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시 속에 마력이 없다?... 있다!...
윤동주 시의 마력
2007년 04월 10일 21시 19분 작성자: 허동식
80년대 <<연변문예>>든가 <<천지>>든가? 문예잡지에서 처음으로 윤동주시인의 시를 읽어보았다. 혁명적 랑만주의와 비판적 사실주의라는 탈을 쓴 , 거짓말이 다분한 시들이 많이 득세하던 때라 야, 세상에 이렇게 쓴 시도 있구나 하고 감동했었고 오늘날에 이르끼가지 윤동주시인의 시를 엄청나게 사랑한다.
시를 좀 알고 우리글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윤동주시인의 시를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윤동주시인이 조선족 시인인가 한반도 시인인가 또는 저항시인인가 순서정시인인가 하는 의론도 있고 윤동주시인에게 이런저런 평가를 내릴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그의 시는 좋은 시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윤동주 시는 그 詩情의 진실함에 마력에 가까운 매력이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
윤동주의 시에서 표현된 시인의 종족적인 나라적인 귀속감은 한반도에 귀결되여 있음은 부인할바가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론적인 화제로 될수도 있겠지만도 우리의 윤동주시인을 비롯한 수많은 이주민 선조들은 비록 중국이라는 이국타향에서 살았지만은 일제가 망하고 나라가 흥하면 곧 고국에 돌아가려는 소망을 크게 지니고 있었음은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가히 리해를 할수 있는 아름다운 소망이였다. 그러한 민중적인 정신적인 소망을 근본 바탕으로 망향의 설음과 망국노의 설음을 거짖이 없이 빚은것이 바로 윤동주시인의 시이다.
또 윤동주 시인은 일개 무명의 인테리로서 나라와 종족의 흥기를 소망하기는 했지만 국세가 크게 기울어졌고 개인적인 능력으로는 종족과 나라의 운명을 개변할 힘이 없음의 무가내와 발악적인 소망기도에서 자연히 발로되는 무력함과 빈약성은 소위 소자산계급의 소극적이고 자사자리하고 철저하지못한 저항이라고 비판을 받을수도 있겠지만은 나는 오히려 그러한 정서야말로 윤동주의 시에 내포된 진실함이고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한다면 막말로 무산계급의 시든지 소자산계급의 시든지 시인의 정서를 솔직하게 엮어야만 시의 첫 대문을 넘어선다는 말도 이야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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