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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발레리 - 노고
2019년 03월 12일 15시 42분  조회:2318  추천:0  작성자: 강려
폴 발레리 - 노고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세트에서 태어나 몽펠리에 대학을 졸업했다. 홀로 습작을 하던 중 1890년 몽펠리에 대학 개교 기념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피에르 루이스를 통해 지드를 알게 되고 말라르메와도 교류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뒤에 파리로 이주하여 「테스트 선생과의 저녁」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방법론 입문」 등의 글을 통해 깊이 있는 사고와 필력을 과시했으나, 절필하고 무려 20여 년간 문학 활동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뒤에 프랑스 시에서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장시 「젊은 파르카 여신」을 발표하고, 대표작 「해변의 묘지」와 「나르시스 단장」 등을 담은 시집 『매혹』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밖에도 유럽 정신의 회복을 주장한 일련의 문명 비평과 철학적 성찰, 시학의 새로운 개념 정립을 시도한 시론, 문학비평 등도 발표했는데, 이런 글들은 『바리에테』 『요즘의 세상을 바라봄』 등에 실렸다. 또한 플라톤의 대화 형식을 부활시킨 『외팔리노스 또는 건축가』 『나무에 대한 대화』 『고정관념』 등도 발표했다. 발레리의 전체적인 사상은 말년의 미완성작 『나의 파우스트』와 평생에 걸친 성찰의 결실인 작업 공책 모음 『카이에』 등에 담겨 있다. 1945년 세상을 떠난 발레리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세트 해변의 묘지에 묻혔고, 드골 정부는 국장으로 그를 예우했다.
 
 
 
 
 
해변의 묘지        
                                
 
 
비둘기들 노니는 저 고요한 지붕은
철썩인다 소나무들 사이에서, 무덤들 사이에서.
공정한 것 정오는 저기에서 화염으로 합성한다       
바다를, 쉼없이 되살아나는 바다를!
신들의 정적에 오랜 시선을 보냄은
오 사유 다음에 찾아드는 보답이로다!
 
섬세한 섬광은 얼마나 순수한 솜씨로 다듬어내는가
지각할 길 없는 거품의 무수한 금강석을,
그리고 이 무슨 평화가 수태되려는 듯이 보이는가!
심연 위에서 태양이 쉴 때,
영원한 원인이 낳은 순수한 작품들,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지식이로다.
 
 
견실한 보고, 미네르바의 간소한 사원,
정적의 더미, 눈에 보이는 저장고,
솟구쳐오르는 물, 불꽃의 베일 아래
하많은 잠을 네 속에 간직한 <눈>,
오 나의 침묵이여!…… 영혼 속의 신전,
허나 수천의 기와 물결치는 황금 꼭대기, <지붕>!
 
단 한 숨결 속에 요약되는 시간의 신전,
이 순수경에 올라 나는 내 바다의
시선에 온통 둘러싸여 익숙해 진다.
또한 신에게 바치는 내 지고의 제물인 양,
잔잔한 반짝임은 심연 위에
극도의 경멸을 뿌린다.
 
 
과일이 향락으로 용해되듯이,
과일의 형태가 사라지는 입 안에서
과일의 부재가 더없는 맛으로 바뀌듯이,
나는 여기 내 미래의 향연을 들이마시고,
천공은 노래한다, 소진한 영혼에게,
웅성거림 높아가는 기슭의 변모를.
 
아름다운 하늘, 참다운 하늘이여, 보라 변해 가는 나를!
그토록 큰 교만 뒤에, 그토록 기이한,
그러나 힘에 넘치는 무위의 나태 뒤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니,
죽은 자들의 집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 가여린 움직임에 나를 순응시키며.
 
 
지일(至日)의 횃불에 노정된 영혼,
나는 너를 응시한다, 연민도 없이
화살을 퍼붓는 빛의 찬미할 정의여!
나는 순수한 너를 네 제일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스스로를 응시하라!……그러나 빛을 돌려주는 것은
그림자의 음울한 반면을 전제한다.
 
오 나 하나만을 위하여, 나 홀로, 내 자신 속에,
마음 곁에, 시의 원천에서,
허공과 순수한 도래 사이에서, 나는
기다린다, 내재하는 내 위대함의 반향을,
항상 미래에 오는 공허함 영혼 속에 울리는
가혹하고 음울하며 반향도 드높은 저수조를!
 
