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gli 블로그홈 | 로그인
강려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중외문학향기

전체 [ 136 ]

16    릴케 시모음 댓글:  조회:2091  추천:0  2017-05-06
릴케(Rainer Maria Rilke)  작별  소녀의 기도  엄숙한 시간  석상의 노래  봄을 그대에게  고독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사랑은 어떻게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고독한 사람  고아의 노래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존재의 이유  흰장미  사랑의 노래  장미의 내부  삶의 평범한 가치  가을의 종말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가을날(Herbsttag)  순례의 서  가을  그리움이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피에타  서시(序詩)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  고독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만년의 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과수원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두이노의 비가  ~~~~~~~~~~~~~~~~~~~~  작별  우리 이제 서로 작별을 나누자, 두 개의 별처럼,  저 엄청난 밤의 크기로 따로 떨어진,  그거야 하나의 가까움이려니, 아득함을 가늠하여  가장 먼 것에서 스스로를 알아보는.  ~~~~~~~~~~~~~~~~~~~  소녀의 기도  그 언젠가 그대가 나를 보았을 때엔  나는 너무도 어렸습니다.  그래서 보리수의 옆가지처럼 그저 잠잠히  그대에게 꽃피어 들어갔지요.  너무도 어리어 나에겐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나에게 말하기까지  나는 그리움에 살았었지요.  온갖 이름을 붙이기에는 내가 너무나 큰 것이라고.  이에 나는 느낍니다.  내가 전설과 오월과 그리고 바다와 하나인 것을,  그리고 포도주 향기처럼  그대의 영혼 속에선 내가 풍성한 것을...  ~~~~~~~~~~~~~~~~~~~  엄숙한 시간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우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슬퍼 울고 있다.  지금 이 밤 어디에선가 웃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밤에 웃는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가고 있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걷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다.  ~~~~~~~~~~~~~~~~~~~~  석상의 노래  소중한 목숨을 버릴만큼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나를 위하여 누군가 한 사람 바다에 익사한다면  나는 돌에서 해방되어  생명체로, 생명체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렇게도 나는 끓어오르는 피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돌은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생명을 꿈꾼다. 생명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나를 잠깨울수 있는 만큼  용기를 가진자는 아무도 없는가.  그러나 언젠가 내가, 가장 귀중한 것을 내게 주는  생명을 갖게 된다면------  ~~~~~~~~~~~~~~~~~~~~  봄을 그대에게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  고독  고독은 비처럼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 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고독은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가서는  처음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모든 골목길마다 아침을 향해 뒤척일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신들은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 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 간다.  ~~~~~~~~~~~~~~~~~~~~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  Rose, oh reiner Widersprl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  사랑은 어떻게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그대를 찾아왔던가?  빛나는 태양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하나의 기도처럼 찾아 왔던가? --- 말해다오  반짝이며 행복이 하늘에서 풀려 나와  날개를 접고 마냥 흔들리며  꽃처럼 피어나는 내 영혼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더니라  ~~~~~~~~~~~~~~~~~~~~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나를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삼아 주소서.  돌에 귀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나에게, 바다의 고독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주소서.  양 기슭의 맞부딪치는 소음 속에서  멀리 밤의 음향 속으로  나를 당신의 텅빈 나라로 보내 주소서.  그곳을 지나 끝없는 바람이 불어  큰 수도원의 승복처럼  아직 살아 보지도 못한 삶의 주위에 서 있는 그곳에  어떤 유혹에 의해서도 다시는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거기서 나는 순례자 쪽에 서렵니다.  눈 먼 늙은이의 뒤를 따라  모르는 사람뿐인 길을 가렵니다.  ~~~~~~~~~~~~~~~~~~~~  고독한 사람  낯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영원히 귀향길에 있습니다.  그들 식단을 보면 충족된 날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아득한 곳의 모습만 있습니다.  내 얼굴 속에 세상이 스며듭니다.  달처럼 어쩌면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  그러나 세상은 어떤 감정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언어에는 삶이 끼어 있습니다.  멀리서 내가 가져온 것들은  희귀하게 보이면서, 제몸에 매달려 있죠:  그들의 넓은 고향에서 그들은 짐승이지만,  여기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타며 숨을 죽입니다.  ~~~~~~~~~~~~~~~~~~~~  고아의 노래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아무도 되지는 않으렵니다.  지금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초라한 몸  그러나 훗날에도 마찬가지일 게요.  어머님들 아버님들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정말 키워 주신 보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잘려지는 몸입니다.  아무한테도 쓸모없는 신세입니다.  지금은 너무 이르고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내가 걸친 옷은 이 옷 한 벌뿐  헤어지며 빛이 바랩니다.  영원을 간직하는 옷입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도 지킬 수 있는 영원 입니다.  나한테 남은 것이라고는 이 한 줌 머리카락뿐입니다.  (언제까지나 똑같은 것이지만)  한때는 사랑하는 이의 것이었어요.  이제는 사랑이라고는 모르는 그 사람 이어요.  ~~~~~~~~~~~~~~~~~~~~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가슴으로 잡을 것입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럼 나의 뇌가 심장으로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 때는 당신을 핏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  존재의 이유  아! 우리는 세월을 헤아려 여기저기에  단락을 만들고, 중지하고, 또 시작하고  그리고 두 사이에서 어물 거리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친한 관계에 있고, 태어나고, 자라고  자기 자신으로 교육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결국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말이요.  마치도 대지가 사계절의 돌아감에 동의 하면서  밝아졌다, 어두워 졌다 하며 공간 속에 푹 파묻혀서  하늘의 별들이 편안하게 위치하는  그 숱한 인력의 그물 속에 쉬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이......  ~~~~~~~~~~~~~~~~~~~~  흰 장미  너는 죽음에 몸을 맡긴 채  잎새 위에 서럽게 얼굴을 뉘인다.  유령 같은 빛을 숨쉬며  희푸른 꿈을 띠고있다.  하지만 노래마냥  마지막 가냘픈 빛을 띠며  아직도 하룻밤을  달콤한 네 향기 방안에 스민다.  네 어린 영혼은 불안스럽게  이름없는 것을 더듬거리다  내 가슴에서 웃으며 죽는다.  내 누이인 흰 장미여.  ~~~~~~~~~~~~~~~~~~~~  사랑의 노래  당신의 영혼이 내 영혼에 닿지 않은 바에야  어찌 내 영혼을 간직하겠습니까?  어찌 내가 당신 아닌 다른 것 에게로  내 영혼을 쳐 올려 버릴 수 있겠습니까?  오,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어떤 것 옆,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조용하고 낯선 곳에  내 영혼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은  확실히  마치 두 줄의 鉉에서 한 音을 짜내는  활 모양의 바이올린처럼 우리를 한데 묶어 놓습니다.  어떤 악기에 우리는 얽혀져 있는 것인가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건가요?  오, 달콤한 노래입니다.  ~~~~~~~~~~~~~~~~~~~~  장미의 내부  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에  이 보드라운 아마포 (亞麻布)를 올려놓는 것일까.  이 근심 모르는  활짝 핀 장미꽃의 내부 호수에는  어느 곳의 하늘이  비쳐 있을까. 보라,  장미는 이제라도  누군가의 떨리는 손이 자기를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모르는 양  꽃이파리와 꽃이파리를 서로 맞대고 있다.  장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많은 꽃들은  너무나 충일하여  내부에서 넘쳐나와  끝없는 여름의 나날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점점 풍요해지는 그 나날들이 문을 닫고,  마침내 여름 전체가 하나의 방,  꿈속의 방이 될 때까지.  ~~~~~~~~~~~~~~~~~~~~~  삶의 평범한 가치  이따금 나는 륨 드 세인 같은 거리의 조그만 가게의  윈도우 앞을 어정거리는 일이 있다.  그것은 고물상이나 조그만 헌 책방의 동판화를 파는 가게로  어느 윈도우에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차 있다.  나는 손님이 한 사람도 들어가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아마 장사를 하려고 가게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앉아서 무엇을 읽고 있다. 정말 한가한 모습이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려고 억척을 피우는  모습이란 눈곱만치도 없다.  발치에는 살이 찐 개가 배를 깔고 누워 있다.  개가 아니면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꽂혀 있는 책에  몸을 비비며 표지의 등 글자를 지우듯이 걸어 다닌다.  그것은 주위의 조용함을 더욱 깊게 하는 것 같다.  아아, 이런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가게 하나를, 구닥다리 물건이 차 있는 윈도우를  고스란히 사들여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안에서  20년쯤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하고.  ~~~~~~~~~~~~~~~~~~~~  가을의 종말  언제부터인가 눈앞에  만물의 변화가 보인다.  무엇인가 우뚝 서서 몸짓을 하며  죽이고 또 아픔을 준다.  시시로 또 아픔을 달리하는  모든 정원들.  샛노란 잎새들이 차차 짙으게  조락에로 물든다.  내가 걸어온 아득한 길  이제 빈 뜨락에서  가로수길을 바라보면  먼 바다에까지 이어닫는  음울하고 무거운  차디찬 하늘  ~~~~~~~~~~~~~~~~~~~~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데 익숙해야 하네.  사랑이라고 불리는 그것  두 사람의 것이라고 보이는 그것은 사실  홀로 따로따로 있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이 오직 자기 감정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자기를 연마하는 일과가 되네.  서로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지 않으며  그 거리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두 사람이 겪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  ~~~~~~~~~~~~~~~~~~~~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럽게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  순례의 서  내 눈빛을 지우십시오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십시오.나는 당신을 들을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팔이 꺾여도 나는 당신을  내 심장으로 붙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멈춘다면  나의 뇌수가 맥박 칠 것입니다  나의 뇌수를 불태운다면  나는 당신을 피속에 싣고 갈 것입니다  - 릴케가 연상의 여인  루 안드레아 살로메에게 첫사랑을 고백한시  ~~~~~~~~~~~~~~~~~~~~  가을...  앞이 떨어집니다. 멀리서인 듯 떨어집니다.  하늘의 저 먼 정원이 시든 것처럼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밤이면 저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에서 고독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떨어집니다. 이 손도 떨어집니다.  다른 것을 보십시오.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지요.  하지만 이 떨어짐을 부드러운 손으로  끝없이 맞아주는 누군가가 계십니다.  조두환 번역  ~~~~~~~~~~~~~~~~~~~~  그리움이란  그리움이란 이런 것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의 삶  그러나 시간 속에 고향은 없는 것  소망이란 이런 것  매일의 순간들이 영원과 나누는 진실한 대화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런 것  모든 시간 중에서도 가장 고독한 순간이  어제 하루를 뚫고 솟아오를 때까지  다른 시간들과는 또다른 미소를 띠고  영원 속에서 침묵하고 마는 것  ~~~~~~~~~~~~~~~~~~~~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  피에타  이렇게, 예수여, 저는 당신의 발을 다시 봅니다,  제가 가슴 떨며 벗기고 씻겨드렸던,  그 때는 한 젊은이의 발이었지요.  내 드리운 머리카락 속에 당황하여 서 있던 모습  마치 가시덤불 속에 하얀 야수 같았지요.  이렇게 저는 당신의 사랑 받은 적 없는 팔다리를 봅니다  처음으로 이 사랑의 밤에.  우리는 아직 함께 누워 본 적도 없는데,  이제는 경이로와 지켜볼 뿐이로군요.  그런데, 보아요, 당신의 손이 찢겨 있군요-:  사랑하는 이여, 저 때문에, 제가 찔러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심장은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군요:  어찌 저만 들어갈 수는 없었던가요.  이제 당신은 지쳤고, 당신의 지친 입술은  제 슬픈 입술에 아무런 욕구도 없군요-.  오 예수여, 예수여, 우리의 시간은 언제였나요?  어쩌면 기이하게도 우리 둘 다 몰락하는지.  ~~~~~~~~~~~~~~~~~~~~  서시(序詩)  네가 누구라도, 저녁이면  네 눈에 익은 것들로 들어찬 방에서 나와보라;  먼 곳을 배경으로 너의 집은 마지막 집인 듯 고즈넉하다:  네가 누구라도.  지칠대로 지쳐, 닳고닳은 문지방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너의 두 눈으로  아주 천천히 너는 한 그루 검은 나무를 일으켜  하늘에다 세운다: 쭉 뻗은 고독한 모습, 그리하여  너는 세계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 세계는 크고,  침묵 속에서도 익어가는 한 마디 말과 같다.  그리고 네 의지가 그 세계의 뜻을 파악하면,  너의 두 눈은 그 세계를 살며시 풀어준다. . . .  (김재혁 / 고려대학교 교수 / 옮김)  ~~~~~~~~~~~~~~~~~~~~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오직 타버린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나긴 밤을 새운 아름다운 불빛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스러지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영원한 지속이다  ~~~~~~~~~~~~~~~~~~~~  고독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저녁을 찾아 바다에서 오른다.  멀고 먼 외진 들녘에서 오른다.  늘상 고적하기만 한 하늘로 옮겨갔다가  하늘에서 비로소 도시에 내린다.  아침을 향해 골목골목이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 떠나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들어야 할 때,  낮과 밤이 뒤엉킨 시각, 비가 되어 내리면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려 합니다.  박해받으면 갇혀 있는 감옥에서 풀려나려는 듯이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의 위대한 기적입니다.  나는 느낍니다.여기에는 모든 삶이 살고 있다고.  그러나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연주되지 아니한 선율이 하아프 속에 깃들여 있듯이  저녁 어스름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이겠습니까.  물 위에 불어 오는 바람이겠습니까,  신호를 주고받는 나뭇자기겠습니까,  향기를 풍기는 꽃송이겠습니까,  늙어 가는 긴 가로수 길이겠습니까,  오고가는 따뜻한 동물들이겠습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새들이겠습니까.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신(神)이여, 당신입니까-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  만년의 밤  밤이여, 오 그대 나의 얼굴에서  깊이 속으로 녹아든 얼굴이여.  그대여, 내 경탄하는 관조의 가장 위대한  과중(過重)함이여.  밤이여, 나의 응시 속에 전율하며,  그러나 스스로 그토록 확고한 ;  고갈되지 않는 피조물,  대지의 잔해(殘骸) 위에 영원한;  저네들의 가장자리의 도피로부터  중간영역의  소리 없는 모험 속으로 불길을 던지는  어린 별들로 가득한;  그대 다만 존재함 자체만으로도, 우월한 존재여,  나는 얼마나 왜소한 모습인가 ― ;  허나 어두운 대지와 한 몸 되어  내 감히 그대 안에 존재하려 하노라.  ~~~~~~~~~~~~~~~~~~~~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A god can do so. But tell me how a man  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말 해다오.  is supposed to follow, through the slender lyre?  어떻게 인간이 가냘픈 수금을 통해 신을 따라갈 수 있는지를?  His mind is riven. No temple of Apollo  그의 마음은 찢겨졌다.  stands at the dual crossing of heart-roads.  이중의 마음의 십자로엔. 아폴론의 사원이 서 있지 않구나.  Song, as you have taught it, is not desire,  노래는, 당신이 가르쳐 준 것처럼. 욕망이 아니다.  not a winning by a still final achievement:묵묵한 마지막 성취에 의한 승리도 아니다:  song is being. A simple thing for a god.  노래란 존재이고. 신에겐 단순한 것.  But when are we in being? And when does he  그러나 우리는 언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언제  turn the earth and stars towards us?  대지와 별을 돌려서 우리에게 향하게 해 줄 것인가?  Young man, this is not your having loved, even if  젊은이여, 이것은 네가 사랑을 간직하는것만으로 될 수 없다.비록  your voice forced open your mouth, then – learn  그때, 네 목소리가 네 입을 열도록 만든다 할지라도.  to forget that you sang out. It fades away.  네가 불렀던 노래를 잊어버리도록 배워라. 그건 사라질것이다.  To sing, in truth, is a different breath.  노래한다는건. 사실은, 또 다른 호흡이며  A breath of nothing. A gust within the god. A wind.  아무것도 호흡하지 않는 것이며. 신 안의 돌풍이고. 바람이기 때문이다.  ~~~~~~~~~~~~~~~~~~~~  과수원  1  내가 만일 빌려온 언어로 그대에게  편지를 쓸 용기를 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과수원이라는 이 소박한 명사를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명사 하나에 사로잡혀 오래 전부터 고통스러워했다.  이 명사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서  흔들리는 너무나 막연한 하나의 의미나,  또는 그보다 못한 방어하는 울타리라는 의미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가엾은 시인이여.  과수원 : 오, 너를 단순하게 이름 부를 수 있는  리라의 특권이여 ;  꿀벌들을 매혹하는 비할 데 없는 말,  숨쉬고 기다리는 말...  고대의 봄을 숨기고 있는 명료한 명사,  가득 차 있으면서도 투명한 말,  그 대칭적인 음절 안에서  모든 것을 배가시킴으로써 풍요로워지는 말.  ~~~~~~~~~~~~~~~~~~~~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오 생명의 나무여, 겨울은 언제이뇨?  우리는 한 마음이 아니다. 철새들처럼 그렇게  때를 알지도 못해 뒤쳐지고 늦어서야 우리는  느닷없이 억지 바람을 일으켜  무심한 못 위로 떨어질 뿐이다.  피고 지는 것을 우리는 동시에 의식하고 있다.  어디에선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가고 있는 사자들은 무기력을 모르련만.  그러나 우리가 서로 아주 하나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이미 상대편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적대감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 여인들도  언제나 서로 안에 하나가 되어  가장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거기 아득한 넓이와 사냥과 고향이 약속되어 있건만.  한 순간의 그림을 위한 여기에도  애써 대조의 바탕이 마련된다.  우리가 그것을 보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를 아니까. 우리는 감정의 윤곽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밖에서 그것을 형성해 주는 것일뿐.  ~~~~~~~~~~~~~~~~~~~~  두이노의 비가  내가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 주리오? 설령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 해도, 나보다 사뭇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는 무서움의 시작에 다름아니니까.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소리를 꿀컥 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  부릴 수 있을까? 천사들도 아니요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 속에 사는 우리가  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런지.  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에의 뒤틀린 맹종, 그것들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모든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드리운,  약간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한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우고 있구나.  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네 공허를 던져라. 그러면 새들은  더욱 당찬 날갯짓으로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봄들은 너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 수많은 별들은  네가 저희들을 느끼기를 바랐다. 과거 속에서  파도 하나 일어나고, 혹은  열려진 창문 옆을 지나갈 때  너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겠지.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  네게 애인을 점지해줄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  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밤이면 어김없이 네 안에 머무르는데.)  그리웁거들랑, 사랑을 하는 자들을 노래하라, 하지만  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라.  네가 시기할 지경인 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의  만족을 맛본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에 빠진 자들을,  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의 버림을 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스탐파의 드높은 모범에서  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 된 고통들이 우리에게  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목소리, 목소리들, 들어라, 내 가슴아, 지난날 성자들만이  들었던 소리를, 엄청난 외침 소리가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지만, 그들, 불가사의한 자들은  무릎꿇은 자세 흐트리지 않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귀 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목소리야  더 견디기 어려우리.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를 들어라,  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전언을.  이제 그 젊은 주검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교회든 로마든 나폴리든  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의 碑文처럼  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의 영혼의  순수한 움직임에 가끔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옳지 못한 인상일랑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이 지상에 더 이상 살지 않음은 참으로 이상하다,  겨우 익힌 관습을 다시는 행할 수 없음과,  장미들과 그밖의 무언가 나름대로 약속하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장래의 의미를 선사할 수 없음과,  한없이 걱정스런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이제 더 이상 아님이,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도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처럼 허공에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므로 죽어 있다는 것은  점차 조금이나마 영원을 맛보기 위한 힘겨움과 만회로  가득 차 있는 것 ――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은  모든 것을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하는 실수를 범한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를 가는지, 죽은 자들  사이를 가는지 때때로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영원한 흐름은 두 영역 사이로  모든 세대를 끌어가니, 두 영역의 모두를 압도한다.  끝내 그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니,  우리는 어느 덧 자라나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난다. 그러나 그토록 큰 비밀을  필요로 하는 우리는, 슬픔에서 그토록 자주 복된 진보를  울궈내는 우리는 ―― 그들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젠가 리노스를 잃은 비탄 속에서 튀어나온 첫 음악이  메마른 단단함 사이를 꿰뚫었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  거의 신에 가까운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영원히  떠나버려 깜짝 놀란 공간 속에서 비로소 공허함이  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하며 돕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  - 릴케(Rainer Maria Rilke)  평가 :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  약력 : 1875년 체코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영토) 출생  1890년 메리시 바이스키르헨의 육군사관학교 입학  1891년 사관학교 퇴학  1894년 처녀시집 를 발레리의 도움으로 출간  1895년 프라하 대학 입학  1901년 여류 조각각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  1902년 출판  1910년 출판  1923년 출판  1926년 장미가시에 찔려 급성 백혈병의 증세로 사망  작가 이야기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실존의 불안과 예감의 고뇌 속에서 자신의 영감이 폭풍을 일으키고 그것을 언어로 춤추었던 불세출의 서정시인이요 작가였다. 그는 매우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그리고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이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 출신의 독일 시인이었던 그는 일찍부터 고향 상실의 비애와 감상에 젖어야 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예비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퇴학한 것도 그의 우수를 더해 주는 요소였다. 군사교육에 대한 지독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로 인해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평생 극복할 수 없었노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뮌헨대학을 졸업하던 22살 무렵 만난 루 살로메와 더불어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부터 그의 삶은 사랑과 고독, 방황과 편력, 여행과 발견, 그리고 그에 따른 문학적 탐색의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릴케의 문학은 정신적 순례를 통해 영혼의 초월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특성을 지닌다. 신을 찾고 신에게로 다가서고자 하는 순수 영혼의 열정적인 동경을 형상화한 을 비롯하여 사물의 존재를 관조적으로 성찰한 , 무한한 우주 공간에 던져진 인간의 실존과 고뇌를 그린 , 존재와 세계의 아름다움과 조화 세계를 노래한 등의 시편들로 현대시인으로서의 불멸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 는 을 집필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던 기간에 쓰여진 대표적인 소설이다. 말테라는 청년 주인공의 내면 영혼의 심층을 깊 있게 보여준다.  를 완성하던 날, "마침내 축복받은, 축복받은 듯한 날이 왔습니다"라며 열광적인 편지를 쓰기도 했던 그는 장미 가시에 찔려 그 상처가 깊어져 숨을 거둔다. 51세의 나이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라고 스스로 쓴 묘비명 아래 누웠다. 누구의 꿈도 아닌 깊은 잠을 포근히 감싸주는 장미꽃에 덮혀, 그렇게 20세기의 순수 열정과 운명을 마감했다.   
15    베를렌 시모음 댓글:  조회:1573  추천:0  2017-05-05
베를렌  1844~1896     프랑스 상징파의 시인   공병장교의 아들로 로렌 주에서 태어났다. 파리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부  에서 공부하였으나 중퇴하고, 20세에 보험회사에서 일하다가, 파리 시청의 서기로 근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25세에는 18세기 프랑스의 우아하고 향락적인 꿈과 우수에 찬 풍속과 정경을 노래한 시집 [사랑의축제]를,   다음 해에는 '고운 노래들'을 내어, 자유롭고 대담한 율동적인 시형으로, 환상적이고 암시적.환기적인 그의 독특한 시풍을 확립.   시인 랭보와의 연애끝에 권총으로 그를 쏘아 2년간 옥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시풍은 낭만파나 고답파의 외면적이고 비개성적  인 시로부터 탈피하여 음악을 중시하고 다  채로운 기교를 구사하였다.   주요 시집: 우수시집(Poemes saturniens)1866,            사랑의 축제(Les Fetes galantes)1869,            고운노래(La Bonne Chanson)1870,            말없는연가(Romances sans paroles)1874,            예지(Sagesse)1881,            사랑(Amour)1888,            평행으로(Parallelement)1889 등.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설레임은 무엇일까?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부드러움이여!   답답한 마음에   아, 비 내리는 노랫소리여! 1. 울적한 이 마음에 까닭도 없이 눈물 내린다.   웬일인가! 원한도 없는데?   이 이유없는 크나큰 슬픔은 무엇인가.   이건 진정 까닭 모르는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는데   내 마음 한없이 괴로워라!         가을 노래                      가을 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이   가슴 속에 스며들어 마음 설레고 쓸쓸하여라.     때를 알리는 종소리에 답답하고 가슴 아파   지나간 날의 추억에 눈물 흘리어라.     그래서 나는 궂은 바람에 이 곳 저 곳   정처 없이 흘러 다니는 낙엽 같아라.       하늘은 지붕 위로                 하늘은 지붕 위로 저렇듯 푸르고 조용한데,   지붕 위에 잎사귀를 일렁이는 종려나무.     하늘 가운데 보이는 종 부드럽게 우는데,   나무 위에 슬피 우짖는 새 한 마리.     아하, 삶은 저기 저렇게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을.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저 평화로운 웅성거림.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 봐, 뭘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끝간 데 없이 늘어선 생울타리                          끝간 데 없이 늘어선 생울타리 거품 인 맑은 바다 같네.   그 위로 맑은 안개, 향긋한 햇장과 내음 풍기고.     날렵한 망아지들이 와서 뛰놀며 흩어지는   부드러운 초원, 그 위로 가볍게 보이는 나무들과 풍차들.     일요일의 이 허허한 벌판 속에 다 큰 양떼들도   장난치며 놀겠다네, 저들의 흰 양모같이 부드러운.     그 위로 젖빛 하늘 속에서 방금 피리 소리 같은 종소리의   파장이 소용돌리처럼 궁글며 퍼져 나갔다.       시집 '예지'중에서 '하늘은 지붕 위로'와 더불어 또 하나의 걸작으로 꼽힘       캄캄한 깊은 잠이                              캄캄한 깊은 잠이 내 삶 위에 떨어지네.   잠자거라, 모든 희망아. 잠자거라, 모든 욕망아 !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선과 악의   기억마저 사라진다...... 오, 내 슬픈 이력아 !     나는 어느 지하실 허공속에서 어느 손에   흔들리는 요람. 침묵, 침묵 !       랭보를 권총으로 쏜 사건의 초심 판결 언도를 받은 날 절망속에서 쓴 시.     가르파르 오제의 노래                  부모님이 없는 나는 조용한 고아, 평온한 두 눈만 커다랗게 하고   큰 도시의 사람들에게 왔지요 ---- 하지만 그들은 날 영리한 놈이라고 안하더군요.     스무 살 때 사랑의 열이라는 새로운 혼란이 찾아와   여인들이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 하지만 그녀들은 날 미남이라고 안하더군요.     조국도 없고 왕도 없지만, 그리고 용감하다고도 거의 할 수 없지만   난 전장에서 죽고 싶었지요 ---- 하지만 주검도 날 안 원하더군요.     그러니 난 너무 일찍 났나요, 너무 늦게 났나요? 이 세상에서 난 뭘 해야 하나요?   오, 내 괴로움은 깊답니다 ---- 여러분들 모두 이 가여운 가스파르 위해 기도드려 주십시오.       * '캄캄한 깊은 잠이'와 마찬가지로 초심 판결 언도후   쓴 이 시에서 베를렌느는 가련한 역사적 인물인   가르파르 오제에 자신을 비유.  
14    빅토르 위고 시모음 댓글:  조회:1853  추천:0  2017-05-05
①스텔라  그 밤에 나는 모래 밭에서 자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결에 꿈에서 깨인 나는 눈을 뜨고 새벽별을 바라보았다. 그 별은 하늘 깊숙한 곳에서 한없이 부드럽고 고운 흰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북풍은 소란을 떨고 달아났다. 빛나는 별빛은 구름을 솜털처럼 엷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객하고 호흡하는 빛이다. 물결이 부딪쳐 흐트러지는 암초 위에 조용함을 가져왔다. 마치 진주를 통해서 영혼을 보는 것 같았다. 밤이었지만 어둠은 힘을 잃어가고 하늘은 거룩한 미소로 밝아졌다. 별빛은 비스듬히 기운 돛대 위를 은색으로 물들였다. 뱃몸은 아직 어둠 속에 있었지만 돛은 희었었다. 가파른 언덕 위에 갈매기 떼들이 앉아, 생각 깊은 모양으로 그 별을 응시하고 있었다. 섬광으로 만든 천국의 새처럼. 백성을 닮은 태양은 별을 향해 움직이고, 나지막이 물결소리를 내며 별이 빛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별이 도망갈까 보아 겁내는 것 같았다. 공간을 메우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 파란 풀잎들이 내 발밑에서 그 사랑에 겨워 파들 거리고 있었다. 새들이 둥우리에서 소근대고, 잠을 깬 꽃아가씨가 내게 말했다. 저 별은 내 누이라고. 어둠이 천천히 장막을 여는 동안 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앞에 서서 오는 별입니다. 사람들이 무덤 속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살아나는 별입니다. 나는 시내산 위를 밝혔고 타이제트산 위를 밝혔습니다. 돌을 던지듯이 하느님께서 불의의 면전에 던지시는 황금과 불로 빛은 조약돌입니다. 세상이 무너질 때 다시 살아나오는 별입니다. 백성이여! 나는 뜨거운 시입니다. 모세의 앞길을 비춰주었고 단테의 앞길을 비춰주었습니다. 사자같이 사나운 태양도 나를 좋아합니다. 내가 여기 왔습니다,파수꾼들이여, 탑 위에 올라가시오! 눈꺼플이여, 눈을 여시오, 동자여, 빛을 내시오. 대지여, 고랑을 파오, 생명이여, 외침을 들으시오, 잠자는 이여, 일어나시오! 나를 쫓아오는 자는 나를 이렇게 전초로 보낸 자는 바로 자연의 천사요. 빛의 거인이오니! ②오네요! 아련한 피리 소리  오네요! 아련한 피리 소리 과수원에서 들려와요. 한없이 고요한 노래 목동의 노래. 바람이 지나가요, 떡갈나무 그늘 연못 어두운 거울에. 한없이 즐거운 노래 새들의 노래. 괴로워 말아요, 어떤 근심에도 우리 사랑할지니! 영원히! 가장 매혹적인 노래 사랑의 노래. ③꽃에 덮인 오월 꽃에 덮인 목장의 오월이 우리를 부르니, 이리 오오! 저 전원, 숲, 아양스런 그늘, 잔잔한 물가에 포근히 드리워진 달빛 신작로로 통하는 오솔길, 미풍과 봄과 끝없는 지평선 수줍고 즐거움에 겨운 이 땅덩이가 입술처럼 하늘의 옷자락 끝에 포개지는 지평선을 당신 마음속에 함뿍 끌어넣지 않으려오. 이리 오오! 겹겹의 막을 뚫고 땅 위에 내려진 마알간 별들의 시선이, 향기와 노래에 넘치는 나무가, 정년의 햇빛으로 뜨거워진 들의 입김이, 그리고 그늘과 태양이, 물결과 녹음이, 당신의 이마 위엔 아름다움을 당신의 마음속엔 사랑을 꽃 피게 하여 주리니! 탐스런 꽃송이처럼. ④모래언덕 위에서 하는 말 나의 인생이 햇불처럼 옴츠러 들어간 지금, 나의 임무가 끝난 지금, 애상과 나이를 먹는 동안 어느샌가 무덤 앞에 이르게 된 지금, 그리고 마치 사라진 과거의 소용돌이처럼 꿈의 날개를 펴던 저 하늘 속에서 희망에 부풀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어둠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 지금, 어느 날인가 우리는 승리를 하지만 그 다음날은 모든 것이 거짓이 되고 만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슬픔을 안고 꿈에 취한 사람모양 몸을 구부린 체, 나는 바라본다. 뭉게구름이 산과 계곡, 그리고 끝없이 물결짓는 바다 저 위에서 욕심장이 북풍의 부리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하늘의 바람소리가 ,암초에 부딪치는 물결소리가, 익은 곡식단을 묶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 기울인다. 그리고는 속삭이는 것과 말하는 것을 내 생각 깊은 마음속 에서 비교해 본다. 나는 때때로 모래언덕 위 듬성듬성 난 풀 위에 몸을 던진체, 꼼짝 않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노라면 흉조를 띤 달이 떠올라와 꿈을 펴는 것이 보인다. 달은 높이 떠올라 가만스런 긴 빛을 던진다. 공간과 신비와 심연 위에, 광채를 발하는 달과 괴로움에 떠는 나, 우린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사라진 내 날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라도 있을까? 이 노곤한 눈동자 속에 젊은 날의 빛 한 오라기라도 남아 있는가? 모든 것이 달아난 걸까? 나는 외롭고 이젠 지쳤다. 대답없는 부름만을 하고 있구나. 바람아! 물결아! 그래 난 한가닥 입김과 같은 존재였단 말이냐? 아 슬프게도! 그래 난 한줄기 물결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냐? 사랑했던 그 어느 것도 다시 볼 수 없단 말이냐? 나의 마음속 깊숙이 저녁이 내린다. 대지야, 네 안개가 산봉우리를 가리웠구나, 그래 난 유령이고 넌 무덤이란 말인가? 인생과 사랑과 환희와 희망을 모두 살라 먹었을까? 막연히 기대를 건다. 그러다간 애원하는 마음이 되어 한줌이라도 혹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단지마다 기울여 본다. 추억이란 회한과 같은 것인가, 모든 것은 우리에게 울음만을 밀어다 주는구나! 죽음, 너 인간의 문의 검은 빗장아, 너의 감촉이 이리도 차냐! 나는 생각에 잠긴다. 씁쓰레한 바람이 일어오는걸, 물결이 붉게 주름지어 밀려오는 걸 느끼면서, 여름은 웃고, 바닷가 모래밭에는 파아란 엉겅퀴꽃이 피어나는구나. ◈위고(Hugo, Victor 프랑스 시인 1802-1885) 낭만주의의 대가. 1822년에 처녀 시집을 발표한 뒤 한평생 시를 쓴 국민적 대시인. 희곡 '에르나니'를 공연하여 낭만주의의 승리를 가져왔고, 소설 , 등으로 시뿐 아니라 소설, 희곡등에서도 성공을 거둔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조류의 거장. 풍부한 상상력과 완벽한 문체의 기교, 무궁한 정력, 끊임없는 창작열속에서 눈부신 많은 작품을 쏟아놓았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기인된 유형지 Jersey에서 고독과 번민, 사랑하는 아들의 뜻아닌 죽음은 그의 천재성을 더 깊고 넓게 열어 주었습니다. 시집: Odes et Ballades (1826-1828), Les Orientales (1829), Les Feuilles d'automne(1831), Les Rayons et les ombres (1840), Les Chatiments (1853), La Legende des Siecles (1859-1883) 등.....  
13    랭보 시모음 댓글:  조회:6011  추천:0  2017-05-05
감각 랭보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 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나의 방랑생활 (MA BOHEME) 랭보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ㅇ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내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 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에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취한 배 A.랭보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이젠 선원들에게 맡겨져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어. 형형색색 말뚝에 발가벗긴 채 못박아놓고서 인디언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 플라망드르산 밀이나 영국산 목화를 져 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아랑곳하지 않았지. 나의 선원들과 더불어 그 소동이 끝나자 강물은 내 마음대로 흐르도록 날 버려두었지. 격렬한 밀물 요동속에 밀리며 어느 겨울 아이들 머리보다도 더 귀멀었던 나, 나는 헤쳐나갔지. 그리고 출범한 반도들은 그보다 더 기승하는 소동을 겪은 적이 없었다. 폭풍우 해상에서 잠깨는 날 축성했고 콜크마개 보다 더 가벼이 떠돌며, 영원한 희생자들의 흔들배라고 불리우는 물결출렁이는 대로 난 춤추었네. 회한 없이 열날 밤을, 초롱불들의 흐리멍텅한 눈! 어린 애들에게보다 더 부드럽게 내 전나무 선체에 스며들고 청포도주 얼룩들과 토해낸 찌꺼기들이 키와 갈고리 닻에 흩어지며 날 씻었네. 이제 그때부터 초록 창공을 탐식하는, 젖빛의, 별들이 잠긴, 바다의 시 속에서 난 헤엄쳤네. 거기엔 해쓱하고 넋 잃은 부유물처럼 이따금 상념에 잠긴 익사체가 내리흐르고, 거기엔 갑자기 푸르스름한 색깔들 물들이며, 태양의 불그스름한 번득거림 아래에 느릿한 착란과 리듬, 알콜보다 더 진하게, 우리의 리라보다도 더 드넓게 사랑의 씁쓸한 바알간 얼룩들 술렁이며 삭아가네! 난 알고 있다네, 섬광으로 찢어지는 하늘들, 물기둥들, 격랑들 그리고 해류들을,난 알고 이다네, 저녁녘, 비둘기의 무리처럼 비약하는 새벽, 또 난 가끔 보았다네, 인간이 본다고 믿었던 것을! 난 보았네, 신비로운 공포 점점이 박힌 나지막한 해, 머나먼 고대 연극의 배우들 모양의 길다란 보랏빛 응결체들을 비추는 태양을 저 멀리 출렁이는 수면을 굴리는 물결들을! 난 꿈꾸었네, 현란스레 눈 덮힌 푸른 밤! 서서히 바다 위로 복받쳐 오르는 애무인 양 놀라운 수액들의 순환 그리고 노릇파릇 깨어나 노래하는 인광들을! 내 여러 날 쫓아다녔지. 히스테릭한 암소떼 처럼 넘실넘실 암소들을 덮치는 큰 파도들. 성모 마리아의 빛나는 발이라도 숨가쁘게 헐떡이는 대양을 억누르진 못했을 거야! 짐작하다시피 난 부딪쳤네, 엄청난 프로리다 주와, 꽃무리 속에 인간의 피부를 한 표범들 눈초리가 엉켜 잇었고 수레바퀴 테처럼 탱탱한 무지개들, 수평선 아래 바다의 청록색 양떼들과 어우러지고 있었지! 난 보았네, 어마어마한 늪들이 통발처럼 삭아가는 것을, 거기엔 골풀들 안에서 거대한 바다괴물이 통째로 썩어가고! 바다의 고요한가운데에서 부서지는 물의 붕괴, 그리고 심연을 향해 카르릉거리는 원방의 물결들을! 빙하들, 은빛 태양들, 진주모빛 물결들, 잉걸불처럼 바알간 하늘들! 갈색 물구비 복판에 꼴사나운 좌초물들, 거기엔 빈대들이 할퀴어버린 거대한 뱀들 시커먼 냄새 풍기며 비틀린 나무들처럼 쓰러져가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리, 푸른 물결의 그 만새기들, 그 황금색 물고기들 노래하는 물고기들을, 꽃모양 물거품들이 항상 나의 출범을 어르고 형언할 수 없는 바람들은 시시각각 날개치듯 날 스쳤네. 이따금 극지와 지대들에 지친 순교자처럼 바다는 흐느낌으로 내 몸을 부드러이 흔들어대며 노란 통풍창 뚫린 그늘의 꽃들을 내게로 올려보내고 난 거기 쪼그리고 있었네, 무릎꿇고 거의 넋 잃은 채. 섬처럼 내 뱃전 위로 달라붙은 하소연을 뿌리치고, 금빛눈을 빈정거리는 새들의 똥무더기를 가르며 나는 떠내려갔네. 어렴풋이 날 스쳐간 혼백들 다시금 뒷전으로 잠잠히 가라앉더라! 해서 난, 길 잃은 배되어 머리카락 휘감기듯 폭풍에 말려 새도 없는 창공으로 내던져졋지. 모니토르 군함들도 한스 조합의 범선들도 물에 취한 내 몸뚱아리 건지지 못햇을 나: 자유로이 보랏빛 안개를 타고, 피어올라 불그스름한 하늘을 돌파할 나, 벽을 돌파하듯 훌륭한 시인들에 바치는 별미의 과일쨈처럼, 태양의 지의들이며 창공의 넝마들을 걸친 나, 반달 전구들 점점이 박혀, 미쳐 날뛰는 판자처럼, 검은 해마들 호송받으며 달음질치는 나, 군데군데 타오르는 구덩이 난 군청색 하늘을 7월들이 몽둥이 삿대질로 무너뜨릴 때, 50리 밖에서, 발정하는 배헤못과 어마어마한 말스트롬 돌풍이 우는 소리를 느끼며 전율하는 나, 푸르른 부동으로 영구히 실을 잣는 자, 나는 고대 흉벽들이 늘어선 유럽을 애석해하노라! 난 보았네, 항성의 군도들을! 그리고 열광하는 그곳 하늘 항해자에게 열려 있는 섬들들, -바로 이 끝없이 깊은 밤들 사이에 그대 잠들어 달아나는 건가 백만의 황금새들, 오 미래의 활력이여? 하지만, 정말이지, 난 너무나도 흐느껴 울었네! 여명들은 비통하고 달이 온통 잔혹하고 해는 온통 가혹하고, 쓰디쓴 사랑은 취기 어린 마비상태로 날 부풀렼ㅆ네. 오 나의 용골을 터뜨리라! 오 날 바다로 가도록 하라! 내가 유럽의 물 갈구한다면 그것은 바로 검고 차가운 웅덩이, 거기엔 향긋한 황혼을 향해 슬픔에 겨워 쇠잔한 한 아이 쪼그리고 가벼운 배 한 척 5월의 나비처럼 더 잇는 곳. 오 물결들이여, 그대들 무기려함에 휩싸인 나, 이제는 목화짐꾼들로부터 그들의 자국 지울 수 없네, 깃발들과 불길들의 오만함 가로지를 수도 없네, 이제는 부교들의 험악한 눈들 아래에서 헤엄칠 수도 없네.     미셸과 크리스틴 (MICHEL ET CHISTINE) 랭보 빌어먹을 그때 만일 태양이 이 기슭을 떠난다면! 달아나라, 환한 홍수로다! 여기 길들의 그늘이 있다. 버드나무숲에서, 오랜된 앞뜰에서 뇌우는 우선 굵직한 물방울을 뿌린다. 오 백 마리의 어린양들아, 목가의 금발 병사들아, 수로들, 마른 히이드들아, 도망쳐라! 평원, 사막, 초원, 지평선이 뇌우의 붉은 화장을 돕고 있다! 검둥개야, 외투가 휘날리는 갈색 머리의 목자야, 탁월한 번개의 시간을 피하라. 금발의 무리야, 어둠과 유황이 떠다니니, 더 나은 은신처로 내려가도록 하라. 그러나 나는, 주여! 여기 내 성령이 날아온다. 얼어 버린 붉은 색 하늘 뒤에서, 흐르고 나는 천상의 구름들 아래, 철길처럼 긴 백 군데의 솔료뉴평원으로. 저기 많은 늑대들, 많은 야생의 씨앗들을, 이 종교적인 뇌우의 오후가 앗아간다. 메꽃들을 사랑하기는 하면서 많은 무리들 몰려올 옛 유럽 위로! 뒤에, 달빛이여! 황야 도처에서, 전사들이 얼굴은 붉고 이마는 하늘 향한채 자신들의 창백한 준마들을 천천히 몰고 간다! 이 당당한 무리 아래 조약돌들이 울린다! ----그리고 나는 볼 것이다 노란 숲을, 밝은 계곡 을, 파란 눈의 아내를, 붉은 이마의 남자를---- 오 갈리 아여, 그리고 그들의 소중한 밭 근처에서, 유월절의 하얀 양을, ---- 미셸과 크리스틴을, ----또한 그리스도를! ----목가의 끝. 모음 (VOYELLES) 랭보 검은 A, 흰E, 붉은I, 푸른U, 파란O :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터질 듯한 파리들의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 ; E, 기선과 천막의 순백, 창 모양의 당당한 빙하들, 하얀 왕들, 산형화들의 살랑거림. I, 자주 조개글, 토한 피, 분노나 회개의 도취경속에서 웃는 아름다운 임술, U, 순환주기들, 초록 바다의 신성한 물결침, 동물들이 흩어져 있는 방목자으이 평화, 연금술사의 커다란 학구적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한 금속성 소리로 가득찬 최후의 나팔, 여러 세계들과 천사들이 가로지르는 침묵, 오, 오메가여, 그녀의 눈의 보랏빛 테두리여!   프롤로그 태양은 아직 뜨거웠다. 그렇지만 이젠 거의 지상을 비추고 있지는 않았다. 흡사 거대한 둥근 천장 바로 앞에 촛대가 이젠 아주 가냘픈 미광으로 밖에 천장을 비출 뿐인 것처럼, 지상의 촛대인 태양은 자기가 불태우는 축제에서 그 최후의 가냘픈 미광을 내면서 꺼져가려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 가냘픈 미광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 나무들의 풀빛 잎과 시들기 시작한 작은 꽃들이며 수백 년의 연륜을 거친 소나무나 포플러나 떡갈나무 등의 거대한 나뭇가지가 있는 곳을 희미하게 분간할 수 잇을 정도는 되었다. 몸을 상쾌해지게 하는 바람, 즉 일진의 미풍이 내 발밑을 흐르는 냇물의 은빛 재잘거림과 똑같은 일관성의 살랑거림으로써 나뭇잎들을 흔들어 술렁대게 하고 있었다. 양치 덤불이 바람 앞에서 그들의 푸른 이마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냇물에 내 몸을 담그며 잠들어 있었고...... 2 나는 꿈을 꾸었다...................................................................나는 1503년 렝스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렝스는 그 당시로서는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크로뷔스 왕의 성별식 때, 증인 역할을 했던 그 아름다운 대서당 덕택에 꽤 유명한 도시이긴 했다. 우리 부모는 그렇게 부유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부모로서는 예전부터 자기들에게 전해져온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야 비로소 자기들의 소유가 된 한 채의 자그마한 집과, 또, 여태껏 여전히 절약을 거듭하면서 몇 루이씩인가 적립해가야 하는 몇천 프랑인가의 저금이 전재산인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친위대 사관이었다. 키가 크고 마른 편이며 머리터이 검은, 턱수염도 눈도 살갗도 모두 엇비슷한 빛깔의 남자였다. 내가 태어났을 적엔 아직 겨우 48세나 50세 정도 밖에 되어 있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눈엔 틀림없이 60세나 58세 정도로는 보였을 게다. 그는 급하고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어서 노상 화를 내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아예 딴 판이었다. 상냥하고 조용한 여성인데, 조그마한 일에도 늘 겁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 일은 구석구석까지 빈틈없이 잘 처리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너무 조용한 사람이어서 아버지는 마치 젊은 아가씨 같다며 그녀를 놀려주기도 했었다. 나는 제일 많이 사랑받고 있었다. 형제들은 나만큼 무모하지는 않았는데 그건 나이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부한다는 것, 즉 일기쓰기며, 수판 따위를 배우는 일이 어지간히 싫었다. 그런데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거나 채소밭을 갈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하는 일은 썩 잘했다!.... 나느 그런 일을 좋아했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거니와 어느 날 아버지는, 만일 네가 이 나눗셈을 잘 풀면 20수를 주겠노라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약속했다. 그래서 나는 하기 시작했으나 끝내 해내지 못했다. 아아! 아버지는 몇번이나 나에게 약속해주셨던 것일까. 만일 아버지한테 이러이러한 것을 읽어준다면 돈을 주마, 장난감을 주마, 과자를 주마. 언젠가 한번은 5프랑을 주겠노라고 까지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런 모양이었으므로 아버지는 내가 10세가 되자 학교에 넣어주셨다. 무엇 때문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왜 그리스어와 라틴어 등을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런 것은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시험에 합격한다는 따위의 일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어떤 도움도 되지는 않는다. 그렇잖은가?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높은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높은 지위 따위는 차지하고 싶지 않다. 나는 금리 생활이 시작되는 거야. 가령 높은 지위에 앉고 싶다고 생각한데도 대관절 무엇 때문에 라틴어를 공부해야 한단 말인가? 누구 하나 그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건 아니야. 나도 어쩌다 한두 번쯤은 신문에서 라틴어를 보게 되는 수는 있다. 하지만 고맙게도 나는 신문기자 따위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왜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는 것일까? 확실히 파리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파리의 위도 가 어떠냐 하는 것 따위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역사도 그렇다 시날도니 나보폴라사르니 다리우스니 퀴로스니 아렉산드로스니, 그밖에 그 악마 같은 이름으로 유명한 자들의 생활에 관해 배우다니 그건 어지간히 고역이 아니겠는가? 알렉산드르가 옛날의 유명한 인물이었다는 것 따위가 나한테, 이 나한테 무슨 관계가 있는까? 대관절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모름지기 라틴어라는 건 조작해낸 말인 것이다. 혹시 라틴인이라는 녀석이 존재해 있었을지라도 내가 금리생활자가 되는 것으 방해해주지 앟기를 바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들의 말은 그 녀석들만의 말로 해두어주기를 바라고 싶은 것이다! 이러 고역을 치러야 할 어떤 나쁜 일을 내가 그런 녀석들에게 했다는 말인가? 다음은 그리스어 이다. 이런 지저분한 말 따위는 누구 하나, 이 세상의 누구 한 사람도 지껄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아 아! 정말 지랄같다! 지랄 같은 짓이다! 나는, 나는 금리생활자가 되는 거야. 벤치에 앉아 반바지가 닳아버리게 한다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정말 지랄 같은 짓이란 말이다! 구두닦이가 되기 위해 구두닦이라는 직업을 얻기 위해 고작 시험에 합격하는 게 좋아. 자네들에게도 허용되어 있는 직업이라는 건 구두닦이나, 돼지치기나, 소치기나 그 정도의 일일테지. 고마운 일이다! 나는 그런 일은 면하겠네. 젠장 정말 지랄 같네! 자네들은 그렇게 해서 노력한 보상으로 뺨을 손바닥으로 철썩 얻어맞게 되는 거야. 자네들은 짐승 같은 놈이락 불리거나, 이건 진짜는 아니지만 개구쟁이니 하고 불리거나 하는 것이다. 이 계속은 다음 호에 기대해 주기 바란다. 아아! 지랄 같단 말이야! 1864년 랭보의 숙제장..   오필리어 A.랭보 1 별빛이 사라졌다가 비쳐지는, 어둡고 고요한 물결 위에 하얀 오필리어는 한송이 흰 백합꽃처럼 떠내려가는구나. 긴 장옷과 더불어 지극히 고요히 흘러가는구나. -아득히 먼, 깊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사슴 쫓는 몰이꾼의 각적소리. 가엾은 오필리어의 어렴풋한 환상이 어두운 강물줄기를 떠돌아다닌지 천 년 세월이 흘러갔노라. 그녀의 애처로운 광란이, 저녁 바람을 타고 그 연가를 속삭인지 어언 천 년 세월이 흘러갔노라. 바람은 그녀의 젖가슴에 입맞추고, 물결따라 부드럽게 흔들면, 그녀의 엷은 면사는 크게, 화관처럼 휘날리었노라. 헝클어진 버들가지들은 그녀의 어깨 근처에서 흐느끼고, 그녀가 꿈꾸는 넓은 이마는, 갈대줄기를 기울어지게 하였노라. 짓눌린 수련은 그녀의 몸 둘레에서 탄식하고, 이따금 작은 날개의 떨림을 전하면서, 개암나무 속 둥우리에 잠자는 것을 그녀의 흘러가는 몸이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노라. -금빛 별들로부터 쏟아져내리는 신비로운 노래여. 2 오, 창백한 오필리어여, 흰눈처럼 아름답구나! 어린 아기에 지나지 않았던 그대는 물줄기에 운반되어 죽었었노라! 노르웨이의 거봉에서 불어닥치는 한풍 -아주 낮게 내려와서, 처절한 자유를 그대에게 가르쳐 주었노라. 그대의 머리칼을 온통 매질하고, 꿈꾸는 그대의 마음을, 격렬한 소음으로 가득 채웠던 숨결이었다. 나무들의 통곡, 밤의 탄식 속에서 그대는 대자연의 절규를 들었으리라. 거대한 헐떡임과도 같은 바다의 소리는, 그대의 어린 가슴에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너무나 따뜻하게 생각되었노라. 사월 어느 날 아침, 얼굴이 맑고 창백한 한 사람의 기사, 어리석은 광인은 그대의 무릎 위에 말없이 앉았도다. 하늘이여, 사랑이여, 자유여, 아 가엾은 광녀여, 이 꿈은 어쩐 일인가 불에 녹아버리는 눈처럼, 그대는 그에게 마음까지 떠맡겨버렸노라. 그대의 커다란 환상이, 그대의 말을 질식시켜버렸도다. 그리하여 두려운 무한은 그대의 푸른 눈을 놀라게 하였으리라. 3 -시인은 지금도 말하노라. 별빛속에서 그대는 지금도 밤이 되면, 그대가 지난날 꺾었던 꽃을 찾으로 왔노라고, 또한 긴 장옷과 더불어 물을 침상 삼고, 백색의 오필리어가, 커다란 백합꽃처럼 물결 위에 흘러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왔노라고,   영원 A.랭보 그것을 되찾았도다! 무엇을?-영원을. 그것은 태양과 섞인 바다. 파수의 영혼 그토록 무가치한 밤과 불길 속 낮의 기원을 드리기로 하자. 인간다운 기도와 평범한 충동으로 거기서 그대는 벗어나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사틴의 불잉걸이여, 그대의 유일한 열정으로부터 '마침내'라고 말하지도 않고 의무는 다 타버리는구나. 거기엔 희망도 영광도 없는데 인내력이 강한 면학 그러나 형벌은 틀림없다. 그것을 되찾았네. 무엇을 말인가? 영원이라는 것 그것은 태양과 함께 가는 바다. 1872년 5월 비너스에 바치는 기원 A. 랭보 아이네아스 자손들의 어머니여,오오! 신들의 기쁨의 원천이여! 하늘이여, 유성 아래 있는 인간들의 환희여, 비너스여, 그대는 모든것을 가득하게 하는구나. 범선이 지나가는 물결과, 토양이, 숨쉬고 싹이트고, 솟아나며, 빛나는 태양을 보는 모든 존재를 그대에 의해 풍요하게 되는 구나. 그대 나타나니..... 바람과 어두운 구름이 빛나는 그대 이마를 보고 사라지는구나. 대양은 그대에게 미소짓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풍요한 대지는 그대 발 아래서 우아한 꽃들을 펼치고, 빛은 푸른 하늘 아래서 더 순수하게 빛나는구나! 4월이 와서 혈기로 부풀어오르자마자 달콤한 애정을 모두에게 금방 갖게 하네. 미풍의 숨결은 자신의 감옥을 강요하며 조류는 그대 계절을 알린다. 즐거움을 주는 새는 그대 사랑의 권능을 받는구나. 오오, 사랑의 여신이여! 야생의 짐승을 짙은 풀섶으로 뛰어가고 헤엄쳐서 물결을 가는구나, 그리고 그대의 속박된 은총으로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대를 뒤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구나! 바다, 개울, 산 등지로 가득한 숲 녹색 평원을 통해 모든 이의 가슴에 정답고 깊은 사랑을 부어넣는 것이 바로 그대이구나. 귿르의 피를 대대로 퍼뜨릴 협로여! 세계는 오직 그대 사랑의 권세만을 알고 있구나! 비너스 신이여! 빛을 향해 일어서는 그대 없이는 아무거나 할 수 없을 텐데. 누구도 그대 없이는 숨쉴 수 없고, 사랑을 느낄 수 없도다! 내 작업에 그대의 숭고한 협력을 바라노니! 샤를르빌 중학교 통학생 아르튀르 랭보 1869년   교회에 모인 가난한 사람들 A. 랭보 사람들이 토해내는 후덥지근한 숨결로 그득한 교회당 한쪽 구석에서, 늘어선 떡갈나무 의자 사이에 꽉 들어찬 사람들의 눈은, 소리높이 경건한 찬미가를 부르는 성가합창대와, 본전에서 넘쳐흐르는 노랫소리로 향한다. 빵 냄새라도 맡는 것처럼 개걸스럽게, 양초 냄새를 맡으며, 지극히 만족하여, 두들겨 맞은 개처럼 온순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보호자이며 영주이신, 신 앞에 우스꽝스럽고, 고집스럽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일주일의 6일간, 괴로운 삶을 신으로부터 허락받고 있었건만, 일요일이면 걸상에 광택을 내기 위하여 찾아드는 기특한 여인들, 헐어빠진 외투 속에서, 필사적으로 울면서 악을 쓰는, 사나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여인들. 더러운 때투성이 가슴을 드러내고, 수프를 훌쩍훌쩍 떠먹고 있는 야비한 여인은, 기도하는 체하면서, 사실은 기도따위는 아랑곳없이 이상한 모자를 쓰고 의기양양한 말괄량이 아가씨들의 일단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다. 문밖에서는, 추위와 굶주림뿐 그리고 술주정꾼. 아무튼 한 시간만 더 지나면 언어도단의 패거리들이 들이닥칠거다. -그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이야기로, 콧소리로 투덜거린다. 주름살이 축 늘어진 노파들의 집단. 불안하고 조심스런 자들이었다. 어제는 거리에서, 누구나 피해서 지나갔던 간질병자들이었다. 너덜너덜한 낡은 미사 전집에 코를 비스듬히 갖다대고,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개에게 이끌려 안마당으로 들어오는 맹인들. 온통 이런 패거리들이, 얼빠진 구걸가락을 붙여서, 긴 탄식을 토로하며, 거듭 호소해보지만,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드어오는 노란 햇빛을 받아, 아주 높은 곳에서, 아귀같은 깡마른 자에게나 배불뚝이에게나 아랑곳없이. 예수는 꿈꾸듯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계신다. 곰팡내나는 의류랑, 음식 냄새가 미치지 않는 먼 곳에서, 혐오감을 일으키는 동작과, 침울한 소극을 행하고 있다. 기도는 어마어마한 미사여구 장중한 격조가 주위에 신비로운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본당에 햇살이 엷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속된 면포의 주름을 달고, 귀족마을의 품위있는 부인들은 들떠서, -아, 예수시여. 미식가이며, 항상 간장에 탈이 나 있는 그 부인들이 상아빛 우아한손가락으로 성수반을 살짝 건드리는 것이었다. 1871년   태양과 육체                     A.랭보 오! 인간은 자유롭고 자랑스런 그의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그 태초의 아름다움의 갑작스런 광체는, 육체의 제단에 신의 심장을 고동시키는구나! 현재의 행복에 즐거워하며, 겪어 온 불행에 창백해져서 인간은 모든 것을 살펴보고 알려고 한다. 사고는, 오랫동안 너무나 오랫 동안 억눌려 있던 이 준마는 그의 이마에서 튀어나와 약진한다. 이 사고는 해답을 알게 되리라! 사고가 자유로이 약동할 때에, 인간은 신아을 가지리라! -왜 하늘은 말이 없고 우주는 불가사의한가? -왜 황금빛의 별들이 모래마냥 흩어져 있는가? 만일 인간이 계속 올라가 보면 그는 그 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어떤 목자가 이 우주의 공포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의 무리를 인도하는가? 이 모든 벌들, 광막한 에떼르가 포옹하는 이 세계들은 영원한 목소리의 억양따라 진동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볼 수 있는가? 나는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고의 목소리는 이미 한 꿈에 지나지 않는가? 인간이 그토록 일찍 태어난다면, 삶이 그토록 짧은 것이라면, 그는 어디에서 오는가? 씨앗의, 태아의, 애벌레의, 그 깊은 대양속에 모성적 대자연의 무한대한 도가니 속에 빠져들면 어머니 대자연은 거기에서 그를 생명있는 창조물로 소생시켜서 장미 속에서 사랑을 하고 밀밭 속에 성장하게 할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지! -다만 무지의 망또와 편협한 공상에 짓눌려 있지! 여인들의 음부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 원숭이들 우리의 창백한 이성은 우?르에게 무한을 숨기는구나! 보고 싶다!-그러면 회의는 우리를 벌주겠지! 회의, 그 음울한 새는 그의 날개로 우리를 후려친다. 그리고 지평선은 영우너한 도주로 사라져 버린다! 광대한 하늘은 열려있다! 신비는 우뚝 선 인간 앞에 죽어 버렸다! 이 인가은 자연의 광대한 광휘 속에 그 억센 팔짱을 끼고 선다! 