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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에 비친 외로운 세계
―정지용의 시에 대한 일 고찰
장춘식
鄭芝溶(1903-1950?)은 신경향파문학이 성행하던 1920년대 중반에 이들 사조와는 다른 순수시로 문단에 등장한 이색적인 시인이다. 그리고 그는 줄곧 순수시를 추구하여 일제말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창작뿐만 아니라 후배 양성을 통해서도 한국 시단의 순수시를 지켜냈다. 이 때문에 “한국 최초의 모더니스트 시인”, “현대시의 선구”1)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정지용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
1. 동심과 향수 그리고 망국의 슬픔
정지용의 초기 시들은 대체로 동시거나 동시 성격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성숙기에 들어서도 동시는 아니지만 동심이 다분히 느껴지는 작품들이 상당수 보인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인의 심성은 동심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세계를 보는 정지용의 시각에도 동심이 많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1.1 동심에 비친 향수
「일은봄아츰」2)이라는 작품은 동시가 아니면서도 전편 시어들에서 동심이 묻어난다.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드시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으론 으흐! 치워라.
말은 새삼넝쿨 새이새이로
알간 산ㅅ새색기가 물네ㅅ북 드나들덧.
작품의 첫 연인데 이른 봄 아침의 풍경을 그린 이 작품에서 화자는 산에서 날아온 새와 대화하려 한다. 새와의 대화는 대체로 동심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시어들도 상당 정도 동심에 닿아 있다.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드시”라는 표현이 그렇고 “오늘아츰에는 나이어린 코키리처럼 외로워라”는 표현 또한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그 동심의 세계에 비친 새와 “어린 누이”를 연결시킨다.
산에서 새색기가 차저 왓다
알간 니ㅌ를 쓰고 왓다.
알간 니트가 하나 잇섯스면-
사철 발버슨 어린누이 씨워주고
호호호 손ㅅ벽 치며 놀녀대 볼가.
내 어린누이 도
아아, 산에서 온 조그마한 손님 이어니.
이 시는 1926년 시인의 나이 25세 때 쓴 작품으로 밝혀놓고 있다. 이 점에서도 시인이 항상 동심을 보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정지용은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현대 향수시의 절창이라 할만한 「鄕愁」는 모더니즘적인 요소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섭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너무나도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여서 긴 시 전문을 옮겨보았다. 이 작품은 가곡으로도 널리 불려지고 있거니와 우리 마음의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을 이처럼 가슴에 와 닿게 표현한 향수시도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동심은 여전히 중요한 감동의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첫 연의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등의 표현은 동심의 세계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또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섭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등의 표현도 같은 차원이다.
결국 정지용의 시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심은 항상 서로 연결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뒤에서 논의할 작품들에도 자주 나온다.
1.2 망국의 슬픔
흔히 「카페․프란스」3)는 정지용을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낙인을 찍은 첫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당시로서는 상당히 모더니즘적인 작품이었다는 말이 되는데 실제로도 이 작품에는 서구 모더니즘의 흔적이 다수 나타난다. 이 작품을 서구 모더니즘 시의 거장으로 알려진 T.S. 엘리어트의 「J.A. 프루프록의 戀歌」와 비교하면 그 영향관계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4)그러나 필자의 관심은 여기에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작품 마지막 2연의 표현에 더 관심이 간다.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大理石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오오, 異國種강아지야
내발을 빨어다오.
내발을 빨어다오.
이 작품이 발표되던 당시는 이미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갈수록 강화되고 시집 <鄭芝溶詩集>에 이 작품이 수록될 때에는 더구나 일제의 문화탄압이 심화되던 시기이다. 따라서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라는 표현이 허용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수도 있다. 시 전체적으로 보아 화자의 국적이나 신분이 분명하지 않아서 일제의 검열을 빠져나갔는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이 작품은 정지용의 시에서 유일하게 망국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이런 정서대로 이해하면 마지막 연에서 異國種강아지더러 내 발을 빨아달라고 한 것 역시 저항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다고 하겠다.
