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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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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룡 / 김만석... 랑송동시도 창작해야/ 김만석...
2016년 11월 14일 22시 34분  조회:3368  추천:0  작성자: 죽림
동요 동시인 채택룡선생의 예술적공로
2015년 12월 21일 08시 22분 작성자: 김만석
채택룡선생의 전반 아동문학창작을 투시하여 보면 그래도 동요동시인이라고 자리매김하는 편이 더 과학적일것 같다.

채택룡선생은 1913년 2월 6일에 태여나서 1998년 10월 26일까지 85년간 이 세상에서 사시면서 만 71년간 창작활동을 하신 우리조선족의 자랑찬 아동문학작가이다.

채택룡선생은 생전에 필자와 많은 접촉이 있었다 필자는 북대신촌에서 산적이 있었댔는데 그때 채택룡선생은 농약공장 앞에서 사시였다. 필자는 일요일이면 채택룡선생을 찾아가서 우리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이 걸어온 력사를 담론하고 나중에 어설프지만 아동문학사를 출판하여냈다.

그리고 채택룡선생의 창작활동을 정리하면서 채택룡선생의 분실한 원고들을 어떻게 복원할수없겠는가 토론도 하였다. 그리하여 동화 <<딱따구리>>를 살려서 <<딱따구리네 일가>>로 발표하였다 아동소설 <<삶의 빛>>은 필자한테 경개를 소개하여 주어 필자는 그것을 정리하여 필자의 <<아동문학사>>에 인용하였다 하지만 채택룡선생은 그 보귀한 소설을 끝내는 복원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채택룡선생에 대하여 필자는 일찍 론문 <<채택룡의 아동문학활동과 그 문학사적 의의>>와 <<채택룡재론>>에서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창시자>>라고 평가한적이 있다 이런 평가는 과학적인 평가이며 또한 마땅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 근거로는 1927년에 처녀작 동요 <<어린동생>>을 써서 그누구보다 먼저 1928년<<별나라>>신춘호에 발표하였고 1932년동시 <<사랑하는 누나여>>를 그누구보다 먼저 동시를 발표하였으며 1932년 동화<<딱따구리>>를 그누구보다 먼저 동화를 발표하였고 1932년부터 1935년사이에 아동소설<<삶의 빛>>을 그누구보다 먼저 아동소설을 발표한것을 고증하고 내린 결론이였다.

오늘 필자는 주로 채택룡선생의 동요창작에서의 숨은 예술적 공로를 따져 보면서 채택룡선생에 대한 평가를 심화하려고 한다.

첫째,우리 조선말에서는 2음절 3음절의 규칙적인 반복에 의하여 운률이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주로는 3.3조 ,4.4조.7.5조를 기본으로 하는 정형률이 있게 되었다. 그후 수많은 시인들의 창조적인 실천을 통하여 여러 가지 정형률을 창조하여냈다.

일찍 1920년대 이른바 7.5조라는 정형률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일본의 정형률을 본딴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때 한반도에서는 7.5조 운률조성으로 동요창작에서 황금시기를 맞이하였다. 그 실례로 한정동의 <<따오기>>와 리원수의 <<고향의 봄>>등이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과 같은것이다.

그뒤를 이어 1930년대 조선의 박세영이 2음절과 3음절을 조립하여 이른바 6.6조 정형률을 개척하였다. 그 례로는 동요 <<갈매기>>이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른데>>,<<물에 뜨면 동동 날아서는 빙빙>>과 같은것이다.

1950년대 김례삼은 3음절과 4음절을 조합하여 이른바 7.7조 정형률을 창조하였다 그 실례로 <<기차놀이>>인데 <<기차놀이 하자여 모두 허리잡아라>>같은것이였다.

1927년 처녀작 <<어린동생>>을 창작한 우리의 채택룡선생은 1950년대 초기에 2음절과 3음절을 오묘하게 조합하여 이른바 우리 민족문단에서 처음으로 되는 4.5조 정형률을 창조하였다 그 례가 바로 <<병아리>>이다.

