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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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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시와 섹스 / 김용오 댓글:  조회:766  추천:0  2018-12-24
시와 섹스   김용오   나에게 있어서의 시는 본능적으로 즐기는 섹스와 동일하다. 정갈한 저녁상을 물려놓고 감미로운 서정의 음악을 들으면 조금씩 발기하는 나의 남성. 햇빛을 물고 빤짝거리는 나무들의 잎새나 빗물에 씻긴 푸른 산빛의 황홀을 한순간 따뜻한 어둠 속에 엎드려 맛보는 알몸의 정사, 나에게 있어서의 섹스는 정신적으로 즐기는 시와 동일하다. 질척거리는 일상의 골목길을 잠시 잊어버리고 조용히 앉아서 마시는 한잔의 블랙커피, 수도하는 선승처럼 불켜진 한밤의 집중의 침실에서 꼭 다문 침묵의 혀를 빨면 조금씩 밝아오는 영혼. 온몸을 끌어안고 뒤척이는 여자들의 신음소리나 부르르 흐느끼는 허벅지의 짜릿함을 한순간, 하얀 종이 위에 엎드려 느껴보는 언어의 정사. 나에게 있어서 시와 섹스는 서로 두 손 잡고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는 쾌락과 배설을 시의 효용성으로 정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는 배설이다”    로마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Horace)― “시는 심미적 쾌락과 교훈을 준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다간 두 석학은 다르지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작년에 작고한 김용오 시인의 ‘성담론’을 화두로 ‘성’과 ‘시’의 상관관계를 논해보자.    물리적 배뇨작용과 ‘성’적 배설작용은 모두 카타르시스를 준다. 시에서 느끼는‘심미적 미의식’과 ‘감각적 흥분’도 카타르시스를 준다. 창녀와 연애를 하든, 수녀나 승려를 짝사랑하든 사랑의 본질은 같다. 호기심과 쾌감이다. 손으로 만지는 쾌감인가? 눈으로 만지는 쾌감인가?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담론 ‘시’가 성공하는 이유는 만유공통의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교묘하게 섹슈얼리즘을 은밀하게 표현한다. 특히 ‘시 쓰기’에 대한 ‘성적 환타지’는, 정절을 내세우며 음탕하게 숨어서 읽는 처럼 은밀한 쾌락의 극점이 있다. 발가벗은 시어들은 오감을 자극한다. 심미적 자극과 쾌감을 준다.   필자도 잘 생긴 육체보다는, 샤프한 지성에 오르가즘을 느낀다. 육체를 가진 이성보다, 자기중심적이고‘자기애’가 강한 시인들의 기질 탓일 것이다. 암수 한 몸의 ‘달팽이’처럼. ‘시 쓰기’는 자위행위의 고급스런 변형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강한 것을 아름답다고 정의한다. 힘은 아름다움이다. 고대 선사시대부터, 여자들은 동물과 싸워 먹이를 잘 구하는 사내를 추켜 세웠을 것이다. 힘은 어느 시대에나 삶의 근본이며 가장 큰 효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강렬한 물리적인 힘은, 무용가나 미스코리아처럼 자기 몸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직접적이며 강렬하다. 배우도 자기 몸이 기업이다. 그 다음 부류가 손가락을 이용하는 미술가다. 그런데 시인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생각이 많다. 언어유희는 가장 추상적인 ‘생각놀이’다. 지치지도 않고 혼자 숨어서 논다. 생각이 육체를 지배하면 당연히 육체가 약해진다.‘육체’가 죽고, ‘생각’을 키운다. 위의 시의 화자 ‘나’는 시를 쓰면서‘알몸의 정사’(9행)‘언어의 정사’(22행)를 맛본다.   미식가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찾아다니듯이, 시인은 ‘맛있는 언어’를 먹으려고 숲과 바다를 찾고, 바람과 비를 맞는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부족함이다. 결핍은 배고프다.‘욕구’를 숨기고 있다가, 가장 안전한 기회를 갈구한다. 그것이 혼자 노는 성이다. 아니, 사실은 ‘성’이 아니고 ‘성놀이’다. ‘유사 성행위’다.   관능과 성에 탐닉한 김용오 시인은 사실은 성에 가장 약한 남자였을 수도 있다. 강렬한 욕구는 결핍과 불만족에서 발기되기 때문이다.‘햇빛을 물고 빤짝거리는 나무들의 잎새나/ 빗물에 씻긴 푸른 산빛의 황홀’(6-7연) 은 거세된 가장 정갈한 유사 성행위다. 승려나 신부의 섹스와 같다. ‘욕구’와 ‘배설’이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같다.’(마지막 행) 갈등이 성욕을 자극한다. 지치지 않고 시에 흥분하게 한다.
33    나무의 외출 김용언 댓글:  조회:650  추천:0  2018-12-24
나무의 외출   김용언     달력 몇 장이 뜯겨져 나가고 시침 몇 개가 부러지고 드디어 초침까지 곤두박질 친 후 나무 꼭지에는 서너 개의 바람이 펄럭인다 외롭다는 건 나무가 나무 밖의 세상에 서 있을 때였다   여름이 농익을 무렵 화려하던 나무는 뱀의 허리처럼 구불거리고 드디어 가까운 길도 아득해진다   외출을 시작하려나 보다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몇 장의 마지막 메시지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이젠 시퍼렇게 날이 선 고독을 아침 인사처럼 받아들일 모양이다   가을로 서 있는 나무 이미, 나무는 나무 밖의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나무는 고정된 ‘장소’를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식물’이다. 그러나 나무가 고정된 ‘장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나무에게 ‘시간’이라는 절대상황을 부여하면 ‘움직임’을 시작한다. 「나무의 외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째, 위의 시는 1-4연에서 식물인 나무에게 ‘시간의 흐름’이라는 변수를 주어 나무의 ‘환경’과 ‘형태’를 바꾸고 있다.   1연 1-3행: ‘달력 몇 장이 뜯겨져 나가고/ 시침 몇 개가 부러지고/ 드디어 초침까지 곤두박질 친 후‘   2연 1행: ‘여름이 농익을 무렵’   3연 3행: ‘몇 장의 마지막 메시지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4연 1행: ‘가을로 서 있는 나무’        둘째, 위의 시의 주제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 4-6행:  ‘서너 개의 바람이 펄럭인다/ 외롭다/ 나무 밖의 세상에 서 있을 때’   2연 3행: ‘가까운 길도 아득해진다’   3연 4-5행: ‘시퍼렇게 날이 선 고독을/ 아침 인사처럼 받아들일 모양’   4연 2행: ‘나무 밖의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셋째, 위의 시는 ‘겨울 —> 여름 —> 가을’로의 시간이동 과정에 따라 나뭇가지와 줄기는 자라 ‘장소이동’과 ‘형태변화‘를 동시에 진행한다. ‘시간’은 나무를 자라게 하고, 추위에 떨며, 나뭇잎을 떨어뜨리게 한다.    시인이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간이동’은 ‘공간이동’을 유도하여, 운동감을 준다. 또한 위의 시는 상황만 제시하고 있을 뿐, 설명적이지 않다. 생의 허무와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한 ‘나무는 나무 밖의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는 문장은 압권이다.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는 표현법은, 낯설고 직관적이고 아름답다.
32    사라지는 길 / 박소원 댓글:  조회:745  추천:0  2018-12-24
  사라지는 길     박소원     저 속까지 마를 대로 마른 단풍잎 계절 끝까지 각자 한 가지 색만 쓰고 있습니다   전깃줄 위로 빈 가지를 세우는 덩치 큰 나무 밑에서 나는 몇 권의 일기장을 불태웁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색만 쓰던 형은 결국 정신요양원으로 나는 멀리서 형을 보내는 길로 들어섭니다   바람이 붑니다 붉은 잎사귀들 솟구치는 불길 위로 뛰어내립니다 두툼한 내 일기들도 벌겋게 한 가지 색만 쓰며 사라집니다.           지하철에 걸린 시를 읽으며, 어떤 연령층이 읽어도 이해되는 시, 그러나 졸렬하거나 유치하지 않은 시, 진정성과 감동이 있는 시를 목표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박소원 시에서 대중과 시인이 꿈꾸는 정직하고 쉬운 언어로 쓴 감동적인 시의 요소를 본다, 거기다 사유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위의 시는 쉬운 생활어로 씌어졌다. 구성도 단일하다. 어조도 ‘―습니다’체의 고백적 문체가 담담하다. 복잡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시의 감정은 복잡하다. 화자와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형의 ‘인생’이 있다. 진정성과 깊이가 있다. 가족사가 아프다.   위의 시는 철저한 ‘사물시’다. 2연 ‘전깃줄 위로 빈 가지를 세우는/ 덩치 큰 나무 밑에서/ 나는 몇 권의 일기장을 불태웁니다.’ 부분을 눈여겨보자. ‘일기장을 불태운다’는 단순한 ‘그 사실’은 ‘정리한다, 청산한다. 잊는다. 버린다, 아프다’ 등 여러 ‘감정의 전이’를 파생시키며 연상작용을 한다. 독자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1연과 4연에서 보여주는 ‘색’에 대한 ‘사유’도 힘 있다.     저 속까지 마를 대로 마른 단풍잎   계절 끝까지 각자 한 가지 색만 쓰고 있습니다(1연)     두툼한 내 일기들도   벌겋게 한 가지 색만 쓰며 사라집니다.(4연)     다음, 4연으로 구성된「사라지는 길」의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의 중심어― 단풍잎, 색   2연의 중심어― 일기장을 불태우다   3연의 중심어― 형, 정신요양원   4연의 중심어― 바람, 붉은 잎사귀, 일기, 색     이 시의 중심어를 압축하면 ‘일기장-형-정신요양원-색’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소원 시인은 화자를 여성인 ‘언니’를 버리고 남성인 ‘형’으로 치환하였다. 상담심리에서는 ‘성’을 바꾸는 것을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해석하여 정신병 증후군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정신분석적 심리분석 시각으로 보면 ‘정신요양원’과 ‘형’은 밀접한 관계성을 가진다. 위의 시는  ‘설명적이지 않’다. 시시콜콜 ‘형’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놓지 않았다. 시를 읽는 독자는 아픈 형을 상상력의 세계로 끌어들여, 소설보다 긴 스토리를 재구성하며 궁금해 할 것이다. 단절이 주는 극적인 효과다. 아직 다 타버려 재가 되기 전에, 일기장에 남아있는 곧 사라져버릴 ‘색’에 대한 비밀들을 들추어 읽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시는 가지치기를 할수록 선명해진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가족관계’의 ‘상처’를 시인은 홀로 꽃 피우려 애쓰고 있다.   박소원 시의 저력을 느낀다. ‘클로즈업’과 ‘가지치기’ 기법, 12행의 짧은 시가 주는 파장이 깊고 선명하다.