정지용의 시는 일반적으로 순수시 혹은 모더니즘 시로 평가된다. 문학사적으로 순수문학 혹은 모더니즘 문학은 사실주의 혹은 낭만주의 문학과 대조를 이룬다. 심지어 비저항 문학이면서 친일, 혹은 부왜의 혐의를 피한 문학사조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정서를 따라가면 정지용의 다른 시작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다른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른의 세계에 물젖지 않은 혹은 물젖지 않으려는 동심의 세계와 처절한 향수의 정서는 다른 측면에서 이민족의 통치에 대한 불만을 동반한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망국노에게 있어, 나라 잃은 설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시대에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은 어쩌면 망국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동심은 이러한 향수를 표현하는 정지용 특유의 매개체가 된 것이고.
2. 외로움에 젖은 풍경
정지용의 시 중에는 특이하게도 경물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과 식민지 통치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현실도피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물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京都鴨川」5)이라는 작품에도 여전히 동심이 작용한다. “제비 한쌍 ㅅ다/비마지 춤을 추어” 등 표현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수박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ㅅ바람./오랑쥬 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등의 표현에서는 좀 더 내면화된 형태로 고향의 기억과 외로운 나그네의 시름을 느낄 수가 있다. 주목되는 점은 비록 유학생의 신분으로 이국땅 일본에 체류하는 나그네 신세의 시인이 경도 압천이라는 일본의 어느 시골 풍경을 보면서도 그 시어들에서 흐르는 정서는 향수에 젖은 외로움이라는 사실이다.
이미지즘적인 성격이 짙은 「石榴」6)에서도 시인의 시각은 상당 정도 동심에 비쳐져 있다. 화자는 입춘 때 밤에 화로의 숫불을 마주하고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맛본다. 그리고 그 다음의 이미지들은 이 석류 열매의 맛과 모양과 느낌을 연역한 것이 되는데 “透明한 녯생각”이나 “새론 시름의 무지개” 그리고 “조고마한 니야기” 등은 은연중에 고향이나 향수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또 “金붕어처럼 어린 녀릿 녀릿한 늣김”이나 “가녀린 동무”, “힌고기의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는 銀실” 등은 힘없고 연약하며 그래서 동정이 필요한, 혹은 쉽게 다치고 소멸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이를 나라 잃은 민족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면 지나친 비약이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시인은 그러한 연약한 것에 대한 애정과 사랑, 동정을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新羅千年의 푸른 하눌을 노니”라는 결구의 이미지는 여리고 가냘픈 것에 대한 동정을 넘어 망국의 슬픔을 해소하고자 하는 시인의 가냘픈 염원이 표현되었다 하겠다.
「琉璃窓 1」7)이라는 작품 또한 외롭고 가냘픈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다.
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흔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작품의 전문인데 첫 행의 “차고 슬픈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밝히지 않고 있으나 여러 이미지들을 연결시켜 보면 이 작품의 중심 이미지인 가냘프고 외로운 존재이다.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흐리운 것이라면 실제로는 입김에 의해 생기는 일종의 자연적인 변화 혹은 현상일 것이지만 동심에 비친 시심은 그러한 현상에 수많은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들 이미지들은 여리고 가냘픈 것과 외롭고 차가운 것들이다. “길들은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새까만 밤”, “밤에 홀로”, “외로운 황홀한 심사” 그리고 “고흔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날아간 “山ㅅ새” 등의 이미지들에 깃든 의미는 아무래도 가냘프고 외로운 것, 그러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동정이라 하겠다.
이 외에도 여리고 가냘프고 외롭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시인의 집착은 수많은 시작품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3. 결론
다수의 연구자들은 정지용을 초기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보고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의 작품을 고찰하고 있다. 과거 문학연구가 내용적 측면에 지나치게 주목했던 것에 대한 반발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형식에 대한 지나친 맹신 또한 편견임에 틀림없다. 사실 소설이든 시든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우선적인 관심은 작품의 메시지가 된다. 형식미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른바 “무의미의 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필자는 주로 내용적 측면에서 정지용의 시를 살펴보았다. 분석을 통해 정지용의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서는 동심에 비친 고향의 이미지와 가냘프고 여리고 외로운 것에 대한 동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수시를 지향했던 이 시인에게 있어 이는 암흑한 일제의 식민지통치 시대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그의 시는 이처럼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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