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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미친 천재, 이미지로 조합하면 見者? - A. 랭보[스크랩]
2018년 02월 20일 16시 48분  조회:1699  추천:0  작성자: 강려
아름답게 미친 천재, 이미지로 조합하면 見者? 
- A. 랭보

퍼온 글임


0. 들어가며

아르튀르 랭보(Arthur Jean Nicolas Rimbaud·1854~1891). 짧은 37년간의 생애를 지상에 머물다간 천재. 소년의 나이에 시작해서 4년 후에 중단되는 창작활동. 나머지 생애 동안의 문학적으로 완벽한 침묵, 근동지역과 중앙아프리카를 누비고 다니며 다
양한 직업에 종사했던 것, 시작한 지 2년만에 원래의 출발점뿐만 아니라 이후 이루어질 문학적 전통마저 돌파해 버리고 오늘날까지도 현대시의 원조로 남아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 그 짧은 창작기간 동안의 광적인 발전 속도는 내재된 천재적 광기의 폭발이었으리. 이것이 랭보의 간략하게 뭉뚱그린 객관적 프로필이다.
 
랭보의 작품을 가장 잘 나타내는 핵심어는 ‘폭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正格 시구로 시작해서 탈격 자유시구로 넘어가며 거기에서 「일루미네이션」과 「지옥에서 보낸 한 철」같은 불규칙적 리듬을 가진 산문시들로 이르게 된다. 랭보의 시는 무엇보다 보들레르의 이론적인 구상들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랭보의 시는 철저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테마들은 서로 간에 간혹 막연하게 연관될 뿐, 과도할 정보로 많은 단절들을 드러낸 채 대개는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이러한 시작법의 핵심은 테마와는 거의 상관없이 끓어오르는 흥분이다.


1. 방향상실
1920년 리비에르(J. Riviere)는 랭보의 시에 대해 “그의 사명은 우리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다” 라고 논평했다. 랭보의 비실재적 혼돈은 조여드는 현실로부터의 구출 시도였다. 랭보의 시들은 가혹한 타격으로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극도로 마술적인 음률을 자아내는 언어로 이루어진 만큼, 더욱 더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랭보는 때로는 초지상적인 축복 속에서 거닐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황홀경에 빠져 빛을 바라면서 저 너머의 세계로부터 도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협화적인 작품은 랭보에 대한 지극히 모순적인 평가를 초래하기도 한다.


2. 견자의 편지-공허한 초월, 비규범성의 추구, 불협화음의 리듬
시의 목표는 ‘미지의 것에 도달함’이며, 달리 표현하자면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자’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보들레르로부터 나온 것이며, 공허한 초월을 의미한다. 랭보는 그것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인식하여야 할 목표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기한다. 그러므로 비일상성, 그리고 비현실성, 전혀 다른 것 등으로 표기되기는 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랭보의 시들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그의 시들의 현실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돌진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욕구 자체의 방출이며, 그 결과 현실을 탈형상화시켜서 비실재적이긴 하지만 진정한 초월의 표지라고는 할 수 없는 형상들에 도달하게 된다.
 
랭보의 견자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편지에서 “시인은 미지의 것에 도달한다. 비록 자기 자신이 환영들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시인들은 그것을 직관하였다. 시인은 전대미문의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물들을 통한 거대한 비약의 과정에서 파멸해도 좋다. 왜냐하면 다른 무시무시한 일꾼들이 나타나서 그 자신이 좌초해버린 저 지평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시인 존재는 미지의 곳으로 탈주하여 거기에서 좌절하게 되는 강력한 상상력을 무기로 세계 폭발에 참여하는 일꾼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3. 전통과의 단절
랭보의 시들은 당대와 19세기 초기의 작가들의 영향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선배들의 영향이 아닌 랭보 자신의 목소리 또한 뚜렷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전래의 문학적 자산을 랭보는 과도하게 가열하거나 혹은 과도하게 냉각시킴으로써 완전히 다른 실체로 변형시켜 버렸다. 그러니까 빗대어 말하자면, 그에게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니, 원형 불변의 법칙, 만유 인력의 원리 등등의 아주 기본적인 물리학의 원칙들이 지극히 무의미한 셈이다.
 
