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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수 시인의 연작시 --선에 관한 소묘」에 대한 소고
2019년 06월 17일 15시 55분  조회:1518  추천:0  작성자: 강려

문덕수 시인의 연작시 
--선에 관한 소묘」에 대한 소고

 

김석환
<시인·명지대학교 문창과 명예교수>


1. 머리말 
문덕수(1928-) 시인은 등단 이후 『황홀』을 비롯한 17여 권의 시집과 『한국모더니즘시 연구』 등 문학 연구서를 발간하고 수많은 평론을 발표하며 한국 시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월간 시 전문지 『시문학』을 1971년 창간한 후 현재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발간하며 한국시단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오랜 동안 대학 강단을 지키며 지속적으로 시에 관한 이론을 탐구하고 이를 창작을 통해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초기에는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시를 선보이기도 하였고 현실의식이 강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며 다양한 시세계를 보여 주었다. 본고는 문 시인이 초기에 발표한 「선에 관한 소묘」 연작시(1963-1965) 5편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이 시편들은 실험의식이 강하여 평자들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는데 이후에 창작한 문 시인의 시적 원형이 잠재되어 있다고 본다. 
기존의 평자들은 「선에 관한 소묘」 연작시 5편은 인간의 무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해석이 어려운 ‘무의미시’라는 평을 주로 해왔다. 특히 시를 해석하여 의미를 유추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 시편들이 기존의 시보다 상상의 비약이 커서 논리의 일탈이 심하다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 실제로 있는 어떤 대상을 그리기보다 무의식을 그리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문 시인 자신도 자신은 무의식의 세계, 즉 ‘내면세계’로 시선을 옮겨 그 구조를 반영하려 했다는 것을 이 시편들을 쓰고 난 후 『사상계』에 발표한 시론 「내면세계의 미학」에서 언급하고 있다.  

시가 외면세계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외면세계의 구조가 그대로 시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외면세계의 속박을 끊고 내면세계로 옮기면 외면세계의 합리적 구조를 벗어나게 되고, 따라서 비합리적인 내면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게 된다.

이러한 문 시인의 주장이나 기존의 논의는 무의식이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되었는가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의 타당성을 뒷받침 해 준다. 본고는 문 시인이 그의 시를 통하여 어떻게 내면세계의 무의식적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카오스적인 무의식적 욕망을 이미지의 자율적인 연상에 의해 표현하려 시도한 시편들에서 구조적 특징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거나 일정한 주제를 찾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선택하여 배열한 이미지의 연쇄가 어떻게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일은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라깡은 인간의 정신 층위에서 무의식의 존재를 처음 밝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서 무의식과 언어 구조와의 관계를 밝혔다. 프로이트는 생리학적 관점에서 무의식적 층위에 잠재된 ‘리비도’가 인간의 행동과 의식을 조정하고 지배한다고 하였다. 그에 비해서 라깡은 오히려 “언어활동은 무의식의 조건”이며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하였다. 즉 인간이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무의식적 욕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자신의 본 생각을 부정하는 법칙을 지니고 있어서 언어 기호의 기표인 문자나 소리는 주체가 그것을 통하여 드러내려는 기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기의는 기표들의 연쇄구조에서 겨우 나타나거나 한 개의 기표가 여러 개의 기의로 분열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의와 분리된 채 “떠도는 기표”는 주체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작용한다. 따라서 주체가 선택하여 사용한 기표가 오히려 주체의 욕망을 억압하며 그 실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기표를 필요로 하며 그것을 온전히 드러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 선, 그 무의식적 욕망의 기표
5편의 연작시는 모두 ‘선’에 대한 무의식적인 자유연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선택하여 배열하고 있다. 배열되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커서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찾기 힘들다. 이미지 사이의 차이 또는 유사성으로 관계의 망을 구축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데 그러한 특징은 자연히 이미지가 내포한 의미나 시 텍스트 전체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의 파악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것을 찾아 독해를 하는 것도 읽는 이의 역할이며 몫일 것이다. 

