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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 권혁수
2018년 12월 24일 20시 35분  조회:741  추천:0  작성자: 강려
골목
 
권혁수
 
 
똑바로 걸어도 휘어지는
골목이 있다
 
아이들의 벽화가 몇 개 벙어리처럼 웃는
 
아침에 골목을 빠져나간 별들이 저녁에
마을 밖 멀리 머물러 답답한 하늘 아래
흐린 창문을 열고
어제 떠난 사람을 기다린다
 
떠나지 못해, 기다리지 못할 골목은 없다
 
술 취한 발자국 소리 끌고
벽화를 더듬어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밤,
떠나온 집과 찾아갈 집 사이로
걸어 들어온 만큼 다시 걸어 나가야 하는
 
골목은 끊어진 직선이 아니다
 
 
<이선의 시 읽기>
 
   위의 시 1-6연은 권혁수 시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 특징을 그 살펴보자.
  첫째, 짧고 간결한 문장. 1연의 단 2행의 시를 완성본이라고 가정해 보자. 아래 2-5연을 모두 버리더라도 완전한 시의 요소를 갖고 있다. ‘똑바로 걸어도 휘어지는/ 골목이 있다(1-2행)’ 로써 더 이상 붙일 사족이 없다. 길에 대한 많은 시들이 발표되고 변화무쌍한 양상을 보이며 진화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짧은 언어 속에, 많은 사유를 간직한 시를 만나보지 못했다. 2행의 ‘골목’은 ‘타인, 회사, 이데올로기, 사회풍자’일 수도 있다. 다각도로 해석이 되는 좋은 시의 표본이다. 눈에 그림처럼 시가 그려진다. 이미지와 사유의 만남이 촌철살인의 시구다.
 둘째, 각 연의 ‘낯설게하기’.   2연은 단 한 행의 문장으로 하이퍼적이다. 의도적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삽입된 연이다. 그러나 다른 연과 생경하지 않다. 2연이 들어감으로써, 생활적 요소가 들어가 시에 사람냄새가 난다. 가족과 아이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진 가장의 애환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벽화가 몇 개 벙어리처럼 웃는’은 표현주의 예술인 시의 심미적 미의식을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사진은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늦게 귀가를 기다리다 잠든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상상의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하며 여백의 미를 살렸다. 단 한 줄의 시가 갖는 파장이 크다.
  셋째, 서정성.  3연은 ‘골목, 하늘, 기다림’ 모두 독자들이 좋아하는 ‘슬픈 이별의 이미지’가 있다. 김소월부터 현대까지 시의 단골소재다. 한의 성서를 감각적이며 서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넷째, 사유의 힘.  4연 ‘떠나지 못해, 기다리지 못할 골목은 없다’ 부분을 살펴보자. 이 연에서 ‘골목’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치환하여 보자. 유행가의 한 구절처럼 애절한 사연이 장편소설 분량으로 증폭한다.  ‘골목’ 이라는 사물의 시각으로 쓴 사물시다. 사물의 독백이다. 객관화된 사유가 깔끔하다.
  다섯째,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표현.  5연은 1, 2, 3, 4행 모두 감각적 미의식을 가진 문장들이다.  1행- ‘술 취한 발자국 소리 끌고’라고 피동형 문장으로 현대적 멋을 살렸다. 2행- ‘벽화를 더듬어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밤,’은 아이를 ‘벽화’로 은유하였다. 3행- ‘떠나온 집과 찾아갈 집 사이로’는 상황제시 부분이다.  ‘집’은 ‘모임, 애인’ 등 어떤 단어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권혁수 시가 보여주는 사물시의 요소들은 하이퍼적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여섯째, 탄탄한 구성.  6연 ‘걸어 들어온 만큼 다시 걸어 나가야 하는’ 단 1행의 문장이 갖는 힘은 1-6년의 시가 갖는 탄탄한 구성력에 있다. 어떤 길도 갔다고 돌아서 나와야 한다.
  권혁수의 「골목」을 읽으면, 이미지와 사유의 객관화가 가지런히 정리된 필통처럼 단정하다. 모자람이나 치우침이 없고, 억지스러움이나 생뚱맞음도 없다. 현대시의 단점인 난해한 은유로 독자를 미혹에 빠뜨리지도 않는다. 좋은 시는, 시 스스로 평론을 쓸 ‘거리’를 제공해 준다. 표현주의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한 시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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