을 '진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농부들만 진땀을 흘린다고 농사가 잘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토질도 좋아야 하지만, 햇빛과 온도가 맞아야 하고, 또 비도 적당한 때에 내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바람도, 비도, 땅도 진땀을 흘려야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해는 풍년임이 틀림없습니다. '삼위일체'란 말도 있지만, 계획했던 일이 자기 뜻대로 되었다면 그건 자기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나 봅니다. (허동인)   오월 어느 날 / 강 현 호   파아란 잎들이 잘 다림질한 꽃잎을 받쳐듭니다.     사뿐 걸터앉았던 나비가 흰 옷자락을 걷어올리며 일어섭니다.     ―에그, 옷을 다 버렸군. 지나던 바람이 날개에 묻은 꽃가루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사진찍기기 / 강현호   "자아, 활짝 웃어요." "자아, 김―치."     봄 뜰에서 봄바람이 사진을 찍는다.     흰 덧니를 드러낸 목련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노오란 가락지를 낀 개나리도 두 손을 흔든다.     뒤늦게 달려온 해님이 두 뺨을 붉히며 활짝 웃었다.   바람 부는 날 숲에는 / 공 재 동   떡갈나무들이 흰 손바닥을 드러내고 손뼉을 치며 웃고 있다.     뻣뻣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잔 빼던 소나무도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밤나무도 허리를 잡고 웃노라 하얀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도 모르고 있다.     바람 부는 날 숲에는 나무를 간지럽히는 바람의 손길이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초록 웃음을 밟고 가는 바람의 장난기가 끝없이 끝없이 날아오른다.   (어린이문학 2001-12)   바람  / 구 옥 순   빨랫줄에 널린 아가 옷 고 속에 들어가 아가도 되었다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 쓸어 모으는 청소부 아저씨도 되었다가     호륵 호르륵 휘파람 부는 장난꾸러기 소년도 된다.   귀여운 장난꾸러기 같은 바람. 빨랫줄에 걸린 옷 속에도 들어가 보고, 나뭇잎도 쓸어 모으고, 호르륵 휘파람을 불며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바람은 틀림없이 장난꾸러기이겠지요. 바람을 보면서 개구쟁이 동생이나 짓궂은 골목대장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쪼금만 / 권 영 상   햇살이 숲 위로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아까워 참나무들이 잎을 펼쳐 햇살을 받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햇살이 참나무 아래로 떨어집니다.     ―쪼금만. 거미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미가 꼭 필요한 만큼 햇살 조각을 떼어 냅니다. 거미가 떼어 내고 남은 햇살이 숲 아래 어린 풀잎 위에 내려앉습니다. 쪼금만, 이번엔 꼭 필요한 만큼 풀잎이 햇살을 덜어 냅니다.     ―나도 쪼금만. 개미가 있군요, 풀잎 밑을 기는 개미. 개미까지 받을 수 있도록 숲은 꼭 맞게 햇살을 나눕니다.   바람 부는 날 / 김 구 연   미루나무들이 벌판을 달리고 있습니다. 맨주먹 불끈 쥐고 머리칼 휘날리며.     콩밭도 달립니다. 수수밭도 달립니다.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집도 달립니다.   동심의 모습을 발견하기   이 시는 바람 부는 날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마치 아이들이 맨주먹을 쥐고 달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쓴 시다. 이 시에 나오는 미루나무나 콩밭이나 수수밭은 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모습 그대로이다. 자연을 보면 이와 같이 귀여운 동심을 발견할 수 있다. 새와 꽃과 나무에서 아이들과 닮은 점을 찾아 시로 써보기 바란다. (이준관)   재 보기 / 문 삼 석   "나랑 키재기해 보겠니?" 기린이 목을 길게 늘였어요.     "그럼 나랑 코재기해 볼래?" 코끼리가 투우! 코를 불었어요.     "그런 것 말고…" 하마가 하아앙! 하품을 했어요. "…나랑 입재기는 어때?   하찮은 짐승일지라도 다른 짐승들보다 더 좋을 점을 조금씩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키를 잰다면 기린이 일등이겠지만, 코로 겨룬다면 코끼리를 당할 것이 없지 않겠어요? 자기가 남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내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문삼석)   아가 웃음 / 문 삼 석     ―반짝! 눈이 웃고     ―발름! 코가 웃고     ―방긋! 입이 웃고     ―볼록! 배가 웃고…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눈은 반짝반짝, 코는 발름발름 웃지요. 방긋방긋 웃는 건 무엇일까요? 또 볼록볼록 웃는 것은요?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지요. (문삼석)   산골 물 / 문 삼 석   하도 맑아서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 합니다.   하도 맑아서   햇빛도 들어가 모래알을 헵니다.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 한다니 얼마나 맑은 물인가? 또 햇볕도 들어가 모래알을 헨다고 하니 얼마나 맑은 산골물인가? 시를 읽는 순간 마치 맑은 산골물에 하얀 발을 담그고 서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이다. 귀에 돌돌돌 모래알 구르는 소리 들리고 마음이 금세 맑아지는 듯하다. 문득 동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삼석(1941∼)의 초기 시세계는 '이슬'과 '산골물'로 대표된다고 할 것이다 그는 '이슬', '산골물' 등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낸다. 이슬이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의 상징인 것처럼 그가 생각하는 동시도 가장 맑고 깨끗한 마음을 담은 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동시는 이슬과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시가 응축되어 있다. 이미지가 투명하다. 또 아주 쉬운 말을 구슬처럼 깔끔하게 갈고 닦아서 쓰고 있다. 시적 구성도 최대한 단순화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연작 형태가 많다. (전병호)   지지지 지지지 / 김 기 현   뭐가 뭐가 지지지? 흙장난하는 아기보고 고모가 하는 소리지.   뭐가 지지지? 추석날 엄마가 빈대떡 뒤집는 소리지.   뭐가 지지지? 공부할 때 남포 심지 타는 소리지.   '지지지'는 아기들에게 더러운 것을 말할 때 쓰지요. '지지지'란 말은 또 빈대떡 뒤집을 때의 의성어, 또 등잔불의 심지 타는 소리죠. '지지지'란 말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네요. (김원석)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 김 상 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비눗방울이 된다. 무지개빛 방울이 되어 하늘 가득 피어오른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새 떼가 된다. 어지럽게 날아다녀도 부딪치지 않고 하늘을 덮는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시냇물이 된다. 갈라지는 것 없이 누구나 하나 되어 웃음으로 흐른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종 소리의 남는 소리가 된다. 아이들이 떠나고 놀이 내려도 남는 소리는 동그라미를 그린다.   학교 운동장은 어린이들의 꿈이 영그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린이의 꿈이 담긴 비눗방울과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 오르기도 합니다. 운동장은 혼자 있어도 어린이의 소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원석)   봄 오는 소리 듣기 / 김 봉 석     가만히 눈 감고 들어보아요 산마다 진달래꽃 붉은 물감 칠하는 소리     가만히 귀 대고 들어보아요 목련나무 하얀 꽃잎 나무 타고 올라오는 소리     가만히 숨 고르고 들어보아요 입학식 날 동생들이 "하나, 둘, 셋, 넷!" 운동장 발 구르는 소리   (2006. 3.『어린이동산』)   봄맞이 / 박 근 칠    개나리 핀 울타리를 비집고 나온 강아지 꼬리에 햇살이 감긴다.     파란 강물 속의 물고기 비늘은 번득이고 버들강아지 솜털눈이 부시다.     보리밭 이랑마다 겨울잠을 풀어내는 생명의 숨소리 들리고     ―음매 나중 나온 송아지는 동구 밖에서 들판을 깨운다.   새 봄을 맞이하는 즐거움. 봄을 남보다 먼저 맞이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온 강아지와 냇가에 피어난 버들강아지와 동구 밖을 뛰어나온 송아지들입니다. 그들이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봄을 깨우고 있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풀꽃 / 박 소 명   향기 샘 아무리 얕아도 향기 솔솔     꽃방 아무리 좁아도 암술, 수술 나란히 나란히     꽃씨 아무리 작아도 뿌리랑 잎이랑 꽃이랑 차곡차곡   누렁소의 말 / 박 소 명   파리에겐 꼬리로 말하지요 (저리 가) 철썩     강아지에겐 뒷발로 말하지요 (귀찮아) 뻥     할아버지에겐 눈으로 말하지요 (고마워요) 꿈뻑꿈뻑     송아지 부를 때만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지요 움머움머!     (2007년 봄 『오늘의 동시문학』)   시인은 누구나 자연물과 대화가 되는 능력을 가졌지만 박 시인은 동식물의 언어를 통역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여느 시인들이 자연물과 하는 대화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시인들은 그냥 바로 마음을 터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을 읽지만 박 시인은 소꼬리가 하는 말은 '저리 가'라는 뜻이라고 독자에게 일러주는 방식입니다. 어린이를 즐겁게 할 작품이 귀한 터에 안성맞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지훈)   봄 / 박 숙 희   네가 보낸 편지는 어여쁜 웃음이다. 매화나무, 벗나무, 살구나무들이 저렇게 팝콘처럼 웃고 있으니.     네가 보낸 편지는 기쁜 축전이다. 솜방망이, 민들레, 냉이, 제비꽃 모두모두 일어서서 환호하는 것 좀 봐.     네가 보낸 편지는 즐거운 노래다. 얼어붙은 산골물 쫄쫄 쪼르르 비이비이 로리로리로 노래하는 새들.     어디어디, 나도 좀 보아 발뒤꿈치 들고 새싹들이 일제히 발돋음한다. 산도 들도 부시시 일어나 앉고,     네가 보낸 편지는 아름다운 시다. 기쁨으로 노래로 온 세상에 그득한 시 읽어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시다.   생일 선물 ./ 박 종 해   아빠가 주신 생일 선물은 동화책 임금님, 왕자님에 신기한 요술 나라 내 마음은 부풀어 하늘 문 열고 파아란 꿈밭으로 달려갑니다.     엄마가 주신 생일 선물은 크레파스 가고픈 바다 궁전, 무지개 일곱 나라 내 마음은 아롱다롱 오색 빛깔로 새벽 풀잎 이슬처럼 맺혀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동화책을 펴면 동물 나라, 귀신 나라, 하늘 나라, 바다 나라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동화책 표지는 온갖 신기한 나라로 들어가는 대문인 셈입니다. 크레파스로 쓱쓱 그리면 고운 놀과 울창한 숲, 바다 궁전, 달나라 풍경, 무엇이나 만들어 보일 수 있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동화책과 크레파스는 참으로 귀한 꿈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종상)   좋겠다 / 서 정 숙    꽃잎은 좋겠다 방울방울 이슬이 닦어 주니까.   나무는 좋겠다 주룩주룩 소나기가 씻어 주니까.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우리는 아침마다 세수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목욕을 합니다. 그것이 싫어서 세수를 하지 않고 학교에 오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꽃잎은 아침마다 밤이슬이 내려 세수를 시켜주고, 나무는 가만히 서 있어도 때때로 소낙비가 와서 목욕을 시켜 주니까 좋겠다고 했습니다. 꽃과 나무를 나와 똑같은 자리에 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종상)   섬은 / 선 용   파란 들판에 홀로 핀 한 송이 꽃 꽃 꽃     파도 소리 그리운 작은 귀 귀 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은, 파란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이라 할 만하지요. 하지만 섬은 아름다움을 갖는 대신 스스로 외로운 단독자로 남아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섬은 늘 파도에 실려오는 물 소식이 그리워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지요. 섬이 갖는 아름다움과 고독을 선용(1942~) 시인은 꽃과 귀로 의미있게 표현해 냈지요. (김용희) 맞아, 맞아, 맞아. 이 시를 읽으면 이 말이 절로 나와요. 넓은 바다는 파란 물결 들판 같고, 섬은 그 들판에 핀 한 송이 꽃 같아요. 참 아름다운 상상이지요. 그러나 섬은 외로워요. 그래서 늘 파도에 실려 오는 뭍(육지) 소식이 그리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요. 섬은 꽃이고 귀예요. 섬은 시인에 의해 꽃과 귀로 새롭게 탄생한 거지요. (박두순)   비 내리는 사이에 / 설 용 수   바람이 그네 줄을 흔들며 "튼튼하구나."     빗물이 미끄럼을 타며 "잘 미끄러지는걸."     참새 두 마리 시소에 올라서 "중심도 잘 맞아."     바람이 빗물이 비 맞은 참새가     놀이터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비 내리는 그 사이에,   산골 사는 옥이 / 김 동 산   산골에 사는 옥이는 계곡물처럼 졸졸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산새처럼 재재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산꽃처럼 방실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잎새에 비치는 햇빛처럼 반짝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그대로 순진한 자연이다.   (2001년 11월 『월간문학』 제95회 신인상 당선작   빈 집 / 유 정 숙   산 아래 빈 집 마당에 뒹구는 개밥그릇에 푸른푸른 풀씨가 싹을 틔웠다.     흙먼지 뒤집어 쓴 운동화 짝에 들레들레 민들레가 피어났다.     주인 없는 빈 집에 바람이 제 맘대로 꽃꽂이했다.   (2005년 봄『한국동시문학』9호)   이 작품을 대하면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 가슴에 그려진다. 사람들이 일부러 가꾼 꽃보다 저절로 피어나는 자연의 꽃이 자연스러워 더욱 정감이 간다. 개밥그릇에 싹을 틔운 것도 예쁘고 운동화 짝에 민들레가 핀 모습도 귀엽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만 멀리 있어도 빼어난 그림을 연출한다. 이 시는 끝 연의 뛰어남이 시 전체를 살려주었다.(남진원)   가을 바람 / 윤 이 현   가을 바람은 하얀 손수건 기차의 꼬리가 달달달 산모롱이 휘돌아 갈 때 언덕 위엔 억새풀 날리고 있었지.     가을 바람은 가녀린 웃음 고추잠자리 맴을 돌다 저녁노을 속으로 멀어져 갈 때 길섶엔 코스모스 파르르 피어 있었지.     가을 바람은 휑한 가슴 허수아비 엉거주춤 빈 손으로 들녘에 서 있을 때 먼 곳엔 하늘이 솔솔솔 높아 있었지.     '가을 바람'을 3연으로 나누어 같은 형식으로 나타내었습니다. 그러기에 동요에 가까운 동시로 볼 수 있습니다. 표현에 있어선 은유법이 두드러지는데 '가을 바람은 하얀 손수건' '가을 바람은 가녀린 웃음' '가을 바람은 휑한 가슴'이 바로 그것입니다. 더 깊이 파고 들면 '하얀 손수건'은 ''언덕 위의 억새풀'을 '가녀린 웃음'은 '먼 곳의 하늘'을 노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며, '기차' '산모롱이' '고추잠자리' '저녁노을' '허수아비' '들녘' 등의 단어가 가을의 정경과 정취를 한층 더 돋구어 주고 있습니다. (허동인)   망망망 / 이 상 교   작은 두 귀가 망망망     작은 발 네 개가 망망망     작은 엉덩이가 망망망     작은 꼬랑지가 망망망     우리 강아지가 맨 처음 짖은 날.     낯선 이가 찾아오면 맨 먼저 짖으며 경계하는 일이 개의 몫이지요. 그런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짖어도 위협적이긴커녕 귀엽게만 들립니다. 태어나 처음 짖는 강아지의 외침이 우리 집 아이의 옹알이 소리 같기도 하고, 이웃집 아이가 부르는 동요 같기도 하지요. 이상교(1949~) 시인이 '망망망' 하는 소리에다 어린 강아지의 앙증맞은 움직임을 모두 담았으니, '소리'와 '모양'의 절묘한 어울림이라 할 만합니다. (박덕규) 망망망. 강아지가 맨 처음 짖었어요. 두 귀를 흔들며 망망망. 네 발을 흔들며 망망망. 엉덩이를 흔들며 망망망. 꼬랑지(꼬리)를 흔들며 망망망. 짖는 소리도 귀엽게 망망망. 짖는 모습도 귀엽게 망망망. 시인은 '작은'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썼어요. '귀엽다'라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서이지요. 작은 것은 다 귀여워요. 작은 송아지, 작은 개미, 작은 물고기, 작은 아기, 다 귀엽지요. (박두순)   목련 / 이 석 장   보여줄까 말까 보여줄까 말까 겨우내 써 모아 둔 가슴 시리던 사연 꼬깃꼬깃 접은 하얀 쪽지     봄햇살이 하도 보채어 화알짝 펴 들었다.     웃을까 말까 웃을까 말까 겨우내 오들오들 눈물겹게 견디며 앙 다물었던 입술     봄바람에 하도 간지러워 화알짝 웃었다.   동요에 가까운 시입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 노래했는데 하나는 목련을 '하얀 쪽지'로, 다른 하나는 '다물었던 입술'로 보았습니다. 봄날 목련꽃이 피어 날 때의 모습을 시로써 그려보았습니다. (허동인)   우산과 양산 / 이 인 화   비 오는 날 우산은 작은 지붕이야.     비를 대신 맞아주는 참 착한 지붕이야.     해 밝은 날 양산은 활짝 핀 해바라기야.     해님 향해 웃는 참 예쁜 해바라기야.   보름달 / 이 종 문   밤마다 밤마다 잠도 못 잤는데 어쩌면 포동포동 살이 쪘을까?     날마다 날마다 햇볕도 못 쬐었는데 어쩌면 토실토실 여물었을까?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보름달이 떴습니다. 둥글고 환하게 밝은 저 보름달! 지은이는 그 보름달을 포동포동 살이 찐 어린이의 복스러운 얼굴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자 순간, 밤에 떠서 세상을 밝게 비추느라 잠도 못 잤을 텐데 어쩌면 저렇게 살이 쪘을까?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한번 쳐다보았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어느 잘 익은 열매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문득, 열매는 햇볕을 쬐어야 잘 익는데, 밤에만 떠서 햇볕도 쬐지 못하면서 어쩌면 저렇게 잘 여물었을까?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이, 시는 곧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김한룡) 시가 단조로울 때는 강조하고 변화를 주어라 이 동시는 글의 짜임이 같다. 짜임은 같은데 말만 바꾸어놓았다. 옛날 한시에서는 반드시 대구법을 썼다고 한다. 우리 동요에서도 대구법을 많이 썼다. 대구법은 음악성을 살리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게 좋다. 시가 단조로워질 때는 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변화를 주는 수사법으로는 도치법, 설의법, 문답법 등이 있다. (이준관)   들꽃 이름 / 이 지 은     "이름이 왜 애기똥풀이니?" "줄기를 자르면 노오란 즙이 나와."     "이름이 왜 끈끈이대나물이야?" "줄기를 만져보면 끈적거려."     "이름이 왜 씀바귀야?" "뿌리도 잎도 아주 쓰거든."   꽃씨/ 이 태 선   까만 꽃씨에서 파란 싹이 나오고.     파란 싹이 자라 빨간 꽃 되고.     빨간 꽃 속에서 까만 씨가 나오고.   참으로 간결한 동시입니다. 낱말이 모두 17 개요, 글자 수가 모두 37 자입니다. 이만한 말로써도 꽃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건 문학(시)의 자랑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색깔이 있는 말들을 골라 쓴 것을 주의깊게 보아야겠습니다. 까만 꽃씨를 땅에 묻었더니 파란 싹이 나온다는 신기함을 어린이의 느낌으로 그린 것인데 까망과 파랑이 대조가 이뤄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파란 싹이 나와 자라더니 빨간 꽃이 핀다고 한 데서는 파랑과 빨강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빨간 곷 속에서는 까만 씨가 나온다고 해서 빨강과 까망의 색깔 대조가 아주 효과적입니다. 색깔을 대조시키는 거기, 화안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개미 / 이 환 채   고 작은 이마 뻘뻘     고 작은 눈 반짝반짝     고 작은 다리 영차영차     고 작은 머리 지혜가 가득     (2006년 11월『어린이동산』)   초가집 낙숫물 / 이 희 철    사르륵 사알짝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지붕 위에 모여 와서 미끄럼 탄다.     퍼르륵 퍼얼쩍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추녀 끝에 모여 서서 뜀질을 한다.     투루룩 루욱룩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댓돌 밑에 모여 앉아 옹달샘 판다.   1연 3행 6연으로 이루어진 동시이다. 자연 현상을 통해 천진한 동심을 묘사했다. 동심을 통해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통해 다시 동심으로 되비치는 밝은 정신이 들어 있다. 문체는 생략법에다가 '사르륵 사알짝', '퍼르륵 퍼얼쩍', '투루룩 루욱룩' 등의 의성어로 음악적 리듬을 가미하여 돋보이도록 했다.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질서로 구성되었으며 '옹달샘 판다'로 마무리하여 물방울이 돌 뚫는다는 것을 연상 쉬지 않고 나아감을 시사했다. 소박한 동심을 관조하여 어린이 모습을 순수세계(자연현상)로 환치시켰다. 의인법으로 하여금 '물방울'하면 '어린이', '어린이'하면 곧 '물방울'로 그 작은 것과 맑고 깨끗한 것과 또 밝은 곳으로 자라남을 연상시킬 수 있어 좋다. 이 시는 지은이의 나이 44세 때 작품으로 1978년 '세광동요 350곡집'에 박창옥 작곡으로 실려 있다. (공주대 국어과 교수 노종두)   비둘기 / 전 병 호   글자를 배우고 나서 들어보면 구구구구구     숫자를 배우고 나서 들어보면 99999   술래잡기 / 전 원 범   해와 달이 술래잡기를 한다. 빙빙 돌면서 술래잡기를 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하루가 가고     시침과 분침이 술래잡기를 한다. 두 바퀴 돌 때마다 하루가 가고 시간이 가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술래잡기를 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해가 간다.   해와 달, 시계의 분침과 시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도는 것이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아 시로 옮겨 보았습니다. (전원범) 구리구리구리 / 손 동 연 구리는 구린데 논에서 나는 구리는? 개구리     구리는 구린데 나무에서 나는 구리는? 딱다구리     구리는 구린데 굴에서 나는 구리는? 너구리     구리는 구린데 길에서 나는 구리는? 쇠똥구리 말똥구리     이 문제를 못 풀면 너는너는 무슨 구리? 멍텅구리   (아동문예 2001-5)   태풍 / 정 춘 자   ―얘들아! 먹구름 봐 태풍이 온다 사과나무는 사과알 꼭 붙잡는다.     ―얘들아! 떨어지면 큰일이야 감나무는 풋감을 꼭꼭 붙잡는다.     ―얘들아! 엄마를 꼭꼭 붙잡아라. 대추나무가 소리친다.   의인화한 시로서 흔하지 않은 작품이다.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식을 보호해 주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냈다. 대체로 잘 짜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최춘해)   봄비 내리는 소리 / 정 하 나   산으로 갈까? 들로 갈까? 소곤소곤     꽃을 먼저 피울까? 잎을 먼저 피울까?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아직도 결정 못 했나? 종일토록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봄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저들끼리 속삭이는 얘기소리가 들려 오지요. 산으로 갈까? 들로 갈까? 꽃을 먼저 피울까? 잎을 먼저 피울까? 보통 사람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 말도 시인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려 오지요.   고 작은 것 / 제 해 만   고 작은 것 제비꽃이 피지 않으면 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매미가 울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추잠자리가 날지 않으면 가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눈가루가 내리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고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만든다.   사람들은 대개 큰 것을 좋아하고 큰 것에 눈길을 더 준다. 작은 것은 시시하고 하찮게 생각한다. 가벼히 여긴다. 그런데 이 시를 읽어보면 그게 아니다. 작은 것이 우주를 이룬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작은 데서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에 큰 뜻과 가치를 매긴다. 작은 제비꽃이 피어 봄이 온다. 작은 매미가 울어 여름이 된다. 고추잠자리는 가을을 부르고, 눈은 겨울을 뒤덮는다. 어찌 작은 것이 크지 아니한가. (박두순)   이른 아침 / 조 명 제   빨랫줄에 참새 두 마리 갓 익은 아침 햇살을 톡톡 쪼아대고 있다.     선잠 깬 노랑 병아리     쫑쫑대며 부스러기 햇살을 줍고 있다.   저녁 바닷가 / 조 명 제    산등성 넘어 해님은 집으로 가고     칭얼대는 파도를 바람이 살랑살랑 잠재우고 있다.     갯벌엔 기일게 꽃게 발자국     어둠이 할금할금 뒤를 밟고 있다.   바닷가에 해가 지고 있다. 해님은 산등성이를 넘어 집으로 갔다. 잔잔한 저녁 바다의 파도 위로 바람이 지나간다. '칭얼대는 파도를/ 바람이 살랑살랑/ 잠 재우고 있다'의 한 구절은 묘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갯벌엔 꽃게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다. 어두움이 뒤를 밟아오고 있다. 이 밖의 많은 사실들은 생략해 버렸다. 그러면서 저녁 바다의 풍경을 그림처럼 떠오르게 했다. 같은 내용을 담은 시는 간결할수록 좋다고 한다. 꽃게 발자국을 점 찍듯 몇 개의 풍경을 들어, 저녁 바닷가를 노래한 이 시는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적당히에는 / 조 영 수   ―아빠, 화분에 물 얼마나 줘? ―음, 적당히. 아빠의 적당히에는 꽃망울의 두근거림이 들어 있다.     ―엄마, 밥물 얼마나 부으면 돼? ―음, 적당히. 엄마의 적당히에는 둥그렇게 둘러앉은 식구들 웃음 소리가 들어 있다.     