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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시인 - 잉게보르크 바하만
2018년 03월 06일 23시 51분  조회:4906  추천:0  작성자: 죽림
잉게보르크 바하만
[Ingeborg Bachmann 1926∼1973]

 

 

 

Ingeborg Bachmann Ingeborg Bachmann 1962

 

오스트리아 시인, 작가. 1926년 오스트리아 남부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나 빈, 그라츠, 인스부르크 등 대학에서 법률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1950년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관한 연구 - <실존철학의 비판적 수용> - 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53년 <47 그룹>을 통해 문단에 데뷔하여 1973년 10월 로마에서 객사하기까지 바하만은 서정시인이자 소설가로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브레멘 시 문학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시집 《유예된 시간(1953)》, 방송극 《여치들(1954)》 《맨해튼의 선신(善神, 1958)》, 단편집 《서른살(1961)》, 장편 《말리나(1971)》, 단편집 《동시에(1972)》 등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의 강연 등이 유명하며, 1968년 오스트리아 문학부문 국가대상을 수상하였다.


전통적 시의 정신이 풍부하면서도 새로운 순수한 언어로 진실의 세계를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가치를 상실한 시대의 인간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어 새로운 전후문학의 도래로서 <사색하는 서정시인>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인생을 투시하는 철학적인 사고와 새로운 언어로 짜여져 있는 바하만의 작품들은 현대의 고전으로서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독일문학에 있어서의 '전환의 순간' -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출현


독일의 문예 비평가 발터 옌스는 여류 시인 바하만의 출현을 가리켜 독일문학에 있어서의 "전환의 순간"이란 찬사를 보낸바 있다. 그만큼 바하만의 첫 시집 <유예된 시간>의 출현은 독일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바하만의 시가 지닌 독특한 음색은 괴리되고 맥빠진 사물들을 한데 모아 재구성하는 시인 특유의 사유의 응집력에서 비롯된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다분히 차갑고 냉정하며, 사상과 관념의 두께에 짓눌려 어떤 의미에서는 '비서정적'이기까지 하다. 축축한 서정적 감정의 과잉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철학적인 사색과 지적인 통제를 통해 시를 드라이하게 조탁하는 솜씨, 이것이 바로 바하만의 장기이다. 평론가들이 그녀에게 '사색하는 서정시인(denkende Dichterin)'이란 꼬리표를 달아 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과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은 바하만 시의 철학적 배경을 이루는 양대 산맥이다. 그녀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는 침묵의 미학을, 하이데거에서는 실존적 언어 철학을 수혈 받았다. 다시 말해, 전자에게서는 언어에 대한 회의와 부정의 정신을 전수 받았다면, 후자에게서는 언어의 존재론적 심연을 후벼파는 날선 삽을 훔쳐 온 셈이다. 그의 시세계에서는 "침묵의 현을/피의 파도 위에 팽팽히 당기고", "나의 침묵의 웅덩이 속에/하나의 단어를 넣고", "입에 여운(餘韻)을 물고/전진하며 침묵함이 옳다"와 같은 시구들이 보여주듯, 언어가 갖는 표현의 한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은 줄곧 침묵의 미학과 맞물려 돌아간다.


또한 하이데거에게 언어란 '존재의 집(Haus des Seins)'이였듯, 바하만에게도 언어는 세계와 자아의 이해를 위한 결정적인 존재 형식으로 규정된다. 예컨대, "내가 집으로 여기는/나를 둘러싼 구름인/독일어와 더불어 나는/모든 언어를 편력한다."란 시구를 보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는 단어 속에 살고 있다"는 하이데거의 목소리가 겹쳐 울리지 않는가. 이처럼 언어에 대한 부정과 긍정 사이의 경계에서 펼치는 아슬아슬한 지적 곡예가 바하만 시가 움직이는 주요 동선이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생리적 비애, 이것이 바로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에게 내려진 천형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하만에게 진리의 땅이란 우리가 닻을 내리자마자 다시 출항해야만 하는, 어쩌면 인간의 힘으로는 영원히 도달할 수 있는 침묵의 땅으로 감지된다. 그녀의 대표작인 '영국과의 이별'이란 시에는 이러한 그녀의 유목민적 정서가 잘 스며들어 있다. "나는 그대의 땅/침묵의 땅을 밟고, 돌 하나를 건드리자마자/나는 그대의 하늘에 의해 그토록 높이 올려졌고/구름 속 안개와 저 먼 곳으로 끌려가 있었기에/정박(碇泊)하자마자 벌써/나는 그대를 이미 떠나야 했다." (류신/문학평론가)

 

Stargazers / Lucy Rawlinson

 

 

 

유희는 끝났다

 

 

 

사랑하는 나의 오빠, 언제 우리는 뗏목을 만들어
하늘을 따라 내려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나의 오빠, 곧 우리의 짐이 너무 커져서
우리는 침몰하고 말 거예요.

