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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현실을 뛰어넘어 정신을 해방하라 - 앙드레 브르통 댓글:  조회:21  추천:0  2019-05-19
현실을 뛰어넘어 정신을 해방하라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프랑스에서 결성된 아방가르드 그룹이다. 이들은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시민사회의 사고방식과 문화의 귀결이라 보고, 부르주아적 합리성에 입각한 삶의 방식 거부를 예술실천의 동기로 삼았다. ‘초(超)-현실(sur-real)’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는” 지향을 드러낸다.   예술창작에서 이 지향은 현실을 모방하는 대신, 현실과는 전혀 다른 질서를 지닌 ‘초-현실’의 창조로 이어졌다. 논리적 구상과 계획에 따라 제작되는 대신, 즉흥적이고 우연하게 생겨나는 흔적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소산물을 소재로 삼고, 한 개인 예술가의 창조력 대신,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을 초개인적 무의식을 창작 동력으로 삼았다. 이들이 남긴 회화와 조각, 문학작품은 이후 현대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충격적 신선함을 준다.   번역자의 말처럼 “초현실주의 선언과 그에 잇단 몇 가지 선언 형식의 글들이…처음 발표될 당시의 효력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초”-현실주의의 근본지향이 오늘날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과는 달리 『착색 판화집 Illumination』의 랭보와 로트레아몽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은 상상력을 모든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고 상상력의 유일한 힘을 믿었다. 그들은 이성에 의한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고, 미적인 혹은 윤리적인 관심에서 완전히 떠난 상상력을 이용하였다.     브르통이 정의하는 초현실주의는 은유적인 창의력의 완벽성에 대한 믿음, “상상력의 힘은 절대로 지배될 수 없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1922년, 바르셀로나의 한 강연에서 브르통은 이러한 해방의 조짐을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언젠가는 과학들이 처음 보기에는 자신들과 대립적으로 보이는 이 시적 정신에 접근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지금 그 과학들의 쇠사슬을 끊고, 여러 측면에서 부드럽게 휩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바로 발명이라는 천재이다.     1924년부터 브르통의 어조는 더욱 확실해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었다. 브르통은 상상력의 해방이 어떤 결과를 낳든지 간에 전통적인 예속에서 상상력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상상력을 노예 상태로 축소시킨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숭고한 정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오직 상상력만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가르쳐준다.       자동기술법의 초기 작업, 꿈과 무의식의 탐구, 꿈의 이미지나 신문에서 오려낸 제목들을 결합하여 만든 초현실주의 시 등의 경험을 통하여 브르통은 “상상력은 이제 그의 권리를 회복할 단계에 왔다”고 확신한다. 그런 이유로 초현실주의는 모방의 시와 예술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순수한 창조의 시와 예술, 해방된 상상력만의 순수한 창작품을 대체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이제 시인과 예술가는 대상의 종속에서 벗어난 현대 예술의 특권이자 쟁취인 완전한 창의력의 자유를 즐기려 한다. 초현실주의는 상상력의 자율성이라는 원칙 위에 있으며, 그 존재 이유는 바로 이 원칙 위에 세워져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해방은 단지 시와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의 해방과 인간의 사회적 해방까지도 결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에 이른다.     앙드레 브르통은 창의력을 해방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상상력의 진정한 ‘현상학’을 탐구하며 상상적인 능력의 기능을 실험적으로 연구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브 탕기(Y. Tanguy)의 회화에 대하여 브르통은 “예술적 상상력의 전개 능력은 우주의 다양한 현상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은밀함이 상상력으로 하여금 우주에 대응하고 현상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만든다. 여기서 상상력은 인간 미래의 해방의 도구가 되고 세계와 물질 변화의 동인(動因)이 된다.     즉, 상상력은 하늘에서 받은 능력이나 시적 은총이 아니라 바로 ‘전형적인 정복의 대상(par excellence objet de conquete)’인 것이다. 앙드레 브르통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교란을 일으키고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았던 재앙을 부를 수 있는 변화시키는 힘, 혁명적인 힘이다. 상상력으로 인해 시인은 세계의 구조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세계의 구성 요소들을 가지고 세계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흰 머리털이 난 권총 Le Revolver a cheveux blancs』의 서문에서 브르통은 상상의 세계(l'imaginaire)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기도 한다. “상상의 세계는 현실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초현실주의가 이해하는 절대적 현실(le reel absolu)은 자연주의 미학의 대상들인 외부의 모델이나 물질적 자료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가능성과의 동일화이기 때문이다. 즉, 상상력의 기능은 외양의 세계에 실재를 부여하고, 현실을 심화시키고, 직감적으로 가능성의 심장부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상상력 속에서 그 현실이 포함하고 있는 암시적인 계시들을 이해하게 된다. 헤겔(Hegel)의 뒤를 따라 브르통은 상반되는 것들을 결합시키고, 초현실의 범위 안에서 그 둘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변증법적 열쇠를 찾으려 한다. 다시 말해서 브르통은 주체와 대상, 정신과 물질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꿈과 행동, 심리적 현실과 외부적 현실이 상응하도록 노력한다.   초현실주의 운동 초기부터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연과 초자연,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은밀한 연결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상상 사이에 단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이 있는데, 시인의 역할이 바로 그 연관성을 찾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924년 브르통은 이미 정신적인 삶의 모순적인 요소들이 서로 뒤섞이기 위해 모여드는 ‘일종의 절대적 현실성, 즉 초현실성’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1930년에는 브르통은 이를 좀 더 자세히 부연 설명한다.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 소통 가능한 것과 소통 불가능한 것이 모순으로 인식되지 않는 정신의 어떤 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 믿도록 해준다. 그런데 초현실주의 활동에서 이 점을 설정하려는 희망 이외에 다른 동기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다.       미셸 카루즈(M. Carrouges)에 의하면 상반되는 것들이 통합되는 초현실적 장소는 ‘현실의 전체성’을 포함하는 속성을 갖는다. 이는 ‘창조의 기원점’을 상징하는 신비주의자들의 숭고한 점과 동일하다. 그렇지만 브르통이 주장하는 초현실은 신의 존재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숭고한 점이라기보다는 현실 속에 육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브르통의 초현실은 내재성의 원칙에 대응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내재성의 특수한 철학에 이끌리도록 하는 것인데, 그 철학에 따르면 초현실은 실재의 외부나 상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 현실이란 통합하는 힘이고, 세계에 내재하는 중심이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의 외양상으로 보면 모순적인 요구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게 하는 자기(磁氣)적인 힘이다. 이 절대적 현실은 존재의 의식적인 능력들뿐만 아니라 그 근본적인 비이성까지도 감싼다.     시적 창작의 측면에서 보면 절대적 현실은 감각적인 지각과 정신적인 재현의 통합을 이룬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지성적인 능력과 감각적인 능력을 결합시키려는 이러한 의지, 구체와 추상을 구분하려는 태도의 이러한 거부는 바로 상상력의 힘에 의거하고 있다. 이 상상력의 힘이 기호와 의미로 표현된 사물과의 중계 역할을 한다.     현대적인 시와 예술에 있어서 대립적인 것의 융합을 축복하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사물에 대한 지각과 지각된 사물을 재현하는 능력을 결합시키고, 바로 이 종합하는 행위에 의해 사고를 객관화시킨다. 상상력은 이 둘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에서는 사물들을, 지각에서는 심리적인 가치와 자율적인 정신적 형상을 추출한다.     오늘날 예술의 중요한 문제는 정신적 재현이라는 것을 상상력과 기억의 의지적인 연습을 통해서 점점 더 객관적인 정확성으로 이끌어가는 데 있다. ……오늘날 초현실주의가 이러한 수술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장점은 일반 사람들에게 격렬하게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용어, 즉 지각과 재현을 변증법적으로 조화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이 둘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에 다리를 놓았다는 사실이다.   지각과 재현은 정신 쪽으로도 향하고 또 물질 쪽으로도 향하는 상상력의 이중의 활동에 대응한다. 이 둘은 상상적인 사고라는 하나의 능력의 이중적인 기능일 뿐이다.   출처- "디바인 센터"  
45    보르헤스 <하버드대 강의> 댓글:  조회:110  추천:0  2019-03-10
  1. 시라는 수수께끼   그는 시를 '마신다' 고 표현한다. 인간과 우주 앞에서 느낀 당혹감이 그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고 고백한다. 시의 실체는 열정과 즐거움이다.   2. 모든 단어는 잠자는 은유   눈과 별, 시간과 강, 여자와 꿏, 인생과 꿈, 죽음과 잠, 전투와 불 은유의 변형은 무한하다.   3. 이야기하기   이야기 하는 것과 시를 읊는 것이 합쳐지기, 를 즉 이야기의 즐거움에 시의 기품이 추가되기를 소망. 소설이 무너지고 있다. 보르헤스는 시인의 어원이 원래 만드는 사람을 뜻했기에 다시 그런 역할을 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였다. 만들다는 의미는 이야기를 지어내 읊다는 뜻이다.   4. 시의 번역   번역은 반역이다 라는 인구에 회자되는 이탈리아 경구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뛰어넘는 훌륭한 변역이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직역의 기원이 성경의 번역에서 출발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한 존재가 쓴 텍스트를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직역 덕분에 사람들은 모국어와 다른 묘사 방법을 배우고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고 믿는다. 세상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볼 때, 그 역사적 상황보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5. 사고思考와 시   이론에 의해 정의된 문학론 보다는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지 않은 문학 그 자체를 추구한다. 그는 말이 가진 마법의 힘을 설명하고, 중요한 것은 문체의 정교함이 아니라 시가 살았느냐 죽어 있느냐 하는 점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저는 제 자신을 본질적으로 독자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감지하듯이 저는 감히 글을 써왔습니다만, 제가 읽었던 것이 제가 썼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읽지만, 누구든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 수 있는 것을 쓰기 때문입니다.   시가 정체를 드러낸 결정적인 순간의 중요성을 보르헤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어떤 생각과 씨름해 왔습니다. 그 생각이란, 한 사람의 인생이 수천 수만의 순간들과 날(日) 들로 혼합되어 있더라도 그 많은 순간들과 그 많은 날들을 단 한순간, 즉 인간이 스스로가 누구인가를 아는 순간,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問道夕死可矣)"를  떠올리는 말이다. 그 결정적 순간이 심지어 한 인간의 이미지까지도 결정한다는 것이다. 유다가 예수에게 키스하는 순간이 그를 영원히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배신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든 것과 같이. 그 순간을 겪으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키츠가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가 어느 한마리 새의 노래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새소리라고 느끼면서 영원을 맛보았다는 그 시 이야기는 보르헤스의 산문과 시 곳곳에서 인용된다. 핵심은 보르헤스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즉 문인으로서의 소명을 알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저의 인생에서 중심적인 사실은, 언어의 존재 및 그 언어를 시로 짜낼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그 사건이 일어난 아버지의 서재가 그의 고향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십분 이해하게 된다.   보르헤스의 문학 인생은 그 순간의 자기 복제와 재생인지 모른다. 보르헤스 문학의 비밀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물론 그를 글쟁이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외면의 형식이고, 내면적인 내용은 초월(꿈)이 지상으로 드러나는 영매靈媒 로서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제가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 저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성이 작가의 작품과 많은 관련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현대문학의 죄악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너무 자의식적(self- conscious)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저는 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상황들에 대해 잊습니다. 저는 꿈이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애쓸 따름입니다. 평론가들에게 감사하지만, 어쩌면 그들의 거창한 철학적 의미보다는 소박한 꿈을 나누는 일반 독자가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스름 황혼 속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유대인의 손은 렌즈를 몇 번이고 윤을 내고 있다. 저물어 가는 오후는 두렵고 춥다. (모든 오후는 저물어갈 때 그렇게 마련이다.) 게토의 변두리에서 창백해져가는 히아신스 빛 공기와 그 손은 그 말 없는 이에겐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명백한 미로를 꿈꾸고 있었다. 다른 거울의 꿈속에 비춰진 꿈의 반영에 불과한 명성과 처녀들의 두려운 사랑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은유나 신화로부터 자유로운 그는 힘들게 수정을 갈고 있다. 모두 자신의 별들인 ,조물주'의 무한 지도地圖를.   보르헤스의 시 '스피노자'   1969년에 보르헤그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자신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유대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스라엘을 동경했었다. 이때도 중남미 좌파 지식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보르헤스를 비판했다. 어쨌든 이제는 국제적으로 보르헤스의 명성은 확고한 것이 되어, 어딜 가나 그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구루(정신적 스승)' 의 대접을 받았다.   꿈의 책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렬한 삶의 책이라고 보르헤스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위의 단편이 그 점을 생생히 보여준다. 노년이 깊어가며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느낀 보르헤스 역시 이 삶이란 꿈에서 그만 깨어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구나 가끔 악몽을 꾸면서, 그것이 꿈이란 걸 알고,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한편으로 안심하는 것처럼, 보르헤스도 인생 자체가 하나의 일장춘몽이란 걸 인식하고 언제라도 꿈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면서 이 고해苦海를 즐겼는지도 모른다.  
44    T.S. 엘리엇 새로 읽기 : 타자(他者)로서의 무의식 댓글:  조회:108  추천:0  2019-03-09
T.S. 엘리엇 새로 읽기 : 타자(他者)로서의 무의식   엘리엇이 그의 이라는 논문에서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가 이 논문에서 말하는 것을 보기로 하자.   시인이 어떤 점으로든지 특출하거나 흥미를 끄는 것은, 그의 개인적 정서, 다시 말하면 그의 생활의 어떤 특수한 사건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서 때문이 아니다. 어느 시인 그 사람만이 가진 특수한 정서는 단순하고 생격하고 멋없는 것일 수 있다. [중략] 물론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고, 시를 쓰는 데 염두에 두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이 있다. 사실상 졸렬한 시인은 흔히 의식적이어야 할 경우에 무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이어야 할 경우에 의식적이다. 어느 쪽이든지 이런 오류로 말미암아 그 시인은 으로 된다. 시는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정서에서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에서의 도피이다. 그러나 물론 개성과 정서의 소유자라야 개성과 정서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이창배 12-13)   같은 논문에서 엘리엇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면 그것은 [시인이] 시를 쓰고 있는 순간에 좀더 가치 있는 것에 자기 자신을 계속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예술가의 발전은 계속적인 자기 희생이며, 지속적인 개성의 멸절이다.   이러한 개성의 소멸 과정과 이것이 역사 의식과 맺는 관계를 정의하는 일이 이제 남아 있다. 여기서 엘리엇이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집단 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집단 무의식으로서의 전통은 긴 역사의 형성 과정에서 무의식 속에 가라앉은 개성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그가 강조하는 바는 이 같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개인으로서의 작가는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전통은 따라서 개성이라는 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타자로서의 무의식인 셈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개인 차원의 개성을 죽이고 집단 무의식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롤랑 바르트의 다음과 같은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글쓰기는 우리의 주체가 사라지는 중립적이고 복합적이며 비스듬한 공간이다. [글쓰기는 또한]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의 몸을 위시하여 모든 정체성이 사라진 텅 빈 공간이다. [중략] 말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언어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중략] 내가 아니라 언어이며, "내"가 아니라 언어만이 움직이고 "행위"하는 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중략] 언어학적으로 말하면 작가란 결코 글쓰는 행위 이상이 아니다. 이는 라는 말하는 행위 이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언어는 만을 알 뿐 [개인으로서의]의 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언술 자체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이 텅 빈 주체는 언어에게 만으로 족할 뿐이다.   물론 엘리엇과 바르트는 각기 다른 문맥에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이 둘은 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즉, 엘리엇이 작가란 자신의 개성이 아닌 전통이라는 집단 무의식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작가가 아닌 주체로서의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는 대신에 정체성이 멸절하는 곳에 이르는 일이 곧 글쓰기라는 바르트의 주장과 일치한다.   작품은 (서점에서, [도서관의] 도서 목록에서 그리고 시험준비를 위한 지정 필독서 목록에서) 볼 수 있다. 텍스트는 전개 과정이며,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또는 이러한 규칙을 어기면서) 말하다. 작품은 우리 손안에 들어 올 수 있는 것이지만 텍스트는 언어로만 담아 낼 수 있으며, 담론의 움직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바르트가 말하는 담론을 의미화의 사슬로 바꿔 말한다면, 우리는 텍스트가 작가에 의해 그 의미가 확정되거나 종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텍스트는 반대로 무한한 기의의 지연을 실행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암유(allusion)하며, 또한 다른 텍스트들과의 상호텍스트성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생산하는 "전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호들은 단지 떠 다니는 기표들일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 시의 저자가 누구인가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시의 저자는 엘리엇도 그리고 파운드도 아니며 또한 이 둘을 합친 것도 아니다. 이 시에는 무수한 인용과 암유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시의 저자(이제 우리는 저자 대신에 글쓰기의 주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는 엘리엇과 파운드 말고도 이 시에 인용되고 암유된 성경을 비롯한 무수한 동서양의 텍스트들의 글쓰기의 주체들이다. 이 시는 단지 이 같은 주체들의 정체성이 소멸된 자리에 타자로 남아 있는 집단 무의식이며, 이 집단 무의식은 곧 언어인 셈이다. 그러나 누가 이 시의 글쓰기의 주체인가에 대한 질문은 아직 완전히 답해진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글쓰기의 주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시의 글쓰기의 주체가 언어라면 이 같은 언어는 또한 글쓰기의 주체의 참여뿐만 아니라 또한 글읽기의 추제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이는 언어가 우리 모두의 참여를 요구하는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쓰기가 글읽기를 전제로 한 것이며, "텍스트가 하나의 생산적 활동에서만 경험되는 것"이라면 [황무지]의 글쓰기의 주체는 위에서 말한 모두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엘리엇, 파운드, 인용되고 암유된 모든 텍스트들의 글쓰기의 주체 및 집단 무의식과 이 시를 읽는 독자들 모두를 이 텍스트의 글쓰기의 주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엇이 이 시에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나오는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의 동포여, 나의 형제여!"-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시의 글쓰기의 주체가 또한 독자도 포함함을 엘리엇 자신이 상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자로서의 무의식은 이 시 텍스트의 공간을 이처럼 활짝 열린 글쓰기의 공간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또한 넓은 의미화의 공간으로 만들어, 무수한 텍스트 사이의 연계가 가능한 넓고 넓은 해석의 공간을 제공한다. 타자로서의 무의식의 반란은 이제까지 무의식을 억압하던 의식을 여지없이 전복시켜 의식을 단지 "한 무더기의 깨어진 성상들"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이같이 붕괴된 의식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글쓰기의 주체로서의 독자와 다른 텍스트들의 집단 무의식을 복원시킨 셈이다. [중략]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의 욕망"이라고 라캉은 주장한다. 이 같은 욕망은 단지 대상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욕구와 욕구가 채워진 후에도 아직도 채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나머지를 지칭한다. 이 같은 나머지로서의 욕망은 결핍의 존재(want-to-be)로서의 인간의 본질적인 상황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중략] "욕망하기"는 곧 "욕망하기를 원하지 않기"라는 억압된 욕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욕망의 억압을 습관화한 현대인의 특질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희열의 텍스트는] 독자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인 가정을 전복시키고 그의 취향과 가치관 그리고 기억의 일관성을 교란시키며, 그와 언어의 관계를 위기로 몰아 넣는다. 따라서 상징질서로서의 언어를 위기로 몰아 이를 전복시키는 것은 타자로서의 무의식이며, 이 같은 무의식은 구심점이 없는 조각난 텍스트들의 집합인 셈이다.      *이정호 (서울대학교 출판부) : 제4장 타자(他者)로서의 무의식 151쪽~  
43    T. S. 엘리엇 비평의 대화적 상상력 댓글:  조회:103  추천:0  2019-03-09
시론을 '시작' 하며 또는 용의 머리(龍頭) : 소위 '포스트' 시대에 교활한 엘리엇 '되' 살리기  또는 '새로' 읽기 또는 '다시' 좋아하는 법 배우기 중에서.       엘리엇은 좋은 의미에서 '교활한' 야누스이다. 여기서 '교활한'이란 말은 다면체적 엘리엇에게서 우리는 그의 한 면만을 보고자 고집하게 때문에 생기는 그의 알 수 없는 다른 면에 대해 의혹/의심하는 우리 자신의 '불평'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는 담장에 걸터 앉아 언제나 양쪽을 바라보는 포월(匍越)하는 니체의 '초인'이다. 엘리엇은 미국 '남부인'으로 태어나 동부의 최고 대학을 다닌 '동부인'이 되었으며,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아버지와 문학적인 감수성이 예민한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이 많았던 소년이었다. 갈등과 대화의식은 그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 시절에서부터 지적 호기심이 강한 방랑자, 유목민으로 철학을 전공하였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가 없었고 ('철학'과 '문학'의 보이지 않는 대화이던가?) 시의 습작을 시작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서양 철학은 물론 동양 철학(특히 인도 철학)에도 심취하였다. 이 때부터 그는 이미 정신적 지적 유목민이었다.   엘리엇은 위대한 이민자였다. 미국에서 모든 가능성을 버리고 스스로 지적 정신적 망명자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급진적으로 '타자화' 하였다. 그는 약속되었던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 자리를 의연히 떨쳐버리고 I.A. 리차드가 제시하였던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 영문학과의 자리도 거절하고 치열한 세속적 삶의 싸움터인 런던의 야시장 바닥에 자신을 내던졌다.   엘리엇이란 작가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시대적 '산물'이다. 제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의 극심한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작가로서 키워져 버린(만들어진)-자신의 의지에 반(反)하여-분열되 버린 자기 시대 속에서의 실존적 지식인이었다(이는 초기시 [프루프록의 사랑노래]나 [황무지]에 잘 나타나 있다).  초기시의 '심적' 자아는 초기 산문에서 '공적' 자아로 나타난다.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뒤얽힘과 갈등은 [푸루프록의 사랑노래]에 실존적으로 상상계와 상징계의 대화구조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초기의 '시'와 '산문'의 갈등구조는 자신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또 다른 양상인가? '시'에서는 엄청난 형식파괴를 통한 실험 그리고 [황무지]의 경우에서처럼 시 텍스트 구성에 있어서 상호 텍스트의 예상치 못한 병치와 접합으로 새로운 충격과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논하는 바흐친의 눈으로 보자    그의 [도스토예프스키의]의 생각은 어디에서든지 목소리들, 반(半)목소리들, 다른 사람들의 말, 다른 사람들의 몸짓이라는 미로를 통해 나아간다. 그는 다른 추상적인 입장을 토대로 하여 그 자신의 입장을 결코 증명하지 않는다. 그는 전혀 어떤 지시적인 원칙에 따라 생각을 서로 연결하지 않으며 여러 견해들을 병치시킨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 자신의 견해를 구축한다.   같은 맥락에서 엘리엇 자신은 병렬적 상상력과 중층적 구조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터너와 미들턴의 시행을 보면, 언어의 끊임없는 작은 변모가 일어나고, 어휘들은 끊임없이 새롭고도 갑작스러운 결합 속에서 병치되고, 의미들은 끊임없이 다른 의미들과 중첩된다. 이것은 감각의 아주 높은 단계로의 발전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결코 필적할 수 없었던 영어라는 언어의 발전-을 증명하는 예이다. 그리고 정말로 체프먼, 웹스터, 터너, 단의 죽음과 더불어 우리는 지성이 즉각적으로 감각과 닿아 있었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감각은 어휘가 되었고 어휘는 감각이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지성과 감성이 손쉽게 교류하는 대화관계에 있고 감각과 어휘 사이에 자연스럽게 환유적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엘리엇의 시의 이러한 대화적 중첩적 특징들은 산문에서는 문체나 내용적인 엄청난 절제와 통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초기의 엘리엇에게 분명 시는 산문의 알터 에고(alter ego)였다. 어느 것이 진정한 엘리엇인가? 왜 이와 같은 긴장관계를 만드는가? 분열증은 시에서 토해 내고 다시 산문에서 편집증적으로 추스린 것은 엘리엇 특유의 담론전략이었던가? 분열증인가? 편집증인가? 그러나 엘리엇 자신의 자신의 시와 산문과의 상호보완 관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의 비평에서 가장 정확한 의견들을 주장하는 반면 나의 운문에서는 그 의견들을 파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두 개의 얼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중적 역할을 가진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수치감도 느끼지 않는다. [...] 산문에서는 사색이 이상과 합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반면 시작(詩作)에서 우리는 단지 실제만을 다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는 다른 시뿐 아니라 산문으로부터도 배울 만한 것이 있다. 그리고 나는 산문과 시 사이의 상호관계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관계처럼 문학에서 생명력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엇은 주위의 끔찍한 현실 -서구 문명의 몰락과 와해의 '시작'-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해명할 수도 없었다. 절대적 진선미를 추구하려던 자신은 이미 산산이 파편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자신이 통합하고자 했던 (서구 중심의) 세계는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중략   엘리엇 자신도 그 어느 비평도 후세에 계속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떤 문학비평도 후세대를 위해서 그것이 자체로 계속 유용하지 않다면 그리고 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본질적 가치를 계속 가지지 않는다면 호기심 이상의 감성을 자극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 비평의 일부가 이러한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가진다면, 우리는 만일 우리가 또한 그 작가와 그의 첫번째 독자들의 입장 속에 우리 자신들을 집어 넣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경우 그 가치를 그만큼 더 정확하게 향유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무엘] 존슨과 콜리지의 비평을 공부한다면 틀림없이 커다란 보상을 받을 것이다.   대화적 비평의 대가들인 존슨과 콜리지를 보고 엘리엇이 끊임없이 배웠듯이 우리는 엘리엇의 의식구조[대화구조]에 우리 자신을 새로 끼워 넣어 다시 읽고 새로 써서 그의 비평의 가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 다시 말해 알튀세적인 '징후적 읽기'를 통해 엘리엇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보이게 만들자. 이러한 시도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42    보르헤스 詩學 -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댓글:  조회:103  추천:0  2019-03-09
보르헤스 詩學 -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데리다(J. Derrida)는 ‘쓰기학’에서 사람의 마음을 표시할 수 있는 어떤 말도, 쓰기도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 소위 ‘차연’(differance)이라는 말로 데리다는 종래의 ‘논리 중심주의’에 반기를 든다. 데리다는 서구의 논리 중심주의의 뿌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소리 중심적 사고에 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소리는 영혼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말을 들으면 진실을 알 수 있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영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 쓰기는 말을 받아적는 부차적 행위로 생각되었다. 여기에서 인류는 말하고 쓰는 행위가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믿는 논리 중심주의를 전통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차연’이란 말로 이들 전통에 반발하면서, 쓰기나 말하기는 항상 어떤 현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동시에 표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예를 들어 나의 지금 느낌을 표현한 ‘춥다’라는 말은 이미 추웠던 느낌의 대치물일 뿐인 것이다. 동시에 내가 느꼈던 ‘춥다 !’는 느낌의 질이나 양을 ‘춥다 !’는 말이 대변하지 못한다. 말과 느낌 사이만 해도 이토록 시간적 차이(지연)와 질적 차이가 나는 것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 문화는 언어를 통하여 다르게 구현되어왔다. 그러나 데리다나 라깡(Jacques Lacan)에 와서 그 언어라는 것이 어떤 본질이나 대소망(라깡의 ‘Phallus’)을 직접적으로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없음이 이야기된다.   이들 해체주의의 사고는 보르헤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맨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많은 사고는 보르헤스로부터 기원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사람이다. 모든 시인들처럼 시를 읽고 시를 쓴다. 책이나 시가 나의 마음이나 느낌을 포착함과 동시에 처음 그대로 투영할 수 없는 것이라면, 시 속의 나의 느낌이란 것도 남의 느낌, 시의 언어의 느낌, 남의 시를 읽어 아는 느낌일 수 있다. 나의 시 속의 나의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시를 쓸 때는 이미 지나간 느낌일 뿐이어서 시나 글은 나의 살아 있음의 어느 호흡도, 세포의 움직임도, 지금 숨이 넘어가고 있음도 체크하지 못한다. 나의 시에 그런 살아있음의 현실감이 잡힌다면 그건 실감나는 현실일 뿐 현실 자체는 아니다.   언어는 관습의 산물이고 문학, 철학 또한 이런 관습의 소산이라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나의 사고이기 이전에 관습의 것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구약성서의 말을 시학으로 구현한 ‘해체주의 시인’이 바로 보르헤스다. 대부분의 시는 성서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시 속에 다시 한번 ‘그’다. 즉 ‘타인’ (elotro)이다. 보르헤스는 시를 쓰다 말고 묻는다. “그 둘 중의 누가 이 시를 쓰고 있는가 / 그 복수의 나, 아니면 단 하나의 그림자?/ 말이 무슨 상관이랴, 내게 오는 이 말이, / 결국 구분할 수 없는, 똑같은 저주.....” 그 ‘복수의 나’는 역사 속에서 나처럼 인생을 살았고 그 삶을 책으로 남긴,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읽고 내 가슴을 움직인, 그 많은 지나간 삶 또는 앞으로 올 삶들을 점지해 가는 단수가 아닌 여러 사람의 나다. 그러나 이들 나를 이루고 있는 삶이나 문화의 흔적들은 모두가 허상 즉 ‘하나의 그림자’임에서 일치한다. 신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책을 읽었고 읽어가고 있는 중생들은 그 알 수 없는 그림자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저주받은 영토도 동시에 지금 나의 삶이 숨쉬고 있는 은혜의 터다. 바벨탑 이전의 언어, 신의 언어는 우리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미로이며 미궁이다. 그러나 그 부서지고 흐트러진 형상 속에 또한 참 삶의 모습이 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   청동으로 새긴 6각운의 시 수천개의 길고 긴 시구 맨 처음에 그리스 시인은 기원한다 그 어려운 뮤즈, 혹은 신비한 불꽃에게 아킬레스의 분노를 노래할 힘을 달라고, 호메로스는 알고 있었다, 타인이 –어떤 커다란 신이- 우리의 어두운 작업을 사나운 불빛으로 상처내고 있음을; 몇 세기가 지난 뒤 성서는 말하리라, 성령은 마음내키는 대로 불어닥친다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정한 신은 반드시 선택받은 자에게만 완전한 도구를 준다: 밀턴에게는 사방에 어두운 벽을, 세르반떼스에게는 추방과 무명의 아픔을, 세속의 시간의 기억 속, 영원한 것은 신의 목소리뿐, 그 찌꺼기만 우리 것.   그렇다. 불멸의 작품은 이름모를 신의 뜻이다. 이름을 모름은 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신은 오히려 부재의 모습으로 지금 나의 인생과 나의 시의 됨됨에 참여하고 있다. “무정한 신은 / 반드시 선택받은 자에게만 완전한 도구를 준다.” 이해할 수 없는 우연과 고난과 불멸의 영광을 말이다. 롱기누스(Longinus)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함을 시쓰기의 방편으로 제시하면서, 고전 속에는 뮤즈로부터 받은 혼이 숨쉬고 있다는 소리를 한다. 그 혼은 글을 읽는 독자를 매혹하고 또다른 시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영감론을 재해석한 롱기누스의 창조적 모방론은 보르헤스에게도 통한다. (중략)   보르헤스는 말라르메와 함께 ‘말이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전통 속의 말일 수밖에 없다. 즉 나의 말이 아니라 남의 말, 남들의 말이다. 따라서 나의 시는 ‘다른 사람’ 즉 남이 쓴다. 그것은 나의 시 앞에서 나의 절망을 뜻하지는 않는다. 나의 시가 내 것이 아니듯이 남의 시도 남의 것이 아니다. 다 똑같이 ‘어둠의 자식들’이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말을 쓰지만 같은 냄새, 같은 체험, 같은 뜻으로 쓸 수는 없다. 이 시를 쓰는 나는 내 시 앞에서 타인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 내 시로 공감할 수 있다. 내가 내 시의 작가가 아니라는 말과 내 시의 시인이라는 말은 똑같은 소리, ‘똑같은 사람’의 어두운 발성일 뿐이다.   그러나 내 시가 남의 시인 것은 그것이 특히 독자들의 읽음을 통하여 살아가는 숙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단 쓰고 나면 나는 내 시의 하나의 독자일 뿐이다. 나의 시는 독자의 시다. 내 시를 쓰는 나도 내 시앞에서 타인이며, 내 시를 시 되게 하는 시를 읽는 독자도 타인이다. 내 시는 타인의 시다. 모든 타인의 시는 동시에 나의 시다. 모두 똑같은 사람의 시다.(중략)   보르헤스는 영감을 믿는 시인인 점에서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영감의 자유를 믿지 않는 숙명론자인 점에서 비극적 감성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다. 아니면 안또니오 마차도처럼 나그네 삶의 ‘우수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보르헤스는 그의 시가 그의 생명도 삶도 그 어느 것도 대변하거나 살릴 수 없음을 안다. 그는 시를 믿지 않는다. 그는 시 없는, 책 없는 인생을 믿지 읺는다. 보르헤스는 시를 쓰지 않는 인생, 아니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무명의 삶의 위대성에 각별한 애착을 갖는다.     사화집의 한 무명시인에게   지상에 오직 너만의 것이었던, 우주가 오직 너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 고통과 행복으로 짠 비단, 그 아름다운 날들의 기억은 어디 있는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강물의 나날들 그들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너는 이제 사화집 목차 속의 한 이 름.   신들은 남들에게 끝없는 영광을 내렸다. 비문이며 공적문이며 기념비며 정확한 역사가들까지; 자네에 대하여 아는 유일한 것은, 희미한 친구여 어느 하오에 두견새 울음을 들었다는 사실.   어둠의 수선화 사이, 자네의 희미한 그림자는 신들이 너에게만 깍쟁이었다고 하겠지. 하지만 세월은 하찮은 빈곤의 그물 같은 거지, 망각으로 짜여진 잿더미의 평화보다 더욱 훌륭한 결론이 있을 수 있을까 ?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들이 녹슬지 않는 영광의 빛을 던졌지, 마음의 내장을 비추고 그 균열을 하나하나 들추어낼 수 있는, 그러나 그 영광 또한 그토록 경애하는 장미를 끝내 송두리째 으스러뜨리고 말게 하는.... 자네에게만은 신들이 비교적 자비로웠던걸세.   아직 밤이 아닌, 밤일 수 없는 어두운 하오의 황혼 속에서 자네는 아직 테오크리토의 두견새 울음을 듣지 않는가.   보르헤스는 백과사전 출신, 도서관 출신 시인이면서 반독서주의자다. 고전처럼 유명시인의 시처럼 많이 읽히는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는 신의 일이다. 시의 영광과 패배는 타인의 일이다. 신들이나 타인의 장난은 알 수가 없듯이 더러 시인은 성공하고 실패한다. 그렇다고 시를 살지 않고 삶을 사랑하지 않는 시인은 없다. 오늘 독자에게 영광을 얻지 못한 시와 시인은 내일과 신에게서 더욱 영원한 독자를 만날 수 있다. 이딸로 깔비노(Italo Calvino) 말처럼 독자는 미래를 안다. 시는 독자의 것이며 신의 것, 망각의 것이다.   보르헤스는 ‘무명시인’ 혹은 ‘작은 시인‘ (Poeta Menor)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아래의 시는 위 시의 해석이 된다.   종착점은 망각 나는 조금 빨리 도착했을 뿐   위 두 시에서 보르헤스는 시와 시인의 길은 어차피 파멸과 망각을 향해 있음을 안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그 유명한 에서 “죽음은 시와 시인을 잡아간다”라고 했던 것을 아르헨띠나 시인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어느 영광도 장미도 부서지고 으깨어지는 숙명일밖에, 그래서 차라리 “망각으로 짜여진 잿더미의 평화”가 오히려 먼저 도착한 미명의 영광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리 영광이니 명예를 주지 않은 ‘무명시인’에게는 신이 오히려 떨리는 슬픔, 무너지는 아픔을 면제해주는 자비를 베푼 게 아닌가.   보르헤스는 노자의 ‘무명(無名)’을 배운 것 같다. 그의 시에는 유달리 무명시인, 작은 시인에 대한 애착이 두드러진다. 무명시인은 시와 시인이 가야 할 길에 미리 와 있는, 그 망각의 강가에 미리 도착해 무상의 마지막 햇살을 즐기고 있는 득도의 맛을 풍긴다. 득도의 경지이기에는 아직 서글픔과 우수가 얼룩지는 라틴계의 핏기가 있지만....“ 아직 밤이 아닌, 밤일 수 없는 어두운 하오의 황혼 속에서/ 자네는 아직 테오크리토의 두견새 울음을 듣지 않는가.” 그렇다.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강가에서 듣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두견새 울음에서 황홀감을 느낀다. 그의 또다른 무명시인에 관한 시를 보자.   1899년 어느 무명시인에게   하루의 가장자리쯤, 숨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서글픈 시간을 위해 시를 남긴다는 것, 황금빛 반짝임과 희미한 그림자의 아픈 날짜에 너의 이름표를 단다는 것, 그것이 네가 원했던 것. 하루가 기울고 있을 때, 또 얼마나 열심히 그 이상한 시구를 쓰고 다듬고 했었을까 ! 우주가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여기 이상한 푸르름이 존재했음을 알리려는 그 이상한 시구 ! 네 뜻이 성공했는지, 심지어 나는 네가 실제 존재했는지조차도 나는 모른다, 세월 속의 희미한 이름의 힘아, 하지만 나 또한 홀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망각에게 세월 속에서 너의 가벼운 그림자를 다시 찾아오도록 부탁한다, 땅거미가 지는 순간에, 이 지친 나의 안타까운 말벗이라도 되어주도록.   보르헤스는 시가 황금 월계관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살아 있음은 곧 망각을 향하여 가는 길임을 안다. 다만 땅거미가 질 무렵의 푸르름, 그 작은 위안을 위해 시가 있다고 믿는다. 영원한 것은 무명에 가까운 작아짐의 형태에서만 또렷해진다. 그것은 세월 속에 너도 나도 살아 있었음의 더러는 슬프고 더러는 행복했었음의 마지막 증표다.     시학   세월과 물로 된 강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시간은 또다른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강물처럼 사라져갈 것을 알며 얼굴들 또한 강물처럼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눈을 뜨고 본다는 것도 또 하나의 꿈임을 느끼며 꿈을 꾸고 있지 않다고 꿈꾸는 꿈,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두려워하는 죽음 또한 밤마다 꿈이라고 부르는 그런 죽음밖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며   하루의 한 해 속에 사람의 나이와 세월들의 상징을 읽으며, 세월이 앗아간 인생의 아픔을 음악으로, 소음으로, 상징으로 바꾸어가는 일.   죽음 속에 꿈을 보고, 석양에 하나의 슬픈 황금을 보는 일, 이것이 시 영원한 가난의 되풀이: 시는 여명처럼 석양처럼 늘 되돌아온다.   이따금 하오가 되면 거울 한가운데서 한 얼굴이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예술은 바로 그런 거울 같은 거, 우리 스스로의 얼굴을 밝혀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율리시스는 그 위대한 업적에도 지치고 지쳐,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 마을을 바라보며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초라하고 파란 마을을 보며....예술은 위대하지 않다: 이타카 마을, 그 파란 영원.   또한 그것은 끝없는 강물 같다 흘러가고 남고.... 만물은 흘러간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거울: 모든 것은 다 똑같다 그리고 다르다, 끝없는 강물처럼.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 구태여 헤라클레이토스만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동서가 세월의 흐름을 알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율리시스나 보르헤스나 우리는 똑같다. 보르헤스 앞에서 낭만주의의 독창성은 갈 길이 없다. 강물은 흘러가지만 강은 길게 누워 있다. 수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흘러가고 흘러오지만 도서관은 여기도 저기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지금 여기 살지만 죽은 사람들을 읽고 또 나의 죽음을 창조한다. 거울 속에 비춰보는 나는 나지만 모든 사람의 얼굴을 닮았고 같은 인간이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다. 나는 때때로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나의 인생 ! 나의 공적 ! 나의 시 !’ 그러나 목소리를 낮춰라. 모든 것은 부서지게 되어 있다. 마침내 우리는 모두 파란 이타카 고향 마을, 그 파란 영원에서 다시 만나리라. 시는 그 가난과 파란 언저리에 돋는 풀이다. 보르헤스의 시의 주제는 거의 모두 지나간 다른 작품, 다른 시인들에 관한 것들이다. 똑같은 작품에 보르헤스의 숨결과 보르헤스의 덧입힌 되읽기, 되쓰기, 풀어쓰기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는 하나도 새로운 것을 쓴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쓰고 또 죽어갈 사람들에게 읽힌다.   지금 내 시를 읽고 있는 분에게   당신은 무적이다,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법칙을, 먼지의 확실성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당신의 시간은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의 거울 속 세월의 무상함의 상징 그 강물의 시간이 아니고 무엇인가 ?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읽지 못할 대리석 비문, 거기, 당신의 날짜와 도시 그리고 기록이 이미 적혀 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시간의 꿈들. 견고한 청동도 정교한 황금도 없다. 우주는 당신처럼 변덕쟁이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의 것. 그림자여, 당신이 가는 곳은 당신을 기다리는 또하나의 어둠, 거기 어둠이 숙명처럼 당신의 여정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라, 어떤 형태로든 당신 또한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민용태 (1995년, 창비) p218 ~ 229    
41    이정문<세계문학사조의 흐름> 댓글:  조회:99  추천:0  2019-03-09