달달달 외운 내 적당히에는 시험지 속에 껍데기로 납작 엎드려 있다. 꽃씨 / 최 계 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간히 꽃도 피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떼가 숨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   이 작품은 꽃씨 한 알 속에 담겨 있는 신비로움을 노래한 시다. 지은이는 꽃씨 한 알을 보면서 그 꽃씨가 땅에 묻힌 뒤의 일을 상상해 보고 있다. 즉, 봄이 되면 흙 속에 묻힌 꽃씨는 파란 싹을 틔우고, 빨간 꽃을 피우고, 그러다 노란 나비까지 불러들이는 신비로움의 세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떻게 이 조그만 꽃씨에서 싹이 돋아나고, 많은 꽃이 피게 되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지은이는 이런 신기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꽃씨를 보면서 상상한 사실(꽃씨가 싹을 틔우기도 하고, 꽃을 피우기도 한 일)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게 나타내었다. 만약 한 알의 꽃씨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면, 내 호주머니 속에서도 꽃이 피고 나비떼가 날아다니는 셈이 된다. 시인의 멋진 상상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최계락(19301970)은 경상남도 진양 출생이다. 1947년 9월 에 동시 '수양버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재철은 그의 동시를 평하여 종래의 요적 내재율을 완전 배제하고 순전한 내재율을 채택하고 있으며, 정적인 고요함으로 느낌보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이 현상학적인 표현보다는 보이지 않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서 보고, 이를 이전의 동시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표현 미학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같은 그의 시 창작법은 순수 동시 추구를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곧 1960년대 본격 동시를 낳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꽃씨'는 독자인 어린이에게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경이로운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 애송되고 있다. (전병호) 컴퓨터 파일 같은 조그만 꽃씨. 누가 저장해 둔 걸까요? 어떤 손길이 그 파일을 열었을까요? 이른 봄 파일 속에서 잎과 꽃과 나비 떼가 깨어났어요. 조그만 꽃씨가 눈을 비비지요. 잎을 매달고, 꽃잎을 엮어, 나비 떼를 데리고 세상을 내다보고 있어요. 해마다 봄이 되면 깨어나는 자연의 신비. 그 신비 속은 걸어들어 갈수록 풀리지 않고 오히려 감기기만 하는 수수께끼 같아요. 아름다운 수수께끼. (박두순)   불과 여섯 줄. 글자로 따져도 50 자가 못 되는 이 작품 속에는 그러나 한없이 넓고 깊은 세계가 담겨져 있다. 그 작은 꽃씨 속에서 하늘거리는 파아란 잎, 피어있는 빠알간 꽃, 그리고 숨어있는 노오란 나비떼를 볼 수 있는 눈은 누구나 쉽게 갖는 것이 아니다. 시인들 중에서도 최계락쯤 되니까 그런 눈을 갖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꽃씨의 생성 변화를 통해 자연의 섭리, 우주의 신비를 파악하는 눈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눈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환히 꿰뚫어 보는 눈이다. 어린이는 직관을 통해 존재를 파악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일반적인 세계의 객관성, 논리성이 게재될 틈이 없다. 어린이에게는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엄연한 실재다. 그것은 고대인이 의식한 세계의 실재 속에 내재하는 원리와 닮은 점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시간과 공간 개념. 거리와 양에 대한 개념의 미분성 내지 원시성이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임)   민들레 꽃씨 / 최 정 심   민들레가 솜사탕을 들고 소풍간다.     바람이 지나며 한 입 덥썩 베어먹고     벌 나비 날갯짓에 한 웅큼 묻혀 가고     빈 대궁만 남았어도 즐거운 소풍길.   의인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민들레씨가 여물어 흩어져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시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시이다. 1연과 2연을 보면 참신한 경이감이 표출되어 있어 독자들을 감동케 한다.(정만영)   산새 / 허 호 석   네 소리로 산이 자고 깬다.     네 소리로 나무 나무 끝끝 구름이 머물고     외딴 곳에 산딸기가 익어간다.     네 소리로 산마을이 자고 깬다.     네 소리로 빛깔 고운 산망개가 열리고     산빛 곱게 옹달샘이 맑아진다.   산새소리는 언제 어느 때 들어도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그 산새소리에 따라서 모든 것이 움직이며 돌아가는 듯합니다. 산도,구름도, 산딸기도, 산마을도, 산망개도, 옹달샘도…. 산새도 자연의 일부이지요. 말은 없어도 질서있게 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새삼 느끼고 깨닫게끔 합니다. (허동인)   가을 / 김 녹 촌   가을 하늘 한껏한껏 높푸르니,     고추도 한껏한껏 눈부시게 빨갛고     햇살이 한껏한껏 해맑으니,     벼도 한껏한껏 노랗게 깨끗하고     햇볕이 한껏한껏 따가우니     대추도 한껏한껏 토실토실하고…….   가을이면 고추가 빨갛게 물들고, 벼가 노랗게 익고, 대추가 토실토실 살찌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늘이 높푸르고, 햇살이 해맑고 햇볕이 따갑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자연이 어떤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종상)   가을 아이 / 강 윤 제   코스모스는 아이들 손 되어 바람을 흔들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얼굴로 바람을 웃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되어 바람을 보여준다.     가을 아이로 서 있는 코스모스.   전선줄 정거장 / 홍 은 순   전봇대의 전선줄은 정거장인지 오고 가는 참새들이 모여 앉아서 짹짹짹짹 지껄이고 헤진답니다.     전봇대의 전선줄은 정거장인지 강남 가는 제비들이 모여 앉아서 비비배배 의논하고 떠난답니다.   꽃잎 속에는 / 권 극 남    찬찬히 찬찬히 꽃잎을 바라보렴.     빨간 빛덩이 해가 보이잖니?     벌, 나비, 바람도 보이네.     또 있잖니? 비를 뿌려 목 축여준     파란 하늘도 보이잖니?   시계 가게 / 이 상 교   "5시 5분이 맞아!" 부엉이 시계가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다.     "아냐, 11시 정각이야!" 기둥 시계가 뚝딱뚝딱     "7시라니까!" 뻐꾸기 시계도 지지 않는다.     시계마다 제가 가리킨 시각이 맞는다, 맞는다, 서로 우긴다.     뚝딱뚝딱, 투닥투닥 째깍째깍, 찰칵찰칵     우기는 목소리도 다 다르다.     감각적으로 표현하라     시계 가게의 제각각 시간이 다른 시계들을 재미있게 의인화한 이 시에서 '뚝딱뚝딱', '투닥투닥', '째깍째깍', '찰칵찰칵' 등이 청각적 이미지다. 후각적 이미지는 냄새를 표현하는 수사법으로서 예컨대 '산새알은 달콤하고 향깃한 풀꽃 냄새 이슬 냄새'에서 '풀꽃 냄새'와 '이슬 냄새'가 후각적 이미지다. (이준관)   봄 날 / 추필숙   푸우 푸우 비눗방울 날아간다.   아이들이 두 손으로 받아든다.   후우 후우 민들레 씨앗 날아간다.   흙이 두 손으로 받아든다.   웃음 / 엄 기 원   그건 꽃이다. 아름다운 빛깔의…….     그건 행복이다. 남도 듬뿍 나누어 주고 싶은…….   참 잘했지 / 엄 기 원   울 밑에 심심풀이로 꽃씨 몇 알 뿌려 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싹이트고 줄기가 자라 봉숭아꽃, 분꽃이 고맙다고 웃는다.   그 때 꽃씨 뿌리길 참 잘했지.     날마다 메꾸는 나의 일기 쓰면서 쓰면서 "에이, 일기는 뭣하러 쓴담?" 투덜댔는데,     먼 훗날 그 일기 읽어 보니 온갖 기억 되살아난다.     그 때 일기 쓰길 참 잘했지.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조그만 일도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알의 꽃씨가 크게 자라 꽃을 피울 때나 조금씩 쓴 일기가 커다란 추억을 되살려 줄 때의 기쁨을 생각해 보셔요. 그런 것이 모두 작은 일이지만 결과는 참으로 커다랗게 자라서 우리를 기쁘게 해 줍니다. (김종상)   어울려 사는 세상 / 강 대 택   꽃밭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빨강, 보라, 노랑, 하양……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가지가지 저마다 제 모습으로 눈부시지만 제 자랑 앞세워 뽐내지 않기 때문이란다.     숲 속이 저렇게 평화로운 것은 새 소리, 물 소리, 바람 소리…… 크고 작고, 높고 낮고, 길고 짧고 저마다 제 소리로 노래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줄서기 / 김 둘   화장실갈 사람은 줄을 서야지 오줌 급한 미루나무들이 주루룩― 언덕 위에 줄을 섭니다.     체조 할 사람은 줄을 맞춰요 운동 나온 미루나무가 샤샤샥― 옆팔 벌려 줄을 맞춰 섭니다.     사진 찍을 사람은 모두 나와요 머리 빗고 몸단장한 미루나무들이 콧노래 부르며 줄을 섭니다. 하나, 두울, 세엣, 찰칵!   (제149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가을 들판 / 김마리아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가 발름발름.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이 반들반들.     '아, 먹고 싶다.' 가을 들판에서 메뚜기와 참새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벼와 수수가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는 발름거리고,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은 반들거리겠지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야 우리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거나 냄새 맡으면 자꾸 코가 벌름거리고, 눈길이 가는 걸 경험했으니까 알지요. 시인의 코와 눈은 예민하고 밝아야 한답니다. (박두순)   괄호 안에 말 / 김마리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친구에게 따지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꼭꼭 묶어 둬야지.     "미진이는 옷이 더러워" 짝에게 귓속말하고 싶을 때 괄호 안에 꽁꽁 묶어 둬야지.     "엄마, 형아가 군것질했어요" 고자질하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꽉꽉 묶어 둬야지.   밖으로 못 나가게.   숲 속/ 김 숙 분   숲 속은 미로     향기가 들어섰다 나오지 못하고 여기서 솔솔 저기서 솔솔.     새들이 들어섰다 나오지 못하고 여기서 짹짹 저기서 짹짹.   봄 길 / 김 영 민   햇살이 놀고 있는데     민들레가 끼어들었다.     개나리가 끼어들었다.     벌, 나비도 끼어들었다.     어서 와 어서 와   (2008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단순 명쾌하고 동심(童心) 잘 깃들어 있어   동시는 '동심 읽기'를 잘 해서 써야 한다. 좋은 시적 표현에다 동심이라는 옷을 잘 입혀야 한다. 그래서 동시는 특수한 문학 장르이다. 그 때문에 동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아무나 쓰는 글이 아니다. 무르익은 시 쓰기 능력을 가져야 좋은 동시를 빚을 수 있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인간 원형질적인 마음이다.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그런 심성이 제대로 살아 있다. 그런 심성은 단순함에서 온다. 어린이는 단순하다. 단순한 것은 명쾌해 보인다. 따라서 동시는 단순명쾌한 것이 특징이다. 동시가 단순명쾌하려면, 시적 스토리와 주제의 분명함에다 압축 절제돼 있어야 하고, 동심이 깃들어야 한다. 이런 요쇼에 가장 근접해 있는 김영민의 작품 4편 중 '봄길'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시어 하나만 빼 버려도 시가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압축 절제돼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봄 들길에 민들레 개나리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오는 광경이 산뜻하게 그려져 있다. 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모습이다.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감각적인 시가 이런 의미에 둘러싸여 오히려 빛난다. '나도' '끼어들었다' '어서 와' 같은 시어로 동심 읽기에도 소홀함이 없다. 이게 이 시인의 역량이다. 정진해, 동시문학의 탑쌓기에 돌 하나 얹기를 바란다. (박두순의 심사평)   짝 / 손동연   "엄마"의 반대말은 "아빠"래요. 아네요, 아냐. 엄만 아빠의 참 좋은 짝인걸요.     "남"의 반대말은 "북"이래요. 아네요, 아냐. 북은 남의 참 좋은 짝인걸요.     "하늘"의 반대말은 "땅"이래요. 아네요, 아냐. 땅은 하늘의 참 좋은 짝인걸요.     우리 가족 우리 나라 우리 별 지구... 자꾸자꾸 불어나는 참 좋은 짝인걸요.     생각해 봤니? / 김 종 상   네가 따뜻한 옷을 입을 때 떨고 있는 동무를 생각해 봤니?     네가 맛있는 걸 먹을 때 굶주리는 이웃을 생각해 봤니?     네가 즐겁고 행복할 때 괴롭고 슬픈 사람들을 생각해 봤니?     네가 차지한 햇볕의 넓이만큼 그늘도 짙다는 걸 생각해 봤니?   숲에 가면 / 김 종 상   나뭇잎이 살랑살랑 손짓하며 반깁니다.     들꽃들이 생글생글 음음으로 맞습니다.     도깨비바늘이 우르르 옷깃에 매달립니다.     숲에 가면 모두가 그렇게 반겨 줍니다.   속이 차면 / 김 종 상   빈 양동이는 요란하지만 속을 채우면 소리가 없지.     얕은 냇물은 시끄럽지만 깊은 강물은 잠잠하단다.     잔가지는 바람에 흔들려도 굵은 둥치는 꿈쩍도 안 하지.     생각이 넓고 깊은 사람은 늘 신중하고 조용하단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이른 봄 / 김 종 상   꽃들도 이른 봄 꽃들은 배시시 수줍게 웃는 귀여운 아기 웃음 꽃.     나비도 이른 봄 나비는 연약한 두 날개 다칠라 귀여운 아기 날개짓     아기도 이른 봄 아기는 종종종 잔걸음으로 귀여운 아기 나들이.     봄의 모습 중에서 이른 봄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동시에서는 이른 봄의 모습을 세 가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연에서는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의 모습입니다. 그 수줍은 느낌 때문에 귀여운 아기 웃음 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연에서는 이른 봄 나비의 모습입니다. 아직 찬 기운이 다 가시지 않았기에 나비의 날개는 더욱 가냘퍼 보이기만 합니다. 이런 모양을 귀여운 아기 날개짓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연에서는 이른 봄 아기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수줍고 가냘픈 느낌을 주는 봄 아기는 종종종 잔걸음으로 걸어갑니다. 그런 걸음으로 나들이를 나가는 아기의 귀여운 모습을 그려 보셔요. 첫째 연에서는 식물, 둘째 연에서는 동물, 셋째 연은 사람을 순서대로 들어 이른 봄의 정취를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소재는 '이른 봄의 꽃과 나비와 아기'이고 주제는 '이른 봄의 꽃과 나비와 아기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입니다. (김종상의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에서)   산에서 / 김 종 상   산을 오르다 보니 골짝물이 꽃잎을 싣고 간다.     "어디로 가니?" 산기슭의 진달래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을 오르다 보니 칡덩굴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나무에 오르고 싶니?" 멧새들이 재재재재 떠들다가 날아갔다.     산기슭의 진달래와 골짝물의 꽃잎, 멧새들과 칡덩굴,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겨움을 생각하면 여기가 별천지인가 싶습니다. '어디로 가니?' '나무에 오르고 싶니?' 사실 이러한 표현들은 자연과 친하고 싶은 지은이의 솔직한 심정을 진달래와 멧새들에게 옮겨 본 것이라 봐야겠죠. 동요적인 동시, 아니면 동시적인 동요라고 보겠습니다. (허동인)   둥근 것 / 박 두 순     둥근 것은 곱다. 이슬 눈빛이 곱고 빗방울 속삭임이 곱다.     둥근 것은 향기롭다. 모난 과일이 어디 있나 맛이 향가롭다.     둥근 것은 소중하다. 땅덩이도, 해도 별도 달도 둥글다. 씨앗도 둥글다 잎과 꽃과 뿌리까지 품으려니.     사랑스런 널 보는 눈이 둥글다. 네가 나를 용서할 때의 웃음도 둥글었다.   할머니집에 가면 / 박 두 순       할머니 화안한 웃음이 먼저 마중나옵니다.     가끔 그렁그렁한 눈물도 마중나옵니다.     강아지 꼬리도 살랑살랑 마중나옵니다.   내가 부르면 / 하 인 혜   "아빠." 하고 부르면 아빠는 책장을 넘기며 안경 너머로 "무슨 일이야?" 물어봅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등 돌리고 서서 그릇을 닦으며 "왜 그러니?" 대답합니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 할머니는 하시던 일 멈추고 두 팔 벌려 "오…오…냐!" 안아줍니다.   가을 해 / 한 인 현   배추밭을 다 못 맨 마나님은 한 발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짧기도 하이."     온종일 새를 몰던 영감님은 한 뼘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길기도 하이."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두고 사람에 따라서, 아니 그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고 느끼는 것들이 다른 법입니다. 그 마음가짐(상태)이 중요한 것은 다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일생과 운명까지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가짐을 착하고 즐겁게 지니면서 오늘을 참고, 내일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을 날, 배추밭의 김을 마저 다 매지 못한 마나님은 한 발자국쯤 남은 해님을 바라보면서 "아이 참, 가을 해는 짧기도 해."하는가 하면, 온종일 벼논에서 새를 쫓던 영감님은 한 뼘쯤 남은 가을 해를 바라보며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서 "아이 참, 가을 해는 길기도 해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다른 의견인가요? 그리고 얼마나 재미가 있는 비교인가요?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은 / 한 혜 영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이 어쩌면 바람일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몸이 가벼워 하루 종일 팔랑팔랑 지치지도 않는 거지.     아냐 아냐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공주일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옷이 예뻐서 꽃밭에 꽃들이 하루 종일 불러 주지.     아니 아니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이 어쩌면 그냥 꽃일 거야. 그러니까 꽃잎 속에 꼭꼭 숨어 있으면 꽃인지 나비인지 나는 통 알 수가 없지.   이름을 불러 주세요 / 허 명 희   이름을 불러 주세요. 꽃에게 이름을 불러 주세요. 민들레야 원추리야 명아주야 거 봐요, 눈망울이 헐씬 빛나잖아요.     나무에게도 이름을 불러 주세요. 소나무야 자귀나무야 상수리나무야 보세요, 키가 훨씬 더 커 보이잖아요.     이름을 불러 주세요. ―선영아, 하고     그 소리 들으면 마음 빈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 지저귈 거예요.     우리는 정다운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요. 그러면 왠지 더 따스하게 느껴지지요. 꽃도 나무도 그래요. "민들레야, 소나무야." 하고 불러 주면 눈망울 빛나고, 키가 훨씬 더 커 보여요. 친구 이름도 다정하게 불러주면 마음 빈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지저귀지요. 마음을 푸르게 해 주는 파랑새가 가슴에 날아다니게 친구 이름을 불러 보세요. "선영아―." 하고. 김춘수 시인도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하고 노래했어요. 서로에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 주세요. (박두순)   참 좋은 짝이야 / 허 명 희   젓가락과 숟가락 왼발과 오른발 물병과 뚜껑 나무와 새 놀이터와 아이들 아빠와 엄마 너와 나 ……….     참 좋은 짝이야.   친구가 되기 위해서 / 허 명 희   도토리는 딱딱한 껍질을 벗어야 말랑말랑한 맛나는 묵이 되는 거야     도토리도 가시 옷을 벗어야 겨울 군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 놓는 거야     호두를 봐 딱딱한 껍질 속에 오글오글 모여앉은 고소한 속살     너랑 나랑 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이런 껍질을 벗어야 돼 그래야 따뜻한 마음이 나와 손을 잡게 되지.   작은 것 / 황 베드로 웅덩이가 작아도 흙 가라앉히면     하늘 살고 구름 살고 별이 살고.     마당이 좁아도 나무 키워 놓으면     새가 오고 매미 오고 바람이 오고.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맑은 물웅덩이를 들여다보셔요. 조그만 웅덩이에 하늘이 비치고, 구름이 떠가고 별이 빛납니다. 작은 웅덩이에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좁다란 마당을 생각해 보셔요. 새가 날아다니고, 매미가 와서 울고 바람이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좁은 마당에 참 많은 것이 와서 살아갑니다. 웅덩이와 마당은 조그마해도 참 크고 넓습니다. (김종상)   산 / 차 보 현   산은, 높푸른 하늘 아래 의젓이 서서 생각하며 산다. 논갈이나 밭갈이를 마친 소처럼, 초록 풀밭에서 새김질하는 황소처럼, 산은 한 가지 한 가지 차분히 생각하며 산다.     산은, 아침해를 기린다. 동해에서 덩실 솟아오르는 둥근 해를 반긴다. 들판이나 들판을 적시는 강물이 안개의 잠 속에 잠겨 있을 때, 산은 남 먼저 아침해를 맞이한다.   봄 / 최 만 조   밖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서 창문을 활짝 열고 내다보았다.     봄바람이 사알사알     꽃밭에서 속삭이는 봄 노래를 듣고 있었다.     밖에서 누가 찾는 것 같아서 씨앗 심은 꽃밭에 나가보았다.     아지랑이 아롱아롱     담장 밑에서 혼자 꽃망울 어루만지고 있었다.   축하해 / 유 미 희   ―어린이날   ―축하해 산이 일어서고,     ―축하해 새들이 노래를 선물한다.     ―축하해 시냇물이 도란도란 속삭이고,     ―축하해! 꽃들은 펑펑 폭죽을 터뜨린다.   할아버지의 과일 / 오순택       시골할아버지가 보내준 과일 속엔 해가 들어있어요       뜨거운 여름 햇볕 받아먹고 빠알가니 익었으니까요   시골할아버지가 보내준 과일 속엔 물소리도 들어있어요   뭉게구름 지나가다 과일 밭에 들러 비 뿌려주고 갔으니까요   시골할아버지 보내준 과일 속엔 새소리도 들어있지요   온음표 물고 날아가던 새 과일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다 갔거든   책벌레 공부벌래 일벌레 / 이묘신   꿈틀꿈틀 애벌레 보면 징그럽다던 엄마 바퀴벌레는 더 싫어하는 엄마     ㅡ어마나, 책벌레 우리 아들! ㅡ어이구, 공부벌래 우리 딸! ㅡ에휴, 일벌레 우리 남편!     오늘은 우리를 벌레로 만들어놓고 웃음 짓는다.   그만큼 / 유 미 희   나무에서 멀어진 톱,       흙에서 멀어진 호미,     풀에서 멀어진 낫.     꼭 그만큼 녹이 슬었다.   (2005년 10월『아동문예』)   언어 절약이 두드러져 보이는 작품이다. 극도로 절제된 발언이지만, 할말은 다 하고 있다. 매우 메시지가 강하게 전해온다. 그렇다고 강압적이진 않다. 톱과 호미, 낫 등 사물의 역할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힌다.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만큼' 녹슬게 된다는 의미다. 녹슨다는 것은 자기를 잃는 것과 같다. 제 할 일을 게을리하면 자아 상실을 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박두순) 배를 깎으면서 / 최 장 길 엄마는 배를 깎으면서   좁은 오솔길을 만든다.   시원한 바람이 솔 솔     배꽃 향기도 술 술     배나무 그늘에 매미 울음이 맴맴     박하처럼 시원하게 가슴 적신다.     배가 깎이는 껍질을 오솔길로 그렸습니다. 배가 깎이며 배 속에 있던 시원함과 향기 그리고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있어 가슴을 시원하게 적신다고 했네요. (김원석)   동시 나라 / 기 영 순       햇살 같은 웃음이 부서지는 나라. 이슬 같은 마음들이 뒹굴며 노는 나라.     풍선 같은 꿈이 둥실 떠 있는 나라. 참새 떼 같은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숨쉬는 나라.   + 별이 나에게 / (전영관·아동문학가) 작은 섬 하나 있기에 파도는 흰 물결을 만들고 작은 꽃 하나 있기에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네가 거기 있기에 나 오래오래 반짝이리. + 어깨동무하기 /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니는 구름들. 어깨동무하고 뻗어 있는 산들. 어깨동무하고 누워 있는 밭이랑들. 강물도, 파도도 파란 어깨동무. 어깨동무하기   사람들만 힘든가 보다. + 모두 함께 / (김위향·아동문학가) 풀밭에는 철쭉, 장미, 목련만 있는 게 아니야. 씀바귀, 민들레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 얼굴을 쏘옥 내밀고. 풀밭에는 나비, 벌만 놀러 오는 게 아니야. 바람이 살그머니 지나가고 개미들도 소풍 나오고 하루살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우리 동네에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야. 석이네, 봄이네, 희연이네, 세탁소, 미장원, 문구점, 방앗간, 자전거 수리점도 있고. 우리 동네에는 사람 사는 집만 있는 게 아니야. 까치 집, 개미 집, 다람쥐 집. 새들이 쫑알쫑알, 고양이가 살금살금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거야. + 끼리끼리 모이면 /  (이혜영·아동문학가) 혼자는 싫어 떼 지은 참새. "짹 짹 짹" 끼리끼리 모이면 이야기가 생겨요. 방울 방울 물방울 개울 되어 흐르며 "졸 졸 졸" 끼리끼리 모이면 노래가 생겨요. 햇볕 드는 담벼락 아이들 모여 앉아 "재잘 재잘 재잘" 끼리끼리 모이면 웃음이 생겨요. + 보기 좋아서 /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우리들은 옥수수가 자라는 들길에서 잡았던 잠자리를 날려보냅니다. 잠자리가 획획획 날면 획획획 높이 커 가는 옥수숫대 보기 좋아서. 우리들은 벼가 자라는 논둑길에서 잡았던 개구리를 놓아줍니다. 