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 시집 해설>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
이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처장)
박진섭의 시는 짧고 간략한 시어로 구성된,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수채화다. 이미지들은 시인의 삶처럼 담백하고 솔직하며 객관화를 획득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의 해석적 시각이 상흔처럼 도드라진다. 필자가 박진섭의 시를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이라는 제목을 부여한 이유다.
프로이드는 시인은 사회적 부적응자가 불안과 고독감을 시 작품으로 승화시켜, 사회적 부적응자인 독자의 공감을 얻어 감동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프로이드의주장처럼 박진섭은 사회적 부적응과 상처를 시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체감적 경험을 진선미를 지닌 예술작품으로 완성도 있게 제작하여 독자의 공감을 유도한다. 박진섭의 시에서 보여주는 외로움, 그리움, 동병상린, 짝사랑은 시인들이 지닌 감성적 속성이다. 시는 외로움과 그리움,결핍과 상처에서 피어난 꽃이다.
박진섭의 시는 대중의 사랑받을 수 있는 여러 대중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그중 가장 주요한 포인트 하나는 대부분의 시가 사랑시라는 점이다. 남녀상열지사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킨다. 특히 성애시, 짝사랑시, 이별 시, 불륜시는 언제나 영화, 소설,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대중의 촉각을 자극하여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박진섭의 시는 난삽하거나 화려한 기교의 사랑 시가 아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자연미인,숫처녀 같다. 시어와 표현이 유치하거나 저급하지 않다.
두 번째 특징은 짧은 시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속도화 시대의 대중은 바빠서 긴 글을 읽을 시간도 참을성도 없다. 우연인지 기획의도인지 박진섭의 시는 손바닥 시보다 더 짧다. 시에 군더더기가 없다. 시는 짧지만 내용은 허술하지 않다. 짧아서 지루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세 번째 특징은 슬픈 여운이다. 박진섭은 표현주의 문학이 범하는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어 그 상처를 부끄러운 일기장처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용기가 필요한 장인정신이며 고집이다.부끄러움을 벗고 당당하게 대중과 맞서는 것은 작가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필자는 박진섭의 첫 시집 「소소한 안부」 중에서 아래 7편을 그의 대표시로 선정하였다. 각각의 시를 읽고, 그 특징과 표현기법을 상세히 논의해 보자.
이른 아침
단풍국에서 온 안부문자를
꽃이름 어플에 입력합니다
사과나무, 17페이지 책갈피를 펼치면
그 동안
건강은 괜찮은지
어찌 사는지
서울 하늘을 이고 사는, 나는
단풍나무 씨앗 같은 핼쓱한 얼굴,
찌뿌둥 합니다
이상 기후에 혈압이 오르는지
과실들이 곤혹을 치른다는 당신 푸념에
황사비, 미세먼지 뒤집어쓴 듯
내 마음도, 어찔어찔
당신 목소리는
붉은 사과 빛깔로 곱게 깔깔깔, 물들어 가고
나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날씨 이야기를
큰소리로 웃으며, 주절주절
우린 같은 파란하늘 밑, 흰 깃털구름이불 나란히 덮고
다정하게 누워 토닥토닥 잠들었는데,
왜 나는 당신에게 팔베개를 해줄 수 없는지요?
당신은 거기, 나는 여기
비 온다는 핑계로 안부를 물으며
당신 목소리 아껴 듣는, 이 아침
―「소소한 안부」 전문
위의 시 「소소한 안부」 는 박진섭의 첫 시집 제목이다. 짧은 사랑 시 모음들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제목이다.
애인을 향한 물음, 간절함, 애틋함, 슬픔, 비련, 절망감 등 여러 복합적 시적 화자의 감정을 「소소한 안부」라고 통칭하고 있다. 안부전화, 안부편지, 안부문자. 애인의 소식을 묻는 다변화된 시적 장치다.
위의 시는 일상적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속 깊이 숨겨놓은 밀애의 감정을 은근히 즐기고, 은근히 아파하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시는 클로즈업 과정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다.소소한 안부인사다.
1연에서는 ‘단풍국’에서 온 안부문자 같은, ‘꽃이름 어플’에 기록해 놓고 싶은 소시민적 사랑의 아픔을 잔잔하게 적고 있다. 1-3연은 단순한 안부로 시작하여, 4-8연은 고백적 심정을 은은하게 피력하며 점층적 구조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 세상에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박진섭 시의 매력은 현대적 감각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독자와 평자를 애수에 젖게 한다. 안부인사로 시작하여 사랑고백을 절절하게 하는 역설적 문장이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아래 시를 읽고 접속사의 중요성과 이미지 형상화 과정을 논의해 보자.