랭보의 특성은 그가 읽은 작품에 가하는 강력한 변형, 그리고 전통과의 단절을 원하면서 전통에 대한 증오를 강화시키는 그의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자와 시대로부터의 과격한 분리가 철저하게 시행되어 과거로부터 분리라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 원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사적인 것이다. 진정한 연속의식의 소멸, 그리고 그 대신으로 나타난 역사중의와 박물관적인 수집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과거는 19세기의 몇몇 정신적 지도자들에게 반대 방향의 힘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과거를 청산토록 했다. 그의 시구들은 고대가 희화화 되어 언급된다. 신화는 비천한 것과의 결합에 의해 고유의 품위를 상실하고 만다.


4. 현대성과 도회시
현대성에 대한 랭보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물질적인 진보와 과학적인 계몽이란 점에서는 현대성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취한다. 반면 현대성의 가혹함과 암흑성이 차갑고 어두운 시를 쓰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경험을 주는 범주에 있어서만큼은 현대성을 수용한다. 이러한 역설적인 입장에서 랭보의 도회시가 생겨난다. 일를테면 「일루미네이션」 이 그 좋은 본보기 작품이다. 자극적인 상상력에 의해 창작된 형상들의 시공을 초월한 혼돈은 대도시적인 현대성의 물질적·정신적 요소들, 주술적으로 작용하는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개념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으나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는 있는 직관의 표지이다.


5. 기독교 유산의 강요에 대한 저항, 「지옥에서 보낸 한철」
랭보의 시들은 기독교에의 반란을 시도하긴 하지만 결국 기독교 유산의 강요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에서 오는 고통을 토로하는 것으로 점철된다. 랭보의 저항은 자신이 맞서고 있는 바로 그 힘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마는 역설적인 것으로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에는 그러한 자각이 표현되어 있다.
 
“이교도의 피가 끊어오른다, 복음은 지나가 버리고, 나는 유럽을 떠나 떠돌며, 풀을 뜯고, 사냥하며, 끓어오르는 금속처럼 독한 즙을 마시리라, 구원받은 자여.”
“나는 열망으로 신을 기다리노라……. 나는 결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 노래했던 그런 종족에 속했을 뿐”
“나는 지옥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 유산에 의한 강요를 지옥이라고 하고 있고, 그 해명할 수 없는 정신적 실존의 긴장 앞에 항복한다. 모든 것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나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갔던 시인은 그 미지 세계의 정체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없었고, 그 자신이 폭파시켜 버렸던 세계 앞에 침묵하면서, 내면의 죽음을 감내한다. 그에게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것은 기독교 유산이었다. 기독교 유산은 초현실적인 것에 대한 무제한적인 욕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에게는 다른 모든 지상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협소하게 보였다. 모든 현실과 상상 속에 불을 붙여 폭파시킴으로써 랭보는 기독교마저 찢어놓았던 것이다.


6. 인공적 자아-탈인간화
랭보의 시들에서 말을 하는 자아는 「악의 꽃」의 자아와는 달리, 작가의 인격으로 해석될 수 없다. 랭보의 자아는 앞에서 언급했던 조작적인 자기 변신, 요컨대 그의 시들의 형상 내용들이 거기에서 생겨나는 바로 상상적 문체의 산물이다. 이 자아는 어떤 가면도 쓸 수 있으며, 모든 존재 방식, 시대와 민족들로 확대될 수도 있다.
 
랭보는 자신의 정신적 운명을 현대성의 초개인적 상황으로부터 해석한다. “정신의 투쟁은 사나이들의 살육전처럼 잔인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더 깊이 빠져들어감으로써 더 먼 곳을 보며, 아무도 이해할 수 없지만, 부드러움 속에서도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몰락자가 되어야 할 시인의 운명을 옹호한다. 시인은 “이 기이한 고통이 불안정을 초래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자만심을 느껴야 한다. 랭보는 “나의 우월성은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라고 말한다. 낭만주의 시의 ‘느끼는 감정들’은 그에게 역겨움을 준다.
 
 “그래 인간의 갈채로부터, 저속한 추구로부터 벗어나라. 그리고 날아서…….” 이것은 단순한 강령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 자체가 탈인간화 된다.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고 독백하면서, 청자들의 이목을 붙잡아 둘 한 마디 말도 없이, 시는 그것을 담아줄 어떠한 그릇도 존재하지 않는, 더군다나 상상적으로 구성된 자아조차도 그 주체가 없는 진술 앞에서 비켜가버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7. 극한으로의 몰입
상상의 아득한 영역으로 밀치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점차적으로 랭보 시의 주체 자리에 들어선다. ‘미지의 영역’으로 강제적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그는 보들레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늘빛 심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패배의 심연이며 아울러 “바다와 전설들이 서로 만나는 불의 샘”인 저 높은 곳에서 천사들이 거주하고 있다. 아득한 곳을 묘사하여 가까운 곳을 부각시키는 이러한 기법은 랭보의 전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역동적인 도식이다. 그것은 점점 더 빨라져서 때로는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이루어 지기도 한다. 흥분은 열광에 도달한다.
 