그는 노래한다.-그리고 숲도 노래하고 강도 중얼거린다. 태양으로 향해 오르는 행복 가득한 노래 이것이 구원이다! 사랑이다! 사랑이다!   교수형에 처해진 무도회/Bal des pendus                                A.랭보 빈틈없이 사랑스런 검은 교수대 그 위에서 무사들이 춤을 춘다. 춤을 춘다. 깡마른 사나운 무사들과 사라딘의 해골도 춤을 춘다. 벨제브즈 님께서는, 깃장식으로부터, 하늘을 향해서 거들먹거리는 얼굴을 하고, 꼭두각시 인형을 꺼내서 헌 신발의 밑창에다 그놈들의 이마를 두둘기고 나서는, 옛날 크리스마스 노래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하였노라. 늘어진 인형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팔과 팔을 끼고, 일찍이 그 어느 곳 껴안았던 검은 오르겐과 같은 텅 빈 가슴은, 비열한 정사 때문에, 언제까지나 충격 받았다네. 만세! 쾌활한 무용수들은 배가 없구나. 뛰어다니는 것은 멋대로 하겠지만 익살무대는 너무 길구나! 잠깐! 그것은 싸움인지, 아니면 춤인지 알 수가 없구나! 벨제브즈도 화가 나서 바이올린을 긁어 댔노라. 단단한 뒷축이군! 샌들이 닳아버릴 염려는 마시라! 모든 사람이 가죽 셔츠를 벗어던졌다. 남은 자는 조금은 덜 성가스럽고, 몰염치한 자는 아닌가 보다. 두개골 위에 내려 쌓이는 눈의 모자. 멈춘 까마귀가 좋은 깃털 장식을 금이 간 머리에 했다. 그놈의 깡마른 턱 밑에서, 고기 한 조각이 떨리고 있구나. 어둠 속 마구 뒤섞인, 거치를 뼈의 용사들은 두터운 종이 갑옷과 사물의 도구들로 서로 충?했었노라. 만세! 해골들의 대무도회에서 불어닥친 북풍, 검은 교수대는 철로 만든 오르겐처럼 신음소리를 내는구나! 그 소리에 응답하여, 자색의 숲에서는 늑대들이 울어대고, 지평선의 하늘을 지옥의 불빛으로 물드는구나... -저기 음침한 장의사 대장일랑 떨쳐 버려라. 그놈은, 음험하게도, 갈라진 굵은 손가락으로 메마른 조골 근처에서 사라으이 염주를 굴리고 있었으리니, 망자들이여! 여기는 수도원이 아니라오. 죽음이 무도회의 한가운데로, 빨갛게 타오른 밤하늘 속으로 터무니 없이 커다란 해골이 갑자기 출현하였노라. 있지도 않는 팽팽한 교수형 밧줄을 목덜미에 느끼면서, 뒷발로 일어서는 준마에 채찍질하며, 도약함으로써 뭔가 냉소와도 같은 절규를 터뜨렸노라. 삐걱거리는 대퇴골 위에, 손가락들을 경련시키고, 뭔가 냉소와도 같은 절규를 터뜨렸노라. 빈틈없이 사랑스런 검은 교수대 그 위에서 무사들이 검은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악마의 깡마른 무사들이 사라딘의 해골들도 춤을 춘다. -1870년 11월   물에서 태어난 비너스/Venus Anadyomene A.랭보 양철로 만든 녹색 관 처럼, 낡은 욕조로부터, 머리 기름으로 찰싹 달라 붙은 갈색 머리칼의 여자의 머리 하나가, 얼빠진듯이, 느릿느릿 나타났다. 아예 위장해보겠다는 것은 잊고, 결점을 드러낸 채. 다음으로 거무칙칙한 굵은 목, 크게 돌출한 어깨뼈, 울퉁불퉁한 짤막한 허리. 피하지방은 잎사귀 같기도 하고, 허리 둘레는 지금이라도 당장 튀어나올 듯하구나. 척추는 약간 불그스레하고 전체의 모습은 기묘학 멋을 띠우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대경으로 바라보고 싶을만큼, 야릇함이 눈에 뛴다. 허리부분에, 두 개의 단어가 새겨져 있다. '빛나는 비너스' -이윽고 이 육혼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커다란 엉덩이를 내밀면 항문의 종기까지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엉덩이는.../Nos fesses ne sont pas les leurs.. A.랭보 우리들의 엉덩이는 그녀들의 엉덩이와는 다르다. 종종 나는 여기저기의 울타리 뒤에서 단추를 벗기는 자들을 보았던 것이다. 도 아이들이 수선을 떨며 뛰놀고 있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우리들의 엉덩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싶어 나는 소상하게 관찰하기도 했다. 이쪽이 탄력이 있고 대개는 빛깔도 창백하며, 선명한 양면 선명한 양면 분계부를 갖추고 있다. 그걸 털이 센 울짱이 온통 뒤덮고 있다. 그런데 그녀 쪽은 더부룩하게 밀생한 긴 공간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그저 그 매력이 넘치는 줄무늬 속뿐.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불가사의한 조화는 바로 성화에 그려져 있는 천사들에게만 볼 수 있는 종류의 것. 그것은 미소지을 때 보조개가 생기는, 그 뺨의 모양 같은 것. 오오! 같은 벌거숭이 생물이 되어 그녀의 영광스런 부분에 이마를 돌려 기쁨과 휴식을 구하는가. 그리고 둘이 서로 껴안아 마음껏 환희의 목소리를 나직이 내는가?   나의 방랑(환타지)/Ma Boheme A.랭보 찢어진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나는 떠났네. 나의 외투 또한 관념적일 뿐! 시신이여, 창궁 아래를 걸어가는 나는, 그대의 충복이었구나. 오!라,라, 내가 꿈꾸었던 것은 눈부신 사랑이였으니! 나의 단벌 바지에도 커다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작은 몽상가인 나는 길목마다 시를 썼노라. 나의 여인숙은 큰곰자리 -하늘의 별들은 다정한 옷깃스치는 소리를 사각사각 내고 있었다.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기울이고 있었다. 이 상쾌한 9월의 저녁, 나의 이마 위에서 미주인양 밤이슬의 방울을 또한 느끼고 있었노라. 환상적인 암영들의 한가운데서 운을 밟으면서 나는 가슴 가까이까지 한쪽 발을 치켜들고, 나의 너덜너덜한 신발의 고무끈을 마치 리라 타듯이 켜고 있었노라!   갈증의 희극/Comedie di la soif A. 랭보 1. 조상들 우리는 어버이 또 그 어버이다. 또 그 어버이들! 달님과 풀잎의 차가운 이슬에 젖어 정성 깃들인 이 포도주 거짓없이 이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야 마시는 일이지. 나.-그렇지 않다. 야만적 강물에 빠지는 일이지. 우리는 이 고장 토박이고 너의 어버이의 어버이들이다. 버드나무 그늘의 어두운 물 저걸 보라. 미끄럽고 축축한 성벽을 둘러싼 도랑을. 우리들의 지하 창고에 내려가 봐 젖과 사과주는 뒤로 돌린다. 나.-그럼 소들이 거기서 물 마시러 가는 것 처럼 우리는 너의 어버이의 어버이들이다. 자, 마시게 어서 마셔. 천장의 술들을, 흔하게 볼 수 없는 커피차들이 주전자 속에서 끓고 있다. -그림을 보라, 꽃을 보라. 우리도 무덤이 싫어졌다. 나.-아아, 어느 항아리든지 죄다 비워버리고 싶구나. 2. 혼 영원한 물의 요정이여. 맛 좋은 물을 나누어 주라. 창공의 누이 비너스여, 맑게 펼쳐지는 물결을 치게 하라. 노르웨이의 방랑하는 유태인이여 눈의 이야기를 해다오. 사랑하는 옛 유형인이여 바다의 얘기를 해다오. 나.-안돼, 더 이상 청량음료도 컵에 피는 물의 꽃들도 전설도, 아름다운 모습도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노래하는 이여! 그대의 영세 대자의 미칠 듯한 나의 목마름 절망하고 침식하는 입 없는 친밀한 칠두사 3. 친구들 바닷가에 넘치는 수많은 물결 오너라, 그것은 술이다. 보라. 천연의 비테르 술이 높은 산에서 굴러오는구나! 순례하는 현인들이여, 푸른 기둥마냥 줄을 서서 압생트 술을 받으시오. 나.-그런 풍경은 아무래도 좋다. 친구여, 대체 취한다는 건 어떤 일인가? 연못가에 가라 앉아 썩어가는 것이, 나에겐 어지간히 어울리니까, 더러운 진창 밑에 깔려 부목과 함꼐 떠 있는 것이 4. 가난한 자의 몽상 아마, 그런 밤이 나를 기다려 주리라. 어느 고도의 한 구석에서 조용히 술잔을 들고, 더욱 즐겁게 죽어갈: 그러니깐 난 끈기있게 살아야지! 내 불행이 좀 가셔지고 언젠가 돈이 좀 생기면 북쪽 나라에 가볼까 아니면 포도 열매가 풍성한 나라에? -아아! 몽상하는 건 덧없는 것이지. 그러니깐 그것은 순수한 상실이지. 비록 내가 다시 한번 옛날의 여행자가 될지라도 풀빛 여관이 내 앞에 나타나 활짝 맞이해 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5. 결론 들판 안에서 떨고 있는 푸른 비둘기도, 뛰어가 밤을 보는 짐승도 물에 사는 짐승도, 가축도 마지막 살아 남은 나비도!... 모두가 목말라 있었다. 그러나 목적도 없는 구름이 엷어져 용해하며 -오오! 상쾌하게 하는구나! 새벽 빛이 이 숲을 비추는 축축한 제비 꼬쳉서 숨져갈 수 있다면!   별이 두 귀 가운데서 장미빛 눈물을 흘렸다/ A.랭보 별은 네 귀 한가운데에 장미빛 눈물을 흘리고, 신은 네 목덜미에서 허리까지를 하얗게 쓰다듬었다. 바다는 너의 홍조 띤 젖무덤에 다갈색의 물을 흐릴고 사람은 그지없는 네 옆구리에다 검은 피를 쏟게 했다   자애로운 자매 A.랭보 빛나는 눈, 윤기 흐르는 갈색의 피부, 나신으로 우뚝 선, 아름다운 20세 젊은이. 교교한 달빛을 받은 수려한 이마. 그는 페르시아 태생의, 미지의 정령, 처녀와 같은 순진무구함을 가지고 열렬히 추구하며, 처음으로 알았던 도취에 스스로를 떠맡겨버린 채, 다이아몬드의 반짝이는 바닥에 다시 밀려오는 청춘의 바다 여름 밤마다 통곡과도 닮아서, 이 세상의 추악함을 앞에 놓고, 이 젊은이는, 그의 마음속의 커다란 초조함에 몸을 떨면서, 너무도 깊고도 언제 치유될지 모를 가슴의 상처의 고뇌로 하여 자애로운 자매를 그리워하기 시작하였다. 아, 그러나, 여인이여, 장부의 한 덩어리여, 감미로운 연민이여, 그대는 결코, 결코, 자애로운 자매는 아니리라. 검은 시선도, 글김자진 부드러운 복부 조차도, 나긋나긋한 손가락도, 멋진 형태의 가슴도 아니리라. 이 커다란 눈동자에는 깨오날 수 없는 맹목, 우리들의 포옹은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로다. 우리들을 사로잡는 크나큰 정열과 매혹을 잔잔히 달래보는 것도, 젖가슴을 드리운 너의 탓이로다. 그대의 증오, 그대의 실신상태, 그리고 쇠약상태, 옛날의 참고 참았던 포악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밤마다, 밤마다 그대는 우리들에게 악의 없이 모든 일들을 저질렀도다. 매월의 지나친 많은 피흘림처럼. -애정과 생명의 부름과 행동의 노래 따위를 가지고, 여인이 한순간 젊은이를 감동시켰을 때, 열렬한 정의의 신도, 활기찬 시신도, 한데 어우러져서 엄숙한 신탁으로, 갈라놓고자 찾아오리라. 아, 쉴새없이 화려함과 정적이 뒤섞이고, 집념깊은 두 자매로부터 버림받고, 무기를 손에 들고, 예지를 따라 조용히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꽃피는 자연 속에서 젊은이는, 피에 물든 이마를 들고 서성거리고 있었노라. 음산한 연금술도, 신성한 학문의 비의도 모두, 상처입고, 우울한 이 거만한 지자를 혐오한다. 젊은이는 자신에게, 잔인한 고독이 걸어 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 그리하여 그때, 모든 것은 아름답고, 관까지도 혐오스럽지 않았도다. 젊은이는 광막한 미지의 이 세상의 종말과, '진리'의 밤을 통과하는 엄청나게 큰 '꿈'과 혹은 또 '산책'을 곰곰히 생각하였도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과 병든 육신을 그대로 찾아 원하는 도다. 오, 진정 이상야릇한 죽음이여, 오 진정 자애로운 자매여. 1871년 6월   기억 A. 랭보 1 청명한 물, 그것은 어릴 적 눈물 속 소금 같은 것, 여인네들 희뿌연 몸뚱아리들의 태양으로 치솟는 듯: 떼거리로 뭉친 비단과 순결한 백합, 어떤 때묻지 않은 건 출입 금지 표시가 붙은 벽들 그 아래의 근엄한 깃발들: 깡총거리며 노니는 천사들이: 아니...내닫는 금물결이 풀에 감긴 검고 묵진한, 그리고 특히 신선한 두 팔을 찰랑이네 푸른 하늘을 침대 덮개 삼은 어스름한 물이 언던과 아치더러 커튼 삼아 그늘을 드리워 달라 하네. 2 저런! 축축한 네모꼴은 해맑은 거품들을 튕기네! 물은 희뿌연 황금색으로 찰랑이고 무한한 심연에 펼친 충돌. 녹음이 펼치는 빛바랜 초록 드레스들이 수양버들처럼 하늘거리고, 거기에서 굴레없는 새들이 솟구쳐 오른다. 금화보다도 더 노랗고 다사로운 눈까풀 물의 근심 -그대의 부부의 서약, 오 부인이여!- 덧없는 정오에, 그 흐릿한 거울을 시기하는, 무더운 회색 하늘에 장미빛의 고귀한 친구 3 부인은 일하는 사내들 수영하는 곳 가까이 들판에 너무도 꼿꼿이 서 있네, 작은 양산을 손가락에 움켜쥐고, 산형화를 밟으며, 그녀로서는 너무도 독하게, 만개한 녹음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모로코 붉은 가죽으로된 그드의 책! 애석하도다, 그는 길 위해서 작별하는 수천의 하얀 천사들처럼, 산 저 모퉁이로 멀어져가네! 그녀는, 아주 냉담하고 우울하게 서 있다. 달음박질하네! 사내가 떠나자마자! 4 두텁고 깨끗한 어린 솜털을 지닌 팔의 회한이여! 성자의 마음속에서 4월의 달빛이 읽혀지도다. 이 추악함을 싹트게 하는 8월의 저녁에 휩싸여 늘어나는 강가 작업장의 유희여! 지금 성벽 아래서 그녀가 울고 있도다 숱 많은 눈썹은 미풍에만 깜박이고 후회도 근심도 없는 회색의 상보 움직이지 않는 배 안에서 고통스럽게 일하는 늙은 어부여. 5 오! 이 움직이지 않는 배에서 음울한 물의 이 눈장난을 나는 잡을 수 없도다. 오! 너무도 짧은 팔이여! 어떠한 꽃도, 거기서 나를 괴롭히는 노랑꽃도, 잿빛 물에 떠 있는 연인, 파란 꽃도 나는 잡을 수 없도다. 아! 가지를 흔들고 있는 버드나무 꽃문이여! 이미 오래 전에 꺾여 있는 분홍빛 갈대들이여! 오, 움직이지 않는 내 배여: 그리고 가없는 이 물의 눈 속에 팽팽하게 당겨진 그의 쇠사슬이 무슨 비참한 처지에 있는가?   골짜기에 잠들어 있는 자 A.랭보 크나큰 산등성이로부터 해가 비치면, 여기 푸른 풀이 우거진 작은 골짜기의 움푹 패인 땅에는, 한줄기 작은 시냇물이 노래하고, 은빛 아지랑이는 남루한 풀섶 위에 미친듯이 헝클어지니, 작은 골짜기는 햇살로 넘치는구나. 젊디 젊은 한 병사가, 입을 헤벌리고, 맨머리로, 시원한 푸르른 쐐기풀 속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구나. 구름이 떠가는 풀밭 위 햇살 쏟아지는 녹색의 침상 위에 누워, 창백하구나. 두 발은, 수선창포 속에 박고, 병든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머금고 잠들었구나. 다정한 자연이여, 녀석은 추운 듯하니, 따뜻이 잠재워주라. 온갖 향기가 바람에 실려왔건만, 콧구멍은 움짓도 하지 않고 한쪽 팔을 가슴 위에 얹은 채, 이 적막함이여, 그의 바른 쪽 배에는 붉은 상처 구멍이 두개.   나의 작은 연인들 A.랭보 눈물의 증류 향수는 카베츠빛 녹색의 하늘을 씻는다. 그대들의 고무와도 같은 탄력을 그리워하는 새싹이 돋운 나무 아래서, 둥근 달무리가 져서 한층 더 휘영청 밝은 달빛이여. 장화와 장화를 서로 붇치도록 하라. 나의 못생긴 처녀들이여. 그무렵, 우리들은 서로 사랑했었노라. 창백한 얼굴의 못생긴 처녀여. 반숙의 삶은 계란과 별꽃의 잎을 먹었다오. 어느날 밤, 그대는 나를 시인이라 빈정대며 말했던 금발의 못생긴 처녀여 이리 내려오렴 나의 무릎 위에서, 두둘겨줄터이니 나는 그대의 머릿기름을 입에서 토해낸다. 검은 머리의 못생긴 처녀여. 그대는 나의 만도린 줄을 앞이마로 끊어버렸을지도 모르리라. 돼 메말라버린 두 사람의 침. 빨강 머리의 못생긴 처녀여. 그대의 둥근 가슴의 골짜기의 악취가 아직도 괴롭히는구나. 아, 나의 어린 연인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미워하노라. 그대들의 못생긴 유방을 고뇌의 숨결로 뒤덮어버려라! 나의 감상의 해묵은 항아리일랑 짓밟아버려라! 자!-이 순간 나를 위하여 무희가 되어다오! 그대들의 견골은 탈구한다. 오, 나의 연인들이여! 다리를 절름거렸던 그대의 허리의 별도, 함께 궤도를 선회하라. 내가 시를 만들었던 것도 이 양의 어깨뼈들을 위해서 였던가! 나는 일찍이 사랑했었노라고 말하면서, 그대들의 허리를 부셔버리고 싶었는니라! 잘못 쓴 별들의, 따분한 무리여 하늘 구석구석까지 가득히 뿌려놓으라! -천박스런 배려에서 끌려갔건ㅁ나, 그대들은 산산이 흩어져서 신이 되도록 하라! 둥근 달무리가 져서 한층 더 휘영청 밝은 달빛이여 장화여 장화를 서로 부딪치도록 하라. 나의 못생긴 처녀들이여!   어리석은 일들 / Conneries   Ⅰ. 젊은 폭음 폭식가 / Jeune goinfre   줄무늬가 있는 모자 음경은 상아로 만들어지고,   의상은 칠흑, 폴(Paul)은 노린다. 찬장을.   혀 모양의 것을 배 모양의 것에로 던진다.   자아, 시작된다. 마법의 막대기와 들뜬 소동이.   A. R.     Ⅱ. 파리 / Paris   알 고디요, 강비에, 가로포, 볼프- 프레이에르, -오오, 로비네! - 무니에, -오오, 그리스도! - 르페르드리엘!   캉크, 자콥, 봉보네르! 베이오, 트로망 오지에 지르, 망데스, 마뉘엘, 기드 고냉! - 갖가지 은총을   담은 바구니여! 레리세(L'Herisse) 유성 왁스! 낡은 빵, 정력이 넘치는!   장님들! - 그로부터는 누가 알까? - 순경들, 자가용의 양갱수! - 우리는 기독교도여야 한다!   A. R.     Ⅲ. 술취한 마부 / Cocher ivre   불결한 사내가 마신다. 나전이 본다.   용서하지 않는 율법 합승마차가 전복한다!   여자가 굴러 떨어진다.   허리에서   피가 나온다. - 자아, 고함치라! 불평을 터뜨리라.   A.R.   여름의 밤마다, 진열창(陳列窓)의 불타는 눈에는... / Les soirs d'ete...   여름의 밤마다 진열창의 불타는 눈에 응시되어 정기(精氣)가 어스름한 울타리 밑에서 겁에 질려 떨 때, 키다리 마로니에 뿌리에서 흩어져 펼쳐질 때,   운집한 사람들 속에서, 쾌활한 사람이나 나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서, 짧은 파이프를 피우는 사람들에게서, 시가에 입맞춤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내가 어슬렁 잘못 들어선, 절반이 돌로 되어 있는 협소한 정자에서, - 그 위 쪽에서는 이브레드 Ibled의 광고가 붉게 빛나고 있다. - 나는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윽고 겨울이 인간의 물결을 가라앉히면서, 소리내어 흐르는 깨끗한 가는 물줄기를 얼어붙게 할 것이라고. - 그리고 살을 에는 북풍이 행복한 영감 하나 남겨 두어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프랑소와 코페 A. 랭보 저주받은 소천사 A.랭보 흡사 일요일 밤인 듯 푸르스름한 지붕과 흰 문어귀가 이어져 있다. 변두리엔 소리 하나 없이 이 희뿌옇게 이어져 있다. 그리고 지금은 밤이다. 에는 이상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 천창을 '천사'같은 덧문이 뒤덮고 있다. 그런데 마차를 피하기 위한 경계석 쪽으로 저걸 좀 봐. 기분 나쁜 듯이 몸을 후들후들 떨면서 뛰어 달려오는군. 검은 못브의 소천사가 비틀거리는 발로 걸어간다. 대추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인 것이다. 천사는 똥을 쌌다. 그리고 사라져 갔다. 그런데 그가 남긴 저주스러운 똥은 휴게중인 거룩한 달빛 아래서는 검붉은 피가, 작은 오수 구덩이를 만든 것같이 보일 뿐이다.   이를 잡는 여인들   불긋불긋한 고통으로 가득한 아이의 이마가 불분명한 꿈들을 꾸며 기어다니는 하얀무리를 고통스러워 할때면, 아이의 침대 곁으로 매력적인 두누이가 다가온다. 반짝이는 손톱에 여린 손가락들을 하고, 그녀들은 활짝 열린 십자형 창앞, 어지러히 핀 꽃들을 어루만지는 푸른 대기가 스며드는 곳에 아이를 앉히고, 이슬에 젖는 숱 많은 머리카락 속을 가느다란, 무섭고도 매혹적인 손가락으로 훑어나간다. 아이는 누이들의 조심스러운 숨결을 진홍빛 수액의 향기를 길게 풍기며, 입맞춤의 욕망으로 입술에 침을 축일때 간간이 휘파람 같은 소리에 끊어지는 숨결을. 향기로운 침묵속에서 아이가 누이들의 검은 속눈썹이 떠는 소리를 들으며, 얼얼히 무감각해 있는 동안에, 전기를 띤 부드러운 손가락들은 당당한 손톱으로 튀서 작은 이들을 죽인다. 의 취기가 아이의 머리에 올라 알아들을 수 없는 하모니커 한숨이 새어나오고, 아이는 느린 애무의 손길에 따라 울고픈 마음이 줄곧 일었다가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어린 학생의 꿈 A.랭보 때는 봄이었다. 로마에서는 오르비우스가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병상에 누워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던 무렵이었노라. 인정 사정 없는 교장의 무기도 이젠 반쯤 느슨해져서, 찰싹 때리는 그 울림도 이젠 내 귀에 들리지 않노라. 징벌의 가죽 주걱도 줄곧 고통을 받을 내 손발을 더 괴롭히는 일은 없게 되었노라. 나는 이 기회를 포착하여 화사하게 웃을 수 잇는 전원에 도착했노라. 일체를 잊어버리고 있었노라..... 공부는 이미 멀어지고 걱정거리도 없어 졌으니, 부드러운 갖가지 유열은 지친 내 정신을 되살아나게 해주었노라. 내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충족감에 채워지고, 무미건조한 학교도, 또 매력없는 교사도 잊고 있었ㄴ롸. 나는 머나먼 들판을 바라보고, 봄의 대지의 한가로운 갖가지 기적을 바라보니 기쁨은 깊었노라. 이런 내가 찾은 건 전원의 소요 뿐은 아니었노라. 나의 작은 심장은 더더욱 높은 것을 바라는 갈망에 부풀어 있었노라. 어떤 거룩한 심령이 나의 앙양된 감관에 날개를 주었는데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내 눈은 관상에 짓눌려 침묵을 지킨 채 휘황한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노라. 내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부드러운 전원에의 애석. 그것은 흡사 저 마그네시아 자석이, 남 모르는 힘으로써 끌어당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갈고랑이로써 소리도 없이 옭아매어놓지 않는 철의 고리와도 같이, 그러나 나는 정처 없는 긴 여로에 손발이 지쳐버렸으니, 어느 풀빛 강변에 드러누워 그 물줄기가 일 으키는 희미한 중얼거림을 듣는 중에 꾸벅꾸벅 졸았노라. 새소리의 즐거운 노래, 서풍의 숨결에 몸이 흔들리며 게으름에 잠겨 있었노라. 이때 유난히 하늘 높이 보이는 골짜기를 따라 비둘기떼가 나타났도다. 그 흰무리는 비너스가 키프로스의 동산에서 따낸, 그 향그런 화관을 뿌리째 물고 있었노라. 비둘기떼는 조용히 날아 내려와 내가 드러누워 있는 잔디밭 위에 내려서서 내 주변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내 머리를 둘러싸고 내 두 손을 굵은 줄로 묶었도다. 그리하여 내 관자놀이를 향기 높은 도금양의 작은 나뭇가지로써 장식하고, 그런데 가볍게 주리 집 마냥 나를 공중에 납치해 가버렸노라.... 비둘기 떼는 높은 하늘의 꿈 사이를 날아가, 장미의 잎 덤불 속에 묻혀서 꾸벅꾸벅 줄곧 졸고 있는 나를 실어갔노라. 바람은, 그 숨결로써 천천히 흔들리는 내 잠자리를 애무했도다. 비둘기떼는 저들이 태어난 고향에 이르자, 곧 신속한 비상으로써, 높은 산기슭인 허공에 걸린 작은 둥우리를 틀림없이 내려섰을 것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이 깬 나를 그곳에 두고, 얼마 후 날아가 버렸다. 아아, 기분좋은 작은 새들의 동우리여! 반짝이는 티없는 빛은 내 어깨 둘레에 펼쳐지고, 내 몸은 그 거룩한 빛으로써 치장되었노라. 그 빛은 그림자가 섞이어서 우리들의 눈이 흐려지게 하는 종류의 암울한 빛과는 아예 다른 것이로다. 그 천상의 원질에는 지상의 빛이 한 가락도 없어라! 왠지는 모르되 천계의 신성함이 내 가슴속에 스며들어, 넘쳐오는 큰 물결이 흡사 몸 속을 흘러 도는 듯싶구나. 오래 가 있지도 않고 비둘기떼는 돌아왔노라. 부리마다에 하마의 떨리는 현을 켜며 즐긴 그 옛날의 아폴론이 쓰고 있었던 것과도 매우 흡사한, 월계수로 짜서 만든 관을 물고 있구나. 그런데 비둘기들이 그 월계수관을 내 이마에 씌우자 바로 그때, 천공이 나를 향해 열리어 깜짝 놀란 내 눈에, 홀연 황금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포이보스의 모습이 나타났도다. 포이보스는 그 거룩한 손으로 하프의 발목을 나에게 내밀며 내 머리에 천상의 불길로써 이렇게 적었도다. "그대는 언젠가 시인이 되리라"하고...... 그때 내 손발엔, 이상한 열기가 스며오지 않는가. 그리하여 해맑은 수저의 광휘를 담은 투명한 샘은 태양의 빛을 받아 불타오르는구나. 그때 비둘기떼도 조금 전까지의 모습을 버렸도다. 미신의 합창대가 나타나 그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그 부드러운 팔로 우리들을 안아 올려 우리들을 공중에로 떠받쳐주면서, 세 번이나 아까 그 예언을 되풀이하고, 세번이나 월계수관을 씌워주는 그나. 1868년 11월 6일   최초의 성체배령 A.랭보 1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마을의 사원에서, 기둥이 때를 묻혀 더럽히고 있는 15명의 원숭이 같은 어린아이들이 신에 대해서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신발소리가 웅성거리는 야릇한 어둠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태양은 숲을 뚫고, 불규칙한 그림이 들어 있는 유리창 색유리의 낡은 색채를 다시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다. 돌은, 어머니인 대지를 항상 잊지 않는다. 그대들은 소맥의 무르익은 이삭 근처에서, 서로엉켜 있는 장미나무와, 뽕나무의 검은 관절 매듭이, 바라보는 눈동자도 푸릇푸릇 물들이게 되는 푸르른 관목에 뒤덮인 황토색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엄숙하게 몸을 떠는, 발정하는 시골에 흙투성이가 된 돌무더기의 산더미를 보게 되리라. 몇백 년 동안이나, 남빛 물과 응고된 우윳빛 벽도료를 가지고 사람은 멋진 헛간을 만들었다. 만일 성모상이나, 벌거벗겨진 그리스도 상을 안치하기에는 이상야릇한 신비스렁무이 모자란다고 할지라도, 파리는 그곳을 좋은 숙소나, 좋은 외양간으로 생각하고, 햇살이 내리쬐이는 마룻바닥 위의 흘러내린 밀랍을 배불리 먹었으리라. 특히, 어린아이는 얌전히 집에 있어야만 할 것이다. 가족은, 소박한 충고와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에 힘쓰고, 그리스도의 사제의 권세 있는 손가락에 닿아서, 그들의 몸이 간지로워지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선다. 그 사람들은 시커멓게 햇볕에 탄 이마를 더욱 햇볕에 태우고 싶은 탓인지. 관목숲으로 그늘진 정자를, 사제들에게 헌납해버렸노라. 최초의 흑의, 성스런 빵이 내려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 나폴레옹이나 '작은 북'의 치하에서, 요셉과 마르타 등이 끝없는 사랑으로 혓바닥을 숨차게 하는 금빛 찬란함이여, 그리고 이 지혜의 잘엔 두 장의 카드가, 인연이 있어 결합되어, 한 장이 된다는 날이로다. 단 한 번의 감미로운 추억, 대축하의 날로서 그 날은 두 사람에게 남으리라. 언제나 딸들은 교회에 가고 싶어 한다. 미사와 만도가 끝난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이 아가씨와 저 아가씨들을 품평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 젊은이들은 주둔부대의 복장이 아주 세련되게 어울리는 사내들. 그들은 카페에 떼지어 당구를 하다가, 공을 홀에 넣으면서 거칠은 노래를 큰 목소리로 외쳐대지만, 중요한 집안일 따위는 아예 무시해버린다. 그때 사제님은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저녁기도에 할 말을 구상한다. 멀리서 콧소리로 들려오는 가득 찬 댄스곡을 듣노라면, 천상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혼을 빼앗아가는 다리의 발가락과, 한번 보기만 하면 눈을 뗄 수 없는 장딴지를 상상 속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노라. -이윽고 밤은 찾아오리니, 금빛으로 물드는 저녁 하늘로, 검은 해적선은 밧줄을 풀고 출항한다. 2 사제님은 교리문답 중에, 시내의 조합원과 부자들 사이에서, 가엾은 눈매를 가진, 누런 얼굴빛의 낯설은 한 처녀를 발견했다. "양친들은 아마도, 가난하고 정직한 문지기 부부였으리라. '대축제의 날'에, 교리문답 중에 발견했던 이마 위로, 신은 반드시 성수반으로부터 눈을 내리게 하시리라." 3 대축제의 날의 전날에, 아이는 병이 났도다. 불길한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훨씬 더 드높은 사원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보다는 침대가 차라리 견딜 수 있었다. 다시 되돌아온 초인적인 추위로다.-"자, 나는 죽으련다" 그리하여 날아갈 듯이 그 아이는 당혹한 누이에게 달려가고 싶은 그리움이 있었노라. 누이는, 기진맥진하여, 동생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천사들과, 예수님과, 특히 성모 마리아를 곰곰히 생각하고, 그녀의 영혼은 고요히 모든 승리자들을 마셔버렸노라. 주여!...... 이 라틴어의 어미 가운데서는 녹색 물결무늬의 하늘이 주홍빛으로 성자들의 이마를 물들이고, 하늘의 성스런 군중들의 맑은 가슴에 피가 묻은 눈처럼 커다란 린넨천이 태양 위에 떨어진다. 현재와 미래의 처녀성을 위하여 그녀는 속죄의 상쾌한 맛을 씹는다. 그러나 물 속에 피어나는 백합보다도, 혹은 또 잼보다도, 그대의 용서는 차가웠노라. 오 시온의 여왕이여! 4 -그리하여, 책에 있어서의 성처녀는 아무런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말았도다. 신비로운 비약도 이따금 좌절해버리는 일도 있나니...... 그 뒤에는 권태가 있을 따름이로다. 낡은 나무와 천박스러운 장식들이 상기시켜주는 것은, 하잘 것 없는 상상뿐이로다! 생각지 않았던 음탕한 호기심이, 예수님이 자신을 감추시는 린넨천이라든가, 천상의 속옷 둘레를 뜻하지 않게 알아차리게 되었으므로, 창백해진 순결한 마음은 소스라치게 놀라버린 것이리라. 그녀의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으로 하여금 산산이 부서지고, 천상의 은혜의 빛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지도록 바라면서 숨 죽인 절규로 베개 위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군침이 흘렀다....... 그리하여 집과 뜰에는 밤의 어둠이 가득히 차고 넘쳤다. 여전히 어린아이는 중태 였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따. 허리를 굽히고, 한손으로 푸른 커튼을 열어재치고, 시트 밑에 있는 불처럼 뜨거운 그의 배와 가슴이 있는 곳으로,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보내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5 한밤중이었다.- 문득 눈을 떴을 때, - 창은 희게 물들어 있었다. 환하게 비쳐진 커튼의 푸른 수면앞에서 맑디 맑은 성일요일의 환상에 마음은 사로잡혀, 그녀는 붉디 붉은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녀는 코피를 흘렸다. 그리고 한결같이, 신의 은총이 사랑을 구하면서, 마음을 부드럽게 그리고 깨끗하게 보전하면서, 그녀는 가슴을 들뜨게 하였는가 하면, 또는 좌절하기도 하면서, 신이 계시는 하늘 아래서, 마음은 그렇게 깨달으면서, 그날 밤은 무척 목마른 밤이었노라. 밤새도록,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성처녀-성모'인 그대여, 젊은 날의 마음의 모든 동요를, 그대의 회색의 침묵으로 압살해버리는 밤이었노라. 살아 있는 피가 통하는 여심은, 남모르게 무언의 반항을 몰아내는, 그날 밤의 그녀의 목마름은 얼마나 격렬한 것이었는가. 살아있는 제물과 작은 신부를 맞아들이고, 별은 손에 양초를 받쳐들고 안마당에 내려 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유령처럼 상의가 널려 있고, 검은 괴물처럼 지붕이 올려다보이는 안마당이었노라. 6 성스러운 밤을 그녀는 뒷간에서 보냈노라. 양초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지붕의 구멍에서, 흰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청동빛 어둠을 향해서, 무모할 정도로 포도 넝쿨은 이웃집 마당으로 뻗어나가서 무너지려 한다. 추녀밑 창은, 새벽녘의 주홍빛 광선이 창유리를 빛나게 하는 안마당에서는, 제일 먼저 밝아졌다. 잿물 냄새나는 포도의 빛은 아직 지난 밤의 잠을 넓히고 있는 벽의 그림자를 좁혀가면서 몰아넣고 있다. ....................................................... 7 불결한 연민과 나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는 누구인가? 혐오감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자, 나병이 이미, 그 아름다운 육체를 파먹어버린 다음에도, 신의 심은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 아, 터무니없는 바보들이여! ...................................................... 8 히스테리의 착란이 한꺼번에 되돌아왔을 때 그녀는, 행복에 겨운 슬픔 밑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괴로움을 간직한 채, 연인이, 백만인의 성모의 아름다움을 꿈꾸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으리라. "그대는 아시나요? 당신을 죽게 한 것을, 내가 한 짓이라는 것을. 당신의 입술을 닫아준 것도. 당신의 마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나는 병이로다. 찰싹찰싹 차오르는 밤의 조수의 죽음으로 가서, 아, 나는 그 속에서 나를 잠들게 하고 싶구나!" "나는 매우 젊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나의 입김마저 더럽혀버렸습니다. 나의 목구멍 목젖 있는 데까지, 그는 더러움을 밀어넣고 말았습니다! 양모처럼 숱이 많은 나의 머리털 위에 그대는 입을 맞추어주셨습니다. 나는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아! 그랬습니다. 당신에게 즐거운 일이었으니까요." "사나이들! 그대가 열애하고 있노라고 생각하는 여인이, 수치스런 공포의 의식 밑에서 스스로를, 가장 괴로움에 가득 찬, 가장 더럽혀진 것으로 생각하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대에 대한 나의 열정이 모두 과실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 "나의 최초의 성체배령은, 이것으로 훌륭히 끝났습니다. 그대의 입맞춤-게다가 나는 꿈에도 알 수 없었던 당신의 입술의 맛. 그대가 포옹해 주었던 나의 육체와 마음은, 아직도, 예수의 그 부패했던 입맞춤으로 하여 근질거리고 있습니다!" 9 그리하여, 부패하고, 황폐한 영혼은, 신들의 저주가 쏟아져내리는 것을 느꼈노라. -영혼들은, 올바른 정열로부터 도피한 후, 죽음을 위하여 비정한 신의 증오 위에 몸을 눕힌다. 그리스도여! 아, 그리스도여. 지칠 줄 모르는 정력적인 대도여. 삼천 년 동안 수치심과 두통으로 여인들의 괴로운 이마를, 대지 위에 못박게 하고, 그리고 뒤집어, 납빛의 생애를 희생시켜버렸던 음험한 신이여.   1871년 7월   무제   -폴드 카냑-보나파르 일간지 무제 -구십이삼 년의 주검들/Morts de quatre-vingt douze A.Rimbaud 1792년과 1793년의 주검들이여 그의 말발굽 아래서 조용하구나 자유의 강한 입맞춤으로 그대들은 창백한 영혼 위에, 휴머니티의 이마 위에 짓누르는 질곡을 부셔 버리시요. 고통 속에서 치해버린 위대한 인간들이여 누더기 옷을 입은 그대들의 심장이 사랑으로 고동치는구나 오래된 주름살 아래 그들을 재생키 위해 오, '사신(死神)'이 씨앗 뿌린 병사들이여, 고귀한 연인이여. 그대들의 피가 모든 더러운 위대함을 씻겼도다. 발미시(市)에서, 플레리 고을에서, 이태리에서 죽은 자들이여, 오, 어둡고 부드러운 눈을 한 수많은 예수들이여, 우리는 그대들을 공화국과 함께 잠들게 두노라 채찍 아래서처럼, 제왕의 밑에서 허리를 굽힌 우리 -카샤낙의 신사들이 우리에게 그대들에 대해 말해 주는구나! 1870년 9월 3일 마자스 감옥에서 작성     저녁기도 A.랭보   나는 앉아 있다, 이발사의 손에 머리를 맡긴 천사처럼, 굵은 홈이 파인 맥주잔을 움켜 쥐고서, 허리와 목을 구부린 채, 오지 파이프를 물고, 촉감할 수 없는 돛들로 부풀어 오른 공기 아래.   낡은 비둘기장 속의 뜨뜻한 배설물들처럼, 내 안의 수많은 꿈들이 부드럽고 뜨거운 자국을 남긴다. 그러면 때로 내 스산한 마음은 녹아흐르는 듯한 어두운 황금 빛으로 붉게 물드는 버드나무와 같다.   그럴 때 나는 조심스레 그 많은 꿈들은 접어두고, 서른 잔이나 마흔 잔쯤 마시고 나서, 몸을 돌려 배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추스린다.   서양 삼나무와 히솝나무들에 둘러싸인 주 예수인 양 온화한 마음으로, 나는 갈색 하늘에 대고 아주 높고 멀리 오줌을 갈긴다. 키 큰 해바라기들의 동의를 얻어서.   앉아 있는 사람들                                   A.랭보                                   김학준 옮김   종창을 앓아 거무튀튀하고, 곰보 자국에, 눈 주위는 푸르 스름하게 그늘지고, 뭉툭한 손가락들은 대퇴골 근처에서 경련하며, 오래된 벽에 피어 있는 곰팡이 처럼 애매한 심술이 덕지덕지한 앞이마를 하고,   그들은 터무니없는 애정 속에서 의자의 검고 커다란 뼈대에 자신들의 뼈만 남은 괴상한 몸뚱아리를 붙이고 있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굽은 창살처럼 마른 다리를 꼬고서.   그 늙은이들은 항상 의자들과 한데 얽혀서, 피부를 스치는 싱그러운 햇살을 느끼거나, 눈 녹는 창밖을 바라보며 두꺼비들처럼 고통스런 전율에 몸을 떤다.   는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으니, 갈색으로 절은 밀짚은 그들 허리의 각을 따라 부드럽게 한다. 알곡이 익던 밀짚 다발 속에서는 기억 속 태양의 넋이 가려진 채 빛난다. 그때 은 무릎을 입에까지 끌어올리 고, 서투른 피아니스트들처럼 의자 밑으로 열 손가락을 늘어뜨려 톡톡 소리를 내면서, 자신들 속에서 찰랑거리는 슬픈 뱃노래를 듣는다. 그들의 머리를 사랑스런 흔들림에 내맡기고서.   오, 그들을 일어서게 하지 마라! 그건 낭패다. 얻어맞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천천히 견갑골을 펴면서 그들은 몸을 일으킨다, 오, 분노여! 허리를 폄에 따라 바지는 온통 부풀어오르고.   그리고 당신은 그들의 벗겨진 머리들이 어두운 벽을 들이받고, 꼬여진 다리가 서로 부딪고 부딪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 옷의 단추들은 야수의 눈동자들, 회랑의 구석에서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는.   게다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살인적인 손이 있다. 되돌아 오는 그들의 시선에서, 발길에 채인 암캐의 눈에 번지는 어두운 독기가 스며나오면, 당신은 그 끔찍한 동공에 사로잡혀서 진땀을 흘린다. 다시 앉은 그들은, 더러운 소매부리 속에서 주먹을 움켜 쥐고 그들을 일어나게 한 이들을 떠올린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빈약한 턱 밑 목울대를 지치도록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엷은 잠에 고개가 떨구어질 때 그들은 편안한 의자의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거만한 관리들이나 앉을 안락의자에 대한, 진실되고 애틋한 애정을 꿈꾼다.   잉크빛 꽃들은 잠자리들이 글라디올러스들 위로 날아다니듯 쉼표 모양의 꽃가루를 흩뿌리면서, 꽃받침이 웅크러든 생김을 따라 그들을 흔들어 재운다. -그러나 그들의 몸을 밀짚 꺼끄러기에 시달리고 있으니!   놀란 아이들                                                           A. 랭보   눈 안개 속, 커다랗게 불밝힌 환기창에 까맣게 달라붙어 동그란 엉덩이 나란히   무릎꿇은 다섯 아니, ----불행이로고! 빵장수가 만드는 묵직한 회색 반죽 휘저어 환한 구멍 속에 집어넣는 억센 흰 팔을 그들은 보고 있다.   맛나는 빵 구워지는 소리 들린다. 빵 장수는 기름진 미소 지으며 옛 노래 한 곡조 뽑고.   쪼그린 채 누구 하나 옴짝 않는다. 바알간 환기창으로 스며 나오는 젖가슴처럼 따스한 훈기.   그 어떤 메디아노슈를 위한 것인지, 먹음직스레 부풀은 빵을 꺼낼때,   연기로 그을린 들보 아래, 향기로운 빵껍질과 귀뚜라미 노래할 때,   ----저 따뜻한 구멍에 삶을 부풀리누나---- 아이들 넋을 잃고 바라본다. 누더기 걸치고서.   아이들은 부자가 된 듯한 느낌에 빠진다. 그러나 눈꽃으로 뒤덮힌 가련한 귀염둥이들, 모두 그대로 거기 있을 뿐.   자그맣고 발그레한 낯을 철망에 꼭 붙이고, 그 틈 사이로 무언가 잔뜩 종알거리며,   다시 열린 하늘의 빛을 향하여 게걸스레 기도하다가는, 다시 움츠러든다.   바지를 도려낼듯 셔츠를 짓찢을 뜻 모진 겨울 바람에.   가난한 자의 몽상 아마, 그런 밤이 나를 기다려 주리라. 어느 고도(古都)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술잔을 들고, 더욱 즐겁게 죽어갈: 그러니까 난 끈기있게 살아야지! 내 불행이 좀 가셔지고 언젠가 돈이 좀 생기면 북쪽 나라에 가볼까 아니면 포도열매가 풍성한 나라에? -아아! 몽상하는 건 덧없는 것이지. 그러니까 그것은 순수한 상실이지. 비록 내가 다시 한번 옛날의 여행자가 될지라도 풀빛 여관이 내 앞에 나타나 활짝 맞이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수치 A.랭보 느닷없이 그 골통속을 칼로 도려내지 않는 한, 기름지고 희멀건 그 짐짝같은 녀석은 언제나 기분이 새로어지지 않는다. (아아! 그 녀석의 코. 그 녀석의 입술. 쉬 그리고 배도! 베어버려야 한다. 양쪽 다리도 잘라내버리는 거야! 오오, 굉장하군!) 그러나 말이다. 솔직히 거짓없이 말해서 나는 그 녀석의 목을 잘라내고 그 녀석의 뱃속에 작은 돌을 채워넣어, 오장육부를 불길로 그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단행하지 않는 한 그 귀찮은 개구쟁이들 어리석은 짐승은 술책과 모반하려는 순간도 멈추지는 않아야 한다. 그리고 몽 로셰의 고양이처럼 여기저기 냄새를 뿌린다! -하느님! 그 녀석이 죽을 적엔 어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그녀는 이집트의 무희인가 A.랭보 그녀는 이집트의 무희인가? 새벽녘에 불꽃처럼 타서 꺼져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거대한 꽃과 무너지는 도시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찬란한 공간 앞에서 너무나 아름답구나! 너무나 아름답구나! -'어부'들과 해적의 노래를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그리고 또한 최후의 가면이 순수한 바다 위에서 밤의 축제를 아직 하고 생각하고 있는 이상!   사슴의 울음소리처럼 들으라 A.랭보 4월 아카시아 나무 곁에서 사슴의 울음소리처럼 완두콩 녹색띈 노젓는 소리를 들으라. 깨끗한 그 향기 속에서 달(phoebe)을 향해! 그대는 옛 성자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보는구나. 맑은 짚더미에서, 갑에서 아름다운 지붕에서부터 멀리 이 사랑하는 옛 성자는 음험한 미약을 원하는데...... 그런데 평일도, 천체도 아닌 이 밤의 작용이 발산하는 애수만이 있구나. 그럼에도 그들은 그대로 머문다. -시실리 섬, 독일에 바로 창백하고 슬픈 이 안개 속에 있는   새 살림 A.랭보 방은 짙은 풀빛 하늘에 활짝 열려 있었다. 발을 들여놓을 자리도 없을 만큼 긴 함과 상자들! 벽 저편에 유령들의 잇몸을 떨게 하는 클로버가 가득히 펼쳐 있다. 낭비와 황폐한 듯한 무질서는 천재들의 간계이던가! 오디열매 가져다주는 아프리카의 요정이다. 그리고 어느 구석에도 그물을. 불만족스런 대모들이 벽면에 여린 빛이 비치는 부엌에, 여럿이 들어와서 거기에 머무는구나! 집은 약간 이상하게 비어 있고, 엉망이다. 돌아온 남편은 자신이 없는 동안 내내 속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엉큼한 물의 정령조차 잠자리 언저리까지 바오항한다. 밤이 되면 오오! 밀월이 그들의 미소를 띠고 구리로 만들어진 가는 띠로 하늘을 눈가림한다. -밤 미사를 드린 뒤에 총 한 방처럼 창백하고 미친 듯한 불이 비치지 않았더라면 -오오, 베들레헴의 거룩한 희뿌연 환영이여, 그들 창문의 푸르름은 차라리 매혹하였을 텐데! 1872.6.27.   금의 시대 A.랭보 언제나 천사같은 어떤 자의 목소리가 -나를 보살펴주며,- 엄숙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나뭇가지 잎 속을 헤집고 들어간 무수한 질문의 도취와 광증의 깊이에 잘못 들어가게 한다. 그토록 즐겁고 이토록 손쉬운 기교(곡예)를 배웠다. 그것도 파도이며 꽃들이다. 그리고 친근한 가족들이다! 그러고 나서 어떤 목소리가 -천사같은 목소리인!- 나를 보살피며 엄숙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한숨을 곁들이며 그때 노래한다. 불타고 격렬한 독일식 가락으로. 이 세상은 결점투성이다. 뭐라고. 놀랐다구. 아무렴 좋다. 살아야 한다. 불확실한 불운 따위는 불에 던져넣는 거야. 오오! 아름다운 성(城) 그대 인생은 투명하구나! 우리들의 위대한 형제인 귀족적인 '대자연'이여. 언제부터 그대는 있었는가! 나도 또한 노래한다. 무수한 자매들이여! 아주 공개적인 목소리는 아니지만 얌전한 영광으로 내 곁으로 다가와주어요...... 1872.6.   5월의 군기 A. 랭보 흔들려 바스락거리는 보리수 나뭇잎 그늘에, 사슴을 쫓는 각적소리는 아득히 멀어진다. 그러나 까치밥나무 숲속에서 영혼의 노랫소리가 바람에 흩나린다. 내 피도 혈관 속을 줄달음친다. 여기에는 또 뒤얽히는 포도덩쿨. 하늘은 천사처럼 이쁘고 창공과 파도는 서로 공감한다. 나가자꾸나. 비록 빛이 나를 축복한다 해도 나는 이끼 위에서 죽으리라. 인내하는 일, 지긋지긋한 일. 그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쳇! 얼마나 부질없는 걱정인가! 그 드라마틱한 여름이 행운의 수레에 나를 비끌어 매어주기를 바란다. 오오, '자연'이여, 그대 손에 되도록 많이 안겨서 -아아! 덜 외롭고, 덜 가치없이! -죽으리라. 웃기는 일이지만 목동들까지도 세상 사람들에 의해 거의 죽어가다니! 계절이 진정 나를 마멸시키기를 바라노라. 오오, 그대, '자연'이여, 나는 나를 그대에게 되돌려준다. 내 배고픔도, 갈증도 모두 함께 그런데 그대 원한다면 먹고 마시게 해주리라. 착각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태양에게도 어버이들에게도 그것은 웃음거리지만 그러나 나에겐 진지한 말이다. 이 몸의 불운이여 자유스럽게 되거라. 1872.5.   카시의 강 A.랭보 카시 강은 남모르게 흐른다. 기묘한 음악과 함께 진실로 수많은 까마귀 소리가 강을 따르고, 천사같은 다정한 목소리로 전나무의 큰 동요와 더불어 끊임없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모든 것은 흐른다. 옛 시골 사람의 차마 볼 수 없는 신비와 더불어 사람이 찾아가는 망루의 유명한 공원 강안에 서서 우리는 듣는다. 방랑하는 기사들의 식은 정열 그러나 바람은 얼마나 상쾌한가! 걷는 자는 이 조망을 보며 마음이 단련되어가는 것이다. 성주님이 보내준 숲의 군인, 살랑하고 상냥한 까마귀들 오래도니 나무토막으로 건배하는 교활한 농부들을 여기서 멀리하시오. 1872.5.   눈물 A.랭보 새들과 양떼, 마을 처녀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정다운 개암나무 숲에 쌓인 히드 황야에서 무릎 꿇고 훈훈한 초록색 오후의 안개 속에서 나는 술을 마셨다. 이 어린 와즈강에서 내 무엇을 마실 수 있었으리? 소리 없는 느릅나무, 꽃 없는 잔디, 흐린 하늘이여! 토란색 호리병에 따라 마시는 술은 맛도 없는 이 노란색 술은 땀이 될 뿐. 이처럼 나는 주막의 역겨운 선전간판이 되었네. 이윽고 저녁에 폭풍우가 하늘을 바꾸었고 그리고 사방은 호수와 말뚝과 창백한 밤하늘에 늘어선 주랑 강나루가 어두운 나라가 된다. 숲의 물은 순수한 모래에 스며들고 하늘에서, 바람은 늪에 유빙을 던졌다. 그런데 나는 황금과 진주의 채취자처럼 마시는 고뇌는 없었노라고 큰소리쳤던 것이다. 1872.5.   목신의 머리/Tete de faune A.랭보 녹색바탕에 금으로 얼룩지게 한 보석함, 수풀의 잎그늘로부터 입맞추고 나서 좋은 장소, 꽃들을 잔뜩 달고, 줄곧 흔들리기만 하는 수풀의 잎그늘로부터 정교한 자수물을 기운차게 찢고, 망설이는듯한 목신의 머리가 불쑥 나타나면서, 두 개의 눈을 굴리면서, 진홍빛 꽃을 닥치는 대로 하얀 이빨 밑에서 물어뜯었다. 해묵은 술인양 다갈색으로 빛나는 그 입술이 숱한 나뭇가지 밑에서 크게 웃어댔다. 이윽고 다람쥐의 재빠름으로 몸을 감추어 버렸으나, 그 웃음드은 나뭇잎마다 남아서 떨고 있었다. 피리새가 날아간 다음 놀라버린, 황금의 입맞춤의 숲은 이따금씩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먼 옛날 동물들은../Les anciens animaux.. A.랭보 먼 옛날의 동물들은, 질주하고 있을 때조차도 힘차게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피가 묻고 오믈에 뒤범벅이 된 그 귀두 부분을. 우리들의 조상도 칼집 모양의 봉투에 넣고 자루 모야의 꼬리를 끼워 장식하여, 자기들의 육체의 그 부분을 자뭇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중세에서는 천사건 창녀건 무릇 여자에겐, 고형물처럼 빈틈없이 차림새를 갖춘 건장한 남자가 없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크레베르 같은 남자조차도 미상불 거짓말을 하고 있을 테지만, 그 퀴로트의 모양을 보면 쓸모가 없었을 리는 없엇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랍시고 뽐내 봐야 결국은 포유동물임에 변함은 없다. 동물들의 그쪽 부분이 거대한데 대해서는 놀라는 쪽이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불모의 시각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지자 말도, 황소도 자기 자신의 정욕의 불길을 짓눌려 버렸다. 이젠 누구 하나 우스꽝스러움을 좋아하는 소년소녀들이 어슬렁거리는 이곳 저곳의 나무숲에, 자기 자신의 생식력의 오만을 자랑스레 내세우려 하려고는 하지 않을리라.   겨울을 위한 꿈/Reve pour l'hiver A.랭보 겨울이 되면, 둘이 함께, 장미빛 열차의 좌석이 푸른색 쿠션에 파묻혀서 떠나갑시다. 참으로 상쾌한 기분이 될 것입니다. 푹신하기 그지없는 어느 구석 광적인 입맞춤의 보금자리로 변해버리리라. 스쳐지나가는 창밖, 서글픈 저녁 경치의 찡그린 얼굴을 보지않기 위하여, 그대는 살며시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좋으리라. 잔인무도한 인간과 늑대들의 불쾌한 모임. 밖에는 검은 악마와 검은 야수들이 있을 뿐이로다. 이윽고 그대는 알아차리게 되리라. 뺨이 쑤셔옴을. 미쳐버린 거미처럼, 입맞춤이 그대의 목덜미를 줄달음치고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대는 약간 고개를 갸우뚱한 채로 나에게 말한 것이다. 찾아보세요! 하고. - 이윽고 두 사람은 아주 침악하게, 이 동물을 찾게 되리라. - 아무 곳이나 출몰하는 이 작은 동물, 입맞춤을. 기차속에서, 1870년 10월 7일   영원 A.랭보 그것을 되찾았도다! 무엇을? -영원을. 그것은 태양과 섞인 바다. 파수의 영혼(靈魂) 그토록 무가치한 밤과 불길 속 낮의 기원을 드리기로 하자. 인간다운 기도와 평범한 충동으로 거기서 그대는 벗어나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사틴의 불잉걸이여, 그대의 유일한 열정으로부터 '마침내'라고 말하지도 않고 의무는 다 타버리는구나. 거기엔 희망도 영광도 없는데 인내력이 강한 면학 그러나 형벌은 틀림없다. 그것을 되찾았네. 무엇을 말인가? 영원이라는 것 그것은 태양과 함께 가는 바다. 1872년 5월   사랑의 사막 a.랭보 그 집은 물론 같은 농촌의, 내 부모님의 동일한 전원의 집이다. 그 방문의 위쪽에 무기와 사자들과 더불어 다갈색의 양들로 장식되어 있다. 저녁식사 때는 양초와 포도주 그리고 전원의 나무판자들이 있는 접실이 하나 있다. 식탁은 아주 크고, 하녀들도있구나! 내 기억에 떠오를 저도로 그녀들은 여러 명이다. 거기에는 그들중에 내 옛 친구들 중의 한사람도 있었는데,그는 목사였으며, 지금은 사제복을 걸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좀더 자유스럽기 위함이었다. 노란 종이가 붙여진 창유리가 있는 자줏빛 그의 방이 기억난다. 그리고 대양에서 적셔진 숨겨놓은 그의 책들도! 나, 나는 이 시골의 방구석에 한없이 버려졌었다.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 앞에서 내 흙투성이 옷을 말리며, 부엌에서 책을 읽으면서, 아침 우유와 지난 암흑의 시대에 대해 말하며 극도로 감동하였다. 나는 굉장히 어두운 방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강아지였다고 말해도 좋을 성 싶다. 하긴 그녀가 아름답다고 나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모성적 고귀함을 갖추고있다 할지라도, 즉 순결하고 따뜻한 마음씨도 알 수 있었고, 굉장히 매력적이었었다. 그녀는 내 팔을 꼬집었다. 그녀의 팔을 상기해낸 까닭은 아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파고들어 가면서 필사적으로 다가가는 조그마한 물결처럼, 내 입에 붙잡았던 그녀의 입도 아니다. 나는 어두운 구석에 있는 돛무늬가 있는 쿠션이랑 돛천이 들어있는 바구니 속에서 그녀를 넘어뜨렸다. 나는 흰 레이스가 있는 그녀의 바지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 후로는, 오 오! 절망의 극치다. 칸막이 벽은 윙윙소리가 나고 나무밑이 어둠이 되었다. 나는 그 밤이라고 하는 애욕에 가득 찬 깊은 슬픔속에 빠져버렸었다. ◇ 이번에 내가 그 도시에서 만난 그여자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걸고 그녀도 내게 야기한다. 나는 불빛도 없는 방에 있었다. 그녀가 내 집에 있다고 누군가 말하러 왔었다. 그래서 돌아가보니 그녀는 맘대로 해주오, 하는 표저으로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난 굉장히 당황했었다. 그 집은 하숙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궁지에 빠져버렸다. 나는 누더기를 걸치고있었고 그런데 그녀는 몸을 맡기러온 사교계의 부인이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나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를 붙잡았고 그리고 완전히 벗은 그녀를 침대바깥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형언할 수없는 나의 나약함 속에서 나는 그녀를 덮쳤고 빛살도 없는 양탄자 사이를 그녀와 기어다녔다. 그 집의 램프는 옆방들을 하나하나 붉게 물들였다. 바로 그때 그녀가 사라졌다. 나는 신(神)조차도 결코 요구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눈물을 쏟아부었다. 나는 끝없이 그도시 속으로 들어갔따. 청각을 잃은 밤 행복의 도피 속에 빠져버린, 오오 피곤함이여! 그것은 마치 분명코 세계를 질식시켜버릴 눈 내리는 겨울밤과 같은 것이었따. 나는 친구에게 그녀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질렀다. 그들은 거짓말로 대답했다. 나는 그녀가 매일 저녁 가는 창문 앞에 있었다. 나는 슬픔에 잠겨 정원속을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떼밀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결국 나는 먼지가 가득 찬 어떤 장소로 내려왔고 건축물의 난간 위에 앉았다. 나는 오늘 저녁과 함께 내 몸의 모든 눈물들을 다 쏟아붓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진맥진해져 버렸다. 그녀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호의적 표현인 거동이 또 한 번 생기려면, 별을 하나 만드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은 정말로 내게 와주리라고 예상 못한 이 '멋있는 여자 l'adorable'는 -나는 모든 세계의 어린이들보다 훨씬 더 많이 울었다.   천사와 아이들/L'ange et l'infant A.랭보 어느새 이미 새해도 그 최초의 하루가 끝나 버렸네. 아이들에겐 정말 즐거운 날. 오래 기다리고 기다려지는 날. 그러나 이내 잊어버리게 되는 날. 흐뭇한 숙면의 잠자리에 묻혀, 졸고 잇는 어린이는 말도 안하네. 그가 자는 곳은 깃털로 만든 요람 속. 손가락을 빠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는 바로 옆의 잠자리 위. 어린이는 이미 그걸 되새겨 보고서는 즐거운 꿈에 잠기는 구나. 어머니로부터 세배돈을 받은 뒤에 천국에 사는 자에게서 선물이 온다. 어린이의 입은 미소를 지으며 반쯤 벌어졌네. 반쯤 열린 그 입술도 하느님을 향해 호소하는 듯. 이젠 그 머리맡 가까이에 천사 한 사람이 서 있어, 어린이 위에 몸을 굽혔노라. 천사도 순결한 마음의 은밀한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구나. 천사도 그 자신을 닮은 모습에 마음이 끌려, 어린이의 깨끗한 얼굴을 살펴보는구나. 천사가 찬탄하며 반한 듯이 보고 잇는 것은, 이 해맑은 이마의 기쁨. 이 영혼에 떠올라 있는 기쁨. 남쪽 바람에 여태 접해 보지 못한 이 꽃이어라. "나를 많이 닮은 아이여, 어서 오라. 나와 함께 천상에 올라가, 하느님이 계신 집에 들어가라. 잠 속에 그대가 본 그 궁전 안에서 살라. 그대야말로 그 궁전에 어울리는 자구나. 대지여, 이 하늘의 아이를 어찌하여 붙들어 두려 하는가! 지상에서는 누구 하나 믿을 만한 자는 없도다. 인간들은 진정으로 행복을 사랑하는 일을 하지 않노라. 저 꽃의 향기에서도, 어쩐지 쓴 것이 풍겨오를 뿐. 설레는 사람의 마음이 아는 것도, 구슬픈 기쁨일 뿐. 그늘이 없는 기쁨을 즐기는 일도 또한 없고, 모호한 웃음 속에 눈물만 반짝인다. 무엇 때문일까? 그대의 그 순결한 이마도 쓰디쓴 인생 탓으로 퇴색하는 것일까. 고달픈 괴로움은 그대의 그 푸른 눈을 눈물로써 더럽히는가. 사이프러스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대 얼굴의 그 장미빛을 몰아내는가? 아냐, 아니지. 그대는 나와 함께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지어다. 그대는 하늘에 사는 자들의 합창에 맞춰 노래할지어다. 그대는 지상에 남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불안에 마음을 쓸지어다. 어서 오라. 그대는 이 이승에 매어 둔 끈을 이제야말로 하느님은 끊어 버리셨노라. 다만 바라건대 그대의 어머니가 상복을 입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우지 말기를, 다만 바라건대 그 요람을 볼 때와 다른 눈으로 그대의 관을 보는 일이 없기를. 구슬프게 눈살을 찌푸리지 말지어다. 그대의 장례 때에도 그 얼굴이 어두어지지 말지어다. 그보다도 한아름 넘치게 안은 백합꽃을 바칠지어다. 순결한 자의 그 마지막 날이야말로 항상 가장 아름답게 장식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노라." 말을 끝내자 천사는 그 날개를 살며시 붉은 입에 가까이 대었노라. 걱정하지도 않은 채 어린이를 배어 내었도다. 배어내어진 어린이의 영혼을 날개에 싣고 자뭇 조용히 날개를 퍼덕이면서, 신의 나라로 실어가 버렸노라... 이제 요람에 남은 것은, 창백해져 버린 오체일뿐, 지금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이 남아 있으되, 삶의 숨결은 이미 그것들을 기르지 못하게 되었노라. 생명을 주는 일도 없어졌노라. 이 아이는 숨져 버렸도다... 그렇기는 하나 아직껏 입맞춤의 향그런 입 위에는, 숨져가는 웃음이 보이는구나. 그 어머니의 이름이 떠오르는구나. 임종 때 어린이도 설날의 세배돈이 되새겨졌노라. 무겁게 드리워진 어린이의 눈은 마음 편한 잠으로서 감겨졌을까. 그렇기는 하나 이 잠이야말로 새로운 죽음의 자랑스러움이라 말하기보다는, 어째서인지는 모르는 천상의 빛, 이 아이의 얼굴을 둘러싸면서, 이미 지상의 아이가 아니라 천상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것과도 흡사하도다. 아아! 어머니는 얼마나 빼앗겨 버린 아이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얼마나 귀여운 아이 무덤 위에 뜨거운 눈물을 쏟았던가! 그러나 어머니가 눈을 감고 조용한 잠에 잠길 적마다, 자그마한 천사가 하늘 나라의 장미빛 입구에서 모습을 나탄내어, 사뭇 정겹게 엄마하고 부르며 기쁜 기색을 보는도다. 그제서야 어머니가 미소지어 보이면 자그마한 천사는 하늘로 이끌어져 나와, 눈처럼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노라고 있는 엄마 주위를 날아 돌다가, 엄마의 입술에 그 신성한 입술을 맞추는구나. 1869년 제 1학기 아르뛰르 랭보   음악을 따라서/A la musique -샤를르빌 역전 광장 A.랭보 초라한 잔디밭으로 구획된 광장의 주변, 정원수도 화단도, 모든것이 틀에 박혀있는 듯한 가두공원에, 시민들은 모두 무더위로 괴로운 듯 헉헉거리면서, 목요일 저녁이 되면, 각각 질투심 많은 우둔함을 안고 모여든다. - 공원 한가운데서 군악대는, 피리왈츠를 연주하면서, 화려한 군모를 흔들어댄다. - 이것을 둘러싼 제일렬 근처는 잘난 체하는 자들의 지정석, 공증인은 성명의 머리 글자가 들어있는 싸구려 장신구가 자랑이다. 코안경을 쓴 금리생활자들은 악대가 변조를 일으킬 때마다 방선을 치는 데 여념이 없고, 뚱뚱한 관청 근무자는 한층 더 비만한 아내를 동반하고 있구나. 그 곁에는 친절한 코끼리 사용인들, 옷단 장식들이 광고 포스터와도 같은 여인들. 은퇴한 향료상인의 클럽인양, 녹색의 베치에서, 손잡이가 달린 스틱으로, 모래를 쑤셔대기도 하고, 정색한 얼굴로 토론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금전 문제에 이르자, "요컨대 말씀이야......"로 낙착되어 디룩디룩 살찐 몸통을 벤치 위에 반듯하게 차지하고 있는 단추가 빛나는 부르조아들, 배가 나온 푸라만인은 여송연 담배를 태우면서 맛본다. 그리고 파이프 담배를 음미하면서 말한다. - 아시겠소. 이것은 밀수한 극상품입니다. 녹색의 잔디밭 너머에서는 거리의 건달들의 드높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트럼본의 노래소리에 이끌려서, 점잖은 얼굴로, 장미꽃을 찾아 헤매는 보병들은, 아이를 보는 처녀를 농락해 보려고, 갓난아이를 얼르기 시작한다... -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칠칠치 못한 학생이어서, 푸른 마로니에의 가로수 그늘에서 말괄량이 아가씨들을 찾는다. 상대방도 눈치를 채고,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내게로 눈길을 보낸다. 나는 아무말없이 그저 늘상 바라보기만 한다. 헝클어진 머리 타래로 하여, 한층 더 선명하게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 그녀들의 속옷과, 엷은 의상밑으로 나의 시선은 달려가서, 둥근 어깨의 선으로부터, 등 아래로 미끄러져 내린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또다시 신발에 머물고 양말에까지 다다른다...... - 그리고 나는, 열병처럼 타오르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알몸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녀들은 나를 이상한 녀석이라 여겼음인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서로 소근거린다. - 나는 입술 위에서, 그 아가씨들의 입맞춤의 입술맛을 느낀다. -1870년 11월 드므니 집(集)에 있는 원고   기억 A. 랭보 1 청명한 물, 그것은 어릴 적 눈물 속 소금 같은 것, 여인네들 희뿌연 몸뚱아리들의 태양으로 치솟는 듯: 떼거리로 뭉친 비단과 순결한 백합, 어떤 때묻지 않은 건 출입 금지 표시가 붙은 벽들 그 아래의 근엄한 깃발들: 깡총거리며 노니는 천사들이: 아니...내닫는 금물결이 풀에 감긴 검고 묵진한, 그리고 특히 신선한 두 팔을 찰랑이네 푸른 하늘을 침대 덮개 삼은 어스름한 물이 언던과 아치더러 커튼 삼아 그늘을 드리워 달라 하네. 2 저런! 축축한 네모꼴은 해맑은 거품들을 튕기네! 물은 희뿌연 황금색으로 찰랑이고 무한한 심연에 펼친 충돌. 녹음이 펼치는 빛바랜 초록 드레스들이 수양버들처럼 하늘거리고, 거기에서 굴레없는 새들이 솟구쳐 오른다. 금화보다도 더 노랗고 다사로운 눈까풀 물의 근심 -그대의 부부의 서약, 오 부인이여!- 덧없는 정오에, 그 흐릿한 거울을 시기하는, 무더운 회색 하늘에 장미빛의 고귀한 친구 3 부인은 일하는 사내들 수영하는 곳 가까이 들판에 너무도 꼿꼿이 서 있네, 작은 양산을 손가락에 움켜쥐고, 산형화를 밟으며, 그녀로서는 너무도 독하게, 만개한 녹음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모로코 붉은 가죽으로된 그드의 책! 애석하도다, 그는 길 위해서 작별하는 수천의 하얀 천사들처럼, 산 저 모퉁이로 멀어져가네! 그녀는, 아주 냉담하고 우울하게 서 있다. 달음박질하네! 사내가 떠나자마자! 4 두텁고 깨끗한 어린 솜털을 지닌 팔의 회한이여! 성자의 마음속에서 4월의 달빛이 읽혀지도다. 이 추악함을 싹트게 하는 8월의 저녁에 휩싸여 늘어나는 강가 작업장의 유희여! 지금 성벽 아래서 그녀가 울고 있도다 숱 많은 눈썹은 미풍에만 깜박이고 후회도 근심도 없는 회색의 상보 움직이지 않는 배 안에서 고통스럽게 일하는 늙은 어부여. 5 오! 이 움직이지 않는 배에서 음울한 물의 이 눈장난을 나는 잡을 수 없도다. 오! 너무도 짧은 팔이여! 어떠한 꽃도, 거기서 나를 괴롭히는 노랑꽃도, 잿빛 물에 떠 있는 연인, 파란 꽃도 나는 잡을 수 없도다. 아! 가지를 흔들고 있는 버드나무 꽃문이여! 이미 오래 전에 꺾여 있는 분홍빛 갈대들이여! 오, 움직이지 않는 내 배여: 그리고 가없는 이 물의 눈 속에 팽팽하게 당겨진 그의 쇠사슬이 무슨 비참한 처지에 있는가?   태양과 육체 A. 랭보 오! 인간은 자유롭고 자랑스런 그의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그 태초의 아름다움의 갑작스런 광채는, 육체의 제단에 신의 심장을 고동시키는 구나! 현재의 행복에 즐거워하며, 겪어 온 불행에 창백해져서 인간은 모든 것을 살펴보고 알려고 한다. 사고는, 오랫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이 준마는 그의 이마에서 튀어나와 약진한다. 이 사고는 해답을 알게 되리라! 사고가 자유로이 약동할 때에, 인간은 신앙을 가지리라! -왜 하늘은 말이 없고 우주는 불가사의한가? -왜 황금빛의 별들이 모래마냥 흩어져 있는가? 만일 인간이 계속 올라가보면 그는 그 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어떤 목자가 이 우주의 공포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의 무리를 인도하는가? 이 모든 벌들, 광막한 에떼르가 포옹하는 이 세계들은 영원한 목소리의 억양따라 진동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볼 수 있는가? 나는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고의 목소리는 이미 한 꿈에 지나지 않는가? 인간이 그토록 일찍 태어난다면, 삶이 그토록 짧은 것이라면, 그는 어디에서 오는가? 씨앗의, 태아의, 애벌레의, 그 깊은 대양 속에 모성적 대자연의 무한대한 도가니 속에 빠져들면 어머니 대자연은 거기에서 그를 생명있는 창조물로 소생시켜서 장미 속에서 사랑을 하고 밀밭 속에서 성장하게 할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지!- 다만 무지의 망또와 편협한 공상에 짓눌려 있지! 여인들의 음부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 원숭이들 우리의 창백한 이성은 우리들에게 무한을 숨기는구나! 보고싶다!- 그러면 회의는 우리를 벌주겠지! 회의, 그 음울한 새는 그의 날개로 우리를 후려친다. 그리고 지평선은 영원한 도주로 사라져 버린다. 광대한 하늘은 열려 있다! 신비는 우뚝 선 인간 앞에 죽어 버렸다. 이 인간은 자연의 광대한 광휘 속에 그 억센 팔짱을 끼고 선다! 그는 노래한다.-그리고 숲도 노래하고 강도 중얼거린다. 태양으로 향해 오르는 행복 가득한 노래 이것이 구원이다! 사랑이다! 사랑이다!   파란 집 무슨 일인지, 오늘따라 수많은 결들이 침잠하며, 날 짓누르는군요. 괜한 장난일까요. 몰아침에 놀란 맘을 진정 시키고 뒤를 돌아보니 또 다른 언행으로 나를 혼란시키고는 이내 다시 비웃고 마는... 스스럼없이 지내오던 이도, 당신을 안 다고 말해오던 또 다른 이도, 상처받은 그대! 강탈당한 그대! 오로지 꼬냑에 찌들어 애써 여유 있어 보이려는 의식된 행동을 낙으로 삼으며 그대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쉼 없이 반복하겠지요. 아마도 당신으로 하여금 그러한 일상들은 순간을 만족케 하는, 일종의 이질화된 환상으로 인해 붉어진 생경한 조화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눈을 뜨고 바라봐도 그대는 볼 수 없을 테지요. 참혹하며 그리고 냉정할 테니... 이제 당신이 가진 낡은 증표를 버리세요. 퇴폐적인 흔적들은, 묻어나는 쓰디쓴 표현 따위를 더욱더 깊어지게 할뿐이니까요. 물론 당신이나 나나 구차한 변명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타인으로 하여금 선택 당한 길을 가버리는 그대여.. 제발 오늘만큼은.....제발... 거세 보이는 나무들 사이에 있지만... 그래도 작은 낭만을 알게 해주는 그 곳, 내가 항상 머물던 바로 그 곳, 파란 집으로 가시길...   니나의 재치있는 대꾸 그에게, ................................................................................... - 너의 가슴을 내 가슴에 기댄 채 자, 어서 둘이서 가지 않겠는가? 비공 가득히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상쾌한 햇볕을 맞으면서, 푸른 새벽이 흩뿌리는 포도주 같은 햇살을 맞으면서, 이때 숲은 온통 피로 물들고, 그리움에 말도 하지 못하고, 몸만 떨고 있을 뿐이로다. 가지마다 밝은 봉오리가 흡사 에메랄드의 물방울과 같구나. 노출된 모든 것이 그 육체의 덜림을 느끼게 하는구나. 클로버가 우거진 속을 그대는 옷자락을 끌고간다. 그대의 커다란 검은 눈 가장자리에는 검푸른 빛깔이 감돌고, 시골 아가씨의 사랑이기에 샴페인의 거품마냥 그대의 태평스런 웃음을 사방에 흩뿌리고 있구나. 취하여 거칠어진 나에게까지 그대는 웃으며 장난치는구나. 나는 그때 사로잡을까나 그 아름다운 땋아늘인 머리를, 이렇게, 딸기랑, 나무딸기와 같은 그대의 맛을 즐기게 될 때도, 오, 꽃의 육체여! 도둑처럼 몰래 바람이 그대의 입술을 훔쳐갈 때도 역시 그대는 장난기 넘치며 웃어대리라. 사랑스럽게 엉켜오면서 그대를 당혹케 하는 들장미의 가지에 특별히 소리내어 웃음녀서 재롱을 부리리라. 그대는 그대의 연인에게 몸도 마음도 다 바쳤도다! .................................................................................................. 십칠 세! 그대는 반드시 행복해지리라! 오! 광활한 목장이여. - 자, 어서 이쪽으로 바짝 다가오시오...... 너의 가슴을 내 가슴에 기댄 채 두 사람의 목소리에 뒤섞이면서, 천천히 내려가리라. 저기 물 흐르는 골짜기로 그곳으로부터 다시 깊은 숲으로. 그리하여, 죽어가는 소녀처럼 멍하니 기절한 상태인 양 그대는 눈을 반쯤 뜨고, 나에게 말하리라. 꼭 껴안아 달라고. 숲속의 작은 오솔길 위에서 나는, 가슴 울렁이며 그대를 포옹하리. 개암나무 가지 위에서는 작은 새들이 천천히 느린 가락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는구나. 그대의 입술에 내 입술이 맞닿을 듯 가까이서 나는 그대에게 말하리라. 어린아이를 잠재울 때처럼, 그대의 몸을 꼭 껴안은 채 그대의 피에 취하여 걸어가리라. 장밋빛으로 물든 그대의 설백의 피부 밑을 흐르는 푸른 혈맥 이윽고 나는 솔직하게 말하리라. - 아무렴, 그대도 알고 잇는 뻔한 일을 우리들의 숲은 수액으로 숨막힐듯 찌는 듯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태양은, 적갈색으로 흐려진 숲의 꿈을, 금박으로 뒤덮어버리게 되리라. 해가 저물면? ...... 끝없이 이어진 하얀 길 위를 집으로 향해 돌아가리라. 도중에 새싹을 뜯어먹는 가축처럼,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거닐리라. 풀들이 푸릇푸릇 우거진 과수원에는 휘어진 가지의 능금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십 리도 떨어진 곳에서 이미 이렇게도 좋은 향기가 콧전에 진동하고 있구나. 저녁 하늘에 아직 미광이 남아 있을 무렵, 우리들 두 사람은 겨우 마을에 다다르고, 황혼 무렵의 공기 속으로 뒤섞인 우유 향기가 떠돌아다닌다. 뜨거운 깔짚이 가득하고, 완만한 호흡의 리듬으로 가득한 외양간에는 외양간 냄새가 그득하고, 그리고 커다란 등도 보이리라. 어렴풋한 빛에 비추어서, 희끄무레하게 떠오르는 곳에는 그쪽 너머로 황소가 똥을 떨어뜨리고 이다. 한 발자국 옮길 적마다 한 덩어리씩. - 할머니 안경은 미사의 책에 달라붙을 듯이 긴 코끝에서 멈춘다. 납으로 된 테를 두른, 맥주의 컵을, 커다란 파이프 사이에서 거품이 인다. 뻐끔뻐끔 연기를 토해내는 보기 흉한 두터운 입술에서 거의 동시에, 포크 끝으로, 커다란 햄을 나꿔채가는 듯 꿀꺽 받아삼킨다. 작은 침대를 비추는 난로와 크고 작은 찬장들. 큼직한 어린이의 기름지고 살찐 엉덩이. 그 어린이는 웅크린 채, 사발 속으로 하얀 코끝을 틀어박는다. 곁에서는 다른 콧등이, 맞붙을 듯 다가와서, 관대한 어조로 투덜거리면서, 마침내는 귀여운 어린아이의 둥그런 얼굴을 혓바닥으로 핥아대는 것이다. 의자 끝쪽에는, 붉고도 검은 불쾌한 얼굴, 한 사람의 노파가 빨갛게 핀 숯불 앞에서 실타래를 감고 있다. 회색의 유리창을 밝은 불빛으로 비출 때,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토록 황폐한 오두막집에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눈에 비쳐오는 것이리오! - 그리고, 백합꽃나무 그늘 아래는 그렇게도 아담하고 살기 좋은 집이, 숨겨진 듯한 창이, 저 너머에서 웃고 있구나. 