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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유점 정기만 평론/ 한국문학신문 이인선의 힐링 문학산책 7
2019년 12월 19일 16시 47분  조회:1261  추천:0  작성자: 강려
마그리트의 우산을 들고 찾은, 가을 강에서 만난 싯달타의 나비
이인선(시인, 평론가)
 
그 동안 문단의 원로시인들 위주로 <이인선의 힐링 문학산책> 평론을 연재하였다. 코스모스가 성큼 계절의 대문을 열고 들어선 가을날엔 이름과 나이를 잊고 싶다.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뭉개구름 따라, 들국화 따라 걷고 싶다. 산들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하염없이 강가를 서성이며 생각에 잠기고 싶다.
다음 소개하는 정기만과 윤유점의 시 2편은 우리들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는 힐링 시다. 머리를 맑게 씻어주는 서정적 그리움의 세계를 만나보자.
정기만의 「싯달타와 나비」는 이미지 확장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거리가 먼 낱말들의 이미지 합성과 충돌로 상상력의 비약을 한다. 돌출된 이미지 연출을 실현하기 위하여 낯선 이미지를 결합하여 시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아래 시는 정기만의 「싯달타와 나비」 전문이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냐?/ 나는 은둔한 꽃의 날개에서 온 잃어버린 왕국/ 갈가마귀 검은색 옷을 입은 암울한 상처// 협곡 사이로 선회하며 끼륵끼륵 여운을 끌고/ 백사처럼 휘는 물거울에 비친 내 모습//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달음질하는 흰 토끼, 하얀 등을 네가 본 것이냐?// 잊혀진 나라를 덮은 혼돈의 자아/ 마침내 껍질을 벗고/ 비린내 나는 선창을 배회하는 나비// 얼어붙은 이 계절이 끝나는 즈음/ 허물에 싸여 속살거리는 은빛 유혹/ 깨뜨리고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 색깔을 벗은 싯달타의 나비// ― 정기만, 「싯달타와 나비」전문
위의 시는 시적 거리가 먼 것끼리 결합하여 이미지 충돌을 하고 있다. 싯달타와 나비의 낯선 대비는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연상시킨다. 위의 시는 대조법을 사용하여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기만의 시는 김기림의 시와 차별화된다.
김기림의 시에서 ‘나비’의 역할보다 정기만의 시에서 보여주는 ‘나비’는 깨달음의 층위가 더 높다. 김기림의 나비는 거대 바다와 왜소한 나비를 대비시켜 감각적 미의식을 주는 표현주의를 강조한 유미주의 시다.
그러나 정기만의 나비는 ‘싯달타의 나비’로 표현주의에 의미화를 삽입하였다. 정기만의 ‘나비’는 ‘싯달타의 나비’로 깨달음의 여러 입자와 깨달음의 껍질이라는, 해탈의 외연과 내연을 내포하고 있다.
‘은둔한 꽃의 날개’와 ‘잃어버린 왕국’은 등가의 가치를 가지는 종속절로 감각적 미의식을 지닌 문장으로 서로 매치시켰다.
다음 시행 ‘협곡 사이로 선회하며 끼륵끼륵 여운을 끌고’ 의 종속절로, ‘백사처럼 휘는 물거울에 비친 내 모습’으로 치환되는 문맥은 청각 이미지와 시각 이미지가 예리하게 맞물리며 공감각적 이미지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랜 사유 후에 혼돈의 자아는 은둔의 왕국에 입성한다.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 달음질치는 흰 토끼- 하얀 등>은 흰색을 주조로 한 그림이다. 흰색은 순수와 정결의 상징이다. ‘흰 눈, 흰 토끼, 하얀 등’ 흰색이 세 번 반복된다. 수도자는 몇 겹의 번뇌의 강을 건너야 선의 황홀한 하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일까?
‘푸른 하늘’과 ‘나비’는 ‘선창의 비린내’와 ‘은빛 유혹’을 밀어내고 마침내 무념무상 깨달음의 경지로 해탈한다. ‘색깔을 벗’고 ‘싯달타의 나비’가 된다. 억압을 벗어던진 싯달타의 나비는 몸이 가볍다. 팔랑팔랑 가벼운 날갯짓을 하며 눈부신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색깔을 벗는다는 것은 탈피다.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이며 창조행위다. 자유와 예지의 영역이다. 색은 사바세계의 거짓의 옷이다. 진리가 아닌 허욕이다. 싯달타의 나비는 순수의 결정이다.