 “나는 탑과 탑을 밧줄로, 창과 창을 화환으로, 별과 별을 황금의 사슬로 엮었다네, 그래 이제 나는 춤추노라.” 이것은 보들레르의 「일곱 늙은이들」의 마지막 시구에서 이미 보았던 바와 같이 목적 없는 자들의 혼란스런 춤이다. 광막함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파괴된다. 파괴되어 흩어지는 맨 마지막 지점에 랭보의 눈물겨운 영혼이 울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상처 없는영혼이 어딘들 있으랴!


8. 취한 배
「취한 배」는 랭보의 시 중 가장 알려진 작품이다. 시 속에 나타나는 이국의 바다와 지방은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이다. 시는 그 어떠한 실제 사실들과도 연관을 맺지 않는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상상력은 드넓게 소용돌이치며 확장되는 비실재적 공간들의 열광에 찬 환영을 만들어낸다.
 
사건의 진행자는 한 척의 배이다.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명백한 사실은 사건의 경과와 동시에 시의 주체의 진행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형상 내용들에는 매우 격렬한 힘이 부여되어 있어서 배와 인간 사이의 상징적인 동일화의 전체의 운동성을 고려할 때만 가능하다.
 
‘취한 배’는 유례없는 팽창 활동이다. 일시적인 머뭇거림들이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그 이후에 팽창은 다시 격렬하게 진행되며, 몇군데에서는 혼돈의 폭발에 다다른다. 폭발은 문장 구성에서가 아니라 관념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관념들 자체는 시연에서 시연에 걸쳐서뿐 아니라, 시행에서 시행에 걸쳐, 심지어 한 시행 안에서 요원한 것과 거친 것, 아니 거침과 요원함 위에 쌓아올리는 상상력의 홍염들이다.


9. 파괴된 현실성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태도와 ‘미지의 것’은 그 공허함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충격을 가하는-보들레르의 경우보다 더욱 강력한-긴장의 극이다. 현실은 그 불충분성으로 인해 공허한 초월과 대비되어 경험되기 때문에, 초월을 향한 열정은 현실성에 대한 무목적적인 파괴로 향하게 된다. 이러한 파괴된 현실성은 이제 현실 전체의 불충분성과 아울러 ‘미지의 것’으로의 도달 불가능성에 대한 혼돈의 표지가 된다.
 
랭보 시에 나타나는 구체적 세계의 원소들에는 물과 바람이 포함된다. 이 원소들은 초기 시들에서는 통제되어 있었으나 나중에는 노호와 폭풍우, 대홍수의 무시무시한 힘이 되어 솟아오르고, 이 좌중에서 시간과 공간의 질서들은 파괴되며, “평원, 황야, 수평선은 뇌우의 붉은 옷이 되는 것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대상들과 사물들을 총괄해보면 그가 얼마나 불안정하게 더 넓고, 더 높고, 더 깊게 팔다리를 뻗으며, 어느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10. 추화
추는 랭보가 그의 시구에 내포된 현실의 잔재물에 각인시킨 정신의 집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미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시에는 형상에서는 아니면 언어의 가락에 있어서든 정말 ‘아름다운’ 구절들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이것들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추한’ 구절들과 인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와 추는 대립적인 가치들이 아니라 자극의 변이체들이다. 이들 사이의 객관적 차이는 진실과 허위의 차이처럼 제거된다. 미와 추의 밀접한 접근은 모든 요소들을 좌우하는 대비의 역동성을 산출한다. 이러한 대비의 역동성은 그러나 추 자체로부터도 산출될 수 있다.


