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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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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시간에 관한 동시 모음> 공재동의 '고 짧은 동안에' 외 댓글:  조회:1689  추천:0  2017-05-27
공재동의 '고 짧은 동안에' 외 + 고 짧은 동안에  장맛비 그치고  잠시  햇살이 빛나는 동안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잎사귀에 고인  빗물을 쓸어내리고  새들은   포르르 몸을 떨며  젖은 날개를 말린다.  해님이   구름 사이로  반짝 얼굴 내민  고 짧은 동안에.  (공재동·아동문학가, 1949-) + 시간의 탑  할머니,  세월이 흘러  어디로  훌쩍 가 버렸는지 모른다 하셨지요?  차곡차곡  쌓여서  이모도 되고  고모도 되고  작은엄마도 되고,  차곡차곡  쌓여서  엄마도 되고  며느리도 되고  외할머니도 되었잖아요.  우리 곁에  주춧돌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그 시간의 탑이지요.  (유미희·아동문학가, 충남 서산 출생) +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일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 걸렸다.  (박희순·아동문학가) +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작은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만 있다면  예쁜 병 속에  한 시간만 담아서  아빠 가방 속에  살며시 넣어 드리고 싶다.  아무리 바쁘신 아빠도  그걸 꺼내 보시면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으시겠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 만들어  아빠 가방 속에 몰래  넣어 드리고 싶다.  (정구성·아동문학가) + 탁상 시계 딸깍 딸깍 딸깍 탁상 시계가 책상 위에 앉아 밤새도록 시간의 손톱을 깎고 있다 딸깍 딸깍 딸깍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시계의 초침 소리  톡, 톡, 톡 초침은  시간을  잘라 줍니다 톡, 톡, 톡 쬐끔씩 쬐끔씩 아껴 쓰라고 금싸라기만 하게 잘라 줍니다 톡, 톡, 톡 토막난 시간들이 뛰어다니며 ㅡ얘, 너 지금 뭐 하니? 자꾸만 자꾸만 물어봅니다. (윤미라·아동문학가) + 아빠 시계  시계를  볼 때마다  아빠는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어.  아빠 시계엔  왜  시간이  없는 거지?  (문삼석·아동문학가, 1941-) + 시계꽃  지난 밤  별들이   몰래 내려 와  풀밭 위에  한 뜸 한 뜸  수를 놓았나  초록 풀밭 가득  하얀 시계꽃  어쩜  째각째각  시계 바늘 소리까지  낭랑히 낭랑히  수놓고 갔을까  (김종순·아동문학가) + 시계가 셈을 세면  아이들이 잠든 밤에도  셈을 셉니다.  똑딱똑딱  똑딱이는 수만큼  키가 자라고  꿈이 자라납니다.  지구가 돌지 않곤  배겨나질 못합니다.  씨앗도 땅 속에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매운 추위에 떠는 나무도  잎 피고 꽃필, 그리고 열매 맺을  꿈을 꾸어야 합니다.  시계가 셈을 세면  구름도 냇물도  흘러갑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바위도  자리를 뜰 꿈을 꿉니다.  시계가 셈을 세면  모두모두  움직이고  자라납니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엄마의 시간   우리 집에서  시간 나누기를 제일 잘 하는  엄마.  다림질 반듯한  우리 형 교복 바지에도  햇볕에 널어놓은  뽀오얀 내 운동화에도  쬐끔씩 나누어 준  엄마의 시간.  우리집 저녁상에도  베란다에 앉아있는  난초 화분에도  촉촉이 배어있는  엄마의 시간.  잠잘 때도 엄만  내 손 꼬옥 잡고,  엄마 시간  다 내어 준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하루 어머니가  품앗이  가실 때는 해가 참 길다 하시고 우리 밭 김 매실 때는 해가  너무 짧다  하신다 내가 보기엔 그냥  하루인데 (김은영·아동문학가) + 무렵  아버지는 무렵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무렵이라는 말을 할 때  아버지의 두 눈은 꿈꾸는 듯하다.  감꽃이 필 무렵  보리가 익을 무렵  네 엄마를 처음 만날 무렵  그 뿐 아니다  네가 말을 할 무렵  네가 학교에 갈 무렵  아버지의 무렵이란 말 속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묻어 있다.  나도 유치원 무렵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나에게도 아버지처럼  무렵이란 말 속에는 그리움이 배어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무렵이란 말을 떠올리면  그리운 사람이 어느새 내게 와 있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열차  열차를 탔다.  빈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것이 내 자리다.  타고 온 사람들의 자리가  비워지기를 기다리는  새 얼굴의 사람들.  눈을 감고 창에 기대면  열차는 멈춘 듯 달려간다.  흐르는 세월처럼  언젠가는 나도 내리고  나의 빈 자리에는 또  다른 누구가 와서 앉겠지.  세월이란 열차  참 빠르기도 하다.  (김종상·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33    오은영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2095  추천:0  2017-05-15
한 뼘만 더  / 오은영   왼손을 펴고 한 뼘을 재어 봐 10cm도 안 되는 짧은 길이지? 하지만 난, 고만큼 더 멀리 바라볼 테야.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그 다음엔 고만큼 더 높게 뛰어 볼 테야. 푸른 하늘이 가까이 내려오도록. 마지막엔 고만큼 마음 속 웅덩이를 깊이 파야지. 내 꿈이 그 안에서 더 크도록. 내가 자라면 고 한 뼘도 따라서 자랄 거잖아? (`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고르는 손    / 오은영   보이니? 소반 위에 쏟아놓은 콩을 할머니가 한 알 두 알 고르시는 거   메주를 맛있게 쑤려면 흠 없는 콩만 골라야 한대   지구 위에 쏟아져 있는 우리도 누.군.가. 고르고 있을 것 같지 않니?   산토끼랑 달팽이랑     / 오은영   허둥지둥 언덕길 뛰어가던 산토끼가 글쎄 달팽이 보고 혀를 찼대.   너처럼 느릿느릿 가다간 언덕 너머 산비탈 뒤덮은 진달래꽃 잔치 못 보겠다.   달팽이도 글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대!   너처럼 빨리빨리 가다간 제비꽃 낑깽이풀 얼레지 족두리풀 매미꽃 봄까치꽃 애기풀 들바람꽃...... 언덕길 따라 줄줄이 핀 풀꽃 잔치 하나도 못 보겠다.   새똥  오은영   새가 날아가다 똥을 쌌다 나랑 다툰 친구 머리 위에   헤헤 내 대신 하나니미 버 주신 거야   말도 안 끝난는데 내 머리 위에도 찌익 똥을 싸고 간다.   하품하는 시계  /오은영 시계가 자꾸 하품을 해 내가 책상에 앉으면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제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지 몰래 간 게임방에서 게임할 때 개울가에서 첨벙첨벙 가재 잡을 땐 어서 집에 가자 보채며 뺑뺑글 뺑글 잘도 달리더니 말야 "야, 빨리 좀 달려!" 아무리 재촉해도 "제발 빨리 좀 가 줘, 응?" 아무리 사정해도 눈곱만큼씩 움직이는 거 있지? 시계에 꼬리가 있다면 좋겠어 졸고 있을 때 불침 놓게 그럼 꽁지 빠져라 뺑뺑뺑 돌아가겠지? "와, 벌써 공부 다 했네!"   봄비의 발뒤꿈치 / 오은영   봄비는   토도도도 맨발로 산기슭 바위틈까지 뛰어가 선잠깬 앵초꽃 눈꼽 떼어주고   토도도도 맨발로 시냇가 둔덕까지 뛰어가 개구리 두꺼비 늦잠 깨우고   토도도도 맨발로 우리집 텃밭까지 뛰어와 아욱싹 열무싹 나오라며 발 동동 구르느라   쪼그만 뒤꿈치가 온통 흙투성이다.     동그라미 선생님   잠자리는 선생님이야 동그라미만 치는 마음 좋은 선생님이야   빨간펜 들고 돌아다니다 “친구가 약 올려도 잘 참았구나.” 개구쟁이 영석이 머리 위에 동그라미 쳐주고   “동생을 잘 돌봐 주는구나.” 깍쟁이 민지 머리 위에도 동그라미 쳐 줘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를 받고 가을 하늘은 기분 좋아 맑게 맑게 웃고 있어. 고쳐 말했더니 오 은 영     사다리가 전봇대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하나밖에 없네." 전봇대도 사다리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두 갠데도 혼자 못 서지?" 사다리가 말을 바꿨어요. "넌 대단해!" 다리가 하난데도 혼자 서잖아!" 전봇대도 고쳐 말햇어요. "네가 더 단단해! 사람들을 높은 데로 이끌어 주잖아."     꼭 집어낸다 오 은 영     진달래꽃은 와르르 쏟아지는 빛살 속에서 "바로 내 빛깔이야!" 분홍빛 꼭 집어내고 기러기는 많고 많은 하늘길 속에서 "바로 이 길이야!" 가야 할 방향 꼭 집어내고 우리 엄마는 단체 사진 속 콩알만한 얼굴들 사이에서 "여기 너 있다!" 나를 꼭 집어 낸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꽃이랑 우리랑  오 은 영      꽃들은  물 한 바가지에  고개 들어 활짝 웃고  우리는 칭찬 한 모금에  어깨 펴며  벙긋 웃고    '칭찬 한 모금'은 마음의 따뜻함이다.   인간에게는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박두순)       나무에 걸터앉은 햇살 오 은 영         햇살이     라이락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팝콘을 튀기고 있어요.     팝, 팝, 팝     가지마다     다닥다닥 피어 있는 팝콘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요.     솔, 솔, 솔     온 마을이     봄 냄새에     젖어 드네요.     흠, 흠, 흠       만유인력의 법칙  오 은 영     '안 떨어질 거야' 얼굴이 노래지도록 안간힘 쓰지만 기어이 열매는  땅으로 끌려가고야 말지. '끝까지 매달릴 거야' 얼굴이 빨개지도록 이 악 물지만  마침내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야 말지. '엄마랑 얘기하나 봐라' 야단맞고 새침하게 토라져 보지만 엄마가 다정하게 부르면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말지.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제목부터가 낯설다. 감히 과학 용어를 시어로 쓰다니.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고정관념에 매여 있으면 새로운 시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좋다. 다만 시적 육화가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물리학에서 만유인력은 사물이 낙하할 때 지구 중심부를 향해 떨어진다는 원리를 말한다. 1,2연에 그것을 미적으로 잘 드러냈다.   인간 심리에서의 만유인력은 어떤 것인가? 3연에 그것을 심상으로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만유인력은 어머니의 다정함이다.   인간에게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시로 표출하고 있다. (박두순)   이 시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과학의 법칙을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에 비유한 발상이 돋보이며, 뉴턴이 그랬듯이 둘 사이에 '끌려감의 미학'을 시인은 발견한다.   사람들은 물질에 끌려 생명마저 경시하며 살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끌려감의 힘은 물질로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다.   읽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오는 그러한 시라 할 수 있겠다. (김진광)       미끄럼틀 성적 오 은 영         내 성적은     미끄럼틀 성적.     한 계단     두 계단     힘들게 올라가     꼭대기에는 잠깐만 머물고     밤하늘서     미끄럼 타는 별똥처럼     쏜살같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든.     엄마는 그런 내 성적 보며     혀 끌끌 차지만     난 걱정 안해     미끄럼틀은     한번 떨어지면 끝인     별똥과 다른 걸.     마음만 먹으면     엉덩이 툭툭 털고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걸.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제7호)     뿌리와 나뭇가지  오 은 영          뿌리는     두레박 가득 남실남실     물 담아 올려 보내며     물방울 편지를 띄웁니다.     "빛나는 햇살 보내줘 고마워."     나뭇가지는     빈 두레박에 찰랑찰랑     햇살 채워 내려보내며     햇살 편지를 띄웁니다.     "달콤한 물 보내줘 고마워."       젖 먹는 나무 오 은 영       손발 꽁꽁   마음 꽁꽁   얼어 버린 나무들에게   햇살이   따뜻한 젖 물려요.   "칼바람 속에서   춥고 배고팠을 거야."   꿀꺽꿀꺽   배부르게 먹은 나무들   마음이 녹네요   산수유 마음도   진달래 마음도   노랗게   발갛게 웃네요.       초록 쉼표 오 은 영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커다란     초록 쉼표예요.     떨어지던 빗방울도     초록 잎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떠돌이 채소장수 아저씨도     초록 물든 그늘에     땀방울 잠깐 내려놓고     우리도     학원버스 기다리는 동안     초록빛 너른 품에서     친구랑 어울려 놀지요.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    이 시인은 시에서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제목부터 독자의 마음을 시 속으로 끌어들인다.   내용도 초록만큼 신선하다. (김)       흉내  오 은 영        뒤뚱뒤뚱 걷는    아기를 보면    오리가 웃겠다    제 흉내 낸다고    뒤뚱뒤뚱 걷는    오리를 보면    아기가 토라지겠다    제 흉내 낸다고     남들이 자기 흉내를 내면 그렇게 유쾌하진 않지요.   하지만 우연찮게도 모습이 같아 보일 때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뒤뚱뒤뚱 걷는 아가의 걸음마가 오리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는 것을, 오은영(1959~) 시인이 아주 귀엽게 표현해 내었군요.   그런데 아가 걸음걸이를 오리가 흉내냈다니 아가가 토라질 만도 하겠지요. (김용희)               오 은 영 1959년 ∼ 서울 출생. 여류.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1994년 아동문예 문학상에 동시 '휴전선 넘기' 외 2 편 당선.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더 멀리, 더 높게, 더 깊이' 당선. 1999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받음. 2003년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 동시집 : 우산 쓴 지렁이             넌 그럴 때 없니?    