그대 오려무나, 그대 오려무나, 나는 그대를 사랑하노라. 틀림없이, 멋진 일이 되리라. 그대 오려무나, 오지 않겠는가. 그러고 나서...... 그녀 - 그러고 나서, 나의 일은요?                                             A.R. - 이장바르에게 준 자필 원고와 1870년 에 수록되어 있는 자필원고임 -   까마귀 Les Corbeaux A.R   신이여, 목장에 겨울이 찾아들고, 납작하게 엎드린 촌락에, 황량한 들녘 위에 일몰의 만경소리가 줄어들어가면, 높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렴. 내 옛날의 다정했던 벗이여, 까마귀들이여.   쉰 목소리를 한 이상한 무리여. 한풍이 너희들의 보금자리를 엄습하였구나! 아직 황색으로 물든 강가에, 옛 고난의 언덕 위에, 해자와 움푹 팬 땅 위에, 흩어져라, 집결하라!   지난날의 싸움의 날, 사자들이 잠든 프랑스 국토 위에, 수천마리 무리지어, 선회하라, 겨울의 이날에, 길가는 나그네에게 뼈저리게 느끼게 하라! 잊혀진 의무를 생각나게 하라. 오, 불길한 검은 새여!   그러나, 하늘의 성자들이여, 드높은 떡갈나무가지 끝에는, 저녁 하늘 멀리 사라져가는 그 작은 가지 위에, 에오라지 오월의 멧새를 남겨주렴. 피할 수도 없이 풀숲 속 삼림의 가장 깊은 한 곳에 미래가 없이 패배의 몸을 길게 눕히고 있는 것을 위하여.   초기시 / 지옥에서 보낸 한철 / 민족문화사   깜찍한 아가씨 La Maline                                                A.R   니스와 과일 향기가 진동하는, 어느 갈색의 식당에서 나는 커다란 의자에 아주 편안하게 걸터 앉아, 이름도 모르는 벨기에 요리의 접시를 앞에 높고. 유유히 자세를 취하고 있었노라.   음식을 먹으면서, 나는 시계 소리를 듣는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김이 잔뜩 서려잇는 요리실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하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나는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한다. 입은 옷이 한쪽 어깨에서, 반쯤 흘러내리고, 깜찍하게도 머리를 땋아올린 까닭을.   엷은 흰 빛이 감도는 복사꽃 빛깔의 벨벳과도 같은 뺨 주변을 떨리는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어린아이처럼 그 입술을 뾰죽 오무린다.   그녀는 내곁으로 다가와서, 내 손이 잘 닿도록 접시를 가즈런히 배열한다. - 그리고나서는, 이렇게 - 아마도 틀림없이 입맞춤을 받고 싶어할 테지- 그리고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라고.   초기시 / 지옥에서 보낸 한철 / 민족문화사   카바레 「녹색」 에서 Au Cabaret-Vert A.R   -저녁 다섯시에- 팔일 전부터, 자갈길 위를 걸어왔던 나의 짧은 발목부츠는 너덜너덜 찢어지고 말았다. 나는 간신히 샤를르로와에 당도하였다. -캬바레 「녹색」에서 나는 반쯤 식어버린 햄과 버터를 끼워넣은 빵을 주문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두 다리를 녹색 테이블 아래로 쑥 뻗기도 하고, 녹색: 벽지의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는 소재를 보고 있노라니, -그곳엔 놀랍게도, 풍만한 젖가슴과 시원한 눈매를 가진 아가씨가 나타났다.   -입맞춤 따위로는 조금도 겁낼 것 같지 않은 아가씨였따! 미소지으면서, 그녀는 그림이 새겨진 접시 위에 버터와 햄이 든 빵을 날라왔다.   강렬한 마늘 냄새가 나는 연분홍빛과 흰 빛의 햄, 그리고 그녀가 맥주를 맥주 컵에 가득이 따라주면, 석양을 받아 금빛으로 거품이 일고있다.   초기시 / 민족문화사   소설 Roman                                                A.R 1 열 일곱살이 되면, 착실할 수만은 없다. -어느 상쾌한 저녁, 맥주와 레모네이드, 샨데리어가 눈부신 떠들썩한 까페가 구역질나서, -산책로의 푸르른 보리수 나무 그늘을 걷는다.   보리수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유월의 이 싱그러운 밤이면. 너무나 감밀운 대기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까풀을 덮는다 저자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서, 바람결을 따라 실려오는- 포도의 냄새와 맥주의 냄새...   2   -잔가지 사이에 막혀있는 검푸른 하늘을 은연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흉조인 별 하나 하늘에 떠올라, 희고 작게, 감미롭게 떨다가 사라진다...   유월의 밤! 열일곱살! 술에 취해본다. 혈액은 샴페인*이어라. 머리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고... 비틀거리며 헤매이노라면 입술 위에서는, 새끼짐승처럼, 꿈틀거리는 입맞춤을 선명하게 느낀다.   3   광적인 정열은, 모든 소설을 독파하며 표류한다. -그때 마침, 까스등의 푸른 불빛에 비치어, 매력적인 자태의 처녀가 지나간다. 그녀의 아버지가 입은 드높은 옷깃의 그늘에 가리운 채...   -그녀는 그대를 무척 순진한 사람이라 알아차렸음인지, 작은 발목부츠의 재빠른 걸음거리로 지나쳐가면서 잽싸게 되돌아본다... -노래하고 있었던 그대의 짧은 영창곡이 멈춰버린다...   4   그대는 연모의 나날을 보내게 되리라. 팔월달까지는. 정녕 그대는 사랑하는 몸이 되리니, -그대가 써보낸 소네트를 보고, 그녀는 웃으리라. 친구들은 그대로부터 떠나가 버리고, 그대를 악취미를 가진 놈이라 할 것이다. -이윽고, 어느날 저녁,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녀로부터 편지고 그대에게 당도하게 되었으니...   -그날밤... - 그대는 눈부신 까페로 다시 되돌아 간다. 레모네이드랑 맥주를 청한다... 열일곱살이 되면, 착실할 수 만은 없다. 산책로의 푸르른 보리수 나무 그늘로 가게 될 무렵이면.   초기시.. , 민족문화사   타르튀프의 벌 Le Chatiment de Tartufe A.R   검은 승복 안에서 연심을 북돋우면서, 장갑을 끼는 동안에도 가슴 두근거리면서, 무섭게도 침착한 마음으로, 어느 날 그는 떠나가버렸다. 이빨이 빠져버린 입으로부터 기쁨의 누런 군침을 흘리면서,   그놈은 어느날 떠나가 버렸도다. 어느날. -「오레뮈스」-그런데 한 망나니가 나타나 갑자기 그놈의 축복받은 귀를 사납게 움켜잡더니, 땀에 찌들은 살결을 감싸고 있었던 검은 승복을 홱 벗겨버렸다. 그리고 온갖 끔찍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바로 천벌이로다!...그놈의 승복 단추는 뜯기우고, 저질렀던 죄악만큼이나 긴 염주 구슬을 한알 한알 몸에 사무치듯 굴리면서 성(聖) 타르튀프는 풀이 죽었도다.   그리하여, 놈은 모조리 고백하였노라. 숨가쁘게 기도하였노라. 그 녀석은 승복의 가슴 장식들을 떼어버리고, 지극히 흡족해 하였노라. 헛헛! 타르튀프 녀석,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벌거벗게 되었구나!   *타르튀프 - 위선적인 종교가   일곱살의 시인들   그리하여 어머니는, 숙제장을 덮고 나서, 만족한 듯이, 아주 자랑스럽게 나가 버렸다. 그녀의 귀여운 아들의 푸른 눈 속에서, 그리고 영리한 이마에 감추어져 있었던 공부가 싫은 본심을 알아차릴 도리는 없었다. 온종일 그는 해야할, 공부 때문에 땀을 뻘뻘 흘렸다. 총명한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습관들과 어두운 안면 경련을 앓고 있었기에, 내부에 숨겨진 쓰라린 위선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습기찬 벽지가 발라진 어두 컴컴한 복도로 나와, 걸어갈 때면, 두 주먹을 사타구니에 찔러 넣고서, 혓바닥을 낼름 내밀곤 했다. 눈을 감고, 어머니가 주신 좋은 점수를 생각해 보는 것이였다. 저녁의 어둠을 향해서 문이 하나 열려 있었다. 등불에 비친 그를 보노라니, 그는 난간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지붕에서 덜어지는 천창의 밝은 불빛 아래서. 여름이면 특히, 그는 기진맥진하여, 머리는 멍해지고, 현기증을 억누르며 시원한 변소에 틀어박혀서, 혼자 조용히, 콧김을 불어대면서 사념에 잠기는 것이었다. 겨울이 되면, 대낮의 냄새를 씻어버리고 차디찬 달빛이, 뒷마당 가득히 교교히 빛날 무렵이면, 벽 옆에 쓰러진 채, 비료의 이회투성이가 되어, 환영을 쫓는 일념으로 한쪽 눈을 꼭 감고, 그는 지저분한 생울타리의 수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엽기도 하여라! 이 어린이가 함께 노는 친구들은, 영양실조에, 모자도 없이, 뺨은 깡마르고, 생기 잃은 눈매, 고물시장의 먼지 냄새가 밴, 아주 퇴색해버린 낡은 옷 소매 밑으로, 흙투성이가 되어 더러워진, 말라빠진 검고 누런 손가락들을 감추면서, 백치들처럼 착하디 착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패거리들이었다. 만일 이렇게도 불결한 패거리들이 친구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의 어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지만, 이 어린이의 우애의 깊음이, 그 놀라움을 월등했었다. 아무튼 이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이 어린이의 밝고 푸른 눈의 시선을 받는다. 거짓이 깃든 눈을! 일곱살에, 이 어린이는, 대사막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그곳은 빛나는 자유의 천지였다. 대삼림과 태양, 큰 강기륵과 대초원이 있었다. 그는 그림 화보가 들어있는 신문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그림책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곳에서는 스페인 사람이랑, 이탈리아 여인이 생긋이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기도 하였다. -근처에 있는 직공의 딸로서, -여덟살 먹은 갈색 눈의 야성적이며, 인도사라사 옷을 입은 꼬마 말괄량이 아가씨는,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땋아느린 머리꼬리를 흔들면서, 갑자기 그의 등에 올라탔다. 밀에 깔린 그는 상대방 엉덩이를 깨물어 주었다. 말괄량이 아가씨는 속옷 따위는 입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먹질과 발길질로 멍이 든채, 그녀의 살결의 맛을 그대로 자신의 거실까지 가져갈 수 있기는 하였다. 그는 침울한 십이월의 일요일을 참으로 싫어했다. 그런 날엔,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마호가니 목재의 원탁에 앉아서, 책장 가장자리가 캬제츠 색깔로 된 성경책을 읽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밤마다 그는 잠자리에 들면 여러가지 꿈으로 가위에 눌리곤 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갈색으로 타오른 일몰이 오면, 타운크라이어가 삼박자로 큰 북을 울리면서, 포고의 주면에 사람을 끌어모아, 군중을 웃기기도 하고, 고함치게 하는 도시의 변두리로 시커멓게 되어 되돌아오는 작업복의 사람들을 바라다보는 것을 그는 무척 사랑했다. 그는 꿈꾸었다. 빛의 물결과 건강한 향기, 황금빛 솜털이 천천히 흔들리면서, 그를 싣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사랑스럽고 상쾌한 목장에 와 있는 꿈을 그는 무엇보다도 특히 어두컴컴한 것을 좋아했다. 쇠살문을 꼭 닫아 잠그고, 천정은 높고, 습기가 가득한 텅빈 방안에서 그 나른하고 무겁게 드리운 황토색 하늘과 그리고 습기에 찬 숲, 별들이 총총한 숲속에서 개화하는 육체의 꽃들로, 항상 마음에 걸려 떠나지 않는 그 소설을 읽었을 때면, 현기증과, 붕괴와, 패배, 그리고 연민을! -멀리 아래쪽에서는, 저자거리의 소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홀로 그는 거친 천으로 된 이불위에 누워, 그 천으로부터 강렬하게 범포를 그리워했다. A.R   첫날밤   -그녀는 아주 옷을 벗고 그리고 버릇없는 거목들의 나무잎이 아주아주 가까이서 짓궂게 유리창에 기웃거리며 두드린다.   내 큰 의자에 반나체로 앉아서 그녀는 두 손을 팔짱끼고 그토록, 그토록 가느다란 두 발은 기뻐서 마루바닥에서 전율한다.   -밀랍빛이 되어 나는 바라본다. 관목에 작은 빛살이 그녀의 미소 속에서, 가슴 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을-마치 장미나무의 파리처럼.   -그녀의 가냘픈 발목에 난 키스를 했다. 그녀는 맑은 트릴음에 잇달아 꾸밈없는 다사로운 미소를 지었따. 예쁜 크리스탈 미소를.   슈미즈 속으로 작은 두 발은 들어갔다 : -첫 버릇 없음이 용서되었고 그 상냥스런 미소가 벌 주는데 주저하게 했다.   -내 입술 아래 고동치는 가여운 발 나는 고이 그녀의 두 눈에 입맞춤을 했다. -그녀 깜찍스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어마, 그 모습이 더더욱 좋구나...   -나는 거침없이 나머지 키스를 그녀 가슴에 던졌다. 간절히 원하는 만족스런 미소 그녀를 웃게하는 입맞춤 속에서...   -그녀는 아주 옷을 벗었고 그리고 버르없는 거목들의 나무잎이 아주아주 가까이서 짖궂게 유리창에 기웃거리며 두드린다.   A.R   도둑맞은 마음   A.R   싸구려 담배가 배어 버린 내 마음이, 나의 슬픈 마음은 선미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놈들은 수프를 되돌리고 있는데, 내 마음은 선미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들의 조롱이 너무나 악착같아 모두들 한바탕 까르르 웃어대는데, 내 마음은 선미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 싸구려 담배가 배어버린 내 마음이!   군인 출신의 음경 자랑, 타락한 그놈들은 딱 질색이다. 군인 출신의 음경 자랑, 키 위에도 장난기 서린 그림. 기기묘묘한 파도여, 내 마음을 사로잡아 가라, 그리고 구원하라. 군인 출신의 음경 자랑, 타락한 그놈들은 딱 질색이다!   그놈들의 씹는 담배가 끊어진다면 돋구맞은 내 마음이 정말 문제로구나. 그것이야말로 박카스 신의 말버릇이 되겠구나. 그놈들의 씹는 담배가 끊어지면, 만일 슬픈 내 마음이 꿀꺽 삼켜버려진다면, 내 위장은 그야말로 뒤집히고 말 것이다. 그놈들의 씹는 담배가 끊어진다면, 도둑맞은 내 마음은 정말 문제로구나.   1871년 5월   허기의 축제 A. 랭보   내 허기, 안느, 안느여, 네 당나귀 타고 달아나라.   내 맛이 좋다면, 흙과 돌 뿐이니. 딘! 딘! 딘! 딘! 공기를 바위를, 대지를, 쇳덩이를 먹읍시다.   내 허기여, 돌아라! 허기여, 뜯어먹어라. 소리 가득한 들판을! 메꽃의 즐거운 독을 모으라!   가난한 자가 깨뜨리는 조약돌을, 교회의 낡은 돌을, 홍수의 아들인 자갈을, 잿빛 계곡에 누운 빵을!   내 허기여, 검은 공기의 끝자락, - 하늘빛 나팔수 그것은 나를 잡아당기는 위장. - 그것은 불행.   땅 위에 나뭇잎이 나타났다. 나는 농익은 과육에게 간다. 밭이랑 한가운데서 나는 들상치와 제비꽃을 딴다.   내 허기, 안느, 안느여, 네 당나귀를 타고 달아나라.   목메어 죽은 자의 무도회 / Bal des Pendus A.랭보   다정한 불구의 검은 교수대에서, 기사가 춤추네, 춤을 추네, 악마의 깡마른 기사와 살라딘의 해골도.   벨제브즈 공이 찡그리며 밧줄로 하늘에서 작고 검은 꼭두각시 꺼내서 낡은 신발 밑창으로 그 얼굴 두드리고, 옛 성탄 곡조에 맞춰 춤추게 하네!   깜짝 놀란 꼭두각시 가느다란 팔로 얼싸안네. 우아한 아가씨들 예전 껴안았던 검은 오르간처럼 창살 있는 가슴이 지독한 사랑으로 오래 부딪치네.   어라! 즐거운 무용수는 배가 없구나! 깡충깡충 뛰어다닐 수 있네. 이 무대는 아주 기네! 앗, 싸움인지 춤인지 알 수 없네! 화난 벨제브즈가 바이올린을 엉터리로 켜네!   단단한 뒤축이여! 이제 샌들은 닳지 않으리! 거의 모든 이가 가죽 셔츠를 벗었네. 별로 거슬리는 것도 없고 소란스럽지도 않네. 두개골 위에 눈 내려 흰 모자를 만드네.   까마귀가 금 간 머리 향해 곤두박질하네. 깡마른 턱 아래 살점 한 조각 떨고 있네. 혼란스런 어둠 속을 맴돌며 거친 용사와 허울 좋은 갑옷이 부딪쳤다고 하네.   어라! 북풍이 해골 무도회에서 불어닥치네! 검은 교수대가 철제 오르간처럼 신음하네! 늑대가 붉디붉은 숲에서 대꾸하듯 울어대고, 지평선 하늘은 지옥 불빛이 되네...   이제 그만, 나를 흔들어 다오, 죽음의 장수여, 귿르은 부러진 손가락으로 엉큼하게도, 창백한 등뼈 위에서 사랑의 묵주 돌리고 있으니, 죽은 자여! 이곳은 수도원이 아니니!   죽음의 무도 한가운데 붉은 하늘에 커다란 미친 해골이 튀어오르네. 말이 뒷발로 일어서듯이 힘차게 튀어오르네. 여전히 목에 팽팽한 밧줄을 느끼면서,   비웃듯 소리를 내지르며 무너지는 대퇴골 위에서 작은 손가락 꼭 쥐고, 광대가 오두막으로 돌아가듯이, 해골의 노래에 맞춰 무도회에서 튀어오르네.   다정한 불구의 검은 교수대에서 기사가 춤추네, 춤을 추네, 악마의 깡마른 기사와 살라딘의 해골도.   아르튀르 랭보(1854~1891): 랭보는 그의 광란적 방랑, 몇 편의 파격적 시, 그리고 문학에 대한 그의 돌연한 단절이 너무나 기이하여 하나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인물이나 작품에 대하여서도 참으로 구구한 추측과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16세에서 20세 안팍까지 단지 3-4 년 동안에 문학으로 이루고자 했고, 우연히 남게 된 몇 편의 작품은 너무나 새롭고 강렬하고 깊이가 있어서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의 작품 , 에 접한 폴 클로델은 이를 참다운 계시라 했고 초현실주의의 총수 앙드레 브르통은 그를 자기들의 운동의 가장 선구자로서 추앙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실존주의-사회주의에 대하여서도 그의 인간과 작품은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에 대한 관심은 계속 확산-성장하는 느낌이다.  이르튀르 랭보는 북 프랑스와 벨기에의 국경 소도시 샤를르빌에서 태어났다. 이 곳은 지극히 평범하고 변화 없고 보수적인 소도시로 어린 랭보는 이미 주위에 대한 강한 반항심을 느꼈으며, 그가 자란 가장에서도 카톨릭 교의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강요하는 어머니 아래 숨막힐 듯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잘 참았고,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여 그의 선생들은 그를 신동이니 천재니 하고 불렀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그의 마음 속에는 자기의 가정과 도시 또한 그가 처한 현실에 대한 혐오와 반항심을 누를 수 없어 여러 번 고향으로부터 탈출을 기도했다. 어떤 때는 책을 팔아서, 어떤 때는 걸어서, 어떤 때는 무임 승차로 벨기에, 프랑스 등지를 방랑하였으나 그 때마다 체포-투옥되어 되돌아왔다. 그의 다른 곳으로의 탈출 기도와 방랑 생활에 대한 동경에는 일종의 숙명적 양상이 있다.  1871년 가을, 네번째의 탈출로 파리로 오게 되었다. 여기서 랭보는 그의 친구의 권고로 베를렌느에게 자기의 시를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이보다 1 년쯤 전에 결혼한 베를렌느는 당장 파리로 올라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이리하여 이 소년 시인은 "술취한 배"라는 원고만 들고 파리로 올라오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이후 5년간 열정적이며 폭풍 같은 관계가 벌어진다. 이 비정상적 관계는 결국 1873 년 베를렌느의 랭보에 대한 권총 발사로 끝이 나고 랭보는 다음 해인 1874 년 그의 끝없는 방랑 생활의 길에 오른다. 이 때까지 그는 그의 두 개의 작품 과 을 끝냈는데, 은 그가 직접 브뤼셀 출판사에서 인쇄하게 하였으나 은 원고로 갖고 있다가 배를렌느의 주선으로 인쇄되었다. 1874 년 이후부터 랭보는 문학을 버리고 일대 방랑 생활을 시작한다. "시나 문학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단정한 그는 이번에는 젤멘느 누보라는 새로운 친구와 함께 영국-독일-이탈리아-북 유럽의 여러 나라, 키프로스 등을 약 6 년 동안 전전하였다. 1880 년에는 완전히 유럽을 떠나 아라비아의 이든을 거쳐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약 9 년 동안 이디오피아의 하라라에서 상사 대표로 있으면서 탐험과 무기 무역에 종사하였다. 1891 년 오른쪽 다리 정맥에 악성 혹이 생겨 이 해 5 월 프랑스로 돌아와 마르세이유 병원에서 다를 절단하였으나 같은 해 11월에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37세이었다. 죽기 전 그는 그의 친척에게 병이 나으면 결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년 아르튀르 랭보는 아름다운 용모의 소유자였다. 고귀한 얼굴과 젊음이 넘치는 육체는 자연 그를 보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밖으로 나타나는 그의 성격은 거칠고 난폭하고 모든 일에 조소적이며 반항적이었다. 이는 거의 고의적인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므로 베를렌느에 의해 그를 소개받은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일종의 공포와 반발심을 느꼈으며 동시에 그의 강력한 개성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마음 속에는 누를 수 없는 자유에 대한 끝없는 갈망,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가 용광로 같이 타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제약이나 구속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 미지의 것, 생명적인 것을 찾으려는 격렬한 충동과 욕구가 있었다. 그가 가정을 뛰쳐 나오고, 방랑을 일삼고, 종교를 모독하고, 일시적이나마 사회주의에 경도하고 동성애 빠지고, 스스로 조악한 행동을 한 것은 모두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유로운 방랑 생활에서 초기의 청순한 몇 편의 방랑시와 또 전통과 현실에 매달린 인물들과 제도에 대한 경멸과 조소를 던지는 풍자시도 남겼다("음악에 맞추어" "교회의 빈민들" 등)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시인이 되고 문학을 통하여 이루고자 한 것은 그가 말하는 '보는 자'가 되어 미지의 세계, 진정한 생, 절대적인 것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젊은 랭보는 스스로 보는 자가 되기 위햐여 진지하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알콜, 환각제의 사용, 동성애, 무의식 세계의 탐구, 자발적 환상 상태의 조작, 심지어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면서까지 미지의 세계 현실과 환상이 겹치는 새로운 세계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의 말대로 큰 병자, 큰 죄인, 큰 저주받은 자가 됨으로써 최고의 지자(智者)가 되어 우주와 절대 세계를 붙잡으려고 했다. 또한 랭보는 이렇게 자기가 보는 미지의 세계,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모든 감각에 통하는 시적 언어를 만들려고 하였다. "향기, 소리, 빛깔 등 모든 것을 요약하는" 언어이다. 그가 언어의 연금술이라고 부른 이 기도(企圖)는 일찌기 보들레르가 시도한 바 있거니와 빛깔의 소리를 듣고 소리의 향내를 맡을 수 있는 감각적 언어를 창조하는 일이다.  랭보는 보들레르의 시도를 극단까지 추진했다, 그의 후기 작품 과 은 이러한 노력과 모험의 기록이다. 그가 이 기도에 성공했는지 못 했는지는 차치하고, 그가 이러한 미지의 새로운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결사적 노력, 그리고 새로운 감각을 나타내는 새로운 시적 언어를 창출하려고 한 정신적 노력은 시에 대한 새로운 사명과 방식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12    보들레르 시모음 댓글:  조회:2845  추천:0  2017-04-01
보들레르 시모음   惡의 꽃 / 보들레에르      독자에게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와 벼룩을 기르듯이, 우리의 철저한 회한을 키우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철저하지 못하네. 고회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차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을 씻어내린줄 알고, 좋아라 흙탕질로 되돌아오는구나.   흘린 우리의 정신을 악의 벼갯머리에서 오래 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술사에게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롱하는 끄나불을 쥔 것은 이네! 지겨운 물건에게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는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으로 내려가는구나.   구년 묵은 똥갈보의 시달린 젖을 입맞추고 빨아먹는 가련한 탕아처럼, 우리는 지나는 길에 금지된 쾌락을 훔쳐 묵은 오렌지마냥 한사코 쥐어짜는구나.   우리의 뇌수 속엔 한 무리의 떼가 백만 마리의 벌레처럼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의 폐 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롭고 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폭을 수놓지 않았음은 아아!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하지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노효하고, 으르렁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 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 - 뜻하지 않게 눈물고인 눈으로, 놈은 담배대를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이 독자여 - 내 동류여, 내 형제여!     참고  1~2연      작자를 포함한 일반인의 위선적인 종교생활          3~6년     악마의 유혹과 조정에 의한 타락          7연         악에 있어서조차 대담하지 못한 왜소한 인간          8~10연   갖가지 악덕 중에서도  가장 악질인 권태.          마지막 구에서   독자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듯이 가면을 벗긴 점         전무후무한 바치는 시(헌시)라 할 수 있다   알바트로스 / 보들레에르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 없는 항해의 동반자인 양 뒤쫒는 바닷새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우스꽝스럽고 가련하게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달린 항해자의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되네.   상응相應 / 보들레에르     은 하나의 사원이니 거기서 산 기둥들이 때로 혼돈한 말을 새어 보내니, 사람은 친밀한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리로 들어간다.   어둠처럼 광명처럼 광활하며 컴컴하고도 깊은 통일 속에 멀리서 혼합되는 긴 메아리처럼 香과 色과 음향이 서로 응답한다.   어린이 살처럼 싱싱한 향기, 목족처럼 아늑한 향기, 목장처럼 초록의 향기있고, --- 그 밖에도 썩은, 풍성하고 기승한 냄새들.   정신과 육체의 앙양을 노래하는 용연향, 침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확산력을 지닌 향기도 있다.   원수 / 보들레에르       내 청춘 한갓 캄캄한 雷雨였을 뿐 여기 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하도 휘몰아쳐 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 몇 안 남았네   나 지금 思想의 가을에 닿았으니, 삶의 갈쿠리를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들 파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 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 오 괴로워라! < 시간>은 생명을 파먹고, 심정을 갉는 정체모를 는 우리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대해지는구나!   인간과 바다 /보들레에르     자유인이여, 언제나 너는 바다를 사랑하리! 바다는 네 거울이니, 너는 그 파도의 끝없는 전개 속에 네 넋을 관조하노니. 네 마음 또한 그보다 덜 쓰지 않도다.   너는 즐겨 네 영상 품안으로 뛰어드나니, 눈과 팔로 그것을 포옹하며 네 가슴은 그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비탄소리에 때로 자신의 들끓음을 잇는구나.   그대 둘이 모두 침침하고 조심스러워, 인간이여, 아무도 네 심연의 바닥을 측량 못했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속의 재보를 모르나니. 그토록 그대들 악착스리 비밀을 지키는구나.   그런데도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두고 그대들은 무자비하고 가책 없이 서로 싸우니, 그토록 살륙과 죽음을 사랑하는가 오 영원의 투사들 어쩔 수 없는 형제여!   아름다움 / 보들레에르     나는 아름다워라, 오 덧없는 인간들 ! 돌의 꿈처럼, 저마다 거기서 상처입는 내 유방은 질료처럼 영원하고 말 없는 사랑을 시인에게 불어넣게 되어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네. 백조의 순백에 백설의 마음을 결합하고, 선을 흔들어 놓는 움직임을 싫어하며 나는 울지 않고 결코 웃지도 않네   우뚝 솟은 기념물에서 빌은 듯한 내 당당한 태도 앞에 시인들은 준엄한 연구로 그들의 세월을 탕진하리!   이 고분고분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해서 만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거울을 가졌네. 내 눈, 영원의 광택을 지닌 커다란 내 눈을!   패물 / 보들레에르     내 지극히 사랑하는 여인은 알몸이었고, 내 마음을 알기에 오직 잘 울리는 보석만을 지녀, 그 호화로운 노리개로 행복한 나날의 모오르의 노예처럼 의기양양하도다.   노리개 흔들리며 쟁쟁 조롱하는 소리낼 때, 금속과 보석으로 찬란한 그 세계에 나는 넋을 잃고 황홀하여, 음향과 빛이 뒤섞이는 물건들을 나는 미칠듯이 사랑하리.   그녀는 몸을 뉘어 사랑에 내맡기고, 안벽을 향하듯이 그녀 쪽으로 치밀어오르는 바다처럼 깊고 감미로운 내 사랑을 긴 의자 위에서 흐믓한 미소로 맞는고야.   길들인 호랑이처럼 나를 지긋이 치켜보며, 막연하고 꿈꾸는 듯한 모습으로 자태를 꾸며, 그 음탕함가 결합된 천진난만함이 그녀의 갖가지 변모에 새로운 매력을 준다.   그녀 팔과 다리며, 허벅지며, 허리가, 기름으로 닦인 듯 반지르르 백조인양 파동치며, 명석하고 조용한 내 눈 앞을 지나간다. 그녀 배와 유방, 내 포도넝쿨의 그 송이송이는   악천사들보다도 더욱 아양떨며 나아가며 내 마음 푹 놓인 안식을 뒤흔들려 들고 조용하고 외로이 앉았던 수정의 바위에서 내 마음을 밀어내려 하는구나.   새로운 화법으로 앙띠오쁘의 음부를 애숭이 상반신에 연결한듯 하여, 그토록 그녀 몸매는 골반을 드드러지게 하네 그 황갈색 안색에 화장도 희한한지고!   -- 이윽고 램프도 꺼지기로 체념하고, 벽난로 장작불만이 방안을 비추기에. 거기서 타오르는 한숨을 내뿜을 때마다 호박빛 피부를 피로 물들인다!   이국 향기 異國 香氣 / 보들레에르     가을 날 더운 저녁녘에 두 눈 딱 감고, 네 화끈한 젖가슴의 내음 들이 마실 때, 단조로운 태양의 불길에 현혹된 행복한 바닷기슭이 눈앞에 전개되는구나   자연이 야릇안 나무들이며 맛있는 과일을 주는 게으른 섬 하나. 날씬학 억센 육체의 사내들, 솔직한 눈매가 놀라운 여자들.   네 체취로 하여 매혹적인 풍토로 이끌려, 아직 바다의 풍랑에 지쳐빠진 둧이며 돛대로 꽉찬 항구를 나는 보네   한편, 공중에 풍기며 내 코를 부풀게 하는 초록의 따마린느 향기가 내 넋 속에 선원들의 노래에 섞여 스며드는구나   깊은 심연 속에서 / 보들레에르       내 마음 떨어진 캄캄한 심연 밑바닥에서. 연민을 빕니다, 내 사랑하는 유일한 그대여, 이건 납빛 지평선의 침울한 세계, 거기서 어둠 속에 공포와 모독이 떠돌고.   열 없는 태양이 여섯 달을 잠들고, 또 여섯 달은 어둠이 땅을 덮으니. 이건 극지보다도 더 헐벗은 고장, 짐승도, 개천도, 프르름도, 숲도 없구나!   그런데 이 얼어붙은 태양의 차가운 잔인성과 태고의 과도 같은 이 광막한 어둠보다 더 끔찍스런 것 세상에 없어라.   멍청한 잠 속에 잠길 수 없는 더 없이 더러운 짐승 팔자가 샘나는 구나. 그토록 시간의 실타래는 더디 풀리네!   흡혈귀 / 보들레에르     신음하는 내 가슴에 비수의 일격처럼 박힌 너. 아귀 떼처럼 억센것이. 치장하고 지랄스럽게 와서.     욕된 내 정신을 네 잠자리 네 영지로 만드는 너. --중죄수가 사슬에 메이듯이 내가 매어있는 더러운 계집아.   끈질긴 도박꾼이 도박에 메이듯, 술주정뱅이 술병에 매이듯. 구더기에 썩을 짐슴 시체가 매이듯. --망할 년, 망할 년아!   날쌘 검이 일격이 내 자유를 싸워 얻을 수 있도록 나는 빌었고, 믿지 못할 독약에게 내 비겁함을 구해달라고 나는 말했지.   오호라! 독약과 검은 나를 멸시하여 말했어 -- "저주받은 노예생활에서 널 끌어낼 보람도 없어.   머저리야! --- 만약 우리 애써 널 그년 질곡에서 해방시킨다면, 네 입맞춤으로 네 흡혈귀의 송장을 되살려 놓을 게다!   오늘 저녁 무엇을 / 보들레에르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겠나, 가엾은 외로운 넋이여, 내 가슴, 전에 시들은 가슴, 무엇을 말하겠나, 그 성스러운 시선이 별안간 너를 다시 꽃피게 한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어질고, 지극히 사랑스런 그녀에게!   -- 그녀 찬송함을 우리는 자랑으로 삼으리, 그녀 위신의 부드러움만한 것 이 세상에 없어라. 그녀 정신적인 육체 의 향기 지니고, 그녀 눈길 우리를 광명으로 감싸주네.   어둠 속이건 또는 고독 속이건, 거리에서건 혹은 군중 속이건, 그녀 환상 햇불마냥 공중에서 춤추네.   그 환상 때로 입 열어 이르기를-- "나는 아름다워 명하노니, 날 위해 어직 만을 사랑하라, 나는 수호천사요, 詩神이자 마돈나이니라!"   썩은 짐승의 시체 / 보들레에르                  그토록 따스한 이 아름다운 아침에 우리가 본 물건이 생각나는가, 귀여운 그대여,           오솔길 구비 조약돌 섞인 강 벌 위에 더러운 썩은 짐승 시체가,             음탕한 계집처럼 공중에 가랑이를 벌리고, 지글지글 타며 독액 흘리며,           데면데면하고 뻔뻔스럽게 발산물로 꽉 찬 배때기 열어제치고 있었지.             태양은 그 썩은 것 위에 알맞게 익히려는 듯 내려쪼이며,           그것이 한때 맺어 지닌 일체를 골백번 불려 에 돌려주려는 듯,             하늘은 그 희한한 잔해를 꽃이 피어오르듯이 굽어보고 있었지.           하도 악취가 진동하여 너는 들판에 실신하여 쓰러질 듯 했지.   그 썩는 배 위에 파리떼 웅웅거려, 거기서 검은 구더기에 쏟아져 나오며          그 산 누더기를 따라 텁텁한 점액처럼 흘러내리더구나.            그 모든 것 파도처럼 오르내려, 혹은 팔닥팔닥 내닥치니, 몸뚱이가 마치          흐릿한 바람결에 부풀어 골백으로 불어나며 살아가는 듯.          그 세계 흐르는 물과 바람처럼 야릇한 음악을 들려 주나니         혹은 키질꾼이 율동적으로 키 안에 넣고 까부는 낟알같더라.            형태들은 사라져 한 갓 꿈일 뿐, 잊혀진 화폭에 도도히 떠오를 소묘          그것은 오직 예술가가 추억을 더듬어 비로서 완성하리.            바위들 뒤에 불안스레 암캐 놈이 성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지.           그 해골에서 놓친 고깃덩이 놈이 되찾을 기회를 노리면서.              -- 하지만 그대 역시 언젠가 이 오물같으리, 이 끔직스런 부패물 같으리.            내  문의 별, 내 천성의 태양, 그대 나의 천사, 나의 정열이여 !              암 ! 그렇게 되리. 우아스런 여왕이여, 그대 종부성사 받은 연후, 잡초며            기름진 꽃들 밑으로 뼈다귀를 사이에 끼어 썩으러 갈 때면.               그때는, 오 나의  미녀여, 너를 입맞춤으로 뜯어먹을 구더기에게 말하라.             우리 피괴된 사랑의 원형과 그 거룩한 본질을 내게 간직했다고.     가을의 노래 / 보들레에르      1     우리 곧 싸늘한 어둠 속에 잠기리. 잘 가거라, 너무도 짧은 여름 발랄한 볕이여 ! 벌써 돌바닥 뜰 위에 장작 부리는 불길한 충격 소리 들려오는구나   겨울은 온통 내 가슴에 사무쳐 들리 -- 분노, 증오, 몸서리, 넌덜머리, 고역, 그리하여 내 심장 북극지옥의 태양인 양, 한갓 얼어붙은 덩어리 되어지리.   장작 소리마다 몸서리치며 귀기울리니, 두들겨 세우는 사형대보다도 더 둔탁한 울림이여, 내 정신 육중한 파벽기의 끊임없는 연타에 와르르 무너지는 탑과도 같아라.   그 단조로운 충격에 맞추어 어디선가 부랴부랴 관에 못질하는 듯 --- 누구의 관을? --- 어제는 여름, 이제 가을인가! 그 야릇한 소리 출발인 양 울리는구나.       2   나는 그대 지긋한 눈의 푸른 빛이 좋아 따사로운 미녀여, 나 오늘은 모든 것이 쓰디 써서 그대 사랑도, 침실의 쾌락도, 화끈한 난로도, 그 어느 것도 바다의 찬연한 태양만 못해.   허지만 사랑해 주오, 다정한 그대여! 박정하고 심술궂은 놈일지라도 어머니 되어 주오. 애인이건, 누님이건. 가을 영롱한 하늘 또는 낙조, 그 한 순간의 따스한 정을 베풀어주오.   잠간의 수고를 ! 무덤 기다리니,  그 탐욕스런 무덤이! 아! 내 이마 그대 포근한 무릎에 얹고, 백열의 지난 여름 그리며. 이 늦 가을의 따스하고 누른 햇살 맛보게 해 주오!   음울 / 보들레에르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마음 위에 무겁게 내리덮은 하늘이 뚜껑처럼 짓누르니 지평선의 틀을 죄어 껴안고, 밤보다도 더욱 처량한 어두운 낮을 우리에게 내리부을 때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 거기서 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로 마냥 벽들을 두들기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돌 때,   내리는 비 광막한 빗발을 펼쳐 드넓은 감옥의 쇠격자처럼 둘러칠 때, 더러운 거미들이 벙어리떼를 지어 우리 뇌 속에 그물을 칠 때면,   별안간 종들이 맹렬하게 터져 울리며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 흡사 고향을 잃고 떠도는 정령들이 끈질기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듯 내 넋 속을 느릿느릿 줄지어 가는구나. 은 꺽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가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旗를 꽃는다   지나가는 여인에게 / 보들레에르     주위에선 귀가 멍멍해지게 거리가 노호하고 있었지. 상복 차림의 날씬한 여인이 엄숙한 고뇌의 모습으로, 꽃무늬 레이스와 치마자락을 화사한 손으로 살짝 쳐들어 흔들며 지나갔었지,   조상彫像같은 다리로 민첩하고도 고상한 걸음으로, 나는 머리가 돈 사람인 양 부르르 떨며. 태풍이 싹트는 납빛 하늘같은 그녀 눈에서 넋을 빼는 감미로움과 뇌살의 쾌락을 마셨어,   번갯불 -- 그리고 어둠! 그 시선이 홀연 날 되살려 놓곤 한 순간에 지나친 미녀여, 영원의 저승이 아니고는 다시는 못볼 것인가?   딴곳, 아득히 멀리! 이미 늦었지! 아마 영원히 못만나리! 그대 사라진 곳 나 모르고, 내 가는 곳 그대 알지 못하니, 오 내가 사랑할 수도 있었을 그대. 오 그것을 알고 있던 그대였거늘 !   살인자의 술 / 보들레에르     아내가 죽었어, 난 자유야! 그러니 실컷 마실 수 있지. 전엔 한푼 없이 돌아올 때면 그년 고함에 신경이 갈기갈기 찢겼지.   이제 난 왕처럼 행복해. 공기는 맑고, 하늘도 희한한지고--- 내가 년에게 반하게 된 것도 그래 이런 여름철이었지!   가슴을 찢는 이 지독한 갈증 그걸 풀려면 아마도 그년 무덤을 채울 만큼의 술이 필요할 껄, --줄잡은 말은 아니지;   실은 년을 우물 속에 던졌거든, 그리고 그 위에다 우물 변두리 돌들을 모조리 밀어넣기까지 했것다. -- 잊을 수 있담 잊고 싶으이!   무엇으로도 우릴 떼어놓을 수 없는 우리 애정의 맹서를 위해서 우리 사랑의 도취의 멋진 시절처럼 다시 화해하기 위해서   난 그날 밤, 년에게 컴컴한 길가에서 만나자고 애원했것다. 년이 왔어! ---미친 것이! 다소간에 우리 모두가 미쳤거든!   무척 지친 꼴이었지만 년은 아직도 예쁘더군! 그리고 난 또 너무나 년을 사랑했지 ! 그래서 말한 거야 "이승에서 꺼져라!"고.   이 내 맘을 이해할 놈 아무도 없어. 이 머저리 주정뱅이들 중 단 한 놈이라도 병에 찌든 밤마다 술로 수의를 삼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   쇠로 만든 기계인 양 불사신의 이 불한당은 여름이건 겨울이건 일찌기 참사랑을 안 적이 없어.   그 응큼하게 홀리는 마술이여, 아비규환의 다급한 불안의 연속, 그 독약의 병들이며, 그 눈물 그 쇠사슬과 해골 부딪는 소리나는 사랑을!   --이제 난 자유롭고 외톨이구나! 오늘 밤 난 죽도록 취하리라. 그땐 두려움도 회한도 없이 땅바닥 위에 벌떡 누울테다.   그리곤 개처럼 잠들리라! 돌이며 진흙따윈 실은 육중한 바퀴의 달구지건, 미친 듯 질주하는 貨車건,   죄많은 내 머릴 짓이기든가 한 허리를 동강내도 무방하리, 그까짓 일, 난 신이나 악마나 聖卓처럼 일체 개의치 않거든!   흡혈귀의 변신 / 보들레에르     이때 여인은 숯불 위의 뱀처럼 몸을 빌빌 꼬고, 코르셋 철골 위에 유방을 짓이기며, 딸기같은 붉은 입으로 흠뻑 침향 배인 말을 흘려보냈다.  --- "나로 말하자면, 젖은 입술로 침대 속에서 옛 시대의 양심을 잃게하는 비의秘義를 알고 있어. 내 압도적인 유방 위에선 어떤 눈물도 말려주고, 늙은이들도 어린애같이 웃게 해요. 홀랑 벗은 내 알몸을 보는 이에겐 달이 되고, 태양, 하늘, 별이 되어주지! 귀여운 학자님, 나는 하도 관능에 통달해서, 무서운 팔 안에 사내를 꽉 껴안을 때, 혹은 소심하고도 음란하며 여리고도 억센 내가 내 웃도리를 깨무는 대로 내맡길 때면, 넋을 잃은 이 육체의 깔포단 위에선 정력 잃은 천사들로 지옥에라도 떨어질 지경!"   그녀가 내 뻐마다 온통 골수를 빨아내고, 내가 사랑의 키스를 돌려주려 나른한 몸을 그녀쪽으로 돌렸을 때, 눈에 띈 것은 오직 고름으로 꽉찬 끈적끈적한 가죽푸대뿐! 등골이 오싹하여 두눈 딱 감았다가 환한 불빛 속에 다시 떴을 땐, 내 곁에 피로 꽉 채운 듯한 억센 마네킹같은 여체는 간곳 없고, 해골 조각들이 뒤섞여 떨고 있었으니, 그 소리 풍향계의 삐거덕 소린가, 아니면, 쇠막대기 끝에서 겨울밤 동안 바람에 흔들리려 간판이 울리는 소린가   애인들의 죽음 /보들레에르     우리는 가벼운 향기로 가득찬 침대 무덤처럼 움푹한 쿠션을 마련하리라. 우릴 위하여 더욱 아름다운 하늘 밑에 피는 신기한 꽃들로 장식선반 위에 꽂으리.   우리 둘의 심장은 다투어 마지막 열을 다하여 타는 두개의 거대한 햇불이 되어, 쌍 거울같은 우리 두 정신 속에 그 이중의 빛을 반영하리라.   장미빛과 신비로운 푸른 빛의 어느날 밤에, 우리는 긴 흐느낌처럼 이별의 정 가득한 단 한번의 번개불을 주고 받으리.   그 후 가 문을 방긋이 열고 들어와 충실하고도 즐거운 기색으로 흐린 거울과 죽은 불길을 되살려 주리라.   ~~~~~~~~~~~~~~~~~~~~~~~~~~~~~~~~~~~~~~~~~~~~~~~~~~~~~~~~~  상승  연못위로, 계곡위로  山, 숲, 구름, 바다위로,  太陽넘고, 에테르氣層을 넘어  머얼리 星圈의 경계를 넘고 넘어  내 精神이여, 그대 날쌔게 움직여 ,  파도속에 넋잃은 名 水永手인양,  깊고 가없는 공간을 形言못 할  雄健한 환락으로 즐거이 헤쳐 나가는 고야  이 病든 毒氣속에 멀리 멀리 날아가,  上層의 氣流속에 너를 淨化하고,  마셔라, 순수무구의 神酒인 양,  투명한 空間 가득 찬 맑은 불을.  안개 낀 生存을 짓누르는 괴로움과  광대한 슬픔일랑 뒤에 두고  억센 날개로 밝고 淸明한 들을 향해  솟구쳐 내 닫는 자 행복할거나.  그의 理念, 종달새처럼, 아침녘에  天空으로 자유로이 飛翔하는 者,  -- 삶 위를 감돌며 힘 안들이고 꽃들과  말없는 事物들의 말을 깨닫는 者, 幸福할거나.  ~~~~~~~~~~~~~~~~~~~~~~~~~~~~~~~~~~~~~~~~~~~~~~~~~~~~~~~~~  이상  천박한 세기가 낳은 썩어 빠진 산물인,  그림 장식 둘러싸인 저 미인도 아니요,  긴 구두 신은 발도, 까스타네뜨 끼운 손가락도 아니리,  나 같은 사람의 마음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위황병 시인 가바르니에게나 맡기어 두자,  병원에나 드나드는 수다스런 그 미인들의 무리는.  그 파리한 장미꽃들 중에는  내 새빨간 이상을 닮은 꽃은 찾아 낼 수 없을 것이니.  심연처럼 깊숙한 이 마음에 필요한 것은,  그대로다, 맥베스 부인이여, 죄악 겁내지 않는 굳센 넋,  폭풍우의 풍토에 꽃핀 에실르의 꿈이여,  그렇쟎으면 너, 우람한 [밤], 미켈란젤로의 딸이여,  [거인]들 입에 길들여진 그 젖가슴을 야릇한 자세로 조용히 비트는 너로다.  ~~~~~~~~~~~~~~~~~~~~~~~~~~~~~~~~~~~~~~~~~~~~~~~~~~~~~~~~~~~~~~~  향수병  어떤 물건도 꿰뚫고 나오는  강렬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유리도 뚫으리라.  동양서 건너온 손궤, 상을 찡그리고  삐걱삐걱 소리지르는 자물쇠 열면,  또는 버려둔 집에서 곰팡 냄새 코를 찌르는  먼지 낀 컴컴한 옷장을 열면,  옛 추억 간직한 낡은 향수병 눈에 띄는 수 있어  옛 사라의 넋 생생하게 되살아 거기서 용솟음친다.  서글픈 번데기처럼, 거기 온갖 생각이 잠들어,  무거운 어둠 속에 조용히 떨고 있다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 오른다,  하늘색으로 물들고, 장미빛으로 칠해지고, 금빛으로 장식되어.  거나한 추억 이제 흐린 공중에  펄럭거린다. 눈울 감는다. 현기증이  녹아 떨어진 넋을 움켜잡고 두 손으로 밀어뜨린다,  인간의 장로 어두어진 심연 쪽으로.  그리고 천년 묵은 심연가로 쓰러뜨린다.  거기에, 스스로 수의를 찢는 라사로 모양,  썩고 음산한 그리운 옛사랑의 닮은 송장이 잠깨어 꿈틀거린다.  그처럼, 나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련한 낡은 향수병 모양, 늙고, 먼지가 끼고,  꾀죄죄하고, 천하고, 끈적거리고, 금이 가서,  으슥한 옷장 구석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네 관이 되리, 사랑스런 독기여!  네 힘과 독성의 증인이 되리  천사가 마련한 사랑하는 독약이여!  나를 좀먹는 액체, 오, 내 마음의 생살권자(生殺權者)여!  ~~~~~~~~~~~~~~~~~~~~~~~~~~~~~~~~~~~~~~~~~~~~~~~~~~~~~~~~~~~~~  고백  한 번, 꼭 한 번, 사랑스럽고 정다운 사람이여,  당신의 미끈한 팔이  내 팔에 기대었다(내 넋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그 추억은 스러지지 않는다).  밤은 이슥하였다. 새 메달과 같이  보름달은 하늘에 걸리고,  장엄한 밤은 강물처럼 잠든  파리 위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집들을 따라, 대문 아래로, 고양이들은  살금살금 빠져 나갔다,  귀를 쫑그리고, 또는 정다운 사람의 혼백처럼,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별안간, 휘멀건 달빛 아래 피어난  허물 없는 친밀감 속에,  쾌활한 소리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풍부한 악기, 당신 입에서,  빛나는 아침 군악 소리 울리듯  명랑하고 즐거운 당신 입에서,  구슬픈 가락,야릇한 가락,  비틀거리며 새어나왔다,  마치 가족들이 부끌워서, 세인의 눈을 피하려고,  남 몰래 오랫동안 굴 속에  숨겨 두었던, 허약하고 험상궂고, 음산하고,  꾀죄한 계집애같이.  가엾은 천사여, 당신 목소린 가락 높이 노래 불렀다,  [이승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아무리 정신 써서 꾸며 보아도, 언제나,  사람이 이기심은 드러나는 법.  미인 노릇 하기란 힘이 드는 일,  억지 웃음 지으며  흥겨워하는 어리석고 쌀쌀한 무희의  진부한 일과 같은 것.  사람들 마음 위에 집을 세움은 바보짓거리,  사랑도 아름다움도 모조리 깨져버린다,  마침내는 [망각]이 치룽 속에 집어던져  [영원]의 손에 돌려줄 때까지는!]  나는 때때로 회상하였다 , 그 황홀한 달을,  그 적막, 그 울민을,  그리고 가슴 속이 고해실에서 속삭인  그 무서운 고백을.  ~~~~~~~~~~~~~~~~~~~~~~~~~~~~~~~~~~~~~~~~~~~~~~~~~~~~~~~~~~~~~~~  등대  루벤스, 잊음의 강, 게으름의 뜰,  사랑이란 엄두도 못할 싱싱한 살의 베개,  그러나 거기엔 삶이 끊임없이 흘러들고 용솟음친다,  하늘에 바람처럼, 바다에 밀물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침침하고 그윽한 거울,  거기 사랑스런 천사들, 신비에 싸인  상냥한 미소지으며, 그들의 나라를 닫는  빙하와 소나무 숲 그늘에 나타난다.  렘브란트, 신음소리 가득찬 음산한 병원,  장식이라곤 단 하나의 커다란 십자가상,  눈믈 섞인 기도가 오물에서 풍기고,  겨울 햇빛 한 주리 쏜살처럼 스친다.  미켈란젤로, 흐릿란 곳, 보아하니  헤라클레스의 무리 그리스도의 무리와 어룰리고,  억센 유령들 벌떡 일어나 땅거미의 어둠 속에  손가락 뻗쳐 저희들의 수의를 짓찟는다.  권투가의 노여움도, 목신의 뻔뻔함도,  온갖 천인들의 미를 잘도 그러모을 수 있어던 그대,  자존심에 부푼 너그러운 마음, 노랗게 허약한 사나이,  쀠제, 그대는 죄수들의 우울한 제왕.  와또, 이것은 사육제, 숱한 신사 숙녀들이,  나비처럼, 찬란하게 이리저리 거닐고,  상데리아 불빛 아래 산뜻한 배경은  소용돌이치는 무도장에 광란을 퍼붓는다.  고야,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찬 악몽,  마녀의 잔치판에 삶아지는 태아며,  거울들여다보는 노파와, 마귀를 홀리려고  양말 치켜올리는 빨가숭이의 아가씨들과.  들라크루아, 악천사 넘나드는 피의 호수,  거기에 전나무 숲 언제나 푸른 그늘 던지고,  음침한 하늘 아래, 야릇한 군악 소리,  웨버의 가쁜 한숨인 양 흘러 간다.  이 모든 저주와 요설과 한탄,  황홀과 외침과 눈물과 찬송가,  그것은 수천의 미로에서 되울려 오는 메아리 소리,  마침내 죽어가야 할 인간에의 거룩한 아편!  그것은 수천의 보초들이 되풀이하는 고함소리,  수천의 메가폰 통해 전달되는 명령의 소리,  그것은 수천의 성 위에 밝혀진 등대불,  깊은 숲 속 헤매는 사냥꾼들의 부르짖음!  왜냐하면 주여, 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존엄을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증거,  이 뜨거운 흐느낌은 내게로 흘러내려  그대의 영원의 강 언덕에 스러져 갈 것이니!  ~~~~~~~~~~~~~~~~~~~~~~~~~~~~~~~~~~~~~~~~~~~~~~~~~~~~~~~~~~~~  음악  음악은 흔히 나를 바다처럼 사로잡는다!  파리한 내 별을 향하여,  안개낀 궁륭 아래 또는 아득한 구중천에,  나는 돛을 올린다.  바람 품은 돛처럼 가슴을 활짝 펴고  허파를 부풀리고,  나는 기어오른다, 밤이 가리워 주는  겹치고 겹친 물결의 등을.  나는 느낀다, 괴로와하는 배의 온갖 정열이  내 속에 떨고 있음을.  순풍과태풍, 그리고 그 진동이  가이 없는 바다 위에  나를 흔들어 준다. 또 때로는 잔잔한 바다,  그것은 내 절망의 커다란 거울!  ~~~~~~~~~~~~~~~~~~~~~~~~~~~~~~~~~~~~~~~~~~~~~~~~~~~~~~~~~~~~~~~  마돈나에게  스페인 취미의 봉납물(奉納物)  [마돈나], 내 임이여, 나 그대 위해 세우리  내 고뇌의 안쪽 깊숙이 지하의 제단을,  그리고 내 가슴 속 가장 으슥한 구석에,  이승의 욕망과 비웃는 눈길 멀리 떠나,  하늘색 금빛으로 온통 단장한 벽감을 파서,  희한한 그대의 [성상]을 세우리.  수정의 운(韻) 솜씨 좋게 별처럼 아로새긴  순금의 그물, 냉다듬은 [싯귀] 가지고,  그대의 머리를 위해 커다란 [관]을 만들어 바치리.  그리고, 오, 불사신 아닌 [마돈나]여, 내 [질투]를 가지고  그대에게 [외투]를 마르재어 드리리, 새암으로  안감을 넣은, 딱딱하고, 묵직한, 미개인식 [외투]를,  파수막처럼 그대 매력을 그 속에 가두어 두도록,  [진주] 아닌 내 [눈물] 모두 모아 수를 놓아서!  그대 [옷]으론 떨며 물결치는 내 [욕망]을 입히리,  내 [욕망]은 솟아올랐다 내려갔다,  봉우리에선 간들거리고, 골짜기에선 쉬며,  그대의 하얀 장미빛 온 몸을 입맞춤으로 싼다.  나는 내 [존경]을 가지고, 거룩한 그대의 발 밑에 밟힐  고운 미단 [신]을 그대에게 지어 올리리.  그것은 부드러운 포옹 속에 그대의 발을 감싸 주고,  변통 없는 거푸집처럼 그대의 발 모양을 간직하리.  내 온갖 정성 어린 기술을 가지고도  그대 [발판]으로 [은달(銀月)]을 새기지 못하며는,  내 오장육부 깨무는 [뱀]을 그대 발꿈치 아래  갖다 놓으리, 그대 짓밟고 비웃도록,  제도의 은혜 넘쳐 흐르는 승리의 [여왕]이여,  증오와 독액이 온 몸에 가득친 저 괴물을.  그대는 보리라, 나의 온갖 [생각들]이, 꽃으로 장식된 [동정(童貞)  여왕]의 제단 앞에 느어선 [촛불]처럼,  파랗게 칠한 천장을 별처럼 비추면서,  불타는 눈으로 언제나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나는 몸과 마음 다하여 그대를 사랑하고 숭배하기에,  모든 ㄳ이 [안식향]과, [훈향], 그리고 [유향]과 [몰약]이 되고,  새하얀 눈 봉위 그대르 향해, 폭풍우 실은  내 [정신]은 [아지랭이]되어 끊임없이 솟아오르리.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 [마리아]의 구실을  다 갖추어 주고 , 사랑에 잔인을 뒤섞기 위해,  오 서글픈 쾌락이여! 한많은 [사형 집행리] 나는,  일곱 가지 [중죄] 가지고 서슬 푸른 일곱 자루의  [칼]을 만들어, 사정 없는 요술자처럼,  그대의 사랑 가장 깊숙한 곳을 과녘 삼아,  팔딱거리는 그대 [염통]에 모조리 꽂으리라,  흐느끼는 그대 [염통]에, 피흐르는 그대 [염통]에!  ~~~~~~~~~~~~~~~~~~~~~~~~~~~~~~~~~~~~~~~~~~~~~~~~~~~~~~~~~~~~~~  달의 슬픔  오늘 저녁 하염 없이 달은 꿈꾼다,  포개 놓은 보료 위에, 잠들기 전에,  가냘픈 손 기신 없이 젖가슴 언저리를  어루만지는 미인의 모습을 하고,  사태지는 보드라운 비단결 위에,  숨져가듯 멍청하게 등을 기대고,  꽃피듯이 푸른 하늘 솟아오르는  하얀 그림자를 둘러다 본다.  시름없이 지쳐서, 땅덩이 위에,  슬그머니 눈물을 흘러 보내면,  잠과는 원수진 가엾은 시인,  단백석 조각처럼 영롱하게 반작이는  파리한 달의 눈물 손 안에 길어,  해의 눈 못 미치는 가슴 속에 간직한다.  ~~~~~~~~~~~~~~~~~~~~~~~~~~~~~~~~~~~~~~~~~~~~~~~~~~~~~~~~~~~~~  아름다운 배  나에게 이야기하자, 오 요염한 여인이여!  네 젊음 치장하는 가지가지의 아름다움으.  어린 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울린  네 아름다움 너에게 그려 보이자.  펑퍼짐한 치맛자락 바람에 펄럭이며 걸어 나갈 때,  너는 흡사 난바다로 나가는 아름다운 배,  나른하고 느슨한 즐거운 리듬을 타고  갸우뚱거리면서 돛 달고 간다.  포동포동한 굵다란 목, 오동통한 어깨 위에,  네 머리는 거들거린다, 야릇한 귀염 풍기며.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도 양양하게  너는 길을 간다, 의젓한 아이.  너에게 이야기하자, 오 요염한 여인이여!  네 젊음 치장하는 가지가지의 아름다움을.  어린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울린  네 아름다움 너에게 그려 보이자.  물결 무늬 옷을 밀고 불쑥 솟은 젓가슴,  자랑스런 네 젓가슴은 아름다운 찬장이여,  둥그스름한 윤나는 그 널판은  방패처럼 번갯불 받아 번득거린다.  장미색 젖꼭지 내세우고 도전하는 방패여!  달콤한 비밀 간직한 찬장, 술과 향료와 음료,  가지가지의 맛좋은 것 가득차 있어,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 꿈나라로 실어 갈 찬양이여!  펑퍼짐한 치맛자락 바람에 펄럭이며 걸어 나갈 때,  너는 흡사 난바다로 나가는 아름다운 배,  나른하고 느슨한 즐거운 리듬을 타고  갸우뚱거리면서 돛 달고 간다.  조촐한 네 다리는 차고 가는 치맛자락 아래서 아른거리고  어슴푸레한 욕망 출썩거리고 부추긴다.  깊숙한 단지 속에 검은 마약을  휘저어 반죽하는 두 마녀와 같이.  나어린 장사쯤 깔볼 만도 한 네 팔은  살가죽 번득이는 왕뱀의 검질긴 적수,  애인의 모습 가슴팍에 새기려듯이,  아귀차게 껴안도록 만들어진 것.  포동포동한 굵다란 목, 오동통한 어깨 위에,  네 머리는 거들거린다, 야릇한 귀염 풍기며.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도 양양하게  너는 길을 간다, 의젓한 아이.  ~~~~~~~~~~~~~~~~~~~~~~~~~~~~~~~~~~~~~~~~~~~~~~~~~~~~~~~~~~~~~~  아름다움에의 찬가  그대 구천에서 왔는가, 나락에서 왔는가,  오, [아름다움]이여! 악마 같고도 신성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함께 퍼부으니,  그대는 가히 술에도 견줄 수 있도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서광을 간직하고,  소낙비 내리는 저녁 모양 향기를 풍긴다.  그대의 입맞춤은 미약, 그대의 입은 술단지,  영웅을 맥빠비게 하고 어린이를 씩씩하게 만든다.  그대 캄캄한 심연에서 솟아났는가, 별에서 내려 왔는가?  홀린 [운명]은 개처럼 그대 속치마를 따른다.  그대는 마구 기쁨과 슬픔은 흩뿌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이여, 그대는 주검을 비웃으며 그위를 걸어간다.  그대 보석 중에는 역시 [공포]가 매력 적지 않고,  살인은, 그대의 가장 값비싼 패물 속에서,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 아리따이 춤춘다.  눈 어린 하루살이 그대 촛불에 날아가,  바작바작 타면서도 말한다, [이 횃불에 영광 있으라!]  정부의 몸에 몸 기대고 몸 헐떡이는 사나이는  제 무덤 어루만지는 빈사자와도 같도다.  그대 하늘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무슨 상관,  오[아름다움]이여! 끔찍하고도 무서운 숫된 괴물이여!  그대의 눈과 미소, 그리고 발이 나에게  내 그리는 알지 못한 [무한]의 문을 열어만 준다면?  악마한테서 왔건 하느님한태서 왔건 무슨 상관? 천사든  사이렌이든 무슨 상관,ㅡ빌로오드의 눈을 가진 선녀여,  율동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단 하나의 여왕이여!  그대, 세계의 추악, 시간의 중압을 덜어만 준다면!  ~~~~~~~~~~~~~~~~~~~~~~~~~~~~~~~~~~~~~~~~~~~~~~~~~~~~~~~~~~~~~~  나의 프란시스까에의 찬가  새로운 줄로 그대를 노래하리,  오 내 마음의 고독 속에  살랑 살랑 나부기는 어린 나무여.  그대 꽃다발을 몸에 감아라,  온갖 죄악 씻어 주는,  오 조촐한 여인이여!  자비로운 [망각의 강]물처럼,  몸에 자력 감도는  그대의 입맞춤 마시련다.  궂은 정열의 폭풍  모든 길에 휘몰아칠 때,  그대는 나타났다, 여신이여!  고통스런 파선을 당했을 때  발견한 구원의 별과도 같이......  이 마음 그대 제단에 바치리!  적에 넘치는 연못이여,  다문 입술을 열어다오!  그대는 추한 것은 불사르고,  거친 것은 골라 놓고,  약한 것은 굳히었다!  굶주릴 땐 나의 숙소,  어두울 땐 나의 등불,  항상 바른 길로 이끌어다오,  나에게 힘을 북돋워다오,  기분좋은 향료로 향긋한  다사로운 목욕이여!  내 허리 둘레에 빛나라,  오 성수에 적신  순결의 갑옷이여.  보석을 아로새긴 잔,  짭짤한 빵, 맛좋은 음식,  오, 신의 술, 프란시스까여!  ~~~~~~~~~~~~~~~~~~~~~~~~~~~~~~~~~~~~~~~~~~~~~~~~~~~~~~~~~~~~~  언제나 이대로  [저 불거진 검은 바위 위로 바닷물 치밀어 오듯  그 야릇한 슬픔 어디서 당신에게 밀려 오는가?] 이렇게 당신은 말하였지.  ㅡ 우리 마음이 한 번 추수가 끝난 뒤에는,  삶은 괴로움.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비밀,  그것은 명백한 고통, 아무런 신비도 없고,  당신의 기쁨처럼 누구 눈에도 빤한 것.  그러니 더 묻지 마오, 호기심 많은 미인이여!  당신 목소린 부드럽지만, 입을 다무오!  입을 다무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언제나 즐거운 여인이여!  어린애 같은 웃음 짓는 입이여! [죽음]은 [삶]보다도  더 자주 미묘한 줄로 우리들을 붙잡는다.  아 제발 내마음 허망에 취해,  아름다운 꿈결처럼 당신의 고운 눈 속에 잠겨,  그 눈썹 그늘 아래 길이 잠자게 하여 다오!  ~~~~~~~~~~~~~~~~~~~~~~~~~~~~~~~~~~~~~~~~~~~~~~~~~~~~~~~~~~~~  불운  이토록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기에는,  시지프스여,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리라!  아무리 일에 골몰하여도,  [예술]은 길고 [시간]은 짧다.  이름난 묘지에서 멀리 떨어져,  호젓하고 외딴 무덤을 향해,  내 가슴은 사뭇 장송곡 친다,  은은히 울리는 북과도 같이.  숱한 보석은 잠잔다,  어둠과 잊음 속에 파묻혀,  곡괭이도 측심기(測深器)도 안 닿는 곳에.  숱한 꽃들은 한슬이 풍긴다,  비밀처럼 달콤한 향기,  저 그윽한 적막 속에서.  ~~~~~~~~~~~~~~~~~~~~~~~~~~~~~~~~~~~~~~~~~~~~~~~~~~~~~~~~~~~~~~~~  무덤  어둡고 답답한 밤에  어떤 착한 예수꾼이, 자비심에서,  어느 옛 폐허의 그늘 아래  뽐내던 그대 몸을 묻어 준다면,  하늘의 아련한 별들  졸리는 눈꺼풀 감고,  거미가 거기에 줄치고,  독사가 새끼칠 무렵,  일년내 그대는 들으리,  벌받은 그대의 머리 위에,  늑대의 구슬픈 울음소리,  굶주린 마녀의 울부짖음,  음란한 영감의 장난,  엉큼한 도독의 음모.  ~~~~~~~~~~~~~~~~~~~~~~~~~~~~~~~~~~~~~~~~~~~~~~~~~~~~~~~~~~~~~~~  유령  들짐승의 눈을 가진 천사들처럼,  그대 규방에 되돌아 와서  검은 밤의 어둠을 타고  살그머니 그대 곁에 들어가리라.  그리고 나는, 갈색의 여인이여,  그대에게 주리라, 달빛과 같은  싸늘한 입맞춤을, 구멍 둘레를  기어다니는 뱀의 애무를.  희번한 아침 동녘에 트면,  내 자리 빈 것을 그대는 보리,  저녁까지 그것은 싸늘하리라.  남들이 애정으로 그러하듯이,  그대 목숨과 그대 젊음에,  나는 동포로써 군림하리라.  ~~~~~~~~~~~~~~~~~~~~~~~~~~~~~~~~~~~~~~~~~~~~~~~~~~~~~~~~~~~~~~~  정담  당신은 맑은 장미빛 아름다운 가을의 하늘!  그러나 슬픔은 내 가슴에 바닷물처럼 물밀어 오고,  썰물이 나갈 때에는. 샐쭉한 내 입술에  씁쓸한 진흙의 쓰라린 추억을 남긴다.  허탈한 내 가슴을 그대의 손이 더듬어 본들 소용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 손이 찾는 건 벌써  여자의 사나운 이빨과 손톱으로 헐어 빠진 곳.  내 심장 찾지 마오, 이미 짐승들이 먹어 버렸다.  내 가슴은 군중들에 짓밟혀 쇠잔한 궁전,  사람들 거기서 주정을 하고, 서로 죽이고, 머리칼으 움켜 잡는다!  향기는 감돈다, 당신의 벌거벗은 앞가슴 언저리에!......  오 [아름다움]이여, 넋의 가혹한 채찍이여, 그대는 그러기를 바라겠지!  향연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그대 눈으로,  깡그리 태워 버려라, 짐승들 먹다 남긴 이 누더기!  ~~~~~~~~~~~~~~~~~~~~~~~~~~~~~~~~~~~~~~~~~~~~~~~~~~~~~~~~~~~~~~  전생  나는 오랜 동안 드넓은 회랑 아래 살아 왔도다.  바다의 태양은 수천의 불빛으로 그것을 물들이고,  곧고 장엄한 큰 기둥이 즐비하게 늘어서,  곧고 장엄한 큰 기둥이 즐비하게 늘어서,  저녁이면 그것은 흡사 현무암의 동굴이었다.  물결은 하늘의 그림자를 바다 위에 뛰놀게 하고,  그 풍부한 음악의 전능한 화음을  내 눈에 비치는 석양 빛 속에  엄숙하고 신비롭게 섞어 주었다.  거기야말로 내가 살아 온 곳, 고요한 일락(逸樂) 속에,  창공과 파도와 찬란한 햇빛 가운데,  향기 듬뿍이 배어든 발가벗은 노예들에 둘러싸여서.  그들은 종려 잎새 부채삼아 내 이마를 식혀 주고,  내 가슴 괴롭히는 번뇌의 비밀을  깊이깊이 파고드는 것만이 그들의 일이었다.  ~~~~~~~~~~~~~~~~~~~~~~~~~~~~~~~~~~~~~~~~~~~~~~~~~~~~~~~~~~~~~~~~  못난 중  옛날의 승원은 그 널따란 벽을  거룩한 [진리]의 그림으로 장식하였다.  귻을 보고 사람들의 신앙심은 북돋워지고,  엄숙한 찬 바람도 누그러졌다.  그리스도가 뿌린 씨앗 꽃피던 그 시절엔,  지금은 그이름도 모를 한둘 아닌 명승이,  장례의 마당을 아뜰리에 삼아,  순박하게 [죽음]을 찬미하였다.  ㅡ 내 넋도 하나의 무덤, 이 못난 중은,  허구한 세월, 거기서 헤매며 살고 있으나,  이 끔찍한 승원의 벽을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는다.  오, 게으른 중이여! 언제나 나는,  내 슬픈 비참으로 생생한 광경을 꾸미기 위해,  내 손에 일거리 주고 내 눈에 즐거움 줄 수 있을까?  ~~~~~~~~~~~~~~~~~~~~~~~~~~~~~~~~~~~~~~~~~~~~~~~~~~~~~~~~~~~~~  아름다움에의 찬가  그대 구천에서 왔는가, 나락에서 왔는가,  오, [아름다움]이여! 악마 같고도 신성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함께 퍼부으니,  그대는 가히 술에도 견줄 수 있도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서광을 간직하고,  소낙비 내리는 저녁 모양 향기를 풍긴다.  그대의 입맞춤은 미약, 그대의 입은 술단지,  영웅을 맥빠비게 하고 어린이를 씩씩하게 만든다.  그대 캄캄한 심연에서 솟아났는가, 별에서 내려 왔는가?  홀린 [운명]은 개처럼 그대 속치마를 따른다.  그대는 마구 기쁨과 슬픔은 흩뿌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이여, 그대는 주검을 비웃으며 그위를 걸어간다.  그대 보석 중에는 역시 [공포]가 매력 적지 않고,  살인은, 그대의 가장 값비싼 패물 속에서,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 아리따이 춤춘다.  눈 어린 하루살이 그대 촛불에 날아가,  바작바작 타면서도 말한다, [이 횃불에 영광 있으라!]  정부의 몸에 몸 기대고 몸 헐떡이는 사나이는  제 무덤 어루만지는 빈사자와도 같도다.  그대 하늘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무슨 상관,  오[아름다움]이여! 끔찍하고도 무서운 숫된 괴물이여!  그대의 눈과 미소, 그리고 발이 나에게  내 그리는 알지 못한 [무한]의 문을 열어만 준다면?  악마한테서 왔건 하느님한태서 왔건 무슨 상관? 천사든  사이렌이든 무슨 상관,ㅡ빌로오드의 눈을 가진 선녀여,  율동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단 하나의 여왕이여!  그대, 세계의 추악, 시간의 중압을 덜어만 준다면!  ~~~~~~~~~~~~~~~~~~~~~~~~~~~~~~~~~~~~~~~~~~~~~~~~~~~~~~~~~~~~~~~  우울  [장맛달]은 온 도시에 화를 내어  항아리째 주욱주욱 퍼붓는다,  이웃 묘지의 파리한 주민에겐 음산한 추위를,  안개낀 교외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내 고양인 마룻바닥에 깔고 잘 짚을 찾으며  옴오른 여윈 몸을 쉬지 않고 흔들고,  늙은 시인의 혼은 홈통 속을 헤매며  추위 타는 허깨비의 구슬픝 소리 지른다.  종소리는 울부짓고, 연기 나는 장작불은  파닥파닥 소리 질러 감기든 괘종에 반주하는데,  또 한편에선, 수종병 걸려 죽은 노파의 유산,  꼬리한 냄새 코를 찌르는 한 벌의 트럼프 속에,  멋쟁이 하트의 잭과 스페이드의 퀴인,  음침하게 지난 날의 사랑을 소곤거린다.  ~~~~~~~~~~~~~~~~~~~~~~~~~~~~~~~~~~~~~~~~~~~~~~~~~~~~~~~~~~~~~~~  우울2  나는 천년을 산 것보다도 더 많은 추억을 지니고 있다.  계산서에 시의 원고, 연애 편지에 소송 서류,  사랑의 노래, 게다가 또 영수증에 돌돌 말린  무거운 머리털 등이 가득찬 서랍 달린 육중한 장롱보다도  내 슬픈 두뇌는 훨씬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  공동 묘지보다도 더 많은 주검을 간직하는 곳.  - 나는 달마저 싫어하는 끔찍한 묘지,  기다란 구더기떼 회한처럼 우글거리고,  내 사랑하는 주검을 향해 언제나 끈덕지게 추격을 한다.  나는 시든 장미로 가득찬 낡은 도장방,  유행에 뒤떨어진 가지가지 물건들 흩어져 있고,  우수에 잠긴 파스텔 그림과 색 바랜 부셰의 그림만이  마개 빠진 [향수병]의 냄새를 맡고 있다.  절름절름 끌어 가는 세월보다도 지리한 것은 없다,  겹치고 겹친 눈 잦은 해의 무거운 눈송이 아래  음울한 무관심의 열매인 권태  불멸의 모습 띠고 퍼져 가기에.  - 이제부터 너는, 오! 물질이여,  어렴풋한 공포에 싸여, 안개 낀 사하라 사막  저 안쪽에 족고 있는 화강암에 지나지 않다.  무심한 세상 사람 아랑곳않고, 지도에서도 버림을 받고,  그 사나운 심사 오직 저무는 햇빛에만  노래 부르는 늙은 스핑크스에 지나지 않다.  ~~~~~~~~~~~~~~~~~~~~~~~~~~~~~~~~~~~~~~~~~~~~~~~~~~~~~~~~~~~~~~~~~  우울3  나는 마치 비오는 나라의 임금,  부유는 하지만 무기력하고, 젊기는 하지만 늙어빠져서,  사부(師傅)의 조아림도 거들떠 보지 않고,  개에도 싫증나고 다른 짐승에도 싫증이 났다.  아무것도 그의 마음 즐겨 주지 못한다,  사냥감도, 매도, 노대 앞에 죽어 가는 백성마저도.  고임받은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런 노랫가락도  이 야멸찬 환자의 이맛살 펴지 못한다.  백합꽃 무늬 아로새겨진 그의 침대는 무덤으로 바뀌고,  군주라면 아무나 홀딱 반하는 화장계의 궁녀들  제 아무리 음란한 화장법을 찾아 보아도  이 젊은 해골에서 미소 하나 끌어 내지 못한다.  그에게 금덩이 만들어 주는 학자마저도  그 몸에서 썩은 독소를 뽑지 봇했고,  로마에서 전해 와, 권력자들이  만년에 그리웧는 저 피의 목욕으로도  이 마비된 송장은 데울 길 없었다.  거기엔 피 대신 푸른 [망각의 강] 물이 흐르고 있으니.  ~~~~~~~~~~~~~~~~~~~~~~~~~~~~~~~~~~~~~~~~~~~~~~~~~~~~~~~~~~~~~  우울4  나직한 하늘은 뚜껑처럼 무겁게 쳐져  허구한 권태에 신음하는 마음을 짓누르고,  둥그런 지평(地平) 한 아름에 껴안고  밤보다 음침한 검은 햇빛을 퍼붓는다.  땅 위는 축축한 토굴로 바뀌고,  우리의 [희망]은 박쥐와 같이,  겁 많은 날개로 담벽을 치고  썩은 천장에 대가리 부딪치며 날아서 간다.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빗발은  널따란 감옥 창살을 방불케 하고,  한 떼의 꾀죄죄한 말없는 거미들  우리 골 속에 와서 그물을 친다.  그때에 불현듯 종소리 요란스럽게 일어  하늘 향해 아우성친다,  줄기차고 꾸준하게 푸념을 하는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과 같이.  - 그리고 북도 음악도 없는 기다란 영구차들은  내 넋 속에 천천히 줄지어 가고,  [희망]은 패하여 울고, 포학스런[고뇌]는  숙여진 내 머리에 검은 기를 꽂는다.  ~~~~~~~~~~~~~~~~~~~~~~~~~~~~~~~~~~~~~~~~~~~~~~~~~~~~~~~~~~~~~~~~  허무의 맛  예전엔 싸움을 좋아하던 답답한 정신이여,  [희망]은 네 정열을 박차로 부채질하였으나,  이젠 너를 걸터타려 하지 않는다! 스스럼 없이 드러누워라,  장애마다 비트적거리는 이 늙다리 말이여.  체념하여라 내 마음아, 짐승의 잠을 자거라.  지쳐빠진 패잔의 정신이여! 늙은 겁탈자 너에겐  사랑도 이제 아무 맛없고, 다툴 기운도 없다.  그럼 잘가라, 나팔의 노래도 피리의 한숨도!  쾌락이여, 이 토라진 침울한 마음 이젠 꾀지 말아라!  화려한 봄도 이미 향기를 잃었도다!  그리고 [시간]은 시시각각 나를 삼키어 간다,  그치쟎고 내리는 눈이 굳어진 몸을 묻어가듯이.  나는 하늘 높이서 둥근 땅덩이 내려다 보나  내 몸 가리울 한 채의 오막살이도 찾지 않는다.  눈사태여, 나도 또한 너와 함께 휩쓸어 가지 않으려나?  ~~~~~~~~~~~~~~~~~~~~~~~~~~~~~~~~~~~~~~~~~~~~~~~~~~~~~~~~~~~~~~  파이프  나는 작가의 파이프예요.  아비시니아 또는 카프라리아 여자와 같은  새카만 내 얼굴 들여다보면,  우리 주인 골초인 줄 당장 알지요.  주인 양반 고민이 막심하며는,  나는 뻐끔뻐끔 연기 쁨지요,  일하고 돌아오는 농부를 위해  저녁밥 준비하는 초가집처럼.  불타는 내 입에서 솟아오르는  한들거리는 푸른빛 그물 속에서  그이 넋을 껴안고 재워 주지요.  그리곤 세찬 향기 감돌게 하여  주인 마음 황홀케 하고  고달픈 머리 풀어 주지요.  ~~~~~~~~~~~~~~~~~~~~~~~~~~~~~~~~~~~~~~~~~~~~~~~~~~~~~~~~~~~  이밤에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리, 가엾고 외로운 넋이여.  내 전에 시든 가슴, 무엇을 말하리.  그 성스런 시선이 어느날 그대를 다시 환하게 한  너무나 아름답고, 지극히 어질고,  가장 사랑스런 그녀에게!  ---그녀를 칭송함에 우리는 자랑으로 삼으리.  그녀의 유연함만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그녀의 정신에 싸인 육체는 천사의 향기를 지니고  그녀의 눈길은 우리를 광명으로 감싸주네.  어둠 속에서나 외로움 속에서나  거리에서나 군중 가운데서나  그녀의 환상은 햇불처럼 빈 하늘에서 너울거리네.  그 환상이 가끔씩 부탁하기를  "나는 아름다워 명하노니, 오직 나를 위해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라.  나는 수호 천사요, 뮤즈이자 마돈나이나니!"  ~~~~~~~~~~~~~~~~~~~~~~~~~~~~~~~~~~~~~~~~~~~~~~~~~~~~~~~~~~~  시계  시계! 공포와 비정의 불길한 귀신,  그 손가락은 우리를 으르며 말한다, [잊지말라!  떨리는 [고뇌]의 화살은 두려움에 가득찬  네 가슴에 머지않아 과녁처럼 꽂히고,  [즐거움]은 아른아른 지평선 저너머로 스러지리라,  마치 공기의 요정이 무대 안쪽으로 사라지듯이.  누구에게나 철철이 주어진 환락, 순간은 순간마다  네게서도 그것을 한 도막씩 집어 삼킨다.  한 시간에도 삼천 육백 번, [초(秒)]는 속삭인다,  잊지말라! 벌레 같은 목소리로  재빨리 [현재]는 말한다, 나는 [과거]다,  더러운 내 대롱으로 네 목숨을 빨아 올렸다!  리멤버! 수비앵.뚜아! 낭비자여! 에스또 메모르!  (내 금속성 목청은 온갖 나라말을 다 한다.)  시시덕거리는 인생이여, 촌음(寸陰)은 모암(母岩),  금을 추려 내기 전에는 버리지 말라!  잊지말라!, [시간]은 욕심 많은 노름꾼,  속임수 안 쓰고도 번번이 이긴다는 걸! 그것은 철칙이로다.  낮은 줄어들고 밤은 늘어난다, 잊지말라!  심연은 항상 목이 마르고, 물시계엔 눌이 떨어진다.  미구에 시간이 울리리니, 그 때가 되면 거룩한 [우연]도,  아직 처녀인 네 아내, 존엄한 [절개]도,  그리고 [회한]마저도(오! 마지막 주막집이여!)  모든 것이 너에게 말하리, 뒈져라,비겁한 늙다리여!  때는 벌써 늦었다! 라고.]  ~~~~~~~~~~~~~~~~~~~~~~~~~~~~~~~~~~~~~~~~~~~~~~~~~~~~~~~~~~~~~  저녁의 해조  이제 한창 줄기 위에 하늘거리며  꽃마다 향로처럼 방향 풍기고,  소리와 향기 저녁 하늘을 돌고 돌아,  우울한 원무, 답답한 어지러움!  꽃마다 향로처럼 방향 풍기고,  비올롱은 흐느끼는 서러운 마음인가,  우울한 원무 답답한 어지러움!  하늘은 슬프고 아름다와, 대제단처럼.  비올롱은 흐느끼는 서러운 마음인가,  애틋하게 그리는 이 마음, 막막한 허무의 밤을 싫어하기에!  하늘은 슬프고 아름다와, 대제단처럼,  해는 스스로 엉기는 피 속에 잠기어 들고.  애틋하게 그리는 이 마음, 막막한 허무의 밤을 싫어하기에,  찬란한 과거의 유물 샅샅이 긁어 모은다!  해는 스스로 엉기는 피 속에 잠기어 들고......  그대 추억은 내 가슴에 성체합처럼 번득인다!  ~~~~~~~~~~~~~~~~~~~~~~~~~~~~~~~~~~~~~~~~~~~~~~~~~~~~~~~~~~~~~~  가을의 노래  1  머쟎아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니,  잘 가라, 너무나도 짧았던 우리 여름철의 눈부신 햇빛이여!  나는 벌써 듣노라, 처량한 소리 울리며  안마당 돌바닥에 떨어지는 나무 소리를.  노염과 미움,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강요된 고역,  이 모든 겨울이 이제 내 존재 속에 되돌아 오면,  내 심장은, 극지의 지옥 비추는 태양처럼,  한낱 얼어붙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리라.  나는 듣는다, 몸을 떨며, 장작개비 떨어지는 소리를.  교수대 세우는 소리인들 이토록 은은하지는 않으리라.  내 저이신은 지킬 줄 모르는 육중한 파성 망치에  허물어지는 탐과도 같도다.  이 단조로운 우릴 소리에 나는 뒤흔들리며  어디선가 급히 관에 못질하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누구를 위함일까? ㅡ 아, 어제는 여름, 이제 가을이 왔구나!  저 신비로운 소리는 출발처럼 울린다.  2  나는 사랑하노라, 갸름한 당신 눈에 비치는 파르스름한 빛을,  정다운 미인이여, 하지만 오늘 내게는 모든 것이 슬프고,아무것도, 당신 사랑도,  규방도, 난로도,  바다 위에 반짝이는 내양만 못한다.  그렇지만 사랑해 다오, 다정한 사람이여! 어머니가 되어다오,  은혜 저버린 사람에게도, 심술궂은 사람에게도.  애인이여 또는 누이여, 빛나는 가을 날의 또는 저무는 해의 잠시의 다사로움 되어 다오.  덧없는 인생이여! 무덤은 기다린다, 허기진 무덤은!  아! 당신 무릎 위에 내 이마 올려 놓고,  따가운 흰 여름을 그리워하며,  만추의 따스한 노란 햇빛을 맛보게 하여 다오!  ~~~~~~~~~~~~~~~~~~~~~~~~~~~~~~~~~~~~~~~~~~~~~~~~~~~~~~~~~~~~~~  가을 소네트  그대의 수정처럼 맑은 눈은 나에게 말한다,  [얄궂은 애인이여, 그대는 대관절 무얼 보고 나를 좋아 하는가?]  ㅡ 잠자코 그저 귀엽기만 하여라! 태고적 짐승들의  순박함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성가신 내 마음은  그 끔찍한 비밀을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가 않다,  그리고 불꽃으로씌어진 그 서글픈 전설도,  그 고운 손 나를 흔들어 오래 오래 잠들게 하는 요람이여.  나는 정열을 미워한다, 그리고 정신은 나를 아프게 한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사랑하자. [사랑의 신]은  제 은신처에 몰래 숨어서 운명의 활을 당긴다.  나는 그의 무기를 안다, 그 낡은 병기고에 있는 것은,  죄악과 공포, 그리고 미친 지랄! ㅡ 오, 파리한 마르그리뜨 꽃이여!  나처럼 그대도 또한 가을의 해가 아닌가,  오, 나의 새하얀, 나의 쌀쌀한 마르그리뜨여!  ~~~~~~~~~~~~~~~~~~~~~~~~~~~~~~~~~~~~~~~~~~~~~~~~~~~~~~~~~~~~~~~  즐거운 주검  달팽이 들끓는 기름진 땅에  스스로 깊은 구멍을 파고,  내 낡은 뼈 한가로이 거기에 눕혀  망각 속에 잠들자, 물결 속에 상어와 같이.  나는 유언도 싫고 무덤도 싫다.  죽어서 남들의 눈물 빌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서 까마귀 불러  내 더러운 해골 빈틈 없이 쪼아 먹이자.  오 구더기! 귀도 없고 눈도 없는 검은 친구들이여,  보라, 자유롭고 즐거운 주검 너희들 찾아 왔다.  너희들 방탕한 철학자, 부패의 아들들이여,  자 거리낌 없이 내 송장 파들어 가고,  주검들 틈에 죽어 있는 넋없는 이 늙은 몸에  말하라, 아직도 무슨 고통 남아 있는가를  ~~~~~~~~~~~~~~~~~~~~~~~~~~~~~~~~~~~~~~~~~~~~~~~~~~~~~~~~~~~~  증오의 통  [증오]는 파리한 다나이드의 물통  미쳐 날뛰는 [복수]가 붉고 억센 그팔로  죽은 사람의 피눈물을 큰 통에 길어  캄캄한 빈 통 속에 아무리 부어 넣은들 소용이 없다.  [악마]는 그 깊은 통 밑바닥에 남몰래 구멍을 뚫어,
