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世界 색점선

거대한 마음의 상징물들을 그림화한 "귀를 잘라 버린" 화가
2017년 10월 14일 21시 37분  조회:2411  추천:0  작성자: 죽림

유명 화가의 미술 작품들 (7) : 반고호 Vincent w. Van Gogh (1853~1891)

 

태양(太陽)과 해바라기에의 정염(情念)

 

 

 

 

 

아를르의 고호의 집

 

강렬한 푸름과 노랑으로 화면을 2등분하여 밝은 태양을 만끽하는 평화스러운 시골 마을의 인상을 설득력 있게 나타내고 있는 이작품은 그의 조형적인 의도가 뚜렷이 느껴진다. 고호는 1888년 5월에 아를르의 역 가까운 라마르티느 광장에 있는 노란 집을 빌려 조금씩 손을 대고 가구를 넣어서 9월부터 옮겨 살았다. 고갱을 맞이하여 그의 그 불행한 비극을 일으킨 것도 이 집이었다. '코발트 색의 하늘, 태양의 숨결 속에 자리잡은 집이나 그 가까운 곳이 모티브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필코 나는 그것을 쓸 만한 것으로 해보이겠습니다.' 바깥은 노랑, 속은 흰색으로 되어 큰 방과 작은방의 두 개를 갖춘 이 조그만 집을 빌린 5월에 바로 이사들지 못한 것은 동생 테오가가구에 너무 비용이 들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農婦의 얼굴

 

빛의 혜택을 받지 못한 풍토의 화가들일수록 빛에 대한 표현 의욕은 더욱 강렬했다.램브란트나 하르스에 이어 네덜란드 지방의 고전을 바탕으로 강렬한 빛을 갈망한 고호에게 찬란한 색채의 길을 열게 해 준다. 그의 내적 열정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대담한 필촉의 엇갈림과 색채의 도입은 네덜란드 시대의 그의 어두운 색조의 작품 계열에서 마침내 남쪽의 밝은 세계를 향하여 출발하게 되는 의지를 느끼게 하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흙에서 나서 흙에서 죽는 남성적인 생명감을 통하여 생존이란 한 고귀한 가치를 화면 가득히 풍기게 한다. 흙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하고 신선한 감정을, 넓은 대지의 박력처럼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호의 방

 

아를르 시대에서 노란 조그만 집으로 옮겨간 후, 그 집을 예술가의 집으로, 또는 예술가들의 공동 생활 터전으로 고호는 꿈꾸고 있었다. 실내에는 그의 취향에 알 맞는 몇 가지의 가구를 볼 수 있다. 이것들은 그가 의도적으로 성격이 있는 분위기로 꾸미고 싶었던 생각을 읽게 하여 준다. 침대도 쇠침대가 아닌 농부들이 쓰던 건장하고 커다란 것으로 고르고, 의자 역시 무뚝뚝한 농부용의 것으로, 벽면에는 자화상을 비롯하여 수점의 그 자신의 작품이 걸려 있고,그 외 가구다운 가구가 없는 소박한 침실은 고호의 성격과 가난한 아를르 시대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아를르 시대의 생활에 그는 빨강·노랑·초록·파랑·보라·주황, 여섯 색의 기본색을 아름답게 대비시키고, 또는 조화시켜 나갔는데, 이 화면도 그런 기초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비극 직 전의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사마리아人

 

 

 

 

오렌지와 푸른 장갑이 있는 靜物

 

병원에서 나온 후 고호는 외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화상이나 정물화들을 그의 방에서 그렸다. 이 작품은 병중에 그렸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색조에 의한 안정감을 추구한 정물화이다. 그가 그린 정물화는 극히 그의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손쉬운 것들, 예를 들면 해바라기, 의자, 신발,책들이었는데, 이 정물은 과일, 향나무 가지, 장갑 등 제재로서는 비교적 이채롭다.향나무 가지의 검은 초록, 오렌지의 밝고 선명한 색, 장갑의 붉은 보라색 등이 부드러운 바탕 위에 선명한 색채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광주리의 테두리 선이나 과일의 윤곽선 등은 주저없이 그은 명확한 것으로,이러한 손쉬운 현실적인 소재를 그리면서 화가로서의 직업의 안정감과 기쁨을 얻으려는 고호의 보다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트 마리의 漁船

 

