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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와 랑송동시 관계문제
시란 문학의 한 형태이다 시는 시인이 시적 대상을 보고 느낀 시적인 발견을 운률적인 언어로써 시적형상을 창조하는 문학의 한 형태이다.
동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어른들이 동심적인 시각에서 아이들의 심리정서를 노래하는 서정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런 동시에는 전통적인 동시와 현대동시가 있다 전통적인 동시에는 화적인 동시,회화적동시,동화적인 상상동시(의인화동시),사색적인 철리동시 등이 있고 현대동시에는 이미지 동시 등이 있다.
지금 중국,한국,조선의 <<아동문학개론>>을 살펴보면 동시의 분류에 랑송시란 따로 없다 그것은 랑송시란 여러 가지 동시작시법의 장점을 따다가 종합적으로 쓰는 시라고 보는데서 그렇게 취급하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랑송시는 선전선동사업에서 필요한것이기에 그런 때마다 시적형식을 리용하여 대중을 선동하여 그 어떤 목표실현에 동원할 때 리용하는 것으로 구태여 독립시켜 분류하지 않은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랑송시라는 형태가 확연히 존재하는것만은 사실이기에 우리는 랑송시를 외면할 수가 없다 특히 조선에서는 랑송시를 사회생활에서 많이 쓰는 상황이다.
우리도 1930년대부터 조선아동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탓에 랑송시에 대하여서는 일정한 감성적인 리해를 가지고 있다 또 현재 학교마다에서 소선대활동에서 많이 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랑송시는 보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쓴것이 아니라 듣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쓴 시를 따로 말한다 즉 시인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정서적 요구에 맞추어 청각적인 내용전달과 음성적인 정서전달을 직접 하면서 청중에게 감흥을 불러 일으켜 그 어떤 목표실현에 궐기시키는 그런 시를 랑송시라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쓴 랑송시를 따로 랑송동시라고 하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것은 우리가 문학적인 동시를 감상하기 위하여 랑송하는 동시는 동시 랑송이지 절대 랑송동시는 아니라는것이다.
하기에 랑송동시는 우리가 말하는 문학적인 동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 동시로 리해하는것이 좋을듯 싶다.
2, 랑송동시의 특징문제
랑송동시의 존재의거는 이른바의 선동성과 고동성에 있다 학교에서 그 어떤 목표실현을 위하여 학생을 조직동원할 때 이른바 여러 가지 선전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런 형식 가운데서 리론문에서는 연설이거나 웅변같은 것들이 있고 문학에서 보면 바로 랑송동시 같은것이 따로 있다.
랑송동시는 문학적인 작시법을 다각적으로 리용하여 창작한 형태로서 대중을 감화시키고 분발시키고 궐기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하기에 랑송동시의 존재의거는 선동과 고동에 있고 존재가치도 바로 이 선전과 고동에 있다고 하여야 할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창작목적도 바로 선동과 고동에 있기에 이 선동성과 고동성은 랑송동시의 문체적 특성이라고 하여야 하겠다.
하기에 선동하고 고동하자면 그 어떤 주제가 선명히 나타나야만 한다 때문에 랑송동시에서는 그 주제가 뚜렷하게 표현되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랑송동시는 주제선행론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이미지 동시는 그 주제가 이미지속에 용해되여 아리숭하게 나타날수록 그 예술성이 높아진다 하여 이미지 동시에서 그 주제가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다시 말하면 그 주제가 벌거벗고 로출될수록 예술성이 약화되고 지어는 패작으로 취급되게 된다 이것이 랑송동시와 이미지 동시와의 원칙적인 다른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랑송동시의 운률적 형식은 주로 자유를을 지향하면서 자유동시처럼 자유분방한 정서표현을 추구하게 된다 하기에 랑송동시는 자유시의 장점을 따오게 되는것이다 때문에 동요와 같은 정형률을 취하면 자유분방한 정서를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랑송동시의 시적형상화에서는 반복법,전도법,병렬법,점진법 등 수사법을 가장 많이 쓰는것이 그 특징으로 된다.
반복법에서도 련속적인 반복과 축차적인 반복을 써서 격조를 높일수 있다 이를테면 련속적방법은 <<가자/ 배움터로!>>하여 학교 가는것을 강조하면서도 격조를 높일수가 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그리운/ 나의 아이들아>>에서 <<나의 아이들아>>가 반복되는데 그 사이에 <<사랑하는>>과 <<그리운>>이 끼여들어 축차적 반복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하면 절주가 생기면서 흐름에 그 어떤 파도가 생기여 예술적효과를 나타낼수가 있다.
전도법을 써서 강조점을 환기시킬수가 있다 <<보아라/저기 푸르른/저 하늘을>>에서 술어 <<보아라>>를 앞에 내다가 써서 작자의 강조점을 알려주면서 그 다음 아름운 <<저기 푸르른 저 하늘을>>이라는 환경을 펼쳐보이고 있다 여기서 작자의 강조점은<<보라>>라는데 력점이 찍히게 된다.
