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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치기법
2019년 01월 14일 18시 39분  조회:1204  추천:0  작성자: 강려
퍼온 글임

현대시의
창작방법과 실제
김관식(시인, 문학평론가)


 
5. 병치기법
 
1) 프롤로그
 
   단순하게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시간 순서로 배열하여 시를 형상화하게 되면, 너무 시가 단조롭다. 초보자들은 대부분 사물의 외형을 보고 그 느낌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시적 대상에 감정이입하여 진술한다. 여기에서 시의 원리를 모르는 초보시인은 사물의 외형에서 느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주로 하여 토로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의 원리는 자신이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노래나 춤을 출 때이다. 여타의 나머지 예술작품은 자신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등장인물이나 사건, 배경을 만들어 허구의 이야기를 진짜 이야기로 꾸며서 무대 위에 올리게 된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따라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마구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언어로 형상화하여 무대 위에 올리는 연출자인 셈이다. 연출자가 아 슬프다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감정을 토로하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의 감정토로의 시 아닌 시인 것이고. 슬픈 느낌이 들도록 상황을 적절히 한 컷의 사진을 찍는 듯이 언어로 형상화하여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현대시인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이 간단한 예술의 원리를 망각하고 직접 자신이 무대 위로 올라가 감정을 토로하려고 하니 그 시를 누가 읽으려들겠는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노래나 춤을 출 때임을 명심하고 가급적 무대 위로 올라가지 말고 느낌을 자아내는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전달하여야 한다.
   이때 단조롭게 하나의 이미지만을 배열하면 시가 너무 평면적이고 단조롭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병치시켜서 재미있게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병치기법인 것이다. 병치기법은 여러 개의 공간이나 시간, 사물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 그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조향이나 이상 등 초현실주의 시들도 병치기법을 적용한 시들인 것이다. 이러한 병치 원리에 의해 숨겨진 이미지를 숨은 그림 찾듯이 찾아내면 쉽게 시가 이해되는데 대부분 시적 감수성이 청각적 이미지에 고착이 되어 시각적인 이미지로 치환되거나 병치된 시들은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니 현대시는 어렵다고 구시대적인 낭만주의 감정토로의 시들을 선호하는 것이다.
실제로 병치기법은 어렵지가 않다, 두 가지 상황이나 사건 또는 사물을 교묘하게 엮어서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방법인 만큼 처음에는 어렵더라도 자꾸 숙달이 되면 시를 쓰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2) 병치비유의 개념
 
