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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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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혁명가 시인 - 나짐 히크메트
2017년 05월 31일 22시 23분  조회:4207  추천:1  작성자: 죽림


1...

 

살아 있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한 마리 다람쥐처럼
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만큼
산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만큼

살아 있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삶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두 손이 뒤로 묶이고
등은 벽에 밀쳐진 것처럼 절실하게,
혹은 어느 실험실 같은 곳에서
흰 옷과 보안경을 걸치고
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위해 죽어야 하는 것처럼 절실하게,
비록 살아 있는 일이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일임을 잘 안다 해도

진심을 다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일흔 살이 되었어도 올리브 나무를 심을 만큼,
후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긴 하지만 죽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이 죽음보다 훨씬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2

 

가령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그 흰 침대에서 다시 못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해도
다소 이른 떠남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해도
우리는 농담을 들으면 여전히 웃을 것이고
비가 내리는지 창 밖을 볼 것이고
가장 최근의 뉴스를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가령 우리가 지금
싸울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위해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전투의 바로 첫날, 그 첫 번째 공격에서
얼굴을 바닥에 파묻고 죽는다 해도
분노 어린 감각이 그런 불길한 미래를 알려 준다 해도
우리는 무척 염려하지 않겠는가
몇 년 동안 끌어질 그 전쟁의 결말이

가령 쉰 살 가까이 되어
감옥에 갇혔다 해도
철문이 열려 자유롭게 될 때까지
18년을 더 갇혀 있어야 한다고 해도
그렇다 해도 우리는 바깥 세상과 함께 숨을 쉬지 않겠는가
세상 속의 사람들, 동물들, 문제들, 그리고 바람과 함께
다시 말해, 감옥 벽 너머에 펼쳐진 세계와 함께

다시 말해,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디에 있다 해도
마치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 나짐 히크메트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일부 (류시화 옮김)


독재 정치에 저항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했다는 이유로 성장기를 제외하고는 생애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시인답게 절실하고 울림이 크다.

터키의 시인이자 혁명가인 나짐 히크메트(1902~1963)가 같은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다른 곳으로 이감된 8세 연하의 사상범 카말 타일에게 옥중에서 보낸 시 형식의 편지글이다.

석방 후에도 터키 국적을 박탈당해 러시아에서 생을 마쳤지만 히크메트는 참된 의미에서 터키 최초의 현대 시인이며 현재까지도 터키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 니콜라 드 스탈은 죽기 전에 남긴 메모에 ‘그림들을 완성할 힘이 없다’라고 썼다.

다시 읽으면, 죽기 전까지 마지막 힘을 다해 그림들을 완성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도 느껴지듯이 히크메트의 모든 시는 그가 감옥에서 쓴 대표시 <진정한 여행>의 변주곡들이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류시화 -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흔들어 놓고, 찰나가 평생의 행로를 결정하게 되는 순간은 한두 번은 경험해보는 일이다. 가령 사랑이 그렇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미리 대비하거나 결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 그것은 계시처럼 불현듯이 와서 존재를 사로잡는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전도, 좁은 문의 알리사와 제롬이 그랬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작기에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작은 예배당에서 흰옷을 입고 목사의 설교를 듣던 그 순간은 열네 살 두 아이를 사로잡고 누가복음의 문장은 평생 두 사람이 추구해야할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추구하던 방식의 차이가 알리사와 제롬간의 고통과 갈등을 낳는다. 

 

사랑과 신성, 양립할 수 없는 극과극?

 알리사를 통하여, 알리사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을 통하여 신에게 이르고자했던 제롬. 제롬에게 있어 훌륭함과 탁월함은 오직 알리사를 기쁘게 하고 알리사에게 걸맞은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알리사를 매개로 신에게 이르고자 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존경할 때, 그 사람이 곧 나의 신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계산된 이타심이거나 이기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알리사에게 있어 신성이란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도달할 수 있는 이데아다. 절대적으로 투명한 공(空). 알리사는 자신을 몽땅 비워낸 텅 빈 마음의 공간으로 신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끝까지 제롬을 향한 갈망과 집착을 놓을 수가 없다. 그녀는 실패한다. 제롬이 귀납적인 인물이라면 알리사는 연역적인 인물이다. 제롬은 알리사와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들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대해 배워갔지만, 알리사에게 사랑과 신성은 처음부터 그 내용이 결정된 것이며 사랑과 신성은 양립할 수 없는 극과 극의 세계였다. 

 “제롬, 난 요즘 네 옆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이 행복에 앞서 무엇을 바래야한다는 거니?” 나는 격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성스러움.” “난 너 없이 거기에 이를 수 없어.”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아이처럼 울먹였다. 슬퍼서라기보다는 사랑에 복받쳐 하염없이 흐느꼈다. “너 없이는 안돼. 너 없이는 안 된다고!” 그날 저녁, 알리사는 수정목걸이를 걸지 않고 나타났다. 약속한대로 다음날 아침, 나는 조용히 떠났다. - 좁은 문/푸른숲주니어 중에서

 

각각 도달해야 하는 생의 목표

 좁은 문은 각각이 도달해야만 하는 생의 의미나 목표일 것이다. 목표가 구체적인 지향점이라면 의미는 그 목표를 통해 이루는 내용이다. 생각해본다. 알리사의 목표가 신앙이었다면, 신앙을 통해 그녀가 추구하려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제롬의 목표가 알리사였다면 알리사를 통해 그가 이루려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은 오늘도 열심히 학업에 열중한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은 앞으로 수많은 좁은 문을 만날 것이고 문을 넘을 것이다. 문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 문안에서 그들이 만날 공간에 대한 상상이 의미다. 목표는 구체적이지만 의미는 자신이 채워가는 것. 언제나 상상했던 것과 실재는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꿈꿨던 것과 만난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실패하라, 그러나 이번에는 더 낫게 실패하라”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문에 머무르지 않고 자꾸만 다른 문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더 낫게 실패하기 위해서. 그러니 어쩌면 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나 우리가 만들며 가는 것이지. 그것이 꿈꾸는 인간의 숙명이자 조건이므로. 현재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우리의 염원이 현재를 만드는 것이므로. 터키의 혁명가이자 시인이었던 나짐 히크메트는 그 비의(秘義)를 알고 있었다. 

박혜진 <지혜의숲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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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가장 훌륭한 시는 지금 쓰여야 기사의 사진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과거에 퓰리처상을 받았더라도 그의 가치는 가장 마지막에 쓴 기사가 말합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도 자신의 최고 저서는 과거의 어느 책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책이요 앞으로 쓸 책이라고 했습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지만 한번 시인이 영원한 시인은 아닙니다.

시인은 그가 시인인 순간만 시인입니다.

사랑에 대한 모독도 “사랑했었어”입니다. “지금 사랑하느냐”가 사랑의 코어(cor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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