사랑하는 나의 오빠, 우리 종이 위에다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철로를 그려요.
조심하세요, 여기 검은 선(線)들 앞에서
연필심과 함께 훌쩍 날아가지 않게요.

사랑하는 나의 오빠, 만약 그러면 나는
말뚝에 묶인 채 마구 소리를 지를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어느새 말에 올라 죽음의 계곡을 빠져나와,
우리 둘은 함께 도망치고 있군요.

집시들의 숙영지에서, 황야의 천막에서 깨어 있어야 해요,
우리의 머리카락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는군요.
오빠와 나의 나이 그리고 세계의 나이는
해로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교활한 까마귀나 끈끈한 거미의 손
그리고 덤불 속의 깃털에 속아넘어가지 마세요.
또 게으름뱅이의 나라에서는 먹고 마시지 마세요,
그 곳의 남비와 항아리에선 거짓 거품이 일거든요.

홍옥요정을 위한 황금다리에 이르러 
그 말을 알고 있던 자만이 승리를 거두었지요.
오빠한테 말해야겠어요, 그 말은 지난 번 눈과 함께
정원에서 녹아서 사라져버렸다고 말이에요.

많고 많은 돌들 때문에 우리 발에 이렇게 상처가 났어요.
발 하나가 나으면, 우리는 그 발로 펄쩍 뛸 거예요,
아이들의 왕은 그의 왕국에 이르는 열쇠를 입에 물고
우리를 마중하고,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부를 거예요:

지금은 대추야자 씨가 싹트는 아름다운 시절!
추락하는 이들마다 날개가 달렸네요.
가난한 이들의 수의에 장식단을 달아준 것은 빨간 골무,
그리고 오빠의 떡잎이 나의 봉인 위로 떨어지네요.

우리는 자러 가야 해요, 사랑하는 이여, 놀이는 끝났어요.
발꿈치를 들고. 하얀 잠옷들이 부풀어오르네요.
아버지 어머니가 그러는데요, 우리가 숨결을 나누면, 
이 집안에서는 유령이 나온대요.

 

Man with red flag / Lucy Rawlinson

 

 

유예된 시간



     

보다 혹독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보이게 되리라. 
이제 곧 그대는 구두끈을 조여 매고 개들을 늪지로 쫓아버려야 한다. 
물고기의 내장들은 바람을 맞아 차갑게 식어버렸으니 
초라하게 루우핀의 빛이 타오르고 있다. 
그대의 시선이 안개 속에 궤적을 남기니,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보이게 되리라. 
저편에서 그대의 연인이 모래에 묻혀 가라앉고 있다. 
모래는 그녀의 나부끼는 머리칼까지 솟아오르고, 
모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아 침묵하라고 명령한다. 
모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을, 
모든 포옹 후 기꺼이 이별을 감수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뒤돌아보지 말라. 
그대의 구두끈을 조여 매라. 
개들을 쫓아 보내라. 
물고기를 바다 속에 던져 버려라. 
루우핀의 빛을 꺼버려라! 
보다 혹독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The Woods / Lucy Rawlinson

 

 

 

하얀 날들

 


요즘 들어 나는 자작나무와 함께 기상하여
얼음으로 만든 거울 앞에 서서
밀 같은 머리칼을 이마에서 빗질해 넘긴다.

나의 숨결과 섞이면,
우유가 눈송이 모양이 된다.
이런 새벽이면 우유는 쉽게 거품을 낸다.
그리고 창문에 입김을 불면, 거기
어린애 같은 손가락으로 쓴,
너의 이름이 다시 나타난다: 순결함이여!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요즈음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내가 잊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사랑한다. 하얀 불꽃이 될 때까지
나는 사랑하며 천사의 인사법으로 감사한다.
나는 그 인사법을 빠르게 익혔다.

요즈음 나는 알바트로스를 생각한다,
나를 등에 태우고 날아올라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땅으로
훌쩍 건너온 그 새를.

수평선에서 나는 어렴풋이 느낀다.
찬란하게 침몰하면서,
저 건너편의 동화와 같은
나의 대륙을, 내게 수의를 입혀
자유를 준 그 대륙을.

나는 살아, 멀리서 대륙이 부르는 백조의 노래를 듣는다.

 

 

St. James Park / Lucy Rawlinson

 

 


광고

 


그러나 날이 저물고 추워지면 
걱정마세요 걱정말아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말아요 
그러나 
음악과 더불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즐겁게 그리고 음악과 더불어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즐겁게 
종말에 직면하여 
음악과 더불어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져가야 하나 
가장 멋진 일은 
우리의 문제들과 모든 세월의 두려움을 
꿈의 세탁장으로 오시는 것 걱정 근심 다 버리고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가장 멋진 일은 
죽음 같은 정적이 
찾아들면 




==============================


잉게보르크 바하만

「설명해 줘요 내게, 사랑」

 

 

   당신 모자가 조금 느슨하군요, 인사를 하고, 바람에 들썩이는군요.

