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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길위에서 길찾기...
2016년 10월 01일 17시 48분  조회:4302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 서평/장병천 시집 『추억의 푸른 이끼』

길 위에서 길 찾기


  박남희


  장병천의 세 번째 시집『추억의 푸른 이끼』는 앞의 두 시집에 비해서 뚜렷한 진경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것은 이 시집이 종전 시집들에 언뜻언뜻 보여지던 직설적 감정토로와 소재중심적 시 쓰기 방식이 상당부분 해소되었다는 차원 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과 끈질긴 사유의 힘이 시집 전체를 긴장감 있게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시집은 ‘길’에 대한 사유가 두드러진 시집으로, 그의 삶에 대한 사유방식이 ‘길’에 대한 성찰과 직관을 통해서 더욱 깊이 있게 드러나 있다. 인간의 삶을 길 찾기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그의 이번 시집은 인간의 삶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인 ‘길’에 대한 집중적 사유의 궤적을 보여주는 시집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그의 시집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노을의 길」, 「길 밖의 길을 내려」,「숲의 길」,「어둠의 길」,「물의 길」,「바람의 길」,「적에게 가는 길」,「길 위의 나날」,「변방 가는 길」,「벽의 길」,「풀의 길」,「딱 하루치의 길이」,「길 끝에는 마을이 있다」,「먼 길」등 제목에 ‘길’이라는 낱말을 포함하고 있는 시들 뿐 아니라, 그 밖의 시들도 상당수가 길과 연관되어 있다.
  예로부터 길은 인간의 문명과 함께 발전해왔고, 우리의 생활환경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원동력이 되어왔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70년대를 전후해서 새마을운동을 통한 농로확장 사업이나 고속도로 건설, 최근에 와서 지하철 건설과 고속전철 건설 등이 그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구불텅한 동양적인 길에서 출발해서 차츰 속도와 결부된 직선적 서양의 길을 닮아가게 되고,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서구화된 의식의 변화를 동반하게 된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차원의 의미를 훌쩍 뛰어 넘는다. 이것은 길이, 벨트 Welt(물리 현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움벨트 Umwelt (환경으로서의 세계)를 거쳐 레벤벨트 Lebenwelt(생활세계)로 발전하는, 다시 말하면 무의미의 세계에서 의미의 세계로 발전하는 역사의 형이상학적 기록임을 말하고 있는 박이문의 글(「길」)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길은 그 속에 로고스의 의미를 함의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물리적 공간 개념을 넘어서 정신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신약성서 ‘요한복음’에서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다”고 할 때의 ‘Logos’는 본래 말과 길(道)의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의적이다. (박종홍의 「길」) 이렇듯 ‘길’은 ‘말’과도 연관성을 지니게 되고, 단순한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아우르는 중요한 상징이 되는 것이다. 
  우선 이 시집의 표제를 제목으로 달고 있는 「추억의 푸른 이끼」를 읽어보자.

낡고 하찮은 것들은
때때로 얼마나 끈질긴 힘이던가
한 때의 추억이 더 이상 길이 되지 못하는
이건 아니라고 고개 휘휘 젓던 그 길에도
자잘한 일상이나 응어리들을 모아서는
묵묵히 자리를 넓혀가는
새파란 청춘도 아닌 것이
또다시 새 길을 닦는다
철거당한 영세민들인가
그늘진 세상의 한 쪽  끝에 터를 잡고서는
밝은 쪽의 어떤 힘에 대항하여
서로의 빈틈을 최대한 좁혀서는 악착같이
아주 조금씩 양지 쪽으로 뿌리를 뻗는다
평생 음지 쪽에서만 살아본 것들이 내 뿜는 물기는
저리도 절실하고 투명한가
미처 새기지 못한 지난 날의 아픔처럼
세상이 밝을수록 더욱 파릇파릇 빛이 난다

