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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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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김규화 시론 댓글:  조회:624  추천:0  2022-10-11
        전율, 그 감동의 이중적 거리        -김규화 시인의 소통의 도구와 통로                                          엄창섭(관동대 교수, 국제펜클럽한국본부고문)          1. 삶의 구조와 빛나는 서정의 지평   견고한 고독의 김현승 시인에 의해 1963년 과 1964년 , 그리고 1966년 이 『現代文學』에 추천됨으로써 우리 문단에 공인된 김규화는 1940년 2월, 전남 승주의 출신이다. 1960년대 초부터 「燈문학」, 「零度」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7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땅의 ‘현대시의 길닦이·길잡기·길트기’를 이끄는 월간 『詩文學』의 발행인이다. 일찍이 첫 시집의 서문에서 구상이 ‘드라이 와인의 맛처럼 건조하다.’라고 그의 시를 지적한 것은, 세류의 시편들에 견주어 시인의 삶이나 세상에 놓여 진 갖가지 사물에 대한 인식의 독자적 진실과 정직성, 그리고 사회현상의 변이에 까닭 없이 분노하거나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묵언의 교시를 추구한 시인의 품격(品格)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첫 시집 출간 직후부터 “그를 향해 흘리는/ 물 같은 애정/ 그를 향해 쏟는 향그런 미움(이상한 기도)”의 발성으로 따뜻한 정신기후를 조성하며 인간소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열중한 김규화 시인의 시작 행위는 눈물겨웠다. 그 자신의 시편에 풀어낸 ‘삶의 구조와 빛나는 서정의 지평’은 “수억 년 우주 안에서 보니/ 인연 중의 인연이라,// 하느님이 내려다보시니/ 좋으시다(因緣)”라는 시적 상상력의 확대는 서정적 시학에서 연유한다. 까닭에 모두(冒頭)에서 전제할 사항이라면 그만의 상상과 추상에 의한 내면인식에 침잠되어 빛나는 시적 치유를 위한 고뇌야말로 갈증의 시혼(詩魂)을 적셔주는 감동의 회복이기에 엄숙한 생명외경과 결부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날의 탐색과 각고의 노력으로 카타르시스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그만의 개아적인 느낌, 색깔, 체취가 선명한 시적 형상화에 관해 ‘공간과 시각, 그리고 시적 기교성’을 해체하고 재창조하는 집념은 의미 있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모름지기 음울한 이기주의로 순수성이 매도되어 미적주권을 확립하기 힘겨운 혼돈(카오스)의 시간대에서도 김규화 시인은 절대 고독 앞에서도 삶의 순간을 ‘푸른 식물성 언어를 사용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갈등·구조 속에서 소통의 도구로 교신하는 그 나름의 비법을 터득하고 있다. 새삼스런 지론은 아니지만, 김규화 시인은 ‘생명의 기호로 공간을 미학적으로 장식하는 시적 기법’에 뛰어난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존재이다. 삶의 일상에서 그 자신이 틈틈이 정신적 부산물을 형상화한 시편들은 보다 엄격하게 유의미한 것으로 적확, 격렬, 구체적, 복합적일 뿐 아니라, 리듬과 형태의 표징을 기호화하고 있다. 특히 그의 시편에 수용된 정직성은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는 비법과 접목되어 그만의 저력과 독자의 관심을 끄는 역동성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의 생생한 일탈의 정신은 예술적인 질감과 터치의 대비로 수용된 시적 인자(因子)로 감성에서 배어나온 애련(哀憐)의 눈물이기에 신선한 감동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단, 을 통해 “일상의 관찰과 실존적 언어(김시태), 단절과 혼돈의 세계(김열규), 혼의 깊이, ‘안 보이는 나라’로의 여행길(홍신선), 존재의 심연 그 시간성과 공간성의 조응(이상옥), ‘無明을 밝히는 등불의 미학(신규호)” 등으로 다양하게 논의된 시적 이론에 접근할 수 있다.    시집가는/ 죽음은// 곱기도 하지/ 꽃은/ 말라서// 채혈(採血)환자같이/ 부르르 떨고//                 -에서   여기서 생명의 모형이며 총합인 본래적인 본향(本鄕)의 개념은, “여위어 가는 눈짓들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상큿한 머언 고향의 내음새(가을의 햇볕에서)”를 통해 인식되는 자연회귀와 연계된 영원한 모성에서 비롯된 깊은 애정의 드러남에 의한 행복한 공간이다. 일상의 소재를 보편적 정서에 담아 형상화 시킨 김규화 시인은 이처럼 ‘죽음’을 삶의 새로운 이행인 ‘시집’으로, ‘상여’에 식물성의 극치인 ‘꽃’을 접목시킨 ‘꽃상여’로 그만의 시적 매력을 이채롭게 빚어내고 있다. 까닭에 그의 시혼은 너무 맑고 투명하게 빛나 항상 칙칙함에서 빗겨나 있다. 그의 서정적 미감이 가을 햇빛을 메타포 한 에서도 ‘바알간 등불’로 인식되고 급기야는 ‘나의 하느님’으로 변형되어 한 순간 빛을 토해내기도 한다.     북극의 빙산을 쪼아서 만든/ 자잘한 얼음칼이다// 허공을 가르며 내려오는/ 따끈한 전열(電熱)이다// 건물에 부딪쳐 깨어지는/ 다이아몬드 속살이다// 땅위에 내려앉아 포르락  거리는/ 한 무리의 참새 떼다// 곱게 물든 단풍잎 갓을 단/ 바알간 등불이다// 고개를 치켜들고 맞이하는/ 단풍잎 사이 나의 하느님이다//           - 전문 서정시 쓰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간대에 한국현대시사에서 ‘가장 표준적인 서정시의 텍스트’가 되는 김규화 시인의 시집 『평균서정』(시문학사, 1992)은 혹자의 지적처럼 장정(裝幀)도 컬러풀하지만, "맑은 것 차가운 것들을 통해서 감각의 깊이 혹은 혼의 깊이를 더하려 한 가을 시편과 마찬가지로 김규화의 마음의 움직임은 이미 그 안 보이는 나라로의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대상화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앞서 말한 이야기 시들을 통하여 이웃까지 대상화되고 있기에."라는 홍신선의 ‘시상을 자르고 토막내고 확대한 적확한 시평’은 가희 가편(佳篇)이다.   이 같은 시적 상황의 실제적인 해석으로 따뜻한 영혼을 지닌 사제로서 다정다감한 김규화 시인에 대한 시정신과 작품에 대한 분할과 통합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어두운 삶의 질곡 속에서도 가시적인 모든 물상이 끝내 소멸되지만 창의적인 예술가는 그의 이전 작품에 결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전통의 실타래를 다시 꼬아내면서 계속해서 다음 작품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을 부단한 몸짓으로 우리 앞에 명증해 보이는 성실함을 ‘감춤과 미끄러짐의 시학'이라는 담론을 통해 교시하고 있다. 모름지기 우리는 구조적으로 암울한 사회현상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체험해 왔다. 그러나 자명한 것은, 미래의 21세기를 구축하는 힘은, 예술문화에 대한 안목의 확장이며 시적 상상력의 자유로움이기에 거부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김규화 시인은 『관념여행』의 자서(自序) 격인 서 “나의 이런 의식은 안으로 둥지를 틀고 관념의 알을 낳는다. 나의 시는 주로 의식의 넓은 바다에 빠져버린 그 무엇을 찾는 작업이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 점에 비추어 시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밝은 그 자신이 ‘의식의 바다에 침몰하는 시’라는 부제는 그만의 체취와 느낌을 물씬 풍겨주어 이채로운 착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철책문은 오늘도 열리지 않고/ 나를 구경하러 온 사람도 없다/ 나는 더욱 더 심심하여지고/ 얻어먹을 과자는 한 톨도 없구나//               ―에서   특히 김규화 시인은 “조련사가 나의 힘을 조금 빼 버리고/ 나의 목젖도 수술해 버렸다./ 단지 나는 땅에다 배를 대고/ 날마다 졸리는 눈 감고 있다(기(氣)”를 통해 아직은 격리되고 닫혀 진 삶의 일상에서 졸리는 눈 감고 있는 현상에서 문득 기(氣)를 연상하고 발현시킨다. 때문에 정종진의 지적처럼 그에게 있어 시의 정체성(identity)은 “기가 응축되는 그릇”이거나 “절망 속에서 키운 꽃이고 열매”로 선명하게 밝혀지는 것들이다. 한편, 홍신선이 김규화 시인의 작품세계를 로 해석하며, 전통적인 서정시만으로는 독자나 시인 모두가 성에 만족해하지 않는 것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점에 견주어 황동규의 극서정시, 일부 민중 시인들의 서정서사시, 서술시 등은 모두 이 같은 추세의 텍스트적인 모형에 해당한다. 물론『평균 서정』에 수록된 몇 편의 이야기 시편들은 평균인들에 관한 일종의 사적인 기록물이면서 이들이 생산한 우리사회의 결과물임은 수긍해야 할 타당성이 따른다.   여기서 안철수의 기술을 빌리면 ‘의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김규화 시인의 경우, 또 비록 시 선집에서는 제외된 또 다른 그의 시 “사는 것은 흙을 파는 것/ 죽는 것은 까마귀가 우는 것(죽음의 서장)”에서나 불교의 중도론 적인 관점에서 형상화 시킨 “나, 여기서/ 사소한 일로/ 기뻐도 슬퍼도/ 당신에게 모르는 일//...생략.../ 우리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 되는 것이다(永劫論)”를 통해 시인의 자아가 자기성찰에 도달할 즈음, 자아를 통렬하게 괴롭히는 현실의 곤혹을 응시하는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접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한 편의 시는 존재 내면의 증상(症狀)이기에 사회학·심리학·음악학 등에 비판이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미학의 발전을 역사진화와 진리추구의 중요 요소로 역설한 아도르노(Adorno, Theodor Wiesengrund)는 서정시의 죽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질과는 상이하게도 양적 진화라는 측면에서 지금도 여전히 시의 모태(母胎)인 서정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서정성은 시의 본질적인 인자(因子)로서 인간의 내면의식의 심층에서 다행스럽게도 공명된 삶의 비의(秘意)를 함축해 왔다. 기실 김규화 시인은 세 번째 시집 『관념여행』의 자서에서 한 사람의 충직한 독자인 우리들은 그의 시작품에서 허무와 회의, 방황과 모순, 고통과 불안을, 그리고 그 자신과 그의 삶, 그리고 그를 에워싼 세계 등 단절과 혼돈의 사슬로 엮어진 세계에 대해 투명하고 깨끗한 생명적 기호로 노래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손톱에도 까만 활자를 묻혀 오고/ 손가락은 노상 오물거리고/ 손가락은 노상/ 완강한     집게가 되고/ 엉거주춤 구부린 둥그런 모습,/ 어둑한 그의 생애를/ 똑바로 보려고 기지     개를 켠다/ 세상은 이렇게 정직하여서/ 그래서 성공한 눈물이라며......//                -에서   위의 시편 에서 피상적으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한숨이 묻어나는 음울하고 눅눅한 일상적 삶의 고통이다. 그러나 한 순간의 격정을 갈아 앉히고 물안개에 가려진 사물의 실상, 즉 본체를 탐색하고 응시하면 비록 세월의 인고 속에서도 늙은 인쇄공이 자신의 천직을 강직한 자아 의지에서 비롯된 정직한 삶을 반추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김규화 시인은 모처럼 네 번째의 시집 『평균서정』에서 평균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따뜻한 감성적 시선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특히 김규화 시인에게 고향이란 “이미 저승으로 가신/ 아주 옛날 광주의 어머니들이/ 그 품을 크게 열어 놓고/ 젖가슴같이 구부러져 있는/ 그 품을 크게 열어 놓고/ 높은 봉우리 낮은 봉우리 없이/ 너희들도 평등하여라 하고(무등산)”에서 확인되듯 어머니의 풀어놓은 젖가슴같이 언제든 안기면 포근함과 넉넉함으로 감싸주는 곳, 파랗게 유년이 자라는 처소이다. 비록 생득적 체험의 공간인 고향은 시대 상황으로 인해 상실한 공간이지만, 의식 속에 항시 살아 있고 자리해 있다. 일반적으로 고향의 서정적 양감(量感)은, 바로 모태이면서 미래를 꿈꾸는 자연 공간임은 물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환기(喚起)시켜주는 생명적인 원형으로 풀이된다. 까닭에 오늘의 우리가 공감하는 고향 회귀의 상징성은, 증오나 이기심이 자리하지 않는 처소, 세상적인 고뇌와 갈등을 말끔히 치유시키는 모성으로의 동질성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멀어가는 가을』 시집의 자서를 통해 때로는 살 저미는 시인의 참담함과 통분에 공감할 것이다. “시를 쓰면 무엇 하나 또한 시집을 내면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십 세기를 누려오던 활자 매체가 그 영향력을 잃고 그 자리에 영상 매체가 들어서고 있다. 이제,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인간 정신의 기본 에너지가 소멸되고 반면에 미술, 음악, 무용, 영화 같은 시각 예술, 무대 공연 예술이 판을 치면서, 사고하는 정신활동이 인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중략... 그런데도 나는 시집을 낸다. 이런 때일수록 더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각오와 함께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나의 시가 정서적 구원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이와 같이 김규화 시인의 묵시적 항변처럼 세상의 흐름에 동조하지 말고 부단히 내적 충만인 사유(思惟)를 통해 ‘전통의 실타래를 다시 꼬며, 출어를 위해 찢어진 그물코를 다시 깁는 치열한 시인의 혼 불’을 통해 소통의 도구인 생명의 기호로 미적 주권이 확립된 시 쓰기에 몰두하여야 한다. 2%의 염분이 오염된 바다를 정화시키듯 날 푸른 시 정신을 지니고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한 사람의 병든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엄숙하게 시대적 소임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54    상징과 기호학 / 침입과 항쟁 / 변의수 댓글:  조회:718  추천:0  2022-02-21
상징과 기호학 / 침입과 항쟁 변의수       1. 상징과 역동성    상징은 자동사이다. 개념적 이미지가 아닌 역동적 이미지로서의 실체이다. 기표의 기호학과 기의의 해석학은 타동사로서의 인위소이지만 상징은 스스로 존재해나간다. '존재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존재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세계이다.  나는 상징을 '제3의 논리'라고 한 바 있다. 에코(1932-) 역시 "상징적 활동은 이미 알려진 세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아내도록 하는 것. 상징은 사고의 번역이 아니라 "이라 했다. 에코는 이 말을 『상징적 형식들의 철학』(카시러, 1923)에서 보았다고 했다.  카시러(1874-1945)는 "기호란 생각에 단순한 우연적 표피가 아니라 그 생각의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엄밀하고 정확한 모든 사고는 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에 의해 지지된다"고 하였다.  불우했던 피어스(1839-1914)는 기호학자 이전에 철학자였다. 소쉬르(1857-1913)의 언어학적 기호학(semiology)과는 달리 그는 세계에 대한 탐구자였다. 그런 피어스의 기호학(semiotics)은 세계에 대한 인드라망의 연결고리이다. 세계의 연결고리들의 움직임, 부트스트랩 이론의 한 모형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세계는 정지한 것이 아니다. 정지한 세계 즉 개념으로의 환원은 고립적 '단순 정위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물리학자들은 부트스트랩 이론에서 보듯 세계는 결코 하나의 근본적 모형으로 환원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semiology가 아닌 semiotics를 기호학의 혁명으로 채택한 1969년 파리 '국제 기호학 연구기구(IASS)의 결정은 적어도 그들로선 옳았다.  그러나, '기표학'으로서, 혹은 '상징학'의 종속 학문으로서의 한계… 영원한 반쪽, 다시 말해 상징을 증명하는 하나의 징표(token)로서의 운명을 지닌 학문이었음을 예감하지 못한 것 같다.  표상자로서의 시인이나 의미 생성자로서의 비평가는 하나의 세계로서의 자신을 자각해야 한다. 세계에서 피어나는 사과나무가 세계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이원성은 언제나 하나(모순)의 제거(투쟁)을 요청한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하나가 아닌 두 개이다. 그 한 쌍의 눈으로서 하나를 인식해야 한다. 비 상보형의 이원적 모순, 그것이 인간이라는 '근본적 실체'로써 세계에 드러낸 비극인 것이다.  인간은 결코 세계의 '근본적 실체'가 아니다. 폐쇄된 자아의 눈으로는 인간들 스스로 궁극적 실체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세계는 결코 근본적 하나의 모형(인간)으로 환원되어지지 않는다.  상징으로서의 '세계'는 기호학으로서의 기표와 해석학(hermeneutics)으로서의 기의로 분리되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상징에 대한 인간의 두 눈은 분리된 하나로써 바라본다.      기호를 말하고, 의미를 발견케 하는 지식과 기술의 총체는 이라 부르고, 기호소의 식별, 생성의 요인, 그 연결망 인식 기술의 총체는 기호학이라 명명…                                                                                              -푸코, 『말과 사물』      그러나, 상징은 움직이는 세계이다. 결코, 정지한 세계의 모형같은 것이 아니다. 상징은 양식르로서의 보조관념(vehicle)이 아니라 움직이느 바퀴로서의 vehicle이다. 책상의 내부 세계는 무수한 진동으로 형태를 유지하며 책상 이후의 세계로 변화해 나간다. 책상은 결코 정지한 것이 아니다.  상징은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의 징표이다.  우리가 개라는 짐승에게 사슬을 달고 목걸이를 씌우는 건 편견이다. 그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의 징표이다. 세계를 '인간'이라는 '근본적 실체'로 환원하려는 의식을 지니지 않은 그것은 자신 스스로 세계의 징표로서 존재해 나갈 뿐, 인간은 두 개의 눈을 가진 슬픈 의식자이다.   2. 기호학의 침입과 수사학    생물학자가 아닌 칸트(1724-1804)는 놀랍게도 『순수이성비판』에서 "각각의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을 만들어내는 (그리하여 각각의 부분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기관으로 생각해야한다… 란 조직화되어지는 동시에 또한 자기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생태학이나 시스템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부분'은 '부분' 저 너머의 세계로 생성되며 자신을 우주화 해나간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고립된 부분은 생성으로서의 존재 뒤편으로 소멸된다.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학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수학, 물리학의 상호 불소통을 상상할 수 없으며, 철학 · 언어 · 심리 · 생물 · 생명 · 인지학이 별개의 영역으로 고립된 그런 끔찍한 상황을 생각할 수 없다. 시와 언어 · 기호 · 철학은 오늘날엔 전체적 상황으로 조직되고 있다.  우리는 그간 기호학이 기생적 학문이라는 폄하를 받을 정도로까지 제반 학문에 침착하여 생명을 키움을 목격한다. 뿐 아니라, 기호학은 마치 외계의 생명처럼 자신의 숙주에게 놀라운 힘을 불어넣어 주기까지 한다.  라캉(1901-1981)의 무의식의 고정점(point de capition)을 공박한 데리다(1930-)의 수사학은 노련한 수사학의 방식이었다. 그는 철학자라기보다 실험적 기호학자로 보는 게 옳을지 모르겠다. 라캉의 떠도는 기표가 그러하지만, 데리다의 '차연'은 소쉬르의 언어학적 차이 개념을 발전한 것이다. 데리다는 소쉬르의 무한 미분적 차이의 기호론과 퍼스의 진행 개념의 역동적 기호학을 연합했다.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수적 기호학을 적용, 무의식을 추적했고, 크르스테바(1941-)는 정신분석에 기호학을 접목, 기호분석이론이라 명명하며 철학, 사회학, 언어학의 접목을 시도했다. 바르트(1915-1980) 역시 기호학을 통해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다.  기호학은 문학의 내부 아니, 프로프, 바르트, 그레마스(1917-1992) 등의 담론의 분석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수사학과 시적 상징의 문제에까지 주사위를 꽂았다. 사실, 수사학은 기호학의 본향이자 서식지였다. 전통과 통시성을 중시하는 에코의 기호학은 수사학의 비유법 개념들을 흔들어 놓았다. 아니라면 그것은 잠을 자고 있었거나 고집과 독선이다.  수사학의 전통을 둔 기호학은 환 · 제 · 은유, 알레고리, 상징 모두 '상징'이라는 속 범주의 종으로 본다(비유법의 '상징'은 협의의 상징).  기호학과 철학 역시 상징 개념이 있으나 현대의 수사학 · 시론과는 사뭇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자연언어, 라이프니츠(1646-1716)와 피어스에게는 수사학적 언어 역시 상징이었다.  시를 최고의 상징 형식으로 본 칸트 역시, 자연을 신의 흔적, 계시로 본 스베덴보리(1688-1772)의 사상을 수용하는 쉘링(1775-1829)과는 상징 개념의 폭이 다르다. 수사학은 그 영역을 더욱 엄격히 제한한다.  학문에 있어서 개념의 불일치는 바벨의 저주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학문간 유기적 호환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문학 외부의 이론, 개념들이야 그들의 것이나까,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의 덮개마저 가리는 격이다.  오늘날 제반 학 · 예의 장은 상호텍스트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의 진정한 주체성은 제국적 학문들의 정체성을 정확히 투시하고 제어함으로써 지켜질 수 있다.  기호학이 문학의 '상징' 세계를 분석해 들어올 때 과연 그들의 경계역은 어디서 이뤄질까. 기호학의 조작적 해체와 분석 · 조립은 그 주도권을 손쉽게 넘겨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에코의 발언이다.       사실, 낭만주의 마학은 언어의 시적 사용에서 특정한 의미들을 전달하는 기호학적 전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예술작 품이 생산할 수 있는 효과만을 기술할 뿐이다. 낭만주의 미학은 그렇게 함으로써 (미학적 텍스트들에게 의심할 여지없이 특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호 현상의 해석이라는 개념을 미학적 즐 김의 개념으로 단조롭게 해버린다.                                                             -에코, 『기호학과 언어철학』      학문간의 항쟁으로 변증적 도모를 꾀할 수는 있겠지만 그 혼란은 크다. 무한 변이의 유전자를 지닌 기호학이란 변종의 생물체 그들의 분열적 전략은 기존의 토대와 주춧돌을 모조리 부식시킨다. 그것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개념의 혼미와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한다. 문학이 자신의 지반을 튼튼히 하고 화려한 건축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기호학이란 외계의 생물을 끌여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호학의 대상이 기호가 아니라 기호의 작용과 활동인 세미오스'라는 현대 기호학의 지표는 의미심장하다. 첫째, 그들이 야기한 개념 혼쟁의 책임으로부터 이미 발을 빼고 있다.(아직 상징과 기호의 혼쟁에 대한 책임을 질타한 문학이론가조차 없지만). 둘째, 보편적 상징 세계로의 의미론적 탐구를 의미한다. 물론 그들은 기표망의 탐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상징의 의미역을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사학은 기호학의 관점에서 정태적 기호의 계열적 분류와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수사학에 기호학이 침윤한다면 화용론적 측면에서 먼저 기생처를 삼아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곧 언어철학의 문제로 다가갈 것이며 사실, 그러할 때 수사학은 더 이상 불모의 땅의 망령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기호학자들의 작업이기 이전에 수사학의 작업 영역인 것이다.  수사학은 형식적은 분절성과 정태성을 고색창연한 전통의 율법으로 생각하는 독선에서 깨어나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과 현장성을 얻도록 스스로의 껍질에서 깨어나야 한다. 화용론적 입자에서가 아닌 수사학은 죽은 귀신 혹은 사전 속에 새겨놓은 문자의 화석에 다름 아니다.     3.상징의 해부와 디나미스    수사학은 비유법의 상징을 협의의 상징으로, 직유, 은유, 환유 등을 광의의 상징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수사학은 기호 · 언어 · 신화 · 심리 · 철학 등 여타 분야의 이론과 호환된다.  상징이 언제나 신, 궁극적 실체, 형이상적 세계 등을 암시하는 것도 아니지만, 비유법의 상징 양식은 수사학자들이 얘기하는 그런 형이상적 세계를 제대로 지시하지도 못한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수사적 상징에 대한 과욕의 투사이다.  구, 절 범위 내에서의 수사적 '상징'은 단편적 이미저리의 문채(文彩)적 기능에 그칠 뿐 형이상적 실체의 지시나 암시가 어렵다. 그들의 의미하는 원대한 목적의 상징은 적어도 연, 혹은 시편 전체를 통해서나 가능하다. 그것도 극단적 추상 상징의 기법으로나 가능할 것이다.  여타 비유법을 상징으로 규정할 경우 그들은 자연스레 광의의 상징으로 편재될 것이며, 그럼으로써 다른 분야와의 상징 개념과 접근이 가능해진다. 물론, 기호학의 기호는 레비 스트로스(1908-1991)나 카시러와 같이 상징의 범주에 귀속시켜야 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수사학은 풍요한 이론적 배경을 갖게 된다.  서두에서, 상징을 생성적 과정의 자동사라고 했다. 그것은 의 실존성을 뜻한 것이다. 우리는 개념적 분석에 따른 '단순정위 오류'의 위험성을 알지만, 이제 상징의 추상적 분석을 제시할 필요를 느낀다.  은 제작자, 수용자, 표상체, 대상계의 연결망으로 생성된다. 연결망의 과정적 관계는 제작자/표상화 이전, 표상체/표상 현전, 수용자/표상화 이후, 대상계/초월적 현전이며, 이것이 모두 충족될 때 은 이루어진다.  네 요소의 탐구 대상은 제작자/정신계, 표상체/이미지, 수용자/의미생성, 대상계/현전화이다. 부연한다면, 정신계/자연적 의식, 이미지/해석의 열쇄, 의미/역동성, 대상/실행이다.  또한, 표상체의 형성은 문채적 상징과 맥락적 상징으로 구분되며 전자는 (통상) 1개의 시어 · 구 · 절, 후자는 적어도 두 개의 절 이상, 연, 혹은 온전한 시편으로 이루어진다. 표상체의 구성은 자의적/자연적 방식이 있다. 전자는 헤겔이 찬양한 인위적 기호로서 자연 언어 · 수학적 언어 등이며, 후자는 '유사 동질'성 구성의 시예술의 양식이다.  상징소의 해부학적 나열은 인간소 화학 분자식의 배열 따위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그 유기적 조직화는 놀랍게도 살아 움직여 초월적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래서 상징은 디나미스로서의 자동사인 것이다.  어쩌면, 상징 양식의 문제나, 표현적 이미지, 그 암시적 대상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작 의미로운 것은 현존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관심, 그에 대한 사유의 촉발, '제3의 논리로의 이행'이다. 그것은 '상징'이란 용어의 표면이나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시인들의 정신과 독자들의 영혼에 내재한다.  상징은 우리의 혼을 움직인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존재에 관한 참된 통찰에 이르게 한다.                                      나무를 바라볼 때 나는 곧 나무가 아닌가?                나무를 생각하는 나는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지 않은가, 녹색으로 빛나고 있지 않은가.                                                                     -「꿈」 부분      왜,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에 있는 걸까. 왜, 나는 혼자이면서 모두와는 떨어져 있는 걸까. 나는 걷고 있지만 나무는 저곳에 서 있다. 어디 그토록 큰 틈새가 있어서 우리는 가벼운 톱질에도 쉽게 갈라지고마는 것일까!  이것은 내가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은 거리에서 같은 생각에 골몰하기로 한 것이다.  나무를 바라볼 때, 나는 나무가 아닌가,  왜,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에 있는 걸까.  왜, 우리는 하나이면서 서로는 나뉘어져 있는 걸까?   , 2004 가을  
53    글쓰기의 0도 - 롤랑 바르트 댓글:  조회:1745  추천:0  2020-01-04
글쓰기의 0도 - 롤랑 바르트       영어단어해석   도그마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 데크닉;데크니크, 수법, 기술 아우라;예술작품에서 흉내낼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다른것과 구별되는 개성적분위기. 파롤(빠롤); 소쉬르의 언어, 말, 가변적개인적 랑그;체계속 언어, 구조적 사회적 메커니즘;어떤 대상의 작동원리나 구조 그래픽;그림이나 사진을 위주로 편집한 지면이나 인쇄 물 시퀀즈; 시간,장소, 사건으로 한개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단위   사유는 어떤 무속에서 말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솟아오르는것 같았는데, 이런 무로부터 출발한 글쓰기는 점진적인 응결의 모든 상태들을 통과했다. 그 다음으로 그 만듬의 대상, 끝으로 파괴의 대상이였던 글쓰기는 오늘날 마지막 변신인 부재에 도달하고 있는것이다. 10   언어체는 한시대의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규정들 및 습관들의 조직체이다. .. 언어체가 작가의 파롤에 어떤 형태를 주는것은 결코 아니며 자양을 주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진실들의 추상적인 원과 같은것이며, 이원을 벗어날 때 비로소 밀도 있는 고독한 언어가쌓여지기 때문이다. 15   글쓰기는 언어를 넘어선 지점에서 언제나 뿌리내리고 있으며, 하나의 선이 아니라 싹처럼 전개되고 , 어떤 본질을 나타낸다. 어떤비밀의 위협인 그것은 반소통이며 위압갑을 준다 23   지식인의 이런 글쓰기들은 불안정하며 여전히 문학적이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무력하게 참여에 대한 강박에 의해서만 정치적이 기때문이다. 요컨대 그것들은 여전히 윤리적 글쓰기들이며, 그속 에서 필자(우리는 더이상 감히 작가라고 말할수 없다)의 의식은 집단적구원의 안심시키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30   중국전통을 보면 예술은 현실의 모방에 있는 완벽에 다름 아니다… 례컨대 나무로 만든 이 호두는 그것을 탄생시킨 예술을 나에게환기시키겠다는 의도를 어떤 호두의 이미지와 함께 전달해서는 안된다. 소설적글쓰기가 수행하는것은 그 반대이다. 35   언어는 당연히 그자체의 파괴를 향하고있기 때문이다. 38   모든 시는 자신을 표현하는 그 방식이 어떠하든지 본질의 상태로 , 힘의 상태로 존재하고있는 잠재적산문의 장식적 암시적 혹은 과장된 방정식에 불과하다… 시적언어와 산문적 언어는 그것들의 타자성을 나타내는 기호들자체가 필요없을만큼 충분히 분리되여있다… 고전주의사유는 지속이 없으며 고전주의적시는 자신의 기교적배치에 필요한 사유만을 지닌다. 그 반대로근대적시학에서 낱말들은 일종의 형식적연속체를 생산하며 이 연속체로부터 낱말들 없이는 불가능한 지적 혹은 감정적밀도가 조금씩 비롯된다. 따라서 말은 보다 정신적인 배태의 빽빽한 시간이며, 이 배태속에서 ‘사유’가 준비되고 낱말 들의 우연을 통해서 조금씩 자리잡힌다.따라서 의미작용의 무르익은 열매를 떨어뜨리게 되는 이와같은 언어적기회는 시적시간을 상정하는데, 이 시간은 더이상 제작의 시간이 아니라 어떤 기호와 어떤 의도의 만남이라는 가능한 모험의 시간이다. 근대적시는 언어의 모든 구조를 포착하는차이를 통해서 고전주의적예술과 대립되며, 이 두시사이에는 동일한 사회학적의도이외에는 다른 공통점을 남기지 않는다.43   고전주의적연속체는 밀도가 동등한 요소들의 연속인데, 이 요소 들은 차안된것같은 개인적의미작용에 대한 모든 성향을 제거하고 동일한 감각적압력을 받지 않을수가 없다. 시적어휘 자체는 창안이 아니라 관례의 어휘이다. 그속에서 이미지들은 창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관습을 통해 고립되지 않고 함께 있음으로써 특수하다. … 고전주의적인 기교적수식은 낱말들이 아니라 관계들의 기교적수식이다. 그것은 창작의 기교가 아니라 표현의 기교이다. 44   낱말은 무한한 자유로 빛을 발하며 불확실하고 가능한 수많은 관계를 향하여 빛날준비를 하고있다. 고정된 관게가 무너짐 으로써 낱말은 어떤 수직적인 기회만을 지닌다. 그것은 의미들, 반사들, 잔상들로 이루어진 어떤 총체속에 잠기는 덩어리이고 기둥이다. 요컨대 그것은 서있는 기로이다. 여기서 시적인 낱말은 직접적인 과거가 없는 행위이고, 그것에 결부된 모든 기원들의 반사들이 드리우는 두터운 그림자만을 제안하는 주변없는 해위이다… 각각의 시적인 낱말들은 예기치 않은 대상이고 , 언어의 모든 잠재적가능성들이  날아오르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특별한 호기심, 일종의 신성한 식도락을 가지고 생산되고 소비된다. 대문자 낱말의 이와같은 절대적갈망은 모든 근대적시에 공통적인데, 시적인 말을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말로 만든다. 그것은 구멍들과 빛들이 가득하고 , 지나치게 풍부함을 주는 기호들과 부재들로 가득한 담화를 확립하지만. 이 담화는 의도의 예상도 연속성도 없으며 따라서 언어의 사회적기능에 매우 대립되기때문에 어떤 불연속적인 말에 단순히 의존하기만 해도 모든 고유한 초자연들의 길이 열리게 된다. 46-47   근대적시는 언어의 관게를 파괴했고, 담화를 낱말들의 정거장으 로 규결시켰다. 이런 현상은 대자연에 대한 인식에서 전복을 함축한다. 새로운 시적언어의 불연속체는 덩어리들로서만 드러나는 어떤 불연속적 대자연을 확립한다. 기능들의 후퇴가 세계의 관계들에 대해 어둠을 드리우는 바로 그 시점에서 대상은 담화에서 높아진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근대적시는 객관적시가 된다. 그속에서 대자연은 고독하고 끔직한 대상들의 불연속체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잠재적관게들만 있기때 문이다.아무도 그것들을 위해어떤 특권적의미나 사용 혹은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것들에 어떤 계층체계를 감지하지 않고 아무도 그것들을 정신적행동이나 의도의 의미, 작용, 다시말해 요컨대 어떤 애정의 의미작용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시적언어의 파렬은 절대적대상을 성립시킨다. 대자연은 수직들의 련속이 되고 대상은 그것의 모든 가능성들로 채워진채 갑자기 일어선다. 그것은 메워지지 않는 따라서 끔직한 하나의 세계를 구획할뿐이다. 낱말들 대상들은 관계가 없으며 그것들이 파렬하는 모든 폭력으로 치장되고 이 폭력의 순전히 기계적인 떨림은 다음 낱말에 기이하게 충격을 주지만 곧바로 소멸한다. 이런 시적낱말들은 인간들을 배제시킨다.결국 근대성의 시적인본주의는 없다. 이처럼 수직적으로 서있는 담화는 공포로 가득한 담화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인간을 다른 인간들과연관시키는게 아니라 하늘 지옥 불가침한것, 어린시절, 순수한 질료 등 대자연의 더없이 비 인간적인 이미지들과 련관시킨다. 이 시점에서 시적인 글쓰기에 대해 나갈수 있다는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윤리적중요성을 파괴해버리는 자률의 폭력을 지닌언어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어적몸짓은 대자연을 수정하는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하나의 조물주와 같다.그것은 의식의태도가 아니라 관계의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최소한 근대적시인들,자신들의 의도를 끝까지 밀고 가는 그 시인들의 언어이다. 그들은 시를 정신적인 실천, 령혼의 상태 혹은 립장의 계시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꿈꾸어진 언어의 찬란함과 신선함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시인들에게는 시적감 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 역시 쓸데 없다. 48-49   고전주의 작가들 역시 형태의 문제를 알고있었겠지만, 론쟁은 글쓰기들의 다양성 및 의미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언어의 구조와는 더욱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어떤 설득목적에 따라 생각된 담화의 질서만이 문제가 되였다. 따라서 부르죠아적 글쓰기의 특이성이 대응하는것은 수사학의 다양성이였다. 54   모파상, 졸라, 도데의 그 글쓰기는 문학의 형식적기호들 (단순 과거 , 간접화법, 씌여지는 리듬)과 사실주의의   역시 형식적인 기호들(민중언어의 덧붙혀진 조각들, 거친 말, 방언 등)의 결합체이다. 62   공산주의작가들은 부르주아작가들이 오래전부터 단죄했던 부르 주아적글쓰기를 요지부동으로 지지하는 유일한자들이 된다.67   언어의 어떤 질서에의 모든 예속에서 해방된 백색의 글쓰기를 창도하는것이다. 70   의식적인 작가는 이제 조상 전래의 전능한 기호들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78   근대적예술전체가 그렇듯이, 문학적글쓰기는 역사의 소외와 역사의 꿈을 동시에 지니고있다. 필연성으로서 그것은 언어들의 찢김, 계급들의 찢김과 분리할수 없는 찢김을 증언한다, 자유로서 그것은 이런 찢김의 의식이고 그것을 뛰여넘고자 하는 노력자체이다. 그것은 그것자체의 고독에 대해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여전히 낱말들의 행복에 탐식하는 상상력이며, 어떤 꿈꾸어진 언어를 향해 달려간다. 언어가 더이상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아담적인 세계의 완벽함을 일종의 리상적인 예견을 통해서 나타내는 신선함을 지닌 그런 언어를 향해. 글쓰기들의 다양화는 새로운 문학을 확립한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문학은 오로지 하나의 기획이 되기 위해서만 자신의 언어를 창안한다는 점때문이다. 이 기획은 문학이 언어의 유토피아가 되는것이다.79   작품의 불연속성과 무질서가 낳는 열매자체는 각각의 잠언이 이를테면 모든 잠언들의 원형이라는것이다. 유일하면서도 변주되는 하나의 구조가 있다… 성찰들은 담론의 단상들이고 , 구조와 광경이 없는 텍스트들이다. 84   잠언은 개별적인 덩어리들로 구성된 전체적인 불덩어리이다. 뼈대는 뚜렷한 모습이상으로 광경적이며- 그리고 뼈들은 단단한것들이다. 잠언의 모든 구조는 그것이 고정되여 있지 않다는 바로 그점에서 가시적이다. 85   수직성을 통해서만 질서가 잡히는 하나의 세계가 드러난 셈이다. 미덕들, 다시말해 외관들의 유일한 수준에서는 그 어떠한 구조도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구조는 바로 명백한것과 감추어진것 사이의 진실관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97   무질서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98   지극히 뛰여난 명철성에 지극히 대단한 비현실성이 흔히 대응한다.100   이미지들은 텍스트와 분리시킴으로써 는 대상의 하나의 자율적인 도상학에 진입하고 있었다. … 의 도판들은 대상을 제시하고 이 제시는 예시의 교육적목표에 보다 무상한 미학적 혹은 모상적 정당화를 덧붙이고 있다.105   일반적으로 대상의 생산은 이미지를 거의 신성하다할 단순성으로 이끈다… 창조의 간결한 엄겨겅, 거래의 화려함, 이것이 백과전서적 대상의 이중적체제이다. 109   기계의 도판, 곧 이미지는 … 우선 대상 혹은 작업의 분산된 요소들을 분석하고 열거하며, 그것들을 독자의 눈앞에 테이블위에 던지듯 던지고, 이어서 마무리하기 위해 생활장면, 다시 말해 삶의 두께를 덧붙이면서 그것들을 재구성한다. 116   당신이 재현하는것은 분석적정신의 여정이다. 세계는  당신에게 통상적인것, 분명한것(이것은 생활의 장면이다)을 제시한다. 백과전서파와 함께 당신은 점진적으로 원인들, 물질들, 원요소들로 내려가며 , 체험적인것으로부터 인과적인것으로 가고 , 대상을 지적으로만든다. 일직선적인 글쓰기와 이 점에서 반대되는 이미지의 특권은 그 어떠한 독서의 미로도 강제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론리적인 백커가 언제나 결핍되여 있기 때문이다.117   특이한 떨림은 무엇보다도 놀라움이다.118   백과전서적인 시적세게는 언제나 어떤 비현실주의로 규정된다. 따라서 객관성(‘현실’)의 엄격한 요구에 토대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 다른 무엇(타자는 모든 신비의 기호이다)이 끊임없이 현실을 넘어서는 시적작품이 되는것이 의 계획 이다. 121   객관적으로 이야기된 단순한 대상의 은유자체는 무한히 떨리는 대상이 된다. 122   이미지는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 하여금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대상을 재구성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첫번째 자연이 일단 분해되고 나면 첫번째것처럼 형성된 또 다른 자연이 출현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계를 부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세계가 영원히 차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시선- 우리 시선- 이면 족하다  123   자신(을 쓴 샤토브리앙)의 마지막 그림속에 그 최상의 신비한 불완전성을 담아놓은 푸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불완전성은 완성된 예술보다 더 아름다운데, 시간의 떨림 이다. 추억은 글쓰기의 시작이고 차례로 글쓰기는 죽음의 시작 인것이다.(그것이 아무리 젊은때 시작된다 하더라도 말이다)128   은유      사실 파격구문은 거리의 시학으로 이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학적노력이 친화성들, 상응들, 유사성들을 추구하는데 있으며, 작가의 기능이 자연과 인간을 단 하나의 세게로 통합하는것이라 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감각적인 기능이라고 부를 수있는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근본적인 문채인 은유 역시 분리의 강력한 도구로서 리해될수 있다. 특히 은유는 샤토브리앙의 경우 풍부한데 , 두성분뿐 아니라 비소통을 우리에게 표상한다. 마치 하나는 다른 하나에 대한 향수에 불과한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문자적요소들, 다시 말해 은유적인 방법을 통해 갑자기 덥석 물리고 ,쳐들려지며, 떼어내지고, 분리된 뒤후 일화의 자연스러움에 내맡겨지는 문자적요소들을 제공한다. (그것은 심지어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준비도 없이 폭력적인 파격구문에 따라 억지로 도입된 새로운 말은 환원불가능한 어떤 다른 곳과 갑작스럽게  이 요소들을 대면시킨다. 샤토부리앙은 죽어가는어떤 젊은 수도사의 미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캐시미르계곡에서 여행자를 위로하는 그 이름모를 새소리를 듣고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대목도 있다.“이곳에서 누가 태여났고, 누가 죽었으며, 누가 울었는가? 저 하늘 높이 있는 새들은 다른 고장들을 향해서 날아간다” 샤토브리앙의 작품에서 은유는 사물들을 접근시키는게 전혀 아니다. 그것은 세계들을 분리시킨다. 기교적으로 말하며 (왜냐하면 기교나 형의상학을 말하는것은 같은것이기때문이다), 오늘날 은유는 (시적자유에서와는 달리)단 하나의기표에만 관련되는게 아니라, 담화의 커다란 단위들에 확장되여 연사莲词생명력자체에 참여하는것 같다. 언어학자들은 연사가 언제나 말과 가깝다고 말한다.샤토브리앙의 커다란 은유는 사물들을 분활하는 여신인데, 언제나 향수적이다. 그것은 반향을 증식시키는것처럼 나타나면서도 인간을 자연속에 불투명한것처럼 남겨두고있고 그에게 결국 직접적인 진정성의 기만을 면제해 준다. 문학은 분리시키고 일탈시킨다. 133-134   대립들이 엄격하도록하기 위해 그것들을 두개이상의 상이한 풍경이 아래로 쫙 펼쳐지는 산정상의 능선처럼 얇고 날카로우며 결정적인 일회식사건을 통해 분리시켜야 한다.   문학은 우연적인 진실을 영원한 개연성(필연성)으로 대체 한다135   근대의 작가는 아브라함이면서 아브라함이 아니다. 그는 도덕을 벗어나 있으면서 동시에 언어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원불가능한것을 가지고 일반적인것을 만들어야 하고 , 언어의 도덕적인 일반성을 통해서 자기존재의 부도덕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문학이라는것은 이와같은 위험을 감수한 통과이다. 138   고유명사는… 보통명사의 모든 특징들을 부여받고 있지만 모든 투사적법칙을 넘어서 존재하고 기능할수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고유명사를 근거지로 하는 하이퍼의미성현상의 대가 –혹은 날쁜점-이다. 이 현상이 고유명사를 시적인 낱말과 매우 유사하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146   사실 고유명사는 촉매작용을 할수있다. 우리는 그것을 채울수 있고, 확장할수 있으며 , 그것의 의소적골격이 지닌 사이들을 무한한추가물들로 메울수 있다. 고유명사의 이와같은 의소적 확장은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규정될수 있다. 각각의 이름은 우선 불연속적이고 고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출현하는 여러장면들을 포함하지만,이것들은 련합하여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되기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하는것은 일정수의 충만한 단위들을 환유적방식을 통해 련결시키는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48   고유명사는 흉내이고, 아니면 플라톤이 말했듯이 환영이다. (이것은 의구심이 들지만 맞다)150                         프로베르보다 훨씬 전에 작가는 문체의 혹독한 작업, 끊임없는 수정의 피곤함, 미미한 수확을 얻기위한 과도한 시간의 슬픈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표현했다… 플로베르에게는 문체는 절대적인 아픔이고, 무한한 아픔이며, 불필요한 아픔이다. 집필은 터무니없게 완만하다(‘일주일에 네페지’ ’한페지를 쓰는데 닷새’ ’두줄을 쓰는데 이틀’) 그것은 “삶과의 돌이킬수 없는 고별” 무자비한 자기감금을 요구 한다.157   수직적축에는 대체 낱말들이(이것들은 정정들이나 낱말들이다) 기입된다. 수평적축에는 통합체들의 삭제들이나 첨가들 (이것 들은개정들)이 기입된다.(2015.1.2.)  
