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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를 낚다 / 정 호
2018년 12월 24일 17시 23분  조회:625  추천:0  작성자: 강려
은어를 낚다
 
정 호
 
회야강 자갈모래 물길
낚시 드리우고 은어를 낚는다
한순간의 전류가 릴을 타고 흐르길 기다리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만 찌를 물고 있다
담배 한 대 태우는 동안
또 한 무리의 은어떼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다
바야흐로 짝짓기철이다
자갈모래 퍼내며 산란탑을 쌓다가 
물낯에 내 그림자만 얼비쳐도
은회색 배떼기만 번뜩번뜩 뒤집으며   
직유의 물살 환유로 따돌리며     
순식간에 행간을 빠져나가 글자 뒤로 숨는 사금파리떼들
어디서 오이꽃이 피는가 입안에
오이수박향 가득 괸다
물가장자리로 그 꽃들을 끌어내고
접었던 물길 다시 펼친다 물낯 같은 종잇짝 위로
줄글들 돌돌돌 흘러내린다
냇바닥, 이저리 널린 자갈 글 틈 사이에 숨은
수박향 담백한 은어隱語 몇 마리 낚아올린다
 
<이선의 시 읽기>
 
        여유, 은유, 환유의 물빛 언어가 빚는 말그물
 
  강태공이 낚싯대 드리우고 낚아 올리는 건 물고기가 아니다.
낚싯대에 걸린 것은 서러운 달빛 한 조각, 구름 한 조각, 잃어버린 시의 조각들일 터. 그 조각들 모아서 엮으면 달빛도 물비늘로 반짝일 터.
  정호의 시는 낚시질처럼 급박하지 않다. 은유와 환유가 담배 한 모금 피우는 시간처럼 여유롭고 한가하게 오간다. 시를 낚기 위하여 부러 낚시질 놀이를 펼쳐 놓고, 시가 걸리든 말든 짐짓 외면하고 풍경이나 구경하는,
  정호의 시는 오이수박 맛이다. 무상무심의 물맛이다. 물은 무향무맛이지만 몸에 좋다. 아프게 찌르지도 왜곡도 자극도 없다. 바람의 향기처럼 자기 자신은 무심한데 타자의 향기로 은근한 풍유로 이끈다.
 
  ‘은회색 배떼기만 번뜩번뜩 뒤집으며’
 
  ‘산란’과 ‘짝짓기’도 은근한 물맛이다. 탐욕과 욕정과 급경사의 갈등구조가 없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은어떼’의 물비늘이 환상처럼 펼쳐내는 아름다운 시의 구조가 숨어 있다. 그것은 시인의 삶에서 보여주는 ‘여유’ 다. 정호의 시에는 정서, 정신이 살아 있다. 그의 삶도 물질을 애써 외면하며 짐짓 ‘여유’를 부린다. 그이 시에는 은유와 환유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게 있다. ‘수박향 담백한 은어隱語 몇 마리 낚아’ 올려 매운탕 끓여 먹고 싶은 시맛이 있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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