삐악삐악 갓난병아리
아장아장 걸음익히나
요리조리 조약돌 넘어
깡충깡충 재주 피우나
이 동요는 명동요로 우리민족 동요에서 특이한 형식인 4.5조로 씌여졌다.

4.5조 정형률은 우리말의 아름다운 본딴말 가운데서 2음절로 된 본딴말을 두 번 반복하여 4음절군을 만들고 그다음 2음절과 3음절을 조합하여 5음절군을 만들어 통합한 형식이다.

이런 4.5조 정형률은 앞에 력동적인 본딴말로 도약적인 감을 자아내고 뒤에 예술적인 설명을 가하여 아이들의 리해를 도와주어 깜찍하면서도 률동감을 안겨준다.
이것은 채택룡선생이 창조한 정형률인바 그것은 채택룡선생에게 그 특허권이 있게 된다.

력사적으로 보면 1950년대 김례삼의 <<고개길>>,채택룡의 <<병아리>>,리행복의 <<꽃동산>>,조룡남의 <<반디불>>과 같은 황금동요의 출현, 1980년대 최문섭선생이 동시창작에서 <<동시때벗이>>주장,1990년대 한석윤이 정형동시에서 자유동시로 이행한것.2000년대 김철호가 동심의 예술적 이미지화 등과 같은 시대적이고 돌파적인 성과작들의 출현은 우리의 동요동시창작을 도약적인 발전을 가져 오게 하였다.

1950년대 채택룡선생의 4.5조 정형률은 우리 민족 동요동시창작에서 새로운 개척이고 창조로 아동문학발전에서 획기적인 공로를 세운것으로 취급되여야 한다.

사실 우리 문학의 흐름 가운데서 이런 한가지 공헌을 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웁고 또 그런 공로를 세우는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는 력사가 평가하게 된다. 채택룡선생은 우리 민족 동요동시 운률조성에서 4.5조라는 특정된 정형률을 창조한 동시인으로 영원히 기록될것이다.

둘째,동요창작에서 상징동요를 개발한것은 채택룡선생의 공로라고 본다. 1920년대 말에 순수문학에서 주장하던 방영종의 자연송가동요,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그대로 표현한 방정환의 애상주의 동요, 계급의식을 직접 고취하던 박세영의 계급주의동요 등 3개 류파의 동요들이 류행되였다 이런 동요들은 작자의 리념이 기본상 표출화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럴때 1928년 그런 동요와 질적으로 다른 동요가 나타났는바 그것이 바로 채택룡의 동요 <<개미>>였다.

장다리밭 꿀돼지 놀고먹는 놈
개미집에 뛰여 들어 쌀을 뺏다가
모여든 개미들게 물어뜯기여
뚱뚱배가 터지여 죽어버렸네
이 동요는 프로동요에 속하지만 상징적수법으로 썼다 그것은 당시 일본놈들의 삼엄한 검열제도가 있었기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런 검열에 통과하자는 그런 의도에서 출발한것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예술작품인 동요에 어떻게 상징성을 부여할것인가에 대한 채택룡선생의 예술적 추구에서 비롯된것이라고 하여야 하겠다.

이런 상징동요가 일제 김열에 걸리지 않은 원인이 바로 그 예술적인 상징수법에 있었다 채택룡선생은 지주를 꿀돼지로 비겨 가면서 그자들의 만행을 폭로하고 백성들의 뭉친힘에 의하여 그자들이 망하고 마는 통쾌한 결말을 예술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백성들을 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 전투적인 효과를 보았다 이 동요가 1920년대에 창작되였다는 그 시대적 배경이 이 동요의 가치를 한결 값지게 하고있다
셋째,채택룡선생은 주로 동요를 쓰면서 동요를 어떻게 혁신하여 볼것인가에 대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리고 정형동시도 쓰면서도 동시창작을 혁신히여 보려고 한것도 그의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엿보인다.

