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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저항하라...
2016년 10월 28일 22시 12분  조회:3800  추천:0  작성자: 죽림

환경문제와 생태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 
                               유창섭 시인. 본지 주간 



1. 환경문제에 대한 문학적 관심 

 최근 들어 환경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소위 “...강 살리기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충돌하고 그 와중에 ‘감추어진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궁금증과 관심이 그 중심에 들어가기 시작한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최근 급격히 변화하는 지구의 환경 문제---지구 온난화, 북극 빙하의 해빙현상, 잦은 태풍과 폭우 현상, 바닷물 온도 상승에 따른 아열대 지역의 확산 등---나 생태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 해법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이 크게 증가한 데에도 영향이 크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인식은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던 생존의 욕구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는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 그 최소한의 생존의 욕구가 해결된 시대에는 인간이 살고 있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조건으로서 인간이 지키고 보존해야할 환경에 대한 인식에도 커다란 관심이 집중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환경이 변화하고 개발이 지속되는 곳에서는 어떠한 사업이든 이익을 보게 되는 양지쪽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음지쪽 사람들 역시 존재하는 것이므로 현대사회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좇는 무리가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관심과 찬반의 의견이 끼어들고 그 의견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행위가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그 근원적인 물음과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의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루어낸 가치와 그 가치에 충돌하면서 생기게 되는 부조화로 인한 손해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 지를 연구하고 실증하는 학자들이나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 자리에서 정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생각은 없지만, 그 정책들의 실시에 따른 각계의 반응이나 움직임을 살펴보고 실질적인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조하여 보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후손들에게 좋은 생태환경을 물려주어야 하는 이 시대를 앞서 사는 주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고도 절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토의 개발이 경제논리에 침몰하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주변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역할만 하게 될 뿐 먼 훗날에는 이것을 다시 되돌리는 사업에 투자하여야 할 자금이 지금의 몇 배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과 정부의 홍보자료가 근거없이 작성되어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정부 발표로는 22조라지만 업계에서 족히 40조는 될 거라고 추정하는 4대강 개발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이 발생할지는 전혀 조사된 바 없다는 지적이 있다. 
 얼마나 많은 농지가 수용되고, 농부들이 땅을 떠나야 하는지, 이들이 일평생 공들인 가축과 작물과 흙과 물은 얼마나 망가지는지 개발주의자들은 아무도 그 고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도 않는다. 
 경제와 개발논리에 매몰되어 상실의 고통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윌리엄 워즈워스와 같은 시인들은 농부에게 땅이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님을 알았다. 땅과 거기에 뿌리내린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식만큼이나 절실하고 소중한 것임을 시인은 알았다. 농부에게 가장 큰 상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시 <마지막 양>에는 한 마리로 시작해서 자식처럼 불려나갔던 50마리의 양을 결국 1795년에 닥친 기근과 당시에 그 나라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 물가상승 등으로 한 마리씩 팔아야 했던 어느 늙은 농부의 고통이 담겨 있다. 늙은 농부는 엉터리 구호법에도 호소해보지만 몇 마리 양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을 한 마리씩 내다팔다가 마침내 마지막 남은 양을 껴안고 땅바닥에 주저앉은 농부는 상실의 고통을 눈물로 호소한다. 
 법을 만들어 땅을 강제로 수용하고 어떤 보상을 한다 해도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땅에 살아온 역사를 잃고 존재의 뿌리가 뽑히는데 어찌 저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4대강 개발 사업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자와 상실감에 빠져 고통받는 힘없는 자에 대한 긍휼심을 잃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멈추는 순간 사회적 약자의 삶도 위태롭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많은 환경단체, 종교단체, 학계 등 각계에서 반대론자들이 환경문제나 생태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참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제가 얼마나 자주 바랐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모두 한꺼번에 없어져버리길. 
하지만 양들은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줄어들었죠. 
제겐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나쁜 행동을 할까 싶기도 했고, 
사악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와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제 얼굴에서 고통을 보았을 겁니다. 
평화도, 위안도 제겐 없었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편치 않았습니다. 
낙담하여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일터로 나다녔습니다. 

(<마지막 양> 일부/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이와같이 시적 상상력 속에서의 생태적 상상력, 또는 시적 세계관 속에서의 생태적 세계관이라는 긴밀한 포괄적 관계는, 칼 G. 헌들과 스튜어트 C. 브라운이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 문학에서의 시적 담론 등을 제시한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으로 보아 생태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지키는 데에 시적 담론이 여타의 담론보다 훨씬 근본적이라고 말한다. 