세계문학사조의 흐름     (1) 고대 서양 문학   서양의 고대 문학은 인간 중심적이며, 합리적· 심미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 문학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문학의 주된 양식은 서사시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대표적이다. 한편 기원전 7세기경에는 서정시가 발달하여 사포(Sappho)와 같은 여류 시인이 나왔다. 또한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연극이 크게 흥행하여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3대 비극 작가가 활동하였고, 희극 분야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시사 문제를 제재로 인간과 사회를 풍자, 비판하며 이름을 떨쳤다.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던 로마는 광대한 제국의 통치라는 과업에 몰두하여 심미적이며 사색적인 분야에 탐닉할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적 성격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대표적 작가로는 생동적인 서민풍의 희극을 많이 남긴 플라우투스(T.M. Plautus:BC254-BC184), 민족적 서사시 `아에네이스`를 쓴 로마 제일의 시인 베르길리우스(M.P. Vergilius:BC70-19), 아름다운 「서정시집」을 쓴 호라티우스(F.Q. Horatius:BC65-BC8) 등이 있다.   (2) 대표작가 및 작품   ① 그리스 신화 신화는 고대인의 민간 신앙을 근원으로 하는 작가 불명의 전승적인 이야기로서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최초의 문학 창작물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자연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해석하며 나름대로 인간관과 우주관을 정립하였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일찌기 신이라는 상징을 만들어 그들 사이에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신들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였다. 그리스 신화를 특별히 중요시하는 이유는 서양의 문화, 문학, 미술이 여기에 근거하는 바가 크며 내용적으로 인간 존재의 근저에까지 깊이 파고들며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② 고대 그리스의 작가 · 호메로스(Homeros:기원전 800년경) 고대 그리스의 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작가로 알려졌다. 이들은 구술 낭송을 위한 작품으로 여기에는 각 장면에 적합한 상투적인 문구와 레퍼토리를 자유자재로 빌려 온 흔적이 드러난다. · 소포클레스(Sophokles:BC486?~404)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하나이다. 그는 비극의 전승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를 가장 이상에 가까운 비극 시인으로 꼽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  `아이아스` 등이 있다. · 아이스킬로스(Aischylos:BC525~45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하나이다. 일찍부터 연극 경연에 참가하여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오레스티아`, `페르시아 사람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등이 있다. · 에우리피데스(Euripides:BC484~40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하나이다. 주요 작품으로 `메디아`, `트로이의 여인`, `박쿠스의 신녀(信女)` 등이 있다. ·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BC445?~485?) 그리스 최대의 희극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 `구름`, `여자들의 평화`, `개구리` 등이 있다.   ③ 베어울프(Beowulf) 고대 영국 문학의 최대 걸작이다. 8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2부로 구성된 줄거리에서, 제1부는 국왕의 조카인 베어울프가 궁전을 밤마다 습격하는 그렌델이라는 악귀와 그 어미를 죽이는 이야기이다. 제2부는 50년 이상 세월이 지나 왕위에 오른 베어울프가 나라를 괴롭히는 용을 물리치지만 용의 독기 때문에 전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와 소재를 바탕으로 무인 사회 영웅들의 이상적 상을 그려 보여 준다.   ④ 힐데브란트의 노래(Das Hildebrandslied) 독일어로 된 최고(最古)의 영웅 서사시이다. 800년경 수도원의 승려가 글씨 연습을 위해 기도서에 적어 놓아 후세에 전해지지만, 시의 제작은 이보다 100여 년 전의 일로 추산된다. 동코트 족의 장군인 힐데브란트는 고국을 떠났다가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힐데브란트의 부대는 국경에서 수비대와 대치하게 되고, 결투에 앞서 젊은 수비 대장이 30년 전에 남기고 간 그의 유일한 혈육임을 알게 된다. 놀라움과 기쁨 속에 힐데브란트는 순금 팔찌를 증거물로 보이며 부친임을 알리지만, 부친이 이미 전사한 것으로 아는 젊은 대장은 정정당당히 결투할 것을 요구한다. 대치한 양군에서도 두 영웅의 결투를 바라는 심리도 있어 할 수 없이 힐데브란트는 단장의 심정으로 아들과 결투를 한다. 필사(筆寫)는 여기에서 중단되어 있지만, 전설로 전하는 다른 자료에서는 힐데브란트가 유일한 혈육을 죽인다. ⑤ 롤랑의 노래(Chanson de Roland)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서 작가는 알려져 있지 많다. 778년 샤를마뉴 대제의 에스파냐 침공군이 돌아오는 길에 계곡에 잠복해 있던 적군의 기습을 받아 후미 부대가 전멸한 역사적 사실을 작품화한 것이다. 여기서 롤랑은 후미 부대의 대장으로서 이교도 군에 대한 승리야말로 참다운 목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위급을 알리는 뿔피리를 분다. 그러자 대제가 본대를 이끌고 달려와 적군을 물리치고 후미 부대의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이다. 투철한 십자군 정신, 봉건적 주종의 충성심, 조국애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⑥ 길가메시(Gilgamesh) 바빌로니아 수메르 지방의 서사시로서 대략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길가메시는 여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반신반인의 인물로서 위압적인 폭군이다. 그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에서 삶의 허무를 목격하고 영생의 길을 터득하기 위해 죽지 않는 인간 우트나피쉬팀(Utnapishitim)을 찾아 나선다. 길가메시는 먼 여행 후 그를 만나지만 “나도 영생의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니기에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듣는다. 하지만 그 아내가 젊어지는 신비의 약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줘, 길가메시는 그 곳에서 약초를 얻어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오랜 여행으로 지친 길가메시가 시원한 물을 만나 목욕하는 사이 물 속에서 나온 뱀이 그 약초를 먹어 버리는 바람에, 그는 인생의 깨달음(생·노·병·사)만 얻고 빈손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⑦ 마하바라타(Mahabharata) 산스크리트로 쓴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이다. 기원전 약 15세기경에 인도 북부의 어느 호전적 종족이 치른 전쟁에 대한 전설에 근거하여 쓰여졌다. 내용은 판두 왕국이 크리시나와 판차라스 왕국의 도움으로 쿠루 왕국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승리의 이야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하바라타`는 인간들의 진실한 삶이 지닌 충만성을 보여 주고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들을 선명하게 묘사하여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이 서사시는 인도의 문화, 종교와 윤리 등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었다.     (1) 특징   중세는 보편 종교의 출현과 공동 문어의 사용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문학이 귀족층의 상층 문학과 일반 평민들의 하층 문학으로 이원화된 것이 눈에 띈다. 상층 문학은 유럽의 라틴어, 동양의 한자, 인도의 산스크리트와 같은 그 문명권의 공동 문어에 의해 주로 창작되어 기록 문학으로 전해진다. 반면에 하층 문학은 개별 민족 및 지방의 토착어에 의한 구비 문학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상층 문학이 공동 문어를 사용함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경계선을 초월한 보편적 미의식을 향유한 반면에, 하층 문학은 각 지역의 풍토와 생활을 토착어로 표현하는 향토적 성격이 강하였다.   (2) 중세 성직자 문학과 기사 문학   중세에는 봉건적 규범이 유럽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것의 토대를 이루고 있던 것은 기독교 이념이었다. 그리하여 문학에서도 성직자들의 참여가 가장 두드러진다. 성직자 문학은 공동 문어를 사용하며 속세를 초월하는 이상 추구를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지역 특유적인 인간의 심리나 삶의 태도를 표현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영적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성직자 문학과 대비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기사 문학이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세상의 여러 문물을 접한 기사 계급들은 세속적인 문제들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기사 문학은 영웅 서사시, 기사도 이야기, 서정시 등으로 나뉘는데, 게르만 영웅 전설을 집대성한 `니벨룽겐의 노래` 영국의 `아서왕 이야기` 등은 모두 영웅적인 기사들의 용맹과 무훈을 노래한 것들이다. 한편 중세에는 프랑스의 트루바두르, 독일의 민네징거와 같은 음유 시인들이 등장하여 귀부인에게 바치는 기사들의 정신적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중세 유럽의 문학은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도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3) 주요작품     ① 니벨룽겐(Nibelungen)의 노래 중세 독일 문학의 대표적 장르인 영웅 서사시의 걸작으로 꼽힌다. 대체로 1200년 무렵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지만 내용은 5, 6세기 민족 이동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부에서는 멜로빙거 왕조의 피비린내 나는 집안 싸움, 제2부에서는 아틸라가 거느리는 훈족과 부르군트족과의 싸움, 아틸라가 죽은 뒤 훈족 내부에서 전개되는 왕자들 사이의 투쟁이 다루어진다. 전체적으로 이교도적인 분위기와 게르만인들의 숙명적 세계관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기사풍의 요소와 궁중 문화적 요소가 함께 가미되어 있다. ② 신곡(神曲) 단테(A. Dante:1265~1321)의 작품으로 중세 말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우주관과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으며, 중세 문학적 전통의 절정을 이룬다. 형식은 전체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부로 나뉘고 각 부는 또 33개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단테 자신이 등장 인물이 되어 처음에는 베르길리우스를, 다음에는 베아트리체를 안내자로 삼아 피안의 세계를 편력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게되고 드디어 높은 경지에 이르러 삼위일체의 깊은 뜻을 깨닫는다. ③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중세 영국의 최대 작가인 초서(G. Chaucer:1340~1400)의 대표작으로서 이야기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데카메론`이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이야기 속의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캔터베리에 순례하러 가는 29명의 사람이 어느 여관에 함께 묵게 되는데, 각자 다른 신분과 직업을 가진 이들은 지루함을 덜기 위해 교대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서론에 이들의 직업과 성격을 미리 밝히고 각자의 특성에 부합하는 얘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야기 내용과 이야기하는 사람 사이에 연관성이 형성된다. 각각의 이야기 사이에는 사회자인 여관 주인의 비평과 사회의 말이 들어가기도 하고, 청중의 감상이 튀어나오기도 하며, 심지어 얘기를 방해하여 서로 다투거나 초서 자신이 등장하여 하나의 역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풍부한 해학과 날카롭고 넓은 통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계층의 인물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1) 근대 문학의 특성   시대 구분으로서의 근대는 문예 부흥에서 시작한다. 문예 부흥은 중세 이후 억눌려 왔던 인간성을 다시 회복시킴으로써 개인적 특성을 존중하는 풍토를 낳는다. 근대에 개성적이며 수준 높은 문학 예술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온 원인도 이러한 개인적 존재에 대한 신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근대를 형성한 동력으로는 구텐베르크에 의한 금속 활자의 발명, 시민 계급의 대두와 상업의 발달, 민족적 고유성에 대한 관심 등을 꼽을 수 있다. 근대는 국가 단위로 공동체적 유대감을 나누는 민족주의의 시대이다. 즉 중세적 보편성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결속력이 더욱 부각된다. 근대로 오면서 세계 문학의 개념이 형성된 것도 민족 단위로의 분화를 순화하려는 하나의 이념적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 세계 문학은 지방성과 민족성을 토대로 형성된 이념으로서, 실제로는 개별 민족 단위의 물리적 연결을 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근대 문학은 지역성과 민족성의 영양분을 섭취하며 자란 개인의 탁월한 재능이 낳은 현상이다. 그러나 문학에서 개인적 특성은 국민적 특성과 연결되고 다시 보편적 의미로 확산되기 때문에, 근대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민족적 우수성을 넘어 세계 보편적 가치로 승격된다.     (2) 근대 문학과 사조   근대 서양 문학은 사조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 편리하다. 작가들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또 인간의 삶과 시대를 이해하는 관점에 유사성이 확산되면서, 시대별로 문학 작품들에 유형적 특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조란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하나의 공통적인 흐름으로 존재하는 문학적 경향을 말한다. 사조를 유형화하는 데 작용하는 요소들로는 이성과 감성의 작용 범위, 현실과 작품의 관계, 환상의 개입 정도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시대적 조류인 사조로부터 동떨어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문학이 근본적으로 작가의 개성에 의해 창조된 개인적 사실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비록 시대 사조를 받아들여 창작의 동력으로 삼기는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부여함으로써 문학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게 한다. 창작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사조는 작가의 창의력에 의해 작품 속에 용해되기 때문에, 사조는 개성을 자극하고 개성이 모여 사조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주요 문학 사조       ① 고전주의   ⓐ 개념: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이 지니고 있던 조화, 균정(均整), 명석함을 본받고자 하는 경향을 두루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문학의 흐름을 일컫는다. ⓑ 배경:감각이나 감성에 의한 인식을 의심하고 이성을 통해 객관적 진실에 도달할 것을 주장한 데카르트의 철학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절대 군주제 하에서 질서와 안정으로 회귀하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그리스·로마의 고전에 심취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 특징 -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것보다는 사회적 보편성을 지닌 것이나 도덕적으로 전범이 될 만한 것을 중시한다. - 내용과 형식이 조화되는 질서와 균형미를 추구한다. - 완벽한 구성이 필요한 비극을 최상의 장르로 간주한다. ⓓ 대표 작가 소개 - 코르네유(1606~1684):프랑스의 극작가. 주요 작품으로 `르 시드`, `오라스` 등이 있다. - 몰리에르(1622~1673):프랑스의 극작가. 주요 작품으로 `수전노`, `인간 혐오`, `여인 학교` 등이 있다. - 라신(1639~1699):프랑스의 극작가. 주요 작품으로 `페드르`, `아탈리` 등이 있다. - 포프(1688~1744):영국의 시인. 주요 작품으로 `머리카락 훔치기`, `인간론`, `던시어드` 등이 있다. - 스위프트(1667~1745):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작가. 대표작으로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 `통(桶) 이야기` 등이 있다. - 괴테(1749~1832):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 대표작으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파우스트` 등이 있다. - 실러(1759~1805):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 대표작으로 `발렌슈타인`, `빌헬름 텔` 등이 있다.   ② 낭만주의   ⓐ 개념: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 사조로서 고전주의의 균형미와 도덕성 추구에 반대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 배경:고전주의는 문학적 법칙에 의거하여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억압하는데, 시민 사회가 정착된 이후 차츰 해방된 개인 정신이 보편적 법칙성을 대체하여 간다. 또한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는 낭만주의 인간관의 기초가 된다.   ⓒ 특징 - 주지적 고전주의에 반대하여 주정적 태도를 취한다. - 개성과 독창성을 중시하며 멀리 있는 것, 이국적인 것, 신비로운 것에 동경을 표시한다. - 천재적 독창성을 문학 창작의 주된 에너지로 여긴다. - 반항 정신 및 이상주의적 경향을 지닌다.   ⓓ 대표 작가 소개 - 괴테와 실러:괴테와 실러가 젊은 시절에 심취한 스트룸 운드 드랑은 낭만주의의 전초가 된다. 대표작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실러의 `군도`가 있다. - 샤토브리앙(1768~1848):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르네`, `아탈리` 등의 소설이 있다. - 위고(1802~1885):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극작가. 대표작으로 `에르나니`, `노트르담의 꼽추` 등의 소설과, 시집인 「정관 시집」이 있다. - 워즈워스(1770~1850):영국의 시인. 대표적 시집으로 「서정 가요집」, 「서곡」, 「소요편」 등이 있다. - 콜리지(1772~1834):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대표작으로 `늙은 수부(水夫)의 노래`, `문학적 자전(自傳)`, `쿠블라 칸` 등이 있다. - 바이런(1788~1824):영국의 시인. 대표작으로 `맨프레드`, `돈 주앙`, `판결의 환상` 등이 있다. - 키츠(1795~1821):영국의 시인. 대표작으로 `엔디미온`, `히페리온` 등이 있다.   ③ 사실주의 ⓐ 개념:현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그려내려고 하는 문예 사조를 일컫는다. 좁은 의미로는 19세기 후반에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난 문학 흐름을 지칭한다.   ⓑ 배경: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공상에 의존하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묘사 방법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근대 합리주의 및 실증주의, 공리주의, 다윈의 진화론 등이 철학적 배경을 이룬다. ⓒ 특징 - 주관적 태도를 자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 인간과 더불어 주변 세계까지도 묘사의 대상으로 삼아 현실의 온전한 재현을 추구한다. -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부정적 면이 있으면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삶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중시한다.   ⓓ 대표 작가 소개 - 발자크(1799~1850):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고리오 영감`, `사촌 베트`, `골짜기의 백합`,  `외제니 그랑데` 등이 있다. - 스탕달(1783~1842):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연애론`, `적과 흑`, `파르므의 승원` 등이 있다. - 플로베르(1821~1880):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보바리 부인`, `살람보`, `감정 교육` 등이 있다. - 디킨스(1812~1870):영국의 작가. 대표작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 `쓸쓸한 집`, `두 도시의 이야기`, `위대한 유산` 등이 있다. - G.엘리엇(1819~1890):영국의 여류 작가. 대표작으로 `플로스 강의 수차(水車)`, `미들 마치` 등이 있다. - 고골리(1809~-1852):러시아의 작가. 대표작으로 `외투`, `검찰관`, `죽은 농노` 등이 있다. - 톨스토이(1828~1910):러시아의 작가. 대표작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카테리나`, `부활`, `바보 이반의 이야기` 등이 있다. -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러시아의 작가. 대표작으로 `죄와 벌`,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 등이 있다.   ④ 자연주의 ⓐ 개념:사실주의를 더욱 극단화하여 인간의 생태를 자연 현상으로 보며 작가도 자연 과학자와 같은 태도로 문학을 창작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 배경:과학적 실험을 하는 태도로 작품을 묘사해야 한다는 에밀 졸라의 실험 소설론, 인간의 행동과 운명은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환경 결정론 등이 배경을 이룬다. ⓒ 특징 -작품 속의 인간은, 자연 현상의 일부로 본능이나 생리의 필연성에 의해 강력하게 지배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대체로 세기말적 분위기를 반영하며 전체적으로 어둡고 염세적이다. -내면적으로는 빈약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다. ⓓ 대표 작가 소개 -졸라(1840~1902):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목로 주점`, `나나`, `제르미날` 등이 있다. -하우프트만(1862~1946):독일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대표작으로 `해뜨기 전`, `방직공들`, `한넬레의 승천` 등이 있다. -드라이저(1871~1945):미국의 작가. 대표작으로 `아메리카의 비극`, `시스터 캐리` 등이 있다.   ⑤ 상징주의 ⓐ 개념: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고답파의 객관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예술 운동과 그 경향을 일컫는다. ⓑ 배경:제국주의의 태동, 사회적 계급 사이의 갈등으로 위기감과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이상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 특징 -분석에 의하여 포착할 수 없는 주관적 정서의 시적 정착을 목표로 한다. -자아를 구속하는 객관적 규범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징의 방법을 통해 형이상학적, 신비적 내용을 표현한다. -현실 세계를 초월적 정신 세계의 상징으로 보고 문학을 통해 여기에 접근하려 한다. -개별적인 것 하나 하나가 소우주적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 대표 작가 소개 -보들레르(1821~1867):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악의 꽃`, `파리의 우수` 등이 있다. -말라르메(1842~1898):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주사위 던지기`, `목신(牧神)의 오후` 등이 있다. -베를렌(1844~1896):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말 없는 연가`, `예지(叡智)` 등이 있다. -랭보(1854~1891):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지옥에서 보낸 한철`, `레 일루미나시옹` 등이 있다. -릴케(1875~1926):오스트리아의 시인. 대표작으로 `말테의 수기`, `가을날의 기도` 등이 있다. -시몬즈(1865~1945):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학을 영국에 소개한 「문학에 있어서의 상징파의 운동」이라는 평론집이 있다.   ⑥ 초현실주의 ⓐ 개념: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20세기의 문예 사조이다. ⓑ 배경: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이 중요한 배경을 형성한다.   ⓒ 특징 -이지(理智)의 논리를 배격하고 잠재 의식이 상상에 의해 위대한 작품을 낳는다고 간주한다. -초현실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를 보다 높은 예술적 차원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간주한다. -무의식, 성, 꿈, 욕망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룬다.   ⓓ 대표 작가 소개 -브르통(1896~1970):프랑스의 시인.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이며 이론가이다. 대표작으로 `나자` 등이 있다. -엘뤼아르(1895~1952):프랑스의 시인. 대표 시집으로 「의무와 불안」, 「그치지 않는 노래」 등이 있다.   ⑦ 모더니즘 ⓐ개념:1920년대에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 사조, 좁은 의미로는 영· 미의 이미지즘이나 주지주의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 20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실험적인 문학 운동, 즉 다다이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을 총칭하기도 한다. ⓑ특징 -도시 문명 및 산업 사회에 대한 비판을 기본 축으로 한다. -전통적 문학 수법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한다. -문학을 통해 새로운 문명 의식의 확산을 추구한다. ⓒ 대표 작가 소개 -T.S. 엘리엇(1888~1965):영국의 시인. 대표작으로 `황무지`, `4편의 사중주` 등이 있다. -흄(1883~1917):영국의 비평가이며 시인. 이미지즘 시운동의 선구자로서 E. 파운드, T.S. 엘리엇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론집으로 「성찰」이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근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근대의 특징은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며, 과학 지상주의를 가지고 세계의 체계화와 총체성을 지향한다. 이러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 도전 받기 시작한다. 반이성의 맥락에서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를 규탄하고, 정전을 타파하며 스스로 미학적 대중주의로 내세우는 철학적· 문학적 경향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매끄러운 논리가 해체되고 실체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내용도 극도로 불안정한 무질서의 세계를 그리는 초현실주의로 바뀐다. 독자 참여 소설의 경향을 띠기도 한다. 어떤 실험 작가는 아예 소설을 언어의 각종 시험장으로 바꾸어 버린다. 문장을 토막내기도 하고 질문지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진지한 내용과 하찮은 내용을 대비시켜 놓기도 하여 게임을 하는 듯한 즐거움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혼돈과 대적하는 길은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것, 아니 더 나아가 더 깊은 혼돈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는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와 콜롬비아의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를 들 수 있다. 마르케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은 1967년 아르헨티나에서 출판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혀 오다가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외에 주목할 만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으로`와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을 꼽을 수 있다.  
40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 연구 / 이철(강릉대교수) 댓글:  조회:140  추천:0  2019-03-07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 연구 / 이철(강릉대교수)   1. 문제제기   20 세기 초 서구 문예사에 주된 흐름으로 나타난 모더니즘(modernism)은 시에 있어서는 이미지즘(imagism)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등이 중심이 된 이미지즘 운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영시가 보여준 감상주의(Sentimentalism)와 매너리즘(mannerism)을 극복하여, 정확하고 간결한 시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풍을 확립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시인들보다는 오히려 스땅달, 플로베르, 모빠상 등의 프랑스 소설가들이 보여준 정확한 산문정신에 힘입고 있었다.   당대 영시의 느슨하고 장식적인 언어를 청산하게 만들었던 이 정신은 기본적으로 사물과 언어, 대상과 표현을 정확하게 1대1 대응시키려는 일사일언을 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미지스트들이 이어받은 이 정신 속에는 기본적으로 시인이 자신의 주관에 의해 대상을 굴절시키지 않고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하는 태도가 숨어 있었다.    현대 영시에 이런 혁신을 가져왔던 이미지즘 운동은 그러므로 정확성과 객관성이 그 중요한 특징들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 운동은 2~3년이 지나면 그 본질적인 부분인 언어의 정확성과 명료성 등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일종의 자유시 운동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 운동을 주도했던 파운드는 자신을 여전히 이미지스트로서 지칭하면서도 객체적 사물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식 세계에 투영된 바로서의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문제는, 객관성을 그 핵심으로 하던 이미지즘 운동을 끌어가던 파운드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어떻게 주관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파운드 자신의 단순한 취향변화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크게는 당대 예술의 전반적인 흐름에 영향을 입고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이미지즘이 갖고 있었던 이중성, 혹은 변화 가능성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지즘의 이중성을 상정하지 않고는 파운드가 그 이후에 보여준 변화나 자기모순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미지즘의 이런 이중성에 대한 이해는 또한 1910년대 중반 이후 파운드의 이미지즘이 객관적 세계보다는 예술가의 통합적 창의력을 중시하는 보티시즘(Vorticism)으로 흡수되는 과정과 파운드의 중, 후기의 대작 시편(The Cantos)에 보이는 주관성 과잉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하는 시인의 객관적 태도를 마치 파운드의 이미지즘의 변치 않은 핵심처럼 여기는 통념은 수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미지스트 운동의 중심에 서서 이 운동을 주도하며 새로운 방향을 유도했던 시인이 파운드인 만큼 그의 이미지즘에 대한 이해는 이미지즘의 통합적 성격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다.   2. Imagism의 모호성   예술사조란 당대에는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것 자체로는 실체가 없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 우리가 과거에 서구 예술사에서 풍미하던 예술사조들을 되짚어볼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예술사조가 한 시대를 휩쓸며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정신을 빌어 만들어낸 여러 작품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와도 혹은 거센 바람과도 같은 예술사조들은 당시로서는 어떤 경계도 없고 확실한 모습도 없어 보일지라도, 그 시대가 흘러가고 그 사조도 흘러가 버리면 후대에 남는 것은 화석과 같은 작품 들 뿐이다. 우리는 이런 작품들과 그 밖의 다른 기록들을 통해 과거의 예술 사조를 역으로 가늠하고 재구성해 보는 것이다.   비교적 명확한 기록들과 당대의 여러 예술작품들을 근거로 삼는다고 해서 그러나 하나의 예술사조가 손에 잡힐 만큼 명확하게 규정되기는 쉽지 않다. 이를테면 현대 예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 낭만주의나 모더니즘 같은 경우도 그 성격을 놓고 비평가들 간의 의견이 여러 가지로 갈라진다. 이 글이 그 성격을 규명하려는 이미지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크게 보아 이미지즘은 모더니즘의 한 부분으로서, 말하자면 모더니즘의 시적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격 규정의 어려움이 그 범위가 작아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지즘의 경우 그 어려움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해서 더욱 가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즘의 정확한 모습을 알기 어려운 이유는 우선 이미지즘 시선집이 거의 발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이미지즘은 사람들에게 언급되는 만큼 그 시들이 읽히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미지즘은 모더니즘의 한 부분으로서, 혹은 20세기 초 영시상의 하나의 새로운 운동으로서, 시사(詩史)에서만 중요하게 다루어질 뿐, 그 시들을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읽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부재는 책의 출판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미지즘 시 선집은 이 운동이 활발하던 1910년대에만 몇 권 발간되었을 뿐 그 이후로는 거의 출판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미지즘에 관심을 갖고 이들 시를 읽으려는 사람들은 영시 앤쏠로지에서 이곳저곳을 찾아가며 읽을 도리 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의 수효는 보잘 것 없을 정도로 적으며, 또 이것들을 읽어봐야 회화적 특징이 강조된 짧은 영시들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미지즘의 중심인물 중의 하나인 파운드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미지즘 고유의 시라고 얘기될 수 있는 것은 실제 몇 편이 되지 않는다.    이미지즘을 규정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이미지즘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이미지(image)'라는 것이 20세기 시에서 비로소 언급되거나 중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아마 시가 생겨날 때부터 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으므로 특별히 20세기 초 영국시단이 산출한 특정한 시들만을 이미지가 강조된 시, 혹은 이미지즘시로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은 실제의 시를 살펴보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우는 달(The Waning Moon) 그리고 미치고 약해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흐릿해져 가는 정신에 이끌려 침실로부터 엷은 베일에 싸인채, 비틀거리며 나오는 여위고 창백한, 죽어가는 여인처럼,  달은 어두운 동녁에서 솟아올랐다.  희고 모양새 없는 덩어리 And like a dying lady, lean and pale, Who totters forth, wrappt in a gauzy veil, Out of her chamber, led by the insane And feeble wanderings of her fading brain, The moon arose up in the murky East, 부두 위에서(Above the Dock) 한밤중 조용한 부두 위 밧줄 매인 높은 돛대 꼭대기에 엉긴 채 달이 걸려 있다. 그렇게도 멀리 보였던 것은 아이가 놀다가 잊어버린 한 개의 풍선일 뿐. Above the quiet dock in mid night. Trangled in the tall mast's corded height, Hangs the moon, What seemed so far away Is but a child's balloon, forgotten after play.   인용된 첫 번 째 작품은 쉘리(P.B Shelley)의 것으로 1820년에 씌어진 시이고, 두 번째 것은 흄(T.E Hulme)의 시로 1912년에 나온 파운드의 시집 "재치 있는 즉답"의 권말 부록으로 실린 여섯 편 중 하나이다. 이미지즘의 원조격인 흄이 1908년 을 창설한 후 이 클럽의 회원들은 매주 수요일 소호(Soho)가(街)에서만나 시낭송회를 개최하고 소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는데, 인용된 두번째 시는 바로 이 당시 1908~1909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런 점에서 이 시를 이미지즘시라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시는 어떠한가 ? 두 번째 시의 경우처럼 시사적(詩史的)인 배경을 고려해서 규정한다면 이를 낭만주의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두 시의 유사성에 주목하면 이미지즘과 낭만주의가 일종의 친연관계(親緣關係)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미지즘과 낭만주의는 서로 중요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즘에는 낭만주의에서 이어받은 유산보다는 낭만주의를 극복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실제로 낭만주의가 결(缺)한 고전주의적 기율(紀律)로 향하는 경향은 이미지즘의 특성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용된 이 두 시는 부인할 수 없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전문(全文)을 인용하고 있는 이들 두 시가 매우 짧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시가 짧다는 것이 어떤 류의 시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기는 어렵지만, 소위 이미지즘시들이 다른 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이들 시는 모들 '달'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시의 길이나 소재에 있어서의 유서성만을 가지고 이들이 같은 종류의 시라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시가 모드 '달'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축으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시는 달을 죽어가는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엷은 베일'에 싸였다는 표현으로 보아 이 달은 옅은 구름에 어슴프레 가리우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죽어가는'이라는 표현은 솟아오르는 달 보다는 지는 달에 더 어울리는 표현일 수 있지만, 이 시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달이 뜨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두운 동녘에서 달이 나오는 것을 어두운 침실에서부터 어떤 여인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에 빗대고 있다. 인간의 광기가 달과 연관이 있다고 하는 관념은 '미치고(insane)'라는 표현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 미친 여인이 '비틀거리며 나온다(totters forth)'는 것은 달이 서서히 그러나 시각적으로 불규칙해 보이는 속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첫머리에 있는 '그리고(And)'라는 표현은 글의 시작부분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일텐데, 이 표현 때문에 여기에서는 달이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일련의 어떤 계속되는 과정의 연장으로 보인다. 굳이 얘기하자면 어떤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이윽고 거기에서 일어나 나오듯 달이 지평선(동족의 들, 산 혹은 바다)아래 숨어 있다가 때가 이르자 그곳에서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표현이 달의 움직임을 느리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그리고'라는 말 앞에 숨어있는 것은 솟아오르기 전 달의 상황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의 상황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고, 그 이후에 달이 동녘에서 솟는 모습이 부가적으로 그저 덧붙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쨌든 제3의 상황이 있었다고 해도 이 시 자체로는 그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추측할 수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달을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하면서도 끝내 달을 하나의 사물로 보는 시인의 객관적 시각에 주목하는 일이다. 마지막 행의 '희고 모양새 없는 덩어리(A white and shapeoess mass)'라는 표현에는 감상(感傷)에 젖지 않으려는 시인의 결연한 태도가 나타나 있다. 애절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달의 여인 같은 모습이 결국 차가운 하나의 천체덩어리로 환원되는 순간이다.    인용된 두 번째 시에서는 달이 이미 한참 솟아올라 돛대 꼭대기에 걸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전개되어 있다. 이 시의 배경은 배가 정박해 있는 한밤중의 한적한 항구인데, 이때 어떤 배의 돛대 꼭대기에 매달인 듯한 달이 사실은 낮에 아이가 놀다가 잊어버린 풍선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풍선' 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달은 아마 보름달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실제의 달을 아이가 잦고 놀던 풍선으로 비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돛대 위에 걸린 아이의 풍선을 처음에는 달로 비유했다가 결국 그것은 달이 아니고 풍선이었음을 말하고 있는지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두 번째의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멀리 보였던 것은' 혹은 '풍선일 뿐'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심적인 이미지는 역시 하늘에 걸려있는 달의 모습이다.   인용된 두 시에 대한 분석에서 이들의 구조상의 유사성도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첫 번째 시는 달을 여인에 비유하다가 그것이 결국 달덩어리임을 보여주고, 두 번째 시는 풍선을 달로 보았다가 그것이 결국 아이의 풍선이었다고 말한다. 의 전환이 첫 번째 시의 흐름이라면, 은 두 번째 시의 흐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시들이 모두 유비(analogy)를 시적 방법으로 하여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첫 번째 시는 ' -처럼(like)'이라는 말로써 그 유비의 명확성이 두 번째 시에 비해 더 잘 드러날 뿐이다. 대신 두 번째 시는 그 유비관계가 숨겨져 있는 만큼 하는 발견의 놀라움 같은 것을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미지즘시를 변별해낼 것인가? 하나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짜여진 시를 모두 이미지즘시라 할 것인가 ? 적어도 영시사에서는 그런 규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축으로 씌어진 시는 엄청나게 많다. 사실상 모든 시작(詩作)은 새로운 이미지를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쉐익스피어의 많은 극작품에 나타난 기발하고 다양한 이미지,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기상(奇想 conceit)같은 것들은 모두 이를 말해준다. 말하자면 '이미지'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비평가들이 작품을 분석하고 그 중요성을 설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인과 작가들은 이를 문학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지즘 혹은 이미지즘시라는 것을 따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20세기 초의 서구의 이미지스트들이 주장하던 이미지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어떤 점에서 기존의 관념과 차이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지스트들의 주장을 요약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미지스트라는 시운동 집단이 사실상 그 범위가 확실히 정해진 시인들의 단일한 모임은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지즘에 대한 규정을 어렵게 만드는 세 번째 요인으로서 이미지즘의 변천사와 관계가 있다. 이미지즘이 단일한 줄기를 중심으로 발전 혹은 변모해간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규정도 단순하게 내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즘의 본류를 어떤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평자 들 간의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다. 그중 하나는 이미지즘이 흄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나고 알려지다가 미국시인인 로웰 여사(Amy Lowell)에게로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이미지즘이 파운드에 의해 주창되고 전파되다가 로웰로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이다. 흄을 중심으로 이미지즘을 설명하는 전자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파운드가 이미지즘의 발전에 약간의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그 역할이 미미했다고 보고, 파운드 보다는 오히려 1908~1909년 사이 흄과 같이 활동했던 플린트(F.S.Flint)나 스토러(Edward Storer)를 중요한 인물로 꼽는다. 반면 후자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파운드와 함께 소위 을 마련한 힐다 두리틀(Hilda Doolittle)과 올딩턴(Richard Aldington)을 중시하고, 흄의 역할은 단지 하나의 예고편이었다는 생각을 편다.   흄과 파운드의 시론이 가진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미지즘의 중심인물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 이미지즘의 전체적인 성격규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1908~1909년 무렵 런던 시단의 중심인물은 흄이었고, 흄의 시론이 1912년 이후 파운드가 이미지스트 운동을 전개하는데 적지 아니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평자에 따라서는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서 포드(Ford Madox Ford)를 거론하는데 포드의 중요성은 파운드 자신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미지즘에 강한 영향을 미친 불란서 사실주의 소설가들의 태도도 포드를 통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는 이들 두 사람의 영향 말고도, 파운드 자신의 프로방스 문학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운드는 이들의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중세 로망스 문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름대로 자신의 문학관을 어느 정도 정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따라서 이제 흄과 포드의 시이론을 살피고, 파운드가 자신의 연구와 이들의 영향하에서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즘 이론을 정립했는가. 또 그 이론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어떻게 변모해 갔는가를 살피기로 하겠다.   3. T.E Hulme과 F.M Ford의 영향   이미지즘이 하나의 시운동으로 정립되는 배경은 단순하지는 않지만, 이미지스트들이 지향하고 있었던 목표는 어떤 점에서 통일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고전적인 예술을 지향하고 있었고, 따라서 언어에 있어서의 정확성과 견고성 등을 그 목표로 하고 있었다.  20 세기 초 런던에서 흄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문학회는 1908~1909년 사이에 있었던 과 그것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1909년의 이 있었다. 처음에 플린트는 "새로운 시대"에서 의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공격을 가했지만 흄과의 이후 가까운 사이가 되어 1909년3월에 스토러, 조셉 캠벨(Joseph Cambell),플로렌스 파(Florence FArr)등과 함께 이 을 만들게 된다. 파운드가 이 모임에 소개된 것은 같은 해 4월이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파운드는 이들과의 문학적 교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훗날 파운드가 이미지즘 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이들에게 진 빚을 부인 하는 데서도 엿보인다. 1912 년 이후 파운드가 펼친 이미지즘 운동과 1908~1909년의 흄 중심의 문학운동이 어떤 연관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미지즘을 애기하는데 흄에 관한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파운드의 이미지즘 시론의 중요한 부분은 이미 흄 등이 주장한 것과 다를 바 없고, 또 파운드가 초기에 이들과 일정한 교류를 한 것이 사실이므로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이들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파운드가 흄 등으로부터 이어받은(혹은 이들과 공감한) 문학관은 크게 보아 고전주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흄이 처음 가지고 있었던 태도는 오히려 낭만주의적인 것이었다. 초기의 흄이 낭만주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주로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영향이 크다. 그는 베르그송의 견해를 그대로 이어 받아 인간의 직관을 중시하는 대신 지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함으로써 반지성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런 생각은 그의 문학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그는 고전주의적이기 보다는 다분히 낭만주의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그래서 그는 현대시가 그 형식에 있어서 고전주의적 엄격성과 절제를 갖는 대신 자유시형을 가져야 하며, 내용도 시인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루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흄의 시이론의 핵심 중의 하나는 이미지에 관한 것인데, 그는 현대시가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고전주의적인 특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미지가 시각ㄱ적이고 구체적이므로 고전주의에서 흔히 그리는 거대한 사건이나 영웅적 행위 대신 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런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또 자유시를 옹호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인데, 그에 의하면 자유시는 개인의 '어떤 모호한 기분(some vague mood)'을 전달해 줄 수 잇다는 것이다.  초기의 흄은 이렇듯 베르그송의 영향 하에 자유시와 이미지를 강조하며 다분히 낭만주의적인 문학관을 펼쳤지만, 1911년 무렵부터 라세르(Lasserre)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초기와는 달리 오히려 반 낭만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라세르는 19세게 말의 데까당 운동이 지닌 감상적 낭만주의를 배격하고 대신 고전주의의 질서와 절제의 정신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흄이 자신의 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바로 이러한 생각의 반영이다. 흄에 의하면 인간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나 억압적 질서에 의해 타락하게 되므로 이런 질서를 깨드림으로써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낭만주의라면, 고전주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정적이고 제한된 동물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전통과 조직에 의해 훈련되어야 한다고 보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흄은 서구에서 지난 백년간 낭만주의가 계속되었으나 이제 '고전주의의 부흥'을 맞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따라서 '건조하고 견고하며 고전적인 시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낭만주의자들은 고전이 주는 건조한 견고성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축축하지(damp)'않는 시를 시로 생각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확한 묘사(accurate description)'가 시의 올바른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있어서의 흄의 영향력을 부인하는 비평가들의 논리는 어떤 점에서 일리가 있으나 그들이 근거로 삼는 것은 주로 1908~1909년의 흄의 활동이나 그 당시 흄이 가지고 있었던 시이론과 파운드의 이미지즘과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초기와는 달리 1911년 이후 고전주의자로서의 흄이 주장하는 시의 건조함과 견고성, 그리고 정확성은 그대로 파운드 이미지즘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흄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못지않게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강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포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포드의 인상주의적 문학관은 파운드의 이미지즘이 새로운 변신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다리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리의 역할을 했다는 말은 포드가 파운드 이미지즘 발전의 기초가 된 동시에 극복 대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미지즘에 있어서 흄과 포드이 상대적 중요성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적어도 파운드는 흄의 역할을 경시하는 대신 포드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파운드에 의하면 포드는 당시 영국 최고의 비평가였다. 파운드는 제1차 대전 직전 몇해 동안 런던에서 글을 쓰는 문제에 관한한 그 빛이 흄이 아닌 포드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파운드가 이 당시 포드를 주목한 것은 바로 포드가 불란서 사실주의 작가들로부터 정확한 산문정신의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심지어 운문에서 조차도-명료성과 정확성, 산문 전통을 주장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 효과적인 글쓰기에 대해 주장하기 때문에, 그를 중요하고 혁명적인 인물이라고 본다 포드나 그를 이어 받은 파운드에게 있어서 '산문' 혹은 '산문정신'이란 '시' 또는 '운문정신'이라는 말과 대립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모든 종류의 글에서의 간결함과 정확성을 지향하는 어떤 글쓰기 혹은 글쓰기의 자세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포드는 '산문'을 '하나의 정신적 습성'이라고 말한다. 포드는 또한 1912년 이전에 자신이 접한 유일한 시는 산문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시인들에게 고집스럽게 '산문을 포착'하도록 권한다.   파운드에 의하면 포드는 '영국 인상주의 작가들의 목자'로서 제1차 대전 이전의 인상주의는 거의 그를 통해서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포드의 인상주의는 이처럼 산문정신을 중시함으로써 결국 사실주의적, 객관주의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포드가 예술가의 주관적인 생각보다 세계의 객관적 사실의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당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단순한 문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포괄하는 보다 광범위한 일반 하회 문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포드의 이런 관심은 문학적인 문제로 넘어올 때 결국 객관적인 사회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를 지향하게 마련이었다. 