선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이 
뒤좇는다,
어둠 속에서 빗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이 
꽃잎을 
문다.
뱀처럼,
또 한 가닥의 선이
뒤좇아 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
찬란한 꽃 망사 위에 
동그만 우주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다.
- 「선에 관한 소묘.1 」 전문. (1963.7. 『시단』 2집)

이 시의 전반부에는 ‘선’, 후반부에는 ‘꽃’의 움직임과 상태를 묘사를 하며 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선’은 만물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환원한 추상어로서 그것의 기초요 근원이다. 그 선은 ‘실뱀, 빗살, 뱀, 불꽃’ 등에 차례로 비유되고 변주되는데 그것들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원형적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 대하여 응답으로서 발생하며 그것이 형성되는 주체적인 공간이 환상이다. 환상에서 만들어진 그 욕망의 이미지들은 달아나고, 뒤쫓고, 쏟아져 나와 꽃을 무는 등 역동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주체의 욕망을 상징하는 뱀이 다가가 무는 꽃은 그것이 추구하는 ‘대상a’ 이다. 그렇게 선의 비유적 이미지들이 역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성 자체인 ‘절대적 대상’에 다가가 주체의 ‘결여’를 메우고 상실한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대상a’인 ‘꽃’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전체적 또는 절대적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순간마다 그것이라 믿고 물지만 ‘부분 대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주체의 환상 속에서 ‘또 하나의’ 꽃이 반복적으로 피었다 떨어지고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주체의 욕망이 결코 뛰어넘기 불가능한 절대적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거미줄을 짜듯 욕망의 기표를 선택하고 결합하여 끝없는 망사(網絲), 즉 관계의 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시간과 공간적 좌표와 ‘달걀처럼’ 완전한 생명력을 가진 예술적 텍스트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한편 전반부에 나타난 욕망을 상징하는 선의 비유적 이미지들의 움직임과 후반부에 나타나는 꽃의 피고 지는 상태는 동시성을 갖는다. ‘대상a’인 꽃은 주체의 욕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동시적으로 관계하기 때문이다. 문 시인은 이렇게 ‘절대적 대상’을 향해 끝없이 발동되는 무의식적 욕망의 역동적인 흐름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곧 문 시인에게 있어서 시라는 언어적 텍스트를 창조하는 치열한 작업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영원히 날아가는 의문의 
화살일까.
한 가닥의 
선의 허리에
또 하나의 선이 와서
걸린다
불꽃을 품고
얽히는 
난무(亂舞), 
불사(不死)의 짐승일까.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는 삭아서
멀어지고,
일체가 불타버리고 남은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
- 「선에 관한 소묘. 2」 전문. (1963.7. 『시단』 2집)

시인은 ‘선’이 ‘영원히 날아가는 화살’이라고 명명하며 의문을 갖는다. 그것은 형상이 있는 모든 만상을 추상화함으로써 일체의 개념이 제거된 기표일 뿐이다. 그 ‘허리에/ 또 하나의 선’이 걸리어 관계를 맺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상을 창조한다. 만상을 생성하는 기초요 근원인 ‘선’은 ‘불꽃을 품고’ 얽혀 ‘난무’가 되는데 시인은 그것을 ‘불사의 짐승’일 것이냐 묻는다. 주체의 욕망을 품은 선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논리와 질서를 일탈하여 예술의 한 장르인 난무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비유한 ‘불사의 짐승’은 욕망을 표현하는 예술이 일상적 논리를 초월하는 특성을 암시한다. 그것은 과일과 같은 언어에서 고정된 기의를 제거한 채 ‘텅빈 기표’만 남아 일상적 언어로부터 멀어지며 절대적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신비한 매듭’, 즉 예술적 텍스트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대상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의 내용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욕망이 이입된 언어를 독자적 어법으로 결합하여 구축한 시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은빛 실날을 뽑으며
그물을 짜는 
한 올의 바람,
이윽고 
환상처럼 걸리는 조롱(鳥籠),
천사의 손도 얼씬 못하는
조롱. 
그 속에
지구는 무한의 구석을 울리는
쓸쓸한 새.
금빛 구름을 뿜으며
그물을 짜는 
한 가닥의 지푸라기,
이윽고 
허무의 가지 끝에 걸리는 초롱.