2. 생태시, 생명시의 흐름 

 생태시는 문학적 용어로 확립된 범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생태학적 문제의식을 계기로 그 속에 시인의 정서를 담아 창작된 시 작품을 생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태시란 넓은 의미에서 생명시와 그 범주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생태학적 문제란 현대의 생태 위기를 초래한 인류의 반생태적 태도를 비판하고 생태보존적 미래를 이루어내려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생태학이란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지만 이미 선진국의 공업화과정에서 나타난 1960년대 이후 환경 오염의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 영역을 계속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 후 지금의 사회과학 뿐 아니라 인문과학의 분야까지 포괄하는 학문적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생태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생태문학도 이러한 흐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태시 운동, 또는 생명시 운동은 2010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시적 흐름의 하나가 아니다. 아주 초기에 발생한 순수 생명시운동의 하나는 1930년대에 발아되었으며, 그들은 시문학파의 순수 서정의 표출과는 달리 생명의 깊은 충동과 고뇌, 삶의 절박한 갈망을 시화하려고 하였다. 
 “'시인부락<1936>' 동인(생명파)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서정주의 관능과 열기와 숨결을 담은 '화사집<1941>'의 시로 대변된다. '생리'지의 동인 유치환 역시 그러한 생명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생명파인 것이다.” (한국현대시 400선(태학사)중 발췌) 그러던 것이 여러 사회적 흐름 속에 동화되어 어떤 경우에는 시적 상징 속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하나의 정서 속에 매몰되어 나타나기도 하면서 그 흐름이 하나의 은유적 정서로 육화肉化되어 형상화되면서 그 뼈가 단단하게 시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흐름 중에 다시 민중의 삶과 환경훼손이라는 자연과 대립되는 사회의 하나의 이슈issue로 등장하면서 이 생명시, 또는 생태시는 그 사회적 논의의 중심으로 다시 내용과 모습을 바꾸어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생명시에 대한 대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당시 김지하 시인이 지적한 생명시에 대한 시적 의미를 참고로 들여다 본다. 

사회 ; 하나의 현상처럼 생태시가 시단의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김지하 ; 생태시인이 1,000명이 넘는다고 그래. (80년대) 민중시인들처럼, 요즘엔 전부 생태주의자라고 그래. 그건 좋은데, 민중시와는 다르단 말야. 왜 그러냐면, 생명은 안팎이 있지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영성靈性을 다뤄야 해. 유럽 생태학은 드러난 차원의 생태 질서, 생명 질서에 대해서만 탐구하고 있다구. 암석, 토질, 수맥, 식생계, 서식하는 동물들, 군락, 이런 것들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지, 인간 영혼의 고통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그런데 ‘영혼의 고통’이란 생명을 다루려면 반드시 따라 나오게 되어 있는 거라고. 바깥에도 생명이 있으며, 안으로는 반드시 무의식 차원의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는 거잖아? 
그런데 요즘 생태시들이 이 영혼의 문제를 놓친단 말이야. 영성과 생명 사이의 교호交互 관계, 그러니까 인터랙션interaction을 놓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자꾸만 소재주의에 빠지거나 스테레오타이프stereotype로 가는 거야.


         (김지하/ [컬처뉴스] 인터뷰 고영직, 정리 위지혜기자 2005-06-23 대담 중에서 인용) 

 생태란 한 번 훼손하면 그것을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키기 어렵고, 또 원래의 모습으로 환원시킨다해도 그 사회적 비용이 훼손 당시의 비용의 몇 배나 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 온다는 관점에서 초기부터 생태에 대한 관심과 분석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고 그것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학도 그 사회적 관심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각계의 반발과 우려가 증가하고 있는 등,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시단에서의 움직임도 생태시를 하나의 중심 화두로 삼으려는 의도를 내 비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생태입니다. 생태 파괴는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일이죠. 시인은 지적 통찰자로서 시대가 당면한 위기를 알리고 대응방안을 제시해야 할 소명과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시인협회는 생태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생태시 운동’을 통해 4대강 사업의 문제나 멸종위기 동식물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2010년 3월 한국시인협회의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이건청 시인(68·한양대 명예교수)은 앞으로 시인협회의 주요 사업으로 ‘생태시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생명시나 생태시들은 인간이 배제되었다는 생각들을 많이 가지게 한다. 자연이나 환경이 소중한 것이지만 인간이 배제된 자연이나 환경문제는 핵심이 빠진 생태만능주의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므로 인간에 대한 배려 또한 핵심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그 광범위한 생태시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으며 그 속에 생명에 대한 담론은 어떻게 전개되어 현대 사회를 아우르는 시로 변모하고 있는지 살펴 본다. 
 ‘생태시‘ 또는 ’환경시‘라고 하면 으레 가장 먼저 생각나고 여러 시인들이 논의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최승호의 시, “공장지대”를 떠오른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과 나는 간통한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 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리 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 털들을 하루종일 뽑아댄다 

(시 “공장지대” 전문 / 최승호 시인) 