31    꽃을 위한 예언서 / 강영은 댓글:  조회:750  추천:0  2018-12-24
꽃을 위한 예언서                                                       강영은     초저녁별과 나 사이, 꽃잎 위를 기어가는 투구벌레의 등이 꼭짓점이다. 제 등이 꼭짓점인지 모르는 황금 갑옷이 반짝일 때마다 막 피기 시작한 꽃잎이 휘어진다.     곡선을 봉인한 날개 속에 죽음이 유지되기를 원할 뿐, 꽃잎을 덮고 있는 어둠을 보지 못한 당신은 에게해의 하늘을 건너 온 별빛이라고, 노래한다.     핀다는 것은 경배 받는 자이며 경멸 받는 자의 노래, 대지가 받아 적는 어둡거나 환한 문장이라는 걸, 나는 말하지 못했다.     순간의 영원 같은 꽃의 화엄에 양 날개를 묻은 투구벌레처럼 당신은 영원히 입을 다물 수 있나,     사랑에 대한 최초의 예언서는 알지 못하지만 삼각형의 문장을 접는 당신의 입속으로 붉은 모가지가 툭, 떨어진다.     곡선으로 피었다 곡선으로 지는 꽃,     태양의 문신을 몸에 새긴 투구벌레는 검게 빛나는 도리아식 기둥을 숭배할지 모르지만 꽃의 신전을 삼킨 당신을 나는 지평선이라 부른다.    * 2011년 웹진 시인광장 선정 작품.       ‘꽃’을 노래한 시는 비유와 상징어로 이루어진다. ‘꽃은 ‘사랑’이다‘ 라는 등식을 대입한다면, 꽃은 시의 영원한 ‘은어’다. 위의 시의 ‘꽃’은 사랑에 대한 적나라한 표출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자동기술기법의 예리한 문장력으로 형상화하였다.   위의 시의 구조를 분석하여 보자. 먼저 각 연의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 별, 나, 꽃, 꼭짓점, 투구벌레, 휘어지다   2연- 곡선, 봉인, 죽음, 당신, 어둠, 별빛   3연- 핀다, 경배, 경멸, 어둠, 환함   4연- 순간, 영원, 꽃의 화엄, 투구벌레, 당신, 영원한 침묵   5연- 사랑, 예언서, 삼각형, 당신 입, 붉은 모가지   6연- 곡선, 피다, 지다, 꽃   7연- 태양, 문신, 숭배, 신전, 당신 지평선   위의 시 1-7연의 문장을 분석하여 보면, 제목 ‘꽃을 위한 예언서’는 ‘사랑에 대한 예언서’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시작, 행위, 배반, 소멸’까지 사랑의 모든 과정을 ‘7연’의 짧은 시 속에 완전하게 내포하고 있는 ‘표현’이 놀랍다. 지금까지의 진부한 사랑론이 아니다. 구질구질 설명적이지도 않다. 사물이 말하게 하는 ‘표현주의’ ‘사물시’다. 사랑의 ‘상징성’과 ‘의미화’를 실현하며, ‘객관화’까지 실현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또 다른 구조는 반어적 표현법이다. 반어적인 사랑의 본질을 관통하였다.   1연- 피다, 지다/ 2연- 어둠, 빛/ 3연- 경배, 경멸, 어둠과 빛/ 4연- 순간, 영원/ 6연- 피다, 지다/ 7연- 태양, 지평선      강영은의 시는 위대한 다. 구조와 표현, 철학이 있다. 사랑의 배반과 절정, 소멸을 다루면서도 대상을 향한 저주와 원망, 분노가 없다. 감각적 미의식이 객관화되었다. 각 연들은 ‘중의적 2중구조’로 표현의 극치를 이루며 연결되었다.  
30    꽃들은 아직도 춥다 / 박소향 댓글:  조회:699  추천:0  2018-12-24
꽃들은 아직도 춥다   박소향   흘러도 흘러도 누가 뭐랄 것 없는 새벽 강에서 꽃들의 떨리는 입술을 만났다 언제나 먼저 다가서게 하는 꽃들의 눈을 보았다   가끔은 그리운 사람의 이름으로 서 있기도 하다가 조용히 제 이름을 내려놓는다   꽃들은 저마다 제 몫을 다하여 삶을 누리다 간다 그러나 잊히는 것은 아니리 그 어디에 향기로 남아 문득 바람으로 바다로 섬으로 울음을 참았으리   보라 저 만발한 들에 띠를 두른 꽃들이 종종걸음으로 기어코 볓빛 하나 따라 나선다 질러가던 바람도 배고픈 달빛으로 누웠다   꽃들은 아직도 춥다         박소향의 전원시는 겸손하고 따뜻하다. ‘그대, 너’는 ‘자연, 신, 님, 절대자’로 치환하면 의미가 증폭된다. 생을 터득한 지혜자의 눈빛이 고요하다. 맑은 신앙과 명상 뒤에 체득한 소박함이다.    전원생활을 하며 직접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전원시집’ 한 권 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일찍 밭에서 삽질을 해 본 시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안다. 자연이 주는 힘은 단순함이다. 먹고 자고 땅 파고, 벌레 잡고 풀 베고.   위의 시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버림의 미학’이 있다. 꽃처럼 귀하게 대상을 존중하는 ‘존재의 미학’이 있다. 춥고 배고픈 날의 가난을 향한 ‘그리움’이 있다. 꽃의 향기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향내를 가리어 내는 ‘소박한 정열’이 있다. 위의 시는 마지막 연이 이 시의 주제어다.     꽃들은 아직도 춥다     생의 ‘허기, 욕망, 열정, 좌절, 인내, 희망…’ 여러 감정과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 한 행의 시어는 어떤 ‘관념’도 성립시킬 수 있는 무한한 ‘확장적 의미어’ 구절이다. 이 짧은 시어 한 구절이 긴 대하소설 분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9    詩 / 박수현 댓글:  조회:704  추천:0  2018-12-24
詩 박수현 당신은 뒷골목 담배가게 한켠에서 나를 훔쳐보는 치한 온 몸을 훑는 눈길에 내 피돌기는 화들짝 빨라지지 당신은 상한 통조림에서 뽑아낸 신경독 이마며 눈가의 주름 다림질하듯 펴준다며 반평생 나를 홀리지 당신은 나의 배후가 된 저녁 종소리 세상 가장 구석진 곳까지 따라온 불길하고도 황홀한 呪文 나는 당신의 캄캄한 입술 온갖 체위로 서로 더듬다가 한 백년쯤 깊디깊은 묘혈 속에 나, 머리채 잡힌 채 매장되고 싶지   시인과 詩(시)는 어떤 관계일까? ‘시 쓰기’에 대한 ‘시’작품을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편쯤은 써 보았을 것이다. 또한 아직 못 써 보았다면, 시인 자신이 시를 쓰면서 체험한 나름의 시론에 입각한 감각적인 ‘시’를 남기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시인과 시는 천형의 무속인과 영매처럼 ‘운명적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 詩(시)와 설레는 연애질을 하든, 중독증에 걸렸든, 집착 증후군을 앓든 간에 스스로 행복하여 택한 천형임에 분명하다. 김기림에게 어느 시인이 “그 나이에도 아직도 철이 안 났느냐?”고 놀렸듯이, 시는 어린 마음에서 싹이 튼다. 늙고 병든 마음에서는 시의 싹이 트지 않는다. 아직 덜 여물고 약한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시가 발화한다.   시인은 홀린 듯 평생을 시에 애착을 갖는다.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신경쇠약에 걸릴 지도 모른다. 릴케는 ‘젊은이여, 잠 안 오는 밤에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밤’에 시를 쓰라고 권고하였다. 또한 프로이드는 ‘사회화에 실패하여 부적응을 겪는 사람이 정신적 고통과 갈등을 예술로 ‘승화’하여 표현한 것이 ‘시’라고 하였다. 독자가 작가의 사회화의 부조화로 인한 내면의 상처에 공감하는 과정을 ‘감동’이라고 정의하였다.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견딜 수 있을까?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황홀한 마법의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무당이 공수를 받듯, 시인은 영감을 받아 언어의 직조를 짠다. 시를 쓰는 작업은 가장 돈이 적게 드는 예술행위다. ‘가난한 시인’이란 말은 훈장처럼 명예롭게 현재까지 전수되어 오고 있다. 시를 쓰는 작업은 가장 직접적이고 싸게 비용이 지불되는 ‘자가 정신(정서)치료’ 수단이다.   위의 3연 3행처럼 시는 ‘불길하고도 황홀한 呪文’임에 분명하다.   나는 당신의 캄캄한 입술   온갖 체위로 서로 더듬다가   한 백년쯤 깊디깊은 묘혈 속에   나, 머리채 잡힌 채 매장되고 싶지   박수현의 시를 읽고, 위의 몇 가지 시론을 전개해 보았다. 성실하게 묵묵히 시만 쓴 박수현 시인에게도 시의 끼가 보인다.