11. 감각의 초현실성
직관 가능한 형상들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으며, 언어에 내재한 은유의 근원적인 힘들로 인해 예전부터 시의 특권이었던 무한 자유를 넘나든다. ‘거리의 두 번 구운 과자’, ‘자신의 배위에 서 있는 왕’, ‘하늘빛의 콧물’. 이러한 형상들은 현실 자체에 존재하는 특성들을 때로는 더욱 예리하게 드러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그 기본 방향은 현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의 역동성에 있다. 이는 형상 경계들을 혼란시키고 극단적인 것들을 강제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현실성 자체를 감각적으로 자극받고 자극하는 미지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12. 전제적 상상력
전제적 상상력은 인지하고 묘사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무제한의 창조적인 자유로서 작용한다. 자신의 내용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창출하려는 주체의 명령에 따라 현실 세계는 조각이 난다. 전제적 상상력은 공간의 질서를 전도시킨다. 예를 들면, 마차들은 하늘 위에서 달린다. 호수의 바닥에 살롱이 있고, 드높은 산정에서 대양이 출렁거린다. 철도 레일이 호텔을 통해서, 호텔 위로 달린다. 그러나 상상력은 또한  인간과 사물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도 전도시킨다.
 
“법무관이 그의 시계줄에 결려 있다”. 상상력은 가장 연관이 먼 것, 구체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강제로 결합시킨다. “아침 우유의 중얼거림, 지난 세기 밤의 중얼거림 때문에 죽도록 슬픔에 잠기다.”. 상상력은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더 낯설게 만드는 비실재적인 색채들을 창안한다. 랭보는 불온한 세상을 이렇듯 행복을 살다 그렇게 불행하게 간 것이다.


13. 일루미네이션
제목부터가 ‘염색’과 ‘조명’을 암시하는 등 특기할 만큼 다의적이다. 작품의 내용 해석이 불가능하다. 수수께끼같은 형상들과 사건들이 지나간다. 어조는 도취와 냉혹한 단절, 단조롭게 제기되는 반복과 근거없는 말의 연결들로 교차되어 나타난다. 「일루미네이션」은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시이다. 이 시는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환각적인 자기 방출의 뇌우이며, 기껏해야 위험에 대한 사랑의 진원지인 위험에 대한 저 두려움을 일깨우는 것으로 만족한다. 게다가 이 시는 자아가 없는 텍스트이다. 왜냐하면 몇몇 작품에서 등장하는 자아는 견자의 편지에서 구상되었던 바의 저 인공적이고 낯선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절대화한 현대적 상상력의 최초의 위대한 기념비이다.


14. 혼효의 기법
랭보는 이제 형식 언어마저도 그의 해체적인 상상력에 부합시킨다. 그래서 그는 형식 언어를 그의 산문시와 매우 유사한 비대칭적 시구 형태로 바꾸어버린다. 이로써 랭보는 형식의 차원에서도 보들레르를 넘어서는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


은빛 그리고 구리빛 마차들
강철의 그리고 은빛의 뱃머리가
거품을 때리고,
가시덤불의 그루터기를 일으켜 세운다.
황야의 강들,
그리고 거대한 썰물의 흔적이
선회하면서 동쪽을 향하여,
숲의 기둥을 향하여,
부두의 방파제를 향하여 줄지어 지나간다.
그 모서리에 빛의 소용돌이가 부딪친다.


-「바다풍경」, 전문


이 시에는 두 가지 영역이 등장한다. 바다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 그러나 이 두 영역은 하나가 다른 하나 속에 뒤섞여 나타나고, 모든 일상적 구분이 제거됨으로써 서로 교차되고 잇다. 바다 풍경은 또한 동시에 육지 풍경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 이 시는 개별적인 단어군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동사들이 두 영역을 한꺼번에 지칭함으로써, 이러한 추측 가능한 발상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므로 은유는 결코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문제는 은유가 아니라 상이한 사물들의 절대적인 동일시이다. 더 나아가서 텍스트는 바다가 아니라 거품과 썰물에 대해서, 배가 아니라 뱃머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체 대신에 부분들을 지칭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었던 방식이기도 하다.
 
이 기법은 랭보에게서 더욱 확연하게 들어난다. 거의 언제나 사물의 부분들만을 지칭하면서 그는 파괴를 끌어들이고, 이것은 다시 사물적인 질서 전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사물적인 질서 전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차분하고 간결한 짧은 시는 프랑스에서 자유시구의 결정적인 일보 전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탈현실화와 감각적 비실재성의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현대적인 혼효기법을 보여주는 첫번째 범례이다.


