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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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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시어와 일상어 : 세계를 창조하는 시적 요소 / 정연수 [스크랩]
2018년 06월 07일 14시 53분  조회:263  추천:0  작성자: 강려
시어와 일상어 : 세계를 창조하는 시적 요소
  정연수
                                            
 
사내는 숨 하나를 들이마신다
뱃가죽이 부풀고
심장이 쉼 없이 세웠다 허무는 산들이
심전도에는 그려지고 있다 푸르륵 푸르륵
늙은 노새가 되어 그 산을 오르는 심장과
오랫동안 살을 끌고 이동해왔던 뼈 속에는
바람이 들어와 누웠다
-김유자,「코마」부분
 
내가 달콤하게 받아먹던,
소화되지 못한 당신이 고약한 냄새를 풍겨요
-오명선,「거짓말을 수확하다」부분
 
평생 시 읽는 행복으로 살겠다고 작정한 것은 신선하게 살아 펄떡이는 감각적 언어와 감동적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독자처럼 시와 시집을 못 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시적 언어가 던지는 맛에 매료되면서 부터이다. 시적 어휘는 요리의 맛을 내게 하는 조미료다. 표현을 생생하게 만드는 수사, 섬세한 감각의 촉수들,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시는 맛, 멋, 재미, 그리고 감동까지 전한다.
 
우리는 한 줄의 시구에서, 심지어는 산문에서, 때로는 일상적 삶에서 조차 ‘시적’인 것을 발견한다. ‘시적’이라는 표현은 ‘미적 가치’에 대한 ‘시적 표현’일 테다. 나도향은 「그믐달」이란 수필에서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라고 표현했다. 산문이지만 ‘시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일상어와 일상적 이야기로 시화된 작품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시적인 표현은 여전히 우리를 압도한다. 어휘만을 놓고 볼 때 시어와 일상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개별 단어가 인접 단어와 만나서 시구를 이루는 순간 시어와 일상어의 구분은 선명해진다. 예컨대 다음의 두 문장에서 ‘노래’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를 생각해보자.
 
①나는 여기서 노래를 부른다.
②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①에서 의미하는 노래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인 일상어이다. 이에 비해 이육사의「광야」에 등장하는 ②의 문장에서 노래란 앞부분의 ‘가난’과 뒷부분의 ‘씨’와 결합하면서 사전적 의미를 벗어난다. 가난에 대한 극복의지이거나, 힘든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일 것이다. 혹은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선언적 의지이거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초인정신, 또는 미래에는 현실의 암울한 상황을 넘어설 예언이기도 하다.
 
일상어가 보편적 정서를 지니고 있다면, 시어는 다의성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일상어가 소통을 위한 정보 전달에 중심을 둔다면, 시어는 감정과 상상의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일상어와 시어의 경계는 휴전선 철조망만큼 뚜렷하다.
이 글에서는 계간『시향』 2010년 겨울호를 주목했다. 『시향』에서는 다른 문예지에 발표된 시를 재수록 한 ‘현대시 펼쳐보기 50선’과 신작의 ‘젊은 시 펼쳐보기 10선’이란 코너를 마련했는데, 작품마다 ‘시적’ 요소가 풍부해서이다.
 

햇살이 종일 하늘에 산탄 구멍을 내더니
저녁이 왔구요
행성의 비늘에 테가 하나 늘었습니다
이 시간 고슴도치 같은 표정으로 걸어 나와
털게의 춤으로 알을 낳습니다
눈꺼풀을 닮은 바람이 물고기를 타고
자맥질을 합니다
-전형철,「거북이알의 시간」부분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다 혹은
눈 내린 산을 내려와 늙은 술집에 앉아 있으면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른다
-우대식,「목소리」부분
 
은유가 풍부한 시들은 독자의 사유 세계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까지 바쁘게 만든다. ‘고슴도치 같은 표정’은 어떤 표정일까? 읽던 시를 멈추고 상상의 날개를 편다. 또 ‘눈꺼풀을 닮은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 겨울 내내 꽁꽁 닫쳐 있던 아파트 베란다를 활짝 열어놓고 그 바람을 느껴보기도 한다.
 