그는 예술가의 목표가 '자기 시대의 관점에서 자기 시대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파운드 등의 이미지스트들을 '삶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아무런 논평 없이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자들로 지칭한다.   인상주의를 이처럼 사실주의로 해석하고 간결하고 정확한 산문 정신을 중시한 포드의 문학적 태도는 그의 영향을 받은 파운드의 시이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파운드는 포드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술에 있어서의 '객관성(objectivity)'을 강조하며 그 중요성을 자신에게 주입시켜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미지즘 초기의 파운드가 시에 있어서의 객관성, 사실성, 정확성 등을 중시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포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는 이상과 같이 흄과 포드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후기의 흄이 가진 고전주의적 태도와 포드의 인상주의가 갖고 있는 사실주의적인 태도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파운드의 이미지즘의 기본적 목표가 객관적 사실의 정확한 기록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이미지즘은 어떤 대상을 시인의 주관에 의해 변형하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하기 보다는 그 대상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Pound의 Imagism 이론   1) 초기의 산문집   파운드의 이미지즘 운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흄과 포드이 예술이론 뿐만이 아니다. 그의 이미지즘 시이론과 실제 시작(詩作)은 이들의 예술이론 외에 프로방스시와 라틴, 희랍의 서정시, 그리고 나중에 중국 한시와 일본시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고 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특히 파운드의 프로방스와 라틴시 연구는 그의 초기 시작과 이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이한 점은 이때 그의 시와 이론이 일종의 괴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파운드가 런던에 도착한 1908년에 낸 처녀시집 "꺼진 촛불(A Lume Spento)"에는 장식적이고 수사적인 형용사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반해, 그이 시이론은 매우 현대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그의 초기 시로써 이미지즘을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오히려 장식적이고 수사적인 형용사의 사용은 그의 시이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망스 문학에 대한 연구는 한편으로 그의 시에 장식적인 요소를 갖게 했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연구는 사실상 이미지즘을 태동하게 한 일종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년 간에 걸친 파운드의 연구 결과는 1910년 "로망스의 정신(The Spirit Romance)"이라는 책으로 나타나는데, 이 속에는 이미지즘의 핵심적 내용들이 이미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는 단테(Dante)와 카발칸티(Cavalcanti), 카툴루스(Catullus)등의 중세와 라틴계 시인들의 연구를 통해 시를 쓸 때의 표현의 '정확성(precision)' , '생생함(vividness)' , '명료성(clarity)'등을 주장하고 있고,. 이것은 그대로 이미지즘의 주장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파운드는 '정확성이 예술가의 능력과 명예, 진정함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며 단테의 "신곡"이 불후의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표현의 '적확성' 혹은 '정확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운드가 이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나는 오리리스의 사지를 거둔다"와 같은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단테가 가지고 있었던 예술가로서의 미덕인 '관찰과 언급의 정확성'을 강조하고, 예술가들은 그저 '제시(present)'할 뿐 '논평(comment)'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파운드는 또한 "시와 드라마"의 1912년2월호 "서문"에서 표현에 있어서의 정확성을 강조하며, 19세기 시에 대해 평가하고 20세기 시에 대해 전망을 한다. 그에 따르면 19세기는 '다소 흐릿하고(a rather blurry)' '다소 감상적이며(a rather sentimentalistic)'' 매너리즘에 빠진 시대(mannerism sort of a preiod)'인데, 그래서 그는 이제 앞으로의 20세기 시가 '더 견고하며(harder)' '더 건전할(saner)'것이라고 말하며 '엄격하며, 직접적이고, 감정으로 미끄러들지 않을 것(austere, direct, free from emotional slither)'을 기대한다.    이상의 사실들은 파운드가 이미지스트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몇 년 전부터 다른 시인, 예술가들과의 교류 이전에 이미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 등을 토대로 이미지즘의 중요한 내용을 어느 정도 확립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파운드가 자신의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다른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미지즘을 하나의 시운동으로 확립하고, 이런 운동을 토대로 현대의 많은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2) Imagism의 3원칙 재고   파운드가 자신의 로망스 문학 연구들을 토대로 흄과 포드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미지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봄의 일이다. 파운드는 이전부터 가까이 지내던 두리틀, 올딩턴 등과 함께 소위 좋은 글의 '3원칙'을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이 시운동 집단을 '이미지스트(Les Imagistes)'라고 지칭함으로써 '이미지스트' 혹은 '이미지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공식화가게 된다. 이들이 의견의 일치를 본 이 '3원칙'은 1913년3월 "시"지에 "이미지즘"이라는 표제하에 실리게 된다.   a.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사물'을 직접 취급 할 것. b. 표현에 도움이 안 되는 말은 절대 사용하지 말 것. c. 리듬에 관해서는 ; 메트로놈적 연속이 아니라 악구(樂句)의 연속 원리에 따라서 쓸 것.    이 3원칙은 이미지스트들이 펼친 주장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표현에 있어서의 간결성, 정확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제1원칙이 말하는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취급이나 제2원칙이 규정하는 불필요한 말의 배제 등은 바로 이를 말한다. 다만 제3원칙은 이미지스트가 중시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기계적인 리듬 대신 음악적인 리듬, 즉 자유시형(free verse)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표현의 정확성과 자유시를 주장하고 있는 이 3원칙 속에는 사실상 이미지즘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 모순적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모순은 이미지즘의 변형 혹은 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먼저 제1원칙은 시인들에게 '사물'을 직적 취급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인이 다룰 대상을 '사물'이라는 말로 표현할 때 우리는 이미지스트들이 얼마나 단순한 언어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그들은 시를 시인 의식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의 표현으로서 생각하고 있다. 시인이 어떤 사물을 표현한다고 할 때 그것은 사물 자체보다는 그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인이 기본적으로 다루는 대상을 '사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그 연원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술에 있어서의 모방론(mimesis heory)의 한 형태이다.   20 세기의 새로운 현대시 이론을 전개하는 이미지스트들의 생각이 19세기 이전 예술관의 답습임을 볼 때 기이한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이 이런 고전적인 예술관을 전개한 배경이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방론의 핵심은 사물의 정확한 모사(模寫)이다. 사물의 모사가 정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것을 표현하는 시인의 언어가 정확하게 그 사물에 들어맞을 때 가능하다. 이것은 불란서 사실주의 작가들의 산문정신에 다름 아니다. 그 산문 정신의 요체(要諦)중의 하나는 사물과 언어를 정확하게 일치시키는 일사일언이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의 영시들은 말하자면 이미지스트들이 보기에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고, 시인이 표현하려는 사물과 언어의 정확한 1대1 대응은 이에 대한 일종의 처방전이었다는 말이다. 파운드는 '하나의 용어(a term)'는 오직 '하나의 사물(one particular thing)'을 의미해야 하며, 아무리 차이가 사소하다고 해도 서로 다른 것들을 한데 뭉뚱거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이 사물에 더 이상 밀착되지 않을 때는(when words cease to cling to things)'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그는 말하기도 한다.   정확한 언어에 대한 관심은 제2원칙에도 나타나 있다. 표현에 도움이 안 되는 말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주문은, 불필요한 말을 삼가해서 말을 경제적으로 의미를 최대한 충전시켜 쓰라는 뜻이다. '위대한 문학은 의미를 가능한 최대로 충전시킨 언어에 불과하다'고 파운드가 말하는 것도 같은 문맥으로 풍이 할 후 있다. 말을 충전하는 기술은 바로 불란서 사실주의 작가들에게서 배워온 것으로, 파운드는 스땅달(Stendhal)이나 플로베르(Flaubert)를 알지 않고서는 정말 좋은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지즘의 원칙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 혹은 모순은 제2원칙의 '표현(presentation)'이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이 말은 시인이 대상을 변형하거나 논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진술하고 제시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제1원칙에 나오는 '사물(thing)'이라는 말과 맞지 않는다. 사물이 표현 대상이라고 할 때 시속에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이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representation)된 것이다. 말하자면 시속에서 '사물'은 '재현'될 수 있을 뿐 그 자체가 그대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물의 정확한 표현은 오직 그 사물 자체이다. 파운드 자신의 다른 표현을 빌자면, '매는 매(ahawk is a hawk)'다. 매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은 매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재현' 대신 '표현'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이들이 언어를 통해 대상이 간접화되는 것을 피하고 그 대상에 가까이 가고자, 달리 말하면 그 대상을 그대로 시에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열정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 해도 표현의 정확성을 지향하는 이들의 태도가 이 원칙에 배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시인이 표현하는 것이 사물인가 언어인가. 대상인가 혹은 그 대상에 대한 시인의 의식인가 하는 문제로 확대된다. 이것은 제1원칙에 나오는 '주관적이든(subjective)' 혹은 '객관적이든(objective)'이라는 말에서도 엿보이는 문제이다. '주관적'이라는 말은 시인의 내면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 또 '객관적'이라는 말은 시인의 외부에 있는 사물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단순한 해석이다. 시인의 내면 정신을 표현했다고 할 때, 표현된 것은 그 정신의 구조 자체 보다는 사실상 그 정신이 활동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낸 제3의 그 무엇이다. 또한 시인의 외부에 있는 사물을 묘사했다고 할 때. 그 표현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그것은 사물 자체는 아니다. 시인의 의식 속에 받아들여지고 그 의식 작용에 따라 재구성되고 변형된 그 무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 경우 기본적으로 자신의 외부에 있는 사물이다. 사물이 인간에게 이해되는 것이 인간의 인식작용을 떠나서는 불가능하고, 그래서 모든 것을 인간의 인식 문제로 돌린다고 해도, 언제나 인식은 주관과는 별개의 객관적 존재를 상정하게 마련이다.   3) 이미지즘의 변화 혹은 발전   표현의 정확성과 경제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즘의 3원칙 속에 숨어있는 이 이중성은 이미지즘에 대한 규정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면서도 이미지즘의 급격한 변화 혹은 발전을 설명해 줄 열쇠로 보인다. 시인이 표현하는 것이 사물인가 아니면 그것에 대한 시인의 인식인가 하는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존재와 인식이라는 철학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도, 이 글이 논의하는 주제도 아니다. 결국 이것은 시인들의 개성과 문학관의 차이에 따라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파운드가 이미지즘을 형성하도록 크게 영향을 미쳤던 두 사람, 흄과 포드는 기본적으로 시인의 인식 보다 사물을 중시하고, 그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고 경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이런 태도를 견지하게 된 것은 물론, 감상적이고 부정확한 언어들로 가득한 당대 영시에 대한 진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파운드도 초기에는 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시인으로서의 주관적 인식 보다는 객관적 사물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정확하게 그려내려 한다. 이것은 이미지즘의 출발점이 언제나 사물이었음을 말해 주며, 이런 점에서 데이비(Davie)는 파운드가 기본적으로 '사실주의자(realist)였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미지즘의 3원칙을 발표할 때 까지의 파운드에게는 위의 칭호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원칙 속에는 파운드가 의식했건, 의식치 않았건 변화의 조짐이 숨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미지즘 3원칙은 1912년 경까지 흄, 스토러, 폴린트, 토드, 파운드 등의 문학적 논의를 몇 개의 원칙으로 정리한 것이면서도, 이미 이 원칙은 새로운 변화를 예견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3원칙은 1913~1914년을 전후한 예술가들의 관심 변화, 특히 파운드의 시적 태도의 새로운 변화에로 넘어가는 일종의 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운드는 이 원칙을 발표하던 당시는 때로는 인간의 객관적 사물세계에, 또 때로는 주관적 의식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와 이라는 두 축을 오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점차 사물 보다는 인간의 의식에, 존재 보다는 인식의 세계로 관심을 돌리고, 결국 사물, 존재 세계를 떠나 인간의 의식 세계, 의식을 구성하는 언어의 세계에 몰두하게 된다.이것은 바로 파운드가 이미지즘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당시의 새로운 예술 운동이었던 보티시즘으로 향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파운드에게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보티시즘은 이후 그의 모든 시와 산문을 규정하는 하나의 원리로 작용한다. 그의 시 "케세이(cathay) 1915)","휴우 셀윈 모벌리(Hugh Selwyn Mauberley), 1920)" 그리고 "시편들(The Cantos), 1930-1969"은 파운드가 보티시즘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현재의 모습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지즘 3원칙에 내재한 이중성 혹은 모순은 결국 후기 파운드의 변모의 단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운드가 사물의 세계보다는 인식의 세계에 관심을 돌리고 그래서 마침내 이미지즘을 떠나게 되는 데는 파운드 자신의 방향 변화 뿐만 당시 문단의 사정 변화 또한 한 몫을 하게 된다. 이 변화는 1913년 후반기에 이르러 이미지스트 그룹에 몇몇 시인이 새로 참가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로렌스(D.H Lawrence)와 윌리암스(W.C.Williams),로웰(Amy Lowell)등으로, 기존에 이 그룹에 속해 있던 시인들과 함께 그들은 최초의 이미지즈트 엔쏘로지 출판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책의 출판과정에서 일어난 로웰과 파운드의 불화로 끝내 파운드는 이 그룹을 떠나고 만다.   파운드가 이미지스트 그룹을 떠나게 된 것이 그러나 이런 불화 때문만은 아니다. 파운드가 보기에 로웰을 새로운 주축으로 한 이 그룹은 과거에 자신이 주장했던 이미지즘의 핵심을 잃어버린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지즘'이라는 말은 '어떤 명료성과 강렬성(a cettain clarity and intensity)'과 연관 되는 것인데, 새로운 그룹은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자유시'에만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파운드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들어 1915년에 출판한 "몇몇 이미지스트 시인들"이라는 엔쏠로지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책의 서문에는 이 그룹의 여섯 위원들이 합의를 한 6원칙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1913년 시"지에 파운드 등이 실은 이미지스트 3원칙과 거의 같은 내용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이들이 제시한 원칙들 중 첫째의 '장식적이지 않은 정확한 말' , 다섯째의 '흐릿하거나 불명료하지 않은, 견고하고 명료한 시' , 그리고 여섯째의 '집중' 등에 대한 주문은 이미지즘 3원칙의 제1,2원칙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둘째의 '새로운 정조 표현으로서의 새로운 리듬'과 '자유시'에 대한 언급은 이미지즘의 제3원칙과 같은 내용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적어도 원칙에 있어서 만은 초기 이미지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도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파운드의 비난대로 자유시형을 추구하는 집단에 머물고 만다. 1915년에 나온 이들의 엔쏠로지가 성공을 거둔 후 많은 모방자들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이미지즘의 본질이라 할 언어의 정확성과 명료성, 강렬성 등의 정신은 잃어버린 채 자유시에만 몰두한다. 결국 로웰 중심의 이 후기 이미지즘은 한 때 인기가 대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량 있는 시인들의 부족으로 곧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래서 1917년에 나온 세 번째 엔쏠로지의 판매가 부진하자 이 여섯 시인들도 이제는 이 운동을 그만 둘 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파운드 이후 로웰로 명맥이 이어지던 이미지즘은 끝이 나게 된다.   파운드가 이미 이 일이 있기 전인 1914년경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선 것은 위에 말한 대로 로웰 중심의 이미지즘의 한계성, 그리고 로웰과의 불화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1913년 중반부터 다른 곳에 관심을 쏟게 되는 그는, 고디에 브르제스카(Gaudier-Brzeska)를 통해서 조형예술을 알게 되고 또 페놀로사(Ernest Fenollosa)의 원고 정리를 하며 한자(漢字)의 세계를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또한 파운드가 변모를 하는 데는 당시의 많은 예술가들의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면 1913년 12월 런던에서 열렸던 엡슈타인(Epstein)의 개인전과 관련된 논쟁에서, 당시 독일에서 공부를 하다가 돌아온 흄은 기하학적, 추상적 예술을 옹호하고 나선다. 이와 함께 칸딘스키(Kandinsky)의 영향도 적지 않았는데, 1912년에 나온 그의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는 파운드에게 추상적 예술의 세계를 다시 일깨워 준다. 이런 모든 경향은 결국 파운드로 하여금 이미지즘을 떠나 보티시즘의 세계로 향하게 만든다.   1914 년 이후 파운드의 작품을 지배하게 되는 보티시즘은 기본적으로 객체적 사물의 세계보다는 시인의 창조적 인식을 중시한다. 그래서 파운드는 사물의 단순한 수용보다는 언어를 통한 예술가의 새로운 세계 창조에 관심을 기울인다. 파운드의 이런 변화에는 앞서 살핀 대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운드가 이미지즘 운동의 정립 단계에서 발표한 이미지스트 3원칙에도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숨어 있었고. 나중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경향의 발전적 형태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미지즘의 단계별 변화 혹은 발전을 가져온 여러 다른 요소들 못지않게, 이미지즘 이론 자체가 그 내부에서 출발점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러한 이중성 혹은 모순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맺는 말    20세기 초 파운드가 주도했던 이미지즘 운동은 그 강력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운동을 통해 창작된 시는 의외로 그 양에 있어서 빈약하다. 그리고 그나마 발표된 시들도 대부분 짧은 자유시에 불과하다. 스피어스(Spears)는 표현의 정확성과 경제성을 규정하는 이미지즘의 제1,2원칙은 후기 빅토리아조와의 결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진정으로 규범적인(truly descriptive)'것은 제3원칙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제1,2원칙의 '정확성'에 대한 주문은 실제에 있어서는 매우 애매한 요구이고, 따라서 시인들이 시를 쓸 때 따를 수 있는 실질적인 것은 제3원칙이라는 것이다. 제3원칙이 자유시를 규정하는 것이고 보면 이미지즘 시가 결국 자유시의 일종으로 결말이 난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즘 시가 가진 한계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소 이분법적이기는 하지만 시를 주제와 기법의 두 부분으로 나눈다고 할 때, 이미지즘이 관심을 가진 것은 말하자면 기법적인 측면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미지즘은 따라서 시의 내용이나 주제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정확성과 견고성을 일단 확보하면 시는 그 주제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문제를 삼기 어려웠다. 그래서 데이쉬즈(Daiches)에 의하면 이미지즘 시들은 과도한 정확성과 자유시형 등을 주장할 뿐 인간의 이상이나 신념과는 상관이 없는 일종의 '표면예술(a surface art)'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 시들이 정확한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강조할 뿐 전체적인 유기적 통일성을 찾기 어려우며, 따라서 그 핵심에는 '공허(emptiness)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미지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러나 이미지즘이 현대 영시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지스트들이 주제나 내용보다 기법과 형식에 치우친 관심을 보인 것은 그들 자신의 편향된 관심 때문이라기보다 그 당시 영시가 가진 문제점이 주로 그런 기법이나 형식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언어의 정확성에 대한 그들의 주문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당대의 시가 가진 문제점이 느슨하고 감상적인 언어의 사용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바로 언어이므로 언어의 정확성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바로 훌륭한 시의 기본 요건에 대한 요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미지즘 운동을 통하여 서구의 현대시는 언어의 정확성과 명료성 등에 대한 각성을 함으로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영시가 보여준 부정적인 모습들을 극복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Vorticism    소용돌이주의(Vorticism)는 파운드가 런던에 머물고 있을 당시(1908-1920) 영국 전위예술가들의 예술적 취향이나 태도, 또는 그들의 예술을 시에 적용시켜 보자는 생각에서 창안해 낸 시작법의 일종이다. 소용돌이주의는 소용돌이(vortex)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그룹의 이념은 미래파의 문학사회 이론 및 입체파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에즈라 파운드는 "소용돌이는 에너지의 최고점이며, 메카닉 가운데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소용돌이를 세계관의 상징으로 삼는 역동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영국의 정적인 예술 전통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 운동은 파운드가 이미지즘이 지나치게 정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의 소용돌이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을 알려 주는 유일한 전위예술의 한 분야였다. 파운드는 "소용돌이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어느 한 진영에 모여 있는 표현주의, 입체주의, 이미지즘이고, 다른 진영에서는 미래주의이다. . . . 그것이 하나의 예술운동이 되는 한, 그것은 일종의 가속화된 인상주의"(심인보 296에서 재인용)라고 말한다. "소용돌이" 또는 "회오리 바람" 등으로 정의되는 "Vortex"라는 단어는 영원히 지속되는 자아재생의 힘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끓어 오르는 힘(동적 상황)과 조용한 형태의 무력감(정지상태)을 결합시킨 용어로 해석되어 왔다. 이미지즘과 소용돌이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미지즘이 정적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소용돌이주의는 이미지즘의 한계를 뛰어넘어 동적 이미지를 시로써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파운드의 시 「장기시합과 놀이에서의 독단적인 말」("Dogmatic Statement in the Game and Play of Chess")라는 시에서는 동적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파운드의 시도가 잘 보여진다.  이 시는 소용돌이파의 그림처럼 선, 색채, 모형을 기본 바탕으로 한 추상시로서, 장기판의 딱딱한 규칙에 따른 난폭한 힘의 소용돌이를 나타낸다. 장기 두는 사람이 대문자 L 모양으로 채색된 장기판을 때린다.    손 뻗쳐 여러 각도에서 공격하고,  한 가지 색으로 버틴다.  장기판은 빛으로 살아 있다. . . .  한 판이 끝나고 장기에 진 사람은 판 모양을 헐어 버리고 다시 만들며 이기는 순간까지 계속 장기를 두려고 한다.  빙글빙글 돈다, 가운데 모이고, 외퉁수 장군, 소용돌이 속에서 왕은 쓰러진다.  충돌, 눈에 띄는 줄무늬들, 강한 색채의 진선들,  안에서 작용하는 차단된 빛, 도망, 시합의 재개.    이 시는 빛과 공간의 틈새로 만들어진 장기판의 선이나 색깔에 도취되어 장기를 두는 추상적인 모습을 그린 시이다. 즉, 기세가 불리하여 쫓겨 도망갔다가 돌아서서, 다시 상대방의 말(馬)을 잡아먹으려는 상황을 그림처럼 재미있게 표현한 이 시는 소용돌이주의 시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소용돌이주의 시인들은 위의 시에서 본 것처럼 동적 심상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특별한 활자체 모양을 도입하였다. 소용돌이주의자들은 이전 시대의 예술작품의 특징인 온순, 화해, 자연, 부드러움, 19세기, 교육, 민주주의, 곡선, 부드러운 선, 혼합된 색채 등과 같은 낭만주의자들의 예술적 장식물을 공격하였다. 그 대신 그들에게 거칠음, 양극단, 난폭, 현재, 기구, 딱딱함, 날카로움 등으로 이루어진 금속성의 물체는 유동적이며 가변성이 있어 엉키거나 똑같은 모양만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호의 대상이 되었다. 소용돌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시상을 강화하기 위하여 특별히 고안한 활자체로 모양을 다음고, 활자체 모양의 배열을 통해 시각적 효과를 고조시키려고 하였다. 소용돌이파는 활자체 모양을 다루는 솜씨가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일종의 자유산문형의 넓은 공간을 큼직하고 묵직한 글자로 조심스럽게 메꾸고 있다. 사실 이들은 크고 넓든 텅 빈 흰 종이 위에 굵직굵직한 검은 선이나 글자로 얽힌 추상화 같은 시를 짓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시에다 그림과 같은 글자체를 보충하여 시각적 효과를 노린 시를 자신들의 예술로 고정시키려 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그들의 글에서는 글 자체가 만들어 내는 그림들이 날카로운 기하학적 도형을 이룬다    이러한 사실은 근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시각적 경험의 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그 이전의 구조물들이 목재나 석재로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철골 구조물이 생겨났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1889년에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은 철탑인 에펠탑(Eiffel Tower)는 기존의 석목재 구조물과 구별되는 철골 구조물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것이다. 이 탑은 높이가 984피트(약 300 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사물 혹은 장면의 정확하고 객관적 표현을 목표로 했던 소용돌이주의자들이 그들의 활자 모양을 고안하고, 글 자체로서 만들어내는 그림들이 날카로운 기하학적 도형을 이룬다는 점은 시각적 경험의 변화에 따른 필수불가결한 산물일 것이다.    또한 소용돌이주의는 사진술의 발달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을 것인데, 고정되어 있는 사진(still pictures)은 1890년대에 움직이는 사진(moving pictures)으로 발전하였다. 촬영되고 영사되는 활동사진을 직접적으로 이끌어 낸 1887년부터 계속된 다양한 혁신들의 상대적 가치는 불분명하다(엘리스 32). 하지만 1895년에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에서 선보인 최초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관객들이 화면상의 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곧장 자신들에게로 와서 충돌할 줄 알았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던 일례를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시각적 경험의 재생이 보다 구체화되고 동적으로 표현되는 시점에서 소용돌이주의자들의 동적 심상의 추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2. Objectivism    객관주의(objectivism)란 객관적인 예술 혹은 문학의 이론 또는 실천이다. 이 용어는 1930년대에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에 의해서 사용된 것으로 시를 기계적인 형태로 고려하고 분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려는 운동을 기술하기 위한 것이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이 용어는 시의 구조상의 외견을 검토하고 어떻게 그 시가 구성되었는지를 고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운동에 참여한 시인들은 Louis Zukofsky, George Oppen, 그리고 Charles Reznikoff이다. 이 유파는 실용주의와 물질주의를 중요시 여겼는데, 다시 말하면 그들은 미국인들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고전주의적이고 유럽 식의 영향이 시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느꼈다. 그는 현대 미국사람들이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언어를 시어로 삼아 전통적인 시형을 무시한 시를 썼다. 그래서 브래들리(Sculley Braddley) 등은 그를 미국문학의 "전위파"(avant-guard)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윌리엄스와 관련해서만 살펴볼 것인데, 서론에서 기술했듯이 윌리엄스에게서 이미지즘과의 연관성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실제로 파운드와 시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파운드는 1908년 10월 21일자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에게 보낸 서한에서 흄이 주장하는 "절대적으로 정확한 표현 및 군말의 폐지(absolutely accurate presentation and no verbiage)"의 내용과 비슷한 "시작법의 궁극적인 달성(ultimate attainments of poesy)"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1. 사물을 내가 그것을 보듯이 그려내라.  2. 미.  3. 교훈적 경향에서의 탈피.  4. 만약 당신이 적어도 더 좋게 혹은 더욱 간단하게 다른 소수의 사람을 반복한다면 훌륭한 일이다. 완전한 독창성이란 불가능하다.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첫 번째 항목은 특히 이미지즘과 관련을 맺을 수 있는 항목이다. 윌리엄스는 아마도 이 항목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시에서 어떤 교훈이나 사상의 직접적 표현을 배제하였으며, 어떤 전경을 표현할 때는 마치 그림을 그려내듯이 하였다. 아래에 인용한 윌리엄스의 「빨간 손수레」("The Red Wheelbarrow")에서 이러한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이  빠알간 손수레에  의존해 있다  빗물에 씻긴  손수레  그 옆엔 하이얀  병아리떼.    비록 전에 살펴본 파운드의 시에서처럼 각종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한 가지 장면을 표현해 내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지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라"는 파운드의 충고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은 오히려 이미지즘보다도 더욱 깊게 사진 예술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여겨진다. 육안에 의한 상상 의식으로 표상된 현실상과, 상상 의식과는 관계없이 물리적 정확성으로 재생하는 영상 사이의 상극성으로 사진은 스스로 표현의 가능성을 깊게 하는 것이다.    회화는 보는 이를 명상으로 유도하여 연상 작용에 몰두케 한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한 화면을 눈으로 포착했는가 싶으면 이미 화면은 바뀌어져 가고 있어, 정착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 . . 화면을 보는 사람의 연상의 흐름은 화면의 변화에 의해 즉각 중단되는 것이다. 여기에 영화의 쇼크 작용이 있는 것으로, 이것은 고도의 신경 활동으로 포착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회화와 유사하다. 그러면서도 회화처럼 명상으로 유도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회화가 미크로코스모스적(Mikro-kosmos)미시적 공간인데 대하여 . . . 따라서 완결된 세계인데 대하여 . . . 사진은 미완의 부분적 공간이며, 명상이라는 작품과 자기와의 독자적이며 폐쇄적인 세계를 만들려는 지향보다도, 작품에 대해서 체험적이며 미지의 공간에 자기를 해방시키려는 지향이 본질 속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회화 작품은 작자의 모든 사고와 상상과 구체화의 완결이고, 또 집약이며 결과이다. 그러므로 보는 이는 그 결과로서의 화면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 작품은 그것이 작자가 사건의 곁에서 목격했다는 입증인 한, 작품을 통하여 작자의 체험을 우리는 추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상이 구상적이라는 이유로서만이 아니라, 영상이 작자의 체험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진을 보는 법은 명상적이기보다는 체험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글은 어쩌면 윌리엄스의 시들을 해석하는데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윌리엄스는 우리는 물질 세계로부터 사고를 받고 형성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라이트 형제는 처음에 새를 보지 않았다면 결코 인간의 비행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새의 날개가 그들에게 비행기에 대한 사고를 제공했던 것이다. 윌리엄스가 말했듯이 "물질 속이 아니고서는 사고가 있을 수 없는 것(No ideas but in Things)"이다. 로젠탈은 "모든 사물은 우리가 색깔, 모양, 상호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영역은 그것, 의식의 자유, 즉 우리가 한계를 초월하여 인간으로서 서로간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에 의존한다"고 윌리엄스의 객관적 사고영역을 표현한다(심인보 248-9 참고). 즉 윌리엄스의 시는 독자들에게 오로지 이미지만을 보여 주고, 그 이미지를 보면서 독자들이 나름의 사고를 갖기를 요구한다.   출처,.dungdan.com,최재규님  
39    좋은 시에 대하여 / 정민 댓글:  조회:105  추천:0  2019-03-07
좋은 시에 대하여 / 정민   '좋은 시란 운문으로서의 운율적 요소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인식 내용을 보여주는 작품 일 것이다'   1.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는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2.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즉 시인은 이미지(형상)를 통해서 말한다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3. 진짜시와 가짜시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겉꾸밈이 아니라 참된 마음이 깃든 시를 써야한다   4.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시에서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5. 사물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6.사물이 가르쳐 주는 것     사물 위에 마음 얹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는 우리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시인은 사물을 관찰하며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7. 새롭게 바라보기     좋은 시는 남들이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쓰인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날 그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 대화를 할 수 있게되면, 사물들은 마음 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시인에게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시인에게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8.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이런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든 자신이 몰두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 있다   9.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다 드러난다 시인이 사물과 만난다 마음 속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것을 시로 옮긴다 이때 사물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 사람의 품성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래서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가 오늘 무심히 하는 말투와 행동 속에 내가 품은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10. 다의적 의미가꾸기     시 속에서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모호성이라 할 수 있으며 다의적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11. 울림이 있는 말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좋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다 말하지 않고 조금만 말한다 그리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마음이 고이는 법 없이 생각과 동시에 내뱉어지는 말, 이런 말속에는 여운이 없다 들으려 고는 않고 쏟아 내기만 하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말이 많아질수록 어쩐 일인지 공허감은 커져만 간다 무언가 내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쁨이 없다.   12. 한 글자의 스승       시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소중하다 한 글자가 제대로 놓이면 그 시가 살고, 한 글자가 잘못 놓이면 그 시가 죽는다 훌륭한 시인은 작은 표현 하나가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는다.   출처, 네블, 잃어버린나를찾아서  
38    시 창작의 가장 핵심적 비법 댓글:  조회:95  추천:0  2019-02-28
시 창작의 가장 핵심적 비법           * 시학 (詩學)                                                           시인.사상가 - 손홍집      - 시는 점등의 불빛을 하나로 엮은 사슬처럼 미지적 숲에 등불을 켜고 홀로    걷는 나그네의 가장 고독한 숨결이요,그 역사이다.   -시는 시인의 삶이 항상 치열하고,예술혼은 불타며 내면은 끓어오르고,   육체는 그 뭔가를 위해 방황해야 비로소 그 깊이를 추구 할 수 있다.   - 시는 자신을 거친 도마 위에 올려놓는 파닥이는 고기처럼 스스로 실험하고   그 깊이가 아니면,결코 큰 울림이나 거시적 미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   -시는 작가적 사상과 철학이 농축되어 맑은 물처럼 가라앉은 상태에서    마치 고요한 연꽃처럼 피어있는 형체.   - 시란 간결함 속에 그 뜻을 비치고 그것이 은은한 향기로 독자에게 다가와    마침내 그 상대의 내면과 정신에 큰 울림을 준 그 가치와 척도.   - 시란 관념에 해당하는 나무의 뿌리나 줄기의 흐름을 새롭게 변형시켜     꽃으로 환하게 피운 최후의 숨결과 그 자취의 흔적.   -시란 현실이란 작은 촛점을 거대한 망원렌즈로 바라보는 시각이요,   반대로 지나온 세월을 보다 작게 축소시켜 비쳐주는 새로운 거울.   -시란 현실이란 미개세계를 작가적 지각에서 빛처럼 투망하여   보다 먼 미래적 싯점을 비쳐주는 햇살같은 빛의 일종.   -시는 작가적 내면의 숭고한 정신과 영혼을 그 모체(母體)로 탄생하여    마침내 개체적 변환을 거친 후 개성적 순환을 거친 어떤 유형체.   -시란 깊은 고뇌와 고통의 수레바퀴에 자신을 내던져 그 안에서 싹튼   숭고한 의식과 새로운 정신을 갖춘 최후의 작업이요,그 의식체.   -시란 단 한순간 빛처럼 떠오른 착상을 새롭게 영상매체로 꾸미는 작업이요,   그로 인해 자신의 지각을 일깨워 잠든 사물을 일깨우는 위대한 힘.   -시란 마음의 눈으로 품고,정신으로 그 의미성을 일깨우며,최후 그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이요,그로 인해 천 개의 눈빛을 갖춘 영혼의 집합체이다.   -시란 작가적 삶과 체험이 녹고 응축되어 흐른 영혼의 슬픈 목가적 빗소리와    그 음률이요,보다 높은 사상성을 위해 비상하는 새의 깃털같은 것.   -시란 자신이 마지막 절망에 도달했을 때 마치 구원의 손길을 스스로 뻗쳐   종교에 구원하듯이,작가의 혼과 정신을 그에 바친 최후의 기도서이다.     * 시는 지식이 아니다.보다 고도의 경험적 세계이다- 고로 생을 많이 체험하고,    많이 비교하며 사고하고, 많이 퇴고하고, 쓴 것을 많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듯,아님 물이 정화되듯이 조용히 그 시간을 기다리는    지혜도 꼭 갖춰야 정작 훌륭한 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위대한 인물이라면 자신의 타오르는 심장을 용광로 속에서     담금질한 언어를 직접 탄생시킬 수 있다!   ---------------------------------------------------------------------    *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저 바닷속 밑바닥의 조개에서 한알의 진주를 케내온 작업이다.-(열정)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가슴속의 사무친 멍울이 피를토해 마지막 단절된 그 숨결을 어루만지는 일이다.-(실천)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동굴에서 포도주가 오랫토록 숙성되어 최후의 그 깊고 오묘한 맛을 드러내는 순간이다.-(인내)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고욱(苦煜)의 참담한 눈꽃들이 핀 외진 산길을 한없이 고독하게 홀로 걷는 발걸음이다.-(고행)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모든 사물과 자연을 한 호흡에 갖추기 위한 나의 최후의 몸부림이요,그 열매이다.-(사랑,나눔)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과정과 그 환희의 불꽃들을 보다 찬란하게 펼치는 환희의 광경이다.-(예술적 승화)           * 시 창작의 열가지 비법   첫째: 모든 사물과 친근한 벗이되라.        (모든 사물은 곧 시의 재료이며 또한 자신을 키우는 훌륭한 스승에 해당한다.)   둘째:작게 스친 영감을 그대로 놓치지 말라.        (짧게 스쳐간 착상이나 영감은 그것이 테마가 되어 정작 큰 작품의 줄기를 형성한다.)   셋째:삶에 대한 철저한 체험을 갖추라.        (어떤 일을하면 그냥 쉽게 처리하려든 생각보다 그 일의 깊이에 빠져 생활해야 한다.미친듯이-)   넷째: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버릇을 길들여라.        (작은 환경에 만족하면 그 의식체는 곧 고인 물에 해당한다.고로 창조자는 항상 새로움에 눈뜨라.)   다섯째: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        (어느 순간에 훌륭한 착상이나 영감이 떠오를지 모른 상태기에 항상 그것을 기다리는 자세라야 한다)   여섯째:때론 긍정보다 부정적 시각을 갖추라.       (긍정은 가장 일반적인 시각이다.그러나 그 긍정을 부정으로 바라봄은 파라독스를 제공한다.)   일곱째:모든 사물을 쳐다보면 먼저 의심하는 눈초리를 갖추고 점차 깊은 시각으로 관찰 투시하라.       (작은 돌맹이 하나에서부터 이름없는 풀 한포기를 쳐다봐도 그들의 깊은 내면을 읽어야 한다)   여덟째:고독한 환경에 갖혀 생활하고 최대한 말을 줄여라.       (고독은 시인의 집이다.또한 말이 많으면 정화될 시어들을 모두 미리 흘려버린 경우에 해당한다. 말은 곧 시다)   아홉째:문체와 문장을 항상 다듬고 조율하라.       (시어에 꼭 필요한 낱말이 들었는지,아님 전체 문장은 꼭 짜임새를 갖췄는지 항상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   열번째:홀로 고요히 참회하는 습관으로 시를 쓰라.       (참회란 곧 자신을 씻는 일이다.그로 인해 항상 마음을 닦고 정신을 일깨우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얼어붙은 토양을 일궈 그곳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스쳐가는 바람을 붙잡아 작고 투망한 그물에 가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피끊는 정열로 사막에 오아시스를 건설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약속없는 땅에 새로운 약속의 뜻을 세우는 거룩한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생명이 없는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그것이 부활토록 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과 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의 교량을 건설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곳에 미래적 사유의 집을 짓는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진리가 철저히 외면당할 때 그것을 보상받기 위한 노력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범람하던 자신의 의식체를 다스려 고요히 그 강물이 잠들게 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절망의 나락에서 최후로 자신의 의식을 찾는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고요한 아침의 햇살을 품에안고 새로운 에너지를 축적시키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삶의 가장 진실한 참회록이다.     * 글을 쓰는 의미와 방법 P{margin-top:2px;margin-bottom:2px;}    첫째: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자세로 써야 한다. 둘째:생을 관조하는 정신으로 써야한다. 셋째: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개척하는 위치에서 써야한다. 넷째:타인과의 동조의식에서 나눔이란 법칙을 성립해야 한다. 다섯째:그 모두를 다 버리는 과정으로 다시 되새김질 해야 한다.   ------------------------------------------------------------     ** 시에 대한 몇가지 명언들.. -시는 간소함에 대한 사색이다.-시란 좋은 친구, 관용의 미소이다. -시란 곧 부활하는 생명의 몸짓이다.-시란 경험에 의한 자신의 미래적 성찰이다.-시란 고상한 감정의 순환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기법이요, 보다 고차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들의 욕구이다.-시란 기다림의 미학이요,관찰자적 영감과 철학이 내재된 운율의 오묘한 조화성이다. *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나의 생명이 위태롭거나 험한 수렁에 빠질 때 스스로 구원을 얻기 위함이다.고로 그것은 나의 신비로운 생명의 힘이요,축적된 구원자의 언어요,힘차게 솟구치는 대지 위의 파란 새싹들의 함성이다. *시를 쓰는 것은,즉 예술가가 그 예술행위를 하는 것은 곧 죽음의 문턱을 스스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을 뿌리쳐도 다시 그 세계에 빠지는 이유는 오직 그것을 극복함으써만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poem-reader?t__nil_cafemy=item  
37    생각 속의 여우 / T․휴즈 댓글:  조회:194  추천:0  2019-02-04
생각 속의 여우 T․휴즈   나는 이 한밤 순간의 숲을 상상한다. 무언가 살아 있다. 시계의 고독과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이 백지 옆에서.   창 밖엔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비록 어둠 속에서 깊어졌으나 더욱 가까워진 무엇인가 고독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차갑고 검은 눈(雪)처럼 섬세하게, 한 마리 여우의 코가 잔가지와 잎을 건드린다. 두 눈이 하나의 동작을 대신한다, 그리고 또 그리고 지금,   흰 눈 속에 선명한 자국을 찍는다, 나무들 사이에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절룩거리는 그림자가 그루터기 옆을 느릿느릿 지나간다 그리고 숲 속의 빈터를 대담하게 가로질러 나온 몸뚱아리의 움푹 둘어간 공동(空洞) 속에서, 눈 하나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초록 하나가, 휘황하게 골똘하게 제 일을 시작하고 있다   문득 여우의,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그게 어두운 머리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창에는 여전히 별이 보이지 않는다. 시계는 똑딱거리고 백지가 채워진다. (글이 쓰여진다)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 : 영국의 시인.극작가.비평가). 시작법(한기찬 역,청하출판사,1993)   [감상] 여우의 움직임을 통해 시 창작 과정을 밝히고 있는 이 시에서 1연은 한밤중 화자인 나는 시상을 정리하기 위해 숲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 숲속에는 시인 이외 다른 무언가가 살아 있다. 방안에는 시계의 째깍거림 이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적막이다. 적막 가운데 화자는 백지를 펼쳐 놓고 그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2연에서는 화자가 숲속 광경을 마음 속으로 상상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창문을 통해 별을 볼 수 없다고 하는 그는 별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보다 가까이에 있는 대상을 느낀다. 그것은 어둠 속에 보다 깊이, 보다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고독 속에서 시상은 떠오르는 법. 3연은 보다 가까이 있는 그것은 다름아닌 여우다. 여우는 코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살며시 만진다. 여우의 코가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닿는 모습이, 흡사 어두운 밤에 눈이 살포시 내리는 것 같다고 한다. 시상이 매우 부드럽게 착상되는 순간이다. 여우는 두 눈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본다. “지금”이라는 말이 계속 반복된 것은 여우가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여 준다.    
