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gli 블로그홈 | 로그인
강려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블로그

나의카테고리 : 문학사전

영미 모더니즘과 현대시에 나타난 모더니티
2019년 02월 04일 20시 36분  조회:1701  추천:0  작성자: 강려
영미 모더니즘과 현대시에 나타난 모더니티
 
 
 
 
 
1. 모더니즘의 시기
 
 
 
* 버니지어 울프: 영국의 에드워드 왕이 사망하고 최초의 후기인상주의 전시회가 런던에서 열렸던 1910년으로 잡는다.
 
* 애덤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 12월을 기점으로 했을 때, 그 10년 전에는 모더니즘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10년 후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 데이빗 퍼킨스: 모더니즘을 1910년부터 1930년까지 영미문단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문학적 움직임 또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한다.
 
* 조셉 쉬플리: 모더니즘을 시에 적용시켜 볼 때, 19세기말 영국과 미국에서 뿌리를 내려 20세기의 십 년대와 이십 년대에 꽃을 피운 풍조라고 규정한다.
 
* 김욱동: 이러한 견해들을 포괄하여 19세기 말엽에 처음 시작되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전성기를 맞이한 다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는 차츰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 이들의 견해 중, 일견 김욱동의 주장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모더니즘의 탄생기와 쇠퇴기를 제외하면 그들 누구의 견해를 보더라도 1910년대와 20년대가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영미 모더니즘을 언급할 때 범위를 너무 좁게 잡았다는 비판이 따를 수 있으나 역시 퍼킨스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가장 위험성이 적다.
 
* 이렇게 볼 때, 1910년대와 20년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록될 만한 해는 1914년과 1922년이다.
 
*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이며, 영미 모더니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미지즘 운동의 기관지 ?이미지스트 시선집? 첫 호가 나온 해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문명이 쌓아올린 모든 재산을 일시에 잿더미로 주저앉혔으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왔던 모든 가치체계를 황폐화시켰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체계를 일시에 붕괴시키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모더니즘을 위해 더할 수 없이 적합한 환경을 조성했다.
 
* 그로 인해 꽃을 피우기 시작한 모더니즘은 1922년에 이르러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된다. 이 해는 해리 레빈이 ‘기적의 해’라 부를 만큼, 문학사상 유례없이 걸작들을 쏟아냈는데, 영미의 경우만 보더라도 엘리엇의 ?황무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버지지어 울프의 ?제이컵의 방?, D. H. 로런스의 ?아론의 지팡이?, 예이츠의 ?후기 시집?, 유진 오닐의 ?애너 크리스티?, e. e. 커밍즈의 ?거대한 방? 등이 그 해에 출판되었다.
 
 
 
2. 모더니즘의 정의
 
 
 
* 모더니즘은 1) 19세기 말엽부터 시작된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견해나 이론을 심미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시도이자, 2) 19세기 예술과 문화의 지배적이거나 관습적이었던 것과 관계를 끊고자 했던 예술을 가리킨다.
 