그리하여 채택룡선생은 7.5조 운률조성을 기본으로 하면서 동요와 정형동시를 창작할 때 7.5조 2행 1련,7.5조 3행 1련 ...지어는7.5조 8행 1련.7.5조 10행 1련,7.5조 12행 1련동요 동시를 써보았다 이것은 동요동시창작을 혁신하여 보려는 그의 노력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된다.

그러나 채택룡선생은 현대동시표현수법과 기교를 터득하지 못하고 일생동안 갖은 실험과 피타는 노력을 하다가 돌아가시였다 그러나 채택룡선생께서 우리 동요의 페단을 인식하고 자기동요에 대하여 불만족을 느끼고 어떻게하나 혁신하여 보려한 그 애타는 심정을 우리후대들은 오늘 충분히 리해하여야 하겠다.

우리의 동요동시는 1980년대까지 7.5조 4행1련의 정형동시가 판을 치면서 내려왔다 1990년대에 이르러 한석윤이 7.5조의 각을 뜯다가 점차 자유동시로 전이하여 우리동시는 자유동시 시대로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말로부터 김현순 강효삼 림금산 김학송 김철호 등이 현대동시표현기법을 받아들여 우리동시는 질적변화를 가져오게되였다.

1980년대까지 우리동시는 작자의 리념이 로골적으로 표출화되여 작품에서 작자의 주장을 두눈으로 뚜렷이 볼수가 있었다. 하여 작자의 정치적리념의 표출을 동시의 사회적 효과로 리해하였던것이다.

동시는 작자의 리념의 적라라한 표출을 용허하지않는다 작자의 리념은 우리의 두눈으로 볼수 없어야 한다. 동시는 아름다운 시적 형상속에 무르녹아 있는 시적이미지는 눈으로는 볼수있는것이 아니라 아리숭한 상상속에 꽃피게 하여야 한다 하여 작자의 리념은 사색과 음미속에서 저마끔 터득할수있게 하여야 만 한다.

동시의 서정성은 감탄사의 련발로 실현되여서는 아니된다 동시의 서정성은 시적이미지가 발산하는 자연스러운 정감의 분출로 되어야 한다.

2000년대 우리의 동시는 선배작가들의 창작경험과 창작교훈을 받아들이며 지금 바야흐로 변화 발전하는 단계에 있다.
우리는 채택룡선생을 기념하면서 일생동안 아이들을 사랑하고 일생동안 아동문학창작을 견지하는 그런 분투정신을 따라배워야 한다. 체호브의 단편소설<<완까>>에서 주인공 완까는 <<우리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살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살아있는 순간까지 다시 말하면 죽는 그날까지 아동문학창작을 견지하여야 한다.

우리는 채택룡선생을 기념하면서 작가로서 자기에 대한 요구를 높이 제기하고 자기 창작에서 부족점을 느끼고 자기 창작에 불만을 품고 자기 창작을 부단히 혁신하려는 그런 혁신정신을 따라배워야 한다 그것은 오직 혁신만이 성공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그 많은 작품을 창작하시고도 상장 한번 타보지 못한 채택룡선생에게 우리는 몇 년전에 조선민족아동문학작가들의 이름으로 , 우리조선민족 아이들의 이름으로 아니 더 나아가서 우리 중국조선족 전체의 이름으로 채택룡선생에게 <<병아리>>시비를 공원동시동네에 높이 경립하여 주었다.

그 병아리는 영원히 삐약삐약 노래할것이고 그 병아리는 영원히 깡충깡충 춤출것이다. 채택룡선생은 저 세상에서 지금도 그런 병아리를 바라보시며 습관대로 허허허 즐거이 웃으실것이다.

2015.12.19.
==========================채택룡선생의 처녀작<<어린 동생>>==================
2015년 12월 28일 11시 17분  작성자: 김만석
채택룡선생은 1927년에 처녀작 동요 <<어린동생>>을 창작하여 1928년 <<별나라>>신춘호에 발표하였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그 원문을 모르고있다.
 