28    철쭉나무 그늘 / 김선진 댓글:  조회:708  추천:0  2018-12-24
철쭉나무 그늘                                                                                      김선진                                                                             장맛비 바삐 오는 축축한 발걸음 소리                   이른 아침, 베란다 건너 철쭉나무 밑 음습한 그늘 속에서 화다닥, 놀란 만삭의 길 고양이 얼결에 줄줄이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아침나절 까치 울음소리   몸을 푼 철쭉나무 그늘을 벗어나 측백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몸을 누이고 뜨거운 여름, 하오 고단한 산후조리   꼬물꼬물 다섯 새끼들 축 늘어진 어미 배를 딛고 젖꼭지를 찾느라 분주하다 어미는 마음껏 몸을 부려두고 가슴을 쭈욱 펴고 젖꼭지를 새끼 쪽으로 밀어준다   아무도 떼어내지 못할 젖꼭지   채 눈도 뜨지 못하는 새끼를 종일 핥더니 오늘, 퍼붓는 폭우 뒤에 행방 묘연   어디로들 갔나,   고양이 그림자를 놓친 철쭉나무 그늘           시인의 길고양이를 보는 시선이 나른하고 길다, 따뜻하다.     우장산 공원 영산홍나무 밑에도 세 마리 새끼고양이가 살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으슥한 어둠을 사랑하는 족속들이다. 의자 밑에 엉덩이를 드러내고 숨어버린 아기같다. 사람들에겐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걸 모르는 걸까?   화려한 수식어를 남발하지 않아도, 깜짝 놀라 새끼를 주루룩 낳는 길고양이 모습을 적나라하고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우습고 재미있고 측은하고 애틋하고 처절하고 믿음직스럽고 아련하고 애잔한   ‘새끼를 낳는다’는 단순한 ‘사실’이 왜 이렇게 감동스러울까?   사실적이 주는 힘이다. 명징하고 철학적이다.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순간적으로 포착한 진실은 감동의 파장이 길다.   가슴을 쭉 펴고 젖꼭지를 내어주는 어미 고양이의 자세가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절망의 끝에서 태어나는 희망처럼. 눈물나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비쩍 말라 비실비실 말라갈지라도 제 새끼를 잘 거두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섯 마리나 키우려면 어미 길고양이는 먹이를 구하기도 힘들 거다. 요즘 음식물 분리수거로 먹을 게 없는데.   시인의 궁금증은 몇 날이고 고양이를 눈으로 찾고, 관찰하고, 지켜볼 것이다. 더 마음이 내키면 생선 몇 마리 넌지시 건널지도 모를 일. 결국 데려다 안방에서 기를지도 모를 일.      고양이 그림자를 놓친   철쭉나무 그늘     위의 시 8연은 늘 고양이를 궁금해 하는 ‘철쭉나무 그늘’에게 슬며시 시인의 마음을 실어놓은 것. 시인의 마음이 자못 어떠해야 하며, 시의 눈은 자못 어떠해야 하는지 이 시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웅변하지 않고 넌지시. 은근하게. 시인의 성격대로. 무기교의 극치다.
27    불꽃나무 한 그루 안차애 댓글:  조회:825  추천:0  2018-12-24
불꽃나무 한 그루   안차애   마이크로 월드 잡지에 찍어 논 뇌동맥 칼라 사진을 보고서야 누구나 자기의 하늘이 꽉 차도록  가지 많은 나무 한 그루씩 키운다는 걸 알았다    이글이글 타는 용광로 쇳물빛 혈관이 위로위로 불꽃 날름대며 타오르고 타오르다 굽이치며 굽이치다 제 몸을 터뜨려 새 가지를 내면서 불타는 나무 한 그루로 자라고 있었다   사랑이야! 소리치며 힘차게 뻗어가던 가지 하나가 슬픔인걸,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큰 가지에 눌려 휘청 구부러진다 휘어지며 생긴 작은 매듭 하나, 둘, 셋...... 종양처럼 나비처럼 열매처럼 굽이굽이 맺혀있다 신기하기도 하지 엉겨도 끊기지 않고 휘어져도 꺾이지 않은 나무 가지들의  저 먼 끝에선 푸른 노을이 피어오르고.   붉게 독 오른 내 사랑이  더 붉게 무너져오는 네 슬픔을 휘감아 블루마블,  둥그런 천구에 푸른 별빛으로 연신 스며들고 있다 청남빛 둥근 세상 한 귀퉁이로 기어이 타오르고 있다    뇌혈관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뇌관이 목에서 머리꼭대기로 불꽃처럼 마구마구 솟구치고, 양쪽 귀 옆에서도 마구마구 솟구치고, 정수리쪽으로 뻗은 빨간 뇌혈관 사진을 보며 놀란 적이 있다. 위의 시처럼 정말 한 그루 ‘불꽃나무’였다.     안차애의 시는 ‘빠르다, 붉다, 굵다. 달린다’   재해석된 문장들이 급박하게 밀려드는 물살처럼 솔직하다      사랑이야!   소리치며 힘차게 뻗어가던 가지 하나가   슬픔인걸,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큰 가지에 눌려 휘청 구부러진다   휘어지며 생긴 작은 매듭 하나, 둘, 셋......   종양처럼 나비처럼 열매처럼 굽이굽이 맺혀있다     위의 시 3연 1-6행은 생을 단막극으로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희망이 절망의 전환점이 되는 사랑의 꺾은선 그래프.  ‘붉게 독 오른 내 사랑이/ 더 붉게 무너져오는 네 슬픔을 휘감아/ 블루마블,’로 부딪치고 상처입는 사랑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안차애의 시는 급박한 삶의 현장을 스케치한다.‘붉게 독 오른 내 사랑이’(4연 1행)에서와 같이‘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현재의 ‘나’를 등장시켜 삶의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강조한다.   안차애 시를 만나면 누구나 창자를 모두 꺼집어내어 속내생각을 시인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같다. 이내 잠재된 생각까지 들킬 것 같다. 재해석된 문장들은 화끈하고 솔직하게 다가오고, 시인에게 생의 화두를 화끈하고 솔직하게 풀어놓어야 할 것 같은 ‘충동감’을 느낀다.  
26    보자기 / 김유선 댓글:  조회:713  추천:0  2018-12-24
보자기   김유선     보자기는 싸기 위해 비어있다 감싸주기 위해 종일을 비워놓는 그녀 온종일을 기다려서 무엇이든 감싸주는 그녀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그녀.                    여백과 압축, 사유의 사다리 오르기 관점     김유선의 시를 읽으면 들국화 가득 핀 들판에 서서, 별을 보며 심호흡을 하는 소녀의 싱싱한 다리가 생각난다. 그의 시에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겉치레가 없다. 건강하고 씩씩한 힘이 있다. 김유선의 손이 닿으면 관념도 아름다운 꽃이 된다.   김유선 시의 관념은 인간과 인간성 회복이다. 그 관념은 사람의 향기를 품고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목적성과 시인이 좋아하는 표현주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시인이다. 위의 시도 지하철역에 전시하여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시다. 또한 안방 침실 위에 걸어 놓고 외우고 싶은 시다. 치솟는 가슴속 불길을 다독이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하얀 손. 다소곳한 손.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6행)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그녀.(7행)    위의 시는 ‘여백과 압축, 사유의 사다리 오르기 관점’으로 그녀의 삶을 펼쳐놓고 있다. 위의 시 6-7행 두 줄은 대하드라마보다 긴 스토리를 함축하고 있다. 재해석된 짧은 문장, 짧은 행, 짧은 여백의 공간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상처. 흰 치마, 흰 고무신 내 어머니들의 삶이.   나무 사다리를 꼭 붙들고 밑을 내려다보지 않고, 위로만 올라가는 위기의 삶을 살아낸 여인의 도전이 보인다. 과정을 포기하고 자식을 버리고 이혼하였더라면, 오늘의 ‘나’와 ‘우리’는 없다. ‘여자’보다 위대한 ‘어머니’를 선택한 그녀. 오늘 과정을 포기한 여자는 내일의 결과(열매)를 알 수 없다. 흔들리는 사다리 위에서 얼마나 절망하였을 것인가? 어지러움과 위기를 견딘, 그 종착지에는 아름다운 박꽃이 별빛에 반짝일 터. 하얀 박덩이가 어서 따가라고 넌지시 말해 줄 터.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5행)   무엇이든 감싸주는 그녀(4행)   시인의 자서전을 읽는 것처럼 경건하게,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은 그녀의 보자기’를 펼쳐본다. 긴장되는 손. 눈. 마음.   아귀가 딱 맞는 아름다운 마음꽃 보자기.
