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겐 이런 말을
이기철
불행도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더운 물로 그의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한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조금씩 내리는 찬비처럼 내게 오는 불행이여
내 새 옷 한 벌 사 줄게 채소 같은 행복 한 잎만 들고 오면 안 되겠니
신장에도 장롱에도 책상에도 지붕에도 이슬 같이 내리는 불행
그러나 내가 그를 찾아가 이마를 짚어주면
불행도 부츠처럼 편안해진다
나는 서른까지는 불행하고 마흔은 행복하고
쉰은 조금씩 아끼며 불행하고 예순은 조금씩 보태며 행복하고 싶었다
철조망 안에도 햇볕이 놀듯 활짝 불행을 꽃 피워
행복의 열매를 맺고 싶었다
먼 길 걷는 사람은 처음부터 불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가 행복을 맞으러 가는 발자국소리임도 알아야 한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
마침내 그의 머리카락 냄새 속옷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불행은 행복의 언니에게 안기면 스스로 행복의 누이가 될 줄도 안다
<이선의 시 읽기>
연극은 일상적인 것이 없다.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범상한 갈등으로 끝난다. 시 제목이 일상적이면, 그 내용과 구조와 표현은 일상적이지 않으며, 좋은 사유를 이끌어내야 한다. 반대로 시가 독특한 제목으로 출발하면, 그 내용과 방법론은 일상과 연계시켜야 한다. 사유를 이끌어내어 인생과 개인의 삶과 연결시켜야 한다.
이기철의 시,「불행에게 이런 말을」은 일상적인 제목이지만,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제목이다. 그 이유는 ‘불행’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잘 알고 있고,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칫하면 관념이나 사설로 흐르기 쉬운 제목이다. 그런데 이기철 시인은 가장 관념적인 ‘불행’에 대하여 쓰면서, 전혀 관념적이지 않은 시를 완성하였다. 그 방법론을 살펴보면 다음의 6가지 방법론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시각적 이미지와 객관화
‘불행’이란 ‘관념’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해석하고, 사물화하여 ‘객관화’하였다.
다음 시행을 읽어보자.
‘신장에도 장롱에도 책상에도 지붕에도 이슬 같이 내리는 불행’ (7행)
위의 시 7행의 중심단어는 ‘신장-장롱-책상-지붕’이다.
신장, 장롱, 책상, 지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각각의 형태와 색깔이 연상된다.
나무나 플라스틱 신장.
흰색, 나무색, 갈색, 검정색 나무장롱.
빨강, 파랑, 흰색 플라스틱 장롱.
파랑, 주황, 회색 기와집.
한옥, 전원주택, 연립과 아파트
각각의 사물들은 각각 다른 색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신장, 장롱, 책상, 지붕’이라는 단어가 대표하는 불행의 조건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신장- ‘신발’은 서정주의 시에서 보여주듯 식구들을 상징한다. 신발은 저녁이 되면 온전히 신발장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당당히 기득권과 소유권을 주장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혼, 가출, 입양, 군입대, 해외근무, 병원입원, 병사, 사고사’ 등 수많은 이유로 신발은 신발장을 떠난다. 신장은 불행을 고스란히 표출하는 대표적 사물이다. 신발은 모양과 색깔이 다른 색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장롱- ‘옷’은 인간을 대표한다. 인간의 취미와 교양, 직업을 나타낸다. 장소에 목적에 따라서 모양과 색깔이 수시로 바뀐다. 신발과 똑같은 기능을 하면서 좀더 눈에 띈다. 신발장의 신발이 저녁을 상징한다면 옷은 활동하는 낮을 상징한다. 개성과 색깔이 분명히 표출된다. 옷이 떠난다는 것은 ‘노랑 원피스’와 ‘검정 청바지’의 대결구도처럼 갈등과 비극을 반영한다. 결혼, 이혼, 별거, 사별 등, 어떤 이유로든 옷장을 떠난 옷은 소속과 집단을 떠난 불행한 사건을 상징한다.
책상- ‘책상’은 직업, 특히 회사원이나 교수, 작가 등을 상징한다. 한국은 1998년 IMF때 출근하면 책상이 없어지는 실직의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책상에서 불행이 발생한다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붕- ‘지붕’은 각 세대를 의미한다. 지붕은 생로병사가 한통속으로 읽히는, 세대와 가족을 상징한다. 한 사람이 아프면 가족이 아프다. 불행은 세대에게 집단으로 일어난다. 가족 구성원이 불행의 피해자가 된다.
위의 시는 ‘불행’이라는 관념에 ‘신발, 장롱, 책상, 지붕’ 이라는 상징물에 옷을 입혀 객관화시켰다. 또한 각 사물들은 개인, 가족, 집단을 상징한다. 불행이 일어나는 장소를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은 불행의 형태까지 포괄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불행’이라는 관념어에 옷을 입혀서, 실제적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구체성’과 ‘객관화’를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각적이며 채색적인 색채 이미지가 있다. 모든 사물들은 그 단체사회가 규정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체험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구체성
아래의 행을 살펴보자.
불행도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1행)
더운 물로 그의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2행)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3행)
불행을 친구와 유순한 내복으로 본 것은 늘 가까이 불행 속에서 산 사람만이 경험적으로 요약하여 도출해 낼 수 있는 수학적 공식이다. 체험적이며 경험적이다.