채택룡선생의 생전에 필자는 선생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문자로 써줄것을 부탁드리였다. 채택룡 선생은 친필로 그것도 정자로 또박또박 나한테 a4 용지로 11페지나 써주시였다 최근에 필자는 그 자료를 찾아 다시 보면서 선생의 처녀작 <<어린동생>>의 내용에 대하여 초보적으로 알수있게 되었다.
 
채택룡선생은 자기의 친필재료 제 6페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동요 <<어린동생>>
 
1928년 월간잡지 <<별나라>>에는 나의 처녀작 <<어린동생>>이 게재발표되였다. 당시 나로서는 자기 이름 석자가 활자화되여 새상에 알려진데 대하여 무한한 긍지와 더 없는 자랑으로 여겼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기도 하였다.
 
동요 <<어린동생>>은 당시 땅마지기나 소작을 주고 농민들의 피땀을 여지없이 빨아먹고 배를 불리는 지주놈에 대하여 증오감을 그린것이 그 주요 주제사상이다.
 
땅은 매우 중요하며 땅을 다루는 농민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것이다. 이에 소작인들은 땅을 떼울가 두려워 심지어는 지주집에서 온통 빨래감까지 갖다가 빨아주고 그를 말리워 두 어깨가 물러나도록 다듬이질 해준다. 이런 가지가지의 어머니의 고통, 이 곤경을 다듬이돌 옆에서 쏘아보던 어린 동생은 대뜸 어머니의 손에서 다듬이질 방망이를 빠앗아 들었다. 마치도 그 방망이로 지주놈의 대갈통이라도 내리 까듯 힘껏 내리쳤다. 그런데 <<땅>>소리와 함께 그 다듬이 방망이가 다듬이돌에 맞아 튕겨올라 어린동생의 이마를 때렸다. 이에 방망이에 맞은 아픔보다도 격분에 더는 참을수 없어 어린동생은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분이 머리끝까지 치민 어린동생은 다듬이돌 우에서 어머니의 책망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온통 옷견지들을 냉큼 방바닥에 끌어내려놓고 맨발로 마구 짓밟아 놓는것이 그 내용의 전부인것이다. 
 
동요 <<어린동생>>의 내용은 보는바와 같이 서사적 이야기로 되어있다. 지주네 빨래를 하여 다듬이질 하는 어머니,그런 고생을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방망이를 뺏는 어린동생, 그리고 방망이로 다듬이돌을 내리치다가 자기가 되려 방망이에 얻어맞는 어린동생, 지주네 빨래를 팽개치고 마구 짓밟는 어린동생...이런 서사적내용을 동요로 썼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썼을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런 분노의 정서를 어떻게 썼을가? 정형률로 썼을가? 아니면 자유률로 썼을가? 력사적으로 고찰하여 보면 아마 정형률로 쓴것 같다. 그것은 작품의 장르를 동요로 빩혀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요 내용을 보면 화적동요형식(이야기식동요)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정형률로 어떻게 화적동요( 이야기식동요)를 썼을가?
 
추측은 언제나 과학연구에서 금물이다. 우리는 력사를 존중하여야 한다. 작자 본신이 복원 못한 그런 작품을 우리가 함부로 대하여서는 절대 아니된다.
 
이 동요는 채택룡선생이 14살 때 쓴것이다. 우리는 이 동요의 내용에서 채택룡선생이 나어린 14살 때의 계급적 의식수준을 능히 가늠해 볼수가 있다. 그것도 시적주인공을 어린애로 삼은 작자의 창작의도가 너무나도 돋보인다.
 
어른도 아닌 아이들까지 지주들의 착취에 분노를 느끼게 한 작자의 착안점이 기발하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마저 계급적으로 각성한 그런 시대에 대한 파악은 창작 초기로부터 프로문학경향을 지향하였다는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채택룡선생이 어떤 형식에 그런 값진 내용을 담았는가는 아직 알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까지 그 원문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택룡선생이 필자에게 남긴 그 친필재료에 의하여 우리가 그 동요의 내용을 오늘 처음 알게 된것은 한낱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 동요는 채택룡선생의 처녀작이자 우리 중국조선족아동문학에서의 첫 동요로 되며 더 나아가서 우리 조선족아동문학의 첫 작품으로 되는 그런 력사적 의의를 가지는 작품이다. 하기에 채택룡선생의 처녀작 동요 <<어린동생>>은 반드시 찾아내야 할 과제로 우리 앞에 제기되고있다.
 