11    한국현대시 100선 [모셔온 향기] 댓글:  조회:5754  추천:0  2016-03-19
한국현대시 100선     ‘해’ 하면 떠오르는 시, 그것도 ‘새해’ 하면 떠오르는 시, 현대시에서 드물게 희망으로 충만한 시,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읽게 되는 시가 바로 박두진의 ‘해’이다. 1946년에 발표된 이 ‘해’가, 해방을 염원하던 해든 해방의 기쁨을 담은 해든, 솟지 않는 해를 향한 촉구든 솟고 있는 해를 향한 경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 해가 여전히, 지금-여기에서, 이글이글 솟구치고 훨훨훨 분방하고 워어이 워어이 불러모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막 솟는 해처럼, 말의 되풀이는 힘차고 뜻의 개진은 꿋꿋하다. 언어가 어떻게 되풀이되고, 그 되풀이가 어떻게 노래가 되고 주술에 가까워지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씻고’ ‘살라먹는’, 그 세례와 정화에 의해 날마다 생생(生生)하게 새로 뜨는 해. 그 해 아래 시를 살(生)고, 사는(生) 시를 꿈꿔 보는 새벽이다. 삶 속에서 이글이글 솟아나는 예의 그 생생지락(生生之樂)과, 시 속에서 훨훨훨 깃을 치는 시시지락(詩詩之樂)을 꿈꿔 보는 아침이다. 미움과 갈등의 시간을 버리고 강자와 약자가 워어이 워어이 더불어 상생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보는 새해다. 우리는 이제 달밤에 벌어진 상처,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일어난 죄악을 (불)살라 태우고 ‘앳된 얼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새해야 부디 ‘늬’도 그렇게 솟아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든 희망아, ‘늬’도 꼭 그렇게 고운 해처럼 오라. 삼백예순 날의 삶아, ‘앳되고 고운 날’들아, ‘늬’들도 꼭 그렇게만 좋아라. 백년의 백년 내내 낙희낙희(樂喜樂喜)하고 럭키럭키(lucky lucky)하게! [현대시 100편-2편]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 일러스트=권신아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애송시 100편 - 제3편]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일러스트=잠산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한 남자가 돌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돌의 연인이고 돌의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 돌 속에는 불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소금이 있고, 무심(無心)이 있고, 산 같은 숙명이 있었을 터. 팔다리가 하나로 엉킨 그 돌의 형상을 ‘사랑의 끔찍한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한 여자는 울면서 돌에서 떠났을까? 어쩌자고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주었을까?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한 남자를 남긴 채. 돌 속에 홀로 남은 그 남자는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면서 부풀어간다. 물의 깊이로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의 부재를 채우며. 그러니 그 돌은 불타는 상상을 불러일으킬밖에. 그러니 그 돌은 매혹일 수밖에.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80년대 시단에 파란을 일으킨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는,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와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를 통해 시대적 상처를 새롭게 조명했다. ‘남해 금산’은 그러한 실험적 언어가 보다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변화하는 기점에 놓인 시다.      [애송시 100편 - 제4편]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애송시 100편 - 제5편]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일러스트=권신아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애송시 100편 - 제6편] 서정주 '冬天(동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지난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일러스트=잠산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 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젖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밭에 놓아 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애송시 100편 - 제7편]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일러스트=권신아  조그만 간이역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막차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부려둔 보따리나 꾸러미에 기대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웅크린 채 쿨럭이기도 한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사내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시대적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되는 곽재구 시인의 데뷔작 '사평역에서'(1981)를 읽을 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아름다우면서 서럽고, 힘들지만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지난 시절의 희망과 절망이 눈보라로 흩날리고 있다, 모래처럼 톱밥처럼. 그 울컥함이 소설(임철우 '사평역에서'), 드라마(TV문학관 '사평역', '길 위의 날들'), 노래(김현성 '사평역에서')로 장르를 달리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했으리라.   이십대에 쓴 시답게 감각과 묘사가 풋풋하다. 깜깜한 유리창에 쌓였다 녹는 눈송이들은 흰 보라 수수꽃(라일락꽃)빛이다. 사람들이 그믐처럼 졸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확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난로 속 불빛은 톱밥을 던져 넣는 청색의 손바닥과 대조를 이룬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기침 소리는 '눈꽃의 화음'을 강조하고, 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회억(回憶)처럼 떠올랐다 가라앉곤 한다.   한줌의 톱밥을 던지는 '나'는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걸까? 기다리는 막차는 올까? 모든 역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한 지나감이고 경계이다. 하여 모든 역들이 고향을 꿈꾸는 것이리라. 사평은 나주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그 사평에 사평역이 없다니, 그토록 울컥하게 했던 사평역이 어디에도 없다니, 그래서 더욱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애송시 100편 - 제8편] 묵화 (墨畵) - 김 종 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일러스터=잠산 김종삼(1921~1984) 시인의 시는 짧다. 짧고 군살이 없다. 그의 시는 여백을 충분히 사용해 언어가 잔상을 갖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다. 언어를 우겨넣거나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 흔적이 없다. 사물과 세계를 대면하되 사물과 세계의 목소리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물안개가 막 걷히는 새벽 못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작은 여울에 누군가가 정성스레 놓아 둔 몇 개의 징검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묵화(墨畵)'의 목소리도 자분자분하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막 돌아와 쌀 씻은 쌀뜨물을 먹고 있는 소를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소의 목덜미에 가 있다. 하루 종일 써레나 쟁기를 끌었을, 멍에가 얹혀 있었을 그 목덜미를 보여준다. 목덜미에는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다. 그리곤 소의 목덜미와 할머니의 손을 교차시킨다. 할머니도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소와 함께 날이 저무는 저녁을 맞고 있다. 할머니는 겹주름처럼 고랑이 나 있는 밭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돌을 캐내고 종일 호미질을 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소와 할머니의 부은 발잔등으로 옮아간다. 부은 발잔등을 보여줄 뿐이지만, 우리는 소와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눈여겨본 대목은 소와 할머니의 관계일 것이다. 소는 할머니를, 할머니는 소를 마주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쓰러운 대화와 유대가 오가고 있다. 낮의 소란과 밤의 정적이 합수(合水)하는 성스러운 시간에 마치 삶이란 본래 비곤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는 듯 소와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의 '서로 돌봄'은 훈훈하면서도 슬프다. (우리는 얼마나 이 '쓸쓸한 돌봄'을 자주 잊고 사는가)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얼굴 가득 흐뭇하게 피어나던 웃음이 천천히 묽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본래 삶이란 웃음과 슬픔으로 꿰맨 두 겹의 옷감이라는 듯.   김종삼 시인은 등산모를 곧잘 썼고 파이프 담배를 자주 물었고 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에게 삶은 '방대한 / 공해 속을 걷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며 인간의 원죄를, 불구의 영혼을 아프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의 시는 말이 적었지만 정직했다. 언어의 낭비가 많고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껴 쓴, 먹그림같이 실박하게 살다 간 김종삼 시인이 그립다.     [애송시 100편- 제9편]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일러스트=권신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애송시100편-제10편]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 최 승 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일러스트=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 박 용 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일러스트=잠산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저녁눈'을 읽으면 허름한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에 앉아 '탁배기'를 한 잔 하고 있는 박용래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말집에는 마차꾼과 지게꾼이 흥성흥성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나귀와 노새가 급한 숨을 내쉬느라 투루루 투레질을 하고, 누군가는 구유에 내놓을 여물을 써느라 작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호롱불 불빛을 받으며 떠도는 눈발을, 조랑말의 정처 없는 걸음처럼 난분분한 눈발을, 여물 써는 소리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붐비다'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動線)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퀭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물러나 앉아 늦은 저녁 눈발 내리는 그 풍경을 하나의 '공터'로 읽었을 것이다. 마차꾼과 지게꾼의 떠도는 삶과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네들의 노심초사와 나귀와 노새의 공복(空腹)을 읽었을 것이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대전시 오류동 17번지의 15호를 찾아가면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애송시 100편- 제13편] 빈집 -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 정 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일러스트=잠산 이 겨울에 사랑이 찾아온 연인들에게 이 시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선 어렵지가 않다. 쉽고, 리듬이 있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출렁한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눈이 쌓여 무게가 생기듯이 어느 순간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께를 누르며 묵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에도 '뜻밖의 폭설'은 내린다. 폭설이 내려 우리는 압도되어 이 시 안에 고립된다.   큰 고개를 넘으면서 느닷없는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좀 도발적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못 잊을 사람하고' 폭설에 갇히고 싶다고 말한다. 폭설에 갇히는 것이 고립의 공포로 엄습해오더라도. 사실 사랑만이 실용적인 것을 모른다. 사랑은 당장의 불편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고립의 추억을 갖고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가 있거든 꺼내서 다시 읽어보라. 연애편지는 고립의 기억, 고립의 문장 아닌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그러니 사랑에게 고립은 고립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한 기꺼이 고립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후일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더라도. 그것이 모든 길을 끊어 놓더라도. 사랑은 은밀하고, 은밀해서 환하다.   문정희(61) 시인은 여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었다. 백일장 당선시들을 모아서 여고 3학년 때 첫 시집을 냈다. 타고난 재기를 미쁘게 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서문을 썼고, '꽃숨'이라는 시집 제목도 달아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와 몸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발언해왔다. 그러면서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랑의 가치를 활달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왔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라는 그녀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어보라. 사랑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일러스트=권신아 시냇물 같은 목소리로 낭송했던 가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옮겨 적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류' 시인이 되었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 보이라 불렸던 박인환(1926~1956) 시인은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와 럭키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고 5개월 후 세상을 떴다.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었다. 이 시도 어쩐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로 쓴 듯하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로 요약되는 서사다.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요절했던 박인환의 생애와, 시냇물처럼 흘러가버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이미 죽은 그를 향해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애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인 것을,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일러스트=잠산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이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게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사귀고 웃고 슬프고 울고 아득히 사라질 때에도 물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왔으며 우리보다 먼저 사라졌으며 우리보다 먼저 다시 태어났으니, 유한한 우리에게 물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물은 불과 흙과 공기와 더불어 이 세계가 온존하는 한 온존할 것이다. 해서 물은 모든 탄생과 소멸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소생하고 순환하는 생명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선한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이 어떤 부정과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   강은교(62) 시인이 '사랑法'이라는 시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고 노래했듯이.   강은교 시인은 1968년에 등단해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초기에 발표한 시들이 강한 허무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를 '허무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해엔가 그녀가 시의 낭송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시 치료' 공연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데기의 현신이다.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일러스트=권신아정호승(58)시인만큼 노래가 된 시편들을 많이 가진 시인도 드물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비롯해 28편 이상이다. 그의 시편들이 민중 혹은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는 따뜻한 서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슬픔'으로 세상을 '포옹'하는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좋은 서정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정화시키고 깊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그는 별의 시인이다. 그것도 새벽 별의 시인이다. 별이란 단어를 그보다 더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에는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새들이 날기도 한다. 그의 별은 강물 위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또한 별에 죽음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별들도 어둠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벽 별을 맞이할 수 없다.   이 시는 '하늘에는 눈이 있다'라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눈은 '보리밭길'을 덮는 눈(雪)이기도 하고 '진리의 때'를 지키는 눈(眼)이기도 할 것이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겠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기도 길겠다. '가난의 하늘'이니 더욱 그러하겠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겠다. 그런데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우리 생의 팔할은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별이 아닐까.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한('슬픔을 위하여')' 법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리라. 그 별들의 반짝임과 온기야말로 우리를 신(神)에 혹은 시(詩)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리라.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일러스트 = 잠산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은 식민지 시대를 살다 간 혁명가요, 시인이요, 수행자였다. '님의 침묵'은 1926년에 펴낸 그의 유일한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시이자 서시이다. 이 시는 님과의 이별과 이별의 슬픔을 재회(再會)로 역동적으로 바꿔놓는다. 이런 극적 구성은 불교 특유의 유심적 상상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돌이키는 것으로써 만해는 있음과 없음, 좋음과 그렇지 못한 것,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만남과 이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아마도 만해의 시를 올연히 뛰어나게 하는 힘은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려는 마음의 편당(偏黨)과 굴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그의 수행자적 기풍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역설의 화법이 생겨났을 것이다.   만해는 시집의 맨 앞에 놓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라고 썼다. 만해는 님을 절대적인 추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고, 님과 나의 관계를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해석했다. 만해는 내 안에서 님을 발견하고 완성하고자 한 실천가였다.   조선의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살겠느냐며 만해는 냉골의 거처에서 꼿꼿하게 앉아 지냈다. 해서 '저울추'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돌집(조선총독부)이 마주 보이는 쪽으로 당신의 집을 지을 수 없다며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만해는 깨달음을 얻은 후 오도송에서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의 수심에 잠겼던가. 한마디 소리쳐 우주를 설파하니 눈 속의 복숭아꽃 붉게 붉게 나부낀다"라고 읊었다. '눈 속에 핀 복숭아 꽃송이'가 바로 만해의 시요, 만해의 정신이었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새벽 교회당 구석에서, 간절히 내뻗은 자신의 두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군 채였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가파른 등에서 겨울 바다 냄새가 났다. 지난밤 내내 뚝 끊긴 생의 절벽 앞에 서 있다 온 사람의 등이었다. 인간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과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새를 품고 산다, 미지라는 한 마리 새를.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 혹은 희망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그 새를 잊지 않고 간직한 사람은 미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미래의 새를 잃어버린 사람은 '겨울 바다' 앞에 서기도 한다. 그곳은 절망의 끝 혹은 허무의 끝일 것이다.   보고 싶던 미지의 새들은 죽어 있고 매운 바닷바람에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린, 허무라는 마음의 불(心火)로 불붙은 겨울 바다. 그 죽음의 공간에서 시인은 시간의 힘을 깨닫는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를 맑게 깨우치고 우리를 키우는 건 세상을 항해 '끄덕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기도는 시간을 견뎌내는 데서 비롯된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해달라는 심혼(心魂)의 기도는, 저 차디찬 바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인고의 물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으리라. '허무의 불'을 '인고의 물'로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힘이고 기도의 힘이다.   김남조(80) 시인은 기도하는 시인이다. 팔순을 맞이하여 어언 60여 년의 시력(詩歷)으로 간구해온 그의 시편들은 사랑과 생명과 구원으로 충만한 기도들이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설일(雪日)')를 낭독하는, 떨리는 듯한 그러나 결기 있는. 시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애송시 100편-제20편] 삽 -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 일러스트=잠산 시인은 언어의 맨살을 만진다. 말과의 상면과 말의 '한 줄금 소나기'를 만나는 순간의 경이를 시인은 표현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에 대한 경이가 사라지는 일은 슬픈 일이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혀를 대보고 생각을 만드는 이 날것의 감각에서 소위 맛이 사라지면 살맛이 가실 것이니 이 세상은 얼마나 캄캄한 절망이겠는가. 이 세상을 다시 맞는 아침에는 당신도 "아, 세상이 맛있다!"라고 말해 보라. 애초에 생(生)에는 무력감이 없으므로.   시 '삽'에는 경이가 있다. 나도 '삽'을 발음해 본다. 입술이 모시조개처럼 예쁘게 모인다. 손으로 목화를 따들이는 느낌이 있다. 시인은 이 발성의 쾌감에 희열한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들어간다.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에 작달막한 삽 한 자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 제대로 한 번 써볼 생각으로 연일 '마른 볏짚으로' 문질러 놓아 녹슬지도 않았다. (나도 나의 아버지가 들일을 마친 해질 무렵에 마른 볏짚으로 삽날을 문지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저녁 풍경의 숙연함이여!)   시인은 무슨 일에 이 삽을 사용하려 하는 것일까. 당신의 사랑을 얻을 때에 한 번 뜨고, 종국에 닥칠 나의 죽음을 내 스스로 거두어들일 때 한 번 뜨겠다고 한다. 생의 한 경이를 포착한 이 시가 참 좋은 이유는 시 전반부의 발성의 쾌감이 후반부의 비장함으로 진행되는 데에 있다. 비장하지만 마구 심각하지는 않다.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경이다. 경이가 없다면 기다림도 없을 것이므로. (연애에 경이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애인들이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당장 모두 떠나가 버리는 것처럼)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고 있는 정진규(69) 시인은 산문시의 성공적인 전형을 제시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산문시는 영혼을 한순간에 탁, 부려 놓는다. 그리하여 산문시 아닌 시들보다 오히려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시 쓰는 일을 비유하길 세상을 배알하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올해로 칠순을 맞았다. 그의 시는 종심(從心)이되 어긋남이 없으니 무량무변하다.     [애송시 100편-제21편]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일러스트=잠산 이문재(49) 시인의 시들은 치열하고 내부가 끓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사(結社)를 한다. 주로 도시와 문명의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제압한다. 시 '푸른 곰팡이'가 실려 있는 두 번째 시집 '산책시편'(1993)은 시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도시적 공간의 무서운(파시스트적인) 속도에 대항해 '게으르고 어슬렁거리고 해찰하는' 8편의 산책시(散策詩) 연작을 발표한다. 그는 '아파트단지가/ 웨하스처럼, 아니 컴퓨터칩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곳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는 '도시는 단 한 사람의 산책자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느림보는/ 가장 큰 죄인으로 몰립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혼자 있으려 하다간/ 도시에서 당하고 말지요/ 이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입니다'('마지막 느림보-산책시 3')라고 썼다.   시 '푸른 곰팡이'에서도 느림을 예찬한다. 사랑도 산책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산책 같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랑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면서 사랑은 무르익고 완성된다는 뜻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라. 아무리 격렬한 사랑에 휩싸인 사람일지라도 백지를 앞에 두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이 편지의 미덕. 지우고, 생각을 구겨버리고, 파지(破紙)를 내는 시간에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나흘을 또 기다려 보라. 나의 편지가 사랑하는 이의 안뜰과 마루와 품에 전달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마른 목으로 가슴 설레며 살아보라. 푸른 강이 흘러가는 그 기다림의 거리를 살아보라. 그러는 동안 사랑은 푸른 강의 수심처럼 깊어질 것이다.   요즘 이문재 시인은 따뜻한 체온의 '손'을 주목하고 있다. 나와 당신 사이에 '내미는 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년에 발표한 시 '손은 손을 찾는다'에서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의 시는 도시와 문명에 단호하게 맞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괸, 그리워하고 연민하는 사랑의 마음이 산다.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일러스트=권신아 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1912~1995)이 있다. 198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 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 메여 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곤 한다.   '나'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 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시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 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라는 시를 헌정했다. 20년 후 가즈오는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파')라는 시를 그에게 헌정했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일러스트 잠산    하마터면 이 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질 뻔했다. 송수권(68) 시인이 서대문 화성여관 숙소에서 이 작품을 백지에 써서 응모를 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원고지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의 원고"라며 휴지통에 버렸다. 당시 편집 주간이었던 이어령씨가 휴지통에 있던 것을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 지면에 시인의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로 '휴지통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고, 발표 이후에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를 애타게 호명하고 있지만, 이 시는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비어 있는 맞은편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그 시방(十方)의 비통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죽은 동생의 환생에 대한 강한 희원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역동적인 문장은 적극적인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이고, 이승과 명부(冥府)가 갈라지는 경계인 바, 산문에 기대어 생사의 유전(流轉)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사의 감옥에 갇혀 살아도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살아 이처럼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낳았다.   송수권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어오면서 황토와 대(竹)와 뻘의 정신에 천착해 왔다. 그는 '곡즉전(曲卽全·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할 수 있다)'을 으뜸으로 받든다.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추억이 있고, 들숨이 있지요. 시간이 있고, 희망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시는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애지고 막막'하게 하지만 남도 특유의 가락과 토속어의 사용으로 슬픔과 한을 훌쩍 넘어서는 진경을 보여준다.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 일러스트=잠산   여름 여치가 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가을 정미소를 지난다. 차가운 (겨울) 구름이 떠있다. 그렇게 자전거는 골목 모퉁이를 돈다. (아가였던) 할머니가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있다. '잘 익은 사과'는 이런 일상적인 풍경을 다채로운 감각의 성찬으로 펼쳐놓고 있다.   백 마리의 여치 울음 소리는 자전거의 바퀴 도는 소리, 정미소에서 나락 빻는 소리와 겹쳐진다. 처녀 엄마가 낳은 입양 가는 아가의 뺨은 구름의 차가움으로 전이되고, 그 구름은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로 확장된다. 고향 마을은 금세 큰 사과로 축소되고, 마을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는 사과를 깎는 칼날 소리를 낸다. 차르르차르르(사각사각)!   자전거 바퀴가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그때마다 고향 마을만큼이나 큰 사과가 깎인다는 발상과 그 큰 사과를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파내 잇몸으로 오물오물 잡수신다는 발상은 사뭇 상징적이면서 동화적이다.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파먹는 사과는 시간의 신(神)이 돌리는 물레의 실타래에 비견할 만하다. 기발하면서도 유쾌하다. 아가, 처녀 엄마, 할머니로 숨가쁘게 이동하는 시간을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으로 정지시켜 놓는 것도 흥미롭다.   차르르차르르 돌던 한 세월이 발갛게 잘 익었겠다. 누군가 고향 마을에서 그 한 세월을 잘 놀다 갔겠다. 껍질이 홀라당 깎인 노르스름한 사과 속살 같았겠다. 군침 가득 돌았겠다. 그렇다면, 이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는 '밤낮을 만드시고 이 지구를 세세년년토록 운항하시는' '숫자 나라의 시간 윤전기 노동자인 우리들 앞에서/ 감독을 게을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신', '세상의 모든 달력 공장 공장장님'을 낳은 바로 그 처녀 엄마 아니었을까.   김혜순(52) 시인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그는 겹침의 시학을 즐겨 구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가 하면 수축시키고, 감각과 시점을 겹쳐놓는가 하면 뚝 떨어뜨려 놓는다. 여성의 환상적 내면을 몸의 감각과 경험으로 그려냄으로써 일견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떠올리게 한다. 그를 최근 유행하는 '환상시'의 대모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애송시 100편-제26편] 산정 묘지 -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중략)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 일러스트=잠산 시집 '산정묘지'를 펼쳐 자서(自序)를 대신하고 있는 시 '독락당'을 읽는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아주 짧지만 고절이 있다. 찬 서릿발 속에 핀 국화 같고, 차돌처럼 향기를 돌돌 말았다 피는 매화 같다. 시집에 수록된 서른 편의 산정묘지 연작시들을 꿰는 시가 바로 '독락당'이라는 시이다.   산정묘지 연작시들은 협소한 한국시의 정신적인 영역을 광대하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불어로 번역된 산정묘지 시편들의 성과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시인이 동양적인 정신주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 시편들을 쓰게 된 것은 한학자이면서 불교학자였던 김달진 시인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시인은 세속적인 욕망을 덜어내고 영혼의 품위와 위엄을 지향하는 '고사(高士)의 시'를 선보인다.   '산정묘지 1'은 설산의 꼭대기에 정신의 처소를 마련해 두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눈이 다 녹아버린" 질척질척하고 비루한 세계가 아니라 얼음이 꽝꽝 언 침묵의 세계에 살겠다는 결의를 드러낸다. '정신적인 공해'의 공간을 떠나 무서운 고요가 사는 산정에 오르겠다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정신적인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속뜻을 내보인다.   조정권(59) 시인은 언어감각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고건축과 고전음악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평소에 그를 만나면 그는 "자기를 잘 견뎌내는 일 하나만 잘해도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시끄럽고 험악한 곳을 버리고 고독하게 물러나 앉아 스스로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인 몸을 끌고 저 산정에 오르는 성스러운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애송시 100편-제27편]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러스트=권신아 시집 한 권으로 '현대시 100년'에 길이 남은 시인들이 많다. 김소월과 한용운과 김영랑이 그렇다. 특히 유고시집 한 권으로 길이 남은 시인들도 있으니, 이상과 윤동주와 기형도 그리고 여기 이육사(1904~1944) 시인이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이 따라 다닌다. 지사(志士), 독립투사, 혁명가,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 의열단 단원 등.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수감되었을 때 수인번호가 264(혹은 64), 이를 '대륙의 역사'라는 뜻의 한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항일운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지 17회 정도 감옥을 들락거리며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 만주·북경 등지를 부단히 왕래했다는 것, 북경 감옥에서 40세의 나이로 옥사했다는 것 정도.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인지 안 들렸다는 것인지, 초인이 있을 거라는 것인지 초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지, 이 광야에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초인인지 나인지, 초인을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왜 천고(千古)의 뒤에야 오는 것인지 해석 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도 이 시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이 처음 열렸던 날부터 다시 천고 후까지, 휘달리던 산맥들도 범하지 못했으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어준 이곳! 이 신성불가침의 시공간 속에서 흰 눈과 흰 말(馬), 매화 향기와 초인의 이미지는 돌올하다. 특히 까마득한 날부터 천고 뒤로 이어지는 대서사적 시제와 감탄하고 묻고 명령하는 극적인 어조 속에서 '광야'의 고결한 미감과 강렬한 정서는 한결 고무된다. 웅대하다는 말, 장엄하다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시도 드물 것이다.   감옥에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시 '꽃'에서도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라고 노래했다. 오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이 광야에서, 지금-여기의 눈보라 치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찬란한 꽃을 피울 미래의 그날을 떠올려본다. 시인이 기꺼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이유일 것이다. 기름을 바른 단정한 머리에 늘 조용조용 말하고 행동했다는, 올곧은 시인이 올곧은 삶 속에서 일구어낸 참 올곧은 시다.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후략)             ▲ 일러스트=잠산  겨울 서정시의 대표격인 이 시는 평론가 이숭원씨의 표현대로 '찬란한 시간의 금비늘'이 반짝반짝한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는 섬세한 감각이나,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같은 투명한 언어감각을 보라. 시인은 다른 행인들처럼 나뭇가지에 내린 눈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묘미는 자연 현상인 눈의 적설을 생명의 큰 순환으로 읽어낸 데 있다. 눈이 쌓인 원시림이 석탄이 되고, 탄부의 손에 의해 채탄이 되고, 이층방 스토브의 꽃불이 되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운이 되고, 다시 숲으로 내려앉는 눈이 되는 그 시간의 돌고 돎-둥근 궤적을 시인은 읽어내고 있다. 이 '돌아옴'의 발견이 이 시를 빼어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기특하고, 얼마나 황홀하겠는가.   오탁번(65) 시인은 1966년에 동화 당선, 1967년에 시 당선, 1969년에 소설 당선이라는 신춘문예 3관왕의 화려한 등단 이력을 갖고 있다(김은자 시인을 아내로 둔 시인 커플로도 유명한데, 김은자 시인도 신춘문예 2관왕 출신이다). 이 시는 그의 시 데뷔작이다.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다니지 못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졸업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는 일화를 나는 언젠가 들었다. 대학에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가끔은 밤새 쓴 시를 칠판에 적어놓고 학생들로부터 터놓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나도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기말시험에 '학교에 자목련나무가 몇 그루인가'를 묻는 문제가 있었을 정도였다.   요즘 오탁번 시인은 고향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으로 천둥산과 박달재 사이에 있는 조그만 마을. 폐교된 모교를 사들여 '원서헌'이라는 문학관을 차렸다. 그곳서 그는 시골 아이들에게 시를 읽히는 훈장님이다. 그곳서 그는 우리가 잊어버린 토박이 우리말을 되살려내는 시를 쓰고 있다. "산 속에 큰 항아리를 하나 묻고 그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아기를 낳는 산모의 지독한 아픔과 숨찬 기쁨이 바로 시"라고 말하는 순은의 시인이다.      [애송시 100편-제29편]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일러스트 권신아 김종길(81) 시인의 '성탄제'를 읽는 일은 내게 유년의 흑백 사진을 보는 일처럼 애틋하고 살가운 일이다. 겨울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코트 자락은 서늘했다. 겉옷을 벗으신 아버지는 물에 만 밥 한 숟갈 위에 찢은 김치를 씻어 올려놓으시고는 아, 아, 하셨다. 하얀 가루약도 그렇게 먹이셨다. 어머니가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는 사이 오래오래 나를 업고 계셨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으니 아버지 속은 얼마나 더 애련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찾아 헤매셨던,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을 치유할 수 있는 약(藥)의 이미지다.   김종길 시인은 명망있는 유학자 집안의 후예다. 한학과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이었다. 우리나라에 영미시와 시론, 특히 이미지즘을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가적 전통과 이미지즘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절제된 표현, 선명한 주제 의식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일컬어 '점잖음의 미학'이라 했던가.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특히 산수유, 서느런, 성탄제, 숯불, 설어운 설흔 살의 'ㅅ' 음이 서늘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서늘한 청량제 속 따스한 혈맥이 우리네 가족애일 것이다. 그 따스함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설날 아침을 맞이하자. 매운 추위 속에서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맞이하자. 그 한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자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 일러스트 잠산  이별이 이별의 사건으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마음이라는 게 없었을 것이다. 이별 뒤에 오는 축축한 망각의 시간이 훨씬 고통스럽다. 서서히 잊어가며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이별 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아울러 우리는 이별이라는 사건의 전모(全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잊는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생명 없는 사물처럼 안색 없이 돌아서기만 하면 될 것이다. 생명 없는 사물의 안색으로 헤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 꽃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어떤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무안의 회산 백련지를 찾아가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연꽃이 만개한 그 시간을 찾아가겠지만. 시인은 연못이 폐선처럼 가라앉는 시간에 거기를 찾아간 모양이다. 흰 연꽃도, 푸른 손바닥 같은 연잎도, 따뜻한 한 공기의 밥 같은 연밥도 없는 시간. 시인은 뒤늦게 그 연못을 찾아간 모양이다. 마치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겪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사람처럼. 그 연못에서 시인은 연밥과 연잎과 연꽃의 시간을 다시 살려낸다. 우리의 습관인 순차적인 짐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말대로 나희덕(43) 시인은 '울음의 감별사'이다. 그녀는 한 산문에서 마른 석류를 들여다본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붉은 석류가 마르면서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지고 거기서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삶이란 완벽한 진공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다"라고 적었다. 세상의 통증 하나하나와 만날 때 투덜대고, 서운해하며 토라지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녀의 시편들은 시원시원하게 정직해서 비옥하다. 그녀는 복숭아나무 같은 시인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을 펼쳐놓는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가 그토록 눈이 부신 나무임을 처음 알게 해준, 복숭아나무와 친족인 시인.      [애송시 100편-제31편]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일러스트 권신아  '그대'는 어떻게 '당신'이 되는가. 허수경(44)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가 아름다울 때, 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이 되기도 한다. 부빈다는 것, 기댄다는 것, 그것은 다정(多情)이고 병(病)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 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와,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 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 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 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참혹은 '당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총체적 참혹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실연의 참혹, 아버지를 여읜 망부의 참혹, 신념을 잃은 한 시대의 참혹.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죄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당신들이다. 그런 당신을 웃으면서 울면서 혹은 취해서 부르는 이 시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거나 언어 이후다. 단속적인 말줄임표와 쉼표,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킥킥'이라는 의성어에는, 참혹인 줄 알면서도 참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자의 내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와 당신, 사랑의 마음과 마음의 무덤, 환후와 치병이 '각각 따로'이기에,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과 사랑과 상처와 그 상처의 몸이 모두 적요이고 울음이다. 그런 울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 세간의 혼몽을 잘 먹고 잘 노래하는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불우함을 다해 노래하는 시인의 지복(至福)일 터, 이 시는 그 지복의 한 자락을 걸쳐 입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울음 같은, 비명 같은, 취생몽사 같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독일로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 시인의 생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 동안(童顔)에, 대책 없는 맨몸이었다. 고고학을 공부한다 했다. 잘살고 있다고 했다. 독일로 날아간 지 벌써 16년째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은 언제 불러도 참 좋다, 그리고 참 참혹하다, 킥킥 당신….      [애송시 100편-제32편]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일러스트 잠산   쟁기와 써레와 달구지를 끌던 소, 두꺼운 혀로 억센 풀을 감아 뜯던 소, 송아지를 낳아 대학 공부를 시켜주던 소, 추운 날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주던 소, 등을 긁어주면 한없이 유순해지던 소, 코뚜레가 꿰어 있는 소, 우시장에 팔려가는 아침에는 주먹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   소에게 들일이 점점 없어지면서 소의 쓸모는 이제 비육에만 있다지만 소만큼 오랫동안 농가를 살려온 짐승도 드물다. 일하러 갈 땐 강한 무릎으로 불끈 일어서던 소. 뿔이 솟아 있으나 뿔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는 소. 소의 느린 걸음걸이와 큰 눈과 우직함을 생각해본다.   김기택(51) 시인은 소에 관한 시를 네 편 썼다. 꾀는 파리를 쫓아내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 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인 소, 도살되는 순간 바람이 빠져 나가서 빈 쇠가죽 부대가 되어버린 소에 대해 썼다. 시집 '소'의 표제작인 이 시는 소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시이다. 전작들이 소의 비극적인 몸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소라는 종(種)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시선이 있다. 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 오직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의 눈. 우리가 최초에는 가졌을 혹은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내내 바라보았을 그 '순하고 동그란 감옥'인 눈. 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나의 말….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무섭도록 정밀한 관찰과 투시를 자랑한다. 그는 대상을 냉정하고도 빠끔히 묘사한다. 그는 하등동물의 도태된 본능을 그려내거나 사람의 망가진, 불구의 육체를 고집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생명의 '원시림'을 복원시켜 놓는다.   시 '신생아 2'에서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 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 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라고 그는 노래했다. 이런 시를 한껏 들이쉬면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리가 맑아진다. 선홍빛 아가미가 어느새 새로 생겨난다.         [애송시 100편-제33편] 저녁의 염전 -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 일러스트 권신아   바닷물을 끌어다가 삼일 정도 가둬두면 바닥에 소금 알갱이가 뭉치기 시작한다. 가만히 고인 바닷물이 제 안의 소금을 응결시키고 있는 저녁의 염전을 볼 때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한다. 스러지는 햇빛, 슬어가는 어둠, 남루한 생의 얼룩, 비늘 같은 욕망의 흔적, 서늘한 죽음의 그늘… 흩어져 있던 그리 어두컴컴한 것들이 가라앉곤 했던가.   흰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상갓집 밤불처럼 노을이 내리는 염전. 그곳에서 시인은 소금의 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와 같은 그 '희디흰 물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소금의 빛, 그 '몇 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을 본다. 소금의 근원인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은 모든 생명의 시원이자 종말이다. 그러니까 존재의 끝과 시작을 듣고 보는 셈이다. 우리의 내장이 이리 어둡고 이리 쓴 이유일 것이다. 물의 내장이 그러하고, 생의 내장이 그러한 것처럼.   노을 속으로 바닷물이 건너는 염전에 서면, 죽음과 소멸을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만 같다. 실리고, 스미고, 비치고, 번지고, 가라앉고, 퍼지는 술어의 움직임 속에서 하얗게 증발하는 허공 속 흰 눈같이. 아니 깊은 바다 속 소리의 영혼같이, 아니 아니 온갖 사랑이 밀려왔다 밀려간 사람 속 쓰디쓴 내장같이. "나 없는 변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부재중')라는 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김경주(32) 시인은 젊다. 2003년에 등단하여 2007년에 첫 시집을 냈으니 시력 또한 젊다. 한 시인은 "이 무시무시한 시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스무 살 이후,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이 공부 저 공부 하며 밥벌이를 위해 대필작가, 학원강사, 광고일, '야설' 작가까지 했다는 기이한 이력이 인상적이었던가. 수려한 외모에 여행, 사진, 에세이, 영화, 연극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재능이 또 신인류(!)적이었던가.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 일러스트 장산   들꽃을 따서 엮은 둥근 꽃팔찌. 그 반짝이는 꽃팔찌를 말없이 만들었을 당신의 낮과 당신의 손. 가는 손목에 차고 다니다 탁자에 벗어놓은 당신의 꽃팔찌. 들꽃 같은 시간의 꽃팔찌. 쓸쓸함과 적막이라는 삶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꽃팔찌.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쓸쓸함과 적막함. 당신은 없고 이제 나의 팔목에 차 본 둥근 꽃팔찌. 오, 들꽃처럼, 들꽃으로 엮은 꽃팔찌처럼 온기와 생기(生氣)의 일가를 이루려 했던 당신의 마음.   이 시처럼 정현종(69) 시인은 작품을 통해 삶의 생기를 발견해내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전후의 한국 시단에 팽배해 있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내내 보여주었다. 그는 사물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고, 만물과의 우주적인 교감을 노래했다. 