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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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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비니언스의 원리 / 문 덕 수
2019년 01월 17일 20시 44분  조회:1415  추천:0  작성자: 강려
수퍼비니언스의 원리
 
                                                          문 덕 수
 
 
[1]
 
시 「침묵」(ꡔ현대문학ꡕ, 1955. 10), 「화석(化石)」(ꡔ현대문학ꡕ, 1956. 3), 「바람 속에서」(ꡔ현대문학ꡕ, 1956. 6) 등은 나의 작품활동의 효시이다. 이전에도 물론 동인활동을 하면서 작품을 선보였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약 반세기 동안, 나름대로 한눈 팔지 않고 땀을 흘려 온 셈이다. 시집은 ꡔ새벽바다ꡕ(성문각, 1975) 등 모두 열댓 권 되고, 논저로는 ꡔ한국모더니즘시연구ꡕ(시문학사, 1981), ꡔ시론ꡕ(시문학사, 2002) 등이 있다.
시도 쓰고, 연구도 하고, 논문도 써 왔지만, 시에 대한 의문은 눈덩어리처럼 더 불어났다. 내 나이도 80 밑자리인데, 인제는 문제 속에서 허덕이기보다는 한두 가지라도 풀어서 분명한 형식으로 가닥을 잡아 놓아야 하겠다. ꡔ오늘의 시작법ꡕ(시문학사, 1986) 같은 저서도, 내가 무슨 시 쓰기의 스승이라는 입장에서보다 시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풀고 싶은 욕망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의 복잡한 의문의 실타래는 최근에 와서 한두 가닥으로 가시화되었다. 우리는 광복 직후부터 문학의 좌우 대립, 순수 대 참여의 논쟁, 모더니즘 대 민중주의의 대립에 이어, 1970년대부터 분열의 폭은 극에까지 이른 ‘형식주의 대 역사주의 갈등’에 직면했다. 이러한 논쟁, 대립, 갈등의 혼란을 다원주의 특징으로 간주하여 예삿일로 보아 넘길 수도 있지만, 적대적 극한상의 경우에는 밑바닥에 잠재된 어떤 일관된 근원 탐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를 쓰면서 토픽을 만들어 서로 논전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더라도(이는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어떤 ‘원칙’에 서서 시를 쓰고 시론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스포츠에서 양측이 지켜야 할 경기규칙과 같은 것이다. 나는 그 원칙을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명제화해 본다.
 
 
 
 
이 명제는 시에서의 ‘수퍼비니언스(supervenience)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민중시건 모더니즘시건 즉 어떤 형태의 시건, 모든 시는 ‘누가, 누구에게, 왜,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라는 8가지 조건으로 총체적 상황(total situation)을 구성한다. 나는 이것을 시(시쓰기, 시론)의 팔하원칙(八何原則)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인이란 무엇인가(메이커인가, 에이젠트인가, 정치가인가), 독자란 무엇인가(수용자인가, 해석자인가, 창조자인가), 동기는 무엇인가(개인적, 사회적 등), 무엇을 쓸 것인가(재료, 주제, 내용 등),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운율, 수사, 방법), 언제 썼는가(시기, 시대적 의미), 어디서 썼는가(지리적, 자연적인 환경이나 장소), 어떤 매재로 썼는가(언어, 기호, 기타 매재) 등의, 이른바 시에 관한 모든 문제가 이 팔하원칙에 내재된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명제(‘시에서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는 팔하원칙에 다 관련되지만, 특히 ‘무엇’과 ‘어떻게’에 집중적으로 관련된다. ‘무엇’이란 시의 재료, 주제, 내용 등을 말하고, ‘어떻게’는 시쓰기의 모든 방법을 총칭한다. 오늘날 시단에서 시의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는 역사주의 대 형식주의는 ‘무엇/ 어떻게’의 관계된다.

