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 동시의 흐름을 알아보다...
중국 조선족 동시발전과정과 2000년대 우리 동시 /김만석
서론
우리 중국 연변주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에서는 지난시기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주1)를 편집출판하여 1920년대로부터 1990년대까지의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을 총화한 다음 이번에는 2000년대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을 총화하기 시작하였다
그 첫걸음으로 <<2000년대중국조선족10인 동시집>>(주2)을 출판하여냈다
본고에서는 중국조선족 동시발전과정을 조명하고 2000년대 우리중국조선족 동시를 투시하여 보면서 우리 동시가 거둔 사상예술적 성과를 평가하고 그 문학사적 의의를 밝히려고 한다
1927년~1980년대 전반기까지 우리의 동시의 변화과정
중국조선족 아동문학에서 동요동시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선두장르로 줄곧 내려오면서 우리의 아동문학을 이끌어 왔다
1,중국조선족동요동시는 1927년 채택룡의 동요 <<어린동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채택룡은 그 동요의 원작을 복원하지 못하고 타계하셨다
그리하여 1928년 <<별나라>>봄호에 발표한 채택룡의<<백양나무 우거진 울타리 밑에/오손도손 잘 사는 개미네 마을/오늘도 쉬지 않고 량식 모은다/하나둘 떼를 지어 량식 모은다//장다리밭 꿀돼지 놀고 먹는 놈/개미집 뛰여들어 쌀 빼앗다가/모여든 개미한테 물어 뜯기여/뚱뚱배가 터지여 죽어버렸네>>라는 동요<<개미>>를 우리중국조선족의 첫 동요작품으로 인정하고있다
1925년경은 한반도 아동문학에서 동요황금시기로 <<반달>>,<<고향의 봄>>,<<따오기>>등 명동요들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1937년 박영종과 김영일이 동요의 따분한 틀에서 해탈하려고 <<동시혁신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박영종을 비롯한 천사주의파, 방정환을 비롯한 애상주의파, 그리고 박세영을 비롯한 프로아동문학류파들로 한반도의 동시단이 움직여 나아갔다
이에 앞서 채택룡은 1932년에 <<사랑하는 누나에게>>(주3)라는 격정적인 자유동시를 창작하였고 김례삼은 1932년에 <<나는 빌어먹는 거지>>(주4)라는 정형동시를 창작하였다 이 두 동시는 모두 계급주의를 선양한 프로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이였다
윤동주는 한반도의 <<동시혁신운동>>의 물결속에 뛰여들어<<우리 집에는/닭도 없단다/다만/애기가 젓 달라 울어서/새벽이 된다//우리 집에는/시계도 없단다/다만/애기가 젓달라 보채서/새벽이 된다>>라는 동시<<아기의새벽>>을 비롯하여 동시<<참새>>,<<오줌싸개도>>,<<조개껍데기>>등 훌륭한 자유동시를 창작하였다
1940년대에 이르러 리호남은 <<신작로는 발돋음해/봐도 봐도 끝은 안 뵈고//신작로는 전보줄이/ 자꾸자꾸 따라만 갔네>>(주5)라는 동시<<신장로>>를 비롯하여 동화시<<아기와 코스모스>>,동시<<촌정거장>>등 자유동시를 쓰면서 우리의 중국조선족동시를 한반도에 못지 않는 수준에로 끌어 올리였다