병렬법을 써서 시적흐름에 박력을 가할 수가 있다 <<선생님은 자리차고 일어날거야!/선생님은 교단으로 달려 갈거야!>>여기서 병렬된 시구는 강약으로 울리여 펴지면서 그 어떤 박력을 가하여 시의 흐름을 거세차게 한다.
점진법을 쓰면 시의 깊이를 파면서 내용은 깊어지고 정서는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과를 가지고/닭알을 가지고/사탕을 가지고 /수술한 나를/애절히 부르던/그 목소리 그 목소리>>여기서 점진법은 나어린 아이들이 병치료에 무슨 도움이 되련만 그래도 자기들의 선물을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와서 선생님을 부르는 그 내용은 깊어지고 그 정서는 눈물 날 정도로 승화되는것이다.
이런 수사법들은 시적흐름을 여울치게 하고 파도치게 하는 정서적 표현에 아주 좋은 효과를 가져올수가 있다.
랑송동시에서는 시적대상은 되도록 직관적인 형상으로 눈앞에 선명히 보여주고 시적인 내용은 되도록 알기 쉽게 전달되여야 한다.
하기에 전통동시에서 많이 쓰던 직접비유를 많이 쓰게 된다 그렇지 않고 은유처리를 하면 랑송을 들으면서 그것을 사색하고 음미할 여유시간이 없기에 랑송시 내용파악에 지장을 주게 되고 선동성효과를 보기 어렵게 된다.
텅빈 산골 운동장
물소리만 나와 놀고있다
*
삐꺽 삐꺽 새여 나오던
풍금소리는 창틈에 녹 쓸고
*
아이들이 닦아놓은 창에
거미줄 친 하늘이 끼워져 있다
이런 현대동시형태로 랑송시를 쓰면 청각으로 듣고서는 무슨 내용인지 대뜸 파악하기 어려웁게 된다 그러기에 시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시적인 감흥을 받을수 있겠는가?
하기에 랑송동시에서는 이미지 동시와 달리 듣고서 얼른 내용을 파악하고 정서를 가려잡을수 있도록 써야하는것이다.
랑송동시에서는 현대이미지 동시보다는 작자의 주정토로가 직접 사용 된다 그 주정토로는 감정정서의 론리에 맞게 그리고 자연스럽고 가슴속으로부터 우러져 나오게 된다.
현대적인 이미지 동시에서는 시적형상에 숨어있는 이미지를 사색하고 음미하는 과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시의 정서를 뒤늦게 서서히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랑송동시는 청각적으로 들려오는 시적내용과 흘러오는 소리의 정서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시의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하기에 내용전달의 직접성과 정서전달의 직접성이 담보되여야 한다.
랑송동시는 상술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완전히 독립은 되지 못한 그런 동시의 한 형태로 보게 된다.
3랑송동시창작에서 나서는 문제
가,시의 생명은 서정성에 있다 하기에 동시의 생명도 서정성에 있다고 하여야 하겠다 그런데 우리 동시에서의 이 서정성이 최근에 와서 약화되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현대 이미지 동시에서는 시적대상을 관조적으로 감상하고 거기에 형상을 꽃피우면서 되도록 감정의 표출을 절제하고 시적인 느낌을 은근히 유출하는데 신경을 쓰고있다.
이것은 우리의 동시가 혁신된 하나의 기꺼운 표현으로 된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또한 시의 서정성을 어떻게 강화할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것으로도 된다.
솔밭을 /지날 때면/파랗게/파랗게
진달래산/지날 때면/빨갛게/빨갛게
마을 앞.지날 때면/하얗게/하얗게
이 동시는 절제된 언어로 함축된 시적형상을 창조하면서 그윽한 시적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읊어보면 그 어떤 서정성을 직접 반갑게 느낄수는 없는 것으로 되었다.
이것은 80년대까지 내려오던 우리의 낡은 동시 즉 작자의 주장을 적라라하게 표출하고 <<아>><<오>> 감탄사를 련발하던 그런 동시에서 해탈되여 나온 새로운 동시인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동시에서의 서정성을 어떻게 살릴것인가에 대하여서는 우리 함께 연구 할바를 동시에 제기하여 주고있다.
이면에서 랑송동시는 사그러져가는 동시의 서정성을 살리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수가 있다 지난 시기 정치가 판을 치던 시기 이른바 랑송동시에서의 서정성을 정치적 태도표시로 여긴다거나 정치적인 설교를 악청높이 하는 것으로 리해한 이것은 한낱 엄중한 페단이였다 그런 페단은 우리 마땅히 삼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형식에서의 이른바의 서정성을 연구하여 교훈은 버리고 경험을 따온다면 우리의 동시의 서정성을 되살려내는데 일정한 도움이 되지 않을가 생각된다.
특히 랑송동시의 선동성과 고동성을 살리면 동시의 서정성을 얼마든지 강화할 수가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현대 이미지 동시로써는 동시감상군체를 즉석적으로 감화시키고 분발시키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것이 현실로 되고 있다.
현재 학교 같은데서는 학생들을 그 어떤 목표실현을 위하여 문학적인 힘을 빌어 다시 말하면 랑송동시를 리용하여 학생들을 조직동원하자고 하여도 랑송동시가 부족한 현실이 아닌가?.