 
  [2]
 
1950년에 경남 통영에서 처음으로 청마와 지용을 만났다. 청마는 역사주의가이고 지용은 모더니스트(즉 형식주의자)다. 나는 이 때 역사주의와 형식주의를 처음 만난 셈이다. 그 후, 나는 역사주의와 형식주의에 줄곧 시달려 왔다.
이러한 고뇌와 갈등은 이 땅에서 시를 쓰는 모든 시인들의 공통적 숙명인지도 모른다. 8.15 직후의 좌우대립,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 수립, 6.25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 분단과 통일 과제― 이러한 역사 현실은 시인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시보다는 역사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시와 정치를 뒤섞어 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순수와 참여, 전통과 이데올로기,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립을 가져왔고 이 과정 전체를 역사주의 대 형식주의의 갈등 구조로 개괄할 수 있다. 1930년대에 그처럼 열렬했던 형식주의자 김기림(金起林) 씨는 광복 직후 시집 ꡔ새노래ꡕ(아문각, 1947)를 전후해서 역사주의로 방향을 돌렸지만 거기에서도 버림을 받았다. 역사주의자 임화(林和)는 역사주의에 의해 처형되었고, 김춘수(金春洙)는 형식주의에 순교했으며, 김수영(金洙暎)은 역사주의에 휩쓸렸다가 예술을 버려야 했다.
 
너희들의 적을 사랑하라
나는 이때 예수교도임을 자랑한다
 
적이 나를 죽도록 미워했을 때
나는 적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미움을 배웠다.
적이 내 벗을 죽임으로써 괴롭혔을 때
나는 우정을 적에 대한 잔인으로 고치었다.
적이 드디어 내 벗의 한 사람을 죽였을 때
나는 복수의 비싼 진리를 배웠다.
적이 우리들의 모두를 노리었을 때
나는 곧 섬멸의 수학을 배웠다.
 
적이여! 너는 내 최대의 교사.
사랑스런 것! 너의 이름은 나의 적이다.
― 임화 「적․1」에서
 
이 시는 관념시 또는 역사주의시다. 첫째로 적과 우리라는 적대관계가 텍스트 밖의 정치현실과 연결되어 있고, 둘째로 “사랑, 미움, 잔인”과 같은 관념만이 거리낌 없이 토로되어 있으며, 셋째로 그러한 관념을 실어 운반해주는 물리적 이미지가 없다. 역사주의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너희들의 적을 사랑하라”나 “나는 이때 기독교도임을 자랑한다”는 대목엔 약간의 역설이 내재하나 ‘시’일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엄격하게 따지면 이런 대목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의 물리성에 실려 운반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임화는 앞서 제시한 명제, 즉 ‘수퍼비니언스의 원리’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면 다음에는 이와는 대립되는 형식주의 시를 보기로 한다.
 
산골에서 자란 물도
돌베람빡 낭떨어지에서 겁이 났다.
 
눈덩이 옆에서 졸다가
꽃나무 알로 우정 돌아
 
가재가 기는 골짝
죄그만 하늘이 갑갑했다
 
갑자기 호숩어질랴니
마음 조일 밖에
― 정지용, 「폭포」의 1~4연에서
 
이 시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산에 관련된 작품의 이미지도… 매우 청결하고 투명하고 신선하다. 그 속에 어떤 이데올로기나 휴머니즘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실에 관련된 사상, 휴머니즘적인 일체의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고 있다”고.(졸저, ꡔ한국모더니즘시연구ꡕ, p.111) 1930년대의 극단적인 ‘사물시’라고 할 수 있고, 임화의 「적」과는 대극에 놓인다.
정지용의 「폭포」를 사물시로 간주하더라도 그 사물이 어떤 관념을 운반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즉 관념(이데올로기나 휴머니즘 등)은 결여되어 있다. 청정 무욕의 철학을 암시한다는 것은 독자의 해석일 따름이고, 독자의 해석도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운반된 관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에서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시에서의 관념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과 물체와의 공존을 전제한 것이다. 정지용의 시에서 관념이 없고 물체만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순수성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나가면 그 물체가 가지는 의미마저 거세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물시의 궁극적 형태를 ‘순수시’라고 하더라도 순수성이 그러한 시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3]