1) 19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래 기독교적 세계관이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고, 베르그송은 본능과 직관을 이성보다 중시했으며 시간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철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공격하여 관념론의 중압에서 유물론을 해방시켰으며, 니체는 기독교가 형성시켜 놓은 서구의 절대적 가치 기준과 도덕성을 파괴하고자 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의식에 짓눌려있던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밝혀내어 예술가들의 관심을 인간의 내면세계로 돌려놓았고, 금기로 여겨지던 인간의 성을 모든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또한 러셀은 언어를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기존의 언어관에 혁신을 일으켰다. 이렇듯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의 삶에 대한 시각의 변화로 인해 1910년경에는 그 이전과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되었으며, 이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즉, 모더니즘은 19세기 중반부터 나타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다양하고 급격한 인식의 변화가 세기말 이후 20세기초 예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 모더니즘은 기존 전통이나 인습을 탈피하여 일정한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전복의 미학이자 부정성의 미학임을 뜻한다. 이때 기존 전통이란 일반적으로 19세기 전반기를 풍미했던 낭만주의를 뜻하며, 영미 모더니즘은 낭만주의에서 탈피하여 18세기의 신고전주의를 계승하여 새롭게 변모시키려는 움직임으로 이해되어 왔다. 상징주의를 낭만주의의 두 번째 파장으로 보듯이, 모더니즘을 신고전주의의 두 번째 파장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애덤스의 견해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전형적인 영미 모더니스트로 평가되고 있는 파운드와 엘리엇 등이 신고전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을 낭만주의의 연장으로 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특히 스피어스는 ?디오니소스와 도시?에서 모더니즘의 성격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성이나 합리성을 상징하는 아폴로에 비해 감정이나 감성을 대변하는 디오니소스는 곧 낭만주의를 뜻한다.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은 양자간의 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전통이나 관습을 타파하려 한다는 점에서 혁명적, 전복적 요소를 보인다거나, 자아의식과 주관성을 중시하고 개인과 사회가 더욱 다양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는 점 등에서 일맥상통한다.
 
양자를 결합해서 보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브래드베리나 맥팔레인 등은 모더니즘을 미래주의적인 것과 허무주의적인 것, 혁명적인 것과 보수주의적인 것, 자연주의적인 것과 상징주의적인 것, 낭만주의적인 것과 고전주의적인 것이 특이하게 결합된 현상으로 보며, 설턴 같은 이는 모더니즘 작가들은 인습을 공격하는 동시에 또한 전통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곧 모더니즘이 위에 열거한 양자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미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을 파운드, 엘리엇 등으로 본다면, 위와 같은 모더니즘을 바라보는 세 가지 입장 중에서 우리는 첫 번째 것을 취하게 된다. 휴 케너가 엘리엇보다도 더 전형적인 모더니스트로 보는 파운드와 그가 주창한 이미지즘, 또 엘리엇과 리쳐즈가 형성시킨 신비평 등이 낭만주의를 부정하고 비교적 신고전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신고전주의적 입장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이입되면서 모더니즘의 움직일 수 없는 특성으로 여겨지고, 소위 주지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유럽대륙이라기보다 영미 모더니즘이 지닌 특징 중 하나이며, 그것도 이미지즘 이론과 관련한 흄과 파운드의 시학, 엘리엇과 리챠즈의 신비평 이론 등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3. 모더니티의 개념
 
 
 
모더니즘이 어느 특정한 시대에 나타나는 예술 운동이나 경향이라면, 근대성, 현대성 등으로 번역되는 모더니티는 어느 시대에나 나타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캘리네스큐가 모더니티가 지닌 다섯 가지 얼굴을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데카당스, 키취,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본 것은 시사적이다. 즉 모더니즘은 모더니티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며, 모더니티를 드러내는 현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문학사에 한정시켜 사용할 때, 모더니티는 모더니즘 문학이 보여주는 공통된 특성을 의미할 수 있다.
 
모더니티라는 용어는 영국에서는 17세기에 처음 사용되었으나 문학이나 예술과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시성, 순간성, 우연성 등을 모더니티의 특성으로 꼽았다. 이와 유사하게 버만도 모더니티를 파편화, 일시성, 혼란스런 변화 등으로 설명한다. 
 