36    환유적으로 시 쓰기/윤석산 댓글:  조회:197  추천:0  2019-02-04
[공유] 환유적으로 시 쓰기/윤석산   3) 환유적으로 시쓰기       자아 이제 서정적 줄거리를 완성했으니 환유적 어법으로 시를 써보기로 할까요? 지금 쓰자면 ‘나중에 쓰지요’라고 말할 테니까 저랑 함께 써보기로 합시다. 어떤 것을 쓸까요? 앞에서 시인이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는 1인칭 화제로 쓴 경우는 예문을 통해 확인했으니 3인칭 화제로 써보는 건 어떻겠어요?  대답이 없으니 제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어느 날 글을 쓰다가 피곤해 차를 몰고 해안도로에 있는 카페에 갔습니다. 커피를 시켜놓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보면서 피로를 풀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커플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는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순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대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말 속’에 말이 있다면 ‘말 밖’에도 말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안’과 ‘밖’이 있다면 말은 입체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이라면 사람도 살고, 도시도 있고, 빌딩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고, 그 구멍가게 안에는 사탕항아리도 있을 테고, 그 아래에는 지하실도 있을 수 있고, 밤마다 고양이가 계단에 올라와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군요.   그러다가 언어철학(言語哲學)을 공부하느라고 읽은 책들의 구절들이 떠오르대요. 그러니까,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든지, ‘언어는 존재다’라든지, ‘존재에 이르는 통로’라는 말들입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폭력을 낳는다’는 말도 떠오르대요. 평소 이 지구상의 모든 전쟁은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떠오른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언어가 존재라면 화살로도 만들 수 있고, 고래로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대요. 그 때 아마 바다 저편에 여객선이 지나가고, 그 여객선을 고래의 모습으로 바꿔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종이를 달라고 해 다음과 같이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①글을 쓰다가 피곤해서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심 ②옆자리의 젊은 커플이 ‘당신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다’고 말함. ③순간 말 속에 말이 있다면 언어는 입체적 공간이고 사물이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음. ④그리고 또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이 떠올랐음 - 이 세상의 모든 분쟁은 언어로부터 시작됨…   뭐, 이런 식으로 시의 줄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어떻게 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3인칭 지향형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어느 지향형으로도 쓸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을 택한 것은 언어에 대한 제 느낌이나 말 속에는 말이 들어 있으니 말할 때 상대에게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교훈보다 언어 그 자체의 속성을 드러내고 싶어서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제 지향형은 자기감정을 자제하면서 객관적으로 말하기에 적합한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줄거리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제외한 것은 ①번이었습니다. 이 모티프는 과정을 나타내는 로서, 이들을 그냥 놔둘 때는 서사적 산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적  모티프’가 뭐냐구요? 이 용어는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토마쉐프스키(B. Tomaševski)가 쓴 것으로서, 그는 이야기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모티프의 유형을 , , , 로 나눕니다. 그리고 고정 모티프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단위로서 탄생이나 죽음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단위를 말하고, 동적 모티프는 ‘뛰었다’든지 ‘결혼했다’와 같이 정황(情況)의 변화를 알리는 단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 모티프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갈 때 날씨가 화창했다든지 음악을 들으며 갔다는 식으로 생략해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위를 말하고, 정적 모티프는 ‘그녀는 아름답다’와 같이 묘사하는 단위를 말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동적 모티프를 배제하면 화자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축소하고,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를 이야기할 때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시를 평할 때 ‘서사성이 강하다’든지 ‘산문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들은 이들을 그냥 놔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뺀 다음 줄거리에 따라 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쭉 쓰다가 보니까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대요. 그리고 어떤 곳은 너무 장황하고, 설명으로 흐르는 곳이 생기데요.  그래서 주제에 해당하는 ‘말 속에는 말이 있다’와 ‘말 밖에도 말이 있다’라는 구절을 적당히 바꾸면서 각 연마다 배치했지요.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곳을 잘라 연(聯)을 바꾸면서 자른 빈 틈에서 독자들이 상상하도록 만들어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한번 보실래요?   말 속에는 말이 있고 말 밖에는 말이 있다.   말과 말 사이에는 빌딩이 있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구멍가게가 있고 구멍가게 한 가운데에는 꿈을 담은 사탕 항아리가 있고 그 뒤 쪽 지하실 계단 아래에는 빨간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있고 그 고양이는 밤마다 층계 위에 올라와 밤새도록 운다.   말과 말 사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숲이 있고 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들 뒤엔 명털 뽀얀 소녀들이 있고 깔깔대는 그 소녀들 웃음은 화살이 되어  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린다.   그러나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또 다른 말이 있고 또 다른 말 내부에는 눈부신 이데올로기가 있고  이데올로기는 도시 상공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되고 펄럭이는 깃발은 저를 위해 다른 말들을 공격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간혹 전쟁터에서 혼자 죽는다.   말과 말 사이에는  쓸쓸히 비가 내리는 바다가 있고 비 내리는 바다에는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있고 그 고래는 밤마다 제 짝을 찾아 울며 지구 저쪽으로 떠나고  그래서 지상의 우리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필자,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어때요? 재밌지요? 환유적으로 시 쓰는 방법을 정리해드릴 테니 여러분들도 앞에서 만든 줄거리를 가지고 작품 한편을 완성해보세요.   □ 환유적으로 시 쓰기 순서   ① 화제가 떠오르면 자유연상(自由聯想)을 하면서 시상을 풍부하게 만든다. ② 시상을 검토하면서 지향성을 결정한다. ③ 시적 인물과 배경, 어조 등을 결정한다. ④ 줄거리를 검토하면서 고정모티프와 동적 모티프를 제거하거나 자유모티프와 정적 모티프에 포함시키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⑤ 주제에 해당하는 모티프를 군데군데 배치하여 주제를 강화하고, 모티프 단위로 연을 구성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동적 모티프를 어떻게 약화시키느냐구요? 아, 그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군요. 흔히 시의 제재로 택한 화제에 과거의 이야기를 오버랩(overlap)하거나 몽타주(montage)하는 방법을 쓰지요. 다시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쓸쓸해서 하루 종일 방황하고 아래와 같은 시적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① 그녀가 떠난다게 해서 항구로 갔다. ② 하루 종일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을 들으며 방황했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③ 해가 지고,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마치에서 소주를 마셨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만일 이 이야기를 차례대로 쓴다면 틀림없이 ‘산문적’이라든지 ‘서사적’이라는 평을 들을 겁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이 마지막 모티프인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장면에 그녀가 떠나는 장면을 비롯하여 바다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겹쳐 놔야 합니다.   차가운 소주잔 아래 항구로 가는 사내가 보인다. 파도는 밀려오고, 갈매기는 울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며 돌아서는 여인이 보인다. 여객선은 부우부우 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나가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늦가을 저녁 혼자 술마시는 사내가 보인다. 술잔 밑으로 저녁 해가 지고, 포장마차 비닐 포장이 펄럭이고…   뭐, 이런 식으로 겹쳐 놓거나 비유하면 지나간 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아, 그럼 써봅시다. 나중에 쓰겠다구요? 한 마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없거나 운이 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길러야 할 기초적인 능력을 내일 하지 모레하지 미루고, 그렇게 미룬 것들이 누적되어 그렇게 된 겁니다. 이 강의가 끝나기 전에 시인이 되고 싶은 분들은 어서 쓰기 시작하세요. 자아, 씁시다. 시자악!  
35    초현실주의와 그로테스크를 활용한 시형식 댓글:  조회:152  추천:0  2019-02-04
    초현실주의와 그로테스크를 활용한 시형식       -박상순     1)박상순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 전공) 졸업.  91년『작가세계』에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데뷔.  93년 『6은 나무, 7은 돌고래』, 96년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을 발간.  96년 현대시동인상 수상.    2) 박상순 시의 작법적 특성    ① 박상순의 언어는 초현실과 무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정체불명의 화자(발화자)와 청자(수화자)을 등장시켜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을 활용한다.  우리 시에서 새로운 발성법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설명하지 않는다.  시적 모호성과 난해성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② 이국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초현실적이미지를 구사한다.  상상력의 비약과 이미지 사이의 충돌이 크다.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편안하게 읽히는 것은 반복적 병렬과  시각적 배치를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 병렬은 이 시의 호흡을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불안하고 불길한 존재-장소-이미지를 끊임없는 반복적으로 왔다갔다하기,  그 끊임없는 미끄러짐이 바로 그의 전략이다.  반복적 병렬이나 적절한 시각적 배치는 즐거움, 슬픔, 분노, 갈망 등의 정서적 표현을  절제하도록 하며, 나아가 시적 긴장을 유발하도록 한다. 
34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줄거리 [퍼온 자료] 댓글:  조회:153  추천:0  2019-02-04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줄거리 [퍼온 자료]   1. 모방에 관하여  우리의 주제는 작시술(作詩術)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예술 일반의 본질 뿐 아니라 그 종류와 기능에 관해, 좋은 시에 요구되는 플룻의 구조에 관해, 시 구성성분의 요소와 본질에 관해, 그리고 같은 탐구과정에서의 다른 예술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희곡은 물론이거니와 서사시와 극시, 그리고 많은 관현악곡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모방(模倣)의 양식이다. 동시에 이들은 모방매체, 즉 수단의 종류, 대상의 차이, 모방의 방법이라는 세 가지에 의해 구별된다. 모방매체로서의 수단은 전체적으로 리듬, 언어, 화음 등이다. 이는 단독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에 차이를 가져오는 요소를 모방의 매체, 즉 수단이라 부른다.  모방자가 모방하려는 대상은 인간의 행위인데, 이 행위자는 필연적으로 선인이거나 악인이다. 미덕과 악덕 사이의 경계가 모든 인간을 구분 짓는데, 모방의 대상으로서 인간은 선함에 있어 평균인 이상이거나 혹은 그 이하이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수준이다. 예술은 이러한 차이점을 인정해야 하며, 이러한 차이의 관점으로 표현된 대상에 의해 서로 분리된 예술이 나온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차이점은 비극과 희극을 구분 짓는 것이기도 한데, 후자는 오늘날의 평범한 사람보다 더 천한 인물을 만드는 것이라면 전자는 더 훌륭한 인간을 다룬다.  예술의 차이 가운데 또 하나는 각 대상의 모방방법에 있다. 모방할 때 수단과 대상이 같은 종류라면, 시인은 어떤 때는 서술체로 어떤 때는 작중인물이 되어 말할 수 있다. 또는 그런 변화 없이 계속 자신에 머물 수도 있다. 모방자가 모든 것을 실제 행하는 것처럼 극적으로 전체 이야기를 표현할 수도 있다. 이들 예술의 모방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결국 그 수단과 대상 및 방법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에 기인하는 것이다.    2. 예술(시)의 기원  시의 일반적 기원이 인간 본성의 각 부분인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모방적 창조물이며 모방에 의해 지식을 배우게 된다. 또한 모방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에 기쁨을 느낀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철학자뿐 아니라 아무리 능력이 모자란 사람이라고 해도 최상의 기쁨을 선사한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모방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화음과 리듬도 역시 그렇다. 시는 각 시인의 성격 차이에 의해 두 종류로 나뉘는데, 찬가와 찬사, 그리고 풍자시가 그것이다. 비극과 희극이 실제로 나타나자 자연히 시적 취향에 따라 일부 시인들은 풍자시인 대신에 희극시인이 되었고, 다른 취향의 사람들은 서사시인 대신에 비극시인이 되었다. 이 새 예술형태가 전의 것보다 더 장엄하고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희․비극은 즉흥적인 것에 기원을 둔다.  희극은 보통 사람 이하의 악인을 모방한다. 모든 결점 때문이 아니라 특이한 결점, 추악함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우스운 것 때문에 악한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나 해를 주지 않는 과오 혹은 결함이라 규정할 수 있다. 웃음을 자아내는 가면은 고통을 주지 않는, 추하면서도 왜곡된 것이다. 서사시는 장엄한 체의 운문으로 진지한 주제를 모방한 점에서 비극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비극에서의 선악의 판단은 서사시에 있어서의 그것과 유사하다. 서사시의 모든 부분은 비극에 포함된 것이지만, 비극의 모든 부분이 서사시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    3. 비극의 정의와 효과  비극은 진지함과 그 자체로서 완전한 일정한 길이의 행동을, 즐거움을 주는 장식적 요소와 어울리는 언어로 모방하는 것이다. 비극은 극적이거나 비설명적 형태로, 연민과 공포를 일으켜 주는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이룩하게 해준다. ‘기쁨을 주는 장식적 요소의 조화된 언어’라는 것은 언어에 리듬과 화음, 혹은 노래가 부가되어짐을 의미하며, ‘분리된 종류’라는 것은 어떤 작품은 운문으로만 완성되고 어떤 작품은 역으로 노래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1) 이야기가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첫째로 장경(場景)이 전체의 몇 부분이어야 한다는 사실과, 둘째로 가락과 조사법이 그들 모방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뒤따르게 된다. 여기서 ‘조사법’(diction)이란 그저 운문의 작법을 의미하며, 가락이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 더 이상 설명을 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표현된 주제 역시 행동을 통해 구현되며, 행동은 성격과 사상 양면에서 현저한 특질을 필연적으로 지녀야 하는 행위를 통해 이뤄진다. 어떤 특질을 그들의 행위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므로 사물이 자연적 질서를 이룸에는 그 행위의 두 원인이 있으니 성격과 사상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결과로 그들 삶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현실의 행동이 극에서는 이야기와 구성에 의해 표현된다. 행동의 모방이 바로 플롯이다.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구성’이란 용어의 의미는, 이야기상에서 이루어지는 사건과 행위의 결합이며, 거기에서 성격이라는 것은 어떤 도덕적 특질이 행위자에 기인한다고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사상이라는 것은 특이한 점을 증명하거나 혹은 보편적 진실을 드러내려할 때 그들이 말하는 모든 언어행위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극은 그 질을 결정하는 여섯 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니, 구성, 성격(인물), 조사법, 사상, 장경, 그리고 멜로디가 그것이다. 이들 중 조사법과 멜로디는 모방의 수단에서, 장경은 모방의 양식에서, 나머지 셋은 모방의 대상에서 나온 것이다.  2) 여러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상의 사건을 결합하는 것, 즉 구성이다. 비극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모방이 아니라 행동과 삶, 행복과 불행의 모방이다. 모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행동양식을 취하며 우리 삶의 궁극목적도 어떤 종류의 활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성격이 인간의 성질을 알려주지만, 우리가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극에서 그들은 성격을 전해주기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함으로써 성격을 그 속에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비극의 결과이며 목적인 것은 단편적 이야기와 구성 속에 있는 행동이며, 그 결과는 어디서나 중요한 것이다. 또한 비극은 행동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인물의 성격 없이는 가능할 수 있다. 비극에서 흥미를 끄는 가장 강한 요소인, 급전(急轉)과 발견은(發見)은 구성의 일부분이다. 그 증거의 하나로, 시작 초보자들은 이야기의 구성보다 조사법과 성격에 쉽게 능하게 되는데, 거의 모든 초보 극작가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비극의 생명이며 영혼인 것은 구성이고, 성격은 이차적으로 오는 것인즉, 이는 무질서하게 아름다운 색깔만 칠해 놓아, 단순하게 흑백으로 그린 초상화만큼의 기쁨도 주지 못하는 그림에 비유할 수 있다. 비극은 일차적으로 행동의 모방이며, 그것이 행위자를 모방함은 주로 행동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결국 비극의 핵심원리는 구성이고 성격은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오는 요소는 사상, 즉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 경우에 꼭 맞는 것을 말하는 힘이다. 이것은 비극의 대사에서 나타나며, 정치학과 수사학의 영역에 공통으로 속한다. 극에 있어서의 성격은 행위자의 도덕적 목적을 보여 준다. 한편 사상은 어떤 특별한 점을 밝히거나 덮어주거나, 혹은 보편적 명제를 밝힐 때 인물이 말하는 언사에서 드러난다. 네 번째 것은 조사법이다. 즉 실제 운문이나 산문이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언어로 그들의 사상을 포현하는 것이다. 멜로디는 비극에서 가장 즐거움을 주는 장식적 요소이다. 장경은 흥미를 끄는 것이지만 모든 요소 중 가장 미미한 미적 요소이며, 작시술과 관계가 가장 적다.    4. 비극의 구조  비극에 있어 일차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는 단편적 이야기나 사건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비극은 전체적이면서도 부분적으로 완전하며 또한 일정한 행동의 길이를 가진 행동의 모방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체적인 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길이 그 자체는 아니다. 전체라는 것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지는 것이다. 시작이라는 것은 어떤 것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다. 끝이라는 것은 어떤 것에 이어지면서 또한 그것의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런 결과이어야 하며, 뒤에 아무 것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중간이라는 것은 어떤 것에 이어지면서 또한 무엇인가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구성은 아무데서 시작하거나 끝나서는 안 된다. 시작과 끝은 지금 말한 것에 적절하게 어울려야 한다. 아름다운 것은 살아있는 생물체이건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이건 모두가 여러 부분의 배열에 있어 어떤 질서를 필요할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크기와 질서의 문제인 것이다. 부분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전체나 아름다운 생물체가 눈으로 보아 파악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나 구성도 적절한 길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이 개연적 혹은 필연적인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불행에서 행복으로, 혹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전도하기까지의 길이’는 이야기의 길이 제한에 있어 충분한 여유를 주어야 할 것이다.    5. 비극의 특성과 시의 본질 - 문학의 허구성  행동의 모방은 하나의 전체적 행동, 완전한 전체를 표현해야 한다. 그에 부수되는 여러 사건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 어느 한 사건이라도 위치를 바꾸거나 삭제하면 전체 연결과 배치가 일그러지게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집어넣거나 빼는 것이 현저한 차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전체에 필요한 부분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기능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적 혹은 필연적으로 가능성을 가진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다. 역사가와 시인의 구별은 산문으로 쓰느냐 운문으로 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일어난 일을 쓰고 시인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쓴다. 그러기에 시는 역사보다 더욱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는데, 시의 서술은 본질적인 좀더 구체적으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서술이라 함은 일반적인 인물이 개연적 혹은 필연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서술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이 단순히 운문 창조자라기보다는 이야기나 플롯의 창조자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의 작품에 모방적 요소가 있다 하여도 그는 시인인 것이며, 그가 모방하는 것은 바로 행동인 것이다. 단순한 구성이나 행동에서 가장 나쁜 것은 삽화적인 것이다. 삽화의 상호간에 어떤 개연성이나 필연성이 없을 때 그것을 구성에서 삽화적(揷話的)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비극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연민과 공포를 일으켜주는 사건의 모방이다. 그런 사건은 돌발적이면서도 다른 것의 결과로 일어날 때 마음에 대단히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그 사건이 재발성, 즉 스스로에 의하거나 우연에 의해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경탄스런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이런 필연의 구성은 다른 어떤 것보다 훌륭한 것이다.    6. 구성의 종류와 요소 - 복합구성과 단순구성, 급전과 발견, 비극의 구성단계  구성은 단순하거나 복잡한데, 그것은 사람의 행동이 자연히 이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일한 행동이란 하나의 연속적 전체를 이루고 있는 행동을 말한다. 이때 주인공의 운명변화는 급전이나 발견 없이 일어난다. 복잡한 행동이란 급전과 발견 중 어느 하나 혹은 이들 두 요소를 모두 포함할 때 일어난다. 이것들은 모두 구성 자체의 구조에서 생겨나며, 앞 사건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이어야 한다. 필연적 관련으로 맺어지는 두 사건과 단순한 시간적 병렬의 두 사건 사이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급전(Peripety)이란 극내에서 어떤 일이 한 상태로부터 그 반대 상태로 급격히 변화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또한 사건의 개연적 혹은 필연적 결과이다. 발견(Discovery)이란 말의 의미에서도 그렇듯이 행운이나 불운을 숙명으로 가진 인물이 무지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상태로 바뀌게 되고, 그래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적대적으로 증오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급전을 내포하는 발견은 동정심과 공포감을 일으킬 것이다. 구성의 두 부분인 급전과 발견은 이러한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은 파토스(pathos)인데, 우리는 그것을 파격적이고 고통스런 본성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양적인 관점 즉 개별부분으로 구분할 때 비극은 다음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사(Prologue), 삽화(Episode), 결미(Exode), 합창가요(Choral) 부분이 그것이다.    7. Catharsis - 비극의 목적, 예술적 쾌락  시인은 구성을 짜는데 있어 무엇을 택해야 하며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 비극의 목적은 어떠한 수단에 의하여 달성될 것인가. 비극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위하여 구성은 단순함을 피하여 복잡하여야 하며, 모방의 뚜렷한 기능으로 보아 동정심과 공포심을 일으켜 주는 행동을 모방한 것이어야 한다. 완전한 구성은 단일해야 하며 두 가지 일을 함께 다루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의 운명은 비참함에서 행복으로가 아니라, 반대로 행복에서 비참함으로 바뀌어야 하며, 그 반대의 원인은 어떤 결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에 있어서의 어떤 큰 잘못에 의하여 이끌어내져야 한다. 인물은 보통사람 이상으로 훌륭하게 기술되어야 하며 악한 존재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가장 훌륭한 비극은 말한 바처럼 단일한 구성을 가진다.  비극적 연민과 공포는 장경에 의하여 일어날 수도 있고 사건의 구성과 사건에 의하여 일어날 수도 있는데, 후자의 방법이 더 좋으며 훌륭한 시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건의 구성은 실제 보지 않고 듣기만 하여도 그 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동정심으로 가득 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극적 쾌락이란 연민과 공포로부터 야기되는 기쁨이며 시인은 그것을 모방에 의하여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사건의 원인은 사건 내부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8. 인물론 - 성격창조론  성격을 이야기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네 가지 점이 있다. 그 가운데 첫째이며 가장 우선적인 것은 선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목적이 선한 것이라면 성격요소도 선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선은, 여러 형태의 인물들에 있어 비록 그가 비열한 인간이거나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가능한 것이다. 두 번째 주의점은 성격이 인물에 특유하고 적절하게 꾸며져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성격을 전설상에 있었던 것과 유사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넷째로 전편을 통하여 성격을 지속적으로 통일적으로 꾸미는, 즉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필연적 혹은 개연적으로 후에까지 일관성 있고 지속적이어야 함은 성격에 있어서나 극의 구성에 있어서나 온당한 일이다. 그것은 어떤 인물이 말하거나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성격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이기 위함이다. 또한 사건이 연속될 때 어느 사건이든지 그것이 앞 사건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여야 하기 때문이다.    9. 구성의 구조 - 구성론 종합  발견의 종류에 관하여 우리가 주의해야 할 첫 번째 것은 가장 예술적이지 못한 것인데, 시인들이 창의력 부족으로 인해 흔히 사용하는 것으로 기호나 표식에 의한 발견이다. 그런데 기호나 표식의 사용에는 훌륭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증거의 수단으로 표식을 사용하는 것은 그와 유사한 모든 게 그렇듯이 예술적이지 못하다. 다음은 발견이 시인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조작되는 경우인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것은 예술적이지 못하다. 세 번째 종류는 기억에 의한 발견으로, 이미 보았거나 들었던 어떤 것에 의해 주인공이 회상으로부터 깨닫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 종류는 추론에 의한 발견이다. 그밖에 상대편의 잘못된 추론에 의하여 일어나는 복잡한 발견이 있다. 발견의 가장 훌륭한 형태는 사건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구성을 설정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점에 유념해야 한다. 먼저 실제의 장면을 눈으로 보듯이 설정하여야 한다. 사물을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관찰하여 표현함으로써 시인은 적합한 방법을 고안해내게 되고 간과해버리기 쉬운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가능하면 시인은 작중인물의 몸짓까지 스스로 행동해 보아야 한다. 같은 재능을 갖고 있다면 자기가 그리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확신을 주고 감동을 던져줄 수 있다. 그리고 삽화의 삽입으로 이야기의 길이를 늘이기 전에 시인은 자기의 이야기를 우선 소묘하고 보편적 형태로 축약시켜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오디세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다. 그는 해신 포세이돈에게 항시 감시를 받았으며 늘 혼자 외로웠다. 그의 집에서도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의 아내에게 구혼하는 자들이 그의 재산을 망쳐버렸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획책하였다. 그때 그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적에게 달려든다. 결국 그는 구제되고 적들은 죽는다. 이것이 ‘오디세이’의 요지이고 나머지는 삽화다.  모든 비극은 갈등의 부분과 해소의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극이 열리기 전의 사건과 극내에서의 사건 중 어떤 것은 갈등을 형성하고 그 나머지는 해소의 부분을 이룬다. 갈등이라 함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인공의 운명이 불행에서 행운으로 또는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기 직전까지의 부분을 말하고, 해소는 시점에서부터 끝까지의 운명의 전환이 시작되는 부분을 의미한다. 비극에는 뚜렷이 구분되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복잡한 비극으로 이것은 급전과 발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둘째는 파토스를 일으켜주는 비극이고, 셋째는 성격적인 비극이다. 네 번째 구성요소는 장경이다. 시인은 앞서 말하는 바를 기억하여야 한다.    10. 사상성과 조사법 - Metaphor  사상성은 ‘수사학’에서 논의할 것이기에 그것을 전제로 한다. 사상성의 연구는 수사학에 더 밀접한 것이다. 극에서 인물의 사상은 그들이 쓰는 말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것, 증명하거나 반박하고, 감정을 일으키고, 사물을 과장하거나 과소평가하려는 모든 노력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인물이 동정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고 중요성이나 개연성에 대한 적절한 효과를 낳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리과정이 실제 언사 및 행동과 확실히 일치하여야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행동에 의한 효과는 일상에 대한 설명 없이 생겨나야 한다는 점이다. 효과는 화자가 구어를 사용하여 생겨나야 하며, 그의 언어로부터 결과된 것이어야 한다. 조사법에 관해서, 이런 제목 아래 탐구되는 주제 중 하나는, 말할 때 언어에 가해지는 어조인 것이다. 즉 명령과 기원, 단순한 진술과 억압, 질문과 대답의 차이를 나타내는 어조의 문제가 그것이다. 어쨌든 그런 문제의 이론은 웅변술이나 웅변전문가에게 속한다. 시인이 이런 것을 알든 모르든 시인으로서의 그의 예술은 그 점에 대하여 심하게 비평받는 일은 없다.  명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단순한 것 즉 무의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두 가지가 합성된 것인데, 후자의 경우는 의미부분과 무의미부분으로 구성되거나 두 개의 의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합성명사는 또 세 개, 네 개 혹은 그 이상의 부분으로 구성될 수 있는데 확대된 이름의 대부분이 그렇다. 구조가 어떻든 명사는, 사물에 붙이는 일상어이거나, 외래어이거나, 은유이거나, 수식어, 신어이거나, 연장어이거나, 단축어이거나, 변형어이다. 일상어라 함은 한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을 의미하며 외래어라 함은 다른 나라에서 차용된 말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같은 말이라도 외래어일 수도 있고 일상어일 수도 있음은 명백하지만, 그것이 모든 국민에 대한 언급일 수는 없다. 은유(隱喩)는 한 사물에 다른 사물의 이름을 전이하는 것인데, 그 전환은 유(類)에서 종(種)으로, 혹은 종에서 유로, 혹은 종에서 종으로, 또는 유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유에서 종으로의 은유의 예는 ‘여기에 나의 배가 서 있다’와 같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사물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종에서 유로의 은유의 예는 ‘정말로 율리시즈는 일만 가지 선행을 했다’와 같은 표현이다. ‘일만’이라는 특수한 숫자가 ‘수많은’이라고 쓸 유의 자리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종에서 종으로의 은유의 예는, ‘놋쇠로 생명의 물을 퍼올리며(즉 놋쇠로 만든 칼로 베여 피를 흘리게 하며)’와 ‘불멸의 놋쇠로 베면서’(즉 놋쇠로 만든 두레박으로 물을 푸면서)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시인은 ‘벤다’는 의미로 ‘퍼올린다’를 사용하여, 두 말이 모두 무엇인가를 ‘갈라낸다’는 의미를 지니게 한다. 유추에 의한 은유는, 예컨대 네 개의 사항이 있을 때, 제2의 사항(B)이 제1의 사항(A)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가 제4의 사항(D)이 제3의 사항(C)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와 같은 때를 말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D대신에 B를, B대신에 D를 은유적으로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대치된 말의 관계어를 은유에 부가함으로써 은유를 적합하게 하는 수도 있다. 그러기에 잔(B)의 디오니소스(A)에 대한 관계는 방패(D)의 아레스(C)에 대한 관계와 같다. 따라서 잔은 은유적으로 ‘디오니소스의 방패’(A+D)라 표현되고 방패는 ‘아레스의 잔’(C+B)이라고 표현될 것이다. 그런 유추의 관계에 있는 용어들 몇 가지는 자신의 고유한 성격이나 이름을 지니지 못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은 꼭 같은 방법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할 것이다. 씨앗을 심는 것을 ‘뿌린다’라고 부르는데, 태양의 불꽃이 쏟아지는 것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다. 그 이름없는 동작(B)이 대상인 햇빛(A)에 대하여 갖는 관계는 뿌리는 행위(D)의 씨앗(C)에 대한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시인은 ‘신이 만든 불꽃을 주위에 뿌리면서’(A+D)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적합한 은유의 또 다른 형태가 있다. 한 사물에 다른 이질적 이름을 부여하면서, 그 새로운 이름과 자연히 관련을 맺고 있는 속성 중의 하나를 새로운 의미를 얻음으로써 부정하는 것이다. 한 예로 앞에서처럼 ‘아레스의 잔’이라 부르지 않고 ‘술이 없는 잔’, 즉 빈잔이라 부르는 것이다. 신어는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시인 자신이 만들어낸 말이다. 변형어란 한 부분은 본래대로 남아 있고 또 한 부분이 시인에 의하여 창작되었을 때를 말한다.  조사(措辭)의 완전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명석해야 하고 저속하거나 조야하지 않아야 한다. 일상어로 이루어진 조사는 가장 명확하지만, 한편 새로운 표현, 즉 외래어, 은유, 연장어 등 일상대화와는 다른 여러 가지를 사용함으로써 조사는 뚜렷하고 운문적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말만을 쓰면 전체적으로 보아 수수께끼가 되거나 야만인의 언어가 된다. 수수께끼라는 것은 단어의 불가능한 조합(다시 말하면 은유적 대치물로는 관계가 되지만 사물의 실제 속성과는 관계가 되지 않는)으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을 말한다. 외래어, 은유, 수식어 등은 말이 조야하고 평범하게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고, 한편 일상어는 필요한 명확성을 지켜준다. 조사를 가장 명석하고 비범하게 해주는 것은 연장어, 단축어 및 변형어 등이다. 이것들은 일상어와는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 용법에 변화를 가져다 줌으로써 창조적인 면모를 가지게 하여 주고, 일반적 용법에서 일상어와 많은 공통점을 지님으로써 그것을 명석하게 하여 준다. 따라서 이런 언어수법을 비난하거나 몇몇이 그를 사용하였다 하여 그 시인들을 조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시적 허용을 과대하게 사용하면 우스운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이 수법에 의한 것에 국한되지 않고, 적절히 사용한다면 시어의 모든 구성요소에 이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시인이 부적절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사용했다면 은유든 외래어든 다른 어떤 것이든 그 효과는 동일할 것이다. 시적 허용의 적절한 사용은 대단히 상이한 일이다. 상이점을 알기 위하여 시인은 서사시를 택하여, 일상어가 사용되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읽혀지는가 하는 것을 관찰하여야 한다. 외래어, 은유 및 다른 나머지에 관하여도 같은 방법을 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우리가 말하는 바가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에만 일상어를 적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어만의 사용은 그저 평범한데 비해 일상어 대신 한 마디의 외래어를 대치하는 일어의 변화를 가함으로써 시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11. 극예술과 시 - 서사시  운문으로 된 행위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모방하는 것이 시라면, 그것은 비극과 여러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이 확실하다. 1) 이야기의 구성은 희곡의 구성과 비슷하여 단일한 행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짐으로써 그 자체로서 완전한 전체를 이루어, 생물체의 유기적 통일성과 더불어 그 자신의 적절한 즐거움을 낳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반 역사에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있으리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하나의 행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에 여러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인데 이 여러 사건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  2) 이 외에 서사시는 비극과 동일한 종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것은 단순한 것이거나 복잡한 것이어야 하고, 성격적 이야기이거나 파토스적인 이야기여야 한다. 각 부분도 가요와 장경을 제외하고는 비극과 동일하여야 한다. 즉 서사시에서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급전, 발견 및 파토스의 장면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비극과 비교해 볼 때 서사시에는 다른 점이 있다. 구성의 길이에 있어, 그리고 운율에 있어서 그렇다. 행동이 없거나 드러난 성격이나 사상성이 없는 곳에서 오직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조사법이다. 반면 성격이나 사상성이 있는 곳에서 과장적으로 수식된 조사법은 오히려 시를 애매하게 하는 수가 있다.    12. 비평에 관하여 - 허구의 진실성  시인은 미술가처럼 모방가이거나 이와 유사한 창작자이기에, 모든 경우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양상 중에서 어느 하나로 사물을 표현하여야 한다. 즉 과거에 있었거나 현재 있는 사물, 있다고 혹은 있었다고 말하여지거나 생각되는 사물, 또 있어야 하는 사물 등이다. 이 모든 것을 시인은 단어의 다양한 수식형태처럼 외래어나 은유를 혼합한 언어로 표현한다. 정치술이나 다른 기술에서처럼 작시술에 있어서 정당성의 규준이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작시술에서 두 가지 오류, 즉 하나는 그 자체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단지 우연으로 예술과 관련을 가지는 부대적인 것을 범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시인이 사물을 올바르게 모방하려고 하다가 표현력 부족으로 실패한다면, 그의 작시술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나, 시인이 모방함에 있어, 기법적인 오류(의술이나 기타 기술에 관한 문제)나 사물의 불가능성을 포함시키는, 어떤 부정확한 방법(예를 들면, 움직이고 있는 말을 그리는데 오른쪽 다리 두 개를 모두 앞으로 놓게 하는 것)으로 사물을 기술하려고 시도하는 경우에, 그의 오류가 작시술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제로부터 우리는 여러 문제점에 관해 비평자의 비판을 고찰하고 해결 또는 반박해야 한다.  1) 시인이 행하는 작시술 자체에 관련하여 비평에 대하여 언급한다. 시인이 기술함에 있어 있을 수 없는 불가능사를 그렸다면 그것은 과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과오가 시의 목적을 이룸에 도움이 되거나 작품의 어느 부분의 효과를 훨씬 놀랍게 만든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시의 목적이 그런 것에 있어 기법적인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 없이도 퍽 쉽게 얻어질 수 있었다면, 불가능사를 그린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술은 전혀 과오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이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류가 그런 일에 있어 작시법과 본질적으로 관련된 것인가 혹은 단지 우연에 의해서 부대적으로 관련된 것인가 하고 묻게 될 것이다.  2) 만약 시인이 그려낸 것이 사실에 맞지 않는다고 평을 받는다면, 그것이 이상상을 그린 것이라고 답변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 그려낸 것이 사실적인 것도 아니고 이상상의 적도 아니라면 그 평가는 세평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시에서 말하고 행하여진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우리는 실제의 말과 행동의 내적인 성질뿐 아니라, 그것을 말하고 행하는 인물, 그 상대자, 시간, 방법, 행위, 동기를 고려하여야 한다.  3) 시인이 사용한 용어를 생각해 보면 또 다른 비평들을 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불가능사라도 그것이 시에서 필요하거나, 이상형이거나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일 때에는 정당화되어야 한다. 시의 목적상 믿을 수 없는 불가능사는 믿을 수 없는 가능사보다 정당한 것이다. 불가능사는 그것이 일반적 견해에 따른 것임을 보여 주거나, 한 순간에 있어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음을 주장함으로써 정당화되어야 한다. 하나의 개연성에 기인하여 발생되는 또 다른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언어에서 발견되는 모순을 우리는 논쟁에서 상대자에게 논박을 가하듯 정밀하게 검토하여야 한다. 시인 스스로 말한 것으로 모순을 범한 것이라든지 양식이 있는 사람이 진실이라고 확신한 바의 것을 인정하기 전에, 그가 의미하는 것이 동일한 관계가 동일한 의미로 동일한 사물에 대한 것인지 아닌지를, 즉 모순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아야 한다. 비평가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대략 다섯 가지에 기인한다. 비평에서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하거나, 유해한 것이거나, 모순이 있거나, 기법적인 정확성에 어긋나는 것 등이다.    13. 서사시와 비극의 비교론  더 고양된 모방 형식이 비극인가 서사시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만약 덜 비속한 것이 더 고양된 것이며 항상 더 훌륭한 관객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예술은 매우 비속한 것임에 틀림없다. 비극은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중요한 음악과 장경을 함께 가지고 있다. 비극 표현의 사실성은 실제 연기를 할 때뿐 아니라 읽기만 하여도 실제 공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극의 모방은 결말에 이르기 위해 그리 많은 시간적 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큰 이점을 가졌다고 하겠는데, 훨씬 집중된 효과는, 시간을 길게 잡아 복잡하게 엮어나가 오히려 실망하게 되는 효과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비극이 이런 점은 물론 다른 점에서도 그 시적 효과에 있어 서사시보다 쉽게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더 고양된 예술 형식이라고 할 것이다. 비극과, 서사시의 일반적인 본질과 종류에 대해서, 구성 성분의 수와 성질에 대해, 성패의 원인에 대해, 비평가의 비판 그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해결에 대하여 고찰하였으므로, 이제 이 두 가지 예술에 대하여는 그만 논의하기로 하자.   