“늙은 술집”은 어떤 술집일까? 늙은이들이 모인 술집일까? 낡은 술집, 아니면 유서가 깊은 술집일까? 혹은 술 속에 더불어 살아가며 지혜로워진 노인들의 삶을 받아주는 공간일까? ‘늙은’과 ‘술집’의 이질적 요소가 충돌하면서 의미는 미끄러지고, ‘늙은’의 시니피앙이 불러낸 ‘낡은’의 어휘 사이에서 의미는 또 다시 미끄러진다. 그 미끄러짐의 행간 사이에서 사유의 누룩은 점점 부풀어간다.
 
아저씨야, 깡통이 울었어. 맥주 거품 보리깜부기 피리 불며, 포경의 휴전선 녹슨 철조망 가시로 울었어. 대나무 숲이 내 얼굴 바닥 가득하니 기어 나와 울었어.
-신세훈,「울더군, 울더군」부분
 
고인돌 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바람의 애벌레들이 꿈꾸고 있다
초승달 같은 낫을 들고
애벌레의 꿈을 들여다본다
-김영석,「바람의 애벌레」부분
 
가발을 뒤집어쓴 장미처럼
담배를 피우며 웃는 목각인형 인드라
1백만분의 1로 축소된 등에선 핏줄 등고선들이
포도넝쿨로 자라고 대패가 뱉는다
-함기석,「인드라 주행코스」부분
 
‘휴전선 녹슨 철조망 가시로 운다’는 것은 어떻게 우는 것일까? ‘고인돌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바람의 애벌레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또 ‘가발을 뒤집어쓴 장미’는 꽃일까, 가발일까? “욕지거리 같은 가발”(노춘기,「15분」)을 읽고는 가발과 장미 그리고 욕지거리가 함께 뒤엉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알 수 없는 시의 세계란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의 난해함과는 달리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때로 안 풀리면 어떠랴, 도무지 시가 뭘 말하는지 모르면 어떠랴. 깊은 생각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먼 우주로 솟구치는 그 비상의 쾌감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데 말이다. 또 “젖소 젖꼭지처럼 늘어난 주유기가/빵빵거리는 차들에게 젖을 물린다”(지영,「현수막」)는 대목에서는 깔깔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상상력의 끝을 보려는 호기심은 계속 이어진다.
 
떡깔나뭇잎 거울에서 햇살에 활활 타는 단하소불(丹霞燒佛)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홀딱새가 쑤군거리자 거울이 홀랑 뒤집어엎는다
-송시월,「초록거울」부분
 
거울 속 하늘은 부드러운 금속으로 빛났다
검고 큰 뿔, 자이언트 장수하늘소 한 마리
첼로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이수정,「시계악기벌레심장」부분
 
발라진 생선가시 같은 소리의 흔적이 쇄골을 드러내고 사라질 때
나의 삶은 더 이상 추적되지 않을 것이다
사라진 소리는 득음을 마친 묵음이다
-이수종,「사라진 소리」부분
 
“홀딱 벗고 홀딱새가 쑤군”이 전달하는 언어유희라든가 이어지는 상상력의 전개가 즐겁다. ‘첼로에서 빠져 나오는 자이언트 장수하늘소’는 독자의 눈에 음악 소리까지 넣어준다. 귀가 아닌 눈으로 듣는 소리는 그 자체로 명상 그림이다. “발라진 생선가시 같은 소리의 흔적이 쇄골을 드러내고 사라질 때”라는 순간을 포착한 경지는 득도의 일갈이다. 소리가 사라지고 난 침묵의 상태는 득도한 성자가 입적한 직후, 그 달관의 세계를 이끈다.
 
백반 쟁반 두 판 거머쥐고 발발발, 배달 가는 동현 엄마는 장수하늘소다
팔뚝은 뿔, 다리는 갈쿠리다
토란국생선찜누릉지, 파문 한 점 일지 않는 수평선이라니
저 수평이 장수하늘소를 호수 뒷골목까지 끌고 왔다
 
스크린 골프장, 카센터 밥그릇 쓸어 모아 뿅뿅뿅, 달려가는 상주댁은 소금쟁이다
축지법으로 단박에 물 건너간다
그 속도가 아니면 익사라도 할듯하다
부랴부랴 소금쟁이 좇아가면 호수는 청둥오리숲이다 꾸룩꾸룩, 꾹꾸
-이강산,「호수 가정식백반」부분
 
식당 배달 아주머니가 장수하늘소, 소금쟁이로 이름을 얻는 순간. 고단한 노동이 경쾌해진다. 우울하고 꼬질꼬질한 서민적 삶이 상큼하게 승화한다. 그래, 질질 짜면서 세상을 살지 말자. 세상을 덧없거나 구질구질한 눈으로도 보지 말자. 고달플수록, 마음의 상처가 깊을수록 정갈한 호흡이 필요하다. 하여, 서러워도 시적인 세상에선 살맛이 나는 게다.
 