 
수퍼비니언스의 원리를 기호화한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념, 물리적 존재, 실려 운반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관념은 생각하고 믿고 의지(意志)하는 모든 사고(思考), 개념, 사상, 이데올로기를 의미하지만, ‘사랑한다, 그리워한다, 미워한다, 슬프다, 아프다’와 같은 감정도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물리적 존재’의 의미는 자연과학의 개념을 빌려와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언어가 가지는 지향성(志向性) 특히 외재적 지향성과 물리성(物理性)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려 운반된다’는 말은 관념이 물리적인 존재에 부수(附隨)된다, 또는 관념이 물리적인 것에 붙어서 따라간다는 뜻이다. 종래의 비유나 상징도 이 범주에 속하나 더욱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시인은 무엇인가를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하여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그 ‘무엇’이란 자기가 과거에 체험하고 인식한 물체인 경우도 있고, 어떤 사건(사태)인 경우도 있고, 어떤 관념(자본주의, 공산주의, 인권, 이성, 존재, 고독 등)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무엇’이란 시인의 의식이 그것으로 향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그 무엇으로 향하고 있음을 지향성(志向性, intetionality)이라고 말한다. 시쓰기도 일종의 지향적 행위다. “길바닥에 마른 풀잎이 떨어져 있다”(문덕수, 「마른 풀잎」에서)에서는 ‘풀잎’으로 지향하고 있으며, “많은/ 태양이/ 죄그만 공처럼/ 바다 끝에서 튀어오른다”(문덕수, 「새벽바다」에서)에서는 ‘태양’을 지향하고 있다. 시에서 시인의 의식이 풀잎이나 태양으로 지향한다는 것은 결국 풀잎이나 태양을 표상(表象)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시에서 어떤 관념을 지향한다면 그 관념은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언어의 ‘물리성’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물리성’이란 무엇일까. 언어가 어떤 물체를 지향하여 그 물체를 표상할 수 있음은, 그 언어에 ‘물리성’(物理性)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즘에서는 사물 이미지를 강조하지만, 그 때의 사물 이미지도 언어의 외재적 특징과 더불어 그 물리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이미지스트들은 물론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시라고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잉크를 묻힌 글자꼴’에 지나지 않고, 글자 그 자체에 무슨 물체에의 지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체에의 지향성은 인간이 읽고 해석하여, 시텍스트 바깥에 있는 물체와 연결을 시켜주는, 다시 말하면 해석에 의하여 물리적 지향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텍스트 자체는 본래적 지향성을 가지지 않고 의사적 지향성(擬似的 志向性, as-if intentonality)을 갖는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언어가 가지는 물리성은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일찍이 비트겐슈타인(L.J.J. Wittgenstein)이 말한 대로, 그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는가, 하는 그 사용법이나 용도, 또는 기능을 통해서 물리성을 인식할 수 있다. “유리상자 속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서/ 유행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은 마네킹은”(문덕수, 「마네킹에서」에서)에서의 ‘마네킹’의 물리성은, 백화점 같은 진열장에 세워놓고 유행복이나 장신구를 입혀 사고 싶은 욕망을 유발하는 인체 모형이라는 용도나 기능에서 알 수 있다. “라이터, TV, 휴대전화, 종이” 등의 물리성도 그 용도나 기능을 생각해 보면 그 물리성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물체의 물리성은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난 탈관념의 물리성, 또는 날 것의 무리성이 중시되어야 한다.
1910년대 무렵 일어난 ‘이미지즘’은 “명확한 이미지”, “정확한 사물의 언어” 등을 강조했다.(졸저, ꡔ한국모더니즘시연구ꡕ, p.47) 이미지즘에서 강조한 이미지는 ‘언어 이미지’이다. “정확한 사물의 언어”라고 했지만, 이미지스트들은 언어가 가지는 외재적 특징이나 물리성에 대한 이해도 없이 이런 어구를 막연히 사용했다. 특히 “정확한 사물”이라고도 했는데, “정확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분명한 논리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미계열의 모더니즘을 다 안 것처럼 이 땅에 소개․도입되었다. 시의 언어에는 외재적 특징과 물리성이 있다. 그러한 외재적 특징과 물리성은 “정확한 사물의 언어”라는 이미지즘의 모호한 개념을 어떤 관점에서든 분명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벽이 걸어온다. 늙은 홰나무가 걸어온다
머리가 없는 인형이 걸어온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트르담 사원의 회랑의 벽에 걸린 청동시계가
밤 한 시를 친다
― 김춘수, 「벽이」에서
 