 이 시에서 최승호 시인은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로 상징되는 환경오염에 대한 근원적 문제와 ‘무뇌아’라는 피해를 연결지워 현대사회가 무분별하게 환경을 오염시키는 동안 인간이 겪게 될 재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어 현대문명을 고발한다. 
 이렇게 최승호 시인은 그로테스크하고 괴기(怪奇)스럽게 벌레들, 오염된 것들, 고름 질질 흘리는 듯한 병과도 같은 소재를 끌어들여 환경훼손의 심각성을 고발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나아가 숭고함으로 뛰어넘어야 새로운 미가 탐색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생태학적인 고려가 없이 경제적인 논리로만 치부되고 있는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이 일시적인 이익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그 재앙이 우리의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인식을 사회고발적 형태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하여 순수한 자연에 대한 외경과 우주적인식으로 생명과 생태에 대한 지순한 인식을 순화시킨 강남주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게 하고 아름다움으로 인도하여 준다. 

풀잎의 무성한 자유 속에서 
자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시간을 잰 뒤 
지구를 측량하고 있다. 
나비 한 마리가 둘레 없는 하늘로 날아 올랐다. 
자벌레가 기어가고 난 뒤 
나비는 또 하늘로 날아 올라 
풀잎과 더불어 
지구에 빛깔을 입히고 있다 

(시 “자벌레가 시간을 재고 간 뒤” 전문 / 강남주 시인) 

 자벌레 한 마리가 지구를 측량한다는 인식이 새롭기도 하거니와 그 시간의 측량 후에 오는 자연의 변화 또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요, 자연 속의 뭍생명이 하는 일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드러내어 보이는 생명인식이 아름다운 시가 아닐까 한다.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시 “중심의 괴로움” 전문 / 김지하 시인) 

 “중심의 괴로움”이란 매우 다양한 의미가 장착된 김지하 시인의 시는 생명에 대한 외경과 생명의 끈질긴 삶에 대한 집착과 노력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시인 자신의 모습과 병치시켜 시골에 가서 ‘비우고, 피우리라’는 다짐을 길어 올린다. 여기에서 ‘나도 흔들린다’는 인식은 존재의 인식이며 살아있음의 역동적 욕구의 분출이라고 읽혀진다. 
 이와 같이 그의 말대로 단순히 살아있음이 아닌 보다 높은 숭고함을 지향하는 생명에 대한 인식이 살아있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연에 대한 외경이 없이 농사라는 미명아래 마구 뿌려대는 제초제와 같은 약제의 살포를 등장시킨 필자의 졸고 한 편을 읽어본다. 

흉몽凶夢에 시달리면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밤 내내 쫓아 다녔다 

몇 년간 
밭 가에 무성히 자란 덤불이 귀찮아서 
밑동까지 잘라내고, 제초제까지 뿌려댄 뿌리, 
용케도 살아남은 가지 하나, 
그 끝에서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 단 한 송이,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품에 안아 
내, 누구를 폼나게 용서해 본 적도 없었거니 
개나리꽃 한 송이가 나를 부끄럽게 하여 
쳐다보기도 미안해 고개를 돌리는 곳에 
뽀오얀 봄이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쪼그리고 앉는다 

      (시 “개나리 꽃” 전문 / 필자 ) 

 밭 가장자리에 나 있는 개나리가 거추장스럽다고 지난 가을에 제초제를 마구 뿌려댄 시인은 봄날,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일어나 개나리 꽃 한 송이가 핀 개나리 나무를 보며 개나리꽃으로부터 화해와 용서라는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인식을 길어낸다. 
 그 광경에 어찌 자신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렇게 우리는 각각의 자연 생태와 도시 환경을 통해서 새로움 사실을 인지해 내고 소중한 생명과 자연생태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드러내 보이게 된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 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시 “의자” 전문 / 이정록 시인) 

 토속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투리가 제 격인 어머니의 말씀을 통하여 시인은 의자의 새로운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투박한 어머니의 말을 인용하여 드러내면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에 합당한 의자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욕망에만 매달리지 말고 의자가 필요한 참외나 호박에도 따스한 손길을 뻗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삶이란 그 크기만한 의자를 내어주며 사는 것, 하찮게 보일지도 모르는 자연의 작은 존재에 대한 생명의 사랑도 자잘한 행복이라는 ‘작지만 큰 깨달음’을 행복의 조건으로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로운 곡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 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 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시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 이재무 시인) 