33    현대시의 단절의식 / 강영환 댓글:  조회:151  추천:0  2019-02-04
현대시의 단절의식 / 강영환         反주지에서 찾을 수 있는 현대시에 있어서 의식의 특징을 스피어즈는 그의 저서 에서 현대시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야기한 문제점을 '단절'이라는 말로 포괄하였다.       단절은 불연속성을 말하며 시에 있어서 심상주의의 이념적 토대를 제시한 흄의, 이 연속성의 개념의 파괴는 상대적으로 현대성의 개념을 깨닫게 해 준다. 연속과 불연속, 곧 단절의 원리는 주로 19세기 생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의 진화론에 대한 회의가 동기를 이루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연속된 존재라는 확신은 다윈이나 마르크스의 경우 자연주의 그리고 신의 소멸이라는 측면으로 드러난다.       1900년 생물학자들은 유전법칙의 연구에 있어서 불연속의 변주와 마주치게 되었고 그들은 멘델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플랑크의 양자이론에서도 에너지, 움직임, 물질의 본질 속에는 근본적인 불연속성이 있음을 드러내었으며, 특히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원리는 그 후 불연속성 개념에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중요한 것은 이후 발견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원리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제 4차원, 곧 시-공 연속체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불연속을 포함하는 새로운 유형의 연속개념인 것이다.       이런 인식은 실재의 본질에 대한 전혀 다른 새로운 전망을 낳게 하였다. 곧 시간과 공간, 에너지와 물질 그 뿐만이 아니라 일체의 인과관계, 관찰자와 대상의 관계도 매우 복잡하고 기이한 내적 관계로 드러남을 의미한다.       스피어즈는 현대문학에 나타나는 기본적 단절을 네 가지로 들고 있다.                   (1) 형이상학적 단절                   유기체의 세계와 무기체의 세계 그리고 윤리적 세계와 종교적 세계 사이에는 절대적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교량도 놓여질 수 없으며, 이 점을 통찰함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물의 진면목과 해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단절은 엘리엇의 세 가지 질서 개념인 자연과 인간과 초자연적 세계 상호간의 단절의식, 그리고 신비평가 그룹의 한사람인 테이트의 물질과 정신의 근원적인 단절의식 등으로 현대문학론 속에 수용된다.                   햇빛이 환할수록/우거진 숲 속은       방울꽃 흔적, 마치/밤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달고       빛을 기다린다                   그것이 누구의 숲인지/꽃들은 알지만       가끔씩 한 계절 머무르고/떠나가는       이름 모를 들풀들의 짧은 생에서       우리는 우리의/육십 년 인생을 보람으로 여겨야 한다                   되풀이 될 수 없는/각각의 사연들을 안고       웃음 한 번 제대로 띄워보지 못하고       빛없는 생을 살고 가는/무명의 인생일지라도                   숲 속에 말없이 피어/햇볕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노래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말라 바스라져 버린       방울꽃 두포기만큼/찬란한 생을 탐하진 않을거니까                   숲 속에/저 들풀의 환희 속에/사람들의 깨달음이 숨어있다                   먼 길/어둠이 내리기 전에/우리는 숲을 벗어나       서로의 갈 길을 가야 한다/이른 서리가 발길을 적시기 전에       서로의 갈 길을 가야 한다                   독자의 시 중에서                   방울꽃의 세계를 인간의 삶으로 변주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 내고 있는 위 작품에서도 는 서로 간의 단절을 대비시켜 시적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 있다. 이 시가 앞부분의 성공에 비해 대체로 실패로 보이는 것은 는 부분 이후에서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피상적이고 고답적인 분위기로 빠지면서 형식에 치우쳐 상상력을 차단시키고 있는 점이다. 그냥 방울꽃을 상황을 제시해 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 마음속에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여지를 주는 것이 이 시의 진폭을 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심미적 단절                   시인의 모습을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생각이 아직도 사람들의 생각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낭만주의가 뿌려놓은 결과라 본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를 넘어서면 그것은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진열되어 있는 화석이 된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스피어즈는 두 번째 단절로 심미적 단절을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예술과 인생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며 포우와 보들레르 이래 여러 상이한 문맥속에 다양하게 부각되었던 개념이다. 그러나 자연주의, 도덕주의, 속물주의에 저항하는 상징주의, 특히 퇴폐주의는 예술과 인생 사이에 있는 무서운 단절감을 환기한다.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삶과 현실인으로써의 삶 사이에 메꿀 수 없는 단절의 늪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리차즈도 시가 띄는 환영적인 미적 상태를 꼬집고 시를 여러 다른 인간경험의 세계와 접촉 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엘리엇에 의하면 시인은 신비로운 자가 아니라 모든 다른 인간들처럼 범속한 생활을 하는 자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의, 시인은 그의 개성을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의해 강조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술을 모방의 양식이 아니라 이질적인 세계의 합금, 화학반응의 양식, 곧 형식의 문제에 국한 한다는 그의 이론은 그 자체가 일종의 심미적 단절을 시인하는 것이다. 오든에 의하면 는 것이다. 곧 시는 시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 시대의 시인들의 삶에서 낭만주의의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은 예술과 삶을 동일시하면서 심미적 단절을 가져오지 못한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다.                   (3) 수사학적 단절                   심미적 단절과 깊은 관련이 있는 수사학적 단절은 시를 산문과 대조적으로 인식함을 뜻한다.       산문에 비하여 시는 구조적 단절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시는 산문의 논리와는 다른 일종의 비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생략적인 스타일, 산문적 연결방식의 무시, 어떤 설명도 없는 병치적인 이미지 연결, 비합리적인 순서에 의한 낱말 배열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은 영화의 몽타쥬 기법의 영향과 꿈 및 무의식의 논리를 따르는 초현실주의에 의하여 가장 명료하게 파악된다.                   먹구름 춤       하염없더니       참을 수 없는 정열의 몸짓       하늘 밖으로 곤두박질한다       ……       지금       비는 태양이다.                   독자의 시 일부분                   비를 이나 으로 파악하는 것은 산문적인 논리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시적인 의미로 다가서면 그것은 이면의 논리에 의해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4) 시간적 단절                   아인슈타인의 시간과 공간의 상호 확산개념에서 추출되며 그 공개적 형식이 영화이다. 공간적 형식, 동시성에 대한 인식은 말할 것도 없이 20세기 초기 주지주의에서는 매우 중요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비가 내린다.       그칠 줄 모르고 밤에도 낮에도       쌓였던 눈물을 한꺼번에 내려놓는다       마을에도 산에도 붐비는 거리에도       비가 내린다.                   하늘은 물방울을 가득 담은 호수.       그 속에서 바람은 깃을 달고       날아온다.       유리문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은 전설의 고향 소리를 낸다                   비가 내린다. 쉬지 않고 내린다.       하늘은 언제까지 태양을       숨겨둘 모양이다.       흔들리는 문 소리에 외로움이       덜컹거린다.       우산 없이 이대로 하늘 밑에       있고 싶어라.                   가슴 귀퉁이 젖은 하루의 토막이       빗속에 서있다.                   독자의 시 전문                   시간적 단절은 한마디로 시간적 질서의 파괴이다. 시 속에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한정 지워 사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5) 그 밖의 단절                   이상 네 가지 단절 외에도 다른 범주의 단절이 있을 수 있다. 에를 들면 내부에서의 분열감을 뜻하는 [심리학적 단절] 즉 심리적 분열감 인식으로 엘리엇이 말한 에 포괄되는 의미이다. 현대 시인은 이 분열의 극복, 곧 감수성의 통합을 시도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하였다. 지성과 감성, 이성과 감정의 통합을 목표로 한다.           다음으로 역사적 단절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시간적 단절의 역사적 양상을 의미하며 아무리 우리가 현대를 그럴듯하게 정의하더라도 현대인은 언제나 라는 의미로 수용된다. 여기에서 20세기 예술은 과거의 그것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과거와의 단절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은 최후의 주지주의자들, 곧 입센이나 쇼우, 니체 등에서 두드러진 특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의식은 역사상으로는 미래주의, 다다주의, 초현실주의 등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스피어즈에 의하면 역사적 단절인식에 대한 두 가지 기본적 반응은 첫째로 미래주의자 혹은 오늘날 티뷔에 의한 자동적 구원에 전폭적 신뢰를 표명하는 맥루헌에게서 보며, 이들은 모두 낙관적 세계관을 표명한다. 또 하나의 반응은 과거와의 단절을 소멸 혹은 전락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파국주의는 현대예술의 중심 테마가 되고 있다. 이를테면 현대를 황무지로 파악한다든가 문명은 파괴되고 인간의 본질은 변화되고, 따라서 상실감만이 지배적 신화가 된다는 견해가 그것들이다. 현대의 가장 혁신적인 행동파 화가 로젠버그는 과거의 예술을 전혀 무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는 불모의 시대요, 무의미의 시대요, 기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의 미술 비평가인 리드로 하여금 현대회화를 반항의 회화 곧 정신적이고 미적인 가치에 무관심한 야만적인 문화인이 시대문화에 반항하는 한 양식으로 보게하며, 또한 우리가 앞서 지적한 50년대 후기 주지주의로 요약되는 부조리 예술을 낳게 했다.       신이 소멸한 시대에 예술가들은 현재의 무의미성과 원시적인 의미성 사이에 어떤 대비적 주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는 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에의 신념은 아직도 문학예술로 성숙한 표현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니다.  
32    김상환 : 리쾨르의 은유시학 댓글:  조회:142  추천:0  2019-02-02
리쾨르의 은유 시학(The Metaphor Poetics of Paul Ricoeur)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F.니체)       1. 은유에 대하여    1.1. 은유의 어원 metaphor=meta +phora = meta(over, beyond) +phorein(bring, carry) : 초월하여 옮기다, 변형하여 전하다.   1.2. 은유의 개념과 의미   (1) 은유는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그 의미가 轉移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은유(유사성/선택의 축)는 환유(인접성/결합의 축)와 함께 언어의 한 양상이다.(R•야콥슨)   (3) 은유는 한 단어의 보편적 의미에서 새로운 의미 전환이나 그 이동을 말한다.(I•A•리챠즈) (3) 은유는 의미론적 변화이다.(P•휠라이트) (4) 은유는 시적 상상력을 구성하고, 주제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T•S•엘리엇) (5) 은유는 진실 발견 혹은 통찰력의 수단이다.(C•브룩스) (6) 은유는 하나의 패턴pattern이다. 즉, 서로 다른 것들의 심층에 놓여진 유사성 혹은 동일성을 말한다. (G•베이트슨)   (7) 詩經(比-직유, 興-은유), 文心雕龍(文已盡而意有餘, 興也.)   1.3. 은유의 기본 원리와 유형 은유의 기본 원리는 에 있다. 그러나 그 전이의 토대가 되는 것은 (유사성)이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동일성(유사성, 연접성)의 원리에 근거한다. 은유의 유형은 죽은 은유(死은유dead metaphor, 관습적 은유), 살아있는 은유(live metaphor, 창조적 은유), 置換은유(epiphora), 竝置은유(diaphora), 의미 은유(sense metaphor), 정서 은유(emotive metaphor), 장식 은유(decorative metaphor), 조명 은유(illuminative metaphor), 정령 은유(또는, 의인 은유) 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좋은 은유란 다른 것 속에서 같은 것을 직관적으로 감지하는 것을 말하며, 엘리엇이 말한 좋은 은유란 동떨어진 은유(far-fetched metaphor)를 말한다.   (1) 수사학과 은유 : 장식적 효과를 내는 여러 가지 비유적 표현법들 중의 하나.   (2) 의미론과 은유 : 다른 사물에 속하는 명칭의 전용. 의미 창출과 의미 확장의 능력.   (3) 해석학과 은유 :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은유   1.4. 은유와 시 일 포스티노Il Postino : 마리오를 시의 세계로 이끈 것은 메타포, 즉 은유이다.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묻는다."바다와 하늘과 비와 구름과... 이 세상이 다른 것의 은유란 말인가요?"이 질문에 네루다는 답변을 미루다, 결국 답을 하지 않는다. 허나 그 답변은 정작 영화 속에서 영상과 소리로 암시되고 있다.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김광섭,〈마음〉전문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김춘수,〈나의 하느님〉전문     2. 리쾨르 은유론의 특질 : 상징과 해석, 진리/구원으로서의 은유   2.1. 리쾨르(1913-2005, Paul Ricoeur)에 대하여 데카르트, 베르그송, 마르셀, 메를로 퐁티를 잇는 철학자 폴 리쾨르는 1913년 프랑스 남동부 발랑 시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가정이었다. 2세 때 부모가 사망하여 브르타뉴 렌느 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고 대학을 졸업하였다. 1935년 파리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마르셀에게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독일군에 잡혀 스위스에서 5년간 포로생활을 하였다. 당시 E.후설의 저서들을 탐독한 것이 계기가 되어 후설 연구가로도 알려졌다. 1950년 후설의《현상학의 이념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프랑스에 소개하였다. 여기서 그는 현상학을 통하여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밝히고 그러한 유한성으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해명하려고 노력하였다. 1948 1956년 스트라스부르대학, 1956년부터는 파리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 Le volontaire et l'involontaire》(1949)에서 의지에 관한 현상학적 기술을,《유한성과 죄악 가능성 Finitude et culpabilit  》(1960)에서 종교적인 상징에 대한 해석학을,《해석에 관하여 De l'interpr  tation》(1965)에서 정신분석학적 상징에 관한 해석학을 개진하는 등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였다. 1966년 그리스도교 좌파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하여 낭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1968년 학생혁명이 좌절되자 급진적인 학생들과 지식인들로부터 외면당하여 1970년 해임되었다. 그 뒤 시카고대학과 파리대학을 중심으로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였다. 그 동안 몰두해온 해석학의 철학적인 주제도 상징에서 텍스트로 바뀌게 되었다. 그는 상징언어에 대한 해석의 폭이 너무 좁다고 여겨, 텍스트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인간 존재를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1975년에《살아 있는 메타포 La m taphore vive》를, 1983 1984 1985년에 연이어서《시간과 이야기 Temps et r cit 1,2,3》를 펴냈다. 1990년에는《타자로서의 자기 자신 Soim me comme un autre》을, 1992년에는 대표적인 논문을 모아놓은《강좌 Lecture》를 출간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리쾨르 사상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 해석의 우회로 ② 의미의 매개성 ③ 언어의 창조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인간의 의지와 악, 신화와 상징, 은유와 이야기 등의 다양한 주제와 실존주의, 현상학,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이데올로기 비판, 분석철학 등 현대철학의 방법들을 해석학의 관점에서 종합하려는 시도의 연속이다. 이 점에서 리쾨르의 철학은 끊임없는 '해석의 모험'이라고 불려진다. 뿌리깊은 악과 바탕의 선함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이야말로 리쾨르 사상 전체를 꿰뚫는 인생관이자 세계관이다. 그의 원죄(론)은 개념이 아니라, 죄의 고백에 들어있는 더 깊고 더 충실한 그 무엇의 상징이다. 이해의 문제 또한 인식론의 문제라기 보다는 윤리의 문제에 속한다. 그런 만큼 리쾨르의 해석학은 윤리를 중시한다. 리쾨르는 해석학의 전통과 (레비스트로스의 인간학, 바르트/그레마스의 기호학과 관련한) 구조주의를 연결시키는 독특한 입장을 취한다. 특히 언어(학)과 관련해서는 인식론적 전제 없이 존재에 대한 직접 서술이 가능한 언어 속에 타자의 원초적 경험이 숙명적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2.2. 리쾨르 은유론의 특질 : 상징/은유/이야기 리쾨르의 은유론은 상징론의 일부이다. 그가 말하는 에는 말고도 가 있다. 이야기는 문장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며 줄거리가 있는 꾸민 말이다.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은유를 푸는 것과 비슷한 해석 행위다. 꾸민 이야기는 거대한 은유이다. 은유 이론(살아있는 은유La m taphore vive, 1975)과 이야기론(시간과 이야기, Temps et r cit, 1983)은 서로 다른 것들을 종합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은유와 유사하게 통용된다. 말하지 않은 것(삶의 현실)은 말하지 못한 것(삶의 현실)이다. 못다한 말을 담고 있는 말이 곧 은유이다.         은유와 이야기는 상징철학 내지는 해석학에 속한다. 리쾨르의 해석학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수정하고, 의미론을 거쳐 존재론으로 나아간다. 즉 인식론과 존재론의 종합을 말한다. 그것은 주체의 제약이라기 보다는, 주체의 깊이를 찾는 일이다. 존재나 욕망은 상징으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으며 기술 언어가 직접 서술임에 반해, 저쪽에서 오는 가 다름아닌 상징 언어다. 존재는 거룩한 경험을 낳고, 욕망은 꿈을 낳는다. 즉, 종교현상학에서 말하는 '(거룩한) 경험의 언어'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욕망의 언어'가 곧 상징 언어이다. 상징은 할 말을 다 못해서 나온 게 아니라,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는 말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구원은 억압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데 있다. 즉, 상징으로 된 욕망의 언어나 무의식의 언어를 풀어 해석하는 데 있다. 삶의 의미를 찾아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힘이 다름아닌 시적 상징(또는, 실존)이다. 그에게서 삶은 지성과 의지를 넘어서는 것. 논리를 넘어 존재하는 신비다. 그리고 삶은 여러 겹의 뜻을 지닌 상징으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다.       한편, 의미 혁신은 은유의 경우 낱말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문장 혹은 술부에서 발생한다. 은유가 술부에서 발생하는 것은 현실을 새롭게 그리는 상상력의 동원을 말한다. 수사학에서 특정 어휘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지만. 은유의 차원에서는 문장 전체가 새로운 뜻을 지닌다. 랑그 보다 말이 우선이다. 이 경우 말은 낱말이 아니라, 현실과 관련된 하나의 문장을 말한다. 말은 할 말을 하는 것이므로 구조라기 보다는 하나의 사건이다. 은유는 날말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주부와 술부가 이어지면서 발생한다. 이 점에서 은유는 낱말이 낱말을 대체하는 換喩와는 다르다. 환유는 기호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은유는 말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은유는 뜻하는 사건이다. 그것이 곧 살아있는 은유이다. 살아있는 은유는 여러 겹의 뜻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언어가 창조한다, 고 했을 때 은유와 상징은 곧 살아있는 은유와 상징이 된다. 은유나 상징은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은유가 명사의 문제라면 단순한 개념의 전이겠지만, 술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논리의 문제가 된다. 논리란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말법이다. 은유는 진리(판단 진리가 아니라 존재론의 진리)의 문제이다. 은유는 새로운 현실을 넘보는 언어이다. 리쾨르가 자주 말하는 은유의 힘이란 '현실'을 말한다. 은유의 해석은 창조적 상상력에서 발현된다. 은유의 넘치는 뜻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다. 은유는 은총(또는 존재) 내지 생명과 연관된다.       은유는 말이면서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해석되어야 할 말이다. 살아있는 은유는 존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거룩한 존재와 분리되지 않은 경험을 담고 있다. 무의미를 극복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은유는 비유가 아니라 구원의 언어다. 분열을 통합하려는 영혼(지성, 상상, 감성 포함한 정점)의 의지가 시간 체험(현재를 중심으로 미래, 과거, 현재의 분열을 통합)을 구성한다. 언어의 역할은 무의미의 극복(의지) 내지는 구원에 있다. 언어는 할 말에서 생기고, 할 말은 무의미를 극복하려는 의지다. 다하지 못한 할 말을 품고 있는 말이 은유다. 은유는 그 엉성함 때문에 풍요로운 언어요, 구원의 언어이다. 해석학이 언어 철학의 범주에 드는 것이라면, 리쾨르가 특별히 은유나 상징에 관심을 갖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하여 그에게 있어 은유는 거룩한 존재의 현현을 말하는 우주 상징과 욕망의 기호론이 되는 꿈(또는, 리비도)의 상징을 아우르는 차원을 말한다. 우리가 세상과 우주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면, 세상과 우주 또한 우리를 향해 말하고 싶어한다. 사람이 말로 하면서 세상은 비로소 상징이 된다. 시를 해석하면서 사람은 욕망의 문제를 풀고, 거룩한 체험에 이끌리게 된다.   (1) 리쾨르는 메타포를 계열체가 아닌 통합체의 일종으로 본다. 이는 곧 문장의 배열관계인 맥락에서 메타포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2) 살아있는 은유를 통해 존재론적/형이상학적 철학이 가능하다. (3) 메타포는 의미의 유사성을 지니는 데 반해, 시는 소리의 유사성을 갖는다.     3. 적용과 분석의 가능성 : 김광섭 시〈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저녁에〉전문   이 시의 특이점은 대상(별)과 주체(나)에 관한 현상학적 태도와 視線에 있다. 그런 점에서 윤동주의 이나 에 나타난 서정적 또는 윤리적 차원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주체가 대상을 일방적으로 바라다보는(또는,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대상이 주체를 바라보는(또는, 쳐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는 그야말로 주체와 대상이 서로 만나는 접점에서 지상의 와 천상의 의 대비contrast가 절묘하게 부각되어 있다. 이 경우 나와 별의 대화, 아니 밤하늘 별을 향한 나의 독백이란 실상 침묵과의 대화를 의미한다. 그런 만큼 말이 배제되어 있으며, 무언의 (별/눈)빛과 침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하는 법. 시가 침묵으로부터 나오며 또한 침묵을 동경하는 것이라면, 시는 인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 침묵에서 다른 침묵으로 가는 도상에 있게 마련이다. 1연의 라이트모티브leitmotive로서 '별'은 다른 어떤 낱말의 대체를 불허하며, 死은유dead metaphor로서 피상적인 별이 아니라, 절대적 이미지 내지 살아있는 은유와 상징으로 기능해 있다. 그것은 나의 온생명을 지속적으로 추동하고 관여하며, 새로운 현실을 넘보는 기제로 작용한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또한 多中一("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의 특별한 인연과 만남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2연의 전반부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깊이(심연) 속에서 주체(자연)와 대상(자아)이 대조의 양상("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사라지는 것이 더 이상의 소멸과 부재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밤이 깊을수록 별과 나의 밝음과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함은, 소멸 보다는 離散에 가깝다. 그 기운aura이 우주에 편재해 다름아닌 생명의 홀씨로 거듭나게 된다.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나(인간)와 별(자연/사물)의 관계가 나(인간)와 너(인간)의 관계로 변모하게 된다. 그런 너와 나는 말미에 와서 깊은 반향과 생명의 울림마저 가져오게 되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하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유일의 인격적 주체와 주체 간의 만남이 갖는 가치와 은총 내지 생명의 의미가 보다 강조될 필요가 있다. 무수한 별처럼 무수한 사물과 자연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全존재를 일깨우고 미적 쾌감을 가져다 주는 절대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밤의 시간(또는 정신. 시간은 은유적으로 정신) 속에서 나의 고백은 강한 호소력과 생의 秘義 마저 지닌다. 게다가 詩題 또한 '저녁'이 아니라 '저녁에'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 경우 '~에'는 시간과 처소, 진행 방향의 부사어를 나타내는 격조사로 시인의 정신과 사유, 영혼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어 보다 역동성을 지닌다. 만남과 이별이 생명을 가진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모티프라면, 그 만남의 순간은 별(빛)의 생생한 은유와 이미지로 영원을 향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천상(은총)의 별은 단순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진리와 언어, 사물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물의 의미와 관련하여 정신의 주된 특징이 실재reality를 알고 이해함에 있다면, 정신은 다른 사물을 아는 힘을 가진 사물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별은 사물의 힘과 창조적 생명의 핵심이다.     4. 은유, 너머의 사유   시를 이해하는 것은 은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은유는 단순한 수사의 차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과 역사, 나와 세계, 존재의 안과 밖에 대한 비산문적, 비일상적, 우회적 언급을 말한다. 시의 이해가 은유의 이해라면, 이는 해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은유를 통한 자기 이해, 그것은 결코 평면적이거나 상투적인 해석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창조적 언어와 해석, 내지는 상징과 진리와 구원으로서의 은유, 살아있는 은유를 말한다. 뿐 아니라, 은유는 너머의 사유를 요한다.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환경으로서의 내재성을 요구한다. 내재성이란 초월적인 존재의 인식을 위한 한 방법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내재하지 않는다. 들뢰즈의 말대로라면, 이는 내재성(의 쁠랑plane)에만 내재한다. 사유의 바깥, 사유되지 않는 것에 내재한다. 이는 흡사 우리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소리/頌歌와도 같다. 존재의 대연쇄(The Great Chain of Being)에서 비롯되는 妙悟한 소리와 華嚴의 세계, 그것이 곧 은유다. (끝)         ■ 참고문헌 양명수,「은유와 구원」,『은유와 환유』, 한국기호학회 편, 1999. 정기철,『상징, 은유 그리고 이야기』, 문예출판사, 2002. 신지영,『내재성이란 무엇인가』, 그린비, 2009. 김영철,『현대시론』, 건국대출판부, 1993. R•G•콜링우드/유원기 역,『자연이라는 개념The Idea of Nature』, 이제이북스, 2004. [출처] 김상환 : 리쾨르의 은유시학|작성자 옥토끼  
31    포스트모더니즘 시론 댓글:  조회:151  추천:0  2019-02-01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김경린(시인/평론가) 1918-2006.  저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주변 이야기’ 중에서 (요약자/정숙)     포스터모더니즘을 이해하려면 20세기 상반기를 휩쓸었던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과 그 방법을 알아야 하며 공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시에 과학은 어떻게 접목하는가   ♣모더니즘의 태동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 중엽까지 농경사회의 단순성 환경에서 평면적으로 보려는 리얼리즘이 모든 문학. 예술 분야를 지배해 왔지만 세기말에 이르러 영국 산업혁명에 힘입어 재래의 가내 공업으로부터 대량생산을 위주로 산업화 사회를 이루게 되었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 인간의 마음속 깊이 내재해 있는 제2의 심의의 세계를 발굴하려는 상징주의가 대두되게 되었다.    20세기 과학은 더욱 발전하였고 현대의 문화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인구도 늘어나게 되었다. 인구밀도가 문제시되고 토지이용도가 높아지면서 모든 시설이 입체화됨에 따라 인간이 사물을 보는 시각도 입체성을 띠게 된 것이다.      이에 즈음하여 20세기 제2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피카소의 입체파가 1907년에 프랑스에서, 기계의 역동감을 주축으로 마리네티의 미래파가 이태리에서, 대두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두 가지야말로 20세기 상반기를 지배해 온 변형의 미학의 기조를 이루는 미학의 원리이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 표현기법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급기야 인간을 대량 살상할 수 있는 무기의 생산을 가능케 하면서 타민족을 정복하려는 정치가들의 야욕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세계1.2차 대전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는 포화 속에 불타고 사람들은 총탄과 파편에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현실앞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과학문명에 의한 인간의 불안의식이 대두하면서 모더니즘은 그런 의식을 기본 바탕으로 모든 사물을 지적인 시각을 통하여 보고 느끼고 경험을 질서화 하였으며 기법에 있어서도 변형의 미학을 기저에 두면서 추상성을 주축으로 문학. 예술의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과 방법론이 온 지구의 지성인들에게 자극을 주는 결과가 되어 각기 스스로의 전통과 환경 토양에 따라 여러 가지 유파를 파생하게 되었다. *기성 관념의 파괴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다다이즘이 1916년에 스위스에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세계를 기저에 두는 초현실주의가 1924년 프랑스에서, *이미지의 입체적인 조형성을 위주로 하는 이미지즘이 1913년 영.미를 중심으로, *시적 언어의 과학적인 분석을 표방하는 러시아 포말리즘이 1915년에 대두하는 등 건축. 회화. 사진. 조각. 음악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속도로 전파되었다.   구미에서 효시를 이루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어 동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시와 시론' 운동이 1928년에 '신영토'와 'VOU의 운동' 전후 '아레지'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이상의 '오감도' 김기림의 '기상도'가 1936년에, (동인/사화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대한 운동이 1948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더니즘이 순조롭게 서식해 왔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상반기를 송두리째 삼켜버리기라도 하듯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고 타민족을 정복하기에 혈안이 되었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국가들(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소련의 사회주의)등은 정치적 야욕을 국민들에게 침투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더니즘을 타락한 예술이라는 지탄으로 탄압하기도 했다. 이에 동조하여 분에 넘치는 영광을 누렸거나 항거하다 생명을 잃은 문학. 예술가도 많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전쟁중인 탓도 있지만 '신영토' 1942년 'VOU'1943년에 친미 문학 단체라며 강제 폐간 시켰다. 동경 유학시절 VOU의 회원이었던 김경린 선생님도 수시로 일본 경찰의 사찰을 받으셨다. 사조가들은 20세기를 모더니즘과 이데올로기의 투쟁사로 규정짓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현상 20세기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전쟁 복구가 완료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과학은 더욱 발전되어 인공 두뇌 개발에 즈음하여 정보화 사회에 이르게 되었다.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사회 구조도 다원화와 다중화를 이루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현상이 노정되기 시작하였다. 1) 인공 두뇌(컴퓨터)가 인간이 하던 일을 대신 하는데서 오는 인간의 소외감(존재의식) 2) 경제 구조가 대형화되면서 커다란 관리 사회가 가져다 주눈 인간의 개성 상실. 3) 고도의 소비문화가 만연하면서 물질 문명에 대한 욕구와 이에 수반하지 못하는 정신적 불균형  에서 오는 사회악.  이러한 현상을 포스트모던사회의 특징이라 규정 짓는다면 모더니즘 시대의 종속성이나 서열성과 다른 병렬성과 무서열성의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좀처럼 과학을 인정하지 않던 철학마저도 니체 이후 이를 인정하면서 여러 가지 학설을 낳게 되었다. 프랑스/미셀 푸코. 독일/하버마스. 미국/다니엘 벨 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설들은 하반기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광채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하반기 현상에 대한 방향제시로 자크 데리다는 포스트구조주의적인 견지에서, 다니엘 벨은 사회학적인 견지에서, 로만 야곱슨은 기호론 견지에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속출하였지만 김경린선생님은 프랑스 철학자(파리의제8대학 교수)인 프랑수아 리오타르를 가장 꼽았다. 그 이유로 프랑수아 저서(포스트모던의 조건 La condition postmoderne 1979)의 서두에 "고도로 발전한 선진사회에 있어서의 지知의 상태를 우리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용어는 현 미국 대륙의 사회학자와 비평가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말기에 시작되어 과학과 문학. 예술의 게임 규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의 또 다른 저서(포스트모던 통신 La postmoderne exqlique aux enfants 1986)에서  "포스트모던이란 모던의 내부에 있어서 제시상提示像 그 자체 속에 제시가 불가능한 것을 찾아내려는 그 무엇인가일 것이다" 불가능한 것에의 노스탈자를 공유하는 것을 용허하는 것과 같은 취미의 컨센서스의 입장에서 새로운 여러 가지 제시,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 제시할 수 없는 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게끔 하기 위하여 찾아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으로서는 찾아낼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표출하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해석이다.    ♣모더니즘의 공과 그렇다면 그동안 모더니즘의 공과에 대해서 규명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바 방법론이 도출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모더니즘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기저로 무의식세계의 (초현실주의), 이미지의 입체적 조형성(이미지즘), 기성 관념의 연상 파괴(다다이즘), 시적 언어의 발굴(러시아 포말리즘) 등에 크나큰 공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을 지적인 시각에서 관찰한 나머지 서정성과 휴머니즘을 배제한 데서 시의 세계를 건조하게 만들었으며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지나친 은유의 편중으로 독자로 하여금 해석의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 시의 라인을 지나치게 응축함으로써 난해성을 초래하여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에 장해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추상성에 의한 미지의 미학에 매력은 있다손 치더라도 극단의 엘리트 의식으로 흘렀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런 의식으로는 오늘의 복잡다기한 포스트모던 사회를 더 이상 모더니즘 기법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모색 의식적인 면에서는 과학문명의 발달에 의한 인간의 소외의식을 바탕으로 1)아무런 기성 관념없이 현대적인 시각에서 직시하며, 2)거기에서 얻어지는 경험을 질서화함에 있어서도 현장감을 중요시하며, 3)소재면에서도 자잘한 일상 생활에서의 이벤트. 공해로 인한 환경문제에 대한 에콜로지와 페미니즘문제. 우주개발에 수반되는 우주관에 대한 관심.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4)이미지 구성면에서도 지나친 응출성을 배제하고 이미지군에 연계 작용에 의한 매크로이미지 세계를 구축하면서 작자의 현대적인 시각에서의 메시지를 깔아보자는 것이다. 5)표출기법에 있어서도 재래의 시적인 신택스를 해체한 다음 새로운 신택스로서의 참신성을 위해 언어의 기호론에도 관심을 가지며 대화체로 발전시켜 보자는 것이다.   최근에 급속히 대두되는 시낭송과도 관련지으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모더니즘시가 은유에 편중되어 있는 대신 직유. 은유. 환유. 제유. 등을 적절히 혼용하면서 새로운 하이퍼리얼리즘 또는 뉴리얼리즘으로서 언어의 신선감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스위스에서 1953년에 구체시의 새로운 구문에 대한 관심과 미국에서 60년대에 대두한 (투사시/비트파운동), 70년대의(페미니즘) 80년대의(미니멀리즘)등이 세계적인 영향을 받았다. 오늘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출처] 알기쉬운/포스트모더니즘 시론|작성자 옥토끼  
30    새로운 시 쓰기의 고찰 / 예술학 석사 박연복 댓글:  조회:149  추천:0  2019-02-01
새로운 시 쓰기의 고찰    예술학 석사      박연복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를 맛이라고 생각해온 터였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멋스럽지 않게 반응 할 것이다. 시가 무슨 음식이냐는 식일 것이다 그 도 그럴 것이 맛이라는 그 단어 자체가 시라는 단어와 쉽게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에 생소하고 조급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좀더 넓고 깊고 형이상학적으로 드려다 보면 그렇게도 잘 어우리는 단어가 없을 상 싶어 이를 종종 사용해 왔다. 우리가 먹는 일상의 음식이 맛이 나지 않으면 먹으려 들지 않듯 시도 맛이 나지 않으면 읽으려 들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존재자는 독자들이기 때문에 그 시를 쓰는 작가는 그 글을 읽는 독자를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더 좋은 작품을, 독자들에겐 사랑받는 시를 쓰려고 혼신의 노력을 한다. 조리사가 한 황홀한 맛과 보기에도 아름다운 음식을 빗어내기 위해 노력하듯이 작가도 매양 그렇게 한다. 그러자면 시인은 옛 법에 따라(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모방과 모사를 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적 변용과 시적 도구, 또는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만들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려고 들 것이다. 시 쓰기는 이런 방법으로 출발 한다. 그러므로 시 쓰기에 필요한 언어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사실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상상을 초월할 수 있는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시 쓰기란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 한다. 그래야만 시로써 독자들에게 그 본 뜻을 들어 내 보여주게 되며 충격적인 감동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1. 시는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이 그 대가를 필요로 하듯이 시 쓰기에도 그럴만한 대가를 요구받는다. 그 것은 새로움과 낯설음, 삐딱하게 보기다. 김소월의 산유화는 일제 강점기에 쓰여 졌다. 그러므로 시대적 배경과 문화가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 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시가 그와 같이 형식과 내용으로 쓰여 진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독자를 확보 할 수 있을 것이고 읽혀질지 의문스럽지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서구적인 시풍에만 의존하려는 것도 우선 경계되어야 하지만 동양적인 것, 그리고 인접하고 있는 가까운 나라의 시풍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시 쓰기가 어느 한쪽 형식과 내용으로 치우쳐 편중되는 일은 더더욱 없도록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시는 삶의 거울이며 나를 또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해 내보이는 작업이다. 시들어 가는 풀잎 하나에도, 그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데도 철학이 있듯 우리가 인식 되어지는 세계는 우리를 바로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에 쓰고 싶거든 어떤 소재이던지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 하던지 가리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써라. 그러게 하면 당신은 새로운 삶의 행복과 글쓰기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예시를 한번 감상해보기로 하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도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은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서정주님의에서-       2. 감정의 형상화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T.S 엘리엇은 주지주의에서 “지성을 존중하고 감성을 억제하는 노력은 자신이 한다.”라고 말했듯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내면으로부터 외연으로 들어내는 작업도 쉽지 않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문제, 슬프고 기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정서화 하는 문제, 죽고 사는 철학적인 것과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도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등나무에 하얀 눈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것을 이른 아침에 보았다고 치자, 그 것을 보는 순간 누구나 똑같은 감정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일상적인 일로 보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막연하게 연민의 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껴안고 즐거움과 슬픔과 괴로움을 고뇌할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사물을 보는 시각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서로 자라난 환경과 문화가 달라 그 느낌의 깊이와 정도의 차이가 다른데서 오는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식 정도와 세계를 보고 느끼는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측면과 육체적인 결함에서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시를 쓰려는 사람은 삶 그 자체를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세계를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이 곧 시를 쓰는 배우려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다. 이럴 때만이 자기의 감정 속에 자신의 의식을 녹아내려 아름다운 이야기와 훌륭한 이미지를 내연에서 외연으로 끄집어내 감동적인 작품을 써 낼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경험이 곧 시라고 하는데도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이 개미들을 위하여 6월은 연분홍 잠옷 속에 있는 소녀의     이마 위에서 푸른 6월은 총살되고            -전봉건의에서-         3. 동심을 가져라     어린이는 쪽빛 하늘을 바라볼 때, 그 하늘이 어떤 하늘인가 하는 물음 이전에 하늘을 자기 눈 안으로 들어 온 그림 그대로의 하늘로 본다. 여기에 어떠한 사상이나 철학을 그들은 가감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심의 그대이며 더러움이 묻지 않은 깨끗함 그대로의 심성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파란 하늘과 푸른 하늘을 구별하고 구름이 낀 하늘과 새털구름의 하늘을 구별하여 자신의 생각과 이데 오르기 을 접목 시킨다. 그들의 사고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한 마리의 개미를 보게 되면 동화 속에 나오는 부지런한 개미를 연상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성적 논리에서 오는 이성적 어긋남이다. 시를 쓰기를 원환다면 이런 생각보다는 티 없이 맑은 가슴과 눈을 가진 아이를 닮아야 한다. 그래야 시가 맑은 호수와 같다. 그 뿐이fi. 어린이들은 창조적인 상상력과 미래를 생각하는 원만함이 있다. 그들의 꿈이야 말로 곧 세계이자 그 세계가 시가 된다. 꿈은 곧 미래를 상징한다. 참신한 상상력은 글의 원동력이 된다. 길섶 민들레는 키가 작다고 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작아도 제일 먼저 봄을 알리기 위해 샛노란 꽃을 피운다. 그 길고 모진 겨울을 견디고 제일 먼저 봄의 화신이 되는 것처럼 좋은 시를 쓰고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우린 작은 이 꽃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매화 잔치는 끝난 줄 알았는데     쏟아지고 있었다 동백처럼 뭉텅뭉텅 나의 하늘임이 목련 같은 실바람 곁에     아침, 꽃잎을 처음 열려는 박미 마을에 개나리가                         * 이글은 거꾸로 읽어야 합니다                            * 박미: 서울 금천구 시흥3동 금천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의 옛 이름                            -박연복의에서-         4. 삐딱하게 보기     가) 패스타쉬의 기법     언어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그 하나는 우리가 매일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상적인 사실 언어(과학언어)가 있고 다른 하나는 문학을 위한 감성이 풍부한 감성언어가 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과학언어보다는 시적언어(감성언어)를 쓴다. 그렇다고 해서 한 편의 시 속에 일상 언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시를 쓰기 위해선 시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소설이나 수필을 쓰듯 배경과 인물, 행동의 삼요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시는 그런 논리적인 체제를 탈피하고 자유스럽게 쓰기를 원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전자와 같이 복잡하지 않다. 다만 시적 언어는 그 언어적 구조와 기능이 소설이나 수필 또는 희곡의 언어와는 다르다. 이것은 시에는 리듬(음악성)과 은유(비유), 상징, 아이러니, 원형 이미지, 등과 같은 시적 도구가 있는가 하면, 삐딱하게 보기, 낯설게 하기, 패쉬타쉬, 등의 기묘한 표현 방법도 있지만 소설이나 수필은 그렇지 않다. 앞부분에서 언급한 제 요소들은 시간과 지면 관계로 생략하고 여기선 “삐딱하게 보기”만 다루기로 하겠다. 이 기법은 꼭 그렇게 활용해야만 시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기법상의 훌륭함이며 이를 활용해 창작된 작품 자체가 맛나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비판을 가해야 할 부분엔 이 이상 더 좋은 기법이 없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자는 것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전자산업의 획기적인 발달로 그 매체를 이용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곧 언어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언어의 해체는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언어의 절대적인 논리는 객관적으로 의심받기 시작했고, 언제부턴지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객관적 진실 찾기에서 주관적인 진실 찾기 패턴으로 돌아가기 시작 했다. 바로 언어를 삐딱하게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언어를 삐딱하게 보자는 것은 사회적 사건들을 삐뚤어지게 보자는 의미도 된다. 문학에서는 그것이 인유나 페러디, 혼성보방 등으로 변질되어갔다. 삐뚤어지게 보기와 패스 타쉬는 인유(引喩)가 그 본질이다. 인유법은 유명한 시나 문장, 어구 등을 끌어다 자신의 표현으로 대신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럼 시 한편을 보기로 한다.     그러한 실예를 나의 가친의 경우에서 보았습니다. 그가 88세를 끝으로 5년 전 지구 밖으로 떠나야 할 대, 그이 자산은 6억 정도는 되었지만 후처인 Y씨에게 모든 거슬 유산으로 주었으면 하는 의사를 비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재혼해 온지 24년은 됐고 서로가 진정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임종할 때의 모든 일을 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들은 아버지의 유지에 다라서 그의 모든 것들이 계모에게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녀가 도밭아서 하는 모습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움이었습     또한 그와 비슷한 예를 미국의 베스트셀러의 소설인(the bridge df madison county)에서도 보았습 니다. 사진작가인 주인공이 취재차 그 유명한 매디슨 고을 다리에 갔을 때, 그를 안내해 주었던 유부녀와의 사을 동안의 열애를 잊지 못한 나머지, 독신으로 일생을 보낸 끝에 자기의 모든 유물을 유 언 집행 대리관을 통하여 그녀에게 보내는 광경은 참으로 감동적 이기까지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몸도 마음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라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답다는 실예이기도 한 것입니다.                                  - 김경린의< 사라의 선물과 아버지 유산>에서-        나) 비틀어 짜기의 기법     비틀어 짜기의 기법은 언어의 질서를 파괴하고 그 논리성을 부정하므로 새로움과 낯설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언어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은 언어의 비 논리성을 시 창작에 활용한다는 것이 된다. 이는 언어의 본질 중 지시기능을 초월하지는 의미다. 즉 언어의 모순이다. 또 언어의 모순은 관념에서 일탈 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비틀어 짜기의 기법은 최대한의 언어 모순이 일어났을 때 성공한다. 이 방법을 개그 쪽에서도 많이 활용한다. 곤 역설적이어야만 흥미를 끌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러니의 기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웃기는 행위란 진실을 사실적 언어만 웃길 순 없다. 그것은 반듯이 언어의 비대칭적인 관계나 비정상적인(비틀어진) 어법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이것이 언어의 비틀어 짜기다. 시의 장르에서도 이 기법을 활용한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가 초월이어야 한다. 언어의 초월은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다.                                   그럼 예시를 보기로 한다.                             처 죽일 놈의 오월, 환희의실록은심장을이렇게미치게한다 잔디처럼 납작 엎드린 초록의 신들이 바람가지에 가랑가랑 매달려 어깨를 욱실욱실 쑤셔댄다 홀딱 발가벗은 태양 말고도 허였게 맑아버린 내 육신이 더 무섭다 돈이라고는 고작 천원자리 두장뿐인데 손님커녕 전화 한번 진종일 걸려들지 않는다 내일은라면을사야할일이다 지난 아이엠에프 때도 이렇진 안했다 그래도 나줏손 무렵 흐릿한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잔 마실 수 있는 꿀벌 똥구 만큼의 여유쯤 있었다 처 죽일 놈의 오월, 불행한실록은이렇게미쳐버리게한다 집세줄날이돌아온다 벼락 같이 주인이 달려올 터이다 콘크리트같은 내얇은주둥이를꿰매어놓을일만남았을터이다                                     박연복의에서     누구나 시를 잘 써 보려고 한다. 그러나 마음뿐이지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무엇을 쓸까 망설이다 하루해를 다 보낸다. 그것은 시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자신의 이성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편안한 마음에서 써야한다. 무엇을 쓸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을까가 더 중요 하다. 시는 삶의 경험을 쓰는 것이다. 그 삶이 거짓이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말할 때 진정한 시로서 보이는 것이다. 진실한 사건을 언어라는 기호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시적 응용과 변용이 따르는 것이며 위에서 거론한바와 같은 기법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는 일상의 활용 언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변용된 언어와 비유된 언어, 상징된 언어들을 차용한다. 시가 좋다 시가 맛이 있다, 그 시 훌륭하다고 할 때는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은 시적 도구를 잘 활용한 탓이기도 하다. 시는 언제나 가볍게 써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어라, 가급적 사건은 한 가지만 다뤄라, 매미의 울음소리에도 눈을 기우여라, 그리고 아무것이나 무조건 써라, 연필로 써라, 내용은 어쩌던 길게 써라, 지금은 산문의 시대다 가급적이면 그렇게 하라. 이렇게 하면 자신의 시적 진실을 새로운 시적언어로 아름다운 낯선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리라.                                                          -끝-   시인 박연복 (홈바로가기) [출처] 새로운 시 쓰기의 고찰 / 예술학 석사 박연복|작성자 옥토끼  