보는 바와 같이 해방전 우리 동시문학은 상당한 수준에 톺아오른 것으로 평가할 수가 있다
2, 1950년대에 이르러 우리 동시단은 조선아동문학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 창작되였다 당시 아동문학에서의 운문을 오직 동요로만 리해하는 시대적인 페단이 나타났다
하여 작가들마다 동요창작에 몰두하면서 동요황금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결과 김례삼의 <<고개길>>,채택룡의 <<병아리>>,윤정석의 <<앵코타기>>,리행복의 <<꽃동산>>등이 창작되면서 동요가 판을 치게 되였다
이렇다 보니 자유동시를 쓰던 채택룡도 정형률을 지행하면서 련의 행수를 2행으로부터 13행까지 늘여보았지만 결국은 동시는 별로 쓰지 못하고 말았다
정형동시를 창작하던 김례삼도 7.5조와 7.7조 정형률을 추구하면서 정형동요를 쓰기만 하였다
최형동이 1950년대 초에 자유동시<<엄마는?>>을 썼고 김례삼이 1950년대 말에 정형동시<<요 돌을 홀딱 뺄테야>>를 썼으며 윤정석이 1960년대 초에 자유동시<<그 이름 새겨 두어라>>를 썼지만 그 당시 동시단에서 동시는 별로 중시를 받지 못하여 아동문학의 운문은 동요만이라는 착오적인 시대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3, 1950년대 후반기로부터 우리 동시문학은 계급투쟁의 물결속에서 중국<<정치아동문학>>의 영향을 받아 정치를 위하여 복무하면서 송가식의 작품이 대량 창작되였다
특히 리행복이 가사창작을 진행하면서부터 우리 동시단은 동요도 동시요,가사도 동시요,동시도 동시라는 동시혼돈기를 겪게 되었다 여기에 김만석,김득만이 합세하면서 이 동시 혼돈기가 1980년대 전반기까지 이어가게 되었다
이 시기의 이른바의 동시는 정치를 위하여 복무하는 공구로 전락되였다 대체로 생활 가운데서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감동적인 사건의 한 대목을 시적제재로 선택하여 7.5조 운률에 맞추어 2행 1련, 혹은 4행 1련의 정형적인 형식에 담고 <<아>>,<<오>>감탄사를 련발하면서 이른바 동시의 서정성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작자의 정치적주장을 적라라하게 표출함으로써 동시가 정치를 위하여 복무하는 것으로 인정하였었다
하여 1980년대 전반기까지의 우리 동시는 정치성이 강화되고 예술성이 홀시되면서 동시가 정치를 위하여 복무한 결과 문학으로서는 자기의 떳떳한 동시위상을 수립하지 못하고 말았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동시의 혁신과정
1,1980년대 후반기로부터 최문섭이 우리 동시의 페단을 남 먼저알고 <<우리동시 때벗이>(주6)를 주장하면서 동시를 혁신하여 보려고 애를 썼다
그는 작자의 주장의 표출화에 염오를 느끼고 1987년에<<푸르른 들판에 흰구름 흐르네/쉼없이 앞으로 흐르네/푸르른 들판이 한늘인줄 알고/흰구름 내려와서 노니는게지//파아란 하늘에 양떼가 떠가네/쉼없이 둥둥 떠가네/파아란 하늘이 풀밭인줄 알고/ 양들이 풀 먹으러 올라간게지>>라는 환상동시<<양떼와 흰구름>>을 발표하였다
그는 1989년에 동시 <<이슬풀>>을 세상에 내놓았다.