남불(南佛)에서 제작 생활을 하면서 고호는 새롭게 눈에 뜨이는 온갖 이국적 풍경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열중하였다. 1886년 6월 중순경 그는 지중해안을 멀리 돌았다. 로오느 하구에 위치한 생트마리 해안, 더구나 처음 대하는 지중해의 색채가 그에게 제작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해안에 들어 얹혀진 어선의 눈을 붙들어 매는 색채, 기묘한 뱃머리의 뾰족 모양들이 현실적인 해안의 작은 배들과는 전연 다른 모습이었던 것같다. 자연에 임의로 손을 가하지 않는 그였지만, 필연적인 요구가 있었을 땐 그것이 흡사 자연의 외관 그대로인 것처럼 데포르메를 하는 것은 그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측백나무

 

생 테미에서 발견한 보다 더 중요한 모티브는 병원에서 바라보이는 보리밭과 측백나무였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측백나무, 배후의 밭이나 산을, 고호는 흡사 그 자신의 마음의 번민과 희망의 상징인 것처럼 응시했다. 대부분 직선에 가까웠던 아를르 시대의 필치 대신 휘어 구부러져 서로 대응하는 필치가 화면을 메운다. 일종의 바로크화인데, 그 장대한 리듬의 집합은, 한 그루의 측백나무라 할지라도 거대한 마음의 상징물로 변화시킨다. 고호는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에게 '측백나무는 시골 풍경의 전형입니다. 그것은 해바라기에 필적하는 것이고 또한 그 대조이기도 합니다.'라고 쓰고 있다.확실히 해바라기가 아를르 시대의 마음의 상징이라면, 측백나무는 생 레미의 마음의 상징으로, 산도 하늘도 대지도 측백나무의 호흡에 맞게 요동한다.

 

 

 

 

自畵像

 

고호는 많은 자화상을 남기고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당시 그의 내면 생활을 읽을 수 있게 솔직하게 나타내 고 있다. 이 자화상은 고호 자신이 말했듯이 색채가 없는 회색 주조(主調)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간혹 자기 작품을 친구들에게 선사하기도 하고 교환하기도 했다. 때로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작품을 나누어 주기도 했었다. 이 작품은 고갱과 교환 한 <자화상>이며 <밤의 카페>와 같은 주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밤의 카페>가 빨강과 초록의 대조에 의한 강렬한 구성인데 비하면, 이 <자화상>은 상당히 억제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무렵의 내면 생활에 있어 격한 동요를 나타내고 있고, 아를르 시대 초기의 안정을 깨뜨리고 평형을 잃은 흔적이 짧은 머리칼과 예리한 시선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클리치의 거리

 

이 작품은 가장 신인상 파적인 영향이 두드러진다. <클리치의 거리>는 고호의 파리 생활의 거점이었고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를 밀접하게 하면서, 이 거리를 신인상파 동료들의 거점으로 하고 싶어 했다. 그의 동생 테오와 함께 살던 아파트도 이 거리의 브랑슈 광장 바로 곁에 있었고, 로트렉의 본거지 물랑루즈도 이 거리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작품은 파리에서 고호가 파리의 공기에 동화되어 신인상파의 일원이 된 한 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피사로나 시냑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기는 하나, 바람에 휘날리듯 한 도시의 공기와 거친 터치 등은 점묘적인 기법으로 나타내어진, 그의 독자적인 개성이 풍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탬버린의 여인

 

1885년 4월에 카바레 카페 듀·탬버린이 개점되자, 이 술집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었다. 탬버린의 모양을 한 탁자나 의자, 접시 등, 그리고, 벽 장식까지도 그런 분위기를 한 이 술집의 실내 장식에 고호 자신도 참가했기 때문에 그도 그들 속의 하나가 되었었다. 모델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로트렉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이여인은 탬버린 가게의 여인인지 직업 모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바로 우리 나라의 장고 모양으로 된 의자와 탁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 경의 오른쪽에는 어슴푸레 그림이 걸려 있는데, 이 무렵 고호가 이 가게에서 더러 그의 친구들과 함께 전람회를 꾀했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시된 작품과 함께 진열되었던 일본의 우끼요 에로 짐작된다. 이 무렵 로트렉과 고호는 서로 한 모델을 그리면서 더욱 관심있는 교류가 이루어 졌었다.