29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 댓글:  조회:139  추천:0  2019-02-01
  출처 방정민(hobero338)의 블로그 | 수풀넷 원문 http://blog.naver.com/hobero338/220699340656 3.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   인간 행동이나 성격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무의식은 직접 알 수는 없지만 행동으로 추론될 수 있다. 무의식에 대한 임상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무의식적 욕구, 소망, 갈등의 상징적 표상인 꿈, (2) 말의 실수나 친숙한 이름 등의 망각, (3) 후최면 암시, (4) 자유연상으로부터 도출된 자료, (5) 투사법으로부터 도출된 자료, (6) 정신증적 증상의 상징적 내용.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무의식에는 모든 경험, 기억, 억압된 재료들이 저장되어 있다. 접근할 수 없는, 즉 의식영역 밖에 있는 욕구나 동기는 의식적 조절 밖에 있다. 대부분 심리적 기능은 의식 영역 밖에 존재한다. 동기를 의식할 수 있을 때만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적 치료의 목표는 무의식적 동기를 의식화하는 것이다. 무의식적 과정들은 모든 신경증적 증상이나 행동의 근원이다. 정신분석적 치료는 증상의 의미, 행동의 원인, 건강하게 기능하는 것을 방해하는 억압된 재료들을 밝히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지적 통찰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내담자의 전이왜곡의 훈습을 통해 직면시켜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부분,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다. 의식의 쌍둥이 같은 존재이면서 의식의 구박과 박대를 받아 언제나 의식의 뒤에 숨어 있는 무의식, 그러나 그러다가도 엉뚱하게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불쑥 드러내곤 해서 우리를 당혹케 하는 무의식, 무의식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이 지적해 오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배운 최면술 덕분이었다. 최면술을 걸어 의식을 빼앗아야만 비로소 정체를 드러내는 기억, 그것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 불렀다. 의식을 잃는 경우는 최면술 외에도 최소한 세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죽는 것,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의식도, 무의식도 모두 사라지므로 논외다. 또 하나는 술이나 마약 같은 약물의 힘에 취하는 것, 그러나 이 경우에는 대개 무의식이라기보다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은 기절하는 것 혹은 잠드는 것인데, 이것이 무의식을 경험하는 기회다. 잠이 들면 꿈을 꾼다. 그런데 이 꿈은 의식의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용을 선택하고 채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 여기고 꿈에서 나타난 상징을 해석하고자 했다. 흔히 말하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전 인사 나눈 사람 이름을 잊었다가 우연히 생각해 낸다든가, 아침에 흥얼거리던 노래 곡조가 오후에 다시 생각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은 잠재의식과 연관되는데, 프로이트는 이것을 전의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의식의 일부이며 의식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에 반해 무의식은 의식의 일부가 아니며,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의식에 대해 대립적이다. 프로이트는 잠재의식과 달리 무의식은 의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의식은 의식만큼이나, 아니 의식보다 더 체계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그때까지 사람들이 자기 사고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의식이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오히려 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무의식이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는 무의식도 의식처럼 나름대로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욕구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무의식 역시 의식을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의식은 의식에 비해 비체계적이고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또한 그렇게 때문에 무의식은 꿈이나 농담, 실언 등 우연적인 계기를 통해 그 존재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다. 무의식의 지위를 의식 이상으로 격상시키려면 무의식도 의식 못지않게 체계성을 지닌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다음 과제는 무의식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충동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이드(id: 라틴어로 ‘그것’이라는 뜻이다. 즉 정체불명이라는 의미이다)다. 또 하나는 도덕적, 사회적 질서가 내면화되어 있는 초자아(superego)인데, 이것은 이드를 억압하는 역할을 한다. 무의식을 이루는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다투고 대립하는 긴장관계에 있는데, 이런 상태가 마냥 지속된다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박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를 완화하고 조절하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해진다. 이것이 곧 자아(ego)인데, 이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에 속한다. 프로이트는 이드의 에너지가 특히 성욕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의 극단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른바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 바로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데카르트 이래 자아의 동일성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일단 자아를 선험적으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만 근대의 철학과 학문은 가능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그런 선험적 자아의 환상을 무참히 깨부순다. 우선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근대 철학의 출발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는 나, 나도 모르게 하는 나의 행동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인간 주체를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무의식이 의식의 수면 아래에 거대한 빙산처럼 잠겨있다는 사실은 의식을 기준으로 주체를 구성한 근대적 관점을 아예 초토화시킨다. 나도 모르는 나,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오히려 더욱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면, 투명하고 자명한 나에 기초한 근대 철학이 설 땅은 이미 없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무의식을 정립하면서 자연히 뒤따르게 된 이 명제는 이후에 ‘그럼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구조주의자들은 그것을 ‘구조’라고 보았으며,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그것을 언어라고 보았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20세기 지성사에 컨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엄청난 반발에 시달렸다. 그것은 바로 무의식도 의식을 통해 말해질 수밖에 없다는 모순, 즉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로 할 수밖에 없다는 무의식과 의식의 모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4) ​                               ..................................................................................   4)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 개념은 아마 ‘무의식’일 것이다. 이 개념은 프로이트가 최초로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그 의미는 고대 그리스철학자들도 언급했다고 하고, 특히 니체가 현상학자들도 주목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너무 흔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상 그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전문가라 해도 거의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독일어의 Unbewuβte, 영어 Unconscious를 우리말로 일반적으로는 무의식(無意識)이라고 변역하는데, 프로이트 전문가라 하는 이무석 박사는 자신의 논문이나 책에서 비의식(非意識)이라고 표현한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의 Unconscious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서 쓰거나, 아니면 한자를 모르고 쓰거나 둘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면 정말 무의식이 있냐 하는 것이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고 있지만 이쪽 분야가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서 우리 인간의 뇌를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개념적으로만 설명하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의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무석 박사의 표현인 비의식이 맞다. 왜냐하면 한자의 ‘비’(非)와 ‘무’(無)는 비슷하게 ‘아니다’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있지만 철학적 의미는 완전 다르다. ‘비(非)’자는 단순 부정이다. 다음에 오는 단어를 단순 부정하는 단어로 쓰이기 때문에 비의식이라고 하면 의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無)’자는 철학적 단어로 그 의미가 상당히 복잡하다. 단순 부정이 아니라 다음에 오는 단어의 근원적 존재(자)가 된다는 의미다. 즉 무의식이라고 하면 의식의 근원적 존재가 바로 ‘무(의식)’라는 것이다. 무사상은 특히 노자의 사상에서 두드러지는데, 노자의 무는 유의 원인이 아니다. 무가 유를 생기하게 한다는 사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이고도 존재론적인 표현인데, 무가 유를 창조한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자기 안에 유가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무가 유를 생산한 원인이 아니라 무의 바탕 안에 이미 유의 무늬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말한다. 즉 허공의 무가 그릇과 바퀴살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릇과 바퀴살의 유용함은 그것이 비워있어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릇과 바퀴살을 만든 원인은 외부에 있는 장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은 바로 무라는 것이다. 집이 집이 되는 존재론적 근거는 그 집을 생산한 목수(집이 집이 되게 한 원인이 됨)가 아니라, 그 집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허공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죽기 직전 무의식은 없다고 고백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의식도 제대로 모르면서 함부로 무의식을 언급하는 것은 큰 오류의 가능성을 늘 안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을 총 8식으로 나눈다.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말나식, 특히 아뢰야식은 심층의 근저에 도달하는 것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무의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심오하다. 우리 수업 부재인, ‘시각경험과 이미지’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원인을 파헤치면서 성욕의 억압이 환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는데, ‘매 맞는 아이’는 결국 왜곡된 성욕의 환상(시각 이미지)인 셈이다. 가령,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처럼 진정한 자기 존재가 아닌 복제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 복제물이 왜곡된 환상(이미지)-이것은 가짜임-이라 할지라도 자기 지속성과 동일성, 내지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는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아는 아니므로 진리(그 아이의 정체성 내지 성적 욕구)를 알기 위해 복제물인 시뮬라크르, 즉 ‘매 맞는 아이의 환상’, 이 시각 이미지를 잘 분석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출처] [공유] 3.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작성자 옥토끼  
28    정민교수의 한시 이야기 댓글:  조회:153  추천:0  2019-01-31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1) 사람들은 왜 시를 짓고 시를 읽을까? 그냥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는 말과 시에서 쓰는 표현은 어쩐지 조금 달라 보인다.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나 느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우리가 그냥 주고받는 표현 속에는 이런 느낌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언어와 문학 작품 속에서 쓰는 언어는 어떻게 다를까? 다음 예화를 통해 알아보자.   옛날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노자의 스승은 상용이란 사람이었다. 스승은 늙고 병들어 이제 곧 숨을 거두려고 하였다. 노자는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가르쳐 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고향을 지나갈 때에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가거라.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네! 선생님! 어디에서 살더라도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수레에서 내려서 걸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데서 나온 예의 바른 행동이다. 그래서 노자는 스승의 엉뚱해 보이는 말을 듣고 이렇게 알아들었던 것이다. 스승이 다시 말했다. “높은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거라. 알겠느냐?” 노자가 바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지요?” 높은 나무는 그 숲에서 가장 키가 크고 나이가 많은 나무다. 종종걸음은 걸음의 폭을 짧게 해서 어른이나 임금님 앞을 지날 적에 걷는 걸음걸이이다. 높은 나무 밑을 지나갈 때 종종걸음으로 가라는 스승의 말을 듣고 노자는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으로 금세 바꾸어서 알아들었다. 이번에는 스승이 입을 크게 벌렸다. “내 입속을 보거라. 내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이가 있느냐?” 상용은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빨이 다 빠지고 없었다.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 스승은 곧바로 제자에게 말했다. “알겠느냐?” 노자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겠습니다. 이빨처럼 딱딱하고 강한 것은 먼저 없어지고, 혀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스승은 돌아누웠다. “천하의 일을 다 말하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이빨은 딱딱하고 굳센 것인데 먼저 없어져 버렸다. 혀는 부드럽고 약한 것인데 남아 있었다. 상용이 혀와 이빨을 차례로 보여 준 것은 부드럽게 남을 감싸고, 약한 듯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오랫동안 복을 받고 잘 살 수가 있고, 제 힘만 믿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 못 가서 망하고 만다는 뜻이었다.   상용이 말한 것을 정리해 보면 고향을 잊지 말고, 어른을 공경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기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렇게 직접 말하면 될 것을 가지고 상용은 일부러 빙빙 돌려서 비유를 통해 설명했다. 왜 상용은 직접 말하지 않고 일부러 어렵게 돌려서 이야기했을까? 사실 상용이 이 말을 직접 했다면 그것은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싱거운 말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대신에 상용은 직접 입을 벌려서 혀를 보여 주고 또 이빨을 보여 준 후, “알겠느냐?” 하고 물었다. 이렇게 해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평범한 교훈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인상 깊게 심어 줄 수가 있었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라는 것은 상용의 말처럼 직접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가운데 저도 모르게 느낌이 일어나고 깨달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느낌과 깨달음은 지워지지 않고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는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1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1)|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2)   한시에서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을까? 이제 직접 한시를 한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흰둥개가 앞서 가고 누렁이가 따라가는                  白犬前行黃犬隨(백견전행황견수) 들밭 풀 가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野田草際塚纍纍(야전초제총누루) 제사 마친 할아버지는 밭두둑 길에서                     老翁祭罷田間道(노옹제파전간도) 저물녘에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해서 돌아온다.          日暮醉歸扶小兒(일모취귀부소아)   - ‘제총요(祭塚謠)무덤에서 제사지내는 노래’ 전문   조선 중기의 이달이라는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의 제목은 이다. 시 속의 광경을 먼저 살펴보자. 먼저 첫 번째 구절에는 흰 강아지와 누렁 강아지 두 마리가 나온다. 흰 강아지가 앞장서서 뛰어가고 누렁 강아지가 뒤질세라 멍멍 짖으며 그 뒤를 따라간다. 밭들이 옹기종기 펼쳐진 풀밭 가에는 무덤들이 굉장히 많다. 거기에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개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세 번째 구절에는 ‘제사를 마쳤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는 그 풀밭 가에는 많은 무덤들 가운데 어느 한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은 땅거미가 밀려드는 저물녘이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셨다. 술 취한 할아버지가 자꾸 비틀거리시니까 옆에 있던 손자가 걱정이 되는지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다. 자!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시 속의 풍경을 그림으로 떠올려 보자. 강아지 두 마리와 밭두둑이 보이고 무덤들도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지나가는가? 우리는 지금도 추석 때나 한식날이 되면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간다. 지금 할아버지와 손자는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기에는 위 시의 내용이 왠지 너무 심심하다. 할아버지가 손자와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성묘를 갔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걸까? 과연 위의 시에서 시인이 말하려고 한 것은 이것이 전부일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몇 가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무얼까? 우선 왜 아버지는 없고 할아버지와 손자만 성묘를 갔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산 위도 아니고 밭두둑 가에 있는 풀밭에 무덤이 많다고 했을까? 보통 풀밭에는 무덤을 쓰지 않는데 말이다. 또 할아버지는 왜 술에 취했을까? 저물녘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무덤 옆을 떠나지 못했던 걸까? 이런 의문을 품고 이 시를 새로 읽어 보면, 앞서 와는 다른 느낌이 일어난다. 이 시는 그냥 단순히 조상의 성묘를 갔다 온 장면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와 손자가 제사를 지낸 사람을 누구였을까? 증조할아버지? 아니면 고조할아버지? 그도 아니라면 할머니였을까? 그렇지가 않다. 두 사람이 제사를 지낸 주인공을 바로 시 속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아들이고, 손자의 아버지였다. 그렇다면 밭두둑 옆 풀밭에는 왜 그렇게 무덤이 많았던 걸까? 아마도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것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모양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서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양지바른 산 위에다 묻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도 전쟁 같은 천재지변을 만나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아들의 산소에 성묘하러 왔다. 무덤에 돋은 풀을 뽑고, 술을 부어 한 잔 따라 주고 나니까 죽은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차마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하루 종일 무덤 옆에 앉아서 속이 상해 술을 마셨다. 강아지를 두 마리나 데리고 간 것으로 보아, 무덤이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사정도 알 수 있다. 이 시를 지는 이달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했던 시인이었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시를 다시 읽어 보면, 좀 더 깊이 있게 이 시를 이해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임진왜란 때에 쳐들어온 왜적에게 죽음을 당했고, 이 때 온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한식날 할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하나뿐인 혈육인 손자를 데리고 죽은 아들의 무덤을 찾아왔다. 하루 종일 슬픔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는 제사를 지내려고 가지고 간 술을 혼자 다 마셔서 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손자는 나이가 어려서 할아버지의 슬픔을 잘 알지 못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다.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왜 저러실까 싶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올려다볼 뿐이다. 이렇게 한 편의 시를 곰곰이 따져서 읽어 보면, 처음 별생각 없이 시를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다. 시인이 이 시 속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얼까?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이 가져다준 뜻하지 않은 죽음과 그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깊은 상처였다. 그러나 시인 말하려고 했던 이런 의미는 꼼꼼히 따져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위의 시를 읽고서 그냥 한식날 성묘 간 일만 생각했다면 이 시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쓰는 말은 금세 이해할 수 있고 또 다른 생각이 필요 없다. 그러나 시에서 쓰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여 한다. 대충 겉만 보아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이 시를 읽는 재미이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8-2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2>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2)|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옛날부터 그림과 시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시는 모양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가 없는 시라는 말도 있었다. 이번에는 그림 이야기를 통해 시를 이해하는 공부를 해보기로 하자.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서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고 시 속에 숨겨둔 말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것은 숨은그림찾기 또는 보물찾기놀이와도 비슷하다. 이 점은 화가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풍경을 그리거나 정물화를 그린다. 이때 화가는 화면 속에 자신의 느낌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은 사진과는 다르다. 화가는 색채나 풍경의 표정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담는다. 이제부터 살펴볼 몇 가지 이야기는 그림이 시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잘 보여준다.   옛날 중국의 송나라에 휘종 황제란 분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훌륭한 화가였다. 휘종 황제는 자주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 대회를 열었다. 그때마다 황제는 직접 그림의 제목을 정했다. 그 제목은 보통 유명한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제목이 걸렸다.   꽃을 밝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   말을 타고 꽃밭을 지나가니까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황제는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한 것이다. 꽃향기는 코로 맡아서 아는 것이지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 향기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화가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꽃이나 말을 그리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겠는데,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만은 도저히 그려 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림에 손을 못 대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젊은 화가가 그림을 제출하였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 사람의 그림 위로 쏠렸다.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나비 떼가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젊은 화가는 말을 따라가는 나비 떼로 꽃향기를 표현했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입상진의(立象盡意)’라고 한다. 이 말은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비 떼라는 형상으로 말밥굽에 묻은 향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을 시에서는 이미지(image)라는 말로 표현한다. 시인은 결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통해서 말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다시 휘종 황제의 그림 대회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이번에는 이런 제목이 주어졌다.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한참을 끙끙대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대부분 산을 그려 놓고, 그 숲 속 나무 사이로 절 집의 지붕이 희미하게 비치거나, 숲 위로 절의 탑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이었다. 황제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 한 화가가 그림을 제출했다.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은 다른 화가의 것과 달랐다. 우선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황제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이 화가에게 1등 상을 주겠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황제가 설명했다. “자! 이 그림을 보아라. 내가 그리라고 한 것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라고 했는데, 다른 화가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절의 지붕이나 탑을 그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절을 그리는 대신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을 그렸구나.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이 너무 깊어서 절이 보이지 않는 게로구나. 그가 비록 절을 그리지 않았지만,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만 보고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이 내가 이 그림에 1등을 주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황제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화가는 절을 그리지 않으면서 절을 그리는 방법을 알았다. 화가가 그리지 않으면서 절을 그렸다. 시인은 말하지 않고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제 위의 그림과 비슷한 한시를 한 수 감상해 보자.   약초 캐다 어느새 길을 잃었지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산 스님이 물을 길어 돌아가더니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일어난다.   율곡 이이 선생의 이란 작품이다. 단풍이 물들고 나더니 어느새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어떤 사람이 망태기를 들고 낙엽 쌓인 산속에서 약초를 캔다. 여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약초가 낙엽을 들추자 여기저기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때는 볼 수 없던 귀한 약초들도 많다. 정신없이 약초를 캐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길에서 한참이나 들어온 가을 산속이다. 낙엽은 어느새 무릎까지 쌓여 오고, 조금 전 자기가 올라온 길이 어딘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약초꾼은 그만 털컹 겁이 난다. 어느새 해도 뉘엿뉘엿해졌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는데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덮어놓고 내려가다가 낭떠러지가 나오면 어쩌나? 길을 잘못 들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어쩌지? 이러다가 밤이 되면 산짐승들이 내려올 텐데 어찌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저 건너편 숲 사이로 희끗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하도 반가워 자세히 살펴보니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에 물을 길어 가고 있다. 스님의 모습은 금세 숲 사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저리로 가면 스님이 계신 암자가 나올까? 혹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짧은 시간에도 생각은 어지럽기만 하다. 바로 그때다. 스님이 사라진 숲 저편 너머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좀 전에 물을 길어 간 스님이 낙엽을 태워 찻물을 끓이고 있는 모양이다. 약초꾼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반가웠겠다. 마치 스님이 약초꾼의 다급한 마음을 알아서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듯한 느낌까지 들었을 것 같다. 갑자기 목이 마르다. 어서 가서 스님에게 차 한 잔을 얻어 마셔야지. 하루 종일 캔 약초로 망태기는 이미 묵직하다. 하지만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무거운 줄도 모른다. 무릎까지 푹푹 파묻히는 숲길도 이제는 조금도 힘들지 않다. 이 시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 낙엽 쌓인 산속에 망태기를 든 약초꾼 한 사람이 먼 곳을 보며 서 있겠지. 스님의 모습은 그리면 안 된다. 다만 숲 저 편으로 실오리 같은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 위로 피어오르면 된다. 앞서 본 휘종 황제의 그림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뛰어난 화가는 그리지 않고서도 다 그린다. 훌륭한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 말한다. 좋은 독자는 화가가 감춰 둔 그림과 시인이 숨겨 둔 보물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찾아낸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25-3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3>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진짜 시와 가짜 시     시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물론 있다. 진짜 시와 가짜 시는 어떻게 구분할까?   겉보기에는 멋있는 것 같은데 읽고 나도 아무 느낌이 남지 않는 시는 가짜 시다.  특별히 잘 쓴 것 같지 않아도 읽고 나면 느낌이 남는 시가 진짜 시다.  시뿐 아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에 천하에 명화로 알려진 유명한 그림이 있었다.  소나무 아래서 선비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위를 올려다보는 그림이었다.소나무도 잘 그렸지만 뒷짐 진 선비의 표정이 너무너무 생생했다. 모두들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를 그린 유명한 화가 안견이 이 그림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그림을 구경하러 갔다. 그림 주인은 훌륭한 화가가 자기 그림을 보겠다고 직접 찾아온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림을 펼쳤다. 이제 과연 어떤 칭찬이 쏟아질까? 주인은 설레는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한참 만에 안견은 실망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그리긴 했는데, 조금 아깝구려.”   주인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사람이 높은 곳을 올려다보자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게 마련이오. 그런데 고개를 젖혀 바라보는 선비의 뒷덜미에 주름이 하나도 없질 않소?”   안견은 다시 보기도 싫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이 그림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린 그림이 되고 말았다. 소나무를 그리는 솜씨도 뛰어났고, 사람의 표정도 생생했다. 다만 화가는 소나무를 올려다보는 선비의 목 뒤의 작은 주름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소나무의 푸르른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까지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이런 그림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 밥을 떠먹이는 그림이었다. 천하의 명화로 이름이 높았다. 소문을 듣고 세종대왕께서 이 그림을 보았다. 왕은 한참 바라보더니 무엇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긴 참 잘 그렸다. 그렇지만,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에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입이 벌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구나. 아! 아깝다.”    정말 그렇다.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를 생각해 보자. 엄마는 숟가락에 밥을 떠 가지고 그 위에 반찬을 얹는다.아이의 입 가까이에 가져간다. “아! 아.” 하며 자기의 입을 벌린다. 아이는 엄마의 벌린 입을 보며 자기의 입을 벌려 음식을 받아먹는다. 그런데 그림 속의 할아버지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손자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는 다 잘 그려 놓고 조그만 실수를 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조그만 실수가 가장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화가는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할아버지의 입을 그리지 않았다. 이것을 놓쳤기 때문에, 손자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림에서 없어져 버렸다.   화가는 그림 속에 자기의 진실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 그림도 죽은 그림이 되고 만다. 그런 그림은 가짜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살아 있는 시는 어떤 시일까? 한시를 한 수 살펴보자. 고려 때 시인 고조기가 지은 라는 작품이다.         어젯밤 송당에 비가 왔는지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는 둥지를 아직 떠나지 않았네.       내용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 간밤 잠결에 시냇물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간밤에 비라도 온 걸까? 새벽에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마당 나무 위 새둥지에 새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이 시의 내용은 별것이 아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다. 시인은 어째서 나무 위에서 자던 새가 여태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은 것을 말했을까? 산속 집의 아침은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노래하는 산새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보통 때 같으면 새소리에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밖이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시인은 처음에 “어? 오늘은 웬일로 요놈들이 이렇게 조용하지?”하고 생각했다. 그는 궁금해서 방문을 활짝 연다. 처음에는 새들이 울지 않기에 아직도 날이 새지 않은 줄 알았다. 문을 열고 보니, 새들은 포근한 제 보금자리를 나올 생각이 없다는 듯이 둥지 속에다 제 몸을 파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시인은 모든 사실을 다 알아차렸다. 그래 어젯밤에 꿈결에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었지. 간밤에 산속에 비가 많이 왔었구나. 그 비에 시냇물이 불어났던 게로군. 숲이 온통 젖어 먹이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저 녀석들이 둥지에 틀어박혀 있는 게로구나. 시인은 배를 깔고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둥지 속의 새를 쳐다본다. 둥지 속의 새도 말똥말똥 주인을 바라본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말없이 놀자고 한다.   가만히 이 시 속의 정경을 그림으로 옮겨 보면 참 재미가 있다. 숲 속에 작은 오두막집이 있다. 오두막집의 방문을 열려 있다. 주인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본다. 숲 속 둥지에선 새가 주인을 마주 본다. 마당은 젖었다. 나무에선 아직도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다. 이 가운데 주인과 둥지 속의 새 사이에 오고 가는 말 없는 대화가 귀에 쟁글쟁글 들리는 것만 같다. 자연을 아끼고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입을 꽉 다문 할아버지의 그림은 가짜 그림일 뿐이다. 비록 덤덤하지만 그 속에 시인의 투명한 정신이 담겨 있을 때 진짜 시가 된다. 겉꾸밈만으로는 안 된다. 시 속에 참된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33-3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4> 진짜 시와 가짜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다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다. 한시 한 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혼자 앉아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독좌무래객 獨坐無來客) 빈 뜰엔 비 기운만 어둑하구나. (공정우기혼 空庭雨氣昏) 물고기가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어요하엽동 魚搖荷葉動) 까치가 밟았는가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작답수초번 鵲踏樹梢飜) 거문고가 젖었어도 줄에서는 소리가 나고 (금윤현유향 琴潤絃猶響)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로한화상존 爐寒火尙存)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막으니 (니도방출입 泥途妨出入) 하루 종일 문을 닫아걸고 있는다. (종일가관문 終日可關門)   조선 초기의 문인 서거정의 라는 작품이다. 시를 읽고 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는 손님이 없다는 말은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 좀 찾아와서 이 심심하고 적막한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빈 뜰이라고 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다는 뜻도 된다. 