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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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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이선 시해설

2017년 가온문학 여름호/ 정성수- 사기꾼 이야기/ 평론 이선
2018년 12월 28일 20시 20분  조회:1480  추천:0  작성자: 강려
사기꾼 이야기
 
 
 
정 성 수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
  
 
「사기꾼 이야기」 의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
 
이 선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각각의 연들이 보여주는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의 문장들이 감동적인 가난한 사기꾼(?) 아버지의 이야기다. 사기의 내용은 ‘봄이 온다고 가족들에게 사기를 쳤다’이다. 제목과 연관시켜보면, 이 시의 중심어는 ‘봄이 온다’이다. 그러므로 위의 시의 1-7연의 각 연들은 사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처럼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시인이 꿈꾸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상주의와 몽환적 환상주의를 나긋나긋, 비애적인 목소리로 ‘보여주기’하고 있다. 그런데 시를 읽다보면 ‘사기꾼’이 맞기는 한데,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이게도 진정성 있는 한국의‘아버지상’과 직면하게 된다. 시인이 미리 장치한 ‘아이러니와 역설’의 시적 기교 장치 때문이다.
 
시인은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플라톤 시대부터 ‘시인 추방론’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시인은 ‘비현실적 사회부적응’ 인간형이 분명하다. 시인은 현존하는 자신의 주변의 실제적인 ‘현실 밀착형 인간’보다, ‘먼 거리’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 더 긴밀하게 소통한다. ―꽃과 나무, 구름과 바다, 돌과 별 등 자신에게 말로 직접적 비난이나 거부를 보이지 않는 자연과 더 긴밀히 소통하며 친애적인 경향이 강하다.
「사기꾼 이야기」는 식물이 태양을 향해 나뭇가지를 뻗듯, 식물성 유전자를 가진 가난한 아버지의 거부당한 꿈을 이야기한다. 시인의 뇌와 감각들은 예민하고 촉수가 가늘고 길다. 태양의 후예라기보다는, 달과 별과 구름의 DNA를 유전적으로 상속받은 혼외자식처럼. 그러므로 위의 시의 화자인 ‘아버지’도 인간과 생활,의식주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가난은 시인의 필연성일 터. 투쟁적이며, 경제관념이 투철한 태양의 후예들과는 달리, 시인의 감각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시의 자질이 형성되어 있다. 시는 ‘자유’와의 숨바꼭질이다.
 
위의 시 1-7연에서는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이 병렬적이며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 정성수가 제시하고 있는 ‘아버지상’은 슬픈 소외자의 음성을 지녔지만, 실은 역설적으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내하는 한국의 아버지상이다. 시적 화자인 ‘아버지’는 ‘사기꾼’이라고 자신을 지목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어조는 비애적이지만, 그 목소리는 당당하다.
1연을 살펴보자.
1연 1행은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라고 자신을 시니컬하게 고발한다. 시적 긴장감이 고조되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화두를 던지며 야심차게 시에 접근한다. ‘사기꾼’이라는 자기고발은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기의 내용을 보니 죄로 인정하고 감옥에 넣기는 애매하다. 긴장감이 풀어지며 ‘어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흠’ 내심 작품 속으로 빠져든다. 그 대답은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1연 3행)라며 사기의 진상을 밝힌다.
죄의 지목은 현장성과 피해정도가 객관적으로 측정될 때 부가되는 것인데, 정성수의 사기죄는 성립이 애매모호하다. 오히려 사기꾼이라고 비난받기보다는, 가난 중에도 ‘꿈과 이상, 희망’을 잃지 않는 칭찬받아야 할 덕목으로 보인다. 아이러니 기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날렵한 표현이다.
1연 4행―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눈이 큰 사람은 겁이 많으며 마음이 약할 것 같다. 생활비를 벌어다 주지 않아도 바가지를 긁거나 원망의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또 시인은 그런 아내와 딸, 아들의 약점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식구들이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1연 5행) 부분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이 실현되어 있다. 사실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데 슬프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기꾼은 늘 말로 상대의 마음을 바꾸는 말기술자다. 굳이‘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라고 자기성토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아이러니 기법의 표현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보여주는 반어적인 표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와 같은 ‘반어적 표현’이 아이러니의 기본 조건이다.
위의 시의 어조는 반성적이며, 고백적이며, 애조적이다. 그 부분들이 이 시를 해석할 때 반어적으로 작용하게 한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2연 1-3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가난한 60-70년대 풍경이 그려진다. 아내는 가난한 밥상을 물리고, 아이들은 후줄근한 이불을 차내며 곤히 잠을 자고 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의 볼은 창백할 터.
2연을 읽으면 독자는 아버지를 사기꾼이라고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수용을 하게 된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시절의 기억을 한국인은 누구나 배경처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며.
가난한 아버지를 향한 불만을 표출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그때 그 시절 아내와 아이들은 착했다.
3연에서는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3연 1-4행)
‘향기로운 화관’과 ‘푸른 채찍’의 이미지는 백마 타고 오는 왕자의 이미지다. 봄날의 희망을 왕자의 이미지로 바꾸며 3연에서는 다시 아이러니 기법을 쓰고 있다. 슬픈 이야기인데, 울고 싶은 이야기인데 지고지순 아름답다. ‘봄이 온다고’ 약속하는 가장의 거짓말 사기극은, 가난을 부끄러움 없이 숭상하던 계절의 인생관이며 순애보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의 아름다운 약속이며 꿈이다.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3연 4-5행)는 다시 아름다운 사기 약속으로 이어진다. 눈물 나게 그리운 아름다운 계절의 가난한 아버지의 약속이다. 가족을 보호하고 안락하게 숨겨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사기꾼 아버지가 분명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아니하고 약속은 어긋났지만- 용서하고 안아주고 싶은 약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3연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의 모순적인 문장과 기교가 돋보인다.
4연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4연 1-2행) 부분을 살펴보자.
생활과 삶의 아이덴티티 앞에서 아버지의 고뇌는 춥다. 4연쯤 되면 독자는 연민과 동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점층적이며 반복적인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으로 시인은 독자를 압도적으로 사기꾼 아버지에게 끌어들인다. 어느새 시인의 삶 속으로 동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독자는 곧 시인의 마음이 된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5연 1-3행)
늙은 아내와 말이 없어진 사춘기 아이들의 대비는, 또 ‘아버지’라는 이름의 비애의 조건이 된다. ‘아이러니 비가’라는 제목을 붙여 따로 분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각 연들이 갖는 호소력 때문이다.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6연 1-4행)
아버지의 사기 행각은 6연에서 절정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 부분이압권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이 시의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의 시적 장치다.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7연 11-5행)
7연에서도 1행과 2행, 3행에서 아이러니 기법을 보이고 있다.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7연 3행) 부분이다. 아직 겨울인데 봄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억지스러움이 이 시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 아이러니는 애매하여 경계를 짓기 어렵다. 참인듯한데 거짓이고, 거짓인듯한데 참이다.
 
아이러니 기법은 시의 기본 구도이다. 넌지시 짐짓 말을 던져놓고, 반응에 반응하지 않는 언어유희다. 말 던지기를 하며, 은근히 역설적으로 반응한다. 「사기꾼 이야기」 는 진정성과 ‘아이러니와 역설’ 이라는 시적 기교, 시대상, 시인의 조건과 시인의 천형까지 드러내어 보여주기 하고 있다. 이 세대에도, 이전 세대에도, 다음 세대에도, 아버지들의 애환은 계속될 것이므로.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독자의 수용과 공감이 증폭될 가장의 비애로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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