   병치란 국어사전에 “한 장소에 나란히 놓이거나 동시에 설치되다”, “두 가지 이상의 것을 같은 장소에 나란히 놓거나 동시에 설치함”을 의미한다. 즉 두 가지 이상을 한 곳에 나란히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두 가지는 사물이 될 수도 있지만, 두 가지 이상의 시간이 병치될 수도 있으며. 공간이 병치될 수 있다. 따라서 현실과 환상이 병치되었을 때 초현실주의 기법 중의 하나인 데페이즈망 기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 존재와 다른 존재가 병치될 수도 있다. 병치기법으로 흔히 시에서는 병치비유로 표현되기도 한다. 비유는 크게 치환비유와 병치비유로 나눌 수 있다. 치환 비유는 사물의 형태, 정서, 상징. 행동, 언어 등의 유사성에 의해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하여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다. 대체로 비유의 본질은 어떤 사물을 드러내기 위해 그와 유사한 다른 사물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어법이다. 비교를 위해서는 먼저 설명하려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것과 빗대어 볼 보조대상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사물간의 유사성이나 이질성을 통하여 대상을 보다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유를 의미의 전이로 설명했고 이러한 의미의 이동을 대치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대치론의 맥락에 치환은유, 즉 옮겨놓기 은유가 있다. 치환은유란 두 사물간의 비교가 아니라 A라는 사물의 의미가 B라는 사물에 의해 자리바꿈되는 것을 뜻한다.
   그 반면에 병치비유는 자리 이동이 아니라 함께 놓아두는 방식이다. 두 개 이상의 사물들을 함께 놓아두어서 그것들이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되어 서로 기능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되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이다.
   휠라이트는 병치비유를 조합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조합이란 치환비유처럼 사물들 사이에 유사성에 의한 자리바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물들이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을 말한다.
   병치비유는 나열하거나 병치하여 비유하기 때문에 치환 비유와 달리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찾기가 어렵다. 그 까닭은 치환비유에서는 어떤 한 방향으로 의미가 전이가 되지만, 병치 비유에서는 한 방향으로 의미가 전이되지 않기 때문에 시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시어들과 대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시어가 원관념, 보조관념이 아니라 각각의 시어가 원관념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시어의 나열과 병열을 통해 그 사이에서 이미지 또는 의미가 제시된다. 나열된 시어들은 무의미하게 배열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시어들이 시로 한자리에 구성됨으로써 이미지 또는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병치비유의 시어들은 그 시에서 하나의 묶임으로 인해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미지 내지는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 치환 비유보다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결합을 통해 의미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미지의 병치라고 볼 수 있다. 또는 병치 비유는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이 형상을 엮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병치 비유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시를 해석할 때 언어 그 자체를 집중하여 맥락을 찾는 외적인 요소보다는 시 그 자체 즉, 내적 요소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병치 비유는 시 자체에 더욱 집중을 할 수 있게 한다.
   휠라이트는 전이가 아닌 병치가 비유의 한 형태로 성립되는 근거는 비유를 어디까지나 의미론적 변용 작용으로 본 데 있다. 자연계의 요소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자질을 생성하듯이 시에서도 이전에 없었던 방법으로 언어와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휠라이트는 병치 비유의 예로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지하철 정거장에서」)이란 에즈라 파운드의 시를 인용했다. 이 시에서 병치되어 있는 것은 '얼굴들'과 '꽃잎들'이다. '지하철 정류장'에서 첫 행의 '얼굴들'과 둘째행의 '꽃잎들'이라는 이미지는 단순히 하나의 인상적 대조하여 두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옮겨보기의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얼굴들의 환영과 나뭇가지에 걸린 꽃잎들은 서로 병치된 인상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얼굴이 꽃잎으로 대치된 치환적 구성이다. 그러므로 병치와 치환의 어법은 엄격히 구분되기보다는 병치에 가까운 치환의 시법을 요구하게 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같은 것인지 또는 다른 것인지 판단이 유보된다는 점에서 병치은유는 해체주의적 관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병치기법에는 공간의 병치, 시간의 병치, 시공간의 병치, 이질적인 두 사물의 병치, 자연과 인간의 병치, 존재와 존재의 병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병치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 병치비유의 활용한 예시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3) 병치비유의 활용
 
   가) 공간의 병치
 
   병치기법에서 먼저 공간의 병치를 살펴보기로 하자. 병치라는 의미 자체가 공간적인 형식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지속되는 언어의 연계성에 의해 진술되기보다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병치기법이기 때문이다. 김종삼의 다음의 시는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병치시킨 구조로 되어 있다. 현실공간에 대조적인 환상공간을 병치시킴으로써 부정의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세계의 불연속성을 허물고 새로운 연속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 소리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 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
      -김종삼의 「라산스카」 전문
 
   이 시는 하늘이라는 환상공간으로 환유된 천상의 세계와 결합된 양상으로 1〜2연은 환상공간이고, 3연은 현실공간으로 병치되어 있다. “하늘을 파헤치는/스콥 소리”가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상승의 청각적 이미지 “소리”이고,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라산스카”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시각적 이미지로서의 “빛”이다. “스콥 소리”의 청각적 이미지와 “라산스카”의 시각적 이미지가 천상과 지상의 다리로 연결되는 매개 항이다. 스콥은 낯선 시어로 “scop”은 중세 서양의 음유시인과 땅을 파는 도구인 “삽”을 일컫는 중의적인 말이다. 라산스카는 뉴욕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 헐더 라산스카이다.
   동이 터 오르는 이른 아침에 어디선가 “하늘을 파헤치는 수콥 소리”가 들려온다. “파헤치는” 이미지와 “콥”이라는 파열음이라는 청각적 이미지가 파괴의 이미지를 강하게 삽이라면 한 삽 한 삽 파헤치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파문을 일으키고, 음유시인이라면 그 천상을 뚫을 듯한 강렬한 음성으로 하늘로 상승하고, 그 삽질소리나 음유시인의 노래는 다시 새소리, 물방울 소리로 변형되어 하강한다. 결국 화자의 마음을 비추는 라산스카로 연결되면서 시적 주체가 의도한 은유의 의미가 드러난다.
   상승하는 소리인 “스콥소리”가 하강하는 빛 “라산스카”로 전이되어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국 천상의 소리로 인간의 마음을 밝게 비추고 싶다는 시인의 의도가 드러나게 된다.
   천상과 지상의 공간은 먼 거리로 불연속적이지만 라산스카가 연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두 공간을 서로 병치시켜 의미와 충돌이나 대립 없이 통일된 연속성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병치비유는 공간을 병치시켜 현실 공간과 환상 공간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연속성 있게 자연스럽게 연결했을 때 공간의 병치라고 할 수 있다.
 