25    저수지에 빠진 의자 / 유종인 댓글:  조회:698  추천:0  2018-12-24
저수지에 빠진 의자   유종인   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 의자가 저수지 푸른 물속에 빠져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아온 날들을 살얼음 끼는 물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온몸을 물속에 던졌던 것이다 물속에라도 누워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   의자가 물속에 든 날부터 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 물은 누워서 흐르는 게 아니라 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 서서 흐르고 있었다   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 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 슬몃 건너편 산 그림자를 앉히기 시작했다   제 울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 둥지인 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시’의 의자에 앉은 ‘사유’의 물살     ‘저수지에 빠진 처녀’ 이야기라면, 달콤한 사랑과 배반이 흥미를 끌 것이다.   ‘저수지에 빠진 남자’ 이야기라면, 실직의 고달픔, 가장의 비애가 출렁일 것이다.   ‘저수지에 빠진 할머니’ 이야기라면, 자식의 짐이 되기 싫어 택한 죽음의 방법으로 수면제보다 물이 더 안전한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뜬금없이 ‘저수지에 빠진 의자’가 주인공이다?   유종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저수지에 둥둥 떠다니는 보잘 것 없는 의자에 집중하고 있다.  1. 의자는 다리가 부러졌다  2. 의자는 물속에 빠져있다   저수지라는 갇힌 공간에서, 다리가 부러진 의자는 헤엄을 쳐서 저수지를 벗어날 수도 없다.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갈 힘도 없다. 그러나 평생 남의 엉덩이만 받아주던 의자는 누군가의 버팀목이었다. 누군가의 의지처였다. 지금, 다리가 부러진 의자는 이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양수같은 저수지에 첨벙 뛰어들어 한 많은 생을 마감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누군가의 뒤에서만 존재하던 다리병신 의자는 누워서 편히 쉬고 싶은데 편히 죽을 수도 없다. 그 힘없는 절름발이 의자에게 ‘물줄기가 기대고, 산 그림자가 앉고, 물고기들이 둥지로 삼으려 모여’든다. ‘제 울음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5연 1-2행)게는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이 있다. 죽음 이후에도 끝내지 못한 의자의 삶이 있다. 하늘과 땅, 물과 물고기들을 의자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아니 이미 죽었는데), 죽음 이후에도 부양하고 있다.   아니, 의자는 영원히 타인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짊어진 능력자로, 긍정의 힘으로 해석하여야 할까?   ‘의자’는 많은 시인들이 사랑한 시적 대상이다. 관념적 의자, 사물의 의자, 바닷가에 버려진 의자, 공사장에 버려진 의자, 삐걱거리는 의자, 필자의 ‘빨간 손바닥의자’까지. 그러나…   유종인의 ‘의자’는 가장 성스러운 의자다   유종인의 ‘의자’는 사유하는 의자다   유종인의 ‘의자’는 봉사하는 의자다   유종인의 ‘의자’는 유종인 자신이다   유종인의 ‘의자’는 유종인의 삶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모든 우주와 자연, 인간을 앉히고도 넉넉한 그의 인품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질 것이다.     ‘시’의 의자에 앉은 ‘사유’의 물살이 시원하다.   연과 연 사이, 행과 행 사이   찌든 생활의 때를 말끔하게 씻어내보자.  
24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 강인한 댓글:  조회:753  추천:0  2018-12-24
시가 있는 마을- 강인한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강인한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 골목길에서 마주친 깜찍하고 상큼한 민트 향은 리본으로 치장한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이에요.   초보에게 딱 맞는 체리핑크는 오전 열 시에 구워져 나오지요 십 대들이 많이 구매하지만 놀라지 마셔요, 때로는 삼, 사십 대 아저씨가 뒷문으로 들어와 찾을 때도 있어요.   육질 좋은 선홍색의 연애는 오후 두 시 이후에 뜨거운 오븐을 열고 나와요. 구릿빛 그을린 사내가 옆구리에 낀 서핑보드 질척거리는 파도 사이 생크림 같은 흰 거품은 덤이지요.   아무래도 못 잊는 블루 그중에서도 뒷맛이 아련해 다시 찾는 코발트블루는 땅거미 질 무렵 산책로에 숨었다가 뛰쳐나오기도 하지만요.   가장 멋들어진 연애는 한밤의 트라이앵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라지는 삼각관계로 구워내 당신의 눈물에 찍어먹는 간간한 마늘빵 그 맛이지요.       강인한의 시는 두 부류로 나뉜다. 건조하고 거칠게 밀어붙이는 재해석된 사회 고발성 시와 부드러운 키스처럼 달콤하지만, 선명하고 이성적인 서정시로 분류된다. 굳이 후자의 시를 선택하여 사랑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금은 밤 11시 반, 추운 어둠의 계절 속에 홀로 서서, 사랑을 갈구하며 인터넷 배에 매달려 표류하는, 현대인이라 불리는 족속으로 살고 있는 ‘나’의 현주소를 고발하기 위함이다.   2.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아무러면 어때 사랑시대, 급하게 싼값에 포장되어 각 가정으로 배달되는 택배사랑을 매일 받는데도, 이 기쁜 사실을 망각하고 착각하여 슬픈 사랑의 주인공인양 ‘나’를 거듭 ‘실연자’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3. 달리, 더 자세히, 부연설명하자면, 사랑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건 분명한데, 왜 이렇게 외롭냐는 거다? 왜 ‘너’가 바로 ‘나’ 옆에 꼭 붙어 있는데 왜 이리 불안한가? 묻고 싶기 때문이다.   4. 그러나, 또한, 그리고, 그러면서, 사랑의 부재 속에서도 불륜 드라마 몇 편을 매일 제작하는. 아직도 진정성있는 진지한 사랑을 기다리는 희망고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예정된 결말의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5. 그런데 오늘 ‘나’는 텔레비전 주말 연속극에 흥분하여, 수목 드라마, 화목 드라마, ‘다시보기’ 클릭 매일 연속극 클릭.      아직 늙지 않은 이성을 억누르고, 감정을 부추기는 몽매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마늘빵 사랑도 놓쳐버린 상실의 주인공이라 시인하기 때문이다.     강인한이 해석한 현대인의 사랑 색깔은 핑크, 체리핑크, 선홍색, 블루(코발트 블루) 네 가지다. 강인한이 명명한 사랑의 맛은 민트향, 케잌맛, 서핑보드, 흰 거품, 눈물 젖은 마늘빵 맛이다. 수만 가지 사람의 수만큼, 아니 하늘의 별 만큼 많은 사랑을 강인한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하였다.   1. 10대- 첫사랑, 민트향   2. 20대- 육체의 사랑, 체리핑크(때늦은 중년의 불륜 포함)   3. 40대- 선홍색, 위험한 데미지의 사랑(첫사랑을 찾아나섰다가 패가망신함)   4. 50대- 사랑과 전쟁 드라마의 주연배우, 막장 드라마 주인공이 자신이 되고 만다.   강인한의 사랑 시는 기지와 재치, 예리함 위에 올려놓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상큼한 초콜릿 맛이다.      사랑에 대하여… 논문을 쓰라면,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하라면 서울에서 태평양 건너, 미국 들렸다가 아프리카까지 가도 끝나지 않을 거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이 특급사랑일 테니까.   사랑아, 너를 경외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종족보존이라는 절대절명의 위엄을 지키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여 왔구나. 세상에 불륜과 거짓을 다 제거하고 순수사랑만 남긴다면, 아마 지구는 이미 멸종하고 말았으리라.   어떤 색깔이든 사랑이란 이름이 붙은 것들을 존경한다.   거짓사랑, 배반의 사랑, 미련의 사랑, 아첨의 사랑, 그 외 모든 사랑이란 이름들에 박수를 보낸다. 모태 솔로들이 자랑스레 ‘짝’이란 프로에 나와 공공연히 시위를 벌이는 이 살벌발칙한 시대에. 풍요하여 빈곤한 사랑을 위하여! 건배를 들자.     질문한다. 강인한 시인의 사랑은 지금 몇 시쯤일까? 그의 사랑시간 계산법은? 시인의 사랑 감정계산은? 지금… (컨닝하여 본 결과)아직 진행 중…행복. 젊고 건강하다. 아직도 살아있는 시인의 사랑을 위하여…건배! 짝짝짝,  
23    구름 위의 발자국 신현락 댓글:  조회:636  추천:0  2018-12-24
