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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共謀) / 정재학
2018년 12월 25일 15시 29분  조회:754  추천:0  작성자: 강려
공모(共謀)
 
                                         
정재학
 
  
죽은 지 이틀 만에 시체에서 머리카락이 갈대만큼 자라 있었다1 나와 그림자들은 시체를 자루에 싸서 조심조심 옮겼다2 그림자 하나가 울컥했다3 죽이려고까지 했던 건 아닌데…4 나머지 그림자들이 그를 달랬다5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죽었을 거야 차 트렁크 열고 시동 좀 걸어놔6 간신히 1층까지 왔는데 아파트 현관 앞에 순찰중인 경찰이 보였다7 이게 무엇입니까?8 하필이면 자루가 찢어져 그의 멍든 허벅지 살이 드러났다9 하하 이건 고구마입니다10 우리는 서둘러 트렁크에 실으려 했다11 한번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12 그림자 하나가 칼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1 옆의 그림자가 그의 팔을 잡았다14 네 그렇게 하시지요15 우리는 자루를 펴보였다15 자루 안에는 지푸라기와 고구마가 가득했다16 경찰관과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17 고구마 하나가 김이 모락모락 났다18 방금 찐 고구마인데 하나 드셔보시겠습니까?19 그럴까요 네 고맙습니다20 경찰관이 고구마를 한입 물자 썩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21
 
 
<이선의 시 읽기>
   
  정재학의 시「공모(共謀)」는 오 헨리의 단편소설처럼 시니컬한 반전 매력이 있다. 21행의 문장이 단 10줄로 묘사되어 있다. 시는 짧고 드라마틱하다. 꿈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황당한 내용이 전개된다. 대사와 지문과 해석적 문장이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상황전개에 흥미를 갖게 한다.
 
  위의 시는 구조를 살펴보기 위하여, 편의상 각 문장마다 번호를 붙였음을 밝혀둔다. 한 사람의 대사는 편의상 한 문장으로 처리하였다. 각각의 번호들을 시에서의 행으로 해석하였음을 밝혀둔다.
  위의 시는 다음의 여러 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첫째, 의인화와 과장법, 상징법
  둘째, 희곡 형식의 소설적 구도
  셋째, 상상력의 극대화
  넷째, 사회고발시
  
 
  위에서 제안한 4가지 기법들을 시 내용에서 살펴보자.
  첫째, 의인화 기법과 과장법은 1행과 21행에서 잘 나타나 있다. 위의 시가 꿈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대목이다. 2행을 의인화 기법과 과장법으로 해석하면 시가 편하게 읽혀진다. 고구마는 겨울에 말라서 죽은 것 같아도 살아 있다. 싹을 틔우고 새로운 맛있는 고구마를 생산하는 모체가 된다. 두 문장은 황당한 설정이지만 100% 거짓이 아니다. 의인화하면 100% 참이다. 시는 상징과 비유기 때문이다.
  위의 시를 과장법이나 꿈의 구도로 설정하면 시니컬한 반전 매력을 갖게 된다.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된다. 1행과 21행은 위의 시의 구도를 탄탄하게 받혀주는 역할을 한다.
  상징법은 내용적 측면이다. <시체-피의자의 도주- 경찰과 대치장면- 극적해결> 구도는 위의 시를 상징시로 읽게 한다. 있을 수 없는 황당사실을 통하여 거짓과 참이라는 사회적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개인에서 출발한 사건이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큰 파장을 일으킨다.
 
  둘째, 희곡 형식의 소설적 구도를 살펴보자. 1행에서 21행의 문장들은 사건일지처럼 대사와 지문, 급박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기승전결의 구도를 갖고 있다. <시체- 살인- 그림자 피의자의 도주-경찰과 대치상황- 고구마로 판명나는 극적 해결>이라는 구도를 갖고 있다. 대사와 지문처럼 각 행들은 짧고 힘이 있다. 위의 시에서는 대사와 행위, 지문이라는 희곡 형식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은 것처럼 박진감 있다.
 
  셋째, 상상력의 극대화 부분을 살펴보자. 시에서 상상력이 빠지면 국물 없는 건더기와 같다. 상상력의 공간은 시적 미의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술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말라버린 ‘고구마’라는 사물을 보고 작가는 상상했을 것이다. 1행의 중요한 역할을 살펴보자.
  ‘죽은 지 이틀 만에 시체에서 머리카락이 갈대만큼 자라 있었다’ 라는 한 문장은 섬뜩하고 극적인 상황을 위의 시에 설정한다.
  말라서 죽은 것 같던 고구마에서 놀랍게도 싹이 트는 과정을 보고 얻은 상상력일 것이다. 상상력의 공간을 극대화시켜 <시체-살인- 피의자- 경찰과 대치- 극적해결>이라는 희곡 형식의 소설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은 현장감을 부여한다. 상상력은 시의 뼈대며 힘이다.
 
  넷째, 사회고발시의 측면을 살펴보자. 고 박종철 사건에서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는 명언을 생각나게 하는 시다.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거짓 간첩사건 등 우리 사회의 ‘섀도우-그림자’를 고발하고 있다.
  2행과 3행을 살펴보자. 고구마라는 한 개의 사물에서 이 시는 출발한다. 그러나 그 전개와 스토리는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준다. 그 이유는 출연자를 ‘그림자’로 명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융의 ‘섀도우 이론’ 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그림자’는 이 시의 실재 등장인물이다. 그러나 사회적 어두운 측면을 고발하는 상징시로 읽어야 한다.  ‘그림자’라는 인물은 이 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과 피의자의 대치상황을 만들고 극적상황을 조성한다. 80년대 경찰과 정치권, 시민의 그림자잡기 놀이를 연상하게 한다. 피의자와 경찰이 공모하여, 거짓을 참이라고 바꾸어버린 결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재학의 시를 읽으면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이 생각난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은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정치가와 경찰의 더러운 손과 악수를 하는 악몽. 환한 대낮에 꾸는 선명한 낮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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