개구리가 파알딱 뛰면 파알딱 개구리 따라 커 가는 벼들이 보기 좋아서. 9월 / (윤이현·아동문학가) 풋사과 새콤한 맛에 으스스 땀이 가시면 지붕 위에 빠알간 고추 가을이 물들어 오고 「오도독」 알밤톨 고소함에 가을이 영글어 들면 홍시감 뽀오얀 얼굴 가을은 또 익어가고 파아란 저 하늘은 마아냥 높아만 가네. + 엄마 손끝에서 / (김재용·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 엄마 손끝에서 봄꽃이 피어난다 할미꽃 바람꽃 엄마 손끝에서 푸성귀도 잘도 큰다 상치, 쑥갓 부추, 시금치 엄마 손끝에서 또 누가 쏘옥쏘옥 자라지? 나 너 이 땅의 어린이들 + 슬픈 어느 날 /  (박지현·아동문학가)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별님이  먼저 알고 눈물이 글썽.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달님이  먼저 알고 수심이 가득. + 아름다운 만남 / (곽홍란·아동문학가, 경북 고령 출생) 애들아! 지구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만남이란다. 초록별 지구를 숨쉬게 하는 참 아름다운 만남 새싹이 쏘옥, 눈뜰 수 있게 빗장문 열어 주는 흙 병아리 맨발이 시려울까 종종종 따라 다니는 아이들 참새, 토끼, 다람쥐, 고라니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풀섶에 낟알곡 남겨두는 농부 어디 이것뿐이겠니? 작은 물결에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 떼를 품어주는 바다풀 뿌리를 가지지 못한 겨우살이에게 가지 한 켠을 쓰윽 내어주는 물참나무 이런 아름다운 만남으로 지구는 푸르게 푸르게 숨쉬며 살아 있는 거야. + 초록 쉼표 /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커다란 초록 쉼표예요. 떨어지던 빗방울도 초록 잎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떠돌이 채소장수 아저씨도 초록 물든 그늘에 땀방울 잠깐 내려놓고 우리도 학원버스 기다리는 동안 초록빛 너른 품에서 친구랑 어울려 놀지요. + 달이 떴다 / (박혜선·아동문학가) 소쩍새가 노래 부르며 보는 달을 발발발발 짐 지고 가는 땅강아지가 땀 닦으며 본다. '내일 비 오면 안 되는데…….'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가 보는 달을 '왜 아직 안 오실까?'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가 골목길에서 본다. 달, 참 밝다. + 너를 위한 자장가 / 이미애·아동문학가) 아가, 들리니? 쏴아쏴아 솔숲에 바람 부는 소리. 아가, 들리니? 개골개골 무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 아가, 들리니? 찰랑찰랑 못 물에 달님 발 씻는 소리. 아가, 들어 봐. 자장자장 엄마가 널 재워 주는 소리. + 말이 다르니까 /  (김자연·아동문학가, 1960-) 병아리 말, 뾰약뾰약 비둘기 말, 그그그그 참새 말, 찌액찌액 꿩 말, 끄웡끄웡 말이 다르니 모양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네. 수돗물 말 쓰아아쓰아아 도랑물 말 도로돌도로돌 강물의 말 처처철 처처철 바다의 말 촤아악촤아악 말이 다르니 소리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네. 충청도말, 하지라유 전라도 말, 했뿌러 경상도 말, 하랑게 제주도 말, 했수까 말이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네. + 해바라기꽃 /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벌을 위해서 꿀로 꽉 채웠다. 가을을 위해서 씨앗으로 꽉 채웠다. 외로운 아이를 위해서 보고 싶은 친구 얼굴로 꽉 채웠다. 해바라기 꽃 참 크으다. + 눈 덮인 아침 / (박두순·아동문학가) 마을은 일어나고 싶지 않은가 보다 눈을 덮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걸 보면. 강아지는 놀고 싶어 못 견뎠나 보다 눈밭 가득 발자국이 뛰어다닌 걸 보면. 새들은   노래하고 싶어지나 보다 해도 뜨기 전에 자꾸만 지저귀는 걸 보면. 냇물은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들을 깨우는 얘기를 아침에도 재잘대고 있는 걸 보면. 온통 마음이 설레는 때다. + 손을 기다리는 건 /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손을 기다리는 건 어제 새로 깎은 연필, 내 방 문의 손잡이, 손을 기다리는 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칠판 아래 분필가루 투성이 지우개, 때가 꼬질꼬질한 손수건,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퍼즐 조각 하나, 정말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손, 꼬옥 잡아 줄 또 하나의 손. + 보이지 않는 손 /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흙이 뿌리를 잡아 주어 나무는 서서 버틸 수 있다. 가지가 나뭇잎을 잡아 주어서 잎은 맘놓고 흔들려도 된다. 도토리를 잡고 있는 도토리 깍지 대추를 잡고 있는 대추 꼭지. 안 그런 것 같지만 우리도 그렇다. 나무에서 흙처럼 잡아 주는 이가 있다. 대추에서 꼭지처럼 붙잡아 주는 이가 있다. 그래서 맘놓고 뛰놀 수도 있다. + 돌멩이와 바위 / (안오일·아동문학가) 조잘조잘조잘 시냇물이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들쑥날쑥 돌멩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철썩철썩 쏴 쏴 파도가 신나게 수다 떨 수 있는 건 끝까지 들어주는 바위가 있기 때문이죠 + 겨울 들판 /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 비 오는 날 / (양성우·시인, 1943-) 둥지 없는 작은 새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나비들은, 잠자리, 풍뎅이, 쇠똥구리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칠 줄 모르고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죽도록 사랑하다가 문득 헤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 비 온다 / (박혜선·아동문학가, 1969-)    개미야 개미야 얼른 얼른 집에 가서 대문 걸어 잠궈라 지렁이야 지렁이야 얼른 얼른 나와서 대문 활짝 열어라. + 자연을 칭찬하기 / (권창순·아동문학가, 1961-) 친구만 칭찬하지 말고 강아지만 칭찬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묵묵히 걸어가는 길도 칭찬하자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익힌 감나무도 칭찬하자 풀숲에서 목청껏 노래하는 풀벌레들도 칭찬하자 둥둥 달을 띄워 놓고 있는 연못도 칭찬하자 동생만 안아주지 말고 고양이만 안아주지 말고 나무도 안아주자 풀들도 안아주자 꽃들도 안아주자 돌들도 안아주자 + 지구의 일기 / (이병승·아동문학가, 1966-) 나는 더워서 입기 싫은데 엄마는 자꾸 옷을 입혀요 두껍고 딱딱한 콘크리트 옷 나는 뛰놀고 놀고 싶은데 꼼짝 말고 있으래요 머리 깎아야 한다고 소나무 전나무 갈대 솜털까지 자꾸만 깎아요 나는 아파서 살살 하라는데 아빠는 등을 너무 빡빡 밀어요 때도 아닌데 구멍 나게 밀어요 곰보딱지 같다고 집들을 밀어요 산도 밀어요 나는 따가워서 싫은데 엄마는 뭘 자꾸 발라요 농약도 바르고 제초제도 바르고 냄새 고약한 폐수도 발라요 + 초여름 / (조용원·아동문학가 하늘과 산이 손잡고 초록 손수건 흔들고 있네요 강과 들판이 어깨 기대고 초록 꿈을 키우고 있네요 새들과 바람이 입 맞추고 보리밭에서 춤추며 사랑을 노래하네요 + 마음 /  (이혜영·아동문학가) 깃털처럼 가볍지만 때론 비위처럼 무겁단다. 시냇물처럼 즐겁지만 얼음처럼 차갑기도 해. 들꽃 향기에도 와르르 무너지지만 천둥 번개에도 꿈쩍하지 않아. 순한 양이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가끔 나를 쩔쩔매게 하는 것. 알지? 조심조심 잘 다스려야 해.   + 꽃씨 / (안오일·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딱딱한 땅을 뚫게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세상을 물들이는 꽃이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자기 몸이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리란 걸 + 봄 /  (한상순·아동문학가) 겨우내 시냇물과 조약돌 말 안하고 지내다 어느 날부턴가 쉬지 않고 도란거리는 걸 보면 겨우내 옷 벗은 미루나무에 잠시 눈길도 주지 않고 씩씩 지나치던 바람 미루나무 연초록 잎새에 매달려 온종일 반짝이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집 앞 산수유나무를 시작으로 꽃들 다투어 피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아무리 숨었어도 /  (한혜영·아동문학가, 1953-)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햇살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땅 속 깊이 꼭꼭 숨은 암만 작은 씨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꽃 방실방실 피워 낼 걸.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바람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나뭇가지 깊은 곳에 꼭꼭 숨은 잎새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잎새 파릇파릇 피워 낼 걸.   + 파도는 / (이상문·아동문학가)                        파도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 세차게 달려와 바위벽 결승선을 튕겨 나간다. 숨도 차지 않은가 보다. 잠시 바위에 주저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되돌아간다. 파도는 마라톤  선수. 먼길 달려서 지쳤을까? 모래밭 결승선을 밟고 쓰러진다. 숨이 몹시도 가쁜가 보다. 한참 모래밭에 뒹굴다 가까스로 일어난다. 꼭 그만큼만―민현숙(1958~ )   장다리 밭에 꼬물꼬물 배추벌레가 자란다고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먹을 만큼 꼭 그만큼만 배추벌레를 물어 가는 새들   언덕마다 푸른 풀이 자란다고 있는 대로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앉은 자리만큼 꼭 그만큼만 풀을 뜯어 먹는 소들   새들이 남겨 놓은 장다리 밭의 배추벌레가 어느 새 흰나비가 되었구나 노랑나비가 되었구나   소들이 남겨 놓은 언덕 위의 풀들이 어느 새 흰꽃을 피웠구나 노랑꽃을 피웠구나   꽃 ―이봉춘(1941~ ) 꽃은 손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꽃은 발도 없다 그러나 산을 넘어 먼 곳까지 잘도 간다 서로 몰라요 ―최영재(1947~ ) 아이는 아이끼리 서로 몰라요 누가 오늘 이만큼 몸이 컸는지 나무는 나무끼리 서로 몰라요 누가 오늘 이만큼 키가 컸는지 흰 구름 나란히 떠내려가면 가는지 서는지 서로 몰라요 웃으며 노래하며 어깨를 겯고 나란히 크느라 서로 몰라요 우리보고 -민경정(1967~) 선생님이 우리보고 개구리래요. 와글와글 버글버글 시끄러워도 들판에 개구리처럼 없으면 이상하대요. 선생님이 우리보고 들꽃이래요. 하양 빨강 크게 작게 마음대로 피어도 들판에 들꽃처럼 없으면 서운하대요. 나무들의 약속 -김명수 (1945~)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 같이 초록 잎을 피워 내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 같이 우쭐우쭐 키가 크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 같이 곱게 곱게 단풍 드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겨울 약속은 다 같이 눈보라를 견뎌 내는 것 빨주노초파남보 ―신경림(1936~   우리 교실은 빨주노초파남보 나리 옷은 빨갛고 하나 옷은 주황 미나 옷은 노랗다 서로 어우러져 무지개 같다   우리 집 식탁은 빨주노초파남보 시금치 나물이 초록이고 미역국은 파랑 가지 무침이 남빛이다 서로 빛깔을 뽐내는 게 꽃밭 같다   우리 동네 재래시장은 빨주노초파남보 과일과 생선도 빨갛고 노랗고 산나물과 버섯은 보랏빛이고 남빛이다 신발은 빨갛고 그릇은 노랗다 다투어 예쁘다고 뽐내면서 별로 수놓은 밤하늘처럼 아름답게 모두모두 빨주노초파남보 연못 ㅡ최두호(1938~ )   청개구리 한 마리 퐁당! 물둘레가 동그르르   연꽃 한 송이 퐁당! 꽃향기가 동그르르   구름 한 송이 퐁당! 놀란 잉어가 동그르르 가을은 ―신현신(1964~ 살금살금 오지 여우가 꼬리를 내리고 산을 내려오는 것처럼 조심조심 오지 도깨비가 요술 방망이 숨기고 발소리 내지 않고 오는 것처럼 숨바꼭질하며 오지 따가운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서로서로 술래가 되는 것처럼 가을은 이렇게 해마다 오지 가을 운동회 기다리는 아이들 마음 알고 단물이 든 열매로 큰 잔치를 열 것처럼 첫서리 ―송명호(1938~2007) 첫서리 내렸다지 전깃줄에 아기 참새들 쭁쭁쭁 발이 시리대. 첫서리 내렸다지 감나무에 홍시감이 빠알갛게 볼이 시리대. 첫서리는 겨울 소식 눈사람의 편지 세수할 때 울 아기 손이 시리대. 시인의 손에 놓이면 / 신현득   돌멩이 한 개라도 시인의 손에 놓이면 달라, 시가 되거든.   몽당연필이라도 시인의 손에 잡히면 달라, 시를 쓰거든.   흔한 햇빛이라도 나뭇잎이 받아 지니면 다르듯이 과일의 살이 되듯이,   흔한 물방울이라도 나뭇잎이 받아 지니면 다르듯이 초록빛 피가 되듯이,   버릴 만한 한 생각이라도 시인의 마음에 잡히면 달라, 시를 빚거든.   시가 되는 모든 것 / 신현득   동그란 건 시가 된다. 내 손안의 유리구슬. 동그랗지 않아도 시가 된다. 내 손안의 손톱깎이.   빨간 것은 시가 된다. 울타리의 장미꽃. 빨갛지 않아도 시가 된다. 노랑 민들레.   달콤한 건 시가 된다. 알사탕. 달지 않아도 시가 된다. 풋살구.   보이는 건 시가 된다. 서산마루 저녁놀. 보이지 않아도 시가 된다. 가슴속 내 마음.   ㅡ『신현득 동시선집』(2015, 지만지)   꽃 떨어진 자리 / 정 용 원   감꽃이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배꼽 달린 아기 땡감 하나 기쁜 그 자리   민들레꽃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낙하산 여행 꿈꾸는 씨앗 형제들   아픔과 기쁨 나눈 꽃 떨어진 그 자리   발자국 / 정용원   진달래 나뭇가지 위 산새 발자국 폴짝폴짝 건너 뛸 때마다 꽃봉오리 하나씩 피어나지요.   금잔디 풀숲 사이 개미 발자국 살금살금 지나갈 때마다 까만 씨앗 오르르르 떨어지네요.   안개꽃 몽오리 위 바람 발자국 솔솔솔솔 지나갈 때마다 하얀 안개 입김처럼 퍼져 나가요.    2004년 가을호     정용원의 동시 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금잔디가 무성해지는 것이 발자국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씨앗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꽃(결실)이 피고 다시 씨앗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그 매개자가 있기에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일은 혼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자기의 역할을 할 때 가능하다.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새의 움직임이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하고 개미의 부지런함이 금잔디 숲을 만들어낸다. 한편 솔솔 부는 바람이 안개꽃을 더 많이 피워내고 있다. 이처럼 한 송이의 꽃은 씨앗만 있어서 되는게 아니다. 자연의 조화로운 상생의 소통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결과물을 얻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동시는 개체보존의 과정을 순환적으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진달래-산새-꽃봉오리’, ‘금잔디-개미-씨앗’, ‘안개꽃-바람-하얀 안개(꽃)로 이어지는 시어의 연결은 산새, 개미, 바람의 ’발자국‘에 의해 더 확산적으로 번지고 나아가서 종족 보존이 가능해 짐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 동시의 시적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읽고 있다. 즉, 자연의 섭리를 관찰함으로써 혼자가 아닌 어울림의 미학을 깨닫고 있다. 다소 복잡한 듯한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비틀림 없이 단순한 연결을 하고 있어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또 시적 화자는 평법한 자연적 현상을 예리한 관찰력과 상상력으로 읽어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른의 관점이 아닌 동심의 관점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미숙한 존재도 아니고 교육의 대상도 아니다.   평 * 김종헌 (아동문학평론 2005년 봄호 통권 114호     귀를 대 봐 / 오순택   항아리에 귀를 대 봐.   숨소리가 들려.   나무에 귀를 대 봐.   펌프질 소리가 들려.   땅에 귀를 대 봐.   매미 애벌레 눈 뜨는 소리가 들려.   우리들 귀는 청진기야.   한 번도 못 들었다 /최영재   쩍쩍 갈라진 논바닥, 밭작물이 타들어 가지만 잡초 말라죽었다는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폭풍우로 굵은 나무들 뽑혀 강물에 떠가지만 연밭의 연뿌리 떠내려갔다는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사흘 내내 폭설, 길 막혀 자동차들 꼼짝 못 하지만 제발 눈 좀 그만 내리라는 아이들의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한 번도 못 들었다」는 자연의 법칙은 변함없으며, 작물은 가뭄으로 죽어가더라도 잡초는 질긴 생명력으로 죽지 않으며, 폭풍우와 홍수로 나무들까지 떠내려갔지만 물의 생태에 적응한 연밭의 연뿌리는 떠내려가지 않고, 아이들이 폭설이 내리지 말라는 말을 한다 해서 폭설이 그치지 않는다는 자연현상의 생명력과 기상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잘 못을 회피 하는 변명의 말이 「한 번도 못 들었다」이다.   그릇은 / 신현득   "끓는 된장을 담으세요." 뜨거운 걸 잘 참는 그릇.   "얼음덩이를 담으세요." 차운 걸 잘 참아내는 그릇.   "고추장을 담으세요." 매운 것도 잘 견디는 그릇.   사람도 참고 견디는 쪽이 그릇이다!   아버지 말씀.   새싹 모자 / 신현득   새싹은 모자를 쓰고 나와요.   "나는 콩이야" 콩싹은 콩껍질을 쓰고 나와요.   "나는 호박이야" 호박은 호박씨 껍질을 쓰고 나와요.   작고 예쁜 새싹 모자.   나무의 맛 / 곽해룡   매미가 나무둥치를 빨며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   오목눈이가 나무를 비켜 가며 비리비리 비리비리   《맛의 거리》(문학동네 2008)   검은등뻐꾸기는 네 음절로 운다. 그 소리가 마치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는 것처럼 들린대서 ‘홀딱벗고새’라고도 한다. 스님들 귀에는 ‘홀딱벗고’가 아니라 ‘빡빡깎고’로 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집죽구 지집죽구’로 받아 적은 이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다.(‘들비둘기 소리’) 같은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전봇대 위에서 ‘구구 구구’ 우는 비둘기 소리를 ‘꾸욱 꾸욱’으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전봇대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느라 애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9×9 9×9’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구구단 답을 몰라 저렇게밖에 못 운다면서 ‘팔십일!’ 하고, 답을 알려준다.(김철순, ‘산비둘기’) 은 매미 소리를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로, 오목눈이 소리를 “비리비리 비리비리”로 받아 적었다. 나무의 맛이 맵고, 쓰고, 시고, 비리다고 듣는 사람은 일찌감치 인생의 매운맛, 쓴맛, 신맛, 비린 맛을 고루 맛보았을 터이다. 그러니 이 시에서 말하는 맛은 겉에 드러난 나무의 맛이 아니라 신산고초한 인생의 맛, 그것이겠다. 참새는 정말 ‘짹짹’ 울까. 개구리는 정말 ‘개굴개굴’ 울까. 아이랑 함께 똑같은 소리에 귀 기울인 다음 그것을 글자로 적어 보자.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자. 참새인 것을 모를 때, 참새 소리를 더 정확히 들을 수 있다. 참새인 것을 알면 선입견의 참견을 받아 ‘짹짹’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빛이 없는 곳, 소음이 적은 곳으로 가 풀벌레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밥 되는 소리, 설거지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트림 소리, 방귀 소리, 이 닦는 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를 새롭게 발견해 보자   시골 친구 / 오순택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목소리에선 장다리꽃 냄새가 나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호주머니 속에는 풀잎 바람이 들어 있어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신발에는 개울물 소리도 묻어 있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마음씨는 분꽃 씨 같아요   연못 / 오순택   연못은 오선지   보슬비가 음표를 놓고 간다   연못은 푸른 색종이   물방개가 동그라미를 그린다   계몽사 1992   벌레들의 놀이터 / 작가 미상   풀밭은 벌레들의 놀이터   실베짱이는 풀잎에 앉아 첼로를 켜고 긴알락꽃하늘소는 더듬이로 무전을 치고 모시나비는 긴 입으로 꽃에 주사 놓고 버들잎벌레는 풀대 위에서 미끄럼 타고   이슬은 무당벌레 등에 업혀 눈 깜박깜박   풀밭은 벌레들의 즐거운 놀이터   이슬  1 / 문삼석   이슬은 밝음 한 알   이슬은 맑음 한 알   이슬 7 / 문삼석   보이는 건 그대로 티 없는 세상.   들리는 건 그대로 소리 없는 노래.   이슬.8 / 문삼석   굴 러 라. 융단 위를.....   울 려 라. 방울 소릴....   이슬.10 / 문삼석   달빛 속에 자라서 저리 고옵고,   별빛 보고 자라서 저리 말갛고.   이슬.12 / 문삼석   누가 살까? 이슬 속 작은 마을엔....   누가 알까? 이슬 속 숨은 이야길....   이슬.17 / 문삼석   새벽이랑 함께 떠 어둡지 않고,   풀잎이랑 함께 살아 외롭지 않고.   이슬.19 / 문삼석   훅 불면 또그로 구르겠다.   자칫 떨어지면 쨍그랑 깨지겠다   이슬.20 / 문삼석   하늘이 맑아서 너는 맑게 뜨고,   바람이 고와서 너는 곱게 뜨고.   이슬. 21 /문삼석   -다칠라..... 개미가 조심조심 꼿발로 비켜 가고,   -깨질라.... 바람도 가만가만 꼿발로 지나 가고.   이슬.30 / 문삼석   아무도 몰래 혼자 뜨고,   아무도 몰래 혼자 감고   이슬.31 / 문삼석   그늘 속에선 조용한 시.   그늘 밖에선 반짝이는 노래.   이슬.33 / 문삼석   새소리 맑게 걸러 더 맑아가고,   새벽빛 밝게 걸러 더 밝아 가고.   이슬.49 / 문삼석   어딜까? 네 눈빛만 초롱초롱 모여 사는 곳은?   언젤까? 네 숨소리만 세상 가득 차오를 날은?   개미 / 문삼석   더운줄도 모르고 일만 하다가 가맣게 온 몸이 타버렸나봐   무거운줄도 모르고 짐만 나르다가 짤룩하게 허리가 휘여졌나봐.   호박넝쿨 / 손길봉   호박넝쿨 끝에는 눈이 있지요 울바자를 보고서 찾아가지요   호박넝쿨 끝에는 손이 있지요 울타리를 붙잡고 올라가지요   장난꾸러기는 장난꾸러기   / 김자미                                         도대체 언제 갈 거냐고 엉덩이를 때려본들 달팽이는 달팽이    종일 길이만 젤 거냐고 허리를 묶어놓은들 자벌레는 자벌레   똥경단은 그만 시루떡도 만들어보라 해본들 쇠똥구리는 쇠똥구리     얌전히 있어라 철 좀 들어라 해본들  나는 장난꾸러기    - 김자미 동시집 '달복이는 힘이 세다'·   섬아이·2016    아이들은 활동량이 많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안으로만 구겨 넣어 꽁꽁 뭉친 아이보다는 몸으로 가는 채널을 많이 열어 놓은 장난꾸러기가 더 튼실하다.  달팽이, 자벌레, 쇠똥구리의 모습이 바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 시 속의 내가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다면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너무 어른스러운 애늙은이보다는 자기만의 특화된 장난꾸러기가 더 좋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동시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땀방울의 양만큼 성장한다고 한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뛰어넘고 보면 걸림돌도 디딤돌로 바뀐다. 요즘 신문이나 뉴스에는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유독 잦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받들어 주고 어른은 깍듯이 섬기는 아름다운 삶의 조각들이 모일 때 세상은 더욱 살맛 나는 녹색 지대가 되지 않을까?   오선자·동시인    말하는 꽃 / 정용원   나팔꽃은 “잠꾸러기야 일어나라 아침해가 떴다”   함박꽃은 “함박웃음 웃는 얼굴 제일 예쁘단다”   호박꽃은 “ 못생겼다고 놀리지만 꿀이 젤 많아요”   무궁화는 “ 삼천리 금수강산 온 세상 빛내봐요 “   분꽃은 “ 얼굴에 분칠하고 시집가고 싶어요   행운목꽃은 “ 모두 모두 행운의 열쇠 가져가세요 “   알 수 있지요 / 정용 원   바람의 냄새를 알 수 있나요? 아버지 땀에 절은 얼굴 부채질 해보면 알 수 있지요   바람이 얼마나 향긋한지 알 수 있나요? 어머니 따스한 품속 안겨 있어보면 알 수 있지요   바람이 얼마나 정다운지 알 수 있나요? 남바람 북바람 한바탕 씨름하고 휴전선 풀밭에서 뒹구는 걸 보면 알지요   숨박꼭질 / 월터 드 라 메어   숨바꼭질 하자네 바람이 나무 우거진 그늘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달이 귤나무 잎새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구름이 이 별에서 저 별로   숨바꼭질 하자네 물결이 항구의 모래밭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내가 날더러   그러고는 잠이 들어 꿈나라로 숨어 버렸네.
50    꽃 떨어진 자리(동시) _ 정용원 [한국] 댓글:  조회:1599  추천:0  2018-11-27
꽃 떨어진 자리 / 정용원   감꽃이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배꼽 달린 아기땡감 하나 기쁜 그 자리     민들레꽃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낙하산  여행 꿈꾸는 씨앗형제들     아픔과 기쁨 나눈 꽃 떨어진 그 자리  
아이들을 위한, 그리고 세련된 사람을 위한 _ 막스 쟈콥       난 네 생일에 개암색 모자를 줄게. 네 손에 들고 다닐 사틴(반드러운 천)으로 만든 작은 가방이랑 손잡이에 술이 달린 하얀 비단 양산이랑 금빛 자락 달린 옷이랑 주황색 구두랑    그런데   목걸이 보석들은 일요일에만 해야 해! 티우! 근사할거야!   막스 쟈콥(1876-1994)   근대주의 시인, 초현실주의 선구자,  아폴리네르Apollinaire와 피카소Picasso와 친구인 그는  뷔르레스크(고상하고 웅장한 주제를 비속화함으로써 희극적 효과를 자아내는 장르)하고    현학적인 그리고 의미로 가득하지만 제멋대로인 작품을 남겼다
48    지나가는 시간 - 앙드레 이베르노 [프랑스] 댓글:  조회:1325  추천:0  2018-11-27
지나가는 시간 - 앙드레 이베르노 [프랑스]   회색 월요일 수국의 분홍색 화요일 파란색 수요일 : 너 다시 올 거지? 주중 다른 날들은?   나무 아래서 티티새와 놀이하는 초록색 목요일   치즈에서부터 생크림에 이르는 하얀색 금요일   그리고 당근의 빨간색 토요일 일요일 그는 두 팔 사이 줄기 위에 태양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시집 『투명성Transparences』에서   앙드레 이베르노(1910-2005) :  이란 동시처럼 단순하고 통찰력 있는 시의 저자인 그녀는  그녀가 사랑했던 작가 죠르즈 이베르노가 죽고 난 후 그를 추억하며  그와의 변함 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저녁이면 오는 것Qui mene au soir』와 『죽은 물가에서Au bord des eaux  mortes』.  