시가 있는 마을- 신현락 구름 위의 발자국 신현락 나비는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새는 죽어서 구름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아무도 꽃잎의 발자국을 보지 못 한다 꽃잎이 지고 나비의 날개는 비에 젖는다 나비를 비애의 그림자라고 명명하는 건 당신 몫이겠으나 여기부터는 구름의 영역이다 당신은 꽃잎을 밟으며 꽃잠에 들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구름의 문장을 해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름이 하늘색을 지우는 건 잠깐이다 한때 나는 구름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를 쳤으나 새들만이 그 너머로 날아갔음을 안다 꽃잎 위에 비 내리고 어제가 오늘이 되었다 시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나는 죽은 새를 들고 구름 위의 발자국을 맞히는 신궁을 기다린다           환상과 직관의 모자이크 액자 '나비'를 A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꽃’을 B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구름’을 C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새’를 D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신현락의「구름 위의 발자국」은 제목처럼 가볍고, 보드라운 A, B, C, D 이미지들의 모자이크다.  ‘나비, 꽃, 구름, 새’는 ‘가볍다’는 공통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 가벼운 ‘집합 이미지’들은 자칫 공상으로 흐르기 쉬우며, 표현주의와 감상주의로 흐르기 쉽다. 그런데 위의 시는 깃털처럼 가볍게 단어를 터치하면서도 시의 뿌리가 단단하고 깊다. 그 힘은 사물성에서 출발한다. 사물에 입힌 사유의 힘이다. 또한 ‘사물’에 행동과 행위를 줌으로써 ‘동적 이미지’로 ‘사실성’을 강화하고 있다.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나비의 날개는 비에 젖는다 꽃잠에 들 구름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를 쳤으 그 너머로 날아갔 비 내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나는 죽은 새를 들고 발자국을 맞히는 신궁을 기다린다 위의 밑줄 친 행위를 주도하는 문장들은 ‘공상’과 ‘상상’의 시적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좋은 비유는 관념보다 더 깊은 확장된 관념을 생산한다. ‘사물’과 ‘사실’에서 출발한 상상력은 시적 논리를 강하게 한다. 환상과 직관, 죽음과 현실, 과거와 현재, 상상과 이성, 과거와 미래가 한 공간에서 반짝이는 복합그림의 선명한 이미지액자가 환상적이다.
22    조각달 / 신규호 댓글:  조회:726  추천:0  2018-12-24
시가 있는 마을- 신규호   조각달      신규호       생각은 깜깜하고 태어날 듯 태어나지 않는다   견고한 알 하나 항문 끝에 보이고   대붕(大鵬) 한 마리 검은 나래를 펴 하늘을 덮고 있다   출산이 끝나면 타조의 알보다 클   생각 한 쪽은 파묻혀 보이지 않고   낡은 절 처마 끝에 풍경만 울어댄다   마르지 않는 눈물 한 방울              신규호의「조각달」은 스케일이 크고 우주적인 심상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서정주의「동천」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분류하여도 될 정도로 확산적 이미지가 강하다.「조각달」은 제목과 내용에서 1-7연까지 각 연들이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각 연들은 제목과 맞물려 확산적인 생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원초적 자연주의와 만난다.   1연- 생각의 탄생, 그러나 ‘생각’은 어떤 ‘다른 사물’을 대입하여도 등가법칙이 성립된다.   2연- 알과 항문, 생각의 시작과 끝, 예수의 알파와 오메가 이론을 대입하면 우주적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3연- ‘대붕(大鵬) 한 마리 검은 나래를 펴 하늘을 덮고 있다’ / 천지창조의 이미지가 강하게실존적 위기감을 조성한다. 탄생을 위한 알의 파괴,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서처럼. ‘알은 세계다’, 탄생을 준비하는 파괴적 알의 이미지가 드라마틱하고 원대하다. 4연- ‘출산이 끝나면/ 타조의 알보다 클’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적 이론을 대입하여 보면 ‘생각은 우주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우주다’ 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우주적 스케일의 생각이 출산될 준비를 하고 있다. 신의 탄생, 천지창조, 신화적 이미지가 강렬하다. 5연- ‘생각 한 쪽은 파묻혀/ 보이지 않고’/ 광대한 우주에서 다시 돌아와 ‘나’에게 집중한다. 출산하여 터트리면 ‘우주’적 스케일의 시가 탄생할 텐데, 잡힐 듯 파묻힌 생각의 꼬리가 열리지 않아 ‘시인’은 고뇌한다. 6연- ‘낡은 절 처마 끝에/ 풍경만 울어댄다‘/ 급박하게 원대한 목표를 향해 상황을 몰아가다가 ‘여유‘를 되찾는다. 현실의 ’자아‘로 돌아온다. ’낡은 절‘, ’처마 끝‘, ’풍경소리‘는 ’여백‘과 ’여유‘다. 쉼의 공간을 주는 시 작품은 ’타자‘와 ’세계‘를 품어 안는 공간이 크다. 신규호 시인의 ’여유‘와 ’큰그릇‘ 됨됨이를 본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관찰하기‘와 바라보기’다. 7연- ‘마르지 않는/ 눈물 한 방울’ / 7연은 ‘감성’이다. ‘눈물’은 패배와 후퇴 같지만, 한발 물러서서 다시 기다리는 여유다, 반성이다, 독백이다. ‘눈물’은 인간의 근원적 순수며 태초의 모습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으앙’ 우는 울음이다.   신규호의「조각달」은 태초의 이미지들의 종합 선물세트다.   시인의 우주적 시나리오 연극 공연을 넋 놓고 관람하였다.   고개를 숙이고, 생각여행을 떠난다.       “아, 태초의 모든 시작과 끝은 ‘울음’과 ‘눈물’인 것을…”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21    은어를 낚다 / 정 호 댓글:  조회:618  추천:0  2018-12-24
은어를 낚다   정 호   회야강 자갈모래 물길 낚시 드리우고 은어를 낚는다 한순간의 전류가 릴을 타고 흐르길 기다리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만 찌를 물고 있다 담배 한 대 태우는 동안 또 한 무리의 은어떼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다 바야흐로 짝짓기철이다 자갈모래 퍼내며 산란탑을 쌓다가  물낯에 내 그림자만 얼비쳐도 은회색 배떼기만 번뜩번뜩 뒤집으며    직유의 물살 환유로 따돌리며      순식간에 행간을 빠져나가 글자 뒤로 숨는 사금파리떼들 어디서 오이꽃이 피는가 입안에 오이수박향 가득 괸다 물가장자리로 그 꽃들을 끌어내고 접었던 물길 다시 펼친다 물낯 같은 종잇짝 위로 줄글들 돌돌돌 흘러내린다 냇바닥, 이저리 널린 자갈 글 틈 사이에 숨은 수박향 담백한 은어隱語 몇 마리 낚아올린다             여유, 은유, 환유의 물빛 언어가 빚는 말그물     강태공이 낚싯대 드리우고 낚아 올리는 건 물고기가 아니다. 낚싯대에 걸린 것은 서러운 달빛 한 조각, 구름 한 조각, 잃어버린 시의 조각들일 터. 그 조각들 모아서 엮으면 달빛도 물비늘로 반짝일 터.   정호의 시는 낚시질처럼 급박하지 않다. 은유와 환유가 담배 한 모금 피우는 시간처럼 여유롭고 한가하게 오간다. 시를 낚기 위하여 부러 낚시질 놀이를 펼쳐 놓고, 시가 걸리든 말든 짐짓 외면하고 풍경이나 구경하는,   정호의 시는 오이수박 맛이다. 무상무심의 물맛이다. 물은 무향무맛이지만 몸에 좋다. 아프게 찌르지도 왜곡도 자극도 없다. 바람의 향기처럼 자기 자신은 무심한데 타자의 향기로 은근한 풍유로 이끈다.     ‘은회색 배떼기만 번뜩번뜩 뒤집으며’     ‘산란’과 ‘짝짓기’도 은근한 물맛이다. 탐욕과 욕정과 급경사의 갈등구조가 없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은어떼’의 물비늘이 환상처럼 펼쳐내는 아름다운 시의 구조가 숨어 있다. 그것은 시인의 삶에서 보여주는 ‘여유’ 다. 정호의 시에는 정서, 정신이 살아 있다. 그의 삶도 물질을 애써 외면하며 짐짓 ‘여유’를 부린다. 그이 시에는 은유와 환유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게 있다. ‘수박향 담백한 은어隱語 몇 마리 낚아’ 올려 매운탕 끓여 먹고 싶은 시맛이 있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20    소금꽃 손해일 댓글:  조회:854  추천:0  2018-12-20