 

 

 

 

몽마르트

 

 

 

 

알제리아 土民兵

 

고호가 그린 인물화는 그 대부분이 그 모델의 성격을 반영할 수 있는 강한 인상을 주는 의상을 걸치고 있다. 이 알제리아의 토민병도 아랍 출생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소의 목과 호랑이의 수염을 가진 알제리아의 병사를 한 번은 반신상으로, 또 한 번은 전신상의 이 작품으로 그려 남겼다. 다른 인물화와 마찬가지로 이 남자의 소박함이나 이국풍의 제복이 고호의 제작 의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화면상으로는 모델이 상당히 건장하고 큰 몸집을 가진 남자로 보이나. 고호의 편지에 적은 것으로는 몸집이 작은 청년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포즈, 힘찬 구도, 강한 색채가 인물을 크게 느끼게 하고, 의도적으로 계산된 구도는 아니지만 색채의 박력, 필치의 리듬, 직관적인 구도가 화면을 흔들림 없이 정착시키고 있다.

 

 

 

 

 

젊은 農夫

 

황금색으로 무르익은 보리밭을 배경으로 그 멀리에는 아늑한 나무 숲을 이루고, 통상보다 낮은 위치에 인물의 반신상을 배치한 이 초상화는 단순한 초상화라기 보다 수확의 계절을 맞이한 농촌 풍경의 한 연장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호 특유의 필치와 색으로 화면을 통일시킨 대신 인물과 배경의 분위기를 서로 맞서게 배치하여, 그가 나타내려는 의도를 명백히 하고 있다. 생 레미 시대에 그가 많은 인물화를 그리지 못한 것은 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대하면서도 상처 입은 그의 마음이 사람들과의 가까운 접촉을 거부함으로써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 농부의 초상은 네덜란드 시대에 그린 농부들과는 상당히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날카로운 얼굴의 윤곽과 예리한 눈, 입술, 그 표정이나 성격을 그려내는 능력을 충분하게 읽게 한다.

 

 

 

 

우편 배달부 루랭

 

고호는 아를르에서 약간은 사람들의 몰이해와 조롱 속에서 둘러싸이기도 했지만, 제작의 틈바구니에서 한가롭게 밤의 카페에서 차츰 가까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들어 갔다. '금빛을 장식한 푸른 제복을 입고, 수염을 길러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보이는 우편 배달부'의 루랭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영속적(永續的)인 우정을 갖게 되었다. 특히 그 배달부의 가족 전체와 친분이 두터워, 아들 아르망의 초상도 그렸고 부인도 그렸다.

 

 

 

 

 

자장가 : 루랭의 부인

우편 배달부 루랭의 부인을 그린 작품이다. 빨강, 노랑, 초록 고호의 기본적인 색채 관계를 나타내는 보다 전형적인 작품이다.

 

 

 

 

밤의 카페 테라스

 

'두번째의 작품은 푸른 밤공기 속에 가스등 불빛에 비쳐진 카페의 바깥을 그린 것으로 파아란 별하늘이 내다 보이고 있습니다. 밤의 광장의 정경과 그 효과를 그리는 일, 혹은 밤 그 자체를 그리는 일에, 흠뻑 나는 열중하고 있습니다.' 태양을 쫓아서 북쪽에서 남으로 내려왔고 또, 우연히도 자기를 닮은 해바라기에 열중했던 고호가 가을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밤의 광경에 열중하게 되는 것은, 인상파적인 흥미에서 로트렉 이나 드가가 밤의 광선에 열을 올리던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타는 듯이 마음의 낮을 향했던 그의 눈은 마침내 마음 속의 보다 어두운 부분, 정신의 그늘진 부분을 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푸른 별하늘과 가스등의 이상한 노란색의 대조는 그의 마음속에 일고 있던 갈등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리라.

 

 

 

 

몽마르트르 언덕의 眺望

 

고호가 파리에 와서 클리치가(街)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그리기 시작한 풍경화 속에는 마르트의 길, 언덕, 풍차 등 밝은 광선을 몸 흠뻑 받은, 몽마르트의 시리즈가 등장한다. 어두운 회색조의 풍경이 1886년부터 점차 밝은 화면으로 바뀌고, 그 다음 해에는 신인상파풍의 눈부신 밝음으로 변모하여, 이미 네덜란드의 침침한 하늘의 어두움은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 언덕이 지금은 한 치의 빈 땅도 없는 시가지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즐비하게 늘어선 밭 사이로 오두막집 농가들이 평화스럽게 자리한 농촌의 정경을 맛보게 하는 교외의 모습이었다. 이 작품은 몽마르트 풍경의 대표적인 것으로 넓은 대지를 조망하는 듯, 공간을 크게 설정하는 등 큰 구도의 풍경화의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 보여진다.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필치는 대지의 생동감을 더해 준다.