15. 추상시
「일루미네이션」의 전제적인 상상력은 부조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 「대홍수 이후」를 그 예로 들어 보자. 클로버밭의 토끼 한 마리가 거미줄을 통하여 그의 기도를 무지개에게 말한다. 마님은 피아노를 알프스 산에 세워 놓는다……. 상상력은 ‘술 던 깬 아침’에서와 같이 현란한 이미지 조작들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추상이라는 핵심어로 의도했던 것이다. 이 핵심어는 선과 움직임이 탈사물화한(추상적인) 직조물이 되어 형상들 위에 위치하고 잇는 랭보의 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물들은 순수한 움직임과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단순화 된다. 이 모든 것은 이미 비실재적이지만, 종결부의 절멸에 의해 그것은 더욱 더 비실재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랭보는 털끝만큼의 열정도 없이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세계 속에서 움직인다. 그는 자신의 초기시들을 낯섦으로 몰아넣었던 저항적인 탈주를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낯섦 그 안에 스스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16. 독백시
1871년 이래로 랭보의 시는 점차로 독백이 된다. 문장들은 서로 간에 더욱 밀착되고, 에피세트들은 더욱 과감하게 생략되며, 기이한 단어군들은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의 독백적인 모호함은 되는 대로 쏟아낸 배설물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에 따른 예술성의 산물이며, ‘미지’를 향한 채울 수 없는 열정으로 인해 기지의 것을 파헤지고 낯설게 만드는 방식만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시의 산물이다.
 
랭보는 후기의 한 글에서 회고하며 “나는 표현 불가능한 것을 기록했고, 소용돌이를 움켜쥐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몇 페이지 뒤에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서로 배치되는 이 두 입장 사이에서 랭보의 모호한 시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아직 진술되지 않은 것의 모호함, 그리고 더 이상 진술할 수 없는 것의 모호함, 이 둘은 침묵의 경계선에 인접하고 있다. 천재가 천재임이 확인되기 전에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17. 동역학과 언어마술
랭보 시의 긴장의 직조물은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의 에너지로부터 성립된다. 이때 음악과의 유사성은 그 음향 형상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강도로 진행되는 음조, 상승과 하강의 절대운동, 집적과 방출의 교체라는 점에 있다. 여기에서부터 모호하고, 마치 허공에 말을 건네는 듯한 랭보 시의 고유한 매력이 시작된다.
 
그러한 동역학의 진행 방식은 산문시 「신비주의자」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활기찬 움직임, 그후 텍스트의 중간 지점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상승, 여기서부터는 진동하다가 정지되면서 침강하는 폭넓은 만곡선, 그러다가 앞의 문장과 분리된 ‘저 밑에서’라는 짧은 말의 만곡선을 갑작스럽게 급강하시킴으로써 종착점에 도달한다. ‘내용’이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들이 시의 본질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매력이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랭보는 ‘말의 연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는 모든 자음들의 형상과 운동에 염두를 두었고, 언어에 내재된 리듬을 사용하여 조만간에 모든 의미와 연결될 수 있는 시적인 시원어를 창안하려고 생각했다.”
 
랭보의 마지막 작품에 들어있는 이러한 문장들은 그 어떤 극복된 단계를 암시하려고 하지만, 그가 이 마지막 작품 속에서도 언어 마술적인 창작 방식을 다양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시 편편들마다 그것을 소리내어 읽게 되면 모음들의 음영, 자음들 사이의 친화력이 얼마나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게 된다. 그것은 음향 자체의 의지가 너무도 지배적이 되어서 시구나 문장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게 되거나 아니면 부조리하나마 그 어떤 의미만을 가지게 되는 경우에도 더욱 명백하게 입증된다.


0. 나오며
랭보의 위대함은 ‘미지의 것’ 앞에서 좌절한 고로, ‘미지의 것’에 대신하여 불러내었던 혼돈을 불가사의한 완벽의 언어로 전이시키는데 있다. 이른바 예술적 승화로 현실과의 불화를 극복한 것이다. 그는 보들레르처럼 용기 있게 미래를 예지하면서 그 자신이 천명했던 바대로, 또한 그의 세기의 운명이었던 ‘처절한 정신의 투쟁’을 수행했다.
 
세계와 자아를 동시에 탈형상화시키는 그의 시가 스스로를 파괴시키기 시작하는 경계에 도달했을 때, 이제 19살의 랭보는 지조 있게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침묵 또한 시인 존재로서의 행위이다. 종래의 시 안에서의 극단적인 자유는 이제 시로부터의 자유가 되었다. 랭보로부터 도움을 받기보다는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되었던 많은 후대인들은 요컨대 침묵이 상책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도 있었을 터이다.

[출처] 꽃물논술모둠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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