“아침 햇살에 부풀은 바하의 미뉴엣이 이파리마다 내려앉는다. 오르간으로 야채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양원홍,「음악 농사」)
 
“설핏한 잠의 틈새로/모래가 켜놓은 시간의 톱밥”(이정원,「모래시간 속에 갇히다」)
 
“물비늘 출렁이는 노을 속으로”(최재영,「백년」)
 
“바람이 불면 푸른 잎의 환상통에 시달리는//내 몸 깊숙이/마른 숲”(이용임,「측백나무」)
 
“전등불 아래서 풀무치가 제 울음을 꺼내 손질하고 있다./둥근 종소리가 앉았다 간 식탁 위에/달그림자가 앉는다.”(한석호,「박제된 노래」)
 
이처럼 도발적 상상력은 작품 곳곳에 발목지뢰처럼 숨어 있다가 읽는 재미를 빵빵 터트렸다. 어디 그뿐이랴, “너와 나의 침대 사이에서 자란 매화”(박강우,「34번가의 랙」)도 그렇고, “손가락 끝에서 꽃이 피어났다”(이재훈,「잡초론」)는 시구도 그렇다. 소파에서 잠자는 경험을 시화한 “나를 분해해 아삭 아삭 씹어 먹고 살이 발린 뼈를 추슬러”(이화영,「소파」)라는 기괴한 기운을 만난 뒤부턴, 달콤한 소파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또 “윤달 같은 골방”(조연희,「사각 뒤주의 추억」)에서는 윤달과 골방의 이질적 요소를 두고 한참 긴장을 했다. 윤달에 행해지던 전통적 관습과 골방의 추억, 그리고 윤달에 특별히 골방이 더 분주해지고 물건이 이리저리 옮겨지던 까마득한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테이트나 리차즈는 시에 쓰인 언어와 말이 지시하는 대상물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tension)에 주목한 바 있다.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하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에 대한 감각을 알려져 있는 태도가 아니라 지각되는 대로 부여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기법은 사물을 ‘낯설게’하고 형식을 어렵게 하며, 지각을 힘들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한다. 왜냐하면 지각의 과정은 그 자체가 미학적 목적이고, 따라서 되도록 연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한 대상의 예술성을 경험하는 방법이며, 그 대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
 
시적 언어와 대상 사물의 연결 고리가 멀어지면서 낯설어지고, 독자는 시를 읽는 긴장의 즐거움을 얻는다. 긴장하면서 팽팽하게 당겼던 활시위가 시인의 의도에 근접하는 순간 과녁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 무릎을 치며 소리 내는 아하!, 가슴을 저미는 울림, 감동의 전율, 잊었던 기억이 몰아치는 폭풍, 끝없는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사유들을 맛보는 순간이다. 그 감동을 전한 시인의 다음 작품을 설레며 기다리게 하는 영접의 순간이다.
 
몇 년 전에는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모아 특집으로 실은 문예지도 있었다. ‘최고의 시구’라는 말은 ‘시적’이라는 맥락에 닿아있는 셈이다. 시적 요소야말로 시의 멋과 맛을 만들 뿐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을 한층 고무시키고 의식을 발전시킨다. 모든 생명체를 살아있게 하는 요소는 들숨과 날숨이듯, 시를 살아있게 하는 요소는 ‘시적’인 힘이다. 이 힘은 무생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모든 만물을 살아있게 만드는 사유의 힘에서 나온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존재의 대상으로 만드는 창조의 힘에서 나온다. 하여, 우리는 그 사유와 창조를 지닌 시작품 앞에 경의를 보낸다.
 
단언컨대, 시인은 세계의 창조자이다. 작품을 쓰기 위한 언어의 세계 안에서 시인은 절대 권좌를 누린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진술이 과장이 아님을 알겠다. 시적인 요소에서 신적인 에너지의 요소를 보았으니, 시인들이여 거듭 세상을 창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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