47    나무의 맛 / 곽해룡 댓글:  조회:1500  추천:0  2018-11-27
나무의 맛 / 곽해룡   매미가 나무둥치를 빨며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     오목눈이가 나무를 비켜 가며 비리비리 비리비리   《맛의 거리》(문학동네 2008)   검은등뻐꾸기는 네 음절로 운다. 그 소리가 마치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는 것처럼 들린대서 ‘홀딱벗고새’라고도 한다. 스님들 귀에는 ‘홀딱벗고’가 아니라 ‘빡빡깎고’로 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집죽구 지집죽구’로 받아 적은 이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다.(‘들비둘기 소리’) 같은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전봇대 위에서 ‘구구 구구’ 우는 비둘기 소리를 ‘꾸욱 꾸욱’으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전봇대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느라 애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9×9 9×9’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구구단 답을 몰라 저렇게밖에 못 운다면서 ‘팔십일!’ 하고, 답을 알려준다.(김철순, ‘산비둘기’) 은 매미 소리를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로, 오목눈이 소리를 “비리비리 비리비리”로 받아 적었다. 나무의 맛이 맵고, 쓰고, 시고, 비리다고 듣는 사람은 일찌감치 인생의 매운맛, 쓴맛, 신맛, 비린 맛을 고루 맛보았을 터이다. 그러니 이 시에서 말하는 맛은 겉에 드러난 나무의 맛이 아니라 신산고초한 인생의 맛, 그것이겠다. 참새는 정말 ‘짹짹’ 울까. 개구리는 정말 ‘개굴개굴’ 울까. 아이랑 함께 똑같은 소리에 귀 기울인 다음 그것을 글자로 적어 보자.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자. 참새인 것을 모를 때, 참새 소리를 더 정확히 들을 수 있다. 참새인 것을 알면 선입견의 참견을 받아 ‘짹짹’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빛이 없는 곳, 소음이 적은 곳으로 가 풀벌레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밥 되는 소리, 설거지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트림 소리, 방귀 소리, 이 닦는 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를 새롭게 발견해 보자  
46    시인의 손에 놓이면 / 신현득 [한국] 댓글:  조회:1305  추천:0  2018-11-27
시인의 손에 놓이면 / 신현득   돌멩이 한 개라도 시인의 손에 놓이면 달라, 시가 되거든.     몽당연필이라도 시인의 손에 잡히면 달라, 시를 쓰거든.     흔한 햇빛이라도 나뭇잎이 받아 지니면 다르듯이 과일의 살이 되듯이,
45    색깔들/ 모리스 카렘(프랑스) 댓글:  조회:1356  추천:0  2018-11-27
 색깔들/ 모리스 카렘(프랑스)   - 난 말이야, 보라색을 좋아해, 7월달 색이거든. 월귤이 흰족제비에게 말한다. - 난 말이야, 주황색을 더 좋아해, 게다가 난 절대 변하지 않아 오렌지가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 난 빨강색이야, 딸기가 말한다. - 난 말이야, 노랑색이야, 참외가 말한다. 사과는 몹시 으스대며, - 빨간색 아니면 노란색 난 경우에 따라 달라. 연못은 파란색으로 옷 입고 벚꽃 나무는 하얀 꽃으로 옷 입고 초록 잎은 나무 가지들을 즐겁게 하고 금은 불에게 마술을 건다. 그리고 목넘이 마을에 폭풍우가 지나가 급작스런 우박에 놀라지만 예쁜 꽃 드레스를 입고 무지개 목도리를 하고 총천연색으로 웃고 있다 ― 시집 『레네뜨사과Pomme de reinette』에서     모리스 카렘 (1899-1978)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후에 그는 시에만 전념했고 널리 아이들에 의해 인용되는 수많은 시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시에 세상을 살면서 믿고 얻는 행복을 표현하고 있다.  
44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댓글:  조회:1311  추천:0  2018-11-27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 시계는 얼굴이 있는데 입이 없어요 바늘은 눈이 있지만 볼 수는 없어요 날벌레는 잠을쇠 열쇠 없이 트렁크를 갖고 다녀요   시간은 빼앗길 수 있지만 빼앗아올 수는 없어요 옥수수밭은 턱이 없어도 예쁜 보조개를 짓지요 산은 다리가 없는데 발(기슭)이 있지요 유리잔은 줄기예요 뿌리가 아니죠   시계에는 손이 있는데 손가락은 없어요 장화에는 혀가 있지만 가수는 아니예요 강은 달립니다, 다리가 없지만 톱은 이가 있어도 먹지 않아요   물푸레나무는 열쇠를 갖고 있지만 잠그지 않아요 아기들은 삐악삐악 하지만 닭이 되지는 않아요.   [감상]   동심의 세계라고 해서 마냥 한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은 자기 몸의 각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눈, 입, 혀, 손, 다리, 발, 머리카락, 턱” 등 소리 내면서 단어를 배우고 또 주변의 “시계, 핀, 바늘, 날벌레, 톱, 유리잔, 장화, 나무, 옥수수, 산” 같은 것을 부지런히 배울 뿐만 아니라 “보조개, 시간, 뿌리, 가수” 같은 어려운 말도 배울 수밖에 없다. 말을 배운 다음 단계의 어린이들은 각 대상물의 특징에 대해 배운다.   로제티는 “OO는 있는데 OO는 없어요”라는 문장들을 만들어 특징을 비교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가 그 대상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도록은근히 유도한다. 남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처럼 중요한 인생평생수업은 없을 것이다. 시인들은 흔히 자기가 나무도 됐다가 날벌레도 됐다가 한다.   이 14행의 동시는 이처럼 유익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재미있고 쉽다. 또한 14행의 운(韻)을 보면 시인의 배려가 매우 세심하다. 영어 원문에서 각 행의 끝 단어가 “헤어, 데어”, “씨, 키”, “윈, 친”, “푸트, 루트”, “핑거, 싱거”, “피트, 이트”, “록, 콕”으로 짝을 이룬다.           [작가 소개] Christina Georgina Rossetti (1830-1894) '모짜르트의 자장가'로 알려진 "잘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 (1872),"Flowers are closed and lambs are sleeping; Stars are up, the moon ispeeping; While the birds are silence keeping"을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그녀의 부친은 시인이었으며 오빠는 시인이자화가였다. 크리스티나는 아버지와 오빠의 예술가적 자질을 이어받았고 열렬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서 깊은 종교적 영향을 받았으며 생활고와 질병의 고통이또한 작가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부친이 병에 걸려 장기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퇴직했으므로 어린 크리스티나는 생계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탁아소 일을 했고 14세부터 각종 질병(후두염, 결핵, 신경통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크리스티나는 두 번 약혼을 했으나 결혼하지못했다. 첫번째 약혼자인 화가 제임스 콜린슨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기 때문에 파혼했으며, 30세가 넘어서 사귄 두번째 약혼자 찰스 카레이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라 판단하여 결국 결혼 전에 헤어졌다. 크리스티나는 일곱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31세에 첫 시집 를 출판했다. 장시(長詩)로 분류할 수 있는 의 경우는 두 자매가 악귀 불운을 겪는 난해한 주제이고 중층적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를 종교적 시험과 구원의 은유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에로틱한 욕구와 사회모순을 폭로하는 것이라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크리스티나는 많은 신앙시와 동시를 지었으며대부분 간결하고 운율에 철저하다. 그녀의 시 속에는 페미니즘 요소가 흐르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녀는 전쟁, 노예제도, 동물학대, 미성년 매춘에 적극 반대했으며 친구서클에서 활동하는 한편 매음굴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다. 크리스티나는 모더니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되어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조명되었다.   약혼자 카레이와 헤어진 36세 이후 그녀는 이웃을 위해 대신 속죄하는 훌륭한 삶을 살았다. 점점 더 신경통이 심해져 고생했으며 40대 초에는 큰 의지가 되었던 오빠 단테가 쓰러져 10년간 누워 있다가 사망했다.그 충격 때문인지 최후의 12년 간은 침묵의 삶을 살다가 1894년 12월, 만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출판된 시집은 , , , , , , , 등이다.  
43    "이슬" 동시 / 문삼석 댓글:  조회:1853  추천:0  2017-08-26
이슬 1 / 문삼석 이슬은  밝음  한 알  이슬은  맑음  한 알    이슬 2 / 문삼석   밝음을  토해 내는  맑은  눈  맑음을  토해 내는  밝은  눈    이슬 3 / 문삼석     그 눈  앞에선  어둠도  쓰러지고  그 눈  앞에선  숨결도  가라않고   이슬 4 / 문삼석   풀잎 속에 숨는다고 누가 모르나?   맑은 눈 또랑또랑 뜨고 살면서....   이슬 5 / 문삼석   맑은 눈은 늘 고운 마음을 비춰 주고,   고운 마음은 늘 맑은 눈을 보여 주고.   이슬.6 / 문삼석   밤 새워 별빛과 도란거리다.   별빛되어 반짝이는 한 알 수정.   이슬 7 /  문삼석   보이는 건 그대로 티 없는 세상.   들리는 건 그대로 소리 없는 노래.   이슬.8 / 문삼석   굴 러 라. 융단 위를.....   울 려 라. 방울 소릴....   이슬.9 / 문삼석   아무리 닦아도 더 맑을 순 없을 거야.   아무리 굴려도 더 둥글진 못할 거야.   이슬.10 / 문삼석   달빛 속에 자라서 저리 고옵고,   별빛 보고 자라서 저리 말갛고.   이슬.11 / 문삼석   세상이 다 잠들어도 이슬아, 넌 언제나 깨어 있고   세상이 다 눈감아도 넌 언제나 뜨고 있고.   이슬.12 / 문삼석   누가 살까? 이슬 속 작은 마을엔....   누가 알까? 이슬 속 숨은 이야길....   이슬.13 / 문삼석   이슬은 눈 아기의 눈.   티 없이 연 초롱한 눈   이슬.14 / 문삼석   해님은 웬 일로 데려 가실까?   눈 젖어 애처로운 이슬 아기를....   이슬.15  / 문삼석   밤내 곱게 매달아 놓고,   차마 못 따고 두고 간 진주.   이슬.16 / 문삼석   해 맑은 눈빛으로 살고 싶은 이.   밤마다 몸 뒤채며 타고 남은 넋.   이슬.17 / 문삼석   새벽이랑 함께 떠 어둡지 않고,   풀잎이랑 함께 살아 외롭지 않고.   이슬.18 / 문삼석   이 슬 은 맑은 등,   아 침 을 켜는 등.   이슬.19 / 문삼석   훅 불면 또그로 구르겠다.   자칫 떨어지면 쨍그랑 깨지겠다   이슬.20 / 문삼석   하늘이 맑아서 너는 맑게 뜨고,   바람이 고와서 너는 곱게 뜨고.   이슬. 21 /문삼석   -다칠라..... 개미가 조심조심 꼿발로 비켜 가고,   -깨질라.... 바람도 가만가만 꼿발로 지나 가고.   이슬.22 / 문삼석   너늘 보면 나는 비인 풀밭이고 싶다,   너늘 보면 나는 이른 아침이고 싶다. 이슬.23 / 문삼석   이슬아.  넌 봤지 ?  어둠이 어떻게  잠 깨는지 ...... .  이슬아,  넌, 알지 ?  새벽이 어떻게  걸어오는지 ...... .   이슬.24 / 문삼석   맑은 모습 그대로 젖고 싶고,   순한 마음 그대로 닮고 싶고.   이슬.25 / 문삼석   순하고 둥근 마음 저리 고운 걸,   참으로 아는 인 진정 누굴까?   이슬.26 / 문삼석   이슬 속엔 몰래 하늘이 숨고,   하늘 속엔 몰래 이슬이 숨고.   이슬. 27 / 문삼석   참다 참다 더 참지 못해   보석처럼 맺히고 만 눈물 방울.   이슬. 29 / 문삼석   풀잎이 하도 고와 이슬은 더 맑고 싶고,   이슬이 하도 맑아 풀잎은 더 곱고 싶고.   이슬.30 / 문삼석   아무도 몰래 혼자 뜨고,   아무도 몰래 혼자 감고   이슬.31 / 문삼석   그늘 속에선 조용한 시.   그늘 밖에선 반짝이는 노래.   이슬.32 / 문삼석   서늘한 눈으로 열린 세상. 닮고파   또 보는 맑은 세상.   이슬.33 / 문삼석   새소리 맑게 걸러 더 맑아가고,   새벽빛 밝게 걸러 더 밝아 가고. .   이슬.34 문삼석   온통 이슬밭이게 늘 아침이었으면....   밴발로' 달리고픈 아침 이슬밭.   이슬.35 / 문삼석   아침 풀밭은 이슬이 사는 집,   동그란 마음들만 모여 사는 집.   이슬.36 / 문삼석   새벽 이슬은 작은 아이들,   티 없는 눈으로 사는 아이들,   이슬. 37 / 문삼석   어둡던 세상이 너로 하여 밝아지고   비었던 세상이 너로 하여 채워지고.   이슬. 38  / 문삼석   누가 울면서 온밤 보냈나?   저리 고운 눈물 뿌려 놓고서....   이슬.39 문삼석   혼자 있어도 너는 다구나.   따로 살아도 너는 하나구나.   이슬.40 / 문삼석   눈으로만 작게 웃고 싶고,   맘으로만 곱게 일하고 싶고.   이슬.41 / 문삼석   -세상은 하나다. 둥근 하나다.   이슬아ㅡ 네 눈은 그렇게 말하고,   -세상은 참이다. 맑은 참이다.   이슬아, 네 눈은 그렇게 보이고.   이슬.42 / 문삼석   마알간 옥구슬 받쳐 들고,   아침을 부르는 풀잎 손들.   이슬.43 / 문삼석   닫힌 마음도 하늘처럼 열어주는 이슬 눈.   비인 가슴도 바다처럼 채워주는 이슬 눈.   이슬.44 / 문삼석   풀잎 손 고운 손엔 이슬이 살고,   이슬 눈 맑은 눈엔 풀잎이 살고.   이슬.45 / 문삼석   어느 말보다 네 말은 참되고,   누구 말보다 네 말은 정답고.   이슬.46 / 문삼석   마알간 몸을 보면 눈부터 시려와요.   통째로 눈에다 담고 싶어요.   이슬.47 / 문삼석   한 알 네 눈짓으로   세상은 조용히 어둠을 벗는다. 이슬.48 / 문삼석   앉고 싶어라, 풀잎 위에....   살고 싶어라, 이슬 처럼.....   이슬.49 / 문삼석 어딜까? 네 눈빛만 초롱초롱 모여 사는 곳은?   언젤까? 네 숨소리만 세상 가득 차오를 날은?   이슬.50 / 문삼석   이 세상 가득 이슬로 채워   그렇게 맑고 밝게 살아 갔으면.....
42    오순택의 동시 100편 [한국] 댓글:  조회:2197  추천:0  2017-07-07
    1. 봄비   나직나직 꽃의 말에 귀 기울이는 봄비   꽃잎에 고운 발자국을 놓고 간다   알몸이 되어 푸르르 푸르르 떨고 있는 풀잎에 앉으면 초록 구슬이 되는 봄비   연못엔 음표를 놓고 간다 《풀벌레 소리 바구니에 담다》, 아동문예, 1981     2. 노랑나비   노란 꽃잎이 바람도 없는데 하늘하늘 떠간다   그 꽃잎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에서 가장 귀여운 것 가장 예쁜 것   바람도 없는데 노란 꽃잎이 나풀나풀 떠간다   길가의 민들레가 방긋 웃는다 아동문예 1981     3. 새는 꽃빛깔로 운다   새의 목소리는 꽃이다 새는 꽃빛깔로 운다   새벽녘 마알간 부리로 꽃빛깔 한 모금 물어다가 창 곁에 놓아두고 하늘한 실가지 끝 날개 접고 앉아서 보랏빛으로 운다   수수깡 마른 줄기에 된장잠자리 앉았다 날아가는 어스름 녘   새는 고운 목소리 꽃잎에 토해 놓고 창 곁에 귀를 잠재운다   새는 꽃이다 꽃빛깔로 운다 아동문예 1985     4.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혼자 서서 생각하는 나무     새가 날아와 가지에 똥을 누고 가도 바람이 잎을 마구 흔들어도 말없이 서서 하늘 향해 기도하는 나무   나무의 몸에 가만히 등을 기대면 따스한 체온이 묻어나는 것 같고 잎을 만지면 손은 온통 초록 물이 드는 것 같은 나무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아동문예 1985     5. 산마을 -겨울   눈이 숨겨 놓은 외딴집 고운 발자국이 길을 내었다   그 발자국 따라가 보면 보나마나 툇마루엔 함지박이 놓여 있고 함지박 안엔 찐 고구마가 담겨 있을게다   누가 왔다 갔는가 알 듯도 하다 우체부 아저씨가 꽃씨 같은 읍내 소식 놓고 갔거나 건너 마을 순이 어머니가 씨 강냉이 얻으러 왔을게다   산마을엔 새는 보이지 않고 꽃물 묻은 고운 목소리만 눈처럼 싸리울을 적시고 있다 아동문예 1985   6. 보리   하필이면 추운 겨울날 아이들이 손을 호호 불며 보리밭을 밟고 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보리를 밟아대지만 그럴수록 보리는 파르르 파르르 살아나 새처럼 날고 싶어 한다   연한 풀잎사귀 같은 것이 겨울을 용케도 견디어 내는 걸 보면 참 대견스럽다   손을 호호 불며 보리밭을 밟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 보리 잎사귀 같은 초록 물이 든다 아동문예 1985     7. 메밀꽃 피면   고추잠자리 쉼 없이 날고 있었지 누나 손을 잡고 메밀밭 가에 서면 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 피어 있었지 앉을까말까 고추잠자리 생각하고 살래살래 메밀꽃 고갤 흔든다     실바람 숨죽이고 모여 있었지 누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 올 때쯤 달빛을 덮고 메밀꽃 자고 있었지 깨울까말까 실바람 생각하고 가만가만 메밀꽃 고운 꿈꾼다. 아동문예 1987   8. 자운영꽃 따서   학교 가는 길 논둑길의 자운영꽃 따서 꽃시계 만들어 손목에 찹니다 친구 시계는 재깍재깍 내 시계는 소올솔 꽃내음이 납니다   돌아오는 길 논둑길의 자운영꽃 따서 꽃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지요 누나 목걸이는 반짝반작 내 목걸이는 사알살 꽃내음을 풍겨요 아동문예> 1987   9. 코스모스 꽃길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서 가면 발자국엔 고운 꽃물이 고여요   코스모스 꽃길을 손잡고 가면 손바닥엔 연분홍물이 들지요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오면 책가방 가득 꽃내음이 담겨요 아동문예 1987   10. 예쁜 나무 나의 친구와 나눈 이야기   “나무야, 나무야 잠은 언제 자니?” “봄엔 잎을 피우고 여름엔 꽃을 피워야지 잠잘 시간이 어디 있니” “밤에 잠을 자면 돼지 뭐” “밤은 너무 조용해서 잠이 오니” “그럼 밤엔 무얼 하니?” “별을 헤이며 하루를 반성하지” “날마다 반성하니?” “그럼” “가을엔 무얼 하니?” “하늘을 향해 기도 하지 하느님이 열매를 주시니까” “겨울엔?” “조용히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지” “귀를?” “봄이 어디만큼 오고 있나 알아보는 거지” “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니?” “그럼 봄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지” “어디 있니?” “응 그건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지” “그런 시시한 말이 어디 있니” “나무는 하느님이 만든 가장 예쁜 시인이야* 봄의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열매가 자라는 것도 볼 수 있는·······” *조이스 킬머의 에서 따옴. 아동문예 1987     11.꽃신   꽃씨만큼씩만 자라나는 신발 한 켤레   우리 현이의 신발에선 꽃내음이 난다   의좋은 다섯 발가락 나란히 누워 잠자는 조그만 방   밤이면 달님이 내려와 꽃방석 깔아주고 간다   꽃나무가 자라듯 밤에만 몰래 크는 꽃신 한 켤레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2. 시골 친구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목소리에선 장다리꽃 냄새가 나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호주머니 속에는 풀잎 바람이 들어 있어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신발에는 개울물 소리도 묻어 있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마음씨는 분꽃 씨 같아요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3. 참새   참새 서너 마리 부리에 음표를 물고 전깃줄에 앉아 있다   다섯 줄 전깃줄이 오선지인 줄 아나 봐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4. 아침마다   꽃도 밤에는 잠을 자나 봐 아침마다 이슬로 얼굴을 닦고 있는 걸 보면   나무도 잠을 자며 꿈을 꾸나 봐 아침마다 잎사귀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 아동문예 1989   15. 무지개    여름 오후 해님이 잠깐 졸고 있는 사이   소나기가 놓고 간 일곱 줄 현악기   부리 고운 새가 날아가며 튕겨보지요 아동문예 1989     16. 바다   돛단배는 갸우뚱 딛고 가고   통통배는 뒤우뚱 딛고 가는    하늘만한 디딤돌 아동문예 1989   17. 까치집   키 큰 미루나무 파아란 하늘이 묻은 가지에 둥긋한 집 한 채   방 한 칸뿐인 까치집   단출한 까치네 식구들   하늘은 그의 뜰   구름도 까치집 뜰에 와서 논다 아동문예 1990   18. 우리나라의 새   우리나라의 새는 악기입니다   까치는 이른 아침 사립문에 꽃물 묻은 햇살을 물어다 놓고 까작, 까작, 까작 타악기 소리를 내고   실개천 말뚝에 앉은 털빛 고운 물총새는 돌 틈을 흐르는 물소리 같이 목관악기 소리를 냅니다   가르마를 타듯 바람이 보리밭을 헤치고 지나가면 종달새는 피리소리를 내며 돌팔매질을 하듯 보리밭에 내려앉고   몸은 솔숲에 숨겨 놓고 꽃 같은 고운 목소리만 내어 보이고 있는 뻐꾸기는 금관악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새는 예쁜 악기입니다 아동문예 1990   19. 고추잠자리   빨갛게 익었다.  고추처럼 익었다   여름 한낮 뙤약볕 받아먹고 곱게 핀 백일홍 꽃잎 같은 날개   파아란 하늘을 날며 꽁지로 시를 쓴다 계몽사 1992     20. 여름 한낮    소나기가 작은 북을 두드리듯 연잎을 밟고 지나가면   매미는 미루나무 가지에 앉아 연주를 한다   호박 덩굴이 살금살금 기어가는 울타리 너머로 쏘옥 고개 내민 해바라기 얼굴이 햇볕에 누렇게 익은 아빠 얼굴 같다   아까부터 장독대 곁 꽃밭에선 봉숭아 씨가 토록토록 여문다 계몽사 1992     21. 연못  연못은 오선지   보슬비가 음표를 놓고 간다   연못은 푸른 색종이   물방개가 동그라미를 그린다 계몽사 1992   22. 가을비   가을비는 낙엽을 밟고 옵니다   외로운 아이처럼 빈 가지만 들고 서 있는 나무 밑을 서성거리다가 까치집 문 밖에서 안을 기웃거립니다   가을비는 아이처럼 종종걸음으로 옵니다   댓돌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꽃신 속에 귀뚜라미를 울려 놓고 사립문 밖에선 굴뚝새가 물고 올 겨울을 기다립니다 계몽사 1992     23. 사과의 무게   사과는 땅에 내려오기 위하여 처음엔 모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만 해도 공중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과가 뚝- 하고 땅에 떨어졌을 때   지구는 사과의 무게만큼 무거워 졌다 계몽사 1992   24. 어촌에 가면   햇살 고운 돌담 옆에서 어부가 그물을 깁고 있다   짙푸른 파도도 걸리게 촘촘히 촘촘히 햇살도 조금 섞어 그물을 깁고 있다   조그마한 꽃게 한 마리 푸른 바다 한 조각 집어 들고 와서 그물코에 놓고 가면   그물코에 걸린 푸른 바다는 갓 잡아 올린 고기처럼 파닥거린다   그물을 깁고 있는 어부의 손등은 비늘 벗겨진 고기 등 같다 계몽사 1992     25. 귀이개   귀이개로 귀지를 파다보면   친구와 소곤소곤 나눈 귓속말도 귀이개에 묻어 나오고   선생님의 귀한 말씀도 부스러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 쪼끄만 게 내 비밀을 다 캐내는구나 선영사 1993     26. 아빠 구두   밤에만 현관에 놓이는 아빠 구두   가만히 구두를 신어 봅니다   구두 한 짝 속에 나의 두 발이 포옥 담깁니다   아빠의 따스함 묻어 있는 구두 한 켤레 도서출판 가꿈 1995     27. 