시인은 풀잎에 맺힌 이슬에 모를 박고 탐구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 이슬에 달이 자고/그 이슬에 별이 자고/그 이슬에 해를 품는다>>는 기발한 착상으로 송아지가 뜯어 먹는 풀에 맺힌 이슬을 확대조명하고 나서 송아지는 <<해와 달과 별>>을 먹고 <<금송아지>>로 된다고 직선적이고도 상승적인 시적도약을 시도하였다
여기에 송아지를 기르는 아이의 정성이 안받침되였기에 그 시적비약에 합리성이 따라서게 되였다.하기에 독자들은 그 비약과정에서 사색을 줄달음치며 그것을 음미하고 그것을 리해하고서 해솟는 아침, 이슬 머금은 파란 풀밭에서 사랑하는 금송아지를 기르는 착한 농촌 아이의 우아한 모습을 그려 보면서 예술적인 경지에 치달아 오르게 되는것이다
이런 동시들은 우리중국조선족 현대동시창작 초기단계에 창작된 성과적인 동시로 취급할 수가 있다 이것은 도식적인 우리 동시창작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데서 막강한 공헌을 한 동시로 된다 이런 동시들은 지난날 동시와 질적인 구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의 형식에서는 아직은 정형틀을 마스지 못하고 정형동시형태를 취하고있었다
2,1980년대 말기로부터 1990년대 초기에 한석윤은 7.5조의 각을 뜯다가 점차 자유률을 지행하게 되었다 일찍 리재철교수는 <<연변동시는 왜 두부모처럼 조립하는거야>>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런 페단에서 해탈하려고 한석윤이 노력한 결과 우리 동시는 정형적인 격식화에서 탈출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였다
3,1980년대 말에 이른바 감각동시가 출두하였다 한석윤의<<학교냄새>>에서는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들한테서 <<학교냄새>>가 난다고 후각적 이미지를 창조하려 시도하였고 ,김성문의 <<단풍꽃>>에서는 단풍잎이 햇볕을 받아 <<앗, 따가라/앗따가라>>,달빛을 받아<<앗,차거라/앗,차거라>>하는 촉각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려고 시도하였다
4, 1990년대부터 우리는 한국을 통한 구라파 현대시의 영향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강효삼,김현순,김철호,김학송,최룡관,림금산 등이 한국 현대동시를 따라 배우면서 우리 동시창작에서는 일대 전변이 일어났다
(1)우리 동시인들은 직설적인 언어표현을 멀리하고 굴절적인 표현으로 동시언어를 비탈아 낯설게 표현하였다.이를테면<<움-머/울음이/노랗다//뚜벅뚜벅/발걸음이/둥글다//착-착/꼬리로/웃는다>>(주7)에서처럼 <<울음이 노랗다>>,<<발걸음이 둥글다>>는 시어를 바탈아 굴절시킨 낯선 표현이다
많은 동시인들은 혁신과정에서 동시언어의 낯선표현은 반드시 독자대상인 소년아동들의 실제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사유능력,그들의인식수준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점을 터득하게 되었다 반대로 독자대상인 소년아동들의 실제를 떠나 동시를 혁신한답시고 작자 자신의 사유능력,인식수준에서 출발하여 임의대로 언어구사를 하면서 언어를 비탈고 굴절시키면 우리의 동시가 난해시로 전락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였다
(2) 시어의 뜻 전달에 만족하던데로부터 시어의 감각적인 느낌을 추구하면서 시적주장의 적라라한 표출을 외면하고 시적이미지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해빛이 뛰놀던/가지 가지에//하얗게 하얗게/애기학들이//날개를 파닥이며/놀다간 자리//파아란 애기알들/조롱조롱>>(주8)여기서 시인은 자기의 개성적인 느낌을 주장하면서 사과꽃을 아기학으로 은유시키고 사과열매를 파아란 애기알들로 은유시키면서 사과꽃의 시적 이미지를 창출하였다