그대는 아는가, 녹음의 가짜 포로여,
이 여윈 철책을 먹어드는 만(灣)이여,
내 감겨진 눈 위에 반짝이는 눈부신 비밀이여,
어떤 육체가 그 나태한 종말로 나를 끌어넣으며
무슨 이마가 이 백골의 땅에 육체를 끌어당기는가를?
여기서 하나의 번득임이 나의 부재자들을 생각한다.
 
닫히고, 신성하고, 물질 없는 불로 가득 찬,
빛에 바쳐진 대지의 단편,
불꽃들에 지배되고, 황금과 돌과 침침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이곳, 이토록 많은
대리석이 망령들 위에서 떠는 이곳이 나는 좋아.
여기선 충실한 바다가 나의 무덤들 위에 잠잔다!
 
 
찬란한 암케여, 우상숭배의 무리를 내쫓으라!
내가 목자의 미소를 띄우고 외로이
고요한 무덤의 하얀 양떼를,
신비로운 양들을 오래도록 방목할 때,
그들에게서 멀리하라 사려 깊은 비둘기들을,
 
여기에 이르면, 미래는 나태이다.
정결한 곤충은 건조함을 긁어대고,
만상은 불타고 해체되어, 대기 속
그 어떤 알지 못할 엄숙한 정기에 흡수된다……
삶은 부재에 취해있어 가이없고,
고초는 감미로우며, 정신은 맑도다.
 
 
감춰진 사자(死者)들은 바야흐로 이 대지 속에 있고,
대지는 사자들을 덥혀주며 그들의 신비를 말리운다.
저 하늘 높은 곳의 정오, 적연부동의 정오는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사유하고 스스로에 합치한다……
완벽한 두뇌여, 완전한 왕관이여,
나는 네 속의 은밀한 변화이다.
 
너의 공포를 저지하는 것은 오직 나뿐!
이 내 뉘우침도, 내 의혹도, 속박도
모두가 네 거대한 금강석의 결함이어라……
허나 대리석으로 무겁게 짓눌린 사자들의 밤에,
나무뿌리에 감긴 몽롱한 사람들은
이미 서서히 네 편이 되어버렸다
 
사자들은 두터운 부재 속에 용해되었고,
붉은 진흙은 하얀 종족을 삼켜버렸으며,
살아가는 천부의 힘은 꽃 속으로 옮겨갔도다!
어디있는가 사자들의 그 친밀한 언어들은,
고유한 기술은, 특이한 혼은?
눈물이 솟아나던 곳에서 애벌레가 기어간다.
 
 
 
간지 소녀들의 날카로운 외침,
눈, 이빨, 눈물 젖은 눈시울,
불과 희롱하는 어여쁜 젖가슴,
굴복하는 입술에 반짝이듯 빛나는 피,
마지막 선물, 그것을 지키려는 손가락들,
이 모두 땅 밑으로 들어가고 작용에 회귀한다.
 
또한 그대, 위대한 영혼이여, 그대는 바라는가
육체의 눈에 파도와 황금이 만들어내는,
이 거짓의 색체도 없을 덧없는 꿈을?
그대 노래하려나 그대 한줄기 연기로 화할 때에도?
가려므나! 일체는 사라진다! 내 존재는 구멍나고,
성스런 초조도 역시 사라진다!
 
 
깡마르고 금빛 도금한 검푸른 불멸이여,
죽음을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만드는,
끔찍하게 월계관 쓴 위안부여,
아름다운 거짓말 겸 경건한 책략이여!
뉘라서 모르리, 어느 누가 부인하지 않으리,
이 텅빈 두개골과 이 영원한 홍소(哄笑)를!
 
땅밑에 누워 있는 조상들이여, 주민 없는 머리들이여,
가래삽으로 퍼올린 하많은 흙의 무게 아래
흙이 되어 우리네 발걸음을 혼동하는구나.
참으로 갉아먹는 자, 부인할 길 없는 구더기는
묘지의 석판 아래 잠자는 당신들을 위해 있지 않도다
생명을 먹고 살며, 나를 떠나지 않도다.
 
자기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미움일까?
구더기의 감춰진 이빨은 나에게 바짝 가까워서
그 무슨 이름이라도 어울릴 수 있으리!
무슨 상관이랴! 구더기는 보고 원하고 꿈꾸고 만진다!
내 육체가 그의 마음에 들어, 나는  침상에서까지
이 생물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제논! 잔인한 제논이여! 엘레아의 제논이여!
그대는 나래 돋친 화살로 나를 꿰뚫었어라
진동하며 나르고 또 날지 않는 화살로!
화살 소리는 나를 낳고 화살은 나를 죽이는도다!
아! 태양이여…… 이 무슨 거북이의 그림자인가
영혼에게는, 큰 걸음으로 달리면서 꼼짝도 않는 아킬레스여!
 
