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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화(點話) 문정영
2018년 12월 20일 15시 54분  조회:704  추천:0  작성자: 강려
시가 있는 마을- 문정영
 
점화(點話)
 
 문정영
 
  보고 듣지 못하는 그는 손가락에 눈과 귀가 있다.
 
  상대방의 손가락 위에 자기 손가락으로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를 한다.
 
  눈물 한 방울이 점자처럼 손등에 떨어지기도 한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화려함이 먼저라고 척추장애인 아내에게 배운다.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면 세상은 눈물방울보다 작다.
 
  아내의 손끝에서 꽃향기와 별빛을 읽는 그는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는 불안과 고통에 이르는 것도 달팽이만큼 느리다.
 
  일 년처럼 읽으며 십 년처럼 느낀다.
 
  문장이 단순해진 것은 모르는 것까지 일일이 적기 위해서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풀잎과 공기를 더듬어 쓰는 작가이다.
 
  새벽의 연우(煙雨)가 막 깨어난 꽃잎을 감싸는 것처럼 손끝이 별빛에 가 닿는다고 쓴다.
 
  그가 점화(點火)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의 일이다.
 
 
<이선의 시 읽기>
 
  시인은 대상의 마음을 여는 열쇄를 가졌다.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서 객관적으로 드러내어 사물화하는 작업이다.
  대상이 꽃이나 나무여도 좋고, 가위나 색종이라도 좋다. 사물시는 객관화가 쉽다. 그런데 사물이 인간일 경우에는 객관화가 쉽지 않다. 시인이 매력을 느낀 대상의 행위와 생각, 느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인간에 집중하여 시를 쓸 때 자칫 감정에 빠지기 쉽다.
  문정영이 측은지심이란 자기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시적 대상인 ‘맹인’에 대하여 개관화시킨 것에 주목하여 보자.
  ‘척추장애인 아내’와 느리고 단순하게 사는 어느 작가의 인생이 슬로우 비디오로 재생된다. 이 시의 압권은 12행이다. ‘그가 점화(點火)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의 일이다’라는 구절이다. 또한 제목의 ‘점화(點話)’와 마지막 연의 ‘점화(點火)’의 중의성도 이 시의 묘미다.
  이 시는 12행으로 끝난 시가 아니다. 1-11행까지 느리게 전개되던 시가 12행에서 힘을 받는다. 12행은 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13, 14행은 독자의 상상력의 공간이다.
  ‘달팽이처럼 느리고 단순하게’ 살던 작가는 아내가 잠들고, 별들도 잠든 밤중에 탄력을 받아 작품을 구상하고, 줄거리를 짜고, 자기가 구상하는 소설의 주인공인 ‘아름다운 그녀’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를 일. 또한 낮엔 잊었던 ‘불안과 고통’도 뇌활동이 활발하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며, 더 첨예하게 그를 추궁해 올 것.
  예술은 밤중에 더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밤의 지배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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