52    구조주의와 기호학/테렌스 호옥스 댓글:  조회:1367  추천:0  2019-12-21
구조주의와 기호학 테렌스 호옥스   (서울시신아사, 1984년)   비꼬(vico)는 이탈리아의 법률가인데 (1725년) 그 당시에는 관심을끌지 못했던 기념비적작품. 비꼬의 연구는 … 영원히 계속되는 구조화의 과정이 인간정신에 대해서 지니는 마취적인 속박을 풀어버리는 최초의 근대적 시도의 하나로 손꼽힌다.17   진정 변별적이고 영원한 인간특성은, 라는 능력안에서 식별해 볼수 있는데 , 그것은 신화를 창조하며 또 언어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필요성인것으로 나타난다… 시적예지라는 재능은 그러니까 구조주의 재능이라고할수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생활방식에 성격을 부여하는 원리이기에, 인간이다 라는것은 구조주의자이다 라는것과 같다는 주장이다.17   삐아제(piaget) 삐아재는 구조를 전체성의 개념, 변환의 개념, 자기조적의 개념 등 세가지 개념으로 생각했다. 전체적이라는것은 내적인 결합체를 의미한다. 변환적이라는것은 정적이 아니다. … 구조는 변환의 절차를 행할수 있어야 한다. … 언어는 인간이 지니는 기본적인 구조로서, 갖가지의 기본문장을 광범위하게 다양한 새로운 발화로  변환시킬수 있는터이나, 한편으로는 그 변환을 언어자신의 고유한 구조안에 머물러있게 한다. 자기조절적이란 변환수단을 유효한것이 되게 하기위하여 제자신을 넘어서는것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변환은 그 변환을 수행하는 고유의 법칙을 유지하고 보장하도록 작용하며 다른 체계가 련관되지 않게 그 체계를 봉인하도록 작용한다. 개라는 낱말은 언어구조안에 존재하여 기능하고 있으며, 네개의 발을 가진짖는 피조물이 실재한다는것과는 관계가 없다.19   구조주의-세계에 대한 하나의 사고방식   사물의 참된 본성은 사물 그 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성하고 그리고 지각하는 사물들 간에서의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것이다. 20   구조주의자의 생각의 궁극적인 원천은, 항구적인 구조, 즉 개개인의 행위, 지각, 자세가 그 안에서 조화되고 그것들의 최종적인 성질이 그로부터 이끌어내지는 구조라고 할수 있겠다… 인간본성의 그 측면에 , 즉 언어에 가장 긴밀하게 연관되여 있다.21   언어학과 인류학 – 소쉬르( Saussure) 스위스.   소쉬르가 언어연구에서의 혁명적인 공헌은 언어를 실질로 보는 견해를 배척하고 관계적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 일이다.22   두개의 기본적차원에서… 즉 랑그라는 측면과 빠롤이라는 측면에 대해서이다.24   빠롤은 물우에 나타나 있는 빙산의 일각이다. 랑그는 그것을 받쳐주는 그리고 말하는사람과 듣는 사람에 다 같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그자체는 모순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더 큰 빙산덩어리인것이다.25   나무라는 청각이미지 즉 능기와 그것에 수반되는 개념 즉 소기, 그리고 지상에 실제로 자라고있는 물리적인 나무사이의 연결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적합성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나무라는 낱말에는 요컨대 자연 그대로인 혹은 나무다운 성질이 없다. 그러니 언어의 구조를 떠나서 현실에의 보증할만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 나무라는 낱말이 땅우에서 자라고있는 잎이 있는 물리적물체를 의미하는것은, 그 언어의 구조가 그 낱말에 그 물체를 이미지시키고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때, 비로소 그 낱말은 그 효력을 인정받게 된다.31   레비스트로스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것은 언어에 대하여 말하는것이며, 언어에 대해서 말하는것은 사회에 대하여 말하는것이다.42   어떠한 경우에서든 , 어떤 현상을 결정하는것은 그 현상자체의 어떠한 본래적인 양상도 아니고, 현상들간에서의 관계이다 라는것이 , 구조주의 (그리고 음운론)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44   문학에 관해서 말하면, 이것은 먼저 단순한 내용을 넘어서서, 우리가 막연한 형식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그곳으로 밀고 들어가는것을 의미한다.79   러시아 포르마리즘.(formalism)1920- 1930.Boris  Eichenbum, Vtor Shklobisky, Roman Yakobson,  Bris Tomasjevsky, Juri Tynyanov언어학자나 문학사가들. 모스크바언어학회와 뻬드로그라드 시적언어연구회.   초기의 포르마리즘(1920-30년대 쏘련형식주의)은 상징주의 및 실용될수 있는 코무니케이션의 도구로서의 형식에 대한 상징주의자적 관심을 기본원리로 해서 구축되였었다. 즉 자립적이고 자기표현적이며, 언어외적 리듬, 연상, 암시를 리용해서 언어를 보통의 일상적인 의미 영력을 넘어서까지, 늘려나갈수 있는것으로 생각해서이다. 이러한 관심에서, 비평의 경우에도 문학적인 언어를 작동시키는 기술에 열심히 주목하게 되고, 또 이 기술들을 일상적인 언어의 양식mode과 구별해서, 그 특성을 규정하려는 관심이 생겨났었다.81   Shkrovsky는 ‘예술은 언재나 인생으로부터는 자유이고, 그것의 색갈은 도시의 성책위에 펄럭이는 깃발의 색갈을 결코 반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만일 예술이, 특히 문학이,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있다면, 문학의 학술적연구나 비평은 마땅히 애매함이 없이 분명하게 확정된 고유의 자동영력을 가지고 있는 통일된 지적활동이라야 할것이다. ‘예술형식은 , 예술 고유의 법칙에 의해서 설명이 가능하다. ’라고 주장한 skrovsky의 분명히 구조주의적인 일반원칙에 따른다면, 위에 말한 그 령역은,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니고, 어떻게 문학인가라는것에, 즉 언어예술전반에서의 특유한 성질에 밀접하게 연관되여 있다. 스크로브스키의 다음과 같은 주장, 즉 좁은 의미에서의 예술작품이란, 작품을 될수있는대로 예술적인것이 되게 하려는 의도에 따라 특수한 기법으로 창작되여진 작품을 말한다.를 용인하는것은 야콥슨의 결론인’문학연구의 대상은 , 문학의 총체가 아니고, 문학성, 즉 작품을  문학자품이 되게 하는 그것이다’를 역시 용인하는것이 된다…. 작가의 내부에서가 아니고 작품자체의 내부에서, 즉 시인에서가 아니고  시의 내부에서 발견될수 있다는것이 된다… 궁극적으로 거기에 사용된 언어의 독특한 용법에 깃들어있어야 한다83….   포르마리스트들은 전의적, 언어, 은유, 상징. 시각의영상 등은 시의 필요조건인것이 아니라 일상언어의 특징일뿐이라고 주장한다…. 문학분석에서의 그들의 흥미는 이미지의 존재에 있는것이 아니고 이미지가 적용되는 용법에 있는것이리라.84   일탈은 포르마리즘의 중심적관심사…일상의 언어와 비교해 볼때, 문학언어는 일탈을 발생시킬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탈이기 때문이다… 장치, 기법은 문학예술의 근간이 되며, 문학의 모든 요소가 그곳으로 향해서 조직되고있는 기본적요소가 된다.그리고 그 요소들을 심판하는 기준이기도 하다.85 시적술화는 … 단순한 실용성이나 지식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정보의 전달이나 언어를 넘어서 저쪽에 있는 지식의 체계화에도 관여하지 아니 한다. 시적언어는 용이주도하리만큼 자기의식 적이며 자기각성적이다. 그것은 자체내에 포함되여 있는 메시지이기를 떠나서, 두드러지게 매체가 되려고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특색을 지니고있으며, 또 제자신의 언어적특질을 체계적으로  강화시키고있다. 그 결과 시에 사용 되는 낱말들은 , 단순히 사상전달의 신분을 지니고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율적인 구체적 실체 인것이다.86   시는 낱말과 의미를 분리시키기보다는 , 오히러 –놀라운 일이 겠으나- 낱말이 취하게되는 의미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런 점에서 시는 또 다시 보통의 언어활동의 정도를 한층 더 높인다… 낱말의 시적용법에 의하여 애매성은 낱말의 운용에 있어서의 두드러진 특징이 된다. 이렇게 됨으로서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로 옮겨가는 낱말이 낱말의 구조사의 역활이 전환되 여진다.87   에술작품은 모방(내용을 지니고있는것)이라고 생각하는 상식적 견해를 제쳐놓고, 그 자리에 형식의 완전한 우월이라는 관념을 대치시키는 일이기때문이다. 이렇게 생각되여지는 문학이야말로 본질적으로 문학다운 것이다. 즉 다른 실체를 지각해볼수 있는 창문이 아니라, 자기 충족적인 실체인것이다. 내용이란 문학형식의 한 기능에 불과하며, 형식을 넘어서서 혹은 형식을 통해서 감지될수 있거나 , 형식과 분리될수 있는 그 무엇은 아니다. 실은 작품이 내용을 포함하고있는것처럼 보일뿐인 것이다. 사실인즉 작품은 스스로의 발생, 스스로의 구성에 대해서  말하고있을 따름이다.91   예술이라는 과정의 생명력은 , 행동안에서 볼수있는 그것의 수법에 의존한다는것이 포르마리즘의 중심명제이다. 그리고 장치를 노풀시킴으로써, 자신이 집필할 때 의지하고있는 비친숙화의 기법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문학예술가는 모든 장치들중에서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장치에 접근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예술을 작동케 하는 과정에 은밀히 통해있는 일탈감각인것이다.95   변혁은 사회변화에 대한 반응이기거나 혹은 그 부산물로서가 아니고, 내적요구에 의하여 재촉되고 추진되여서, 자기개성 적이고 자기 페쇄적인 문체나 장르의 연속을 펼치는 일이라고 볼수있는것이다. … 참신한 형식이나 문체는 낡은것에 반역하 는데서 출현하는것이기는 하나 그것들의 반대명제로가 아니고, 영속성이 있는 요소들을 재조직하고 재편성하는 한에서이다. 이것 역시 일탈과정의 일부분이다. 기의한것이 일상적인것이 되면 다른것으로 바뀌여질 필요가 생긴다.98   패로디는 중요한 역활을 한다. 왜냐하면 패로디는 언제나 다른 문학작품을 배경으로 삼고, 그것의 수법을 폭로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떠나기때문이다….페물이 되여버린 수법은, 내버려지는것이 아니라, 어울리지 아니 하는 새로운 문맥에서 반복되여…재차지각이 가능해진다.98   문학은 자신을 개신시키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자기의 경계선을 다시 긋곤한다…. 모든 에술은 연속성안에 있다는것, 고등예술은 자신을 갱신키 위하여 그 연속성의 범위내에서 경계선을 정기 적으로 옮기고 있다는것,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유일하게 불변인것은 문학 항시 나타내어야 하는 문학다움의 감각이라는것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 어떠한 시대에 있어서든 문학을 규정하고있는것은 그것의 구조적역활 즉 그 시대의 비문학과의 대립인것이다. 99   유럽의 구조언어학   언어가 정보전달에 사용될 경우에는 인식적 혹은 지시적 기능에서 작동하고, 말하는 자나 글쓴 자의 기분이나 태도를 나타내기에 사용될 때는 표현적 혹은 정감적 기능을볼수있고… 언어가 …  보통의 사용법에서 최대로 일탈될 때, 그 언어는 시적으로 혹은 미적으로 사용되여진다   …체코의 언어학자 얀 무카로브스끼가 말하는것처럼, 이러한 전경화 현실화라는 행위는 중요하다. 시적언어는 코뮤니게이션을 위해서 사용하는것이 아니고, 표현행위 즉 언어행위 그자체를 전면에 내놓기위해서 사용 되고있다.103   야콥슨jakobson   은유—어떤유사점, 상합적, 공시적, 수직적, 직유. 초현실주의 , 능기생성, 시전경화,  해석불가 환유—인접성, 련합적, 통시적, 수평적, 제유, 입체파. 능기결합, 산문전경화,  해석거부   은유와 환유는 의 비유인것이다. ‘그차는 딱정벌레처럼 전진해 갔다’와 같은 은유에서는 , 딱정벌레의 움직임이 자동차의 그것에 등가인것으로서 제시되여있고, ‘백악관이 새로운 정책을 검토한다’ 라는 환유에서는 , 어떤 특정의 건물이 합중국의 대통령에게 등가인것으로 제시되여있다.105   소쉬르의 개념을 적용하면 은유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질상 상합적이여서 언어의 수직관계가 리용되는데 , 환유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성질상 연합적이여서 언어의 수평의 관계가 리용된다. 106   인접성위에 유사성이 들게 놓이므로서, 시는 완전히 상징적이고 다양하고 다의적인 본질을 부여받게 된다. 108   시는 보통언어를 그냥 장식하는것이 아니고 , 별개종류의 언어를 구축하는것임을 의미한다. 시적이라는것은 수사상의 장식으로 술화를 보완하는것이 아니고 , 술화와 그구성요소 모두를 전면적으로 재평가하는 일이다…. 시적이라는것이 경합해서 존재하는 다른 어떠한 기능들보다도 더 높은 차원으로 높아졌을 때, 시가 생기게 되는것뿐이다… 그래서 시적기능은 언어예술의 유일한 기능은 아니고 다만 그중에서 지배적이고 결정적인 기능인것뿐이다. 112   사실주의시는 해석되기를 거부하고 현대시는 해석을 요구하면서 해석불가능에 있다고 하겠다. (나의 말)   의미는 그 특징상 전의할뿐만 아니라 , 전의될수가 있고 또 전의되여야 한다.116   만일 코뮤니케이션이 메시지 그자체에게로 지향하고 있다면, 이 때는 시적 혹은 미적기능이 우세해진다고 말할수 있다… 언어의 시적기능은 … 기호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촉진시킨다. 그 결과 능기와 소기, 기호와 대상간에서의 어떠한 관계라도 자연스럽다 거나 분명하다고보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부숴뜨리리게 된다.118   양식은 자기 지지적이며, 그 양식이 바로 주제인것이다. … 문학예술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형식과 내용을 재통합하는데 소용되며, 또 본성을 유효토록 하기위해서 작품을 메시지의 용기가 아니라, 그 본성을 유효하도록 하기위해서 자신의 령역을 넘어서는 지시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기 생성적이고, 자기조절적이고, 결국에는 자기존중적인  본질적통일체로 제시 하는데 소용되는것이다. 결국 작품은 Piaget의  말을 빌면, 하나의 구조인것이다.119   구조주의는 그자체가 언어학적 모델에서 발전했었는데 언어로 이루어진 작품인 문학에서 그 모델과의 유사성 이상의것을 가진 대상을 발견하고 있다. 양자는 동질이다라는것이다.120   그레마스 A.J.Greimas   우리는 차이를 지각하고 , 그지각의 덕택으로 , 세상은 우리앞에 서 우리의 목적에 맞도록 형상을 취하게 된다121   행위의 내용은 노상 변하고 , 행위자도 바뀐다. 그러나 언술광경은 항상 동일하다. 121   또도로프TzvetanT0d0rop   문법이 어째서 보편적이냐 하면, 그것이 우주에 관한 정보를 모든 언어들에게 알려주고 있기때문이기도 하지마는, 그것이 우주자체의 구조와 일치하기때문이기도 하다.132   대담한 개인적창의력이라는 이름에서 낡은 체계를 파괴한다는 의미일것이다. 136   구조주의의 최대의 특색은, 바로 형식을 내용이 되게 하는 일종의 변환작업에 있는것같다… 즉 문학작품은 언어에 관한것이며 , 언어사용 그자체의 과정을 가장 본질적인주제로 삼고 있는것이다.137   형식이 곧 내용이다라는것을 자명한것으로 보고 있기때문에, 형식과 내용을 같다고 보는 낭만파후기의 생각을 시인하 는것이다. 141   문학은 언어의 내부에서 모든 언어에 생래적으로 깃들여있는 형이상학을 파괴하는 그것이다. 문학의 술화의 본질은 언어를 넘어서가는 일이다.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문학의 존재이유는 없을것이다.) 문학이란, 언어가 자살을 기도할 때 사용하는 흉기와 같은것이다.147   바르트   인간은 자신이 살고있는 세계를 상상의 힘으로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우리는 주어져있는것을 변경하고 재구축하는것이다. 148   글쓰기는 결코 코뮤니케이션의 도구도 아니고 , 말할 의도만이 통해가는 열려있는 통로도 아니다. 정밀이니 명료니 하는것과 같은 초역사적인 보편적문체의 양식이나 조건도, 이데올로 기적으로 무구명료함이이란 순수하게 수사학상의 속성이지, 일반적으로 어떠한 시대 어떠한 장소에서도 가능한 언어특성은 아니다. … 부르조아지는 자신이 분류해내지 못하는것은 인정하지 아니하려고 하며, 일체의 인간경험을 자신의 고유한 세계관과 합치되도록 고쳐서 그것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것으로 승격시켜 나간다.151   이들 꼬드는 --우리가 인정하든말든—의미를 변경시키기도 하며, 더욱 중요하게는 생성하는 작용을 하는데 , 그 방법은 무구하다 거나 자유롭다고 하는것과는 거리가 멀고, 바깥 어디엔가에 있는 객관적인것으로 우리가 생각하기 좋아하는 그것에, 언어자체가 제자신의 중개적이며 형성적인 패턴을 부과할 때의 복잡한 방법에 많이 닮아있다. 그 결과, 적절히 분석되였을 경우의 텍스트가 드러내게 되는것은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토도로브가 말하는 뚜렷한 일종의 다양성이다.153   다수성과 애매성은 문학의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라고 보는 생각이라든가, 의미들 상호간에서 신중히 유발되여진 긴장에서 언어의 본성에 관한 많은것이 밝혀질수 있다.155   문학은 우리가 세계를 가공하고 창조하기위해서 고안해낸 여러꼬드들에 의존하고 있다. 문학이란 , 어느 의미에서는, 꼬드를 창출하는 중요한 동인이 되는 꼬드의 중류장치일런지도 모든다. 문학은 독자에게 꼬드를 상기시키고, 그 꼬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그에게 보여준다. 문학의 언어비평성은 이러한 점에 있다…. 우리는 글쓰기를무슨 도구인양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도를 전달해주는 차량, 행동의 수단, 언어의 의복인양으로 그릇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바르트는 말한다.156   저작자의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능기에 주목해야 한는 일이 중요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능기를 넘어서서 능기가 암시하는 소기에게로 옮겨가려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충동에 굴복해서는 안될것이다.158   작가스러운 텍스트는 우리로 하여금 텍스트를 통해서 예정된 현실세계를 바라보게 하는것이 아니라 , 언어자체의 본성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이 작가스러운 텍스트는, 독자가 읽어나가면서 저작자와 더불어 자신의 현재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위험은 있으나 상쾌한 작업에 독자를 끌어 넣는가… 독자스러운 텍스트에서는 능기가 행진하는데 작가스러운 텍스트에서는 능기가 춤을 춘다.160   쾌락의 텍스트란것은… 향락의 텍스트는 결락감(缺落感) 을 안겨주는것인데, 독자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심리적가정과 그의 취미, 가치관, 기억 등의 일관성을 (어쩌면 따분하리만큼) 불쾌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여, 독자와 언어와의 곤계에 위기를 가져온다.162   능기를 분석하는 꼬드   1.     해석학적꼬드; 설화적인 꼬드, 수수께끼를 구성해 풀어가는 꼬드. 2.     의미소 또는 능기의 꼬드; 의미의 깜박임 반시적꼬드-伴示 3.     상징적꼬드; 群化나 윤곽구축, 대조(2,3은 분별이 불투명) 4.     행동꼬드(프로아이젝트); 연속적사실. 5.     문화적꼬드(대상지시적꼬드); 격언적, 집합적.   예술은 다같이 주어진 자료, 주어진 능기 (즉 텍스트, 화음의 연계)에서 파생된다고는해도, 그것들에서 주어져있지 않는 새로운 현실, 새로운 능기를 창조하고, 또 창의와 미라는 량면에서 본래의것을 능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러한 예술은, 소기의 예술이 아니고 능기의 예술이겠는데 진실로 현대적 이라고 말할수 있다. 170   관계 그자체가 의미를 생성하는것이지, 관계를 넘어서서 지향되고 있는 어떠한 현실의 세계도 있을수 없다. 그러기에 의미의 작용은 언어의 어떤 레벨에서 딴 레벨로의 ,한 언어에서 딴 언어로의 이동에 불과하며, 또 의미란것도 그러한 꼬드전환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171   장미다발은 능기이고 정열은 소기이다. 183   대시작용이라는것은 보통으로는 언어사용에 있어서 말해지고 있는것을 의미하는 일이고, 반시(伴示)작용은 말해지고 있는 것이외의 다른 무엇을 의미하는 일이다. 선행되고있는 능기— 소기의 관계에서 생기는 기호가 , 더높은 단계의 기호의 능기로 되는경우에, 반시작용이 생겨나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첫째 세계는 대시작용의 차원이고 둘째는 … 반시작용의 차원이 되는것이다. 187-188   청각적기호는… 시간을 리용하고 …공간적기호는 공간을 점하고... 청각적이고 시간적인 기호는 그 성격상 상징적인것이 되려는 경향이 있는데 …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기호는 그 성격에 있어서 도상(图象)적인것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   능기는 고도의 다양성을, 말하자면 애매성을 나타내고있다. … 기호론적으로 말하면 애매성은 꼬드의 규칙을 어기는 양식이 라고 규정되여야 한다… 시는 일상적인 말씨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다 라는 야콤슨말에…200   파괴성은 –Umberto Eco (a) 상이한 레벨의 많은 메시들은 애매성을 지니고 조직화 된다  (b) 애매성은 정확한 설계에 따른다  (c) 어떠한 메시지에 있어서도 , 거기에 들어있는 정상적인 수법과 애매한 수법은 다같이, 다른 모든 메시지에서의 정상적인 수법과 애매한 수법에 대하여 맥락상의 압력을 느낀다 (d) 한체계의 규칙이 한 메시지에 의해서 깨뜨려지고 있는 방식은 다른 체계의 규칙이 자신의 메시지에 의하여 깨뜨려지는 방식과 동일하다 그 결과로 생겨나온것은 미적개인어 예술작품에 독특한 특수 언어인데, 이것은 독자들에게 그 대시를 새로운 반시로 부단히 전화시키고 있는 우주적 질서—즉 확립되는 순간에 자기 확립된 의미의 레벨을 넘어서 끝없이 움직인다—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미적메시지가 의미작용을 부단히 행하는 다차원의 체계이기에 , 의미작용이 한레벨에서 다른 레벨로 이행하고 있어서 그것의 대시가 일종의 무한 급수적인 양상에서 반시로 된다는것인 듯하다. 그 결과로서, 미적메시지에 대한 최종적인 꼬드풀이나 글읽기에는 켤코 도달하지 못하는 터이다. 왜냐하면 애매성의 하나하나가, 다른 레벨들에서  더욱 많은 같은 계통의 규칙위 반을 생성시키고 , 또 예술작품이 어떤 점에서든 말하고있다고 생각되는것을 벗겨버리거나 다시 조립하거나 하도록 노상 우리를 재촉하기 때문이다.200-201   다양성- 애매성-규칙위반-장식바꾸기-다차원-다의미   독자는 자신이 새로 발견한 글쓰기나 사람으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다르게 세계를 보게 되고 또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는가를 배우게 된다… 예술도현실의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 그것을 알고 그것에 대처하며 그것을 바꾸어나가는 방법인것이다.202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예술작품이란 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이란 견해다. 이러한 예술가는 , 말과 이미지를 통해서 말과 이미지의 건너편에 있는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이런 류형의 예술가는 번역가라고 불리워질만 하다. 또 하나의 태도는, 예술이란 독립해서 존재하고있는것들로 성립되는 세계이다하는 견해다. 말, 그리고 말들과의 관계, 사고, 그리고  사고들의 비꼬임, 그것 들의 분산, 이러한것들이 예술의 내용인것이다. 예술이란것은 , 창문에 비해질수 있다손치더라도 .대강 그려진 창문에 불과 하다.204   책이라는것이 궁극적으로 묘사하고 반영하는것으로 보이는것은 , 현실의 물리적세계가 아니고 , 다른 차원으로 환원된 세계이다. 205   글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은 글이 만든다.(2015.1.23.)
51    [공유] 구조주의 개관 댓글:  조회:1161  추천:0  2019-12-17
출처 구조주의 개관 ① by 학습 연구 가르침   構造主義 槪觀   曺 惠 蓮(96207022)   Ⅰ. 여는 글   Ⅱ. 구조주의의 개념과 원리 1. 구조의 개념과 특성   1) 구조란 무엇인가   2) 구조의 특성   3)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Ⅲ.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 사상 1. 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언어학   1) 소쉬르의 생애    2)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 2. Lévi-Strauss의 구조인류학   1) 레비스트로스의 생애   2) 레비스트로스의 기본적 사상   Ⅳ.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와         지리학과의 관계   Ⅴ. 구조주의의 문제점과      탈구조주의의 등장     Ⅰ. 여는 글   구조주의는 20세기초기에 전통적인 역사주의적 인간 인식에 반기를 들고 나온 언어학자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출발하여 프라그언어학파, 코펜하겐 언어학파로 그 정통성이 이어지고 발전되어 구조언어학으로 정식화되자 이 언어이론의 원리와 법칙은 반세기를 지난 1960~70년대에 구조주의로 개화되었다. 구조언어학이론은 이때부터 언어학을 벗어나 인간과학 제분야의 향토개념이 되어 신화․설화․문학․영화․TV․심지어는 요리와 의상유행에 이르기까지 그 내재적 구조분석의 기본이 되었다. 물론 그 확산이 일시적인 붐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각 분야에 대한 해석이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므로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도 후기구조주의에서 포스터모더니즘까지 그 기저엔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 자체는 지리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구조주의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 이론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구조주의의 선구자라 불리우는 소쉬르와 구조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그 시작과 확산을 알아볼 것이다.     Ⅱ. 구조주의의 개념과 원리   1. 구조의 개념과 특성   1) 구조란 무엇인가 (1) 체계와 구조 구조(構造)라는 말은 일반용어로서도 또 학문적인 술어로서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 원래 건축구조물이란 건축용어로 쓰였던 말로 생물구조라든가 심리구조 등 생물․심리학에서도 예사로 쓰이는가하면 경제구조, 유통구조 또는 사회구조 등 사회과학적인 용어로도 쓰이고 있고 심지어 마르크스경제학에서도 상부구조라는 말이 하부구조에 대위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구조란 말은 실은 19세기 실증주의에서부터 빈번하게 쓰이는 말로서 막연한 의미로 쓰여오기도 하고 있다. 구조의 어원을 살펴보면 멀리 라틴어의 structura(strutuere〈건조하다〉에서 파생됨)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건조물, 건축물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2) 구조의 개념 구조의 개념은 철학적으로 도는 이념적으로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우선 그 기본적인 개념부터 정밀하게 규정지어 놓는 것이 좋겠다. 구조의 개념은 그 시발점이라고 할 구조언어학에서 조작적 개념으로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은 옐름스레우의 정의이다. ① 내적 관계란 특성을 지닌 이 개념은 언어체계의 내부에서 각 요소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관계의 망이며 그 관계의 교차가 사항을 규정하여 상대적으로 제사항(諸辭項)을 구성하는 것이다. ② 구조를 규정짓는 관계의 망은 계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구조라는 하나의 총체는 부분으로 분해할 수 있으며 그 부분들은 부분 상호간에 그리고 그 부분들이 이루고 있는 전체와도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③ 구조가 자율적 실체라 함은 구조가 그보다 큰 총체와의 의존성 또는 상호의존성을 유지하고 있는, 구조 그 자체에 특유한 내적 조직(내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④ 구조가 하나의 실체라 함은 그 실재론적 지위는 따질 필요가 없고 다만 조작개념을 가능케 하기 위한 하나의 총체라는 뜻이다.   2) 구조의 특성 구조주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문화활동의 전체성을 파악하는 과학적 방법과 그 사상적 자각으로서의 이념으로서 등장했다. 그것은 대상을 구성하는 제요소간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것을 그대로 통합적으로 포착하려는 것이다. 그 전체로서 당연히 주체와 대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요구될 수 밖에 없다. 곧 인간의 문화활동의 전체성은 시각으로나 촉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험의 장이나 또는 서기자료나 통계적 자료의 장에서는 파악될 수 없고 항상 경험의 배후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구조란 계층(階層)으로 이루어진 내적 관계(relations internes)의 자율적(自律的)실체(實體)이다.   피아제(Jean Piaget)에 의하면 구조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기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 전체성 - 첫째로 구조가 실재 속에 숨겨져 있는 전체성을 발견하는 조작개념이라면 그 구조는 전체성이란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전체성의 요건이란 구조를 이루는 제요소가 단순한 고립된 집합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에 의해서 결합되어 있다는 데 있다. 구조를 이루는 실체의 배치는 가치충족적이며 전체성이란 내재적인 통합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 전체성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그 배치의 성질 및 각 요소의 성질을 결정하는 고유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 이러한 법칙은 그 구조내의 구성요소에 대하며, 그 구조를 떠났을 때 각각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개별적 특성 이상의 전체성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구조의 요소는 서로의 상관관계뿐만 아니라 그 구조가 속하고 있는 총체 또는 전체라는 전체성과도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조는 단순한 집합과는 다른 것이며 그 구조요소는 구조를 떠나서 구조 밖에 있어도 구조 내에 있는 바와 똑같은 형태로 대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고 다만 구조의 전체성에서의 관계의 망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가 자기충족적이면서 자기 폐쇄적이라는 것은 그러한 뜻이다. (2) 변환 - 구조는 실재를 산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적인 것이 아니다. 소쉬르가 정태언어학이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언어의 변화성속에서의 어느 시점에 있어서의 공시적 대립관계를 연구해야 한다는 조작관점이지 언어가 정지상태에 있다는 주장의 표현은 아니었다. 언어의 공시대라는 것은 부동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체계의 대립이나 결합에 의하여 결정지어지는 필요에 따라 혁신을 억압하거나 수용하거나 하는 것이다. 구조의 법칙은 단순히 그것이 구조화되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구조 자체가 구조화를 행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소쉬르는 구조란 말을 쓰지 않고 체계란 말밖에 쓰지 않았는데 그것은 공시적 대립과 공시적 균형의 법칙을 특징짓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 균형의 개념은 구조의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어떤 일정한 시점에서 구조는 한 언어의 제사항이 상호간에 유지하고 있는 관계의 총체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 관계란 요소상호간의 결합규칙을 말하는 것으로 따라서 구조는 하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 규칙의 일부, 다시 말해서 관계의 일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에 대하여 구조는 단순히 구조화되는 수동적 수준에 떨어지지 않고 변환의 절차를 밟아 오히려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환은 구조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3) 자동제어 - 구조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자동제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구조는 그 변환절차를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그 자체를 넘어선 것에 의존하려 하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언어의 균형성과 같은 구조의 특성은 구조의 불변성을 위협하는 제요소의 대립이나 잘못된 결합을 항상 점검하고 미지의 무수한 제요소가운데서 적합한 것만 선택하여 결합해 가는 기능 곧 자동제어 기능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구조화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제어(自動制御)란 어떤 행위계의 결과를 재도입함으로써 얻어지는 제어방식으로서 반송되는 정보에 의하여 그 계의 작용과 방법을 모델로 바꿀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이는 환류활동(還流活動)의 원리로서 이 원리에 의하여 언어는 고도로 발달된 컴퓨터처럼 스스로 기능장해를 제거하는 하나의 능력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도 하나의 자동제어기구라고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언어의 자동제어기능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예로서는 음성변화에 의하여 어떤 불편한 동음이의가 생겼을 대 이를 제거하는 과정이 그렇다. 언어에 이러한 자동제어기능이 없다면 언어는 상호이해에 필요한 최소한도의안정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인 기능이 공시적 균형을 이룩하게 하고 따라서 공시론적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3)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라깡의 정신분석학, 푸코의 인식론, 알뛰세의 정치경제학, 바르뜨의 문예비평 그리고 Tel Quel의 저자들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결국 구조주의가 언어학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우리는 ‘언어적인 것’이라는 개념에서 단서를 잡아야 한다. 언어적인 것에 구조가 있다. 무의식은 그것이 말하는 한에서, 그것이 언어인 한에서 구조를 가진다. 신체는 그것이 징후들을 드러내는 한에서 그리고 그 징후들이 기호로서, 언어로서 읽히는 한에서 구조를 지니는 것이다. 구조주의란, 단순히 표현해서, 결국 세계를 언어로 보는 한에서 성립한다. 사물들은 기호로서, 언어로서 해석된다. 그들은 침묵의 언설을 가지고 있다. 구조주의는 플라톤 이래의 인간의 강렬한 욕구인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꿈을 사물의 기호(記號)와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인식의 어떤 형식적인 측면을 포착함으로써 이루고자 한다. (1) 구조주의의 특징 ① 상징적인 것(le symbolique)에서 찾을 수 있다. 구조주의 이전의 철학자들은 그들이 다루는 존재를 크게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으로 나누곤 했다.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대립에 대해, 때로 그들의 상보성에 대해 논하고 했다. 이들 사이에 복잡한 관계에 대한 틀 내에서 초험적 통일성과 경계선상의 긴장 그리고 상호간의 융합과 날카로운 대립을 발견할 수 있다. 구조주의의 발견 중 가장 첫 번째의 것은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제 삼의 질서로서의 상징적인 것의 발견이다. 우리가 언어에서 발견하는 실제적 차원, 즉 말의 시각적 모양과 청각적 감각의 차원 그리고 상상적 차원, 즉 우리가 그 말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이마쥬나 관념이 아닌 제 삼의 차원 즉 그 말의 구조적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현대언어학은 시작되었다. 「상징적」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던 사람은 쟈크 라깡이었다. 정신분석학은 라깡에 의해 언어학과 접속된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19세기 프랑스심리학이 다룬 중심주제중 하나였다. 프로이트가 공헌한 점은 이 무의식에 어떤 의미(意味)를 부여했고 따라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라깡에 따르면 무의식 역시 결국은 하나의 언어일 뿐이며 언어인 한에서 그것은 구조를 지니는 것이다. 무의식은 이제 언어학적 기초를 가지게 된 것이다. 보다 더 들어가 말하면, 구조는 요소로서의 상징적인 것은 생성의 원리로 이해된다.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외에 상징적인 것의 존재에 대한 강조는 구조주의의 첫 번째 특성인 것이다. 구조주의자들은 「보는 것」과 「표상하는 것」외에 비가시적인 어떤 것을 「읽어내기」를 원하는 것이다. ② 구조의 국소적인(local), 위치에 관련해서의 특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구조의 요소들은 외적인 지시에 의해서도(실제적인 것) 내적인 의미작용에 의해서도(상상적인 것)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다. 구조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위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의치란 실제공간에서의 위치도 아니며 상상적 공간 속에서의 위치도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공간 속에서의 위치이며 본질적으로 위상적topologigue)이다. 이 공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외정으로서의 거리가 아니라 이웃관계인 것이다. 사물이 있음으로써 구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있음으로써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희와 극장에 대한 구조주의적 선호가 나타난다. 레비 스트로스의 유희이론, 라깡의 유희에 대한 은유들, 알뛰세는 실제의 극장, 관념의 극장이 아닌 자리와 위치의 순수한 극장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명한 구조주의적 표현이 나온다 : ‘사유하는 것, 그것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다.’ 결국 구조주의는 최근 형태의 유물론이며 무신론, 앙띠 휴머니즘이다. 신(神)은 죽었고 이제 인간(人間)도 죽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치가 나를 통해 말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데카르트에 대해 라깡은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내가 사유하는 그곳에 나는 있지 않고, 내가 있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사유한다”(사유(思惟)와 존재(存在)의 불일치(不一致))」 ③ 「변별적인 것」과 「단일한 것」을 들 수 있다. 언어의 경우에 있어 감각적 소리와 말에 연결된 이마쥬 외에 또 하나의 요소를 음소(音素)라 한다. 음소는 문자나 그 소리에 구현되어 있지만 그와 구별되어야 한다. 이 음소는 그것이 속하는 관계체계 내에서 다른 요소들과 함께 상호 동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 구조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상징적 요소들, 변별적인 요소, 단일한 점들의 유무에 따라 대답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비가시적인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가시적인 것들에 구현되어 있으며 가시적인 것들을 넘어 이들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④ 「분화시키는 것」과 분화를 들 수 있다. 구조는 필연적으로 무의식적이며 모든 구조는 하부구조, 미시구조이다. 그것은 실제적이지도 않고 허구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현실적이지도 가능적이지도 않다면 그것은 어떤 존재인가? 야콥슨이 말했듯이 음소는 문자나 음절, 그 소리 등과 또는 그에 연결되는 관념들과 동일시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구조 혹은 이론의 대상을 가장 적절히 가리킬 수 있는 말은 잠재성일 것이다. 잠재성은 직접적인 실재성과는 다른 그 나름대로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은 추상적이지도 않은 나름대로의 관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잠재성으로서의 구조는 현실적이지 않으면서 실제적이고 추상적이지 않으면서 관념적이다. 구조 속에는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공존한다. 그중 부분적인 조합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구조를 밝힌다는 것은 모든 현실적 존재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잠재성을 밝히는 것이다. ⑤ 구조의 계열적인 특성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조의 반쪽만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구조가 실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요소들이 계열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구조는 복수계열적이다. 우리는 음소와 형태소의 구분을 상기할 수 있다.     Ⅲ.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 사상   -Ferdinand de Saussure 의 구조언어학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을 중심으로- 구조주의사상은 구성과 과정으로 양분된다.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사상은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푸꼬에 이르는 사상이고 과정으로서의 구조주의사상은 맑시즘의 토대위에서 성립되었다.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이란 인간의식에 선천적으로 각인된 심층주고의 표현이라고 간주하는데 비해서 과정으로서의 구조주의는 그 현상들이란 기저에 눌린사회구조의 표층이며, 그 사회구조의 토대는 물질적 존재 조건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구조와 전에 말한 심층구조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전혀 없다. 구성구조주의와 과정구조주의간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과정구주조의에 따르면, 변형은 자연적 수준에서보다는 차라리 사회적 수준(하부구조, 토대)에서 발결되는 구조에 속한다. ☞과정 구조주의에 의하면, 구조는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변형되는 것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차이점으로 인해 접근방식에서도 상이한 면이 많다. 여기서는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에서 구조주의의 시조인 소쉬르와 구조주의의 아버지인 레비스트로스에 대해서 논하겠다.   1. 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언어학   ☞즈네브대학의 선사(先師)소쉬르(1857~1913)는 스스로가인구어의 역사언어학을중심과제로 하는 소장문법학파의 밭에서잘 약관 21세인 1878년에 「인구어 모음의 원초체계에 관한 논고」라는 독창적인 논물을 발표한 천재적인 학자였으나 그는 인구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언어학의 조류에 대해서도 널리 관시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체의 언어현상을, 19세기가지의 인문․사회과학의 일률적인 방법에 회의를 품고 언어 자체의 형식적 체계화라는 과학적 분석의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반언어학강의」라는 책인데 이 책은 오늘날의 과학적 언어학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고 소쉬르 이후의 언어학 논의치고 소쉬르이론을 들먹이지 않는 것은 없다시피할 정도로 크게 영향을 끼지게 된다. 소쉬르의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미치기 쉬운 불어사용권에 있어서는 소쉬르이론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저조했던 데 비겨 1920년대에는 프라그학파1)에서, 그리고 1930년대에는 코펜하겐학파2)에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이론이 구조주의언어학으로 먼저 정립되고 다시 후술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그 뒤에야 구조언어학으로,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야 그 폭발적인 구조주의의 유행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역사의 장난이랄까, 적이 기이한 느낌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1) 소쉬르의 생애 소쉬르는 1857년 11월 26일 프랑스에서 이민온 즈네브의 위그노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과학자가 많이 배출된 명문집안이었다. 이러한 과학적 가문은 그 자체가 자랑할 만한 것이었고 그것을 이어가야 하겠다고 생각할 만한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때문인지 소쉬르가즈네브의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875년에 즈네브대학에 들어갔을대 가족의 과학자적 전통에 어울리게 처움에는 물리화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조숙하여 그러한 조숙성이 어릴 때부터 두드러져서 다방면에 관심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신학, 과학, 법률 등 여러 방면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과학적 교양과 다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이 그의 일반언어학에 관한 이론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을 것이다. 그후 소쉬르는 파리언어학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남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즈네브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 외에 논저를 발표하지 않는 등 활동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소쉬르는 이 무렵 언어학에 대해 권태를 느끼고 있었는데 언어학연구의 근본적인 것에 회의를 느낀듯 하다. 그러니까 언어활동의 연구에 있어서의 개념을 명백히 세우는 일 한마디로 말해서 일반언어학의 이론의 기초를 확립하는 일에 고심하고 있었다는 그이 고뇌의 편린이 여기저기 나타나있다. 소쉬르의 즈네브대학에서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제의 이 겸손하면서도 전대미문의 독창적인 강의 〈일반언어학강의〉를 그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애정으로써 자기들이 필기한 노트를 면밀하게 정리하여 재현시켜 스승의 족적을 남기게 한 것이요, 그것이 오늘날 바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이다.   2)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 오늘의 구조주의적 사조의 대부분은 그의 업적에 바탕하고 잇다. 소쉬르는 전통적인 관심, 즉 세계는 독립해서 존재하는 대상물로 되어 있어서 정밀하고 객관적인 관찰과 분류확 가능하다는 관점을 이어받았다. 언어학적 견지에서 말하면, 이러한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언어관이 생긴다. 즉 언어는 「낱말」이라고 하는 분리독립해 있는 단위의 집합으로서, 그것의 하나하나는 각자에 부착되어 있는 독립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전체는 통시적 즉 역사적 차원에서 존재하는데, 이런 것이 언어를 관찰가능한 그리고 기록이 가능한 변화법칙에 따르도록 한다라는 견해인 것이다. 소쉬르가 이룩한 언어연구에서의 혁명적인 공헌은 언어를 「실질」로 보는 견해를 배척하고 「관계적」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 일인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식방법에서의 더 큰 변화에 긴밀히 연관되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또 언어는 개개의 부분이라는 견지에서 그리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 부분들 상호간의 관계라는 견지에서 그리고 공시적 관점에서, 다시말하면 그 언어의 현시점에서의 타당성이라는 견지에서도 연구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던 것이다. 