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혈(血)(허창렬) 외 3 수
드디여 혈(血)이 혈(血)을 만나 루(漏)의 강물을 이룬다
사품치는 분노, 녹있는 쇠파이프ㅡ
잠겨있는 자물쇠를 파도가 하품하며 그렇게 쳐다보고 있다
안타깝게 소리치다 못해 더욱 고독해져가는 개
주인이 없는 빈방에서 한판 더 요란스레 수다 떠는 바퀴벌레떼
빈대의 낡은 속사정만큼 궁색해진 그들의 속셈을 이제는 아무도 알수가 없다
영웅의 발자국을 너무 쉽게 노래 부른다
경이로운 팬티속에서 불끈거리는 남성의 힘
자음과 모음이 삐꺽대며 헤픈 녀자의 속살을 아프게 희롱한다
밤은 그래도 박수 칠때 조용히 떠난다
률(律)과 룰(韵),그리고 혈(血)과 혈(穴)의 루(漏)ㅡ
[시]독<毒>(허창렬)
아편은 가라
망각의 늪에서 령혼의 창문을 찾아 노크하는 빨간 풍선
소망의 단단한 반지안에 반짝이는 까만 숲
불쑥 내 어깨를 딛고 올라 서는 파도의 굵직한 체험,
목이 긴 유리잔에서 사치스러운 뱀이 긴 혀를 날름거리며
놀란 커피의 가슴을 다시 식히고 있다
달이 먼저 벌겋게 독을 쓰며 얼굴을 붉힌다
별들이 중독되여 댄스의 밤무대에서 비틀비틀거린다
참새의 옆꾸리마다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위대한 삶의 수맥을 찾아 어지러운 현기증이 어마어마한 손놀림으로
가을의 허름한 문풍지를 억새풀로 힘차게 잡아두드리고 있다
유령의 밝은 귀속에서 나의 꿈마저 사정없이 도굴한 자여
너의 이상한 환각마저 거꾸로 비추는 거대한 호수여
천사의 기진한 넋이 부르짖는 저 행군의 긴 나팔소리에
그때-야 천천히 대문을 열고 반쪽 얼굴을 내미는 에필로그
맨살의 링크마저 말끔히 잊고 컴퓨터 창을 누르면
부처님 관속에서 파란 린불을 뒤집어쓴 허다한 도깨비들이
내 방에서 뚝뚝 뛰여 다닌다
2014년3월22일
[시]장마속의 거울 그리고 달빛속의 녀인(허창렬)
녀자는 우산속에서 다시금 거울을 꺼내든다 어둠이 그녀의 풍만한 몸을 뒤에서 꼬옥 감싸안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아주 천천히 더욱 천천히 흐물쩍 흐물쩍 맛있게 삼켜버린다 가끔 희읍스레한 가로등불빛이 거울속의 그녀의 빨간 입술마저 임자없는 산기슭의 앵두 삼키듯이 한입에 냉큼냉큼 삼켜버린다 장마비는 눈물이 아닌 그녀의 쯥쯔레한 살냄새에 아예 환장해 못살겠다는듯이 기를 쓰고 온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파도치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얌전한 고양이처럼 그녀의 두볼에 착 기대여 서있고 볼품없이 자그마한 도시가 그녀의 가녀린 등에 업혀 천천히 아주 또 천천히 앞으로 미끌어져 가고 있다
철해의 바람은 녹스른 칼날이다. 비행장을 나서며 호주머니에 깊숙히 간직한 캔커피가 그래도 따뜻한 내 심장을 위로로 어루만져준다 풀 한포기조차 보이지않는 시커먼 민둥산ㅡ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버려진 진짜 고아다 지구인이 아닌 화성인이다 누릿한 양고기냄새와 이상한 조미료 냄새를 싯누런 이발사이로 물씬물씬 풍기며 장족택시기사는 무엇이 그리도 신났는지 저 혼자 계속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중얼거린다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본다 불쑥 부처님의 손발이 보이다가 화면이 바뀌면서 이상한 녀인이 내 눈앞에서 빙그레 웃는다
아주 작은 려관방이다. 댕그랗게 삐걱거리는 침대우에 놓여진 털담요 하나 속이 울렁울렁거린다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숨을 훌훌 내쉰다
2014년3월20일
2014년3월23일
[시]아버지(허창렬)
이제 마지막 남은 담배 한가치 태우지 않기로 했다
살아 생전 내 손으로 담배 한갑 사드린적 없는 아버님께
코끝이 찡한 그런 향으로 지펴 올리기로 결심을 했다
얼마나 가슴이 쓰리고 아팠으면 그 굵직한 엽초로
한생을 고스란히 그렇게 다 태우셨을가?
얼마나 손발이 시리고 또 안타까웠으면 고토리만큼한 대통
그 조그마한 온기에 온몸을 기대고 외롭게 살아오셨을까?
손벽치면 꺼이꺼이 먼지같이 일어서는 나의 긴 그림자
속까지 하얀 청명이면 비를 찾아 뿌리 내리는 날개젓는 은방울꽃
당신은 오늘도 퇴마루에서 홀로 장기를 두고 계십니까?
생각을 줏다가 줄 끊어진 퉁소소리 한가닥
아픔은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것이 아니다
귓가에서 침묵의 함성이 항상 종소리로 메아리치고있을뿐이다…
2014년3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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