하늘 세수   세수를 했습니다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을 받아 세수를 했습니다   대야엔 찰랑찰랑 강물이 담겼습니다   강물엔 산이 빠져있고 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세수를 했습니다   하늘을 떠서 세수를 했습니다 도서출판 가꿈 1995     28. 개망초꽃 꺾어서   들녘에 나가 종일 꽃을 꺾었습니다   가슴엔 온통 꽃물이 들었습니다   보랏빛 꽃잎을 따서 들녘에 흩뿌렸더니 새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이윽고 밤하늘엔 개망초꽃 같은 별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예원 1997   29. 갈매기   갈매기야 갈매기야 너는 집이 어디니?   푸른 물결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3자를 쓰는 갈매기야   너는 소녀니? 소년이니?   물결은 혀를 날름거리며 방죽을 핥고 있고 배들은 묶인 채 떠나지 않는데   끼륵끼륵 갈매기야 누굴 찾고 있니?   푸른 바다 위를 가벼이 나는 너는 먼 나라에서 보내 온 편지 같구나   갈매기야 갈매기야 너의 예쁜 이름 누가 지어 주었니? 학예원 1997   30. 꽃과 나비의 입맞춤   나비가 뽀뽀를 했대요   꽃의 입술에 뽀뽀를 했대요   저것 봐요 나비 입술에 꽃 내음이 묻어있잖아요 학예원 1997   31. 찔레꽃   수수깡 울타리 위에 등불을 켜 놓고 고샅길을 하얗게 밝혀 주고 있다 학예원 1997     32. 구두약   아기 얼굴은 엄마가 닦아 주고   아빠 구두는 구두약이  닦아 주지요 문공사 1998   33. 개똥벌레   꽁무니에 불을 달고 까불대는 벌레 한 마리   풀숲에 호롱호롱 불을 켜네요 문공사 1998   34.아이와 우산   아이가 산을 들고 갑니다   비 오는 날   산 속엔 비가 오지 않습니다 문공사 1998     35. 나의 신발   나의 신발은 배이에요   나 혼자 타는 배이에요   나를 싣고 학교 가는 작은 배이에요 문공사 1998   36. 거미에게   거미야 거미야   네가 짜 놓은 그물 바람도 걸리니?   거미야 거미야   네가 짜 놓은 그물 빗방울도 걸리니? 문공사 1998   37. 우산꽃    비를 맞으면 활짝 피어나는 꽃 문공사 1998   38. 아가 이   엄마의 숨결 묻은 꽃씨 두어 개 묻어 놓은 아가의 입 속에   새하얀 봄이 쏘옥 돋는다 문공사 1998   39. 아름다운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기다   아기의 눈 아기의 코 아기의 입 아기의 귀   그리고 아기의 손가락 아기의 발가락   아기는 이따가 필 꽃이다 아동문예 2005   40. 똥꼬가 뽀꼼   엄마가 아기 똥꼬를 들여다봐요   꼭 나비가 꽃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똥꼬가 뽀꼼 열려요   튜브에서 치약이 나오듯 똥이 나와요   향내 소올솔 풍겨요 아동문예 2005   41. 아기 양말   발가락 포옥 잠재워 주는 아기 양말   보송보송 엄마가 사온 털실 양말   포근포근 봄 햇살 같아요 아동문예 2005   42. 꽃씨 눈   아기 눈은 꽃씨 눈이에요   흙 속에서 첫 눈 뜨는 해바라기 씨눈처럼 말똥해요   아기는 노랑나비 날개 접듯 살포시 눈 감아요 아동문예 2005   43. 새 싹에서 나는 향내   아기 입에선 향내가 나요   봉숭아 새 싹에서 나는 향내 같아요   아기 입은 금붕어 입처럼 쪼그마해요 아동문예 2005   44. 사슴섬의 뻐꾸기 -한하운 시인에게   뻐꾸기 한 마리 숲속에서 울고 있었다 고운 햇살 온몸에 감고   손을 내밀어 가만히 잡아 주고 싶은 목이 긴 사람들이 사는 사슴 섬   미움도 없고 시새움도 없는 아! 이곳은 아픈 당신들의 천국이었구나   어릴 때 함께 뛰어 놀던 친구들 모두 고향에 다 있는데 보리피리 불며불며 서럽게 찾아온 땅 소록도여!   그는 죽어 뻐꾸기가 되었는가 뻐꾹, 뻐꾹, 뻐꾹   숲속에 숨어 꽃잎에 붉은 울음을 토해 놓고 있었다 *사슴 섬: 전남 고흥군 도양면에 속하는 섬으로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한다. *한하운: 나병에 걸려 소록도로간 시인. 아동문예 2007   45. 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은 누나 입술 같이 곱더라   고운 입술에 봄빛 듬뿍 물고 배시시 웃고 있더라   지난 겨울 싸락눈 먹고 자란 초록 잎사귀가 저렇게 붉은 꽃 피웠겠지   꽃이 지면 어쩌지 붉은 동백꽃 똑똑 따며 봄이 가 버리면 어쩌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꽁지 몽땅한 새 한 마리 떨어진 꽃잎을 쪼아 먹고 있더라 *선운사: 전북 고창에 있는 고찰. 대웅전 뒤꼍엔 오래된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동문예 2007.       46. 웃는 돌 -경주 남산에서   돌이 앉아서 웃고 있다   눈도 웃고 입도 웃고 귀도 웃는다 *경주 남산은 마치 불상들의 박물관 같다. 모두가 웃고 있다. 귀로도 웃고 입으로도 웃고 눈으로도 웃는 돌. 얼굴 없는 불상도 있다. 아동문예 2007   47.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황지에서 낙동강까지   나는 물이에요 졸졸 쫄쫄 촐촐 악기 같은 새 소리도 흉내 내며 산 속 바위틈을 지나 개울에 이르면, 어디서 왔는지 그 곳에는 얼굴이 푸르스름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가다가 숨차면 댐에 갇혀 햇볕에 포슬포슬 등을 말리기도 하고, 그래도 심심하면 폭포처럼 뛰어내려 하야말갛게 부서지며 깔깔댔어요 물은 물끼리 만나면 즐거워요 금세 강에 다다랐는지 토끼풀 주섬주섬 모아 꽃피우는 강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 큰 강을 만들지요 강은 깊을수록 휘휘 휘파람을 불며 흘러가지요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어느 집 수도관으로 들어갔지요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물을 콸콸 흘려버리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이윽고 누군가가 수도꼭지를 틀었어요 후유! 손이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 아이였어요 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주었지요 “너를 만나려고 낙동강 일천삼백 리를 달려왔지” 나는 나푼나푼한 이파리처럼 말하였지요 *황지: 낙동강 일천삼백 리가 시작 되는 연못. 강원도 태백시에 있다. 아동문예 2007   48. 마이산을 바라보며   전라북도 진안엔 말의 귀 모양을 한 산이 하나 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면 바윗덩이만 보이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가 영락없이 쫑긋한 말의 귀 같지요   사람 사는 것도 그렇다나요 가까이 있을 땐 몰랐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름다운 마음이 새록새록 솟는데요   그래요 자연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소중한 것을 일깨워 주지요 *마이산: 두 개의 산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한다. 높이 685미터. 아동문예 2007     49. 하회마을   낙동강이 휘돌아 흘러가며 감싸고 있는 마을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하늘 맑은 날 찾아갔지요   고샅길 따라가면 마른 풀 향내 나는 토담집이 정겹고   솟을대문 열고 들어서면 기와 이고 있는 오래 된 집들은 파릇한 손때가 묻어 있었지요   그곳에 가면 하회탈 쓰고 더덩실 더덩실 어깨춤 추는 초랭이도 만날 수 있지요 *하회마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낙동강이 감싸고 있는 마을. 물도리동 이라고 함. 한국민속문화의 한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양반 마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하회탈:9개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랭이: 양반의 하인을 상징하는 탈. 아동문예 2007   50. 제암리 예배당   제암리엔 일요일이면 하느님이 내려 오셨다가 잠깐 쉬어가는 조그만 예배당이 있습니다   예배당 옆 난쟁이 풀꽃들 나직나직 무슨 말 하는지 볼이 불그레한 꽃잎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린 새싹은 보드라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시고 고운 햇살 골라 과일 속에 단물 고이게 하시는 그분 만나기 위해 일요일이면 예배당엔 신발이 가지런히 놓입니다.   발가락이 쏘옥 나온 구멍난 양말을 신은 소녀 곁엔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오도마니 앉아 있습니다   기도 소리가 하늘까지 닿았는지 구름도 지나가다가 잠시 머물다 갑니다 *제암리: 3 · 1 운동 순교 유적지. 당시 일본군이 마을 기독교 주민 30명을 집단으로 학살한 곳.(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 *교회 뒤쪽에 제암리 3 · 1 운동 순국 묘가 있다. 아동문예 2007     51. 풀벌레   온종일 풀잎에 앉아 놀더니   온몸에 초록물이 들었구나 청개구리 2009   52. 달팽이   풀잎에 맺힌 이슬 핥아 먹고   봉숭아 씨 같은 똥을 눈다   똥에선 풀꽃 향내 난다 청개구리 2009     53. 저녁 눈   사락사락 누가 연필을 깎고 있다   하얀 종이 위에 시를 쓰려나 보다 청개구리 2009     54. 향내 나는 말   운동장 한쪽에 있는 세면대에서 아이들이 까르르까르르 이을 닦고 있습니다   입가엔 함박꽃이 핍니다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도 선생님에게 여쭐 말도 반짝반짝 닦입니다   양치질을 끝낸 아이들이 쪼르르 교실로 들어옵니다   재잘재잘 아이들의 말에서 향내가 납니다 교실에도 향내가 묻어납니다 청개구리 2009   55. 못   한 곳에 박혀 있다고 무시하지 마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 옷도 내가 받아 거는걸   쬐그맣고 볼품없다고 무시하지 마   너의 온몸 비춰볼 수 있는 거울도 내가 들고 있는걸 청개구리 2009     56. 쪽배가 된 초승달   옥토끼가 갉아 먹다 남은 초승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꽁지 몽땅한 새가 잠자러 가면서 쪽배인 줄 알고 타고 간다 청개구리 2009   57. 눈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 헌 옷 입은 아저씨가 빈 깡통 옆에 놓고 졸고 있다 사람들은 못 본 척 버스를 탄다 하느님은 아까부터 내려다보고 있었나 보다 싸락눈을 빈 깡통에 담아주고 있다 청개구리 2009   58. 달빛   달빛이 햇볕처럼 뜨거워 봐 꽃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달빛이 햇볕처럼 밝아 봐 새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청개구리 2009   59.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꽁지 몽땅한 새가 날아가면서 싼 똥 민들레 꽃잎에 똑- 떨어졌다   민들레 얼굴이 노래진다   새순을 뜯어 먹고 있던 아기 염소가 까르르 웃는다 청개구리 2009   60. 할아버지의 과일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해가 들어 있지요   뜨거운 여름 햇볕 받아먹고 빠알가니 익었으니까요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빗소리도 들어 있어요   뭉게구름 지나가다가 과일 밭에 들러 비 뿌려 주고 갔으니까요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새소리도 들어 있지요   온음표 물고 날아가던 새 과일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다 갔으니까요 청개구리 2009   61. 낚시   아빠는 강에 물음표를 놓았습니다   강은 대답 대신 고기 한 마리 올려 보냅니다 청개구리 2009    62. 누구니? · 1   누구니?   외딴 마을에 풀꽃 피었다고 나비에게 누가 전화 했니? 청개구리 2009   63. 캥거루   탁아소가 필요 없지요   엄마가 항상 데리고 다니니까요   유모차가 필요 없지요   주머니에 아기를 넣고 다니니까요 청개구리 2009     64. 슬플 때는   꽃이 없다고 나비는 슬퍼하지 않는단다 개미는 바빠서 슬퍼할 겨를이 없단다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을 따서 가슴 가득 담아 봐 슬플 때는   그래도 슬플 땐 들꽃을 만나 봐   아무도 보러오지 않아도 웃고 있지 않니   그러면 가슴속에 들어 있는 슬픔이 채송화 꽃씨같이 토옥 튀어 나와 동글동글 굴러가 버릴 거야 청개구리 2009   65. 공룡이 뚜벅뚜벅   아이가 공룡이 그려진 책장을 넘깁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타르보사우루스가 뚜벅뚜벅 걸어 나옵니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엄마가 얼른 책장을 덥습니다 아평 2011     66. 민들레꽃 웃음   아이 손잡고 유치원 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았다   한 떨기 민들레꽃이 노랗게 웃고 있었다 아평 2011   67. 딸기   내가 좋아하는 주근깨투성이 소녀   가만히 바라보면 부끄러워 얼굴 빨개진다 아평 2011     68. 부탁해   나비야 꽃잎 밟지 마라   연한 꽃잎에 발자국 생기면 어쩌니 아평 2011       69. 우체통   초록 바람이 손을 넣어 보며   -없네     꽁지 몽땅한 새가 들여다보며   -비었군 아평 2011     70. 발가락도 숨을 쉰다   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거려요   “숨이 막히니?”   양말이 빠꼼히 구멍을 내주지요 아평 2011   71. 나비의 집   나비야 넌 집이 어디니?     꽃밭   그럼 겨울엔 어디서 사니?   꽃씨 속 아평 2011   72. 제비꽃의 봄   쪼그만 입으로 봄볕 오물오물 먹고 있는 자주색 제비꽃   모시나비 한 마리 사뿐사뿐 날아와 제비꽃 자주색 입술에 뽀뽀하고 있다 아동문예 2012     73. 봄은   봄은 세 살배기 아기다   이제 막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아기다   봄은 아침마중 2013     74. 신문지 이불   지하도에서 아저씨가 신문지 덮고 자고 있다   누군가가 다 읽고 버린 신문지도 때로는 이렇게 따뜻한 이불이 된다 아침마중 2013   75. 크레파스   살빛은 달라도 한 방에서 나란히 누워 잠잔다   태어날 땐 키가 똑같았는데   밖에 나가 신나게 놀다오면 키가 작아진다 아침마중 2013     76. 봉선화처럼   봉선화 꽃이 손톱에 고운 꽃물을 들여 주듯   나도 너의 마음속에 연분홍 꽃물로 물들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7. 방패연이 걸어놓은 빨랫줄    방패연이 하늘에 걸어놓은   팽팽한 빨랫줄   해님이 물 먹은 구름을   탈탈 털며 널고 있다 아침마중 2013       78. 해바라기와 흰줄표범나비   긴 꽃대위에 노랑 쟁반 올려놓고   햇볕 달달 볶고 있다   흰줄표범나비 한 마리 날름날름 햇볕 핥아 먹고 있다 아침마중 2013   79. 이사 가는 나무   미루나무 한 그루 누워서 이사 간다   나무에 세 들어 사는 까치네도 함께 간다   다친 발 친친 동여매고 트럭에 누워 이사 간다   나무가 이사 가는 마을이 궁금해 푸른 하늘도 따라 가고 해님도 빙그레 웃으며 따라 간다 아침마중 2013   80. 빈집·1   바닷가에 소라 한 개 버려져 있다   -안에 누구 계셔요?   갈매기가 목 길게 빼고 들여다본다 아침마중 2013   81. 달걀   부엌에선 프라이가 되지만   둥우리에선 병아리가 된다 아침마중 2013       82. 탯줄   세상에 막 나온 아기에게 엄마가 전화를 했답니다   -아가야 세상은 넓은 바다와 같은 거란다   -엄마 세상이 참 아름다워요   탯줄은 엄마와 아기가 주고받은 아름다운 유선 전화랍니다 아침마중 2013   83. 수평선    하늘과 바다가 그어 놓은 금줄이다   하늘을 나는 새는 헤엄을 못치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날지 못해   조심하라고 그어 놓은 금줄이다 아침마중 2013     84. 산을 먹은 송아지   산이 슬렁슬렁 강으로 내려가 물구나무를 섭니다   강둑에서 새순을 뜯어 먹고 있던 송아지가 겅중겅중 뛰어가 후루룩 강물을 먹습니다   음매에~ 어미 소를 부르는 송아지 울음이 꼭 산의 울음 같습니다 아침마중 2013   85. 봄볕 먹기   봄볕이 맛있나 봐   민들레 노란 꽃잎에 앉아 있는 모시나비도 먹고 풀밭에서 뛰어 노는 아기 염소도 먹고   뜨락에서 뒹구는 고양이도 먹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도 먹는다   봄볕이 참 맛있나 봐 아침마중 2013   86. 나무야, 아프지 마   과천 정부청사 앞 나무 한 그루 주사기를 꽂고 링거를 맞고 있다   노랑턱멧새 한 마리 문병 와서 포도 알 같은 슬픈 눈망울하고 나무의 어깨에 앉아 울고 있다 아침마중 2013   87. 똥꼬 보고 웃기   아이가 길을 가다가 풀밭에 똥을 눴단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눴단다   똥 덩이에 눌린 풀잎은 푸렁 물이 들었단다   누가 연락했는지 쉬파리가 맨 먼저 찾아왔단다   풀꽃이 아이 똥꼬를 봤는지 까르르 웃고 있었단다 아침마중 2013       88.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미루나무 줄지어 서 있는 강둑을 아이는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간다   은빛 송사리 떼 헤엄치며 따라가고   토끼풀 주섬주섬 모아 꽃피우는 강둑에 잎싹 날름날름 뜯어 먹고 있는 아기 염소 두 마리 끔벅끔벅 눈도 까맣다   해님이 잠자러 가면서 노을 한 자락 걸어 놓으면   아이는 굴렁쇠에 노을을 감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마중 2013   89. 연못 속의 나무   나무 한 그루 연못에 제 모습을 비춰보고 있다    물구나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바르르 떤다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포르르 날아간다   연못이 까르르 웃는다 아침마중 2013   90.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바퀴에 감긴 길을 동그란 실뭉치 풀듯 풀어보고 싶다   추운 겨울 누나 목에 두른 목도리 같은 고속도로도 감겨 있고 고운 햇살 머금고 발그레 웃고 있는 코스모스 길도 감겨 있겠지   바퀴를 뒤로 굴리면 동글동글한 실뭉치가 둘둘둘둘 풀리듯 고속도로 옆 그림처럼 펼쳐진 산과 들도 손잡고 따라 나오고 코스모스 발그레한 웃음도 향내 머금고 따라 나오겠지   동그란 실뭉치 풀듯 바퀴에 감긴 길을 둘둘둘둘 풀어보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1. 목련   남녘에 사는 바람이 편지를 보내왔다   연둣빛 봉투 귀퉁이를 가위로 잘랐다   이윽고 봄이 좌르르 쏟아졌다   뾰뾰뾰 멧새 소리도 들어 있었다 아침마중 2013     92. 똥 싸는 감나무   아이가 시골 외할머니 집 감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감나무가 끙 힘을 준다   홍시 한 개 철벅 땅에 떨어진다   아이도 끙 힘을 준다 똥 한 덩이 철벅 떨어진다 아침마중 2013     93. 벌레들의 놀이터   풀밭은 벌레들의 놀이터   실베짱이는 풀잎에 앉아 첼로를 켜고 긴알락꽃하늘소는 더듬이로 무전을 치고 모시나비는 긴 입으로 꽃에 주사 놓고 버들잎벌레는 풀대 위에서 미끄럼 타고   이슬은 무당벌레 등에 업혀 눈 깜박깜박   풀밭은 벌레들의 즐거운 놀이터 아침마중 2013   94. 무 밭에는   지하에 방 하나 있다   몸매 매끈한 무가 살던 방   창문이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무가 이사 간 반지하 방   불개미 가족 우글우글 살고 있다 아침마중 2013       95. 달은 힘이 세다   달은 힘이 센가 봐요   바닷물을 채웠다 비웠다 하잖아요   어딘가에 바다보다 더 큰 그릇이 있나 봐요 아침마중 2013     96. 자국   비 갠 오후   꽃밭에 지렁이 기어간다   한 획 휙 그은 붓   참새가 그 붓 낚아채간다   꽃밭엔 붓 자국만 남는다 아침마중 2013     97. 벌레와 갈잎   초록 잎사귀를 사각사각 갉아 먹고 자란 벌레가     먹다 버린 갈잎을 도르르 말고 겨울잠을 자는 것은   갈잎은 여름 뙤약볕을 받아서 햇볕처럼 따스하기 때문이야 아침마중 2013     98.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   아이가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 간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얼마나 빨리 달리나 신호등이 재깍재깍 시간을 재고   자동차는 멈춰 서서 눈 깜박이며 음악 감상 한다 아침마중 2013     99. 봄의 잠 깨우기   겨울의 뒤꼍에 가 보았니? 이따가 한 번 가 봐 싸락눈 내린 고샅길 지나 지붕 야트막한 집 한 채 싸리 울타리 두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강아지 데리고 살고 있지 마당귀엔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우물도 있어 겨울 햇살 포슬포슬 놀고 있는 장독대 배불뚝이 항아리들 장맛 잘 들었을 거야 그 뒤꼍에 가 봐 매화나무가 있어 가지마다 이슬만 한 뽀얀 몽우리 맺혀 있지. 봄이 여윈잠 자고 있을 거야 귓불을 간지럼 시켜 봐 머루알 같은 눈 비비며 봄이 깨어날 거야 아침마중 2013     100. 쉬   수원 영통 홈플러스 3층의 인형과 자동차가 있는 완구 코너에서 네 살배기 쌍둥이 손녀손자와 놀고 있는데 두 아이가 오줌 마렵다고 하여 바삐 화장실 앞까지 갔었지요   손녀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고 하고 손자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야 한다며 나의 손을 잡아끌었지요   허허 참! 어쩌면 좋으냐   화장실 밖에서 두 아이가 똑같이   할아버지 쉬- 아침마중 2013  
41    쉘 실버스타인 작품들 댓글:  조회:2024  추천:0  2017-06-22
쉘 실버스타인 작품들   쉘 실버스타인 (1932~1999)은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시인, 음악가로 폭넓은 예술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에는 시적인 문장과 함께 풍부한 해학과 번뜩이는 기지가 녹아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은 글의 재미와 감동을 한껏 더해 준다. 1964년에 출판된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가장 감명 깊은 책으로 손꼽힌다. 작품으로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떨어진 한쪽, 큰 동그라미를 만나》, 《총을 거꾸로 쏜 사자, 라프카디오》,《다락방에 불빛을》, 《길이 끝나는 곳》들이 있다.     여덟 개의 풍선 / 쉘 실버스타인     아무도 사 가지 않은 여덟 개의 풍선이 어느날 오후 모두모두 풀려 났다네. 줄 달린 여덟 개의 풍선이 날고 있네. 제멋대로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하나는 날아서 해에 닿았지.-펑 하나는 고속도로 위에서 놀고 싶었지.-펑 하나는 선인장 더미 속에서 한숨 잤지.-펑 하나는 장난꾸러기 아이와 놀았지.-펑 하나는 숯불 고기를 맛보려고 하다가.-펑 하나는 고슴도치와 사랑에 빠졌지.-펑 하나는 악어 입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지.-펑 하나는 김이 빠질 때까지 앉아만 있었지.-쉬익 아무도 사 가지 않은 풍선 여덟 개. 모두모두 풀려서 멀리멀리 날아 갔다네. 마음대로 떠돌고 마음대로 날다가 마음대로 펑펑 터지며. ======================================================   함 / 쉘 실버스타인     우리가 만나 "안녕"하면, 인사함이요.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고려함이요. 우리가 잠시 머물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대화함이요. 우리가 서로서로 이해하면, 통함이요. 우리가 따지고 외치고 삿대질하면, 말다툼함이요. 나중에 풀어져서 서로 미안하다고 하면, 화해함이요. 우리가 서로 도우면, 협조함인데, 이 모든 함이 다 보태져서 훌륭함을 이룬다.   (내가 이걸 근사한 시라고 우기면, 그것은 과장함일까?)   ====================================================   원반의 모험  / 쉘 실버스타인     이리저리 날기에 지겨워서, 하고 싶은 다른 일들도 생각나서 다음번에 던져졌을 때 공중에서 빙 돌아서 멀리멀리 날아가 새로운 일거리들을 찾았다. 안경이 되고자 했으나 그걸 통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비행 접시가 되려고 했지만, 모두들 그를 알아채버렸다. 반찬 접시가 되려고 했으나, 금이 가서 버려졌고, 빈대떡이 되고자 했으나, 던져지고 구워지고 뜯겨졌다. 자동차 바퀴 모자가 되려고 했지만, 차들은 모두 너무 빨리 달렸고, 음반이 되고자 했으나, 어지럼증에 견딜 수 없었고, 동전이 되려고도 했으나, 너무 커서 쓰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굴러와 원반으로 되돌아 온 게 기쁘고 즐거웠다.   ========================================================   두려움  / 쉘 실버스타인     물에 빠져 죽을까 봐 무서워진 무섬이는 헤엄쳐 본 적도 없고, 배를 타 본 적도 없고, 목욕한 적도 없고, 개울을 건너 본 적도 없었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창문에도 못질을 한 채, 밤이고 낮이고 앉아만 있었다. 물결이 밀어 닥칠까 두려움에 떨며, 너무나 많이 울어서, 눈물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드디어 그는 빠져 죽었다.   =====================================================   겉이냐, 속이냐? / 쉘 실버스타인     노마는 오만원짜리 겉옷은 샀으나 속옷 살 돈이 없었다. 노마가 지껄이길 "겉 모습이 정말 그럴듯하면, 속에 무얼 입었는지 알게 뭐야."   삼돌이는 수만원짜리 속옷을 샀으나, 겉옷은 너덜너덜, 솔기마저 터졌다. 삼돌이가 중얼대며, "속에 무얼 입었는지, 나만 알면 됐지. 남이 무슨 상관이야."   누리는 피리와 색연필 한 상자, 빵과 고기와 잘 익은 배를 한 개 샀다. 겉옷이나 속옷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신경 써 본 적도 없었다.     쉘 실버스타인 시집에서    딱따구리 ㅡ쉘 실버스타인 이제까지 봤던 일 가운데 가장 슬펐던 일은 딱따구리가 만든 나무를 쪼고 있던 일이야. 딱따구리는 힘 없이 내뱉었어. "아,모든 것이 옛날 같지가 않아". ***   도둑아 게 섰거라 /  쉘 실버스타인   순경 아저씨, 순경 아저씨, 제발 도와주세요. 누가 내 무릎을 훔쳐 갔어요. 쫓아갈래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40    <오순택 등단 50주년 >기념 동시 . 동시조 100편 [한국] 댓글:  조회:2230  추천:0  2017-06-12