신의 눈도 얼씬 못하는 
초롱.
그 속에 
우주는 영겁의 모서리를 밝히는 
호젓한 불꽃.
- 「선에 관한 소묘. 3」 전문. (1964.7. 『시단』 5집)

‘은빛 실날’을 뽑아 그물을 짜서 끝내는 ‘조롱’을 짓는 바람은 무의식적 공간인 환상에서 솟아나는 욕망의 상징이다. 그 욕망이 구축한 무한한 우주의 상징인 ‘조롱’ 속에서 지구는 그 ‘구석 끝을 울리는 쓸쓸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의 우주적 환상은 새가 된 지구가 ‘한 가닥의 지푸라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지구가 지푸라기를 엮어 그물을 짜면 ‘조롱’은 불을 밝히는 ‘초롱’이 된다. 그것이 걸리는 ‘허무의 가지 끝’은 곧 언어가 지배하는 상징계인 현실의 극단 또는 그 가장자리 너머의 ‘틈’ 또는 ‘빈자리’를 일컫는다. 조롱이 변주된 ‘초롱’을 걸리게 하는 근원적 힘인 욕망은 곧 그 ‘빈자리’ 또는 ‘결여’ 자체이거나 그곳에서 솟구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롱은’ 주체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한 ‘신의 눈도 얼씬 못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18세기의 내장 속을 
기생하는, 한 마리 
세균(細菌).
그것은 
벽(壁) 뒤로 
폭동과 군중을 거느린
하나의 점(點). 
그것은
침묵의 축축한 밑바닥을 
핥는 
파편.
그것은 실패한 지도의 꿈. 
아니 
지구를 둥근 3각형으로 
변조하려다 
들킨 
미충(微虫). 
 - 「선에 관한 소묘. 4」 전문. (1964.12. 『시단』 6집)

‘선’은 ‘세균, 점, 파편, 지도의 꿈, 미충’ 등의 기표로 변주되면서 그 내포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그 기표들을 수식하는 구절은 논리를 일탈한 진술로써 그것에 묶여 있는 일상적인 의미를 제거해 준다. 따라서 ‘선’을 통해서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기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선이 거느리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물론 그것을 한정하고 수식하는 구절을 연쇄적으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선’은 제도와 규율을 중시하던 시대인 18세기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것은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와의 관계를 차단하는 ’벽 뒤’에 감금된 채 억압을 당하다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들이 품고 있는 광기로 취급되기도 했다.  또한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의 빈자리에서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는 ‘결여’ 자체이다. 그것은 현실의 도상인 지도는 그 실재를 보여주는 데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그 기표와 기의 또는 지시체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려는 시도이다. 지구는 둥글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삼각형’으로 새롭고 낯설게 변조하여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한 가닥 
선이
여윈 내 손목을 묶어 보고,
몇 번이고 내 모가지를 묶어 금빛으로 
졸라 보고,
벽 못에서 
풀려 내려온 노끈이 
누나의 모가지를 졸라 죽였다.
그 때의 눈알
그리곤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창녀의 치마끈이 되었던
한 가닥 
선이,
경부선(京釜線) 레일로
시장댁(市長宅) 뜨락의 살의(殺意)의 나뭇가지로 
십년 전의 누나 얼굴로 돌아갈 수 없는 
한 가닥 
선이,
지중해 연안(沿岸)을 구석구석 더듬은, 
내 누나 같은 
낫세르 중령(中領)의 눈동자 속에 
지중해의 윤곽으로 들어앉아
쉬고 있었다.
- 「선에 관한 소묘. 5」 전문. (1965.3 『사상계』.)