앞으로 관계나라와 문학적인 련계를 강화하여 <<별나라>>잡지를 구하여 가지고 우리의 채택룡선생의 처녀작 <<어린동생>>을 원문 그대로를 찾아내야만 한다.
 
이 과업은 오로지 우리 아동문학후계자들에게 의탁할수 밖에 없는 력사적 과업으로 남게 되었다.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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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송동시 창작연구
2017년 05월 22일 작성자: 김만석

동시와 랑송동시 관계문제

시란 문학의 한 형태이다 시는 시인이 시적 대상을 보고 느낀 시적인 발견을 운률적인 언어로써 시적형상을 창조하는 문학의 한 형태이다.

동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어른들이 동심적인 시각에서 아이들의 심리정서를 노래하는 서정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런 동시에는 전통적인 동시와 현대동시가 있다 전통적인 동시에는 화적인 동시,회화적동시,동화적인 상상동시(의인화동시),사색적인 철리동시 등이 있고 현대동시에는 이미지 동시 등이 있다.

지금 중국,한국,조선의 <<아동문학개론>>을 살펴보면 동시의 분류에 랑송시란 따로 없다 그것은 랑송시란 여러 가지 동시작시법의 장점을 따다가 종합적으로 쓰는 시라고 보는데서 그렇게 취급하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랑송시는 선전선동사업에서 필요한것이기에 그런 때마다 시적형식을 리용하여 대중을 선동하여 그 어떤 목표실현에 동원할 때 리용하는 것으로 구태여 독립시켜 분류하지 않은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랑송시라는 형태가 확연히 존재하는것만은 사실이기에 우리는 랑송시를 외면할 수가 없다 특히 조선에서는 랑송시를 사회생활에서 많이 쓰는 상황이다.

우리도 1930년대부터 조선아동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탓에 랑송시에 대하여서는 일정한 감성적인 리해를 가지고 있다 또 현재 학교마다에서 소선대활동에서 많이 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랑송시는 보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쓴것이 아니라 듣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쓴 시를 따로 말한다 즉 시인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정서적 요구에 맞추어 청각적인 내용전달과 음성적인 정서전달을 직접 하면서 청중에게 감흥을 불러 일으켜 그 어떤 목표실현에 궐기시키는 그런 시를 랑송시라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쓴 랑송시를 따로 랑송동시라고 하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것은 우리가 문학적인 동시를 감상하기 위하여 랑송하는 동시는 동시 랑송이지 절대 랑송동시는 아니라는것이다.

하기에 랑송동시는 우리가 말하는 문학적인 동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 동시로 리해하는것이 좋을듯 싶다.

2, 랑송동시의 특징문제

랑송동시의 존재의거는 이른바의 선동성과 고동성에 있다 학교에서 그 어떤 목표실현을 위하여 학생을 조직동원할 때 이른바 여러 가지 선전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런 형식 가운데서 리론문에서는 연설이거나 웅변같은 것들이 있고 문학에서 보면 바로 랑송동시 같은것이 따로 있다.

랑송동시는 문학적인 작시법을 다각적으로 리용하여 창작한 형태로서 대중을 감화시키고 분발시키고 궐기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하기에 랑송동시의 존재의거는 선동과 고동에 있고 존재가치도 바로 이 선전과 고동에 있다고 하여야 할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창작목적도 바로 선동과 고동에 있기에 이 선동성과 고동성은 랑송동시의 문체적 특성이라고 하여야 하겠다.