   나) 시간과 공간의 병치
 
   병치비유의 예시로 이형기의 「폭포」를 보자. 이 시는 높은 벼랑 위에서 낙하하는 폭포와 바위가 만들어진 지질시대 石炭紀의 과거 시간과 공간을 병치시켜 상상력을 발휘하여 형상화한 시이다.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疾走하는 전율과
전율끝에 斷末魔를 꿈 꾸는
벼랑의 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마리 장수잠자리의 墜落을
나의 자랑은 自滅이다
무수한 複眼들이
그 무수한 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盲目의 물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億年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이형기의 「폭포」
 
   이 작품을 부분적으로 보면 병치은유이지만 작품 전체로 보면 치환은유가 됨으로써 병치은유와 치환은유의 결합형태가 된다. 원관념인 폭포가 '시퍼런 칼자국', '질주하는 전율', '벼랑의 직립', '석탄기의 종말', '장수잠자리의 추락' 등으로 자리이동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이질적인 보조관념들이 조합됨으로써 폭포가 새로운 의미체로 부상되기도 한다.
   이 시에서 화자인 나는 폭포의 암벽이다. 폭포의 암벽에 폭포수가 쏟아지는 모습을 “시퍼런 칼자국”으로 비유되고 있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현재의 순간과 공간을 “疾走하는 전율과/전율끝에 斷末魔를 꿈 꾸는/벼랑의 直立”으로 하강의 이미지로 묘사하고, 환상공간을 병치시켜 지질시대의 순간과 공간을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로 묘사하고 있다. 환상공간인 지질시대는 “石炭紀의 종말”이다. 환상공간인 지질시대 石炭紀가 종말한 순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한마리 장수잠자리의 墜落을/나의 자랑은 自滅이다”라고 진술하고 있고, 다시 현실공간의 현재 시간에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무수한 複眼들이/그 무수한 水晶體가 한꺼번에/박살나는 盲目의 물보라”로 병치시켜놓고 있다. 현재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는 물이 쏟아지는 촉각적 이미지를 시각적인 이미지인 빛의 이미지로 병치시켜 다시 “2億年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라고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지질시대의 모습으로 새로운 의미를 과거와 현재, 환상공간과 현실공간을 의미와 충돌이나 대립 없이 통일된 연속성을 미무리하고 있다.
 
   다) 이질적인 두 사물의 병치
 
   두 개 이상의 사물들을 함께 놓아두어서 그것들이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되어 서로 기능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되는 새로운 결합으로 병치기법을 작용하나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두 사물을 병치하여 조합하기가 어려우므로 처음에는 사물의 형태, 정서, 상징. 행동, 언어 등의 유사성에 의해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하여 자리바꿈을 하는 치환비유를 적용하여 비유하다가 고정적으로 병치시키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이는 엄격하게 치환비유와 병치비유를 구분할 필요 없이 치환비유와 병치비유를 적절히 배합하는 방법이 더 쉽기 때문이다.
   아래의 예시를 보도록 하자. 이 시는 식혜 만드는 과정과 미혼모가 아기를 낳아 고아를 다른 나라에 입양하는 과정을 병치시켰다.
 