나는 향기로운, 살구빛 갈색 눈
당신에게 접속합니다
사랑하면
그리고
아픔이면
그러나
잊으려면
오히려
소망하면
혹시나
노랑허리솔새 부리가 긁은
올리브녹색 잎사귀, 흉터처럼
나는 매일 접속사를 바꿔,
당신을 소환합니다
―「접속사」 전문
위의 시 「접속사」는 남녀상열지사를 고품격 예술작품으로 격상시킨 작품으로 문법의 접속사 <그리고- 그러나-오히려- 혹시나>를 사랑의 각 상징 단계로 표현하였다. 발랄한 상상력과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랑을 체험적으로 터득한 재해석의 시각이 돋보인다. 현대적 감각의 ‘접속’과 ‘소환’ 등 폭력적 시어와 ‘노랑허리솔새’와 ‘올리브녹색’ 등 아름다운 한국적 자연 속에서 사물을 발견해내는 시어 발굴 능력이 탁월하다.
아래 시를 읽고, 사랑에 대한 직관과 사랑의 속성이 가진 진정성을 논의해 보자.
모르는 거 아니고
서투른 거 아니고
고장 난 거 아니고
조급한 거 알고
서투른 거 알고
미숙한 거 알아
그래도
네게는 작동되지 않는, 제어장치란 걸
―「브레이크」 전문
위의 시 「브레이크」 는 사랑의 속성인 ‘조급한 거 알고/ 서투른 거 알고/ 미숙한 거 알’지만 ‘제어장치’가 풀려서 급속발진 하게 되는 사랑의 속성을 적확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겉돌거나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이고 선명한 표현을 함으로써, 독자를 통쾌하게 한다. 객관화와 진정성, 직관을 실현한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다.
아래 시를 읽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 과정을 논의해 보자.
만난 것 같고
만날 것 같고
보인 것 같고
보일 것 같고
사라진 것도 아니고
사라질 것도 아닌데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간
‘묵은실잠자리’ 발자국 같은,
너는
―「소실점」 전문
위의 시 「소실점」은 사랑을 방금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억압과 불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간/ ‘묵은실잠자리’ 발자국 같은, / 너는'(4연 1-3행)라는 표현은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가 돋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교차하는 행복감과 불안감 등, 사랑의 속성을 극명하게 잘 그렸다.
아래 시를 읽고, 시의 상징을 논의해 보자.
마주 보라 찍었더니
선 하나 그었더라
서로 기대라 찍었더니
아예 등지고 섰더라
―「데칼코마니」 전문
위의 시 「데칼코마니」는 서정시 계열이 아니다. 상징시의 예리한 직관이 돋보인다. 사랑의 이중성과 배리, 변덕 등 복합적이면서 감정기복이 심한 부정적인 폭력적 감정을 날카롭게 절단하듯이 절명하게 직관하였다. 「데칼코마니」는 시집 제목으로 하여도 좋은 박진섭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래 시에 나타난 직관과 사유, 아하 깨달음에 대하여 논의하여 보자.
가는 길에
부딪혔나 보다
오는 길에
엇갈렸나 보다
―「교차선」 전문
위의 시는 TV 프로그램에서 보던 ‘사랑의 막대기’가 생각난다. 사랑의 단면을 칼로 잘라서 보여주는 것 같다. 부딪치며 엇갈리고, 좌충우돌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을 대변하는 시다.
보통 등단 시나 시집에서 가장 긴 호흡의 시와 가장 짧은 한 줄짜리 시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시적 필력을 과시하는데 경우가 있다. 긴 시는 시적 긴장력을 늦추지 않고 시력을 펼치는 힘을 보여준다. 가장 짧은 한 줄 시는 촌철살인의 직관과 사유를 보여준다. 작가의 다채로운 시력을 입증하는 ‘아하 깨달음’을 주는 짧은 시다. 독자의 뇌에 감각적 미의식을 주며, 사랑의 깨달음을 주는 사유와 철학이 있다.
아래 시에서 사랑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시적화자의 직관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사랑은 누구나 참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너와 나는
방향이 문제였을까
속도가 문제였을까
난 속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넌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전문
위의 시 「답을 찾을 수 없는」은 사랑을 가장 적절하게 관통한 표현이 돋보인다. 사랑의 중심을 과녘으로 통과한 명쾌한 답변이다. 도대체 사랑은 답이 없다. 맞는 게 없고, 틀린 게 없다.