32    <돌에 관한 동시 모음> 심온의 시 ´숨쉬는 돌´ 외 댓글:  조회:1733  추천:0  2017-05-05
심온의 시 ´숨쉬는 돌´ 외 + 숨쉬는 돌 붉은 무당벌레 한 마리 돌멩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숨을 쉽니다. 함께 숨을 쉽니다. 아무데나 던지지 마세요 돌멩이도 숨을 쉬고 있으니. (심온·아동문학가) + 징검돌 처음부터 제자리를 찾은 건 아니었어 물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지 센 물살이 다가올 때 넘어질 것 같아 눈이 아찔했지 내 등을 밟고 간 수많은 발자국 많이 아팠지만 그렇게 흔들리면서 자리를 잡았지 이젠 거친 물살, 거친 발걸음에도 끄덕하지 않아 가만 들어봐 내 곁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배산영·아동문학가) + 조약돌 수천 년을 갈고 닦고도 조약돌은 아직도 물 속에 있다 아직도 조약돌은 스스로가 부족해서 물 속에서 몸을 씻고 있다 스스로를 닦고 있다 (이무일·아동문학가) + 조약돌 강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떠나 온 고향 이야기에 밤새는 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닮은 형제들 어쩌면 고렇게도 다정할까. 해맑은 햇살로 세수하고 물새 울음도 가슴에 차곡차곡 새겨 두는 아이들 헤어지지 말자고 손을 꼭 잡고 별을 보며 꿈을 꽃피우는 오순도순 그리운 친구들. (진호섭·아동문학가) + 냇돌 가재를 품어 주고 물고기도 숨겨 주고, 징검돌도 되어 주고 빨랫돌도 되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냇물 속에 엎드려서 모두를 위해 주는 참으로 고마운 돌. (김종상·아동문학가) + 탑 모난 돌 금간 돌 손을 든 돌 돌이 돌을 무동 타고 서 있다  비 맞고 바람 맞고 눈 맞으며 함께 나이를 먹는 돌  밀어내지 않고 투덜대지 않고 꽉 끌어안고  돌이 돌을 무동 타고 서 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다.   (조영수·아동문학가) + 돌멩이와 바위 조잘조잘조잘 시냇물이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들쑥날쑥 돌멩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철썩철썩 쏴 쏴 파도가 신나게 수다 떨 수 있는 건 끝까지 들어주는 바위가 있기 때문이죠 (안오일·아동문학가) + 돌 줍기 예쁜 돌을 주워보자. 작은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돌 맨들맨들 윤이 나는 돌 동네 한 바퀴 돌면 주울 수 있을까. 들꽃 향기를 기억하는 돌 동네 두 바퀴를 돌면 주울 수 있을까. 파도 소리 묻어 있는 돌 물새 발자국 묻어 있는 돌 동네 세 바퀴를 돌면 주울 수 있을까. 눈 동그랗게 뜬 겁먹은 돌 하나 울먹울먹 동네 한 바퀴 돌아 주웠네. 자동차 바퀴에 깔린 걸 기억하는 돌 전철 굉음에 귀먹은 돌 동네 두 바퀴 돌아 주웠네. 콘크리트 벽에 박힌 돌 매연에 찌든 돌 동네 세 바퀴 돌아 주웠네. (한계령·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31    김구연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1685  추천:0  2017-05-05
가을 눈동자  김 구 연     햇살이 고요롭게 먼지를 데리고 노니는 마루방 탁자 위에 난초 잎으로 몸을 가린 우유빛 찻잔 하나.   오부룩하게 가을이 들어앉은 찻잔에 들꽃처럼 아, 들꽃처럼 누구를 기다려 가늘게 웃고 있는 초롱초롱 너의 눈동자.     강아지풀  김 구 연      오요요  오요요  불러 볼까요.    보송보송  털 세우고  몸을 흔드는    강아지풀  강아지풀  불러 볼까요.    "오요요" 소리에 꼬리 흔드는 강아지풀   "오요요/ 오요요"는 어미가 제 새끼를 부를 때, 혹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부를 때 내는 소리다. 바이올린의 높은 선율보다는 낮은 음역대(音域帶)에서 나오는 바순 소리에 더 가깝다. 뜻 없는 의성어지만 그 울림이 맑고 상냥하다. 'ㅍ'소리가 내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비교하면 맑음과 상냥함이 한결 뚜렷하게 드러난다. 공[球]처럼 입술을 작고 동그랗게 모아 발음하기 때문인가. 세 번씩이나 겹친 두음(頭音)으로 오는 'ㅇ'소리는 사방으로 퍼지지 않고 동그랗게 모인다. 이 때 둥근 입 모양은 젖 빠는 아가의 입과 닮아 있다. 'ㅇ'소리는 귀엽고 상냥하고 발랄하다.   어떤 말들은 뜻을 품지 않고도 그 소리값[音價]만으로도 소통의 소임을 다한다. 이 시에 나오는 "오요요/오요요"하는 말이 그렇다. 음절 앞머리에서 낭랑한 소리를 이끌던 'ㅇ'소리는 다음 행의 "보송보송"에서는 음절의 끝에 숨어 겸손하게 앞소리를 떠받든다. 그 떠받드는 'ㅇ'소리는 강아지풀의 보드라움을 감각적 명징함으로 드러낸다. 'ㅇ'소리는 둥근 소리다. 내치고 따돌리고 깨뜨리는 소리가 아니라 품고 보듬어 안는 소리다. 이 소리에 외로운 자들이 먼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리라. 왜냐 하면 이 소리는 사랑과 안식을 약속하는 달콤한 영창(詠唱)으로 들리니까. 'ㅇ'이라는 음성기호는 둥근 것, 보드랍고 연한 것들, 예를 들면 엄마 젖, 아가의 오동통한 엉덩이, 젖살이 몽실몽실한 강아지, 탱탱한 탄력을 가진 꽈리들을 연상하게 한다.   이 수작을 쓴 김구연(66)은 1971년에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아동문학가다. 시인은 남이 못 듣는 소리도 듣는 예민한 청각을 가졌다. 들에 매인 염소는 누나의 국어책을 먹고 날마다 국어책을 외운다. "염소가 누나의 국어책을/ 몽땅 먹어버렸다.// 그러고는 매일/ 매애애 매애애……// 국어책 외운다."()   다시 입술을 모으고 "오요요/ 오요요"하고 불러보자. 강아지풀은 그게 저를 부르는 소린 줄 용케도 알아들었다. 제가 풀이라는 걸 잊은 강아지풀이 보드라운 털을 세우고 몸을 흔들며 온다. "오요요/ 오요요" 소리가 강아지풀을 강아지로 순식간에 바꾸는 놀라운 마술을 부리지 않는가. 우리 안에 잠든 열망과 무한한 그리움을 흔들어 깨우지 않는가. (장석주 시인)     고추씨의 여행  김 구 연    노오란 고추씨가     땅 속에 묻히면    초록색 싹이 되어 나오고    그 어린 싹이 자라서    새하이얀 고추꽃이 피고    꽃이 지면서    초록동이 아기고추가 열리고    아기고추가 자라서    빨간 잠자리    매운 고추가 되고    아, 빨간 고추 속에는    노오란 고추씨가 돌아와 있네.    고추씨가 싹이 되고, 싹이 꽃이 되고, 꽃이 고추 되고, 고추 속에 고추씨가 돌아와 있음. 이 시의 내용 줄거리입니다.   어디 고추뿐일까요? 대개의 식물들이 다 그렇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열매 맺어 수십 수백 배의 또다른 씨앗을 낳게 하는 건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능력을 가진 이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분, 그 누구의 은혜 때문일까요? (허동인)   한 알의 고추씨가 싹이 터서 자라고, 끝이 뾰죽한 다섯 장의 흰 꽃잎으로 꽃이 피고, 풋고추에서 붉은 고추가 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일입니다.   시인은 고추씨가 자라 다시 고추가 되는 것을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되풀이되는 생명, 이것을 불교적으로 말하면 윤회라고 합니다.    봄에서 가을까지 고추가 익을 때까지의 시간을 여행이라는 시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놓는 일. 이런 평범한 사실에 새로운 의미를 주어 우리에게 놀람과 기쁨을 주는 일은 시인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눈에 보이는 것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더 깊고 넓은 상상의 나라로 이끌어주는 일은 시인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시를 많이 읽으면 상상과 생각의 폭이 풍부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음식에 맛을 보태주는 열매 속의 작은 씨앗을 보고 되풀이되는 생명을 긴 여행으로 엮어낸 시인.   '한 송이의 꽃에서 우주를 본다.'고 말한 블레이크라는 시인도 있습니다.    자연이 풍요로운 여름은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주는 계절이기도 합니다.(정두리)     귀뚜라미  김 구 연   따르르 따르르……   비켜나세요.   별님 달님   비켜나세요.     캄캄한    밤중에   귀뚜라미가   자전거를 탑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고요한 가을 밤입니다.    귀뚜라미 혼자 따르르 따르르 자전거를 탑니다. 귀뚜라미 자전거 소리는 밤하늘로 멀리멀리 퍼져 갑니다. 별님 달님이 다칠지도 모릅니다.    '별님 달님 비켜 나세요' 하고 내가 귀뚜라미 대신 말해 줍니다.    고요한 가을 캄캄한 밤하늘로 귀뚜라미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세요. (김종상)     국어 공부  김 구 연       염소가   누나의 국어책을   몽땅 먹어 버렸다.   그러고는 매일   매애애 매애애……      국어책 외운다.    국어책을 외우는 염소를 보았나요?    염소는 왜소한 체구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동물이지요. 종이도 잘 먹는답니다. 아, 염소가 그 새 '누나의 국어책을 몽땅' 먹어 버리고 말았군요. 그리고 "매애애 매애애" 울음소리를 내면서 계속 되새김질을 하고 있네요. 아마 국어 공부를 하는가 봐요. '국어책에 나오는 동시들을 외우는 거야' 하듯이 입을 놀리네요.    동물의 행동 특성을 잘 관찰하면서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 놓은 김구연(1942∼) 시인의 시적 재치가 돋보이는군요. (김용희)   내가 선물하는 동시집에 들어 있는 시 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외우게 되는 시다.   동물과 아이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에다 동물이 먹고 우는 반복되는 단순한 행동을 아이가 책 읽는 소리에 빗대며 "매애애 매애애"로 청각화한 것이 쾌감을 안겨 주는 거다.   이런 쾌감을 오래 붙들고 싶은 사람은 이 동시를 흉내내 볼 것을 권한다.   "강아지가 형아의 운동화를 하루 종일 물고 다녔다. 그러고는 밤 늦도록 콩콩콩 콩콩콩 마루를 뛰어다닌다." 이런 식으로. (박덕규)      깜장 염소 김 구 연           새까만 얼굴        새까만 눈동자        새까만 바지저고리        새까만 손발.          캄캄한 밤중에        느네들끼리 만나면        어떻게 알지?        엄만 줄 아빤 줄?          매애애 매애애……        목소리도 똑같은걸.     바람 부는 날 김 구 연      미루나무들이  벌판을 달리고 있습니다.  맨주먹 불끈 쥐고  머리칼 휘날리며.    콩밭도 달립니다.  수수밭도 달립니다.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집도 달립니다.    동심의 모습을 발견하기   이 시는 바람 부는 날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마치 아이들이 맨주먹을 쥐고 달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쓴 시다.   이 시에 나오는 미루나무나 콩밭이나 수수밭은 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모습 그대로이다.   자연을 보면 이와 같이 귀여운 동심을 발견할 수 있다.   새와 꽃과 나무에서 아이들과 닮은 점을 찾아 시로 써보기 바란다. (이준관)     반딧불  김 구 연     남 다 자는 한밤에 초롱불 하나   어둠 타고 남실남실 쑥고개 넘어온다.   무섭지도 않나 봐 꼬마 반딧불.    어두운 밤, 숲 속이나 산길에서 작은 초롱불을 밝히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은 무섭지도 않을까요?    또, 혼자 초롱불을 밝혀들고 누굴 찾아다니는 것일까요?   반딧불을 사람의 처지에 비겨 보고 있습니다. (김종상)     빈 나뭇가지에  김 구 연       빈 나뭇가지에   구름 한 조각 걸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하얀 눈 몇 송이 앉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뾰쪽뾰족 초록잎 돋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빨간 열매 달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한 마리 산새 쉬었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빈 나뭇가지에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빈 나뭇가지에 왔다가 떠나가는 것을 '걸렸다, 앉았다, 돋았다, 달렸다, 쉬었다'로 말을 바꾸어 나타낸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시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표현을 달리 해야 좋은 문장이 됩니다.   만약 이것을 모두 '앉았다 가고'로 표현했다면 '구름 한 조각 앉았다 가고' '초록잎 앉았다 가고' '빨간 열매 앉았다 가고' '한 마리 산새 앉았다 가고' 로 되어 참으로 지루하고 멋없는 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김종상)     성에 김 구 연             발이 시려운데         하얀 이를 드러내         네가 웃고 있구나.           유리창에         어룽지는         마음의 그림자.           누군가 창 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보니 그게 아니라 유리창에 성에가 낀 것이었지요.   모른 척 다시 공부를 하다 보면 또 누군가의 표정이 느껴지는 걸 어쩐답니까.   저 추운 밖에서 하얗게 웃고만 서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성에의 모양새를 연민 어린 마음의 만남으로 읽은 김구연(1942~) 시인의 솜씨가 볼 만하군요. (박덕규)     아기 염소 김 구 연      어리고 어린 것이   흰 두루마기에 딸기코   하얀 수염을 기르고     매애애, 매애애……   뒷짐지고 할아버지   헛기침 흉내내고     부끄러운 것도 몰라   우리 동네 아기 염소   땅꼬마 영감님.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코가 빨갛고 수염이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시나 봐요.   아기 염소를 보니 그런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기 염소도 코가 빨갛고 수염이 하얗습니다. 게다가 매애매애 합니다. 그래서 어린 것이 할아버지 흉내를 내다니 부끄럽지도 않니 하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 둘레에는 이렇게 서로 닮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김종상)     방아깨비  김 구 연          "시집 갈래, 장가 갈래?"      방아깨비를 잡아쥐고      아이들이 놀려댑니다.        방아깨비는 알아들었는지      끄덕끄덕 끄덕끄덕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겠다고.           키를 잰다 김 구 연      벽 기둥에   자를 만들어 놓고   키를 잰다.     날마다 날마다   형제들이.     그것도   재어 보았니?   생각의 키.              시는 징검다리와 같습니다. 낱말의 돌멩이를 몇 개만 놓아도 훌륭한 길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적은 말 속에 많은 생각을 담아내야 합니다.   '그것도 재어 보았니? 생각의 키' 라는 말은 짧지만 참으로 많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키가 자란 만큼 생각도 자라야 합니다. 덩치는 커다란데 생각이 어리다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김종상)          김 구 연(金丘衍) 1942년 8월 9일 ∼  본명 : 김치문 서울에서 태어남. 영신고등학교 졸업. 1971년 '월간문학' 신인상 소년소설부문에 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함. 1974년 동시 외 4편으로 제2회 새싹문학상(1974)을, 1976년 동화 으로 제9회 세종아동문학상(1976)을, 1978년 동시 연작으로 제13회 소천아동문학상(1978)을, 1986년 제5회 인천시문화상((1986)을 수상함. 동화집 : 자라는 싹들(세종문화사, 1976)             마르지 않는 샘물(세종문화사, 1981)             점박이 꼬꼬             누나와 별똥별             다람쥐는 도토리를 먹고 산다 소년소설집 : 붉은 뺨 사과 얼굴(그래그래, 2003. 6) 시집 : 꽃불(한진문화사, 1974)          빨간 댕기 산새(강경문화사, 1976)          분홍 단추(미문출판사, 1982)          가을 눈동자(미문출판사, 1983)          아이와 별          나무와 새와 산길          별빛과 눈물(동아사, 1991. 4)           은하수와 반딧불(자료원, 1999)          별이 된 누나(자료원, 2002. 4. 6) 외    
30    김마리아 동시 바구니 댓글:  조회:1310  추천:0  2017-05-02