(3)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직유적인 표현을 저쪽으로 밀어놓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여 상징동시가 대두하였다
그것도 단순은유로부터 병치은유, 즉 원관념 하나에 보조관념 둘 이상을 병렬시키는 방향으로 상징동시가 다양화 되었다 림금산의 동시<<양떼>>에서는 <<들판에/하얀 양들이 널려있다 /눈덩이 구을러간다/구름송이 흘러간다/햇솜이 지평선에 간다/하늘 끝에 간다/가다가 가다가/눈이 아물거리는 그 끝점/하얀 손수건이 날린다>>라고 노래하고있다
작자는 여기서 원관념<<양떼>>(주9)를 보조관념<<눈덩이>>,<<구름송이>>,<<햇솜>>,<<하얀손수건>>으로 렬거하면서 병치은유를 성공하였다
또 <
>라는 형식으로 <<가지는/ 시계추>>라고 공식적인 대입을 하던데로부터 원관념 a를 형상적인 보조관념 b로 표현하면서 동시의 형상성을 한 차원 제고하게 되었다.이를테면 <<구름속에/우뚝선 /기린은//개미들이/하늘나라/올라 가는//높다란/사다리/기다란/사다리//엉금성큼/걸어 다니는/개미네/사다리>>(주10)에서처럼 원관념 기린을 보조관념 사다리로 은유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사다리<<엉금성큼 /걸어 다니는 >>형상적인 사다리로 표현하여 기린의 시적형상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은유적인 상징동시에서 형상성은 어느 정도 제고되였으나 시의 생명으로 되고있는 서정성이 결여되는 현상을 직감하고 시인들은 은유적인 상징동시의 서정성 제고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김철호는 <<솔밭을/지날 때면/파랗게/파랗게//진달래산/ 지날 때면/빨갛게/빨갛게//마을앞/지날 때면/하얗게/하얗게>>(주11)라고 하면서 민족적이며 정서적인 산꼴물의 시적형상을 창조하는데서 일정한 성과를 올리였다
그런데 우리시단에는 이런 은유적인 상징동시를 자기말로 바꾸어<<변형물 찾기>>라고 하면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이 원유의 리론을 배격하고 이른바 새로운 리론을 들고나온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리론은 은유리론을 반복한 것으로서 절대 새로운 리론으로는 될 수가 없는것이다 즉 이른바 <<변형물>>이란 결국은 <<보조관념>>을 두고하는 말인것이다
그들은 이런 <<변형물찾기>>를 하지 않는 동시는 동시가 아라고 하면서 우리의 동시를 단일화하려는 경향이 엄중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동시는 자기가 보기 위하여 쓴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동시를 난해동시로 끌고 나아가 동시의 대상성을 홀시하는 경향이 한시기 나타났었다 이를테면 <<해님은/ 국수틀>>이라고 하면서 은유에서의 원관념과 보조관념사이의 상사성이 있어야만 은유가 성립된다는 최저의 요구도 무시한 결과 난해시로 전락되고 말았다
5,동시의 형식을 놓고 보면 시행 구성과 련 구성을 보다 자유롭게 하게 되여 우리 동시는 진짜 자유동시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1자 1행의 행 조직방법이 너무 지나치게 람용되여 새로운 도식화경향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런 1자1행의 행 구성방법은 시적대상물의 생태적특징에서 비롯되여 시적 대상을 시각화하는데 일정한 예술적효과를 나타낼수가 있다 이를테면 <<처마 밑에/대롱/대롱/ 고/드/름/은>>에서 고드름은 내리 드리운 형상이기에 한자씩 한 행을 만들어 그 형상성을 살리려고 작자는 시도한것이였다