하기에 선동하고 고동하자면 그 어떤 주제가 선명히 나타나야만 한다 때문에 랑송동시에서는 그 주제가 뚜렷하게 표현되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랑송동시는 주제선행론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이미지 동시는 그 주제가 이미지속에 용해되여 아리숭하게 나타날수록 그 예술성이 높아진다 하여 이미지 동시에서 그 주제가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다시 말하면 그 주제가 벌거벗고 로출될수록 예술성이 약화되고 지어는 패작으로 취급되게 된다 이것이 랑송동시와 이미지 동시와의 원칙적인 다른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랑송동시의 운률적 형식은 주로 자유를을 지향하면서 자유동시처럼 자유분방한 정서표현을 추구하게 된다 하기에 랑송동시는 자유시의 장점을 따오게 되는것이다 때문에 동요와 같은 정형률을 취하면 자유분방한 정서를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랑송동시의 시적형상화에서는 반복법,전도법,병렬법,점진법 등 수사법을 가장 많이 쓰는것이 그 특징으로 된다.

반복법에서도 련속적인 반복과 축차적인 반복을 써서 격조를 높일수 있다 이를테면 련속적방법은 <<가자/ 배움터로!>>하여 학교 가는것을 강조하면서도 격조를 높일수가 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그리운/ 나의 아이들아>>에서 <<나의 아이들아>>가 반복되는데 그 사이에 <<사랑하는>>과 <<그리운>>이 끼여들어 축차적 반복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하면 절주가 생기면서 흐름에 그 어떤 파도가 생기여 예술적효과를 나타낼수가 있다.

전도법을 써서 강조점을 환기시킬수가 있다 <<보아라/저기 푸르른/저 하늘을>>에서 술어 <<보아라>>를 앞에 내다가 써서 작자의 강조점을 알려주면서 그 다음 아름운 <<저기 푸르른 저 하늘을>>이라는 환경을 펼쳐보이고 있다 여기서 작자의 강조점은<<보라>>라는데 력점이 찍히게 된다.

병렬법을 써서 시적흐름에 박력을 가할 수가 있다 <<선생님은 자리차고 일어날거야!/선생님은 교단으로 달려 갈거야!>>여기서 병렬된 시구는 강약으로 울리여 펴지면서 그 어떤 박력을 가하여 시의 흐름을 거세차게 한다.

점진법을 쓰면 시의 깊이를 파면서 내용은 깊어지고 정서는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과를 가지고/닭알을 가지고/사탕을 가지고 /수술한 나를/애절히 부르던/그 목소리 그 목소리>>여기서 점진법은 나어린 아이들이 병치료에 무슨 도움이 되련만 그래도 자기들의 선물을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와서 선생님을 부르는 그 내용은 깊어지고 그 정서는 눈물 날 정도로 승화되는것이다.

이런 수사법들은 시적흐름을 여울치게 하고 파도치게 하는 정서적 표현에 아주 좋은 효과를 가져올수가 있다.

랑송동시에서는 시적대상은 되도록 직관적인 형상으로 눈앞에 선명히 보여주고 시적인 내용은 되도록 알기 쉽게 전달되여야 한다.

하기에 전통동시에서 많이 쓰던 직접비유를 많이 쓰게 된다 그렇지 않고 은유처리를 하면 랑송을 들으면서 그것을 사색하고 음미할 여유시간이 없기에 랑송시 내용파악에 지장을 주게 되고 선동성효과를 보기 어렵게 된다.

텅빈 산골 운동장
물소리만 나와 놀고있다
*
삐꺽 삐꺽 새여 나오던
풍금소리는 창틈에 녹 쓸고
*
아이들이 닦아놓은 창에
거미줄 친 하늘이 끼워져 있다

이런 현대동시형태로 랑송시를 쓰면 청각으로 듣고서는 무슨 내용인지 대뜸 파악하기 어려웁게 된다 그러기에 시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시적인 감흥을 받을수 있겠는가?

하기에 랑송동시에서는 이미지 동시와 달리 듣고서 얼른 내용을 파악하고 정서를 가려잡을수 있도록 써야하는것이다.

랑송동시에서는 현대이미지 동시보다는 작자의 주정토로가 직접 사용 된다 그 주정토로는 감정정서의 론리에 맞게 그리고 자연스럽고 가슴속으로부터 우러져 나오게 된다.