둘이 좋아서 몸을 섞었습니다
사랑은 젖은 이슬이 되고
어머니 아닌 처녀 뱃속에서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단단히 조여 오는 압박 벨트도
저희들의 몸부림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남이 볼까 두근두근
스스로 싹을 틔우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달콤한 사랑도 모두 멈추고
엄마의 품을 떠나
영아원의 엿기름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랑도 산산이 부셔져 가루가 되고
허공으로 흩어져 낯선 나라
물과 밥알에 섞여 분노를 삭혀왔습니다 
타국 땅에서 밥알로 동동
한때 뜨거웠다 차갑게 식어버린
미혼모의 젊은 날 한 순간
엿 먹은 은혜입니다
          -김관식의 「식혜」
 
   이 시는 식혜 빚는 과정과 젊은이들의 사랑과 미혼모들의 출산, 해외 입양으로 보내는 과거 우리나라의 고아수출이라는 사회병리적인 현상을 전체적으로 병치시켜놓고 있다.
   식혜를 만들 때는 엿기름으로 만들게 됩니다. 엿기름은 싹이 튼 곡물, 즉 생맥아는 가마에서 말려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데, 구멍이 뚫린 가마 바닥을 통해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로 말린 것을 말한다. 맥주를 만드는데데 쓰이지만 엿기름은 주로 엿이나 식혜를 만드는 데 이용한다. 이 엿기름은 식혜를 만드는 원료가 되는데, 만드는 과정을 보면 껍질째 빻은 엿기름을 따뜻한 물에 우러나게 하여 고운 체에 받친 다음 그 물을 가만히 가라앉힌다. 되게 지은 밥을 사기 항아리에 담아 엿기름의 윗물만을 붓고, 온도를 60~70℃로 4~5시간 유지시켜 밥을 삭힌다. 이때 온도가 낮으면 밥이 쉬고, 너무 높으면 당화가 잘 안 된다. 약 4시간 후에 열어보아 밥알이 동동 떠 있으면 밥알을 조리로 건져 찬물에 헹군 뒤 다른 그릇에 담고 나머지 식혜물을 끓이면서 설탕을 적당히 탄다. 끓일 때 떠오른 거품은 숟가락으로 걷어낸다. 식혜물에 생강·유자 등을 가미하여 맛과 모양을 내기도 한다.
   이러한 식혜 만드는 법을 미혼모들이 젊은 혈기로 사랑을 나누다 그만 임신을 했을 때 몰래 아이를 낳아 영아원에 맡기고 이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 입양이 되어 갔다. 가끔 신문과 방송에 이 입양간 아이가 자라서 친모를 찾겠다고 나서나 대부분은 타국에서 한국 사람으로써의 정체성을 작지 못하고 입양된 나라의 국민이 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두 사건의 유사성은 엿기름이 보리 싹의 자람을 멈추게 하여 만든다는 점, 그리고 식혜를 만들면 단맛을 내며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음료라는 점, 식혜를 더 졸이면 엿이 된다는 점, 식혜에는 밥알이 동동 떠있다는 점 등의 식혜 특징과 미혼모들의 사랑이야기가 처음에는 달콤하여 빠져든다는 점, 남에게 말을 못하고 숨겨오다가 몰래 아이를 낳게 된다는 점, 이 아이는 영아원에 맡겨져 고아가 되고 다른 나라에 입양된다는 점 등 미혼모의 사랑이야기가 전혀 유사점이 없는 것 같으나 곰곰이 살펴보면, 사물의 형태, 정서, 상징. 행동, 언어 등의 유사성이 발견되게 된다.
   따라서 식혜 만드는 과정과 미혼모의 입양이라는 두 사건을 병치시켜놓고 유사점을 찾아서 빈틈없이 엮어내면 이질적인 두 사물의 병치가 완성된다.
 
   라) 자연과 인간의 병치
 
   자연은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서 의식주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 등 자연을 이용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들의 욕망이 극대화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망각하고 자연을 마구 훼손하여 생태계의 질서를 망가뜨려 오늘날 인간들은 자연의 재앙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인 생각보다 자연과 인간을 따로 분리하여 이분법적인 사고로 자연을 무조건 지배함으로써 인간만의 행복과 풍요를 누리려는 인간위주의 생태의식이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키는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 이 기법은 자연과 인간의 대립적인 구도에서 갈등양상을 노출시키기 보다는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킴으로써 시적 대상에 대한 시야를 확대시켜서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획득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눈보라 휘몰아간 밤
얼룩진 壁에
한참이나
맷돌 가는 소리
高山植物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던
오리 오리
맷돌 가는 소리
   -박용래의 「雪夜」 전문
 
