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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타자 이론 김 지 영<부산대>
2019년 03월 12일 17시 43분  조회:787  추천:0  작성자: 강려
들뢰즈의 타자 이론
 
김 지 영<부산대>

Ⅰ.
서구의 형이상학에서 타자의 문제는 데카르트(R. Descartes)에 의해 확립된 의식 철학의 한계를 폭로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주관화하여버린 의식 철학의 대안을 강구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코기토(Cogito)가 중심이 된 의식 철학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인식의 문제를 철학의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결코 회의할 수 없는, 생각하는 나의 의식이 인식의 정초로서 우선권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의식의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는 인식의 대상이 되었다. 의식 철학에서 주체와 객체의 대립은 실상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으로서 객체의 대립이며, 인식을 넘어선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칸트(I. Kant)에 의하면 인간은 오성의 선험적 범주에 따라 종합적으로 구성된 세계를 인식할 뿐이지,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후설(E. Husserl)은 순수의식 밖의 물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의식은 지향적 의식이라는 노에시스-노에마(Noesis-Noema) 구도로 주체와 객체의 합일을 입증하지만, 그 구도에서 객체는 절대적 존재인 의식에 대해 상대적일 뿐이다. 타자의 문제는 이러한 구도 즉, 객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주체의 의식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구도를 파열하면서 등장하였다. 주체의 인식의 대상이 아닌 타자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주체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타자를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근대 철학에서 객체가 주체의 인식의 대상으로 환원됨으로써 주관화되었다면, 탈근대 철학의 타자 의제는 주체로 환원되지 않고 동화되지 않는 타자의 타자성을 탐구한다.
한편 주체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타자의 타자성을 사유하는 일은 근대 역사에서 억압되고 배제되었던 타자들의 위치를 복원하는 일과 밀접하게 엮여있다. 서구 백인 남성이 인간을 대표하는 인간중심주의의 근대 담론에서 여성, 원주민, 광인, 동성애자, 소수 민족 등으로 나타났던 타자의 공간을 찾아주는 일은 이 담론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의 담론을 생산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자를 주체의 정체성의 일부로 포섭한 근대 담론에서 진정한 타자의 위치는 찾을 수 없다. 근대 담론이 인정하는 타자의 위치는 주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배경과 배제의 위치이거나, 혹은 주체에 포섭되어 주체의 증식을 이루는 동화의 위치이다. 그리하여 근대 담론 안에서 피식민지인과 유색인과 여성의 지위를 복원하는 일은 결국 서구 백인 남성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주변에서 벗어나 중심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피식민지인과 유색인과 여성이라는 타자 안에 주체와 타자, 중심과 주변, 식민과 피식민의 이분법을 증식하는 일이고 동시에 근대 담론의 억압적 구조를 증식하는 일이다. 따라서 근대 담론으로 환원되지 않고 동화되지 않는 타자의 담론의 생산이 탈근대 비평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이다.
본 논문은 타자의 담론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이론을 고찰하고자 한다. 다른 이론가들에 비해 들뢰즈가 타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저작은 양적으로 미소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이 가지는 급진적인 탈근대성으로 인해 들뢰즈의 이론 전체가 타자의 담론으로 여겨진다. 들뢰즈의 타자(Autrui)는 단적으로 말하여 ‘가능 세계의 표현인 구조-타자’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채우는 겹주름이며, 언어를 통해 실현되는 가능성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타자는 인간이 사물과 직접 마주했을 때의 생경함과 가혹한 추상성을 완화시켜주는 윤활유 같은 것, 즉 이 세계에 사는 인간의 일상적 삶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들뢰즈의 타자 이론은 타자를 가능성의 표현으로 규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들뢰즈는 가능성의 표현 너머 이념(Ideas)의 장인 표면으로 나감으로써 타자 저편에 있는 ‘타자의 타자’에 이른다. 이것이 우리가 들뢰즈의 타자 이론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점이다.
들뢰즈가 타자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한 저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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