  가을 들판  김마리아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가 발름발름.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이 반들반들.    '아, 먹고 싶다.' 가을 들판에서 메뚜기와 참새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벼와 수수가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는 발름거리고,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은 반들거리겠지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야 우리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거나 냄새 맡으면 자꾸 코가 벌름거리고, 눈길이 가는 걸 경험했으니까 알지요.   시인의 코와 눈은 예민하고 밝아야 한답니다. (박두순)       강아지 길 찾기  김마리아        대문 나서서    골목길에서    오줌 쨀끔.      나무 밑 지나다가    쨀끔.      횡단보도 건너다가    쨀끔.      약국 앞 지나다가    또 쨀끔.      ―뭐 하는 거야    이 녀석.      ―비밀이야,    집에 갈 때    필요해. (2006년 여름『새싹문학』제96호)     괄호 안에 말  김마리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친구에게         따지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꼭꼭 묶어 둬야지.           "미진이는 옷이 더러워"         짝에게 귓속말하고 싶을 때         괄호 안에 꽁꽁 묶어 둬야지.           "엄마, 형아가 군것질했어요"         고자질하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꽉꽉 묶어 둬야지.           밖으로 못 나가게.         내 밥 김 마리아        밤나무에서    톡, 알밤이 떨어진다.      알밤에 앉았던    햇빛도 함께    땅으로 떨어진다.      순간, 땅이 환해지고     알밤의 사방에     길이 생긴다.      환한 알밤으로    다람쥐가 달려간다.    ―오, 내 밥 (2004년 10월『아동문예』)    알밤이 떨어질 때 햇빛도 함께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참 놀랍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다람쥐나 햇빛이나 알밤이 모두 제가각 따로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모두가 정다운 이웃으로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걸 이 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실 속에 들어있는 삶의 비밀, 이건 누구나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문삼석)     꽥꽥 꽉꽉 김마리아         진천장 5일장     고무통 안에     오리 새끼들     꽥꽥     동무 밀치고     밖을 내다보네.     꽉꽉     동무 등을 밟고     바깥 세상 보네.     꽥, 밀치고     꽉, 밟고     꽥꽥, 꽉꽉     눈버둥     발버둥이네. (2007년 봄 『오늘의 동시문학』)    동심의 본모습이란 바로 요란한 오리 떼를 상기시킨다.   수다 떨고 발랄하며 좌충우돌하면서 세상을 배워가는 하나의 체험 학습장의 오리 떼들인 것이다.   '꽥꽤, 꽉꽉' 의성어가 함의하는 바는 역동적 동심이 벌이는 동심 행진이라 하겠다.   괜히 어려운 시도 아니고 아무리 읽어도 느낌이 없는 그런 외톨이 시류와는 차별화된 동심 현장을 절묘하게 살린 시이다. (윤삼현)       노랑 바다  김마리아   유채꽃 피는 밭에 가면   노랑 바다를 만난다.     노랑 바람   노랑 햇살   노랑 나비가 춤을 추고   여기서는 마음도   노랑색이다.     노랑 아이가   노랑 모자를 쓰고   노랑 배를 타고   노랑 바다에서 노랑 노래를 부른다.   ―랄랄라   노랑 바다가 출렁인다.     어때,   유채꽃 노랑 바다   물들고 싶지 않니?   늦게 피는 꽃  김마리아           엄마,      저 땜에 걱정 많으시죠?      어설프고 철이 없어서요.        봄이 왔다고 다 서둘러      꽃이 피나요?      늦게 피는 꽃도 있잖아요.        덤벙대고      까불고 철없다고      야단치지 마세요.        나도 느림보      늦게 피는 꽃이라면      자라날 시간을 주세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철들 시간이 필요해요.   말하는 손, 잘 듣는 눈 김 마리아       선생님 손이 말하면   아이들 눈이 듣는다.     아이들 손이 말하면   선생님 눈이 듣는다.     이 교실에서는   손이 못하는 말 없고   눈이 못 듣는 말 없고     말 잘 하는 손   잘 알아듣는 눈     손이 입이 되고   눈이 귀가 되고 (2007년 3·4월 『아동문예』)    이 시는 소리없이 통하는 수화하는 선생님과 어린이들, 농아학교 교실 풍경이 그려졌다.   특수학교 어린이들,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정경이기도 하다.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알아듣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눈길을 보여준다. (정두리)   봄바람은 요술색깔  김마리아     진달래 피는      골짜기에 가 봐     봄바람은 분홍색이야.     어?     울타리에 있는     개나리는 노랑바람을     먹었나 봐.     아니?     밭두렁에     아기 쑥은     초록바람을 마셨어.     아롱아롱 봄바람은     요술생각을 나누어주나 봐.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손이 저울이야 김 마리아         가게 아줌마     한 줌 두 줌     봉지에 담은 나물을     저울에 올립니다.       "야, 딱 맞네     손이 저울이야."       "하루아침에     되는 게 어딨겠어."       매일매일 같은 일 하다 보니     몸에 배인 거지.       손이 무게를 알기까지.     씨앗들이 먹을 밥 김 마리아        풀 한 켜 깔고    닭똥 한 켜 넣고      풀 한 켜 덮고    소똥 한 켜 넣고      짚 한 켜 덮고    돼지똥 한 켜 넣고      꾹꾹 눌러    쌓아 놓은 거름더미.      비 온 뒤    김이 난다, 모락모락      밭에서    씨앗들이 먹을    따뜻한 밥.   우렁각시 되던 날 김 마리아       앞치마를 입고   오늘은 엄마 대신   설거지를 하는 거다.     달그락   덜그덕     -아이 아파 살살 해-   -미안해, 깨끗이 목욕시켜 줄께-     밥그릇, 국그릇을 닦는다.   접시가 미끄러진다.     소매가 젖고   앞치마도 젖었다.     행주를 꼭 짜서   싱크대 닦고 설거지 끝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   고개를 갸웃둥     -우리 부엌에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집을 나갈 때 시간이 없어서 물통에 그대로 담가둔 그릇들이 말끔하게 닦여 있더래.   '엄마가 없는 사이 설거지를 다 하고. 예쁘기도 하지.'   엄마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우리 부엌에 우렁각시가 다녀갔나?"라고 말을 했다지 뭐니!   '우렁각시'가 뭔지 알아?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그런 낱말은 나와 있지 않구나.   아무튼 착한 일은 우렁각시처럼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야.   그렇게 남모르게 하는 것이 더 값진 거란다.(김영순)     키를 낮출게 김마리아        길을 걷는데    발가락이 간지럽더라구.      '서서 보지 말구    앉아서 바라봐 줘, 응?'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말 작고 예쁜    얼굴들이 꼼지락거리고    몸을 흔들면서    말을 하고 있었어.      어디서 본 듯한    이름 모를 풀꽃들이었어.      개미 가족이 놀러오고    벌이 소곤거리고 있더구나.      그래, 다음부터    너를 만날 때는    키를 낮출게.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그냥 서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 풀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 볼품도 없고 쓰임새가 별로인 꽃일수록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키를 낮추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런 풀꽃일수록 커다란 풀밭을 이루고 있는 주인공들이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둘레에는 벌이나 나비는 물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벌레들이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지요. 세상에는 크고 화려한 꽃들보다 이처럼 작고 볼품없는 풀꽃들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풀꽃들만 그런 건 아닐 테지요. 사람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어둡고 추운 자리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작은 풀꽃들처럼 우리들의 눈 키를 낮춰야 볼 수가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을 보기 위해 눈을 위로 향하는 만큼 그 맞은편에 있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게도 눈길을 돌리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사랑의 모습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문삼석)   튼튼한 끈 김 마리아        엄마와 나 사이    보이지 않는 끈.      엄마가 멀리 계시면    내가 당기고      내가 멀리 있으면    엄마가 당기는      엄마와 나 사이    튼튼한 끈.      자면서도 당기는 끈    늘    팽팽하다.    엄마의 사랑은 끈입니다.   절대 끊어지지 않으면서도 늘 팽팽하게 묶여 있는 끈,   그 끈을 끓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겠지요. (문삼석)     흙 먹고 흙똥을 싸고  김 마리아      흙속에 사는 지렁이  종일 땅을 깨우는 지렁이    흙 먹고  흙똥을 싼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땅속을 기어다닌다  느릿느릿.    구불구불  지렁이가 지나간 자리  ―아, 잘 잤다.  땅이 일어난다  꿈틀꿈틀.    지렁이가 무얼 먹고 사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아니, 지렁이 같은 것에 대해선 관심조차 갖지 않은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지은이는 지렁이가 흙을 먹으며, 흙똥을 싸는 것도 보았고, 느릿느릿 땅속을 기어다니기 때문에 땅이 꿈틀꿈틀 일어서는 것도 보고 있습니다.   땅이 일어서고 숨을 쉰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바로 땅이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지요.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천천히 죽어가고 있던 땅을 지렁이들이 살려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은이의 눈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징그럽게만 보이던 지렁이가 어쩐지 정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문삼석)         김 마리아 1956년 울산 방어진에서 태어남. 여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제135회 '아동문예' 문학상 동시 당선. 동시집 : 빗방울 미끄럼틀(아동문예사, 2001. 5. 25)             구름씨 뿌리기(21문학과문화, 2004. 10. 25)    
29    <학교에 관한 시 모음> 하청호의 '무릎 학교' 외 댓글:  조회:1353  추천:0  2017-04-23
하청호의 '무릎 학교' 외 + 무릎 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칠판도 없고  숙제도 없고  벌도 없는  조그만 학교였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걱정이 없는  늘 포근한 학교였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귀한 것들을  이 조그만 학교에서 배웠다.  무릎 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어머니의 무릎  오직 사랑만이 있는  무릎 학교였다.  (하청호·시인, 1943-)  + 수업 일요일 저녁 텅 빈 운동장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렇지, 비어 있음이 늘 가장 많은 걸 가르치지  (김진경·시인, 1953-) + 산 위에서 보면 산 위에서 보면 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쏙 얼굴을 내밀지요 장난감 같은 교문으로 재조잘 재조잘 떠밀며 날아 나오지요 (김종상·아동문학가, 경북 안동 출생) + 우리 학교 옆에 있는 할아버지 학교 1교시 국어시간 창 밖을 내다보면 삽으로 물꼬를 트고 2교시 수학시간에 내다보면 삽으로 논둑을 다듬고 쉬는 시간에 맞춰 소주 한 잔에 멸치 안주 드시는 할아버지 우리 학교는 매일매일 준비물이 바뀌는데 할아버지네 학교는 준비물도 간단하다 삽 한 자루에 소주 한 병이면 그날 공부 끝이다. (박혜선·아동문학가, 1962-) + 까치네 학교  아무도 넘겨다보지 않는 돌담 지나  아무도 건너지 않는 징검다리 건너  하얀 이름표 달고  까치가 학교에 갑니다.  늦어도 기합 주는 선생님 없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 없는  학교에 갑니다.  바람 버스를 타고 씨이잉-  미루나무가  수위 아저씨처럼 서 있는 학교  그런데 아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반기던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깨진 창문으로 나뭇잎 소리만 들락거리고  책상들이 조용조용 앉아 있는  햇빛만 지키고 있는 학교  까치 혼자서 다니는 학교  푸드득- 달리기를 해 보고  농구 골대에 앉아 까악까악 심판도 보지만  아이들이 없는 운동장은  토옹 재미가 없다.  (김자연·아동문학가, 전북 김제 출생) + 비결이 뭘까요? 햇빛 선생님 햇빛 학교엔 책도 숙제도 시험도 없네요. 고함 한 번 치지 않는데 회초리 한 번 들지 않는데 온갖 꽃 나무 어린 싹들 순하디 순하게 자라네요 때 되면 열매 맺어 서로 나누며 제 몫을 하네요 비결이 뭐예요? (현경미·아동문학가) + 수업 마지막 끝종이 울리면  수업 마지막 끝종이 울리면  나는 책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는다.  오늘 외운 시 한 편  오늘 배운 노래 한 곡  오늘 배운 풀꽃 이름으로  불룩한 책가방.  교실 창 밖을 보면  벚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기다리렴.  버찌처럼 조그만 새야,  오늘 배운 노래 가르쳐줄게.  기다리렴,  들길의 풀꽃들아,  오늘 배운 너희들 이름 알려줄게.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 이제 고작 열흘 내일도  학교 와야 해요? 모레도 학교 와야 되나요? 옷자락 붙잡고 재잘재잘 1학년 저 철부지들을 무슨 수로 이해시키나요 10년도 넘게  다녀야 할 학교를 너희들은  이제 고작  열흘이라고. (공재동·시인, 1949-) + 청소 시간이 되면 수업이 끝나고 우당탕탕 청소 시간이 되면 책상은 무슨 잘못을 했나 의자를 들고  벌을 서지 아니지 벌을 서는 게 아니지 수업 시간 내내 엉덩이를 받쳐 주느라 힘든 의자를 책상이  또 하나의 의자가 되어 잠시 앉혀 주는 거지 (김용삼·극작가, 1966-) + 학교와 집 사이  학교와 집 사이는 후다닥 걸어서 가면 단 오분 거리 하지만 나는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수학은 영재수학 국어는 독서논술 영어는 웰컴 투 영어나라 컴퓨터 워드 3급 태권도 품세 심사 학교와 집 사이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김은영·아동문학가, 1964-) + 선생님 선생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가진 것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선생님! 그 한 마디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선생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평생을  평생을 묻습니다.  (황팔수·아동문학가, 경북 의성 출생) + 찐드기 쌤 쫀드기 쌤 아이들은  내 이름을 갖고 논다. 같이 놀아 줄 때는 맛있는 쫀드기 과자처럼 좋다며 쫀득쫀득 쫀드기 쌤이라 하고 이제 공부하자고 하면 징그러운 진드기 벌레처럼 싫다며 찐득찐득 찐드기 쌤이라고 한다. 교장 선생님이나 후배 선생님 앞에서는 내 체면도 좀 생각해 주면 좋으련만 쫀드기 쌤, 찐드기 쌤 제 기분대로 부른다.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쫀드기나 찐드기로 살아야 하는데 쫀드기는 참을 수 있지만 찐드기는 정말 싫다. (최종득·아동문학가) + 서울로 간 철이 멀리 서울로 전학을 갔다. 꽃밭에 잔디밭에 같이 물 주던 철이가 마음속에 얼굴만 사진처럼 찍어 놓고 교실 구석구석 목소리만 남겨 놓고 보지 말자 보지 말자 다짐만 했지 몰래 돌아다본 철이 자리 보이는구나 보이는구나 환하게 웃는 얼굴 가지런히 빛나는 하얀 이가 국화꽃 향기는 교실에 가득한데 수없이 떠오르는 철이 철이의 얼굴.  (이동식·아동문학가) + 졸업식장에서 엄마가 존다 엊저녁 늦도록 마늘 깐 엄마가 존다 누나 상 받는데 엄마만 못 본다 4천원 벌려고 마늘 더 까다가 제대로 잠 못 잔 엄마 다른 엄마들 박수소리에 놀라 눈떴다가 끄으덕 끄으덕 다시 존다. (유미희·아동문학가)  
28    크리스티나 로제티 동시 바구니 댓글:  조회:1423  추천:0  2017-04-16
크리스티나 로제티 동시 모음   달님  / 크리스티나 로제티 달님, 고단하세요? 안개의 면사포로 싸감은 해쓱한 얼굴. 동에서 서로 하늘을 재며 삼백예순 날, 쉬시지 않네. 밤이 오기 전에는 종이처럼 희고. 밤이 밝기 전에 아주 꺼져 버리고. 대답 네 가지  / 크리스티나 로제티 무거운 것은 모래하고 슬픔. 짧은 것은 오늘과 내일. 이내 무너지는 것은 꽃과 젊음. 깊은 것은 그럼 뭐니? 바다하고 진리지. 더 아름답다  / 크리스티나 로제티 강 위로 달리는 보오트 바다 위로는 돛단배. 그러나 하늘에 달리는 구름 구름이 배보다 더 귀엽다. 강에는 다리가 걸렸지만 아무리 다리가 아름답지만, 하늘에 걸린 무지개다리 높은 나무보다 더 높게 하늘과 땅 사이 길을 놓은 무지개다리가 더 아름답다. 뛰어다니는 양  / 크리스티나 로제티 뛰어다니는 양 뛰어다니는 아기 노란 꽃 피는 목장에서 논다. 새파란 하늘 부드러운 공기 들에는 햇빛 빛나고, 들길에는 그늘 덮이고. 뭣이 뭣이 빨갛니?   / 크리스티나 로제티 뭣이 뭣이 빨갛니? 샘가의 장미꽃. 뭣이 뭣이 붉으냐? 밭가운데 양귀비. 뭣이 뭣이 파랗니? 구름 동동 저 하늘. 뭣이뭣이 하얗니? 햇볕에 헤엄치는 고니. 뭣이 뭣이 노랗니? 익은 배가 노랗지. 뭣이 뭣이 초록빛? 이름없는 꽃이 피는 풀잎새. 아아 뭣이 뭣이 보라빛? 여름 저녁 떠가는 구름이 보라빛. 뭣이 뭣이 귤빛이지. 그건 귤나무의 귤이 귤빛이지. 바람  / 크리스티나 로제티 누가 바람을 보았답니까? 너도 나도 못 본 걸. 웬걸, 나뭇잎을 흔들며 바람은 저기 지나가지 않니. 누가 바람을 보았답니까? 너도 나도 못 본 걸. 웬걸, 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바람은 저기 지나가지 않니. 어린 양  / 크리스티나 로제티 엄마가 없는 아기양이 혼자 외롭게 언덕 위에. 아무리 부들부들 떨고 있어도 아무도 다정하게 품어주지 않겠지. 정말 가엾은 저 어린 양을 언덕까지 달려가서 잡아와야지. 데려다가 따뜻하게 기뤄줘야지. 힘세고 씩씩하게 될 때까지. 엄마와 아기  / 크리스티나 로제티 엄마 없는 아기와 아기 없는 엄마를 한 집안에 모아서 정답게 살게 하자. 제비 / 크리스티나 로제티 날아가라, 날아가라. 바다를 넘어. 해님을 좋아하는 제비야, 이제 여름도 다 지났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날아서 오라. 여름을 데리고 돌아오라. 해님도 가지고 오너라. ……것  / 크리스티나 로제티 꿀벌이 하는 일은 꿀을 따오는 것.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돈을 벌어오시는 것. 엄마가 하시는 일은 한 푼 남기잖고 돈을 쓰시는 것. 아기가 하는 일은 한 방울 남기잖고 꿀을 먹는 것. 꿈 / 크리스티나 로제티 ―꿈 속에서 나는 작은 부엉이와 파란 새를 잡았었지. ―그렇지만 이 세상에선 너는 도저히 그런 새를 못 잡는다. ―꿈 속에서 나는 해바라기를 심었지. 핏방울처럼 새빨간 꽃이 폈어. ―그렇지만 이 세상의 저 햇빛 아래서는 그런 해바라기꽃은 피지 않는다.
27    외국동시 바구니 댓글:  조회:2208  추천:0  2017-04-16