현대적인 이미지 동시에서는 시적형상에 숨어있는 이미지를 사색하고 음미하는 과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시의 정서를 뒤늦게 서서히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랑송동시는 청각적으로 들려오는 시적내용과 흘러오는 소리의 정서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시의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하기에 내용전달의 직접성과 정서전달의 직접성이 담보되여야 한다.

랑송동시는 상술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완전히 독립은 되지 못한 그런 동시의 한 형태로 보게 된다.

3랑송동시창작에서 나서는 문제

가,시의 생명은 서정성에 있다 하기에 동시의 생명도 서정성에 있다고 하여야 하겠다 그런데 우리 동시에서의 이 서정성이 최근에 와서 약화되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현대 이미지 동시에서는 시적대상을 관조적으로 감상하고 거기에 형상을 꽃피우면서 되도록 감정의 표출을 절제하고 시적인 느낌을 은근히 유출하는데 신경을 쓰고있다.

이것은 우리의 동시가 혁신된 하나의 기꺼운 표현으로 된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또한 시의 서정성을 어떻게 강화할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것으로도 된다.

솔밭을 /지날 때면/파랗게/파랗게
진달래산/지날 때면/빨갛게/빨갛게
마을 앞.지날 때면/하얗게/하얗게

이 동시는 절제된 언어로 함축된 시적형상을 창조하면서 그윽한 시적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읊어보면 그 어떤 서정성을 직접 반갑게 느낄수는 없는 것으로 되었다.

이것은 80년대까지 내려오던 우리의 낡은 동시 즉 작자의 주장을 적라라하게 표출하고 <<아>><<오>> 감탄사를 련발하던 그런 동시에서 해탈되여 나온 새로운 동시인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동시에서의 서정성을 어떻게 살릴것인가에 대하여서는 우리 함께 연구 할바를 동시에 제기하여 주고있다.

이면에서 랑송동시는 사그러져가는 동시의 서정성을 살리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수가 있다 지난 시기 정치가 판을 치던 시기 이른바 랑송동시에서의 서정성을 정치적 태도표시로 여긴다거나 정치적인 설교를 악청높이 하는 것으로 리해한 이것은 한낱 엄중한 페단이였다 그런 페단은 우리 마땅히 삼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형식에서의 이른바의 서정성을 연구하여 교훈은 버리고 경험을 따온다면 우리의 동시의 서정성을 되살려내는데 일정한 도움이 되지 않을가 생각된다.

특히 랑송동시의 선동성과 고동성을 살리면 동시의 서정성을 얼마든지 강화할 수가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현대 이미지 동시로써는 동시감상군체를 즉석적으로 감화시키고 분발시키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것이 현실로 되고 있다.

현재 학교 같은데서는 학생들을 그 어떤 목표실현을 위하여 문학적인 힘을 빌어 다시 말하면 랑송동시를 리용하여 학생들을 조직동원하자고 하여도 랑송동시가 부족한 현실이 아닌가?.

우리 아이들은 현대이미지 동시를 조용히 읽고 사색하고 음미하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정서적느낌을 서서히 체험하는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또 그런 동시에 기승전결이 잘 나타나지 않아 아이들의 정서표현에 어울리지 않고 읊기에 알맞지 않고 또 그래서 읽기 싫어하고 있는것 또한 현실이다.

그들은 직접 감동을 받고 소리 높이 웨치고 마음껏 노래하면서 정서폭발을 수요하고 있다 하기에 우리는 랑송동시를 창작하여 그들에게 풍만한 정서를 안겨줄수가 있는것이다.

나,랑송동시를 창작할 때 기승전결의 감정정서의 흐름을 잘 조직하여야 한다 랑송동시는 현대이미지 동시와는 달리 시적정서가 외적으로 표출되기에 이런 감정정서는 마땅히 자연스럽게 표출되게 하여야 한다.