   이 시는 “눈보라 휘몰고 간 밤”이라는 자연과 “맷돌 가는 소리”로 어머니를 병치시켜놓고 있다.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밤이면 맷돌을 돌리시던 어머니를 떠올려 현재와 과거를 병치시켜놓고 있다.
   1행과 2행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밤이라는 시간 집 밖의 공간에서 “얼룩진 壁”이 있는 방안으로 공간이 이동한다. 3행과 4행은 방안에서 어머니께서 밤이 이슥하도록 맷돌 가는 어머니가 떠올리고 있다. 5행과 6행에서 “얼룩진 壁”에 맷돌 가는 소리가 부딪혀 “高山植物”의 서정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이 되다가 7행과 8행에서 맷돌 소리를 여운을 청각적 이미지로 화자의 내면 정서를 공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킨 김관식의 「죽방림」을 보도록 하자.
 
아파트 분양
떴다방
밀물이 몰려든다
 
기회는 이때다
밀려들 때
분양받아 웃돈 얹어
잽싸게 빠져야 한다
 
떴다방들 다 빠지고
어물어물
썰물인 줄 모르고
모델하우스 분양사무실
꾸역꾸역 멸치 떼들이 몰려든다
 
죽방령 입성
로또 당첨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남해 바다
   -김관식의 「죽방렴」 전문
 
   이 시는 남해바다에 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해놓은 죽방렴, 즉 좁은 바다의 물목에 대나무로 만든 그물을 세워서 물고기를 잡는 일, 또는 그 그물을 말하는데 이는 자연현상을 이용한 인간의 지혜이다. 그렇지만 자연의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밀물과 썰물의 조류에 따라 물고기들이 죽방림에 갇히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아파트 분양으로 떴다방들이 몰려드는 모델하우스와 병치시킨 시이다.
   이와 같이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켜서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시공간을 병치시켜 극도의 절제된 서정을 공감각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마) 언어의 해체, 의미를 바꿔서 병치
 
   언어를 해체시켜서 그 의미가 바꿔지는 것을 병치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말에는 한 낱말을 분해시켰을 때 두 가지 의미가 생긴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서로 병치시키는 방법인데,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경향으로 장르간의 해체, 낱말의 해체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병치할 수 있다.
 

비다
 
구름 동동
하늘 떠돌다
되돌아올 줄
정말 몰랐다
 
팔랑팔랑
꽃을
찾아다닐 때
나를
잊었다
 
그땐 정말
눈물
흘릴 줄
전혀 몰랐다
비틀비틀
낙하하는
나비

비다
       -김관식의 「나비」
 
   이 시는 “나비”라는 시어를 “나”와 “비”로 분해해서 해체시켰다. “나”라는 인간과 “비”라는 자연현상으로 분해하여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 것이다.
 
4) 에필로그
 
   이상에서 병치기법을 살펴보았다. 병치기법은 단순한 시상을 복합적으로 엮어서 시를 시답게 하는 현대시의 기법 중의 하나이다. 일부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 기법도 병치기법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구성법에서 단순구성이 아니라 복합구성, 평면구성이 아니라 입체구성, 액자식 구성, 피카레스식 구성보다는 옴니버스식 구성이 바로 시의 병치기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병치기법에서 치환 비유를 하기 위해 유사점을 찾아 자리바꿈하는 요령은 첫째, 형태의 유사점→모양의 유사점을 찾는다. 예) 빌딩-하모니카. 둘째, 정서의 유사점→느낌의 유사점을 찾는다. 셋째, 상징의 유사점→의미의 유사점을 찾는다. 넷째, 행동의 유사점→움직임의 유사점을 찾는다.   다섯째, 언어의 유사점→동음이의어, 발음의 유사점을 찾는다.
   이와 같이 유사점을 찾아 자리바꿈하다가 함께 놓아두는 방식으로 병치비유를 완성해 나가면 된다.
오늘날 현대시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많은 시들이 병치기법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고, 이의 방법을 터득하는 일은 바로 현대시를 바로 이해하는 방법일 것이며, 시를 창작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방법이 바로 이 병치기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서정문학 2018년 11.12월호에 실린 연재6회분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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