​ *동시(50편)*     나비   나비는 예쁜 그림책.   접었다 펼치는   두 장 뿐인 그림책.     배추흰나비   너도 아기였를 땐   초록 배춧잎에 송송 구멍을 낸 못말릴 애벌레 였단다.     모시나비   민들레가 제일 좋아하는 머리핀.     나비의 무게   나비의 무게는 몇 그램이나 될까?   꽃잎 한 장에 향기를 더한 무게일까?   자주제비꽃에 앉은 작은주홍부전나비는 자주제비꽃 향기만큼 무거울까?   개망초꽃잎에 앉은 수풀꼬마팔랑나비는 개망초꽃 노랑 꽃잎만큼 무거을까?   꽃만 알고 있는 나비의 무게.     나비의 책 읽기   애기똥풀 꽃잎 한 장 한 장은 노란 책장.   모시나비가 앉아서 한 장 한 장 책장 넘기며 읽고 있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꽃밭에서 뭐 하니?   뽀뽀하지.   뽀뽀만 하니?   밤이면 꽃잎 덥고 잠자지.       오목눈이   이른 아침 우리 집 우편함 속에서 오목눈이가 빠끔 내다보고 있다.   어젯밤 집을 잘못 찾아 우편함 속에서 잤나보다.   우체부도 한번쯤 저렇게 이쁜 편지 배달해 주었으면 좋겠다.     노랑턱멧새   -나도 꽃이야.   불그레한 매화 몽우리 맺힌 가지에 눈빛 고운 노랑턱멧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아이야! 발소리 가만히 걸어라 꽃 날아갈라.     뻐꾸기 소리   뻐꾸기 소리에선 산국화의 보랏빛 향내가 난다.   뻐꾸기 소리에선 보리 익는 누르스름한 냄새가 난다.   뻐꾸기 소리는 시골 외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 같다.     보리똥나무가 직박구리에게   보리똥나무의 열매가 익을 무렵   직박구리가 와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풀빛 고운 노래 공짜로 듣는 것 미안해 보리똥나무는 직박구리 입 속에 빨간 열매 하나 넣어 주었다.     대추 한 개   갈색 조그만 대추 한 개.   벌레가 먼저 맛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달짝지근한 대추 한 개를 벌레와 나눠 먹었다.     따뜻한 밥   포클레인은 커다란 숟가락이다.   흙밥 푹 퍼서 트럭에게 먹여 준다.   고봉밥 먹은 트럭 부릉부르릉 트림하며 간다.   달   아이가 운동장에서 공을 뻥 찼다.   하늘에 공만한 구멍이 뻥 뚫렸다.     우산병원   우리 아빠가 원장인 한 평 우산병원.   펜치 하나로 날씨를 접었다 폈다 하신다.   아빠가 고친 우산은 빗방울의 신나는 미끄럼틀이고   아빠가 고친 양산은 고운 햇볕 받아 먹고 핀 접시꽃이다.     수평선   젖은 구름도 걸리고 때로는 물 먹은 미역도 걸려 있다.     톡, 튕기면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질 것 같은   팽팽한 빨랫줄.     꽃을 보고 있으면   꽃을 보고 있으면 나도 꽃이 됩니다.   꽃이 되면 몸에서 향내가 납니다.     엄마 냄새   아침 햇귀 같은 아가 옷 빨랫줄에 너는 엄마.   바람도 가만 와서 아가 옷 속 들락거리고   부리 예쁜 새도 빨랫줄에 앉아 엄마 냄새 맡고 있다.     함께 먹는 식사   상추 잎에 구멍이 나 있었다.   벌레가 먼저 먹었던 잇자국이다.   벌레가 먹고 남긴 상추 잎 나도 맛있게 먹었다.     마당을 쓸며   마당을 쓴다. 아침에   어둠은 잘게잘게 부서지고 햇귀는 비질에도 쓸려나가지 않는다.   눈 고운 곤줄박이 온음표로 물고 온 아침 햇살 푸르스름하다.       하늘 냄새   아침 일찍 들녘에 나갔다.   별이 내려와 놀다갔는지 풀잎에서 하늘 냄새가 난다.     봄비   자박자박 아기가 걸어옵니다.   하얀 종아리 드러내고 종일 마당에서 자박자박 걸음마를 배웁니다.     목련   입 안에 함빡 봄을 머금고 와서   푸우~ 푸우~ 뱉고 있다.   봄이 화르르 쏟아진다.     파꽃   머리에 행성 하나이고 있다.   그 행성에서 비릿한 향내 물큰 난다.     두부   처음엔 동그란 콩이었어요.   반듯한 네모 보드라운 살빛으로 다시 태어났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장 보드라운 것을 가장 날카로운 칼로 벱니다.     선풍기   새장에 갇혀 파닥이는 저 날개 좀 봐.   날개만 남겨두고 새야! 어디 갔니?     장미   6월이 담장을 넘다가 가시에 찔렸대요.   담장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대요.       여우비   어린 하느님이 대낮에 쉬를 하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나 봐.     *여우비: 볕이 나 있는데 잠깐 오다 그친 비.   너는 누굴 닮을래?   물고기는 몸속에 가시를 숨기고 산단다. 고슴도치는 몸 밖에 가시를 내놓고 산단다.   너는 누굴 닮을래?     고드름   나는 눈이 아니야.   나는 물도 아니야.   그럼 넌 누구니?   나는 해님이 만든 수정이야.     겨울나무   하느님이 X-레이로 나무의 가슴을 찍었다.   나무의 가슴 뼈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겨울나무 참 건강하다.       31. 놀랜 바다   건드리지 마라 바람아.   푸른 몸 생채기 나면 물고기들도 아파한다.   파도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건   상처 난 지구 소금기 묻은 혀로 핥아주는 거란다.     비 갠 오후   꽃밭에 지렁이 한 마리 죽어 있다.   까만 옷 입은 개미들이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간다.   꽃무늬 옷 입혀 하늘나라로 보내주려나 봐.       마음   세모난 꽃씨 봤니?   동글동글해야 꽃씨지.   네모난 꽃잎 봤니?   동그스름해야 꽃잎이지.   그래, 모나지 않은 마음이라야 향그럽지.     걸레   누가 너를 함부로 대하랴 엄마가 자주 찾는 이름 아니더냐.   보드라운 비의 혓바닥도 환한 바람의 빗자루도 너처럼 세상 구석구석 닦아 주진 못한다.   겉보다 마음이 깨끗한 너는 해진 헝겊의 성자다.     해질 무렵   해질 무렵 호숫가에서 발을 씻고 있는 황새 한 마리.   -엄마가 걱정하신다 얼른 집에 가거라.   갈대가 사르락사르락 말을 건다.       아기의 첫 울음   아기의 첫 울음은 알림이에요.   하느님에겐 인구 한 명 더 늘어났다고   땅에겐 지구가 더 무거워졌다고   알리는 것이에요.     아름다움이 있는 곳   내려오려고만 하지마라. 폭포야. 하늘이 아름답지 않니.   올라가려고만 하지마라. 분수야. 꽃이 아름답지 않니.     우리 집   오늘 아침 우리 집 뜰엔 세상에서 제일 맑은 아기 웃음 같은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내 동생이 태어날 때처럼 목련꽃 핀 우리 집이 동네에서 제일 환합니다.     제비꽃의 봄   쪼그만 입으로 봄볕 오물오물 먹고 있는 자주색 제비꽃.   모시나비 한 마리 사뿐사뿐 날아와 제비꽃 자주색 입술에 뽀뽀하고 있다.     미안해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다가 개미를 밟았어.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어.   그런데 잠을 자려는데 개미의 모습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어.   ‘개미야, 미안해’ 맘속으로 말했어.       엄마 스타킹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지난 여름 풀밭에서 본 뱀이 허물을 벗어 놓고 갔나 봐요.     코스모스꽃   가녀린 꽃대위에 분홍 접시 하나.   접시엔 향기 몇 스푼   벌 나비 불러 모아 나눠준다.     벌레들의 도서관   노래책이 빼곡한 벌레들의 도서관.   싸르락싸르락 바람이 책장 넘겨주면   별이 눈 뜨는 초저녁부터 벌레들은 낭창낭창 글을 읽는다.   별은 밤늦도록 자지 않고 벌레들의 글 읽는 소리 듣고 있다.     자반고등어   싸락눈 덮고 자고 있다.   보름달   밤하늘에 동그란 창하나 있다.   그 창문 가만히 열면   발 시려 동동거리는 펭귄도 볼 수 있고   그 창문 열고 나가면   아프리카 눈이 큰 아이도 만날 수 있을까?     소나기   소나기는 하느님의 회초리 인가 봐.   풀잎은 소나기 맞고 푸렁물이 들고   꽃잎은 소나기 맞고 얼굴이 빨게 진다.     소금   나는 바닷물이었어요.   네모진 널찍한 마당에 갇혀있었어요.   햇볕도 듬뿍 받아먹고 바람도 함빡 받아먹었지요.   고운 햇볕 향그런 바람 참 맛 있었어요.   등이 가려웠어요 포슬포슬 몸이 말라 갔어요.   사르락사르락 온몸에 하얀 꽃이 피고요.   하얀 이 드러내고 웃는 메밀꽃 같았어요 짭조름한 메밀꽃 같았어요.     4월   봄은 민들레 노란 꽃신을 신었어요.   부리에 봄을 물고 노랑턱멧새도 와 있었어요.   나비는 젖은 날개를 말리느라 햇볕을 쬐고 있어요.   제비는 꽃잎 같은 새끼 주둥이에 벌레 넣어주기에 바쁘답니다.     나무의 육아 법   도토리나무는 쬐고만 방에 아기 혼자 잠재우고   밤나무는 밖에 가시 울타리 쳐놓고 삼형제를 한 방에서 키운다.   포도나무는 여러 형제 뺨 부비며 자라게 하고   모과나무는 못생겨도 좋다며 향기로 키운다.     항아리에 빠진 달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가면   달도 아이들을 따라가요.   아이가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면   달은 심심해서 마당을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그만 장독대 물 항아리에 풍덩 빠졌대요.   오순택 등단 50주년​ *동시조(50편)*   바늘 귀   가진 건 아주 작은 귀 하나 뿐이어도   실을 꿰어 해진 것 다 깁는다. 바늘 너는   너처럼 깨끗한 귀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하늘만큼만   ㅉ ㅉ ㅉ 새소리가 아침을 맑게 연다.   순한 햇살 눈을 뜨고 나팔꽃도 입을 연다.   아가야, 하늘만큼만 꼭 고만큼만 자라라.     꽃 발걸음 소리   햇볕도 곱게 익은 가을 길 저만치서   자박자박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 들린다.   아이야, 내일도 그렇게 분홍으로 걸어라.     꽃씨 속이 궁금해   곱게 접힌 연둣빛 싹 포근히 감싸 안고   귀는 반쯤 열어 놓고 빗소리도 듣는단다.   나비는 꽃씨 속에서 겨울잠을 잔단다.     가을 익다   백일홍 꽃잎 위에 고추잠자리 앉혀 놓고   가을도 덩달아서 빨갛게 익고 있   풀무치 초록 날개도 불그스레 물든다.     그늘 옷 깔고 앉은   산에서 저벅저벅 내려온 나무 한 그루.   밭 언덕에 서늘한 그늘 벗어놓고 서 있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 그늘 옷 깔고 앉아 있다.     탱자나무에 갇힌 집   오촉짜리 전구만한 노오란 탱자 열매.   누가 몰래 따 갈까 봐 가시울타리 쳐 놓았다.   울안엔 비릿한 향내 함뿍 젖은 푸른 달빛.     꽃씨 닮은 아이들   이슬 먹고 꽃 피우는 나팔꽃도 닮고 싶고   부리에 음표달린 종달새도 닮고 싶은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한 꽃씨 닮은 아이들.     아이들이 가꾼 지구   사과 한 개 떨어져도 땅이 얼른 받아주고   배춧잎도 벌레들의 맛있는 밥이 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과꽃처럼 피는 곳.     아파트에 사는 아이   뜰이 없다며 햇볕도 돌아가고 골목을 쏘다니던 바람도 길을 잃고 아이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외롭다.     그 아이   속눈썹 긴 여자 아이. 꼭 나리꽃 닮은 아이. 맑은 햇살 창 너머로 들여다 본 5학년 교실. 책상에 금 그어 놓고 넘어오면 안 된다던.     항아리   할머니는 간장 된장 담으면 좋겠다하시고   엄마는 꽃병으로 했으면 좋겠다하신다.   배 불룩 그 항아리에 나는 꿈을 담고 싶다.     누에   문도 없는 집을 짓고 스스로 들어앉아   여러 날 꼼짝 않고 무슨 생각 했는지.   동그란 문 하나 내고 나비되어 나온다.     호미   날마다 우리 엄마 텃밭에 글을 쓴다.   틀린 글자 지우듯이 잡풀도 뽑아낸다.   호미는 엄마의 연필 텃밭은 공책이다.     몽당연필   비밀 일기 쓸 때에도 내가 대신 써 주었지   비밀 편지 쓸 때에도 나에게 부탁했지   내 키가 작아졌다고 내버리면 안 되지     반가사유상   턱을 괴고 발은 포갠 채 무슨 생각 하시는지.   천년을 하루 같이 그대로 계셨지요.   이제는 말씀 한 마디 들려주면 안되나요.   *반가사유상: 오른 발은 왼 발의 무릎에 얹어 놓고 대좌에 걸터앉아 오른 손을 뺨에 받쳐대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한 불상.     낮달   낮달이 둠벙 속에 풍덩 빠져 있습니다.   어미 소가 둠벙물을 후루룩 먹습니다.   낮달이 어미 소 뱃속에서 쿨렁쿨렁 거립니다.     첫눈   깨금발로 단풍나무 사잇길로 온 첫눈이   콩콩콩 발자국만 찍어 놓고 그냥 간다.   참새가 좁쌀인 줄 알고 찍어본다. 콕콕콕     종소리   때리면 때릴수록 그 울음 맑고 곱다.   아기의 첫 울음이 저렇게 맑았겠지.   온 세상 모든 소리가 종소리만 같아라.     나비의 새 신발   순한 벌레 같이 곰실대는 봄 햇살이 이제 막 입을 여는 목련꽃 속으로 들어간다.   나비는 새 신발을 신고 어디만큼 오고 있나.     모과   잘 익은 모과 새 개 그 빛깔 향기까지 소반에 올려놓고 우리 엄마 하신 말씀 사람은 겉보다 속이 야무져야 한단다.       달을 보며   초승달을 바라보면 채우고 싶어지고   보름달을 바라보면 비우고 싶어진다.   하늘에 달 하나 있어 나의 꿈도 영근다.     월식   벌레가 둥근달을 아삭아삭 먹고 있다.   위성 하나 사라졌다 아이들이 소리친다.   담장에 둥근 달이 그린 수채화도 지워졌다.     겨울 바다   얼지 않고 출렁이는 겨울 바다에 가 보아라.   부리 고운 갈매기도 고음으로 노래하고   파도는 피아노 치듯 방파제를 때린다.     섬   바다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디딤돌.   통통배도 쉬어가고 새들도 딛고 간다.   물고긴 튀어 올라와 비린내를 풀어 놓는다.     강화 갯벌   철새들이 찾아오면 갯벌도 바빠진다.   갯가재 갯지렁인 온몸엔 뻘투성이다.   붉은 발 도요새들도 깝죽깝죽 놀고 있다.       겨울 학교 -순천만   출석을 불러본다 흑고니 재두루미·····   한국의 겨울이 좋아 너희들 또 왔구나.   고맙다 너희들 있어 바닷빛이 곱구나.     봄 오는 실개천엔   멧새가 앉았다 간 실개천 버들가지.   새똥만한 잎눈들이 소로록 눈을 뜬다.   봄 오는 실개천엔 피라미도 은빛이다.     봄볕 한나절   부리 고운 새 한 마리 봄을 물고 왔나보다.   마중 나온 목련꽃이 뾰뾰뾰 입을 연다.   아이야, 어서 나와 봐. 봄볕이 참 곱구나.     꽃밭에선   벌레들도 꽃밭에선 온몸에 꽃물 들고   바람도 꽃밭에선 향긋한 물이 든다.   씨앗들 익는 소리에 꽃밭이 수런댄다.     둑방길을 걸으며   날름날름 송아지가 풀잎싹을 뜯고 있다.   고운 덧니 드러내고 풀꽃들이 웃고 있다.   실개천 맑은 물소리에 조약돌이 씻긴다.     여름의 동화   온음표 부리에 물고 물총새가 날아간다.   송사리 떼 헤엄치는 실개천 차암 맑다.   아이는 물장구 치고 순한 햇볕 따스하다.     가을빛 시골집   장독대 옆 봉숭아꽃 또로록 씨 여물고   고운 이 드러내고 석류가 익고 있다.   할머닌 대문도 없는 집에 꽃과 함께 사신다.     혼자 온 가을   가을이 깨금발로 초록 언덕 건너오면   은행잎은 시나브로 노랗게 물이 든다.   가지 끝 잎새 하나가 소리없이 내려온다.     가을산은   도토리 데구루루 다람쥐 귀가 쫑긋.   꽁지 긴 산새들도 휘파람을 불고 있다.   풋 열매 빨갛게 익듯 가을 산도 익는다.     우리 마을 -봄   털 빛깔 뽀오얀 작은 새 두어 마리.   봄마중 나왔는가 고개 갸웃갸웃.   어미 샌 부리에 햇살 물고 마을을 돌고 있다.     우리 마을 -여름   매미가 오동나무에 악기를 걸어 놓고 여름 내내 음악회를 여는 우리 마을. 장대비 지나가다가 오동잎을 두드린다.     우리 마을 -가을   잘 익은 햇살 한 줌 과일 속에 들어 있다.   그 과일 똑 따다가 한 입 가득 깨물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고운 햇살 그 향내.       우리 마을 -겨울   싸락싸락 방문앞엔 싸락눈이 쌓이는데   아이는 엎드린 채 책상 앞에 잠이 들고   엄마의 봉곳한 가슴엔 동화책이 서너 권.     자연도 저렇게   머리가 무거워진 해바라기 고개 숙이고 벼이삭도 잘 익으면 스스로 고개 숙인다. 자연도 익으면 저렇게 머리를 숙일 줄 안다.     소나기   누가 잘 익은 콩을 저헣게 쏟고 있나.   또로록 마당 가득 실로폰 소리 난다.   소나기 그치고 나면 하늘빛이 더 맑다.     벌레 잠   벌레들이 낙엽 이불 끌어안고 자고 있다.   햇볕 묻은 따스한 잎 솜털보다 푹신하다.   한자락 바람이 와서 들춰보는 벌레 잠.     버려진 꽃병   이 빠진 꽃병 하나 빈터에 버려져 있다.   고양이도 들여다보고 바람도 들락날락   한때는 탁자에 앉아 뽐내기도 했었지.     어른들은 모르는 것   산을 뚫고 땅을 파서 새 길을 낼 때마다   지구는 아파하고 짐승들도 떠나간다.   지구가 병이 드는 걸 어른들은 왜 모를까.     자연의 이치   꽃에게 향기가 없다면 나비가 찾아오겠니?   과일이 네모라면 대구루루 굴러 가겠니?   심는 건 우리들 차지 가꾸는 건 자연의 일.       복사꽃 피는 마을   봄 햇살 꽃물인양 마당귀를 적시는데   건넛마을 복사꽃 향기 물고 왔는가.   박새는 마을을 돌며 풀피리를 불고 있다.     산마을의 가을   산새는 긴 부리로 메아리를 물어 나르고   갈잎 속 벌레들은 고운 꿈 꾸고 있다.   도토리 열매가 익는지 나뭇가지 휘어진다.     바닷가 고깃배   닻줄에 매어 있는 고깃배 두어 척이   바다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보챈다.   파도는 혀를 날름거리며 놀려대고 있었다.       햇빛 고운 한낮에   애벌레는 배춧잎에 예쁜 모양 창을 내고   장다리 꽃잎위엔 졸고 있는 배추흰나비.   맑은 눈 노랑턱멧새 털빛이 더 고웁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   기러기는 날아갈 땐 줄을 지어 날아간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들도 지킬 줄 안다. 올바른 교통법규.   -등단 50주년 기념 동시. 동시조 100편- 꽃 발걸음 소리(2016년 1월 13일: 아침마중 펴냄)  
39    <바다에 관한 동시 모음> 오선자의 '바다를 보며' 외 댓글:  조회:1936  추천:0  2017-06-05
오선자의 '바다를 보며' 외 + 바다를 보며 네 마음 나처럼 고요해졌니? 네 눈빛 나처럼 맑아졌니? 바다는 그렇게 물으며 날마다 창문 열고 들어온다. (오선자·아동문학가) + 파도 동글동글 예쁜 돌 하나 주워 살짝, 주머니에 넣었어요. 멀리서 그것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솨- 허연 거품 물고 와서는 내놓으라고 야단입니다. (우남희·아동문학가) + 섬은 파란 들판에 홀로 핀 한 송이 꽃 꽃 꽃 파도 소리 그리운 작은 귀 귀 귀 (선용·아동문학가, 1942-) + 하나 바다에 다다르면 한강도 바다로 낙동강도 바다로 섬진강도 바다로 압록강도 바다로 두만강도 바다로 이름을 바다로 바꾼다. 몸짓도 목소리도 바꾼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걸어다니는 바다 꽃게가 한 덩이 바다를 물고 왔습니다. 집게발가락에 꼭 물려 있는 조각난 푸른 파도 생선 가게는 이른 아침 꽃게들이 물고 온 바다로 출렁입니다. 장바구니마다 갈매기 소리가 넘쳐납니다. 쏴아쏴아 흑산도 앞 바다가 부서집니다. 꽃게는 눈이 달린 파도입니다. 걸어다니는 바다입니다. (이상현·아동문학가) + 바다 교통사고 달리는 배로 뛰어오른 숭어는 숭어잡이 가던 어부들도 잡지 않고 살려 준대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어허, 교통사고 나셨군 다음부터 잘 보고 뛰세요 텀벙! (함민복·시인, 1962-) + 바닷물은 우리 엄마와 같습니다 달려왔다 달려갔다 늘 바쁩니다. 전복 해삼 물고기 돌보느라 할 일이 많아요. 파래에게도 일렁, 바위에도 철썩, 모래사장에도 쏴아. 잠시라도 쉬면 큰일납니다. (김마리아·아동문학가) + 파도는                        파도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 세차게 달려와 바위벽 결승선을 튕겨 나간다. 숨도 차지 않은가 보다. 잠시 바위에 주저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되돌아간다. 파도는 마라톤  선수. 먼길 달려서 지쳤을까? 모래밭 결승선을 밟고 쓰러진다. 숨이 몹시도 가쁜가 보다. 한참 모래밭에 뒹굴다 가까스로 일어난다. (이상문·아동문학가) + 바다를 담은 일기장 지난 여름 해변을 다녀온 일기장에 동해의 퍼런 바다가 누워 있다. 깨알같은 글씨 바다를 읽으면 골골이 담겨진 바다의 비린내 한 잎 갈피를 넘기면 확, 치미는 파도 소리 갈매빛 바위 위에서 울어대는 물새 소리 바다가 들어와 누운 그 자리 눈을 감아도 팽팽히 일어서는 파도 소리 우루루― 장마다 미친 듯 신이 들려 파랗게 넘치는 바다의 살점들 이제는 바다를 멀리 두고서도 바다를 껴안은 듯 일기장 구석구석 줄줄이 읽으면 바닷물이 어느새 몸에 와 찰싹인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바닷가 마을 누워 있는 어미 개의 젖꼭지에 매달려 젖을 빠는 새끼 강아지들처럼 작은 배들이 나란히 바닷가에 매달려 있다 어떤 배는 젖을 다 먹은 강아지처럼 꾸물꾸물 몸을 돌려 다시 바다로 나가고 젖을 먹는 새끼들 사이로 다른 새끼가 끼여들 듯 어떤 배는 배와 배 사이로 파고 들어와 몸이 편하게 누울 수 있을 때까지 꿈틀거린다 (오규원·시인, 1941-2007) + 아버지의 바다 아버지가 바다에 일 나간 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은 온통 바닷물결로 출렁거리고 뱃머리에 부딪치는 물소리, 물소리는 내 베갯머리에 와 찰싹인다. 식구들의 무게를 지고 바닷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어깨에는 찬바람, 파도 소리 쏴! 쏴! 물이랑에서 힘겹게 건져 올리는 그물에는 퍼덕, 퍼덕거리는 은빛 무게들. 아버지가 일 나간 밤에는 내 방 안은 물결이 일렁이는 아버지의 바다가 된다. (권오훈·아동문학가) + 바다를 담은 일기장 지난 여름 해변을 다녀온 일기장에 동해의 퍼런 바다가 누워 있다. 깨알 같은 글씨 바다를 읽으면 골골이 담겨진 바다의 비린내 한 잎 갈피를 넘기면 확, 치미는 파도 소리 갈매빛 바위 위에서 울어대는 물새 소리 바다가 들어와 누운 그 자리 눈을 감아도 팽팽히 일어서는 파도 소리 우루루― 장마다 미친 듯 신이 들려 파랗게 넘치는 바다의 살점들 이제는 바다를 멀리 두고서도 바다를 껴안은 듯 일기장 구석구석 줄줄이 읽으면 바닷물이 어느새 몸에 와 찰싹인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강물은 바다로 나가기 싫어서 일부러 구불구불 산을 돌아서 들을 돌아서 천천히 천천히 흐른다. 댐을 만나면 다이빙도 해보고 나룻배를 만나면 찰싹찰싹 나룻배 꽁무니도 밀어 주고 강물은 학교 가기 싫은 내 동생하고 똑같다. (전영관·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38    2014년 한국 우수동시 30편 댓글:  조회:2271  추천:0  2017-06-02