그는 탄력 있는 생각의 샘을 소유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은유적이고 율동적인데, "가벼움, 경묘(輕妙)함이 나의 시론의 하나"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가볍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 자유로운 정신은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일 터. 해서 정현종 시인은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시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단 두 줄로 짧게 쓴 시 '섬'은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시이며, 그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네루다와 로르카, 옥타비오 파스 등 외국 시인들의 시집과 시론서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야 하는 것. 우리의 영혼은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오르는 공처럼 생동해야 하는 것. 시인은 한 대담에서 "이 세상이 내 앞에 처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라. 그렇게 살라"고 당부한다. 오늘은 그의 시 '꽃시간'을 함께 읽어보자. 당신에게도 오늘이 꽃시간이기를, 안팎이 둥근 꽃팔찌의 시간이기를.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시력 44년을 맞는 오세영(65) 시인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 박사이자 교수로 시작과 평론과 시학을 병행해 왔다.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으로 출간된 그의 시들은 물질과 정신, 문명과 자연, 철학적 지성과 감성적 정서가 상응하는 '잘 빚어진' 서정시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전통의 토대 위에 형성된 철학화된 서정시' 혹은 '모순의 시학'이라 했던가.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도는 빈 그릇과 같다고. 얼마든지 퍼내서 사용할 수 있고, 언제나 넘치는 일이 없고, 깊고 멀어서 천지 만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릇은 하나인데 그 하나로 인해 안과 밖이 나뉘고, 그릇에게는 밖인데 그 밖이 안을 품고 있고, 비어 있음으로 다른 것을 채운다. 그릇에 대한 시인의 통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인은 '절제와 균형'을 긴장된 힘으로 유지하고 있던 그릇의 '깨짐'에 주목한다.   깨진다는 것은 긴장하고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모와 날을 세운다는 것이다. 겨냥하고 노린다는 것이다. 때로 상처를 내고 피를 부르기도 한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둥금의 세계지만, 언제나 깨질 위기에 처해 있고 깨졌을 때 이면을 드러낸다.   그러한 파괴는 이전을 벗음으로써 이후를 여는 파탈(擺脫)이 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의 파탈을 이끌기도 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를 상처냄으로써 상처 깊숙한 곳에서 혼(魂)의 성숙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므로 깨진 그릇이야말로 끝이면서 시작이다. 시작의 '눈뜸'은 바로 끝의 '깨짐'과 한 몸을 이룬다. 때문에 시인에게 '깨진다는 것'은 갇히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공간을 뛰쳐나온 존재의 환희다. 빈 공간이며 허공이고 무(無)다. "깨지는 그릇./ 자리에서 밀린 그릇은/ 차라리 깨진다./ 깨짐으로써 본분을 지키는/ 살아 있는 흙,/ 살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깨진다는 것이다"('살아 있는 흙 -그릇14').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깨져서 새롭게 완성되는 '깨진 그릇'이야말로 오세영 시인의 가장 개성적인 개인 상징이라 할 만하다.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 일러스트 잠산   임화(1908~1953)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문학운동을 표방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핵심 멤버로 카프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화는 모던 보이였다. 영화 '유랑'과 '혼가'에서 주연을 맞기도 해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었다. 그는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서서 카프를 이끌었지만, 막상 1935년에는 카프 해산계를 직접 내야 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종로 한청빌딩에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어 좌익 계열 문인들을 규합했다. 그 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 시는 사건적이고 소설적인 데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소박하고 '된 그대로의 말'을 사용했고, 노동자들의 낭독에 편한 리듬을 씀으로써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단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사(製絲) 공장 여직공이었다가 이제는 백 장의 봉투를 붙이면 일전을 버는 일을 하는 화자가 오빠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글 형식이다.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봐서 오빠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로에 '오빠' 혹은 '혁명가의 정신'을 빗대어서, 역경―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지는―이 지금 닥쳐왔지만 굴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뜻을 밝혀 놓았다.   임화는 올해로 김기림, 김유정, 최재서, 백철과 함께 탄생 100돌을 맞았다. 임화는 1936년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0'에서 '임화'라는 시를 통해 '아직껏 한국문학사에는 버려둔 무덤이 있다/ 마른 쑥대머리 무덤/ 그 무덤 벙어리 풀려 열리는 날/ 그 무덤 속 해골/ 뚜벅 걸어나오는 날/ 임화는 오리라// 아름다운 얼굴 다시 오리라 부신 햇살 뿜어 오리라'라고 써 왕양(汪洋)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그를 추모했다.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 일러스트 권신아  중학생 때 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집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시인.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 출가와 환속, 숱한 기행, 폐결핵, 자살시도,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시인. 시, 소설, 평론, 평전, 번역, 수필 등 150여 권에 이르는 신화적 글쓰기로 유명한 시인. '젊은 시인이여 술을 마셔라'라고 일갈하는 말술의 시인. 격정적인 시낭송이 일품인 시인. 낭만적인 허무의식에서,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첨예한 현실인식으로, 그리고 선적(禪的) 초월의식으로 시적 변모를 거듭해온 시인. 올해로 등단 반세기를 맞이하는 시인. 여러 의미로 고은(75) 시인은 '큰' 시인임에 분명하다.   이 시는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조문하러 문의에 갔다가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문(文)'과 '의(義)'의 마을, 문사(文士) 혹은 지사(志士)들이 꿈꾸었을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명이다(실제의 문의마을은 80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으며 그 일부가 문의문화재단지에 복원되었다). 문의마을에 눈은 만났다가 갈라지기를 거듭하는 삶과 죽음,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경계를 덮으며 내린다. 경계를 덮으며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낮게 그리고 가깝게 만들고, 적막하게 그리고 서로를 껴안아주고 받아줄 듯 내린다. 시인에게 그 눈은 죽음처럼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삶 속의 죽음처럼.   그의 다른 시 "싸락눈이 내려서/ 돌아다보면 여기저기 저승"('작은 노래'),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눈길')라는 시에서도 눈은 '대지(大地)의 고백(告白)'이나 '위대한 적막(寂寞)'처럼 내린다. 한 평자는 그러한 눈을 '아름다운 허무'라고도 했다. 그러나 눈은 금세 내리고 금세 녹아버리듯, 우리가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란 높고 먼 일이다. 상여(喪輿)의 길처럼, 마을에서 산에 이르는 길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시인이 본 것은 그 길이 '가까스로 만난'다는 것이고,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덮으며, 가깝게 낮게 내리는 눈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일러스트=잠산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애송시 100편-제38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 일러스트=권신아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먹었느냐고 묻지 말라/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라"(시 '나를 만나거든')던 시인 이용악(1914~1971)! 그는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을 건너 할아버지는 소금을 밀수입했고 친척들은 그 강을 건너 아라사(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그 두만강을 건너 밀무역 행상 중 아버지는 객사하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시인 또한 서울에서 동경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며 고학했다. 이야기성과 체험의 구체성이 두드러진 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북간도 어느 술막에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났다. 사내는 언 발로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날이 밝으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나야 한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북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 속에서 치마를 뒤집어쓴 채 이틀을 울며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팔려왔다. 그런 두 남녀가 국경 너머에서 만나 겨울밤 내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그 밤 내 사내가 '가시내야'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것도 함경도 사내가 '전라도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 전라도 가시내는 한없이 차고 한없이 차진 느낌이다. 고향을 떠나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고 울었던 가시내, 지금은 남실남실 술을 치는 가시내. 때로 싸늘한 웃음을 보조개를 소리 없이 새기는 가시내, 까무스레한 얼굴에 눈이 바다처럼 푸른 가시내, 간간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는 가시내…. 이 함경도 사내처럼 나는, 그 전라도 가시내를 만난 것만 같다. 전라도 개펄의 바지락 조개 같고 세발낙지 같고 때로 꿈꿈한 홍어 같기도 했으리라.   그 밤 내내 함경도 사내가 피워 올리는 북쪽 눈포래 냄새와, 전라도 가시내가 피워 올리는 남쪽 바다 냄새에 북간도 술막이 흥성했겠다. 그 술막의 술독 바닥났겠다. 눈에 선한, '흉참한' 시대를 살았던 그 전라도 가시내. "너의 노래가 어부의 자장가처럼 애조롭다/너는 어느 흉작촌(凶作村)이 보낸 어린 희생자냐"(제비 같은 소녀야-강 건너 주막에서)!      [애송시 100편-제40편] 박꽃 -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 일러스트 잠산   꽃의 개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잎잎의 열어젖힘을 본 적이 있으신지.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을 씨앗이 움트는 일이라고 했다지만, 꽃의 '열린 앉음새'라 불러도 좋을 꽃의 개화는 사람을 압도한다. 대개 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핀다.   천천히 진행되는 개화 파노라마를 관심있게 시종 지켜볼 만큼 여유롭고 섬세한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많지 않겠지만.   이 시에서 사람을 '벌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한 부분은 압권이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끌시끌 작당(作黨)하여 몰려다니며 입으로 바늘 같은 독설을 내뱉는 세간의 사람들을 잉잉거리는 벌떼 무리에 비유했다. 인간의 시간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소란이 뚝 그쳤을 때 자연의 시간은 도래한다. 그리고 오, 하얀 박꽃은 피어난다. 물소리는 물소리로 들린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들린다.   자연의 시간에는 살기(殺氣)가 없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세계를 맑게 회복시킨다. 씻어낸다. 시 '무인도'에서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無人島)로 가고 있다"라고 했을 때의 무인도처럼. 하산(下山)한 당신도 '죄(罪) 짓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자연의 시간에 살고 싶지 않으신지.   이 시는 '산(山)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신대철(63) 시인의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려 있다. 신대철 시인은 1977년 첫 시집을 출간하고 23년간 절필을 했다. 2000년 시작 활동을 재개한 후 근년에는 알래스카, 시베리아 평원, 바이칼호, 몽골, 두만강 등 원시적이고 광활한 자연에 대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의 이산의 역사와 고통을 부각시키면서. 신대철 시인은 북파 공작원 부대의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픈 현대사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충청도 청양의 깊은 산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그만의 체험은 붉은 혈액이 되어 신대철 시의 몸을 움직인다. 그의 시는 큰 산이요 큰 숲이다. 더 깊숙이 평화롭고, 깨금이 떨어지고, 아그배가 떨어지는 그런 곳. 당신도 가서 살고 싶지 않으신지.       [애송시 100편-제41편]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 박상순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번째는 나   열번째는 전화기             ▲ 일러스트=권신아   말문이 트인 아이는 어느 날 선언한다. "엄마, 오늘부터 엄마는 아지, 아빠는 끼리, 언니는 콩콩이, 나는 밍밍이야, 이제 그렇게 불러야 돼, 꼭." 또 어느 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오늘부터 식탁은 구름, 의자는 나무, 밥은 흙, 반찬은 소라라고 해야 돼, 알았지?" 난감, 황당 그 자체일 때가 많은 박상순(46) 시인의 시는 이런 네 살배기 놀이의 사유로 들여다보았을 때 쉽게 이해되곤 한다. 그러니 주의하시라! 그의 시를 향해,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묻는 순간 당신은 헛방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니.   'A는 B'라는 반복으로 이루어진 시다. A와 B의 관계는 무연하고 또 우연하다. 인과관계가 없는 '관계 맺기' 혹은 '이름 바꾸기' 놀이다. 그러니 왜 첫 번째가 나이고 6이 나무이고 7이 돌고래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독자들도 A에 혹은 B에 마음껏 다른 단어를 넣어 읽어도 무방하다. 또한, 이 시는 앞에는 숫자가, 뒤에는 낱말이 새겨진 아이들의 카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6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나무라고 씌어 있고, 7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돌고래라고 씌어 있다. 십진법에 따르면 세상 혹은 세상의 모든 숫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환원된다. 현실과 언어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숫자와 낱말의 관계도 무연하고 우연한 약속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모든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일까?   이 시의 핵심은, '내'가 이 순서와 관계를 (외우듯) 반복하는 그 리듬에 있다. '자, 아무 생각 말고 따라 해 봐'라는 식의 폭력적인 우리의 교육 현실 혹은 성장 과정을 암시하는 것일까?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내지는 언어(혹은 제도)의 감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유년의 로망이 담긴 단어의 나열이라는 점에서 상실한 본향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아무것이면서 아무것이 아니기도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천진난만한데 읽다 보면 슬쩍 공포스러워지는 까닭들이다.   박상순 시인은 회화를 전공한 미술학도다. 유능한 북(표지)디자이너이자 편집자이며 출판인이기도 하다. '무서운 아이들'의 유희적 상상력, 신경증적 반복, 파격적 시 형식, 의미의 비약적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시에 대해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다 알려고 하면 박상순 시는 없다. 박상순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도 박상순처럼 시를 쓰지는 못한다. 그게 중요하다.      [애송시 100편-제42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일러스트=잠산 황지우(56) 시인의 시 '손을 씻는다'를 함께 읽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라고 쓴 시. 한 점 오점 없이 살 수는 없다. 저질러가면서 우리는 산다. 좌충우돌하면서 난동을 부리면서.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진화해가는 것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가진 자기 반성과 좀 더 나아지려는 희망의 추구 같은 것 때문이다.   이 시는 솔직하다. 나무는 꼭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헐벗고 무방비이고, 때로는 벌 받고, 긴가민가 하는 사람으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중얼할 줄은 아는 사람이다.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현재의 환멸을 볼 줄은 아는, 앙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 바깥 세상이 영하인지 영상인지 구별할 줄 알아 드디어 버틸 줄도 거부할 줄도 알게 된 사람. 마침내 싹도 잎도 틔우면서 불쑥 기립하여 봄의 나무가 된 사람. 자력의 운동성을 가진, 스스로를 혁명하는 사람. 자기 몸을 쳐서 바다를 건너가는 새 같은 사람. 의지의 사람… 우리는 이런 봄나무를 기다리는 것 아닌가.   황지우 시인은 1980년대를 날카로운 풍자로 노래했다. 그는 1980년대의 독재와 살해와 검열에 맞선 '시의 시국사범'이었다. 한 대담에서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시대가 우리를 건드렸다"고 표현했는데, 그의 시는 권력의 중증(重症)을 처절하게 해체하려한 양심이었다. 설령 그가 시 '뼈아픈 후회'에서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써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있지만, 이 혹독한 자기 검열의 고백이 황지우 시의 미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대와의 불화와 선적(禪的)인 기개를 넘나드는 그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푸릇푸릇한 '방풍(防風)의 대밭'이다.      [애송시 100편-제43편]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2006〉)       ▲ 일러스트=권신아   해방둥이 문인수(62) 시인은 마흔이 넘어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하지만 시적 성취는 어느 시인보다 높아 환갑 지나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쓰인 시인데, 바야흐로 문인수 시인의 대표시가 되었다. 문상을 다녀와 순식간에 쓰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막힘이 없이 활달하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고 있다. 정신은 아직 초롱한 아버지가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스스로의 몸에 난감해 하실까봐 아들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 반 어리광 반을 부리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은 흐뭇하고 뭉클하다. 이 '쉬'는 단음절인데 그 뜻은 다의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차적으로는 오줌을 누시라는 말이겠고, 그것도 쉬이(쉽게) 누시라는 말이겠고, 아버지가 힘겹게 오줌을 누시는 중이니 우주로 하여금 조용히 하라는 말이겠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해 내는 울력의 소리이자 당부의 소리이고 주술의 소리일 것이다.   오줌발을 '길고 긴 뜨신 끈'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계산해 보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이 평생 눈 오줌발을 잇고 잇는다면 지구 한 바퀴쯤은 돌 수 있지 않을까. 그 길고 뜨신 오줌발이야말로 한 생명의 끈이고 한 욕망의 끈이다.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늙은 아들은 안타깝게 땅에 붙들어 매려 하고 더 늙으신 아버지는 이제 힘겨워 땅으로부터마저 풀려 한다. 아들은 온몸에 사무쳐 '몸 갚아드리듯' 아버지를 안고, 안긴 아버지는 온몸을 더 작게 더 가볍게 움츠리려 애쓴다. 안기고 안은 늙은 두 부자의 대조적인 내면이 시를 더욱 깊게 한다.   마지막 행의 '쉬!'는 첫 행의 '상가(喪家)'를 환기시킨다. 이제 아들의 쉬- 소리도, 툭 툭 끊기던 아버지의 오줌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길고 긴 뜨신 오줌발'도 쉬!, 이렇게 조용히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시가 뭘까' 라는 고민을 할 때 이런 시는 쉬운 답을 주기도 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집약시키는 것, 그 순간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통찰이 녹아 있는 것이라는. 이 시가 그러하지 않는가.        [애송시 100편-제44편]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는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서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일러스트=잠산 흔하게도 인생은 여행에 비유된다. 우리는 흘러가면서 만난다. 사람과 붐비는 시장과 웃음과 꽃밭과 폭풍의 바다와 벼랑과 사막을 만난다. 그러므로 삶에는 여독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내 여행의 종착지를 생각한다.   이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적적한 곳으로 데려간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로 가서 살자고 한다. 종일을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개옻 그늘과 늦가을만이 살고 있는 곳. 세상의 쓸쓸함을 다 살아본 듯 벌써 무욕을 알고, 골짜기보다 더 깊은 눈으로 속리(俗離)한 우리를 맞아줄 여인이 살고 있는 곳. 그러나 그런 곳이 있을까. 잇속이나 명리나 부귀 같은 것은 손을 털 듯 탁, 탁 털어버린 곳. 더 움켜쥐려는 근욕(根欲)이 사라져 알몸의 자아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곳. 퇴폐도 맑게 씻기어서 별처럼 빛나는 곳. 삶을 탕진한 사람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마지막 성지(聖地). 그곳서 우리의 여행이 끝난다면 후회는 없으리니.   많은 독자들은 김명인(62) 시인의 첫 시집 '동두천(東豆川)'을 기억할 것이다. 기지촌에서 혼혈아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시기의 경험을 쓴 동두천 연작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니.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동두천 4')라고 써 수많은 독자를 여지없이 울먹이게 한 시!     김명인 시인은 동두천 연작 발표 후에도 지금까지 '욕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막막한 표랑을 강한 연민으로 감싸 안아온 시인이다. 그는 한국의 서정시가 실험과 해체와 생각의 과잉과 포즈의 유행을 탈 때에도 흔들림 없이 서정시를 지켜내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맡아 왔다. 그의시에 대해 이승훈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마디로 김명인의 시는 마음이 놓인다"라고. 동감이다      [애송시 100편 - 45] 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일러스트 권신아   시간은 가고 기억은 쌓인다.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 하던가.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상처나 슬픔조차도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답고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는 고향.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하고, 향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정지용(1902~1950)의 '향수'는 이십대 초반의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가며 쓴 시다. 이제 곧 떠나야 할 고향이기에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정종을 좋아했던 그는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나면 낭랑한 목소리로 이 '향수'와 함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을 즐겨 낭송했다 한다. 신석정 시인은 "지용같이 시를 잘 읊는 사람은 보지 못했노라" 회고한 바 있다.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믿었던 그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언어와 감각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 또한 소리내어 읽노라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는 ㅂㅂㅂ 말을 달리는 듯하고,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함추름 휘적시던 곳'은 ㅎㅎㅎ 흩어져 있는 듯하다. 실개천을 '옛이야기 지줄대는' 소리로, 황소를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아버지를 '엷은 졸음'으로 감각하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해설피'가 해가 설핏할 무렵인지 느리고 어설프게(혹은 슬프게)인지, '석근' 별이 성근(성긴) 별인지 섞인 별인지 애매하지만 그 질감만은 새록하다.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누이와 사철 발벗은 아내가 집안에 있고 집밖으로는 넓은 벌과 실개천이,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이, 석근 별과 서리 까마귀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미 마음의 고향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를 후렴처럼 노래하며 '그곳'을 그리듯 보여주는 단순한 시 형식은 음악적 울림은 물론 애틋한 향수의 정감을 쉽고 실감나게 전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흙에서 자란 마음'을 서늘옵고 빛나게 '이마받이'해보는 아침이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춘설(春雪)')롭지 아니한가.      [애송시 100편 - 제46편] 어디로? - 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 일러스트=잠산 최하림(69)은 한글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62년 평론가 김현·김치수, 소설가 김승옥과 한글 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를 함께 냈다. 최하림 시인의 시는 점점 그윽하다. 그는 내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조금 걸어나가면 강이 바라보이는 양수리 그의 집에   갔을 때에도 그는 어둠이 내리는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그의 말은 "참 좋지요"가 전부였다. 그에게는 오연(傲然)함이 없다.     최하림 시인은 빛과 어둠, 정지와 운동 사이의 미묘한 오고 감을 살피는 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이 시를 읽어도 그렇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이 존재들의 뒤에는 커튼처럼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하강하고, 바람은 직립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이동하고, 오두막과 사내는 수직으로 서 있거나 수직으로 움직이고, 물은 옆으로 흐른다. 존재들은 내려오고 올라가고 옆으로 이동한다. 움직이는가 했더니 곧 멈추어 선다. 동작을 보여주지만 격하지 않다. 시인은 돌보듯이 존재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건넨다. 하나만을 전유하려는 못된 버릇도 없다. 해서 존재들은 하나하나가 언뜻언뜻하고 얼핏얼핏하다. 어느 것 하나가 도드라질 양이면 그 윤곽을 살짝 지워놓는다. 마음은 곧잘 뛰쳐나가길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으니 갸륵하다. 마음은 이렇게 우묵하고 참할 때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을 머리에 쓰고 너덜너덜하게 옷을 입고 다녔다는, 숨어 살았다는 한산(寒山)은 "우스워라, 나의 길이여/ 거마(車馬)의 자국조차 없네/ 돌고 도는 시내의 굽이를 알 수 없고/ 첩첩의 산은 그 겹을 모르겠네/(…)/ 내 여기에 이르러 길 잃고 헤매느니/ 그림자를 돌아보며 '어디로?' 물어보네"라고 썼는데, 이 시에서는 나아갈 길의 향방조차 묻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고 잘 묻는다. 그러나 "어디로?" 라고 보채며 질문하지 말자. 다만 거기에 여기에 있을 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을 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 있어야"('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할 뿐.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빛이 인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애송시 100편-47]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일러스트 잠산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己未) 독립선언문에는 시 못지않은 리듬과 비장한 여운이 있다. 고교 시절, 이 선언문과 함께 짝패처럼 좔좔좔 암송해야 했던 시가 이상화(1901~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3월 8일 장날을 기해 대구에서 학생만세운동을 모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상화(相和)라는 이름을 상화(尙火)나 상화(想華)로 쓰곤 했는데, 정녕 그의 시와 삶이 '항상 불' 같았으며 '만주를 오가며 늘 독립운동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 3월이 되면 이 시가 떠오를 수밖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신령'이고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은'에 담긴 이 봄의 혼곤 속을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판)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      [애송시 100편 - 제48편]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일러스트=잠산 너무나 아름다운 이 시를 통째로 암송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말씨와 어렵지 않은 입말로 쓴 시. 무엇보다 이 시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천상의 별과 지상의 잎새에 걸쳐 있는 넓은 공간의식도 놀랍다. 삶은 잡목림 같은 것. 해서 번뇌와 의혹과 부정의 바람은 그치지 않고 불어와 잎새와 같은 우리를 교란시키는 것. 부끄러움은 하루 걸러 오는 것. 그러나 어둠을 배경으로 별은 빛나고, 바람과 같은 시련을 만날 때 큰 사랑은 움트는 것. 다만 우리는 나의 부끄러움으로, 나의 양심으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고고함과 지순함과 강직함으로 사랑하자.   윤동주(1917~1945) 시인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어둠과 황폐를 의식의 순결함으로 초월하려고 했다. 그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또 다른 고향')고 써 스스로를 반성했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쓰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이켜 봤다.   종교적인 순교의 의지로도 읽히고 독립에의 의지로도 읽히는 등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갖고 있는 이 시를 쓴 것은 1941년 11월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는 1941년 자선 시집을 내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시국을 염려해서 시집 출간 연기를 권함에 따라 뜻을 미루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출감을 기다렸지만 불운하게도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바닥에서 옥사했다.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다. 다만 이 시가 포함된 원고뭉치가 국문학자 정병욱의 어머니에 의해 장롱 속에 몰래 보관되다가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정지용 시인은 유고시집의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써서 청년 윤동주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헤는 밤')고 노래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생전에 그는 자기 성찰로 뒤척이는 한 잎의 잎새였으나, 이제 보석처럼 빛나는 천상의 별이 됐다.       [애송시 100편 - 제 49편]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일러스트=권선아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 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이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다.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삶이, 사랑이, 시(詩)의 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간절하게 그리운 부재가 떠오르고, 간절하게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 몸을 떠나 영혼으로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던 영화 '사랑과 영혼', 그 애틋한 바람의 영혼도 떠오른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피로까지를 함께하는 바람의 마음. 그렇게 따뜻한 바람이라면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성년의 비밀')   이 시는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랫말과 흡사하다. 물론 이 시가 5년쯤 먼저다. 의사이기도 한 마종기(69)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여전히 젊고 댄디(dandy)하다. 어떤 선입관과 고정관념과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성 무용가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며 시를 써왔다.   그는 올해로 시력 49년을 맞는다. 투명하면서 울림이 깊은 그의 시에 유난히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오롯한 그리움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그의 시는 '맹물' 같다고. 어느 날 마시면 상쾌하고 시원하고, 어느 날은 목이 메고 어느 날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고국에서는/ 바람으로만 남겠네"('산수유')라는 그의 최근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과 함께. 그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시민임이 분명하다, 저 바람처럼.       [애송시 100편 - 제 50편]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일러스트=잠산 봄! 살찐 볼을 만지는 것 같다. 입안에 쑥 냄새가 돈다. 노란 산수유 그늘도 펼쳐진다.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찬 없이 따뜻한 밥과 냉잇국 한 그릇을 받고 싶다. 차닥차닥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리던 옛날의 빨래터도 다시 가보고 싶다.   봄! 자연에게만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인심에도 계절이 있다. 정치가 싸움판을 걷어내거나, 경제가 잘 돌아 보통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훈풍 부는 봄이 왔다고 한다. 넉넉하고 화창하면 모두 봄이다. 그러므로 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비유의 언어이다. 봄에는 게정게정 불평하는 소리가 싹 사라진다.   이 시의 맛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으로 빗댄 데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봄의 비유로서의 사람은 순박하고 좀 어수룩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저기서 기웃거리는 것을 좀 보라. 무리에 끼어서 한눈도 팔고 궂은 데서 뒹굴기도 한다.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기도 한다. 느려터졌지만 한판 싸움질도 하는 것을 보니 강퍅하니 나름으로는 고집도 센 듯하다. 대처를 떠도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다.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아, 그러나 사람 냄새가 나는 그는 '마침내' 돌아온다. 민주주의의 도래처럼. 격전지에서 생환한 용사처럼. 봄의 백성이 되어 꿈에도 못 잊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품으로.   이성부(66) 시인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민중시인이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울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라고 쓴 시 '벼'는 민중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광주 출신의 그는 '80년 광주'를 겪은 후 죄의식으로 방황을 하다 산(山)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는 산행을 통해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라는 퇴계의 글귀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년까지는 지리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경험으로 '내가 걷는 백두대간' 연작시를 발표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 오늘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들길과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 그득할 때까지.      [애송시 100편 - 제 51편]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일러스트 권신아   출간되자마자 금서(禁書)가 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구하기 위해 책방을 뒤지고 다녔던 것도, 최루 속에서 금지곡(禁止曲)이었던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던 것도, 시보다 운동을 택했던 선배가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주점에서 결혼식을 했던 것도, 지금도 김광석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면 뭉클해지는 것도 다 이 시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맞고 때리는, 울고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의 중첩을 통해 지난 70년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낸 시다. 누군가는 그렇게 피를 흘리며 뒷골목으로 쫓겼고 누군가는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자정부터 신 새벽 사이, 뒷골목과 뒷골목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열망했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이 시가 뜨거운 것은 잊혀져 가는 '민주주의'를 노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했기에 더욱 뜨겁다. 오래 가지지 못한 아니 너무도 오래 잃어버린 그 모든 목마름의 이름을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쓰고 있는 한, 이 시는 여전히 뜨겁게 살아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되살아오는 것이다.   그의 본명은 '영일'(英一, 한 꽃송이)이다. 거리 입간판에 조그맣게 써있던 '지하'라는 글자를 보고 지었다는 필명 '지하'(地下가 芝河로 바뀌었다). 시위, 필화사건,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죄 등으로 체포, 투옥, 사형 및 무기징역 선고, 석방을 거듭하면서 김지하(67) 시인은 70년대 내내 박정희 정권과 맞섰다. 감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듣는 순간, 무상함에 휩싸여 "잘 가시오. 나도 뒤따라가리다"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투사' 김지하는 '생명사상가' 김지하로 변신한다. 감옥 창틀에 싹을 틔운 민들레를 보고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눈을 떴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시(詩)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속 3')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시인, 그리고 이제 자신의 시와 삶이 우주 저편으로까지 이어지는 '흰 그늘의 길'에 서기를 꿈꾸는 시인, 그가 있어 우리 시는 또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일러스트=잠산 '입아아입(入我我入)'이라고 했다.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고, 내가 저것 속에 들어 있다고 했다. 이 세계는 서로가 연결되어 주고받는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의 세계이다. '법화경'을 보면 입아아입을 몸소 실천한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라는 이가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공경합니다. 나는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고 말하면서 살았다. 막대기나 돌멩이로 때릴 때도 피해 도망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후일에 많은 사람은 상불경보살의 큰 사랑을 알고 그를 예배 공경했다지만.   김선우(38) 시인은 90년대 여성시의 흐름을 이어오면서 여성의 '육체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시를 읽으면 상불경보살이라는 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시는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큰 화해와 사랑의 세계를 발언한다. 해서 그녀의 시에는 "너의 영혼인 내 몸"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나 아닌 것들이 나를 빚어/ 그대 아닌 것들로 빚어진 그대를 사랑하오니"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젊은 여성 시인인 그녀가 우주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을 가붓한 어조로 고백하는 이유는 이 물질세계를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자못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그녀의 시는 딱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강보에 받아내고 젖을 먹여 길러내는 모성을 보여준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의 몸을 과감하게 등장시켜 관능적이기도 하지만, "아프지 마, 목숨이 이미 아픈 거니까/ 아파도 환한 벼랑이 목숨이니까"라고 말할 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는 사바세계의 가엾은 목숨을 살려내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의 마음을 지녀 몸을 섞고 탐하는 쾌락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개화(開花)를 모티프로 삼고 있는 이 시는 그 뜻이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러나 꽃피는 꽃의 몸과 내 몸을 교차시키면서 이 시는 의미의 확장을 얻는다. 꽃과 꽃벌의 혼례가 꽃과 나와의 혼례로 얽혀 읽히면서 이 시는 심상치 않은 의미를 낳는다. 그것은 성애적인 열락을 넘어선다. 그러나 "사랑이여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밥알을/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며 살아야 하는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바다와 나비 - 김기령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청산(靑山)이라면 몰라도 바다는 나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에 비해 흰나비는 얼마나 작고 어리고 가냘픈가. 이 무구한 흰나비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는 수심과 거센 물결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흰나비에게 푸르게 펼쳐진 것은 청(靑)무우밭이고 그렇게 푸른 것은 꽃을 피워야 마땅하다. 흰나비가 삼월의 바다에서 청무우꽃을 꿈꾸는 까닭이다. 그러나 짜디짠 바다에 흰나비의 날개만 절 뿐, 삼월이어도, 바다가 푸르긴 해도, 바다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만 비친다. 삼월의 바다, 어린 나비, 초생달은 모두 이른 것들이다. 시작인 것들이다.   허공을 나는 것들은 날개가 중요하고 땅을 걷는 것들은 허리가 중요하다. 헌데 '나비의 허리'라니! 공주의 아름다움은 춤에 있고 나비의 아름다움은 비상(飛翔)에 있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에서 돌아온 나비. 바다로의 비상에 실패하고 뭍으로 귀환한 '나비의 허리'는 상징적 의미가 깊다. 이제 흰나비는 청무우 꽃그늘을 노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짜디짠, 바다의 깊이와 파도의 흔들림을 맛본, 허리가 실한 나비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주피터 추방')기 마련이다. 새롭고 먼 곳을 향해 비상하다 날개가 절어본 적이 있기에, 흰나비는 이제 흙이 묻더라도 땅을 밟는 사랑을 알았으리라.   이 시의 꽃은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다. 하얗고 가늘고 기다란 나비의 몸과 초생달이 그려지고, 새파란 바닷물에 새파랗게 전 흰나비의 허리가 그려지고, 지쳐 돌아오는 흰나비 허리를 비추는 저물녘 초생달이 그려지기도 한다. '시린' 풍경들이다. 어쨌든 '바다'가 냉혹한 현실이라면 '나비'는 순진한 꿈의 표상이다. 꿈은 언제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른 채 도전한다. 근대 혹은 서구문명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역사 혹은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했던 시인의 모습도.   김기림(1908~?) 시인의 탄생은 현대시 탄생과 그 햇수를 같이 한다(얼마 전 출생연도가 1907년으로 기록된 학적부가 발굴되어 탄생 101주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30년대 이상(李箱)과 더불어 한국 문단의 모더니즘을 주도하면서 서구문명 지향하는 '새로운 생활'을 동경했다. 그는 기자, 문학비평가(이론가), 번역가, 대학 교수를 겸한 모더니즘 선봉에 선 시인이었으나 분단과 전쟁은 그를 납북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비운의 모더니스트'로 만들어버렸다.      [애송시 100편 - 제 54편] 나그네 - 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박목월(1916~1978)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펴낸 3인 시집 '청록집'(1946)에 실려 있다. 임시 정가 30원의 '청록집'을 발간한 이후 세 명의 걸출한 시인들은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 서정시의 큰 산맥을 이룬 이 3인은 모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경주에 살고 있던 박목월을 조지훈이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 시는 박목월과 조지훈의 각별한 관계에서 태어났다.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으로 이 시를 썼기 때문이다. '완화삼'의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의 한 부분인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를 부제로 삼았다. '완화삼'의 시어인 나그네와 구름과 달과 강마을과 저녁 노을을 그대로 받아서 썼다. 다만 '완화삼'이 나그네의 구슬픈 우수(憂愁)를 더 드러내면서 가야 할 앞길의 정서적 거리를 '물길은 칠백리(七百里)'로 표현했다면, '나그네'에서는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이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의 길을 표표히 가는 나그네의 심사를 부각시켰다.   이 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접한 최초의 시였다. 외할머니가 벽에 붙여져 있던 이 시를 '가갸거겨'를 배우던 방식으로 흥얼흥얼하는 것을 곁에서 들었다. 그처럼 이 시는 우리말의 가락이 아주 잘 살아 있다.   조지훈은 박목월의 시에 대해 "압운(押韻)이 없는 현대시에도 이렇게 절실한 심운(心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시를 읽으면 역시 그 평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시를 쓸 때에는 꼭 연필을 깎아 썼다는 박목월. 아이들에게 공책을 사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한지를 묶어 공책을 만들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던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산이 날 에워싸고')고 노래한 박목월. 시를 알게 되면서부터 본명 박영종(朴泳鐘) 대신 '木月'이라는 큰 자연의 이름을 스스로 붙였던 그. 식민지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박두진의 말대로 청록파에게 자연은 "온갖 제약을 타개하기 위한 시의 유일한 혈로(血路)"였는지 모른다. 그 한가운데에 '애달픈 꿈꾸는 사람' 박목월이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55편] 봄바다 -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 일러스트=권신아 구장집 마누라는 방뎅이도 크고 젖통도 크고 잠도 푸지게 잘 자니 미끈덩 아들 쑥쑥 낳겠다. 역시나 셋째가 제일 미끈덩하겠다. 미끈덩 인물 재산이겠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라도 되는 양 바람깨나 피우겠다. 도망치듯 상경해 이양저양 살피다 부잣집 과부 만나 한몫 챙기기도 하겠다. 살집 좋은 과부 곁에서 시름시름 늙어가며 이모저모 기웃대다 '인생 탕진하'겠다. 저리 생생(生生)한 구장집 마누라 몸을 거쳐 미끈덩 셋째 아들로 환생하는 것, 사내들의 로망이겠다. 이 시의 묘미는 현실 속 구장집 마누라가 아니라, 상상 속 셋째 아들의 부잣집 과부로 튀는 오지랖의 '쓰리 쿠션'에 있겠다.   이 시를 읽노라면 김 시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이시영 시인의 재미난 산문시 하나가 떠오른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술자리에 김사인 시인이 폭우 속 흰 고무신을 신고 와 합류했다는 것. 새벽 즈음에 이 시인의 처가 천둥치듯 "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소리치며 들이닥쳤다는 것. 바로 그때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김사인의 흰고무신')는 것.   김사인(52) 시인은 사람 좋은 충청도 양반이다. 떠듬떠듬 어눌하게, 천천히 길게, 그러나 뜨겁게 시를 쓰는 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19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으니, 시 한 편을 길게는 30년을 쓰고 썼다니 '곡진'하다는 말, '지극'하다는 말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그가 1980년대의 혁혁한 문화운동가이자 날카로운 논객이었다는 건, '노동해방문학'사건에 관여해 수배되기도 했다는 건 다 아는 전력(!)이다. "시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시를 높이고 세상과 사물을 높이는 드문 미덕을 가진 시인임에 틀림없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오고, 남쪽 끝 바다로부터 온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같이 방방한 저 들판에, 구장집 마누라 젖통 같이 봉긋한 저 능선에, 구장집 마누라 코골이 같이 달디단 봄바람으로 온다. 바다 내음 향긋한 천지가 무릇 봄바다다. 물 맑은 봄바다에 두둥실 떠가는 저 배를 타고 미끈덩 풋것들로 환생하고 싶다. 어쨌든 봄이고 하여튼 봄밤이고 바야흐로 봄바다다.      [애송시 100편 - 제 56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일러스트=잠산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 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평론가 김주연이 분석한 대로 이 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성경의 말씀과 겹쳐 읽힌다. '하늘 아래'라는 표현도 예수의 언약과 임재(臨在)를 둥글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넋으로 기댈 곳 없이 큰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힘껏힘껏 껴안고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 시는 보여준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 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 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 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   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 여성주의 문화집단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 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자평했는데,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고 쓴 시. 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애송시 100편 - 제 57편]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 일러스트=권신아   동치미 무를 먹으며 아삭아삭 달을 베어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팥죽에 뜬 새알을 떠먹으며 어두운 밤하늘을 들락날락하는 달을 떠먹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달걀과 밀가루가 들어간 둥근 지짐이와 부침들을 먹을 때마다 달(빛)을 지져먹고 달(빛)을 부쳐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알들은 달을, 하얗고 부드러운 가루들은 달빛을 닮았다. 그리고 흰 고봉밥이, 노란 달걀 프라이가, 토실한 감자가, 탐스럽고 둥근 빵이 죄다 달을 닮아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다. 밥상에 뜬 온갖 달들을 만들어내는 엄마와 아내와 누이와 딸이 모두 달의 여인들이니, 우리는 밥상에 뜬 달을 먹고 자라는, 그 달을 만드는 이 달에 의해 키워지는, 달의 후예들이다. 그러니 밥이 달이고, 밥의 집이 달의 집이다.   '조각조각' 달집 아래를 걸을 때, '모락모락' 밥집 곁을 지나칠 때 그 집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부푸는 추억이자 꺼지지 않은 희망임을 깨닫는다. 저녁 밥상 앞에 둥그렇게 앉아 '한 그릇씩의 달'을 비우며 서로를 마주볼 때 '꼭꼭 뭉친 주먹밥'처럼 비로소 한 식구(食口)임을 확인한다. 그런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물을 구부려 물방울 보석을 만들고(…) 이 세계를 둥글게 완성시켜 놓"('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는다. 달은 어머니처럼 둥글고, 이 둥근 것들을 우리는 끊을 수 없다. 밤의 어둠을 굴리는 달(빛)이 이울며 차며 '달의 원형'을 회복하듯, 우리도 그렇게 추억과 희망을 완성할 것이다. 그것들로 배가 둥그렇게 부르리라. 또 다른 달을 낳기도 하리라. 그것이 달의 역사(歷史)이고 달의 미래일 것이다.       8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 출간된 송찬호(49)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가 불러일으켰던 반향은 컸다. 그는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이, 시대와 가족과 인간과 사물과 언어를 비극적이면서 비의적(秘儀的)으로 결합시키곤 한다. "나는 시를 무겁게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 매만진다"는 시작 태도는 시의 이미지를 돌올하게 하고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거느리게 한다. 소를 치던 어린 시절 '아이 지게'를 갖는 게 꿈이었다는, 고춧가루 몇 되를 들고 가출해 소설을 쓰기도 했다는, 군대와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는 고향 보은을 떠나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그는 자신에게는 '시 쓰는 일'이 전부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몇 안 되는 시인이다. 이런 시인이라야 모름지기 전업시인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제 -58편]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일러스트=잠산 번짐이라니. 바뀜이 아니라 번짐이라니. 목련꽃이 피는 일을,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일을, 계절의 순환을, 너와 나 사이 사랑과 이별의 사건을,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그 둥?을, 시간과 공간의 옮김을 번짐이라고 부르다니. 먹물이 화선지에서 고요하게 번지듯이. 그리하여 번짐은 환함이라니. 씨나 날로 결어서 천을 짜듯이 조촘조촘 가는 것이라니.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나아가는 것이라니. 번짐이라고 부르면 나와 당신은 얼마나 가까운가. 이 생(生)을 받아 가꾸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가.   장석남(43) 시인의 시는 강한 전염력을 갖고 있다. 그의 시는 '번지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아간다. 밀어내고 부드럽게 떠나고 밀려들어오는, 그 '어쩌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우리들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을 아주 잘 들여다보고 귀담아듣는 출중한 감각을 자랑한다.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라고 쓴다거나,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준다/ 막 이삭 피는 보리밭을 핥는 바람/ 아, 저 혓자국!"('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이라고 쓸 때의 놀라운 감각이라니!   장석남 시인의 마음에는 '옹근 고요'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옹근 고요 위에서 그의 시는 태어난다. 고독과 외면과 섭섭함과 흔들림과 설움과 간신히 잦아드는 것과 사소함과 곰곰 궁금함과 은밀함과 찬란함과 되비쳐옴과…… 그 모든 감정의 섬세한 자세를 그의 시는 그려낸다. '겨우'라고 수식될 세상 살림들의 속삭임과 혈육인 듯 함께 살면서 '물항아리에 물 차 오르면 거기에 어룽대는 물의 빛'과도 같은, 사람의 가슴에 도는 생(生)의 윤기를 발견해낸다. (삶에 윤기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시에도 자원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갈증/ 그건 아무도 모르게 영혼을 찢어놓는,/ 남은 모르는 갈증/ 갈증"('시법(詩法)')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시대에 아주 드문 서정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나는 춤꾼이거나 가수이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었어야 옳았다"고 고백하는, 해서 한때는 전기기타를 배우러 사설강습소를 다녔다는, 해서 한때는 배우로도 활동한, 거문고를 안고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는 시인. 장석남 시인을 만날 때마다 나는 확신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시인은 울림통 하나쯤은 지닌 근사한 악기여야 한다는 것을.      [애송시 100편 - 제 59편]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 일러스트=권신아 그늘! 나비 그늘, 꽃 그늘, 나무 그늘, 처마 그늘, 담 그늘, 당신 그늘, 심지어 위태롭게 서 있는 전봇대나 바지랑대에도 그늘은 있다. 그늘은 눈부시지 않고 어둡지 않다. 뜨거운 햇살은 가려주고 비바람은 대신 먼저 맞아준다. 여운, 깊이, 여유, 멋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림자와 다르다. 그래서일까. 그늘 아래 서면, 잠시, 시간도 잊고 이름도 잊고 일도 잊고 갈 곳도 잊는다. 그늘 아래 스스로를 부리듯 노동과 불안과 걱정을 부려두고, 잊거나 잃은 것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도 한다.   시간과 계절은 너무 빨리 달아나고, 우리는 너무 빨리 늙고, 늘 배고픔과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출근과 스트레스와 피로와 시름과 술과 담배에 지쳐 있는데… 맨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사시사철 변함 없는 사철나무의 그늘이니 참 깊고 넓겠다. 시인 장정일(46)이 꿈꾸던 '사철나무 그늘', 누구나 그런 그늘 하나쯤은 꿈꾸기 마련이다. '가장 장정일답지 않는 시'임에도 가장 많이 애송되고, 시인 스스로도 첫 시집을 여는 시로 삼았던 까닭일 것이다.   이 시는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이 반복되는 보니엠(Boney M)의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를 들으며 읽어야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편)라는 성경 구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탑과 공중정원이 있었다는 번영의 땅 바빌론은, '시온(Zion·예수살렘의 도시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을 생각하며 견뎌야 했던 이방의 땅, 고난의 땅, 타락의 땅이다. 원조 '디아스포라'의 고난과 희망이 담긴 디스코 풍의 이 노래는, 80년대 내내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던 공장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을 장악하기도 했던가.   불온하다는 말, 문제적이라는 말이 장정일처럼 잘 어울리는 시인이 또 있을까. 중졸의 학력과 방황의 청소년기,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했다는 독학,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 극작가, 소설가, 외설 시비, 무시무시한 독서량, TV 교양프로 진행, 교수…. 그는 정복자처럼 자신의 삶을 찬탈했으며 게릴라처럼 80년대 시단을 점령했다. 