 

 

 

 

생 레미의 精神病院 뜰

 

'이것은 지금 내가 입원하고 있는 생 레미의 요양소의 조망이다. 오른쪽에는 병원의 벽과 회색의 테라스, 꽃이 져버린 무성한 장미의 덩굴. 왼편 뜰의 지면에는 홍다색 태양이 타고 있는 소나무의 낙엽으로 어우러지고 있다. 뜰의 경계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둥치도 가지도 홍다색으로 물들어 있지만, 잎의 초록에는 검은 색이 섞여 있어 뭔가 슬픈 느낌이 든다.' 고호는 이렇게 친구 베르나르 에게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폐쇄된 채 둘러싸인 상태, 그리고 그 둘러싸인 속에서 타오르려는 마음, 그런 것을 상징하듯 한 화면이다. 거의 대부분은 평탄해야 하는 지면이나 테라스까지도 일렁 거리며 동요하고 있다. 고호는 소나무를 '검은 거인'이라 부르고, 실제의 정경 인물에 대조시키고 있다. 그 점에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별 달밤

 

생 레미에 옮겨 온 고호의 화면은 아를르 시대에 비하여 한층 침잠된 색채를 쓰고, 필치는 보다 다이내믹하게 되고 동적인 곡선의 자유로운 발전에 의한 일종의 묵시록 적인 팬터치를 만들고 있다. 고호가 몽상적이거나 환상적이란 것은 아를르 시대까지의 작품에서는 그 표면적인 흔적을 찾아볼 수없었다. 그는 항상 현실에 밀착한 듯했다. 그러나, 생 레미에서의 그의 작업은 본질적인 서정을 보인다. 그는 자연이나 물체와 마음으로 통하는 일종의 주술사이기도 하며, 그 기술적인 제어력의 완성과 마음의 성취가 마침내 생 레미 시대에 있어 몽상가로서의 고호를 낳게 한다. 별들이 소용돌이를 이루고, 모든 것이 구심적인 운동과 통일된 움직임을 나타내는 장대한 밤의 시는 자연과 사물의 내면에 와 닿는 것에 의한 서정성과 신비성을 나타내고 있다.

 

 

 

 

아를르요양원의 내부

 

 

 

 

 

양파가 있는 靜物

 

이 작품도 아를르의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의 정물화인데, '내일부터 일에 치중할 마음이다. 그리는 습관을 다시 되찾기 위하여, 먼저 정물을 1, 2점 시작하게 될 것이다.'라고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다.술병, 물주전자, 양파, 냅킨, 담배쌈지, 파이프, 양촛대, 성냥통, 테오로부터의 편지,라스파이유라는 의학자에 의하여 쓰여진 의학서, 이런 것들은 모두 고호의 생활 중심부에 있는 모든 것이었다. 이것들은 당시 그의 생활 중심부에 있는 모든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단지 그리는 습관을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서만 정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평형을 잃은 상태로부터 다시 자기 자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의 생활에 보다 확실한 것을 확인하려는 마음가짐이었음이 틀림없다.

 

 

 

 

의사 가체트의 肖像

 

생 레미에서 북쪽에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한 고호는 1890년 5월에 그의 동생 테오의 주선으로 파리 북쪽에 있는 오베르 슈르 오와즈에 사는 의사 가체트의 곁으로 갔다. 오와즈강을 중심으로 이 지방의 풍경은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근거지가 되어 있었다. 가체트는 고호를 만났을 때 이미 62세로, 그 이전부터 도미에, 쿠르베, 마 네, 피사로, 귀오멩, 세잔 등과 가까운 교분을 가진 친구였다. 이 작품은 고호가 그린 3점의 가체트 초상 중의 하나로, 초상 작품의 걸작 중의 하나이다. 파리에서 그린 <당기 할아버지> 등 아를르의 루랭과 함께 모두 고호를 잘 이해했던 사람들로서, 그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로 남겨지게 된 것은 그들에 대한 고호의 애정을 잘 나타내어 주는 당연한걸 작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는 우리들 시대의 침울한 표정'을 가졌다고 고호는 말하고 있다.