‘내 손목’이나 ‘모가지’를 묶고 졸라 보는 ‘선’은 벽의 못에 걸려 있다가 풀려나 누나의 모가지를 졸라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라도 풀어질 수 있는 ‘창녀의 치마끈’이 되어 그녀를 타락하게도 했다. 그 선은 주체의 욕망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타자의 폭력적 욕망의 상징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경부선 레일’과 ‘시장댁’에 있는 ‘살의의 나뭇가지’ 그리고 ‘십년 전의 누나 얼굴’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시인은 그렇게 ‘선’과 관련된 나와 누나 그리고 여러 이질적인 사물들을 상상하며 연쇄적으로 제시한다. 그 선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낫세르 중령’을 찾느라 ‘지중해 연안’을 그리다 죽었을 ‘내 누나’ 같은 그의 눈동자 속에 ‘지중해의 윤곽으로 들어앉아’ 있다. 이처럼 선은 다양한 존재자들과 관련을 맺는데 그 범위가 마침내 ‘낫세르 중령의 눈동자와 지중해 연안 등 이국적 공간까지 확장된다. 그렇게 선은 논리와 예측을 벗어나며 다양한 대상들과 관련을 맺음으로써 독자에게 누나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유추와 의미의 해석을 난감하게 한다. 그 모호성과 난해성은 오히려 선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특히 누나가 지중해 연안을 더듬다 낫세르 중령의 눈동자 속에 지중해 연안으로 들어앉아 있다는 진술은 두 사람 사이의 비극적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3.맺음말
시인은 ‘선’을 다양하고 낯선 이미지에 비유하고 역동적 움직임으로 어떻게 대상에 다가가는지를 암시한다, 연쇄적으로 배열된 기표들을 종합하여 ‘선’이 내포하는 의미를 유추해 보면 그것은 언어와 질서가 지배하는 현실 또는 상징계의 빈자리인 무의식적 공간에서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해 솟는 ‘욕망’이다. 그리고 문 시인은 그 ‘선’을 비유하는 기표들이 얽히어 관계를 맺으며 예술적 텍스트를 이루는 과정을 시로써 보여 준다. 특히 시인은 인간의 내면세계에 시선을 기울이고 무의식적 욕망을 보여 주기 위해 논리적 서술을 벗어난 낯선 이미지 또는 기표들을 제시하고 있다. 무의식은 문자 그대로 논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의식이 없는 카오스적인 층위이기 때문에 일상적 어법을 일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의 해독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독자의 상상을 무한히 자극하고 시가 암시하는 의미의 자장을 확대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곧 문 시인의 시가 ‘비대상의 시’ 또는 ‘무의미의 시’로 불리게 하는 요인이며 시인이 창조한 독특한 미학일 것이다.  
그러한 경향은 문 시인이 주장한 ‘내면세계’를 반영하려는 시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논한 시편들은 ‘비대상’이라기보다는 ‘내면세계’, 즉 무의식적 욕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무의미’라는 말은 논리적이고 외연적 의미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경우 기표들이 어떻게 무의식적 욕망을 보여 주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그 ‘무의식적 욕망’이 곧 이 시편들이 암시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어떠한 시든지 시인은 논리적 서술을 벗어나 낯선 어법으로 새로운 시텍스트를 구축한다면 시에는 시인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의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이질적 이미지들의 비약적 연결로 독자의 정서를 자극하며 새로운 의미를 보여 주는 미학은 시 쓰기의 모델이 될 것이다. 문 시인이 이 시편들을 통해 내면세계의 형상화를 위한 시도가 이후 문 시인의 시에서 어떻게 변화를 거치며 유지되었는가에 대한 고찰은 남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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