소쉬르가 언어연구에서 공시적 연구를 통시적 연구로부터 뚜렷하게 구별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데는 언어가 걸어온 역사적 경위의 인식도 그러하거니와 지금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구조상에 대한 인식도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독창성은, 언어가 하나의 전체적 체계로서, 그 한순간 전에 무엇인가가 그 체계에 변화를 주는 일이 있었을지라도, 언제나 그 순간마다 완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일이다. 즉 각 언어는 그 역사적 경위와는 상관없이 그 언어를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의 체계라는 점에서 온전히 정당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의 호언은 사실상 그 언어의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현상 전체의 고찰을 언어가 지니는 두 개의 기본적 차원에서 진행시키고 있다. 즉 랑그(langue)라는 측면과 빠롤(parole)이라는 측면에 대해서이다. 그가 행한 이 양자간에서의 변증법적 구별은, 언어학 전반의 발전 특히 구조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또한 인간은 언어를 고안하고 구사하는 특성을 가진 짐승이라고도 말해질 수 있는데 이 언어라는 것은, 구별이 뚜렷한 기호와 이 기호가 변별적으로 연관되는 분명한 개념 즉 「의미」와의 사이에 맺어지는 대응관계에 의해서 성립되는 복잡한 체계 또는 구조인 것이다. 아마도 우연이기는 하겠으나, 현실세계의 사회적 교류에서는, 음성기관이 언어의구체적 실현의 주된 수단 방법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은 입으로 행하는 말이 아니고, 언어 즉 각각 다른 개념에 상응하는 구별있는 기호의 체계를 구성하는 능력이다. 이 「고유의 언어능력」이라는 능력은 실제로는 여러 가지 기관의 기능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이며, 「기호를 지배하는 더 보편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기호를 조립하는 그 능력이 언어에서 생성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 물리적 의미에서는 듣지도 보도 못하는 것이나, 실제의 인간의 발화에서 순간적으로 노출되는 것에서 연역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더 큰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랑그라는 것은 「언어능력의 사회적 산물인 동시에, 개인이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부는 사회단체에 의해서 채용되고 있는 필요한 약정의 집합」인 것이다. 그러니 빠롤은 물위에 나타나 있는 빙산의 일각이며, 랑그는 그것을 받쳐주는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다같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그 자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더 큰 빙산덩어리인 것이다. 언어는 만져볼 수 없는 것이며 또 결코 그 전체 모습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일이 없고, 개개의 학자에 의해서 그 목록의 일부분이 불완전하게 운용되는 데에서만 모습을 나타낸다. 이 사실은 소쉬르 이후의 현대언어학의 앞날에 결실이 풍부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다시 말하면, 개개의 발화와 이해의 목표가 되고 또 전체가 되고 있는 체계화된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 완전한 패턴을 기술하고자 하는 방향이 그것인데, Noam Chomsky와 같은 더 최근의 언어학자가 제안하는 수정된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그것은 개개의 「언어운용」에 앞서서 존재하는 그리고 그 언어운용을 「생성」하는 「언어능력」의 체계를 설명하는 방향인 것이다. 언어운용이나 빠롤은 패턴이 없고 체계적인 긴밀성도 없어서 혼질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에 앞서서 있는 언어능력이나 랑그는 균질적인 것으로 보인다는데 대해서는 놀라울 것이 없다. 즉 그것은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언어는 결국 「낱말이라는 자료적인 실질」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추상적인 「기호의 체계」안에 있다는 것이다. 낱말들은 이 체계의 지엽말단일 뿐이다. 실제로 「기호 및 기호들의 관계가 언어학의 연구대상」이며, 기호 및 기호들간에서의 관계의 본질도 역시 구조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언어기호는, 그 「개념」과 「청각이미지」, -혹은 소쉬르의 저서에서 유명해진 용어를 사용한다면, 소기(signifie)와 능기(signifiant)라는 두 측면간에 존재하는 관계라는 견지에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나무」의 개념(즉 소기)과 「나무」라는 낱말의 청각이미지(즉 능기) 사이에 있는 구조적 관계는 이렇게 해서 하나의 언어기호를 구성하며, 언어는 이들 언어기호에 의해서 성립된다. 즉 언어는 「관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체계」인 것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청각적 체계이므로, 능기와 소기의 관계는 시가의 흐름을 통해서 성립된다. 그림은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복잡한 요소들을 동시에 제시하고 병치해서 보여줄 수 있으나 입으로 행하는 발화는 그런 종류의 동시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요소는 그 자체로서 유의적인 어떤 순서나 연쇄에 따라서 제시되어야 한다. 요컨대 능기와 소기의 관계의 양은 비록 사소하게 이기는 하나, 본질적으로는 계기적인 성질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관계의 전체적인 특징은, 이미 보았던 바와 같이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나무」라는 청각이미지 즉 능기와 그것에 수반되는 개념 즉 소기, 그리고 지상에 실제로 자라고 있는 물리적인 나무 사이의 연결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적합성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나무」라는 낱말에는 요컨대 「자연 그대로인」 혹은 「나무다운」성질이 없다. 그러니 언어의 구조를 떠나서는 「현실」에서의 연결을 보증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어기호는 바로 그 임의성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게 되어 있다. 소쉬르가 말하는 것처럼, 「어떠한 문제라도 논의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기호의 임의성은 「합리적」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의 타당성을 고려하거나 논의한다고 해도 얻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기호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영어의 tree 대신 다른 어원에서 온 낱말인 arbre(프랑스어), baum(도이치어), arbor(라틴어), 혹은 제멋대로 만든 낱말인 fnurd를 더 좋아할 이유는 정녕 없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적절하다거나 혹은 더 「합리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나무라는 낱말이 따위에서 자라고 있는 잎이 있는 물리적 물체를 의미하는 것은, 그 언어의 구족 그 낱말에 그 물체를 의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그 낱말은 그 효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언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강한 보수적인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언어는 자기충족적인 「상관적」구조의 가장 좋은 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구성부분은, 그 구조의 테두리 안에서 통합되지 않는 한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소쉬르가 말하는 것처럼, 「언어는 상호의존적인 사항의 체계인데, 여기서 각 사항의 가치는 다른 사항들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만 얻어진다」 이처럼 언어는 그 모든 측면이 「관계에 바탕하고」있는데,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 관계중에서 두 개의 차원이 특별한 중요성을 띠고 있다. 소쉬르는 그것을 언어기호의 연합적 관계와 동시적인 상합적 관계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능기이든 소기이든간에, 언어에는 언어체제 이전에는 관념도 음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 체계에서 비롯하는 개념적 및 음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언어는 최종적으로, 「형식이고 실질이 아니다」로 판단되어야 한다. 즉 언어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항목의 집합이 아니고, 오히려 양식을 가지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조절적인 형식은, 우리 이외의 세계를 만나서 그것에 대처해가는 우리의 독특한 수단이 되고 있는 터이므로, 그 형식은 아마도 특유한 인간구조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아마도 이 형식은 또 인간현실의 특징적인 구조가 되리라는 논의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2. Lévi-Strauss의 구조인류학   1) 레비스트로스의 생애 끌로드 레비-스트로스(Calude Levi-Strauss)-예술가의 아들이며, 랍비의 손자인-는 1908년에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년에 양친을 따라 베르사이유로 갔다. 그는 이 시기 이전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내성과 사색과 독서에 심취하면서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혼자 걸으면서, 또한 그가 수집했던 여러 잡동사니들-그가 짜맞추기(bricolage)라고 부르는 돌멩이들, 자갈들, 식물들(그는 “모자이크”의 조립을 의도했다)-의 본성에 관해 사색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러한 활동들이 자신의 지질학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고, 후에는 자신의 구조주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늦게까지도 과학도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얼마 동안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32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고,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4년에 상파울로 대학의 인류학 교수자리가 주어졌을 때, 그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직책은 브라질의 내륙지방을 수시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그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에서 그는 많은 원시 종족들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그가 훗날 발전시켰던 아이디어들을 그에게 제고해 주었다. 1939년에 그는 군복무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파리가 함락되자 뉴욕으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신사회 연구원에서 강의했고, 야콥슨과의 친교가 도화선이 되어 구조언어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1945년에는 「뉴욕 학단 연구지」에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종전이 되어 이 학원이 종신 재직 조건을 그에게 보장해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파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1955년까지는 「슬픈 열대」를 저술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행담이라든가 답사보고서라기보다는 지적인 재구성물 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된 기억과 경험적 지역 탐사와 과학적 연역이 묘하게 조화된 「슬픈 열대」는 뜻밖에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렇지만 만일 그 책이 1950년대 중반에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그와 같은 즉각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회상들과 해석들, 관찰과 사색, 사실과 자유연상이 혼합된 이 민족학적 자서전은, 「친족의 기본구조」와 같은 레비트로스의 친족 이론과 그의 신화론「신화의 구조적 연구」를 부상시켜 주었고 정당화해 주었다. 또한 이 학문적 저작들은 사변적 관념들을 상당한 정도의 과학적 지위로 올려놓았고 다시 이 관념들은 「야만적 사유」와 4권으로 된 「신화학」에서의 새로운 개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아무튼 이 초기 저작들을 통해 그는 꼴레쥬 드 프랑스의 명망있는 교수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이 이론적 탐구들을 확장하여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화연구를 구체화했다.   2) 레비스트로스의 기본적 사상 위와 같은 이론들은 검토하는데 있어서 다음과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신화들을 체계화하려는 레비스트로스의 시도-즉 여러 가지 경우의 모든 신화들은 그 문화와의 관련 속에서 말해야 한다는 시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진행중인 과업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기초적인 가정들은 미국의 대부분의 체계 이론들과 판이하다. 후자의 경우 관찰 가능한 자료들만 취급하고 정신의 무의식적인 구조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과학적”이라는 개념의 불어 용법은 미국에서의 용법처럼 경험적 증명과 연결된 것이 아니다. 셋째로 프랑스 저술가들은 전통적으로 개인적 경험들을 역사 해석에 적용해 왔다. 이상과 같은 지적 습관들이 합쳐져서 매우 암시적인 언동 형식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또한 그로 인해 레비스트로스의 초기 이론들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종종 사변적인 관념들을 사실들에로, 과거의 반성들을 현재의 가정들에로 변형시킨다. 그는 지질학과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자신의 “3명의 연인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개인적 경험과 지적인 해석의 혼합을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소년 시절의 레비스트로스는 어떻게 식물들이 상이한 토양에서 자라는가라든가 혹은 어떻게 상이한 시대의 유물들이 암석의 복잡한 퇴화과정 속에 스며들었는가와 같은 문제에 주목했었기 때문에, 인류학자로서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지각에는 과거의 경험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과, 따라서 지각은 “시간과 공간을 뒤섞는…한 순간의 활동하는 다양성 속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점을 사색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즉 역사가들의 역사와는 달리 지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이 보는 역사는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시간 밖에서 - 차라리 일종의 활인화의 방식으로 -구체화하려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역사란 재수집될 때 현재의 일부가 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반역사적인 조망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유쾌할 리는 없었다. 이는 특히 레비스트로스가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때 더욱 그러했다. 즉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는 지리학 및 정신 분석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이 세가지는 모두, 이해란 한 형태의 현실을 다룬 형태로 환원시키는 것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문제는 항상 이성과 감각적 지각 사이의 …관계에 기인하기 때문에…참된 현실이란 결코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 현실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한편 레비스트로스에게는 네 번째 애인이 있다. 그것은 음악인데 음악의 영향은 「날것과 익힌 것」에 잘 나타난다. 비록 그가 후에는 그 영향력을 감소시켰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다양한 경우의 종족 신화들이 음악의 보표처럼 읽혀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방법론 속에 음악의 3차원적 성격을 구체화했다. 「날것과 익힌 것」과 「벌거벗은 인간」의 종절은 음악적 주제들의 주변에서 형성되었다. 야콥슨에 의해 구조언어학이 소개되자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언어연구를 모든 언어적 기호들의 구성 요소들 사이의 , 언어 체계와 개인의 언어표현사이라든가 청각이미지와 개념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제시하는 하나의 자족적인 체계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그 기본적 이원론 위에 야콥슨의 음성학적 분석 모형을 얹어 놓았다. 아큡슨은 구조언어학을 통해 언어구조란 항상 대칭적 구성들의 두갈래 길을 따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의 발견을 계시에 비유했으며, 그 발견으로 인해 언어학 뿐만 아니라 인류학과제반 사회과학이 대변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음소 체계에 관한 야콥슨의 연구를 친족 구조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반영시켰다. 그러나 그에 병행하여 음소적 방법이 단순하게 인류학적 분석으로 전치될 수 없음을 환기시켰다. 대신에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허용할 수 있도록 다듬어져야 한다. 즉 인류학에 있어서 미시 사회학적 분석에 의해 발견되는 법칙들은 거시 단계에 적용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친족 체계에 있어서 용어법의 체계와 예법의 체계 혹은 명명법의 체계와 사회 조직의 체계간에는 커다란 차이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스트로스는 이들 모든 체계가 상징적이라는 점에서 모두 유사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의 입장에서 볼 때 직접적인 경험적 관찰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나 친족체계는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언어학에서처럼 상징적 제관계의 집합들로 취급되어야 한다. 거시단계에서 이 상징적 관계들은 언어와 문화 사이에 존재하며, 종족 사회들 내에서 그것들은 신화의 형태로 표현된다고 한다. 모든 기지들의 신화들이 신화의 구조적 법칙에 의해 발견되고 따라서 현재의 무질서에서 질서정연한 분석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연에서 문명으로서의 전환이 어떻게 관습의 변화와 병행될 수 있었는가를 그는 보여줬는데 예컨대 음식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익힌 것으로 먹는다든지 또는 손대신 식기류가 등장하는 것 등이다. 이런 예들은 단지 신화의 공통 요소를 설명하려거나 아니면 그것의 구성단위를 보이려고 하는 가정에 불과했다. 예컨대 두 편의 보로로족 신호는 문화의 출현을 한 공동체의 대학살과 대등한 것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 “문화”로의 전환은 항상 신화의 사상 그대로 “연속적인 것”에서 “불연속적인 것”으로서 전이에 대응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항상 신화의 분석은 그것의 용어 혹은 내용의 분석 그 이상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구조들을 파악하는 작업은 일종의 문화에 대한 심리분석이다. 또한 계속해서 신화의 구조적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마침내는 옛날 이야기들을 과학으로 변형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구조주의의 이러한 대계획이 성공을 거든다면 원시적이고 무의식적 단계에서 모든 사람의 유년기의 환상이 신성시 될 것이다. ※사르트르의 레비스트로스 비판 사르트르는 레비스트로스를 공격한 첫 번째 인물인데 무의식의 세계를 부정한 사르트르에게 레비스트로스의 무의식적 정구조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또는 레비스트로스의 방법이 관념의 진리를 논증하는 방법론적인 동어 반복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레비스트로스는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주고나성의 환영에 사로잡힌, 참된 사유에 반대되는 것으로 무시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도 전통적인 진화론 혹은 발전 이론을 무시했다. 사르트르의 변증법은 인간과 그의 환경 그리고 인간의 이 주위 환경들과 관계하여 의식적으로 행위하는 과정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의 변증법과 대립된다. 실존주의자의 “표면”은 구조주의자의 “심층”과 대비된다.       Ⅳ.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와 지리학과의 관계   실증주의나 인간주의와 마찬가지로 구조주의가 지리학에 도입된 것도 역시 다른 사회과학을 통해서였다. 구성구조주의를 인문지리학의 연구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구성구조주의 중에서도 다만 Piaget의 연구만이 지리학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그의 발달심리학에는 아동의 공간 및 기하학적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Piaget의 실험에서 제시된 바에 의하면 아동의 공간관 발달에는 4단계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는 지리학적인 연구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몇 사람의 연구자들은 아동이 어떻게 지리적 지식을 획득하는가라는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들의 연구 역시 구조주의적 설명양식보다는 그 패턴에 관심을 가졌던 실증주의적 경향이 강하였다고 할 수 있다. Piagetian적 연구의 잠재가능성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구조주의적 연구라고 할만한 것은 비교적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과정구조주의는 경제지리, 정치지리 등 많은 지리분야에 영향을 미쳐 구성구조주의와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Ⅴ. 구조주의의 문제점과 탈구조주의의 등장   1. 구조주의의 문제점   구조주의는 그 특성 자체가 처음부터 스스로의 숙명적인 해체요인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구조주의는 우선 개개의 텍스트들의 특성과 가치는 무시한 채, 전체적인 〈구조〉만을 중시함으로써 개체를 전체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적 독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구조가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한 문학작품의 의미가 작거나,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개인을 지배하는 언어체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 구조주의는 보편적인 〈구조〉, 〈문법〉, 〈구문〉또는 〈법칙〉을 찾아내고 수립하려는 과정에서 스스로 경직된 과학적 이론이 되고 말았다. ☞ 구조주의는 하나의 구조, 하나의 체계를 분리해 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역사를 무시하는 비역사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 구조주의의 이와같은 태도는 자연히 자아나 주체나 개인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는 비인본주의적․비실존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 구조주의에 의하면 〈구조〉는 곧 모든 것의 기원이나 센터가 되며 〈개체〉에 대해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가 된다. ☞ 구조주의는 비록 지시어와 지시대상의 사이가 필연적이 아니고 임의적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재현가능성을 믿었던 직관주의에 근거하고있다. 다시 말해, 구조주의자들은 모든 것의 근본이 언어체계로 설명될 수있다고 믿었는데 언어체계는 곧 기호체계이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자연기호학적 특성을 띄게 되었고, 더 나아가 기호의 재현능력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 탈구조주의의 등장3)   구조주의가 등장한지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은 1960년대 후반에 이미 강력하게 부상하기 시작한 탈구조주의는 위에 지적한 구조주의의 6가지 특성을 모두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하지만 탈구조주의가 구조주의 밖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내부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발견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단순한 연장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것의 완전한 배제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체적인 〈구조〉보다는 〈개체〉의 존엄성과 자유를 인정한다. ☞사고의 경직화 및 문학과 학문의 과학화를 배격하며 인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표명하며, 과거를 향수가 아닌 탐색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자아와 주체를 중요시한다. ☞절대적인 진리나 센터나 근원의 독선과 횡포를 거부하며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부터 탈피하여 〈타자〉를 인정하고 포용한다. ☞모든 기호와 그것들의 재현능력을 불신한다.  
공존의 미학, 그 시적 통찰 이덕주 1.  『우체부』의 시적 의미 문덕수의 『우체부』(시문학사, 2009)는 본문만 500행에 가깝다. 서문인 「무좀」(머리말)을 제외하고 1부 조셉룰랭 포함 6부로 구성된 장편시집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장시이며 체험에 기초하면서도 종교와 철학, 역사를 아우르며 초월적 은유로 인간의 특성과 본질을 탐구하는 장엄한 시세계를 보여준다.  문덕수의 『우체부』는 그의 필생의 역작으로 자신의 총체적 정신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문덕수’라는 시인 자신이다. 그 때문에 『우체부』에 대한 문학적 평가를 어떤 한정된 이론으로 섣부르게 분석하는 작업은 유보되어야 한다. 문덕수가 시집의 제목을 ‘우체부’라고 명기한 의도를 시에 대한 유형분석 이전에 우선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문덕수는 생이 도달하는 최종목표지점을 엄정하게 응시하며 자신을 의식의 흐름 속에 의탁한 채 초탈의 자신과 대면하며 『우체부』를 써내려갔다고 보아진다. 서서히 소멸해 가는 자신의 본연에 대한 냉엄한 숙고와 통찰을 거쳐 자신의 시적 언어로 내면의 어둠을 조명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대립적 요인들을 용해시키며 자신의 모든 이상과 사상을 『우체부』에 녹여낸다. 이것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경계를 지우고 시적 무아행을 통해 분별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일이다.  ‘우체부’에 대한 정밀한 탐구는 문덕수의 『우체부』를 이해하는 토대이다. 그는 「우체부」 소제목에서 “다시 태어나 우체부 되고 싶네”라고 언술한다. 그 의미 역시 지금까지 자신의 생에서 ‘우체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남은 생에 지금껏 못 다한 ‘우체부’에 대한 소임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덕수는 자신의 삶과 연계해서 『우체부』의 6부로 나누어진 시 행간마다 ‘우체부’를 다양하게 형상화하며 유효하게 배치한다. 독자가 여러 각도에서 ‘우체부’를 조감할 수 있도록 상상을 지원한다. 언제고 ‘우체부’와 연결하여 시대를 초월하고 세상과 다양하게 관계하도록 안배하려 한다.  2. 『우체부』의 이해방식 문덕수의 『우체부』를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 이해방식을 도입하려 한다. 첫째, 문덕수 시가 지닌 선입견 없이 『우체부』 시편을 이해해야 한다. 시집의 행간마다 지닌 포괄적 의미를 객관적, 주지적으로 파악하며 의식의 흐름에 맡겨두고 시인이 갖는 본류의 의식세계에 몰입해야 한다. 어떤 예단 또는 특정한 방법론으로 그의 시를 분석해서는 안 된다. 그가 설정해 놓은 시의 세계에 자유롭게 정신의 본령을 맡겨 놓으며 그가 선도하는대로 연대감을 갖고 동감의식에 젖어들어야 한다.  그만큼 그의 시가 던지는 메시지가 진폭이 크고 확산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문덕수 시인의 인생역정을 통한 즉 그가 생을 통찰하고 인식하는 바탕을 형성한 그의 정신세계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는 1950년 8월 한국전쟁 발발로 군에 입대, 1951년 4월 육군종합학교 수료, 육군소위로 임관, 조사단에 배속되어 1953년 6월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상(좌측대퇴부 골절, 이마에 파편조각이 박히고 눈썹이 찢김)으로 후송, 야전병원-수도육군병원(서울)-제1육군병원(대구, 경북대의과대)으로 후송 가료 중 2년여 만에 불편한 몸으로 제대(육군중위)를 하였다. 이러한 전쟁에서 비롯된 상흔이 장시 『우체부』의 모티브 중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체부』의 시적 진실이라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시인의 과거 편력에 대한 정보파악도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셋째, 『우체부』를 관통하는 ‘우체부’가 지닌 의미를 주시해야 한다. ‘우체부’는 메신저 역할을 수행한다. 편지와 엽서, 소포 등 우편물을 가방에 넣고 의뢰인의 주문대로 수취인에게 일정한 시간에 정확하게 내용물을 전해주어야 한다. 문덕수의 수많은 화자들은 『우체부』에서 메신저의 내용물을 정신적 세계의 전달과 고양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인간존재의 질문을 대신하는 ‘우체부’의 우편물의 내용을 다양하게 변주시킨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우편차량과 오토바이 등 운송수단의 발달로 택배 등 배송수단이 다양해지고 있다. 공적인 업무수행이므로 그들의 복장은 통일되어 제도권 안에 스스로를 예속시킨다. 그들은 전달자로서 자신이 전해주어야 할 내용물을 결코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때로는 목숨까지 담보로 해야 한다. ‘우체부’가 지닌 책무는 처음 ‘우체부’ 역할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의식에 그렇게 규정을 준수하도록 각인된 것이다. 문덕수가 설정한 ‘우체부’의 사명감을 인지하면 『우체부』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우체부』는 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올연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내용과 형식면에서 어떤 방법론만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우체부』는 스스로 한정된 문학적 수사와 방법론을 부정한다. 『우체부』는 독립된 세계를 구현하며 특정한 시의 이해 독법을 수용하지 않는다. 『우체부』는 문덕수를 대체하며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트인 시야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이 『우체부』를 근접해서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덕수는 『현대문학의모색』(수학사,1969), 『한국현대시론』(선명문화사,1976), 『현대시의해석과 감상』(이우출판사,1982), 『현실과 휴머니즘문학』(성문각, 1986)과 시리즈로 『한국모더니즘시연구』(1981), 『문학개론』(1981), 『문학일반의이해』(1992), 『오늘의 시작법』(1994), 『시론』(1992~2002), 『모더니즘을 넘어서』(2003), 『니힐리즘을 넘어서』(2003) 등 수많은 시 이론서를 발간한 시인이다. 이와 병행해서 195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황홀』(세계문화사, 1956)을 시작으로 최근의 『우체부』까지 수많은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다. 이처럼 그는 시 이론을 겸비한 시인이다. 『우체부』를 단편적 또는 부분적으로 분석하면 안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즉 문덕수의 『우체부』는 어떤 특별한 문학이론만을 한정적으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다섯째, 문덕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수많은 시적 테크놀러지를 자신의 시 속에 능숙하게 풀어낸다. 그동안 자신이 출간한 수많은 시문학이론연구총서를 참조하면서 은유와 상징 등 일반 수사기법을 뛰어넘는 초월은유가 더 응용되고 있음을 주시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기법에 더하여 그가 고안한 수사기법을 적용하면 좀 더 폭넓게 『우체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그가 수용한 테드 넬슨(1965년)이 고안한 문서 연결의 방법인 하이퍼 텍스트도 그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문덕수는 경험하지 않은 과거와 경험했던 과거가 한 공간에서 교직이 되게 한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의식과 무의식이 병치되고 합일을 이루게 한다. 이 점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평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방식만으로 『우체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체부』는 문덕수의 의식 속에 체화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총체적 지각이 적재되어 시의 내면을 형상화하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층의 내면세계는 문덕수 자신의 생래적 체험과 독서 등 지적 욕구로 습득된 지식과 성찰, 통찰을 통한 미학적 심화과정이 병존한다. 또한 논리적 사고를 뛰어넘는 자기 신뢰와 자기 확신을 토대로 수렴적 창의성을 한껏 발휘하는 작시(作詩)의 과정을 『우체부』라는 실체로 보여준다.   3.  『우체부』의 진행 1부. 조셉 룰랭  한 생의 시작으로 한 시인의 운명이 개시되고 있음을 시적 장면으로 보여준다. “노끈 한 줄 날아와 네 어깨에 걸리고/ 고무줄처럼 늘어져도 나긋나긋 끊이지 않는/ 우체부 ‘가방’하나 달랑 달렸네”라는 문면을 통해 ‘우체부’가 될 수밖에 없는 한 시인의 운명을 ‘가방’에 의해 예정한다. 그곳은 금와를 만난 유화(柳花), 그 신화 속에서의 ‘알’과 ‘사문(沙門)의 바랑’처럼 ‘우체부’의 소명의식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반 고흐의‘우체부 조셉룰랭’ 그 이상적인 외형은 임진란과 시인이 겪은 전쟁의 상흔과 시대는 다르지만 지향하는 방향이 일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문덕수의 의도에 의해 전면에 배치된 빈센트 반 고흐가 남겨놓은 초상화 「우체부 룰랭씨」(1888년작)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작품은 더부룩하게 반 이상 얼굴을 덮은 수염과 목덜미를 덮은 모습으로 당시의 ‘우체부’의 규정된 복장을 하고 있다. 어깨를 벌리고 한쪽 팔을 책상에 올려놓은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단정하고 늠름한 자세가 직업에 대한 자긍심마저 감득하게 한다. “‘포스트(postes)’ 모표가 또렷한/ 앞 차양 짤막한 캡을 썼”다고 하듯 통일된 모자와 복장이 주는 엄숙함은 반 고흐의 작품 「우체부 룰랭씨」가 ‘우체부’의 상징물인 모자와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반 고흐의 작품, 「우체부 룰랭씨」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우체부』의 이해방식에서 강조했듯이 문덕수의 『우체부』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드러낸다. ‘우체부’의 역할처럼 1부. 조셉 룰랭에서 9.96초의 빠른 속도를 내는 것도 두 다리, “186kg이 일순 두 팔에서 가슴과 허리로” 받치는 힘이 장미란(張美蘭)의 ‘두 발’에서 비롯되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체부’의 사명감을 일깨우며 그 사명감을 지지하고 올바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신체의 강건함이 최우선을 강조한다. 문덕수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굳게 해준 것도 체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보라, 보리수 밑의 앉은이 두 발을 무릎에서 꺾고 접어 결가(結跏)하였네 오른발을 왼발의 넓적다리 위에 얹어 바위처럼 꾹 누르고 아래로 내린 두 손가락 끝으로 두 세계 잡아 이으셨네  포탄이 날아올 땐 인지(人指)를 펴어 밑을 가리키고 전란과 굶주림 속의 모든 염원과 기도를 도맡아 손바닥을 위로 하고 다섯 손가락 다 펴니 두 발의 결과부좌가 받드네           어버이 부축한 외나무다리 길도            5백킬로 상공의 무중력 궤도도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매고 뛸 우체부도            두 다리네 ‘우체부’ 역할수행은 두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데서 비롯된다. ‘두 발의 결과부좌가’ 있음으로 깨달음의 상징인 ‘보리수 밑의 앉은’ 부처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발의 결과부좌가 받’듦으로 “아래로 내린 두 손가락 끝으로 두 세계 잡아 이으셨”다고 화자는 언설한다. ‘두 다리’는 세상과 연결하며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다. ‘두 다리’는 세상을 딛고 떠받치는 지지대를 상징하는 힘이다.  ‘두 다리’가 없으면 존재의 이동은 불가능하다. 살아 있음을 존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두 다리’의 동작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인의 장시 「우체부」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우체부’가 되어야 한다.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매고 뛸 우체부도/ 두 다리”임을 강조하며 화자는 지금 여기에서 독자들에게 ‘우체부’가 되어 자신이 설정할 수많은 ‘우체부’와 각자의 ‘두 다리’로 동행하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2부. 격군들 임진란 당시 배의 노를 젓는 격군(格軍)의 임무는 무엇일까? 전쟁이 진행되는 도중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발진 명령을 복창으로 전군에 하달될 때 복창하면서 자신에게 할당된 노를 힘껏 저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을 완수할 때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격군이 있어야 배는 움직인다. 격군이 있어야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당시, 그들 격군이 있어야 사부(射夫)도 화살을 쏠 수 있고 해전을 치를 수 있다. 격군이 자기 역할을 다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확대해석하면 격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쟁의 승리가 좌우되며 나아가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고 결정된다.  흘러내리는 MI 총대를 메고 전장에서 행진을 이끄는 구령에 따라 움직이지만 총대가 또 흘러내린다.           아이고매 죽여줍소 아이고매 죽여줍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유고메 죽여줍쇼 데이고메 죽여줍소로도 들렸지  옴마니밧메훔으로도 들렸지           그 소모품 육군소위 지금 더욱 궁금하네            예카스민 사마예 예카스멘 사마예 힘이 부쳐서 화자는 “아이고매 죽여줍소”를 반복하며 저절로 외친다. 문면을 통해 격군의 임무수행이 힘들고 한국전쟁에 임하던 화자가 된 “그 소모품 육군소위 지금 더욱 궁금하”다고 회상한다. ‘우체부’의 임무수행이 그만큼 힘든 여정임을 언어유희와 함께 언어가 주는 감각적 형상화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예카스민 사마예”가 “영원을 중시하는 인도인의 시간관념의 일단을 암시”하듯 격군과 육군소위의 임무가 시간을 초월하여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상징한다.   지금 ‘우체부’의 임무수행을 하는 ‘육군소위’는 자신에게 닥친 고행을 감수하고 있다. 회피할 수도 없다. 힘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절대자를 부르고 있다. 지금 이 시간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목청껏 자신의 절대자를 외치며 절대자에게 의탁하는 일이다. 헤드라이트를 끈 군용차들의 앞차를 따라가고 그곳에 진흙이 튕겨지고 도로는 진창이다. 네 우체부 가방도 진흙투성이네 병사들은 군복 위로 둘러쓴 판초에 머리만 내어놓고 덜커덩 덜커덕 흔들리는 자세를 가누면서 전방을 보고 두 눈을 부릅뜨고 가네 화자는 ‘진흙투성이’가 된 ‘우체부’의 가방을 그 절박한 순간에도 꼭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진흙투성이 속에서 “덜커덩 덜커덕 흔들리는 자세를 가누면서” 임무수행중이다. 전쟁의 한가운데, 생은 계속되고 생이 연결되기 때문에 ‘우체부’의 임무가 병존하고 있음을 표상한다.   가느다란 쇠소리의 저 철모는 안전할까  풀과 잎사귀와 나뭇가지로 위장했네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 어깨는 기관총을 메고 가슴에는 수류탄이 달렸네 구릉이나 언덕을 돌처럼 굴러서 오르내리고 비오듯 쏟아지는 포화 속 고지를 오르며 진격하는 보병이라는  이름의 저들은 누구일까 임란 때 사부 격군의 아들들일까 허리에 권총을 찬 소대장도  어깨는 한 자루 카빈 등에는 포탄 1발 한 병사는 포신(砲身)을 들고  또 한 병사는 포가(砲架)를 메고 또 다른 병사는 포반(砲盤)을 짊어지고 헐떡거리는 저들은 누구일까 발사의 반동으로 후진하는 포신에 부딪쳐 마냥 스스로 닦고 아끼던 105미리 야포 밑에  제 몸 영원히 눕고 싶네 화자는 고지를 오르며 진격하는 보병이 되는 일은 “임란 때 사부 격군의 아들들”이기에 그 또한 가능한 일이었음을 시적 정황으로 보여준다. 시대를 초월해 “임란 때 사부 격군의 아들들”인 보병들은 ‘격군’이 그랬듯 시공이 다른 장소에 위치하면서 “헐떡거리는 저들”이 되어 임무를 계속한다. 마찬가지로 ‘105미리 야포’와 함께하는 병사들도 공동운명체가 되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자기 몸같이 아끼는 “105미리 야포 밑에/ 제 몸 영원히 눕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우체부’의 임무수행은 멈출 수 없이 계속된다.  중단 없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고 지속되어야 한다. 임진란과 한국전은 한국내의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그대로 연결되는 장면이다.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한다. 화자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전쟁이라는 정황을 운명으로 수용하려 한다. 일상적 언어를 뛰어 넘어 ‘우체부’의 생생한 의미가 상존하고 있음을 전란의 장면을 형상화하며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3부. 불의 기호  인간의 속내는 알 수 없는 것. 오로지 붓다만이 인간의 욕망, 그 근원을 보았다고 전제하며 화자는 언술한다. “네 보석 눈에서 타오르는 불기둥을 보”듯이, “차디찬 샘 같은 눈 속에 들어앉은 시뻘건 불가마를 보”듯이” 그것은 우리가 보는 ‘눈’에 의해 결정이 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는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다. “눈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고 해도 ‘라이오스 왕’은 끝내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화자는 ‘오이디프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본다. 그들은 왜 그러한 숙명의 살육을 피할 수 없었을까? 화자는 독자에게 그 근본이유를 숙고하기를 주문한다.    조카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수양이 보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단종의 눈에 비친 ‘불의 칼’. 사도세자의 눈에 어린 ‘불의 왕관’, 그에 대비되는 욕망의 불꽃은 제어할 수 없다고 시적 화자는 비유를 계속한다. 이어서 “청령포에는 강물 위로 화염”, “욕망의 불꽃” 등 “저 불의 막대기 불의 칼 불의 포탄 불의 핵......” 처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굴뚝새는 깊은 숲속에 둥지 트나 가지 한 개”밖에 점유하지 못한다며 인간의 욕망도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래도 ‘가방’을 멘 ‘우체부’의 임무는 계속된다. 원통리, 평촌에도 가고 개(犬)고개도 넘는다. 포탄이 날아와도 ‘우체부’의 소명은 멈출 수 없다. 삶과 죽음의 연속선상에서 살아남는 자의 임무는 계속된다. 죽음에는 남과 북의 구별이 없음과 죽은 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음으로 살아남은 자의 몫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화자는 연속해서 강조하려 한다. 죽음 앞에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우체부’의 임무를 순명처럼 받들고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병사들은 뭣인가를 중얼거리며 죽어갔네  으으이 윽, 말하기 전의 시니피앙 말이 끝난 뒤의 소리를 내지르며 죽어갔네  한숨 중얼거림 신음 절규 호곡           어머니 불효자 용서하세요           어머니 만수무강하세요           어머니 ‘뻑’하고 죽습니다.  불룩거리는 네 가방 속은 무슨 소리지  더그럭 덜그럭 쟁그랑 딱 딱 왁자그르 와글북적 미미발휼(浘浘浡潏) 우체부 조셉 룰랭의 금단추 벗는 소리 겉보리 찐쌀 된장 미역이 한데 섞이는 소리 논두렁에서 참 함지를 이고 가는 처녀의 속치마 소리 요강에 조용히 앉아 잠이 든 여인 요조숙녀 죽치고 마주앉아 고스톱하는 친구 죽마고우 施發勞馬 始發奴無色旗  캥캥 캥 대굴대굴 팽이처럼 돌면서 찍 찍 찍 찌르르 윙윙윙 울면서 몰려오는 두개골들 발끝에서 어깨까지 차도르(chador)를 둘러쓴 주검들 피에타의 숨소리 피에타의 맥박 소리 깨어지는 사금파리가 아니라  불발탄과 파편들이 뼈다귀를 녹이는 소리네 편지와 엽서는 모두 불탔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실이 극도로 심각하지만 화자는 그 이면에 유희적 펀(pun)의 요소를 중시한다. “어머니 만수무강하세요/ 어머니 ‘뻑’하고 죽습니다.”와 같이 의도적 장면의 병치로 삶과 죽음이 순간순간 교차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 한다. “요강에 조용히 앉아 잠이 든 여인 요조숙녀” 등 해학적인 면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역설적으로 전쟁이라는 국면을 더욱 긴장하게 한다.   전쟁의 상흔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보여준다. “윙윙윙 울면서 몰려오는 두개골들” 사이로 “발끝에서 어깨까지 차도르(chador)를 둘러쓴 주검들”이 널려 있다. 화자는 예수를 무릎에 안고 “피에타의 숨소리 피에타의 맥박 소리”를 상상하며 흐느끼는 성모마리아를 떠올린다. 그만큼 전쟁은 주검이 난무한다.  “불발탄과 파편들이 뼈다귀를 녹이는 소리” 뿐인 전쟁, ‘우체부‘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편지와 엽서는 모두 불탔”음을 알게 된다. 죽음을 무릅쓰고 소중하게 가방에 간직하고 다니던 우편물마저 이미 소실되었다.  전해 줄 내용물이 없다. 불 속에서 모든 것이 불탔다. 전쟁은 그만큼 참혹하다.  화자는 외적인 파괴의 전쟁은 그 과정에서 인간의 정신적 세계까지 피폐하게 하고 철저히 분쇄시켜 버렸음을 보여주려 한다.   ‘우체부’가 수취인에게 전달해야 할 편지와 엽서를 간직하지 못하고 있다. “불발탄과 파편들이 뼈다귀를 녹이는 소리”를 듣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때 편지와 엽서까지 불탔다는 결과는 그만큼 참혹한 정황을 드러낸다. 소중히 간직한 영혼의 메신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나 그 내용물의 소중함만은 인식하고 내용물을 보듬어 안으면서 견디어 온 ‘우체부’의 삶이다. 화자는 지키고 전해주어야 할 대상을 상실했으니 무엇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시 확인할 것인가? 화자는 질문을 반복한다. 과연 자신의 내면을 북돋고 추스르는 근원적인 지향이 가능할 것인가? 화자는 자신에게 질문을 반복한다.  4부. DMZ ‘3부 불의 기호’에서 전제하듯이 DMZ는 서로의 필요조건에 의해서 설정된다. 6.25전쟁의 전운은 계속되고 화자가 감내하는 ‘우체부’의 역할은 일시적으로 흐트러진다. 야윈 엉덩이에서 춤추듯 덜렁거리는 가방 속에서  장총(長銃)은 막대기처럼 두 동강으로 부러지네  압록강 임진강 철교도 한갓 장난감이네  남쪽의 일요일 새벽을 놀라게 한 소련제 T34의 캐터필러도  종이네 납작 구겨지네 목에 걸려 되넘어간 유언은 많으나 그 사람 안 보이고  받을 사람 다 어디로 갔는지 문덕수의 화자는 시인의 안목으로 “압록강 임진강 철교도 한갓 장난감이”라며 전쟁의 피해는 인간의 힘을 무력하게 하는 정황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묘파한다. 특히 “목에 걸려 되넘어간 유언은 많으나 그 사람 안보이고/ 받을 사람 다 어디로 갔는지” 하는 문면은 영혼의 전령자인 ‘우체부’로서 자긍심과 소명마저 흔들리게 한다. 전쟁의 상흔은 그만큼 인간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게 한다.   총을 겨누어 맞선 중간을 긋고 남북으로 2킬로씩 물러나게 하네 ...(   ).... 또 어디서 무장한 헬멧이 돌돌 말아온 쇠그물 다발을 세워서 돌리며  서에서 동에까지 144마일을 빈틈없이 펴네 이러히 땅과 나라는 두 동강 나고   ...(   )....  다람쥐 멧돼지 산토끼 오가며 놀고  푸른 숲속 백로의 햐얀 몸빛 유난히 눈부시지만  철조망 안의 DMZ네 DMZ는 부정할 수 없는 적대국가와의 경계지역이다. “서에서 동에까지 144마일을 빈틈없이 펴네/ 이러히 땅과 나라는 두 동강 나고” 38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남북으로 갈린 상황에서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은 “다람쥐 멧돼지 산토끼”와 “푸른 숲속 백로”들이다. 사람은 왕래할 수가 없다. 남북을 왕래하던 ‘우체부’의 역할이 정지될 수밖에 없다. 공(空)이 한 시대의 밑바닥을 다 읽은 듯  탕 치고 튕기네 풍선처럼 점점 부풀다간 탁구공만해지면서 저쪽으로 굴러 가네 축구선수들 발끝에 붙어 맨체스터 밀라노까지 갔다 오네 한 군데 가만히 머물지 못하지  배트에 맞아 지구를 한 번 돌면 궤도가 되지 네가 맨 그 우체부 가방의 불룩한 무(無)의 브랜드 인도인이 맨 먼저 발견한 ‘제로’지  지층의 깊은 벽을 뚫으면 그 틈에서 발원지의 먼 맑은 물소리 오줌발처럼 새어나오고 아이들처럼 응석부리고 흥얼대면서 곤히 잠자는 이 깨우네           공이 공(空)으로 굴러가네 ‘우체부’는 자신의 자정능력을 신뢰한다. “풍선처럼 점점 부풀다간 탁구공만해지면서 저쪽으로 굴러 가”듯 확장을 거듭한다. “축구선수들 발끝에 붙어 맨체스터 밀라노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공(空)이기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다. “배트에 맞아 지구를 한 번 돌면 궤도가 되”듯 그 힘은 무한하다. ‘궤도가 되’는 상황은 그대로 고착된 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 공(空)의 유연성이다.     네가 맨 우체부 가방의 볼록한 무(無)의 브랜드  인도인이 맨 먼저 발견한 ‘제로’지 “네가 맨 우체부 가방의 볼록한 무(無)의 브랜드”는 없으면서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무(無)의 브랜드’는 “인도인이 맨 먼저 발견한 ‘제로’”이다. 모든 것은 ‘제로’가 되어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정지된 장소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그곳, 무화(無化)가 이루어진 곳에서 지층의 벽을 뚫고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그 틈에서 발원지의 먼 맑은 물소리” 들리는 정화의 힘으로 회생하기 시작한다. “공이 공(空)으로 굴러가”지만 공(空)이기 때문에 그 힘은 무한 확장된다. 시공을 넘나드는 힘으로 공(空)의 영역은 경계가 없다.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DMZ이기 때문에 자정능력이 지닌 그 특별한 힘으로 갖게 되는 화해의 몸짓을 보여준다. 바람 개스 굶주림 절망 포화(砲火) 핵버섯구름도  안으로 짓이겨 빻아서 가루로 다져 굴러가네’ 존재하는 존재자의 흐름도 이와 마찬가지다. 앞 문면의 ‘사막’도 ‘바다’도 “거두어 말아 굴러 가”듯 “핵버섯구름도” “가루로 다져 굴러 가”듯이 화자는 세상의 존재자는 모두 다시 화해가 되고 하나가 되며 시간의 운행에 따른 자연의 이치를 수용하려 한다. 지진의 무너뜨린 암석을 들어올리고  깨어진 벽돌의 틈을 비집고 빛살처럼 스며들어 숨길을 빠끔빠끔 틔웠지만  수마트라 아체에서도 쓰촨에서도            그래도 공은 바닥을 치고 솟네           네 키를 넘고 북한산을 넘네           2천 7백미터 백두산 밝은 물을 한 번 돌고           예수께서 맨발로 걸어오신 갈릴리호수 위를 굴러           8천 848미터 에베레스트 정상           룸비니에서 본 싯다르타의 시선이 상기 머무는 저 바위에도 세상은 DMZ 속에 머물고 있다. 대지진을 일으키는 “수마트라 아체에서도 쓰촨에서도” 지구는 “그래도 공은 바닥을 치고 솟”는다고 하듯이 공존할 수 있는 화해의 여력은 아직 남아 있다. “2천 7백미터 백두산 밝은 물을 한 번 돌고” 그 힘은 “예수께서 맨발로 걸어온 갈릴리호수 위를 굴러/ 8천 848미터 에베레스트 정상/ 룸비니에서 본 싯다르타의 시선이 상기 머무는 저 바위에도” 그 힘을 드러낸다. 그것은 다시 시작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다.  예수와 싯다르타, 그들을 구분하는 것조차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지금 서로 다름이 아니다. 부르는 이름이 예수와 싯다르타라는 차이가 있을 뿐, 공(空)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분별의 의미를 구태여 따질 필요마저 없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불이(不二)와 불이(不異)의 존재이다.    공은 스스로를 지우네  굴러가면서 제 온갖 몸짓을 지우네 날아가면서 날아간 길을 지우네 폭발과 살육 속에서도  숨쉬며 지우네 지우는 방식까지 지우네 사무실의 안팎과 도시의 미로에 가득차 넘실거리는 것 만지거나 볼 수는 없으나 나무와 꽃을 가꾸듯이 기르고 있는 300층을 300층으로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것 213360 네 군번까지 지우네  피구슬 번호의 한 자 한자  전선(電線)에 한 줄로 나란히 앉은 꽃새로 폴폴 날리네 변화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3부 “불의 기호”에서 ‘우체부’ 역할이 정지되었으나 회생이 된 공(空)이 지금까지 시도했던 모든 방식을 부정하면서 다시 긍정의 눈으로 대상을 보며 화해의 몸짓을 보낸다. 그곳에 대상을 향한 지우고 지워서 끝내 “지우는 방식까지 지우”는 무화(無化)된 공(空)이 있다. 모든 것은 공(空)이 되어 다시 시작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300층을 300층으로 꿋꿋이 세우고 있는 것”과 같은 자존과 함께 화자가  직접 몸으로 겪은 전쟁인 “213360 네 군번까지 지우”며 몸의 기억까지 지우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어서 역설적으로 “전선(電線)에 한 줄로 나란히 앉은 꽃새로 폴폴 날리네”라고 언술하며 새로운 평화, 화해의 몸짓을 상징하듯 ‘한 줄로 나란히’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DMZ의 이면을 확대해서 보여주며 새로운 희망을 예시하는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5부. 모데라토  전쟁에서의 상흔을 딛고 새롭게 살고 있는 삶에서 몸에 각인된 전쟁의 기억은 자신의 몸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설파한다.  과거의 공자님, 예수님, 부처님의 생존당시의 삶이 인간의식에 내재되어 영원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그들의 생에 견준다면 문덕수 자신을 포함한 현세를 살고 있는 자는 “흙탕물 속에서 아직 칠삭둥이로 물장구”친다고 전제하면서 삶의 완성이 머나먼 길임을 인식시키려 한다.  자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신뢰를 보내는 “고물 헬리콥터의 유리조각”을 다듬어 만든 ‘인장(印章)’이 하찮아도 자신에게는 중요한 징표이다. 인장에 대한 기억이 그렇듯이 육신이 갖는 기억이 의식 속에서 자신을 서둘러 현실로 옮겨와 ‘나이만큼 몽글’해지고 모호해졌다는 실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넓적다리 뚫리고 허벅지뼈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눈썹을 가로질러 긁고 이마 앞머리 모두 찢어진 온 몸  피의 파편을 둘러썼네 죽음의 그물 둘러썼네 그때 너를 번쩍 들어 어깨에 맨 이는? ...(   )....           아직은 숨이 붙어 있어, 얼른 서둘러 “허벅지뼈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이마 앞머리 모두 찢어진 온 몸”이 된 “죽음의 그물 둘러” 쓴 총탄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음을 의식하며 “아직은 숨이 붙어 있어. 얼른 서둘러” 각인된 그 소리는 누구의 외침일까? “너를 번쩍 들어 어깨에 맨 이는?” 누구일까? 오랜 시간이 경과한 지금 무의식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소생시켜야 한다는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달하는 화자자신이 자신에게 던지는 외침이고 물음일 것이다. 포탄이 텐트를 물고 날아갈 듯이 펄럭이는 야전막사에서 수술의 칼을 잡은 이는 누구일까 깁스 붕대 속의 미라에게 계속 맥박이 살아 발딱발딱 뛰도록 신비의 바늘을 지른 손은 누구일가 포격에 쫓기면서 경복궁 옆의 수도육군병원까지 실어나른 이는 누구일까 신(神)을 보지 못했다고 함부로 입 열지 말라 이 세상에는 모르는 일이 너무 많네 도저히 생환할 수 없는 여건인데 긍정적 상황이 연결되어 화자는 삶을 지속한다. 한 치라도 어긋나면 생환할 수 없는데 기묘하게 삶의 방향으로 전환을 거듭하며 죽음을 벗어난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화자인 문덕수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회고하면서 실체적 고변이니 자신만큼은 그 상황을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을 살리기 위한 신의 기막힌 안배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 “신(神)을 보지 못했다고 함부로 입 열지 말라”는 설정은 이 세상은 모르는 일이 너무 많다는 자각과 함께 처절한 삶의 국면에서 그 당시 화자 자신이 다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밤의 대구(大邱) 제1육군병원이네, 들것은 다시 트럭으로 옮겨지고  ...(   )... 만발한 한겨울의 꽃이네 그때 네 인장은 저 별이 간직하고 있었을까 세상에는 모르는 일이 너무 많네 대구 ‘제1육군병원의 후송’ 병원은 그 당시 전방의 전선에서 몰려온 부상병이 널려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부상병으로 채운 광장의 참혹한 광경을 “만발한 한겨울의 꽃밭”이라고 화자는 자조와 안도의 시선으로 본다. 그 상황을 “그때 네 인장은 저 별이 간직하고 있었을까/ 세상에는 모르는 일이 너무 많네”라고 화자가 자신의 심경을 묘파하면서도 생의 존재에 대해 적극적인 긍정의 시각으로 보려 한다. 즉 ‘우체부’인 화자가 인식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불가항력적 힘이 화자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수긍하려 한다.  끊어지는 숨소리 헐떡거림 끙끙거림 울부짖음 아아 아야야 윽윽 음음 응응 비명의 격류  다리 잘린 이 눈 잃은 이 부러진 척추 잘린 발목 부여잡은 이 팔 없는 어깻죽지 노호 탄식 통곡 읍소 절규......  탑 속에 유폐된 탄식도 들은 제우스, 이곳엔 없네  죽은 자는 고지에서 여기 오지도 못했네 가을 들판을 덮은 온갖 풀벌레 울음의 잔치 지옥은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바지에서 동그란 것이 툭 떨어져 제 홀로 굴러가네 끝없이            에카스만 사마예 에카스민 사마예 “죽은 자는 고지에서 여기 오지도 못했네” 지금 이곳은 그대로 살아남은 자만이 공유할 수 있는 시공을 뛰어넘는 자리이다. “바지에서 동그란 것이 툭 떨어져 제 홀로 굴러가네 끝없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결론은 ‘에카스민 사마예 에카스민 사마예’라고 외치듯 운명은 끝내 알 수 없다. 아직 지옥은 아니다. ‘우체부’의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임계점에 이르러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부르짖는다. 인간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한계이며 화자의 숙명이다. “바지에서 동그란 것이 툭 떨어져 제 홀로 굴러가네 끝없이” 어디까지 저 ‘동그란 것’은 굴러갈 수 있을까? 저 작은 ‘동그란 것’은 결국 ‘제 홀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 ‘우체부’의 사명은 아직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6부.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까지 죄 없이 살아온 자는 아무도 없음을 예수가 몸으로 보여주는데 세상의 모든 유언은 눈(雪)에 쓰듯 다 녹아버린다. 물 건너 이민 간 누나의 발자국은 하늘이 지우네  어둔 병실 구석에서 콜록거리다가 종적을 감춘 아버지  모깃불 피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밤하늘의 손주 별을 찾던 백발의 머리 든 채로 화석이 된 할머니 아들 만나려고 강 가의 나룻배 기다리는 동안 넋을 잃고 홀연히 실종된 어머니 네 가방, 해산한 어머니의 뱃가죽처럼 쭈그러들고 집히는 편지도 없고 받을 이도 없네 세상과의 인연은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정리된다. “이민 간 누나”와 “종적을 감춘 아버지” 그리고 “화석이 된 할머니”와 “홀연히 실종된 어머니” 등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인연은 끊어지고 혼자 남아있는 화자다. 그 때문인가?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우체부’의 임무는 완수하지 못하고 텅 빈 가방이 되었다. ‘네 가방, 해산한 어머니의 뱃가죽처럼 쭈그러들고/ 집히는 편지도 없고 받을 이도 없네’. 절절하게 화자의 심경을 고변한다. 그 곳은 화자가 전제하듯이 바로 ‘지금 여기’인 것이다. 아버지 로봇과 아들 로봇 울돌목의 일자진 뒤에 배치한 가병(假兵)들이네  ...(   )... 전사한 할아버지 애비 손자의 두개골들이  고지(高地)를 왕릉처럼 덮네 공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네  어깨에 멘 황갈색 가방에 부딪쳐 튀어나가 저 쪽 불탄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서 멎네  ...(   )... 지렁이로 몸을 비틀며 꾸물꾸물 산비탈을 기어오르고  원숭이로 변해 날쌔게 떡갈나뭇가지로 뛰어올라가 숨네 지금 문덕수의 화자는 전라남도 신안과 진도(珍島)사이 폭 300미터 물살이 거칠게 흐르는 울돌목을 바라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이순신 장군이 남은 전선 12척으로 왜적을 격퇴하는 그 모든 것의 배치가 이순신 장군만의 힘이 아닌 것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잠시 『우체부』의 결론을 내리는 부분에서 화자의 시선은 파도 넘실대는 울돌목을 명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전사들은 “전사한 할아버지 애비 손자의 두개골들이/ 고지(高地)를 왕릉처럼 덮”고 있다고 기억하듯이 모두 죽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다. 로봇 전사들이 “가병(假兵)들이” 되어 대리로 전쟁을 한다. 영혼이 없는 로봇이 대신해 주는 싸움이다. 로봇병사, 복제병사들이 상황에 따라 “지렁이로 몸을 비틀”고 “원숭이로 변”하듯 온갖 형상으로 변화하며 싸움에 임한다.  탱크를 장난감처럼 뒤집어 던지는 로봇의 팔들  가을의 붉은 속치마를 두른 680고지 673고지 749고지 펀치볼을 두른 칼날의 능선바위도 오르내리네  지금 네 빈 가방에는 무엇이 울고 있느냐 파편이냐 보석이냐 두개골이냐 더그럭 덜그럭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미래의 전쟁, ‘우체부’는 어떻게 존재방식을 바꾸어야 하는가. 화자의 상상 속 그 미래에도 ‘우체부’는 존재해야 한다. “펀치볼을 두른 칼날의 능선바위도 오르내리”며 ‘우체부’의 역할수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어쩌면 화자는 미래의 ‘로봇’의 힘을 차용하고 발휘해 ‘우체부’의 임무를 완수하기를 소망했었을 것이다. 화자는 ‘우체부’의 가방이 비어 있음을 확인한다. “파편이냐 보석이냐 두개골이냐” 묻고 있지만 이미 비어 있는 가방이다. “더그럭 덜그럭”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우체부’는 공허하다. 전달해 줄 내용물에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의미마저 퇴색되고 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다.  화자는 공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이대흠의 시, 「아름다운 위반」은 승객과 버스기사와의 어긋나면서도 정겨운 대화에서 “이러히 그들은 연애하네”라는 서로의 교집합을 확장시킨다. 서정우의 시, 「소 닭보듯」은 소와 닭의 관계가 무심해 보이지만 서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이러히 소와 닭은 연애하네”라고 표현한다. 김원일 소설, 「용초도의 동백꽃」 인용 부분도 인연에 대해 서로 연관성이 있으니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며 그 또한 공감대의 확장인 공존으로 본다. PC TV 냉장고 에어콘 로봇 해골 하나님 손때 묻어 반질반질하네 ...(   )...           휴대폰 좀 빌려줘 하나님과 통화하고 싶네            이러히 모두 연애하고 싶네 화자는 “PC TV 냉장고 에어콘 로봇 해골/ 하나님 손때 묻어 반질반질하네”라며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서로 관계되고 있음을 주시한다. ‘하나님 손때’라는 의미는 우리가 쓰고 있지만 우리 안에 바로 하나님의 힘이 우리의 손을 빌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를 함의한다. 언제든지 환치되는 관계다. 화자의 내면은 “이러히 모두 연애하고 싶네”라는 일체 대상을 포용하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경지로 시적 대상을 형상화 한다고 할 수 있다.  뭍과 섬 하나로 붙은 견내량(見乃梁) 울돌목(鳴粱) 동과 서 이어 백성 지킨 그 물길 더욱 푸르네 한 뿌리에서 뿜는 압록 한강 영산 낙동 멀리 태평양 대서양 감쌌네 제 타원형 궤도를 잡아 도는 이 초록별 알구슬 이브의 손 들어 올리니 온 몸 떨려 두렵네 화자는 세계 사이의 팽팽한 줄을 잇고 있듯이 육지와 섬이 붙은 ‘견내량(見乃梁) 울돌목(鳴粱)’을 보며 남북은 갈려 있어도 “동과 서 이어” 압록강에서부터 대한민국 전체를 관통하는 물줄기가 태평양, 대서양 감쌌“다고 그 화합된 장면을 보여주려 한다. “압록 한강 영산 낙동강” 그 모든 원류는 ‘한 뿌리’인 대한민국의 땅에서 나왔으며 그 힘으로 지구를 감싸 안았음을 거듭 강조한다. 내면적으로 남과 북의 갈림을 봉합하고 화합해야 통합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칼 세이건은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작은 푸른 점이라고 했다. 화자는 지구를 “제 타원형 궤도를 잡아 도는 이 초록별 알구슬”로 표현하며 생명이 있는 유기체로 본다. 우주에 존재하는 절대적 힘에 의해 지구가 생겼고 인류를 탄생시켰다고 여긴다.   처음 세상과 소통이 시작된 아담과 이브가 공존했던 에덴동산에서 “이브의 손을 다시 들어 올리니 온 몸 떨려 두렵”다고 고해하듯 심경을 토로한다. 화자는 모든 존재들이 스스로 본성과 영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때문에 자신의 깨달음이 두렵기만 하다. 뒤늦게 세상의 공존하는 그 이유와 본질을 알게 되는 과정을, 깨달음에 대한 경애를 화자는 자신을 향해 두려움으로 표명한다.   잠시 『우체부』의 머리말인 무좀에서 그 결론에 대해 “다만 그 ‘진실’에 반치라도 다가서고 싶은 내 언어. 헉헉거리네” 하며 스스로 절감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실토의 언어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오죽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우체부’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 염원으로 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을까. “온 몸 떨려 두렵네”라는 화자의 마지막 언술이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궁구하게 하는 것이다. 4.  운명적 존재, ‘우체부’ 문덕수의 시집 『우체부』를 살펴보면서 문덕수의 ‘우체부’는 문덕수의 ‘우체부’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운명의 흐름을 주시하며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직관력에 의하여 자신의 생을 투시하고 본질을 통찰하려 한 『우체부』를 어떤 단편적인 담론으로도 규정할 수 없다. 통합적 관점으로 시를 대하는 그의 시편을 특정한 관점의 방법론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 또한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평자는 『우체부』 시집의 면면을 해독하듯이 총체적인 분석을 하려 했다. 그 이유는 문덕수가 『우체부』를 왜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당위성을 찾기 위해서였음을 밝히며 『우체부』가 지닌 몇 가지 특성을 평자 나름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첫째, 문덕수는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며 궤도 수정을 할 수 없는 능력의 부족함을 절감한다. 하지만 자신이 기묘하게 수많은 우연과 행운을 거쳐 운명적으로 생을 이어왔듯이 아주 특별한 ‘존재자’임을 긍정하려 한다. 그 때문에 운명을 주재하는 절대자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한 자존감으로 의식의 흐름 즉 시적 진실을 분석하고 재해석하며 자신이 ‘우체부’의 소임을 충실히 하지 못한 연유를 ‘우체부’의 언어로 전해주려 한다.  그와 함께 자신의 존재의미를 ‘우체부’를 통해 탐구하려 한다. 반 고흐가 남겨놓은 초상화 「우체부 룰랭씨」를 시집 전면에 배치하며 ‘우체부’의 존재에 대해 궁구하게 한 것도 여러 각도에서 인간의 모습을 조명해보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연속적으로 격군, 사부, 보병, 육군소위 등 역할분담에 따라 ‘우체부’를 변주하게 한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세상의 흐름을 연결해주는 그 내면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문덕수의 『우체부』는 모든 시적 대상의 교감으로 동감하고 공명(共鳴)할 수 있는 합일을 추동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계를 지워나간다. 의미와 관념이 짓는 경계를 없애려 한다. 상생과 공존을 향한 공감의식을 생성하려 한다. 상반과 이질을 벗어 화합되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병존시키려 한다.   문덕수는 시적 대상에 대해 합일을 이루는 방편을 현장감 있게 수용하려 한다. 자신의 지나간 생에 대해 분별지가 작용했음을 수긍하며 그 과오를 교정하여 공존과 화합을 추동하려 한다. 이러한 내면의 변화는 시적 대상들에 대해 다름과 다양한 개별적 특성을 인정하며 공존의 시적 미학을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은 자신의 저서 『공감의 시대』(믿음사, 2010)에서 “공감의 확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와 인프라를 가능하게 하는 접착제이다. 공감이 없는 사회생활이나 사회적 조직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공감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다. 이처럼 공감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방식을 문덕수는 주시했다고 보아진다. 누구든 소통과 교류의 메신저인 ‘우체부’가 될 수 있으며 인간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관계형성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본 것이다.  셋째, 『우체부』는 시의 행간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문장과 언어가 병치되고 난무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이 혼합되고 문학적 수사기법이 뒤섞이면서도 기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문덕수는 앞의 ‘『우체부』의 이해방식’에서 예시하였듯이 수많은 시 이론서와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다. 자신이 주창한 시 이론을 자신의 시에 응용하고 적용시키려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가 1992년 로 발간한 『시론』의 ‘머리글’에서 “해외의 이론과 동양의 고전적 이론을 토대로 시론이나 시학의 새로운 이론 창출과 그 체계화에 전념”할 것을 당부하고 스스로 실천해 왔듯이 『우체부』는 문덕수가 그 오랜 기간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정착시키려 한 시집이다.   그 때문인지 『우체부』는 상반되고 이질적인 언어가 맺는 관계가 ‘우체부’라는 운명적 존재 앞에서 연관되고 서로 혼용되어 질서를 이룬다. 이러한 고도의 문학적 수사는 통합적 시론을 숙지하고 그 기법을 다양하게 문면에 적용시킬 때 가능한 수사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문덕수의 『우체부』는 그의 총체적인 사유와 통찰이 내장된 시편을 담고 있다. 진솔한 자기고백과 증언이며 자기만의 본원을 향해가는 지향의 원리를 확인하게 하는 특별한 기록물이다. 문덕수가 세상과 공존해온 나름의 조용한 존재방식이다. 이 특별한 시편은 그만이 갖고 있는 천성의 능력 즉 수렴적 창의력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문덕수의 『우체부』는 인간의 욕망을 통찰하면서 생이 갈 수 있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비로소 인간존재의 비밀의 덮개를 벗겨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멸해가는 존재의 나약함을 인지하면서 운명적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그 역할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복합적 요인이 적용되고 자신의 특성을 살리는 문덕수의 『우체부』는 그만의 개성적인 시가 된다. 물론 앞에 제시한 네 가지 방식만으로 그의 시를 규정할 수는 없다. 그만큼 그의 『우체부』는 단편적으로 측량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지닌다.  195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시력 50년 이상의 문덕수가 견내량, 울돌목 앞바다의 넘실대는 파도 끝에 눈길을 두며 마음의 지향을 어디에 두고 있었을까? 그는 오랜 기간 자아의식의 심화를 통해 자신을 개혁하고 자신을 초월하려 했다. 인간본성의 존재와 신비를 확인하고 새로운 의미의 인간영역을 확장하려 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양수에서부터 시작하여 태평양 대서양을 돌아 시공을 초월하여 또 다른 신성의 ‘지금 여기’에 당도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문덕수는 수없는 ‘지금 여기’를 연결해왔다. 문덕수는 어머니의 상징 그 이상인 이브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지금 여기’의 엄정함에 못내 자신의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그 축소된 심사로 그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로 응집된 ‘지금 여기’를 지켜내려 한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서 깨달음의 지혜를 조금이라도 획득했다면 그 또한 다행으로 여겨야 할 뿐이다.   비로소 ‘무좀(머리말)’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문덕수는 신의 영역에 근접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자신의 언어로 반치라도 ‘진실’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 인간존재의 신비를 확인하고 새로운 의미의 인간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경계를 지우며 경계를 세운다.  문덕수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함께 우리 모두가 경계 없는 ‘우체부’가 되어 자신이 다하지 못한 진정한 전령사 역할을 수행하기를 간절히 소망할 것이다. 앞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과 그 나름의 해답을 각자 궁구하게 하는 『우체부』가 독자와 함께 널리 읽힐 것이다. 인간 본성과 인간적 탐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우체부』가 보여주는 시적 진실이 많은 공감을 일으키길 예견한다.
49    문덕수 시인의 연작시 --선에 관한 소묘」에 대한 소고 댓글:  조회:1638  추천:0  2019-06-17
문덕수 시인의 연작시  --선에 관한 소묘」에 대한 소고   김석환 1. 머리말  문덕수(1928-) 시인은 등단 이후 『황홀』을 비롯한 17여 권의 시집과 『한국모더니즘시 연구』 등 문학 연구서를 발간하고 수많은 평론을 발표하며 한국 시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월간 시 전문지 『시문학』을 1971년 창간한 후 현재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발간하며 한국시단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오랜 동안 대학 강단을 지키며 지속적으로 시에 관한 이론을 탐구하고 이를 창작을 통해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초기에는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시를 선보이기도 하였고 현실의식이 강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며 다양한 시세계를 보여 주었다. 본고는 문 시인이 초기에 발표한 「선에 관한 소묘」 연작시(1963-1965) 5편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이 시편들은 실험의식이 강하여 평자들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는데 이후에 창작한 문 시인의 시적 원형이 잠재되어 있다고 본다.  기존의 평자들은 「선에 관한 소묘」 연작시 5편은 인간의 무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해석이 어려운 ‘무의미시’라는 평을 주로 해왔다. 특히 시를 해석하여 의미를 유추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 시편들이 기존의 시보다 상상의 비약이 커서 논리의 일탈이 심하다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 실제로 있는 어떤 대상을 그리기보다 무의식을 그리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문 시인 자신도 자신은 무의식의 세계, 즉 ‘내면세계’로 시선을 옮겨 그 구조를 반영하려 했다는 것을 이 시편들을 쓰고 난 후 『사상계』에 발표한 시론 「내면세계의 미학」에서 언급하고 있다.   시가 외면세계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외면세계의 구조가 그대로 시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외면세계의 속박을 끊고 내면세계로 옮기면 외면세계의 합리적 구조를 벗어나게 되고, 따라서 비합리적인 내면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게 된다. 이러한 문 시인의 주장이나 기존의 논의는 무의식이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되었는가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의 타당성을 뒷받침 해 준다. 본고는 문 시인이 그의 시를 통하여 어떻게 내면세계의 무의식적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카오스적인 무의식적 욕망을 이미지의 자율적인 연상에 의해 표현하려 시도한 시편들에서 구조적 특징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거나 일정한 주제를 찾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선택하여 배열한 이미지의 연쇄가 어떻게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일은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라깡은 인간의 정신 층위에서 무의식의 존재를 처음 밝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서 무의식과 언어 구조와의 관계를 밝혔다. 프로이트는 생리학적 관점에서 무의식적 층위에 잠재된 ‘리비도’가 인간의 행동과 의식을 조정하고 지배한다고 하였다. 그에 비해서 라깡은 오히려 “언어활동은 무의식의 조건”이며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하였다. 즉 인간이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무의식적 욕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자신의 본 생각을 부정하는 법칙을 지니고 있어서 언어 기호의 기표인 문자나 소리는 주체가 그것을 통하여 드러내려는 기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기의는 기표들의 연쇄구조에서 겨우 나타나거나 한 개의 기표가 여러 개의 기의로 분열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의와 분리된 채 “떠도는 기표”는 주체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작용한다. 따라서 주체가 선택하여 사용한 기표가 오히려 주체의 욕망을 억압하며 그 실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기표를 필요로 하며 그것을 온전히 드러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 선, 그 무의식적 욕망의 기표 5편의 연작시는 모두 ‘선’에 대한 무의식적인 자유연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선택하여 배열하고 있다. 배열되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커서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찾기 힘들다. 이미지 사이의 차이 또는 유사성으로 관계의 망을 구축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데 그러한 특징은 자연히 이미지가 내포한 의미나 시 텍스트 전체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의 파악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것을 찾아 독해를 하는 것도 읽는 이의 역할이며 몫일 것이다.  선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이  뒤좇는다, 어둠 속에서 빗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이  꽃잎을  문다. 뱀처럼, 또 한 가닥의 선이 뒤좇아 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 찬란한 꽃 망사 위에  동그만 우주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다. - 「선에 관한 소묘.1 」 전문. (1963.7. 『시단』 2집) 이 시의 전반부에는 ‘선’, 후반부에는 ‘꽃’의 움직임과 상태를 묘사를 하며 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선’은 만물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환원한 추상어로서 그것의 기초요 근원이다. 그 선은 ‘실뱀, 빗살, 뱀, 불꽃’ 등에 차례로 비유되고 변주되는데 그것들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원형적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 대하여 응답으로서 발생하며 그것이 형성되는 주체적인 공간이 환상이다. 환상에서 만들어진 그 욕망의 이미지들은 달아나고, 뒤쫓고, 쏟아져 나와 꽃을 무는 등 역동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주체의 욕망을 상징하는 뱀이 다가가 무는 꽃은 그것이 추구하는 ‘대상a’ 이다. 그렇게 선의 비유적 이미지들이 역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성 자체인 ‘절대적 대상’에 다가가 주체의 ‘결여’를 메우고 상실한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대상a’인 ‘꽃’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전체적 또는 절대적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순간마다 그것이라 믿고 물지만 ‘부분 대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주체의 환상 속에서 ‘또 하나의’ 꽃이 반복적으로 피었다 떨어지고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주체의 욕망이 결코 뛰어넘기 불가능한 절대적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거미줄을 짜듯 욕망의 기표를 선택하고 결합하여 끝없는 망사(網絲), 즉 관계의 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시간과 공간적 좌표와 ‘달걀처럼’ 완전한 생명력을 가진 예술적 텍스트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한편 전반부에 나타난 욕망을 상징하는 선의 비유적 이미지들의 움직임과 후반부에 나타나는 꽃의 피고 지는 상태는 동시성을 갖는다. ‘대상a’인 꽃은 주체의 욕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동시적으로 관계하기 때문이다. 문 시인은 이렇게 ‘절대적 대상’을 향해 끝없이 발동되는 무의식적 욕망의 역동적인 흐름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곧 문 시인에게 있어서 시라는 언어적 텍스트를 창조하는 치열한 작업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영원히 날아가는 의문의  화살일까. 한 가닥의  선의 허리에 또 하나의 선이 와서 걸린다 불꽃을 품고 얽히는  난무(亂舞),  불사(不死)의 짐승일까.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는 삭아서 멀어지고, 일체가 불타버리고 남은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 - 「선에 관한 소묘. 2」 전문. (1963.7. 『시단』 2집) 시인은 ‘선’이 ‘영원히 날아가는 화살’이라고 명명하며 의문을 갖는다. 그것은 형상이 있는 모든 만상을 추상화함으로써 일체의 개념이 제거된 기표일 뿐이다. 그 ‘허리에/ 또 하나의 선’이 걸리어 관계를 맺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상을 창조한다. 만상을 생성하는 기초요 근원인 ‘선’은 ‘불꽃을 품고’ 얽혀 ‘난무’가 되는데 시인은 그것을 ‘불사의 짐승’일 것이냐 묻는다. 주체의 욕망을 품은 선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논리와 질서를 일탈하여 예술의 한 장르인 난무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비유한 ‘불사의 짐승’은 욕망을 표현하는 예술이 일상적 논리를 초월하는 특성을 암시한다. 그것은 과일과 같은 언어에서 고정된 기의를 제거한 채 ‘텅빈 기표’만 남아 일상적 언어로부터 멀어지며 절대적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신비한 매듭’, 즉 예술적 텍스트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대상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의 내용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욕망이 이입된 언어를 독자적 어법으로 결합하여 구축한 시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은빛 실날을 뽑으며 그물을 짜는  한 올의 바람, 이윽고  환상처럼 걸리는 조롱(鳥籠), 천사의 손도 얼씬 못하는 조롱.  그 속에 지구는 무한의 구석을 울리는 쓸쓸한 새. 금빛 구름을 뿜으며 그물을 짜는  한 가닥의 지푸라기, 이윽고  허무의 가지 끝에 걸리는 초롱. 신의 눈도 얼씬 못하는  초롱. 그 속에  우주는 영겁의 모서리를 밝히는  호젓한 불꽃. - 「선에 관한 소묘. 3」 전문. (1964.7. 『시단』 5집) ‘은빛 실날’을 뽑아 그물을 짜서 끝내는 ‘조롱’을 짓는 바람은 무의식적 공간인 환상에서 솟아나는 욕망의 상징이다. 그 욕망이 구축한 무한한 우주의 상징인 ‘조롱’ 속에서 지구는 그 ‘구석 끝을 울리는 쓸쓸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의 우주적 환상은 새가 된 지구가 ‘한 가닥의 지푸라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지구가 지푸라기를 엮어 그물을 짜면 ‘조롱’은 불을 밝히는 ‘초롱’이 된다. 그것이 걸리는 ‘허무의 가지 끝’은 곧 언어가 지배하는 상징계인 현실의 극단 또는 그 가장자리 너머의 ‘틈’ 또는 ‘빈자리’를 일컫는다. 조롱이 변주된 ‘초롱’을 걸리게 하는 근원적 힘인 욕망은 곧 그 ‘빈자리’ 또는 ‘결여’ 자체이거나 그곳에서 솟구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롱은’ 주체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한 ‘신의 눈도 얼씬 못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18세기의 내장 속을  기생하는, 한 마리  세균(細菌). 그것은  벽(壁) 뒤로  폭동과 군중을 거느린 하나의 점(點).  그것은 침묵의 축축한 밑바닥을  핥는  파편. 그것은 실패한 지도의 꿈.  아니  지구를 둥근 3각형으로  변조하려다  들킨  미충(微虫).   - 「선에 관한 소묘. 4」 전문. (1964.12. 『시단』 6집) ‘선’은 ‘세균, 점, 파편, 지도의 꿈, 미충’ 등의 기표로 변주되면서 그 내포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그 기표들을 수식하는 구절은 논리를 일탈한 진술로써 그것에 묶여 있는 일상적인 의미를 제거해 준다. 따라서 ‘선’을 통해서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기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선이 거느리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물론 그것을 한정하고 수식하는 구절을 연쇄적으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선’은 제도와 규율을 중시하던 시대인 18세기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것은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와의 관계를 차단하는 ’벽 뒤’에 감금된 채 억압을 당하다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들이 품고 있는 광기로 취급되기도 했다.  또한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의 빈자리에서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는 ‘결여’ 자체이다. 그것은 현실의 도상인 지도는 그 실재를 보여주는 데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그 기표와 기의 또는 지시체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려는 시도이다. 지구는 둥글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삼각형’으로 새롭고 낯설게 변조하여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한 가닥  선이 여윈 내 손목을 묶어 보고, 몇 번이고 내 모가지를 묶어 금빛으로  졸라 보고, 벽 못에서  풀려 내려온 노끈이  누나의 모가지를 졸라 죽였다. 그 때의 눈알 그리곤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창녀의 치마끈이 되었던 한 가닥  선이, 경부선(京釜線) 레일로 시장댁(市長宅) 뜨락의 살의(殺意)의 나뭇가지로  십년 전의 누나 얼굴로 돌아갈 수 없는  한 가닥  선이, 지중해 연안(沿岸)을 구석구석 더듬은,  내 누나 같은  낫세르 중령(中領)의 눈동자 속에  지중해의 윤곽으로 들어앉아 쉬고 있었다. - 「선에 관한 소묘. 5」 전문. (1965.3 『사상계』.) ‘내 손목’이나 ‘모가지’를 묶고 졸라 보는 ‘선’은 벽의 못에 걸려 있다가 풀려나 누나의 모가지를 졸라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라도 풀어질 수 있는 ‘창녀의 치마끈’이 되어 그녀를 타락하게도 했다. 그 선은 주체의 욕망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타자의 폭력적 욕망의 상징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경부선 레일’과 ‘시장댁’에 있는 ‘살의의 나뭇가지’ 그리고 ‘십년 전의 누나 얼굴’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시인은 그렇게 ‘선’과 관련된 나와 누나 그리고 여러 이질적인 사물들을 상상하며 연쇄적으로 제시한다. 그 선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낫세르 중령’을 찾느라 ‘지중해 연안’을 그리다 죽었을 ‘내 누나’ 같은 그의 눈동자 속에 ‘지중해의 윤곽으로 들어앉아’ 있다. 이처럼 선은 다양한 존재자들과 관련을 맺는데 그 범위가 마침내 ‘낫세르 중령의 눈동자와 지중해 연안 등 이국적 공간까지 확장된다. 그렇게 선은 논리와 예측을 벗어나며 다양한 대상들과 관련을 맺음으로써 독자에게 누나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유추와 의미의 해석을 난감하게 한다. 그 모호성과 난해성은 오히려 선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특히 누나가 지중해 연안을 더듬다 낫세르 중령의 눈동자 속에 지중해 연안으로 들어앉아 있다는 진술은 두 사람 사이의 비극적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3.맺음말 시인은 ‘선’을 다양하고 낯선 이미지에 비유하고 역동적 움직임으로 어떻게 대상에 다가가는지를 암시한다, 연쇄적으로 배열된 기표들을 종합하여 ‘선’이 내포하는 의미를 유추해 보면 그것은 언어와 질서가 지배하는 현실 또는 상징계의 빈자리인 무의식적 공간에서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해 솟는 ‘욕망’이다. 그리고 문 시인은 그 ‘선’을 비유하는 기표들이 얽히어 관계를 맺으며 예술적 텍스트를 이루는 과정을 시로써 보여 준다. 특히 시인은 인간의 내면세계에 시선을 기울이고 무의식적 욕망을 보여 주기 위해 논리적 서술을 벗어난 낯선 이미지 또는 기표들을 제시하고 있다. 무의식은 문자 그대로 논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의식이 없는 카오스적인 층위이기 때문에 일상적 어법을 일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의 해독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독자의 상상을 무한히 자극하고 시가 암시하는 의미의 자장을 확대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곧 문 시인의 시가 ‘비대상의 시’ 또는 ‘무의미의 시’로 불리게 하는 요인이며 시인이 창조한 독특한 미학일 것이다.   그러한 경향은 문 시인이 주장한 ‘내면세계’를 반영하려는 시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논한 시편들은 ‘비대상’이라기보다는 ‘내면세계’, 즉 무의식적 욕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무의미’라는 말은 논리적이고 외연적 의미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경우 기표들이 어떻게 무의식적 욕망을 보여 주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그 ‘무의식적 욕망’이 곧 이 시편들이 암시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어떠한 시든지 시인은 논리적 서술을 벗어나 낯선 어법으로 새로운 시텍스트를 구축한다면 시에는 시인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의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이질적 이미지들의 비약적 연결로 독자의 정서를 자극하며 새로운 의미를 보여 주는 미학은 시 쓰기의 모델이 될 것이다. 문 시인이 이 시편들을 통해 내면세계의 형상화를 위한 시도가 이후 문 시인의 시에서 어떻게 변화를 거치며 유지되었는가에 대한 고찰은 남은 과제이다.  