모더니티는 원래 역사적, 철학적 개념이었다. 피핀이 그의 책 ?철학적 문제로서의 모더니즘?에서 밝힌 모더니즘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더니티는 공통된 언어와 전통에 기초를 둔 단일민족 국가의 성립을 탄생시켰다. 둘째, 모더니티는 인간의 문제에서 이성의 권위를 가장 우위에 두었다. 셋째, 모더니티는 대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데 무엇보다도 자연과학의 권위에 의존하였다. 넷째, 모더니티는 삶과 자연 현상을 탈신비화시켰다. 다섯째, 모더니티는 모든 개인의 천부적 권리, 그 가운데서 특히 자유와 자기 결정의 표현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였다. 여섯째, 모더니티는 자유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하고 그것에 수반되는 임금 노동과 도시화 그리고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를 적극 장려하였다. 일곱째, 모더니티는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굳게 믿으면서 관용, 동정, 사려분별, 자선 등과 같은 기독교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다양한 덕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더니티의 특성은 사회전반에 걸친 변화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개개의 문학 작품에 적용시켜 살펴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유진 런은 범위를 좁혀서 문학에 나타난 모더니즘의 공통적 특성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1) 미적 자의식, 혹은 자기 반영성, 2) 동시성, 병치, 혹은 몽타주, 3) 패러독스, 모호성, 불확실성, 4) 비인간화, 통합된 개별 주체, 혹은 개성의 붕괴 등이 그것이다.
 
또한 애덤스는 모더니즘 문학의 특성을 1) 과거에 대한 의도적 추구, 2) 반복적, 주기적인 시간의식, 3) 비인간적인 추상성의 중시, 4) 성의 추구, 5)독재정권에 대한 허약, 6) 재료 및 언어의 영역확대 등으로 정리한다.
 
이들의 정의 또한 소설 등의 장르를 포함한 모더니즘 문학 전반에 나타나는 모더니티로 시에 국한시켜 살펴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와는 달리 프레이저와 쉬플리는 영미 현대시에 나타난 모더니티 즉, 현대성을 밝혀내고 있어 눈에 뜨인다. 프레이저는 현대시의 현대성, 즉 모더니티로서 과거에 대한 흥미, 시의 복합성, 암시성, 반어성 및 모호성 등을 들고 있고, 쉬플리는 현대시의 구체적 특성을 여덟 가지로 정리한다.
 
이를 요약해 보면, 1) 메타포의 특별한 사용과 더불어 계획적인 난해성을 추구하고, 2) 애매성이 의미의 혼란이 아닌 의미의 풍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복합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 암시를 제공한다. 3) 앞선 시대의 시인들의 시행으로 슬쩍 미끄러져 들어감으로써 그 힘을 강화시키려 하며, 4) 어순을 뒤집고, 연속성을 헝클어놓고, 연결어를 생략하며, 구두점을 찍지 않거나 조작함으로써 정상적인 구문을 깨뜨린다. 5) 낱말을 구성하는 글자들의 위치를 바꾸는 등 낱말의 구조를 쪼개거나 부순다. 6) 행을 아주 길게 쓰거나, 산문체, 자유시 등을 씀으로써 운율을 와해시킨다. 7) 라틴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중국어 등을 사용하거나 전문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의 장벽을 깬다. 8) 사적인 세계를 언급함으로써 독자와의 접촉을 단절시킨다는 것 등이다.
 
프레이저와 쉬플리가 정의한 현대시의 모더니티를 비교해보면 항목들이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레이저가 과거에 대한 흥미라고 말한 것은 쉬플리의 3)과 일치하고, 시의 복합성, 암시성, 모호성 등은 1), 2)와 일치한다. 언어에 대한 실험적 기법을 의미하는 4), 5), 6)은 의미의 직접적인 접근을 막는 7), 8)과 함께 시가 난해성을 갖게 하는 데 기여한다.
 
위의 여덟 가지 항목 중 e. e. 커밍즈 등 일부 시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5)를 제외하면 나머지 항목은 대부분의 모더니즘 시인들의 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모더니티의 양상이 영미 현대시에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엘리엇의 시편들이 유용하다.
 
 
 
4. 엘리엇의 시에 나타난 모더니티
 
 
 
현대시의 모더니티에 관한 쉬플리의 견해는 엘리엇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도 상당 부분 겹쳐서 나타난다.
 
