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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2019년 02월 07일 21시 04분  조회:1056  추천:0  작성자: 강려
[공유]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출처 흐르는 물처럼|우강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피에르 스크리아빈 - 권희영 역 (정문연)
 
 
 
 
머리말
 
그의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를 라깡은 <오해>라고 이름 붙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무의식이라는 용어가 환원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시니피앙으로 환원할 수 없으며 지식으로 환원할 수도 없고 의미로 환원할 수도 없는 것이다. 확실히 무의식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그 때문에 그로부터 프로이드의 발견이 나오는 것이며 그 때문에 이 숨은 의미는 주체의 고통의 대가로 벗겨지고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의식적 지식에서 관계되는 것은 의미를 넘어서 혹은 이 의미와 반대하여, 시니피앙의 물질성 가운데, 그 결합가운데, 그 해석가운데 그 의미의 장소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주체가 그것을 즐기는 태도이며 향락이 거기에 깃들이는 방식인 것이다. 그로부터, 의미에 만족하는 것은 정신분석으로 하여금 길을 잘못 들게 하는 막다른 골목인데, 의미는 심리치료로의 쉬운 비탈길의 미끄럼틀 역할을 하며 정신분석가의 욕망을 배제하는 심리주의적 실추가 되는 것이다.
 
이 주제는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분석적 경험의 약동의 본질적인 지점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게 하는데, 라깡이 구분하였던 4개의 근본 개념 중의 하나인 무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론적인 경계에 있어서나 임상적인 경계에 있어서 우리는 아주 엄격하게 분석적 경험에 있어서의 대체 즉 의미를 향락으로 대체하는 것 같은 역설처럼 보이는 질서들을 구분하고, 미늘을 벗기고, 풀어내려고 하며 그럴 때 무의식은 그 영역이자 동시에 흔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적 노선과 실천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 라깡” 즉 1970년 이후의 라깡의 가르침의 지점에로 프로이드적 발견의 단면으로 이끌어간다.
 
 
 
주체가 없는 지식
 
프로이드적 발견으로부터 시작하자. 그것은 한 주체가 증상을 제시하며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불평하기 위하여 그것에 대해 말하며,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것은 불가항력으로 실언이나 실수같이 그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확인에 기초한 것인데, 또는 그 주체는 꿈을 꾸며 농담을 하며 주체 스스로가 그로부터 오는 것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는 그 확인에 기초한 것이다.
 
프로이드는 꿈, 농담, 실언, 실수에 주목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 현상들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고 증상과도 같은 구조와 인과관계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들의 구조를 밝히면서 프로이드는 증상과 무의식의 구조를 발견한다. 무의식의 소산들인 이 현상들에 대해 그는 그 해독이 가능하다며 하나의 해석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들은 또한 주체에게 강요하며 주체의 통제나 의지를 벗어나게 한다는 점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 주체가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은 그가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느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주체인 나로서 볼 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다. 이 현상들을 프로이드는 말과 꿈의 이야기와, 자유연상을 통하여 접근한다. 그리고 라깡은 “무의식은 말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말은 말하기 하는 것이고 그것은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 무의식은 어떻게 말하며 무엇을 말하는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 말은 라깡이 우리에게 “샹폴리옹 같은 방법”인 프로이드의 해독법을 따라서 무의식이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것을 공식화시킨 것인데, 거기에서 라깡은 그것은 시니피앙과 그것들의 결합, 다른 말로 언어의 구조, 은유, 환유의 법칙들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샹폴리옹과 같은 방법”, 이 말은 기록에 관계하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무의식의 문자와의 유관성을 검토하게 한다. 각자는 무의식의 형성의 프로이드적 이미지가 풀어야 할 그림수수께끼와 같다는 것을 안다. 그림수수께끼는 필적이며 스스로 읽지 못하는 것이고 해독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림수수께끼에 있어서 이미지는 시니피앙과 같으며 이는 또한 시니피에와는 관계가 없다. 예컨대 물양동이인 소(seau)의 이미지는 시니피앙으로서 음소인 “so”의 물질적 지지이며 이는 단어의 구성에 있어서 그러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또한 멍청이 소(sot)가 될 수도 있고 약동(saut)이 될 수도 있고 또다시 양동이(seau)가 될 수도 있으며 도시 소(Sceaux)도 될 수 있다.
 
지나는 길에 일본어가 한자를 音讀으로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언급하여 두자. 이것은 의미론적인 가치와는 무관하게 글자로서 음소를(그들의 중국어 읽기) 나타내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같은 중국어를 이용하여 프랑스어를 쓸 수 있듯 이 글자들을 이용하여 일본어를 쓰고 글자를 바꿔 쓴다. 이 필적은 정확하게 문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어준다. 문자란 의미작용으로부터 떨어진, 시니피에로부터 떨어진 것으로서의 시니피앙이다. 그리하여 필적은 해석과 해독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라깡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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