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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웃다 - 김귀선
2022년 05월 26일 15시 14분  조회:686  추천:0  작성자: 강려
달이 웃다 
 
김귀선
 
"원래 다 그런 겁니다아."
택시 기사의 축 늘어뜨린 음성에서 능청스러움이 삐져나온다. 속이 울렁거린다. 차에서 내린 그 자리에 여행용 가방과 함께 멍하니 서 있다. 그런 나를 뒤로 한 채 택시는 재바르게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자정 가까운 시간, 구름 사이 달은 훤한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자꾸만 더듬거린다.
'원래 그런 것이라.'
혼란스럽다. 경비실 맞은편 의자에 몸을 디밀듯 앉는다. 여행 동안 함께한 가방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본다. 
 
◇ 삼십 분 전
 
여독에 절은 채 공항 리무진에 얹혀 대구에 도착하였다. 굴속을 들여다보듯 궁둥이를 내민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 짐칸 깊숙이 웅크리고 앉은 짐을 꺼낸다. 크고 작은 가방이 세 개다. 무게의 정도에 따라 어깨에 메고 왼손에 들고 하나는 오른손으로 끈다. 불을 환하게 켜고 줄서 있는 택시 앞으로 갔다. 먼저 택시를 잡은 아가씨는 뒷좌석으로 박스를 밀어 넣느라 허리를 반쯤 내놓고 있다. 빈 차 앞에 이르러 우리도 짐을 실으려 손에 든 가방을 내려놓았다. 운전사가 얼른 내린다. 앞의 택시와는 달리 가방을 트렁크로 번쩍 옮겨준다. 이런 친절한 기사도 있었구나. 피로회복제를 먹은 듯 몸이 가볍다. 예상하지 않았던 친절에 차에 타자마자 앞서 못마땅한 서비스에 대해 속풀이한다.
그런데 밖을 보니 우리 집 방향과 반대로 차가 고속으로 달린다. 당황해 하며 얼른 목적지를 말하자 자기도 깜박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좀 전의 서비스를 생각하면 기분이 언짢지 않다.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서비스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는 등 장단이 잘 맞는다. 막내딸 아이가 신나한다.
 
◇ 세 시간 전
 
부산 김해공항에 내렸다. 대구로 오는 리무진 버스표를 사기 위해 안내소에 들른다. 현금을 주고 타라는 말과 함께 1번 정류소에서 기다리라 한다. 여행에 지친 몸이지만, 지정석이 아니기에 휴게실 가는 것도 포기하고 줄을 섰다. 가방을 곁에 두고 자세를 고쳐가며 한 시간여를 기다린다. 드디어 버스가 온다. 뒷사람을 위해 짐을 안쪽으로 깊이 넣으라며 버스 운전사는 옆에 서서 고함을 지르듯 말한다. 옆의 분이 고맙게도 자기 짐을 제쳐두고 짐칸 문지방에서 미끄러지는 내 짐을 같이 올려준다.
버스가 움직이고 십여 분이 지나자 여기저기 들리던 전화소리도 멈춰 조용하다. 그제야 몸을 의자 깊숙이 밀어 넣고 잠을 청한다. 그때,
“안전벨트 매 주이소오.”
운전사의 투박한 음성이 차 안 공기를 세게 흔든다. 그리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딱 소리와 함께 실내등을 몽땅 끈다. 순간 캄캄하다. 들여다보던 물건을 더듬거리며 챙겨 넣는지 뒷좌석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린다.  
 
◇ 이십일 전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였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리무진 버스표를 산다. 매표 직원은 버스가 대기한 곳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무거운 가방을 차에 옮길 걱정에 버스 짐칸 가까운 곳에 서서 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딸아이가 얼른 내 가방을 뒤로 끌어당긴다. 돌아보니 가방과 사람이 나란히 두 줄로 서 있다. 
직원이 나타나서 일일이 가방에다 꼬리표를 단다. 직원이 짐칸에 짐을 실을 동안 승객은 버스에 오른다. 차가 출발하자 운전사의 낮은 음성이 마이크로 들린다. 여기저기에서 안전벨트 매는 소리가 난다. 조용해 대화하기도 조심스럽다. 간간이 휴대전화 만지작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도착지에 내리자 이번엔 운전사가 짐을 다 꺼내주면서 일일이 확인까지 해 준다.
이어서 택시 승강장으로 간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저절로 택시 문이 열린다. 운전사가 얼른 차에서 내리더니 무거운 가방을 트렁크에 실어준다. 손에 짐을 들고 문을 열어야 하는 불편함 없이 편하게 차에 탄다. 운전사는 목적지까지 어느 길을 택해 갈 것인지를 미리 설명한다. 말을 알아들은 딸아이들이 좋다고 하자 차가 움직인다. 숙소인 아파트에 도착했을 땐 역시나 짐을 다 내려준다.  
 
◇ 바로 전
 
우리 집 앞에 도착해 미터기 금액을 보니 7,700원이었다. 만원을 내밀었다. 돈을 받은 운전사는 얼른 내리더니 트렁크에 얹힌 가방부터 내려준다. 마지막까지의 친절에 그저 감동이다. 가방을 건네받고 거스름돈을 기다린다. 내어줄 돈을 잊었는지 운전사가 그냥 차에 오르려한다. 얼른 거스름돈 이야기를 하자 능청스러움이 섞인 말 몇 마디가 움직이는 차 안에서 흘러나온다.
“원래 다 그런 겁니다아.”
 
하늘을 본다. 달이 웃고 있다.
 
∣작법 공부∣
 
문학작품의 본질적 방법은 구성에 있다. 그것이 시문학이든 소설이나 희곡이든 창조적 구성작업 없는 창작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진흙을 가지고 사람의 모양을 빚었다는 기록이 있다. 구성이란 소재라는 진흙을 가지고 문학작품이라는 존재ㆍ대상(형상적 존재)을 빚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문예수필의 기본 창작양식을 ‘소재에 대한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라고 하는 말 중에 ‘구성적’이라는 낱말이 바로 이 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리 소재에 대한 비유(상징) 창작이 뛰어나다고 해도 작품 구성이 안 되어 있다면 창작에 실패 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구성법으로 창작에 성공하고 있는 작품이다. 서두문단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현재시점의 문장세계다. 전개문단에 들어오면 <삼십분 전>, <세 시간 전>, <이십일 전> 이라는 소제목이 보여주고 있는 대로 소과거로부터 대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 전말이 서술된다. 그리고 종결문단은 <조금 전>이라는 서두문단의 현재 시점 직전 과거를 서술하고 있다. <현재시점 서두 → 소과거시점 전개 → 대과거시점 전개 → 현재시점 복귀 종결> 구성법은 서사문학 구성법의 일반적인 기본 구성법이다. ([창작문예수필 - 작품과 작법 5 ]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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