 

 

 

 

아를르공원의 입구

 

 

 

 

 

측백나무와 별과 길

 

'창에는 오렌지색의 불빛이 비치는 낡은 여인숙, 높이 뻗어 오른 한 그루의 측백나무가 똑바로 검게 서 있다. 길에는 하얀 말에 끌리는 노란 수레 한 대와 그 앞을 산보하는 두 나그네. 굉장히 로맨틱하지만, 이것이 프로방스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호는 오베르 에서 고갱에게 이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상세히 쓰고 있지만, 이 편지는 미완성인 채 나중에 유품 중에서 발견되었다. 그의 측백나무를 그린 작품 중 특히 유명한 것으로서 별, 측백나무, 보리밭, 마차, 오두막집 등, 생 레미 시대의 요소를 대부분 여기에 갖추어 넣었다. 그는 다른 편지에서 측백나무를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답다.'고 하고 있다. 그 검은 맛의 초록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는 마음을 쏟았었다. 더구나 그것을 밤의 효과 속에서 그리기는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흙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꽃'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폭풍에 휘말린 하늘과 밭

 

'건강을 위하여 뜰에서 제작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기도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다와 같은 넓은 언덕을 향하여 멀리 펼쳐져 가는 보리 밭의 그림에 지금 열중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3점의 대작의 하나로, 이것도 어두운 폭풍 속에 있는 보리밭이다. '저는 완전히 이 보리밭의 대작에 소모당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어머니에게 써 보내고 있었다. 그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이 작품은 색채 면에서 <까마 귀가 있는 보리밭>만큼 불길해 보이지는 않지만, 무서운 공백감은 불길 이상의 종언의 예고와도 같은 작품이다. 7월 27일, 그는 보리밭 언덕에 올라 자기 가슴을 권총으로 쏘았다. 탄환은 심장을 뚫고 고호는 상처를 손으로 누르고 걸어서 돌아와 조그만 지붕밑 방에 누워, 고통을 참으면서 파이프를 물고 7월 29일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

 

 

 

 

 

르오노강의 별 달밤

 

두 사람의 연인을 전경에 두고 국화꽃이 활짝 피듯, 푸른 하늘에는 반짝거리는 별들이 가득하며, 강물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가 길게 리듬을 그리는 이 한폭의 아름다운 야상곡은, 섬세한 가락으로 놀랄 만큼 정서에 넘쳐 있다. 고호의 리리시즘, 거의 항상 그 강도와 밝기 때문에 리리시즘으로서의 외관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자연과의 공감을 바탕으로 그리려고 하는 그는 바로 본질적인 시인(詩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를르에 도착하자마자 밤의 아름다움을 몇 번이나 그리려고 마음 먹었던 사실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져 있다. 그러나 그가 겨우 밤의 테마에 착수한 것은 9월이 되고서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 지방의 별이 가장 아름다운 달이 9월이었고, 고호는 촛불을 그의 모자 위에 세우고 밤 경치를 그렸다고 한다.

 

 

 

 

오벨르의 집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해바라기라고 하면 바로 고호를 연상하게 되는 꽃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고호는 해바라기꽃의 강한 모티브를 발견하고 그것을 그리는 데 열중하였다. 특히 아를르에서 살고 있던 시대에 있어 해바라기는 그의 중심적 주제였다. 아무튼 대담한 노란색을 둘러싼 불꽃같은 꽃잎이 고호의 잠재적인 정열을 만나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이루어진 느낌이다. 이 작품은 아를르 시대 이전 파리에서 그린 작품으로 해바라기의 최초에 해당된다. 이후 그의 작품 속에 눈 부시는 노란색이 주조를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네덜란드의 누에넹 시대에 그린, 새집의 형상을 연상케 하는 원형의 둘레는 어쩌면 그의 감각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패턴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그의 리드미컬한 생명력이며 그의 생애, 바로 그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바라기

 

고호는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아를르로 조금이라도 더 태양에 접근하려고 따라간 셈이다. 그의 이러한 태양에 향하는 집념은 어쩌면 해바라기를 꼭 닮아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그는 아를르 지방에서도 여러 점의 해바라기를 그린 작품을 남기고 있고, 그 결과 해바라기는 곧 고호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해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하는 성질은 고호의 내면적 원형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해바라기는 고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게 되어 버린 것이다. 미묘한 톤의 파랑색을 배경으로, 강렬한 변화의 노랑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바로 고호 자신이 그의 동생에게 설명했듯,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풍부한 변화상을 나타내는 태양에의, 또 생명에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그 자신의 강렬한 생명력을 그는 해바라기를 통하여 본 것이다.

 

 

 

 

고호의 椅子

 

네덜란드 시데에 그린 <신발>과 함께 의자를 모티브로 한 이 그림도 고호 특유의 것이다. 서민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이 한 개의 의자를 통하여 항시 거기에 걸터앉는 주인의 성품과 생활을 느끼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고갱과의 공동 생활이 시작된 이래 그는 두 개의 의자를 그렸다. 먼저 그린 것이 이 작품인데, 자신의 의자를 햇빛 아래에서 그렸고, 뒤에 그린 것은 고갱의 의자인데, 그것은 램프의 빛으로 그렸다. 고호의 것은 건장하고 소박하며, 고갱의 것은 유순한 곡선으로 그렸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두 개의 의자는 아주 대조적인 두 사람의 성격을 암시하고, 마침내 비극으로 끝나는 공동 생활의 운명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간단한 의자 하나를 그리는데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까지도 묘사하는 그 감수성을 엿보게 한다.