비 기운 때문에 어둑한 날씨는 우중충한 시인의 기분과 꼭 같다. 시인은 지금 마당이 보이는 마루나 사랑방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연못의 연잎이 툭 하고 흔들린다. 물고기가 연잎 줄기를 툭 건드리고 지나간 모양이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가지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훌쩍 날아간 것이다. 시인은 마당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는 지금 너무도 심심해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구절을 보면 갑자기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가 나온다. 거문고 줄을 삼실을 꼬아서 만든다. 비가 오거나 흐려서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면 젖은 기운을 머금어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시인은 날씨가 흐리니까 거문고에서 소리가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뚱겨보니 뜻밖에 맑은 소리가 난다. 조금 추운 듯싶어 화로 가까이에 손을 가져갔다. 온기가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불씨가 다 꺼졌나 보다 싶어 뒤적여 보니 식은 재 속에 따뜻한 불씨가 아직 남아 있다. 시인은 왜 갑자기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를 꺼냈을까? 젖어서 소리가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소리를 간직한 거문고, 식어서 불씨가 없을 줄 알았지만 불씨를 지닌 화로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일까? 두 사물의 공통점은 겉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쓸모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바로 시인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과 꼭 같다. 그는 지금 아마도 현실에서 어떤 힘든 일을 경험하고 물러나 있는 처지였던 모양이다. 세상이 자신을 버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지만, 나는 아직 가슴속에 세상을 위해 일할 열정과 포부를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끝에서 그는 나가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진흙길’이 출입을 방해한다는 말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진흙탕 길에 나가 봐야 옷만 더럽히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직도 진흙탕 길처럼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그래서 마음속의 열정을 묻어 둔 채 식은 화로처럼 그렇게 문을 닫아걸고서 때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시인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아껴 두고, 연잎을 흔드는 물고기와 나뭇가지를 밟고 날아간 까치, 그리고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를 슬쩍 던져 놓고, 그것들을 시켜 자기가 할 말을 대신하게 한다. 시인은 시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독자는 다 알아들을 수가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45-4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5> 다 보여 주지 않는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연꽃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연꽃과 관련된 세 편의 한시에서 같은 사물 속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자. 곽예는 고려 때의 유명한 문장가였다. 겸손하여 높은 지위에 올라서도 벼슬하지 않은 사람과 같이 검소하게 살았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도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그는 비가 오면 혼자 우산을 펴 들고 맨발로 연못으로 가서 연꽃을 감상하곤 했다.   어느 날 연꽃을 보면서 이란 시를 지었다.          세 번이나 연꽃 보러 삼지를 찾아오니 (상련삼도도삼지 賞蓮三度到三池)    푸른 잎 붉은 꽃은 그때와 변함없다. (취개홍장사구시 翠盖紅粧似舊時)    다만 꽃을 바라보는 옥당의 손님만이 (유유간화옥당객 唯有看花玉堂客)    마음은 변함없어도 머리털이 희어졌네. (풍정미감빈여사 風情未減鬢如絲)        연못 이름을 삼지(三池)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곳은 작은 연못이 세 개로 나뉘어 있었던 모양이다. 세 번째로 찾아왔다고 했지만 삼지란 말과 호응을 이루기 위해서였고, 그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이곳을 찾아왔었다. 커다란 푸른 잎과 아름다운 연꽃을 보기 위해서다. 연꽃은 옛날 내가 이곳을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곱고 어여쁜데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나는 어느새 귀밑머리털이 희게 변해 버렸다.아마도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매일 매일 바쁘게 지내다가 훌쩍 나이만 먹어 버린 것이 슬펐던 것 같다. 곽예는 연못가에 맨발로 우산을 쓰고 앉아서 연못 가득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을 보며 이런 다짐을 했을 것이다. 높은 벼슬아치가 되면 교만해져서 거들먹거리기가 일쑤인데, 곽예는 오히려 맨발로 연꽃을 구경하면서 겸손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애썼다.   옛날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주돈이는 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을 지은 일이 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가 않다. 속은 비었고 겉은 곧다. 넝쿨도 치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꼿꼿하고 깨끗하게 심어져 있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업신여겨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이후로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글 가운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는 말이 있다. 연꽃은 연못 가운데서 피니까 가까이 가서 코를 대고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따금 바람결에 실려 오는 그 향기는 더욱 맑게 느껴진다.       고려 때 시인 최해도 이라는 시를 남겼다.           후추를 팔백 가마나 쌓아 두다니 (저초팔백곡 貯椒八百斛)    천년 두고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천재소기우 千載笑其愚)    어찌하여 푸른 옥으로 됫박을 만들어 (여하벽옥두 如何碧玉斗)    하루 종일 맑은 구슬을 담고 또 담는가. (경일량명주 竟日量明珠)       당나라 때 원재란 사람은 탐욕스런 관리였다. 그는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받아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그가 죽은 뒤 창고를 뒤져보니, 후추가 무려 팔백 가마나 나왔다. 종유 기름도 오백 냥이나 나왔다. 평생을 써도 절대로 쓸 수 없는 양이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를 몰수하였다. 첫 번째, 두 번째 구절에서는 원재의 이 탐욕스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으냐고 나무란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빗속의 연꽃을 노래한 것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는 바로 세 번째, 네 번째 구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 구절에서 말한 ‘푸른 옥으로 만든 됫박(바가지)’은 바로 넓고 푸른 연잎을 말한다. 비 오는 날 연잎마다 비 구슬을 담았다가 연못에 붓고, 또 담았다가 연못에 붓고 하는 됫박질이 한창이다. 이제 연못은 연잎이 하루 종일 모아서 쏟아 놓은 맑은 구슬로 가득 차 버렸다.   비록 원재는 후추를 그렇게 욕심 사납게 쌓아 두었다가 후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그렇지만, 하늘이 준 맑은 구슬을 연못 속에 가득 쌓아 두고픈 시인의 욕심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쁠 것이 없을 것 같다.그만큼 마음이 맑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원나라에 머물고 있던 충선왕이 임금이 되기 위해 고려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충선왕이 너무도 사랑한 여인이 있었지만 그녀를 함께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왕은 그녀에게 이별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주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걸음을 돌렸다. 왕은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 한참을 지낸 후 신하인 이제현을 시켜서 그녀를 찾아보게 하였다. 그녀는 왕과 헤어진 후 상심하여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고 누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녀는 겨우 일어나 울면서 이란 시 한 수를 써서 왕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떠나며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 (증송연화편 贈送蓮花片)     처음엔 너무도 붉었는데, (초래적적홍 初來的的紅)     줄기를 떠난 지 며칠 못 되어 (사지금기일 辭枝今幾日)     초췌함이 제 모습과 똑같습니다. (초췌여인동 憔悴與人同)        이제현은 이 시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으나 왕에게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전하! 제가 그 여인을 찾아가 보니, 술집에서 젊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어서,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충선왕은 너무도 분해서 침을 뱉으며 그녀를 잊었다. 고려에 돌아온 이듬해, 왕의 생일이 되었다. 이제현은 왕에게 생일을 축하하는 술잔을 올리고 나서, 갑자기 뜰에 엎드렸다 “신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그러고는 이제현은 그때의 일을 사실대로 아뢰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그날 만약 내가 이 시를 보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대가 나를 사랑한 까닭에 거짓으로 말하였으니 참으로 그 충성이 간절하도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아름다운 미담으로『용재총화』라는 책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앞서 곽예의 시에서 연꽃은 멀리서 은은한 향기를 전해 주는 군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하면, 최해의 시에서는 반대로 비 구슬을 사랑하는 욕심꾸러기로 나온다. 한편 위의 시에서 연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시들어 가는 여인의 모습으로 노래되고 있다. 이처럼 같은 꽃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연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다 그렇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49-5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6> 연꽃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새롭게 바라보기     어떤 사물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낯설게 보이는 수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보통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물과 비로소 만날 수가 있다. 시는 이런 만남을 주로 노래한다. 시인은 사물과 새롭게 만나게 해 주는 사람이다. 시를 쓸 때는 남들 보는 대로 보지 않고, 내가 본 대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시를 통해 우리는 나와 아무 상관없던 사물과 새롭게 만난다. 새롭게 만나려면 새롭게 보아야 한다. 남들 보는 대로 보아서는 그 사물의 새로운 점이 보이지 않는다. 낯익은 사물도 새롭게 보면 낯설어진다. 매일 똑같이 보던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그 사물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지금까지 그것을 보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보인다. 그래서 내가 느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시인이 사물과 새롭게 만나 느낀 감동을 입을 열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적은 것이다. 다음 시를 한 수 보자.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甲日花無乙日輝 갑일화무을일휘) 한 꽃으로 두 해님을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一花羞向兩朝煇 일화수향양조휘) 날마다 새 해님 향해 숙이는 해바라기를 말한다면 (葵傾日日如馮道 규경일일여빙도) 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 누가 따질 것인가. (誰辨千秋似是非 수변천추사시비)   고산 윤선도의 라는 작품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꽃이다. 무궁화는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다 진 꽃이 다음날 아침에 보면 어느새 나무 가득 다시 활짝 피어 있다. 그래서 피고 지고 또 피는 그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기려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무궁화, 즉 ‘다함이 없는 꽃’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라꽃으로 정해 아끼고 사랑해 왔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나라꽃으로 사랑하는 이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꽃이 하루도 못 가서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꽃 이름도 무궁화라 하지 않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 또는 꽃의 화려함이 하루밖에 못 간다고 ‘하룻영화꽃’이라고 낮춰서 불렀다. 가진 것도 없이 뽐내는 소인배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다. 윤선도는 무궁화를 ‘일일화(一日花)’라고 불렀는데, 이 말도 하루밖에 못 가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하루밖에 못 가는 꽃에 대한 윤선도의 생각은 중국 사람과 아주 다르다. 무궁화는 오늘 피었다가 오늘 진다. 하나의 꽃으로 두 해님에게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보니까, 무궁화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꽃이 아니라 참으로 순수하고 충직한 마음을 지닌 꽃이 되었다. 다른 꽃들은 오늘 핀 꽃으로 내일도 모래도 글피도 새로 떠오르는 해님에게 인사한다. 시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새 해님 앞에 자태를 뽐내는 꽃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그렇지만 무궁화는 다르다. 한편,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기 때문에 임금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나타내는 꽃으로 늘 칭찬받아 왔다. 이렇게 해바라기는 일편단심의 충성스런 마음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런데 위 시에서 윤선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궁화는 한 태양만을 섬기기 위해 매일 지는데, 해바라기는 매일매일 떠오르는 다른 태양을 향해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니 오히려 지조가 없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태양을 임금이라고 생각해 보자. 윤선도가 말하려고 한 뜻을 금세 알 수 있다. 옛말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의 태양, 즉 한 분의 임금님만을 섬기기 위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는 정말로 충성스런 꽃이다. 반대로 여러 개의 태양, 즉 여러 임금에게 모두 다 아첨하는 해바라기야말로 간신배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니까 무궁화는 하루 만에 지지만 매운 정신을 지닌 꽃이 되었고, 해바라기는 지조도 없고 아첨만 잘하는 소인배를 나타내는 꽃이 되었다. 위 시에서 두 해님이라 읽은 것은 ‘양조(兩朝)’인데 두 조정, 즉 두 임금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한시에서 하나의 단어를 이렇게 두 가지 뜻으로 읽는 것을 ‘쌍관의(雙關義)’라고 말한다. 윤선도는 효종 임금을 위해 평생 충성을 바쳤던 분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를 간신배라고 비방하고 헐뜯었다. 그는 평생 20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도 귀양 가서 지은 것이다. 자신을 소인배라고 헐뜯는 조정 벼슬아치들에게 윤선도는 자신은 무궁화와 같은 사람이라고 당당히 대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해바라기 같은 너희들이 바로 간신배가 아니냐고 따졌던 것이다. 이 시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속에 보이는 무궁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무궁화와는 전혀 다른 꽃처럼 느껴진다. 무궁화를 이렇게 바라본 사람은 없었다. 시인은 늘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그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날 내가 그것들은 주의 깊게 살펴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사물들은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나에게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나에게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75-8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8> 새롭게 바라보기|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의미가 담긴 말       한시 속에는 어떤 단어 안에 사전에 나오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이 담긴 말들이 많다. 하나의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반복적으로 노래되다 보니 새로운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의미를 ‘정운의(情韻義)’라고 한다. 정운의를 잘 알아 두면 시를 감상하는 데 아주 편리하다. 조선 시대 홍랑이란 기생이 함경도에 벼슬 살러 온 최경창이란 시인을 사랑했다. 임기가 끝나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홍랑은 최경창에게 시조를 한 수 지어 주며 이별하였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앞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옛날에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이별의 정표로 버들가지를 꺾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버들가지는 꺾은 가지를 땅에 심어도 다시 뿌리는 내리는 성질을 지닌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비록 이렇게 헤어지지만 훗날 반드시 다시 만나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것이다. 다시 버들가지를 꺾는 이야기가 나오는 한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離人日日折楊柳 리인일일절양류)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임 못 잡았다. (折盡千枝人莫留 절진천지인막류)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때문일까 (紅袖翠娥多少淚 홍수취아다소루) 안개 물결 지는 해에 근심만 가득하다. (烟波落日古今愁 연파락일고금수)   조선 시대 임제가 지은 가운데 한 수이다. 원문을 보면 첫째 구절 끝에 버들‘류(柳)’자가 있고, 둘째 구절 끝에 머무를 류(留)자가 있다. 두 글자의 소리가 같기 때문에 버드나무라는 말은 가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버들가지를 준 것은 다시 만나자는 다짐보다 가지 말라는 만류의 뜻이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날마다 대동강 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진다. 헤어지는 사람마다 버들가지를 꺾어 주며 가지 말라고 붙든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다 떠나가 버렸다. 평양의 아가씨들은 매일 강변에 나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한숨 쉬며 눈물을 흘린다. 강물 위에는 그녀들이 흘리는 눈물과 내쉬는 한숨 때문에 안개가 저렇게 자욱하다고 시인은 과장해서 말했다. 한시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가 바로 버드나무이다. 버드나무는 봄날의 설렘과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희망을 나타내는 나무이다. 이런 뜻은 물론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편으로 한시에 보면 가을 부채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왜 가을에 부채를 부칠까? 먼저 다음 한시를 한 수 읽어 보자.   은촛대에 가을빛은 그림 병풍에 차가운데 (銀燭秋光冷畵屛 은촉추광냉화병) 가벼운 비단 부채로 반딧불을 치는구나. (輕羅小扇撲流螢 경라소선박류형) 하늘 가 밤빛은 물처럼 싸늘한데 (天際夜色凉如水 천제야색량여수) 견우와 직녀성을 앉아서 바라본다. (坐看牽牛織女星 좌간견우직녀성)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두목의 이란 작품이다. 가을밤이면 추워서 오싹하고 찬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밤에 어떤 여인이 혼자 앉아 견우와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다. 시속에는 ‘차갑다’와 ‘싸늘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도 그녀는 손에 부채를 쥐고 있다. 추운 가을밤에 왜 그녀는 손에 부채를 쥐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부채로 방 안으로 날아드는 반딧불이를 치고 있다. 열어 둔 창문으로 반딧불이가 자꾸만 날아든다.반딧불이는 원래 인적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날아다닌다. 그런데 그녀의 방까지 날아들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그만큼 황량해졌다는 뜻이다.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부채를 들어 반딧불이를 내쫓는다. 이 시는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잊혀 진 궁녀의 신세를 노래한 것이다. 끝에서 그녀가 우두커니 앉아서 견우와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 년 내내 떨어져 있다가 칠월칠석날 단 하루만 만난다. 견우와 직녀는 이 다리를 건너서 반갑게 만난다. 두 사람은 만남이 반갑고 또 헤어질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칠월칠석날에는 늘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그녀는 왜 하필 많고 많은 별 중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것은 두 가지 풀이가 가능하다. 하나는 우리도 견우와 직녀처럼 헤어져서 만나지 못하니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견우와 직녀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영영 사랑하는 임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어 슬프다는 것이다. 아마 나중의 풀이가 더 맞을 것 같다. 시인은 그녀가 임금에게 버림받은 궁녀라는 것을 단지 그녀의 손에 부채를 쥐여 줌으로써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부터 많은 시인들이 가을 부채를 버림받은 여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버들가지를 꺾어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가을 부채가 버림받은 여인의 의미를 나타낸다.이렇게 된 것은 그 물건이 지닌 성질 때문이다. 처음에 어떤 시인이 이것을 시로 쓰자, 그 비유가 너무나 알맞았기 때문에 그 뒤로 많은 시인들이 뒤따라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마침내 이 비유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표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처음 가을 부채로 버림받은 여인을 비유했을 때는 매우 낯설어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것이 자주 쓰여서 상징이 되면, 일반적인 부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 즉 정운의를 간직하게 된다. 겉으로 보아서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물들이 생각의 단계를 거쳐 전혀 다른 의미와 연결된다. 한시에는 이런 말들이 많다. 이 정운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시를 훨씬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83-90.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9> 의미가 담긴 말|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말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미친 듯한 열정으로 하지 않으면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 유명한 서예가인 최흥효란 사람이 있었다. 젊어서 과거 시험을 보러가서 문제의 답안을 쓰다 보니 그 중에 한 글자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글씨와 꼭 같게 써졌다. 평소에는 수백 번씩 연습해도 잘 써지지 않던 어려운 글자였다. 그런데 이번에 쓴 것은 오히려 왕희지보다 더 잘 쓴 것 같았다. 그는 그만 자기 글씨에 도취되어 차마 아까워서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같게 써진 한 글자의 글씨 앞에서 그는 자기가 과거 시험을 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해서 그는 뒷날 과연 이름난 서예가가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징이란 화가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 이경윤도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는데 그림을 잘 그려도 천한 대접만 받았으므로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던 이징은 몰래 집 다락에 숨어서 그림을 그렸다. 집에서는 갑자기 아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가족들은 사흘 만에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년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너무도 화가 나서 볼기를 때렸다. 소년은 매를 맞고 울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소년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또 조선 시대 왕실의 친척이었던 학산수란 이가 있었다. 그는 노래를 잘 부르는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산에 들어가 노래 공부를 할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 앞에 놓고 노래 한 곡을 연습하고 나면 모래 한 알을 주워 신발에 담았다. 또 한 곡이 끝나면 다시 모래를 한 알을 담았다. 그렇게 해서 모래가 신발에 가득 차면 그제야 산에서 내려왔다. 한번은 황해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적 떼를 만났다. 도적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귀한 신분인 줄 알아채고, 가진 것을 다 빼앗은 후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슬퍼져서 나무에 꽁꽁 묶인 채로 바람결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도적들은 모두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노래가 끝나자 도적들은 그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그를 풀어 주고 빼앗았던 물건도 다 돌려주었다. 조선 후기에 이삼만이라는 서예가는 초서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종이를 구하기 힘든 때였기 때문에 그는 흰 베를 빨아서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흰 베가 온통 까맣게 되면 이것을 빨아서 다시 썼다. 아무리 아파도 하루에 천 자씩은 꼭 썼다. 처음에 그는 부자였는데, 글씨만 쓰고 다른 일은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주 가난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글씨만 썼다. 그는 글씨를 배우려는 젊은이에게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네가 글씨를 잘 쓰려면 적어도 벼루 세 개쯤은 먹을 갈아 구멍을 내어야 할 걸세.” 그 단단한 벼루가 먹을 갈아서 구멍이 나도록 그는 글씨를 쓰고 또 썼다. 그래서 마침내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우연히 같게 써진 글자 하나 때문에 과거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던 최흥효나 매를 맞으면서도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렸던 이징,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을 담아 넣으며 노래 공부를 했던 학산수,여러 개의 벼루를 구멍 내 가면서 글씨 연습을 했던 이삼만, 이 네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미쳤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은 이런 끊임없는 노력과 미친 둣한 몰두 속에서 이루어진다.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시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시인은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한다. 고려 때 강일용이란 시인이 있었다. 그는 깃이 흰 백로를 유난히 사랑했다. 백로를 가지고 정말 훌륭한 시를 한 수 짓고 싶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를 걸쳐 입고 황소를 타고 개성 시내를 벗어나 천수사란 절 옆의 시냇가로 갔다. 황소 등에 올라앉아 비를 쫄딱 맞으며 백로를 구경하곤 했다. 비가 올 때마다 나가서 백로를 관찰하였지만, 아름다운 시상(詩想)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백일 만에 갑자기 한 구절을 얻었다. 그 시구는 이러했다.   푸른 산허리를 날며 가르네. (飛割碧山腰 비할벽산요)   그는 어느 날 시내를 박차고 날아오른 백로가 유유히 산허리를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비가 와서 푸른 산허리에는 흰 안개가 자옥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흰 안개가 흰 백로가 훨훨 날아가면서 푸른 산허리에 흰 줄을 그어 놓은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이 구절을 얻고서 그는 너무도 기뻐서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오늘에야 옛사람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었다. 훗날 이 구절을 이어 시를 완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한 구절이 너무도 마음에 들고, 또 이 구절을 얻은 것이 너무도 기뻤던 나머지, 그는 다른 구절을 채워 한 수의 시를 완성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위대한 예술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러한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를 완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위대한 예술은 탄생한다. 옛 시인들은 한 편의 마음에 드는 시를 짓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당나라 때 시인 맹교는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라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살아서는 한가한 날 결코 없으리 (生應無暇日 생응무가일) 죽어야만 시를 짓지 않을 테니까. (死是不吟詩 사시불음시)   ‘괴로이 읊다(苦吟)’란 제목의 이 시처럼, 죽기 전에는 결코 시 짓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당나라 때 노연양이란 시인도 아주 재미난 시를 남겼다.   한 글자를 꼭 맞게 읊조리려고 (吟安一箇字 음안일개자) 몇 개의 수염을 배배 꼬아 끊었던가. (撚斷幾莖髭 연단기경자)   시를 지으려고 하는데 알맞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글자가 좋을까, 저 글자가 좋을까? 고민하느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염을 배배 꼬다가 도대체 몇 가닥이나 끊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생각에 골똘히 빠져서 손가락 끝에 수염 하나를 감아쥐고 배배 꼬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들볶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품 하나에도 한 예술가의 일생이 담겨 있다. 시인은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남기기 위해 어떤 괴로움도 다 참아 내며 견딘다. 화가는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음악가는 아름다운 곡을 작곡하려고 힘든 줄도 모르고 밤을 새우며 작업에 몰두한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이런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던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91-9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0>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옛말에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시인이 사물과 만나면 마음속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것을 시로 옮긴다. 이때 사물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 사람의 품성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한 마디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인과 만날 수 있다. 고려 예종 때 시인 정습명이 지은 이란 작품을 보자. * 한시의 제목은 석죽화(石竹花)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해서 (世愛牧丹紅 세애목단홍) 동산에 가득히 심어서 기른다. (栽培滿園中 재배만원중) 그렇지만 황량한 들판 위에도 (誰知荒草野 수지황초야) 예쁜 꽃 피어난 줄은 아무도 모르네. (亦有好花叢 역유호화총) 그 빛깔은 시골 연못에 달빛이 스민 듯 (色透村塘月 색투촌당월) 향기는 언덕 위 바람결에 풍겨 온다. (香傳隴樹風 향전롱수풍) 땅이 후미져서 귀한 분들 오지 않아 (地偏公子少 지편공자소)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긴다. (嬌態屬田翁 교태속전옹)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마당 가득히 심어 놓고 그 붉은 꽃처럼 부귀하고 영화롭게 살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패랭이꽃은 그렇지가 않다. 다섯 개의 가녀린 꽃잎을 가진 패랭이꽃은 꽃잎도 작고 빛깔은 수줍은 분홍빛이다. 아무도 이 꽃을 마당에 심어 두려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오지 않은 들판의 오솔길 옆에서 바람에 맑은 향기를 날리며 피었다가 조용히 질 뿐이다. 그렇지만 패랭이꽃도 모란꽃만큼이나 아름답다. 아니 모란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모란꽃은 짙게 화장을 하고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은 영화배우와 같다. 패랭이꽃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순진하고 해맑은 산골 아가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도 패랭이꽃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농사짓는 시골 농부들에게만 보여 주며 피어 있다. 하지만 시골 농부는 늘 농사일에 바빠 패랭이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분 높은 귀한 사람은 시골에 오지 않는다. 결국 패랭이꽃은 그냥 혼자 피었다가 혼자 질 뿐이다.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는 패랭이꽃과 상관이 없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어여쁜 꽃잎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바람결에 흩날릴 뿐이다. 정습명은 이 시를 왜 썼을까? 그는 기이한 재주와 넓은 포부를 지녔던 뜻 높은 선비였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 시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내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자기 소개서인 셈이다. 고려 예종 임금께서 이 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뛰어난 시인이 있었단 말이냐. 어서 가서 그를 불러오너라.” 시 속에 담긴 내용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예종은 그를 만나보고는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늘 가까이 머물게 했다. 다음 시는 역시 고려 때 시인 최해가 지은 이란 작품이다. * 한시의 제목은 현재설야(縣齋雪夜)이다. 세 해의 귀양살이 병까지 들고 보니 (三年竄逐病相仍 삼년찬축병상잉) 한 칸 집에 사는 모습 스님과 비슷하다. (一室生涯轉似僧 일실생애전사승) 눈 덮인 사방 산엔 찾아오는 사람 없고 (雪滿四山人不到 설만사산인불도)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심지 돋운다. (海濤聲裏坐挑燈 해도성리좌도등)   최해도 높은 기상과 재주를 지녔던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의 능력을 뽐내어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가 맡은 일에 큰 실수를 저질러 구석진 시골로 쫓겨나 있었다. 첫 번째 구절을 보면 그가 쫓겨나 이곳에 온 것이 벌써 삼 년이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살림에 병까지 들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가난한 스님과 같다고 했다. 하루 세 끼 끼니초자 잇기 어려운 힘든 형편을 하소연했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든데, 눈이 펑펑 내려서 춥기도 하고 밖으로 통하는 길이 다 막혀 버렸다. 군불도 때지 않은 추운 방에서 벌벌 떨고 있자니 창문 밖에서 엄청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했으니까 진짜 파도 소리는 아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소리가 마치 집채만 한 파도가 집을 덮쳐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는 잠을 못 이루며 오두마니 앉아서 등불 심지를 돋우고 있다. 예전 등불은 심지가 다 타면 다시 심지를 돋우어 주어야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등불 심지를 돋우는 것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다. 눈이 펑펑 내렸다. 이 눈 속에 이곳을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등불 심지를 돋워서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한다. 등불마저 꺼져 버린다면 깜깜한 어둠 속, 집채만 한 파도 소리 속에 자신마저 휩쓸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물대는 등불 심지를 돋우는 모습에서 깊은 밤에 혹시 누군가 자신을 찾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기다림의 심정마저 느껴진다. 이 시를 읽어 보면 앞서 패랭이꽃을 노래한 정습명이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습명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해는 아무도 올 수 없는 눈 오는 밤중에도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여 등불 심지를 돋우고 있다. 그는 오랜 귀양살이 끝에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질까 봐 괴로워했던 것 같다. 결국 최해는 이렇게 불우하게 살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정습명과 최해의 시를 보면 이 말을 더 실감할 수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한자로는 ‘농가성진(弄假成眞)’이라고 하는데, 뜻 없이 한 말이 말한 그대로 진짜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 속에 정령이 살아 숨 쉰다고 믿어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가 오늘 무심히 하는 말투와 행동 속에 내가 품은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99-10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시는 그 사람과 같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치마 위에 쓴 시     한시 속에는 옛날의 유명한 시인들이 쓴 표현이나 이야기를 빌려 오는 경우가 꽤 많이 보인다. 이런 것을 ‘용사(用事)’라고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는 아주 효과적인 표현 방법이다. 왕헌지는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아들이었다. 그도 역시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오흥 태수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 마을에 양흔이란 열두 살 난 소년이 글씨를 아주 잘 썼다. 왕헌지는 양흔을 아주 아꼈다. 하루는 양흔이 보고 싶어서 그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그때 소년 양흔은 마침 새로 해 입은 비단옷을 입고 글씨 연습을 하다가 붓을 한 손에 든 채로 곤하게 낮잠이 들어 있었다. 천진스레 낮잠에 빠져 있는 소년을 보던 왕헌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양흔의 붓을 빼앗아 들고 양흔의 새 옷 위에다 글씨를 써놓고 갔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새 옷 위에 어지럽게 글씨가 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신을 가만히 차리고 살펴보니 다름 아닌 선생님의 글씨였다. 감격한 소년은 옷 위에 써 준 선생님의 글씨를 보면서 더욱더 글씨 공부에 정진해서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왕헌지가 양흔의 옷자락에 글씨를 써 준 것을 가지고 ‘글씨 치마’라는 말을 만들어 후세에 전했다. 스승이 제자를 아끼는 마음과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빚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도 이 글씨 치마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813년에 정약용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전라남도 강진 땅에 귀양 가 있었다. 강진의 만덕산 옆에 조그만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오로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벌써 귀양살이도 13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울 집에서 인편에 편지와 옷가지를 부쳐 왔다. 반가워 보자기를 열어 보니 가족들 모두 편안히 잘 있다는 안부 편지와 함께 낡아서 못 입게 된 치마 몇 벌이 들어 있었다. 아내가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색의 활옷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붉은빛은 이미 다 바래 버리고 노란색도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것이었다. 아내가 왜 이 낡은 치마를 나에게 보냈을까? 정약용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가위를 가져와서 빛바랜 치마를 펴고는 네모나게 잘랐다. 그것으로 공책을 만들었다. 거기에 먼저 두 아들에게 주는 훈계의 말을 적었다. 죄인이 되어 멀리까지 귀양 와 사는 동안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담아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사람이 되라는 부탁을 함께 곁들였다. 어머니가 시집오시던 날 입었던 빛바랜 치마 위에 아버지가 써주신 훈계의 말씀을 받아 들었을 때 자식들의 가슴은 얼마나 뭉클하였을까? 아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적고 나서도 치마 천이 조금 남았다. 그래서 다시 시집간 딸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딸을 위해 그려 준 그림과 시는 지금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을 보면 먼저 위쪽에 매화 가지를 그렸다. 가지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봄날이 온 것이다. 어디선가 날아온 꾀꼬리 두 마리가 정답게 매화가지 끝에 앉아 있다. 두 마리 꾀꼬리는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즐겁게 봄날을 노래한다. 그 아래에 이렇게 시를 써 놓았다. 이 시의 제목은 ‘매조도에 쓴 시(梅鳥圖詩)’이다.   펄펄 나는 저 새가 (翩翩飛鳥 편편비조)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息我庭梅 식아정매)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有烈其芳 유렬기방)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다. (惠然其來 혜연기래) 여기에 올라 깃들여 지내며 (爰止爰棲 원지원서)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樂爾家室 락이가실)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花之旣榮 화지기영)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有蕡其實 유분기실)   한 쌍의 꾀꼬리가 매화 향기를 찾아 내 집 마당으로 날아들었다. 그 춥던 겨울이 다 끝난 것이다. 새들은 꽃향기에 취해 나뭇가지를 떠날 줄 모른다. 즐거운 노래가 그치지 않는다. 겨우내 쓸쓸하던 마당이 갑자기 환하다. 이 시의 원문은 공자가 엮은『시경』이란 옛 시집 속에 실려 있는 시들처럼 네 글자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경에 있는 이란 다음 시도 이와 같은 형식이다.   아내와 자식이 정답게 지내는 것이 (妻子好合 처자호합) 마치 금슬을 연주하는 것 같아도 (如鼓琴瑟 여고금슬) 형님과 아우가 화목해야만 (兄弟其翕 형제기흡) 즐겁고 기쁘다고 할 수가 있다. (和樂且湛 화락차담)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宜爾室家 의이실가) 그대의 처자식을 즐겁게 해 주어라. (樂爾妻帑 락이처탕) 이렇게 하려고 애를 쓴다면 (是究是圖 시구시도)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亶其然乎 단기연호)   위 시의 다섯 번째 구절을 보면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앞에서 본 정약용 시의 여섯 번째 구절에 나오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라는 말과 비슷하다. 정약용은 일부러『시경』의 시와 비슷한 표현을 골라서 위 시의 내용을 자기의 시 속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다. 정약용이 딸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려 주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치마에 그려 보내 준 그림을 보고 멀리 계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예전에 있던 시의 표현을 슬쩍 빌려 와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을 한시에서는 ‘용사’라고 한다. 그래서『시경』에 실려 있는 이라는 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약용이 새에게 하고 있는 말만 듣고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줄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다 떨어져서 입을 수 없게 된 치마가 이렇게 해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 이 그림과 시가 참으로 아름다운 까닭은 그 안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모든 것이 너무나 풍족하니까 물건이 아까운 줄도 모른다. 멀쩡한 새 옷도 다 내다 버리고 학용품도 아낄 줄 모른다.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없이는 소중한 것도 없다. 부모가 소중하고 형제가 소중하고 가족이 소중하고 친구가 소중한 줄을 모른다. 헌 치마 조각도 이렇게 아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줄 알았던 옛 선인들의 거룩한 마음씨를 잊지 말아야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07-11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2> 치마 위에 쓴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계절이 바뀌는 소리   시 속에는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기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을 전문적인 말로는 ‘모호성’이라고 한다. 시인은 일부러 모호하게 말해서 독자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크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번에는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고 있는 한시 몇 수를 함께 읽으면서 이 모호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주의 깊게 살펴보면 사물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그런데 그 소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다음 한시는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의 라는 작품이다.   