외국동시 모음 숙제 기계 / 셸 실버스틴   숙제 기계, 오 숙제 기계 여태껏 본 것 가운데 가장 완벽한 발명품 숙제를 넣고 은화 하나를 집어넣으세요 그러곤 스위치를 탁 누르면 단 십 초 안에 숙제가 끝나서 나옵니다 대단히 빠르고 말끔하게 자, 여기 나왔습니다 9 더하기 4의 답은 3입니다 3이라고? 어이쿠 생각했던 것만큼 완전한 건 아닌 모양이군   비눗방울 / 장콕토   비눗방울 속에 뜰은 들어갈 수 없어 둘레를 빙빙 돌고만 있다.   햇빛 /  린 우씨엔   햇빛이 창문을 기어오르고 있다. 햇빛이 꽃잎에 앉아 웃고 있다. 햇빛이 시냇물을 따라 흐르고 있다. 햇빛이 엄마의 눈 속에서 빛나고 있다.   유리창 / 레몬 라디게(프랑스)   정월달이 되었어요. 무섭게 추워졌어요. 나가 놀 수 없게 되었어요.   하지만 추위는 유리창에다 얼음으로 그림을 그려 보이며 나를 달래 주지요.   강 / 다니카와 슌타로     엄마 강은 어째서 웃고 있어? 태양이 강을 간지럽히기 때문이란다   엄마 강은 어째서 노래하고 있어? 종달새가 강이 부르는 노래를 칭찬했기 때문이란다   엄마 강은 어째서 차갑지? 언제인가 눈(雪)의 사랑을 받았던 추억 때문이란다   엄마 강물은 몇 살쯤 됐어? 언제 보아도 젊은 봄과 같단다   엄마 강은 어째서 쉬지 않아? 그건 말이야 바다인 어머니가 강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란다.     조금  / 엘리자베드 노벨 (영국 )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죽 맛이 달게 되네   비누를 조금 가지고도 내 몸이 깨끗이 되네   햇빛을 조금 받고도 새싹이 자라네   조금 남은 몽당연필로 책 한 권을 다 쓰네   조금 남은 양초 하늘하늘 춤추는 불빛 아무리 작더라도 불빛은 즐겁지   조금 남은 웃음이라도 웃음은 이상하지 조금 웃는 아이 웃음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지   꼬마 요정 / 존 켄드릭 뱅스 / 장경렬 옮김   꼬마 요정을 한번 만난 적이 있었지요 백합이 발마에 한들거리는 골짜기에서 그에게 왜 그렇게 자그마한가 물었지요 그리고 왜 키가 자라지 않느냐고요   꼬마 요정은 얼굴을 찡그리곤, 눈을 들어 나를 뚫어지게 보고 또 보는 것이었어요 "나에겐 이 정도의 크기가 알맞아." 그가 말했지요 "너에겐 너 정도의 크기가 알맞듯이!"    존 켄드릭 뱅스 ( 1862 - 1922 )  미국의 유머 작가. 잡지 편집인   싸움 뒤 /  가네코 미스즈 ( 1903 - 1930 )   외톨이가 되었다 외톨이가 되었다 멍석 위는 쓸쓸해   난 몰라 그 애가 먼저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쓸쓸해   인형도 외톨이가 되었다 인형을 끌어안아도 쓸쓸해   살구꽃이 폴폴 포르르 멍석 위는 쓸쓸해       * 가네코 미스즈  스물 여섯에 요절한 일본 여류 동시인  동시집 <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됨   모두를 좋아하고 싶어 /  가네코미스즈                   나는 좋아하고 싶어 무엇이나 어떤 것이나 모두.   파도, 토마토도, 생선도, 남김없이 좋아하고 싶어.   우리 집 반찬은 모두 어머니가 만드신 것.   나는 좋아하고 싶어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라도 모두.   의사라도, 까마귀라도, 남김없이 좋아하고 싶어.   세상 것은 모두 하느님이 만드신 것.   * 가네코 미스즈 ( 1903 - 1930 )는 불우하게 살다 죽은 동시인입니다. 집안에서 정한 남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았으나 남편과의 불화와 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스물 여섯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이 시처럼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의 삶에 가슴이 아픕니다   봄날 아침 /  브라우닝   때는 봄 하루는 아침 아침 일곱 시 언덕엔 진주 이슬 종다리 높이 날고 달팽이, 가지에 오른다 하나님 하늘에 계시니 세상 모든 일이 편안하다   2월의 노래 /  가즈에 ( 1929 -  )    2월은  해님의 둘째 아들  이름은 지로 군  꼬마.   장대같이 큰  형의 그늘 밑에 숨어서  새침떼기처럼 보이지만  지로 군은   주머니 속에서 꼬옥 쥐고 있다 . 새 날개나 꽃봉오리나 온갖 씨앗들을 무럭무럭 키워내는 검은 흙을-   어서 와라 지로 군은 뒤돌아보며 귀여운 3월인 누이동생을 부른다. 어서 와라, 이쁜 것을 줄 테니.   * 지로는 일본인들이 둘째 아들에게 붙이는 이름   조그만 바람  / 다니 마사루   조그만 바람이 어떻게 됐니? 풀 속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버렸단다   조그만 바람이 어떻게 됐니? 풀벌레한테 길을 물어 간신히 밖으로 나왔단다   조그만 바람이 어떻게 됐니? 큰 바람에게 업혀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단다   진눈깨비 /  히로스케   진눈깨비 몰아치는 벌거숭이 산   산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우리 우리 학교가 보였습니다    청소를 다 하고서  잘 잠그고 온 창문이  조그맣게  보였습니다    진눈깨비 몰아치는  벌거숭이 산  아마도 내일 눈이  올 것 같아요   / 폴리네르   삼나무는 뾰족 모자를 쓰고 있지요 기다란 옷을 걸친 모양은 수도하는 신부님을 닮았지요 시냇가에 가득 찬 보트처럼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잘 잤니?'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지요 나이 많은 삼나무는 시인이지요 아름다운 시를 짓지요 삼나무는 그 시를 듣고서 ( 좀 있으면 우린 별님보다도 더 빛나지 >    하고 생각하지요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오면 삼나무들은 희디흰 솜 눈옷을 입고서 온 몸에 별을 달지요 그날을 생각하면서 꿈꾸듯 기다란 가지를 뻗치고 있지요 삼나무는 노래 선수이지요 가을밤엔 바람이 불 때마다 크리스마스 노래를 연습하지요 그뿐인가요 삼나무는 또 날씨 박사이지요 천둥하는 하늘을 쳐다보며 내일 날씨를 생각하고 있지요   다친 데 / 오 야소   자꾸 자꾸 씻어도 자꾸 피가 나 자꾸 자꾸 을어도 자꾸 아파   혼자 다쳐 피가 나는 새끼손가락 . 다른 다른 손가락도 새파라래져서 아주 걱정스러운 듯 들여다보네   별과 민들레  /   가네꼬 미수주   파란 하늘 그 깊은 곳 바다 속 고 작은 돌처럼 밤이 올 때까지 잠겨 있는 낮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꽃이 지고 시들어 버린 민들레는 돌 틈새에 잠자코 봄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 튼튼한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감상   보이는 것 밖에 볼 줄 모르고 쓸 줄 모른다면 무슨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하기야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개념적인 동시를 쓰는 이들도 있으니....동심적 통찰이 있는 시.     *가네꼬 미수주 1903 - 1929년 / 西條八十(샤이조오 야소)에게 젊은 동요 시인의 거성이라고 절찬을 받았으나 2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 1993년 4월 조일신문을 통하여 재발견되어 현재 사랑받는 동요시인으로서 그의 작품이 널리 읽히고 있다. 작품 500여편. 탄생 백주년을 맞아 고향에 도서관이 생겼고 영화로 제작되었다. 텔레비전에서 그의 일생에 대해 드라마로 방영했다는데 나는 못 봤다. 그런데 집 아이가 가네꼬를 알기에 네가 어떻게 아느냐 했더니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고 했다. 가네꼬가 어떻게 죽었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을 잘못 만나 매독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70년이 지나서 일본에서는 가네꼬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내가 여기 저기서 모은 가네꼬의 시가 있는데, 시를 읽으니 참 좋아서 혼자말로 가네꼬! 당신의 시처럼 청순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동심의 시를 한번 써 보고 싶구나 했다. 가네꼬! 일찍 고인이 되어서 안 됐구나. 가네꼬!  당신의 시는 70년이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싱싱하고 어제 쓴 것 같구나. 이제 나에게 동요나 동요시하면 가네꼬! 당신이고 당신은 나의 스승이다. 그런데 가네꼬! 나는 당신 흉내도 못내겠구나   웃음 /  가네꼬미수주   그것은 아름다운 장미색이고 양귀비씨보다도 작고 흩어져 땅에 떨어졌을 때 확 불꽃이 터지듯이 큰 꽃이 열려요.   만약 눈물이 흘러내리듯 이런 웃음이 흘러내리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감상 웃음을 사물을 통해 비유적으로 구체화 시켜 보인 미적 감각과 그런 웃음을 그려 보는 동심의 천진함이 잘 드러난 시라고 하겠다.   ……것 / 티나 로제티 꿀벌이 하는 일은 꿀을 따오는 것.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돈을 벌어오시는 것. 엄마가 하시는 일은 한 푼 남기잖고 돈을 쓰시는 것. 아기가 하는 일은 한 방울 남기잖고 꿀을 먹는 것 눈동자 / 가즈꼬 미수주   모두의 눈동자는 마법 항아리야   탱자나무 울타리도 길거리도 마차도 말도 마부도 메밀밭도 오동나무도 멀리 초록빛 저 산도 그리고 하늘의 구름까지도 자그맣게 되어 모두 들어간다   까만 눈동자는 마법 항아리야   *감상  비유적 발견이 빼어난 동심의 시라고 해야 할까?   무지개 /  워즈워스(영국 / 1770 -1850)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이 설레요.   내가 어릴 때도 그랬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마찬가지예요. 쉰 살, 예순 살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을 거예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하루하루가 자연 속에서 늘 함께 있고 싶어요.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노래 /  가네꼬미수주   “아빠 가르쳐 줘요” 저 아이는 응석 부리고 말하고 있었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뒷길에서 ‘아빠’ 살며시 흉내 내봤더니 왠지 누구에겐가 창피하다   생울타리의 하얀 무궁화 웃는 듯해.   그림자 / 로버어트 스티븐슨 언제나 나한테 꼭 붙어다니며 아침부터 밤까지 떠나지 않는 그림자 그림자 내 그림자.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발끝에서 머리꼭지까지 참말로 나를 고스란히 닮았다. 언제나 내가 잠자리에 들 때면 제가 먼저 뛰어들어 쿨쿨 자버린다. 그 자가 자라는 것은 정말 이상하구나. 나처럼 천천히 크지를 않고 공이 껑충 뛰어 오르듯 갑자기 성큼 커버린다. 그런가 하며는 때때로 쬐그맣게 쬐그맣게 작아지고, 이웃 아이들과 재미나게 노는 것을 모르는 주제에 온갖 짓을 다해서 시시대며 히히대며 나만 괴롭힌다. 그런가 하며는 아주 겁보. 언제나 내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할멈 앞에서 그 자의 하는 짓을 흉내낸다면 다들 나를 놀릴 거야. 이튿날 해님이 아직도 뜨지 않는 이른 아침에 꽃밭에서 빛나는 이슬 아기를 구경하려고 뜰로 갔을 때 게름뱅이 잠꾸러기 그림자는 내 침대 속에 혼자 남아서 쿨쿨 자고 있었다   하늘이 분주하다  / 가즈꼬 미수주   오늘 밤 하늘이 분주하다 구름이 마구 달려간다   이지러진 반달과 부딪쳤는데 그것도 모르고 달려간다   아기구름 허둥지둥 거치적거린다 큰 구름이 뒤쫓아서 달려간다   이지러진 반달도 구름 속에 요리조리 요리조리 달려간다   오늘 밤은 하늘이 분주하다 정말 정말 분주하다   *감상 묘사동시, 혹은 회화적 표현의 동시라고 해야 할까? 현상을 보는 '응시'가 뛰어나고 동심적 표현 또한 사실적이어서 풍경이 머리에 또렷하게 그려진다.   빨리 자거라 타이페이  /린우씨엔(林武憲   12시가 다 되었다, 타이페이 아직도 빨강 파랑 눈을 부릅뜨고 있구나   떴다 감았다 그러다 잽싸게 뜨고   피곤한 것 같구나 자고 싶은 것 같구나   일찍 자거라 조용히 자거라.   *감상 도시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네온사인의 불빛들을 빨강 파랑 눈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타이페이를 서울로 바꾸어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  에. 바야르마 (몽골)   아버지께서 제게 이렇게 물으셨지요. “우리 아들은 말치기가 될 테지?”라고요. 수말인지 암말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제가 말치기가 되어서 어떡하겠어요.   어머니께서 제게 이렇게 물으셨지요. “우리 아들은 의사가 될 건가?” 라고요. 아이구, 이것도 아주 무서운 일인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대답하자 우리 식구들이 모두 물었어요. 그러면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아버지 말씀대로 말치기도 어머니 말씀대로 의사도 되지 않을 거예요. 키가 아주 크시고 떡 벌어진 가슴에 무성한 희디흰 수염을 가지신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나는.    *감상  이 시에는 천진한 대화의 요체가 있다. ('시평' 2006년 봄호에서)   시골  /가즈꼬 미수주   나는 시골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 조그만 귤이 귤나무에 황금빛으로 익어서 매달려 있는 것을   또 무화과가 아직 애기여서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그리고 보리 이삭에 바람이 불어와서 종달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나는 가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 종달새가 노래하는 것은 봄이겠지만 귤나무에는 언제 쯤 어떤 꽃이 피어날까?   그림에서만 보아 온 시골에는 그림에는 없는 것들이 수두룩 수두룩 있을 거야   *언젠가 한번 본 시골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願望을 아이다운 마음으로 표현한 시. 아이가 쓴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겠지. 지금부터 80년 전의 동요시인이 쓴 작품이라 가즈꼬의 작품에선 동요적 발상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동요시는 형식에서 외형률이 중요. 우리나라에서 동요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애석한 일. 그렇게 된 까닭은 대체로 詩性이 없는 노래 가사 수준의 짝짜꿍 동요( 자수 맞추기에만 그친)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동요시? 써보면 만만한 게 아니다. 시를 제대로 알고 여기에 동심을 잘 결합시켜야 동요시를 쓸 수 있다.     비 /나카무라 카요코   아무도 없는 공원에 나 혼자 서 있다.   비가 소리를 내며 땅을 때린다.   거저 말없이 착실하게 서 있는 계수나무   비에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말없이 있다.   나는   맨 위, 맨 아래 / 알랜 알렉산더 밀른(영국)   아가 아가 어디 가니? 저기 저기 저 언덕 꼭대기까지.   자꾸자꾸 올라가서 맨 위에 닿을 때까지 나는 나는 자꾸 자꾸 올라 갈 거야.   아무 것도 볼 게 없는데 그랬다간 어쩔래? 그럼 다시 맨 아래로 내려오지 뭐.   *감상 하하하하하! 그래 맞아! 다시 내려 오지 뭐.   귀 / 장콕토(프랑스)   빨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구름 뚱뚱보   /  미리암 크라아크 포터   「애로리더」가 냄비에 빵을 구우니 빵은 붕긋붕긋 부풀었습니다. 「애로리더」가 볼일을 보러 거리로 거리로 나간 새 빵은 냄비에서 둥실둥실 날아서 날아서 가버렸습니다. 「애로리더」가 저녁에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빵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 뭉실뭉실한 구름이 되었습니다   꼬부랑깽깽  /마더 구우즈   꼬부랑깽깽이 아저씨가 꼬부랑깽깽이 길을 가다가 꼬부랑깽깽이 층층계 아래서 꼬부랑깽깽이 은전 한 닢 주웠네. 꼬부랑깽깽이 모자를 사서 꼬부랑깽깽이 쥐를 잡아 꼬부랑깽깽이 오두막집에서 쥐하고 정답게 정답게 정답게 살았다.   난로 옆에서  /프랑소와 고삐(프랑스)   밤만 되면 난로 옆에서 나는 혼자 생각합니다. 숲 속 어디에서 죽었을 새를. 쓸쓸한 겨울 날 어제도 오늘도 잿빛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가지 끝에서 흔들거립니다.   새들은 왜 겨울이 되면 죽는지 몰라. 하지만 제비꽃이 필 무렵 사월의 들판으로 나와 보아도 조막만한 시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새는 어디 살짝 숨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죽는 걸까요.  
26    숟가락에 관한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1415  추천:0  2017-04-13
+ 딱 한 가지 숟가락 하는 일은 딱 한 가지 하루 종일 놀다가 아침 저녁 잠깐씩 밥과 국을 떠 입에 넣는 일밖에 없다. 그런데 그 일 한 가지가 사람을 살리네 목숨을 살리네 고마운 숟가락 밥숟가락! (엄기원·아동문학가, 1937-) + 숟가락 너는 참 좋은 일만 한다  내 몸에 좋은 것을 넣어 주려고  매일 매일 내 입 가까이  와서는 한 발 들여놓았다가  다시 나가지  아예 쑥 들어왔다가  놀다 가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만 쏘옥 넣어 주고  슬쩍 사라졌다가는  다시 와서 한 입 주고 가지   입맛 없을 때는 먹기 싫은데   꼭 한 입 넣어 주고야 마는 너는  참 대단한 녀석이야  식사가 끝나면 시치미 뚝 떼고  네 자리에  얌전하게 들어가   다음을 기다릴 줄도 아는 넌 역시 멋진 녀석이야 (한선자·아동문학가) + 떡잎   씨앗의 숟가락이다  뜨겁지 않니? 햇살 한 숟갈 차갑지 않니?  봄비 한 숟갈 씨앗의 첫 숟가락이다  봄이 아끼는  연둣빛 숟가락  (조영수·아동문학가)  
25    <음식에 관한 동시 모음> .2 댓글:  조회:1972  추천:0  2017-04-12
 신현득의 '비빔밥은 왜 4천원인가' 외   + 비빔밥은 왜 4천원인가  강원도에 와서 먹는  산나물 비빔밥은 왜 4천원인가?  나물 뜯은 아가씨 수고 값이겠지.  바구니 차고 오대산 산허릴 오르내렸거든  (그뿐 아니야.)  산굽이 오르며 구성지게 부른 노래 값인가?  (그것만도 아니야.)  나물 뜯던 산마루에 뭉게구름이 일었지.  산새소리도 들렸지, 물소리까지  그것이 산나물 맛이 됐거든  꽃 냄새 바람 냄새도 산나물 맛이 됐지.  여기에  참기름, 고추장 한 숟갈씩  곁들여  차림표에 4천원!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 남긴 밥 강아지가 먹고 남긴 밥은 참새가 와서 먹고, 참새가 먹고 남긴 밥은 쥐가 와서 먹고, 쥐가 먹고 남긴 밥은 개미가 와서 물고 간다 쏠쏠쏠 물고 간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고추   할머님이 보내주신 빨간 고추 아침 햇살 가득 담아 보냈어요. 텃밭의 흙내음도 함께 담아 보냈어요. 방학 내내 같이 놀던 짱아의 발자국도 곱게 담아 보냈어요.  (김재용·아동문학가) + 검은 콩  고 작은 몸이 뭐라고  우리 집 식탁 위에 앉아 있다  밭의 고기라고 불리는 넌  도대체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 있는 거니? 까맣고 작은 몸뚱이로  고기의 맛을 보여 준다니  내 입이 다 벌어진다  우리 엄마 나더러  몸에 좋은 콩 좀 먹어라,  매일 노래 부르신다  나는 그 콩 골라내는 데  도사가 다 되었다  마침 콩을 만났으니  담판을 져 보자고  뚫어져라 콩을 노려보았다 고 작은 콩도 나를 노려보았다 콩이 내게 말했다  어쩔 건데? 어쩔 건데?  (한선자·아동문학가) + 떡 곱고 고운 무지개,  무지개가 떠 있는 무지개 떡.  반달 모양에 밤과 콩, 추석에 먹는 송편.  쿵덕 쿵덕 떡메로 친, 쫄깃쫄깃 인절미.  날씬하고 가는 흰색, 떡국에 넣어 먹는 가래떡! 색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른 우리의 떡!  (안미정·아동문학가) + 참깨  "밥맛 없을 때 참기름에 밥 비벼 줘라." 고소한 냄새 시골 할머니 마음 짠 참기름. 엄마도 아끼는 한 방울. "나물 무침 때 깨소금을 듬뿍 넣어 줘라." 짭조름하고 고소한 깨소금. 할머니 사랑 담긴 한 숟갈. 올해도  나눠주신다. 깨 한 되와 땀방울과 할머니  참음을.  (김성규·아동문학가) + 군밤  울잖고  잘 놀면 양반이라면서 삯바느질  들고 나간 엄마가 올 때까지 집 보면서 있으라고 엄마가 화롯불에 묻고 간 밤 세 톨. 엄마가  성황당쯤 한 톨만 먹고 동구 앞 돌다리  또 한 톨 먹고 막내둥이 쌍둥밤은  그냥 두었다 사립문 소리 나면, 엄마하고  냠 냠.   (강청삼·아동문학가) + 다이어트 한 달팽이  -난 너무 뚱뚱해.  달팽이가  다이어트를 시작했대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달팽인  기절을 하고 말았대요.  살을 너무 많이 뺀  달팽인 그만  높은음자리표가 되고 말았거든요.  (김미영·아동문학가, 196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24    <음식에 관한 동시 모음> 정진아의 '라면의 힘' 외 댓글:  조회:1412  추천:0  2017-04-04