“벽”, “홰나무”, “인형” 등은 물체어이지만, “벽이 걸어온다”나 “늙은 홰나무가 걸어온다”는 대목은 현실에서는 전혀 그 실현이 가능하지 않는 물체이다. “향수병이 몸을 옴츠리더니 벽을 민다”(김춘수, 「향수병」에서)도 그렇다. 벽, 홰나무, 인형 등의 언어가 가지는 왜재적 특징이나 물리성은 이 시에서는 현실의 물리적 가능성이 박탈되어 무의식 세계나 관념세계에서의 실현 가능성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김춘수는 시집 ꡔ꽃의 소묘ꡕ(1959) 무렵부터 무의미시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물체어의 외재적 특징이나 물리성의 현실적 실현 가능성이 없을 경우, 이처럼 이미지들을 “명확한 이미지”나 “정확한 사물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남향 영창을 열고/ 볕을 쪼이고 앉다”(김윤성 「신록」에서)와 같은 시구의 외재적 특징과 물리성은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갖는다. “봄 바다는/ 유난히 반짝이다”(박명용, 「보길도․2」에서)도 그렇다. 이 경우 시의 언어 이미지와, 시텍스트 바깥의 사물로서의 물리적 실현 가능성이 부합할 때 “정확한 사물의 언어”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시에서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는 수퍼비니언스의 원리에서, 물리적 존재나, 그것에 실려 운반되어야 할 관념은 가급적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이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무의식 속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한 무의미시의 이미지는 수퍼비니언스의 명제에서 는 멀어지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수퍼비니언스의 원리는 이미지즘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해 준다.
 
  [4]
 
 
이 명제는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형식주의는 역사주의를 받아들이고, 역사주의는 형식주의를 받아들일 것을 시사하며, 이것이 오늘의 한국시의 위기를 처방할 한 방안이 되지 않을까. 둘째, 현실에서의 물리적 실현 가능성이 없는 형식주의나, 물리성이 없는 관념위주의 역사주의 시의 성격을 분명하게 규정해 준다. 이런 점에서 실험적 언어주의나 극단적 관념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셋째, 이 명제는 시사적(詩史的) 기준 설정에도 기여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 명제는 내 나름으로 정립한 명제일 따름이다.
이 원리와 더불어 시의 대상을 1, 2, 3과 같은 추상적 기수(基數)로서 개개의 구체성을 사상(捨象)하고 조직할 수 있는 ‘집합적 결합’도 최근에 정립한 나의 시의 한 방법임을 밝혀 둔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겠다.
 
 
문덕수
 
* 靑馬 柳致環 선생의 추천으로 ꡔ현대문학ꡕ지를 통해 등단(1955)
* 제 12차 세계시인대회 집행위원장
*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역임, 명예회장, 
* 홍익대 교수(명예교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역임, 
*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현)
*수상 :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문화훈장, 예술원상
* 저서 : ꡔ한국모더니즘시연구ꡕ, ꡔ現實과 휴머니즘文學ꡕ, ꡔ文學一般의 理解ꡕ, ꡔ시론ꡕ, 
         ꡔ금붕어와 文化ꡕ, ꡔ世界文藝大辭典ꡕ』(편저)
* 시집 : ꡔ線.空間ꡕ, ꡔ새벽바다ꡕ, ꡔ다리놓기ꡕ, ꡔ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ꡕ, ꡔ사라지는 것들과의                       만남ꡕ, ꡔ꽃잎 세기ꡕ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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