우리 시단에서 보면 일찍 김성문이 1985년에 동시<<괘씸한 흰머리>>와 1997년 동시<<고드름>>을 발표하여 사람들의 여론에 오르게 되였다 작자의 예술적 추구를 무시한 그런 사람들은 제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이게 어디 시인가? 1자 1행으로 행수를 늘여 원고비를 더 타자는 수단이다>>라는 조소와 풍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김성문의 창조가 아니였다 일찍 한국의 리희철이<<눈>>이라는 동시에서 <<파/르/르/르/내리는 눈//사/르/르/르/녹는 눈>>이라고 시도한바도 있고 한국작가 조유로가 <<개나리>>라는 동시에서 <<별이/앉은 자리/엔/꽃이/열리/고>>라고한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 동시단에서 그같이 비웃고 조소하고 풍자하던 기법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판을 치면서 어떤사람의 동시집에는 1자 1행의 동시가 23.7%나 찾이하여 우리의 동시를 새로운 도식화에로 몰고갈 위험을 초래하게 되였다
6,동시창작 과정에서 상술한 페단들이 나타났는가 하면 리론상에서는 창작은 <<모방>>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여 열렬한 론쟁이 벌어졌다 하여 창작을 모방으로 인식하고 남의 작품을 단어 몇 개, 토 몇 개를 고치고서는 자기 작품이라고 발표하는 현상이 나타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나도 남의 작품을 내 이름으로 얼마든지 발표할 수가 있다>>고 떠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런 비과학적이며 비도덕적인 야비한 현상에 대하여서는 가차없는 비판을 들이 대였다
호박넝쿨(주12)
한국에서 손길봉이 <<호박넝굴 끝에는/눈이 있지요/울바자를 보고서/찾아 가지요//호박넝굴 끝에는 /손이 있지요/울타리를 붙잡고/ 올라 가지요>>라고 쓴 동시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박넝쿨>>이라는 동시가 나타났다
박넝쿨(주13)
<< 박넝쿨엔/눈이 있어요/울바자를 보면/살금살금 찾아 가지요//
박넝쿨엔/ 손이 있지요/울바자를 찾아서/ 정답게 감겨 올라요>>
상기 2수의 동시를 서로 비교하여 보면 시적대상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손길봉은 <<호박넝굴>>로 하고 최준은 <<박넝쿨>>로 하였다
그러나 형식상에서 시적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시적발견은 둘 다 <<호박넝굴>>과 <<박넝쿨>>에 <<눈>>이 있고 <<손>>이 있다고 한것이다 즉 시적발견이 완전히 같다는 말이다
시적형상화에서 보면 손길봉이 <<호박넝굴>>이라고 한 것을 최준은 <<박넝쿨>>로 하였다 그리고 손길봉이 눈이 있는 호박넝굴이 울바자를 보고서 <<찾아가지요>>한 것을 최준은 박넝쿨이 <<살금살금 찾아가지요>>라고 하면서 본딴말 <<살금살금>>을 더 넣었다 나중에 손길봉이 손이 있는 호박넝굴이 <<울타리를 붙잡고/올라가지요>>한 것을 최준은 손이 있는 박넝쿨이 <<울바자를 찾아서 /정답게 감겨 올라요>>라고 하면서 <<정답게 감겨>>라는 말을 보태여 넣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보면 준모방으로 취급할 수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완전모방이나 다름없어서 사실은 표절작품이라고 하여야하겠다
동시창작을 일별하여 보면 완전모방,준모방,류사성,우연일치,개성적인 창작 등 다섯가지 경우가 있게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목소리로 자기식의 개성적인 동시를 창작하여야 한다
일찍 한국의 신현득선생은 한국에서 불어치는 모방현상을 극복하기위하여 10여명의 모방작품을 례로 들면서 엄격하고도 가차없이 그리고 예리하고도 여지없는 비평을 들이대여 한국의 동시모방바람을 물리치였던것이다
동시가 발전하자면 이런 모방단계를 겪어야하는가 본다 우리도 동시창작에서의 이런 <<모방바람>>을 견결히 그리고 대담하게 막아버리였다