정진아의 '라면의 힘' 외 + 라면의 힘 꼬불꼬불 산길 즉석 라면 배낭에 담고 성큼 아빠 발자국 따라 종종종 올라간다. 차오른 숨 힘 빠진 다리 배 속에선 꼬르륵 "아빠, 라면 먹고 싶어." "산꼭대기서 먹어야 더 맛있지." 올라간다 올라가 아빠 주먹만한 라면이 헉헉 지친 나를 산꼭대기로 끌어올린다. (정진아·아동문학가, 1965-) + 상지리 분교 급식 시간  밥 위에 내려앉은 햇살 시금칫국에 퐁당 빠진 바람 함께 먹는다 "휘어이 훠어이." 다랑논에서 새 쫓던 재덕이네 할아버지 경운기 몰고 돌아가는 소리 들으며 밥을 먹는다 경백이네 과수원 사과 익는 냄새는 입가심으로 먹는다. (박혜선·아동문학가) + 메주의 꿈 알몸으로 매달려 있는 메주.  엄마가 음식으로 간 맞추듯  바람도 한소끔  햇빛도 한소끔  다녀가면  짭조름한 맛이 든다.  또르르 또르르  마당을 굴러다닌 콩이  몸을 합쳐 메주로 태어나  겨울을 나고 있다.  메주는   된장이 되어  보글보글 끓는  꿈을 꾼다.  (오순택·아동문학가) + 비빔밥, 이 맛  송송송 썬 김치를 넣어야지요.  콩나물도 한 젓가락,  생채도 담뿍 한 젓가락,  고추장도 빨갛게 한 스푼.  그러고 그냥 비빌 건가?  쨀끔, 고소한 참기름도 넣어야지요.  부벅부벅부벅-  숟가락을 틀어잡고 비비다가  어차, 먹어 보자 한 숟갈!  오오, 맛있네!  근데 이 맛은 어디서 올까?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서로서로 섞여서  만들어 내는 이 비빔밥 맛은.  (권영상·아동문학가) + 난 김치예요  씨앗으로 뿌려질 때부터  김치가 될 줄 알고 있었기에  넌출넌출 푸른 잎 키웠지요  그러나 김치가 되는 건 쉽지 않았지요  뿌리는 뽑히고  내 노란 속살에  굵은 소금이 뿌려져  나는 부들부들 숨을 죽여야 했어요  그것뿐인가요  살갗을 후비는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비벼져  정신을 잃었지요  서로 다른 것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정말 몰랐어요  그렇지만 항아리 속에 꼭꼭 담겨진 우리는  조금씩 자기를 버리고  서로에게 익숙해졌지요  나에게는 양념 맛이 들고  양념에겐 내 향이 배고  그렇게 맛있는 김치가 되었어요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 들어올릴 때  기억해 줘요,  한때는 나도  흙에 뿌리내렸던 배추라는 걸. (이혜영·아동문학가)  + 시래기      할머니가 시장바닥에서 푸른 무청을 주워 온다. 며칠째 주워 온다. - 할머니, 그런 쓰레기를    왜 자꾸 주워 모으는 거예요? - 이건 쓰레기가 아니라    시래기란다.    겨울이 되면    맛있는 시래깃국이 될 거야. 할머니는 무청을 촘촘하게 끈으로 엮어 바람 잘 드는 곳에 매달아 놓는다. 무청이  사드락사드락 말라 간다. 우리 집 처마 끝으로 겨울이 온다. (김응·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23    <환경에 관한 동시 모음> 권창순의 `자연을 칭찬하기` 외 댓글:  조회:1216  추천:0  2017-04-04
권창순의 '자연을 칭찬하기' 외 + 자연을 칭찬하기  친구만 칭찬하지 말고  강아지만 칭찬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묵묵히 걸어가는 길도 칭찬하자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익힌 감나무도 칭찬하자  풀숲에서 목청껏 노래하는 풀벌레들도 칭찬하자  둥둥 달을 띄워 놓고 있는 연못도 칭찬하자  동생만 안아주지 말고  고양이만 안아주지 말고  나무도 안아주자  풀들도 안아주자  꽃들도 안아주자  돌들도 안아주자  (권창순·아동문학가, 1961-)  + 지구의 일기  나는 더워서 입기 싫은데  엄마는 자꾸 옷을 입혀요  두껍고 딱딱한 콘크리트 옷  나는 뛰놀고 놀고 싶은데  꼼짝 말고 있으래요  머리 깎아야 한다고  소나무 전나무 갈대 솜털까지  자꾸만 깎아요  나는 아파서 살살 하라는데  아빠는 등을 너무 빡빡 밀어요  때도 아닌데 구멍 나게 밀어요  곰보딱지 같다고 집들을 밀어요  산도 밀어요  나는 따가워서 싫은데  엄마는 뭘 자꾸 발라요  농약도 바르고 제초제도 바르고  냄새 고약한 폐수도 발라요  (이병승·아동문학가, 1966-)  + 나무  나무는  청진기  새들이  귀에  꽂고  기관지가  나쁜  지구의  숨결을 듣는다.  (정운모·아동문학가)  + 분리 수거  친구야,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듯  우리 감정을 분리 수거할 수 없을까?  누군가를 칭찬, 격려했던 감정을  사랑이란 마음 상자에 담아  쓰고 또 쓰도록 하고  누군가를 시기, 질투했던 감정은  미움이란 마음 상자에 담아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어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없을까?  정말 그럴 수 없을까?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미워했던 마음을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게.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 흙  흙은 너무 지쳐서  겨우내 잠을 잔다.  북풍이 몰아쳐도  곤하게 잠을 잔다.  살갗은 얼어도  품 속 개구리알 씨앗들을  제 체온으로 다독인다.  잠 속에서도 다독이는 건  흙의 버릇이다.  실뿌리 하나라도  감기 들까 걱정이다.  입춘 무렵 흙은  잠이 깨어도  자는 척 누워 있다.  품 속 어린것들  선잠 깰까 봐.  (최춘해·아동문학가, 1932-)  + 흙에 생명을 주는 주인공                         또르륵  또르륵  한여름 밤 고요 속에  풀밭에서  아주 작으나  청량하고 또렷한 소리  그러나  그 소리가  이젠 점점  사라져 간다  그리고  흙의 생명도 잃어간다.  농약과 제초제가 주범이다.  흙이 살아야  인간도 살텐데...  지렁이의 걱정이다.  (조춘구·시인)  + 장갑과 호미    -원유 유출 피해 지역 갯마을  빨간 코팅 목장갑 한 켤레  갯돌에 걸터앉아 쉽니다.  갯바위의 끈적끈적한 기름때  까맣게 타르 장갑 되도록  닦고 닦아도 끝이 없다고  손 놓고 주저앉았습니다.  몇 발짝 옆 모래밭의 호미도  기름떡을 캐다 지쳤습니다.  육백 리터짜리 플라스틱 통  백삼십 개를 채워도 끝없으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겠느냐고  물음표로 바닥에 누웠습니다.  (안학수·아동문학가, 195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22    말에 관한 동시 모음 댓글:  조회:1395  추천:0  2017-03-30
말에 관한 동시 모음     + 나무는 말을 삼간다 나무는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삼가는 것이다. 할 말 있으면 새를 불러 가지 끝에 앉힌다. 새가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이웃 나무의 어깨 위로 옮겨 앉힌다. 동네가 시끄러우면 건너편 산으로 휘잉 새를 날려보내기도 한다. (강수성·아동문학가, 1940-) + 맛있는 말 바닷마을 아주머니 텔레비전에 나오네 가마솥 뚜껑 열고 펄펄 끓는 숭어국 한 국자 떠 주며 잡사 봐! 잡사 봐! 후후 불어 주며 잡사 봐! 잡사 봐! 그 참 맛있는 말 침이 꿀떡 넘어가네! (유희윤·아동문학가) + 가장 듣기 좋은 말 어머니가 하는 말 가운데 가장 듣기 좋은 말. 하루 몇 번씩 들어도 듣고 또 들어도 가장 듣기 좋은 말. "인교야, 밥 무로 온나." 날마다 먹는 밥인데 질리지도 않고. (서정홍·아동문학가, 1958-) + 말을 저축하는 은행   말을 저축하세요 우리 은행에 한 마디 한 마디 저축한 말들 우리 은행에 차곡차곡 이자가 쌓입니다. 꼭 필요할 때 찾아서 가장 알맞은 지혜의 말로 빛나게 쓰고 나머지 말들은 그대로 두세요. 우리 은행에 말을 저축하세요 생각이 깊은 우리 은행의 이자는 듬뿍 넘치는 지혜입니다. (정갑숙·아동문학가, 1963-) + 꼬리뼈가 하는 말   계단에서 넘어져 꼬리뼈에 금이 갔다. 걸을 때도 앉을 때도 웃을 때도 찌르르쿡쿡쿡 꼬리는 없지만 몸 속에 작은 뼈로 남아 잘 걸을 수 있게 잘 앉을 수 있게 잘 웃을 수 있게 도왔다는 걸 아프면서 알았다. 찌르르쿡쿡쿡 꼬리뼈의 말 들을 수 있게 됐다. (정진아·아동문학가, 1965-) + 무렵 아버지는 무렵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무렵이라는 말을 할 때 아버지의 두 눈은 꿈꾸는 듯하다. 감꽃이 필 무렵 보리가 익을 무렵 네 엄마를 처음 만날 무렵 그 뿐 아니다 네가 말을 할 무렵 네가 학교에 갈 무렵 아버지의 무렵이란 말 속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묻어 있다. 나도 유치원 무렵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나에게도 아버지처럼 무렵이란 말 속에는 그리움이 배어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무렵이란 말을 떠올리면 그리운 사람이 어느새 내게 와 있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좋은 말 말은 씨앗이지요 민들레 홀씨 마냥 마음밭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꽃이 피는, 좋은 말은 향기와 좋은 열매를 맺어 기분이 좋아지게 하고 그늘이 사라지게 하지요 (차영섭·시인) + 참새네 말 참새네 글 참새네는 말이란 게 '짹 짹'뿐이야. 참새네 글자는 '짹' 한 자뿐일 거야. 참새네 아기는 말 배우기 쉽겠다. '짹'소리만 할 줄 알면 되겠다. 사투리도 하나 없고 참 쉽겠다. 참새네 학교는 글 배우기 쉽겠다. 국어책도 "짹짹짹......" 산수책도 "짹짹짹......" 참 재미나겠다.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 말이 다르니까 병아리 말, 뾰약뾰약 비둘기 말, 그그그그 참새 말, 찌액찌액 꿩 말, 끄웡끄웡 말이 다르니 모양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네. 수돗물 말 쓰아아쓰아아 도랑물 말 도로돌도로돌 강물의 말 처처철 처처철 바다의 말 촤아악촤아악 말이 다르니 소리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네. 충청도말, 하지라유 전라도 말, 했뿌러 경상도 말, 하랑게 제주도 말, 했수까 말이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네. (김자연·아동문학가, 1960-) + 귀 입의 문 닫을 수 있고 눈의 문 닫을 수 있지만 귀는 문 없이 산다 귀와 귀 사이 생각이란 체 하나 걸어 놓고 들어오는 말들 걸러 내면서 산다.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 무서운 말 게임 아바타 빌려주고 떡볶이 얻어먹으며 "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쉽게 말했는데 아빠 어릴 적 이야기 들으면 콜라와 주스 얻은 대신 구수한 숭늉 잃고 컴퓨터 게임 얻은 대신 골목길 친구들 웃음소리 잃고 편리한 자동차 얻은 대신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 잃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 참 무서운 말이다. (박선미·아동문학가) + 눈으로 듣는 말과 소리로 보는 춤 꽃나무들이 말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저 고운 몸짓으로 손짓으로 눈짓으로 하는 아름다운 말 좀 들어보세요. 나무들의 아름다운 말이 들리시나요? 소리의 요정들이 아름다운 춤을 추지 못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숨어있던 고 작은 바이올린 속에서 나와 추는 저 아름다운 춤 좀 구경하세요. 소리로 추는 아름다운 춤이 보이시나요? (이화주·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21    <마음에 관한 동시 모음> 댓글:  조회:1302  추천:0  2017-03-28
권영상의 '내 마음이 조용해질 때' 외  + 내 마음이 조용해질 때  아침마다  세숫물 안에서  만나는 사람.  두 손을 세숫물에  담그면  그 사람은 달아난다.  나는 여기  남아 있는데  그는 달아나  세숫물 밖으로 사라진다.  -엄마, 이걸 봐요.  그 사람이 없어졌어요!  -그럼, 한참을 기다려라.  네 마음이 맑아지면  다시 돌아올 테다, 그 사람이.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마음  깃털처럼 가볍지만  때론  비위처럼 무겁단다.  시냇물처럼 즐겁지만  얼음처럼 차갑기도 해.  들꽃 향기에도  와르르 무너지지만  천둥 번개에도  꿈쩍하지 않아.  순한 양이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가끔 나를 쩔쩔매게 하는 것.  알지?  조심조심  잘 다스려야 해.  (이혜영·아동문학가)  + 마음씨  모나지 않은  꽃씨 같아야 한데요.  너와 나 사이  따스함 묻어나면  연한 새싹 돋아나는  마음씨.  흙이  봉숭아 꽃씨 속에서  봄을 찾아내듯  마음씨 속에서  찾아내는 동그라미.  가슴 깊이 묻어 두면  더 좋데요.  (오순택·아동문학가)  + 마음속 메아리  마음에도  메아리가 있나 봐요.  누군가를 향해  미워!  구름 뒤에 숨어서 소리쳤는데도  나도 너 미워!  씰룩씰룩 화난 목소리  금방 천둥처럼 되돌아옵니다.  마음에는 정말  메아리가 있나 봐요.  미안해!  아주 조그맣게 봄바람에게 속삭였는데도  나도 미안해하며 웃는 얼굴  환한 햇살 되어 되돌아오니 말이에요  (한현정·아동문학가)  + 항아리  늘 가슴을  열고 있다  누구든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지  심심하던 햇살이  가슴 깊이 쏟아진다  그리고 때론  먼지와 검불이.  "너무 쉽게 마음을  내보이지 마라."  엄마가 슬쩍  뚜껑을 닫으신다.  (김숙분·아동문학가, 1959-)  + 꽃씨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딱딱한 땅을  뚫게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세상을 물들이는 꽃이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자기 몸이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리란 걸  (안오일·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  + 넌 아니?  도토리나무도  마음 아픈 날 있다는 것.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숲으로 가 봐.  아기도토리 하나라도 잘못될까  흔들리는 어지러움 견디는 걸.  도토리나무도  마음 들뜨는 날 있다는 것.  개인 날 아침  숲으로 가 봐.  주섬주섬 햇살 옷 입는 아기도토리  귀여운 짓 보고 있는 걸 .  이 세상 엄마 마음은 하나라는 것 ,  넌 정말 아니?  (유미희·아동문학가, 충남 서산 출생)  + 시냇물  졸졸 시냇물은  쉴 줄을 몰라요.  손짓을 하며  노래를 부르며  바위가 막으면  돌아서 가고  낮은 곳에선  쉬었다 가지요.  흐르는 시냇물을  가만히 보면  마음도 물같이  흐르고 있어요.  맑은 꿈이 흐르고  생각도 깊어지고  우리가 사는 길을  가르쳐 주어요.  (김규식·아동문학가)  + 지금은 공사중  어제는 정말 미안해  별것 아닌 일로  너한테 화를 내고  심술부렸지?  조금만 기다려 줘  지금 내 마음은  공사중이야.  툭하면 물이 새는  수도관도 고치고  얼룩덜룩 칠이 벗겨진 벽에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모퉁이 빈터에는  예쁜 꽃나무도 심고 있거든.  공사가 끝날 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 줄래?  (박선미·아동문학가)  + 분꽃 씨처럼  만두 껍질 같은 씨앗들의 옷을 살짝 만지면  더 야물어진 까만 꽃씨가  톡  톡  떨어집니다.  꽃씨 속의 하얀 가루를 손바닥에 모아서  친구들의 손등에 발라 주며  소꿉놀이를 합니다.  까만 꽃씨 속에는  하얗고 보드라운 분가루가 있어  나는  꽃씨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예쁜 꽃을 피워 꽃밭을 만드는 꽃씨처럼  나는  친구들의 마음에 고운 화장을 해주고 싶습니다.  (박명자·아동문학가, 1940-)  + 나뭇잎의 두께  한 장의 종이처럼  얇은 나뭇잎  책 속에 끼워두고 잊고 지내다  어느 날 책을 펴노라면  보고 싶은 쪽보다 먼저 펴지는 쪽  그 속에는 나뭇잎이 들어 있다.  노랗고 붉은 빛 그대로인 채  한 해를 살다간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다.  소곤대는 이야기 들리는 듯해  귀 기울이며  이만큼 자란 내 마음의 크기도  생각해 본다.  (현금순·아동문학가)  + 꽃물 들이기  텃밭에 봉숭아꽃잎 물든다.  여름 볕에  화아, 발갛게  화아, 희고 노랗게  꽃잎 몇 장  초록 이파리 몇 장 따다 콕콕 찧으며  엄마가 기도한다  내 손톱에 해달별처럼  밝은 고운 물 들게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고운물 들여 주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물들여야하는 것  내 조그만 손톱 물들이다가  엄마 손가락이  먼저 물든다.  (박예분·아동문학가, 전북 임실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20    <작은 것을 노래하는 동시 모음> 제해만의 '고 작은 것' 외 댓글:  조회:1277  추천:0  2017-03-23