48    새로운 시론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 사례 / 김철교 댓글:  조회:1448  추천:0  2019-06-17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 사례 김철교 1. 열린 예술 아서 단토가 『예술의 종말 이후』(이성훈·김광우 역, 미술문화, 2012, 13쪽)에서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는 핵심적인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거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는 것과, 한때 예술에게 본질적으로 보였던 속성들이 아예 없더라도 어떤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미술의 개념은 바자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쓴 르네상스 때에 비로소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미술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며, 바자리 이후 1964년까지의 서양미술사를 하나의 르네상스 패러다임에 비유했는데, 이 전형이 1964년 워홀의 가 등장하면서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1965년부터를 ‘서양미술사 이후’의 시기로 인식하면서, 예술가는 이제 모든 형식과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예술가의 유일한 역할은 ‘예술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화장실의 낙서도 시집(詩集)으로 들어오면 시가 될 수 있고, 거리에 버려진 찌그러진 깡통도 전시장에 전시되면 예술이 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예술의 본질과 교신하는 예술 철학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예술은 열려 있어야 한다. 작품을 통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질문과 해답을 읽을 수 있다. 생산자인 예술가의 의도와 소비자인 수용자(관객/독자)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다. 수용자 사이에도 일치할 수가 없다. 무의식의 역동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양한 질문과 다양한 해답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술의 존재가 더 우리 삶에 귀중한지도 모른다. 삶의 본질과 행복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 해답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모든 물음과 모든 해답이 다 옳다고도 할 수 있고 그르다고도 할 수 있다. 오직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김철교, 『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 시와시학, 2018, 7쪽) 최근 예술은 미술이라는 장르를 앞세워, 활발한 융·복합을 통해 각자의 품을 넓히면서 영역을 계속 확장하여 왔다. 파리의 퐁피두 현대미술관, 니스의 근현대미술관은 물론, 우리나라 현대미술 전시장에 가면 회화, 조각, 사진, 음악, 영상, 스토리텔링 등을 비롯하여, 오만가지 혐오스런 오브제까지 어울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필자는, 문학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웃 장르를 넘겨다보며, 미술과 음악을 문자로 은유해 내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시문학의 좌표를 그려보고자 『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을 2018년 12월에 출간한 바 있다. 이에 앞서, 관련된 실험시들을 2018년 8월에 시집 『무제2018』에 묶었다. 본고에서는 이 시집의 제5부 「이미지의 반란」에 수록된 열여섯 편을 해설하면서, 각종 미술 및 음악 이론과 기법을 어떻게 시 창작에 활용할 수 있는 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들 시는 마치 추상화 그림 앞에 서 있을 때처럼 나름대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의도된 시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면 쉽게 다가 설 수 없다. 마치 이우환(1936~)의 점·선·면 관련 작품들 앞에서 현상 저 너머의 세계를 유추한다든지, 호완 미로(1893~1983)의 동화 같은 추상화를 보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진다든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추상화 앞에서 가부좌하고 명상에 빠진다든지 하는 것처럼, 독자들이 어떤 분명한 메시지나 의도를 캐려 하지 말고 오직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가 오직 리듬만을 추구했다면, 『무제2018』 제5부 「이미지의 반란」에 실린 시들은 음악과 미술이 한판 거나하게 어우러졌으면 하는 바램을 담았다. 앞으로 이어질 몇 편의 글에서는, 단지 비평가의 견지에서 시인(생산자)의 이미지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수용(소비자)을 돕기 위한 것이다. 예술 비평가의 역할은 흔히 예술가의 이미지를 번역 혹은 해설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역의 우열, 번역의 정오(正誤)는 없다. 단지 비평가의 눈으로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독자는 비평가에게 동의할 필요도 없다. 다만, ‘저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정도면 되는 것이다. 원본도 번역본도 ‘실재’는 아니다. 원본도 실재가 아니다? 그렇다. 시인이 쓴 시(원본)도 결국 현상 혹은 인식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시인의 손짓(열망)일 뿐이니까. 시인의 작품도, 그에 대한 평설도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좋은 시뮬라크르들이다. 일반적으로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성격을 부여받지 못한 복사물을 지칭하지만, 필자는 시뮬라크르에 원본의 그림자는 남아 있다고 본다(김철교,『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 21-24쪽) 2. 읽기 「그림으로 쓴 시」는 호안 미로가 그린 「시(Poesia)」라는 그림을 보고 쓴 시다. 호안 미로는 나름대로 떠오르는 詩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렸다. 시인은 이 그림을 보고 문자로 시를 그렸다. 우리는 추상화나 절대음악을 들을 때에 나름대로 이미지를 떠올리며 감상을 한다. 비록 문자로 된 메시지가 없어도 나름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수용을 하는 것이다. 추상예술은 예술가에게나 수용자(관객/독자)에게 무한한 자유를 준다. 호안 미로는 물론이요, 시인도, 호안 미로의 그림을 본 관람객도,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도, 모두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가 각기 다를 것이다. 호동그랗게 검은 눈 검은 눈 소녀 잠 기지개 아주 큰 기지개 물구나무 하늘 바다 손자국 손금 영혼길 길 큰길 작은길 크레센도 쿵쾅쿵쾅쿵 돛 닻 갈매기 부두 어시장 선혈 해변 장미 말벌  쾅 데크레센도 라르고 묘지 흰나비 흰국화 비너스의 하얀 젓가슴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 「그림으로 쓴 시-호안 미로 」 호안 미로는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하여, 1907년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1912년 이후 갈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다. 1925년에 초현실주의 제1회전에 출품하였는데, “그의 초현실주의는 아주 밝은 시정과 단순화되고 순수화된 형태와 색채의 조화에 의한 율동적인 구성에 의하여, 조형성(造形性)의 긴밀감을 준다. 별·여자·새 등을 거의 상형문자와 같이 환상화(幻想化)하여, 그것들을 조화시킨 화면은 건강하고 명쾌한 유머마저 풍긴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호안 미로의 그림 「시(Poesia)」를 보고 있노라면, 시인에게는 해변가에서 커다란 검은 눈의 소녀가 큰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이내 물구나무를 선다. 하늘과 바다가 뒤집혀 보인다. 땅 바닥에는 손자국이 선명하다. 손금에는 사람의 굴곡진 한평생 가는 길이 나타나 있다. 젊은 시절에는 겁 없이 세상에 도전을 하게 된다.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은 것이다. 음악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소녀는 물구나무를 선 채, 부두와 배와 갈매기를 뒤로 하고 어시장으로 들어간다. 시장에는 싱싱한 고기들이 팔딱팔딱 선혈을 흘리고 있다. 어시장만큼 생과 사가 분주한 곳이 어데 있으랴.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거친 도전에서 때때로 피도 흘리게 된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가까이 해변에 장미꽃밭이 보이고, 아름다운 말벌이 꽃에 앉았다 날았다 하며 점점 커지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쾅하면서 크게 한번 울리고 음악이 점차 잦아들자 소녀는 물구나무서기에서 벌떡 일어난다. 저 멀리 해변가의 묘지로 눈을 돌리자 하얀 국화에 흰나비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소녀는 흐트러진 옷매무새 사이로 하얀 젖가슴을 드러내고 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가 음악과 함께 점점 사라진다. 한 소녀가 이 세상으로 건너와 격렬하게 살다가 퇴장해야 하는, 인간 삶의 한 노정이 파노라마처럼 상상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 명사만을 사용함으로써 속도감을 높이려는 장치를 하였다. 「그림으로 쓴 시」는 데페이즈망 기법과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하되, 특히 색채 이미지와 음악 기호를 차용하였다. 호안 미로의 「시」라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색깔과 음향의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그때 마음속에 격하게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쓴 시가 「그림으로 쓴 시」이다. 전혀 엉뚱한 이미지들이지만 합쳐지면 통일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도록 유념하였다. 데페이즈망기법이란 사물을 상식적인 관계를 벗어나 엉뚱한 관계에 두는 것을 말한다. 초현실주의자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eamont, 1846-70)의 ‘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다(『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2010). 표현주의 기법은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에 있음을 나타낸다. 구성(구도)의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은, 감정을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 혹은 왜곡된다. 여기에서 소녀, 배, 어시장, 선혈, 해변, 말벌, 장미, 국화, 젖가슴 등은 엉뚱한 이미지들의 집합이지만 소녀의 격정적인 삶이라는 통일적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강약, 고저 등 음악에 사용되는 용어들을 활용함으로써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미술적 이미지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한편의 영상을 마음속에 떠올리게 인도한다.
예술의 융·복합과 고정된 틀로부터의 자유 - 시와 미술을 중심으로  김철교 [[이 글은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인 『한국시학연구』 49호(2017. 2. 28)에 실린 논문으로, 이미 에서 요약 발표한 바 있다.]] I. 들어가는 말 현대예술은, 특히 세계 2차 대전 이후 과학기술이 깊숙이 스며들어, 앞으로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시간의 테스트’를 거쳐 어떤 것은 클래식으로 자리를 잡고, 어떤 것은 한때의 유행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키이란(Matthew Kieran)은 『예술과 그 가치(Revealing Art)』에서 좋은 예술작품이란, 삶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 세계를 보는 방식을 풍부하게 해주는, 다소 불편하고 낯설지만 마음에 와 맺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반면 나쁜 작품은 경험의 확장이라는 문제의식이 없고, 단선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작품들이다. 모든 예술이 21세기에 들어와 더욱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은 바로 ‘다소 불편하고 낯설지만 마음에 와 맺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 내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 때문이기도 하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예술에만 그치는 현상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보다 낳은 편리성의 발견, 새로운 아름다움의 추구, 다양한 사상의 부침 등 전반적인 가치관의 변화 양상이 바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각지에서 혁신적인 미술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르네상스 이래 전개되어 온 전통적인 미(美)의 개념을 초월하여, 사실적이고 표피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현대 예술과 예술론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 예술 장르들 간의 경계 붕괴 내지는 융·복합에 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모든 예술에 과학기술이 접목되면서 경계허물기 혹은 상호협력과 보완이 가속화되고 있다.  화가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베토벤을 위대한 예술가의 표본으로 보았으며,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서 영감을 얻어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베토벤은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 1786)」에서 영감을 얻어 「합창 교향곡」을 작곡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미술관의 대형 벽화 「베토벤 프리즈」는 시와 음악, 조형을 통합한 총체적인 예술을 창조하고자 했던 클림트의 열망을 구현한 작품이다. 문학과 음악, 특히 시와 음악은 시 자체가 운율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엘리엇은 음악연구가 시에 기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의 「네 개의 사중주」는 바로 베토벤의 「사중주」라는 표제가 붙은 음악과 연결되어 있다. 소설에 있어서도 헉슬리는 「연애대위법」에서 대위법이라는 음악적 기법을 사용하였다. 대위법이란 음악에서 2개 이상의 선율들을 결합하는 기법을 말하듯이, 문학에서는 서로 다른 감정이나 주제를 병치시키는 기법이다. “모든 예술이 서로 가까워지도록 한 장소에 모으고, 한 예술에서 다른 예술로 옮겨가는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잭슨 폴록과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게서 마침내 주제와 의미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회화만이 아니라 문학도 주제를 벗어던지고, ‘단어가 논리에서 해방될’ 경우에만 비로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학문과 예술이 융 복합을 모색하고 있는 요즘, 미술 분야에서는 활발하게 음악, 영상, 사진, 회화, 조각, 스토리텔링 등이 함께 협력하여 등장함으로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음악-미술-문학에서 각각의 이론과 방법론들이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상호의 영역을 풍부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김춘수의 ‘무의미시’이론은 미술과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고 본인이 밝히고 있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서술적 이미지’는 미술의 ‘미니멀리즘’과 비견되며, 무의미시이론을 적용하여 쓴 시들은 피카소의 ‘분석적 큐비즘’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처럼 시문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이론과 기법의 개발을 위해서 이웃 예술이론과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도 예술 융 복합의 긍정적인 효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융 복합문제와 고정된 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본고에서는 음향예술인 음악을 제외하고, 언어예술의 하나인 시와 형상예술에 속하는 회화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특히, 예술 융 복합의 시대에 시문학과 미술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II. 시와 미술에 있어서의 이미지 1. 시와 미술의 상호관련성 문학과 미술의 상호관련은 내용(주제), 형식, 수용 등 여러 방면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작품의 제재나 주제 측면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서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두 예술의 공통된 소재를 제공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의 불후의 명화는 후세의 많은 시인들에게 시를 쓰는 동기가 된다. 작가들은 인접 예술의 작품에서 얼마든지 창작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상상력이란 모든 예술에 공통된 창조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둘째, 표현방식과 매체사용에서의 관계이다. 모방(미메시스)의 개념으로 환원하는 시학원리는 고대 이후 두 예술의 공통성을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25장에서 시인과 화가를 함께 모방하는 작가로 소개한 이후 두 예술가는 매우 가까운 사이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호라티우스 『시학』에서도 ‘시는 그림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 매체사용의 이질성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셋째, 예술작품의 해석과 수용의 문제이다. 미술, 음악 그리고 문학은 추구하는 목표, 기능, 영향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예술작품의 수용자(독자 및 관객 등)들은 모든 예술작품이 제공하고 있는 이미지들에 대한 해석과 수용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으나, 예술이라는 큰 틀에 함께 묶일 수 있는 것이다. 시와 그림과의 관계에서, 송나라 소식(蘇軾, 1037-1101)은 당나라 왕유(王維, 701-761)의 시와 회화를 칭찬하면서 ‘왕유의 시 속에 그림이 있고, 왕유의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하였다. 북송(960-1127) 화가 곽희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 “시는 무형의 그림이고 그림은 유형의 시이다”라는 말이 있다. 남송(1127-1279)시대의 오룡한(吳龍翰)은 ‘그려내기 어려운 정경을 그려낼 때에는 시로써 보완하며, 읊조리기 어려운 시를 읊을 때는 그림으로써 보완한다.(畵難畵之景, 以詩湊成; 吟難吟之詩, 以畵補足)’라고 하여 시와 회화의 결합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시와 그림에 대한 입장을 받아들여, 고려에서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시화일치는 사대부 문인들의 삼절의 추구와 맞물려 장려되었다. 이인로(1152-1220)는 “시와 그림이 묘한 곳에서 서로 도와주는 것이 한결같다 하여 옛 사람이 그림을 소리없는 시라 이르고, 시를 운율이 있는 그림이라 일렀다”고 하였다. 사대부 문인화가로 시를 잘 짓고 그림에 뛰어난 인물은 강희안(1419-1464)이다. 동생 강희맹은 시화일치의 경지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인물로 왕유를 거론하면서, 그의 형 강희안을 왕유와 비견하고 있다. 이러한 시화일치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까지 활동한 백악그룹,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연암그룹, 그리고 19세기 당대 최대의 삼절로 이름 높았던 추사 김정희(1786-1856) 등으로 그 흐름을 이어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문학, 음악, 무용처럼 뮤즈 여신의 보호를 받는 뮤즈 예술과 회화나 조각처럼 기술, 즉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미술을 구분하였다. 미술이 문학과 음악의 버금가는 위치로 올라서게 된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회화가 시와 수사학보다 우월하다고까지 주장하였다. 르네상스 시대 시인이자 문학이론가인 시드니(Philip Sidney, 1554-86)는 「시의 옹호: Apology for a Poetry」에서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은 ‘그림과 같은 시’를 이상적으로 대표한 화가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그림으로 그려진 시’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글(성경)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776년 레싱(G.E. Lessing, 1729-81)에 따르면, 문학은 시간의 영속을 특징으로 하고,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은 공간에 의존하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회화의 대상은 형, 색채, 선 등의 ‘공간적 병존’으로 파악되지만, 문학은 ‘시간적 순서’, 즉 ‘행위’의 진행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또한 레싱은 회화우위 가치관을 반박하면서, 창조적 상상력은 회화와 시 모두에 해당하지만, 화가보다는 시인의 환상적 재능에 더 높은 무한성을 부여하고 있다. 괴테(J.W. von Goethe, 1749-1832) 역시 『시와 진실, 1833』에서 레싱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미술가는 미에 의해서만 만족되는 외형의 의미를 위해 작업하나, 언어예술가는 추(醜)와도 함께 하는 상상력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더 광범위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괴테도 문학과 미술은 “매체조건, 대상, 예술법칙과 영향형식에 있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한편, 낭만주의 예술론에 있어서 예술의 통합은 ‘공감각’ 개념을 통해 설명된다. 서로 다른 감각의 연상과 교환 작용인 ‘공감각’은 예술이 함께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낭만주의 예술의 공감각적 표현기법은 바그너(R. Wagner, 1813-1883)의 ‘총체예술작품(Gesammtkunstwerk)’의 이념으로 발전한다. ‘총체예술작품’은 바그너가 1849년 「미래의 예술작품」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사용한 말로서, 음악, 춤, 시, 시각예술, 무대기술을 종합한 개념이다. 슐레겔(A.W. Schlegel, 1767-1845)은 낭만주의자들의 기관지 『아테네움 Athen um, 1798』에서 시, 음악, 회화의 내면의 친밀성을 주장한다. 이처럼 낭만주의에서 추구된 예술의 통합화 경향은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 운동 등으로 계승된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67)의 「교감(Correspondances)」과 랭보(A. Rimbaud)의 「모음들(Voyelles)」은 공감각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2. 시와 회화의 결합 방식 시와 회화의 결합방식에는 (1) 시에 의거해서 그림을 그리는 방법, (2) 그림을 제재나 대상으로 하여 시를 짓는 방법, (3) 그림과 문자가 한 화면에 공존하며 상호보완하는 문자도(文字圖), 구체시, 문인화 등이 있다. 시에 의거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적지 않았다. 글을 얼마나 그림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의 말레이(J.E. Millais)는 테니슨의 시 「마리아나(Mariana, 1830)」를 그림(Mariana, 1851, Oil on Mahogani, 59.7×49.5, Tate Gallery, London)으로 그렸으며,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를 그림(Ophelia, 1851-52, 76.2×112.8Cm,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으로 그렸다. 이중섭도 백석의 시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 갤러리 서림에서는 1987년부터 매년 우리나라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한국중견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하고 있다. 그림을 대상으로 시를 짓는(이를 형상시라고 한다) 방법은, 시인이 그림을 감상하고 시적 감흥을 얻어 시를 쓰는 것이다. 아킬레스의 방패무늬 제작과정을 서술한 호머의 『일리아드』(18번째노래)가 형상문학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조각가 로뎅의 비서였던 릴케는, 화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한 경험을 살려,『형상시집』과 『신시집』을 통해 조형예술의 소재들을 시에 활용하였다. 여기에 실린 소네트「고대 아폴로의 토르소」는 조각작품인 ‘밀레의 토르소’를 보고 지은 시로, “독자는 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시인의 형상적 관조의 배후에 깃든 심오한 내면의 정신세계와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중섭, 샤갈, 고흐, 뭉크, 피카소, 김정희 등의 작품 및 작가의 삶을 주제로 쓴 형상시가 적지 않다. 특히, 『시집 이중섭』(문학과비평사, 1987)은 화가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주제로, 시인들이 쓴 시와 ‘시인의 말’, ‘해설’ 등을 묶어 한권으로 엮은 것이다.  문자도(文字圖)는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등 유교덕목을 중국의 옛 이야기들과 연관시켜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글자 속에는 잉어, 죽순, 할미새, 용, 파랑새, 거북이, 복숭아꽃, 봉황, 충절비 등 글씨의미와 관련된 그림들이 글자마다 포함되어 있다. 글씨의 의미를 그림이 보완해줌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구체시의 사례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비롯하여, 고대 중국이나 인도의 전통회화 및 서예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말라르메 「주사위던지기(Un Coup de Des, 1897)」, 아폴리네르 「칼리그람(Xalligrammes, 1913-6)」 등의 시에서는 종이 위에 자유로이 시행을 배열, 알파벳을 사용한 그림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말라르메나 아폴리네르의 작품은 시각적, 언어적 표현이 하나로 합쳐지는 이중예술품이라 하겠다. 문인화에서는 시와 그림이 함께 존재한다. 시와 회화는 창작방법만 다를 뿐 작가 정신의 반영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똑같은 그림이 그려졌어도 각기 다른 시를 써 넣으면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또 그림 안에 시를 쓰는 경우, 시를 쓰는 위치는 화면 구성에 영향을 주며, 시를 쓴 형식, 공간의 크고 작음, 글씨체도 영향을 미친다. 조선 초기부터 중국 문인화의 시화일치사상(詩畵一致思想)이 유입되어, 우리나라 사대부들에게 문인화의 기법적(技法的) 토대를 제공해 주었고, 외적인 기교보다 내적인 사상이나 철학 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문인화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문인화에서는 시의 의미와 글씨의 미적 이미지 그리고 그림의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글씨도 그림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그림의 주제는 시의 주제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3. 시와 미술의 이미지 시와 미술이 같은 울타리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지의 개념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마음 속에 그리는 그림을 뜻하는 이미지는,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이 의미하는 것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을 구체화하여, 내용을 보다 잘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독자의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예술은 이미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미지의 어원을 보면, 거울에 비친 상이라는 뜻의 모상(模像: eidolon)이다. 플라톤은 현상계가 진리의 세계(이데아)를 모방한 모상이라고 보았다. 이는 에이콘(eikon)과 판타스마(phantasma)로 나눌 수 있다. 에이콘은 원본(이데아)을 곧바로 묘사한 것으로 유사관계(resemblance)를 말하며, 실재와 닮은꼴로 실재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간주된다. 판타스마는 복사물을 다시 복사한 것, 즉 시뮬라크르(simulacre) 관계를 말하며, 실재를 부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들뢰즈는 시뮬라크르가 단순한 복제의 복제물이 아닌 독립성과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의 미학적 담론에는 이미지(image)와 상상력(imagination)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드브레(R. Debray, 1940-)의 견해에 의하면 이미지는 마술(magic)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술이란 무의식적인 꿈과 마찬가지로,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술에 있어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냄이다. 마술과 마찬가지로 이미지는 가시적인 것의 배후에 들어 있는 비가시적인 것의 기호이며, 인류의 집단적인 기억이 머물고 저장된 장소인 것이다. ‘인류의 집단적인 기억’이란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을 지칭한다고 여겨지지만, 개인무의식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 이래 서구 예술론을 지배해 온 ‘실재의 재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모방론’의 관점에서든 그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18세기의 낭만주의적 ‘감정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표현론’의 관점에서든, 예술은 이미지를 매개체로 한 의미작용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특히, 이미지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통해 서구 예술사에서 문학과 미술이 가장 근접한 정신 활동으로 인정된 것은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 운동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예술이 공통적으로 무의식적인 정신 활동에 기반을 둔 이미지의 생산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예술작품은 대상을 보고 그리되 대상과는 무관한 창조된 가상객체(virtual object)요 창조된 이미지이다. 가상(假象)이란 주관적으로는 실제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짓현상을 말한다. 수용자(독자 및 관객)들마다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이며 또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비평가도 해석을 내리는 데 고심하여, 의문스러운 곳은 그 의미를 부연하는 것이 고작인 난해함도 하나의 시적 요소다. 때로는 독자에게 그 중 한 행의 의미조차 분명히 알 수 없는 정도여서, 그것은 명암화법적인 회화 속 형식의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이 창조한 이미지라는 것의 추상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예술가가 창조한 이미지와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이미지는 ‘또 다른 창조’라 할 수 있다. 예술가가 창조한 이미지를, 수용자는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과 무의식을 참조하여, 자신의 이미지로 변환하여 수용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예술가와 수용자 사이의 의사소통수단이 된다. 4. 이미지 해석의 다양성 이미지의 생산 못지않게 해석도 중요하다. 특히 예술의 가치 평가는 수용자들의 해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 미술, 음악의 공통분모로서의 언어는 ‘의미하는 언어’가 아니라 제2언어라고 할 수 있는 ‘해석’이다. 예술 혹은 예술가는 나무에 있어서 큰 줄기와 같다. 예술가는 정치 사회 역사 문화 등 제반 환경 그리고 자신의 무의식과 지정의(知情意)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모든 자양분을 흡수하여 큰 줄기를 통과해 잎, 꽃, 열매라는 작품을 생산한다. 예술가는 자기를 포함하여 자기를 둘러싼 모든 역사적, 현재적 환경에 대한 예술가 자신의 해석을 작품에 투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산된 예술작품을 소비하는 수용자들은, 생산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든 주어진 역사적, 현재적 환경을 참조하여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수용한다. 이처럼 예술작품의 생산과 소비 사이에는 해석이라는 단계가 존재한다. 그 생산과 소비를 매개하면서, 수용자들이 해석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는 것은 바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는 세계 인구의 수만큼이나 많은 해석의 가능성과 다중의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해석도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이미지의 특성이다. 개개 언어나 문장, 그림의 색조나 명암 등이 생산하는 개별 이미지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이미지(작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도 중요하다. 예술가와 수용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심리적 역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독자반응이론에서 ‘독자가 텍스트를 구성한다’고 주장하는 시각과 일치한다. 생산자(예술가)가 생산한 제품(예술작품)의 이미지를, 수용자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거쳐 자신의 이미지로 치환한 후 수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이미지 수용자의 해석 수용자 이미지로 치환 수용자의 수용 단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형성된다. 그렇다면 수용자는 어떻게 예술적 이미지를 해석할까? 이를 롤랑 바르트의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라는 개념을 원용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스투디움(studium)이란 우리가 지식과 교양에 따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영역으로, 양식화될 수 있고 전형적인 정보로 되돌려질 수 있는 부분이다. 감상자는 이와 같은 평균적 정보로 환원될 수 있는 영역을 인지하고 이를 감상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그림과 사진의 경우,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작품이 구성하는 시각상의 어느 영역에서 갑자기 감상자의 눈을 찔러오는 부분도 있다. 롤랑 바르트는 바로 이것을 푼크툼(punctum)이라고 지칭했다. 어원상으로 이 푼크툼은 평균적 교양과 상식으로 이해되는 스투디움의 영역을 깨뜨리며 마치 화살처럼 감상자를 찌르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감상자의 시선이 작품에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은 바로 그 푼크툼 때문이다. 좋은 시들은 인식의 스투디움을 깨뜨리며 인지 충격을 안겨주는 푼크툼들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소위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하고 기존의 인식을 뒤흔드는 효과 역시 시적 푼크툼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의 두 가지 층위, 곧 정보적 층위와 상징적 층위에서 읽혀지는 두 의미는 이 이미지를 제작한 예술가에 의해 계획되고 의도된 것이다.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바르트가 제3의 의미라 부른 이미지의 세 번째 층위는 그만큼 자명하지도 않고 포착하기도 어렵다. 묘사는 불가능하고 헤아리기만 가능하며 지적(知的) 인식이 아닌 사적(私的)인 파악을 통해서만 포착된다.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것, 그리하여 언어가 어찌할 수 없는 이미지의 요소를 푼크툼이라고 한다. 이러한 제3의 의미는 주로 수용자에 의해 형성되기 마련이다. “주제를 간추리고자 시를 읽는 것은 지나치게 비경제적 행동이다. 시에는 리듬과 이미지 그리고 비유와 상징 등, 그림의 경우 회화적 중심에 비견될 만한 다채로운 요소들이 있다. 시를 읽으면서 이런 요소들을 놓치고 테마적 중심에만 현혹되는 것은 시인이 애써 여러 요소를 활용해 구성해 놓은 텍스트를 다시 평범한 전언으로 풀어 놓는 것과 같다.” 그림도 주제 못지않게 색과 선과 면의 어울림 등 기법에도 주목해야 하는 것처럼, 시에서도 각종 언어적 장치(리듬, 이미지, 비유 등)들이 유기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은 더 나아가 수용자들은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제3의 의미, 즉 푼크툼까지 천착해야 한다. 물론 생산자인 예술가도 푼크툼까지 헤아려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랭보가 말하는 투시자(voyant)가 되어야 한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 볼 수 있고, 모든 인습적 제약과 통제를 무너뜨려 영원한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가 투시자인 것이다. 예술가나 수용자 모두 라깡이 말하는, 현상이라는 커튼 뒤에 있는 실재(the real)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부단히 예술작품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읽고 보고 사색해야 한다. III. 나오는 말 예술의 생산과 수용 그리고 이를 중개하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면, 그림과 시는 단지 표피적인 표현매체만 다를 뿐이지 동일한 것이다. 특히 초현실주의 등 추상예술에 있어서는 표피적인 것마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추상에 의해 다른 영역에 속해 있던 문학과 미술, 나아가 음악은 하나의 차원으로 총괄된다. 예술적 언어가 생산하는 추상은 생산자가 똑같은 이미지를 생산해서 내놓아도 수용자가 푼크툼 영역까지 확장하여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피카소는 시인이자 화가이며, 칸딘스키와 클레는 미술과 음악이 통합될 수 있음을 보였다. 바그너는 음악, 시, 미술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예술, 특히 미술과 음악과 시는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게 한다는 의미에서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미지의 도움을 받아 그림에서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에서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상상력의 지원을 받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호안 미로는 회화와 시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으며, 그의 그림의 총합은 새로운 종류의 언어를 구성하는 시각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호안 미로가 그린 그림 「시」(1968, 캔버스에 유채, 목탄, 259.5×173.5 Cm)는 ‘그림으로 시를 쓴 것’이다. 이 그림에서 수용자들은 나름대로 시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한국 시단에서 ‘독해가 불가능한 시’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호안 미로의 「시」라는 그림이 훨씬 수용자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시(詩)가 아닐까? ‘시는 반드시 언어로만 창작해야 하는가?’, ‘시가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가?’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매체의 이합집산은 20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형태로 진전되고 있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컴퓨터를 위시한 신매체의 등장은 말, 형상, 음의 융 복합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오늘날 다매체 예술에서는 장르나 형식의 독자성은 이미 찾아보기 힘들다. 다원적이고 총체적인 텍스트에서는 읽기, 보기, 듣기 등 개별 지각방식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융 복합을 통해 예술적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수상 작품을 보면 이러한 예술 장르의 통합적 경향이 잘 반영되어 있다. 수상자인 믹스라이스(조지은, 양철모)는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식되는 식물들의 ‘이주’ 과정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강제 ‘이주’된 아시아 근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추적”하고 있는데, 특히 에서 음악, 사진, 벽화, 영상,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져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통합적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다만,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단순한 사실의 소개에 머물고 있어 아쉬움이 남았고, 시적 형상화 작업이 좀 더 이루어졌으면 전체적인 예술적 효과가 증대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예술의 다양화, 융·복합화가 진전됨에 따라, 앞으로 시와 음악과 미술 등이 서로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고, 이러한 예술의 융·복합을 연구하는 통합학회 내지는 예술단체가 구성되어, 예술 특히 시문학의 품을 더 넓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예술을 아우를 수 있는 ‘시극의 활성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시극의 경우, 단순히 대화와 지문을 시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무대 및 의상 디자인 등 미술영역과, 음악과 무용 등 다양한 예술분야를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관객에게 좋은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예술의 융·복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시 쓰기와 관련하여, 호안 미로가 ‘그림으로 시를 썼다’고 말한 바와 같이, ‘시를 문자언어로만 창작해야 한다.’는 고정된 틀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시는 문자로 써야만 한다.’고 고집하더라도 다른 매체(영상, 음악, 미술 등) 등과의 융 복합을 통해 더 수용자에게 다가갈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서 단토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는 핵심적인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거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는 것과, 한때 예술에게 본질적으로 보였던 속성들이 아예 없더라도 어떤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46    현실을 뛰어넘어 정신을 해방하라 - 앙드레 브르통 댓글:  조회:1487  추천:0  2019-05-19
현실을 뛰어넘어 정신을 해방하라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프랑스에서 결성된 아방가르드 그룹이다. 이들은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시민사회의 사고방식과 문화의 귀결이라 보고, 부르주아적 합리성에 입각한 삶의 방식 거부를 예술실천의 동기로 삼았다. ‘초(超)-현실(sur-real)’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는” 지향을 드러낸다.   예술창작에서 이 지향은 현실을 모방하는 대신, 현실과는 전혀 다른 질서를 지닌 ‘초-현실’의 창조로 이어졌다. 논리적 구상과 계획에 따라 제작되는 대신, 즉흥적이고 우연하게 생겨나는 흔적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소산물을 소재로 삼고, 한 개인 예술가의 창조력 대신,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을 초개인적 무의식을 창작 동력으로 삼았다. 이들이 남긴 회화와 조각, 문학작품은 이후 현대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충격적 신선함을 준다.   번역자의 말처럼 “초현실주의 선언과 그에 잇단 몇 가지 선언 형식의 글들이…처음 발표될 당시의 효력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초”-현실주의의 근본지향이 오늘날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과는 달리 『착색 판화집 Illumination』의 랭보와 로트레아몽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은 상상력을 모든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고 상상력의 유일한 힘을 믿었다. 그들은 이성에 의한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고, 미적인 혹은 윤리적인 관심에서 완전히 떠난 상상력을 이용하였다.     브르통이 정의하는 초현실주의는 은유적인 창의력의 완벽성에 대한 믿음, “상상력의 힘은 절대로 지배될 수 없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1922년, 바르셀로나의 한 강연에서 브르통은 이러한 해방의 조짐을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언젠가는 과학들이 처음 보기에는 자신들과 대립적으로 보이는 이 시적 정신에 접근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지금 그 과학들의 쇠사슬을 끊고, 여러 측면에서 부드럽게 휩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바로 발명이라는 천재이다.     1924년부터 브르통의 어조는 더욱 확실해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었다. 브르통은 상상력의 해방이 어떤 결과를 낳든지 간에 전통적인 예속에서 상상력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상상력을 노예 상태로 축소시킨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숭고한 정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오직 상상력만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가르쳐준다.       자동기술법의 초기 작업, 꿈과 무의식의 탐구, 꿈의 이미지나 신문에서 오려낸 제목들을 결합하여 만든 초현실주의 시 등의 경험을 통하여 브르통은 “상상력은 이제 그의 권리를 회복할 단계에 왔다”고 확신한다. 그런 이유로 초현실주의는 모방의 시와 예술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순수한 창조의 시와 예술, 해방된 상상력만의 순수한 창작품을 대체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이제 시인과 예술가는 대상의 종속에서 벗어난 현대 예술의 특권이자 쟁취인 완전한 창의력의 자유를 즐기려 한다. 초현실주의는 상상력의 자율성이라는 원칙 위에 있으며, 그 존재 이유는 바로 이 원칙 위에 세워져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해방은 단지 시와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의 해방과 인간의 사회적 해방까지도 결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에 이른다.     앙드레 브르통은 창의력을 해방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상상력의 진정한 ‘현상학’을 탐구하며 상상적인 능력의 기능을 실험적으로 연구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브 탕기(Y. Tanguy)의 회화에 대하여 브르통은 “예술적 상상력의 전개 능력은 우주의 다양한 현상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은밀함이 상상력으로 하여금 우주에 대응하고 현상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만든다. 여기서 상상력은 인간 미래의 해방의 도구가 되고 세계와 물질 변화의 동인(動因)이 된다.     즉, 상상력은 하늘에서 받은 능력이나 시적 은총이 아니라 바로 ‘전형적인 정복의 대상(par excellence objet de conquete)’인 것이다. 앙드레 브르통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교란을 일으키고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았던 재앙을 부를 수 있는 변화시키는 힘, 혁명적인 힘이다. 상상력으로 인해 시인은 세계의 구조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세계의 구성 요소들을 가지고 세계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흰 머리털이 난 권총 Le Revolver a cheveux blancs』의 서문에서 브르통은 상상의 세계(l'imaginaire)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기도 한다. “상상의 세계는 현실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초현실주의가 이해하는 절대적 현실(le reel absolu)은 자연주의 미학의 대상들인 외부의 모델이나 물질적 자료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가능성과의 동일화이기 때문이다. 즉, 상상력의 기능은 외양의 세계에 실재를 부여하고, 현실을 심화시키고, 직감적으로 가능성의 심장부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상상력 속에서 그 현실이 포함하고 있는 암시적인 계시들을 이해하게 된다. 헤겔(Hegel)의 뒤를 따라 브르통은 상반되는 것들을 결합시키고, 초현실의 범위 안에서 그 둘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변증법적 열쇠를 찾으려 한다. 다시 말해서 브르통은 주체와 대상, 정신과 물질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꿈과 행동, 심리적 현실과 외부적 현실이 상응하도록 노력한다.   초현실주의 운동 초기부터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연과 초자연,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은밀한 연결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상상 사이에 단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이 있는데, 시인의 역할이 바로 그 연관성을 찾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924년 브르통은 이미 정신적인 삶의 모순적인 요소들이 서로 뒤섞이기 위해 모여드는 ‘일종의 절대적 현실성, 즉 초현실성’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1930년에는 브르통은 이를 좀 더 자세히 부연 설명한다.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 소통 가능한 것과 소통 불가능한 것이 모순으로 인식되지 않는 정신의 어떤 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 믿도록 해준다. 그런데 초현실주의 활동에서 이 점을 설정하려는 희망 이외에 다른 동기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다.       미셸 카루즈(M. Carrouges)에 의하면 상반되는 것들이 통합되는 초현실적 장소는 ‘현실의 전체성’을 포함하는 속성을 갖는다. 이는 ‘창조의 기원점’을 상징하는 신비주의자들의 숭고한 점과 동일하다. 그렇지만 브르통이 주장하는 초현실은 신의 존재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숭고한 점이라기보다는 현실 속에 육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브르통의 초현실은 내재성의 원칙에 대응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내재성의 특수한 철학에 이끌리도록 하는 것인데, 그 철학에 따르면 초현실은 실재의 외부나 상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 현실이란 통합하는 힘이고, 세계에 내재하는 중심이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의 외양상으로 보면 모순적인 요구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게 하는 자기(磁氣)적인 힘이다. 이 절대적 현실은 존재의 의식적인 능력들뿐만 아니라 그 근본적인 비이성까지도 감싼다.     시적 창작의 측면에서 보면 절대적 현실은 감각적인 지각과 정신적인 재현의 통합을 이룬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지성적인 능력과 감각적인 능력을 결합시키려는 이러한 의지, 구체와 추상을 구분하려는 태도의 이러한 거부는 바로 상상력의 힘에 의거하고 있다. 이 상상력의 힘이 기호와 의미로 표현된 사물과의 중계 역할을 한다.     현대적인 시와 예술에 있어서 대립적인 것의 융합을 축복하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사물에 대한 지각과 지각된 사물을 재현하는 능력을 결합시키고, 바로 이 종합하는 행위에 의해 사고를 객관화시킨다. 상상력은 이 둘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에서는 사물들을, 지각에서는 심리적인 가치와 자율적인 정신적 형상을 추출한다.     오늘날 예술의 중요한 문제는 정신적 재현이라는 것을 상상력과 기억의 의지적인 연습을 통해서 점점 더 객관적인 정확성으로 이끌어가는 데 있다. ……오늘날 초현실주의가 이러한 수술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장점은 일반 사람들에게 격렬하게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용어, 즉 지각과 재현을 변증법적으로 조화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이 둘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에 다리를 놓았다는 사실이다.   지각과 재현은 정신 쪽으로도 향하고 또 물질 쪽으로도 향하는 상상력의 이중의 활동에 대응한다. 이 둘은 상상적인 사고라는 하나의 능력의 이중적인 기능일 뿐이다.   출처- "디바인 센터"  
45    보르헤스 <하버드대 강의> 댓글:  조회:1535  추천:0  2019-03-10
  1. 시라는 수수께끼   그는 시를 '마신다' 고 표현한다. 인간과 우주 앞에서 느낀 당혹감이 그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고 고백한다. 시의 실체는 열정과 즐거움이다.   2. 모든 단어는 잠자는 은유   눈과 별, 시간과 강, 여자와 꿏, 인생과 꿈, 죽음과 잠, 전투와 불 은유의 변형은 무한하다.   3. 이야기하기   이야기 하는 것과 시를 읊는 것이 합쳐지기, 를 즉 이야기의 즐거움에 시의 기품이 추가되기를 소망. 소설이 무너지고 있다. 보르헤스는 시인의 어원이 원래 만드는 사람을 뜻했기에 다시 그런 역할을 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였다. 만들다는 의미는 이야기를 지어내 읊다는 뜻이다.   4. 시의 번역   번역은 반역이다 라는 인구에 회자되는 이탈리아 경구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뛰어넘는 훌륭한 변역이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직역의 기원이 성경의 번역에서 출발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한 존재가 쓴 텍스트를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직역 덕분에 사람들은 모국어와 다른 묘사 방법을 배우고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고 믿는다. 세상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볼 때, 그 역사적 상황보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5. 사고思考와 시   이론에 의해 정의된 문학론 보다는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지 않은 문학 그 자체를 추구한다. 그는 말이 가진 마법의 힘을 설명하고, 중요한 것은 문체의 정교함이 아니라 시가 살았느냐 죽어 있느냐 하는 점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저는 제 자신을 본질적으로 독자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감지하듯이 저는 감히 글을 써왔습니다만, 제가 읽었던 것이 제가 썼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읽지만, 누구든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 수 있는 것을 쓰기 때문입니다.   시가 정체를 드러낸 결정적인 순간의 중요성을 보르헤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어떤 생각과 씨름해 왔습니다. 그 생각이란, 한 사람의 인생이 수천 수만의 순간들과 날(日) 들로 혼합되어 있더라도 그 많은 순간들과 그 많은 날들을 단 한순간, 즉 인간이 스스로가 누구인가를 아는 순간,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問道夕死可矣)"를  떠올리는 말이다. 그 결정적 순간이 심지어 한 인간의 이미지까지도 결정한다는 것이다. 유다가 예수에게 키스하는 순간이 그를 영원히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배신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든 것과 같이. 그 순간을 겪으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키츠가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가 어느 한마리 새의 노래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새소리라고 느끼면서 영원을 맛보았다는 그 시 이야기는 보르헤스의 산문과 시 곳곳에서 인용된다. 핵심은 보르헤스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즉 문인으로서의 소명을 알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저의 인생에서 중심적인 사실은, 언어의 존재 및 그 언어를 시로 짜낼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그 사건이 일어난 아버지의 서재가 그의 고향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십분 이해하게 된다.   보르헤스의 문학 인생은 그 순간의 자기 복제와 재생인지 모른다. 보르헤스 문학의 비밀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물론 그를 글쟁이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외면의 형식이고, 내면적인 내용은 초월(꿈)이 지상으로 드러나는 영매靈媒 로서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제가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 저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성이 작가의 작품과 많은 관련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현대문학의 죄악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너무 자의식적(self- conscious)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저는 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상황들에 대해 잊습니다. 저는 꿈이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애쓸 따름입니다. 평론가들에게 감사하지만, 어쩌면 그들의 거창한 철학적 의미보다는 소박한 꿈을 나누는 일반 독자가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스름 황혼 속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유대인의 손은 렌즈를 몇 번이고 윤을 내고 있다. 저물어 가는 오후는 두렵고 춥다. (모든 오후는 저물어갈 때 그렇게 마련이다.) 게토의 변두리에서 창백해져가는 히아신스 빛 공기와 그 손은 그 말 없는 이에겐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명백한 미로를 꿈꾸고 있었다. 다른 거울의 꿈속에 비춰진 꿈의 반영에 불과한 명성과 처녀들의 두려운 사랑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은유나 신화로부터 자유로운 그는 힘들게 수정을 갈고 있다. 모두 자신의 별들인 ,조물주'의 무한 지도地圖를.   보르헤스의 시 '스피노자'   1969년에 보르헤그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자신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유대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스라엘을 동경했었다. 이때도 중남미 좌파 지식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보르헤스를 비판했다. 어쨌든 이제는 국제적으로 보르헤스의 명성은 확고한 것이 되어, 어딜 가나 그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구루(정신적 스승)' 의 대접을 받았다.   꿈의 책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렬한 삶의 책이라고 보르헤스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위의 단편이 그 점을 생생히 보여준다. 노년이 깊어가며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느낀 보르헤스 역시 이 삶이란 꿈에서 그만 깨어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구나 가끔 악몽을 꾸면서, 그것이 꿈이란 걸 알고,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한편으로 안심하는 것처럼, 보르헤스도 인생 자체가 하나의 일장춘몽이란 걸 인식하고 언제라도 꿈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면서 이 고해苦海를 즐겼는지도 모른다.  