 

 

 

 

레스토랑의 內部

 

점묘주의적 수법을 통한 당시의 많은 작품 중에서 이 <레스토랑의 내부>는 고호가 그린 작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점묘법적 작품이다. 번쩍거리는 색채와 이 기법의 완벽함은 파리 시대의 걸작이라 할 수 있겠고, 노랑과 연초록, 그리고 장밋빛을 통한 색조의 배합은 조용하고도 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당시 인상파에 대항하는 신인상파적 보편적 교양을 알려주는 그의 역량을 보게 하는 작품이며, 후 일 활짝 피는 색채의 개화를 예감케 하는 작품이다.

 

 

 

 

신발

 

고호는 농촌의 풍경과 농민들의 생활을 애정을 가지고 그린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처럼 낡은 신발을 정물의 소재로 다루었던 화가는 고호 이전에는 밀레가 있을 뿐이다.밀레의 서민 감정에 퍽 공감을 느꼈던지 그런 영향을 받은 흔적은 고호의 많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도 밀레의 신발을 그린 데생에 자극을 받아서 그린 것이 틀림없으리라. 이 한 켤레의 신발은 농부의 생활과 그 힘겨운 수고의 전부를 이야기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파리에 나와서도 세련되고 밝은 도시적인 풍물을 그리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처럼 이런 신발들을 그려 네덜란드와 파리 양쪽에 살고 있는 그의 마음의 갈등 같은 것을 대변하여 주고 있다. 색채가 한층 밝아지고 필치가 잘게 되면서 격렬하여 지고, 배경의 밝은 빛과 어두운 신발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프로방스의 늙은 농부

 

고호는 누에넹 시대에 많은 농부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남겼으나, 유감스럽게도 아를르 시대에는 이 농부 한 사람만을 그렸었다. 그가 농부들의 생활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니었으나, 농부와 개별적으로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작품의 노농부는 파시앙스 에스카리에라는 이름의 카마르그 출신의 농부로서, 고호는 두 번에 걸쳐 그의 초상을 그렸다. 다른 하나는 반신상으로 손은 그리지 않았다. 적어도 아를르 시대의 그는 생의 공감 자로서 농부를 응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색채나 빛에 대한 조형적 흥미의 대상으로서 더욱 인간적 흥미를 북돋우어 갔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상부의 강렬한 노란색과 빨간색, 하부의 대비적인 푸른 옷,억센 필치 등의 조형적 시도로써 이 농부를 그리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다.

 

 

 

 

활짝 핀 복숭아꽃

 

병의 발작과 불안의 생활 속에서도 꽃피는 계절은 다시 찾아왔다. 아를르에 도착했을 때, 눈이 녹고 과수원에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고호에게 환희와 기쁨을 주던 대지는 변함없이 꽃을 피우고, 화사한 햇빛이 어루 만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작품의 모티브를 구하러 외출하는 것도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그는 몇 점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넓고 아름다운 전망의 시원한 화면은 병든 사람의 그늘은 느낄 수가 없다. 전경에 비스듬히 지나간 울타리와 그 아래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잎을 배치한 구도는 극히 안정되어 있다. 오히려 잔붓으로 가볍게 찍어 나간 터치의 리듬은 봄노래를 들려주듯 화면에 튼튼한 안정감을 구축한다. 비극 이후의 체념이 그의 마음 속을 오히려 평화스럽게 가라 앉히는 것인지, 봄이 그를 평화스럽게 치료한 것인지 아름다운 정서가 훈훈하다.

 

 

 

 

복숭아나무

 

이 작품은 고호가 남불(南佛)에서 맞은 경이적인 봄의 화사함을 깊은 감동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그는 1888 년 2월 21일에 아를르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당시는 아직 겨울이어서 눈까지 쌓여 있었으나, 그의 예상을 뒤엎고 남불의 봄은 빨리도 왔다. 마침내 태양은 서슴없이 지상에 그 빛을 쏟아 붓고, 꽃이 일제히 피어나고,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리라꽃이 피어 널리고 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복숭아꽃이 가지마다 가득 가득 피는 과수원은 아를르의 환희를 표현하는데 가장 좋은 모티브였다. 밝은 태양빛은 복숭아꽃의 구석구석에, 나무가 선 과수원의 바닥에까지 스며들어 어두움이 말끔히 사라진 그에게 가득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는 이 기념비 적인 최초의 아를르에서의 작품을 그가 헤이그에서 그림을 배운 종형이자 스승인 화가 모브의 죽음 앞에 바쳤다.