소금꽃          손해일      신안 증도 슬로시티에 소금꽃 피었다 물 햇빛 바람이 살 섞은 열꽃 형체 없는 물 가두고 열고 풀어    염부가 돌리는 무자위 수차와 당그래질  무한궤도로 증발한 지상의 땀꽃     한때 바다였다 솟구친 희말라야 연봉 아득한 만년설 눈보라에 흩날려  몽골초원 고비사막 하늘땅 홀리는 신기루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 순장된 암염들이  눈사람 예띠의 이른 아침 키 쓰고 소금 얻는 오줌싸개의 홍안에도 피었다     득도한 부처 염화시중의 우담바라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사해(死海) 갈릴리 물위를 걷는 예수 썪지 않는 빛과 소금       찬연한 생명꽃            ‘소금꽃’은 ‘생명꽃’이다. 이 시의 주제다. 첫 연과 끝 연, 알파와 오메가다. 생활에서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매일 만나는 것이 소금이다. 그러나 마냥 잊어버리고 존재감이 없는 것이 또한 소금이다. 있지만 없는 것, 그림자 같은 존재가 소금이다. 소금에 대하여 말하라고 하면 누구나 한 바가지 분량의 소금관념, 소금은유, 소금비유를 쏟아낼 수 있다.   그러나 손해일은 그 흔한 소금 이야기를 종횡무진 하면서 관념에 빠지지 않는다. 작고 흔한 보잘 것 없는 것을 ‘히말라야/ 아득한 만년설/ 부처 염화시중의 우담바라/ 사해 예수’까지 자연주의와 우주, 종교론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쉬운 소재를 좋은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낯선 튀는 소재로 독특한 시를 쓰는 것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평범한 것, 만만한 것을 만만치 않게, 사물을 잡고 끈질기게 파고들어가서 근본까지 파헤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손해일의 「소금꽃」은 김치, 간장, 젓갈, 어떤 음식 속에 들어가서 이름 없는 무엇이 된 소금을 다시 끄집어내서 성분과 영양분과 원소를 분류해 놓은 것 같다.   시라는 음식은 최소단위 원소들을 소금과 잘 섞고 뭉쳐서 맛깔스럽게 접시에 구성미를 살려 차려낸 화려한 음식과 같다. 그 시의 구조가 집합적으로 어떤 이미지로 그려낼 지는 작가의 손과 눈, 감각이 어떻게 단어를 뭉치느냐 하는 기술에 달려 있다. 좋은 시는 비유와 관념이 스스로 혼자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손해일의 소금은 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연과 인물, 사건 속에 숨어서 자신의 존재를 녹이고 있다.   소금은 생활의 근본이며 기독교의 근본이다. 또한 자연의 근본이며 음식의 근본이다. 소금은 ‘희말라야 연봉’ ‘몽골고원 고비사막’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눈사람 예띠’ ‘오줌싸개’였던 ‘나’ 손해일에게까지 연결되는 맛의 근본이며 생명의 고향이다.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해석한 시 구성기법이다. 스스로 녹아서 스스로를 잊혀진 존재로 만들어낸다. 두리뭉실 섞어서 뭉쳐낸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9    교차로 Y 김인숙 댓글:  조회:866  추천:0  2018-12-20
교차로 Y    김인숙        8월의 교차로에 차들이 뒤엉켜 있다 노란 유치원차와 파란 활어차가 부딪쳐 난장판이 되었다    유치원 아이들이 노랗게 노랗게 엄마를 부른다 울음소리가 교차로를 뛰어 다닌다 물 밖으로 튕겨진 활어들이 아스팔트 바닥을 긴다 배를 뒤집고 거품을 내뱉는다   어디로 가란 말이냐 한낮의 햇살이 아스팔트를 녹인다 농어의 점이 점점 더 짙어진다 붉은 아가미의 탄식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광어의 배가 노랗게 익어간다    노란 모자를 놓친 아이가 농어를 들어 올려 품에 안는다 농어의 입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김인숙의「교차로 Y」는 제목이 감각적이며 실재적이다. 영문자 ‘Y’는 좁은 삼거리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든, 확산적 이미지를 가진 파장이 큰 제목이다. 시에서 제목은 매우 중요하다. 시를 한편의 영화라고 가정하여 보자. 설명적이거나 진술적인 제목은 우선 관객의 선택에서 밀린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제목이 많은 이유다. 글자 6자 영화는 성공하고 12자가 넘으면 망한다는 등 다양한 속설이 있다.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영화제목을 만나면 참 시적이라는 생각이 한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시를 쓰면 제목을 잘 붙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김인숙의 시에「다시 시작되는 천국」이란 제목의 시가 있다. 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실재로 그 시에는 등 여러 편의 영화제목이 등장한다.   김인숙의 시는 템포가 빠르다. 문장이 짧다. ‘―이다’체의 선명하고 단순한 문장을 던지듯  배열한다. 설명적이거나 지루하지 않다. 사실과 상황을 직설적으로 던진다. 시적거리가 먼 단어들이 벌이는 언어충돌은 낯설고 신선하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는 그녀의 재능과 달리 언어충돌을 많이 하지 않았다. 다만 극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사실과 사건을 아주 단순하게 보이는 대로 적는다. 시인은 화자의 느낌이나 감정이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위 시의 중심어는 ‘8월-교차로- 노란 유치원차-활어차-아스팔트-광어- 농어-노란 모자를 놓친 아이- 농어 입- 숨결’  10개의 단어가 전부다. 나머지는 문장을 만들기 위한 수식어들이다. 10개의 단어만 읽어도 여름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일어난 활어들이 벌이는 난장판이 생생하게 감지된다. 유치원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쟁쟁 울린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한 사실에서 극적 진실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긴 질문과 여운을 던진다. 10개의 중심 단어와 한 개의 질문. 이 시의 쿨한 매력이다. 시인의 잠재된 능력을 읽는다.       “노란 모자를 놓친 아이가 농어를 들어 올려 품에 안는다       농어의 입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8    積 ․ 3 양준호 댓글:  조회:852  추천:0  2018-12-20
積 ․ 3                                                      양준호          오늘도    나는    흑거미를 소리나게 밟아 죽였다     누군가    나의 눈빛을 읽고 가는 아직도   어린놈이    벽을 몇 번 두들기다 갔다     고요하다      오월이 숨찬 기氣를 내뿜고 가는   여기는 관악의 하반신이 시작되는……     고요하다      딸은 잘 있을까     고요.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던   무늬산호수꽃    고요.      고요하다                                                                                                             양준호는 시문학 시인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하이퍼시’ 동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하던 80년대부터 독특한 하이퍼시를 써 왔다. 양준호의 시는 상황시다. 실존적 단절과 절대고독을 으로 허공중에 단어를 던지며 의미를 함축한다. 시인의 시에는 대사와 반복어가 많다. 단어와 행이 짧다. 꼬리가 잘려나간 연 같다. 토막 난 단어들이  긴장감과 위기감을 준다. 축약된 연극 대본처럼 양준호는 설명을 버린다. 의미도 버린다.   양준호의 시를 읽으면 혼자 골방에서 울고 있는 소년을 보는 것 같다. 카리스마와 괴기스러움, 파격 속에 숨어있는, 어리고 상처받은 어린이가 보인다. 그 어리고 여린 것,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 그 도발과 반격이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단어와 단어는 단절되고, 연과 연도 단절된다. 단어들이 제각각 결합되고 사방으로 내던져진다. 그 단절된 것들의 구성 조합이 하이퍼시의 조건인 ‘리좀’을 충족시키고 있다.「積 ‧ 3」은 양준호의 작품 중에서 순한 편이다. 부사와 어미를 제목으로 쓴 시를 한권의 시집으로 엮을 만큼 역량 있는 시인이다.    시인은 희귀한 꽃 이름이나 사물 단어카드를 늘 가지고 다닌다. 7연의 ‘무늬산호수꽃’도 그런 열정으로 찾아낸 꽃일 것이다. ‘무늬산호수꽃’은 다른 꽃 으로 대체하여도 시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무의미 단어의 연결과 결합, 대체 가능한 단어들은 ‘무의미’와 ‘탈관념’을 주장하는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무늬산호수꽃’은 시와 환상적인 결합을 하고 있다.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는 무늬산호수꽃’에서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자율신경을 가진 시인의 감각을 본다. ‘무늬산호수꽃’은 ‘고요’와 만난다. 고요한 감성의 그림자를 만든다. 의도된 완벽한 계산이며 효과다.   양준호 시인의 ‘積’ 은 시집 한권 분량의 시리즈물이다. ‘흑거미’를 밟아죽이면 어떤 소리가 날까? 절대고요의 절대상황을 상상하여 보라, 시대를 잃어버린 고독한 시인은 칩거 중 거미 한 마리와 대적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과 단계는 실존적 절대상황이다. 절대고요가 먼저일까? 절대고독이 먼저일까?   ‘어린놈이 벽을 몇 번 두들기다 갔다’ 부분에 주목한다. ‘어린놈’은 손자이거나 은둔시인에게 전화를 거는 행세하는 어줍잖은 시인일지도 모를 일. 양준호 시인은 세상을 향해 벽을 여러 번 두들겼을 것이다. 미련과 실망 뒤 마침내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켰을 것이다. 침묵과 고요.   ‘관악의 하반신이 시작되는’ 봉천동 어느 적막한 골방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는 시인을 상상해 본다.   ‘딸은 잘 있을까?’   격리된 고요 속에서도 딸은 유일한 관심거리다. 자신의 분신에게만 소통의 의도를 갖고 있다.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던 무늬산호수꽃’의 그림자, 시인의 속눈썹 위에 걸려 있다. 지친 고요가 심심하고 고단하다.   양준호 시인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 시인이다. 