◎2014년 대한민국 우수동시 30편◎   노루   김종상   노루가 벼이삭을 뜯어 먹고 갔어요   뱃속에서 싹이 트면 몸뚱이가 벼싹으로 파랗게 덮이겠네요   파란 숲에 파란 노루 사냥꾼도 못 찾겠어요. -김종상 동시집 『강아지 호랑이』에서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   추필숙   째 애 액!   참새들 번지점프 한다.   날개는 작아도 겁쟁이는 아냐, 외치면서. -추필숙 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에서   철이네 우편함   김영두   철이네 우편함은 강 이편에 있습니다. 집배원 아저씨가 강 건너 오시는 게 미안해 이 편 강가 숲속 소나무에 우편함을 달아 놓았습니다 며칠에 한번씩 배를 타고 건어 와 편지를 찾아 가는 철이 아빠   그런데 우편함 속에 할미새 부부가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알록달록 귀여운 새알을 낳았답니다   철이 아빠는 옆 소나무에 바구니를 하나 달아 놓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달았습니다 “집배원 아저씨, 편지는 여기에 넣어주셔요.” “우편함에는 산새가 새끼를 치고 있어요.”   호기심에 살금살금 다가가 우편함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솜털 보송한 새 새끼들이 어미가 온 줄 알고 노란 입을 짝짝 벌립니다 나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얼른 뒷걸음쳐 도망쳤습니다   새끼들이 다 자라 날개가 돋치면 철이 아빠의 고마움을 부리에 물고 저 파란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습니다. -김영두 동시집『철이네 우편함』에서   받아쓰기   이재순   하얀 공책 네모 칸 속에 삐뚤삐뚤 글자가 들어앉는다.   선생님이 불러 주는 대로   새가 들어앉는다. 나무가 들어앉는다.    모르는 글자가 나오자 끙, 끙, 아이가 들어가 앉는다. -이재순 동시집『큰일 날 뻔했다』에서   울타리 없는 집   서상만   언덕 위 너와집*은 하늘이 지붕이고 산이 울타리, 들은 마당이다.   산새 들새 노래에 할배 잔기침 소리는 흥겨운 장단이다.   구름도 스르르르 그냥 지나고 깊은 밤, 고라니도, 너구리도 제 맘대로 드나든다.   자물쇠 없는 방문, 삐걱-열면 푸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녁노을이 바알갛게 문풍지에 번진다. -서상만 동시집 『꼬마 파도의 외출』에서   이팝나무   김갑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이팝나무 꽃 이삭도 참을 수 없나 봐요.   -팝! -팝! -팝!   가지마다 팝콘을 튀겨요. -김갑제 동시집 『날고 싶은 꽃』에서   졸음의 무게   박방희   뭐라 뭐라 해 쌓아도 세상에 무거운 건   눈 위로 쏟아지는 졸음의 무게지요.   스르르 눈꺼풀을 닫치며   목까지 툭! 툭! -박방희 동시집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에서   죽순   이오자    쉿∼ 도깨비 소탕작전 준비완료   뽀족뽀족한 뿔 때문에   대나무 숲에서 모두 발각 -이오자 동시집 『도깨비 소탕작전 준비완료』에서   사람 우산   박두순   집에 오는 길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졌다   형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때 형이 우산이었다.   들에서 일하는데 소낙비가 두두두 쏟아졌다   할머니가 나를 얼른 감싸 안았다 그때 할머니가 우산이었다.   따뜻한 사람 우산이었다. -박두순 동시집『사람 우산』에서   ㄱ(기역)   서향숙   친구 집 담장에 팔 걸치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친구를 훔쳐보고 있다   담에 붙은 몸 낑낑대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쪼올깃 쪼올깃 찰떡같은 몸   쿵닥쿵 쿵다쿵 좋아하는 맘. -서향숙의 동시집 『자음 모음 놀이』에서   뚝심   김종헌   꽃샘바람엔 입 꼭 다물고   황사바람엔 눈 꼭 감고   다부진 뚝심 하나로   잎으로 자란 연둣빛 새순   땡볕엔 온몸을 뒤척인다   초록바람 일렁이며.   -김종헌 동시조집 『뚝심』에서   다리   우남희   쩌-억 갈라진 논바닥 단비가 아물게 하고   쭈-욱 터진 솔기 바늘이 기워 주고   금이 간 너와 나 사인 웃음이면 되겠지? -우남희 동시집『너라면 가만있겠니?』에서   생각하는 감자1   박승우   감자가 무슨 생각이 있냐고?   그럼 생각도 없이 때가 되면 싹 틔우고 때가 되면 꽃 피우나   생각도 없이 씨감자는 썩으면서 아기 감자 키우나   생각도 없이 다시 싹 틔우라고 씨눈을 만들어 놓나   감자도 생각이 많답니다 -박승우 동시집 『생각하는 감자』에서   콩 총알   김현숙   꼬투리 속에 장전된 콩알   가을 햇살이 방아쇠를 당긴다   타당! 타당! 탕! -김현숙 동시집 『특별한 숙제』에서   햇살을 인터뷰하다   추필숙   수국이 마이크처럼 피면 누구라도 붙잡고 인터뷰하고 싶다   아아아, 지금부터 햇살과 인터뷰를 해 보겠습니다 좋아하는 게 뭐죠?   음, 밖을 아주 좋아해요 낮고 높고 좁고 넓고 가깝고 멀고 가리지 않고 쏘다니는 걸 좋아해요   아주 분주하시군요, 해야 하는데 아, 나는 실컷 쏘다녀 본 적이 있었느냐? 집 안, 차 안, 교실 안 그늘만 기웃거리기도 바쁜 나   그래도 오늘처럼 수국이 핀 날 꽃 뭉치만 한 햇살과 인터뷰하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 집 햇살은 나! -추필숙 청소년 시집 『햇살을 인터뷰하다』에서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오순택   바퀴에 감긴 실을 동그란 실뭉치 풀 듯 풀어보고 싶다.   추운 겨울 누나 목에 두른 목도리 같은 고속도로도 감겨 있고 고운 햇살 머금고 발그레 웃고 있는 코스모스 길도 감겨 있겠지.   바퀴를 뒤로 굴리면 동글동글한 실뭉치가 둘둘둘둘 풀리듯 고속도로 옆 그림처럼 펼쳐진 산과 들도 손잡고 따라 나오고 코스모스 발그레한 웃음도 향내 머금고 따라 나오겠지.   동그란 실뭉치 풀듯 바퀴에 감긴 길을 둘둘둘둘 풀어보고 싶다. -오순택 동시집『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에서   고등어야, 미안해   신복순   식탁에 오른 등 푸른 고등어   불쌍하다.   고등어는 바다에서 나오고 싶었을까?   친구들과 놀다가 붙들린 건 아닐까?   왠지 미안해, 고등어에게 사과했다. -신복순 동시집 『고등어야, 미안해』에서   수박냄새   유은경   은어 몸에선 향긋한 수박냄새가 난다.   바다에서 겨울 난 새끼 은어 봄에 떼 지어 강으로 갈 때 편식해서 그렇단다. 물풀만 먹어서 그렇단다.   이것저것 잘 먹던 내가 채소만 먹는다면 내게서도 상큼한 수박냄새 날까? -유은경 동시집 『물고기 병정』』에서   꽃집에 가면   윤이현   장미, 백합, 프리지어 꽃마다 예쁜 이름   꽃들은 다들 웃고 있다 나도 꽃처럼 웃고 싶다   꽃들은 상큼한 향이 난다 나도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향 상냥스러움의 향 그런 향이 났으면 좋겠다   꽃집에 가면 나도 꽃처럼 되고 싶다. -윤이현 동시집『꽃집에 가면』에서   바람의 맛   장승련   만나는 것들마다 가장 먼저 맛보는 바람.   과일을 만나 먼저 맛보더니 “맛있다, 맛있다!” 여기저기 과일 향기 내뿜고   꽃을 만나 꽃잎 하나 따 먹고는 “향긋해, 향긋해!” 꽃 향기 솔솔 피워 내지.   세상 모든 향기와 맛을 품고 품었다가 온 세상 푸짐하게 뿌려 놓은 바람의 맛. -장승련 동시집『바람의 맛』에서   나는 왜 이럴까?   박예자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영민아 밥 먹어라, 그만 읽고.” 엄마가 부르지만 난 동화책 한 줄, 꼭 한 줄 더 읽다 혼나지.   고기가 맛있어 자꾸 먹는데 “영민아, 채소도 먹어라.” 난 들은 척 않고 고기 한 젓가락, 꼭 한 젓가락 더 집다 혼나지.   난 늘 왜 이럴까? 엄마 말씀 그때, 멈췄으면 좋았을 걸. -박예자 동시집『나는 왜 이럴까?』에서   옹달샘   조명제   꼬부랑 산기슭 홀로 솟는 옹달샘   방울방울 퐁 퐁 퐁 음표 찍어내고 있다.   마침표 없는 되돌림 노래 부르고 있다.   휘영청 보름달 산노루 한 마리   온쉼표 하나 그리고 갔다. -조명제 동시집『해맑은 동심세계에서』에서   궁둥잇바람 -우리나라 지도의 경고   김미영   가시철사 허리띠   확 풀리는 날   내 궁둥잇바람 조심해라.   일본 너희 나라 지도   우주로 날아갈라. -김미영 동시집 『궁둥잇바람』에서   가을 하늘   윤희순   메뚜기가 뛰고 잠자리가 날고 바람도 높이 분다고 하늘도 뛰었다   높아진 가을 하늘 -2014년 『대구아동문학』 56집에서   이슬비   남석우   소리 없이 내려온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봐   발자국이 연못에   동그랗게 동그랗게 찍히는 줄도 모르고 -2014년 『대구아동문학』 56집에서   빗방울의 난타공연   최신영   -푱푱! 찰방찰방! -또드락! 또드락!   물웅덩이 두드리고 마른 나뭇잎 두드리고   내 우산 두드리는 빗방울들의 신나는 난타.   혼자 집으로 가는 길 심심하지 않아요. -최신영 동시집『빗방울의 난타공연』에서   울고 있는 가마솥   김동억   할머니 돌아가시고 비어 있는 시골집   부뚜막에 걸터앉아 집을 보던 가마솥   얼마나 외로웠으면 피눈물을 흘렀을까   솥뚜껑 열어 보니 붉게 번진 눈물자국 -2014년 『열린아동문학』』63집에서   밥 속의 까만 콩   이옥근   살짝 빼낼까? 그냥 먹을까?   까만 머릿결 예쁜 살결 된다며 엄마는 눈 딱 감고 먹으라지만,   비릿하게 씹히는 게 싫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린다   밥그릇 한쪽에 오종종 모아놓은 까만 콩.   띠룩띠룩 째려보는 까만 눈알들. -별밭동인 제28집 『난 네가 좋다』에서   민들레꽃   김관식   차도와 인도 사이 빨간 소화전 그 옆   보도불럭 길섶 노란 민들레꽃 활짝 피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발로 밟고 지나갔다.   노노노 노랑 벨소리 울렸다.   랑랑랑 다시 일어나 활짝 웃었다. -별밭동인 제28집 『난 네가 좋다』에서   저녁 식사 시간   고영미   꽁치구이 냄새가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푸른 바다 헤엄치던 몸짓으로 날렵하게   이 방 저 방 들어가 냄새를 풀어 놓고   문 탁 닫고 들어간 사춘기 언니도 물러낸다   저녁식사 시간 우리 가족 다 꾀어낸 꽁치 한 접시 -『참여문학』 60호 2014년 겨울호에서  
37    김종상의 곤충과 동물을 소재로 쓴 동시조 묶음 외 댓글:  조회:2691  추천:0  2017-05-31
김종상의 곤충과 동물을 소재로 쓴 동시조 묶음 [한국]   개미   잔디밭 땅속에도 나라가 있습니다 모두가 까만 옷에 나라위해 일만 해도 절대로 데모가 없는 평화로운 개미국   거미   뒤란 쪽 추녀 끝에 그물을 걸어놓고 하늘을 헤엄치는 파리, 나비, 잠자리를 한 번에 다 잡겠다고 기다리는 거미님.   귀뚜라미   깊어가는 가을밤에 휘영청 달이 밝아 잠이 오지 않는데다 친구도 하나 없어 밤새워 노래부르지, 귀뚤귀뚤 귀뚜리.   기러기   기러기가 날아가요 나란히 줄맞추어 앞에서 기럭 하면 뒤에서도 기럭기럭 하늘길 멀고 멀지만 노래하며 갑니다.   나비   꽃만 찾아 다니다가 꽃을 닮은 나비들은 바람 타고 팔랑팔랑 꽃잎처럼 날아가다 꽃 지고 허전한 자리 제가 앉아 꽃이 된다   누에나방   뽕잎만을 먹으면서 배밀이로 기더니만 입으로 실을 뽑아 새하얀 고치 짓고 그 속에 몸을 숨기고 들어앉은 누에들   문도 없는 단간방에 며칠을 지내다가 스스로 집을 헐고 밖으로 나와서는 날개옷 활짝 펼치고 훨훨 날아갑니다.   달팽이   채소밭 상추 잎에 달팽이 한 마리가 동그란 자기 집을 통째로 짊어지고 어디로 이사를 하나 쉬지 않고 갑니다.   대벌레   벌레는 벌레이지 제가 무슨 나무라고 대나무 줄기에서 나무인 척 하고 있네 누구를 속이려 하나 대나무의 대벌레.   두루미   두루미 한 마리가 노을 속을 날아가네 모가지를 길게 빼고 발걸음을 서두르네 어둠이 짙어지면은 어디에서 쉴려나.   매   새매는 공중에서 한가롭게 맴돌지만 숲속의 들쥐들은 깜짝 놀라 달아나고 닭어리 병아리들도 엄마 품에 숨어요   모기   침으로 콕 찌르고 애앵 애앵! 달아나고, 창으로 콱 찌르고 왜앵 왜앵! 울고 가네 네가 왜 그 야단이냐? 찔린 것은 나인데   물자라   연못 마을 물자라네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가 저 혼자서 아기 업고 다니네요, 아기들 배고파 울면 젖은 누가 주나요.   바퀴벌레   얼굴도 새까맣고 손발도 새까매서, 징그럽고 더럽다고 미움받는 바퀴벌레, 다리에 바퀴를 달았나 빠르기도 합니다.   부엉이   벼랑위 바위틈에 살고 있는 부엉이는 낮에는 꼼작 않고 집안에 있더니만 밤되니 놀러다니네 안경잡이 부엉이.   비이버   물을 너무 좋아해서 물에 사는 비이버는 나무로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물속 집을 지어요.   사자   사자네 가족들이 하는 일을 보셨나요 엄마는 사냥가고 아빠는 잠만 자고 귀여운 아기사자는 저희끼리 놀아요.   소쩍새   솥이 작다 소쩍소쩍 소쩍새가 울고 있네 솔바람에 실려 오는 구슬픈 그 소리는 나까지 잠을 못 자고 밤을 새게 합니다.   쇠똥굴이   젖소들이 살고 있는 목장의 풀밭에서 쇠똥굴이 아기들이 소똥을 뭉칩니다 소들의 발에 밟히면 어쩌려고 저러나.   소금쟁이   물위를 땅위처럼 걸어가는 소금쟁이 우리가 학교에서 체육을 할 때처럼 친구를 등에 업고도 쏜살같이 달려요.   잠자리   메밀밭에 잠자리는 메밀색 옷을 입고 고추밭에 잠자리는 익은 고추 색깔이지 저마다 사는 곳 따라 몸 색깔이 달라요.   캥거루   어머니 캥거루가 아기를 낳았는데 업을 줄도 모르지만 안는 것도 알지 못해 배꼽에 주머니 달고 거기 넣고 다녀요.   코끼리   코가 너무 길다 해서 코끼리라 부르는가 이빨도 길고 큰데 이끼리라 하면 어때 두 귀도 방석만 하니 귀끼리도 되겠네   타조   날지도 못 하면서 날개는 왜 가졌니 덩치는 커다란게 왜 그렇게 겁이 많니 아기가 놀자고 해도 달아나는 겁쟁이   파리   두 손을 싹싹 빌며 조금만 먹자해요 두 발을 싹싹 빌며 마실 것 좀 달래요 그러다 살충제 맞고 쓰러지는 파리들   갈매기   새하얀 고운 날개 갈매기가 없고 보면 머나먼 바닷길이 얼마나 지겨울까 갈매기 네가 있어서 파도마저 정겹다   뱃길을 앞서가는 갈매기가 아니라면 아득한 수평선이 얼마나 막막할까 갈매기 네가 있어서 바닷길이 즐겁다   개미와 새우   하늘은 가이없이 멀고도 높은데도 개미는 그 하늘이 낮다고 생각하나 땅속을 파고들어가 몸을 낮춰 삽니다.   바다는 끝도 없이 넓고도 깊다는데 새우는 그 바다가 좁다고 생각하나 언제나 작은 허리를 꼬부리고 삽니다.   거북이   세상구경 하고 싶어 땅으로 나왔지만 등딱지가 무거워서 걷기가 힘들겠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무슨 구경 하겠나   네가 살던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가라 바다까지 가는 길은 아득히 멀고멀다 해지고 날이 저물면 어쩌려고 그러나   까치   마당 앞 팽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까치 아침마다 나만 보면 제 이름을 불러줘요 자기가 까치란 것을 알려주려 하나 봐   흰 저고리 까만 조끼 단정한 차림으로 꼬랑지를 흔들면서 제 이름을 말해줘요 우리가 자기 이름을 모르는 줄 아나 봐   까치네 오두막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네 오두막집 바람이 오고가며 자꾸만 흔드니까 가만히 앉아있어도 흔들흔들 좋겠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네 초가삼간 하늘이 가까워서 아기별이 놀러오니 등불을 켜지 않아도 초롱초롱 밝겠다.   까치집   나뭇가지 물어다가 벽을 쌓고 지붕 덮고 엄마까치 아빠까치 부지런히 집을 짓네 두 부부 새살림 차릴 조그마한 오두막   아빠는 방 한쪽에 침대를 들여놓고 엄마는 깃털 모아 이부자리 마련하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레 꾸미네.   따개비   하늘과 마주닿은 수평선을 멀리 두고 파도가 비질하여 씻어주는 갯바위에 따개비 오두막들이 올망졸망 있어요 들고나는 뱃고동에 잠이 들고 잠을 깨는 단간방 작은 집은 울도 담도 없지만은 끝없이 넓은 바다를 뜰로 하고 살아요   매미   조용한 시골에는 매미들도 조용하지 소리가 작더라도 모두가 잘 들으니 정답게 속삭이듯이 미음미음 울어요   시끄러운 도시에는 매미들도 시끄럽지 큰 소리가 아니면은 아무도 못 들으니 목청껏 악을 쓰면서 매암매암 울어요.   메뚜기   벼논에 메뚜기는 벼를 닮은 벼메뚜기 노릇노릇 물이 들며 벼이삭이 익어가면 파랗던 벼메뚜기도 노란몸이 되지요   콩밭에 메뚜기는 콩을 닮은 콩메뚜기 콩꼬투리 알이 들어 통통하게 굵어가면 조그만 콩메뚜기도 토실토실 살쪄요.   반딧불이   손톱만한 초승달도 서산으로 넘어가고 초가집 추녀 끝에 참새도 잠든 시간 깜박이 등불 하나가 동구 밖을 나서네   집나간 아들 생각 밤이면 더 간절해 혹시나 하는 마음 반딧불로 살아나서 밤길을 밝히고 있네. 반딧불이 초롱불.   버들붕어   하느님 궁궐 안에 한 그루 버드나무 어느 날 그 잎들이 바람에 휘날려서 우수수 땅을 향해서 떨어지게 됐대요   버들잎이 흙에 닿아 썩을 것을 걱정해서 하느님이 비로 쓸어 냇물에 넣었는데 그것이 모두 살아서 버들붕어 됐대요   소라게   소라껍질 단간 집에 주인이 바뀌었네 누구가 이사왔나. 전세냐 사글세냐 외짝문 살며시 열고 내다보는 소라게   끝없이 넓은 갯벌 아무데나 살 것이지 집이 무슨 봇짐이냐? 통째로 끌고 가게 단간집 좁은 방에서 혼자 사는 소라게 매미 / 김양수 숨죽여 살금살금  나무에 다가가서  한 손을 쭈욱 뻗어  잽싸게 덮쳤는데  손 안에 남아 있는 건  매암매암 울음뿐.  메아리 / 서 재 환  산 속에는 '야호!'라는 아이가 숨어 사나 봐.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만 올라서면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야호! 야호! 부르나 봐. '야호'는 무슨 일로 얼굴을 숨겨 두고 '야호!'라고 소리치면 목소리만 나타나서 그 목청 골 안 가득히 쩌렁쩌렁 우는 걸까. --------------------- 새싹/김 창 현 파아란 새싹들이 땅 속 뚫고 나오면 밟혀도 일어서는 푸른 꿈 간직하고 달콤한 봄비 마시며 어린이처럼 자라요. ----------------- 다람쥐/김 창 현 알밤만 한아름씩 대궐만큼 쌓아 놓고 달구랑 쓰구랑 쓰구랑 달구랑 올해도 햇밤 맛자랑 새벽까지 떠들어요. ......................... 시계는/ 김 용 희  아무리 먼 길이라도 황소를 닮은 걸음. 밤새워 째각째각 느긋한 되새김질. 아침해 띄우는 걸 좀 봐. 힘만은 무척 세지. --------------- 낮달/김용희 달인가 하고 보면 흰 구름 조각이었죠. 하얀 달은 구름 속에 살짝꿍 숨어 다녀요. 온종일 심심하다며 숨바꼭질하겠대요. ------------ 저녁노을/김용희 서산 마을이 다투어 하얀 쌀밥 짓다가 구름을 숯불덩이로 화끈 달궈 놓았어요. 하늘이 너무 뜨거워 해를 덜컥 떨어뜨렸죠 ------------------- 밤 구름/김용희 달 가는 길을 구름이 징검다리 놓았어요. 폴짝폴짝 건너뛰며 재미 삼아 밤길 가라고 구름이 아파할까 봐 달님 살짝 밟고 가요. ------------------ 김치/ 김 몽 선  숨죽은 배추 속살 빨간 고추 매콤한 맛 엄마 손 닿고 나면 침 고이는 저녁 밥상 김치가 휘돌아간 자리 빈 그릇만 얌전하다. -------------------- 운동회/ 김 몽 선  들뜬 마음 푸른 하늘 만국기로 걸어놓고 힘찬 응원 등에 업고 바람 갈라 내달으면 결승선 아득한 흰 줄 내 가슴에 와 안긴다. -------------------- 방울토마토/ 진 복 희  도톰한 방울토마토 한 입에 넣고 굴리다가 아작 깨물면 싱그럽게 터지는 폭죽 단숨에 목젖을 적시는 새콤한 방울 폭죽 ----------------- 채송화/진 복 희  오종종 모여 앉아 무슨 생각을 엮는 걸까. 그 누가 숨어 설레는 해맑은 입김일까. 샛노랑 노랑 하양 빨강 온통 보조개밭이네. ...................................... 할머니-홍시 / 진 복 희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드시는 것 잇몸으로 호물호물 잘도 잘도 잡수신다 먼 발치 바라만 보아도 군침 도는 가을 한때. ----------------- 고추 말리는 날/신 현 배  우리 집 앞마당이 빨간 고추로 덮였다. 눈이 따끔 코가 간질 연방 터지는 재채기 바람도 견디다 못해 주춤주춤 물러난다. 구급차 신 현 배  풍뎅이 한 마리가 방 안에 뛰어든 듯 구급차 한 대가 거리를 휘젓는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차들도 귀가 멍멍. 녹십자 마크를 한눈에 알아본 듯 사거리 신호등이 빨간불을 더디 켠다. 구급차 숨가쁜 목숨에 파란불이 켜진다. 우산 신 현 배  햇빛을 베개 삼아 잠만 자던 헌 우산이 후드득 빗소리에 반가워 눈을 뜬다. 오늘은 철이 손 잡고 학원에 가겠구나. 기지개를 활짝 켜고 거리로 나선 우산이 목말 탄 아이처럼 우쭐우쭐 길을 간다. 접었다 펼친 마음이 무지개를 그린다. 태풍 신 현 배  실바람도 태풍 되면 씨름꾼이 되나 보다 아름드리 나무쯤 딴죽 걸어 넘어뜨리고 덩치 큰 힘센 바다를 번쩍 들어올린다. ---------- 노 루 김 양 수 흰눈 위 아기노루 먼 산을 바라본다 엄마를 새겨보는 해맑은 눈동자 또르륵 이슬 같은 그리움 새봄이 뽑아낸다. 개나리 김 상 형 앞산 양지쪽의 갓 피어난 개나리가 노오란 오운 빛으로 새 봄을 즐기면서 호호호 웃는 소리가 마을까지 들리네. 엄마의 손 김 사 균 이마를 짚어주면 두통이 금세 낫고 배꼽을 쓸어주면 배앓이가 멎는 약손 엄마의 커다란 손은 우리들의 병원이다. 봄 편지 김 몽 선 지난 흰눈 덮고 꼭꼭 숨어 기다리던 모란 가지 그 끝에는 바알갛게 꽃망울이 날마다 더 큰 몸짓으로 봄을 일러주고 있다. 언 바람 온몸으로 받아 내던 개나리도 실실이 풀린 기운 엄마 같은 환한 미소 반가운 봄소식 한 줌 한 겹 벗는 이 세상. 할머니 얼굴 경 철 밤 하늘  멀리 멀리 아련한 저 별자리 무릎 위 앉아 듣던 구수한 이야기들, 어느새 나도 별 되어 외손녀를 안고 있다. 섬노을 바람빛 고 응 삼 푸른 섬 흰구름이 돌 가슴 귀를 열고 숱한 세월 일렁인 삶 못다 섬긴 사랑 노래 노을빛  붉게 타는 섬은 아롱지는 무지개다. 겨울 종소리 박 필 상 1  겨울의 종소리는  흰 눈으로 내립니다  퍼얼펄 쏟아져서  온 세상을 덮습니다  땅위의  온갖 어둠을  새하얗게 씻습니다  2  겨울의 종소리는  눈부시게 푸릅니다  햇살처럼 따스하게  온 세상을 비춥니다  가슴속  온갖 그늘도  새하얗게 지웁니다  눈썹달 2  윤 삼 현 사알짝 돋아난 막내 동생 젖니 같은  흙 틈새 뚫고 나온 봄나물 새촉 같은  가느단  새 순 한 가닥  하늘밭에 솟아났다.  꽃 꿈 이 명 길 내가 만든 꽃밭에  꽃씨 뿌렸다  언제만 새싹이   돋아날까 움틀까  날마다 지켜보면 아직도  추워설까 소식없네.  가만히 생각하니  꿈을 꾸는 게지  파란 하늘 마주 설  파란 꿈꾸고  봄볕에 방실거려 놀  빨간 노란 아기 꿈 봄바람 송 명 호 고양이 발걸음처럼 살금살금 온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처마 끝을 지날 때 똑똑 낙숫물을 밟고 가면서. 금잔디에 숨어서 숨바꼭질한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새싹들이 파릇파릇 알려 주는걸. 사르르 얼음 위로 미끄럼 친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풀리는 강물이 짝짜꿍 손뼉 치며 좋아라 하는데. (7차 교육과정 4학년 1학기『읽기』 p.15  엄마의 손 장 용 복  엄마의 고운 손이 머리맡에 만져져서  눈감고 아픈 듯이 꿍꿍꿍 앓아보니  엄마는 걱정이 되어 살며시 안으시네  우리 맛 정 표 년 참기름 간장 깨소금에  흰쌀밥을 비벼봤나  엄마가 떠 먹여주던  그 사랑을 먹어 봤나  소세지 햄 피자하고는  아주 다른 우리 맛  넷째 시간 서 벌 초침은  달리는 말  분침은  달팽이 발.  가는 건지  마는 건지  시침은  부처님 손.  손 얼른  움직이셔야  도시락  먹을 텐데…….  어머님의 젖꼭지 박 양 권 잎 지고 다 시들은 감자포기 뽑아들면  뿌리 가득 올망졸망 매달린 감자알들  한 줄기 젖줄을 빨며 탐스럽게 자랐네  한 조각 씨감자가 땅 속에서 썩으며  감자알 키워놓고 뿌리 끝에 매달린  까맣게 썩은 씨감자 어머님의 젖꼭지  목 련 신 현 배 꽃샘바람보다 먼저  눈을 뜬 망울들이  겨우내 끼고 있던  벙어리 장갑 벗고  다 같이 가위바위보  하얀 손을 내민다 솔방울 신 현 득 구슬을 갖고 싶은 어린 아기 소나무  손끝에 한두 개씩 솔방울을 들었네.  동그란 솔방울들은 소나무의 노리개.  새벽 숲에서 김 영 수 선잠 깬 어린 새들이 칭얼칭얼 우는 소리  -아가 왜 그래? 찌찌 줄까? 맘마 줄까?  애타는 엄마새들이 달래며 우짖는 소리  느티나무 이사 가던 날 손 상 철 먼 곳의 산들이 와 손잡고 잘 가란다  계곡물 산을 내려와 잘 가라 마당에서 울고  동구 밖 느티나무는 노을 붉게 손 흔든다  입학식 추 창 호 까치가 뱉어놓은  새파란 하늘 아래  햇살 이름표로  반짝이는 아이들  발걸음  종종거리며  초록 꿈을 틔운다  나무는 나무는 김 호 길 나무는 나무는   땅이 엄마인가 봐  엄마 품에 새록새록  안겨 잠든 아가처럼  뿌리를 땅의 가슴에  깊이깊이 내리나봐.       나무는 나무는   하늘이 아빠인가 봐  아빠 손잡고 나선   아장아장 아가처럼  가지를 하늘에 올려  손 흔들고 있는가봐.  물총새 조 주 환 쫑쫑 물 쫑쫑 조약돌에 떨군 울음이 소금쟁이 살여울에 물무늬로 가 앉다가 풋잠 든 아가의 눈에 방울방울 벙근다. 소금쟁이 허 일 소록소록 실비 끝에 동그라미 송송송송 개구쟁이 소금쟁이 불신 신고 쏘다니며 엄마가 부르는 소리 귓등으로 듣는다. 가을 하늘 조 규 영 가을  하늘은  독수리도 탐이 나서 먼 산 위에서 뱅 뱅 맴을 돌며 며칠 째 파란 하늘을  도려낸다 자꾸만. 들길 산길 진 복 희 들길을 가면 나는 한 송이 작은 들꽃. 눈여겨 주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들길. 가다가 풀섶에 앉아 듣는 싱그러운 풀잎 얘기. 