 
 
현대 문명의 시인들은 난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문명은 상당히 포괄적인 다양성과 복잡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과 복잡성은 세련된 감수성에 작용하여 마땅히 다양하고 복잡한 결과들을 낳아야 한다. 시인은 언어를 자신의 의미에 두드려 맞추기 위해, 필요하다면 짜임새를 어긋나게 해서라도, 점점 더 포괄적이고 암시적이며 간접적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Eliot, Selected Essays 287.)
 
 
 
이 글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우선난해성이다. 그러나 난해성은 현대시가 당연히 갖추어야 할 요소라기보다는 시인들이 현대 문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결과적인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시인은 문명의 복잡성을 세련된 감수성으로 느끼고 이를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게 된다. 자신이 느낀 다양하고 포괄적인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순서나 구조, 즉 짜임새를 파괴하면서까지 기법적인 실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복잡다단한 현대문명을 표현하기 위한 이러한 언어적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현대시는 점점 더 포괄성, 암시성, 간접성을 갖게 되며 결과적으로 난해성을 지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포괄성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내용과 형식 등 상호 대립적이거나 이질적인 요소들을 유기적인 전체로 통합시키는 특성을 말한다. 이것은 무릇 시인은 사상을 장미의 향기처럼 느껴야 한다는 엘리엇의 <통합된 감수성의 시론>(The Poetic Theory of Unified Sensibility)과 맞닿아 있다. 암시성은 간접성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상징, 은유, 단편화, 병치, 인유, 아이러니 등 암시적인 방식에 의해 시의 의미가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또한 엘리엇의 <몰개성의 시론>(The Poetic Theory of Impersonality)과 접맥되어 있다. 이 포괄성과 암시성 및 간접성은 결국 현대시가 지닌 모더니즘의 특성 즉, 모더니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앞장에서 정리한 프레이저 및 쉬플리의 견해를 염두에 두고 엘리엇이 사용한 용어들에 기대어 영미 현대시에 나타난 모더니티의 양상을 살펴보자. 다음의 시구는 엘리엇의 시론이 잘 구현되어 있는 ?황무지? 제5부 ?천둥이 말한 것?(What the Thunder Said)의 부분이다.
 
 
 
만약 물이 있고
 
반석이 없다면
 
만약 반석이 있고
 
그리고 물도
 
물도
 
 
반석 가운데 물웅덩이
 
물소리만이라도 있다면
 
매미 우는 소리도
 
마른 풀잎 살랑이는 소리도 아닌
 
물소리가 있다면 반석 위
 
거기선 갈색지빠귀가 솔숲에서 지저귄다
 
찌릭 쪼록 찌릭 쪼록 쪼록 쪼록 쪼록
 
그러나 물은 없다
 
 
 
If there were water
 
And no rock
 
If there were rock
 
And also water
 
A spring
 
A pool among the rock
 
If there were the sound of water only
 
Not the cicada
 
And dry grass singing
 
But sound of water over a rock
 
Where the hermit―thrush sings in the pine trees
 
Drip drop drip drop drop drop drop
 
But there is no water
 
 
 
이 시구에서 우리가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는 것은 포괄성이다. 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그리고 내용과 형식이 하나로 통합되어 시적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한 긴장을 느끼게 하는 객관상관물은 물과 반석이다. 이것은 모세가 히브리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벗어날 때 사람들의 갈증을 축여주기 위해 반석에서 샘물을 솟아나게 한 것에 대한 인유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없다. 지극한 갈증과도 같은 현대 문명에 대한 절망감을 해소시켜줄 샘물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 시구의 행 배열을 보면 물 없는 사막에서 갈증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 구두점도 없이 문장을 완결시키지 않고 짧게 짧게 이어지는 행 배열은 목이 말라 말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겨우 내뱉는 물에 대한 갈구를 나타낸다. 14행의 이 짧은행들 속에서도 물에 관한 말이 샘과 물웅덩이를 포함하여 여덟 번이나 나온다. 물의 이미지는 이와 상반되는 바위(반석)의 이미지와 대조되며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반복되던 물과 갈증의 이미지는 매미소리와 마른 풀잎이 연상시키는 강렬한 더위에 의해 강화되다가 느닷없이 등장하는 시원한 솔숲에서 지저귀는 갈색지빠귀와 물소리로 해소되는 듯하다. 그러나 오아시스와도 같은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와도 같은 환각에 불과하다. 극도의 갈증으로 인한 환각 속에서 이제는 환청까지 겪게 된다. 이 환청을 보여주는 청각이미지는 지빠귀가 지저귀는 소리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함께 들려준다.
 