 

 

 

 

배꽃

 

작열하는 태양빛에 황금색으로 물든 대지, 멀리 보이는 감·벽의 청청한 하늘, 왼편의 검푸른 숲이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존재들에게 명석한 이념을 부여한다. 소재들은 둔탁하면서도 확실한 윤곽선과 선명한 고유색을 지녀, 대담하게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데, 배나무에 탐스럽게 핀 배꽃들이 무슨 사연을 말하는 듯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자연을 색채 현상으로 받아들인 인상파의 묘법에 선, 면, 고유색을 배합시켜 표현하는 기법을 가미시킨, 태양의 작가다운 수작(秀作)이다.

 

 

 

 

 

夕陽의 버드나무

 

마침내 잎을 떨어뜨리고 발가벗은 버드나무 저쪽에 석양이 장대한 최후의 빛을 쏘이며 저물어 간다. 거기에는 1888년 10월 비극의 직전에 있는 예술가의 마음의 낙일(落日)의 상태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듯하다. 네덜란드의 시대에도 간혹 그는 나무들 사이 저쪽에 해가 떨어지는 광경을 그렸다. 고호 자신 훗일의 편지에서 아를르의 수양버들 뒤쪽의 낙일은 네덜란드를 회상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도개교(跳開橋)에서나 이 작품에서나 아를르 시대의 모티브에 간혹 네덜란드 시대의 모티브를 새로운 모습으로 재발견하게 되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아를르의 跳開橋

 

고호가 아를르에서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그의 집념을 불러일으킨 모티브 중의 하나가 이 도개교이다. 아를르에서 부크에 이르는 운하에 놓여 있는 이 다리는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다리에 대한 향수를 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것이다. 네덜란드에 비하면 밝은 광선에 맑고 푸른 하늘과 물에 둘러싸인 굵고 가는 선의 결구(結構)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양의 다리의 조형은 그의 표현 의도에 알맞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프로방스의 짚단

 

고호는 성실한 농부의 대변인처럼 농토를 사랑하고, 신선한 흙과 그 위에 농부의 노고로써 맺은 무성한 곡식을 경건한 마음으로 그렸다. 특히 육박하듯 대상을 붙드는 그의 시각은 이 작품에 있어서도 충실한 제작자의 면모를 보여 준다. 이 무렵 그의 주요한 모티브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보리밭과 베어서 쌓아 놓은 커다란 짚 둥우리였다. 보릿짚의 노란색, 그리고 풀잎의 흐름은 고호의 화법에 있어 더할 나위없는 제재였다.

 

 

 

 

귀를 자른 自畵像

 

고갱과의 빈번한 성격적 충돌에 의하여 결정적인 우정의 파탄을 가져오고, 그 격분에 못이겨 자기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잘라 버린 귀의 비극이 1888년 크리스마스 때 일어났고, 바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1889년 1월 7일 퇴원을 한 고호는 그 무렵 2점의 자화상을 그렸는 데, 모두 귀에 붕대를 감은 모습이다. 또 한 점의 자화상은 입에 파이프를 물고 있고, 빨간 바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들라크로아나 바그너나 베를리오즈의 마음속에도 광기는 존재하지 않았을까'라고 고호 자신은 말하고 있다. 그 비극에 대하여 많은 의학자나 평론가, 학자들이 연구하였으나, 과로에 의한 신경 과민, 환청,피해 망상 등 여러 가지 정신 병리학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차츰 진정을 회복하여 명석한 자기 마음의 지향을 나타내어 갔다.

 

 

 

 

 

노란 보리밭과 측백나무

 