   당신의 벗겨진 머리는 구름을 걸치고 있고

   당신의 가슴은 어딘가 다른 곳과 맺어져 있으며

   당신의 입은 새로운 언어와 한몸을 이룹니다.

   시골의 방울풀이 곳곳에 무성하고

   여름은 아스터꽃을 불어 일으키고 또 불어서 없앱니다.

   꽃송이에 날려 당신은 눈감은 채 얼굴을 드는군요,

   당신은 웃고 당신은 울고 당신 자신 때문에 지칩니다.

   무슨 일이 생겨야 하는 것인지…

 

   설명해 줘요 내게, 사랑!

 

  공작이 화려한 놀라움의 몸짓으로 깃을 텁니다.

   비둘기는 털깃을 높이 올리고

   가득찬 노마(駑馬)들 가운데서 공기는 팽창되구요.

   야생 벌꿀로부터 받아들여요.

   온 마을이 사람 가득 앉은 정원에서도

   모든 금빛 꽃가루가 화단마다 술을 붙이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홍조를 띄우며, 무리를 앞질러 가면서

   동굴을 지나 산호밭으로 넘어지고

   전갈이 수줍게 은모래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딱정벌레가 멀리서 가장 근사한 냄새를 풍깁니다.

 

   내가 그저 그 감각기관(感覺器官)을 가졌다면, 나는 또

   날개가 그 갑옷 아래에서 번득이는 것을 느낄 텐데요.

   그리고 먼 딸기 덩굴로 가는 길을 취할 텐데요.

 

   설명해 줘요 내게, 사랑!

 

   물은 이야기를 할 줄 알지요,

   물결은 물결끼리 손을 잡고

   포도밭 산에서는 포도덩굴 부풀어 가고, 튀어나오고, 떨어집니다.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달팽이가 집에서 나오는군요!

 

   하나의 돌은 다른 돌을 부드럽게 할 줄 안답니다!

 

   설명해 줘요. 내게, 사랑이여,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소름끼치는 짧은 시간을

   그저 상념(想念)들과 교제를 해야 하고 오직

   사랑이 아닌 것을 알고 사랑이 아닌 것을 해야 할까요?

   사랑은 생각이란 걸 해야 합니까? 그런 게 없이 되는 상태는 없나요?

 

   당신은 말하는군요; 다른 정신이 있을 수도 있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마세요. 온갖 종류의

   불들을 통해서 나는 도롱뇽이 걸어가는 것을 봅니다.

   어떤 구경꾼도 놈을 사냥하지 못하죠, 놈을 아프게도 하지 못하구요.

 

(김주연 역)

 

■ 시_ 잉게보르크 바하만 – 시인, 소설가, 방송극 작가, 에세이스트. 1926년 오스트리아 캐른텐 지방 클라겐푸르트에서 출생. 빈의 방송국에서 3년간 라디오 방송을 위한 수많은 각색을 했으며, 1952년 그룹 낭독회에서 작품이 처음으로 낭독되었다. 1953년 처녀시집 『유예된 시간』으로 '47그룹'의 일원이 되었고, 이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 독일비평가협회상 수상작인 『삼십세』, 그리고 『대웅좌의 부름』, 『말리나』 등이 있다. 브레멘 시 문학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등을 수상함.

   ■ 낭송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 출전_ 『장미의 벼락 속에서』(열음사)

   ■ 음악_ 최창국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온 우주는 사랑의 섭리로 이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사랑이 아닌 것을 권합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밟지요. 그래서 바하만은 이렇게 절규합니다. “사랑이 아닌 것을 알고 사랑이 아닌 것을 해야 할까요? /사랑은 생각이란 걸 해야 합니까? 그런 게 없이 되는 상태는 없나요? ” 그리고 이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말’것을 청합니다. 사랑은 사람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을.

   “당신의 가슴은 어딘가 다른 곳과 맺어져 있으며 /당신의 입은 새로운 언어와 한몸을” 이루고 있다는 이 매혹적인 시를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이에게, 아니 사계절이 사랑의 계절인 모든 이에게 권해보는 바입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당신 가슴이 어딘가 다른 곳과 맺어져 있지 않고/ 당신 입에서 새로운 언어가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랑이 떠난 화석의 사람이란 것을 경고하는 시이기도 하니 권태는 껍질을 벗고 사랑이라는 생살의 쓰라림을 택하는 것이 어떠한가! 이렇게 권유하는 듯합니다.

   “하나의 돌은 다른 돌을 부드럽게 할 줄 안답니다! 하나의 돌은 다른 돌을 부드럽게 할 줄 안답니다! 하나의 돌은 다른 돌을 부드럽게 할 줄 안답니다!……”

이러한 메아리를 가슴에 두르고 살아가려면 이러한 시를 가슴에 두르고 살아야지요.

///장석남 시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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