도대체 사랑은 방향이냐, 속도냐 시시비비를 따질 수가 없다. 사통팔달, 어느 방향으로든 진행한다. 역방향이냐 순방향이냐 따질 수가 없다. 나이, 국적, 피부색, 사고방식, 빈부격차, 학벌, 도대체 일촉즉발 사고다. 사랑은 내가 원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다고 떠나는 것도 아니다. 일방통행, 쌍방통행 따지지 않는 건, 사랑은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영화, 소설, 시에서 사랑의 사고를 보여준다.
사랑은 정답이 없다. 특히 불륜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부정하고 비난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환타지하고, 시에서는 비련의 슬픈 주인공을 동정한다. 예술에서 불륜은 단골주제며 소재다. 화가에게 벌거벗은 모델은 지치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된다. 예술은 모든 시점과 관점, 결과가 용서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덕과 윤리의식으로 억압받은 사랑을 드라마, 영화, 소설, 시, 연극을 통하여 대리만족하며 보상심리를 갖는다. 특히 벗기기, 야한 영화에 몰리는 수백만 관객의 흥행수입이 그것을 입증한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짝사랑이라도 한다. 결국 사랑이 시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다. 누구나 하는 사랑, 언제나 하는 사랑, 어디서나 하는 사랑 이야기는, 성공을 약속받는다. 가끔 여배우와 감독의 불륜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곧 대중은 잊고 용서하며 시인한다.
박진섭은 너무 순진하거나, 고도로 세련된 사랑의 관찰자인지도 모른다. 그가 제작한 모든 시는 사유, 직관, 철학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사랑의 중심에 자신을 출연시킨다. 실화인가? 비밀리에 만나는 여자가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적 장치다. 만약 시적 장치라면 여우같은 책략이고, 시적 화자가 시인 자신이라면 슬픈 사랑 이야기에 독자는 혹해서 빨려들어간다. 성은 만고불변의 진리며 명약이다. 성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시킨다. 뻔한 스토리인데도 남녀상열지사는 흥분시킨다.
위에서 필자는 박진섭의 대표 시 7편을 언급하며 여러 방향에서 논의해 보았다. 박진섭은 사랑을 객관화시켜 이미지로 선명하게 형상화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참신하고 공격적인 이미지의 패턴을 보여주는데, 재해석을 통한 시적 구조가 탄력적이다.
보통 첫 시집은 과거의 장례식이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어릴 적 상처나 과거의 상처를 토로하는 정신과 자가치료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치른다. 그래서 첫 시집에 발표한 시들은 사변적이거나 상투적 표현이 많다. 그 이유는 인간이 살아온 과정은 거의 비슷비슷하고, 동시대를 살아낸 시인들의 아픔도 비슷하기 때문에 소재와 표현도 유사하다.
박진섭의 첫 시집은 서투르지만 솔직하고, 직접적이며 직설적인 특징이 매력 포인트다. 보통 신인 시인들이 범하는 우는 시의 픽션과 기교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과거를 소환한 체험적 진정성과 팩트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첫 시집은 자서전적 성격을 나타낸다. 또한 관념과 주장이 많은 것이 첫 번째 자전적 서정시집의 특징이다. 그러나 박진섭의 시는 상징성과 객관화를 실현하여 관념을 탈피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의 통일성, 재해석이 있는 유미주의적 순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 혼자 시에 탐닉하여 시창작 기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의 패턴화가 고정되었다. 시의 패턴화는 독자에게 특허상표로서 개성적이란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평자에게는 패턴화와 획일성이 비판과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고정된 시창작 기법은 자칫, 퇴행으로 역행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필자는 박진섭의 첫 시집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수준과 상징, 재해석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앞으로 신인으로서 과감한 실험과 도전을 할 것을 촉구한다. 절대 예술의 경지에서 느끼는 심미적 감각과 카타르시스를 쾌감할 것이다. 짧은시, 긴시, 서정시, 이미지시, 철학시, 소설시, 드라마시, 사유시, 초현실주의시, 하이퍼시 등 시창작 과정의 여러 단계적 성장을 경함해 보기 바란다. 시는 표현주의 미학이 주는 절대 선이다. 예술의 정점에서 느끼는 절대 자유와 희락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가치가 있다.
앞으로 사랑 시에 국한된 한계성을 갖지 말고, 사유와 철학이 있는 다양한 시적 방향과 소재를 탐색하여 장르를 통합하는 개성적인 테러를 자행할 것을 당부한다. 첫 시집 「소소한 안부」 발간을 축하하며, 앞으로 치열하게 시 공부를 계속하여, 시단에 큰 족적을 남겨주기 바란다.
[출처]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 / 이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처장)|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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