아니, 아니야!…… 일어서라! 이어지는 시대 속에!
부셔버려라, 내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형태를!
마셔라, 내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신선한 기운이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나에게 내 혼을 되돌려준다…… 오 엄청난 힘이여!
파도 속에 달려가 싱그럽게 용솟음치세!
그래! 일렁이는 헛소리를 부여받은 대해(大海)여,
아롱진 표범의 가죽이여, 태양이 비추이는
천만가지 환영으로 구멍 뚫린 외투여,
짙푸른 너의 살에 취해,
정적과 닮은 법석 속에서
너의 번뜩이는 꼬리를 물고 사납게 몰아치는 히드라여,
 
바람이 인다!……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폴 발레리-노고
<시에 대한 담화론>
시는 영감에 온다. 영감은 우발적 진동, 전기적 에너지이다. 영감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시인이 되지 않는 이유는 시인은 제작에서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영감은 시적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꿈의 우주, 꿈의 상태, 발생과 유사하다. 폴 발레리는 영감을 꿈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꿈은 곧 상실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노고에 의한 제작이다.
영감은 독자에 의해 발견되며 작품에 부여하는 것이다. 독자가 작품을 읽고 경탄하게 되는데, 이때 경탄은 기존의 이성이 끼치는 것이다. 발레리는 영감이 독자에 의해 작품에 의미 지어지는 것이지, 시인의 방법론은 아니라고 한다. 영감에 의해 시를 쓰기보다 노고에 의해 써야한다고 한다.
폴 발레리는 법대출신이다. 법대 출신들은 지성의 메카니즘적 사고를 한다.
시와 소설(산문)의 차이는 라캉이 샤플렝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라르브가 산문은 보행이고 시는 무용이다 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보행은 목적이 있고, 무용은 보행과 같이 신체기관을 움직이는 동시에 신경들도 사용한다. 그러므로 시는 산문과 동일한 요소, 동일한 메카니즘에 적용된 운동이나 규칙, 관습의 차이로 구별된다. 시는 산문시라도 리듬이 있다면 시다. 산문시를 읽을 때, 리듬을 찾지만 소설은 리듬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문시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상대를 이해시키고 즉 다른 이미지로 대체하고 서술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산문에서 형식은 보존되지도 않고 이해작용이 끝난 후까지도 존속되지 않는다. 사라진다. 그러나 시는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폴 발레리는 시와 산문의 구분을 시의 추동운동에 빗대어 표현한다. 대칭적인 두 점 사이를 왕복하는 추처럼 시란 외형(소리, 음성, 리듬)과 내형(의미, 관념, 추상, 사고) 즉 형식과 의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형태와 내용사이, 소리와 의미 사이, 한편의 시와 시적 상태 사이에 왕복운동이 나타난다. 산문은 독자를 환각에 빠져 자신의 이미지에 몰두하게 하지만 시는 가짜 현실을 강요하지 않으며 존재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어떤 시인도 관념을 쫓으려했다. 제작에 있어서도 철학자의 사유와 관념에서의 철학적 사유는 다르다. 철학과 시속의 철학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나 루크네티우스는 철학을 시에 담으려고 시도한다. 이에 대한 평가는 호평적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시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발레리는 고전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려운 이유는 의미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리듬, 소리, 음성, 목소리가 어렵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폴 발레리는 상징주의 계열 시인이다. 상징주의 시는 원관념이 빠진 보조관념의 시다. 보조관념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상징주의 시는 10명 정도. 나머지는 초현실주의, 다다, 미래파. 그 이후에 현대 시인들은 본질을 제거하고 의미를 담지 않는다. 초현실, 미래파는 의미를 포기한 예라 할 수 있다.)말라르메 계보를 이어간다. 말의 건축성을 가지고 의미를 구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의 건축성을 가지고 세계의 원리를 보여주려 한다.
보통 시를 짓는 것은 영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인간적 성취의 느낌을 강력하게 불러일으키는 시들은 노고로 얻어진 시들이다. 여기에서 영감은 시인을 위한 영감이 아니라, 독자를 위한 영감이다. 그래서 시인은 독자가 시를 읽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고의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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