제해만의 '고 작은 것' 외 +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 제비꽃이 피지 않으면 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매미가 울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추잠자리가 날지 않으면 가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눈가루가 내리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고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만든다. (제해만·아동문학가, 1944-1997) + 고 조그만 것이 고 조그만 산새 알에서 하늘을 주름잡는 날개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꽃씨 속에서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새싹이 자라 밀림을 만드는 아름드리 나무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아기가 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나올까? (전영관·아동문학가) + 고 작은 것이 개미 한 마리가 고 작은 것이 나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다 평지를 걸어와도 힘들 텐데 헉헉거리지도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늠름하기까지 한 개미 내가 나를 본다 그리고 개미를 본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기진맥진하여 늘어진 나와 한마디 불평 없이  큰일을 해내는 개미 한 마리 지구를 등에 지고  다시 내려온다 그런데 또  개미는 웃음까지 등에 지고 나보다  먼저 내려와 있다. (선용·아동문학가, 1942-) + 고 작은 것이  까만 씨앗들이 고물고물 움직인다 가던 길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곤 다시 걷다가 멈추고  작은 몸통에 검은 투구를 걸치고 여섯 개의 다리는  쉴 틈이 없다 긴 행렬이 되어  앞으로만 간다 까만 씨앗들이 굼질굼질 움직이더니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김시현·아동문학가) + 들리지 않는 말 풀섶 두꺼비가 엉금엉금 비 소식을 알려온다 비 젖은 달팽이가 한 잎 한 잎 잎사귀를 오르며 길을 낸다 흙 속에서 지렁이가 음물음물 진흙 똥을 토해낸다 작고  느리고 힘없는 것들이 크고 빠르고 드센 것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바닥 숨을 쉬고 있다 (김환영·극작가이며 삽화가, 1959-) + 작은 풀꽃 후미진 골짜기에  몰래 핀 풀꽃 하나  숨어 사는 작은 꽃에도  귀가 있다.  나직한 하늘이 있다.  때때로  허리를 밀어 주는  바람이 있다.  초롱초롱 눈을 뜬 너는  우주의 막내둥이.  (박인술·아동문학가) + 큰 나무 아래 작은 풀잎 얘야, 네가 큰 나무를 보러 왔다면 그 아래 피어난 키 작은 풀잎을 꼭 찾아보아라. 해마다 어깨 겯고 새로 돋는 풀잎, 풀잎이 만드는  작은 세상. 얘야, 네가 키 작은 풀잎을 보러 왔다면 그 위에 아름 굵은 큰 나무 꼭 쳐다보고 가거라. 어지간한 비바람쯤 끄떡도 않지. 밑동 튼실하게 뿌리박은 나무. (이미애·아동문학가) + 모래 왕국 난 지금  모래 나라의 임금님입니다. 산도, 골짜기도, 들판도, 강도 마음대로 바꾸어 갑니다. 옛날얘기 속 임금님이라도 자기 나라 산과 강을 이렇게 바꿀 수는 없겠지요. 난 지금  정말로 위대한 임금님입니다. (가네코 미스즈·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1903-1930) + 모래알의 크기  티끌 하나는  그 크기가 얼마일까요?  눈에 들어가면  모래알보다 더 크지요.  모래알 하나는  그 크기가 얼마일까요?  밥 속에 있으면  바윗돌보다 더 크지요.  (민현숙·아동문학가) + 모래 한 알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눈에 한 번  들어가 봐  울고불고 할 거야.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밥숟갈에 한 번 들어가면 딱! 아이구 아파! 할 거야. 모래알들이 작다고 하지 마 레미콘 시멘트에 섞이면 아파트 빌딩으로 변할 거야. (정용원·아동문학가) + 작은 벌레, 그들에게는  온종일 가도 가도 내 눈에는 그냥 한 곳을 맴도는 것만 같은데 작은 벌레, 그들에게는 넓고 넓은 새 땅을 찾아가는 거란다 온 힘 다해 기어가도 내 눈에는 늘 그 자리인 것 같은데 작은 벌레, 그들에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 땅을 찾아가는 거란다 (권영세·아동문학가) + 가시   꼴랑 요 작은 것  하나가  내 발가락  비집고 들어와서는  하루 종일  내 생각  몽땅 뺏어갔잖아  (조무호·아동문학가) + 씨앗  씨앗은 크지 않아도 된다  까만 점 하나가 만든 나무숲  그 숲에 둥지 튼 비비새 한 마리  까만 씨앗 한 개가 하는 일은  작은 점 하나서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정두리·시인이며 아동문학가, 1947-)     + 은행 한 알   동그란 은행 한 알에 나무 한 그루 들었다. 여긴 뿌리  여긴 줄기 여기는 잎 천백 살 되었다는 용문산 은행나무도 처음엔 요만했을 거야 조그만 씨앗 속에서 큰 꿈 키웠을 거야. 천년을 꿈꾸는  은행 한 알 (유은경·아동문학가) + 한 그루 작은 나무의 힘 터벅터벅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따라갑니다. 손자처럼 지팡이가 할아버지를 따라갑니다. 한 그루, 작은 나무 그 편안하고 든든한 힘. 할아버지 곁을 맴도는 나무 지팡이 여름 한낮, 할아버지에게는 한 그루 큰 나무입니다. 쪽빛 바람이 모이는 시원한 그늘입니다. (이상현·아동문학가) + 이슬 몸 안 가득 해를 품음이여 우습게 보지 마라 작다고 업신여기지 마라 작다고 해를 품는 가슴이니. (박두순·아동문학가) + 새끼발가락 미끄러지는 바람에 새끼발가락 하나를 다쳤다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어, 온몸이 기우뚱! 어, 지구가 기우뚱! (현경미·아동문학가) + 빗방울 또르르  유리창에 맺혔다. 대롱대롱 풀잎에도 달렸다. 방울방울  빗방울이 모여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작자 미상)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9    <착한 마음에 관한 동시 모음> 오순택의 '징검돌' 외 댓글:  조회:1181  추천:0  2017-03-20
  오순택의 '징검돌' 외 + 징검돌   개울을 건널 때 등을 내어 준 돌이 아파할까 봐 나는 가만가만 밟고 갔어요.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꽃 . 잎 잎이 다칠까봐 위에서 피는 꽃 꽃이 다칠까봐 아래에 놓인 잎 그래서 예쁜 꽃 . 잎이구나 (한귀복·아동문학가) + 그건 너지 누가 느낄까 네 개의 귀를 활짝 펴서 무어든 덮어주는 보자기의 고운 마음을 누가 배울까 네 개의 귀를 꽁꽁 묶어 누구든 감싸주는 보자기의 귀한 마음을 (홍우희·아동문학가) + 덩이 흙덩이, 복덩이, 햇덩이 달덩이, 돌덩이, 메주덩이 눈덩이, 얼음덩이, 불덩이 똥덩이, 소금덩이, 황금덩이 모두 작은 덩이로 이루어졌지만 하는 일은 다 다르다. 나는 총소리 울리는 저 바다 건너 배고픈 아이들 배를 불리는 빵 한 덩이 되고 싶다 (박예분·아동문학가, 전북 임실 출생) + 수재민 어깨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도 너무 무겁다. 머리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도 너무 아프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둘이는 똑같이 신발주머니에 들어간 신발은 미안했어요. 흙이 묻어서...... "괜찮아. 주인을 위해 일했잖아?" 신발주머니는 신발을 꼭 안아 주었어요. 둘이는 똑같이 흙투성이가 되었어요. (이혜영·아동문학가) + 그 병실에서 달리기하는 아이 산책하는 아이 병실 창문으로 부러운 듯 내려다보던 그 길을 혼자 걸어봅니다. 걸으면서 내가 내려다보던 그 병실 창문을 올려다봅니다. 지금도 누군가 그 병실 창문으로 나를 부러운 듯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병실로 달려가 그 아이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전영관·아동문학가) +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 한 대학생 누나 너무 배고파 메추리알, 우유, 김치, 핫바 6,650원어치 훔쳤다고 한다. 설 때도 고향집에 아무도 없는 누나 누나의 가난을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 누나의 슬픔을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 (이화주·교육자이며 아동문학가) + 더 주고 싶어 퐁퐁 샘솟는 옹달샘 마냥 마냥 주고도 모자란 마음. 풋고추를 빨갛게 풋사과를 빨갛게 익혀 놓고도 해님은 서산마루에서 머뭇머뭇 마냥 주고도 더 주고 싶어. (김재용·아동문학가) + 어린 고기들 꽁꽁 얼음 밑 어린 고기들. 해님도 달님도 한번 못 보고, 겨울 동안 얼마나 갑갑스럴까?   꽁꽁 얼음 밑   어린 고기들.   뭣들 하고 노는지 보고 싶구나.   빨리빨리 따순 봄 찾아오거라.     (권태응·시인, 1918-1951) + 세탁소집 아저씨 키가 작아요 걸음이 서툴러요 다림질할 때는 온몸이 흔들려요 팔도 다리도 웃고 있어요. 저녁이면 바느질하던 아내가 탄 휠체어를 밀고 집으로 가요 아저씨가 웃어요 눈도 입도 눈썹도 웃어요 아저씨 가슴에는 웃음이 세들어 살고 있나봐요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 텔레비전 속의 아프리카 물을 얻기 위해 40킬로를 걸어가야 한다면 물 한 컵 마시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면 수돗물 틀어 놓고 이 닦진 않을 거야. 거품 벅벅대며 머리 감진 않을 거야. 정말 내가 아프리카 케냐의 아이라면 수많은 꿈 제쳐 두고 비 되고 싶을 거야. 메마른 물동이마다 그득그득 채우고 강과 호수에 넘실거리는 비. (유은경·아동문학가) + 동전 한 닢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길바닥에 버려진 동전 한 닢 조심스럽게 주워 들었습니다. 흙 속에 묻혀 삭아들지 않고 발바닥에 밟혀 누그러들지 않고 차바퀴에 깔려 오그라들지 않고 길바닥에 버려진 동전 한 닢 정성껏 닦고 닦아 빛을 냈습니다. 따스한 손바닥에 꼬옥 쥐고 밟히고 깔려 멍이 들었을 아픔을 감싸주었습니다. (허형만·시인, 1945-) + 돌멩이 한 개 학교 갔다 오던 길에 돌멩이 한 개를 발로 찼다. 돌멩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찻길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렇지만 언젠가 내 짝꿍이 내게 준 고 작은 조약돌처럼 자꾸 마음에 걸린다. -혹시 차에 치이지는 않을까? -누군가 멀리 던져버리지는 않을까? 무심코 차버린 돌멩이 하나가 이렇게 내 마음을 빼앗아 갈 줄이야. 어둠이 내리는 방안에 나는 내 스스로 나를 가두어 놓고 있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참 잘 했어요 '김밥천국', 세탁소, 25시 편의점 나란히 줄 선 상가 모서리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 손수레 세워 놓고 쪼그리고 앉았어요. 손에는 호호 때늦은 점심 컵라면 "할아버지, 이거랑 같이 드세요." 옷 수선 맡기고 돌아서던 하늘채 아파트 1층 아줌마 '김밥천국' 김밥 한 줄 은박지에 사 왔어요. "참 잘했어요." 해님이 반짝 은박지에 칭찬 도장 찍어 주고 지나갑니다. (박경옥·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혜영 시인의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외 +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내게로 웃으며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그게 낯선 강아지라도 꼭 안아줄거야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가랑잎이라 해도 잠시 집어들고 살펴볼테야 혹시, 시의 모서리가 있을지 몰라 빈 과자 봉지가 내게 달려온다 해도 나는 모른 척할 수 없을 거야 내게 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내게로 마구, 달려오는 것이 찬바람이라 해도 난 두팔 벌려 맞아줄거야 잠시나마 따뜻하라고 (이혜영·아동문학가) + 키 작은 애 키 작은 애 손을 쥐면 내 손이 좇아서 조그매지려 한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내 귀는 솔깃 키 작은애 가까이로 기울고, 손을 잡고 걸을때면 키를 한껏 낮추어 걷게 된다. 그 애가 보는 높이만큼서 꽃이든지 풀이든지 보고 싶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길을 가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이준관·시인, 1949-) + 내가 가장 착해질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시인, 1958-) + 김밥 아줌마 김밥을 싸다 말고 자꾸만 길가를 기웃거리던 김밥아줌마 하얀 쌀밥 한주먹 크게 쥐어 휘익 던지자 금세 비둘기 한 마리 날아와 콕콕 찍어먹다 말고 포르르 날아가 어느새 친구들을 불러 와   서로 부리를 맞대고 맛있게 콕콕, 콕콕콕 장마가 길면 작은 새들은 배곯기 일쑤라며 걱정하던 김밥아줌마 그때서야 흐뭇한 얼굴로 김밥을 돌돌 만다. (박예분·아동문학가) + 몰랐지? 산딸기가 흙 튀는 낮은 곳에 몰래 숨어 익는 이유가 있지. 사람들 눈을 피해 꼭꼭 숨어 익는 이유가 있지. 키 작고 힘없는 약한 개미들 느릿느릿 느림보 달팽이들 느리고, 힘없고, 여리고 약한 애들까지 다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것. (양인숙·아동문학가) + 아침 버스에서 추운날 아침 아침 버스의 차가운 좌석에 앉다가 뜻밖에도 따스하게 밀려오는 그 누구인가의 체온을 느낀다. 이 자리에 앉았다가 따스한 체온만을 남겨 두고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 추운 겨울의 한 모퉁이를 녹여주는 이 좌석에 앉아 나는 다음 사람을 위해 더 따스한 자리를 남겨 주고 싶었다. (권영상·아동문학가) + 너도 알거야 "왜 한 구멍에 콩을 세알씩 심어요?" 흙을 다독거리는 할머니께 물었다. "한알은 날짐승 주고 또 한알은 들짐승 먹이고 남은 한알은 너 주려고 그런단다." 할머니는 콩밭 군데군데 수수도 심으셨지. "수수는 왜 심어요?" 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참새는 콩밭을 한 바퀴 돌고는 ―콩은 너무 커 콩밭을 두바퀴 돌고나서는 ―수수 알갱이는 먹기 좋은데 가을이 되어서야 알았지. 주둥이가 작은 참새까지도 생각하신 할머니 마음. (이성자·아동문학가) + 짐수레 짐수레가 간다. 오르막길에, 수레 끄는 아저씨 등이 땀에 흠뻑 젖었다. 가만히 다가가서 수레를 밀었다. 아저씨가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더 힘껏 밀었다. (김종상·아동문학가) + 가로수 어깨를 건드린다 아는 체하며 돌아보니 살며시 등을 기대는 가로수. '쉬었다 가렴.' 푸른 물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렇구나 숱하게 이 길을 오갈때마다 나무는 내게 눈길을 주고 있었구나. 등으로 전해지는 물소리. 하늘엔 땡볕이 타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무는 푸른 그늘을 만들며. (김재수·아동문학가) + 눈 오는 날 논밭들도 누가 더 넓은가 나누기를 멈추었다. 도로들도 누가 더 긴지 재보기를 그만 두었다. 예쁜색 자랑하던 지붕들도 뽐내기를 그쳤다. 모두가 욕심을 버린 하얗게 눈이 오는 날. (이문희·시인) + 육교가 헐리면 옷걸이, 면봉, 파리채, 먼지떨이, 수세미, 우산꽂이, 장독덮개, 효자손 ..... 버젓하게 걸어놓은 간판은 없어도 단돈 천원으로도 푸짐한 육교 위 엄마 가게 온종일 해님이 내려와 놀고 가끔씩 바람이 제 맘대로 들랑대는 가게 앞에 앉아 뜨개질도 하고 신문도 보는 엄마 이제 어쩌나 육교가 헐린다는데...... 학교 가는 길 난 새로 생긴 횡단보도를 훌쩍 건너면 되는데 엄마 가게는 엄마 가게는....... (한상순·아동문학가) + 열어 두어 가느다란 바늘에 작은 창 하나 열려 있다 열어둔 창으로 야윈 실 하나 들어와 바늘과 손잡고 일을 한다 길 잃은 단추 데려다 주고 양말 상처 치료해 준다. (정갑숙·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신새별의 '어깨동무하기' 외 + 어깨동무하기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니는 구름들. 어깨동무하고 뻗어 있는 산들. 어깨동무하고 누워 있는 밭이랑들. 강물도, 파도도 파란 어깨동무. 어깨동무하기   사람들만 힘든가 보다.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 같이 걷지요 달빛은 알지요. 두고 가기 싫어하는 강물 마음. 강물도 다 알지요. 함께 가고 싶어하는 달빛 마음. 그래서 달빛은 강물을 데리고 강물은 달빛을 데리고 굽이굽이 같이 걷지요. (유미희·아동문학가, 충남 서산 출생) + 강물이 흐르며 먼저 가려고 다투지도 않고 처져 온다고 화도 안 낸다. 앞서 간다고 뽐내지도 않고 뒤에 간다고 애탈 것도 없다. 탈없이 먼길을 가자면 서둘면 안 되는 걸 안다. 낯선 물이 끼여들면 싫다 않고 받아 준다. 패랭이꽃도 만나고 밤꽃 향기도 만난다. 새들의 노래가 꾀어도 한눈 팔지 않고 간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내 작은 어깨로 우리 동네 기타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 빈 자리에 와 앉았다. 얼마 전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다는 그 아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옷자락에 손을 감추고 몹시 피곤한지 눈을 감더니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우리 나라 땅에 묻었을 새끼손가락 마디. 아저씨는 지금 바다 건너 먼 고향집을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 작은 어깨로 아저씨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받쳐 주었다. (전병호·아동문학가) + 모두 함께 풀밭에는 철쭉, 장미, 목련만 있는 게 아니야. 씀바귀, 민들레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 얼굴을 쏘옥 내밀고. 풀밭에는 나비, 벌만 놀러 오는 게 아니야. 바람이 살그머니 지나가고 개미들도 소풍 나오고 하루살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우리 동네에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야. 석이네, 봄이네, 희연이네, 세탁소, 미장원, 문구점, 방앗간, 자전거 수리점도 있고. 우리 동네에는 사람 사는 집만 있는 게 아니야. 까치 집, 개미 집, 다람쥐 집. 새들이 쫑알쫑알, 고양이가 살금살금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거야. (김위향·아동문학가) + 아름다운 만남 애들아! 지구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만남이란다. 초록별 지구를 숨쉬게 하는 참 아름다운 만남 새싹이 쏘옥, 눈뜰 수 있게 빗장문 열어 주는 흙 병아리 맨발이 시려울까 종종종 따라 다니는 아이들 참새, 토끼, 다람쥐, 고라니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풀섶에 낟알곡 남겨두는 농부 어디 이것뿐이겠니? 작은 물결에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 떼를 품어주는 바다풀 뿌리를 가지지 못한 겨우살이에게 가지 한 켠을 쓰윽 내어주는 물참나무 이런 아름다운 만남으로 지구는 푸르게 푸르게 숨쉬며 살아 있는 거야. (곽홍란·아동문학가, 경북 고령 출생) + 둘이는 똑같이 신발주머니에 들어간 신발은 미안했어요. 흙이 묻어서.... "괜찮아. 주인을 위해 일했잖아?" 신발주머니는 신발을 꼭 안아 주었어요. 둘이는 똑같이 흙투성이가 되었어요. (이혜영·아동문학가) + 보물찾기 소풍 날 보물찾기에서 한 장도 못 찾았다. 옥이는 석 장 찾아서 몰래 나에게 한 장 주었다. 그런데, 말야 나는 1등에 뽑혔고 옥이는 모두 허탕이었다. 공책 상품 10권 받았다. 나는 몰래 옥이에게 다섯 권 주었다. 안 받으려고 했다. 억지로 손에 쥐어주느라 옥이 손을 잡고 말았다. 손이 참 곱고 따뜻했다. (정용원·시인) + 서로 기대기 "자, 내게 기대 봐." 무화과나무가 넝쿨장미에게 어깨를 살포시 내밀었습니다. 꽃 없는 무화과나무에 기대 장미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꽃이 다 지고 가시가 세어질 때쯤 열매 없는 장미넝쿨에 무화과 열매 조랑조랑 달렸습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귀 기울여봐 여럿이 노래할 땐 화음을 맞추자 가락은 서로 다르지만 쉬잇! 잘 들어봐. 내가 부르는 노래가 내 귀에 들릴 만큼만 소리를 내자.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에 화음을 맞추는 거야. 참 듣기 좋지? 목소리를 맞추면 마음도 맞출 수 있어. 한 송이 꽃보다 꽃다발이 더 아름답듯, 합창은 노래로 만드는 꽃다발이야. (이경애·아동문학가) + 고마워서 새는 나무가 고마웠어요 힘들면 쉬어가라고 나뭇가지 흔들어 불러줬거든요 배고프면 얼마든지 먹으라고 가지마다 열매 달고 불러줬거든요 고마워서 너무 고마워서 새들은 열매를 먹을 때 씨앗 하나 뱃속에 넣었다가 저 산 너머에다 뿌려주었죠. 새들은 더 많은 쉼터가 생겼고 나무는 더 많은 친구가 생겼지요   (배정순·아동문학가)   + 서로가 산새가 숲에서 울고 있었다. 바위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산새와 바위는 말이 없어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한단다. 바람이 구름을 밀고 있었다. 하늘이 가만히 보고 있었다. 바람과 하늘은 말이 없어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단다. (김종상·아동문학가) + 지구 지구는 퍼즐 한국과 중국 러시아... 빈틈없이 맞춰 있지요 바다 가운데 일본과 괌 사이판 쏙옥 들어가 있지요 한 조각이라도 떼어내면 와르르 무너지는 지구. (김숙분·아동문학가, 1959-) + 송사리 작다고 놀리지 마세요 힘 약한 우리는 절대 혼자 다니지 않아요 엄마 아빠랑 친구들이랑 물풀 사이 꼬리지느러미 흔들며 늘 떼지어 다니지요 초롱초롱 많은 눈으로 힘센 물고기 발견하면 재빨리 피할 수도 있고 맛있는 장구벌레도 빨리 찾아낼 수 있고 혼자 넓은 바다 꿈꾸지 않고 얕은 물에서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지요. (박예분·아동문학가, 전북 임실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전병호의 '내 작은 어깨로' 외 + 내 작은 어깨로 우리 동네 기타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 빈 자리에 와 앉았다. 