      ―「추억의 푸른 이끼」전문 

  이 시는 인간의 길이 아닌, 추억 속에서 보았던 푸른 이끼들이 그늘진 곳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시의 초두의 “한 때의 추억이 더 이상 길이 되지 못하는/ 이건 아니라고 고개 휘휘 젓던 그 길에서도/ 자잘한 일상이나 응어리들을 모아서는/ 묵묵히 자리를 넓혀가는/새파란 청춘도 아닌 것”이라는 구절을 분석해보면, 시인이 이 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길 위에서의 길 찾기’임이 드러난다. 즉 시인은 어릴 때의 추억이 그의 삶에서 더 이상 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늘진 세상의 한 쪽 끝에 터를 잡고서는/ 밝은 쪽으로 어떤 힘에 대항하여/ 서로의 빈틈을 최대한 좁혀서는 악착같이/아주 조금씩 양지 쪽으로 뿌리를 뻗는”이끼를 통해서 낡고 하찮은 것들이 보여주는 위대한 힘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밝은 쪽의 어떤 힘”을 문명의 힘이라고 본다면, 그늘진 곳에서도 파릇파릇 빛이 나는 이끼는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한 때의 추억이 더 이상 길이 되지 못하는” 문명의 시대에도 자연은 하찮은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위대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끼가 보여주는 자연의 새로운 길은 인간의 길과는 다른 길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인간의 길 위에서 이렇듯 또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길이 본질적으로 ‘결핍으로서의 길’이기 때문이다. 시인 자신도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완전한 길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낡고 하찮은 것들이 걸어가는 길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지 못한 또 다른 힘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낡고 하찮은 것들이 인간이 가지고 있지 못한 그들만의 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인에게는 놀라운 발견이며 위안이다. 그의 또 다른 시 「모래가 사는 법」이나, 「무좀은 피어서」,「작고 가벼운 티끌들이」,「우유주머니」,「가버린 백색 티코에게」,「이슬방울」,「산그늘 아래서」등도 제목에서 보듯이, 작고 하찮고 외진 곳에 있는 것들이 가는 길의 구체적인 표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읽히는 시들이다.

침묵하는 그의 입을 두고
세간에선 지금 설전이 한창이다
‘의리이다’ ‘저항이다’
일견 단순한 듯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의 속
현세를 주름잡는 고도의 셈수나 현란한 능변에 대해
일체 등을 돌리고 굳게 다물어버린 입
무뚝뚝한,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에선
한동안 거리낌없이 주고 받던 우리들의
음험한 거래나 등락을 거듭하는 논리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낯선 무게를 느낀다
가끔 짧은 미소를 동반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
부드럽게 치켜 올려지던 제스처도
요즘은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난세에는 침묵이 제일이던가