하찮은 세상을 비웃듯 세상과 섞이기를 거부한다. 시인의 필체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길고 길쭉하다. 마치 세상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아가는 나비의 자유로운 날개처럼. ‘積’ 시리즈는 세상에서 밀려난 천재 시인이, 세상을 역으로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며 관찰하는 듯 고요로 침잠하는 詩다.     시인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내어, 헛웃음 웃게 하고 싶다. 동료시인의 변변치 못한 시를 험담하며 반주 삼아 술 한 잔 마시게 해 주고 싶다.  나의 골방도 고요하다. 모기 죽이는 소리.  들린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7    y거나 Y 유지소 댓글:  조회:841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21호/ 유지소 y거나 Y   유지소   나무란 나무는 모두 y거나 Y; 일평생 새총을 만든다 떡잎부터 고목까지 나무는 나무로부터 새를 날려버리기 위해 y거나 Y; 새총전문제조자가 되었다 새는 나무의 도플갱어; 이것은 나만 아는 사실 새는 나무의 육체로부터 유체이탈한 나무의 영혼 ; 이것은 나무만 알고 새는 모르는 사실 나무는 영혼이 육체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유배자처럼 머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고정식 탁자 같은 나무에게 새는 일종의 접이식의자 같은 것이다 나무 이전에 새가 있었다,는 말을 나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단언컨대, 새는 나무 이후에 있었다. 새; 나무에게 새는 뿌리를 탈출한 나무이다 나무; 새에게 나무는 뿌리를 박은 새이다 y거나 Y; 공중에 떠 있는 새의 은자부호 y거나 Y; 공중에 떠다니는 나무의 부표 새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나무에 둥지를 틀고 나무는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새를 날린다 새는 나무로 돌아오는 힘으로 일생을 살고 나무는 새를 날려버리는 힘으로 일생을 산다 새가 영원히 나무로 돌아오지 않을 때 나무는 비로소 완전한 나무가 된다      * 2012년 시인광장 상 수상작품      「y거나 Y」는 나무의 형태를 관찰하여 ‘y거나 Y’로 읽는다. 또한 새총모양으로 읽는다. 붙박이로 서 있는 나무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와의 관계를 ‘y거나 Y’로 상징적으로 읽는다.   부부관계, 부모자식관계, 연인관계, 불륜관계, 상하복종관계, 이별, 집착…, 모든 관계는 함수 'x와 y'로 이루어져 있다. 그와 같이 위의 시「y거나 Y」에 어떤 대립적인 관계와 상황을 대입하여도 그 관계가 성립된다. 기호시가 독자의 확산적 사고를 도출하는 이유는, 대입하는 사물에 따라서 의미확장이 크기 때문이다. 남의 은밀한 일기장을 훔쳐 읽는 것 같은 쾌감이 있다.   그 대상은 밀착된 자아이면서 대립되는 타자다. ‘자신’이면서 타자다. 라캉은 ‘욕망이론’에서 ‘자아를 타자로 인식하는 자아의 시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시의 본질은 자아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가까이 있는 자아를 멀찍이 놓고 바라보기’라고 이름붙여 본다. 기호 'x와 y'는 자아면서 동시에 ‘타자’를 의미한다. 위의 시 6-7행에서 ‘새는 나무의 도플갱어; 이것은 나만 아는 사실/ 새는 나무의 육체로부터 유체이탈한 나무의 영혼’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자아의 타자화’는 16-17행 ‘새; 나무에게 새는 뿌리를 탈출한 나무이다/ 나무; 새에게 나무는 뿌리를 박은 새이다’ 부분에서도 증명된다.  「y거나 Y」는 설명적이고 지루하고 빤한 시들에 식상한 독자에게, 신선하고 감각적이며 낯선 이국 거리에서 매력적인 외국 이성을 만난 것 같은 낯설음이 주는 호기심과 설렘을 준다. ‘고정식 탁자 같은 나무에게/ 새는 일종의 접이식의자 같은 것이다’와 같은 표현은 내용과 표현의 ‘낯설게하기’의 극치다.     ‘새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나무에 둥지를 틀고/ 나무는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새를 날린다/ 새는 나무로 돌아오는 힘으로 일생을 살고/ 나무는 새를 날려버리는 힘으로 일생을 산다’ 위의 시의 주종을 이루는 대귀법이다. 대귀법의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들이 선명하고 쿨하게, 때론 따끔하게, 새콤하게, 은밀하게 독자를 유혹한다.   ‘자아의 타자화’는 갈등과 배리의 ‘등배관계’다. ‘새가 영원히 나무로 돌아오지 않을 때/ 나무는 비로소 완전한 나무가 된다’ ‘관계의 미학’의 정점이다. 사유의 깊이와 절제와 정돈, 버림의 미학이 감각적인 기호시로 완성된 간결함이 돋보인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16    탈 위선환 댓글:  조회:707  추천:0  2018-12-20
  /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탈                                                                       위선환         목 안이 칼칼하고 바람은 낮게 분다 돌들이 구르면서 서로 부딪친다   냇가에서 집어든 물방울은 깨졌고 돌멩이가 뛰어서 건너간 수면은 잘게 부서졌고      달빛 환한 밤에      河回의 물굽이를 깔고 앉은 각시의 하얀 각시탈을 입 벌리고 바라보는 이매의 이매탈은      턱이 떨어져나가고 없다   걸립할 때, 별이 춤판으로 떨어졌다 강 건너 낮은 하늘로 빛이 지나가고 개가 짖더니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위선환의「탈」은 4연으로 이루어진 시나리오 기법의 시다. 마당극이나 춤판에 올릴 수 있는 극적 구성을 갖고 있다. 시인은 4연에서 ‘춤판’과 ‘다섯째 마당’을 제시어로 사용하여이 시의 공연성을 암시하고 있다.   위의 시는 극의 구성요소인 4단계로 나눌 수도 있다. 또한, 더 세분하여 의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위선환의 시는 가장 한국적인 ‘하회탈’이라는 고전적 소재를, 가장 모던한 스타일의 현대적 기법으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위의 시는 강한 극적 자극이 있다. 시골장날 마당극에서 볼 수 있는 편안하고 느긋한 해학적 소재는 아니다. 굳이 분류한다면 스릴러 추리극에 가깝다. 불안하고 급박한 위기감이 시 전체에 깔려 있다.   위의 시를 구성의 5단계로 나누어 보면 으로 분류할 수 있다.   1연 발단 부분 - ‘목 안이 칼칼하고’ ‘서정적 자아’는 불안정하다. ‘돌이 구르면서 부딪치고/ 물방울이 깨지고/ 돌멩이가 수면을 부순다‘. 연극이 일상적이지 않듯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도 일상적이지 않다. 극 초반부터 불안과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2-3연 전개 부분 - ‘달빛 환한 밤’에 모호한 극적 분위기가 고조된다. 도깨비가 나올 것도 같고 사랑이 무르익을 것도 같은 아릿한 밤이다. 턱이 없는, 모자라고 불안정한 병신탈인 ‘이매탈’은 ‘하회의 물굽이를 깔고 앉은’ ‘각시탈’을 입을 벌리고 넋놓고 바라본다. 정신지체인 병신이 젊은 아낙을 ‘짝사랑’하면 집착의 사랑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도망치느냐, 죽느냐, 죽이느냐 결국, 극단의 사랑이 될 것이다.   4연 1행 위기 부분 - ‘턱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는 부분은 ‘위기 부분’에 해당된다. 불안과 위기상황은 4연 2행의 ‘개가 짖’을 때에 한층 고조된다.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침입했을 때 개가 짖는다. ‘이매탈’은 드디어 행동을 일으키며, 사건을 벌이는 것이다.   4연 3행 절정 부분 - 극은 박진감 넘치게 ‘절정’을 향하여 달린다.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 치정살인? 복상사? 과연 어느 쪽일까? 이매탈인 많이 모자라는 ‘병신탈’은 ‘젊은 각시탈’을 짝사랑하다 동반자살을 하는 것? 갈대밭 무성한 저녁, 쪽배 위에서? 궁금궁금 하게, 위태위태하게, 긴장감 조성하기.   4연 4행 결말 부분 -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다. 스산하다. 왜냐하면 이 시극은 스릴러물이기 때문이다. 파계와 파격미.      스릴러 기법을 도용한 위선환의 시는 연극과 시나리오로 꾸미거나 마당극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연성을 가지고 있다.   위의 시는 하회탈 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여자가 남자를 짝사랑한 하회탈 설화를, 반대로 남자인 ‘이매탈’이 ‘각시탈’을 사랑하다 죽는 것으로 바꿔서 각색하였다. 하회탈의 열 번째 탈인 ‘이매탈’은, 허도령이 꿈에 계시를 받아 외부와 단절하고 숨어서 목욕재계하고 신성한 ‘탈’을 만들던 중, ‘허 도령’을 짝사랑한 동네 ‘처녀’가 얼굴이라도 보려고 문에 구멍을 뚫고 문구멍으로 들여다본 죄로, 허도령은 부정을 타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 그래서 10번째 ‘이매탈’은 턱이 없는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선환은 ‘아사달과 아사녀’ 설화처럼 고려시대의 슬픈 선남선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여 한편의 시로 완성하였다. 국보 제121호로 박물관에서 귀히 대접받는 하회탈. 