얼마 전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다는 그 아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옷자락에 손을 감추고 몹시 피곤한지 눈을 감더니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우리 나라 땅에 묻었을 새끼손가락 마디. 아저씨는 지금 바다 건너 먼 고향집을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 작은 어깨로 아저씨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받쳐 주었다. (전병호·아동문학가) + 벼의 기둥 모내기할 때 농부는 볏모를 한 개씩 심지 않고 네다섯씩 심는다. 나무는 띄엄띄엄 고추, 가지도 거리를 띄어 심는데 모는 여럿을 함께 심는다. 나무처럼 든든한 뼈가 없어 가는 바람에도 몸 가누기 힘겨워하는 벼들 장마에도 태풍에도 쓰러지지 말라고 서로 서로 기둥이 되어 주라고 형제들을 같이 심어준다. (정진숙·아동문학가) + 마중물과 마중불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별이 나에게 작은 섬 하나 있기에 파도는 흰 물결을 만들고 작은 꽃 하나 있기에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네가 거기 있기에 나 오래오래 반짝이리. (전영관·아동문학가) +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는 땅을 굳게 딛고 당당하게 서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으리으리한 궁궐에 정원수가 될 생각은 없다. 뭇 사람들이 몰려들어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값비싼 귀한 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 또래와 더불어 사는 곳 남들 따라 꽃 피우며 열매 맺으며 가물면 같이 목이 마르고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사는 곳 여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끼리끼리 모이면 혼자는 싫어 떼 지은 참새. "짹 짹 짹" 끼리끼리 모이면 이야기가 생겨요. 방울 방울 물방울 개울 되어 흐르며 "졸 졸 졸" 끼리끼리 모이면 노래가 생겨요. 햇볕 드는 담벼락 아이들 모여 앉아 "재잘 재잘 재잘" 끼리끼리 모이면 웃음이 생겨요. (이혜영·아동문학가) +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이재무·시인, 1958-)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8    <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 시 모음> 댓글:  조회:1316  추천:0  2017-03-13
  + 별과 민들레 파란 하늘 그 깊은 곳 바다 속 고 작은 돌처럼 밤이 올 때까지 잠겨 있는 낮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꽃이 지고 시들어 버린 민들레는 돌 틈새에 잠자코 봄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 튼튼한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가네코 미스즈·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1903-1930)  + 모래 왕국  난 지금  모래 나라의 임금님입니다. 산도, 골짜기도, 들판도, 강도 마음대로 바꾸어 갑니다. 옛날얘기 속 임금님이라도 자기 나라 산과 강을 이렇게 바꿀 수는 없겠지요. 난 지금  정말로 위대한 임금님입니다. + 이상함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파란 뽕나무 잎새 먹고 있는 누에가 하얗게 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 아무도 손대지 않는 박꽃이 혼자서 활짝 펴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누구에게 물어봐도 웃으면서 당연하지, 라고 말하는 것이.  + 벌과 하느님 벌은 꽃 속에, 꽃은 정원 속에, 정원은 토담 속에, 토담은 마을 속에, 마을은 나라 속에, 나라는 세계 속에, 세계는 하느님 속에, 그래서, 그래서, 하느님은, 작은 벌 속에. + 나와 작은 새와 방울 내가 두 팔을 벌려도 하늘을 날 수 없지만 날 수 있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 위를 빨리 뛰지는 못하지. 내가 몸을 흔들어도 예쁜 소리는 나지 않지만 예쁘게 울리는 방울은 나처럼 많은 노래를 알지 못하지. 방울과 작은 새, 그리고 나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좋네. + 보이지 않는 것 잠들어 있는 시간에 무엇인가가 있다. 연한 복숭아 색 꽃잎이 마루 위에 떨어지며 쌓이고 눈을 떠보면 홀연히 사라진다 그 누구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 누가 거짓이라 말하랴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다 하얀 천마天馬가 날갯짓을 하며 흰 깃으로 만든 화살보다 빠르게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간다 누구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 누가 거짓이라 말하랴 + 쌓인 눈 위의 눈은  추울 거야. 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밑의 눈은  무거울 거야. 몇 백 명이 지나고 있으니. 가운데 눈은 쓸쓸할 거야. 하늘도 땅도 볼 수 없으니. + 참새의 어머니  어린애가  새끼 참새를 붙잡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 웃고 있었다. 참새의  어머니 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그걸 보고 있었다.  + 물고기 바다의 물고기는 가엾다. 쌀은 사람이 만들어 주지, 소는 목장에서 길러 주지, 잉어도 연못에서 밀기울을 받아먹는다. 그렇지만 바다의 물고기는 아무한테도 신세지지 않고 심술 한 번 부리지 않는데 이렇게 나에게 먹힌다. 정말로 물고기는 가엾다. + 풍어 아침놀 붉은 놀 풍어다 참정어리 풍어다. 항구는 축제로  들떠 있지만 바다 속에서는 몇 만 마리 정어리의 장례식 열리고 있겠지. + 초원 이슬의 초원 맨발로 가면, 발이 푸릇푸릇 물들 거야. 풀 향기도 옮아올 거야. 풀이 될 때까지 걸어서 가면, 내 얼굴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날 거야. + 내일 시내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  잠시 엿들었다  "내일"  시내의 변두리는  저녁놀,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하는 하루.  웬일인지 나도  즐거워져서  생각이 났다  "내일"  + 흙과 풀 엄마가 모르는 풀 아기들을, 몇 천만의 풀 아기들을, 흙은 혼자서 키웁니다. 풀이 푸릇푸릇 무성해지면, 흙을 숨겨 버리는데도. + 별의 수 열 개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어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열 개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어가자. 언제언제 까지나. + 연꽃과 닭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핀다 그리 하는 것은  연꽃이 아니다 달걀 속에서 닭이 나온다 그리 하는 것은  닭이 아니다 그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 깨달음 또한 나의 힘은 아니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7    하늘에 관한 동시 모음 댓글:  조회:3154  추천:0  2017-03-07
양성우의 '비 오는 날' 외 + 비 오는 날  둥지 없는 작은 새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나비들은, 잠자리, 풍뎅이, 쇠똥구리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칠 줄 모르고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죽도록 사랑하다가 문득 헤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양성우·시인, 1943-)  + 빗방울은 둥글다 만약에 빗방울이 세모나 네모여 봐 새싹이랑 풀잎이  얼마나 아프겠니?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빗방울의 더하기  톡톡톡  잎새에 더해  초록빛 키우고  톡톡톡  꽃잎에 더해  꽃잎 웃음 키우고  톡톡톡  냇물에 더해  물소리 키운다  톡톡톡  더하면서   남은 키우고  톡톡톡  더하면서   제 모습은 뺀다.  (박소명·아동문학가) + 비 오는 날  낡은 구두는 젖은 발이 안쓰럽습니다 젖은 발은 새는 구두가 안쓰럽습니다. (유희윤·아동문학가) + 비야 비야  비야 비야  그만 그쳐라  우리 아버지  구두가 샌다  울 집  지붕이 샌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런 건 견딜 수 있단다  비야 비야  부탁이다, 제발 그쳐라  네가 가꾼 산을  네가 뭉개다니  네가 가꾼 벼 포기  네가 쓸어 내다니  그쳐라 그쳐라  상추씨 도닥이던  착한 비야.  (유희윤·아동문학가) + 봄비 그친 뒤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빨리 달리는 건 산안개다.  산안개가 하얗게 달려가서  산을 씻어내면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잘 생긴 건  저 푸른 봄 산이다.  (남호섭·아동문학가, 1962-) + 풀밭에서 여우비 그친 뒤 풀밭에 갔더니 빛들은 풀잎으로 알몸을 가리고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부끄러운 아기 얼굴로 배시시 웃고 있었다. (박유석·아동문학가) + 가랑비 오는 날 가랑비가 촉촉이 내렸어요. 꽃들 머리를 어루만지며 우리 머리를 어루만지며 하느님이 오늘만큼은 우리를 꽃으로 여기셨나 봐요. 꽃같이 여기셨나 봐요. 모처럼 오늘은 나도 한 송이 꽃이 아니었을까?  (박두순·아동문학가) + 가랑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들려 오는 머언 피리 소리 닫혔던 들판의 초록 대문이 천천히 열린다. 바위 틈에서 자갈밭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풀이며 나무들의 목마름도 풀리고, 소나무, 오리나무, 싸리나무, 느릅나무의 바짝 말랐던 입술에 노래가 흐른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보슬비  보슬보슬 보슬비가  잔잔한 호수처럼 내리고 있네요.  한사코 울어대던 뻐꾸기도  그 자장가를 들으며 졸고 있는가 봐요.  편지를 서너 줄 쓰다 말고  저기 관악산 숲 속을 바라봅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 아이의  큼직한 눈동자가 아롱거려요.  그 아이도 지금쯤 창문을 열고  무엇을 생각하며 울고 있을까.  소식이나 알려주듯 교회당 종소리가  고요하게 마음속에 울려옵니다.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나 혼자 집을 보는 한때입니다. (장수철·아동문학가, 1916-1993)    + 빗방울         어, 어  나뭇잎에 떨어졌네!  그럼  또르르  구슬 되어 굴러가지  어, 어  전깃줄에 걸렸네!  그럼  어디 한번  매달려 볼까?  대롱대롱대롱  아이고  힘 빠졌다  톡―.  (권오삼·극작가, 1943-)  + 우산 파는 아줌마  주룩 주룩 큰 비가 내리는 날 버스 터미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우산을 파는 아줌마. 새 우산이 아까운지 얇은 비닐 우비 하나 걸치고 옴츠린 채 덜덜 떨며 오는 비 다 맞고 있어요. 쏴아아 쏴아아아? 빗줄기는 더 세지는데 팔릴 줄 모르고 쌓여 있는 우산들. 아줌마 입술이 점점 파래져요. 나도 모르게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어요. 돈이 있다면 그 우산들을 몽땅 사드리고 싶어요. 빨리 집에 들어가시게요. 가던 길 멈추고 제가 든 우산을  씌워드리고 싶어요.  새 우산이 다 팔릴 때까지요. 날마다 엄마한테 깍쟁이 소리 듣던 제가 오늘만은요. (오지연·아동문학가, 제주도 출생) + 비 맞은 아빠 아침에 엄마가 하늘 쳐다보시며 ―비 올 것 같으니 우산 갖고 가세요. 아빠도 엄마처럼 하늘 쳐다보시고 ―뭐 괜찮을 거요! 저녁 때 비 맞고 돌아오신 아빠는 ―허어 그것 참… 엄마가 아빠의 가방을 받으시면서 ―제 말 들으셨으면 비 안 맞았지요. 오늘은 아빠에게 엄마가 이겼습니다.  (박홍근·아동문학가, 1919-2006) + 소나기  한 손에 지팡이 한 손에 보따리 꼬부랑 할머니가 언덕길 오를 때 오줌 마려운 먹구름이 할머니를 보았대. 쉬다 오르다 쉬다 오르다 땅만 보고 쉬엄쉬엄 올라가는 할머니를 따라가며 묵직한 배에 힘을 꽉 주고 검은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오줌은 나올락 말락 마침내 언덕 위  작은 대문이 닫히는 걸 보자마자 온몸에 힘을 뺀 먹구름은 솨솨 시원하게 오줌을 누었대. (김정신·아동문학가) + 빗방울  구름이 끼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네.  연못 속에 연꽃들  우산 없이 어쩌나.  구름이 끼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네.  지붕 위에 흰 박들  비옷 없어 어쩌나.  (윤석중·아동문학가, 1911-2003) + 비 온다    개미야 개미야 얼른 얼른 집에 가서 대문 걸어 잠궈라 지렁이야 지렁이야 얼른 얼른 나와서 대문 활짝 열어라. (박혜선·아동문학가, 196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상교의 깨진 별' 외  + 깨진 별  별이 빛을 낸다.  깨진 어깨 모서리가  빛을 낸다.  별은  깨져서야 비로소  밝은 빛을  낸다.  나는  아프고 나서야  마음 한 귀퉁이가  먼지로 덮였던 걸  알았다.  아프고 나서야  마음 귀퉁이의 속뼈가  드러내지고,  그리고  좀 더 눈이  밝아졌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윙크  지금 내가 보는 별빛은  25년 전 별빛이란다.  거문고자리 가장 밝은 직녀성이  지구를 향해 보낸 윙크,  방금 내 눈에 들어왔다.  반짝!  나도 윙크를 한다.  25년 뒤 저 별도 받아 볼 거야,  우주로 날아간 내 눈빛.  한 번 더 보내자.  반가운 마음 담아  지구를 대표해서  깜빡!  (유은경·아동문학가)  + 별 하나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 별  나를 보고  깜빡깜빡 눈짓을 해요.  너무 멀어  소리쳐도 들리지 않아  눈짓으로  깜빡깜빡 얘기를 해요.  나를 보고  깜빡깜빡 눈짓을 해요.  밤 깊도록  자지 않고 무얼 하느냐고  눈짓으로  깜빡깜빡 묻고 있어요.  (김종상·아동문학가)  + 슬픈 어느 날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별님이   먼저 알고  눈물이 글썽.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달님이   먼저 알고  수심이 가득.  (박지현·아동문학가)  + 별을 닦나 봐요  누가 우리들 몰래  사다리 타고 올라가  하늘의 별을 닦나 봐요.  보석을 닦듯  보얀 조각구름으로  별을 닦나 봐요.  자동차 매연  쓰레기 소각장 연기가  날마다 하늘을 그을려 놓아도  별들은 언제나  반짝!  반짝!  빛나는 얼굴이에요.  (류영순·아동문학가)  + 별똥별  하늘에서  반짝  단추 하나가  떨어졌어요.  하느님  무슨 일이 있었나요?  누가 서로  멱살잡이라도 했나요?  땅에서  죄 지은 사람이  그리로 가서  싸움을 했나요?  말려 주셔요  하느님,  이 땅의 싸움도요.  (박두순·아동문학가)  + 별 보던 밤  그날, 옥상에 올라가  별을 봤지  유난히 눈짓을 많이 준  별 하나가 있었어  나의 눈과 그의 눈이  한참을 맞닿고 있었어  얼마 후 여기저기서  수런수런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어  머리서 가까이서  다른 여러 별들이  둘이서만 그럴 수 있냐며  마침내 쏟아질 듯  아우성이었지.  (윤삼현·아동문학가, 1953-)  + 별  즐거운 날 밤에는  한 개도 없더니  한 개도 없더니  마음 슬픈 밤에는  하늘 가득  별이다.  수만 개일까.  수십만 갤까.  울고 싶은 밤에는  가슴에도  별이다.  온 세상이  별이다.  (공재동·아동문학가)  + 별  밤마다 책을 읽는  풀벌레들의 등불이 되어 주었다고  하느님이 날마다  달님에게 착한 표를 주었다.  달님은  하느님께 받은 착한 표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밤하늘 이곳 저곳  반짝반짝 붙여 놓았다.  (강현호·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손광세의 '서쪽 하늘' 외  + 서쪽 하늘 빨간 사과 껍질이 널려있다. 드문드문 귤껍질도 섞여있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하늘 냇물에 내려와 어린 고기들을 잘도 데리고 논다. 때론 하늘도 어린 마음이 되나 보다. 어린 마음이 되어야 하늘이 되나 보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탑·2 하늘 이고 섰으면 누구나 탑입니다 둘이서 마주보면 다보탑이랑 석가탑 먼 구름 불러내리면 나도 그냥 탑입니다. (신현배·아동문학가, 1960-) + 그래도 하늘은 있다  산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그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산 위에 그려져 있다. 바다 찍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찍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바다 위에 찍혀 있다. (이상문·아동문학가) + 하늘 위의 창문 방패연을 높이높이 띄웠다 하늘 위에 커다란 창문이 하나  생겼다 저 창문을 열면 하늘 위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다 내다볼 수 있겠다 하느님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훤히 다 보이겠다 방패연은 좋겠다 저러다 운이 좋으면 하느님도 만날 수 있겠다 (안도현·시인, 1961-) + 가을 하늘  토옥  튀겨 보고 싶은,  주욱  그어 보고 싶은,  와아  외쳐 보고 싶은,  푸웅덩  뛰어들고 싶은,  그러나  머언, 먼 가을 하늘.    (윤이현·아동문학가) + 가을 하늘 순아 눈 한번 꼬옥 감아보지 않으련? 그리고 손바닥을 쫘악 펴봐. 이거 몽땅 줄게. 됐어. 그럼 눈 뚝 떠 봐 그리고 저 하늘을 올려다 봐 어떠니? 차암 파아랗지? 몽땅  모옹땅 네 거야. 모옹땅 너 주고 싶단 말야.      (윤이현·아동문학가) + 엄마의 하늘  엄마는  맑은 시냇물에서  빨래를 하시며  하늘을 만나십니다.  엄마의 하늘에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바람도 흐르다 멈추는 곳  거울보다 더 맑은 물 속에  엄마의 따슨 마음이  햇솜처럼 펴오르고  등 뒤에서 잠이 든  아가의 꿈도  엄마의 하늘에는  담겨 있습니다.  맑은 물에 빨래를 짜듯  엄마는 날마다  나의 마음까지도 헹구시며  엄마의 하늘에다  비추어 보십니다.  어둠이 없는  그 하늘 속에  내가 우뚝 서 있습니다.  (함종억·아동문학가, 강원도 홍천 출생) + 조그만 하늘 들국화 필 무렵에 가득 담갔던 김치를 아카시아 필 무렵에 다 먹어 버렸다. 움 속에 묻었던 이 빈 독을 엄마와 누나가 맞들어 소나기 잘 내리는 마당 한복판에 들어내 놓았다. 아무나 알아맞춰 보아라. 이 빈 독에 언제 누가 무엇을 가득 채워 주었겠나. 그렇단다. 이른 저녁마다 내리는 소나기가 하늘을 가득 채워 주었단다. 동그랗고 조그만 이 하늘에도 제법 고오운 구름이 잘도 떠돈단다. (강소천·아동문학가, 1915-1963) + 하늘 아버지는 일거리가 없을 때 하늘을 쳐다봅니다. 