        ―「참새와 자물통」부분


  인용 시는 말 많은 백성들을 참새로, 말없이 과묵한 사람을 자물통에 비유하고 있다. 이 시는 일종의 알레고리 시로서, 난세에 침묵하는 자와 말이 많은 자들의 심리적 간극을 풍자적 어법으로 기술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자물통은 “현세를 주름잡는 고도의 셈수나 현란한 능변에 대해/ 일체 등을 돌리고 굳게 다물어버린 입”, 즉 ‘침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물이다. 이렇듯 시인은 말 많은 세상이 보여주는 허위적 삶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작고 하찮은 것들’과 더불어 ‘침묵’의 힘이야 말로 난세를 지탱해나가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침묵도 뭉치면 힘이 되는가/ 말없는 다수가 뿜어내는 힘 사뭇 완고하다”(「작고 가벼운 티끌들이」)는 구절에서 보듯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과 침묵을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시인이 이렇듯 침묵을 상찬하는 데는 그가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의 침묵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이 속 시원히 털어버릴 수 없었던 것들을 고백하고 싶어한다. 그가 「목감기」에서 “(누군들 할 말이 없겠는가)/(중략)/한번은 밝혀야 한다/이 기나긴 묵시의 변을/짧게 아주 짧게 그러나 힘 있게/한밤내 아프게 울었던 부자유와/늘 목구멍 저 안쪽에서 뱅뱅 돌던/그 많은 목울음에 대해/많이 비겁했음을/참회해야 할 수많은 자신의 몫들에 대해서도/실은 한 번도 당당하지 못했음을/ 한 번은 맑은 목소리로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침묵’의 이면에 숨어있는 자신의 속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이 시 「먼 길」에서 “말이 없어졌다는 것은/길을 내는 것이다”라는 중요한 발언을 하고 있는데, 이는 이 시집의 중심 이미지인 ‘길’을 내는 원동력이 ‘침묵’에 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시인이 침묵함으로써 내는 길은 “네게로 향하는, 가슴이 저리는” 그리움과 애증의 길이다. 이 길은 시인이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침묵함으로써 얻어지는 길이고, “길이 될 수 없다는/ 세상의 모든 억측과 맞서”싸움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길이라는 점에서 ‘먼 길’일 수밖에 없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시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연민이나 말 없음(침묵)에 대한 관심은 본질적으로 그의 소시민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늘 가장자리로만 밀려다녀 중심이 어딘지도 모르는” (「찬물」) 조모(祖母)나, “버려진 어머니의 한 뼘 땅뙈기”(「변방가는 길」)에 마음 아파한다. 그런가 하면 그는 “작은 것이 주는 위안이나 희망은/ 또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가버린 백색 티코에게」)를 가슴 깊이 느끼고, “고달픈 생활의/지친 육신으로 인해/ 더 이상 뭉쳐지지 못하고/이리 저리 떠도는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나 외로움 같은 것”, 즉 “떠도는 가난한 이웃들의 참 맑은 슬픔”에 대하여 연민과 동류의식을 느낀다. 이렇듯 그는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을,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을, 시끄러운 것 보다는 침묵하는 것을, 밝은 곳 보다는 그늘진 곳을 더 선호한다. 이러한 시인의식은 본질적으로 소시민의식에 닿아있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불완전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기반성 위에 도출된 존재론적 ‘불안’과도 연관되어 있다.

수많은 길 위의 날들
불편한 누군가의 길이 되다
삐걱삐걱 지친듯 돌아오는
실은, 제 몸 하나도 가눌 수 없는
목발의 삶은 불안하다
고단한 하루의 외출에서
돌아와 한갓진 어디에 몸 누이는
그 날이 어쩌면 끝일지도 모르는
목다리 혹은 협장脇杖의 삶은
서 있어도 불안한 것이다
한 때는 시퍼런 혈기 하나만으로도
온 산을 품을 수 있으리라던
푸르른 직립의 꿈이, 그동안
얼마나 거칠고 험한 길들을 거쳐왔는지
누워서도 쉽게 구부러지지 않는다

        ―「길 위의 나날」부분

  이 시에 의하면 시인의 삶은 “수많은 길 위의 날들”로 정의된다. 시인이 현재 길 위에 서있으면서도 또 다른 길에 관심을 갖고 또 다른 길로의 모색을 시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인 자신의 ‘불안’의식에 기인한다. 시의 내용에 비추어보면 여기서의 ‘불안’은 존재론적 결핍으로서의 불안이고, 홀로 있음에 대한 불안이고, 서 있음 자체에 대한 불안이다. 인용 시에서 길을 걸어가는 시인의 다리는 온전한 다리가 아닌, ‘목발’이다. 불편한 누군가의 다리가 되어주고 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시인의 의식은 타자에 대한 연민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식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그 본령을 캐 들어가 보면 홀로 있음에 대한 불안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은 그 속내를 살펴보면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역설적 행동기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인에 의하면 자신의 삶은 실은 제 몸 하나도 가눌 수 없는 목발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서있는 것조차도 불안하다. 목발의 삶은 누군가의 무게를 쉴 새 없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단한 삶이다. 이렇듯 시인의 존재론적 결핍은 길의 결핍과 더불어, 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결핍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저 벽에도 피가 있고 살이 있어
밤마다 신음소리를 낸다
울음을 참아내는 그 힘에 대해
한 치의 틈도 허용치 않으려는 
빡빡한 삶에 대해
속수무책, 아무런 그늘도 되어주지 못한다
철저히 무너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그 막막함에 대하여
섣부른 동조도 할 수 없는
길 없는 길을 내는 너를 위해
외마디 작은 비명, 나의 몸은 아프다
천년을 썩지 않는 슬픔, 콘크리트
크고 깊은 단단함으로
차갑게 벼리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단壇을 쌓는
독한 싸움
분홍빛 상처, 나의 슬픔은 위험하다