랑송동시에서 처음으로 시적제시를 잘하여 청중들의 주의를 대번에 확 끌어오고 시적인 발전을 상승적으로 꾀하며 시적절정에 감동적으로 치달아 올라 선동작용과 고동작용을 한껏 발휘하면서 긴 여운을 남기며 시를 마무리하여야 한다.

필자가 최근에 <<그리움의 하늘아래>>라는 랑송시를 써보았다.

시적제시는 병상에 누워서 창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 푸른 하늘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선-생-님->>이라는 목소리, 그것은 시의 발단으로 된다.

그 <<선-생-님->>은 금방 아이들이 남기고 간 메아리,어떤 메아리인가? 금방 수술한 나에게 연필을 선물한 아이들의 목소리 손수건을,사과를 과자를 ...선물로 가지고 와서 선생님의 건강을 빌며 선생님을 안타까이 부르던 그런 아이들의 메아리, 그런 메아리가 깃든 선물들이 탁상우에 수북한데,그런 선물에 담긴 아이들의 뜨거운 마음,따뜻한 정성,간절한 소원이 지금 나의 가슴속에서 사품치며 흐른다고 시인은 높이 읊조리고 있다 시는 이처럼 직선적으로 상승적으로 발전 하다가 절정으로 치달아 오른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선생님은 자리차고 일어 날거야!
그리운 아이들아
선생님은 교단으로 달려 갈거야!

이렇게 주인공은 시적인 충동을 받고 궐기하여 일어 나면서 금방 수술하고서도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에 목이 메여 교단으로 달려가려 떨쳐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시 첫머리와 조응을 꾀하면서 다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저 푸른 하늘을 향하여 그리운 아이들을 목놓아 부르며 긴 여운을 남기였다.

시 전반에 거칠매 없이 상승적인 감정조직을 하여 일정한 정도로 감동적이며 격정적인 시적정서를 유발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 랑송동시는 서사시의 장점을 따다가 흔히 감동적인 이야기의 한 대목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것이 그 특징으로 된다.

이때 이야기의 원인, 경과, 결과를 시시콜콜하게 서술할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사건의 직선적인 발전을 비약적으로 상승적으로 정서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리하여 감동적인 이야기 그 자체가 독자의 마음에 거침없이 흘러 들어가고 그 이야기에 담긴 내용자체가 청중들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주어 독자에게 감흥을 주게 해야 한다 하기에 감동적인 이야기 한대목 자체가 서정성을 제고 하는 작용을 하게 되고 주인공에게 감흥을 주어 궐기시키는 작용도 겸하여 하게 되는것이다.

라,랑송시는 력사적으로 보면 격변의 년대에 적극적인 작용을 많이 하여 왔었다 구쏘련의 이사꼽쓰끼의 <<쏘베트공민증>>에서는 사회주의 나라의 주인된 그 영광을 자본주의 나라를 상대로하여 격정높이 읊조려 사회주의 존엄을 온 세상에 떨친 그 시는 정말로 전투적이였다.

천안문 사건 때 반당집단을 성토한 랑송시들은 사회주의가 위기에 처한 그 위험한 시기 열혈청년들이 천안문광장 화표에 올라가 자기의 피타는 목소리로 림표강청집단에 강렬한 시적 포탄을 퍼부었던것이다.

오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이 력사적 시기에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의 정의로운 정서를 어떻게 하면 랑송동시에 반영할것인가는 우리 모두가 연구할바이다.

동시에는 현대이미지동시 한가지 뿐만이 아니다 독자 혼자서 조용히 시적내용을 음미하는 그런 동시도 필요하지만 동시작시법을 종합적으로 리용하여 격정에 차넘치는 정서를 유발하여 감상군체를 선동하고 고동하고 궐기시키는 그런 격정적인 랑송동시도 필요한 시대이다.

오늘은 법치 시대로 온갖 사회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그런 준엄한 시대이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포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전투는 계속되고 인민은 승리하는 시대이다.

격변의 시대, 승리의 시대에 우리 동시인들 모두 떨쳐나 아이들을 위하여 랑송시를 창작하여 소리 높이 읊어보자!

201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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