위의 시는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고행의 과정을 원초적 생명력과 환희를 그리며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감각을 채색하였다.
위의 시가 상상력의 비약적 확장을 하면서도, 문장의 객관화를 유지하는 이유는, 선시의 예언서 같은 신비함을 사물시의 객관화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력은 비약적이지만 시어에 사용한 사물은 지극히 현재적인 사물이다.
그러나 비약적인 상상력은 장치를 받쳐주지 않으면 문장이 날아가고 안정감을 상실한다. 시는 시적 논리에 맞는 상상력을 펼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시에 상상력이 가미되지 않으면 운동감이 없고 딱딱한 시가 된다. 표현주의의 감각적 미의식을 외면한 시는 답답하다. 정기만의 ‘싯달타의 나비’는 이미지들이 비상과 곡예를 펼친다.
아래 시는 윤유점의 「마그리트의 우산」 전문이다.
윤유점의 「마그리트의 우산」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그림의 패러디 시 작품이다.
그림을 패러디한 시는 객관화된 상상력을 획득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내기가 쉽다. 그 이유는 시를 쓰기 전에, 그림의 영상이 뇌에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미술의 시녀라는 말이 있다. 그림은 시보다 늘 앞장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한다. 그 한 예로 샤갈의 그림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샤갈은 이미지의 덩어리들을 그림에 뭉쳐놓고 있다. 샤갈 그림의 둥둥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자는 시각적 전위예술 작품이다. 윤유점의 시는 이미지를 객관화하여 감각적으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겨울비는 한 방울의 눈물이다 한 잔의 물이 된 거리의 풍경으로 나는 흐려지는 우산을 편다 빗물에 뜬 내 발자국은 원점으로 일그러진다 수직으로 떨어진 비는 어느새 동심원을 그린다 얼굴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늘 사선으로 떨어지면 가로수 사이로 희미한 빛들이 흔들린다 나는 출렁대는 내 흔적을 밟지 않는다 발걸음을 멈추는 동안 그림자는 빗물 속에서 서럽게 부유한다 우산을 쓴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울음을 삼키며 나는 증발하고 하염없이 비에 젖는 나를 본다 우산 속은 절대공간이지만 수많은 우산들이 틈에서 내 소실점을 찾지 못한다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며 휘발된 나는 기억을 지우며 빗물에 젖은 모호한 익명을 그리워한다 뒤돌아보아도 내가 걸어온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빗물은 결코 빗물만은 아니다
― 윤유점, 「마그리트의 우산」 전문
 
위의 시는 무채색 그림이다. 단문과 복문의 흔적이 빗물에 씻긴 발자국처럼 교차적으로 반복되며 무늬를 그린다.
겨울은 흐린 이미지의 빗방울 그림을 그린다. 눈물과 빗물과 발자국은 공통된 이미지가 있다. 지난 계절의 흔적을 지우고, 퇴락한 마음의 서정을 따라 흐른다. 조건절과 종속절로 이루어진 겨울비 그 쓸쓸함이‘내 발자국에 원점으로 일그러진다.’ 는 문장을 주목하여 보자.
윤유점의 시는 우울한 기분을 노래하지만, 시의 분위기는 신발이 밟는 빗물소리처럼 찰방찰방 경쾌하다. 빗물에 지워지는 발자국은 그 존재를 증명하려 하여도 부유하는 물방울로 흘러갈 뿐이다. 존재를 흘려보낸 우산은 그 울음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현대적 감각이 물씬물씬 나는 윤유점의 시를 들고, 햇빛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숨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만난다. 드디어 우산 밖의 새와 우산 안의 새와 격렬하게 조우한다.
접혀진 우산을 펴고 날렵한 그림을 허공에 그려 본다. 무채색 그림 시에 하늘색 공감을 채색한다. 윤유점의 문장은 독자도 캔버스를 펼쳐 놓고 수채화를 그리고 싶은 창작의욕을 갖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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