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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황아전 / 김 춘 수
2019년 02월 06일 18시 45분  조회:1760  추천:0  작성자: 강려
거지 황아전
 
김 춘 수
 
  어릴 때 본 참빗과 나막신이 없다. 약과틀도 없다. 죽음이 주검이 되어 얼굴이 조막만하다. 살갗이 가짓빛이다. 체인 코코스는 메뉴가 화려하다. 대낮이다. 햇살이 햇살을 보고 히죽이 웃는다. 공원에 다람쥐가 없다. 한바[飯場]의 벽에는 바끔한 틈도 없는 빈대의 핏자국이다. 눈앞에 남자의 그것이 축 늘어져 있다. 날이 샜는데 아침이 오지 않는다.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
―『현대문학』, 2005년 1월
 
 
물성物性들의 혼곤하고 아름다운 엇섞임, 또는 퍼즐 풀기의 즐거움
 
 
  해제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선생의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먼발치에서 몇 번 뵙고 정진규 선생님의 소개로 선생의 맥주도 두어 차례 받아 마셔 본 적이 있을지언정, 선생을 향한 무슨 살뜰한 감정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유일한 미발표작이라는 이 시를 곰곰이 뜯어 읽으면서, 선생의 생전 모습과 내가 전혀 모르는 그의 내력來歷이 불현듯 살갑게 느껴지는 까닭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시는 매우 난해하게 여겨진다. 내용도 그렇지만 "거지 황아전"이라는 제목부터 그 의미를 간추리기 어렵다. "거지", 그리고 "-전"에 주목하면 "황아"라는 이름을 가진 거지의 전기傳記, 또는 「임경업전」이나 「조웅전」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딴 고전소설의 제명題名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결구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의 뒷받침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는, 전고典故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황아"라는 이름이 낯설다. 더구나 대개 "황아"가 ‘황아장수’에서처럼 ‘황화荒貨’, 즉 담배나 쌈지 따위의 잡동사니를 가리킨다는 점, 그리고 시의 "참빗", "나막신", "약과틀" 등속이 황아장수가 파는 잡동사니라는 점에서 다르게 해석될 여지를 품는다. 그렇다고 "황아"를 ‘황화荒貨’로 이해한다면, 앞에서의 "거지"나 "-전", 그리고 결구와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킨다. 참 난처한 딜레마다. 일단 숙제로 남겨 놓는다.
  화자는 무릎을 담요로 덮은 채 흔들의자에 앉아 창틈으로 새는 봄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득 두 가지 장면이 기억의 창고로부터 빠져나와 화자의 눈앞에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하나는 "공원에는 다람쥐가 없다"까지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에피소드고, 다른 하나는 "……축 늘어져 있다"까지 비교적 먼 과거의 에피소드다. 과거의 일을 현실에서 동시에 환상처럼 다시 보며, 화자는 창밖의 봄볕을 바라본다. 무심히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의 한 구절,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를 떠올린다.
  화자는 패밀리레스토랑 코코스의 체인점에 와 있다. 손자․손녀를 포함한 가족단위 외식을 위한 모임일 듯하다. 코코스는 현대식 레스토랑답게 선명한 붉은빛을 주조로 깨끗하면서 쾌적하게 꾸며져 있다. 해가 잘 들도록 설계해서 실내는 한층 밝고 화려해, 잘 다듬어진 공원과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공원이 아닌 레스토랑의 실내에 "다람쥐"가 있을 리 없다. 모처럼의 가족 외식에 화자는 한껏 들떠 있다. 실내 가득한 "햇살"도 손주들을 혼자 생각하며 흡족히 바라보는 화자의 미소처럼 "히죽이" 웃는 것 같다. 메뉴는 햄버거스테이크와 데리야끼소스를 이용해 만든 치킨요리를 묶은 믹스드그릴, 부드러운 안심스테이크에 석탄난로로 구운 왕새우를 곁들인 것, 닭가슴살구이에 바삭바삭 튀겨진 옥수수칩을 섞은 멕시칸 샐러드 등속이다. 그런데 식탁 위에 놓인 스테이크요리가 갑자기, 화자의 눈에 음식물이 아닌 생명체의 "주검"으로 비친다. 어쩌면 의식의 한 모서리에서 늘 죽음을 감촉하면서 생활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화자는 하나의 "주검"인 채 "가짓빛"으로 놓여 있는 스테이크요리에서, 언젠가 이장移葬할 때 본, 거의 육탈해 터무니없이, "조막"만하게 작아진 얼굴을 가진 "가짓빛" 시신을 겹쳐 떠올린다. 화자는 자신의 뜬금없는 상상에 스스로 놀라 새삼 주변을 둘러본다. 현대식 패밀리레스토랑에 "참빗"이나 "나막신", "약과틀" 따위가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 화자가 돌연 그것들을 찾는 이유는 뭘까.
  그건 결구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화자가 창밖의 봄볕에서 떠올린 것은 "각설이"다. "각설이"는 봄볕의 비유물이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띤다. 화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각설이"는 황아장수다. 떠돌이행상인 그는 늘 초라하기 짝이 없는 거지몰골일 수밖에 없다.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황아장수를 "각설이"로 기억하는 이유다. 화자는 어린 시절 마을에서 그가 풀어놓는 보따리의 각양각색 잡동사니에 "참빗", "나막신", "약과틀" 따위가 섞여 있음을 생각해 낸다. 봄볕을 보며, 잠시 과거의 기억에 취해 있던 화자는 다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틈입한 현대식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코코스"의 환상 속에서 그것들을 더듬어 찾는다.