산길을 가면 나는 한 자락 푸른 산바람. 굽굽이 오솔길 따라 마냥 걸어가는 내 생각. 새소리 바람 소리 어디쯤 숨어 있을 내 소리. 요리 갔다 조리 갔다 전 의 홍 깎을까, 깎지 말까 더부룩히 자란 머리. 사지 말까, 살까 신나게 쏠 고 고무총. 절러렁 동전 다섯이 이발소를 지나서....... 살까, 사지 말까 장독 다칠 조 고무총. 깎지 말까, 깎을까 소풍 하루 앞둔 머리. 쥐었다 동전을 꼬옥, 가게 앞을 지나며 어머니 김 종 상 때 절은 이불 속 아기는 잠이 들고 졸음 맺는 등잔불 밤도 깊어 으슥한데 세월을 돌리시듯이 물레 잣는 어머니 의상대 해돋이 조 종 현 천지 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받아 든 엽서 정 완 영 네가 보낸 한 장 엽서는 네가 보낸 한 장 바다. 꽃게 같은 이야기들이 곰실곰실 기어 나온다. 썰물에 나갔던 바다가 밀물 타고 들어온다. 봉숭아 김 상 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숭아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도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은,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산길에서 이 호 우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물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적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나도 같이 시를 쓴다 이 은 상 아득한 바다 위에 갈매기 두엇 날아 돈다. 너훌너훌 시를 쓴다. 모르는 나라 글자다. 널따란 하늘 복판에 나도 같이 시를 쓴다. 별 이 병 기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귀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산딸기 이 태 극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까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봄 산  장 순 하 가지에선 새싹들이 눈 비벼 깜박이고 땅 속에선 벌레들이 기지개를 길게 켠다. 봄 산은 간지럼쟁이, 까르르르 몸을 꼰다. 딸기밭 박 경 용 높은 산 메아리도 꼬리만이 잦아들고, 강의 먼 노랫가락도 끝자락만 닿아오는 딸기밭 꼬맹이 풀섶에 잔조로운 불씨들. 뜨겁게 머무르는 태양의 가쁜 숨결 째한 한낮을 질러 은밀히 다녀가는 바람도 난쟁이 바람 어디 어디? 저기 저기! 개구쟁이 아랫동생 킥킥대는 웃음이랑 새큼한 여린 맛의 막냇동생 웃음이랑 함께 와 열려서 익네, 설레이는 내 눈길도. 구 두 유 성 규 도툼한 사연이다, 시집 간 누나 마음. 볼에다 비벼대고 바둑이도 불러 놓고 속갈피 비집고 보니 내 구두가 한 켤레. 내 마음 들머리에 달이 둥실 오른다. 추석날 성묘길에서 구두타령 했더니, 누나는 그날의 응석을 가슴 아파했던 게다 채송화 밭에서 이 상 범 다섯 식구가 모여 다섯 가지 보람을 가꾸면 색동인 양 오색 무지개 비 개면 오를 거다. 꽃 지운 자리엔 오소소 다섯 식구 꿈의 씨앗. 민들레 꽃씨 윤 현 조 우리는 낙하산 형제 하늘 높이 날아라 풍선처럼 손오공처럼 춤을 추며 날아라 온 식구 소풍가는 날 바람도 함께 가요. 일학년 임 금 자 1 '여러분은 몇 학년' '우리들은 일학년' '천재들만 모였구나' 선생님 말씀에 종합장 별 세 개까지 반짝반짝 웃는다. 2 새 가방 메고서 으스대고 싶었는데 학교가 코앞이라 아파트 한번 돌고 또 안녕 경비 아저씨 오냐오냐 두 번 웃고. 3 가족수 세던 날 식구 셋이 많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내 동생까지 여섯 식구 제일로 내가 부자야 두 어깨가 춤을 춘다. 해 정 순 량 해를 밀어 올리는 동해(東海)는 힘이 세다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무엇이 끌고 가나 서해(西海)는 해를 삼키고 붉은 피를 토해낸다.  
36    권영상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2089  추천:0  2017-05-27
강아지와 도랑 권 영 상        강아지가    도랑을    껑충 건너뛴다.      도랑이    옴쭉 작아진다.      강아지가    도랑을 건너뛰었다.      도랑이    휴, 한다.     고추잠자리  권 영 상        제트기가 금을 긋고    사라진 하늘에      씨이잉 날아 온    고추잠자리      마당가를 빙빙 돌다    앉은 빨랫줄      꽃손님을 하나 둘    내려 놓고는      어디론가 씨잉잉    날아 간 뜰에      채송화가 하나 둘    피어 나왔다.    마당가를 빙빙 돌다가 날아간 고추잠자리.   제트기가 손님을 실어 나르듯이, 고추잠자리는 꽃손님을 실어다 주는가 봅니다.    고추잠자리 날아간 뜰에 채송화가 하나 둘 피어납니다.   피어나는 채송화는 곧 새로 열리는 계절의 눈동자일 수도 있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나무 권 영 상        나무가    한 잎 한 잎 날개를 단다.    가지마다 파랗게 단    나무의 날개.    그 많은 날개를 달고도    나무는 날지 않는다.    직박구리며 꿈이 많은 휘파람새.    푸른 하늘을 그리는 솔개.    그리고 어린 박새와 솔잣새들…….    나무는 오히려    푸근히 쉴 수 있는    새들의 집이 되었다.     누렁소는 말이 없다  권 영 상     오동나무 그늘에 엎드린 누렁소 잔등에 콩닥, 할미새가 날아 내려 까불댄다. 엉덩짝이며 잔등이며 목덜미며 까불까불 짓뛰다간 폴짝 날아간다. 봄날 참새란 놈은 또 어떻구. 누렁소 엉덩짝에 깡총 내려 뛰어선 제집 따뜻이 지으려고 쏙쏙쏙 볼이 터지도록 쇠털을 뽑는다. 그것도 모자라 똥 한 줄기 찔금 싸고 호로록 날아간다. 그런데도 누렁소는 아무 말이 없다. 까치가 날아와 콕콕콕 잔등을 쪼아도 암탉이 뱃구레 밑을 후벼 파도 누렁소는 말이 없다. 가끔씩 엉덩이를 덜썩, 들었다 놓을 뿐 그만한 일엔 관심이 없다.     담요 한 장 속에  권 영 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 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짧은 한 편의 시에서 여러 이야기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를 읽는 독자가 갖는 즐거움이고 시를 쓰는 시인의 보람입니다.   이 시도 그런 정겹고 따스한 그림과 이야기가 되어 독자에게 다가왔습니다. 시는 아득한 곳에서 혹은 특별한 것에서 글감을 얻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곳곳에서 아주 평범한 것들이 시가 되기 위해 감동의 씨앗을 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이 시의 그림이 펼쳐집니다. 담요 한 장을 덮고 나란히 누운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은 누구도 먼저 잠들지 못합니다. 서로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깊기 때문이지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담요 한 장이 중심이 된 이 동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훈훈한 그림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을 어렵게 표현하거나 멋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발을 덮어주고 아들이 깰까봐 다시 조용히 누우시는 아버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부르거나 대답하지 못하는 아들.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이 아버지도 우리들 아버지와 같이 손과 발이 조금은 거친 아버지일 것입니다. 이 시에는 말 수 적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고가는 도타운 마음이 정겹습니다. 그래서 담요 한 장은 세상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정두리)           한밤중에 내 발을 덮어주시던 아버지…   아버지에게 아들은 '타자화된 자기"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느 뜻이겠다. 아버지가 묵은 가지라면 아들은 거기에서 뻗은 새 가지다. 아들은 침몰하는 배에 탄 아버지를 구하는 구조선이라고 생물학자는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제 생명으로 이음으로써 아버지를 구한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이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에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곡진한 사랑이 듬뿍 묻어 있다.   내 아버지는 1929년생이다. 전쟁 통에 양친을 다 잃었다. 그 뒤론 신산스런 삶이었다. 부모 잃고 가진 것 없이 험한 세파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외로움인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아버지의 장남인 나는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천하의 정약용도 아버지 노릇은 쉽지 않았다. 끼닛거리가 떨어지자 옆집 호박을 따다 죽을 끓인 여종을 닥달하는 아내를 말리며, "아서라, 그 아이 죄 없다. 꾸짖지 마라" 했다. 식솔을 가난에 방치하고 책이나 읽고 벗들과 어울린 것을 크게 부끄러워하며, "나도 출세하는 날이 있겠지. 하다못해 안 되면 금광이라도 캐러 가리라" 했다. 뒷날 정약용은 "내가 남의 아비가 되어서 너희들에게 이처럼 누를 끼치는 것이 부끄럽다"라고 썼다.   권영상(55)은 한 담요를 덮고 누운 아버지가 한밤중에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잠드는 광경을 그려낸다. 이렇듯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김현승의 )인 것을 모른다.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툴툴거린다. 나 역시 뒤늦게 깨닫는다. 내 불만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아버지는 세상에서 이룬 것과 상관없이 존경받아야 할 영웅인 것을. (장석주 시인)     들풀  권 영 상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길바닥에 돋아난 들풀의 운명은 참 기구하지요. 그 많은 삶의 터전을 놔두고 어쩌다 이런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지요.   손수레가 무심히 들풀을 밟고 지나갑니다. 그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구겨진 잎을 펴며 피득피득 몸을 일으키는 들풀의 모습에서 권영상 시인은 생명의 모짊을 읽어냅니다. (김용희)     민들레  권 영 상         해님이 주시는     빛살 중에서도     민들레는 노란 빛깔만 골라     옷을 지어 입는다.       담녘 따스한 곳에     물레를 걸어두고     노오란 실파람만 뽑아     옷을 지어 입는다.         바람이 피우는 꽃 권 영 상       산새가   지나가다 쉬어간   풀섶에     바람은   예쁜 표를 해 두었다.     길 잃은   산새가 오거든   보고 가라고 그랬겠지.     고운 꽃으로   표를 해 두었다.     반쪽  권 영 상             네가 주는         밤 한 톨의         반쪽           네 마음의 절반이         내게로 온다.           네게로 건네는         사과 한 알의          반쪽           내 마음의 절반이         네게로 간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무엇을 나눠 갖는 일은 곧 마음을 나눠 갖는 일입니다. 모든 행동은 마음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한 개의 과일을 동무와 절반씩 나누어 먹는 일은 마음의 절반씩을 나눠 갖는 깊은 우정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우정(사랑)의 나눔은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김종상)   사과 깎기  권 영 상          엄마가      돌돌돌      사과를 깎는다.        사과 속에      감아 둔      사과 단내가        돌돌돌돌      풀려 나온다.       실 끝을 따라가면  권 영 상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나?   실을 파는 실가게.   나무 의자에 앉아 낮잠 자는 곱슬머리,   곱슬머리 아저씨가 나올 테지.   아저씨네 가게 진열대에 놓인 그 많은 실뭉치들,   그 실뭉치를 풀어 실 끝을 찾아가면 뭐가 나오나?   실을 만드는 실공장.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일하는 실공장 아줌마,   아줌마가 나올 테지.   그 아줌마에게 물어 실 끝을 찾아가면 뭐가 나오나?   뽕나무 밭 사이로 오리를 키우는 집,   그 집 방안에서 실을 뽑는 누에들,   누에들이 나올 테지.   입으로 실을 뽑는 누에.   지금 내가 단추를 다는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나?   착한 누에.   뽕나무 밭 사이로 오리를 키우는 집,   그 집 방안에서 실을 뽑는 누에가 나오겠다,   고마운.    마치 스무고개 넘는 식의 시적 진술 방식이 우선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족하다.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사물들은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의미망으로 연결되면서 정감어린 상관물로 재창조되고 있다.    새로움에의 도전은 아동문학의 영원한 화두이다. (문삼석)     종달새 권 영 상                    맑은 하늘 층계에서                    악기 소리가 난다.                      요란히                     건반을 두드리며                    하늘 층계를                    올라가는,                      종다리,                    그것은 네 가볍고도 빛나는                    발자국의 무게이려니                      발목을 놓을 때마다                    건반 가득히 고인 음표들은 쏟아져                    온통 보리밭 들판을                     취하게 한다.    종달새 소리는 우리들 귀를 즐겁게 합니다. 보리밭 위에서 아무리 크게 지껄여대도 시끄럽지 않으며 똑같은 소리를 오래오래 내질러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종달새 소리를 악기 소리라 했습니다. 아니, 일반 악기보다도 한층 더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해 내는 살아 움직이는 악기로 본 것입니다. (허동인)       쪼금만 권 영 상        햇살이 숲 위로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아까워    참나무들이 잎을 펼쳐 햇살을 받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햇살이    참나무 아래로 떨어집니다.    ―쪼금만.    거미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미가    꼭 필요한 만큼 햇살 조각을 떼어 냅니다.    거미가 떼어 내고 남은 햇살이    숲 아래 어린 풀잎 위에 내려앉습니다.    쪼금만, 이번엔 꼭 필요한 만큼    풀잎이 햇살을 덜어 냅니다.    ―나도 쪼금만.    개미가 있군요, 풀잎 밑을 기는 개미.    개미까지 받을 수 있도록    숲은 꼭 맞게 햇살을 나눕니다.     해바라기와 아가  권 영 상          내 그늘 속에      들어오지 않을래?        해바라기가      동그란 그늘을 내밉니다.        아기가      해바라기 그늘 속에      콩 들어섭니다.        내 이파리로      모자를 만들어 쓰지 않을래?        아기가      깡충 뛰어      초록 모자를 만듭니다.         호박밭의 생쥐  권 영 상        호박밭에    호박이 큰다.    자꾸 자꾸 자꾸……      ―정말    비좁아 못 살겠네!      생쥐가    이부자릴 싸들고    또 집을 옮긴다.     생쥐가 게으름을 피웠을 리는 없을 테지. 게다가 먹음직스러운 호박이 눈앞에 집채만하게 커졌는데.    그런데도 우리의 생쥐들은 살 땅이 없다. 먹어도 먹어도 나의 집. 내 몸집이 남을 위협할 정도가 못 되는구나.   그렇다면 남의 풍요를 인정하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가 되지. 나는 날렵해서 좁혀 사는 데는 이골이 나 있잖아.   그래도 가끔은 저 풍만한 호박들 귀를 깨물어 줘야지. 그렇게 불리는 데만 골몰하다가 제 몸 망치지 말고. 미리 좀 나눠주렴. (박덕규)     "호박이 크자 작은 생쥐가 비좁아서 이사를 간다고요? 거짓말이에요. 호박밭에서 호박이 크게 자란다 해도 생쥐 자리가 비좁아진다는 건 말도 안 돼요. 그리고 생쥐가 무슨 이사를 다 해요?"   시는 이렇게 사실을 따지면서 감상하는 게 아니예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옛날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가 단간방에서 사는 집이 많았어요. 아기가 자라면 방이 비좁아서 걱정했고요. 그러고 보니 호박과 생쥐 관계와 비슷해요.   거짓말 같았는데, 그럴 듯한 거짓말이지요. 시는 사실을 따져서 짓는 게 아니랍니다. (박두순)     풀들은 권 영 상       흙바람이    풀들의 머리채를 쥐어 흔든다.      사납게    휘몰아칠 때도    풀들은 바람과 맞서지 않았다.      바람이 가면     가는 대로    허리를 낮추며 흔들렸다.      그런 때에도    가만히 풀섶을 뒤지면    풀섶 밑은 고요했다.      그 고요한 자리에    숨겨 놓은    풀종다리의 귀여운 알들      오, 고놈들을    감추어 내려고    풀들은 바람에 순종했다.     표현이 직선적이고 굵으면서 서정성이 풍부한 이 작품은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표현하고 있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희생을 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흙바람'으로 상징되는 반사랑적 존재와 '풀들'로 나타난 부모들과 '풀종다리의 알'로 표현된 어린이가 이 작품의 중요한 세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시어는 바람과도 대결하지 않는 '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의 눈이 앞부분에서는 주어로 쓰인 '흙바람'에게 있다가 뒷부분에서는 '풀들'이나 '귀여운 알들'로 옮겨지고 있다. 이 작품과 김수영의 '풀'을 대비하여 동시도 일반적인 시 수준을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이 작품이 동시적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잘 보여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이정석)          권 영 상(權寧相) 1953년 3월 1일 ∼ 강원도 강릉시 초당에서 태어남. 관동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197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함. 1982년 소년중앙문학상 수상. 한국동시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새싹문학상, MBC동화대상 수상. 동시집 : 단풍을 몰고 오는 바람(창조의 샘, 1980)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아동문예사, 1985)              벙어리 장갑(계몽사, 1992)             밥풀             버려진 땅의 가시나무             신발코 속에는 새앙쥐가 산다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국민서관, 2004)    
35    <바람에 관한 동시 모음> 이혜영의 '바람의 고민' 외 댓글:  조회:1781  추천:0  2017-05-27
이혜영의 '바람의 고민' 외  + 바람의 고민  어떡하지?  바람이 풀숲에 주저앉아  고민합니다.  아무리  살금살금 걸어도  꽃잎이 흔들립니다.  어떡하지?  (이혜영·아동문학가)  + 바람이 길을 묻나 봐요  꽃들이 살래살래  고개를 흔듭니다.  바람이 길을 묻나 봅니다.  나뭇잎이 살랑살랑  손을 휘젓습니다.  나뭇잎도 모르나 봅니다.  해는 지고 어둠은 몰려오는데  넓은 들녘 저 끝에서  바람이 길을 잃어 걱정인가 봅니다.  (공재동·아동문학가)  + 같은 바람 중에도  풍력발전소에 가면  땀 흘려 일하는  바람이 있다.  풍차 날개를 돌려  열심히 전기를 만드는  기특한 바람이 있다.  같은 바람 중에도  어떤 바람은  넘쳐나는 힘 다스리지 못해  무서운 태풍이 되고  어떤 바람은  작은 힘 서로 모아  방아를 찧고  풍력발전소를 돌린다.  (민현숙·아동문학가)  + 양달과 응달  겨울에는  양달에서 응달로  따뜻한 바람을 보내준다.  여름에는  응달에서 양달로  시원한 바람을 보내준다.  제가 받은 것이라고  저 혼자만 갖지는 않는다.  제가 만든 것이라고  저 혼자만 갖지는 않는다.  바람은  핏줄이다.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이 세상의 핏줄이다.  단지 며칠 늦어서 그렇지  응달에도 꽃이 핀다.  양달에도  낙엽이 진다.  (이무일·아동문학가)  + 보이지 않아도  바람  보이지 않아도  풀잎을 흔들고  태풍  보이지 않아도  나무를 흔들고  너  보이지 않아도  나를 흔들고  보이지 않은 게  보이는 것보다  힘이 더 세다.  (정갑숙·아동문학가)  + 바람 - 2  실바람으로  나무둥치 간질일 순 있어도  구름자락 불러다  해와 달과 별들 가릴 순 있어도  땅덩이 뒤덮는  태풍이 될 순 있어도  들어가 잠잘  제 집은 없다.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 바람 떠안기  거센 바람이  강을 건너 달려옵니다.  나무들이 제일 먼저  그 바람의 무게를  온 몸으로 떠안습니다.  다음으로  키 큰 수수밭의 수수들이,  그 다음으론 수수이랑 곁의  푸른 쑥대들이  바람의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떠안습니다.  그리곤 메밀밭을 돌아  담장 밑의 작은 풀꽃,  그 위에 앉았을 땐  바람은 멧새 깃털처럼 작아졌습니다.  (권영상·아동문학가)  + 꽃과 바람  바람은  꽃을 몹시 부러워한다.  꽃은,  파랑  노랑  빨강  어느 빛깔 부러울 것 없을 만큼  온갖 빛깔 다 있는데  바람은  그 고운 빛깔이 없다.  그래서  바람은 심술을 낸다.  꽃필 무렵이면  꽃샘을 하고,  잎 필 무렵이면  잎샘을 해도  착한 꽃들은  바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얼마나 부럽기에  저렇게 심술이 났나 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꽃은  바람을 맞이하고  바람을 배웅하고.  (김월준·아동문학가)   + 여름  숲에 가면  바람이 많이 이는 건  햇볕이 뜨거워  바람도  몸을 식히러 온 때문이다.  때론  소풍 가듯  바람도 쉬고 싶은 것이다.  계곡 물에  찰방찰방 발 담그고 있다가  마냥 놀아선 안 되지  바람은  마을로 내려간다.  (정세기·아동문학가, 1961-2006)  + 게으름뱅이  부지런한 햇살이  젖은 빨래 찾아다니며  단물을 쪼옥  빨아먹고 간 뒤  뒤늦게 달려온  목마른 바람이  물기 없는  빨래를 만져보고  이마를 탁탁 치며 돌아갑니다  (신천희·승려이며 아동문학가)  + 친해지고 싶어  바람은  친해지고 싶은지  나에게 자꾸  말을 건네요.  슬며시 머리카락도  쓰다듬어 보고  볼도 사알짝 어루만지고  옷깃도 자꾸 잡아당기고  내가 모른 척하면  몸을 세게 흔들기도 하지요.  나도 바람을 느끼고 싶어  깊게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친해지고 싶어서  양팔을 활짝 벌렸습니다.  바람이 내 가슴속으로 쑤욱 들어왔습니다.  (오지연·아동문학가, 제주도 출생)  + 우리 동네 문제아  골목대장이 된 바람을 따라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는  우리 동네 문제아  비닐봉지  신문지  음료수 캔  (김혜경·아동문학가)  + 바람이 자라나 봐  잔디밭에서  앙금앙금  기어다니던  봄바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푸름푸름  그네를 타던  여름 바람이.  낙엽을 몰고  골목골목  쏘다니던  가을 바람이  어느새  매끄러운 얼음판을  씽씽 내닫는 걸 보면  바람도 우리들처럼  무럭무럭 자라나 봐.  (김지도·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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