잠시 동안 환각 상태에 빠졌던 화자는 “그러나 물은 없다”는 냉엄하고 쓰라린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시각은 엘리엇이 여지없는 모더니스트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모더니스트들은 상징주의 시인들이 현실 너머에 있는 이데아의 세계를 지향한 것과는 달리, 강렬한 현실 인식을 통해 현실을 객관적인 방식으로 명확하게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시에서는 상징주의 시인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난해성을 느끼게 된다.
 
엘리엇은 위의 시구에서 이러한 현실 인식을 매우 감각적인 방식을 통해 드러낸다. 즉 현대문명에 대한 절망감, 현대인의 메마른 삶의 인식 등의 추상적이고 지적인 사상을 언어의 기법을 활용한 구체적이고 감각적 방식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시구에서 엘리엇은 내용과 형식, 사상과 정서, 추상성과 구체성 등을 통합하여 포괄적인 의미망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간접성에 관한 것 역시 ?황무지?의 제5부의 다른 부분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해변에 앉아 있었다
 
낚시질하며, 등뒤엔 메마른 들판.
 
최소한 내 땅이라도 정돈해볼까?
 
런던교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무너진다.
 
그리고 그는 정화의 불 속에 자신을 감추었다.
 
언제 나는 제비처럼 될 것인가―오 제비여 제비여
 
황폐한 탑 속의 아뀌떼느 왕자.
 
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왔다.
 
그럼 분부대로 합지요.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다타. 다야드밤. 담야타.
 
샨티 샨티 샨티
 
 
 
I sat upon the shore
 
Fishing with the arid plain behind me
 
Shall I at least set my lands in order?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
 
Poi s'ascose nel foco che gli affina
 
Quando fiam uti chelidon ― O swallow swallow
 
Le Prince d'Aquitaine a la tour abolie
 
These fragments I have shored against my ruins
 
Why then Ile fit you. Hieronymo's mad againe.
 
Datta. Dayadhvam. Damyata.
 
Shantih shantih shantih
 
 
 
이 시구는 ?황무지? 전체의 끝 부분에 해당한다. 이 부분은 말 그대로 단편들(fragments)의 집합이다. 첫 세 행은 어부왕 전설에 대한 인유이며, 4행은 영국 민요의 한 구절이고, 다음 세 행은 출전이 서로 다른 인용문들을 원문 그대로 썼으며, 그 다음은 16세기 영국의 비극작품의 주인공의 대사 및 그 작품의 부제, 고대 인도의 철학서인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 등이 나열되어 있다.
 
난해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이 구절은 그 원인을 간접성에 두고 있다. 상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유나 인용의 단편들을 설명 없이 병치한다거나 심지어 그 인용문들을 번역하지 않고 외국어 그대로 차용한다. 또한 어부왕 전설은 성배 전설과 함께 ?황무지? 전체의 구조를 엮어주는 틀로 사용된 중요한 상징으로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이와 같은 상징, 은유, 단편화, 병치, (과거 전통으로부터의) 인유, 아이러니 등의 암시적인 방식은 의미 전달의 간접성으로 작용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의미가 난해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영미 모더니즘은 이와 같은 포괄성, 암시성, 간접성 등으로만 특징 지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모더니즘의 전개에 초석이 된 이미지즘의 특징은 보다 발전된 형태로 모더니즘의 특징 즉, 현대시의 모더니티를 이루고 있다. 이미지즘의 특징은 이미지 이론과 시어 이론으로 간추릴 수 있다.
 