그리고 어느날 '시 쓰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그가 이른바 '쉬인' 장정일이다. '동사무소 하급 공무원'을 꿈꾸며 들었을 '바빌론의 강가'를 다시 들으며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는 마음'을 헤아려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0편]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1933~1997)은 생전에 '슬픔의 연금술사'로 불린 시인이다. 시 '눈물 속의 눈물'에서 "꽃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눈물 속에 새로 또/ 눈물 나던 것이네"라고 노래했듯이 그의 시들은 눈시울이 촉초근하게 젖어 있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시는 노을이 붉게 번지는, 굽이쳐 흐르는 강을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며 썼을 것이다. '눈물'과 '울음'과 '강'과 '산골 물'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는 누선(淚腺)을 자극하고, '햇볕'과 '불빛'으로 연결되는 불의 이미지는 삶의 소진과 소멸을 두드러지게 하는 바, 이 시는 사랑의 비극과 고독과 생(生)의 무상(無常)을 동뜨게 드러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자연(自然)')라는 표현과 쏙 빼닮았다. '눈물나고나'와 '보것네' 등의 종결어미에서는 그의 다른 시편에서도 예사인 전통적인 가락의 활용을 보여준다. 이 시가 처음 월간지에 발표된 후 박두진 시인은 "노도(怒濤)처럼 세찬 현대의 휩쓸림 속에서 배추 꽃목처럼 목이 가늘고 애잔한, 실개천처럼 맑고도 잔잔한 서정"이라고 평해 신예 박재삼을 주목했다.   박재삼 시의 가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한'과 '가락'의 능수능란한 구사는 그가 자라난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이 가난해서 낮에는 중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반에서 수학을 했다. 집 형편이 옹색해 책을 살 수 없어 '가람시조집'을 빌려다 공책에 베껴 쓰고 늘 외웠고, 중학 시절 김상옥 시인의 작문 지도를 받으면서 전통시의 낭창낭창한 가락에 눈떴다.   병을 얻어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시를 쓰고 신문에 바둑 관전평을 써서 생계를 꾸렸다.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평을 썼는데 바둑계에서는 그를 '박국수(朴國手)'라고 불렀다. 병을 앓고 난 후, 가난한 시인은 새봄을 맞는 소회를 썼다. "눈여겨 볼 것이로다, 촉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氣)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兄)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병후(病後)에') 그러니 우리네 삶이 '햇볕 반(半) 그늘 반(半)'이라 하더라도 오늘 당신은 글썽임보다 반짝이는 쪽을, 촉트는 생동(生動)을 보아라.      [애송시 100편 - 제 61편]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일러스트=권신아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2004)을 들으며 시집 '노동의 새벽'(1984)을 읽는다. 장사익, 윤도현 밴드, NEXT 등이 '노동의 새벽' 시편들에 곡을 붙여 노래한 앨범이다. '노동의 새벽'은 어두운 새벽빛의 표지다.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라는 시인의 헌사로 시작하고 있다. '노동해방'을 줄여 필명으로 삼은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50)의 시에, 독설로 민중문학론을 설파했던 고(故) 채광석의 기획 및 해설과, 민중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故) 오윤의 판화가 어우러져 사회과학 출판사 풀빛에서 출간된 시집이다. '노동'과 '해방'과 '문학'의 접점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이 시집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 상징이다. 금서(禁書)로 노동문학의 전범이 되었고, 판매량이 100만부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이 시는 '시대의 새벽을 부른' 박노해의 명실상부한 대표시다. 조출(조기출근)-야근(야간잔업)의 노동현실에서 야근현장은 졸음과 사투를 해야 하는 전쟁터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시다의 꿈')으로, 조는 순간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손 무덤')야 하는 무참한 사고 없이 무사히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이면 속이 빈 '쓰린 가슴'에 '차거운 소주'를 부을 수밖에.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붓고, '기어코'의 깡다구와 오기의 힘으로 붓는다. 고통과 절망을 위무하기 위해 붓고, 연대와 희망을 고무하기 위해 붓는다. 차가운 소주가 뜨거운 소주로 변하는 '노동자의 햇새벽'에, 식히기 위해 붓고 태우기 위해 붓는다.   그는 열다섯에 상경해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섬유·화학·건설·금속·운수 노동을 하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에 투신했다.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나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는 최후진술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지금은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지역을 돌며 생명과 평화와 나눔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감 중에 썼다는 시 '그 해 겨울나무'가 떠오른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로 시작해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로 끝을 맺는다.      [애송시 100편 - 제 62편]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1957년에 펴낸 김현승(1913~1975)의 첫 시집 '김현승시초'에 실려 있다. 시집의 장정을 서정주 시인이 맡았다고 되어 있고, 가격은 육백환이라 적혀 있다. 시인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를 주선하여 준 서정주 시백의 우의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자서에 썼다. 서정주 시인은 김현승 시인에 대해 "사람 사이의 정(情)에 철저했던 그는 정의감을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고수하는 데서도 철저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의 고독(孤獨)의 원인일 것이다"라고 평가해 친근한 사이임을 자랑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 김광균의 시 '은수저'가 그렇고, 정지용의 시 '유리창'이 그렇다. 김광균은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가 앉던 밥상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라고 썼고, 정지용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썼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시 '눈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넘어선다. '들이라 하올제'의 대상이나 '당신'은 그가 신앙한 절대자였다. 그는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 더러움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웃음'보다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눈물'을 귀하게 보았다. 눈물의 참회 이후 인간이 지니게 될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옹호했다. 이 시가 기독교적 신앙시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가 정작 염원한 것은 더 심오한 가치였다. 그는 스스로 밝히길 "나는 또한 신앙에 순응하기만 하는 시인은 아니다"라며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했다.   눈물이 너무 흔해서 아무래도 천국엘 못 갈 것 같다고 한 김현승 시인의 자화상은 어떠했을까. "내 목이 가늘어 회의에 기울기 좋고", "연애엔 아주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싸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자화상')라고 써 본인의 내·외형적인 기질의 근사치를 내놓았다.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김현승 시인처럼 고독과 슬픔을 지독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를 살다간 그에게 고독과 슬픔과 뜨거운 눈물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었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며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고 썼을 정도로. 숭전대학교(현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기도 중 쓰러진 뒤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의 옹호자였던 시인은 영혼의 옷마저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애송시 100편 - 제 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 일러스트=권신아 구상(1919~2004) 시인은 강과 물을 유난히 사랑했던 시인이다. 당호를 관수재(觀水齋)라 하고 서재에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는, 그 글귀대로 여의도 윤중제방에 나아가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어내곤 했다. 수(水)와 심(心)은 통하는 글자이기에 관수(觀水)와 세심(洗心)은 '마음을 바라보는' 일인 바, "마치 매일예배를 보듯/ 나는 오늘도 강에 나와 있"('겨울강 산조(散調)')곤 했던 것이리라.   무릇 물은 맑다. 흐르면서 넓어지고, 끊이지 않고, 거슬러 오르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그 밑바닥으로 흘러들고, 다른 무엇에 스며들었을 때에는 이미 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물이었다./ 맑은 물이었다./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제자리에 있으면서/ 순간마다 새로웠다.// 새로우면서 과거와/ 이어져 있었다."('그리스도 폴의 강 11'). 강에서 사람을 업어 건네는 수행을 통해 예수 발현(發顯)을 체험했던 성자 '그리스도 폴'의 강처럼, 시인에게 강은 건너가야 하는 삶의 터였으며 구도의 방편이자 사랑의 궁극이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기에, 오늘이 바로 영원이고 오늘 하루가 신비의 샘이다. 오늘 시방 그 영원을 살고 있기에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고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하는('오늘') 것이리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꽃자리')인 것이리라. 그러니 내가 앉아 있는 지금-여기의 꽃자리가 '반갑고 고맙고 기쁠' 수밖에. 그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파랑(波浪)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시편들은 고요한 강물처럼 조용하고 편안하다. 진솔하고 정갈하다. 그의 삶도 시와 다르지 않았다.   이 시는 아침 강의 신비와 신성을 노래하고 있다. 자욱한 아침 안개는 물과 하늘, 여기와 저기,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지운 채 세계를 하나의 '허공'으로 만들고 있다. 그 허공 속을 저어 가는 나룻배는 이미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구불구불 휜 흰 백양목 가지에 앉은 검은 까치 한 마리, 여인네 속살 같은 물밑의 모래, 생래의 즐거움으로 노니는 잔 고기떼, 동터오는 황금의 햇발은 인간이 침범하지 않는 태고(太古)적 아침 강의 이미지들이다. 이런 강을 마음에 품고 하루의 아침을 시작한다면, 매일 매일의 밥벌이 터에서도 '밥 먹는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 같다.      [애송시 100편 - 제 64편] 섬진강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일러스트=잠산 김용택(60) 시인은 섬진강의 시인이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는 하루도 섬진강을 보지 않는 날이 없이 섬진강과 함께 살아왔다.   그를 80년대 대표적 농촌시인으로 우뚝 서게 한 섬진강 연작시는 섬진강변의 새와 풀꽃과 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그에게 섬진강이라는 공간은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을/ 강물에 가져다 버리"('섬진강 2')는 누이가 살던 곳이요, "강 건너 산밭에 하루 내내 스무 번도 더 거름을 져 나르"면서 "해 저문 강 길을 홀로 어둑어둑 돌아오시는 어머니"('섬진강 9')가 살아온 곳이요, "누구는 이라자라 쟁기질 잘하고/ 소 잘 다루고/ 누구는 선일 잘하고/ 모 잘 심고 써레질 잘하고"('섬진강 13') 그리하여 다 사람 구실을 하고 인심에 변동이 없는 곳이다.   이 시는 섬진강 연작시의 말머리 시이다. 생명들의 이마에 꽃등을 달아주는 생명의 젖줄 섬진강을 노래했다. 지도에도 없지만 그네들만은 서로 아끼고 챙겨가며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사는 곳, 일어서서 껄껄 웃는 지리산과 훤한 이마 끄덕이는 무등산을 부모처럼 이웃처럼 모시고 사는 곳, 그런 큰 산들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까닭에 지금껏 마른 적 없는 도도한 흐름이 있는 곳, 크고 굳세고 건강한 살림 공동체…….   섬진강 연작시에는 시골 사람들의 투박한 입담이 들꽃처럼 곳곳에 피어 있다. '너무 그리 말더라고' 등의 전라도 방언과 '저런 오사럴 놈들' 같은 상말을 구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툭 터놓고 말하는 그의 시는 맑고 정직하다. "나는 내 이웃들의 농사에/ 내 손이 희어서 부끄러웠고/ 뙤약볕 아래 그을린 농사군들의/ 억울한 일생이/ 보리꺼시락처럼 목에 걸려/ 때로 못밥이 넘어가지 않아/ 못 드는 술잔을 들곤 했다"('길에서')는 고해성사와도 같은 자기고백을 보라. 그럼으로써 "우리 어매 날 낳아/ 가난한 일 속에 날 기른/ 헐벗은 젖가슴 같은 산천"('섬진강 27')을 다 노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편에 섰다. 살 아프고 맘 아픈 그들의 편에 서서 환장할 것 같은,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농촌의 현실을 다 발언했다.   그의 시에서는 포슬포슬한 흙냄새가 난다. 그의 시를 통해 은어 떼가 헤엄치는 푸른 강과 넓디넓은 평야를 본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하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유치환(1908~1967) 시인의 작품 가운데 애송시 후보를 꼽으라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시 '행복'을 떠올릴 독자도 있겠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라는 구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는 편지의 고수(高手)였다. 일본 유학시절, 주일학교에서 만난 소녀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후일 그 소녀와의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던 화동(花童)이 먼 훗날 '꽃'의 시인으로 유명해진 김춘수였다.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보냈던 편지들은 책으로 묶이기도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나,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그리움')와 같은 절절한 연시들은 바로 사랑의 편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사랑의 시인'과는 사뭇 다른, '의지의 시인' '허무의 시인'의 면모가 유치환의 진면목에 더 가깝다. 형이상학적인 역설을 근간으로 하는 '생명의 서'는 유치환 시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생명이 부대끼는 병든 상태에서 무생명의 공간, 바로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사멸·영겁·허적 등의 관념적 시어가 사막의 무생명성을 강조한다. 또한 열사의 끝 그 '영겁의 허적' 속에 '호올로' 맞는 고독이 열렬하다는 것, 생명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회한 없는 백골'이 될 때까지 배우겠다는 것에서도 생명에의 역설은 두드러진다. 모든 생명의 본연은 무(無)다. 생명의 시작은 죽음의 끝과 이어져 있다. 그러기에 사멸의 땅 사막에서 근원적 생명을 배우려는 것이리라.   대낮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영겁의 시간이 층층이 새겨진 사막의 적막, 그 열렬한 고독 한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에의 충동이 샘솟는 단독자(單獨者)가 있다. 물 한 줄기 찾을 수 없는 사멸의 사막 끝을 생명에의 의지를 등에 지고 낙타처럼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생명의 '서(書)'에는 생명이 충만한 삶의 서(序)와 서(誓)뿐만 아니라 경전의 의미까지도 담고 있다. 그의 시는 형이상학적 전통이 희박한 우리 현대시사에서, 드물게도 인간의 의지 혹은 정신적 높이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생명파 시인'이라 부르는 까닭이고 '사막' 하면 그의 시가 떠오르는 까닭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는 앉아 쉴 곳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어디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허리를 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가 심상찮은 것은 의자를 내놓을 데를 태연무심하게 열거하는 어머니의 품 큰 생각에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와 참외밭과 호박과 망자(亡者)에게도 의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그 우주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다. 공생과 배려에 기초한 이런 모성적 마음씨는 식구를 다 거둬가며 밥을 먹여온 삶의 연륜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누가 인생을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라고 먹줄을 대듯 명쾌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정록(44) 시인의 시에는 모자(母子)가 자주 등장한다. 시 '꽃벼슬'에서는 한식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모자가 찾아간다. 아들은 무덤에 난 쥐구멍에다 꽃다발을 꽂아드린다. "꽃밥 한 그릇 바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쥐구멍에 술잔을 따르며 "새끼들이 술 갖고 올 줄 알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구나"라고 익살맞게 말씀하신다. 아들이 "무덤 안에서 뭔 소리 들려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는 농(弄)으로 "그랴 니 불알 많이 컸다고 그런다"라시며 "아예 술병을 쥐구멍에 박아놓는다". (모자 사이에 오가는 이 능청능청한 대화여.)   이정록 시인의 시는 이처럼 곰살가운 살내가 수북하니 풍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옷 벗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사랑은 울컥이란 짐승의 둥우리"라고 말하는 그는 안간힘을 쓰며 사는, 몸살 앓는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가 슬그머니 앉는다. 식은땀을 흘리는 자식의 머리맡에서 차가운 물수건을 들고 꼬박 밤을 새던 어머니처럼.   그는 시와 삶의 거리를 18.44미터라고 말한다. (18.44미터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이다.) 18.44미터가 곧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삶을 정면으로 팽팽하게 응시한다. 삶에 근거해 삶의 현장에서 그의 시는 발발한다.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좋은 술집')이라고 말하는 시인.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공짜 술도 나눠주고 봉지쌀도 나눠주고 싶다는 시인. 그는 소년교도소에 가서 한문을 가르치기도 하는 천안 중앙고등학교 교사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는 방식도, 취향도, 생각도,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황 시인의 절친한 후배 장석남 시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제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황인숙 선배라고, 그쯤이면 도(道)의 경지라고. 새들은 변하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새'과다.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새처럼, 그는 명실상부한 '프리랜서'로 30여 년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맛깔스런 그의 산문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든 집에서 혼자 산다. 책과 음악과 식도락과 고양이(들)와 그의 단짝 벗들과 더불어 산다. "마감 닥친 쪽글을 쓰느라 낑낑거리며/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르짖는/ 가난하고 게으른 시인이/ 그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파두―비바, 알파마!')   타인에게 칼을 건넬 때는 반드시 칼등을 잡고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건네는 것이 예의다. 이사 갈 때 칼을 버리고 가면 그 집과의 인연을 끊고 가는 것이고, 부엌에 칼을 아무렇게나 놓으면 가족이 다치거나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칼(날)이 날카롭기 때문에 이런 금기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금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칼로 사과를 먹다가 언니에게 이 금기의 말을 들은 적이 있건만, 지금도 여전히 시인은 사과껍질을 깎던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칼로 사과를 먹으며 누군가에게 칼로 사과를 먹였던 일을 떠올린다.   이 시의 맛을 깊게 하는 건 마지막 연이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오래 되짚어 보게 하는 구절이다. 젊지 않은데도, 여전히 가슴 아플, 많은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칼로 사과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칼로 주는 사과를 너무 많이 받아 먹었나 보다. 칼로 먹고 칼로 먹였던 게 비단 사과뿐이었겠나 싶다. 뭔가를 준다는 게 이렇게 위태로울 때가 있다. 그것이 자기에게든 타인에게든, 그것이 사랑이든 배려든.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슴 아플, 많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은 그러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황인숙 시인은 여전히 젊고 경쾌하다. 계속 칼로 사과를 콕콕 찍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부리로 사과를 콕콕 쪼아먹는 새처럼, 아니 그의 시처럼.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일러스트=잠산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으니, 나는 풀이 더 많고 사람이 다닌 발자취가 적은 외로운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노라고 쓴 시. 그리고 그런 선택으로 인하여 나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쓴 시.   이 아침에도 우리의 목전(目前)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낯익고 평탄한 길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 소의 잔등처럼 유순하고 완만하고 반듯해진 길이 있고, 나아갈 틈이 없는 가시넝쿨을 헤치듯 누군가 처음으로 개시(開示)해야 하는 길도 있다. 그러나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우리는 각지고 불규칙한 길보단 대열의 후미에서 앞의 궤적을 뒤따라가고 싶어진다. 은근슬쩍 길들여졌으므로, 이 순응을 등지고 뒤집는 일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어렵다.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 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치게 묻는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 풍파(風波),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安住)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이 야유는 좀 불편하다. "병 대신 병적인 것, 아픔 대신 아픔적인 것, 애인 대신 애인적인 것에서 우리는 위안받는다"('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래서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런 맹랑한 발언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김중식(41)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시편들은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우회(迂廻)가 없다. 그는 스스로 자초하는 존재들의 억센 자유의지를 격려한다. 시집 뒤표지 글은 이렇게 썼다. "자기 삶을 방목(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 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後見人).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 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 가야 할 주인공아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일러스트=권신아 '우리'라는 말은 참 오묘하다. '우리'라는 말에는 내가 들어있고 네가 들어있다. '지금-여기'라는 울 안에는 '너' 하나를 비롯해 무한한 '너'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 '안'에는 널따란 품 같은 수평적 친밀함은 있지만 수직적 높낮이는 없고, '한솥밥'이라는 공모와 공유와 공감의 연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뜨끈뜨끈한 끈기가 우리의 어깨를 감싸곤 한다. 신경림(72) 시인은 '우리'라는 시어를 우리의 시와 현실 속에 말뚝처럼 세워놓았다.   긴급조치가 발령되기 시작했던 197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시집 ≪농무≫는 '우리' 현실의 사실주의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시적 발견이었다. 이를테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이라며 민중의 삶과 민중들의 연대감을 살갑게 담아내곤 했다. 혹은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며 농민들의 애환과 정서를 일체의 수식 없이 단숨에 끌어올리곤 했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하나의 민중적 경사'로, 70년대 '민중시의 물꼬를 튼' 시집으로 평가되었다.   농무는 두렛일을 하며 두레패들과 함께 놀아야 하는 농악과 춤이다. 그러니 본래의 무대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농무는 운동장의 가설무대에서 분을 바르고 구경꾼들을 위한 볼거리로 전락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비어가고 쇠락해가는 농촌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술과 노름과 빚과 주정과 싸움과 울음만 늘어나는 농촌의 현실이 답답하고 고달프고 원통해서 농사꾼인 '우리'는 소주를 마신다. 술잔이 돌고 술기운 취해서 걸립패의 후예인 '우리'는 보름달 아래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에 나선다.   소시장을 거쳐 도살장을 돌며, 임꺽정과 그의 배신자 서림이처럼 한패가 되어 놀아보지만, 쪼무래기 처녀애들이나 꼬일 뿐이다. 돌고 돌면서 점점 더해가는 '우리'의 신명에는 술기운과 분노와 원통이 묻어나고, 놀고 놀면서 점점 가벼워진 '우리'의 고갯짓에는 아직 흥과 신바람이 남아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인 '우리'의 고단한 삶을 신명 난 가락에 실어, 치고 빠지는 슬픔과 해학의 정조가 일품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고 살아왔을 뿐. 시인은 대청마루에 큰 대(大)자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고서. 바다처럼 편편하고 넓게 퍼져서. 그런데, 스윽, 칼날이 지나가듯 제비가 공중을 한 층 횡으로 서늘하게 자르면서 지나간 모양이다.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기습처럼.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민첩한 한 줄기 바람으로.   집과 나의 중심부를 뚫고 지나갔으니 급소(명자리)를 맞은 듯 어이없고 어리둥절해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얼마나 시원한 것인가. 체증(滯症)이 가신 듯했을 것이다.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마음을 사방으로 허술하게 경계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서 우리는 마음의 열림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방비의 미덕이다. 좀 게으르게 혹은 별 준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한번쯤 당해보기도 해보라. 그런 당함에는 오히려 소득이 있다. 마음의 앞뒤 문을 다 열어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을 볼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조급하게 각박하게 쓰느니 차라리 이처럼 마음에 장애를 아예 만들지 않음이 오히려 '심심(深心)'이요, '정(定)'에 가깝다.   손택수(38)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쟁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천문(天文)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달과 토성의 파종법')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등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 마을에서 자연 발효된 이런 금기사항은 우리 시에서 어느덧 희귀해진 것이어서 각별하고 값지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안마시술소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 안마시술소 맹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면서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시영 시인은 그를 "송곳니로 삶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향의 기억'을 잊지 않는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서사적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역린(逆鱗)'을 생각한다.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있다고"('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하는데,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인 역린을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생(生)을 펄떡이게 하는, '뽈끈 들어올려주는' 힘이 있다. 시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은 역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애송시 100편 - 제 71편]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일러스트=권신아 소월(1902~1934)을 생각하면 노랫가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시가 노래처럼 가락을 타고, 실제로 그가 노랫가락을 즐겨 듣고 그 노랫가락을 시로 썼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많은 노래로 불렸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엄마야 누나야〉)에서 시작해 정미조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개여울〉), 홍민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부모〉), 장은숙의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못잊어〉), 건아들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마야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민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 소월을 생각하면 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진달래꽃〉이다. 소월은 외가인 평북 구성에서 태어나 그 가까운 정주에서 자랐으며 그 가까운 곽산에서 31세의 나이에 아편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주 가까운 영변에는 약산이 있고, 약산은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약산의 진달래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으로 보통명사화시키고 있다.   '가실 때에는'이라는 미래가정형에 주목해볼 때, 이 시는 사랑의 절정에서 이별을 염려하는 시로 읽힌다. 사랑이 깊을 때 사랑의 끝인 이별을 생각해보는 건 인지상정의 일. 백이면 백, 헤어질 때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고 한다. 죽어도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고 한다. 아무튼 그땐 그렇다! 그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해달라는 소망이야말로 이별의 로망인 바, 떠나는 길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리려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아름'은 두 팔로 안았던 사랑의 충만함을 환기시켜 주는 감각적 시어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여자에게 더 어울린다. '말없이 보내드리우리다'나 '죽어도 아니 눈물을 보이겠다'는 결기야말로 남자다운 이별의 태도일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실 그때, 눈물을 참기란 죽는 일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고, 당신이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날 수 있도록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 이 시의 전모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시인가. 이 사랑시는 영혼을 다해 죽음 너머를 향해 부르는 절절한 이별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招魂〉)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노래하는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송시 100편 - 제 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 천양희         ▲ 일러스트 잠삼 마음을 네모진 돌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다. 비가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네모진 돌. 그러나 우리네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마음은 사나운 코끼리에 비유되고 번갯불에 비유되고 원숭이에 비유되니 그 분주함과 변화무쌍을 제어하기 어렵다. 시시각각 생기면 사라지니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 없다. 마음에는 '차츰'과 '조용히'와 '차근차근'이 살지 않는다. 마음은 근심의 주머니여서 고통에 결박되므로 큰 병(病)의 뒤끝처럼 완쾌가 드물다.   이 시는 쉬지 않는 마음을 수수밭의 일렁임에 빗대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이 시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 만난 수수밭이 시 창작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여행길에서 살아 돌아온 마음으로 쓴 시"라고 고백했다. 바람결에 서럽게 서걱대는 수수밭에 앉아 통곡을 했다고도 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8년 만에 이 절창의 시는 태어났다고 했다. 시인은 암처럼 깊어진 삶의 그림자를 끌고 보리밭과 수수밭과 계곡 초입에 있었을 절을 지나 산을 올랐을 것이다. 속 빈 고사목을 두들겨 쪼는 까막딱따구리도 도중에 만나면서. 절벽에 홀로 섰을 때 산 아래 저쪽에서 아직도 쪼그리고 앉아 수수밭처럼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멀찍이서 보았을 것이다. 비로소 고통마저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통과 안온과 증오와 자애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화엄의 생명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저속하고 용렬한 세상과의 불화가 사라졌을 것이다.   천양희(66) 시인은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올해로 시력 43년이 되는 그녀는 "고통에 함몰된 나를 시가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럴까. 김승희 시인은 그녀의 시를 "고독 위에 새긴 존재의 찬란한 금속세공과도 같다"고 평했다. 아직도 원고지에 시를 쓰고, 시를 쓰기 전에는 꼭 손부터 깨끗이 씻는다는 시인.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벌새가 사는 법〉) 그녀는 혹독하게 그녀의 '몸을 쳐서' 시를 쓴다. 고통의 몸을 쳐서 쓴 시들이기에 그녀의 시편들은 존재들의 뒤편을 읽어낸다. 문득 생(生)의 뒤란으로 돌아가 만나게 되는 쓸쓸함과 욕됨과 근심의 얼굴을. 시 〈뒤편〉에서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라고 썼듯이.   시집 《너무 많은 입》에 실린 '시인의 말'은 그녀의 골똘한 시작(詩作)을 짐작하게 한다. "시 생각만 했다 시 생각만 하다가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다 생긴 힘이 있어 시 생각만 했다 그토록 믿어왔던 시 오늘은 그만 내 일생이 되었다, 살아봐야겠다."     [애송시 100편 - 제 73편] 반성 704 -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 김 영 승           ▲ 일러스트 권신아 김영승(49)은 반성의 시인이다. 그는 술이나 잠에서 반쯤 깬 반성(半醒)의 시인이고 기존의 서정시로부터 반 옥타브쯤 들떠 읊조리는 반성(半聲)의 시인이다. 가난과 무능으로 일그러진 욕망의 고백을 일삼는 반성(反性)의 시인이고, 구도자적 치열함으로 당대와 스스로를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반성(半聖)의 시인이다. 그는 이 모든 반성의 삶을 돌이켜 살피며 반성(反省)한다. 반성하는 기록자, 반성하는 반항인, 반성하는 백수(白手), 반성하는 주정꾼, 반성하는 폐인, 반성하는 시인이 바로 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반성시는 취언(醉言)이고 포르노이고 일기이고 철학이고 종교이기도 하다.   '밍키'는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놀랍고 분(憤)해 죽겠다는 듯 밍키가 짖는다/ '저젓……영키야!'/ 하며 어머니가 소리치고 나서 웃는다// 영승이를 부르시려 한 건지/ 밍키를 부르시려 한 건지// 하긴 나를 밍승이라고 부르면 또 어떠랴"(〈반성 764〉),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반성 673〉)에서처럼, 그는 스스로를 반성할 때 슬쩍 자신을 밍키에게 얹어놓곤 한다.   이 시에서도 병들고 구차한 밍키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스스로가 밍키의 남편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밍키도 아닌, 밍키의 남편 같다는 데서 날카롭고 쓸쓸한 유머는 더해진다. 밍키에 대한 사랑은, 설움과 누추함 속에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동병상련일 것이다. 실은 아내도 없이 상처투성이로 뒹구는 백수의 외로움과 고독과 소외를 얘기하려는 것이리라. 그가 동병상련하는 것은 구차한 강아지, 밍키만이 아니다. 발로 눌러 끄는 선풍기(〈반성 743〉)나 똥통에 빠진 슬리퍼 한 짝(〈반성 827〉)이나 만신창이가 된 풍뎅이(〈반성 608〉)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아름다운 폐인〉)라는 그의 자조와 위악과 오만은,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시를 "훔쳐보기만을 하는 변태성욕자처럼/ 자기자신과 세계에 대한 불연속적 보고서의 작성자로 전락한/ 사실무근한// 인간과 인간사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일들을/ 왜곡되게 기록한 것//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반성·서(序)〉)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렇게 반성의 끝을 향해 치달았던 그의 시는 개인과 젊음이 차압당한 폭력적이었던 80년대에 대한 저항이자, 그 회복을 위한 자존과 실존의 고해성사일 것이다. 우리 시사에서 드물게도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반성》은 '아름다운 폐인'의 경지에서 '시인됨' 혹은 '시됨'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74편] 절벽 - 이 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 일러스트=잠산 아마도 시인은 꽃이 핀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꽃잎이 둥글게 열리는 것과 꽃의 둘레를 달무리처럼 둥글게 감싸는 향기를 맡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둥근 공간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눕힌다. 죽은 사람의 몸이 놓이게 되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이 묘혈인데, 그처럼 오목하게 파인 곳에 자신의 몸을 눕힌다. 이 시는 시인의 다른 시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밝게 만개한 꽃과 비산하는 꽃 향기의 반대편에 차디찬 주검과 서늘한 묘혈을 배치하고 있다. 열린 공중과 유폐된 땅 속, 두 공간은 서로 차단되어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이 이격된 거리를 가파르고 낙차가 큰 절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도 병이 든 육체를 바라보는 시인의 황폐한 자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기이한 발상과 국어 문법을 파기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파격 그 자체이다. 절망적인 근대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자아의 분열과 의식과잉을 그는 익히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해서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쳐 연재 15회 만에 전격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독자들은 이상의 시에 대해 "개수작", "미친 놈의 잠꼬대" 등의 화포와도 같은 말들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시인 이상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온도차가 뚜렷했다. 희대의 문제아였고, 모던 보이였고, 모더니스트였고, 천재작가였으며,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고은)이었고, "모국어의 훼손에나 기여한 시인"(유종호)이었으며, 그는 "잉크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김기림).   그러나 이상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미술에 솜씨가 있어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박태원의 신문연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그의 시는 숫자와 도형의 사용, 공간 분할 등을 보여주는 바, 이것은 그가 한때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일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애송시 100편 - 제 75편]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일러스트 권신아 김광섭(1905~1977)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창씨개명을 반대한 애국교육자, 광복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현대사 100년을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산〉), "목마른 아스팔트를 옆으로 빠져서/ 나는 계절이 풀리는 산으로 간다"(〈산바람처럼〉).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60~70년대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었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 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하기도 했다. 뻥 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성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나가는 비둘기떼를 보고 착상했다고 한다.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산비둘기는 둥지를 빼앗겼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산을 깨는 것과 비둘기들 가슴에 금이 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제 산비둘기들은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그렇게 쫓긴 산비둘기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고가 밑으로, 옥상으로, 창턱으로 흰 똥을 찍찍 내갈기며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있다. 산동네, 달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내쫓기곤 했다. 재개발과 산업화와 도시화와 문명화의 이면이었다.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라는 시를 읊조려 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6편] 조국(祖國) - 정 완 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구비 구비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鶴)처럼만 여위느냐. 1962년>         ▲ 일러스트 = 잠산7   정완영(89) 시인은 평생 한국의 정형시인 시조만을 위해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는 정완영 시인을 통해 "이 당대, 시조 분야의 숭고한 순교자적 상(像)"(박경용)을 만난다. 시조를 말할 때 가람 이병기와 노산(鷺山) 이은상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초정(草汀) 김상옥, 이호우를 말하고, 그 뒤에 백수(白水) 정완영을 세워 말한다. "백랑도천(白浪滔天) 같은 분노도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석간수 같은 설움도 시조 3장에 다 담으셨다."(조오현)   박재삼 시인은 정완영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숭앙해서 "조용하게 잘 참는 것이 있다"면서 "야단스럽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이 그를 시조의 거목이게 했다"고 썼다.   이 시조는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정완영 시인의 초기 작품이다. 조국의 슬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시 〈만경평야에 와서>에서 "애흡다 열루(熱淚)의 땅 내 조국은 날 울리고"라고 썼을 때처럼. 조국을 한 채의 전통악기 가얏고(가야금)에 빗대면서 조국에 대한 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옛 시조의 행 배열을 살리면서 시종 장중한 어조로 감칠맛 나는 고유어를 사용했다. 청각에 시각을 한데 버무리는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압권이다. 가얏고의 서러운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고,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청사(靑史)를 보는 듯하고, 한 마리 학의 고고한 성품을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 같다.   정완영 시인의 시조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사와 우주적인 상상력을 자랑한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초봄〉)같은 시조를 보라. 무릎을 치며 저절로 감탄할밖에.   이뿐만 아니라 정완영 시인은 정겨운 동시조도 많이 써왔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대표적이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시조는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말과 말의 행간(行間)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는 시"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도 매일 간곡하게 시조를 창작한다. 원로 시조시인의 이 창창(滄滄)한 뜻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애송시 100편 - 제 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 - 조 태 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육척 거구, 고집불통, 임전무퇴, 대의명분의 시인. '쑥대머리'를 부르며 '소주에 밥말아 먹던'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시인. 국토와 식칼의 시인. 반골에 강골의 광주 시인. 의리와 정(情)의 시인. 조태일(1941~1999) 시인에게 붙여진 수식들이다. 그는 〈국토〉 연작시와 〈식칼론〉 연작시로 1970년대 우리시의 저항성에 일획을 더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해 '몸도 크지만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도 "이 조가야, 그 거창한 체구엔/ 노동을 하는 게 썩 어울리는데/ 시를 쓴다니 허허허 우습다, 조가야"(〈석탄·국토 15〉)라고 노래했다.   감옥에 갇힌 후배의 가솔들을 찾아 쌀과 연탄을 사주고, 언제나 제자들 밥부터 챙기는 격의 없는 스승이었다 한다. 술에 취한 야밤에 장독대에 올라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독재자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삿대질 삼창을 일삼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의 통장에 다섯 해나 더 용돈을 송금했다고 한다. 그의 대학 은사였던 조병화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먼저 간 제자를 추모하며 "조태일은 시인이다 착하고 정직하고 곧고 의리의 시인이다 어린이도 느끼는 시인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념적 지향성은 서로 달랐으되, 스승은 젓갈 행상을 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공부하는 제자의 형편을 알고 장학금을 받게 해주었고 제자는 두고두고 스승에게 극진했다는 미담도 잘 알려져 있다.   나라 국(國), 흙 토(土)! 국토는 우리 땅이다. 조태일 시인이 노래하듯, 우리의 하늘 밑이고 삶이고, 우리의 가락이고, 우리의 혼이고 숨결이다. 그뿐 아니다. 피와 살과 뼈에 이르는 우리의 온몸 그 자체이다. 그게 있어야 나라도 있고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다. 이 마땅하고 당연한 우리의 땅을 잃어버렸을 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김소월),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한용운)라고 노래했다. 70년대 조태일에게 국토는 특히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혼'으로 상징되는 소외된 민중의 다른 이름이다. 이 땅의 주인인 그들을 위해 '일렁이는 피', '다 닳아진 살결', '허연 뼈'까지 보태리라는 시인의 뜨거운 의지가 돌올하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국토에 대한 숙명적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은, 간암으로 99년 9월 7일, 58세의 나이로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그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풀씨〉)혔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국토이고, 오매불망 국토를 노래했던 시인의 유택이 되었다. 그는 28세에 "내가 죽는 날은 99년 9월 9일 이전"(〈간추린 일기〉)이라고 썼다. 미래를 예언한 그의 시참(詩讖)이 서늘하다.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78)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일러스트 잠산 1980년대 대표적인 여성시인의 한 사람인 최승자(56) 시인. 그녀의 시는 송곳의 언어로 위선적인 세계와 정면으로 맞선 하나의 살의(殺意)였다. 가장 최승자답다는 이 충격적인 일갈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개 같은 가을이〉)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뼈를 잘못 삼켰다."(〈시인〉)라며 시인의 기본 성깔을 운운한 그녀는 삶의 고통과 세계의 위선을 거리낌 없이 폭로했다. 오직 자기 모욕과 자기 부정과 자기 훼손의 방식을 통해서.   이 시에도 폐광과 같은 유폐와 자기 방기가 있다. 시인은 '곰팡이'와 '오줌 자국'과 '죽은 시체'에 자기 존재의 흔적을 견준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의 귓가를 정처 없이 떠돌다 사라지고 마는 '영원한 루머'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감히 말하며 아예 내 존재의 근거를 박탈해 버리려는 이런 듣기 거북한 발언은 그녀의 다른 시편에서도 흔하게 있다. 그녀에게 "이 조건 반사적 자동 반복적/ 삶의 쓰레기들.// 목숨은 처음부터 오물이었다."(〈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2〉)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주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런 발언에는 위선의 세계에 대한 강한 혐오와 저주가 깐질기게 숨어 있다. 그녀는 이 세계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병들어 있다고 보았다. 세계가 비명으로 가득 차 있고, 탐욕의 넝마이며,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데 누군들 그곳서 생존을 구걸하겠는가. 그러므로 내 존재를 루머도 없게 치워달라고 할밖에.   그러므로 이 시에서 그녀가 독하고 날카로운 비유를 동원해 본인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고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위악의 방식이다. 이 부패한 지상에서 더 이상 썩지 않으려고 '부정하는 법'을 그녀는 선택한 것이다.   세월은 길고 긴 함정일 뿐이며 오직 슬퍼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시인. '허무의 사제' 최승자 시인은 세상을 혹독하게 앓고 시를 혹독하게 앓았다. 시로써는 "밥벌이를 할 수도 없고 이웃을 도울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고독의 창 앞에 쏟아부을/ 충분한 피"(〈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13〉)로 시를 써냈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자화상〉) 라고 읊었다. 그녀는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자살 연구》, 《침묵의 세계》 등 주옥 같은 역서를 낸 능력 있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금 병환 중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신작시를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끔찍하게 독한 그녀의 시가 그립다. 그녀가 밤새 짜낸 '치욕의 망토'로 '귀멀고 눈멀은' 우리들은 따스함을 얻겠지. 그녀가 시 〈삼십세〉에서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라고 쓴 것을 읽고 기이한 쾌감을 느꼈었던 것처럼.     [애송시 100편 - 제 79편] 투명한 속 - 이하석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쇠 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 일러스트 권신아   투명한 것은 비친다.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더 많은 것들을 제 속에 '품어 비춘다'. 투명한 속은 제 속을 훤히 드러내며 더 많은 것들을 제 몸에 비추어낸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은 투명한 속을 깊숙이 열며 '비쳐 들어간다'. 시간의 흔적과 문명의 찌꺼기를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은 보호구역이다. 그 투명한 속은 끝이 없다. 투명한 유리 속 제비꽃처럼, 그 찬란하고 선명하고 쓸쓸하고 고요한 남빛 그림자처럼.   이하석(60) 시인의 〈투명한 속〉을 읽다보면 영화 《밀양(密陽)》의 '햇살이 시궁창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마당 한구석의 흙탕물을 비추는 그 비밀스런 햇볕 혹은 숨어있는 햇살에 카메라 시선은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하석 시인의 시선이 그렇다. 그는 도시문명 속에서 구석지고 버려지고 망가지고 폐허화된 '것들'의 뒷풍경을, 클로즈업된 카메라 시선으로 보여준다. 인간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주는 현대문명의 뒷면에는 산업쓰레기와 비인간적 삶이 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그가 살고 있던 대구 주변에 널린 산업쓰레기 현장을 흑백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바탕으로 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사진처럼 감정 개입은 배제한 채. 쓰레기 가득한 이러한 낯선 시선은 '냉혹한 사실주의' '극사실주의'로 평가되었으며 1980년대 우리 시단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쇳조각, 폐타이어, 유리병, 깡통, 껌종이, 신문지, 비닐 등 산업화의 노폐물들은 흙과 풀뿌리에 뒤엉켜 덮여 있다. "폐차장 뒷길, 석양은 내던져진 유리 조각/ 속에서 부서지고, 풀들은 유리를 통해 살기를 느낀다./ 밤이 오고 공기 중에 떠도는 물방울들/ 차가운 쇠 표면에 엉겨 반짝인다,/ 어둠 속으로 투명한 속을 열어 놓으며"(〈뒷쪽 풍경 1〉)에서처럼, 그것들은 쉽사리 흙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풀과 더불어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 오랜 시간 후 흙과 풀뿌리에 깃들어 투명해지고 흙과 풀을 제 속에 품어 비칠 때, 그것들의 투명한 속은 흙과 풀을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먼지와 녹물과 날카로움과 독성을 잠재우며 또 다른 이슬의 반짝임 쪽으로 뻗어나간다.   이 시도 버려진 유리병(조각)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있다. 유리의 반짝임과 투명함 쪽으로 흙과 풀들은 뻗어나간다.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로 상징되는 '제비꽃'은 버려진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을 비쳐 오고 비쳐 들어간다. 봄의 기운 혹은 생명의 싹 혹은 자연의 힘이다. 우리는 날마다 보고 있지 않은가. 유리 부스러기 속, 제비꽃 같은 남빛 그림자를! 시멘트 콘크리트 틈으로 돋아나는 노란 민들레꽃이나, 타일 콜타르 틈으로 삐쳐 나온 연한 세 잎 네 잎 클로버의 경이 그 자체를!     [애송시 100편 - 제 80편] 갈대 등본 - 신 용 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 일러스트 잠산  젊은 시인 신용목(34)은 "바람 교도(敎徒)"(시인 박형준의 말)다. 그의 시 곳곳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멈추고 쌓이고 흐른다. 독특한 것은 그가 포착하는 바람의 속성인데, 그의 생각에 바람은 쌓이는 것이면서 강하게 '무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비의 칼집을 잡고 서는 날"(〈바람 농군〉)에서처럼 바람을 정지시켜 묶어두거나,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은 봉지를/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새들의 페루〉), 혹은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라고 써서 바람의 '무는 힘'을 강조한다. 아무튼 '바람 교도'답게 그의 시집을 펼치면 바람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문장이 모 기업의 에어컨 광고 문구로 사용되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진 이 시에도 바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폐(廢)염전을 걸어가고 있다. 저녁 무렵이었을 테고, 갈대가 있는 곳에서 멈춰 섰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갈대는 갈대숲에 깃든 새들을 "통증처럼 뱉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이었으므로 갈꽃이 진 갈대는 '촉'처럼 '화살'처럼 서 있고 시인은 그 갈대들을 보면서 세월의 한 참극과 풍파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아마도 가족사에 해당될 사건들을. (그래서 제목이 〈갈대 등본〉 아닌가. 우리가 동사무소에 가서 한 장씩 떼는 '주민등록등본'처럼.) 가족사 가운데서도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시인은 떠올렸을 것이다. 갈대처럼 누추를 입고, 뼛속까지 바람의 지층이 나 있고,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이제는 꺾인 아버지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 시인이 서 있는 공간, 즉 폐염전과 빈 둑과 꺾인 갈대와 바람이 부는 이 공간이 마치 아버지라는 존재의 영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표현에는 개인적인 참회를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결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나비 눈》의 대본을 쓰기도 한 신용목 시인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허기'를 돌본다. 이주노동자, 구두수선공, 시장통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의 시는 따뜻하고 서글서글하다. '등이 굽은 가축'인 우리를 돌보는 아파트 경비원 정씨는 "어제는/ 물통을 청소하고 오늘은/ 배설구를 씻는다 가축은/ 정갈해야 하므로 내일은/ 쥐똥나무를 전지하고 모레는/ 짜기철망을 손질한다 가축은/ 안전해야 하므로/ 정해진 시간마다/ 상한 데는 없는지 손전등을 들고/ 고삐를 훑으러 간다"(〈경비원 정씨〉)   신용목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런 평가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죄(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죄(罪)가 나를 씻어주겠다"(〈별〉)     [애송시 100편 - 제 81편]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일러스트=권신아   사월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초록이 지천으로 팬 보리밭을 지날 적이면 보리피리가 불고 싶어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ㄹ-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1920~1975).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문둥이'였다.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936년 17세의 나이에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도청에 근무하며 양양한 미래를 시작하던 25세에 다시 악화되어 직장도 그만 두고 숨어들었다. 이때 이름도 하운(何雲, 어찌 내 인생이 떠도는 구름이 되었느냐)으로 바꾸었다.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월남했다. 구걸을 하며 연명하다 명동거리에서 시를 파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1949년 《신천지》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외 12편이 실리면서, '불우의 시인' '천작(天作)의 죄수' '정처 없는 유리(遊離)의 가두(街頭)에서 방황하고 섰는 걸인'으로 소개되었다.   〈보리피리〉를 읽다보면 말 그대로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살았던 그의 삶과 세월이 떠오른다. 