    ―「벽의 길」전문

  앞의 시에서 보여준 시인의 불안의식은 급기야 생의 본원적인 슬픔에 가 닿게 되고, 이러한 슬픔은 결국 ‘독한 싸움’을 낳는다. 시인이 ‘벽의 길’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론적 부정의식에 기인한다. 이러한 부정의식은 “철저히 무너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막막함’과 동의어이다.  ‘벽’의 상징적 의미에서 도출되는 이러한 막막함은 ‘길 없는 길’ 찾기의 과정으로 귀결된다. ‘길 없는 길’찾기는 역설일 뿐 현실적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외마디 작은 비명’소리를 내는 아픈 몸을 지닐 수밖에 없는 시인에게는 ‘분홍빛 상처’는 위험한 ‘슬픔’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이러한 슬픔은 그의 또 다른 시 「빙산의 울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시인은 「빙산의 울음」에서 “그 슬픈 울음이 낳는/ 사람 같은 여자 같은/또 하나의 새 같은 얼음덩이들/ 저들도 전생에는 분명/가슴에는 더운 피가 흐르는 생명들이었으리/아마도 누군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그리움의 덩어리들이었으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는 「벽의 길」에서 시인이 “벽에도 피가 있고 살이 있”다고 보는 관점과 동일한 것으로, 인간 뿐 아니라 세상에 널려있는 모든 사물에도 생명이 있고 길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시인의 상상력은 장자의 만물제동(萬物齊同)사상이나 동양적 애니미즘과도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장병천의 세 번째 시집 『추억의 푸른 이끼』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길들에 대한 탐색을 통해서, ‘길 위에서의 길 찾기’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다. 시인이 자신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탐색해 보는 수많은 사물들의 길은 시인의 길과 은유적 또는 환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먼 길’이 사랑에 대한 은유적 의미의 길이라면, ‘벽의 길’은 나의 몸을 아프게 하고 나를 슬프게 해주는, 내 주변적인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길이라는 점에서 환유적인 길이다. 이렇듯 시인의 주변적 사물들의 길들은 시인의 길과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주변적인 길들이 아파할 때 시인의 길도 아프다. 시인에게 있어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길들은 결국 시인의 길이고 시인의 길은 본질적으로 타자성을 아우르는 우주적인 길이다. 그런데 시인의 길은 ‘길’이 로고스적 차원에서 ‘말’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시 자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시인의 길 찾기는 시인의 시 쓰기과정의 은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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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새」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 (1918 - 1994) 「새」전문



   1975년부터 약 20년간 미국의 뉴저지에 거주했었기에 미주동포에게는 더욱 친밀감이 느껴지는 고 박남수 원로시인의 대표작이다.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활자로 인쇄된 시보다도 대중가요로 만들어진 통기타 가수의 목소리로 먼저 기억해내기도 할 것이다.
   이 시는 슬픈 결말을 갖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새는 총에 맞고, 포수는 자기가 노렸던 순수 대신에 매양 한 마리 상한 새만 보게 될 뿐이다.     

   행복이나 순수, 사랑과 같은 고귀한 가치를 지닌 어떤 것을 겨냥하고 있다면 한 덩이 납과 같은 차가운 물질을 사용해서는 어림도 없다. 노 시인이 피에 젖은 새를 손에 들고 이래도 모르겠느냐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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