타오르듯 요동하며 무성하게 깔린 들의 풀들, 역시 불 꽃 모양을 하고 하늘을 치솟는 올리브 색의 측백나무, 휘몰아치는 대기의 하늘. 그러나 화사하게 서로 어울리는 해조(諧調)의 색채가 억제된 색조에 의하여 지극히 조용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아를르에서 생 레미로 옮겨간 고호는 그곳에서 아를르 시대와는 다른 조화와 성숙을 달성하고 있다. 해를 쫓아 다니는 해바라기에 공감의식을 가졌던 그가 생레미에서는 힘찬 생장력을 가지고 하늘 속을 뚫고 오르는 측백나무를 주제로 하는 풍경에 열중하고 있다. 얼핏 보면 그는 격렬한 사나이로만 보이나 그것은 일면일 뿐, 이 작품이 갖는 안정감, 섬세함, 조화, 억제는 또 다른 일면으로 부각된다. 고호 자신도 이 작품을 '내가 그린 가장 명석한 작품'이라고 부르고 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3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53 "새로운 미국 회화의 선구자" 화가 - 윌렘 드 쿠닝 2017-11-20 0 3897
452 부부 추상 표현주의 화가 2017-11-19 0 3467
451 [그것이 알고싶다] - 화가 반 고흐와 "해바라기그림"?... 2017-11-15 0 1555
450 [그것이 알고싶다] -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누구?... 2017-11-14 0 1427
449 [미술써클선생님께] - 그림 그릴 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라... 2017-11-14 0 1790
448 [미술써클선생님들께] - 그림 그리기에서 상상력을 키우라... 2017-11-14 0 3388
447 [쉼터] - 그림은 뛰고 또 뛴다... 2017-11-14 0 2656
446 [그것이 알고싶다] - "모나리자"는 녀성일가 남성일가?... 2017-11-14 0 2909
445 [쉼터] - 비행기야, 같이 놀쟈... 2017-11-13 0 1326
444 [타산지석] - 국화꽃아, 나와 놀아나보쟈... 2017-11-13 0 1132
443 세계에서 가장 몸값 높은 화가 - 잭슨 폴락 2017-11-10 0 3649
442 [이런저런] - 200만원짜리 그림 = 1800억짜리 그림 2017-11-10 0 2605
441 화가는 갔어도 미술계의 그의 신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2017-11-09 0 1729
440 [쉼터] - 가위질 몇번에 검은색 종이는 살아난다... 2017-11-07 0 1913
439 "누구가가 내 작품을 즐겼다는것에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끝! 2017-11-07 0 1330
438 [쉼터] - "길림시 호랑이왕" 화가 = "동북호랑이왕" 화가 2017-11-07 0 1598
437 "봄을 그리려면 봄의 느낌이 나야"... 2017-11-06 0 2347
436 가장 서민적인것, 가장 거룩한 세계, 가장 현대적인것... 2017-11-04 0 1689
435 화가들도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있더라구ㅠ... 후ㅠ... 2017-11-03 0 2408
434 [쉼터] - 세상은 넓디넓고 세상은 불공평하다... 2017-11-02 0 1242
433 [쉼터] - 세상은 넓디넓고 세상은 매력적이다... 2017-10-31 0 1877
432 시작할 때 기하학적 립체도 수용할줄 알아야... 2017-10-31 0 2033
431 시도 "4분의 3"의 립상이 좋을 듯... 2017-10-25 0 2267
430 예술창작은 자연과 인간의 결정(結晶)에의 충동이다... 2017-10-24 0 2265
429 거꾸로 볼가ㅠ... 삐딱하게 볼가ㅠ... 2017-10-23 0 2270
428 바로 볼가ㅠ... 뒤집어 볼가ㅠ... 2017-10-23 0 4092
427 "봄, 여름, 가을, 겨울 - 사계"로 형상화한 신비로운 인물화 2017-10-23 0 3369
426 화가 다빈치가 자전거를 최초로 발상했다?... 아니다!... 2017-10-23 0 2018
425 유명한 본 종가집 그림은 새끼에 새끼를 낳는걸 알가 모를가... 2017-10-23 0 2305
424 "나는 한번도 뚱보를 그린적이 없다"... 2017-10-23 0 3473
423 7만 = 1억 2017-10-22 0 2504
422 세계 3대 박물관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다... 2017-10-22 0 1381
421 미술작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초현실주의 화가... 2017-10-22 0 3632
420 [쟁명] = 세상은 넓고 그림세계는 요지경이다... 2017-10-22 0 2106
419 {쟁명} = "모나리자"는 말이 없다?... 말이 많다!... 2017-10-22 0 2362
418 {쟁명} = 칭찬 일색이던 사회 분위기를 대담하게 뒤번지다... 2017-10-22 0 2864
417 {쟁명} = 아방가르드적 락서 행위도 예술일까???... 2017-10-22 0 1906
416 {쟁명" = "수염 난 모나리자" 시집 잘 가다... 2017-10-22 0 2324
415 꽃은 그 언제나 말이 필요 없다... 2017-10-22 0 1761
414 세상에 버려질 물건이란 있다?... 없다!... 2017-10-22 0 2530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