보리피리를 불며 가는 '꽃 청산', '인환(인간의 세계)의 거리', '방랑의 기산하(많은 산과 들)'는, 그의 고향 함경도 함주에서부터 남쪽 끝 섬 소록도까지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사월의 고향 들판에서 불었던 보리피리를 불며 그는 내내 그 멀고 먼 거리를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온 것이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러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파랑새〉)라고 노래하며.   시는 행간을, 행간의 여백을 읽는 일이다. 이 시는 신문사에 갔다가 즉석에서 써준 즉흥시다. 한 편의 시에, 가곡이나 가요로 가장 많은 곡이 붙여진 시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그토록 불우하고 파란만장하지 않았더라면, '인환'이나 '기산하' 같은 한자어를 제외한다면 동시라 해도 무방할 이 단순한 시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기운생동 창끝처럼 패는 새파란 보리가, 지는 꽃처럼 문드러지는 붉은 살끝을 거느리고 있기에, 피-ㄹ 닐니리 봄의 보리피리 소리가 한층 깊고 서럽다.     [애송시 100편 - 제 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일러스트=잠산   함형수(1914~1946) 시인은 생전에 불과 17편의 시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해서 노동자 숙박소 등을 전전했지만 하모니카와 시 노트만은 꼭 갖고 다녔다. 한 여배우와 동거했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에서 숨졌다. 그는 평생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지만, 만큼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인부락》은 서정주·김달진·김동리·오장환·김광균·함형수 등이 참여한 시 동인지였다. (《시인부락》 동인들은 '생명파'로 불렸다.) 함형수 시인은 이 시를 1936년 《시인부락》 창간호에 발표했다. 우선 이 시를 읽으면 후기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나 《해바라기》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을 많이 마셔서 물체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에 시달렸다는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술을 마시는 이유를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정신착란증으로 권총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도 함형수 시인의 불우한 죽음과 겹쳐 읽혀진다. 함형수 시인이 '청년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를 창작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열정적인 삶과 죽음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둘 사이에 적잖은 영향관계가 있다고 분석하는 의견은 많다.   시인은 자신의 무덤 앞에는 묘비를 세우지 말라고 말한다. '차거운' 주검 앞에 세운 '차거운' 비석은 죽음을 완성하고, 죽음을 죽음으로 붙박는 것. 마치 널이 죽은 사람의 몸을 사방으로 서늘하게 가두듯이. 대신 노랗게 출렁이는,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말한다. 다함이 없는, 대해(大海)와 같은 보리밭의 생명력과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종다리)의 꿈과 자유를 달라고 말한다. 노란 빛깔과 푸른 빛깔의 색채대비가 인상적인 이 시는 식민지시대의 고한(苦恨)을 넘어서면서, 몸과 사랑과 꿈의 죽음을 완강하게 거부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시종 넘쳐난다.   "눈앞에 보이는 삶의 미미(微微)한 즐거움은 선화륜(旋火輪)과 같다"고 했다. 선화륜은 횃불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빙빙 돌릴 때 생기는 불의 둥근 원(圓)을 말한다. 그만큼 삶의 즐거움은 허망하게도 머무르지 않고 흩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미산(須彌山) 같고 큰 바다 같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해바라기가 자라고 보리밭이 출렁이고 종다리가 날아오르게 하자. 보리밭의 너비와 종다리의 높이를 사랑하자. 함형수 시인의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불멸의 선물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83편]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 일러스트=권신아 김승희(56)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시는 상처의 꽃'이라는 말이 입에 돈다. 상처에서 피처럼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시라는 생각에 미친다. 우리는 가족·사랑·출산·질병·밥벌이·이념·사회를 떠나 살 수 없기에, 우리들 상처는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생긴다. 매일매일이 상처투성이다.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짓뭉그러져 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내장된 '상처의 용수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상처의 화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튕겨 오르는 힘, 솟구쳐 오르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새롭게 아침을 맞는다.   〈솟구쳐 오르기〉 연작시들을 통해 시인은 "활활 타오르는 상처의 꽃에서 훨훨 날아가는 새의 날개의 푸드득 솟구쳐 오름"(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의 자서)을 찾아 어둡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 위로 튀어 오른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 높이뛰기를 하듯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고(〈솟구쳐 오르기1〉), 상처의 힘을 깨닫기 위해 긴 머리에 성냥불을 당기고 싶어하고(〈솟구쳐 오르기3〉), 상처의 혼(魂), 아니 혼 속에 간직한 상처의 오케스트라에서 터져 나오는 황금 별들의 찬란한 음악을 듣기(〈솟구쳐 오르기10〉)도 한다. 상처를 비상의 날개로 삼아 날아 오르고자 한다. 그는 '시인은 천형을 앓는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 쓴 적이 있다. 무당이 고통의 칼날 위에서 춤추는 자라면, 상처의 작두를 타고 상처의 작두 위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이가 시인일 것이다. 그 역시 고정희, 최승자, 김혜순과 더불어 1970년대 여성시의 새로운 솟구침을 주도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시 쓰기 외에도 에세이, 평론, 장·단편 소설, 동화, 논문, 번역 등 분출하는 글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도 상처에 내재한 자기갱생 및 자기정화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 봄은 겨울에서 솟구쳐 오른다. 파란 싹, 파아란 보리, 개구리, 빨간 넝쿨장미, 민들레, 나뭇가지의 새 눈의 몸을 빌려 솟아오른다. 땅속이나 바위 밑에서부터, 담벼락을 타고 시멘트를 뚫고, 텅 빈 허공을 일으키며 기어오른다. 떨어져야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내내 얼어 있던 것들이, 넘어져야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내내 고통스러웠던 것들이, 당겨져야 다시 줄어드는 고무줄처럼 내내 아팠던 것들이, 오늘도 '상처의 용수철'을 타고 튕겨 오른다. 내일도 스카이콩콩을 타고 날아오른다. 아아 오오 우우~ 기지개를 켜며 솟구쳐 오르는 탄성(彈性)의 탄성(歎聲) 소리 가득한 아침이다.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운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애송시 100편 - 제 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4·19세대의 좌절과 절망을 노래한 4·19세대의 만가(輓歌)이다. 김광규(67) 시인은 한글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 4·19가 일어난 196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이 시를 4·19혁명 18년 뒤에 썼다. 중남미 보컬그룹이 불러 1960년대 초반 크게 유행했던 노래와 동명의 제목이다.   터놓고 말하는 이 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변해버린 세상과 변해버린 사람들의 살풍경, 온데간데없는 열망과 초심(初心), 터럭만큼의 부끄러움조차 없게 된 양심, 판치는 속물주의와 물질주의. 이것을 시인은 부지불식간에 빠져들게 된 깊숙한 '늪'이라고 부른다. 크게 호통을 치지 않는데도 이 시를 읽고 나면 뭉근하게 가슴이 저민다. 왜 그런가.   우리는 점점 어깨가 움츠러들고 왜소화되어 간다. "작아진다/ 자꾸만 작아진다/(…)/ 모두가 장사를 해 돈 벌 생각을 하며 작아지고/ 들리지 않는 명령에 귀 기울이며 작아지고/ 제복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지고/ 수많은 모임을 갖고 박수를 치며 작아지고/ 권력의 점심을 얻어먹고 이를 쑤시며 작아지고/ 배가 나와 열심히 골프를 치며 작아지고/ 칵테일 파티에 가서 양주를 마시며 작아지고/ 이제는 너무 커진 아내를 안으며 작아진다"(〈작은 사내들〉) 시인은 어느덧 소시민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입장 없음과 순순히 따름이 정녕 우리들이 고대한 초상이었느냐며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면구스럽다.   독문학자이기도 한 김광규 시인은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시인이다.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문학평론가 이남호)   김광규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는 오페라에 있어서의 레치타티보(서창)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아리아처럼 목청을 높여 외치지는 않는다. 다만 낮게 중얼중얼거릴 뿐. 하지만 이 중얼거림은 살기 바쁜,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배불리 먹는 일에 열중인 우리들을 거북하게 만든다. 마치 맨발로 사금파리를 밟은 듯하게. 일례로, 그는 우리를 '4월의 가로수'에 섬뜩하게 빗댄다. 우리의 모습이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4월의 가로수〉) 있는 수양버들이라니! 그러나 둘러댈 말이 없다.   4·19혁명 기념일이 다가오면 이 시를 다시 읽게 된다. 까슬까슬하게 카랑카랑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애송시 100편 - 제 85편]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일러스트=권신아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 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은 아직 못 보았다.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올해로 40주기를 맞는 조지훈(1920~1968) 시인은 섭리로서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준 시인이다. '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자,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돋았던 별이 하나 둘 스러지는 새벽, 먼 산의 소쩍새가 울고, 뜰에는 꽃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고즈넉했던지 꽃 지는 그림자가 미닫이에 비친다. 방 안의 촛불을 꺼야, 지는 꽃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촛불을 꺼야, 어둠 속에서 목숨이 지는 자연의 꽃이 내는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그는 범종소리를, 과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비유한 적이 있다.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 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범종(梵鐘)〉)이라고. 그 새벽에도 꽃이 지는 소리 웅 웅 웅 웅…… 아득했으리라. 흰 창호지문을 물들이는, '우련(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붉은, 낙화의 그림자! 지는 꽃의 그림자를 나는 이 시에서 처음 배웠다.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다시 보인다는 것도. 밤새 진 꽃들 한 치는 쌓이리라. 꽃은, 진 후에 더욱 꽃이기에, 지는 꽃의 슬픔을 이리 높고 깊게 맞을 일이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과묵한 슬픔 앞에 목이 멘다.      [애송시 100편 - 제 86편] 서시 -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 일러스트 잠산   이시영(59) 시인을 떠올리면 그가 늘 쓰고 다녔던 검고 둥글고 큰 뿔테 안경과 그 너머의 빛나는 안광(眼光)이 생각난다. 깡마른 체구와 또각또각 한마디씩 끊어가며 내놓는 정직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1974년 문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이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에 참여한 이후 엄혹의 시대와 맞서는 문인의 길을 걸었다.   이로 인해 연행되고 구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89년 《창작과비평》 주간으로 있을 때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잡지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신 철폐를 위해, 구속 문인과 양심수 석방을 위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동자의 살 권리를 위해 국가 폭력에 맞서고 분연히 일어나 싸웠다. 그런 체험과 시대에 대한 울분을 선혈(鮮血)의 언어로 기동력 있게 쓴 것이 그의 민중시였다.   첫시집 《만월》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에도 그의 발자취와 육성이 살아있다. 이 시는 어둠의 시대를 살다 실종되고 도피중인 동지가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압수되고, 두들겨 맞고, 체포당한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등과 평화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열망하고 있다. 댓잎이 살랑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숨막히는 고요가 기다림의 절절함이라면, 천지를 쿵쿵 울리는 역동적인 발자국 소리는 돌아옴의 당위에 해당한다. 저 폭압의 시대에는 자식의 생사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뜬눈으로 눈물로 밤을 지새운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시영 시인은 민중시를, 이야기시를, 우리말을 세공(細工)한 단시(短詩)를 선보여 왔다. 근년에는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스크럼을 짜고 함께 통과해온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시를 써내고 있다.   광주일고 1학년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법관으로 적어 놓은 해방전사 김남주, 휘파람 잘 부는 송영, 마포추탕집에서 쭈글쭈글한 냄비에 된장을 듬뿍 넣고 끓여 함께 먹던 조태일, 문단 제일의 재담가 황석영, 상갓집에 가면 제일 나중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인심 좋은 이문구, 섬진강서 갓 올라와 창작과비평사 문을 벌컥 열고 사과궤짝을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놓던 김용택 등등.   그는 지나간 옛일들을, 고통의 역사를 애틋하게 따듯하게 불러낸다. 특히 송기원과의 두터운 교분을 자랑하는 시편들은 왁자하고 눈물겹다. (이시영 시인은 송기원, 이진행과 함께 '서라벌예대 문창과 68학번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시영 시인은 "마치 이 세상에 잘못 놀러 나온 사람처럼 부재(不在)로서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며 살아온 사람"(〈시인〉)이 바로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서러운 사람에게로 불어간다. 가슴이 뭉클하다.     [애송시 100편 - 제 87편] 껍데기는 가라 -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일러스트 권신아   기운생동, 만화방창의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이는 엘리어트였다.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부여의 시인, 금강의 시인, 신동엽(1930~1969)은 이렇게 노래했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겨울 땅을 갈아엎어 줘야 싹들이 더 잘 일어서는 이 4월에.   4월 19일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 〈껍데기는 가라〉는 벼락같은, 천둥같은 시다. 이 시에 무엇을 더 덧붙일 수 있으랴. 덧붙이는 순간 사족이고 군말일 뿐이다. 그만큼 시 자체   로 명명(明明)하고 백백(白白)하다. 1967년에 발표된 이 시는 4·19 혁명의 실패, 5·16 군사 쿠데타, 6·3 사태, 베트남 전쟁 파병, 분단의 고착, 외세의 개입 등 1960년대의 구체적 시대상황을 시의 배면에 깔고 있다. 그러니 시인에게 삼천리 한반도의 사월은 껍데기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반복적으로 촉구하고 있지만 사실 이 시의 핵심은 '껍데기'보다는 '중립의 초례청'에 있다. 이 '중립(中立)'에는 남과 북,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백두에서부터 한라까지, 동학년(1894년) 곰나루에서부터 4·19(1960년) 광화문까지, 백제의 후손 아사달과 아사녀의 못다 이룬 사랑에서부터 신라의 석가탑(無影塔)과 영지(影池)까지를 아우르는 이 중립의 스케일은 얼마나 장쾌한지.   이 웅대한 중립의 시 공간을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문장 하나로 관(貫)하고 통(通)해낸다. 이 중립이야말로 진정한 알맹이이자 흙가슴이며, '부끄럼을 빛내며' 두 몸이 맞절하여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수 있는 화해의 장(場)이라고 말하고 있다. 60년대 참여문학를 대표하는 이 시는 이후 민중·민족 문학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고 짐짓 물을 때, 시인이 보고자 했던 '하늘'은,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봄은〉)는 사월의 하늘이었을 것이다. 그런 하늘은 보지 못하는 한, 시인은 여전히 4월에는 껍데기는 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것이고,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애송시 100편 - 제 88편]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일러스트=잠산   꽃이 지고 있다. 손에 꼭 쥐었던 것을 놓아버리고 있다. 어떤 꽃의 낙화에는 만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뒷모습이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서기 때문에 낙화에는 구차함도 요사스러움도 없다.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이별은 등 뒤를 허전하게 만들고, 며칠 눈물을 돌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때에 떠나감은 말끔하고 쾌적하다.   새잎이 돋고, 줄기가 힘차게 뻗고, 꽃이 벙글고, 벌이 꽃의 외곽을 맴돌고, 비로소 어느 아침에는 꽃이 '하롱하롱' 지고, 꽃의 시간을 구구절절 기억하며 열매가 맺히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 큰 운행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귀는 빈천(貧賤)으로 바뀌고, 만남은 이별로 바뀌고, 건강은 늙고 죽음을 초래한다.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이런 것에는 견실성이 없다. 견실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불교에서는 "온갖 사물은 다 없어질 것이어서 공중의 번개 같고, 굽지 않은 질그릇, 빌린 물건, 썩은 풀로 엮은 울타리, 모래로 된 기슭과 같다"고 했다. 이형기(1933~2005) 시인의 초기 시에 속하는 이 시는 집착 없음과 아름다운 물러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형기 시인은 1950년 시 〈비오는 날〉을 잡지 《문예》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때 그의 나이 17세. 최연소 등단기록이었다. "시(詩)란 본질적으로 구축해 놓은 가치를 허무화시키는 작업이야. 시에 절대적 가치란 없어. 자꾸 다른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난 놈들이 시인이야. 그 무엇이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유 말이야." 그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소설, 평론, 시론, 수필 등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자연 서정을 선보였으나 현대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시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한국시사에서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 미학을 선보였다. "빈 들판이다/ 들판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가물가물 한 가닥/ 누군가 혼자 가고 있다/ 아 소실점!/ 어느새 길도 그도 없다/ 없는 그 저쪽은 낭떠러지/ 신의 함정/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도 모르는/ 길이 나 있다 빈 들판에/ 그래도 또 누군가 가고 있다/ 역시 혼자다."(〈길〉)   "고독과 고통은 시인의 양식"이라고 말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통스런 병석에 있으면서도 그는 아내의 대필로 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는 슬픔에 휩싸인 사람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아포리즘을 남겼다.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때는 슬퍼해 봐도 물론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슬픔은 가장 순수하고 따라서 값지다."     [애송시 100편 - 제 89편] 철길 -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주었다.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포옴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 일러스트=권신아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나직이 되뇌면 생각의 꼬리가 철길처럼 길게 이어지곤 한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는 순간 수수께끼라도 떠안은 듯 뒷말을 잇도록 한다. 김정환(54) 시인은 '철길이 철길인 것은'을 되뇌며 (철)길과 만남과 희망을 엮어 이렇게 노래한다. 만날 수 없음이 이리도 끈질기기 때문이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되뇌면 신촌역, 성북역, 용산역, 서울역을 오가던 아련한 철길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철로도 아니고, 철도도 아니고, 바로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이 인간 안쪽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길은 두 개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길과 또 하나의 길, 한 사람의 길과 또 한 사람의 길! 그 두 길은 서로 마주칠 수 없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서로 버팅김으로써 지나감의 속도와 무게를 견뎌내는 길이다. 지금 당장은 만날 수 없는 길이지만, 언제나 함께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시간의 누적인 역사(歷史)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1899년 제물포에서 노량진을 오가는 경인선이 첫 경적을 울린 이후 철길은 격동의 근대사를 달려왔다. 수탈하고 징병하고 피란하고 산업하러 가는 길에 철길이 있었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돌아간다. 상경하고 귀경하고 입영하고 귀대하고 여행하는 곳에 늘 철길이 있었다. 그러니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에 자갈돌처럼 깔려 있는 기다림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외로워서, 철길이 두 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철길이 철길인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철길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살아있음이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육교〉)고, "음침한 시대가, 끝났다는 듯이/ 기름 묻은 이슬이 검게, 선로 위에서 반짝인다/ 아직 젖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검붉은 눈동자〉)라며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고통도 절망도 이별도 끝이 있기 때문에 견딜 만한 것이고,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고, 결국 희망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한" 것이다. 당신이든 미래든 휴전선 너머든 완행이든 급행이든, 바로 그곳까지 달려가는 것이 철길인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버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을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 일러스트 잠산   김광균(1914~1993) 시인은 1930년대 후반 회화적 이미지즘의 새로운 문법을 선보였다. 그는 시에 '회화(繪?)'라는 웃옷을 입혔다. 모더니즘 시론가 김기림은 "소리조차를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진 시인"이라고 평했다.   김광균의 시는 독자들의 눈앞에 한 장 한 장의 데생을 그려 보이는 작법을 구사했다. 이런 데에는 김광균이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많은 화가와 직간접적으로 교우한 영향이 컸다. 김광균은 고흐의 그림을 처음 접한 충격을 이렇게 고백했다.   "고흐의 '수차(水車)가 있는 가교(假橋)'를 처음 보고 두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느낀 유럽 회화에 대한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계미술전집을 구하며, 거기 침몰하는 듯하여 나는 급속히 회화의 바다에 표류하기 시작했다. 시집보다 화집이 책상 위에 쌓이기 시작했고, 내 정신세계의 새로운 영양(營養)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는 섬세한 감각의 촉수로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우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뎃상〉)로 표현했고,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은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설야〉)로 표현했고, 성교당(聖敎堂)의 종소리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로 빛나게 노래했다.   마치 먼지 낀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시에서도 그는 공허하고 고독하고 스산한 마음을 '모양으로 번역'해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낙엽을 보면서 망명정부에서 발행하는 무가치한 지폐를 떠올리고, 폐허가 된 도룬(토룬) 시(市)의 공백(空白)한 하늘을 떠올린다. 구불구불한 길은 '구겨진 넥타이'로, 잎이 다 떨어진 포플러 나목(裸木)은 초라한 '근골'로, 불투명하고 얇은 구름은 '세로팡지(셀로판지)'로 표현함으로써 아주 구체적으로 대상을 조형한다.   낙엽을 망명정부의 무용한 지폐에 비유하거나, 공장의 지붕을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는 도시적 문명에 대한 시인의 비판 의식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나는 황량한 심사는 모색(暮色) 그득한 그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상실감과 창백한 감상(感傷)은 가족들의 죽음, 실향 등의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되었다. 해서 혹자는 김광균을 '엘레지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26년 12세의 나이로 '중외일보'에 처음 시를 발표하면서 천부적인 시안(詩眼)을 자랑했던 김광균 시인은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납북된 동생의 사업을 인수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렇지만, 그는 안개 자욱하던 한국 시단에 장명등(長明燈) 하나를 켜 놓았다. 아직도 그곳서 가늘고 고단한 불빛이 새어나오며 밤을 밝히고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 일러스트 권신아   "저질러라, 닥치면 겪는다, 긍게 긍갑다"를 인생의 3계명으로 삼고 사는 여성 시인이 있다. 실제로도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에서 살았으며, "치사량과 열정과 눈물 한 방울만큼의 광기와 고독/ 개미의 페로몬 같은 상상력"(〈짜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재료로 '시 같은 거짓말'을 제조하고 '거짓말 같은 시'를 타전하여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씩씩하고 싹싹한 안현미(36) 시인의 얘기다.   2006년에 엮어낸 그의 첫시집 《곰곰》은 이렇게 소개되었다. "활짝 핀 착란의 찰나에서 건져 올린 생짜의 시, 시라니!"라고.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던 내 아버지"(〈고장난 심장〉)와 "까치밥처럼 눈물겨운 엄마"(〈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의 틈바구니에서 '생짜'로 캐낸, 캄캄한 그러나 반짝이는, 검은 조개탄을 들여다보는 일만 같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비망록'은 있는 것이어서, 그 비망록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수록 그 젊음은 젊었음이 틀림없다. 이 시는 시인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여상, 산동네, 등록금, 비키니 옷장, 순대국밥, 번개탄, 연탄가스 중독, 헌책방 따위로 그려지는 90년대면서도 '여전히 70년대적인' 풍경이다.   거기에는 짐작되는 아픔이 있고 헤아려지는 가난과 고독이 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 '~이었지만'을 경계로 앞 문장은 뒤 문장에 의해 뒤집힌다. 경계는 해체된다.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라고 말할 때,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라고 말할 때도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무참히 무너진다. 이렇게 앞과 뒤는 가파르게 반전하지만 사실은 동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리듬감은 여기서 살아난다.   시인에게 '거짓말'은 '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말은 "목마른 시인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팔리지 않는 위독한 모국어로 시(詩)를 쓰고 있었다"(〈그해 여름〉)의 다른 표현이며, 그의 시에서는 거짓말을 제조하다, 환을 연주하다(보다), 몽유병에 꽂히다, 착란에 휩싸이다 등으로 변주된다.   그런데, 나를 울게 하고 결국은 가족이 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란 무엇에 대한 은유일까? 야행성의 창녀들일까, 치한 혹은 사내들일까, 불안이나 공포일까, 죽음일까…… 어쨌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거짓말을 제조하다〉). 그것은 진행형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2편]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일러스트=잠산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중략)/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5·18광주항쟁을 최초로 형상화한 이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썼던 시인이 바로 김준태(60) 시인이다.   이 시는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 1면에 일부 게재되었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나라 밖으로도 알려졌다. 이 시 발표 후 전남매일은 강제 폐간되었고, 김준태 시인은 재직하던 전남고교에서 해직되었다. 이 일례는 그의 문학적 이력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진보적 문인인 김준태 시인은 시를 통해 대동세상(大同世上)에의 열망을 노래해왔다.   남도의 입심을 잘 살려가며 시를 써내는 김준태 시인. 그의 시 세계의 원적(原籍)은 농민시이다.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에서도 그랬고, 그 이후 발표한 〈밭시〉 연작에서도 그랬다. "칼과/ 흙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흙을/ 찌른 칼은/ 어느새/ 흙에 붙들려/ 녹슬어버렸다"(〈칼과 흙-밭시(詩) 52〉). 그는 흙의 건강한 생명력을 강하게 신뢰하는 시인이다.   시 〈참깨를 털면서〉는 김준태 시인의 데뷔작이다. 밭에서 할머니와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가 참깨를 털고 있다. 할머니는 깻단을 슬슬 막대기질 하지만, '나'는 산그늘이 내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조바심을 낸다. 명령하듯 깻단을 한번 내리치면 복종하듯 솨아솨아 쏟아지는 깨알들이 기막히게 신기하고 신이 난다. 그예 모가지까지 털다가 꾸중을 듣는다. 목숨 가진 것에 대한 조금의 외경도 포용도 없이 무턱대고 털어대는 쾌감에 정신없으니 왜 혼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의 본직을 잘 잊고 사는 나도 할머니 곁에서 참깨를 털며 한 차례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참깨농사뿐만 아니라 사람농사까지 원융(圓融)하게 지어온 그 할머니로부터 꺼끌꺼끌한 사투리로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준엄한 역사의식으로 당대에 대응해 우직하게 노래하는 김준태 시인의 또 다른 관심사는 통일문학이다. 말을 구부리거나 곧은 문장을 비틀어서 만든 시가 아니라 '심장을 싸늘하게 감싸는' 시를 찾는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안테나의 촉수가 쉴 새 없이 작동되어야 하고 상황이 타전이 되어 오면 재빠르게 이웃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혹은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시인이 아니던가." 현실로부터 비켜서지 않는 그의 열정은 폭포수 같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3편] 감나무 -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이 고향 같은 '감'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15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 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애송시 100편 - 제 94편]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 끝 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일러스트 잠산   정끝별(44) 시인의 시는 경쾌하다. 언어에 용수철 같은 탄력이 있고 집중력 있게 나아간다. 그녀의 시는 '불붙는 것'을 읽어내는 솜씨가 있다. 시적 대상이 갖고 있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읽어내는 놀라운 수품(手品). 하나 속에 들어있는 상반된 성격의 팽팽한 대립을 말할 때 그녀의 시는 유니크(unique)하다. 그녀의 시는 모임과 빠져나감, 격렬함과 멸렬함, 달아남과 풀어줌 등 이 세상의 모든 시적 대상이 아마도 갖고 있을 상반된 두 성격, 한데 엉킨 두 성격을 표현한다. 해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열망을 추슬러서 세상 안으로 돌아와 자리잡을 때 정끝별의 시에는 물기가 번지고 리듬이 인다"(소설가 김훈의 말).   이 시에서도 시인은 허공에 혹은 담장에 맞닥뜨린 가지의 엉킨 두 마음을 읽어낸다.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감행의 신명이 공존할 것이다. 다만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는 혼연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것을 범박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의 배후로써 우리는 금단과 망설임과 삶의 궁기(窮氣)를 넘어선다. 사랑 아니라면 어떻게 한낱 가지에 불과한 우리가 이 세상의 허공을, 허공의 단단한 담을, 허공의 낙차 큰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정끝별 시인은 시 에서 우리의 삶은 "조율되지 않은 건반 몇 개로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낡아가는 악기는 쉬지 않고 음악소리를 낸다. 나 딸 나 애인 나 아내 나 주부 나 며느리 나 학생 나 선생 응 나는 엄마 그리고 그리고 대대손손 아프디아픈 욕망의 음계, 전 생을 손가락에 실어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 이 시에서처럼 그녀의 시는 삶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을 딛고 나아간다. 길의 상처를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타이어의 둥근 힘처럼. 조율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가 없다면 우리 삶의 악보는 진혼곡 그 자체일 터. 그녀의 시가 각별한 것은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의 음계를 연주하는, 이 특별한 식미(食味)에 있다.   바람을 표절하고,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하고,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하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고 싶다는 정끝별 시인. 그녀의 시는 봄나물처럼 생기발랄하다. 부럽게 상큼한 맛으로 그녀의 시는 우리의 입맛까지 살려준다.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며 지친 이의 마음에 숟가락을 쥐여주는 이 시는 얼마나 푸근푸근한가.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쓰는 것에 지쳐 밥이 먼저 쓰다/(중략)/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떼꿍한 눈이 머리를 쓰다듬는 저녁"().      [애송시 100편 - 제 95편]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 일러스트=권신아   이장욱(40) 시인의 시는 몽롱하다 아니 명쾌하다. 난해하다 아니 낯설다. 좀 다르게 말해보자. 그는 낮을 사는 시인이다 아니 밤을 사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다 아니 소설가다. 노문학자다 아니 (픽션)에세이스트다 아니 비평가다. 현대시 모더니티의 한 극점에 서 있는 '우울한 모던보이'다, 아니 서정시의 안부(內部)를 공략하는 '진정한 인파이터'다. 짐작하겠지만, 그는 그 모두이면서 단지 문학 그 자체이다. 이 시의 묘미도 이런 어울림에 있다. 대화와 독백, 여기저기서 끌어온 문장들의 인용과 변용, 절망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경쾌함, 뜬금 없고 돌연한 조증(躁症)과 울증(鬱症)의 변주, 비극적이면서 냉소적인 다변(多辯)으로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잽이 장기인 시이다.   파이터!라는 말은 자극적이다. 인파이터! 라고 듣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전의(戰意)가 꿈틀거린다면 당신은 사각의 링 위에서 난투극을 벌여본 적이 있거나 벌이고 있는 자다. 외곽을 돌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아웃파이터이거나 상대에게 바짝 달라붙어 저돌적인 공격을 퍼붓는 인파이터일 것이다. 1982년 겨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파이터 맨시니의 강펀치를 맞고 맞고 또 맞으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복서 김득구, 그 경기에서 김득구는 분명 맨시니보다 더 인파이터였다. 그러나 김득구는 오는 펀치를 피해 되받아치는 카운터 펀치, 그 한 방의 나이스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   "코끼리를 천천히 허물어지는 코끼리를/ 그대는 본 적이 있으십니까. (…) 그의 거대한 육체가/ 황폐하지 말라 황폐하지 말라 중얼거리듯/ 무심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자세로 무너져가는/ 그 아늑한 풍경을"(〈코끼리〉). 김득구는 그렇게 무너졌다. 가출해 구두닦이를 전전하다 헝그리 복서로 막 인생이 피려고 할 그때, 14회전까지 계속 얻어맞았지만, 그때까지 버텨온 김득구의 드림, 김득구의 땀과 눈물, 김득구의 피로, 김득구의 공포…김득구는 살아 생전 술을 마시면 노래했다. "권투란 무엇인가, 맞는 걸까, 때리는 걸까".   이 사각의 링에서 그 누군들 단 한 방의 펀치도 맞지 않으면서 단 한 방의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아웃파이터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야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일 뿐, 이름하여 '인파이터 코끼리군'. 우리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저 모호한 구름에 너무 바짝 붙어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 삶이란 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싸움임에 틀림없어!       [애송시 100편 - 제 96편] 비망록 -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일러스트=잠산 누구든 삶의 중요한 골자를 적는 하나의 비망록을 갖고 있다. 생(生)의 사건은 낙차가 있고, 중립(中立)이 없으므로, 그 자체로 강렬하지 않은 생(生)의 시간은 없다. 어떤 과거는 해약하고 싶어진다. 어떤 과거는 지금에라도 더 꽃피우고 싶어진다. 어느 때는 폭풍이 지나가는 바닷가처럼스산하고 절벽처럼 위태위태해 시큰한 냉기가 돌기도 한다. 어느 때는 사랑이 붉은 가슴에게로 오지만 눈물의 손바닥이 얼굴을 덮는 밤도 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모두 속기할 수는 없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는 미망(迷妄) 속에 살면서 잊을 수 없는 미망(未忘)만을 기록할 뿐.   김경미(49) 시인의 데뷔작인 이 시에는 스물네 살에서 스물다섯 살로 넘어가는 나이의,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여성이 등장한다. 신(神)은 그녀의 절망을 구원하지 않았고,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으며, '산두목 같은 사내'는 끝내 그녀의 사랑이 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 그러나 젊은 열정이 어딘들 못 나서랴.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그예 젊은 열정은 생의(生意)를 내는 것. 마치 견고한   배는 풍랑에도 해를 입지 않듯이.   미래에 대한 이 적극적인 의욕은 시 〈겨울 강가에서〉에도 드러난다. "딸아 기다림은 이제 행복이 아니니/ 오지 않는 것은/ 가서 가져 와야 하고/ 빼앗긴 것들이 제 발로 돌아오는 법이란 없으니/ 네가 몸소 가지러 갈 때/ 이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란 없으리". 그러나, 이 굽히지 않는 마음이 20대의 젊음에게만 있을쏜가. 우리는 또 내일을 만나고, 내일은 공백(空白)의 페이지이고, 내일은 새롭게 써야 할 비망록인 것을.   고형렬 시인의 표현대로, 김경미 시인은 "맵차고도 직정적인 여성시인"이다. 그녀는 자기 혐오와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과 전면전을 치르는 시인이다. 해서 그녀의 시는 이 세상의 패악함과 간활함에 맞선다. 시 〈나의 서역〉의 도발적인 허무는 또 어떤가.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만나지 않는 동안만 우리는 비단 감촉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도록/ 만날수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 실물은 없다 아무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이렇게 솔직하게 속내를 꺼내 보이는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다시 만나 동백꽃처럼 모가지를 꺾으며 서로를 외면하게 될지라도. 다시 만나 과거의 비망록을 다시 열람하려는 용기, 그것이 우리의 가슴에 아직 남아있는 그리움 아니겠는가.     [애송시 - 제 97편]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문태준(38) 시인의 시에서는 뜨듯한 여물 냄새가 난다. 느림보 소가 뱃속에 든 구수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투실한 입모양이 떠오른다. 잘 먹었노라고 낮고 길고 느리게 음매- 울 것도 같다. 21세기 벽두의 우리 시단에서 그의 시는 '오래된 미래'다. 찬란한 '극빈(極貧)'과 '수런거리는 뒤란'을 간직한 청정보호구역이다.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히기도 했던 이 시는 겹겹의 배경을 거느리고 있다.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다.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맨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는 상상력의 음역은 웅숭깊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아버지의 맨발, 그 부르튼 한평생을 얘기하고 있다. 시를 포착하는 시적 예지와 시안(詩眼)의 번뜩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 제일 나중에 나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하중을 견뎌내고서는, 세상으로부터 제일 나중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맨발이다. 맨발로 살다 맨발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평속(平俗)한 세파를 화엄적으로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길 없는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든 부처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준 두 발에는 천 개의 바퀴살을 하나로 연결시킨 바퀴테와 바퀴통의 형상이 새겨있었다고 한다. 부처는 무량겁 지혜의 형상을,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이 맨발의 움직임은 적막하다. 어물전의 개조개가 무방비로 내놓았다가,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맨발을 거두어들이는 그 느린 속도에는 죽음이 묻어 있다. 무언가를 잃고 자신의 초라한 움막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맨발'의, 적나라한, 온 궁리를 다한 뒤끝의 거둠이다. 탁발승의 벌거벗은 적멸이요, 개조개 속에 담긴 부처다. '조문'하듯 만져주는 시인의 손길 또한 애잔하다. 개조개가 슬쩍 내보인 맨발에서 천길 바다 밑을 걷고 또 걸었던 성스러운 걸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범속(凡俗)한 빈궁 속에서 세계의 아득한 끝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차디찬 맨발을 만져본 사람에게 이 시의 적막함은 유난하다.   인연이든 시간이든 기적이든 순력(巡歷)을 다했기에 '바깥'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부르튼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기에, '아-' 하고 우는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느리고 느리게 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바깥〉)!     [애송시 100편 - 제 98편] 오산 인터체인지 -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 일러스트=잠산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건/ 사람뿐이다.// 시간에 집을 지으라/ 생각에 집을 지으라//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것은/ '오고 가는 것'들이다."(〈의자 6〉)   조병화(1921~2003) 시인의 시 〈의자 6〉을 읽고서 나는 망연히 물처럼 앉아 있다. 나의 바깥은 바람 가듯 물결 지듯 지나가는 것이 있다. 순간순간이 작별이다. 여관이 여관에 들었다 나가는 하룻밤 손님과 작별하듯이. 허공이 허공에 일었다 잦아드는 먼지와 작별하듯이.   그리고 〈오산 인터체인지〉를 다시 읽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보인다. 사랑이 갈라서는 것이 보인다. 맞잡았다 놓는 당신과 나의 손을 안개가 물컹물컹 잡아 쥔다. 안개를 두른 당신과 나의 행로에 대해 알 방도가 없다. 나는 동쪽으로 사십 리를 가지만, 당신은 남쪽으로 천 리를 가야 한다. 내가 가야 할 거리보다 당신이 가야 할 거리가 까마득하게 더 멀다. 당신이 나를 떠나 보내는 거리보다 내가 당신을 떠나 보내는 거리가 훨씬 멀다. "자, 그럼"이라는 대목은 또 어떤가. 가슴이 아프다. "자, 그럼"이라는 표현에는 뒤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단호한 듯 순응하는 듯 "자, 그럼"이라고 말하지만, 그 음색에는 애써 숨긴 슬픔의 기색이 역력하다.   이 시에서처럼 조병화 시인은 단독자인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밀통하고 내통했다. 꾸밈이 없는 어투로 그는 생애 내내 우리네 도시인들의 슬픔을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비밀을 아느냐// 나는 아직 어려서// 슬픔이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능력"(〈너는 나의 빛〉). 그는 '편운(片雲)'이라는 호를 썼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의 발간을 계기로 등단한 후 유고시집을 포함해 총 53권의 창작시집과 시론집, 수필집 등 무려 16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럭비와 그림을 좋아했다. 럭비선수로 일본 원정까지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도 상당한 솜씨가 있었다. 여백을 넉넉하게 살린 그림을 즐겨 그려 여러 권의 화집을 냈고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시를 쉽게, 빨리 쓰되 한 차례 쓰고 난 뒤에는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애써 쓴 시를 짐짓 모르는 척 내버려두는 시간은 참으로 적막하였을 것이다.) 내버려 둔 시가 며칠 후에 다시 눈에 밟히면 고쳐 썼고, 눈에 어른거리지 않으면 매몰스레 아예 버렸다고 한다.   박재삼 시인은 "조병화 시인의 시에서는 어디서든 난해한 데라곤 없다. 그저 술술 읽히는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시 〈어머니〉도 난해한 데라곤 없다. "어머님은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샘"이라고 그는 썼다.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담담함은 더 감당을 못하겠다. 나직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의 내상이 더 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 그럼"이라고 말하며 작별을 고하는 사람, 그이에게는 "말도 무용해진다".     [애송시 100편 - 제 99편]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 희 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정희성(63) 시인은 해방둥이다. 올해로 38년의 시력에 4권의 시집이 전부인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시(詩)를 찾아서〉), 그의 시를 읽노라면 언(言)과 사(寺)가 서로를 세우고 있는 시(詩)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시는 나직하게 절제되어 있으며 민중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쉽게 읽히되 진정하고, 단정하되 뜨겁다. "그는 자신의 시처럼 단정하고 단아하지만 단아한 외형 속에는 강철이 들어 있다"고 했던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시와 시인과 시인의 삶이 버성기지 않은, 참 보기 좋은 경우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눈덮여 얼어붙은 허허 강벌/ 새벽종 울리면 어둠 걷히고/ 난지도 취로사업장 강바닥엔 까마귀떼처럼/ 삽을 든 사람들 뒤덮인다"(〈언 땅을 파며〉)나, "퍼내도 바닥이 흰 서러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놈이/ 팔다리만 성해서 무얼 하나/ 공사판엔 며칠째 일도 없는데/ 삽을 들고 북한산을 퍼낼까/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북한산 바닥까지 눈을 퍼낸다"(〈눈을 퍼내며〉) 등의 시와 함께 읽을 때,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라는 핵심 구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삽'이라는 한 글자에는 많은 의미와 뉘앙스가 담겨 있다. 파다, 덮다, 뜨다, 퍼담다, 퍼내다 등의 술어를 수반하는 삽질은 자신의 몸을 구부리고 낮춰야 하는 일이다. 한 삽에 한 삽을 더해야 하는 묵묵하고 막막한 일이다. 흙 한 삽, 모래 한 삽, 석탄 한 삽, 시멘트 한 삽이 모여야 밥이 되고 집이 되고 길이 되고 마을이 되고 무덤이 된다. 삽질의 정수(精髓)란 그 우직함과 그 정직함에 있다. 그 정직함을 배반할 때 삽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농민이든 노동자든, 노동의 본질이 삽질에 있는 것이다.   공자는 냇물을 보며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 아니듯, 저무는 것이 어디 하루뿐이겠는가. 인생도, 세월도 다 그렇게 흐르고 저문다. 흐르다 고이면 썩기도 하고 그 썩은 곳에 말간 달이 뜨기도 한다. 두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는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불운한 삶 그 안쪽으로 순하게 끌어안는 모습이다.   '저와 같아서'라는 말에는 수다나 울분이 없다. 하루가 저물듯, 고단한 노동이 저물어 연장을 씻듯, 노동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어낼 뿐이다. 저물어 가는 삶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었으리라. 흐르는 것들은, 저물 수 있는 것들은 그러한 정화와 치유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해서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느덧 '우리도 저와 같은' 마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으니!     [애송시 100편 - 제 100편]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일러스트=잠산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 1915년 결혼했으나 일찍 상처(喪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쓸쓸한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마음은 갈앉은 양금줄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이는 향맑은 구슬 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쓸쓸한 뫼 앞에〉)라고 노래했다. 고향인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 유학 때에는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가깝게 지냈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1950년 9·28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애석하게도 운명했다.   영랑은 '내 마음'을 많이 노래했다. 초기 시에서는 '내 마음'을 빛나고 황홀한 자연에 빗대어, 주로 3, 4음보 4행시에 담아 은은하고 섬세하게 노래했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자연에 순결한 마음을 실어 노래했다. 이것은 불순하고 추악한 식민지 현실을 대립적으로 드러내려는 속내가 있었다.   이 시를 김영랑은 나이 서른 살을 갓 넘긴 무렵에 썼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의 꿈과 그 시간의 보람,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설움과 불모성을 함께 노래했다. 이 시는 찬란한 광채의 '절정에 달한' 시간을 포착하듯 짧게 처리하면서 음울과 부재의 시간을 길고도 지속적으로 할애하는 데 시적 묘미가 있어 보인다. 시인은 낙화 후의 사건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떨어져 누운 꽃잎'의 시듦뿐만 아니라, 시듦 이후의 건조와 아주 사라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한 데에는 모란이 피는 희귀한 일의 극명(克明)한 황홀을 강조하기 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감미로운 언어의 울림을 살려내는 난숙함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눈물 속 빛나는 보람과 웃음 속 어둔 슬픔'을 특별하게 읽어낼 줄 알았던 영랑의 유다른 안목과 영리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가 사람이라면 그이는 무엇을 간곡하게 바라며 뛰는 가슴인가. 많은 시들이 울분과 슬픔의 감정을 표표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이 더 찬란한 쪽으로 몰아쳐 가기를 바라는 열망에 기초해 있다. 한편 한편의 시는 그런 마음의 예감과 기미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아무리 작은 것을 노래해도 이미 뜨겁고 거대하다.   애송시 100편의 연재를 오늘로써 마친다. 가쁘게 오면서 우리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꼈다. 열독에 감사드린다. 이제 당신의 마음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살아라. '허리통이 부드럽게' 드러난 보리의 오월을 보아라. 신록의 눈동자로 살아라. 당일(當日)에도 명일(明日)에도 우리네 마음은 '향 맑은 옥돌'이요, 은물결이오니.   출처 http://mc0713.com.ne.kr/essay/essay.html
10    하필이면 /장영희 [퍼온 글] 댓글:  조회:2877  추천:0  2014-09-21
장영희 (수필집 중. 2002년 제1회 ‘올해의 문장상’ 수상작) 번역가. 서강대 영문과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번역작품 ‘스칼렛’, ‘종이시계’, 수필집 (2000.샘터사) 외. 한국문학번역상 수상. 2002년 제1회 ‘올해의 문장상’ 수상. 하필이면 몇 년 전인가 십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중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사가 대충 이랬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하필이면 그날이 정기 휴일이고” 등등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이다”라는 ‘머피의 법칙’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분명히 ‘왜 나만?’이라는 의문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남의 인생은 별로 큰 노력 없어도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뿐더러 가끔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것 같은데, 왜‘하필이면’내 인생만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걸핏하면 일이 꼬이고, 그래서 공짜 호박은커녕 내 몫도 제대로 못 챙겨 먹기 일쑤냐는 것이다. 그런데 억울하기 짝이 없는 ! 것은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거다. 순전히 운명적인 불공평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벤츠 타고 탄탄 대로를 가는데, 나는 펑크난 딸딸이 고물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나도‘머피의 법칙’을 생각할 때가 많다. 한 예로 내 열쇠 고리에는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되는 열쇠가 두 개 달려 있는데, 하나는 연구실, 또 하나는 과 사무실 열쇠이다. 열쇠에 유성 펜으로 방 번호를 표시해 놓으면 그만이지만, 그러기도 귀찮고 또 그냥 재미도 있고 해서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둘 중 아무거나 꽂아 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수학적으로 따져 볼 때 확률은 분명히 반반인데, ‘하필이면’ 연구실 열쇠가 아니라 거의 과 사무실 열쇠가 먼저 손에 잡혀 두 번씩 열쇠를 돌려야 하는 일이 열이면 아홉이다. 그뿐인가, ‘하필이면’ 큰 맘 먹고 세차한 날은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고, 무엇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면 바로 내 앞에서 매진되고, 더욱이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내 어깨에 새똥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 한동안 서서 나의 ‘하필이면’의 운명에 경악했다. ! 1천만 서울 인구 중에 새똥 맞아 본 사람은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텐데 ‘하필이면’ 그게 나라니!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필이면’도 있다. 남들은 멀쩡히 잘도 걸어 다니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목발에 의지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펜만 잡으면 멋진 글이 술술 잘도 나오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도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다른 재주가 있느냐 하면 노래, 그림, 손재주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재능을 골고루 나눠주신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필이면’ 나만 깜빡하신 듯하다. 언젠가 치과에서 본 여성지에는 모 배우가 화장품 광고 출연료로 3억 원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3억이면 내가 목이 쉬어라 가르치고 밤 새워 페이퍼 읽으며 10년쯤 일해야 버는 액수인데, 여배우는 그 돈을 하루만에 벌었다는 것이다. 그건 재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타고난 생김새 때문인데,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다. 나는 내가 잘빠진 육체는 가지지 못했어도 그런! 대로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내 아름다운 영혼에는 3억 원은커녕 3백 원도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둘 다 못 가지고 태어날 바에야 아름다운 몸뚱이를 갖고 태어날 일이지 왜 ‘하필이면’ 3백 원도 못 받는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태어났는가 말이다. 그래서 ‘하필이면’이라는 말은 내게 한심하고 슬픈 말이다. 그런데 어제 저녁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조카 아름이가 내게 던진 ‘하필이면’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귀여운 팬더 곰 인형을 하나 사서 아름이에게 갖다 주자 아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나 사촌들도 많고,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자기가 받을 자격도 없는 듯한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는 아름이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외국에서 살다 와 우리말이 아직 서투른 아름이가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예였지만, 아름이 처럼 ‘하필이면’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 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 은 행복이 참으로 가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좋은 형제들과 인연 맺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무슨 권리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가. 또 나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똑똑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게다가 실수 투성이 안하무인인데다가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 장영희를 ‘하필이면’ 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사랑해 주는가(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양순하고 웃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잘빠진 육체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필이면’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니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이 새삼 부끄럽다. 창문을 여니, 우리 학생들이랑 일산 호수공원에 놀러 가기로 한 오늘, ‘하필이면’ 날씨가 유난히 청명하고 따뜻하다.