44    T.S. 엘리엇 새로 읽기 : 타자(他者)로서의 무의식 댓글:  조회:1471  추천:0  2019-03-09
T.S. 엘리엇 새로 읽기 : 타자(他者)로서의 무의식   엘리엇이 그의 이라는 논문에서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가 이 논문에서 말하는 것을 보기로 하자.   시인이 어떤 점으로든지 특출하거나 흥미를 끄는 것은, 그의 개인적 정서, 다시 말하면 그의 생활의 어떤 특수한 사건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서 때문이 아니다. 어느 시인 그 사람만이 가진 특수한 정서는 단순하고 생격하고 멋없는 것일 수 있다. [중략] 물론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고, 시를 쓰는 데 염두에 두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이 있다. 사실상 졸렬한 시인은 흔히 의식적이어야 할 경우에 무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이어야 할 경우에 의식적이다. 어느 쪽이든지 이런 오류로 말미암아 그 시인은 으로 된다. 시는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정서에서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에서의 도피이다. 그러나 물론 개성과 정서의 소유자라야 개성과 정서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이창배 12-13)   같은 논문에서 엘리엇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면 그것은 [시인이] 시를 쓰고 있는 순간에 좀더 가치 있는 것에 자기 자신을 계속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예술가의 발전은 계속적인 자기 희생이며, 지속적인 개성의 멸절이다.   이러한 개성의 소멸 과정과 이것이 역사 의식과 맺는 관계를 정의하는 일이 이제 남아 있다. 여기서 엘리엇이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집단 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집단 무의식으로서의 전통은 긴 역사의 형성 과정에서 무의식 속에 가라앉은 개성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그가 강조하는 바는 이 같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개인으로서의 작가는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전통은 따라서 개성이라는 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타자로서의 무의식인 셈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개인 차원의 개성을 죽이고 집단 무의식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롤랑 바르트의 다음과 같은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글쓰기는 우리의 주체가 사라지는 중립적이고 복합적이며 비스듬한 공간이다. [글쓰기는 또한]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의 몸을 위시하여 모든 정체성이 사라진 텅 빈 공간이다. [중략] 말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언어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중략] 내가 아니라 언어이며, "내"가 아니라 언어만이 움직이고 "행위"하는 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중략] 언어학적으로 말하면 작가란 결코 글쓰는 행위 이상이 아니다. 이는 라는 말하는 행위 이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언어는 만을 알 뿐 [개인으로서의]의 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언술 자체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이 텅 빈 주체는 언어에게 만으로 족할 뿐이다.   물론 엘리엇과 바르트는 각기 다른 문맥에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이 둘은 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즉, 엘리엇이 작가란 자신의 개성이 아닌 전통이라는 집단 무의식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작가가 아닌 주체로서의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는 대신에 정체성이 멸절하는 곳에 이르는 일이 곧 글쓰기라는 바르트의 주장과 일치한다.   작품은 (서점에서, [도서관의] 도서 목록에서 그리고 시험준비를 위한 지정 필독서 목록에서) 볼 수 있다. 텍스트는 전개 과정이며,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또는 이러한 규칙을 어기면서) 말하다. 작품은 우리 손안에 들어 올 수 있는 것이지만 텍스트는 언어로만 담아 낼 수 있으며, 담론의 움직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바르트가 말하는 담론을 의미화의 사슬로 바꿔 말한다면, 우리는 텍스트가 작가에 의해 그 의미가 확정되거나 종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텍스트는 반대로 무한한 기의의 지연을 실행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암유(allusion)하며, 또한 다른 텍스트들과의 상호텍스트성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생산하는 "전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호들은 단지 떠 다니는 기표들일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 시의 저자가 누구인가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시의 저자는 엘리엇도 그리고 파운드도 아니며 또한 이 둘을 합친 것도 아니다. 이 시에는 무수한 인용과 암유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시의 저자(이제 우리는 저자 대신에 글쓰기의 주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는 엘리엇과 파운드 말고도 이 시에 인용되고 암유된 성경을 비롯한 무수한 동서양의 텍스트들의 글쓰기의 주체들이다. 이 시는 단지 이 같은 주체들의 정체성이 소멸된 자리에 타자로 남아 있는 집단 무의식이며, 이 집단 무의식은 곧 언어인 셈이다. 그러나 누가 이 시의 글쓰기의 주체인가에 대한 질문은 아직 완전히 답해진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글쓰기의 주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시의 글쓰기의 주체가 언어라면 이 같은 언어는 또한 글쓰기의 주체의 참여뿐만 아니라 또한 글읽기의 추제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이는 언어가 우리 모두의 참여를 요구하는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쓰기가 글읽기를 전제로 한 것이며, "텍스트가 하나의 생산적 활동에서만 경험되는 것"이라면 [황무지]의 글쓰기의 주체는 위에서 말한 모두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엘리엇, 파운드, 인용되고 암유된 모든 텍스트들의 글쓰기의 주체 및 집단 무의식과 이 시를 읽는 독자들 모두를 이 텍스트의 글쓰기의 주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엇이 이 시에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나오는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의 동포여, 나의 형제여!"-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시의 글쓰기의 주체가 또한 독자도 포함함을 엘리엇 자신이 상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자로서의 무의식은 이 시 텍스트의 공간을 이처럼 활짝 열린 글쓰기의 공간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또한 넓은 의미화의 공간으로 만들어, 무수한 텍스트 사이의 연계가 가능한 넓고 넓은 해석의 공간을 제공한다. 타자로서의 무의식의 반란은 이제까지 무의식을 억압하던 의식을 여지없이 전복시켜 의식을 단지 "한 무더기의 깨어진 성상들"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이같이 붕괴된 의식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글쓰기의 주체로서의 독자와 다른 텍스트들의 집단 무의식을 복원시킨 셈이다. [중략]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의 욕망"이라고 라캉은 주장한다. 이 같은 욕망은 단지 대상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욕구와 욕구가 채워진 후에도 아직도 채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나머지를 지칭한다. 이 같은 나머지로서의 욕망은 결핍의 존재(want-to-be)로서의 인간의 본질적인 상황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중략] "욕망하기"는 곧 "욕망하기를 원하지 않기"라는 억압된 욕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욕망의 억압을 습관화한 현대인의 특질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희열의 텍스트는] 독자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인 가정을 전복시키고 그의 취향과 가치관 그리고 기억의 일관성을 교란시키며, 그와 언어의 관계를 위기로 몰아 넣는다. 따라서 상징질서로서의 언어를 위기로 몰아 이를 전복시키는 것은 타자로서의 무의식이며, 이 같은 무의식은 구심점이 없는 조각난 텍스트들의 집합인 셈이다.      *이정호 (서울대학교 출판부) : 제4장 타자(他者)로서의 무의식 151쪽~  
43    T. S. 엘리엇 비평의 대화적 상상력 댓글:  조회:1424  추천:0  2019-03-09
시론을 '시작' 하며 또는 용의 머리(龍頭) : 소위 '포스트' 시대에 교활한 엘리엇 '되' 살리기  또는 '새로' 읽기 또는 '다시' 좋아하는 법 배우기 중에서.       엘리엇은 좋은 의미에서 '교활한' 야누스이다. 여기서 '교활한'이란 말은 다면체적 엘리엇에게서 우리는 그의 한 면만을 보고자 고집하게 때문에 생기는 그의 알 수 없는 다른 면에 대해 의혹/의심하는 우리 자신의 '불평'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는 담장에 걸터 앉아 언제나 양쪽을 바라보는 포월(匍越)하는 니체의 '초인'이다. 엘리엇은 미국 '남부인'으로 태어나 동부의 최고 대학을 다닌 '동부인'이 되었으며,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아버지와 문학적인 감수성이 예민한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이 많았던 소년이었다. 갈등과 대화의식은 그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 시절에서부터 지적 호기심이 강한 방랑자, 유목민으로 철학을 전공하였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가 없었고 ('철학'과 '문학'의 보이지 않는 대화이던가?) 시의 습작을 시작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서양 철학은 물론 동양 철학(특히 인도 철학)에도 심취하였다. 이 때부터 그는 이미 정신적 지적 유목민이었다.   엘리엇은 위대한 이민자였다. 미국에서 모든 가능성을 버리고 스스로 지적 정신적 망명자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급진적으로 '타자화' 하였다. 그는 약속되었던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 자리를 의연히 떨쳐버리고 I.A. 리차드가 제시하였던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 영문학과의 자리도 거절하고 치열한 세속적 삶의 싸움터인 런던의 야시장 바닥에 자신을 내던졌다.   엘리엇이란 작가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시대적 '산물'이다. 제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의 극심한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작가로서 키워져 버린(만들어진)-자신의 의지에 반(反)하여-분열되 버린 자기 시대 속에서의 실존적 지식인이었다(이는 초기시 [프루프록의 사랑노래]나 [황무지]에 잘 나타나 있다).  초기시의 '심적' 자아는 초기 산문에서 '공적' 자아로 나타난다.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뒤얽힘과 갈등은 [푸루프록의 사랑노래]에 실존적으로 상상계와 상징계의 대화구조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초기의 '시'와 '산문'의 갈등구조는 자신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또 다른 양상인가? '시'에서는 엄청난 형식파괴를 통한 실험 그리고 [황무지]의 경우에서처럼 시 텍스트 구성에 있어서 상호 텍스트의 예상치 못한 병치와 접합으로 새로운 충격과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논하는 바흐친의 눈으로 보자    그의 [도스토예프스키의]의 생각은 어디에서든지 목소리들, 반(半)목소리들, 다른 사람들의 말, 다른 사람들의 몸짓이라는 미로를 통해 나아간다. 그는 다른 추상적인 입장을 토대로 하여 그 자신의 입장을 결코 증명하지 않는다. 그는 전혀 어떤 지시적인 원칙에 따라 생각을 서로 연결하지 않으며 여러 견해들을 병치시킨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 자신의 견해를 구축한다.   같은 맥락에서 엘리엇 자신은 병렬적 상상력과 중층적 구조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터너와 미들턴의 시행을 보면, 언어의 끊임없는 작은 변모가 일어나고, 어휘들은 끊임없이 새롭고도 갑작스러운 결합 속에서 병치되고, 의미들은 끊임없이 다른 의미들과 중첩된다. 이것은 감각의 아주 높은 단계로의 발전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결코 필적할 수 없었던 영어라는 언어의 발전-을 증명하는 예이다. 그리고 정말로 체프먼, 웹스터, 터너, 단의 죽음과 더불어 우리는 지성이 즉각적으로 감각과 닿아 있었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감각은 어휘가 되었고 어휘는 감각이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지성과 감성이 손쉽게 교류하는 대화관계에 있고 감각과 어휘 사이에 자연스럽게 환유적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엘리엇의 시의 이러한 대화적 중첩적 특징들은 산문에서는 문체나 내용적인 엄청난 절제와 통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초기의 엘리엇에게 분명 시는 산문의 알터 에고(alter ego)였다. 어느 것이 진정한 엘리엇인가? 왜 이와 같은 긴장관계를 만드는가? 분열증은 시에서 토해 내고 다시 산문에서 편집증적으로 추스린 것은 엘리엇 특유의 담론전략이었던가? 분열증인가? 편집증인가? 그러나 엘리엇 자신의 자신의 시와 산문과의 상호보완 관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의 비평에서 가장 정확한 의견들을 주장하는 반면 나의 운문에서는 그 의견들을 파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두 개의 얼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중적 역할을 가진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수치감도 느끼지 않는다. [...] 산문에서는 사색이 이상과 합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반면 시작(詩作)에서 우리는 단지 실제만을 다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는 다른 시뿐 아니라 산문으로부터도 배울 만한 것이 있다. 그리고 나는 산문과 시 사이의 상호관계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관계처럼 문학에서 생명력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엇은 주위의 끔찍한 현실 -서구 문명의 몰락과 와해의 '시작'-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해명할 수도 없었다. 절대적 진선미를 추구하려던 자신은 이미 산산이 파편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자신이 통합하고자 했던 (서구 중심의) 세계는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중략   엘리엇 자신도 그 어느 비평도 후세에 계속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떤 문학비평도 후세대를 위해서 그것이 자체로 계속 유용하지 않다면 그리고 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본질적 가치를 계속 가지지 않는다면 호기심 이상의 감성을 자극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 비평의 일부가 이러한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가진다면, 우리는 만일 우리가 또한 그 작가와 그의 첫번째 독자들의 입장 속에 우리 자신들을 집어 넣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경우 그 가치를 그만큼 더 정확하게 향유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무엘] 존슨과 콜리지의 비평을 공부한다면 틀림없이 커다란 보상을 받을 것이다.   대화적 비평의 대가들인 존슨과 콜리지를 보고 엘리엇이 끊임없이 배웠듯이 우리는 엘리엇의 의식구조[대화구조]에 우리 자신을 새로 끼워 넣어 다시 읽고 새로 써서 그의 비평의 가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 다시 말해 알튀세적인 '징후적 읽기'를 통해 엘리엇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보이게 만들자. 이러한 시도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42    보르헤스 詩學 -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댓글:  조회:1463  추천:1  2019-03-09
보르헤스 詩學 -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데리다(J. Derrida)는 ‘쓰기학’에서 사람의 마음을 표시할 수 있는 어떤 말도, 쓰기도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 소위 ‘차연’(differance)이라는 말로 데리다는 종래의 ‘논리 중심주의’에 반기를 든다. 데리다는 서구의 논리 중심주의의 뿌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소리 중심적 사고에 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소리는 영혼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말을 들으면 진실을 알 수 있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영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 쓰기는 말을 받아적는 부차적 행위로 생각되었다. 여기에서 인류는 말하고 쓰는 행위가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믿는 논리 중심주의를 전통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차연’이란 말로 이들 전통에 반발하면서, 쓰기나 말하기는 항상 어떤 현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동시에 표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예를 들어 나의 지금 느낌을 표현한 ‘춥다’라는 말은 이미 추웠던 느낌의 대치물일 뿐인 것이다. 동시에 내가 느꼈던 ‘춥다 !’는 느낌의 질이나 양을 ‘춥다 !’는 말이 대변하지 못한다. 말과 느낌 사이만 해도 이토록 시간적 차이(지연)와 질적 차이가 나는 것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 문화는 언어를 통하여 다르게 구현되어왔다. 그러나 데리다나 라깡(Jacques Lacan)에 와서 그 언어라는 것이 어떤 본질이나 대소망(라깡의 ‘Phallus’)을 직접적으로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없음이 이야기된다.   이들 해체주의의 사고는 보르헤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맨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많은 사고는 보르헤스로부터 기원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사람이다. 모든 시인들처럼 시를 읽고 시를 쓴다. 책이나 시가 나의 마음이나 느낌을 포착함과 동시에 처음 그대로 투영할 수 없는 것이라면, 시 속의 나의 느낌이란 것도 남의 느낌, 시의 언어의 느낌, 남의 시를 읽어 아는 느낌일 수 있다. 나의 시 속의 나의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시를 쓸 때는 이미 지나간 느낌일 뿐이어서 시나 글은 나의 살아 있음의 어느 호흡도, 세포의 움직임도, 지금 숨이 넘어가고 있음도 체크하지 못한다. 나의 시에 그런 살아있음의 현실감이 잡힌다면 그건 실감나는 현실일 뿐 현실 자체는 아니다.   언어는 관습의 산물이고 문학, 철학 또한 이런 관습의 소산이라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나의 사고이기 이전에 관습의 것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구약성서의 말을 시학으로 구현한 ‘해체주의 시인’이 바로 보르헤스다. 대부분의 시는 성서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시 속에 다시 한번 ‘그’다. 즉 ‘타인’ (elotro)이다. 보르헤스는 시를 쓰다 말고 묻는다. “그 둘 중의 누가 이 시를 쓰고 있는가 / 그 복수의 나, 아니면 단 하나의 그림자?/ 말이 무슨 상관이랴, 내게 오는 이 말이, / 결국 구분할 수 없는, 똑같은 저주.....” 그 ‘복수의 나’는 역사 속에서 나처럼 인생을 살았고 그 삶을 책으로 남긴,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읽고 내 가슴을 움직인, 그 많은 지나간 삶 또는 앞으로 올 삶들을 점지해 가는 단수가 아닌 여러 사람의 나다. 그러나 이들 나를 이루고 있는 삶이나 문화의 흔적들은 모두가 허상 즉 ‘하나의 그림자’임에서 일치한다. 신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책을 읽었고 읽어가고 있는 중생들은 그 알 수 없는 그림자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저주받은 영토도 동시에 지금 나의 삶이 숨쉬고 있는 은혜의 터다. 바벨탑 이전의 언어, 신의 언어는 우리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미로이며 미궁이다. 그러나 그 부서지고 흐트러진 형상 속에 또한 참 삶의 모습이 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   청동으로 새긴 6각운의 시 수천개의 길고 긴 시구 맨 처음에 그리스 시인은 기원한다 그 어려운 뮤즈, 혹은 신비한 불꽃에게 아킬레스의 분노를 노래할 힘을 달라고, 호메로스는 알고 있었다, 타인이 –어떤 커다란 신이- 우리의 어두운 작업을 사나운 불빛으로 상처내고 있음을; 몇 세기가 지난 뒤 성서는 말하리라, 성령은 마음내키는 대로 불어닥친다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정한 신은 반드시 선택받은 자에게만 완전한 도구를 준다: 밀턴에게는 사방에 어두운 벽을, 세르반떼스에게는 추방과 무명의 아픔을, 세속의 시간의 기억 속, 영원한 것은 신의 목소리뿐, 그 찌꺼기만 우리 것.   그렇다. 불멸의 작품은 이름모를 신의 뜻이다. 이름을 모름은 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신은 오히려 부재의 모습으로 지금 나의 인생과 나의 시의 됨됨에 참여하고 있다. “무정한 신은 / 반드시 선택받은 자에게만 완전한 도구를 준다.” 이해할 수 없는 우연과 고난과 불멸의 영광을 말이다. 롱기누스(Longinus)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함을 시쓰기의 방편으로 제시하면서, 고전 속에는 뮤즈로부터 받은 혼이 숨쉬고 있다는 소리를 한다. 그 혼은 글을 읽는 독자를 매혹하고 또다른 시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영감론을 재해석한 롱기누스의 창조적 모방론은 보르헤스에게도 통한다. (중략)   보르헤스는 말라르메와 함께 ‘말이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전통 속의 말일 수밖에 없다. 즉 나의 말이 아니라 남의 말, 남들의 말이다. 따라서 나의 시는 ‘다른 사람’ 즉 남이 쓴다. 그것은 나의 시 앞에서 나의 절망을 뜻하지는 않는다. 나의 시가 내 것이 아니듯이 남의 시도 남의 것이 아니다. 다 똑같이 ‘어둠의 자식들’이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말을 쓰지만 같은 냄새, 같은 체험, 같은 뜻으로 쓸 수는 없다. 이 시를 쓰는 나는 내 시 앞에서 타인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 내 시로 공감할 수 있다. 내가 내 시의 작가가 아니라는 말과 내 시의 시인이라는 말은 똑같은 소리, ‘똑같은 사람’의 어두운 발성일 뿐이다.   그러나 내 시가 남의 시인 것은 그것이 특히 독자들의 읽음을 통하여 살아가는 숙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단 쓰고 나면 나는 내 시의 하나의 독자일 뿐이다. 나의 시는 독자의 시다. 내 시를 쓰는 나도 내 시앞에서 타인이며, 내 시를 시 되게 하는 시를 읽는 독자도 타인이다. 내 시는 타인의 시다. 모든 타인의 시는 동시에 나의 시다. 모두 똑같은 사람의 시다.(중략)   보르헤스는 영감을 믿는 시인인 점에서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영감의 자유를 믿지 않는 숙명론자인 점에서 비극적 감성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다. 아니면 안또니오 마차도처럼 나그네 삶의 ‘우수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보르헤스는 그의 시가 그의 생명도 삶도 그 어느 것도 대변하거나 살릴 수 없음을 안다. 그는 시를 믿지 않는다. 그는 시 없는, 책 없는 인생을 믿지 읺는다. 보르헤스는 시를 쓰지 않는 인생, 아니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무명의 삶의 위대성에 각별한 애착을 갖는다.     사화집의 한 무명시인에게   지상에 오직 너만의 것이었던, 우주가 오직 너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 고통과 행복으로 짠 비단, 그 아름다운 날들의 기억은 어디 있는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강물의 나날들 그들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너는 이제 사화집 목차 속의 한 이 름.   신들은 남들에게 끝없는 영광을 내렸다. 비문이며 공적문이며 기념비며 정확한 역사가들까지; 자네에 대하여 아는 유일한 것은, 희미한 친구여 어느 하오에 두견새 울음을 들었다는 사실.   어둠의 수선화 사이, 자네의 희미한 그림자는 신들이 너에게만 깍쟁이었다고 하겠지. 하지만 세월은 하찮은 빈곤의 그물 같은 거지, 망각으로 짜여진 잿더미의 평화보다 더욱 훌륭한 결론이 있을 수 있을까 ?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들이 녹슬지 않는 영광의 빛을 던졌지, 마음의 내장을 비추고 그 균열을 하나하나 들추어낼 수 있는, 그러나 그 영광 또한 그토록 경애하는 장미를 끝내 송두리째 으스러뜨리고 말게 하는.... 자네에게만은 신들이 비교적 자비로웠던걸세.   아직 밤이 아닌, 밤일 수 없는 어두운 하오의 황혼 속에서 자네는 아직 테오크리토의 두견새 울음을 듣지 않는가.   보르헤스는 백과사전 출신, 도서관 출신 시인이면서 반독서주의자다. 고전처럼 유명시인의 시처럼 많이 읽히는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는 신의 일이다. 시의 영광과 패배는 타인의 일이다. 신들이나 타인의 장난은 알 수가 없듯이 더러 시인은 성공하고 실패한다. 그렇다고 시를 살지 않고 삶을 사랑하지 않는 시인은 없다. 오늘 독자에게 영광을 얻지 못한 시와 시인은 내일과 신에게서 더욱 영원한 독자를 만날 수 있다. 이딸로 깔비노(Italo Calvino) 말처럼 독자는 미래를 안다. 시는 독자의 것이며 신의 것, 망각의 것이다.   보르헤스는 ‘무명시인’ 혹은 ‘작은 시인‘ (Poeta Menor)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아래의 시는 위 시의 해석이 된다.   종착점은 망각 나는 조금 빨리 도착했을 뿐   위 두 시에서 보르헤스는 시와 시인의 길은 어차피 파멸과 망각을 향해 있음을 안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그 유명한 에서 “죽음은 시와 시인을 잡아간다”라고 했던 것을 아르헨띠나 시인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어느 영광도 장미도 부서지고 으깨어지는 숙명일밖에, 그래서 차라리 “망각으로 짜여진 잿더미의 평화”가 오히려 먼저 도착한 미명의 영광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리 영광이니 명예를 주지 않은 ‘무명시인’에게는 신이 오히려 떨리는 슬픔, 무너지는 아픔을 면제해주는 자비를 베푼 게 아닌가.   보르헤스는 노자의 ‘무명(無名)’을 배운 것 같다. 그의 시에는 유달리 무명시인, 작은 시인에 대한 애착이 두드러진다. 무명시인은 시와 시인이 가야 할 길에 미리 와 있는, 그 망각의 강가에 미리 도착해 무상의 마지막 햇살을 즐기고 있는 득도의 맛을 풍긴다. 득도의 경지이기에는 아직 서글픔과 우수가 얼룩지는 라틴계의 핏기가 있지만....“ 아직 밤이 아닌, 밤일 수 없는 어두운 하오의 황혼 속에서/ 자네는 아직 테오크리토의 두견새 울음을 듣지 않는가.” 그렇다.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강가에서 듣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두견새 울음에서 황홀감을 느낀다. 그의 또다른 무명시인에 관한 시를 보자.   1899년 어느 무명시인에게   하루의 가장자리쯤, 숨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서글픈 시간을 위해 시를 남긴다는 것, 황금빛 반짝임과 희미한 그림자의 아픈 날짜에 너의 이름표를 단다는 것, 그것이 네가 원했던 것. 하루가 기울고 있을 때, 또 얼마나 열심히 그 이상한 시구를 쓰고 다듬고 했었을까 ! 우주가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여기 이상한 푸르름이 존재했음을 알리려는 그 이상한 시구 ! 네 뜻이 성공했는지, 심지어 나는 네가 실제 존재했는지조차도 나는 모른다, 세월 속의 희미한 이름의 힘아, 하지만 나 또한 홀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망각에게 세월 속에서 너의 가벼운 그림자를 다시 찾아오도록 부탁한다, 땅거미가 지는 순간에, 이 지친 나의 안타까운 말벗이라도 되어주도록.   보르헤스는 시가 황금 월계관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살아 있음은 곧 망각을 향하여 가는 길임을 안다. 다만 땅거미가 질 무렵의 푸르름, 그 작은 위안을 위해 시가 있다고 믿는다. 영원한 것은 무명에 가까운 작아짐의 형태에서만 또렷해진다. 그것은 세월 속에 너도 나도 살아 있었음의 더러는 슬프고 더러는 행복했었음의 마지막 증표다.     시학   세월과 물로 된 강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시간은 또다른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강물처럼 사라져갈 것을 알며 얼굴들 또한 강물처럼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눈을 뜨고 본다는 것도 또 하나의 꿈임을 느끼며 꿈을 꾸고 있지 않다고 꿈꾸는 꿈,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두려워하는 죽음 또한 밤마다 꿈이라고 부르는 그런 죽음밖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며   하루의 한 해 속에 사람의 나이와 세월들의 상징을 읽으며, 세월이 앗아간 인생의 아픔을 음악으로, 소음으로, 상징으로 바꾸어가는 일.   죽음 속에 꿈을 보고, 석양에 하나의 슬픈 황금을 보는 일, 이것이 시 영원한 가난의 되풀이: 시는 여명처럼 석양처럼 늘 되돌아온다.   이따금 하오가 되면 거울 한가운데서 한 얼굴이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예술은 바로 그런 거울 같은 거, 우리 스스로의 얼굴을 밝혀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율리시스는 그 위대한 업적에도 지치고 지쳐,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 마을을 바라보며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초라하고 파란 마을을 보며....예술은 위대하지 않다: 이타카 마을, 그 파란 영원.   또한 그것은 끝없는 강물 같다 흘러가고 남고.... 만물은 흘러간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거울: 모든 것은 다 똑같다 그리고 다르다, 끝없는 강물처럼.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 구태여 헤라클레이토스만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동서가 세월의 흐름을 알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율리시스나 보르헤스나 우리는 똑같다. 보르헤스 앞에서 낭만주의의 독창성은 갈 길이 없다. 강물은 흘러가지만 강은 길게 누워 있다. 수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흘러가고 흘러오지만 도서관은 여기도 저기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지금 여기 살지만 죽은 사람들을 읽고 또 나의 죽음을 창조한다. 거울 속에 비춰보는 나는 나지만 모든 사람의 얼굴을 닮았고 같은 인간이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다. 나는 때때로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나의 인생 ! 나의 공적 ! 나의 시 !’ 그러나 목소리를 낮춰라. 모든 것은 부서지게 되어 있다. 마침내 우리는 모두 파란 이타카 고향 마을, 그 파란 영원에서 다시 만나리라. 시는 그 가난과 파란 언저리에 돋는 풀이다. 보르헤스의 시의 주제는 거의 모두 지나간 다른 작품, 다른 시인들에 관한 것들이다. 똑같은 작품에 보르헤스의 숨결과 보르헤스의 덧입힌 되읽기, 되쓰기, 풀어쓰기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는 하나도 새로운 것을 쓴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쓰고 또 죽어갈 사람들에게 읽힌다.   지금 내 시를 읽고 있는 분에게   당신은 무적이다,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법칙을, 먼지의 확실성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당신의 시간은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의 거울 속 세월의 무상함의 상징 그 강물의 시간이 아니고 무엇인가 ?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읽지 못할 대리석 비문, 거기, 당신의 날짜와 도시 그리고 기록이 이미 적혀 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시간의 꿈들. 견고한 청동도 정교한 황금도 없다. 우주는 당신처럼 변덕쟁이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의 것. 그림자여, 당신이 가는 곳은 당신을 기다리는 또하나의 어둠, 거기 어둠이 숙명처럼 당신의 여정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라, 어떤 형태로든 당신 또한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민용태 (1995년, 창비) p218 ~ 229    
41    이정문<세계문학사조의 흐름> 댓글:  조회:1460  추천:0  2019-03-09
세계문학사조의 흐름     (1) 고대 서양 문학   서양의 고대 문학은 인간 중심적이며, 합리적· 심미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 문학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문학의 주된 양식은 서사시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대표적이다. 한편 기원전 7세기경에는 서정시가 발달하여 사포(Sappho)와 같은 여류 시인이 나왔다. 또한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연극이 크게 흥행하여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3대 비극 작가가 활동하였고, 희극 분야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시사 문제를 제재로 인간과 사회를 풍자, 비판하며 이름을 떨쳤다. 지중해 세계를 통일했던 로마는 광대한 제국의 통치라는 과업에 몰두하여 심미적이며 사색적인 분야에 탐닉할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적 성격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대표적 작가로는 생동적인 서민풍의 희극을 많이 남긴 플라우투스(T.M. Plautus:BC254-BC184), 민족적 서사시 `아에네이스`를 쓴 로마 제일의 시인 베르길리우스(M.P. Vergilius:BC70-19), 아름다운 「서정시집」을 쓴 호라티우스(F.Q. Horatius:BC65-BC8) 등이 있다.   (2) 대표작가 및 작품   ① 그리스 신화 신화는 고대인의 민간 신앙을 근원으로 하는 작가 불명의 전승적인 이야기로서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최초의 문학 창작물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자연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해석하며 나름대로 인간관과 우주관을 정립하였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일찌기 신이라는 상징을 만들어 그들 사이에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신들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였다. 그리스 신화를 특별히 중요시하는 이유는 서양의 문화, 문학, 미술이 여기에 근거하는 바가 크며 내용적으로 인간 존재의 근저에까지 깊이 파고들며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② 고대 그리스의 작가 · 호메로스(Homeros:기원전 800년경) 고대 그리스의 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작가로 알려졌다. 이들은 구술 낭송을 위한 작품으로 여기에는 각 장면에 적합한 상투적인 문구와 레퍼토리를 자유자재로 빌려 온 흔적이 드러난다. · 소포클레스(Sophokles:BC486?~404)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하나이다. 그는 비극의 전승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를 가장 이상에 가까운 비극 시인으로 꼽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  `아이아스` 등이 있다. · 아이스킬로스(Aischylos:BC525~45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하나이다. 일찍부터 연극 경연에 참가하여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오레스티아`, `페르시아 사람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등이 있다. · 에우리피데스(Euripides:BC484~40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하나이다. 주요 작품으로 `메디아`, `트로이의 여인`, `박쿠스의 신녀(信女)` 등이 있다. ·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BC445?~485?) 그리스 최대의 희극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 `구름`, `여자들의 평화`, `개구리` 등이 있다.   ③ 베어울프(Beowulf) 고대 영국 문학의 최대 걸작이다. 8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2부로 구성된 줄거리에서, 제1부는 국왕의 조카인 베어울프가 궁전을 밤마다 습격하는 그렌델이라는 악귀와 그 어미를 죽이는 이야기이다. 제2부는 50년 이상 세월이 지나 왕위에 오른 베어울프가 나라를 괴롭히는 용을 물리치지만 용의 독기 때문에 전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와 소재를 바탕으로 무인 사회 영웅들의 이상적 상을 그려 보여 준다.   ④ 힐데브란트의 노래(Das Hildebrandslied) 독일어로 된 최고(最古)의 영웅 서사시이다. 800년경 수도원의 승려가 글씨 연습을 위해 기도서에 적어 놓아 후세에 전해지지만, 시의 제작은 이보다 100여 년 전의 일로 추산된다. 동코트 족의 장군인 힐데브란트는 고국을 떠났다가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힐데브란트의 부대는 국경에서 수비대와 대치하게 되고, 결투에 앞서 젊은 수비 대장이 30년 전에 남기고 간 그의 유일한 혈육임을 알게 된다. 놀라움과 기쁨 속에 힐데브란트는 순금 팔찌를 증거물로 보이며 부친임을 알리지만, 부친이 이미 전사한 것으로 아는 젊은 대장은 정정당당히 결투할 것을 요구한다. 대치한 양군에서도 두 영웅의 결투를 바라는 심리도 있어 할 수 없이 힐데브란트는 단장의 심정으로 아들과 결투를 한다. 필사(筆寫)는 여기에서 중단되어 있지만, 전설로 전하는 다른 자료에서는 힐데브란트가 유일한 혈육을 죽인다. ⑤ 롤랑의 노래(Chanson de Roland)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서 작가는 알려져 있지 많다. 778년 샤를마뉴 대제의 에스파냐 침공군이 돌아오는 길에 계곡에 잠복해 있던 적군의 기습을 받아 후미 부대가 전멸한 역사적 사실을 작품화한 것이다. 여기서 롤랑은 후미 부대의 대장으로서 이교도 군에 대한 승리야말로 참다운 목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위급을 알리는 뿔피리를 분다. 그러자 대제가 본대를 이끌고 달려와 적군을 물리치고 후미 부대의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이다. 투철한 십자군 정신, 봉건적 주종의 충성심, 조국애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⑥ 길가메시(Gilgamesh) 바빌로니아 수메르 지방의 서사시로서 대략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길가메시는 여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반신반인의 인물로서 위압적인 폭군이다. 그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에서 삶의 허무를 목격하고 영생의 길을 터득하기 위해 죽지 않는 인간 우트나피쉬팀(Utnapishitim)을 찾아 나선다. 길가메시는 먼 여행 후 그를 만나지만 “나도 영생의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니기에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듣는다. 하지만 그 아내가 젊어지는 신비의 약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줘, 길가메시는 그 곳에서 약초를 얻어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오랜 여행으로 지친 길가메시가 시원한 물을 만나 목욕하는 사이 물 속에서 나온 뱀이 그 약초를 먹어 버리는 바람에, 그는 인생의 깨달음(생·노·병·사)만 얻고 빈손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⑦ 마하바라타(Mahabharata) 산스크리트로 쓴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이다. 기원전 약 15세기경에 인도 북부의 어느 호전적 종족이 치른 전쟁에 대한 전설에 근거하여 쓰여졌다. 내용은 판두 왕국이 크리시나와 판차라스 왕국의 도움으로 쿠루 왕국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승리의 이야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하바라타`는 인간들의 진실한 삶이 지닌 충만성을 보여 주고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들을 선명하게 묘사하여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이 서사시는 인도의 문화, 종교와 윤리 등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었다.     (1) 특징   중세는 보편 종교의 출현과 공동 문어의 사용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문학이 귀족층의 상층 문학과 일반 평민들의 하층 문학으로 이원화된 것이 눈에 띈다. 상층 문학은 유럽의 라틴어, 동양의 한자, 인도의 산스크리트와 같은 그 문명권의 공동 문어에 의해 주로 창작되어 기록 문학으로 전해진다. 반면에 하층 문학은 개별 민족 및 지방의 토착어에 의한 구비 문학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상층 문학이 공동 문어를 사용함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경계선을 초월한 보편적 미의식을 향유한 반면에, 하층 문학은 각 지역의 풍토와 생활을 토착어로 표현하는 향토적 성격이 강하였다.   (2) 중세 성직자 문학과 기사 문학   중세에는 봉건적 규범이 유럽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것의 토대를 이루고 있던 것은 기독교 이념이었다. 그리하여 문학에서도 성직자들의 참여가 가장 두드러진다. 성직자 문학은 공동 문어를 사용하며 속세를 초월하는 이상 추구를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지역 특유적인 인간의 심리나 삶의 태도를 표현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영적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성직자 문학과 대비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기사 문학이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세상의 여러 문물을 접한 기사 계급들은 세속적인 문제들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기사 문학은 영웅 서사시, 기사도 이야기, 서정시 등으로 나뉘는데, 게르만 영웅 전설을 집대성한 `니벨룽겐의 노래` 영국의 `아서왕 이야기` 등은 모두 영웅적인 기사들의 용맹과 무훈을 노래한 것들이다. 한편 중세에는 프랑스의 트루바두르, 독일의 민네징거와 같은 음유 시인들이 등장하여 귀부인에게 바치는 기사들의 정신적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중세 유럽의 문학은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도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3) 주요작품     ① 니벨룽겐(Nibelungen)의 노래 중세 독일 문학의 대표적 장르인 영웅 서사시의 걸작으로 꼽힌다. 대체로 1200년 무렵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지만 내용은 5, 6세기 민족 이동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부에서는 멜로빙거 왕조의 피비린내 나는 집안 싸움, 제2부에서는 아틸라가 거느리는 훈족과 부르군트족과의 싸움, 아틸라가 죽은 뒤 훈족 내부에서 전개되는 왕자들 사이의 투쟁이 다루어진다. 전체적으로 이교도적인 분위기와 게르만인들의 숙명적 세계관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기사풍의 요소와 궁중 문화적 요소가 함께 가미되어 있다. ② 신곡(神曲) 단테(A. Dante:1265~1321)의 작품으로 중세 말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우주관과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으며, 중세 문학적 전통의 절정을 이룬다. 형식은 전체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부로 나뉘고 각 부는 또 33개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단테 자신이 등장 인물이 되어 처음에는 베르길리우스를, 다음에는 베아트리체를 안내자로 삼아 피안의 세계를 편력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게되고 드디어 높은 경지에 이르러 삼위일체의 깊은 뜻을 깨닫는다. ③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중세 영국의 최대 작가인 초서(G. Chaucer:1340~1400)의 대표작으로서 이야기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데카메론`이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이야기 속의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캔터베리에 순례하러 가는 29명의 사람이 어느 여관에 함께 묵게 되는데, 각자 다른 신분과 직업을 가진 이들은 지루함을 덜기 위해 교대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서론에 이들의 직업과 성격을 미리 밝히고 각자의 특성에 부합하는 얘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야기 내용과 이야기하는 사람 사이에 연관성이 형성된다. 각각의 이야기 사이에는 사회자인 여관 주인의 비평과 사회의 말이 들어가기도 하고, 청중의 감상이 튀어나오기도 하며, 심지어 얘기를 방해하여 서로 다투거나 초서 자신이 등장하여 하나의 역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풍부한 해학과 날카롭고 넓은 통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계층의 인물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1) 근대 문학의 특성   시대 구분으로서의 근대는 문예 부흥에서 시작한다. 문예 부흥은 중세 이후 억눌려 왔던 인간성을 다시 회복시킴으로써 개인적 특성을 존중하는 풍토를 낳는다. 근대에 개성적이며 수준 높은 문학 예술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온 원인도 이러한 개인적 존재에 대한 신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근대를 형성한 동력으로는 구텐베르크에 의한 금속 활자의 발명, 시민 계급의 대두와 상업의 발달, 민족적 고유성에 대한 관심 등을 꼽을 수 있다. 근대는 국가 단위로 공동체적 유대감을 나누는 민족주의의 시대이다. 즉 중세적 보편성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결속력이 더욱 부각된다. 근대로 오면서 세계 문학의 개념이 형성된 것도 민족 단위로의 분화를 순화하려는 하나의 이념적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 세계 문학은 지방성과 민족성을 토대로 형성된 이념으로서, 실제로는 개별 민족 단위의 물리적 연결을 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근대 문학은 지역성과 민족성의 영양분을 섭취하며 자란 개인의 탁월한 재능이 낳은 현상이다. 그러나 문학에서 개인적 특성은 국민적 특성과 연결되고 다시 보편적 의미로 확산되기 때문에, 근대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민족적 우수성을 넘어 세계 보편적 가치로 승격된다.     (2) 근대 문학과 사조   근대 서양 문학은 사조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 편리하다. 작가들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또 인간의 삶과 시대를 이해하는 관점에 유사성이 확산되면서, 시대별로 문학 작품들에 유형적 특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조란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하나의 공통적인 흐름으로 존재하는 문학적 경향을 말한다. 사조를 유형화하는 데 작용하는 요소들로는 이성과 감성의 작용 범위, 현실과 작품의 관계, 환상의 개입 정도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시대적 조류인 사조로부터 동떨어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문학이 근본적으로 작가의 개성에 의해 창조된 개인적 사실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비록 시대 사조를 받아들여 창작의 동력으로 삼기는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부여함으로써 문학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게 한다. 창작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사조는 작가의 창의력에 의해 작품 속에 용해되기 때문에, 사조는 개성을 자극하고 개성이 모여 사조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주요 문학 사조       ① 고전주의   ⓐ 개념: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이 지니고 있던 조화, 균정(均整), 명석함을 본받고자 하는 경향을 두루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문학의 흐름을 일컫는다. ⓑ 배경:감각이나 감성에 의한 인식을 의심하고 이성을 통해 객관적 진실에 도달할 것을 주장한 데카르트의 철학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절대 군주제 하에서 질서와 안정으로 회귀하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그리스·로마의 고전에 심취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 특징 -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것보다는 사회적 보편성을 지닌 것이나 도덕적으로 전범이 될 만한 것을 중시한다. - 내용과 형식이 조화되는 질서와 균형미를 추구한다. - 완벽한 구성이 필요한 비극을 최상의 장르로 간주한다. ⓓ 대표 작가 소개 - 코르네유(1606~1684):프랑스의 극작가. 주요 작품으로 `르 시드`, `오라스` 등이 있다. - 몰리에르(1622~1673):프랑스의 극작가. 주요 작품으로 `수전노`, `인간 혐오`, `여인 학교` 등이 있다. - 라신(1639~1699):프랑스의 극작가. 주요 작품으로 `페드르`, `아탈리` 등이 있다. - 포프(1688~1744):영국의 시인. 주요 작품으로 `머리카락 훔치기`, `인간론`, `던시어드` 등이 있다. - 스위프트(1667~1745):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작가. 대표작으로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 `통(桶) 이야기` 등이 있다. - 괴테(1749~1832):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 대표작으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파우스트` 등이 있다. - 실러(1759~1805):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 대표작으로 `발렌슈타인`, `빌헬름 텔` 등이 있다.   ② 낭만주의   ⓐ 개념: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 사조로서 고전주의의 균형미와 도덕성 추구에 반대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 배경:고전주의는 문학적 법칙에 의거하여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억압하는데, 시민 사회가 정착된 이후 차츰 해방된 개인 정신이 보편적 법칙성을 대체하여 간다. 또한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는 낭만주의 인간관의 기초가 된다.   ⓒ 특징 - 주지적 고전주의에 반대하여 주정적 태도를 취한다. - 개성과 독창성을 중시하며 멀리 있는 것, 이국적인 것, 신비로운 것에 동경을 표시한다. - 천재적 독창성을 문학 창작의 주된 에너지로 여긴다. - 반항 정신 및 이상주의적 경향을 지닌다.   ⓓ 대표 작가 소개 - 괴테와 실러:괴테와 실러가 젊은 시절에 심취한 스트룸 운드 드랑은 낭만주의의 전초가 된다. 대표작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실러의 `군도`가 있다. - 샤토브리앙(1768~1848):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르네`, `아탈리` 등의 소설이 있다. - 위고(1802~1885):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극작가. 대표작으로 `에르나니`, `노트르담의 꼽추` 등의 소설과, 시집인 「정관 시집」이 있다. - 워즈워스(1770~1850):영국의 시인. 