 마을 한 가운데에 서 있던 나이 많은 “팽나무” 한 그루가 죽어간 것---사물과 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허물며 베어진 늙은 팽나무와 그 나무 밑에서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리던 시인의 유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생명의 '해방공간'이 만들어진---을 통해 마을을 아우르고 시인의 과거를 품고 있던 추억의 상징이 잘리워져 나감을 안타깝게 그려내고,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 주시던 당신”이라는 깨달음과 감동으로 이끌고 있다. 
이제까지 생명과 생태에 대한 인식이 담겨진 시를 몇 편 읽어 보았다. 그러나 요즘의 새로운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4대강에 대한 인식은 시인들의 눈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을까? 
 문학이 반드시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여야할 필요는 없다. 이 시대의 시인들이 매우 개인적이고 사소한 심상에만 매달려 사회적 소통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탈(脫)서정’과 ‘환상성’, ‘개인주의’ 등 21세기 들어 새롭게 떠오른 젊은 시인들의 경향에 맞물려 최근 현대시의 경향은 ‘서정에서 현실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전 시대의 시가 서정적이거나 특정 이념을 중심으로 쓰였다면, 이제는 각 시인의 개성이 시 속에 드러나며 동시대 젊은 시의 다양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시적 왜소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약자의 목소리, 정의롭지 못한 일에 눈을 감는 것은 ‘죄악’이다. 독일 나치 정권에서 집단수용소에 갇혔던 목사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있다. 요약하면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므로, 유대인이 아니므로,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매번 침묵했다. 그런데 그다음 ‘숙청’이 내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 시의 제목이 “침묵하면 다음은 당신 차례다”이다. (“한겨레 프리즘” / 김의겸 기자의 글에서 인용) 
 최근에는 각 지역의 문인협회가 한경과 생태에 관한 시화전을 개최하고 각 문학지에서도 생태관련 시를 테마로 잡아 활동하는 등, 다소 활발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기는 하나 좀더 깊은 애정과 관심이 두어지는 시적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으로 이 땅의 시인들이 눈을 뜨고 생명에 대한 애정을 말하고, 생태에 대한 애정의 눈길을 가지고, 다양한 시선으로 환경문제나 생태시학적 관점을 가지고 눈길을 주게 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게 아름답고 살기좋은 땅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한국현대시 400선/태학사 
       컬쳐뉴스/2005. 6.23. 
       동아일보/2010. 3.31. 
       한겨레프리즘/김의겸 
       고해문서/최승호/1991 
       낯선 풍경 속으로/강남주/2008 
       중심의 괴로움 /김지하/1994 
       의자 /이정록/2006 
       위대한 식사/이재무/2002 

 

독일 생태시 몇편
 

<프랑크푸르트>

 

                                                                  한스 카스퍼

 

프랑크푸르트, 기름을 머금은 마인강에서

수만 마리 물고기가 숨이 막혀 죽고 말았어.

시민들로서는 놀라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야

 

흐르는

물결이 너그럽거든.

 

물결은

재빨리

강기슭을 지나

 

파리떼 들끊는

은빛 시체 더미를 

몰고가버린다구.

 

시체 썩는 냄새가 

마비된 우리의 감각에 와 닿기도 전에

 

바람이 먼저

악취를 휩쓸고 가버리니,

 

모든 것은 

기막히게 제 자리를 찾는다구.

 

 

<마지막 어머니>

 

                                                          로제 아우스랜더

 

물과 피를 받고 태어나

대도시의 원시림 속에서 

길들여졌다네

 

정글은 

문명의 칼에 동강나서

또다른 정글과 경계를 이루었다네

   

빛의 꼭대기에서 날아다니다가 

독약 섞인 강물 속에서 헤엄치는

   

마지막 어머니여 

공기여

우리는 공기를 살해한다네

 

 

<페루의 아이>

 

                                                     에리히 프리트

 

아이의 고개가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가 소리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의 몸에서 구린내가 나기 때문에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엔

 

아이의 몸이 쇠약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잘못이 있는

 

너희의 질서도 마땅히 삶을 이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의 고개가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너희의 선언도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아이가 소리치지 못 하기 때문에

 

너희도 그 아이에게 윽박지를 수 없는 것이다.

 

아이의 몸에서 구린내가 나기 때문에

 

너희의 질서 전체로 삶을 이어가기엔

 

구린내가 날 뿐이다.

 

아이의 구린내도 너희처럼 지독하진 않았다.

 

   

<나무는 너희의 원수란 말인가?>

 

                                                             페레나 렌취  

 

그토록 은밀하고 신속하게

그를 죽여버리다니

 도대체 나무는 너희의 원수란 말인가?

 

새들은 낯설게 변해버린 

 그들의 터전에서

 

당황한 듯 이리저리 맴돌고 있다.

 

새들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을 

너희는 몰랐단 말인가?

 

이제 그들이 낯익은 

보금자리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도무지 소용 없게 된 것을 너희는 몰랐단 말인가?

 

너희는 여왕벌의 씨를 말려놓았고, 

나무의 땅에서 생명을 앗아갔다.

 

지금부터 당장이라도

한 그루 나무를

사람처럼 받들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황량한 땅에서

돌처럼 굳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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