7,또 2000년대에 들어서서 작자를 보지 않고 작품을 보면서 엄격하고 실사구시적이며 원칙적인 평론들이 나타나 상술한 페단들을 제때에 시정하고 바로잡으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이렇게 198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우리 동시혁신과정은 복잡하고 간고한 실천과정을 거치게 되였다
2000년대 중국조선족 동시
우리 동시단에는 동시를 창작하는 동시인들이 력사적으로 보면 53명이나 된다
최근에 우리 아동문학연구회에서는 그런 동시인들 가운데서 동시창작에서 일정한 창작성과를 이룩하였고 또 어느 정도 자기의 개성적인 동시풍격을 형성하였다고 인정하는 10명의 동시인의 작품으로 <<2000년대 중국조선족10인 동시집>>을 묶었다
그들로는 강효삼, 김득만, 김선파, 김철호, 김학송, 림금산, 최룡관,최문섭, 한석윤, 홍용암 등이다
상기 동시인들의 동시작품들에서 우리는 동시인들 저마다 나름대로의 추구를 앞세우면서 모지름을 써가며 창작하였다는것을 보아 낼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동시 전부가 수준급 동시라고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또 이런 동시들은 그래도 2000년대 우리의 동시수준을 두루 설명할수는 있다고 필자는 판단하였다
특히 강효삼의 은유적인 상징동시<<고개 숙인 벼이삭>>,김득만의 화적동시<<숨은 합창단>>,김선파의 회화적동시<<저수지>>,김철호의 회화적인 동시<<산꼴물>>,김학송의 은유적인 상징동시<<황소>>,림금산의 화적인 동시<<고추잠자리>>,최문섭의 은유적인 상징동시<<콩나물>>,최룡관의 은유적인 상징동시<<뒤동산 사과꽃>>, 한석윤의 화적인 동시<<우는 38선>>,홍용암의 은유적인 상징동시<<꽃>>등은 일정한 수준에 오른 동시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강효삼의 동시 <<고개 숙인 벼이삭>>(주14)은 <<꼿꼿이 서있던 파란들이/모두가 노오란 가 되었어요//이상한 기후에도 어김없이 풍년 드니/묻고싶어 알고싶어/저마다 꼬부랑물음표가 되었죠>>라고 노래하고있다
여기서 작자는 꼿꼿이 서있던 원관념<<벼이삭>>을 보조관념<>로 은유하고 원관념 <<노오란 벼이삭>>을 보조관념 고개숙인 <>로 은유한 여기에 기발한 예술적 착상이 돋보인다
김선파의 회화적동시 <<저수지>>(주15)에서는 <<저수지는/저 푸른 하늘/둥-둥-/흰구름 집어먹고//저수지는/저 먼 하늘가/들쑹날쑹/ 산발들을 집어먹고//저수지는/여기 물가/울울창창/푸른숲도 집어먹고//저수지는 /너무너무 배불러/입을 하-/벌리고 누워있다>>라고 노래하고있다
여기서 작자는 저수지에 비낀 흰구름,산발,푸른 숲을 회화적인 화폭으로 그려놓고 저수지가 바로 그것들을 집어먹었다고 엉뚱한 판단을 내려준다 그리고 그 모든것을 집어 먹은 저수지가 <<너무 너무 배불러/입을 하-/벌리고 /누워 있다>>고 의인화 처리를 하면서 예술적 경지에 오르고있다
김철호의 은유적인 상징동시 <<나비>>(주16)에서는 <<가지 없어도/노랗게 핀다//뿌리 없어도/하얗게 핀다>>라고 원관념 <<나비>>는 제목에서만 얼비치고 그것을 보조관념 노랗게,하얗게 피는 <<꽃>>으로 표현하여 아주 깔끔하고도 오묘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하였다
림금산은 동시 화적동시<<고추잠자리>>(주17)는 <<푸르릉 하늘 나는/고추잠자리//시장 모퉁서/고추장 파는/할매한테 갔다 왔나//꽁지엔 온통/고추장 묻혔네>> 라고 노래하고있다
작자는 잠자리의 빨간 꽁지를 집중 조명하고나서 그 빨간것은 시장에서 고추장 파는 할매한테 갔다가 고추장을 묻혀와서 그렇다고 한 여기에 기발한 동심적인 착상이 안겨온다
최문섭의 동시 <<콩나물>>(주18)은 <<노란/음표들이/실눈을 뜨고/줄지어 서있다//하얀/동요가/시루안에 빼곡이/차고 넘친다>>라고 노래하고있다
여기서 원관념 <<콩나물>>을 보조관념 <<음표>>로 둔갑시키고 그 다음 회화적인 시루안에 빼곡한 콩나물의 정적인 형상을 <<하얀 동요가 차고 넘친다>>고 청각적인 형상으로 엉뚱한 승화를 시킨 여기에서 이 동시의 매력적 형상이 한결 돋보인다
홍용암의 동시 <<꽃>>(주19)은<<겨우내/추웠던 대지//봄맞아/하늘 향해/높이 든 축배//천잔/만잔/잔마다/봄향기가 하나 가득/찰찰>>이라고 노래하고있다