‘한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4행)
‘조금씩 내리는 찬비처럼 내게 오는 불행이여’ (5행)
순전히 경험적 체험을 바탕으로 도출해낸 공식이다. 위의 시는 인생의 ‘10일’은 불행이고 ‘1일’을 행복으로 보았다. 인생의 9할은 불행이고 1할은 행복으로 본 것이 아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한 달을 30일을 기준으로 삼을 때, 불행과 행복은 27.27: 02.72라는 공식이 도출된다. 1달에 3일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위의 시처럼, 우리 인생은 불행을 맞받아치고 추스를 사이도 없이 찬비처럼 계속 맞고 살아간다. 불행 속에서 불행과 함께, 불행과 일심동체가 되어 동고동락하며 산다. 불행에 대한 눈물겨운 한줄 엑기스 문장이다.
하늘이 주는 불행이라는 비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다만 우산을 쓰든지, 개인 비행기를 타든지, 부모나 형제의 등에 업혀 편히 가든지, 저축한 돈으로 고용인을 고용하든지 목적지로 가는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셋째, 달관의 미학
아래에 제시한 행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친구사이에서 흔히 행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1행)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3행)
내 새 옷 한 벌 사줄게 (6행)
부츠처럼 편안해진다 (9행)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 (15행)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16행)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17행)
스스로 행복의 누이 (19행)
친구라면 자주 만나고, 유순해지고, 생일에 옷도 선물하고, 편안하고, 함께 걷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찜질방에 가서 잠도 잔다. 친구가 어려울 때는 뒤를 봐주고 돈도 빌려준다. 서양에서는 만날 때마다 볼에 입도 맞춘다. 친구라면 서로 행복한 형과 동생의 역할도 나누어 한다.
시인이 시를 구상할 때, ‘불행’을 친구라고 직관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친구와 나눌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복의 순간들과 조건을 불행이라는 관념에 대입하였다. 불행을 ‘행복의 누이’라고 정의한, 역발상 관점이 이 시의 포인트다. 누구나 싫어하고 경계하는 불행을 기꺼이 초대한 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넷째, 의인화 기법
불행이라는 관념어를 인간의 행위로 치환하고 의인화하였다.
친구가 되어주고, 발을 씻겨주고, 몸을 타월로 닦아주고, 함께 걷고, 만나고, 밥먹고, 잠을 잔다. 머리카락 냄새, 속옷 냄새를 맡으며, 뒤도 닦아주고, 입도 맞춘다. 이런 경지라면 친구가 아니라 애인에 가깝다. 친구가 장애인이 아닌 이상, 뒤를 닦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뒤는 뒷배경이 되어 도움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
다섯째, 순응적인 희망의 메시지
아래의 행들을 살펴보자.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4행)
채소 같은 행복 한 잎만 들고 오면 안 되겠니 (6행)
서른까지는 불행하고 마흔은 행복하고 (10행)
쉰은 조금씩 아끼며 불행하고 예순은 조금씩 보태며 행복하고 싶었다 (11행)
철조망 안에도 햇볕이 놀듯 활짝 불행을 꽃 피워 (12행)
행복의 열매를 맺고 싶었다 (13행)
먼 길 걷는 사람은 처음부터 불행할 줄 알아야 한다 (14행)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가 행복을 맞으러 가는 발자국소리임도 알아야 한다 (15행)
위의 시에서 주장하는 불행의 개념과 재해석은 포기와 절망이 아니다. 순응적인 희망의 메시지다. 사실 필자가 살면서 터득한 이치는, 불행의 극점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가장 불행한 시점은 희망을 잉태한 터닝 포인트였다. 그 극점에서 포기하고 절망하여 도태되든지, 극기로 새로운 모색을 하여 발전하든지, 극명하게 갈리는 분기점이다. 가장 큰 시련과 비극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그 행복은 견디고 넘어선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눈비와 가뭄이라는 불행 뒤에 열리는 열매가 더 맛있는 법이다.
여섯째, 연극적 구조와 문장
위의 시는 입체적이고 연극적이다.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2행)
이마를 짚어주면 (8행)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 (16행)
마침내 그의 머리카락 냄새 속옷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17행)
때로는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18행)
불행은 행복의 언니에게 안기면 스스로 행복의 누이가 될 줄도 안다 (19행)
시의 문장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 거리가 숨어 있다. 그 문장과 구조는 옷을 입고 행동하며 움직임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기승전결이 있으며, 클라이맥스가 있다. 시작과 끝이 있다. 대사와 지문도 들어 있고, 행위도 있다. 스토리가 있으며 연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의 시를 6가지 방법론을 적용하여 분석하여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첨언하면, 위의 시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제목이다. 보통의 시인이라면 제목을「불행」이라는 명사로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불행」과「불행에게 이런 말을」이라는 제목은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불행’이라는 제목으로 고정하면, 시가 관념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불행에게 주는 말’은 구체성과 객관화를 획득한 제목이다. 말은 추상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관념으로 흐르더라도 적합성과 정당성, 타당성을 약속받고 들어간다. 더구나「불행에게 이런 말을」이란 제목은 구체성과 객관화는 물론, 현재성과 현장성까지 확보한다. 직접적이며 생동감과 힘이 있다.
시가 주는 절정의 기쁨과 카타르시스를 이런 부분에서 느낀다. 부드럽고 편안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 그러나 시어를 파고 들어가면 지적이며 예리한 사유, 승화된 내용.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내공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친근한 주변의 내용을 극화시켜 읽는 재미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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