우리 아이들은 현대이미지 동시를 조용히 읽고 사색하고 음미하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정서적느낌을 서서히 체험하는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또 그런 동시에 기승전결이 잘 나타나지 않아 아이들의 정서표현에 어울리지 않고 읊기에 알맞지 않고 또 그래서 읽기 싫어하고 있는것 또한 현실이다.
그들은 직접 감동을 받고 소리 높이 웨치고 마음껏 노래하면서 정서폭발을 수요하고 있다 하기에 우리는 랑송동시를 창작하여 그들에게 풍만한 정서를 안겨줄수가 있는것이다.
나,랑송동시를 창작할 때 기승전결의 감정정서의 흐름을 잘 조직하여야 한다 랑송동시는 현대이미지 동시와는 달리 시적정서가 외적으로 표출되기에 이런 감정정서는 마땅히 자연스럽게 표출되게 하여야 한다.
랑송동시에서 처음으로 시적제시를 잘하여 청중들의 주의를 대번에 확 끌어오고 시적인 발전을 상승적으로 꾀하며 시적절정에 감동적으로 치달아 올라 선동작용과 고동작용을 한껏 발휘하면서 긴 여운을 남기며 시를 마무리하여야 한다.
필자가 최근에 <<그리움의 하늘아래>>라는 랑송시를 써보았다.
시적제시는 병상에 누워서 창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 푸른 하늘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선-생-님->>이라는 목소리, 그것은 시의 발단으로 된다.
그 <<선-생-님->>은 금방 아이들이 남기고 간 메아리,어떤 메아리인가? 금방 수술한 나에게 연필을 선물한 아이들의 목소리 손수건을,사과를 과자를 ...선물로 가지고 와서 선생님의 건강을 빌며 선생님을 안타까이 부르던 그런 아이들의 메아리, 그런 메아리가 깃든 선물들이 탁상우에 수북한데,그런 선물에 담긴 아이들의 뜨거운 마음,따뜻한 정성,간절한 소원이 지금 나의 가슴속에서 사품치며 흐른다고 시인은 높이 읊조리고 있다 시는 이처럼 직선적으로 상승적으로 발전 하다가 절정으로 치달아 오른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선생님은 자리차고 일어 날거야!
그리운 아이들아
선생님은 교단으로 달려 갈거야!
이렇게 주인공은 시적인 충동을 받고 궐기하여 일어 나면서 금방 수술하고서도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에 목이 메여 교단으로 달려가려 떨쳐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시 첫머리와 조응을 꾀하면서 다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저 푸른 하늘을 향하여 그리운 아이들을 목놓아 부르며 긴 여운을 남기였다.
시 전반에 거칠매 없이 상승적인 감정조직을 하여 일정한 정도로 감동적이며 격정적인 시적정서를 유발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 랑송동시는 서사시의 장점을 따다가 흔히 감동적인 이야기의 한 대목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것이 그 특징으로 된다.
이때 이야기의 원인, 경과, 결과를 시시콜콜하게 서술할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사건의 직선적인 발전을 비약적으로 상승적으로 정서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리하여 감동적인 이야기 그 자체가 독자의 마음에 거침없이 흘러 들어가고 그 이야기에 담긴 내용자체가 청중들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주어 독자에게 감흥을 주게 해야 한다 하기에 감동적인 이야기 한대목 자체가 서정성을 제고 하는 작용을 하게 되고 주인공에게 감흥을 주어 궐기시키는 작용도 겸하여 하게 되는것이다.
라,랑송시는 력사적으로 보면 격변의 년대에 적극적인 작용을 많이 하여 왔었다 구쏘련의 이사꼽쓰끼의 <<쏘베트공민증>>에서는 사회주의 나라의 주인된 그 영광을 자본주의 나라를 상대로하여 격정높이 읊조려 사회주의 존엄을 온 세상에 떨친 그 시는 정말로 전투적이였다.
천안문 사건 때 반당집단을 성토한 랑송시들은 사회주의가 위기에 처한 그 위험한 시기 열혈청년들이 천안문광장 화표에 올라가 자기의 피타는 목소리로 림표강청집단에 강렬한 시적 포탄을 퍼부었던것이다.
오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이 력사적 시기에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의 정의로운 정서를 어떻게 하면 랑송동시에 반영할것인가는 우리 모두가 연구할바이다.
동시에는 현대이미지동시 한가지 뿐만이 아니다 독자 혼자서 조용히 시적내용을 음미하는 그런 동시도 필요하지만 동시작시법을 종합적으로 리용하여 격정에 차넘치는 정서를 유발하여 감상군체를 선동하고 고동하고 궐기시키는 그런 격정적인 랑송동시도 필요한 시대이다.
오늘은 법치 시대로 온갖 사회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그런 준엄한 시대이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포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전투는 계속되고 인민은 승리하는 시대이다.
격변의 시대, 승리의 시대에 우리 동시인들 모두 떨쳐나 아이들을 위하여 랑송시를 창작하여 소리 높이 읊어보자!
201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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