봄에 대지에 만발한 꽃을 천잔 만잔 축배를 든 잔으로 은유적 처리를 한 여기에 작자의 예술적 추구가 안겨온다
상술한 동시들은 1980년대 말부터 진행된 우리의 동시혁신운동을 거친 후에 나타난 동시들로 2000년대의 우리의 현대동시 수준을 어느 정도 보여줄수있는 동시대표작들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결론
모두어 보면 중국조선족동시는 1980년대 후반기로부터 시작하여 동시의 <<때벗이>>를 시도하면서부터 개혁시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우선 우리의 동시는 정형틀에서 해탈되여 나오면서 자유동시가 추구되였고 작자의 시적주장의 적라라한 표출로부터 시적이미지를 창출하게 되면서 감각동시가 대두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은유적인 상징동시가 개발되면서 단순은유로부터 병치은유,그리고 은유적인 상징동시에서 시적형상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과 서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거쳐 우리의 동시는 새로운 차원에로 도약하게 되었다
하여 2000년대 우리의 동시는 복잡한 개혁적인 실천과정을 거쳐 전통적인 동시와 현대동시가 함께 공존하는 동시 다양화시대에 진입하게 되였다
결과 회화적인 동시,화적인 동시,의인화동시, 환상동시,철리동시,감각적이미지 동시, 은유적인 상징동시들이 백화 만발하면서 동시의 새로운 창작번영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필자는 2000년대 우리중국조선족 동시는 일정한 수준에 톺아 올랐다고 자신있게 말하고싶다 하여 우리의 중국조선족동시는 지금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선두장르 위치를 계속 확보하면서 우리의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을 번영에로 이끌어 가고있다
주해
주1:<<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전6권.한국광주<<시와 사람>>사 에서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출판
주2:<<2000년대중국조선족10인동시집>>을 한국 광주<<시와 사 람>>사에서 2013년 6월 출판
주3:1932년 채택룡은 동시 <<사랑하는 누나여>>를 <<신문화>>잡 지에 발표
주4:김례삼은 1932년<<나는 빌어먹는 거지>>를 창작하여 <<매일 신문>>에 발표.
주5:리호남은 1942년 <<재만조선인시집>>에 동시<<신장로>>를 발표
주6:최문섭은 1987년부터<<우리동시를 때벗이 하자>>는 구호를 제기하였다
주7:김학송의 동시<<황소>>는 <<2000년대중국조선족10인동시집 <<우리네동시>>제69페지에 발표
주8:최룡관의 동시<<뒤동산 사과꽃>>은 동상서 제93페지에 발표
주9:림금산의 동시 <<양떼>>는 림금산의 동시집<<사과꽃 복사꽃>>제76페지
주10:김선파의 동시 <<기린>>은 <<2000년대중국조선족10인동시 집>><<우리네동시>>제42페지에 발표
주11:김철호의 동시<<산꼴물>>은 동상서 제63페지에 발표
주12: <<호박넝쿨>>은 한국 동시인 송길봉의 작품
주13:중국 최준의 <<박넝쿨>>은 2010년 <<아동문학>>겨울호에 발표
주14:강효삼의 <<고개숙인 벼이삭>>은 <<2000년대중국조선족10 인동시집>><<우리네동시>>제14페지에 발표
주15:김만석의 동시 <<저수지>>는 동상서 제49페지에 발표
주16: 김철호의 동시 <<나비>>는 동상서 제54페지에 발표
주17:림금산의 동시 <<고추잠자리>>는 동상서 제81페지에 발표
주18: 최문섭의 동시 <<콩나물>>은 동상서 제106페지에 발표
주19:홍용암의 동시<<꽃>>은 동상서 130페지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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