대표적 시집으로 「서정 가요집」, 「서곡」, 「소요편」 등이 있다. - 콜리지(1772~1834):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대표작으로 `늙은 수부(水夫)의 노래`, `문학적 자전(自傳)`, `쿠블라 칸` 등이 있다. - 바이런(1788~1824):영국의 시인. 대표작으로 `맨프레드`, `돈 주앙`, `판결의 환상` 등이 있다. - 키츠(1795~1821):영국의 시인. 대표작으로 `엔디미온`, `히페리온` 등이 있다.   ③ 사실주의 ⓐ 개념:현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그려내려고 하는 문예 사조를 일컫는다. 좁은 의미로는 19세기 후반에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난 문학 흐름을 지칭한다.   ⓑ 배경: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공상에 의존하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묘사 방법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근대 합리주의 및 실증주의, 공리주의, 다윈의 진화론 등이 철학적 배경을 이룬다. ⓒ 특징 - 주관적 태도를 자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 인간과 더불어 주변 세계까지도 묘사의 대상으로 삼아 현실의 온전한 재현을 추구한다. -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부정적 면이 있으면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삶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중시한다.   ⓓ 대표 작가 소개 - 발자크(1799~1850):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고리오 영감`, `사촌 베트`, `골짜기의 백합`,  `외제니 그랑데` 등이 있다. - 스탕달(1783~1842):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연애론`, `적과 흑`, `파르므의 승원` 등이 있다. - 플로베르(1821~1880):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보바리 부인`, `살람보`, `감정 교육` 등이 있다. - 디킨스(1812~1870):영국의 작가. 대표작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 `쓸쓸한 집`, `두 도시의 이야기`, `위대한 유산` 등이 있다. - G.엘리엇(1819~1890):영국의 여류 작가. 대표작으로 `플로스 강의 수차(水車)`, `미들 마치` 등이 있다. - 고골리(1809~-1852):러시아의 작가. 대표작으로 `외투`, `검찰관`, `죽은 농노` 등이 있다. - 톨스토이(1828~1910):러시아의 작가. 대표작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카테리나`, `부활`, `바보 이반의 이야기` 등이 있다. -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러시아의 작가. 대표작으로 `죄와 벌`,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 등이 있다.   ④ 자연주의 ⓐ 개념:사실주의를 더욱 극단화하여 인간의 생태를 자연 현상으로 보며 작가도 자연 과학자와 같은 태도로 문학을 창작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 배경:과학적 실험을 하는 태도로 작품을 묘사해야 한다는 에밀 졸라의 실험 소설론, 인간의 행동과 운명은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환경 결정론 등이 배경을 이룬다. ⓒ 특징 -작품 속의 인간은, 자연 현상의 일부로 본능이나 생리의 필연성에 의해 강력하게 지배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대체로 세기말적 분위기를 반영하며 전체적으로 어둡고 염세적이다. -내면적으로는 빈약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다. ⓓ 대표 작가 소개 -졸라(1840~1902):프랑스의 작가. 대표작으로 `목로 주점`, `나나`, `제르미날` 등이 있다. -하우프트만(1862~1946):독일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대표작으로 `해뜨기 전`, `방직공들`, `한넬레의 승천` 등이 있다. -드라이저(1871~1945):미국의 작가. 대표작으로 `아메리카의 비극`, `시스터 캐리` 등이 있다.   ⑤ 상징주의 ⓐ 개념: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고답파의 객관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예술 운동과 그 경향을 일컫는다. ⓑ 배경:제국주의의 태동, 사회적 계급 사이의 갈등으로 위기감과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이상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 특징 -분석에 의하여 포착할 수 없는 주관적 정서의 시적 정착을 목표로 한다. -자아를 구속하는 객관적 규범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징의 방법을 통해 형이상학적, 신비적 내용을 표현한다. -현실 세계를 초월적 정신 세계의 상징으로 보고 문학을 통해 여기에 접근하려 한다. -개별적인 것 하나 하나가 소우주적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 대표 작가 소개 -보들레르(1821~1867):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악의 꽃`, `파리의 우수` 등이 있다. -말라르메(1842~1898):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주사위 던지기`, `목신(牧神)의 오후` 등이 있다. -베를렌(1844~1896):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말 없는 연가`, `예지(叡智)` 등이 있다. -랭보(1854~1891):프랑스의 시인. 대표작으로 `지옥에서 보낸 한철`, `레 일루미나시옹` 등이 있다. -릴케(1875~1926):오스트리아의 시인. 대표작으로 `말테의 수기`, `가을날의 기도` 등이 있다. -시몬즈(1865~1945):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학을 영국에 소개한 「문학에 있어서의 상징파의 운동」이라는 평론집이 있다.   ⑥ 초현실주의 ⓐ 개념: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20세기의 문예 사조이다. ⓑ 배경: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이 중요한 배경을 형성한다.   ⓒ 특징 -이지(理智)의 논리를 배격하고 잠재 의식이 상상에 의해 위대한 작품을 낳는다고 간주한다. -초현실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를 보다 높은 예술적 차원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간주한다. -무의식, 성, 꿈, 욕망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룬다.   ⓓ 대표 작가 소개 -브르통(1896~1970):프랑스의 시인.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이며 이론가이다. 대표작으로 `나자` 등이 있다. -엘뤼아르(1895~1952):프랑스의 시인. 대표 시집으로 「의무와 불안」, 「그치지 않는 노래」 등이 있다.   ⑦ 모더니즘 ⓐ개념:1920년대에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 사조, 좁은 의미로는 영· 미의 이미지즘이나 주지주의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 20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실험적인 문학 운동, 즉 다다이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을 총칭하기도 한다. ⓑ특징 -도시 문명 및 산업 사회에 대한 비판을 기본 축으로 한다. -전통적 문학 수법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한다. -문학을 통해 새로운 문명 의식의 확산을 추구한다. ⓒ 대표 작가 소개 -T.S. 엘리엇(1888~1965):영국의 시인. 대표작으로 `황무지`, `4편의 사중주` 등이 있다. -흄(1883~1917):영국의 비평가이며 시인. 이미지즘 시운동의 선구자로서 E. 파운드, T.S. 엘리엇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론집으로 「성찰」이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근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근대의 특징은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며, 과학 지상주의를 가지고 세계의 체계화와 총체성을 지향한다. 이러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 도전 받기 시작한다. 반이성의 맥락에서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를 규탄하고, 정전을 타파하며 스스로 미학적 대중주의로 내세우는 철학적· 문학적 경향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매끄러운 논리가 해체되고 실체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내용도 극도로 불안정한 무질서의 세계를 그리는 초현실주의로 바뀐다. 독자 참여 소설의 경향을 띠기도 한다. 어떤 실험 작가는 아예 소설을 언어의 각종 시험장으로 바꾸어 버린다. 문장을 토막내기도 하고 질문지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진지한 내용과 하찮은 내용을 대비시켜 놓기도 하여 게임을 하는 듯한 즐거움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혼돈과 대적하는 길은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것, 아니 더 나아가 더 깊은 혼돈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는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와 콜롬비아의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를 들 수 있다. 마르케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은 1967년 아르헨티나에서 출판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혀 오다가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외에 주목할 만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으로`와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을 꼽을 수 있다.  
40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 연구 / 이철(강릉대교수) 댓글:  조회:1593  추천:0  2019-03-07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 연구 / 이철(강릉대교수)   1. 문제제기   20 세기 초 서구 문예사에 주된 흐름으로 나타난 모더니즘(modernism)은 시에 있어서는 이미지즘(imagism)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등이 중심이 된 이미지즘 운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영시가 보여준 감상주의(Sentimentalism)와 매너리즘(mannerism)을 극복하여, 정확하고 간결한 시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풍을 확립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시인들보다는 오히려 스땅달, 플로베르, 모빠상 등의 프랑스 소설가들이 보여준 정확한 산문정신에 힘입고 있었다.   당대 영시의 느슨하고 장식적인 언어를 청산하게 만들었던 이 정신은 기본적으로 사물과 언어, 대상과 표현을 정확하게 1대1 대응시키려는 일사일언을 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미지스트들이 이어받은 이 정신 속에는 기본적으로 시인이 자신의 주관에 의해 대상을 굴절시키지 않고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하는 태도가 숨어 있었다.    현대 영시에 이런 혁신을 가져왔던 이미지즘 운동은 그러므로 정확성과 객관성이 그 중요한 특징들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 운동은 2~3년이 지나면 그 본질적인 부분인 언어의 정확성과 명료성 등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일종의 자유시 운동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 운동을 주도했던 파운드는 자신을 여전히 이미지스트로서 지칭하면서도 객체적 사물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식 세계에 투영된 바로서의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문제는, 객관성을 그 핵심으로 하던 이미지즘 운동을 끌어가던 파운드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어떻게 주관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파운드 자신의 단순한 취향변화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크게는 당대 예술의 전반적인 흐름에 영향을 입고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이미지즘이 갖고 있었던 이중성, 혹은 변화 가능성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지즘의 이중성을 상정하지 않고는 파운드가 그 이후에 보여준 변화나 자기모순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미지즘의 이런 이중성에 대한 이해는 또한 1910년대 중반 이후 파운드의 이미지즘이 객관적 세계보다는 예술가의 통합적 창의력을 중시하는 보티시즘(Vorticism)으로 흡수되는 과정과 파운드의 중, 후기의 대작 시편(The Cantos)에 보이는 주관성 과잉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하는 시인의 객관적 태도를 마치 파운드의 이미지즘의 변치 않은 핵심처럼 여기는 통념은 수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미지스트 운동의 중심에 서서 이 운동을 주도하며 새로운 방향을 유도했던 시인이 파운드인 만큼 그의 이미지즘에 대한 이해는 이미지즘의 통합적 성격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다.   2. Imagism의 모호성   예술사조란 당대에는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것 자체로는 실체가 없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 우리가 과거에 서구 예술사에서 풍미하던 예술사조들을 되짚어볼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예술사조가 한 시대를 휩쓸며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정신을 빌어 만들어낸 여러 작품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와도 혹은 거센 바람과도 같은 예술사조들은 당시로서는 어떤 경계도 없고 확실한 모습도 없어 보일지라도, 그 시대가 흘러가고 그 사조도 흘러가 버리면 후대에 남는 것은 화석과 같은 작품 들 뿐이다. 우리는 이런 작품들과 그 밖의 다른 기록들을 통해 과거의 예술 사조를 역으로 가늠하고 재구성해 보는 것이다.   비교적 명확한 기록들과 당대의 여러 예술작품들을 근거로 삼는다고 해서 그러나 하나의 예술사조가 손에 잡힐 만큼 명확하게 규정되기는 쉽지 않다. 이를테면 현대 예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 낭만주의나 모더니즘 같은 경우도 그 성격을 놓고 비평가들 간의 의견이 여러 가지로 갈라진다. 이 글이 그 성격을 규명하려는 이미지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크게 보아 이미지즘은 모더니즘의 한 부분으로서, 말하자면 모더니즘의 시적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격 규정의 어려움이 그 범위가 작아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지즘의 경우 그 어려움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해서 더욱 가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즘의 정확한 모습을 알기 어려운 이유는 우선 이미지즘 시선집이 거의 발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이미지즘은 사람들에게 언급되는 만큼 그 시들이 읽히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미지즘은 모더니즘의 한 부분으로서, 혹은 20세기 초 영시상의 하나의 새로운 운동으로서, 시사(詩史)에서만 중요하게 다루어질 뿐, 그 시들을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읽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부재는 책의 출판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미지즘 시 선집은 이 운동이 활발하던 1910년대에만 몇 권 발간되었을 뿐 그 이후로는 거의 출판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미지즘에 관심을 갖고 이들 시를 읽으려는 사람들은 영시 앤쏠로지에서 이곳저곳을 찾아가며 읽을 도리 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의 수효는 보잘 것 없을 정도로 적으며, 또 이것들을 읽어봐야 회화적 특징이 강조된 짧은 영시들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미지즘의 중심인물 중의 하나인 파운드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미지즘 고유의 시라고 얘기될 수 있는 것은 실제 몇 편이 되지 않는다.    이미지즘을 규정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이미지즘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이미지(image)'라는 것이 20세기 시에서 비로소 언급되거나 중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아마 시가 생겨날 때부터 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으므로 특별히 20세기 초 영국시단이 산출한 특정한 시들만을 이미지가 강조된 시, 혹은 이미지즘시로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은 실제의 시를 살펴보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우는 달(The Waning Moon) 그리고 미치고 약해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흐릿해져 가는 정신에 이끌려 침실로부터 엷은 베일에 싸인채, 비틀거리며 나오는 여위고 창백한, 죽어가는 여인처럼,  달은 어두운 동녁에서 솟아올랐다.  희고 모양새 없는 덩어리 And like a dying lady, lean and pale, Who totters forth, wrappt in a gauzy veil, Out of her chamber, led by the insane And feeble wanderings of her fading brain, The moon arose up in the murky East, 부두 위에서(Above the Dock) 한밤중 조용한 부두 위 밧줄 매인 높은 돛대 꼭대기에 엉긴 채 달이 걸려 있다. 그렇게도 멀리 보였던 것은 아이가 놀다가 잊어버린 한 개의 풍선일 뿐. Above the quiet dock in mid night. Trangled in the tall mast's corded height, Hangs the moon, What seemed so far away Is but a child's balloon, forgotten after play.   인용된 첫 번 째 작품은 쉘리(P.B Shelley)의 것으로 1820년에 씌어진 시이고, 두 번째 것은 흄(T.E Hulme)의 시로 1912년에 나온 파운드의 시집 "재치 있는 즉답"의 권말 부록으로 실린 여섯 편 중 하나이다. 이미지즘의 원조격인 흄이 1908년 을 창설한 후 이 클럽의 회원들은 매주 수요일 소호(Soho)가(街)에서만나 시낭송회를 개최하고 소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는데, 인용된 두번째 시는 바로 이 당시 1908~1909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런 점에서 이 시를 이미지즘시라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시는 어떠한가 ? 두 번째 시의 경우처럼 시사적(詩史的)인 배경을 고려해서 규정한다면 이를 낭만주의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두 시의 유사성에 주목하면 이미지즘과 낭만주의가 일종의 친연관계(親緣關係)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미지즘과 낭만주의는 서로 중요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즘에는 낭만주의에서 이어받은 유산보다는 낭만주의를 극복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실제로 낭만주의가 결(缺)한 고전주의적 기율(紀律)로 향하는 경향은 이미지즘의 특성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용된 이 두 시는 부인할 수 없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전문(全文)을 인용하고 있는 이들 두 시가 매우 짧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시가 짧다는 것이 어떤 류의 시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기는 어렵지만, 소위 이미지즘시들이 다른 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이들 시는 모들 '달'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시의 길이나 소재에 있어서의 유서성만을 가지고 이들이 같은 종류의 시라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시가 모드 '달'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축으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시는 달을 죽어가는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엷은 베일'에 싸였다는 표현으로 보아 이 달은 옅은 구름에 어슴프레 가리우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죽어가는'이라는 표현은 솟아오르는 달 보다는 지는 달에 더 어울리는 표현일 수 있지만, 이 시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달이 뜨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두운 동녘에서 달이 나오는 것을 어두운 침실에서부터 어떤 여인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에 빗대고 있다. 인간의 광기가 달과 연관이 있다고 하는 관념은 '미치고(insane)'라는 표현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 미친 여인이 '비틀거리며 나온다(totters forth)'는 것은 달이 서서히 그러나 시각적으로 불규칙해 보이는 속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첫머리에 있는 '그리고(And)'라는 표현은 글의 시작부분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일텐데, 이 표현 때문에 여기에서는 달이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일련의 어떤 계속되는 과정의 연장으로 보인다. 굳이 얘기하자면 어떤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이윽고 거기에서 일어나 나오듯 달이 지평선(동족의 들, 산 혹은 바다)아래 숨어 있다가 때가 이르자 그곳에서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표현이 달의 움직임을 느리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그리고'라는 말 앞에 숨어있는 것은 솟아오르기 전 달의 상황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의 상황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고, 그 이후에 달이 동녘에서 솟는 모습이 부가적으로 그저 덧붙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쨌든 제3의 상황이 있었다고 해도 이 시 자체로는 그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추측할 수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달을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하면서도 끝내 달을 하나의 사물로 보는 시인의 객관적 시각에 주목하는 일이다. 마지막 행의 '희고 모양새 없는 덩어리(A white and shapeoess mass)'라는 표현에는 감상(感傷)에 젖지 않으려는 시인의 결연한 태도가 나타나 있다. 애절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달의 여인 같은 모습이 결국 차가운 하나의 천체덩어리로 환원되는 순간이다.    인용된 두 번째 시에서는 달이 이미 한참 솟아올라 돛대 꼭대기에 걸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전개되어 있다. 이 시의 배경은 배가 정박해 있는 한밤중의 한적한 항구인데, 이때 어떤 배의 돛대 꼭대기에 매달인 듯한 달이 사실은 낮에 아이가 놀다가 잊어버린 풍선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풍선' 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달은 아마 보름달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실제의 달을 아이가 잦고 놀던 풍선으로 비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돛대 위에 걸린 아이의 풍선을 처음에는 달로 비유했다가 결국 그것은 달이 아니고 풍선이었음을 말하고 있는지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두 번째의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멀리 보였던 것은' 혹은 '풍선일 뿐'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심적인 이미지는 역시 하늘에 걸려있는 달의 모습이다.   인용된 두 시에 대한 분석에서 이들의 구조상의 유사성도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첫 번째 시는 달을 여인에 비유하다가 그것이 결국 달덩어리임을 보여주고, 두 번째 시는 풍선을 달로 보았다가 그것이 결국 아이의 풍선이었다고 말한다. 의 전환이 첫 번째 시의 흐름이라면, 은 두 번째 시의 흐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시들이 모두 유비(analogy)를 시적 방법으로 하여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첫 번째 시는 ' -처럼(like)'이라는 말로써 그 유비의 명확성이 두 번째 시에 비해 더 잘 드러날 뿐이다. 대신 두 번째 시는 그 유비관계가 숨겨져 있는 만큼 하는 발견의 놀라움 같은 것을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미지즘시를 변별해낼 것인가? 하나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짜여진 시를 모두 이미지즘시라 할 것인가 ? 적어도 영시사에서는 그런 규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축으로 씌어진 시는 엄청나게 많다. 사실상 모든 시작(詩作)은 새로운 이미지를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쉐익스피어의 많은 극작품에 나타난 기발하고 다양한 이미지,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기상(奇想 conceit)같은 것들은 모두 이를 말해준다. 말하자면 '이미지'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비평가들이 작품을 분석하고 그 중요성을 설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인과 작가들은 이를 문학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지즘 혹은 이미지즘시라는 것을 따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20세기 초의 서구의 이미지스트들이 주장하던 이미지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어떤 점에서 기존의 관념과 차이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지스트들의 주장을 요약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미지스트라는 시운동 집단이 사실상 그 범위가 확실히 정해진 시인들의 단일한 모임은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지즘에 대한 규정을 어렵게 만드는 세 번째 요인으로서 이미지즘의 변천사와 관계가 있다. 이미지즘이 단일한 줄기를 중심으로 발전 혹은 변모해간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규정도 단순하게 내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즘의 본류를 어떤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평자 들 간의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다. 그중 하나는 이미지즘이 흄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나고 알려지다가 미국시인인 로웰 여사(Amy Lowell)에게로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이미지즘이 파운드에 의해 주창되고 전파되다가 로웰로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이다. 흄을 중심으로 이미지즘을 설명하는 전자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파운드가 이미지즘의 발전에 약간의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그 역할이 미미했다고 보고, 파운드 보다는 오히려 1908~1909년 사이 흄과 같이 활동했던 플린트(F.S.Flint)나 스토러(Edward Storer)를 중요한 인물로 꼽는다. 반면 후자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파운드와 함께 소위 을 마련한 힐다 두리틀(Hilda Doolittle)과 올딩턴(Richard Aldington)을 중시하고, 흄의 역할은 단지 하나의 예고편이었다는 생각을 편다.   흄과 파운드의 시론이 가진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미지즘의 중심인물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 이미지즘의 전체적인 성격규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1908~1909년 무렵 런던 시단의 중심인물은 흄이었고, 흄의 시론이 1912년 이후 파운드가 이미지스트 운동을 전개하는데 적지 아니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평자에 따라서는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서 포드(Ford Madox Ford)를 거론하는데 포드의 중요성은 파운드 자신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미지즘에 강한 영향을 미친 불란서 사실주의 소설가들의 태도도 포드를 통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는 이들 두 사람의 영향 말고도, 파운드 자신의 프로방스 문학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운드는 이들의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중세 로망스 문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름대로 자신의 문학관을 어느 정도 정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따라서 이제 흄과 포드의 시이론을 살피고, 파운드가 자신의 연구와 이들의 영향하에서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즘 이론을 정립했는가. 또 그 이론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어떻게 변모해 갔는가를 살피기로 하겠다.   3. T.E Hulme과 F.M Ford의 영향   이미지즘이 하나의 시운동으로 정립되는 배경은 단순하지는 않지만, 이미지스트들이 지향하고 있었던 목표는 어떤 점에서 통일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고전적인 예술을 지향하고 있었고, 따라서 언어에 있어서의 정확성과 견고성 등을 그 목표로 하고 있었다.  20 세기 초 런던에서 흄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문학회는 1908~1909년 사이에 있었던 과 그것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1909년의 이 있었다. 처음에 플린트는 "새로운 시대"에서 의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공격을 가했지만 흄과의 이후 가까운 사이가 되어 1909년3월에 스토러, 조셉 캠벨(Joseph Cambell),플로렌스 파(Florence FArr)등과 함께 이 을 만들게 된다. 파운드가 이 모임에 소개된 것은 같은 해 4월이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파운드는 이들과의 문학적 교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훗날 파운드가 이미지즘 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이들에게 진 빚을 부인 하는 데서도 엿보인다. 1912 년 이후 파운드가 펼친 이미지즘 운동과 1908~1909년의 흄 중심의 문학운동이 어떤 연관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미지즘을 애기하는데 흄에 관한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파운드의 이미지즘 시론의 중요한 부분은 이미 흄 등이 주장한 것과 다를 바 없고, 또 파운드가 초기에 이들과 일정한 교류를 한 것이 사실이므로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이들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파운드가 흄 등으로부터 이어받은(혹은 이들과 공감한) 문학관은 크게 보아 고전주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흄이 처음 가지고 있었던 태도는 오히려 낭만주의적인 것이었다. 초기의 흄이 낭만주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주로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영향이 크다. 그는 베르그송의 견해를 그대로 이어 받아 인간의 직관을 중시하는 대신 지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함으로써 반지성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런 생각은 그의 문학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그는 고전주의적이기 보다는 다분히 낭만주의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그래서 그는 현대시가 그 형식에 있어서 고전주의적 엄격성과 절제를 갖는 대신 자유시형을 가져야 하며, 내용도 시인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루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흄의 시이론의 핵심 중의 하나는 이미지에 관한 것인데, 그는 현대시가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고전주의적인 특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미지가 시각ㄱ적이고 구체적이므로 고전주의에서 흔히 그리는 거대한 사건이나 영웅적 행위 대신 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런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또 자유시를 옹호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인데, 그에 의하면 자유시는 개인의 '어떤 모호한 기분(some vague mood)'을 전달해 줄 수 잇다는 것이다.  초기의 흄은 이렇듯 베르그송의 영향 하에 자유시와 이미지를 강조하며 다분히 낭만주의적인 문학관을 펼쳤지만, 1911년 무렵부터 라세르(Lasserre)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초기와는 달리 오히려 반 낭만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라세르는 19세게 말의 데까당 운동이 지닌 감상적 낭만주의를 배격하고 대신 고전주의의 질서와 절제의 정신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흄이 자신의 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바로 이러한 생각의 반영이다. 흄에 의하면 인간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나 억압적 질서에 의해 타락하게 되므로 이런 질서를 깨드림으로써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낭만주의라면, 고전주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정적이고 제한된 동물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전통과 조직에 의해 훈련되어야 한다고 보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흄은 서구에서 지난 백년간 낭만주의가 계속되었으나 이제 '고전주의의 부흥'을 맞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따라서 '건조하고 견고하며 고전적인 시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낭만주의자들은 고전이 주는 건조한 견고성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축축하지(damp)'않는 시를 시로 생각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확한 묘사(accurate description)'가 시의 올바른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있어서의 흄의 영향력을 부인하는 비평가들의 논리는 어떤 점에서 일리가 있으나 그들이 근거로 삼는 것은 주로 1908~1909년의 흄의 활동이나 그 당시 흄이 가지고 있었던 시이론과 파운드의 이미지즘과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초기와는 달리 1911년 이후 고전주의자로서의 흄이 주장하는 시의 건조함과 견고성, 그리고 정확성은 그대로 파운드 이미지즘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흄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못지않게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 강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포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포드의 인상주의적 문학관은 파운드의 이미지즘이 새로운 변신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다리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리의 역할을 했다는 말은 포드가 파운드 이미지즘 발전의 기초가 된 동시에 극복 대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미지즘에 있어서 흄과 포드이 상대적 중요성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적어도 파운드는 흄의 역할을 경시하는 대신 포드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파운드에 의하면 포드는 당시 영국 최고의 비평가였다. 파운드는 제1차 대전 직전 몇해 동안 런던에서 글을 쓰는 문제에 관한한 그 빛이 흄이 아닌 포드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파운드가 이 당시 포드를 주목한 것은 바로 포드가 불란서 사실주의 작가들로부터 정확한 산문정신의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심지어 운문에서 조차도-명료성과 정확성, 산문 전통을 주장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 효과적인 글쓰기에 대해 주장하기 때문에, 그를 중요하고 혁명적인 인물이라고 본다 포드나 그를 이어 받은 파운드에게 있어서 '산문' 혹은 '산문정신'이란 '시' 또는 '운문정신'이라는 말과 대립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모든 종류의 글에서의 간결함과 정확성을 지향하는 어떤 글쓰기 혹은 글쓰기의 자세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포드는 '산문'을 '하나의 정신적 습성'이라고 말한다. 포드는 또한 1912년 이전에 자신이 접한 유일한 시는 산문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시인들에게 고집스럽게 '산문을 포착'하도록 권한다.   파운드에 의하면 포드는 '영국 인상주의 작가들의 목자'로서 제1차 대전 이전의 인상주의는 거의 그를 통해서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포드의 인상주의는 이처럼 산문정신을 중시함으로써 결국 사실주의적, 객관주의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포드가 예술가의 주관적인 생각보다 세계의 객관적 사실의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당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단순한 문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포괄하는 보다 광범위한 일반 하회 문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포드의 이런 관심은 문학적인 문제로 넘어올 때 결국 객관적인 사회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를 지향하게 마련이었다. 그는 예술가의 목표가 '자기 시대의 관점에서 자기 시대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파운드 등의 이미지스트들을 '삶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아무런 논평 없이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자들로 지칭한다.   인상주의를 이처럼 사실주의로 해석하고 간결하고 정확한 산문 정신을 중시한 포드의 문학적 태도는 그의 영향을 받은 파운드의 시이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파운드는 포드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술에 있어서의 '객관성(objectivity)'을 강조하며 그 중요성을 자신에게 주입시켜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미지즘 초기의 파운드가 시에 있어서의 객관성, 사실성, 정확성 등을 중시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포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파운드의 이미지즘 형성에는 이상과 같이 흄과 포드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후기의 흄이 가진 고전주의적 태도와 포드의 인상주의가 갖고 있는 사실주의적인 태도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파운드의 이미지즘의 기본적 목표가 객관적 사실의 정확한 기록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이미지즘은 어떤 대상을 시인의 주관에 의해 변형하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하기 보다는 그 대상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Pound의 Imagism 이론   1) 초기의 산문집   파운드의 이미지즘 운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흄과 포드이 예술이론 뿐만이 아니다. 그의 이미지즘 시이론과 실제 시작(詩作)은 이들의 예술이론 외에 프로방스시와 라틴, 희랍의 서정시, 그리고 나중에 중국 한시와 일본시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고 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특히 파운드의 프로방스와 라틴시 연구는 그의 초기 시작과 이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이한 점은 이때 그의 시와 이론이 일종의 괴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파운드가 런던에 도착한 1908년에 낸 처녀시집 "꺼진 촛불(A Lume Spento)"에는 장식적이고 수사적인 형용사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반해, 그이 시이론은 매우 현대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그의 초기 시로써 이미지즘을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오히려 장식적이고 수사적인 형용사의 사용은 그의 시이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망스 문학에 대한 연구는 한편으로 그의 시에 장식적인 요소를 갖게 했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연구는 사실상 이미지즘을 태동하게 한 일종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년 간에 걸친 파운드의 연구 결과는 1910년 "로망스의 정신(The Spirit Romance)"이라는 책으로 나타나는데, 이 속에는 이미지즘의 핵심적 내용들이 이미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는 단테(Dante)와 카발칸티(Cavalcanti), 카툴루스(Catullus)등의 중세와 라틴계 시인들의 연구를 통해 시를 쓸 때의 표현의 '정확성(precision)' , '생생함(vividness)' , '명료성(clarity)'등을 주장하고 있고,. 이것은 그대로 이미지즘의 주장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파운드는 '정확성이 예술가의 능력과 명예, 진정함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며 단테의 "신곡"이 불후의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표현의 '적확성' 혹은 '정확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운드가 이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나는 오리리스의 사지를 거둔다"와 같은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단테가 가지고 있었던 예술가로서의 미덕인 '관찰과 언급의 정확성'을 강조하고, 예술가들은 그저 '제시(present)'할 뿐 '논평(comment)'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파운드는 또한 "시와 드라마"의 1912년2월호 "서문"에서 표현에 있어서의 정확성을 강조하며, 19세기 시에 대해 평가하고 20세기 시에 대해 전망을 한다. 그에 따르면 19세기는 '다소 흐릿하고(a rather blurry)' '다소 감상적이며(a rather sentimentalistic)'' 매너리즘에 빠진 시대(mannerism sort of a preiod)'인데, 그래서 그는 이제 앞으로의 20세기 시가 '더 견고하며(harder)' '더 건전할(saner)'것이라고 말하며 '엄격하며, 직접적이고, 감정으로 미끄러들지 않을 것(austere, direct, free from emotional slither)'을 기대한다.    이상의 사실들은 파운드가 이미지스트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몇 년 전부터 다른 시인, 예술가들과의 교류 이전에 이미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 등을 토대로 이미지즘의 중요한 내용을 어느 정도 확립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파운드가 자신의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다른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미지즘을 하나의 시운동으로 확립하고, 이런 운동을 토대로 현대의 많은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2) Imagism의 3원칙 재고   파운드가 자신의 로망스 문학 연구들을 토대로 흄과 포드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미지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봄의 일이다. 파운드는 이전부터 가까이 지내던 두리틀, 올딩턴 등과 함께 소위 좋은 글의 '3원칙'을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이 시운동 집단을 '이미지스트(Les Imagistes)'라고 지칭함으로써 '이미지스트' 혹은 '이미지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공식화가게 된다. 이들이 의견의 일치를 본 이 '3원칙'은 1913년3월 "시"지에 "이미지즘"이라는 표제하에 실리게 된다.   a.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사물'을 직접 취급 할 것. b. 표현에 도움이 안 되는 말은 절대 사용하지 말 것. c. 리듬에 관해서는 ; 메트로놈적 연속이 아니라 악구(樂句)의 연속 원리에 따라서 쓸 것.    이 3원칙은 이미지스트들이 펼친 주장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표현에 있어서의 간결성, 정확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제1원칙이 말하는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취급이나 제2원칙이 규정하는 불필요한 말의 배제 등은 바로 이를 말한다. 다만 제3원칙은 이미지스트가 중시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기계적인 리듬 대신 음악적인 리듬, 즉 자유시형(free verse)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표현의 정확성과 자유시를 주장하고 있는 이 3원칙 속에는 사실상 이미지즘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 모순적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모순은 이미지즘의 변형 혹은 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먼저 제1원칙은 시인들에게 '사물'을 직적 취급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인이 다룰 대상을 '사물'이라는 말로 표현할 때 우리는 이미지스트들이 얼마나 단순한 언어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그들은 시를 시인 의식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의 표현으로서 생각하고 있다. 시인이 어떤 사물을 표현한다고 할 때 그것은 사물 자체보다는 그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인이 기본적으로 다루는 대상을 '사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그 연원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술에 있어서의 모방론(mimesis heory)의 한 형태이다.   20 세기의 새로운 현대시 이론을 전개하는 이미지스트들의 생각이 19세기 이전 예술관의 답습임을 볼 때 기이한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이 이런 고전적인 예술관을 전개한 배경이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방론의 핵심은 사물의 정확한 모사(模寫)이다. 사물의 모사가 정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것을 표현하는 시인의 언어가 정확하게 그 사물에 들어맞을 때 가능하다. 이것은 불란서 사실주의 작가들의 산문정신에 다름 아니다. 그 산문 정신의 요체(要諦)중의 하나는 사물과 언어를 정확하게 일치시키는 일사일언이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의 영시들은 말하자면 이미지스트들이 보기에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고, 시인이 표현하려는 사물과 언어의 정확한 1대1 대응은 이에 대한 일종의 처방전이었다는 말이다. 파운드는 '하나의 용어(a term)'는 오직 '하나의 사물(one particular thing)'을 의미해야 하며, 아무리 차이가 사소하다고 해도 서로 다른 것들을 한데 뭉뚱거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이 사물에 더 이상 밀착되지 않을 때는(when words cease to cling to things)'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그는 말하기도 한다.   정확한 언어에 대한 관심은 제2원칙에도 나타나 있다. 표현에 도움이 안 되는 말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주문은, 불필요한 말을 삼가해서 말을 경제적으로 의미를 최대한 충전시켜 쓰라는 뜻이다. '위대한 문학은 의미를 가능한 최대로 충전시킨 언어에 불과하다'고 파운드가 말하는 것도 같은 문맥으로 풍이 할 후 있다. 말을 충전하는 기술은 바로 불란서 사실주의 작가들에게서 배워온 것으로, 파운드는 스땅달(Stendhal)이나 플로베르(Flaubert)를 알지 않고서는 정말 좋은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지즘의 원칙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 혹은 모순은 제2원칙의 '표현(presentation)'이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이 말은 시인이 대상을 변형하거나 논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진술하고 제시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제1원칙에 나오는 '사물(thing)'이라는 말과 맞지 않는다. 사물이 표현 대상이라고 할 때 시속에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이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representation)된 것이다. 말하자면 시속에서 '사물'은 '재현'될 수 있을 뿐 그 자체가 그대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물의 정확한 표현은 오직 그 사물 자체이다. 파운드 자신의 다른 표현을 빌자면, '매는 매(ahawk is a hawk)'다. 매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은 매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재현' 대신 '표현'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이들이 언어를 통해 대상이 간접화되는 것을 피하고 그 대상에 가까이 가고자, 달리 말하면 그 대상을 그대로 시에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열정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 해도 표현의 정확성을 지향하는 이들의 태도가 이 원칙에 배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시인이 표현하는 것이 사물인가 언어인가. 대상인가 혹은 그 대상에 대한 시인의 의식인가 하는 문제로 확대된다. 이것은 제1원칙에 나오는 '주관적이든(subjective)' 혹은 '객관적이든(objective)'이라는 말에서도 엿보이는 문제이다. '주관적'이라는 말은 시인의 내면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 또 '객관적'이라는 말은 시인의 외부에 있는 사물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단순한 해석이다. 시인의 내면 정신을 표현했다고 할 때, 표현된 것은 그 정신의 구조 자체 보다는 사실상 그 정신이 활동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낸 제3의 그 무엇이다. 