T. E. 흄에게서 비롯된 이미지 이론은 19세기 낭만주의 시가 지닌 감정의 상투적 표현과 의미의 추상화로부터 탈피해서 고전주의에 입각한 정확, 정밀, 명확한 표현으로 고담하고 견실한 시를 쓰기 위해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포드 매독스 포드의 영향을 받은 시어 이론의 핵심은 시어가 산문의 전통 위에서 언어의 명료성과 정확성을 획득해야 하며, 일상어와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지즘 운동의 중심이었던 파운드는 이들의 이론을 토대로 해서 중국의 한시, 일본의 하이쿠 등에서 받은 영향을 융합해 이미지즘 시학을 형성시켰으며, 영미 현대시가 모더니즘으로 변모하게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영미 시단의 주요 모더니스트로 불리는 파운드, 엘리엇,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 월러스 스티븐즈 등이 모두 이미지즘에서 출발하여, 모더니즘으로 자신들의 시학을 확장시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마취된 채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에 펼쳐져 있는 지금
 
……
 
등을 창유리에 비비는 노란 안개,
 
주둥이를 창유리에 비비는 노란 연기가
 
저녁의 구석구석에 혀를 넣어 핥다가는,
 
하수도에 고인 웅덩이 위에 머뭇거리고,
 
제 등에 굴뚝에서 떨어지는 검댕을 떨어지게 하며,
 
테라스를 미끄러지듯 지나간 다음, 갑자기 한 번 껑충 뛰었다가
 
포근한 시월 밤임을 알고는
 
집을 한 바퀴 빙 둘러 감싸고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When the evening is spread out against the sky
 
Like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
 
……
 
The yellow fog that rubs its back upon the windowpanes,
 
The yellow smoke that rubs its muzzle on the windowpanes
 
Licked its tongue into the corners of the evening,
 
Lingered upon the pools that stand in drains,
 
Let fall upon its back the soot that falls from chimneys,
 
Slipped by the terrace, made a sudden leap,
 
And seeing that it was a soft October night,
 
Curled once about the house, and fell asleep.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의 일부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7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6 현대시에 나타난 비유효과/박종인(시인) 2019-05-19 0 2279
55 [스크랩] 문학용어 바로 알기 2019-03-10 0 1572
54 언어학자는 은유를 어떻게 보는가 2019-03-09 0 1654
53 이미지즘(Imagism) 2019-03-07 0 2249
52 소통, 그 은유의 불빛들 / 김수우 2019-03-07 0 1501
51 詩의 용어들 2019-03-07 0 1385
50 초현실주의 시 / 홍문표 2019-02-28 0 1458
49 365일 탄생화와 꽃말 사전 2019-02-28 0 2308
48 상징주의 리해 2019-02-27 0 1199
47 한국 사투리 모음 [퍼옴] 2019-02-25 0 2482
46 ◈ 필수(必須) 사자성어(四字成語) 72가지 2019-02-25 0 1017
45 ◈ 우리 속담(俗談) 모음-ㄱ-ㄴ-ㄷ 순 2019-02-25 0 1023
44 [공유] [dc도갤 펌]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 관련 정리 2019-02-09 0 1387
43 영미 모더니즘과 현대시에 나타난 모더니티 2019-02-04 0 1701
42 영시의 이미지 2019-02-04 0 1157
41 [공유] 시에서의 36가지 수사법 2019-02-02 0 2932
40 폭력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를 기다리며 / 양병호 2019-02-01 0 1026
39 낯설게 하기(시치미떼기) 2019-02-01 0 1107
38 원관념과 보조관념 / 박병규 2019-02-01 0 1376
37 의식의 흐름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 2019-02-01 0 1080
‹처음  이전 1 2 3 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