분명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회탈은 ‘신’으로 모시고, 사람이 범접하지 않고 신성시하여 제를 올리고 잘 보존했기 때문에 11-12세기 작품이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제사장만 1년에 한번 제사를 지내고 닦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성시하는 성경의 ‘언약궤’와 같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빈아답의 집에서 나왔는데,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붙들었더니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고 성경에서 언약궤를 언급하고 있다. 당시 탈을 만들던 장인은 천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의 지배계급인 ‘양반’과 정신의 지배계급인 ‘중’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천민 계급인 ‘백정’과 같이 춤판과 마당극으로 등장시켜 회화하여 놀이를 하였다.   계급을 뛰어넘은 사랑은 어느 시대나 금기다. 그 사랑의 결말은 비극이다.   위선환의 「탈」은 서정주의 ‘문둥이’ 시처럼 섬뜩한 배반의 사랑을 다룸으로써 ‘낯설게하기’를 실현하였다. 묘하게 호기심과 미의식을 자극한다.   마지막 행의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는 부분에서 다시 1행의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서정적 자아’가 재등장한다. 그러나 1연의 사건이 생기기 전의 시점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미 ‘어떤 결과’를 도출한 위기의 상황에 서정적 자아가 놓이게 된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막이 내려도 독자는 불안하다.   아주 희귀한 복상사를 다룸으로써, 위험하고 불안정한 사랑의 정점을 ‘보여주기’하고 있다. ‘남자가 여자의 배 위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세기 동안 동네 아낙네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쉬쉬, 만담거리가 될 것이다.   전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시는 꼭 스릴러 연속극을 보는 것 같다. 악마는 죽었는데 꼭 또 현재에 살아날 것만 같은.   극적 긴장감과 호기심, 불안감을 조성하는 능력은 위선환 시의 힘이다.   위선환은 가장 한국적인 하회탈을 소재로 가장 현대적인 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탈은 존재의 분신이면서 또한 존재 자체이다. 몸체이면서 외형이요, 내면이다. 외형에 자아의 얼굴을 가리고 자유롭게 자신을 희화하고 상대를 조롱한다. 그리하여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진정한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적나라하고 보여준다.   탈 뒤에 숨은 자아와 탈을 벗은 자아의 괴리감이라고나 할까? 성을 버려야 하는 중이 성을 선택한다면 갈등과 불안증이 고조될 것이다. 파계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현재의 자아를 던져버리고, 탈 뒤에 숨는다. 얼굴 없는 자아다.   어느 것도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 ‘탈’을 쓰고 있어도 ‘탈’을 벗어 던져도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는, 시인의 존재의 불안.   부조리극의 극치다,   위선환의 「탈」은 민화처럼 가장 한국적인 소재다. ‘탈’은 ‘자아’며 ‘초자아’다. 왜냐하면 ‘탈’의 인물은 초월자인 ‘신’을 의미하면서 또한 타락자인 ‘양반’과 ‘병신’, ‘중’ 등 기존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천시받는 인물을 대변한다. 현대물로 치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는 치정행각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이미 각시는 각시가 아니다. 중은 중이 아니다. 양반은 양반이 아니다. ‘탈’을 뒤집어 쓴 순간 역할이 바뀐다. 대표성을 잃고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인물이 된다.   위선환은 4연 3행의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는 극적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극적 클라이맥스를 만들었다. 치정관계에 얽혀 보험사기를 하고 아내를 죽인 살인자나, 점잖은 척하면서 뒤로 연애질과 잡기를 하는 현대 양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마지막 4연 4행 결말 부분은 ‘다섯째 마당’이라는 극의 장면제시를 하고 있다. 파계한 중이 ‘탈’을 벗으니 얼굴이 없다. ‘탈’은 얼굴을 가려서 진짜 얼굴이 안 보인다. 오랫동안 탈을 쓰고 있으면 이미 진정한 자신의 ‘얼굴’이 없다. 탈을 벗는 순간 진실에 노출된다. 탈을 쓰지 않으면 현실과 존재마저도 위태롭고 불안하다. 현대에 다시 한번 언급할 필요성이 있는 질문이다. 누가 ‘탈’을 벗을 것인가?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5    부드러움의 단상 ―접사 오남구 댓글:  조회:757  추천:0  2018-12-20
  부드러움의 단상  ―접사     오남구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산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 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 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 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겹쳐 그리기 기법 - ‘다시점’'다초점’     오남구 시인은 작고하기까지 문학사에 남을 새로운 시론을 증명하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을 연구하였다. 후학들에게 실험시를 가르치고, 직접 시 작품을 쓰면서‘염사’와 ‘접사’, ‘탈관념’으로 디지털 이론을 요약하였다. 그 방법론으로 ‘사진찍기’ 기법의 ‘클로wm업’과 수학공식을 응용하였다. 오남구의 디지털 시론은 ‘표현주의’시론으로 텔레비전의 ‘보여주기’ 기법이다. 그이 ‘탈관념 이론’은 문덕수의 과 심상운이 정의한 하이퍼시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덕수는 광법위하고 넓은 ‘디지털’개념을 축소하여, 선명하고 객관화된‘하이퍼시론’으로 발표하였다. 오남구의 시론이 실험시로서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위의 시는 필자가 주장하는 이론으로, 하이퍼시의 8가지 방법론 중 한 방법론인 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은 피카소의 그림 과 같은 시 창작 기법이다. 사람의, 앞, 뒤, 옆을 한 평면 위에 그린다. 피카소는 ‘다시점’‘다초점’ 그림을 그렸다. 점선으로 눈 표시를 하여 여러 방의 성행위를 훔쳐보는‘엿보기’그림도 있다.  ‘겹쳐 그리기 기법’의 시는 건축물의 투시도나 단면도처럼 하이퍼시의 양방향성과 쌍방향성을 추구한다.‘다시점’과 ‘다초점’하이퍼시는 보이는 사실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사실을 한 화면에 한꺼번에 펼쳐 보여준다. '겹쳐 그리기 기법‘은 ‘외면 겹쳐 그리기’와 ‘내면의 겹쳐 그리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오남구의 시「부드러움의 단상」은 ‘외면 겹쳐 그리기’와 ‘내면 겹쳐 그리기’를 병행하고 있다. 비를 세밀하게 관찰하여 비의 내형과 비의 외형을 대조적으로 파고들어간다. 비의 내형에서는 비를 직관하여 날카롭게 재해석하였다. 1연의 ‘숨을 쉰다, 에워싸 가둔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는다, 수평으로 퍼진다, 빗물이 번진다, 속도가 날을 세운다, 갇혀 버린다,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등 비에 대해 다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의 비에 대한 표현은 오남구가 주장하는 ‘바라보기’나 ‘보여주기’의 표현주의 관점을 넘어 그 이상의 새로운 시세계를 보여준다. 새로운 ‘표현기법’으로‘날카롭게 관통하기 기법’을 사용하였다. 오남구가 디지털시론에서 주장한 ‘보여주기’ 기법보다 시가 한발 더 앞서 갔다.   위의 시는 짧은 단문 문장을 사용하였다. 문장은 날카롭고 직선적이다. 짧고 직선적인‘문장기법’은 줄기차게 꼿히는 비의 외형과 성격을 잘 대변하고 있다. 2연의 ‘조각 허공’과 ‘부스러기 무지개’는 시인이 시각적 이미지를 극명하게 잘 표현한 ‘표현주의’의 극치다.   오남구의 ‘비’는 아날로그 시대의 ‘슬픔’과 ‘이별’의 대명사인 관념의 비가 아니다. ‘비’를 여러 방향, 여러 각도에서 절개하고 분류하여 한 화면에 펼쳐 보이고 있다.‘신호등이 켜진’ 거리에서 아주 짧은 찰라의 순간 직면한 ‘비’를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여 직관하였다. 내면의 눈과 외면의 피부로 접촉한 비다.‘겹쳐 그리기 기법’으로 그린 ‘하이퍼 그림’이다. 위의 시는 심상운이 ‘다선구조론’에서  주장한 ‘다시점’과 ‘다초점’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갖고 있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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