봄비가 가늘어서 방울도 짓지 못하더니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적) 한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눈 녹아 남쪽 시내에 물이 불어나니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새싹들이 많이도 돋아났겠다. (草芽多少生 초아다소생)   봄비는 너무 가늘어서 마치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사각사각 내린다. 비를 맞아도 옷이 젖는 줄을 모른다. 낮에 시인은 땅을 촉촉이 적시며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 봄이 왔구나.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 흥분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시인은 방안에서 가느다란 소리를 듣는다. 무엇이 내는 소리일까? 시인은 시 속에서 분명하게 말해 주지 않는다. 시인은 방 안에 앉아서 소리를 따라 생각에 잠긴다. 산속 깊은 곳에 쌓인 눈도 이제 녹기 시작하겠구나. 깊은 산속에는 지금쯤 새싹들이 언 땅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고 있겠지. 이 밤 봄비를 맞으며 겨우내 언 몸들을 녹이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시인은 한없이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이 시를 썼을 게다.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 (蕭蕭落木聲 소소락목성)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錯認爲疎雨 착인위소우) 스님 불러 문 나가서 보라 했더니 (呼僧出門看 호승출문간)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 (月掛溪南樹 월괘계남수)   조선 시대 시인 송강 정철의 라는 작품이다. 시인은 산속에 있는 절에 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웬일인지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을 갈수록 또랑또랑해진다. 바쁘게만 지내다가 절에 와서 한가로이 누워 있으려니까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창밖에서 아까부터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맑고 쾌청한 날씨였는데 갑자기 웬 비가 오는 걸까? 절에서 심부름 하는 어린 사미승을 불러 비가 오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꼬마 스님은 돌아와서 빙그레 웃으며 “시내 남쪽 나무 위에 달이 걸려 있는 걸요.”라고 동문서답을 한다. 달이 떴다면 비가 올 리가 없고, 비가 온다면 달이 뜰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 순간 손님은 그것이 비 오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을 낙엽 지는 소리인 줄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스님의 이 엉뚱한 대답이 이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만일 “비 안와요. 낙엽 지는 소리예요.”라고 했다면 이것은 시가 될 수 없다. 독자가 생각할 빈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모호성은 독자가 들어갈 빈 공간을 만들어 준다.   첫째 개가 짖어대자 (一犬吠 일견폐) 둘째 개가 짖어대네. (二犬吠 이견폐) 셋째 개도 덩달아 따라 짖으니 (三犬亦隨吠 삼견역수폐) 사람일까 범일까 바람 소릴까? (人乎虎乎風聲互 인호호호풍성호) “산 달은 촛불처럼 환히 밝고요 (童言山月正如燭 동언산월정여촉) 반 뜰에는 오동 잎새 소리뿐예요.” (半庭惟有鳴寒梧 반정유유명한오)   조선시대 시인 이경전이 아홉 살 때 지었다는 이란 시다. 달이 환한데 온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 개들이 왜 저렇게 한꺼번에 짖을까? 이 밤중에 누구 집에 도둑이라도 든 걸까? 아니면 산에서 범이라도 내려왔나? 아니면 가을바람 소리를 듣고 기분이 이상해진 걸까? 밖을 내다본 꼬마는 막 동산 위로 둥실 떠오른 환한 달빛을 보았다. 마지막 구절에서 ‘반 뜰(半庭)’이라고 말했다. 달이 아직 하늘 한가운데까지 솟아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담장에 걸려 마당의 절반에만 달빛이 비친 것이다. 산에 달빛이 저렇게 밝은 걸 보니 도둑이 들 리도 없고, 호랑이가 내려올 리도 없다. 바람 소리 때문도 아니다. 온 동네 개들은 저 환하게 뜬 달빛을 보고 저렇게 짖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개들은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고 우우거리며 소리를 지른다. 보름달빛은 동물을 들뜨게 만드는 모양이다. 온 동네 개들을 저렇게 짖게 만든 것은 바로 달빛이었다. 여기서도 시인은 분명하게 달빛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도둑과 호랑이와 바람을 꼽아 놓고, 여기에 다시 달빛과 오동잎 소리를 더해 놓았을 뿐이다. 시인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는 슬쩍 빠져 버리고 독자들이 빈 칸을 채워 넣게 한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속에 오고 간다. 봄비 내리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낙엽 지는 소리를 따라 봄이 가고 가을이 온다. 도시의 복잡한 소음 속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에 앉아서 귀를 귀울이면 자동차의 경적 소리, 옆집의 텔레비전 소리, 아이들이 쿵쾅거리는 소리, 사람들이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만 들려온다. 우리의 생활이 날이 갈수록 자연의 소리와 멀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깊은 밤중에만 들려오는 우주가 돌아가는 소리, 내 마음에 새싹이 터 오는 소리, 낙엽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환한 달빛이 내 창 가득히 고여 올 수 있도록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아 놓아야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15-12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3> 계절이 바뀌는 소리|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자연이 주는 선물   자연은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자연은 말 없는 선생님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일깨워 준다. 자신을 닮으라고 한다. 예술가들은 넘치는 자연의 에너지를 받는다. 조선 후기 이덕무가 지은『이목구심서』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리산 속에는 연못이 있다. 연못가에는 소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어, 그 그림자가 언제나 연못 속에 비친다. 연못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무늬가 몹시 아롱져서 마치 스님이 입고 다니는 가사옷 같다. 그래서 이 물고기의 이름을 가사어라고 부른다. 물고기의 이 무늬는 연못에 비친 소나무의 그림자가 변해서 된 것이다. 이 물고기는 너무 날쌔서 잡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물고기를 잡아서 삶아 먹으면 능히 병 없이 오래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지리산 속에 있는 깊은 연못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언제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닮아서 삶아 먹으면 병도 없어지고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소나무의 무늬가 물고기에 비친다. 무늬가 물고기 위에 새겨진다. 그 물고기를 먹으면 소나무처럼 오래 살 수가 있다.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이지만, 옛사람들의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가죽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소나무의 그림자가 오래 쌓여서 물고기 무늬를 만들 듯이 사람도 사물에 내 마음을 주면 어느 순간 그 사물이 내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옛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한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였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만 권의 책을 읽고, 먼 길을 여행 다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많이 하고 여행을 많이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과 자연을 통해 듣고 본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나를 변화시킨다. 글을 쓰면 글에서 솔바람 소리가 울려 나오고, 그림을 그리면 도화지 위에서 꽃향기와 새소리가 퍼져 나온다. 다음 시는 송시열의 이란 한시이다.   산과 구름 다 하얗고 보니 (山與雲俱白 산여운구백) 산인지 구름인지 알 수가 없다. (雲山不辯容 운산불변용) 구름이 돌아가자 산만 홀로 섰구나. (雲歸山獨立 운귀산독립) 일만 이천 봉우리 금강산이다. (一萬二千峰 일만이천봉)   겨울의 금강산은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부른다. 모두 ‘개(皆)’, 뼈 ‘골(骨)’, 흰 뼈처럼 모두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금강산에 와 보니 온통 흰 빛깔뿐이다. 산도 희고 그 위에 잠긴 구름도 희다. 산봉우리가 구름에 잠겨 있을 때는 산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날씨가 개자 구름이 걷혔다. 구름이 사라지고 나니 우뚝하게 솟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어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시인은 산과 구름이 섞여서 모습을 알아볼 수 없던 상태에서 구름을 걷어 냄으로써 홀로 우뚝하게 솟은 금강산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우리의 삶도 마땅히 이러해야 할 것이다. 자질구레한 집착과 욕심, 좀 더 놀고 싶은 생각, 더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을 활짝 걷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본마음이 환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산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자태로 그렇게 우뚝 솟아 있다. 사람들은 멀리서 그 산을 바라보면서 그 늠름한 기상을 마음속에 새기곤 한다. 늘 바라보던 그 산빛이 내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 내가 바로 산이 된다. 산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다음 시는 고려 때 김부식의 라는 한시이다.   세속 나그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俗客不到處 속객부도처) 올라오니 생각이 해맑아진다. (登臨意思淸 등임의사청) 산의 모습은 가을이라 더욱 곱고 (山形秋更好 산형추갱호) 강 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 밝다. (江色夜猶明 강색야유명) 해오라기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白鳥高飛盡 백조고비진) 외론 돛만 혼자서 가벼이 떠간다. (孤帆獨去輕 고범독거경) 달팽이 뿔 위에서 (自慙蝸角上 자참와각상) 공명(功名)을 찾아다닌 반평생이 부끄럽구나. (半世覓功命 반세멱공명)   복잡한 세속에서 바쁘게 살다가 절 집을 찾아 산에 올랐다. 높이 올라 멀리 보니 마음이 아주 맑고 편안해진다. 가을 산은 이미 낙엽이 다 떨어지고 없다. 잎이 다 지고 없는 텅 빈 가을 산인데, 내게는 그것이 봄 산의 화려함보다 더 좋게 보인다. 멀리 강물이 보인다. 강물 빛은 밤이 되자 오히려 달빛을 받아서 더 희게 느껴진다. 강물을 한밤중에도 달빛 아래서 저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저 아래 물가에서 흰 해오라기 푸드득 날개를 치는가 싶더니, 이 한밤에 높이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날아간다. 강물 위엔 배 한 척이 바쁜 세상일은 상관도 않겠다는 듯이 가볍게 강물 위를 떠내려간다. 허공 위로 훨훨 날아가 버린 해오라기, 바쁠 것 없어 유유히 떠내려가는 돛단배를 보다가 시인은 갑자기 말도 못하게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달팽이 뿔처럼 좁디좁은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겠다고 아옹다옹 다투고 싸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높이 올라 날아가 버린 것은 해오라기가 아니었다. 홀로 가볍게 떠내려간 것은 돛단배가 아니었다. 정작 날아가 버리고 사라져 버린 것은 내 안에 잔뜩 들어 있던 욕심스런 마음이었다. 속세의 나그네로 들어온 가을 산속에서 그는 비로소 새롭게 태어나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 모습을 일깨워 준다. 일상에 찌들어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지리산 연못 속에 산다는 그 물고기처럼, 우리도 마음속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무늬를 지니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 산을 닮고 나무를 닮고 강물을 닮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15-13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4> 자연이 주는 선물|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울림이 있는 말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힘 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시콜콜히 다 말하는 것보다 아껴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다 말하지 않고 조금만 말한다.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멀리 함경도 안변이란 곳에 벼슬 살러 가 있던 양사언이 한양에 있던 친구 백광훈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오랜만에 친구의 편지를 받은 백광훈은 반가워서 편지 봉투를 서둘러 뜯었다. 그런데 편지가 좀 이상했다. 다음과 같이 딱 한 줄, 한문으로는 열두 자만 씌어 있었던 것이다.       삼천 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옛날에는 편지도 직접 사람을 보내 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낸 편지가 받을 사람에게 도달하는 데도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 먼 길에 그렇게 힘들게 보낸 편지인데, 고작 열두 글자만 썼다니 이상하다. 한참 그 편지를 읽어 보던 백광훈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양사언은 이 편지에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편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먼저 그는 삼천 리 밖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밝은 달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달은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다. 환한 달빛을 보고 싶은데 구름이 자꾸 방해를 한다. 그는 왜 달빛과 친하게 지낸다고 했을까? 달은 내가 있는 이곳이나 네가 있는 그곳이나 똑같이 뜰 것이다.나는 여기서 너를 생각하면서 저 달을 본다. 너는 또 내가 보고 싶어서 달을 보겠지.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만나 볼 길이 없어서 매일 저 달만 쳐다본다. 그런데 그 달마저도 구름에 가려서 보일 듯 말 듯하니 너무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양사언은 백광훈에게 멀리서 나는 네가 보고 싶어 죽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게 안부를 묻고 보고 싶다는 말을 적은 편지보다 훨씬 더 깊은 정이 느껴진다.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달을 올려다보며 친구 생각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 백광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직접 다 말해야만 좋은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하고, 속으로 고여서 넘치는 정이 있다. 다음은 조선 시대 능운이란 기생이 사랑하는 임을 그리며 지었다는 란 한시다.   달 뜨면 오시겠다 말해 놓고서 (郞云月出來 랑운월출래) 달 떠도 우리 임은 오시지 않네. (月出郞不來 월출랑불래) 아마도 우리 임 계시는 곳엔 (想應君在處 상응군재처) 산이 높아 저 달도 늦게 뜨나 봐.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임은 달이 뜨면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저 달이 중천에 이르도록 임은 오실 줄을 모른다. 그녀는 저녁 내내 조바심이 나서 달만 보며 마당에 나와 서 있다. 왜 안 오실까? 저 달을 못 보신 걸까? 혹시 마음이 변하신 것은 아닐까? 조바심은 점차 불안감으로 변해 자칫 그리움의 원망이 쏟아지고 말 기세다. 그러나 그녀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오지 않는 임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대신 오히려 임의 편을 들어 주기로 한다. 아마 지금 임이 계신 곳에는 산이 하도 높아서 내게는 훤히 보이는 저 달이 아직도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임이 내게로 오시지 않을 까닭이 없다. 설령 임이 나와의 언약을 까맣게 잊고 안 오시는 것이라 해도 나만은 이렇게 믿고 싶다. 여기에는 또 혹시 이제라도 오시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바람도 담겨 있다. 임을 향해 직접적으로 원망을 퍼붓는 것보다 은근한 표현 속에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더 큰 매력이 있음을 느낀다. 황희가 정승이 되었을 때, 공조판서로 있던 김종서는 태도가 자못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삐딱하게 비스듬히 앉아 거드름을 피웠다. 하루는 황희가 하급 관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종서 대감이 앉은 의자의 다리 한쪽이 짧은 모양이니 가져가서 고쳐 오너라.” 그 한마디에 김종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크게 사죄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육진(六鎭)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운 줄을 몰랐는데, 그때 황희 대감의 그 말씀을 듣고는 나도 몰래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었네.” 정색을 한 꾸지람보다 돌려서 말한 한마디가 거만하기 짝이 없던 김종서로 하여금 마음으로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게 했다. 다음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이 지은 이란 작품이다.   나더러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냐길래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웃으며 대답 않았지만 마음만은 한가롭다.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불답심자한) 복사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 (桃花流水杳然去 도화류수묘연거)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이다.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산에서 사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불쑥 묻는다. “왜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사십니까?” 나는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산이 좋아서 사는 사람에게 산에 사는 이유가 달리 있을 까닭이 없다. 산이 좋은 까닭을 말로 설명할 재주도 없지만, 말한다 한들 그가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한가롭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강물 위에는 복사꽃이 둥둥 떠내려간다. 인간 세상에는 달리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도 그는 나더러 왜 답답하게 산속에서 혼자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웃는 것 외에는 대답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침묵의 언어가 지닌 힘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작은 창에 햇볕이 가득하여,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   책상 하나만 놓여 있는 방안으로 따스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볕이 고마워서 말없이 오래도록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물질의 풍요로움은 비록 지금만 못했지만, 정신만을 넉넉하고 풍요로웠던 선인들의 체취가 문득 그립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33-140.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5> 울림이 있는 말|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간결한 것이 좋다   말과 글은 다르다. 말로 하면 긴데, 글로 쓰면 몇 줄 안 된다. 전화로 하면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다른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 길어진다. 편지를 쓰면 그 많던 말은 다 어디로 가고 없고 몇 줄 쓰고 나면 쓸 말이 없다.글은 말을 간추려 요점만 모아 놓은 것이다. 시는 글을 다시 한 번 더 압축해 놓은 것이다. 시인은 절대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시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자세한 설명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다. 시에서는 말을 아낄수록 여백이 더 넓어진다. 구양수는 송나라의 유명한 문장가다. 그는 글을 쓸 때 벽에 붙여 놓고 고치고 또 고쳤다.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쳤다. 글을 완성한 뒤에 보면 제목만 빼고 다 고친 경우도 있었다. 그가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일이다.어떤 사람이 비문을 지어 스승에게 보여 주었다. 스승은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잘 지었다. 그렇지만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구나. 절반으로 줄여 오너라.” 구양수는 스승의 말을 따라 처음 천 글자에 가깝던 글을 힘들게 5백 자로 줄여 가지고 갔다. “많이 좋아졌다. 다시 3백 자로 줄여 오너라.” 구양수는 다시 2백 자를 더 줄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 천 글자로 썼던 비문을 3백 자로 줄이고 나니,처음보다 나중 글이 훨씬 더 짜임새가 있고 훌륭해진 것이다. 여기서 구양수는 문장을 짓는 방법을 크게 깨달았다. 한시에는 설명하는 말이 없이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꽤 있다. 이달의 라는 시를 보자.   한 줄 두 줄 기러기(一行二行雁 일행이행안) 만 점 천 점 산.(萬點千點山 만점천점산) 삼강 칠택 밖(三江七澤外 삼강칠택외) 동정 소상 사이.(洞庭瀟湘間 동정소상간)   도대체 무슨 말일까? 설명하는 말은 하나도 없고, 단어만 나열해 놓았다. 삼강과 칠택, 동정과 소상은 모두 중국 남쪽 지방에 있는 유명한 호수와 강물의 이름이다. 제목을 보면 김양송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림책을 보고, 그 그림의 빈 곳에 써 준 시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지금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그림이었을까? 한 줄 두 줄 기러기라고 했다. 그림 속에는 V자 모양으로 줄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만 점 천 점 산이라고 했다. 무수히 많은 산들이 그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삼강과 칠택의 밖, 동정과 소상의 사이라고 했으니, 무수한 산과 들 사이로 많은 호수들이 있었겠다. 그림은 기러기 떼가 산 넘고 강 건너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날아가는 장면이었다. 멀리 조그만 점으로 기러기 떼를 그려 놓고 다시 그 아래에 산과 호수를 그려 놓았다. 호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중국 남쪽 지방을 그린 것 같다는 말이다. 시인의 생각을 헤아려서 설명을 보태면 이렇게 된다.   한 줄인지 두 줄인지 기러기가 날아가는데 만 점인지 천 점인지 산은 많기도 많다. 삼강과 칠택의 바깥 같기도 하고 동정호와 소상강 사이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을 시인은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단어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말을 아낄수록 뜻이 깊어지는 것은 현대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박목월의 란 작품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다섯 도막의 짧은 시다. 그나마 두 번째와 마지막 연은 내용이 꼭 같다. 저녁 무렵 남도로 가는 길에 어떤 나그네가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의 전부다. 하지만 시를 읽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은 다리가 다 놓여서 나루터에서 배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나그네는 배를 타고 나루터를 건넌다. 길옆으로 푸른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춤추는 밀밭은 마치 구름밭 같다. 그 구름밭 사이로 나그네는 마치 일렁이는 달빛처럼 흘러간다. 외줄기 밀밭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나그네가 갈 길도 끝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도 바쁠 것 없다는 듯 유유히 걸어간다. 어느덧 건너편 산 너머로 빠알간 노을 불타고 있다. 산 아래 그림같이 예쁜 마을이 보인다. 집집마다 술을 담가 놓고 지나는 나그네가 재워 달라고 하면 따뜻한 잠자리를 내주고, 밥과 술을 내오는 그런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 밤은 저 마을에서 묵고 가야지. 나그네는 마음이 먼저 훈훈해 오는 것을 느끼며 발길을 그리로 옮긴다. 시인은 짧게 말했지만, 시를 따라 가며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처럼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또, 이 시에서 알지 못할 슬픔이 서려 있다. 나그네의 허전한 마음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시기에 지어졌다. 먹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술을 담그기는커녕 끼니도 잇지 못해 풀뿌리를 캐 먹으며 겨우 살아가던 힘겨운 시절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실제의 광경이 아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인심이 넉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믿음이 있던 옛날을 꿈꾸듯 그려 본 것이다. 나그네가 찾아오면 재워 주고, 밥과 술을 넉넉히 먹여 보내던 사람들. 그 시절의 인정을 그리워하며 그려 본 상상 속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인이 말을 아끼고 있는 시는 그냥 읽기만 해서는 알 수가 없다.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이런 시는 다 읽고 천천히 음미하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말이 많으면 언제나 탈이 난다. 말을 아낄 때 그 말이 가치가 있다.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웅변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두려는 사람이다. 좋은 시는 절대로 다 말해 주지 않는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1-15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6> 간결한 것이 좋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물총새가 지은 시   시인은 시를 통해 사물과 만난다. 이전까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던 사물이 시 속으로 들어오면 문득 달라진다. 나와 사물들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그대로 사물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사물들이 품은 생각이 내게로 옮겨오기도 한다. 다음은 조선 시대 시인인 이경동이 지은 란 작품이다.   피곤한 나그네는 턱을 괴고 누워서 (倦客支頤臥 권객지이와) 날이 다 새도록 시를 짓고 있다. (探詩日向中 탐시일향중) 비취새의 울음소리 한 번 들리니 (一聲聞翡翠 일성문비취) 역창의 동쪽에서 울고 있구나. (啼在驛窓東 제재역창동)   사근역은 경상남도 거창에 있던 역 이름이다. 역은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운영하던 여관이다. 암행어사가 마패를 보여 주고 마패에 새겨진 숫자만큼 말을 빌리던 곳도 이곳이다. 말은 금세 지쳐 먼 길을 못 가므로 역에서 말을 바꿔 타고 가곤 했다. 위 시에서 보이는 나그네는 전날 먼 길을 힘들게 왔던 모양이다. 해가 훤히 떴는데도 이불 속에 누워 있다. 턱을 괴고 있다는 것은 그가 잠이 깨 있었다는 뜻이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는 말이다. 그는 아침부터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그는 시를 짓고 있었다. 새벽 이불 속에서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시가 될 듯 말 듯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해가 중천에 떠올라 오는 것도 잊은 채 온통 시에 정신이 뺏겨 있다. 아예 안 될 것 같으면 훌훌 털고 일어나겠지만 금방이라도 될 듯 말 듯 하면서도 막힌 생각이 열리지 않으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바로 그때 그는 창밖에서 우는 비취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시인은 저도 몰래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쪽 창이 벌써 환히 밝았던 것이다. “날 샜다. 빨리 떠나거라. 그깟 시 때문에 낑낑대지 말고.” 비취새는 아마도 시인에게 이렇게 말한 것만 같다. 그 순간 신통하게도 시인의 시도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말았다. 비취새는 물총새다. 파랑새목 물총샛과 물총새속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작은 몸에 큰 머리, 길쭉한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비췻빛의 푸름을 지닌 아름다운 깃털 때문에 푸른 보석인 비취에 견주어졌다. 물고기 잡는 솜씨가 워낙 탁월해서 대장 어부(kingfisher)라는 영어 이름을 가졌다. 낚시꾼이란 별명도 있다. 모두 뛰어난 물고기 사냥 솜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 시는 당나라 때 육구몽이란 시인의 물총새를 노래한 작품이다.   붉은 옷깃 푸른 날개 알록달록 고운데 (紅襟翠翰兩參差 홍금취한양참치) 안개 꽃길 날아와 가는 가지 앉았다. (徑拂煙花上細枝 경불연화상세지) 봄물이 불어나 고기 잡기 쉬우니 (春水漸生魚易得 춘수점생어이득) 비바람도 싫다 않고 앉았을 때가 많구나. (不辭風雨多坐時 불사풍우다좌시)   첫 번 구절에서 ‘붉은 옷깃’을 말한 것은 이 새의 앞가슴이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물총새가 물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봄이 왔고, 물이 불었다.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자꾸만 입을 뻐끔거린다. 비바람에 옷깃이 젖어도 물총새는 꼼짝 않고 앉아 있다. 물고기만 나타나면 곧장 수면 위로 차고 내려 물고기를 낚아채려는 속셈이다. 다음 시는 정약용의 20수 중의 한 수이다.   흰 종이 펴고 술 취해 시를 못 짓더니 (雲牋闊展醉吟遲 운전활전취음지) 풀 나무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草樹陰濃雨滴時 초수음농우적시) 서까래 같은 붓을 꽉 잡고 일어나서 (起把如椽盈握筆 기파여연영악필) 멋대로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沛沿揮洒墨淋漓 패연휘쇄묵림리)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不亦快哉 불역쾌재)   시를 지으려고 종이를 펼쳐 놓고 붓에 먹을 찍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생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붓을 들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붓방아만 찧고 있다. 창밖은 소나기라도 한바탕 오려는지 잔뜩 흐렸다. 답답한 내 마음과 같다. 한순간 천둥 번개가 우르릉 꽝 하고 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소나기가 퍼붓는다. 그 순간 답답하게 꽉 막혔던 내 생각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큰 붓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쓸 겨를도 없다. 마구 붓을 휘두르니 여기저기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스레 뚫린다. 앞서는 물총새의 울음소리가 막혔던 생각을 뚫어 주었고, 여기서는 쏟아진 소나기가 내 생각을 열어 주었다. 시에서 이렇게 바깥 사물이 내게로 와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시 속에서만 가능한 마술이다. 반대로 시인의 행동이 사물에게로 옮아가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박은의 라는 작품이다.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는데 (枕上得詩吟不輟 침상득시음불철) 마구간에 마른 말이 길게 따라 울음 운다 (羸驂伏櫪更長鳴 리참복력갱장명) 밤 깊어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고 (夜深纖月初生影 야심섬월초생영)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리를 낸다 (山靜寒松自作聲 산정한송자작송)   사실 내가 시를 읊조리는 소리와 말 울음소리, 달빛과 솔바람 소리는 아무 상관없이 동시에 일어난 우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낭랑하게 읊은 시 소리를 듣고 마구간에 지친 말은 갑자기 빨리 길 떠나자고 힝힝거리기 시작했고, 달빛도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디밀고 있으며, 마침내 소나무까지도 소리를 내며 내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더라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시인의 눈과 귀를 거치고 나면 모두 시의 재료로 된다. 마구간의 말이 말을 건네 오고, 물총새가 시비를 걸어온다. 소나무도 같이 놀자고 하고, 소나기도 내 마음을 알겠다고 한다. 시 속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시인은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9-16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7> 물총새가 지은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옛 여성들은 참으로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무서운 시어머니와 어려운 남편을 모시면서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래서 한시에는 시집살이에 대한 한시가 적지 않다. 이번에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옛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자.   우리 임을 위해서 누비옷을 짓는데 (爲郞縫衲衣 위랑봉납의) 꽃 기운 때문에 나른하고 피곤해서 (花氣惱憹倦 화기뇌뇌권) 바늘을 돌려 감아 옷섶에 꽂아 두고는 (回針揷襟前 회침삽금전) 앉아서《숙향전》을 읽었답니다. (坐讀淑香傳 좌독숙향전)   이옥의 라는 작품 가운데 한 수인 이다.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아씨의 마음을 잘 그려 내었다. 명주 고운 천 안에 얇게 솜을 두어 임이 입으실 옷을 바느질한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임을 향한 나의 사랑을 담았다. 한참을 바느질만 하려니까 문득 졸음이 온다. 봄날, 창밖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노곤한 봄날이라 낮잠이 쏟아진다. 계속하다가는 바느질이 고르게 될 것 같지가 않다. 까딱하면 바늘로 손가락을 찌를 것만 같다. 새아씨는 잠시 바느질을 멈추기로 한다. 바늘로 실 끝을 한 번 되감아 홀쳐서 옷감을 저만치 밀려 두고《숙향전》을 꺼내서 읽어 본다. 새아씨는《숙향전》을 수도 없이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래도 읽을 때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행복을 되찾는 숙향의 이야기는 힘든 시집살이에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모두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일반 백성들은 무슨 말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 시에서처럼 한글로 쓰인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옛날에는 소설책을 지금처럼 눈으로 읽지 않고 귀로 들었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연극배우처럼 여러 사람 목소리를 내면서 소설을 읽으면, 방 안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바느질을 하거나 새끼를 꼬면서 그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었다. 읽다가 신바람이 나면 소설에 쓰여 있지도 않은 내용을 보태기도 했고,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훌쩍 건너뛰기도 했다. 소설책의 인기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여자가 시집갈 때 가져가는 혼수 품목 중에는 반드시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 소설책 값이 너무 비싸서 살 형편이 못 되는 집에서는 공책을 만들어 소설책을 빌려다가 붓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써서 베꼈다. 이렇게 베낀 소설책을 필사본 소설이라고 부른다. 그 많은 분량의 소설을 다 베껴 쓰고 나면 베껴 쓴 사람은 소설 끝에다 몇 마디씩 베껴 쓰게 된 이유나, 쓰면서 느낀 생각들을 몇 줄씩 써서 남겼다. 다음은《임경업전》이라는 고전 소설의 끝에 누군가가 쓴 글이다.   병오년 2월에 조씨 집안에 시집을 간 딸이 자기 동생의 결혼식을 맞아 집으로 왔다. 《임경업전》을 베껴 쓰려고 시작하였다가 미처 다 베끼지 못하고 시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 동생을 시켜서 베껴 쓰게 하고, 사촌 동생과 삼촌과 조카들도 글씨를 중간 중간에 쓰고, 늙은 아비도 아픈 중에 간신히 서너 장 베껴 썼으니,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아버지가 시집간 딸을 위해 소설책을 베낀 뒤에 써 준 글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딸이 시집갈 때 소설책 한 권도 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동생, 사촌 동생, 삼촌, 조카까지 동원해서 필사가 끝나 책을 매면서 아버지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위의 글을 쓰고 나서 맨 끝에 이렇게 썼다.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인가? 시집간 딸은 이 글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울었을 것이다. 이럴 때 소설책은 단순히 그냥 책이 아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애틋한 정이 담긴 사람의 정표이다. 시집살이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든든하고 힘이 절로 솟았을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뒤에서 자식들의 듬직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다시 이옥의 이라는 한시 한 수를 감상해 보자.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三更起梳頭 삼경기소두) 네 시에는 시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올리죠. (五更候公姥 오경후공모) 친정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誓將歸家後 서장귀가후) 밥 안 먹고 대낮까지 잠만 잘래요. (不食眠日午 불식면일오)   옛사람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그래도 새벽 두 시에 일어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때부터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해야지 닭이 울어 시부모님께 인사할 때 단정한 모습을 보일 수가 있다. 잠이 쏟아지지만, 조금만 더 자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음에 친정집에 갈 일이 있어 간다면, 밥도 안 먹고 그냥 잠만 자겠다고 다짐했다. 얼마나 잠이 부족했으면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예전에는 출가외인이라고 해서 딸은 시집가면 마음대로 친정집에 올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고 형제들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금지옥엽 귀하게만 자라다가 고된 시집살이들 하자니 가족 생각이 더 간절했겠다. 다음은 이양연의 란 시이다.   자네 친정은 멀어서 오히려 좋겠네 (君家遠還好 군가원환호) 집에 가지 못해도 할 말이 있으니까. (未歸猶有說 미귀유유설) 나는 한동네로 시집와서도 (而我嫁同鄕 이아가동향) 어머니를 삼 년이나 못 뵈었다네. (慈母三年別 자모삼년별)   마을 아낙네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두 아낙네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을 것이다. 이 대화를 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옛날의 여성들은 참으로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살림을 혼자 다 감당했다. 그러자니 잠이 늘 부족했고, 겨울엔 얼음을 깨고 찬물에 빨래를 하느라고 손등이 다 얼어 터졌다. 바느질을 해서 식구들 옷을 다 해 입혀야 했고, 농사일도 직접 다 챙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친정은 집안에 혼사 같은 큰일이 있을 때만 몇 년에 한 번 겨우 다녀올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단할 때, 그녀들은 이야기책을 읽었다. 주인공들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을 찾아 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자기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듯 착각을 하며 행복한 상상에 젖곤 했다. 문학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67-17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8>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작성자 옥토끼  
27    황지우 시론 댓글:  조회:150  추천:0  2019-01-31
황지우 시론 ​ ※해체시란? 언어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불신에서 출발하여 기존 전통시의 형태를 파괴한 일련의 전위적 실험시이다. 해체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시의 새로운 흐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들어 박남철, 황지우 등 많은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 ​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인가' 했을 때 '우리'는 원초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러한 간주관적인 자장권을 가리킨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는 말하자면 '의미 공동체'이다.   의미공동체 = 일종의 역사 공동체. 역사를 공유하여 표현, 단어의 의미도 함께 공유한다.   ex) 아, 오월 → 5.18       아, 삼월 → 3.1     문학은 의사소통의 일종이며 이게 되려면 의미공동체(역사,문화 공동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 문학은 '열린 개념'이기 때문에     열린개념? - '한마디로 규정해낼 수 없다'라는 뜻이다. 즉, 공동체가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시란, 하나의 시의 개념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       시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고 남겨 두어야 할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텍스트와 콘텍스트로 되어있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의 기화된 어떤 상태, 어떤 마성을 띤 뽀얀 에테르 상태의 콘텍스트를 통과한다.시적인 것은 이같은 에테르 상태를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의식의 화학적 변화에 의해 주어진다.  나는 시를 쓸때, 시를 추구하지 않고 '시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것들의 관계를 나는 응시한다.     시적인 것= 시가 될 수 있는 것들. 이 세상의 모든 대상이 시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시적인 것들이 될 수 있고 그것들의 관계를 주시한다.  시적인 것 A와 B의 관계를 중시한다.       나에게 시는 '시적인 것'의 '보기'(창조가 아니다!)에 의해 얻어진다.   시적인 것은 창조가 아니다.원래 있는 것들의  관계를 보고 시를 창조한다.    그러면 시적인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 그것은 모든 그때그때의 시속에 있다. … 시적인 것의 포착은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까지의 포착이기 때문이다. 내용 자체가 형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때그때의 내용이 그때그때의 형식을 가져다 준다.   변한 내용이 형식이다. ex) 해체시.   시가 자기 표현, 즉 자기 노출로써 얻어졌던 낭만주의자들에게 시적인 것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느낀 성질로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시적인 것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속사정을 자세히 보면 시적 인 것의 개념 자체가 주관과 주관 사이에 열려 있는 공통감각, 즉 상식의 배관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나의 시적인 것이 그의 시적인것과 일치할 수 있을까?   낭만주의자들에게 시적인 것은 '주관적'인것. * 그러면 주관을 버리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은?   나는 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혹은 느끼고 표현했는데 읽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 실패한 시들이 대개 그렇다. 하지만 나 한사람만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시적인 것으로 느껴주지 않는 시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없는 이유는 그와 같은 시적인 것이 없기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비시적인 것으로 혹은 덜 시적인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시적인 것으로 느껴줄 몇몇 사람은 이 세상에 꼭 있기 때문이다. 시적인 것의 수준과 감수성에 따라 시적인 것을 느낀다. 한 개인의 피부 속에서만 필연적으로 시적인 것은 그것의 인식론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이유에서 무의미하다.   나만 이해되는 시는 무의미하다. 시란 의사소통의 일종이다. 간주관성= 완벽한 주관주의 ,극단적 객관주의 둘다 아니다. 주관과 주관사이의 공통감각. 이것을 시 쪽으로 가져오는 것.   읽히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 작품은 무의미하다.   ↑황지우의 시에 대한 생각.    어느 경우든 문학은 현실에 이미 참여되어 있다.   황지우는 문학은 사회속에 참여 되어있다고 본다. 사회, 정치 이런것들의 참여. 문학은 순수해야! 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참여이며 문학은 사회성을 띠어야한다.     매스컴은 반커뮤니케이션이다. 인간의 모든것을 부끄럼 없이 말하는, 어떻게 보면 좀 무정할 정도로 정직한 의사소통의 전형적인 문학은 따라서, 진실을 알려야할 상황을 무화시키고 있는 매스컴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서 존재한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것, 표현 못하게 하는 것을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그것에의 도전으로부터 얻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매스컴 = 일방적으로 전해질뿐. 표현할 수 없거나 금지된 것을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시에서, 말하는 양식의 파괴와 파괴된 이 양식을 보여주는 새로운 효과의 창출을 통해 이 침묵에 접근하고 있다. …일상의 거의 모든 프로토콜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아주 '낯설게'느끼도록 하는 효과에 나는 치중한다.   내용이 곧 형식이다, 파괴를 양식화 한다.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자 진단이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그 징후를 예시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그쳐야한다. 그래서 독자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징후의 내적 의미를 '자발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 할 수 있게 해야한다. 바로 이것이 해방을 예시하는 방식이다.      문학은 사회의 징후를 보여줄 뿐. 혁명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시는 혁명의 도구가 아니다.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야한다.   (* 이게 민중시들과 엇갈리는 부분!! 문학은 사회적이다! 라고 했지만..80년대의 민중시, 민중문학을 했던 사람들(박노해 등)과 엇갈리는 부분이다. 문학은 혁명의 관여가 아닌 그 조짐에 관여하는 것이다. 김남주와 박노해는 시 자체가 도구라고 생각하고 시인보다는 혁명가라는 정체성이 더 컸음. 그들은 조짐이 아니라 시는 직접적으로 혁명에 나서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 황지우가 사회적인 어떤 것들을 중요시하고 시를 썼지만 결국 민중시인들과 엇갈려 나갈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김남주의 경우 민중들만 일어세울 수 있다면 시는 바로 쓰고 없어져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음.)   [출처] 황지우 시론 정리|작성자 최고민혁 [출처] [스크랩] 황지우 시론 정리|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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