어머니도  궂은일이 생기면 하늘을 쳐다봅니다. 저도 숙제가 너무 많아 가슴이 답답할 때면 하늘을 쳐다봅니다. 셋방살이 방 하나 우리 집 식구들은 하늘을 보고 삽니다. (박인술·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정호승의 '무지개떡' 외  + 무지개떡  엄마가 사오신 무지개떡을 먹었다  떡은 먹고 무지개는 남겨놓았다  북한산에 무지개가 걸리었다  (정호승·시인, 1950-) + 무지개 만들기 하늘나라 아이들이 무지개를 만드느라 소곤거려요. "여기에 걸자." "아니야, 거긴 잘 안 보여." "이 정도 길이면 돼?" "그건 짧아." "나는 파란색 칠할게." "나는 초록색." 비가 그치자 둥그렇게 무지개 다리가 놓였어요. 동산 위에 다리가 놓였어요. (박두순·아동문학가) + 무지개  누가 놓았나  파란 하늘에  무지개 다리  "와, 무지개다!"  어른들도 아이처럼  반가워 외치지  무지개 다리에 오르면  어른들은 어릴 때로  순식간에 건너가지.  (김숙분·아동문학가, 1959-) + 햇살 쪼개기 하얀 햇살 그 눈부신 햇살 나무를 쪼개듯  하나하나 일곱으로 쪼개면 아, 거기 일곱 빛 무지개가 있네 햇살을 쪼개는 예쁜 칼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하청호·아동문학가) + 무지개 하늘에 무지개가 고와요. 어머니, 난 저 무지개를  갖고  싶어요. 얘야, 착한 마음 고운 마음이면 저 무지개를  가질 수 있지. 네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무지개를 찾으렴. 아이의 눈은 반짝하고 빛났어요. 어머니, 난 찾겠어요. 내 미움과 성냄과 게으름 속에 감추어진 나의 무지개를요. 그런데, 어머니! 어머니는 무지개를 갖고 싶잖아요? 어머니는 작은 웃음을 아이의 눈 속으로 보냈어요. 그리곤 속삭였어요. 얘야, 이 엄마의 무지개는 너란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고운 무지개를 꼭 껴안아주었어요. (하청호·아동문학가)  + 는개 속에는 무지개가 산다  아버지와 산에 올랐다  안개도 아닌 것이  이슬비도 아닌 것이  하얀 실비처럼 내려  초록 숲을 가만히 흔들고 있었다  는개였다  햇살이 퍼지자  는개 속에 얼비치는  색색의 빛 가닥 가닥들  는개 속에는  일곱 빛 고운 무지개가 산다.  (하청호·아동문학가) *는개: 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  + 무지개 비 지난 언덕 호들기 불면 송아지 등 너머 무지개 떴다 건너말 옹달샘께 하얀 그림자 머리 거친 순이나 물 길러 가지 (최승렬·아동문학가) + 떡 곱고 고운 무지개,  무지개가 떠 있는 무지개 떡.  반달 모양에 밤과 콩, 추석에 먹는 송편.  쿵덕 쿵덕 떡메로 친, 쫄깃쫄깃 인절미.  날씬하고 가는 흰색, 떡국에 넣어 먹는 가래떡! 색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른 우리의 떡!  (안미정·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구옥순의 '햇살의 칭찬' 외 + 햇살의 칭찬 햇살은 누구나 칭찬해요. 담장 위의 장미꽃도 예쁘다. 논 벼랑에 피어있는 제비꽃도 참하다 논둑에 핀 자운영도 곱다. 들판을 수놓은 민들레도 환하다. 그래도 그렇지 누구나 싫어하는 잡초에게는 뭐라는지 아세요? 수월해서 귀엽대요. 안 그러면 땡볕 속에 그을린 잡초가 어찌 그리 신이 나 펄쩍펄쩍 뛰겠어요?        (구옥순·아동문학가) + 햇살 발자국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 발자국 누구 집에 다녀갔는지 시치미 뗄 수가 없다 햇살이 쉬었다 간 나무마다 잎새들 반짝 반짝 햇살이 앉았다 간 꽃마다 꽃잎들 반짝 반짝 바람도 코 막고 비켜간 쓰레기 더미 옆 민들레 집에도 찾아갔는지 민들레 꽃잎이 반짝 반짝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 햇살  햇살이 내린다  물 위에, 풀잎 위에  내린다.  양말도 신지 않고  맨살로 내리는  반짝  반짝  햇살의 하얀 빛이  곱다.  어디선가 예쁜 아기가  맨발로  아장아장  걸어나올 것만 같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아침 햇살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아침햇살이 벽시계에 앉았다. 추에 매달려 똑딱똑딱 그네를 탄다 왼쪽으로 똑딱 오른쪽으로 똑딱 방바닥에 그림자도 그네 따라 똑딱똑딱 깔깔깔깔 그네 따라 똑딱똑딱  깔깔깔깔 웃음소리 들리는 듯하다. (장영복·아동문학가) + 뽑기 해님이  뽑기를 하고 있다 내가 뽑기통 속에 들어 있는 귀여운 인형이랑 장난감을 작은 갈고리로 걸어서 밖으로 뽑아내듯, 나무껍질 속에 숨어 있는 작고 예쁜 잎눈, 꽃눈들 은빛 햇살 갈고리로 걸어서 쏙쏙 뽑아내고 있다 밖으로 끌려 나온 잎눈, 꽃눈들이 눈이 부시는지 얼른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조금 지나면 너도나도 눈을 뜨고 방긋방긋 웃겠지 (권오삼·아동문학가) + 봄날에 노랑 빨강 튤립 튤립 잔마다 햇살 햇살 가득 가득 담겼다 바람이 달려와 질금,  엎지르기 전에 한 잔씩  쭈욱 들이키자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사과밭에서 "우리 아기 얼굴빛이 왜 이렇지요?" 엄마 사과가  아기 사과를  걱정스럽게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식이 심하군요" "일광욕도 자주 시키세요" 왕진 온 햇살이 금빛 주사기를 뽑아들고 아기 사과의 파아란 엉덩이에다 꼭 꼭 찔렀습니다.  (강현호·아동문학가) + 가을을 위하여                가을을 위하여  햇살 한 줄기 들길로 나왔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위한 가을  그래서  풀꽃은 하얀 꽃대궁을 흔들고  고추잠자리는 더욱 빨갛게  온몸을 물들이고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동안  가을 빛은 제 몫을 다한다.  늘 우리들 뒤켠에 서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 가을 빛살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나려는지  일찌감치 사과밭까지 와서  고 작은 사과를 만지작거린다.  햇살은 가을을 위해 모두를 주면서도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다닌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겨울 햇살  어린  겨울 햇살은  걱정도 많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잘 있어요?  별일 없지요?  시냇물 속의 피라미에게도  갈색 무늬 다슬기에게도  인사합니다.  들길의 꽃씨와  여린 풀뿌리도 춥지 않을까.  시린 손 호호 불며  짧은 해종일  조금씩 데워 놓고 다닙니다.  어린  겨울 햇살은  할 일도 참 많습니다.  (박성만·아동문학가) + 햇빛 좋은 날 엄마가 널어놓은 베란다 건조대 위의 촘촘한 빨래들. 아빠 와이셔츠 어깨에 내 런닝 팔이 슬며시 기대어 있고 형 티셔츠에 내 한쪽 양말이 마치 형 배 위에 올려놓고 자는 내 무엄한 발처럼 느긋이 얹혀있다. 엄마 반바지에 내가 묻혀놓은 파란 잉크펜 자국. 건조대 위에서 보송보송 마르는 촘촘한 빨래들. 빨래 마르는 것만 봐도 안다. 햇빛 좋은 날의 우리 가족.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화초 창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화분 옆에 앉으니,  나도 햇살이 쓰다듬는 한 포기 화초이다. 어린 화초이다. (박두순·아동문학가, 1950-) + 거미줄에 햇살 한 자락  거미줄에  햇살 걸렸다.  금빛  반짝이는 아침 햇살.  바람 사알랑  스쳤다 가면  그 가느단 줄에 매달린  햇살자락 일렁인다.  누가 저리도 고운 햇살  아침마다 걸어 둘까?  온종일  길목에 두고  눈길 끄는  거미줄에 걸린  금빛 햇살  한 자락.  (권영세·아동문학가) + 햇볕 친구 교실 화분이 깨졌다 내가 안 그랬는데 벌로 화장실 청소를 한다                          어제 다투고 토라졌던 단짝 친구 슬며시 다가와 빗자루를 든다                  '도와줄게' '고마워' 말도 없이 그냥 청소만 하는데                      어느새 끼여들어 비질하는 햇살 (안오일·아동문학가) + 화장실에 누가 있나? 아무도 없는 집 누가 화장실에 불을 켜 놨지? 열쇠 구멍으로 문틈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나와 화장실에 누가 있나? 똑 똑 똑 아무도 없나? 문을 열자, 화장실 가득 찬  귤빛 저녁 햇살 해님이 산 넘어 가다 말고 볼일 보러 왔나 봐. (이미옥·아동문학가) + 해님의 하루  우리가 학교 가는 길이 있는 것처럼  해님도 다니는 길이 있을 거야  저 앞산에서 일어나  점심때쯤 우리 마을 앞 큰 느티나무에  제일 작은 그림자를 만들고  교실 안 우리들이 지구본을 굴리며  세상구경에 나설 때  심심해진 해님,  몇 번씩 유리창 안을 기웃거리지.  우리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님은 마을 앞 못자리 논에  물방개랑 소금쟁이 띄워 놓고  같이 놀자 우리들 발목을 붙들지.  한참이나 신나게 놀던 우리들  흙투성이가 되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면  해님은 아쉬운 듯  뉘엿뉘엿...  집에 돌아와 내다보니  해님은,  뒷산 너머마을 아이들과  더 뛰어 노는지  얼굴이 발개져 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윤삼현의 '손톱달' 외  + 손톱달  엄지 손톱에  도동실  달 하나 떠오릅니다.  절반쯤 몸을 숨기고  절반쯤 몸을 내민  예쁘고 하얀 반달  누군가 생각날 때  손톱 한번 들여다보라고  마음이 쓸쓸할 때  환한 이야기 나눠보라고  한금 한금  달 하나  떠오릅니다.  (윤삼현·아동문학가, 1953-)  + 달님  새앙쥐야  새앙쥐야  쬐금만 먹고  쬐금만 먹고  들어가 자거라  생쥐는  살핏살핏 보다가  정말 쬐금만 먹고  쬐금만 더 먹고  마루 밑으로 들어갔어요.  아픈 엄마 개가  먹다 남긴 밥그릇을  달님이 지켜 주고 있지요.  (권정생·아동문학가, 1937-2007)  + 달빛  달빛이 햇볕처럼  뜨거워 봐.  꽃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달빛이 햇볕처럼  밝아 봐.  새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오순택·아동문학가)  + 쪽배가 된 초승달  옥토끼가  갈아먹다 남은  초승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꽁지 몽땅한 새가  잠자러 가면서  쪽배인 줄 알고 타고 간다.  (오순택·아동문학가)  + 초승달  두 끝이 뾰족한  초승달  말간 하늘에 생채기 낼까 봐  별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찌르게 될까 봐   조금  조금  살찌운다.  자꾸  몸이  둥글어간다.  (이정인·아동문학가)   + 초승달  손톱을 깎는다  기다렸다는 듯  깎여진 손톱 하나  탁, 튕기더니  어디 갔을까?  두리번두리번  털어보아도  납작  엎드려 보아도  흔적 없다  멀리?  어디?  꼭꼭 숨었나 봐  툴툴 일어서며 본  서쪽 하늘  어, 저기  내 손톱이  (현경미·아동문학가)  + 새 손톱  한여름 무더위가  물러갑니다.  설렁설렁 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손톱에 들인 발간 봉숭아 꽃물이  물러납니다.  초승달 하얀 새 손톱이  돋아납니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초승달  산골 마을  서산 뜨락은  홍시빛 노을  소몰이 아이 돌아오는  들길은  풀피리 소리.  필리리  필리리  하늘에 번지면,  초사흘  초승달  그 소리 듣고 싶은지!  구름을 헤집고  배시시  얼굴 내 민다.   (최만조·아동문학가)  + 기차를 따라오는 반달  반달은  자꾸만  기차를  따라온다.  알몸으로  하늘을 헤엄치다가  기차가 멈추자  반달도 멈추어 선다.  기차가 출발하자  다시  기차를 따라오는 반달.  (이승민·아동문학가)  + 보름달이 나보고  환하고 밝게 살려거든  둥근 마음 가지라 합니다.  둥근 마음 가지려거든  환하고 밝게 살아라 합니다.  (허동인·아동문학가)  + 보름달  컴컴한 밤하늘에 뻥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어요  구멍으로 나가면 하얀 세상이 있나요?  집도 산도 다 하얀  강도 나무도 다 하얀  흰눈만 펑펑 내리는 하얀 세상이 있나요?  바람이 그리 빠져나가고  구름이 그리 빠져나가고  집 나간 털복숭이 강아지도  그리로 나가지 않았을까요?  나도 저 동그란 구멍으로  나가 볼 순 없을까요?  (김종성·아동문학가)  + 보름밤  오줌 누러 나왔더니  밖이 훤하다  봉당에 서서 오줌 누는데  수민이네 집 수탉이  꼬끼요오, 운다  이장님 댁 수탉도 꼬꾜오오  집집이  아랫말까지  꼬끼요오  꼬꾜오오  속아 넘어간다  달은,  둥그렇게 웃으면서  우리 동네를 보고 있다  (이안·아동문학가)  + 같이 걷지요  달빛은 알지요  두고 가기 싫어하는  강물 마음  강물도 다 알지요  함께 가고 싶어하는  달빛 마음  그래서  달빛은 강물을 데리고  강물은 달빛을 데리고  굽이굽이  같이 걷지요  (유미희·아동문학가)  + 달이 떴다  소쩍새가 노래 부르며 보는 달을  발발발발  짐 지고 가는 땅강아지가  땀 닦으며 본다.  '내일 비 오면 안 되는데…….'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가 보는 달을  '왜 아직 안 오실까?'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가 골목길에서 본다.  달, 참 밝다.  (박혜선·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6    물에 관한 동시 모음 댓글:  조회:1160  추천:0  2017-03-02
   하청호의 시 '마중물과 마중불' 외  + 마중물과 마중불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물 가벼운 것들은 물 위에 뜬다 물이 떠받든다 속을 비운 것도 물 위에 뜬다 물이 떠받든다. (박방희·아동문학가, 1946-) + 물을 마시며  물을 마신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모여 살다 왔는가. 머루 냄새가 난다. 유리컵에 얌전히 담겨 있는  물은  한때는 높은 계곡에서 뛰어내리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깔깔댔었지. 바위의 살결을 만지며  즐거운 여행을 하다가  어느 날엔가 댐에 갇혀  반짝반짝 햇볕에  등을 말리기도 했었지. 우리의 밥상머리에서  목마름을 축여주는  물아, 오늘 아침은  누구네의 수도꼭지에서  또 그렇게  통쾌하게 쏟아지느냐. (오순택·아동문학가) + 물방울  물방울이 스며든다. 뭔가 움켜쥘 손도 없고, 누군가 짓밟을 발도 없고, 오직 맑은 눈망울만 있으므로  스며든다. 열매에 ... 별에 ... 다정한 흙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스며든다. 오직 서로를 바라보는 눈망울만 있으므로, 물방울이 그러하듯이. (이준관·아동문학가) + 산골짜기의 물  산골짜기의 물은  언제나  산골에 머물고 싶어한다. 봄이면 수줍어 바위틈에 숨어서  사알짝 얼굴 붉히던  진달래의 고운 마음씨가  마음에 들고  밤이면  솔밭 사이로 달려온  달님과 어울려  숨바꼭질  즐겁고  징검다리 지나면  등잔불 밝혀 놓고  도란도란  사랑방 이야기가  재미있고  산골짜기 물은  이끼 낀 청바위를 돌면서  산골짜기를 치어다보고  또 한번 돌아서  산골 마을 되돌아보고  언제나  산골에 머물고 싶어  자꾸 맴을 돈다. (강영희·아동문학가) + 물 끓이기 별일 아닌 것 가지고 화르르 성을 내는 가스레인지 싸우기 싫어 부글부글 속으로 참는 주전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가스레인지 활활 덤벼들자 그만, 삑삑 울어 버리는 주전자 울음소리에 놀란 엄마 따다닥 가스레인지와 주전자를 떼어놓는다. (최점태·아동문학가) + 날고 싶은 물 주전자 속에서 날기를 기다리던 물 몸이 따뜻해지자 민들레 홀씨처럼 흰옷 걸치고 날아간다 시원하다 시원하다 꼬리를 흔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간다 주전자는 눈물 질질 흘리며 잘 가라고 인사한다 물과 주전자는 지금 헤어지는 중이다 (박순숙·아동문학가) + 한강물 속 그림자나라 밤이 되면 강물 속에도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지. 한강변 아파트도 물 속으로 내려와 한 집, 두 집 불을 밝히지. 심심하던 송사리 떼 가로등 아래 왁자그르 숨바꼭질 신이 나고 밤잠 안 오는 물새 몇 마리 초인종 눌러대며 아이들 불러낼 궁리를 하지.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에 나만한 아이  "누구니?" 하고 달캉 현관문을 열어줄 것 같은 강물 속 아파트 동네. (한상순·아동문학가) + 물수제비 내가 뜨는 물수제비는   던진 길로 퐁당 물에 빠진다. 삼촌이 뜨는 물수제비는 날씬, 통! 통! 통! 물탕을 튕기며 날아간다. 날아가는 동안 납작한 돌멩이 어깻죽지에 작은 날개가 돋아난다. 둥그런 배때기에 가느다란 다리가 돋아난다. 물 위를  촘, 촘, 촘 딛고 날아가서는 돋았던 날개, 다리를 재빨리 접고 물밑으로 갈앉는다. 갈앉아 후유- 가쁜 숨을 고른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나만의 비밀 개울에서 놀다가 그만 급해서 물 속에 앉아 쉬를 하고 말았습니다 행여 누가 볼까 두리번두리번 나 혼자 몸을 한 번 떨었습니다 개울물이 팬티 속에 손을 넣어 고추를 살살 씻어 주었습니다 (안도현·시인) + 비온 뒤의 강물 낯선 얼굴들이  처음 만났는데도  낯가림도 않고 이내 친해진다. 달동네 지붕을 타고 내린 물도  부잣집 마당을 지나온 물도  만나자마자 하나가 된다. 처음 만났을 때 인사하느라  조금은 떠들썩했다가도  이내 제자리를 찾아 조용하다. 자리다툼할 줄도 모르고  뽐낼 줄도 모른다. 차례를 지켜 아래로만 흐른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강물처럼  왜 강물인 줄 아니? 흐르기 때문이래 고여 있고만 싶다면 강물이 될 수 없는 거래 흐르고 흘러서 내게도 오고 네게도 가고 바다까지 가는 거래 거기엔 고래가 산다잖아 강에선 볼 수 없는 글쎄, 집채만 하대 너도 흘러 본 적 있니? 음…  음… 함께 웃고 도와 주고 나눠 주고 이런 게 흐르는 거라면 (현경미·아동문학가)  
15    날씨에 관한 동시 모음 댓글:  조회:1104  추천:0  2017-03-02
 박소명의 '나뭇가지 온도계' 외 + 나뭇가지 온도계 나뭇가지가 봄바람 품에 손 넣어 본다. ―딱 좋은 날씨야 나뭇가지가 햇살의 온도를 잰다. ―이만하면 됐어 닫혔던 문 연다. ―맘놓고 나가 놀아라 우르르 꽃송이들 내보낸다. (박소명·아동문학가) + 온도계  보리밭에 작은 물결이 일면  울타리 기어오르는 호박 덩굴처럼  사알짝 올라가고. 봉숭아꽃 필 무렵엔  해바라기 대궁모양  쭈욱쭉 뻗어가고. 햇빛을 가득 담은 석류가 터지던 날  달빛에 메밀꽃 강물 되어 여울질 때  지난 해 입었던 아가 옷만큼 줄어들더니, 문풍지가 부엉이 울음을 흉내내고  별들이 유리창에 얼어붙던 밤  몽당연필같이 작아진 빨간 기둥. (김완성·아동문학가) + 곤충들의 날씨 개미가 줄지어 간다 비가 오려고  청개구리가 울어댄다  비가 오려고 장구벌레가 물 위로 떴다 비가 오려고  곤충들은 행동으로 알려주고 있는 거래. (이근우·아동문학가) + 개기       옷을 갠다  양말도 개고  이불도 개고  빨래도 갠다  더 갤 것이 없어  하늘에 널린  구름을 갠다  구름을 개니  날씨가 갠다  날씨가 개니  마음도 갠다 (박방희·아동문학가, 1946-) + 맑은 날 아지랑이의 일렁이는 살결이 보인다. 환한 물의 속살도 비친다. 산의 둥그스럼한 어깨도 잘 보인다 푸름에 젖어 잔잔한 어깨. 슬쩍했던 거짓말이 맘에 걸린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천둥은 "나 내려간다!" 비가 세상에 알리는 기척. 옛날, 할아버지 방문 앞에서 하시던 헛기침 같은 것. 개미는 문단속 잘하고 병아리는 엄마 품에 숨고 빨랫줄에 마른 빨래는 얼른 걷히고 풀잎들은 어깨를 낮추고, "자아, 나 내려간다!" 우르르 천둥이 울린다. (이혜영·아동문학가) + 태풍주의보  암만 바람 불어도  끄떡없어야 한다. 흔들고 흔들어도  짱짱하게 맞서야 한다. 네가 쿵, 떨어지면  할머니 가슴 무너진다. 사과야, 힘세지? 끝끝내  끝끝내  매달려 있어야 한다. (김미혜·아동문학가) + 소나기  소나기가 그쳤다. 하늘에  세수하고 싶다. (김영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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