9    세계단편소설 묶음 댓글:  조회:10958  추천:0  2013-05-10
  모파상 체홉 오 헨리 포우 모옴 달 빛 목 걸 이 사 냥 귀 향 산 장 보 석 죽은 애인 悔 恨 쥘르 아저씨 의자 고치는 여인 乘 馬 올리브나무 숲 노 끈 트완느 쓸모없는아름다움 라틴어 回想 므느에트 첫 눈 두 친구 어느 女人의 告白   後 記 年 譜 歡 喜 여자의 행복 아뉴타 약혼녀 憂 愁 귀여운 여인 흥 정 뚱뚱이와 홀쭉이 상자속에 든 사나이 사모님 정 조 앨 범 우체국에서 함 정 골짜기 아가피야 夢 魔   後 記 年 譜 마음의 등불 5월은 결혼의 달 크리스머스 선물 분주한 브로커의 로맨스 시계추 뉴욕인 제조법 봄철에 생긴 일 백작과 결혼식 손님 추수감사절의 두 신사 마지막 잎새 사랑의 봉사 도원경의 방문객 사랑의 신과 재물의 신 정책 결혼 경관과 찬송가 물방아 있는 예배당 사랑의 마약 1딸라의 가치 셋 방 신성한 사과 20년 후 變  轉 인생은 연극이다 시인과 농부 잘못 낚은 연인   後  記 년 보 도둑맞은 편지 검정 고양이 그림자 모르그街의 살인사건 절름발이 개구리 아몬틸라도의 술통 어셔 집안의 沒落 윌리엄 윌슨 고자장의 心臟 黃金 딱정이 赤死病의 假面 陷穽과 錘 리지이아 베레니이스   後  記 년 보 비 진주 목걸이 美  德 어머니 萬物博士 호놀루루 詩  人 점  심 故  鄕 루이자 산비둘기 소리   後  記 년 보       까뮈 헤밍웨이 싸르트르 헷세 펄벅 姦 婦 벙어리들 손님 요나 자라는 돌 背敎者 異邦人   第 一 部   第 二 部   後 記 年 譜 세계의 서울 殺人者   매코머의 짧고 幸福한 生涯   하루의 기다림 미시간 湖畔 키리만자로의 눈(雪) 兵士의 집 세상의 빛 三日間의 暴風 不敗者 이제 몸을 눕히고 스위스에 대한 警意   後 記 年 譜 壁 허물없는 사이 에로스트라트 房 어느 指導者의 어린 時節 作家는 왜 글을 쓰는가   後 記 年 譜 7 月 約 婚 戀愛하는 靑年 暴 風 少年時節 크눌프 放 浪 가을의 徒步旅행   後 記 年 譜     後 記 한국 단편소설 40편 작 품  목 록 단편소설 40편" border="0" height="29" real_src="http://www.jingood.x-y.net/Back2.gif" src="http://www.jingood.x-y.net/Back2.gif"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list-style: none;" title="한국 단편소설 40편" width="34" />    작품 (작가) 작품 (작가)         감자 (김동인) 비오는 날 (손창섭)         금당벽화 (정한숙) 사랑 손님과 어머니 (주요섭)         금따는 콩밭 (김유정)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김강사와 T교수 (유진오) 성황당 (정비석)         꺼삐딴 리 (전광용) 소나기 (황순원)         날개 (이   상) 수난 이대 (하근찬)         논 이야기 (채만식) 쑈리 킴 (송병수) 달밤 (이태준) 오발탄 (이범선)         동백꽃 (김유정) 요람기 (오영수)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요한 시집 (장용학)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운수 좋은 날 (현진건)         모래톱 이야기 (김정한) 원고료 이백 원 (강경애)         모범 경작생 (박영준) 젊은 느티나무 (강신재)         무녀도 (김동리) 제삼 인간형 (안수길)         바비도 (김성한) 치숙 (채만식)         백치 아다다 (계용묵) 탈출기 (최서해)         벙어리 삼룡이 (나도향)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별 (황순원) 피로 (박태원)         봄봄 (김유정) 홍염 (최서해)         불꽃 (선우휘) 화수분 (전영택)         B사감과 러브레터 (현진건)
8    주제별로 보는 동시 동시조 및 동요 묶음 [한국] 댓글:  조회:4294  추천:0  2013-03-29
                               주제별 동시 아기 아이   꽃 밭   -윤석중- 울까 말까 -이종택- 새 고무신 -이종택- 놀이터 아이들 -김종두- 아기와 나비 -강소천- 비는 이럴 때 오는거야 -강현영- 아가 손 -신현득- 아이와 나비 -김정환- 아이들은 알아요 -박화목- 토요일이 되면 -손광세- 아기잠 -김종상- 까까중 -김영일-       asella.net         사랑 정               누가 그랬을까 -이종택- 내 이름 -김원석- 떠나보고야 -권태응- 한 이불 속에서 -엄기원- 꽃밭과 순이 -이오덕- 풍선장수 아저씨 -정운모- 달 -이원수- 서로가 -김종상- 손가락 글씨 -박경종-       asella.net             계절           가을밤 -윤석중- 이슬비 색시비 -윤석중- 코스모스 -박경용- 허수아비 -손광세- 꽃씨 -최계략- 봄시내 -이원수- 단풍 -김종상- 달밤 -박용열- 무지개 -박경종- 발자국 -작자미상-       asella.net             자연           가을밤 -윤석중- 이슬비 색시비 -윤석중- 코스모스 -박경용- 허수아비 -손광세- 꽃씨 -최계략- 봄시내 -이원수- 단풍 -김종상- 달밤 -박용열- 무지개 -박경종- 발자국 -작자미상-       asella.net             동물     닭   -강소천- 달팽이 -김동극- 달팽이 -김종상- 달팽이 -권태응- 집오리 -권오훈- 참새네 말 참새네 글 -신현득- 귀뚜라미 -방정환- 병아리 -윤동주- 귀뚜라미와 나와 -윤동주- 참말 -이무일- 나비 -이준관- 새와 나무 -이준관- 노랑나비 -김영일- 거북 -이종문- 늙은 잠자리 -방정환-       asella.net     물건             태극선 -윤석중- 찻숟갈 -박목월- 크레파스 -손광세- 꼬까신 -최계략- 풍선의 고향 -작자미상-       asella.net                                                주제별 동시조           도리 행실 뉘라서 까마귀를   -박효관- 부모님 계신 제는 -이숙량- 태산이 높다하되 -양사언- 잘 가노라 닫지 말며 -김천택- 내해 좋다하고 -변계량- 감장새 작다 하고 -이 택- 동창이 밝았느냐 -남구만- 가마귀 검다 하고 -이 직- 남이 해할지라도 -이정신- 세상 사람들이 -작자미상- 말하기 좋다하고 -작자미상- 까마귀 싸우는 골에 -작자미상-           asella.net             기개 기상     수양산 바라보며   -성삼문- 이 몸이 죽어가서 -성삼문- 적토마 살지게 먹여 -남 이- 장검을 빼어 들고 -남 이- 십 년 가온 칼이 -이순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이순신- 이런들 어떠하며 -이방원- 이 몸이 죽고 죽어 -정몽주- 삭풍은 나무 끝에 -김종서- 장백산에 기를 꽂고 -김종서- 까마귀 눈비 맞아 -박팽년-           asella.net                세월 풍류   재 너머 성권농 집에   -정 철- 흥망이 유수하니 -원천석- 지난 해 오늘 밤에 -안민영- 춘산에 눈 녹인 바람 -우 탁- 한 손에 막대 잡고 -우 탁- 산은 옛 산이로되 -황진이- 청초 우거진 골에 -임 제- 짚 방석 내지 마라 -한 호- 오백년 도읍지를 -길 재- 가노라 삼각산아 -김상헌- 오리 짧은 다리 -김 구- 청산도 절로 절로 -김인후- 나비야 청산가자 -작자미상-       asella.net     그리움 사랑 거짓말이   -김상용- 철령 높은 봉에 -이항복- 내 마음 베어 내어 -정 철-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마음이 어린 후이니 -서경덕- 천만리 머나먼 길에 -왕방연- 있으렴 부디 갈다 -성 종- 풍상이 섞어 친 날에 -송 준- 바람 불으소서 -작자미상- 말은 가자 울고 -작자미상-           asella.net           즐거운 동요방                                숲속을 걸어요   유종슬 * 정연택 이슬   김동호 * 김동호 네잎 클로버 박영신 * 박영신 아기 염소 이해별 * 이순형 화가 이강산 * 이강산 하늘나라 동화 이강산 * 이강산 나뭇잎 배 박홍근 * 윤용하 노을 이동진 * 안호철 종이배 이요섭 * 이요섭 무지개 박희각 * 홍난파 소풍 외국곡 리듬악기 노래 이계석 * 이계석       asella.net                                            어린이                                 새싹들이다   좌승원 * 좌승원 어린이 행진곡   길묘순 * 정세문 파란마음 하얀마음 어효선 * 한용희 어린이 노래 강소천 * 나운영 제 힘으로 척척 정세문 * 정세문 둥글게 둥글게 이수인 * 이수인 나팔 불어요 김영일 * 박태현 나의 하루 정 근 * 이수인 모두 다 뛰놀자 박경문 * 김방옥 햇볕은 쨍쨍 최옥란 * 홍난파 섬집아기 한인현 * 이흥렬 동네 한 바퀴 작자미상 * 외국곡 공놀이 이슬기 * 김석곤       asella.net         사랑 정                                     꽃밭에서   어효선 * 권길상 어머님 은혜 윤춘병 * 박재훈 스승의 은혜 강소천 * 권길상 구름 정 근 * 이수인 아빠 김봉학 * 김봉학 아빠의 얼굴 하중희 * 이수인 아빠 힘내세요 권연순 * 한수성 과꽃 어효선 * 권길상 작별 작사 미상 * 외국곡 그리운 언덕 강소천 * 정세문 이 몸이 새라면 독일 민요 기차를 타고 김옥순 * 김태호 그림 그리고 싶은 날 이강산 * 오세균 별 보며 달 보며 유성윤 * 유병무         asella.net     계절           가을밤 -윤석중- 이슬비 색시비 -윤석중- 코스모스 -박경용- 허수아비 -손광세- 꽃씨 -최계략- 봄시내 -이원수- 단풍 -김종상- 달밤 -박용열- 무지개 -박경종- 발자국 -작자미상-       asella.net                                                 자연                                    금강산   강소천 * 나운영 초록바다   박경종 * 이계석 파란 하늘 원치호 * 기 청 반달 윤극영 * 윤극영 모래성 박홍근 * 권길상 낮에 나온 반달 윤석중 * 홍난파 방울꽃 임교순 * 이수인 방울새 김영일 * 김성태 등대지기 고 은 * 영국민요 과수원 길 박화목 * 김공선 뻐꾸기 박목월 * 외국곡 바다 문병호 * 권길상 나팔 불어요 김영일 * 박태현       asella.net         전래동요                                아리랑   우리나라 민요 천안 삼거리   우리나라 민요 군밤타령 우리나라 민요 비자나무 전래동요 꼬방꼬방 전래동요 대문놀이 전래동요 풍년가 우리나라 민요 쾌지나칭칭나네 우리나라 민요 두꺼비 전래동요 두껍아 두껍아 전래동요 * 정문섭 개구리 전래동요 기와 밟기 전래동요 둥당기 타령 우리나라 민요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전래동요       asella.net   출처 통이술이 동시나라
7    명작동화 및 우수동화모음 [한국] 댓글:  조회:3957  추천:0  2013-03-22
지은이 동화 제목 강민숙   할머니와 손수레 강소천   꽃신 〃   꾸러기와 몽당연필 〃   꿈을 찍는 사진관 〃   꿈을 파는 집 〃   돌멩이 〃   맨발 〃   조그만 사진첩 〃   짧은 동화 3편 강순아   왕릉과 가슴이 붉은 딱새 강원희   잿빛 느티나무 〃   종마을 강정규   포도 이야기 강정훈   가슴속의 가시 강준영   전쟁과 촛불 〃   진주조개 이야기 구민애   날아가는 항아리 권용철   들국화 〃   하느님의 빨래 권정생   강아지똥 권정생   무명저고리와 엄마 〃   새벽 종소리 〃   소 권태문   초대 전보를 친 항아리 김병규   울 줄 아는 꽃 김 성   꽃집 아이 김성도   대포와 꽃씨 〃   색동 김수미   소리들의 꿈 김여울   하느님의 발자국 소리 김영순   가을 하늘처럼 김요섭   늙은 나무의 노래 〃   안개와 가로등 김자연   항아리의 노래 〃   해바라기를 닮은 아이 김자환   미리내주유소 김재원   하느님의 우산은 누가 고칠까? 김재창   난쟁이와 키다리 김진우   돌 주머니 나무 김한규   분이와 들국화 김향이   베틀 노래 흐르는 방 남미영   소년병과 들국화 마해송   바위나리와 아기별 〃   박과 봉선화 박경종   다람쥐 장수 박상규   무거리 박상재   서울을 떠난 황조롱이 〃   술 끊은 까마귀 〃   표주박 아저씨 박성배   고추잠자리 꿈쟁이의 흔적 〃   웃음꽃 아저씨 〃   하나님, 접니다 박숙희   꿈마차 황금마차 〃   시인의 눈물 〃   케세라 임금님 박재형   어머니의 초상화 박춘희   돼지 같은 아저씨 방정환   만년 셔츠 〃   양초 귀신 배익천   냉이꽃의 추억 배익천   므므와 재재 〃   바람과 음악책 〃   풀종다리의 노래 선안나   나는 그냥 나야 소중애   복 없는 아이 손기원   다예와 낮달 손수자   걸어다니는 바다 〃   깃발 손연자   어린 소매치기 손춘익   달과 곱추 〃   새를 날려 보내는 아저씨 〃   선생님을 찾아온 아이들 〃   시인과 귀뚜라미 신지식   개개비의 슬픔 〃   철새와 들국화 신지은   춤추는 부처님 양점열   정원사와 작은 풀꽃 원유순   개미와 민들레 〃   바구니 할머니 유영선   구름다리 윤사섭   목각 인형 윤수천   감나무 이경남   목탁 속에 사는 새 이구조   지붕 위에 올라가 이규희   금붕어 할머니 〃   깔끔이 아저씨 이동렬   병사들과 무지개 〃   솔새가 물어온 메아리 〃   하늘을 나는 조약돌 이상배   작은 돌멩이 이야기 이슬기   아지랑이로 짠 비단 이영호   밤섬 식구들 〃   보이나 아저씨 이영희   날씨 굽는 가마 〃   달님의 선물 이원수   밤 전차의 소녀  〃    엉겅퀴 이주홍   가자미와 복장이 〃   메아리 이주훈   물아이 이주훈   밤에 찾아온 손님들 이준연   까치를 기다리는 감나무 〃   나는 꽃병이다 〃   바람을 파는 소년 〃   인형이 가져 온 편지 〃   조랑말 이효성   달과 뱃사공   임신행   겨울 망개 임인수   꿈꾸는 나무 장수철   소라 껍질의 소원 정선웅   어느 통지표 얘기 정영애   날개 없는 천사 정진채   연밥 〃   초록사람 이야기 정채봉   물에서 나온 새 〃   숨 쉬는 돌 〃   신호등 속의 제비집 〃   오세암 조대현   종달새와 소년 〃   종이꽃 조대현   할머니의 손바닥 주소 최영재   대통령의 말 한마디 최인학   춤추는 학 최태호   이상한 안경 허동인   마분지와 고무줄 황영애    눈송이 꽃송이 안데르센   미운 오리 새끼
6    한국 현대시 모음 ,고시조 모음 및 해설(외 고전 시가모음) 댓글:  조회:18694  추천:1  2013-03-06
  - 가-   산상의 노래(조지훈)       산에 대하여(신경림) 가구의 힘(박형준)   산에 언덕에(신동엽) 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   산이 날 에워싸고(박목월) 가는길(김소월)   산유화(김소월) 가는 길(김광섭)   산 1번지(신경림) 가을비(도종환)   살구꽃 핀 마을(이호우) 가을에(김명인)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오규원) 가을에(정한모)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박인환) 가을의 기도(김현승)   살아 있는 날은(이해인) 가재미(문태준)   삼남에 내리는 눈(황동규) 가정(박목월)   상리과원(서정주) 가정(이상)   상하(박목월) 가즈랑집(백석)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간(윤동주)   상행(김광규)   간격(안도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 갈대(신경림)   새(박남수) 감초(김명수)   새(김지하) 강2(박두진)   새(천상병) 강강술래(이동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강강술래(김준태)   새벽1(정한모) 강우(김춘수)   새벽편지(곽재구) 개봉동과 장미(오규원)   샘물이 혼자서(주요한) 개화(이호우)   생명(김남조) 거문고(김영랑)   생명의 서(유치환) 거산호Ⅱ(김관식)       거울(이상)   생의 감각(김광섭) 거울(박남수)   서시(윤동주) 거짓 이별(한용운)   서울길(김지하) 검은 강(박인환)   서울꿩(김광규) 겨울 강에서(정호승)   서해(이성복)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황지우)   서해상의 낙조(이태극) 겨울 노래(오세영)   석류(안도현) 겨울 들녘에 서서(오세영)   석문(조지훈) 겨울 바다(김남조)   석상의 노래(김관식) 겨울 숲에서(안도현)   석양(백석) 겨울일기(문정희)   선운사에서(최영미) 견우의 노래(서정주)   선제리 아낙네들(고은) 결빙의 아버지(이수익)   선한 나무(유치환) 고개(이시영)   설날 아침에(김종길) 고고(김종길)   설야(김광균) 고목(김남주)   설일(김남조) 고재국(최두석)   섬(정현종) 고층 빌딩 유리창닦이의 편지(김혜순)       고풍의상(조지훈)   섬진강1(김용택) 고향(백 석)     성묘(고은) 고향(정지용)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고향길(신경림)   성에꽃(최두석) 고향 앞에서(오장환)   성탄제(김종길) 과목(박성룡)   성탄제(오장환) 광야(이육사)   성호부근(김광균)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이문재)   세상의 나무들(정현종) 교목(이육사)   소금 바다로 가다(김명인) 교외Ⅲ(박성룡)   소나무에 대한 예배(황지우) 구두(송찬호)   소년에게(이육사) 구두 한 켤레의 시(곽재구)   손(최두석) 국수(백석)   손무덤(박노해) 국토서시(조태일)   송신(신동집) 국화 옆에서(서정주)   쇠를 치면서(정희성) 국경의 밤(김동환)   수라(백석) 귀가(최두석)   수색으로 가며(고형렬) 귀고(유치환)   수정가(박재삼) 귀뚜라미(나희덕)   수정가(박재삼) 귀뚜라미(황동규)   숲(강은교) 귀천(천상병)   숲(김진경) 귀촉도(서정주)   수철리(김광균) 그 나무(김명인)       그 날(이성복)   쉽게 쓰여진 시(윤동주) 그 날이 오면(심훈)   슬픈 구도(신석정) 그릇1(오세영)   슬픔으로 가는 길(정호승) 그리움(이용악)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문정희)   승무(조지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시1(김춘수) 그 방을 생각하며(김수영)   시법(정진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나희덕)   식목제(기형도) 그 샘(함민복)     신기료 할아버지(김창완) 그 여름의 끝(이성복)   신록(이영도) 그의 반(정지용)   신부(서정주) 금강(신동엽)   십자가(윤동주) 기항지 1(황동규)   싸늘한 이마(박용철) 길(김소월)   쌍봉낙타(김승희) 길(김기림)    - 아 - 길(윤동주)   아마존의 수족관(최승호) 길(정희성)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깃발(유치환)   아우의 인상화(윤동주)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신석정) 꽃(김춘수)   아침 이미지(박남수) 꽃(박두진)   안개(기형도) 꽃(이육사)   알 수 없어요(한용운) 꽃덤불(신석정)   압해도(노향림) 꽃밭의 독백(서정주)   양심의 금속성(김현승)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꽃잎 절구(신석초)   어떤 귀로(박재삼)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김용택)   어떤 출토(나희덕) 꽃 피는 시절(이성복)   어린 게의 죽음(김광규) 꿈 이야기(조지훈)   어머니(정한모)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김영랑)   어머니1(이성복) - 나 -   어머니 곁에서(조태일)    나그네(박목월)   어머니의 그륵(정일근)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어머니의 물감상자(강우식)    나는 별아저씨(정현종)   어머니의 총기(고진하) 나는 왕이로소이다(홍사용)   어서 너는 오너라(박두진)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얼은 강을 건너며(정희성) 나목(신경림)   엄마 걱정(기형도) 나무(박목월)   여승(백석) 나무를 위하여(신경림)   여승(송수권) 나뭇잎 하나(김광규)   여우난 곬족(백석) 나비와 광장(김규동)   연륜(김기림) 나비의 여행(정한모)   연시(박용래) 나의 집(김소월)       나의 침실로(이상화)   연탄 한 장(안도현) 나의 칼 나의 피(김남주)   오감도-제1호(이상) 낙엽(복효근)   오랑캐꽃(이용악) 낙엽끼리 모여 산다(조병화)   오렌지(신동집) 낙타(김진경)   오월(김영랑) 낙화(조지훈)   오적(김지하) 낙화(이형기)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도종환) 난초(이병기)   와사등(김광균)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김종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낡은 집(이용악)   외인촌(김광균) 남사당(노천명)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이용악)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   우리가 눈발이라면(안도현)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납작납작-박수근 화법을 위하여(김혜순)   우리나라 꽃들에겐(김명수) 내 마음을 아실 이(김영랑)   우리나라 풀이름 외기(송수권)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최승호)   우리 동네(홍윤숙) 너는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이용악)   우리 동네 구자명 씨(고정희)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우물(정호승) 너를 사랑한다(강은교)   운동(이상) 너에게(신동엽)   울릉도(유치환) 너에게 묻는다.(안도현)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노동의 새벽(박노해)   원시(오세영) 노래와 이야기(최두석)   월명(박제천) 노정기(이육사)   월훈(박용래) 녹을 닦으며-공초14(허형만)   위독(이승훈) 논개(변영로)   유리창(정지용)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한용운)   윤사월(박목월) 농무(신경림)   율포의 기억(문정희)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신동엽)   은수저(김광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김종삼)   은행나무(곽재구) 누룩(이성부)   의자 · 7(조병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김영랑)   이 가문 날에 비구름(김지하) 눈(김수영)   이름(이시영) 눈길(고은)   이별가(박목월) 눈물(김현승)   이별노래(정호승) 눈 오는 밤에(김용호)   이별은 미의 창조(한용운) 눈 오는 지도(윤동주)   이 사진 앞에서(이승하) 눈이 내리느니(김동환)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오규원) 느릅나무에게(김광규)   20년 후의 가을(곽재구) 능금(김춘수)   이중섭4(김춘수) 님의 침묵(한용운)      이중섭의 소(이대흠) - 다 -   일월(유치환) 다리 우에서(이용악)   임께서 부르시면(신석정) 다부원에서(조지훈)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다시 밝은 날에(서정주)   입추(김현구) 달밤(이호우)     달.포도.잎사귀(장만영)     담쟁이(도종환)     답십리(민영)   - 자 - 당나귀 길들이기(오종환)   자동문 앞에서(유하) 당신을 보았습니다(한용운)   자모사(정인보) 대기 왕고모(고은)   자수(허영자) 대설주의보(최승호)   자야곡(이육사) 대숲 아래서(나태주)   자연(박재삼) 대장간의 유혹(김광규)   자화상(서정주) 대추나무(김광규)   자화상(윤동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나태주)   작은 부엌 노래(문정희) 뎃생(김광균)   작은 짐승(신석정) 도다리를 먹으며(김광규)   장롱이야기(박형준) 도봉(박두진)   장수산(정지용) 독을 차고(김영랑)   장자를 빌려(신경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김영랑)   장작패기(이수익) 돌의 노래(박두진)   재로 지어진 옷(나희덕) 돌팔매(신석초)   저녁길(김광규) 동승(하종오)   저녁 눈(박용래) 동천(서정주)   저녁에(김광섭) 동해 바다-후포에서(신경림)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들국(김용택)   적막강산(백석) 들길에 서서(신석정)   절정(이육사) 들판의 빈 집이로다(정진규)   접동새(김소월) 등산(오세영)   정념의 기(김남조) 딸그마니네(고은)   정동골목(장만영) 땅끝(나희덕)   정천한해(한용운) 때밀이수건(최승호)   조국(정완영) 떠나가는 배(박용철)   조그만 사랑 노래(황동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정현종)   종(설정식)   또 기다리는 편지(정호승)   종로 5가(신동엽) 또 다른 고향(윤동주)   종소리(박남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유치환)   주막에서(김용호)       죽도 할머니의 오징어(유하) - 라~마 -   쥐(김광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장정일)   즐거운 일기(최승자) 마른 풀잎(유경환)   즐거운 편지(황동규) 마음(김광섭)   지리산 뻐꾹새(송수권) 만술아비의 축문(박목월)   지비2(이상) 말(정지용)   직녀에게(문병란) 머슴 대길이(고은)   진달래꽃(김소월) 먼 후일(김소월)   진달래 산천(신동엽) 멀리 있는 무덤(김영태)   질경이(하종오) 멸치(김기택)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집오리는 새다(정일근) 모순의 흙(오세영)   - 차 - 목계장터(신경림)   찬밥(문정희) 목구(백 석)   참깨를 털면서(김준태) 목마와 숙녀(박인환)   참회록(윤동주) 목숨(김남조)   처서기(박성룡) 목숨(신동집)   처음 안 일(박두순) 못 위의 잠(나희덕)   철원평야(최두석) 묘지송(박두진)   청노루(박목월) 무등(황지우)   청산도(박두진) 무등을 보며(서정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양성우) 무심(김소월)   청포도(이육사) 무화과(김지하)   초록 기쁨(정현종) 문의 마을에 가서(고은)   초토의 시8(구상) 물구나무서기(정희성)   초혼(김소월) 물 끓이기(정양)   추억(김기림) 물통(김종삼)   추억에서(박재삼) 민간인(김종삼)   추운 산(신대철) 민들레꽃(조지훈)   추일서정(김광균)       추천사(서정주) 바   춘설(정지용) 바다1(정지용)   춘향유문(서정주) 바다에서(김종길)   출가하는 새(황지우) 바다와 나비(김기림)   치자꽃 설화(박규리) 바다의 층계(조향)   침향(서정주)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습...(김소월)       바라춤(신석초)   카 ~ 파 바람부는 날(박성룡)   커피 한 잔(오규원) 바람에게(유치환)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바람의 집-겨울판화1(기형도)   파도(김현승) 바위(유치환)   파 냄새 속에서(마종하) 바퀴벌레는 진화 중(김기택)   파도타기(정호승) 발열(정지용)   파랑새(한하운) 발효(최승호)   파밭가에서(김수영) 밤(이성부)   파장(신경림) 밤바다에서(박재삼)   파초(김동명) 밤비1(이성교)   팔원-서행시초·3(백석) 밥 먹는 법(정호승)   팽나무 쓰러, 지셨다(이재무) 방랑의 마음(오상순)   포스터 속의 비둘기(신동집) 배추의 마음(나희덕)   폭포(김수영) 백자부(김상옥)   폭포(이형기) 버팀목에 대하여(복효근)   푸른 옷(김지하) 벼(이성부)   푸른 하늘을(김수영)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하종오)   풀(김수영) 별국(공광규)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이용악) 별리(조지훈)   풀잎 단장(조지훈) 별 헤는 밤(윤동주)   풍장1(황동규) 병에게(조지훈)   프란츠 카프카(오규원) 병원(윤동주)   플라타나스(김현승) 보리피리(한하운)   피보다 붉은 오후(조창환) 봄(이성부)   피아노(전봉건) 봄비(이수복)       봄비(변영로)   하 봄은(신동엽)   하관(박목월) 봄은 간다(김억)   하루살이(김수영) 봄은 고양이로다(이장희)   하류(이건청) 봄을 맞는 폐허에서(김해강)   하숙(장정일) 봉황수(조지훈)   한(박재삼) 부르도자 부르조아(최승호)   한계령을 위한 연가(문정희) 부치지 않은 편지(정호승)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정희성) 북(김영랑)   한역(권환) 북어(최승호)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박남수) 북청 물장수(김동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김남주) 북 치는 소년(김종삼)   항해일지1-무인도를 위하여(김종해) 분수(김춘수)   향수(정지용) 분수(김기택)   향아(신동엽) 불놀이(주요한)   향현(박두진) 비(정지용)   해(박두진) 비에 대하여(신경림)   해마다 봄이 되면(조병화) 비화하는 불새(황지우)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유치환) 빈집(기형도)   해바라기의 비명(함형수) 빈집(박형준)   해에게서 소년에게(최남선) 빠삐용-영화사회학(유하)   해일(서정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허준(백석) 뿌리에게(나희덕)   홀린 사람(기형도) 사   화사(서정주) 사는 일(나태주)   화살(고은) 사라지는 동물들(황동규)   휴전선(박봉우)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정현종)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사령(김수영)   흙 한 줌과 이슬 한 방울(김현승) 사리(유안진)   흥부 부부상(박재삼) 사물의 꿈1-나무의 꿈(정현종)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김광규) 사슴(노천명)   흰 바람벽이 있어(백석) 사월(김현승)       사평역에서(곽재구)       사향(김상옥)       삭주구성(김소월)       산(김광림)       산(김광섭)       산도화(박목월)       산문에 기대어(송수권)                     한국 현대시 작가별 목록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ㅎ                                                     [가]    올해 댜른 다리 (김 구)       우후요(雨後謠) (윤선도)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김상헌)   이런들 엇더하며 (이방원)    가마귀 눈비 마자(박팽년)    이 몸이 주거 가셔 (성삼문)    가마귀 싸호는 골에(정몽주 어머니)    이 몸이 주거 주거 (정몽주)    가마귀 검다 하고(이 직)    이시렴 브디 갈따 (성종)    간밤의 부던 바람에 (유응부)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이조년)    간 밤의 우던 여흘 (원호)     이화우(梨花雨) 흣뿌릴 제 (계랑)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맹사성)   입암(立巖) (박인로)    검으면 희다 하고 (김수장)  [자]   견회요(윤선도)   자경가(박인로)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이이)   잔들고 혼자 안자 (윤선도)    곳이 진다 하고 (송 순)    장검(長劒)을 빠혀 들고 (남이)    공산(空山)에 우는 접동 (박효관)   장백산에 기를 꽂고 (김종서)    공산(空山)이 적막한데 (정충신)   장부로 삼겨 나셔 (김유기)   구레 벗은 천리마를 (김성기)   재너머 성권롱 집에 (정철)    구룸이 무심(無心)탄 말이 (이존오)   전가팔곡(이휘일)    국화(菊花)야 너는 어이 (이정보)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조 헌)   금생여수(金生麗水)ㅣ라 한들(박팽년)    지아비 밧갈나 간 데 (주세붕)   길 우희 두 돌부처(정철)    짚방석 내지 마라 (한 호)   꿈에 다니는 길이(이명한)       꿈에 뵈는 님이 (명옥)  [차]  [나]    천만 리 머나먼 길에 (왕방연)   나모도 병이 드니(정 철)    철령(鐵嶺) 노픈 봉(峰)에 (이항복)   내 마음 버혀내여(정 철)    청강에 비 듯는 소리 (봉림대군)   내 살이 담박한 중에(김수장)    청량산 육륙봉을 (이황)   내 언제 무신하여(황진이)   청산도 절로 절로 (김인후)    내해 죠타 하고 (변계량)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황진이)   냇가의 해오랍아(신흠)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ㅣ야 (황진이)   노래 삼긴 사람(신흠)    청석령(靑石嶺) 디나거냐 (봉림대군)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ㅣ들(이원익)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임 제)    녹이상제(綠이霜蹄) 살지게 먹여(최 영)   초암(草庵)이 적료한데 (김수장)    녹초청강상(綠草晴江上)에(서익)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월산대군)   농가(위백규)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우 탁)    농암(聾巖)에 올아 보니(이현보)    춘산(春山)의 불이 나니 (김덕령)   높으나 높은 나무에(이양원)        눈 마자 휘어진 대를(원천석)        님 글인 상사몽(相思夢)이(박효관)  [타]  [다]   탄로가 (신계영)   단가 육장 (이신의)    태산(泰山)이 놉다 하되 (양사언)    대초볼 불근 골에 (황 희)  [파]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이 황)    풍상(風霜)이 섯거친 날에(송순)   동기로 세 몸 되어 (박인로)    풍설(風雪) 석거친 날에 (이정환)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풍진(風塵)에 얽매이여 (김천택)    동창(東窓)이 발갓느냐 (남구만)    풍파(風波)에 놀란 사공(沙工) (장 만)    두류산 양단수를 (조 식)        땀은 듣는대로 듣고(위백규)      [마]  [하]    마음아 너는 어이 (서경덕)   하우요(윤선도)       하하 허허 한들(권섭)   마음이 어린 후(後)ㅣ니(서경덕)   한거십팔곡(권호문)   만흥 (윤선도)    한 손에 막대 잡고 (우 탁)    말 업슨 청산(靑山)이요(성혼)    한산섬 달 발근 밤의 (이순신)    묏버들 갈해 것거 (홍랑)    한식(寒食) 비 갠 후(後)에 (김수장)  [바]        바람이 눈을 모라 (안민영)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김성기)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박인로)    훈민가(訓民歌) (정철)    방(房) 안에 혓는 촉(燭) 불 (이 개)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원천석)    백설(白雪)이 자자진 골에 (이 색)       벼슬을 저마다 하면 (김창업)       북창(北窓)이 맑다커늘 (임 제)        빈천을 팔랴 하고(조찬한)    [사]  [ 사설시조 ]    사랑이 거즛말이 (김상용)   갓나희들이 여러 층이오레   삭풍(朔風)은 나모 긋테 불고 (김종서)    개를 여남은이나    산은 옛 산이로되(황진이)    개야미 불개야미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천 금)    굼벙이 매암이 되야    삼동(三冬)에 뵈옷 닙고 (조식)    귀또리 저 귀또리    삿갓세 도롱이 닙고 (김굉필)    나모도 바회돌도 업슨 뫼헤   샛별 지자 종다리 떳다(이재)   논밭 갈아 기음 매고    서검(書劒)을 못 일우고 (김천택)   님 그려 겨오 든 잠에    선인교(仙人橋) 나린 물이 (정도전)   님으란 회양금성(이정보)    솔이 솔이라 하니 (송이)   님이 오마 하거늘    수양산 바라보며 (성삼문)    대천 바다 한가운데    십년을 경영(經營)하여 (송 순)    댁들에 동난지이 사오        두터비 파리를 물고        떳떳 상 평할 평~        말(馬)이 놀나거늘        믈 아래 그림자 지니   [아]    바람도 쉬어 넘난 고개    아해 제 늘그니 보고 (신계영)    발가버슨 아해ㅣ들리    어리고 셩근 매화(梅花) (안민영)   서방님 병 들여 두고(김수장)    어부가(漁夫歌) (이현보)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데       싀어마님 며느라기 ~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윤선도)   어이 못 오던가    어이 얼어 잘이 (한 우)    어흠 아 긔 뉘옵신고    어져 내 일이야 (황진이)    창 내고쟈 창을 내고쟈    엊그제 버힌 솔이 (김인후)    창(窓) 밧기 어룬어룬하거늘   오동에 듯는 빗발 (김상용)        오륜가 (주세붕)    천세(千世)를 누리소셔   오백년(五百年) 도읍지를 (길 재)   청천에 떠서 울고 가는 외기러기       한숨아 세한숨아   오우가(윤선도)    한 잔 먹세 그려 (정철)         [고대가요]   [악장] 구지가 / 구간 등 용비어천가 / 정인지 외 2인 공무도하가 / 백수광부의 아내 신도가 / 정도전 황조가 / 고구려 유리왕 감군은 / 미상 해가(사) / 미상 월인천강지곡 정읍사 / 행상인의 아내       [향가]   [민요 및 무가] 서동요(薯童謠) / 서동 강강술래 혜성가(彗星歌) / 융천사 논매기 노래 풍 요(風謠)  / 사녀들(양지스님) 밀양 아리랑 원왕생가(原往生歌) / 광덕 바리데기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 득오 베틀 노래 헌화가(獻花歌)  / 어느 노인 성조푸리 원가(怨歌) / 신충 시집살이 노래 도솔가(도率歌) / 월명사 아리랑 타령 제망매가(祭亡妹歌)  / 월명사 이어도 타령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충담사 잠노래 안민가(安民歌) / 충담사 정선 아리랑_1 도천수관음가(燾千手觀音歌) / 희명 정선 아리랑_2 우적가(遇賊歌) / 영재 진주난봉가 처용가(處容歌) / 처용     [속요]   [한시] 동동(動動) 강촌(江村) / 두보 가시리 고시(古詩)8 / 정약용 사모곡(思母曲) 곡자(哭子) / 허난설헌 쌍화점(雙花店) 구우(久雨) / 정약용 서경별곡(西京別曲) 단종어제자규루시 / 단종 청산별곡(靑山別曲) 도중(途中) / 김시습 상저가(相杵歌) 독서유감 / 서경덕 이상곡(履霜曲) 등악양루(登岳陽樓) / 두보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만보(晩步) / 이황 정석가(鄭石歌) 몽혼(夢魂) / 숙원이씨 유구곡(維鳩曲) 무어별(無語別) / 임제 정과정곡(鄭瓜亭曲) / 정서 무제(無題) / 김병연     보리타작(타맥행) / 정약용   [가사] 보천탄에서 / 김종직 고공가 / 허전 봄비 / 허난설헌 고공답주인가 / 이원익 부벽루 / 이색 관동별곡 / 정철 불일암 인운스님에게 / 이달 관등가 / 미상 빈교행 / 두보 규원가 / 허난설헌 빈녀음 / 허난설헌 농가월령가 / 정학유 사리화 / 이제현 누항사 / 박인로 사청사우 / 김시습 덴동어미화전가 / 미상     만분가 / 조위 사친 / 허난설헌 만언사 / 안조원(환)     면앙정가 / 송순 산거(山居) / 이인로 명월음 / 최현 산민(山民) / 김창협 봉선화가 / 미상 산중문답(山中問答) / 이백 북찬가 / 이광명 삿갓을 읊다(詠笠) / 김병연 사미인곡 / 정철 송인  / 정지상 상사별곡 / 미상 습수요 / 이달 상춘곡 / 정극인 안악성을 지나며 / 김병연 선상탄 / 박인로 야청도의성 / 양태사 성산별곡 / 정철 여수장우중문시 / 을지문덕 속미인곡 / 정철 영반월(詠半月) / 황진이 연행가 / 홍순학 영산가고(詠山家苦) / 김시습 용부가 / 미상 오관산 / 문충(이제현 한역) 우부가 / 미상 용산마을 아전 / 정약용 월령상사가 / 미상 유객(有客) / 김시습 유산가 / 미상 읍향자모 / 신사임당 일동장유가 / 김인겸 잠령민정(蠶嶺閔亭) / 임제 춘면곡 / 미상 전가(田家) / 강희맹 탄궁가 / 정훈 절명시  / 황현 형장가 / 미상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 최치원   창의시 / 최익현    촉규화(蜀葵花) / 최치원 동심가 / 이중원 추야우중 / 최치원 애국하는 노래 / 이필균 춘망 / 두보   탐진촌요 / 정약용    
5    한국 현대수필 및 해설 (외 좋은 수필 101편 읽기) 댓글:  조회:16315  추천:1  2013-02-26
         ■ 가난에 대하여(전신재) ■ 가난한 날의 행복 (김소운) ■ 거룩한 본능 (김규련) ■ 거꾸로 보기(법정) ■ 거리의 악사 (박경리) ■ 결혼에 대하여 (이문열) ■ 구두 (계용묵) ■ 권태 (이 상) ■ 그믐달 (나도향)  ■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 ■ 까치 (윤오영) ■ 꾀꼬리 (김태길) ■ 나무 (이양하) ■ 나무의 위의 (이양하) ■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유홍준) ■ 낙엽을 태우면서(이효석) ■ 낭객의 신년만필 (신채호) ■ 낭비가 (김소운) ■ 넥타이(윤오영) ■ 달밤 (윤오영) ■ 대동강 (김동인) ■ 돌층계(유경환) ■ 동해(백석) ■ 두꺼운 삶과 얇은 삶(김현) ■ 딸깍발이 (이희승)  ■ 마고자(윤오영) ■ 막내의 야구 방망이(정진권) ■ 먼 곳에의 그리움 (전혜린) ■ 멋(조지훈) ■ 멋있는 사람들 (김태길) ■ 명명철학 (김진섭)  ■ 명사십리 (한용운) ■ 모송론 (김진섭)  ■ 목계 신선(윤현식) ■ 무궁화 (이양하) ■ 무소유 (법정)  ■ 물(이태준) ■ 반어법의 명수(박범신) ■ 보리 (한흑구) ■ 봄 (피천득) ■ 부끄러움 (윤오영) ■ 사치의 바벨탑(전혜린)   ■ 산정무한 (정비석) ■ 삶의 광택(이어령) ■ 생활인의 철학 (김진섭) ■ 설해목(법정) ■ 수필 (피천득) ■ 수필의 철학성(김태길) ■ 수학이 모르는 지혜 (김형석) ■ 숨어서 피는 꽃(김병권) ■ 슬픔에 관하여 (유달영) ■ 아리랑과 정선(김병종) ■ 어머니 (김동명) ■ 얼굴 (안병욱) ■ 옛 절터를 찾아(유병근) ■ 오월 (피천득) ■ 올드 시타람(류시화) ■ 욕설의 리얼리즘(신영복) ■ 우덕송 (이광수) ■ 웃음에 대하여(양주동) ■ 은전 한 닢 (피천득) ■ 이야기 (피천득) ■ 인생의 묘미(김소운) ■ 잃어 버린 동화 (박문하) ■ 자장면(정진권) ■ 조화 (박경리) ■ 지조론 (조지훈) ■ 철학의 여백(박이문) ■ 청춘예찬 (민태원) ■ 초승달이 질 때 (허세욱) ■ 추사 글씨(김용준) ■ 특급품 (김소운)  ■ 파초(이태준) ■ 폭포와 분수 (이어령) ■ 풍경 뒤에 있는 것(이어령) ■ 풍란 (이병기) ■ 플루트 연주자 (피천득) ■ 피딴문답 (김소운) ■ 하나의 풍경(박연구) ■ 한여름 밤에(노천명) ■ 함께 있고 싶어서 (법정) ■ 해학송 (최태호) ■ 행복의 메타포 (안병욱) ■ 황포탄의 추석 (피천득)                          좋 은 수 필 101가지 읽 기   메 모 광 이하윤   솜저고리 유헬레나 방망이 깍던 노인 윤오영   그리움 구자분 양 잠 설 윤오영   섬  돌 박양근 실 록 예 찬 이양하   그곳엔 벽이 있다 손정란 독서와 인생 이희승   빈들에 서 있는 지게 한경선 잊지 못할 윤동주 정병욱   흑  자 남지은 북  창 오창익   군산에 가면 김 학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열무가 있는 여름 배혜숙 구  두 계용묵    2  월 윤소영 어 머 니 김동명   우  산 김채영 백리금파에서 김상용   나 무 향 기 정목일 자 화 상 허창옥   강물에 비친 얼굴 허경자 가난한 날의 행복 김소운   침묵으로 말하는 법 한영자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   코 스 모 스 하재준 멋있는 사람들 김태길   다듬이 소리 최은정 그 믐 달 나도향   잡초와 힘겨루기 최복희 청춘예찬 민태원   대문여는 소리 주영준 거리의 악사 박경리   수막새의 미소 조수호 무 소 유 법정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장현숙 함께 있고 싶어서 법정   유년의 동화 임병식 헐려짓는 광화문 설의식   신교두각시 이윤희 얼  굴 안병욱   어깨위에 비둘기 이옥례 인생은 오월처럼 안병욱   모 자 도 오덕렬 갑사로 가는 길 이상보   겨울연지에서 신일수 폭포와 분수 이어령   유  리 박영자 낙엽을 태우며 이효석   신귀래 별서와 나 박수주 설 전숙희   판토마임 박선님 지 조 론 조지훈   옹기과 포도주, 그리고 돌 문형동 심춘순례서 최남선   쇠 별 꽃 문주생 수  필 피천득   흙을 밟고 싶다 문정희 보  리 한흑구   나무와 채송화 류인혜 초승달이 질때 허세욱   변산에서 꾸는 꿈 김정숙 딸각발이 이희승   어머니의 힘 김인자 나   무 이양하   함 지 박 김영희 풍  란 이병기   달과 나 김영월 슬픔에 관하여 유달영   남한산성 풀벌레 김영웅 잃어 버린 동화 박문하   혼자서 부르는 합창 김미정 수학이 모르는 지혜 김형석   동백의 씨 고동주 어둠을 바라보며 정목일   메밀꽃 질 무렵 김경실  한국의 명수필  사이트   미장원에서 노현희             한국 수필문우회 회원님들의 프로필 및 대표작 강호형 고봉진 고임순 구양근 권일주 권태숙 김국자 김규련 김녹희 김명규 김병권 김선화 김소경 김수봉 김시헌 김애양 김애자 김영만 김종완 김진식 김채은 김형진 남기수 남기연 남민정 문혜영 박양근 박영덕 박영자 박재식 박종숙 반숙자 배정인 백임현 손봉호 송규호 신현복 엄정식 염정임 오경자 오덕렬 오세윤 오희숙 유영애 유혜자 윤소영 윤형두 은옥진 이경수 이경은 이난호 이동렬 이병남 이순형 이정림 이정희 이태동 이희수 정목일 정부영 정선모 정진권 정태헌 정호경 조한숙 주연아 최민자 최병호 최숙희 최순희 최원현 한원준 한향순 한형주 한혜경 허창옥 홍혜랑          작고 회원   공덕룡 김우현 김사달 김종윤   김태길 박연구 변해명 안인찬   유경환 유두영 유병석 윤모촌 이응백 이장규  이정호 정봉구 정재은 정채봉 차주환 허세욱 황찬호                       
4    추천 수필 모음 댓글:  조회:5148  추천:1  2013-02-26
     2002년 추 천 수 필 모음 작 가    1   귀 소 - 농민신문 2002신춘문예 당선작  고경숙    2    선물과 촌닭  이화연    3    단장의 숲  장돈식    4    삿갓 선생  정영숙    5    국물 이야기  문형동    6    내가 좋아하는 낱말  정   경    7    달빛 향기  구자분    8    빈들에 서 있는 지게 하나 - 2001전북일보 당선작  한경선    9    시계소리 - 22회 간호문학상 당선작  남월선    10    종이학 천마리의 사연  이태경              11   우산, 그 사랑의 밀실  김   학    12    풀꽃이 되어  정목일    13    진달래꽃 가지를 버리던 날  김성원    14    퀼트와 인생  한동희    15    사 초 - 전북일보 2002 신춘문예 당선작  강현자    16    살붙이 피붙이는 아니지만  고희숙    17    햄릿호테  정   숙    18    걸 객  오창익    19    찔레꽃 아침  정채봉    20    표현은 침묵보다 아름답다.  이향아             21    더듬이  백해원    22    자가용을 버려보자  이주향    23    피어나는 것이 아름답다  황민자    24    채우지 않는 공간  김영주    25    단군의 어린이 십계명  지정순    26    까치소리  홍미숙    27    말우의 눈빛  김규순    28    똬  리  김덕한    29    아내가 다시쓰는 고린도전서 13장  정정근    30    유  품  윤근택                          거   울 서유석수필                                            빨간 우체통 김학량수필                    개똥벌레의 추억 이어령수필                    그 옛날 찹쌀떡 진홍청수필                    밀밭과 여우 김채영수필                    노 란 길 이난호수필                    귀지 파는 법 권현옥수필                    소금 별 하나 정숙수필                    초록빛 사진, 그 후 이옥자수필                    물고기 한 마리 강인한수필                    온돌방의 맛 김 학 수필                    장 승 김재희수필                    굳은살 김정임수필                    피아노와 플루트 이주리수필            땀 좀 흘려봐 박영란수필                        책방아저씨 유연선수필                        거미의 사냥 법 임병식수필                        1분 5초짜리 인내심 김현희수필                        만산홍엽(滿山紅葉) 정목일수필                        하동, 그리움의 땅 김여화수필                        귀천(歸天)에서 (셜리 이진영님의 수필) 이진영수필                        생명의 빙하와 록키산 윤연모수필                        인사동 귀천 (시인 이진영님의 수필) 이진영수필                        그대 앞에 서 있는 우리는 박순자수필                        산타바바라의 파도 정목일수필                        들꽃 사랑 정정근수필                        날지 못하는 새 안귀순수필                        여름 산에 오르며 노태호수필              나의 삶 나의 인생/중에서 智 悟수필                        그림 속의 설악 유경환수필                        잿빛에는 자력이 있다 유병근수필                        낙엽 한 잎 고병옥수필                        발 곽흥렬수필                        간 이 역 정태헌수필                        그 겨울의 노예들의 합창 이영임수필                        무 화 과 윤근택수필                        손때 묻은 정 반윤희수필                        오드리햅번 처럼 웃자 정연아수필                        아  내 최종수수필                        입에 돋는 가시 김충환수필                        하모니카 이요섭수필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최민자수필              길섶에서 만난 기적 박종규수필                        은행나무 임억규수필                        낙  엽 도창회수필                        제 발로 걸어 보아야 하리 한비야수필                        지금 내 고향은 임형묵수필                        아 유 해피? 류시화수필                        중년남자의 고독 김금주수필                        모과나무 손준용수필                        저포(樗蒲)로 맺은 인연 김명진수필                        저물녘의 무도회 김선화수필                        손 가 방 유경환수필                        레드와인 김희구자글                        지푸라기의 노래 김 학 수필                        들꽃세상 채순애수필              옹   기 윤중호수필                        어리석은 양떼가 몰려가듯 노중평수필                        남빛 치마의 추억 김채영수필                        곁의 여자 김지수수필                        아   집 이숙수필                        돌보지 않은 꽃 장순월수필                        초록비는 내리고 정경수필                        부치지 못하는 글월 김우영수필                        왕토끼 장돈식수필                        봄 이미지 유병근수필                        그리운 왕 소나무 김경화수필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신달자수필                        살구꽃 핀 마을 박장원수필                        혼으로 쓰는 글 반숙자수필              빈집에 뜬달 도창회수필                      어머니의 김치맛 정목일수필                    꽃의 미소 허창옥수필                    봄의 길목 유혜자수필                    아름다운세상 김태길수필                    내소사 잣나무 김수봉수필                    솔바람 소리 유경환수필                    아 버 지 김수현수필                    겨 울 향 기 최원현수필                    탱자나무가시는 제 살을 찌르지 않는다. 유경숙수필                    내가 꽃을 사는 이유 이옥자수필                    해 맞 이 김자호수필                    양의 해를 맞으며 우희정수필                            
3    꽃에 대한 수필 모음 댓글:  조회:4282  추천:2  2013-02-26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장현숙수필                  칸나의 담장 김채영수필                  진달래꽃 오경자님글                  능 소 화 서정숙님글                  옥수수 수염 정자옥님글                  해바라기 오창익님글                  매  화 은옥진님글                  동 백 꽃 최원현님글                  석 남 꽃 서정주님글                  풍 로 초 정성화님글                  영 춘 화 서숙자님글                  쥐다래 꽃 민  혜님글                  모 란 꽃 민  혜님글                들국화 그 잔잔한 모정 정영일수필                    쇠 별 꽃 문주생수필                    봉숭아 꽃 홍사화수필                    나팔꽃을 가꾸며 김학 수필                    수세미꽃 김수현수필                    돼지감자꽃 피면 김채영수필                    목화꽃 도월화수필                    아카시아 오병섭수필                    나도 찔레 오창익수필                    조팝꽃 윤근택수필                    민들레 찬가 김정의수필                    싸리꽃 눈물 안귀순수필                    난(蘭) 사랑 황민자수필                    메밀꽃 질 무렵 김경실수필            함박꽃 웃음(백작약) 임복순수필                    할머니와 맨드라미 천희선수필                    호박꽃 이윤환수필                    송  화 윤자명수필                      마타리꽃을 보면 김여화수필                    수채화 같은 풀꽃(개망초) 박영자수필                    국화꽃 궁전 이준섭수필                    채송화 이용미수필                    물옥잠 피는 계절 김여화수필                    설유화 김지수수필                    복수초 임복순수필                    두번 피는 꽃(시크라멘) 최은지수필                    달맞이 꽃 변해명수필                    코스모스 하재준수필          만리장성의 두 송이 수선화 도월화수필                찔레꽃 연가 정목일수필                꽃무릇을 아시나요 이일배수필                능 소 화 이영숙수필                연꽃 여행 배준석수필                패랭이 꽃 정태헌수필                기다림의 꽃, 해국 김재옥수필                차꽃 피던 날 이일헌수필                꽃보다 더 아름다운(부겐빌레아) 김향신수필                분꽃 인연 송미심수필                미선나무꽃 예시 이정원수필                배롱꽃과 자귀꽃 정목일수필                도라지 꽃 최종수수필                선인장꽃을 기다리며 윤소영수필                              질 경 이 김학량수필                    미역취와 군소 이정원수필                    양귀비와 애기똥풀 김화야수필                  산세베리아를 보며 최원현수필                    씀바귀 나물 심정임수필                    호접란을 보낸 사람 김소정수필                    연꽃을 보며 김한석수필                    '달개비 꽃에는 상아가 있다' 박영덕수필                    나팔꽃 연가 오정순수필                    산수유 예찬 김현희수필                    가막살 나무 이야기 이미라수필                    눕는 매화이야기 임창순수필                    흰 민들레 이정원수필                    장미 향기 속에서 이정화수필         질 경 이      류인애님글                                           담 배 꽃 구자분님글                                          수 선 화 박종화님글                                         구절초 국민카드당선작                    박  꽃 정목일님글                                                                                                                                                                                                                                                                    
2    세계시인들의 시모음 및 해설 댓글:  조회:7864  추천:0  2013-02-26
가을 (아폴리네르) 가을 (흄) 가을날 (릴케)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감미롭고 조용한 사념 속에 (셰익스피어) 강설 (유종원) 거룩한 이여 (휠더들린) 검은 여인 (생고르) 경례 : 슈미트라난단 판트(타고르) 고향 (아이헨도르프) 고향 (휠더를린) 관저(시경)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교감 - 상응 (보들레르) 굴뚝소제부 (브레이크) 귀거래사 (도연명) 귀안 (두보) 그리움 (실러) 기탄잘리 (타고르) 나그네여 보라 (오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나무들 (킬머) 나이팅게일 (키츠) 낙엽 (구르몽) 낙엽송 (기타하라 하큐슈) 난 후 곤산에 이르러 (완채)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베를렌) 내게는 그 분이 (사포) 내 사랑 (로버트 번즈) 너는 울고 있었다 (바이런)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디킨스) 노래 (로제티)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던) 눈 (구르몽) 눈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니벨롱겐의 노래 달 (왕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브라우닝) 당신을 위해 (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동방의 등불 (타고르) 띠 (발레리)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얌) 로즈 에일머 (랜도) 로렐라이 (하이네) 마리아의 노래 (노발리스) 망여산 폭포 (이백) 먼옛날 (로버트 버즈) 모랫벌을 건너며 (테니슨) 무지개 (워즈워스) 미뇽 (괴테)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바다의 고요 (괴테) 바다의 산들 바람 (말라르메) 바닷가에서 (타고르) 바닷가에서 (고티에) 발견 (괴테) 밤의 꽃 (아이헨도르프) 밤의 찬가 (노발리스) 배 (지센) 백조 (말라르메) 벗을 보내며 (이백) 뻐꾸기에 부쳐 (워즈워스) 병거행 (두보) 병든 장미 (브레이크) 복숭아나무 봄 (도를레앙) 봄 (홉킨스) 부두 위 (흄) 붉디 붉은 장미 (번즈) 비잔티움의 향해 (예이츠 3년 후 (베를렌) 사랑의 비밀 (블레이크) 사랑의 철학 (셸리) 사자와 늑대와 여우 (라 퐁테느) 산비둘기 (콕토) 산중문답 (이백)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슈킨) 삼월 (워즈워스) 상응 - 교감 (보들레르) 새벽 (랭보) 새벽으로 만든 집 (모마데이) 서풍의 노래 (셸리) 석류들 (발레리) 석호리 (두보) 소네트76 (세익스피어) 송원이사안서 (왕유) 수선화 (워즈워스) 숲에 가리라 (하이네) 시 (네루다) 시법 (매클리시) 시에 불리한 시대 (브레히트) 신곡 (단테) 신비의 합창 (괴테) 실락원 (밀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브리지즈) 아프리카 (디오프)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야간통행금지 (엘뤼아르) 에너벨리 (에드거A .포) 야청도의성 (양태사) 어느 인생의 사랑 (브라우닝) 어리지만 자연스러운 것(코울리지) 어린이의 기쁨 (블레이크) 어부 (굴원) 엘레느에게 보내는 소네트 (롱사르) 여인에게 보내는 목동의 노래(말로) 예언자 (푸슈킨) 예언자 (칼리 지브란) 오디세이 (호메로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월의 노래 (괴테) 오후의 때 (베르하렌) 올랭피오의 슬픔 (위고) 옷에게 바치는 송가 (네루다) 우리들이 헤어진 때 (바이런)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의 사랑못받어도 (셰익스피어) 울려라 힘찬 종이여 (테니슨) 원정 (타고르)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꺼질 때 (셸리)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에이츠)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네루다) 이별 (아흐마또바) 인간과 바다 (보들레르) 인정 (왕유) 일리아스 (호메로스) 잃어버린 술 (발레리) 자유 (엘뤼아르) 잠의 천사 (발레리) 적벽부 (소식) 종이배 (타고르) 지평선을 향하여 (아마두 샤물루) 지하철정거장에서 (파운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키츠) 출정가 (몽고민요) 켄터베리 이야기 (초서) 파도 속의 독백 (네루다) 풀벌레 평화 (홉킨스) 풍차 (베르하렌) 프로테우스 (괴테) 피아노 (로렌스) 하늘은 지붕 너머로 (베를렌) 하늘의 옷감 (예이츠) 헤어짐 (랜도) 헬렌에게 (바이런) 호수 (라마르틴) 호수 위에서 (괴테) 황무지 (엘리엇) 흐르는 내 눈물은 (하이네) 흰달 (베를렌) 흰 새들 (예이츠)     외국시 모음                              작 가 대       표       작       품 C.로제티  ①내가 죽거든  ②생일 E.브라우닝  ①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R.브라우닝  ①평생 사랑 괴테  ①5월의 노래  ②동경  ③이별 구르몽  ①낙엽 다우텐다이  ①연보라빛 클로버의 들을 다카하시  ①비둘기 디킨슨  ①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로렌스  ①피아노 로버트헤릭  ①소녀들에게의 충고 롱펠로우  ①인생 찬가  ②화살과 노래 마리로오랭생  ①잊혀진 여인 뫼리케  ①추억 바이런  ①시용성  ②아, 꽃처럼 저버린 사람  ③추억 버언즈  ①새빨간 장미 베를렌느  ①가을 노래  ②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벤더빌터  ①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세익스피어  ①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셀리  ①사랑의 철학 신약성서  ①사랑 아폴리네르  ①미라보 다리 예이츠  ①이니스프리 섬으로  ②하늘의 융단 워즈워드  ①무지개  ②수선화 키이츠  ①채프먼 역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 타고르  ①가지말라 애인이여 포르  ①이별 포우  ①애너벨 리 푸시킨  ①태워진 편지 프란시스잠  ①애가 프레베르  ①고엽 프로스트  ①가지 않은 길 하우스만  ①내 나이 스물 한 살 적에 하이네  ①로렐라이  ②어찌하여 나의 눈동자는 흐리는가 헤세  ①그대 없이는  ②안개 속에서 휘트먼  ①오! 선장 나의 선장  
1    한국의 유명한 시인들 시모음 댓글:  조회:11880  추천:2  2013-02-26
한용운 시선집 님의 침묵   독자에게 님의 침묵 이별은 미의 창조 알 수 없어요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룻배와 행인 정천한해 찬송 나의 길 복종 생의 예술 나는 잊고자 이별 고적한 밤 길이 막혀 사랑의 존재 꿈 깨고서 하나가 되어 주셔요 나의 꿈 당신이 아니더면 해당화 나의 노래 사랑하는 까닭 행복 두견새 떠날 때의 님의 얼굴 후회 그를 보내며 가지 마셔요 사랑의 측량 비밀 포도주 님의 얼굴 달을 보며 최초의 님 자유 정조 진주 잠없는 꿈 착인 거짓 이별 참말인가요 쾌락 거문고 탈 때 밤은 고요하고 당신의 편지 당신의 마음 당신이 가신 때 비 예술가 참아주세요 눈물 생명 슬픔의 삼매 꿈과 근심 비방 심은 버들 꽃이 먼저 알아 인과율 어디라도 우는 때 수의 비밀 버리지 아니하면 사랑을 사랑하여요 요술 여름밤이 길어 명상 오셔요 고대 꽃싸움 군말 님의 손길 차라리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은 첫키스 ? 어느 것이 참이냐 선사의 설법 금강산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만족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 잠꼬대 계월향에게 반비례 사랑의 불 타고르의 시를 읽고 구원2 구원3 산골물 칠석 낙화 산거 경초 지는 해 해촌의 석양 강배 일출 비바람 모순 반달과 소녀 심우장1 심우장2 심우장3 산촌의 여름저녁 사랑의 끝판 꿈이라면   출처 : 님의 침묵, 1926         강우식 어머니의 물감상자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고  은  눈길 머슴 대길이 문의 마을에 가서 자작나무숲으로 가서 화살   곽재구  계단 사평역에서 새벽 편지   기형도 가을무덤 엄마걱정 안개 식목제   김광규 상행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균 노신 설야 시인 와사등 추일서정   김광섭 변두리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 해바라기   김기림 바다와 나비 연륜   김남조 생명 설일 정념의 기   김남주 시인은 모름지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동환 국경의 밤 산넘어 남촌에는 북청 물장수   김명수 하급반교과서 김명인 겨울의 빛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수영 눈 사령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 폭포 풀   김억    봄은 간다   김영태 멀리 있는 무덤   김종길 성탄제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민간인   김준태 참깨를 털며   김지하 둥굴기 때문에 무화과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초파일 밤 타는 목마름으로 푸른 옷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분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현승 가을의 기도 눈물 아버지의 마음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김혜순 납작납작 -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노천명 자화상 사슴   도종환 가을비 담쟁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접시꽃 당신 흔들리면서 피는 꽃   문병란 직녀에게   박남수 아침 이미지   박두진 도봉 묘지송 어서 너는 오너라   박목월 나그네 나무 난   박봉우 휴전선 나비와 철조망   박양균 꽃   박용철 떠나가는 배   박재삼 수정가 울음이 타는 가을강 추억에서 흥부 부부상   박형준 장롱 이야기   백  석  고향 나와 나타샤화 흰 당나귀 수라 여승 팔원 흰 바람 벽이 있어             백석의 시어사전   복효근 춘향의 노래   서정주 견우의 노래 무등을 보며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추천사 춘향 유문   송수권 산문에 기대어   송찬호 구두   신경림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갈대 나목 나의 신발이 농무 목계 장터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너에게 봄은 산에 언덕에   신동집 오렌지   신석정 꽃덤불 슬픈 구도 어느 지류에 서서 임께서 부르시면   심훈     그 날이 오면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고추밭 너에게 묻는다 모닥불 연탄 한 장 우리가 눈발이라면   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오규원 개봉동과 장미 프란츠 카프카   오세영 그릇1   오장환 고향 앞에서 여수   유치환 깃발   바위 일월   유하     생(生)   윤동주 간 길 또 다른 고향 서시 쉽게 씌어진 시 십자가 아우의 인상화 참회록   이병기 매화2   박연 폭포   이상    거울 운동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성부 벼   이승하 이 사진 앞에서   이시영 마음의 고향6 - 초설 -   이용악 그리움   낡은 집 다리 위에서 오랑캐꽃 전라도 가시내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육사 교목   꽃 노정기 절정 청포도   이한직 낙타   이해인 살아 있는 날은   이형기 낙화 폭포   이호우 개화   임  화  우리 오빠와 화로 자고 새면   전봉건 피아노   정  양  참숯   정지용 삽사리 인동차 장수산1 향수   정한모 가을에 몰입   정호승 겨울 강에서 또 기다리는 편지 수선화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폭풍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조지훈 마음의 태양 병에게 봉황수 승무   조태일 가거도   주요한 불놀이   천상병 귀천 나의 가난은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두석 노래와 이야기 성에꽃   최승호 북어   한용운 나의 노래 님의 침묵 당신을 보았습니다 찬송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한하운 자화상 전라도 길 파랑새   함민복 긍정적인 밥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   개화 – 안도현  그대의 눈동자는 푸른 연꽃잎  꽃 – 김춘수  꽃 – 윤여흥  꽃 꺾어 그대 앞에 – 양성우  꽃다운 – 안정옥  꽃등 – 류시화 꽃 멀미 – 이해인  꽃밭 – 김수복 꽃밭에 서면– 이해인 꽃샘바람– 이해인  꽃씨 – 서정윤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 이해인  꽃잎– 이정하  꽃을 주고 간 사랑 – 하덕규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 – 구광본  내사랑은 빨간 장미꽃 – R.버언즈  너는 한송이 꽃과같이– 하이네  노을 속의 백장미 – 헤르만 헤세  누군가 내마음을 적시네 – 이월하  땅속에 있는 수선화를 기다린다   때없이 꽃은 시들어  동백 – 강은교  동백꽃 – 문충성 두가지 국화  들꽃에게 – 서정윤 들풀 – 류시화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메밀꽃 미소  민들레 – 류시화  멍텅구리 꽃– 이수복  목동 해바라기 – 원재훈  목련 – 류시화  목백일홍– 도종환  물망초– 김남조  물망초– 김춘수  백합의 말 – 이해인  봄까치꽃– 이해인  봄꽃을 위한 론도 – 김선광 봉숭아 – 이해인  산유화 – 김소월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 이준관  수선화 – 류시화   수선화 – 이해인   수선화 그리고 당신 – 권영철   수선화에게 – 정호승   수선화와 조팝나무의 사랑 – 도종환   안개꽃 – 이수익  아카시아길 – 서정윤  아카시아에게 – 서금자  안개꽃을 사세요 – 선명한  연꽃 – 이외수 장미꽃 비 – 이풀잎  장미를 생각하며  – 이해인 장미 한송이– 용혜원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제비꽃 곁에서 – 김선광  제비꽃 연가 – 이해인 제비붓꽃 – 전연옥  진달래꽃 -김소월  찔레 – 문정희  창포– 신동엽  채송화 – 강남옥  코스모스 – 이해인  코스모스  – 이형기 패랭이꽃 – 류시화  풀꽃– 김용범  풀꽃 – 신승근  풀꽃의 노래 – 이해인  풀꽃들의 행복  풀꽃의 시 가장 아름다운 사랑에 관한 시 101가지를 모았습니다.  좋은 곳에 사용하세요~ 001.    김남조 – 가고 오지 않는 사람 002.    신경림 – 가난한 사랑 노래 003.    원태연 – 경험담 004.    용혜원 – 공개적인 사랑 005.    유미성 – 그 사람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006.    김태광 – 그대 제가 사랑해도 되나요 007.    박성준 – 그대가 있음으로 008.    용혜원 – 그대의 눈빛에서 009.    원태연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010.    유미성 – 그림자 같은 사랑 011.    김용택 – 그이가 당신이예요 012.    김미선 – 그저 친구라는 이유로 013.    김옥진 – 기도 014.    김영일 – 기다림 015.    유미성 – 기다릴 수 있는 시간만큼만 사랑하세요 016.    이정하 –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017.    용혜원 – 꿈속이라도 018.    이정하 – 끝끝내 019.    한용운 –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020.    유미성 – 나보다 먼저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021.    이정하 –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022.    유미성 – 내 사랑은 023.    유미성 – 내 일기의 주인공이 그대이듯 024.    문향란 –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025.    도종환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026.    이정하 – 내가 웃잖아요 027.    용혜원 – 내게 말해 주십시오 028.    용혜원 – 내게는 가장 소중한 그대 029.    왕국진 – 너는 알아야 해 030.    김재진 – 너를 만나고 싶다 031.    원성스님 –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 032.    장석주 –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033.    유미성 – 다음 세상에서 034.    유미성 –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035.    문은희 –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036.    이성희 – 당신의 이름 037.    브라우닝 –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038.    이정하 –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039.    원태연 – 둘이 될 수 없어 040.    원태연 – 만들어 보기 041.    이용채 – 멀리 있는 사람이 가슴으로 더욱 그립다 042.    이정하 – 부끄러운 사랑 043.    이풀잎 – 사람을 찾습니다 044.    유영석 – 사랑 그대로의 사랑 045.    김성만 – 사 랑 046.    박승우 – 사 랑 047.    이준호 – 사랑고백 048.    용혜원 – 사랑뿐입니다 049.    용혜원 – 사랑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050.    안도현 – 사랑은 싸우는 것 051.    유미성 – 사랑은 피지 않고 시들지 않는다 052.    용혜원 – 사랑의 순수함을 위하여 053.    용혜원 – 사랑의 시인 054.    원태연 – 사랑의 전설 055.    용혜원 – 사랑의 화살 056.    박성철 – 사랑이 사라지면 그리움이고 말고 057.    양현근 – 사랑이란 058.    김재진 – 사랑하는 사람에게 059.    원태연 –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060.    핀취즈 –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061.    박남원 – 사랑한다는 건 062.    김재진 –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063.    이정은 – 사랑할 때는 064.    김학주 – 사랑할 수만 있다면 065.    길강호 – ‘사랑해’라는 말 066.    용혜원 – 살아감 속에 아픔은 067.    유미성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068.    이해인 – 슬픈날의 편지 069.    이용채 – 아름다운 만남을 기다리며 070.    유복남 –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071.    서정윤 –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에 072.    도종환 –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073.    맹명관 – 오늘 그대 작은 소망이고 싶습니다 074.    유미성 – 오늘은 백 일입니다 075.    유미성 – 왜 하필 당신은 076.    용혜원 – 우리가 어느 사이에 077.    이수익 – 우울한 샹송 078.    하이네 – 이 깊은 상처를 079.    원태연 – 이런 날 만나게 해주십시요 080.    용혜원 – 이런 날이면 081.    류동화 –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082.    이정하 – 이별 노래 083.    원태연 – 이별역 084.    원태연 – 이유 085.    원태연 – 일기 086.    용혜원 – 자연스런 아름다움 087.    마종기 – 전화 088.    이선명 – 종이비행기 089.    노희경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090.    고정희 – 지울 수 없는 얼굴 091.    톨스토이 – 참 사랑 092.    용혜원 – 처음처럼 093.    유미성 – 천원짜리 러브레터 094.    워즈워드 – 초원의 빛 095.    도종환 –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096.    정희성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097.    용혜원 –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098.    유치환 – 행 복 099.    문향란 – 행복한 짝사랑 100.    도종환 – 혼자 사랑 101.    용혜원 – 혼자라고 생각될 때
‹처음  이전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