또한 시인의 외부에 있는 사물을 묘사했다고 할 때. 그 표현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그것은 사물 자체는 아니다. 시인의 의식 속에 받아들여지고 그 의식 작용에 따라 재구성되고 변형된 그 무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 경우 기본적으로 자신의 외부에 있는 사물이다. 사물이 인간에게 이해되는 것이 인간의 인식작용을 떠나서는 불가능하고, 그래서 모든 것을 인간의 인식 문제로 돌린다고 해도, 언제나 인식은 주관과는 별개의 객관적 존재를 상정하게 마련이다.   3) 이미지즘의 변화 혹은 발전   표현의 정확성과 경제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즘의 3원칙 속에 숨어있는 이 이중성은 이미지즘에 대한 규정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면서도 이미지즘의 급격한 변화 혹은 발전을 설명해 줄 열쇠로 보인다. 시인이 표현하는 것이 사물인가 아니면 그것에 대한 시인의 인식인가 하는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존재와 인식이라는 철학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도, 이 글이 논의하는 주제도 아니다. 결국 이것은 시인들의 개성과 문학관의 차이에 따라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파운드가 이미지즘을 형성하도록 크게 영향을 미쳤던 두 사람, 흄과 포드는 기본적으로 시인의 인식 보다 사물을 중시하고, 그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고 경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이런 태도를 견지하게 된 것은 물론, 감상적이고 부정확한 언어들로 가득한 당대 영시에 대한 진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파운드도 초기에는 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시인으로서의 주관적 인식 보다는 객관적 사물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정확하게 그려내려 한다. 이것은 이미지즘의 출발점이 언제나 사물이었음을 말해 주며, 이런 점에서 데이비(Davie)는 파운드가 기본적으로 '사실주의자(realist)였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미지즘의 3원칙을 발표할 때 까지의 파운드에게는 위의 칭호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원칙 속에는 파운드가 의식했건, 의식치 않았건 변화의 조짐이 숨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미지즘 3원칙은 1912년 경까지 흄, 스토러, 폴린트, 토드, 파운드 등의 문학적 논의를 몇 개의 원칙으로 정리한 것이면서도, 이미 이 원칙은 새로운 변화를 예견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3원칙은 1913~1914년을 전후한 예술가들의 관심 변화, 특히 파운드의 시적 태도의 새로운 변화에로 넘어가는 일종의 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운드는 이 원칙을 발표하던 당시는 때로는 인간의 객관적 사물세계에, 또 때로는 주관적 의식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와 이라는 두 축을 오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점차 사물 보다는 인간의 의식에, 존재 보다는 인식의 세계로 관심을 돌리고, 결국 사물, 존재 세계를 떠나 인간의 의식 세계, 의식을 구성하는 언어의 세계에 몰두하게 된다.이것은 바로 파운드가 이미지즘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당시의 새로운 예술 운동이었던 보티시즘으로 향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파운드에게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보티시즘은 이후 그의 모든 시와 산문을 규정하는 하나의 원리로 작용한다. 그의 시 "케세이(cathay) 1915)","휴우 셀윈 모벌리(Hugh Selwyn Mauberley), 1920)" 그리고 "시편들(The Cantos), 1930-1969"은 파운드가 보티시즘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현재의 모습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지즘 3원칙에 내재한 이중성 혹은 모순은 결국 후기 파운드의 변모의 단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운드가 사물의 세계보다는 인식의 세계에 관심을 돌리고 그래서 마침내 이미지즘을 떠나게 되는 데는 파운드 자신의 방향 변화 뿐만 당시 문단의 사정 변화 또한 한 몫을 하게 된다. 이 변화는 1913년 후반기에 이르러 이미지스트 그룹에 몇몇 시인이 새로 참가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로렌스(D.H Lawrence)와 윌리암스(W.C.Williams),로웰(Amy Lowell)등으로, 기존에 이 그룹에 속해 있던 시인들과 함께 그들은 최초의 이미지즈트 엔쏘로지 출판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책의 출판과정에서 일어난 로웰과 파운드의 불화로 끝내 파운드는 이 그룹을 떠나고 만다.   파운드가 이미지스트 그룹을 떠나게 된 것이 그러나 이런 불화 때문만은 아니다. 파운드가 보기에 로웰을 새로운 주축으로 한 이 그룹은 과거에 자신이 주장했던 이미지즘의 핵심을 잃어버린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지즘'이라는 말은 '어떤 명료성과 강렬성(a cettain clarity and intensity)'과 연관 되는 것인데, 새로운 그룹은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자유시'에만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파운드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들어 1915년에 출판한 "몇몇 이미지스트 시인들"이라는 엔쏠로지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책의 서문에는 이 그룹의 여섯 위원들이 합의를 한 6원칙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1913년 시"지에 파운드 등이 실은 이미지스트 3원칙과 거의 같은 내용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이들이 제시한 원칙들 중 첫째의 '장식적이지 않은 정확한 말' , 다섯째의 '흐릿하거나 불명료하지 않은, 견고하고 명료한 시' , 그리고 여섯째의 '집중' 등에 대한 주문은 이미지즘 3원칙의 제1,2원칙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둘째의 '새로운 정조 표현으로서의 새로운 리듬'과 '자유시'에 대한 언급은 이미지즘의 제3원칙과 같은 내용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적어도 원칙에 있어서 만은 초기 이미지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도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파운드의 비난대로 자유시형을 추구하는 집단에 머물고 만다. 1915년에 나온 이들의 엔쏠로지가 성공을 거둔 후 많은 모방자들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이미지즘의 본질이라 할 언어의 정확성과 명료성, 강렬성 등의 정신은 잃어버린 채 자유시에만 몰두한다. 결국 로웰 중심의 이 후기 이미지즘은 한 때 인기가 대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량 있는 시인들의 부족으로 곧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래서 1917년에 나온 세 번째 엔쏠로지의 판매가 부진하자 이 여섯 시인들도 이제는 이 운동을 그만 둘 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파운드 이후 로웰로 명맥이 이어지던 이미지즘은 끝이 나게 된다.   파운드가 이미 이 일이 있기 전인 1914년경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선 것은 위에 말한 대로 로웰 중심의 이미지즘의 한계성, 그리고 로웰과의 불화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1913년 중반부터 다른 곳에 관심을 쏟게 되는 그는, 고디에 브르제스카(Gaudier-Brzeska)를 통해서 조형예술을 알게 되고 또 페놀로사(Ernest Fenollosa)의 원고 정리를 하며 한자(漢字)의 세계를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또한 파운드가 변모를 하는 데는 당시의 많은 예술가들의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면 1913년 12월 런던에서 열렸던 엡슈타인(Epstein)의 개인전과 관련된 논쟁에서, 당시 독일에서 공부를 하다가 돌아온 흄은 기하학적, 추상적 예술을 옹호하고 나선다. 이와 함께 칸딘스키(Kandinsky)의 영향도 적지 않았는데, 1912년에 나온 그의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는 파운드에게 추상적 예술의 세계를 다시 일깨워 준다. 이런 모든 경향은 결국 파운드로 하여금 이미지즘을 떠나 보티시즘의 세계로 향하게 만든다.   1914 년 이후 파운드의 작품을 지배하게 되는 보티시즘은 기본적으로 객체적 사물의 세계보다는 시인의 창조적 인식을 중시한다. 그래서 파운드는 사물의 단순한 수용보다는 언어를 통한 예술가의 새로운 세계 창조에 관심을 기울인다. 파운드의 이런 변화에는 앞서 살핀 대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운드가 이미지즘 운동의 정립 단계에서 발표한 이미지스트 3원칙에도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숨어 있었고. 나중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경향의 발전적 형태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미지즘의 단계별 변화 혹은 발전을 가져온 여러 다른 요소들 못지않게, 이미지즘 이론 자체가 그 내부에서 출발점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러한 이중성 혹은 모순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맺는 말    20세기 초 파운드가 주도했던 이미지즘 운동은 그 강력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운동을 통해 창작된 시는 의외로 그 양에 있어서 빈약하다. 그리고 그나마 발표된 시들도 대부분 짧은 자유시에 불과하다. 스피어스(Spears)는 표현의 정확성과 경제성을 규정하는 이미지즘의 제1,2원칙은 후기 빅토리아조와의 결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진정으로 규범적인(truly descriptive)'것은 제3원칙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제1,2원칙의 '정확성'에 대한 주문은 실제에 있어서는 매우 애매한 요구이고, 따라서 시인들이 시를 쓸 때 따를 수 있는 실질적인 것은 제3원칙이라는 것이다. 제3원칙이 자유시를 규정하는 것이고 보면 이미지즘 시가 결국 자유시의 일종으로 결말이 난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즘 시가 가진 한계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소 이분법적이기는 하지만 시를 주제와 기법의 두 부분으로 나눈다고 할 때, 이미지즘이 관심을 가진 것은 말하자면 기법적인 측면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미지즘은 따라서 시의 내용이나 주제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정확성과 견고성을 일단 확보하면 시는 그 주제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문제를 삼기 어려웠다. 그래서 데이쉬즈(Daiches)에 의하면 이미지즘 시들은 과도한 정확성과 자유시형 등을 주장할 뿐 인간의 이상이나 신념과는 상관이 없는 일종의 '표면예술(a surface art)'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 시들이 정확한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강조할 뿐 전체적인 유기적 통일성을 찾기 어려우며, 따라서 그 핵심에는 '공허(emptiness)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미지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러나 이미지즘이 현대 영시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지스트들이 주제나 내용보다 기법과 형식에 치우친 관심을 보인 것은 그들 자신의 편향된 관심 때문이라기보다 그 당시 영시가 가진 문제점이 주로 그런 기법이나 형식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언어의 정확성에 대한 그들의 주문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당대의 시가 가진 문제점이 느슨하고 감상적인 언어의 사용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바로 언어이므로 언어의 정확성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바로 훌륭한 시의 기본 요건에 대한 요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미지즘 운동을 통하여 서구의 현대시는 언어의 정확성과 명료성 등에 대한 각성을 함으로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영시가 보여준 부정적인 모습들을 극복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Vorticism    소용돌이주의(Vorticism)는 파운드가 런던에 머물고 있을 당시(1908-1920) 영국 전위예술가들의 예술적 취향이나 태도, 또는 그들의 예술을 시에 적용시켜 보자는 생각에서 창안해 낸 시작법의 일종이다. 소용돌이주의는 소용돌이(vortex)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그룹의 이념은 미래파의 문학사회 이론 및 입체파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에즈라 파운드는 "소용돌이는 에너지의 최고점이며, 메카닉 가운데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소용돌이를 세계관의 상징으로 삼는 역동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영국의 정적인 예술 전통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 운동은 파운드가 이미지즘이 지나치게 정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의 소용돌이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을 알려 주는 유일한 전위예술의 한 분야였다. 파운드는 "소용돌이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어느 한 진영에 모여 있는 표현주의, 입체주의, 이미지즘이고, 다른 진영에서는 미래주의이다. . . . 그것이 하나의 예술운동이 되는 한, 그것은 일종의 가속화된 인상주의"(심인보 296에서 재인용)라고 말한다. "소용돌이" 또는 "회오리 바람" 등으로 정의되는 "Vortex"라는 단어는 영원히 지속되는 자아재생의 힘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끓어 오르는 힘(동적 상황)과 조용한 형태의 무력감(정지상태)을 결합시킨 용어로 해석되어 왔다. 이미지즘과 소용돌이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미지즘이 정적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소용돌이주의는 이미지즘의 한계를 뛰어넘어 동적 이미지를 시로써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파운드의 시 「장기시합과 놀이에서의 독단적인 말」("Dogmatic Statement in the Game and Play of Chess")라는 시에서는 동적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파운드의 시도가 잘 보여진다.  이 시는 소용돌이파의 그림처럼 선, 색채, 모형을 기본 바탕으로 한 추상시로서, 장기판의 딱딱한 규칙에 따른 난폭한 힘의 소용돌이를 나타낸다. 장기 두는 사람이 대문자 L 모양으로 채색된 장기판을 때린다.    손 뻗쳐 여러 각도에서 공격하고,  한 가지 색으로 버틴다.  장기판은 빛으로 살아 있다. . . .  한 판이 끝나고 장기에 진 사람은 판 모양을 헐어 버리고 다시 만들며 이기는 순간까지 계속 장기를 두려고 한다.  빙글빙글 돈다, 가운데 모이고, 외퉁수 장군, 소용돌이 속에서 왕은 쓰러진다.  충돌, 눈에 띄는 줄무늬들, 강한 색채의 진선들,  안에서 작용하는 차단된 빛, 도망, 시합의 재개.    이 시는 빛과 공간의 틈새로 만들어진 장기판의 선이나 색깔에 도취되어 장기를 두는 추상적인 모습을 그린 시이다. 즉, 기세가 불리하여 쫓겨 도망갔다가 돌아서서, 다시 상대방의 말(馬)을 잡아먹으려는 상황을 그림처럼 재미있게 표현한 이 시는 소용돌이주의 시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소용돌이주의 시인들은 위의 시에서 본 것처럼 동적 심상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특별한 활자체 모양을 도입하였다. 소용돌이주의자들은 이전 시대의 예술작품의 특징인 온순, 화해, 자연, 부드러움, 19세기, 교육, 민주주의, 곡선, 부드러운 선, 혼합된 색채 등과 같은 낭만주의자들의 예술적 장식물을 공격하였다. 그 대신 그들에게 거칠음, 양극단, 난폭, 현재, 기구, 딱딱함, 날카로움 등으로 이루어진 금속성의 물체는 유동적이며 가변성이 있어 엉키거나 똑같은 모양만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호의 대상이 되었다. 소용돌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시상을 강화하기 위하여 특별히 고안한 활자체로 모양을 다음고, 활자체 모양의 배열을 통해 시각적 효과를 고조시키려고 하였다. 소용돌이파는 활자체 모양을 다루는 솜씨가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일종의 자유산문형의 넓은 공간을 큼직하고 묵직한 글자로 조심스럽게 메꾸고 있다. 사실 이들은 크고 넓든 텅 빈 흰 종이 위에 굵직굵직한 검은 선이나 글자로 얽힌 추상화 같은 시를 짓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시에다 그림과 같은 글자체를 보충하여 시각적 효과를 노린 시를 자신들의 예술로 고정시키려 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그들의 글에서는 글 자체가 만들어 내는 그림들이 날카로운 기하학적 도형을 이룬다    이러한 사실은 근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시각적 경험의 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그 이전의 구조물들이 목재나 석재로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철골 구조물이 생겨났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1889년에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은 철탑인 에펠탑(Eiffel Tower)는 기존의 석목재 구조물과 구별되는 철골 구조물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것이다. 이 탑은 높이가 984피트(약 300 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사물 혹은 장면의 정확하고 객관적 표현을 목표로 했던 소용돌이주의자들이 그들의 활자 모양을 고안하고, 글 자체로서 만들어내는 그림들이 날카로운 기하학적 도형을 이룬다는 점은 시각적 경험의 변화에 따른 필수불가결한 산물일 것이다.    또한 소용돌이주의는 사진술의 발달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을 것인데, 고정되어 있는 사진(still pictures)은 1890년대에 움직이는 사진(moving pictures)으로 발전하였다. 촬영되고 영사되는 활동사진을 직접적으로 이끌어 낸 1887년부터 계속된 다양한 혁신들의 상대적 가치는 불분명하다(엘리스 32). 하지만 1895년에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에서 선보인 최초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관객들이 화면상의 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곧장 자신들에게로 와서 충돌할 줄 알았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던 일례를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시각적 경험의 재생이 보다 구체화되고 동적으로 표현되는 시점에서 소용돌이주의자들의 동적 심상의 추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2. Objectivism    객관주의(objectivism)란 객관적인 예술 혹은 문학의 이론 또는 실천이다. 이 용어는 1930년대에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에 의해서 사용된 것으로 시를 기계적인 형태로 고려하고 분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려는 운동을 기술하기 위한 것이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이 용어는 시의 구조상의 외견을 검토하고 어떻게 그 시가 구성되었는지를 고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운동에 참여한 시인들은 Louis Zukofsky, George Oppen, 그리고 Charles Reznikoff이다. 이 유파는 실용주의와 물질주의를 중요시 여겼는데, 다시 말하면 그들은 미국인들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고전주의적이고 유럽 식의 영향이 시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느꼈다. 그는 현대 미국사람들이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언어를 시어로 삼아 전통적인 시형을 무시한 시를 썼다. 그래서 브래들리(Sculley Braddley) 등은 그를 미국문학의 "전위파"(avant-guard)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윌리엄스와 관련해서만 살펴볼 것인데, 서론에서 기술했듯이 윌리엄스에게서 이미지즘과의 연관성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실제로 파운드와 시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파운드는 1908년 10월 21일자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에게 보낸 서한에서 흄이 주장하는 "절대적으로 정확한 표현 및 군말의 폐지(absolutely accurate presentation and no verbiage)"의 내용과 비슷한 "시작법의 궁극적인 달성(ultimate attainments of poesy)"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1. 사물을 내가 그것을 보듯이 그려내라.  2. 미.  3. 교훈적 경향에서의 탈피.  4. 만약 당신이 적어도 더 좋게 혹은 더욱 간단하게 다른 소수의 사람을 반복한다면 훌륭한 일이다. 완전한 독창성이란 불가능하다.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첫 번째 항목은 특히 이미지즘과 관련을 맺을 수 있는 항목이다. 윌리엄스는 아마도 이 항목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시에서 어떤 교훈이나 사상의 직접적 표현을 배제하였으며, 어떤 전경을 표현할 때는 마치 그림을 그려내듯이 하였다. 아래에 인용한 윌리엄스의 「빨간 손수레」("The Red Wheelbarrow")에서 이러한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이  빠알간 손수레에  의존해 있다  빗물에 씻긴  손수레  그 옆엔 하이얀  병아리떼.    비록 전에 살펴본 파운드의 시에서처럼 각종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한 가지 장면을 표현해 내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지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라"는 파운드의 충고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은 오히려 이미지즘보다도 더욱 깊게 사진 예술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여겨진다. 육안에 의한 상상 의식으로 표상된 현실상과, 상상 의식과는 관계없이 물리적 정확성으로 재생하는 영상 사이의 상극성으로 사진은 스스로 표현의 가능성을 깊게 하는 것이다.    회화는 보는 이를 명상으로 유도하여 연상 작용에 몰두케 한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한 화면을 눈으로 포착했는가 싶으면 이미 화면은 바뀌어져 가고 있어, 정착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 . . 화면을 보는 사람의 연상의 흐름은 화면의 변화에 의해 즉각 중단되는 것이다. 여기에 영화의 쇼크 작용이 있는 것으로, 이것은 고도의 신경 활동으로 포착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회화와 유사하다. 그러면서도 회화처럼 명상으로 유도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회화가 미크로코스모스적(Mikro-kosmos)미시적 공간인데 대하여 . . . 따라서 완결된 세계인데 대하여 . . . 사진은 미완의 부분적 공간이며, 명상이라는 작품과 자기와의 독자적이며 폐쇄적인 세계를 만들려는 지향보다도, 작품에 대해서 체험적이며 미지의 공간에 자기를 해방시키려는 지향이 본질 속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회화 작품은 작자의 모든 사고와 상상과 구체화의 완결이고, 또 집약이며 결과이다. 그러므로 보는 이는 그 결과로서의 화면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 작품은 그것이 작자가 사건의 곁에서 목격했다는 입증인 한, 작품을 통하여 작자의 체험을 우리는 추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상이 구상적이라는 이유로서만이 아니라, 영상이 작자의 체험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진을 보는 법은 명상적이기보다는 체험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글은 어쩌면 윌리엄스의 시들을 해석하는데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윌리엄스는 우리는 물질 세계로부터 사고를 받고 형성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라이트 형제는 처음에 새를 보지 않았다면 결코 인간의 비행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새의 날개가 그들에게 비행기에 대한 사고를 제공했던 것이다. 윌리엄스가 말했듯이 "물질 속이 아니고서는 사고가 있을 수 없는 것(No ideas but in Things)"이다. 로젠탈은 "모든 사물은 우리가 색깔, 모양, 상호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영역은 그것, 의식의 자유, 즉 우리가 한계를 초월하여 인간으로서 서로간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에 의존한다"고 윌리엄스의 객관적 사고영역을 표현한다(심인보 248-9 참고). 즉 윌리엄스의 시는 독자들에게 오로지 이미지만을 보여 주고, 그 이미지를 보면서 독자들이 나름의 사고를 갖기를 요구한다.   출처,.dungdan.com,최재규님  
39    좋은 시에 대하여 / 정민 댓글:  조회:1414  추천:0  2019-03-07
좋은 시에 대하여 / 정민   '좋은 시란 운문으로서의 운율적 요소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인식 내용을 보여주는 작품 일 것이다'   1.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는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2.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즉 시인은 이미지(형상)를 통해서 말한다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3. 진짜시와 가짜시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겉꾸밈이 아니라 참된 마음이 깃든 시를 써야한다   4.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시에서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5. 사물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6.사물이 가르쳐 주는 것     사물 위에 마음 얹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는 우리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시인은 사물을 관찰하며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7. 새롭게 바라보기     좋은 시는 남들이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쓰인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날 그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 대화를 할 수 있게되면, 사물들은 마음 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시인에게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시인에게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8.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이런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든 자신이 몰두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 있다   9.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다 드러난다 시인이 사물과 만난다 마음 속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것을 시로 옮긴다 이때 사물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 사람의 품성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래서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가 오늘 무심히 하는 말투와 행동 속에 내가 품은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10. 다의적 의미가꾸기     시 속에서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모호성이라 할 수 있으며 다의적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11. 울림이 있는 말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좋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다 말하지 않고 조금만 말한다 그리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마음이 고이는 법 없이 생각과 동시에 내뱉어지는 말, 이런 말속에는 여운이 없다 들으려 고는 않고 쏟아 내기만 하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말이 많아질수록 어쩐 일인지 공허감은 커져만 간다 무언가 내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쁨이 없다.   12. 한 글자의 스승       시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소중하다 한 글자가 제대로 놓이면 그 시가 살고, 한 글자가 잘못 놓이면 그 시가 죽는다 훌륭한 시인은 작은 표현 하나가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는다.   출처, 네블, 잃어버린나를찾아서  
38    시 창작의 가장 핵심적 비법 댓글:  조회:1589  추천:0  2019-02-28
시 창작의 가장 핵심적 비법           * 시학 (詩學)                                                           시인.사상가 - 손홍집      - 시는 점등의 불빛을 하나로 엮은 사슬처럼 미지적 숲에 등불을 켜고 홀로    걷는 나그네의 가장 고독한 숨결이요,그 역사이다.   -시는 시인의 삶이 항상 치열하고,예술혼은 불타며 내면은 끓어오르고,   육체는 그 뭔가를 위해 방황해야 비로소 그 깊이를 추구 할 수 있다.   - 시는 자신을 거친 도마 위에 올려놓는 파닥이는 고기처럼 스스로 실험하고   그 깊이가 아니면,결코 큰 울림이나 거시적 미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   -시는 작가적 사상과 철학이 농축되어 맑은 물처럼 가라앉은 상태에서    마치 고요한 연꽃처럼 피어있는 형체.   - 시란 간결함 속에 그 뜻을 비치고 그것이 은은한 향기로 독자에게 다가와    마침내 그 상대의 내면과 정신에 큰 울림을 준 그 가치와 척도.   - 시란 관념에 해당하는 나무의 뿌리나 줄기의 흐름을 새롭게 변형시켜     꽃으로 환하게 피운 최후의 숨결과 그 자취의 흔적.   -시란 현실이란 작은 촛점을 거대한 망원렌즈로 바라보는 시각이요,   반대로 지나온 세월을 보다 작게 축소시켜 비쳐주는 새로운 거울.   -시란 현실이란 미개세계를 작가적 지각에서 빛처럼 투망하여   보다 먼 미래적 싯점을 비쳐주는 햇살같은 빛의 일종.   -시는 작가적 내면의 숭고한 정신과 영혼을 그 모체(母體)로 탄생하여    마침내 개체적 변환을 거친 후 개성적 순환을 거친 어떤 유형체.   -시란 깊은 고뇌와 고통의 수레바퀴에 자신을 내던져 그 안에서 싹튼   숭고한 의식과 새로운 정신을 갖춘 최후의 작업이요,그 의식체.   -시란 단 한순간 빛처럼 떠오른 착상을 새롭게 영상매체로 꾸미는 작업이요,   그로 인해 자신의 지각을 일깨워 잠든 사물을 일깨우는 위대한 힘.   -시란 마음의 눈으로 품고,정신으로 그 의미성을 일깨우며,최후 그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이요,그로 인해 천 개의 눈빛을 갖춘 영혼의 집합체이다.   -시란 작가적 삶과 체험이 녹고 응축되어 흐른 영혼의 슬픈 목가적 빗소리와    그 음률이요,보다 높은 사상성을 위해 비상하는 새의 깃털같은 것.   -시란 자신이 마지막 절망에 도달했을 때 마치 구원의 손길을 스스로 뻗쳐   종교에 구원하듯이,작가의 혼과 정신을 그에 바친 최후의 기도서이다.     * 시는 지식이 아니다.보다 고도의 경험적 세계이다- 고로 생을 많이 체험하고,    많이 비교하며 사고하고, 많이 퇴고하고, 쓴 것을 많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듯,아님 물이 정화되듯이 조용히 그 시간을 기다리는    지혜도 꼭 갖춰야 정작 훌륭한 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위대한 인물이라면 자신의 타오르는 심장을 용광로 속에서     담금질한 언어를 직접 탄생시킬 수 있다!   ---------------------------------------------------------------------    *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저 바닷속 밑바닥의 조개에서 한알의 진주를 케내온 작업이다.-(열정)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가슴속의 사무친 멍울이 피를토해 마지막 단절된 그 숨결을 어루만지는 일이다.-(실천)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동굴에서 포도주가 오랫토록 숙성되어 최후의 그 깊고 오묘한 맛을 드러내는 순간이다.-(인내)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고욱(苦煜)의 참담한 눈꽃들이 핀 외진 산길을 한없이 고독하게 홀로 걷는 발걸음이다.-(고행)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모든 사물과 자연을 한 호흡에 갖추기 위한 나의 최후의 몸부림이요,그 열매이다.-(사랑,나눔)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과정과 그 환희의 불꽃들을 보다 찬란하게 펼치는 환희의 광경이다.-(예술적 승화)           * 시 창작의 열가지 비법   첫째: 모든 사물과 친근한 벗이되라.        (모든 사물은 곧 시의 재료이며 또한 자신을 키우는 훌륭한 스승에 해당한다.)   둘째:작게 스친 영감을 그대로 놓치지 말라.        (짧게 스쳐간 착상이나 영감은 그것이 테마가 되어 정작 큰 작품의 줄기를 형성한다.)   셋째:삶에 대한 철저한 체험을 갖추라.        (어떤 일을하면 그냥 쉽게 처리하려든 생각보다 그 일의 깊이에 빠져 생활해야 한다.미친듯이-)   넷째: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버릇을 길들여라.        (작은 환경에 만족하면 그 의식체는 곧 고인 물에 해당한다.고로 창조자는 항상 새로움에 눈뜨라.)   다섯째: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        (어느 순간에 훌륭한 착상이나 영감이 떠오를지 모른 상태기에 항상 그것을 기다리는 자세라야 한다)   여섯째:때론 긍정보다 부정적 시각을 갖추라.       (긍정은 가장 일반적인 시각이다.그러나 그 긍정을 부정으로 바라봄은 파라독스를 제공한다.)   일곱째:모든 사물을 쳐다보면 먼저 의심하는 눈초리를 갖추고 점차 깊은 시각으로 관찰 투시하라.       (작은 돌맹이 하나에서부터 이름없는 풀 한포기를 쳐다봐도 그들의 깊은 내면을 읽어야 한다)   여덟째:고독한 환경에 갖혀 생활하고 최대한 말을 줄여라.       (고독은 시인의 집이다.또한 말이 많으면 정화될 시어들을 모두 미리 흘려버린 경우에 해당한다. 말은 곧 시다)   아홉째:문체와 문장을 항상 다듬고 조율하라.       (시어에 꼭 필요한 낱말이 들었는지,아님 전체 문장은 꼭 짜임새를 갖췄는지 항상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   열번째:홀로 고요히 참회하는 습관으로 시를 쓰라.       (참회란 곧 자신을 씻는 일이다.그로 인해 항상 마음을 닦고 정신을 일깨우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얼어붙은 토양을 일궈 그곳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스쳐가는 바람을 붙잡아 작고 투망한 그물에 가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피끊는 정열로 사막에 오아시스를 건설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약속없는 땅에 새로운 약속의 뜻을 세우는 거룩한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생명이 없는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그것이 부활토록 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과 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의 교량을 건설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곳에 미래적 사유의 집을 짓는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진리가 철저히 외면당할 때 그것을 보상받기 위한 노력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범람하던 자신의 의식체를 다스려 고요히 그 강물이 잠들게 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절망의 나락에서 최후로 자신의 의식을 찾는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고요한 아침의 햇살을 품에안고 새로운 에너지를 축적시키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삶의 가장 진실한 참회록이다.     * 글을 쓰는 의미와 방법 P{margin-top:2px;margin-bottom:2px;}    첫째: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자세로 써야 한다. 둘째:생을 관조하는 정신으로 써야한다. 셋째: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개척하는 위치에서 써야한다. 넷째:타인과의 동조의식에서 나눔이란 법칙을 성립해야 한다. 다섯째:그 모두를 다 버리는 과정으로 다시 되새김질 해야 한다.   ------------------------------------------------------------     ** 시에 대한 몇가지 명언들.. -시는 간소함에 대한 사색이다.-시란 좋은 친구, 관용의 미소이다. -시란 곧 부활하는 생명의 몸짓이다.-시란 경험에 의한 자신의 미래적 성찰이다.-시란 고상한 감정의 순환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기법이요, 보다 고차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들의 욕구이다.-시란 기다림의 미학이요,관찰자적 영감과 철학이 내재된 운율의 오묘한 조화성이다. *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나의 생명이 위태롭거나 험한 수렁에 빠질 때 스스로 구원을 얻기 위함이다.고로 그것은 나의 신비로운 생명의 힘이요,축적된 구원자의 언어요,힘차게 솟구치는 대지 위의 파란 새싹들의 함성이다. *시를 쓰는 것은,즉 예술가가 그 예술행위를 하는 것은 곧 죽음의 문턱을 스스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을 뿌리쳐도 다시 그 세계에 빠지는 이유는 오직 그것을 극복함으써만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poem-reader?t__nil_cafemy=item  
37    생각 속의 여우 / T․휴즈 댓글:  조회:1661  추천:0  2019-02-04
생각 속의 여우 T․휴즈   나는 이 한밤 순간의 숲을 상상한다. 무언가 살아 있다. 시계의 고독과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이 백지 옆에서.   창 밖엔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비록 어둠 속에서 깊어졌으나 더욱 가까워진 무엇인가 고독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차갑고 검은 눈(雪)처럼 섬세하게, 한 마리 여우의 코가 잔가지와 잎을 건드린다. 두 눈이 하나의 동작을 대신한다, 그리고 또 그리고 지금,   흰 눈 속에 선명한 자국을 찍는다, 나무들 사이에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절룩거리는 그림자가 그루터기 옆을 느릿느릿 지나간다 그리고 숲 속의 빈터를 대담하게 가로질러 나온 몸뚱아리의 움푹 둘어간 공동(空洞) 속에서, 눈 하나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초록 하나가, 휘황하게 골똘하게 제 일을 시작하고 있다   문득 여우의,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그게 어두운 머리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창에는 여전히 별이 보이지 않는다. 시계는 똑딱거리고 백지가 채워진다. (글이 쓰여진다)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 : 영국의 시인.극작가.비평가). 시작법(한기찬 역,청하출판사,1993)   [감상] 여우의 움직임을 통해 시 창작 과정을 밝히고 있는 이 시에서 1연은 한밤중 화자인 나는 시상을 정리하기 위해 숲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 숲속에는 시인 이외 다른 무언가가 살아 있다. 방안에는 시계의 째깍거림 이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적막이다. 적막 가운데 화자는 백지를 펼쳐 놓고 그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2연에서는 화자가 숲속 광경을 마음 속으로 상상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창문을 통해 별을 볼 수 없다고 하는 그는 별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보다 가까이에 있는 대상을 느낀다. 그것은 어둠 속에 보다 깊이, 보다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고독 속에서 시상은 떠오르는 법. 3연은 보다 가까이 있는 그것은 다름아닌 여우다. 여우는 코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살며시 만진다. 여우의 코가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닿는 모습이, 흡사 어두운 밤에 눈이 살포시 내리는 것 같다고 한다. 시상이 매우 부드럽게 착상되는 순간이다. 여우는 두 눈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본다. “지금”이라는 말이 계속 반복된 것은 여우가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여 준다.    
36    환유적으로 시 쓰기/윤석산 댓글:  조회:1822  추천:0  2019-02-04
[공유] 환유적으로 시 쓰기/윤석산   3) 환유적으로 시쓰기       자아 이제 서정적 줄거리를 완성했으니 환유적 어법으로 시를 써보기로 할까요? 지금 쓰자면 ‘나중에 쓰지요’라고 말할 테니까 저랑 함께 써보기로 합시다. 어떤 것을 쓸까요? 앞에서 시인이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는 1인칭 화제로 쓴 경우는 예문을 통해 확인했으니 3인칭 화제로 써보는 건 어떻겠어요?  대답이 없으니 제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어느 날 글을 쓰다가 피곤해 차를 몰고 해안도로에 있는 카페에 갔습니다. 커피를 시켜놓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보면서 피로를 풀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커플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는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순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대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말 속’에 말이 있다면 ‘말 밖’에도 말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안’과 ‘밖’이 있다면 말은 입체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이라면 사람도 살고, 도시도 있고, 빌딩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고, 그 구멍가게 안에는 사탕항아리도 있을 테고, 그 아래에는 지하실도 있을 수 있고, 밤마다 고양이가 계단에 올라와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군요.   그러다가 언어철학(言語哲學)을 공부하느라고 읽은 책들의 구절들이 떠오르대요. 그러니까,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든지, ‘언어는 존재다’라든지, ‘존재에 이르는 통로’라는 말들입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폭력을 낳는다’는 말도 떠오르대요. 평소 이 지구상의 모든 전쟁은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떠오른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언어가 존재라면 화살로도 만들 수 있고, 고래로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대요. 그 때 아마 바다 저편에 여객선이 지나가고, 그 여객선을 고래의 모습으로 바꿔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종이를 달라고 해 다음과 같이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①글을 쓰다가 피곤해서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심 ②옆자리의 젊은 커플이 ‘당신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다’고 말함. ③순간 말 속에 말이 있다면 언어는 입체적 공간이고 사물이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음. ④그리고 또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이 떠올랐음 - 이 세상의 모든 분쟁은 언어로부터 시작됨…   뭐, 이런 식으로 시의 줄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어떻게 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3인칭 지향형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어느 지향형으로도 쓸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을 택한 것은 언어에 대한 제 느낌이나 말 속에는 말이 들어 있으니 말할 때 상대에게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교훈보다 언어 그 자체의 속성을 드러내고 싶어서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제 지향형은 자기감정을 자제하면서 객관적으로 말하기에 적합한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줄거리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제외한 것은 ①번이었습니다. 이 모티프는 과정을 나타내는 로서, 이들을 그냥 놔둘 때는 서사적 산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적  모티프’가 뭐냐구요? 이 용어는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토마쉐프스키(B. Tomaševski)가 쓴 것으로서, 그는 이야기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모티프의 유형을 , , , 로 나눕니다. 그리고 고정 모티프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단위로서 탄생이나 죽음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단위를 말하고, 동적 모티프는 ‘뛰었다’든지 ‘결혼했다’와 같이 정황(情況)의 변화를 알리는 단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 모티프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갈 때 날씨가 화창했다든지 음악을 들으며 갔다는 식으로 생략해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위를 말하고, 정적 모티프는 ‘그녀는 아름답다’와 같이 묘사하는 단위를 말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동적 모티프를 배제하면 화자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축소하고,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를 이야기할 때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시를 평할 때 ‘서사성이 강하다’든지 ‘산문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들은 이들을 그냥 놔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뺀 다음 줄거리에 따라 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쭉 쓰다가 보니까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대요. 그리고 어떤 곳은 너무 장황하고, 설명으로 흐르는 곳이 생기데요.  그래서 주제에 해당하는 ‘말 속에는 말이 있다’와 ‘말 밖에도 말이 있다’라는 구절을 적당히 바꾸면서 각 연마다 배치했지요.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곳을 잘라 연(聯)을 바꾸면서 자른 빈 틈에서 독자들이 상상하도록 만들어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한번 보실래요?   말 속에는 말이 있고 말 밖에는 말이 있다.   말과 말 사이에는 빌딩이 있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구멍가게가 있고 구멍가게 한 가운데에는 꿈을 담은 사탕 항아리가 있고 그 뒤 쪽 지하실 계단 아래에는 빨간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있고 그 고양이는 밤마다 층계 위에 올라와 밤새도록 운다.   말과 말 사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숲이 있고 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들 뒤엔 명털 뽀얀 소녀들이 있고 깔깔대는 그 소녀들 웃음은 화살이 되어  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린다.   그러나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또 다른 말이 있고 또 다른 말 내부에는 눈부신 이데올로기가 있고  이데올로기는 도시 상공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되고 펄럭이는 깃발은 저를 위해 다른 말들을 공격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간혹 전쟁터에서 혼자 죽는다.   말과 말 사이에는  쓸쓸히 비가 내리는 바다가 있고 비 내리는 바다에는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있고 그 고래는 밤마다 제 짝을 찾아 울며 지구 저쪽으로 떠나고  그래서 지상의 우리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필자,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어때요? 재밌지요? 환유적으로 시 쓰는 방법을 정리해드릴 테니 여러분들도 앞에서 만든 줄거리를 가지고 작품 한편을 완성해보세요.   □ 환유적으로 시 쓰기 순서   ① 화제가 떠오르면 자유연상(自由聯想)을 하면서 시상을 풍부하게 만든다. ② 시상을 검토하면서 지향성을 결정한다. ③ 시적 인물과 배경, 어조 등을 결정한다. ④ 줄거리를 검토하면서 고정모티프와 동적 모티프를 제거하거나 자유모티프와 정적 모티프에 포함시키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⑤ 주제에 해당하는 모티프를 군데군데 배치하여 주제를 강화하고, 모티프 단위로 연을 구성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동적 모티프를 어떻게 약화시키느냐구요? 아, 그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군요. 흔히 시의 제재로 택한 화제에 과거의 이야기를 오버랩(overlap)하거나 몽타주(montage)하는 방법을 쓰지요. 다시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쓸쓸해서 하루 종일 방황하고 아래와 같은 시적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① 그녀가 떠난다게 해서 항구로 갔다. ② 하루 종일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을 들으며 방황했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③ 해가 지고,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마치에서 소주를 마셨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만일 이 이야기를 차례대로 쓴다면 틀림없이 ‘산문적’이라든지 ‘서사적’이라는 평을 들을 겁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이 마지막 모티프인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장면에 그녀가 떠나는 장면을 비롯하여 바다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겹쳐 놔야 합니다.   차가운 소주잔 아래 항구로 가는 사내가 보인다. 파도는 밀려오고, 갈매기는 울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며 돌아서는 여인이 보인다. 여객선은 부우부우 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나가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늦가을 저녁 혼자 술마시는 사내가 보인다. 술잔 밑으로 저녁 해가 지고, 포장마차 비닐 포장이 펄럭이고…   뭐, 이런 식으로 겹쳐 놓거나 비유하면 지나간 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아, 그럼 써봅시다. 나중에 쓰겠다구요? 한 마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없거나 운이 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길러야 할 기초적인 능력을 내일 하지 모레하지 미루고, 그렇게 미룬 것들이 누적되어 그렇게 된 겁니다. 이 강의가 끝나기 전에 시인이 되고 싶은 분들은 어서 쓰기 시작하세요. 자아, 씁시다. 시자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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