  "체인 코코스"의 환한 환상과 겹쳐 떠오른 것은 아득히 먼 젊은 시절의 기억이다. 어떤 정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자가 요기를 위해 든 곳은 노무자들의 임시식당인 "한바[飯場]"다. 그때의 장면을 회상하는 것은 "체인 코코스"와 식당이라는 면에서 겹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화자의 자의식을 예리하게 긁는다. "바끔한 틈도 없는 빈대의 핏자국"은 기억의 사생寫生이다. 의미보다는 "체인 코코스"에 대비된, 습기가 많고 채도가 낮은 이미지를 위해 봉사한다. 이것은 "벽"에 그려진 낙서의 우울한 배경이 된다. 남자의 성기인 "그것이" "축 늘어져 있다". 비록 그림일지언정 하늘을 향해 탱탱하게 용립聳立하지 못하고 땅으로 초라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단순한 성적 기호記號를 넘어 삶과 죽음의 회로도가 이미 포함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환멸과 체념의 고단하고 쓸쓸한 상징이다. 그것은 화자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자의식을 베낀다. 이러한 환상 속에서 화자가 "날이 샜는데 아침이 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낯설지 않다. 
  여기까지 이 시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제목 "거지 황아전"의 의미가 드러났다. 이는 애초 "거지 황아장수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은 "-전" 앞의 "황아장수"가 너무 길고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지 않는 일반명사라 어색할뿐더러, 제목다운 여운을 주기에는 의미가 너무 선명하다. 과감히 "장수"를 빼 본다. "거지 황아전"의 "황아"는 특정인을 가리키는 이름 같기도 하고 황화荒貨, 즉 잡동사니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상상력의 숨통을 묘한 방향으로 뚫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름으로 치더라도 「우상전虞裳傳」의 "우상"처럼 예스러우면서 그럴 듯하다. 선생은 투명한 사실 대신 모호한 언어적 묘미를 선택한다. 선생의 제목 짓기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이 시의 난해함은 문장의 배열이 시간의 맥락이나 에피소드의 인과관계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의 자동기술법"을 본따 이루어졌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본따’라고 표현한 것은 그 배열이 ‘무의식의 자동기술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다분히 전략적으로 그 비슷하게 배열했다고 여겨서다. 그러나 그것이 2류시인의 유치한 꾀부림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탄력있게 조였다 끊는 리듬의 깨끗함도 깨끗함이지만, 천진하면서도 그윽한 이미지의 태깔과 그것들의 리드미칼한 파동 때문이다. 
  이 시의 주조적 이미지는 "참빗", "나막신", "약과틀", "가짓빛" "주검"으로부터 투사된다. 이 낱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산란散亂하는 이미지들은 얼핏 검박 ․ 산뜻하면서도 마치 오래 손때가 탄 채 맑게 닦인 대청마루의 어슬녘빛 같은 깊고깊은 고요를 거느린다. "주검"조차 그렇게 여겨진다. 그것은 "주검"의 표면에 칠해진 "가짓빛" 식물성 이미지의 윤기 있는 진보라빛 깊고 향긋한 채색으로부터 발원한다. "가짓빛" "주검"은 "참빗", "나막신", "약과틀"의 이미지와 약간 거리를 둔 채 그것들을 더 깊고 향기롭게 감싼다. 또 "바끔한 틈도 없는 빈대의 핏자국"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남근男根은 그것이 품는 의미와 상관없이 미묘한 조형성을 느끼게 한다.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나 「꽃과 어린이와 게」처럼 낡고 꼬질꼬질한 배경 위에 송곳이나 목탄 따위로 그려진 남근을 연상하게 된다. 여기에서 조형미를 바라보는 것은 나만의 상상인지 모르겠다.  
  더 중요한 미덕은 "날이 샜는데 아침이 오지 않는다"의 타나토스적 전경前景 아래 봄볕을 각설이패로 비유하는 은근하면서도 흐벅진 여유다. 위에서 말했지만, "각설이"는 황아장수이며, 그것은 현재 화자가 무릎을 담요로 덮고 바라보는 거실 바깥의 봄볕이다. 어쩌면 더욱 비감 어리게 할 수 있을 봄볕을 각설이의 개구지고 활발한 이미지로 바꿔치기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노련한 세공술사의 솜씨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각설이패의 이면에 가려진 비애를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타나토스적 정황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그러한 여유는 언어에 대한 무봉無縫하고 겸허한 태도에서 유로된다.
  이 시를 다 읽고 난 후 독자들은 원래의 의미와 정서는 봄볕에 희석된 채, 각각의 이미지들만이 살아 순연한 물성物性에 육박하는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소위 무의미시로 다듬어지고 세척된 정서의 염결과 세련에 연유한다. 이는 선생의 가장 선생다운 기호嗜好다. 아무러나 이 시가 내장한 퍼즐을 푸는 것은 어렵고 재미없는 난수표를 읽는 곤혹스런 짜증이 아니라, 유쾌한 사건을 추리하는 탐정의 그것처럼 시원한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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